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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ECTION4

Share 나눔이 있는 신반포교회 교회의 소식과 안내 정보를 공유합니다.

나눔 112 생각하는 갈대

황재군 집사

114 콜라보(Collaboration)

양경진 집사

116 원래 아담과 이브로!

양승국 집사

118 소통과 그리스도인의 삶(1)

최경희 집사

120 「수난과 부활」의 현장(1)

이상만 집사

125 황반변성

홍경숙 집사

126 복음 전파의 시각으로 본 불교에 대한 소고(2) 주성준 집사 129 救援의 九段階

김병열 집사

130 봄에 피는꽃

이항무 집사

131 주님께 기쁨되는 우리 교회 성도들

이상희 집사

132 축복합니다 그리고 기대합니다~

박정동 목사

134 반갑습니다! 신반포교회

서 광 전도사

136 안녕하세요~ 유년부 박원설 전도사입니다 박원설 전도사 138 5자토크

편집부

140 우리 교회의 최근행사

편집부

146 정답

편집부

147 후기

편집부

148 교회안내

편집부

S p r i n g

2 0 1 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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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각하는 갈대

황재군 집사 영혼의 샘터 칼럼니스트

눈으로는 글을 보지만, 그 글을 보는 즉시 독자의 뇌에

주체가 못됨은 물론 허공에 붕 뜨는 존재로 되어 비록 물

작가 체험의 의미를 떠올려 이해하는 행위로 사색의 큰

질적으로는 윤택하다 해도 정신적 불안은 해소되지 않

부분을 차지한다.

아, 현기증을 일으키고 있다.

그런데, 오늘날 우리의 환경적 여건은 독서등 이 사색

이제, 우리는 이러한 기계나 전자문화 속에서 오는

의 길을 최대한으로 가로 막고 있다. 이른바, 기계 전자

현기증에서 벗어나야 한다. 정신문화의 안정된 요람을

문화와 문명은 인간을 마치 기계의 한 부속품처럼 혹사

찾아야 하는 것이다. 그 방법은 우리에게서 멀어가고

하거나 전자문화의 마력(魔力)에 매료시켜 사색을 크게

만 있는 사색의 본향을 독서등으로 되찾아야 한다. 인

제한하게 한다.

간을 자연으로서의 갈대가 아니라, ‘생각하는 갈대’이

특히, 우리는 전자문화의 마력에 중독되어 본능적으로 책을 중심으로 한 활자문화에 거부반응을 일으키고 있

게 하는 사색을 오늘날처럼 절실히 필요로 하는 때도 없을 것이다.

다. 매체가 활자문화의 ‘지면’에서 전자문화의 ‘화면’으로

프랑스의 사색가 파스칼(1623~1662)은 인간은 ‘생각

전동열차를 타고 보면, 한 칸 50여 석에 남녀, 노유 가

화 뉴스 등의 콘텐츠를 선택한다. 문체관광부에 따르면

릴 것 없이 빼곡히 앉은 승객들이 한결같이 손 안의 휴대

2013년 한 해 우리 국민들의 하루 평균 매체 이용시간은

폰에 집착하여 그 화면에 손가락 끝을 찍거나 제치는 거

인터넷 2.3시간, 스마트폰 1.6시간인 데에 비해 독서시간

동만 취할 뿐, 적막하고 까칠한 침묵이 흐름을 자주 볼

은 평일 26분, 주말 30분에 불과했다고 한다.

수 있다. 어찌나 화면에 몰입하여 거동하는 지, 저들 승

하는 갈대’라 한다. 이 말은 인간이 자연적 존재로서는

흔히, 인간의 사색이라는 여과장치는 동물의 위나 광

갈대와 별 차이가 없지만, ‘사색한다(생각한다)’는 의미에

물을 녹이는 용광로에 비유된다. 위는 자연 그대로의 음

그 결과 우리는 전자문화의 타성인 사색 없는 직관(直

객들이 다음 행선지는 알아서 잘 찾아 갈 수 있을까가 염

서 그 어떤 자연적 존재와도 구별된다는 뜻이다.

식물을 모아 분해하고 여과해서 필요한 영양분을 몸에

觀)과 감성(感性) 및 극히 단편적인 사고방식에 젖게 되

려스럽기도 하다. 흔한 말로, 나는 지하전동차를 공으로

갈대는 바람 따라 휘며 흔들거린다. 이는 내적 사색작

고루 공급하고, 용광로는 조악(粗惡)한 여러 광석을 모

어 활자문화의 합리성과 추리력을 잃어가고 있다.

타고 지그시 눈 감고 생각하는 사람인 지공선사(地空禪

용이 전혀 없이 외적인 자연에 대해 조건반사적으로만

아 녹이고 분석해서 마침내는 인간에게 요긴한 쇠붙이로

사는 삶이다. 인간을 제외한 다른 동식물들도 갈대처럼

만들어내기 때문이다.

조건반사적으로 즉, 자연의 한 부분으로 살아간다 할 수 있다.

건반사적으로만은 살지 않고, 오히려 자연을 객관화하기

자연의 영향을 받지만, 갈대처럼 조건반사적으로 움직이

도 하고 또 경우에 따라서는 자연을 조종하며 이용할 수

지만은 아니한다. 자기 나름대로 영향 받은 자연을 재생

있는 유별난 존재이다.

산해서 주체적으로 조종하고, 이용하며, 변화시킬 수 있

뇌어 보기가 일쑤이다.

는 것이다. 그래서, 이 사색의 깊이와 크기가 인간적인 삶의 수준을 가늠해 볼 수 있는 측도라 할 수 있다.

색의 영역을 두고 있다는 말과도 통한다. 즉, 인간은 자

인간이 무엇을 헤아려 ‘생각한다’는 이 사색은 단편적

연 안에 있기 때문에 자연의 영향을 받도록 되어 있지만,

인 생각은 물론 사물의 의미나 인생의 의의를 숙고하는

자연을 그대로 받아 조건반사적으로 움직이는 것이 아니

것으로, 광범위한 독서등이 이 범주에 속한다. 주지하는

라, 사색이란 여과장치를 거쳐 여기에서 용해되고 분석된

바, 독서란 독자가 작가 체험의 속뜻을 알아내야 하므로

신반포교회

지나친 범람은 갈피를 못 잡게 하고 있어 인간이 사색의

師)가 되어, 인간이 ‘생각하는 갈대’란 말을 거듭 거듭 되

을 분석, 종합하여 정신적인 영양소로 삼으며 또 아예 정 신적인 것은 구체화하는 역할을 한다. 즉, 인간은 비록

조종하며 이용할 수 있다는 것은 자연과 인간 사이에 사

뿐만 아니라, 오늘날 전자기기를 필두로 한 매스컴의

이처럼, 인간의 사색도 자연의 모든 사실이나 사물들

그러나, 인간은 자연 안에 있으면서도 자연에 대해 조

인간이 자연 안에 있으면서 자연을 객관화하고 자연을

112

결과에 따라 움직인다는 뜻이다.

변하는 과정에서 전자화면 사용자들은 책보다는 게임 영

60주년 기념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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콜라보

서 각자의 존재가 효과를 절하(切下)하지 않는 긍정적인

키듯 부부간의 콜라보를 통해 본인의 행복 뿐 아니라 보

콜라보를 하는 위치에 있어야 한다는 것이다.

기에도 은혜스런 가정을 이룰 수 있을 것이다.

(Collaboration) 양경진 집사 영혼의 샘터 칼럼니스트

이 땅에 있는 모든 것들은 혼자 스스로 존재 하거나 스

보강하며 연주를 하여 아름다운 새로운 작품을 탄생 시

효과 면에서 콜라보와 유사성이 높다고 하겠다.

