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age 1

사고와 표현 01반

2014260003 국어국문학과 김성은


※캠퍼스 사진 안녕하세요. [사고와 표현 1] 5조 소설 쓰는 호랑이입니다. 왼쪽에서부터 차례로 조유진, 김 성은, 김범수입니다.

저희는 대학교 첫 개강이자 학교생활의 시작을 알리는 3월 3일을 생각해보았습니다. 생각을 해보니 그날 저녁 동기들 그리고 선배님들과 함께 첫 응원제를 했던 것이 기억났습니다. 하지 만 응원제를 경험해보지 못한 저희는 ‘응원제는 어떻게 하는 것일까?’, ‘얘기로만 듣던 고려대 의 응원제를 우리가 하는 것인가?’라는 생각을 했습니다. 그리고 응원제를 하러 가는 길에서 느꼈던 그 가슴 뛰는 설렘과 조용히 들리는 심장박동소리. 그것들을 아직까지 잊지 못 했습니 다. 그래서 찍은 사진이 위의 사진입니다. 이 사진의 장소는 과기대와 휘트니스 센터 사이의 길입니다. 그때 피지 않았던 꽃들이 이제는 활짝 폈더군요. 응원제 전의 설렘이라는 추억이 담겨있는 길을 걸으며 좋았던 기억을 회상했습니다.


교양이란 부차적일 뿐인가? 최영주(불문학 박사) 1. 나에게 고등학교 시절은 성인이 되기 위한 준비의 과정이 아니라 그 자체가 완성의 시간으 로 기억되고 있다. 주재원으로 발령받은 아버지를 따라 파리로 공부하러 가게 되었을 때, 당 혹스러우면서도 나를 기쁘게 한 것은 체계화된 독서 시스템이었다. 우리의 국어 과목에 해당 하는 불어 수업의 경우 교과서가 아닌 문학책들을 돌아가며 읽고 요약, 비판하는 것이 주가 되었다. 어떤 참고서의 도움도 없이 혼자 해석한 후 학우들 앞에서 소개해야 했던 문학서들은 지금 나에게도 많은 도움이 되고 있다. 이 수업과 관련해 추천된 책은 족히 100권이 넘었는 데, 이를 독파하지 못한 채 바칼로레아에 임할 경우 적절한 인용구를 대지 못해 어려움을 겪 게 된다. 가령 “소설에 있어 상상과 진실 중 더 중요하다고 생각하는 것은 무엇이고, 왜 그렇게 생각 하는지 자기 생각을 전개하라.”, “문학을 연구하는 것은 인간을 연구하는 것과 다르지 않다고 죠르쥬 상드는 말했다. 이 문구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는지 기술하라.” 등의 질문에 A4 용지 4-5장 분량의 글을 작성해야 하는 것이다. 글을 읽는 것과 분석 이해하는 것, 또 직접 쓴다는 것이 얼마나 다른 일인지는 차치하고서 라도, 문학책 읽는 것을 사치가 아닌 생활로 받아들일 수 있었다는 사실에, 책을 좋아했던 나 는 매우 큰 기쁨과 흥분을 느꼈던 듯하다. 이렇게 문학으로 시작된 인문학에의 관심은 철학으 로 이어졌다. 철학은 문학과 함께 인문계의 주요 과목으로 고등학교 3학년 때 배우게 된다. 인문계 A반의 경우, 철학 수업이 일주일에 9시간이나 되며, 바칼로레아에서 차지하는 비중도 결정적으로 크다. 문학 과목과 마찬가지로 주요 철학자들의 발췌문을 비판하고 주제별 질문에 따라 장문의 글을 작성해야 한다. 이 과목에서 독서력 못지않게 중요한 것은 인생관의 수립이었다. 당시 중간, 기말 시험에서 출제되었던 문제들, 가령 “죽음에서 승리할 수 있는가?”, “종교는 약자들을 위로하기 위한 환 상인가?”, “우리는 타인을 사랑할 의무가 있는가?” 등은 그 종교적․윤리적 함축이 지닌 과감 성으로 나를 상당히 당황케 만들었고, “역사가 의미를 지닌다고 생각하는가?”, “권리는 권력 질서를 정당화하는 수단에 불과한가?”, “스스로에게 거짓말하지 않을 수 있는가?”라는 주제들 은 나를 한때 회의론자로 몰고 가기도 했다. 글쓰기는 곧잘 토론, 발표로 이어졌는데, 당시 철학 선생님과 학우들의 진지한 목소리가 아 직도 귀에 쟁쟁하다. 이 같은 발표는 그리스의 아고라 광장에서 소크라테스와 플라톤의 철학 을 강론할 때의 긴장감과 다를 바 없었다. 다수를 상대하기에 일치보다는 반대 의견에 부딪힐 확률이 높았고 그 갈등 상황을 폭력이 아닌 설득과 대화를 통해 나의 의견을 관철시키는 데는 거의 종합 예술에 가까운 능력이 요구되었다. 그 때 작성한 시험지와 과제물을 뒤적이다 보면 10년이 지난 지금도 여전히 그 글을 작성 하고 있다는 느낌이 든다. 객관성과 진리의 관계는 무엇인지, 타인에게 예술 작품의 미적 보 편성을 강요할 수 있는지, 인간의 정체성이 시간에 따라 변하는 것인지, 다르다는 것은 불평 등하다는 것인지 등의 질문에 답함에 있어 아직도 그 시절의 조심스러움을 지속하고 있는 것 이다. 2. 바칼로레아 철학 시험이 있는 날은 프랑스 지식인들에게 또 하나의 국경일 ‘생각하는 날’이 다. 2주 이상 계속되는 바칼로레아는 항상 철학으로 시작된다. 주어진 시간만도 3시간이니 첫 날부터 학생들은 큰 고역을 치르게 되는 셈이다. 언론과 사회는 그날 출제된 문제에 대해 온


통 관심을 기울인다. 시험을 치르는 것은 학생들이지만 그 날만은 프랑스인 대다수가 그 진지 함에 참여한다. 그날 저녁에는 출제된 문제를 가지고 정치계, 문화계, 언론계의 유명 인사들과 시민들이 대강당에 모여 적당히 진지하고 적당히 유머러스한 분위기로 모의고사를 치르는 프 로그램이 방송되는데, 참가자들의 진지함과 재치에 적잖이 놀라게 된다. 바칼로레아에 출제되는 질문들은 그 추상성과 난해함으로 일반인에게 거부감을 줄 수도 있 겠지만 실제 프랑스 친구들과 어울리면서 나는 비슷한 수준의 주제를 가벼운 형태의 대화로 많이 접할 수 있었다. 철학이나 인문학을 전공하는 친구가 아니더라도 작은 관찰에서 비롯한 화제를 가지고 쉽게 토론이 이어졌다. 가령 니스를 찾았을 때 한 친구가 호화 요트를 칭찬하 자 “돈은 과연 인간을 자유롭게 하는 것인가, 노예화하는 것인가?”에 대해 뜨거운 논쟁이 벌 어지기도 했다. 말하자면 글쓰기의 기초인 토론 문화는 대학 강당이나 정치 운동에서만이 아 니라 생활 곳곳에서 만날 수 있는 것이었다. 이런 토론은 대부분 많은 이론과 예문을 동원할 수 있는 사람의 승리로 매듭지어지곤 했다. 프랑스인들은 교육 정도와는 관계 없이 인용하길 좋아한다. ‘볼테르가 말하길, 루소가 말하 길, 위고가 말하길, 공산당 선언을 읽어 보면’ 운운 입에 달고 산다. 더욱 놀라운 것은 아주 어린아이에게 질문을 해도 장문의 대답을 들을 수 있다는 것이다. 그들은 지성을 특수 계급의 소유라고 생각하지 않는다. 정육점 아저씨도 간호사도 똑똑하다는 말, 교양 있다는 말을 듣길 좋아한다. 상대방을 칭찬할 때나 이상적인 배우자를 표현할 때도 ‘영리한’, ‘현명한’이라는 표 현을 많이 쓴다. 어찌 보면 프랑스인들의 각별한 철학, 문화에의 사랑 뒤엔 우리와는 다른 세계관과 인생관 이 숨어 있는 듯하다. 그들에게 지성이란 인간성을 결정하는 기본 요소인데 반해 우리에게는 일종의 ‘특수한 것’, 소수만이 추구할 수 있는 일종의 ‘고상함’이다. 논리적인 사람, 지적인 사 람에 대해 왠지 모를 불안감과 위협을 느끼기까지 한다. 대중 매체에서도 어수룩하고 실수하 는 사람이 대중의 사랑을 받는 반면, 똑똑하게 자기 의견을 펼치는 사람은 오만하다는 야유를 받는다. 오랜 프랑스 생활을 통해 착하고 희생적인 인간성을 목표로 하는 우리 사회 제도의 장점을 깨닫게 되었지만, ‘배운 놈들이’라고 하는 표현이 말해 주듯 대중의 교양인에 대한 부 정적 인식은 지나친 듯하다. 존경할 만한 지적 엘리트가 많지 않다는 것, 그것이 혹 지성에 대한 우리의 경계심을 이렇듯 강화한 탓일까? 철학, 문학과 같은 인문학이 위기에 봉착했음은 이제 세계 각국에서 통용되는 사실이다. 대 학 진학 인기도가 떨어지고, 독서율도 다른 매체에 비해 현저히 낮아졌다. 인문학이 더 이상 사회 경제적 성취의 수단이 아닌 시대에서 홀대받는 것은 당연하다고 할 수도 있겠다. 그럼에 도 불구하고 사회적 성공으로 가늠할 수 없는 인간성의 형성은 과거나 현재에나 글을 통하지 않고서는 불가능하다. 인간은 언어적 동물이고 타자(他者)와의 관계를 통해서만이 자신의 존재 를 정립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다른 문화를 익히고 언어와 친숙해지는 것을 거부함은 인간성을 포기하는 것이라 해도 과장된 표현이 아니다. “인간은 원래 그 자신이 인간학자일 수밖에 없는 운명을 지니고 있다.”는 랜드맨(Landmann)의 의 말처럼, “나는 누구인가, 인간 이란 무엇인가.” 라는 인문학의 근본 질문은 직업, 신분에 관계없이 우리 모두가 스스로에게 던지는 질문이다. 하기에 그에 답하려 노력하는 것은 삶의 기본적 태도가 아닐까? 인문학의 위기에 정부의 지원 부족만을 탓한다. 정부가 학자, 문인, 예술인을 돕는 프랑스를 보며 부러웠던 것도 사실이다. 그러나 정부의 활발한 지원 체계보다 인상적이었던 것은 바로 지성인에 대한 프랑스 인들의 진정한 애정과 존경이었다. 공원, 전철 할 것 없이 곳곳에서 책 을 읽는 사람들, 독서력이 떨어지는 정치가는 결코 대통령직에 오를 수 없다는 어찌 보면 비


