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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5년 10월 30일 금요일

노벨문학상 알렉시예비치 대표작 5편 PAGE 8 이 섹션은 <로시스카야 가제타(Rossiyskaya Gazeta), 러시아>와 중앙일보가 협력해 제작발간합니다. 본 호의 인쇄일은 2015년 10월 28일입니다.

제작 담당 엘레나 김 에디터 editor@russiafocus.co.kr

PAGE 2~3

500만 명 다운받은 앱 파이어챗

홍콩 시위 때핫라인톡톡 수천 명의 시위대가 1년 전 행정장관 직선제를 제한하는 새로운 선거법에 항의하기 위해 홍콩 거리로 쏟아져 나왔을 때 사람들이 너무 많아 휴대전화 네트워크에 과부하가 걸렸다. 시위자들의 통화 해결책은 파이어챗이었다. 파이어챗은 60m 안에 그물망 사용자 네트워크를 형성해 주는데 스마트폰 블루투스나 와이파이 접속 기능을 이용하여 단말기를 한데 연결해주면 되는 오프라인 스마트폰 앱이다. 네트워크에 사용자가 많으면 많을수록 네트워크가 더 잘 작동한다. 홍콩 시위 당시 파이어챗은 10만 회 이상 다운로드되면서 홍콩의 구글 플레이와 앱스토어 목록 상위에 올랐다.

대출 어려워지고 소비 꽁꽁 

러 중산층 2년 새 5% 감소

지난 3일 시리아의 흐메이밈 러시아 공군 기지에서 최신 전술 폭격기 수호이(Su)-24 두대가 이륙하고 있다. 이 폭격기들은 산악지역에 있는 IS의 8개 목표를 공격했다. 그 중엔 지휘부도 포함됐다.

러시아 중산층의 수가 2년 사이에 5%나 줄어들었다. 대출도 어려워지고 소비도 얼어붙었다.

[리아 노보스티]

러시아인 66% 공군의 시리아 파병 지지

특히 그동안 나름 편하게 살아 온 중산층의 젊은이들 고통이 크다. 예카테리나 시넬시코바

러시아 공군의 시리아 파병 설문조사 46개 주와 변강주, 132개 공화국 거주지 주민 1600명 대상. 오차 ±3.5%이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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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월에 눈 녹고, 연간 온도차 60도 

러시아서 가장 추운 도시 5곳

41% “러 입장 뭔지 모르겠다”

기타

27%는 지지하지 않는다

7

확실하게 지지하지 않는다

전적으로 지지한다

12 “러시아인 66%가 러시아 공군의 시리아 파 병을 대체로 지지하고 있다”고 사회학자들 이 설명했다.   프치옴(ВЦИОМ, 전러시아여론조사센 터)은 최근 러시아인들에게 러시아 공군의 시리아 분쟁 개입을 어떻게 생각하는지 물 었다. 응답자 대다수는 블라디미르 푸틴 대 통령이 시리아에 러시아 공군을 파견하기로 한 결정을 대체로 지지하고 있지만, 이들 중 대다수는 러시아가 어느 편에 서 있고 누구 와 무엇을 위해 싸우고 있는지 이해하지 못

지지하지 않는 편이다

단위:%

38

15 지지하는 편이다

28 자료:프치옴

하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이 조사 결과가 나오기 직전에 여론조사기관 레바다-센터 도 유사한 설문조사를 시행했다.

  프치옴의 설문조사   러시아 국민 66%는 러시아 공군의 시리 아 파병을 지지했다(‘전적으로 지지한다’ 는 38%, ‘지지하는 편이다’는 28%). 27%는 지지하지 않았다(‘지지하지 않는 편이다’는 15%, ‘확실하게 지지하지 않는다’는 12%)   41%는 “러시아의 입장이 뭔지 알지 못한 다”고 응답했고, 18%는 ‘러시아가 이슬람 국가(IS) 격퇴를 위해 바샤르 알아사드 시리 아 대통령을 지원하고 있다’고 확신했다. 또 17%는 답변하기 어렵다고 말했고 7%는 러 시아가 분쟁의 평화적 해결을 지지한다고 말했다.   시리아에서 ‘장기화하고 있는 유혈 전쟁’ 의 책임이 미국과 그 동맹국들에 있다고 보 는 러시아인은 56%, IS 지지자들에게 있다 고 보는 러시아인은 14%, 아사드 대통령과

그의 지지자들에게 있다고 보는 러시아인은 7%로 나타났다.   프치옴의 설문조사는 러시아 46개 주와 변강주, 공화국 132개 거주지 주민 1600명을 대상으로 시행됐다. 오차 ±3.5% 이하.   레바다-센터 설문조사

  응답자 72%는 ‘이슬람국가(IS)’에서 러 시아의 IS 거점 공습을 정당화해주는 위협’ 을 느끼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러시아의 공습을 ‘전적으로 긍정적으로 생각한다는 31%, ‘긍정적으로 생각하는 편이다’는 41% 였다). 14%는 러시아의 공습을 지지하지 않 았다(‘부정적으로 생각하는 편이다’는 10%, ‘매우 부정적으로 생각한다’는 4%였다). 14%는 답변하기 어렵다고 말했다.   러시아 46개 지역 134개 거주지 주민 1600명을 표본으로 추출했다. ▶R5로 계속

러시아 미답의 지역에서 발생하는 뉴스와 사건사고를 전해 드리는 신뢰할 수 있는 뉴스 제공자

83% “russiafocus.co.kr은 여타 미디어가 다루지 않는 러시아에 대한 정보와 분석 기사를 제공한다” - 81% “russiafocus.co.kr은 러시아에 전문적 지식이 없는 일반 독자에게도 흥미로운 기사를 제공한다” -77% “러시아 현지 전문가들의 견해를 접할 수 있는 소스로 russiafocus.co.kr을 신뢰한다” -

상기 자료는 2015년 3월 15일 실시된 RBTH 온라인 독자 설문조사의 결과입니다

글로벌 온라인 네트워크 Russia포커스(russiafocus.co.kr)와 함께하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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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사회

2015년 10월 30일 금요일

┃ 경제

section sponsored by Rossiyskaya Gazeta, Russia

500만 명 넘게 쓰는 근거리 채팅 앱 파이어챗

무너지는 러시아 중산층

14년 전 모스크바대생이 창안  홍콩 시위 때 생생 현장 중계

대출 어려워지고 소비 꽁꽁  러시아 중산층 수 2년 새 5% 감소

안드레이 라스킨

수천 명의 시위대가 1년 전 행정장관 직선제 를 제한하는 새로운 선거법에 항의하기 위 해 홍콩 거리로 쏟아져 나왔을 때 사람들이 너무 많아 휴대전화 네트워크에 과부하가 걸렸다.   시위자들의 통화 해결책은 파이어챗이었다. 파이어챗은 60m 안에 그물망 사용자 네트워 크를 형성해 주는데 스마트폰 블루투스나 와 이파이 접속 기능을 이용하여 단말기를 한데 연결해주면 되는 오프라인 스마트폰 앱이다. 네트워크에 사용자가 많으면 많을수록 네트워 크가 더 잘 작동한다. 홍콩 시위 당시 파이어챗 은 10만 회 이상 다운로드되면서 홍콩의 구글 플레이와 앱스토어 목록 상위에 올랐다.   이 앱은 출시 1년도 채 안 돼 세계적으로 유명해졌다. 파이어챗은 이라크에서도 유행 하기 시작했는데, 이라크 당국은 이슬람 급진 주의 확산을 차단하려고 소셜 네트워크 접속 을 제한했다.   지난해 겨울 모스크바에서 러시아 야당 지도자 알렉세이 나발니는 가택연금 조건을 위반하고 크렘린 앞에서 벌어진 반정부 시 위에 참여했다. 하지만 나발니가 자신의 체 포를 트위터를 통해 실시간으로 알리자 당 시 블룸버그 통신은 “진짜 행동은 나발니와 그의 지지자들이 시위를 조직하고 여과되지 않은 통신을 교환했던 파이어챗에서 이뤄졌 다”고 보도했다.   모스크바를 거쳐 실리콘밸리로 이어지는 파이어챗의 역사를 고려하면 파이어챗이 러 시아에서 인기를 얻고 있었다고 보는 것도 어 쩌면 당연한 것인지 모른다. 파이어챗은 지난 2001년 모스크바국립대학교 기계수학학부 졸업생 스타니슬라프 샬루노프가 처음 구상 했다. 하지만 이 기술은 블루투스가 보급되 면서 비로소 현실화되었다. 그로부터 10년 후 인 2011년 미국에서 샬루노프는 파이어챗의

샬루노프 미국서 공동창업 후 출시

올레크 예고로프

60m 이내 사용자 블루투스로 연결 인터넷 차단검열 걱정 없어 돌풍 휴대폰 네트워크 과부하 때 맹활약 분쟁지역서 소통수단으로 큰 인기 인터넷 못 쓰는 세계인에 통신 제공

모회사 샌프란시스코 스타트업 오픈가든을 공동 설립했다.   올해 파이어챗 이용자 수는 500만 명을 넘 어섰다. 최근까지 이 앱은 모든 사람에게 공 개되는 그룹 채팅으로 통신할 수 있게 해주 었지만, 새로운 파이어챗 덕분에 이용자들은 개인 메시지도 교환할 수 있다. 오프라인 메 시지 전송을 개시하기 위해 개발자들은 암호 화와 운영체계 호환성 등 수많은 과제를 해결 해야만 했다.   파이어챗에서는 모든 개인 메시지가 암호 화되어 있어 발신자와 수신자만이 메시지를 읽을 수 있다. “SMS(단문메시지서비스)와 IM(인스턴트메시지)은 잊어라. P2P 네트워 크 시대가 오고 있다”고 미샤 베놀리 오픈가 든 공동 설립자 겸 CEO가 말했다. 그는 “우 리가 개발하는 것은 인터넷 발전에서 다음 단계로 가는 과정이다. 이것은 사람들에 의 해, 사람들을 위해 창조되는 네트워크다”고 주장한다.   파이어챗은 월드와이드웹 망에서 여전히 벗어나 살고 있는 수많은 사람에게 접속 가 능성을 확대해 주는 야심적인 계획들을 발표 했다. “우리의 목적은 세계 모든 사람에게 통 신을 제공하는 것이다. 우리는 현재 인터넷에

지난해 10월 2일, 홍콩. 파이어챗 앱 개발사인 오픈가든의 공동설립자 겸 CEO 미샤 베놀리엘이 인터뷰 중에 파이어챗의 인터페이스를 보여주고 있다. [로이터]

연결되어 있지 않은 50억 명의 사람에게 통신 을 용이하게 해주고자 한다. 이들은 인터넷을 이용할 여력이 없기 때문이다. 그리고 인터넷 에 연결될 수 있는 사람들에게는 통신을 개 선해 주고 싶지만, 마비 사태를 겪고 있다. 이 런 마비는 대부분 혁명과는 관계없다. 마비는 종종 휴대전화 인프라 내의 고장과 결함 때 문에 일어나거나 밀집 장소들에서 과부화로 인해 발생하기도 한다.” 스타니슬라프 샬루 노프가 Russia포커스에 말했다.   파이어챗 앱 사용은 2014년 홍콩 시위 때 절정에 달했다. 당시 안드로이드 스마트폰

용 구글 플레이스토어에서 파이어챗은 ‘50 만 명에서 100만 명까지’ 이용자 범주에 진 입했다. 이 앱의 이용자 기반은 모스크바에 서 벌어진 시위와 샤를리 에브도 테러 이후 파리에서 일어난 휴대전화 신호 마비 사태 덕분에 더 성장했다.   개발자들은 현재 혁명 도구로서 앱의 이미 지를 털어내려고 애쓰고 있다. “사실 파이어 챗은 세계 곳곳의 다양한 시위 덕분에 인기 를 얻었다. 하지만 이런 혁명적 배경을 걷어 내는 것이 나의 과제라고 생각한다.” 안톤 메 르쿠로프 모스크바 파이어챗 대표의 말이다.

  파이어챗을 통해 소통하려면 이용자들이 60m 내에 있어야 한다. 그래서 이들 자신의 통신 네트워크인 P2P 그물형 네트워크를 형 성할 수 있다. 이 네트워크 안에서 메시지는 이용자들 사이에 전송된다. 파이어챗은 문자 메시지와 사진을 교환할 수 있게 해준다. 앞 으로 개발자들은 음성과 영상도 전송할 수 있게 되기를 바란다.   오픈가든은 지금 파이어챗의 일상적 사용 을 활성화하는 데 치중하고 있다. 현재 파이 어챗이 가장 인기 있는 나라 상위 4위에는 미 국과 홍콩, 인도, 러시아가 올라 있다.

러 암호화된 채팅규제 움직임  관리들 공무에 인기 메신저 사용 막아 엘레나 김

몇 달 전 카카오톡이 한국 정보기관에 해킹 을 당했다는 소문이 돌자 한국 이용자들은 텔레그램으로 대거 이동했다. 러시아 프로그 래머 파벨 두로프가 개발한 것으로 최고의 보안 기술을 갖고 있어 아직까지 해킹을 당하 지 않았다고 평가됐기 때문이다. 그 사건은 카카오톡 개발사에 큰 타격이었다. 그런데 최 근 두로프는 호주에서 일어난 학생들의 테러 기도와 심지어는 이슬람국가(IS) 테러리스 트들에 대해서도 여론의 질타를 받아야만 했 다. 이들 모두가 바로 텔레그램을 통해 테러 행동을 조율했기 때문이다.   Russia포커스는 국가가 암호화된 메신 저를 통한 통신을 더 엄격하게 규제해야 하 는지, 이용 편리성과 국가 안보 사이의 경계 는 어디까지인지 알아보기 위해 인터넷 전 문가이자 파이어챗 개발사 오픈가든의 안 톤 메르쿠로프 대표가 말했다. 메신저 시장 은 역사가 짧지만, 벌써 인상적인 수치를 자 랑한다. 왓츠앱(WhatsApp) 이용자는 8억 명, 중국의 큐큐(QQ) 이용자는 6억 명, 비 버(Viber) 이용자는 2억5000만 명이다. 메신 저용 앱은 게임과 뉴스, 쇼핑, 심지어는 송금 까지 모든 기능을 갖추고 있다. 메신저는 새 로운 소셜 네트워크다. 그래서 정보기관과 테러리스트, 혁명가들이 메신저에 주목했 다는 것은 놀랍지 않다.   2011년 영국에서 인종과 사회 문제로 대 중 소요가 일어났을 때 블랙베리 스마트폰 에 장착된 메신저가 대중 소요의 급속한 확 산을 불렀다는 점에서 비난을 받았다. 파이

지난해 야권 나발니 집회 막으려 페이스북 폐쇄  파이어챗도  차단

메신저 파이어챗)은 통신사가 제공하는 네트워크를 우회해 사용자 간의 소통을 가능하게 해 준 덕분에 저항운동의 도구로 인기를 얻고 있다. 파이어챗을 이용하면 인터넷에 접속하지 않고도 개인 간의 메시 지 전달이 가능하다. 

[일러스트 드미트리 디빈]

어챗 메신저도 비난을 받았다. 이 앱은 다 수의 모바일 기기를 네트워크로 통합해 주 는 통신 모듈을 이용하여 모바일 인터넷 없 이도 작동할 수 있다. 홍콩 시위 당시 거리를 가득 채운 인파로 통신이 마비되자 사람들 은 파이어챗을 통해 행동을 조율했다. 사람 들이 거리로 쏟아져 나올 위험성이 있는 국 가 정부들에서는 그때부터 무엇보다도 일반 적이고 일상적인 소통을 위해 사용되는 이 메신저를 싫어하고 있다. 작년 말 러시아에 서는 야권지도자 알렉세이 나발니를 지지 하는 집회 준비 과정에서 파이어챗 다운로 드 횟수가 폭발적으로 늘어났다. 이러한 움

직임은 러시아 대검찰청이 나발니 지지 집회 와 관련한 페이스북 페이지 접속을 차단한 직후인 12월 20일 시작됐다. 그후 열흘 만에 파이어챗은 러시아 앱스토어 SNS 카테고리 다운로드 순위 29위에서 10위로 성큼 올라 섰다고 블룸버그는 전했다. 그러자 29일 대 검찰청은 파이어챗의 기술도메인(firechat. s3.amazonaws.com)에 대한 접근 차단을 결 정했다. 하지만 파이어챗의 기술담당자는 그 에 따른 효과는 미미했다고 발표했다.   데이비드 캐머런 영국 총리는 제임스 코미 미국 연방수사국(FBI) 국장과 함께 국가 안 보라는 모호한 목적을 내걸면서 메신저들을 암호화하지 않아야 한다고 요구할 정도였다. 하지만 이 모든 것은 요란한 성명 수준에 그 치고 말았는데, 파벨 두로프도 그에 대해 비 판한 바 있다. 안전한 소통 권리는 쉽게 빼앗 지 못한다. 메신저의 경우 정보기관들은 더 집중적으로 들여다봐야 하기 때문에 대량 감 시를 할 수 없다. 메신저 비판자들은 근시안 적인 정치인들이나 경쟁력 없는 보안업체들 로부터 통신 수단 개발자들에게로 책임을 떠 넘기길 좋아한다. 하지만 중요한 점은 범행에 편리한 특별 기능, 다시 말해 ‘한 번의 클릭으 로 혁명하기’ 같은 스위치가 메신저에 없다 는 사실을 이해하는 것이다. 그런데도 비판자 들은 학생들이 런던 상점 진열창을 부수거나 이슬람 급진세력들이 새로운 희생자들을 인 질로 붙잡아 간 원인들에 대해서는 자주 망 각하곤 한다.   러시아에서도 암호화된 채팅 통신을 규 제하려고 한다. 연방보안국 국장을 역임한 니콜라이 파트루셰프 러시아 안보회의 서기

는 지난 8월 러시아 관리들이 업무 연락에 인기 메신저들을 이용해서는 안 된다고 밝 혔다. 이유는 무엇이었을까? 스파이와 외국 정보기관들에 대해 우려하기 때문이다. 하 지만 관리들이 이런 서비스를 이용해도 사 회적 통제가 불가능하다는 점에 대해서는 웬일인지 잊고 있었다.   그러나 러시아 관리들이 걱정하기에는 이 르다. 첫째, 정부가 승인한 대안 통신 플렛폼이 없다. 둘째, 메신저상의 업무 연락과 비공식 통 신을 구분하기가 곤란하다. 바로 지금도 텔레

그램에서 연방 장관들과 대통령 행정실 직원 들, 기타 관리들을 찾아낼 수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러한 규제 움직임은 자신들에게 까지 불통이 튈까 우려하는 러시아 일반 이용 자들을 특히 불안하게 만든다. 에드워드 스 노든의 이야기와 감시, 전면적 사이버 위협들 에 놀란 이용자들은 확실하고 안전한 통신을 원한다. 메신저가 이런 문제를 정치적인 방법 이 아닌 기술적인 방법으로 해결해 주고 있다 는 점을 고려할 때 정부에는 어떤 기회도 없 다. 정부가 우리의 통신을 통제할 수는 없다.

