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ssuu on Google+


성북구 석관동 261-5 새 주소는 성북구 화랑로 32길 111 두번째 이리카페


글쓴이

석호 형이 하던 술집이라는 술집에서 술을 많이 마시고 나와 너와 나는 산울림 소극장 앞 건널목에서 비틀거리며 빨간불이 파란불로 바뀔 때를 기다렸지. 가랑비를 맞으며……. 그 비는 겨울로 넘어가는 마지막 가을비였을 거야, 아마. 십년동안 이리카페를 하면서 청춘의 마음에 수없이 내렸던 빗방울들. 비에 젖어 조금 더 무거워 지고 눅눅해진 우리의 청춘……. 너와 나의 영혼이 건너는 이 건널목의 출구에는 과연 무엇이 있을까? 석관동을 계약하던 그날도 십년 전 그때처럼 가랑비가 내리는 구나.


순서 입니다. 뼈그림 - 사람의 나비뼈 / 글. 그림. 왼손이 비밀동툰 / 사진. 글. beamil 영화로 읽는 시공간 - 가시를 삼킨 장미로 보는 근대화 프로젝트 / 글. 곡주대비 회사옆 미술관 - 정서영 ii / 글. 강세기 놀고 먹고 그리고 / 그림. 김혜리 여기 문학이 필요한시간 - 정극인 「상춘곡」 / 글. 고수진 아이돌로지 광고 신당동 파르한의 음악 소개소 / 글. 신당동 파르한 낭만 스파이 - 봄의 단서들 1 / 글. 사진. 낭만스파이 송창식을, 잘 알지도 못하면서 / 그림. ㅈ양 글.박재현 내가 어떻게 다이아몬드가 되었냐면... / 글. 올리브 아무런 ‘것’ 이야기 / 글. 그림. .Jooeny 건축이 좋아 - 시게루 반, 그리고 DPP / 글. 사진. aoikasa 웹디자이너 생존 매뉴얼 - 표현의 생존 매뉴얼 / 글. 그림. 김성연 젖 - 주인님 / 그림. 글. 두리 사진 일기 / 사진. 글. 박민수 우울한 청춘 / 그림. 글. 철민 물질과 비물질 - 4.꽃 / 사진. 황은정 글. 김종소리 무엇이 들어 있을까요? 낭만 스파이 - 봄의 단서들 2 부산오뎅 이야기 - 어미새의 마음으로 / 글. odeng 약도 바다비 일요 시극장 광고 국가란 무엇일까? - 4회 / 글. exxx 뒷 표지 / 글. 그림. 지인


으아니 벌써 마감이라니!?!? 라는 생각이 들 즈음이 면 이미 늦은것입니다. 그렇습니다. 벌써 늦은 편집 후기를 적고 있습니다. 겨울에는 하지 못했던 일들. 집안의 방풍비닐을 다 걷었고, 창문을 열고 앉았습니다. 이제 조금 있으면 더워서 땀을 흘리고 앉아서 하늘에 대고 욕을 하겠 지만 또 금새 가을이 올겁니다. 새로 생긴 석관동 이리카페는 찾아가기는 좀 먼 감 이 있지만 가서 앉고나면 나오기 영 귀찮아 지는 그 런 맛이 있는 곳입니다. 산책 삼아 의릉에 가실 일이 있으시면 들러보셔도 좋을 겁니다. 처음에 잡지를 만들 때는 계절마다 비슷한 주제. 여 기저기서 반복 되는 컨셉 같은 것들이 지겨워서 그 런 것들을 타지 않는 잡지를 만들어 보려고 시작했 는데 어째 인사말을 3년 쯤 쓰니 언젠가 했던 이야 기 같은 이야기만 하고 앉았는 것 같습니다. 맛있는 것 좋은 것 들을 나누고, 힘든 일을 함께 할 수 있는 여러분이 되시길 바라며 이만 물러갑니다.

PS. 조만간 흥미로운 소식을 전하도록 하겠습니다.

월간이리 exxx 드림.

편집: 이훈보 공식트위터 @postyri

표지: 이주용, 한지인


비 밀 동물툰 Animal Toon by BEAMIL

* 2014년에는 동물에 관한 이야기를 나눠볼까 합니다. 나름 위트있게 , 뜨끔하게 쓰고 그린 짧은 만화를 기고합니다. 팩트를 뒷받침하는 기사와 간단한 의견도 함께입니다. 많이 공감해주세요. 제보도 감사합니다. beamil22@gmail.com


* 이번 만화는 같은 죄질로 여겨지는 사건도 상대가 사람일 때에는 그에 부합하는 처벌을 받지만 동물일 때에는 고스란히 말 못하는 짐승의 고통으로 돌아올 수 밖에 없다는 의미입니다. 이런 반려인과 함께 사는 동물은 그저 짐승일 뿐이며 그 짐승에게 이 반려인은 반려인이 아니라 무섭고 힘 센 인간일 뿐입니다. 왜 이런 고통을 당해야 하는지도 모르는 짐승은 어리둥절하지만 배가 고픈 순간, 그 리고 다시 무서운 느낌을 받은 순간 복종해야 합니다. 올해들어 동물관련 주제로 기고를 하면서 더 자주 하게 된 생각 중 하나는 행 동 자체의 문제보다 행동을 하는 이유에 대한 문제입니다. 무언가 결핍되어 있기에 자꾸만 자신보다 약한 생명에게 화풀이를 하는 건 아닐지... 몇 년 사이에 동물에 대한 관심이 지대해지면서 동물학대자를 일컬어 ‘잠정적 살인자’라고 표현하기도 합니다. 동물을 잔인하게 학대하고 살생하는 사람들 대부분은 약한 동물을 화풀이 상대로 쉽게 생각하고, 학대하고 살생하는 것을 죄라고 생각하지 않는 것 같습니다. 이런 사람들의 분노가 커지면 그에 따라 더 큰 대상을 물색해야 하지 않을까요? 게다가 사회적으로 큰 파장을 몰 고 왔던 살인마들 대부분이 동물학대의 전적이 있음은 공공연하게 알려져 왔습니다. 이런 말 참 오랜만이지만, 주위를 한번 둘러봐주 세요. 내 조카, 자식, 친구, 부모, 이웃이 동물학대를 일삼고 있지는 않은지... 그리고 그 사람들의 고민은 무엇일지 귀 기울여 주세요,

동물자유연대 Korean Animal Welfare Association 자신의 반려견에게 소주를 먹이고 비틀 거리는 동영상을 찍어 페이스 북에 게시한 사람을 경찰에 고발하였습니다. 지난 19일 동물자유연대 게시판에는 이와 관련된 많은 제보가 있었습니다. 제보 내용은 어 떤 사람이 개에게 소주 2병을 먹이고 그 영상을 페이스 북에 게시했다는 것이었습니다. 동 영상에서는 슈나우저로 보이는 개 한 마리가 고통스러운 듯 비틀거리고 있었고, 그것을 찍 은 사람은 그 장면을 즐기는 듯 키득거리는 웃음 소리가 담겨있었습니다. 하지만 영상만으로는 고발이 어려워 동물자유연대는 추가 자료 제보를 요청 했습니다. 그 결과 정말 많은 분들이 메일과 전화로 자료를 보내 주셨고, 추가 증거가 될 수 있는 자료도 확보되어 제보해 주신 자료를 바탕으로 게시자를 동물보호법상 학대행위 등의 금지에 관한 조항 위반으로 경찰에 고발했습니다. 동물 학대 범죄는 학대를 당한 동물이 스스로의 피해를 입증할 수 없기 때문에 시민들의 참 여가 무엇보다 중요한 역할을 합니다. 이번 사건 역시 동물 학대를 가볍게 여기지 않고, 적 극적으로 나서주신 시민 분들의 도움 덕분에 고발이 가능했습니다. 가해자로 추정되는 사람이 페이스 북에 올렸다는 동영상에는 한 슈나우저가 실내에 있는 팬스 안에서 내내 비틀 거리는 모습이 담겨 있습니 다. 슈나우저는 안절부절하며 비틀거리다가 주저앉기도 하고 힘겨운 듯 신음소리를 내고 있습니다. 영상을 촬영한 사람은 개가 괴로워하는 모 습을 보면서 ‘술 많이 취했구나’라고 말하며 웃고 있었습니다. 동물보호법 8조 동물학대 등의 금지에 관한 조항은 도구나 약물을 이용하여 상해를 입히는 행위를 학대로 규정하고 이를 어길 시 1년 이하의 징역 또는 1천만원 이하의 벌금형에 처할 수 있도록 하고 있습니다. 개는 사람에 비해 알코올에 대한 신체 반응이 민감하여 적은 양으로도 간손상이나 심장발작 등을 일으킬 수 있으며 과량을 섭취할 경우 급성 간독성, 혼수상태, 심하면 죽음에 이를 수 있을 정도로 위험한 독극물에 해당합니다. 따라서 개에게 소주를 먹게 한 행위는 약물을 이용해 동물 에게 상해를 입힌 행위에 해당, 명백한 동물보호법 위반입니다. 게다가 술을 먹고 괴로워하는 개에게 수의학적 조치를 취하기는커녕 그 장면을 보고 즐기며 촬영까지 한 점은 게시자의 행위가 고의적으로 이루어졌음을 짐작케 합니다. 동물은 인간의 즐거움을 위해 이용되는 대상이 아닌, 그 존재 자체만으로도 가치가 있고 존중되어야 하는 대상입니다. 동물을 고통에 빠뜨리고 심지어 그들의 고통을 즐기는 행위는 결코 용납될 수 없습니다. 동물자유연대는 이런 일이 반복되지 않도록 적법한 절차에 따라 수사가 이루 어 질 수 있게 노력하겠습니다. 제보해 주신 모든 분들께 감사드리며, 앞으로 수사가 진행되는 사항에 대해서는 동물자유연대 홈페이지를 통해 게시할 예정이니 지속적인 관심과 참여를 부탁 드립니다. (http://www.animals.or.kr/)

기사를 접한 네티즌들의 댓글 → 페이스북 이용자 강민경 : “차마못본동영상.. 가슴아파 얼마나 괴로웠을까ㅜㅜ” 김보름 : “2병이래....나 두병마시면 만취되는데 저 작 은동물에게 2병이나 먹였다고?!” 유지나 : “강아지 주인 동물학대로 고발하면 벌금만 나오나요? 그럼 키우던 저 강아지는 어떻게 되나요? 저도 슈나우저를 키우다보니 저 영상 맘아파서 보지도 못하겠더라구요. 이후에 저 강아지는 어떻게 되는지 궁금합니다.” → 동물자유연대 홈페이지 이경숙 : “죽으라고 한 행동입니다 이건! 저런 인간에겐 더 이상 반려동물을 키울 수 없게 해야 합니다.” …


19금 특집 4 fägring감독, stor (아름다운 청춘): 배우고 싶은 유년 동화. 가시를 삼킨Lust 장미och (정진우 1979) 로 보는 근대화 프로젝트, 성 모럴 그리고 여성.

영화로 보는 시공간 글. 곡주대비 hjkanjy@gmail.com

필자와 탄생 연도가 같은 이 영화는 이른바 호스티스 장르 (1974-197) 전성기의 후반부 에 제작되어 화려한 종지부를 찍은 작품이라 고 말할 수 있다. 1979년도 흥행순위 20위를 기록한 영화로 메가 히트작 이라고 할 수는 없 지만 그 해 대종상 감독상을 받고 마닐라 국 제 영화제에 초청 받은 작품으로 이슈가 되었 던 영화 임에는 틀림 없다. 영화의 줄거리는 호스티스 영화의 기본 골자 인 젊은 여성의 성적인 타락, 그에 따른 좌절 과 죽음 등을 고스란히 답습한다. 주인공 장미는 일류대학 (원작에서 이화여대로 설정 되어있지만 당시 검열 관들이 학 교 이름을 언급하지 말라고 했다고 한다.1) 을 다니고 있는 부유한 집 외동딸이지만 그녀는 한없이 자신의 인생에 대 해 권태를 느끼고 이를 성적인 일탈로 채우고자 한다. 자신의 본가인 부산에 내려가는 도중 기차에서 우연히 만나게 된 유부남 신성일 과 사랑에 빠진 장미는 그와 성적인 교제를 시작하지만 곧 그의 부인에게 발각 되면서 절망하고 술 집에 나가기 시작한다. 아버지의 강압적인 결정으로 정신병원에 갇혀 있다가 나오게 된 장미는 얼마 지나지 않아 세 호 (한진희 분)를 만나 또 다시 사랑에 빠진다. 이 관계 에서 역시 장미는 감정적인 성숙 보다는 육체적인 쾌락을 원하 고, 결국 남자의 아이를 갖게 된다. 세호는 자신의 엄마뻘 되는 늙은 여성과 동거하는 ‘기둥 서방’ 이었고, 이를 알아낸 장미는 낙태를 하려다 단념한다. 또 한번 절망 한 그녀는 거리를 헤매다가 아직 태어나지 않은 자신의 아기의 인형들 을 사고 그것들을 품에 앉은 채 기차에 치어 삶을 마감하게 된다. 사실 호스티스 영화에 대한 글을 너무 많이 써왔지만 매번 줄거리를 쓸 때 마다 낯간지럽다. 줄거리들이 너무 비슷한 것도 그렇거니와 여자들이 죽는 방법 (대부분 자살) 이나 이유 (혹은 사고) 들이 뻔뻔할 정도로 개연성이 떨어지기 때 문이다. 마치 여자 주인공이 죽는 것은 공식처럼 정해져 있는데 참신한 방법이 떠오르지 않아 존재하는 (죽는) 방법들 은 다 갖다 붙여보는 방식을 취한 것은 아닌가 싶다. 영화나 문화 상품에 존재하는 “밝히는 여자는 죽는다” 라는 공 식을 제대로 벤치 마킹한 영화 장르 중 하나 인 것은 분명 하다. 필자가 서술한 줄거리로 견주어 이 영화가 다른 호스티스 물과 다르다고 느끼는 독자는 많지 않을 듯하다. 다만, 이 영화는 만드는 사람의 의도가 과연 그랬을지는 모르지만 영화를 읽어보는 입장에서 보면 매우 흥미로운 구조를 가지 1. KAFA 한국 영상 자료원 검열 기록. 아직 대중에게 개방되어 있지 않다.


