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순서 입니다. 비밀 안(not) 스러운 생활 / 사진. 글. beamil Where did you sleep last night? - 56, 57 / 사진. 글. @Ahopsi 회사옆 미술관 - KIAF 2013 / 글. 강세기 영화로 읽는 시공간 - 라스베가스를 떠나며 / 글. 곡주대비 여기 문학이 필요한시간 - 차범석 / 글. 고수진 서울시 시민 연극 교실 참여 기록 / 글. 이범 신당동 파르한의 음악 소개소 / 글. 신당동 파르한 0,0,0 / 글.그림. Night Planet 건축이 좋아 - 용산 철도 병원 / 글. 사진. aoikasa 독후소설 - 아무래도 싫은 사람 / 그림. 황은정 글. 김종소리 뼈그림 - 세띠 아르마딜로 / 글. 그림. 왼손이 독신자의 독서일기 - 이모부의 서재 / 그림. 이다솜 글.권고마 웹디자이너 생존 매뉴얼 - 사내연애의 생존 매뉴얼 / 글. 그림. 김성연 우울한 청춘 / 그림. 글. 철민 바다비 일요시극장 광고 부산 오뎅 이야기 - 복제인간 / 글. odeng 인터뷰 - 창신동 라디오 덤 / 정리. exxx 마을길 마포 3로 “노고산동 삼각지대” / 글. 사진. exxx 무엇이 들어 있을까요? 그레고리 콜버트 (Gregory Colbert) / 글. 그림. 지인


감시사회. 여러 매체에서 이야기를 다루었지만 최근 제 경험 담을 하나 소개합니다. 이달 편집을 하던 중 트위터를 하지 않는 표지 디 자이너의 흉을 보는 글을 트위터에 올렸는데 어떤 방법인지는 모르나 이를 감시하던 표지디자이너가 “니가 나의 흉을 보았느냐며” 문자를 보낸 일이 있 습니다. 무서운 세상입니다. 혹시 모를 일입니다. 이미 여러분도 감시당하고 있 을지 말입니다. 그렇다면 역시 지금 당장 모든 온라인 활동을 멈추 고 놀이터로 나가 흙장난을 시작해야 하는 걸까요? 아닙니다. 궁금해도 참고 좋은 쪽으로 관심을 돌리 셔야 합니다. 우리가 편하자고 만든 세상입니다. 악 용하지 말고 살아야 합니다. 평소 같으면 11월에 한 해를 정리하는 호를 마련했 겠지만 다음달에 한해를 정리해 보도록 하겠습니다.

편집: 이훈보

단정보다는 해볼까요? 정도가 좋겠네요.

표지: 이주용, 한지인

그럼 많이 쌀쌀해 졌으니 술은 작작..

월간이리 Refresh 2013 주관: 프로젝트 이리 지원: 서울특별시, 서울마을미디어지원센터 2013 우리마을 미디어공방

공식트위터 @postyri


비밀안( not)스러운생활 2013 NOVEMBER

10 / 5 20 : 24

‘fantasy’

군중 트렌드 :

fantasy : 공상, 몽상, 기발한 생각

남들이 하는 것이 내가 하는 것보다 멋져보이고 있어 보이는 것이 뇌 속에서 화학작용 을 일으켜 그것이 결국 같은 트렌디 함을 추구하여 모두를 같아 보이 게 만드는 현상. 실은 각자의 것이 훨 멋졌는데.


10 / 20 14 : 54

열심히 살라하는 미디어의 충고 때문일까. 요즘은 어딜가도 소비되는 느낌이 든다. 누군가가 본 것은 나도 봐야하고 남들이 느껴본 건 나도 느껴야 할 것처럼. 등을 떠미는 사람도 없는데 어느 순간 그렇게 되어 있다. 3년 전, 내가 인스타그램을 처음 시작했을 땐 한국사람은 거의 없었고 예쁜 필터로 내 일상을 기록하면 그 뿐이었기 때문에 완벽했다. 게다가 아름답고 완벽한 사진을 찍는 트렌디한 외국인들의 사진을 입장료없이 관람할 수 있었다. 3년이 지난 지금, 오히려 아시아인이 더 많은 듯한 SNS 인스타그램은 다른 아이디를 가진 사람들의 계정 10개를 들어가 봐도 같은 사람처럼 느껴지는 인상을 지울 수 없다. 이러한 글을 쓰는 나도 비난할 자격은 없다. 누구보다 많은 팔로잉 수로 많은 트렌드세터들을 주시하고 있으니까. 그나마 다행인 건 아직 대한민국의 면적과 인구 수 비례, 트렌디한 경험을 할 수 있는 장이 많지는 않은 편이고, 대리만족이 주는 카타르시스는 각박한 일상의 사람들에게 꽤 큰 위안이 되기도 한다는 말들이 있기 때문. 우리가(내가!) 우물 안 개구리만은 되지 말았으면 싶은 생각이다. 몇몇 열정있는 이들이 모여 만들어내는 오프라인의 기획들은 나를 춤추게 한다. 깜깜한 밤하늘에 펼쳐지는 각국의 불꽃들이 그랬고(물론 불꽃놀이는 비용대비 비실용성으로 비난을 받기도 하지만), 대학 전공서적에서나 보던 칼더 아저씨의 나부끼는 모빌들이 그랬다. 전자기기 속 사람들보다 내 옆 한 사람이 더 소중하다는 걸 느꼈다면 더욱 좋고. 한 해의 마지막이 다가오니 가장 열심히 하는 것 중 하나를 이러쿵 저러쿵 힐난하며 (실은) 내 자신을 점검하고 있다. 멋진 사람이 되고 싶은데 뜻대로 되지않는 10월의 어느 멋진! 날에.

* Android, i-Phone APP ‘인스타그램’의 필터를 이용하여 찍은 사진만 실어요.


회사 옆 미술관

KIAF 2013

강세기

http://kangjoseph.tistory.com 우리나라 최대 아트페어라 하는 KIAF를 매년 찾는

하지만 이따금 몰랐던 좋은 작업을 만날 때면 큰

미는’ 대표선수들을 한 자리에서 구경할 수 있다.

딸만 남겨놓고 여기를 찾아온 내게 주어진 시간은

이유는 몇 가지가 있다. 먼저 갤러리들이 소위 ‘ 물론 당년 또는 전년도 개인전을 열었던 작가들의

작품이 대부분이기 때문에 최근 열었던 대표 전시의 하이라이트(또는 범작)을 복습하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보람을 느낀다. 주말에 남편만 기다리는 아내와 단 2시간. 그 시간 안에 뽕을 빼기 위해 마음

졸이며 도는 거다. 이 시간 안에 새로운 작가를 만날 수 있을까. 사실 그것이 KIAF를 찾는 가장 큰 이유다.

요즘에는 담론 중심의 작가들에 관심이 많이

주어진 시간이 결혼 전과 후, 그리고 출산

못했다. 사진하면 토마스 스트루스, 칸디다 회퍼,

자연적으로 죄어오는 시간에 최대한 많이 보는

쏟아져서 그런지 예전만큼 신명나게 돌아다니지는 배병우, 그림하면 앤디워홀, 아요이 쿠사마, 그리고 줄리언 오피 등 한집 걸러 한집마다

캐릭터가 이미 굳어진(좋은 말로 하면 거장의 반열?에 들어선) 작품들은 더 이상 흥미를 주지

전과 후를 지나며 점점 짧아 지고 있는 관계로 방법을 몇 차례의 시행착오를 거치며 터득했다.

먼저 들어서면 구심점 역할을 해주는 갤러리를 하나 잡는다.

못했다. 천편일률적인 작가군은 결국 그림을 사는

사방이 그림천지라 미로처럼 쉽게 길을 잃을

아닐까 하는 생각도 들었다. 사람들의 취향이

상황이 상황인지라 일단 그 구심점을 시작으로

소비층의 단일화된 취향을 그대로 보여주는 것이 조금만 더 다양해진다면 훨씬 더 재미있을 텐데…

수 있다. 정처없이 떠돌아다니면 행복하겠으나 일직선으로 진행한다. 행여나 옆에 엄청나게


갤러리 101의 제여 작가의 그림들 눈길을 끄는 갤러리가 있더라도 진행방향을

고수한다. 옆으로 새면 그야말로 꼬이기 때문이다.

게다가 취향에 맞지 않을 때가 거의 대부분이다.

둘러본다. 시선을 잡는 작업이 하나도 없으면

처음 접한 작가들이 대부분이었다.

그리고 부스 초입에서 걸려있는 작업들을 스윽 가차없이 다음으로 옮긴다. 미술작업은 소개팅과

여튼 이번 KIAF를 통해 몇 작가를 인상깊게 봤다.

같다는 이상한 이론을 가지고 있다. 한번 봐서

추상화는 여전히 내게는 미지의 영역이다. 그러내

그래서 이론과 시장에서 사랑받는 좋은 작업을

어떤 강렬한 질서가 주는 힘에 끌릴 때가 있다.

끌리지 않으면 웬만해서는 좋아해지 않더라.

머리뿐 아니라 감성으로도 한눈에 반할 수 있다면 좋은 취향과 안목이라 하는 거겠지.

정형화 된 경우는 없지만 다음과 같은 경우는

십중팔구 보지도 않고 지나친다. 먼저 아크릴 액자로

그림을

싸놓은

곳.

이상하게

싫다.

액자도 작업의 일부일진대 게다가 촌시러운

종종 얽혀있는 물감의 패턴과 질감이 만들어내는 대표적으로는 잭슨 폴록의 그림이 주는 분출하는 에너지이다. 추상화는 잭슨 폴록을 좋아해서 그런지 몰라도 마구 싸질러놓은 류(표현에 한계가 회가 거듭될수록 높아진다 ㅠ)에 매력을 느낄때가 많다. 이번에는 갤러리 101의 제여란 작가가 그랬다.

아크릴… 그리고 전체적으로 걸려있는 작업들이

같은 갤러리의 써니킴 작가도 흥미로웠다. 회화

빠르게 지나치는 편이다. 걸려있는 그림들이 서로

표현인데 현대인의 고독함이 전면에 드러나는,

왠지 불협화음을 내는 부스도 신뢰가 가지 않아

일관성이 없다고 느껴지면 리듬감이 좀 떨어진다. 그리고 이런 곳은 실제로 보지는 못했는데 화환이나 화분…이딴게 있으면 발길도 안주고

그냥 돌아선다. 이유는 없다. 그냥 촌시럽다.

중에서 좋아하는 유럽의 ‘서로가 왕따 회화’(내 유럽회화에서 주로 드러나는 그런 왕따그림이다.

대표적인 작가는 팀 아이텔, 마를린 뒤마스,

피터 도이그, 뤽 토이만, 헤르난 바스)와 비슷한 분위기가 인상적이었다.


문틴 앤 로젠블룸 (Muntean & Rosenblum)

안드레아 벤추라(Andrea Ventura)

아트프로젝트 갤러리의 문틴 앤 로젠블룸 (Munte-

an & Rosenblum), 베이튼(Baton) 갤러리의 데이 비드 오 케인(David O Kane)과 안드레아 벤추라 (Andrea Ventura) 역시 ‘왕따회화’의 일종으로 보 였다. 인물을 묘사하는 방식에 유럽작가들의 접근

방식이 유사하게 보였다. 그 이유가 궁금했다. 그 래서 베이튼 갤러리인지 아뭏던 한국인 갤러리스

트에게 물어보니 왜 이런 질문을 하냐는 표정을 지

으며, 유럽 애들은 다 이렇게 그린다고 했다. 별로 명쾌한 답은 되지 못했다.

갤러리 스케이프의 안경수 작가의 작업도 인상 깊 었다. 물감이 경계를 명확히 드러내기 보다는 캔 버스에 물감이 스며들어 서서히 번지면서 자아내

안경수

는 신비로움이 흥미로웠다. 갤러리스트에게 물어

보니 이 작가는 한국화를 전공했단다. 손동현, 이 은실 작가 등 명확한 방향과 개성으로 서양화를 그

갤러리잔다리의 부스에서 낯익은 박 작가의 사

많이 소개되었으면 하는 바램이다. 이미지가 여타

펴보았다. 도록이 충실하게 구비된 것을 보면 박

리는 한국화 전공작가들이 개인적으로는 해외에

외국 유명작가들에 견주어 볼 때 전혀 뒤처짐 없이 새로운데 말이다.

아라리오 갤러리의 이지현 작가와 국제갤러리의 노충현 작가 역시 재미있었다.

이번 KIAF 투어에서 가장 의미있던 일은 좋아하는 박형근 사진작가를 만났던 것이겠다.

진이 걸려있길래 얼른 달려가 진열된 도록을 살 형근 작가를 진지하게 다루는 갤러리임이 분명 했다. 신나게 도록을 넘기고 있는데 옆에 앉아있

던 아저씨랑 앞에 앉아있는 갤러리스트랑 대화

를 들어보니 아무래도 범상치 않아 작가 분이냐 고 물어봤다. 그렇단다. 깜짝 놀랐다. 작가 앞에 서 도록을 뒤적뒤적하는 모습이 성의없어 보이 지는 않았을까 1초간 걱정하면서 얼른 궁금했던 것들을 물어봤다.


되려나 모르겠다). 실제 작가는 사진을 찍을 때 의 식을 치렀다고 얘기했다. 아래 사진을 설명하며 봄

을 맞이하는 의식을 치렀다고 했다. 그런 눈에 보 이지 않는 영역들이 신기하게 사진 속에 영상으로 남겨지는 과정이 매우 흥미로웠다. 그것이 작가의 역량이라는 생각을 했다.

2시간 남짓 돌아봤던 KIAF 인데 의외로 얻은게 많

았구나. 단 이날 삼성동에서 강서구 집까지 자전

거를 타고 가는데 하필 여의도 불꽃축제일을 모르 고 겁없이 여의도 한강도로에 들이대느라 집에까 지 한시간이 추가로 소요된 것만 빼면…아름다운 저녁이었다.

<끝>

이지현 가장 궁금했던 것은 내가 사진을 통해 받은 정서를

작가 역시 의도했는지 여부였다. 그렇단다. 그걸 느끼는 군요. 하면서 작가가 설명을 해주었는데, 특별한 설명은 없어도, 일단 피사체 앞에서 작가가 가졌던 마음에 나도 공감할 수 있었다는 사실에 적

잖이 고무되었다. 작가의 마음을 그대로 공감하는

것이 미술을 즐기는 최선의 방법은 아니겠지만 일 단 다양한 해석이 가능하기 위해서는 작가의 눈으 로도 작업을 대하는 것이 필요하다는 생각이 있기 에 왠지 퀴즈하나 맞춘 느낌이 들었다.