서민적인 사고가 프랑스인들에게 자부심과 긍지를 주고, 이 자긍심이 수많은 재능을 산출하는 것이다. 자국내 문제뿐 아니라 세계 곳곳에서 벌어지는 비인도적 행위에 대항해 거리로 나서 는 인파와 책을 든 시민이 다르지 않음을 보며, 나는 생각과 행동, 책과 삶은 별개의 것이 아 님을 알 수 있었다. 3. 생을 건 연애가 한 장의 연애편지로 압축되듯, 바칼로레아 시험 문제의 역사를 읽으며 나 는 언어가 생긴 이후로 계속되어온 수많은 학자와 작가들의 노력을 떠올렸다. 중세 수도원에 서 평생을 두고 언어학과 생물학에 매달렸던 수도사들의 고뇌와 과학자들의 끈기, 작가, 철학 자들의 가난하고 고립된 삶을 떠올렸다. 그 몇 천, 몇 억의 땀과 시간이 모여 이 한 장의 답 안지가 준비된다고 생각하니 경이로운 마음마저 들었다. 수많은 땅과 시간을 살았던 더 많은 인생의 고뇌와 질문들을 읽으며 그 사이에서 나 자신의 행복한 정체성을 확립할 수 있었다. 만약 내가 정해진 의학서, 법학서만을 탐독했더라면 훌륭한 전문가는 될 수 있었을지언정, 행 복이라는 것이 얼마나 얻기 어렵고도 소중한 것인지는 알 수 없었을 것이다. 정답과 경쟁에서 이기는 것만을 가르쳐 주던 사회와 그 사회의 교육 시스템에서 한 걸음 벗어나 자유로울 수 있게 된 것, 이것이 내가 나의 경험을 행운이라고 말할 수 있는 가장 큰 이유인 것 같다. 언어 교육의 조기화를 강조하는 지금의 우리 사회에서 왜 문화의 조기 교육은 강조하지 않 는지 궁금하다. 우리는 성인이 된 후 여유 있을 때 읽는 책이 교양서라고 생각하는 듯하다. 어떤 책이 교양으로 읽힌다는 것, 그것은 부차적이란 뜻일까? 그렇다면 과연 무엇이 일차적이 란 말인가? 돈을 벌고 빌딩을 세우고 권력을 잡고 전쟁을 하는 것? 이를 일차적이라 생각하 는 사람들에겐 교양이 이것들의 온갖 폐해를 정당화하는 수단에 불과할지도 모른다. 앞으로 나아감만을 추구하는 교육은, 가는 곳이 어디인지조차 모르게 하는 이 사실을 모른다는 사실 마저도 망각하게 한다. 우리에게 교양이란 배부른 후에 누리는 사치가 아니라 ‘식사하는 방법 을 아는 것처럼’ 자연스런 삶의 필수 지침목이다. 많은 철학자들이 주장하듯, 문제의식을 느끼는 것 자체가 모든 것의 시작이며, 교사나 답안 에 의해 강요된 독백이 아닌, 다양한 책, 문화와의 개인적인 만남, 시간과 장소를 뛰어넘는 대 화만이 모순과 갈등으로 가득한 복잡한 현실을 이해하는 유일한 수단이라 생각한다. 상식을 검토하고 타자성을 기르는 것, 이것은 한편 쉬운 듯 하지만 기존의 자신을 냉철히 바라봄으로 써만이 가능한 것이다. 사람은 자기가 아는 만큼 보며 자기가 원하는 것만을 습득하려는 편식성을 가지고 있다. 그 편식은 결과적으로 균형의 파괴와 소멸을 낳는다. 시를 이해하기 위해서는 시인이 되어야 하 듯, 낯선 것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스스로를 타인의 시선으로 열어둘 수 있어야 한다. 즉, 인문 학도가 과학책을 읽고 경제인이 시를 읽고 정치가가 음악을 이해할 때 비로소 사회는 균형을 찾는 것이다. 베이컨은 ‘아는 것이 힘’이라고 말했다. 그러나 진정한 지식과 교양은 힘을 기르는 도구적 기술이 아니다. 그보단 권력의 힘에 위축되고 좌절할 때 스스로를 일으켜 세우고 나 개인의 가치와 존엄성을 잃지 않게 해 주는 것, 이것이 교양과 앎의 진정한 소명인 것이다. 세계의 교양을 읽는다, 휴머니스트, 2003.


[특별기고]

대학교육에서 ‘교양’이란 무엇인가

한국의 4년제 대학에서 ‘교양교육’이란 걸 실시하지 않는 곳은 거의 없을 정도다. 대학 입 학자는 초급 학년 단계에서, 혹은 그 이후에도, 반드시 교양과정이란 걸 거쳐 소정의 교양학 점을 따야 졸업할 수 있게 되어 있다. 여기까지는 누구나 아는 바다. 그런데 대학 운영자, 다 수의 전공 교수들, 사회 일반인들, 그리고 학생들조차 잘 모르거나 거의 모르고 있는 것이 있 다. 교양교육을 실시한다고 야단 떨기는 하는데 정작 그 ‘교양’이란 무엇인가? 대학에서는 무 엇을 가리켜 교양이라 부르는가? 내가 아까운 지면을 바쳐 느닷없이 교양의 문제를 꺼내드는 것은 누군가가 공론의 장에서 반드시 지적해야 할 어떤 ‘위기’ 때문이다. 총장을 비롯한 대학 운영자들, 고위 보직자들, 다수 교수들, 대부분의 신입생들, 그리고 많은 일반인들이 교양이라 는 것을 제대로 이해하고 그 중요성을 인식하지 않는 한 한국에서의 대학교육은 막대한 낭비, 왜곡, 저효율에 계속 시달릴 것이 분명하다. 이것은 위기다. 이런 위기는 사회와 무관한가? 최근 어떤 대학의 교무위원회 자리에서 이렇게 발언한 보직 교수가 있었다고 한다. “요즘 우리 대학 신입생들은 교양과목 듣느라고 공부와 멀어지고 있다. 무슨 조치가 필요하다.” 교 양과목 듣느라 공부와 멀어진다? 다수의 보직 교수들, 특히 전공학과 교수들의 머릿속에 ‘교 양’이란 것이 어떻게 인식되고 이해되는지 단적으로 드러내 보여주는 대목이다. 그들이 아는 교양은 알아도 되고 몰라도 되는 잡동사니 상식 같은 것, 백화점 문화센터 꽃꽂이 강의 같은 것, 금강산도 식후경이랄 때의 그 ‘식후경’ 같은 불요불급의 장식성 액세서리 같은 것, 본격적 인 공부와는 관계없는 어떤 것이다. 놀랍게도, 대학 전공학과 교수들 가운데 줄잡아 80퍼센트 이상은 교양을 그렇게 이해하고 있다. 그리고 그들은 그 틀려먹은 ‘교양관’으로 평생 학생들을 가르치다 퇴임한다. 퇴임 전에라도 자신의 틀린 생각을 바로잡는 교수는, 미안한 얘기지만, 극 소수다. 신문 지면에서 교양론을 편다는 것은 무리한 일이다. 핵심적인 얘기만 추리도록 하자. 핵심 중의 하나는 이제 우리 대학들이, 다수 교수와 학생들이, 교양교육이랄 때의 그 ‘교양’이란 말 에 대한 틀에 박힌 상식과 이해를 완전히(그렇다, 완전히) 벗어던져야 한다는 것이다. 교양은 잡학, 상식, 장식물이 아니고 심지어 박학다식이랄 때의 ‘다식’(多識)도 아니다. 많이 읽고 많 이 아는 사람의 다식을 꼭 흠잡을 일은 아니지만 이것저것 많이 알기만 할 때의 박학다식은 철학자 앨프리드 노스 화이트헤드의 적절한 지적처럼 ‘백해무익’하다. 교양이란 말은 박식, 잡 식, 다식 같은 것을 가리키는 일반적 상식어가 아니다. 무엇보다 그것은 철학 기반을 가진 교 육학적 용어이고 진리 발견과 인식에 관한 방법론이며 인간의 창조적 능력을 상향 조성하고자 할 때의 정신적 훈련과 관계되어 있다. 이럴 때는 사례를 드는 것이 좋다. 하버드대학은 2007년 학부 교육과정을 개편하면서 낸 보고서에서 “하버드 교육의 목적은 ‘리버럴 에듀케이션’을 실시하는 데 있다”고 선언하고 있 다. 그쪽에서 ‘리버럴 에듀케이션’(liberal education)이라 불리는 것이 지금 한국에서 ‘교양교 육’이다. 두 용어의 의미와 역사는 상당히 다르기 때문에 우리가 해방 후 미국 학제를 도입하 면서 그쪽의 리버럴 에듀케이션을 ‘교양교육’이라 번역해서 수입한 것은 매우 불행한 사건에 속한다. 리버럴 에듀케이션이란 상식적 잡식 교육이 아니라 ‘틀에 갇히지 않는 자유로운 탐구 와 교육’이다. 틀에 가두고 갇히는 교육 아닌 틀을 깨고 나가는 교육, 기성의 진리체계, 지식, 진리주장들을 당연한 것으로 받아들이지 않는 비판적 사고력의 함양, 지식의 단순 전수와 답 습보다는 전수를 넘어 새로운 지식을 생산해낼 수 있는 상상력, 호기심, 이해력의 자극과 확


대-몇 마디로 요약하자면 이런 것이 ‘틀을 깨고 나가는’ 교육으로서의 리버럴 에듀케이션, 우 리식 표현으로는 ‘교양교육’이다. 문제는 서구식 교육방법으로서의 리버럴 에듀케이션의 전통 이 거의 없는 한국에서(이것은 중국·일본을 포함한 동아시아 국가들의 공통점이다) 그 전통에 서 나온 교육법을 가져다 정신과 알맹이는 빼고 ‘교양’이라는 모호한 말 속에 담으려고 한 것 이 우리의 교양교육이다. 교양이라는 말 자체는 나쁘달 수 없다. 그러나 우리 사회에서 상식 화된 의미의 교양은 대학 교양교육이랄 때의 ‘교양’을 크게 왜곡하는 요인이 되고 있다. 이건 우리가 교육편제 도입에서 반드시 했어야 할 정리 작업 가운데 무엇을 소홀히 했는가에 대한 자성적 차원의 지적이다. 교양교육이랄 때의 ‘교양’의 의미, 철학, 교육방법을 수십년이 지나 도록 제대로 정립하지 못한 것이다. 또 쉬운 사례를 드는 것이 좋겠다. 앞서 말한 하버드 보고서에는 대학에서의 교양교육(리버 럴 에듀케이션)의 성격과 목표를 간명하게 정리한 이런 대목이 나온다. “교양교육의 목표는 추정된 사실들을 동요시키고, 익숙한 것을 낯설게 만들며 현상들 밑에, 그리고 그 배후에서 일어나는 것들을 폭로하고, 젊은이들의 방향감각을 혼란시켜 그들이 다시 방향을 잡을 수 있 는 길을 발견하도록 도와주는 것이다.” 우리나라 대학 총장들, 보직 교수들, 전공학과 교수들 의 상당수가 지금부터 100번 이상은 읽고 새겨들어야 할 ‘교양교육론’이다. 이 간명한 진술은 이 글의 주제(대학교육에서 ‘교양’이란 무엇인가)에 잘 응답하고 있다. 교양은 단순 지식의 집 적, 잡학과 다식, 박학을 넘어 기성의 진리체계를 동요시키는 힘, 익숙하고 친숙한 것들을 낯 설게 하고 심문하는 능력, 기존의 진리주장 어느 것도 그냥 받아들이지 않는 비판적 사고력, 현상의 배후에 숨은 보이지 않는 것들을 드러내는 힘, 방향감각을 흔들고 혼란시켜 새로운 방 향을 잡아나갈 수 있게 하는 능력, 틀린 것은 바로잡으려는 오류 수정의 정신- 이것이 ‘교양’ 이고 교양교육의 ‘목표’다. 교양은 전공 지식을 절대로 무시하지 않으면서 지식의 틀에 갇히기 를 거부하는 자율적인 정신의 생태체계, 거리낌없이 탐구하는 모험적 호기심에 대한 대긍정의 체제다. 그런데 교양과목 듣느라 학생들이 공부와 멀어진다고? 이렇게 말한 교수는 필시 대학 1학 년 때에도 공부해야 할 전공지식이 있는 법인데 교양수업이 그 전공 공부의 시간을 뺏고 있는 것 아닌가 하는 우려의 목소리를 낸 것이리라. 그러나 교양은 공부와 멀어지게 하는 시선분산 의 놀이가 아니라 공부하는 데 없어서는 안 될 능력을 키우자는 노력이고 생각하는 힘 기르기 다. 그것 없이 대학공부는 되지 않는다. 대학을 나온 다음에도 대학이 길러주려는 그 교양의 힘만큼 요긴하고 중요한 것이 없다. 나는 앞서 하버드 보고서만을 예로 들었는데, 그 보고서 가 교양교육의 목표라고 부른 것은 사실은 하버드 한 곳만의 목표가 아니다. 그것은 오늘날 근대 학문과 근대 교육의 체계를 받아들인 세계 모든 주요 대학들이 이구동성으로 천명하고 있는 교양론이다. 그 교양론은 사실은 근대 과학혁명 이후 과학이 천명한 탐구의 방법론이고 정신이며, 분야가 무엇이냐에 관계없이 사실상 모든 학문 분야(예술까지도 포함해서)들이 공유 하는 방법이다. 그 교양을 통해 과학과 인문학이 만난다. 기존의 진리주장을 심문하는 것은 근대 과학의 등장 훨씬 전에 이미 소크라테스가 확립한 대화적 교육법의 진수다. 최초의 근대 적 과학공동체인 런던왕립학회가 만들어진 것은 350년 전의 일이다. 그 왕립학회의 모토는 그 때나 지금이나 “어느 것도 당연한 것으로 받아들이지 말라”는 것이다. 이 모토는 과학의 것이 자 동시에 인문학의 것이며 교양교육의 것이다. 출처 : 도정일 /