소득수준이 높은 러시아인의 수가 2013년 이 후 2년 사이 약 5%가 줄어든 것으로 최근 조 사에서 나타났다. 이런 현상이 의미하는 바 는 무엇인가. 일부 연구자들은 이 자료가 러 시아 중산층이 감소하고 있음을 보여준다고 말하고 있지만, 서구식 의미의 중산층이 러시 아에 존재하는지 확신하지 못하는 사회학자 도 많다.   2015년 8월 발표된 러시아 정부 산하 재정대 학교 사회학부의 연구에 따르면, 지난 2년 새 러시아 중산층 수가 크게 줄었다. 2013년의 경 우 응답자의 18%가 차를 사고 의료·교육비를 낼 수 있고 가족과 해외여행을 할 여력이 있다 고 했다. 하지만 2015년 1~7월 조사에서는 그 숫자가 5% 감소해 현재 13%로 줄었다.   중산층의 조건은 ‘구매능력’=연구 책임 자 알렉세이 주베츠 사회학부장은 “조사에 따르면 결론은 러시아 중산층이 감소했다는 것”이라고 평가했다. 주베츠 교수는 Russia 포커스와의 인터뷰에서 “누군가를 중산층 으로 분류할 때 조건은 생활을 윤택하게 해 주는 승용차, 고급 가전제품과 자녀들을 사 립학교에 보낼 수 있고 가족과 함께 해외여 행을 떠날 수 있는 특정 상품과 서비스 품목 을 이용할 수 있는지 알아보는 것이 유용하 다”고 설명했다.   여론조사기관 ‘레바다센터’의 전문가 마 리나 크라실니코바도 주베츠 교수의 견해에 동의했다. 크라실니코바는 “소득수준이 높 은 사람들의 수가 지난 2년간 줄어들었다”고 Russia포커스에 전했다. ‘레바다센터’의 통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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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차 사고 가족 해외여행할 여력 2년 전 소득 조사서 18%였으나 경기침체 지속에 올 13%로 줄어 소득교육 수준에 전문능력 고려 중산층 용어, 러엔 부적절 지적도

"중산층으로 올라가는 것이 이제 사실상 불가능해졌다. 사회적 사다리가 더 이상 작동하지 않는 탓"이라고 타티야나 말레바 사회정책연구소장은 말한다.  [로이터]

자료도 재정대학교 자료와 일치한다. 크라실 니코바의 말에 따르면, 2013년에는 응답자의 30~33%가 자신들의 소득수준이 높은 편이라 고 밝혔지만, 현재는 5% 감소해 최대 26%다.   원인과 전망=전문가들은 소득수준이 높 은 러시아인 수가 크게 감소한 원인이 경제 상황 때문이라고 입을 모았다. 알렉세이 주베 츠 교수는 “경제 악화로 국민의 지불능력이 하락하고 따라서 국민의 은행 대출 능력도 감 소하고 있다. 예를 들면 자동차를 구입하고 다른 고가의 상품과 서비스를 이용할 수 있 는 사람들의 수가 점점 줄어들고 있다”고 말 했다. 2015년 5월 러시아의 자동차 판매는 전년 동기 대비 37.6% 줄었다.   하지만 향후 상황이 어떻게 변할지 전망에

대한 평가에서는 의견이 엇갈렸다. 주베츠 교 수는 “상황이 더 악화될 가능성은 그리 크지 않다. 경제 위기에 기인한 경기침체의 최저점 을 통과했기 때문에 중산층도 차츰 회복되기 시작할 것”이라고 확신했다. 이와는 반대로 크라실니코바는 “앞으로 상황이 호전될 만 한 근거가 보이지 않는다”며 현 상황에서 경 기가 회복될 수 있을지 확신하지 못했다.   프치옴의 발레리 표도로프 대표는 위험 한 영역에 지금은 젊은 층들만 있다. 이들은 다른 삶-다시 말해 배고프고 위험한 삶-을 보지 못한 말하자면 중산층의 부서지기 쉬운 아이들이라고 말했다. 그들에게 위기는 마 치 이마를 강타당한 것과 같다. 일부는 지금 제3의 눈을 뜨지 못한다. 이 젊은 층은 현실이

이케아의 카탈로그에서 본 것과는 조금 다를 수 있다는 것을 느끼기 시작한다고 말한다.   러시아에 과연 중산층은 존재하는가=이와 동시에 크라실니코바는 소득수준이 높은 러 시아인들에 대해 ‘중산층’이라는 용어를 사 용하는 것이 부적절하다고 평가했다. 그는 “서구사회에서 중산층을 정의할 때 일정 소 득수준뿐 아니라 교육수준과 전문능력도 고 려한다. 반면 러시아에서는 소득수준이 교육 수준에 부합하지 않는 경우가 더러 있다. 게 다가 소득수준이 높은 러시아 국민은 관료계 층에 해당하는 경우가 많다. 다시 말해 이들 은 정부에 종속돼 있다. 따라서 고전적 의미 의 중산층은 아니다”고 말했다.   알렉산드르 체푸렌코 고등경제대학 사회

학부장은 러시아 사회학계에 중산층 개념이 정립돼 있지 않다고 말했다. 그는 “일각에서 는 순수하게 ‘경제적인’ 접근법만으로 일정 소득수준에 있는 사람을 중산층으로 분류하 고, 다른 일각에서는 세 가지 기준(소득수준, 교육수준, 자아상(自我像))을 사용한다. 또 다른 일각에서는 동심원 구조를 이용한다(중 산층의 모든 분류 기준에 부합하는 사람들은 중앙에, 중산층의 몇몇 특징을 보이는 사람 들은 그 다음에, 몇몇 특징 가운데서 하나라 도 갖고 있는 사람들이 그 다음에 위치한다 는 의미). 따라서 중산층 비율도 최저 6~8%, 최대 35~40% 사이를 오르내린다. 하지만 이 러한 평가도 현재의 경제 침체가 시작되기 이 전 기간에 해당한다”고 말했다.

루블화 유동성 공급 확대 논쟁  러 정부 내서도 찬반 팽팽

잉여 자금이 인플레이션 불러 vs 경제 활력 위해 양적 완화 필요 알렉세이 롯산

세르게이 글라지예프 대통령 경제고문이 지 난 10월3일 소치 국제투자 포럼에서 “경제 성장 촉진을 위해 러시아 정부가 통화 발행 확대를 시작해야 한다”고 발표했다. 그는 경 제부문에서 국가의 역할 증대를 적극 지지 하는 인물이다.   그는 이어 “(러시아 경제가 침체돼 있는) 현재 중앙은행이 적절하지 않은 정책을 취 하고 있다. 모든 은행 대출업무의 지침이 되 는 주요 지표인 기준금리를 높게 책정하는 것과 같은 방법으로 러시아 내 유동성 공급 을 제한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러시아 중앙 은행은 지난 9월 11일 올해 들어 처음으로 기준금리를 11%대로 고정했다. 이는 기업이 이보다 낮은 금리로 대출을 받을 수 없게 됐 다는 의미다. 중앙은행이 기준금리를 두 자 릿수로 높게 유지함으로써 인플레이션을 억 제하려는 것이다. 경제개발부는 올해 물가 상승률이 12%를 상회할 것으로 전망하고 있다. 이는 러시아가 최악의 경제 위기를 겪

중앙은행 고금리로 인플레 억제 대통령 경제고문 기업 활동 위축

은 1990년대 말 이후 기록적인 수치다.   글라지예프는 고금리 환경에서 기업 내 유보자금이 바닥을 보이면 제품의 가격 인 상을 추진하지 생산량을 확대하지 않는다고 생각한다. 그는 “러시아 내 생산자원이 제한 된 게 아니라면 유동성 공급을 확대해도 된 다. 모든 생산자원이 동원되기 전까지는 말 이다. 그런 경우에는 인플레이션 우려는 없 을 것이다. 게다가 통화 발행의 목적이 경제 혁신성을 높이는데 있다면 물가는 낮아질 것”이라고 주장한다. 그는 특히 중국에서는 최근 들어 양적완화를 확대하고 있지만 물 가는 오르지 않고 있다며 모든 생산력이 가 동되는 상태에서 유동성 공급을 늘릴 경우 에만 인플레이션이 발생하는 것이라 했다.

  러시아 재무부 장관과 중앙은행 총재는 글라지예프의 이러한 주장에 반대의 입장 을 고수해 왔다. 특히 중앙은행 총재는 더 그 렇다.   옐비라 나비울리나 중앙은행 총재와 알렉 세이 울류카예프 경제개발부 장관은 알렉세 이 쿠드린 전 장관과 1990년대 러시아 내 자 유 개혁지침을 마련한 예고르 가이다르의 노 선을 따르고 있다. 이 두 사람은 국가의 주요 과제 중 하나가 유동성 조절이라고 본다. 이 들의 이론에 따르면 국가는 추가로 통화(루 블화)를 발행할 수 없을 뿐만 아니라 과도한 석유 달러를 시장에서 회수해야 한다.   글라지예프는 러시아 대통령의 경제 고문 임에도 불구하고 사회주의 경제관을 견지하 고 있다. 그의 입장은 러시아 정부의 관점과 현저하게 대비되고 있다. 특히 블라디미르 푸틴 대통령의 가까운 친구로 간주되는 알 렉세이 쿠드린 전 재무장관은 글라지예프의 의견에 대해 강력하게 반대한다. 이 밖에 나 비울리나 중앙은행 총재와 울류카예프 경 제개발부 장관과도 여러 차례 공개 토론을

벌였는데, 두 사람 모두 잉여 자금은 경제 에 해롭고 인플레이션 압박으로 이어진다는 통화 이론을 신봉하고 있다. 글라지예프와 는 견해가 전혀 다르다.   그러나 글라지예프의 주장을 지지하는 의견도 있다. 기업인 권익 대표 옴부즈맨(러 시아 내 사업계를 보호하기 위해 마련된 특 별 직책)인 보리스 티토프는 “자금이 미래 사업에 확실하게 투자되고 외환시장에 들어 가지 않는다면 유동성 공급을 확대해도 괜 찮다”고 주장한다.   “이 루블화 추가 발행으로 늘어난 유동성 은 외환시장으로 흘러 들어갈 수 없는게 러 시아 경제 시스템이다. 특수 체계가 외환시 장 내 발행한 돈의 사용을 제한하기 때문”이 라고 말했다.   대외경제은행의 운영부장이자 경제학자 인 안드레이 클레파치는 “개혁에 중앙은행 의 책임 범위 변경도 반드시 포함돼야 한 다”고 중앙은행을 비판한다. 그는 “중앙은 행의 책임으로 국가화폐의 안정성 보장이 라는 과제가 명시돼 있다. 이와 관련해 이

책임 범위를 어떻게 바꿔야 할지에 대해 많 은 이견이 있었다. 특히 중앙은행이 경제발 전을 지원해야 한다고 반드시 법률에 명시 할 필요가 있다”고 주장했다. 그는 “러시아 중앙은행이 실물경제에 일어나고 있는 일 에 관심을 기울여야 한다”며 “사실상 러시 아 GDP 추계는 잠재 GDP보다 낮다. 현재 발생하는 일들로 인해 러시아의 잠재 GDP 가 떨어지고 있다. 즉 앞으로 경제발전 여 건이 점점 나빠지고 있는 것”이라고 덧붙였 다. 그는 중앙은행이 투자와 중소기업을 지 원하기 위해 새로운 제도들도 다양하게 구 사해야 한다며 일부 구체적인 프로젝트에 저금리로 대출을 해주는 방안 등을 예로 들었다.   2015년 초 러시아 내 수입대체를 지원하 기 위해 설립된 산업발전기금은 이미 낮은 금리로 기업대출을 실시하고 있다. 알렉세 이 코미사로프 산업발전기금 대표는 연 5% 금리로 대출을 제공한다고 Russia포커스에 밝혔다. 이는 러시아 내 인플레이션율보다 훨씬 낮은 수준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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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사회

2015년 10월 30일 금요일

┃ 경제

section sponsored by Rossiyskaya Gazeta, Russia

500만 명 넘게 쓰는 근거리 채팅 앱 파이어챗

무너지는 러시아 중산층

14년 전 모스크바대생이 창안  홍콩 시위 때 생생 현장 중계

대출 어려워지고 소비 꽁꽁  러시아 중산층 수 2년 새 5% 감소

안드레이 라스킨

수천 명의 시위대가 1년 전 행정장관 직선제 를 제한하는 새로운 선거법에 항의하기 위 해 홍콩 거리로 쏟아져 나왔을 때 사람들이 너무 많아 휴대전화 네트워크에 과부하가 걸렸다.   시위자들의 통화 해결책은 파이어챗이었다. 파이어챗은 60m 안에 그물망 사용자 네트워 크를 형성해 주는데 스마트폰 블루투스나 와 이파이 접속 기능을 이용하여 단말기를 한데 연결해주면 되는 오프라인 스마트폰 앱이다. 네트워크에 사용자가 많으면 많을수록 네트워 크가 더 잘 작동한다. 홍콩 시위 당시 파이어챗 은 10만 회 이상 다운로드되면서 홍콩의 구글 플레이와 앱스토어 목록 상위에 올랐다.   이 앱은 출시 1년도 채 안 돼 세계적으로 유명해졌다. 파이어챗은 이라크에서도 유행 하기 시작했는데, 이라크 당국은 이슬람 급진 주의 확산을 차단하려고 소셜 네트워크 접속 을 제한했다.   지난해 겨울 모스크바에서 러시아 야당 지도자 알렉세이 나발니는 가택연금 조건을 위반하고 크렘린 앞에서 벌어진 반정부 시 위에 참여했다. 하지만 나발니가 자신의 체 포를 트위터를 통해 실시간으로 알리자 당 시 블룸버그 통신은 “진짜 행동은 나발니와 그의 지지자들이 시위를 조직하고 여과되지 않은 통신을 교환했던 파이어챗에서 이뤄졌 다”고 보도했다.   모스크바를 거쳐 실리콘밸리로 이어지는 파이어챗의 역사를 고려하면 파이어챗이 러 시아에서 인기를 얻고 있었다고 보는 것도 어 쩌면 당연한 것인지 모른다. 파이어챗은 지난 2001년 모스크바국립대학교 기계수학학부 졸업생 스타니슬라프 샬루노프가 처음 구상 했다. 하지만 이 기술은 블루투스가 보급되 면서 비로소 현실화되었다. 그로부터 10년 후 인 2011년 미국에서 샬루노프는 파이어챗의

샬루노프 미국서 공동창업 후 출시

올레크 예고로프

60m 이내 사용자 블루투스로 연결 인터넷 차단검열 걱정 없어 돌풍 휴대폰 네트워크 과부하 때 맹활약 분쟁지역서 소통수단으로 큰 인기 인터넷 못 쓰는 세계인에 통신 제공

모회사 샌프란시스코 스타트업 오픈가든을 공동 설립했다.   올해 파이어챗 이용자 수는 500만 명을 넘 어섰다. 최근까지 이 앱은 모든 사람에게 공 개되는 그룹 채팅으로 통신할 수 있게 해��� 었지만, 새로운 파이어챗 덕분에 이용자들은 개인 메시지도 교환할 수 있다. 오프라인 메 시지 전송을 개시하기 위해 개발자들은 암호 화와 운영체계 호환성 등 수많은 과제를 해결 해야만 했다.   파이어챗에서는 모든 개인 메시지가 암호 화되어 있어 발신자와 수신자만이 메시지를 읽을 수 있다. “SMS(단문메시지서비스)와 IM(인스턴트메시지)은 잊어라. P2P 네트워 크 시대가 오고 있다”고 미샤 베놀리 오픈가 든 공동 설립자 겸 CEO가 말했다. 그는 “우 리가 개발하는 것은 인터넷 발전에서 다음 단계로 가는 과정이다. 이것은 사람들에 의 해, 사람들을 위해 창조되는 네트워크다”고 주장한다.   파이어챗은 월드와이드웹 망에서 여전히 벗어나 살고 있는 수많은 사람에게 접속 가 능성을 확대해 주는 야심적인 계획들을 발표 했다. “우리의 목적은 세계 모든 사람에게 통 신을 제공하는 것이다. 우리는 현재 인터넷에

2014년 10월 2일, 홍콩. 파이어챗 앱 개발사인 오픈가든의 공동설립자 겸 CEO 미샤 베놀리엘이 인터뷰 중에 파이어챗의 인터페이스를 보여주고 있다. [로 이터]

연결되어 있지 않은 50억 명의 사람에게 통신 을 용이하게 해주고자 한다. 이들은 인터넷을 이용할 여력이 없기 때문이다. 그리고 인터넷 에 연결될 수 있는 사람들에게는 통신을 개 선해 주고 싶지만, 마비 사태를 겪고 있다. 이 런 마비는 대부분 혁명과는 관계없다. 마비는 종종 휴대전화 인프라 내의 고장과 결함 때 문에 일어나거나 밀집 장소들에서 과부화로 인해 발생하기도 한다.” 스타니슬라프 샬루 노프가 Russia포커스에 말했다.   파이어챗 앱 사용은 2014년 홍콩 시위 때 절정에 달했다. 당시 안드로이드 스마트폰

용 구글 플레이스토어에서 파이어챗은 ‘50 만 명에서 100만 명까지’ 이용자 범주에 진 입했다. 이 앱의 이용자 기반은 모스크바에 서 벌어진 시위와 샤를리 에브도 테러 이후 파리에서 일어난 휴대전화 신호 마비 사태 덕분에 더 성장했다.   개발자들은 현재 혁명 도구로서 앱의 이미 지를 털어내려고 애쓰고 있다. “사실 파이어 챗은 세계 곳곳의 다양한 시위 덕분에 인기 를 얻었다. 하지만 이런 혁명적 배경을 걷어 내는 것이 나의 과제라고 생각한다.” 안톤 메 르쿠로프 모스크바 파이어챗 대표의 말이다.

  파이어챗을 통해 소통하려면 이용자들이 60m 내에 있어야 한다. 그래서 이들 자신의 통신 네트워크인 P2P 그물형 네트워크를 형 성할 수 있다. 이 네트워크 안에서 메시지는 이용자들 사이에 전송된다. 파이어챗은 문자 메시지와 사진을 교환할 수 있게 해준다. 앞 으로 개발자들은 음성과 영상도 전송할 수 있게 되기를 바란다.   오픈가든은 지금 파이어챗의 일상적 사용 을 활성화하는 데 치중하고 있다. 현재 파이 어챗이 가장 인기 있는 나라 상위 4위에는 미 국과 홍콩, 인도, 러시아가 올라 있다.

