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발 간 사

미래와 세계를 하나로 이끌겠습니다 존경하는 고객 여러분! 가족사와 임직원 여러분! 우리와 우리 업을‘한 방향으로 이끈다’ 는 의미로‘연(延)하나로1)’ 라는 이름을 내걸고 출발한 것 이 1985년, 그 동안 최고를 향해 쉬지 않고 달리다 보니 어느덧 25년이 되었습니다. 그 동안 연하 나로 임직원 모두는 더 높은 목표를 향해왔고, 우리 모두를 하나로 이끌어 나아가기 위해 무던히 노력해 왔습니다. 이제는 감히 올바른 방향으로 걸어 왔는지에 대해서도 진지하게 고민해 볼 때가 되었다는 생각이 듭니다. 이러한 고민을 바탕으로 앞으로 다가올 변화를 향해 전진하는 것이 이 시대를 살고 있는 우리의 소명이라고 생각합니다. 연하나로는 창사 25주년을 맞아 두 권의 책을 펴냅니다. 먼저‘연하나로, 단 하나의 역사’ 는 연하나로를 소개하고, 그 동안의 발자취와 성과를 담았습니 다. 이 땅에서 처음 이벤트산업을 시작해 25년 동안 한 길을 걸어온 연하나로의 역사는 곧 대한민 국 이벤트의 역사를 그대로 담고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닙니다. 이러한 역사를 책으로 정리함으로 써 업계 종사자들의 자부심을 고취하고, 거시적인 관점에서 우리 업의 역할에 대해 이해를 돕고자 합니다. 현업에 수년 간 종사해 온 기획자들이 공동 집필한 책‘연하나로, 또 하나의 선물’ 은 아직까지 체계적으로 정립되지 않은 우리 업의 가치를 알리고, 현업에 종사하는 이들이 높은 성과를 이룰 수 있도록 돕는 업무지침서입니다. 업무지침서는 우리 업에 막 진입한 초심자와 기획자의 눈높이 에 맞춘 입문교육서로서 후배들이 시행착오를 겪지 않고 바른 길로 보다 빨리 갈 수 있도록 실질 적인 도움을 주고자 했습니다. 이와 더불어 현업 전문가들이 당장 활용할 수 있는 실전 노하우를 풀어내는 데에 중점을 두었습니다. 또한 광고주 및 관련 분야 종사자들이 우리 업의 가능성에 대 한 색다른 정보를 얻을 수 있을 것이라고 확신합니다. 향후 부족한 부분을 다듬고 보강하여 정식 도서로 발간할 계획입니다. 우리 업에 종사하는 많은 이들이 따뜻한 마음과 날카로운 시각으로 이 책을 읽어 주셨으면 좋겠습니다. 그리하여 새로운 토론의 장이 열리기를 기대해 봅니다. 이제 우리 앞에는 누구도 예상치 못한 새로운 변화의 시대가 펼쳐질 것입니다. 이러한 변화의 소용돌이 속에서도 고객을 최우선으로 생각하는 가운데 우리의 가치를 향상시키고자 하는 핵심가 치는 언제나 유효합니다. 더 나아가 다가오는 미래에는 자발적 창의와 지속가능한 성장을 넘어 창 조적 성장과 우리 업의 외연 확대를 지향할 것입니다. 앞으로도 연하나로는 대한민국을 넘어 세계 적인 수준의 가치를 창조하는 선도적인 회사로 성장할 수 있도록 정진하겠습니다. 연하나로를 거쳐 간 모든 이들, 지금 함께하고 있는 구성원들, 과거와 현재 그리고 미래에도 함 께할 우리 고객들이 연하나로를 통해 더욱 행복한 내일을 만들어가기를 간절히 소망합니다. 연하 나로의 25년이 아름답고 행복한 역사가 될 수 있도록 도와주신 모든 분들께 감사드립니다. 연하나로커뮤니케이션즈 대표