박형근 작가의 사진을 좋아하는 이유는 이 땅에 있 는 곳을 찍는데도 이상하게 그 곳이 이 땅에 있는

것 같아 보이지 않아서이다. 그렇다고 사진을 포토

샵 등으로 마구 손 본 것도 아니다. 그렇다면 단 하

나 작가의 눈과 생각이 이 땅에 없는건데, 한마디 로 4차원인 거다(역시나 표현의 한계. 그 외 김상 길, 이갑철에게서 비슷한 느낌을 받는다면 설명이

박형근


영화로 보는 시공간 글. 곡주대비 (hjkanjy@gmail.com)

창녀의 시, Mike Figgis 의 라스베가스를 떠나며 (Leaving Las Vegas)

분명 이 부분에서 싫어할 독자들이 있겠지만, 지난 10월은 필자에게 3가지 꽤 심오한 의미를 가지므로 이 번호 원고는 필요이상으로 감상적이고, 지극히 개인적이며, 다소 두서없이 시작하고 끝맺을 것이다. 2013년 10월은 이러한 이유들로 의미심장 하다 첫째: 필자의 생일, 둘째: 학위 시험의 패스 셋째: 가을의 시작. 아무도 궁금해 하지 않는 이런 소소한 개인사를 엄한 데다 밝히는 이유는 이 세가지 이유들이 어쨌거나 이번 달에 이 야기 해볼 영화, 라스베가스를 떠나며 (Leaving Las Vegas, 1995 by Mike Figgis) 과 깊은 관련을 맺고 있기 때문이다. 필자는 영화를 전공한지 10년이 넘은, 그러나 아직도 최종 목적 학위를 따기 위해 고군분투 하고 있는, “처량맞은” 영 화 학도이다. 영화 전공자 라는 것은 (비단 필자뿐이 아닌 모든 영화과 전공자들도 마찬가지 일 것이다) “무슨 영화를 가장 좋아하느냐” 라는 이젠 좀 제발 좀 눈치껏 피해 주었으면 하는 뻔한 질문을 한 달에 몇 차례씩 받아야 하는 것 을 의미한다. 사실 그렇게 수천 번 고문처럼 받아본 질문 이지만 한번도 제대로 답해본 적은 없는 듯하다. 너무 많아 서 이기도 하고, 사실 영화를 공부한다는 것이 단순히 영화 한두 편이 좋아서 라기 보다 영화라는 매체 자체에 매력을 느껴 시작하기 때문이 아닐까? 하지만 굳이 까다롭게 굴 필요가 없으므로 적어도 술자리 용 대답이라도 하나 마련해 놓기 위해 몇 날 며칠을 고민해 가며 고른 영화가 이 영화, 라스베가스를 떠나며 이다. 제일 좋았던 영화라기 보다, 영화를 밥줄 삼아야 하겠다는 마 음을 먹게 한 영화다. 2000년대 초반 생일 즈음 이 영화를 VHS로 보고는 한걸음에 레코드 가게로 달려가 생일에 받 은 돈을 다 털어OST 와 소장용 VHS를 사게 만들었던 영화이기도 하다. 사실 가을을 타는 편도 아니지만 이 영화가 주 는 묘한 퇴폐적임과 맨 정신에 봐도 취해 가는 듯한 몽롱함을 느끼고 있자면 영화 자체가 한 계절, 가을을 닮은, 이란 생각도 든다. 즉, 필자에게는 ‘계절’ 같은 영화라는 얘기다.


영화는 창녀인, 사라와 알코올 중독자인 벤의 사랑이야기 이다. 벤은 알코올중독으로 직장에서 해고 된 상태고 퇴직금 으로 받은 돈을 ‘자금’ 삼아 술로 자살하겠다는 목적을 가지고 베가스에 도착한다. 사라는 거리에서 일하는 창녀이고 둘은 이 지극히 인공적이고 신기루 같은 공간, 라스 베가스 에서 만나 벤의 남은 수명 만큼이나 짧은 사랑을 하게 된다. 둘은 연인 관계를 시작하면서 서로에게 약속을 하나씩 교환하는데 사라는 벤에게 술을 그만 마시라는 말을 하지 말 것이고 벤은 사라에게 몸 파는 직업을 가진 것에 대한 불만을 갖지 않을 것임을 다짐한다. 시간이 흐르면서 사라는 사랑하는 벤이 술에 찌들어 죽어가는 것에 대한 불안함을 느끼고 이를 종용하기에 이른다. 벤 역시 사라의 직업에 대한 반감이 늘어만 간다. 서로에 대한 금기 사항을 깨어버린 두 사람은 헤어 지기에 이르지만 죽 음을 맞는 벤 옆을 사라가 지키며 영화는 끝난다. 사실 이 영화의 제목에서 알 수 있듯, 영화의 주연은 이 두 사람 이기 이전에 라스베가스 라는 공간이다. 베가스는 그 자체 만으로 매우 큰 의미를 가진다. 예를 들어 이 두 사람이 서로 만나고 사랑하는 장소가 베가스가 아니라면 어느 도 시를 떠올릴 수 있겠는가. 다시 말해, 만약 다른 도시에서 만들어 졌다면, 두 사람이 공유하고 있는 처절함과 불안함이 이 영화에서처럼, ‘공기’ 같이 표현 될 수 있었겠는가. 베가스는 시간이 멈춘 공간이다. 아침부터 저녁까지 도시는 24시간 동안 깨어 있고, 사람들은 카지노에서 바에서 사창 가에서 밤낮을 지우며 육체를 소모한다. 베가스 라는 공간은 반은 죽어있고 반은 살아있는 하루하루의 일상이 아닌 24시간을 살수 있는 마법 같은 공간인 것이다. 따라서 벤이 베가스로 오는 것은 인생을 끝내기 위함이라기 보다, 현실 에서 이미 죽어버린 자신에게 벌어주는 새로운 인생인 것이고 이러한 도시에서 사라가 몸을 팔며 살아가는 것은 역설 적이지만 베가스가 죽음이나 타락이 아닌 이 들에게 생명이고 ‘밥줄’ 임을 뜻하는 것이다. 이들에게 생명이나 마찬가지인 ‘술’ 과 ‘육체’는 베가스라는 공간으로 도식화 되어 표현되는데, 감독인 마이크 피기스 는 현기증이 날 정도로 흔들리는 카메라와 흘러내리는듯 한 조명으로 술에 취하고 값싼 오르가즘을 토해내는 벤과 사 라를 형상화 한다. 영화는 많은 의미에서 최승자 시인의 “개 같은 가을이” 라는 시와 무척 닮아있다. 아니, 더 정확히 말하면 이 영화 주 인공인 사라의 인생과 닮아있다. 사라는 개처럼 쳐들어온 벤에게 자신의 경계를 내어주고 떠나보낸다. 병원에서 그녀 를 품고 죽어가는 그의 모습에서 술에 썩어난 기억의 폐수가 봇물 넘치듯 쏟아진다.


최승자 - 개 같은 가을이 개같은 가을이 쳐들어 온다. 매독같은 가을. 그리고 죽음은, 황혼 그 마비된 한쪽 다리에 찾아온다. 모든 사물이 습기를 잃고 모든 길들의 경계선이 문드러진다. 레코드에 담긴 옛 가수의 목소리가 시들고 여보세요 죽선이 아니니 죽선이지 죽선아 전화선이 허공에서 수신인을 잃고 한번 떠나간 애인들은 꿈에도 다시 돌아오지 않는다 그리고 그리고 괴어있는 기억의 廢水가 한없이 말 오줌 냄새를 풍기는 세월의 봉놋방에서 나는 부시시 죽었다 깨어난 목소리로 묻는다 어디 만큼 왔나 어디까지 가야 강물은 바다가 될 수 있을까

p.s. 뜬금 없는 개인사로 마무리까지 하게 되어 심히 죄송스럽다. 이 영화를 나누고 싶은 사람이 있어 사족을 붙인다. 그 녀는 나의 미천한 기사를 읽기 위해 매달 ‘낯간지럽게도 젊은 애들이 우글우글한 카페’ 한 가운데 앉아 영화 한 편을 영사하듯 글을 읽어주는 Linda 라는 여인이다. 그녀에게 언젠가 이 영화의 시그니쳐 곡인 스팅의 Come Rain or Come Shine 을 들려주고 싶다.


여기, 문학이 필요한 시간

차범석

[점례] (미칠듯이) 안돼요 거기 들어가면 안돼요! 이번호 우리가 살펴볼 문학작품은 차범석의 희곡 「산불」이다. 차범석의 대표작품일 뿐만 아니라 해방이후 리얼리즘 희곡의 최고봉으로 평가받을 만큼 사실주의 희곡으로의 전형적인 특징을 보여 주고 있다. 이 희곡은 민족의 최대 비극이었던 6.25 전쟁과 분단의 상황을 한 마을에다 몰아 놓고 조명하고 있다. 그리고 그 마을의 구성원들이 보여주는 인간의 원초적 애욕을 극히 자연스럽게 접목시킴으로써 작품을 더욱 밀도 있게 구성하고 있다.

줄거리는 대략 이렇다. 6.25전쟁이 치열한 시기에 산촌에는 청장년들이 모두 출정해서 여자들만 집을 지키고 있다. 그 때 규복이라는 전 직교사 출신의 빨치산이 젊은 과부 점례네집에 찾아들어 숨겨달라고 한다. 처음에는 점례가 규복의 협박에 못 이 겨 대밭에 숨겨 주었으나, 밥을 날라다주면서 동정심이 생기게 되었고, 점차 두 사람 사이에는 애욕이 불타기 시 작한다. 그런데 이웃의 과부 사월이가 이 사실을 알아채고 점례에게 규복을 공유하자고 제의한다. 이때부터 규복 이는 점례와 사월 두 여자와 삼각관계를 이루면서 전쟁과 이데올로기의 고통도 잊은 채 정욕의 화신으로 변한다. 그러나 세 남녀의 원색적인 관계도 아군의 토벌작전이 전개되면서 곧 끝날 수밖에 없었다. 국군은 규복이가 숨어 있는 대밭을 불태웠고, 규복이는 결국 타 죽고 만다. 규복이는 공산주의자도 아니면서 전쟁의 와중에 휩쓸려 좌익 으로 몰렸고, 결국 참담한 최후를 맞은 것이다.

제목 ‘산불’은 전쟁의 잔혹성을 상징한다. 또 두 여자의 욕망을 해소시켜준 한 남자의 은신처인 대밭이 ‘산불’ 로 인해서 사라지게 되면서, 평범한 사람의 모든 희망과 욕망을 무참히 짓밟는 비극적 결말의 상징이기도 하다.

국군이 공비 토벌 작전의 일환으로 대나무밭에 불을 질러 규복이를 불에 타 죽게 만드는 마직막 장면은 이 작품의 하이라이트이다.


‘산불’은 6.25전쟁의 한 단면을 압축하여 그려내면서, 이데올로기보다 더 소중한 것이 사랑임을 역설하고 있다. 과부촌이 설정된 이유도 여기에 있다. 인간이 보편적으로 가지고 있는 성본능 앞에서 이데올로기는 한갓 허위에 불과한 것이다. 또한 유전적 요인(김노인의 노망과 그녀의 손녀인 귀덕은 전쟁통에 정신 이상이 되었지만 유전적 요인도 내재되어 있다)과 환경적 요인(6.25전쟁)과 이데올로기의 대립, 한국적인 향토색에 의하여 전개되는 하층민의 실상으로 실증적으로 그리면서 그 안에서 본능과 감정에 기인한 인간을 진솔하게 표출하였다는 점에서사실주의극의 특징을 잘 보여주고 있다.

이따금 바람이 대밭을 흔들고 지나가는 소리가 으시시한 기운을 돋운다 규복은 점례의 허리에 손을 감고 열띈 시선으로 돌아본다) [규복] (더 힘껏 안으며) 점례! 나를 버리지 말아 줘! [점례] 꼭 어린애 같은 소리! [규복] 나는 이제 비로소 산다는 것이 무엇인가를 안 것 같아! 점례가 나를 대밭 속에 숨겨주던 그날부터 나도 줄곧 그것만을 생각했으니까! [점례] 저는 무식해서 무슨 말인지 모르겠어요! [규복] 몰라도 좋아! 이렇게 둘이서 가까이만 있다면--- (하면서 더 굳세게 허리를 죈다) [점례] (끓어오르는 욕정을 이겨 내려고 눈을 감으며) 아--- 이러지 말아요--- 이러시면--- 저는--(그러면서도 규복이가 하는대로 몸을 맡긴다) [규뵨] 그래, 점례 말대로 나는 죄인이야 그렇지만 점례를 좋아하고 있다는 건 속일 수 없어! 내 생명을 구해주고 내게 잃었던 사랑을 되찾아주고 그리고--- (스스로의 욕정을 지탱 못하는 괴로움이 짙다) [점례] 그만! 그만 해 둬요! (하며 규복의 목을 꼭 껴 안는다 멀리서 까치가 운다) ………… (중략) [사월] (눈빛이 날카로와지며) 나는 못 속여! [점례] 뭘 말이야 사월이? [사월] (바싹 다가서며) 지금 그 사람이 누구야? 응? [점월] (당황하며) 아, 아니--- 누군 누구야? [사월] 내가 묻고 있는거야! (달래듯) 아무한테도 말을 안할께 어서대! [점례] 도대체 무슨 얘기지? [사월] 아니 정말 이렇게 헛소리만 뱉을 턴가? 좋아! 그럼 내가 직접--- 물어 보고 올 테니까! (하며 대밭 쪽으로 간다 몇발 옮길 때까지 보고 있던 점례의 얼굴에서 새하얗게 핏기가 가신다) [사월] (바싹 다가서며) 점례! [점례] (상대방의 얘기를 경계하며 서 있다) [사월] 나도 그 남자를 돕고 싶어! [점례] (생기가 돌며) 정말? [사월] 점례가 그 남자를 동정하는 마음씨를 나도 알고 있어! [점례] (손목을 잡으며) 고마워! 그럼 아무에게도 말 안하겠지? [사월] 그럼! 그 대신 나하고 한 가지만 약속해 줘! [점례] 약속이라니? [사월] 우리 둘이서 하루씩 번갈아 가면서 그 분을 돌봐 주잔 말이야 ………(중략)


[규복] (자신을 저주하며) 울안에 갇힌 채로 가져다 준 먹이나 먹고 억지로 붙여준 암컷과 자는 돼지! 나는 사람이 아니라 짐승이 되고 말았어 돼지야! [점례] 선생님! [규복] 이상 참을 수는 없어 난 결심을 했어! [점례] 어떻게요? [규복] 이제 국군들의 공비 소탕 작전이 시작된다니까 그 전에 내 자신을--[점례] 자수하겠단 말인가요? [규복] 그 길밖에 없잖아? [점례] 그럼 나와 사월이는 어떻게 되죠? 선생님을 의지한 우리는 [규복] 의지했다고? 거짓말 마라! [점례] (매달리며) 가지 마세요! 안돼요 [규복] 나를 의지한게 아니라 이용했어 2년 동안 굶주려 온 당신네들의 욕망을 내게서 채워 보려고 나를 짐승처럼 길렀어 ……… (중략) (점례는 말없이 규복의 시체 옆에 다가와서 손발을 반듯이 제자리에 놓는다) [사병] 손을 대지 말아요 [점례] (거의 무표정하게) 내가 손을 댄다고 시체가 되살아나서 말을 하진 않을 거예요 모든 것은 하진 않을 거예요 모든 것은 재로 돌아가 버렸으니까 (하며 서서히 일어선다) 하늘이 피보다 더 붉게 타오르자 규복의 얼굴에도 반영이 되어 한결 처참하게 보인다

이 희곡의 핵심적인 장면만을 간추려 보았다. 짧은 장면임에도 불구하고 침이 꼴깍꼴깍 넘어간다. 인간의 가장 기본적인 욕구, 전쟁으로 인해 처절하게 외면당해온 과부촌의 그녀들. 그리고 그 속에 그 남자, 규복. 이후 사월의 등장으로 세 사람은 결국 겉잡을 수없이 절벽으로 떨어지고 만다. 규복은 어느 순간, 대밭에 갇혀 있는 자신을 발견하고는 돼지가 아니냐며 울부짖고 자수를 하려고 하지만 사월이에게 아이가 생긴 뒤였다. 그들이 이토록 뒤틀려 버린 것은 전쟁 때문이었을까? 결국 공비 소탕 작전으로 대밭은 불타오르고 규복은 불에 타 죽는다. 차범석 5주기 특별공연 ‘산불’

우리는 금지된 것만을 욕망한다. 그래서 이 희곡은 더 처절하고 더 불쾌하다. 전쟁이 인간성을 억압했다. 감정을 나누는 것, 내 존재를 확인하는 것, 이 작품에서 차범석이 이야기 하고 싶었던 것은, 전쟁의 참혹성 고발과 동시에 인간성을 억압하는 그 모든 것의 고발은 아니었을까? 욕망이란 금지된 것을 갖고자 하는 것이다. 이것은 금지가 없다면 욕망도 생길 수 없다는 뜻이다. ‘들어가지 마시오.’가 붙어 있는 잔디밭, 누구도 밟지 않았을 리 없다.

