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1 뉴욕문학 제31집

Page 1

2021 KOREAN LITERATURE OF NEW YORK

޷‫ࠗز‬ೠੋ‫ੋޙ‬ഈഥ KOREAN AMERICAN WRITERS ASSOCIATION OF EASTERN USA

제31집



2021

회원작품

시 . 시조. 수필 . 소설

유고작품

김명순/ 떨림의 근원 외 단편소설

기획특집1

시분과위원회 /시 강좌 및 시작노트 시인/ 곽상희 윤영미 임선철 조성자

기획특집2

다시 접속으로, 언택트 시대의 한국 문학/ 류수연 교수

특별기고

영어는 어떻게 국제어가 되었는가 / 연봉원 수필가

제29회 뉴욕문학 신인상 아브라함유 주동완 곽경숙 정종환 김근영 이동규 하명자 제21회 고교백일장 수상자 최민택 이서연 변유나 미동부한인문인협회 연혁(1989~2021)


㘦ᗭㅥ ᬭ ソ ㅥ ★㽲ㅥ ᬭ ソ ㈅ 䀡 ㅝ៥☙ 㹅 ㎩ ᭡ ∍ 㶡 ㎺ 6SHHG\ (QW ㅡ ⮭ 6SHHG\ 3XEOLVKLQJ


★ᗭ⪕

⽺ㇾⰂ

ᱝま┡㽂 ㈅ ㎺ㄭ ★ᗭ㽁⑙

㝾⪕

㉙ㄍ㎆ ɀᱝま┡㽂Ɂ★ᗭ ᠙ᬹ 㝾⪕

ᛦ⪪䅕 ⳅᗭㅝ ㅞ⾝ᗩᱽ ⪕ㅝ ᚑァ 䀡Ⰱ

ᠩ⑮゚ ⼭゙⬚㡁ᱽ 䀥ọ 㽉␡Ჱ〩 ち⭹ᬩ

ᠩ◡Ⰲ 㽁⋑ ᪁ㅁ ᭡ↁ

ᠩ⭵㾎 ១ ❭ ⳕㇾ⾹ ⠭㽁⎕ ᪊⼭ᗩᱽ ゙⎕ㅁ ⬡ソ

ᠩㇾ䀅 ℑᘅ㎱ㅁ 㽁⋑ 」ᲁᶭ ち㰕⍥ ᢥ᪝ ㅮᱽ᳍

ᠩ㚉゙ ᛉᘅⰂㅡ ㆎ◡ ⬡ソ ୶ੰ

◾ス⬉ ᬭㄭ ᶵ⼭⛡᳍ ᙙァㄭ ⛝⑙

⚩ㇾⰂ ១ ㍱ㄵ ㈅⠭᤬

⛞⿪◡ ㆕㫆 ៥┝ ⬥ⲍ⚉⎕⼭

⬉゙『 ⛭ㅝ 」ᱽ ᠡ⒒⾹⬅ 㽁⋑ ១⎕ᛉ Ό ᳍⍡ 㽁⋑

⭹ㇾ⼭ ⛭ㅝ 」ᱽ ⼭㡑⾹ ㅝ㈉ ⼵㎩⎵

⮊】ᚦ ᯱ㹩᤬ ᗩㄭ ⼭㡑ㅁ ⪪ᬹ

ⳉ᷂ㅡ ❲ㄩ ⪱᪉ㅝ ☆ᱽ᳍ ㎭䀥ᛊ

⼱ ⿪ ␡┥⇩ᵁ ⳅᗭ ⭶ㄥ≅ ⒑᳎❱ㅁ ᭡ↁ

ㄍᛩ䀡 Ⰱ⬉䀽 ᤬ 㽅 ⮊ㅝ ᛞ༬ᛥ 㽑ᣁ

ㄍ⿪◡ ⪝⼭ ㅱㄵㄥ≅ ⼑⽀ㅁ ᪉ᘅ㎼ㄭ ⛝⽁ᱽᗩ

ㅝ᛺㎩ ᛉᠬ᝖ ⳅᚭ ⛭◽ⅵ

ㅝ⑮Ⰲ ⚃᤬ ᠡ 㷖㷕

ㅝ⬉䅕 」㎾⾝ 㗵ᙵ ⛭

ㅝ⬚ᛍ ⼭ᝪㅝ ㇱ⚦

ㅝㇾᗾ ᬭ ១ 䂭 㽰⪝ㅁ 㡲㡲 ᳭ⲍ

ㅝ㉮⠭ 㬵ㅝ⟽ 㬵ㅝ⟽

ㅝ ㋩ 㽉◡ ㎩៱ᶭ

ㅝ䀅Ⅹ ◽ロ ᭶❩ㅁ ᠙ᶭ

ㅭ⬉㚉 ㎩⪪ㅁ 㽅 ㇹ ᳖᝖


ㆎ⪥Ⰱ 㻭⎕⎱ᶱ᪁ ◡⭵⍥ ℭ゙ᛉ

ㆎ⿪៥ ᚑァ ◽᳍⾹⬅ ⛭

ㆎ㾎ⳕ ⳅ∑ㅝ ᪁⍥ 㪍ゝ᳍ Ⰱㇾᘂㅝ ⎺ㄩ ᤬

㇭⽉ㅹ ᬭ ᗩㄭ ㅬ⾝♭⎙ ⳅᗭ

ㇾ┡䀅 ᠙᳍⎥ ᠙ᶭ

ㇾ䀅⬚ ⤩◡ ⾭⎱ ᠙ᶭⳍ⾹⬅

ㇾ䅕Ⰱ 㞁⒦ ⬡㽅ᶭ

㉙⬚ㅹ ┥㹡⇱᪁┝⾹ᙵ Ọᱽ᳍ ┡Ệ┡Ệ

㎩ㅡⳆ ⿙◥ㅁ ◽ⅵ ⪱≅ォ

㝅ㅭ⬉ ㇱᳩ 㝾⛞ ⼱ᘅ⠭

㝅ㇾㅹ 」㎾⾝ Ớ⣱ ᬭ ⿙⎹ ◾ㄉ᪑ ⬉⫆᳁ 㶡㎩

㿭⿪Ⰱ ᤬ ᠡ ⼭㡑

䁒◡᛺ 㚔 ⠭ ᛑ㻭ㆎ⾹⬅

Ⰱ㼭

ᗾᗺ㋺ ᤬ọㅁ ㅁ◡

ᠩᚦ䅕 ⪥㛵ㅁ ឩ㾎 ᠡ ㅝ⍭ᶭ ⬚ᶭ ⾯ᱽ ㄵⳆ

ᠩ᠙䂱 ᳕ᘩᛥ ⒑⬚⽉ ᛉ⼭

ᠩ◡⿙ ១ᬩㅁ ⚃᤬ ᷂⪙

ᠩ⛲∩ ⡀┥ ㋩⠭

ᠩ⿪Ⅹ ⛭⾹ ⛝᪝ᱽ 㶡㎩ ぽ⎕ ㅝ⽥᠙

ᠩ⿪ㅹ ᠩ◡Ⰵ ㅝ⽥᠙ ⾝㈅ ១▹ ᪉ ☍⾹

ᠩ『Ⰱ ◡᝖ㅡ ᪑㽝ㅝ⽥᠙

ᠩㅹス ⬉┥ ᤬ ᠡ⎵ ᙡㄥⳅ᠙⍥ĕ

ᠩ䅕゙ ᪝ᙵᶭ ⭹ㅝ ㅱ⭵ ㇱ₆★ㅝ ᘅ

᪁ㇾᠡ 㽁ᲁㅁ ㅁ◡ ㆎㅹㅁ ┝を㎩をㅁ 㚉㽂

᭡ ∍ ᦱ ⭶ㅁ ១ ㎺ ◽ロ⾹ ᵁ㎩ᱽ ᚭⅩ

☒ㅡⰂ &URWRQ 'DP 1HZ &URWRQ 'DP ⭹ㅹㅁ 㚔 ⬉┥

⽺ㇾⰂ 㼥ᛉ ㎩ᱽ ᤬㚁⇥

⽺㋥䅕 㡁ㄉㅁ 䆁 9LUWXDO ⎱Ⅵ㮍

⿙⛲ス ⿱Ⰱㅁ Ⰱ᪅ ⿪䀽

ㅝᚦⰂ Ⱄㅹ ⪕ⲕ ᶭ⬅ᛩ

ㅝᚦ⽉ ⛭ㄭ ᭼㡁᳍ ⪱㽝⏇ㅝ ᳑⪪

ㅝ◡ᚦ ᳑⪪ , 㽲⛞⾹ㅁ 㝽᝕

ㅝ㞁䅕 ゙⿙㽅 ★ᚕ Ď」ᲁďㅝⅥᱽ 㽁⋑

㇭⬍ㅹ ᝪ⿕ㅥ㘮ㅝ ᪜ㄩ ᳩ㚝ᩥᲱ




㝾 ⪕

「‫ە‬᫶ྙ⦺」 ၽe ʑֱ ⇶ᔍ ⚡Ẃ⠩䀅㈡◡㈡䂺䄵ˬᴝㄾ◡䀂˭㋅ 㑺 ⛅ᚭ㇭ 㑭ⶕ㇥⌅ 㠾䀁ᾅ⑦ᵱᶍ 㑩ᭅ䀝⠩㯙 ㊭ ⯡᝭␥ ᚾ㭩䀅 㷕ḙ⚢㇩ ⴦᜵ ⳁᢡ⊕ᾍ㑩 ⿳ញ ㅙ⑕ᴽ 㷕ḙ⚢ ㊭ ឥ 㬕᜵ ᶕ∥㑭 ㈥⭪べ ㊹㊹ ㈞Ⳃ䀝㋡ᚩ ㉙ ㄍ ㎆ ᱝま㽅᝖┡䀽スㆎ

ញ ㈱ⵞᵱᶍ ⯅⌅㈁ ᜝ᚾ㇭ 㑩㭍ᣙ ㆭ䀝 ⭕䄵㊪ ᜙⑕ ␥ ỹញ ᶩ┝ 䄅Ẃ㇩ ᢢᶑ㊪㇥⌅ ㎭そᾍ

そ ⣭ᶩ┝㈝ ║ᾉ 䄅Ẃ㈁ 䀞ⶕ㇥⌅ ㈹⑕ ㉊、ⵞᵱᶍ ㈝⊰᜵ ⭕∵ ᚭ ឩ᝭ ⛒ⶆ㈝ ᢲ❩䀁┝⯅ ⭟㈁ ㈁⚡␥ ㈥ᤑㅙᴽ ◡䀂 ㈁ ᚩ㤁ᚩ ㉕㌙┮ềញ ㈱ⵞᵱᶍ ㉎ᣙ䃽ễ 㧽⌅ᭁ ㆭᣙ ⰶべ⯅ ㅙ⑕ ᴽ ◡䀂㇭ 㱞䀝 ㆭ⌅⛄ញ ⯡⭪ឥ ゙᝙ềᴽ ᚻ㑭 ᝦ䂁㇭ 䀁ញ ㈱ⵞᵱ ᶍ ◡䀂㇩ 㧽⌅ᭁ⌅ ㈡䀝 㑩㤅 ㈥⭪べ 䄅⋎㇭ ⠱そᯌញ ㈱ⵞᵱᶍ ㈝㋅ ㊾⭪䃽␥ ㆭ䀝 䀅 ᜡㇵ ᭝ῄញ ㈱ᴽ ㅙ⑕ Ẃ㺕ᾍべ᜵ ˬᴝㄾ◡ 䀂˭㇩ 㬙 ㆭ⌅ラ ㅒᣙᚩ ềそ ㎭ ᜬ㈮ᵱᶍ 䉁ᾉ ⭪䄒 ⰶべ⯅ṭ ❩䀑 は㈝ ㈺㼱㑺 㡅ᚭ㇭ ㆭ䀝⯅ 〉⾙ⶉ 〺㊾Ⳃ 䄵㉎ᶁឥ ˬᴝㄾ◡䀂˭㇭ 㱞䀝 ⶅᶩ㊪ ឞᚹឥ 㤁㇉㈁ ⓽ⶅ㑩␥ ㊭䀁ⶅᴽ ║ᾉ ◡㈡ ゕ⊕⠭ᦁ 㬙 ⚾ⳁ␥ ➝᭝ᾅ⑦ᵱᶍ ᚹ⭕䀒ᵱᶍ ֙ ‫׏‬਄ೠҴ‫ޙ‬ചਗ ਗ੢ ઑਮૐ




시간이 익어가는 사이 곽 상 희 누구의 말처럼 넌 올리브 그린을 조금 우울한 빛이라 했고 나는 올리브 그린을 초록의 슬픔이 완숙한 별빛이라 우겼지 슬픔이 무릎 꿇고 인내와 기다림으로 초마다 익어가는 시간의 층층, 시간도 그렇게 익어갈 수 있다고 어렵사리 꿈꾸듯이 말하는 나를 보고 너는 그냥 아무렇지 않게 웃었지 너는 늘 약속시간을 어겼고 너의 편지는 제 때에 오지 않았다고 넌 내 즐거운 우체부의 늦은 것을 탓하는 척, 시간이 익어가는 단맛을 네가 안다면 나도 그것을 믿고 싶지 오늘은 7월 초 내 몸의 체감은 바깥의 온도보다 좀 더 높아 나는 이 체감을 첫사랑이 익어가던 그 때처럼 즐기고 있지 코로나 바이러스가 내 몸을 점령한 후 나는 그것을 견디는 즐거움을 누린다는 것을 믿는다는 것도 희망의 바이러스와 함께 온 행운이지 출처가 분명치 않는 희망은 그만큼 믿음의 상승을 따라 왔기 때문 작은 벌레 송사리 떼가 헤엄치는 저녁 강 같은 믿음의 바이러스 탓이라고 네가 살짝 말하는 구나, 바이러스의 근원인 너, 덧 부친다 한 더위에 물. 한. 모금. 이듯 -시간은 그렇게 익어가는 거지, 천천히(7.2020)

10

| 뉴욕문학 제31집


겨울 호수 곽 상 희 겨울 호수는 물도 쉬어간다 거울처럼 얼어붙은 얼음 아래 호수물은 고요히 누워 태양이 너를 끌어당겨 그의 목마름을 채울 때까지 한겨울 지나간 기억의 담을 허물어 새로운 창조의 꽃을 꿈꾸고 봄에는 얼음이 금간 틈 겹겹한 자락을 들추어 시냇물이 흘러들어 와 얼음은 너를 위해 고달픔을 마다않고 가끔 하늘에서 내리는 서릿발도 막아 준다 하늘에서 그리움이 목이 타 눈송이 폭폭 내리는 날, 넌 그 때 잊었던 님을 그리워한다 멀지않아 태양이 훈기를 내려 너를 품을 때 쇠물 같은 얼음의 벽도 살며시 녹아 너는 또 하늘의 꽃이 되어 네가 얼음이었던 때도 잊어버리고 나비를 부를 것이다.

시 ∙ 곽상희 |

11


곽 상 희 현대 문학시 등단, 시집 9권 <사막에서 온 푸른 엽서, 한영>외 다수의 공동 영시집 등, 수필집 3, 장편소설(<바람의 얼굴>, <Two Faces>) 등 한,영)3 <삶과 문학>종합지 발행, 뉴욕창작클리닠시문학회('KALNY'1984-), (AAEC 1990-) 영국 국제시인백과사전 등재, 계관시인(UPLI), Olympoetry 선정(스페인)외 국내외 시와 소설상, UPLI Korea Afairs Dir. Move't One Board Mem 곽상희의 치유의 문학(코스미안뉴스) 집필 중,‘ 느린 시의 산책‘(시평산문) 출판예정(2021) Blue Ocean Translation & Publishing

12

| 뉴욕문학 제31집


아우성치는 혼들 김 명 욱 혼을 뜯어가는 아픔이 저리저리 흐르고 멍울진 가슴팍엔 구멍들이 숭숭 나 있다 빨랫줄에 휘감긴 나와 너의 영혼들이 오늘도 내일도 마다하고 줄줄이 찢겨 진다 하나씩 둘씩 늘어나는 새 무덤가에 앉아 갈 까마귀 노래하는 사연 들어봐야지 무엇이 누구를 탓하지도 못하는 군상들이 하루살이의 무사함을 하루에 빌어내며 온 길이 어딘지도 모르고 구름 따라 간다 갈 길이 어딘지도 모르고 바람 따라 간다 알에서 아직도 깨어나지 못한 병아리가 깨어나지 않게 해달라고 조아려 기도 하네 혼들이 깨어 사랑하는 이의 사라짐을 보내 왜, 누구 때문에 너를 그토록 사랑했는데 너는 대꾸도 없이 그림자처럼 가버리는가 이 시대에 태어나 사라지는 혼들의 아픔이 5대양 6대주를 휩쓸며 곡하며 손사래 치네 아픔이 혼을 뜯어내어 이리저리 팽개치고 팽개쳐진 혼들의 아우성소리 하늘 귀에서 맴돌며 사라지려하나 끝내는 못 사라진다.

시 ∙ 김명욱 |

13


할머니와 외손녀 김 명 욱 할머니 왜 똥냄새가 나지 2살 반 된 외손녀가 화장실에 앉아 작은 것과 큰 변을 보는 할머니의 냄새를 맡는다 3대에 걸쳐 쌓아진 DNA 고스란히 손녀에게 닿아 흐름의 연속을 본다 할머니 안아 줘 할머니는 골병든 어깨를 마다하고 손녀를 안아주나 아픔은 가신 듯이 없어진다 할머니의 외손녀 사랑이 고통을 넘어 희열이 된다 손녀의 재롱 핌이 할머니의 온갖 고뇌와 번뇌마저 사라지게 만드니

14

| 뉴욕문학 제31집


할머니와 외손녀 둘만의 달콤한 사랑은 세상에서 찾아볼 수도 느낄 수도 없는 하늘이 내린 가장 큰 축복 일게다.

김 명 욱 <시대문학>에서 시, <순수문학>에서 수필 등단. 남가주(LA) 클레어몬트 신학대학원 석사(M.Div.), 목회학박사(D.Min.). 뉴욕한인교회(UMC) 소속 목사, 뉴욕한국일보 논설위원 역임. 현 기독뉴스(뉴욕) 대표. 국제PEN한국본부 회원, 시집 <가슴깊이 구르는 소리 하나 있어> 수필집 <꿈은 나이를 상관치 않는다>

시 ∙ 김명욱 |

15


하루 김 미 숙 또르르륵~ 따사로운 햇빛이 내안에 품어 들어와 명치끝이 아릴만큼 벅차올라 숨 고르기 한다 밤별이 키워낸 여린싹이 살포시 빛줄기에 반짝이면 내 눈동자 가득 대견함에 눈물을 지어내고 못다한 언어의 아쉬움도 힘겨움의 천길계단도 이승에서의 나에게 주어진 숙제.. 밤 하늘의 무수한 그리움의 언어..

16

| 뉴욕문학 제31집


오늘도 반짝 거리는데 달을먹고 별을먹고 도화지에 수채화를 그린다 나의 언어는 설레임이며 나의 하루는 첫사랑 이라고

시 ∙ 김미숙 |

17


나의 노래 김 미 숙 혼자 걷던 그 사막길도 혼자 바라보던 달무리도 언젠가는 아름다운 추억일 거라 바보같이 믿었던 그 시간조차 나는 버거운 짐을 지고 보내야 했다 차곡차곡 나의 머리에 꼬깃꼬깃 나의 주머니에 서러운 신음소리 삼키던 것은 나를 위한 마지막 자존심.. 또 다른 보상으로 눈물을 쓸어 담고 아름다운 치자꽃 같은 나의 젊음 허드슨강에 흘러가고 치열하던 모든 것에서 손을 내려놓고 어깨에 매였던 짐도 내리고 이제는 꺼이꺼이 울 수 있다 내 나이 50대가 되어서.. 그리도 그리던 50대가 되어서.. 보이지 않던 꽃들도 화사하게 향기를 품어내고

18

| 뉴욕문학 제31집


바람에 불어대는 나뭇잎도 나를 보고 이야기한다 그럼에도.. 그럼에도.. 지나온 나의 삶은 어여쁘다고..

김 미 숙 1963년 서울출생 1991년 미국 가족이민 1999년 문학세계 시부문 신인상등단 2000년 문학세계 소설부문 신인상등단 현재 뉴욕에 거주 미동부 한인 문인협회 회원 미주 기독교 문인협회 회원 mscho424@daum.net

시 ∙ 김미숙 |

19


그 분 심정에 비하리 김 소 향 정성껏 날려 보내건만 번번이 딴청 부리며 엉뚱한 곳으로 향하는 골프공 다음 홀을 기대하며 마음 가다듬네 손잡아 이끌어 주셔도 마냥 다른 방향으로 발걸음 떼었던 일흔 다섯 해 지금도 묵묵히 기다리시는 그분 심정에 비하리 그분 따르면 함께 가는 그 길 환히 트일 듯 내 손에 길들여질 때 바른길 찾아갈 골프공 그려본다 아직도 낯을 많이 가리는 공 이심전심이 이루어질 그날까지 그분 마음 닮아가야 하는데

20

| 뉴욕문학 제31집


낡아가는 우리의 세월 김 소 향 간밤의 강풍 탓이었다 새벽 산책길 가로막는 풍비박산 난 둥지 올려다본 키 큰 소나무 어디쯤 새끼들 길러 내보내며 꿈 키웠을 어미 아비새의 보금자리 아들들이 남기고 간 흐뭇하고 넉넉한 추억으로 아직도 포근한 우리의 안식처 마흔 아홉 해 묵은 우리의 세월 허물어질 그날까지 함께 지키고 싶은 소망은 욕심일지 몰라

김 소 향 1997년 <시문학>으로 등단 미주 카톨릭 문인협회 회원 시집: 둥그러지는 바람, 바람의 예감 이메일: mk588@nyu.edu

시 ∙ 김소향 |

21


뜨개질의 하루 김 정 혜 폭신 폭신한 실과 가시풀 모아 한 코 씩 만들어 줄을 세운다 실을 휘감고 한 코 씩 다른 바늘로 옮기며 예고 없이 방문하는 생각들을 뜬다 시작할 때는 회색이었던 실이 갑자기 붉은 색으로 바뀌고 매듭도 만져지고 팽팽하게 당겨졌다가 힘없이 실뭉치가 방바닥에 굴러간다 빠른 속도로 완성된 것을 보고 싶지만 생각만큼 진전이 없다 가끔 코도 빠뜨리고 지나가는가 하면 잘못 떠서 지금까지 뜬 것을 한참을 풀어내고 꼬불꼬불해진 실을 곱씹으며 다시 이어 뜬다 한참을 떴지만 아직도 무엇이 만들어져 가는지 알 수가 없다 실뭉치를 끌어안고 줄을 이탈하지 않게 세심한 주의와 필요할 때마다 수정하면서도 계획에서 멀어지기만 하는 뜨게질의 하루

22

| 뉴욕문학 제31집


오늘도 외투를 꺼내 입는다 김 정 혜 손에 묵주들고 나와 가족의 모습을 새기며 이른 아침 하루 일과를 시작한다 그리곤 책장을 넘기며 새로운 미세입자를 마음 속에 허용한다 좁은 길이 한참 이어져 동서로 넓어지는 마을을 나선다 눈이 가로로 쌓여있는 길을 넘고 생명을 다한 나무 뿌리의 파인 자리도 지나가고 순간 순간 찾아드는 얼굴을 휩싸는 찬바람 낯이 익어도 여전히 아리다 내 속도와 느낌만으로 이끄는 발로 얼마나 많은 길을 걸어 다녔나 탑은 쌓지도 못한채 아침마다 의식처럼 걷는 일도 영원하지 않을 것을 알며 오늘 아침도 외투를 꺼내 입는다

김 정 혜 뉴욕문학 신인상 등단 미동부 한인문인협회 이사, 총무 독어독문학 석사 Long Island Univ. Library and Information Science, Masters Degree APC of New York Inc. Consultant

시 ∙ 김정혜 |

23


고개숙인 장미 김 철 우 겸손해서 고개 숙인것 아니야 아부 하느라 고개 숙인것도 아니야 허리 지탱할 힘 벅차서 고개 숙인 거야 먼저떠난 동료들 왜? 오지않고 버티냐고 손짓 하는데 12월 눈속에서 왜? 버티고 있느냐고, 6월의 내리찌는 태양빛 아래 짙은 향기 멀리 멀리 풍기며 아름다운 자태 마음끝 뽐네였 던 그때를, 오고가는 이들의 발걸음 멈추게 하였던 그 마력(魔力)을 아직도 미련에 남아있어서 인가? 고개숙인 초라한 모습 눈길한번 주지않고 스쳐가는 그들에게 추한모습 보이고 싶어서 인가? 매서운 칼바람에 버티고 있는것이 자랑스러워 버티고 있는가? 떠 나간 동료 들아 뭍게 노라, 너희들 눈 구경 해보았는가?

24

| 뉴욕문학 제31집


세월(歲月) 김 철 우 이마에 줄 하나 새겨 넣고 사람들은 그 줄의 뜻을 터득한다 줄 둘 줄 셋 싫은데 세월이 얄밉게 줄을 긋는다.

김 철 우 1976년 1977년 1978년 2012년 제28회

동국대학 경영대학원 이수 미국 뉴욕이주 Lexington ART Gallery 근무 Home ART Gallery 운영 (Retired) 뉴욕문학 신인상

시 ∙ 김철우 |

25


2020년을 돌아본다 박 원 선 정월에는 왼쪽 무릎 칠월에는 오른 무릎 두 다리 재활운동 끔찍하고 아프지만 이제는 시간이 흘러 자연스런 걸음걸이 전에는 당연히 집에만 있었지만 집 근처 공원을 몇 바퀴 돌아 오고 아직도 많이 힘들어도 마음가득 감사감사 코비드19 으로 모두가 집안에 머물 때 나는야 아래 이층 오르락 내리락 힘내어 운동을 하며 여행을 꿈꿔 본다..

26

| 뉴욕문학 제31집


거울을 보며 박 원 선 거울 속 내 모습이 오늘따라 낯 설고 희미한 기억 속에 어디선가 본 듯 하네 오호라 내 어머니의 옛모습이 나에게 있었구나.

박 원 선 아호: 현운. 2005년 <문학시대> 시인 등단. 한국문인협회 회원. 미주한인 서화협회 회장. 대한민국 서예전람회 초대작가. 대한민국 서예전람회 심사위원 역임. 한국 문화미술대전 초대작가.

시 ∙ 박원선 |

27


그 즈음 변 정 숙 우리가 봄을 말하기도 전 꽃 만 질러 놓고 사라진 삼월 그 즈음에 우리는 계절을 잃어 버렸다 꽃보다 빠르게 피고, 번지는 저것들 보이지 않는 침략군이 몰려 왔다 봄을 잃어버린 거리는 음산한 바람이 진을 치고 사람들은 스스로를 잠그고 숨어 들어 섬이 되었다지 간간이 별이 된 섬이 있다는 소식이 돌았다 안타까움으로 하늘을 본다 어디? 저어기 아주 높이 있네 별 하나 별 둘 섬 하나 섬 둘 그곳은 어때 봄은 안전하신가?

28

| 뉴욕문학 제31집


제비꽃 변 정 숙 먼저 피고 먼저 지는 성 마른 숨, 서리 묻어 시린 봄날에 의연하게 고개를 숙이고 있는 제비꽃, 흙을 뚫고 올라 온 숨가쁨이다 심장병을 앓던 용이네 아가, 꽃 이파리 같은 입술을 닮았다 고통과 기쁨의 색조로 잠시 왔다 가는 걸음마로 아장거리는 성마른 숨 제비꽃, 나는 공연히 서럽다 이 봄이

변 정 숙 부산에서 태어나 뉴욕에 살고 있다 2009년 창조문학등단 경희 해외동포 문학상 수상 문학동인 글 마루 회원(서울) 공저: 비밀의 뜰, 시의 끈을 풀다 시집: 소리 화가 Jungsook.byun@gmail.com

시 ∙ 변정숙 |

29


재택*근무 복 영 미 입은 없고 눈만 커다란 사장님이 얼굴보다 큰 가방을 애인처럼 늦둥이처럼 끼고 다닌다 먹는 것이 일이 되어버린 직원들을 위해 한 쪽 어깨가 으스러지게 떼 꺼리를 메고 다닌다 오늘은 감자전 내일은 김치전 꿈속에서도 흘러내리는 머리칼을 쓸어 올리며 사장님은 허리가 굵어지고 팔뚝이 굵어지고 굵어진 팔뚝을 베고 빈둥빈둥 남편이 자라고 아이들이 자란다 손톱이 자라고 머리카락이 자라고 컴퓨터가 자라고 구겨진 페이퍼가 자라고 책상다리가 자라고 눈만 커다란 사장님은 그래도 봄이라고 꽃피는 봄이 왔다고 구겨진 조화처럼 쭈굴쭈굴 피어난다 *뉴욕은 코로나가 심해서 거의 집에서 일을 합니다

30

| 뉴욕문학 제31집


센스베리아 복 영 미 제라늄 줄기가 커튼 자락을 휘감든 말든 제비꽃이 보라색 꽃잎을 팔랑거리든 말든 이파리가 찢어진 채 해를 쬐고 있는 센스베리아 찢어진 몸에서 맑은 이슬 찍어 제 상처를 핥고있다 세상에는 명약이 많고도 많지만 제 몸에서 우려 낸 눈물만 하랴 해 따 라 꽃피우는 화초 사이에서 밤하늘 불꽃처럼 눈부시지도 않는 너처럼 밋밋한 이파리만 그리느라 침묵하는 백지를 구기고 또 구기는 나를 위해 저를 찢어 눈물을 찍어내는 센스베리아

복 영 미 경남 울산에서 출생했다 2002년『한국문학평론』 시 부문으로 등단했으며 경희사이버대학교 미디어문예창작학과 졸업 시집으로 『우주의 젖이 돈다』가 있다. 2010년 재외동포 문학상 시 부문 대상 수상 한국시인협회, 해시아나 활동하고 있다. youngmee_b@hanmail.net

시 ∙ 복영미 |

31


봄이 오는 길목에서 선우 옥 그리움 못이겨 다시 돌아온 너 겨우 내 감추었던 아픔 발가벗은 고독이 그토록 서글퍼 차마 그것이 생에 최고였다고 엄지손가락을 치켜들고 꿋꿋이 버티며 완성을 향해 내뿜는 기지개에 생명은 순종의 세례를 밟고 문을 나선다 순박한 풀잎 이제야 돌아와 대지 품에 포근히 안기어 굳은살 기쁨의 십자가로 도려내고 저 멀리 선 호숫가에선 환생의 그림자 거위와 오리떼 퍼덕이는 날개 위를 감싸며 한땀 한땀 푸른 생을 잉태한다

32

| 뉴욕문학 제31집


하루 그리고 또 다른 하루 선우 옥 물속 깊이 잠잤던 몸 눌러진 돌 쳐내며 우뚝 솟았습니다 곱게 웃으며 다시 태어난 육신 슬픈 영혼은 몸을 감싸며 새 옷을 갈아 입었습니다 낮아지고 더 낮아져 더 이상 설 수 없는 작은 몸을 품은 체 햇살은 천지와의 첫 사랑을 약속하며 출발을 향해 달려갔습니다 순백의 영혼 지붕 가득 던지며 님을 위해 이제야 새 문을 활짝 열었습니다.

선우 옥 1991년 유학으로 도미, 한국방송공사, 시사영어사, 동아일보 근무, 사업체운영(미국) 순수문학 신인상 수상(2004년), 미동부 한인문인협회 이사, 서기 m_groysman@yahoo.com

시 ∙ 선우옥 |

33


봄이 오는 아침에 손 정 아 음악이 없는 날 / 바람이 몹시 분다 모두 다 날아 갈 것인가 흰 머리를 뜯어 한 올씩 겨울 등을 벗겨 내던 억새도 햇볕을 끌어안고 서서 견디는데 구토를 하는 바람은 어느 낯선 계절에서 멈춰 설 것인가 비를 맞는 바다는 알까 이 두려움의 깊이를 외로운 것이 물고 있는 이 재앙의 거리를 보이지 않아도 살아서 움직이는 것은 서야 할 곳을 누워서도 간다 그 무엇을 씻어 내어서 날마다가 하얗게 되리라 기대하면서도 오늘이 아프다고 사나운 각을 세우는 세상 그래서 흰 눈 속 더러운 것들은 늘 그대로이고 바람은 날마다 비웃고 있다 저 자연 앞에서 무엇을 얼마나 더 미안해야하나 할 줄을 몰라서 텍사스에 왔던 눈은 또 올 것이고 36도가 얼어서 피가 멈춰 서고

34

| 뉴욕문학 제31집


모든 것이 죽기까지 그대가 쉽게 버린 휴지 한 장의 재앙에 인간은 몹시 아프고 펄프를 뽑아 짓이겨대는 편리한 그것들 때문에 식물의 넋은 우릴 두고 늘 쓰러지고 바람은 불지 않아도 그것을 기억한다 새벽이 오는 아침에 두려운 바람이 모질게도 분다

시 ∙ 손정아 |

35


이젠 알지만 손 정 아 당신에게 건너갈 수 있는 다리는 향기라는 것 봄이 하산을 하여도 눕지 못하는 꽃대는 기다림의 물기가 마를 때까지 서서 잠을 자고 열리지 않는 문틈사이를 비집는 삶의 무게에 열지도 못하는 기억을 더듬고 있는 그 행성의 거리는 멀고 반이 비어있는 물 잔에 겨우 채운 그 반의 향기도 딱 일 분만 어색하다가 제 몸 마르기도 전 언제 내 코끝을 지나 더 멀리 날아 갈 것이고 이젠 알지만 떠나보낸 것들이 허망이 아니라는 것을 멀지도 가깝지도 않은 그 자리에서 꽃대는 한창 때의 슬픔도 욕심도 그리움답게 털어 버리고 살아야할 신비를 발아래 두고 돋아나는 풀포기를 기다린다는 것을 이젠 알지만

36

| 뉴욕문학 제31집


가장 중요한 것은 지금 그 발아래 있어 주는 일이라는 것을 오래된 것들의 사이사이에서 아픔의 물기가 마르듯 갈라진 틈새에 박힌 슬픔도 향기로 마른다는 것을 모든 사랑은 그 길로 온다는 것을 이젠 알지만

손 정 아 전남 해남 출생 중앙 대학교 사회복지대학원 2014년 <시문학> 하반기 우수작품상으로 등단. 시집 <그의 발에 운동화 끈이 풀려있다>가 있음. 현 뉴욕 중앙일보 문학동아리 회원으로 활동 jungsohn0610@gmail.com

시 ∙ 손정아 |

37


눈풀꽃 송 온 경 너무나 멀리 있어 볼 수는 있어도 닿을 수 없는 하늘같이 이제는 두 손으로 만질 수 없는 멀리 계신 어머니 생각에 하얗게 타들어가는 가슴 부여잡고 미술관 뜨락을 걷다가 삼월 어느날 겨우내 눈으로 덮혔던 잔디밭에 수줍은 듯 고개숙인 채 살며시 웃고 있는 엄마 닮은 하이얀 꽃 눈 들어 나를 보라고 슬퍼하지 말라고 인생은 주어진 길 묵묵히 가는 거라고 달래주시듯 눈 같이 대지를 덮은 그리운 그 얼굴 * 2020년 4월 6일 코비드 19 팬데믹이 한창이던 때 어머니를 여의고 2021년 3월 어머니 닮은 눈풀꽃을 보고 쓴 시입니다.

38

| 뉴욕문학 제31집


가을 아침의 상념 송 온 경 높은 가지위에서 새살거리던 새들도 떠나고 오색으로 물든 잎사귀 하나 둘 떨어지자 나무는 오늘도 마음이 저리다 지난 여름 태풍의 횡포도 다 잊고 청명한 하늘과 가을 햇살 불어오는 미풍에 이웃들과 그동안 살아온 이야기도 나누고 싶은데 재빠르게 나무 위를 오르내리는 저 다람쥐의 힘찬 동작을 봐 가족에게 먹일 겨울 식량을 주우러 열심인 저 가장의 모습을 가을이 깊어지면 어디로 갈까 저 다람쥐는… 그간의 삶에 후회가 없다면 주어진 시간에 할 일을 다 했다면 바람에 날려 떨어지는 날 슬프지 않을거야 나의 삶의 무늬가 새겨진 낙엽 한 장 지나가던 행인이 주워들고 책갈피에 꽂아준다면

● 이 시는 2020년 가을, 코비드 19 팬데믹 동안에 재택근무를 하며 쓴 시입니다.

