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3 dream autumn

Page 15

갈 데 없는 시인이세요(웃음). 대학원 시절에 『황사바람』이라 고 하는 시집을 내시고 그 이후에 한동안 공백이 있었지만 지 속적으로 시를 쓰신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원래 시인이셨다 가 이론가로 가셨다가 다시 시인으로 회귀하셨는데, 시인으 로서 선생님의 생각은 어떠신가요? 지금 다른 이론적인 일들 에 비추어 볼 때 왜 시를 다시 쓰기 시작하셨고 시가 무엇이 며, 앞으로 어떻게 시를 쓰실 것인지요? 최: 오갈 데 없는 시인이다, 그 말이 상당히 나한테는 흥미

롭게 느껴지는데 그것이 내 처지를 정확하게 반영하는 것 같 시면서 오랜 세월 동안 한국 문학의 중심에 계셨는데 혹시

기도 합니다. 제가 원래 국문학을 시작한 것은 시를 쓰고 싶었

한국 문학이 또는 문학평론이 고수해야 될 방향성이라고 할

기 때문이죠. 그러나 누구나 다 그렇지만 자기가 쓴 시를 누

까 어떤 지침이라고 할까, 이런 것을 말씀 해 보시면 어떠실

구에게 선뜻 보여줄 만한 용기를 갖는다는 것은 쉬운 일이 아

까요.

니잖아요. 그러니까 평론이라는 가면 뒤에서 시를 쓰게 되었 습니다. 시는 군대시절의 철책선 밑에서도 시를 썼고, 대학원

최: 최근의 문학평론을 읽고 있으면 젊은 평론가들이 무엇

시절에서도 썼고, 교수가 된 다음에도 썼고, 그래서 시작 노트

을 말하고 있는지 파악하기 어려운 경우가 많습니다. 또 한 가

도 사실 많이 있어요. 하지만 우선 급한 게 공부였기 때문에

지는 그분들이 비평가적 방향성을 갖고 있느냐에 대해서 회

공부에 집중했습니다.

의가 드는 경우도 많아요. 물론 문장은 화려하고, 아는 지식

이제 대학에서 물러나게 되니까 좀 더 자유롭게 학문으로

도 많고, 그렇지만 너무 근시안적이지 않느냐, 좀 더 멀리보

부터 보다 더 성숙된 시인으로서의 길을 더 열심히 가야 되

고 깊게 생각하는 것이 필요하지 않나 하는 것입니다. 물론

겠다, 그렇게 생각합니다. 창작을 경험해 보신 분들은 알겠

저 자신도 부족한 게 많습니다만 비평가적 사명감이라고 할

지만, 잘 안되긴 하지만 시를 쓴다는 것이 시를 공부하는 것

까요, 그런 것이 없이 눈앞에 보이는 것을 눈앞의 현실로써만

보다 훨씬 재밌어요. 그래서 그런 재미에 깊이 빠져볼까, 하

얘기하는 비평가라면 그것은 멀리 가지 못한다, 어떻게 보면

고 있습니다.

항상 정도에 입각한 비평, 그것을 밀어나가는 비평이 중요하 다고 생각합니다.

김: 저도 문학평론을 계속 하고 있습니다만, 평론가들은 문

그래서 극서정시니 ‘서정시의 삼각형’이니 이런 것들은 모

학사에 이름을 남기는 경우가 드물고, 시인은 좋은 시 한편만

두 다 시의 근본을 생각하면서 제기한 것이지, 별다른 주장

으로도 문학사에 영구히 회자되는 이런 사례들을 볼 수 있었

을 한 것은 아닙니다. 오늘날의 젊은 사람들은 동시대의 것 에 대해서밖에 관심을 갖질 않아요. 선배들이 무엇을 얘기를 했고 이것이 어떤 방향으로 나아갈까에 대한 고민이 더 필요 하고 그러한 비평만이 앞으로 더 멀리 갈 수 있는 비평일 것 입니다. 김: 지금 저희가 대담을 하는 장소는 한국 문단의 큰 시인

이셨던 편운 조병화 선생님께서 쓰시던 거실입니다. 매우 뜻 깊은 자리에 선생님을 모셨습니다. 지금까지 학자와 평론가 로서의 생각을 여쭤보았습니다만 선생님께서는 이 근자에 오 10 + 11


Issuu converts static files into: digital portfolios, online yearbooks, online catalogs, digital photo albums and more. Sign up and create your flipbook.