우리는 절정위에 서 있다. 규칙, 규율, 타인의 시선….

이것을 극복하지 않으면 우리는 분열되어 살아 갈 수밖에 없다. 내가 욕망하는 것, 과거의 누군가가 원했기


때문에, 혹은 금지이기 때문에 소망하는 것은 아닌지. 이런 불일치를 극복 했을 때 우리는 아마 조금 더 행복해 질 수 있을 것이다. 때늦은 후회로부터 자유로워 질 수 잇을 것이다.

……. 조금 다른 소리 이지만, 나는 요즘 내 일이 너무도 빡빡하여 나를 위한 선의의 거짓말을 하고, 하루 일을 쉬었다. 잘 먹고 잘 살려고 돈 버는데 이게 무슨 개차반같은 일상인지. 그래서 좋은 친구들과 GMF를 다녀왔다. 비록 다음날 강의가 걱정되어 격하게 소리는 지르지 못했지만 ‘쉬고 싶다.’ 라는 욕망의 절정에서 잠시 비켜 설 수 있게 되었다.

하루쯤 쉬어도 괜찮은 것 같다. 다음시간에는 시조 3편을 살펴보겠다. 주제를 살짝 공개하자면 늙음에 대한 시조인데, 벌써 11월 이다. 한 달 후면 12월이고, 1월이고 흐흑, 나이를 또 먹는구나.

지각하면 보강이다.

글, 고수진(gomin19@hanmail.net)


서울시 시민연극교실 참여기록

연출가. 이범

12. 9월 24일_햄릿_생각하는 배우의 탄생 셰익스피어 다. 무슨 말이 더 필요하겠는가! 아니라고? 그게 뭐, 라고 생각하는 분도 계시겠지. 9월 24일과 10월 1일에는 셰익스피어의 작품, <햄릿> 과 <로미오와 줄리엣>을 중심으로 한 강의가 이어 졌다. 소제목은 생각하는 배우의 탄생, 지구(글로브) 극장의 탄생. 9월 24일 강의에는, 강의 시작에 앞서 팀별로 자리를 앉으면 어떤가라는 책임강사의 제안이 있었고, 그렇 게 모여 앉았다. 내가 참여하는 <구름> 팀에서는 네 분의 시민이 강의에 참석. 우선 셰익스피어에 대한 가 벼운(?) 일화로 강의가 시작되었고, 지난 시간 강의에 대한 요점 정리가 있었다. 고대 그리스 연극의 유산 들_극장과 드라마와 배우와 축제(축하공연에 비극을 공연하던)와 연극이론의 탄생_을 다시 한 번 되짚어 보는 시간. 그리고 셰익스피어에 대한 이야기 시작, 책임강사는 이 시간의 내용들이 한권의 책에서 인용된 것이라며 그 책의 표지를 보여주었는데, 웹을 통해서도 어떤 책인지 찾지 못했다. 어쨌든, 강의는 16세기 영국의 풍경 안으 로 참여자들을 이끌고 가서, 셰익스피어의 삶과 시대---> <햄릿> ---> 독백과 햄릿의 생각---> 배우의 장면 연기---> 생각하는 배우의 탄생 ----> 셰익스피어의 유산 순으로 진행되어갔다. 그리고 셰익스피어의 생애를_위인에 대해 의례히 그러하듯_시기별로 정리해서, 그 삶이 작가의 작품에 어떻게 반영되어 나갔는가 라는 이야기.

13. 강의 스케치 - 옛날 사람 (1564.4.23.~1616.4.23.) - 이 글을 쓰고 있는 10월 중순 경의 회고(?)에 따르면, 일단 책임강사는 그 당시의 지명과 지도, 유래, 그 시절 한국의 역사적인 상황을 곁들여서 일반 시민들의 이해를 효과적으로 돕고 있는 것 같음. - 어쨌든 당대에는 맥주맛 감별사(?)라는 직업도 있었다고 한다. 이러한 종류의 여러 직업들이 언급된 것 은 셰익스피어가 가졌던 직업들, 거기서 얻어진 다양한 경험들이 작품 안에서 유려한 문장으로 변하는 지 점에 대한 언급이 있었고 - 당대의 도시를 묘사한 그림을 보면 극장에 걸린 깃발이 보이는데, 이 깃발의 색깔이 당일 공연의 내용 을 나타낸 것이라는 - 여러분도 알고 계시겠지만, 당대에는 남성 배우들이 여성 배역의 역할도 했다는 점_<셰익스피어 인 러 브> 라는 영화에도 이 지점이 재밌게 구성되어 있음 - 배우들은 기예에 가까운 여러 가지 재능과 기술을 가지고 있고, 작가는 스토리와 등장인물의 감정을 배우들에게 설명하고 이해시킨다. 그러면 배우들이 극적인 상황을 이끌어간다. 이끌어간다... 이끌어간다.... 물론 무대에는 프롬프터가 있기는 했겠지만..


- 강의 중, 내가 특히 흥미롭게 생각한 부분은 현재 우리가 서점에서 구입해 볼 수 있는 셰익스피어의 책, 현재 출판물에 새겨진 그의 희곡들과 당대 희곡의 차이점, 그러니까 우리가 지금 볼 수 있는 자세한 지문들은 당대에는 없었다고 한다. 그리고 언급된 당대의 극장과 무대, 이 부분은 강의 후에 나도 좀 자료를 찾아보게 되었는데.

<그림1. 당대의 무대와 움직임_출처_http://shakespeare.egloos.com/m/2612308>

- 한 블로거의 포스팅에 첨부된 이 사진, 두 개의 출입구와 가운데의 공간, 이곳에서 셰익스피어 희곡들의 그 많은 장면들이 다 해결되었다는 이야기인데... 등, 퇴장을 통한 장면 전환은 얼마나 또 빨랐을까. 실제로 이 리듬감을 적절하게 활용하는 연출가들이 요즘의 공연 현장에도 있다. - 작품 <햄릿>에는 총 7개의 긴 독백이 있다고 한다. 3층 객석, 3천여명의 관객에게 둘러싸인 저 무대에서 배우가 읆조리는 조용한 독백 ‘아, 나는 이제 혼자 남았구나.’_무대와 객석의 개념 구분이 모호하던 시대에 현재의 상황과 상치되는 배우의 간단한 읆조림, 그리고 거기서 발생하는 순간의 정적_ - 당대에는 관객이 느끼기에, 뭔가 부족하다 싶은 배우는 객석으로 끌려 내려가기 일쑤였다는 - 가장 빨리 말하기의 기네스북 테스트는 현재도 <햄릿> 의 3막 1장 독백으로 이루어진다고 함.


- 셰익스피어는 자신의 희곡 안에 연기술에 대한 조언을 심어 놓기도 했는데 “..Speak the speech, I pray you, as I pronounced it to you, trippingly on the tongue ….” “..대사를 말할 때, 제발, 내가 발음한 것처럼 자연스럽게 말해 주게..”

<그림2. 햄릿의 독백_출처: 김석만 교수님의 강의 자료 중에서>

- <그림 2> 는 햄릿의 그 유명한 독백을 구분해 놓은 것으로, 이번 강의의 제목이 왜 <햄릿_생각하는 배 우의 탄생> 인지를 간명하게 설명할 수 있는 자료로 보인다.

14. 생각들 - 셰익스피어가 현재 알려진대로의 역사적 인물이 아니라는 내용을 다룬_일종의 음모론(?)_그의 작품 을보면서 드는 일종의 의구심(?)_한 인간이 썼단 말인가 등등의_ 작품은 롤랜드 에머리히의 연출로 제 작된 영화가 있다. 압권이다. - 알파치노의 <뉴욕광시곡> 이라는 영화에는 소위, 셰익스피어와 관련된 현대의 유명인이 거의(?) 등 장한다. 이게 이 영화의 매우 흥미로운 점이기도 하고.


15. 10월 1일_ 로미오와 줄리엣_극장-지구 극장의 탄생 지난 시간에 이어, 셰익스피어에 대한 강의다. 물론 작품은 <로미오와 줄리엣>을 중심으로. 헌데 이 강의에서 이루어진 내용이 실로 방대하다. 소위, 르네상스를 관통하는 인문주의의 발현. 그 시 대의 분위기가 문학으로 스며든 시간들. 그 희곡이 공연되던 극장의 변화. 국가의 제전이나 제의의 형 식으로 이루어지던 공연의 형태가 아니라, 상업극장이라는 것이 등장하던 시기의 변화. 막말로, 전기 도 없던 시대 에 밤에는 어떻게 실내 공연을 했단 말인가. 책임강사는 서양 연극사의 중대한 사건으로 ①테스피스, 가면_역할을 맡다. ②실내극장_원근법을 통 한 ③전기의 발명 을 꼽고 있다. 그 중 ②번의 내용도 이 강의 중에 이루어졌다.

16. 파편적 강의 스케치 - 앞에도 언급했듯이 워낙 방대한 내용들의 진열이라, 인상적 기억에 의존한 스케치를 해 갈 수 밖에 없는데, 우선, 책임강사가 사는 동안 꼭 가봐야 할 곳이라고 까지 언급한 이태리의 한 극장 이야기.

<그림3. Theatro Olympico. 출처: http://blog.naver.com/PostView.nhn?blogId=justinceo&logNo=30125532845>

- 이 무대를 좀 자세히 보고 싶었는데, 한 블로거의 포스팅을 찾아냄. 원본 사진은 그곳에 멋지게 포스팅 되어 있으니 참조하시길 바란다. 이탈리아 비첸자에 있고, 16C에 지어진 극장이라고 한다. 무대는 프로시니엄(액자 무대) 형태로, 원근법을 활용해 <오이디푸스 왕>의 극적 장소가 되는 테베시를 형상화해 놓음. 직접 보면 정말 광장하다, 아름답다고 한다. 극장이 마모되는 것을 걱정해서 공연도 많이 안 한다는 후문. 1585년 3월 4일. 이곳에서 공연된 <오이디푸스 왕> 공연을 본 한 관람객의 일기를 낭독해 주심. - 갑자기 셰익스피어로 넘어가서, iambic pentameter/ 약강 5보격, 라임 등등의 단어를 들어보신 적 있 으신가? 영문학도라면 익숙한 단어일테고, 라임이야 뭐... 이 설명을 위해, 책임강사의 강의자료 텍스트_ 셰익스피어 희곡의 대사_를 그대로 옮겨본다. 굵게 칠해진 단어들에 주목해서 함 재미삼아 읽어보시길


Shall I compare thee to a Summer’s day? 그대를 여름날에 비할 수 있을까요? Thou art more lovely and more temperate: 그대가 보다 사랑스럽고 온화하네요. Rough winds do shake the darling buds of May, 거친 바람이 5월의 매력의 꽃망울 흔들면 And Summer’s lease hath all too short a date: 여름날은 너무나도 짧습니다. - 셰익스피어의 묘비명은 라임으로도 유명하다고 한다 Good friend for Jesus sake forebeare 착한 친구들이여, 하늘에 걸어 부탁하노니 To digg the dust enclosed heare 여기 묻힌 유해를 파헤치지 않기 바라오! Bleste bee the man that spares these stones 이곳의 돌들을 소중히 여기는 자에게 복이 있을지니, And curst be he that moves my bones 그리고 내 유골에 손을 대는 자에게 화가 있을지라 - 최초의 상업극장들. 씨어터(1576), 로즈(1587) 스완(1596) 셰익스피어 작품의 상연으로 유명한 지구(글로브) 극장은 1599년에 씨어터의 목재를 빼다가 지었다는 이야기도 있다. 1644년에 패쇄 되었는데, 1660년에 재개관해 최초로 여배우가 출연하기도 했다는. 재건축된 현재의 극장은 미국의 영화배우이자 감독, 샘 워나메이커 의 모금활동으로 착공된 것이라고 한다. http://www.shakespearesglobe.com/ - 20만 명 정도가 거주하던 이곳에서, 매주 2,3만 명의 사람들이 연극을 감상했고, 무대 앞 마당석의 관람료는 요즘의 점심 한 끼 값 정도. 관람은 음식과 술과 함께. - 셰익스피어는 <로미오와 줄리엣> 의 초연 당시_16C 말, 약제사로 출연했다고 함. 유명해지고 난 뒤에는연봉이 요즘 돈으로 환산하면 1억 8천만원 정도 됐다는. 그는 또한 현재도 사용되는 2,000 여개의 영어 표현을 만들어냈다고 한다. * 사실 이외에도 여러 가지 흥미로운(?) 이야기들이 있는데, 아무래도 연재되는 지면의 분량 상, 이 달의 내용은 여기에서 멈추어야겠다. 그리고 이 시민연극교실에 참여하는 다른 하나의 축, 일반 시민분들과의 공연 연습 내용도 빠졌다. 아 그래도 마지막 한 가지, 당대 이탈리아의 공연 이야기를 하던 중_ 광장에 기다랗게 이어진 부스들처럼 연속되는 무대를 걸어가며 공연을 관람하는 풍경_ 그 무대의 말미에 보여지는 장면의 내용이 갑자기 모나미(MONAMI) 볼펜으로 귀착되었다. 모나미 볼펜의 153, 적적할 때 초록 검색창에 한 번.


신당동 파르한의 음악소개소 안녕하세요. 이번 달부터 음악소개소를 기고하게 된 신당동 파르한입니다. 이달부터 한국 음악을 위주로 소개하려 합니다. 첫 회에서 소개할 음악은 모두 과거와 관련된 음악들입니다. 제가 이 노래들을 들으면서 느꼈던 좋은 기분을 함께 나누고 싶습니다. 저만의 이유가 있는 선곡이지만 여러분이 제 글을 읽고 같은 기분을 느끼셨다면 정말 기쁠겁니다. 앞으로도 잘 부탁드립니다. 신당동 파르한 (@chungchoon98)

1. 그리고 그가슴 텅 비울수 있기를 장필순 <Soony Seven>(2013), 트랙 4 정처없이 걷던 가을 날 이 노래를 들었다. 감성적인 말은 안좋아하지만 솔직히 가을이 느껴지는 음악이었다. 가사가 나오기전의 뚜뚜 하는 부분도 좋고 서늘한 목소리가 너무 와닿는다. 처음에는 약간 어두운 것 같다가 밝게 변하는 부분이 인상적이다.

2. Self Happy Christmas & New Year 크라잉넛 <FLAMING NUTS>(2013), 트랙 9 이들의 신나는 노래는 나를 춤추게 하고, 감성적인 노래는 특유의 좋은 가사와 멜로디로 있지도 않는 시절에 대한 향수를 자극한다. 이 노래의 경우 ‘술 취해 비틀대던 친구 놈들 이젠 보이지도 않아’ 하는 부분이 그 절정이다.

3. 럭셔리 버스 원 모어 찬스 <원모어찬스>(2010), 트랙 5 유재하 음악경연대회 대상 출신인 정지찬과 박원의 원 모어 찬스. 2010년 한 케이블 방송의 유재하 동문회에서 처음 공개된 노래로 방송에서 원 모어 찬스 멤버뿐만 아니라 다른 유재하 음악경연대회 동문들도 함께 연주하는 모습을 볼 수 있다.


4. 4월 16일 옐로우 몬스터즈 <Riot!>(2011), 트랙 4 올해 발매된 3집 <Red Flag>를 좋아하게 된 후에 2집 <Riot!>을 알게 되었다. 이들이 좋은 이유는 센 노래든 상대적으로 덜 센 노래든 옐로우 몬스터즈 만의 색깔이 느껴지기 때문이다. 그리고 나는 어른들이 충고하는 것은 잘 듣지 않는데 이들의 가사는 무조건적으로 받아들이게 된다. <4월 16일> 역시 이 순간을 소중히 하라고, 아직 늦지 않았다고 하는데 어른들이 시간을 잘 활용하라고 할 때는 오히려 반항심이 들었지만 노래를 들으면 바로 반성하게 된다.

