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순서 입니다. <나와 너의 사회과학> 서문 / 글. 우석훈 EGG IN WONDERLAND / 그림. 안경미 Where did you sleep last night? / 사진. 글. @Ahopsi 같은 : [愛] / 사진. 황예함 회사옆 미술관 / 글. 강세기 이것 저것 홍보 환타지와 모순의 조우 (遭遇): 영화로 읽는 時空間 (시공간) / 글. 곡주대비 Midnight in Seoul / 글. aoikasa 꽃과 식물을 이용한 Show Window (쇼 윈도) 디자인 / 글. 안언주

우울한 청춘 / 그림. 글. 철민 세계의 직업 / 그림. 왼손이 독후소설 / 그림. 황은정 글. 김종소리 바다비 일요시극장 광고 흔적 도감 / 글. 그림. 왼손이 Public Gastronomy / 글. 사진. 미식의 별 밤마다 안주, 날마다 해장 / 글. 사진. housedrinker SEED- TO- CUP / 글.사진. 사선희

부산 오뎅 이야기 / 글. 사진. odeng INTO THE JAZZ / 글. 사진. 이상준 우울 / 사진. 박민수 안철수 경남 도지사는 어떨까? / 글. exxx


매번 늦어지는 책을 좀 잘 만들어 보자고 마음먹고, 필진 여러분들에게 무 작정 연락을 드렸습니다. “마감을 22일로 고정합니다.” 갓 마감한 듯한 느 낌이었는데 메일을 보내자니 제가 메일을 보내면서도 그 뻔뻔함에 얼굴이 화끈거리고 죄송스러웠습니다. 감사합니다. 여러분들이 도와주셔서 11월호는 제 때, 잘 나올 수 있었습니다. 갑작스럽 고 변덕스런 재촉을 이해해 주셔서 진심으로 감사드립니다. 지난 달을 마지막으로 <어느날 불시에 가방검사> demian K 님의 연재가 마무리 되었습니다. 바쁘신 와중에도 저희 월간이리에 연재해 주셔서 감 사했습니다. 이달에는 aoikasa님의 <Midnight in seoul>이 새로 연재를 시작했습니다. 그리고 우석훈님과 출판사의 동의를 얻어 <나와 너의 사회 과학>서문을 통째로 실을 수 있게 되었습니다. 저희가 준비한 모든 원고 들을 재미있게 즐겨주시길 기원해 봅니다. 이제 12월이 되면 이명박 대통령의 임기를 끝내는 선거를 하게 됩니다. 드디어. 드디어 입니다.

방안에서 자판을 두드리는 손조차 굳어가는 계절입니다. 옷을 두껍게 입 고 마음을 다잡아, 겁먹어 손이 굳는 일이 없도록

화이팅.

월간이리의 공식 트위터는 @postyri 이고 온라인 페이지는 postyri.blogspot.com 입니다. 이곳에서는 컬러 PDF 파일과 바로보기가 제공되고 있습니다. 월간이리에 연재를 희망하시는 분은 언제든 편하게 공식 트위터로 멘션을 주시거나 월간이리 기고 안내문으로 검색하시면 잘 정리되어 있으니 편하 게 연락 주시면 감사드리겠습니다.


좋은 글을 발견 했을 때의 기쁨은 이루 말할 수 없습니다. 나아가 나눌 수 있다면 더욱 즐거운 일이라 생각합니 다. 저는 이 글을 읽는 동안 가슴 뛰었고, 보다 더 많은 사람들이 이 글을 보면 좋겠다고 생각했습니다.고맙게도 저자인 우석훈님과 출판사 김영사의 허락을 얻어 여러분과 나눌 수 있게 되었습니다. 다시 한번 깊이 감사드리며, 우석훈 저 김영사 출판 <나와 너의 사회과학>의 서문을 여러분께 전합니다.


무엇이 공동체를 지키는가! 사회의 그 어느 것도 공짜로 좋아지거나 개선되는 일은 없다. 정부나 정당이 알아서 미리 미리 해주면 좋겠지만 그런 일은 없다. 많은 사람들이 머리를 맞대고 적극적으로 논의하고 발언하지 않는 이상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 는다. <이상한 나라의 앨리스>의 ‘레드 퀸의 가설’이 바로 그 얘기 아닌가? 열심히 뛰지 않으면 제자리에서 있을 수도 없는 나라, 그게 바로 대한민국 아닌가? 끊임없이 변화하고 개선하려는 노력이 사라지는 순간 우리는 정말 그 이상한 나라를 보게 될지 모른다. 나는 우리의 문제를 풀고 싶어서 공부를 시작했다. 경제학과 사회학을 결합시킨 ‘사회경제학’같은 분과를 열어 서 사회와 경제를 통합적으로 살펴보고 싶었는데, 개인이 하기에는 너무 벅찬 일이었다. 그래서 실제로는 경제 학과 생태학을 통합적으로 접근한 일을 더 많이 하게 되었다. 그리고 또, 내가 희망했던 것은 ‘유학 가지 않아도 되는 사회’였다. 대학원생들과 박사과정 후배들을 모아 계속 해서 스터디를 하고 직장생활을 하면서도 강의를 줄곧 했던 것은, 최소한 내가 속해 있는 생태경제학 분야만큼 이라도 국내에서 공부할 수 있는 여건을 만들어 보고 싶었기 때문이었다. 그러나 나는 벽에 부딪혔다. 지난 10년 동안 대학원들은 물론 학부에서도 유학이 당연한 일이 되었고, 이제는 초등학생에 유치원생 까지 유학을 보내는 풍토가 되었다. 국내에서 배출된 인재가 최사한 자기 나라에서 부당하 게 설움 받는 일은 없어야 하는데, 현실은 그렇지 않다. 우리는 스스로 완결된 교육 과정을 갖지 못했다. 한국의 엘리트들은 자녀가 초등학교 5학년이 되면 교환학생으로 미국에 보내고, 중고등학교는 외국에서 다니게 하는 걸 자연스럽게 여긴다. 교육 과정의 문제를 고쳐서 좋게 만들 책임이 있는 사람들이 자녀를 외국에 보내 교육시키 는 사회라니! 그러고도 잘살 수 있는 나라는 없다. 우리는 우리말로 학문할 수 없게 만든 것을 발전이라고 한다. 하지만 자기 말로 학문을 하는 풍토에서 비로소 세 계적인 이론이 나왔다는 것은 역사가 증명해준다. 프랑스어로 철학하는 프랑스, 독일어로 학문하는 독일, 일본 어로 연구하는 일본, 우리 한국만 우리말로 공부하는 것의 중요성을 무시한다. 영어로 논문을 발표하는 것 자체를 뭐라고 할 생각은 없다. 그러나 요즘은 정부에서 지원하는 연구 과제에서도 SCI(과학기술 논문 색인지수)기준을 들이대면서 외국의 학술지에 발표하도록 유도한다. 정부가 돈을 들여서 자 국의 국민들이 읽기 어려운 논문을 쓰도록 하는 셈이다. 정부 연구 과제는 기본적으로 세금에서 지원하는 것인 데, 그 세금의 납세자들이 읽을 수 있게 해주는 것이 외국의 학술지에 실리는 것을 목표로 하는 것보다 가치 있 는 일이 아닐까? 기본 논문은 대부분 영어로 쓰여지고, 우리말로 된 문헌들도 거의 외래어 수준이어서 일반인이 이해할 수 없기 는 마찬가지다. 학계의 장벽이 너무 높아지면 결국 국민이 그 분야를 외면하게 된다. 벽은 너무 견고하다.

몇 년 동안 대학생, 대학원생들과 크고 작은 스터디를 하면서, 기초 교육에 대한 필요성을 절감했다. 학문의 전 문화만 지나치게 외면하면서, 사회과학의 기본을 다루는 논의가 없었고, 마땅히 쓸 만한 교과서도 없었다. 그래 서 어디서부터 어떻게 접근해야 할지 막막해하는 사람들이 큰 부담 없이 사회과학 공부를 시작할 수 있게 안내 하는 책을 내고 싶었다. 이 책에서 정리한 내용은 대학생들과 공동 연구 및 분석 작업을 하면서 약식으로 가르쳤던 기초에 해당하는 내용 들을 몇 번에 걸쳐서 진화시킨 것이다. 여러 차례 강의를 하면서 호응도가 높지 않거나 꼭 필요하지 않다고 생각 되는 내용들은 제외했고, 현장에서의 실용성을 강조했다. 인문사회 분야의 학부 1~2학년 또는 비전공자의 경우 대학원 1학기 정도에 배우면 좋겠다고 생각한 내용들로 사회과학에 대한 개괄적인 입문서 수준에 맞추려고 노력


했다. 그렇다고 옛날 얘기만 늘어놓지는 않았고, 1990년대 이후 발전된 방법론에 대해서 많이 소개 하려고 했다. 욕심 같아서는 창작을 하는 예술가들이 자신의 시선을 확장시키기 위해 사회과학 공부를 할 때도 도움이 되었으 면 좋겠다. 그리고 기회가 되면 경제와 윤리 혹은 경제철학에 대한 논의도 본격적으로 전개해보고 싶다. 각 장의 끝에는 예습용 목적으로 쪽글이 하나씩 달려 있다. 시험을 잘 보기 위해서는 복습을 충실히 하는 편이 낫겠지만, 공부가 지겨워지지 않도록 하기 위해서나 창의적인 생각을 더 많이 하기 위해서는 예습이 더 도움이 된다는 나의 공부 습관이 반영된 것이다. 시간을 내서라도 쪽글을 써보고 다음 장을 읽는 편이, 효과는 더 높을 것이라고 생각한다. 사회과학을 공부하는 중요한 이유 중의 하나가 결국 글의 형태로 자신의 생각을 표현하기 위 한 것인데, 그런 훈련을 병행하면서 실제 내용을 읽는다면 응용 능력을 키울 수 있다.

사회과학의 힘은 비판에 있다고 생각하던 시절이 있었다. 아주 오랫동안 한국에서 사회과학은 대결의 언어였 고, 날 선 논쟁의 언어였다. 그러나 이제는 정확히 분석하고 구체적 맥락을 드러내서 이해할 수 있는 틀을 만드 는 게 더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남과 싸우기 위해서 거나 논쟁하기 위해서 학문을 한다면 너무 허망한 일이다. 그런 의미에서 ‘소통’은 여전히 중요하다. 사실 좌파든 우파든, 소통이라는 말을 “왜 내 말을 들어주지 않느냐” 와 동의어로 사용하는 경우가 더 많은 것 같다. 그건 홍보지 소통이 아니다. 상황이 이렇게까지 극단적이 된 데 는 언어의 문제도 있다. 좌우로 싸늘하게 갈리는 양상은 일상에서보다 학문 내에서 더 강한 것 같다. 곰곰이 생각해보면, 우리가 지난 10 년 동안 학문이라는 이름으로 사보타지 외에 한 게 뭐가 있는가? 사회 과학 내에서도 서로 만날 수 없는 평행선 을 그렸던 것이 사실 아닌가? 그러는 동안 일반인들은 사회과학으로부터 멀어졌고, 우리가 소통할 수 있는 공동 의 언어는 사라져버린 셈이다. 사회과학이 학문으로서 부여받은 소명으로부터 우리가 너무 멀리 온 게 아닌가? 이제는 소통을 넘어 이해와 공감이 필요하다. 탈권위주의와 탈계몽주의 시대에 이해와 공감을 위한 새로운 의 사전달 방식이 사회과학에서 어떻게 활용 될 수 있는지, 그런 개인적인 고민이 책의 후반부에 들어있다. 우리의 특수성을 생각할 때, 전통적인 방법론 논의보다 그런 것들이 우리에게 더 절실하다고 생각했다. 사회과학이라 는, 좀 오래되었지만 인류 보편의 언어를 통해서 우리가 같이 대화하고 논의하고, 또 그렇게 뜻을 모아나갈 수 있을 것이다. 그동안 이 나라는 경제 근본주의에만 경도되어 ‘돈의 언어’만 난무했지, ‘이성의 언어’는 온데간데없었다. 의견 을 모아나가고 합의해 가는 장치 중의 하나인 사회과학의 언어가 죽었던 것 아닌가? 경제학은 사회과학을 구성 하는 수많은 분과 중의 하나에 불과한데, 돈의 언어가 보편적이 되면서 지독한 경제 근본주의의 폐해를 낳고 있 다. 그러나 이것도 하나의 단계라면, 조금은 더 이성적이고 폭력적이지 않은 방식으로 새로운 한국을 만들어갈 방법을 우리 모두가 함께 고민해볼 시점을 맞았다고 생각한다. 한국 사회에서도 이성의 힘이 제대로 작동하기를 바란다. 그것이 이 책을 준비하면서, 사회과학 르네상스라는 희망을 생각하며 내가 가졌던 간절함이다.