시 ∙ 송온경 |

39


송 온 경 '2019 년 Nassau BOCES 에서 테크놀로지 리더 (NASTAR) 상 수상’ 2017년 “영어 그림책을 통한 21세기 교육과 인성개발”출간 (하움출판사) 2017년 뉴욕문학 신인상 시부문 당선 (당선작: 갈대) 미동부 한인문인협회 회원, 뉴욕 시문학회 서기 고려대학교 교육학과 졸업, 퀸즈칼리지 도서관학과 석사 LI 초등학교 사서교사 (현직), LI 공공도서관 사서 근무 미주 중앙일보 ‘송온경의 책세상' 칼럼니스트 미주 한국일보 교육칼럼 필진 한국 학교도서관저널‘미국학교도서관이야기' 연재 한국도서관협회‘도서관 문화’지에 다수 기고 NAACP‘올해의 우수 교사상’수상 onkjoo16@gmail.com

40

| 뉴욕문학 제31집


붉은 새날이 밝는다 신 동 인 붉은 새날이 밝는다 오늘 하루도 썩고 삭으며 자취와 흔적 지우라고 사치와 허영 탐욕과 자랑의 망령과 환상으로 지어진 한때 영화로웠던 두대양 사이에서 물길과 때를 타서 비단으로 옷 해입고 진수를 먹으며 금으로 집을 지었지 색과 소리로 뼈에 새겨 차별하고 멸시하며 저만 잘라 자기 위한 자유요 허울 좋은 평등 주의와 사상과 이념과 종교와 예술과 학문 온갖 수단과 방법으로 속이며 도덕과 윤리가 사라진 자리에 법과 질서를 세워 보았지 양심이 없어진 비뚤어진 세상에 하늘의 뜻 거역하고 자연을 회파한 교만하고 오만한 악한 인생들 듣지 않을 것을 알면서도 도움을 주었다 멸절한 구천을 떠도는 원주민들의 원혼 하늘이 신원하려 붉게 타오른다

시 ∙ 신동인 |

41


진혼곡 신 동 인 하늘은 무엇이 맘에 들지 않는지 천둥치며 우르렁 거린다 한차례 비바람 세차게 일더니 콩알만한 우박이 쏫아져 내린다 사랑하는 이가 떠나지만 인사도 배웅도 할 수가 없다 인륜지 대사라는 옛말이 있었다 그것은 천륜이었고 하늘의 뜻였단다 멀리에서 가까이에서 천둥은 쉼없이 우르렁 거린다 구천을 떠도는 원혼이 많은가 보다 여기에도 저기에도 번개가 내리치더니 가까이에 천둥소리 진동한다 멀지 않은 곳에서 또 한 영혼이 떠나는가 보다 배웅받지 못하며 대낮인데 빛을 거두고 하늘이 대신하여 곡을 하는지 벼락과 뇌성과 천둥이 화음을 맞춘다 인생을 대신하여 진혼곡을 부르는 게다

42

| 뉴욕문학 제31집


잠시 시간과 흔들림을 붙들어 둔 사이 틈새로 들어온 바람이 옷깃을 흔들며 말없이 싸늘한 기운으로 마음을 일깨운다 떠나는 영혼의 간절한 부탁 들으라며 보지 말고 듣지 말라 방콕으로 가둬 놓고 나서지 말고 일 만들지 말라 집콕으로 묶어 놓았단다 진실한 것 보고 내면의 소리를 들으며 자연과 조화하여 순례의 삶 살라고

신 동 인 1949 충남 보령에서 출생 1981 미국으로 이민 NY, NJ State Certified General Real Estate Appraiser 뉴욕 맨하탄 거리 전도인 2018 창조문 시부문 등단 창조문학 제109회 신인문학상 수상 peterdshin@gmail.com

시 ∙ 신동인 |

43


머물렀던 시간 속으로 안 영 한달에 한번 피 흘리는 대신 시가 흘러 내린다면 그것은 허비가 아닐 것이다 빈혈로 생쌀을 먹으며 피를 주고 살을 얻어 왔던 시절에는 판타롱 바지로 거리를 청소하고 다녀도 아무도 무어라고 하지 않았다 통기타를 배우기 위해 가야금을 밀쳐 버렸던 작은 이모의 메니 큐어에는 목포의 눈물 전주 만큼이나 절박한 그 무엇이 있어 색깔은 얼굴 보다 오래 도록 남아 있다 하나님의 시간에 늦지 않으려 맞지않는 한복을 빌려 입고 새타령을 퉁겨 보아도 골목길을 굽이 굽이 돌아 나오는 연탄 가스는 막을 길이 없었다 그렇게 가난은 맑은 정신에 흠집을 내려고 필사적이었건만 다세대 주택의 행복은 평등했으므로 견딜만한 불행은 이미 불행이 아니 었음으로 여자도 아닌 남자도 아닌 단지 한 인간으로 살아가기에는 아무런 지장이 없었다 날이 갈수록 여자로 살아간다는 것의 불편함은 늘어 갔으나 세월을 타고 살아야 했으므로 머물렀던 시간 이었을 뿐 나는 단지 지나왔을 기억 한자락을 생애의 책속에 기록하려고 여기 이렇게 서 있는 건지도

44

| 뉴욕문학 제31집


모닥불의 노래 안 영 노오란 머플러를 두른 가을의 뒷 모습 아쉬움이 우수수 바람에 날려 우리는 모두 옷깃을 여미었지 모닥불 둘레에 모여 앉으면 얼굴은 홍조를 띠고 우리는 젊은이로 되돌아 가지 많은 일들이 일어날 것이고 많은 시간이 흘러 가겠지만 모닥불은 꺼지지 않는다 불티를 날리면서 추억으로 춤을 춘다 오늘은 또 어떤 기억으로 남게 될지 남은 날들도 이렇게 탁 탁 타닥거리기를 손바닥을 비비며 숨죽여 기도했다 인생은 춥지도 덥지도 않은 던져주기만 하면 저절로 타오르는 장작의 불꽃 같은 것 불꽃이 사람들을 밝혀 주는지 사람의 온기가 불꽃을 살리는 건지 알 수 없는 가을 밤에는 모닥불의 노래를 부르자

안 영 본명: 안 영 애 전남 목포 출생 1979년 도미 1996년 뉴욕문학으로 등단 2003년 시집 (롱아일랜드에 부는 바람) 상재 국제 펜클럽회원 한국 문인협회회원

시 ∙ 안영 |

45


수선화 꽃 한 송이 윤 관 호 아침 산책길에 다글라스 로드Douglas Road 언덕에 오니 수선화 새싹들 사이에 수선화 꽃 한 송이 한 요정의 청혼 물리치어 그 요정이 복수의 신에 부탁하여 저주 받았다는 전설의 고대 그리스 목동 나르키소스Narcissus 연못에 비친 제 모습을 아름다운 요정으로 알고 사랑하여 물속에 들어가 죽은 연못가에 피어나 자기사랑이라는 꽃말 지닌 너 지금 울고 있니? 지금 웃고 있니? 높은 하늘 푸르기만 하다

46

| 뉴욕문학 제31집


공空과 함께 윤 관 호 이 세상에 와서 이것도 저것도 제대로 한 것이 없다고 이대로 갈 수 없다고 남은 인생 무언가 이룩하고 가야 한다고 아들 딸 모두 결혼하고 손주들까지 보았어도 무엇을 이루고 싶어 의욕만 앞서가는 친구 지금껏 하늘과 땅과 사람들의 도움으로 살아 왔으면 대단한 것이거늘 무얼 그리도 바라나 부귀, 권세, 명예는 잠시 피었다 지는 꽃인 것을 살아 있음에 감사하며 비우고 비워 공空과 함께 사는 것도 이루는 것이라오

윤 관 호 휘문중고교졸업 고려대학교 졸업 고려대 경영대학원 석사과정 <문예운동>으로 시 부문 등단 시집 “누이 이야기” “뉴욕의 하늘” 발간 미동부한인문인협회 회장 역임 국제 PEN클럽 한국본부 미동부지역위원회 운영위원

시 ∙ 윤관호 |

47


살아 있음으로 청솔 윤 영 미 내 마음 한켠 깊은 곳. 빈 공간 속을 조심스레 들여다 보는 날입니다. 꾹 눌러 참아왔던 호흡의 끈을 꺼내 쉬어봅니다. 빈 공간이 있어 한 줄에 내 언어를 꿈 꿀 수 있는 날. 대 자연은 봄꽃 소식을 안고 내게로 숨차게 달려 왔지만, 나는 긴장의 끈을 놓을 수가 없습니다. 내 몸속 온도를 발화하지 못하고 나는 오늘도 서성이며 또 하루를 미안한 마음으로 맞이합니다. 연약한 숨통에 살아있는 모든 것을 기대고 버텨야하는 오늘이 있기 때문입니다. 살아 있음으로 봄은, 어쩜 내게 있어 영원한 기다림일지도 모릅니다.

48

| 뉴욕문학 제31집


씨앗의 날개짓을 보았는가 청솔 윤 영 미 살아남기 위해 처절한 몸부림을 쳐 본적이 있는가.!? 속고 속이고 위장 마술사로 변신이 이어지는 세상에서 사느냐 죽느냐 눈길이 무섭다. 중요한 것은 눈빛의 크기다. 변화 되어야한다. 진화 되어야 한다. 씨앗의 날개짓을 보았는가 육지가 초록으로 물드는 것 그냥 물 들어가는 것 아니다. 종족 번식을 위한 희생의 물결이다. 새끼들을 위한 식물들의 전략을 보라. 꽃을 피우지 않는가. 벌들의 날개짓과 나비들의 날개짓을 유인하고 있다. 꽃이 왜 향기를 뿜어내는가. 기억하라. 기억하라. 기억하라.

윤 영 미 삶터문학, 시대문학으로 문단데뷔. 첫시집으로 '질경이 풀꽃 속에'. 세계시인협회 회원. 미동부 한인문인협회 회원/이사/시분과 위원장. 전 윤동주 문학사상선영회 지부장(뉴욕). 라디오 코리아 1480AM '시와 인생' 진행담당자. KTV CH17 윤영미의 토요 초대석 진행 담당자. KNN TV "윤영미의 생각하는 오솔길" 진행 담당자. 현재 포코노 임마누엘 수양관, 청솔쉼터, 문학마을 원장.

시 ∙ 윤영미 |

49


고 깃 국

동화 이 광 지

눈이 펑펑 쏟아지는 추운 겨울 날 온 세상이 하얀 나라가 되었습니다. 오늘 따라 엄마는 새벽부터 일찍 일어나 아침 준비를 합니다. 아버지를 사고로 먼저 보내시고 언니, 오빠, 나 3남매를 키우시느라 엄마는 시장터에 좌판을 놓고 고생하시며 우릴 키우십니다. 먹는 것도 밥하고 김치, 우거지를 넣은 죽, 배고픈 것만 면하면 되는 식사입니다. 어제 장사가 좀 잘 되었는지 오늘따라 부엌에선 모락모락 김이 오르고 고깃국 냄새가 구수하게 방안으로 들어옵니다. 일찍 일어난 막내가 “엄마, 뭐 해?” “오늘 아침엔 고깃국 끊인다” “무슨 날이야?” “아니, 그냥 너희들에게 고깃국 먹이고 싶어서” 난 신이 나서 언니 오빠를 깨우고 아침 밥상이 방안으로 들어왔습니다. 다른 때는 김치만 있던 밥상에 계란하고 김도 있고 고깃국을 담은 그릇에선 김이 모락모락 나고 입안에 침이 고이게 합니다. 엄마는 언니 오빠보다 막내인 나에게 더 잘 먹이려고 엄마 국그룻에 한 개 밖에 없는 고깃덩어리를 내게 넣어줍니다. “많이 먹어라” 난 너무 좋았습니다. “후루룩 후루룩” 국이랑 밥이랑 맛있게 먹다가 엄마가 넣어 준 고깃덩어리를 먹었는데 이게 웬 일입니까? 물컹하고 잇빨 사이로 끼면서 퀘퀘한 냄새가 나는 된장덩어리 였습니다. “엄마 이게 뭐야?” 난 이맛살을 찌푸리고 신경질을 내며 수저를 놓아 버렸습니다. “엄마가 미안하다 고기인 줄 알고 ….” 정작 엄마 국그릇엔 고기가 안 들어 있는 줄 모르시고 된장덩어리를 고기가 들어간 것으로 착각하셨습니다. 철부지 초등학교 시절 난 고기 하나라 도 더 주려는 엄마 마음을 몰랐다. 지금 살아 계셨으면 죄송하다고 할텐데. 그 때문인지 난 지금 고깃국보다 된장국을 더 좋아하고 잘 먹는다.

50

| 뉴욕문학 제31집


시계 이 광 지 1에서 12까지 짧은 바늘 긴 바늘 가는 바늘 도란 도란 사이좋게 돌고 돕니다 내가 쳐다보면 일어나고 밥먹고 공부하고 잠자라고 손짓을 합니다 오늘도 시계가 있어 아침을 맞이하고 저녁을 보냅니다.

시 ∙ 이광지 |

51


봄바람 이 광 지 바람부는 날 바람이 좋아 바람따라 갑니다 봄이 오는 길 들숨 날숨 몰아쉬며 온 몸에 담는 상큼한 바람 주먹쥐고 달려가는 고갯길에 사쁜사쁜 걷도록 밀어줍니다.

이 광 지 교회학교 주일 공과, 성경 동화, 어린이 찬송가 집필 아동문학가 박경종 선생님 추천으로 등단 전 한국 크리스천 문인협회 회원 목사 전 뉴욕 신앙 월간지 “Diaspora” 편집인 kwangjilee@gmail.com

52

| 뉴욕문학 제31집


벚꽃 길 이 명 숙 향기에 젖는 줄도 모르고 십리 벚꽃 꽃비 우산아래 골짜기 깊어 하늘을 다 가려도 저 종소리의 맥놀이는 피는 꽃을 다 헤아리려는 걸까 적막의 산 그림자 한쪽으로 쓸리는 꽃잎 한 장 향기에 젖는 줄도 모르고 쌍계의 푸른 물소리로 꽃잎 한 잎 한 걸음에 수백리를 읽고 수천의 말씀 모아들고 댓잎 바람 차맛을 익히며 염주처럼 흘러 간다네 봄눈 스치듯 꽃물을 다 지울 수 없어 화개 지나 삼신산 두루 꿰어 몸져 울어도 말없는 아(亞)자 방에 들면 꿈꾸듯 꽃의 문을 지나 아득히 절로 가는길 향기에 젖는 줄도 모르고 시 ∙ 이명숙 |

53


폭포 -사랑 시편3이 명 숙 굽은 등뼈 사이 터져나온 힘줄과 힘줄 사이 골짜기 아래 낭떠러지 벼랑으로 아슬한 시간이 묻혀지고 시간이 잊혀지고 드러난 가슴뼈를 따라 흘러내리는 목소리를 잊지 않았겠지요 아직 식지않는 안개를 부르며 매일 떨어지면서 잊을 수 없어 부르는 이름을 아직 지우지 않았겠지요 그때는 말할 수 없었지요 그대도 말할 수 없었지요 우리는 혼자서 그렇게 혼자서만 말했지요 부추꽃도 피고

54

| 뉴욕문학 제31집


흰 도라지꽃도 피었습니다 우리들 오랜 노래 아주 밟고 지나가는 발자국을 따라 다시 깨어납니다 그날의 꿈이 깊은 계곡 천갈래 만갈래 흘러갑니다. 흰 구름 저 끝에서 산길 끊어진 그 아래 꽃처럼 날아 아무도 오지않는 한 며칠 그대를 불러봅니다.

이 명 숙 1988 불교문학 신인상 수상. 2016 뉴욕문학 시부문 가작 수상. myungsookji@gmail.com

시 ∙ 이명숙 |

55


오징어 찌게 이 선 희 창밖에는 여전히 눈이 내린다. 푹푹 먼 유년의 발자국 그리며 돌아올, 남편의 시장기 헤아리며 앞치마를 동여맨다. 오늘 같은 날에는 얼큰한 오징어 찌개가 딱 이지, 지난 가을 그가 낚시 해 온 싱싱한 놈, 미지근한 물에 살살 흔들어 검 자색 겉옷 벗기고, 검정 물 튀지 않게 조심조심 가슴을 연다 화들짝, 물 좋은 생선 한 마리 초점 잃은 눈동자로 억울한 듯 누워있다 운수 없이 잡히던 날, 마지막 끼니였나 보다 검푸른 바다, 열개 다리 부족 한 듯, 살점까지 뜯기 우며 헤매었으리 삭히지도 못할 먹이 찾아, 생명 떠난 두 미물(微物)이 한껏 측은하다 내일 일을 모르는 체 잰 걸음 질치는 나도 삭히지도 못할 먹이 찾아 고달픈 건 아닐까 절래절래 도리질 하며 수돗물 콸콸 틀고 부질없는 욕심 박박 씻어 내린다 뽀르르 끓어오른 찌개에 갖은 양념 뿌려 간을 맞춘다 더하지도 덜하지도 아니한 적당한 맛, 이 하루도 작은 일에 자족(自足)하며 마주하는 푸근한 식탁이 감사하다 가로등 밑으로 모여드는 눈발의 유희(遊戱)가 여전히 아름다운 밤이다.

56

| 뉴욕문학 제31집


봄, 이 선 희 만개(滿開)한 봄바람 타고 30일간의 미대륙횡단을 떠난다 코끝 간지르는 오색내음, 연한 꽃 바람에 색이 있다면 나무꾼이 숨겨둔 선녀의 날개 빛 이리 하늘나라 그리워 날개옷 애원하다 지쳐버린 그녀, 내게도 그런날이 있었다 연둣빛 지겟단에 달싹 올라 앉아 서걱거리며 흘러온 긴 골짜기 기다림이 하얗게 세어가던 날, 그가 못내 내어준 푸른빛 날개 숨 고르며 살포시 품에 안았다 분명 꿈은 아니다 별빛무늬 수놓으며 채비를 한다 빛 좋은 날, 활짝 공구르며 날개를 편다 * And now the end is here. And so I face the final curtain... 중략 I did it My Way.

시 ∙ 이선희 |

57


칠색 무지개 보이는 듯 가슴이 뛴다. 아뿔싸, 커다란 부메랑이 날개 끝에 물려 있었다

* Frank Sinatra 의 “My Way” , 중에서

이 선 희 문예사조 2005년 "나무를 만나기 위해" 외 2편으로 시인등단 크리스챤저널 창간25주년 공모 시 부문 "치유의 새벽" 외 2편으로 당선 미주한국기독문인협회 회원 뉴욕시문학회(창작클리닉문학회)총무 한국문화미술대전 추천 작가 parksunhee0708@gmail.com

58

| 뉴욕문학 제31집


아궁이 이 성 곤 누추한 처마 밑에서 젖은 몸 말려가며 오래 기다렸어요 이제 제게로 와서 그대의 몸 마음껏 불사르세요 추운 겨울밤을 덥히기 위한 당신의 소신공양 기꺼이 받들게요 그리고 잔불로 덥혀진 제 품에 안겨 이승에서의 마지막 밤 아무 생각없이 편히 쉬세요 사리일랑 부디 남기지 마시고

시 ∙ 이성곤 |

59


절벽 이 성 곤 직각은 위험하다 먼 길을 가다 보면 때론 그 위에 선다 비상과 추락 사이 물러섬이 있어 다행이다

이 성 곤 용산고, 한양대 화공과 졸. 1975년, 1984년 미국 이민. 현재 뉴저지에서 전자 관련 사업 중. sklee4262@yahoo.com

60

| 뉴욕문학 제31집


2020년 그 후 이 정 강 2020년 3월은 아슬아슬한 경계선, 꽃이끼 꽃잔디 기지개 켜든 때, 웅성임 가라않히고, 망루에 뜬 봉홧불!!! 어쩌다 뜨는 봉연(熢燃), 봉홧불 아니고 일년내내 불쑥내민, 도깨비 방망이들 황망히 가시는 벗들을 얼굴도 채 못 익혔다 이젠 일년 내 분풀이 굿거리 다했으니 염치란게 있어야지, 참을만큼 참았다^^^ 더이상, 대접할게 없다 빈털털이 됐으니^^^^^^

시 ∙ 이정강 |

61


햇살의 캉캉 댄스 이 정 강 항해하던 해는 잠시 상수리나무 우듬지에 멈췄다 오색 빛 캉캉춤을 쏟아 붓는다 해가 다리를 번쩍번쩍 들고 신나게 물구나무 선다 눈이 멀 듯 박자가 빨라진다 무아지경의 춤사위에 로빈새들은 넋을 놓다 상수리나무는 빛의 목욕에 마중나설 채비로 모든 잎새로 추임새한다

이 정 강 1970년 <월간문학>지 신인문학상 시부 당선. 1968년 <중앙일보> 신춘문예 시조부 입선. 1968년 <시조문학>지 추천 완료. 1971년-1979년 이화대학교와 단국대학교 출강 및 덕성여자대학 전임교수(1972-1975년) 2001년 미주 시조시인협회 <시조월드> 문학상 대상 수상. 2015년 국제한국 펜본부 해외작가상 수상. 시집 <프시케의 바다>와 <그 바람결에 연은 뜨고> 출간. 미주시조시인협회 회장 역임. 미동부한인문인협회 회장 역임. 미동부한인문인협회 자문위원/한국문인협회 회원/국제펜클럽 한국본부회원. 현재 국제 PEN 한국본부 미동부 지역위원회 회장. mkim99@nyc.rr.com

62

| 뉴욕문학 제31집


테이블 이 종 비 초록 눈썹 붉은 입술 검은 눈이 녹두전 위에서 웃는다 찌그러진 얼굴 옆으로 붙은 입 그래도 해맑게 웃고 있다 나도 덩달아 웃는다 손주들이 방문 하는 날 녹두전을 구워 접시위에 한개씩 올려 주었다 테이블에 모두 둘러 앉아 웃는 녹두전을 보며 우리는 행복하여 그렇게 함께 웃었다

시 ∙ 이종비 |

63


테이블 2 이 종 비 우연히 눈에 띈 노랑색 구두 멋 있었다 그래서 아무 생각없이 샀다 커피 한잔과 테이블 위에 올려진 구두빽을 바라보며 지난날의 자신감을 떠올렸다 어쩌면 이 근사한 구두는 내 옷장안에서 잊은듯 잊혀질지 모르지만 그래도 상관없다 오늘 잠시 젊음이 화살처럼 내가슴 한가운데를 관통하여 봄바람을 싣고 지나 갔으니.... 거리엔 봄이 눈부시게 빛나고 있었다

64

| 뉴욕문학 제31집


이 종 비 Nina.ChongBee@gmail.com

시 ∙ 이종비 |

65


할미 이 준 물 속 모래알 물결 따라 움직이며 높은 바위에서 떨어지는 잔돌 바람따라 흩어지다 흙으로 변하고 검은 구름 비가 되어 바다로 가는데 청정한 초목 낙엽이 되어 산천에 거름으로 뒷 동산 할미꽃도 피겠지 소꿉놀이 놀던 흙 친구 할미는 여기 있답니다

66

| 뉴욕문학 제31집


지금도 이 준 얼마큼 지나야 잊을 수 있나 무척 사랑 했었지 삼십년 세월 나무 심고 잔디 깍고 언제나 나를 반겨준 즐거웠던 집 오남매가 잘 커가며서 많은 추억들이 깃들은 그공간 난초잎이 푸르던 어느 봄 날 집 명예 이전을 하고 아쉬움에 떠나는 코너 길가에서 새로 싹튼 감나무 잎이 살랑살랑 바람에 흔들거린다

이 준 뉴저지 거주 2007년 10월 문학세계 시부문 등단

시 ∙ 이준 |

67


바위 이 혜 란 억겁의 세월 빛바랜 시간의 파편들이 아득한 침묵 속에 흐른다 숨결이 돈다 스쳐간 역사의 뒤안길 삶과 죽음 햇무리와 달무리 그리고 봄 여름 가을 겨울 모질게 견뎌온 세월 침묵으로 담아낸 고독의 열서 자연의 손에 세공되어 모난 상채기가 갈리고 무디어진 억겁 년의 보석 아, 역사는 사장(死藏) 되고 또 부활 하는 것 살아내고 살아지고 살아나는 것 대대로 그 자리 묵묵한 거장은 오늘도 긴 호흡으로 서있다.

68

| 뉴욕문학 제31집


농부의 기도 이 혜 란 두벌갈이로 곱게 갈아엎은 겨우내 묵은 땅 숨고르기를 시작했다 투박하고 성근 초벌갈이가 엊그제였던가 밭자락 감실감실 피어오르는 아지랑이 사이로 파종을 마친 농부 두 손 모으고 서 있었다 고맙게도 비님이 오셨다 열병식을 하듯 줄지어선 옥수수들이 키재기를 했다 한여름 작열하는 태양아래 볼 때마다 한 뼘씩 자라는 필드 옥수수가 스윗 옥수수보다 머리 하나는 족히 크다고 구릿빛 땀을 훔치던 농부가 들려주었다 난생처음 나는 옥수수의 비밀을 배웠다 광활한 필드 옥수수밭이 황금빛으로 깊어갈 즈음 옥수수들이 머리를 숙였다, 익은 벼처럼 농부는 추수때라 했다 그는 수고와 땀과 눈물의 결실을 축복하는 내게 고백했다

시 ∙ 이혜란 |

69


“농부의 기도는 매일매일 간절합니다 비도 햇빛도 좋은 날씨도 내가 줄 수 없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더 간절한 농부의 기도가 그 밭을 오롯이 자라게 하고 있었다 한 해의 식탁이, 그의 아이들이, 기도 속에 탱글탱글 영글고 있었다.

이 혜 란 《뉴욕문학》《문학세계》《한글문학》으로 등단. 도미 전 한국교육방송(EBS) 방송작가 및 문화, 홍보영화 시나리오 작가로 5년간 활동. 현재 미국연합감리교회 (United Methodist Church) 소속 목사로 미국인 회중 목회를 하고 있음. hyeranleeyu@yahoo.com

70

| 뉴욕문학 제31집


지상의 한 점 임 선 철 설거지를 하고 있는데 천정에서 손님이 내려왔다 계절이 지나는 소리, 친구는 말이 없고 낙엽같이 마른 바람만 방바닥에 재를 남겼다 쓰레기를 버리고 아이를 재우고 돌아와도 젖은 마침표처럼 누워 나를 바라본다 엊그제 엄마를 잃은 당신도 말을 잃고 서 있겠다 부활을 믿는다지만 나는 얼마나 잠잠히 백지처럼 고요했던 당신의 세상을 밟아왔던가 지상의 한 점 다시 하얗게 꽃이핀다해도 지워지지 않을 내 슬픔의 흔적

시 ∙ 임선철 |

71


닭국 임 선 철 식구들은 닭을 끓여 먹었구나 아내는 가슴을 찢어 아이들 입에 넣어 주었겠지 머리를 맞대고 한참 떠들며 웃다가 한바탕 시끄럽게 싸우기도 했겠지 냄비속에 뼈만남은 닭처럼 나는 이 밤, 집에와 앉아 있구나 푹 고아 껍질도 살도 사라진 닭은 배부르고 따뜻한 저녁이 되어 내일 아침엔 더 맑게 웃겠구나 꺄르륵 '아빠'하고 불러주겠구나 껍질과 살을 다 내 주고도 냄비속의 뼈는 영혼처럼 남아 저녁의 한 흔적을 증거하니 오, 내 다리와, 허리와, 눈이여 오늘 내 길의 증인이 되어다오 겨울 하늘에 풍경 내준 마른 나무들과 착하게 웃던 이웃들도 잊고 그와 쓰디쓴 말을 주고받던 그 시간에 나는 차라리 뼈가 되고 싶었다고

임 선 철 1972년 함평에서 태어나 광주에서 자랐다. 2015년 뉴욕문학, 2016년 한미문단 신인상을 받았다. sunchulnyc@gmail.com

72

| 뉴욕문학 제31집


프리마돈나 장 삼 수 겁없이 뛰어들던 가슴 넓은 바다에 흔적도 남기지 않는 하루가 지나갔다 봄이 오고 긴 여름이 지나 간 바다엔 슬쩍 얼굴만 보인 가을이 지나가고 다시 겨울이 찾아왔다 출발역인지 종점역인지 모호한 7번 지하철역에서 메인스트리트으로 오르자 둥둥 떠다니는 느낌으로 시지프스의 바위가 굴러 내려가는 소리를 들었다 혼잡한 군중 속을 헤매던 내 그림자는 어둠의 문턱에서 낮은 G 음을 깔아놓는다 캐럴이 즐거운 메인스트릿 가게들이 감출것도 없는 그을린 얼굴만을 유혹할 때 나는 가냘프면서도 드센, 부끄러워 하면서 당당한, 체념하듯 미련을 버리지 못한 -마치 카르멘 의 목소리원 달라 아주머니의 목소리를 들었다 구세군이 제복을 벗고 울리지 않게 종을 붉은 목장갑으로 감싸 안을 때도 마돈나의 울림은 지속되고 이 지겨운 크리스마스 시즌은 종말을 모른체 달려가고 있다 시 ∙ 장삼수 |

73


미소를 띄우고 장 삼 수 그가 실어증에 걸린 건 작년인가? 재작년에 추석맞이 고국방문을 갔다 온 후 부터였다 추억을 되살리는게 화근이였을가 주인공이 사라진 영화의 뒷끝처럼 한 개 삶이 바둥거린 노란 해바라기 꽃잎을 찾기 힘든 지하 단칸 방에서 그는 크고 작은 술병을 끼고 폐인으로 살았다 생활방식이 비틀어진 걸 이해 한다는 것이 좋아 하는건 아니지만 나는 그가 외로워 한 만큼 성숙하길 바랬다 결국 젊음을 낭비하던 목숨을 건 시절의 붉은 팔각모자에 닻을 내렸다 달력에는 빨간 볼펜으로 동그라미를 겹쳐 돌린 숫자가 절대 잊어서는 안될 날인지 눈에 방울로 맺혀 고양이 눈을 가진 여인을 앉혔다 세상을 들여다 보는 열린 창이 가슴에 유통기한을 세긴 사람들을 울먹이게 했다

74

| 뉴욕문학 제31집


침대 옆에는 혹 하나 달고 물 한 모금 마시지 못한 선인장이 앉아서 디지털 시계만 바라보고 그가 도착한 혹성의 시간을 알렸다 여생을 가득 담은 울림통이 그의 손떼를 기다리고 들릴 듯, 말 듯 아픔만 호소 했을 휴지조각들 가래를 말리고 있다 휘날리는 깃발을 우러러 보며 행진하는 늠름 함을 각진 얼룩무늬 군복으로 폼잡는 미소를 띠우고 그는 아름답고, 아름다웠을 추억으로 돌아갔다

장 삼 수 1947년 전남 광주출생 1972년 전남대학교 경영대학 석사 1986년 주 금호 퇴사 1987년 미국 이민 미동부한인문인협회 회원 marcelosamchang@ gmail.com

시 ∙ 장삼수 |

75


겨울 바다에서 장 영 근 그날 뿌연 안개가 잿빛 하늘에 떠 있었다 여름가고 가을가고 찬서리 끼어드는 피부의 울음소리 여울물의 몸부림이 스쳐간 텅 빈 가슴 깊고 깊어진 물결속에 잠기는 철이든 이순의 행보렸다 철따라 바뀌는 계절 이지만 나를 떠나지 못하는 겨울 바다 찢어지는 물결, 파도 사이에 다시올 정열이 씻기고 있겠지 다시올 환희가 씻기고 있겠지

76

| 뉴욕문학 제31집


봄 장 영 근 오는 듯 가버린 추억의 여인이여 폼에 폭 안기어 남긴 그 은은한 향취로 두꺼운 그리움의 심층을 뚫고 해마다 새순을 솟게 하는 오! 오는 듯 가버린 여인의 향취여 내 메마른 가지에도 꽃을 피우려나 …

장 영 근 육군사관학교 오레곤 주립대 대학원 한국일보 문학교실 수업 문예운동 시로 등단(2003년) 한미문학 동호회 미동부한인문인협회 회원 hyj39f@gmail.com

시 ∙ 장영근 |

77


시련이 나를 키운다 장 향 심 만세 전부터 상고부터 땅이 생기기 전부터 세움을 입었을진대 근원을 잊어버린 금수와 버러지 형상으로 거처로 삼고 섬기다가 흙으로 돌아가는 음부의 길이요 사망의 흙 속에 내려가는 인생들을 향하여 손 내미시면서 “일어나 함께 가자” 회색 하늘은 연록의 봄이 멀었을까? 저 멀리서 혹독히 불어오는 바람,

78

| 뉴욕문학 제31집


창 가에 나뭇가지 위에 매달릴 수도 없는 바람의 시샘 혹독한 추위에 가는 겨울 매질하며 가지치기하는 아픔일까? 봄이 되면 그 곳에 순이 나고 새순에 열매가 맺을거야. 아픔 속에 흘리는 눈물이 진주가 자라나듯이. 생명이 없는 아론의 지팡이에 생기를 불어넣어 싹이 돋듯이… 어둡고 흑암 속에 갇힌 깜깜한 인생들을 향하여~ “일어나 함께 가자”하신다.

시 ∙ 장향심 |

79


수정같이 맑은 꽃 장 향 심 세마포 차려입은 상고대 수정같이 맑은 눈물이 얼음꽃 되어 피워낸 나목들에 찬양, 겨울이길 장사 없고 세월이길 장사 없어 춘하추동일까? 어린양목줄 마치 칼로 에는 듯한 짖이겨 붙인 겨울외투 한 벌 얼음꽃으로 거듭나서 열두꽃 매달고나온 너의 희생은 춘하추동 색동 저고리처럼 곱구나. 봄이 오길 기다리는 침묵에 소리 땅 아래

80

| 뉴욕문학 제31집


깊은 속에 속닥거림, 그럼에도 만국은 소성하였고 다시는 깊은밤이 없고 얼음으로 지어 입은 겨울외투 한벌입고 나목이 되어 부활의 미명으로 꽃이되어 ! 하늘길 열어 속히 될 일을 보이소서 내곁에...,

장 향 심 2018년 <지구문학>으로 등단 뉴욕연합신학대학, 신학대학원

시 ∙ 장향심 |

81


2020년 가을 전 애 자 가을비가 순하게 오는데 오색눈이 내린다. 낙엽눈이 그려낸 그림들은 화려하고 쓸쓸하고 슬프다. 바이러스가 판치는 세상 방콕에서 사는 삶 기적이고, 감사하다. 마스크를 쓰고 소독약으로 손을 씻으며 생의 숫자를 세는데 빨간 잎 하나 툭! 머리를 건든다. 구름 한 점 없는 파란 하늘이 웃는다. 가을산을 헤매다 내려오니 잎 내린 나무들이 빗자루가 되어 하늘을 청소하고 있었다. 손잡고 끌어 안고 웃던

82

| 뉴욕문학 제31집


우리가 누리던 당연한 것들 얼마나 소중한지 알았는데... 가을이 물러가고 겨울이 찾아오면 가게가게 마다 불빛이 환한 도시가 되었으면 좋겠다.

시 ∙ 전애자 |

83


잃어버린 시간 전 애 자 마취된 상태에서 봄여름가을이 오고가고 겨울이 왔다. 방콕으로 감각을 잃은 채 새해가 왔건만 속수무책이다. 진해지고 강해져서 죽지 않는 코로나19 불안과 공포로 모니 연말연초가 움츠려진다. 한 해가 길게 누운 그림자속에서 시위 떠난 화살처럼 어디론가 빠르게 달려갔다. 얼굴을 반쯤 가리고 서로를 경계하며 소독약으로 세상을 바르고 멍하니 앉아 있는데 철 잃은 파리 한 마리가 맴을 돌다가 내 먹던 커피잔에 앉는다.

84

| 뉴욕문학 제31집


잡고 싶지만 추운 겨울에 얼마나 살까 그냥 쳐다만 보고 있다. 오래 같이 있을 줄 알았던 문우가 저 세상으로 떠났기에 올 겨울이 다른 겨울보다 춥게 느껴진다. 친구와 같이 달리던 길 지나칠 때면 추억들이 기억들이 살아나 목으로 올라오는 뜨거운 김 한 숨으로 토한다. 세월의 속도는 왜 이리도 빠른지 어디서 왔는지 모르는 하루가 와서 재촉하니 텅빈 머리 속은 우울한 바람이 멈출줄 모르고 불고 분다. 구세주 같은 백신이 나타나 정상적인 생활로 돌아가나 조각난 풍경들을 맞추기엔 미약해서 어둠 속에 그어 넣은 화살표를 보는 기분이다. 잃어버린 시간 속에

시 ∙ 전애자 |

85


방황하는 인간들의 냄새 오늘도 나는 고독이라는 지폐를 지불하고 늙은 도시에서 헤메고 있다. 내가 살던 현주소를 찾기 위해서...

