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샤라포바 뺨치는 미모 러시아 킥복서 얀코바 >> R8 russiafocus.co.kr

이 섹션은 <로시스카야 가제타(Rossiyskaya Gazeta), 러시아>와 중앙일보가 협력해 제작발간합니다. 그러나 이 섹션의 내용과 관련한 모든 책임은 <로시스카야 가제타>에 있음을 알려드립니다.

2013년 5월 29일 수요일 제15036호

러시아 인사이드

크렘린 은하계 집중해부 러시아의 정치체제는 모든 행성이 블라 디미르 푸틴이라는 유일 항성 주변을 맴 도는 복잡한 소우주와도 같다. 정치평론 가 알렉세이 달린스키의 품격 높은 관측 을 곁들인 러시아 정치 은하계 지도를 소 개한다. 

▶ 2면

러시아 속 한국 상품의 힘

샤라포바 “소치는 제2 고향” 러시아의 테니스 요정 마리야 샤라포바는 “소치는 제2의 내 고향인데 거기서 겨울올림픽이 개최되는 게 너무 기뻐요. 소치가 세계지도에서 더 잘 보이게 됐으면 해요”라고 러시아 TV 도즈디에 출연해 말했다. 그녀는 만 일곱 살인 1994년 신생 러시아가 한창 어려울 때 프로 테니스 선수의 꿈을 찾아 미국 플로리다로 떠나기 전 몇년간 소치에서 살았

한국 상품은 오래전 러시아 시장을 석권

다. 그녀는 “미국서 늘 소치에서 왔다고 했는데 아는 사람이 아무도 없었어요. 내년 올림픽으로 러시아에 이렇게 아름다운 도시가 있는 걸 모두 알게 됐으면 좋겠어요”

했다. 그러나 소비자의 마음을 사로잡기

라고 말했다. 소치 올림픽은 2014년 2월 7~23일 열린다. 사진은 소치 이메레틴 계곡에 건설 중인 올림픽 파크. 왼쪽은 ‘볼쇼이’ 아이스 팰리스, 오른쪽은 ‘피시트’

까지 걸어온 길이 순탄치만은 않았다. 일

올림픽 경기장. 

[2013년 5월 16일, 미하일 모크루신=리아노보스티]

부 상품은 굴욕적 참패를 겪었고, 다른 일부 상품은 살아남았지만 목표는 달성 하지 못했다. 

▶ 4면

러시아 한인 이주 150년  본지가 찾아낸 ‘박양남 족보’로 본 고려인의 삶

굶주림에 조국 등지고 ‘이반 박’으로 새 삶 엘레나 김 Russia포커스 기자

후손이 보관하던 족보엔 제정 러시아가 환대한 사연 스탈린 시대 비극사 등 빼곡 1863년 여름~가을 무렵 연해주 노 브고로드 경비대 부근(현 포시에 트항)에 13~14세대의 한인 가구가 등장했다. 러시아 땅에 처음 출연 한 한인이다. 이를 1863년 11월 30일 노브고로드 경비대장 랴자노프 중 위가 연해주의 제1군사 지사인 표 트르 바실리예비치 카자케비치 해 군 소장에 보고했다. 당시 알렉산드 르 2세의 러시아 제국은 1854~1855 년 영국프랑스 함대가 극동 점령

을 시도한 뒤 이곳으로 주민 을 이주시키고 군사 거점을 강화하 는 등 극 동 개발에 열심이었다.   이런 이유로 카자케비치 소장은 티진헤 강(러시아 이름 비노그라드 나야 강)유역에 정착하게 해 달라 는 한인들의 요청을 즉각 받아들였 다. 1864년 9월 21일 랴자노프 중위 는 한인들이 티진헤 마을(러시아 이름은 랴자노프 중위의 이름을 딴 ‘슬로보다 랴자노프카’)을 만들어 열심히 농사를 지었다. 랴자노프는 이런 내용을 담은 한인 보고서를 지사에 제출하면서 이들에게 빵 판 매와 제분소 건설을 허가하고 ‘보

조금’을 지원해 줄 것을 요청했다. 이 때문에 1864년 9월 21일은 한인 의 연해주 이주가 시작된 날로 간주 됐다.   이에 따라 올해는 러시아의 한인 이주 150년이 되는 해다. Russia포 커스는 초창기 러시아 한인 역사를 취재하는 과정에서 영암(靈巖) 박 씨 가문의 역사가 담긴 족보를 발굴 했다. 러시아어로 돼 있는 주요 기 록엔 굶주림 때문에 1869년 선조 박양남이 고국을 떠나야 했던 사 정, 이들을 따듯하게 대했던 제정 러시아의 모습이 잘 나타난다. 또 그의 아들 그리고리 이바노비치(사 진)의 가계를 통해 스탈린의 숙청 광풍이 몰아닥친 30년대 비극사와 이후 러시아에 뿌리내리는 과정도 잘 보여준다. 이 족보는 후손 박 라

리사(61·우파 거주)가 보관하고 있 던 것으로, 한문으로 조선시대 문 중사를 쓴 두 장짜리 앞부분과 러시 아 내의 가족사를 기록한 30여 쪽 의 러시아어 부분으로 구성돼 있 다. 러시아어 족보는 후손들이 태어 난 해의 갑자도 일일이 기록, 족보를 만든 사람의 한국적 정체성이 담겨 있다.   가족에 따르면 ‘족부’로 불리는 이 기록은 단일 본으로 전해져 오 다 1991년 카자흐스탄의 알마티에 사는 박양남의 손자 박 마르틴(당 시 82세)이 영암 박씨 문중 500주년 을 기념, 17권을 만들면서 여러 권 으로 전해지고 있다. 풍부한 내용을 담은 러시아어 본은 영암 박씨 후손 의 슬프고 굴곡진 러시아 드라마를 보여준다. ▶ 3면에 계속

Culture & Life

러시아 정교회의 부활절

부활절은 러시아에서 중요한 종교 축일 이다. 그러나 그리스도가 부활한 날 러시 아 사람들은 성묘하는 데 더 익숙하다. 박 라리사가 보관 중이던 영암 박씨의 족

모두 소련 체제와 낡은 습속이 결합해

보의 한문 부분.

만든 잘못이다.

▶ 7면


R2

Russia포커스 ┃ 정치

section sponsored by Rossiyskaya Gazeta, Russia 2013년 5월 29일 수요일

정치평론가 알렉세이 덜린스키의 ‘크렘린 정치 은하계’ 분석 

캡스톤커넥션 컨설팅 공동 대표

러시아 정치 시스템은 두 개의 층으로 구성된다. 하나는 공식 조직으로 대통령-정부-정당과 연계된 양원 의회-지방정부-기타 기관들이며 바깥층을 형성한다. 비공식 조직은 권력과 인맥을 바탕으로 한 안쪽 층으로 바깥층보다 훨씬 중요하다. 다양한 정치 집단들은 국가의 수장과 끊임없는 권력 투쟁을 통해 상호 균형을 유지한다. 권력의 평형상태는 매우 깨지기 쉽다. 그래서 정치인들은 위치를 옮길 때 평형에 금이 가지 않게 조심해야 한다. 한 집단의 영향력이 커지면 나머지는 견제를 위해 결집한다. 한편 공식 기관은 비공식 기관의 결정을 즉각 반영하기 때문에 비공식 협의를 통하면 모든 의사 결정이 빨라진다. 이 시스템의 단점은 현 상태를 유지해 줄 메커니즘이 없다는 것이다. 그래서 신속성에선 탁월하지만 지속 가능한 구조는 못 만든다. 이 시스템은 과거에는 강점이 있었지만 시간이 흐른 지금은 변화가 불가피하다. 변화의 관건은 절대적 결정권자 푸틴의 ‘값진 신뢰’가 어떻게 요동치느냐에 달렸다. Russia포커스는 크렘린과 이를 둘러싼 최근의 정치 지형도를 들여다봤다.

이고리 세친, 메드베데프 견제하며 주요 행성 자리매김 <국영석유기업 사장>

1. 블라디미르 푸틴 星(대통령): 시아 정치 은 하계의 유일한 항성이자 은하계 내 다른 행 성들에도 유일한 힘의 원천이다.

크렘린 정치 은하계 

2. 드미트리 메드베데프 星(총리): 반짝했던 대통령 임기 주기에 태양인 푸틴과 거의 맞 먹는 힘을 발휘했다. 하지만 2011년 푸틴의 복귀 선언 뒤 자리는 대통령에 있지만 힘을 잃기 시작했다. 그 후로도 메드베데프 권력 의 크기와 영향력은 지속적으로 줄어들며 은하계의 변두리로 밀려나고 있다. 아직은 은하 중심인 푸틴 성에 대한 검증된 충성심 덕에 은하계 전반에서 푸틴 다음가는 유일 한 2인자로 남아 있다.