고 있다. 이 영화의 구조에 결정적인 역할을 하는 두가지 모티브로 영화의 오프닝에 등장하는 아파트 건물 그리고 마 지막 엔딩의 기차를 꼽을 수 있겠다. 첫째로, 영화의 오프닝 씨퀜스는 거대한 아파트 단지를 bird’s eye view 로 짧지 않은 러닝타임을 할애해 도시화된 주 거지의 모습을 보여주는데 그러한 아파트 씬은 이 영화에서 무수히 많이 등장 한다. 그렇다면 왜 이러한 아파트 장면 들이 이 영화를 읽는 중요한 골자가 되는가? 가시를 삼킨 장미가 제작된 1970년대 말은 박정희 정권하에 이루어졌던 영화법 제 4차 제정 (1974)이 이루어지고 난 후이고 앞서 집행 되던 악명 높은 이중검열과 엄격했던 실사 검열이 유지되어 오던 시기 이다 (검열의 엄격함은 전두환 정권기에도 유지되지만 3S 정책으로 영화의 성적인 재현의 가능 범위가 넓어지게 된다). 박유희의 연구2 를 보면 박정 희 정권의 영화 검열 기준 중 하나가 조국 근대화의 친화적인 재현이고 그에 반하는 빈곤이나 하층민의 생활상을 중 점적으로 단속했다고 서술 되어있다 (이러한 기준으로 검열의 탄압을 받은 영화로는 이만희의 휴일을 꼽을 수 있다). 다시 말해 가시를 삼킨 장미에서 시도 때도 없이 등장하는 아파트 장면, 혹은 그녀가 부산에서 신성일과 데이트를 하 면서 간간히 비추어 졌던 부산 대교 (76년 시공) 및 대형 아파트 단지들은 이 영화가 가지고 있는 문제성 이슈들 – 간 통, 여대생의 매춘 행위 – 을 덮기 위한 일종의 전략적인 장치 라고 할 수 있다. 60년대 대표 감독 김수용은 검열의 행 패 (?) 가 너무 심해 검열관들 만을 위한 희생샷이나 아부샷 (?) 등을 끼워 넣어 자신이 구하고 싶은 씬들을 보호 했다 고 증언 한 바 있는데 이러한 아파트 씬들 역시 그와 같은 맥락으로 볼 수 있을 것이다. 아파트 장면들의 또 하나의 중요한 기능은 근대화의 상징성이다. 슬릭하게 지어진 복합 주거 지역, 아파트의 등장은 한국 사회에서 근대화의 상징으로 적합한 심볼이고, 이는 영화에 등장하는 또 하나의 중요한 근대성의 상징 – 기차 와 대등하게 사용된다. 뤼미에르 형제가 영화를 처음 만들었을 때부터 시작해 (ex. Lumiere brothers 의 Great Train Robbery, 1895) 수많 은 무성 영화들, 웨스턴 영화들에서 기차 (train) 혹은 기차길 (rail road)은 근대성의 상징이며 시대의 변화를 상징 해 왔다. 한국에서도 기차는 근대사에서 주된 산업화의 역군 역할을 수행 했고, 특히 70년대 초 국가 주도 산업화 기간 동안 수많은 지방인구, 특히 시골 출신 젊은 여성을 공업 단지로 이주 시키는데 큰 기여를 했다. 윤여정이 악랄한 하 녀 역할로 나오는 화녀 (김기영 감독, 1971)를 보면 그녀가 서울로 가는 기차 안에서 친구에게 자신의 꿈에 대해 말하 는 장면이 나온다. 이 영화에서 기차는 의미심장한 일종의 복선으로 등장 ���는데, 장미가 처음 성적으로 , 윤리적으로 타락하게 되는 것 은 그녀가 결혼한 남자, 신성일을 기차 안에서 유혹 하면서부터 이다. 그와의 관계 이후로 그녀는 점차적으로 추락하게 되고 (술집 메이드-> 정신 병원-> 임신-> 죽음) 결국 그녀의 인생은 기차 사고/자살로 마감하게 된다 (영화는 그녀가 기차에 치어 죽는 것을 자살인지 혹은 사고인지 명확하지 않게 처리했다. 기차가 장미를 향해 달리고 그것을 본 장미 가 떨어진 인형을 주우며 자신을 향해 치닫는 기차를 물끄러미 바라본다. 그리고 장면 freezes). 결국 장미가 자살로 생을 마감 한것인지 혹은 사고사 한것인지는 관객 각자가 판단할 부분 이지만 영화는 초기 호스티 스 영화에서 보여졌던 젊은 시골 출신 여성들이 산업화 과정에서 희생되어 갔던 현상을 또 하나의 다른 장치로 보여준 셈이다. 가시를 삼킨 장미는 사실 웰 메이드 영화라고 하기엔 허술 한 점이 너무 나도 많은, 그냥 그런 치정 영화로 치 부하기 쉽지만, 이 영화가 아파트와 그 외 근대화 과정에서 급 성장했던 건설 분야의 산물들 – 고속 도로, 다리, 재개 발 지역 그리고 기차 등을 배경과 소재로 삼은 것은 꽤 인상 깊은 시도라고 할 수 있겠다. 2. 박정희 정권기 영화 검열과 감성 재현의 역학.


회사 옆 미술관 정서영 II

글. 강세기

2013년 10월 월간이리에는 정서영 작가에 대한 간략한 인트로를 올렸었다. 그 때 정 작가의 작업에 대한 감상을 다시 기고하겠다는 다짐을 했으나 한동안 잊어버리고 살았었다. 아니 정확히 말하면 미뤄놓은 숙제처럼 정서영 작가에 대한 부담은 항상 마음 한 켠에서 꿈틀거렸다.

그 이유는 물론 다시 감상평을 올린다고 내뱉어 버린 나와의 약속이기도 했지만, 무엇보다도 개인적으

로 동시대 미술을 좋아한다고 하면서도 작가와 그 작업에 천작하여 그것들이 만들어 놓은 사유의 바다 속에 깊숙이 들어간다기 보다 그저 겉핧기 식으로만 해치우는 나의 미술감상 습관에 대한 변화가 필요 한 시기라고 판단했기 때문인지도 모르겠다.

동시대 (한국) 미술에 대한 접근을 위해서 정서영 작가에 대해 알아가는 것은 (알게 된 것은) 참 행운이 었다고 본다. 1990년대 이후부터 꿈틀거렸던 한국의 동시대 미술씬을 본격적으로 공론의 장으로 올린 작가 중에 한 명으로 평가 받고 있기 때문이다.

* 2000년 정서영의 아트선재센터의 ‘전망대’전은 당시 큐레이터와 작가 등 미술계에 새로운 충격을 가져다 주었다고 평가 받는다.

그래서 이번 글을 쓰기 위해 정서영 작가를 다룬 주요 전시평과 전시자료, 미술잡지 기사, 그리고 서적 등을 섭렵하며 넓고 깊게 그를 이해하려 노력했다......라고 하면 너무 좋겠다! ^^;; 역시나 나라님도 못

고친다는 게으름으로 정서영 작가에 대한 책 ‘큰 것 작은 것 넓적한 것의 속도’에 집대성된 그의 전시작

과 인터넷 서핑으로 감상을 마무리할 수 밖에 없었다. 하지만 이번 과정을 통해 나름 어깨를 토닥여 주 고 싶은 것은 당췌 해독이 불가능했던 그의 작업을 읽는 코드를 어렴풋하게나마 짚어내었다는 것이다.

물론 그것은 객관화되지 않은 어설픈 설레발인 백 퍼센트 나만의 길이다. 하지만 미술을 보는 나름의 길을 설정하고 작품 앞에 서게 되면 이해와 감상이 훨씬 수월하고 재미있기 때문에 설령 그것이 헛발질 이라도 일단은 없는 것보다는 훨씬 낫다는 자위와 행여 잘못된 길을 설정했더라도 다른 글과 정보를 통 해 어느 정도는 바로잡을 수 있을 거라는 소망으로 일단은 설레발을 시작하련다.

정서영 작가의 가장 큰 매력은 신기하게도 친숙한 사물 앞에서 기존에 생각했던 그 사물의 본래 기능

을 전혀 생각할 수 없게 한다는 데 있다. 그것이 책상이던 세면대던 혹은 글자나, 글이던 간에 겉 모양

새를 보고 판단할 수 있는 기능은 그의 작업에서는 자취를 감춘다. 그렇기 때문에 정 작가의 작업 앞에 서 어떤 사물이 보인다고 그 물체로부터 감상의 발걸음을 떼서는 자칫하면 길을 잃어버리기 쉬었다.

예를 들면, 책상 앞에 마주했다(지금이 바로 그때, 2012). 그 책상은 공중에 떠 있다. 그리고 그 책상 위

에는 흔히 말하는 책상 유리가 놓여있는데, 오른쪽 상단 귀퉁이에는 역시 우리가 흔히 하는 컴퓨터 선 을 정리하기 위한 구멍이 뚫려있다.


기성품을 가지고 설치를 하는 작가들은 많이 있다. 하지만 정

서영은 그 작업을 통해 재료로 쓰인 물체를 넘어서는 어떤 분 위기를 만들어 내는 점에서 매 력이 있었다. 그 분위기는 단순

한 심리적인 감성이 아니라 확 연히 다가오는 실체적인 공간 감이었다.

사물이 가지는 시각적인 기능 에 대한 한계를 넘으려는, 그리

고 그 기능만이 전부인양 인식 하는 사람들에 대한 경쾌한 조 소가 들리는 듯 했다.

새로운 공간(또는 관계)에 대한 창조 역시 정서영의 작업에서 보여지는 매력이다. 때로는 공 간-소리-물질이 한데 섞여 관

계를 이루며 하나의 새로운 무

언가를 형성한다(플레이타임, 문제는 책상이 나무 받침대에 받친 채 공중에 떠 있다는 것이다. 공중

2012).

에 떠있는 책상. 시작부터 책상의 본래 기능은 없어졌다. 그리고 컴퓨

길거리에 굴러다닐 법한 돌멩

시 선이 책상아래를 통과하지 못하도록 처리되어 있다.

위에 놓여있다. 관객은 자연스

터 선 정리용 구멍은 뚫려있지 않는 책상 상판 위에 올려져 있다. 역

다른 작업 역시 흔히 접할 수 있는 세 개의 의자로 구성되어 있다. 그 의자들은 모두 쓰러져 있었다(무제, 2012).

다음 작업 역시 자그만 거울이 있는데 구석에 붙어있다. 그 거울을 통 해 내 얼굴을 들여다 봤다면 얼굴 한쪽이 심하게 찌부러질 것이다. 거 울의 본래 기능은 그의 손길 앞에서 사라지고 왜곡되었다.

이 세 작품 앞에 선 관객들은 당황할 것이다. 전혀 낯설지 않는 물체 들이 자아내는 낯선 풍경 앞에서 어쩔 줄 모를 것이다.

이 서너 개가 헤드폰이 놓인 주 레 의자 위에 앉아 헤드폰을 쓰 고 돌 위에 발을 올려놓고 소리 를 듣는다. 들리는 소리는 누 군가(사운드 아티스트)가 길거

리를 걸어 다니며 보이는 것을 묘사하는 말이다.

관객은 자연스레 그들이 걸어

다녔던 그 공간을 소리를 통해

상상하고, 관객-사운드 아티스


트는 공감대를 형성하고, 그들의 묘사와 관객이 밟고 있을 법한 그 돌멩이는 화학작용을 일으켜 관객의 머릿속에 어떤 광경(또는 느낌)을 만들어 낸다.

재미있는 것은 그 어떤 물리적 접촉이 없음에도 관계가 형성되고 있다는 것이다. 시공간을 초월하여 탄

생한 그것은 관객마다 다를 것이다. 단순한 돌멩이와 의자, 그리고 헤드폰이 조합한 경우의 수는 관객 의 수만큼이나 다양할 것이다. 정서영이 감독처럼 디자인하고 세팅한 무대에서 무수한 이야기가 만들 어 질 것이다.

남들이 지나치는 것에 대한 정서영 작가의 관심을 조금 더 감상적으로 비약해보기도 했다. 소외되고 있 는 무언가에 대한 연민과 그것에 빛을 비추려는 적극적인 의지로도 읽혀졌다.

이런 종류가 내가 개인적으로 좋아하는 작품이기도 한데, 거울과 의자가 서로에게 존재하지 않는 것을 담아내려는 노력이다(밤과 낮, 2011).

www

.akive

.org

거울은 사람들의 시선이 거의 닿지 않는 천장 구석을 비추고 있고, 의자 위에는 거울의 모양 그대로를 본뜬 형상이 덧대어져 있다. 그 앞에서면 의자-거울-거울 속의 이미지가 하나되어 내가 미처 보지 못했 던 전혀 새로운 공간을 만들어낸다.

그 누구도 보려 하지 않는 그 곳이 멋지게 미술작업 속에 어우러져 새로운 생명을 가지게 되는 순간이 감동적이었다.


<마음속으로 정해라, 2012>도 마찬가지 맥락이다. 여기에서 정서영 작가는 관광객이 미처 누리지 못하고 있는 정자 외부 의 멋진 광경을 거울을 통해 정자 안으로 끌어 들여왔다.

그것은 어떤 공간(특히 관광지)에 대한 우리의 태도에 대한 조 소이기도 했다. 그 공간에 녹아 들어가 교재를 하려 하기 보다 그저 한 순간 도장 찍고 왔다 가는 인스턴트성 관계를 지향하

는 우리의 태도에 일침을 놓는다고나 할까? (흠흠. 너무 도덕

선생님처럼 미술을 보는거 아냐?) 어쨌던 나는 이런 정서영의 인간적인 냉소가 매우 흥미롭고 맛이 있었다.

그의 텍스트 드로잉 역시 단어가 주는 이미지 이상의 차원을

형성한다. 재미있는 것은 그 차원이 흔히 우리가 말하는 1차 원, 2차원 등의 전형적인 종류의 차원이 아니라는 것이다. 출처 : 뮤움

가령 그의 작업 중에 한 문구 “1시 25분에 뚱뚱한 거북이를 만났다”를 보자(괴물의 지도 15분, 2009).

그것을 읽으며 어떤 상황을 자연스레 상상해 봤다. 뚱뚱한 거북이를 나름 만들어 낸다. 그리고 1시 25분

을 상상한다. 그리고 내가 거북이와 조인하는 장면을 그려본다. 문제는 이 장면이 전혀 그려지지 않는다 는 것이다. 적어도 나는 도무지 내가 뚱뚱한 거북이 앞에 서있는 장면이 그려지지 않았다.

그러다 드로잉 앞에서 글을 읽고 상상하며 용을 쓰는 내 모습이 웃겼다. 아무 생각 없이 싸질러 놓은 말 한마디, 그것은 드로잉이다. 그러나 나는 그것을 텍스트로 읽고 있었다.

다른 드로잉 “우주로 날아갈 때는 코를 빼놓고 간다” 역시 마찬가지다. 정서영은 드로잉에 새겨 넣은 텍

스트를 통해 그 단어가 지시하는 사전적인 의미를 넘어서는, 자신의 머릿속을 떠다니는 어떤 이미지를 글로 표현한 것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그에게 텍스트는 스케치를 위한 도구 그 이상도 아니지 않았을까? 따라서 그의 드로잉 앞에선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그 작업 자체에 대한 해독이 아니라, 정서 영 작가가 구상하는(아니면 구상해가는) 이미지를 빚어가는 그 여정에 대한 공감과 수용, 그리고 관객 나름의 이미지화가 아닐까 싶었다.

그렇다면 그의 드로잉 연작을 통해 그가 던져놓은 모호한 차원을 어떻게 이미지화 할 것인지도 지켜볼

만할 거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 연장선상이 <미스터 김과 미스터리의 모험, 2010>이다. 텍스트 드로잉 을 연극화한 이 작품으로 우리는 그가 그려놓은 밑그림이 어떻게 조각화해서 표현되는지 볼 수 있다.

드로잉을 시각화한다는 고정관념은 당연히 드로잉에서 묘사한 것을 시각적으로 동일하게 재현한다는

것일 게다. 당연히 정서영은 그것을 무시하고 전혀 다른 새로운 작업을 만들어 냈다. 그 과정을 추적하 는 것은 관객의 몫이겠지.

정서영의 생각의 틀과 표현이 어떤 궤도로 흘러갈지 매우 기대가 된다.


여기, 문학이 필요한 시간

정극인 「상춘곡」 봄이 아름다운 계절이라는 것은 더 이상 말해 무엇하리 4월호 역시 3월호에 이어서 계절감이 물씬 느껴지는 고전 작품으로 골라 보았다. 조선시대 운문문학에는 시 조와 가사가 있었는데, 이번 호는 강호가도가의 시작, 가사문학의 시작인 정극인의 상춘곡을 골라 보았다. 제목부터 ‘賞春’ 즉 봄을 찬양하는 노래라는 의미 인데, 본문을 해석해 보면 구구절절 아름다운 꽃, 맑은 시

냇물, 교태 넘치는 새소리 로 가득하다. 지금 도시의 봄과는 다소 차이가 있지만 읽어보면 괴리감이 적다. 봄 이 주는 느낌은 지금이나 옛날이나 똑같은 것 같다.

본문을 살펴보기 전에 강호가도가란 무엇인지 가볍게 살펴보고자 한다. 강호가도가의 정의는 고전문학에서 가장 중요한 개념이기 때문이다.

강호가도란 조선시대 시가 문학의 흐름 중 ‘자연을 예찬하고 그 속에 묻혀 살면서 유교적 관념을 노래‘한 일 련의 작품을 두고 말하는 용어라고 할 수 있다. 문예사조에 낭만주의 리얼리즘이 있듯이 우리나라 시가문학

의 한 ‘사조(思潮)’로 이해하면 되겠다. 이러한 시가 문학의 흐름은 ‘자연미의 발견’에 있으며 이런 노래 유 형에는 무거운 벼슬을 버리고, 가벼운 마음으로 고향에 은거하면서 산과 물을 벗하고, 임금의 은혜를 생각 하는 작품이 많다.

이와는 상대적으로 강호한정가로 부류되는 작품도 있다. 자연을 예찬하 고 그 속에 묻혀 살면서 유교적 관념을 노래하려는 마음은 같으나 여기

에는 어부의 삶이 묘사되어 있다. 어부들이 강에서 고기를 낚는 모습에

서 사대부들은 한가로움을 느꼈는지 모른다. 그래서 본인을 어부로 묘 사하면서 한가로움과 자연을 예찬하는 시로 나타난다.

사대부 떡밥을 던져보자!


