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순서 입니다.

EGG IN WONDERLAND / 그림. 안경미 회사옆 미술관 / 글. 강세기 환타지와 모순의 조우 (遭遇): 영화로 읽는 時空間 (시공간) / 글. 곡주대비 Where did you sleep last night? / 사진. 글. @Ahopsi before 2013 / 사진. 글. beamil 독후소설 / 그림. 황은정 글. 김종소리 바다비 일요시극장 광고 세계의 직업 / 그림. 왼손이 Midnight in Seoul / 글. 사진. aoikasa 다양한 느낌의 플라워 데커레이션 / 글. 안언주 ‘신고’와 ‘허가’의 차이로 나타나는 광화문 광장의 변화 / 글. 김명신 우울한 청춘 / 그림. 글. 철민 Public Gastronomy / 글. 사진. 미식의 별 새해 인사 / 그림. 왼손이 부산 오뎅 이야기 / 글. 사진. odeng INTO THE JAZZ / 글. 사진. 이상준 사서학동 / 글. 사진. 박민수 <빈곤에 맞서다>를 읽다가 / 글. exxx 마리나 아브라모비치 (Marina Abramovic) / 글. 그림. 한지인


5년전 이명박 대통령이 당선 되었을 때, 기왕 된 것 잘 했으면 하는 마음 이 있었는데, 그것이 참으로 허망한 바람이라는 것이 너무도 금방 드러나 서 남은 기간동안 영 힘들어 했었습니다. 그래서 다시 대선 투표일이 다가왔을때 무척 설렜고, 한 명의 후보가 좋은 정책들을 이야기 하며 든든히 자라는 것에 흡족해 했습니다. 뉴스에서는 정책 선거가 실종 되었다 하지만 정책들은 차곡히 쌓여갔고 좁게나마 사 회적인 담론도 형성되었죠. 결과적으로는 지금 이렇게 머리가 복잡하지만 보다 많은 사람들이 정책에 대해 생각하고 공감할 수 있는 기회가 되었다 는 것은 부정할 수 없는 소기의 성과가 아닐까 합니다. 지금 다시, 막연하게 박근혜 당선자가 잘 해주리라는 이야기는 하지 않겠 습니다. 그것은 그녀 스스로의 일이 될 것이고 제가 바란다고 쉽게 이루 어지지 않을테니까요. 그래서 오늘 이렇게 마음을 다 잡아봅니다. 좋은 책을 나누고 좋은 정책에 대해 이야기하고, 좋은 음악과 영화를, 좋은 드라마와 공연을 나눠야겠다. 혼자 다 갖고, 나만 갖고 있는 것은 즐거움과 경쟁력이 될 지는 몰라도 공 감하는데는 하나 도움이 되지 않았습니다. 저는 이번 선거에서 어머니에 게 왜 문재인 후보를 찍어야 하는지를 두시간 이상 설명했고 그 결과 어머 니는 지지의사를 보이셨지만 다음 선거에는 제가 지지 하는 후보에 대해 말하지 않아도 공감 할 수 있도록 노력하겠습니다. 항상 힘이 되는 사람들과 함께 앞으로 나갑시다. 월간이리도 여러분의 곁을 지키겠습니다. 화이팅. 이달에는 아티스트의 초상화를 맡아 주실 한지인님과 일상 사진을 연재하 실 beamil 님이 새로 참여 하셨습니다. 진심으로 감사드립니다. 월간이리의 공식 트위터는 @postyri 이고 온라인 페이지는 postyri.blogspot.com 입니다. 이곳에서는 컬러 PDF 파일과 바로보기가 제공되고 있습니다. 월간이리에 연재를 희망하시는 분은 언제든 편하게 공식 트위터로 멘션을 주시거나 월간이리 기고 안내문으로 검색하시면 잘 정리되어 있으니 편하 게 연락 주시면 감사드리겠습니다.


안경미 www.lostinmirage.com


내 방 갤러리

회사 옆 미술관

지금은 한풀 꺾였지만 4-5년전에 한창 불던 와인 열풍을 보며, ‘소주와 막걸리는 왜 고급문화로 취급 받지 못하 는 걸까?’라는 의문이 있었다. 소주 소믈리에, 소주 전문샵, 소주 전용 냉장고, 소주 감평사, 소주 명인 탐방, 소주 평점 등등의 문화가 탄생하 는 즐거운 상상들. 그 시작은 소주에 대해 얘기하는 사람이 얼마나 많아지느냐, 바로 평론씬이 얼마나 두텁게 퍼 져 있는가에서 시작하겠지. 미술도 마찬가지로 하나의 작품에 수 만가지 이야기 거리를 만드는 사람이 바로 평론가 아니던가. 어쩌면 이 평 론가들의 한 문장으로 한 작품이 살고 죽는 강력한 영향력이 있게 된다면 훨씬 다양한 목소리의 작업을 맛볼 수 있을 것이란 상상을 했다. 그러나 현실은 딱히 그런 것 같지 않다. 아트리뷰가 매년 발표하는 미술계 영향력 있 는 인사 100명(Power 100, http://www.artreview100.com)에 갤러리스트와 콜렉터, 그리고 큐레이터는 많지만 비평가는 눈 씻고 찾아봐도 없다. 그래서 이번에는 평론가들에 대한 이야기를 하려 한다. 이 글을 읽는 분들 중에 나처럼 미술을 좋아하고 싶은데 마땅한 레퍼런스가 없어 답답해하는 분들이 있을 것이라고 속단하고, 정보공유 차원에서 특별히 즐겨찾는 평론 가의 공간들을 소개해본다. 그리고 계절이 계절이니만큼 돌아다니기 보다 비평가들이 열어놓은 전시를 방에서 즐기는 것도 괜찮지 않은가? ㅇ 평론가 임근준의 블로그 (http://chungwoo.egloos.com/) 단연 가장 많이 들리는 블로그다. 다른 곳들도 배운다는 생각으로 들 르지만, 특히 이곳은 강의 듣는 기 분으로 들린다. 2008년 즈음 개인 적으로 문지문화원 사이와 두산아 트센터 등에서 강의를 들었던 인연 도 이런 마음가짐을 갖게 하는데 한 몫을 하는 듯도 하다. 이 곳이 다른 곳들과 차별화 된 것 은 간단히 말하면 “오타쿠”성. 수업을 들을 당시 그는 이미지 파 일과 함께 강의를 진행했는데 얼핏 봐도 그 자료의 분량이 상당했다. 아티스트별 폴더 안에 쌓여있던 수 많은 이미지 파일들. 당시 그것들 을 어떻게 다 모았을까 싶었는데 이 블로그의 포토 아카이브를 보면 당시 느꼈던 나의 기분을 여러분도 조금은 느낄 수 있을 것이다. 이것 을 보고 있으면 매니아, 오타쿠 등 의 단어가 아주 자연스럽게 떠오른 다. 이런 방대한 데이터를 근거로 풀어가는 각종 기고글은 매우 재미 있다. 각종 야사와 직설적인 유머와 조소 역시 쫄깃하다. 좁은 미술판에도 거침없는 돌직구를 날리는 그의 글( 르몽드 디플로마티크 기고문, 미술계의 청년 착취)은 몇 번이고 읽었던 기억도 있다. 그의 문장만큼 시원했다. 그의 저서 전권을 추천한다.


글. 사진. 강세기

ㅇ평론가 반이정의 블로그 (http://dogstylist.com/)

이분도 임근준 평론가와 함께 미술 블로그계의 바이블로 모시고 있다. 두 분의 블로그는 하루에 한번 꼭 들린다. 임근준 평론가에게서 공부 하고 이분하고는 같이 전시장 돌아 다니는 기분으로 들린다. 그렇다고 내용이 가볍나, 그것도 아니다. 그 만큼 쉽고 재미있게 쓴다는 얘기다. 자전거, 정치, 사회 문화 다방면의 분야에 기고하는 반이정 평론가를 보면 한없이 자유함을 느낀다. 진짜 놀면서 돈버는게 이런 삶이구나. 무 진장 부럽다. 역시 그의 저서 전권 을 추천한다. ㅇ 월간미술 2012년 3월호, “안녕하세요, 비평가씨! Hello, Critics!” 비평가를 전면에 내세운 특집 기사다. 이 기사를 보고 미술잡지 글이 더 재미있어졌다. 비평가들의 관점이 어떤 경로를 통해 형성되는지 대략 그림을 잡고 글을 읽으니 어렵게만 느껴진 비평 글이 조금 더 친숙해졌다.

ㅇ Nalari66 님의 블로그(http://blog.naver.com/nalrari66) 이름도 모르고 직업도 모른다. 다 만 미술씬에 종사하는 분이라는 추 측만 할 뿐이다. 몇 년 전까지만 해 도 Surfing the New York Art Scene 이라는 블로그로 생중계하 듯 뉴욕 미술 전시에 대한 상세한 리뷰와 사진, 그리고 배경 설명으로 신세계를 보여줬던 분이다. 얼마 전 에 한국에 귀국한 이후 국내 전시를 중심으로 리뷰가 올라오고 있다. 한 동안 들리지 못하다 Surfing…… 블로그가 없어진 사실을 안 후 멘 붕 상태로 정신 없이 이분의 종적 을 찾아 헤메다 얼마 전에 발견했 다. 당분간 이분 블로그를 파고 들 어갈 예정이다.


ㅇ 뉴욕의 숨비소리(http://nayun2006.egloos.com/) Surfing…… 블로그의 뒤를 잇는 뉴욕 아트 씬 전문(?) 블로그라 할 수 있다. 전 아트인컬쳐 잡지의 기자 분이 뉴욕으로 유학가면서 블로그를 통 해 뉴욕에서 일어나는 전시 리뷰를 올리고 있다. 일반 기자의 리뷰와 다 른 점은 아무래도 즐기는 사람이 담아내는 사진과 글이 훨씬 더 재미있다 는 점이다.

ㅇ 컨템포러리 아트 저널 (http://cajournal.co.kr/) 평론가 심상용이 펴내는 계간 잡지 로 한번도 사보지는 않았지만 언젠 가 좀 이해가 될만한 배경지식이 쌓 인다면 도전하고 싶은 책이다. 사실 아직 비평문을 재미있게 읽을 정도 의 내공은 없나 보다. 시간이 지나 면 잘 읽힐 것이라 생각된다.

ㅇ 경향 아티클 (http://www.kharticle.com/) 경향신문에서 펴내는 잡지로 블로 그라 하기는 좀 그렇지만 지난주에 처음 만난 기념으로 올린다.

그 밖에 혼자 보기 아까운 미술 블로그 또는 소스가 있으신 분은 제게 아낌없이 알려 주시라(제블로그: kangjoseph.tistory.com). 내 블로그에 공유를 하던지 트윗으로 알리던지 적극 나서겠다. 추운 겨울 방안 갤러 리 투어를 더욱 풍성히 하기 위해, 그리고 아트 리뷰 Power 100에 한국 비평가가 이름을 올리는 그날까지 ^^


글: 곡주대비

환타지와 모순의 조우 (遭遇): 영화로 읽는 時空間 (시공간) 공포장르에서 재현되는 ‘피’와 여인네들2화: ‘브라이언 드 팔마’의 <캐리> (Carrie, 1976)

‘브라이언 드 팔마’는 아마도 히치콕 다음으로 공포장르로 각인되는 감독들 중 하나 일것이다. 물론 그는 <미션 임파서블> 첫번째 편의 감독이기도 하고 <칼리토>나 <스카페이스> 같은 갱스터 장르 영화들의 시나리오를 쓰 기도 했으나 필자에게 그의 뛰어난 전문성(?)은 스릴러와 호러물에서 발견된다고 보여진다.