일러스트 단 포토츠키

3-1

8-2 4-1 8-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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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 이고리 세친(국영석유기업 로스네프트 사 장), 안드레이 코스틴(3-1, 국영 VTB 은행장), 블라디미르 야쿠닌(3-2, 러시아철도공사 사 장), 세르게이 체메조프(3-3, 국영 로스 테크 놀로기 사장): 크기는 메드베데프 별보다 작 지만 메드베데프의 그 어떤 위성, 심지어 그 의 위성을 다 합한 것보다 크다. 세친은 거의 모든 정치, 국정 현안에서 메드베데프와 대 립각을 세운다. 그는 권력투쟁에서 메드베 데프가 직접 개입하면 밀리기도 하지만, 메 드베데프만 없으면 쉽게 이긴다. 수십 년간 공무원과 국유기업 운영진으로 일한 능력, 특수업무를 맡으면서 푸틴에게 보인 무조건 적 충성심과 국가 자본주의 모델에 대한 믿 음 덕에 크렘린 은하계에서 중력이 상당한 주요 행성으로 자리 잡을 수 있었다. 4. 세르게이 이바노프(대통령 행정실장), 바체 슬라프 볼로딘(4-1, 행정실 부실장): 항상 푸틴 에게 완전히 충성하며 부적절한 야심이 없 음을 증명함으로써 푸틴의 오른팔 자리인 대통령 행정실장직에 올랐다. 푸틴의 신임 및 대통령과 매일 면담할 수 있는 자리에 있 다는 점 덕분에 은하계에서 가장 영향력 있 는 행성 대열에 진입했다. 그의 보좌관 뱌체 슬라프 볼로딘도 2011년 총선과 2012년 대선 에서 활약한 후 푸틴의 왼팔로 임명되었다. 5. 세르게이 나리시킨(하원의장): 메드베데프 대통령 당시 크렘린 행정실장을 맡고 있을 때도 푸틴에 대한 충성심을 간직했다. 이 충 성심은 국가 두마(하원) 의장이라는 직책으 로 보상받았다. 총선이 여권에 점점 큰 도전 이 돼가는 상황에서 하원 의장의 중요성은 점점 더 커질 것이다. 6. 세르게이 쇼이구(국방장관): 푸틴이나 메 드베데프의 측근이어서가 아니라 자신의 카 리스마로 권력의 중심이 된 유일한 인기 정 치인이다. 20년 동안 정계에 몸담고 있는 그 는 푸틴보다 먼저 정계에 입문해 러시아 정 치 은하계에서 최장수 기록을 세우고 있다. 쇼이구는 누가 크렘린의 주인이든 믿음직스 럽게 크렘린을 보좌하고 자신의 산하 조직 을 잘 이끈다는 점에서 푸틴의 신임이 돈독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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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 세르게이 라브로프(외교장관), 드미트리 로 고진(8-1, 부총리), 세르게이 소뱌닌(8-2, 모스 크바 시장): 업무 능력을 인정받아 각각 부총 리와 모스크바 시장이 됐다. 현재는 정당 지 도자이며 이전에 외교정책 실무를 담당했던 로고진은 러시아 국내문제와 관련된 업무를 수행하고 있다. 지역 전 대표이자 정부 관리 자였던 소뱌닌은 인기 정치인이 될 수 있다는 것을 증명해야 한다. 보여줘야 하는 것을 보 여주는 자질이 이제까지는 이들에게 없었다. 9. 엘비라 나비울리나(대통령 보좌관, 차기 중앙 은행 총재), 드미트리 코작(9-1, 부총리), 이고르 슈발로프(9-2, 부총리), 알렉세이 밀레르(9-3, 가즈프롬 사장): 메드베데프 성단의 자유민주 주의적 시각을 공유하지만 메드베데프 성에 레임덕 현상이 나타나는 것처럼 보이자 지금 은 쿠드린 성을 향해 움직이고 있다. 두 부총 리와 중앙은행 총재가 힘을 합하면 세친의 국 가자본주의 연합 세력과 힘의 균형을 맞출 막 강한 정치세력을 구축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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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 발렌티나 마트비옌코(상원의장), 알렉산더 흘로포닌(7-1, 전 총리, 북캅카스 연방관구 대 통령 전권대표), 알렉산더 베그로프(7-2, 중앙 연방관구 대통령 전권대표): 푸틴과 메드베데 프 모두의 신임을 받는 인사들이지만 정치 게임에서 살아남고, 메드베데프와 함께 은 하계 변두리로 밀려나지 않기 위해 현재 온 힘을 다해 푸틴에게 충성한다.

10. 알렉세이 쿠드린(전 제1부총리, 상트페테 르부르크 국립대 인문대 총장): 십여 년간 정 치생활을 했으며 푸틴과의 개인적 친분과 그의 신뢰를 바탕으로 권력을 유지해 왔다. 메드베데프의 영향력이 줄면서 쿠드린은 그 를 향해 점차 모여드는 정부 내 자유주의 경 제론자들의 중심이 되고 있다. 쿠드린 성이 푸틴의 궤도상에 있고 푸틴 태양계의 중심 으로 나아가고 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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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 블라디슬라프 수르코프(전 부총리): 메드 베데프와 너무 가까워 푸틴의 지원을 잃었 다. 메드베데프가 더는 그를 지켜줄 수 없게 되자 다른 유력자들에 의해 푸틴의 태양계 밖으로 밀려났다. 12. 아르카디 드보르코비치(부총리), 드미트 리 리바노프(12-1, 교육부 장관): 푸틴보다 메 드베데프의 중력권에 가까웠지만 메드베데 프 성이 줄어들자 힘을 잃고 은하계 밖으로 밀려나는 중이다. 5월 수르코프라는 혜성이 떠나면서 이들의 영향력은 더욱 줄어들었다.

이바노프 대통령 행정실장 영향력 있는 행성 대열 진입 카리스마로 자체발광 쇼이구 푸틴이 신임하는 최장수 행성 russiafocus.co.kr/ politics

13. 블랙홀 정치계의 망각: 다양한 세대의 정 치인이 사라지고 있다. 이들에겐 스스로 정치 권을 떠나지 못한다는 하나의 공통점이 있다. 정치계의 상황이 변하면서 과거 정치인 중 누 군가를 다시 부상시키는 게 유리하다 싶은 상 황이 생기지만, 과거의 정치인들이 아닌 현 정 치인들에게 달린 문제라는 점은 분명하다.


Russia포커스 ┃ 사람

2013년 5월 29일 수요일 section sponsored by Rossiyskaya Gazeta, Russi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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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암 박씨 러시아파 후손의 굴곡진 인생 드라마

한때 땅 7ha 지주로 떵떵  강제 이주 땐 토굴 파고 겨우살이 <2만여 평>

엘레나 김 Russia포커스 기자

▶ 1면에서 계속 가문의 기원=러시아어 기록에 따 르면 영암 박씨의 역사는 과거를 보 기 위해 서울로 떠난 영암 출신의 박동에서 시작됐다(‘족부’는 이를 1461년으로 본다). 동은 뛰어난 성 적으로 과거에 급제한 뒤 고위 관료 인 ‘식관’이 됐다. 그러나 왕(세조로 추정)과의 갈등으로 함경북도 경흥 군으로 유배된 뒤 후손이 수백 년간 그곳에서 살았다. 또 본관을 ‘넨암 박’으로 기록했다. 족보는 18세기 접 어들 무렵 ‘넨암 박씨 8대손 박 사수 르’와 ‘임선과 증석’이 정리한 것으 로 돼 있다. 그러나 러시아어 기록은 발음 문제에 오해가 반영된 것으로 보인다. 한문 기록엔 본이 ‘영암(靈巖)’으 로 돼 있다. 내용은 이렇다.   “입북 시조가 돈(敦)씨이다. 문과 를 봐 경성에서 예조정랑으로 입시했 는데 과생들이 그를 쫓아내 경흥부 송상동으로 가게 됐다. 현재 8대다. 조상의 사적을 모르게 될 것을 우려 해 기록을 후인에게 남긴다. 건륭11년 (1746년 )영암 후인 박시등 씀.”   “기록을 14ㆍ15ㆍ16대까지 참고했 다. 이후 서로 멀어지고 가문의 사람 들이 서로를 잘 몰라 큰일을 같이 상 의할 수 없고, 이에 족보를 수정하 고 기록해 후대에 넘긴다. 광서 18년 (1855년) 임진 12월.”   러시아 시조의 탄생=1820년 영 암 박씨 러시아파 시조인 박양남이 함경북도 경흥에서 태어났다. 1869 년 양남은 조선 내 기아와 탄압을 피해 아내, 두 아들과 함께 러시아 로 건너왔다(이때는 고종 7년으로 병

1916년에 찍은 러시아 영암 박씨의 2대인 박양남의 아들 그리고리 이바노비치(오른쪽 셋째 어른)의 가족사진. 왼쪽부터 마르타(맏딸), 마리야(둘째 딸), 부인 나탈리아, 무릎 위 카챠, 마트베이(그리고리가 안고 있는 둘째 아 들), 형의 손자(이름 미상), 맏아들 마르틴. 

49세에 함경도 떠난 박양남 러시아 국적 얻고 9남매 둬 손자들은 ���제 알현하기도 ‘무섭고 어수선한’ 혁명·내전 이후 숙청과 강제 이주 광풍 손주 사위들 투옥, 목숨 잃어

인양요가 일어난 지 3년이 지나고 천 주교 탄압이 심해지면서 국내가 극단 적으로 어수선해지는 시기다). 비슷한

이유로 피난 온 6명의 한인과 함께 연해주 수이푼 시(현재 우수리스 크)에 푸칠로프카 마을을 만들었 는데 이곳은 포시에트의 첫 한인 정 착지 바로 옆이다. 푸칠로프카의 한 국 이름은 육성촌(6姓村)이다(朴ㆍ 金ㆍ李ㆍ千ㆍ黃ㆍ吳씨).   전문가들에 따르면 당시 제정 러 시아는 소수 민족에 우호적이었고, 그들의 삶에 간섭하지 않았다. 이주 자들이 황제를 최고 권력자로 인정 하고, 세금을 내며 법률을 준수하면 지원했다. 한인도 환영 받았다. 주린 배를 움켜쥐고 들어온 이들에게 매 달 가족당 보리 1푸드(16.38㎏)씩 배 급했다. 보리는 130㎞ 떨어진 블라 디보스토크에서 줬고 양남은 매달 왕복했다.   러시아정교회로 개종=1870년 박 씨 일가는 다른 한인처럼 정교를 받 아들였다. 얼마 후 러시아 국적을 얻 었고, 그에 따라 제정 러시아 군대 에 복무할 수 있게 됐다. 부지런히 일해 넉넉하게 살았다. 이름을 이반 으로 바꾼 양남은 슬하에 아들 다섯 과 딸 넷을 뒀다. 그 가운데 현재 셋 째 아들인 그리고리 이바노비치(사 진의 남자)의 기록만 남아 있다. 그 는 경찰 보조 관리관으로 있다가 나

[사진 박씨 문중]

중에는 조그만 식용유 공장을 세웠 다. 양남의 땅은 7㏊(2만여 평)나 됐 고 방이 여덟 개인 집에서 살았다.   1912년 정착촌에 학교가 세워졌 고 양남의 결혼한 자식들은 자신의 아들과 딸을 학교로 보냈다. 1913년 로마노프 왕조 300주년 기념행사에 도 참석해 황제를 알현했다.   혁명과 내전 뒤 뿌리 내리기=혁명 과 내전에 대해 족보는 ‘무섭고 어 수선했다’고 할 뿐 별 기록을 하지 않는다. 이야기는 1929년에 다시 이 어진다. 이 시점부터는 셋째 아들인 그리고리 가족의 이야기가 집중된 다. 그에 대해선 두 번 결혼해 아들 넷과 딸 다섯을 뒀다는 기록만 있다. 1930년대에 그리고리 가족은 극동 을 떠난다. 그리고리와 첫 부인 사이 에 태어난 맏딸 베라만 극동에 남았 다. 두 명은 첼랴빈스크로 가고 나머 지는 모스크바로 갔다. 당시 소련인 들은 한 곳에 오래 살지 않았다. 소 련은 빠르게 발전 중이었다. 수천 개 의 공장이 만들어지고 신도시도 조 성됐다. 사람들은 들떴다. 그리고리

의 자식들도 공부나 다른 이유 때문 에 뿔뿔이 떠났다. 이들은 서로 도 왔지만 경제적 지원은 나이가 많은 (사진 왼쪽에서 둘째) 마리야가 맡 았다. 그녀는 소련의 당 활동가였던 레프 유와 결혼한 뒤 함께 극동으로 돌아갔다. 남편은 아무르 강 유역 콤 소몰스크의 당 구역위원회 서기가 됐고 마리야는 하바롭스크 시 집행 위원회에서 근무했다. 마리야는 멀 리서도 가족을 도왔다. 장성한 자식 들은 결혼해 하바롭스크·무르만스 크 등으로 제각각 삶의 터전을 찾아 나갔다.   직격탄, 숙청과 강제 이주=1930년 대 말 사회는 불안해졌다. ‘인민의 적’ 색출 작업이 시작됐다. 정권에 반대하거나 다가오는 전쟁에서 소련 편에 설 것이란 믿음을 주지 않는 사 람들을 겨냥했다. 한인에게도 칼날 이 날아왔다. 마리야(그리고리의 셋 째 딸)와 남편 레프가 모스크바로 불 려간 뒤 레프가 투옥됐다. 공업전문 학교를 마치고 모스크바의 한 공장 에서 일하던 막내딸 카챠(사진 무릎