이 작품은 지은이가 1455년 단종이 세조에게 선위하자 벼슬을 그만두고 지방으로 내려와 지은 것으로 전해 진다. 본문을 현대어 해석과 함께 살펴보자.

紅塵(홍진)에 뭇친 분네 이내 生涯(생애) 엇더고, 넷 사 風流(풍류) 미가  미가. 天地間(천지

간) 男子(남자) 몸이 날만 이 하건마, 山林(산림)에 뭇쳐 이셔 至樂(지락)을  것가. 數間茅屋(수간 모옥)을 碧溪水(벽계수) 앏픠 두고, 松竹(송죽) 鬱鬱裏(울울리)예 風月主人(풍월 주인) 되어셔라. 세상에 묻혀 사는 분들이여. 이 나의 생활이 어떠한가. 옛 사람들의 운치 있는 생활을 내가 미칠까 못미칠까?

세상의 남자로 태어난 몸으로서 나만한 사람이 많건마는

왜 그들은 자연에 묻혀 사는 지극한 즐거움을 모르는 것인가? 몇 간쯤 되는 초가집을 맑은 시냇물 앞에 지어 놓고,

소나무와 대나무가 우거진 속에 자연의 주인이 되었구나!

첫 시작부터 양반 가사의 전형적인 모습을 잘 보여 주고 있다. 벼슬에서 물러나면 자연을 찾고, 자연의 아름

다움을 어떠한 세속적 가치보다도 우위에 놓으려는 전통적인 풍월정신이 집약적으로 잘 나타나 있다. 이러 한 태도는 송강 정철에 의해서 더욱 발전되어, 양반 가사의 광범위한 주제로 발돋움하게 되었다.

엇그제 겨을 지나 새봄이 도라오니, 桃花杏花(도화 행화) 夕陽裏(석양리)예 퓌여 잇고, 綠楊芳草(녹양 방 초) 細雨中(세우 중)에 프르도다. 칼로 아 낸가, 붓으로 그려 낸가, 造化神功(조화 신공)이 物物(물물) 마다 헌다. 수풀에 우 새 春氣(춘기) 내 계워 소마다 嬌態(교태)로다. 物我一體(물아 일체) 어니, 興(흥)이 다소냐. 柴扉(시비)예 거러 보고, 亭子(정자)애 안자 보니, 逍遙吟詠(소요 음영)야, 山日(산일)이 寂寂(적적), 閒中眞味(한중 진미) 알 니 업시 호재로다. 엊그제 겨울이 지나 새봄이 돌아오니,

복숭아꽃과 살구꽃은 저녁 햇빛 속에 피어 있고,

푸른 버들과 아름다운 풀은 가랑비 속에 푸르도다. 칼로 재단해 내었는가? 붓으로 그려 내었는가?

조물주의 신비스러운 솜씨가 사물마다 야단스럽구나! 수풀에서 우는 새는 봄 기운을 끝내 이기지 못하여 소리마다 아양을 떠는 모습이로다.

자연과 내가 한 몸이거니 흥겨움이야 다르겠는가?

사립문 주변을 걷기도 하고 정자에 앉아 보기도 하니,

천천히 거닐며 나직이 시를 읊조려 산 속의 하루가 적적한데,

한가로운 가운데 참된 즐거움을 아는 사람이 없이 혼자로구나.


봄의 흥취를 즐기는 화자의 모습이 본격적으로 드러나고 있다. 특히 복숭아꽃은 우리 고전시가에서 무릉도

원, 신선이 사는 곳, 이상향과 밀접한 관련이 있다. 이러한 문학적 장치를 이용하여 화자가 있는 곳이 마치

신선이 사는 곳과 다름이 없다며 강조하고 있다. 그래서 마지막 구절은 혼자라서 쓸쓸하기 보다는 사대부의 자신감이 드러난다고 볼 수 있다.

이바 니웃드라, 山水(산수) 구경 가쟈스라. 踏靑(답청)으란 오 고, 浴沂(욕기)란 來日(내일)새. 아 에 採山(채산)고, 나조 釣水(조수)새.

여보게 이웃 사람들이여, 산수 구경을 가자꾸나.

산책은 오늘 하고 냇물에서 목욕하는 것은 내일 하세. 아침에 산나물을 캐고 저녁에 낚시질을 하세.

 괴여 닉은 술을 葛巾(갈건)으로 밧타 노코, 곳나모 가지 것거, 수 노코 먹으리라. 和風(화풍)이 건 부

러 綠水(녹수) 건너오니, 淸香(청향)은 잔에 지고, 落紅(낙홍)은 옷새 진다. 樽中(준중)이 뷔엿거 날

려 알외여라. 小童(소동) 아려 酒家(주가)에 술을 믈어, 얼운은 막대 집고, 아 술을 메고, 微吟緩步 (미음 완보)야 시냇의 호자 안자, 明沙(명사) 조 믈에 잔 시어 부어 들고, 淸流(청류) 굽어보니,  오니 桃花(도화)ㅣ로다. 武陵(무릉)이 갓갑도다. 져 이 긘 거인고. 이제 막 익은 술을 갈건으로 걸러 놓고,

꽃나무 가지를 꺾어 잔 수를 세면서 먹으리라.

화창한 바람이 문득 불어서 푸른 시냇물을 건너오니,

맑은 향기는 술잔에 가득하고 붉은 꽃잎은 옷에 떨어진다. 술동이 안이 비었으면 나에게 아뢰어라.

사동을 시켜서 술집에서 술을 사 가지고, 어른은 지팡이를 짚고 아이는 술을 메고,

나직이 읊조리며 천천히 걸어 시냇가에 혼자 앉아,

고운 모래가 비치는 맑은 물에 잔을 씻어 술을 부어 들고,

맑은 시냇물을 굽어보니 떠내려오는 것이 복숭아 꽃이로다.

역시 자연을 감상하는데 달큰한 술 한 잔이 빠진다면 섭섭하겠지. 화자 역시 술 한 잔 하며 맑은 냇물을 바라 보고 있는 듯하다. 사대부의 풍류, 낭만이 가장 잘 드러난 구절이다.

松間(송간) 細路(세로)에 杜鵑花(두견화) 부치 들고, 峰頭(봉두)에 급피 올나 구름 소긔 안자 보니, 千村

萬落(천촌 만락)이 곳곳이 버려 잇. 煙霞日輝(연하 일휘) 錦繡(금수) 재폇 . 엇그제 검은 들이 봄 빗도 有餘(유여)샤.


소나무 사이 좁은 길로 진달래꽃을 손에 들고, 산봉우리에 급히 올라 구름 속에 앉아 보니, 수많은 촌락들이 곳곳에 벌여 있네.

안개와 놀과 빛나는 햇살은 아름다운 비단을 펼쳐 놓은 듯.

엇그제까지도 거뭇거뭇했던 들판이 이제 봄빛이 넘치는구나. 功名(공명)도 날 우고, 富貴(부귀)도 날 켁우니, 淸風明月(청풍 명월) 外(외)예 엇던 벗이 잇올고. 簞瓢 陋巷(단표 누항)에 흣튼 혜음 아니 . 아모타, 百年行樂(백년 행락)이 이만 엇지리. 공명과 부귀가 모두 나를 꺼리니,

아름다운 자연 외에 어떤 벗이 있으리오.

비록 가난하게 살고 있지만 잡스러운 생각은 아니 하네.

아무튼 한평생 즐겁게 지내는 것이 이만하면 족하지 않겠는가?

마지막 단락에서는 세속에 허덕이는 속물들을 비웃듯 청아한 뜻이 낙천적으로 잘 표현되어 있다. 이렇게 세 속의 명리를 멀리하고 청풍명월(淸風明月)을 벗하며 사는 삶을 만족한다는 것으로 끝맺고 있다.

「상춘곡」은 봄을 예찬하는 노래이다. 봄을 노래하는 작품은 무수히 많고 가사의 형식으로 표현된 것도 여

러 가지이다. 그러나 이 가사의 특징은 벼슬에서 물러나 한가하게 세월을 보내는 양반 문인이 새롭게 시작하 는 봄을 통해서 아름다운 자연의 모습을 조용히 관찰하며, 그것에 대한 자신의 기쁜 감정을 자연 속에 녹여 일치시키고자 한다는 데 있다. 전체적으로 우리말을 매끄럽게 구사함으로써 시상이 무난하게 전개되고, 글 을 읽는 독자 역시 봄기운이 눈앞에 펼쳐지는 듯 생동감 있는 흥취를 느낄 수 있다. 지금 이곳도 봄이 왔다. 그리고 한 계절의 끝. 완연한 끝. 3월은 필자의 생일이었다. 가만히 돌아보니 삐걱거리면서 그냥저냥 살아온 것 같다. 그리고 잊을 수 없는 기 억들이 섞여 뭉쳐 이제 서른이 되었다. 야단스러운 봄의 계절을 느끼며 어찌되었던 시작의 계절 아닌가? 그

래서 새롭게 삶의 지표를 정했다. 사람은 얼굴 따라 간다고, 웃는 얼굴로 살면 재미지게 살지 않을까. 그래서 웃는 얼굴로 주변에서 사소하지만 낭만을 찾으며 나이 먹어가야지.

그리고 그 낭만의 시작은, 케이크와 함께 계절을 즐기는 것!

다음시간에는 금지된 사랑, 그 비극미를 다룬 고전 소설 작자미상의 「운영전」을 살펴보겠다. 지각하면 보강이다.


신당동 파르한의 음악소개소

1. 지금여기 - 달마선생

2. Otherside - 솔루션스

달마선생은 <2013 쌈지 사운드

드럼의

분명해서

고등학생 때 우연히 사게 된 음반. ‘

인조 밴드이다. 공연장에서 들을

파트로 넘어갈 때를 비롯해 드럼이

유독 자주 들었다. 보컬의 나른한

[지금여기](2014), 2

페스티벌> 숨은 고수에 오른 3 때마다 궁금했던 노래인데 드디어

싱글이 발매되어 소개할 수 있어

기쁘다. 드럼과 베이스의 연주가 일치되는

부분이

인상적이고

원기타로 화려한 연주를 한다. 3 인조도 강렬한 음악을 할 수 있다는

것을 보여준다. 내 마음을 움직인 첫 얼터너티브 락이다.

3.나를 안아줘 - 강건너 비행소녀

[The Solutions](2012), 8

좋은데

맺고

특히

끊음이

[강건너 비행소녀](2010), 1

간주에서

가사

멈추는 부분이 좋다. 방청에 가서

처음 들었던 나도 따라 불렀을 만큼 ‘1,2,3,4,5,6,7 days’와 그에 이어지는

‘Who!’가

기분

좋다.

오랫동안

잊고

그리고 코러스를 넣은 것이 정말 마음에

든다.

있다가도 들으면 절로 춤추게 하는 노래.

슈게이징’이라는 말도 모르던 시절, 목소리가 노래와 매우 잘 어울리고

길게 부르는 부분에서는 노래와 붙어있는 것 같다. 아쉽게도 지금은 활동을 하고 있지 않다. 강건너

비행소녀의 음악이 마음에 든다면 밴드의

전신인

<안경은오형>의

음악을 듣는 것도 좋다.


항상 익숙한 것과 미지의 세계 사이에서 갈등합니다. 그래서 이번 호는 저에게 친숙하지 않은 장르이지만 좋은 노래 세 곡과 마음의 고향 같은 장르의 노래 세 곡을 함께 소개합니다. 신당동 파르한 (@chungchoon98)

4. 좋지 아니한가 - 크라잉넛

5. 그녀 입술은 달콤해 - 키보이스

6. 사랑의 부도수표 - 이효리

최고로 좋아하는 크라잉넛의 노래.

한국 락 그룹사운드 최초의 음반.

처음 이 노래를 들은 순간, 나는

막 시작되는 부분까지가 가장 기분

옛날 우리나라 밴드 음악의 매력을

했지만

[좋지 아니한가 OST](2007), 1

그 중에서도 1절이 끝나고 2절이 좋다. 밝은 멜로디 이지만 주옥같은

가사 때문에 아련한 기분이 들고

어떤 공연에서든 감동적인 떼창을 이끌어내는

노래.

노래

시작

전 ‘오늘 밤 우리 모두는 좋지

아니한가!’ 라는 멘트를 한 2007 년 펜타포트 락 페스티벌의 영상이 나를 이 노래로 끌어들였다.

[그녀 입술은 달콤해](1964), 1

좋아하는 밴드가 불러 알게 되었다. 몰랐는데 원곡을 듣고 ‘이런 것이

진정한 한국 로큰롤이구나!’ 싶었다. 가사를 짧게 끊다가도 길게 늘여

부르는 보컬이 재미있다. 달리는 드럼 소리에 이어 나오는 짧은 기타

솔로도 경쾌하다. 예나 지금이나 한국말의

매력을

음악은 멋있다.

극대화시키는

[Monochrome](2013), 6

경탄했다. 경쾌한 컨트리 음악이기도 내

그녀의

취향이었기

발음이

때문이다.

너무나 ‘하얀

와이셔츠에 새까만 양복을 입은’과

‘사랑의 백지수표를’을 부를 때의

발음이 정말 매력적이다. 새로운 모습을 많이 보여준 앨범 중에서도 블루스

뮤지션

김태춘이

작사,

작곡한 이 곡이야말로 그녀를 다시 보게 된 계기가 되었다.


ⓒ NANGMANSPY

마지막 눈은 사라진 것이 아니라 땅 밑으로 스미고 하늘 위로 올라가 내년을 기약할 안녕을 나누는 것. #1 봄의 단서들_1

요즘 들어 외출이 잦아진 옆집 강아지들은 나를 좋아하는 게 분명하다. 하지만 목소리 냉랭한 주인아주머니 눈치를 보는지 슬금슬금 곁눈질만…

letmeflywoo.tumblr.com


을 창식

, 잘 알지도 못하면 서

송창식을, 잘 알지도 못하면서 - 그게 무슨 장르야

웬일인지 티브이에서 ‘쎄시봉’이 자주 나온다. 공중파 아침 방송 두 곳에서 동시에 나올 정도로. 4월 5, 6일 올림픽 공원에서 열리는 공연을 염두에 둔 것이리라. 동아일보 주최라 그런지 규모도 예전에 비해 훨씬 커 보이며 홍보에도 많은 공을 들이는 모습이다. 아마도 45년 전쯤의 쎄시봉과 그때의 주역인 ‘트윈폴리오’ 가 잔잔하게 뿌려댄 열기를 떠올리며 향하는 사람들이 많을 터다.

요즘엔 가수 송창식을 쎄시봉과 연관 짓는다. 그 이전에는 주로 포크 음악의 대부라는 이미지로 대중들에게 소비됐다. 하지만 쎄시봉이든 포크의 대부든 그의 음악은 그렇게 몇 단어로 단정 지을 만큼 간단하지가 않다. 그는 또래의 포크 가수들과 완전히 노선이 달랐다. 또 다른 측면에서 보태자면, 그 역시도 정통적인 의미에서 포크란 민속적이고 저항적인 걸 말하는데 자신은 그렇게 한 적이 없다고 말했다.

그와의 인터뷰에서 나는 지금 하는 음악 말고 다른 음악을 하고 싶진 않은지 물어봤다. 예를 들어 재즈라든지요? 하면서. 그러자 그가 정색하며 말했다. 내 음악은 장르가 없는 거예요. 그 속에 재즈도 있고, 뽕짝도 있고, 클래식도 있고. 그러니깐 새로 할 필요가 없는 거예요. 내가 기타를 잘 치기 위해 재즈를 해볼까 생각도 해봤지만.


사실을 알면서도 내가 왜 그런 질문을 했는지 모르겠지만, 아마도 난 그가 끈적한 노래를 부르거나 맘대로 스캣 하는 장면을 상상했던 듯싶다. 그는 이미 스윙 리듬 속에서 알 수 없는 의성어를 뱉거나 샤우팅을 하는 등 자신만의 스타일대로 모든 장르를 아우르고 있었는데도 말이다.

그가 처음 시작한 음악은 클래식이었다. 중학생 때 나간 성악 콩쿠르에서 1등 없는 2등을 할 정도로 두각을 나타냈다. 2등을 한 것도 출전 학생 중 가장 잘했지만 정식으로 성악을 배우지 않아 1등을 줄 수 없었기 때문이다. 특유의 우렁차고 맑은 목소리는 여기서 기인한 것일지도 모르겠다.