그 중에서도 <캐리> 라는 작품은 ‘스티븐 킹’의 원작 소설을 영화로 만든 작품으로 ‘브라이언 드 팔마’ 작품 중 에서도 수작으로 꼽힌다. 이 작품은 <캐리> 라는 십대소녀를 주인공으로 하고 있는데 그녀의 엄마는 광신도에 가까운 기독교 신자 이며 그녀는 이런 엄마 에게 세속적인 삶과 단절 되기를 강요 당한다. 더군다나 그녀는 염력 을 가지고 있는 범상치 않은 소녀이고 그녀의 그러한 이질성은 하이에나 같은 십대 또래들에게는 언제봐도 “찝 찝한” 여자애로 그들의 따돌림 재물이 되는데 너무 완벽한 퀄러티 이다. 캐리는 학교에서 완전한 아웃사이더이 고 친구들에게 당하는 하루하루의 따돌림에서 간신히 버텨 내고 있다. 캐리의 ‘이질성’은 그녀가 월경을 시작하 면서 더더욱 두드러 지는데 그녀가 샤워실에서 피를 쏟아내는 순간, 옆에 있던 다른 소녀들은 기다렸다는듯 캐 리를 놀려대기 시작한다.

흥미로운 것은 캐리의 월경에 대한 그녀의 엄마의 반응인데, 그녀는 자신의 딸에게 초경이 신이 내린 피의 저주 라고 가르치며 모든 여성들은 자신이 짊어지고 있는 원죄에 대해 사함을 받아야 한다고 강요한다. 사실 이러한 캐리 엄마의 반응은 이 영화 속에서만 등장 한 것은 아니다. 여성의 초경은 다양한 종교에서, 문화에서 불경한 것 으로 인식 되었고, 월경을 하는 여성은 피해야 할 대상으로 여겨졌다. 기독교에서도 월경 중 성관계는 금하고 있 고, 유대교나 이슬람교에서도 월경을 하는 동안에는 신께 더욱 신실하게 기도 해야 하는 것으로 가르치고 있다.


전편에 필자가 들여다 보았던 드라큐라와 비교했을 때 흥미로운 것은 흡혈 장르에서 여성의 피는 생명의 원천 이자 쾌락의 물약이 되는 반면, 캐리에서 드러난 여성의 피는 신의 저주이자 원죄의 증거가 된다는 것이다. 영화 후반부에서 결국 캐리는 친구들의 음모에 희생자가 되어 학교 파티에서 돼지피를 온몸에 뒤집어 쓰게 되고 그녀 의 분노는 학교 안에 있던 모두를 ‘피의 희생자’ 로 만드는데 이른다.

결국 따지고 보면, 피와 함께 쓰인다) 초반부에 그녀가 아무리 착한 소녀로 등장 했다 해도 그녀를 악마의 초상 영화 전체가 캐리를 마녀화 하고 있다는데 동의 하지 않을수 없다. 특히 그녀가 돼지피를 뒤집어 쓰는 클라이 맥 스 부분을 보고 있으면 (돼지피는 흔히 악마 의식에서 닭으로 보지 않기 힘들어 진다. 다시 말해, 캐리는 지극히 순한 감수성을 가진 캐릭터 임에도 불구 하고 영화는 그녀에게 동정의 시선을 주지 않는다. 동정은 커녕 그녀의 마녀성을 영화 클라이 맥스에서 극대화 시킴으로써 사실상 그녀가 괴물이었다는 것을 증명한 셈이다. 대부분의 공포 장르에서 ‘착한 여자애’ 캐릭터가 살고 ‘못되고 밝히는 여자애’ 캐릭터들이 빨리 죽는 불문율이 이 작품에 서는 깨지는 셈이다. 그렇다면, 왜 여성은 원죄 (original sin) 의 숙주가 되어야 하고 (그럼으로써 공포의 대상이 되고) 그녀의 마녀성은 꼭 그녀의 ‘피’로서 시작이 되었어야 하는가. 드 팔마 감독은 ‘히치콕’을 자신의 우상이라고 여러 번 밝힌바 있다. 사실 드 팔마의 <드레스 투 킬> 같은 영화는 히치콕 장르를 그대로 답습했다고 말해도 과언이 아닐 것이다. <캐리> 에서 재현되고 있는 여성의 원죄 라 는 주제는 ‘히치콕’의 모든 영화들에서 은유 되는데, 이는 여성의 원죄가 남자주인공에게 죄의식으로 ‘전이’ 되는 것으로 표현된다. 가령 <레베카 > (1941) 에서 ‘조안 폰테인’이 맨덜레이 저택에 들어오게 되면서 남자 주 인공의 묻어두었던 죄의식이 그들의 관계를 잠식하게 되고, 그의 죄의식 은 그의 전 부인 ‘레베카’ 가 그에게 생전부터 생후에 까지 남용해왔던 것 이다. 혹은 필자가 히치콕 최고의 걸작으로 꼽는 <현기증> (1958) 에서 ‘ 제임스 스튜어트’는 ‘메들린’을 사고로 잃고 생긴 죄의식을 또 다른 여성 ‘ 주디’와 조우 하며 없애고자 하지만 결국 ‘주디’를 죽음에 이르게 함으로서 진정한 죄인으로 낙인 된다.


물론 히치콕은 여성의 피를 직접적으로 사용하진 않지만, 여성의 존재는 그의 영화에서 죄/죄의식 을 지표 하는 데 결정적인 장치로 쓰이고 이는 우리가 캐리 에서 본 여성의 초경=원죄 의 관계 혹은 드라큐라 에서 다시 읽어 볼 수 있는 여성의 피 (악마의 육체를 부활하게 하는) 와 일맥상통 한다 볼 수 있다. 좀 빈약한 유추라고 보실 수 있겠으나 이와 비슷한 예를 한국 영화/문학에서 찾는 다면 필자는 단연 <장화, 홍련>을 들겠다. 계모는 자매를 쫓아내기 위해 쥐의 껍데기를 벗겨낸 핏덩어리를 자매의 이불 속에 넣어 놓고, 이는 마침내 모든 이가 이 자매를 죄인으로 인정하게 되는 결정적인 사건이 된다. 이러한 죄는 단순히 자매가 거짓말을 했다던지, 혹은 물건을 훔 쳤다는 종류의 죄랑은 본질이 다르다. 이는 여성의 육체가 더럽혀졌음을 증거하고 그 더러운 육체에서 나온 핏 덩어리는 무너진 처녀성과 따라서 무너져버린 그녀의 존재이유를 증명하는 구체적 산물이 된다.

다음화에서는 미국 70년대 중반에서 80년대로 넘어가며 휩쓸었던 스플레터 (splatter genre: 피가 튀기는 고어 장르) 장르 중에서도 1974년 제작 되었던 텍사스 전기톱 살인 사건의 오리지널 버전 과 그에 재현되는 산업화 와 히피 문화, 여성상에 대해서 알아보겠다.

글. 곡주대비


Before 2013

재작년보다는 추웠던 작년 가을, 또 그 가을보다는 조금 더 차가웠던 올 가을에서 겨울로 넘어가는 순 간들이다. 혹은 겨울에서 가을의 순서일 수도 있다. 이제는 그런 순서가 무슨 의미가 있나 싶다. 그저 나 살아가는 데에 조금의 피해도 주지않길 바랄 뿐, 자연이 주는 환희는 잊은 지 오래. 하지만


{beamil} 이 사진들은 계절의 변화만이 아닌 내 인생 한 귀퉁이의 변화들마저 감지하고 있다. 첫 직장 의 출근길, 꿀맛 같은 주말이 주던 장소의 기억, 그리고 나에겐 아팠던 18대 대선의 기억까지. 그 모든 것들을 이 정방형 사진으로 바라본다. (그리고 바라봐주는 이들이 있다.)


- 이 달의 선정 도서 『지미 코리건: 세상에서 가장 똑똑한 아이』, 크리스 웨어, 박정수 역, 세미콜론, 2009 이 만화는 기존에 보았던 다른 만화들과는 전혀 다른 구 성을 가지고 있다. 칸은 고정되어 있지 않고, 자연스 러운 흐름을 제공하지도 않으며, 마치 케이블 방 송의 뜬금없이 등장하는 광고들처럼, 내용 도중 에 책의 제목을 제시하거나, 종이 공작 도안을 제시한다. 이런 화려한 구성 안에서 심플한 그 림체는 끊임없이 이야기를 던진다. 주인공 지 미 코리건이 아버지를 만나는 이야기를 중심으 로, 지미 코리건의 과거, 아버지의 과거, 할아버 지의 과거, 그리고 이들의 상상들까지. 산만하게 느껴질 수도 있다. 하지만 오히려 이런 방식이 매끄 럽게 재구성한 이야기보다 세상과 더 닮아있다는 생각 이 든다.이번 독후소설은 과거와 대과거, 그리고 현재와 상상이 버무려 진 이야기를 써보고자 했다. 조금은 산만하게. 마치 지금 당신이 처해있는 상황처럼.

자에게 사귀자는 이야기를 꺼냈다. 그렇게 둘은 사귀 게 되었다. 그리고 두 달의 시간이 흘렀다. 차츰 여자 에게서 연락이 오지 않기 시작했다. 남자는 초조했다. 지금껏 봐온 다른 남자들처럼 자신도 그렇게 쉽게 정

- 진부한 크로키

리되는 것은 아닐지. 불행히도 남자의 예상은 정확하게 맞아떨어졌다. 여

여자의 비명소리가 들렸다. 남자의 욕설이 들렸다. 남

자는 남자와의 관계를 문자 하나로 간단하게 끊어버

자가 여자를 밀쳤다. 여자가 바닥에 쓰러졌다. 남자가

렸다.

여자를 향해 발길질을 했다. 여자의 비명소리가 지하

‘미안 나 다른 남자 생겼어 그동안 고마웠어^^’

철 플랫폼 안에 날카롭게 울려 퍼졌다. 그는 궁금했다. 저 남자는 왜 저러는 걸까?

그는 남자가 저러고도 남을만한 상황이라고 생각했 다. 더 패줘야 한다고. 더 짓밟고, 더 까고, 상판에 침

남자는 여자를 짝사랑했다. 여자는 남자의 마음을 알

도 뱉어주고, 욕도 더 많이 해줘야 한다고. 저런 개 같

면서도 모른 척하며 적당한 관계를 유지했다. 여자에

은 년들은 맞아도 싸다고.

게는 늘 남자친구가 있었다. 헤어지면 다른 남자가, 또

공익근무요원이 달려와 남자를 뒤에서 부여잡았다.

헤어지면, 또 다른 남자가 그녀의 옆자리를 차지했다.

남자가 몸부림쳤다. 바닥에 쓰러져있던 여자는 몸을

남자는 자신이 여자에게 이용당하고 있는 것이라고

일으켜 앉아, 머리를 귀 뒤로 넘겼다. 그리고 남자를

생각하면서도 마음을 접을 수 없었다. 언젠가는 여자 가 자신을 볼 날이 올 것이라고 믿었다. 그렇게 한 해, 두 해, 세 해가 흐르고 드디어 남자에 게도 기회가 찾아왔다. 어찌된 일인지 여자가 먼저 남

향해 외쳤다. “야, 이 씨발 새끼야! 네가 뭔데 이래! 씨발!” 그는 어쩌면 자신의 상상과는 다른 상황일지도 모 른다고 생각했다.


그의 가장 오래된 기억은 과수원길이다.

공익근무요원 두 명과 함께 서있었다. 그는 열차를 타

그의 아버지는 그를 자전거 뒤에 태우고 노래를 불

지 않고, 남자를 향해 달려갔다. 공익근무요원들이 그

러주었다. 동구 밖 과수원길, 아카시아 꽃이 활짝 폈

를 제지하려 길을 막았다. 그는 둘을 밀쳐내고 남자의

네.

얼굴 가운데에 주먹을 날렸다.

그는 아버지의 노래와 스쳐지나가는 풍경이 좋았다. 그래서인지 그는 빠르게 스쳐지나가는 풍경을 바라 보고 있으면 마음이 편안해졌다. 버스를 타든, 지하철, 기차를 타든, 바깥 풍경을 바라보고 있노라면, 평소의

네가 뭔데 여자를 때려. 네가 뭔데 여자를 때려. 네 가 뭔데 여자를 때려. 쓰러진 남자 위에 올라타 계속해서 얼굴을 주먹으 로 때렸다.