에 앉은 여자아이)는 케샤 박을 만나 결혼한 뒤 야로슬라블로 이사했는 데 몇 년 뒤 케샤가 체포됐다. 지금도 후손들은 왜 체포됐는지 모른다. 대 재앙의 전조였다. 대대적 투옥이 시 작되면서 그리고리 이바노비치의 딸 들은 모두 남편을 잃었다. 그리고 37 년 10월 극동의 한인은 중앙아시아 로 강제 이주되기 시작했다.   당시 그리고리의 맏아들 마르틴 (1909년생)가족만 극동에 있었다. 마르틴은 24시간 내에 짐을 챙기고 떠나야 했다. 화물칸 하나에 네 가 족씩 밀어넣고, 몇 주간을 그냥 달 렸다. 기차는 사람들을 허허벌판에 내려놓고 떠나기도 했다. 소비에트 정부가 건자재와 식품을 주긴 했지 만 살 곳이 없는 그들은 토굴을 파고 겨울을 나야 했다.   세월이 흘러 마르틴 가족은 카자 흐스탄의 카잘린스크 시에 정착했 다. 박양남의 3대손인 그는 학교 교 무부장이 됐고 누나 마르파 가족 도 카자흐스탄으로 합류했다. 그리 고리 첫 부인의 딸인 베라는 남편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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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암 박씨 족보 러시아본 겉장. 러시아어 족보(가운데), 한문 족보.

사별한 뒤 우즈베키스탄의 한인 집 단농장(콜호즈) ‘폴랴르나야 즈베 즈다(북극성)’로 갔다. 마리야는 동 생 카챠가 사는 첼랴빈스크로 갔다. 마리야는 결핵을 앓다 세상을 떠났 고 카챠는 언니의 자식들을 도맡아 키웠다.   다시 모인 가족들=전쟁이 끝나 고 형제 자매가 다시 모였다. 마르 파는 아이들과, 마트베이는 어머니 를 모시고, 마르틴은 가족을 이끌 고 ‘폴랴르나야 즈베즈다’ 콜호스 에 있는 맏누이 베라에게로 갔다. 그 무렵 ‘폴랴르나야 즈베즈다’는 우즈 베키스탄 최고의 농장이었다. 1951 년 그리고리의 부인 나탈리아 오(사 진의 엄마)가 한많은 세상을 떠났다. 모든 가족이 모였다. 막내딸 카챠도 갔다. 본지가 박양남 후손의 드라마 를 찾아낼 수 있던 것은 이 카챠의 손녀 예카테리나 김 덕분이다.   양남의 6대손, 신세대=양남의 후 손은 그 뒤 옛 소련 국가로 널리 퍼 져 있다. 러시아·카자흐스탄·우즈 베키스탄 등에 사는데 연락이 안 되 는 가족들도 있다. 6세대가 지난 뒤 서로의 존재감이 흐려져 있다. 그러 나 박양남의 피를 이어받은 신진 동 양학자인 예카테리나 김 같은 이는 “할아버지가 슬퍼하실 거예요. 그래 도 나는 정체성을 유지하기 위해 애 씁니다”라고 말한다. 노보시비르스 크 소재 러시아과학아카데미 시베 리아 지부의 고고학ㆍ민속학 연구원 과정에 다니는 그는 가족 중 유일하 게 한국어를 구사하는데 ‘한인 디 아스포라와 러시아 내 한인 정체성’ 을 연구한다. 그는 “러시아에서 150 년 사는 동안 한인의 독특한 정체성 이 형성됐어요. 많은 한인은 한국어 를 모르며 러시아에 동화되어 살지 만 나는 한인이라고 생각해요”라고 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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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ussia포커스 ┃ 경제

section sponsored by Rossiyskaya Gazeta, Russia 2013년 5월 29일 수요일

러시아에서 잘나가는 한국 상품들

갤럭시 S4 완판 행진  현대·기아차, 독일·일본 아성 위협 빅토르 쿠지민 Russia포커스 기자

삼성전자 스마트폰 갤럭시 S4의 러 시아 내 수요가 모든 예상을 뛰어 넘었다. 러시아 휴대전화 판매점들 은 시범 판매용으로 사전 구매한 S4 2000대 이상이 2~3일 만에 매진되 자 급히 추가 주문에 나섰다. 시장 분석업체 IDC의 러시아 휴대전화시 장 조사 프로그램 매니저 사이먼 베 이커는 “S4의 선행 제품인 갤럭시 S3가 2012년 4분기 러시아 시장에서 가장 인기 있는 스마트폰이었다”고 말한다. 한국 기업의 러시아 시장 성 공 스토리는 이뿐만이 아니다.   “러시아에서 한국 제품의 인기는 굉장하다. 거의 모든 러시아 가정에 서 삼성전자나 LG의 가전제품과 전 자제품들을 볼 수 있다”고 주한 러 시아 대사를 지내고 현재 러시아 대 통령 직속 ‘국가 경제 및 행정 아카 데미(RPANEPA)’ 산하 ‘아시아태 평양경제협력체(APEC) 연구센터’ 부소장으로 있는 글렙 이반센초프 는 말했다. 한국산 자동차의 인기 도 아주 높다. 기아ㆍ현대자동차는 2013년 1분기 러시아 자동차 판매량 에서 3위와 4위를 각각 차지했다.   한국 자동차는 최근 1년 프리미 엄 자동차 부문 약진이 두드러졌다. 기아자동차는 러시아 최고 인기 영 화배우인 올레그 멘시코프를 광고 모델로 기용하며 비즈니스급 세단 쿠오리스(Quoris)를 출시했고, 현대 자동차도 대형 세단 에쿠스를 내놓 았다.   러시아는 독일 메르세데스 벤츠 와 BMW, 아우디, 일본의 렉서스가 탄탄한 입지를 다진 시장이다. 경쟁 이 녹록지 않지만 러시아 중소업체 대표들은 현대ㆍ기아차의 프리미엄 급 자동차를 구매한다. 주머니 사정 상 ‘엄청 비싼’ 차를 살 순 없어도 권 위가 있는 차가 필요한 사람들이다.   “한국산 자동차는 이제 가격ㆍ품 질에서 유럽 자동차들에 밀리지 않 는다. 현대ㆍ기아차가 러시아 판매 선 두를 달리고 있다는 점만 봐도 알 수 있다. 프리미엄급으로 부상하는 중가 자동차 부문이 현대ㆍ기아차의 틈새시장이다.” 금융회사 Aforex의

러시아 속 한국 상품의 힘이 점점 강해지고 있다. 휴대전화·자동차는 최고의 자리를 넘본다. 그러나 한편으론 무너지는 상품도 있다. 라면 같은 상품들이다. 

삼성, 스마트폰 시장 평정 차 판매량, 기아·현대 3·4위 옷과 즉석 라면은 재미 못봐

자산 매니저 세르게이 코브자코프 는 이렇게 지적했다.   한국 브랜드가 러시아에서 항상 유명하고 인기 있었던 것은 아니다. 한국 브랜드의 인지도는 지난 25년 간 부침을 겪었다. “과거 한국 기업 들은 투매를 했지만, 지금은 자사 제 품에 명품 아우라를 부여하며 공격 적 광고전을 펼친 덕분에 가격에서 경쟁사들과 어깨를 나란히 하고 있 다”고 국제금융홀딩 피보(FIBO) 그 룹의 선임 분석위원 아나톨리 보로 닌이 말했다.   실제로 사회주의 시대가 끝날 무 렵 한국산 제품의 평은 그다지 높지 못했다. 일본·독일·미국 제품은 달 랐다. “당시 소니 트리니트론 텔레비 전이나 히타치 비디오 재생기를 갖 고 있는 사람은 상당한 재력가로 직 장 동료의 부러움을 샀고 다들 같은 것을 사려고 애썼다. 삼성전자 제품 은 더 나중, LG 제품은 조금 더 뒤 시중에 나왔다. 삼성전자와 LG 제 품에 대한 반응은 처음엔 굉장히 신 중했다”고 당시 무역업에 종사했던 세르게이는 회상했다.   지금은 모든 것이 변했다. 일부 전 자제품 부문에서 한국 기업들은 과 거 경쟁사들을 한참 앞질렀다. 다른

부문에서도 더 풍부한 제품과 보증 서비스 확대연장 패키지를 통해 판 매 확장에 나서고 있다. 지출에 꽤 신중한 태도를 보이는 러시아에서 기술 수준보다는 가격이 여전히 더 중요하기 때문이다.   삼성전자도 저가 휴대전화 판매 에서 시작했지만 지금은 애플을 밀 어내고 선두를 달린다. 컴퓨터 시장 에서는 소니가 한국 기업의 공습에 길을 내줘야 했다. 세르게이 코브자 코프는 “한국 기업의 성공 비결은 엄청난 마케팅 비용과 최대한 넓은 제품 라인, 고객서비스에 있다”며 “전엔 일본ㆍ미국 기업들이 혁신 창

[사진 이타르타스]

조자였지만, 지금은 휴대전화와 TV 기술에서 한국 기업의 강세가 뚜렷 하다”고 강조했다.   한국 상품의 러시아 시장 진출도 항상 수월한 것은 아니다. 대우자동 차 넥시아는 ‘반제품’ 방법으로 조 립 생산된 러시아 최초의 외국산 자 동차 상표였다. 넥시아는 1995년 로 스토프 금융산업그룹 ‘도닝웨스트’ 의 시설에서 생산됐다. 로스토프산 넥시아는 우즈베키스탄산 대우차보 다 더 잘 팔렸지만 도닝웨스트사는 ‘넥시아가 진부하다’는 이유로 생산 을 중단했다. 그 후 이 회사는 ‘콘도 르’ ‘오리온’ ‘아쏠’ 같은 브랜드를

생산해 그 이름으로 한국 차를 판 매했지만 더는 관심을 끌지 못했다. 한 한국 자동차 기업 대표는 “러시 아 사람들은 전혀 다른 색상을 좋아 하기 때문에 한국에서 잘 팔리는 자 동차라도 러시아에서 안 팔릴 수 있 다”고 우려한다.   한국 의류도 러시아에서 그다지 큰 성공을 거두지는 못하고 있다. 일 부 즉석 라면도 비슷하다. 러시아인 에게 이 라면은 싸구려에 건강에도 좋지 않은 ‘하층민’ 식품이나 다름 없다. 많은 이들이 도시락 라면을 은 근히 먹지만 익숙지 않은 양념들은 거부감을 불러일으킨다.