이후 트윈폴리오를 거쳐 솔로로 데뷔한 뒤엔 이제껏 좁은 시각으로 음악을 했으며 자신에겐 국악적인 요소가 더 많다는 걸 깨달았다. 그러고선 곡에 한국적인 요소를 조금씩 담아내(차츰 늘려가며) 세상에 내놓았다. 그건 한국인의 무의식 속에 내재된 정서를 툭툭 건드렸다. 사람들은 신기해하면서도 흥겹게 따라 불렀다. 큰 인기에도 그는 오히려 담담해 하며 더 넓게 더 깊이 음악을 탐구해 나갔다. 그것은 다양한 시도로 이어졌다.

‘석기시대’라는 밴드를 만들어 록을 시도하기도 했는데 그에게 그 연유를 묻자 이렇게 말했다. 그때는 이전의 목소리와 노래하는 창법이 너무 ‘오디너리’하고 순한 노래를 불렀으니깐 난 그게 좀 지루했었어요. 그래서 록도 한번 하자, 해서 한 거지.

(* 그의 록커 기질을 알 수 있는 노래가 더러 있는데, 그중 하나가 ‘새는’이다. 사이키델릭하기까지 한 이 곡은 당시 최고의 세션이던 ‘동방의 빛’이 연주를 맡았는데, 키보드 라인이 가히 환상적이다. 또 하나 꼽자면 그 유명한 ‘담뱃가게 아가씨’다. 이 곡은 굳이 설명이 필요 없겠다. 참고로 최근 미국에 진출한 YB가 이 곡을 편곡해 ‘시가렛 걸‘로 활동을 시작했다. 이 곡을 허락한 원작자는 이렇게 말했다. 사실 미국에선 그 곡보다는 ’가나다라‘가 더 인기 있을 거예요. ’담뱃가게‘는 펑키가 들어 있거든요. 그건 이미 걔들도 다 아는 건데, ’ 가나다라‘는 생전 처음 들어 보는 거라 신기할 걸요.)

록뿐이 아니었다. 그는 한국에서 가장 먼저 컴퓨터 음악을 들여왔다.(믿기지 않겠지만 그는 1970년대 말부터 애플 컴퓨터를 다뤘고 자신의 집도 컴퓨터로 직접 설계했다.) 그는 이렇게 말했다. 맨 처음에 내가 사람들에게 보급을 했지. 시퀀스라는 기계였는데 그건 지금처럼 컴퓨터에 들어 있지 않았어요. 많은 사람들이 그거 가지고 만들었죠. (그는 왜 보급만 하고 자신은 사용하지 않았을까. 이유를 묻자 그가 명쾌하게 답했다) 내가 그걸 해봤는데 한 곡 하는데 일주일이 걸리는 거야. 너무 열악하니깐. 내가 하기엔 기계가 너무 부족해. 처음부터 컴퓨터 음악을 하는 사람들한텐 충분한데. 아날로그 음악을 하던 내가 하기엔 좀 너무 부족해요. 2013년인데도 나한테 맘에 드는 컴퓨터 프로그램이 없는데.


그런 음악에 대한 고집과 다양한 시도 끝에 잉태된 그의 음악에 대중들은 열광했다. 물론 전문가들의 찬사도 끊이지 않았다. 대한민국 가요계를 한 단계 진일보시켰다는 평을 들으며 그는 독보적인 위치에 올랐다.

‘굳이 장르를 따지자면’이라는 말을 써도 딱히 꼽을 수가 없다. 클래식, 포크, 트로트, 국악, 록, 재즈가 묘하게 뒤섞여 ‘송창식 표 음악’이라 부를 수밖에. 듣는 입장에서 더 알고 싶은 것도, 후배 가수들이 그의 노래를 어려워하는 것도 바로 그 때문이 아닐까.

어쩌면 그에게 장르는 무의미할지도 모른다. 이는 역설적으로 대중들에겐 큰 의미로 다가온다.

만약 그의 음악을 듣는다면 선을 그을 필요가 없다. 그저 새로운 세계에 몸을 맡기면 될 것이다. 부디 신선한 자극에 즐거운 통각을 맛보길.

그러나 아쉽게도 내가 태어난 해와도 같은 1987년을 마지막으로 우리는 더 이상 새로운 ‘송창식 표 음악’ 을 들을 수가 없었다. 이유가 있을 터. 다음 호에선 그 이유에 대해서 다뤄볼 것이다.

박재현(소설가) walrus1618@naver.com


내가 어떻게 다이아몬드가 되었냐면... 글. 올리브

‘으���? 여기가 거기가 아닌가?’

한창 데이브레이크 공연을 보러

Part 2. 봄날,,,홍대,,,그리고 안녕?

‘클럽타’를 찾아 홍대를 헤매던 나는 ‘

다닐 때, 우연히 알게 된 지인이다.

연주를 정말 멋지게 하는 밴드나

클럽빵’을 들어서자마자, 당황하고

데이브레이크 뿐 아니라 좋은 공연을

가수를 보면, 무대에서 빛이 나는

말았다. 네이버 지도에서 분명 검색을

정말 많이 보러 다니는 그 분에게.

것처럼 보이는 경험을 하기도 했다.

해서 잘 찾아 온 것 같은데? 지도와

“저를 좀 데리고 가주세요!!” 소리 높여

아무튼 그 밴드의 노래를 듣는 순간,

공연 스케줄을 다시 살펴보니 두

외쳤다.

가슴속 깊은 곳에 응어리처럼 맺혀

클럽의 이름을 헷갈린 나머지 잘 못

어떤 밴드의 공연이든 좋은 공연이

있던 무언가가 터져버리는 느낌을

찾아와 버렸다.

있으면 추천을 부탁했다. 그리고 클럽

받았다. 이별노래, 슬픈 노래라는 점을

아!!...이럴수가!!...혼자서 공연 보러

이름도 헷갈리고 잘 찾아가지도 못하는

떠나서도 보컬의 노래는 막힌 가슴을

가는 것은 쉽지 않은 일인가?? 정녕

불쌍한 사람 한 명 좀 구제해달라고

시원하게 뚫어줬다.

그러한 것인가??

울면서 애원했다. 그만큼 필자는 공연이 보러 가고 싶었고, 다양한

“안녕~안녕~안녕~안녕~Good bye

드디어!! 홍대의 홍자로 모르는 사람의

가수들과 노래들을 만나고 싶어

you told me~Good bye you told me~”

홍대 나들이는 시작되었는데...!!

안달나 있었다. 몸은 들썩들썩

라고 반복되는 노래 가사와 보컬의 힘

처음처럼 바보 같은 실수를 되풀이

거리는데, 당췌 어디를 어떻게 누구를

있는 목소리는 온 몸에 전율을 흐르게

하고 싶지 않았기에 주변 지인에게

보러 가야할지 아무것도 모르다니...

만들었다. 데이브레이크와 안녕바다의

SOS를 청하기에 이르렀다. 홍대

난감 또 난감할 뿐.

공연을 보기 위해 전국투어를 찍을

어디쯤에 무슨 공연장이 있는지도

정도였더라도, 사실 필자는 그전까지는

모르고, 어떤 공연, 어떤 가수, 정말 아

그렇게 당근주스님을 따라 간 홍대

뉴에이지 연주음악 또는 피아노

~~무 것도 모르는 나 같은 사람을

공연장.

연주음악 등 정도만 편식해 들었기에

봄날의 홍대로 인도해줄 지인 한 분이

홍대 프로미나드 페스티발은 여러 개의

보컬의 힘도 몰랐거니와, 보컬이 주는

떠올라, 급기야 도움을 청하기에 이른

공연장에서 여러 밴드가 페스티발처럼

임팩트는 생각보다 강했다.

것이다.

공연을 하는 컵셉으로 진행되었다.

전국투어를 찍은 후부터

제일 먼저 갔던 상상마당 공연장에선 ‘

“보컬은 누가 좋아?” 누군가 묻는다면,

데이브레이크와 안녕바다의 공연

꽃미남 밴드’의 공연이 한창 무르익고

외국 가수든 한국 가수든 딱히

소강기 상태이기도 했고, 공연을 보고

있었다. 당근주스님의 의도와 적절하게

좋아하는 보컬의 음색이 없기도 하고

싶다는 갈증이 극에 달한 상태로 홍대

맞아 떨어졌던 것일까? 꽃미남

보컬을 좋아하기가 참 쉽지가 않다고

입성을 부르짖었지만, 나의 첫 걸음은

밴드들의 노래에 취할 때 쯤, 한

느끼기 때문에 어떤 보컬의 음색, 또는 ‘

그렇게 허무한 헛걸음이 되어 버렸기에

밴드의 노래를 듣게 되었다. 사실 ‘나는

그 보컬의 이런이런 느낌이 좋아’라고

절실하게 도움이 필요했다.

꽃미남을 좋아하지 않아!!’라고 말하면

대답을 정확하게 하지 못한다.

거짓말이겠지만, 잘생긴 외모도, 빛이

하지만 민트그레이라는 밴드의

늘 반짝반짝 빛나는 눈빛을 가지고

나는 외모도 외모지만, 가수는 노래로

보컬은 나를 매료시키기에 충분했다.

있는 ‘소리소문 없는 당근주스’님은

모든 것을 보여줄 수 있다. 노래와

민트그레이 보컬의 노래는 그 모든


경계를 허물어버렸다. 도대체 왜

넘어간 것은 아니다!!!^^;; 정말 공연이

기대도 된다고...힘들면 기대도 된다고...

이렇게 좋을까를 고민해 볼 정도로

보고 싶었고, 음악이 듣고 싶었을

어딘가에 기대도 괜찮다는 것을

보컬의 음색과 노래가 귀 그리고

뿐이다.

알아버렸다. 그것이 음악일 수도

가슴에 깊게 꽂혔다.

마침!! 작년 이맘 때 스몰오의 공연은

있다는 사실도...

그때 누군가 나에게 이렇게 말을 했다.

나에게 새로운 세계를 보여주었으며,

“왜 좋을까란 고민을 왜 해? 음악은

들려줬다.

봄날, 홍대,,,그 거리에서 꽉 막힌 가슴이

너가 듣기에 좋으면 그게 좋은 거야!!”

스몰오라는 밴드를 설명하던

시원하게 뚫리기도 했고, 어딘가에 기댈

‘아, 이 음악을 라이브로 들어서가

당근주스님.

줄도 모르고 울어도 되는지도 몰랐던

아니라, 이 음악이 준 임팩트가 있어서

“잘생긴 외모가 최고에요!!”

조금은 감정 표현에 서툴렀던 나란

그런 것이 아니라, 그냥 내가 좋아하는

“그들의 수염이 정말 멋져요!!”

사람은 음악의 힘일까? 점점 변해 가고

음악이구나...!!’

등등 달콤한 말들로 나를 유혹했다.

있었다.

굳이 어떤 이유를 찾고자 했던 내가

정말 그들은 잘생겼고, 수염을 기른

바보 같았다. 음악은 들어서 좋으면

멋스런 외모는 말 그대로 새로운

얼마 전 민트그레이의 단독공연이

그걸로 되는데...

세계였다.

있었다. 새삼 감회가 새로웠다. 무대에

하지만 나는 그들의 노래를 사랑하게

올라서는 그들의 가슴도 벅찬 느낌으로

지난 호까지도 음악의 음자도 몰랐던

되었다. 포스트 포크를 지향하는

가득 찼겠지만, ‘안녕’이라는 노래에

10년 가까이 내 인생의 유일한

밴드답게 광활한 사막 위, 또는 광활한

푹 빠져, 수 없이 노래를 들은 팬의

공연이였던 자우림!! 공연만 본

초원 위에서 음악을 듣는 듯한 느낌을

입장에서도 가슴이 괜시리 벅차올랐다.

사람이였던, 일반사람 축에도 끼지

받았기 때문이다. 황량한 벌판 또는

작년 이 맘 때, 처음 찾아간 공연장,

못했던 필자는 이번 호까지도 음악에

사막에서 들어도 좋을 것 같았고, 봄

그들의 노래는 10여명의 관객들과

대한 편견과 편식에 사로잡힌 아직도

햇살 아래 너른 초원에 누워 삼림욕을

함께였다. 몇 명뿐인 관객들에게

일반사람이 못된 상태라고 굳이

하면서 들을 수 있는 음악처럼 음악이

진심어린 감사의 눈인사를 건네던

자진해서 밝혀본다......

정말 잘생겼다는 생각에 이르기도......

그들이였기에...

음악들은 새로운 세계를 보여주고 느낄

그 뒤로...1년여...시간이 흐른 지금,

‘음악은 꼭 봄 같다.’

수 있게 할 수 있구나!! 사실을 다시

그들의 놀라운 음악적 발전도 눈에

음악은 듣기 전에 분명 어떤 설레임을

한 번 느꼈다. 그리고 위로를 받았다.

띄었고, 수없이 늘어난 관객의 수에도

주기 때문이다. 그러한 설레임들

노래에서 위로를 받는다는 느낌이 어떤

놀라지 않을 수 없었다.

때문인가 본격적으로 2013년 봄날,

것인지 알게 되었는데, 노래를 통해

무대 위에서 반짝 반짝 빛나는

홍대를 돌아다니기 시작했다.

듣는 위로는 한 편의 시보다, 편지보다,

가수들을 보는 그 느낌이란, 아마도

그리고 지금 당장 누군가 옆에서

가수가 팬들의 반짝거리는 눈빛을 볼

당근주스님의 영업을 통해 만나게 된

어깨를 빌려주지 않아도, 누군가 굳이

때와 비슷하지 않을까?

또 하나의 밴드, 스몰오.

내 어깨를 토닥이지 않아도 편안해 질

그렇게 봄날 홍대의 밤거리에는 종잡을

당근주스님은 홍대를 기웃거리고 있는,

수 있다는 점을 깨달았다.

수 없이 설레던 음악이 울려 퍼지고

홍대를 오고 싶어 하는 나의 의중을

스몰오 ‘순환선의 풍경’의 노래를

있었다. 데이브레이크와 안녕바다의

알았기에 적극적인 애정공세, 아니

들으면서, 나는 울어도 된다는 사실을

음악을 통해 넘치는 에너지를 받았던

영업을 하기 시작했다. CD뿐 아니라

알았고, 울고 싶으면 맘껏 울어도

나는 가슴 깊은 곳으로 스며들어오는

공연도 무료로 보여준다는 영업 멘트에

된다는 위안을 받았다. 그리고 어깨에

음악에 위로를 받고, 마음의 안식처를 찾아가고 있었다.


아무런 ‘것’ 이야기 모여있는 곳을 찾기 시작했다. 그렇게 학교 행사를 다 J : 필자 C : [가명].복학생 남

보내고 날이 저물 때 쯤 그는 부산스러운 무리를 벗어나서 학교 운동장 끄트머리로 향했다. 조금 피곤한 것 같아 아무렇게나 주저 앉아 있는데 거기서 그는 그녀를 만났다.