잡생각들이 사라졌다. 그리고 과수원길. 아카시아 꽃

네가 뭔데.

이 활짝 핀 그 광경이 떠올랐다.

남자의 이가 튀어나와 바닥을 굴렀다. 그의 주먹에 피가 묻었다.

고개를 좌우로 흔들었다. 남자도, 여자도, 공익근무요

네가 뭔데. 도대체 네가 뭔데 여자를 때려.

원도, 그 주변에서 웅성거리는 사람들도 잔상을 남기 며 사라지고, 다시 나타나고를 반복했다. 남자가 왜 저러는지, 여자는 왜 저러는지, 궁금하지

어머니는 집을 나갔다. 아버지는 더 이상 그와 함께 자전거를 타지 않았다.

않았다. 뭔가 이유가 있을 터였다. 문제가 발생한 곳

아버지가 처음으로 자전거를 탄 날은 벚꽃이 흩날

엔 가까이 가지 않는 것이 상책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리던 어느 봄날이었다. 그래서 아버지는 자전거를 탈

남자와 여자가 서로에게 퍼붓고 있는 욕설들이 들려

때면 늘 하얀 꽃을 떠올렸다. 새하얀 꽃. 언젠가 자신

왔다. 열차가 들어온다는 안내문이 들렸다. 그는 고갯짓을 멈추고 남자와 여자의 반대쪽으로 걸

의 아들, 혹은 딸과 함께 자전거를 탈 날을 생각했다. 그럼 노래를 불러주리라. 이 기분을 함께 나누리라.

어가기 시작했다. 열차가 덜커덩 덜커덩. 그는 어두운 창밖을 내다보았 그의 아버지가 어머니를 때린 이유는 뻔한 것이었다.

다. 그는 남자와 여자가 어떻게 되었을지 궁금했다. 남

어머니의 바람. 아버지는 밖에서 술을 진탕 마시고 들

자는 공익근무요원들과 함께 사무실로 끌려갔을 것이

어왔고, 어머니는 집에서 아버지를 기다렸다. 아버지

다. 여자는 이곳저곳 멍든 몸을 이끌고 친구들을 만나

는 집에 들어온 순간부터 어머니의 머리채를 잡아 바

남자에 대한 욕지거리를 늘어놓았을 것이다.

닥에 내친 뒤, 발길질을 시작했다. 그는 이불 속에서

스쳐지나가는 풍경이라곤 지하터널 속 어둠뿐.

귀를 틀어막았다. 하지만 소용없었다.

그는 어머니가 보고 싶었다.

어머니의 비명소리. 아버지의 욕설. 앞으로 더 이상 어머니를 보지 못할 것이라는 추측. 그는 아버지와 함께 자전거를 타고 가던 길을 떠올 렸다. 하얀 아카시아 꽃이 환하게 피어있었다. 아버지 는 시장에 가면 사과를 사주겠다고 했다. 집에 가면 어머니와 함께 밥을 먹자고 했다. 그런 아버지가 어머니를 죽이려고 했다. 그는 이불 속에서 기어 나와 거실로 나왔다. 아버지 가 발길질을 멈추고 그를 바라보았다. 어머니가 입을 틀어막고 그를 바라보았다. 플랫폼으로 열차가 들어왔다. 그는 저 멀리 남자와 여 자를 바라보았다. 어느새 여자는 보이지 않고, 남자만

아버지와 함께 자전거를 타고 싶었다. 하지만 고아인 자신에게 그럴 일은, 과거에도, 지금 도, 미래에도 없을 것이란 생각에 고개를 숙였다.


바다비 일요 시극장 2013.01.27 PM20:00 신청 http://cafe.daum.net/badabie


Midnight in Seoul (부제: 우리 동네 이야기)

글. aoikasa

Prologue 조선시대에는 육조거리, 일제강점기에는 광화문통이라 불리던 세종로 입니다. 이 길은 이 나라의 행정관청들이 모두 모여있는 정치와 행정의 중심지로서, 종로와 남대문로, 그리고 명동 등이 한양 성곽 안의 근대적 ‘상업거리’로서의 모 습을 보인다면 이 곳은 ‘정치와 행정’의 중심으로 그 권력이 변화함에 따라 끝없이 변화한 곳이었습니다. 원고를 준비하다 보니 광화문 광장의 탄생을 보며, 그 곳에 앉아있는 황금색 세종대왕을 보며, 느끼던 묘한 기분이 떠오릅니다. 광화문역 9번 출구를 따라 나오다 보이는 숨막히는 스펙터클. 세종대왕-광화문-청와대-북한산으로 이 어지는 숨막히는 풍경에 저 위에 계시는 누군가가 ‘짐이 곧 국가다’를 외치는 듯한 기분이 든 것은 그저 저의 과민반 응이었을까요. 차로 잠식당했던 공간이 그나마 도시에 숨통을 틔워주는 광장으로 돌아온 것은 기쁘지만, 우리에게 ‘광장’이 무엇인 가에 대한 고민을 던져준 곳, 세종로에 쌓인 시간의 켜를 찾아보고자 합니다. 2012년 12월. 국민의 선택은 끝났고 정 치적 이슈도 곧 희미해지겠지만, 이 곳이 언젠가는 시민들의 ‘광장’으로 돌아오길 바라면서…

우리 동네 이야기 그 세번째. 세종로. 서울에서 가장 넓은 길, 육조거리. 세종로는 경복궁의 정문인 광화문에서 현재의 광화문역 까지 이르는 큰 길을 일컫는 말이다. 이 길은 한양이 조선 의 수도가 되었을 때부터 있었던, 서울에서 가장 오래된 길 중 하나로 근대화 이전까지는 ‘육조거리’로, 한일병합 이후에는 ‘광화문통’으로 불리던 길이다. 이 길은 다른 무엇보다 조선의 정궁인 경복궁의 광화문 이 그 끝에 위치하고 양 옆으로는 조선의 관청가인 육조 가 늘어서 있었기 때문에 그 정치적 상징성이 매우 중요 한 거리였다. 이는 기본적인 동양의 도시구조인 주작대 로인 것인데, 종로가 동서로 도시를 가로지르면서 상업 적 기능을 담당한다면 이 거리는 정치적 기능을 담당하 는 거리였던 것이다. 육조거리는 한양에서 가장 넓은 대로였다. 그 너비는 거 의 60m로, 거의 길이 아닌 광장과 같은 공간이었다. 이 길의 양측면에는 장랑(긴 행랑)이 쭉 늘어서 연속적이면

한양도(1760) 육조거리에 늘어선 관청가의 모습

서도 통일감있는 가로경관을 구성하고 있었는데, 이 모습은 사실상 대한제국기에도, 1910년대에 이르러서도 크게 변 치 않고 유지되었다. 그 이름은 광화문통으로 변하였을지라도… 이는 대한제국기의 근대적 관청 설치와 한일병합이 후의 일본의 행정기관 설치 등의 사건들이 벌어지기도 하였으나, 가로변의 장랑들은 계속 유지되었기 때문이다. 20 세기 초 이 거리에서 일어난 가장 큰 변화는 바로 1926년 시작된 조선총독부 건축이었다. 화강석과 대리석으로 만들 어진, 빛나는 조선총독부 건물은 일본이 남촌(을지로, 명동 등 서울의 청계천 이남 지역)을 벗어나 조선의 중심인 북 촌까지 진출하여 진정한 주인이 되었음을 상징적으로 보여주는 건물이었다. 그런데 이 건물을 광화문이 가리고 있는 것이 맘에 들지 않았는지, 일제는 경복궁의 동측으로 광화문을 옮겨버렸다. 임진왜란때 소실되었다가 고종때 겨우 복구된 광화문은 결국 조선총독부의 설치와 함께 궁궐의 한 측면으로 쫒겨나게 되어버린 것이다.


제국의 스펙터클 1925년 관동대지진 이후 일본은 철근콘크리트건축물을 선호하게 되었다. 게다가 양식적으로도, 1920년대 중반 이 후에는 세계적으로 유행하였던 국제주의 양식(철근콘크리트로 만들어진 하얀색, 혹은 회색의 장식없는 사각형 건축 스타일)이 식민지 조선에도 도입되려하는 시점이었다. 그러나 1926년 완공된 조선총독부의 경우는 1912년부터 그 계획이 시작되고 1918년부터 착공이 이루어졌기에 당시의 유행과는 다른 경향을 보였다. 물론 시대적 배경뿐 아니 라 이 건물이 가지고 있는 정치적 의도, 일본 제국의 힘을 보여주기 위한 것이기에 ‘서구고전주의’적 양식으로 만들 어졌다. 대칭적 입면과 중앙의 돔이 주는 위엄과 석재재료가 주는 육중함, 거기에서는 권력의 ‘힘’이 그대로 드러났 다. 게다가 그 큰 도로의 중심에, 초점이 되는 곳에 이 건물이 있다는 것은 ‘제국의 스펙터클’을 생산하며 그 곳을 지 나는 조선인들에게 거의 공포감마저 불러오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이 든다.

광화문 철거 이전과 이후의 조선총독부 - 식민지 제국의 스펙터클을 완성하기 위하여서는 반드시 광화문 철거가 필요했을 것이다.

이후 광화문통은 광화문이 없는 광화문통이 되어버렸다. (하긴 세종로 역시 세종대왕 없는 세종로였다. 세종대왕이 그 거리에 나타난 것은 실로 얼마되지 않은 일이니…) 거리의 끝에는 빛나는 ‘조선총독부건물’이 세워졌고 가로변은 장랑대신 가로수들이 줄지어 늘어서며 ‘근대적 가로경관’을 만들어냈다. 가로변 건축물들도 기존의 육조를 대신한 근대적 행정기관들(경기도청, 통신국, 탁지부 건축소, 법학교, 경찰,순사 교습소 등)이 들어서면서 기존의 단층건물일 색의 거리풍경에서 2층 이상의 근대적 건축물들로 가득찬 거리로 변해갔다. 이 풍경에서 가장 인상깊은 것은 거리의 중앙에 늘어선 가로수이다. 당시 남대문로, 종로, 을지로 등 서울의 주요 도로 가로변에 가로수가 식재되긴 하였으나 이렇게 길의 한 가운데 가로수가 식재된 것은 광화문로가 유일하였다. 그 이유가 무엇이었을까. 해방 이후 조선총독부는 중앙청이 되었고, 광화문로는 세종로가 되었다. 지금의 세종문화회관 자리에는 이승 만대통령의 호를 딴 ‘우남회관(이후 시민회관)’이 세워졌 으며 그 건너편에는 미국대사관이 들어섰다. 이승만 대 통령의 기념비적 건축인 우남회관은 세종로 일대의 가장 높은 건물로서 당시의 전체 세종로 가로경관을 지배하였 다. 1966년에는 불도저 시장, 김현옥 시장의 주도하에 지 하보도의 건설이 이루어졌으며, 1968년에는 전차가 철 폐되고 철근콘크리트로 만들어진 ‘새’ 광화문이 제자리 로 돌아오고 충무공 동상이 들어서는 등 세종로의 새로운 모습들이 만들어졌다. 1970년대에 들어와서는 지하차로 가 생겼으며 또한 우남회관이 화재로 소실된 이후 세종 문화회관이 같은 자리에 들어섰다. 1970~80년대에는 정 부중앙청사, 교보빌딩, 이마빌딩 등이 가로변에 연속적 으로 들어서며 가로변 건축물의 고층화가 이루어졌다.