전 애 자 *미국 이민(1979년) *아시아 이중언어 개발센터(시튼홀 대학) 근무 *미주동아일보(뉴욕) 편집기자로 근무 *뉴저지 YWCA 한국어 교사로 근무 *한국수필 신인상 당선(2003년) *미주 중앙신인문학상 시부문 당선(2005년) *삼성줌인포토리그MAJOR ACE 회원 *공저: 21세기 보다 더 나은 삶을 위하여1,2,3 annieree123@hotmail.com

86

| 뉴욕문학 제31집


기다림 정 문 혜 그대 떠나간 하늘 아래선 갈잎이 서럽게 울고 바다도 어둠을 안고 함께 뒹군다 너의 육신 보이지 않고 나의 육체도 티끌이 되는 날 껍질을 벗은 우리들 다시 만나게 될걸 세상에 남겨져 있기에 나는 한송이 꽃을 들고 살아있는 이웃에게 찾아간다 우리 다시 만나는 날 그때 이 갈밭은 없어지고 바다는 허공이 되리.

시 ∙ 정문혜 |

87


기도 정 문 혜 밤마다 간구하는 내 작은 방은 노래로 시작해서 피울음 되는 눈물의 숲 한마리 외로운 새 날다 지치면 이슬처럼 작은 흰꽃속에 묻히리 받은자만 아는 환희의 기쁨 맛본자만 아는 꿈같은 향기 샬롬 평화 감람꽃 필적에 노래할 때에 날지 못한 아빠새 등에 태우고 높게 높게 날으리 그 에덴으로

정 문 혜 "서서 버티는 나무" (1989 초판, 시문학사 20172판 "사랑" (1995 시문학사) 화가 김옥지 "빛(Light)" 화보와 함께1993 "내 마음의 풍경(Landscape in my Heart)" 화가 윤심주와 시와 화보 2012, 2017 제작 moonhae713@gmail.com

88

| 뉴욕문학 제31집


뽀미 엄마 정 혜 성 뽀미 엄마가 강아지 뽀미를 안고 자식자랑이 늘어졌다 사람은 배신해도 개는 배신하지 않는다고 인정머리 없는 사람보다는 개가 의리 있다고 밖에서 돌아오면 달려와 반기는 것은 개뿐이라고 속 썩이지 않고 사랑받을 짓만 골라서 한다고 뽀미 엄마의 말을 듣고 나니 오늘따라 뽀미가 더 영리하고 귀티나 보였다 뽀미를 잡고 인간답게 살아보자고 약속하는 뽀미 엄마에게 나는 개보다 못한 사람을 대표해 뭔가 사과의 말을 전해야 할 것만 같았다

시 ∙ 정혜성 |

89


기도실에서 정 혜 성 오랫동안 앓아 온 지병이예요 아무에게도 보여 줄 수 없어 혼자 앓고 있는 병이예요 더 이상 참을 수 없어 당신을 찾아와 수술대 위에 누웠어요 당신의 예리한 메스로 부어오르는 내 배를 열어 오장육부를 찬찬히 살펴 주세요 장기 곳곳에 묻어 있는 욕심이란 기름덩이가 보일 거예요 편견과 아집으로 밸밸 꼬인 창자도 풀어야 할 거예요 혈관을 여기저기 막고 있는 교만이라는 위험한 사혈도 제거해야 할 거예요 자꾸 재발하는데 이번에는 완치가 가능할까요?

90

| 뉴욕문학 제31집


정 혜 성 1988년 경북대학교 국어국문학과 졸업 2002년 Alliance Theological Seminary 신학석사 졸업 2008년 창조문학 시부문 등단 2012년 New York Theological Seminary 목회학박사 졸업 현 Church Support Org. General Director 시집 <길> <들겼으면> haesung69@gmail.com

시 ∙ 정혜성 |

91


춘몽 정 희 수 다음 생에선 스무살 즈음에 성씨가 ‘봄‘인 총각을 만나면 수줍게 꼬리를 흔들어서라도 무조건 혼례를 치루고 아이를 많이 낳아 이름은 외자로 지을 거야 봄 산 봄 들 봄 강 봄 길 봄 꽃 봄 풀 봄 비 봄 밤 봄 날 봄 詩 십남매를 낳으신 엄마가 막둥이를 유난히 사랑했듯이 나도 詩에게 정성과 애정을 쏟겠지 나를 가장 많이 닮은 막내는 훗날 죽은 듯 살아있는 생명들에게 생기를 뿜어주는 詩人이 될 거야 이번 생에서 못 다한 나의 꿈이었으니

92

| 뉴욕문학 제31집


세한도 정 희 수 엄동의 한기와 유배지의 고독이 절절한 *세한도는 이국의 변방에서 홀로 생의 겨울을 건너가는 이방인의 창에 자주 걸리는 수묵화 사는 일 쓰라릴 때마다 화살 맞은 짐승처럼 숨어들던 숲도 허기진 수리새가 흐린 하늘을 맴돌 뿐 으시시한 적막에 휩싸인 채 주검의 음습한 그림자가 드리워져 이제는 피할 곳 없고 인간의 탐욕과 오만이 자초했다는 재앙으로 오랜 우정을 나누던 친구마저 황망히 떠나보낸 후 사무치는 슬픔과 회한으로 불면의 밤을 뒤척이지만 어느새 창밖에는 새벽이 도착하고 낯익은 세한도에는 아직 귀향하지 못해 허공을 떠도는 서러운 혼령들인가 난 분 분 난 분 분 성긴 눈 날린다

시 ∙ 정희수 |

93


* 세한도歲寒圖; 조선시대의 명필가, 추사 김정희가 제주도 귀양살이 할 때, 변함없이 돌보아준 제자, 이상적에게 고마운 마음으로 그려 준 명작. 대한민국 국보180호.

정 희 수 (정 레지나) 창조문학 시부문 신인 문학상으로 등단. 전 시창작 크리닉 회원 미동부 한인문인협회 회원. reginatjchung@hanmail.net

94

| 뉴욕문학 제31집


물푸레나무에게 듣는다 조 성 자 뱃살 늘어지고 무릎 뒤틀린 물푸레나무 살 트고 갈라진 고사목 같던 몸에서 새의 부리처럼 솟는 연두가 배냇짓하는 봄날 질문을 안고 끙끙대던 여자가 나무에 기대 있다 자궁을 잃고 여자는 생명의 터에 반기半旗를 걸고 고치를 지으려고 잠을 청하던 우울이 사위어 버린 시간들과 뒹굴다 노곤해질 쯤 여자의 마음으로 한 무리 햇살이 뛰어든다. 날짐승처럼 내리꽂히는 볕은 수직으로 박혀 분수령이 되고 그 유장함과 마주쳐 궁굴려지는 여자의 중심이 청보리밭처럼 일렁인다. 사라진 자궁은 여자의 마음으로 터를 옮겨 잡고, 볕이 드는 곳이라면 어디든 생명의 서식지 굳은 것을 통과하며 길을 내는 햇살이 여자의 살갗에 초록의 길을 낸다. 파렴치한 같던 생의 둥치에서도 엿보이는 푸른 것들이 기미가 물푸레나무 능숙한 수화에 얹혀 마에스트로의 지휘봉이 된다.

시 ∙ 조성자 |

95


문득문득 조 성 자 사과잼을 만들다가 텃밭에 잡초를 뽑다가 들리는 소리가 있다 귓속에서 부유하는 자벌레의 몸짓 같기도 한 시간의 돌기 사이에서 짓이겨지고도 꿈틀대는 당신의 초록, 나의 연두, 당신의 의자, 나의 그네, 어디에도 우리들은 없는데 기척은 있고 어디에도 당신은 없는데 당신의 분진 날리는 봄날 그 때, 거기 당신의 명도는 어둠이었을까 그 때, 그 자리 나의 음역은 소프라노였을까 소리의 파동으로만 아득해지는 그 때, 목련꽃을 올려다보다가 제비꽃을 내려다보다가 문득문득

조 성 자 2002년『미주중앙일보』신인문학상 당선과 『시문학』으로 등단 시집으로『기어가는 것은 담을 넘을 수 있다』, 『새우깡』, 수필집으로『바늘의 언어』가 있다. 『뉴욕중앙일보』에『시로 읽는 삶』을 십여 년 연재하고 있다. jbbyoo@hotmail.com

96

| 뉴욕문학 제31집


연민의 바람 지 인 식 밤새도록 불던 세찬 바람 무슨 분노와 상처가 그리도 컸나 코로나에게 봄 아가씨 뺏긴 수치와 분노의 화풀이 인가? 귓전을 때리는 나뭇가지들 윙윙 우는소리에 나의 밤 뺏겨버렸네 그래, 바람아 네 심정 조금 알것같아 인생살이 다 그런거지 뭐 움켜잡으려 바둥대던 삶 돌아보니 남은거 별로없어

시 ∙ 지인식 |

97


세상무대는 바이러스처럼 소리없이 보이지않게 상채기내고 빼앗아가는 도적들이 주연이거든 바람아 애꿎게 여린가지 부러뜨려 화풀이말고 나와 함께 무대뒤에서 커피한잔의 행복을 나누지 않을래?

98

| 뉴욕문학 제31집


새로움 지 인 식 길의 시작은 어디였고 끝은 어디인가? 오늘 달리는 이 길 어제 갔던 길 아니다 내 맘대로 언제나 갈 수 있는 길 내 의지대로 쉽게 달려갈 수 있는 길 결코 아니였음을 나 이제야 깨달았네 만남의 시작은 언제였고 만남의 끝은 언제인가? 오늘 우리의 만남 어제의 만남 아니다 내 맘대로 언제나 만날 수 있었고 내 의지대로 쉽게 만날 수 있었다는 착각의 어리석음 그대 지금 깨닫는가? 이제 시 ∙ 지인식 |

99


갈 수 있는 길 내 앞에 있어 감사하고 이제 만날 수 있는 친구들 있음에 기뻐하세 접시에 우정담고 빈잔에 행복 채우고 노래에 사랑 실어보세 만남의 새로움에 조명 밝혀주는 밤하늘 별빛들!

지 인 식 (호 예강) 강원도 영월출생 감리교 신학대학 및 뉴욕 신학대(B.A & D.Min) 창조문학 등단. 경희대 해외 동포문학상 수상 현재 쿠바 선교사

100

| 뉴욕문학 제31집


절대 축복 최 임 선 뼈가 녹는 불같은 시험 모든 것이 녹아내리는 환란 뒤에 오는 숨겨 진 하나님의 비밀스런 축복 모든 서원 칼 같이 지켜 낸 후 절대 기도치 않고는 그 어느 것도 쟁취 할 수 없는 영광스런 영원한 나라 하늘나라의 비밀 꽃가루처럼 신기루의 빛을 타고 내리는 절대 축복 내가 죽어 다시 볼 천국의 축복

시 ∙ 최임선 |

101


안개비 최 임 선 가을 숲은 젖어 있어 아름답다 풀 꽃잎 떨어진 숲 속 안개비가 걸어간다 코스모스 꽃밭을 지나 허리 굽은 갈대 밭 흩어진 꽃잎 이슬 깊은 강을 건너는 별들의 연정을 본다 시작도 없이 돌아 올 수도 없는 깊이를 모르는 깊은 강 속으로 가을 숲을 끌어안고 안개비가 젖어 든다.

최 임 선 뉴욕 Pratt Institute, Art College 졸업. 『조선문학』, 『문학세계』에 등단. 성화전 2회 개최. 저서: 시집 '깊은강', '정신병동'

102

| 뉴욕문학 제31집


오징어 등뼈 최 정 자 녹은 냉동 오징어는 흐물흐물 했다. 흐물흐물한 오징어의 더 흐물흐물한 내장은 꺼내 버렸다. 그런 다음 질기고 질긴 투명한 등뼈를 뽑아냈다. 오징어의 척추를 뽑아냈다. 그래놓고 완성의 미소를 지었다. 그래놓고 그날에야 오징어를 삶아 먹으면서야 알았다. 누구라도 나를 공격하고 내 등뼈를 뽑으려고 한다는 사실을, 등뼈가 뽑히는 고통, 나는 사람이 싫다. 내 등뼈를 뽑으려고 하는, 아프게 하는, 나는 사람이 싫다. 물오징어의 질긴 등뼈를 뽑으며 앗 차, 흐물흐물한 물오징어를 잊었었다. 등뼈가 뽑히는 그를 잊었었다. 내가 그를 외면하고 싶었었다. 그것은 물오징어 일뿐이라고 그런 내 속마음이 투명하게 보였다. 내가 오징어 등뼈를 뽑아내고 있었다.

시 ∙ 최정자 |

103


2020년 연말 박유남 선생님 편지 최 정 자 사랑하는 친구에게 고백합니다. 나는 내가 바라보는 곳이 어디며 무엇인지 아득한 때가 있습니다. 친구는 지금 무엇을 생각하고 있나요? 사랑했던 사람인가요? 가고 싶었던 멀고 먼 나라인가요? 손에 닿지 않는 아니 손에 닿아있는 내 안에 있는 나와 내 마음밖에 있는 마음과 많은 이들이 그것으로 갈등하며 생을 마감합니다. 독일 친구는 교통사고로 미국 친구는 뇌종양으로 이 세상을 떠나면서 내게 “사랑했노라” 했었지요. 그들은 가고 내게 남은 것은 처절하게 울부짖어야했던 몸부림뿐이었습니다. ‘몬탁’ 바닷가에서 “나도 사랑했다” 소리치기도 했고 ‘포코노’ 산장에서 낙엽에 파묻혀 온종일 통곡하기도 했습니다. 망가 질대로 망가진 내가 겨우 정신 차린 것은 아이들의 눈망울 때문이었습니다. 내 안에 자리 잡고 있는 하느님 때문이었습니다.

104

| 뉴욕문학 제31집


세상이 나를 이렇게 살게 하고 이렇게 평화롭게 하고 있습니다. 내 소망이 나를 일으키고 있으니 친구여, 내가 당신을 사랑합니다. 부디, 은총으로 평화롭게 사소서, (12월에 받은 롱아일랜드 박유남 선생님 편지)

최 정 자 시집<별 사탕속의 유리 새>등 9권. 시선집<늘 있으면서 하나도 남지 않는 바람>등 2권. 산문집<멀미 없는 세상> 문학상<4회 천상병시상> <13년 PEN해외작가상>

시 ∙ 최정자 |

105


꽃 길 현 영 수 밤사이 봄비 나리더니 줄지어 선 가로수 벚꽃잎이 길을 덮었네 꽃 길이 열렸네 꿈 길이 열렸네 차마 휘젓게 되랴 멀리 돌아가네

106

| 뉴욕문학 제31집


아침 현 영 수 짹 짹 짹 새들이 이슬 젖은 장막을 쪼아 대면 어느새 어두움에 금이가고 빛이 새어 나온다

현 영 수 (James Heon) *서울대학교 음악대학 BA *Manhattan School Music MM *Alliance Theological Seminary에서 Missiology, Urban Mission, Christian Education 강의 통역(1986- 1988) *현, 뉴욕신광교회 지휘자 저서: “바닷가에 사는 아이” (두란노 서원)의 저자 (현 야고보)서원 제28회 뉴욕문학 신인상 당선

시 ∙ 현영수 |

107


첫 비 황 미 광 비에도 첫 방울이 있어 미리 살펴보고 소나기를 몰고 오더라 어느 맑은 날 오후 누군가 붓 한번 휘둘러 푸른 하늘 먹빛으로 휘감으니 처음으로 내려온 비 한방울 흙에다 입 맞추며 물어 보더라 얼마나 먼 길 왔는지 알지 못하지만 왜 혼자 먼저 왔는지는 짐작되더라 첫 빗방울에 움찔거린 흙의 몸짓으로 땅이 몸을 열어 비를 받기 시작하니 천지가 젖어들며 꽃이 피고 새가 울더라 비에도 첫 방울이 있음을 내 그 날 보았노라

108

| 뉴욕문학 제31집


골프장에서 황 미 광 가장 넓은 운동장에서 가장 작은 공 하나 따라 다니며 하루 해를 보낸다 누워있는 공을 못 친다고 ? 원래 조용한 애들을 조심해야해 나무도 바람도 구름도 못본 척 입을 다물면 풀밭에 묻힌 공 하나 기척도 없네 꼭꼭 숨어라 머리카락 보일라 하얀 시간 속에 묻힌 하얀 작은 공 잃어버린 시상처럼 막막해진다

시 ∙ 황미광 |

109


황 미 광 문학박사, 미동부 한인문인협회 17대 회장 역임, 국제펜 한국본부이사, 재외한인사회연구 재단이사, 동서희곡문학회(1981 발기인), 시맥동인(1983), 한국문인협회, 한국연극협회 회원, 미주한인이민백년사 출판위원장, KCB 가톨릭방송 사장, 한인여성네트워크회장, CUNY Queens College Adjunct Professor(1994-2012), L.I.U. Korea Center 부소장 역임, 대한민국 국민 포장(2018), 대통령상(2007, 2016), 올해의 한인상(2014), 뉴욕주 여성교육자 상(2009), 창조문학 신인상(2002), 서울시 교통부 시 입상(2014, 2019), 경희해외동포문학 상, 시집 ‘지금 나는 마취중이다’외 논문집, 공동 저서 다수 poethwang@gmail.com

110

| 뉴욕문학 제31집


수 필


꽃들의 의미 강 갑 중

사람들의 정원에 처음으로 심어졌던 화초는 무엇이었을까? 짐작할 수 없지만 사람들이 화초를 가꾸었던 일은 원시생활에서 보여준 최초의 여유였으리라 생각된다. 그것은 인간이 비로소 허기나 갈증을 잊고 자연의 조화에 눈을 돌린 여유에 주어진 보답이었다. 인류는 일찍이 농경생활 을 시작하였으므로 이것 또한 역사가 유구할 것이다. 중국의 태고사에 백약을 맛보아 약초를 찾아내었다는 신농씨(神農氏)의 업적 가운데 묻혀있는 비밀 이겠구나, 짐작하려 하니 그보다 더 먼 창세기의 이야기 속으로 숨어버린다. 어쩌면 뒷날의, 우리들의 시대에 훨씬 더 가까운 일이었던 것같이 생각되기 도 하지만, 최초의 그것이 무엇이었을까는 알기 어렵다. 다만 어떤 연유에서 든지 들꽃이 사람의 거처에 옮겨 심어지고 사랑을 받고 보호받기를 시작했을 때, 색체나 모양, 그리고 향기는 진화되어 왔으며, 생장력(生長力)은 그 반대의 길을 걸어왔을 것으로 생각된다. 사람들은 희귀하고 특이한 것들을 힘들이며 가꾸는데서 즐거움을 추구한다. ‘어디에나 항상 있는 것은 없는 것과 같다.’는 말과 같아졌다. 꽃을 가꾸고 완상 하는 데에도 우리나라에서는 향기가 높은 것을 주로 취하는데 비해 서양 사람들은 색깔이나 모양을 취하는 경향이다. 그리고 이상하게도 이 나라에서 만나는 꽃들에는 향기가 거의 없다. 겨울마다 공원의 큰 온실에선 별의별 난들을 가꿔 아름다운 꽃이 많이 핀 난 화분을 전시한다. 어느 것에서도 향기가 없다. 그런데 그 한가운데다 색깔도 없는 꽃이 핀 동양란 화분을 놓아둔다. 잘 가꿔내지는 못하지만 그들도 동양란이 뿜어내는 그윽한 향기를 꽃 중의 제왕(帝王)으로 느끼는 것이었다. 사람을 대하는 데에도 우리네들은 생김새 보다는 마음씨를 더 중시하는 사람들이라서 그렇다고 관련지어 본다. 무리한

112

| 뉴욕문학 제31집


연결이라고 생각되지는 않는다. 올해 처음으로 장미 뿌리들을 사다가 뒤뜰의 여러 꽃들 사이사이에 심었더 니 꽃을 피워 여러 꽃들에 흩어져 있던 우리의 시선을 단연히 가로챘다. 그중에 나를 애처롭게 하는 것은 황색 장미이다. 꽃이 크고 탐스러웠으나 그 꽃에 붙여진 이름 때문이다. 텍사스에 황색장미라는 영화에 나오던 엷은 노란색이 아니라 진하게 드러나는 노랑이다. 색깔의 농도는 빛나는 황금을 연상시키기에 충분하다. ‘Midas touch' 미국인들은 마이다스 터치라 하지만 그 신화의 조국 그리스 어로는 미다스이다. 미다스는 그리스 신화에 등장하는 인물이다. 그리스 신화의 인물들이 다 그렇듯이 그 신화 속의 인물들은 출신지와 현대사의 세세한 지명을 공유하기도 한다. 중아시아의 작은 고대왕국 프리지아의 욕심 많은 국왕 미다스. 그는 디오니소스의 친구인 숲의 신 실레니수스를 사로잡았으나 포로에 대한 대우를 퍽 친절하게 해주었다. 디오니소스는 감사하여 그 보답으로 소원 하나를 들어 주겠다 하였다. 미다스는 그가 만지는 것마다 황금으로 변하게 해달라고 청했다. 디오니소 스는 그의 원을 들어주었다. 미다스는 그가 바라던 대로 만지는 것마다 황금으로 변하였다. 먹으려는 음식들이 모두 황금으로 변해버려 먹을 수 없게 되었다. 그래서 그 벼락부자는 거의 굶어 죽을 지경이 되어 버렸다. 사랑스런 그의 공주도 만지자마자 황금을 변하여 굳어버렸다. 미다스는 결국 자기의 탐욕이 지나쳤음을 뉘우쳤으므로 디오니소스가 미다스를 팍돌루스 강물에 목욕시켜 그 마법을 벗어나게 해주었다. 팍톨루스 강은 터키 지방에 있는 강의 이름인데 그 강에서는 사금이 나왔다고 전해오고, 또 호박과 금괴가 나와 최초의 금화로 사용되었다고도 했다. 미다스에게서 씻겨 나온 금이 현세의 팍톨루스 강에서…. 그들의 방식대로 신화와 현실 세계의 일이 인과처럼 연결되어있다. 나라의 이름과 위치까지 정확히 밝히며 들어가는 것이 희랍 신화의 한 특징이다. 또한 이야기에 담긴 Allegory도 철저하고 후세의 역사에 결부시키는 것도 자연스럽다. 탐(貪)은 사람을 궁극적으로 황폐화 시키는 허구렁인데 디오니소스는

수필 ∙ 강갑중 |

113


미다스를 강물에 목욕시켜 구출해주는 것이 절대적인 구원이었다. 마치 갠지스 강의 풍경처럼 강물은 사람들의 도시가 생기게 하는 것만이 아니라 죄를 씻어주는 대하(大河)이다. 유태인들은 그들의 경전인 구약성서에 따라 지금도 명절이면 흐르는 내나 강물 위에 서서 혼자 중얼거리며 자기에게 쌓인 죄악을 흘려보낸다. 디오니소스는 그리스의 농신(農神), 포도의 신, 축제의 신, 주신(酒神)이며 로마 신화의 박커스(Bacchus)에 해당 된다. 풍작과 식물의 생장을 맡는 자연신이었으나 축제와 술의 신이다. 어머니의 시신에서 미숙한 태아로 끄집어내졌다가 아버지 제우스신의 허벅다리에서 나머지 달을 채우고 났다 는, 두 번 태어난 아들이다. 디오니소스는 예술의 미학에서도 흥분과 창조적 정열의 상징으로 태양계의 형식 질서인 Apollonism과 대비 되는 한 개념으로 설명되고 있다. 우리 집 뒤뜰 일우(一隅)에서 피어난 황색 장미가 ‘Midas touch'라는 이름 지어진 까닭은 유난히 진하게 노란빛을 내는 것이기 때문인 것 같다. 그것은 육종학자의 성공일지 실패일지 알 수 없다. 장미를 꽃 중에 여왕처럼 매기려는 사람들은 많다. 하지만 그 말이 나라마다 나라꽃을 정해놓고 사랑하 는 사람들 누구에게나 맞는 말일 수는 없다. 버젓이 드러나 있는 장미 가시들은 조심할 방도가 없다. 몇몇 나라의 국화를 보면 그 나라 국민성과 절묘하다하리만치 잘 부합되는 결정이었다고 생각되기 때문이다. 우리가 살고 있는 미국에는 각 주마다 주의 꽃, 주의 나무, 주의 새들을 정하여 사랑하고 그것들이 정해진 내력도 모두 타당하다. 그러나 아메리카 합중국에는 나라꽃으로 정해진 것[國花]이 없다. 철저히 개성옹호주의 같이 느껴지기도 한다. 미국은 이제 국화를 정하기가 점점 어려워지고 있다. 합중국의 국기(stars and stripes, 성조기)를 사랑하는 것이 어느 나라 국민들 에 비해 강한 것이 그래서 국화가 없는가 싶어지기도 한다. 모국에서는 태극기를 비 맞게 해도 안 되고 어둠 속에 게양되어 있어도 안 되었다. 소낙비가 자주 지나가는 여름날엔 자칫하면 국기를 비 맞히는 일이 자주 생겼다. 직장이 중앙청 옆에 있었던 우리는 그럴 때마다 괴전화에

114

| 뉴욕문학 제31집


시달리기도 했었다. “당신들 뭣 하는 자들이냐? 우리는 누구인지 묻지 말고, 옥상에 비 맞고 있는 태극기를 가 봐라. 정신 나간 사람들 같으니.” 그런 일은 우리를 몸 둘 바가 없게 했었다. 하기식을 하는 음악소리가 들리면 길 가던 사람들이 모두 멈춰서야 했었다. 영화관에서 영화를 시작할 때도 모두 기립했고, 나라를 사랑한다는 뜻은 나라의 상징인 물체들에게까지 그렇게 정성이 모아져야 되었었다. 그러나 대통령 시해사건이 있고는 그들 상층부의 허구가 노출되기 시작했고 국민들이 자연스럽게 국기를 사랑하는 마음조차 억지로 이끌었던 것을 싫어하게 되었었다. 해외에 다녀온 사람들이 국기의 실물이 아닌 화면에는 지나친 경의를 강요하는 것이라는 말을 조심스 럽게 내놓더니 그런 예의표시들이 도로 없어졌다. 미국인들이 국기를 사랑하는 자유는 얼마나 광범한가. 성조기는 바로 그들의 국화다. 그래서인지 그들은 무생물인 국기가 반드시 나부끼고 있어야 한다는 생각을 고집처럼 갖고 있다. 달 표면에 세운 알루미늄 제 성조기도 태양전지의 동력으로 흔들리게 만들어 놓았었다. 그들이 사랑하는 것은 아메리카 이 나라다. 장미꽃에만 잔뜩 붙어있는 이름들이 다소 정비되었으면 한다. 품종은 한국의 주산물인 벼에도 많다. 그러나 쌀밥을 먹는 사람에게는 ‘농림 6호’니 ‘농림 8호’가 어떤 것인지 ‘통일벼’가 어떤 것인지 무의미하듯이 말이다. ‘송도배추’이거나 ‘결구배추’, ‘수원 21호’ 배추로 담갔거나 먹는 이에게는 모두 배추김치이고, 먹는 이에게 중요한 것은 전라도식 김치냐 서울식 김치냐 이듯이 말이다. 그 구별은 중요하다. 전자는 양념이 진하고 후자는 싱겁다. 또 전자는 젓국에 담은 것이고 후자는 동태 식혜 김치이다. 전자는 양념김치 이고 후자는 소금 김치라 한다. 그래서 먹는 입맛이 다 다르다. 내가 좋아해서 장미꽃 몇 포기를 사다 심어 놓고, 찾아와 보아주는 사람들 마다 장미꽃의 족보를 늘어놓아 나는 그때마다 입을 다물고 웃고만 있어야 한다. 말을 거들었다가는 잠시 후에 입을 다물어야 할 만큼 나는 아는 것이 없기 때문이다.

수필 ∙ 강갑중 |

115


꽃은 보아서 좋다. 아름다움의 대표라 할 수 있다. 그래서 고맙고 사랑스럽 다. 그들에게 복잡한 의미와 부담을 지울 필요는 없다. 맨 처음 사람의 집에 옮겨 심어졌던 꽃처럼 이름도 없고 의미도 없이 다만 사랑스럽고 아름다운 꽃이면 꽃의 사명은 다한 것이다. 아무 성깔도 없고 도도함도 없이 정지용의 시에 나온 것처럼 ‘사철 맨발인 아내가’ 호미 들고 서서 허리 펴며 웃는 모습 같은 수수한 꽃의 웃음을 그려 본다. 머언 먼 젊음의 뒤안길에서/ 이제는 돌아와 거울 앞에선/ 내 누님 같은 꽃(국화 옆에서, 서정주) 내가 그의 이름을 불러주기 전에는 그는 하나의 몸짓에 지나지 않았다(꽃, 김춘추) 시인들의 노래에 비친 것처럼 꽃은 다만 수수하고 정갈한 몸짓인 것이다. 아무리 귀부인을 연상시키는 꽃이라도 맑은 아침이슬 이고 피어 있는 모습은 인간들이 부여하는 영화를 받아들이지 않을 표정이다. 꽃의 발돋움은 항일성의 극치이다. 꽃잎 하나씩 바람에 날려 보내며 짧은 생애를 마감하는 자세도 허황한 이름들과는 무관하다. 꽃은 엘리자베스도 마가렡도 되고 싶지 않다. 저도 모르게 아름답고 향기로운 꽃으로 그냥 우리들 곁에서 피었다 가고 싶은 미소인 것이다. 사람이 하느님의 모상(模像) 이듯이 꽃은 분명히 천상의 어떤 음악이 지상에서 빚어지는 흐름이거나 천사의 춤사위일 것으로 느껴진다.

강 갑 중 순천 출생(1938), 북미주 이민생활수기 공모 대상(2003), 재외동포 문학상 수필 대상(2005), 뉴욕문학 신인상 소설부문 당선(2010), 미동부한인문인협회 회원 fisherman0213@gmail.com

116

| 뉴욕문학 제31집


삼촌의 귀향 길 김 경 희

할머니와 어머니에게 큰절을 하고 가방 하나만 들고 집을 나섰다. 철민은 오래 전 가족을 두고 집을 떠난 아버지를 찾아 나서기로 한 결심을 18세 생일을 지나자 더는 미룰 수가 없었다. 할머니에게 “꼭 아버지를 찾아 모시고 오겠으니 그때까지 건강히 계십시 오. 아버지와 제가 없는 집에서 어머니에게 힘이 되어주셔야 할 사람은 할머니뿐이니까요” 당부를 하자 할머니는 금방, 낼 모래쯤, 당신의 아들을 볼 수 있을 듯싶어 손자를 떠나보내는 슬픔 뒤에 숨겨진 기대로 눈물을 훔치신다. 어머니는 할머니와 달리 어쩌면 이번의 떠남이 영원한 이별이 아닐까 싶어 눈물도 흘릴 수 없이 아들의 손만을 잡고 그의 얼굴에서 눈을 떼지 못하시고 한참을 계시다가 “혼자 오래 타향살이하신 아버지에게 정중히 대하고 네 속에 맺힌 불만을 잘 다듬고 효도 해드리길 바란다.” “아버지가 너를 보시면 얼마나 자랑스러워 하시겠느냐?” 하신다. 큰 여동생은 학생이고 유복녀로 태어난 작은 여동생은 이제 겨우 열 살이 되었다. 조선인으로 태어나 이제는 일본인이 된 그는 만주 어딘가에서 어머니께 두 번 보낸 아버지의 편지 봉투만을 들고 먼 길을 떠났다.

철민의 아버지는 일제 강점기에 미두로 돈을 벌어 호남평야의 갑부가 된 아버지의 외아들로 태어나 일을 해서 돈을 벌 필요 없이 돈을 쓰는 일만에 열중한 사람이었으나 고종 황제의 붕어로 온 나라가 술렁거리자 갑자기 큰 세상으로 나가야 한다며 커다란 부분의 전답을 처분한 돈을

수필 ∙ 김경희 |

117


들고 만주 어디론가로 떠났다. 독립 운동가들에게 돈으로 도움을 주겠다는 말을 흘리기도 했지만 가족은 그의 말을 믿지 않았다. 그는 무슨 명확한 반일사상이 있거나 자기의 사상을 위해 돈을 쓸 그런 위인이 아니었다.

노모와 아들, 딸 둘을 아내 몫으로 남겨두고 그냥 그렇게 떠났다. 철민은 버젓이 아버지가 살아 계신데도 홀어머니 밑에서 아버지에 대한 그리움과, 그보다 더한 원망이 뭉친 힘든 유년기를 보냈다.

어머니는 선비 집안에서 태어나 갑부 집안의 외며느리로 시집을 오셔서 두 살 아래인 남편을 업어서 잠을 재우며 젊은 세월을 지내셨다. 착한 시어머니는 이미 뒷방 노인으로 대우를 받으셨고 두 명의 첩 시어머니 중 한 분이 곡간의 열쇠를 장악한 집안의 실세였지만 시아버지는 지체있는 집안에서 자란 며느리를 귀하게 여겨 주시고 말많은 첩들로부터 편을 들고 보호해 주셨다. 어머니는 가족을 두고 중국 어디론가 떠난 남편을 원망하기 보다는 도리어 그의 넓은 세상에 대한 그리움을 ‘남자라면’ 하는 마음으로 존경하셨다. 철민은 아주 어려서부터 두 명의 첩으로부터 밀려나 뒷방 노인이 되신 할머니와 또 아버지의 출가로 독신 생활을 하시는 어머니 밑에서 자라며 빈껍데기 뿐인 의미없는 가정은 사랑할 수 없는 그런 곳 이었다. 다만 생각만 하면 가슴이 아릿한 어머니에 대한 사랑은 지극했으나 자신은 절대로 결혼은 하지않고 가정을 가지지 않겠노라 결심을 굳히며 자랐다.

막상 집을 떠나기로 결심을 하자 아버지 대신 섬기고 살아야 할 할머니와 어머니에 대한 가슴 아픈 죄스러움으로 잠 못 이루는 밤을 지나며 자신의

118

| 뉴욕문학 제31집


떠남이 아버지를 찾으러 떠난다는 명목 보다는 더 큰 세상에 대한 그리움이 더 깊은 이유임을 깨닫자 자신의 떠남은 그렇게 깊이 원망 했던 아버지의 떠남과 다를 게 없음을 깨닫고 놀란다. 자신에게 주어진 어깨에 눌려 있던 짐이 한꺼번에 걷혀 버리고 표현 할 수 없는 자유로움과 홀가분함이 그의 죄의식을 더 슬프게 했다.

청년이 큰 세상을 그리며 커다란 포부를 위해 첫발을 떼어 놓는 기회는 희망에 벅차는 일인데 철민은 아버지의 발자국을 따른다는 무거움이 희망보 다는 어머니에 대한 죄스러움으로 혼자서 눈물을 흘리며 인천항으로 향했다.

중국으로 향하는 배를 타고 만주에 도착한 그는 자신이 몰랐던 방대한 세상에 놀라서 어머니에 대한 죄의식보다는 큰 세상으로 나오기를 잘 했다는 생각으로 아버지를 찾는데 열중했다.