러 암호화된 채팅규제 움직임  관리들 공무에 인기 메신저 사용 막아 엘레나 김

몇 달 전 카카오톡이 한국 정보기관에 해킹 을 당했다는 소문이 돌자 한국 이용자들은 텔레그램으로 대거 이동했다. 러시아 프로그 래머 파벨 두로프가 개발한 것으로 최고의 보안 기술을 갖고 있어 아직까지 해킹을 당하 지 않았다고 평가됐기 때문이다. 그 사건은 카카오톡 개발사에 큰 타격이었다. 그런데 최 근 두로프는 호주에서 일어난 학생들의 테러 기도와 심지어는 이슬람국가(IS) 테러리스 트들에 대해서도 여론의 질타를 받아야만 했 다. 이들 모두가 바로 텔레그램을 통해 테러 행동을 조율했기 때문이다.   Russia포커스는 국가가 암호화된 메신 저를 통한 통신을 더 엄격하게 규제해야 하 는지, 이용 편리성과 국가 안보 사이의 경계 는 어디까지인지 알아보기 위해 인터넷 전 문가이자 파이어챗 개발사 오픈가든의 안 톤 메르쿠로프 대표가 말했다. 메신저 시장 은 역사가 짧지만, 벌써 인상적인 수치를 자 랑한다. 왓츠앱(WhatsApp) 이용자는 8억 명, 중국의 큐큐(QQ) 이용자는 6억 명, 비 버(Viber) 이용자는 2억5000만 명이다. 메신 저용 앱은 게임과 뉴스, 쇼핑, 심지어는 송금 까지 모든 기능을 갖추고 있다. 메신저는 새 로운 소셜 네트워크다. 그래서 정보기관과 테러리스트, 혁명가들이 메신저에 주목했 다는 것은 놀랍지 않다.   2011년 영국에서 인종과 사회 문제로 대 중 소요가 일어났을 때 블랙베리 스마트폰 에 장착된 메신저가 대중 소요의 급속한 확 산을 불렀다는 점에서 비난을 받았다. 파이

지난해 야권 나발니 집회 막으려 페이스북 폐쇄  파이어챗도  차단

메신저 파이어챗)은 통신사가 제공하는 네트워크를 우회해 사용자 간의 소통을 가능하게 해 준 덕분에 저항운동의 도구로 인기를 얻고 있다. 파이어챗을 이용하면 인터넷에 접속하지 않고도 개인 간의 메시 지 전달이 가능하다. 

[일러스트 드미트리 디빈]

어챗 메신저도 비난을 받았다. 이 앱은 다 수의 모바일 기기를 네트워크로 통합해 주 는 통신 모듈을 이용하여 모바일 인터넷 없 이도 작동할 수 있다. 홍콩 시위 당시 거리를 가득 채운 인파로 통신이 마비되자 사람들 은 파이어챗을 통해 행동을 조율했다. 사람 들이 거리로 쏟아져 나올 위험성이 있는 국 가 정부들에서는 그때부터 무엇보다도 일반 적이고 일상적인 소통을 위해 사용되는 이 메신저를 싫어하고 있다. 작년 말 러시아에 서는 야권지도자 알렉세이 나발니를 지지 하는 집회 준비 과정에서 파이어챗 다운로 드 횟수가 폭발적으로 늘어났다. 이러한 움

직임은 러시아 대검찰청이 나발니 지지 집회 와 관련한 페이스북 페이지 접속을 차단한 직후인 12월 20일 시작됐다. 그후 열흘 만에 파이어챗은 러시아 앱스토어 SNS 카테고리 다운로드 순위 29위에서 10위로 성큼 올라 섰다고 블룸버그는 전했다. 그러자 29일 대 검찰청은 파이어챗의 기술도메인(firechat. s3.amazonaws.com)에 대한 접근 차단을 결 정했다. 하지만 파이어챗의 기술담당자는 그 에 따른 효과는 미미했다고 발표했다.   데이비드 캐머런 영국 총리는 제임스 코미 미국 연방수사국(FBI) 국장과 함께 국가 안 보라는 모호한 목적을 내걸면서 메신저들을 암호화하지 않아야 한다고 요구할 정도였다. 하지만 이 모든 것은 요란한 성명 수준에 그 치고 말았는데, 파벨 두로프도 그에 대해 비 판한 바 있다. 안전한 소통 권리는 쉽게 빼앗 지 못한다. 메신저의 경우 정보기관들은 더 집중적으로 들여다봐야 하기 때문에 대량 감 시를 할 수 없다. 메신저 비판자들은 근시안 적인 정치인들이나 경쟁력 없는 보안업체들 로부터 통신 수단 개발자들에게로 책임을 떠 넘기길 좋아한다. 하지만 중요한 점은 범행에 편리한 특별 기능, 다시 말해 ‘한 번의 클릭으 로 혁명하기’ 같은 스위치가 메신저에 없다 는 사실을 이해하는 것이다. 그런데도 비판자 들은 학생들이 런던 상점 진열창을 부수거나 이슬람 급진세력들이 새로운 희생자들을 인 질로 붙잡아 간 원인들에 대해서는 자주 망 각하곤 한다.   러시아에서도 암호화된 채팅 통신을 규 제하려고 한다. 연방보안국 국장을 역임한 니콜라이 파트루셰프 러시아 안보회의 서기

는 지난 8월 러시아 관리들이 업무 연락에 인기 메신저들을 이용해서는 안 된다고 밝 혔다. 이유는 무엇이었을까? 스파이와 외국 정보기관들에 대해 우려하기 때문이다. 하 지만 관리들이 이런 서비스를 이용해도 사 회적 통제가 불가능하다는 점에 대해서는 웬일인지 잊고 있었다.   그러나 러시아 관리들이 걱정하기에는 이 르다. 첫째, 정부가 승인한 대안 통신 플렛폼이 없다. 둘째, 메신저상의 업무 연락과 비공식 통 신을 구분하기가 곤란하다. 바로 지금도 텔레

그램에서 연방 장관들과 대통령 행정실 직원 들, 기타 관리들을 찾아낼 수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러한 규제 움직임은 자신들에게 까지 불통이 튈까 우려하는 러시아 일반 이용 자들을 특히 불안하게 만든다. 에드워드 스 노든의 이야기와 감시, 전면적 사이버 위협들 에 놀란 이용자들은 확실하고 안전한 통신을 원한다. 메신저가 이런 문제를 정치적인 방법 이 아닌 기술적인 방법으로 해결해 주고 있다 는 점을 고려할 때 정부에는 어떤 기회도 없 다. 정부가 우리의 통신을 통제할 수는 없다.

소득수준이 높은 러시아인의 수가 2013년 이 후 2년 사이 약 5%가 줄어든 것으로 최근 조 사에서 나타났다. 이런 현상이 의미하는 바 는 무엇인가. 일부 연구자들은 이 자료가 러 시아 중산층이 감소하고 있음을 보여준다고 말하고 있지만, 서구식 의미의 중산층이 러시 아에 존재하는지 확신하지 못하는 사회학자 도 많다.   2015년 8월 발표된 러시아 정부 산하 재정대 학교 사회학부의 연구에 따르면, 지난 2년 새 러시아 중산층 수가 크게 줄었다. 2013년의 경 우 응답자의 18%가 차를 사고 의료·교육비를 낼 수 있고 가족과 해외여행을 할 여력이 있다 고 했다. 하지만 2015년 1~7월 조사에서는 그 숫자가 5% 감소해 현재 13%로 줄었다.   중산층의 조건은 ‘구매능력’=연구 책임 자 알렉세이 주베츠 사회학부장은 “조사에 따르면 결론은 러시아 중산층이 감소했다는 것”이라고 평가했다. 주베츠 교수는 Russia 포커스와의 인터뷰에서 “누군가를 중산층 으로 분류할 때 조건은 생활을 윤택하게 해 주는 승용차, 고급 가전제품과 자녀들을 사 립학교에 보낼 수 있고 가족과 함께 해외여 행을 떠날 수 있는 특정 상품과 서비스 품목 을 이용할 수 있는지 알아보는 것이 유용하 다”고 설명했다.   여론조사기관 ‘레바다센터’의 전문가 마 리나 크라실니코바도 주베츠 교수의 견해에 동의했다. 크라실니코바는 “소득수준이 높 은 사람들의 수가 지난 2년간 줄어들었다”고 Russia포커스에 전했다. ‘레바다센터’의 통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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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차 사고 가족 해외여행할 여력 2년 전 소득 조사서 18%였으나 경기침체 지속에 올 13%로 줄어 소득교육 수준에 전문능력 고려 중산층 용어, 러엔 부적절 지적도

"중산층으로 올라가는 것이 이제 사실상 불가능해졌다. 사회적 사다리가 더 이상 작동하지 않는 탓"이라고 타티야나 말레바 사회정책연구소장은 말한다.  [로이터]

자료도 재정대학교 자료와 일치한다. 크라실 니코바의 말에 따르면, 2013년에는 응답자의 30~33%가 자신들의 소득수준이 높은 편이라 고 밝혔지만, 현재는 5% 감소해 최대 26%다.   원인과 전망=전문가들은 소득수준이 높 은 러시아인 수가 크게 감소한 원인이 경제 상황 때문이라고 입을 모았다. 알렉세이 주베 츠 교수는 “경제 악화로 국민의 지불능력이 하락하고 따라서 국민의 은행 대출 능력도 감 소하고 있다. 예를 들면 자동차를 구입하고 다른 고가의 상품과 서비스를 이용할 수 있 는 사람들의 수가 점점 줄어들고 있다”고 말 했다. 2015년 5월 러시아의 자동차 판매는 전년 동기 대비 37.6% 줄었다.   하지만 향후 상황이 어떻게 변할지 전망에

대한 평가에서는 의견이 엇갈렸다. 주베츠 교 수는 “상황이 더 악화될 가능성은 그리 크지 않다. 경제 위기에 기인한 경기침체의 최저점 을 통과했기 때문에 중산층도 차츰 회복되기 시작할 것”이라고 확신했다. 이와는 반대로 크라실니코바는 “앞으로 상황이 호전될 만 한 근거가 보이지 않는다”며 현 상황에서 경 기가 회복될 수 있을지 확신하지 못했다.   프치옴의 발레리 표도로프 대표는 위험 한 영역에 지금은 젊은 층들만 있다. 이들은 다른 삶-다시 말해 배고프고 위험한 삶-을 보지 못한 말하자면 중산층의 부서지기 쉬운 아이들이라고 말했다. 그들에게 위기는 마 치 이마를 강타당한 것과 같다. 일부는 지금 제3의 눈을 뜨지 못한다. 이 젊은 층은 현실이

이케아의 카탈로그에서 본 것과는 조금 다를 수 있다는 것을 느끼기 시작한다고 말한다.   러시아에 과연 중산층은 존재하는가=이와 동시에 크라실니코바는 소득수준이 높은 러 시아인들에 대해 ‘중산층’이라는 용어를 사 용하는 것이 부적절하다고 평가했다. 그는 “서구사회에서 중산층을 정의할 때 일정 소 득수준뿐 아니라 교육수준과 전문능력도 고 려한다. 반면 러시아에서는 소득수준이 교육 수준에 부합하지 않는 경우가 더러 있다. 게 다가 소득수준이 높은 러시아 국민은 관료계 층에 해당하는 경우가 많다. 다시 말해 이들 은 정부에 종속돼 있다. 따라서 고전적 의미 의 중산층은 아니다”고 말했다.   알렉산드르 체푸렌코 고등경제대학 사회

학부장은 러시아 사회학계에 중산층 개념이 정립돼 있지 않다고 말했다. 그는 “일각에서 는 순수하게 ‘경제적인’ 접근법만으로 일정 소득수준에 있는 사람을 중산층으로 분류하 고, 다른 일각에서는 세 가지 기준(소득수준, 교육수준, 자아상(自我像))을 사용한다. 또 다른 일각에서는 동심원 구조를 이용한다(중 산층의 모든 분류 기준에 부합하는 사람들은 중앙에, 중산층의 몇몇 특징을 보이는 사람 들은 그 다음에, 몇몇 특징 가운데서 하나라 도 갖고 있는 사람들이 그 다음에 위치한다 는 의미). 따라서 중산층 비율도 최저 6~8%, 최대 35~40% 사이를 오르내린다. 하지만 이 러한 평가도 현재의 경제 침체가 시작되기 이 전 기간에 해당한다”고 말했다.

루블화 유동성 공급 확대 논쟁  러 정부 내서도 찬반 팽팽

잉여 자금이 인플레이션 불러 vs 경제 활력 위해 양적 완화 필요 알렉세이 롯산

세르게이 글라지예프 대통령 경제고문이 지 난 10월3일 소치 국제투자 포럼에서 “경제 성장 촉진을 위해 러시아 정부가 통화 발행 확대를 시작해야 한다”고 발표했다. 그는 경 제부문에서 국가의 역할 증대를 적극 지지 하는 인물이다.   그는 이어 “(러시아 경제가 침체돼 있는) 현재 중앙은행이 적절하지 않은 정책을 취 하고 있다. 모든 은행 대출업무의 지침이 되 는 주요 지표인 기준금리를 높게 책정하는 것과 같은 방법으로 러시아 내 유동성 공급 을 제한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러시아 중앙 은행은 지난 9월 11일 올해 들어 처음으로 기준금리를 11%대로 고정했다. 이는 기업이 이보다 낮은 금리로 대출을 받을 수 없게 됐 다는 의미다. 중앙은행이 기준금리를 두 자 릿수로 높게 유지함으로써 인플레���션을 억 제하려는 것이다. 경제개발부는 올해 물가 상승률이 12%를 상회할 것으로 전망하고 있다. 이는 러시아가 최악의 경제 위기를 겪

중앙은행 고금리로 인플레 억제 대통령 경제고문 기업 활동 위축

은 1990년대 말 이후 기록적인 수치다.   글라지예프는 고금리 환경에서 기업 내 유보자금이 바닥을 보이면 제품의 가격 인 상을 추진하지 생산량을 확대하지 않는다고 생각한다. 그는 “러시아 내 생산자원이 제한 된 게 아니라면 유동성 공급을 확대해도 된 다. 모든 생산자원이 동원되기 전까지는 말 이다. 그런 경우에는 인플레이션 우려는 없 을 것이다. 게다가 통화 발행의 목적이 경제 혁신성을 높이는데 있다면 물가는 낮아질 것”이라고 주장한다. 그는 특히 중국에서는 최근 들어 양적완화를 확대하고 있지만 물 가는 오르지 않고 있다며 모든 생산력이 가 동되는 상태에서 유동성 공급을 늘릴 경우 에만 인플레이션이 발생하는 것이라 했다.

  러시아 재무부 장관과 중앙은행 총재는 글라지예프의 이러한 주장에 반대의 입장 을 고수해 왔다. 특히 중앙은행 총재는 더 그 렇다.   옐비라 나비울리나 중앙은행 총재와 알렉 세이 울류카예프 경제개발부 장관은 알렉세 이 쿠드린 전 장관과 1990년대 러시아 내 자 유 개혁지침을 마련한 예고르 가이다르의 노 선을 따르고 있다. 이 두 사람은 국가의 주요 과제 중 하나가 유동성 조절이라고 본다. 이 들의 이론에 따르면 국가는 추가로 통화(루 블화)를 발행할 수 없을 뿐만 아니라 과도한 석유 달러를 시장에서 회수해야 한다.   글라지예프는 러시아 대통령의 경제 고문 임에도 불구하고 사회주의 경제관을 견지하 고 있다. 그의 입장은 러시아 정부의 관점과 현저하게 대비되고 있다. 특히 블라디미르 푸틴 대통령의 가까운 친구로 간주되는 알 렉세이 쿠드린 전 재무장관은 글라지예프의 의견에 대해 강력하게 반대한다. 이 밖에 나 비울리나 중앙은행 총재와 울류카예프 경 제개발부 장관과도 여러 차례 공개 토론을

벌였는데, 두 사람 모두 잉여 자금은 경제 에 해롭고 인플레이션 압박으로 이어진다는 통화 이론을 신봉하고 있다. 글라지예프와 는 견해가 전혀 다르다.   그러나 글라지예프의 주장을 지지하는 의견도 있다. 기업인 권익 대표 옴부즈맨(러 시아 내 사업계를 보호하기 위해 마련된 특 별 직책)인 보리스 티토프는 “자금이 미래 사업에 확실하게 투자되고 외환시장에 들어 가지 않는다면 유동성 공급을 확대해도 괜 찮다”고 주장한다.   “이 루블화 추가 발행으로 늘어난 유동성 은 외환시장으로 흘러 들어갈 수 없는게 러 시아 경제 시스템이다. 특수 체계가 외환시 장 내 발행한 돈의 사용을 제한하기 때문”이 라고 말했다.   대외경제은행의 운영부장이자 경제학자 인 안드레이 클레파치는 “개혁에 중앙은행 의 책임 범위 변경도 반드시 포함돼야 한 다”고 중앙은행을 비판한다. 그는 “중앙은 행의 책임으로 국가화폐의 안정성 보장이 라는 과제가 명시돼 있다. 이와 관련해 이

책임 범위를 어떻게 바꿔야 할지에 대해 많 은 이견이 있었다. 특히 중앙은행이 경제발 전을 지원해야 한다고 반드시 법률에 명시 할 필요가 있다”고 주장했다. 그는 “러시아 중앙은행이 실물경제에 일어나고 있는 일 에 관심을 기울여야 한다”며 “사실상 러시 아 GDP 추계는 잠재 GDP보다 낮다. 현재 발생하는 일들로 인해 러시아의 잠재 GDP 가 떨어지고 있다. 즉 앞으로 경제발전 여 건이 점점 나빠지고 있는 것”이라고 덧붙였 다. 그는 중앙은행이 투자와 중소기업을 지 원하기 위해 새로운 제도들도 다양하게 구 사해야 한다며 일부 구체적인 프로젝트에 저금리로 대출을 해주는 방안 등을 예로 들었다.   2015년 초 러시아 내 수입대체를 지원하 기 위해 설립된 산업발전기금은 이미 낮은 금리로 기업대출을 실시하고 있다. 알렉세 이 코미사로프 산업발전기금 대표는 연 5% 금리로 대출을 제공한다고 Russia포커스에 밝혔다. 이는 러시아 내 인플레이션율보다 훨씬 낮은 수준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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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국제

2015년 10월 30일 금요일

┃ 국제

section sponsored by Rossiyskaya Gazeta, Russi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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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리아 내전 개입  러시아에 실익 있나

시리아 주변국들 야당 수니파 지지  주둔 기간 길어질수록 정치경제 문제 직면할 것 이고리 그레코프

중동의 여느 다른 전쟁과 마찬가지로 시리 아 전쟁에도 경제적 이해 관계가 걸려 있다. 세계 최대 석유가스 매장지와 직접 이어져 있는 지역, 다시 말해 수많은 송유관과 가스 관이 근처를 통과하고 또 설계되고 있는 지 역에서 전쟁이 벌어지고 있기 때문이다. 따 라서 시리아 전쟁 자체와 러시아의 참전은 불가피하게 러시아에 장단기적인 영향을 미칠 것이다.   시리아 자체는 국제 탄화수소연료(석유 가스) 시장에서 거대 행위 주체가 아니다. 2000년대 초 최대 호황기에도 시리아는 전 세계 산유량의 0.6%를 조금 웃도는 하루 52 만 배럴 남짓만 생산했다. 시리아에서 내전 이 시작되고 유럽이 제재를 시작하자 산유 량은 급속히 줄어들기 시작했다. 공식 통계 에 따르면 2015년 초 시리아의 산유량은 하 루 3만 배럴 남짓이었다.   시리아의 가스 채굴량도 현재 연간 약 55 억㎥(2010년 90억㎥)로 국제 기준으로 대규 모는 아니다. 그래서 시리아 전쟁이 어떻게 전개되든, 내전에서 누가 승리하든, 시리아 석유가스 산업의 상황이 어떻게 되든 국제 석유 시장에 심각한 영향을 미치지는 않을 것으로 볼 수 있다.   1995~99년에 세계은행 제1부총재를 지 낸 세르게이 알렉산셴코 브루킹스연구소 (워싱턴 소재) 선임 연구원은 시리아 분쟁 에 대한 직접 개입이 러시아에 훨씬 더 심 각한 경제적 결과를 초래할 수도 있다고 Russia포커스에 논평했다. 그는 러시아 당국은 러시아 공군이 이슬람국가(IS) 거 점에 폭격을 가하고 있다고 하지만, 역내 다수의 소식통은 바샤르 알아사드 시리아 대통령의 정부군에 맞서 싸우고 있는 시리 아 ‘온건’ 야당이 폭격의 주요 표적이라고 주장한다고 말했다.   그는 터키와 사우디아라비아 등 역내 핵 심 국가들이 시리아 수니파 야당을 지지하 고 있다는 점을 고려한다면, 러시아 군대의 시리아 내전 개입이 길어질수록, 규모가 커 질수록 역내에서 러시아는 그만큼 더 많은 정치적경제적 문제에 직면할 것이라고 전 망했다.   예를 들면, 러시아 직접투자기금이 사우 디와 아랍에미리트 국부펀드와 투자 파트 너십 구축에 대해 발표했다. 이들 펀드는 러 시아 내 프로젝트들에 각각 100억 달러와 70 억 달러를 투자할 용의가 있다고 밝혔다. 서 방 금융자본 시장이 러시아 은행과 기업들 에 사실상 폐쇄된 상황에서 페르시아만 국 가들의 자본은 가능하고 바람직한 대안 가 운데 하나로 러시아 정부는 간주하고 있다.