5. Reality 악퉁 <Reality>(2011), 트랙 1 한창 음악을 찾아듣기 시작할 때, 음반사이트에서 우연히 이 EP를 발견했다. 당시 미대를 준비한다는 핑계로 공부를 열심히 하지 않았지만 그마저도 수능이 반영되는 전형이었다. 고등학교 3학년 때 이 노래를 들으며 나를 뒤돌아봤다. 때론 절망에 빠질 수 있지만 자신에게 솔직해야한다. 단순히 스스로 반성하는 것 이상으로 아무것도 하지 않는 것을 합리화하는 자신을 반성하는 노래는 흔치 않을 것이다.

6. 잊혀진 거리 버닝햅번 <Life Goes on>(2010), 트랙 4 버닝햅번은 대전을 홈그라운드로 하는 펑크 밴드이다. 그들의 2집 앨범 <Life Goes on>에 수록된 노래 가사에는 다른 많은 펑크 음악에도 나오는 술, 사랑, 밤 등이 등장하고 욕이 나오기도 하지만 그런 소재가 뻔하게 느껴지지 않고 개인적으로는 정말 아름다운 펑크 음악을 한다고 말하고 싶다. 노래들을 들으면 절로 옛 생각이 나기 때문이다. 그 중에서도 <잊혀진 거리>는 ‘싸구려’ 감상 이라는 가사 때문에 더 기억나는 노래이다. 아직까지 나의 회상이 싸구려라고 까지는 생각하지 않지만 그 기분은 충분히 이해한다.

7. 안녕 생각의 여름 <안녕>(2012), 트랙 1 <안녕>을 들으니 얼마 전 일이 기억난다. <서른 즈음에> 기타 코드를 찾다가 한 블로그에서 ‘젊은 사람들은 옛 생각을 하는 이 노래보단 사실 희망을 노래하는 음악을 들어야 한다’는 글을 보았다. 나는 과거에 매달려 있던 적이 많아 공감할 수 밖에 없었다. 가사 처럼 이제는 ‘보내도 가지 않는 시절이여, 안녕.’


<0,0,0>

야행성Night Planet

twitter : @hitchhiker_j

“집안 가구의 90% 이상이 이케아 제품이던 유학생 부부의 아파트”


<여덟번째 집(2010)>

4학년 2학기. 6학점 짜리 설계 수업 마감을 앞두고 일주일 가까이를 학교에서 먹고 자며 지냈다. 집에서 학교까지 1시간 40분. 버스와 지하철을 갈아타며 통학에 써야 하는 시간과 체력이 아깝기도 했지만 그 즈음 집에 가면 엄마를 마주쳐야 하는 게 불편해 외박이 잦았다. 마음의 피로감에 비하 면 설계실 책상 위에서 자는 몸의 피로가 나았다. 일주일 만에 꾀죄죄한 모습으로 집에 돌아오자 현관 앞에 26인치 여행용 캐리어가 나와 있었다. 저 안을 채운 것이 내 물건들 일까. 그렇다면 이 건 집에서 나가라는 신호 일까. 용돈이야 벌어 쓰고 옷이야 안 사 입으면 된다지만, 집을 두고 협 박을 하는 거라면 너무 치사한 게 아닌가 비몽사몽간에 이런 생각들을 떠올리며 일단은 방에 들어 가 쓰러지듯 잠을 잤다. 퇴근하고 돌아온 엄마가 방문을 열어 자고 있는 나의 그림자 위로 깊은 한숨을 뱉어내는 소리가 들렸지만 별다른 말 은 없었다.

얼마나 잤을까. 방문을 열고 거실로 나가자 현관 앞에 놓여있던 캐리어가 보이지 않았 다. 집에서 빈 집 특유의 적막함이 느껴졌 다. 상황 파악이 되지 않았지만 엄마에게 직 접 물어볼 생각은 하지 않았다. 당시 엄마와 나는 밥은 먹었는지 같은 생활의 세세한 부 분은 물론이고, 인생의 방향을 바꿀 만한 굵 직굵직한 일들도 나누지 않을 정도로 사이가 좋지 않았다. 다음 날이 되어서야 언니를 통 해 언니의 산후 조리를 돕기 위해 엄마가 얼 마간 미국에 갔다는 이야기를 들을 수 있었 다. 엄마가 미국에 다녀오고 얼마 지나지 않 아 나는 휴학을 하고 언니에게 가겠다고 통 보했다. 그게 엄마와 함께 살았던 일곱 번째 집에서의 마지막 기억이다. 엄마와 따로 살 기 시작하면서 대한민국 국민의 절반 이상이 살고 있다는 아파트 평면에서도 벗어났다.

WALNUT HILL


한국에도, 미국에도 눈이 많이 내렸던 날이다. 세 차례의 연 착 끝에 미국에 도착했다. 언니가 살던 동네는 학교와 학교 관 련 시설들이 모여있는 잘 짜여진 대학 도시University City 였 다. 마치 아파트 단지처럼 담장을 두르고 지역 사회와 분리되 어 섬처럼 존재하는 우리나라의 대학과는 다르게 도시에서 대 학이 차지하고 기여하는 비중이 큰 점이 인상적이었다. 딱히 대학의 경계랄 것이 없이 개방된 캠퍼스 자체가 하나의 마을이 었다. 가장 오래된 교육 시설들이 모여 있는 중심부가 있고, 주변부로 갈수록 공원, 도서관 등의 지역 주민들을 위한 문화 시설들이 한데 섞여 있었다. 학교 주변에 극장, 대형 슈퍼마켓 같은 문화, 상업 시설, 아파트 같은 주거 시설을 개발할 때도 지역 주민들과의 협의를 통해 학교에서 상당 부분을 투자해서 진행한다고 했다. 대학도시를 중심으로 강을 건너 동쪽으로 가 면 업무시설과 상업시설들이 몰려있는 도시 중심가인 센터시티 Center City가, 더 멀리 가면 구시가인 올드시티Old City가 있 었다. 대학도시의 서쪽에는 가난한 사람들이 모여 사는 주거지 역이 있었는데, 가끔 차를 타고 지날 때 본 정도지만 겉보기에 도 굉장히 낙후되어 있었다. 처음 언니가 동네를 설명해줄 때 했던 이야기 중에 서쪽으로는 절대 가지 말라는 경고가 포함되 어 있던 기억이 난다. 여덟 번째 집은 대학 도시의 서쪽 끝자 락에 있던 학생 아파트이다. 대학 캠퍼스 안에 기숙사 건물들 이 따로 있으면서도 학교 주변에는 언니가 살던 집처럼 학교에 서 건물을 사들여 직접 관리하는 주거 시설이 많았다.

남쪽 길에 좁게 면한 건물의 입면에는 서양 고전 건축의 장식 적인 요소들이 요란하게 붙어 있었다. 건물 안으로 들어가 엘 리베이터를 타고 올라가면 폭이 2m 정도 되는 길고 어두운 복 도가 나왔다. 복도를 사이에 두고 양쪽으로 문들이 쭉 나있는 게 꼭 호텔 복도처럼 느껴졌다. 집마다 ‘WELCOME’ 따위가 쓰 여진 현관 매트가 문 앞에 놓여 있고, 아무런 장식 없이 투박 하고 무거운 문을 열고 집안으로 들어가면 정면에 거실이, 왼 쪽으로 주방이 있었다. 집 안에 신발을 벗고 들어가 좌식 생활 을 하는 우리나라의 경우, 거실과 현관에 10cm 정도의 높이 차 이를 주어 신발에 묻은 흙이나 먼지가 거실로 딸려 들어가지 않도록 하고, 단 차가 나는 부분에는 바닥 난방을 위한 설비가 들어간다. 이 집은 바닥 난방도 없고, 신발 벗을 일도 없으니


현관문 안쪽으로 현관과 거실의 구분 없이 바로 바닥에 카펫이 깔려 있었다. 바닥 난방은 없지만 언니는 여전히 좌식 생활을 하고 있었는데, 이사 들어올 때 관리 사무실에서 카펫을 새로 깔아주 었다고 했다. 현관문 왼편에 있던 주방은 대학생들이 사는 집에 있을 법한, 구색만 갖춰놓은 주방 이 아니라 번듯했다. 싱크대 배수구에 음식물 찌꺼기를 갈아서 물과 함께 흘려버리도록 하는 분쇄 기가 있었고, 싱크대 높이가 높아 설거지하기 편했다. 분쇄기가 자주 고장나서 싱크대가 막힐 때 마다 관리 사무실에서 수리하는 사람이 방문하곤 했는데, 재미있는 건 이 사람들이 집안으로 들어 올 때 절대로 신발을 벗지 않았다는 것이다. 임차인의 집 안에서 신발을 벗는 것이 행동 규정에 위반된다고 했다. 그래서 신발을 벗는 대신 신발에 비닐 봉지를 씌우고 집안으로 들어왔다. 동양 사람들이 집안에서 신발을 벗고 생활하는 걸 이해하면서도 그런 규정을 예외없이 엄격하게 적용하 는 이유가 궁금했지만 호기심을 해결하기에는 영어가 짧았다.

언니가 학교에 가면 집에서 신생아인 조카를 돌보거나 유모차를 끌고 나가 집 주변을 산책하다가, 언니가 학교에서 돌아오면 집 근처 카페를 가는 게 생활의 전부었다. 대부분의 시간을 보내는 거 실에는 창문이 하나 뿐인데다 동향이라 오전에만 잠깐 볕이 들고 말았다. 13년을 거실에 전창이 있는 집에서 햇빛 아쉬운 줄 모르고 살다가 햇빛을 쬐기 위해 밖으로 나가야 하는 집에 산다는 게 낯설었다. 햇빛이나 날씨 같은 환경 조건이 사람의 기분에 영향을 미친다는 것도 이 집에 살면서 처음 알았다. 창문 아래에 접었다 펼 수 있는 소파 베드가 있어 주로 여기서 잠을 잤는데, 이리 누워도 저리 누워도 불편한 잠자리였다.

이 곳에서의 생활에 대해 큰 기대를 품고 온 건 아니었지만, 생각보다 더 지겹고 지루한 날들이었 다. 열심히 놀고 열심히 공부하는 대학생들 사이에서 유모차를 끌고 동네를 어슬렁 대며 내가 지 금 뭘 하고 있는 걸까 불안하기도 했고, 무엇보다 언니가 자기 가정을 꾸리면서 변화된 언니와의 관계에 적응하는 게 어려웠다. 생각해보면 3, 4년의 시간동안 가족에게 많은 변화가 있었고, 그 이후의 우리 가족의 모든 문제는 아빠 없이 남은 세 사람의 관계의 균형이 깨어지면서 생긴 것 같 다. 아빠, 엄마, 언니, 나 이렇게 넷이 모여 가족이라는 관계를 만들고 있었고, 그 안에서 자기 역할을 하며 균형을 이뤄 살고 있다는 건 균형이 깨어지기 전에는 몰랐던 사실이다. 아빠의 자리 가 비워지면 남은 세 사람이 지금까지의 역할을 계속 해나간다고 관계가 저절로 유지되는 게 아니 라, 변화한 상태에서 각자가 새로운 역할을 맡고, 새로운 관계를 만들어야 했지만 그러기엔 다들 자기 마음 추스리느라 바빴고, 그건 다시 서운함이 되어 돌아왔다. 남은 세 사람이 관계를 새롭게 만들고 거기에 적응하기도 전에 언니가 결혼을 했고, 여전히 우리는 가족이란 이름 아래에 있지만 모든 게 전과 달랐다. 언니랑 형부에 조카까지 복작 복작하게 사는 게 좋으면서도 그 안에 완전 히 섞여들지 못하고 내내 남 같았다. 불만과 서운함은 쌓여가는데 말로 꺼내는 것도 쉽지 않았다. 문제에 부딪혔을 때 상황을 객관적으로 바라보고, 개선할 방법을 찾기 위해 고민하고 노력할 만 큼 성숙하지 못했기 때문에 내 마음을 몰라주는 세상 모두에게 서운해하며, 또 어디로 도망을 칠 까 머리를 굴렸다.


건축이 좋아 #3

aoikasa

자세히 보아야 예쁘다 오래 보아야 사랑스럽다 너도 그렇다

(나태주, 풀꽃)

‘용산’ 철도 병원

사실 이 건물에 대해 아는 사람은 그다지 많지 않다. 아마 나 역시도 일이 아니었다면, 영영 모르고 지나쳤을지도 모른다. 용산에 사는 이들도 그저 지나가다 본 허름한 옛날 건물 정도로 기억하는 정도가 아닐까 싶다. 국제화를 꿈꾸며 기존의 흔적을 다 지워버리고 엄청난 개발을 하고 있는 용산에서 지금까지 꿋꿋이 버텨온 것이 오히려 신기하게 느껴질 정도이니 이 건물이 그다지 눈에 도드라져 보이지 않는 건 당연한 일일지도 모른다. 용산철도병원이 이 곳에 지어진 것은 1928년의 일이다. 무려 85년의 세월을 그 곳에서 버텨 왔다. 이 곳에 용산철도병원이 건립된 것은 이 곳, 용산이 당시 철도의 중심지였던 데다가 일본인들이 주로 거주하던 지역이기 때문이었다. 용산은 1904년 러일전쟁을 지나며 일본군의 군주둔지와 철도용지로 개발되기 시작되었으며, 경인선의 보통역에 불과했던 용산역은 경의선의 시발점이 되며 남대문역(현재의 서울역)과 함께 서울의 주요 관문이 되었다. 한강 유역의 작은 포구에 불과했던 용산이 1904년 이후 급속도로 발전하여 새로운 계획도시가 되기 시작한 것이었다. 물론 새롭게 개발된 지역은 일본인들의 거주지였으며, 이러한 과정에서 용산철도병원은 ‘철도관련 종사자’와 ‘일본인들을 위해’ 만들어진 ‘최신식 의료기관’이었다.


용산 ‘철도’ 병원 20세기를 전후한 시기, ‘철도’란 바로 ‘근대’의 표상이자 ‘근대’의 전파자였다. 늘 같은 공간에만 살아가던 사 람들은 기차를 타고 새로운 세상으로 떠나가는 꿈을 꾸게 되었고, 그 놀라운 속도는 도시의 일상을 살아가는 사람들의 시간과 공간의 감각을 변형시켰다. 게다가 기차를 타고 오는 새로운 사람들로부터 전해지는 새로 운 문화와 문물들… 이 모든 것은 바로 철도가 가져온 근대의 바람이었을 것이다. 1930년대 영화들에서 자주 기차가 달리는 장면들이 등장하는데, 이 역시 분명 ‘철도’가 주는 근대적 감각을 기대하는 것이 아니었을까. 그런데 생각해보면 철도라는 것이 그렇게 낭만적인 것만은 아니었을 것이다. 철로건설을 위해 누군가는 집을 잃고 논밭을 잃어야만 했을 것이며, 누군가는 그 건설현장에서 다치고 죽었을 것이다. 철로건설 이후 에도 기찻길 주변에서 사건사고는 끊이지 않았을 터… 그래서 일본은 철로건설과 함께 철도를 따라 철도병 원을 만들었다. 특히 ‘외상환자’가 많을 수 밖에 없었기에 외과치료가 주된 목적이 된 병원과 진료소들이 용 산과 평양, 대구, 대전 등의 철도중심지에 생겨나기 시작하였다. 특히 용산철도병원은 조선 철도의 중앙병 원으로 철도관련시설의 중심지에 위치하여 철도관련 사고 환자들의 치료 뿐 아니라 철도 종사원과 그 가족 들의 의료를 담당하였다.