03 발간사 I 미래와 세계를 하나로 이끌겠습니다 04 축 사 I 06 인터뷰 I‘최초’ 를 넘어‘최고’ 에 이르기까지

1부

열정

10 창천동에서 꿈을 심다 15 마음으로 부딪치고 몸으로 배우다 19 대행사의 면모를 갖추다 22 25살의 청춘記

4부 개 척 50 글로벌 기업의 시대를 열다

2부 개 성 26 전문기업으로 발돋움하다

54 이벤트업계를 리드하다 58 25살의 청춘記

30 연하나로만의 비법을 장착하다 33 25살의 청춘記

5부 미 래 62 통찰과 통섭으로 시장을 개척하다

3부 도 전

67 인재시스템 인프라를 구축하다 69 연하나로의 다짐

36 고난을 뚫고 위기를 발판 삼다 39 도전하고, 도약하다

71 25살의 청춘記

45 25살의 청춘記

72 연하나로 25년사 연표


인 터 뷰

그러나 현실은 사업자등록을 위한 업종 분류조차 되어 있지 않았다. 사업자등록을

‘최초’ 를 넘어‘최고’ 에 이르기까지

하기 위해 관할세무서를 찾아갔지만 그가 하는 일을 이해하지 못했다.‘이벤트’ 라 는 말조차 낯설어하던 세무서 직원들에게 일장 설명을 하고 나서야‘행사 용역’ 이 라는 업종을 만들어 사업자 등록을 할 수 있을 정도였다.

- 연하나로의 송태일 대표를 만나다

그 당시에도 행사의 사회자나 레크레이션 지도자로 활동하는 사람이 적지 않았다. 제각기 유명해져서 방송에 출연하거나 지도자 자격증 과정의 강사가 되는 경

1985년 당시 대학생의 신분으로 회사를 창업해 현재 우리나라 최고의 대행사로 일구어낸 송태일 대표. 사람들의 환호가 마냥 좋았던 대학 응원단장이었고, 그토록 좋아하는 일을 하나의‘사업’ 으로 만들어 결국은 평생 이루어나갈 업으로 삼은 사람이다. 그를 보고 사람들은 어리둥절한 얼굴로 묻곤 했다.“그 걸로 어떻게 사업을 합니까?” ,“이게 사업이 돼요?”그러나 그는 자신 있게‘예’ 라고 대답했다. 자신감 의 밑바탕에는 응원단장 시절부터 수만 명을 손끝 하나로 휘어잡으며 느꼈던 희열이 자리하고 있다.

우도 꽤 있었지만, 업의 영역을 넓히려는 노력을 하지 않고 이합집산을 반복하다가 사라지곤 했다. 이런 상황에서 송태일 대표가 그 일을 ‘사업’ 으로 확장시킨 것이다. 개인의 영달을 꾀하는 욕심보다는 세계 최고의 이벤트를 만들고 싶은 욕심이 더 컸기 때문이었다. 한편으로는 그가 선택한 업이 누구나 인정하는 최고의 분야가 될 수 있도록 그 위상을 높이고 싶었다고 한다.

응원을 좋아하던 청년, 무(無)에서 유(有)를 창조하다 1980년대는 전 국민과 기업의 일사불란한 단결이 강조되던 시대였다. 스포츠나

남들보다 먼저 느끼고 행동하다

체육대회 응원 역시 관(官) 주도 하에 카드섹션, 매스게임 등‘단합’ 을 위주로 한

열 평이 조금 넘는 사무실에 책상 두 개와 여직원 한 명이 전부였던

천편일률적인 형태로 이루어지는 것이 대부분이었다. 대학의 응원문화 역시 크

시절, 연하나로를 일으켜 세운 것은 쌍용그룹창립50주년행사(1989)였

게 다르지 않았다.

다. 당시 돈으로도 2억 원이 넘는 대규모였을 뿐만 아니라, 회사의 이름을

그러던 중, 군대를 막 제대한 송태일 대표는 인생을 바꿔놓을 한 장면과 조우하

알릴 절호의 기회이기도 했다. 그러나 주요 구성원이었던 한중구(현

게 된다. 84년에 열린 LA올림픽의 개막식을 텔레비전 중계로 보게 됐던 것이다.

부사장), 박재삼(현 메가커뮤니케이션 사장), 이강호(현 PPW

개막식 영상에는 84대의 그랜드피아노와 84명의 피아니스트가 등장하고 있었

인터랙티브 사장)가 모두 자리를 비운 상황이었다. 송태일

다. 또 우주인이 공중으로 날아올라 메시지를 전하며 사람들에게 비전과 희망을

대표는 당시 자신이 할 수 있는 모든 것을 쏟아 부었다고 회

제시하고 있었다.

고한다.