자녀들도 그러하다. 내가 낳은 아이들이지만 그들 또

우리의 인생자체가 끝이 없이 그 어떤 것에 영향을 주

한 독립적인 인격체임을 인정하고 부족한 자녀는 사랑으

고 또 받으며 살아간다고 말해도 과언은 아니다. 하지만

로 품어주고 잘 큰 자녀는 감사하는 마음으로 콜라보를

그것들은 요단강 건너기 전까지 이 땅에서의 삶이라고

한다면 세상에서도 귀하게 고평가를 받는 삶을 살 수 있

한다면, 믿음의 사람에게 가장 중요한 것은 역시 영원한

다고 본다.

생명의 구원이라 하겠다.

스로 창조되는 것은 단 하나도 없다. 아니 우주 전체를 봐

마케팅 분야에서도 콜라보를 적용하여 보다 적극적인

이렇게 가정에서도 구성원간의 콜라보로 행복한 웃음

도 그러하며 천지창조이후 두가지이상의 에너지가 융합했

전략을 펼치고 있다. 예를 들자면 아디다스가 아디다스 보

이 넘치게 만들 수 있으니 콜라보는 선택이 아니라 필수

을 경우에만 성분과 형태가 다른 변성(變性)이 일어난다.

아를 출시한 것과, BMW가 앤디 워홀 등 여럿의 예술가와

가 아닐까 !

빅뱅으로 설명하는 우주론에서도 작은 전자 간에 상호

이러한 협업은 기술을 중시하는 기업에 예술적 감성을

고 압력의 압축과 폭발로 인한 상상을 초월하는 간섭현

접목시킴으로서 딱딱한 기업이미지를 부드럽고 친근감

상이라고 설명할 수 있다.

있게 만들어 줄 뿐 아니라, 직원들의 자부심과 생산성 향

그냥 그대로 존재한다면 모든 만물은 변화가 없을 것 이고 우리가 사는 지구 또한 무미건조한 가스덩어리의 불과했을 것이다. 하나님의 창조이후에 자연현상인 물질의 자율적 재편 (제2의 창조)이 지금도 끊임없이 일어나고 있으며, 그런 지 구에 살아가는 인간도 이런 간섭현상의 법칙에서 예외일 수 없다.

원래 코라보레이션(Collaboration)은 다른 두 가지 분

우리는 누구나 별다른 계약서 없이도 하나님과 콜라보 예수의 제자로 살아가는 우리는 또 다른 믿음의 눈으

하나님과 나누는 인격적인 교제를 통해서 콜라보의 효

로 콜라보를 보았으면 한다.

과는 극대화 될 것이고 천국에서의 영생만 아니라 이 땅

하는 성도들과는 신디케이트나 카르텔의 형태로 당연히

에서 부터 영생을 체험하는 기쁨을 누릴 수 있을 것이다.

얼마 전에는 현대자동차와 커피빈이 커피를 마시며 자

잘 협력하고 있겠지만, 태어난 곳도 성장과정도 다르고

하나님께는 영광이요 우리에게는 축복과 은혜가 넘치

동차를 볼 수 있는 Shop을 선보이기도 했고, 아르마니 폰

지금의 현실 또한 차이가나는 성도들… 그런 분들에게

는 코라보를 통해 격조 높은 삶을 사는 것이 가장 중요

과 LG전자의 프라다폰 등 산업분야와 예술성 있는 High

나는 어떤 Brand로 평가되고 있는지, 혹시라도 주변의

하다는 생각이 든다.

Brand와의 공동 협업(協業)이 빈번하게 일어나고 있다.

성도들에게 쉽사리 다가설 수 없는 불가침의 섬처럼 여

예수 십자가에 피 흘리심에 조용히 눈물짓는 콜라보.

소설가와 화가의 만남, 서예가와 패션 디자이너, 물리

겨지는 것은 아닌지… 상처를 주고 마음에 부담 만주는

하나님의 말씀인 성경을 보며 가슴이 뜨거워지는 콜라보.

학자와 EVENT업체의 협력 등, 우리가 사는 주변에 수많

Low Brand로 힘들게 업혀가는 것이 아닌지 점검해볼 필

성령님께서 인도하시는 삶에 감사하는 콜라보.

은 콜라보가 일어나고 있고, 이를 외면하면 시류에 뒤처

요가 있다.

이런 삶을 참된 성화(聖化)의 삶이라 할 수 있으며 우리

상에도 지대한 역할을 하고 있다고 한다.

지는 사람처럼 느껴질 때도 있다.

만일 공동체내에서 나의 언행이 은혜롭지 못하게 여겨 진다면 자신의 Position에 대해 보다 심각하게 고민해볼

우리 가정에서도 콜라보의 영향력은 생명이 다할 때 까 지 진행되다. 서로 다른 남남이 만나 사랑을 하고 결혼을

조금 더 말하자면 교회공동체와 나와의 콜라보, 교역

(Syndicate), 카르텔(Kartell), 트러스트(Trust) 등이 있는

하여 평생을 함께하는데, 모든 면에서 다른 두 사람이 결

자와 나와의 콜라보, 성도들과 나와의 콜라보를 점검해

데 이것은 유사 또는 동일 업종간의 협력을 통하여 이루어

혼 전의 패턴을 유지하고자 한다면 그 가정을 유지하는

진다는 점에서 콜라보와는 큰 차이가 있다고 할 수 있다.

것 자체가 힘이 들 것이다. 아니 평생을 산다고 해도 그

어떤 면에선 유사점이 더 많다고 여겨진다. 째즈와 클래 식이 만나거나 POP과 전통음악이 협연하는 것이 형태와

크리스천에게는 가장 중요한 신앙의 Point가 될 것이다. 우리에 근원이 되시는 하나님과의 콜라보는 우리에 가 치를 한층더 Up Grade시켜 하늘백성으로 합당한 High

필요가 있다.

경제분야에서도 이와 유사한 형태로 신디케이트

오히려 80년대에 유행한 Crossover라는 음악장르가

를 할 수 있고 그런 자격을 가지고 있다.

나이와 생각도 비슷하고 형편도 유사해서 척 하면 통

야가 결합하여 공동의 작업을 통해 상호 Brand의 가치 를 높이는 것을 의미 한다

서 구현할 수 있다고 본다. “삼위일체 하나님과의 콜라보레이션!!!”

협력하여 Art CAR 프로잭트를 진행한 것을 들 수 있다.

작용으로 인해 새로운 물질이 탄생하는 것인데, 이것은

이것은 바로 하나님과의 영원한 콜라보레이션을 통해

Brand로 승격시켜 줄 것이라 확신한다.

리 행복하지는 않을 것이다. 왜냐하면 소음에 가까운 불 협화음이 지속적으로 날것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음색과 모양이 다른 두 악기가 서로의 단점을

아다핏 360 보아 (아디다스 골프화) 점

114

신반포교회

현대차 에스프레소 1호

60주년 기념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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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래 아담과 이브로!

양승국 집사 영혼의 샘터 칼럼니스트

여호와 하나님이 그 사람에게 명하여 가라사대 동산 각종 나무의 실과는 네가 임의로 먹되, 선악을 알게 하는 나무의 실과는 먹지 말라. 네가 먹는 날에는 정녕 죽으리라 하시니라(창 2:16~17)

성경을 읽기 시작하면 하나님의 천지 창조 이야기 다

창조하면서 자유의지도 주셨다. 이제 자유의지를 가진

주의가 발달한 나라에서는 공식적인 계급은 없어졌다

명 창조까지 넘보고 있다. 이 모든 것이 아담과 이브가

음으로 에덴동산 이야기가 나온다. 하나님은 아담과 이

아담과 이브는 그 자유의지로 악도 선택할 수 있게 되

지만, 아직도 인간이 인간을 인격 그 자체로 보지 않고

선악과를 먹고 눈이 밝아진 결과이다. 인류가 다시 에

브를 에덴동산에 살게 하시면서도 선악과는 먹지 못하

었다.