1960년대의 세종로. 중앙청과 가로수길, 우남회관과 새로 만든 지하도입구가 보인다


아, 광화문 광장 앞서 잠깐 이야기했듯 조선시대의 육조거리는 그 규모상 (폭 60m X 길이 600m) 길이라기보다는 광장에 가까운 것 이었다. 두 개의 해태상이 놓여있는 이 길에는 많은 사람들이 오고 갔다. 조선시대 왕이 사는 궁궐 앞이라 하기에 어 색할 정도로… 육조거리가 종로와 만나는 황토현(현 광화문사거리) 근처의 혜정교(현 광화문우체국 근처)는 조선시 대 왕이 백성들의 말을 듣고자 했던 상언(上言)제도가 시행되던 곳이었으며, 탐관오리가 처형되는 곳이기도 하였다. 이처럼 육조거리란 조선시대 왕이라는 최고 권력자가 백성과 소통하기 위한 광장으로서의 역할을 하였던 것이다. 한편 황토현은 땔감시장이 열리던 곳으로, 20세기 초까지 이 곳에서는 땔감을 가득 실은 소와 그 것을 사고 팔러 나 온 사람들이 한데 섞여 있었다. 사진5에서 볼 수 있듯이 우산을 펼쳐 놓고 무언가를 팔고 있는 행상과 그 구경을 하 러 나온 아이들까지 다양한 삶의 군상들이 모여 있는 곳이었다. 1897년 대한제국이 건립하며 경운궁(덕수궁)이 황 궁이 되었고, 그에 따라 상언을 할 수 있는 장소도 대안문 앞으로 그 위치를 옮겨 갔지만, 20세기 초까지 이 곳은 한 성부민들의 넒다란 광장이었다.

. 1900년대 초반의 육조거리. (사진출처: 김원모, 정상길 ‘서울의 근대사)

1900년대 초반 황토현사거리. (사진출처: 카를로 로제티, ‘꼬레아 꼬레아니’)

이 공간의 성격이 결정적으로 변하게 된 것은 바로 1910년 한일병합 이후 시행된 경성시구개정(1912~13)에 의해서 이다. 일본은 이 길을 태평로와 이으며 직선대로로 연장시켰고, 황토현의 고개를 깎아 네모난 형태의 광장을 만들었 다. 그리고 1915년 조선물진공진회, 1929년 조선박람회를 경복궁에서 개최하며 이 광장은 ‘대일본제국의 근대문명 의 우수함과 힘’을 보여주기 위한 공간으로 철저하게 변모하였다.


땔감시장이 열리던 황토현엔 박람회의 입구임을 알리는 거대한 문이 세워졌으며, 이 넓은 길을 따라서는 일본식 석 등이 줄지어 세워졌다. 광화문은 박람회장 입구로 사용되기 위해 울긋불긋 장식되었으며, 그 넓은 광장은 박람회 구 경온 사람들로 가득찼다. 이렇게 이 곳은 자연스레 넓은 길 그 자체가 사람들의 광장으로 사용되던 것이 계획에 의해 무언가를 보여주기 위해 정형적 틀을 가져버리게 된 과시형 광장으로 변모되고 말았다. (참고: 김백영의 ‘식민권력과 광장공간 - 일제하 서울 시내 광장의 형성과 활용’, 2011사회와 역사, 한국사회사학회)

1910 경성시가전도와 1914 경성부시가강계도 - 황토현 주변의 변화가 보인다.

1915 조선물진공진회(좌)와 1929 조선박람회(우) 당시의 광화문통 (사진출처: 좌) 정성길, ‘서울의 근대사’ 우) 서울역사박물관)

지도 위에 보이는 선명한 네모난 광장의 모습과는 달리, 두 번의 공진회와 박람회를 제외하고는 이 공간은 사람들이 자연스레 모이는 광장의 역할을 하지는 못하였던 것 같다. 193년 박태원의 ‘소설가 구보씨의 일일’에서 구보는 이 거 리를 ‘그 멋없이 넓고 또 쓸쓸한 길’이라 일컫는 것을 보면 아마도 이 길은 박람회를 보러온 구경꾼들로 가득찼을지 는 몰라도, 이전의 땔감시장이 열리던 그 활기참은 이미 사라져버린 것이다.


1915 조선물진공진회 당시의 광화문(좌)과 광화문통에 몰려든 관람객들 (사진출처: 좌) 정성길, ‘서울의 근대사’ 우) 서울역사박물관, ‘광화문연가’)

조선총독부라는 지배의 상징적 공간이 정점에 있는 그 거리가 식민지 조선인들에게 달갑지 않았을 것은 물론이고, 일본 역시도 그 공간에 사람들이 모이는 것을 달가워하지 않았을 테니까. 그래서 가로수를 길의 한 가운데 심었을지 도 모른다. 조선총독부 앞에 다들 모여 시위라도 할까 겁이 난 걸지도… (프랑스에서 오스만이 자꾸 바리케이드치고 시위하는 시민들을 막기 위해 ‘대로Boulevard’를 만든 것과는 대조적으로) 사실상 이 때 만들어진 이 공간의 성격은 지금까지도 크게 변화가 없는 것 같다. 1992년 ‘지우고 싶은 과거사’라는 이유로 조선총독부는 무자비하게 철거되었고 2009년 중앙의 가로수길을 대신하는 광화문광장이 들어섰다. 하지만, 대로를 양쪽으로 끼고 ‘물’로 그 경계가 나뉘어진 이 광장은 일제시대 가운데 가로수길처럼 마치 ‘섬’처럼 느껴질 뿐 이다. 게다가 광화문 지하철 역으로부터 올라오다 보이는 광경은 어떠한가. 조선총독부가 긴 가로수길 끝에 서 있음 으로 만들던 ‘정치적 공간의 스펙터클’은 세종대왕-광화문-청와대-북한산으로 이어지는 대한민국 지배자들의 ‘스펙 터클’로 대체되었다. 일제시대의 잔재인 ‘광화문통’이라는 이름을 청산하기 위해 ‘세종로’라는 이름을 붙이고 ‘세종 대왕’ 동상마저 모셔 왔지만, 이 곳이 과연 그 시대의 잔재를 청산하고 다시 우리의 공간, 소통적 광장으로 돌아왔는 지는 모르겠다. 그저 내 눈엔 ‘아이리스’에서 총격전이 벌여지던 곳이라며 이 곳을 찾는 관광객들만 보일 뿐이니… 언 젠가는 이 거리가 보여주기 위한 과시형 광장, 스펙터클의 공간이 아닌 왕에게 상언을 올리던 ‘소통형 광장’, 시민들 의 일상이 있는 장소로 돌아오길 간절히 바래본다.

광화문역 9번출구에서 보이는 광화문광장과 그 너머. 그 곳의 스펙터클

* 소통적 광장과 과시적 광장이라는 표현은 김백영의 식민권력과 공공광장이라는 논문에서 차용한 표현입니다. 이 곳에 대한 더 자세한 이야기를 알고 싶으시면 서울역사박물관의 2009년 전시‘록 ‘광화문연가’를 참고하시면 좋을 것 같습니다. 다음 동네는 세종로와 바로 연결된 ‘태평로’입니다. 조선일보, 동아일보, 경성일보 등의 언론사들이 총집 결해 있던 이 길 그리고 ‘모던 경성’을 만들어가던 한국인 건축가들에 대해 이야기해보고자 합니다. (Twitter : @aoikasa27)


다양한 느낌의 플라워 데커레이션 작년 한 해 정신없이 마무리 하고 보니, 새로운 시작입니다. 아직 추위는 가시지 않았는데 이상하게 봄이 온 것 같이 의욕만은 마구 앞섭니다. 크리스마스 장식을 치운 자리는 깔끔한 것 같긴 하지만, 한편으론 새로운 마음으로 시작하고 싶은 의욕적인 1월엔 허전함이 가득한 듯도 합니다. 그래서, 이번 달에는 좀 더 새로운 것 좀 더 올 한해 충분히 볼만한 가치와 멋이 있는 소재의 데커레이션을 소개해 드리려고 합니다.

1. 프리저브드 플라워(Preserved Flower)

Preserved Flower는 단어의 뜻과 같이 ‘보존된 꽃’입니다 생화가 가장 아름답게 폈을 때 특수 보존액을 사용해 탈수, 탈색, 착색, 보존, 건조의 단계를 거쳐 생화의 아름다 움을 그대로 장기간 보존할 수 있도록 만든 새로운 개념의 꽃입니다.

물 없이도 온도와 습도에 따라 3~5년간 그대로의 모습을 간직하며, 마르면서 바삭하게 부서지는 드라이플라워 (Dry Flower)와는 다르게 부드러운 촉감과 탄력을 유지합니다. 특히, 사용 전 염색으로 생화에서 볼 수 없는 다 양한 색상의 꽃을 새롭게 만들어 낼 수 있는 것도 특징입니다. 단, 가격이 한 송이에 적게는 7,000원부터 많게는 2~3만원까지 하니 조화롭게 디자인해 놓은 상품 가격은 생화의 가격에 비교해 높은 편입니다. 때문에 적은 꽃으로도 ‘꽃’으로 효과를 볼 수 있는 공간에 추천합니다.


2. 압화 (Pressed Flower)

압화는 흔히 들판이나 산에서 발견되는 야생화의 꽃과 잎, 줄기 등을 채집하여 물리적 방법이나 약품처리를 하는 등의 인공적인 기술로 누르고 건조시킨 후 회화적인 느낌을 강조하여 구성한 것을 말합니다. 압화는 꽃을 평면으로 말리기 때문에 조형성이 적은 반면 다양한 매력을 갖고 있기 때문에 압화로 된 한송이 작 은 들꽃은 카드, 편지지, 액세서리, 액자용 그림, 전등갓 등 다양한 생활용품과 어울려 훌륭한 장식품이 될 수 있 습니다.

또 압화는 꽃뿐만 아니라 식물의 잎과 줄기, 야채, 버섯, 과일, 해초 등 재료의 다양한 장점이 있어서 자연풍경, 회화, 인물의 표현 등을 표현하는데 아주 뛰어난 가능성을 제시합니다. 좀 화사하게, 고상하게, 식상하지 않게 데커레이션 하고 싶은 분들에게 빈 벽을 채울 작품이나 인테리어 소품의 데커레이션으로 효과적이라고 생각합니다.


3. 조화 (artificial flower) 조화는 실용적으로 가장 먼저 생각해 내실 수 있는 자연의 생화를 모방해 내어 만들어 낸 꽃으로, 가장 보편화되 어 있고 시장생산도 많은 상품입니다.

조화재료의 주재료로는 헝겊류 로 얇은 무명 ·면(綿) 빌로드 ·얇은 비단 ·사(紗) ·새틴 ·데신 ·포플린 ·오건디 등 이 많이 쓰이고 종이로는 한지(韓紙) ·미농지(美濃紙) ·크레프지(crepe paper)가 주로 쓰이며 가죽조화에는 양 가죽 ·송아지가죽 ·쇠가죽·염소가죽이 사용 됩니다. 주재료에 따라, 생화를 모방해 낸 완성도에 따라 가격도 천 차만별입니다.

글. 플로리스트 안언주.


‘신고’와 ‘허가’ 차이로 나타나는 광화문 광장의 변화 - 광화문 조례 개정안이 필요한 이유

글. 김명신 (@kimmyungshin)

블로그: http://www.projectdragon.kr/307

가을이 깊어갑니다. 오래전 광화문 중앙분리대에 늘어섰던 은행나무들의 행방이 새삼 궁금해집니다. 그 은행 나무들이 어딘가에 뿌리를 내리고 지금도 살아있으면 좋겠습니다. 광화문 광장으로 시작되는 서울의 중심은 우 리 세대들에게는 남자의 자격에 나오는 김태원의 “사랑이라는 이름을 더하여”라는 노래 가사 속 “세월아 가려 무나. 아름답게 다가오라 지나온 시간처럼” 다가오는 추억의 공간입니다. 그 때 그 은행나무들이 떠나야할 이유 가 있어서 서울시가 보냈지만 그리워지는 건 광화문이라는 광장이 예전처럼 시민의 목소리를 내기 힘들어진 아 쉬움도 담고 있습니다.