다행이 아버지에게서 온 편지의 주소로 아버지의 집은 그리 어렵지 않게 찾을 수 있었다. 오랜만에 만난 아버지는 타향살이를 오래한 사람처럼 보이지 않고 돈많은 중국인으로 잘 어울리는 모습으로 신수가 좋아 보였다. 물론 집을 떠날 때 가지고 온 돈도 많았지만 사업이 잘 되어 중국 여자를 둘이나 데리고 살고 있었지만 공식적으로 결혼은 하지 않고 중국 여자들 에게서 난 2남 1녀는 철민의 어머니 호적에 넣어 사생아로 만들지 않겠다는 배려까지 해두고 살고 있었다. 아버지의 사업이 잘되어 상해로 이사를 하자 철민도 함께 중국인으로 국적을 바꾸고 아버지를 따랐다. 모든게 풍성한 생활을 경험하면서 그는 집에서 고생하시는 어머니 생각에 잠못 이루는 밤이 많았다. 상해로 이사한 지 얼마 되지 않아서 해방이 되었고 중국에 살던 많은

수필 ∙ 김경희 |

119


한국인들이 조국으로 돌아가는 사람들이 많아지자 철민은 아버지께 귀국의 의사를 물었으나 강경한 반대로 벽에 부딪쳤다. 아버지는 “해방 후 한국은 정치, 경제 상황이 혼란 상태가 될 것이고 전쟁도 가능한 일이다.”하며 화를 내고 “남자가 가족에 대한 정으로 연연 하면 절대 큰 일을 할 수 없다.”로 일축해 버렸다. 한 동안 부자는 말도 안하는 사이로 지내면서 철민의 건강이 나빠지고 어머니에 대한 그리움으로 괴로워했다. 아버지는 대안을 제기했다. 귀국이 아닌 방문이 어떠하겠느냐는 의견이었 다. 부자는 중국의 커다란 상선을 타고 인천항에 도착해 서울의 일류 호텔에 숙소를 정하고 가족을 데려다 일주일을 보내게 된다. 아버지는 거의 중국인처럼 행동을 하고 어머니에게 다정한 말, 행동도 별로없이 사온 선물들을 널어놓고 자랑하시느라 바빴다. 큰 여동생은 결혼해 남편과 함께 만주 봉천에서 학교를 세우고 문맹 퇴치에 노력한다 했고 유복녀인 작은 여동생도 결혼을 해서 남편과 함께 와서 처음으로 부녀 상봉을 하게 된다. 유복녀의 딸인 나는 그 때 겨우 네 살이었지만 그 만남의 기억을 아주 또렷이 기억한다. 내 몫으로 사오신 자주색 스웨이드 코트를 입혀 주시며 “요런 작은 놈이 뭐가 이쁘다고 이런 좋은 코트를 사왔을까” 혼잣말을 하시면서 웃으시고 내 머리를 오래 쓰다듬어 주셨다. 그 훌륭한 코트는 오래입고 키가 크자 엄마가 반코트로 만들어 주셨다. 그때 내 또래 중 그런 코트를 입은 애는 나 혼자였다. 내 아버지는 한국은행의 전신인 금융조합에 다니시며 장모와 할머니 에게 사위라기보다는 손자와 아들 노릇을 하며 노인 두 분을 극진히 모시며 살고 있었다. 삼촌은 아버지를 지극히 대했고 그 둘은 처남 매부라기보다 친형제로 정을 나누어 할머니는 기뻐하셨지만 할아버지는 아버지에게서 절을 받으신

120

| 뉴욕문학 제31집


후 뒤돌아서며 할머니께 “그저 제 발등에 불은 끄고 살만한 위인이구려”하셨 다. 어린 내게도 그 말은 그리 큰 칭찬이 아님을 짐작할 수 있었다. 삼촌은 “아버지, 김서방이 할머니와 어머니를 가까이서 모시지 않았으면 그분들이 어찌 매일 매일을 지내셨겠는지 생각이나 해보셨나요?” 드물게 큰소리로 대답하며 제부에게 미안함을 비췄다. 삼촌이 가장 불효로 생각하고 어머니께 죄스러움으로 혼자 가슴 아파한 건 어머니에게 걸맞는 며느리와 손자를 안겨 드리지 못한 일이었다. 어머니와 할머니를 만나고 온 뒤 삼촌은 아버지와 얽힌 끈이 점점 풀어짐을 의식했다.

한국을 다녀온 후 철민은 홍콩으로 옮겨 아버지와 작별을 하기로 결심을 한다. 아버지와 같이 살며 그의 중국인 부인들과의 마찰도 심헸지만 아버지의 가족에 대한 무관심에 심한 회의로 그와의 결별을 한다. 홍콩은 중국인들이 대부분인 중국땅이었지만 영국의 식민지여서 철민은 다시 국적을 바꾸어 영국인 시민이 된다.

홍콩으로 이사한지 얼마 되지 않아 한국에 6.25 동란이 났다. 철민은 두동강이 난 나라를, 어느 쪽을 내 조국이라 할 수도 없는 이젠 완전히 타국인이 되어 버린 형편을 통탄 할 수밖에 없었다. 얼마 후 할아버지는 사업이 망하고 건강이 나빠지자 결국 같이 살던 중국 여자들 보다는 아들에게로 와서 생의 마지막을 보내다 가셨다. 어머니에게는 아버지의 부음을 차마 전하지 못했다. 어머니의 가느다란 희망을 그냥 남겨 드리고 싶어서였다. 6.25 후 철민은 영국인으로 이북에서 인삼을 사다 홍콩 시장에 파는 사업에 주력을 했다. 사업가로 그는 가장 이윤이 많은 결정을 했으나 그 결정으로 조국 땅을 다시 밟을 수 없게 될 줄 은 상상도 하지 못했다. 수필 ∙ 김경희 |

121


항상 어느 날인가 고향의 집, 어머니가 계신 집으로 돌아가리라는 희망 은 이제 깨어지고 말았다. 이북과의 인삼 거래한 성공적인 사업을 알고 이남 정부에서 무슨 사상적 이유인 줄 알고 비자 발급을 거절했기 때문이었다. 언젠가 어머니에게 쓴 편지의 한 구절이 생각이 났다. “어머니, 오늘처럼 더운 여름 날엔 동네 가운데에 있던 우물에서 길어온 찬물에 보리밥을 말아서 풋고추에 된장을 찍어 먹으면 참 맛이 있지요.” 그는 이제 다시는 어머니가 계시는, 우물이 있는 동네로 돌아갈 수 없게 된 완전한 이방인이 되어 버렸다. 물론, 그 옛날에 있던 동네의 우물이 있던 곳에는 높이 지은 아파트 단지들이 빼곡이 서있음을 그는 상상도 할 수 없었으리라. 네 살 때 딱 한번 밖에 만난 적이 없는 내 외삼촌은 조선인으로 태어나 일본인으로 집을 떠나고 중국인으로 중년을 살다가 말년을 영국인으로 살며 이제 다시는 어머니가 계신 집으로 돌아 갈 수 있는 길이 영원히 막혀 버렸음을 알게 된다.

122

| 뉴욕문학 제31집


이름도 성도 없는 음식 김 경 희

유난히 짙은 잿빛 하늘은 무겁게 떠 있는 구름에게 비를 조금 부어 내리라 할까 아님 살랑살랑 흰 눈을 뿌리라 할까 고민 하느라 잔뜩 찌푸린 그런 아침이었다. 할머니는 이런 하늘을 ‘며칠 굶은 시어머니 얼굴’이라 하셨을 거다. 버터와 치즈는 들어 있는 깡통도 비슷하고 열어 보면 색깔도 비슷했다. 버터는 더운밥에 한 숟갈 넣고 간장 몇 방울, 계란 하나넣고 비비면 훌륭한 한 끼가 되었다. 치즈는 더 미끌거리고 맛이 진했고, 먹고 나면 금방 화장실로 향해야 하는 것이 문제였다. 생소한 음식 들 이었다. 전쟁 후 미국 사람들이 보내준 구호 식품 중에 우리에게 가장 도움이 된 것은 밀가루였다. 보리 고개가 힘들어 굶는 사람이 많던 시절, 이승만 대통령이 “한국 사람들은 왜 꼭 밥을 먹어야하느냐. 빵을 먹으면 될 걸.” 했대서, 세상물정 모르는 ‘국부’라고 빈축을 사던 시절, 우리는 빵을 구어 먹는 일상을 아직 모를 때였다. 할머니는 멸치를 넣고 칼국수를 끓이신 뒤에 애호박을 조금 살살 볶아서 새우젓과 참기름을 몇 방울 쳐서 국수 위에 얹어 주셨다. 유난히 입이 짧았던 내가 국수 틈에 숨어 있는 멸치를 골라내는 동안 불어서 흐느적 거리는 국수는 맛이 없어져 호박만 먹곤 했는데, 할머니는 “멸치도 생선과 같은 담백 질이니 먹어 둬라.” 하셨다. 밀가루가 바닥이 나면 미국 사람들이 가축 먹이로 썼다는 호밀 가루로 걸죽하게 감자, 고구마, 호박을 넣고 끓여 주셨다. 전쟁 전엔 보지도 먹어 보지도 못한 음식을 할머니가 ‘이름도 성도 없는

수필 ∙ 김경희 |

123


음식’이라 하시며 만들어 주시면 다른 식구들은 열심히 먹고 허기를 채웠지 만, 호밀 가루 냄새가 코 가까이 오면 역해서 먹지 못하는 나에게 할머니는 단 맛이 나는 고구마를 몇 점 더 넣어 주셨다. 코끝에서 통 호밀 가루 냄새를 맡으며 할머니와 실랑이를 하다 눈을 뜨니 꿈이었다. “경희야” 조용히 부르시는 할머니의 음성과 더운 입김이 귀를 간지르신다. 미국 온지 여러 해가 된 뒤 극락으로 가실 때 임종을 못한 죄책감 때문에 슬퍼 하는 나를 위해 가끔씩 바다 건너 산 너머 할머니가 꿈에 찾아오신다. 이제는 한국이 밥을 굶는 사람이 없는 세상이 되었다. 으리으리한 호텔 의 뷔페 식당엔 여러 나라의 음식으로 가득 하고 두집 건너면 고기를 먹을 수 있는 음식점들이 즐비하다. 한국에 다니러 가서 제일 맛있게 먹은 음식은 친구가 데리고 가준 자그마한 식당의 깡 보리밥과 열무김치이다. 아무리 몸에 좋은 건강식이라 해도 나는 아직도 그 때의 냄새가 되살아나서 통밀 빵이나 통밀 가루로 만든 파스타를 먹을 수 없다. 미국 사람들이 팬데믹으로 직장을 잃고 가족의 생계가 어려워져 끝이 보이지 않는 꼬불 꼬불 줄을 서서 자선단체에서 나누어 주는 음식을 배급 받으려 오랜 시간 을 기다리는 광경을 본다. 그들 중의 부모나 조부모들 중엔 한국에 전쟁이 났다고 한국이 어디에 있는지 지도 에서 찾을 수도 없으면서 우리에게 ‘이름도 성도 없는 음식’을 을 먹게 해 준 사람들이 있지 않을까 싶다.

김 경 희 고려대학교 의대 졸업(1967년) 소아 신장학 전문의(미국) Attending physician, 임상교수 2020 '문학시대' 123회 신인 문학상 당선

124

| 뉴욕문학 제31집


달걀과 모성애 김 기 훈

해방된 지 1년이 되던 해, 내 나이 13세의 시골 소년으로 아직 철도 들지 않았고 아무런 세정도 잘 모르는 때라 지금부터 75년 전이다. 일제시대 식민지 정책으로 천황이 신이라고 일본선생이 주장했고 우리 이름도 창씨개 명 하에서 일본식으로 바꾸었다. 해방 전에는 신사참배를 강요당했었다. (우리가 살던 도시의 신사 바로 옆에 급우가 살았는데 매일 담임 일본선생에게 보고를 하여 불참한 학생은 벌을 받았다. 하기야 해방이 되자마자 이 학생과 가족은 재빨리 다른 곳으로 이사 가버렸다.) 어쩌다가 우리말을 했을 경우 몹시 매도 맞았었다. 강제로 배운 일본말이라 소위 곱셈(구구단)과 숫자 세는 것은 상금도 일어가 편리한 정도이다. 갑자기 해방과 자유라는 두 단어를 소화하는데 시간이 걸렸다. 생활양식도 식민지 치하에서 과도기를 겪고 있는 고국의 실 정도 질서가 서지 않았고 어려운 고비를 넘겨야 했었다. 당시에 우리는 큰 도시에서 좀 떨어진 곳에 살고 있었다. 넉넉한 살림은 아니지만 그럭저럭 견디었다. 하루는 가친이 집 옆에 간소한 닭장을 지으시고 수탉과 암탉을 각각 한 마리씩 사오셨다. 낮에는 과히 넓지 않은 마당을 자유롭게 다니고 밤에는 잠자리로 들어가서 새벽이 되면 시간을 알려주는 수탉의 역할도 잘 하였다. 이윽고 암탉이 성장하여 알을 낳기 시작하였다. 나의 임무는 매일 아침 닭장 앞에 가서 알이 새로 났으면 그것을 어머니께 갖다 드렸다. 2개를 모아 어머니는 맛있는 계란찜을 요리하여 다섯 식구가 추가된 그 날의 반찬을 맛있게 먹었다. 그 후 어머니는 요리 대신 여섯 개를 모아 암탉이 품어 병아리의 부화를 기다렸었다. 여기서도 창조의 신비를 배우게 된다. 달걀의 구성은 누구나 잘 알 듯,

수필 ∙ 김기훈 |

125


흰자 속에 노른자가 있고 삶은 당면을 닮은 낭대(chalaza)가 양쪽에 노른자를 지탱한다. 덕분에 가장 중요한 배반(胚盤)은 누가 어떻게 놓아도 항상 위를 향하여 암탉이 알을 품으면 배반이 가장 가까운 곳에 자리 잡게 해준다. 전기로 인공 부화작용도 같은 혜택으로 병아리가 된다. 약 20일을 수고한 암탉의 인내로 귀여운 병아리가 껍질을 깨고 탄생한다. 물론 무정란은 부화되지 않는다. 많은 한국 병아리 감별사가 미국과 독일 등 해외에 파견되어 수컷과 암컷을 구분하는데 공헌이 크다. (연후에 수컷 병아리는 처분된다니 땅 위에서의 삶이 너무나 짧았고 가엾다.) 미국에서는 부활절에 달걀을 염색하여 숨겨둔 것을 어린 이들이 보물찾기 경기도 있다. (지금은 플라스틱 달걀을 사용) 부활의 상징으로 병아리를 다루기도 한다. 덕분에 우리집 닭 가족이 여섯이나 늘어나서 큰 자산이 된 느낌이었다. 병아리들은 귀여운 소리와 함께 암탉을 이리저리 따라다니면서 땅에 있는 먹거리를 찾는 대로 먹었다. 물을 마시는 모양새는 언제나 한 모금씩 입에 넣어 하늘을 우러러보면서 감사하고 마시는 것만 같다. 우리에게 주는 무언의 교훈이다. 병아리들이 자라나는 과정을 지켜보는 것도 한 가지 낙이 되었다. 전에도 소개했지만 일본에서 어느 가난한 농부가 우리처럼 병아리 여섯 마리를 키우던 중 불행히도 집에 불이 나서 닭장까지 몽땅 타버렸다. 실망이 된 농부 부부는 탄 곳을 둘러보다가 닭장이 있던 곳에 왔을 때 새까맣게 타 죽은 암탉을 보고 측은한 마음으로 밀어 보았다. 어미의 품속에 여섯 마리 병아리가 털 하나도 상하지 않고 고스란히 살아있는 것을 발견 헸다. 눈시울이 뜨거워졌고 동물계에서도 문자 그대로 병아리를 사수한 모성애는 다르지 않다는 사실을 확인했다. 여기서 농부 부부는 감동과 용기를 얻어 더욱 분발하고 열심히 일하여 재건했다는 실화가 있다. 병아리도 120일이 지나더니 장성하여 알을 낳기 시작하였다. 전과 같이 아침에 일어나면 나의 임무는 닭장을 방문하는 일이다. 알을 봤을 때 새로운 기쁨이 솟아났고 식 구가 즐겨 먹을 수 있는 계란찜의 횟수도 늘어났었다. 이튿날 닭장에서 가져온 유일한 알은 아직도 암탉의 체온이 남아있었고 껍질에 약간의 피가 묻어 있었다. 철없는 시골 소년은 그저 그러한가 보다 126

| 뉴욕문학 제31집


하고 어머니께 드렸다. 그 알을 손에 쥐신 어머니는 식사 준비를 멈추시고 눈물을 흘리시면서 당장에 닭장으로 달려가셨다. 어느 닭인지는 모르지만 암탉을 향해 “얼마나 고생했느냐? 산통을 겪었으니… 도와주지도 못하고…” 피 묻은 알을 품에 껴안으시고 마치 친 딸을 대하듯 한참이나 동정과 위로를 아끼지 않으셨다. 어머니는 그날 뚜껑이 있는 유리병에 피 묻은 알을 넣어두셨다. 아버지도 그것을 보시고 동감이 되신 듯 아무 말이 없었다. 출생은 이토록 인간이나 포유동물에게는 진통과 해산의 고통이 수반되는 사실로 모성애를 절실히 이해하게 된다. 딸이 첫 아기를 낳는 날 더더욱 실감하게 된다. 훗날 나도 철이 들었을 때 당시에는 알지 못했던 어머니의 반응을 비로소 깨닫게 되었다. 병아리를 자기 품에 안고 화재 속에서도 사수한 일본의 암탉이나 우리집에서 자란 암탉이 낳은 첫 알에 왜 피가 묻었었는지를! "이것은 나의 오래된 지론이지만 각자의 생일이야 말로 진정한 어머니 날이다."

수필 ∙ 김기훈 |

127


고 아 김 기 훈 친구가 영등포에서 한 보육원의 책임자로 있기에 1980년대의 어느 해 고국방문 중 만나러 갔었다. 유치원 나이의 꼬마를 위시하여 고3까지 약 80명의 대가족이었다. 나에게 가까이 와서 바라보던 어린이를 무심코 껴안아 주었다. 직후에 다른 꼬마들이 줄을 지어 저마다 껴안아 달라고 기다리고 있지 않는가! 사랑에 굶주린 어린 생명들. 매일 주로 먹는 것이 수제비라고 들었다. 국가의 보조가 있지만 넉넉하지는 않았다. 그래도 숙식할 곳이 있으니 그나마 다행이다. 책임을 맡은 원장은 매일 동분서주하여 대 가족의 생계를 유지하기 위해 최선을 다하고 있었다. 어린이들도 이해를 하고 원장을 모두가 “아버지”라고 불렀다. 80명 중 고3을 겪고 졸업을 하게 되면 보육원도 “졸업” 하여 독립된 앞날을 스스로가 개척하는 제도였다. 미국에 와서 내가 소속이 된 미국교회에 보육원의 실정을 보고했더니 다음 해 교우 들이 성금을 모아 한국방문 때 전해달라는 부탁이었다. 얼마나 감사한지…. 그해 8월에 다시 고국에 갔을 때 역시 어린이들을 만나러 갔다. 입국 시에 외환은행에서 달러를 환전한 것이 넉넉한 액수가 되었다. 우선 원장이 빌려온 봉고차[Van]로 주방 일을 맡은 아줌마 두 분을 합쳐서 모두 네 사람이 같이 아이들에게 소고기 국을 먹여 주기로 하여 쇼핑하러 갔다. 소위 수입고기가 싸다고 고기점도 그런 곳을 찾아 갔다. 돌아오는 차 속에서는 상당히 많은 채소 중 파 냄새가 강했다. 저녁시간은 좀 빠른 편이었다. 어린이들이 모두 큰 기대로 참고 기다리는 중 소고기국 향기가 건물 속에 가득 차게 되었다. 감사기도를 하고 식사를 시작했는데 불과 5분 만에 후딱 먹어 치웠다. 옆에 있는 남학생에게 소고기국을 자주 먹느냐고

128

| 뉴욕문학 제31집


물었더니 8월인데 오늘이 금년 들어 두 번째라고! 2월에 다른 종류의 고깃국 을 먹은 것이 처음이라고 했다. 식후 고3 남학생 다섯 명을 불러 80명 분 나이에 맞는 책가방과 연필, 펜 등 기초적 문방구를 사오라고 부탁했다. 후식으로 먹을 수 있는 과자도 두루 나눠줄 수 있는 분량을! 모두가 콧노래를 부르면서 나갔다. 뒷모습이 정말 믿음직하였다. 각자가 16개씩 무거운 책가방을 등에 지고 손에는 과자 봉지와 함께 돌아왔을 적에 어린이 모두가 땀을 흘리면서 수고한 형, 오빠들에게 감사했었다. 나는 중간에서 심부름을 한 것밖에 없는데 여름에 찾아온 산타크로스가 되었다. 그토록 기뻐하는 어린이들을 본적이 없다. 여름철이라 아직 해가 빠지지 않았었고 잔고도 좀 있기에 추가로 원에서 가장 필요한 것이 무엇이냐 물었더니 다수의 의견이 자전거였다. 남은 돈은 자전거 한 대 값은 지불할 액수였다. 역시 같은 다섯 명에게 두 번째 심부름을 부탁했지만 싫은 표정은 전연 없고 전보다 더 기쁜 반응이다. 빙그레 얼굴이 인상적이었다. 번쩍거리는 새 자전거를 사서 돌아왔을 때 어린이들은 거의 모두 마당에 모여 있었다. 큰 학생들은 교대로 타보 고 어린 아이는 형들이 자전거를 잡아 주었다. 즐거운 분위기에 미국교회의 교우들도 좋아하겠고 나도 보람을 느꼈다. 보육원을 떠났을 때 오랫동안 많은 어린이들이 손을 흔들면서 나를 환송해 주었다. 미국에 도착 후 박신자(가명)라는 고3의 학생대표가 편지를 보내왔다. “고마운 아저씨! 모든 것을 어떻게 감사해야 될지 모르겠습니다. 우리를 위해 최선을 다해 주시고 귀한 식사와 선물까지 전해주신 것 우리 모두가 평생 잊지 않겠습니다.(중략) 한 가지 여쭐 말씀이 있습니다. 이것은 비밀입니 다만 아저씨가 떠나실 때 저희들에게 사주신 새 자전거는 다음 날 없어졌어요. 듣자 하니 원장님께서 자전거점에 도로 갖다 주시고 돈을 받으신 모양 입니다.” 그로부터 거의 40년이 지났다. 2020년에 졸저 “즐거운 인생, 보람 있는 삶”을 출간해서 상기 박신자 목사에게도 한 권 보내주었다. 그녀는 고3 수필 ∙ 김기훈 |

129


졸업 후 보육원에서 독립하여 고생을 계속했지만 굳은 결심으로 신학교를 졸업하여 안수받고 목사가 되었다. 2021년을 기준으로 한다면 가친이 소천하신 것은 40년 전, 어머니는 8년이 되었기에 내가 쓴 글 중에 어머니의 소천에 즈음하여 “나이 80에 나는 고아가 되었다”라고 양친을 모두 여의게 되어 무심코 표현했었다. 그런데 평생 고아로 자란 박 목사의 반응은 의외였다. “글을 읽고 그렇게도 아저씨를 부러워한 적이 없습니다. 평생토록 어버이 의 사랑을 받아보지 못했기 때문에 고아의 심정을 잘 모르실 겁니다.”

김 기 훈 서울대학교 상과대학 졸업. 1957 도미. 비브리칼 (현 뉴욕) 신학대학원 졸업, 클라크 대 (경제학 석사), 커네티컷 주립대 대학원 졸엄 (경제학 박사). 세트럴 커네티컷 주립대학교 경제학 교수(1967-2009). 동 대학 명예교수. 중앙일보 (뉴욕), 한국일보(뉴욕), 월간 인포코리언 (전 미주생활) 칼럼니스트 (1997-2013). 저서: “물, 불, 돌과 우리의 신앙”, “인생은 비빔밥, 맛있게 드세요”, “인생은 냉면, 맛있게 드세요.” 감수 및 집필 한 편: “Inside Korea: Discovering the People and Culture”(한영대 조). 학술 논문 다수. 미국과 영국 발행의 “세계저명 인사록”에 수록 됨. 미동부 한인문인협회 회원. kimk@ccsu.edu

130

| 뉴욕문학 제31집


그녀의 벚꽃 동산 김 미 연

"일초 어쩌면 오초나 됐을까요? 커튼 사이로 빛이 너울거리면서 정신이 몽롱해졌어요. 다음 순간 내 몸이 붕 뜨는 거예요." 은은한 조명등 아래 실내를 가득 메운 얼굴들이 나를 보고 있다. 진지한 침묵이 감돈다. 앞줄에 앉은 두어 명이 고개를 끄덕인다.

1970년대 말 잡초가 무성하던 강남땅에 아파트 빌딩이 들어섰다. 발 빠른 어머니 덕에 우리도 뜨거운 물 나오는 선망의 부촌으로 이사하였다. 버스 노선이 생기고 쥰이라는 카페가 상가 단지에 들어왔다. 흰색으로 세련된 간판을 한, 커피 냄새에 빨려 들어갈 것 같은 카페의 2층에 어느 날 침례 교회가 생겼다. 고백하자면 나는 친구들을 교회로 끌어들인 열성 침례교인이 되었다. 보라색으로 쓴 초대장을 대학교 학과로 발송하면, 친구들은 자기의 친구까지 달고 나의 교회에 나타났다. 지난 일요일, 간증의 밤에 나는 앞에 나가서 마이크를 잡았다. 대학만 붙여주면 교회에 다닌다고, 재수생의 기도가 응답 을 받았다고, 그 오후에 침대에 누워있던 나의 몸이 공중에붕 들렸다고... 수많은 교인 앞에서 선언했으니, 그것은 내게 일어난 명백한 기적이 되었고, 나는 내 말에 빨려 들어갔다.

나는 성녀라고 불리는 노처녀 집사님 미스 안의 관리 아래 들어갔다. 침례 안수를 받기 위한 과정이다. 비대칭으로 묘한 미소를 짓는 집사님이 예수님의 부활을 믿느냐고 물었고, 나는 스스럼없이 믿는다고 답했다. 그 시절, 내가 전도한 친구 중에 연소도 있다. 대전 신학교에서 올라온, 형제자매

수필 ∙ 김미연 |

131


의 사랑을 외치는 두 명의 학생 전도사들이 청년회를 맡았다. 그들은 미팅에 서 보았던 머슴애들보다는 의젓했다. 장대키에 연탄같이 까만 얼굴을 한 전도사는 뽀얀 피부를 가진 내 친구 연소에게 관심을 가졌다. 나와 나란히 서면 내려다 보이는 또 다른 갈색머리 전도사는 자신의 키가 침해받지 않는 꼬마 오경이, 역시 내 친구와 비밀리에 만나는 사이로 발전하고 있었다. 그 당시 나는 아래층 카페 쥰에서 전도사들과 교회 행사를 의논하며 자주 만났는데, 엄숙한 얼굴을 한 그들이 내 친구들에게 작업하고 있을 줄은 몰랐다. 나는 목사 사모를 잠시 고려해 볼 정도로 크리스천이었지만, 그렇다고 친구들에게 질투를 느끼지는 않았다. 비올라를 전공하는 소향이를 부추겨서 현악 사중주로 '청년회의 밤'을 성공적으로 마친 내가 아니고, 왜 가만히 앉아 웃기만 하는 내 친구들일까 하는 의문은 잠시 가졌었다. 목사가 될 전도사들은 조용하면서도 씩씩한 사모가 필요했을 테니까. 매사에 초연한 연소가 다른 철부지들과 달라 보였을 것이다.

푸른 초원의 온순한 양 떼와 같던 대학 4년은 훌쩍 지나갔다. 나는 미국으로 오면서 연소와 작별했다. 연소는 지구에서 달을 보는 사내아이를 그린 파스텔 화를 선물로 주었다. 등을 보이고 앉은 소년이 연소인가? 나를 보고 싶어 할 건가? 표정이 보이지 않아서 갑갑했다. 당시 화실에서 그림을 가르치던 연소가 남자를 만났다. 대학교 선배라는 그는 요즘 여자 같지 않은 연소의 순수함에 반했다고 한다. "대우에 다니고 있어" 그녀의 목소리에 힘이 들어간다. 홍대 앞 화실의 퇴근 시간에 맞추어 와서, 곰살궂게 챙겨주는 것도 그렇고, 연소의 마음에 드는 눈치였다. 27살이면 노처녀 딱지가 붙던 시절이라서, 그녀도 미적거릴 여유는 없었다.

결혼한 연소는 강남의 아파트에 신혼살림을 차렸다. 아이들이 생기자 무시무시한 교육열이 싫다며 수원 근처로 옮겼고, 나중에는 평수를 늘려서

132

| 뉴욕문학 제31집


판교로 이사했다. 한 번도 힘들다는 말은 하지 않았다. 다만 내가 눈치챈 것은 그녀의 일상이 대부분 기도라는 것, 버스 타고 전철 타고 기도원에 다닌다는 것 정도였다. 그녀와 카톡도 전화도 잘 안되었다. 저녁 예배, 새벽 예배, 셀 모임 등으로 바쁘다고 한다. 내가 미국에 올 때 받았던 그림의 소년처럼 그녀의 등짝만이 보였다. 전화를 끊고 나면, 먹다 만 밥이 바닥에 남은 듯 미진했다. 뜨거운 물을 붓고 그녀의 조각난 이야기를 불려서 숭늉으 로 만들어 보곤 했다.

시어머니를 모시는 조건으로 집을 사내라는 시누들과 싸우지도 않았고, 시누들이 노인네를 모신 몇 달을 빼고는, 날아다니는 새털과 같은 18년 동안 침대를 보존하는 노인네를 모셨다. 우르르 몰려와서 차려놓은 밥상 앞에서 놀다 가기가 일수인 시누들은 그렇다 치더라도, 연소가 디스크 수술을 하고 왔을 때도 모른 척한 남편은? 홀어머니 앞에서 마누라를 아는 척하는 것이 낯뜨겁다는 남편에게 따진 적도 없는 듯했다. 연소는 핸드백 욕심은 한두 번 보인 적이 있다. 대기업 간부인 남편을 쫓아서 한 달에 두어 번 외출했다. 밥과 술이 돌아가는 자리에 남편들의 넥타이핀처럼 고정되어 앉은 부인들은 말은 아끼면서도, 훑어보는 눈총은 후하다고 한다. 그 자리에 들고 나갈 백 때문에 골치를 앓았다. "흥, 별볼일 없는 남자들은 자기끼리 만나고, 잘 나간다는 남자들은 꼭 부인들을 데리고 만나지." 그녀답지 않은 냉소가 튀어나왔다. 연소의 남편이 명예퇴직하고, 사업을 새로 시작하자, 경제적으로 호황을 누리던 그녀가 휘청하는 시기를 맞았다. "하느님과 같이 걸었어. 돌아보니 다리가 네 개가 아니고 둘이지 뭐야." "왠지 알아? 하느님이 나를 업고 걸었기 때문이야."

연소와 같이 재수하던 시절이다. 둘은 광화문 학원로를 벗어나고 있다. 혼자라면 집으로 갔겠지만, 오늘은 바람을 쏘이기로 했다. 명동 성당 골목으

수필 ∙ 김미연 |

133


로 들어간다. 나는 연소를 따라서 칼국수 집, 찹쌀 도넛 가게를 골고루 들린다. 충무로로 나오니, 말죽거리 가는 버스가 있다. "이거 타면 돼, 우리 집 방향이야." 버스에 오르려는 나를 연소는 잡아끈다. "여기서 타면 반대로 가. 망우리 쪽이란 말이야." 다시 그녀를 따라서 육교를 건너고 반대편 정거장으로 간다. 나를 보내고 나서 연소는 자기 집으로 간다. 그 시절 길 찾는 것은 그녀 몫이었고, 나는 연소만 따라다니면 되었다. 길을 잘 모르는 나는 미국에 온 후 그 증상이 더욱 심해졌다. 같이 가던 친구가 없어지니, 교회 가는 길이 어려웠다. 나는 옆길로 들어가고 골목에서 막히는 데, 그 반대로, 연소는 교회 속으로 쏘옥 들어가 나오지 않았다.

오래 전에 몸이 들리는 경험을 했지만, 그 사건은 시간이 지나면서 효력이 떨어졌다. 내가 대학 시절 전도한 친구 몇 명은 교회 깊숙이 걸어 들어가서 신을 만났는지도 모른다. 그들은 교회에 냉담한 나의 영혼을 위해 기도할지도 모른다. 결혼할 당시에 가톨릭으로 개종한 나는 같은 하느님이라는 생각에 별 저항감이 없었다. 퇴근 후 헝클어진 머리로 성경 공부에 뛰어가기도 했고, 주말에는 남편 눈치 보며 레지오 마리애라는 기도 모임도 나갔다. 거기에 가면 먼지를 털어내듯이 말이 나왔다. 찬송가로 비질하고 기도로 걸레질한 마음이 반들반들해졌다. 하지만 청소 는 일회용이었다. 남을 붙잡고 자꾸만 마음 청소를 할 수는 없지 않은가? 모임을 주재하는 수녀님은 들은 내용에 대해서 함구령을 내리긴 했다. 연소는 하느님께 말하면 된다고 하지만, 나의 하느님은 직접적인 대답을 준 적이 없다. 성경 해석도 변했다. 침례교회 시절에는 성경을 글자 그대로 믿으라고 하더니, 2000년대에 로마 유학을 다녀온 수녀님은 성경은 제자들의 신앙고 백이니 글자대로 해석하면 안 된다고 가르쳤다. 두 해석이 판이했다. 동굴 벽에 어른거리는 불빛처럼 나는 헷갈리기 시작했다.

2020년, 바이러스가 날치는 세상이 되었다. 공간이 닫혔으니 시간을 돌아다닐 수밖에 없다. 친구들에게 엽서를 보냈던 시절처럼 다시 끄적거리기

134

| 뉴욕문학 제31집


시작했다. 신문에 쓴 글을 연소에게 보여주었다. "참 글쓰는 사람들의 상상력 이란…." 그녀의 반응이 애매했다. '호숫가에 백조 한 마리와 오리 떼가 아름다워 보인다. 과거에 두 동물은 알이 섞일 정도로 서식지가 비슷했고, 모든 동물이 그렇듯이 영역 싸움을 벌였을 것이다. 덩치 큰 백조가 물 가운데서 고요를 즐기고, 물가를 쭈뼛거리 는 오리 가족을 보니, 위계질서는 정해진 듯하다. 나는 평화로움 뒤에 숨겨진 서글픔을 느낀다.' 대충 이런 글이었다.

연소는 팬더믹 상황에 교회에 잘 못 나가니 하느님과 멀어지는 것 같다고 한다. 내가 한국에 살았으면, 좀 더 일찍 글을 쓰지 않았을까라고 칭찬하면서 도, 하느님이 지은 세상이 아름다우면 아름답게 보라고 조언했다. 아이들처 럼 단순해지라고 한다. 나도 청년회 시절에는 그런 줄 알았는데, 이만큼 살아보니, 그게 아니었다. 아름다움은 절대 혼자가 아니었다. 희생의 도움이 있어야지, 영광스러워졌다. 유럽의 무수한 대성당을 보면서도 나는 하늘에 닿겠다고 신음하던 자들을 떠올렸다. 성경을 읽지 못하는 농민을 겁주는 벽화들, 성당 부역에 떨어져 죽은 수많은 사람들. 진실이 허구로 드러난 경우가 얼마나 많은지. 자신의 모든 시간을 교회에 바치는 연소를 편하게 쳐다볼 수만은 없었다.

끝날 것 같지 않던 연소의 일상에 변화가 왔다. 시어머니가 돌아가셨다고 한다. 나는 그녀가 자유로운 새처럼 나를 줄 알았다. 길다니기를 좋아했던 친구였다. 그런데 뭐라고? 거리 전도를 한다고? 그래 길은 길이다. 드디어 길에 나섰구나. 참, 또 하나, 아파트를 줄여서 산자락으로 이사했다는 소식도 들었다. 남편이 빌린 은행융자를 갚기 위해서, 남편을 스트레스로 죽일 일 있냐고, 그런데 앞산이 몽환적인 벚꽃 동산이라고 한다. "지리산 자락에 있는 펜션에 휴양온 것 같아. 하느님이 준비해 주셨어!" 그녀의 음성이 핸드폰을 통해 날아온다.

수필 ∙ 김미연 |

135


청년회 시절, 좋은 것은 항상 좋고, 나쁜 것은 항상 나쁜 줄 알았다. 단순함은 무지와도 통하는지, 그 시절의 나를 누군가가 숙맥이라고 불렀을 때, 나는 그 말을 이해하지 못했다. 연소를 비롯한 친구들을 교회 안으로 깊숙이 끌어놓고, 지금의 나는 교회당의 맨 끝 의자에 앉아있다. 하느님이 애인 같다는 그녀와 나 사이에는 커다란 강이 흐른다. 동산으로 인도한 하느님과 함께 걸으며, 연소는 흩날리는 벚꽃에 시름을 다 날려 보냈을까. 그녀에게 옳은 것이 그녀의 진실일 것이다.