단지 자기 욕망 충족의 수단으로 부리는 인간의 탐욕이

덴동산으로 돌아갈 수는 없을까? 이미 선악을 알게 된

도처에서 난무하고 있다. 또한 자본주의가 발달하면서

인류가 다시 에덴동산으로 돌아갈 수는 없을 거다. 그

게 하신다. 그러나 인류의 조상 아담과 이브는 결국 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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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 꼬임에 넘어가 선악과를 먹고 에덴동산에서 추방당

선악과를 먹은 아담과 이브는 에덴동산에서 추방된

인류는 분명 예전보다 풍요로운 사회로 진입하였지만,

러므로 인간은 에덴동산으로 돌아갈 수는 없더라도

한다. 선악과를 먹는 것이 그렇게 나쁜 일인가? 더구나

다. 그리고 종신토록 수고하여야 먹고 살 수 있게 되었

인간의 탐욕은 부의 공정한 분배를 저해하며 한쪽에선

처음 아담과 이브를 닮기 위하여, 악 대신 선을 선택

선악과를 먹으면 눈이 밝아져 선악을 알게 된다는데(창

다(창 3:17). 처음 에덴동산에서 추방된 아담과 이브와

먹을 것이 없어 굶어죽고 있는데, 한쪽에선 넘쳐나는 부

하며 자기 안의 탐욕을 제어하기 위해 끊임없는 자기

3:5)? 이런 의문은 성경을 읽어본 사람이라면 누구나 한

그 후의 인류는 서로 힘을 합쳐야만 살아갈 수 있었을

를 주체할 수 없을 정도이다. 그리고 이러한 사회의 양

성찰을 계속해야 할 것이다. 그러나 인간의 힘만으로

번쯤 가져보았을 것이다. 이에 대해서는 성경 주석서에

것이다. 아마 그때는 능력만큼 열심히 일하고 필요한

극화 현상은 지구가 평평해질수록(세계화) 점점 더 심해

는 할 수 없다. 우리 그리스도인들부터 그러지를 못하

여러 가지로 설명이 나와 있는데, 나는 선악과를 인간

만큼 가져다 쓰는 원시 공산사회가 이루어졌을 수도 있

지고 있다.

기에 교회 내에서도 탐욕이 부르는 분쟁이 끊이지 않

의 탐욕이라는 관점에서 생각해보았다. 선악과를 먹기

을 거다. 그러다가 기술이 발달하고 생산력이 증가되면

전 아담과 이브의 삶은 선악, 미추(美醜) 등으로 구분지

서 잉여 생산물이 생기게 된다. 여기서 악을 알게 된 인

자본주의는 그 속성상 욕망을 먹고 자라는 경제이다.

‘오직 믿음(sola fide)만으로’가 생각이 난다. 모든 욕

울 수 없는 노자의 무위자연과 같은 삶이었다. 즉 그들

간의 탐욕이 발동한다. ‘저 생산물을 빼앗으면 나는 뼈

그리고 자본주의는 멈추면 쓰러지는 자전거가 되지 않

심을 버리고 오직 믿음만으로 그것도 어린아이와 같은

이 무슨 행동을 하여도 하나님의 창조의 질서와 조화

빠지게 일하지 않고도 살 수 있지 않겠나? 아니 저 사람

기 위해 끊임없이 욕망을 확대 재생산한다. 그러다보니

믿음으로 에덴동산의 원래 아담과 이브로 돌아가야

되는, 흐르는 물처럼 지극히 자연스러운 것이었다. 그

들을 잡아다 내 밑에서 부리면 앞으로도 계속하여 편안

계속적인 기술 발달로 지구의 자원을 게걸스럽게 먹어

할 때가 아닐까?

런데 그런 아담과 이브가 선악과를 먹고 눈이 밝아져

히 살 수 있지 않겠나?’ 그러면서 인류는 남의 것을 빼

치우면서 또 하나의 바벨탑을 하늘 높이 쌓아올리고 있

선과 악을 알게 되었다. 한편 하나님은 아담과 이브를

앗고 남을 지배하는 계급사회로 들어선다. 오늘날 민주

다. 심지어는 에덴동산의 생명나무도 건드리려는 듯 생

신반포교회

고 있는 것이 아닌가? 문득 마르틴 루터가 부르짖었던

60주년 기념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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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통과 그리스도인의 삶(1)

반대로 내가 그 친구에게 전화 했다면 나는 안부부터

모든 것들의 상황과 맥락에서 생각하는 기준과 상대성,

몇 마디 물었을 것이고 그 친구는 바쁜데 용건부터 말하

상대가 틀리고 내가 옳은 것이 아닌 다르다는 관점, 상대

지 않고 엉뚱한 이야기 한다고 마음이 조급해서 답답해

방의 기준을 인정하고, 상대방의 입장에서 생각하는 우리

했을 것이다.

의 시각과 생각, 마음의 눈을 나는 얼마나 가지고 있을까. 주님이 긍휼히 여기라 하심은 어쩌면 항상 상대의 입장

최경희 집사 영혼의 샘터 칼럼니스트

인간관계에 있어서 그 사람을 이해하려면 먼저 그 사람

에서 생각해봄의 가르침이라 할 수 있으리라. 메이저리그

이 사람 중심 형 인지 아니면 일 중심 형의 사람인지 파

LA다저스의 ‘주님의 선발투수’로 불리는 클레이튼커쇼의

악하는 것이 갈등해결의 하나라 할 수 있으며 그 기준에

말에서 기독교인이 어떻게 사는가 보여주고 싶다는 그의

맞추어서 상대방을 대해주게 되면 직장에서나 자녀에게

삶을 보면서 나의 삶의 모습은 다른 사람들에게 어떻게

나 많은 도움이 될 수 있다.

보여지고 있을까를 생각하게 한다. 사람들은 누군가 나이에 맞지 않는 행동을 할 때 나이

가장 내 곁에 가까이 있는 가족에서부터 친구 직장 여

사람을 먼저 생각하고 중시하는 사람들의 주변에는 많

전화를 받자마자 대뜸 “내가 전화한 것은 다름이 아니

러 가지 모임의 집단, 비즈니스 등, 사람과 사람 사이에

은 친구들이 있고 모임 가기를 좋아하고 이모임 저 모임,

고 …”로 시작되어 대답을 듣고 난 후 “그래 알았다 고마

서 살아갈 수 밖에 없는 현실속에서 웃음을 잃지 않고 살

모임 만들기를 좋아하는 사람들이 있다.

워” 그리고 전화를 이내 끊어 버렸다.

아가려니 남들이 나와 같지 않음에 마음에선 알지 못할

얼마 전 오랜만에 옛직장 친구로부터 전화가 왔다.

나의 목적은 이제 다 달성 하기라도 했다는 듯이 ..순

응어리가 늘어가기도 한다.

고대 이스라엘에서는 모든삶은 예배에 뿌리를 두고 있 었고 예배의 수준은 남을 대하는 수준으로 가늠되었다고 한다.

은 아이들이 있는가 하면 친구에겐 관심이 없고 공부에 만 열중하는 아이들이 있다.

간 머릿속을 횡 하니 스치고 가는 생각에 나도 모르게 쓴 웃음이 나왔다.

자녀도 보면 친구들간 관계를 먼저중시하고 친구가 많

값을 하라는 말들을 하는 것을 볼 수 있다.

왜 같은 상황에서 다른 생각들로 인해 상처받고 이해

다른 사람들에게 비춰지는 나의 믿음의 나이 값은 얼 마나 되어가고 있을까.

그리도 바쁠까. 아무리 바빠도 몇 달 만에 온 전화인데

할 수 없음에 갈등이 생기고 힘들어 하는 일들이 생길까.