이번 10월 저를 포함한 서울시의회 시의원 32명은 최근 광화문광장 사용목적을 확대하고 광장사용에 관한 허 가제를 신고제로 변경하는 것을 골자로 하는 ‘광화문광장의 사용 및 관리에 관한 조례 일부개정 조례안’을 발의 했습니다. 10여개 언론에서 이 개정조례안을 기사화하는등 언론들이 소란스럽습니다. 예상컨대 서울시의회 도 시관리위원회는 다음달 11월 10일에 열리는 정례회의에서 심의하고 서울시의회 본회의에 상정할 것으로 생각 됩니다. 지난해 이맘때 서울광장을 비롯해 서울도심 4개 광장 허가제에서 신고제로 푸는 통합광장 조례안을 검 토했었습니다. 일부에서 시민들의 불편을 이유로 반대하기도하고, 조례안 개정에 따른 영향을 파악하기 어려워 순차적으로 개방하기로 한 것입니다. 막상 서울광장을 허가제에서 신고제로 바꾼 후 1년간 추이를 보니 예상과 달리 부작용이 없어 다음 차례인 광화문광장 조례 개정안을 발의하게 된 것입니다. 그 당시 야 5당과 여러 시민 단체들과했던 약속을 지킨것입니다.

이번 개정 조례안에 따르면 광장 ‘사용신청 및 허가’를 광장 ‘사용신고 및 수리’로 변경하고 시장은 사용신고 있 는 경우 원칙적으로 수리하도록 했습니다. 다만 광장 조성목적에 위배되는 경우, 다른 법령 등에 따라 이용이 제 한되는 경우, 시민의 신체나 생명 등에 침해를 가할 우려가 있는 경우 등에는 ‘서울시 열린광장운영시민위원회 설치 및 운영에 관한 조례’에 따라 시민위원회의 의견을 들어 신고를 수리하지 않을 수 있게 됩니다. 예전에 서울 시장이 편파적으로 혹은 독점적으로 광화문 사용을 결정했다면 새로운 조례에서는 시장은 신고시 이를 수용해 야하고 부득이한 경우 시민들로 구성된 위원회에 상정하여 개방적으로 운영하게 된것입니다.

이 조례 개정을 발의하고서 한 매체와 라디오 인터뷰를 했습니다. 여러 가지 질문이있었지만 “서울광장은 허가 제로 인해 실제 집회신청이 거부되는 경우가 많아 신고제로 전환할 필요가 있었다. 하지만 광화문광장은 대부분 의 사용 신청이 받아들여지고 있고 미국 대사관과 문화재가 인접해 실제 대규모 집회를 벌일 수도 없어 신고제 는 큰 의미가 없지 않냐?” 고 묻더군요. 광장을 사용하려는 시민들이 하는 신고는 꼭 대규모 집회만 하는 게 아 닙니다. 어린이, 여성, 청소년 부문 등에서 다양한 행사가 있을 수 있기 때문에 보다 개방적으로 광장의 사용권 리를 주어야 합니다. 집시법에 때문에 효용성이 없어서 미루어왔다 말하지만 실효성이 있든 없든 상징적으로 표 현의 자유를 신장 한다는 측면에서 허가제를 신고제로 바꾸는 일을 계속 확대해 나아가야 합니다. 특히 ‘허가’와


‘신고’라는 단어 자체의 뉘앙스가 다르다는 부분에 주목해주십시오. 일년 전 서울광장만 신고제로 전환했었는데 도 이에 서울시 오세훈 전시장이 서울광장 사용 및 관리에 대한 개정 조례안을 무효화 해줄 것을 요구하는 소송 을 걸기도 했는데 과연 이게 무의미한 일이라면 그들이 소송까지 걸겠습니까? 우리가 신고만 하고 그 광장을 이 용할 수 있다면 그 장소는 시민의 것이지만, 그들에게 허가를 받아야 한다면 서울시의 장소라는 소유적 의미가 다른 겁니다. 그리고 이제 우리의 시민권리로서 공공장소를 되찾는 것은 서울광장에서 광화문 광장으로 나머지 청계광장으로 열리기 시작하는 겁니다.

광화문은 유동인구도 많고 여러 유적지가 모여있어 인기가 좋은 곳입니다. 그러나 서울시가 개발이라는 이름 으로 광장을 조성한후 광장조성에 500억원을 들였으나 햇빛가리개하나 없고, 여름에는 두해째 심각한 물난리를 겪는 광장, 스케이트장, 거대한 구조물의 세계스노우보드 점프 대회장, 플라워 카펫등 별의별 이름으로 다달이 1억4천만원에서 3억원까지 써대며 수시로 설치물이 달라지고 나날이 전시장이 되어버린 광화문 광장을 볼때마 다 낭비성, 전시성 관제 행사장의 황당함은 비단 저만의 느낌은 아니었을 것입니다. 이 모두 서울시의 폐쇄적인 기획과 운영 때문에 생긴 일입니다. 언제까지 주민의 세금이 이렇게 낭비되어도 좋은 것일까요?

광장의 통합조례를 만들려 해도 각 광장마다 소관부서가 다 다릅니다. 서울광장은 행정자치위원회, 광화문 광 장은 도시관리위원회, 청계광장과 초록띠광장은 환경수자원위원회입니다. 광장의 이용에 대한 정리가 되어있지 않음을 보여주는 모습입니다. 그러므로 통합관리도 시급합니다.

‘아와 어’가 무엇이 다르냐 묻지만, 광장을 ‘허가’하고 쓰느냐, ‘신고’하고 쓰느냐는 상징적으로 심정적으로 소 유권자가 다른 겁니다. 단어 한개가 서울시와 시장 그리고 시민의 마음가짐을 다르게 하는 겁니다. 광장은 시민 들에게 휴식과 발전을 주는 공간이며 서로 소통하는 공간이어야 합니다. 주민세금으로 조성된 주민들의 공간이 기 때문에 주인도 서울시민이어야 합니다. 서울시는 지방자치단체로서 단지 관리자일 뿐입니다. 주민이 광장을 사용하는 것을 법적으로 까다롭게 규정하고, 관제행사만 풍성하게 치루며, 주민을 단지 구경꾼으로 만드는 광 장은 시대정신에도, 광장의 본뜻에도 부합하지 않습니다. 이것이 광화문 광장에 허가제가 아닌 신고제가 되어 야하는 이유이며,서울의 모든 광장이 열려야 하는 이유입니다. 그렇게 될때 우리가 파헤쳐버린 은행나무들에게 도 덜 미안하게 될것입니다.

광화문광장에 나가 돗자리깔고 책을 읽을 상상을 하던 중 발견한 글 입니다. 글을 실을 수 있도록 허락해준 김명신님께 감사드립니다.


우울한 청춘

글. 그림. 철민


Public Gastronomy 12회 - 부담없이 즐기는 스시 한 끼, 도부 스시 글, 사진 / 미식의별 (트위터 = @maindish1)

스시의 기원은 패스트푸드 스시는 예나 지금이나 비싼 고급 음식으로 인식되고 소비되고 있다. 더군다나 최근 몇 년 동안 서울 시내에 생 긴 초고급 스시집을 꼽자면 열 손가락이 모자랄 정도. 그러나 현재의 형태와 같은 스시의 시작은 고급 요리라 기보다는 패스트푸드에 가까운 것이었다. 대중들이 스시를 사먹는 곳은 주로 에도(지금의 도쿄)의 야타이(屋 台 - 음식을 파는 일본식 노점)였고, 스시의 형태 또한 오시즈시(押し寿司)라는 밥과 생선을 틀에 눌러 만드는 것 이 일반적이었다. 오시즈시는 생선을 밥과 함께 (식초 등에 절여) 단기간 숙성시키는 것으로, 신선한 생선을 구하기 어려운 내 륙지방인 쿄토(京都)에서 만들어진 일종의 간편 보존식이라 할 수 있다. 반면에 바다를 접하고 있는 에도(지금 의 도쿄)에서는 신선한 생선을 손쉽게 구할 수 있다 보니 날 생선을 이용한 스시가 만들어지게 되었다.(그렇다 고 하더라도 냉장기술이 없던 시대기 때문에, 지금의 스시보다는 재료를 절이고 데치는 등의 전처리를 많이 요 하기는 했다.) 현재 일반적으로 스시라고 불리는 형태의 것은 니기리 스시(にぎり寿司)라고 하는데, 이는 아시다시피 식초를 섞은 밥을 손으로 뭉쳐 와사비와 적당한 크기로 자른 생선을 올려서 먹는 것으로, 1824년 오픈한 요헤이 스시의 주인 하나야 요헤이가 이러한 형태의 스시를 처음 만들었다고 전해진다. 홍대 인근의 저렴하고 맛있는 업소를 소개합니다.


알아두면 좋을 스시 용어 요즘 보면 스시에 사용되는 식재료를 일본어로 부르

경제가 양극화되듯 음식 가격도 양극화되는 요즘, 적

는 분들이 꽤 되는데, 고급 스시집에서 접대라도 할 게

당한 가격에 맛있는 음식을 먹기란 얼마나 힘든 일인

아니라면 딱히 꼭 알아두어야 할 필요는 없다는 생각이

지. 요즘 착한식당이라는 단어를 많이들 사용하는데,

다. 반면에 좀 알아둬서 나쁠 거 없다는 생각이 드는 용

매체마다 사람마다 착한식당의 정의는 각각 다르게 내

어가 샤리(しゃり)와 네타(ねた)다.

리겠지만, 이렇게 양심적인 가격에 맛있는 음식을 파는

샤리는 스시의 밥을 의미하는데, 불교용어 사리(舎利)

곳이야말로 착한식당이라 할 수 있지 않을까.

에서 온 말이라고. 네타(ねた)는 밥 위에 올라가는 재 료를 뜻하는데, 일본어로 재료를 뜻하는 타네(たね)를 거꾸로 부른 것이다. 물론 샤리는 밥, 네타는 재료라고 불러도 되지만, 내가 사용하지 않는다 하더라도 다른 사람이 사용할 경우 못 알아듣는 건 별로 유쾌하지 않 을 수도 있으니.

모듬초밥

추천메뉴는 모듬초밥

부담없이 즐기는 스시집, 도부 스시 패스트푸드로 시작된 음식이기는 하지만 지금은 고급

바쁘지 않으시면 조금씩 쥐어주시기도.

음식이 된 스시. 요 몇 년간 부담되는 가격의 스시집들 이 부쩍 늘어난 가운데, 부담없는 가격에 언제든 편안 히 스시를 즐길 수 있는 가게도 몇몇 눈에 띄는데, 그 중 최근 홍대 부근에 새로 생긴 가게로는 도부 스시를 꼽을 수 있겠다. 도부 스시는 원래 경성고 사거리 부근에 계시다가 얼 마 전에 지금의 자리(구 TGI 부근)로 이전을 하셨다고. 그런데 외관이 너무 깔끔한데다 밖에서 볼 수 있는 가 격표 같은 것도 없어서, 가격대가 좀 있어 보이기도 하 고 지나가다 불쑥 들어가기에는 조금 망설이게 되기도 한다. 그러나 1만5천원에 가격대비 참 훌륭한 모듬초

마무리 우동까지 먹으면 배가 찢….

밥을 먹을 수 있는 곳이니 언제든 부담없이 들려보시

주소 : 마포구 동교동 201-33호 A동, 세정신문사 1층

길. 모듬초밥을 주문하면 샐러드와 죽이 나온 후 초밥

전화 : 02-333-6600

12피스를 쥐어주시고 마지막으로 우동이 나오는데, 샐

위치 : 홍대입구역 1번출구 부근. 구 TGI 자리

러드에서 우동까지 뭐 하나 빠지는 게 없고, 맛은 물론 양도 푸짐하다.

(현 삿뽀로 팬차이나) 앞에서 우회전 50m 기타: 평일 낮에는 가끔 브레이크타임이 있는 듯.

누구나 부담 없이 즐길 수 있는 공공(Public)의 미식(Gastronomy)을 추구합니다.


왼손이


부산오뎅 이야기 (2012.)

