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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십대에했던 생각과 경험을 남기고 싶어요. 지금 서른 살의 모습을 만든 것은 이십대의 생각들이니까. 시간이지나면 생각이달라질 수는 있지만 이십대의 생각을 간직해 두었다가 나중에시간이지났을 때내가 어떻게변해왔는지를 보고 싶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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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는 주목받는 학생이었어요. 공부도 잘 하고 항상 반장도 하고. 근데 수능도 그렇고 수시 도 그렇고 다 실패를 한 거예요. 목표하던 대학이 아닌 다른 대학에 합격했는데 가기가 싫 었죠. 그래서 머리를 빡빡 밀고 재수학원에 들어갔어요.

제가 원래 경쟁적인 분위기를 안 좋아해요. 되게 압박감 느끼고. 도서관 독서실 이런 데를 잘 안 가요. 재수학원에서도 그런 분위기가 싫어서 맨 끝에 앉아서 맨날 잤어요. 오자마자 자니까 담임 선생님한테 맨날 걸려서 불려갔죠. 왜 자냐, 이거 풀어봐라 저거 풀어봐라. 그 러다 결국 삼 일 만에 쫓겨났어요.

그렇게 1년 재수를 하고, 결국 수능을 또 망쳐서 처음 붙었던 대학에 갔어요. 고등학교 근 처 대학에 가다 보니까 대학에 고등학교 동창들이 많았어요. 다 아는 친구들인 거죠. "1년 동안 안 보였는데 너 뭐했어?" 다 물어보고. 게다가 걔네는 재수를 안 했으니까 다 선배 역 할을 하고 있고. 어릴 때라 그게 너무 창피했어요. 그래서 학교생활을 아예 안 하게 됐죠. 입학하기 전부터 학교생활이 전혀 기대가 안 됐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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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가 재수학원에 있을 때 둘째 누나가 케냐에 있었어요. 그때 누나가 편지로 '내가 보고 있 는 이 밤하늘을 너도 봤으면 좋겠다' 이런 말을 했어요. 그때부터 막연히 재수가 끝나면 케 냐에 가야겠다고 생각했던 것 같아요. 그냥 입버릇처럼 "끝나면 케냐 갈 거야", "케냐 당연 히 가야지" 맨날 그랬어요. 제가 누나들의 영향을 엄청 많이 받았거든요. 어머니 아버지는 한 번도 제게 뭘 해라 말라 하신 적이 없었어요. 그러니까 자연스럽게 누나들을 보고 배우 게 된 거죠. 누나들 성향도 엄청 달라요. 첫째 누나는 굉장히 성공을 추구하는 커리어 우먼 스타일이에요. 둘째 누나는 인생의 행복을 추구하는 스타일이고.

그러다 보니까 책장에 꽂혀있는 책도 엄청 달라요. 첫째 누나 책장엔 여자가 성공하는 법, 서른 살에 성공하는 법, 이런 책들이 꽂혀있어요. 둘째 누나는 명상, 불교 이런 거 꽂혀있고. 하루는 첫째 누나가 [시크릿]이란 책을 줬어요. 그 책을 읽어보면 동화 같은 내용밖에 없어 요. 네가 믿고 있으면 의심도 하지 마라. 이루고자 하는 바를 말하면 어느샌가 이뤄져 있다. 너무 터무니없잖아요. 그래서 되게 별로라 생각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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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 원짜 , 7천 집 부잣 바사 몸 , 집 친구 , 시골 행 케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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치관 의가 살 무 폰, 스 핸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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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가 재수학원 내내 계속 케냐 갈 거라고 말을 해왔잖아요. 저는 사실 진짜로 갈 생각이 없 었거든요. 근데 계속 말을 해 놨으니까 진짜 가야 할 것 같은 거예요. 재수 끝나고 모아뒀던 알바비도 둘째 누나 대학원 입학금으로 줬거든요? 그래서 누나 때문에 케냐 못 갔다고 변 명하고 있었는데 알바 자리가 물밀 듯이 들어오고. 친구들도 볼 때마다 케냐 언제 가느냐 고 물어보고. 그래서 그냥 과외비 받은 거로 케냐행 티켓을 끊어버렸어요.