성큼 다가와버린 봄 내음에 밖으로 나와 카페에서 누군가 만나기로 약속을 잡았다. 전역 한지 얼마 되지 않아 아직은 어색한 행동이 우스운 갓 복학생인 그를 불러내었고, 바람이 불어와 기분좋은 노천 카페 창가쪽에 앉아 이야기를 나눴다. 마지막으로 그를 봤을 땐 아직 군인일때라 항상 간단한 인사만하고 헤어졌는데 오늘은 아무런 제약 없이 신나게 수다를 떨 수 있었다. J 잘 지냈어? 이야 이제 군인 같아 보이지 않은데? C 야 나 그래도 갔다온지 반년 다 되가거든? J 미안,미안~~ (근데 반년은 아직 안됐는데) 아, 복학생활은 어때 ~? C 어떻긴... 뭐 생각했던 것보단 괜찮은데 그냥 저냥 아직은 적응 중 ! 오늘 날씨 너무 좋은데 ?이제 겨울은 완전 지나갔네.. 마음이 싱숭생숭하다. J 헤 그래? 날씨도 좋은데 왜 싱숭생숭하실까~ 아 갑자기 생각나는 건데, 오빠 새내기때 좋아했던 여자 있었잖아... C 갑자기 그 얘긴 왜 ! J 나 좀 자세히 얘기해주면 안돼? 예전에 술 마실 때 얼핏 들었는데 갑자기 궁금해졌어! 사실...나 이런거 관해서 글 적거든.. 해주면 안돼? C 이런거..? 아 너가 저번에 뭐 짝사랑에 대해 인터뷰 한다고는 했었지 ? 이런 슬픈 이야길 이 봄 날씨에 해야되냐.. 뭐 해달라면 해주긴 하는데, 이거 익명이지 ..? 노을 빛 운동장 「 풋풋한 봄, 모든게 설레였지만 아직은 어색했던 학교생활을 보내고 있었던 그는 친구의 부추김과 함께 반 강제적으로 학교 행사에 참여하게 됐다. 겨울은 이미 지나가버렸고 따뜻해진 봄 날씨에 그는 그래도 나오길 잘 했다며 쭈뼛쭈뼛 학교 캠퍼스 안으로 들어가 사람들이

노을 빛으로 물든 운동장 속에서 그녀는 하늘하늘한 바람을 맞으며 자신처럼 아무렇게나 주저 앉아 있었고, 남중남고를 나와 그런지 여자에 대해 하나도 몰랐던 그는 그 날 그렇게 학교에 와서 처음으로 누군가에게 첫 눈에 반했다.」 J 정말 그렇게 반하기도 하구나.. 그래서 그 운동장이 그렇게 기억이 난다는 거야? C 응. 아직도 수업 막 듣고 노을지는 캠퍼스를 걸으면서 운동장 쪽으로 걸으면 마음이 시큰시큰하다고 ~ J 반했다며? 그리고 그게 끝은 아닐거 아냐 ? 그래서 뭐 어떻게 됐길래 시큼시큼한데 ? C 나 소심한거 알지? 근데 그런 내가 친구 선배들한테 도와달라고 하면서 알아낸 끝에 같은 학교선배인걸 알게됐어. 그러고 나서 같은 수업, 같은 동아리 까지 들어가며 친해질려고 밥 한끼 먹으려고 했는데...휴 유독 그 선배와는 친해질 기회가 없더라고~ J 뭐 어떻게 노력을 했길래. 좀 더 용기 내보지 ! C 그게.. 뭐 내가 용기 있게 다가갈 수도 있었지만, 뭔가 더 좋아하는 사람일수록 더 다가가기 힘든 게 사람 마음인거 같더라고~ 그래서 몇 번인가 어긋난 기회 끝에 나중에는 선배가 먼저 밥먹자고 말도 해주었지만, ‘혹시라도 밥먹게 되면 그 자리에서 무슨 얘기를 하지? 선배가 재미없어 하면 어떡하지? 그 당시 그때도 뭐 아무런 사이도 아니였지만, 거기서 더 어색해져 버리면 어떡하지?(더 어색해 질것도 없었지만)’ 라며 혼자서 고민 또 고민하고.. 지금 나한텐 상상도 안되지 ? 근데 그땐 그랬어. 그런 적은 나도 처음이라서 지금 생각하면 바보같을 정도로 한심하게


쓸데 없는 고민부터 하고 앉아있고..그래서 그 밥먹자는

고민고민하고 상처받고 단념하고 혼자 김칫국마시고

만남은 아직까지도 못 지켜졌고~

실연당하고 그랬던게 풋풋한 추억인 것 같아. 지금도 그래서 학교 운동장 가면 처음 반하게 됐을 그때 졌던

J 정말 의외다... 근데 그럼 운동장이 처음 반했던 장소라서

노을, 불어왔던 바람 이런거 때문에 더 아련한 장소처럼

그렇게 기억이 나는거야?

생각되고 그 기분이 꼭 나쁘지 만은 않더라고 ? 다른 사람은 그냥 지나가는, 뛰어 노는 그런 장소가 나한테

C 흠 그것도 있고.. 그 선배가 항상 수업이 끝나면 운동장을

누군가로 인해 특별한 장소로 다가온다는게 ~

가로질러 나갔었거든, 그래서 항상 나도 운동장 뒤쪽에서 기다렸다가 우연히 마주친척 인사하는 날엔, 그 날은

J 오.. 사연있어 보이는 남자같았어. 그렇구나.. 첫

항상 기분이 좋았던 날이었거든.. 짝사랑을 시작하고 앓고

짝사랑인건가 그럼?

끝났던 장소가 운동장이라서 그런가?

C 그렇지 ? 음 그리고 이젠 장담은 못해도

적어도

그때처럼 가만히 앉아서 고민은 안할거라고 ! J 그래서 결국 말도 안하고 끝났어?

J 그래 그렇다고 해줄게 ~ 아무튼 고마워 ! 익명이니까 걱정마~

C 끝나고 말고 할 것도 없었던 것 같아. 몇 달 뒤에 그

이야기가 끝난 뒤 그가 말했던 그 날처럼 노을이 져가고

선배는 남자친구가 생겼던 걸로 기억해. 난 몰랐는데 어느

있었고, 우리는 카페에 나와 헤어졌다. 누군가에겐

순간 운동장에 누군가랑 나란히 걸어가더라고.. 아~~

아무렇지 않게 거니는 곳이 누군가에겐 아무런 장소로

그땐 정말 절망에 빠졌었는데.. ‘내가 짝사랑 하던 선배가

다가온다는

남자친구가 생기다니.. ’ 이러면서 거의 한달내내 패닉에

아무렇지도 않게 걷는 이 길도 누군가는 아무런 길이지

빠져서 술만 마셨던 것같아. 막 괜히 하늘이 야속하고..

않을까 ? 그렇다면그런것도 나쁘지 않을 것 같다는 그에

사실 뭐 남자친구가 있던 말던 용기 한번 못 내봤을꺼면서

말에 공감이 됐다. 그가 생각하는 운동장처럼 누군가에겐

말이야.

그 장소가 터무니 없는 장소가 될 지라도 다른 의미로

근데 그래서 더 그냥 나 혼자 마음 속 깊은 곳에서만

다가오는 것처럼 나에게도 그런 곳이 있지 않을까

좋아했었던 것 같아. 남자친구가 생기니 난 뭐, 다른

생각하며 집으로 돌아갔다.

갑자기

특별하게

느껴졌다.

나는

말을 할 수가 없었고 .그냥 ‘아 남자친구가 생겼구나..’ 라는 생각밖에. 내가 생각하기엔(자학은 아니지만) 그 남자친구분이(겉으로는, 속까진 모르겠지만) 정��� 괜찮은 사람이었던 걸로 생각해. 그래서 혼자 생각했지. 저런 분이라면 나 같은 사람보단 훨씬 괜찮은 사람이겠구나. J 아쉽다..한번 말이나 해보지 .. C 그러게 말야. 근데 지금와선 잘한 것 같아. 그냥 그때로 다시 돌아가더라도 분명 말도 못했을거같고, 지금도 그 남자친구분이랑 잘 지내는거 보면 좋은 분이랑 잘 만나는거 그냥 그걸로 만족하는 거 같아. 물론 그 선배도 선배였지만 그때 처음으로 누군가한테 반해서

글. Jooeny


건축이 좋아. #7 시게루 반, 그리고 DDP

aoikasa 2014년 3월 한 달 동안 건축계의 가장 큰 이슈들은 아마 이 두 개였을 것이다. (적어도 내게는 이 두 개 였다.) 그 첫 번째는 DDP, 즉 동대문 디자인 플라자가 드디어 개관했다는 것, 그리고 건축계의 노벨상 이라 할 수 있는 프리츠커상 수상자로 일본인 건축가 시게루 반이 선택되었다는 것. 사실상 동대문디자인플라자는 건축할 때부터 자주 가서 보아 꽤나 익숙한 건물이지만, 시게루반의 건축 은 실제로 본 적이 거의 없다. 그의 건축은 보았다기 보다는 읽고 들었던 게 더 많은 것 같다. 그리하여 이번 호의 원고는 내 발로 걷고 내 눈으로 직접 본 건축이야기만 하겠다던 원래의 의도에는 반하는 것이 아닐지 모르겠다. 그러나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두 가지 생각이 머리 속을 떠나지 않기에, 원래 쓰려던 원고를 뒤로 하고 다시 이 글을 쓴다. (시게루 반과 DDP라 제목이 붙긴 하였지만, 이 글은 시게루 반에 대한 이야기가 대부분이다.)

2014 프리츠커상은 시게루 반에게… 2014년 3월 25일, 2014년 프리츠커상의 수상자가 발표되었다. 수상자는 바로 시게루 반. 시게루 반의 수상 소식을 들은 나의 반응은 대략 3가지였다. 1.받을만한 사람이 받았구나. 2.작년에 이어 또 일본인 이라니! (프리츠커상은 무려 최근 6년간 3번이나 일본인 건축가가 수상하였다.) 3.프리츠커상이 지향하 는 바가 (적어도 2010년 이후에는) 분명해지는 듯 하다.

1.받을 만한 사람이 받았다. 시게루 반에 대해 알게 된 것은 대학시절, 그가 종이로 만든 집 에 대한 기사를 보고서부터였다. 새로운 재료에 대한 끝없는 탐 색과 ‘사회적 약자’들을 위한 건축에 대한 그의 열정은 한참 ‘인 간을 위한 건축’을 꿈꾸던 내 마음을 사로잡았던 것 같다. 시게 루 반이 사용하는 새로운 재료는 바로 종이였다. 종이가 과연 집 의 역할을 할 수 있을까 하는 의구심도 들지만, 그는 종이를 ‘진 화된 나무’라 일컬으며 폐휴지를 재활용하여 종이 튜브를 만들어 ‘종이건축’을 실제로 구현한다. 이는 폐휴지를 재활용함으로 지 구의 환경에도 이로운 것이기도 하고, 저비용으로 재난을 당한 이들이나 가난한 이들을 위해 ‘빠른 시간 내에’ 집을 제공하기 위 하여서이기도 하다. 종이로 만들어진 시게루 반의 대표적인 건축

시게루 반이 사용하는 페이퍼 튜브, Shigeru Ban. Paper tubes, detail. Courtesy of Shigeru Ban Architects © Takashi Sekiguchi


물들은 한신 대지진 이후 고베에 만든 종이교회(1995), 인도 지진 이후 만든 Paper Log House(2001), 아이티 지진 이후 만든 Paper Emergency Shelter(2010) 등이 있다. 그리고 서울의 올림픽 공원 안에 있는 소마미술관에 잠시 설치되었었던 페이퍼테이너 갤러리(2006) 역시 바로 시게루 반의 대표재료인 ‘종이’로 만들어진 건물이다. 2011년 동일본 지진 당시에는 보호소에 종이 파티션을 설치하기도 하였다. 종이 이외에도 사용하지 않는 컨테이너 박스를 활용하여 건축물을 만들기도 하고, (노마딕미술관, 2005-2007) 목재를 사용한 건축도 다수 선보였다. (퐁피두미술관, 골프클럽) 이처럼 화려하지는 않지만 사회적으로 ‘의미있는’ 건축을 30년 가까운 시간동안 지속적으로 실행해온 그의 프리츠커상 수상은 어쩌 면 당연할지도 모르겠다.

(왼쪽)Paper Church, Kobe, Japan, 1995 Photo by Hiroyuki Hirai (오른쪽)Paper Log House, Bhuj, India, 2001 Photo by Kartikeya Shodhan http:// http://www.pritzkerprize.com/2014/works: 시게루 반은 1995년 고베 대지진 당시 임시 주거로 Paper House와 임시 교회로 Paper Church를 건축하였는데 Paper Church의 경우 무려 10년이나 사용되다가 그 이후 타이완에서 지진이 나자 이 건물을 기부하여 해체한 후 옮겨서 지금은 상설교회로 사용되고 있다.)

저는 건축가로서의 제 직업에 대해 크게 실망했습니다. 왜냐하 면 우리들은 사회를 위해서 돕는 일을 하는 것이 아니라 특권 을 가진 사람들, 즉 부자들과 정부, 개발업자들을 위해 일하기 때문입니다. 그들은 돈과 힘이 있습니다. 하지만 그 것들은 눈 에 보이지 않아요. 그래서 그들은 우리들을 고용하여 기념적인 건물을 지음으로써 그들의 힘과 돈을 보이는 거죠. 그 것이 우 리의 직업인데, 심지어 과거에도 그랬고 지금도 똑 같은 일을 하고 있습니다. 자연 재해로 많은 사람들이 집을 잃었음 에도 불구하고 우리 건축가들이 사회를 위해 일하지 않는 것에 대해서 매우 실망했죠. 하지만 꼭 말씀드려야 하는 것 은 더 이상 자연 재해는 없습니다. 예를 들어 지진으로는 절대 사람들이 죽지 않고 건물 붕괴로 사람들이 죽죠. 그건 건축가들의 책임입니다. 그러면 사람들은 임시 주거 공간이 필요하지만 이를 위해 일하는 건축가들은 없죠. 왜냐하면 우리들은 특권층을 위해 일하느라 아주 바쁘기 때문이에요. 그래서 건축가로써 생각해봤습니다. 우리는 임시 주거 공간의 재건축에 참여할 수 있겠구나. 우리가 좀 더 나은 환경을 만들 수 있을 거야. 그러한 이유로 저는 재난 현장에 서 일하기 시작했습니다.

- 시게루 반, TED 강연 ‘종이로 만든 비상 대피소) 중에서 http://www.ted.com/talks/shigeru_ban_emergency_shelters_made_from_paper)


2. 또 일본인 건축가가?? 앞서 이야기한대로 최근 5년간 일본인 건축가는 3번이나 프리츠커상을 수상하였다. 2010년의 SANAA(Kazuyo Sejima + Ryue Nishizawa), 그리고 작년의 Toyo Ito에 이어 올해 Shigeru Ban이라 니!! 2012년 에는 중국인 건축가인 Wang Xu가 받았으니 지난 5년간은 아시아 건축가가 4번이나 이 상을 수상한 것이다. 바야흐로 아시아의 시대인 것인가. 1979년 이 상이 시작된 이후 일본인으로써는 6 번째, 아시안으로써는 8번째이다. 즉, 그동안 이 상을 수상한 아시아인은 8명, 일본인 6명, 중국인 2명 이다. 안타깝게도 그리고 아쉽게도 아직 한국인 건축가가 이 상을 수상한 적은 없었다. 1987년의 단게 겐조, 1993년 후미히코 마키, 1995년 안도 다다오에 이어 프리츠커상을 수상한 2010년 대의 일본인 건축가들은 모두 일본 자국에서 뿐 아니라 세계를 기반으로 활동하는 건축가들이다. 그 중 시게루 반은 ‘사회적 약자’를 위한 건축이 그의 주요 건축 주제였으며 그가 주로 건축활동을 한 지역이 유럽이나 미국이 아닌 르완다, 인도, 아이티 등 재난 지역이었다는 점에서 다른 일본인 건축가들과도 비 교가 된다. 그런데 작년 수상자, 토요 이토를 비롯한 일본인 건축가들은 2011년 동일본대지진 이후 재 난에 대응하는 건축을 적극적으로 이야기 하기 시작했다. 재난을 통해 모든 것이 무너진 상황에서, 어쩌 면 그들은 건축의 본질을 보게 된 것일지도 모른다. 도요 이토가 커미셔너로, 쿠미코 이누이, 아키히사 히라타, 수 후지모토가 건축가로 참여한 민나노 이에(Home- For- All) 프로젝트는 바로 건축의 사회적 의미, 그리고 건축가의 사회적 책임에 대한 나름의 질문이었고, 대답이었을 것이다. 동일본대지진 이후의 도요 이토와 일본인 건축가의 변화, 그리고 시게루 반의 프리츠커상 수상은 하나의 연결고리로 이어지는 듯 하다. 그 것은 바로… 오늘날의 건축이 지향해야 하는 것이 무엇이냐에 관련된 것이 아닐까?

민나노 이에 프로젝트와 참여 건축가들 (left to right: architects kumiko inui, akihisa hirata, commissioner toyo ito, architect sou fujimoto /image © designboom)

3. 오늘날의 건축이 지향하는 바… 2013년 토요 이토, 2014년 시게루 반의 프리츠커상 수상은 어쩌면 오늘의 건축이 지향하는 바 (아니 최 소한 프리츠커상이 지향하는 바)는 무엇인지 알려주는 듯 하다. 앞에서 언급했듯이 바로 그 것은 ‘건축 의 본질은 무엇이며’ ‘건축의 사회적 의미’는 무엇이냐’라는 것이다. 콘크리트와 유리로 뒤덮힌 모더니즘 의 20세기를 지나 21세기 건축은 ‘환경’을 고민하고 ‘소외된 자들’을 고민할 수 밖에 없는 상황에 이르게


된 것이다. 눈을 사로잡는 화려함이 없다 하더라도 그보다 더 중요한 건축의 본질, 인간에게 피난처, ‘쉘 터’ 를 제공해주는 것이 앞으로 우리의 건축이 지향하는 바가 아닐까 싶다.