김 미 연 이화여자대학교 사범대학 웨스트 버지니아 주립대학, 교육학 페어리디킨슨 대학, 이중언어/ESL 전 뉴저지 팔리세이드 파크 초등학교 교사 전 뉴저지 노던벨리 고등학교 ESL 교사 미주 평화신문 필진

136

| 뉴욕문학 제31집


빗 물 김 봉 례 터키에 당도했다. 하늘에서 내려다보니 정련된 집들이 보인다. 도심지에 군집된 사람들의 삶을 한 눈에 볼 수 있었다. 달콤한 간식이 비행기 안에서 나오고 남자들이 비행기 안에 있는 승객들에게 여러 가지를 도움을 주고 있었다. 한구석에는 줄을 길게 늘어트린 옷을 입은 유대인들이 보이고, 그들은 그들만의 요구된 음식의 메뉴를 빠르게 가져다준다. 비행기 안의 풍경이 낯설고, 처음 보는 광경과 생김새들이 나의 호기심을 발동하여 여러 번 사진에 담고 있었다. 상점가에는 이색적인 많은 것들이 진열되어 있었다. 터키만의 특유한 풍습들이 있는 인형들도 보였다. 남자가 치마를 휘두르는 식의 춤과 그들 고유의 의상을 입은 남자들의 인형들이 많이 보였다. 장난기 를 발동한 터키식의 콘 아스크림이 재미를 더하였고, 그것을 받아먹는 순진스 러운 사람들의 모습이 더 즐거웠다. 커피도 그들의 특유한 방식으로 그들의 맛을 위해 전해져 내려오는 방식으로 만들어지고 커피를 마시는 속에 담소들 은 훈훈한 터키의 분위를 볼 수가 있었다. 그들은 즐겁고 한가로운 여유를 보여주는 것이었다. 결혼식에 우연히 참가하게 되었는데 어디가나 결혼식은 축제인가 보다. 결혼식 주인공들이 서서 축하객을 맞이하면 가슴에 달려 있는 긴 리본에 돈을 걸어주는 하객들을 보며 신혼생활에 필요한 신혼부부의 살림에 보태는 모습을 보며 그래도 무엇보다도 현금을 좋아하며 속으로 웃었다. 한국 전쟁 시 한국을 위해 파병을 해준 사람들이 몰려 살고 있는 마을에도 방문을 하고 그들에게 고마움을 전하는 순간이 있었다. 형제의 우정을 그들이 보이며 더 친근하게 대해 주니 고맙기도 하다. 그런데 귀에 낯익은 음악이 수필 ∙ 김봉례 |

137


들린다. 어릴 때 듣던 곡이다. 제일 큰언니 친구들은 일제시대에 태어나서 6·25때 열여덟에 꽃다운 나이였었다. 그들이 내가 어릴 때 모여 다니던 모습이 떠오른다. 공주라고 부르거나 막내야 라고 부르던 언니들의 친구들에게 나는 인기가 좋았다. 인기 스타로 큰언니들이 빌려가며 데리고 다니기도 했다. 그때 그녀들은 하나씩 시집을 가고 공주는 그들의 결혼식에 작은 꽃바구니를 들고 들러리로 유명한 시절이었으니깐 말이다. 결혼식이 끝나면 파티가 열리는데 그들의 발등에 공주의 작은 발을 올려놓고 춤을 출 때 들려오던 귀에 익은 음악이다. 터키 민요의 하나인 그 곡이 한국 전쟁 때 군인들과 함께 들어오며 유행하게 되었고 그 음악이 그 당시 춤곡으로 많은 곳에서 귀에 익숙하게 울려 퍼졌었 다. 그 곡을 먼 타국에서 들으니 마치 그 곡이 한국의 민요였었다는 착각을 불러일으키는 순간이 우습기도 하다. 그들의 우정은 많은 것을 서로 나누고 있었다. 많은 유적지를 돌아보며 성경 속의 바울이 지나 가던 유명한 명소가 있었고 아브라함과 욥의 이야기에 관계된 유적지도 많이 있었다. 아름다운 자연과 더불어 휴양지로 이름난 좋은 곳들이 많았고 온천 같은 편안한 곳에 자연에서 솟아난 따뜻한 물에 몸을 담그며 즐기기도 했다. 자연의 신비스러운 변화에 변해가는 버섯 모양의 바위들을 보며 어린아 이들이 좋아하는 만화의 주인공들이 이곳에서 춤을 추며 튀어 나와서 노래를 부르며 춤을 추는 모습을 떠오르며 그들의 삶의 모습에 여려 변화를 보며 바쁜 여행의 정해진 순서에 따라 움직이기에 바빴다. 한가한 오후에 돌아본 동네에서 따듯한 차 한 잔에 숙연해지는 야경도 무척 인상적이고 좋았다. 바위산을 뚫어서 무덤으로 만들고 그곳에 왕들이 있었다는 곳에 돌면서 아늑한 공간에 들어가서 밖을 내다보기도 했다. 박해를 받은 그리스인들이 숨어서 예배장소로 쓰였었다는 곳에 당도하니 대단하다는 생각도 하였다.

138

| 뉴욕문학 제31집


많은 나라들의 다른 종교를 가진 사람들이 많이 오가고 있었다. 동서양이 공존하던 곳 기독교와 이슬람교가 같이 쓰던 많은 곳, 인간의 삶과 죽음이 있는 곳, 다시 생각하게 하는 사람의 강인한 힘을 볼 수 있었던 곳이다. 많은 곳을 돌아보고 다니며 지붕 위가 윗 층의 마당이 되어 있는 곳도 다녀보며 앉아서 아래를 내려다보니 역사의 흐름과 그 역경을 이기는 많은 삶을 바라보고 있었다. 손쉽게 여행이라고 왔는데 그들의 삶은 쫓고 쫓기는 연속 속에 자손을 낳고 이어가는 강인한 인간의 힘을 볼 수가 있었다. 문명의 발달과 그늘진 삶의 현장을 본 듯하다. 그 속에서 피어오르는 그들의 민요가 흘러서 떠돌고 있었다.` 드디어 제일 큰언니가 시집가는 날이다. 그동안 이불을 만들고 준비가 대단했다고 생각이 든다. 시집가는데 할일이 많다. 공주도 바쁘고 새로운 식구의 방문에 들떠 있는 식구들의 기대가 대단하다. 결혼식 날 아침 일찍부터 이루어진 행사를 위해서 바빴다. 약혼식이 끝난 후 언니는 공주를 데리고 다녔고 둘 사이에 항상 끼어서 있었던 같다. 왜 그랬는지 그때의 처녀들은 수줍음을 많이 탔나보다. 작은 꽃바구니를 들고 식장에 들어서는 순간 여러 가지 절차를 따라 다녔고, 시키는대로 잘해 나갔다. 커다란 콩 튀기는 소리와 함께 많은 꽃가루와 테이프가 휘날리며 난무하는 화려한 여러 가지들이 휘날리고 있었다. 식이 다 끝나고 다시 귀에 익은 음악에 맞추어 커다란 발위에 작은 발을 올리고 그 민요의 음에 맞추어 따라 다니며 춤을 추었다. 신혼여행을 떠난 신부와 신랑을 바라보며 손을 흔들어 주고 어떻게 시간이 지났는지 너무 많은 일이 지나가고 집으로 돌아왔다. 갑자기 저녁부터 비가 내리고 천둥과 번개가 일어났다.

수필 ∙ 김봉례 |

139


저녁부터 시작된 비는 밤새도록 내리고 있었다. 엄마와 아버지는 울고 있었다. 집에 돌아오자 무엇인가 섭섭한가보다. 일제시대, 한국전쟁을 같이 지낸 큰딸이 시집을 가는 것이 기쁘기보다 서운한 맘이 더 컷나보다. 밖에는 비가 내리고 빗소리는 크게 들리고 있었다. 엄마가 운다. 눈물이 떨어진다. 공주는 그 엄마의 눈물을 보고 울고 있었다. 밖에는 비가 오고, 엄마의 눈에도 공주의 눈에도 비가 내리고 있었다. 막내야 큰언니가 부르고 귀에 익은 음악이 흐르는 모습들이 보인다.

140

| 뉴욕문학 제31집


준 비 김 봉 례

롱아일랜드에 학교가 있어서 다니기를 시작했다 하이웨이를 못달리는 나는 언제나 로컬길을 찾아다닌다. 차를 몰고 오랜만에 고속도로들 달려서 긴장되어 있었는데 안전하게 빠져나와서 한가한 길로 접어들어서 안심했었 는데 브레이크를 밟으니 멈추지 않고 미끄러져 나간다. 마침 한가하여 주위에 아무런 차도 사람도 없어서 다행이었다. 그리고 차는 정상적으로 잘 달려서 잊어버리고 타고 다녔다. 한 번은 수업이 끝나고 시동이 안 걸려서 친구 학생이 줄로 자기 차와 연결해 주어서 그 때도 다시 돌아올 수가 있었다. 그러던 차에 억수같이 쏟아지는 대낮에 차가 달리지를 않는다. 아무리 밟아도 10마일 이상은 안 달린다. 할 수 없이 딜러에 가서 문제를 해결하려고 하였다. 컴퓨터 시스템에 이상이 있어서 본사에 가야한다고 한다. 마침 토요일이라 렌트카 회사도 우리가 도착하자 문을 닫아서 그대로 딜러가 있는 장소로 되돌아 왔다. 밖에는 비가 쏟아지고 차는 준비가 되어있지 않아서 사무실 안에 앉아서 밖을 내다보니 거리에는 비옷을 입은 사람들도 잠시 안으로 피해 있었다. 내가 서서 안절부절 못하는 모습을 보고 청년 하나가 나를 이끌고 밖으로 유도하여 까만 차로 나를 이끌고 차문을 열고 안으로 들여보내서 운전석에 한참을 앉아 있게 되었다. 밖에는 비가 내리고 앉아 있는데 왠지 아늑하고 편안한 느낌이 들었다. 그전의 차와는 조금 다른 느낌을 가질 수가 있었다. 한참을 그 안에 있어도 비는 그치지를 않는다. 그 젊은 청년이 다시 돌아와서 우산을 내밀고 그 속으로 들어와서 다시 사무실로 돌아왔다. 그는 나에게 그 차가 어떠냐며 그 차를 살 것을 권하면서 서로 이런

수필 ∙ 김봉례 |

141


저런 이야기를 나누기를 시작했다. 자신의 고등학교 시절에 교회에 열심히 다녔는데 교회에서 목사님이 강도에게 총에 맞아 죽는 모습을 목격하게 되어서 그 후부터 교회를 다니지 않고 공부도 안하고 대학도 안가고 공사장에 다니면서 일을 배워 건설을 업을 하여 많은 돈도 벌고 성공의 길로 가게 되었다고 하며 사고현장에서 사고가 나서 복숭아 뼈가 상하여 그 후 그동안 모은 돈 다 까먹고 친구가 권하여 친구 사무실에 와 있다면서 이 차를 사주면 교회에 나가겠다고 하며, 그동안 1년이 넘었는데 한대도 못 팔았다고 하는 것이었다. 비는 오고 내차는 가져갈 수 없고 하여 그와의 약속을 뒤로 하고 차를 몰고 집으로 돌아왔다. 집에 도착하니 안심이 되고 샤워를 하고 나니 피곤이 풀리고 그동안 돌아다니며 신경을 곤두세웠던 일도 잊고 콧노래를 부르고 있었다. 그 다음 날 병원에 가니 필리핀 젊은 남자 간호사들이 내 차를 보며 흥미를 갖는 것이었다. 젊은 사람들이 탐내는 스포츠차인 것이었다. 나는 그것도 모르고 비 때문에 어쩔 수없이 살 수밖에 없었던 차였다. 그런대로 앉아 있으면 아늑하고 편안하다. 그런데 너무 예민한 장치가 컴퓨터에 입력이 되어 있어서 조금만 이상이 있어도 신호를 보내서 차를 판 사람을 귀찮게 하였다. 차사고 소식이 뉴스에 뜨면서 리콜이 들어와서 딜러 본점에 가서 새 차로 바꾸는 행운을 갖게 되었다. 그 때부터 내가 가는 곳은 같이 가게 되었고 많은 사람들이 이 차에 대해서 말을 많이 하는 소리를 들을 수 있었다. 조카들도 차가 탐난다는 말을 하며 떠나기도 하였다. 새로 사온 차는 내 손에 길들기 시작 헸으며 운전석은 나에게 유일한 안식처가 되었다. 교회에 일찍 가서 기도도 하고 졸기도 하며 안에서 있는 편안함을 얹게 되었으며 살림이 차츰 차안으로 보여서 살림도구가 많아지고 그것을 싣고 달리기를 하며 세월을 보냈다. 그 안에서 많은 일을 하며 시간을 보내면서 집에 있는 시간보다 더 많은 것을 하기도 했다. 가다가 공원에 세워두고 앉아서 뜨개질도 하고 가끔은 142

| 뉴욕문학 제31집


컴퓨터를 하기도 하였다. 비가 오는 날은 밖으로 나와서 세척도 하면서 밖으로 나오는 시간을 즐기고 있었다. 비가 억수같이 쏟아지는 날, 차를 몰고 밖으로 나온다. 차를 세척하기 위해서 나온다는 명목으로 밖으로 나오니 걱정도 된다. 비가 너무 많이 쏟아져서 양동이로 퍼붓는 것 같다. 천둥 번개도 무섭고 다 집으로 들어가는데 나는 밖으로 나가기를 즐겨 했었다. 가로등이 쓰러지고 차가 부서지는데 그런 광경을 화면에서 많이 볼 수가 있었다. 나무가 없는 장소를 찾는다. 그러나 그 곳은 번개의 우려가 더 크다. 그러나 내가 찾는 명당자리이다. 키세나 파크가 있는 대로에 테니스장이 보이는, 하늘만이 보이는 장소다. 비가 온전히 내 차를 덮칠 수도 있고 사방이 트여서 시시때때로 일어나는 모든 것을 볼 수 있는 곳이다. 밖에서 폭우가 오고 빗소리는 더욱 격차 오르고 차안에 앉아 있는 나는 내가 좋아하는 그대로 들려오는 음악을 틀어 놓고 앉아 있다. 어떻게 보면 위험한 분위기이기도 하지만 나는 이 차안에서 많은 책을 보고 있었다. 연제 장편 역사소설을 그때 많이 읽었다. 그중에 광개토대왕, 근초고왕, 토지, 백정, 고조선 등의 많은 연재 장편소설과 그동안 읽지 않던 많은 책들을 실고 다니면서 읽기를 계속하다 보니 거의 쌓아만 놓았던 책을 거의 다 읽게 되었다. 나의 독서량을 높여 주던 아늑한 나의 자리는 밑에서 등으로 열조절을 해주고 위를 열면 하늘이 보이는 나의 은신처이며 즐거움을 가질 수 있고 인내심을 가르쳐 주는 장소다. 독서를 하지 않던 나에게 독서량을 늘려준 장소다. 그동안 빗속에서도 아무 사고 없이 지낼 수 있어서 감사한 마음을 갖게 해주는 공간이기도 하다. 역사에 대해서 관심이 없던 내가 한국이라는 뼈대를 볼 수 있게 하며 먼 눈으로 원거리에서 넓고 크게 내다 볼 수 있게 하는 계기가 되어 있었다. 광개토대왕을 쓴 저자의 말에 의하면 일본학자가 자신에게 권유하여 일곱 권을 쓰게 되었다고 한다. 칠년을 책만을 쓰게 기회를 주고 물질적으로 후원해준 사람들도 있었다고 한다. 수필 ∙ 김봉례 |

143


관심이 전 세계로 펼쳐지게 하는 것이 독서량이 늘면서 한 손바닥에 놓이게 되었다. 병원에서 같이 근무하는 인도 간호사들의 서러움을 볼 수도 있었고 그들의 눈물과 이름을 바꿀 수밖에 없는 의사들의 그 내면의 갈등도 독서를 통해서 실제로 느끼고 보고 있는 현실을 무시할 수도 없었다. 계급주의 속에서 벗어나지 못하던 친구들이 미국에 와서 자유를 얻고 이름과 성을 바꾸는 모습을 보며 시민권을 할 때 내 이름을 바꿀까 하다가 내 위치는 그대로 행복이었기에 그대로 내이름을 입력했다.

이제는 전기차가 점점 늘어나고 있는 것이 현실이다. 세계의 오염을 방지하 기 위해서 전기차를 바꾸고 있는 곳이 많이 보인다. 내 곁에서 떠나야 할 날을 바라보니 왠지 서글퍼진다. 그동안 정이 많이 들었다. 무생물에게 애착하는 나의 마음은 어떤 모양일지 우습다. 사람들과의 관계도 제대로 못하는 주제에 그토록 애착을 갖는 내 작은 소유의 차에 나도 모르게 눈물이 글썽여진다. 우습다. 그러나 나는 어쩔 수 없다. 이제는 떠나보낼 준비를 해야 된다.

김 봉 례 1952년 서울에서 태어남 1975년 가톨릭의대 간호대 졸 1996년 동부개혁 장로회 신학교 졸업 2000년 경산 한의대 졸업 병원 간호사로 근무했음

144

| 뉴욕문학 제31집


봄에 보내는 편지 김 영 란

나의 사랑하는 자녀들아! 이 아름다운 화창한 봄, 4월의 문이 열리니 먼 곳, 가까운 곳에서 꽃향기가 바람에 실려 우리 가슴에도 뜨락에도 열려진 창문으로도 하나 가득 안겨오는 구나. 그리고 밤하늘에서는 수없는 별들이 쏟아지면서 아름다운 천사들의 노래 소리가 죽음을 이기신 주님을 찬양하는 청아한 소리가 끊임없이 들려오는구 나. “부활의 주님 나타나시사 두려움과 의심 물리치셨네 주의 교회 기뻐 찬송하여라 다시 사신 주님 죽음이겼네 주님께 영광 다시 사신 주 사망 권세 모두 이기시었네” (통일 찬송가 155장) 사랑하는 나의 자녀들아! 이 4월은 사랑의 주님께서 전 세계 사람들에게 부활의 소망과 사랑을 크나 큰 선물로 주신 특별한 달이기 하지… 그러나 지난 겨울이 팬데믹으로 인하여 몸도 마음도 지치고 너무나 춥고 길다 보니 이 4월의 봄이 어느 해 보다도 따스하고 정겹고 눈물이 나도록 감사하구나. 뜨락에서 작은 꽃들이 미소 지으며 우리들에게 손짓하며 힘내라고 하는 듯이 고개를 살랑살랑 흔들면서 위로하는 모습이 얼마나 반갑던지 뜨거운 눈물이 왈칵 쏟아지는구나. 이렇게 조물주께서 아무 대가도 없이 주신 모든 생수 같은 공기와 따스한 햇볕과 나무마다 갖가지 색깔의 아름다운 꽃들이 피어나 우리들의 가슴을 설레게 하며 우리 모두 살아 숨쉬고 있는 대지 위에서 한껏 기쁨을 누리며

수필 ∙ 김영란 |

145


우리들의 출입까지도 지켜 주시는 하나님께 날이면 날마다 감사로 이어지기 를 바란다. 나의 사랑하는 자녀들아! 나는 그대들과 함께 20여 년 동안 말할 수 없는 어려움도 많았지만 한 번도 누구에게나 도움을 받기 위해 손을 내밀어 본 적이 없고 어느 교회에나 단체에서 그대들과 함께 간증 집회를 해 본 적이 한 번도 없었지... 그대들은 나의 가슴으로 난 자녀들이기 때문에 여기 저기 각 교회, 또는 어느 단체에 가서 간증하면서 지난 날 아픈 상처를 또 다시 건드리면서 그대들의 눈물을 흘리게 하고 싶지 않았기 때문이었지…. 1년이 훨씬 지난 팬데믹으로 어려운 가운데에서도 먹고 입고 아무 염려 없이 일용할 양식을 끊임없이 공급해 주신 것은 우리 주님께서 보내신 보이지 않는 천사들의 손길이 이어지기 때문이지…. 그대들에게 우리 주님께서도 원하시는 소원이시지만, 나도 그대들에게 부탁할 것은 항상 기뻐하고 쉬지 말고 기도하고 범사에 감사하면서 믿음과 소망과 사랑을 굳건하게 가지고 그대들보다도 더 늦게 들어온 형제 자매들을 돌보며, 같은 탈북 형제 자매가 아니더라도 이웃에 있는 그대들보다도 더 어려운 이들을 돌보며 사랑을 나눈다면 이 어려운 때에 우리 하나님께서 얼마나 기뻐하시고 그대들에게 영육 간에 장마에 비 내리듯, 눈이 내려 쌓이듯 하늘의 축복이 차고 넘칠 줄 믿기 바란다.

다시 사신 구세주 (통일 찬송가 151장) 온 세상 살펴보니 주 사랑 알겠네 내 맘이 아플 때도 주 사랑 알겠네 이 세상 풍파 이길 힘주시는 주님 마침내 영광 중에 주 오시리 예수 예수 늘 살아 계셔서 주 동행하여 주시며 늘 말씀 하시네 예수 예수 내 구세주 예수 내 맘에 살아계시네 늘 살아계시네

146

| 뉴욕문학 제31집


요리 이야기 김 영 란

인생의 삶에서, 재물을 잃는 것은 조금 잃는 것이고 좋은 친구를 잃는 것은 반을 잃는 것이고 “건강을 잃는 것은 전부를 잃는 것”이라고 옛 어른들은 말씀하곤 하셨다. 우리가 살아가는 데는 재물도, 좋은 벗들도 꼭 있어야 하지만 특히 이 모든 것은 우리의 건강이 아무 걱정 없이 자신 있을 때만이 재물도, 친구도 다 같이 어울릴 수 있는 것이다. 그러기에 우리의 건강은 자신들이 지키며 소중하게 여겨야만 우리를 지으신 조물주께도, 우리를 낳아서 기르신 부모님 께도 조금이나마 보답하는 길이 아닌가 생각해 본다. 이 세상에서 살아 숨쉬는 동안만이라도 가장 지혜롭게 살아가려면 먹어서 는 안 될 것과 될 것을 잘 구분하여 자신은 물론이요, 가족들의 건강을 지키는 일인 것이다. 비록 부족한 나였지만 지금까지 살아온 나의 연륜에서 방송으로, 글로써 여러 곳에 오랫동안 건강 요리를 이야기하면서 한 가지씩 건져 올린 삶의 지혜와 음식의 지혜와 건강의 지혜를 한 데 묶어서 알록달록 고운 빛깔을 내어 자연식품만으로 고집하며 건강 음식만을 만들어 왔다. 팬데믹으로 인해 날이 갈수록 더욱 더 삶이 힘겨워지고 고달파 지친 사랑하는 이들에게 조금이나마 건강에 도움과 삶의 활력소가 되어 매일매일 이 즐거움과 위로가 되었으면…. 특히 가정주부로서 음식을 맛깔스럽게 잘 만드는 것은 주부들의 자랑이며 동시에 행복인 것이다. 누구나 가정을 진정으로 사랑한다면 가족들의 건강까 지도 신경 쓰며 관리하는 영양사까지 되어야 한다. 많은 양의 진수성찬은 아니더라도 한두 가지 맛깔스럽고 전혀 조미료를 쓰지 않는 주부의 솜씨로 음식을 만들어 식탁에 올린다면 그 가족들은 음식만 먹는 것이 아니라 행복과 사랑까지도 곁들여 먹는 것이 된다.

수필 ∙ 김영란 |

147


꼭 한 가지 가정주부들이 알아야 할 것은 봄, 여름, 가을, 겨울 사계절의 제철 감각도 어느 정도 있어야 하고 그래서 건강을 다스릴 수 있는 지혜가 삶의 연륜에서 샘물 같이 계속 퐁퐁 솟아나올 것이다. 음식이란 어느 요리책에서나 인터넷에서 전혀 보지 않더라도 주부들 자신들의 지혜와 솜씨로 계속 음식을 이것저것 만들다 보면 솜씨가 늘고 맛깔스러워짐을 스스로 느낄 수 있을 것이다. 또 한 가지 잊지 말 것은 “음식으로 고칠 수 없는 병은 약으로도 고칠 수 없다”고 했다. 나는 예나 지금이나 가장 구하기 쉽고 적은 돈으로 쉽게 만드는 영양 만점 요리를 사랑하는 이들을 위해 만들곤 했는데 이번에는 닭과 물오징어를 가지고 요리를 만들어 보려고 한다.

첫 번째는 닭영양탕 1. 조금 큼직한 닭 한 마리를 깨끗이 손질하고 배 속에 도라지 3뿌리, 대추 5개, 밤 5개, 양파를 통째로 넣고 냄비에 넉넉히 물을 붓고 다시마 큰 한 가닥을 씻어서 같이 넣고 중불에 닭이 잘 삶아져서 살이 야들야들하게 익었을 때 건져서 식힌다. 2. 닭을 삶은 국물에 약간의 소금으로 간을 맞추고 계란을 두서너 개를 곱게 풀어서 보기 좋게 잘 풀어 넣는다. 3. 삶아 건져낸 닭은 잘게 찢어서 곱게 채친 파, 마늘, 풋고추 참기름, 후춧가루를 적당히 넣어 닭살과 함께 약간의 간장으로 간을 맞추어 무쳐서 크고 예쁜 접시에 모양새 있게 담아서 상 위에 올린다. 4. 계란을 띄운 닭 국물은 오목한 그릇에 담아서 가족들에게 돌려준다.

이 국물에 밥을 말아 먹어도, 무쳐 놓은 닭살과 함께 먹어도 아주 영양가가 듬뿍 들어 있어 일주일에 두세 번은 만들어서 가족들의 상에 올리면 건강에 많은 보탬이 될 것이다.

148

| 뉴욕문학 제31집


두 번째는 오징어 불고기 1. 물오징어를 살 때는 몸통이 두툼하고 살아있는 듯 싱싱하여 핑크 적갈색이 나며 광택이 나는 것을 고른다. 2. 오징어는 깨끗이 씻은 후 내장을 빼낸다. 오징어를 길이로 4쪽으로 자르고 새끼 손가락만한 넓이로 자른다. 다리는 따로 떼어서 같은 길이로 자른다. 3. 부추는 3인치 정도로 썰어 놓고 새송이 버섯, 빨강, 파랑 피망도 같은 길이로 썰고 당근과 양파도 납작납작하게 보기 좋은 길이와 넓이로 썬다. 4. 그릇에 고추장을 오징어 양에 따라 적당히 담고 간장 조금과 황설탕, 다진 마늘, 소금과 올리브오일을 넣고 잘 저어서 오징어에 무친다. 5. 뜨겁게 달군 팬에 오징어를 볶다가 2분쯤 후에 준비해 놓은 야채를 넣고 불을 끈 후 잘 버무린 뒤 식초를 한두 방울 넣고 잘 저어서 커다란 접시에 담아 상에 올리면 어른, 아이 할 것 없이 온 가족이 손뼉을 치면서 즐거워할 것이다.

가족 수대로 오징어와 야채를 넉넉히 준비하여 모자람이 없이 즐기면 얼마나 좋을까, 오징어의 냄새 성분이기도 한 타우린은 혈중 콜레스테롤을 낮추고 혈압을 내려 내혈관 장애를 예방하며 곤두선 신경을 진정시키고 동맥경화를 예방한다.

 아, 잠깐 한 가지 더 물오징어를 깨끗이 손질하여 가로 세로로 잘게 썰어서 냄비에 된장을 슴슴하게 풀어 넣고 썰어 놓은 오징어를 넣고 팔팔 끓인다. 미리 큼직한 양상추 한 개를 사다가 큼직하게 썰어 놓았다가 오징어 된장국이 끓을 때 썰어 놓은 양상추를 넣고 한소끔 더 끓인 뒤에 부추, 양파, 다진 마늘을 넣고 다시 한번 끓여 내어 국그릇에 담아낸다. 이 오징어와

수필 ∙ 김영란 |

149


양상추의 만남은 무어라 말할 수 없이 맛깔스러우며 위장 장애나 소화불량 또는 변비나 소변 문제에도 아무 걱정 없이 이 별미의 국이 다 해결해 줄 것이라고 믿는다. 한 가지 주의할 것은 닭 요리나 오징어 요리나 할 것 없이 간을 슴슴하게 만들고 조미료는 일체 쓰지 말아야 한다. 사랑하는 나의 문우 온 가족이 함께 즐기며 영육 간에 건강하기를 하나님께 기도드린다.

김 영 란 1978년(한국일보) 제 1회 수기 수필 단편집 최우수작 당선(라일락 향기 가득한 뜨락에서). 1985년 미 동부 문인협회 정 회원. 1993년 1480 라디오(장 미선 여성 싸롱에서) 김 영란의 주말 요리 수 년간. 1995년 뉴스 코리아 (꽃과 수필이 있는 김 영란의 주말 요리) 칼럼 연재. 1995년 KCBN 미주 기독교 방송 사랑이 샘솟는 초원 진행. 1995년 한국 수필 문학 협회 정 회원. 1998년 라일락 향기 가득한 뜨락에서 장편 출간. 1999년 한국 사단 법인 두리하나 지부장(북한 탈북자를 위한 선교회). 2007년 시내 문화원(원장 임 광래)에서 꽃 강사로 수 년 동안 많은 제자들을 배출해 냄. 2005년부터 현재 미주 두리하나 USA 상임이사 뉴욕대표. 1990년도부터 노던 블러바드 157가와 162가에 오랫동안 김 영란의 꽃과 김치를 경영하고 현재는 꽃 도매상을 운영함.

150

| 뉴욕문학 제31집


김미순 이야기 김 영 자

그녀의 이름은 김미순. 가명입니다. 나이는 열여섯. 충남 농가의 단란한 가정에서 자랐답니다. 미국에 이모댁이 있는데 결혼한지 십년이 되어도 자식이 없어 성실한 조카를 공부시켜 준다 하시어 도미했답니다. 제가 김미순을 처음 만난 것은 뉴욕의 모 법원에서 그녀의 대배심 증언 통역관으로 출두했을 때였습니다. 김미순은 첫인상이 귀염성있는 여학생이 었습니다. 머리는 예쁘장한 귀를 반쯤 덮은 단발형. 큼직한 청바지에 검은 반코트를 입고 있었습니다. 얼굴은 통통한 건강형이고 동그스런 눈 위에 약간 두툼한 눈썹이 반달 같았습니다. 저의 의문은 이렇게 함박스런 여학생이 무슨 연고로 이 대배심에 출두했나 하는 것이었습니다. 어쨌든 부검사가 그의 사무실에서 나오자 우리 셋은 대배심 증언실로 들어갔습니다. 먼저 말씀 드렸듯이 김미순은 이모의 주선으로 일년 전 쯤에 뉴욕에 왔습니다. 어느 퀸즈 중학교에 입학 되었는데 이 학교는 서반아, 흑인, 아시아계 등 다인종 공립학교입니다. 하지만 강의실만 나가면 제각기 동족끼 리만 어울린답니다. 어느 날 김 양은 수업이 끝나자 네명의 한국 여학생들이 접근했데요. 그리고 김 양에게 하는 말이 중요한 이야기가 있으니 노래방에 가자고 하더래요. 김 양은 그들이 같은 교포들이고 해서 따라갔답니다. 노래방에 들어가자 그들은 신나는 노래를 켜고 한 사람씩 돌아가며 노래를 하더니 갑자기 누가 고함치기를, “너 왜 선배들에게 인사도 없느냐” 하더래 요. 그러자 세 명이 달려들어 김양의 머리를 움켜잡고, 벽으로 머리를 쥐어박

수필 ∙ 김영자 |

151


고, 얼굴을 때리고, 주먹으로 눈을 후비고, 무릎으로 가슴을 차고, 발로 짓밟는 등, 김양을 사정없이 구타했답니다. 그러는 중 한 명은 계속 요란스레 노래를 부르고 있어 밖에서는 방안의 수라장을 알아채지 못했을거라구요. 김 양의 눈은 순식간에 부어올라 앞도 보이지 않고 코피가 나기 시작했습니다. 누군가가 그녀를 화장실로 끌고 가 코피를 닦아주더니 그녀의 얼굴을 변기 속에 쑤셔 박더래요. 그녀가 소리를 지를래도 그들의 무자비한 횡포에 질려 포기했답니다. 계속되는 공포의 시간이 얼마쯤 지났을까 그들이 그녀를 가라고 하더래요. 얼굴이 사납게 부어오른 조카를 보고 아연실색한 이모가 결국 경찰을 부르고 이 사건을 정식으로 고발하고자 이 대배심까지 오게 되었답니다. 싸늘한 침묵 속의 배심원들 앞에서 검사가 질문을 했습니다. “김 양은 그녀들로부터 왜 그런 구타를 당해야 했는지 무슨 원인이 있었는가?”였습니 다. 김 양의 대답인즉 “한국에서는 선배들에게 무조건 복종하고 공경해야지 그렇지 않으면 혹독하게 당합니다. 제가 미국에 와서 그런 태도를 지키지 않아서 아마 저에게 보복을 한 것 같아요.”라고 한다. 그러자 이십여 명의 배심원들이 “악!” 하고 함성을 지르고 한숨을 쉬지 않겠습니까. 그 소리가 제 귓전에는 경악과 혐오의 소리로 들렸습니다. 순진한 눈망울을 어디에다 향해야 할 지 모르는 김 양의 얼굴은 슬픔과 수치에 그만 일그러지고 말았습니다. 사회 속의 보이지 않는 압박과 후배로서의 의무감과 두려움, 이것을 피해 미국에 와 활짝 피는 소녀의 환희를 맛보기도 전에 동족의 때 묻은 현실에 짓밟힌 한국 소녀. 아마도 그래서 배심원들이 함성을 질렀는지도 모르겠습니 다. 이 증언은 사건 후 한 달이 넘었을 때라 김 양의 얼굴은 말쑥하게 가라앉아 있었고 증언이 끝남과 함께 노여움도 사라진 양, 얼굴에는 연한 미소까지

152

| 뉴욕문학 제31집


흘렀습니다. 나중에 밖에서 제가 김 양에게 묻기를, 김 양은 고국이 그리운가, 그렇다면 가장 그리운 점이 무엇인가 했더니 자기는 농가에서 일하시는 아버지가 동네잔치를 베푸실 때 어머님 도와드리고 음식 날라주던 일이 그립다고 하더군요. 그리고 덧붙이기를 우리 교포들이 이 어려운 이민 생활에서 서로를 존중하 고 자유와 창의의 공간을 주면 좀 더 큰 발전이 있을거라고 하지 않겠습니까.

수필 ∙ 김영자 |

153


어제 그믐 날 밤에 김 영 자

어제 그믐날 밤에 나, 기이한 꿈 꾸었다. 꿈속의 전경은 몽롱한 안개 속 같은 형태였는데, 어릴 때 구김 없이 살던 흑석동 집의 널찍하고도 아늑한 거실인 것 같았다. 그 거실에는 이미 저 세상으로 떠나신 부모님이 우리 형제들과 둘러앉아 무엇인가 담담한 미소로 말씀하고 계셨다. 꺼질듯, 꺼질듯, 희미한 음성이었으나, 내 영의 귓전에 선명하게 들려오는 말씀인즉, 신을 믿고 양심을 어기지 않으면 저 세상에서도 즐거운 현실이 지속될 수 있다는 것이었다.

돌아가신 영혼들이 살아있는 우리들의 침체된 양심들과 대면하는 순간이 었다. 신을 믿고 양심을 속이지 말고 어떠한 난관에서도 한 발짝, 한 발짝, 참된 삶을 수놓으라 하는 말씀이었다. 어느 순간엔가 문득 눈을 떠보니, 파아란 새벽이 창가에 도사리고, 그 창 밖의 맨하탄 거리는 눈부신 함박눈에 덮여 있었다. 그리고 꿈같이 풍만한 평온함이 나의 눈시울에 촉촉히 찾아 왔다. 환희의 정적 속에 취한 채, 나 생각했다.

세상일은 초조하고 성급하게 서둘러서 성취되는 일은 거의 없으며, 혹시 성취된다 하더라도 지속성이 없는 것이다. 마치 순수한 보석과 명주 비단같 이, 우리의 참된 시간과 열성을 기울이지 않고는 생의 보람을 찾을 수 없는 것이다. 또한 그렇게 이룩한 현실이 천당인 것이며, 이 천당의 연속은 우리 삶이 될 수 있고, 이에 대한 가능성은 무궁하다고. 너무나도 잊기 쉬운 이 진리를 자식들에게 상기시키고자 사랑하는 우리 부모님이 내 꿈에 나타나셨나 보다.

154

| 뉴욕문학 제31집


신에 대한 찬양 현실의 재발견 발견된 현실의 참된 미화 그 현실의 지속성 우주의 진리 신의 품, 우리의 영구적인 추구….

어제 그믐날 밤에 나, 기이한 꿈꾸었다.