요즘이야 해외여행 많이들 가고 정보도 많지만, 그때는 그렇지가 않았어요. 저도 해외여행 이 처음이고 네이버에 쳐도 안 나올 때니까. 아무것도 몰랐죠. 비행기 표를 끊고 나니까 50 만 원이 남았어요. 100일 여행 계획인데 아프리카니까 50만 원이면 진짜 부자처럼 살 줄 알 았죠. 가방에다 두루마리 휴지 다섯 개, 치약 두 개, 말라리아약 뭐 이런 거 넣고. 티비에서 아프리카 하면 맨날 기아 이런 것만 보여주니까 휴지도 없는 줄 알았어요.

그렇게 아무 생각 없이 케냐에 갔어요. 나이로비에 도착했더니 둘째 누나랑 같이 살던 현 지 애들이 나와 줬더라고요. 근데 워낙 경유를 많이 하다 보니까 제 가방이 도착을 안 한 거 예요. 저는 영어를 거의 하나도 못 하는데. 그래서 가방이 도착할 때까지 3일을 나이로비에 묵었어요.

나와 준 친구들 밥 한 끼 사주고, 방충망 하나 사고, 그렇게 3일을 보내니까 15만 원을 쓴 거예요. 50만 원밖에 안 가져왔는데. 와 진짜 큰일 났다. 케냐가 아프리카에서는 되게 잘사 는 나라여서 물가가 비쌌던 거죠. 여행은 100일 가까이 남았고. 수도에서는 도저히 못 있겠 다 싶어서 데리러 온 친구한테 말했죠. 너희 동네로 가자. 나 별 보러 갈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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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게 열 시간 동안 버스를 타고 시골로 갔어요. 버스도 너무 좁아서 몸을 꾸깃꾸깃 구겨 야 해요. 너무 힘들게 버스를 타고 가는데 한밤중에 버스가 멈추더니 다 왔다고 내리래요. 딱 내렸는데 진짜 와. 별이 쏟아지는 거예요. 살면서 달빛이 밝아서 길이 보인다는 말은 들 어봤어도 별빛이 그렇다는 말은 못 들어봤거든요? 근데 정말 별빛 때문에 마을이 보였어요.

그렇게 하룻밤을 보내고 어렵게 얘기를 꺼냈죠. 나 사실 돈이 없는데, 두 달간 여기서 지내 도 되겠냐. 그랬더니 얼마든지 있으래요. 그래서 그 친구랑 같이 지내기 시작했죠. 그 마을 이 전기도 안 들어오는 마을이었어요. 요만한 방에서 둘이 누워있는데 얼마나 심심하겠어 요. 심지어 둘 다 영어를 못 해요. 근데 신기한 게, 영어를 못 하는 친구들끼리 있으면 눈빛 으로 다 통해요. 맨날 손짓 발짓으로 얘기하고 놀았죠. 아침에 딱 일어나면 그 친구가 항상 노래를 부르면서 빨래를 하고 있어요. 그러면 전기가 없으니까 열어놓은 문으로만 햇빛이 들어와서 무슨 천국 같아요. 빨래가 끝나면 자동차 배터리랑 라디오를 연결해서 맨날 힙합 노래 틀어놓고 같이 춤추고.

먹는 거는 맨날 옥수숫가루. 아침 점심 저녁 똑같아요. 옥수숫가루를 백설기처럼 떡으로 만 들어요. 그걸 수저로 잘라서 손으로 뭉친 다음에 반찬 하나랑 같이 먹는 거예요. 대부분 염 소 우유. 염소 우유가 엄청 짜고 비려요. 그걸 매끼 먹는 거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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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게 친구 집에서 지내다 보니까 말라리아약이 떨어졌어요. 원래는 도착해서 살 예정이 었거든요. 근데 전기도 안 들어오는 시골에 있다 보니까 약을 파는 곳이 당연히 없죠. 큰 도 시로 가야겠다. 그래서 가져간 론리플래닛을 처음부터 끝까지 계속 봤어요. 근데 전체 책 에서 'Korea'가 들어가는 게 딱 하나 나오는 거예요. 몸바사에 있는 '차이니즈 앤 코리안 레 스토랑'. 아 여길 가야겠다. 그래서 또 열한 시간 버스를 타고 갔죠.