그러나 일을 먼저 생각하고 중요시 여기는 사람들의 주

그러한 우리 지체 하나 하나가 모여 믿음의 공동체로

잘 지내지? 라는 한마디 안부라도 물은 뒤 전화한 용건

내 생각은 옳고 상대방은 틀리다라는 생각이 나를 지배

변에는 사람보다도 항상 ‘똑부러지게 일잘해’ 라는 말들을

회갑을 맞은 우리교회의 교인으로서 나는 얼마나 나의

말하는데 얼마나 걸린다고 ...하는 내 안의 소리가 들린

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내가 옳고 상대방은 틀리다가 아

듣지만 왠지 차갑게 느껴지고 인정이 없어 보이고 다른 사

믿음에 걸 맞는 그리스도인의 향기를 드러내고 있을까.

때문이다.

닌 상대방은 나와 다르다는 것이다.

람의 도움을 주고 받기보다는 도움을 안받고 안주고 혼자

복음이란 단어 앞에, 그리스도인이라는 단어 앞에 믿음

서 모든 일들을 해결한다는 느낌을 줄 때도 있다. 그로 인

의 선진들이 피로 남겨준 믿음의 씨앗을 가꾸고 뿌리며

해 주변에는 많은 사람들이 잘 모이지 않기도 한다.

돌아보는 나의 자화상은 어디쯤 와있을까?

각자의 생각의 기준이 다르며, 그러한 ‘다름’이라는 것 누구든지 이런 경험을 한 두 번쯤 했을 것이다. 또는

을 인정하는 것에서부터 우리는 갈등을 풀어 나갈 수 있

그와는 반대로 내가 바쁜데 전화해온 친구가 빨리 용건

다. 내 기준이 아닌 상대방의 기준을 알게 되고 인정하게

만 말하고 끊었으면 좋겠는데 근황부터 물으며 전화한

되면 상대방의 상황과 맥락에서 이해하게 되고 상대의

이유가 뭐야 라고 묻기까지 잊고 있다가 그때서야 “어.

마음을 알 수 있게 된다.

다름이 아니고 …”로 부터 시작되는 친구의 말에 답답해 한일을 겪었던 독자도 있을 것이다.

오랜만에 전화해 일만 물어보았던 나의 친구. 그 친구 의 생각의 기준은 일이 먼저 중요했고 나의 안부는 당연

상사로부터 “적당히 알아서 해” 라는 말을 듣고 내 생

별일 없으리라 생각한 때문이다. 하지만 안부도 묻지 않

각으로 적당히 알아서 했는데 결과물을 본 상사는 왜이

은 그 친구가 서운했던 나의 마음은 나의 생각의 기준은

리 대충했느냐는 식으로 달가워 하지 않음에, 직장에서

아무리 바빠도 인사 한마디는 당연하지 않을까 하는, 일

상처 받았던 일들… 그런 일들로 인해 나와 안 맞는 사람

보다는 사람간의 관계를 더 중시 하는 중요도의 기준이

들과는 부딪히지 않고 살았으면 하는 마음들.. 살다 보면

달랐다는 것이다.

누구나 한번쯤 일어나는 일이다. 118

신반포교회

60주년 기념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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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난과 부활」의 현장 (1)

이상만 집사 영혼의 샘터 칼럼니스트

✽수난 당시의 이스라엘 권력자들 (눅 3:1 참조)

도자’요 ‘지도자’였으나 예수님 시대의 그들은 왕에 버금가는 ‘권

(1) 로마 황제 ― 티베리우스(디베료)

력자’였다.

(2)이스라엘 정치 권력자들

- 안나스(AD6~AD15)는 해임 후에도 끗발이 셌다. 이 가문은 사

- 총독 빌라도(AD26~36): 중

위 가야바와 아들들과 손자까지 수십 년간 대제사장을 배출했다.

부의 사마리아와 남부의 유

* 복음서에서 ‘대제사장들’이라 함은 전후임 대제사장들은 물론

대 및 이두매 지방을 통치.

그 가문의 권력자들 모두를 일컫는 말로 느껴진다.

* 이 지방은 아켈라오(마

** 빌라도나 안티파스(King이 아닌 Tetrarch)나 안나스나 가야

「일러두기」 : 4복음서에 기록된 ‘최후의 24시간’에 대해

2:22)가 해임된(AD6) 이후

바나 모두 로마 황제의 눈칫밥을 먹는 입장이었다. 그들의 권력

- 내가 어렸을 때 아버님(1908년생)으로부터 이런 분부를 받은

정리해본 것이다. 나는 신학지식이 없는 평신도여서 어

로는 로마 총독이 직접 통치

은 황제의 손에 달려 있었다.

적이 있다.

쭙잖은 신학적 강론적 코멘트는 삼갔으나, 나의 사적 소

해왔다.

감은 더러 피력했다. 성지순례경험조차 없이 탁상에서만

- 분봉왕 헤롯 안티파스

이사야 53장과 로마서 8장을 연이어 내리읽어보면, 이

정리한 것인데다 또 임의로 해석하고 용어도 자유롭게

(BC4~AD39): 북부 갈릴리와 요단 강 동편의 베뢰아 지방을 통

두 개의 장은 한 노래의 1절과 2절 같은 느낌이 든다. 또,

구사한 것이므로 신학적 또는 학문적 오류가 있을 수 있

치. * 세례 요한을 참수하고, 예수님까지 죽이려고 벼르던 그 인

피아노의 검은 건반과 흰 건반 같고, 한 벌 양복의 저고

다. 따라서 미심쩍은 부분은 목사님께 검증 받으시기 바

물(눅13:31~32).

부활할 것」을 미리 말씀하지만, 제자들은 부활하신 예수님

리와 바지 같고, 강의 이쪽 둔치와 저쪽 둔치 같다.

란다.

- 분봉왕 헤롯 빌립II (BC4~AD34) : 갈릴리 동쪽 지방을 통치.

과 재회할 때까지는 그 뜻을 제대로 헤아리지 못한다.

그렇다. 이 두 장章의 주제는 하나다. 「동일사건」에 대

* 수난과 부활은 우리가 다 아는 내용이지만, 4복음서들을 따로

(3)대제사장 ― 가야바(AD18~36)

(1)가이사랴 빌립보 지방에서 (마16:21, 막8:31, 눅9:22)

한 기록이다. BC700년경 유대 땅에서 기록된 이사야서

따로 읽기만 해서는 총체를 파악하기 힘든 면이 있다. 정리하기

- 대제사장은 율법대로라면 종신제였으나 당시에는 로마가 수시

(2)갈릴리에 모였을 때 (마17:22~23, 막9:31, 눅9:43~45)

와 AD57년 고린도에서 기록된 로마서지만, 약 800년의

도 힘들었다. 특히 빌라도의 ‘사형선고’ 과정이 그랬다. 예수님의

로 임명했다. 로마의 눈 밖에 나지 않게 처신해야 하는 자리였다.

(3)예루살렘에 가시는 도중에 (마20:18~19, 막10:33~34,

시차에도 불구하고 이사야와 바울이 동일사건을 기록할

행적을 낱낱이 기록한다면 온 세상이 서고라도 부족하겠기에(요

- 중남부를 통치하는 빌라도 총독은 가이사랴에 상주하면서, 예

눅18:32~34) ― 아마 요단 강 동편의 베뢰아 지방이었을

수 있었던 것은, 그 사건이 그들에게는 ‘지금’이었고, ‘여

21:25) 복음서 저자들이 저마다 대폭 추려서 간략하게 기록했기

루살렘에는 500명 정도의 군사를 주둔시켜 소요사태만 감시하

것이다.

기’였기 때문이다.

때문이다.

고, 내치는 성전권력자들에게 맡겼다. 성전경비대는 경찰권이 있

※ 제자들에게 예고하신 것은 아니지만 「별세」하실 일에 대해 예

* ‘지금’, ‘여기’에 대해서는 ‘4.부활’ 참조.

성경의 초점이요 신앙의 핵인 「수난과 부활」의 그 현장에 대해

어서 치안대와 비슷했다. 종교, 치안은 물론 예루살렘의 부를 바

수님은 엘리야와 모세와 함께 변화산에서 대화를 나누신 적도

나 같은 사람이 글을 써낸다는 것 자체가 주제넘은 일이라 나는

탕으로 경제까지 주물렀다.

