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astarjet 2016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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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이 숨을 멈춘다. 아니, 얼어붙는다. 마법의

때문에 하얼빈의 별명은 ‘동방의 모스크바’. 특히

함께 세계 3대 겨울 축제로 손꼽힌다. 일본,

휘파람이 이곳을 지나간 걸까. 하지만 그 풍경은

도시의 상징으로 통하는 성 소피아 성당의 붉은

캐나다와 마찬가지로 중국인들은 매서운 추위에

소금기둥이 된 롯의 아내처럼 처연한 비극보단

벽돌과 둥근 모스크에 흰 눈이 내려앉으면 이곳이

숨지 않고 정면 돌파를 택한 모양이다.

신나는 디즈니 영화의 한 장면같이 심장이

러시아의 붉은광장인지 중국의 하얼빈인지, 묘한

빙등제는 중국인들이 그들의 약점을 어떻게

쿵쾅거리는 설렘이 담겨 있다.

감정과 함께 인지 부조화가 일어나고 만다.

장점으로 승화하는지 보여 주는 상징과도 같으니,

지도상으로 함경도 북쪽 지방 헤이룽장 성의

한겨울의 인지 부조화는 도심 한복판 성 소피아

1월 평균 기온 영하 20도, 최저 영하 40도의

성도지만 한겨울이면 영하 40도 언저리까지

성당 앞에서만 일어나지 않는다. 베이징 북쪽에

추위마저 비상하는 하얼빈의 기상을 얼려 버릴 순

수은주가 내려가는 무자비한 추위가 지배하는 곳.

있어야 할 만리장성, 산시 성에 있어야 할 진시황의

없었던 모양이다.

한줄기 겨울바람은 북방 도시 하얼빈의 모든 것을

병마용뿐 아니라 지구 반대편 유럽에 있어야 할

이 차갑고도 뜨거운 열기를 자랑하는 빙등제의

얼려 버린다. 그저 ‘춥다’는 표현으로는 어림없는,

파르테논 신전과 콜로세움, 에펠 탑이 한자리에

역사는 1963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모든 것의

그 어떤 말로도 이 차가움을 형언할 수 없다.

모인다. 엘사의 손길을 받아 꽁꽁 언 모습으로

시작은 1미터가 넘는 두께로 얼어 버리는 쑹화 강의

하얼빈은 이 극한의 날씨 때문에 오랜 세월 쑹화

엉뚱한 곳에 옮겨진 세기의 건축물이라니. 이렇듯

얼음이다. 길이가 1960킬로미터에 이르는, 헤이룽

강변의 작고 조용한 어촌 마을일 뿐이었다. 지금의

겨울 하얼빈의 주인공은 누가 뭐래도 ‘얼음’이다.

강 최대 지류인 이 강은 직접 보면 서울의 한강과

큰 도시로 변모한 것은 20세기 초반 제정러시아가

하얼빈 국제 빙설제 또는 하얼빈 빙등제로 통하는

스케일이 비슷하다. 세계적인 도시를 가로지르는

만주 정복을 위한 발판으로 이곳에 둥칭 철도를

세계적인 얼음 축제는 크게 세 곳에서 펼쳐진다.

유명한 강들이 직접 보면 그 폭이 매우 좁아 놀라는

부설하면서부터. 이후 하얼빈은 갑자기 인근 상업과

쑹화 강을 가로지르는 거대한 섬 태양도(太陽島),

서울 사람들에게 1킬로미터 정도의 강폭은 낯설어

교통의 요지로 크게 발전하기 시작했고, 러시아와

중국말로 타이양다오와 자오린 공원 그리고 하얼빈

뵈지 않는다. 옛날부터 이 쑹화 강이 단단하게

유럽, 중국의 문화가 혼재된, 세계 어디에도 없는

빙설대세계 지역까지. 꼭 이 세 곳이 아니어도

얼어붙으면 하얼빈 사람들은 이를 이용해 다양한

독특한 문화 향기를 지닌 도시가 되었다. 당시

이국적인 러시아풍 도시 곳곳에 얼음 조각이

예술을 펼쳐 왔으니 그중 대표적인 것이 이른바

제정러시아는 하얼빈을 남의 땅이라 여기지 않고

들어서고 먹거리와 기념품을 판매하는 노점이

빙등(氷燈), 즉 얼음 등불이었고 이 빙등 예술이

그들의 문화를 도시 곳곳에 아로새겼다. 지금까지

거리를 메운다. 이 거대한 얼음 쇼는 흔히 일본

발전하면서 1963년부터 빙등 전시회가 열리기

고스란히 남아 있는 러시아의 건축, 문화 흔적

삿포로의 눈 축제, 캐나다 퀘벡의 윈터 카니발과

시작했다. 그 후 1983년 홍콩에서 방문한 관리들이

December 20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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