중동에서 큰 파티는 한 번도 없었다

러시아, IS 격퇴 명분 참전했으나 소식통들 미국 지원 반군이 표적

강대국들 역사적 교훈 잊어선 안 돼

시리아 야당 지지, UAE사우디 러시아에 투자 계획 백지화 우려

표도르 루키야노프 민간 외교자문단체 ‘외교국방정책회의’ 의장

유럽 진출 노리는 카타르 천연가스 아사드 실각 땐 가스프롬에 위협돼

 러시아의 대형 IL-76 수송기가 지난 3일 시리아의 흐메이밈 러시아 공군 기지를 이륙하고 있다. 왼쪽 전투기들은 최신형 Su-34전술 폭격기다.  러 군인들이 전폭기에 폭탄을 장착하고 있다.  전폭기에서 폭탄이 투하되고 있다.  폭격을 받고 있는 라카알레포의 IS 시설(러 국방부가 유튜브에 올린 동영상 캡쳐).

시리아에서 러시아군의 군사 작전이 장기화 할 경우 이들 계획의 실행 가능성은 급격히 줄어들 것임이 분명하다.   그는 “시리아에서 러시아의 군사 작전은 단기적으로 러시아에 심각한 손해(비용)도 초래하지 않고 눈에 띄는 이익도 전혀 약속 해 주지 않는다. 그러나 시리아 내전 개입이 더 심각해지고 장기화할 경우 러시아는 눈 에 띄는 경제적 손실에 직면할 수도 있다”고 결론지었다.   알아사드 시리아 정권이 전복되면 유럽 가스 시장의 균형이 깨질 위험이 있다. 그렇 게 되면 카타르가 시리아를 거쳐 터키까지 곧장 이어지는 가스관을 건설할 수도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정치학자들은 러시아에서

금지된 단체인 IS 출신으로 시리아에서 싸 우고 있는 테러리스트들이 자신들의 ‘후원 자들’로부터 지나치게 자유로워져서 심지어 알아사드가 패배할 경우에도 시리아의 경우 가스관 건설이 매우 위험한 사업이 될 것이 라고 말했다.   투자회사 ‘골든 힐스 캐피털 AM’의 분석 실장 미하일 크릴로프는 “알아사드 정권이 전복되면 카타르가 터키를 거쳐 유럽으로 이어지는 가스관을 건설해 유럽에서 가스 프롬을 밀어낼 수도 있다”고 인터넷 신문 가 제타.루에 말했다.   그는 카타르에는 세계 최대의 가스전 가 운데 한 곳(약 25조㎥)이 있다고 지적했다. 여기에서 터키로 곧장 이어지는 가스관을

세르비아 국경 지대에 수 천 명 난민이 모여 있는 가운데 지난 9월 21일 한 여성이 아이들과 함께 새로 도착하는 난민들을 맞으러 걸어가고 있다. [게티 이미지]

매설할 경우 가스관 노선 길이는 1800km에 불과하다. 발트 해저를 경유해 독일 연안까 지 가스를 수송하는 러시아의 ‘노스 스트 림’ 가스관 길이가 1224km로 더 짧다는 주 장도 있지만 이는 시베리아에서 출발하는 가스 수송로를 고려하지 않은 것이다.   최근 몇 년간 가스프롬은 유럽 시장의 가 스 약 25~30%를 공급하고 있다. 크릴로프 의 말에 따르면, 카타르의 시장 점유율은 이 것의 4분의 1 수준이지만 카타르가 가스관 을 건설할 경우 점유율이 늘어날 수 있다. 이와 함께 가스프롬의 수출량은 줄고 있다. 2015년 상반기 결산 결과 가스프롬의 수출 은 2014년 동기 대비 8% 감소한 742억7500 만㎥를 기록했다.   투자관리 회사 ‘스푸트니크 투자관리’의 알렉산드르 로세프 사장은 시리아 전쟁의 ‘작은 승리’가 유가 상승과 루블 강화로 이 어질 수도 있다고 밝혔다. 그의 말에 따르면, 러시아가 시리아에서 진지하고 책임 있는 대외정치 행위 주체로 등장해 유럽과 중동 에서 지지를 얻고 있으며 이는 루블화에 긍 정적인 요인이다.   로세프 사장은 “러시아의 시리아 지원 노력이 몇 달 안에 성공을 거둬 유럽연합 (EU)으로 수십만 명이나 쏟아져 들어가 유럽 경제 안정과 EU 통합을 위협하고 있 는 시리아 난민들이 고향으로 돌아올 여건 을 조성할 수 있다면, 이는 러시아와 유럽 의 관계 정상화로 충분히 이어질 수도 있고 다른 분쟁 해결의 접점으로 가는 길도 열 어줄 것이다. 이는 루블화를 위해서나 러시 아 경제 전체를 위해서도 긍정적인 계기가 될 것이다. 그럴 경우 달러화 대비 루블 환 율의 적정 범위는 45~50루블 선이 될 수도 있다”고 내다봤다.

시리아 난민 아흐마드

[리아 노보스티]

“내 한 몸이면 몰라도  가족 위해 안전한 모스크바 왔다

플로라 무사, 파벨 코시킨

2011년 정치 혼란 속 폭격 이어지고 급진파가 이단자로 몰아 재산 몰수 관광 비자로 러 도착, 피란처 생활 러시아 정부 난민 지위 연장 거부 공항 환승 구역서 미아 될까 걱정

동양에서든 서양에서든 ‘집이 최고’라고 말 한다. 하지만 전쟁으로 파괴된 조국을 떠나 유럽으로 정처없이 떠나는 많은 시리아 난민 에게는 먼 나라 얘기나 마찬가지다. 지금은 모스크바 남서부의 아파트에 살게 된 시아파 이슬람교도 아흐마드(40사진)에게도 그렇다.   2011년 시리아 내전이 발발했을 때 아흐 마드의 가족이 살고 있던 집, 학교 위로 포 탄이 날아들었다. 많은 이웃 사람이 죽었다. 아흐마드는 아내와 두 아이를 살리기 위해 선 피란을 떠나야 한다고 생각했다.   아흐마드는 “내 한 몸은 몰라도 가족을 보살피기 위해 더 안전한 곳을 찾고 싶었다” 며 “그래서 우리는 모스크바로 왔다. 우리는 유엔 난민기구에 난민 신청서를 제출했고 난민기구가 추천서를 써줬다”고 말했다.   아흐마드는 시리아에서 내전이 시작되기 전까지 시리아의 수도 다마스쿠스에서 약 6.5km 떨어진 작은 도시 알말리하에서 살 았다. 그는 의류사업과 양계사업을 동시에 했다. 아내는 다마스쿠스에서 학교 교사로 일했다.   2011년 정치적 혼란에 이어 폭격과 총격 이 시작되면서 아흐마드의 상점이 파괴되었 다. 급진파가 그를 이단자로 간주해 재산을 압수했다. 아흐마드가 다마스쿠스로 떠나 려고 했을 때 폭격은 점점 더 심해지기 시작 했다.   아흐마드는 2013년에 관광 비자로 러시아 로 피해 임시 피란처를 받았고 모스크바의 한 식당에서 일했다. 하지만 2014년 러시아

이민청은 그의 난민 지위 연장을 거부했다. 당시 러시아가 우크라이나 동부 돈바스에서 일어난 분쟁을 피해 러시아로 대거 유입된 난민들의 문제를 해결하는 데 어려움을 겪 었기 때문이었던 것 같다.   아흐마드는 현재 자신의 난민 지위에 대 해 법원의 결정을 기다리는 가운데 러시아 에서 계속 합법적으로 살고 있다. 아흐마드 와 그의 아내는 자신들이 러시아에 정착해 아주 잘 동화되었다고 느낀다. 자녀들도 성 공적으로 적응했다. 아이들은 이곳에 온 지 2년밖에 안 됐지만, 러시아어를 악센트가 거 의 없이 유창하게 구사한다. 현지 학교에 다 니면서 러시아 학우들과 이웃 자녀들과도 친구가 되었다.   “나와 아내가 러시아어를 잘 하지 못하기 때문에 아이들이 우리를 놀려 줄 셈으로 자 기들끼리 러시아어로 말한다”며 아흐마드 는 웃었다. “우리 아이들이 러시아어 공부를 더 했으면 좋겠다. 우리는 어쩌면 영원히 이 곳에 있을지 모르기 때문이다.”   아흐마드가 러시아에 남아 살려면 직면 할 수밖에 없는 핵심 문제는 한마디로 신분 증명 서류다. 그에게는 난민 지위가 있지만 러시아에서 생활을 쉽게 하려면 신분 증명 서류가 필요하다. 그가 모스크바를 자유롭 게 돌아다닐 수 없고 자신과 가족을 부양할 수 있는 확실하고 안정된 직업을 찾을 수 없 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그는 모스크바에 이 미 자리 잡은 시리아 친구들의 도움을 받고 있다.

  아흐마드는 안정과 자립, 자녀의 미래를 가장 염려한다. 그는 “이곳에서 보통 사람 으로 살 수 있도록 모든 서류를 갖춰 자립 하고 싶다. 그저 안정이 필요할 뿐이다. 사 업도 하고 싶다. 커피 가게를 열어 우리 아 이들에게 안전하고 근사한 미래를 제공해 주고 싶다”고 말한다. 그는 “자신의 예측하 기 어려운 입장을 심리적으로 극복하기 어 렵다”고 말하면서 “언젠가는 서류를 갖춰 자유롭게 돌아다니고 일도 할 수 있길 바 란다”고 덧붙였다.   아흐마드가 걱정하는 데는 그만한 이유가 있다. 또 다른 시리아인 하산(40)은 심란한 이 야기를 들려주었다. 그는 러시아에 남기가 어 려워지자 터키를 거쳐 유럽에 들어가려고 했 다. 하지만 그는 자신을 받아줄 나라가 없어 러시아 공항의 환승 구역에 갇히게 됐다. 그 는 현재 공항에 갇혀 한 달 이상 보내고 있다 고 Russia포커스에 말했다.   이것은 어쩌면 유럽 국가들의 국경에 갇 혀 경찰 기동대와 맞닥뜨리는 수천 명의 다 른 절망적인 시리아인 앞에 놓인 악몽 같은 시나리오는 아닐지 모른다. 하지만 중간지대 의 삶이 전쟁 지역의 삶보다는 조금 더 나을 수도 있다.   이런 상황과 관련 드미트리 페스코프 러 시아 대통령 공보실장은 “시리아인들이 러 시아를 경유지로 자유롭게 사용할 수 있지 만, 현재의 위기를 낳고 있는 정책을 추진하 는 나라들이 파국적인 상황에 대한 책임을 져야 한다”고 말했다.

2015년 가을은 러시아 정치사에서 또 하나 의 이정표가 되고 있다. 러시아는 4반세기 여 만에 처음으로 대규모 해외 군사 작전을 수행하고 있다. 이번 작전의 계기는 ‘정치적 으로 올바른’ 중재에서 나온 것이 아니라 완 전히 전략적인 차원에서 나왔다. 러시아는 테러 격퇴를 위한 국제 연합 결성을 촉구하 고 있지만, 독자적으로라도 작전할 준비가 돼 있음을 분명히 하고 있다.   러시아가 자국 국경 밖 멀리에서 군사 작 전을 수행하게 된 동기는 이해할 만하다. 러 시아가 불법으로 간주하는 이슬람국가(IS) 는 의심할 여지 없는 러시아의 적이다. 여기 에다 블라디미르 푸틴 대통령의 정치 감각 도 발휘됐다. 그는 상황을 타개할 기회를 포 착하며, 다른 사람들의 이니셔티브에 반응 하는 게 아니라 다른 사람들이 자신의 이니 셔티브에 반응하도록 했다. 러시아가 군사적 기회를 과시하는 것은 목표가 아니다, 그것 은 하나의 사실이다. 이란에서 레바논에 이 르기까지 역내 주요 파트너 그룹이 형성된 것도 마찬가지다.   위험 요인들은 훨씬 더 분명하다. 러시아 는 분쟁 당사자 가운데 하나인 시리아 바샤 르 알아사드 정권 편에 서서, 이슬람 세계의 수니파 다수에 맞서 시아파 소수와 (일시적 이나마) 연대하며 종교 전쟁에 사실상 참여 하고 있다. 그러려면 신중한 정책을 수립해 야 한다. 그렇지 않을 경우 러시아 이슬람의 종교적 특성을 고려할 때 국내 정치에서 피 해 규모가 클 수도 있다.   이슬람 테러리스트들에게 심각한 피해를 가하는 것은 거의 모든 관련 진영에게 이익 이다. 하지만 러시아의 작전이 성공하면 러 시아의 영향력뿐 아니라 시리아 알아사드 정권의 입지도 강화될 수 있기 때문에 미국 과 그 동맹국들의 태도는 확실히 부정적일 것이다. 러시아와의 직접적인 대립으로 이어 지게 될지는 예단하기 어렵다. 모두가 과거 경험에서 어떤 교훈을 얻었을 가능성이 있 다. 어쨌든 최상의 경우 주요 행위주체들은

중립을 유지할 것이다. 하지만 불꽃 튀는 정 보 전쟁은 피할 수 없으며 이미 시작됐다.   현재 벌어지고 있는 전쟁에서 주요 강대 국들의 딜레마는 이 전쟁에서는 승리 개념 이 없다는 것이다. 군사 작전들은 거의 전적 으로 정권 교체를 목적으로 수행됐고 아프 가니스탄과 이라크리비아에서는 이 목적 이 최종적으로 달성됐다. 하지만 승리를 공 개적으로 선포하는 것은 꺼려했다. 게다가 바람직하지 않은 권력 자체는 한 번도 말살 되지 않았다. 군사적인 성공을 거둔 승리자 는 국가 건설에 뛰어들어야만 했고(아프가 니스탄이라크) 여기에 큰 비용을 들어갔지 만 결과는 만족스럽지 못했다. 또는 그 나라 를 폐허 속에 남겨 놓은 채 물러나야만 했다 (리비아). 어쨌든 ‘퇴각 전략’을 탐색하는 것 이 결국 모든 군사 작전의 목표가 되었다.   물론 러시아의 시리아 군사 작전과 2000 년대 초 미국과 나토의 군사 작전 사이에는 기본적으로 하나의 차이가 있다. 러시아는 현 정권을 교체하려 하지 않고 오히려 유지, 강화하려고 한다. 알아사드 시리아 대통령 의 정통성이 없고 시리아 영토의 상당 부분 을 효과적으로 통제하지 못하는 현실에 대 해 뭐라고 말하든 세력이 상당히 약화됐다 해도 정규군 및 행정기구와 협력하는 것은 반군을 지원하는 것보다 더 많은 기회를 제 공한다.   하지만 그렇다 해도 이는 목표한 상황이 계획대로 전개되지 않을 경우 ‘퇴각 전략’ 문제에 해답을 주지 못한다.   미국 공군은 시리아 위기 시 기지가 있는 터키로 돌아가면 되지만 시리아에 주둔하는 러시아 공군은 이 나라에 주둔하고 있어 돌 아갈 길이 없다는 게 문제다.   모든 전쟁은 어느 순간 정치적 편의주의 를 압도하는 자체 논리를 갖고 있다. 그래서 소용돌이에서 벗어나기가 어렵다. 이는 중 동에서 큰 파티를 벌이려고 했던 거의 모든 강대국의 경험에서 입증되고 있다. 중동의 역사는 한 가지 교훈을 가르쳐 준다. 중동에 서는 상황이 계획대로 진행된 적이 한 번도 없었다는 것이 바로 그것이다. 이를 잊어서 는 안 된다.