도착해서 무작정 문을 두드렸어요. 제가 돈이 없는데 뭐라도 시켜주시면 안 되겠습니까. 그 랬더니 잠깐 주인한테 물어본다고 기다리래요. 그러고 나서 전화로 면접을 세 번이나 봤어 요. 전화가 끝나니까 이번엔 차를 보낸다고 집으로 오래요. 도대체 뭔데 이렇게까지 하나 싶었죠. 그래도 어쩔 수 없으니까 그냥 차를 탔어요.

차를 타고 도착을 했는데, 집이 엄청나요. 알고 보니까 그 집이 케냐에서 제일 성공한 한국 교민 집인 거예요. 집주인은 원양어선을 가지고 있고, 거기서 잡은 해산물로 제가 찾아간 레 스토랑을 운영하는 거죠. 첫째 아들은 해산물을 전 세계에 팔고, 둘째 아들은 케냐 국가대 표 수영 선수이고. 그야말로 개 쩌는 집인 거죠.

집주인이 왜 연락했냐고 물어보더라고요. 그래서 내가 100일을 여행해야 하는데 지금 30 만 원밖에 없다, 일 좀 시켜주고 대신 좀 재워 달라 그랬죠. 바로 미쳤냐고 그러더라고요. 삼십몇 년 교민 생활 하면서 무작정 재워 달라 하는 사람도 처음인데 고작 30만 원 들고 케 냐에 오는 사람도 처음 본 거죠. 뭐든 시켜주면 잘 할 수 있다고 설득을 했어요. 그랬더니 니가 무슨 일이냐고, 그냥 남는 방 많으니까 아무 데나 들어가서 자라고 해 주셨어요. 그래 서 예정에 없는 호화 생활이 시작됐어요.

아침에 일어나면 누가 불러요. 나가면 요리사가 요리를 다 해놨어. 그리고 랍스타를 거의 맨날 먹어요. 근데 저는 태어나서 랍스타를 먹어본 적이 없잖아요. 그러면 화장실 간다고 하고 가면서 다른 사람들이 어떻게 먹는지 쓰윽 보는 거예요. 집이 워낙 크니까 화장실 가 는 길에 계속 볼 수 있었어요. 그리고 돌아와서 똑같이 따라 하는 거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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근데 또 너무 부잣집에서 생활하니까 이게 또 재미가 없는 거예요. 제가 그러려고 간 게 아 니잖아요. 그래서 감사 인사를 드리고 여행을 떠났죠. 남은 30만 원을 들고.

재밌는 게, 제가 머리가 완전 직모거든요? 완전 부드러운 참 머리? 근데 케냐 사람들은 이 런 머리를 처음 보는 거예요. 다 완전 곱슬이니까. 그니까 완전 신기한 거죠. 횡단보도에 서 있으면 슬쩍 와서 다 만지고 가요. 말도 걸고.

아, 이거다. 이걸로 사람들이랑 친해져야겠다. 그래서 일부러 사람 많은 길에 앉아있었어 요. 눈빛을 보내면 제 머리를 만지고 싶어서 다가오죠. 그러면 이런저런 말을 하다가 "나 여 행 중인데, 하루만 재워주면 안 돼?", "오늘 점심 한 끼 같이 먹자" 이렇게 얘기를 하는 거죠. 그 친구가 만약 재워주면 안전하다는 보장이 생기잖아요? 그러면 그 친구 친척 집에서 그 다음 날 자는 거예요. 그렇게 친구를 많이 사귀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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근데 친구들이 생겨도 연락할 방법이 없잖아요. 핸드폰을 사야겠다. 그래서 마켓에 갔어 요. 돌아다니면서 나는 전화만 되면 되니까 제일 싼 핸드폰을 달라 했어요. 근데 그래도 2~3만 원을 부르는 거예요. 아니다. 나는 오천 원짜리를 찾는다. 그랬더니 오천 원짜리가 어딨냐고 가래요. 그렇게 두 시간을 돌아다녔어요. 도저히 개별적으로 상대를 해선 안 되겠 는 거예요. 그래서 어디 높은 곳이 있길래 올라가서 소리를 질렀어요. 나 오천 원에 핸드폰 살 거라고. 게네가 저를 '무중구'라고 부르거든요? 이게 백인이란 뜻이에요. 현지인보다 제 가 하야니까. 무중구가 경매를 진행하고 있으니까 신기하죠. 사람들이 우루루 몰려서 결국 칠천 원에 핸드폰을 샀어요. 다 깨져서 고무줄로 둘둘 말았지만 전화는 아주 잘 되는.