태블릿 앱 ‘NARR8’ 한국 출시한 마트베이코 이사

한국 팬들, 만화 형식 ‘Jam’ 시리즈에 열광   “우리는 마케팅을 직접 한다. T스 토어와 삼성 갤럭시 앱스토어에 진 출하려 한다. 또 콘텐트 생산자로서 한국 정부의 지원을 받는데 이것도 매우 효과가 크다. 러시아에도 이런 제도가 있으면 좋겠다. 아시아에 진 출하고 싶지만 어떻게 시작해야 할 지 막막한 기업들에 한국부터 진출 해 보라고 조언해 주고 싶다.”

리사 레비츠카야 Russia포커스 기자

한국이 중·일보다 개방적 고품질 콘텐트 선뜻 구입 지난 3월 태블릿 PC용 애플리케이 션 ‘NARR8’의 콘텐트를 한국어 버 전으로 출시한 나레이트사의 막심 마트베이코 이사를 만나봤다. 나르 8은 흥미로운 현상, 유물, 유명 인물 의 숨겨진 이야기들을 생생한 영상 과 이미지로 보여주는 애플리케이 션이다.

  -한국어판 출시의 어려움은. 나레이트 사 막심 마트베이코 이사 (왼쪽)와 모바일 콘

  -NARR8 아이디어는 어떻게 나왔나.

  “우리는 스타트업 인큐베이터인 ‘Farminers’라는 벤처회사로 시작 했다. 말도 안 될 것 같은 프로젝트 가 많았다. 새로운 인터넷을 만들자 는 제안도 있었다. 그렇게 특별한 콘 텐트를 만드는 데 미쳐 있는 사람들 을 위해 NARR8용 스튜디오를 만 들었다. ‘크로노그래픽’ 시리즈를 만들던 팀이 있는데 이들은 ‘당신의 아이패드를 위한 시계’라는 앱을 생 각해 냈다. 예를 들면 시간뿐 아니 라 1825년 오늘 무슨 일이 일어났고, 2013년 오늘엔 어떤 일이 일어날지 예측해 보자는 설정이다. 벌써 ‘구 텐베르크의 혁명’ ‘코르테스와 멕 시코 정복’ 편이 나왔다.”   -수익 모델은.

  “약 70만 명이 우리 앱을 설치했 고, 일부 콘텐트도 점차 유료화되고 있다. 가격은 지금 생각 중인데 합리 적으로 할 것이다.”

텐트 앱 나르8.

  “번역이 어려웠다. 개발팀에 한국 인 여성이 합류한 뒤 바로잡혀 갔다. 보완할 점이 남아있긴 하지만 2주에 보통 11개 에피소드를 올리고 그만 큼 번역도 빠르게 이뤄지고 있다.”   -한국 사용자들의 반응은.

  -출시한 국가는.

  “러시아어, 영어, 스페인어, 한국 어 네 종류 앱을 만들었다. 서방 국 가에서는 우리를 꽤 보도한다. 한국 에서도 보도가 많아 놀랐다.”   -왜 한국을 택했나.

  “한국이 아시아 국가 중 외국 기 업에 가장 개방적이기 때문이다. 중 국ㆍ일본에서는 우리 콘텐트로 진 출하는 게 사실상 불가능하다. 감독 기관과 규제가 너무 많다. 중국에는 파트너를 통해서만 진출할 수 있고, 일본 시장은 너무 세분화돼 있다. 그 리고 스마트TV를 출시한 다른 기업 들이 한국에 콘텐트 소비 붐이 일고 있으며 고품질 콘텐트를 기꺼이 구 입할 의사가 있다고 말해줬다.”   -한국 사업은 어떻게 하나.

  “피드백이 많았고 인터넷 토론도 활발하다. 앱 구동에 문제가 있다 는 불만도 있지만 대체로 긍정적이 다. 문제를 찾아 수정하고 있다. 가 장 반응이 좋은 콘텐트는 만화 형식 의 ‘Jam’ 시리즈다. 한국 팬클럽도 생겼다. ‘Jam’은 컴퓨터 게임에 관 한 시리즈물로 만화 형식이고, 8비 트 음악과 함께 제공되는데 한국인 들이 이 시리즈에 푹 빠진 것 같다.”   -한국에 대한 느낌은.

  “확실히 다른 아시아 국가보다 더 유럽화 혹은 미국화 돼 있다. 지 난 5년 사이 아주 많이 변했다. 영어 를 할 줄 아는 사람이 많이 늘었다. 2008년엔 지하철에 영어가 없거나 안내표지판이 인터넷과 달라 탈 수 없었는데 지금은 완전히 달라졌다.” 전체 인터뷰

russiafocus.co.kr/41995


Russia포커스 ┃ 오피니언

2013년 5월 29일 수요일 section sponsored by Rossiyskaya Gazeta, Russia

R5

특별 기고 - 2차대전 종전 기념일을 돌아보며

‘이반 일병’이 ‘라이언 일병’보다 40배 많았건만  다면 소련이 독일을 이기지 못했을 것이라 주장한다. 그게 옳을까? 1차 군사경제 지원 협약에 따라 미국은 무기대여(lend-lease) 절차를 통해 동부전선에서 역사상 가장 치 열한 전투가 벌어졌던 41년 10월~42년 6월 30일 사이에 폭격기 900대, 전투기 900대, 중ㆍ소형 탱크 1125대를 지원해야 했다. 그러 나 니콜라이 아크베르딘 대령의 자료에 따 르면 소련군이 실제로 받은 것은 폭격기 267 대(30%), 전투기 278대(31%), 중형 탱크 363 대, 소형 탱크 420대(34%)였다. 이런 상황은 그 이후 계속됐다. 겨우내 벌어진 전투 이후 붉은 군대에 지원이 절실히 필요했던 43년 봄, 북대서양 항행이 위험해지자 이 항로를 통한 물자 공급은 1년6개월 이상 중단됐다.

겐나디 보르듀코프 모스크바국립언어대 교수 러시아사회연구자연합회장 전 고려대학교 초빙교수

스티븐 스필버그 감독의 영화 ‘라이언 일병 구하기’가 세계적인 반향을 일으켰던 적이 있 다. 영화는 1944년 제2차 세계대전 당시 연합 군의 노르망디 상륙 작전을 이야기한다. 그런 데 난데없이 미국의 역사학자 마이크 데이비 스는 ‘이반 일병 구하기’에 세계인의 관심을 촉구했다. 그는 44년 여름에 이루어진 유럽 해 방은 노르망디가 아닌, 벨라루스의 숲에서 나 와 막강했던 독일군 후방을 용감무쌍하게 공 격했던 소련의 빨치산 부대로부터 시작됐다 고 주장한다. 그 며칠 뒤 바그라티온 작전이 시작됐다. 데이비스는 사실 동시에 시작된 두 개의 강력한 군 작전을 비교하며 “미군 일병 이 과연 ‘바그라티온’ 작전에 대해 들어봤을 까”라는 질문을 던졌다. 44년 6월은 연합군이 노르망디 해변에 상륙한 것을 의미할 뿐 이때 소련군이 드비나 강을 넘은 사실은 묻혀 있다. 붉은 군대, 나치군 사단 674개 궤멸시켜   나치 독일과의 전쟁에서 발생한 사상자 수 로 보자면 ‘라이언 일병’보다 러시아의 ‘이반 일병’이 40배나 많다. 그러나 소련군을 기리 는 기억은 점점 더 희미해지고 있다. 마치 제2 차 세계대전에서 소련군의 역사적 공적을 인 정하면 연합군이 유럽을 구출한 의미가 퇴색 이라도 된다는 듯 말이다. 제2차 세계대전 승 리에 결정적 기여를 한 러시아의 역할을 인정 하지 않고 승전의 의미를 조각조각 나누려는 사람들의 의도는 무엇일까? 이런 질문을 던 져 볼 수 있다. “그런 질문들이 과연 나치 독 일의 위협으로부터 전 세계를 구출하기 위해 생명을 던진 사람들에 대한 예의일까?”

5월 9일 전승기념일을 맞아 기념식이 열린 가운데 젊은 여성이 참전 용사들에게 꽃을 선사하고 있다. 

1944년 여름 유럽 해방의 서막은 연합군 노르망디 상륙이 아닌 소련군 ‘바그라티온’ 작전이 연 것 2700만 희생된 소련 역할 인정을

  제2차 세계대전의 결과를 재평가하려는 사람들은 전쟁 당시 이미 유력한 정치가들 이 내린 평가를 애써 무시한다. 42년 5월 루 스벨트 대통령은 “전반적인 관점에서 보았 을 때 소련군이 궤멸시킨 독일의 전력은 25 개국 연합군 모두가 한 것보다 명백히 크다” 고 말했다. 44년 처칠 영국 총리도 스탈린에

게 보낸 서한에서 “내가 예전에 말한 것을 내일 영국 의회에서 다시 말할 것입니다. 독 일군에게 치명타를 가한 것은 바로 소련 군 대였음을”이라고 언급했다.   제2차 세계대전 중 가장 규모가 컸던 전장 은 소련~독일전선 또는 동부전선이었다. 동 부전선은 북미전선, 이탈리아 및 서부전선보 다 4배가 컸다. 41년엔 4000㎞, 42년엔 6000 ㎞를 넘었다. 현재까지 알려진 바로는 동부 전선의 붉은 군대는 674개 나치군 사단을 궤 멸시켰다. 영·미 연합군은 41~43년 북아프리 카에서 9~20개 사단, 43~45년 이탈리아에서 는 7~26개 사단, 두 번째 전선이 열린 후 서 유럽에서는 56~75개 나치 사단과 전투했다. 41~45년 영·미 연합군이 176개 사단을 생포 했던 반면, 소련군이 파괴한 독일군 사단은

[사진 이타르타스]

607개에 달했다. 나치 전투기의 70%, 탱크의 75%, 화기의 74%가 동부전선, 붉은 군대와 의 전투에서 파괴됐다. 독일의 패색이 짙어 지자 제2차 세계대전의 마지막 불씨가 타고 있었던 극동의 포성이 잦아들었다. 마흐무트 가레예프 장군은 “45년 8월 일본군은 병사 700만 명, 전투기 1만 대, 함선 500대를 보유 했던 반면 미국과 아태 지역 동맹국은 군사 180만 명, 전투기 5000대였다”고 말했다. 소 련이 참전하지 않았다면 관동군 주력이 대미 전선에 배치됐을 것이고, 그렇다면 전쟁은 2 년 더 지속돼 피해도 늘었을 것이다.   물론 영국과 미국이 소련군을 경제적으 로 지원했기에 동부전선에서 나치를 더 신 속하게 섬멸할 수 있었던 것은 의심할 나위 없다. 하지만 일각에서는 이런 지원이 없었

유럽의 인명 손실 절반 이상이 소련 국민   과거를 난도질하고자 했던 사람들은 무자 비한 전쟁의 냉정한 진실을 어떻게든 외면 하려 했다. 이 전쟁에서 사망한 소련 국민은 2700만 명이었고 그중 상당수는 민간인이었 다. 900만 소련 군인도 전장에서 죽었다. 영국 의 사망자는 37만5000명, 부상 36만9400명이 었으며, 미국은 40만5000명이 죽었다. 이들을 포함해 총 107만6000명이 모든 전선과 해전 에서 사망했다. 소련의 희생은 이처럼 컸다.   벌써 10년 동안 ‘기억의 전쟁’ ‘기념물의 전 쟁’을 벌이고 있는 사람들은 이러한 숫자들을 기억할 필요가 있다. 소련, 그리고 신생 러시 아는 단 한 번도 이러한 공동 승리의 공을 소 련에만 돌린 적이 없으며, 독일에 대항한 연합 국들 중 누가 더 큰 공을 세웠는지를 따지는 비인간적인 행위를 한 적도 없다. 또한 러시아 는 제2차 세계대전에 참전했던 옛 소련 공화 국들의 역할을 절대로 폄하하지 않았다. 승전 의 기억에는 국경과 민족이 있을 수 없다. 누 구도 끔찍했던 인명 살상의 아픔이 서린 승전 기념일을 민족주의나 자민족 중심주의라는 명목으로 훼손할 수 없을 것이다.