김 영 자 서울 출생 이화여고 졸업,경희대 영문과 수료 1972도미 후 미 연방 법정 및 국제회의 통역사로 25년간 활동 1996영문 단편소설 “A Certain Story of War” Infinity에 등단 2006 9월호 한국 문예사조에 수필 “앨러지와 친절”등단 2007/2015 두 편의 영문 수필 미 문학잡지 Rosebud에 등단 2012 서울 지구문학 57호에 단편소설 “하얀 밍크 두른 여인”신인상 수상 2017-2019 Poetry Pacific과Tuck Magazine에 영시와 스토리 발표 2018 카나다의 The Journal of Baha’i Studies에 “Arirang Lament” 등단 2020 영시 “David pour Homme” October Hill에등단 2020영시“The Hallo” Soundings East 문학잡지에 등단 뉴욕문학에 다수의 시, 수필, 단편소설 발표; 미동부한인문인협회 회원 athousandmagnolias@gmail.com Website (웹싸이트): http://yoursentimentalstranger.com/ YouTube:“MemorizingArirangLament(아리랑애가암송하기)” http://www.youtube.c om/watch?v=PfZI961tZDU Therese Young Kim You Tube Channel 에 다수의 영시 유투브 소개

수필 ∙ 김영자 |

155


20% 미국인 김 옥 수

문득 문득 궁금하였던 질문이었다. 나는 어떤 부류의 미국인일까 ? 그리고 이 곳에서 얼마나 동화된 한국인으 로 살고 있는가? 하는 물음이다. 특별히 올해는 내가 50년 전 이 곳 뉴욕생활을 시작하였으니 반세기 외국인의 내 모습이다. 귀화한 시민의 자격으로 이곳 대통령을 세우는데 투표한 일만도 5-6번이나 되지만 아직도 이 곳이 “내 나라”라는 맘이 들지 않을 때가 많은데 그 때마다 실체도 없는 “미국”한테 괜히 미안한 맘이 들곤 한다. 당당하게 일을 하고 받는 “정부연금”이나 “직장연금”도 떠나온 한국 보다는 혜택이 많은 편이라 감사하는 조건을 더하게 된다. 좀 비싸긴 하여도 첨단 의술이 아직은 이곳이 더 앞서고 있음은 물론이고 의료 봉사자들의 환자에 대한 태도는 한국이 많이 본 받아야 된다는 확신도 든다. 혹 공공기관에서 일을 보게 되어도 이곳 공무원들은 한국의 공무원보다는 목에 힘을 덜 주는 편이다. 매일 밥상을 차리는데 필요한 식품의 재료나 과일 등도 세계의 도시 뉴욕이라 더 다양하고 풍성하다 문화생활을 잘 하지는 못하는 편이지만 마음만 먹는다면 오페라, 뮤지컬, 영화, 연극, 발레 등이며 명성을 떨치는 많은 박물관들도 이 곳에 있다. 작은 도시나 시골에 정착을 한 다른 한국인 보다는 이곳에 동화되는 일이 쉽지 않았을까? 하는 짐작이 간다만 꼭 이런 외부적인 여건으로 판단할 일도 아닌 것 같다. 한국인들이 많고 교회가 곳곳에 있으니 오히려 이곳 미국 사람들과 어울리지 않아도 별 불편함을 느끼지 못하는 것도 사실이다. 자연스레 영어를 꼭 하지 않아도 되는 환경이 되었었다 얼마 전 이민 생활의 햇수가 비슷한 친구에게 “자신이 몇 퍼센트 한국인이 라고 생각하느냐?”라고 물었더니 “80% 한국인”이라 주저없이 대답한다.

156

| 뉴욕문학 제31집


나는 의외로 그 숫자가 많이 높다는 생각을 하였었고 이 말은 그녀 자신을 “20% 미국인”이라고만 여긴다는 결론이었다. 과연 나는 나에게 어떤 점수를 줄 수 있는지 지금도 확실한 감이 오질 않는다. 그래도 어렴풋이 “50% 아니면 60% 미국인?”쯤 될까라는 가정을 해보았다. 20%인 그 친구에 비해 나는 4년마다 하는 대선은 물론 지방선거와 프라이마리에 꼬박 꼬박 투표를 하러간 일과 한식보다 양식을 더 선호하는 남편의 식성 때문에 서양음식의 접촉이 더 잦은 이유도 감안해 보았다. 한국의 큰 명절이 돌아와도 나는 특별한 이벤트가 없이 지내면서 유대인들 이 그들의 명절을 공립학교의 휴일로 지킬 수 있을 만큼 자존감이 강함에 부러움만 키우는 국적이 흔들리는 귀화인은 아닐까? 그런데 2주가 넘게 한국에서 열린 2018년 올림픽게임을 보는 동안에는 내가 얼마나 동화된 미국인인가? 하는 문제를 염두에 둘 필요가 없게 되었다. 한국팀이 스크린에 올라오면 다른 나라들의 국기는 큰 의미가 없어짐을 깨달았기 때문이다. 미국팀이 한국 아닌 다른 국가와 경기를 할 적에는 성조기를 가슴에 단 이곳 젊은이들을 열심히 응원을 하였다. 하지만 준결승의 대결을 펼치는 여자 컬링 경기에서 한국과 미국이 맞싸우게 되는 상황이 되면서 나는 의심없는 대한민국편이 되어 있었다. 더 웃지못할 상황인 것은 미국과 한국 선수들이 펼치는 경기에서 나의 2세들은 한국 선수들의 팔을 들어주었다는 사실이다 진정 우리 안에는 희석되지 않은 한국의 피가 이렇게 진한 농도로 돌아다닐까? 내가 어림잡아 추측한 50%에서 많이 모자라는, 나의 친구처럼 “20%에 더 가까운 미국인”일 지도 모른다.

수필 ∙ 김옥수 |

157


남해이야기 김 옥 수

몇 해 전 처음으로 남해를 처음 다녀왔다 땅이 좁은 한국이지만 한 번도 발을 내려보지 않은 곳이 많다. 그것도 긴 외국생활을 하다보면 그만큼 기회는 더 적은 것이 사실이다. 몇 년 전에 남편이 한국에서 잠깐 일을 할 동안은 이곳 저곳을 꽤나 많이 돌아 다녔는데도 보고 싶어도 가지 못한 곳이 많았다. 남해가 그 중의 하나였다 뉴욕에서 같이 타향살이를 하면서 남해라는 단어만 나와도 눈시울을 흐리는 그곳 출신 친구와, 남해로 시집을 간 한국에 있는 “남해각시” 덕분에 그 꿈이 이루어진 셈이다. 각시란 경상도 토박이의 “새댁”이란 뜻으로 그 지방에 얼굴이 많이 알려진 남편 덕분에 시골 아주머니들이 그녀의 남편 이름에다 “아무개 각시”라고 부르는 인연으로 나온 그녀의 애칭 이다. 나는 “각시”라는 이 포근한 표현도 단번에 좋아하게 되었다. 빠듯한 2박 3일의 여정에서 나는 첫 날에 “남사모” 회원이 되기로 마음을 굳힌다.

오랫동안 남의 나라에서 살다가 생긴 버릇인지 “고향”이라는 단어만 나와도 코가 찡긋해지는 나의 모습이다 간혹은 남편이 자기 고향이 나의 고향보다 산세가 월등히 수려하다는 이유로 나의 출생지 달성군 달구벌을 격하 하는 투의 말을 하면 공연히 서운하기도 했던 적이 있다. 실제로 나의 고향은 산좋고 물 맑은 함양산천에 비하면 자랑할 근덕지도 없는 곳이다. 그래도 나는 그 곳 내 유년의 기억들을 들추면 명치뼈가 뻐근해 지는 것은 여전하다 간혹은 한 폭의 동양화 같은 마을에 살았던 남편과 같은 사람들을 만나면 약간의 질투심 같은 것도 발동한다. 도시에서 태어난 친구들 중에는 나 같은 시골출신이 부럽다고 한 것도

158

| 뉴욕문학 제31집


같은 이유일 것이다 남해에 도착하던 그날 나는 아름다운 고향을 둔 사람들에 게 그 질투심의 수치가 매우 높아진 사실을 알았다. 이곳 미대륙의 아름답고 광활한 곳을 관광 하다가는 조그만 땅덩어리 안에서 태어난 나의 운명에 은근히 화가 난다는 생각을 자주 하였는데 그것은 부러움의 강한 표현인 것이다.

점점이 떠 있는 이름 모를 많은 섬들과 상상 밖의 높은 산들이 곳곳에 널려져 있는 남해는 “그저 평범한 섬일 것”이라는 나의 예상을 완전히 벗어나 있었다. 남해대교를 의식하지 않는다면 그냥 바다를 앞마당처럼 앉고 있는 큰 항구인양 넓은 곳이었음에 놀랐다. 장장 10면을 거느린 군이 온통 섬이다. 해발 600백 미터라는 금산에 원효대사가 수도하던 보리암이며 이성계가 대업을 이루기 전에 치성을 드렸던 바위도 있다. 이 산사에서 “사진사”라는 팔띠를 두르고 그 곳의 고사를 들려주는 초로의 남자는 통성명을 하고보니 동행한 P여사의 초등학교 동창생이어서 인생무상 이라는 말을 절감케 하였다. 여기는 또 이순신 장군의 마지막 격전지인 노량진대첩이 있었던 곳이며 타지에서 온 사람은 잘 모르는 이름의 “이락사”가 있는 곳이다 “이 씨가 떨어졌다”하여 붙여진 이름이라고 하는데 나에게는 ”이락사”란 이름이 “충열사”란 이름보다 더 마음에 와 닿았다. 그 시대의 조정은 한때는 탐탁치않 은 “이순신” 그 분의 위치를 그렇게 대변하였었다. 섬의 아랫자락을 돌아서 만든 이 섬 저 섬의 해변 도로는 세계의 어느 곳에도 뒤지지 않을 장관이다. 때마침 바다 물에 반사되는 섬 마을의 저녁노 을은 완벽한 한 폭의 그림이다 이곳의 집들은 다닥다닥 붙어있어도 단정 하게 앉아있고 차곡차곡 쌓은 돌담 들은 한결같이 커다란 잎사귀의 칡넝쿨을 감고 있었다. 이끼에 덮힌 돌과 초록의 어울림이 묘한 운치를 더해 준다. 산비탈에 층층이 누운 다랭이 논두렁들도 돌 하나 일그러짐 없이 경계가 가지런하다. 어느 시골에서나 흐브러지게 뒹구는 깡통이나 플라스틱 나부랭이도 눈에 수필 ∙ 김옥수 |

159


잘 뛰지 않는다. 남해사람들은 부지런 하고 단결 잘하기로 이름나 있다 하는 말을 실증 하는 것이리라 띄엄띄엄 누런 벌판의 벼들은 익어 있었고 물가에 닿은 집 앞에는 통통선을 닮은 자그만한 배들이 오후를 느긋이 쉬고 있었다. 만(Bay)에서만 볼 수 있는 잔잔한 물결은 집채만 한 파도를 별로 달갑게 여기지 않은 나의 마음에 꼭 들어맞는 이상향(?)이다. 손을 내면 닿을듯한 거리의 한 작은 섬을 뉴욕 친구가 차창으로 가리킨다. 무논 40마지기 값을 치르고 구입한 “나무섬”이라 불리는 그 섬에서 평생 어업을 하셨다는 고인이 되신 그 친구 아버지 개인의 섬이었다고 한다. 그 섬의 주인이 바뀐지도 오랜 세월 후, 만감이 교차하는 그녀의 얼굴 옆에서 나도 내 마음의 고향 넓은 가을 들녘을 지나가고 있었다. 거실과 침실 어디를 가도 바다를 한눈에 볼 수 있는 남해각시 별장에서의 편안한 하룻밤 그 짧은 여정이 미처 끝나기도 전에 나는 벌써 “남사모” 의 회원 1번을 자청하고 말았다 “남해를 사랑하는 사람들의 모임”이라 생각하여 내가 즉흥으로 이름을 지었는데 물론 현직 대통령의 총선 때에 나온 이름을 본떠서 만든 것이라 오리지널이 아닌 카피이다. 이번에는 동행을 하지 못한 남편에게는 조금 미안한 맘이 들기도 한다. 여하튼 자기 고향만을 제일이라 할 남편에게 나도 일격을 가할 여건이 생겼다 그래서 일행들에게 선포를 한다. 만약 남편의 고향과 남해를 두고 투표를 하라면 나의 표는 당당히 남해쪽으로 갈 것이라고 하였더니 다들 환하게 웃는다. 수려한 자연과 바다가 나를 뒷받침해주니 깨끗한 한 표에 이의가 없을 것이다 장담은 아니다만 남편도 다음에 이곳을 다녀가면 즉시 “남사모 제2호”가 될 예감이 든다.

김 옥 수 경북 달성 출생. 계명대학교 간호학과, 영문학과 졸업. 『한국수필』 로 등단. 수필집 “허드슨강도 바다로 흐르고” oaksookim@gmail.com

160

| 뉴욕문학 제31집


선 물 김 자 원

콩나물은 나물은 물론, 찌개나 국 끓일 때 넣으면 시원한 맛이 있어 큰 봉지를 사온다. 콩나물 다듬고 씻는 일이야 쉽지만 마지막 남은 콩 대가리 처리는 간단치 않다. 콩나물 씻어 건진 후 남은 콩 대가리 추리느라 시간 보내는 나를 보고 '버려 시간 낭비하지 말고!' 또 다른 내가 하는 소리에 매번 갈등했었다. 그러다 대충 건지고 버리기도 했다. 오늘 나는 그 콩 대가리 마지막 하나까지 다 주워 올린다. 그냥 그 일에 오롯이 집중한다. 아무 생각이 끼어들지 않는다. '언니 나 어제까지 골프치고 즐겁게 보냈어' 새벽1시에 걸려온 전화. 그녀의 목소리는 낮게 떨리고 있었고 눈물에 흠뻑 젖어있었다. 무슨 일이냐고 묻지 않고 다음 얘기를 기다렸다. 'OO암이래 그리고 상태가 심각하데. 언니한테 얘기해야 할 것 같아 밤늦게 전화 했어.'라며 오늘 병원에서 받은 진단 결과에 충격받아 울고 있었다. '암 완치 치료가 많은 요즈음이다. 의술의 발전이 어떻고' 등 그녀에게는 들리지 않았을지라도 얘기를 해야 하는 나. '너무 걱정하거나 불안해하지 않아야 한다. 너를 구성하고 있는 모든 세포들에게 잘 해보자고 다독여야 해. 마음가짐이 중요하다. 네가 얼마나 소중한 존재인지 알잖아 함께 힘내자' 는 얘기에 '언니 불안함이 많이 가셨어 내일 의사 만나고 소식줄께.'라며 전화를 끊었다. 30여 년 전 처음 그녀를 만났을 때의 상큼하고 발랄한 모습부터 지금까지의 일들이 떠오른다. 갑자기 <사람이 선물이다>라는 생각이 강렬하게 가슴에 스몄다. 언제나 받으면 고맙고 즐거운 선물같은 존재였던 그녀, 나보다 더 나를 생각해 줬던 그녀! 그러한 그녀를 위해 내가 할 수 있는 일이 아무것도 없다. 오직 절실한 기도뿐, 그녀를 위한 지극한 마음으로 어디에서 무엇을 하든 그녀 이름 되뇌며 집중한다. 격식도 없다. 그냥 숨 쉬듯 그녀를 생각한다. 콩나물 콩 대가리 마지막까지 하나하나 주워 올리는 것도 집중의 수필 ∙ 김자원 |

161


힘이기에, 환희로운 경지에서 가능하다는 것 깨닫고 경이로움에 미소 짓는 다. 조용하고 적적한 그 깊은 기도의 집중 속에서 그동안 알게 모르게 지나쳤던 소중한 것들이 조금씩 보이기 시작한다. 얼마 전 친지가 흰 손수건 귀퉁이에 예쁜 손수가 놓여진 수건 한 박스를 선물해줘 받았다. 수놓아진 수건 한 박스 사서 준 선물이려니 했다. 다시 보니 상품화 된 것이 아님이 보여 여쭤봤다. '혹시 직접 수놓은 것 아니냐'고…. 그렇단다. 한 땀 한 땀 수놓았을 친지의 고즈넉한 마음이 전해와 가슴이 뭉클했다. <This world is full of precious> 펼쳐진 세상 모든 것이 귀하고 소중하다. - 어제까지 즐겁게 보냈는데 - 그 즐거움의 뿌리가 무엇인지 생각해 본 적 없던 삶이었다면 그 즐거움은 진정한 즐거움일까? 갑자기 닥친 병마로 인해 인생의 깊이를, 진정한 의미의 삶을 되물어 보는 기회는 매우 특이한 의미의 축복일 수도 있다는 것 알았다. 즐거움 놓치는 것이 불행이라는 고정관념 속에 살아간다면 가 닿을 수 없는 다른 차원의 영역인 것이다. 우리의 삶은 수두룩하게 받은 선물로 살아가고 있음을 깨닫는다. 값비싼 보석보다 더 값진 사람이 주위에 얼마나 많은지! 잠시 마음에 깃든 혼란스러움 내려놓고 본다면 맑은 물밑이 바로 보이듯 보이게 된다. 그럼에도 우리는 늘 뭔가 계획하며 성취 방법 찾아 헤맬 때가 많다. 소중한 그녀를 잃을지도 모른다는 절박함, 슬픔, 잃음을 피할 수 있는 어떠한 비법도 없다. 그것이 슬프고 안타깝다라는 생각에 주저 않아 버린다면 우주적 이고 진리적 생의 근본에 접근 할 수 없다. 삶과 죽음의 진실한 민낯을 바로 보는 마음 두렵고 떨리지만, 깊게 사유하므로 생, 노, 병, 사의 테두리 부수고 허공을 향해 큰소리로 웃을 수 있다면, 죽음 껴안고도 영원히 사는 행복한 이다. 기도는 뭔가 좋은 결과 이루기 위한 과정이 아님을 깨닫는다. 진정한 기도는 매순간 깨어 있어 현재에 집중하는 마음에 담겨지는 귀한 선물이다. 그 고마운 선물 알아차리는 일이다.

162

| 뉴욕문학 제31집


꽃 길만 걸으시기를... 김 자 원

햇살이 눈부시다. 눈 가느다랗게 뜨고 하늘을 본다. 늘 거기에 있었던 하늘, 3월의 하늘이라서 일까, 뭉실 구름 한가롭게 떠도는 곳에 봄결이 묻어난다. 바람 스치는 얼굴에 미소 지어진다. 숨 쉬는 소리가 들린다. 코끝으로 드나는 호흡이 조금씩 길어진다. 세상 중심에 내가 있음을 실감한 다. 가만 눈을 감는다. 봄볕 받은 어깨랑 등이 따스하다. 무심. 무욕. 무아의 느낌이 이런 것일까? 그래서 그 많은 성인들 사상과 뜻으로 오랜 세월 퇴색하지 않은 언어가 바로 '자신을 비워라' 인가보다. 흔하게 듣고 알았던 그 일상의 언어가 가슴 뭉클하게 감동으로 전해온다. 번뇌의 뿌리, 상처의 근원, 아픔의 원인, 갈등의 시작. 세상 잘살겠다는 염원의 방향 욕심 되어 일어나는 것들이다. 잘 산다는 것, 성공 한다는 것, 명예롭다는 것, 부자 된다는 것, 바람직한 일이다. 욕심 없이 가능할지를 사고하면서 웃는다. 아니 삶 자체가 모든 갈등과 번뇌 아픔으로 점철된 흐름의 질곡이기에 고통의 바다[苦海]라고 칭했을 것이다. 예쁜 그림이나 자연 풍경 혹은 인물사진 곁들여 보내온 문자들 '꽃 길 만 걸으세요. 행복하세요. 좋은 일만 있으시기를!‘ 등등의 톡을 수 없이 받는다. 자주 받다보니 ‘꽃 길, 행복, 좋은 일’이라는 더할 나위 없이 필요하고 좋은 단어, 너무 흔하게 쓰고 있어서인지 별 느낌이 없다. 보내는 내용대로 읽고 보내는 이의 마음 전달 받아 행복하고 좋은 일 생각하면 되는데. 시간과 정성을 기울여 만들었을 아름답고 신기하기까지 한 그림이나 영상이 영혼 없는 이의 독백처럼 의미 없이 다가온다. 세상사에 펼쳐진 모든 희로애락(喜怒哀樂) 아울러 느낄 때, 삶의 참 맛

수필 ∙ 김자원 |

163


알고 사는 정상적인 삶인 것이다. 오직 꽃 길만, 좋은 일 만, 사랑 만 등 등 그것만 있게 하는 일이 있을 수 있을까? 그 좋은 것이, 그 꽃 길이, 그 행복이 무엇인지 알 수 있다면 가능하리라. 치열하게 사는 일. 성취감의 짜릿함 몸의 세포를 일어서게 한다. 단지 그것 이루기 위해 누군가 딛고 일어서는 일 있었다면 밟힌 이보다 밟은 이가 진실로 되받아 아프다는 것. 그것을 깨어있는 마음은 안다. 깨어 있음은 스스로를 비추는 거울이기에…. 누군가의 언행에 맞받아 상처 주는 글 쓰고 '내가 잘했지'라며 웃는다면, '그 분은 커피 한 잔 산적 없다'는 얘기 듣는다면 인생 잘못 살았다 하겠다. 그러나 그들은 깨어있지 못했기 때문이라는 것, 단지 그 허물이라는 것, 깨어 있으므로 자신 내면의 감성과 언행 살펴 볼 수 있다. 그래서 깨어 있음은 인생을 가장 잘 살 수 있는 길이다. 성스러움이다. 허술한 자신을 완벽하게 완성시키고. 그냥 사는 일상을 위대하게 바꿔주는 큰 가르침이다. 얼마만큼 철저하게 깨어있어야 하는가. 전문수행 용어로 '위파사나'다. 호흡에, 마음의 변화에, 몸의 움직임에 집중하는 것을 시작으로 한다. 내가 나를 알아가고, 나와 대화 할 수 있는 기회가 주어진다. 그러한 일이 습관화 되면서 인간 삶의 방향과, 생각의 기준, 세상 바라보는 시선 섬세해지고 깊어진다. 그러므로 깨어 있음은 자비다. 사랑이다. 행복이다. 깨어 있음으로 그동안 무료했던 나날을 순간순간 새롭게 장식 할 수 있다. 자신의 한 생각 한 행동을 지켜본다면 그 순간에 모든 것을 즐기는 것으로 바뀌게 할 수 있으리라는 확신에 마음이 설렌다. 새싹 돋는 봄이라서 인지…. 그렇다면 물론 가능하다. 흔한 글이라고 그냥 지나칠 일이 아니다. “꽃 길만 걸을 수 있게 되리라”, 어떤 험한 상황일지라도…. 깨어있는 사상가의 독백은 간단하고 명료하다. 무심한 일상의 일이 귀하고 위대한 성공의 자취임을 재확인시켜 준다.

164

| 뉴욕문학 제31집


“건강한 아이를 낳든, 정원을 가꾸든, 사회 환경을 개선하든, 자기가 태어나기 전보다, 세상을 조금이라도 살기 좋은 곳으로, 만들어 놓고 떠나는 것, 자신이 한 때 이곳에 살았음으로 해서 단 한 사람의 인생이라도 행복해지 는 것. 이것이 진정한 성공이다.” 에머슨 -

김 자 원 『시대문학』 으로 등단. AM 1660 라디오코리아 “물같이 바람같이”. 뉴욕 불교방송 제작 및 진행. 전 미동부한인문인협회 회장. 저서: '세상을 자유롭게 사는 여자', '오늘을 사는 사람들', '물같이 바람같이'. jawonyoga@hotmail.com

수필 ∙ 김자원 |

165


내게도 손이 있소 김 희 우

식료품을 사려고 퀸즈의 한인 마켓에 갔다. 야채부에 들러 사과를 사려는 데, 앞에서 한 오십쯤 되어 보이시는 남자분이 사과를 열심히 고르고 있었다. 한 발짝 떨어져서 그 분이 고르기를 기다리며 서있는데, 거의 위아래 사과를 뒤집고 또 헤치고…, 사과가 아프다고 신음소리를 내는 것 같았다. 시간이 너무 오래 걸렸다. 나는 그만 발길을 다른 곳으로 돌렸다. 절친인 친구와 차 한 잔 마시면서 우연히 마켓의 그 아저씨에 대해 얘기를 했다. 내가 조금 예쁘지 않고 품질이 좋지 않은 사과를 고르면 다음 사람이 좋은 사과를 먹을 수도 있지 않겠느냐고 말했더니, 그 친구의 반응은 거의 폭발적이었다. 너무 큰 소리로 웃으며 손사래를 치는 그녀의 눈에서는 이슬 같은 눈물이 맺힐 정도였다. 휴지로 눈물을 찍어 내며, 잠시 숨을 고른 후에 그녀가 말했다. “나도 그래”하면서 다시 웃음을 멈추지 못했다. 그녀의 웃음 속에는 다소 아름답지 못했던 행동에 대한 계면쩍고 후회스러운 모습이 배어있었다. “나도 다음부 터는 위에서 부터 손길도 부드럽게 조심조심 과일을 골라서 담아야 하겠다.” 고 미소 지으며 그 친구가 말했다. 우리의 생각은 일치를 보았다. 도토리 키재기 같은 일상의 무심코 하는 행동이 우리들을 불편하게 하기도 하고, 사람을 작게 보이게도 한다. 나는 마켓의 사과를 고르던 아저씨 모습과 함께, 오래 전, 에콰도르의 인디오 시장에서 만난 자두 파시던 인디오 할머니 를 떠올렸다. 가난이 베인 쪼글쪼글한 얼굴에 호빗족을 연상케 하는 왜소한 체구를 하신 분이었다. 할머니가 좌판 위의 자두를 봉지에 담고 있을 때, 남편이

166

| 뉴욕문학 제31집


예쁜 자두를 한두 개 골라서 같은 봉지에 함께 담았는데, 그때 “내게도 손이 있소(Yo tengo mano)” 하는 우람하고 굵은 할머니의 목소리가 귓전을 때렸다. 남편의 붉어진 얼굴을 보면서 나도 함께 부끄러웠던 옛 모습이 떠오른다. 우리는 지금도 과일 가게에 들르면 “내게도 손이 있소!”라는 의미 심장한 할머니의 그 말을 상기(想起)하며 두 눈을 마주 치며 소리 없이 웃곤 한다.

수필 ∙ 김희우 |

167


절뚝발이 개 김 희 우

유튜브를 통해 애완견들의 귀엽고 사랑스러운 모습을 공유하면서 격세지 감을 느끼게 된다. 일등석 비행기를 타고 해외의 일류 호텔에 머물며, 많은 사람들의 귀여움을 독차지하는 강아지의 전파 타는 모습은 유튜버의 상업성 은 차치하고 개를 사랑하는 시청자들을 행복하게 만들어 주는 것도 사실이다. 주인에 따라 개들의 팔자도 양극으로 가름하게 되는 것 같다. 아프간의 여 견주에게 여자가 어디서 개를 키우느냐고? 아프간에서 최초로 여성 체육관을 운영해온 사바 바라크자이라는 여성은 푸른 눈을 가진 애완견, 시베리안 허스키와 산책을 나갔다가 생면부지의 몇 남성들에게 애완견이 총살된 기사를 접한 나의 마음은 편치가 않았다. 하늘이라는 뜻을 가진 아스만이라는 그녀의 반려견은 가족이나 다름없을 존재였다. 아프가니스탄에서 2년의 세월을 보낸 나에겐 충분히 이해되고 납득이 가는 사건이었다. 아프가니스탄에서 살 때 메일을 보내기 위해서 한 블록 떨어진 남편의 사무실로 이동할 때면, 머리에 부르카를 두르고 집 앞에 보초를 서는 군인의 보호를 받으며 흙먼지 자욱한 길을 나설 때, 어느새 기다렸다는 듯이 어김없 이 나타난 떠돌이 개, 골든 리트리버가 다리를 심하게 절뚝거리며 달려와 내게 두 다리를 뻗어 가슴까지 튀어 오르며 꼬리를 흔드는 격렬한 몸짓은 사랑받는 주인에게나 표현할 수 있는 행동이었다. 개를 좋아하지 않는 나는 무섭기도 하고 흙먼지로 뒤덮인 오염된 개의 냄새도 싫어서 재빨리 피하면서 사무실로 들어가곤 했다. 메일을 보내고 사무실을 나오면 또 어느새 절뚝거리며 내게 달려와 동일한 애정을 표현하곤 했는데, 마음은 반가운데 열정적인 그 녀석의 세찬 애정공세가 두렵기만 했다. 나를 바래다주는 군인이나 우리집 집사도 개를 가까이 오지 못하게

168

| 뉴욕문학 제31집


막았다. 개를 좋아하지 않는 무슬림들의 문화이자 관습이었다. 몇 개월의 시간이 지나는 동안에 그 떠돌이 개와의 일상이 반복되면서 자기 모순에 빠지고 말았다. 남편의 근무지를 따라 여러 나라에서 오랜 외국 생활을 하면서 터득한 로마에 가면 로마인이 되어야 한다는 경험철학에 이상기류(異常氣流)가 감지되었다. 절뚝발이 유기견을 거두어야 할 것인가? 아니면 그 나라의 문화에 적응하 고 마찰을 피할 것인가?의 갈등으로 마음이 불편했다. 하루는 용기를 내어 집사인 하디에게 넌지시 화두를 땠다. 길거리의 유기견 을 우리가 키우면 어떻겠냐고? 무슨 일이나 순종하던 하디지만 정색을 하며 노라고 단호히 거절했다. 누구인가 외국인이 키우다 귀국할 때 데리고 가지 못했을 유기견, 지난 날 주인의 사랑을 흠씬 받았을 흔적이 뚜렷한 골든 리트리버가 절뚝거리며 길거리를 배회하는 동안에도 나의 갈등은 끝나지 않았다. 현지에서 많은 시달림과 괴롭힘을 견디며 천덕꾸러기로 전락한 그 녀석은 그래도 사람을 무척이나 좋아하고 온몸으로 반기는 모습이 가엾고 애처롭게 만 느껴졌다. 긴 세월이 흘렀으나, 근자의 시베리안 허스키의 기사는 모든 사람에게 사랑받고 싶어서 꼬리를 세차게 흔들며 격렬한 애정을 표현하며 달려들던 유기견을 회상하게 되었다. 로마인이란 이름으로 시류(時流)에 영합(迎合)하여 절뚝발이 유기견을 품어주지 못한 잠재된 이기심은 회한을 남겼고, 삶의 향방에 과제와 화두를 던져주었다.

김 희 우 2018년 뉴욕문학 신인상 수상 중앙일보 15기 주부통신원 전직 고등학교 교사

수필 ∙ 김희우 |

169


하늘의 의미 나 정 길

‘풍우란’이 쓴 ‘중국 철학사’ 에는 중국 고대인들은 하늘을 다섯가지로 분류하여 사용 했다고 한다. 이것은 현대에도 공감할 수 있어 매우 흥미롭다. 첫째로 물질 지천으로 땅과 상대적으로 하늘을 인식하였다. 중국 고대인들에게는 하늘은 신비와 두려움의 대상이었다. 해가 떠서 빛을 주고 달이 떠서 밤의 어두움을 밝히며 비가 내려 곡식을 영글게 하는 고마움의 대상이기도 했지만 천동 번개가 치고 폭우가 내려 강이 범람하는 재해를 당하여 하늘이 노하신 것 아닌가 하고 떨기도 했다. 둘째는 주재 지천이다. 하늘과 인간을 다스리는 신, 하느님(상제) 이 계신다고 믿었다. 하늘의 주인은 세상을 다스릴 왕을 내고 그 군왕은 도의로 써 나라를 방비하고 예에 따라 모든 일을 시행하고 신뢰를 바탕으로 실행하며 자애로써 백성을 보살펴야 된다고 했다. 또한 백성들은 그 왕에게 복종해야 된다고 했다. 왕에게 불복하는 자는 반역이고 역적이 되는 것이라 여겼다. 하늘의 주인은 선한 이에게는 복을 내리고 악한 사람은 영원한 지옥에 빠진다고 믿게 되었다. 두려움에 빠진 인간들은 종교를 찾아 믿고 구원을 약속 받으려 제사를 드리며 기도로써 간구 하였다. 셋째는 운명 지천이다. 사람들은 자기가 잘못되면 하늘을 원망하고 잘 되어 행복해 지면 하늘이 도운 것이라 여겼다. 자기의 행복과 불행은 자신의 선택과 노력에 달려있음을 알면서도 하늘이 모든 것을 결정짓는다고 믿었다. 타고나면서 운명은 정해져 있고 하늘의 별을 보고 운명을 점치기도 했다. 사람들은 이 땅에서 삶이 끝나면 하늘나라에 간다고 말 한다. 하늘의 무수한 별들 중에는 나의 별도 너의 별도 있다고 노래하였다. 넷째는 자연 지천이다. 이것은 고대 중국인들이 과학에 대해 일찌기 인식하 170

| 뉴욕문학 제31집


게 되었음을 느끼게 한다. 달이 지구 주위를 돌며 그 인력으로 바다의 밀물과 썰물이 일어나고 그 주기를 관찰하여 음력을 만들었다. 지구가 기울어 져 태양 주위를 공전하는 주기에 맞추어 태양력인 입춘, 하지, 추분, 동지라는 24절기를 만들어 농사에 도움이 되게 하였다. 어느 때에 꽃이 피고, 비가 많이 내리고, 어느 때에 곡식이 영글고, 춥고 눈이 많이 내린다는 24 절기는 지금도 유용하게 쓰이고 있다. 다섯째는 의리 지천 혹은 도덕지천 라고 했다. 하늘에는 우주의 질서가 있고 땅에는 사람으로서의 도리가 있어 사람다운 도리를 다 해야 된다고 했다. 온 만물은 양과 음으로 이루어져 있고 명이 다되어 사라지면 새로운 소생으로 채워져 순환한다고 보았다. 중국은 옛부터 오행(목,화,토,금,수)의 상호작용을 그들의 철학과 의술에 응용하였다. 끝없이 광활한 우주에는 태양과 같은 항성을 중심으로 한 태양계가 수 천이된다고 오늘의 과학은 밝히는데 중국의 고대인들이 하늘을 보며 어느만 큼 우주의 신비를 이해했을지는 의문이다. 오늘의 중국이 지혜로운 선조들 처럼 하늘의 뜻대로 가고 있는지 한번 쯤 생각해 볼 일이다.

수필 ∙ 나정길 |

171


장자의 무용지용의 철학 나 정 길

중국 고대 철학자들 중 장자(369?–286? BC)는 퍽 매력적인 인물이다. 본명은 장주이고 송나라에 태어났고 맹자와는 동시대 사람으로 서로간에 교류는 없었고 83세를 살다 갔다. 그의 저서는 맹자의 두배로(6만 5천자) 방대하고 사상적으로는 노자를 이어받고 공자, 맹자의 유가와는 역설적인 사상을 펼쳤다. 누구나 출세를 갈망하던 시대에 권력을 사양하고 가난하지만 영혼의 자유를 좇아 살았던 자유인이었다. 그의 철학의 핵심인 ‘무용지용’은 너무 많은 것을 갈망하며 복잡하게 살아가는 지금의 우리들에게 크게 울림을 준다. 무용지용은 쓸모없는 물건이 라도 생각을 바꾸면 쓸모 있는 물건이 된다는 뜻이다. 장자는 고정관념에 얽매이지 말고 자유롭게 생각하라고 했으며 이것은 새로운 창조와 질서의 시작이 된다고 했다. 정치적인 개혁이나 예술적인 창조나 새로운 발명도 모두 기존의 고정관념에서 벗어나야 가능한 것일지도 모른다. 우리는 너무 화폐의 효용 가치만을 따지는 세상에 살고 있다. 여기에는 격심한 경쟁과 심화된 빈부의 격차로 스트레스 받고 있다. ‘모든 집착에서 벗어나 무위하고 소요하는 삶이 마음의 치유와 평안을 가져다준다.’고 했다. 자유롭게 사는 것이 더 아름답다고 했다. 나만 적게 가졌고 나만 가난하고 나만 되는 일이 없다는 생각을 바꾸어 넉넉하지는 않지만 지금으로 살만하고 더 노력한다면 더 나아질 수도 있을 것이다.

172

| 뉴욕문학 제31집


장자는 남의 시선과 칭찬을 너무 의식하지 말고 자기중심으로 살라 고 했다. 명예와 칭찬 뒤에는 반드시 비난과 질투도 따라 온다고 했다. 다른 사람의 시선으로 부터 자유로워지고 남의 칭찬이나 비난에 마음 쓰지 않으면 참다운 사람(진인)이 될 수 있다고 했다. 우리 주변에는 조금 능력이 부족하다고 ‘쓸모 없는 사람’으로 치부하는 경우가 있다. 아무도 쓸모없는 사람은 없다. 한 사람의 평가는 오직 자기 자신만이 할 수 있다. 재미있는 우화를 예로 들었다. 집짓는 이가 산에 가서 바람에 휘어진 나무는 쓸모없다고 올곧은 나무들만 목재로 베어갔다. 쓸모없는 나무들만 살아남아 아름다운 산을 지키게 됐다는 것이다. 모든 꽃들은 제각기 모양과 색깔을 가지고 아름답다. 비교하지 말라고 했다. 내가 먹는 음식이 제일 맛있고, 내가 입은 옷이 제일 좋고, 내가 사는 집이 제일 편하고, 내가 누리는 문화가 제일 즐겁다고 생각 한다면 낙원에 사는 것이라 했다. 세상에는 똑똑한 사람이 많아서 똑똑하게만 살기 어렵고 바보처럼 살기도 싫고 똑똑한 이가 바보처럼 살기는 더욱 어렵다는 명언을 남겼다.