문학평론가·경희대 후마니타스칼리지대학장 2014.02.21. 한겨레 신문


읽기 자료-1

글 잘 쓰는 과학자가 성공할 확률 높다 - 갈릴레이․다윈․프로이드는 베스트셀러 작가 세계 최고의 공과대학 MIT의 근처 서점에서 수 십 년 동안 가장 많이 팔린 책은 무엇일까. 뜻밖에도 작 문 책이라고 한다. 우수한 공과대학 학생들이 왜 이토록 작문 책을 사보는 것일까. 직접 현장을 찾아가 그 내막을 알아보았다. 매사추세츠공대(MIT) 학생들이 가장 많이 지나다니는 보스턴시의 MIT켄달 지하철역 앞에는 MIT COOP 이란 이름의 커다란 책방이 있다. 오후가 되면 북적대는 학생들로 이 책방은 활기가 돈다. 학생들이 책방을 들락날락 거리는 출입구 옆 쇼윈도에는 잘 팔리는 책 몇권이 늘 전시된다. 여기에 진 열된 손바닥 크기의 작문 책인 “스타일의 요소 (The Elements of Style)”는 수십년 동안 이 책방에서 가장 많이 팔린 책이다. 미국 최고의 이공계 대학에서 작문 책이 가장 잘 팔린다는 것은 처음에는 정말 의외였 다. 이 책은 윌리엄 스트렁크라는 대학 교수가 1919년에 강단에서 작문을 가르치면서 만들었던 강의록을 그 의 제자이자 작가인 E. B. 화이트가 수정해 40년 뒤에 만든 것이다. 글은 간결하고 짧게, 두개의 문장을 절대 붙여서 길게 쓰지 말고, 수동형은 피하고, 불필요한 단어는 무조건 빼라고 이 책은 강조한다. 졸업하려면 2번의 쓰기 관문 통과해야 MIT에서 1년여 동안 연수를 받으면서 필자는 왜 학생들이 그토록 글쓰기에 열심인지 조금씩 그 내막을 알게 됐다. 그리고 우리나라 이공계 출신들이 “글”에 맥을 못추는 것은 관심과 능력이 없어서가 아니라, 제대로 쓰기 교육을 받지 못했기 때문이라는 확신이 생겼다. 이 대학 입학생은 2학년 초까지 쓰기 1단계, 졸업 전에 쓰기 2단계라는 두개의 관문을 넘어야 졸업할 수 있다. 그러려면 쓰기 과목을 수강하거나, 글을 제출해 일정 점수 이상을 받아야 한다. 한해에 쓰기 과목 을 배우는 대학생 숫자가 전체 4천2백명 가운데 9백명. 졸업할 때까지 평균 한 과목 정도는 수강하는 셈 이다. 대학에는 “쓰기 프로그램과”가 있으며, 여기에 소속된 교수와 강사가 29명이나 된다. 교수진은 소설가, 에세이작가, 시인, 번역가, 전기작가, 역사가, 과학자 등 다양하다. 교육 과목은 설명 및 수사학, 창작, 과학 기술 쓰기 등 크게 세 분야로 나뉘어진다. 학생들은 현대공상과학소설, 과학에세이, 과학저널리즘, 사이버 스페이스에서의 커뮤니케이션, 수사학 등 36과목 가운데 자신의 구미에 맞는 것을 고를 수 있다. 대학이 글쓰기를 강조하는 분위기여서 필자도 여기서 글쓰기를 다시 배웠다. 지도를 맡았던 바바라 골 도프타스 교수는 “MIT가 쓰기를 강조하는 이유는 쓰기를 통해 명쾌한 사고 능력이 생기게 되고, 이것이 연구 능력과도 직결되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그녀는 “실제로 MIT에서 글을 잘 썼던 학생들이 졸업한 뒤 - 8 -


에도 성공하는 가능성이 높다는 조사 결과도 있었다”고 덧붙였다. MIT 쓰기 프로그램과 학과장인 제임스 패러디스 교수는 아예 과학과 기술을 일종의 커뮤니케이션으로 보는 인물이다. 그는 쓰기의 중요성을 이렇게 설명했다. “과학기술자에게 쓰기는 지식 형성에 결정적인 영 향을 미치고, 대중은 물론 같은 분야의 전문가들이 정보를 습득하는데 큰 도움을 준다. 또한 요즘 과학기 술 논문은 대부분 공저이기 때문에 글쓰기가 하나의 협동과정이다. 특히 요즘에는 자료들이 e메일을 타고 빠르게 돌아다니기 때문에 글쓰기가 더욱 중요해지고 있다.” 리포트가 성적 평가 50% 차지 MIT에서 가장 인기 있는 교양과목인 스티븐 핑커 교수의 심리학은 쓰기가 학과목에 얼마나 구석구석 침투해 있는지 잘 보여준다. 핑커 교수는 마음을 컴퓨터로 보고 리엔지니어링하는 학자로 유명하다. 심리학 과목의 학점은 10% 출석, 40% 시험, 50% 리포트로 매겨진다. 쓰기가 학점의 절반을 좌우하는 셈이다. 리포트의 주제는 자유롭다. 하지만 리포트를 한번 제출하면 끝나는게 아니라 처음 낸 리포트를 계 속 수정․보완해 3차 리포트까지 제출해야 한다. 일단 6-8장 정도로 리포트를 써내면, 조교들이 문제점과 개선 방향을 지적해 되돌려준다. 그러면 학생 들은 이를 수정해 8-10장으로 다시 내야 한다. 학생들은 수정 경험을 바탕으로 3차 리포트를 12-15장으로 다시 써낸다. 물론 1, 2, 3차 리포트의 점수는 각각 별도로 매겨진다. 리포트가 성적을 좌우하므로 많은 학생들은 조교가 지적한 리포트의 논리적 허점, 표현 미숙 등을 해결 하기 위해 밤새 씨름을 하고, 그래도 부족하면 교내의 쓰기 센터에 가서 개인적인 도움을 받는다. 그냥 써 서 교수의 편지함에 집어넣으면 끝나는 한국의 대학생들은 행복하다고 할까. 하지만 이런 고통 속에서 MIT 학생들은 졸업할 때쯤 되면 유능한 과학자나 엔지니어뿐 아니라 훌륭한 작가로 단련된다. 또한 과학 쓰기 시간에 교수들이 학생에게 내는 숙제 가운데 빼놓을 수 없는 것은 무엇이 어떻게 작동 하는지 설명하는 것이다. 재봉틀이나 펌프가 어떻게 움직이는지, 사과는 왜 떨어지는지, 눈은 본 것을 어 떻게 뇌에게 알려주는지 설명하라는 것이다. 숙제를 하면서 장래의 과학자들은 지금까지 모호하게 알고 있던 작동 메커니즘을 확실히 깨닫게 된다. 또한 이런 숙제를 해본 학생들은 나중에 과학자나 엔지니어가 돼도 과학과 기술을 정부 관계자나 대중에게 훨씬 쉽게 설명한다. 미국의 한 학자가 20개 연구기관에서 일하는 과학자와 엔지니어 2백65명을 대상으로 설문조사를 한 바 에 따르면, “쓰기 능력이 자신의 개인적 경력과 출세에 아주 영향을 많이 주었다”고 동그라미를 친 응답자 가 절반이나 됐다. 특히 매니저는 그렇다고 응답한 비율이 71%에 달한다. “자신의 생각을 명쾌하고 논리 적으로 표현할 수 있는 젊은 엔지니어는 졸업 후 5년 안에 매니저가 될 수 있다.” “형편없는 제안서와 보 고서로는 연구비와 고객을 얻을 수 없다.” “커뮤니케이션의 질은 아이디어의 습득에 매우 강한 영향을 미 친다.” 이들이 설문지에 써놓은 내용이다. 또한 이 과학자와 엔지니어들은 적어도 자신의 시간 중 1/3을 쓰기, 읽기, 편집, 프레젠테이션 준비 등 쓰기와 관련된 일에 소모했다. 승진할수록 비율은 더 늘어나 평연구원은 34%, 중간관리자는 40%, 그리고 매니저는 50%를 쓰면서 보낸다. - 9 -


베스트셀러 작가 반열에 오르기도 그렇다고 글쓰기가 꼭 출세와 승진을 위한 것만은 아니다. 위대한 과학자들 가운데는 위대한 작가가 많 다. 지난 5백 년 동안 과학혁명을 주도해 왔던 코페르니쿠스, 갈릴레이, 뉴턴, 다윈, 프로이드, 베게너, 슈 뢰딩거, 자크 모노, 제임스 왓슨, 레이첼 카슨 등은 단지 논문뿐 아니라 대중이 읽을 수 있는 훌륭한 책을 쓴 사람들이다. 갈릴레이는 지구중심설과 태양중심설을 믿는 두 학자와 한 명의 지식인 간의 논쟁을 희곡처럼 구성한 “대화록”을 써 단숨에 유명해졌다. 이로 인해 결국 로마 교황청에 끌려가 무기징역을 선고받기도 했다. 다윈이 5년 동안 남미와 갈라파고스를 둘러보고 돌아와서 쓴 “비글호의 항해”는 보고 경험한 것을 너무 도 생생하게 묘사하고 있어 문학사에서도 고전으로 꼽힌다. 진화론을 체계화한 “종의 기원”은 판매가 시작 되자마자 매진된 베스트셀러였다. 감춰져 있던 무의식의 세계를 파헤친 정신과 의사 프로이트는 “꿈의 해석”을 고전으로 남겼다. 양자역학 의 기초를 세운 슈뢰딩거는 말년에 15년 동안 아일랜드에 살면서 물리학, 철학, 과학사를 섭렵해 “생명이 란 무엇인가”를 썼다. 젊어서 이 책을 읽고 감명 받은 DNA 나선구조 발견자 제임스 왓슨은 나선구조를 밝혀내는데 관여한 사람들의 도전과 욕망을 그린 “이중 나선”을 써서 과학자들의 애독서가 되고 있다. 미 국의 해양생물학자인 레이첼 카슨이 쓴 “침묵의 봄”은 환경운동의 기폭제 역할을 했다. 요즘도 선진국에서는 과학자들이 책을 통해 대중의 지적 욕구를 채워주는 지식인 역할을 많이 하고 있 다. 대중 저서로 퓰리처상을 두번 받은 사회생물학자 에드워드 윌슨, “이기적 유전자”를 쓴 리처드 도킨스, “시간의 역사”를 쓴 스티븐 호킹, 가이아 학설을 주창한 제임스 러브록과 린 마굴리스, 마음을 파헤치는 이론 물리학자 로저 펜로즈 등은 전문 작가 뺨치게 글을 써 베스트셀러 작가의 반열에 오른 인물들이다. 우리나라도 작문교육 강화될 전망 우리나라에서도 수시모집에서 과학논술, 언어논술, 논리논술, 수리논술을 도입하는 방안을 검토 중이다. 이렇게 되면 논술이 학생의 당락을 결정적으로 좌우하게 돼, 고등학교 글쓰기 교육이 한층 강화될 것으로 보인다. 하지만 고교생에게만 쓰기 교육을 시킬 것이 아니라, 글쓰기가 미숙한 이공계 대학생들에게도 작 문교육을 철저히 시켜야 한다. “사인, 코사인만 배워서 그런지 문과 출신 친구들이 잘 쓰는 것을 볼 때 한 계를 느낀다”는 말이 나오지 않게 해야 한다. 요즘 글을 잘 쓰는 과학 기술인으로, 김영환 과학기술부 장관과 서울대 생물학과 최재천 교수가 꼽힌다. “방귀에 불이 붙을까요?”란 동시집을 최근 펴낸 김 장관은 민주화 운동을 하다가 옥중에서 시 쓰는 공부를 했다. 한편 최 교수는 고교시절 문예반 학생이었음에도 불구하고, 교수가 된 뒤 다시 글쓰기 과외 지도를 받았다. 하지만 대부분의 이공계 학생들은 한창 문학에 심취할 중․고교 시절에 독서나 작문보다 수학에 매달리고, 대학에서도 쓰기 교육이라고는 거의 받아본 적이 없다. 글은 엉켜진 생각을 질서 있게 정리해주는 묘한 마력을 지니고 있다. 그래서 글쓰기를 “마음의 서치엔 진”이라고도 한다. 과학은 “생각하는 방식”이다. 생각하는 방식을 바꾸지 않고서는 새로운 것을 발견할 수 없다. 하찮은 실험 결과도 자꾸 글로 정리하면서 마음의 서치엔진을 작동시키다 보면 대발견에 이를 수 있 는 것이다. - 10 -