있다(눅9:31).

거듭 두려웠다. 정리를 끝낸 지금도 마찬가지다.

* 포로귀환 이후 대제사장은 본래 신앙공동체인 이스라엘의 ‘인

* 변화산이 헤르몬산 또는 다볼산이라고들 한다.

“너는 이사야서 53장과 로마서 8장은 꼭 암송하며 살아라.”

이제 우리는 그 사건의 「최후의 현장」을 되살펴 본다. 120

신반포교회

1. 수난을 예고하시다 예수님은 제자들에게 「고난 받고, 죽임 당하고, 제3일에

60주년 기념호

121


권층을 일컫거나, 때로는 유대 정통신앙을 지키려는 ‘보수’ 및 ‘우 월계층’의 이스라엘 사람들에 한정하는 경우가 많아 보인다.

검거령 내린 지도 오래다. 출교黜敎령을 내려 백성들을 단속해둔 지도 오래다(요9:22, 16:2). 성전권력자들의 눈 앞이 캄캄한지도 오래다.

2. 예루살렘에 입성하시다 - 유월절을 앞둔 봄날. 예수님은 베디니(현 Eizariya)에 당도하셨

킨다는 소문이 처음 들려왔을 때는 대수롭잖게 여겼으나

다. 예수님에 대한 검거령은 오래 전부터 내려져 있었다(요11:57).

날이 갈수록 추종자가 불어나자 그들의 눈길이 굳어지

- “드디어 이 명절에 예수님이 오셨다”는 소식이 퍼지자 예수님과

지 시작했다. 그 청년이 나인에서 어떤 과부의 아들을 살

나사로를 보려고 벳바게(현 Abu Dis)와 베다니 부근의 산동네로

렸다는 소문에는(눅7:11이하) ‘그럴 리가’ 했으나, 자기들

군중이 운집한다(요12:9).

이 알만한 회당장의 딸을 살렸다는 소식(눅8:41이하)과,

- 나귀를 타고 입성하시는 예수님을 호위하며 군중은 “호산나, 찬

연이어 기적을 일으키며 회개를 촉구하고 천국을 전파할

송하리로다, 주의 이름으로 오시는 이여! 이스라엘의 왕이여!”를 외

뿐 아니라, 바리새인들은 물론 자기들까지 공격한다는

전권력자들은 마지막 카드를 꺼낸다. 최고의 책사와 석

찌르고 상하게 할 자들과 징계 받고 채찍 맞을 자(사

쳐댄다. ‘출교’ 따윈 아랑곳없다.

정보보고까지 받자 그들의 정신적 동요는 걷잡을 수가

학들을 내세워 정연한 논리로 열혈 대중 앞에서 수배자

53:5)가 몽땅 한곳에 모여있다. 예수님에 대한 대중의 열

- 군중 속에는 성전권력자들의 수하들도 끼어있다. 이 광경을 지

없게 되었다. 다급해진 그들이 검거령, 출교령까지 내렸

를 무너뜨리는 것. 하지만 오히려 되가르치는 수배자의

기는 드높았고, 그 아래로 성전 권력자들의 살기는 내리

켜보던 바리새인들이 장탄식을 한다: “저것 좀 보게. 이제 다 글렀

으나 추종자는 자꾸 늘더니, 아니나 다를까 근래에 와서

권능 앞에 그들마저 주눅만 들뿐 감히 묻는 자가 없다(막

짙었다. 때가 임박함에 따라(눅9:51) 그 살기에 다가서는

어. 온 세상이 저 사람을 추종하고 있으니(요12:19).”

는 백성들이 대놓고 수배자를 따르고 있다. 바야흐로 그

12:34, 눅20:40). 이 광경을 지켜보는 군중은 통쾌해한다

예수님은, 육신은 고뇌에 깊었으되(요12:27) 영혼은 그

- 예루살렘 성 가까이에 이르시자 예루살렘을 보고 눈물 지으

들의 위기감은 한계에 육박하고 있었다.

(막12:37). 이제는 성전권력자들쯤은 대중의 안중에 없다.

어린 양처럼 잠잠했다(요12:27~28, 사53:7).

신다: “오늘 네가 이 평화의 길을 알았더라면 좋았을 것을…(눅

19:42)” - 성전권력자들이 눈을 부라리고 있는 예루살렘에 예수님은 「평 화」의 발을 들이미신다.

※ 예루살렘 상황: 작년 가을 초막절(장막절) 내내 예수님이 성전에서 가 르치고 있었을 때는 이미 검거령이 내려져 있었고(요7:1,

122

성전권력자들은, 3년 전 나사렛 촌뜨기가 기적을 일으

이런 판국에 이젠 코앞에서(예루살렘-베다니: 약 3km)

성전권력자들로서는 환장할 사태였으나 잡자니 군중

죽은 지 4일이나 되어 썩는 냄새나는 시체까지 살리다니!

이 두렵고(마26:5, 막14:2, 눅22:1) 미적거리자니 자칫 지

그 탓에 이제는 예루살렘에서조차 수배자를 믿는 사람

난 명절 때처럼 수배자가 예루살렘을 빠져나가면 더더

이 급증하는 사태로까지 치닫고 있다(요11:45, 12:11). 성

욱 안될 일이었다. 복장만 치고 있을 수는 없었다. 대중

3. 최후의 24시간

전권력자들에게 초비상이 걸렸다. 가야바는 즉각 비상공

의 눈을 피해서(눅22:6) 수단방법 가리지 않고 한치의 오

- 예루살렘 성은 해발 800m로서 대관령 높이 정도 된다. 기드론

회를 소집했다. 가야바는 “한 사람을 죽여서 민족을 (로

차도 없이 신속히 해치울 일이 그들로서는 절박했다. 「흉

골짜기를 사이에 두고 감람산(해발 840m 정도)과 마주보고 있

마로부터) 안전하게 지키는 것이 낫다”는 핑계를 공회에

계든 궤계든 sly way든 (마26:4, 막14:1)」 가릴 처지가 아

었다.

갈파하여 결국 사형선고까지 못 박아둔다(요11:47이하).

니었다. 그들은 ‘제거’할 음모를 꾸미느라 숙의를 거듭했

- 동쪽의 기드론 계곡과 남쪽의 힌놈 계곡이 가파르게 예루살렘

입성한지 나흘이 지났다. 목요일이다.

7:25) 성전권력자들이 검거조檢擧組를 보내기도 했었다

이제 수배자가 울타리 안에 들어섰다. 나타날 줄 이미

다(마26:4, 막14:1, 눅22:1, 요11:53). 가룟 유다와도 내통

성을 높이고 있었고, 북쪽과 서쪽은 산지 아래로 서서히 내려가

(요7:32). 그 검거조조차 오히려 예수님의 가르침에 설복

예상하고 대비해놨다. 검거되기만 하면 처형되는 것은

했음은 물론이다(마26:14, 막14:10, 눅22:3). 그들의 힘은

는 내리막이어서 예루살렘은 난공불락의 요새 같은 곳. 고대 지

당하고 말았지만(요7:45~52).

예정된 수순인 상황에서, 그들의 치뜬 눈앞에 이 수배자

오직 ‘음모’뿐이었다.