2012년 한해 국내 외 굵직 굵직 한 일들이 많이 있었다 굵직 굵직 한 뉴스는 내가 다룰 필요는 없으니 각자 선 호하는 매체를 통해 확인들 하시고, 부산오뎅에서 있었던 굵직 굵직 한 이슈들을 되짚어보기로 한다 여러가지 일들이 있었지만 간단하게 추려보기로 한다. 2012상반기로 거슬러 올라가면 1월 알바양과 주인장의 다이어트 결심 그리고 헬스장등록 주인장과 알바양3개월등록(물론 직원복지차원에서 주인장이 재원을 마련하여 알바양의 헬스비지원) 주인장 1달다니고 그만둠 알바양 3달 수료 허나 3개월후 알바양의 체형 변화없음 새로 영입된 알바군의 시샘 자기는 왜 복지의 혜택을 주지않냐는... 2월 주인장 음악에 대한 열정에 실용음악학원 등록 (파워 드러머의 꿈을 꿈)


5월 주인장의 어버이날 효자빙의 프로젝트 맛집에 대기번호 190번이란 신세계를 경험. 무려 1시간40분을 기 다린 끝에 먹은 맛없는 맛집. 아버지의 분노를 금일봉으로 수습하며 절반의 성공 부산오뎅 주인장이 주축이 된 FC오라이(부산오뎅,탐라식당,이리까페)출범 6월 상반기에 복지혜택을 받지 못한 알바군과 주인장 복싱체육관등록(물론 직원복지차원에서 주인장이 재원 을 마련하여 알바군의 회비지원) 부산오뎅8주년 7월 (구)부산오뎅 사옥에서 (현)부산오뎅 신사옥으로의 이전 1주년 - 부산오뎅 매출의 90%를 차지하는 카드 매출로 인해 성실납세우수업체 후보까지만 올라가고 수상 불발. 세금 폭탄 직격 8월 이리까페 주인장의 개인 별장 파주로 이전 결정에 강제노역 투입 9월 FC오라이 창단후 최초의 시합 중학생들과의대결에서 충격의 대패 10월 알바군과 주인장의 불꽃튀는 스파링 11월 부산오뎅 사회각계각층에 스폰서질. 홍대 동아리,각종 졸업전시회 지원. 홍대의 메디치 가문으로 거듭 나는가! 12월 제정위기에 대출, 3년여 동안 용병급 활약을 해온알바양의 퇴사 통보 휴2013년에 새로운 이야기들을 기대해본다


into the jazz

컴퓨터 음악이 가진 장단점들 컴퓨터 또는 기계음악은 음악을 쉽게 접근할수 있는 방법 3가지 중 필자가 마지막으로 제시한 것이다. 소위 ‘미 디’ (midi)라고 불리는 컴퓨터음악은 80년대 중반 Atari컴퓨터의 등장과 함께 급격히 진화하기 시작했고 이제는 음악을 하는 사람이라면 누구나 한번즘 경험해봤을정도로 많이 보급되어 있다. 컴퓨터음악을 자주 하지 않는 나역시 내컴퓨터안에 미디프로그램만 3개가 설치되어 있다. 우리가 음악이라하면 흔히 악기를 사용하는 것으로 인식되어왔다. 컴퓨터가 과연 악기냐 아니냐의 논쟁은 90 년대에 매우 활발히 이뤄졌고 지금도 이문제에 대해 심각하게 고민하는 사람들이 많이 있다. 이 논쟁이 중요한 이유는 컴퓨터로 만들어진 음악이 음악으로 인정받느냐 안받느냐를 결정짔기때문이다. 컴퓨터를 여타다른 악 기와 함께 음악도구로 인정하는 순간 컴퓨터로 만들어진 소리는 그저 소리가 아닌 음악으로 인정받는 것은 매 우 자연스런 것이다. 이 논쟁에 대한 나의 과거의 입장은 단호했다. 컴퓨터는 악기가 아닌 그저 기계일뿐이었다. 다시 이야기하면 컴 퓨터음악은 음악으로 인정하지 않았다. 컴퓨터로 음악을 만드는 사람들은 그저 엔지니어정도로 취급했을 뿐이 다. 그러나 지금 나의 입장은 과거와 조금 다르다. 사회문화적 관점으로 음악을 볼 때 나는 컴퓨터를 또 다른 악 기로 인정한다. 아니 인정을 하지 못할 특별한 이유가 무엇이 있을까? ‘컴퓨터가 악기가 아니다’라는 주장을 하 려면 먼저 초등음악교육에서 중요한 악기로 사용되는 트라이앵글, 캐스터네츠, 그리고 탬버린과 비교해 무엇이 문제인지를 설명해야 할것이다. 오늘은 컴퓨터란 악기가 가진 장단점에 대해 이야기하자.


장점 3가지 1. 쉽다.

2. 혼자 다할수 있다.

저냐하는 논쟁과 같다.

필자는 음악을 쉽게 접근해야한다

음악은 흔히 공동작업이라고 한다.

컴퓨터음악은 굳이 이야기하면 보

고 강조하지만 사실 음악이 그리 쉬

하지만 이말도 이젠 지난 말이다.

다 더 결과적이라고 할수 있다. 연

운것이 아니라는 것은 우리가 잘 아

컴퓨터한대와 음악프로그램만 있

주자들이 악기로 연주하는 음악은

는 사실이다. 모든 일이 10년은 해

으면 사람들을 30-40명씩 모아 연

매번 그 소리가 다르다. 제아무리

야 한다고 한다. 음악 역시 거의 하

습할 필요도 없고 개성강하고 까다

첨단장비로 폭격지점을 정교하게

루 온종일 매달리면서 10년을 채

로운 연주자들끼리 싸워가면서 음

잡는다고 해도 ‘포’가 절대로 같은

워야 그때부터 조금씩 알기시작한

악할 필요도 없다. 컴퓨터가 모든

위치에 떨어지지 않는 것과 비슷하

다. 필자의 경우 본격적으로 공연

문제를 다 해결해준다.

다고 생각하면 된다. 아무리 내가

을 하고 다닌지가 이제 20년이 넘

음악속의 베이스소리가 맘에 안들

같은 연주를 하려고 해도 두번다시

고 1년에 20~50회 연주를 해도 하

면 컴퓨터를 켜고 고치면 된다. 걸

같은 연주가 나오지 않는다. 그리고

면 할수록 음악이 뭔지 잘 모르겠

리는 시간은 1분도 되지 않는다. 자

그 연주를 담을수도 없다. 반대로

다. 자기가 다루는 악기의 기술만

신의 목소리가 저음이라면 그저 조

컴퓨터 음악은 언제가 같은 소리를

연마하는 시간이 10년이 걸리는 듯

표를 내리면 음악은 당신의 음역에

담을수 있고 늘 그자리에 있다. 결

하다. 그만큼 음악이 쉬운 것은 아

알맞게 바로 변한다. 조표를 순간

과물의 변화가 없다. 신기하게도 늘

닌듯 하다.

바로 바꾸지 못한다고 연주자들과

같은 위치에 포격이 가능하다. 그러

컴퓨터는 이러한 시간문제를 깔끔

힘겹게 또 서로 불편한 이야기하면

다보니 여러 다양한 작업과 시도로

히 해결해준다. 본인이 다루는 악

서 음악할 필요가 없다. 또, 전체사

서로 다른 느낌의 음악을 비교분석

기를 이해하는데 걸리는 10년을 단

운드를 60년대 복고풍으로 가고 싶

이 가능하다. 결과물에 집중할수 있

며칠만에 해결할수 있다. 아는분은

나. 그러면 클릭 몇번으로 당신의

는 환경이 자연스레 조성되어 있다.

잘 아시다시피 애플컴퓨터에서 나

음악은 50년전으로 돌아갈 수 있다.

얼마나 좋은가? 축복이다.

오는 iMac이나 Macbook컴퓨터를

죽은 비틀즈를 불러낼수도 있는 것

대화를 하면 연주자들은 일반적으

사면 Garageband라는 기본음악프

이 컴퓨터음악이다. 이렇게 모든 것

로 과정에 대해 더 많은 이야기를

로그램이 있다. 그 프로그램속에 기

을 혼자 다 할수 있다.

하지만 컴퓨터음악을 하는 사람들 은 보통 과정보다 결과물에 대해 더

타, 베이스, 피아노, 드럼 등 모든 악기소리는 물론 음악샘플들이 있

3. 결과물에 더 집중할수 있다.

많은 관심을 가지는 것을 알수 있

어 이것을 자기 입맛에 맞게 사진

음악에 대한 이런저런 많은 이야기

다. 이것은 매우 큰 장점이기도 하

을 다운로드 및 업로드하듯 프로그

가 있다. 음악은 과정적인 것이냐

다. 음악을 실제로 하는 사람과 달

램에 편집만하면 바로 음악이 된다.

아니면 결과물적인 것이냐하는 논

리 음악을 소비(?) 또는 듣는 일반

컴퓨터 또는 프로그램 다루는 방법

쟁은 늘 있어왔던 것이고 지금도 많

대중들은 결과물에 관심이 더 많다.

을 잘 모르나? 크게 걱정할 필요없

은 사람들이 토론하는 주제이다. 최

아니 결과물에만 관심이 있다고 해

다. 유튜브 또는 애플공식싸이트에

근의 흐름은 결과적인 것보다 과정

도 과언이 아니다. 껌을 씹는 사람

가면 매우친절한 레슨비디오가 있

적인 것에 더 초점이 맞춰져있는 현

이 껌이 어떻게 만들어지고 유통되

다. 바보가 아닌 이상 5분에서 10

상이 두드러져있으나 개인적으로

어 자기 입속에 들어오는지 관심이

분이면 이 프로그램 사용법을 배울

과정과 결과는 모두 중요하다고 생

있는 사람이 과연 몇이나 될까. 그

수 있다. (컴퓨터를 정말 잘 못다루

각한다. 좋은 과정은 결국 좋은 결

저 맛나는 껌을 씹고 기분이 좋으면

는 바보같은 필자도 한다. 당신은

과를 내기위해 필요한 것이고 같은

되는 것이다. 전통적인 악기를 연주

더 잘할수 있다.) 10년 걸려서 나올

이야기지만 좋은 결과는 좋은 과정

자들보다 컴퓨터음악을 하는 사람

만한 음악이 10분이면 컴퓨터에서

없이 있을 수 있다. 과정적 가치와

들이 보다 더 대중음악에 대한 이

나오니 우리는 정말 좋은 세상에 살

결과적 가치를 두고 서로 논쟁하는

해와 관심이 더 높은 것은 자연스

고 있는 것이다.

것은 달걀이 먼저냐 아니면 닭이 먼

런 현상인듯 하다.


아쉬운점 4가지 1. 가격이 만만치 않다.

조심스레 생각한다. 논리적이고 과학적으로 결코 충분

10년이상 시간을 투자해서 나올만한 소리를 10분만

하지는 않지만 양질의 실질적 경험의 여부가 하나의

에 만들어내려면 그만큼 댓가를 지불해야한다. 꽁자

잣대가 될수 있지 않을까.

가 어디있나. 늘 이야하지만 사람들의 일반적인 불평

우리가 프랑스 파리는 굳이 가지 않아도 동영상, 비디

과 달리 우리가 사는 세상은 생각보다 더 공평하다.

오, 또는 책으로 접할수 있다. 아니 어쩌면 실제로 그

10년을 10분으로 압축시키는데는 그만한 댓가를 지

곳에서 사는 파리지앙보다 파리에 대한 지식이 더 많

불해야한다. 컴퓨터란 “악기”가 생각보다 그다지 저렴

을수도 있다. 마치 지방사람이 서울사람보다 63빌딩에

하지 않다.

