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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씨오네·이방원 셰프 오픈하고 계절이 채 두 번도 바뀌기 전에 미식가들 사이에 채소를 이용한 프 렌치 요리가 맛있기로 소문났다. 신사동에 위치한 ‘파씨오네Passionné’의 이 야기다. 파씨오네의 중심에는 오랜 시간 주방에서 열정을 쏟아온 오너 셰프, 이방원이 있다. 이름 앞에 셰프란 호칭을 단 지 20여 년째. 그는 손님 한 명 한 명을 기억하기 위해서, 또 손님의 취향을 파악하기 위해서 직접 테이블을 다 니며 메뉴를 설명한다. 그때마다 코스가 큼지막하게 쓰여 있는 이동식 칠판과 함께다. 점심, 저녁 각각 한 가지 코스를 선보이는 것이 파씨오네의 규칙. 가장 신선하고 맛있는 요리를 위해 매일 셰프가 직접 장을 본 최상의 식재료로 그 날의 코스 메뉴가 구성된다. 파씨오네의 식탁은 계절의 변화에 민감하다. “개인적으로 육류보다 채소를 좋아하다 보니 제가 좋아하는 재료에 더 손이 가요. 채소만큼 향과 색, 질감, 맛이 천차만별인 요리 재료가 없죠. 자라나는 채소를 본다는 것만으로 기쁨이 느껴지지 않으세요? 가령 허브를 심은 정원 에서 새로 돋는 싹을 바라볼 때 느껴지는 다채로운 색감은 요리에 무수한 영 감을 줍니다. 시장에서 파는 종류 외에도 산에, 들에 미발견 채소종이 숨어 있 어요. 다양한 채소를 요리에 활용하면 레퍼토리를 더 넓게 확장시킬 수 있죠. 프랑스에서도 이제는 육류 요리보다 채소로 만든 건강식이 더 각광받고 있고 요.” 셰프의 채소 예찬론이 한참 이어졌다. 그는 겉으로 화려하기보다 투박하 지만 속으로는 깊은 맛을 내길, 자연이 준 모든 재료를 활용해 좋은 마리아주 를 만들기를 소망한다. 이런 철학을 바탕으로 창조한 접시 중에서 채소 라비 올리와 채소 콩소메가 가장 인기다. 파씨오네의 채소 요리가 특별히 맛있는 데는 이유가 있다. 먼저 그의 경력을 살펴보자. 국내 부티크 레스토랑의 시초라 할 수 있는 라미띠에L’amitie를 시 작으로 다년간 프렌치 요리의 경력을 쌓은 다음 프랑스 현지로 건너가 파리 의 유명 레스토랑 라르페주L’Arpege와 라스트랑스L’Astrance에서 전쟁터 같은 현장을 경험했다. 라르페주는 스타 셰프인 알랭 파사르가 있는 곳으로 독창적인 채소요리와 독보적으로 비싼 가격으로 유명한 미슐랭 레스토랑이 2

다. 그곳에서 이방원은 채소 퓌레로 속을 채운 마카롱, 조그만 감자에 초콜릿 을 입힌 디저트, 뿌리채소에 설탕 시럽을 입혀 만든 콩피 등 새로운 채소 요리 법을 배웠다. 셀러리 잎 대신 셀러리 뿌리 요리도 아이디어가 넘친다. 셀러리뿌리를 얇게 저며 익힌 후 직접 염장한 연어와 한련화를 곁들인 ‘셀러리 뿌리 카르파초’, 디 저트인 일플로땅을 변형해 수프 중앙에 머랭 섬을 띄워놓은 ‘셀러리 뿌리 일 플로땅’, 셀러리 뿌리 자체를 돌아가면서 깎아 면을 대신한 ‘셀러리 페투치네’ 를 보고 깜짝 놀랐다. 이토록 채소를 다채롭게 활용할 수 있다니. 파씨오네의 또 다른 무기는 부모님이 고향에서 직접 농사지어 보내주시는 제

1 셀러리 뿌리를 얇게 저며 익힌 ‘셀러리 뿌리 카르파초’와 수프 그릇 안에 섬을 띄운 ‘셀러리 뿌리 일플로땅’. 2 셀러리 뿌리를 돌돌 깎아 만든 면과 크림소스가 기막히게 어우러지는 ‘셀러리 뿌리 페투치네’. 풋마늘대, 바질, 처빌, 거칠게 간 후추를 곁들였다. 3 파씨오네의 주방을 책임지는 이방원 셰프. 4 대중적인 프렌치 요리를 지향하는 레스토랑답게 편안하게 꾸며져 있다.

