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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3 전라북도 농촌유학생활 이렇게 했다.

이 학교에 오면 못 하는 것이 없어진다고 했다. 웃으라고 한 얘기이지만, 또 그만큼 경험하는 것이 도시보다 많다는 것이다.

장려상 이진우 고창북중학교


전라북도 농촌유학생활수기공모 _ 장려상

내가 여기 왜 있을까? 이진우 _ 고창북중학교

6학년 졸업을 앞둔 평범한 일명 ‘초딩’. 그게 바로 나의 몇 달 전 모습이었다. 이렇게 농촌에서 살 줄은 꿈에도 몰랐 고, 그냥 동네 평범한 중학교에 들어가 초등학교 때 친구들 과 예전처럼 지내려니 하고 생각했다. 그러나 변수는 형이었 다. 우리 형은 그 당시 중학교 3학년. 평범하게 고등학교에 가면 이도 저도 아니게 될 것 같아 넣은 평택 마이스터 고등 학교에서 떨어지고, 마지막으로 시험을 본 강호항공고등학 교에 진학하게 된 우리 형은 엄마와 함께 이곳 전라북도 고 창에서 살 예정이었다. 그러나 엄마는 나까지 고창에 있는 고창북중학교에 가는 건 어떻겠냐고 하셨다. 원래 살던 의정 부에서 누나, 아빠와 있는 것 보단 형과 엄마와 있는 것이 더 낫다고 생각한 것이다. 그 때 당시 생각으로는 친구야 뭐 다 농촌유학생활의 훈훈한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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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 만들면 되고, 방학 때 올라와서 친구들 얼굴도 한번씩 보 고 하면 괜찮겠고, 공부도 많이 시키는 학교니, 공부나 정신 차리고 열심히 해 보려고 올라왔다. 마지막으로 의정부에 잠 깐 올라갔던 날. 아빠는 나와 형이 잠든 모습을 보고 덜컥 귀 농을 결정하셨다. 나는 안도보다는 걱정의 한숨을 내쉬었다.


2013 전라북도 농촌유학생활 이렇게 했다.

아빠는 가서 무슨 일을 하려고 하시는지. 예전보다 배로 더 힘드실텐데 괜찮으실지 등 등... 어쨌든 누나는 의정부 할머니 댁에, 다른 가족들은 고창에 집을 구해 살게 되었다.

학기 초, 이사를 아직 하지 못해서 나, 형은 잠시 기숙사에 있 게 되었다. 조금 공부 더 시키고 저녁엔 핸드폰도 주고 자유시간도 있겠 지...했지만 생각했던 것보다 훨씬 힘들었다. 11시30분에 자고 6시30분 에 일어나니...의정부에서도 10시간은 잤는데 수면시간이 갑자기 2시 간이나 줄어드니 정말 피곤했다. 게다가 핸드폰은 가끔씩만 나눠주고... 공부는 7~8교시 정규수업에 8~9교시 보충수업, 야간1, 2교시 특강에 다 1시간30분 야간자율학습까지... 학기 초엔 정말로 졸렸다. ‘내가 여기 왜 있을까...’라고 생각하며 후회도 했었다. 그런데 후회해서 나오는 건 한숨밖에 없다는 걸 깨닫고 ‘뭐 남들 다 하는 거 3년쯤 일찍 한다고 손해 볼 것도 없고 오히려 나만 더 좋지.’ 라고 생각하자. 다음 날이 달라졌다. 조금 더 밝아졌다. 그 때 이 학교에 온 것이 어쩌면 잘 한 것일지도 모른 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리고 6학년 때 한 번 해 본 실장도 하게 되었다. (의정부에선 반장, 혹은 회장이라고 불렀지만...) 그리고 처음 집으로 가 는 주말. 이사할 집을 보았다. 전에 보건소로 쓰였던 집이라고 했다. 첫 주말은 정말 재미없었다. 공유기 설치도 못했고, 짐도 못 옮겨서 집이 아 니라 정말 당장 잠만 자고 나오는 곳이 되어버렸다. 그렇게 주말이 지나 가고, 또 다시 무난하게 학교 생활을 했다. 적응이 조금 안 되긴 했지만 그래도 버틸 만 했다. 그렇게 다시 주말이 오고. 그때는 아빠, 형이랑 이


내가 여기 왜 있을까?