1. 약국 앞 대합소: 1층 출입구를 들어오면 바로 나오던 공간, 목재를 사용하여 고급스러운 분위기가 나게 하였던 듯 하다.

2. 내과대합실 : 1층 왼측의 복도 앞 공간, 반복되는 아치 사이 공간을 대합소로 사용하였다.

용산 철도 ‘병원’ 병원 역시 근대와 함께 등장한 시설이다. 즉 용산, 철도, 병원은 모두 1900년대 초반이라는 시대적 상황과 매우 밀접한 연관이 있는 키워드들이다. 한국에 처음 근대식 병원이 생긴 건, 잘 알려져 있듯이 1885년 미국 인 의료선교사 알렌에 의해 만들어진 제중원이 등장하면서 부터이다. 이후 한국의 근대의료는 서양인들과 일본인들, 두 그룹에 의해 주로 진행되었다. 일본인들의 의료기관의 경우 개인들이 경영하는 의원들도 다수 존재하였지만, 병원 규모의 경우 대부분 조선총독부병원과 각 지방의 자혜의원들(1925년 이후엔 도립병원 으로 개칭) 을 포함한 관립의료기관들이었으며, 철도병원을 포함한 특수병원들이 있었다. 그런데 이 일본이 운영하던 병원들의 경우, 우리가 영화나 드라마에서 수도 없이 많이 보았듯이, 일본인과 한국인에 대한 차 별적 진료를 시행했을 뿐 아니라, 자혜의원이라는 이름에서 알 수 있듯이 ‘대일본제국이 불쌍한 조선인들에 게 은혜를 베푼다’는 식으로 권위적이고 위압적인 태도로 일관하였다. 이는 병원 건축에서도 그대로 드러나는데, 현재 서울대학교 병원 의학박물관으로 사용되고 있는 조선총 독부병원 (1910년 이전까지는 대한의원)이며 도립병원들은 모두 서양 고전주의 스타일로, 벽돌이나 돌을 사 용하여 완전 대칭적인 평면과 입면을 가진 건축물들로 주로 건축되었다. 그러나 이와 같은 관점에서 바라보 는 용산철도병원은 조금 다르다. 1928년, 즉 서양의 모더니즘 건축이 차츰 소개되고 있었던 시대적 상황상 이 병원은 대칭적인 평면도 입면도 사용하지 않았다. 오히려 입구를 오른편으로 치우치게 만들어 평면도 입 면서 비대칭적인 구성을 가지게 되면서 이전 병원건축들에 비해 훨씬 자유로운 구성을 만들어 내었으며, 그 스타일에 있어서도 벽돌과 콘크리트를 혼합하여 사용하며 서양 고전주의 스타일과 모더니즘 스타일이 혼용 된 절충주의 스타일의 건물을 만들어 냈다. 당시 이 건물에 대해 다루고 있는 ‘조선과건축’이라는 잡지의 기사에서는 이 병원의 디자인은 ‘간소함과 실 용성’을 주제로 최대한 ‘장식과 기교’를 최대한 제한하고자 하였다고 언급하고 있다. 그러나 사실 오늘을 사 는 우리들의 눈에는 여전히 이 건축물도 장식과 기교가 많고 모던하기 보다는 클래식해 보이는데, 대체 이 건물을 만든 이의 의도는 어디에 있는 걸까 궁금해진다. 바로 여기서부터 이 건물을 요리 보고 조리 보며 뜯 어보기 시작하였다. 1920년대 중후반이라는 시대적 상황을 감안하면서, 이 건물이 새롭게 한 시도들은 무 엇이었을까가 궁금해 진 것이다.


3. 뢴트겐실 : 위치는 불명확하지만, 이 시대에 뢴트겐실이라니! 하는 놀라움을... 아무래도 외상 전문 병원이었으니 필수였을 듯 하다.

4. 부인과진료실 : 1층 입구에서 들어와서 가장 가까운 곳에 위치. 설명에 따르면 거동이 어려운 임산부를 위해 가까운 곳에 진료실을 위치하게 하고

용산철도병원은 이전의 병원에서 보이던 대칭성, 중심성이 보이지 않는다.


자세히 보니 예쁘다. - 일단은 앞서 이야기 한 바와 같이 비대칭적인 평면 과 입면. 분명히 한 쪽 코너에 입구를 두는 방식은 당 시 병원으로서는 낯선 구성 방식. 주출입구는 용산 역을 마주한 대로변에 둠으로써 동선의 효율성을 최 대한 추구한 것이 아니었을까. 부출입구는 응급환자 의 수용을 위해 반대편 복도 끝에 두어 응급실-수술 실로 연결되게 만든 것 역시 조선철도의 중앙병원으 로서의 ‘권위성’보다 실용성을 목적으로 한 것같다. - 생각보다 내부에 들어가보니 매끈한 벽들이 많이 눈에 띄인다. 즉, 장식하느라 이래저래 튀어나오고 들어오고 한 부분들이 없다는 것이다. 하얀 벽들이 길게 늘어선 장면은 꽤 모던한 느낌을 주기도 한다. - 이 건물을 보면 유독 동그란 모서리 처리가 눈에 띈다. 외벽의 모서리며, 옥상난간, 내부의 벽과 천장 이 만나는 부분이며 계단 난간까지 전부 둥글게 둥 글게 처리해두었다. 이는 디자인 상으로 면과 면이 만나는 부분의 장식적 처리 대신 동그랗게 굴러가 는 자연스러운 면처리를 통해 새로운 변화를 만들 어낸 것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든다. 병원이라는 특 성상 모서리를 줄임으로써 환자들에게 심리적 안정 과 함께 안전한 공간을 만들어내는 기능적인 이유 도 있었을 터이고… - 엘리베이터가 아직 설치되지 않았던 시절, 지하의 정련실(약을 조제하는 곳)과 위의 약국 사이에는 작 은 수동 엘리베이터가 있었다고 한다. 사실 엘리베 이터라 하기엔 거창하고, 약을 올려주는 작은 도르 래 장치라고 표현하는 게 맞을 듯 하지만… 현재는 남아 있지 않지만 꽤나 귀엽고도 기능적인 것이 아 니었을까 하는 생각. - 당시 건물들이 층고가 높긴 하였지만, 이 건물 층 고가 꽤나 높다. 그래서 1층과 2층을 잇는 중간 계 단참은 상당히 높은 편인데, 그래서인지 이 계단참 의 원형창에서 드는 햇빛은 마치 천상의 빛 같은 느 낌을 준다. 전체적으로 어두운 복도와 로비공간을 지나 이 곳에서 맞는 햇빛이란… 꽤나 낭만적이다.


오래 보아야 사랑스럽다. - 이 건물이 세상에 알려진 것은 아마 김란기 문화유산연대 공동 대표의 글을 통해서였던 거 같다. 2008년 이 분의 글을 통해 세간의 관심을 받게 되면서 등록문화재로 지정되었고, 2009년 존폐위기를 겪기는 하였으 나 지금껏 잘 버텨왔다. 2011년 중앙대학교 병원이 전부 이전해나감에 따라 지금은 그냥 비워져 있는 상태 로 남겨져 있지만, 그 동안의 철거 위기 속에서도 (사실 이 건물을 부수고 고층건물을 지으면 그 수익이 얼 마겠는가) 잘 버텨주어 고마운 기분마저 든다. - 85년의 세월을 지나며 어쩔 수 없이 이 건물도 많은 변화를 겪었다. 입구 부분의 포치는 도로가 확장되면 서 잘려나갔고 내부공간활용에도 많은 변화가 일어났다. 출입구의 변형과 같이 눈에 두드러지는 변화 외에 도, 창호가 교체되고 내벽의 페인트칠이 덧대어지고, 각종 설비들이 교체되며 상당 부분 변화하였다. 다양 한 종류의 라디에이터들과 창호들, 철물들의 모습을 보고 있노라면 마치 이 건물이 지나온 시간들을 보는 듯한 기분도 든다. - 벽돌이라는 재료는 시간이 갈수록 더 매력적이 되는 재료인 듯 하다. 특히 이렇게 오래된 건물에서는 오랜 시간 동안 부분 부분 교체되며 만들어진 벽돌들의 시간의 켜를 발견할 수 있어 벽돌의 매력이 몇 배나 더 해 지는 것 같다. 처음 건축될 때부터 여러 종류의 벽돌을 사용하기도 하였지만, 분명 시간이 지남에 따라 빠지 고 더해지면서 만들어진 시간의 그라데이션. 햇살과 담쟁이넝쿨과 함께 하면 금상첨화. - 더 오래 보고 싶다. 자연스레 늙어가는 그 모습 그대로… 새롭게 화장, 아니 성형수술을 하고 나타나지 않 았으면 좋겠다. 용산철도병원이 가지고 있었던 그 이야기들을 그대로 가지고, 그리고 앞으로의 이야기들을 그대로 쌓아갈 것을 준비하면서… 지금은 다 사라지고 없지만, 100년 전 용산의 모습을 기억하면서 ‘오래 보 아 사랑스러운’ 건물로 남아줬으면 좋겠다.

용산철도병원은 지난 9,10월호에 다루었던 두 건물, 테시마 미술관과 솔크연구소와는 그 성격이 매우 다르 다. 유명한 건축가의 걸작도 아니고, 우리 역사에서 특별한 의미가 있는 건물도 아니다. 오히려 일본인들이 만든 그들의 병원이라는 측면에서는 오히려 네거티브한 의미가 더 강할지도 모른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처럼 바르게 변하는 이 도시에서 85년이라는 세월을 버텨 온 이 튀지 않는 건물이, 그가 겪은 시간의 힘 만 으로도 내겐 소중하게 여겨진다. 자세히 보니 예쁘고, 오래 보아야 사랑스러운 들꽃처럼 말이다. <끝>


- 이 달의 선정 도서 『아무래도 싫은 사람』, 마스다 미리, 박정임 역, 이봄, 2013

회사를 다니고 있다. 동료 중에 아무래도 싫은 사람이 있다. 당신이라면 어떻게 할 것인가? 무시? 같이 일을 해야 하는 데 무시를 할 수 있을까? 그럼 그러려니 한다? 그러려니 할 수 없을 정도로 싫다면? 싫어 죽겠다면 어쩔 텐가? 생각하 는 것만으로도 기분이 찝찝해진다면?

이 만화는 이런 난감한 내용을 담고 있다. 난감하긴 한데 주위에서 쉽게 마주할 수 있는 상황이다. 주인공은 결국 어 떤 행동을 취한다. 당신이라면 어떤 행동을 취하겠는가?.

- 도망치려야 도망칠 수 없다? 엄마를 보자마자 말문이 터졌다. 쉴 새 없이 떠들어대는 나를 보며 스스로도 놀랄 정도였다. 나는 주변 의 모든 것들을 헐뜯었다.

학과장은 돈과 여자만 좋아한다, 학생들에게서 전공에 대한 열정 같은 건 눈곱만큼도 찾아볼 수가 없

다, 오로지 취업, 또 취업, 비싼 대학원 등록금을 벌기 위해 아르바이트를 뛴다는 것이 말이 되느냐, 공

부하는 데에 그토록 돈이 많이 필요한 이유가 무엇이냐, 지방 국립대 대학원이 그렇게 별 거 아닌 것으 로 보이냐, 등등.

엄마는 묵묵히 내 이야기를 듣기만 했다.

엄마는 늘 그런 식이었다. 내가 불평을 하면 언제나 묵묵히 이야기를 듣기만 했다. 원래 성격이 그러니 어쩔 수 없다고 넘길 만한 수준이 아니었다. 울며불며 고등학교를 자퇴하겠다고 이야기할 때에도 엄마 는 가만히 내 이야기를 듣기만 했다. 그리곤 한 마디. “네가 그렇게 하고 싶다면 그렇게 해.”

그러자 아빠가 나서서, 나를 설득하기 위해 이런저런 이야기들을 늘어놓았다. 엄마는 아빠를 제지하며

다시 한 번 힘주어 말했다.


“네가 결정한 일이라면 그렇게 해.”

그때는 정말 학교를 그만두고 싶었다. 배우는 것 없이 그렇게 오랜 시간 동안 한 장소에 갇혀 있는

건 인생의 낭비라고 생각했다. 그렇지만 내가 엄마에게 그런 이야기를 했던 것은 자퇴를 하고 싶다면

하라는 이야기를 듣기 위해서가 아니었다. “자퇴하면 어쩌려고 그러니?”라거나, “지금은 낭비라고 생

각하겠지만 나중엔 즐거웠던 기억으로 남을 수 있어.”라는 식의 이야기를 듣고 싶었다. 학교생활이 답 답한 만큼 그만두는 것에 대한 두려움도 컸던 것이다. 투정이었다. 하지만 엄마는 단호하게 말했다. “자퇴하고 싶으면 해.”

결국 나는 자퇴를 하지 않았다. 나는 그때의 기억을 떠올리곤 이야기를 그만두었다. 그러자 갑자기 왈칵 눈물이 났다. “엄마는 왜 그래?” “응?”

“엄마는 왜 그렇게 듣기만 하는 거야?” “네가 이야기를 하니까.”

“그게 아니라, 어떻게 동조 한 번 안 해줄 수가 있냐고!” “동조?”

“이제 와서 이렇게 말하는 것도 웃기지만, 엄마는 내 말에 단 한 번도 동조란 걸 해준 적이 없잖아.” 엄마는 눈을 동그랗게 뜨고 나를 쳐다보았다.

“난 늘 네게 선택권이 있지, 내게 있다고 생각하지 않았으니까.” “그게 무슨 소리야?”

나는 엄마의 말이 무슨 말인지 도무지 이해할 수 없었다. 어리광을 피우는 딸에게 선택권 운운하다

니……. 전혀 와 닿지 않는 이야기…….

“네 인생은 너의 것이라는 이야기야. 나는 네게 어떤 영향도 끼칠 생각이 없어. 나는 내 인생을……” 엄마는 말을 잇다 말고, 고개를 돌리더니 헛기침을 했다.

“나는 늘 내 인생에 대한 선택권이 없었어. 도망치고 싶어도 도망칠 수 없었지. 너도 알다시피 집은

가난했어. 쌀 한 되에 여덟 식구가 세 끼를 해결했으니까. 반찬이라곤 간장 밖에 없었지. 굳이 반복해

서 이 이야기를 할 필요는 없지? 너도 다 알고 있는 이야기니까. 내 말은 네가 살고 있는 지금 이 시대 와, 내가 젊은 시절을 겪은 시대는 전혀 다른 시대라는 거야. 나는 전혀 다르다고 생각해. 나는 너희 할 머니, 할아버지가 내게 대하던 태도와는 전혀 다른 방식으로 널 대하고 싶어. 이거 해라, 저거 해라, 말 하기 싫은 거야. 도망치고 싶다면 도망쳐도 돼. 뭘 해도 밥은 굶지 않을 수 있잖아. 그렇지만 나는 그

렇지 못했어. 나는 도망치려야 도망칠 수 없었어. 너도 알잖니? 내가 네 이야기에 동조를 해주지 않는 다고? 나는 언제나 네 편이야. 네 마음이 그렇다면 네 인생이 현재 그런 것이겠지. 나는 네 상황을 알 지 못해. 네가 어떤 사람들을 만나고, 무슨 일을 하는지 내가 어떻게 알 수 있겠니? 그렇다면 그 상황

에 대해 어떤 말도 하지 않는 편이 나을 거라고 생각해. 지레짐작? 정말 그렇게 생각하는 것도 아니면 서 그런 척 이야기하고 싶지 않았어. 그뿐이야.”

할 말이 없었다. 엄마의 이야기가 어떤 이야기인지 모르는 것은 아니었다. 하지만 그런 이야기를 바

랐던 것이 아니었다.