신동호, ≪과학동아≫, 2002. 2. 읽기 자료- 2

글쓰기 교육이 경쟁력 미국 대학 경쟁력의 뿌리도 글쓰기다. 안식년으로 하와이 대학에 온 지 1주일도 안 돼 새삼 깨우치게 된 사실이다. 이러한 생각을 하게 된 계기는 소니아 소토마요르 판사의 강연회였다. 그녀는 오바마 대통령 이 처음 자기 손으로 임명한 대법원 판사다. 중남미계 소수민족 출신으로 뉴욕의 저소득층 지역에서 성장 했다. 성공의 길은 명문 프린스턴 대학에 진학하며 열리기 시작했다. 그녀는 최우수 학생으로 프린스턴대 를 졸업하고, 예일대 로스쿨에 장학금을 받고 진학한다. 그 뒤 2009년 대법원 판사가 되기까지 엘리트 법 조인의 길을 걸어왔다. 그녀의 강연은 C-SPAN 채널을 통해 접할 수 있었다. C-SPAN은 미국 케이블 회사들이 제공하는 공익 채널이다. 의회나 백악관, 국무부 등의 중요행사를 편집 없이 중계한다. 또 공공성이 강한 토론회나 학술 행사, 저자의 강연회 등도 광고 없이 내용 전체를 방송한다. 소토마요르 판사의 강연은 지난달 29일 일요 일에 방송됐다. 그녀가 덴버대학 로스쿨을 방문해 학생들과 질문․응답한 1시간짜리 행사가 그대로 C-SPAN에 방송됐다. 한 학생이 강연 끝 무렵에 미국 대학생들에게 해주고 싶은 얘기를 물었다. 소토마요 르 판사의 답변은 간결했다. 글쓰기 공부에 더 많이 노력하라고 했다. “나는 고등학교 때 학교 토론팀 대 표였습니다. 변호사를 하면서 법정 변론도 잘했습니다. 그러나 정말 중요한 것은 글입니다. 판사의 마지막 판결은 변호사가 써낸 변론문이 결정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소토마요르 판사의 말이다. 그녀는 법정 변론 을 잘해도 최종 변론문이 나쁘면, 결과가 나쁠 수 있다는 설명을 덧붙였다. 프린스턴 대학 시절 경험도 얘 기했다. 1학년을 지내며 다른 학생들보다 글쓰기 능력이 뒤진다는 사실을 느꼈다. 그녀가 스스로 내린 처 방은 기초부터 다시 공부하기였다. 2학년으로 올라가기 전 여름방학을 몽땅 글쓰기 공부에 바쳤다. 철자법 과 문법의 허점을 다진 뒤, 자신감이 커졌다는 게 그녀의 설명이었다. 이곳에서 고등학교에 다니는 둘째아이를 보면서도 미국 학교가 글쓰기를 강조하는 사실을 절감한다. 둘 째아이는 오후 4시쯤에 집에 오면 잠시 숨을 돌리고는 12시 넘어까지 여러 과목 숙제를 해야 한다. 그런 데, 수학, 음악을 뺀 거의 모든 숙제가 글쓰기 과제다. 이번 주 영어 과제는 밀란 쿤데라의 작품에 관한 내 용이었다. ‘참을 수 없는 존재의 가벼움’에 포함된 ‘영원한 회귀’ 개념에 대한 학생의 생각을 정리한 짧은 에세이를 써야 했다. 역사 과목은 미국 독립혁명에서 강조된 ‘공화주의’를 설명하는 한 쪽짜리 글이었다. 심지어 생물 과목도 진화론과 창조론을 대비시켜 토론하는 글쓰기 과제를 부과했다. 각 과목 교사들의 강 의 계획서를 보면, 표절에 대한 경고가 모두 포함돼 있다. 매주 제출된 보고서들은 주말이면 평가 결과를 인터넷으로 통보해준다. 둘째아이는 매일 저녁 글쓰기 스트레스에 시달린다. 이제 개학한 지 3주가 지났으니, 갈 길이 멀다. 그 러나 그 과정을 곁에서 지켜보며 미국 교육이 글쓰기를 얼마나 중요시하는지를 분명히 느낀다. 지난 주말 뉴스 가운데, 미국 교육장관이 미국 수능에 선택형 객관식 문제를 출제하지 않도록 연구시키기 위해 거액 - 11 -


의 예산을 배정했다는 기사가 있었다. 스스로 생각하고 판단하는 능력을 검증하겠다는 취지로 역시 글쓰 기 식 접근이 강화된다는 뜻이다. 이런 상황을 보면, 우리 현실이 걱정스럽다. 우리의 학교 교육은 논술을 빼면 글쓰기 요소를 찾기 어렵다. 논술도 시험용으로 지나치게 정형화돼 있고, 그나마 학교가 아니라 학원 이 주도한다. 우리도 소토마요르 판사 같은 다양한 분야 지도자들이 글쓰기를 강조하는 문화가 자리 잡았 으면 좋겠다. 그래야 교육이 바뀔 수 있다. 이재경, ≪세계일보≫, 2010. 9. 10

읽기 자료 -3

변지의 군이 천 리 길을 걸어서 나를 찾아왔기에 그 뜻을 물어보니 문장 공부를 해 보겠다고 하였다. 마 침 이날 우리 집 아이가 나무를 심기에 나는 그 나무를 가리키면서 다음과 같이 말해 주었다. “사람에게 문장이란 나무에 꽃이 피는 것과 같다. 나무를 심을 때 우선 뿌리에 북을 주고 줄거리를 바로 세워 주어야 한다. 그리하여 진액이 오르고 가지와 잎이 무성해지면 거기에서 꽃이 피는 것이다. 그러므로 나무를 잘 가꾸지도 않고 꽃만 보려고 서둘러서는 안 된다. 나무뿌리를 북돋우듯 자기 마음을 바로 잡고, 줄기를 바로 세우듯 자기 몸을 수양하고, 진약이 통하듯 경전을 깊이 연구하고, 가지와 잎이 무성하듯 학식을 넓히고 기교를 연마하여 마음속에 든든하게 쌓은 다 음에 마음에 품은 것을 표현하면 곧 글이 되는 것이며, 사람들이 보고 훌륭한 문장이라고 말할 것이니, 이 것이 진정한 문장이다. 문장의 길만을 따로 떼어서 성급하게 구할 수는 없을 것이다.” 정약용, 변지의에게 주는 말(爲陽德人邊知意贈言) , 與猶堂全書

- 12 -


영어강의와 언어통제

/

황현산 고려대 명예교수

내 기억이 틀림없다면, 인터넷에서 ‘안습’이라는 말이 유행하기 시작했던 것은 2004년 말이 었다. 나는 그 무렵 어느 과학 갤러리를 드나들면서 내가 모르는 과학지식을 눈동냥하고 있었 다. 한 토론에서 누군가 ‘안구에 습기가’라는 말을 썼다. 토론 상대자의 말이 너무 한심해서 눈물이 난다는 뜻이었던 이 말은 곧 ‘안습’으로 축약되었다. 동남아에 쓰나미가 몰아닥친 것이 그즈음이어서 ‘안구에 쓰나미’라는 말이 생겨났고, 생겨나기가 무섭게 ‘안쓰’로 축약되었다. 이 말의 진화는 두 주일이 채 걸리지 않았지만, 그만큼 그 말들의 생명도 짧았다. ‘안습’도 ‘안쓰’ 도 곧 인터넷에서 사라져 이제는 사어가 되었다. 인터넷에서 유행하는 수많은 신어와 축약어 들의 운명이 이와 다를 수는 없다. 우리 기억의 깊은 자리와 연결되기도 전에 사라진 말들을 어느 날 우리가 다시 만난다 해도 우리의 마음이 흔들릴 일은 물론 없을 것이다. 조지 오웰의 소설 <1984>에 부록으로 딸린 ‘신어의 원리’는 허구의 빅 브러더가 통치하는 저 끔찍한 나라의 언어정책에 관해 말한다. 신어는 그 나라의 공용어이며, 그 창안 목적은 그 체계에 걸맞은 세계관과 사고 습성을 표현하고, 그 국가 이념 이외의 다른 사상을 갖지 못하 도록 하는 데 있다. 이 언어에서는 낱말 하나하나가 단 하나의 뜻만 갖는다. 역사적으로 형성 된 모든 개념이 그것을 표현하던 낱말들과 함께 사라진다. 여러 낱말들이 하나의 낱말로 축약 되어 본래의 낱말이 지니고 있던 정서적인 힘도 사라진다. 품사의 구별이 없는 이 언어에서는 진정한 의미의 문장이 없고 개념의 나열이 있을 뿐이다. 문장이 없으니 논쟁이 없고, 하나의 문장이 다른 문장으로 연결될 일이 없으니, 한 생각이 다른 생각으로 발전할 일도 없다. 국가 가 제시하는 정통사상이 아닌 다른 생각은 표현될 길이 없을뿐더러 아예 탄생하는 일조차 없 을 것이다. 이렇게 언어가 통제되고 사상이 통제된다. 남의 일 같지 않다. 인터넷에 나타났다 사라지는 수많은 축약어들과 갈수록 단순화하는 문장들을 보면, 저 허구의 빅 브러더가 멀리 있다고만 할 수는 없다. 그런데 요즘 거의 모든 대학들이 앞다투어 실행하고 있는 영어강의에 대해서도 같은 염려를 하게 된다. 나는 우리의 여러 대학에 자신의 학문 분야에서 영어로 강의할 능력을 지닌 교수 들이 모자라지 않으며, 그 장점도 적지 않다고 생각한다. 일정한 교과 내용을 배우면서 영어 도 함께 익히니 도랑 치고 가재 잡기가 따로 없다. 외국어 강의는 교안을 면밀하게 짜야 하니 수업 진행에 차질이 없고, 강의가 옆길로 새나가기 어려우니 아까운 시간이 허비되지 않을 것 이다. 강의가 한국어에서 벗어나니 외국 학생들을 불러오기도 좋을 것이다. 그러나 영어강의 의 이 모든 장점은 그 약점이기도 하다. 어쩔 수 없이 적은 수의 어휘만을 사용하여 교안에 충실하게 진행되는 외국어 강의는 학생들이 책에서 읽을 수 있는 것 이상의 내용을 전하기 어 려울 것이다. 옆길로 새나갈 수 없는 강의는 삶과 공부를 연결해주는 온갖 길들을 차단할 것 이다. 언어의 깊이가 주는 정서를 학문의 습득과 함께 누리지 못하는 탐구는 모든 지식을 도 구화할 것이다. 그리고 무엇보다도, 영어강의가 사상통제를 위해 실행되는 것은 아닐지라도, 사상통제의 필수조건인 언어통제가 그 가운데 저절로 이루어질 것이다. 나는 그것을 염려한 다. 황현산 밤이 선생이다(문학동네, 2013) / 《한겨레신문》 2012. 5.5. 대학 글쓰기의 이해 13쪽에서 부분 발췌됨.