많은 사람들과 같이 작업을 하면서 새로 배운 것이 있다면, 그것은 사회과학이 기본적으로는 수다쟁이들의 언 어이기도 하다는 사실이다. 맞다, 사회과학자들은 참 말 많은 사람들이고, 간단한 것을 아주 기괴한 언어를 통 해서 복잡하게 만드는 기막힌 재주를 가진 사람들이다. 우리가 사회가 좋아질 수만 있다면 좀 시끄럽고 요란해 져도 좋을 것 같다. 그러나 그 과정에서 상처받거나 아픈 기억을 갖지는 않았으면 좋겠다. 1980년대의 사회과학은 상처를 주는 데 만 집중하다가 결국 많은 사람으로부터 멀어진 것이 아닐까? 그 과정에서 사회과학은 남성적인 측면만 강조되


었고, 수컷들의 호전성이라는 특징을 갖게 되었다. 온화하게 얘기하거나 부드럽게 얘기하면 전투성이 떨어진다 는 것, 그게 우리가 지났던 80년대의 모습이었다. 사실 남들에게 상처를 주면 자신에게도 상처가 남는다. 논쟁 에서 이기면 이긴 것 같지만, 그건 진짜 이긴 게 아니다. 우리가 갖고 있는 문제를 해결하거나 최소한 완화시켜 야 그게 진짜 이긴 것 아닌가? 만약 우리에게 사회과학의 시대가 다시 돌아온다면 더 많은 소녀들과 주부들이 이 사회과학에 초대되어야 하고, 그들이 “당신들이 맞다, 틀리다”라고 기꺼이 평가할 수 있게 하는 것이 옳다고 생각한다. 사회과학은 글을 쓰거 나 생각을 정리할 때 또는 사회의 대안을 찾아갈 때 길잡이가 되어 주는 실용적인 목적을 갖는 게 바람직하다. 그 러기 위해서는 사회과학의 언어가 엘리트 남성들의 전투 용어에서 여성을 포함한 생활인들의 일상용어로 바뀌 는 게 가장 빠른 방법이 아닐까? 대중들과 어떻게 얘기하고 그들에게 무슨 도움을 줄 것인가, 그런 실용적인 측 면을 사회과학 전공자들이 너무 가볍게 생각했던 것 같다.

우리의 이런 노력이 과연 어떤 결실을 맺게 될지 지금으로서는 아무도 알 수 없다. 결실의 기준을 나는 10년 후 에 조기 유학이 우리 사회에서 어떻게 되었는지로 삼고 싶다. 우리가 이렇게 고군분투했는데도 사회적으로 아 무런 일도 벌어지지 않는다면 아주 허망한 일이다. 개개인의 삶이 지금보다는 윤택해지거나 풍성해지면 좋겠지 만, 이건 객관적 지수로 확인해 볼 길이 없다. 그러나 조기 유학이 계속되는지 아닌지, 그건 쉽게 알 수 있지 않 을까? 지금의 한국 상황과 사회적 논의의 방향을 보았을 때, 조기 유학이 더 늘면 늘지, 줄어들 가능성은 없다. 생태학에서 사용하는 ‘깃대종 접근법’인 셈인데, 특수한 생물은 그게 살아있다는 것만으로도 그 생태계가 얼마 나 건강한지 알 수 있다. 영화 제목으로도 사용 되었던 ‘쉬리’ 같은 게 그런 깃대종이다. 조기 유학은 하나의 단 일한 사건이지만, 이 문제가 해결되면, 교육 문제, 학문의 내적 재생산 문제, 청년들의 취업 문제, 여성들의 권리 등 많은 문제가 해결될 것이라고 짐작해 볼 수 있을 것이다. 그리고 부동산으로 떼돈을 번 한국의 경제 엘리트들 도 지금보다는 좀 더 염치와 도덕을 탑재하게 될 것이다. 그날이 오면 정말 나는 기쁜 마음으로 그다음 10년의 논의와 변화를 모아 이 책의 개정판을 내게 될 것이다. 우 리 공동의 문제는 지금보다 훨씬 많은 사람들이 사회적 논의에 참여할 때 비로소 해결의 단초를 찾을 수 있다. 법 률을 정해 해결할 수도 없고, 그렇다고 도덕적인 호소만으로도 해결될 문제도 아니다. 사회적 논의를 보다 체계 적으로 수행할 수 있으려면 사회과학을 공부해야 한다. 그러니 내가 더 많은 사람들에게 사회과학으로의 초대장 을 보낼 수밖에는 없지 않은가? 다음 10년, 새로운 희망을 여러분과 함께 꿈꾸고 싶다.

우석훈, <나와 너의 사회과학> 서문.


안경미 www.lostinmirage.com


회사 옆 미술관

글. 사진. 강세기 으면 들어가 본다. 일민 미술관은 발간 도록을 프론트 에 비치해놓고 있어 부담 없이 구경할 수 있다. 다음으로 오늘의 하이라이트, 필수 코스에 진입한다. 교보문고 광화문점. 가난한 미술애호가에게 교보문고 는 참말이지 너그럽기 그지없다. 아마존에서 밖에 구 할 수 없는, 봄직도 하고 먹음직도 한 그림책들이 널찍 한 장소에 널려있다. 책이 옆으로 세워져 있지 않고 마 치 “날 봐주소”하듯이 널찍한 배를 보이게 누워있다. 다른 서점과는 스케일이 다르다. 딱딱한 커버를 들추 면 보드랍고 짱짱하고 사각거리고 아무턴 넘기는 맛 이 기막히기 그지없는 질 좋은 종이의 그림책이 천장 까지 꽂혀있다. 교보문고의 너그러움은 책장 앞에 서 면 눈물겨울 정도로 실감할 수 있다. 비닐로 똘똘 싸여 있는 책이 항상 같은 종이 2-3권 비치되어있는데 그 중 하나는 항상 비닐이 ‘까져’있다는 것. 존경 받는 양 반은 가난한 식솔을 위해 밥 한술을 항상 남겨놓고 상

외근 투어

을 물렸다지 아마.

나는 외근을 좋아한다. 맨날 책상에만 앉아있다가 일

갤러리는 삼청동과 강남 갤러리 거리에만 있는게 아

과시간 중에 밖으로 쏘다니며 느끼는 허가 받은 자유.

니다. 교보문고의 미술책 담당이야말로 이 땅에 내려

왜 구글은 전체 근무시간의 몇 퍼센트는 자기를 위해

와 민초들과 함께 하는 큐레이터라고 하고 싶다. 한달

쓰라고 하지 않았던가. 외근의 최대 관건은 최대한 빠

간격으로 들리면 어김없이 미술 트렌드, 국내 유명 전

른 속도로 볼일을 보고 시간을 확보하는 것이다. 10시

시 작가의 도록을 비치해놓기도 하고 회화, 사진, 조각

에 시작하여 11시에 일을 마친다면 최적의 타이밍이

등 종류는 물론 개념미술, 고전회화, 동시대회화 할 것

다. 그러면 점심시간 13시까지 2시간이 남기 때문이

없이 골고루 차별 없이 배치해놓는 저 코너만 한번 훓

다. 너무 길어도 이 시간은 맛이 없다. 적당하게 스릴

어도 갤러리 몇 개는 돌아다닌 것과 같이 배가 부르다.

있는 타이밍은 1시간에서 1시간 반 남짓. 그 이후에는 마음이 불안하다. 호텔에서 열리는 행사를 갈 때는 호텔마다 복귀 코스 를 다르게 잡는다. 장충동 신라호텔에 갈 때면 장충동 을 넘어 오토바이 거리를 지나 명동으로 진입. 사람구 경 좀 하다 보면 회현동 LP상가에 들려 중고 cd를 실 컷 digging 하는 거다. 예전에 turntable 배운답시 고 lp판 을 뒤지기도 했었는데 이것도 호화 취미인지 라 진작에 팔아 치우고, 지금은 그냥 cd만 본다. 그냥 본다. 그러다 남대문 시장거리를 지나 물건구경을 좀 하다가 유명한 “가메골”에서 만두를 사간다. 그러면 조 금 늦어도 용서가 된다. 롯데호텔을 비롯한 소공동 호텔가를 갈라치면 갈만한 곳이 너무 많아 황송하다. 일단 청계천을 따라 사람구 경하고, 동아일보 옆 일민 미술관에 괜찮은 전시가 있


정영문 作 ‘하품’ 연극 공연 - 일시: 2012년 11월 22일(목) 7시 30분 - 장소: 카페 이리

월간이리 표지를 그리고 계신 오늘 가서 본 책은 사진분야에서 전통 있는 출판사인

화가 이주용의 개인전이 열립니다.

파이돈 Phaidon에서 나온 Art and Photography

- 전시일: 2012년 11월 27일~ 12월 11일

와 항상 관심이 있어왔던 제프 월 Jeff Wall의 ‘Jeff Wall: The Complete Eddition’ 그리고 스트릿

- 장소: 앤트러싸이트(Anthracite)

포토그래퍼이자 블로거인 Scott Schuman 의 신간

http://www.anthracitecoffee.com/

‘The Sartorialist: Closer’ 이었다. 그리고 중국의 젊은 미술가를 소개한 Young Chinese Artists: The Next Generation. 중국의 동 시대 미술가들은 이들의 작업에 매력을 느끼기 보다는

월드 뮤직 그룹 아나야 하우스 콘서트

왠지 친숙해지지 않으면 안될 것 같은 대세라 한번 봤

- 일시: 2012년 11월 24일(토) 5시 경

다. 마치 잘나가는 친구 옆에 가서 아는 척 하는 느낌이

- 장소: 아나야 양옥집(연희동)

랄까. 중국 동시대 미술가들의 아이디어와 혈기가 화산 재처럼 사방팔방으로 분출하는 모습이 매력 있다. 미 술에 국가 색이란 선입견을 가진다는 것이 맞지는 않겠 지만, 어느 정도 “중국 미술” 하면 보이는 특징들은 눈 에 뚜렷이 아직까지 존재한다. 이번 투어의 득템이라 할 수 있는 Manet: Portraying Life. 항상 동시대 미술에만 관심을 가지다가 모 네의 그림을 보고 알 수 없는 매력을 느꼈다. 말로는 설 명할 수 없는 굳은 심지와 강한 확신이 강하게 다가왔 다. 왜 반기문 총장 같이 부드러워 보이는 인상과 인품 속에 느껴지는 존재감이랄까. 가장 비슷한 느낌이라면 몹시 추운 날 따땃한 침대 속에서 품 안에 쏙 들어가는 아내를 안고 있을 때 느껴지는 그런 포근함? 계속하다 가는 부족한 문장력만 탄로날까 싶다. 아무튼 교보문 고 투어는 대성공!

http://cafe.daum.net/anayaband


환타지와 모순의 조우 (遭遇): 영화로 읽는 時空間 (시공간)

버려지는 여성들의 정치학 3: 1970, 80년 대 미국 공포영화를 통해 본 여성의 재현

글: 곡주대비

1970년대는 미국 사회에서 베트남전의 패배로 인한 많은 사회적, 문화적 변화들이 가시화 되어 대중에게 보여 졌던 시기로 볼 수 있다. 나라 전체에서 일어났던 반전운동과 전쟁 패배로 인한 미국이 세계 최강국이라는 믿음 의 좌절은 여러 가지 예술 분야에서 모티프가 되어 재탄생 하였고 그러한 경향이 할리우드 주류영화들에서도 나 타났다. 예를 들어 70년대 성행했던 무법자를 메인 캐릭터로 다룬 영화들은 – 웨스턴에서부터 갱스터 영화들 까지 – 패배한 국가의 권력이 미국인들에게 크나큰 불안함을 심어주었던 것으로 미루어 볼 수 있게 한다. 또한 70년대는 오컬트 장르 (악령과 기독교의식을 주로 다루는 영화들) 의 부흥이 일어났던 시기이기도 한데, 당시 인기를 끌었던 영화로는 *** 와 **를 꼽을 수 있다. 이러한 영화들 또한 국가권력의 불신에서 온 종교적인 통찰 의 반증이라고 볼수 있다.