“나는 엄마한테 어리광을 부리고 싶은 거예요.”

내가 말하고서도 부끄러워 몸서리가 쳐졌다. 어리광을 부리고 싶은 거라니……. 고등학생 때에도 하

지 않던 말을, 잘도 고개를 빳빳이 세우고 말했다.

“하기 싫으면 그만 해. 대학원이 다 뭐니? 싫은 걸 왜 억지로 해? 누가 시킨 것도 아니잖니.” 엄마는 여전히 옳은 말만 했다.


“하지만 인생이란 게 제가 좋은 일만 하고 살 수는 없는 거잖아요.” “왜?”

“왜라니요? 누구든 그렇게 살고 있다고요.” “누구든?”

“누군든지요!” “정말로?” “네!”

“그렇다면 그렇게 살아야지 어쩌겠니. 네가 힘든 만큼 남들도 힘드니까, 그렇다면 너도 견뎌내야지.

투정 부린다고 해서 변하는 건 아무 것도 없어.”

더 이상 대답하고 싶지 않았다. 나는 가방을 챙겨들고 밖으로 나갔다. 엄마에게선 아무런 연락이 오

지 않았다.

학교 앞 카페에 앉아 창밖을 멍하니 바라보았다. 많은 사람들이 지나갔다. 그 사람들도 다들 나처럼

힘든지 궁금했다. 어쩌면 그중 한 명쯤은 자신이 좋아하는 일만 하며 사는 사람도 있을지 모르겠단 생 각이 들었다.

그런데 가만히 생각해보니 그리 힘들지 않은 것 같았다. 학과장이야 그러든지 말든지 내 알 바 아니

었고, 대학원 공부는 즐거운 것이 많았고, 아르바이트 덕분에 친구들을 사귀기도 했다. 하지만 ‘왜 이 렇게 살고 있지?’라는 생각이 들었다. ‘왜 이렇게 애를 써가며 바쁘게 사는 걸까?’ ‘결국 내가 원하는 것

은 무엇일까?’ 그러자 엄마에게 미안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리고 엄마의 그 말, 도망치려야 도망칠 수 없었다는 말이 머릿속에 떠올랐다. 나는 도망치려면 언제든 도망칠 수 있었다. 서울에 집이 있고, 엄마와 아빠가 있고, 지금 당장 취업전선에 뛰어들라 하면 뛰어들지 못할 이유가 없었다. 그럼에도 불 구하고 나는 도망치지 않고 있었던 것이다. 지금껏 공부한 것이 아깝기도 하거니와, 무엇보다도 지금 생활 속에 즐거운 것이 있었기 때문이었다.

엄마에게 전화를 걸었다. 엄마는 전화를 받지 않았다. 나는 대학원을 그만두어야겠다고 생각했다.

<끝>


이모부의 서재 - 어느 외주 교정자의 독서일기 임호부 지음 | 산과글 | 2013년

“편집자는 책을 만드는 사람이다. 물론 책을 만드는 데는 저자나 역자도 있어야 하고 지업사나 인 쇄소, 제본소에서 일하는 분도 필요하지만, 그들은 각각 책을 쓴다고 하거나 종이를 발주하고 책을 찍고 묶는다고 하지, 책을 만든다고 하지 않는다. 오직 편집자만이 어디 가서 “책 만드는 일 합니다” 라고 말할 수 있는 사람이다. 여기서 ‘만든다’라는 말의 의미가, 도구를 통해 무언가 쓸모 있는 것을 제작해낸다는 의미라기보다 정신 활동을 통해 새로운 세계를 창조해낸다는, 말하자면 좀 더 고차원 적인 의미를 뜻하는 것은 물론이다. 에디터로서의 편집자인 셈이다.”(「책 이야기」, 271쪽) 정확히 말하면 많이 읽는다기보다 오래 읽는 일을 직업으로 하고 있다. 책을 읽는 일이 좋아서 이 일 을 직업으로 삼았고, 그 결과 하루 종일 읽는 대가로 월급을 받는다. 읽는 일은 누구나 할 수 있는 일이 고 누구나 할 수 있는 일을 하는데 왜 특별히 내가 이 일로 월급을 받는지 스스로 물었던 적이 있다. 읽 고 쓰는 데는 비교적 성실하니까, 정도가 내가 생각해 낸 구실이었다. 그러다 한 편집자의 페이스북에서 이런 글을 읽었다. 나와 같은 질문을 품게 된 그가 사장에게 편집 자가 가장 필요한 자질이 무엇이냐고 물었다. 오랫동안 편집자로 일했던 사장은 여러 가지 중에서도 ‘ 원고를 잘 읽는 것’이 가장 중요하다고 대답했다. 사무실에서 이 대목을 읽고 잠시 멍하니 있었다. 원고 나 글을 잘 읽을 수도 있다는 사실이 충격적이었기 때문이다. 그전까지는 그런 생각을 해 본 적이 한 번 도 없었다. 잘 읽는 일이 가능하다면 더 잘 읽는 것도 가능하고 반대로 못 읽는 것도 가능하다. 그리고 읽는 일을 직업으로 하고 월급을 받는 이상, 일을 잘하는 사람이 된다는 것은 잘 읽는 사람이 되는 것이 라는 결론도 가능하다. 출판사가 저자의 원고(초고)를 받으면 편집자는 원고를 읽으면서 전체적인 분위기와 내용을 살핀다. 개인적으로 원고를 처음 읽는 이 과정에서 순전히 독자의 마음으로 통독하려고 한다. 몰입하되 전체를 파악하려고 노력한다. 나중에 만들어질 책의 모습을 상상하면서 판형, 두께, 표지의 느낌, 본문의 모양 도 틈틈이 그려 본다. 그렇게 파악한 것을 바탕으로 콘셉트를 잡고 교정 교열의 방향을 정한다. 예컨대 ‘이러한’과 ‘이런’, ‘되어’와 ‘돼’ 중 무엇이 원고에 어울리는지도 원고의 내용과 콘셉트를 바탕으로 고민 하고 판단한다. 그다음 교정자가 원고를 읽으면서 편집자가 정한 방향에 따라 비문과 오탈자를 교정하 고 내용을 교열한다. ‘외주 교정자’란 출판사 밖에서 프리랜서로 교정 교열을 하는 사람이다. 일반화하 기는 힘들지만 큰 출판사에서 외주 교정자를 두고 일하는 경우가 많고 작은 출판사도 가끔 외주 교정자 를 두고 작업한다. 나는 짧은 이력 동안 외주 교정자와 함께 작업해 본 적이 없다. 그러니까 편집자와 교정자의 두 가지 읽기를 혼자서 맡아 했다. 두 가지 읽기는 완전히 다르다. 내 생각에 두 가지 읽기의 핵심적인 차이점은 원고와 나 사이의 거리다. 몰입하면서 전체를 파악하는 읽기가 글의 흐름에 푹 빠지는 것이라면, 빨간 펜 을 든 채 글자에 바짝 달라붙는 읽기는 글의 흐름에서 벗어나 있다. 그리고 두 가지 읽기는 명확히 분리 되어야 한다. “제가 교정을 보고 있는 책의 내용에 재미를 느껴서 몰입하게 되면 오히려 불안해져요. 반 대로 원고 진도가 잘 안 나가면 내가 책을 ‘꼼꼼히 눌러 보고 있다’는 생각에 마음이 편해지고요.” 글자 에 바짝 달라붙어 교정을 볼 때는 저자의 말대로 “교정이 끝나면 그 책이 어떤 내용이었는지 기억나지


않는 경우”도 있다. 그렇다고 해서 교정자가 원고의 전체를 몰라도 되는 것은 아니다. 일을 맡긴 편집자 의 주문에 따르되 전체를 파악하고 있어야 한다. “전체가 안 보이면 편집 의도에 맞게 차례를 짤 수도 없 고 문장을 수정할 때도 확신이 안 들어요.”(“이모부를 부탁해”, 『기획회의』, 354호) 『이모부의 서재』는 부제가 밝히듯이 외주 교정자의 독서일기다. 제목만 봐서는 그저 서평집이구나 했을 텐데, 부제가 책의 독특함을 잘 담았다. 저자가 4년 동안 블로그에 쓴 글을 추려서 냈다. 저자의 글 을 블로그에서 처음 읽었던 당시에는 외주 교정자인 줄 몰랐다. 예전엔 읽은 책의 서평을 인터넷에서 우 연히 발견했고 별 생각 없이 스크롤을 내렸을 뿐이다. 그런데 그 긴 글을 다 읽고 났을 때 흥분을 가누기 힘들었다. 방금 내가 읽은 글이 얼마나 근사한지 떠들고 싶어 손이 근질거렸다.(「백 개의 방」, 287쪽) 그리고 확신했다. 이 사람은 ‘잘 읽는 사람’이다. 잘 읽는다는 건 이런 거구나. “등기된 사유와 등기되지 않은 사유 또한 마찬가지로 언어의 문제로 귀결될 수밖에 없다. 푸코의 말마따나 “나는 말한다”라는 문장은 “나는 생각한다”라는 문장과 달리 목적어뿐만 아니라 주어조차 도 뒷걸음치게 만드니까. “나는 생각한다”가, 무엇을 생각하느냐(목적어)를 통해서 ‘생각하는 나’, 즉 누가 생각하느냐(주어)를 향해 간다면, “나는 말한다”가 향하는 곳은 놀랍게도 아무것도 없는 곳이 다. 무엇을 말하는지(목적어)도 드러나지 않을뿐더러, 아니 그러하기에, 누가 말하는지(주어)도 아무 런 경계를 갖지 못하는 곳이니까.”(「소설의 바깥」, 180쪽) 책을 읽는 동안 내가 무언가 놓친 게 있다는 느낌이 들곤 했다. 문장과 문장 사이에서 길을 잃었다는 느낌, 거기 존재하는 게 분명한 고리를 찾아내지 못했다는 느낌, 한마디로 말하면 못 이해하고 있다는 느낌. 흔히 우리가 글이 어렵다고 말할 때처럼 단어나 문체 때문은 아닌 것 같았다. 거칠게 설명하자면 여느 글을 읽듯 한 번 슥 훑어 읽는 것으로 완전히 장악할 수 있는 글이 아니라 문장 뒤에 숨겨진 것, 구 조 혹은 설계도를 염두에 두고 읽어야 하는 글 같았다. 우리는 일반적으로 왼쪽에서 오른쪽으로 위에서 아래로 글을 읽고 저자는 독자가 글을 자연스럽게 읽도록 흐름을 안배한다. 그런데 어떤 글은 독자에게 특별한 수고를 요구한다. 왼쪽에서 오른쪽으로 읽는 동시에 머릿속에서 하나의 건물을 지어야 한다. 건 물들의 일반적인 생김새를 미리 알고 있는 것, 골격과 재료로는 주로 어떤 것이 쓰이는가를 포함해 어 떻게 하면 건물이(머릿속에 쌓아올린 글의 구조가) 무너지지 않을 것인가는 훈련과 연습이 필요하다. 그런 수고를 요구한다고 해서 나쁜 글이 아니다. 이전에 썼듯이 나는 말하고자 하는 것을 가장 적절한 방식으로 말한 글이 잘 쓴 글이라고 생각한다. 어려운 개념어를 사용해야 하는 글이 있고 일반적인 서술 방식으로 써서는 안 되는 글이 있다. 쉽다고 해서 무조건 잘 쓴 것은 아니라는 말이다. 그리고 편집자는 남의 글을 읽고 나서 말하고자 하는 것을 가장 적절한 방식으로 말했는지를 판단해야 하는 사람이다. 한 권 한 권의 책이 완전히 다르니 정답이나 매뉴얼이 있을 리 없다. 때로는 속이 쓰릴 정도로 고민하면서 판단해야 한다. 그래서 잘 읽어야 한다. 편집자는 잘 읽어야 한다.

집에 가고 싶다. <끝>


Chapter 5 {사내연애}의 생존매뉴얼 별 볼 일 없는 스펙으로

모든 직업이 그렇겠지만, 디자이너의 생활은 고되기 그지없다. 박봉에 과도한 업무량, 충족을 모르는 클라이언트. 하지만 그중에서도 으뜸은 야근이 아닐까. 왜 디자이너는 야근이 많을까. 비단 디자이너가 야근이 많은 것은 한국만의 문제는 아닌듯하다. 선진국에 종사하는 디자이너도 야근(자발도 포함)을 한다는 이야기를 듣고 있으면 디자이너와 야근 사이에는 어떤

잘 다니던 4년제 대학을 때려치우고 서울로 상경해

필연성이 존재하는 것은 아닐까 하는 생각도 든다.

발 빠르게 2년제 디자인 과를 졸업. 막상 졸업하고 나니 받아주는데도 불러주는데도 없다.

공장에서 만들어낸 빵에는 제품의 질적 가치를

그때부터 이 악물고 익힌 갖가지 처세술과 생존법을 이용해

매기는 절대적 기준이 존재하지만, 디자인에는 절대적

처음 취직한 회사에서 2년여 만에 팀장으로 승진했다.

기준 대신 미적 판단의 모호성이 그 자리를 대신한다.

앞으로 수주에 걸쳐 별 볼 일 없는 스펙으로 몸 건강히

미적 판단에 있어 논리보다는 감각이 선행되며

살아남는 방법을 쓸 예정이다.

이를 통해 개인 혹은 단체의 미적 취향이라는 것이 생성된다.

거의 모든 텍스트가 주관적 경험에 의거한 것이기에 관점에

단체의 취향은 대개 공리적 판단을 내리기 쉬운데 이는

따라 비판적 지점들이 상당 부분 형성될 여지가 크다.

디자인의 보수화로 진행될 위험이 존재한다.

국내의 많고 많은 웹디자이너 중 하나의 개별적 사례로

만일 시일이 급한 프로젝트에 디자이너가 투입된다면

봐주시면 감사하겠다.

그에게 주어지는 기준은 완성도라는 실체 없는 유령밖에 없다. 하지만 디자이너는 완성품을 세상에 아름답게 출산하고 싶어하는 원초적 욕망을 갖고 태어났다. 급박한 시간에도 불구하고 스스로 마조히스트가 되어 자신을 채찍질하고 급기야 목을 조르기에 이른다. 어떨 땐 하루의 일이 정량화되어 주어지는 직업에 대한 근거 없는 동경을 품기도 한다. 섣부른 판단일지 모르지만, 디자이너의 야근은 자기착취의 본성과 기준의 모호함을 태생적으로 잉태한 디자인이 만나 출산한 숙명적 결과라는 생각이 든다.


디자이너의 야근이 잦아지면 나가서 놀 시간도 줄어든다.

사랑에 눈이 멀면 디자인이 다 무슨 소용인가.

고대 희랍 시대의 문화가 융성했던 것은 노예들의

오히려 내 경우 사내 커플이 된 디자이너들의

대거 유입으로 인한 중산층 이상의 노동해방이라는

작업물이 예전보다 급격히 좋아지는 경우도 많이 봤다.

측면이 크다.

연인 관계라면 분명 디자인에서 조금 우위에 서는

자신들의 노동시간 대부분을 노예들이 충당해주니

사람이 생길 테고 만약 우위에 선 사람이 친절하다면

하나에 골똘히 몰두할 수 있는 시간적 여유가 생긴 것이다.

아낌없이 자신의 스킬들을 전수해 줄 것이다.

언뜻, 희랍시대의 이야기를 듣고 있으면 창의적 발상은

대학 초입 때 예쁘고 잘난 1학년들이 공부 잘하는

유희에서 나오는 것이 자명해 보인다.

모범생 선배들과 어울리는 것도 같은 맥락이지 않을까? 하지만 다른 연애와 마찬가지로 디자이너끼리의

하지만 디자인 회사의 형광등은 지칠 줄 모른다.

만남 역시 많은 희생을 담보로 해야만 한다.