- 13 -


조치원(鳥致院) 사내가 달걀을 하나 건낸다. 일기예보에 의하면 1시쯤에 열차는 대전에서 진눈깨비를 만날 것이다. 스팀 장치가 엉망인 까닭에 마스크를 낀 승객 몇몇이 젖은 담배 필터같은 기침 몇 개를 뱉아내고 쉽게 잠이 오지 않는 축축한 의식 속으로 실내등의 어두운 불빛들은 잠깐씩 꺼지곤 하였다. 서울에서 아주 떠나는 기분 이해합니까? 고향으로 가시는 길이나보죠. 이번엔, 진짜, 낙향입니다. 달걀 껍질을 벗기다가 손끝은 다친 듯 사내는 잠시 말이 없다. 조치원에서 고등학교까지 마쳤죠. 서울 생활이란 내 삶에 있어서 하찮은 문장 위에 찍힌 방점과도 같은 것이었어요. 조치원도 꽤 큰 도회지 아닙니까? 서울은 내 둥우리가 아니었습니다. 그곳에서 지방 사람들이 더욱 난폭한 것은 당연하죠. 어두운 차창 밖에는 공중에 뜬 생선 가시처럼 놀란 듯 새하얗게 서 있는 겨울 나무들. 한때 새들을 날려보냈던 기억의 가지들을 위하여 어느 계절까지 힘겹게 손을 들고 있는가. 간이역에서 속도를 늦추는 열차의 작은 진동에도 소스라쳐 깨어나는 사람들. 소지품마냥 펼쳐보이는 의심많은 눈빛이 다시 감기고

좀더 편안한 생을 차지하기 위하여 사투리처럼 몸을 뒤척이는 남자들. 발 밑에는 몹쓸 꿈들이 빵봉지 몇 개로 뒹굴곤 하였다. 그러나 서울은 좋은 곳입니다. 사람들에게 분노를 가르쳐주니까요. 덕분에 저는 도둑질 말고는 다 해보았답니다. 조치원까지 사내는 말이 없다. 그곳에서

- 14 -


그를 기다리고 있는 것은 무엇일까. 그의 마지막 귀향은 이것이 몇 번째일까, 나는 고개를 흔든다. 나의 졸음은 질 나쁜 성냥처럼 금방 꺼져버린다. 설령 사내를 며칠 후 서울 어느 거리에서 우연히 마주친다 한들 어떠랴. 누구에게나 겨울을 위하여 한 개쯤의 외투는 갖고 있는 것. 사내는 작은 가방을 들고 일어선다. 견고한 지퍼의 모습으로 그의 입은 가지런한 이빨을 단 한 번 열어보았다. 플랫폼 쪽으로 걸어가던 사내가 마주 걸어오던 몇몇 청년들과 부딪친다. 어떤 결의를 애써 감출 때 그렇듯이 청년들은 톱밥같이 쓸쓸해 보인다. 조치원이라 쓴 네온 간판 밑을 사내가 통과하고 있다. 나는 그때 크고 검은 한 마리 새를 본다. 틀림없이 사내는 땅 위를 천천히 날고 있다. 시간은 0시. 눈이 내린다.

- 기형도 詩

- 15 -


'나'라는 말 ------------ 심보선 나는 '나'라는 말을 썩 좋아하진 않습니다. 내게 주어진 유일한 판돈인 양 나는 인생에 '나'라는 말을 걸고 숱한 내기를 해왔습니다. 하지만 아주 간혹 나는 '나'라는 말이 좋아지기도 합니다. 어느 날 밤에 침대에 누워 내가 '나'라고 말할 때, 그 말은 지평선처럼 아득하게 더 멀게는 지평선 너머 떠나온 고향처럼 느껴집니다. 나는 '나'라는 말이 공중보다는 밑바닥에 놓여 있을 때가 더 좋습니다. 나는 어제 산책을 나갔다가 흙길 위에 누군가 잔가지로 써 놓은 '나'라는 말을 발견했습니다. 그 누군가는 그 말을 쓸 때 얼마나 고독했을까요? 그 역시 떠나온 고향을 떠올리거나 홀로 나아갈 지평선을 바라보며 땅 위에 '나'라고 썼던 것이겠지요. 나는 문득 그 말을 보호해 주고 싶어서 자갈들을 주워 주위에 빙 둘러 놓았습니다. 물론 하루도 채 안 돼 비가 오거나 바람이 불어서 혹은 어느 무심한 발길에 의해 그 말은 흔적도 없이 사라지겠지요. 나는 '나'라는 말이 양각일 때보다는 음각일 때가 더 좋습니다. 사라질 운명을 감수하고 쓰인 그 말을 나는 내가 낳아 본 적도 없는 아기처럼 아끼게 됩니다. 하지만 내가 '나'라는 말을 가장 숭배할 때는 그 말이 당신의 귀를 통과하여 당신의 온몸을 한 바퀴 돈 후 당신의 입을 통해 '너'라는 말로 내게 되돌려질 때입니다. 나는 압니다. 당신이 없다면, 나는 '나'를 말할 때마다 무(無)로 향하는 컴컴한 돌계단을 한 칸씩 밟아 내려가겠지요. 하지만 오늘 당신은 내게 미소를 지으며 '너는 말이야'로 시작하는 이야기를 들려주었습니다. 그 이야기는 지평선이나 고향과는 아무 상관이 없었지만 나는 압니다. 나는 오늘 밤, 내게 주어진 유일한 선물인 양 '너는 말이야' '너는 말이야'를 수없이 되뇌며 죽음보다도 평화로운 잠 속으로 서서히 빠져들 것입니다.

- 16 -


선진국 대학, 입학때부터 "표절은 범죄" 반복 교육 한편이 표절 판명땐 저자의 모든 논문이 학계서 부정당해 지난 2011년 5월 미국 미시간 주립대학교의 한 교수가 논문 표절이 드러나 해임(解任)됐다. 이 학교 조사위원회는 논문이 발표된 지 5개월 만에 표절 사실을 확인했고 조사에 착수했다. 발표되는 모든 논문에 대한 실시간 감시 시스템이 제대로 작동했기 때문에 가능한 일이었다. 외국 대학은 표절 감시와 처벌에 엄격하다. 한 편의 논문이 표절로 판명되면 그동안 해당 저 자가 발표한 모든 논문이 학계에서 부정되는 경우도 흔하다. 외국 대학들은 대학에 입학하면 표절 예방 교육부터 한다. 한국에서 학부 2학년을 마친 뒤 영국에서 스포츠경영학을 전공한 한성호(28)씨는 "1학년 필수과목인 글쓰기 수업에서 논문 쓰 는 법을 한 학기 내내 배웠다"며 "한 줄이라도 다른 사람의 말을 쓸 때에는 그 출처를 해당 책 또는 논문의 페이지까지 명확히 하는 것이 습관이 됐다. '표절은 범죄'라는 말을 4년 동안 수없이 들었다"고 말했다. 이에 반해 우리는 표절에 관대하다. 표절한 사실이 드러나는 경우가 드물뿐더러 명확한 증 거가 나오지 않는 한 징계를 피할 수도 있다는 인식 때문에 표절 논란이 불거져도 버티는 경 우가 많다. 한국 대학도 논문 쓰는 법을 가르친다. 그러나 그 수업 때뿐이다. 다른 수업에서는 다른 사람의 글을 그대로 베끼거나 각주와 인용을 명확히 하지 않아도 별다른 제재가 없기 때 문이다. 한국에 교환학생으로 온 독일인 로잔나 살레스(28·Rosanna Salles)씨는 "한국 학생들이 책 을 그대로 베껴 졸업 논문으로 제출하는 것을 보고 깜짝 놀랐다"며 "독일 학교라면 바로 논문 이 거부되고 징계를 받을 텐데 그대로 졸업을 하더라"고 말했다. 지난 2009년 미국 UCLA를 졸업한 윤모(26)씨는 "워낙 표절에 민감하기 때문에 남의 글을 마음대로 베껴 쓰는 것은 생각해본 적도 없다"며 "한국이든 미국이든 표절이 적발되는 경우는 많지 않은데, 그 차이는 한국은 표절에 무심하기 때문이고, 미국은 아무도 표절을 하지 않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박상기 기자, 조선일보2013.03.20 03:01

- 17 -


"碩士(석사)논문쯤은 좀 베껴도…" 학생도 교수도 표절 불감증 양승식 기자

2013.03.20 05:14

조선일보

[죄의식 없는 '표절 대한민국'] [1] ― 줄잇는 논문 스캔들 100만~300만원 주면 주제 선정서 '복제'까지 대행해주는 업체 수십곳 대학 학부시절부터 리포트 베끼기 습관화… 논문 쓸때도 죄의식 없어 정치인·교수·목사 등 유명인의 논문 표절은 이미 일상적인 일이 됐다. 지난해엔 문대성(37) 국회의원이 논문 표절 의혹 때문에 새누리당을 떠났다. 최근엔 서울대 정치외교학부 김용찬 교수가 논문 표절이 드러나 서울대 사상 처음으로 사퇴하기도 했다. 또 지난 2월엔 허태열 청 와대 비서실장 내정자가 박사 학위 논문 표절 의혹으로 논란이 됐으며, 사랑의 교회 오정현 목사도 논문 표절 사실이 드러났다. 우리 사회가 양심을 파는 부정행위인 논문 표절에 대해 불감증에 빠져 있는 것이다.

논문 표절이 드러난 김미경씨는 석사 학위 취득자 사이에 널리 퍼진 전형적인 방법으로 논 문을 표절했다. 비슷한 주제로 쓴 2~4년 전 논문의 문장과 문단 중 오래된 논문을 인용한 부 분을 그대로 베낌으로써 마치 오래된 논문을 직접 참고해 쓴 것처럼 위장한 것이다. 직접 표 절 대상인 중간 단계 논문의 존재를 알지 못하면 해당 논문은 옛 논문을 참고해 정상적인 방 법으로 작성한 것처럼 보인다. 하지만 중간 단계 논문의 문장·각주·인용까지 그대로 베낀 것이 기 때문에 이 논문은 명백한 표절이다. 김씨는 한 지방대학 교수의 1995년 연구 논문을 베끼 는 동시에 해당 논문을 인용한 2003년·2004년 석사 학위 논문도 그대로 복사해 사용했다. 한 대학 관계자는 "설문조사, 통계 등 데이터만 슬쩍 바꾸고 여러 논문을 정교하게 짜깁기하는 수법은 주로 대필 업체에서 사용하는 방법"이라면서 "특히 사회생활을 하면서 대학원을 다니 는 경우 일종의 '논문 복사 공장'인 대필 업체에 논문을 맡기는 경우가 많다"고 했다. 대필 사설업체와는 인터넷을 통해 간단히 접촉할 수 있었다. 19일 포털 사이트에서 '논문 대필' '논문 대행' '논문 컨설팅' '논문 도우미' 등으로 검색해보니 관련 업체 수십 곳이 나왔 다. 한 업체는 "글을 쓰는 데 익숙하지 않으신 분들이나 바쁜 일정으로 시간적 여유가 없는 분들을 위해 논문 작성을 체계적으로 지도한다"면서 학위 논문, 학술 논문, 연구 논문이 모두 지도 가능하다고 홍보했다. 한 업체는 "고객님의 연구 목적에 맞는 주제 선정에서부터 논문 편집 및 교정까지 책임져 드린다. 제출 기관 양식에 맞추어 구성해드리고 목차부터 각주, 참

- 18 -


고 문헌까지 '종합 서비스'를 제공한다"고 했다. 사실상 대필을 해준다는 말이다. 한 업체 관 계자는 기자와 통화에서 "현재까지 진행 상황을 메일로 보내주면 맞춰서 논문을 만들어 주겠 다"고 말했다. 한 인터넷 커뮤니티에는 '석사 학위 논문 대필해주는 업체도 있나 보네요. 돈 없는 내가 병 X'이라는 글이 올라와 있었다. 여기엔 '대행 퀄리티에 따라 100만~300만원까지 다양하다' '대 필하는 학생이나 그 논문 통과시켜주는 대가로 돈을 요구하는 교수나 (한심하다)' '담당 교수 아니더라도 1심·2심·최종심 때 다른 교수들도 다 눈치 챈다' 등 다양한 댓글이 달렸다.