제일 문제가 밥. 제가 돈이 없으니까 밥을 못 먹잖아요. 그래서 항상 허름한 음식점에 가서 백설기처럼 뭉쳐진 옥수숫가루를 시켜요. 한국으로 따지면 공깃밥 하나 시킨 거잖아요. 외 국인이 그러고 있으면 얼마나 신기하겠냐고. 그러면 와서 그래요. 왜 이것만 시키냐고, 다 른 메인 메뉴를 시켜야 한다고. 그러면 아 나 잘 몰라서 그러는데, 입맛에 맞을지 테스트 한번 해 봐도 되냐고 그랬어요. 그러면 한 스푼씩 음식을 줘요. 고기 같은 거. 그러면 테스트 하는 척하면서 그걸 반찬으로 옥수숫가루에다가 먹는 거예요.

아침 겸 점심으로는 항상 콜라를 마셨어요. 항상 가는 코카콜라 가판대가 있었거든요? 병 콜라를 하나 시켜서 그걸 한 시간 반 동안 마셔요. 꿀꺽꿀꺽 마시면 너무 아깝잖아요. 조금 씩 조금씩 빨아 마시면서 서 있는 거예요. 사람들이 와서 말 걸면 또 친해져서 하룻밤 신세 지고. 그렇게 지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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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다 여행 마지막 날 문득 [시크릿]이란 책이 떠오른 거예요. 동화 같은 이야기라고 무시 하고 완전히 잊어버리고 있었거든요. 근데 여행을 돌이켜 보니까 정말 책 내용처럼 된 거예 요. 막연하게 케냐 가겠다는 말을 했더니 돈이 생기고, 비행기 표를 끊게 되고, 돈이 없었는 데 백일 여행을 성공적으로 마치고. 와, 정말 말하는 대로, 믿는 대로 되는구나.

그리고 [감옥으로부터의 사색]. 누나가 책 한 권 들고 가라 해서 여행 내내 들고 다니던 책 이었거든요. 시간이 워낙 많으니까 대여섯 번씩 읽었죠. 그 책을 보면서 어떻게 살아야겠다 고 매일 매일 일기를 썼어요. 그게 제 스무 살의 시작이었어요. 정말 케냐 여행으로 제 인생 의 가치관, 흔들리지 않는 뿌리가 만들어졌던 것 같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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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 눔 , 코트 턴 욕인 주, 뉴 타 몽 , 터스 인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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케냐를 갔다 오고 나서 사실 자퇴를 하려고 했어요. 학교를 도저히 못 다니겠어서. 근데 마 침 학교 홈페이지 공지사항을 봤는데, 아프리카 관련된 동아리가 있는 거예요. 우간다 주 민들에게 소금밭을 빌려줘서 경제적 악순환을 끊는 프로젝트를 준비하고 있더라고요. 안 하면 후회할 것 같아서 지원을 했고, 지원을 받아서 우간다에 갔죠.

갔다 왔는데 너무 실망했어요. 전부 제가 예상하고 기대했던 것들과는 달랐어요. 우간다 소금밭에서 일하시는 분들에게 어떠한 도움이라도 될 거라 생각했는데 막상 가서 보니 멋 지게 포장하는 것 말고는 제가 할 수 있는 게 없었어요. 그래서 안 한다 했어요. 둘째 누나 한테 항상 진짜 알맹이를 하라고 배웠거든요. 그래 그러면 내가 진짜를 만들어야겠다. 네 명 정도 멤버를 모아서 새로 프로젝트를 만들자.