그런데 건축의 역사를 살펴보면 이와 같은 경향이 새삼스러운 것은 아닌 듯 하다. 바로크 왕정이 절정에 다다랐을 때, 건축 역시 그 기술적 발전과 풍부한 부를 바탕으로 더 이상 화려할 수 없을 만큼 화려해지고 장대해졌다. 이러한 상황에서 프랑스의 신부였던 로지에는 건축의 본질은 '원 시 오두막'에 있음을 주장하였다. 그의 주장은 19세기 후반, 그리고 20세기 초반의 모더니즘 건축가들 에게 영향을 주어 불필요한 것을 제거하고 간결한 건축을 지향하게 하였다. 그러나 20세기 건축 역시 축 적된 자본과 발전된 기술을 바탕으로 다소 과해졌다는 느낌이 들 정도로 화려하고 장대해졌다. 이전에 없던 새로운 형태의 건축들이 새로운 재료들로 지어지고, 아시아 곳곳에선 더 높고 더 큰 건축들이 경쟁 적으로 지어졌다. 그러나 이러한 상황에서 계속하여 발생한 재난들은 과연 무엇이 인간을 위한 건축인 가를 고민하게 하였고, 그 결과 오늘 우리는 '건축의 본질' '건축의 사회적 의미'를 물을 수 밖에 없는 상 황에 놓이게 된 것이다.

DDP… 시게루 반의 수상 소식을 들으며, 지난 주 건축계의 가장 큰 이슈였던 동대문 디자인 플라자(DDP)가 떠 올랐다. DDP 는 기획단계부터 완공까지 거의 10년이 걸린 프로젝트로서 해외 유명건축가인 자하 하디 드가 현상설계에서 선정되어 서울 도심 한복판(그 것도 서울의 성곽 유적이 있으며, 조선시대부터 일제시 대를 거치며 다양한 시간의 켜가 쌓여있는 곳)에 그녀 스타일의 건축물을 신축한 프로젝트였다. DDP 프 로젝트는 서울시청, 새빛둥둥섬과 더불어 서울시의 대표 신축 공공건축물들로서 많은 논란을 낳은 건물 이었는데, 완공이 된 지금 이 시점에서는 그 화려함과 거대함, 그리고 신기함(?)에 꽤나 세간의 이목을 끌고 있는 듯 하다. 그런데 DDP의 개관은 시게루 반의 프리츠커상 수상 소식과 더불어 여러 가지 복잡 한 생각이 들게 만들었다. 먼저 세계 건축계의 흐름이 변하고 있다는 거. 화려하고 멋진 건축도 물론 필 요하지만, 그 이상의 의미에 대한 질문. 사회적 책임에 대한 질문이 드는 것이다. 이런 측면에서 DDP 의 개관이 반갑지 않다거나 부정적인 의미로 받아들여진다는 것이라기 보다, 왠지 모를 아쉬움이 남는 것이 다. 언제쯤 우리에게 사회적 약자를 위한, 지구 환경을 위한 사회적 책임을 다하는 건축이 이슈가 될까 하는 궁금증이 드는 것이다.

아무튼, 시게루 반의 건축 작업들이 그 형태가 아닌 그 철학이 읽혀졌으면 좋겠다. 그 철학과 건축가의 마음이 전해져서 우리 역시도 좀 더 건축의 ‘사회적 측면’에 대해 고민했으면 좋겠다. 그리고 그렇게 ‘사 회적’인 건축이 더 ‘아름다움’을 보여줬으면 좋겠다.


Chapter 10 {표현}의 생존매뉴얼

1) 불교에서는 자신의 의견, 생각, 견해에 집착하는 마음의 에너지를 ‘견(見)’이라 하고, 14가지의 ‘불선심(不善心)’ 중 하나로 본다. 견은 단독으로 나서지 않는 약한 에너지로, 꼭 탐욕이라는 강력한 에너지 뒤에 비서처럼 따라 나온다. 즉, 견이 있는 곳에는 반드시 ‘욕(欲)’도 있다.

별 볼 일 없는 스펙으로

견에 매달리면 매달릴수록, 자신의 잠재의식 속에 있는 탐욕이

잘 다니던 4년제 대학을 때려치우고 서울로 상경해

2) 일본의 승려인 코이케 류노스케가 침묵에 관해 쓴 글을 보다

발 빠르게 2년제 디자인과를 졸업했다.

몇 해 전 시청한 서체에 관한 다큐멘터리가 문 듯 생각났다.

막상 졸업하고 나니 받아주는데도 불러주는 곳도 없다.

그 다큐멘터리의 주인공은 지구상에서 가장 범용적으로 사용되고 있는

그때부터 이 악물고 익힌 갖가지 처세술과 생존법을 이용해

서체인 헬베티카[HELVETICA] 였다. 영화 속 헬베티카는 마치

가까스로 작은 회사에 취직했다. 그러다 말도 안 되는 이유로

공기처럼 의식되지 않으며 자기를 드러내는 법이 없다.

팀장으로 승진해 어린나이에 만성 위염에 시달리기도 했다.

이러한 점에서 코이케 류노스케가 쓴 글과 교차점이 생긴다.

자극을 받아 증폭된다. 그 결과, 자아는 천박해진다.

앞으로 수주에 걸쳐 별 볼 일 없는 스펙으로 몸 건강히 살아남는 방법을 쓸 예정이다.

3) 타고난 중립성에 관한 일상적 메모:

거의 모든 텍스트가 주관적 경험에 따른 것이기에 관점에

정체성의 표출이 장려되는 시대에 가끔 자아의 농도가

따라 비판적 지점들이 형성될 여지가 크다.

유달리 옅은 사람들을 만날 기회가 있다. 농도가 옅은 사람들의 특징은 말이 느리고 화려한 수사를 사용하지 않으며 말과 말 사이의 여백이 길다는 점이다. 우연히도 내가 새로운 모임에 몸을 담을때에는 농도가 옅어 보이는 사람이 그룹내에 꼭 한 명씩은 존재했었다. 그렇게 마주친 무색무취한 사람들의 또 다른 특징 한가지는 사과를 잘 하지 않는다는 점이다. 우리는 일상에서 불필요한 사과를 입에 달고 사는 경향이 있다. 그런 점에서 농도가 옅은 사람의 ‘사과하지 않음’의 전략은 인색하다기보다 애초에 사과할 일을 만들지 않는 완벽주의에 더 가깝다. 우리는 대화를 나눌 때 모든 사람이 자신의 의견을 적극적으로 표현하지는 않으며 몇몇 주도적인 사람들에 의해 이야기의 흐름이 전개되는 것을 종종 경험한다. 이러한 흐름 속에서 농도가 옅은 사람은 대화의 여백을 제공하며 모든 의견이 그에게로 수렴되는 일종의 창구 기능을 하기도 한다.

4) 청자의 희소성에 관한 일상적 메모: 사람들은 말이 많고 나 역시 말이 많다. 그럼에도 도시생활이 쓸쓸하다고 느껴지는 것은 쓸쓸하다는 정서가 단순히 물리적 조용함만을 지시하는것은 아니기 때문일 것이다. 도시에 살며 느끼게 되는 뭐라고 딱히 규정할 수 없는 이러한 고독의 정���는 청자에 비해 화자가 압도적인 수적 우위를 점하고 있는 도시생활의 구조적 특성에서 기인하는 것인지도 모르겠다.


7) 그에 반해 서체 헬베티카는 철저히 중립적이며 비공감적인 태도를 지닌다. 지구에서 가장 사랑받는 서체인 헬베티카는 그 타고난 중립성 때문에 5) 몇 해 전 밥을 먹으러 혼자 식당에 갔다.

찬사를 받지만, 또한 그 때문에 많은 비난을 받기도 한다.

나는 혼자 앉기 적당한 자리에 앉아 종업원에게 최대한

중립적이라는 것은 자신의 의견에 대해 침묵한다는 말로

빨리 되는 메뉴를 부탁했다. 내가 메뉴를 주문하고

번역될 수 있으며 어떠한 주제에 대해서도 감정의 과잉이 없다.

얼마 안 돼 갑자기 문이 신경질적으로 열리더니

헬베티카의 비표현적 특질에 대해 알레르기를 느끼는 디자이너들은

동네 주민으로 보이는 아주머니 세 분이 들어왔다.

서체란 본디 의미를 전달하는 과정에 있어 감정을 증폭시키는

아주머니 세 분은 자리에 착석하기 전부터 시끄럽게

매개체 역할을 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이야기를 주고받았다.

즉, Happy나 Sad를 쓸 때 단어의 의미에 가장 부합될만한 꼴을

메뉴를 시키는 도중에도 그들은 끊임없이 이야기를 나눴다.

가진 서체를 선택해야 한다는 것이다.

그들의 대화 속에는 말과 말 사이의 여백이라는 것이

그런 의미에서 헬베티카는 외형에서 감정적 동요를 일으키지 못하니

전혀 존재하지 않는 듯 보였다.

그들이 보기에는 죽은 서체임에 다름없다.

굳이 들으려 하지 않아도 들리는 이야기 내용은 그들의 사정에 대해 전혀 알 턱없는 내가 들어도 쓸모없는

8) 그레이존[gray zone]:

쓰레기처럼 들렸다.

어느 영역에 속하는지 불분명한 중간지대를 뜻하는 용어로,

밥을 입에 넣으면서도, 씹으면서도, 물을 넘기는 그 순간에도

특히 정치 용어로는 어느 초강대국의 세력권에 속해 있는지

그들은 좀처럼 말을 멈추지 않았다.

잘 알 수 없는 지역을 의미한다.

나는 그들의 모습에서 일종의 말에 대한 굶주림 같은 것을

예컨대 중동이 이러한 지역이다. 그레이 존은 초강대국의 관리가

느꼈다. 그 엄청난 공격 에너지들은 도대체 그들의 내부

곤란한 지역으로 주변분쟁으로 인한 전쟁발발 가능성이 있는 곳이다.

어디에서 끊임없이 생성되었던 것일까.

이 용어는 전략무기인지 전술무기인지에 대한 판단이 어려운 회색무기에 비유해서 생겼다.

6) 그들은 끊임없이 자신의 불행을 자랑해댔다.

9) 농도가 옅은 사람과 대화를 나누다 보면 문 듯 ‘내가 쓸데없는

“우리 남편이 외제차를 샀더니 기름값이 너무 많이 들어서

말을 평소에 너무 많이 하고 있구나’하고 느낄 때가 있다.

큰일이야”, “집을 이사했는데 청소할 곳이 너무 많아서

그러한 생각이 떠오르는 순간은 내가 어떤 이야기를 하고 있을 때

힘이 들어”

상대방이 아주 미묘하게 화제를 전환하는 순간이다.

이런 식으로 자신의 자랑을 비틀어 고민 대하듯 이야기해

이러한 전환의 순간은 아주 미묘하게 진행되며 그 상황에

본 적은 사실 누구나 있을 것이다.

처한 사람이 인식할 수 없을정도로 부드럽게 지나가 버린다.

앞서 말한 일본의 승려 코이케 류노스케는 이러한 상황에

집에 돌아와서 샤워를 하거나 시간의 공백이 생겼을 때

대해 “행복한 불행”이라 지칭한다.

어제의 대화를 떠올려보면 문 듯, 그 당시 내가 한 말들의

그는 이런 사람들이 자신의 ‘우치’(어리석음)를 이야기해서

수다스러움에 치가 떨리게 된다.

동정을 사고, 그것을 떠벌리는 것 자체에서 쾌락을 느끼는

내가 떠들어댔던 수다스러운 말들을 떠올려보면

이중 목적을 달성하고 있다고 말한다.

지나가는 사람의 옷차림에 대한 비하나, 그 당시 마시고 있던

그럼에도 불구하고 매일 불평과 우치를 입에 담고 사는 것이,

커피의 맛에 대한 불평 같은 것들이 대부분이었다.

우리 삶의 본연적 모습일 것이다. 그렇기에 우리가 이러한 미적이지 못한 상태에서 벗어나기 위해서는 혹시 자신도 모르게 불행을 팔고 있지는 않은가에 대해 늘 경계하고 자신을 타자화하는 전략이 필요할 것이다.


10) 코이케 류노스케는 ‘비판’에 관해 다음과 같이 서술한다.

12) 레디메이드화된 자아상에 관한 일상적 메모:

다른 사람을 비판하고 있는 동안은 자신의 모자람을 잊을 수

세상에서 멸종해버린 줄로만 알았던 커스텀 테일러 샵을 우연히

있기 때문에, ‘이런 비판을 할 수 있는 나는 정말 멋져’라는

거리에서 마주쳤을 때 이상하게도 당혹감 같은 것이 일었다.

생각을 하게 된다. ‘추녀’라느니 ‘못생겼다’느니 하면서 다른

쇼윈도우에 비친 가게 안의 세계에서는 머리가 반쯤 벗겨진

사람을 비난하는 것도, 그런 말을 함으로써 자신은 못생기지

중년의 재단사가 배불뚝이 손님의 신체를 꼼꼼히 재고 있는

않았다는 인상을 주고 싶기 때문이다.

모습이 보였다. 그것은 느리고, 따분하고, 지독히도 지루한 작업이었다.

그러고 보면, 비판의 뿌리에는 언제나 ‘난 멋져’라는 자만심이 도사리고 있다.

몇 분정도 그 앞을 서성이다 나는 이내 지루함을 느꼈고

비판하면 이런 자만심을 만족시키기 때문에 자연스레 기분이

발걸음을 약속장소로 향했다. 약속장소에서 만난 사람은

좋아진다. 즉, 비판이란 자신이 멋지다는 것을 자랑하려는

말쑥한 수트를 입고 있었는데 평소 같았으면 느끼지 못했을

마음을 그럴듯하게 아닌 척 위장하고 있는 것이다.

미묘한 어색함을 그에게서 느끼게 되었다.

또한, 비판은 그 이름을 빌려, ‘나 자신’이 가진 아우라를

아마도 내가 느낀 어색함은 커스텀 테일러 샵의 지독히 느린 속도와

드러내려는 시도이기도 하다.

선명히 대비되는 기계적으로 쭉 뻗은 그의 어깨선 때문이었을 것이다.

여기서도 또다시 자기 농도가 진해지는 것을 피할 수 없다.

내 앞에 앉은 사람은 같이 있는 시간 내내 코드화되어 대량으로 유통되는 슈트 차림 덕분인지 어깨에 힘이 잔뜩 들어갔고 꽤 위엄있어

11) 내가 디자인 대학에 들어가서 가장 먼저 치렀던 시험은

보이는 말투를 유지했다.

자신의 정체성을 규정하고 그것을 그래픽적으로 표현하는

나는 무의미한 이야기를 나누던 중 테일러 샵에서 오직 한 손님만을

것이었다. 어떤 학생은 자신의 이름을 상징화해 표현했고

위해 제작되고 있었던 양복의 외형을 머릿속에서 완성해나갔다.

또 다른 어떤 학생은 자신의 취미를 소재로 삼았다.

내 공상 속에서 완성된 양복은 비록 SPA 브랜드에서 생산되는

나는 예나 지금이나 정체성의 표현이라는 과제 앞에

슈트보다 제작되는 속도도 느렸고 어깨선의 날렵함도 덜했지만,

설 때 한없는 무력감을 느낀다.

특유의 부드러움이 있었다.

내가 보는 것, 내가 입는 것, 내가 먹는 것.

그 부드러움은 재질적 특수성이라고 치부해버리기에는

어느 것 하나 보편성에서 이탈된 것이 없는 생활이기에

고유한 면이 있었고 어딘지 모르게 미완성처럼 보였다.

나 자신의 고유성을 발견하기란 너무나 힘든일 인것이다. 13) 미완성에 대한 일상적 메모: 헬베티카에 대해 반대하는 디자이너들은 그 서체로 제작된 디자인이 미완성적 느낌을 풍긴다고 말한다. 사실, 그들이 말하는 완성 되었다는 느낌의 저변에는 수동적인 독자가 잠재해있다. 이러한 수동적 독자를 과녁 삼아 디자인되는 매체 중에서 쉽게 견지해볼 수 있는 것이 한국의 영화 포스터 시장이다. 한국에서 제작된 영화 포스터에 쓰인 서체의 제목들은 대부분 영화의 느낌에 맞게 제작된 캘리그라피인 경우가 많다. 일종의 병리적 현상으로 보일 만큼 숫적우세를 점하고 있는 최근의 포스터 경향을 볼 때마다 나는 덤덤하면서도 간결한 명조체로 디자인되었던 예전의 영화 포스터가 그리워지기도 한다.