상황이 이런데도 '석사 정도는 논문을 대필하거나 표절해도 괜찮다'는 인식이 우리 사회에 광범위하게 퍼져 있다. 서울의 한 명문 사립대 박사과정 학생은 "박사야 그렇다 쳐도 석사야 교수들이 대충 형식만 보는 식이라 논문을 꼼꼼히 안 쓴다"면서 "대충 베껴서 내도 안 걸리니 힘 빼지 말자는 말도 많다"고 했다. 10여년 전 석사 학위를 취득했다는 한 직장인은 "어느 날 내 논문을 검색해보니 5명이 그대로 베껴 석사 학위를 딴 것을 보고 경악했다"고 했다. 한 대 학교수는 "일반 대학원이 아닌 특수 대학원은 원래 돈 주고 학위를 주는 곳인데 새삼스럽게 왜 그러느냐"면서 대수롭지 않다는 듯이 말했다. 그는 "정치외교학부 김용찬 교수 논문 표절 사건이 터지자 서울대를 중심으로 대학 본부 차원에서의 전반적인 논문 검증 강화안이 나왔지 만 현실적으로 어렵다는 목소리가 크다"면서 "지금으로선 학자와 학생의 양심에 맡기는 수밖 에 없다"고 말했다.

- 19 -


문대성 이어 정세균-정우택… 표절 논란에 얼룩진 ‘당선증’ 《 4·11총선 당선자들이 줄줄이 논문 표절 의혹에 휩싸이고 있다. 문대성 새누리당 국회의원 당선자에 이어 새누리당 정우택 당선자(충북 청주 상당)와 민주통합당 정세균 당선자(서울 종 로) 역시 박사학위 논문을 쓰면서 다른 사람의 논문을 무단 전재한 것으로 확인됐다. 》 18일 동아일보 취재 결과 정우택 당선자가 1992년 미국 하와이대에 제출한 박사학위 논문 ‘X-비효율성 측정: 대만과 한국’은 강명헌 단국대 교수의 1990년 논문 ‘X-비효율성에 대한 소고’, 1988년 출간된 로저 프란츠 미국 샌디에이고주립대 교수의 저서 등 최소한 논문 4건과 저서 1건에서 문장 혹은 문단을 통째로 가져왔다. 동아일보가 확인한 정 당선자의 무단 전재 부분은 총 32곳이었다. 논문 13∼17쪽을 보면 프란츠 교수의 저서 37∼42쪽을 그대로 베끼며 ‘요약했다’고만 표현했다. 도중에 프란츠 교수 의 저서 53쪽에서 그대로 가져온 한 문단을 끼워 넣어 ‘짜깁기’를 하기도 했다. 4장 ‘X-비효 율성 측정’에서는 강 교수의 논문 9∼12쪽을 그대로 전재했다. 6장 ‘결론’에서도 또 다른 논 문의 문단을 통째로 가져온 부분이 있었다. 정 당선자는 “해당 논문을 모두 참고문헌 목록에 포함했다. 일일이 주석을 달지 않았다고 표절이라고 볼 수는 없다”며 “X-비효율성 이론으로 한국과 대만 산업구조를 최초로 비교한 논문으로 학문적 독창성이 인정됐던 연구”라고 말했다. 하지만 참고문헌에 포함했더라도 원문을 그대로 전재할 경우에는 따옴표를 넣고 괄호 안에 주석을 달아 인용 사실을 밝히는 것이 원칙이다. 2008년 발표된 교육인적자원부 가이드라인에 따르면 6단어 이상 연속해서 표현이 같고 인용표시가 없을 경우에는 표절로 본다. 표절 대상이 된 논문의 원저자 프란츠 교수는 e메일을 통해 “내가 체크한 모든 문장이 표 절이었다. 명백한 표절이라고 본다”고 밝혔다. 또 다른 표절 대상 논문을 쓴 강 교수는 정 당 선자와 경기고 동문으로 가까운 관계로 알려졌다. 정세균 당선자도 다른 논문을 표절했다. 그가 2004년 경희대에 제출한 박사학위 논문 ‘브랜 드이미지가 상품선택에 미치는 영향에 관한 연구-정당 이미지와 후보자 이미지의 영향력을 중 심으로’는 1991년 이모 씨가 고려대에 석사학위 논문으로 제출한 ‘정치마케팅과 우리나라 정 당의 이미지 형성에 관한 실증적 연구’와 1998년 출간된 이종은 남서울대 광고홍보학과 교수 의 저서 ‘정치광고와 선거전략론’을 무단 전재했다. 확인한 결과 정 당선자의 논문 16쪽과 이 교수의 저서 85쪽 중 4문장이 일치했다. 논문 17 쪽의 그림은 이 교수 저서 85쪽의 그림 2-3과 동일했다. 정 당선자의 논문 17∼19쪽과 이 교 수의 저서 179∼182쪽 중 일부 문장 및 문단이 일치했다. 18쪽에 실은 그림과 이 교수의 저 서 180쪽에 나온 흐름도도 유사했다. 이 씨의 논문에서는 주로 이론적 배경 부분을 가져다 썼다. 이 씨의 논문 8, 9쪽과 정 당선 자의 논문 13, 14쪽, 이 씨의 논문 27∼33쪽과 정 당선자의 논문 38∼42쪽이 일부 표현을 수 정한 것 외에 일치했다. 이 교수의 저서와 이 씨의 논문은 정 당선자의 참고문헌 목록에만 포 함돼 있을 뿐 따로 인용 사실을 밝히지 않았다. 정 당선자 측은 “현 상황에서 대응할 가치를 느끼지 않는다”고 말했다. 한편 정우택 당선자에 대한 성매수 의혹도 제기됐다. 민주당 충북도당은 “정 당선자가 충북 지사로 재직하면서 2008년과 2009년 제주도에서 젊은 경제인과 골프를 치고 여성 접대부가 있는 술집에서 술을 마신 뒤 성 상납을 받았다는 의혹이 포털 사이트에 올라왔다”며 해명을

- 20 -


요구했다. 이에 대해 정 당선자 측은 “골프를 치고 술을 마신 적은 있지만 성매수 의혹은 터 무니없는 흑색선전으로 인터넷에 글을 올린 배후를 밝혀달라고 의뢰해 수사가 진행되고 있다” 고 밝혔다.

2012-04-19 동아일보

- 21 -


[사설] 대학도 연구자도 논문표절에 둔감한 사회 책임 강하게 묻고 학위 남발 대학 제재해야 출처를 밝히느냐 여부에 따라 표절과 인용으로 갈리기는 하지만 표절은 범죄행위나 다름없 다. 남의 것을 베끼고도 모른척했다는 점에서 자신의 양심을 속이는 일이고, 다른 사람의 연 구 성과를 허락 없이 이용했다는 측면에서는 절도다. 그런데도 불구하고 논문표절이 사라지기 는커녕 갈수록 빈번해져 이제 심각한 사회문제로 등장했다. 최근에는 유명 연예인은 물론이고 경찰청장 후보자까지 논문의 일부 또는 전부를 표절하는 실로 경악할 일이 벌어졌다. 범죄를 척결해야 할 경찰의 총수 후보가 박사학위 논문을 작성하 면서 두 쪽이나 출처 표기 없이 인용한 것은 심하게 말해 옳게 연구하지 않고 학위를 딴 것이 라고 할 수 있다. 논문의 맨 뒤 참고문헌 항목에 인용 논문의 출처를 밝혔다고는 하지만 재인 용 표시를 하지 않으면 학계에선 표절로 간주된다. 유독 우리나라에 논문 표절이 성행하는 것은 연구자들이 성의와 진정성 없이 학문을 시작하 기 때문이다. 배움과 연구에 대한 구도자적인 자세는 없으면서 석사나 박사학위를 과시나 출 세의 방편으로 생각하지 않았느냐는 말이다. 이번에 표절이 문제된 연기자나 경찰관은 해당 분야에서 일가를 이룬 사람들일진대 구태여 학위가 필요했는지 의문이다. 석사나 박사학위는 학문의 완성자에게 주는 것이 아니라 독립적으로 연구할 자격이 있다는 의미에 불과하다는 것이 학계의 공통된 인식이다. 그런데도 학위를 취득하면 마치 그 분야의 독보적인 존재인양 취급받기 바라는 얄팍한 마음이 죄의식 없이 ‘지식 절도’를 감행하게 만들 고 있는 것이다. 학문을 대하는 진지한 자세가 애초부터 결여돼 범죄 아닌 범죄를 양산한다는 의미다. 표절은 연구자에게 원초적인 잘못이 있지만 대학 측이 학위를 받을 당사자에게 합당한 노력 을 요구하지 않고 있는 것이 더 큰 문제다. 일부 대학에서는 까다로운 심사절차를 생략하고 석·박사를 양산해 사회적 영향력 확대에 이용하려는 것 아니냐는 의심도 받고 있다. 표절이 뒤늦게 밝혀진 경우 대개 연구자와 학교 측이 공범관계에 있는 경우가 많을 것이다. 표절을 하고도 형식적인 반성과 참회의 말만 되풀이하면서 상응한 책임을 지지 않는 풍토는 더욱 큰 문제다. 가령, 엊그제 석사학위 논문을 표절했다고 인정한 유명 여배우와 코미디언, 스타강사 출신 방송인은 솔직한 시인과 함께 학위 반납의사까지 밝히고 출연중인 방송에서도 하차하겠다고 선언했다. 그렇지만 이들과는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책임이 무거운 문대성 의 원과 허태열 청와대 비서실장은 도대체 무슨 책임을 졌는지 묻지 않을 수 없다. 소중한 지적 재산을 훔친 행위를 눈감아 주는 사회는 결코 건전하다고 할 수 없을 것이다. 이런 점에서 표절이 횡행하는 사회는 부도덕하고 파렴치한 인물을 길러내기 마련이다. 이제는 표절을 범죄행위로 간주해 강하게 응징하는 풍토가 조성됐으면 한다. 마찬가지로 이를 눈감아 주는 대학이 있다면 과감하게 도태시켜야 할 것이다. 2013.03.28. 국민일보 사설

- 22 -


논문표절과 이 비천한 삶 가장 덜 비천할 것 같은 대학 논문을 표절하여 학위를 얻고 그 학위를 취소 못한다면… 1991년 소비에트 연방이 해체되고 동구권의 여러 나라가 그 지배에서 풀려나고 있을 때, 프랑스의 가톨릭 교단이 운영하는 어느 우파 잡지에 가톨릭 신부이기도 한 어느 우파 논객이 이와 관련된 글을 발표했다. 헝가리·폴란드 등지로 여행했던 추억을 이야기하며, 공산독재체제 가 무너지는 것은 환영해야 할 일이나, 경건하고 건강한 삶의 마지막 모델이 사라지는 것은 안타까운 일이라고 썼다. 동구 노동자의 집에서 쉽게 볼 수 있는, 발자크와 도스토옙스키와 체호프의 소설, 보들레르와 투르게네프와 마야콥스키의 시집을 포함한 백 권 남짓한 책이 잘 정리되어 꽂혀 있는 그 서가들을 다시는 만날 수 없을 것이라고 썼다. 달력이나 잡지에서 오 린 성인들의 초상화, 또는 쿠르베나 르누아르의 그림을 집주인이 손수 만든 액자에 끼워 걸어 놓은 식탁 옆의 아름다운 벽을 다시는 볼 수 없을 것이라고 썼다. 일상의 대화에서 누가 무슨 말을 하건 정신을 집중하여 듣는 사람들이 이제는 영영 사라질 것이라고 썼다. 그들의 자리를 차지하게 될 것은 진실이야 어찌 되었건 그때그때 상황에 따라 연극하는 사람들일 것이라고 썼다. 옛날의 동구건 지금의 동구건 나는 동구에 가본 적이 없기에 그 신부 논객의 진술이 어느 정도 사실인지, 그의 예언이 어느 정도 맞아떨어졌는지 확인할 길이 없다. 그러나 나는 오히 려 지금 내 나라 사람들이 살고 있는 삶, 바로 내 삶을 바라보며, 그가 말했던 바의 진의를 어느 정도 짐작한다. 어떤 원칙도 없이 허욕과 허영에 기대어 아슬아슬한 연극을 하며 사는 것이 우리의 삶이기 때문이며, 신부 논객이 지난 시절 동구의 삶과 대비하려는 것이 바로 우 리의 이 비천한 삶이기 때문이다. 가장 덜 비천할 것 같은 대학에 관해 이야기하자. 요즘 대학의 거의 모든 총장들이 시이오 (CEO) 총장이라는 것은 누구나 알고 있다. 교육도 학문도 경제적 뒷받침이 있어야 가능한 일 이니 학교 경영을 잘한다는 것은 좋은 일이다. 그러나 경영이 교육과 학문을 원활하게 하기 위해서가 아니라, 거꾸로 교육과 학문이 학교 경영을 위한 수단이 될 때부터 문제가 시작된 다. 학교 경영에 도움이 되지 않는다고 생각되는 기초학문 분야의 학과들을 폐지하고 있는 대 학이 벌써 여럿이며, 시간과 품이 많이 드는 저술활동은 그만두고 학교 평가에서 많은 점수를 얻을 수 있는 논문을 양산하라고 교수들을 다그치는 대학도 벌써 여럿이다. 어느 대학은 경영 전문가를 불러 도서관의 경영평가를 하였더니, 열람실의 일부를 카페로 바꾸라는 진단이 나왔 다는 소문도 있다. 그것이 우리의 삶이다. 실정이 이러하니 한 정당의 국회의원 후보로 공천된 사람이 남의 논문을 표절하여 학위를 얻었다는 혐의에 명쾌한 대답을 못하는 것도, 전문가들의 판단과 학계 안팎의 질타에도 아랑 곳없이 그 후보가 여론조사에서 선두를 달리는 것도 크게 개탄할 일이 아닐 것 같다. 그러나 사실을 말한다면, 표절이 명백하다는 전문가들의 의견에도 불구하고 학위를 준 대학이 학위를 취소하지 않는다면 그것은 대학이 아닐 것이며, 그 사람이 계속 교수로 남아 있는 대학도 대 학이라고 말하기 어려울 것이다. 그 사람이 국회의원이 되는 나라를 상상하는 일은 더욱 고통 스럽다. 우리의 삶이 아무리 비천해도 그 고통까지 마비시키지는 못한다. 황현산 고려대 명예교수