급박한 시간에 쫓기면서도 끝없이 좋은 작업물들을 내놓는 디자이너들을 보고 있으면 경외감이 들 때가 많다. 주위를 둘러보니 퇴근한 사람보다 퇴근 못 한 사람이 더 많다. 며칠 전 입사한 귀여운 신입 여직원도 구석에서 열심히 디자인을 하고 있고 이틀째 못 들어가고 있는 왕년의 쇼핑몰 모델 출신 디자이너도 있다. 내 경험상 아무리 멋지고 예쁜 디자이너들도 갖은 야근의 고초를 겪고 나면 처음의 빛깔이 쇠퇴하기 마련이었다. 남녀 불문하고 점점 디자이너들끼리의 외형적 동질성(가장 대표적인 예가 후드티와 삼선 슬리퍼)이 생기기 시작할 무렵 뜬금없이 사라지는 남녀가 많아지는 시점이 온다. 전우애보다 깊은 것이 야근애라고 했던가. 탕비실에서 커피 한 잔 마시며 나눴던 상사 뒷담화는 공동의 적을 형성해주므로 사랑으로 번질 가능성이 의외로 크다. 그리고 탕비실에서 나눴던 담소는 거기서 끝나지 않는다. 우리에게는 메신저라는 신이 준 선물이 있기 때문이다. 만약 당신이 듀얼모니터를 쓴다면 최대한 타인의 시선을 고려해 서브 모니터의 사각모퉁이 지점에 투명도를 한껏 낮춘 메신저의 대화창을 띄워라.(각종 위젯 등을 병치해놓으면 카모플라쥬 효과가 상승한다.) 갑자기 누가 옆집에서 창문을 드르륵 열며 ‘그럼 도대체 디자인은 언제 합니까?!’라고 내게 야유를 날릴지 모르겠다. 걱정하지 말긔. 사랑이 충만하면 상사의 잔소리도 아름다운 걸그룹이 들려주는 후크송처럼 들릴 것이다.


디자이너라는 종족의 특성상 대기업 사원들보다 연봉은

내 경우 디자이너와 사내 연애 경험은 없지만, 기획자와는

좀 떨어질지 몰라도 자존심 하나만큼은 국보급이다.

약 1년가량 몰래 교제한 경험이 있다.

만약 자존심 강한 디자이너 커플이라면 디자인에 대한

이야기를 편하게 하기 위해 기획자를 C양이라고 하겠다.

이야기는 가능하면 조심스럽게 꺼내는 것이 현명할 듯하다.

나와 C양의 연애감정이 불붙은 시점 역시 숱하게 같이한

만약 하게 되더라도 상대방의 발언할 공간을 충분히

야근에서부터다.

마련해 주도록 하자.

내 경험상 디자인 에이젼시에서 커플이 될 확률은

일상적인 연인관계에 있어 대부분의 경우 한 사람이

디자이너끼리보다는 기획자와 디자이너 사이가 더 많은 것 같다.

연애의 주도권을 쥐게 되는데 (일종의 불공정무역과 같이) 디자이너 커플의 경우 연애의 주도권이 자칫 상대방보다

보통 새로운 프로젝트가 시작되면 디자이너 한 무리,

디자이너로서 자질적 우위에 있다는 착각으로

기획자 한 무리가 세팅 되어 팀을 꾸리게 되는데

번질 위험이 크다.

이때 직급에 맞게끔 디자이너와 기획자가 쌍을 이루어

아무리 연인관계에 놓여 있는 사이라 할지라도 상대방의

업무를 진행하게 되어 있다.

직업과 관련된 부분에 대한 섬세한 관심과 배려는 항시

업무의 수월한 진행을 위해 보통은 둘 간의 연차가

필요하기에 더 각별히 조심해야 한다.

꽤 나는 경우가 많으며 그렇게 되면 자연스레

이런 점에서 보면 상대보다 업무적 능력이 뛰어나다고

나이 차이도 벌어지게 된다.

해서 일방적으로 가리키듯 하는 것 또한 무의식적으로

내 경우도 신입 시절 3살 혹은 4살 터울의 대리급

자행되는 폭력이라고 볼 수 있다.

기획자분들과 업무를 많이 진행하게 되었는데 순간순간 연애 기운을 감지한 적이 있었다. 나는 내가 잘 모르는 영역에 대해 이성이 어느 정도의 수준에 도달해 있으면 외경심으로 경도되는 경우가 많다. 스위스의 정신분석학자 카를 구스타브 융이 말한 개념 중 아니마(Anima)와 아니무스(Animus)라는 것이 있다. 아니마는 남성안에 내재한 무의식적 여성성이고 아니무스는 반대로 여성안에 내재한 무의식적 남성성이다. 대체로 예술적 성향이 뛰어난 사람들은 무의식적으로 자기 성의 반대 성향을 많이 가진 경우라고 한다. 범박한 논리일지 모르겠으나 디자인의 속성자체가 감성적이라고 생각한다면 남자 디자이너들의 경우 대체로 내재한 아니마가 많다고 생각할 수 있고 논리나 연상의 개입이 많은 기획일을 하는 여자 기획자들의 경우 아니무스가 활성화되어있다고 할 수 있다.


C양과 내 경우도 서로가 잘 모르는 미지의 영역을

그 후 조심스럽고 은밀했던 나의 사내연애는 약 1년 만에

탐구해 들어가듯 서로에게 빠져들었고 연애를 하며

막을 내렸다.

나눴던 대부분의 대화 역시 서로의 영역에 대한

나는 사내에서는 아니지만 몇 차례 연애 대상으로서 디자이너를

견해가 많았다.

만난 적이 있는데, 앞서 말했던 것처럼 디자인에 대해

내가 다녔던 회사는 지금으론 다소 이해가 가지 않는

상대방과 이야기를 나눌 때 일과 애정을 정교히 분리해내는 것이

사내연애 금지법이 지켜지던 회사였다.

상당히 어렵다는 결론을 내렸다.

이유인즉슨 업무의 효율이 떨어진다는 것이다. 완전히 동의할 수 없는 사실은 아니다.

물론 좋은 사람이 나타나면 내가 세워놓은 기준 따위야

하지만 사랑이라는 것이 막고자 해서 막아지는

유리장처럼 쉽게 깨질 것이 자명하다.

것이라면 우리는 피라모스와 티스베의 안타까운 사랑

아무튼 아무리 디자인 업이 힘들다 하더라도 중간중간

이야기를 듣지 못했을 것이다.

다가오는 핑크빛 기류들이 있기에 가끔 기분 좋은

또한, 욕망은 금지가 만들어 내는 법. 사과를 먹지

야근도 있을 수 있다.

말라는 금지의 말이 없었다면 사과에 대한 아담의

마음에 드는 이성이 없을 때는 어떻게 하느냐고 아까

욕망 또한 없었을 터.

옆집의 그분이 다시금 문을 열며 내게 소리친다.

연애 금지법이 시행되던 내가 다니던 회사에서는

걱정하지 말길!

총 두 커플이 몰래 연애를 진행하고 있었다.

신입 공채는 언제나 일 년에 많게는 두 번,

또한, 서로 애틋한 관계로 발전 중인 디자이너와

적게는 한 번이 있으니!

기획자의 관계도 있었다. 표피적으론 연애를 거세당한 이성적인 회사처럼 보였지만 공기 중에 떠다니는 미세먼지에는 애정의 기운이 담뿍 담긴 채 대기를 떠돌고 있었다. 회식 때 사장님은 아시는지 모르시는지 항상 일관된 표정으로 우리 회사는 사내 연애 금지야라고 엄포를 놓곤 하셨지만, 테이블보 밑은 서로의 손을 탐닉하는 연인들이 자아낸 애욕의 풍경이 꽃봉오리처럼 활짝 펼쳐져 있었다.

내가 다닌 회사는 홍대에 위치했는데 데이트할 때 혹시라도 회사 사람을 마주칠까 겁나 홍대에서 최대한 벗어나려 애썼다. C양과 나는 사내에서 최대한 같이 있지 않으려고 노력했는데 어떨 때는 그런 모습들이 더 어색하게 보여 역으로 의심을 샀던 기억도 난다. C양과 나는 데이트 약속의 내용을 주로 기획문서(프리젠테이션)에 외삽해 메신저로 전달하곤 했는데 파일을 열 때의 두근거림은

블로그 clichecliche.blog.me

기획자와 사내연애를 해 본 자만이 누릴 수 있는 특권이라고 감히 이야기할 수 있다.

이메일 clichecliche@naver.com


우울한 청춘

글. 그림. 철민


바다비 일요 시극장 바다비 일요 시극장 2013.11.24 http://cafe.daum.net/badabie


부산오뎅 이야기 ( 복제인간 )

누구나 태어나면 한쪽을 빼닮지 않고는 아빠 닮았네 엄마 닮았네 하는 얘길 듣는다. 그리고 어느정도 자라서 학교를 다니게 될 때 쯤이면 신체적 특징에 따라 돼지, 개, 기린, 말 등 갖가지 육식 초식동물, 생선, 오징어, 문어, 타코 와사비(?), 불가사리에 이르는 모든 해양생물체와 야채,공룡 기타 등등 닮았네 만화캐릭터 닮았네 개그맨 닮았네 영화배우, 가수 등을 닮았다느니 1초연예인ㅇㅇㅇ닮았네 그러다 가 나중에 늙어서도 할아버지 할머니 두 분이 닮았네 손주가 할아버지 닮았네 할머니 닮았네 상체는 엄마 하 체는 아빠 심지어 골격,체형에 이르기까지 누굴 닮았냐는 둥 안그런 사람도 있겠지만 우리는 태어나서 죽을 때까지 그 사람의 인종성별 국적을 망라하고 자기가 원하던 원하지 않던 그런 논쟁에 노출될 수 밖에 없다. 필자도 어릴 때 모든 사람들과 마찬가지로 엄마 닮았네 아빠 닮았네 너는 누굴 닮아서 이렇게 이쁘장하게 생 겼니 너는 누굴 닮아서 이렇게 똑똑하니 누굴 닮아서 이렇게 눈이 초롱초롱하니 싫던 좋던 듣고 답하고 해 왔었다. 고등학교 무렵 얼굴이 갸름하고 턱선이 유난히 도드라졌고 쌍거풀도 임의로 만들 수 있는 나는 그 당시 최고의 뮤비스타 실베스타 스탤론 닮았단 소릴 듣게 된다.


그 후로 나는 실베 옹을 닮은 친구가 있다는 소문을 듣고 찾아온 옆 반 친구들에게 쌍꺼풀을 만들어서 보여 주곤 했다. 그러면 같이 온 친구끼리 닮았다 안 닮았다 하는 논쟁에 빠지고...사실 누굴 닮았다는 게 그렇게 큰 의미가 있나 싶다. 나는 내가 어떤 대상을 닮았니. 안 닮았니. 해봐야 나는 그 사람이 아니지 않는가? 설 령 싫다고 해도 이제부터 보는 사람들 나한테 이제 누구누구 닮았다고 얘기하지 말아달라고 부탁 할 수도 없는 노릇 아닌가.. 암튼 그 후로도 꾸준히 닮았다는 얘기를 듣는다. 예전 80년대 개그맨 밥풀때기 김정식 닮았네 몇 년전에는 탤런트 김호진 닮았네. 김병만, 이수근, (고)백남 준(고), DJ누자베스에 이르기까지...예전 실베스타스텔론 닮았다고 했을 때를 돌이켜보면 그 당시엔 기분 이 엄청 좋았었다. 그러다가 안 닮았다는 니가 무슨 실베 옹을 닮았니하며 내가 닮았다고 한 것도 아닌데 욕도 듣고 하다 보니 나중에는 무덤덤해지고 나더러 닮았다고 비교된 그분들에게도 왠지 모르게 미안해지기 시작했다 그분들은 나 닮았다면 얼마나 기분나쁘실까하는. 만약 그분들이 바로 옆에 계신데 누군가가 닮았다고 하면 내가가서 죄송하다고 해야 할 것 같은 맘이 든다 내가 아빠엄마를 닮은 것이지 아빠 엄마가 나를 닮은 게 아니듯 나보다 나이 많으신 분들도 있지 않은가 수 백만의 네티즌도 겁나기도 하고 그래서 나는 언젠가부턴 누구 닮았다라고 하면 미안한 마음을 가지기로 했 다. 솔직히 말하면 미안함+무덤덤90 약간 기분좋음 10정도 이런 맘을 가지고 평안하게 살아가고 있는 요즘. 여름부터 닮았다는 얘기를 너무 많이 듣는 분이 한 분 계시다 그분은 필자보다 나이가 어리시지만... 남아일 언중천금이지 않는가! 그분은 ‘아빠 어디가’의 준수 아니 준수씨, 준수님, 아....혼란스럽다. 준수야 미안해~~~


창신동 라디오 덤 인터뷰 평소, 마을 미디어나 마을 공동체라는 것이 사회의 스트레스를 줄이고 삶을 보다 풍요롭게 영위하기 위해 필요한 것이라 생각해왔지만 한편으로는 ‘될까?’라는 말이 자연스럽게 따라올 정도로 회의적이었던 필자에게 회의적인 생각이나 의문을 걷을 수 있는 계기가 된 <창신동 라디오 ‘덤’>의 이야기를 월간이리 독자 분들께 전합니다. 삶의 주변에서 일어나는 여러 시도에 보다 적극적으로 관심을 가질 수 있는 계기가 되길 바랍니다.

<글. 김종임 정리. exxx>

1. 창신동 라디오 ‘덤’ 소개 부탁드려요 조운형 국장 (같이가면), 김종임 (동대문 그여자), 김혜미 (또또), 이미선 (미미), 박영순 (여왕)을 중 심으로 구성된 창신동 라디오 입니다. 안드로이드 앱도 있고 네이버 카페도 http://cafe.naver.com/ radiodum 있습니다. - 인터뷰에 응하신 분은 김종 임 님이십니다. “2012년 허리가 아파서 병원 물리치료실에 가는

창신동 라디오 ‘덤’ 으로 첫 방송을 띄운게 2013

버스 안에서 문자를 넣은게 시작이었어요. 나이 많고

년도 1월 29일 이었습니다 청암교회의 뒷방에서

미싱하는 여자도 라디오 교실에 참여 할 수 있나요?”

라디오 교실 말미에 발표회를 통해서 모은 후원금과

그렇게 라디오 교육과정을 시작하게 되었습니다.

추가 자금을 각출해서 장비를 사고 지금 라디오국의

간단한 사연과 노래로 첫 번째 방송녹음을 들었을

국장을 맞고있는 같이가면 조은형씨(예술은 아무나

때의 낯선 느낌은 지금도 잊을 수가 없어요. 사연도

한다 의 진행자)가 사용하던 컴퓨터와 프린터기와

사연이지만 내목소리가 왜 그리 하이톤이던지..

노트북을 쓰고 나머지 것들은 각자 챙겨오기도 하고요

2012 말미에 같이 수업을 들었던 사람들과 그냥 헤어지기 섭섭해서 시작했지만 시작하면서도 그래도

2. 기억에 남는 사건이나 이야기 부탁드려요.

방송인데 잘 할 수 있을지 확신이 서질 않았어요. 그렇게 조금씩 이야기 하고 준비하는 과정에서

지난 9월 15일 추석 전 일요일, 그날은 우리

누군가 물었어요.

방송국에서 열리는 첫번째 커다란 행사 작음 음악회가 열리는 날이였는데 (지난여름 공개방송도

“만약에 방송을 하면 무슨 방송을 하고 싶으세요 ?”

있었는데 그때는 야외에서) 중화고등학교 교장

봉제 미싱사가 이야기 하는 방송을 만들고 싶었어요.

방승호 선생님을 모시는 날 이었다. 교장선생님

30년 넘게 일 해왔고 그래도 봉제라면 이야기

이면서 음반을 2장이나 만드신 2집 가수. 그날이

거리도 많을 거 같아서 그렇게 시작하게 되었습니다.