내가 느낀 과거의 그리움은 단순히 양식적 차원의 환영만을

16) 허전함을 못 참는 디자인 문화에 대한 일상적 메모:

바라는 것은 아니다.

대학을 다니다 휴학을 하고 용돈벌이 겸 취직한 부산의 한

과거에는 적어도 무덤덤하게 쓰인 제목과 상징적으로 선택된

인쇄소에서 내가 한 디자인들이 가끔 생각난다.

이미지를 서로 번갈아 바라봄으로써 감독이 전달하고 싶은

그곳의 주 업무는 초등학교 졸업앨범을 디자인하는 일이었는데

영화 전반의 의미적 층위들을 탐색해볼 수 있는 유의미한

매일 아침 8시부터 밤 10시까지 진행되는 강행군이었다.

시간이 주어졌던 것 같다. 하지만 현재 영화관 외벽에 걸린 영화 포스터에서는 과도하게 표현된 캘리그라피에 의해 관객에게 주어졌던 의미화의 의무가 폭력적으로 박탈되어 버렸다.

14) 2010년도에 개봉한 ‘아저씨’라는 영화의 포스터 제목은 얇은 붓을 사용해 신경질적으로 날려쓴 느낌으로 디자인되었다. 영화가 담고 있는 복수와 폭력성이 다분히 응축된 디자인에서 독자가 설 영역은 다분히 좁아 보인다. 달리 말하면 독자가 떠올릴 수 있을법한 여러 아저씨의

그 인쇄소의 디자인 철학은 간단하지만 명료했다. “빨리, 그렇지만 허전하지 않게” 이러한 강령하에서 크리에이티브니 커뮤니케이션이니하는 추상적 어휘들은 하루빨리 폐기해 버리는 편이 나에겐 시급했다. 원고가 오면 기계적으로 미리 짜진 4~5개 정도의 디자인 포맷에서 어울릴법한 것을 선택해 디자인한다. 그러한 과정에서 내가 지독히도 부끄러움을 느꼈던 부분이 있었는데, 그것은 앨범 마지막 페이지에 삽입되는 단체 사진의 공백 영역을 처리하는 방법 때문이었다. 인쇄소에 디자이너로 취직하면 폴더 하나가 메신저로 전송되는데 그 폴더를 열어보면 다시금 여러 개의 하위 폴더가 존재한다.

이미지 중에서 폭력적인 이미지로의 소실점 전환이 너무나

하위 폴더들의 이름은 ‘동식물’, ‘자연’, ‘환상’같은 것들이었다.

쉽게 이루어진다는 것이다.

폴더를 열어보면 아니나 다를까, 동식물에 관련된 조야한

이러한 의미의 직접이 수동적 독자들에게는 긍정적인 반응을

오브젝트들이 외형이 엉성하게 따진 채로 몇백 개가 들어있었다.

이끌어낼지도 모르겠으나 쉽고 직접적인 의미화 작용에서

단체 사진 영역의 공백 부분에 내용과는 전혀 연관관계가 없는

상대적 박탈감을 느끼며 무리에서 이탈되는 사람들도

버섯과 토끼 같은 오브젝트들을 올릴 때(그것은 정녕 디자인이 아니라

분명 존재할 것이다.

그냥 올리는 것이었다.) 처음에는 부끄러움에 주위를 살폈지만

물론, 주제에 따라서 직접적으로 표현되어야 할 때가 있다.

얼마 안 가 곧 습관화되었고 나중에는 그런 일련의 과정들이

사실 대부분은 그럴 경우가 더 많다.

썩 편리하게 느껴졌던 기억이 난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표현되지 말아야 할 주제에

서구 디자이너들이 바라보는 안마방 찌라시의 탈맥락성에 대하여

대해서 관습이나 외부의 압박 때문에 과한 장식을 가하는 것은

내가 어떠한 변명도 댈 수 없었던 이유는 한국의 시각문화가 가진

디자이너의 윤리에 어긋나는 일이라고 생각한다.

허전함에 대한 강박에서 기인한 것이 아닐까하는 생각이 든다.

더불어 그런 미시적인 표현의 영역에서 싸워나가는 것이 맹목적인 크리에이티브의 추구보다 더 시급한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도 가져본다.

15) 안마방 찌라시에 관한 일상적 메모: 외국 디자이너들이 우리나라의 시각문화에서 유달리 관심을 보이는 것 중 하나가 재미있게도 안마방 찌라시이다. 빨간색, 노란색의 도색적 바탕에 전혀 어울리지 않는 얌전한 서체로 쓰인 안마방 이름. 그 위에 어설프게 합성된 일본 포르노 배우들의 난잡한 탈맥락성에서 서구디자이너들은 동양의 디자이너들이 전유한 포스트모던 문법을 어렴풋이나마 독해할 수 있다고 말한다. 물론 나를 비롯한 많은 한국 디자이너들이 그러한 서구디자이너들의 시각이 폭력적이라는 느낌을 받겠지만 어딘지 모르게 찝찝한 구석이 있다.


17) 정체성에 관한 일상적 메모:

19) 자신의 정체성 즉, 자신의 표현을 약화함으로써 농담은 옅어지고

‘자신을 개성을 살리자’, ‘자신을 소중히 여기자’와 같은

타인이 개입할 수 있는 여지가 커지게 된다.

선동적인 슬로건들이 거리에 넘쳐난다.

이러한 자연스러운 역학관계에 장막을 드리우고 있었던 것은

코이케 류노스케는 이러한 선전이 우리에게 전혀 이로운

아이러니하게도 개성이니 정체성이니 하는 긍정적 표현들이다.

말이 아니라고 전한다.

하지만 곰곰이 생각해보면 이러한 긍정성들은 자본과 긴밀한 유착관계를 형성하고 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대부분 현대인들은 스스로의 삶이 비참하다고 여기며 살아간다. 하지만 그런 현실은 인정하지 않고 자신을

20) 광고미학에서 소비자 정체성의 발현은 이내 상품 컬러의

속이기 위해 ‘둘도 없이 소중한 나’를 강조하며, 자신이

다양화나 형태적 다양성으로 수렴된다.

중요하고 멋진 존재라고 믿으려 한다.

당신은 라이프 스타일을 더 돋보이게 하기 위해 화려한 컬러의

이런 노력 때문일까?

핸드폰이나 가방을 들 의무가 있다는 문법이 이에 해당된다.

사람들은 자신이 특별한 존재라고 믿는다.

이러한 광고미학의 쿨함 저편에는 개별적 의미화 과정에 실패한

우리는 어떤 이야기를 할 때, 자기 얘기를 너무 중요하게

프롤(조지오웰식의)들을 비웃는 서늘한 냉소주의가 도사리고 있다.

여겨 상대가 귀 기울여 들어주기를 바란다. 하지만 막상

이러한 냉소주의에는 항상 과도한 표현성이 수반되는데 가장

듣는 쪽은 다른 사람이 내뱉는 중요하지도 않은 얘기에 별로

쉬운 예로 버라이어티 프로그램을 들 수 있다.

관심이 없다. 이런 식의 커뮤니케이션이 이어지면, 진정한

버라이어티 프로그램의 구성을 유심히 지켜보면 우리를 대신해서

교제가 이루어지기 힘들다.

웃어주는 방청객의 웃음소리나 보는 이의 생각을 앞지르는

그저 서로에게 ‘나 자신’을 밀어붙이는 상황이 되고 만다.

자막의 독단성에서 무언의 폭력성이 느껴진다.

서로가 ‘나 자신’에 연연해 하며 ‘자기 농도’를 진하게

그러한 구조는 자신들이 지정한 곳에서 관객이 반드시 반응을

만들었기 때문에, 각자 내뱉는 지루한 얘기처럼 인간관계도

보여야만 하는 감정의 인터페이스화를 지향하고 있다.

별 볼 일 없어진다.

이러한 폭력적 구조에서 도피하기 위한 회색지대가 우리에게 절실히 필요하다는 생각이 든다.

18) 코이케 류노스케는 또한, 관계의 거리감을 중요하게 생각한다. 그도 그럴 것이 사람의 마음이란 이상해서, 가까운

21) 회색지대안의 사람들을 위하여 적는 비일상적 메모:

사람일수록 기대와 요구가 커지는 법이다.

회색지대 안으로 미리 대피해있는 사람들은 그다지 친절해

“어째서 이것을 해주지 않는 거지?”

보이지도 않고 말도 많이 없지만 완성되지 않은 매력이 있다.

“이 정도는 당연히 해줘야 하는 거 아니야?”

어쩌면 그곳의 사람들은 자발적으로 서로의 완성도를 경계하며

누구든 가깝고 소중한 사람에게는 부드럽고 친절하게

표현의 무가치성을 온몸으로 실천함으로써 고유한 개별성을 획득하고자

대해주고 싶다. 하지만 꽤 주의를 기울이지 않으면,

무던히도 발악하는 나약한 사람들일지도 모르겠다.

곧 ‘욕망(자기 농도)’이 높아져 ‘~해줘, ~해줘’ 하면서

그러니 우리같이 농도가 짙은 사람들은 일상에서 회색지대의 사람들과

욕심꾸러기처럼 굴게 된다.

우연히 마주했을 때 그 특유의 건조함에 당황하기 마련이다.

그러나 이런 요구나 기대가 채워지지 않으면 불만이 생겨나고,

하지만 자신이 느낀 생소한 감정을 규정하기 위해 그들을 애써

상대에 대한 분노와 불쾌감이 부정적인 분위기를 자아내, 결국

설득하려 한다거나 성급히 유색지대로 끌어당기려는 행위는

서로의 관계가 헝클어져 버린다.

가급적이면 자제하는 편이 좋겠다는 생각이 든다. (끝)

반대로, 불쌍해하면서 보답을 바라지 않고 동정을 기울여줄 수 있는 상대는 어딘지 멀리 있는 사람이다. 일례로, TV 화면 너머에 있는 피해자나 난민들을 들 수 있다. 이런 동정은 어쩌면 가까운 사람들에게는 부드럽게 대해 주지 못하는 것에 대한 죄책감의 표현일 수도 있다. 어쨌든 우리는 의외로 가까운 사람들보다는 완전히 모르는 사람에게 더 친절해지기 쉽다.

블로그 clichecliche.blog.me 이메일 clichecliche@naver.com


주인님


그림: 젖은잡지 두리


우울한 청춘

글. 그림. 철민


카페 서큐레이션의 테이블에는 활짝 핀 꽃들이 화병에 꽂혀있다. 서큐레이션의 여사장은 이틀에 한 번 꼴로 다 양한 꽃들을 사오고, 그중 활짝 핀 꽃들만 골라 화병에 꽂는다. 그리고 이전에 꽂혀있던 꽃들과, 아직 활짝 피지 않은 꽃들은 양동이에 담아 카페 문 앞에 둔다. 양동이 옆에는 ‘가져가세요’란 문구가 적힌 팻말을 놓아둔다. 동네 사람들 사이에서 서큐레이션의 ‘꽃 양동이’는 제법 인기가 많은 편이어서 여사장이 꽃을 내놓고 한두 시간 뒤면 양동이가 텅텅 빈다.

민혁은 야근하고 집으로 가는 길에 간판 불이 꺼진 중국집 안에 사람들이 앉아 있는 것을 보았다. 그는 지나가며 슬쩍 안을 훔쳐보았는데 테이블 위로 상추와 소주병이 보였다. 장사를 마친 뒤, 사장과 종업원들이 족발이나 보 쌈을 안주삼아 소주를 마시는 모양이었다. 그는 그들이 나눌 대화를 상상해보았다. 온라인 게임이나 스포츠, 로또와 관련된 이야기들이었다. 그러다 자신 도 그들과 같은 인생을 살게 될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지루할 것 같았다. 그러다 멋대로 그들의 삶을 상상하고, 연민을 느끼고, 그들에게 자신의 삶을 대입시키기까지 하고 있는 자신이 건방지다고 생각했다. 그렇지 않아도 고 지식하다는 이야기를 곧잘 듣는 민혁은 자신이 가지고 있는 고정관념들에 대해 생각했다. 그러다 불쑥 여자친구 가 꽃을 사달라고 말하던 순간이 떠올랐다. 그는 고지식한 이유로 그 말을 잘라버렸었다. 민혁은 여자친구에게 꽃을 사주는 대신 해줄 수 있는 것이 무엇이 있을까 고민해보았다. 스마트폰으로 꽃과 관 련된 것을 이것저것 검색해보다 ‘플라워 카페’라는 것을 찾아냈다.

지원은 태어나서 지금껏 꽃을 선물 받아본 적이 없었다. 남자친구를 예닐곱 명이나 사귀었는데, 그중 한 명도 꽃 을 선물해주지 않았다. 입학식이나 졸업식 때 한 번쯤은 받아볼 법한 꽃다발도 받지 못했다. 왜 꽃다발을 사오지 않았냐고 묻는 그녀에게 아빠는 “왜 말라 죽을 걸 돈 주고 사니?” 라고 답했다. 요즘 사귀고 있는 남자친구는 아빠와 비슷한 부분이 많았다. 말수가 적은 것이나, 무뚝뚝한 성격, 체격 등. 지원 은 그래서 남자친구를 좋아하게 된 것 같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남자친구의 그런 부분이 싫기도 했다. 그녀가 이 런 생각을 하게 된 결정적 요인은 꽃이었다. “나 꽃 선물해줘.” “미안하지만 꽃은 싫어. 화분이면 몰라도. 꽃 선물은 잔인한 것 같아. 죽이는 거잖아. 어찌 보면 살인이나 다 름없어.” 그녀는 고개를 가로저었다. “이런 것까지 닮진 않았으면 더 좋았을 텐데.” 어쨌든 그녀가 태어나서 처음으로 꽃을 받게 된 건 얼마 전 일할 때였다. 그날은 탈의실 담당이어서 번호표를 나눠주고 옷을 정리하고 있었다. 그런데 어떤 여자가 티셔츠와 꽃을 건넸다. 그리곤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지원 은 기분이 묘했지만 어쨌든 좋게 생각하기로 했다. 퇴근 후, 매장을 나서는데 남자친구가 앞에 서있었다. “어쩐 일이야?” “같이 가면 좋을 곳을 찾아서. 근데 웬 꽃?” “몰라. 어떤 손님이 줬어.” “남자?” “아니. 여자.”


“그런 쪽으로 인기가 좀 있는 타입이었나?” “아니. 전혀 아니야. 근데 같이 가면 좋을 데가 어딘데?” “카페.” “좋은 데야?” “응. 인터넷에서 봤는데 좋다고 하더라고.”

세일 시즌을 맞이하여 수진은 싼 가격에 옷이나 장만해볼까, 하고 집을 나섰다. 그녀에게 혼자서 쇼핑하는 건 익숙한 일이다. 원체 혼자 다니는 걸 좋아하는 편이기 때문이기도 하지만, 얼마 전 헤어진 남자친구가 그녀와 함께 쇼핑하는 걸 좋아하지 않은 탓도 있다. 전 남자친구는 그녀에게 이렇게 말했다. “여자들은 혼자서 뭘 못해.” 그 말은 수진이 정말 싫어하는 말이었다. 그래서 전 남자친구와 사귈 때에는 일부러 혼자서 쇼핑을 다녔다. 그 런데 헤어질 때 전 남자친구는, “넌 나 없이도 잘 살 것 같아. 쇼핑 갈 때도 혼자 다니잖아.” 라고 말했다. 기가 찼지만 그녀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유니클로에서 수진은 귀여운 티셔츠를 하나 찾았다. 그런데 사이즈가 좀 애매했다. 대충 입을만할 것 같기도 하 고, 애매하게 작을 것 같기도 했다. 그래서 탈의실에 갔는데 그 안에 꽃 한 송이가 놓여있었다. 보아하니 손님 중 누군가가 놓고 간 것 같았다. 그녀는 티셔츠를 입어보았다. 아쉽게도 사이즈가 애매하게 작았다. 그녀는 꽃과 티 셔츠를 들고 나와 직원에게 건넸다.