- 23 -

2012.04.07 한겨레


-자기소개서 초고-

가출 2014260003 김성은 여러분은 가출을 하는 이유가 무엇인가요? 대부분은 부모님과의 충돌에서 비롯된 갈등이 원 인일 것입니다. 초등학생인 여러분은 가출을 하게 되면 어디로 가나요? 아마 대부분 친구의 집을 갈 것이라고 생각됩니다. 가출을 하고나서 부모님이 자신에 대한 걱정을 겪으면 자신에 게 대하는 태도가 달라질 것이라고 생각하실 겁니다. 저 또한 그러한 이유와 그러한 생각을 가지고 가출을 했던 적이 있었습니다. 제가 초등학생 때, 부모님의 잔소리에 의해 며칠 동안, 화가 나고 짜증이 났던 때가 있었습 니다. 그래서 저는 가출을 마음먹고 편지를 쓴 뒤 매우 튀는 붉은색 편지봉투에 넣어 풀로 잘 붙이고 거실 가운데에 두었습니다. 편지의 내용은 부모님의 잔소리로 인해 가출을 하니 저를 찾지 말라는 내용이었죠. 그러고 나서 저는 아무 생각 없이 일단 집을 나섰습니다. 어린나이 라 돈도 없고 잘 곳도 없는 저는 친구의 집에 가길 했습니다. 친구는 저를 반겨주며 재워주려 고 했고 저는 고맙다고 하며 친구와 함께 있었습니다. 그렇게 오후 10시까지 친구의 집에 있 던 중 친구의 집으로 전화 한 통이 걸려왔고 저희는 순간 긴장을 했습니다. 친구는 전화를 받 았고 그 전화의 주인공은 저의 어머니였으며 친구는 의리를 지키기 위해 저의 행방을 모른다 고 하며 거짓말을 했습니다. 하지만 수화기 너머로 들려오는 매우 화난 어머니의 목소리. 결 국 저는 몇 시간 만에 가출을 그만 두기로 했습니다. 하지만 돌아가서 혼나기가 싫었던 저는 거짓말을 지어내기 시작했죠. 길을 가다가 웬 아저씨들이 저에게 와서 저에게 돈을 뺏으려 했 고 그게 무서웠던 저는 한동안 학교에 숨어있었다는 이상한 이야기였습니다. 그런 이야기를 가지고서 집으로 돌아가면 부모님의 잔소리가 줄고 저에 대한 사랑이 커질 거라 생각하며 집 에 돌아갔습니다. 집에 돌아오니 역시 어머니는 화가 나신 상태였고 저는 준비했던 스토리를 장황하게 설명했 습니다. 어머니는 그 이야기를 믿고서 경찰서에 전화하셨고 저는 이제 어머니께서 저에게 걱 정과 애정을 쏟을 실줄 알았습니다. 하지만 현실은 그렇지 않습니다. 부모님께 그 날은 그저 제가 늦게 들어온 날일뿐이었던 것입니다. 결국 저는 실망과 허무함을 느끼며 거실을 저편에 보이는 제 방으로 향했습니다. 그때 뭔가 붉은 편지봉투 하나가 보이더군요. 저는 조심스럽게 그 편지를 들고 제방으로 들어가 편지봉투를 열어보았습니다. 그 편지봉투는 뜯긴 흔적도 없 이 제가 놓고 나갔을 때의 상태를 여전히 유지하고 있더군요. 저는 편지봉투를 뜯고 그 안에 제가 쓴 편지지를 읽으며 다짐했습니다. 다시는 가출 같은 허무하고도 의미 없는 짓은 하지 않겠다고 말이죠. 여러분에게 있어서 가출은 어떤 의미라고 생각합니까? 부모님의 잘못을 부모님 스스로 반성 하게 하는 것? 아니면 부모님을 도피하는 것? 단언컨대, 어떠한 이유에서든 여러분에게 있어 서 가출은 가장 의미 없고 허무하며 무료한 일입니다.

- 24 -


-자기소개서 수정-

‘나’라는 호수 속으로 2014260003 국어국문학과 김성은 1.구불구불한 물줄기 제 인생 그래프는 꽤나 특이합니다. 마치 산에서부터 흘러내려오는 불규칙적인 물줄기처럼 크고 작은 굴곡이 많습니다. 그 굴곡에는 성격으로 인해 생기는 것들이 대부분이었습니다. 저는 활발하고 밝으며 남을 도와주려 노력하고 항상 웃으며 화를 참는 성격입니다. 이러 한 성격으로 다른 친구에게 다가가면 대부분의 사람들은 저를 ‘무슨 짓을 해도 괜찮은 놈’, ‘그냥 멍청하게 웃고 다니는 놈’ 등으로 인식을 했습니다. 그래서인지 대부분 저를 때리고 놀려도 거의 죄책감을 느끼지 않았습니다. 항상 웃으면서 받아주었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그 시간이 오래될수록 그리고 저 말고도 다른 착한아이들이 그런 대접을 받는 것을 보고서 다른 사람들이 착한성격을 이용하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 이후로 저는 남 의 성격이 착하다는 이유만으로 남을 함부로 대하지 않겠다고 다짐했습니다. 이러한 성격으로 인해 왕따도 당했습니다. 그들이 저에게 가했던 폭행 중 아직도 기억에 남는 것은 저를 구석에 몰아넣고 그 당시 유행하던 나무로 된 고무줄 총을 사서 저에게 수 십 발에 고무줄을 쐈던 것입니다. 하지만 저는 계속 웃고 있었습니다. 그때의 저는 그들이 무서워서 화를 못 낸 것이 아니라 그들을 친구라 여기며 그들과의 관계가 끊어지는 것이 무 서웠던 것입니다. 몇 년이 지난 후에 그 때 일을 떠올리며 제 자신이 타인과의 관계를 중요 시하는 사람이었다는 것을 깨달았습니다. 2.그 물줄기가 모여 웅덩이가 되고 크고 작은 굴곡으로 인해 저는 점차 자신에 대해 알아가게 되었습니다. 하지만 여전히 모 르는 것이 있었습니다. 그것은 ‘제가 무엇을 잘하는가?’에 대한 답입니다. 고등학교 때 저 자신이 잘 할 수 있는 일이 무엇인가에 대한 고민을 많이 해봤습니다. 부모님께 물어보 고 친구에게 물어봐도 제가 무엇을 잘하는지 알 수가 없었습니다. 한참을 고민하다가 우연 히 제가 여태까지 받은 몇 안 되는 상장을 보게 되었습니다. 백일장부터 시작해서 교내 상 장까지 전부 글과 관련된 것들이었습니다. 그래서 고등학교 2학년이 되었을 때, 저는 문예 창작동아리에 들어가 시와 단편소설을 썼고 문집도 내보고 교내 글쓰기대회에 나가 은상을 타기도 하였습니다. 그런 과정을 거치며 제가 풍부한 상상력을 가졌고 창작에 대한 관심이 많다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3.그 웅덩이에 물이 점점 차올라 호수가 되었네. 수능이 다가오고 입시준비를 할 시기가 찾아오자 저는 꿈을 정하기 시작했습니다. 작가(소설작가)와 광고(카피라이터) 둘 중에 무엇을 할지 고민했고 부모님과 그리고 담임선생님과의 상담을 통해 저는 광고(카피라이터)를 하기로 다짐했습니다. 그 결과 입시준비를 하며 과를 정할 때 저는 수시원서 6개 모두에 국어국문과를 적었고 수시에 합격하여 현재 고려대학교 국어국문과 14학번으로서 생활하고 있습니다.

- 25 -


-영화감상문 초고-

<길의 끝. 하나의 문> 국어국문학과 2014260003 김성은 죽음, 직업의 귀천, 아버지. 여러 가지를 다룬 영화였지만 필자는 대표적으로 죽음에 대한 이야기가 가장 인상 깊게 느껴졌다. 죽음과 관련된 이야기는 죽음에 대해 다시 생각하게 했 다. 죽음이라는 단어만 놓고 보면 보편적으로 불결함, 듣기 싫은 단어, 어떻게든 접하고 싶지 않은 것으로 여겨진다. Good&Bye라는 영화에서는 대부분 죽음에 관련된 이야기가 전개된다. 첼로연주자였던 주인 공은 오케스트라가 해체되고 나서 고향으로 돌아갔다. 그리고 그곳에서 우연히 납관인이라는 죽음과 관련된 직업을 갖게 되고 수많은 죽음들을 경험하게 된다. 납관인으로서 그가 본 시체 들은 연령 때도 살아온 삶도 죽은 이유도 달랐다. 하지만 그들의 공통점은 단 하나, 모두 죽 었다는 것이다. 이를 통해 죽음은 누가 되었든 피해갈 수 없는 것이고 누가 되었든 맞이해야 한다는 것을 새삼 다시 느꼈다. 죽음은 어린 아이라고 해서 봐주는 것이 없고, 착한 삶을 살 았다고 해서 봐주는 것도 없다고 생각한다. 어떠한 삶을 살았던 그 사람이 길의 끝에 서게 되 는 순간 죽음이라는 문을 열어야 하는 것이다. 목욕탕 주인 할머니를 화장시키는 사화장사 할아버지는 ‘죽음은 문이다.’라고 말했다. 필자 는 이 말을 듣고 왜 죽음을 문이라고 하는지 이해가 되지 않았다. 사화장사 할아버지의 설명 을 듣고서 죽음을 어째서 문에 비유했는지 알게 되었고 필자가 생각한 죽음의 이미지와 많이 비슷한 면이 있음을 느꼈다. 필자가 생각한 죽음의 이미지는 어느 순간 마주해야하는 길의 끝 이다. 우리의 삶은 길과 같고 삶이 끝나는 순간이 길의 끝이라고 생각한다. 그리고 영화에서 언급한 문은 그 길의 끝에 위치하는 것 같다. 우리는 현재 자신만의 인생이라는 길을 걷고 있 고 그 길의 끝을 향해 가고 있다. 그리고 길이 끝나면 죽음을 맞이한다. 하지만 영화에서도 언급됐듯이 죽음을 맞이한다는 것이 물론 그 인생의 끝은 맞지만 완전한 끝이 아니라 문을 열 고 나가 그 다음으로 나아가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마지막은 아버지의 죽음에 대해 생각해보았다. 주인공의 아버지는 바람나서 집을 나갔고 그 이후로 주인공과 연락이 끊겼다. 그로 인해 주인공은 아버지에 관한 기억이 자신에게 돌 편지 를 전해주던 아버지의 모습뿐이었다. 비록 아버지를 싫어하고 아버지의 얼굴이 제대로 기억나 진 않지만 아버지가 자신에게 주었던 돌 편지만큼은 기억하고 있던 것이다. 그리고 아버지 또 한 아들이 자신에게 준 돌 편지를 죽음에 다다른 순간까지 갖고 있었다. 아버지는 자신의 길 에서 단 한 번도 아들이 준 돌 편지를 버리지 않은 것이다. 비록 다시 만난 아버지의 모습은 길의 끝에서 문을 열고 가버린 모습이지만, 그 순간까지 아들을 기억하고 걱정하고 생각하는 아버지의 모습은 죽음을 초월한 것처럼 느껴진다. 죽음이라는 것은 보편적으로 불결함, 듣기 싫은 단어, 어떻게든 접하고 싶지 않은 것으로 여겨진다. 하지만 영화 Good&Bye는 그 고정관념을 부수고 죽음을 누구나 언젠가는 접하는 것, 언젠가는 들어야 하는 단어로서 보여준다. 즉, 이 영화는 죽음의 재해석을 한 영화라고 할 수 있을 것 같다.