도를 살피면 성전과 기드론 골짜기 사이의 깊이는 약 100m 정

지난 겨울 수전절(봉헌절)에는 ‘유대인’들이 돌로 치려

는 「메시야, 이스라엘의 왕」라는 군중의 환호를 받으며

소집만 하면 거수기가 되도록 공회에 사전공작을 해둔

고까지 하자(요10:31) 예수님은 요단 강을 건너 물러가셨

입성했다. 그러더니, 자기들의 본부(성전)를 깨끗이 한다

데다, 빌라도도 와있겠다, 수배자를 죽이려고 벼르던 여

- 아랫성의 오른쪽 편(경기장 있는 곳의 오른쪽), 성전과 실로암

었다. 거기서 기별을 받고 예수님은 베다니로 다시 가서

고 마음대로 헤집어놓는다<성전정화>. 또, ‘죽일’ 자들이

우 같은(눅13:32) 헤롯도 와있겠다, 예수 일당의 첩자(유

못 사이의 길쭉한 부분이 옛 다윗성의 위치다. 약 3000년 전 다

나사로를 살리신다(요11:1이하).

지켜보는 눈앞에서 잠시 잠깐도 아니고 종일 군중을 가

다) 하나까지 확보해서 날개까지 돋친 그들에겐 지금이

윗이 성전 건축자재를 쌓아놓고 건축 열망을 겨워하며 감사기도

* 복음서에서 「유대인」이라 함은 이스라엘 인을 통칭하는 것이 아

르치고 있다. 이 수배자는 자기들의 본거지 예루살렘에

야말로 다시 없을 기회였다. 다만, 수배자에 열광하는 대

를 드린 곳이 이 부근이었으리라(대상29:10이하). *예수님 당시

니라 남부 유대지방 사람들을 지칭하거나, 유대의 권력층 및 기득

서 종횡무진이다. 기가 찼으나 대중의 눈이 두려웠던 성

중들 또한 예루살렘에 득실거리는 것이 문제였다.

의 성전은 헤롯대왕이 지은 것.

신반포교회

도였던 듯하다.

60주년 기념호

1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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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 내용의 번호는 지도의 번호에 맞추어져 있다.

(2)겟세마네 동산에서 (목요일 늦저녁) + 예예수님 일행은 다락방을 나와 아랫성을 거쳐 기드론 골짜기 를 건너서 성전 맞은 편 감람산에 중턱에 있는 겟세마네 동산에

황반변성

당도한다. + 제자들에게 “내 마음이 너무 괴로워 죽을 지경이다. 너희는 나 와 함께 깨어 기도하라”고 당부하시지만 제자들은 그 ‘괴로움’에 동참할 능력이 없다. 무릎 꿇고 엎드려 기진하기까지 간절히 기 도하시는 예수님의 얼굴에는 피 섞인 땀방울이 맺혀 땅에 떨어진 홍경숙 집사 영혼의 샘터 칼럼니스트

다(눅22:4). + 이윽고 가룟 유다는 체포대의 앞잡이가 되어 예수님께 다가와 입맞추며 인사한다. 한치의 착오도 용납되지 않는 제포대에 예수 님의 신원을 정확히 확인시켜주는 신호였다(마26:48, 막14:44). 체포대는 칼과 몽둥이로 무장하고 횃불을 들었다. + 예수님: “누굴 찾느냐?”, 체포대: “나사렛 예수요”, 예수님: “바 로 나다” ― 그 순간 체포대는 멈칫 물러서서 엎드러진다(요

(1)다락방에서 (목요일 일몰 직후)

18:6). 섬광을 보면 눈이 저절로 감기듯 예수님의 권세에 맞닥뜨

+ 유다가 과연 와줄지 초조해하며 가야바가 일망타진 계획을 마

린 체포대는 순간적으로 압도된 것이다. 예수님은 깡말랐으되 눈

지막으로 손질하고 있을 시간에, 예수님은 그 유다를 앞에 두고

50대가 넘어서면서 눈에 띄게 시력이 떨어지고 앞이 뿌

노출, 스트레스, 비만, 고혈압, 가족력, 인종등도 큰 영향

빛과 목소리와 자태에는 권세가 넘쳤으리라.

옇게 보이는 증상이 시작됩니다. 그러나 단순히 노안으

을 미치는 것으로 보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금연, 녹황색

제자들과 마지막으로 식사를 하신다.

* 문맹률이 당대에 세계 최저였을 이스라엘 인들은 고대에 흔해

로 만 여기지 말고 사물이 찌그러져 보이거나 더욱 흐릿

채소(황반색소의 구성성분이 루테인 성분이 많이 함유되

+ 빵은 “내 몸이다”, 포도주는 “내 피 곧 언약의 피다”라고 하시

빠진 벽화나 조각 같은 것을 남기지 않았다. 우상숭배를 금한 탓

해 보이는 등 증상이 나타나면 황반변성을 의심해야 됩

어 있는 시금치, 브로콜리 등)의 섭취, 오메가 3가 함유

고 마음에 새겨두라(기념하라)고 말씀하신다.

으로 생각된다. 한편 근대의 유명 화가들은 예수님을 내 상상과

니다. 이 황반변성은 세계적으로 노인인구의 실명을 유

된 생선류 섭취, 정상혈압유지 선글라스로 자외선 차단,

+ 제자들의 발을 씻기고, 또 못다한 사랑을 쏟아내신다(마26:20

는 달리 너무 곱상하게 그려놨다.

발하는 가장 중요한 원인이 되고 있습니다.

적절한 운동과 체중조절 등으로 황반변성 발생의 위험을

이하, 막14:17이하, 눅22:14이하, 요13~17장). 만찬시간이 몇

+ 예수님은 체포대에게 “제자들은 놔두라”고 부탁하신다(요

시간만 더 길었다면, 예수님의 절절한 말씀을 특히 사도 요한은

18:8). 이때 불끈한 베드로가 한판 붙으려고 칼을 휘두르는 순간

눈 속에는 시력에 매우 중요한 역할을 하는 망막이라

증상으로는 한쪽 눈에 먼저 시력감소가 나타나는데 한

요13장~100장에까지도 기록했을 듯하다.

말고의 귀가 달아나지만 예수님께서 고쳐주신다. 이 칼은 최후의

는 신경조직이 있는데, 이는 카메라의 필름에 해당하는

쪽 눈을 가리고 볼 때 시야가 뭉쳐 보이거나 글씨가 직선

+ 만찬이 끝나기 전에 가룟 유다는 ‘볼일’ 보러 나간다. 나중에

만찬 때 다락방에 있었던 그 칼이었을 것이다(눅22:38).

신경조직으로 그 중심부를 황반이라 부릅니다. 이곳에는

으로 보이지 않는 증상 등이 나타나면 황반변성을 의심

겟세마네로 오겠지만.

+ 예수님은 순순히 체포되어 대제사장에게로 압송된다. 이제 가

빛 자극에 반응하는 중요한 세포가 밀집되어 있어서 이

해 볼 수 있습니다. 중심시력이 감소되어 글씨가 이어져

+ 부잣집의 큰 이층 방에 미리 준비한 마지막 식사는 그 흔한 양

야바로서는 식은 죽 먹기의 수순만 남은 셈이다.

황반의 기능에 따라 시력에 큰 영향을 미치게 됩니다(사

보이지 않고 직선이 굽어보이거나 사물이 찌그러져 보이

고기도 없이 빵과 포도주만 차린 초라한 식사다. 그러나, 이 식사

+ 제자들은 도망간다. 어디까지 도망갔을까? 아마 몸 가릴만한

물을 보는 기능의 90%를 황반이 담당). 황반변성은 노

는 증상이 나타납니다. 주로 벽면이 볼록하게 보이는 증

는 제자들과의 「마지막 식사」가 아니라 ‘희생’에 대한 「제1회 기념

곳까지 도망가서 사태를 주시하고 있었을 것이다.

화가 진행되면서 황반에 노폐물이 축적되거나 위축 또는

상을 느끼는 경우가 많습니다. 일단 시력장애가 시작되

식」이었고, 「최후의 만찬」이 아니라 「최초의 성찬식」이었다.

+ 어떤 청년은 홑이불을 걸치고 있다가 체포대에 붙들리자 홑이

신생혈관의 출현에 의한 부종과 출혈이 나타나고 심해지

면 이전의 시력을 회복할 수 없는 경우가 많으므로 조기

* 이 다락방은 전통적으로 마가의 다락방으로 추정한다. 마가의

불을 내팽개치고 줄행랑친다(막14:51).