“그 순간 개안(開眼)을 한 느낌이었습니다. 우리나라는 그때 운동장에서 단체로

“수익을 남기는 건 중요하지 않았습니다. 예산을 다 쓰더

체조하는 형식을 벗어나지 못하던 시절이었거든요. 그 변화무쌍한 전개에 한마

라도 최고의 전문가, 최고의 출연진으로 승부했지요.

디로 압도되었죠. 누가 만들었는지가 궁금해서 알아봤더니, 한 민간 회사에서 연

혼자 브리핑을 했는데 쌍용그룹 비서실장을 감

출했더군요. 그 사실을 알고 난 후, 이 업

복시키기 위해 제가 갖고 있는 인프라를 모두 끌

이 우리나라에서도 성공할 수 있다는 확

어 모았죠. 그리곤 방송구성작가였던 김태성(현

신을 갖게 되었습니다.”

SBS 예능국장) 씨와 방송국 PD들로 팀을 만들었

응원이 주는 마법 같은 매력, 사람의 마음

어요. 결국 성공적으로 행사를 끝냈고, 대외적으

을 이끄는 힘, 처음 접한 해외의 선진 사

로 인정을 받게 된 결정적인 계기가 되었습니다.”

례에 매료된 송태일 대표는 그렇게 사업

이때를 기점으로 자금력이 탄탄해진 연하나로는 성

에 뛰어들었다. 굴지의 대기업에 입사해

장에 박차를 가하기 시작했다.

고액 연봉을 받는 삶을 택하는 대신 정말

업의 비전과 가능성을 인정하는 이들이 많아지면서 후

하고 싶은 일에서 비전을 찾은 것이다.

발주자들도 하나둘씩 생겨났다. 대부분이 송태일


인 터 뷰

대표와 마찬가지로 각 대학의 응원단장 출신들이었다. 그가 인재양성이 시급하다고 느낀 것 도 이 즈음이었다. “언제까지나 응원으로 앞서나갈 수는 없지 않습니까? 물론 다수를 휘어잡는 카리스마를 가진 다재다능한 사람도 필요하겠지만‘기획’ 에 투자하지 않으면 오래갈 수 없을 거라는 판단이 들 었습니다. 그때부터 기획에 특화된 유능한 인재를 데려오려는 노력을 하기 시작한 거죠.” 일찍부터‘소프트웨어’ 에 대한 투자의 중요성을 깨닫고 지속가능한 업에 대해 꾸준히 고민 한 시간들은 연하나로를 업계 1위로 우뚝 서게 만든 밑천이 되었다.

‘쟁이’ 로서의 자부심을 이어가다 송태일 대표는 지금도 스스로를 최고의‘쟁이’ 로 자처한다. 혹자는 그를 보고 도도하다고 말하 기도 한다. 다소 차가워 보이는 인상도 한몫하지만 스스로에 대한 자부심이 강하기 때문이리라.

I1부I

“계약관계상 을(乙)의 입장이라고 해서 저자세를 취할 필요는 없습니다. 업의 가치는 우리 스 스로 만들어가는 것인데, 스스로를 비하하는 태도는 업 전체의 발전을 더디게 만듭니다. 갑 (甲)에게 충성스럽지만 발전이 없는 을(乙)로 남을 것인지, 아니면 최고의 파트너가 될 것인 지는 스스로 선택하는 것입니다. 이 업이 발전하려면 우리 스스로 자부심을 가지고, 이 업의 위상을 높여야 합니다. 그래야 우리 후배들도 희망을 가질 수 있지 않겠습니까.” 자긍심과 자존심을 가지기 위해서, 그는 언제나 직원들에게‘스스로 업그레이드 할 것’ 을귀 에 딱지가 앉을 정도로 당부한다. 새로운 시장을 향해 언제나 깨어 있을 것, 그리고 함께 일 하는 이들을 소중하게 여기라고 말이다. 송태일 대표는 사무실에 절대 오래 머무르는 일이 없어 직원들의 은근한 환영(?)을 받고 있 다. 이는 그의 역할이 큰 방향을 제시하고 물꼬를 터주는 것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창천동에서 꿈을 심다