또한 이 시기는 공포 장르의 황금기로 분류 되기도 하는데 1960년에 개봉되어 엄청난 인기를 끌었던 ‘히치콕’ 의 <싸이코>를 시작으로 미국의 공포영화 장르는 그 전성기를 맞게 된다. 수많은 하위 장르를 생산해 내면서 관 객들이 공포영화를 통해 기대하는 일련의 장치들, 예를 들어 처녀는 살아남고 헤픈 여자가 빨리 죽는, 혹은 연쇄 살인범의 억압된 (주로 학대하는 어머니에 의한) 어린 시절 등의 장르 적인 고착화가 일어나기 시작한다. ‘캐롤 클로버’라는 페미니스트 영화 학자는 이러한 공포영화들이 여성 희생자와 여성 히어로의 캐릭터들을 통해 여성 성의 본질과 젠더 역할 등을 재현한다고 말한바 있는데, 이는 많은 공포영화들이 십대 소녀들을 주요한 인물로 다루는 것으로 어느 정도 증명된다 볼 수 있다. 예를 들어 1974년에 개봉했던 <텍사스 전기톱 살인마> (Texas Chainsaw Massacre) 는 이러한 그녀의 주장에 가장 적합한 영화라 할 수 있다. 클로버와 다른 많은 여성 영화 학자들이 <텍사스 전기톱 살인마>와 이 시기에 등장했던 다른 공포영화들에서 활약(?)했던 여성 히어로 들이 사 실상 젠더롤의 서열을 스크린 안에서 가시화 했다고 주장 했다.


여성 히어로를 통한 공포영화의 장르적인 장치가 생겨 나는 것이 이 영화가 시초는 아니지만 (앞서 언급한 ‘ 히치콕’의 <싸이코>에서도 ‘자넷 리’ 캐릭터는 ‘싸이 코’ 를 성적으로 유혹한 죄로 영화 중반에 살해 당한다)

70년대에 쏟아져 나온 이른 바 “씨리즈 공포물” 을 통 해 확고히 자리 잡게 된다. 주목 할 점은 이러한 설정이 현대의 공포물에서도 (나라를 막론하고) 존재하고 연 명 하고 있다는 것인데 <여고괴담>이나 <가위> 같은 한국 현대 공포물들 에서도 “창녀는 죽는다” 라는 공 식이 순수한 여자 주인공과의 대비로 극명히 드러난다. 미국 공포장르로 다시 돌아가서, 이러한 숫처녀 여성 <텍사스 전기톱 살인마>는 젊은 두 커플이 로드 트립 을 하다가 텍사스에 한 마을에 예기치 않게 고립되게 되면서 전개가 된다. 이들은 연인관계인데 흥미로운 것 은 이 두 커플이 ‘성’이라는 기준을 통해 대립된 구조로 보여진다는 것이다. 다시 말해 한 커플은 성적으로 매 우 개방적인 커플로 흔히 말해 ‘문란한’ 커플이고 다른 한 커플은 ‘쑥맥’ 커플로 이들은 (‘문란한’ 커플에 비해) 비교적 청교도 적이며 보수적인 커플로 묘사 되고 있 다. 이러한 설정은 단순한 캐릭터의 다양성을 넘어 영 화 자체를 끌고 가는 주요한 장치로 쓰여지는데, 결론 을 미리 언급하자면 문란한 커플은 빨리 죽고 쑥맥 커 플은 살아 남는다 (사실 쑥맥 남자친구가 본인을 희생 하여 여자친구를 구하고 여자주인공이 끝까지 살아남 아 살인마를 처단한다). 혹자는 이러한 영화의 구조가 악을 처단 하는 강인한 여성 캐릭터를 통해 여권신장을 은유화한다고 말할 수도 있겠지만, 앞서 언급했던 학자 들의 주장을 인용하자면 이런 여자 주인공들은 성적으 로 청렴 해야 살아 남는다는 남성 중심의 사회적인 통 념을 텍스트로서 각인한다고 볼 수 있다.

히어로는 80년대 이른바 “하이틴 공포 시리즈” 물에 서 더욱 두드러지게 활약하는데, 엄청난 인기를 끌었던 <13일의 금요일>, <할로윈>, <나이트 메어> 등의 시 리즈 물들은 섹스를 끝낸 여성이 가장 먼저 살인자의 제물이 되는 설정으로 처녀성을 가진 여성의 영웅화를 극대화 했다고 할 수 있다.


정신 분석학자 ‘프로이드’는 여성의 성을 “결여 (lack)”

다음호 예고: 공포영화 장르의 시초: <드라큐라>를 통

이라고 언급한 바 있다. 여성은 남성이 가진 페니스를

해 본 사회상과 ‘피’와 ‘여성’의 관계

가지지 않았으므로 여성의 성은 언제나 무엇으로든 채 워져야만 하는 수동적인 입장에 설수 밖에 없다는 것 이다. 이러한 ‘프로이드’의 주장에 반론이 없었던 것은 아니지만, 필자가 앞서 들여다본 70년대 한국 영화들 에서 드러난 성애영화들의 여성 주인공들, 그리고 이 번 호의 미국 공포영화들의 여성 히어로들은 여성의 성, 혹은 여성의 육체가 각 시대가 요구하는 정치적인 테마나 사회적인 통념들을 재현하고 보급하는데 실질 적인 기여를 했다고 보아도 무리가 아닐 것이다. 재미 있는 예를 하나 들어본다면, 헤픈 여자들이 대부분 총 이나 다른 무기가 아닌 대부분 크고 긴 칼, 즉, 남성의 페니스를 상징하는, 무기로 ‘처형’ 당한다는 것도 주목 할 점 이다. 이번호의 맺음말로, 공포영화에 죽고 못사는 영화 팬 으로서, 그리고 현재는 공포물로 연구를 하는 영화학 도로서 개인적인 바람이 있다면 (너무 허황된 꿈 일수 도...), 여성 감독이 만든, 기존의 성행했던 남성중심의 공포물의 대조적인 텍스트가 되는 있는 공포영화를 메 이저 영화관에서 볼 날이 왔으면 하는 것이다. 공포 장 르가 주류 영화장르로 자리 잡은 지 50여 년이 넘는 이 시기에도 이러한 현실이 (스크린으로 재현되는 가상현 실이라고 여겨질 수도 있지만) 되풀이되고, 학자들에 게 회자된다는 사실이 독자들은 어떠신지.

저왔어요 - _- /


Midnight in Seoul (부제: 우리 동네 이야기)

글. aoikasa

Prologue Midnight in Paris를 보았다. 주인공이 부러워 죽을 것 같다. 나도 어느 골목 모퉁이에서 기다리고 있으면 멋쟁

이 포드자동차와 모던보이들이 나타나서 날 데리고 그 시절로 가 줬으면 좋겠다는 망상을 해 본다. 언제, 어디로

가면 좋을까. 어디에서 기다리고 있으면 그런 자동차가 나타날까? 종로네거리? 한국은행앞 광장? 시청앞? 어디

면 어떨까. 그 때 그 시절로 돌아가서 이상도 만나고, 구보도 만난다면… 생각만 해도 흐뭇함에 웃음부터 나온다. 파리만큼은 아니지만, 서울도 꽤나 그 켜가 많이 쌓인 도시이다. 구보와 이상, 경성과 한성, 뭐 이런 대단한 이름

들이 아니더라도… 그저 우리가 매일 잠을 자고, 일을 하고, 밥을 먹고, 커피를 마시는 이 장소에서 100년 전에

는, 200년 전에는… 무슨 일이 있었을까? 아니 그냥 내가 지금 사는 동네, 우리 동네엔 무엇이 있었을까?에 대해 이야기해보고 싶었다. 동네 모퉁이 저 허름한 가게에 담긴 사연들, 1년 후면 우리 눈 앞에서 또 사라져버리고 말

아버릴 우리 동네 이야기들을 기억하고 싶었다. 그저 표지석 하나로 덩그라니 길가에 남은, 그런 거 말고… 좀 더 생생한 삶의 이야기가 궁금해졌다. (동네 이야기는 요청도 받습니다. 뭔가 우리 동네에 있는 것 같은 분들, 여러 분들이 알고 싶은 ‘동네’들을 제게도 알려주세요. Twitter: @aoikasa27)

우리 동네 이야기 그 첫번째. 明洞. 한국인에게도 일본어로 인사하고 일본어로 쓰여진 전

지역에서 모여 살곤 했다. 서울에서는 서양인들은 경운

최근 일본인관광객들의 주요 쇼핑장소가 강남으로 많

이런 상황에서 일본인들은 지금의 명동에 자리를 잡았

단지를 줄만큼 많은 일본인 관광객이 있는 곳. 명동. 이 이동하였다고는 하나 그래도 여전히 명동은 일본인

관광객들의 쇼핑장소이자 관광지인 듯 하다. 마치 서 울 속 작은 일본과 같은 느낌마저 주는 명동은 언제부

터 저렇게 일본인들이 자주 찾는 쇼핑가(街)가 된 것 일까?

명동지역의 조선시대 지명은 명례방. ‘남산골 샌님’이 라는 말에서 나오는 그 ‘남산골’이 바로 명동 일대를 일 컫는다. 이 곳은 비만 오면 남산에서 흘러내리는 빗줄

기 덕에 늘 범람의 우려가 있던 ‘질척거리는 땅’ 즉 ‘진

궁 옆 정동 지역에, 청나라인들은 종로 옆 수표교 일대, 다. 이미 도시화가 많이 진행되었던, 서울에서 그나마 ‘

비집고 들어갈 틈’이 있는 동네가 아니었을까? 게다가 이 지역은 임진왜란 때 일본군이 주둔했다던 왜성대가

있는 곳이 아닌가. 아무튼 1885년 이 지역에 일본공사 관이 생기면서 관원들과 관에 납품하던 상인들 등이 들 어와서 살기 시작했고 점점 그 수가 늘어가면서 이 동

네는 초가집과 작은 기와집들이 있던 전통적인 한국

동네에서 무가(武家)주택과 마치야(町家)들이 늘어서 있는 일본식 동네의 분위기로 변화해갔다.

고개’라 불리던 지역인데 당시 권문세가 양반들은 대부 분 청계천 이북, 소위 북촌 지역에 살았으니 이 곳은 아

무래도 힘없는 양반들(그러니까 노론이 아닌)과 하급 관리, 그리고 서민들이 살던 지역이다.

이 지역에 일본인 동네가 형성된 것은 1885년 이후의

일이다. 서울에 외국인들의 거주가 허락된 것이 1882

년, 그로부터 약 3년이 지난 후 명동에 일본인들이 모

여 살기 시작했다. 그렇다면 왜 하필 이 남산아래 진고 개에 모여 살기 시작했던 걸까?