대한 더 많은 정보를 가지고 있는 것 처럼 말이다. 그러

아시다시피 애플컴퓨터는 일반 PC와 달리 값이 비싸

나, 우리가 실질적으로 파리에 가보지 않고 경험하지

다. (물론 PC로도 음악을 할수 있다.) 기본적인 음악프

않고 과연 파리에 대한 깊은 지식을 가지고 있을수 있

로그램이 설치되어 있지만 실질적으로 그 소프트웨어

을까. 여러통로로 스페인에 대한 지식을 많이 얻을수

를 더 알차게 사용하려면 그외 여러가지 구입해야할

는 있지만 그곳의 문화와 생활방식등에 대한 깊은 이

것이 또 있다. 컴퓨터만 있다고 모든 것이 10분안에 작

해까지 책, 인터넷, 또는 영상으로 얻을수 있을까. 시뮬

업이 되는 것은 아니다. 좋은 소리를 위해서 소위 “샘플

레이션속 경험과 실제상황속 경험의 차이는 분명이 있

링”이라하는 여러 악기소리가 담겨있는 소리저장프로

다. 물론 그 차이만이 어떤 문화 또는 음악에 대한 깊

그램 또는 소스를 구입해야한다. 또, 본인이 작업한 음

이를 좌지우지한다고 단정해 할수는 없지만 어느정도

악에 노래를 부르고 싶으면 마이크, 오디오인터페이스,

영향을 주는 것은 인정해야하지 않을까.

그리고 모니터스피커등 그외 여러가지 장비가 필요하

컴퓨터 음악이 가진 장점들이 있지만 음악에 대한 실

다. 컴퓨터와 함께 이거저러 구입하다보면 돈 5000불

질적인 경험과 이해라는 측면에서는 다소 부족한 면이

은 쉽게 주머니에서 나간다.

있지 않나 싶다. 상대적으로 음악에 대한 본질을 이해

물론 컴퓨터가 아닌 일반적인 악기 역시 구입하려면

하기위한 과정이 많이 짧다. 일반악기로 10년이상 걸

보통 수천불의 돈이 필요하다. 어떤 이들은 상대적으

리는 연주를 컴퓨터는10분만에 해결하지만 이것은 눈

로 컴퓨터음악을 하는 것이 상대적으로 그다지 비싸

에 보이는 결과적인 것이다. 10분과 10년은 분명 다르

지 않다고 주장한다. 생각해보면 맞는 이야기이다. 다

다. 10분의 시간과10년이란 세월의 과정속에 담긴 음

만, 컴퓨터는 악기인 동시에 기계이기도 하다. 여러해

악에 대한 이해와 경험이 동일하다면 우리가 사는 세

가 지나면 컴퓨터환경이 바뀌어 또다시 구입해야하는

상은 정말 불공평하다.

불편함(?)이 있다. 반대로 일반악기의 경우 값이 싼 악

연주가 아닌 작곡, 프로듀싱, 또는 심지어 뮤직비지니

기가 아닌 이상 시간이 한번 사면 본인이 특별한 이유

스를 하더라도 음악을 실제로 연주통해 음악에 대한

로 자기 악기가 싫어지지 않는 이상 평생 그 악기를 사

본질적인 이해가 있어야 한다고 한다. 나 역시 이말에

용할수 있다. 거의 반영구적이라 할수 있다.

전적으로 동감한다. 음악에 대한 본질적 이해와 지식 은 쉽게 얻어지는 것이 아니라 실질적으로 음악이라는

2. 음악에 대한 깊이가 없다 (?)

것을 행함으로 얻어지는 것이 아닌가 싶다. 컴퓨터음

음악에 대한 깊이를 논하는 것은 매우 어려운 일이다.

악이 주는 편리함 이면엔 음악에 대한 본질적인 이해

어떤 것이 깊이가 있고 깊이가 없음을 어떤 식으로 구

의 결핍이 분명있지 않나 싶다.

분할 것인지에 대한 물음이 있을 수 있고 또 이것을 어 떤식으로 평가하고 측량할수 있느냐의 질문 역시 자연

3. 상황에 탄력적이지 않다.

스레 같이 따라온다. 나역시 어떤 음악이 깊이가 있다

필자가 재즈를 연주해서 일까. 음악은 상황적이다. 같

또는 없다라고 명확하게 말할수 없다. (아니 과연 누가

은 곡을 연주를 해도 그날 나의 컨디션은 물론 관객,

어떤 것에 대한 깊이를 과학적으로 논할수 있을까.) 다

날씨, 그리고 장소등 나의 연주는 상황에 따라 변한다.

만, 우리가 실제과정속 충분한 경험이 부재한 결과물

일반적으로 음악을 미술, 영화, 또는 그외 다른 예술과

을 볼때 다소 깊이에 대한 의문을 가질수는 있지 않나

함께 “Fine Arts”라는 이름으로 함께 묶어 놓는다. 하지


만, 음악은 다른 예술과 같지 않다. 다른 예술들은 보다 더 결과적이다. 상황에 따라 작품이 탄력적으로 변하지 않는다. 예로 영화가 여성관객만 있다고 같은 스토리가 여성관객에 맞게 적절히 변하지 않는다. 반고흐 작품이 파리 오르세 박물관에서 뉴욕 모마박물관으로 옮겨왔다고 그 작품이 각 박물관의 환경이 맞게 변하지 않는다. (물론 관객은 같은 작품을 어디서 어떻게 보느냐에 따라 다르게 느낄수 있다.) 음악은 앞서 이야기했듯 같은 내용이라도 상황에 맞게 변할수 있다. 관객이 지루하게 보이면 관객을 깨우기 위 해 적절한 곡 선택과 재미있게 연주를 하면서 관객과 더 친밀하고 긴요한 교감이 이뤄질수 있다. 또, 상황적으 로 슬픈노래를 더 많이 연주 해야할 경우 이미 짜여져 있는 프로그램과 달리 탄력적으로 대처할수 있다. 컴퓨 터음악은 상황에 대한 대처능력은 그다지 높지 않다. 내가 준비하고 음악이 상황에 맞지 않으면 순발력을 발휘 해서 적절히 변화를 주어야하는데 컴퓨터음악으로는 쉽지 않다. 상황에 대한 이해보다는 마치 박물관에서 그 림을 진열해 놓듯 결과물만을 사람들에게 들려줄뿐이다. 음악이 다른 예술과 달리 상황에 탄력적이라는 특징 을 컴퓨터는 가지고 있지 않다. 필자가 주관적으로 생각하는 컴퓨터음악의 장단점을 다뤄봤다. 아시다시피 필자는 전형적인 연주자이다. 물론 컴퓨터로 음악하는 것을 종종 즐기기는 하지만 솔직히 글로 다룰만큼 경험이 많은 것이 아니다. 경험이 적다는 것은 곧 지식이 부족하다는 것을 의미한다. 컴퓨터음악이 가진 장단점은 분명 위의 내용보다 더 넓고 깊을 것이 라 생각한다. 기회가 된다면 이분야의 전문가가 말하는 장단점을 지면으로 담아보는 것도 나쁘지 않을 것 같다. ** 18대 대통령선거의 결과가 매우 아쉽다. 그래도 괜찮다. 1,400만이 넘는 유권자가 함 께했다. 서로 위로하자. 그리고 다시 처음부 터 차근차근 시작하면 된다. 혹시 박근혜당선 자와 새누리당이 싫더라도 성숙한 민주시민 이라면 민주적 결과를 겸허히 받아드리자. 또 앞으로 박근혜당선자가 잘하는 것이 있으면 칭찬하고 인정하자. 반대로 잘못하는 것이 있 으면 비판하고 목소리를 내자. 마찬가지로 범 야권이 잘하는 것이 있으면 크게 칭찬하고 못 하는 것이 있으면 비판의 목소리를 내자. 이 번 선거는 보수대 진보의 대결구도였지만 나 의 관심은 이런 이념적인 것보다 사회정의에 초점을 맞췄다. 박근혜당선인이 사회정의구 현에 보다 더 많은 관심과 노력을 기울였으면 한다. 사회정의가 무너진 토양위에 보수와 진 보를 떠나 누가, 어떤 정책을, 어떻게 성공적 으로 실현시킬수 있을까. 음악칼럼니스트 이상준 홈페이지: www.jonleemusique.com 이멜: jonleemusique@yahoo.com 트위터: @nomidguitar


전주의 서서학동 이라는 곳이다. 나는 전주사람이 아니기때문에 이곳을 정확하게 모른다. 처음 가는길을 알아보려고 주위


위전주사람들에게 물었더니 그들도 잘모른다. 어찌어찌 찾아간 서서학동은 폐가가 많은곳이었다. 버려진집이 굉장히 많다.


주민들은 거의다 노인이다. 많은 사람들


들이 폐지를 줍는다. 이곳은 달동네다.

글. 사진. 박민수


<빈곤에 맞서다> 를 읽다가.. 누군가를 비난하려는 뜻이 아니라. 이런 일이 있었습니다. 얼마 전 아는 친구들이 밥을 먹고 (남기고) 얼마 지나지 않아 과거 대표적 구황작물이었던 옥수수를 먹는 것을 보며 이질감을 느낀 일이 있었습니다. ‘밥을 남기고 구황작물을 먹는다...’ 무척 이질적인 풍경이었습니다. 어린 시절 밥을 먹고 과일을 먹으면 그렇게 다들 행복해 했습니다. 먹어도 가능하면 냉장고에 넣어둔 달고 시원 한 것을 먹으면 기분이 더 좋았죠. 맛도 맛이지만 한참 먹고 살기 치열하던 그 시대에는 밥을 먹고 과일도 먹을 수 있는 것이 행복의 척도였던 것 같았습니다. 그래서 다들 배부르게 밥을 먹고도 정말 꾸역꾸역 과일을 먹었던 것 같았습니다. 저는 이 생각을 하고 있을 때 <빈곤에 맞서다>를 보고 있었습니다. 그러니까 이런 시선이 저의 자연스러운 상 태에서 나왔다고 보기보다 책에 감화되어 인위적으로 나온 셈입니다. 책에는 허기를 이기기 위해 밀가루를 먹 고 물을 마시는 이야기도 나와 있습니다. 그러다 문득 이런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때 그 과일의 행복을 나누려면 어떻게 해야 했을까? 그러니까 과일을 먹던 그 저녁 그 과일을 먹지 않는다면 과일을 다른 누군가에게 전할 수 있었을까? 아니. 아마 높은 확률로 과일은 다시 냉장고로 돌아갈 겁니다. 나중에 썩어서 쓰레기통에 가더라도 우선은 냉장고로 향하 겠죠. 그래서 보낼 수도 없고 먹지도 않을 그 과일이 애초에 집에 없는 상황을 상상해봤습니다. 돈을 들고 과일가게에 서 있습니다. 자 이제 과일을 고를 참입니다. 수박을 고를까? 사과를 고를까?의 문제입니 다. 이렇게 과일을 고르고 나면 아마 먹거나 버리거나 처음과 같이 제 주변에서 과일의 수명은 다할 겁니다. 그러니 좀 더 뒤로 돌아가 보겠습니다. 과일을 사기 전입니다. ‘과일을 사러 갈까?’ 아마 이 생각을 할 때 쯤이면 전 과일을 산 것과 마찬가지 일겁니다. 과일을 사지 않더라도 아이스크림이나 커피를 살 수도 있겠죠. 그래서 좀 더 뒤로 돌아가 보겠습니다. 돈을 쥐고 아무렇지도 않은 마 음으로 서있는 상태. 돈의 용도를 아직 정하지 않고 돈에 아무런 욕구를 투영하지 않은 상황까지 가봤습니다. 그럼 그 돈의 가능성은 무궁무진 하겠죠. 신발이 될 수도 있고 옷이 될 수도 있고 과일이 될 수도 있고 원하는 무엇으로든 변화가 가능합니다. 당연히 누.군.가.에게 줄 과일이 될 수도 있습니다. 그러니까 애초에 욕구 이전에 배분 의지가 있어야 했던 것이죠. 하지만 그런 일은 없었습니다. 매번 돈이 부족하다는 생각을 했었고 돈이 생기면 사고 싶었던 카메라를 사거나 맛있는 음식을 먹기에 바빴습니다. 돌아보니 욕구를 투영하기 이전에 배분 의지를 보인 일이 단 한 번도 없었던 것 같습니다. 여유가 생기면 남을 돕겠다는 생각. 안해본 것은 아니지만 오늘 생각을 해보니 과연 그때가 되어 도 남을 도울 수 있었을까 하는 생각이 듭니다. 애초에 의지가 없었으니까요.