면 결국 실명에 이르기도 하는 병입니다.

발견이 매우 중요합니다. 따라서 60세 이상이면서 중심

어머니 마리아는 바나바와는 남매였으므로 바나바는 마가의 외

* 이 청년이 마가라고도 하고 나사로라고도 하는 추측들이 있다.

삼촌. 마가의 집이 있던 예루살렘의 윗성은 아랫성의 인구가 늘

<나사로도 검거 대상이었다(요12:10)>

어나자 생긴 ‘신 시가지’인 셈이다. 전망 트인 윗성에는 부유층과 권력자들의 집이 많았다고 한다.

124

다음호에 계속...

줄일 수 있습니다.

이러한 황반변성의 원인에 대해서는 아직 정확히 밝혀

시력에 변화가 있다면 꼭 검사를 받아 보아야 합니다.

지지 않았지만 노화로 인해 발생하는 것도 중요한 원인

치료는 개개인의 상태에 따라 눈속주사, 광역학 요법,

입니다. 또한 흡연자가 비흡연자에 비해 발생빈도가 2~3

레이저 광응고술, 경동공 온열치료법, 외과적수술, 약물

배 높으며, 고열량 고지방 음식의 과도한 섭취, 자외선

치료등이 있습니다.

60주년 기념호 신반포교회

1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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복음 전파의 시각으로 본 불교에 대한 소고 (2)

주성준 집사 영혼의 샘터 칼럼니스트

어쨌거나 3차례에 걸친 결집이후 이후 논장에 대한 해

태양신이다. 바알이란 이름이 왕을 의미하기에, 악마(원래

석적인 문제가 서로 발생을 하며 불교가 여러 파로 나뉘

는 타락 천사:사탄)의 이름중 발, 바알, 벨이 들어가는 악

게 되면서 이를 우리는 부파 불교라고 부른다. 이 부파

마가 많다. 벨제브브의 벨도 바알이며 '벨'페골이란 악마도

불교까지의 경전을 우리가 소승경전이라 부르는데 이 소

있다. 다시 말해 태양신과 사탄과는 불가분의 관계인데 한

승 경전이라는 말 자체가 싯다르타의 실제 가르침을 적

국 정토학회에서 발간한 정토교 개론에서 조차 아미타불

은 경전 전체를 무시하는 이름이다. 그 후에 인도 북부에

의 기원을 이란의 고대 종교인 조로아스터교의 태양신 “미

서 부파불교의 한 파인 대승 불교가 태동이 되며 전체 중

트라”라는 태양신에서 유래된 것으로 보고 있다. 모든 걸

생을 구제한다는 것과 불상의 등장으로 종교화되는 과

떠나서 아미타 불은 무량광불(無量光佛)로 부르며 그 그

정은 지난 호에 자세히 적었다.

림이나 불상에 모두 빛을 상징하는 후광이 있으며 불교의

이번호에서는 대승불교에 있어 가장 중요한 변화인 정 토사상과 아미타불에 대하여 알아보기로 한다.

부제 : 불교를 믿는 분께 예수 복음을 전하기 위해 알아야 하는 지식들

아미타불의 등장

존재한다는 사실과 산스크리트어가 중국어로 번역되는 시

두 암송하는 법사를 의미한다. 처음 경전의 탄생은 싯다

불교의 창시자로 알려진 고타마 싯다르타는 예수님이

간이 약 100여년정도 걸린다는 점을 생각해보면 예수님이

르타가 입적한 직후에 500여명의 제자들이 한자리에 모

오시기 400~500년 경에 태어난 실존 인물이며 최근 그

공생애를 시작한 시기인 주후 30년경에 인도의 북부에서

여 평생에 걸친 그의 설법을 경전으로 정리하였다. 종이

의 스투파(탑: 무덤)에서 그의 DNA를 추출할 정도로 철

태양신 사상을 대승 불교에서 받아들여 그 태양신을 또 하

지난 호에서는 철학 사상으로 태동한 불교가 헬라 문

나 다른 글로 쓴 것이 아니라 정리하고 500명이 함께 그

저한 역사적 고증이 이루어진 인물이다. 흔히 불교신자

나의 부처로 숭배하며 발생된 것으로 추정한다.

명의 영향을 받은 간다라에서 불상이 만들어 지며 종교

경전 모조리 외워 버리는 방식으로 정립을 했다고 하는

들을 포함한 많은 사람들은 불교가 그의 가르침을 따르

만일 이것이 적그리스도(여기서 적 그리스도라 함은 예

로 변화된 과정에서 고타마 싯다르타의 근본 사상인 무

데 이것을 일차 결집이라고 한다. 어쨌거나 일차결집에

고 숭배하는 종교로 알려져 있지만 실제로는 전혀 그렇

수 복음 전파를 막는 세력 또는 영적 존재를 통칭하기로

신론으로부터 싯다르타의 형상을 우상으로 만들어 경배

서는 주로 경장이 완성이 되었고 그 후 약 100년이 지난

지 않다. 우리가 불교하면 생각나는 말 한 가지만 말하

하자)의 작전이라면 어쨌거나 예수님이 인류를 구원하러

하는 우상종교가 되는 과정을 살펴보았다. 사실 지금

후에 2차 결집에서는 율장이 그리고 제 삼차 결집에서 논

라고 하면 아마도 “나무아미타불 관세음보살” 일 것이나

오신 후 1,800여년 간은 그 작전이 성공한 셈이다.

우리나라에 전파된 불교 경전의 대부분은 대승 경전으로

장이 완성이 되며 초기 불교의 삼장이 완성이 되었다.

사실 정확히 말하면 “나무아미타불”과 “나무관세음보살”

2. 불교의 발전: 범신론 종교로 변신 들어가는 글

126

더더욱 주목할 점은 정토사상으로 대변하는 아미타불의 기원을 살펴보면 주후 140~200년경에 중국에서 번역본이

정도로 엄청나게 많은데 우리가 흔히 말하는 삼장법사란 이 경장, 율장 그리고 논장까지 합하여 삼십만 송을 모

만(卍)자 역시 태양광을 상징하는 문자이다.

정토 사상과 중언 부언

서 초기 원시 불교에서 여러 파가 갈리는 부파불교에 이

하지만 이 초기 불교의 삼장은 글로 남아있지 않았던

인데 여기에서 나무(南無)는 산스크리트어 Namo의 음사

르기까지 싯다르타의 가르침을 담은 소승경전과 많은 차

까닭에 초기 싯다르타 고유의 가르침은 거의 실전되었고

로 ‘귀의하다’는 뜻이다. 우리가 흔히 절에 가면 볼 수 있

이가 있다. 불교의 경전은 인도어로 “다르마”라 불리는데

그 이후의 어마어마한 분량의 대승 경전 더해지면서 실

는 세 불상은 가운데가 아미타불상 좌우에 관음보살상

처음부터 산스크리트어로 된 것은 아니었다. 최초는 쁘

제 싯다르타의 정확한 가르침이 뭔지 모두 변개되어 없

과 세지보살상이다. 다시 말해 현대 불교의 주인은 석가

우리가 하나님께 기도를 드릴 때 늘 생각하는 성경문

라크리뜨어와 팔리어 라는 토속어로 되어 있던 것을 세

어지게 되었다. 그런데 최근에 거의 완전한 형태의 초기

모니가 아닌 아미타불인 셈이다. 간혹 석가모니 불상이

구 중 하나일 것이다. 하지만 중언부언의 의미를 기도를

차례에 걸친 경전의 결집이 있은 후 아소카 왕 시대에 산

경전이 우연히 발견 되었는데 그것은 산스크리트어로 번

중앙에 있는 경우가 있지만 그 때에도 아미타 불과 약사

드릴 때 횡설수설한다던가 아니면 한 이야기 또 하고 또

스크리트어로 번역이 되었는데 이 불경은 싯다르타의 가

역되기 전 초기의 가르침을 고스란히 담은 삼장이 스리

여래불(미륵불)이 좌우에 위치하고 있다.