“무조건 오랫동안 앉아서 열심히 하는 건 반갑지 않습니다. 저는 다른 사람들이 보면 항상 놀

마음으로 부딪치고 몸으로 배우다

고 있는 것처럼 보이죠. 그리고 제가 프로젝트에 일일이 관여하면, 다음 주자가 성장하지 않

대행사의 면모를 갖추다

습니다.” 전쟁터에서 장병들이 잘 싸우고 있는지 보고, 무엇이 필요한지 확인하고, 모두에게 보물이 있는 곳을 가르쳐 주고, 우리가 어디로 가야할지 길을 제시하는 것이 자신의 소명이라고 말 하는 송태일 대표. ‘세상을 바꿔보겠다’ 는 의지와 열정으로 우리나라의 이벤트산업을 개척해온 시작한 그는 바 둑이든 드럼이든 한 번 배우기 시작하면 끝장을 보는 사람이며, 새로운 것을 접했을 때 아직 도 가슴이 뛰는 사람이기도 하며, 회사가 잘될 때 방심하면 좋지 않은 일이 생겼다며 긴장의 끈을 놓지 않는 사람이기도 하다. 지난 25년 동안 역사의 현장에서 펼쳐졌던 모든 이벤트와 하나가 되어 살아왔던 그에게 연하 나로는 운명인 듯 했다.


1부 I 열 정

창천동에서 꿈을 심다

창천동에서 꿈을 심다

모든 것은 응원에서 시작되었다 “하나로! 하나로!”

손에 쥔 색색가지의 카드가 움직인다. 응원단장의 힘찬 손짓 에 수백 수천의 카드들이 일사분란하게 움직이며 하나의 메시 지를 표현한다. 한 사람이 쥔 카드는 작은 종잇조각에 불과하지 만, 하나가 되어 전체가 함께 움직이면 강력한 힘을 발휘한다. 경기를 뛰는 선수뿐 아니라 응원을 하는 관객 또한 주인공임을 우리는 잘 알고 있다. 아니 때때로 선수보다 응원하는 관객이 더 돋보일 때가 있다. 최선을 다해 응원하고, 선수와 한 마음이 되어 울고 웃었다면 승패와 상관없이 벅차오르는 무언가를 얻게 된다. 85년 부산 사직경기장에서 열렸던 부산시민체육대회가 그랬 다. 그 당시에는 낯설어만 보였던 카드섹션 응원이 펼쳐졌을 때 사람들은 환호하며 열정적으로 참여했다. 모두가 주인공이 되 는 축제의 현장이었다. 승부의 세계를 축제의 현장으로 이끈 것 은 현재 연하나로를 이끌고 있는 송태일 대표와 현재 제일기획 에 재직하고 있는 김찬형 상무였다. 연세대 응원단 출신인 두 사람은 이십대 시절 각종 행사나 체육대회에서 응원을 부탁해 오면 무작정 달려가곤 했었는데, 응원에 대한 그 열정이 지금의 연하나로를 있게 한 씨앗이었다.

1997년 사무실풍경-임오빌딩

‘연하나로’ 라는 이름 또한 이때 응원을 하면서 만들어지게 되었다. 부산시민체육대회에서 관중들의 마음을 하나로 이끈다 는 뜻에서‘하나로’ 라는 카드섹션 구호를 사용했는데, 이 구호 를 따서 회사 이름을 지었던 것이다.‘연(延: 이끌다)’ 자를 붙인 것은 연세대 출신이라는 것도 하나의 이유였지만 크고 작은 행 사와 대회에 참여하면서 사람들을 이끄는 역할이 연하나로의 가장 중요한 역할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이었다. 연하나로는 이 름 그대로 이후 기업의 사내행사부터 국가적 행사에 이르기까 지 사람들을 이끄는 큰 기업으로 성장했다.

1986년 초창기 연하나로 기획사무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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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하나로, 단 하나의 역사

연하나로, 단 하나의 역사


1부 I 열 정

창천동에서 꿈을 심다

대학생 벤처 기업의 효시가 되다

사내 체육대회 응원대행을 하던 두 사람은 부산시민체육대회를 맡게 되면서 시드머니 를 마련할 수 있었다. 응원을 사업화해보자고 의기투합한 두 사람은 1985년 11월 1일 회