삿짐을 정리했다. 큰 것은 이삿짐센터 아저씨들이 다 옮겨 주시고 우리가 할 일은 tv설치, 컴퓨터설치, 조그마한 물품들 정리정도 밖에 남아있지 않았다. CD리더기와 스피커를 먼저 설치해 놓고 음악을 틀고 일했다. 그래도 저번 주 보단 나았 다. 쉬면서 먹는 피자는 정말 맛있었다.

이사를 다 해 놓고서는 이제 어느정도 학교 생활에 적응이 되어있었다. 우리 학교 고창북중학교는 전원학교, 예 비혁신중학교로 뒤 쪽엔 산이 있고 운동장은 심지어 천연잔 디가 깔려있다. 전에 의정부와는 차원이 다른 환경이었다. 그리고 귀찮게만 생각했던 야간 특강이 꽤 재미 있어졌고, 의정부에서 보지 못했던 것들을 볼 수 있다는 것이 가장 좋 았다. 내가 살던 의정부에서는 밤 하늘에 보이는 거라곤 기 껏해야 반짝이는 헬리콥터(?)라던지 몇 개의 반짝이는 조그 마한 별만 있었지 별이 이렇게 많이 보인다는 것은 상상도 못했던 일이다. 그리고 자연환경이 이 곳은 정말 좋다. 집 근 처에서 도마뱀이 나오고, 전에는 여름에 공원에 가야 가끔식 농촌유학생활의 훈훈한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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볼 수 있었던 개구리도 이곳에는 밤만 되면 수십, 수백 마리 가 울어대는 것 같다. 아직은 매미가 나오지 않아서 괜찮지 만, 매미들이 깨어나면 어떨지 머릿 속에 그려진다.

이렇게 다른 가족들은 적응을 잘 하고 있었으나, 형


2013 전라북도 농촌유학생활 이렇게 했다.

만은 달랐다. 학교에 아이들이 너무 유치하다는 것부터 시작해서 (차라 리 내가 더 낫단다.) 선생님들이 가르치는 내용도 별로라는 것까지... 물 론 나도 이곳 생활이 100% 마음에 드는 것은 아니다. 근처에 편의점 하 나 없고... 주말에 같이 놀 친구도 없거니와 같이 놀 사람이 있다고 하더 라도 놀 공간도 마땅치 않다. 그래서 매일 학교 집 학교 집 학교 집을 반 복하는 생활이 나도 썩 좋지 않았는데, 형이 그걸 참지 못했던 것이다. 물론 형의 입장도 이해가 간다. 기대를 잔뜩 하고 들어왔는데 애들 노는 것 하며 근처 환경 하며 모든 게 다 형의 기대치 이하였던 것 같다. 이미 그렇게 마음을 먹어서 그런지 형은 돌아설 생각을 하지 않는 것 같다. 심지어는 자퇴,혹은 일년 후 다른 고등학교를 들어가는 것을 생각 중이 고 현재는 학교를 나가지 않는 상태이다.

다시 일상 이야기로 돌아와서, 나는 여기서 새로운 장래 희망을 찾았다. 그것은 바로 ‘선생님’이다. 옛날에는 ‘의사’ 가 목표였는데 의사 는 내가 공부를 1%안에 들 정도로 잘하는 것도 아니고, 자신도 없기 때 문에 그나마 가능성이 좀 더 높은 선생님으로 갈아탄 것이다. 여기서 전 교 3등도 해보고 과학과목을 다른 애들보다 월등히 잘 봐서 과학에 흥미 를 가지고 과학 쪽으로 가 볼까 생각중이다. 하지만 이 꿈도 언제 바뀔 지는 모르는 것 같다. 어느 날은 ‘꿈은 왜 이리 자주 바뀔까?’ 하고 나 스 스로 생각을 해 봤다. 그건 아마 내가 아직 중학생이라 경험해 본 것도 많지 않고, 공부도 깊숙이 들어가지 않아서 그런 것 같다고 생각했다. 당연한 얘기 아닌가? 경험해 본 것이 적고 공부도 깊이 들어가지 않았으


내가 여기 왜 있을까?