그러고 나서 동아리 회의시간에 뒤에 서서 회의를 지켜보는데 눈에 확 들어오는 여자애가 하나 있었어요. 동아리가 진짜 엄숙하고, 꼰대 같은 분위기였는데, 혼자서 뭘 먹으면서 계 속 딴지 거는 여자애가 있었어요. 일면식도 없었는데 번호를 건너건너 물어봐서 만나자 했 어요. 같이 하자 했죠. 그랬더니 자기는 이미 큰 성과 없이 동아리 생활을 2년 가까이 했고 이번 학기만 끝나면 휴학하고 그동안 못한 자기계발 활동을 하고 싶다는 거예요. 그래서 제가 이왕 시간을 쏟은 거 나랑 진짜를 하자. 한 달만 해보고 아니면 그때 그만두라 그랬 죠. 오케이. 그래서 같이 하게 됐어요.

또 그 엄숙한 회의에서 그 회의 내용을 혼자 다 받아 적고 있는 애가 있었어요. 허리를 꼿꼿 이 펴고. 그런 꼼꼼함은 제가 가지지 못한 부분이거든요. 그래서 그 친구를 꼬셨어요. 같이 하자고.

마지막으로 한 명이 남았는데 저희 셋과 조화롭게 어울릴 수 있을 뿐 아니라 부족한 빈 자 리를 채워줄만한 멤버를 찾을 수가 없는 거예요. 그래서 아예 나랑 같이 들어온, 아무것도 모르지만 긍정적 성격에 자신감이 넘치는 스무살짜리를 뽑았죠. 그렇게 저희 멤버가 완성 됐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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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희 팀이 했던 게, '영화 공간 주안'을 살리는 '몽타주' 프로젝트였어요. 영화 공간 주안이 되게 괜찮은 극장이었어요. 근데 마케팅이 전혀 안 돼서 사람들이 찾아오질 않는 거예요. 너무 아까운 거죠. 그래서 마케팅을 우리 몽타주 팀이 맡아서 하게 해 달라고 했어요. 돈 안 줘도 되니까.

진짜 일주일에 세 번은 밤을 새웠던 거 같아요. 대학생들이 가볍게 장난처럼 한다고 비칠까 봐 너무 무서웠어요. 그 영화관에 있는 사람들은 생업인데. 그래서 정말 치열하게 했죠. 밤 새 준비해서 관계자랑 미팅 가지고, 끝나면 미팅 내용으로 또 밤새 회의하고.

여러 가지를 했어요. 근처 대학 잔디밭에서 영화 상영도 하고, 여성 영화제도 유치하고. 길 거리에서 버스킹하는 대학생들에게 무대를 만들어주고 싶어서 영화관에서 콘서트도 열었 어요. 다행히도 전부 잘 마무리됐죠. 영화관 홍보도 많이 되고. 나중엔 저희 몽타주 이름으 로 인천시 예산 투입도 추진됐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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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게 몽타주를 하면서 2학년이 끝났어요. 같이 사는 친구랑 침대에 누워있다가 문득 이 런 생각이 드는 거예요. 나 해외에 가야겠다. 워킹홀리데이 이런 건 싫고 그냥 나갈래. 그래서 그날부터 인터넷을 다 뒤졌어요. 해외 탐방부터 인턴, 어학연수까지. 근데 거기 딱 하나 뉴욕에서 하는 인턴십이 있는 거예요. 뉴욕에 있는 어학원 겸 유학원인데 거기에서 마 케팅 활동을 하면 어학 프로그램도 공짜고 돈도 벌 수 있는. 미친 듯이 자소서를 써서 1차 서류를 통과했죠. 문제는 2차 영어면접인 거예요. 제가 영어를 진짜 못했거든요. 다행히 2차 면접이 집에서 화상통화로 하는 화상 면접이었어요. 아 그러면 영어 표현을 컴 퓨터 근처에다 다 써놔야겠다. 그래서 큰 누나한테 자주 쓰이는 영어 표현을 받아 온 집에 다 붙여놨어요. 그리고 이걸 티 내지 않고 자연스럽게 보고 읽는 법을 연습했죠. 면접 당일 에 영어 잘한다고 칭찬도 받았어요. 그렇게 한 달 만에 뉴욕행 티켓을 손에 쥐었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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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가 하던 일이 한국 대학생들한테 이 유학원을 홍보하는 마케팅이었어요. 근데 몇 개월을 사무실에 앉아있으니까 좀이 쑤시는 거예요. 뉴욕까지 왔는데. 그래서 세일즈를 시켜달라 고 했어요. 그 유학원에서 취업 연계도 했었거든요. 진짜 보험 하듯이 이력서를 들고 회사 에 노크하고 들어가서 "너희 사람 안 뽑아? 사람 하나 뽑아" 하면서 돌아다녔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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둘째 누나가 결혼을 하는 바람에 1년 만에 한국으로 들어왔어요. 결혼식을 끝내고 집에 왔 는데 책장에 꽂혀있던 두꺼운 책이 눈에 들어오는 거예요. 저희 첫째 누나가 저 고등학생 때 뉴욕에 있었거든요? 그때 누나가 코트라(대한무역투자진흥공사)에 일주일 파견을 나 간 적이 있었어요. 정말 대한민국 최고 엘리트들이 모이는. 그때 코트라에서 받은 책들이 책장에 꽂혀있던 거였어요. 누나가 그 책을 주면서 "나중에 코트라 같은 곳에도 지원해봐. 정말 똑똑한 애들 다 모여 있다"라고 말했던 게 생각이 났어요. 아 여기서 일해보고 싶다. 또 미친 듯이 준비했죠.