1985년 당시는 우리나라가 막 경제적 어려움을 벗어나면서 문화와 스포츠에 대한 잠

사를 설립했다. 말이 회사지, 사실 서대문구 창천동에 있는 작은 사무실에 이름 하나 건

재적 욕구가 표출되는 시기였다. 1986년 아시안게임과 1988년 서울올림픽을 앞두고, 전

것뿐이었다. 정직원도 고정 급여도 없는 회사였으니, 회사라고 하기에는 무리가 있었고

국적으로 스포츠행사가 활발히 전개되고 있었는데, 특히 각 기업마다 체육대회를 통해

선배와 후배들이 의기투합한 대학동아리의 확장된 형태였다. 그곳에서 송태일 대표와

직원들의 단합과 애사심을 꾀하고 있었다. 하지만 사내에 응원팀이나 응원 교육이 따로

김찬형 상무가 공동대표로 활동했다.

있지 않던 때라 기업들이 대학 응원단이나 응원단출신에게 응원을 부탁했다. 연하나로가 부산시민체육대회라는 큰 행사에 참여하게 된 계기는 바로 이런 분위기

현 한중구 부사장도 이때 합류하게 되었는데, 합류하게 된 이유는 시쳇말로‘코가 꿰 어서’ 였다. 송태일 대표의 대학 선배의 동생이었던 한중구 부사장은 회사를 설립했다는

속에서 롯데제과 등 기업의 사내 체육대회에서 응원대행

소식에 축하를 해주기 위해 사무실을

을 했기 때문이었다. 응원 대행은 꼬리에 꼬리를 물고 계

방문했는데, 일손이 급하다보니 이

속 일이 들어왔지만 처음엔 회사를 차릴 생각은 하지 못했

것저것 도와주다 그대로 합류하게 된

다. 대학생 응원단이라고 생각하여 아르바이트생 대우를

것이다.

하는 정도여서 제대로 된 비용을 받을 수 없었던 것이다.

“그때 송태일 사장이 자장면을 사줬는

“한번은 제과회사 응원을 했는데, 껌을 수십 통 주

데, 그 자장면이 이제 보니까 미끼였어

더라고요. 수고했다고. 그 당시엔 껌이 귀했

요. 그 당시에는 자장면이 최고의 외식

으니까, 나쁘지는 않았는데 이걸 사업으로

이었거든요. 자장면을 사주는 거 보니

할 수도 있겠다는 생각은 안 들더라고요.

까, 이 회사가 잘 되려나보다 했던 거

여하튼 껌만큼은 턱이 빠질 정도로 씹어

죠. 지금 생각하면 그 판단이 옳았기

봤습니다.(송태일 대표)”

도 하고요. (한중구 부사장)”

응원이 좋아서 무작정 달려갔던 일

자장면에 코가 꿴 사람은 한중구

은 85년 농구대잔치‘점보시리즈’ 의

부사장뿐만이 아니었다.

응원을 맡으면서 점점 사업의 가능성

“원래 저는 프로야구단 LG트윈스

을 생각하게 되었다. 1983년 시

의 전신인 MBC 청룡의 응원을 맡고

작된 점보시리즈는 각 은행과

있었는데, 청보핀토스하고 인천에서

기업들이 실업팀으로 참여하고

경기가 있어 원정을 갔다가 상대방

있었는데, 당시 창립멤버들은

팀인 연하나로가 응원하는 것을 보

서울신탁은행과 태평양화학 등 굵

게 됐었죠. 사무실에 한번 들르라

직한 응원 대행을 맡는 데에 이르고

고 해서 찾아갔는데, 자장면을 사

있었다.

주더군요. 그 자장면이 왜 그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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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하나로, 단 하나의 역사

연하나로, 단 하나의 역사


1부 I 열 정

창천동에서 꿈을 심다

창천동에서 꿈을 심다

모든 것은 응원에서 시작되었다 “하나로! 하나로!”