처음 외국인들이 한국에서 거주를 시작했을 때는 그들

이 사는 동네를 지정해주거나 암묵적 합의에 의해 일정

남산 기슭에 위치한 일본 공사관과 그 앞 일본식 주택들의 모습 – 1903, 코레아코레아니


새로운 건, 비단 풍경뿐이었을까? 난생 처음 보는 ‘사진’이라는 걸 찍어주는 사진관, 안경, 맥주, 담배 등 서양제 신식물건들을 파는 잡화점, 개울가가 아닌 목욕탕과 세탁소가 생겼다. 요상하고도 신기한 거 투성이의 새로운 문화가 이 동네를 통해서 전래되었다. 여관에 요리점, 목욕탕에 세탁소, 약방과 과자점여기에 사진관까지 이전 의 서울에는 존재하지 않던 것들이 1890년대 들어 등장하기 시작했다. 당시 이 동네의 중심은 진고개(현 충무 로)라 불리던 동서방향의 작은 길이었다. 이 길은 조선시대부터 있었던 길이지만 일본인들의 거류가 시작된 이 후 본격적으로 개발되기 시작했다. 그들은 진고개에 혼마치(本町)라는 일본식 이름을 붙이고 일본인 거류지의 중심으로 발전시켜 나갔다. 고갯길을 깎아 평탄하게 만들고 하수도를 서울에서 처음으로 매설하였으며, 가로에 는 가로등도 30여 개 놓았다. 일본식 상점가의 분위기를 내는 번화가의 모습이 된 진고개 길은, 진귀한 물건들 과 새로운 서비스들을 구경하고 경험하러 온 조선인들로 북적이기 시작했다. (물론 이는 일본인들의 기록에 따 른 것이다.) 그래서 이를 막고자 서울의 기존 상권의 중심이었던 종로 상인들은 이 곳에 물건 사러 가는 조선사 람들한테 불법 과세를 하기도 하고 종로 철시(撤市, 일종의 파업, 일본 상권의 진출에 대한 항거의 뜻으로 상점 문을 닫는 것) 등의 항쟁도 했으나… 새로운 상품과 문화가 주는 매력은 ‘우리 것을 지키자’라는 윤리적 강령보 다 우선했다. 뻔하지 않은가. (초등학교 때인가. 일본 상품 사용하지 못하게 하려고 소지품 검사하던 기억이 있다. 아무리 일제 쓰지 말라고 떠 들어대도, 머리는 알아도 손은 자꾸만 일제 펜들을 향해 가는 걸 어찌할까 싶었던 당시 경험에 비추어봐도 너무 당연하고 자연스러운 일이지 않은가.)

경성부사 2권에 실린 1894년 진고개길 스케치, 맨 위의 숲 속 에 가려 지붕 페디먼트만 보이는 건 이토사진관, 좌측 중간쯤 기둥열이 앞에 있는 양옥은 가메야상점이다. 한옥과 일식집, 양옥이 한데 섞여 있는 이질적 풍경

1910년 데라우치 마사타케의 경성입성시의 모습, 이 길은 본 정에서 수정으로 이어지는 길인데, 주변 가옥들의 모습이나 간판들을 보면 마치 일본의 마을 시가를 보는 거 같다.


그래도 이 때까지의 진고개는 이질적 (혹은 이국적) 분위기의 상점가일 뿐이었다. 그러던 곳이 서울의 대표적인 쇼핑가가 된 것은 1910년 한일병합 이후의 일이다. 1920~30년대의 혼마치는 (병합 이후니까 지금부터는 혼마 치라고 하자.) 그야말로 도쿄의 긴자 이상의 번화가가 되었다. 간판에는 온통 한자와 히라가나들, 가로등과 영란 등의 화려한 밤의 조명, 새로운 물건들이 ‘날 데려가세요’하면서 그 자태를 뽐내는 쇼윈도들, 기모노를 입은 여 성과 양복을 말끔히 차려 입은 신사. 까페와 다방이 줄줄이 들어서고, 명치좌(현재의 명동국립극장)에서는 연일 새로운 연극이, 레코드점에서 는 음악이 흘러나오고 각종 행사에는 상점가의 깃발이 펄럭였다.. 불과 몇 십 년 전 만해도 장화를 신지 않고는 비오는 날 통행이 불가능하던 그 질척거리는 고갯길이었던 이 곳이 이제는 도쿄 최 고의 번화가에 견주어도 뒤처지지 않을 만큼의 번화가가 되었다. 경성에서 멋 좀 부리고 근대적 생활을 영유하 려면 당연히 ‘혼마치’의 주요 고객이 되어야 했지 않았을까?

혼마치 1가, 지금의 중앙우체국(당시는 경성우체국) 바로 옆 골목. 이 게 한국의 풍경이라 상상할 수 있는가? 저 멀리 피아노, 타바코(담배) 등등 일본어 간판들이 보인다

위. 다큐멘터리 영화 ‘경성’(1939) 속의 한 장면: 밤의 혼마치, 영란등 불빛이 화려하다


1910년대 후반, 혼마치의 발전은 , 동전의 양면처럼 종로의 쇠락을 불러올 수 밖에 없었다. 종로는 여전히 한국인 상권의 중심이었지만, 사람들은 거리의 외관이나 물건의 질, 서비스 등이 혼마치에 비해 뒤떨어진다고 생각했다.

연말 연초의 상점가 행사라도 있을 때면 ‘북촌으로 가십니까? 남촌으로 가십니까?’ 하는 기사가 날 정도였으니..

지금의 강북-강남과 같은 지역적 편차가 이 때도 마찬가지였던 듯하다. 이때의 남촌이 청계천 이하의 동네를 말 하는 것이긴 하나 북촌-남촌의 공간의 경계는 현재의 한강을 기준으로 한 강북-강남의 경계와도 유사한 것이 흥미롭다. 아무튼 이런 변화는 500여년간 이어온 양반들의 동네 북촌 – 중인 혹은 세력이 없는 선비들의 동네 남 촌 이라는 기존의 공간 구조의 전복이기도 했다.

해방과 전쟁 이후의 1950년대. 이 곳은 명동백작 이봉구 등 많은 문

인들과 예술인들이 모여들어 문화

예술의 꽃을 피우는 장소가 되었다. 음악감상실과 까페들, 작은 연극 공

연장들과 대폿집들… 그 언제보다 배고팠던 시절, 낭만을 꿈꾸고 예술

을 논하던 이들은 명동으로 모여들 었다. 그렇게 명동은 ‘그들’의 동네 에서 다시 ‘우리’의 동네로 돌아왔

다. 그 이후는?? 1990년대 이후 강 남으로 패션과 상업의 중심이 넘어 가기 전까지 명실공히 서울 최대의 번화가였으며 최고의 상점가였다.

어렸을 때 ‘명동의류’ 한 번 안 가 본 사람 어디 있으며 ‘명동 충무깁

밥’ ‘명동 돈까스’ 이런 거 안 먹어본 사람도 별로 없었을 터인데… 대형

건물이 들어서고, 도로가 넓혀지고 포장이 바뀌어도 여전히 다닥다닥

붙은 건물들 (서울에서는 거의 유 일하게 이러한 필지 구조가 남아있 는 상업지구가 아닐까 싶다.)과 골

목골목 굽이쳐 들어가는 작은 상점 들을 보면 과거의 모습이 그나마 남 19360104 조선일보. 물건 살 때 종로로 가십니까 본정으로 가십니까

아 있는 것을 확인할 수 있다.

많은 사람들이 소공동 일대가 중국인들의 거주지였음을, 정동 일대가 서양인들의 거주지였음을 알고 있다. (적

어도 명동 일대가 일본인들의 거주지였음을 아는 것보다는) 그런데 유독 명동 일대가 일본인들의 거주지였다는 건 모르고 있는 것은 왜일까? 아니, 꼭 알아야 한다는 이유가 있는 건 아니지만 새삼 궁금해진다. 그건 아마도 서

울의 일부가 일본인들이 정말 일본스럽게 만든 동네였다라는 걸 인정하고 싶지 않아서였을지도 모르겠다. 그리

고 아마도 이는 우리에게 지우고 싶은 과거이자, 기억하고 싶지 않은 과거이기 때문일지도 모른다. 어쨌든 간에 100여년 전에는 그들에게 빼앗겼던 땅인 일본인 동네 ‘명동’이 100년이 흐른 지금에는 그들을 위해 서비스하는 땅인 일본인 관광지역이 되었다는 건 꽤 아이러니하고도 재미있는 상황인 것 같다.


얼마 전 도쿄여행에서 구해온 혼마치 엽서 한 장(1920년대 모습), 그리고 같은 자리에서 찍은 지금의 모습)

역사학자 전우용 선생님의 책 제목처럼 ‘서울은 깊다.’ 그리고 그 안에 새겨진 여러 흔적들이

(비록 창문 틀의 흠이나 담벼락의 낙서처럼 보잘것없는 것이라도) 그것이 궁금하고 보고 싶다. 첫 회니까 조금 멋있는 말로 마무리.

“The city, however, does not tell it’s past, but contains it like the lines of a hand.” “도시는 자신의 과거를 말하지 않는다. 다만, 도시는 그 것을 마치 손금처럼 간직하고 있을 뿐이다.” -Italo Calvino, Invisible Cities


꽃과 식물을 이용한 Show Window (쇼 윈도) 디자인 완연한 가을입니다. 이리를 만나 볼 11월이 되면 길거리의 뜨끈한 어묵꼬치가 발걸음을 잡을 만큼 추위가 기승을 부리겠지요. 날씨가 쌀쌀해진 만큼 따뜻해 보이는 실내에 자꾸 시선이 머뭅니다. 제가 유독 꽃과 식물에 관심이 있어서 일까요? 국화 한 다발이, 새빨간 포인세티아 화분 하나가 시선을 사로잡습니다. 작지만, 살아있는 것이라 그런지 자신을 드러내려 애쓰는 그 작은 생명력은 그래서 더 안타깝기도 하고 깜찍하기도 합니다. 우리가 들여다보는 실내. 즉, 자신만의 공간을 가지신 분들은 늘 색다르고 보기 좋게 드러내기 위해 쇼 윈도우 디 스플레이를 고민하실 텐데요. 그래서 이번에 준비한 주제는 꽃과 식물을 이용한 쇼 윈도우 디자인입니다. 보시 고, 도움이 되시겠다 싶으시면 과감하게 오늘 화원으로 발걸음 하시길!

1.포.인.트 ! 뜻 그대로 강조! 입니다. 쇼윈도 디스플레이의 가장 큰 장점은 정체성 노출에 효과적인 것이죠. 예를 들어, 카페 에서 원두 판매를 촉진하기 위한 디스플레이를 한다면 브랜드 로고가 찍힌 100g의 원두 봉투를 많이 일렬로 정 리한다던지, 자연스러운 분위기 연출 속에 여러 위치에 둠으로 써, ‘개 수!’ 로서 노출의 빈도를 높이는 방법이 있고 ,또 다른 방법으로는 큰 포대자루에 가득 원두를 담아 넘쳐흐르듯 ‘양!’ 으로 한 번에 시선을 잡는 방법 등 이 있습니다. 개수가 많을 때에는 ‘작게 자주 노출하는 강조’ 기법인 만큼 식물은 커다랗고 매끄러운, 보다 단조로운 질감의 식 물이나 큰 잎의 절화나 포도나무와 같은 공간 전체를 연출 할 수 있는 자연스러운 소품을 권장합니다. 보통 그린이란 색감은 눈에 편안함을 주고 어느 곳에도 원만히 잘 묻히는 색이기에 함께 사용 하시면 상품 하나하 나에 눈이 머물기 편하고 전체적으로 마케팅 의도를 전달하시는데 외부 자극 없이 강조! 하시는데 효과적입니다.