▶R1서 계속

러시아인 대부분 시리아 상황 관심조차 없어 레온티 비조프 러시아 과학아카데미 복합사 회연구소 선임 연구원

  러시아 사람들은 중동 정치의 복잡 미 묘한 상황을 잘 알지 못한다. 그에 관해 뭔 가를 알고 있다면 ‘아랍인’과 ‘이스라엘’ 같은 소련 시절의 낡은 고정관념에서 나온 것일 뿐이다. 시리아 국내 상황과 시리아 의 다양한 이슬람교 종파에 관해서도 러시 아 사람들은 잘 알지 못하며, 심지어 관심 조차 없다. 하지만 러시아인들은 푸틴 대통 령이 더 많은 것을 알고 있고, 연방회의(상 원)가 파병을 지지했다면 십중팔구 그렇게 해야만 했으리라고 생각하고 있다. 이 점 은 시리아에서 누가 무엇을 위해 싸우고 있 는지 더 자세히 물어보면 드러나는 사실이 다. 시리아는 이전과 마찬가지로 실제 위협 으로 인식되지 않고 있으며, 이 주제를 뉴 스 전면에서 제거하면 다음날 그에 대해 잊 어버리고 기억조차 하지 않는다. 중요한 점

은 러시아의 시리아 전쟁 개입이 장기화하 지 않는 것이다. 전쟁이 장기화하면, 여론 도 나빠진다.   미하일 코로스티코프 국제정치학자, 모스 크바국립경제대학교(МЭСИ) 전략발전학과장

  중요한 점은 분명한 적이 있어야 하고, 러시아의 이미지가 미국보다 더 좋아야 한 다는 것이다. 이것만으로도 충분하다. 시 리아에서 구체적으로 무슨 일이 벌어지 고 있느냐는 그리 중요하지 않다. 현재 러 시아 사회에는 바로 이런 추세가 존재하고 또 당분간 계속될 것이다. 고등경제대학의 최근 연구는 러시아 여론이 1년 동안 얼마 든지 다른 방향으로 바뀔 수 있음을 보여 주었다. 중국과의 관계가 대표적인 사례 다. 2년 전에 중국은 러시아의 동맹국으로 보이지 않았지만, 지금은 모든 설문조사에 서 중국이 러시아의 최대 동맹국으로 나 타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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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국제

2015년 10월 30일 금요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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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리아 내전 개입  러시아에 실익 있나

시리아 주변국들 야당 수니파 지지  주둔 기간 길어질수록 정치경제 문제 직면할 것 이고리 그레코프

중동의 여느 다른 전쟁과 마찬가지로 시리 아 전쟁에도 경제적 이해 관계가 걸려 있다. 세계 최대 석유가스 매장지와 직접 이어져 있는 지역, 다시 말해 수많은 송유관과 가스 관이 근처를 통과하고 또 설계되고 있는 지 역에서 전쟁이 벌어지고 있기 때문이다. 따 라서 시리아 전쟁 자체와 러시아의 참전은 불가피하게 러시아에 장단기적인 영향을 미칠 것이다.   시리아 자체는 국제 탄화수소연료(석유 가스) 시장에서 거대 행위 주체가 아니다. 2000년대 초 최대 호황기에도 시리아는 전 세계 산유량의 0.6%를 조금 웃도는 하루 52 만 배럴 남짓만 생산했다. 시리아에서 내전 이 시작되고 유럽이 제재를 시작하자 산유 량은 급속히 줄어들기 시작했다. 공식 통계 에 따르면 2015년 초 시리아의 산유량은 하 루 3만 배럴 남짓이었다.   시리아의 가스 채굴량도 현재 연간 약 55 억㎥(2010년 90억㎥)로 국제 기준으로 대규 모는 아니다. 그래서 시리아 전쟁이 어떻게 전개되든, 내전에서 누가 승리하든, 시리아 석유가스 산업의 상황이 어떻게 되든 국제 석유 시장에 심각한 영향을 미치지는 않을 것으로 볼 수 있다.   1995~99년에 세계은행 제1부총재를 지 낸 세르게이 알렉산셴코 브루킹스연구소 (워싱턴 소재) 선임 연구원은 시리아 분쟁 에 대한 직접 개입이 러시아에 훨씬 더 심 각한 경제적 결과를 초래할 수도 있다고 Russia포커스에 논평했다. 그는 러시아 당국은 러시아 공군이 이슬람국가(IS) 거 점에 폭격을 가하고 있다고 하지만, 역내 다수의 소식통은 바샤르 알아사드 시리아 대통령의 정부군에 맞서 싸우고 있는 시리 아 ‘온건’ 야당이 폭격의 주요 표적이라고 주장한다고 말했다.   그는 터키와 사우디아라비아 등 역내 핵 심 국가들이 시리아 수니파 야당을 지지하 고 있다는 점을 고려한다면, 러시아 군대의 시리아 내전 개입이 길어질수록, 규모가 커 질수록 역내에서 러시아는 그만큼 더 많은 정치적경제적 문제에 직면할 것이라고 전 망했다.   예를 들면, 러시아 직접투자기금이 사우 디와 아랍에미리트 국부펀드와 투자 파트 너십 구축에 대해 발표했다. 이들 펀드는 러 시아 내 프로젝트들에 각각 100억 달러와 70 억 달러를 투자할 용의가 있다고 밝혔다. 서 방 금융자본 시장이 러시아 은행과 기업들 에 사실상 폐쇄된 상황에서 페르시아만 국 가들의 자본은 가능하고 바람직한 대안 가 운데 하나로 러시아 정부는 간주하고 있다.

중동에서 큰 파티는 한 번도 없었다

러시아, IS 격퇴 명분 참전했으나 소식통들 미국 지원 반군이 표적

강대국들 역사적 교훈 잊어선 안 돼

시리아 야당 지지, UAE사우디 러시아에 투자 계획 백지화 우려

표도르 루키야노프 민간 외교자문단체 ‘외교국방정책회의’ 의장

유럽 진출 노리는 카타르 천연가스 아사드 실각 땐 가스프롬에 위협돼

 러시아의 대형 IL-76 수송기가 지난 3일 시리아의 흐메이밈 러시아 공군 기지를 이륙하고 있다. 왼쪽 전투기들은 최신형 Su-34전술 폭격기다.  러 군인들이 전폭기에 폭탄을 장착하고 있다.  전폭기에서 폭탄이 투하되고 있다.  폭격을 받고 있는 라카알레포의 IS 시설(러 국방부가 유튜브에 올린 동영상 캡쳐).

시리아에서 러시아군의 군사 작전이 장기화 할 경우 이들 계획의 실행 가능성은 급격히 줄어들 것임이 분명하다.   그는 “시리아에서 러시아의 군사 작전은 단기적으로 러시아에 심각한 손해(비용)도 초래하지 않고 눈에 띄는 이익도 전혀 약속 해 주지 않는다. 그러나 시리아 내전 개입이 더 심각해지고 장기화할 경우 러시아는 눈 에 띄는 경제적 손실에 직면할 수도 있다”고 결론지었다.   알아사드 시리아 정권이 전복되면 유럽 가스 시장의 균형이 깨질 위험이 있다. 그렇 게 되면 카타르가 시리아를 거쳐 터키까지 곧장 이어지는 가스관을 건설할 수도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정치학자들은 러시아에서

금지된 단체인 IS 출신으로 시리아에서 싸 우고 있는 테러리스트들이 자신들의 ‘후원 자들’로부터 지나치게 자유로워져서 심지어 알아사드가 패배할 경우에도 시리아의 경우 가스관 건설이 매우 위험한 사업이 될 것이 라고 말했다.   투자회사 ‘골든 힐스 캐피털 AM’의 분석 실장 미하일 크릴로프는 “알아사드 정권이 전복되면 카타르가 터키를 거쳐 유럽으로 이어지는 가스관을 건설해 유럽에서 가스 프롬을 밀어낼 수도 있다”고 인터넷 신문 가 제타.루에 말했다.   그는 카타르에는 세계 최대의 가스전 가 운데 한 곳(약 25조㎥)이 있다고 지적했다. 여기에서 터키로 곧장 이어지는 가스관을

세르비아 국경 지대에 수 천 명 난민이 모여 있는 가운데 지난 9월 21일 한 여성이 아이들과 함께 새로 도착하는 난민들을 맞으러 걸어가고 있다. [게티 이미지]

매설할 경우 가스관 노선 길이는 1800km에 불과하다. 발트 해저를 경유해 독일 연안까 지 가스를 수송하는 러시아의 ‘노스 스트 림’ 가스관 길이가 1224km로 더 짧다는 주 장도 있지만 이는 시베리아에서 출발하는 가스 수송로를 고려하지 않은 것이다.   최근 몇 년간 가스프롬은 유럽 시장의 가 스 약 25~30%를 공급하고 있다. 크릴로프 의 말에 따르면, 카타르의 시장 점유율은 이 것의 4분의 1 수준이지만 카타르가 가스관 을 건설할 경우 점유율이 늘어날 수 있다. 이와 함께 가스프롬의 수출량은 줄고 있다. 2015년 상반기 결산 결과 가스프롬의 수출 은 2014년 동기 대비 8% 감소한 742억7500 만㎥를 기록했다.   투자관리 회사 ‘스푸트니크 투자관리’의 알렉산드르 로세프 사장은 시리아 전쟁의 ‘작은 승리’가 유가 상승과 루블 강화로 이 어질 수도 있다고 밝혔다. 그의 말에 따르면, 러시아가 시리아에서 진지하고 책임 있는 대외정치 행위 주체로 등장해 유럽과 중동 에서 지지를 얻고 있으며 이는 루블화에 긍 정적인 요인이다.   로세프 사장은 “러시아의 시리아 지원 노력이 몇 달 안에 성공을 거둬 유럽연합 (EU)으로 수십만 명이나 쏟아져 들어가 유럽 경제 안정과 EU 통합을 위협하고 있 는 시리아 난민들이 고향으로 돌아올 여건 을 조성할 수 있다면, 이는 러시아와 유럽 의 관계 정상화로 충분히 이어질 수도 있고 다른 분쟁 해결의 접점으로 가는 길도 열 어줄 것이다. 이는 루블화를 위해서나 러시 아 경제 전체를 위해서도 긍정적인 계기가 될 것이다. 그럴 경우 달러화 대비 루블 환 율의 적정 범위는 45~50루블 선이 될 수도 있다”고 내다봤다.

시리아 난��� 아흐마드

[리아 노보스티]

“내 한 몸이면 몰라도  가족 위해 안전한 모스크바 왔다

플로라 무사, 파벨 코시킨

2011년 정치 혼란 속 폭격 이어지고 급진파가 이단자로 몰아 재산 몰수 관광 비자로 러 도착, 피란처 생활 러시아 정부 난민 지위 연장 거부 공항 환승 구역서 미아 될까 걱정

동양에서든 서양에서든 ‘집이 최고’라고 말 한다. 하지만 전쟁으로 파괴된 조국을 떠나 유럽으로 정처없이 떠나는 많은 시리아 난민 에게는 먼 나라 얘기나 마찬가지다. 지금은 모스크바 남서부의 아파트에 살게 된 시아파 이슬람교도 아흐마드(40사진)에게도 그렇다.   2011년 시리아 내전이 발발했을 때 아흐 마드의 가족이 살고 있던 집, 학교 위로 포 탄이 날아들었다. 많은 이웃 사람이 죽었다. 아흐마드는 아내와 두 아이를 살리기 위해 선 피란을 떠나야 한다고 생각했다.   아흐마드는 “내 한 몸은 몰라도 가족을 보살피기 위해 더 안전한 곳을 찾고 싶었다” 며 “그래서 우리는 모스크바로 왔다. 우리는 유엔 난민기구에 난민 신청서를 제출했고 난민기구가 추천서를 써줬다”고 말했다.   아흐마드는 시리아에서 내전이 시작되기 전까지 시리아의 수도 다마스쿠스에서 약 6.5km 떨어진 작은 도시 알말리하에서 살 았다. 그는 의류사업과 양계사업을 동시에 했다. 아내는 다마스쿠스에서 학교 교사로 일했다.   2011년 정치적 혼란에 이어 폭격과 총격 이 시작되면서 아흐마드의 상점이 파괴되었 다. 급진파가 그를 이단자로 간주해 재산을 압수했다. 아흐마드가 다마스쿠스로 떠나 려고 했을 때 폭격은 점점 더 심해지기 시작 했다.   아흐마드는 2013년에 관광 비자로 러시아 로 피해 임시 피란처를 받았고 모스크바의 한 식당에서 일했다. 하지만 2014년 러시아

이민청은 그의 난민 지위 연장을 거부했다. 당시 러시아가 우크라이나 동부 돈바스에서 일어난 분쟁을 피해 러시아로 대거 유입된 난민들의 문제를 해결하는 데 어려움을 겪 었기 때문이었던 것 같다.   아흐마드는 현재 자신의 난민 지위에 대 해 법원의 결정을 기다리는 가운데 러시아 에서 계속 합법적으로 살고 있다. 아흐마드 와 그의 아내는 자신들이 러시아에 정착해 아주 잘 동화되었다고 느낀다. 자녀들도 성 공적으로 적응했다. 아이들은 이곳에 온 지 2년밖에 안 됐지만, 러시아어를 악센트가 거 의 없이 유창하게 구사한다. 현지 학교에 다 니면서 러시아 학우들과 이웃 자녀들과도 친구가 되었다.   “나와 아내가 러시아어를 잘 하지 못하기 때문에 아이들이 우리를 놀려 줄 셈으로 자 기들끼리 러시아어로 말한다”며 아흐마드 는 웃었다. “우리 아이들이 러시아어 공부를 더 했으면 좋겠다. 우리는 어쩌면 영원히 이 곳에 있을지 모르기 때문이다.”   아흐마드가 러시아에 남아 살려면 직면 할 수밖에 없는 핵심 문제는 한마디로 신분 증명 서류다. 그에게는 난민 지위가 있지만 러시아에서 생활을 쉽게 하려면 신분 증명 서류가 필요하다. 그가 모스크바를 자유롭 게 돌아다닐 수 없고 자신과 가족을 부양할 수 있는 확실하고 안정된 직업을 찾을 수 없 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그는 모스크바에 이 미 자리 잡은 시리아 친구들의 도움을 받고 있다.

  아흐마드는 안정과 자립, 자녀의 미래를 가장 염려한다. 그는 “이곳에서 보통 사람 으로 살 수 있도록 모든 서류를 갖춰 자립 하고 싶다. 그저 안정이 필요할 뿐이다. 사 업도 하고 싶다. 커피 가게를 열어 우리 아 이들에게 안전하고 근사한 미래를 제공해 주고 싶다”고 말한다. 그는 “자신의 예측하 기 어려운 입장을 심리적으로 극복하기 어 렵다”고 말하면서 “언젠가는 서류를 갖춰 자유롭게 돌아다니고 일도 할 수 있길 바 란다”고 덧붙였다.   아흐마드가 걱정하는 데는 그만한 이유가 있다. 또 다른 시리아인 하산(40)은 심란한 이 야기를 들려주었다. 그는 러시아에 남기가 어 려워지자 터키를 거쳐 유럽에 들어가려고 했 다. 하지만 그는 자신을 받아줄 나라가 없어 러시아 공항의 환승 구역에 갇히게 됐다. 그 는 현재 공항에 갇혀 한 달 이상 보내고 있다 고 Russia포커스에 말했다.   이것은 어쩌면 유럽 국가들의 국경에 갇 혀 경찰 기동대와 맞닥뜨리는 수천 명의 다 른 절망적인 시리아인 앞에 놓인 악몽 같은 시나리오는 아닐지 모른다. 하지만 중간지대 의 삶이 전쟁 지역의 삶보다는 조금 더 나을 수도 있다.   이런 상황과 관련 드미트리 페스코프 러 시아 대통령 공보실장은 “시리아인들이 러 시아를 경유지로 자유롭게 사용할 수 있지 만, 현재의 위기를 낳고 있는 정책을 추진하 는 나라들이 파국적인 상황에 대한 책임을 져야 한다”고 말했다.

2015년 가을은 러시아 정치사에서 또 하나 의 이정표가 되고 있다. 러시아는 4반세기 여 만에 처음으로 대규모 해외 군사 작전을 수행하고 있다. 이번 작전의 계기는 ‘정치적 으로 올바른’ 중재에서 나온 것이 아니라 완 전히 전략적인 차원에서 나왔다. 러시아는 테러 격퇴를 위한 국제 연합 결성을 촉구하 고 있지만, 독자적으로라도 작전할 준비가 돼 있음을 분명히 하고 있다.   러시아가 자국 국경 밖 멀리에서 군사 작 전을 수행하게 된 동기는 이해할 만하다. 러 시아가 불법으로 간주하는 이슬람국가(IS) 는 의심할 여지 없는 러시아의 적이다. 여기 에다 블라디미르 푸틴 대통령의 정치 감각 도 발휘됐다. 그는 상황을 타개할 기회를 포 착하며, 다른 사람들의 이니셔티브에 반응 하는 게 아니라 다른 사람들이 자신의 이니 셔티브에 반응하도록 했다. 러시아가 군사적 기회를 과시하는 것은 목표가 아니다, 그것 은 하나의 사실이다. 이란에서 레바논에 이 르기까지 역내 주요 파트너 그룹이 형성된 것도 마찬가지다.   위험 요인들은 훨씬 더 분명하다. 러시아 는 분쟁 당사자 가운데 하나인 시리아 바샤 르 알아사드 정권 편에 서서, 이슬람 세계의 수니파 다수에 맞서 시아파 소수와 (일시적 이나마) 연대하며 종교 전쟁에 사실상 참여 하고 있다. 그러려면 신중한 정책을 수립해 야 한다. 그렇지 않을 경우 러시아 이슬람의 종교적 특성을 고려할 때 국내 정치에서 피 해 규모가 클 수도 있다.   이슬람 테러리스트들에게 심각한 피해를 가하는 것은 거의 모든 관련 진영에게 이익 이다. 하지만 러시아의 작전이 성공하면 러 시아의 영향력뿐 아니라 시리아 알아사드 정권의 입지도 강화될 수 있기 때문에 미국 과 그 동맹국들의 태도는 확실히 부정적일 것이다. 러시아와의 직접적인 대립으로 이어 지게 될지는 예단하기 어렵다. 모두가 과거 경험에서 어떤 교훈을 얻었을 가능성이 있 다. 어쨌든 최상의 경우 주요 행위주체들은

중립을 유지할 것이다. 하지만 불꽃 튀는 정 보 전쟁은 피할 수 없으며 이미 시작됐다.   현재 벌어지고 있는 전쟁에서 주요 강대 국들의 딜레마는 이 전쟁에서는 승리 개념 이 없다는 것이다. 군사 작전들은 거의 전적 으로 정권 교체를 목적으로 수행됐고 아프 가니스탄과 이라크리비아에서는 이 목적 이 최종적으로 달성됐다. 하지만 승리를 공 개적으로 선포하는 것은 꺼려했다. 게다가 바람직하지 않은 권력 자체는 한 번도 말살 되지 않았다. 군사적인 성공을 거둔 승리자 는 국가 건설에 뛰어들어야만 했고(아프가 니스탄이라크) 여기에 큰 비용을 들어갔지 만 결과는 만족스럽지 못했다. 또는 그 나라 를 폐허 속에 남겨 놓은 채 물러나야만 했다 (리비아). 어쨌든 ‘퇴각 전략’을 탐색하는 것 이 결국 모든 군사 작전의 목표가 되었다.   물론 러시아의 시리아 군사 작전과 2000 년대 초 미국과 나토의 군사 작전 사이에는 기본적으로 하나의 차이가 있다. 러시아는 현 정권을 교체하려 하지 않고 오히려 유지, 강화하려고 한다. 알아사드 시리아 대통령 의 정통성이 없고 시리아 영토의 상당 부분 을 효과적으로 통제하지 못하는 현실에 대 해 뭐라고 말하든 세력이 상당히 약화됐다 해도 정규군 및 행정기구와 협력하는 것은 반군을 지원하는 것보다 더 많은 기회를 제 공한다.   하지만 그렇다 해도 이는 목표한 상황이 계획대로 전개되지 않을 경우 ‘퇴각 전략’ 문제에 해답을 주지 못한다.   미국 공군은 시리아 위기 시 기지가 있는 터키로 돌아가면 되지만 시리아에 주둔하는 러시아 공군은 이 나라에 주둔하고 있어 돌 아갈 길이 없다는 게 문제다.   모든 전쟁은 어느 순간 정치적 편의주의 를 압도하는 자체 논리를 갖고 있다. 그래서 소용돌이에서 벗어나기가 어렵다. 이는 중 동에서 큰 파티를 벌이려고 했던 거의 모든 강대국의 경험에서 입증되고 있다. 중동의 역사는 한 가지 교훈을 가르쳐 준다. 중동에 서는 상황이 계획대로 진행된 적이 한 번도 없었다는 것이 바로 그것이다. 이를 잊어서 는 안 된다.