철 채소다. “시장에서 파는 채소와는 확실히 달라요. 대규모로 농사를 짓거나 상업적으로 키우는 게 아니라서 제가 원하는 사이즈나 느낌에 맞출 수 있어 요. 좋은 땅에서 자란 채소는 향도 다르고 맛도 다르죠. 맛이 순하고 부드러운 어린 채소를 선호합니다.” 올해는 서양 채소의 씨앗도 심었다. 우리나라에서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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는 흔히 볼 수 없는 하얀색 당근, 검은색 무, 분홍색 비트에서 싹이 돋길 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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린다. 그도 반신반의하면서 씨를 뿌렸지만 일단 재배가 되면 파씨오네의 식탁

셀러리 뿌리 100g, 양파 50g, 버터 1큰술, 닭 육수 100ml, 생크림 100ml, 우유 50ml, 소금, 후춧가루,

이 다르니 아예 시도할 수 없는 요리도 있다. 그래서 서양 식재료의 빈자리는

차이브, 처빌, 울릉도 전호나물

우리나라에서 나는 재료로 채운다. 예를 들어 파씨오네의 베스트셀러로 떠오

채소와 허브를 키우는 두 셰프가 있다. 바르게 자란 제철 채소를 존중하고 원재료의 풍미를 최대한 살리려는 마음만은 십점만점에 십점이다.

배달되어 요리를 풍성하게 만들 것이다. 자연이 준 기쁨이 얼마나 큰지 맛보

른 토마토 샐러드에는 토마토와 생선, 토종 민들레잎, 쑥갓, 풋마늘대 등 봄날 고개를 내미는 채소들이 한데 버무려진다. 5월, 파씨오네의 식탁에는 햇마늘과 햇양파가 오를 예정이다. 겨울을 지나고 처음 수확한 부모님의 자식들, 토마토, 가지, 당근, 배추, 무, 대파도 곧 서울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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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료

에서 만날 수 있을 것이다. 프랑스에서는 흔한 아티초크가 여기선 비싸고 맛

셰프의 채소 농사 THE TRAVELLER MAY 2013

셀러리 뿌리 일플로땅

고 싶다면 파씨오네로 향할지어다.

만드는 법 1 셀러리 뿌리의 껍질을 벗긴 후 얇게 자른다. 2 버터 두른 팬에 양파를 넣어 투명하게 볶다가 ①을 넣고 함게 볶는다. 3 닭 육수를 첨가해 부드럽게 익힌다. 4 ③을 곱게 갈아서 우유와 생크림을 넣은 섞는다. 5 소금과 후춧가루를 뿌리고 수프 컵에 담아낸다. 6 차이브, 처빌, 울릉도 전호나물을 곁들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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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타·이재상 셰프

1 노타의 오너 셰프인 이재상. 2 레스토랑 내부에 조그만

나머지는 전부 철골 구조로 만들어 세련미를 더했다.

허브밭을 들여 놓았다.

4 ‘저온 조리 키조개구이와 비트·콜리플라워 퓨레’와 ‘올리브 샐러드와 크렘 후레쉬’.

요리사라면 누구나 좋은 재료를 탐낸다. 레스토랑 앞마당에서 건강하게 자란

3 레스토랑 안에서 불에 타는

채소를 뜯어다 그릇에 담는 것만큼 이상적인 재료 공급 체계가 또 있을까. 그

재료는 테이블 상판뿐이다.

런 점에서 ‘노타Nota’ 내부에 허브밭이 있다는 사실은 자랑할 만하다. “레스토 랑 가까이 농장이 있으면 좋겠다 생각해서 부지까지 알아봤는데 현실적으로 어려울 것 같아서 레스토랑 내부에 조그만 허브밭을 들여놨어요. 차이브, 타 임, 루콜라, 파슬리, 로즈메리 등 8~9종의 허브와 한련이 자라고 있어요.” 노 타의 오너 셰프, 이재상은 식물 재배 공장에서 사용하는 태양광원 조명을 화 단에 설치한 장본인이다. 허브는 생각보다 훨씬 무성하게 자라고 있었다. 이 1

곳에서 재배한 허브는 셰프의 요리에 중요한 재료로 사용된다. 타임은 거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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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든 소스의 향과 맛을 내는 데 사용되고 한련의 잎과 꽃은 요리 위에 살포시 내려앉아 특유의 톡 쏘는 맛으로 느끼함을 잡아준다. 셰프는 미셸 브라에게 큰 영향을 받았다. 미셸 브라는 본인이 직접 재배한 식재료를 사용해 요리하 며 ‘자연주의 요리법의 아버지’로 불리는 인물이다. 사실 이재상은 주중과 주말에 이중생활을 하고 있다. 주중에는 광고기획자로 일하고 주말에는 노타에서 요리를 한다. 레스토랑도 그의 스케줄에 따라 부재 중인 주중에는 홍차와 브런치를 선보이고 주말에는 풀코스 요리를 준비한다. 이중생활이 가능한 건 100퍼센트 예약제로 운영하고 있기 때문이다. “메뉴는 정해져 있지 않아요. 늘 오는 손님이라도 매번 새로운 요리를 맛볼 수 있죠. 예 약이 있는 날, 시장에 어떤 물건이 나와 있느냐에 따라서 메뉴의 주재료를 결 정해요. 제철 재료와 주변에서 나는 신선한 재료로 ‘집에서는 못 먹을 요리’를 한다는 게 저의 요리 철학이랄까요.“ 그의 요리는 굳이 따지면 프렌치에 가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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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만 스스로는 ‘제멋대로’ 창작 요리를 한다고 정의한다. 그리고 저온 요리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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을 고수한다. 재료의 영양소와 색 등 제각기 가진 성질을 되도록 그대로 보존 하기 위해서다. ‘올리브 샐러드와 크렘 후레쉬’에 꽂혀 있는 아스파라거스와 당근은 생채소처럼 색이 살아 있지만 사실은 저온에서 익힌 것이다. 고기나 생선 또한 저온에서 오랜 시간 요리된다. 요리사의 과거를 캐보자. 그는 어릴 적 부모님을 따라 미국과 유럽 등지에서 생활하며 서양 식문화에 눈떴다. 거기엔 미식가였던 부모님의 영향이 컸으며,