2차대전 승패 가른 쿠르스크바그라티온 전투

구자정 대전대 역사문화학과 교수 러시아사 전공

소련은 제2차 세계대전에서 큰 피해를 보았 다. 인적 피해만 2000만 명을 넘는 것으로 역사학자들은 추정한다. 이 수가 부상자를 포함하지 않은 추정치라는 점을 고려하면 피해가 얼마나 큰지, 왜 2차대전을 러시아에 서는 ‘대조국전쟁’이란 각별한 명칭으로 부 르는지 이유를 알기란 어렵지 않다.   2차대전 당시 유럽 전선은 사실상 나치 독 일과 소련 사이에 승패가 결정됐다. 나치가 총 전력의 80% 이상을 소련과의 대결에 쏟아 부었고, 소련은 1941년 여름~44년 여름 3년 간 거의 혼자 독일을 상대해야 했기 때문이 다. 소련의 막대한 피해는 침공에 일방적으로 몰리던 전쟁 초기에 집중되었는데, 그 피해는 사실 이오시프 스탈린의 잘못된 정책 탓이 컸다. 독일의 공격 징후를 스탈린이 무시해 공격 개시 시점에 소련은 전쟁 준비가 제대로 돼 있지 않았다. 더구나 소련군은 스탈린이 30년대 후반 무차별적으로 자행한 군 수뇌부 대숙청으로 심각히 약화된 상태였다.   하지만 승승장구하던 독일군에 모스크바 방어군이 첫 시련을 안긴 이후 42년 겨울 스 독자 투고, 객원 칼럼, 만평 등 ‘오피니언’란 의 기고나 만평은 다양한 견해를 소개하고자 선정됐으며, Russia포커스나 로시스카야 가 제타 편집부의 입장을 반영하지 않습니다. 투 고는 편집부 메일 editor@russiafocus.co.kr 로 보내주십시오.

탈린그라드, 43년 여름 쿠르스크에서 독일 군의 진격은 잇따라 저지됐다. 특히 쿠르스 크 전투를 기점으로 전쟁 양상은 변하기 시 작했고, 붉은 군대가 전 전선에서 공세로 전 환해 실지회복에 나선 이 무렵 승패는 이미 결정됐다. 이 과정을 앞당긴 것은 44년 6월 의 바그라티온 공세였다.   바그라티온 공세는 유사 이래 최대 전투 인 동시에 2차대전에서 독일이 당한 최대의 패배이자 연합군이 거둔 가장 큰 규모의 승 리였다. 약 2개월간의 전쟁에서 동부 전선 중 앙부를 담당한 독일군의 주력 중부집단군은 문자 그대로 소멸해 버렸다. 90만 병력 중 무 려 45%에 달하는 사상자가 발생했고 사단장 급 고위 지휘관 다수가 포로가 되거나 전사 하는 기록적 참패를 당했다. 독일 중부집단 군의 붕괴로 동부전선엔 큰 구멍이 뚫렸고, 소련군 선두 부대는 단숨에 폴란드 국경까지 내달렸다. 바그라티온 공세가 끝난 44년 8월 독일의 패배는 이미 기정사실이 됐다.   소련의 이러한 기여가 한국엔 잘 알려져 있지 않고, 심지어 일각에선 소련의 역할 을 폄하하고 평가 절하하기도 한다. 그 이면 엔 연합국의 원조, 특히 미국의 ‘렌드-리스 (Lend-Lease)’ 프로그램에 따른 물자 원조 가 소련의 승리에 크게 기여했다는 주장이 깔려 있다. 냉전 시기 일부 보수 냉전사가들 에 의해 유포된 이런 견해는 명백히 진실을 호도하는 것이다.

  렌드리스가 물자 보급에 크게 기여한 것 은 사실이지만, 본격화된 것은 승부가 소련 으로 기운 43년 겨울 이후의 일이다. 렌드리 스로 보급된 장비 중 소련군에 큰 도움이 된 물품은 지프나 트럭과 같은 수송 수단이었 다. 이런 장비는 기동력이 약한 소련군 보병 의 기동화에 크게 기여했다. 렌드리스가 본 격화된 뒤 벌어진 바그라티온 공세에서 차 량화되고 기계화된 소련군 보병부대는 소련 육군의 자랑인 전차부대와 함께 전쟁 초 독 일군의 장기이던 ‘전격전’을 역으로 적용해 대성공시켰고 나치에 사상 최대의 참패를 안긴 것이다.   이처럼 독일의 패배를 앞당겼다는 점에 서 렌드리스의 의미와 기여를 부인할 수는 없다. 하지만 렌드리스가 없었어도 - 심지어 소련 혼자 싸웠다 해도- 소련이 궁극적으로 승리했으리라는 점에는 의심의 여지가 없 다. 이는 소비에트 연방의 가장 위대한 업적 중 하나이며, 그 승리의 이면에는 조국을 위 해 목숨을 던진 수많은 소련 국민의 희생과 헌신이 있었다.   러시아에서 5월 9일이 단순한 승전기념일 의 의미를 넘는 것은 이 때문이다. 이날은 당 시 조국을 위해 싸우다 산화한 수많은 영혼 의 희생과 헌신을 기리는 추모의 날이며, 이 는 러시아사 전공자로서 이들의 고통과 비 극, 헌신, 희생을 늘 역사 속에서 되새기고 마주하게 되는 필자에게도 역시 그러하다.

일러스트: 단 포토츠키

세계의 헌병은 지쳤다  미국을 대신할 나라는? 세계의 창 세르게이 마누코프 엑스페르트 필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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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은 요즘 몸을 웅크린다. 경제ㆍ재정 상황 때문에 전처럼 세계의 헌병이 되기 어려워 보인다. 세계의 헌병이 되려면 신 경도 많이 써야 하고 돈도 많이 들기 때문이다. 그러면 누가 미국을 대신할 것인가.   러시아는 운 좋게 찾아온 이 기회를 틀림없이 이용했을 법한 소련의 과거 위상을 상실한 지 오래다. 인도와 브라질은 시기상 조이다. 유럽연합은 지금 가치체계 전반에 대해 재검토하면서 오늘날 자신의 소명이 무엇인지 모색 중이다. 미국에선 ‘유럽이 미국을 대신해 세계의 헌병 자리를 맡아야 하고 맡을 수 있다’ 는 의견이 우세하지만 유럽의 형편은 그리 좋지 않다. 그렇다면 가장 확실해 보이는 후보는 중국이다. 미국과 유럽에 비하면 크 게 어려울 것 없어 보이는 경제 문제를 해결하기만 하면 거칠 게 없다. 중국은 모든 면에서 미국을 앞지르고 싶은 욕망이 크다.

발행인 예브게니 아보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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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필 콘스탄틴 페츠

게스트서브 에디터 안성규(한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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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국장 안드레이 자이체프 인쇄국장 밀라 도모가츠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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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디터 엘레나 김 부에디터 리사 레비츠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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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ussia포커스 ┃ 문화

section sponsored by Rossiyskaya Gazeta, Russia 2013년 5월 29일 수요일

제7회 모스크바 ‘박물관의 밤’ 행사

모스크바 문화 캘린더

시민 120만, 소비에트의 추억 찾아 ‘올빼미 투어’ 러시아 팝 스타들, 싸이와 함께 춤을 러시아어 대표 음악채널 MusTV는 1980년 모스크바 올림픽 개최를 위해 건설된 ‘올림 픽 경기장’에서 6월 7일 연례시상식을 개최 한다. 올해 시상식에는 한���에서 싸이가 특 별손님으로 참석, ‘강남스타일’과 최신 히트 곡 ‘젠틀맨’을 러시아 무대에서 선보인다. ●일시: 6월 7일 오후 7시 ●장소: 올림픽 경기장 ●입장료: 800~1만5000루블 ●홈페이지: premia.muz-tv.ru

올해로 일곱 번째를 맞는 ‘뮤지엄 나이트’의 주요 프로그램 중 하나인 ‘박물관 순례’를 즐기는 모스크바 젊은이들. 행사의 일환으로 18~19일 모스크바·상트페테르부르크 등 러시아의 많은 도시에서 자정까지 대부 분의 박물관이 무료로 개방됐다. 이번 행사엔 120만 명이 다녀간 것으로 집계됐다. 

엘레나 김 Russia포커스 기자

박물관전시장미술관 등 250곳 밤새 문 활짝 열고 관람객 맞이 특별 버스와 무료 택시도 운행 소련 시절 문화 콘텐트 인기몰이

최고 인기를 끈 옛소련 전시회 코너.