▶R1서 계속

러시아인 대부분 시리아 상황 관심조차 없어 레온티 비조프 러시아 과학아카데미 복합사 회연구소 선임 연구원

  러시아 사람들은 중동 정치의 복잡 미 묘한 상황을 잘 알지 못한다. 그에 관해 뭔 가를 알고 있다면 ‘아랍인’과 ‘이스라엘’ 같은 소련 시절의 낡은 고정관념에서 나온 것일 뿐이다. 시리아 국내 상황과 시리아 의 다양한 이슬람교 종파에 관해서도 러시 아 사람들은 잘 알지 못하며, 심지어 관심 조차 없다. 하지만 러시아인들은 푸틴 대통 령이 더 많은 것을 알고 있고, 연방회의(상 원)가 파병을 지지했다면 십중팔구 그렇게 해야만 했으리라고 생각하고 있다. 이 점 은 시리아에서 누가 무엇을 위해 싸우고 있 는지 더 자세히 물어보면 드러나는 사실이 다. 시리아는 이전과 마찬가지로 실제 위협 으로 인식되지 않고 있으며, 이 주제를 뉴 스 전면에서 제거하면 다음날 그에 대해 잊 어버리고 기억조차 하지 않는다. 중요한 점

은 러시아의 시리아 전쟁 개입이 장기화하 지 않는 것이다. 전쟁이 장기화하면, 여론 도 나빠진다.   미하일 코로스티코프 국제정치학자, 모스 크바국립경제대학교(МЭСИ) 전략발전학과장

  중요한 점은 분명한 적이 있어야 하고, 러시아의 이미지가 미국보다 더 좋아야 한 다는 것이다. 이것만으로도 충분하다. 시 리아에서 구체적으로 무슨 일이 벌어지 고 있느냐는 그리 중요하지 않다. 현재 러 시아 사회에는 바로 이런 추세가 존재하고 또 당분간 계속될 것이다. 고등경제대학의 최근 연구는 러시아 여론이 1년 동안 얼마 든지 다른 방향으로 바뀔 수 있음을 보여 주었다. 중국과의 관계가 대표적인 사례 다. 2년 전에 중국은 러시아의 동맹국으로 보이지 않았지만, 지금은 모든 설문조사에 서 중국이 러시아의 최대 동맹국으로 나 타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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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문화

2015년 10월 30일 금요일

┃ 여행

section sponsored by Rossiyskaya Gazeta, Russia

한러 대학 기숙사 비교해보니 

동장군도 꽁꽁 러시아서 가장 추운 5곳

한국, 시설 좋고 학교에서 가까워  러시아, 남녀 건물 분리 안 해

여름겨울 온도차 60도 노릴스크  6월에야 눈이 녹는 딕손

율리야 쿠드럅체바

지난해 여름 나는 한국을 처음 방문 했다. 공항, 비행, 다른 시간대 아 주 생경한 분위기였다. 주변에는 한 국인들만 있었고 날씨는 참을 수 없 을 정도로 후텁지근했다. 나는 한국 어를 배웠는데도 온통 한글로 가득 한 표지판에 기가 질려 라틴 문자를 필사적으로 찾아 나섰다. 그리고 바 로 택시에 올라 30에 달하는 트렁 크를 부여잡은 채 여름 동안 내 집이 될 국민대학교 기숙사로 향했다. 나 는 기숙사에 어떻게 가야 할지조차 도 몰랐다. 택시가 멈춰 서곤 할 때 도 사진에서 보곤 했던 서울의 아름 다운 모습을 미처 보지 못했다. 하지 만 다리와 횡단보도, 인터체인지들 은 많이 보았다.   한국어로 떠듬떠듬 말하고 몸짓 까지 동원한 끝에 기숙사에 도착해 방 열쇠를 받을 수 있었다. 하지만 열쇠를 어떻게 사용해야 하는지 알 수 없었다. 러시아에서 열쇠는 철제 열쇠다. 나는 사각형 플라스틱 카드 열쇠를 보고 당황했다. 마침내 옆방 학생들의 도움으로 내 방에 들어가 는 데 성공했다. 침대에 쓰러져 자고 싶다는 생각밖에 없었다.   외국으로 공부하러 가는 사람이라 면 누구나 문화일상적 차이점과 부 딪히게 된다. 나는 대학교가 아닌 기 숙사에서 중요한 차이점을 발견했다.   내가 이야기를 나눠본 러시아 학

러, 공동부엌 있어 자유 왕래 대부분 학교서 두 시간 거리 한, 보일러 등 편익시설 좋고 잠자는 장소로 비교적 엄격

생들은 모두 남학생과 여학생용 두 부분으로 분리돼 있는 한국 기숙사 를 보고 가장 놀라워했다. 이성의 기숙사 출입은 엄격히 금지돼 있었 다. 러시아에서는 심지어 야간에도 어떤 방이든 조용히 드나들 수 있고 남녀 학생들이 자주 왕래하며 함께 파티를 열곤 한다.   니나 메르톤은 서울 고려대학교 기숙사에서 살았다. 니나는 기숙사 에 엘리베이터가 두 대 있다는 사실 에 놀랐다. “한 대는 남학생 기숙사 로만, 다른 한 대는 여학생 기숙사로 만 운행됐다. 남학생은 여학생 기숙 사 엘리베이터를 탈 수 없었다.”   러시아 학생들은 한국 기숙사의 주요 장점으로 대학 건물과 가까운 점을 들었다. 광주 전남대학교에서 공부하는 나탈리야 코롯코바는 “학 교 가는 길이 보통 두 시간 걸리는 (러시아)사람에게 이건 사치나 다름 없다”고 감탄했다.   한국 기숙사에는 민족적 특성도 있다. 어느 날 우리는 우연히 멋진 버튼 하나를 발견했는데, 버튼을 켜

면 어떻게 되는지 알 수 없었다. 하 지만 어쨌거나 버튼을 켜봤다. 나중 에 마루가 따뜻하게 느껴졌다. 러시 아 기숙사에서는 이런 게 없어서 우 리는 그저 놀랍고 기뻤다.   하지만 러시아 학생들이 한국의 모 든 특성에 익숙한 것은 아니다. 러시 아에서는 보통 학생들이 직접 음식을 요리한다. 카페에서 식사하는 일은 드 물고 사치다. 국민대학교에서 공부하 는 예카테리나 크빗코는 “조리 금지 가 내게는 한국 기숙사 생활의 최대 단점이었다. 내 러시아 기숙사에서는 최소한 요리 대결을 할 수 있었다”고 이야기했다. 하지만 운이 좋은 사람들 은 너무 기뻐했다. 니나 메르톤은 “각 층에 작은 부엌 두 곳씩 있었다”고 이 야기했다. “한국 음식이 너무 많을 때 는 싫증이 나서 뭔가 낯익은 것을 먹 고 싶었다. 그래서 슈퍼마켓에서 장을 보고 수프와 감자를 곁들인 고기, 소 시지를 넣은 마카로니, 야채 스튜 요 리를 만들었다. 너무 행복했다. 러시 아 음식을 해 먹을 수 있어서 한국 생 활도 곧 수월해졌다.”   러시아 기숙사도 한국 학생들에 게 놀랍기는 마찬가지다. “한국과 러시아 기숙사의 중요한 차이점은 관리인 여부에 있다. 한국에는 관리 인이 없다. 나는 이게 마음에 들었 다. 관리인은 정말 친절하다.” 모스 크바국립국제관계대학교(므기모) 의 한국 학생 가운데 한 명이 느낀 인상을 이같이 전했다. “러시아에는

안나 그루즈데바

러시아 대학 기숙사에서 대장은 사감이다. 고등경제대학 기숙사 공동부엌에서 여학생들이 차를 마시고 있다. [율리야 쿠드럅체바]

모든 기숙사에 관리인이 있다. 관리 인은 대개 여자들인데, 이들이 학생 들을 도와주고 질서를 유지한다.”   고등경제대학의 이지은 학생은 공 동 부엌에서 음식을 해 먹을 수 있 을 뿐 아니라 다른 학생들과 사귈 수 도 있다고 이야기했다. 그녀는 “한 부 엌에서 식사를 하면서 심지어 친구 가 될 수도 있다”고 결론적으로 말했 다. 같은 학년 친구인 하선우 학생은 러시아 레스토랑의 음식 값이 비싸 다고 불평했다. 그는 “기숙사에 부엌 이 있어 좋다. 한국에서 가져온 재료

로 음식을 만들었다. 러시아 상점에 서 뭔가 더 사기도 했다.” 므기모에 다 니는 또 다른 한국 학생은 부엌이 필 요 없었다. “물론, 러시아에서 학생들 은 기숙사에서 직접 음식을 해 먹을 수 있지만, 한국 학생 대다수는 다행 히도 주변에 많이 있는 카페와 레스 토랑에서 밥을 사 먹는다.” 그가 다른 학생들을 만나 친하게 지낼 수 있었 던 곳은 흡연 장소였다.   한국과 러시아 기숙사 사이에는 중요한 차이점이 하나 더 있다. 바로 분위기다. 러시아 기숙사에서는 학

생들이 축일을 함께 축하하고 친구 들이 찾아와 음식을 만들고 기타 반 주에 맞춰 노래를 부르기도 한다. 예 카테리나 크빗코는 자신의 한국 생 활을 이렇게 결론 지어 말했다. “한 국 기숙사는 정말 편리하지만, 잠을 자는 장소로서 한 가지 기능만 수행 할 뿐이다. 음식을 먹고 싶으면 식당 이나 카페에 가고 공부하고 싶으면 도서관에 가고 친구들과 얘기하고 놀고 싶으면 시내나 캠퍼스로 나간 다. 러시아에서 학생들은 이 모든 걸 기숙사에서 한다.”

프랑스 여자는 베레모 쓰고 다니고 한국인은 개고기를 즐겨 먹는다? 마리야 표도리시나, 옐레나 김

러시아인 중에서 외국 여행을 해본 사람은 다섯 명 중 한 명꼴에 불과하 다. 2014년 6월 프치옴(ВЦИОМ, 전 러시아여론조사센터) 설문조사에 따 르면 러시아인 81%는 독립국가연합 (CIS) 밖으로 나가 보지 못했다. 러시 아인들이 외국에 대해 갖고 있는 가 장 대표적인 고정관념을 꼽아 봤다.   유럽: 낭만과 스파게티축구= 러시아인들이 가보고 싶고 가장 인 기있는 나라는 프랑스와 이탈리아다 (2014년 6월 프치옴 설문조사). 러시 아인 모두가 프랑스어를 구사하지는 못해도 ‘사랑(l'amour)’이라는 말만 큼은 모두 알고 있다. 모스크바에 사 는 이리나 다닐키나는 “사랑하는 사 람과 파리 여행을 계획 중이다. 영화 에서처럼 치즈도 먹고 싶고 바게트 빵 도 뜯어 먹고 싶고 샹젤리제 거리에서 포도주도 마셔 보고 싶다. 개구리와 오리 요리도 맛보려고 한다”고 말했 다. 또 여자라면 누구나 쇼핑도 하고 베레모를 사고 싶어 한다. 러시아 여 자들은 프랑스 여자들이 모두 베레모 를 쓰고 다닌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프랑스인이 패션의 창시자라고 한다면 이탈리아인은 스타일의 입 법자다. 이탈리아는 아름다운 여자 들과 섹시한 남자들의 나라다. 스파 게티와 피자, 랴자냐가 있지만 정작 감탄과 선망의 대상은 이탈리아 사 람들이 유지하고 있는 훌륭한 몸매 다. 20세기 말 러시아에서 가장 유명 한 범죄영화는 시칠리아의 수사반

러시아인들의 고정관념

중국인은 건강하다고 믿어

장 카타니를 그린 영화였다. 나중에 영화 ‘대부’가 나왔을 때는 이탈리 아 마피아만이 러시아 마피아에 필 적할 수 있음이 분명해졌다.   아시아: 스시와 근면성=러시아인 54%(2014년 7월 프치옴 설문조사) 는 러시아에 중국보다 더 우호적인 나라는 없다고 생각한다. 중국인들 이 신체가 잘 단련돼 있고 근면한 민 족이라고 생각한다. 중국에는 건강 한 사람들만 사는데, 녹차를 마시고 쌀을 먹고 한의학을 이용하고 있기 때문이다.   러시아인 15%(2014년 11월 프치 옴 설문조사)는 자녀가 중국어를 공 부하면 유익할 것이라고 생각한다.   일본은 가장 신비한 나라 가운데 하나다. 애니메이션과 사무라이게이 샤스모선수들도 있지만, 가장 대표적 인 이미지는 스시다. 또 러시아 시장에 서 수요가 가장 많은 자동차도 여전히 일본산이다. 일본 전자제품들에 대한 수요도 적지 않다. 일본인은 가장 발전

하고 예의 바르고 미소를 잘 짓는 민 족 가운데 하나로 유명하다.   한국인으론 싸이 가장 유명=러시 아인 모두가 한국인에 관해 알고 있 는 첫 번째이자 가장 중요한 점은 한 국 사람들이 개고기를 먹는 것으로 알고 있다는 사실이다. 지금도 러시 아 사람들이 한국의 이 별미에 관해 알게 된 계기는, 150여 년간 이 요리 에 강한 애착을 보이며 러시아 사람 들을 놀라게 하고 있는 ‘고려인(러 시아 등 옛 소련 거주 한인)’들 덕분 이었다.   러시아에서 가장 유명한 한국인 은 반기문 유엔 사무총장도 박근혜 대통령도 아닌 바로 가수 싸이(Psy) 다. Psy를 정확하게 발음할 줄 모르 는 러시아 사람들은 러시아어로 ‘프 싸이’라고 부른다. 또 ‘강남스타일’ 은 ‘갱-남’으로 들려 갱단에 관한 노래라고 생각한다.   김치. 러시아에서 두 번째로 잘 알 려진 한국 음식(개고기 다음)이다. 하지만 일부 러시아인은 한국 사람 들이 왜 ‘한국 당근(카레이스카야 모르코프카)’ 대신 김치를 먹는지 의아해한다. ‘고려인’들이 자신들 의 중요한 반찬으로 만들어 먹었던 것이 바로 신맛이 나는 당근 무침이 었기 때문이다.   삼성 스마트폰. 러시아에서 스마 트폰은 그냥 애플 아니면 삼성을 선 택한다. 또 현대 자동차는 이제 러시 아 사람 대다수가 이용할 수 있게 됐 는데도 한국은 여전히 ‘고요한 아 침’의 신비한 나라로 남아 있다.

