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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정예배 2012년 7월 4째주

대한예수교 장 로 회

서울반석교회

Seoulbansuk Presbyterian Church 경기도 광명시 철산동 209-1 ☏ 02)2612-1301 FAX 2688-12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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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와 함께 있은 지

다 같이 머리 숙여 묵상기도를 드리므로 가정예배를 하나님 앞에 드리도록 하겠습니다.

개회 및 사도신경 찬 송 165장 내가 그리스도와 함께 성경봉독 마15:29-39 혹은

(영혼의 찬양 96장)

“예수께서 거기서 떠나사 갈릴리 호숫가에 이르러 산에 올라가 거기 앉으시니 큰 무리가 다리 저는 사람과 장애인과 맹인과 말 못하는 사람과 기타 여럿을 데리고 와서 예수의 발 앞에 앉히매 고쳐 주시니 말 못하는 사람이 말하고 장애인이 온전 하게 되고 다리 저는 사람이 걸으며 맹인이 보는 것을 무리가 보고 놀랍게 여겨 이스라엘의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니라 ○예수께서 제자들을 불러 이르시되 내가 무리를 불쌍히 여기노라 그들이 나와 함께 있은 지 이미 사흘이매 먹을 것이 없도 다 길에서 기진할까 하여 굶겨 보내지 못하겠노라 제자들이 이르되 광야에 있어 우리가 어디서 이런 무리가 배부를 만큼 떡을 얻으리이까 예수께서 이르시되 너희 에게 떡이 몇 개나 있느냐 이르되 일곱 개와 작은 생선 두어 마리가 있나이다 하 거늘 예수께서 무리에게 명하사 땅에 앉게 하시고 떡 일곱 개와 그 생선을 가지사 축사하시고 떼어 제자들에게 주시니 제자들이 무리에게 주매 다 배불리 먹고 남은 조각을 일곱 광주리에 차게 거두었으며 먹은 자는 여자와 어린이 외에 사천 명이 었더라 예수께서 무리를 흩어 보내시고 배에 오르사 마가단 지경으로 가시니라”

말 씀 오병이어 사건과 오늘의 칠병이어 사건은 동일한 사건처럼 보입니다. 거의 비슷하 지만 몇 가지 다른 부분이 있을 뿐입니다. 마태는 오늘 말씀을 통하여 어떤 뜻을 전하고 있을까요? 먼저 다른 점을 찾아보겠습니다. 첫째는 떡의 수 차이입니다. 둘째는 남은 조각의 차이입니다. 이것만 가지고는 주님의 의도를 알아차리기란 쉽 지 않습니다. 좀 더 깊이 말씀의 차이를 보도록 하겠습니다. 14:33과 15:33을 비교 하면 장소가 다릅니다. 앞에는 빈들이었고, 뒤에는 산입니다. 그리고 14:19와 15:35를 비교하면 시기가 다릅니다. 앞에는 풀이 푸르른 시기이고(잔디), 뒤에는 풀이 마른 시기입니다(땅). 그리고 무엇보다 참여하는 대상이 다릅니다. 오병이어 는 유대인들을 위해서 베푸신 기적이었지만, 칠병이어는 이방인들을 위한 기적이 었음을 알 수 있습니다. 이 데가볼리는 유대인이 아닌 이방인들이 거한 곳입니다. 이 두 사건의 공통점 중의 하나는 ‘다 배불리 먹고 음식이 남았다’는 것입니다. 모두 동일하게 생명의 양식으로 풍성하게 먹이신 것입니다. 동시에 이제는 그의 생명의 복음이 이방인들에게까지 차별함이 없이 확장되었음을 의미하는 것입니다. 이 15장은 유대인과 이방인 그리고 갈릴리와 다른 지방간의 경계와 벽이 허물어지 고 복음이 확장되어지는 분수령과 같은 장입니다. 이와 같이 주님의 섬김의 정신 과 차별이 없는 사랑의 마음을 회복해야 합니다. 어떻게 우리는 그런 삶을 살아갈