니. 자신이 무엇을 잘하는지, 무엇에 흥미가 있는지 잘 모르 는 것이 당연지사. 경험을 조금 더 시켜주고, 공부를 조금 더 시켜서 제대로 된 명확한 꿈을 빠르게 만들어 주는 것이 우 리 학교의 목표 아닐까? 우리 학교는 체험학습 같은 것이 아 주 많으니 말이다.

참, 형들이 농담삼아 말하기를, 이 학교에 오면 못 하 는 것이 없어진다고 했다. 웃으라고 한 얘기이지만, 또 그만 큼 경험하는 것이 도시보다 많다는 것이다. 학교에서 수영, 중국어, 체험학습, 여러 가지 운동에 텃밭 가꾸기까지... 아 무래도 기숙학교이다 보니 남는 시간이 많이 있기 때문에 여 러 가지 체험으로 남는 시간을 채우고, 시골인 것을 활용하 여 학교 뒤편에 텃밭을 만들어 놓은 것 같다. 텃밭은 아직 가 본 적이 없는데, 아마 2, 3학년이 되면 텃밭 가꾸기를 할 것 같다. 힘들다고 하지만 나는 그다지 많이 힘들지는 않을 것 같다. 왜냐하면 이 곳에 와서 생전 처음 가져 본 우리 밭에 물집 잡힐 때까지 삽질도 해보고 호미질도 해 봤으니... 학 농촌유학생활의 훈훈한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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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에서 이 이상 뭐가 또 힘들까? 아마 없을 것 같다. 우리집 밭 얘기를 조금 더 자세히 하자면, 우리 밭은 그다지 큰 편은 아니다. 돈을 많이 벌어서 수익을 낼 목적도 아니고 그냥 ‘조 금씩 수확해서 우리집 반찬에 올리자’가 목표인 조그마한 밭 이다. 호박, 고구마, 고추, 수박, 참외 등등, 이것저것 조금


2013 전라북도 농촌유학생활 이렇게 했다.

씩 심어놓고 가족이 다같이 관리하는 밭인데, 그 덕에 풀 뽑느라 힘만 들고, 내 쉬는 시간은 다 날아가버리는 데에는 아주 일등공신이다. 나 는 여기 와서 농기구를 처음 만져보았다. 기껏 해봐야 할머니댁 농작물 에 물주기 정도였는데 여기서는 삽질, 호미질, 괭이질 등등, 정말 힘들 다. 요즈음에는 날씨도 더워져서 힘든데, 이런 날씨에 밖에서 열심히 일 하시는 우리 아버지가 참 대단하게 느껴질 정도다. 나는 원래 몸에 열이 많아서, 더운 건 아주 질색이다. 그런데도 열심히 밭에서 일을 하는 건, 나도 이만큼이나 힘든데 아버지는 더 하지 덜 하진 않을 거라는 생각에 서다. 내 골칫덩이 우리집 밭에 농작물들은 처음 키우는 거라서 딱히 바 라는 건 없고, 정상적으로만 잘 자라줬으면 좋겠다. 여태까지 고생한게 있는데...