지난 19일 새벽, 모스크바 시내 바우만스카 야 거리의 현대예술 갤러리. 밤이 깊었는데 도 사람들이 낮만큼이나 붐빈다. 갤러리 안 의 산업지구 예술공간을 들여다봤다. 이 곳은 심하게 파괴된 소련 시대 낡은 공장들 을 그대로 이용해 소비에트를 주제로 한 많 은 볼 것을 전시한 공간이다.   이어 칠흑 같은 어둠 속의 ‘모스카오스’ 갤러리. 관람객들은 마룻바닥 여기저기 널려 있는 상자나 판자에 걸려 넘어질 것처럼 아 슬아슬하게 손으로 더듬어 가면서 반짝이는 네온 빛 전시물들 쪽으로 한 걸음씩 다가갔 다. 여기저기 가로놓인 인위적·자연적 장애 물을 거쳐 위태위태 흔들리는 계단을 따라 2 층으로 올라가면 가느다란 불빛 아래 거울 들이 끊임없이 빙빙 도는 새로운 공간을 만 나게 된다. 이곳에서는 가가린의 우주비행, 소비에트 치하 사람들의 삶, 소련 시절의 영 화 등 거대한 소비에트적 삶이 되풀이된다.   5월 18일 밤에서 19일 새벽으로 이어지는 어둠 그 속에서 모스크바 120만 명은 잠을 이루지 못했다. 어른아이 할 것 없이 모두 정신의 양식을 찾아 박물관 야간사냥에 나 섰기 때문이다. 여러 외신도 미국·프랑스· 이탈리아·독일·아르메니아·우크라이나 같은 전 세계 수십 개국 수백 개 도시가 잠을 이루 지 못했다고 전했다. 이 행사는 문화와 지적 유희를 장려하고자 시작돼 올해로 16번째를 맞는 국제행사 박물관의 밤이었다.   행사의 시초는 1997년 베를린에서 열린 ‘박물관의 봄’이었다. 2001년 행사에는 유 럽과 미국 등 39개국이 참가했고, 2005년부

[사진 블라디미르 아스탑코비치/ 리아 노보스티]

터 ‘박물관의 밤’으로 발전했다. 2005년 행 사에는 프랑스 박물관 750개와 유럽 박물관 500개가 참가했다. 러시아에서는 2002년 크 라스노야르스크 박물관 센터가 처음 참가 하면서 시작됐다.   모스크바 ‘박물관의 밤’은 올해로 7회를 맞는다. 시 정부가 행사 진행에 1000만 루블 (약 3억6000만원)을 편성하고 참가자 수도 120 만 명을 기록하면서 올해 모스크바 ‘박물관 의 밤’은 예산 규모와 참가자 수에서 모두 최 고 기록을 달성했다. 행사가 대성황으로 끝 나자 블라디미르 메딘스키 문화부 장관은  이 행사를 일 년에 한 번만 할 게 아니라 여러 번 진행하자고 제안했고, 다음 행사는 11월 로 잡혔다. 모스크바 시내의 250개 박물관과 예술공간, 미술관은 모스크비치(모스크바 사 람)와 모스크바를 찾은 손님들을 맞았다. 베 를린 행사보다 거의 두 배나 큰 규모였다. 또 올해는 공원들도 관람 대상으로 추가됐다. 시 당국은 관람객들이 시간 안에 모든 것을 둘러 볼 수 있도록 이날 하룻밤만 특별 버스 노선 을 가동했다. 심지어 무료 택시까지 운행했다. 이날 시내는 아침까지 길이 꽁꽁 막혔다.   올해 ‘박물관의 밤’ 행사가 내건 공식 슬 로건은 ‘박물관(기억+창의성)=사회적 진 보’다. 그러나 해를 거듭할수록 러시아 대중 들이 소비에트 시절 문화에 관심을 보이는 경향이 두드러진다.   올 행사의 주요 무대인 마네시 중앙전시 장에서는 ‘포장 디자인: 메이드 인 러시아’ 라는 주제로 전시회가 열렸다. 포장재 변천 사를 통해 러시아의 발전사, 소련과 러시아

사이의 계승성을 살펴볼 수 있는 전시였다. 러시아 사람이라면 누구에게나 친숙한 소련 시대 포스터와 포장재 사이로 일군의 청년 무리가 소련 시절의 스틸랴기(멋쟁이) 패 션으로 옷을 차려입고 돌아다녔다. 학생들 은 부모님이 어렸을 적이나 할머니·할아버 지 세대가 사용했을 물건과 그림을 깊은 관 심과 열정을 갖고 살펴보았다.   소련 시대 게임 박물관은 또 다른 ‘소련시 절의 명소’였다. ‘박물관의 밤’의 다른 모든 행사와 마찬가지로 이 박물관을 찾은 사람 도 대부분이 소련 붕괴 이후 태어난 고등학 생과 대학생이었다. 단순한 향수가 아니라 ‘그때 그 문화에 대한 관심이 많다는 사실 을 보여주는 대목이다. 조금은 음침한 넓은 전시실에서 투박한 ‘아빠 어릴 적’ 오락기 를 30분간 체험해 보기 위해 사람들은 길게 는 두 시간 가까이 줄을 서서 기다렸다. 그 중에는 모스크바의 밤거리와 화려한 차림 의 군중에 약간 겁먹은 외국인도 있었다. 하 지만 마침내 박물관에 들어서자 방문객들 은 오랜 기다림과 한밤중이라 피곤한 것도 잊고 아이처럼 즐거워하며 오락기들 사이를 여기저기 뛰어다녔다.   이처럼 러시아 박물관들이 소비에트라는 과거에 관심을 표명하는 이유는 무엇일까? 또 이런 향수를 보고 싶어하는 수요는 어디 에서 나오는 것일까? 러시아 과거 세대에게 오랜 세월 동안 순박하게 ‘살며 삶에 기뻐하 도록’ 해준 ‘찬란한 미래’에 대한 소련 시대 지향성이 어쩌면 오늘날 젊은이들에게 부족 하기 때문은 아닐까?

고즈넉한 저택서 즐기는 재즈 6월 15~16일 양일간 모스크바 북서쪽 20㎞ 에 있는 아르한겔스크 저택 일원에서 ‘저 택 재즈 10주년 기념 페스티벌’이 열린다. 이 행사는 러시아에서 가장 규모가 크고 유명한 재즈 축제다. 18세기 귀족 건축물 을 배경으로 모스크바 강과 고풍스러운 공 원이 어우러진 그림 같은 경치 속에서 러시 아ㆍ유럽ㆍ미국의 재즈 음악가들이 공연을 펼친다. ●일시: 6월 15~16일 오후 2시 ●장소: 일린스키 거리 아르한겔스크 저택 ●입장료: 1000~7000루블 ●전화: +7-495-785-3532 ●홈페이지: www.jazz-usadba.ru

볼쇼이 극장, 지젤 ‘이중 공연’ 예술학자와 발레 애호가들 사이에서 ‘지 젤’은 볼쇼이 극장의 명함과도 같은 공연 이다. 6년간 보수공사를 마치고 2011년 다 시 문을 연 볼쇼이극장 제1극장(구관) 무 대에서 그리고로비치가 연출한 환상과 비 극의 러브스토리를 감상할 수 있다. 이와 함께 제2관(신관)에서는 세계적 명성의 안무가 블라디미르 바실리예프가 연출한 지젤 공연이 진행된다. ●일시: 6월 16일(1관), 6월 20, 28~30일(2관).

평일 및 토요일 오후 7시, 일요일 오후 6시 ●입장료: 7200~9000루블 ●홈페이지: www.bolshoi.ru/en

강추! 이 곳 - 모스크바·상트페테르부르크의 6대 테라스 레스토랑

바람 솔솔  야경 즐기고, 패션 피플도 만나고 일찍 찾아온 여름 더위가 유럽 및 러시아 지 역을 달구고 있다. 더위로 고생하는 사람도 많지만 덕을 보는 이도 있다. 카페와 레스토 랑 업주들이다. 유럽처럼 야외 식사를 할 수 있도록 발 빠르게 길가에 테이블을 마련한 것이다. 모스크바와 상트페테르부르크에서 야외 테라스를 갖춘 명소 6곳을 골라봤다. ●‘발코니’ 레스토랑: 이탈리아 요리, 일본 요리,

빈 바, 베이커리, 무료 Wifi 제공, 50~80달러

  옛 소련 시절 모스크바 시내 중심가였던 ‘노브이 아르바트’ 거리의 ‘롯데 플라자’ 6

층). +7 (495) 788-82-98. 월~일 12:00~2:00.

이게 한다. 낮이면 도시의 삶을 관조하며 맛 있는 식사를 즐길 수 있고, 저녁에는 칵테일 을 마시며 야경을 감상할 수 있다. 주말에 열 리는 저녁 파티도 유명하다.

balkon-restaurant.ru

모스크바 사도바야 거리 5번지 B 호텔 베

물 침대나 안락의자에 기대 휴식하고 정자 에서 더위를 피할 수도 있다.

리자 레비츠카야 Russia포커스 기자

모스크바 노빈스키 거리 8번지(롯데 플라자 7

●‘타임아웃’ 바: 유럽 요리, 바, 댄스, 15~50달러

층 절반과 7층 전체의 야외 테라스를 모두 쓴다. 도심 한복판 야외 공간에 도시 일상을 벗어나 여유를 즐길 수 있게 모든 걸 갖춰놓 았다. 수목과 화초가 짙은 야외 공간에서 그

  베이징 호텔의 역사적인 고층건물 탑에 있다. 호텔 로비에서 비좁은 엘리베이터를 타고 탑 끝까지 오르면 모자이크 장식의 높 은 천장, 통유리 벽, 화이트 톤 인테리어로 장식된 넓은 공간에 도착한다. 이 바에서 내 려다보는 도시 경관은 모스크바 최고 수준 이다. 여름 테라스는 이런 장점을 더욱 돋보

이징 12, 13층. +7 (495) 229-01-80. 월~금

인다. 다양한 입맛에 맞는 메뉴도 준비돼 있 다. 아메리칸 스타일, 프렌치 스타일, 이탈리 안 스타일, 중국식·일본식 요리가 제공된다. 상트페테르부르크의 패션 리더들을 구경하 기에도 안성맞춤이다. 유명인들과의 우연한 만남도 기대할 수 있다.

12:00~2:00, 토~일 12:00~6:00. timeoutbar.ru

상트페테르부르크 카잔스카야 거리 3번지 A. +7 (812) 937-68-37. 월~수 11:00~0:00, 목~

●테라사:

유럽 요리, 세계 요리, 중국 요리, 러

시아 요리, 태국 요리, 일본 요리, 무료 Wifi,

금 11:00~1:00, 토 12:00~1:00, 일 12:00~0:00. terrassa.ru

50~80달러(사진)

  상트페테르부르크 최고층 건물 중 하나 의 스카이라운지에 자리 잡고 있다. 테라스 에서는 카잔 성당의 둥근 지붕이 내려다보

  나머지 모스크바의 ‘카페 32.05’와 상트 페테르부르크의 ‘행복’ ‘벨뷰’ 카페는 인터 넷 Russia 포커스 참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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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3년 5월 29일 수요일 section sponsored by Rossiyskaya Gazeta, Russia