서류를 통과하고 면접을 들어갔는데, 제 이름 말고 다른 사람 이름을 불러요. 너무 많은 사 람이 지원하니까 면접관도 정신이 없는 거죠. 영어 해보라기에 10초 말했더니 그만하래요. 정말 면접이 30초 만에 끝났어요. 아무개 씨죠? 아뇨 최동은인데요? 아 그래요? 영어 해 보세요. 됐습니다. 나가보세요. 당연히 떨어진 줄 알았죠.

근데 며칠 뒤에 전화가 와서는 제 인상이 너무 마음에 들었다고 일을 같이 해보자는 거예 요. 애초에 면접을 봤던 자리는 영어를 완벽하게 해야 하는 자리라 교포를 뽑았고, 마케팅 팀에 인턴 자리를 줄 테니까 같이 하자고. 나중에 알고 보니까 뉴욕 현지 전체 총괄이 저를 엄청 맘에 들어 한 거예요. 영어가 좀 모자라도 한국말을 이렇게 논리정연하게 하는 사람 이라면 영어는 문제가 아니라고. 비자 문제도 있었는데 특별히 채용해줬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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처음 유학원 인턴으로 뉴욕에 왔을 때 같이 뽑혔던 여자애가 있었어요. 인턴을 같이 하면서 완전히 사랑에 빠진 거죠. 정말로 진지하게 좋아했어요. 원래는 인턴을 끝내고 같이 한국에 들어가려 했었는데, 제가 코트라에서 좀 더 일하게 되면서 여자친구가 한국에 먼저 들어갔 어요.

남자는 여자보다 군대 때문에 사회생활 진출이 좀 늦잖아요. 그러다 보니까 여자친구는 이제 취직을 할 때가 먼저 온 거예요. 그래서 같이 자소서 쓰고 면접 연습도 하고 했죠. 결국 제가 도와준 자소서로 취업에 성공했어요. 근데 갑자기 제가 불안한 거예요. 나는 아직도 한국에 들어가면 3학년밖에 안 되는데, 직장인이 된 여자친구가 보기에 내가 너무 능력 없 어 보이지 않을까? 아 그러면 뭔가 증명을 해 보여야겠다 싶었죠.

그래서 그 당시에 제가 티비 프로에서 보고 되게 괜찮다고 생각한 '눔'이라는 스타트업에 지원했어요. 뉴욕에서 알아주는 it 기업이었거든요. 면접을 세 번인가 네 번인가 봤어요. 그 러면서 당차게 나 한국에서 졸업을 아직 못했는데, 마케팅에 자신이 있으니까 정규직으로 채용을 해 달라고 했어요. 오케이, 그렇게 해 주겠다. 그렇게 스타트업을 처음 경험하게 된 거죠. 진짜 충격적인 기업문화였어요. 사무실 안에 온갖 인종의 직원들이 있고, 강아지 고양 이도 같이 지내고. 완전 짱이었어요. 근데 일주일 뒤에 여자친구가 바람이 났다는 걸 알게 된 거죠. 취업한 회사의 과장님이랑.

