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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정예배 2011년 6월 1째주

대한예수교 장 로 회

서울반석교회

Seoulbansuk Presbyterian Church 경기도 광명시 철산동 209-1 ☏ 02)2612-1301 FAX 2688-1205


의를 위하여 박해받는 자는 복이 있나니

다같이 머리 숙여 묵상기도를 드리므로 가정예배를 하나님 앞에 드리도록 하겠습니다.

“존귀하신 하나님 감사합니다. 이 시간 드리는 예배를 주님께서 기쁘게 받으 시고 이 가정에 주님의 신령한 은혜를 베풀어 주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드리옵나이다. 아멘”

79장(구40장) 혹은 심령이 가난한 자는(영혼의찬양 293장)

우리의 신앙인으로서의 싸인, 표지가 무엇일까요? 최고의 경지 혹은 최고의 바람이 무엇이 되어야 할까요? 그것은 바로 오늘 8복의 말씀에 비추어 보면, 박해를 받는 단계까지 가는 것입니다. 아니 예수로 인하여 박해를 받는 것이 복이라니 언뜻 보기에는 이해가 되지 않습니다. 그렇다면 박해를 받는 것이 아닌 것은 무엇일까요? 우리가 삶을 살아가면서 이것은 하나님의 뜻이다라고 생각을 하면서 일을 해 놓고 잘 되지 않으면 그것을 핍박, 박해라고 생각하는 경향이 있습니다. 예를 들어 나의 실수로, 나의 게으름으로 나의 불의로 당하 는 것을 박해라고 해서는 안 됩니다. 또한 나라를 위해 목숨을 바친 사람도 그것은 성경에서 말하는 의가 아닙니다. 남녀 간의 불평등으로 인한 박해, 민 족 간에 있는 박해라고 하지 않습니다. 주님께서 말씀하시는 박해는 오늘 말씀 10절에 있는 ‘의를 위하여’를 통해 일어나는 박해를 말합니다. 즉 11절, ‘나로 말미암아’, 예수 그리스도로 인 해 받는 것입니다. 주님의 나라를 위해 그 분을 위해 삶을 살아갈 때 생기는 것이 박해라는 것입니다. 예수님의 이름 때문에 당하는 박해입니다. 하나님의 나라와 의를 구했더니, 그 분의 말씀대로 살았더니, 그 분을 삶 속에 인정하 고 살았더니 찾아오는 박해 말입니다. 그러나 우리 시대는 사실 일제 치하나 공산 치하의 박해가 없습니다. 이 시대에 교회가 오히려 주님의 뜻을 준행하 여 박해를 받는 것 보다는 세상의 법정에 그리고 세상의 기준에도 못 미치는 우스꽝스러운 모습으로 전락한 모습들이 많습니다.

가는 듯합니다. 교회와 세상이 구별이 안 되고 있습니다. 그러나 우리 믿음의 선배들 의 발자취에는 분명 미련해 보이는 ‘비타협성’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예를 들어 주 기철 목사님의 신사참배 거부, 이방 땅에서 죽음을 무릅쓰고 드리는 다니엘의 세 번 기도, 에스더의 ‘죽으면 죽으리라’는 신앙의 고백이 있었습니다. 두 번째는 ‘자아 중독성’입니다. 우리가 살아가는 이 세상의 방법 중에서 그리스도인들이 가장 많이 빠져서 인식하지 못하고 있는 것이 바로 ‘자아중독성’입니다. 우리가 입으로는 하나 님의 영광을 위해 산다고 하지만 사실 우리는 자아를 위하여 사는 경우가 많습니다. 나의 삶의 모든 중심에 자아가 있습니다. 내가 일을 하고 공부를 하고 하는 모든 일들 을 가만히 보면 입으로는 주님의 영광을 위한다고 하지만, 사실은 자신을 위해 살아가 는 그리스도인들이 많습니다. 우리는 이제 하나님의 뜻이 무엇이고 그분의 방향이 무 엇인지 발견해야 합니다. 또한‘위기의식’이 없는 것이 문제입니다. 박해를 받으면 순교의 역사가 일어납니다. 재물의 축복을 받으면 그래도 헌금을 하고 전도가 이루어 집니다. 그런데 내일 미루는 의식, 즉 내일 전도하지, 나중에 전도하지, 차차 하지, 차 차 기도하지, 차차 예수 믿지 하는 마음들이 있다면 아무런 생명력 없는 신앙인으로 전락해 버리고 맙니다. 그렇다면 진정으로 박해를 받고 핍박을 받는 것이 왜 상급이 될 수 있을까요? 산상설 교의 2번째 7번째의 복은 사실 미래형으로 동사가 쓰였습니다. 그러나 처음의 가난한 심령과 마지막의 이 복은 현재형으로 쓰여 있습니다. 주님의 이름으로 박해를 받는 자 들을 하나님이 그들에게 천국을 주십니다. 그러나 또한 땅을 딛고 서 있는 이곳에서도 세상이 알 수 없는 상을 주시겠다는 것입니다. 여기에서 천국은 바로 우리 마음에 임 하는 하나님의 임재입니다. 그 임재를 통해 체험하는 신비로운 기쁨을 누리는 것입니 다. 박해를 받는 것은 키질을 통해 쭉정이가 다 버려지고 알곡이 남는 것과 같습니다. 주님을 위해 모든 것을 버리고 포기하게 되는 것, 마음이 텅텅 비어 주님과 나만 남는 그 상태에 임하는 그것이 바로 천국입니다. 내가 내 몸에 예수의 흔적을 가짐으로 이 제는 하나님의 자녀라는 확증과 주님이 주시는 세상이 감당할 수 없는 기쁨의 소유자 가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간절히 축원합니다.

“하나님 아버지, 의를 위하여 핍박 받는 것을 통해 천국을 누릴 수 있음을 깨닫게 하 시니 감사를 드립니다. 우리는 연약하고 나약하여 세상과 다르게 살지 못했음을 고백 합니다. 이제는 예수그리스도 때문에 핍박과 박해를 달게 받으며 그 속에서 참 기쁨과 만족을 누리는 저희가 되게 하여 주시옵소서. 우리의 참 구원자이신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 세상과 타협하며, 자기중심적으로 살아가고 있지는 않은가? ∙ 주님의 이름을 위해, 그의 나라를 위해 핍박과 박해를 각오할 수 있도록

그 가운데 첫째로 생각해 보아야 할 단어가 바로 ‘타협’이라는 단어입니다. 이 세상이 교회를 용납하고 교회도 세상을 너무 많이 용납하는 세상으로 변해 주기도문 하신 후에 예배를 마치겠습니다.

6월 1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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