R7

러시아 정교회의 최대 명절, 부활절

알록달록 달걀, 쿨리치, 파스하  금식 마치고 성찬 <부활절 빵과 케이크>

세계 최북단 불교 사원서 맞은 석가탄신일

블라디미르 예르코비치 기자

‘군제초이네이’엔 사흘 내내 독경 소리

소련 시절 생긴 이교도 전통 1주일 내내 성당서 축하 미사 누구나 종탑 올라 종 칠 수도 올해 러시아 정교회 신자들은 5월 5 일에 부활절을 맞았다. 부활절은 정 교회력에서 가장 중요한 축일이지만 소련 시절에는 부활절 행사 참석이 금지돼 있었다. 이로 말미암아 러시 아의 부활절 축일에는 소련 시절 새 롭게 생겨난 전통들이 공존한다. 물 론 러시아 정교회는 새로운 전통을 환영하지 않는다.   부활절 기념행사는 십자가 행진 으로 이어지는 화려한 성야 미사로 시작된다. 십자가 행진 시 성직자들 은 성상화를 모시고 기도문을 외우 며 성당 건물을 시계 반대 방향으로 돈다. 그 뒤를 신자들이 따른다. 이 의식에 참석하는 사람 중에는 매주 교회에 나가는 신자들뿐 아니라 1년 에 단 한 번 부활절에만 교회에 가 는 신자들도 있다. 모스크바 구세주 성당 한 곳만 해도 올해 부활 전야 미사에 참석한 사람은 5000여 명에 달했다.   성당 미사를 마치는 것으로 사순 대재(四旬大齋)는 끝이 나고 신자들 은 금식에서 풀려나게 된다. 이제 러 시아 정교신자들은 물감으로 색을 입힌 부활절 달걀, 부활절 빵 ‘쿨리 치’, 러시아식 코티지 치즈와 건포 도로 만든 부활절 케이크 ‘파스하’ 를 준비한다. 이 음식들은 교회 미사 에서 축성을 받는다. 그리고 축성을 받은 달걀 한 알을 이듬해 부활절까 지 보관하는데 축성받은 달걀은 1년 내내 부패하지 않는다고 여겨진다.   종교를 인민의 아편으로 여겨 금 지시켰던 소련 시절에도 사실상 모든 가정에서 부활절 달걀을 장식했다. 이러한 의식에 특별히 종교적 의미를 부여하지는 않았지만 그 당시 부활 절은 모든 이들이 기념하는 축일이었 다. 하지만 이 모든 것이 러시아 정교 회의 오랜 전통은 아니다. 정교회 신 부 알렉산드르는 이렇게 말한다.   “부활절에 친지의 묘를 찾아 그곳 에 부활절 달걀과 쿨리치를 놔두는 것은 정교회 전통이 아닙니다. 소련 시절 생긴 이교도적 전통이지요. 참된 신앙이 탄압받게 되면 언제나 복잡한 미신의 형태로 나타나게 되는 겁니다. 부활절에는 반드시 성당에 오셔야 합 니다. 러시아 사람들은 거의 정교신자 라고 말할 수 있겠는데 정작 교회에 다니는 사람은 많지 않습니다. 많은 사람이 교회에 다니는 습관을 들이지 못했지요. 그러나 요즘에는 예전 같 으면 절대 볼 수 없었던 사람들이 교 회에 나타나기도 합니다. 이것이 바로 주님의 기적이 아닐는지요?”   부활절 전야에 교회를 다녀온 사

알렉산드라 가르마자포바 기자

람들은 사순대재를 마감하며 1년 중 가장 성스러운 날의 도래를 기념 하기 위해 푸짐한 식사를 준비한다. 하지만 사순대재의 금식, 특히 교리 에 따른 엄격한 금식을 한 경우라면 조심할 필요가 있다. 인체에 무리를 줄 수 있기 때문이다. 음식을 가려서 섭취량을 서서히 늘려야 한다. 의사 들은 금식 후 갑자기 기름기 많은 육 류나 육류와 빵을 함께 먹지 않도록 권고하고 있다.   부활절 명절은 ‘예수 부활 대축

일’을 시작으로 일주일 동안 계속된 다. 일주일 내내 성당에서 부활 축하 미사를 집전한다. 부활절 기간에 장 례를 치르더라도 장례식은 부활절 교리에 따라 예수 부활의 기적을 찬 미하는 기도로 가득 찬다.   특히 부활 주간에는 성당 주임신 부의 허락을 받아 누구든 종탑에 올라가 종을 울릴 수 있다. 컴퓨터 프로그래머인 세르게이의 말을 들 어보자.   “제 아이들은 종 치는 것 때문에 부활절이 오기를 학수고대합니다. 어린 아이들이 있는 친구들과 가족 끼리 모여 함께 성당에 가지요. 신 부님 중 한 분에게 다가가 ‘예수님 께 영광을 돌리기 위해 종을 울리도 록 허락해주십시오’라고 부탁합니 다. 종을 칠 때면 정말 잊지 못할 감 동을 느낄 수 있어요. 아이들도 정말 좋아하고요. 물론 아이들을 잘 살피 는 것도 참 중요합니다. 종탑이 정말 높잖아요.”

러시아식 부활절 달걀 만들기 1 염색 재료 준비하기: 달걀에 색을 입히려면 먼저 다양한 채소를 우려낸 물을 준비한다. 양파 껍질을 이용하면 밝은 갈색 내 지 붉은 갈색을 낼 수 있다. 껍질을 깐 순무로는 자주색과 어두운 보라색을, 국화를 우려낸 물로는 달걀을 노랗게 염색할 수 있다. 블루베리와 딱총나무 열매는 푸른빛의 재료다. 다진 적채를 끓인 물로도 똑같은 ���과를 볼 수 있다. 홍차ㆍ커피로는 갈색을 얻을 수 있다. 2 달걀 삶기: 삶는 동안 깨지지 않게 삶기 바로 직전 냉장고에서 꺼낸다. 달걀을 완숙한다. 계란이 터지지 않도록 미온수에 소 금을 넣는다. 5~7분간 삶아 계란을 다 익힌 뒤 흐르는 냉수에서 식힌다. 그렇지 않으면 계란 껍질이 잘 벗겨지지 않는다. 4 염색: 염색할 물의 양에는 제한이 없다. 식힌 달걀을 염색수에 몇 시간 담가두면 색이 난다. 하룻밤을 담가두면 색이 더 진 해진다. 녹색으로 염색하려면 먼저 국화 우린 물에 계란을 담가 노란 물을 들인 뒤 적채 우린 물에 담근다. 서늘한 장소에 놔두면 색이 더 잘 든다. 5 마무리: 염색을 한 뒤 수건에 얹어 말린다. 건조된 달걀 표면에 식물성 기름을 바르면 윤기를 낼 수 있다. Tip: 색을 내기 전에 파슬리나 다른 이파리를 계란 위에 얹어 거즈나 스타킹 조각으로 감싸놓으면 그 모양이 찍혀 더 예뻐진다.

러시아 정교회 신자들은 부활절엔 전통 에 따라 식탁을 쿨리치 빵과 물감으로 색 칠한 달걀로 꾸미고 가족과 함께 축일을 맞는다. (왼쪽)러시아 정교회 최대 가족 명절 ‘부활절’을 맞아 정교회 신부가 축 복해 주는 모습. 

[AFP/East news]

지난 5월 25일 러시아의 제2수도 상 트페테르부르크에서 독경 소리가 울렸다. 세계 최북단 절인 군제초 이네이에서다(사진). 그리고 3일 기도가 시작됐다. 이날은 러시아 불 교 신자들이 가장 중요하게 생각하 는 석가모니 탄신일이어서 이를 기 념하는 기도다. 한국에선 5월 17일 이지만 여기선 25일이다.   많은 신자들이 석탄일을 스스로 를 정화(淨化)하는 계기로 삼고 있 다. 이날 비가 내리는 가운데 군제 초이네이 절에서는 한 백발 남성이 경건한 모습으로 절을 했다. 절 내 기념품 가게에서는 한 러시아인 가 족이 염주를 신기한 듯 만져보기도 했다.   군제초이네이는 티베트 불교를 믿는 부랴티야 공화국이나 칼미키 야 공화국의 사원과는 분위기가 또 다르다. 형태와 내부는 오히려 여타 불교권 지역의 사원과 비슷하다. 17 명의 스님이 상주하는 절은 정갈하 게 꾸며져 있고 또 누구에게나 열 려 있다.   우리 절은 러시아 연방 차원의 기념비적 건축물입니다. 티베트 양 식에 상트페테르부르크 모던 양식 이 가미된 유일한 건축물이기 때문 입니다. 알라 남사라예바 사원 홍 보실장의 말이다.   러시아에서 불교는 두 번째 공 인 종교다. 1741년 엘리자베타 여제 의 명령에 따라 그때부터 다양한 사찰이 만들어지기 시작했다. 러 시아 불교 교단의 큰 축일은 8개다. 현대 러시아에서 불교는 전통적으 로 ‘대승불교’를 뜻한다. 축일을 맞 으면 경축법회가 열린다. 이런 행사 들은 보통 3일간 이어지는데, 이 기 간에는 사원을 아름답게 장식하고 승려들은 축일용 의상을 입는다.   석탄일은 러시아 정부가 적극 지 원하는 종교인 불교의 가장 큰 행

사 중 하나지만, 상트페테르부르크 의 불교 신자들은 시 정부에 사찰 주변의 거리를 꾸며 달라고 하지 않 는다. 신자 수도 아직 그리 많지 않 은 데다 다른 사람들의 이목을 끌 면서까지 불편을 끼치고 싶지는 않 다는 것이 이유다.   그러나 상트페테르부르크의 불 교 신자 수가 정말 적은지에 대해서 는 이견이 있을 수 있다. 물론 러시 아 내 불교 신자가 정교회 신자만 큼 많은 건 아니다. 하지만 그 수가 매년 늘고 있는 것 또한 사실이다.   남사라예바 홍보실장은 불교 행 사에 참가하는 사람들의 숫자로 보 건대 상트페테르부르크의 불교 신 자 수는 대략 5000~6000명 정도 라고 말한다. 현재 러시아 불교 신 자 수는 200만 명에 이른다. 더욱이 최근 들어 많은 러시아인이 불교로 전향하고 있다. 자연 행사 참가자도 매년 늘고 있다.   동양의 전통 종교인 불교가 러시 아에서 최근 활발히 퍼지고 있는 것에 대해 사원 관계자들은 불교 가 배타적인 종교가 아니기 때문 이라고 말한다. 불교에서는 다른 종 교를 동시에 믿어선 안 된다고 하 지 않는다. 교회에 다니는 사람이라 도 불교 의식에 참석하거나 설법을 듣고 싶다고 하면 거절하지 않는다. 그래서 러시아 불교 신자들은 경전 을 읽고 설법을 듣는, 말하자면 머 리로 불교를 믿는 사람들이 많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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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ussia포커스 ┃ 스포츠

section sponsored by Rossiyskaya Gazeta, Russia 2013년 5월 29일 수요일

러시아의 미녀 타이복싱 챔피언, 아나스타시야 얀코바

이소룡처럼 센 남자 좋아  강해져서 남들 돕고 싶었죠 이고리 라조린 Gazeta.ru 기자

저스틴 비버? 약골은 No! 어릴 때 가라테 도장 다녀 디자이너 꿈꾸다 진로 바꿔 종합격투기도 해 보고 싶어

알게 됐어요. 남자들과 함께 운동하 다가 내가 가라테를 하며 로킥, 하이 킥을 어떻게 날렸었는지 기억해냈 죠. 그러곤 그걸 무척 그리워하고 있 다는 걸 알았어요. 그래서 타이복싱 클럽 ‘바랴그’를 찾았고 체중을 급 격히 늘리기 시작했어요. 곧 ‘러시 아 컵’ 대회에 나가 모두의 예상을 깨고 우승했어요.”   -어떻게 훈련하나요.