그린이 부담스러우시면 전체적으로 나무의 느낌이나 돌, 자연스러운 오브제를 사용하셔서 친환경적인 요소를 전하는 방법도 효과적입니다. 이 때, 생두를 이용해 만든 원두인 만큼 자연적인, 건강한, 의미를 부여하기 위해 식물과 함께 매치하기 좋겠다 고 생각 하실 텐데요. 이것은 생기 있는 디스플레이에 탁월한 발상입니다.


2.계절감 프라다, 구찌, 루이비통에도 봄, 여름. 가을, 겨울은 있습니다. 브랜드들 자체 내에서도 계절감을 반영한 상품들이 디자인 되고 이에 따라 과감히 인테리어 전반을 바꾸기도 합 니다. 봄이 되기 전부터 누구보다 빨리 봄 느낌을 내기 위한 선명하고 자극적인 색깔들을 도입합니다. 생화, 조화 할 것 없이 사용하고 ‘봄’이라는 ‘시작’의 느낌을 전하기 위해 낯설고 신기한 것들로 시선을 끌기도 합니다. 여름 이면 푸른 계열의 색감이 도드라집니다. 수영복과 비치백, 여름신발이 한껏 어디론가 떠나고 싶은 마음을 부추 깁니다. 단조로운 질감의 이국적인 분위기를 낼 수 있는 야자 종류의 식물을 두거나, 푸른 계열의 수국 혹은 하 얀색의 단조로운 꽃들을 묵직하게 꽂아 청량감을 강조하기도 하고. 수생식물로 직접적으로 ‘물’을 드러내 보이 기도 하며 불가사리, 조개 , 돌 등의 자연스런 소재와 믹스매치 하여 디스플레이 하기도 합니다. 가을엔 역시나 낙엽과 붉고 노란 색감이 도드라진 웅장한 어레인지. 단풍이 드는 남천과 같은 식물을 둘 수도 있고 추수의 계절 인 만큼 색감이 강렬한 과일들을 조화로 준비하는 등의 디자인을 합니다. 겨울엔 입구부터 따뜻한 느낌을 줄 전 구를 감고 실내엔 거대한 크리스마스트리와 각종 오너먼트를 이용한 어레인지부터 쁘띠 데코. 매장에 따라 눈이 내리는 느낌을 연출 한다든지, 시원한 겨울레포츠를 실사로 준비하기도 합니다. 규모가 있는 사업체를 운영하시는 분들에게는 실제로 위의 사례를 인용하여 디스플레이 해보시기를 권장합니 다. 단, 어설프지 않도록 주의하셔야 합니다. 매 해 놀라운 성장력을 자랑하는 명품매장이 ‘들어가고 싶게, 들어 갈 수밖에 없게’ 만드는 원인에 저는 쇼윈도가 큰 영향을 미친다고 생각합니다.


작은 매장을 운영하시는 분들에게 저런 것들은 너무 부담스러우실 수 있습니다. 그럴 땐 적은 돈으로 큰 효과 를 누릴만한 것들을 끊임없이 생각하실 텐데요. 전체적인 느낌이 어렵다면 하나의 소품으로 집중하는 것도 좋 습니다. 봄에는 무심코 꽂아놓은 듯 보이는 양철 물통에 봄빛이 스며든 꽃 한 무더기, 장독대 뚜껑에 심어 놓은 잔잔한 풀 잎처럼 솟아오른 천사의 눈물과 같은 작고 여린 식물과 크로버를 디자인하여 들여다보게 되는 귀엽고 자연스런 식물 어레인지를 해보세요. 쇼윈도 뒤 배경에 턱하니 붙여놓은 나비 오너먼트일수도 있겠고, 여름엔 봄에 쓰고 남은 장독대 뚜껑에 물 한가득 받아 물 배추 두어 개와 개구리밥 조금. 꽃을 뺀 양철 물통에 폭 죽 같은 수생식물 싸이프러스, 근처 다이소에서 산 유리병에 물을 받아 꽃잎 몇 개를 띄어 놓는 것 일수 있겠습 니다. 가을엔 국화 식물이나 절화 한 다발 꽂아 놓거나 두기도 하고, 조화로 단풍잎 몇 가지를 사다 떼어 바닥에 뿌릴 수도 있겠습니다. 뭔가 더 분위기 있게 연출 하시고 싶으면 나무껍질을 조각내 말려 놓은 양난을 심을 때 많이 사 용하는 바크를 바닥에 뿌려 놓아도 적당히 건조하고 자연스러운 느낌이 좋습니다. 겨울엔 따뜻한 빛이 뿜어 나올 주렁주렁 오너먼트가 달린 크리스마스트리나 목화 솜 몇 개가 그 해 겨울을 견뎌 줄 것 만같이 달린 리스로 출입문을 장식해도 좋겠지요. 남는 작은 에펠탑 오브제나 철 재질의 식상한 오브제가 있다면 락카를 칠해도 좋고 그 위에 불만 감아줘도 감쪽같이 다른 효과를 낼 수도 있습니다. 일년 내내 같은 상품을 판매하더라도 계절감을 주어 손님이 지루하지 않도록 이렇게 신경 써보는 건 어떨까요?같 은 상품을 판매할수록 다르게 연출해야 시선을 끌고 구매 욕구를 높일 수 있습니다. 위와 같은 사례로 큰 매장처 럼 전체적인 분위기를 바꿀 수 없다면 소품 하나를 최대한 살리는 센스! 를 발휘하시길 기원하며 글을 마칩니다.

Florist / 안언주


우울한 청춘

글. 그림. 철민 http://soafl.blog.me


- 이 달의 선정 도서 『이토 준지의 고양이 일기 욘&무』, 이토 준지, 장혜영 역, 대원씨아이, 2010 유명 호러 만화가의 개그 만화. 웃긴데 무섭고, 무서운데 웃기다. 애견파였던 그는 고양이를 원치 않았다. 그런데 어느새 고양이를 원하게 되었다. 원치 않던 것을 원하게 될 수도 있나? 그렇다. 왜냐하면, 사람은 변하니까.

- 알다가도 모를 그녀는 내게 이런 이야기를 한 적이 있다. “난 절대 애 안 낳을 거야.” 왜냐고 물어보니 이렇게 답했다. “애 낳는 게 그렇게 고통스럽대. 생각해봐. 애 머리통이 밑을 찢고 나오는 거야……. 생각만 해도 끔찍해. 난 그 런 고통을 감수하면서까지 애를 낳고 싶진 않아. 넌 남자니까 낳으면 낳는 거고, 아님 마는 거고, 하는 식으로 생 각할 수 있겠지만, 여자인 내 입장에서는 그게 정말 두려워. 남자들 군대 가는 거랑 많이들 비유하잖아. 네가 군 대를 안 갈 수 있는 상황이야. 그럼 넌 군대 갈 거야? 당연히 안 갈 거 아냐? 안 그래? 그리고 우리 부모님들을 봐 봐. 돈 벌어서 우리한테 다 갖다 바치잖아. 자기를 위해선 한 푼도 못쓰고… 거기서 끝이면 다행이게? 하고 싶은 일도 다 포기하고 살잖아. 다들, 난 안 그럴 거야, 라고 생각은 해도, 막상 그게 생각처럼 쉽지 않을 거야. 그래서 난, 결혼은 해도 애는 절대 안 낳을 거야.” 만약에 네가 임신을 하게 되면 어쩔 거야? “당연히 지워야지. 애 낳는 순간, 내 인생은 끝이야. 아니! 애를 갖는 순간부터 내 인생은 끝난 거나 다름없어.” 우리나라에서 낙태는 불법인데? “알아보면 다 해주는 데가 있어. 몰라? 우리나라 돈이면 다 되는 거?” 그녀의 입장에서 볼 때, 그녀의 말들을 백 번 맞는 말이었다. 그녀와 달리 나는 아이를 갖고 싶었다. 어렸을 적엔 엄마에게 동생을 낳아 달라 떼를 썼고, 그것이 실패로 돌아가자, 이어서 강아지를 사달라고 졸 라댔다. 그마저 엄마의 털 알레르기에 의해 불가능한 일이 되어버리자, 결국 내 스스로, 어른이 되면 꼭 아이를 낳겠다는 다짐으로 이어졌다. 그 이후로 늘 내 머릿속엔 빨리 결혼해서 애를 낳고 싶다는 생각이 박혀있었다. 한 마디로, 내게 아이를 낳는 것은 당연히 해야 할 일이었다. 그래서 나는 생명의 탄생은 그 자체로 고귀한 것이라느니, 낙태는 살인이나 마찬가지라느니, 하는 식의 원론적 인 이야기들로 그녀를 설득하려 했다. 그러자 그녀는 내 말을 막으며 이렇게 말했다. “네가 뭔데 나한테 이래라 저래라야?”


그녀의 말마따나 내가 그녀의 남자친구도 뭣도 아닌, 단순한 학교 친구,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니었기에, 하던 말 을 멈추고 그저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 네 인생, 네 맘대로 하는 거지. * 그는 내게 딱 한 번 이런 이야기를 했다. “가끔씩 같은 꿈을 꾸는데, 그 꿈을 꾸는 날이면 하루 종일 미쳐버릴 것 같아. 진짜 어떡하면 좋을지 모르겠고, 사실… 어떻게 할 수 있는 방법도 없어.” 무슨 꿈인데? “아기가 날 바라보고 있는 꿈이야. 꿈꾸는 내내 아기가 나를 바라보고 있어. 머리털도 안 난 갓난아기인데, 그 런 애가 눈을 커다랗게 뜨고 나를 노려보고 있는 거야. 난 속으로 잘못했다, 미안하다는 말을 수도 없이 떠올리 는데, 내 입에선 아무 말도 나오질 않아.” 네가 왜 미안한데? “사실……” 뭔데? “예전에, 낙태를 한 적이 있어. 그 애가, 가끔씩 꿈에 나오는 것 같아.” 난 아무 말 없이 그를 바라보았다. “어쩔 수 없는 선택이었어. 나도, 여자친구도, 아무 준비가 안 돼 있었어. 너무 어렸어. 돈도 없었고, 둘 다 학생 이었고…… 그래. 나도 알아. 결국엔 내 잘못인 거. 내가 피임을 안 한 게 잘못이고, 내가 애 키울 돈이 없는 게, 잘 못이었지. 그렇지만 어쩔 수 없었어. 네가 내 상황이었어도 그랬을 거야. 생각해봐. 그냥 모든 게 다 두려웠어. 여 자친구도 그 나이에 벌써 엄마가 되고 싶진 않다고 했어.” 나는 왜 그런 선택을 했냐고, 그래도 그렇지 어떻게 낙태시킬 생각을 하냐며 다그치고 싶었다. 하지만 그런 말 을 한다고 해서 달라질 것은 아무 것도 없었다. 그래서 나는 그의 잘못이 아니라고, 그건 정말 어쩔 수 없는 선택 이었다고, 너무 자신만 탓하지 말라고 말해주었다. 그러자 그는 고개를 끄덕이며 이렇게 말했다. “그래서 여자친구에게 더 잘해주려고 했어. 그 꿈을 꾸는 날이면 늘 다짐했어. 이 죗값을 여자친구에게 갚아야 겠다고. 그런데 헤어졌어. 어떻게 해야 할지 모르겠어. 정말 미쳐버릴 것 같아. 난 애는 절대 낳지 않을 거야. 딸이 라면 더 낳지 않을 거야. 만약 내가 애를 낳게 된다면, 지금보다 훨씬 더 큰 죄책감에 시달릴 것 같아. 게다가 그 게 딸이라면 나중에 딸이 잘못될 상상까지 하게 될 것 같아. 그런 상황은 절대 오게 하고 싶지 않아.” 그의 입장에서 볼 때, 그건 맞는 얘기였다. 그와는 달리 난 꼭 딸을 낳고 싶었다. 하얗고 말랑말랑한 피부를 가진 귀여운 여자아이를 생각하면 저절로 미 소가 지어졌다. 그런 딸에게 예쁜 원피스를 사주고 싶었다. 함께 비틀즈를 들으며 레고를 만들고 싶었다. 책을 읽어주고, 함 께 영화를 보고 싶었다. 그리고 그렇게 자란 딸과 서로 좋아하는 영화에 대해, 음악에 대해 이야기하고 싶었다. 그래서 나는 그에게 그건 너무 극단적인 선택이 아니냐고 물었다. 애를 낳고 키우는 데에만 있는 행복 같은 것 이 있지 않느냐고, 이미 죽어버린 아이에 대한 죄책감을 미래에 생길 아이에게까지 전가시킬 필요가 있느냐고. 그러자 그가 고개를 숙였다. 다시금 죄책감이 드는 모양이었다.