그리고 이 생각은 다음 글로도 이어집니다.


낙수효과의 허구. 낙수효과는 간단히 말하면 폭포에서 물이 떨어지듯 대기업에서 아래로 단계적으로 이익을 얻게 되고 최종적으 로 땅에 물이 퍼지듯 서민경제도 촉촉히 적셔 준다는 뭐 대충 그런이야기입니다. 낙수효과는 얼핏 이미지를 상상하면 그럴 듯 한 이야기죠. 폭포를 생각해도 폭포는 죽죽 떨어져서 땅을 적시고 떨어지기도 얼마나 거침없습니까. 일반 집의 시옷자 모양의 처마를 생각하면 이것 또한 마찬가지로 그럴듯 합니 다. 물줄기가 지붕을 타고 툭툭툭 잘도 떨어져 땅을 적시니 얼마나 긍정적이고 그럴듯한가요. 하지만 실제의 낙수효과는 철저히 관리됩니다. 의도적 분배 행위일 뿐입니다. 간단히, 주전자와 컵을 생각해 보겠습니다. 실제의 낙수효과는 컵에 물을 따르는 행위에 가깝습니다. 한 기업이 이익을 본다는 것은 떨어지는 물을 컵으로 받는것과 같은 것으로, 이익을 자기 안으로 모으는 것이 죠. 우리가 주전자로 물을 따를 때를 생각해 보면, 이 경우 낙수효과는 물컵이 다 채워지고 넘치는 형태입니다. 다시, 우리가 물을 따를 때를 생각해보죠. 물을 받을 때를 생각해도 좋습니다. 물을 일부러 넘치게 따르는 일이 있던가요? 제사를 지낼때를 제외하고는 술에 취해서 정신없이 술을 따를 때롤 제외하고는 가능한 넘치지 않게 관리됩니다. 컵으로 물을 받습니다. 그런데 물이 너무 많다. 그렇다면? 우리의 행동은 보통 정해져 있습니다. 큰 컵을 준비하거나 혹은 다른 컵을 준비합니다. 그것도 아니면 물이 넘치지 않게 마셔가면서 받습니다. 결국, 컵으로 물을 받으면서 물이 넘치는 일은 지극히 고의적인 행위. 즉 의도적 관리가 됩니다. 기업이 커진다는 것은 기본적으로 컵의 용적률이 커지는 것과 비슷한 일입니다. 더 많은 이익을 안으로 들일 수 있는 것이죠. 즉, 기업이 커질수록 낙수효과는 상상하기 어려워집니다. 여기에 컵의 갯수를 늘이는 것처럼 분사 나 계열사 를 만든다면? 혹은 물을 마시듯 배당금이나 성과금을 뿌려가면서 관리한다면? 물이 넘칠 가능성은 0 에 가까워집니다. 이렇게 컵의 이미지를 이어가면 낙수 효과의 허구는 잘 드러납니다. 흘러넘치는 이미지는 그저 단순히 글자의 이미지이지 실제 일어나는 것이 아닙니다. 이익의 분배는 지극히 고 의적인 사건입니다. 그리고 이 컵에서 물이 넘친다 하더라도 물이 마치 비가 내리듯 고르게 여기저기로 뻗어 나 갈 일은 없습니다. 컵이 놓여진 바닥의 근처만 아주 조금 젖을 뿐이죠. 그리고 더 과장해 생각해 본다면. 우리가 컵을 아무곳에나 놓는일이 있던가요? 테이블의 정해진 위치에 컵은 놓여집니다. 결국 어쩔 수 없이 넘치는 혹은 일부러 조금 넘는 그 물조차 관리를 받는 형태가 될 수 밖에 없습니다. 과장과 비약이 섞여 있겠지만 제가 가만히 생각한 낙수효과는 이렇게 컵에 물을 따르는 것에 가깝다고 생각합니 다. 그렇지 않고서는 도저히 지금의 상황을 설명할 수도 이해할 수도 없었습니다. @exxx2x


마리나 아브라모비치 (Marina Abramovic) 마리나 아브라모비치를 알게 된 것은 2011년 2월의 월간미술을 읽은 작년 9월경 입니다. 검은 배경에 전신 골격모형을 끌다시피 업고 있는 작가의 사진이 표지였 으며 인터뷰가 실렸었는데, 그 내용이 엄청 인상 깊어 일부를 다이어리에 옮겨 적 었더랬습니다. ‘나는 오늘날 아티스트의 기능 중에 가장 중요한 것을 책임감이라고 꼽습니다. 스튜디오에서 술 취해 마약 먹고, 세상을 비난하고 온갖 너저분한 것들을 발견해 내는 것을 아티스트의 할 일이라고 믿지 않습니다. 아티스트는 반드시 책임 있는 인간이 되어야 합니다. 스스로의 삶과 절제를 통해 예시할 수 있어야 합니다. 오로 지 순정한 마음 상태에서만 순수한 작업을 창조할 수 있습니다. 그럴 때 인간을 도 울 수 있습니다. 파괴적이고 번잡스러운 마음 상태에서는 파괴적이고 번잡한 작업 만 나옵니다. 우리 사회에 드러난 현상만을 재현하는 작업은 소란스럽기만 해요. 문제만 가득 채운 겁니다. 왜 지금 있는 것만을 보여줍니까? 왜 그것을 다른 상태 로 승화시키지 않지요? 나는 그러한 승화에 관심을 갖고 있어요.’ 아, 인간을 구제할 수 있는 예술을 목표로 스스로에게 순정한 상태를 요구하는 성 직자내지는 샤먼 같은 유형의 예술가가 있구나하는 것은 눈이 번쩍 뜨이는 일이 었습니다. 대학에서 샤먼 예술가로 불리는 요셉 보이스를 수업에서 접했으나, 그 때 저는 그 사람의 작품에서 그런 힘을 느끼지 못해 샤먼 예술가 유형의 캐릭터를 형성하는 데엔 실패했었어요. 캐릭터를 머릿속에 형성하는 것. **의 삶은 이래야 한다고 정의내린 것을 접하면 머릿속에 **의 삶의 모양과 기준이 들어옵니다. 그를 바탕으로 머릿속에 **이라 는 캐릭터가 자리하게 되고요. 이렇게 머릿속에 살게 되는 여러 캐릭터들은 제가 제 때에 맞게 삶을 형성하고 제 다음 행보가 어떻게 될지를 예측하는데 도움을 줍 니다. 그러하여서 아브라모비치의 예술가 관은 제게 하나의 캐릭터를 형성하게 도 와주었고, 구체적으로 작업은 ‘승화된 것’이다-가 아니라 작업에 승화를 담아야 한다-는 생각과, 그래서 예술가가 하는 모든 것이 승화된 것이 아니구나. 그래, 예 술가가 하는 모든 것이 예술이지는 않은 것이다. 그리고 예술가가 하는 모든 것이 예술이 아닌 것은 결국 예술가란 예술을 하는 사람이란 정의에 의하여, 예술가는 예술가였다가 예술가가 아니었다가 할 수 있겠구나. 하는 생각으로 이어졌습니다. 결국 제게 예술가란 자신의 예술에 의해 언제든지 파문당할 수 있는 그리고 복권 될 수 있는 ‘상태’에 붙여진 이름이죠. 그러니까 어떤 사람을 예술가라고 할 때, 그가 한 번 내지는 여러 차례 그렇게 일컬어졌다 해도 그가 평생 예술가인 것은 아 니라는 겁니다. 한번 타이틀을 획득했다고 계속 그 타 이틀을 갖는 것이 아닌 것. 샤먼이 자신의 지위를 참여자에게 인정받아야만 샤먼의 역할을 계속해서 수행할 수 있듯, 예술가 또한 그렇다는 것이죠.


퍼포먼스를 하는 마리나 아브라모비치와 그가 벌여놓은 작업은 본원에 접한 비유 와 상징을 사용합니다. 갤러리 입구에 남자 작가 Ulay와 함께 나신으로 서서 관객 이 그 사이를 부대끼며 통과하도록 한다거나 피 묻은 소 뼈 더미에 앉아 며칠에 걸 쳐 그 뼈를 닦는 것, 갤러리 내에 마련한 세트에서 물을 제외한 일체의 음식을 먹 지 않고 12일을 지내는 것. 몇 십 가지의 흉기를 비치하고 관객이 자신에게 위해 를 가하게 하는 것. 책상을 마주하고 놓인 자리에 앉아 지원하는 관객과 제한시간 없이 마주 바라보는 것 등. 작가는 원시적인 모습으로 돌아가 벌거벗는다거나, 피 묻은 뼈를 사용함으로 고대 종교를 상상하게 합니다. 그리고 자신의 생명을 남에 손에 맡기는 위험을 자처합니다. 작가가 행위를 하거나 당하거나 감정선의 변화를 보이지 않는 초연한 태도는 설정한 상황과 맞물려 신비로움을 줍니다. 특히 ‘뭐? 아무 무기로든 내 맘대로 하라고? 그래도 된단 말야?’라고 묻는 관객 에게 ‘나한테 그렇게 해도 된다’라는 태도를 보인 뒤 실제로 그것을 감당한 것 으로, 작가가 추구하는 것엔 죽음을 감수할 만한 무언가가 있다는 강한 메시지를 전합니다. 관객은 죽었다고 생각했던 모세가 시내산에서 살아 돌아와 신의 법을 전할 때 백성이 그에게서 후광을 보았던 것처럼 마리나 아브라모비치에게서 아우 라를 보게되는 거죠. 그래서 마리나 아브라모비치는 뉴욕현대미술관이라는 예술 의 성지에서 자신을 찾아오는 관객들을 앉아서 맞이할 수 있는 설명이 필요 없을 정도의 거물 샤먼 예술가에 이릅니다. 샤먼은 자신의 주술을 통해 참여자 혼자선 도달할 수 없는 상태로 이끌어줍니다. 영적이고 원시적인 거슬러 오름을 통해 홀로는 알 수 없었던 무언가와 만날 수 있 도록 이끄는 것, 그리고 본원에 닿기를 원해왔다는 것을 참여자로 하여금 깨닫게 하는 것. 이것이 샤먼의 역할이 아닌가 합니다. 저는 분명히 사람이 근원에 가닿기 를 바라는 존재라고 생각합니다. 아우라 서린 작가의 퍼포먼스에 참여하거나 그 내용을 접하는 것이 승화를 돕는 다고 하면, 제게 그러한 승화라는 것은 내가 갖는 현실의 문제를 거슬러 올라 문 제의 근원인 최초의 도미노로 가는 건너 뜀 같은 느낌입니다. 그 건너뛴 자리에 서 사람은 개인을 넘어 인간이 되고 인간은 또한 생명이 존재하는 방식중의 하나 란 걸 알게 됩니다. 그런 통합의 감각이 인류애나 보편적인 선에 기여하리란 생각 을 합니다. 그래서 양손인 사람은 각자 한손은 자기를 위해 다른 손은 남을 위해 사용할 수 있는 상태가 되는 것. 그것이 자기 극복이자 자기실천의 하나이겠고요. 자기극복과 자기형성의 진실함에 목마른 사람들이 좋습니다. 저는 그러한 태도를 훌륭한 ‘인간’의 것으로 여깁니다. 예술가 뿐 아닌 어떤 삶의 모습에서도 제대 로를 추구하며 사는 사람을 그리고 싶었습니다. 작은 문제하나는 그런 사람들이라 고 다 제가 그리고 싶은 외모이진 않다는 것인데. 행여 그렇지 않아도 그 사람에 대한 애틋함을 품고 그려보도록 하려고 합니다. 다행히, 첫 번째인 마리나 아브라 모비치는 작업에 설득을 더하는 외모로 외적으로도 좋은 캐릭터예요.

글. 표지. 한지인.


Marina Abramovic

월간이리 2013년 1월호  

드디어 월간이리 25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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