학교 학생들만큼 학교 선생님도 엄청 힘든 직업인 듯 싶다. 우리 반만 봐도 답이 나온다. 실장인 나로써도 애들이 답답하고 화가 나는데, 선생님이 참고 또 참는 것을 보면 참 대단하다는 생각이 든다. 그리고 내가 느끼는 것이, 애들이 막 다 졸고, 힘이 없고 대답도 잘 하지 않으 면 선생님들도 기운이 없어지고 말소리도 작아지는데, 우리들이 집중도 잘 해주고 대답도 크게 잘 해주면 선생님들도 기운이 나서 더 열정적으 로 아이들을 가르치시는 것 같다. 선생님과 관련된 얘기가 나와서 하는 말인데, 요즈음에는 목요일에 하는 논술 시간이 재미있어 지는 것 같다. 무엇보다도 논술 선생님께서는 애들이 떠들고 장난쳐도 화를 잘 내지 않으시고, 글을 쓰는 것이 재미있기 때문이다. 저번 시간에는 사회 풍자


내가 여기 왜 있을까?

만화를 보고 만화 내용에 대해 글을 쓰는 이미지 논술을 했 었다. 논술 시간에는 글을 잘 쓴 친구 혹은 선배님들의 글을 읽는 시간이 있는데, 형, 누나 말로는 내가 사회 풍자 만화에 대해 글을 쓴 것이 채택된 것 같았다. 거의 항상 나오는 고정 멤버가 있긴 하지만, 내가 쓴 글이 채택된 것은 처음인 것 같 다. 나는 원래 글재주가 좋은 편이 아니어서 초등학교 때부 터 글 쓰는 것으로 상을 받은 적이 거의 없는 것 같은데, 상 은 아니더라도 잘 써서 다른 사람이 내 글을 읽고 연습한다 고 생각하니 더욱더 논술 시간이 기다려졌다. 하지만 학교 일정이 계속 겹쳐 3주는 있어야 논술 시간이 올 것 같다. ‘아 쉽다. 차라리 금요일에 쉬지.’ 하고 생각했다. 금요일은 영어 야간특강이 있는 날이다. 시간을 많이 주시긴 하지만 숙제도 많고 영어가 어렵기도 하고 해서 그런지 영어는 살짝 꺼려지 는 감이 없잖아 있는 것 같다. 하지만 그럴수록 더 열심히 공 부해야 하는 게 맞는 것이겠지만, 그래도 영어보다는 논술이 더 좋은 것 같다. 논술 선생님은 우리 집처럼 농사일을 하시 니 더 친근하기도 하고 말이다. 농촌유학생활의 훈훈한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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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곳에 와선 부쩍부쩍 자라는 우리 밭의 옥수수처 럼 키가 많이 자라고 있다. 입학할 때 168정도였는데 지금은 171쯤 되는 것 같다. 내 키가 자랄수록 내 생각도, 마음도 같 이 자라는 것 같다. 처음에는 이곳이 촌이라고만 생각돼 오


2013 전라북도 농촌유학생활 이렇게 했다.

기도 싫었다. 학기 초에 읍내에서 학교까지 택시를 타고 갔을 때의 엄청 난 택시 요금은 정말 비쌌다. 의정부에서는 택시도 많고 버스도 많았는 데, 여기선 버스가 한 시간에 한 대 다니고, 택시 요금은 무진장 비싸다 보니 불만이 안 생길수가 없었다. 게다가 저녁 9시까지 수업이라니, 이 건 정말 미쳤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시간이 흘러 친구들과도 많이 친해 졌고, 농사일도 익숙해졌고, 놀 시간이 없는 것도, 집에 늦게 들어오는 것도 익숙해졌다. ‘내가 왜 여기 있을까...’라는 질문에 대한 답도 생겼 다. 내가 여기 있는 이유는 성공한 사람이 되기 위해서다. 공부도 빡세 게 하고 여러 가지 경험도 쌓아서 좋은 상급학교에 진학해서 훌륭한 직 장에서 가족과 함께 훌륭하게 멋진 인생을 살기 위해서인 것 같다! 글재 주도 없고 분량도 많이 못 채우고 했지만, 이거 하나만은 알아줬으면 좋 겠다. 내가 열심히 노력했다는 것만 알아 준다면 상을 타든 못 타든 상 관이 없을 것 같다.


농촌유학생활의 훈훈한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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농촌유학 활동수기수상작 06  

장려상 제목 : 내가 여기 왜 있을까 수상자 : 이진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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