* EBS 방송, 박재희 원장 강의 참조

나 정 길 제11회 『뉴욕문학』 신인상 수필부문 당선. 미동부한인문인협회 부이사장, 부회장 역임. 수필집: '우리를 유혹하는 것들'. jungna1941@gmail.com

수필 ∙ 나정길 |

173


꿈 속의 그 집 노 려

끈질기게 반복되는 꿈이 하나 있다. 집에 가려고 하는 꿈이다. 태몽도 없었고 특별하게 기억나는 꿈도 별로 없지만, 가끔씩 잠에서 깨어나 면서 ‘어, 또 이런 꿈이네’ 하는 꿈이다. 미국에 살기 시작할 무렵부터 거의 40년이란 세월에 거쳐 ‘이런 꿈’을 꾸고 있다. 잠이 깨는 비몽사몽 중에 이것이 그냥 꿈이라는 것에 안도의 숨을 쉬곤 한다. 상상도 못할 기상천외한 스토리 속에서 항상 똑 같이 반복되는 건 어느 상황에서나 내가 비행기나 기차 아니면 버스를 타려고 애를 쓰고 있는 것이다. 목적은, 집에 가려고 하는 것이다. 꿈 속에서 가려고 하는 집은 정해져있다. 내가 중,고등학교 때 살던 집인데, 꿈 속에는 집에 도착하는 장면은 단 한 번도 안 나온다. 언제나 총총거리기만 한다. 집에는 엄마가 있고 동생들이 있고 어떨 땐 아버지도 있다. 그들이 나를 기다리고 있는지는 알 수가 없지만, 언제나 뭔가 복잡한 일이 엉겨서 집에는 가지 못한다. 하다못해 택시 운전수가 이 골목엔 못들어 간다고 우기기도 한다. 학교 끝나면 친구들과 몰려다니다가 늦은 밤이 되어야 허겁지겁 버스정류 장으로 뛰어가던 이유는, 무엇보다도 집에 가기가 싫은 잠재의식이 있었기 때문이리라. 유난히 자유분방 하신 부모와 될수록 맞닥뜨리고 싶지 않았던 나, 또한 무척 자유분방했었으니 말이다. 이사를 여러 번 다녔는데도 왜 꼭 그 집이 꿈에 나타나는 건지도 알 것 같다. 세 명이나 되는 감성 어린 나이의 여 동생들을 두고서 밖으로만 돌던 큰 언니의 그 미안함이, 더욱이 내가 미국에 오고 나서 아버지가 돌아가셨으니, 그 죄책감이 전혀 풀어지지 않고 숙성되어 거품이 이는 과정이 었던 것 같다.

174

| 뉴욕문학 제31집


혼자 10년 넘게 사신 어머니 칠순 때, 4자매는 정릉 끄트머리에 있던 그 집 - 내가 아침에 나와 늦은 밤에 들어가던 그 집엘 가봤다. 그 곳은 서울을 무섭게 파헤치던 불도저의 힘이 아직 미치질 않아 옛날 분위기를 그나마 유지하고 있었다. 좁은 골목길 한 쪽이 아직도 수녀원인지, 우리가 ‘수녀원 담’이라고 부르던 높은 담도 그대로였다. 우리는 어머나! 어쩌면! 하면서도 그 집에서의 사연들 을 꺼내들지 않았다. 청소년시기에 각자가 따로 따로 겪어낸 흔적, 아니 아직 아물지 않은 상처들을 함께 되짚을 용기가 없었던 것이다. 각자가 갖고 있는 부모의 모습은 전혀 다른 사람이다. 공통분모조차 없었던 것이다. 그 날, 우리는 강남 어딘가에서 맛있는 음식을 화기애애하게 먹었을것이 다. 그런 세월을 지내면서 나는 집에 가려고 해도 가지지가 않는 꿈을 계속 꾼 것이다. 팬데믹이 시작하기 직전 어머니가 돌아가셨다. 그러자, 동생들의 원망이 적나라하게 표면화되기 시작했다. 장녀가 가족들 을 버리고 미국에 가서는, 엄마조차 돌보지 않았다는 거다. 아니, 그 전서부터 다. 어릴 때부터 부모의 불화로 어려웠던 집안 나몰라라 매일 놀러다니기만한 언니라는…. 어머니를 미국으로 모셔 오려고 여러 번 시도했지만 어머니는 미국에 와서 조금만 지나면 한국 간다고 투정을 하셨다. 어머니가 “나는 미국에 열 번 넘게 다녀왔다.”고 자랑을 하시지만 동생은 어머니를 공항으로 데려가 고 마중 가느라 고생이 심했다고 한다. 노령으로 미국에 오시기 어렵게 되자 내가 ‘엄마랑 밥 먹으러’ 그냥 한국엘 갔고, 또 동생들에게 자유시간을 좀 주려고 매년 구정이나 추석에 맞추어 한국엘 갔어도, 동생에게는 매번 손님처럼 오는 언니가 싫기만 했던 것이다. 결국 90세에 요양원으로 간 어머니를 만나러 갔을 때, 동생들이 말했다. 나한테서는 미안해하는 느낌이 전혀 전해오지가 않는다고. 그래. 나는 정말 덕이 없는 언니였고, 가족을 위해 희생하는 장녀가 아니었

수필 ∙ 노 려 |

175


던 것은 자타가 공인하는 것이고. 원망 듣는게 싫어서가 아니라 원망하는 그 마음을 풀어줘 보려고 애는 썼지만 역부족인거 확실하네. 그래 맞아. 어쩌면 정말로 미안하지 않았을 수 있어. 이미 죄인인 사람에게 자꾸 낙인을 찍으며 확인을 시켜 주었으니, 사실 뭐가 미안했겠어. “언니 걱정마. 언니도 힘들잖아. 그리고 언니도 많이 노력했던거구….” 이런 말을 단 한번이라도 들어봤으면 어땠을까? 됐다. 실컨 원망해라. 나는 안 미안하다. 마음이 홀가분해져서인가, 내 단골 꿈 속의 집, 집에 가질 못해서 발을 구르던 그 집이 사라져버리고, 불협화음 유전인자를 고스란히 넘겨주신 나의 엄마 아빠를 가끔 아주 가끔 꿈 속에서 만나본다.

176

| 뉴욕문학 제31집


바위에 던지는 계란 노 려

‘아시안 헤이트’가 이슈로 떠오르자 딸 아이의 시고모가 호신용 페퍼 스프레이(Pepper Spray)와 연필 모양 흉기를 선물하더라고 했다. 아니 우리 가 미국에서 이렇게 살아야하나 비참하다. 지난 3월 CNN에 나온 한국 이름의 리포터가 애틀란타에서 죽은 한국여자 의 아들을 인터뷰하는 장면을 보면서 눈시울이 뜨거워진다. 다른 모든 사연은 제쳐놓고 미국에서 아이를 키운 한국여자라는 것만으로 울컥했었다. 근사하게만 들렸던 ‘멜팅 팟(Melting Pot)’과 ‘샐러드 보울(Salad Bowl)’ 의 진정한 의미가, 지금 인종차별이라는 단어 하나로 모아진다. 얼마 전 유튜브에서 1980년대 영화 ‘The Straight Story”를 봤다. 예전같으 면 당연히 가슴이 찡한 휴만 드라마로 봤을텐데, 지금은 미국 중서부 한 동네에 늙은 백인 남자들이 맥주집에 모여 떠드는 장면에서, ‘아, 바로 저런 사람들이겠구나’하게 된다. 백인 우월주의자 말이다. ‘미드웨스턴’이란 말에서도 지금은 마스크를 거부하고, 백신을 거부하고, 국회의사당을 침범한 사람들, 총기 소유를 부르짖는 사람들이 먼저 생각난 다. 애틀란타 사건이 종교 메니악인지 인종혐오자인지 범인의 성격을 두고, 한쪽에서는 공연히 헤이트 크라임(Hate Crime)’이라는 이슈를 부추긴다고 하고, 또 한 쪽에서는 그 동안 아시안은 쥐죽은 듯 살아왔다는 역사까지 드러내면서 왈가왈부하고 있는 중에, 10명을 살해한 콜로라도 사건이 또 터지면서 애틀란타 이야기가 잠잠해졌는데, 콜로라도 사건도 또 다른 사건으 로 인해서 서서히 잊혀져갔다. 미국이 이런 나라다. 원래, 처음부터 이런 나라다.

수필 ∙ 노 려 |

177


영화에서 인디안을 물리치면 박수를 치고 끄떡하면 시민끼리 총을 쏘는 서부개척사 스토리에 잘생긴 주인공을 흠모 했었는데, 이제야 진짜 미국을 알아차렸다. 킨타 쿤테라는 이름이 아직도 머리에 남아있는 흑인 노예 TV 드라마 ‘루트’를 보고 나서도 왜 미국이란 나라에 대한 동경은 사그라지지 않았을까. 미국 잡지에 등장하는 히피들의 모습과 팝송과 영화 속 풍경들이 마음 속에 미국의 환상을 심어 놓았기 때문인가. 한 친구는 뉴욕에 온지 몇 달 안되어 인종차별을 당했다고 했다. 중 고등학생인 세 명의 아이들을 좋은 학군 학교에 등록시키고, 큰 집을 사고 첨단을 가는 비지니스를 하려고 맨해튼을 물색하고 다니면서, 유난히도 여러 번 유색인종 차별을 받았다는 것이다. 그러나 나는 그때 미국에 온지 20년이 되도록 인종적 차별을 받은 특별한 기억이 없었다. 미국에 오자마자 결혼하고 아기를 낳고는, 영어 못해 운전 못해하면서 오히려 내 쪽에서 지레 뒤로 돌면 돌았다. 인종차별은 신문에나 나는 일로 여겼다. 내 아이들이 분명히 유치원부터 당했을 차별에 대해서도 무심했던 것은, 학교에서 돌아온 아이들의 세미한 기분을 눈치채지 못했기 때문이었을까. 오바마가 대통령이 될 무렵, 조용한 주택가인 우리 동네 흑인들이 쏟아내는 경험담을 들으며 인종차별을 실감한 그 때만해도 인종차별이란 개념을 어렴풋이 느낀 정도였다. 이번 애틀란타 사건으로 더불어 알게 된 건 서양남자들이 아시안 여자를 아주 이국적인 성적대상으로 여긴다는 것이다. 그러고 보니, 가슴 울리는 아리아 ‘마담 버터플라이’ 조차도, 심심해서 놀려고 한 백인 중년 남자에게 일편단심하는 동양의 몸 파는 여자를 예술로 승화시켜, 백인 남자들에게 판타지를 심어준 장본인 아닌가한다. 누구는 한국에서의 인간차별이 더하다, 세상 모든 나라가 다 그런데 왜 유독 미국에게는 높은 잣대를 대냐고 한다. 왜냐고? 내가 살고 있기 때문이다. 그리고 뭣 모르는 이민자로 적당히 천방지축 살아온 나 보다는 내 자식들과 그들의 자식들이 미국인으로 살아야 할 나라이기 때문이다.

178

| 뉴욕문학 제31집


페퍼 스프레이 들고 다니는 것 보다 먼저 할 일을 찾았다. 즉 노년에 할 일을 찾은 것이다. 손자 손녀를 위한 ‘칼리지 펀드' 보다도 먼저 할 일이다. 내가 뛰어나가지는 못하더라도, 종이장에 쓴 피켓을 들고 거리로 나서는 인권단체를 후원하는 일이다. 바위에 계란 던지기다. 그러나 물방울이 바윗돌을 뚫은 증거는 많이 봤다. 두꺼운 유리벽에 계란을 던져 퍽 하고 깨뜨려 보자. 많은 인종이 섞여 멋진 맛을 내는 샐러드 볼이 되기 위해 나의 계란 하나를 깨서 던지는거다.

노 려 1952년 생 1982년 도미 홍익대학교 미술대학, 홍익대학교 산업미술 대학원 뉴욕한국일보 기자 한국 디자인하우스 통신원 전 뉴욕 한국일보 웨체스터 지국장 미동부한인문인협회 이사, 미동부 PEN 회원 nohryo@gmail.com

수필 ∙ 노 려 |

179


Croton Dam(New Croton Dam) 방 인 숙

세 부부가 한 달에 한 번씩 정규 만남 외에 당일 여행도 같이 하곤 한다. 오늘은 내 남편의 한국일정을 앞둔 송별 겸, 가을 여정 겸, 6명이 크로톤 댐을 가기로 했다. 가는 길에 베어마운틴의 Hessian Lake에 들렸다. 언제 어느 때 와 봐도 정취가 그윽한 호숫가에서 김밥으로 요기 후, 호수를 한 바퀴 돌았다. 베어마운틴 다리가 저마다 뽐내는 단풍든 나무들 사이로 숨을 듯, 말듯, 하늘에 뜬 듯, 무척이나 낭만적이다. 잠시 후, 천상의 그림 같던 자태로 로클랜드 카운티와 웨스트체스터 군을 연결하는 그 베어마운틴 다리를 건넜다. 차를 파킹하고 감상하는 조망 터에서 잠시 풍정을 즐겼다. 강 건너 쪽에서 보는 베어마운틴이, 코앞에서 도도히 흐르는 허드슨강과 어우러져 단연코 선경이다. 인간관계마냥 약간의 거리를 두고 보니, 산 안에서 머물 때보다 더 가슴에 와 안긴다. 뉴욕에서 북쪽으로 22마일 떨어진 Croton Dam으로 향했다. 허드슨 벨리 지역 코틀랜드에 있는 인공 댐이다. 댐의 기원은 1837년~1842년에 걸쳐 건설됐던 297피트(91m)의 Old Croton Dam이다. 당시론 세계에서 가장 높은 댐이었단다. 원조인 올드 크로톤 댐에서 4마일 떨어진 이곳에다 1892년에서 1906까지 재건했다. New Croton댐으로 불리는 이유다. 무려 114년이나 된 댐은 길이 2188피트(667m) 너비 266피트(81m)로, 크로톤 강을 막은 뉴욕 시 급수시설이다. 즉 거대한 저수지인 셈. 2013년부터는 보수공사를 시작, 웨체스터 지역의 주요 식수공급처가 됐다. 의례 일반적인 폭포구경을 예상하고 갔다가 깜짝 놀랐다. 나로선 처음 접하는 이색적인 폭포의 외양에 완전 압도되었다. 자연적으로 이루어진 지형에 맞춰 인위적으로 만든 장대한 폭포였으니까. 수문 대신 댐 한쪽의 귀퉁이를 넓게 계단으로 조성, 계단식으로 낙차 하는 폭포가 장관이었으니 까. 건기냐, 우기냐에 따라 자연스레 폭포의 수량은 물론 크기와 모양새가 180

| 뉴욕문학 제31집


달라지게끔 말이다. 폭우 후, 온 계단이 다 폭포가 될 걸 상상하니 어마어마하 겠다. 발상이 참 새롭다. 댐의 담도 의외로 높아 웅장한 성벽 같다. 그 위로 사람이 걷게끔 만든 다리도 아름답다. 멋지게 조화를 이룬 인공과 자연의 합작품이다. 우린 댐 옆쪽 기슭에 97에이커인 크로톤 고르게 공원(Gorge Park)산책로를 따라 다리로 올라갔다. 물위에 뜬 다리의 폭이 예측보다 넓은데다 눈앞에 확 펼쳐진 광활한 호수가 숨을 딱 멈추게 했다. 끝이 가물가물 잘 안보일 만큼 툭 트인 장대한 강이었다. 하늘과 물이 맞닿은 한 폭의 수채화를 한참이나 넋 놓고 바라봤다. 그뿐인가. 그런 강 같은 호수를 에워싼 나무들, 숨박질하듯 드문드문 보이는 별장 같은 집들이 너무 아스라하고 예쁘다. 꿈속정경인지, 동화나라인지 가늠이 안 된다. 다리의 성벽 쪽으로 가서 전망하니, 좀 전에 이곳을 올려다보던 장소가 이젠 까마득한 아래다. 계단 폭포의 물을 담아 흐르는 계곡이 비로소 제대로 눈에 들어온다. 우리나라 도봉산 계곡처럼 수굿하고 아가자기하다. 협곡 가로 드리워진 오색 치장한 나무들은 금상첨화 이상이고. 지금은 갈수기로 만수가 아니라서 폭포줄기가 약한 거란다. 대신 물에 안 잠기고 드러난 수문 꼭대기엔 갈매기들과 거북이들이 햇볕바라기하다 오수에 빠져있다. 얼마나 고즈넉하고 평온해 보이는지, 완전 속세를 떠나 딴 세계에 와있는 듯싶다. 슬그머니 37년 전 호주의 서부 Perth에서 상주할 적으로 돌아갔다. 그때 휴식 차 즐겨 찾았던 장소 중에 문더링 위어(Mudarin Weir)라는 둑이 있었다. 퍼스에서 1시간 남짓 걸리는 소박한 시골에 있는 댐이었다. 가는 길이 온통 코알라 곰의 서식처인 유칼립투스(Eucalyptus)나무로 덮인 삼림 지였다. 그 나무의 어원이, 그리스어로 덮여있는, 둘러싸여 있다, 라더니 딱 그 짝이었다. 방풍 목으로도 좋은 그 나무는 호주가 원산지로 세계에 약 700여종이 있단다. 당시엔 일진이 좋으면 그 나무에 매미처럼 매달려 자고 있는 코알라 곰도 보곤 했었다. 그나저나 가뜩이나 멸종위기식물인 유칼립투스가 2019년 가을, 호주

수필 ∙ 방인숙 |

181


서부를 휩쓴 어마어마한 산불로 엄청나게 소실됐단다. 그 나무에 생사가 달려있는 코알라 곰들도 덩달아 30%이상이나 타죽었다지. 한 때 즐겨보고 지나다니던 유칼립투스의 울창한 숲이, 귀여운 코알라 얼굴이 자꾸 떠올라, 참 많이 가슴이 아리고 안타까웠었다. 새삼 측은지심이 든다. 문더링 위어도 제법 넓었지만, 크로톤 댐보다는 규모도 다리의 폭도 많이 좁았지만, 거북이는 득시글댔었다. 수문 폭포 같은 볼거리는 없어도, 다리건 너면 공원이라 어른들은 돗자리 펴고 앉아 한담하고, 애들은 자연 속에서 마음껏 뛰놀곤 했었다. 유칼립투스의 추억이라는 꽃말처럼, 내겐 이제 아련 한 추억이자 그리움이다. 그런데 오늘 그러니까 1985년도에 퍼스를 떠나온 이래, 미국에서 처음 댐 구경을 했다. 아! 40년도 더 넘은 까마득한 옛날, 소양강 댐도 가봤고 또 거의 20년 전 쯤엔 충주호도 지나갔었다. 허나 그 두 곳 다 폭포에 대한 기억은 없다. 그랬기에 이 크로톤 폭포는 완전 허를 찔린 느낌이다. 댐의 강렬한 인상을 간직하곤, 근처 허드슨강 동쪽 항구인 508에이커 크로톤 포인트 파크(Croton Point Park)에 들렸다. 가는 길에 코틀랜드(Cort landt)타운 일부인 주변 마을들의 경관이 독창적이고 전원적이다. 알고 보니 1900년대 초, 진보성향의 예술가와 작가들이 많이 거주했단다. 그래서 Croton-on-Hudson마을을 그리니치 빌리지-온-허드슨이라고도 불린단 다. 이 지역 원 이름은 Keneten인데 인디언 말로 사나운 바람(Wild Wind)이 란 뜻이란다. 7000년 전쯤엔 이곳이 강폭하고 용맹스런 원주민 인디언의 요새였기 때문일까? 우리는 강변에 방죽 같은 낮은 턱에 앉아 허드슨 강물에 손을 담아봤다. 명품 산을 배경으로 흘러 그런지, 허드슨 강의 의젓하고 창대한 맵시가 더 돋보인다. 영국의 템스 강이나 파리의 센 강은 물론이고, 다뉴브 강도 명함을 내밀지 말아야한다. 허드슨 강이 훨씬 더 유구하고 주변의 자연적 경관이 빼어나니까. 그렇다면 조물주와 인간이 공동으로 빚어낸 걸작 품이라 는 한강과는 막상 막하? 글쎄다. 내 마음의 저울추는 당연히 한강 쪽으로 기울지만...

182

| 뉴욕문학 제31집


여하튼 인디언들의 흥망성쇠와 뼈아프고 한 많은 진실들도 다 지켜봤을, 역사의 산 증인인 허드슨 강은, 말이 없다. 그저 오늘도 변함없이 장구히 흐를 뿐이다. 앞으로도 영구히 그렇게 흘러 갈 것이다. 한강도 그러리라... Covid-19로 인해 절정의 단풍구경 시즌 임에도 어딜 가나 인파가 없다. 보너스처럼 받은 한적한 여유를 마음껏 누렸다. 그나마 다행인가? 모처럼 호젓하게 안복(眼福)이 넘친, 2020년 가을의 하루였다.

수필 ∙ 방인숙 |

183


손자의 첫 선물 방 인 숙

8살짜리 손자 이야기다. 손자가 애기일 때, 업고서 자장가 불러주며 재우곤 했던 일이 엊그제 같은데, 벌써 3학년이다. 그래도 내 마음엔 애기 때 돌봐주던 당시처럼 항상 애기그대로다. 그런 손자한테 처음으로 선물을 받았다. 손자가 새해라고 세배하러 왔을 적이다. 집에서 절 연습을 좀 했다나. 생경하고 재밌긴 한데 계면쩍은지, 몸을 비비꼬며 싱긋 웃더니 절을 예법대로 했다. 내가 절을 받고는 새 돈으로 1불짜리 50장을 줬다. 할머니가 너 주려고 일 년 동안 새 돈이 생기면 차곡차곡 모은 거라면서. 이 참에 세뱃돈에 얽힌 가풍과 증조할아버지얘기를 해줬다. 내가 자랄 때 설날이면, 우리 6남매는 할머니와 부모님 앞에 순서대로 쭉 서서 세배를 했다. 그러면 세분이 덕담을 하시며 나이에 맞춰 차등금액으 로 세뱃돈을 주시는데, 아주 빳빳한 신권이었다. 해마다 그러셨는데, 자상하 고 따뜻하신 아버지가 새 돈을 비축하신 다음, 미리 할머니와 엄마에게도 주시곤 했던 것이다. 지금은 하늘에 계신 세분의 그리움에 잠시 먹먹해있는데, 세뱃돈 받은 손자가 "할머니! 내 돈으로 샀어요."하면서 고사리 손으로 제가 포장했다는 선물을 내밀었다. 일순간, 가슴이 먹먹해지며 코끝이 찡하다. 펴보니까 예쁘고 따뜻한 양말과 덧양말이다. 어떻게 그 조그만 가슴에서 이런 아이디어 가 솟았을까? 내가 감동해서 눈물을 참는 걸 보곤, 아들내외가 자초지종을 얘기했다. 크리스마스 쇼핑을 하는데 손자가 따라가선, 저도 꼭 제 돈으로 할머니선물 을 사고 싶다고 하더란다. 작년까지도 산타클로스 할아버지를 진짜로 아는 눈치였는데 말이다. 또 제 돈이라야 돈과 종이의 차이도 모를 적부터 어른들 이 준 걸 모은 거라나. 나는 손자가 돈의 개념을 모르는 줄로 여기고 있었다가,

184

| 뉴욕문학 제31집


최근엔 아닌가? 하던 참이었다. 실은 얼마 전, 제 고모에게 "할머니는 돈이 없어!" 하기에 "왜 그렇게 생각하는데?"물었단다. 그랬더니 제 집과 고모 집은 좋은데 할머니 집만 나빠. 할아버지 할머니한테 내가 돈 줄까?"해서 깜짝 놀랐다며 딸애가 내게 귀띔해줬었다. 허긴 아들과 딸이 이사한 집들은 재건축한집이다. 비해서 우리 집은 역사가 70년도 넘어 모든 설비가 구식이고 낙후됐다. 반면 제 집이나 고모 집은 신식스타일에 새집이다 보니, 뭘 모르는 어린 눈에도 우열이 쉽게 느껴지나 보았다. 하여간 나는 손자의 첫 선물을 차마 못 신고 도로 잘 싸서 모셔두고 있다. 바라만 봐도 흐뭇하니까. 새삼 손자가 두 돌도 안됐던 때의 행복한 기억이 떠올라 미소가 인다. 손자를 포대기에 꽁꽁 싸매 업고는 아들집 동네를 돌며, 퇴근길의 제 아빠 엄마를 기다리곤 했다. 그때 손자가 유난히 좋아했던 것이 꼬마 색등으로 장식된 산타나 사슴, 기차 같은 크리스마스설치물들이었다. 손자는 멀리서 깜빡이 전구들만 보이면 "으으!"하면서 그 쪽을 향해 손가락질을 했다. 그러면 나도 얼른 "저거 보러가자! 뛰어가자!"하면서 신나게 달음질을 했다. 말은 못해도 말귀를 알아들은 손자는, 내 등을 손바닥으로 탕탕 치면서 신명나게 키득거렸다. 그리곤 뛰어가는 동안 처네 안에서 엉덩이를 들썩이며 개구리마냥 다리를 쫙 폈다 오므렸다 했다. 지금도 말 탄사람 모양 내 허리에 발길 질 하던 감촉이 생생히 되살아난다. 유감인 점은 손자가 한국말 연습과, 그림책보기, 퍼즐 맞추기 등, 나랑 함께 놀던 일을 너무 어릴 때라 전연 기억 못하는 거다. 그럼에도 할머니의 사랑을 알아주니 신통하다. 더구나 못 사는(?) 할머니가 불쌍하다며 선물로 위로해주려는 마음이 우러났다는게 너무 신기하다. 원래 애기 때부터 욕심이 없고 착했다. 헤어질 때면, 아끼는 장난감을 가져가라며 고모나 나한테 억지로 덥석 떠안기곤 했었으니까. 손자가 두 돌이 지나서다. 겨우 단어 한 마디씩으로 제 의사를 ‘끙끙’ 표현할 적이다. 마침 손자랑 2층 창가에서 내다보니, 길 건너 가로수에서

수필 ∙ 방인숙 |

185


다람쥐가 내려와 잽싸게 도로를 횡단했다. 그때 손자가 갑자기 "할머니! 다람쥐가 이쪽으로 왔어!"하는 게 아닌가. 손자가 태어나서 처음 말문이 터지는 순간이었다. 어찌나 놀랍고 감동적이든지... 그렇게 손자가 최초로 완벽하게 제 의사를 문장으로 구사한 말이 '자연현상' 에 대한 거였다. 그처럼 손자가 쭉 자연에 대한 관심과 사랑을 키워, 감성이 풍부한 애로 컸으면 좋겠다. 그럼으로 자연스레 영혼이 아름답고 순수한, 그래서 맑고 밝은 해피보이(Happy Boy)로 쭉 자랐으면 좋겠다. 나의 간절한 희원이다.

방 인 숙 1995 ; 뉴욕 라디오코리아 에세이 장원. 1996 ; 한국수필로 등단. 1999 ; 미주 중앙일보 신춘문예 가작. 2003 ; 재외동포 문학상 대상. 2004 : 한국무역협회 해외동포 수필공모 최우수상. 2011 : 경희해외동포문학상 입상 작품집 : 2009 : 뉴욕의 미루나무 길을 달리며 한국 문인 협회 회원. 미 동부 한인 문인 협회 회원. 미주 한국 문인 협회 회원. insookbang@gmail.com

186

| 뉴욕문학 제31집


피고 지는 꽃처럼 2 양 정 숙

꽃을 피우기 위해 1년을 기다리다 잠시 피고 지는 꽃, 인간의 한생도 저 꽃들의 시간과 견줄 수 있을까. 열흘을 버티지 못하고 한순간 지는 꽃이나, 백수(99)의 생애를 보낸 사람의 죽음이나 영원이라는 시간을 기준으 로 할 때 죽음의 선후를 따지는 것은 부질없는 시간의 개념이 아닐까. 지난밤 세우로 동백꽃 낙화하듯 생을 마친 자목련이 땅위에 흉하게 너부러져 있다. 치맛자락을 몸에 돌돌 감은 것 같은 모습으로 지는 무궁화의 단아한 이미지와는 많이 다르다. 봄의 시작을 알리는 봉긋한 자목련의 꽃봉오리마다 마치 그대를 향한 일편단심 천명에 순응하겠다는 다짐처럼 일제히 북향을 향한 서기 어린 모습에 매료되었던 마음도 잠시, 비릿한 냄새가 풍겨올 것 같은 지는 모습이 애처럽고 안타깝다. 자목련은 나무 위에 연꽃 같은 꽃잎을 활짝 피울 즈음, 우윳빛 속살을 드려내며 더 이상 지체할 수 없는 시간임을 아는지 자줏빛 저고리를 벗어 땅에 ‘툭’ 던지고 스멀스멀 형체도 알 수없이 썩어져 흙으로 돌아가는 목련의 소멸은 유한인 삶인 모두에게 어떤 의미로 다가갈까. 사월 목련이 사위어갈 무렵 겹벚꽃 환하게 다투어 얼굴을 들어냈다. 어디선 가 “참 곱다!”하시는 어머니의 음성이 들려오는 것만 같아 짐짓 주변을 돌아본다. 벚꽃나무 아래 도보위로 여린 꽃잎들이 수북하게 모여 핑크빛 꽃길도 마련했다. 가시는 걸음걸음 놓인 그 꽃을 사뿐이 즈려밟고 가시라는 김소월의 시, ‘진달래꽃’이 떠올라 나도 모르게 입가에 미소가 번진다. 지난해 봄. 사월의 봄비가 슬픔처럼 내리고 사방에 핀 꽃들에게도 조차 위로를 받지 못한 우울한 시간, 창밖으로 꽃비처럼 내리던 겹벚꽃의 낙화모습 을 보며 장지로 향했다. 눈물 같은 봄비가, 1년 후 또 내렸다. 안녕히 계셨냐고 인사를 드렸다. 비를 맞고 서있는 주변 나무들도 숙연한 자세로 지켜보는 가운데 남편은 돌멩이 두 개를 가져다 묘석 양쪽에 얹어 놓았다. 단단한 수필 ∙ 양정숙 |

187


돌처럼 변치 않은 마음을 염두에 둔 것인지 알 수는 없지만, 일본영화 ‘굿바이’에서 아들에게 아버지가 건네주던 돌멩이가 문득 생각이 났다. Section 11-A R126, 시부모님을 모신 장지 주변마다 검은 운구차가 줄을 잇던 지난 4월과는 달리 후손들이 가져다 놓은 꽃들로 가득하다. 출구를 향해 나오면서 4개의 날렵한 꽃잎마다 불에 데인 자국처럼 나있는 핑크빛 도그우드가 여느 꽃과는 달리 의연한 자세로 매달려있다. 새봄을 기약하며 사월이 사위어간다. 순서 없이 피고 지는 꽃은 자연의 순환을 겸허히 받들고 한동안 우리들 가까이에서 환한 얼굴로 피고 질 것이다.

양 정 숙 충북 출생, 전직개업조산원 2003년<문예운동>수필등단 한국문인협회, 국제PEN한국본부회원 국제PEN한국본부뉴욕지역위원회 감사 현 미동부한인문인협회 회장 수필집 <마음 밭에 뛰노는 빗소리> 제11회 원종린수필문학상 수상 jsyang279@gmail.com

188

| 뉴욕문학 제31집


치유의 힘 양 주 희

신문을 펼치면 가끔 눈에 띄는 것이 있다. 힐링 투어 여행도 치유되는 도깨비 방망이 쯤 되는 것 같은 느낌이 들게 한다. 친구가 5박6일 코스타리카 를 여행하고 왔는데 얼굴이 반짝반짝 빛이 나고 피부도 좋아 보였다. 온천에 가서 몸을 씻으며 녹이고 나면 맛있는 음식상이 차려져 있어 지상낙원에 온 기분이었다고 한다. 생글생글 웃는 모습이 야 진짜 힐링이 되었구나 생각 되었다. 스트레스가 쌓이거나 하는 일이 풀리지 않고 일상이 지루할 때 여행만큼 좋은 것이 있겠냐마는 그것도 여건이 허락 되어야 할 수 있는 놀이다. 힐링이 유행어 인지는 몰라도 추수감사절 힐링 콘서트도 있고 이제는 야식이 힐링이다라고 버젓이 선전한다. 누군가 나에게 힐링이라는 단어를 가장 쉽게 정의해 보라고 한다면 망설여지게 된다. 라틴어 속담에 Medicus curat, Natura sanat (의사는 치료하고 자연은 치유한다)라는 명언이 있다. 지난겨울 딸이 스키를 타다가 넘어져 다리를 다쳤다. 수술을 하고 3개월간 깁스를 하고 지금도 재활 치료를 받고 있다. 의사가 수술을 하지 않았다면 부러진 다리 치료가 불가능 했을 것 같다. 하지만 의사는 부러진 다리가 정상으로 되도록 도왔을 뿐이고 다리는 자연적인 소생력이 치료를 완성시킨 것이다. 치료는 자연이하고 의사는 조력자 일 뿐이라고 히포크라테스도 말하지 않았던가. 맛있는 음식 편안한 여행이 우리를 치유하는 것은 결코 아니다. 우리 모두는 스스로를 힐링할 수 있는 잠재력을 갖고 있다. 이는 자연이 준 최고의 선물이요 신이 허락한 무한한 능력이다. 때문에 스스로를 자연과 우주의 한 부분으로 느끼고 자신에게 주어진 생명을 선물로 인식하는 것이 중요하다. 최근 자연 치유력을 굳게 믿는 치료자들이 즐겨 사용하는 방법이 바로 명상이다. 자신의 호흡에 집중하면서 스스로 살아있음을 느끼는 것이 수필 ∙ 양주희 |

189


명상의 시작이다. 자기 자신을 타인과 비교하며 판단하지 말고 내면을 가만히 들여다보는 것이 도움이 된다. 때로는 내면의 고통을 피하지 않고 대면하는 것이 자연적 인 소생력을 불러일으킨다. 통증클리닉 의사들이 명상을 권하는 이유다. 의사는 오히려 환자들에게 그들의 통증 부위를 가만히 느껴 보라고 주문한다. 통증은 내가 무섭다고 피해야 할 고통이 아니라 내 안에서 발생한 나의 일부임을 받아들일 수 있도록 말이다. 내가 겪는 고통과 불편함을 그저 내 안의 작은 일부로만 받아들이고 느낀다면 거짓말처럼 그 농도가 옅어질 것이다. 누구나 화가 나면 자신의 내면을 온통 분노로 가득 차 있다고 느끼고 한번 창피함을 당하면 세상 모두가 자신을 버렸다고 믿는 비합리적인 생각을 하기 마련이다. 하지만 나를 향한 가혹한 판단을 내려놓으면 내 안의 분노나 수치심도 그저 내면의 수만 가지 느낌 중 하나로 여기는 것이 가능해진다. 우리는 누구나 차유의 주인공이다. 자연이 준 자신의 치유력을 믿고 나를 받아들이는 것은 우리의 몫이다.