지중해풍 저온 요리 채소 샐러드

지금도 해외 출장이 잦은 덕에 전 세계의 미슐랭 스타 레스토랑을 훑고 다니 는 중이다. 요리에 대한 열정은 점점 커졌고 멀쩡하게 다니던 회사도 그만뒀 다. 그리고 파리의 르 코르동 블루행. 그다음 시드니의 레스토랑에 취직했지

재료 아스파라거스, 콜리플라워, 브로콜리, 미니 당근,

만 매일 같은 재료로 같은 요리를 만드는 게 적성에 맞지 않아서 금세 그만뒀

애호박, 셀러리, 오이, 마늘, 마요네즈 2큰술, 레몬즙

다. 어쩌다 보니 물 좋고 산 좋고 공기 좋은 판교 신도시의 운중천가에 자신의

1작은술, 소금, 설탕, 엑스트라 버진 올리브유 만드는 법

로 새로운 손님을 맞는다.

채소 준비

“홍콩 등에서 유행하는 프라이빗 다이닝을 우리나라에서 도전해보고 싶었어

1 셀러리, 오이를 뺀 채소들을 보기 좋게 다듬은 후 엑스트라 버진 올리브유, 소금과 함께 진공 백에 넣고

요. 사실 그런 데는 음식점 영업 허가를 내지 않고 업장이 아닌 가정집에서 몰

밀봉한다.

래 식탁을 차리죠. 음식을 맛볼 수 있는 예약 특권은 알음알음 비밀 초대장을

2 바닥이 두꺼운 냄비에 물을 3리터 정도 넣고 거품이 바닥에서 올라올 때까지 가열한다.

통해서만 얻을 수 있고요. 그래서 노타에도 테이블을 6개만 놓았어요. 마음 같

3 온도계로 90도 정도가 되었을 때 불을 끈다. 4 진공 백에 넣어두었던 채소들을 ③의 냄비에 넣고

아서는 테이블을 하나만 놓고 싶어요. 그 하나에 오롯이 집중할 수 있으니까 요.” 프라이빗 다이닝처럼 은밀하진 않지만 레스토랑을 방문하기 전에 셰프

뚜껑을 닫은 후 15분 정도 기다린다.

와 먼저 개인적인 대화를 나눠야 한다. 몇 가지 코스를 원하는지, 어떤 음식에

5 채소들을 꺼내 냉장고에 보관한다. 소스 준비

알레르기가 있는지, 특별히 선호하는 메뉴가 있는지 정도만 알려주면 그가 알

6 마늘 3쪽을 잘게 다진다(생마늘을 써야 향이 살아 있다).

아서 할 것이다. 가장 좋아하는 손님은 “셰프 마음대로 요리해주세요”라고 주

7 마요네즈와 레몬즙을 넣고 함께 잘 버무린다. 8 소금과 설탕을 4 : 1 정도 비율로 섞어 ⑦에 넣고 다시 한 번 고루 섞어 소스를 완성한다.

문하는 이들이다. 단골은 귀신같이 그의 마음을 안다. 노타에서 식사를 하고 있자면 식물의 에너지에 휩싸인다. 작은 허브밭에서 뿜 어내는 향과 창문을 따라 심어놓은 올리브 나무, 레스토랑 둘레에 자라고 있

마무리 9 셀러리, 오이를 다듬어 미리 조리해놓은 ⑤의 채소와 함께 볼에 담는다. ⑧의 소스는 따로 담아낸다.

는 남천죽과 측백나무 울타리가 식객의 시공간을 비밀의 정원으로 옮겨놓는 다. 새로운 미식을 원한다면 이번 주말 셰프의 시간을 축내어보자. 5코스에서 15코스까지 원하는 대로 맘먹은 대로 가능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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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디터 김윤정 포토그래퍼 전재호 촬영 협조 노타 031-781-6682 파씨오네 02-546-7719

가게를 열었다. 그는 이곳에서 자신의 소신껏 허브를 기르며 매번 다른 재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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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he traveller] 셰프의 채소 농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