아나스타시아 얀코바(22)는 러시아 스포츠계 최고의 미모를 자랑하는 운동선수 가운데 한 명으로 미국 종 합격투기 선수 지나 카라노와 종종 비교된다. 그는 앞길이 창창하다. 지 난해 국제 킥복싱 토너먼트 W5 파 이터 부문에 프로선수들과 함께 처 음 출전해 첫 승을 거뒀다. 얼마 전 인 4월 27일엔 국제 킥복싱 토너먼 트 W5 프로 경기가 열렸는데 얀코 바는 수퍼 파이터 부문에서 율리야 케리모바(2012 세계선수권대회 주 니어 우승자)와 싸워 이겼다. 얀코바 는 타이복싱 특유의 타격 외에도 가 라테 타격도 구사한다. 매력적인 아 가씨가 가장 거친 격투기 종목 중 하 나에서 진지한 파이터로 링에 오른 다는 사실은 좀처럼 믿기 어렵 다. 그녀를 만나봤다.   “어릴 때 모든 게 시작됐 어요. 나는 이소룡 같은 강하고 굳센 남자 들이 나오는 영화를 좋아했 지요. 이미 그때부터 그 사람들처럼 강한 사람 이 돼 사람들을 도와주고 싶 었죠. 그래서 항상 엄마한 테 졸라 가라테 도장에서 몇 년간 배웠죠. 그게 운 명의 출발이었어요.” 웃음 짓는 표정이 수줍다.

  “복싱 아카데미에서 알렉산드르 포고렐로프(러시아 출신 세계적인 킥복싱 선수) 선생님과 해요. 스파 링 상대는 여잔데 여자 복싱 세계 대 회에서 여러 번 우승한 예카테리나 이조토바예요. 스파링 상대이자 선 생님으로 그야말로 이상적이죠. 이 조토바는 링에서 하지 말아야 할 행 동에 대해 설명해주고, 얘기해주고, 보여줄 수 있는 사람이에요.”   -선수 중에 우상으로 삼는 사람은.

  “지나 카라노요. 대단한 투사죠. 그녀는 최고였고 모든 면에서 강해 요. 표도르 에밀리아넨코도요. 그에 대해 뭐라 말하든 그의 지위는 변 치 않아요. 에밀리아넨코에 대해 악 평하는 건 말도 안 돼요. 그는 격투 기의 제왕이고 영원히 그럴 거 니까요. 마이크 잠비디스도 있 어요. 그는 매우 멋져요. 잠비 디스는 경기를 언제까지라 도 보고 싶게 만드는 선 수 중 하나죠. 바투 하 시코프요? 바투와는 같은 곳에서 훈련하고 있어요. 전 이 점이 자 랑스러워요. 제가 추구하는 목 표를 직접 볼 수 있으니까요.” 그녀는 모르는 선수의 이름 을 줄줄이 읊어냈다.   -살면서 본인보다 약한 남자

바느질하다 타이 복싱 선수로 변신한 미녀 아나스타시아 얀코바(22). 시 읽기도 좋아한다. 그녀에겐 네 개의 문신이 있다. 나비처럼 날아 벌처럼 쏴라는 무하마드 알리의 말, 열 쇠, 연꽃, 그리고 반인반룡이다. 

전 모든 남자가 150㎏을 들어야 한 다고는 하지 않아요! 그런 건 강함의 기준이 아니에요. 남자의 강인함은 절대 그런 게 아니에요. 하지만 남자 가 너무 연약하면 그것도 좋지는 않 아요. 저스틴 비버요? 그런 사람들 은 제 눈에 들어오지 않아요.”   -문신이 많네요.

  “첫 문신을 새겼을 때부터 이게

알료나 이츠마일로바

끝이 아님을 알았죠. 내 문신은 대 부분 일본 그림이에요. 가장 최근에 새긴 건 폭포에서 솟구쳐 용이 되는 잉어 그림이에요. 문신엔 미학적 의 미가 담겨 있어요. 그림 하나하나가 제 인생 여정의 표지거든요.” 그는 다리 문신을 보여주며 결혼해 아들 을 낳게 되면 이렇게 말해주고 싶다 며 말을 이었다.

  “여길 보면 열쇠 그림이 있지. 교 쿠신카이 가라테도(極進會空手道· 극진회공수도)를 창시한 오야마 마 스다쓰(한국이름 최영의)가 엄마에 게 이 열쇠를 주면서 ‘네가 그들에 게 모든 문을 열어주리라’라고 하는 꿈을 꿨어. 이 열쇠를 잃어버려선 안 된다고 생각했지. 그래서 다리에 새 겨놓은 거란다.”

  -종합격투기를 해보고 싶은 생각은 없나요?

  “관심 있어요. 싸우는 걸 좋아하 거든요. 그렇지만 이 분야는 완전히 처음부터 시작해야 해요. 전혀 다른 운동이고, 트레이닝 방법도 다르니 까요. 하지만 종합격투기는 제 오랜 꿈이에요. 정말 재미있을 것 같아요. 언젠가 기회가 올지도 몰라요.”

2014 소치 겨울올림픽 준비 얼마나 됐나

시설 점검 완료  강설 부족 대비 눈 보관소 7곳 설치

와 마주쳐야 했던 경우는 없었

  -여성 직업 격투기 선수가 쉽지 않은 일일 텐데요.

나요?

  “열네 살 때 어떤 직업을 선 택할지 고민하게 됐어요. 언론, 연기, 디자인에 관심이 많았거 든요. 디자인을 택했지요. 온종일 디자인하고, 바느 질했어요. 그러다 헬스클럽 에 갔고 거기서 타이복싱을

  “자주 보죠(웃음)! 예전 엔 클럽의 남자들이 벤치 프 레스 하는 걸 도와주기도 했 는데 지금은 그런 일이 없어 요. 트레이너와 개인적으로 운동해요. 물론 살다 보면 여러 사람을 만나게 되는데,

[사진 얀코바]

아르촘 산지예프 Russia포커스 기자

2014년 소치 겨울올림픽 대회 개막 까지 1년도 남지 않았다. 러시아 정 부 대표로 소치 겨울올림픽 준비를 주관하고 있는 드미트리 코자크 부 총리는 최근 기자회견에서 “올림픽 과 패럴림픽 대회 준비작업이 85% 완료됐다”고 밝혔다. 실제로 모든 경 기장이 준비를 마쳤음을 올 시즌의 많은 시범경기로 확인할 수 있다.   소치 올림픽은 역사상 가장 비싼 올림픽이 될 전망이다. 지난 8년간 준비에 510억 달러 이상이 소요됐다. 이는 2008년 베이징 올림픽보다 60 억 달러 많고, 2012년 런던 올림픽보 다 210억 달러 많다. 대부분은 인프 라 현대화에 드는 돈이다. 이 부문에 대규모 자금을 투자한 이유는 소치 가 역사적으로 휴양도시였다는 사 실에서 일부분 찾을 수 있다. 겨울올 림픽이 왜 전통적으로 여름 도시인 소치에서 열리는 것일까?   2014년 겨울올림픽이 열리는 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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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아들러 스케이트 경기장(8000명)  아이스버그 겨울 스포츠궁(1만2000명)  피슈트 올림픽 경기장(4만 명)  푸 크 얼음 경기장(7000명)  볼쇼이 얼 음궁(1만2000명). 인포그래픽 보기

russiafocus.co.kr/42109

치는 러시아에서도 특이한 도시다. 따뜻한 바다와 눈 덮인 산들이 도 시의 양쪽을 둘러싸고 있다. 소치는 블라디보스토크와 같은 위도상에 자리 잡고 있지만, 날씨는 훨씬 더 온화하다. 겨울 평균기온이 영상 8 도. 덕분에 소치는 100여 년 이상 휴 양지로 사랑받아 왔다. 러시아인들 은 백사장과 따뜻한 바다를 즐기기 위해 소치를 찾는다. 그런데 이렇게 따뜻한 날씨와 바닷가 야자수 사이 에서 어떻게 겨울올림픽을 할 수 있 을까? 흑해는 따뜻하지만 동시에 만 년설을 이고 있는 산들에 둘러싸여 있기도 하니 안심할 수 있을지 모른 다. 그런데 내년에 겨울 기온이 높아 눈이 충분치 않으면 어떻게 될까. 조 직위에서는 묘안을 찾아냈다.   2013 시즌의 눈을 그대로 보관하 기로 한 것이다. ‘BBC 러시아’는 올 림픽 경기장을 ‘눈으로 확실히 뒤덮 기’ 위해 크라스나야 폴라냐 지역 ‘로자 후토르’(장미 마을) 휴양지에 총 12만㎡ 면적의 눈 보관소 7곳이

소치에서 가장 아름다운 장소 중 한 곳인 흑해의 이메레틴스카야 만 연안에 있는 겨울올림픽 시설들. 

[사진 미하일 모르다소브]

설치됐다고 전했다. 약 45만㎥의 눈 은 여름에 녹지 않게 하려고 러시아 에서 특별 주문 제작된 ‘등온유지용 특수 천’에 덮여 보관된다.   소치 겨울올림픽 준비는 6년에 걸 쳐 진행됐고 막대한 노력과 자금이 투입됐다. 올해 초 소치에서는 시범 경기들이 잇따라 열렸다. 2014년 소 치 겨울올림픽 대회 조직위원회는 스키, 바이애슬론, 루지, 봅슬레이, 스노보드 경기용 올림픽 시설물들 에 대한 점검을 마쳤다. 2012년 12월 부터 2013년 4월까지 올림픽 대회 조 직위원단은 약 20개의 대규모 국제 경기를 월드컵 대회 수준 이상으로 진행했다. 2014년 소치 올림픽 전체 시범경기는 2010년 밴쿠버 겨울올 림픽 때보다 세 배나 더 많으며 이는 겨울올림픽 사상 최고 기록이다.   입장권 가격 정책도 관심거리다. 올 림픽 조직위원회에 따르면, 최저가 입 장권은 16달러이며 100달러가 넘는 경우도 절반에 불과하다. 소치 올림 픽 방문 비용은 평균 약 3300달러로 런던 올림픽 때보다는 적게 들고 밴 쿠버 올림픽 때보다는 많이 든다. 현 재 러시아 내국인들은 인터넷 사이트 (www.tickets.sochi2014.com)에서 입 장권을 구매할 수 있다. 이 사이트에 는 비러시아 국가 내 입장권 판매 공 식 대행사 명단도 나와 있다. 한국은 아직 명단에 올라 있지 않지만, 올 가 을쯤이면 포함될 것으로 보인다. 가 을에는 모스크바와 소치에서도 입장 권 판매소가 생긴다. 올림픽 경기 개 최지에서는 비자카드만 이용할 수 있 다. www.sochi2014.com을 방문하면 더 많은 올림픽 정보를 얻을 수 있다.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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