러시아에는 겨울철 날씨가 영하 30 도로 떨어져도 현지인들이 춥다고 생각하지 않는 곳이 있다. 극한의 혹 독한 추위로 잊을 수 없는 여행을 약속해 주는 도시 다섯 곳을 골라 직접 가봤다.   러시아 시베리아 북부의 삶은 거의 끝없이 이어지는 겨울의 삶이다. 발 밑에서 눈이 사각사각거리는 극지의 밤은 칠흑같이 어둡다. 만(灣)들도 꽁꽁 얼어붙는다. 이곳에서 가장 실 용적인 신발은 펠트장화와 털장화다.   사하 공화국의 수도 야쿠츠크= “야쿠츠크(모스크바에서 4880 떨 어짐) 공항에 도착했을 때 사람들 이 나를 샅샅이 뜯어보고 있다는 느 낌이 들었다. 내 외모 때문은 아니었 다. 이곳 사람들은 ‘관광객’인 내가 옷을 어떻게 차려입고 자기들이 매 일 겪는 동장군을 겪어내려 하는지 보고 싶어 했을 것 같다.” 현지를 다 녀온 스위스 사진작가 스티브 런커 가 전했다.   실제로, 한겨울에 정말 두툼하고 따뜻한 옷을 입지 않고 러시아에서 가장 추운 도시에 간다는 것은 위험 천만한 생각이다. 사하 공화국의 수 도 야쿠츠크의 평균 기온은 섭씨 영 하 40~50도다(최저 기온 기록은 영 하 64도).   극한의 상황이어도 다이아몬드와 통나무 기둥 위에 지은 집(영구동토 층 때문에 토대 구축에 오랜 시간이 걸리고 비용도 많이 든다), 매머드로 유명한 이 도시의 인구는 약 30만 명 이다. 야쿠츠크의 연인 한 쌍은 영하 30도에서 22분 동안 키스를 해서 신 기록을 세우기도 했다.   겨울에 야쿠츠크를 둘러보기에 좋은 전략은 거대한 화석들이 들 어선 매머드 박물관에서 펠트장화 를 신어보게 하고 모든 종류의 얼음 에 관해 이야기해 주는 영구동토 박 물관이다. 세계 여러 민족의 호무스 (Khomus민속악기)를 모아 놓은 박물관에서 다이아몬드 전시관으 로 옮겨 다니며 문화 공간들을 둘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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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머드 박물관의 야쿠츠크 순록 썰매로 유명한 두딘카 혁명가 유배지 베르호얀스크

러시아의 동토는 경이로운 곳이다. 아이들은 영하 50도에도 등교하고 젊은 아가씨들은 꽁꽁 어는 추위에도 속이 비치는 얇은 스타킹으로 멋을 낸다. 애들도 그렇다. 칼바람 속에서도 통통한 아이 얼굴이 힘을 뿜어내듯 붉다.  [타스]

볼 수 있다. 또는 레스토랑에 들러 화이트피시(흰 생선살)와 순록고기, 어린 말고기를 맛볼 수도 있다.   가장 춥고 환경 열악한 노릴스크 =크라스노야르스크 변강주 북부에 있는 노릴스크(모스크바에서 2878  떨어짐)는 시베리아에서 가장 춥 고 환경이 가장 열악한 도시다. 이곳 에서는 팔라듐과 플라티늄금은 니켈코발트구리가 채굴된다. 하지 만 노릴스크는 겨울철 영하 30도와 여름철 영상 30도를 경험할 수 있는 아름답고 흥미로운 도시다. 예를 들 면 지역 박물관에 가면 노릴스크 강 제노동수용소 수감자들의 편지도 읽어 볼 수 있고 샤먼들과 에벤키족, 느가나산족의 전통 의상 같은 희귀 민속품들도 살펴 볼 수 있다. 추운 날씨 속에 산책을 마치고 슈퍼마켓 에 들러 순록고기로 만든 러시아식 만두 펠메니를 사서 저녁을 먹으면 서 옐레나 체르니쇼바가 노릴스크 의 밤과 낮을 찍은 사진들을 볼 수도 있다. 체르니쇼바(러시아 사진 작가) 는 이 사진들로 세계 보도 사진상을

수상했다.   러시아 최북단 딕손=딕손은 크 라스노야르크 변강주 카라 해 연안 에 있는 러시아 최북단 도시(모스크 바에서 2729 떨어짐)다. 러시아 최 대 항구가 있었던 소련 시절 이곳은 ‘눈 덮인 북극의 수도’로 불렸다(한 편 여름에는 딕손까지 예니세이 강 을 따라 배로 갈 수 있다).   딕손의 기후는 노릴스크보다 더 혹독하다. 극지의 밤은 칠흑처럼 어 둡고 기온은 9월이면 벌써 영하로 떨어진다. 눈은 6월에 녹아 없어지 지만 조금 더 늦게 내리는 때도 가끔 있다. 스키 경기는 보통 5월에 열린 다. ‘검은 눈폭풍’도 종종 발생한다. (너무 거세 온통 캄캄해지기 때문 에 이렇게 부른다) 초속 40m 이상 의 풍속으로 눈보라가 일어나 폭풍 으로 바뀐다. 현지 주민들의 말에 따 르면, ‘검은 눈폭풍’이 발생하면 집 에서 기르는 개들(문 앞에서 키우는 개들)과 해안에 많은 연료통들이 공 중에 날아 다니기 시작한다.   하지만 딕손에서는 얼음에 뒤덮

러시아에서 가장 추운 도시 5곳

모스크바

딕손 두딘카 노릴스크

베르호얀스크

야쿠츠크

인 북극 끝에 서서 카라 해의 힘을 느껴 보고 힌돌고래와 물개를 볼 수 있다. 북극광도 당연히 볼 수 있다.   베르호얀스크=작은 도시 베르 호얀스크(모스크바에서 4675 떨 어짐)에는 1000여 명 남짓의 사람이 산다.(여기선 옛날엔 귀양 온 사람들 이 주로 살았으나 지금은 과학자들 이 많이 산다) 흥미로운 점은 과학 자들과 기상학자들이 베르호얀스 크와 오이먀콘(두 도시 모두 야쿠티 야에 있다) 중에서 어떤 도시가 진 짜 ‘한극’이냐를 두고 지금도 논쟁 을 벌이고 있다는 사실이다. 하지만 지구에서 가장 추운 두 도시의 일반 주민들에게 이런 논쟁은 그다지 중

요하지 않다. 영하 2~3도의 온도 차 이는 겨울에는 오이먀콘에서나 베 르호얀스크에서도 혹독한 추위가 집 문턱까지 파고든다는 사실을 바 꿔놓지 못한다.   베르호얀스크가 19세기부터 데 카브리스트 같은 혁명가들이나 모 반자들의 유형지였다는 사실은 놀 랍지 않다. 예를 들면 러시아계 폴란 드인으로 민족지학자이자 시베리아 탐험가였던 바츨라프 세로 스키는 이곳에서 12년간(1880~1892) 유형 을 살았다. 하지만 세로셰스키는 폴 란드에서 얼음으로 뒤덮인 이곳으 로 왔을 때조차도 실의에 빠지지 않 았다. 그는 야쿠트 여자와 결혼했고

현지에서 민족지학을 연구하기 시 작해 마침내 ‘야쿠트족: 민족지학 연구 경험’을 집필했다. 사실, 북극 의 기나긴 밤에 달리 할 일이 또 뭐 가 있을까?   순록 사육의 날 두딘카=두딘카 는 매년 3월이면 두딘카와 신다스코 포타포보포피가이 등 이웃 마을 들에서 열리는 ‘순록사육의 날’에 맞춰 가야 한다. 추운 이날에는 네네 츠인과 에벤키인돌가크인느가나 산인에네츠인이 최고의 민속 의상 을 차려입고 순록 썰매 경주를 벌인 다. 이 경주는 드물게 볼 수 있는 광 경이다. 현지 토착민들은 보통 멀리 떨어진 툰드라에서 유목생활을 하 기 때문이다. 또 두딘카의 ‘무쿠스 투르’ 공방이나 ‘민속공예의 집’에 서는 민속 문양으로 수놓은 순록 털 장화를 살 수도 있다. 현지 추위에 끄떡없을 정도로 품질이 뛰어나다. 야쿠츠크처럼 이곳에서도 머나먼 동토의 기억을 떠올려줄 브로치와 매머드 상아로 만든 장신구 등 희귀 귀금속을 살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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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문화

2015년 10월 30일 금요일

┃ 여행

section sponsored by Rossiyskaya Gazeta, Russia

한러 대학 기숙사 비교해보니 

동장군도 꽁꽁 러시아서 가장 추운 5곳

한국, 시설 좋고 학교에서 가까워  러시아, 남녀 건물 분리 안 해

여름겨울 온도차 60도 노릴스크  6월에야 눈이 녹는 딕손

율리야 쿠드럅체바

지난해 여름 나는 한국을 처음 방문 했다. 공항, 비행, 다른 시간대 아 주 생경한 분위기였다. 주변에는 한 국인들만 있었고 날씨는 참을 수 없 을 정도로 후텁지근했다. 나는 한국 어를 배웠는데도 온통 한글로 가득 한 표지판에 기가 질려 라틴 문자를 필사적으로 찾아 나섰다. 그리고 바 로 택시에 올라 30에 달하는 트렁 크를 부여잡은 채 여름 동안 내 집이 될 국민대학교 기숙사로 향했다. 나 는 기숙사에 어떻게 가야 할지조차 도 몰랐다. 택시가 멈춰 서곤 할 때 도 사진에서 보곤 했던 서울의 아름 다운 모습을 미처 보지 못했다. 하지 만 다리와 횡단보도, 인터체인지들 은 많이 보았다.   한국어로 떠듬떠듬 말하고 몸짓 까지 동원한 끝에 기숙사에 도착해 방 열쇠를 받을 수 있었다. 하지만 열쇠를 어떻게 사용해야 하는지 알 수 없었다. 러시아에서 열쇠는 철제 열쇠다. 나는 사각형 플라스틱 카드 열쇠를 보고 당황했다. 마침내 옆방 학생들의 도움으로 내 방에 들어가 는 데 성공했다. 침대에 쓰러져 자고 싶다는 생각밖에 없었다.   외국으로 공부하러 가는 사람이라 면 누구나 문화일상적 차이점과 부 딪히게 된다. 나는 대학교가 아닌 기 숙사에서 중요한 차이점을 발견했다.   내가 이야기를 나눠본 러시아 학

러, 공동부엌 있어 자유 왕래 대부분 학교서 두 시간 거리 한, 보일러 등 편익시설 좋고 잠자는 장소로 비교적 엄격

생들은 모두 남학생과 여학생용 두 부분으로 분리돼 있는 한국 기숙사 를 보고 가장 놀라워했다. 이성의 기숙사 출입은 엄격히 금지돼 있었 다. 러시아에서는 심지어 야간에도 어떤 방이든 조용히 드나들 수 있고 남녀 학생들이 자주 왕래하며 함께 파티를 열곤 한다.   니나 메르톤은 서울 고려대학교 기숙사에서 살았다. 니나는 기숙사 에 엘리베이터가 두 대 있다는 사실 에 놀랐다. “한 대는 남학생 기숙사 로만, 다른 한 대는 여학생 기숙사로 만 운행됐다. 남학생은 여학생 기숙 사 엘리베이터를 탈 수 없었다.”   러시아 학생들은 한국 기숙사의 주요 장점으로 대학 건물과 가까운 점을 들었다. 광주 전남대학교에서 공부하는 나탈리야 코롯코바는 “학 교 가는 길이 보통 두 시간 걸리는 (러시아)사람에게 이건 사치나 다름 없다”고 감탄했다.   한국 기숙사에는 민족적 특성도 있다. 어느 날 우리는 우연히 멋진 버튼 하나를 발견했는데, 버튼을 켜

면 어떻게 되는지 알 수 없었다. 하 지만 어쨌거나 버튼을 켜봤다. 나중 에 마루가 따뜻하게 느껴졌다. 러시 아 기숙사에서는 이런 게 없어서 우 리는 그저 놀랍고 기뻤다.   하지만 러시아 학생들이 한국의 모 든 특성에 익숙한 것은 아니다. 러시 아에서는 보통 학생들이 직접 음식을 요리한다. 카페에서 식사하는 일은 드 물고 사치다. 국민대학교에서 공부하 는 예카테리나 크빗코는 “조리 금지 가 내게는 한국 기숙사 생활의 최대 단점이었다. 내 러시아 기숙사에서는 최소한 요리 대결을 할 수 있었다”고 이야기했다. 하지만 운이 좋은 사람들 은 너무 기뻐했다. 니나 메르톤은 “각 층에 작은 부엌 두 곳씩 있었다”고 이 야기했다. “한국 음식이 너무 많을 때 는 싫증이 나서 뭔가 낯익은 것을 먹 고 싶었다. 그래서 슈퍼마켓에서 장을 보고 수프와 감자를 곁들인 고기, 소 시지를 넣은 마카로니, 야채 스튜 요 리를 만들었다. 너무 행복했다. 러시 아 음식을 해 먹을 수 있어서 한국 생 활도 곧 수월해졌다.”   러시아 기숙사도 한국 학생들에 게 놀랍기는 마찬가지다. “한국과 러시아 기숙사의 중요한 차이점은 관리인 여부에 있다. 한국에는 관리 인이 없다. 나는 이게 마음에 들었 다. 관리인은 정말 친절하다.” 모스 크바국립국제관계대학교(므기모) 의 한국 학생 가운데 한 명이 느낀 인상을 이같이 전했다. “러시아에는

안나 그루즈데바

러시아 대학 기숙사에서 대장은 사감이다. 고등경제대학 기숙사 공동부엌에서 여학생들이 차를 마시고 있다. [율리야 쿠드럅체바]

모든 기숙사에 관리인이 있다. 관리 인은 대개 여자들인데, 이들이 학생 들을 도와주고 질서를 유지한다.”   고등경제대학의 이지은 학생은 공 동 부엌에서 음식을 해 먹을 수 있 을 뿐 아니라 다른 학생들과 사귈 수 도 있다고 이야기했다. 그녀는 “한 부 엌에서 식사를 하면서 심지어 친구 가 될 수도 있다”고 결론적으로 말했 다. 같은 학년 친구인 하선우 학생은 러시아 레스토랑의 음식 값이 비싸 다고 불평했다. 그는 “기숙사에 부엌 이 있어 좋다. 한국에서 가져온 재료

로 음식을 만들었다. 러시아 상점에 서 뭔가 더 사기도 했다.” 므기모에 다 니는 또 다른 한국 학생은 부엌이 필 요 없었다. “물론, 러시아에서 학생들 은 기숙사에서 직접 음식을 해 먹을 수 있지만, 한국 학생 대다수는 다행 히도 주변에 많이 있는 카페와 레스 토랑에서 밥을 사 먹는다.” 그가 다른 학생들을 만나 친하게 지낼 수 있었 던 곳은 흡연 장소였다.   한국과 러시아 기숙사 사이에는 중요한 차이점이 하나 더 있다. 바로 분위기다. 러시아 기숙사에서는 학

생들이 축일을 함께 축하하고 친구 들이 찾아와 음식을 만들고 기타 반 주에 맞춰 노래를 부르기도 한다. 예 카테리나 크빗코는 자신의 한국 생 활을 이렇게 결론 지어 말했다. “한 국 기숙사는 정말 편리하지만, 잠을 자는 장소로서 한 가지 기능만 수행 할 뿐이다. 음식을 먹고 싶으면 식당 이나 카페에 가고 공부하고 싶으면 도서관에 가고 친구들과 얘기하고 놀고 싶으면 시내나 캠퍼스로 나간 다. 러시아에서 학생들은 이 모든 걸 기숙사에서 한다.”

프랑스 여자는 베레모 쓰고 다니고 한국인은 개고기를 즐겨 먹는다? 마리야 표도리시나, 옐레나 김

러시아인 중에서 외국 여행을 해본 사람은 다섯 명 중 한 명꼴에 불과하 다. 2014년 6월 프치옴(ВЦИОМ, 전 러시아여론조사센터) 설문조사에 따 르면 러시아인 81%는 독립국가연합 (CIS) 밖으로 나가 보지 못했다. 러시 아인들이 외국에 대해 갖고 있는 가 장 대표적인 고정관념을 꼽아 봤다.   유럽: 낭만과 스파게티축구= 러시아인들이 가보고 싶고 가장 인 기있는 나라는 프랑스와 이탈리아다 (2014년 6월 프치옴 설문조사). 러시 아인 모두가 프랑스어를 구사하지는 못해도 ‘사랑(l'amour)’이라는 말만 큼은 모두 알고 있다. 모스크바에 사 는 이리나 다닐키나는 “사랑하는 사 람과 파리 여행을 계획 중이다. 영화 에서처럼 치즈도 먹고 싶고 바게트 빵 도 뜯어 먹고 싶고 샹젤리제 거리에서 포도주도 마셔 보고 싶다. 개구리와 오리 요리도 맛보려고 한다”고 말했 다. 또 여자라면 누구나 쇼핑도 하고 베레모를 사고 싶어 한다. 러시아 여 자들은 프랑스 여자들이 모두 베레모 를 쓰고 다닌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프랑스인이 패션의 창시자라고 한다면 이탈리아인은 스타일의 입 법자다. 이탈리아는 아름다운 여자 들과 섹시한 남자들의 나라다. 스파 게티와 피자, 랴자냐가 있지만 정작 감탄과 선망의 대상은 이탈리아 사 람들이 유지하고 있는 훌륭한 몸매 다. 20세기 말 러시아에서 가장 유명 한 범죄영화는 시칠리아의 수사반

러시아인들의 고정관념

중국인은 건강하다고 믿어

장 카타니를 그린 영화였다. 나중에 영화 ‘대부’가 나왔을 때는 이탈리 아 마피아만이 러시아 마피아에 필 적할 수 있음이 분명해졌다.   아시아: 스시와 근면성=러시아인 54%(2014년 7월 프치옴 설문조사) 는 러시아에 중국보다 더 우호적인 나라는 없다고 생각한다. 중국인들 이 신체가 잘 단련돼 있고 근면한 민 족이라고 생각한다. 중국에는 건강 한 사람들만 사는데, 녹차를 마시고 쌀을 먹고 한의학을 이용하고 있기 때문이다.   러시아인 15%(2014년 11월 프치 옴 설문조사)는 자녀가 중국어를 공 부하면 유익할 것이라고 생각한다.   일본은 가장 신비한 나라 가운데 하나다. 애니메이션과 사무라이게이 샤스모선수들도 있지만, 가장 대표적 인 이미지는 스시다. 또 러시아 시장에 서 수요가 가장 많은 자동차도 여전히 일본산이다. 일본 전자제품들에 대한 수요도 적지 않다. 일본인은 가장 발전

하고 예의 바르고 미소를 잘 짓는 민 족 가운데 하나로 유명하다.   한국인으론 싸이 가장 유명=러시 아인 모두가 한국인에 관해 알고 있 는 첫 번째이자 가장 중요한 점은 한 국 사람들이 개고기를 먹는 것으로 알고 있다는 사실이다. 지금도 러시 아 사람들이 한국의 이 별미에 관해 알게 된 계기는, 150여 년간 이 요리 에 강한 애착을 보이며 러시아 사람 들을 놀라게 하고 있는 ‘고려인(러 시아 등 옛 소련 거주 한인)’들 덕분 이었다.   러시아에서 가장 유명한 한국인 은 반기문 유엔 사무총장도 박근혜 대통령도 아닌 바로 가수 싸이(Psy) 다. Psy를 정확하게 발음할 줄 모르 는 러시아 사람들은 러시아어로 ‘프 싸이’라고 부른다. 또 ‘강남스타일’ 은 ‘갱-남’으로 들려 갱단에 관한 노래라고 생각한다.   김치. 러시아에서 두 번째로 잘 알 려진 한국 음식(개고기 다음)이다. 하지만 일부 러시아인은 한국 사람 들이 왜 ‘한국 당근(카레이스카야 모르코프카)’ 대신 김치를 먹는지 의아해한다. ‘고려인’들이 자신들 의 중요한 반찬으로 만들어 먹었던 것이 바로 신맛이 나는 당근 무침이 었기 때문이다.   삼성 스마트폰. 러시아에서 스마 트폰은 그냥 애플 아니면 삼성을 선 택한다. 또 현대 자동차는 이제 러시 아 사람 대다수가 이용할 수 있게 됐 는데도 한국은 여전히 ‘고요한 아 침’의 신비한 나라로 남아 있다.