손에 쥔 색색가지의 카드가 움직인다. 응원단 장의 힘찬 손짓에 수백 수천의 카드들이 일사분 란하게 움직이며 하나의 메시지를 표현한다. 한 사람이 쥔 카드는 작은 종잇조각에 불과하지만, 하나가 되어 전체가 함께 움직이면 강력한 힘을 발휘한다. 경기를 뛰는 선수뿐 아니라 응원을 하는 관객 또한 주인공임을 우리는 잘 알고 있다. 아니 때 때로 선수보다 응원하는 관객이 더 돋보일 때가 있다. 최선을 다해 응원하고, 선수와 한 마음이 되어 울고 웃었다면 승패와 상관없이 벅차오르 는 무언가를 얻게 된다. 85년 부산 사직경기장에서 열렸던 부산시민체 육대회가 그랬다. 그 당시에는 낯설어만 보였던 카드섹션 응원이 펼쳐졌을 때 사람들은 환호하 며 열정적으로 참여했다. 모두가 주인공이 되는 축제의 현장이었다. 승부의 세계를 축제의 현장 으로 이끈 것은 현재 연하나로를 이끌고 있는 송 태일 대표와 현재 제일기획에 재직하고 있는 김 찬형 상무였다. 연세대 응원단 출신인 두 사람은 이십대 시절 각종 행사나 체육대회에서 응원을 부탁해오면 무작정 달려가곤 했었는데, 응원에 대한 그 열정이 지금의 연하나로를 있게 한 씨앗 이었다. ‘연하나로’ 라는 이름 또한 이때 응원을 하면서 만들어지게 되었다. 부산시민체육대회에서 관중 들의 마음을 하나로 이끈다는 뜻에서‘하나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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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부 I 열 정

창천동에서 꿈을 심다

라는 카드섹션 구호를 사용했는데, 이 구호를 따서 회사 이름

보시리즈’ 의 응원을 맡으면서 점점 사업의 가능성을 생각하게

응원을 사업화해 보자고

을 지었던 것이다.‘연(延: 이끌다)’ 자를 붙인 것은 연세대 출

되었다. 1983년 시작된 점보시리즈는 각 은행과 기업들이 실

의기투합한 두 사람은

신이라는 것도 하나의 이유였지만 크고 작은 행사와 대회에 참

업팀으로 참여하고 있었는데, 당시 창립멤버들은 서울신탁은

1985년 11월 1일

여하면서 사람들을 이끄는 역할이 연하나로의 가장 중요한 역

행과 태평양화학 등 굵직한 응원 대행을 맡는 데에 이르고 있

회사를 설립했다.

할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이었다. 연하나로는 이름 그대로 이후

었다.

기업의 사내행사부터 국가적 행사에 이르기까지 사람들을 이 끄는 큰 기업으로 성장했다.

사내 체육대회 응원대행을 하던 두 사람은 부산시민체육대 회를 맡게 되면서 시드머니를 마련할 수 있었다. 응원을 사업 화해보자고 의기투합한 두 사람은 1985년 11월 1일 회사를 설

1997년 사무실풍경-임오빌딩

립했다. 말이 회사지, 사실 서대문구 창천동에 있는 작은 사무 실에 이름 하나 건 것뿐이었다. 정직원도 고정 급여도 없는 회

대학생 벤처 기업의 효시가 되다

사였으니, 회사라고 하기에는 무리가 있었고 선배와 후배들이 의기투합한 대학동아리의 확장된 형태였다. 그곳에서 송태일

1985년 당시는 우리나라가 막 경제적 어려움을 벗어나면서 문화와 스포츠에 대한 잠재적 욕구가 표출되는 시기였다. 1986 년 아시안게임과 1988년 서울올림픽을 앞두고, 전국적으로 스 포츠행사가 활발히 전개되고 있었는데, 특히 각 기업마다 체육 대회를 통해 직원들의 단합과 애사심을 꾀하고 있었다. 하지만 사내에 응원팀이나 응원 교육이 따로 있지 않던 때라 기업들이 대학 응원단이나 응원단출신에게 응원을 부탁했다. 연하나로가 부산시민체육대회라는 큰 행사에 참여하게 된 계기는 바로 이런 분위기 속에서 롯데제과 등 기업의 사내 체 육대회에서 응원대행을 했기 때문이었다. 응원 대행은 꼬리에 꼬리를 물고 계속 일이 들어왔지만 처음엔 회사를 차릴 생각은 하지 못했다. 대학생 응원단이라고 생각하여 아르바이트생 대 우를 하는 정도여서 제대로 된 비용을 받을 수 없었던 것이다. “한번은 제과회사 응원을 했는데, 껌을 수십 통 주더라고요. 수고했다고. 그 당시엔 껌이 귀했으니까, 나쁘지는 않았는데 이걸 사업으로 할 수도 있겠다는 생각은 안 들더라고요. 여하 1986년 아시안게임 당시 응원을 주도하는 한중구 부사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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