지희는 경복궁역에서 만난 미진에게 꽃을 건넸다. “선물이야.” “웬 꽃이야?” 꽃을 받아든 미진의 얼굴이 환해졌다. “우리 동네에 서큐레이션라는 카페가 있거든. 그 카페 사장님이 장식하고 남은 꽃들을 카페 앞에 두고 사람들 한테 나눠줘. 오는 길에 있길래 하나 챙겼어. 어때? 예쁘지?” “응. 진짜 예뻐. 고마워. 얼마 만에 받아보는 꽃 선물인지 모르겠네. 그건 그렇고 그 카페 사장님 참 좋은 분이 다. 버리기 아까워서 나눠주시는 건가?” “아마 그렇겠지?” “아무튼 정말 고마워.” 미진이 고개 숙여 인사했다. “뭘 이렇게까지. 그냥 있길래 가져온 건데. 아무튼 어디부터 가볼래? 에이치 앤 엠? 자라?” “에이치 앤 엠. 우선 싼 데부터 돌자.” 둘은 그렇게 봄맞이 원피스 쇼핑을 시작했다. 미진의 말대로 에이치 앤 엠을 시작으로, 자라, 포레버21, 유니클 로 등을 돌았다. 이 옷 저 옷 입었다 벗었다, 하는 사이에 미진은 꽃을 잃어버렸다.

카페 서큐레이션의 여사장은 꽃 양동이를 내놓고 영업을 시작했다. 어김없이 카페 앞을 지나는 사람들이 꽃을 하 나둘 빼갔다. 지희도 그중 하나였다. 그녀는 미진을 만나러 나가는 길에 꽃 양동이를 발견하곤 잽싸게 한 송이를 챙겼다. 그녀가 챙긴 꽃은 노란 프리지어였다.

- 물질과 비물질 4 꽃 <끝>


무엇이 들어있을까요?

이달에도 재미있는 것들을 준비했습니다. PDF를 보시면서 누르셔도 되고 스마트 폰으로 찍으셔도 됩니다. 여전히 월간이리 내 원고의 일부분이나 필진 이름, 블로그 주소등을 누르시는 경우 해당 페이지로 연결되기도 합니다.


ⓒ NANGMANSPY

어두운 터널을 지난 지하철은 환한 빛에 이끌려 빠르게 튀어나간다. 뿌연 대기 속에서도 확 트인 너를 보아서인가. 마음이 편해진다.� #1 봄의 단서들_2

아무도 없는 길을 걷는다. 찬 공기가 뱃속 가득 들어와 몸을 움츠리게 한다. 코끝은 싸늘하지만 머릿속은 쏴해져 상쾌하다. 어느 순간 햇살이 거리에 퍼지고, 따듯한 기운이 내 뺨을 살살 어루만진다. 잠시 가던 길을 멈추고 햇빛을 바라본다. 봄이 오는구나!

letmeflywoo.tumblr.com


부산오뎅 이야기 (어미새의 마음으로)

아시는 분들도 있고 모르시는 분들도 있지만 이리까페 2호점이 석관동에 오픈했다.(석관동 261-5)

두달여의 공사가 첫삽을 뜬건 구정 즈음인 것 같다. 공사를 시작한다는 얘기를 듣고 와달라는 요청은 없었 으나 조건반사적으로 출동을 하게 된다. 나는 다니던 체육관에 남은 기간에 대한 연기 신청을 하고 현장으 로 출근을 한다. 새벽에 가게를 마치고 눈을 뜨자마자 가도 8시부터 하는 공사현장에 정시에 도착 하는 건 무리인 관계로 시간이 허락하는 만큼 간다. 초반에는 내가 생각해도 내가 쏠쏠히 쓸모가 있었던 거 같다.

모든 인테리어는 철거를 젤 처음한다.

철거를하면 갖가지 쓰레기 돌멩이 흙 기타 등등을 마대자루에 담아 용달차에 실어 보낸다. 20kg정도의 마대 자루를 하루에 보통 500개 정도 실어 산더미 같은 것들을 없애고 나면 뭔가 했다는 생각과 이 성별만 가까스 로 남성인걸로 추정되는 친구들 땀 흘리는 게 안쓰러워 내가 하는 게 낫다는 생각도 했다. 철거를 며칠하고 나니 쥐가 고양이 걱정을 하는지 이제 안 와도 된단다. 그럼에도 며칠 더 나가본다. 근데 기술자들이 와서 하


는 일들이 계속 되다보니 별 할 일도 없었다. 그러다가 며칠 안 나가니 이번에는 와달라는 메시지가 온다. 나 는 또 조건반사적으로 흔쾌히 간다. 지인들은 안 피곤하냐며 체력 좋다며 친구가 좋다며 일당은 얼마를 받냐 자기 공사 할 때도 와줄꺼냐 이리까페에 주식이 있냐? 어제 갔는데 오늘 또 가? 힘들지 않냐? 잠은 안자? 부산오뎅은 정상영업하는거고? 별별 말들을 다한다 그러다 보니 나도 혼자 여러가지 생각을 한다 나는 왜 거길 계속 갈까?친구라서? 일이 좋아서? 일을 하고 나면 운동효과가 있어서? 안 가면 삐질까봐?일당이라 도 줄 까봐? 일을 하며 외로움을 달래려고? 곰곰이 생각해보면 많은 예 중에 친구라서가 젤 가까운 것 같다.

하지만 일을 하다 보니 친구라서 그런 것 같지도 않은 것 같은 생각이 들었다. 모든 친구가 친구가 오라면 오 고 가라면 무조건 가고 그렇지는 않지 않는가? 갖가지 집기를 넣고 그릇을 사고 오픈 날짜가 다가오자 이 친 구들이 시집 보내는 딸처럼 여겨졌다. 입주 날짜 전에 가서 쓸고 닦고 먼지 털고 하는 엄마의 마음 대가 없 는 희생 그런 게 아니었나 싶다. 오지 마라고 하면 “지나가다 잠깐 들렀어. 올려고 한게 아니고” 라고 하며 먼발치에서도 잘하나 못하나 지켜보고 한마디라도 하면 잔소리할까 아무 소리 안하고 묵묵히 그 자리에 있 는 게 당연하지 않은가 하는 마음이 아니었을까 하는 당사자들이 들으면 코 웃음 칠 그런 마음이 들었다. 새 집 들어가는데 에어컨이라도 하나 깜짝 선물로 사주고 싶었지만 신랑 잘 버는데 엄마가 왜 쓸데없이 돈 쓰 고 그러냐며 엄마는 그래서 안돼 라고 할까 봐 새집 들어가는데 집들이 할 때 쓰라며 일회용품 사주는 마음 으로 커피잔을 스티커를 만들 어 붙여 보낸다.

“몇 개 안돼 2000개야 얼마 안 해 비싼 거 아니야 집들이 요즘 은 이 친구 저 친구 하다 보면 이 런 것도 많이 필요하다더라 얘. 같은 서울하늘 아래에 있는데 엄 마 맘이 좀 그렇네 잘살아야 돼. 동네사람들이랑 친하게 지내고 그리고 엄마 힘없어 3호점 할 때 는 요양원에 있을지 몰라~~”

PS. 두 달여 동안 우리 두 딸데 리고 공사한다고 수고하신 풍 정 조성태 형님과 함께 스티커 를 구상하고 붙여준 왼손이 에 게도 박수를 보냅니다


이리

석관동 이리카페가 오픈하였습니다. 오셔서 새집 증후군을 흡수해주세요. 목련도 피어있답니다.


왕!

바다비 일요 시극장 2014.4.27 http://cafe.daum.net/badabie


국가란 무엇일까? (3회)

도저히 집에만 있을 수 없는 계절이 돌아왔다. 방 구석에 틀어박혀 글을 쓰고 있지만 이 글만 다 쓰면 당장이라도 뛰쳐나가 봄을 만끽해야 한다. 어디가 좋을까. 경복궁역에서 통인동과 옥인동을 거치는 서촌 일대? 안국역과 삼청동의 북촌 일대? 어디에 가도 나무와 꽃들이 나를 반겨줄 것이다. 멍청하게 이곳에서 이러고 있을 일이 아니다. 하지만 내 어찌 한시라도 국가를 잊고 그곳에 갈 수 있을까. 쓰자 또 쓰는 것이다. 그런데 옥인동 통인동의 서촌 일대, 안국에서 시작되는 삼청과 북촌 일대 이들의 공통점은 무엇일까? 바로 바로 누구나 꼽는 서울의 좋은 산책로 라는 것. 산책을 하는 것이 사람에게도 행복한 일인지는 모르지만 나에게는 무척 행복한 일이다. 그리고 어지간한 사람들에게도 행복한 일인 것 같다. 꽃 내음이 코 끝에서 맴돈다는 상상을 하며 마음속의 그 길들을 걸어보자. (혹시 가보지 않았다면 당장 이따위 글은 접어두고 그 거리를 걸어보자.) 내가 그곳 들을 거닐던 그때가 언제였던가? 스무 살 초반 한창 무릎 관절이 싱싱하던 그 나이. 나는 내 걸음걸이가 이상한줄도 모르고 혼자서 그 거리들을 거닐었더랬다. 그랬는데 몇 년 뒤 그 길들이 서울의 유명한 산책로로 뜨기 시작한다. 그 즈음 나는 문득 이런 의문이 일었다. “왜 저곳들을 사람들이 좋아하는 것일까?” 이 질문은 여전히 이어진다. 지금 북촌의 한옥길을 걷다가도 던질 수 있다. “왜 여기를 사람들이 좋아하는 것일까?” 한적하다거나 옛 정취가 있다거나 그런 이야기를 할 참이었으면 시작도 안했다. 자 그럼 본격적으로 오늘의 이야기를 시작하기 위해 ���프를 해보자. 나와 이 시리즈를 사랑해 주시는 독자 여러분들에게는 점프가 있지 않은가. 렛츠 점프! 북촌의 한옥 길을 걷다가.. 이번에는 영혼을 둘로 쪼개어 동시에 양쪽으로 점프를 해 보려고 한다. 한명의 나는 몇 백년 전으로 또 한명은 그냥 동시대의 잠실 정도면 적당할 것 같다. 홍대 인근의 독자들은 합정 정도면 적당하다. 멀리 미국의 독자라면 맨하튼도 좋겠다. 물론 나는 맨하튼에 가본 일이 없지만 비디오에서 본 바로는 오늘 이야기 하고자 하는 것과 무척 흡사하므로 이와 비슷한 분위기의 여의도나 강남대로도 괜찮다. 자 그럼 이제 나의 영혼은 몇 백년전의 북촌 어디 쯤과 동시대의 잠실 어디쯤에 동시에 서있다. 지금 내 눈에 보이는 것은 각각 무엇일까? 하나는 다 쓰러져가는 초가집이나 적당히 으리으리한 기와집일 것이고 그 너머로는 푸른 하늘이 보일 것이다. 동시대의 잠실에 있는 나는 아마 빌딩을 보고 있을 것이다. 멀리도 빌딩 가까이도 빌딩. 나는 자유로우니 아주 조금만 산책을 하려고 한다. 애초에 산책을 하러 나선 길이 아니었던가? 일대를 조금씩 움직이면서 두리번 거린다. 과거의 나는 골목과 나무 작은 집들과 산들을 보며 한껏 봄을 즐기는 한량으로 한껏 펼쳐진 하늘을 바라보며


사나이의 기상과 우울한 감정을 훌훌 털어버리는 좋은 시간을 보내겠지만 현재의 나는 빌딩을 가만히 보고 있을 것이다. 그리고 생각할 것이다. 성격이 나쁘기 때문에.. “저- 저건 뭐야? 내 눈 앞을 가로 막는 저 기둥들은? 저게 뭔대 내가 하늘을 보는 것을 가로막는 거야?” 이쯤에서 다시 몇 백 년 전의 북촌을 걷던 나는 현대의 북촌으로 돌아온다. 그래도 여전히 북촌은 내 눈앞을 가로막는 것들이 없다시피 하다. 우리가 흔히 손에 꼽는 옥인동, 통인동 일대의 서촌이나 안국동, 삼청동 일대의 북촌은 비슷할 정도로 시야를 가로막는 것들이 없다. 슬슬 걸어도 하늘이 쉽게 눈에 들어오고 시야는 탁 트여서 갑갑한 마음을 떨치기에 적당하다. 하지만 잠실은 어떤가? 내가 모르는 사람들이 하늘을 가로막는 통에 나는 하늘도 쉽게 볼 수 없다. 도대체 내가 45도 각도에서 만나야 할 푸른 하늘 과 참새들의 어리광, 흰 구름 행진을 가로막는 저 빌딩의 그림자는 무어란 말인가!!! 우리가 흔히 걷기 좋다는 곳들을 떠올려 보자. 제주도 올레길, 지리산 둘레길, 한강 둔치, 바닷가 백사장, 야트막한 산자락이 모든 곳들을 하나 씩 떠올려보자. 이 모든 곳들이 얼마나 당신의 시야의 자유를 보장해주고 있는가? 자 그럼 다시 서촌이나 북촌 일대를 생각해보자. 우리가 좋다고 꼽는 산책로들이 정말로 한적함이나 옛스러운 정취 때문일까? 어쩌면 정말 단순한 시야권 때문일 수도 있다. 서울 내에서 시야가 그나마 탁 트인 야트막한 건물들이 많은 지역을 마음에 들어하는 것은 아닐까? 청와대 근처, 경복궁 근처이기 때문에 어쩔 수 없이 생긴 고도제한. 그것 때문에 자연스럽게 열려있는 하늘이 우리를 행복하고 편안하게 만드는 것일 수도 있다. 그 마음 그대로 잠실로 가보자. 그리고 눈앞의 빌딩들이 당신의 행복을 얼마나 침해하고 있는 지를 생각해보자. 도대체 같이 사는 이 나라의 무슨 권리를 더 가졌기에 내가 봐야 할 저 너머의 하늘을 가리는 빌딩이 저리 당당하게 서있는 것일까? 도대체 누가 얼마나 대단하기에 모두가 공유해야 할 하늘을 점유하는 것일까? 도대체 국가가 무엇이기에 나의 시야를 가로막는 것을 허락한 것일까?

글. exxx


월간이리에서 필진을 모집하고 있습니다. 인터뷰, 식물, 생물, 무속, 종교, 역사, 의학, 과학, 철학, 패션, 요리, 에세이, 연애 등등 분야를 가리지 않고 필진을 구하고 있습니다. 함께 볼 수 있는 다양한 글을 싣는 책이 되고 싶습니다. 그간 월간이리를 재미있게 봐오셨거나 알게 모르게 끌리시는 분들, 망설이는 친구를 옆에 두신 분들은 언제든 연락주시면 친절하게 안내해 드립니다. exxx2x@gmail.com 으로 메일 부탁드립니다.


‘의심하는 도마’, 1601–1602 (유화) 107 cm × 146 cm 이번 뒷 표지는 카라바조의 유명한 회화작품인 의심하는 도마를 드로잉한 것입니다. 이 작품은 성서의 예수가 십자가에서 죽고 부활한 뒤 자신의 제자들에게 찾아갔을때의 부분을 담았습니다. 제자중 한 사람이었던 도마는 그러나 그 자리에 없었던터라 동료 제자들에게 자신들의 선생이 부활했으며 자신들과 만났다는 소식을 전해듣게됩니다. 도마는 예수의 손발의 못자국과 옆구리를 창에 찔린 상처에 손을 넣어서 확인해보지 않고는 니들말을 못 믿겠다고 하죠. 그 뒤에 예수가 직접 도마를 만나 도마의 말대로 자신의 상처에 손을 넣어보라고 합니다. 도마는 이제 예수의 부활을 믿겠다고 했으나 예수는 보고 믿는 것보다 안 보고 믿는 것이 더 귀하다는 말씀을 하죠. 카라바조의 명암대비 짙은 극적 연출의 회화들 중 제가 이 작품을 특히 좋아하는 것은 도마의 손을 잡아당기는 예수의 고통을 참는 표정, 죄송하고 두렵긴하지만 결국 상처를 확인하는 도마와 부활을 전한 다른 제자들 또한 함께 상처를 뚫어져라 보는 모습이 무척 인간답기 때문입니다. 이 그림에선 성스러움의 자리를 헤집어가며 확인하고야마는 의심하는 인간의 역을 맡은 도마에 대한 깊은 동감을 느낄 수 있습니다. 도마가 대신 그랬고 대대손손 책망을 지기에 우리는 안 보고도 믿으려고 기를 쓰고 있어요.


그림. 지인


월간이리 2014년 4월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