하고 하는 정도의 의미로만 알았지 정확한 의미에 대하

르침을 담은 경장(藏經), 그 가르침을 계율로 정립한 율

랑카로 넘어가서 거기서 글로 남은 팔리어 삼장이 바로

필자가 이번 불교에 대한 방대한 조사 작업을 하며 경

여서는 짚어볼 기회가 많지 않았던 것 같다. 여러 신학

장(藏律)과 제자들의 주석을 담은 논장(論藏)으로 나눠

그것이다. 이 팔리어 삼장은 1880년대에 영국인에 의해

악을 금치 못했던 부분이 바로 이 아미타불이 태양숭

자료를 중심으로 살펴본 중언부언의 정확한 뜻은 “의미

지며 이를 통틀어 삼장이라고 한다. 이후에 팔만경이라

처음으로 발견 되었는데 2차 대전 때 일본이 스리랑카를

배 사상과 관련이 있다는 점이었다. 태양신은 이집트의

없는 말을 반복해서 되뇌는 것”으로 바로 신을 조종하는

는 어마어마한 경전이 더해진 대승 불교 이전의 초기 원

점령하며 모두 일본으로 가져가서 1970년에 “남전대장

“라”, “호루스”, “담무스”, “미트라”등등으로 세계 도처에

주문 또는 진언을 의미한다. 예를 들면 ‘주기도문을 반

시 불교라 하더라도 45년간 설법한 싯다르타의 가르침을

경”이라는 이름으로 일본어로 간행되게 되었고 그 이후

나타나는데 성경에 나타난 풍요의 신으로 알려진 바알

복해서 만 번을 외우면 방언 터진다.’ ‘죄 짐 맡은 우리구

정립한 삼장의 양도 각각 십만 송씩 총 삼십만 송에 이를

초기 불교에 대하여 활발한 연구가 이루어지게 되었다.

(바알세불) 복수형태의 신으로 나타날 때 그 중 하나는

주를 삼천 번 부르면 지은 죄가 사해진다.’ 라는 식의 황

신반포교회

“기도할 때에 이방인과 같이 중언부언하지 말라 그들 은 말을 많이 하여야 들으실 줄 생각하느니라.”마:6.7

60주년 기념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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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한 주장이 있다면 그건 바로 중언부언으로 기도하라

인 부처인 것처럼 묘사되고 있다. 만일 기독교가 이와 같

고 하는 말과 같다고 할 수 있을 것이다. 이 중언부언은

았다면 통일교, 영생교, 몰몬교 등 역사상 지금까지 존재

정토사상에서 아주 극명하게 나타나는데 그것은 부처의

한 모든 이단 교리를 정경으로 편입하여 아마 성경은 팔

가르침을 하나도 몰라도 “나무아미타불”만 암송하면 죽

만 권을 넘어 수십만 권 이상 되었을 것이고 예수님을 뛰

을 때 아미타불이 와서 극락정토로 데려간다고 하는 것

어 넘는 재림 예수들이 수십 명은 나타났을 것이다. 뿐만

이다. 이처럼 죽어서 정토 또는 불국토에 태어나 영생극

아니라 아미타경을 비롯한 대승경전에서는 온 세계에 수

락을 누리고 종국에는 모두 부처가 된다고 하는 사상은

십억의 부처들이 존재하여 중생을 구제한다고 한다. 불

싯다르타가 설법한 열반의 의미인 괴로움의 연속인 삶에

교신자들은 부처는 깨달음을 얻은 사람으로 신이 아니라

윤회의 굴레를 벗어나 완전히 사라진다고 하는 것과 정

고 강변하지만 그 대승 경전들을 분석해보면 수십 수백

면으로 배치하는 주장을 하는 것이다. 초기 싯다르타의

부처들과 보살들이 인생의 생사화복을 주관한다는데 그

가르침 어디에도 없을 뿐 아니라 그 사상을 완전히 부정

들이 신이 아니라는 것 자체가 말도 안 되는 모순임을 알

하는 이단 사상이 불교의 중심으로 들어와 버린 것이다.

수 있다. 이것을 바로 불교가 힌두교나 다름없는 범신론

더 더욱이 최근에 와서는 그 극락이라고 하는 곳도 부처

으로 변질되었다는 것을 의미한다.

救援의 九段階

김병열 집사

救援의 九段階(篆書)

가 되기 위해 대기하는 곳이라고 하는데 이는 누구나 부 처가 될 수 있다는 것으로 당신도 하나님과 같이 될 수 있다고 하는 창세기의 뱀의 유혹과 너무나도 닮아 있다.

마치면서 이번 호에서는 불교의 주인이 석가모니에서 아미타불 로 바뀌는 게 되는 사건과 그 아미타불은 태양신인 이방

아미타경과 범신론

신이라고 하는 사실에 대하여 자세히 알아보았다. 필자

아미타불을 최초로 자세히 언급한 아미타경에는 마치

가 만나본 불교 신자 중에 이러한 상황을 깊이 아는 사

싯다르타가 기원정사에서 여러 제자들에게 아미타불에

람은 별로 없었던 것 같다. 그들에게 조심스럽게 접근해

대하여 가르친 내용인 것처럼 되어 있는 데 여기서 아미

서 이러한 문제를 던졌을 때 그들은 대부분은 크게 당황

타불은 자신보다 먼저 부처가 되어 수십억 년(열겁)전 과

했던 것이 사실이다. 우리는 불교 신자에게 복음을 전하

거에서부터 미래에도 설법하는 부처인 것처럼 언급하고

는 일은 아마도 종교가 없는 사람에게 전하는 것 보다 몇

있다. 또한 아미타경을 자세히 살펴보면 마치 싯다르타

배가 더 힘들다고 생각할지 모르겠다. 하지만 필자는 하

자신도 아미타불을 숭상하고 그도 죽었을 때 아미타불이

나님의 존재를 알면서도 게을러서 교회에 나가지 않는

다스리는 극락에서 태어나는 것을 원하는 것처럼 묘사하

사람보다는 꾸준히 절에 다니었던 사람이 훨씬 전도하기

고 있다. 하지만 팔리어 삼장을 살펴보면 실제 싯다르타

가 쉽다고 생각한다. 적어도 그 사람은 구원에 대한 소망

는 아미타불과 극락에 대한 어떤 언급도 찾아볼 수 없다.

이 있는 사람이기 때문이다. 그 구원의 상대를 정확하게

그렇다면 이 아미타경은 후세의 위작이 틀림이 없는데

알려 준다면 그 소망이 예수 그리스도에게 향하는 것은

대승경전에서는 곳곳에 아미타불이 싯다르타보다 상위

시간문제다고 생각한다.

SM 드림書藝Academy 華山 金柄烈 作

빌립보서2장12절 초서/한글

주위 친척들 중에 독실한 불교 신자가 있으신가요? “너는 천국가라 나는 극락 갈테니..” 이런 말을 들으셨나 요? 그렇다면 모순된 진실들을 매일 조금씩 알려주세요. 그들은 이 내용을 반박하기 위해 그 스스로 그 진실 을 찾아보며 마침내 모순을 깨닫게 됩니다. 그 후에 복음과 생명의 길을 알려 주세요... 생명의 길로 가는 법을 알려주는 것이 구원 받은 성도로서 해야 할 마땅한 도리입니다. 그 후에는 주님께서 역사하실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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봄에 피는꽃

주님께 기쁨되는 우리 교회 성도들 그림_이상희 집사

- 전 교인 사진을 모자이크화한 작품입니다 -

이항무 집사

* 말냉이꽃

* 매화

* 별꽃

* 봄맞이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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