따끈따끈한 음반 나온지 3일차였기에 그 분도

맘 맞는 선배와는 <두여자 쇼> 문학을 좋아하는

떨리고 나도 떨리고 각자 느낌이 다를 수도 있지만

사람은 <문학방송>, 예술은 아무나 한다로 사람을

처음 그런 자리를 마련한 우리 방송국이나 노래를

꼬드겨서 마이크 앞에 세우고 그래서 방송국이

직접, 그것도 자기노래로만 채워진 음악회 노래를

되었습니다, 그렇게 네여자가 서로 덜미를 잡고서

하신 교장선생님이나 무척 기억에 남는 날이었어요.


어줍지 않게 방송을 몇 달째 하고는 있지만 한달에

잡고 녹음 당일이 되었는데 키도 안 맞고 한잔하고

한번 만들어지는 방송이고 하는 일 역시 원고 쓰는

노래해야 잘한다며 두어잔 꺽고 오신 것이 독이

일과는 너무나 다른 봉제인 미싱사이니 그 전까지는

돼서 목이 계속 물을 부르고...밤 11시가 되어서야

음악회 사회를 본다는걸 생각도 안 해봤는데 뭘

겨우 마칠 수 있었습니다. 질문은 어찌나 단답으로

물어보고 뭔 말로 한 시간을 채워야할지가 고민

하시는지 결국 노래는 한곡 남았는데 방송 시간은

이어서 당사자에게 물어봤더니 그냥하라는 말

15분이 남아서 급작스레 게스트분을 불러 노래를

뿐이어서 ㅠㅠ

청했는데 그분의 열창으로 주객이 전도되어 당황한 저는 초대가수의 노래 차례에 애절한 곡에 박수를

방승호 선생님을 뵌것이 서울 마을미디어 웃고 떠들고

말하는

행사에

참석했다가

유도하고 .. 지금생각해도 기가 막힌일이죠.

노래하는

교장이라고 하기에 그럼 제 방송에 노래 틀어도

3. 지금 라디오와 관련해 하고 있는 고민은?

되냐고 물어본게 인연의 시작이었어요. 고작 그날 한번 만났고. 질문지를 작성해서 메일로 보내고

라디오에 3기생들이 곧 자신들의 방송을 만들고

나름 연습도해서 급조된 무대(청암교회 예배당) 에

라디오의 일원으로 활동을 하게 됩니다

플랭카드를 걸고 청소도 하고 방송기기를 배치하고 몇안되는 방송국 요원들과 게스트 조앤 조르바 그리고 하모니카의 김범기 선생님 등과 함께 웃으며 마무리 했던 음악회는 정말 큰 여운을 남겼습니다. 그리고 또 하나 반찬가게를 하시는 김송희씨 콘서트. 이분은 동네 잔치에 가수로 다니시는 분이세요. 본인의 노래도 없고 한 번에 대여섯곡을 불러본 적도 없고 그러신데 무식한 저 때문에 그분의 고생도 이만저만이 아니었습니다. 하루에 대여섯곡을 한번에 부르는것이 무리일 것 같아서 국장과 의논해서 사전 녹음을 시작했는데 글쎄 전날 무리한 관계로 감기가 심하게 오셔서 일정에 차질이 생겼어요 다시 일정을

고민은 지금까지도 우리가 뭔가모르고 맨땅에 해딩하며 한회 또한가지의 일을 치러왔듯이 기존의 멤버들로만 일이 진행될수만은 없어서 방송에 대한 기본 회칙이나 우리가 지켜야할 뭔가가있어야 하는데 이런것도 마련되어야 하겠고 적은 인원으로 방송국을 꾸려가다보니 본래의 직업이 있음에도 과해지는 방송국의 일들을 어떻게 적절이 조정하고 처리해야 할지가 고민입니다 지금은 정말 재미있고 즐거운

방송을

하고

싶은데

괜한

일거리가

생겨서 거절도 못하고 끌려간다는 느낌이 들때가 많았거든요


4. 라디오와 상관 없이 새롭게 추진하고 싶은 계획이나

창신동입니다. 상상이상으로 많고도 많은 골목

꿈 같은 것이 있으신가요?

아마도 곱창이 생각나게 될 지도 모릅니다. 빼놓을 수 없는 곳은 낙산 성곽이죠,

꿈은 우리 국장님의꿈이 나의 꿈이기도 하겠네요 라디오를 하면서 새로이 생긴 바램 혹은 꿈

제방송 9번 말미 짬짬이에 자세한 소개가 있습니다.

이된거지 말입니다만 “이동네에서 더불어 나도

그리고 먹거리는 곱창골목도 있을 만큼 곱창 볶음집

잘살고 행복하고 싶다” 입니다. 계획? 새로운

들과 매운 족발집 등 시장을 끼고서 수원 갈비집은

계획은 아니고요. 이동네에 동대문 1번출구부터

맛좋고 값도 저렴해서 사람들로 북적대는곳이죠.

낙산공원 오르는길에서 펼쳐질 축제한마당? 이

버스정류장 근처 진고개는 말해무엇하리오 40

제가 한번 추진해보고픈 즐거운 일이 되겠습니다

년은

봉제인들이 모두나오고 동네주민이 함께하는 인사

입니다 고급음식점! 값도 비~~~싸고 맛도 좋고

그간 없었던일들 동네일을 보고 주민들을 돕고있는

진고개곱창전골은 강추!

안됐지만,

대한민국

대표음식점

진고개

모든단체들과함께 인사하는일. 요즘은 이곳창신동에 인도 네팔 음식점들이 대 이일이 성사 되자면 다른 어느 단체보다도 주민들의

여섯개나 더 생겨나기도 했지요 휴일이면 동대문 1

참여가 관건인데 아직 제가 새파란 감인지 누구와

번출구부터 쫘~~악 외국인들의 만남의 거리가 되고

말을 해봐도 맛이 안나네요 좀 더 익을 때를 기다리고

있습니다, 쪼금은 줄었으면 좋겠어요 너무 많아요.

노력하고 있습니다. 돈이 많이 들지 않는 일이니 꼭 성사되리라고 봅니다. 5. 마지막으로 창신동에 오시는 분들이 계시면 꼭 여기만은 들려 달라는 장소나 식당 등등 아무곳이나 명소 소개 부탁드려요! 창신동은 골목이 많습니다. 막힌 듯 하나 그 어디로 통하고 있고 좁아서 과연 이곳이 길인지 의심하면서 둘러보면 또각또각 발소리 들리는 곳이 <끝>


마 을 길 마 포 3로 노 고 산 동 삼 각 지 대 마을길 마포 3로 “노고산동 삼각지대” - 약 60분 (??km) 처음 마을길을 연재 할 때 부터 1로와 2로는 생각해 두었는데 3로는 생각해 두지 않아 사실 한달전부터 남모르게 근심타가 어느날 문득 지도를 펴보자는 생각이 들어 지도를 펴 본 끝에 잊고 있던 질문 하나를 떠올렸습니다. 신촌 아트레온 (cgv)에서 영화를 볼 때 면 늘 창밖을 보며 스스로에게 던지던 질문 입니다. “저기는 어디지?” 지도를 펴보고야 그곳도 마포란 사실을 깨닫습니다. 우물안 개구리라는 말을 농담처럼 여기고 살아왔는데 지도를 보니 상수 서교 망원 연남만 알았던 제가 우물안 개구리 더군요. 어쩜 이렇게 시야가 좁았는지 모르겠습니다. 그래서 오늘은 우리 쉽게 놓치고 지나칠 그곳을 소개 합니다. ‘노고산동 삼각지대’ 입니다. 지하철 2호선 신촌역과 이대역 사이 버스를 타고가도 바로 옆에 있으면서도 유독 신경쓰지 못하는 곳이 한 곳 있습니다. 다들 홀린듯이 지나치는 그 곳. 도형으로 설명드리자면 지하철 2호선 신촌역과 이대역을 한 변으로 하고 서강대학교를 꼭지점으로 하는 삼각형의 지역. 그곳이 오늘 소개해 드릴 마포 3로의 목적지 ‘노고산 동’ 입니다.


출발: 지하철 2호선 신촌역 5번 출구 한 변이 지하철 2호선과 지역 버스들이 다니는 신촌과 이대 사이의 큰 길이라면 오늘 우리가 찾아갈 곳은 한 변과 꼭지점 사이의 삼각지대 입니다. 노고산동 일대, 삼각형의 내부를 다닐 겁니다. 길을 잃지 않고 정확히 헤메는 방법은 삼각형의 꼭지점에 노고산 체육공원이 있다는 것을 기억하는 것입니다. 어느 곳에서 시작해서 어느 방향으로 가더라도 결국 높은 쪽으로만 간다면 노고산 체육공원에 다다른다는 사실만 기억하고 계시면 정상에서 좌우를 둘러보고 내려갈 방향을 쉽게 찾을 수 있습니다. 바로 체육공원으로 향하지 않더라도 길은 피라미드 모양으로 복잡하지도 않고 잘 정리되어있어 다니기에 좋습니다. 물론 경사도 심하지 않고요. 다만 조심 스러운 것이 있다면 카메라를 겨누는 것입니다. 겨눈다고 하는 것이 맞는 표현 처럼 느껴질 정도로 삶의 공간들이 연이어 있는 곳입니다. 저도 무척이나 조심스러운 마음으로 다녀와 이렇게 글을 남깁니다. 누군가의 집, 앞뜰이자 생활공간이기 때문에 소란스러운 일 없이 조용히 다녀오시길 바랍니다. 오늘은 평소처럼 어떤 길을 만들지는 않았습니다. 신촌대로 신촌과 이대 사이에서 오른쪽으로 아무길이나 내키는대로 올라가시면 됩니다. 바로 체육공원을 향하신다면 기껏해야 10분 코스밖에 되지 않겠지만 이리로 저리로 갈지자 형태로 오르시면 족히 한시간은 훌쩍 지날 겁니다. 체육공원이외에는 화장실 이나 쓰레기 통이 따로 없으니 유념하시고 다니시면 좋습니다.

어떻게든 올라가기만 하면 노고산동 체육공원 입니다.

길의 사이사이


의외의 공간들이..

일단은 도착합니다.

두리번 두리번


정원의 풍경

멀리 아현동 뉴타운이 보입니다.


무엇이 들어있을까요?

이달에도 재미있는 것들을 준비했습니다. PDF를 보시면서 누르셔도 되고 스마트 폰으로 찍으셔도 됩니다. 여전히 월간이리 내 원고의 일부분이나 필진 이름, 블로그 주소등을 누르시는 경우 해당 페이지로 연결되기도 합니다.


그레고리 콜버트 (Gregory Colbert)

세상사에 초월한 사람, 몹시 순수한 사람, 이해의 범주에 들지 않는 기인을 표현할 때 동물과 스스 럼없이 어울리는 모습을 그리곤 합니다. 알렉산더 대왕의 어린 시절 일화 중에 아무도 타지 못하 던 사나운 말을 일순 진정시켜 보인 것, 깨달음의 순간에 새가 찾아와 어깨에 앉는다는 류의 이야 기도 그런 것들이고요. 동물을 통해 신의 메시지를 받거나 자신의 권위를 입증합니다. 특히 길들여 지지 않는 야생동물들과 가까운 모습은 그 사람의 어떤 뛰어남을 입증해주고 누구보다 신성에 가 까운 사람이라는 메시지를 줍니다. 그것은 낙원에 대한 동경과 맞닿아 있을 겁니다. 성경에 보면 이사야의 예언 중 그리스도의 때에 는 표범과 새끼 염소가 함께 눕고, 새끼 사자와 송아지가 어울리는 사이에 어린아이가 그들을 이 끌고, 간난 아이가 뱀의 굴에 손을 넣으며 놀아도 물리지 않을 것이란 구절이 있습니다. 그렇게 야 생동물과 스스럼없이 어울리는 모습에는 그러한 것이 낙원이며, 그러한 모습으로 사는 사람은 누 구보다 낙원과 가까운 사람이라는 메시지가 들어있습니다. 그레고리 콜버트의 사진에서 우리는 그런 낙원을 느낄 수 있습니다. 코끼리에게 가만히 책을 읽어 주고 있는 아이. 치타와 함께 바위에 앉아있는 아이. 하늘에 천을 펄럭이는 사람의 뒤로 독수리가 날고, 고래와 사람이 함께 헤엄을 치는 모습이 담겨있습니다. 무척 아름답고 볼 때마다 경이롭습 니다. 사진의 순간은 찰나라도 화면은 계속해서 이어지는 영원한 뭔가에 대해 보여주는 듯합니다. 동물과 사람의 어우러짐이라는 요소도 그렇지만 동적인 순간의 포착이든 멈춰있는 순간이든 화면 자체가 무척 아름답습니다. 심도가 깊지 않은 배경처리로 동물과 인간 상호에 집중되어 있는 사진 은 몇 가지 요소로 전체를 그려내는 무대와 같고 그 속에 놓인 사람과 동물은 함께 춤을 추거나 대 화하거나 생각을 공유하는 것으로 보입니다. 무용하는 순간 중에서도 가장 극적일 때를 포착해 기 록한 듯 리듬이 공유되며, 이질적이지 않고 조화롭게 보입니다. 우리가 그리워하는 것들이 직설적으로 담겨있죠. 그리고 느낄 수 있는 것은 무척 동양적이라는 것 입니다. 작가는 유색인 모델을 세웠고 그들의 복장은 수도승을 연상시킵니다. 야생동물과 인간, 자 연, 동양적인 것들이 어우러진 이미지. 정신적, 영적인 동양의 이미지이기도 합니다. 서구식 삶이 놓친 정신적인 낙원을 동양에서 찾을 수 있다는 믿음, 그러한 동경과 그리움.


현실에서 가능하지 않은 그러한 야생동물과의 어우러진 모습을 보는 것은 우리에게 고양감을 주 고, 그가 보는 것을 나도 보고 싶고, 내게도 동물이 저렇게 다가와 주었으면 하는 바람이 듭니다. 그 런데 이 것은 따져보자면 어쩌면 좋게 생각해버리는 것이 되기도 합니다. 아시다시피 자연은 우리 에게 호의적이지만은 않습니다. 울타리를 치지 않으면 금새 잡초와 야생동물이 밭을 헤쳐 놓을 것 입니다. 우리가 자연과 얼마만큼 먼 것은 우리 삶의 안전을 보장하기 위해서입니다. 그러니 야생을 맨살로 대하는 것에서 느끼는 두려움을 초월하기란 삶에서 초월하기와 같습니다. 그러한 삶은 우 리에게 어떤 느낌을 주는지? 먹고사는 삶을 악다구니로 칭하고 그러한 악다구니에서 벗어난 느낌. 안 먹어도 배부른 기분의 먹지 않아도 더 이상 노동하지 않아도 되는 삶이 열릴 것 같은 그러한 기 분은 낭만적으로 상상하는 낙원으로만 존재합니다. 그레고리 콜버트의 사진의 그 순간들을 자연스 러움으로, 자연스러운 조화로 느끼는 것은 그래서 일종의 착각이 될 수 있습니다. 그래서 사실 그 의 사진들을 볼 때마다 저는 마음이 복잡합니다. 하지만 역시 이따금 찾아 보게 되는 것은. 삶에서 는 사자를 목 졸라 죽이는 삼손과 같은 힘을 필요로 하지만, 굶주린 사자굴에 갇혀서도 사자가 헤 치지 않는 다니엘과 같은 인물을 더 높은 경이로움으로 대하는 것과 같겠죠. 뭐, 현실에선 삼손과 다니엘 둘 다 보기 힘드니까요.

글. 그림 지인 freshdrawing.blogspot.com


월간이리 2013년 11월호  

월간이리 2013년 11월호를 공개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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