그때 제가 걷지도 못했어요. 심장이 너무 아파서. 잠도 못 자고 아무 것도 못 먹고. 전화로 붙잡기도 엄청 붙잡았어요. 나한테 오지 않아도 되니까 그 사람이랑 헤어지라고. 근데 여 자친구가 딱 그러더라고요. 지금 오빠가 과장님한테 피해를 주고 있으니까 그만하라고. 제가 너무 열 받아서 "내가 피해를 줘? 그럼 니가 나한테 준건 선물이냐? 그래 잘 살아라" 라고 소리를 질렀어요. 뉴욕 한복판에서. 그러고 나서 바로 처갓집 양념치킨을 먹었어요. 그 양념치킨을 뜯고 힘든 게 싹 다 없어졌어요. 아직도 처갓집 양념치킨만 보면 그때 생각 이 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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는일 바꾸 을 상 터, 세 레이 러 셀 업, 액 타트 스 , , 입사 린지 챌 로벌 LG 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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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게 여자친구랑 헤어지고 한국으로 돌아왔어요. 집에서도 들어오라 하고, 학교도 마치 고 싶어서. 제가 뉴욕 인턴 생활할 때 저희 몽타주 프로젝트팀도 다 해외에 있었거든요? 근 데 마침 다 한국으로 들어와서 모이게 된 거예요. 사실 제가 그 친구들한테 미안한 마음이 있었어요. 프로젝트를 할 때 정말 일주일에 3일은 밤을 새가면서 일을 했는데 마땅한 보상 을 주지 못한 것 같았거든요. 그래서 뭐든 돌려줘야겠다 생각하고 있었어요.

그 당시에 우리나라에서 제일 어려운 공모전이 LG에서 하는 'LG 글로벌 챌린지'라는 공모 전이었어요. 이게 뭐냐면 단순히 우리나라만 가지고 있는 문제가 아니라, 세계적으로 앓고 있는 문제를 해결하는 공모전이에요. 저희가 직접 주제를 정해서 그 주제에 대한 해외의 우수 솔루션 사례를 가지고 한국에 적용하는 거죠. 여기서 우수한 성적을 거두면 LG에 취 업도 시켜준다는 거예요. 이거면 되겠다 싶더라고요.

뭘 주제로 연구를 해볼까 한참 고민을 했어요. 고민하다가 페이스북을 봤는데 어떤 애니메 이션 카피가 "꿀벌이 사라진다면?" 이렇게 되어있는 거예요. 어! 정말 꿀벌이 사라지면 어 떻게 되는 거지? 그래서 팀원들한테 바로 전화를 돌렸죠. 근데 한 친구가 이건 운명이라고, 이 주제로 하자고 하더라고요. 왜냐고 물어보니까 지금 라디오에서 박진영의 '허니'가 나 오고 있대요. 이 친구가 좀 운명론자거든요. 그래서 꿀벌을 주제로 하게 됐어요.

꿀벌이 엄청 기초적인 거예요. 꿀벌이 식물들을 수분시키기도 하고, 꿀벌과 꿀을 1차 식량 으로 하는 생물들도 많고. 그런데 꿀벌이 사라진다면 생태계가 연쇄적으로 무너지겠죠. 문 제는 실제로 여러 환경적인 요인들 때문에 꿀벌의 면역력이 많이 약해져 있다는 거예요. 개 체 수도 많이 줄고. 저희 팀은 이걸 사회과학적으로 풀고 싶었어요. 유럽에 찾아가서 관계 자를 만나 관련 법 조항도 찾아보고, 농림부 장관도 만나고. 여러 아이디어를 배워와서 한 국에다 곤충 호텔도 만들고 인식 개선 활동도 했어요. 결과적으로 저희가 문과 1등을 해서 LG에 취직하게 됐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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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게 28살에 LG에 들어갔어요. 그것도 경쟁이 가장 치열하다는 기획팀에 역제안을 받고 들어갔어요. 근데 너무 다니기가 싫은 거예요. 제가 스무 살 때부터 다음 해가 기대가 안 됐 던 적이 단 한 번도 없었거든요? 내년에 어떤 일이 일어날까, 내년에는 내가 얼마나 더 성장 해 있을까. 항상 이런 기대가 많았어요. 근데 LG에 가서는 그런 설렘이 전혀 없는 거예요. 내년에 내가 어떤 모습으로 뭘 하고 있을지 뻔히 알겠으니까. 28살에 늦은 사춘기가 와서 방황을 시작했죠. 그래서 1년 만에 그냥 때려치워버렸어요. 그리고 친구랑 태국으로 갔어요. 모은 돈 다 들 고. 그리고 6개월 동안 정말 아무것도 안 하고 놀았어요. 하도 많이 자니까 새벽 여섯시면 잠이 깨요. 그러면 바로 짐 싸서 푸켓 놀러 가고. 진짜 모아둔 돈 다 쓰고 빈털터리가 돼서 돌아왔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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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으로 돌아오면서 한 가지 마음을 먹었어요. 나는 이제 대기업에 취업 안 하겠다. 스타 트업을 하자. LG에서 방황한 것도 있었지만 뉴욕에 있을 때 눔을 다니면서 자극을 엄청 받 았거든요. 이렇게 자유로운 환경이 있고, 그 환경이 내가 정말 내 능력을 잘 발휘할 수 있는 토양이구나.