나는 분위기 전환 겸, 농담 삼아, 그럼 그 이후론 여자

됐어. 아무튼 결혼 축하한다.

랑 잘 때, 항상 콘돔을 쓰냐고 물었다. 그는 웃으며 그

“고마워. 아, 그리고……”

렇다고 대답했다.

그리고? “이건 너한테만 말해주는 건데……”

*

뭔데? “나 임신했어. 두 달째야.” 얼마 전, 이 둘의 결혼식이 있었다.

그 순간 코끝이 찡해왔다. 잘됐네. 그것도 축하해. 아무튼 식 잘하고, 행복하게

식장에 도착하자 그가 반갑게 인사를 건넸다. “오랜만이다. 잘 지냈어?” 그냥 사는 거지 뭐. 결혼 축하해. 근데 너희 둘 어느 틈에 사귀고, 어느새 결혼까지 하기로 했냐? 난 사귄다

잘살아. 그렇게 돌아서서 대기실을 빠져나왔다. 그리곤 준비 해온 축의금을 반으로 나눠 신랑 측과 신부 측에 하나 씩 건넸다.

는 얘기도 못 들었는데. “그러게. 너한텐 말했어야했는데, 어쩌다 보니 그렇게 됐다. 내가 술 한 잔 샀어야 됐는데. 미안하다.” 미안할 게 뭐 있냐. 내 덕에 알게 됐지만 그렇다고 내 덕에 사귀게 된 건 아니잖아. “그건 그렇네……. 그건 그렇고, 축의금은 어느 쪽에 낼 거냐?” 글쎄?

식이 시작되고, 신랑이 환하게 웃으며 입장하고, 신 부는 울 것 같은 표정을 지으며 입장했다. 둘은 행복 해보였다. 그런 둘을 보고 있자니, 삶이란 정말 알다가도 모르겠 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렇게나 애를 갖기 싫어하던 둘 이 결혼해 애를 갖다니…… 주변을 둘러보았다. 둘의 결혼을 축복해주며 환하게

“넌 둘 다 내.”

웃고 있는 많은 사람들이 보였다. 나는 어쩌면 이곳에

그는 웃기지도 않은 농담을 하며 시원스레 웃어보

서, 내 예쁜 딸을 낳아줄 사람을 만날지도 모르겠단 생

였다. “아무튼 다음에 내가 술 한 번 살게. 너한테 할 얘기 도 있고.” 그래, 그럼. “아무튼 오늘 와줘서 고맙다.” 나는 그와 악수를 한 뒤, 신부대기실로 향했다. 신부대기실에 들어서자, 그녀가 나를 알아보고 환하 게 웃어보였다. “오랜만이네!” 축하해. “고마워.” 난 너희 사귀는지도 몰랐어. “응. 작년 이맘때쯤부터 사귀기 시작했어. 너 여자친 구는?” 여자친구는 무슨… 나 하나 먹고 살기도 힘든데. “그럼 오늘 내 친구들 중에 마음에 드는 애 있나 봐봐. 내가 다음에 소개시켜줄게.”

각을 했다.


바다비 일요 시극장

참가신청 http://cafe.daum.net/badabie


왼손이


Public Gastronomy 10회 - 최고의 맛, 젤라띠 젤라띠 글, 사진 / 미식의별 (트위터 = @maindish1)

젤라또와 아이스크림 일반적으로 젤라또는 이탈리아 아이스크림 또는 이탈리아에서 아이스크림을 칭하는 단어 정도로 알고 계신 분 들이 많을 것이다. 그러나 사실 아이스크림과 젤라또는 비슷하면서도 다른 특성을 가지고 있다. 아이스크림과 젤라또는 둘 다 재료를 휘저어 혼합하면서 온도를 낮추어 만드는데, 재료를 휘젓는 과정에서 공 기가 들어가며 그 특유의 질감과 식감이 만들어진다. 그러나 일반적으로 아이스크림은 휘젓는 속도를 빨리, 젤 라또는 느리게 하기 때문에 아이스크림에는 공기가 많이 들어가고 젤라또에는 공기가 적게 들어가 재료의 밀도 가 높아지고 맛이 진해지게 된다.(밀도가 높기 때문에 아이스크림에 비해 빨리 녹지도 않고) 그렇다고 모든 아이 스크림에 공기가 많이 들어가 있는 것은 아니고, 하겐다즈 등의 고급 아이스크림은 젤라또와 비슷한 정도로 천 천히 휘저어 만들기 때문에 진한 맛을 낸다. 또한 유지방의 함량도 다른데, 아이스크림은 이름 그대로 우유나 크림 등의 성분을 넣어 얼려서 만든다. 반면 에 젤라또는 우유나 크림이 거의 들어가지 않는다. 젤라또 중에도 우유를 베이스로 한 제품에는 물론 우유가 들 어가지만 그렇지 않은 제품(과일이나 넛츠류 등)에는 거의 또는 전혀 들어가지 않는 경우가 많다. 따라서 아이스 크림보다는 젤라또에서 재료 본연의 맛을 좀 더 강하게 느낄 수 있다. 홍대 인근의 저렴하고 맛있는 업소를 소개합니다.


그러니까 아이스크림이 오리 간이라면 젤라또는 푸

것 같은 생각마저 들더라는. 하지만 역시 젤라또를 눈

아그라, 아이스크림이 육우라면 젤라또는 1등급 한우

으로 볼 수가 없다보니, 테이스팅은 커녕 가게 앞을 서

라고나 할까.

성이다가 그냥 지나가는 사람들이 꽤 된다. 용기는 미 인을 얻는 데도 필요하지만, 미식을 하는 데도 필요한

깨끗하고 순수한 맛, 젤라띠 젤라띠

법이거늘. 날이 점점 추워지고 있긴 하지만, 젤라띠 젤라띠의 젤

지금까지 한국에 오픈한 젤라떼리아(젤라또 가게)의

라또는 한겨울에 먹는데도 저항감이 느껴지지 않을 그

풍경은 쇼케이스 안에 젤라또 통이 여러 개 들어가 있

런 맛이다. 맛도 좋지만 진한 풍미가 느껴지면서 동시

고, 어떻게 생긴 젤라또인지 눈으로 보면서 고를 수 있

에 스르르 녹는 그 식감과 질감을 한 번 접해본 분이라

는 그런 것이었다. 그러나 젤라띠 젤라띠는 뚜껑이 달

면 아마도 동의하시지 않을지. 어쩌면 한 겨울에 홍대

린 스테인리스 통에 젤라또가 들어있고, 통 옆의 팻말

어드메서 줄을 서서 젤라또를 먹는 풍경을 보게 될 날

에 어떤 재료로 만든 것인지가 표기되어 있는 조금 생

이 오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든다.

소한 방식을 채택하고 있다. 사실 이탈리아에서도 두 가지 방식의 가게가 모두 존재하는데, 후자가 온도 유 지에 더 유리하고 따라서 맛을 더 일정하게(그러니까 맛있게) 유지할 수 있다고 한다. 젤라또 하나를 뜰 때 쇼케이스를 통째로 열어야 하는 전자의 방식이 아무 래도 더운 공기의 유입이 더 잦은 건 사실이니 일리 가 있는 말 같기도 하고. 하지만 그동안 한국에서 젤 라또를 먹어본 바로는 딱히 스테인리스 통에 개별보관 을 한다고 해서 맛이 엄청나게 좋아질 것 같다는 생각 이 들지는 않았는데…. 하지만 일단 맛을 보고 판단하 기로 하고.

젤라띠 젤라띠에서는 일단 콘으로 드셔보시길. 이탈리아에 서 수입한 콘인데, 콘의 맛도 좋고 콘 속에 맛있는 초콜릿을 넣어주신다.

젤라띠 젤라띠의 젤라또는 이렇게 개별보관이 되어 있다.

젤라띠 젤라띠 또한 다른 젤라떼리아와 마찬가지로 테이스팅이 가능한데, 테이스팅 스푼에 떠주신 젤라또 를 한 입 맛보는 순간 행복과 감동이 입안에서 몸으로 서서히 퍼져가는 느낌에 감탄을 금할 수가 없었다. 요 즘 인터넷에서 흔히 쓰는 표현으로 진짜가 나타났다 고 할까. 지금까지 한국에 오픈한 젤라떼리아를 모두

가격도 그리 비싸지 않다. 이 가격에 이 맛이면 그저 감사할 따름.

뛰어넘는 한 차원 높은 수준의 맛을 보여준다. 원재료

주소 : 마포구 서교동 407-8

를 젤라또라는 형태로 옮겨낸 그 순수하고 깨끗한 맛

전화 : 02-3144-3281

을 느껴보니, 뚜껑달린 스테인리스 통 정도가 아니라 2

위치 : 극동방송국 삼거리서 상수역 방향 세븐일레븐 옆 골목

중 3중으로 안전장치를 해서라도 그 맛을 유지해야 할

(속칭 클럽 골목)

누구나 부담 없이 즐길 수 있는 공공(Public)의 미식(Gastronomy)을 추구합니다.


<밤마다 안주, 날마다 해장>

밤마다 안주 #3 메밀잡채

이제 겨울인데 웬 메밀이냐 하시겠지만, 여름에 사다 둔 메밀부침가루가 많이 남아 메밀부침을 이용한 잡채를 해보았습니다. 예전 전통요리에 보면 찹쌀가루나 청포묵 등을 사용한 여러 가지 잡채 요리들이 있습니다. 이 외 에도 중국, 아시아 전역에 잡채와 비슷한 음식들이 많지만, 한식 잡채는 다른 나라의 잡채요리와 구별되는 조리 방식을 가지고 있습니다. 재료를 한 데 볶아내는 것이 아니라 따로 따로 볶아내어 간단한 양념으로 버무리는 방 식이지요. 이러한 조리법은 깔끔한 맛은 물론 각 재료들 고유의 맛이 서로 조화롭게 어울리게 한다는 장점을 지 니고 있다는 생각이 듭니다. 비록 손이 많이 가 만드는 데 조금 수고스러울 수도 있지만 말입니다.