수 있을까요? 마25:37-40을 통해서 우리의 삶은 작은 관계부터 즉 가까운 사람으로부터 시작해야하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모든 사람의 주’가 되시고자 하시는 한 주님을 섬기 는 우리들이 가슴을 넓혀 섬기려고 할 때 우리의 인생은 축복이 넘치는 것입니다. 우리의 교회의 사역이 더 확장되었으면 좋겠습니다. 찾아가고 끌어안고 먹이고 보살피는 사명이 우 리의 것이 되어야 하겠습니다. 두 사건 속에 또 하나의 공통점이 있습니다. 그것은 바로 주님이 무리들을 불쌍히 여기셨다 는 것입니다. 그런데 강조하는 것이 서로 다릅니다. 오병이어에서는 굶주린 자들을 향하여 제자들에게 먹을 것을 주라고 하심으로 제자들이 주체가 되게 하셨습니다. 실제로 12사도를 통해 유대인들을 위해 사역하게 하셨습니다. 그런데 오늘 칠병이어의 본문은 제자들의 요청 도 없는 상황에서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15:32, 이 본문이 오늘 사건의 가장 큰 차이점임을 발견할 수 있습니다. 오병이어때의 기적과는 달리 이 방 땅에서 그들과 함께 광야에서 사흘 동안 있었다는 것입니다. 왜 이렇게 오래 머무셨을까요? 이방인들은 예수님이 자신들이 사 는 지역으로 온다는 소리를 듣고 인산인해를 이루었을 것입니다. 그들은 주님의 말씀을 듣 고 부흥의 현장이 되었을 것입니다. 그들의 간청과 바람에 주님은 그곳을 떠날 수가 없었던 것입니다. 예수님의 말씀을 들으며 함께 하다보니 어느새 사흘이 지나가 버린 것입니다. 떡 이 목적이 아니라 그분과 함께 하려고 한 것입니다. 주님은 그런 그들을 보며 제자들에게 말씀하십니다. “나와 함께 있은 지 벌써 사흘이나 되었구나. 얘들아 저들의 열망이 보이느 냐? 저들은 기적이 아니라 나와 함께 있으려고 밥을 굶는지도 모르고 있구나. 저들의 그 사랑과 열망이 진정한 신앙의 본질이니라” 37절에 보면 ‘다 배불리 먹고 남은 조각을 일곱 광주리에 차게 거두었으며’라고 기록하 고 있습니다. 왜 하필 7광주리를 남겼을까요? 무엇인가를 정확하게 이야기 해주시려는 주 님의 의도가 있습니다. 그들에게 이 7이라는 수는 완전수임과 동시에 안식의 수입니다. 안 식이라는 것은 하나님의 계획이 이루어지는 것을 의미합니다. 창조하신 후에도 안식하셨고, 출애굽 후에도 안식을 주셨고, 가나안 땅에 들어가는 것도 안식하는 것들이 계속 반복됩니 다. 따라서 주님을 통해서만 우리들이 충만하고 진정한 안식을 누릴 수 있다는 것, 완전하 게 영으로 먹일 수 있다는 상징으로 거두게 하신 것입니다. 이제는 너희들이 끝까지 나를 믿고 따라오라는 주님의 의도인 것입니다. 그러나 제자들은 그들을 향하여 불쌍히 여기거나 그들을 위해 기도하거나 대책을 세우지 않았습니다. 주님과 전혀 공감이 없습니다. 주님은 지금도 우리와 함께 있기를 원하십니다. 이제 우리는 진정한 주님과의 데이트를 나누시며 인생의 여정가운데 승리하시는 모두가 되시기를 축원합니다.

기 도 “하나님 아버지, 오병이어와 칠병이어를 통하여 하나님의 영광을 들어내시고 불쌍한 영 혼들을 살리시고 먹이시니 참으로 감사를 드립니다. 우리의 삶에서도 이와 같은 기적을 경험하며, 주님과 동행하는 삶을 살게 하여 주시옵소서. 그리하여 떡과 같은 육적인 것에 관심을 두기보다 살아계신 주님에 집중함으로 주님과 교제하며, 그런 주님을 증거하며 살아가도록 하여 주시옵소서. 예수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폐 회 주기도문 하신 후에 예배를 마치겠습니다.

7월4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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