그래서 스타트업 쪽 일을 계속했어요. 사업 개발, 기획 이런 업무를 했죠. 그러다가 '헤이 스 타트업'이라는 큰 행사를 기획하게 됐어요. 전국의 스타트업 종사자들이 모이는 자발적인 행사인데, 그중에서 저는 핵심 행사인 '데모 데이'를 총괄했거든요. '데모 데이'가 뭐냐면 각 회사마다 5분씩 발표를 해서 심사를 받는 행사에요. 만오천명 정도의 규모였는데 이게 엄 청 성공적으로 잘 끝났죠. 그러면서 자연스럽게 지금 대표님한테 스카웃을 받았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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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 제 직업이 '액셀러레이터'라는 직업인데, 말 그대로 어떤 신생 회사에서 문제점이나 막 힌 부분이 있으면 엑셀을 밟듯이 뚫어주는 직업이에요. 쉽게 생각하면 컨설팅인데, 단순히 조언을 주는 게 아니라 좀 더 직접적으로 도움을 주죠. 직원 채용부터 회사 컨셉을 전면 수 정하는 일까지.

정말 신기한 게, 제가 정말 어릴 때부터 항상 받은 걸 돌려주고 싶다고 말해왔거든요. 아프 리카 여행도 그렇고 뉴욕도 그렇고 항상 도와주는 사람이 많았어요. 돈도 없고 아무것도 없었는데. 그게 누나들이기도 했고, 처음 보는 사람들이기도 했고. 그래서 저도 누군가한테 그런 도움을 주고 싶었어요.

근데 이 직업이 정말 거짓말처럼 딱 맞는 거예요. 재능 있는 사람들을 먼저 발굴해서 어려워 하는 일들을 도와주고. 같이 기업의 가치를 올려주고. 미래의 방향을 제시해주고. 제가 스무 살 때부터 십 년 동안 정말 많이 길을 바꿔왔잖아요. 가끔은 제가 너무 끈기가 없는 것 같아 서 걱정이었거든요. 왜 나는 남들처럼 꾸준하게 못 하지 고민되고. 근데 결국 이 길을 걷기 위 해서 그렇게 고민하며 왔구나 싶어요. 나도 모르는 사이에 말하는 대로 되어있었던 거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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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년 봄의 기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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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동은 자서전 만든이 발행일

2018년 4월 12일

글편집

이홍근

사진

김정재

디자인

배완

Copyright Ⓒ

, 2018

*이 제작물은 아모레퍼시픽의 아리따글꼴을 사용하여 디자인 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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달팽이 #5 - 최동은 자서전  

달팽이의 다섯번째 이야기 - 최동은 자서전. 달팽이는 자서전을 만드는 사람들입니다. 평범한 사람들이 남긴 자취를 찾아, 책으로 만들어 드립니다. (www.snailbooks.com)

달팽이 #5 - 최동은 자서전  

달팽이의 다섯번째 이야기 - 최동은 자서전. 달팽이는 자서전을 만드는 사람들입니다. 평범한 사람들이 남긴 자취를 찾아, 책으로 만들어 드립니다. (www.snailbook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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