- 26 -


-영화감상문 수정-

길의 끝을 향해 국어국문학과 2014260003 김성은 죽음, 직업의 귀천, 아버지. 여러 가지를 다룬 영화였지만 대표적으로 죽음에 대한 이야기가 가장 인상 깊게 느껴졌다. 죽음과 관련된 이야기는 죽음에 대해 다시 생각하게 했다. 죽음이 라는 단어만 놓고 보면 보편적으로 불결함, 듣기 싫은 단어, 어떻게든 접하고 싶지 않은 것으 로 여겨진다. <Good&Bye>라는 영화에서는 대부분 죽음에 관련된 이야기가 전개된다. 첼로연주자였던 주 인공은 오케스트라가 해체되고 나서 고향으로 돌아갔다. 그리고 그곳에서 우연히 납관인이라 는 죽음과 관련된 직업을 갖게 되고 수많은 죽음들을 경험하게 된다. 납관인으로서 그가 본 시체들은 연령 때도 살아온 삶도 죽은 이유도 달랐다. 하지만 그들의 공통점은 단 하나, 모두 죽었다는 것이다. 이를 통해 죽음은 누가 되었든 피해갈 수 없는 것이고 누가 되었든 맞이해 야 한다는 것을 새삼 다시 느꼈다. 죽음은 어린 아이라고 해서 봐주는 것이 없고, 착한 삶을 살았다고 해서 봐주는 것도 없다고 생각한다. 어떠한 삶을 살았던 그 사람이 길의 끝에 서게 되는 순간 죽음이라는 문을 열어야 하는 것이다. 목욕탕 주인 할머니를 화장시키던 사화장사 할아버지는 ‘죽음은 문이다.’라고 말했다. 처음 에는 이 말을 듣고 왜 죽음을 문이라고 하는지 이해가 되지 않았다. 시간이 지나고 사화장사 할아버지의 설명을 듣고서 죽음을 어째서 문에 비유했는지 알게 되었고 죽음의 이미지를 길의 끝이라고 했던 것과 많이 비슷한 면이 있음을 느꼈다. 길의 끝이라는 죽음의 이미지는 언젠가 는 겪어야한다는 점에서 생각한 것이다. 우리의 삶은 길과 같고 삶이 끝나는 순간이 길의 끝 이라고 생각한다. 그리고 영화에서 언급한 문은 그 길의 끝에 위치하는 것 같다. 우리는 현재 자신만의 인생이라는 길을 걷고 있고 그 길의 끝을 향해 가고 있다. 그리고 길이 끝나면 죽음 을 맞이한다. 마지막은 아버지의 죽음에 대해 생각해보았다. 주인공의 아버지는 바람나서 집을 나갔고 그 이후로 주인공과 연락이 끊겼다. 그로 인해 주인공은 아버지에 관한 기억이 자신에게 돌 편지 를 전해주던 아버지의 모습뿐이었다. 비록 아버지를 싫어하고 아버지의 얼굴이 제대로 기억나 진 않지만 아버지가 자신에게 주었던 돌 편지만큼은 기억하고 있던 것이다. 그리고 아버지 또 한 아들이 자신에게 준 돌 편지를 죽음에 다다른 순간까지 갖고 있었다. 아버지는 자신의 길 에서 단 한 번도 아들이 준 돌 편지를 버리지 않은 것이다. 비록 다시 만난 아버지의 모습은 길의 끝에서 문을 열고 가버린 모습이지만, 그 순간까지 아들을 기억하고 걱정하고 생각하는 아버지의 모습은 죽음을 초월한 것처럼 느껴진다. 죽음이라는 것은 보편적으로 불결함, 듣기 싫은 단어, 어떻게든 접하고 싶지 않은 것으로 여겨진다. 하지만 영화 Good&Bye는 그 고정관념을 부수고 죽음을 누구나 언젠가는 접하는 것, 언젠가는 들어야 하는 단어로서 보여준다. 이를 통해 죽음에 대해서 다시 생각하게 되었 다. 죽음은 접하고 싶지 않은 것이지만 언젠가는 접해야만 하는 길의 끝인 것이다.

- 27 -


-칼럼&에세이-

커지는 카카오, 우리에게 오는 것은 이로운 것뿐? 2014260003 국어국문학과 김성은 지난 5월 26일, 다음커뮤니케이션과 카카오는 합병을 하였다. 이는 인터넷 포털과 모바일 메신저가 하나로 합쳐진 것이다. 이로써 네이버 독주 체제였던 국내 포털 서비스 시장이 완화 되면서, 무선통신 기반의 인터넷서비스 산업과 시장에 좋은 방향으로 영향을 줄 것이라는 긍 정적 반응이 보인다. 또한 이러한 영향이 이용자의 혜택 증가와 관련 업계의 전반적인 발전으 로 이어질 수도 있다는 점에서도 긍정적으로 보인다. 그리고 다음과 카카오는 무엇보다 주로 활동하는 영역이 서로 달라 부족한 부문을 보완해줄 수 있다는 점에서 좋은 합병이라 불린다. 서로의 장점을 살려 좋은 효과를 내는 것과 함께 다음과 카카오는 새로운 성장을 맞이할 수 있을 것 같다. 이러한 합병으로 카카오는 더욱 커지게 될 것이다. 다음-카카오 합병은 긍정적인 면이 많아 보인다. 하지만 이 합병에는 긍정적인 점만 있지는 않다. 우선 다음-카카오 합병으로 얻은 엄청난 차익으로 문어발식 사업 확장에 나서게 되면 중소 인터넷사업자들이 피해를 입을 수도 있다. 즉, 그들의 시장 기반을 빼앗을 수도 있는 것 이다. 이 합병의 우려는 이것뿐만이 아니다. 다음이 특정 그룹 혹은 특정 인물을 위해 편파적 으로 그들에게 유리하거나 불리하도록 뉴스에서 편집을 한다는 비판이 끊이지 않고 있고 카카 오는 모바일의 특성으로 세계에 나아갔을 때의 경쟁력이 어느 정도일지에 대해서 회의적인 시 각이 있었다. 이 합병이 그저 기업의 확장에서 그치거나 왜곡된 포털의 정보제공을 개선하는 방향으로 나아가지 않는다면 몸집불리기로 밖에 안 보일 것이다. 카카오는 이렇게 합병을 통해 점점 더 커져가고 있다. 과연 이것이 좋은 현상만 있을까? 현 재 많은 대중들이 스마트폰 사용하고 있고 카카오 톡도 많은 사람들이 애용하고 있다. 메신저 의 기능이 있는 동시에 보이스톡이라는 전화 연결과도 같은 기능까지 있다. 또한 대부분의 모 바일 게임들은 카카오와 연계하여 나타난다. 예를 들어, 애니팡, 쿠키런 등 많은 게임의 이름 뒤에는 거의 ‘for KaKao’가 붙고 있다. 즉, 카카오는 이미 대중들의 하나의 문화가 되었고 엄 청난 대중성을 띄고 있는 것이다. 우리에게 친근한 카카오. 점점 커지는 이 카카오가 만약 더 큰 이득을 취하고 싶다면, 욕심 을 부린다면, 유료화를 진행한다면 어떻게 될 것인지 생각해보았다. 게임이나 APP 다운로드 에 돈을 내고, 더 좋은 기능을 얻기 위한 업데이트에 돈을 내는 등의 상황이 벌어진다면 과연 대중들은 ‘돈 내야 하니까 안 해.’라는 반응 보일까? 아마 그렇지 않을 거라고 생각한다. 이미 카카오 톡은 많은 사람들에게 깊숙이 자리 잡은 필요한 존재가 되었고 메신저의 중심이 되었 다. 이러한 상황에서 유료화가 된다면 대부분의 사람들은 돈을 내고 계속해서 사용하게 될 것 이다. 우리에게 많은 서비스를 제공해주던 카카오가 상업적인 모습을 띌 때의 얘기이긴 하지 만 이러한 상황을 생각은 해보는 것이 좋을 것 같다. 카카오의 대중성은 앞서 말한 바와 같다. 카카오는 대중들에게 이미 많은 지지를 받고 있고 대중들은 카카오에 많이 의존하고 있다. 카카오의 유료화와 같은 상황이 올 때를 대비해 덜 의존하는 것이 좋을 것 같다. 과도한 의존은 훗날 거대한 위험으로 다가올 수도 있다.

- 28 -


-독후감(동욱)-

의문 속의 깊은 어둠 2014260003 국어국문학과 김성은 ‘동욱’이라는 소설을 읽으면서 주목할 수 있었던 것은 ‘동욱은 어떤 아이일까?’라는 의문과 이 소설이 말하고자 하는 바이다. 처음에는 그저 동욱이 미친 방화범이구나라는 생각밖에 들지 않았다. 그리고 ‘나’라는 작자 가 그 아이에게 관심이 없는 선생이구나라고 생각하며 선생을 비판했다. 하지만 소설이 전개 되고 ‘민희(미니)’라는 아이가 등장하면서 어딘가 조금씩 변해가고 있는 것 같았다. ‘나’가 동 욱에게 관심을 더 갖기 시작한 것이다. 이후에는 계속되는 의문이 생겨났다. 동욱은 정말 미치광이 방화범일까? 아니면 어떠한 이유가 있기 때문에 방화를 저지른 것일 까? 이 소설에서 동욱은 조용한 아이로 나온다. 그리고 반 친구들에게 존재감 없는 아이이기 도 하다. 그렇다면 동욱은 대체 어떤 아이일까? 그 아이를 조용하지만 미친 방화범이라고 하 기에는 그 아이에 대해 잘 모르겠다. 확실하게 밝혀진 것 없이 소설은 끝나고 여운은 계속해 서 남고 의문은 아직 풀리지 않았다. 하지만 동욱은 구치소에 들어갔고 감옥생활을 하고 있 다. 결국 확실한 것은 사람을 죽였다는 것이다. 이 소설은 의문만을 많이 남긴 것 같다. 이 소설에서 말하고자 하는 것은 무엇일지 생각해보았다. 먼저 이 소설은 무엇에 대한 이야 기인가 했을 때 떠오르는 것은 무관심과 소외된 사람들에 관련된 이야기였다. 동욱의 선생이 면서도 동욱의 할머니가 죽었다는 것을 몰랐던 ‘나’, 그리고 동욱이 반에서 사라졌음에도 별 반응 없는 반 친구들의 무관심, 소외된 동욱. 어찌 보면 이 소설에서 말하고자 하는 바는 소 외된 사람들에게 관심을 갖자는 것 같다.

- 29 -

국문03김성은 e book(수정)  
Read more
Read more
Similar to
Popular now
Just for you