<재료 및 분량> 메밀부침_ 메밀부침가루

양념장_ 한컵

간장

2~3 Ts

1/2 컵

다진 파

1ts

소금

약간

다진 마늘

1ts

설탕

약간

참기름

1Ts

식용유

약간

설탕

1ts

매실청

1Ts

당근

1/3개

애호박

1/3개

양파

1/4개

새송이버섯 청피망 호두

1개

깨 조금 지단

계란 1개 노른자와 흰자 분리

1/2개 1개 다진 것

* 1Ts_한 큰 술 / 1ts_한 작은 술


<만들기> 1. 메밀부침가루를 준비된 물 분량에 묽게 개어내고 소금과 설탕으로 간 한 뒤 프라이팬에 식용유를 두르고 얇게 부쳐냅니다. 2. 위에 부쳐낸 메밀부침을 잠시 식혀둡니다. 3. 달걀을 노른자와 흰자로 분리해 백/황 지단을 부쳐냅니다. 이것도 잠시 식혀둡니다. 4. 준비된 채소들을 5~6cm길이로 얇게 채 썰어 각각 따로 볶아냅니다. 5. 식혀두었던 메밀부침과 백/황 지단도 길이 5~6cm, 두께 0.5~1cm로 잘 썰어냅니다. 6. 채썰어 둔 모든 재료들을 한 데 모아 잘 섞고 만들어 둔 양념장을 부어 잘 버무려줍니다. 4. 그릇에 예쁘게 담아내어 호두 다진 것을 고명으로 얹어줍니다. tip) 양념장은 본격적 요리에 들어가기 전 미리 만들어 놓고 어느 정도 양념이 어우러져 숙성되게 해두 는 것이 맛을 내는 데 더 좋습니다.


Seed to Cup 사지말고 만들어보자 원두 계량 컵 서버와 드리퍼, 드립용 주전자에 전기포트까지 준비해 고상하게 커피를 내려마시려다가도 원두는 밥수저로 뜨는 서글픈 현실 극복을 위해 준비한 바로 그 기획 <사지말고 만들어보자 원두 계량 컵>싸이펀의 마스터 사선희 님이 알려줍니다.


핵심은 바닥에서 2.5cm !! 진한커피를 즐기고 싶으실 때 종이컵 계량스푼은 12g을 기준으로 만들어졌으므로 진한커피를 드시는 분들께는 한스푼+약 1/3을 넣습 니다. 즉, 12~15g을 사용하여 170cc정도(일반잔의 가득 혹 은 머그잔의 7부정도) 추출하시면 충분히 진하게 즐기 실 수 있을겁니다. 중간정도의 농도를 원하실때에는 10g정도면 될 것 같고요. 연하게 한잔 즐기기를 원하시거든 8g정도면 무난할 듯 합니다. 양은 동일합니다. 자. 이제 즐기시지요~ Enjoy your coffee break ^^

싸이펀 사선희


연남동 565-5번지 싸이펀 주문 : 010 3126 2973


부산오뎅 이야기 (가.을.야.구.)

여러분들도 누구나 하나씩 좋아하는 스포츠가 있을 것이다. 축구, 야구, 농구, 골프, 배구, 격투기 등등 요즘은 케이블TV와 같은 각종 매체나 직관을 통해 이런 스포츠 들을 직간접적으로 볼 수 있는 시대다. 필자는 개인적으로 야구를 좋아한다 한창 야구시즌일 때는 국내프로야구 뿐만 아니라 일본프로야구 미국메이저리그까지 모든 야구소식을 모니 터링 한다. 심지어 TV를 보다가 가끔 중계하는 리틀야구 조차도 한동안 채널을 멈추어 본다. 지금은 각 나 라별로 한 해 농사의 마지막인 포스트시즌이 한창이다. 필자는 7~8살때부터 야구를 보러가기 시작했다 장 사를 하시던 어머니께서 그 당시 4~5살되던 동생의 칭얼거림을 달래기 위해 용돈1000원을 주며 동생 데리 고 놀러 다녀오라 하시면 어릴 때 부터 천부적 협상가의 기질을 보였던 나는 3시간에 3000원으로 판을 키운 다. 그러면 어머니는 잠깐 망설이시다가 하루 용돈 100원 시절의 나에게 뭔가에 홀린 듯 3000원을 주시곤 하 셨다. 그러면 그 돈으로 동생에게 아이스크림하나 사주고 함께 야구장에 가곤 했다. 야구는 어린 시절 나에게


재미 그 이상의 스포츠였다. 어릴 적 서울에서 태어나 5살때 부산에 내려갔던 나는 프로야구원년 개막 첫 날에 터진 MBC청룡 이종도선수 의 끝내기 만루홈런에 매료되어 MBC청룡을 응원하다가 MBC청룡의 성적하락과 당시 OB베어스의 성적상승 더하기 불사조 박철순에 매료되어 OB베어스로 한 달 만에 갈아 탔다. 학교 친구들의 롯데 자이언트 어린이 회원 가입 유도와 연이은 교화, 각종 자랑에도 나는 전혀 흔들림이 없 었다. 부산에서 두산을 응원했으니, 얼마나 고초가 많았을까. 청소년기에는 사직 야구장에가서 롯데 대 OB의 경기에서 OB를 응원하다. 컵라면도 뒤집어써보고, 맥주 캔도 맞아보고, 아저씨들한테 욕도 들어보고, 강렬한 레이저눈빛도 맞아보고, 멱살도 잡혀보고 뭐 안해본 게 없다. 그렇지만 나는 꿋꿋하게 OB베어스를 응원했다 소리 없이.... (하지만 두 번째로 응원하는 팀은 롯데가 맞다. 그러나 나의 1번은 OB베어스다.) 이렇게 온갖 수모를 겪어가며 부산에서 원년부터 두산을 응원해온 일편단심 베어스빠에게 신은 2012년 10월 의 어느 날 롯데와 두산의 준플레이오프를 주셨다 물고 물리는 접전 끝에 5판3선승제의 4차전. 1승2패로 벼랑 끝에 몰린 두산 베어스. 이번 판을 내주면 시리즈를 내줌과 동시에 올 시즌의 모든. 일정. 종료. 나는 내년 4월까지 이어지는 긴 긴 겨울을 야구 없이 나야 한다. 하지만 두산은 총력전 끝에 패배하였다. 슬프 다 질 수 있다. 아무렴 질 수 있고 말고 축구 한일전 질 수도 있다 이길 수도 있다. 그 슬픔은 잠시면 잊을 수 있다 며칠이면, 아니 하루면 충분하다. 더 짧게 그래 한 시간도 된다. 하지만 그 시간 동안만큼은, 나는 나의 감정에 충실하고 싶다. 방해 받고 싶지도 않고 티 내기도 싫다. 위로도 필요 없는 나 혼자 슬픔을 곱씹는 시간 이다. 묵묵하게 이겨내는 것이다. 그날도 그랬다. 나는 패배감에 고개를 숙였다. 그때, 부산 손님이 들어온다 .그리고 나를 얼싸안는다.

“롯데 롯데 롯데 롯데 승리의 롯데 화이팅!!! 싸장님 하이파이브~~~”

편집장은 한.화...


into the jazz 글. 이상준

커뮤니티 합창단 / 밴드의 장단점 지난 글에서 음악을 쉽게 접근할수 있는 방법 3가지를 제시했다. 첫째, 커뮤니티 합창단 또는 밴드에 참여하는 것 둘째, 본인이 직접 밴드를 만들어 합주하고 활동을 하는 것, 그리고 마지막으로 컴퓨터 또는 그외 테크놀로 지를 사용한 음악하기에 대한 이야기를 했다. 물론 음악을 접하는 쉽게 방법은 무수히 많다. 그저 주관적으로 중 요하다고 생각한 방법 3가지 예를 들었을 뿐이다. 오늘은 첫번째 방법 (커뮤니티 합창단/밴드)이 가지고 있는 장단점을 조금 세부적으로 다뤄보자. 어떤 ‘방법’ 또는 ‘것’이 가지고 있는 장단점을 파악하는 것은 그것이 가지 고 있는 기능성 또는 혜택을 가장 극대화 시킬수 있는 첫걸음이기에 매우 중요하다.

장점 4가지 1. 경제적 부담이 크지 않다. 먼저 음악은 소위 돈이 많이 든다는 고정관념이 있다. 필자가 늘 지적하는 바이지만 이 문제에 대해서는 우리 모두가 정말 진지한 비판적 고민이 필요하다. 돈에 대한 구체적인 문제들과 해결책들은 추후에 다룰 예정이다. 좌우지간 이러한 고정관념과 달리 커뮤니티 합창단은 거의 돈이 들어가지 않는다. 지난 칼럼에서 이야기했듯 이런 저런 악기에 돈을 투자할 일이 없다. 인간이 가지고 있는 목소리가 악기이기 때문이다. 그냥 맨손으로 합 창단에 가입하면 되는 것이다. (단체마다 리허설공간과 지휘자 사례문제로 적은 액수의 회비는 있을수 있다.) 굉장한 장점이 아닌가. 2. 별다른 준비가 필요없다. 두번째 장점은 다른 방법과 달리 큰 준비가 필요없다. 합창단이나 밴드멤버중 가장 큰 준비와 에너지를 쏟아붇 는 사람은 지휘자 또는 디렉터이다. 합창단원이나 밴드구성원은 그저 매 리허설을 위해 자기파트에 충실하면 된다. 잘 만들어진 조각(멤버)를 잘 편집하고 다듬는 작업은 지휘자이다. 쉽게 축구감독이라고 생각하면 된다. 경기를 뛰는 선수들은 몸관리를 잘하고 지시에 충실하면 되는 것이다. 그외 모든 것은 감독(지휘자)이 하는 것 이다. 축구에서 감독이 중요하다는 사실은 한국사람에게는 설명이 필요 없지 않은가. 물론 단원 개개인의 역할 을 과소평가하는 것은 아니다. 거꾸로 본인이 밴드를 만들어 활동한다고 생각해보자. 내가 연주도 하고 리허설


스케줄도 짜야하고 전체적인 소리도 모니터링해야한다. 다시 이야기하면 그만큼 할일이 많아진다. 지휘자/디렉 터가 있다는 것을 감사하게 생각하자. 3. 공연에 대한 리스크가 상대적으로 작다. 남성중창단 또는 아카펠라 그룹이 아닌 이상 대부분의 커뮤니티합창단 또는 밴드는 상당수의 인원으로 체워져 있다. 아마도 20-30명 또는 그 이상의 인원으로 일반적으로 구성되어 있는데 공연을 하면 최소 100명 이상의 관객을 보장할수 있다. 각 단원의 가족만 와도 아담한 공연장은 꽉채울 수 있다. 얼마나 좋은 것인가. 공연장이 관객으로 꽉찬다는 것은 정말 흥분되는 일이다. 거꾸로 나 혼자 솔로로 공연을 한다고 생각해보자. 가족과 지인 을 총동원해도 100명은 커녕 50명도 오기 어렵다. 4. 음악에 대한 지식을 얻을 수 있다. 음악지식은 아주 대체적으로 두가지로 나눌 수 있다. 첫째는 음악에 대한 지식 (Knowledge-About-Music) 그리 고 둘째는 음악속에 내재한 지식(Knowledge-In-Music)이 있다. 어렵게 생각할 필요는 없다. 글자 그대로 해석 하면 된다. 전자는 음악에 대한 것이고 후자는 안에 들어가 있는 지식을 말한다. 합창단이나 밴드에 참여하면 두가지 음악지식 중 첫번째 지식을 얻는데 큰 도움이 된다. 거의 대부분의 콰이어 나 오케스트라는 소위 악보라는 음악적 기호를 사용한다. 말그대로 ‘기호’이다. 그리고 그 기호안에는 음악에 대 한 지식을 암시하고 있다. 예를 들면 ‘C’라는 음정을 의미하는 음표가 있고 음악의 빠르기 또는 박자를 의미하 는 여러 다양한 기호가 있다. 마치 우리가 사용하는 문자와 같은 것이다. 우리가 문자를 통해 지식을 얻을 수 있 듯 음악 역시 이런 기호화 된 악보를 통해 음악에 대한 지식을 얻을 수 있다. 활자는 굉장한 힘을 가지고 있다 는 사실은 우리가 흔히 아는 이야기이다. 음악 역시 마찬가지이다. 음악을 기호화 시킨 악보의 힘은 대단하다. 악보를 마스터하기엔 다소 시간이 필요하다. 그러나 합창단이나 밴드에 들어가면 정기적인 리허설을 통해 조금 씩 자신도 모르게 많은 것을 습득하게 될 것이다.