러시아에는 겨울철 날씨가 영하 30 도로 떨어져도 현지인들이 춥다고 생각하지 않는 곳이 있다. 극한의 혹 독한 추위로 잊을 수 없는 여행을 약속해 주는 도시 다섯 곳을 골라 직접 가봤다.   러시아 시베리아 북부의 삶은 거의 끝없이 이어지는 겨울의 삶이다. 발 밑에서 눈이 사각사각거리는 극지의 밤은 칠흑같이 어둡다. 만(灣)들도 꽁꽁 얼어붙는다. 이곳에서 가장 실 용적인 신발은 펠트장화와 털장화다.   사하 공화국의 수도 야쿠츠크= “야쿠츠크(모스크바에서 4880 떨 어짐) 공항에 도착했을 때 사람들 이 나를 샅샅이 뜯어보고 있다는 느 낌이 들었다. 내 외모 때문은 아니었 다. 이곳 사람들은 ‘관광객’인 내가 옷을 어떻게 차려입고 자기들이 매 일 겪는 동장군을 겪어내려 하는지 보고 싶어 했을 것 같다.” 현지를 다 녀온 스위스 사진작가 스티브 런커 가 전했다.   실제로, 한겨울에 정말 두툼하고 따뜻한 옷을 입지 않고 러시아에서 가장 추운 도시에 간다는 것은 위험 천만한 생각이다. 사하 공화국의 수 도 야쿠츠크의 평균 기온은 섭씨 영 하 40~50도다(최저 기온 기록은 영 하 64도).   극한의 상황이어도 다이아몬드와 통나무 기둥 위에 지은 집(영구동토 층 때문에 토대 구축에 오랜 시간이 걸리고 비용도 많이 든다), 매머드로 유명한 이 도시의 인구는 약 30만 명 이다. 야쿠츠크의 연인 한 쌍은 영하 30도에서 22분 동안 키스를 해서 신 기록을 세우기도 했다.   겨울에 야쿠츠크를 둘러보기에 좋은 전략은 거대한 화석들이 들 어선 매머드 박물관에서 펠트장화 를 신어보게 하고 모든 종류의 얼음 에 관해 이야기해 주는 영구동토 박 물관이다. 세계 여러 민족의 호무스 (Khomus민속악기)를 모아 놓은 박물관에서 다이아몬드 전시관으 로 옮겨 다니며 문화 공간들을 둘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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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머드 박물관의 야쿠츠크 순록 썰매로 유명한 두딘카 혁명가 유배지 베르호얀스크

러시아의 동토는 경이로운 곳이다. 아이들은 영하 50도에도 등교하고 젊은 아가씨들은 꽁꽁 어는 추위에도 속이 비치는 얇은 스타킹으로 멋을 낸다. 애들도 그렇다. 칼바람 속에서도 통통한 아이 얼굴이 힘을 뿜어내듯 붉다.  [타스]

볼 수 있다. 또는 레스토랑에 들러 화이트피시(흰 생선살)와 순록고기, 어린 말고기를 맛볼 수도 있다.   가장 춥고 환경 열악한 노릴스크 =크라스노야르스크 변강주 북부에 있는 노릴스크(모스크바에서 2878  떨어짐)는 시베리아에서 가장 춥 고 환경이 가장 열악한 도시다. 이곳 에서는 팔라듐과 플라티늄금은 니켈코발트구리가 채굴된다. 하지 만 노릴스크는 겨울철 영하 30도와 여름철 영상 30도를 경험할 수 있는 아름답고 흥미로운 도시다. 예를 들 면 지역 박물관에 가면 노릴스크 강 제노동수용소 수감자들의 편지도 읽어 볼 수 있고 샤먼들과 에벤키족, 느가나산족의 전통 의상 같은 희귀 민속품들도 살펴 볼 수 있다. 추운 날씨 속에 산책을 마치고 슈퍼마켓 에 들러 순록고기로 만든 러시아식 만두 펠메니를 사서 저녁을 먹으면 서 옐레나 체르니쇼바가 노릴스크 의 밤과 낮을 찍은 사진들을 볼 수도 있다. 체르니쇼바(러시아 사진 작가) 는 이 사진들로 세계 보도 사진상을

수상했다.   러시아 최북단 딕손=딕손은 크 라스노야르크 변강주 카라 해 연안 에 있는 러시아 최북단 도시(모스크 바에서 2729 떨어짐)다. 러시아 최 대 항구가 있었던 소련 시절 이곳은 ‘눈 덮인 북극의 수도’로 불렸다(한 편 여름에는 딕손까지 예니세이 강 을 따라 배로 갈 수 있다).   딕손의 기후는 노릴스크보다 더 혹독하다. 극지의 밤은 칠흑처럼 어 둡고 기온은 9월이면 벌써 영하로 떨어진다. 눈은 6월에 녹아 없어지 지만 조금 더 늦게 내리는 때도 가끔 있다. 스키 경기는 보통 5월에 열린 다. ‘검은 눈폭풍’도 종종 발생한다. (너무 거세 온통 캄캄해지기 때문 에 이렇게 부른다) 초속 40m 이상 의 풍속으로 눈보라가 일어나 폭풍 으로 바뀐다. 현지 주민들의 말에 따 르면, ‘검은 눈폭풍’이 발생하면 집 에서 기르는 개들(문 앞에서 키우는 개들)과 해안에 많은 연료통들이 공 중에 날아 다니기 시작한다.   하지만 딕손에서는 얼음에 뒤덮

러시아에서 가장 추운 도시 5곳

모스크바

딕손 두딘카 노릴스크

베르호얀스크

야쿠츠크

인 북극 끝에 서서 카라 해의 힘을 느껴 보고 힌돌고래와 물개를 볼 수 있다. 북극광도 당연히 볼 수 있다.   베르호얀스크=작은 도시 베르 호얀스크(모스크바에서 4675 떨 어짐)에는 1000여 명 남짓의 사람이 산다.(여기선 옛날엔 귀양 온 사람들 이 주로 살았으나 지금은 과학자들 이 많이 산다) 흥미로운 점은 과학 자들과 기상학자들이 베르호얀스 크와 오이먀콘(두 도시 모두 야쿠티 야에 있다) 중에서 어떤 도시가 진 짜 ‘한극’이냐를 두고 지금도 논쟁 을 벌이고 있다는 사실이다. 하지만 지구에서 가장 추운 두 도시의 일반 주민들에게 이런 논쟁은 그다지 중

요하지 않다. 영하 2~3도의 온도 차 이는 겨울에는 오이먀콘에서나 베 르호얀스크에서도 혹독한 추위가 집 문턱까지 파고든다는 사실을 바 꿔놓지 못한다.   베르호얀스크가 19세기부터 데 카브리스트 같은 혁명가들이나 모 반자들의 유형지였다는 사실은 놀 랍지 않다. 예를 들면 러시아계 폴란 드인으로 민족지학자이자 시베리아 탐험가였던 바츨라프 세로 스키는 이곳에서 12년간(1880~1892) 유형 을 살았다. 하지만 세로셰스키는 폴 란드에서 얼음으로 뒤덮인 이곳으 로 왔을 때조차도 실의에 빠지지 않 았다. 그는 야쿠트 여자와 결혼했고

현지에서 민족지학을 연구하기 시 작해 마침내 ‘야쿠트족: 민족지학 연구 경험’을 집필했다. 사실, 북극 의 기나긴 밤에 달리 할 일이 또 뭐 가 있을까?   순록 사육의 날 두딘카=두딘카 는 매년 3월이면 두딘카와 신다스코 포타포보포피가이 등 이웃 마을 들에서 열리는 ‘순록사육의 날’에 맞춰 가야 한다. 추운 이날에는 네네 츠인과 에벤키인돌가크인느가나 산인에네츠인이 최고의 민속 의상 을 차려입고 순록 썰매 경주를 벌인 다. 이 경주는 드물게 볼 수 있는 광 경이다. 현지 토착민들은 보통 멀리 떨어진 툰드라에서 유목생활을 하 기 때문이다. 또 두딘카의 ‘무쿠스 투르’ 공방이나 ‘민속공예의 집’에 서는 민속 문양으로 수놓은 순록 털 장화를 살 수도 있다. 현지 추위에 끄떡없을 정도로 품질이 뛰어나다. 야쿠츠크처럼 이곳에서도 머나먼 동토의 기억을 떠올려줄 브로치와 매머드 상아로 만든 장신구 등 희귀 귀금속을 살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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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문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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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5년 10월 30일 금요일

노벨문학상 받은 알렉시예비치의 대표작 5편 주요작품

체르노빌의   아연 소년들 전쟁 참상 알린 ‘목소리 소설’ 미하일 비젤

지난 8일 벨라루스 출신 작가 겸 기자 스베틀 라나 알렉시예비치가 노벨 문학상을 수상했 다. 그녀는 옛소련 시절 태어나 러시아어로 글을 썼다. 그녀의 정신세계는 러시아인이 다. 러시아에서 그런 사람을 '러시아어로 말 하는 작가'라고 한다. 어쨌든 그런 이들을 러 시아 사람들은 러시아인으로 받아들인다. 러시아 문학의 대표자가 세계 주요 문학상을 수상한 것은 28년 만에 처음 있는 일이다. 스 베틀라나 알렉시예비치의 대표작 다섯 편을 소개한다.   스베틀라나 알렉시예비치는 우크라이 나의 이바노프란콥스크에서 태어나 벨라 루스에서 자랐고 옛 소련 시절부터 작품을 출간했다. 그녀의 작품은 10개국 언어로 번 역됐다. 67세의 알렉시예비치가 평생 몰두 한 분야는 순수문학이라기보다 영어권 국 가들에 익숙한 폭로성 보도 장르다. 하지 만 문학은 다양하다. 항상 순수문학만 있 는 것은 아니다.   ‘전쟁은 여자의 얼굴을 하지 않았다’(1985 년)=알렉시예비치의 데뷔작인 이 책은 전쟁 터의 여성들을 이야기한다. 주제 자체는 새 롭지 않다. 35세의 여기자는 강한 필치로, 현실적으로 썼다. 그 진솔함이자 글의 돌파 구다. 그녀의 업적은 이들 여성에게 전쟁의 모든 면을 털어놓게 했다는 점이다. 이 책 의 원고는 1983년 출판사에 전달됐지만, 페 레스트로이카가 시작되고 나서야 빛을 봤 다. 평화주의와 자연주의, 비방과 중상을 담 았다며 엄청난 비난을 받기도 했다. 하지만 1986년 소련의 ‘청년 국가 상’인 레닌 콤소 몰 상을 수상했고 세계 주요 언어들로 번역 됐으며 이 작품을 원작으로 하는 연극과 영

전쟁은 여자의 얼굴을 하지 않았다

데뷔작 전쟁은 여성의 얼굴을  아연 소년들

여기자가 겪은 전쟁터 여성 그려 레닌 콤소몰 상  영화로도 제작 쇠락한 옛 소련 폭로 이류 시대 독일프랑스서 평화상훈장 받아

죽음에 매료된 사람들

체르노빌의 목소리

알렉산드르 루카셴코 벨라루스 대통령은 올해 노벨문학상 수상자인 스베틀라나 알렉시예비치가 나라 얼굴에 먹칠을 하고 있다고 비난했다. 이에 알렉시예비 치는 자신의 비판 대상이 루카셴코 대통령 한 사람일 뿐 벨라루스와 러시아 국민을 모욕한 적은 결코 없다고 응수했다. 

스베틀라나 알렉시예비치는 1948년 우크라이나 이바노프란콥스크 출생 1967년 벨라루스 국립대 언론학과 입학 1972년 졸업 후 벨라루스 브레스트 지역 신문사 입사 1973년 문학잡지 ‘네만’ 기자, 논픽션 섹션 담당 1983년 전쟁은 여자의 얼굴을 하지 않았다 탈고 1985년 마지막 증인들   출간 1992년 체제 비판적 책 내용으로 재판받음 1993년 죽음에 매료된 사람들 출간 1997년 체르노빌의 목소리 : 미래의 연대기 출간 1998년 프리드리히 에버트 재단 최고 정치서적상 2001년 에리히 마리아 레마르크 평화상 수상 2005년 전미 비평가협회상 수상 2013년 세컨드 핸드타임 출간 현재 프랑스 거주, 새로운 작품 영원한 사냥의 아름 다운 사슴 집필 중

화들이 제작됐다. 알렉시예비치도 이들을 위한 대본들을 썼다.   ‘아연 소년들’(1989년)=이 책은 러시아 의 상처 아프가니스탄에 관한 것이다. 알 렉시예비치는 소련의 마지막 비공개 전쟁 에 관해, 입대 뒤 ‘아프가니스탄에 파병되 면 아연 관에 담겨 돌아온다고 해서 젊은 아들을 둔 모든 가정들이 공포에 몸서리쳤 던 4년을 썼다. 책을 쓰기 위한 자료를 아 프가니스탄 등지에서 발품을 팔며 수집했 다. 독일어와 영어, 프랑스어, 일본어로 번 역됐다.   ‘죽음에 매료된 사람들’(1993년)=이 폭로 성 보도의 중심에는 사회 체제가 급변한 뒤 삶의 의미를 잃고 자살한 벨라루스 사람들 이 있다. 책은 처음에 벨라루스어로 출간됐 다. 알렉시예비치의 전체 경력에서 거의 유

일한 사례다. 하지만 작가는 이것이 인구 1000만 명의 벨라루스만의 문제가 아니라 쇠락한 거대 국가인 옛 소련 전체의 문제이 기도 하다는 것을 이해하고 이듬해에 러시 아어 판을 출간했다. 그 후 다른 국가의 언 어들로도 번역됐다.   ‘체르노빌의 목소리’(1997년)=체르노빌 원전 사고에서 알렉시예비치의 관심을 끈 것은 1986년 방사능 누출 사고의 물리적 결 과보다는 오히려 사람들의 마음을 좀먹는 사고의 흔적이었다. 우크라이나어와 스웨덴 어, 독일어, 일본어, 영어 번역판도 나왔다. 한국어판은 2011년 서울의 새잎 출판사에서 출간됐다.   ‘이류 시대’(2013년)=그의 마지막 작품 인 이 책에서 알렉시예비치는 소련 붕괴에 주목했다. 여기서 그녀는 살아 남은 자들

[일러스트 드미트리 디빈]

에게 발언권을 줬다. 하지만 책 제목이 보 여주듯 이들은 ‘이(2)류 인간’이었다. 하지 만 이것은 그에게 중요했다. 알렉시예비치 의 책들은 폭로성 보도의 전형을 따르고 있지만 고골과 도스토옙스키가 소중히 여 기는 ‘작은 인간’들에 대한 연민, 그들의 요구와 열망에 대한 관심에 집중하고 있기 때문이다.   ‘이류 시대’ 출간 뒤 알렉시예비치가 ‘독 일 서적 판매업자들의 평화상’(2013년)과 ‘프랑스 예술문학십자훈장’(2014년)을 잇따 라 받은 것은 놀랍지 않다. 이 책이 노벨상을 받는 데 큰 역할을 한 것이 확실하다. 노벨상 위원회는 수상 결정을 공식 발표하면서 “다 양한 목소리를 반영한 알렉시예비치의 창 작은 우리 시대의 고통과 용기에 바치는 기 념비”라고 설명했다.

러시아와 노벨문학상의 인연

1901년 후보에도 못 올랐던 톨스토이  1933년에서야 이반 부닌첫 수상 율리야 레셴코

1901년 노벨상을 수여하기 시작한 이후 노 벨문학상 수상 작가는 모두 111명이다. 이들 중 논란이 없었던 수상자는 없었을지 모른 다. 역대 수상작가는 무슨 이유로 노벨문학 상을 받았을까.   위대한 작가와 시인들 중에서 누가 정말 로 노벨상을 받을 자격이 있느냐를 둘러싼 논쟁은 20세기 초부터 있어 왔다. 알프레드 노벨은 이상주의적 방향을 제시하는 문학 작품 가운데 가장 중요한 작품을 쓴 작가에 게 주는 상을 만들라는 유언을 남겼다. 노 벨문학상은 이렇게 시작됐다.   19 01년 최 초 의 노벨 문 학상 은 무 명 의 프랑스 서정시인 쉴리 프리돔(Sully Prudhomme)에게 수여됐는데 유럽 문단 은 격분했다. 당연히 톨스토이가 받아야 한 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스웨덴 작가와 문 화 활동가들은 노벨상 위원회의 결정에 대 해 이의를 제기한 편지를 레프 톨스토이에 게 보내기도 했다. 하지만 1901년 톨스토이 는 25명 후보자에 포함되지도 못했다.   그 후 톨스토이는 4년간 매년 후보로 추천 됐지만, 노벨상 위원회와 카를 비르센 스웨덴 한림원 서기는 냉담하기만 했다. 비르센은 톨 스토이를 무조건 반대하면서 “이 작가는 문 명의 모든 형식을 비난하며 고급 문화의 모든 면과 동떨어진 원시적 생활양식을 받아들여

당시 명성 체호프블로크 등 한림원의 비난 속 선택 못받아 닥터 지바고 파스테르나크 당국의 압력으로 결국 상 거부 숄로호프, 소련 동의 받은 첫 수상 1987년 브롯스키서 문학상 멈춰

레프 톨스토이

이반 부닌

야 한다고 고집한다”고 비난하기도 했다.   이미 19세기 말 러시아 문학이 유럽의 주 요 문학 가운데 하나로 자리잡았음에도 불 구하고 1933년 이반 부닌이 상을 받기까지 노벨 문학상을 수상한 러시아 작가는 한 명 도 없었다. 러시아 전체와 유럽에 명성을 떨 쳤던 안톤 체호프도, 낭만적 이상주의자로 러시아인에게 추앙받았던 알렉산드르 블로 크도 한 번도 후보에 오르지 못했다. 1930년 토마스 만은 작가이자 정교 사상가인 이반 시멜레프의 대하소설 ‘죽은 자들의 태양’에 충격을 받고 그를 노벨문학상 후보 명단에 포함시킬 것을 노벨상 위원회에 요청했다. 그러나 위원회는 “시멜레프는 진정으로 위 대한 작가의 소질을 갖고 있지만, 위대한 작 가가 되지는 못했다”며 거부했다.   러시아의 두 번째 노벨문학상은 1958년 보리스 파스테르나크가 받았다. 그의 동의 없이 국외에서 출판된 소설 ‘닥터 지바고’ 로 수상했다. 그러나 곧이어 소련에서 벌어 진 박해로 인해 파스테르나크는 노벨문학 상 수상을 거부하지 않을 수 없었다. 1965 년에는 철저한 소비에트 작가 미하일 숄로 호프에게 노벨문학상이 수여됐다. 소련 지 도부의 동의를 받고 수여된 유일한 노벨문 학상이었다.   1970년에는 알렉산드르 솔제니친이 수상 했다. 솔제니친의 작품이 처음 출판되어 수 상하기까지 8년이 걸렸다. 아주 짧은 시간이

었다. 이는 노벨문학상 역사에서 전무후무 한 일이었다. 솔제니친은 노벨상 위원회의 부인에도 불구하고 이 상에 정치적 측면이 반영돼 있다고 말했다.   러시아 문학의 마지막 노벨상 수상자는 1987년에 나왔다. 시인 이오시프 브롯스키 가 노벨문학상을 받은 것이다. 그 뒤로는

오랜 침묵이 이어져 왔다.   노벨문학상은 어떻게, 어떤 원칙에 따라 수여될까? 노벨상 위원회의 결정에 정치적 동기가 작용하고 있다고 간주하는 사람들 이 많이 있다. 실제로 그런지는 알 수 없지 만, 한 가지만큼은 분명하다. 문학도 문학상 도 수수께끼 없이는 불가능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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러시아인 66% “공군의 시리아 파병 지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