단점 3가지 1. 수동적이다. 앞서 이야기했듯 커뮤니티 합창단/밴드가 가진 장점 중 하나가 별다른 준비없이 음악활동이 가능하다는 점이 다. 자기파트연습만 1차적으로 충실히하면 그후부터는 지휘자 또는 디렉터가 음악을 요리해나간다. 지휘자님 말씀을 잘 듣는 것이 성공의 지름길이다. 그러나, 이것은 양날의 검이다. 커뮤니티 합창단/밴드에서 활동하는 것 이 매우 편할 수 있으나 수동적인 환경으로 음악에 대한 깊은 이해력을 가지기는 힘들다. 물론 능동적인 방법만 이 음악에 대한 이해력을 높이는 것은 아니다. 음악에 대해 더 많이 아는 방법은 수도 없이 많이 있다. 다만, 경 험이 제한적이기에 더 뻗어나가기엔 한계가 있다. 단순히 자기파트만 연습해 지휘자의 지도속에 수동적으로 활 동하는 것만으로 음악을 알 수는 없다. 운동의 예를 들면 조기축구에서 오직 감독님의 지시만 따라 미들필드의 역할만 시키는대로 충실히 한다고 그 넓은 축구의 세계를 얼마만큼 이해할수 있을까. 2. 음악에 담긴 지식을 얻을수 없다. 대부분의 합창단과 밴드는 악보를 사용한다. 악보는 단순히 기호일뿐이다. 앞서 이야기했듯 음악기호들은 음 악에 대한 지식을 얻는데 큰 도움이 된다. 그러나 정작 음악 속에 내재한 지식 (Knoweldge-In-Music)을 얻기에 는 많이 역부족이다. 음악에 대한 지식(Knowledge-About-Music)과 음악 속에 내재한 지식은 (Knowledge-InMusic)은 다르다. “음악 속에 내재한 지식”을 문자로 설명하는 것이 과연 가능할지 모르겠다. 문자 역시 단순한 기호이기때문이다. 이해를 최대한 돕기위해 예를 들어보겠다. 부산사투리를 과연 문자로 표기할수 있을까. 예전 에 ‘친구’라는 깡패영화가 있었다. 주인공들의 부산사투리는 일반사람들이 듣기에는 제법 괜찮게 들리지만 실제 로 부산주민들에게는 생소하게 들렸다고 한다. 주연배우 유오성과 장동건은 대본이 아닌 직접 부산사람의 지도


하에 피나는 사투리연습를 해도 부산사람들에겐 온전한 부산사투리로 받아드려지지 않았다. 비슷한 예로 영어 를 보자. 우리가 한국에서 교과서로 계속 소리내어 읽고 연습한다고 정말 영어를 모국어처럼 하는 사람처럼 되 지는 않는다. 언어가 단순히 문자로 습득할수 없듯 음악 역시 기호만 가지고 흉내낼수 것이 아니다. 심지어 유 오성과 장동건은 꽤 혹독한 훈련을 받았음에도 부산사람들은 어색했다고 말하지 않나. 언어는 단순한 기호가 아니라 그 속에 문화는 물론 뉘앙스와 여러 복잡한 의미가 들어가 있듯 음악 역시 단순한 악보가 아니라 그 소리 안에 글로 설명하지 못할 수만가지 지식들이 존재한다. 이것을 단순히 악보로 배우는 것 은 학교 교과서만으로 영어를 마스터하겠다는 이야기와 같다. 커뮤니티합창단과 밴드 활동은 매우 의미가 있는 것이지만 음악 속에 내재한 지식 (Knowlegde-In-Music)을 경험하고 얻기엔 그 활동이 제한적이다. 3. 주인공이 너무 많다. 합창단과 밴드는 단원수가 많기에 공연에 대한 리스크가 적다는 것이 큰 장점이나 반면 무대위에 주인공이 너 무 많다는 것이 단점이다. 물론 주인공이 많기에 무대위에서 부담감이 적을 수도 있지만, 세상은 생각보다 무 척 공평하다. 부담감이 적기에 내가 받는 관심도 그만큰 적어진다. 물론 관심을 독점하는 것이 음악을 하는 목 적은 절대 아니다. 그러나, 솔로나 적은 수의 인원으로 공연을 했을때 그 많은 박수세례를 받는 것은 남다르다. 모든 거품을 빼고 이야기하자. 음악을 하는 많은 이유중 하나는 사람들에게 인정받기때문이다. 많은 사람들이 예술을 운운하면서 음악이야기를 하지만 정작 사람들의 관심이 없으면 그 난해한 예술따위도 다 필요없다. 많 은 사람앞에서 연주하는 것 그리고 박수받는 것만큼 좋은 것이 없다. 단원이 많은 합창단 또는 밴드를 통해 박 수를 받는 것도 의미가 있지만 솔로 또는 적은 인원으로 많은 박수를 받는 것은 차원이 다르다. 그리고 그것은 음악을 더 정열적으로 하게 만드는 큰 힘이 된다. 영화 속에서 주인공은 아무나 되는 것이 아니다. 그런 기분은 단원이 많은 합창단에서 느끼기 힘들다. 정리하자. 커뮤니티 합창단과 밴드가 가지고 있는 장단점을 다뤄봤다. 일부 독자들은 이 장단점에 대해 동의 할수도 있고 동의안할 수도 있다. 설사 동의한다해도 동의의 세기는 개개인마다 다 다를것이다. 내가 다룬 장 단점은 나의 지난 경험을 통해 쌓인 지식을 바탕으로 한것이다. 당신의 경험은 다를수 있고 전혀 다른 시각을 가질 수 있다. 다만 중요한 것은 커뮤니티 합창단이나 밴드로 음악을 경험했을때 이 방식이 가지고 있는 장단 점을 독립적으로 잘 파악해 장점은 더 승화시키고 단점은 더 보안해 보다 더 음악을 즐기는 방법을 지속적으 로 모색하는것이다.


안철수 경남 도지사는 어떨까? 안철수 후보 지지자들은 제목만 봐도 어처구니가 없으시겠지만.. 부디 끝까지 읽어주시면 감사드리겠습니다. 저는 문재인 후보의 지지자 임을 먼저 밝힙니다. 심적으로 많이 편을 들고 있더라도 이놈이 어쩌다 이런 생각을 하게 되었는지를 한번만 생각해 주시면 좋겠습니다. 어느날 집에서 설겆이를 하던 중이었습니다. 세제의 거품을 한껏 내서 그릇을 닦다가 ‘그러니까 만약에 단일화가 된다면, 문재인 이나 안철수 중 하나는 못 써먹는 것 아닌가?’ 여기서 이 글은 시작하게 되었습니다. ‘그럼 어떻게 하면 둘 다 써먹을 수 있을까? 뭐가 있지? 뭐가 있지?’ ‘아 경남 도지사 선거!’ 민주당 경선에 뛰어들면서 김두관 씨가 쿨하게 던져버린 (하아...) 경남 도지사 자리가 생각났습니다. 여기서 공정하게 생각하면 단일화가 이루어지고 한명은 대선으로 한명은 경남 도지사 후보로 가면 좋으련만 경 남 도지사를 중도사퇴 한 김두관 씨가 민주당 후보였단란 사실 (하아...) 그래서 일단 안철수 후보를 멋대로 내 려보내봅니다. 그래서 탄생한 “안철수 경남 도지사 론” 편파적이라 생각하시겠지만 사고의 골자는 바로 이것입니다. 이 괜찮은 후보들을 하나라도 못쓰게 되는 것은 아깝지 않은가? 지지를 떠나 국민에게 최대한의 이익이 될 것이 무엇일까? 둘을 다 써먹을 수 있어야 한다. 간단 요약을 먼저 하면 이런 수순이 어떨까 하는 생각을 해 보았습니다. 안철수 후보의 대선 후보 사퇴 -> 경남 도지사 -> 국무총리 -> 대선 재도전 이것이 가능한 배경은 네 가지 입니다. 1. 안철수 후보의 나이가 아직 여유가 있다. 2. 안철수 후보가 그릇이 크다 - 장기적 차원에서 민주 시민 사회의 발전을 도모할 의지가 있다. 3. 경남도지사의 남은 임기가 2년. (총리에 힘을 실어주기 위해, 관련된 정치 지형이 바뀌기까지 시간이 필요) 4. 무소속 (민주당이 아님)


저는 안철수 후보에게 부족한게 있다면 단 한가지 실무경험 뿐이라고 생각하는데, 이 실무경험이 단순 행정업 무를 이르는 것은 아닙니다. 정치란 사람이 얽히는 것이고 이것을 풀어내는 것을 연습할 시간이 필요하다고 생 각합니다. 지금은 무소속 후보기 때문에 더더욱 이런 부분에 취약할 수 있다고 생각하는 편입니다. 그러니 이런 부분에 대한 연습을 할 수 있는 시간을 가져보는 건 어떨까요? 저는 그런 실무 경험을 키울 수 있는 곳이 경남도지사 라는 자리가 아닌가 하는 생각을 했습니다. 총리론도 나 오는데 당장 총리가 되는 것은 되기는 쉽지만 실제 무언가를 하기는 어려울 것이라 생각합니다. 준비하고 시도 하고 과거에 부딪히다가 시간이 훌쩍 지나갈 가능성이 크죠. 먼저 총리에 힘을 실어주는 구조로 바뀐 다음 들어 가 역량을 펼치는 것이 좋을것이라고 생각합니다. 법과 제도가 우선적으로 바뀌고 그 다음에 총리가 되어야 뜻을 펼칠 수 있는 것이지요. 지금과 같은 지형과 상 황에서는 누가와도 어렵다고 생각합니다. 그러니 우선 제도가 마련될 시간 동안 경험을 키우는것이 어떨까요. 만약 안철수 후보가 경남 도지사가 되면 경남 지역은 언론 집중도도 높아지고 중앙과 연계가 용이해 질 수 있습 니다. 경남도민에게도 이득입니다. 여기에 무소속 후보의 정치 운영이 가능하다는 것을 충분히 증명하면 장기 적으로 한국의 정치 그림 또한 바꿀 수 있습니다. 현재 대선용으로 구성된 팀을 해체하지 않고 일정부분 유지하 면서 운영도 가능한 것도 장점입니다. 그리고 차기 서울 시장 선거시 박원순 현 시장과 갈등구조가 생기지 않아 서울시민은 박원순 시장의 연임을 그릴 수 있어 서울 시민에게도 이익입니다. 마지막으로 가장 중요한 것. 경남 도지사와 총리를 거치고 다시 대선에 출마할 때 즈음이면, 국민들이 대선 후보를 보는 눈을 높일 수 있습니다. 즉, 장기적인 안목에서 한국은 좋은 후보를 키워갈 수 있는 겁니다. 하나를 버릴 필요 없이 보다 발전적 미래를 그릴 수 있습니다. 이 모든것이 가능한 배경에는 아이러니 하게도 민주당 김두관 씨가 던진 경남 도지사의 남은 기간이 2년이란 사 실이 참 재미있습니다. 세상일이 이렇게 돌아갈 수도 있다니요. 앞서 이야기한 것처럼 다음 대통령 임기간 총리 에 힘을 실어주는 정치구도가 확립되기까지 적당한 준비기간이 아닐까요? 지금과 같은 정치 환경에서 당의 지지 없이 국정을 운영하는 것은 불가능 하지는 않지만 몹시 어려운 길을 걷게 될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안철수 후보가 구상하는 미래가 불가능 한 것은 아니나 그런 환경이 되려면 분명 상식 적인 수준의 국회와 정부 및 공무원 사회가 운영되어야 하는데 지금 한국의 상황을 보았을 때 그것은 너무도 멀 고 요원한 일이라고 생각해서 이런 상상을 해보았습니다. 어떻습니까? 긴 글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exxx


월간이리 2012 11월호  

월간이리 2012 11월호 수정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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