190

| 뉴욕문학 제31집


Virtual 마라톤 양 주 희

11월 1일은 뉴욕시티 50회 마라톤대회 날이었는데 코로나19로 대회가 취소되었다. 대신 Virtual 마라톤 신청을 받았다. 어디서나 어느 때나 날짜 상관없이 26.2마일을 완주하면 크레디트 하나를 받을 수 있다. 나는 우리 동네 Saddle River County Park에서 했다. 파크에는 6마일을 달리거나 걷고 자전거를 탈 수 있는 길을 만들어 놓았다. 옆으로 강이 흐르고 숲이 우거져 자동차 차선 도로와도 떨어져있다. 운동하 기에 좋은 길이다. 가는데 6마일 돌아오면 12마일 두 번 반복하면 24마일이고 집에서 파크까지 1마일 이다. 집으로 돌아오면 26마일이고 6마일 마지막지 점에 0.5마일 돌아오는 코스가 따로 있다. 합하면 27마일 달린 셈이다. 1시부터 비가 내린다는 일기예보가 있었다. 비를 피하기 위해서 일찍 시작했다. 5시 30분에 집을 나섰다. 보통 때는 5시 30분 엄두를 내지 못할 시간이다. 깜깜해서 시야가 눈에 들어오지 않았다. 무섭다는 관념을 깨고 단단히 마음먹었다. 인적 없는 파크는 바람도 잠잠했다. 그 많은 사슴도 보이지 않고 다람쥐도 자취를 감췄다. 쌀쌀한 날씨에 장갑을 끼었는데도 손이 시리다. 갈색의 낙엽들이 길을 안내했다. 이슬이 많이 내려 낙엽을 밟아도 소리 없이 묵묵히 길을 밝혀 주었다. 4-5마일을 달렸을까 날아 훤해지고 개를 대리고 나온 남자가 보였다. 그때부 터는 무서운 마음이 가라앉았다. 그 맑은 숲 속에서 마리화나 냄새가 풍긴다. 숲속에 놓인 의자에 앉아 건장한 남자가 마리화나를 피우고 있는 모습이 보였다. 무슨 사연이 있는지 아니면 중독자인지 그것을 이 새벽에 피워야 맛이 나는지는 모르겠지만 뉴저지가 마리화나를 정상으로 판매할 수 있게 되었다니 걱정스럽다. 햇빛이 나무 사이로 비친다. 알록달록 장관이다. 더운 여름을 이겨내고

수필 ∙ 양주희 |

191


아름다운 모습으로 사람들을 맞이하는 나무들이다. 많은 사람들이 나왔다. 걷는 사람, 개운동 시키는 사람, 뛰는 사람, 축구나 야구를 하는 팀들도 많다. 대부분 구릅을 지어 달린다. 달리는 사람들을 응원하며 물이나 바나나 초콜릿을 테이블 위에 진열해 놓았다. 그들과 4번 마주친다. 처음에는 Virtual 마라톤을 하는지 모르고 그냥 지나쳤는데 2번째부터는 만날 때마다 서로 응원을 해주었다. 뉴욕 마라톤은 집에서 뉴욕으로 가 파킹하고 걸어서 버스타고 또 스테이든 아일랜드에서 기다리다 지친다. Virtual은 자유롭다. 기다릴 것도 없고 공원 화장실을 이용하고 다른 사람과 보조 맞춰 뛸 필요도 없으며 나 혼자 취해 달린다. 쌀쌀한 날씨 덕분에 지치지도 않는다. 그저 묵묵히 앞으로 나갈 뿐이다. 무엇을 내 힘으로 해낸다는 것은 마음가짐과 용기가 필요하다. 비가 내린다 고 하는데 다음 주에 할까 하면 다음 주에도 하지 못한다. 날짜도 정하고 준비를 하면 몸은 자연스럽게 달리기 라인을 따라간다. 빨리 달리려고 애쓰지 않고 그냥 평소 연습한데로 한발 한발 옮기다 보면 마지막선이 보인다. 내가 하는 일 중 재킷 안감을 교체하는 일은 어렵다. 처음부터 어렵다고 생각하면 못하고 자포자기 해 버린다. 아니 해봐야지 하면 며칠이 걸려도 해놓는다. 손님이 그 옷을 찾으러 왔을 때 여간 흐뭇하지 않다. 그리고 잘 맞는다고 한마디 거들면 무슨 재봉사가 된 듯 기쁘다. 마라톤도 나에게는 마찬가지다. 힘들다고 말하지만 마지막 골인하면 너무 행복하다. 빗방울이 축하 한다며 어깨를 토닥거린다. 6시간 30분 걸렸다.

양 주 희 1975년 이민. 1998년 『한국 수필』 등단. 길벗 문학동인. 한국수필가협회 회원. 미주 한국수필가협회 회원. 뉴욕 중앙일보 오피니언 칼럼니스트 저서: '세상에 던진 그물', '그대 숲속을 거니는가', '솟아 나누는 샘물'. '생명에 탄생' jooheeyang9@yahoo.com

192

| 뉴욕문학 제31집


예수의 수난 (영화) - 아람어 라틴어 사용 연 봉 원

얼마 전 Passion of the Christ 란 영화를 다시 보고 느끼는 점이 많았다. 나는 이 영화를 좀 다른 각도에서 흥미를 가지고 보았다. 이 영화가 예수님 당시의 원어(原語)인 아람어와 라틴어로 배우들이 말한다는 사실이 다. 예수님을 위시한 일반 대중, 그리고 제사장들은 아람어로 말하고, 로마 군인들은 라틴어로 말했다. 쿼바디스, 벤허, 십계(十戒) 등 좋은 영화가 많이 있었으나 언제나 영어로 말하는데서 현장감이 없었는데, 놀랍게도 이 영화는 이미 사어(死語)가 되어 버린 아람어와 가톨릭을 위시한 극히 일부에서만 쓰는 라틴어로 배우들 이 말하고 영어 자막이 나왔다. 아람어 예루살렘에 가면 주기도문을 각국어로 담벽에 써놓은 교회가 있다. 물론 한글도 있다. 여기엔 아람어로 써놓은 것이 있는데 오늘날 이스라엘에서 쓰는 히브리어로 쓴 것과 분간을 할 수 없을 정도로 같은 것에 놀랐다. 사실상 오늘날 이스라엘인들이 쓰는 문자는 아람어에서 따온 것임을 알게 된다. 아람어는 기원전 4세기에서 기원후 7세기까지 천년이상 중·근동 그리고 페르시아 제국의 공용어였다. 유대인들이 바빌론에 포로로 있을 때부터 아람어로 말하지 않았는가 생각하는데, 하여튼 예수님 당시 유대인들은 아람어를 일상생활에서 썼고, 좀 배운 사람들은 헬라어(그리스어)도 상용했 다. 그래서 신약성서의 원문은 코이네라는 2천년 전 그리스어로 쓰여진 것이다. 구약의 에스라, 다니엘서에는 아람어가 혼용됐고 유대인들의 계율을 쓴 탈무드도 원래는 아람어로 썼다.

수필 ∙ 연봉원 |

193


아람어에 문외한인 나는 예수님이 “아버지, 아버지”하고 부르실 때 “아바, 아바”하는 것을 보고 역시 엄마, 아빠는 의성어(擬聲語)로 세계 각국 말이 비슷하구나 하고 느꼈다. 라틴어 아람어에 문외한인 나에게 라틴어는 생소한 말이 아니다. 라틴어도 사어 (死語)가 돼서 거의 쓰여지지 않고 있으나, 오늘날 프랑스, 스페인, 포르투갈, 이탈리아, 루마니아어는 라틴어에서 파생된 말이고, 법학 용어와 각종 학문 적인 용어는 라틴어를 쓰고 있다. 의학 용어에도 라틴어가 많이 있고, 더군다 나 가톨릭에서는 아직도 라틴어가 공용어로 되어 있다. 독실한 가톨릭 신자인 장면 총리가 집권하고 있을 당시(4·19 이후 5·16까 지) 막후 실력자는 노기남 대주교였다. 한국 신부(神父)들은 프랑스의 예수 회 선교사에게서 혹독한 라틴어 수업을 받았기 때문에 라틴어 실력이 딴 나라 신부들보다 출중했다. 세계 주교회의는 물론 가톨릭의 공용어인 라틴어 로 진행되었는데, 어느 나라 주교보다도 라틴어를 유창하게 하는 노기남 대주교는 언제나 인기를 끌었다고 한다. 그러나 라틴어도 세월이 가면서, 오늘날 영어를 국어로 쓰는 나라마다 악센트가 다른 것처럼 약간의 변질이 있었다. 이 영화에 나오는 로마 군인들 의 라틴어는 오늘날 이탈리아 악센트가 강한 라틴어다. 이 영화의 일부는 이탈리아에서 찍으면서, 이탈리아 라틴어 전문가에게서 자문을 받았다고 한다. 세계 라틴어 대회가 2년마다 열리고, 특이하게도 핀란드에는 매주마다 프로그램 전체를 라틴어로 방송하는 방송국이 있다. 물론 바티칸에도 라틴어 방송국이 있지만, 역사상 핀란드에 세계적인 언어학자가 많은 것을 인정하더 라도 핀란드 대학에서 라틴어를 집중적으로 교수하는 것은 특이하다고 생각한다. 그러나 라틴어도 근 2000년전 말이기 때문에 오늘날 새로 생긴 어휘에 맞출 수밖에 없다. 예를 들면 담배는 “nicotina fistula”-니코틴 빨대, on-line 은 “directe colligatio”- 직접 연결, 샴푸는 “capitilavium”- 머리카락 세탁 194

| 뉴욕문학 제31집


하는 식이다. 오늘날 라틴어를 상용하거나 상당한 지식이 있는 사람이 1천 5백만 명을 넘는다니 적은 숫자가 아니다. 유럽의 많은 대학에서 박사학위 구두시험을 라틴어로 하고 미국 동부 명문대학 졸업장은 라틴어로 쓰는 대학이 대부분이 다. 선전만 해준 반대 여론 ‘예수의 수난’은 반유대교적이라고 해서 영화가 나오기도 전에 세계 언론 을 동원한 유대인들이 떠들고 심지어 타임 잡지에는 “누가 예수를 죽였는가” 하는 것이 영화 개봉하기도 전에 표지에 나오더니, 그 다음 주에는 “왜 예수는 죽어야만 했는가”하는 표지가 나왔다. 이 영화가 나온지 불과 한달도 안돼서 3천만 명이 보았다니 요사이 유행하 는 말로 대박을 터뜨렸다. 이 영화가 생동감 있게 촬영됐고, 아람어, 라틴어를 배우들이 유창하게 구사한 것도 한 이유지만, 성공적인 마케팅을 했기 때문이 다. 영화가 상영도 되기 전에 전 세계 유대인들이 예수님은 로마 군인이 죽였지, 유대인이 죽인 것이 아니라고 언론을 동원해서 떠들어 댔다. 심지어 브라질에서는 유대인 유명 정치가가 브라질 헌법에 금(禁)하는 인종차별적인 영화라고 영화 상영금지 가처분신청을 제출했다. 그야말로 손도 안대고 코풀게 선전만 해준 셈이다. 그리고 부활절 40일전인 사순절이 시작하는 날인 2월 25일 재의 수요일에 개봉한 것도 절묘한 타이밍의 선택이 었다. 하여튼 여러 가지 의견이 있을 수 있으나, 나는 호주 출신의 배우 멜 깁슨이 감독한 이 영화에 사어가 된 아람어와 라틴어 원어(原語)를 썼다는 참신한 아이디어에 후한 점수를 주고 싶다. 연 봉 원 서울대 문리대, 브라질 상파울로 FMU 법대졸. Boston University, Law School 졸. 1983-1998 브라질 변호사. 2000-현재 뉴욕 변호사. 브라질 "열대 문화" 동인. 2012년 한국일보 문예 공모전 생활수기 부문 당선. yeonbw@hotmail.com

수필 ∙ 연봉원 |

195


숫자 사슬 이 경 숙

스트레칭을 위해, 스쿼트를 위해, 근육 운동을 위해 시계 숫자를 보거나 입속으로 숫자를 계속 센다. 하나 둘 셋 넷 다섯…. 매일 숫자를 달고 사는 것이 어제 오늘 내일 뿐일까? 10개월을 채우고 12월 17일 오후 4시 30분 탄생했다. 태어난 당사자만 세상에 던져진 상황을 인지하지 못한 채 울어 대기만 했다. 1년을 꼬무락 지냈더니 돐 잔치라며 동그란 큰 상에 많은 것들이 놓여 있었다. 이미 먼저 태어난 많은 사람들이 그 상위에서 집은 대로 살고 있지 않음에도 부자가 되겠다느니, 심지어 공부로 이미 성공한 듯 파안대소로 둥개둥개 기뻐했다. 첫돌 맞이 당사자는 걸쳐진 한복이 불편해 팔을 휘저으며 찡찡거렸다. 구체적 조작과 손목의 협응력이 야무져지기 시작하며 세상의 호기심과 더불어 내 것을 만들려 할 때, 미운 7살, 쇠 귀에 경읽기라는 굴레를 씌워 무릎 꿇고 손을 번쩍 들고서 잘못한 것을 곰곰히 생각해야만 했다. 세상의 기본 지식의 골조를 세우는 6년간의 초등학교 시절은, 근본 원인을 사색하고 토론하는 것보다는 칠판에 빼곡히 써있는 것들을 그대로 베껴 내고 줄줄이 외워내면 참 잘했어요 했다. 탄탄한 골조 위에 한 가닥씩 정체성을 만들어 나가며 어떤 모양의 창문과 지붕을 할 것인지 등의 예술적 감성을 키우고, 사회생활을 하는데 필요한 기본 룰을 일관성 있게 적용하는 훈련이 필요한 3년간의 중학교 시절은, 친구들과의 경쟁을 부추기고 마음 챙기기는 뒤로 한 채, 오직 지식 교육으로 사람을 황폐하게 만들었다.

196

| 뉴욕문학 제31집


평준화라는 명목으로 잠재력도 창의력도 묵살 당한 채, 오로지 대학 입시만 을 목적으로 채워진 3년간의 고등학교 시절은, 문학, 예술, 자기 주도적 활동은 등한시 되었고 진정성 없는 주입식 교육의 끝판왕으로써 한 획을 그었다. 현대판 골품제도라 할 수 있는 학맥의 병폐를 깔고 시작되는 4년간의 대학공부는, 자신의 생각을 논리적으로 구조화 하는 것보다 사실적인 지식습 득으로 그쳤고, 표절과 참조를 부담없이 끌고 다녀도 무방했다. 정경유착만 큼이나 표절에 대한 인식이 관행처럼 무디었던 시절이었다. 30년이 넘는 결혼과 양육 생활은 사랑, 신뢰, 존경을 기본으로 가정의 틀을 공고히 하고, 가족간의 유대관계를 돈독히 하여 서로간의 불화도 잠재울 수 있도록 항시 노력하며 살아왔으나, 삐죽삐죽 튀어 나오는 불협화음과 가족이라서 무시될 수 있다는 성장되지 않은 자아을 내세우기도 했다. 자식들은 20대를 넘어 30대를 향하고, 주변은 어느새 흰 머리가 새삼스럽 지 않은 사람들로 북적거린다. 62세 이후의 연금, 65세 이상의 시니어 혜택, 70세 이상 백신접종 우선, 80세 치매보험, 100년 해로 부부등의 구절들이 생경하지 않다. 30-40대 때 자녀교육과 양육방법 등에 익숙했듯 60-70대 노인, 황혼, 행복한 노후비법 등의 언어가 피부에 와 닿고 있다. 할아버지 연세의 일이었고 늙으신 어머니의 관심사였었다고 기가 막혀 할수록 슬픔은 더 커진다. 인터넷으로 수시로 올라오는 부고 소식은 예전과 달리 망자의 나이를 유심히 보게 된다. 그 나이에 내 나이를 빼면 남은 숫자에 헉하니 숨이 멎어진다. 98세에 돌아가신 분이면 조금 마음이 놓인다. 모쪼록 장수하셔서 이렇게 자기 나이를 빼보며 숫자에 연연하는 나약한 이들을 굽어 살피시기를 바란다.

수필 ∙ 이경숙 |

197


도서관 이 경 숙 중.고등학교 시절, 시험 때면 새벽에 일어나 정독 도서관이나 남산 도서관 을 찾았다. 책을 빌려 본다던가 정보를 찾으려 가는 것이 아니라 도서관내 독서실을 사용하려는 것이었다. 동이 트기 전 어둠을 뚫고 벌써 열댓 명은 한 줄로 나래비로 서있었다. 일찍 들어가 소위 좋은 자리를 차지하여 앉으면 당당한 칸막이 책상, 나의 구역에 흡족했다. 집 한 칸을 차지한 듯 뿌듯해서 가져간 책들을 꽂고 연필, 노트로 집치장을 하듯 펼쳐 놓으면 하루 공부 시작이었다. 요란스런 주변의 부스럭 소리만 아니면 집중도 잘되었다. 두어 번쯤 화장실 을 다녀오면 점심나절이 되었다. 이미 차갑게 식은 양은 도시락에 싸 가지고 간 점심은 뜨거운 우동 국물 하나 사면 해결 되었다. 김 부스러기와 파 송송을 멸치국물에 얹으면 집밥 완성이었다. 늘 붙어다닌 연년생 언니와 함께 행복한 미소를 서로 건네며, 온 몸에 훈기를 넣어주는 우동 국물을 후루룩 마셔댔다. 비어있는 자리 하나 없던 도서관이 저녁나절이 되면 하나씩 비어갔다. 어두워져 비어있는 자리가 훅 늘어났을 때, 지키고 앉았던 내 구역이 넓어진 듯 소지품을 옆 자리에 분산해 놔두며, 넓어진 아파트 평수에 만족한 듯 여유로움을 덤으로 즐기곤 했다. 소지품을 다 챙겨 몇 명 남아 있지 않은 도서관을 조용히 빠져 나오는 그 하루의 마무리는 아쉬움과 뿌듯함이 공존했다. 그 이후로도 칸막이 책상은 늘 나에게 안정감을 주었다. 칸막이가 있으면 늘 그 곳에 머리를 파묻고 정독, 남산 도서관의 향수를 맡으려 애썼다. 도서관의 이미지는 기다림, 안정감, 온전한 내 하루 그리고 무언가 시도해

198

| 뉴욕문학 제31집


보는 곳이었다. 여전히 난 도서관 가는 것을 소장, 대장이 활기차게 움직일 정도로 즐거워하고 행복해한다. 책이 빼곡하게 꽂힌 긴 책장들을 살피며 걷다가, 웅크려 책의 타이틀도 보고 저자도 훑으며, 한 팔 가득 골라온 책을 앞에 두면 세상 한 부분을 가진 듯하다. 미국에 온 뒤, 처음 살던 타운의 도서관을 처음 갔을 때, 다른 느낌의 도서관의 이미지가 색칠되었다. 칸막이는 없었지만 코너마다 책을 읽어야만 하는 분위기를 마주했다. 벽난로 옆의 푹신한 쇼파. 둥그런 탁자를 가운데 두고 몸을 폭 감싸는 부드럽고 탄력있는 쇼파들, 빈티지풍의 단단한 목재로 만들어진 길고 넓은 탁자가 책과 따뜻한 차를 부르고 있었다. 뉴욕, 뉴저지처럼 한인들이 많지 않았음에도 한쪽 책꽂이에는 한국 책들이 내 눈에만 크게 보이는 글씨를 드러내며 꽂혀 있었다. 인근 다른 타운의 도서관과 연계가 되어있어 주문하면 다른 도서관에 있는 책을 돌려 볼 수도 있었다. 다 읽은 책을 도서관에 기증한 한인들의 배려심에 성은이 망극했다. 인근 연계된 도서관은 아이들 동화 속의 집이 연상되는 버섯 모양의 지붕을 하고 있었다. 헨젤과 그레텔이 되어 문을 열고는 했다. 그리 크지는 않았지만 오래 된 가정집과 같은 느낌이었고 책도 그리 많지도 않았다. 그 대신에, 벽난로가 참으로 운치 있었다. 양쪽에 벽난로 툴이 걸려있었고 윗부분은 심플하고 기품있는 장식품이 놓여 있었다. 책 읽는 사람들을 초대하 여 잠시라도 그 곳에 머물수 밖에 없도록 은은한 매력을 뽐내는 벽난로와 잘 매치된 등판이 푹 파묻히는 쇼파에 시린 등을 묻었다. 필라델피아로 이사를 온 뒤, 지금 살고있는 타운의 도서관은 6개의 브렌치 를 가지고 있다. 그 중 가장 큰 도서관은 건물 자체가 글라스타워로서 현대 것임이 분명하다. 창가쪽으로 책상과 의자를 나열해 놓아 지나가는 모든 사람들이 감시자가 되어 너부러지는 시간없이 책상 위에서의 작업에 몰두할 수 있다. 분야, 용도별로, 알파벳 순으로 정리가 잘 되어 있는 것

수필 ∙ 이경숙 |

199


자체가 몸의 자세를 바르게 만들어 주고 정리정돈을 해 가며 책을 읽게 만든다. 도서관은 내 안의 목소리를 들을 수 있는 안전한 공간이다. 머릿속을 거슬리게 하는 것들로부터 탈출하기 위해, 예상할 수 있는 많은 것들을 스마트 폰 창을 손가락으로 튕겨 내듯이 물갈이를 하기에, 마음이 정리가 되고 뇌가 가벼워진다. 많은 이들이 자신들의 것들은 책으로 남겨 놓아 빼곡한 책장이 즐비하듯. 나는 편안한 도서관을 찾아와 나의 마음과 머리를 어느 한 책장에 비워 놓고 간다.

이 경 숙 Blanton-Peale Institute 상담 대학원 졸. 미술학원과 유치원 원장 SAT 학원 카운슬러. 다수 유화 개인전과 단체전. lee236to@hotmail.com

200

| 뉴욕문학 제31집


봄을 놓치다 이 경 애

무슨 이런 세상이 있나요. 노란, 하얀, 분홍, 보라빛 봄꽃들, 한겨울 기다리 고 준비한 자태, 한껏 뽐내려 했는데…, 예쁘다 환호하며 다가올 그대들과 반가운 눈맞춤 기대했는데…, 왜 아무도 없나요? 긴겨울 오래 기다렸을 당신 때문에 최고로 멋을 내어 짠- 하고 나왔는데 내가 잘못나온 건가요? 도로 돌아갈 수도 없는데 말입니다. 이렇게 꽃잎을 열기까지 얼마나 많은 시간과 공을 들였는지 아실텐데요. 도대체 무슨 일 있는건가요? 이 낯선 분위기는 무엇인가요? 봄꽃들의 당황해하는 모습이 보이는 것 같습니다. 나도 이런 봄 처음이니까 요. 예년 같으면 요즘 연이어 내려준 봄비에 부풀어 오른 흙을 뚫고 뾰족히 나오는 새싹을 보며 반가운 인사도 하고, 담 곁에 자라는 체리나무, 겹벗꽃나 무, 꽃사과 나무들을 살피며 ‘언제쯤 피려나?’ 헤아려 보기도 했을텐데…. 요즘 난 꼼짝 못하고 집에 갇혀 창밖만 내다보고 있습니다. 저~기 낮은 숲 언저리 마른 잡풀 더미 속에 빼꼼히 얼굴 내밀었을 노오란 복수초, 천천히 잘 찾아봐야 발견할 수 있는 노루 귀봉오리, 그 근처에 보라색 제비꽃, 노오란 민들레도 아마 피었을 테죠? 아직 아닌가요? 알 수가 없네요. 카톡에 실어 보내온 봄꽃 사진을 지인으로부터 받았습니다. 그의 집 뜰에 심겨있는 나무인지 이름은 알 수 없지만 짙은 꽃분홍빛을 머금은 봉오리가 가지마다 주렁주렁 긴목을 내밀고 있는 아름다운 그림이었습니다. 그래도 봄은 오고 있었습니다. 연세 많은 선배님에게 전화인사를 드리며 이렇게 황당한 세상을 경험한적 있느냐고 여쭈어 보았습니다. 선배님도 이런 일은 처음 겪어보신답니다. 그저, 절대 밖에 나가지 말라는 자식들의 간곡한 부탁에 꼼짝않고 집에 들어 앉아있노라 하십니다. 중국으로부터 옮겨온 코로나 바이러스가 한국을 점령하고 조국이 온통

수필 ∙ 이경애 |

201


생사를 가르는 죽음의 공포에 떨며 혼란에 휩싸이는 것을 보고 나는 심히 놀랐습니다. 설마 했는데 급기야 바다 멀리 이 미국까지 이미 병균은 조용히 침투해 들어와 있었습니다. 아무것도 보이지 않아 어디에, 누구로부터 전염 되는지를 알 수 없는…, 색깔도, 냄새도, 모양도 보이지 않는 참으로 고약한 이 신종 바이러스는 모두가 보균자가 되고 모든 것이 보균덩어리로 치부되어 야하는 상황을 만들며 모든 것을 ‘STOP’시켰습니다. 학교와 직장, 수많은 가게들, 심지어 교회의 문까지도 열 수없는 철저한 분리를 만들어 내었지요. ‘STAY AT HOME!’을 호소하는 정부 고위 관계자 들의 얼굴에서 안타까운 고뇌가 읽힙니다. 아무런 힘을 못쓰는 인간, 그저 따로 있으라는 처방 외엔 아무것도 할 수없는 너무나 무력하고 나약한 인간인 것을 느끼며 무릎을 꿇게 됩니다. 우주의 모든 생명체가 신의 영역임을 부인할 수 없는, 인생이 아무리 오르려 해도 하늘 아래 뫼(山)라는 것을 잘 보여 주고 있습니다. 너무나도 유명한 김춘수의 시‘ 꽃’의 일부를 적어봅니다. ‘내가 그의 이름을 불러주기 전에는/ 그는 다만/ 하나의 몸짓에 지나지 않았다// 내가 그의 이름을 불러 주었을 때/ 그는 나에게로 와서/ 꽃이 되었다’ 나는 아직 그대의 이름을 부르지 못했으므로 그대는 아직 나의 꽃이 되지 못하고 나는 그대에게 아무 의미도 되지 못하였습니다. 곧 이 전염병의 시간이 끝나게 되면 나는 싱그러운 봄으로 달려나가 나의 꽃의 이름을 불러주고, 그는 나의 이름을 불러줄 것입니다. 나는 아직 나의 꽃을 보지 못하였으므로 이 봄을 놓을 수가 없습니다.

202

| 뉴욕문학 제31집


새해맞이 단상 이 경 애

2020 경자년, 흰 쥐띠의 새해가 떠올랐다. 새해가 2019년의 어두움을 뚫고 붉게 물든 하늘 사이로 눈부신 황금빛을 뿌리며 올라온다. 지인이 자신의 고층 아파트 베란다에서 찍어 보내준 새해 일출 모습이 웅장하다. 대서양 바닷물에 금빛을 뿌리며 떠오르는 해가 화려하게 한 해를 열고 있다. 예년 같으면 가장 추울 때인 새해 날씨가 올해는 유난히 맑고 따뜻하다. 온화한 날씨처럼 이렇게 순하게 떠오른 새해의 서기(瑞氣)로움이 올 한 해 이 지구 온 땅에 임해지기를 바라본다. 출발은 창조의 시작이라 한다. 창조는 새것을 만든다. 달도 다시 뜨고, 별도 다시 뜰 것이다. 온 초목이 다시 태어날 것이고 이 세상엔 새로운 생명들로 충만할 것이다. 모든 생물체 에게 주어진 창조의 원리에 따라 기한이 차면 기울고 소멸하지만 신은 다시 채울 것이다. 다시 되돌릴 수 없는 것이 시간이며 세월이다. 가만히 있어도 가는 시간, 늘 또 오곤하던 시간이 언제까지 나에게 머물까? 그저 흘려버린 시간을 아까워하며 후회 할 때가 있겠다는 생각, 내게 있는 지금 이 시각, 현재, 오늘, 난 잘 살고 있는 걸까? 하지 말았어야할 잘못들, 꼭 해야할 일을 내 이기심으로 못 본 체 한 일들은 또 얼마였던가? 2020년, 나에게 온 또 한번의 새로운 출발점이며 기회이지만 내일 일을 모르는 우리 인간은 세월을 아끼며 감사한 마음으로 보람된 삶을 살아야겠다 는 진지한 상념에 젖어본다. 저 남해의 섬마을, 종일 시금치를 뽑고, 파를 뽑아 묶어주고, 번 일당을 흙묻은 손에 받아쥔 노파는 행복하단다. 자식들이 일을 나가지 말라고 신신 당부해도 설에 세배 하러오는 귀여운 손주들에게 세뱃돈을 넉넉히 줄 생각에

수필 ∙ 이경애 |

203


굽은 허리를 펴며 일어서는 얼굴이 즐거운 웃음으로 가득하다. 해풍에 그을린 노파의 얼굴에 패인 굵은 주름 속엔 자식을 향한 다함없는 사랑이 가득 보인다. 요즘 김장철, 힘들게 농사지은 김장거리로 포기김치, 총각김치, 갓김치, 석박지 등 갖가지 김치를 담아 자녀들의 차에 가득 실어 보내면서 흐뭇한 웃음을 지으며 손을 흔드는 농촌의 늙은 부모의 모습을 T.V에서 영상을 보며 내가 김치를 준듯, 또는, 받은듯 내게도 따뜻함이 전이 되어온다. 세상에 여러 이타[利他]적인 사랑얘기를 만날 때 마다 가슴에 울림이 온다. 잘 산다는 것, 행복하다는 것, 결국 사랑하고 사는 것이 아닐까? 어릴 적에는 사랑은 받는 것인 줄로만 알았다. 사랑은 받아야만 내가 행복하 다고 생각했다. 나이를 먹고보니 사랑은 줄 때 더 행복하고 즐겁다는 것을 조금씩 알아가게 된다. 새해 처음으로 떠오르는 저 찬란한 태양을 보며 잠깐 멈추어 상념에 젖어 보았다. 내게 축복으로 다가오는 시간들을 난 어떻게 잘 쓸 수 있을까?

이 경 애 미동부한인문인협회 회원 국제 PEN 한국본부미동부지역위원회 회원 저서: 수필집 『물안개 너머로 봄은 다가와』 공저: 『천년 숲 서정에 홀리다』 한국수필 젊은 작가 97인선 현 미주중앙일보 오피니언<하루를 열며> 필진 kyungaelee9018@hotmail.com

204

| 뉴욕문학 제31집


단상 I 이 미 경

요즘 들어 부쩍 여유가 있어졌는데 의도적으로 일을 줄인 탓도 있거니와 휴일 자체를 공백으로 남겨놓은 탓이리라. 보통의 나의 생활 패턴은 몇몇시에 일어나 (제아무리 지난밤에 뒤척였어도) 목바라기하는 우리 상전인 강아지 를 걸리고, 연신 시간 봐가며 간단한 아침 식사를 준비하고 그 와중에 커피도 흡입한다. 우리 애견 종자로 인한, 구석에 산재한 털실(?)로 필수인, 청소기를 돌리고 아침사간의 빠르기는 그야말로 절벽에서 떨어지는 급류와 도 같다. 이런 아침시간의 나의 일상들은 거의 자폐(?) 수준으로 반복되며 그에 강박감까지 가세되어있다. 여름도 막바지에 이르렀고 인디언 썸머가 있다고는 하나 그또한 지극히 참을만하니 봄과 더불어 가을은 짧기에 더욱 아쉽기만 하다. 이미 아침 저녁으로 소슬한 바람에 대낮의 햇볕은 강렬하다. 내가 그 하루를 끝내면 종일 등뒤에 드리웠던 적적함은, 자리해 옆에 눕는다. 이즈음의 밤은 정말 아름답다. 달빛은 교교하고 이따끔 나무잎 자락 흩어지고. 나는 가슴속 깊이 미약한 통증을 느낀다. 시인이 되고 싶었지. 누구나 보지만 나만의 표현해, 끄집어 낼 수 있는 그것들. 구절로 사람의 맘을 먹먹하게 하고. 묻어둔 옛 기억을 떠올리게 하고, 그래 돌아갈 수 없는 그때를 반추하게 하는 시 쓰는 사람. 돌이켜보니 나는 딱히 야망이 없는 사람인 듯싶다. 지나간 이런저런 직업도 환경과 타의에 의한 듯싶고, 그저 천성이 여유를 심히 즐기고 게으른 탓에 유유자적 시간만 축내는 것이 베짱이 과이다. 그나마 꾸준한 것은 다양한 음역대의 초록이 준비한 숲을 것는 것이다. 그 절묘한 형태와 색깔이 물감과 사진으로 표현 불가능이 하나님의 존재를

수필 ∙ 이미경 |

205


시인할 밖에…. 이런저런 단상이 떠오르는 걸 보면 역시 가을인게다. 여름에 바다를 못 봤다며 투덜거리며 딸애는 늦게나마 바다에 간다한다. 여름, 바다하면 키보이스의 해변으로 가요. 비치보이스의 설핀 USA의 음악들이 떠오른다. 들을 때마다 가슴이 뛰고 눈앞에 파도치는 바닷가가 펼쳐지고, 우리는 모나코의 음악이 깔리고 몇계단 내려가는 아지트 다방에 모여, 영혼없이 얼음만 남은 잔을 주억거리고. 이따금씩 천정에서 느리게 돌아가던 fan을 바라봤고. 캠핑을 모의 하던 구석구석의 우리는 카타콤보를 연상케 했다. 돌이킬 여름은 보내며 내게 못 본 것이 어찌 바다뿐이랴. 그럼에도 아침 저녁으로 처연한 바람에 그저 희희덕거리며 좋기만 하니. 막바지의 여름에 미안할 따름이다.

206

| 뉴욕문학 제31집


행복에의 추구 이 미 경

꿈을 꾸었다. 꿈은 막연히 현실의 반영이라든가. 색채가 선명한 꿈을 꾸면 몸이 허약한 탓이라든가. 나의 꿈은 이도저도 아니고 그저 행복이란 단어를 연상시키는 것이었다. 어찌 걷다보면 꺾어지는 암벽 아래로 맑은 물이 그득하고. 분명 위험해보이나 정작 내겐 그리 느껴지지 않았던 경사 가파른 계단이 이어졌고, 루오나 미로를 연상케 하는 형태의 그림이 드러난 절벽면을 메꾸고 있었다. 반대쪽으로 모퉁이를 돌아가면 길이 다소 넓어지고 양쪽으로는 정다운 포플러 나무가 늘어서있고 간혹, 입구에 자전거가 있는 몇몇 집에. 또 눈을 돌리면 서넛, 얘기하는 사람이 보이는 자그마한 카페가 있었다. 골목골목이 평이하나 조금씩 다르고 헤매어도 지루하지 않은 곳. 그곳 어딘가에 내가 속해있는 정겨움으로 그 밤, 꿈속의 나는 골목을 헤매었 다. 눈을 뜨고나도 그 여운이 잔잔히 남아있고 자그마한 따사한 행복감이 솟아났다. 초등학교의 나의 몇몇 기억은 꽤 구체적이다. 아침부터의 뙤약볕 아래에서 의, 지루하고 두서없는 교장 선생님의 훈시에서 벗어나는 것. 이를테면 옆 급우가 돌연 쓰러져 부축한다는 명목 하에 운동장을, 부러워하는 뭇시선을 뒤로하고 뜨는 것. 행운이고 행복이었다. 또한 꽤 당돌하고 불량(?)스럽기까 지한 단편적인 기억도 있다. 어느 한 나른한 아침에, 가방을 맨 나는 등교길과는 상반되는 다른 길을 막연히 걸었다. 깡총 치마를 입고 유난히 폴짝거리던 후에 다리수술을 하다 죽은 동급생 아이가 살던 집 어귀를 지나고, 천천히 느릿느릿 마악 열기 시작하는 상점들을 지나가며 급우들이 교실에서 학업에 분투(?)하는 그 시간을 상상하며 시간대로 인해 인적없는 공원에 갔었다. 평소엔 차례를 기다려야했던 미끄럼틀도 타고. 그네에도 앉아보고. 조금 시간이 지나 손자 를 동반한 어르신들의 조금은 흘끔거리는 시선을 느끼며 다소는 죄책감이

수필 ∙ 이미경 |

207


어우러진 행복스러운 일탈감을 즐겼었다. 이른 오후의 햇살은 무심하게 따뜻하고 정지한듯 느껴졌다. 공원 어귀의 나뭇가지 새로 조각난 뜨거운 태양빛이 내려쬐고, “이방인”의 “뵈르소”와 같은 현기증도 느껴지지 않았을 까. 막막하고 안타깝고, 묘하게 흥분되는 며칠의 방황이었고 이어진 급우의 방문으로 부모님께 발각이 났고(신기하게도, 크게 꾸짖지 않았다.) 나는 돌아온 탕자와도 같이, 큰 환대는 없었을지라도. 무심하고 담담히 학교생활 도 돌아갔다. 곧 방학이 이어졌고 반복되는 일상을 벗어나고자 했던 이른바 며칠의 일탈로 시도됐던 행복에의 추구(?)는 접어졌다. “행복”이란 단순히 자신이 좋아하는 상태를 마음에서 그려보는 상황, 혹은 실제에서 행하는 것에서 얻을 수 있다 한다. 행복은 사전에서 찾은 바에 의하면 추상명사이기도 동사이기도 하다. 내게 있어 확실한 것은 완성형이 아니고 여러 각도의 경로를 통한 축구에 가깝다는 것이다. 눈을 감고 카운트 해본다. 하나, 둘, 셋. 나는 행복을 전제로 한 모두 추구에 정열적인가. 해서 나의 행복을 위한 일탈들은 항상 돌발적이고 신선한가.

이 미 경 1961년 서울출생 대학 졸업후 일본계 컨설팅 회사근무(1984-1988) 일본에서 수학. 번역 및 임상심리 연구과정(1989-1994) 딸과 강아지와 웨체스트 거주. 미용실 근무(1994-현재)

208

| 뉴욕문학 제31집


우연한 발견 이 춘 희

도서관에서 무슨 책을 읽어야 할까 하고 책꽂이마다 돌아다니며 책을 뒤적이는 사람은 요사이는 거의 없을 것이다. 인터넷 덕분에 우리가 원하는 것을 목표로 검색 엔진에 몇 가지 핵심단어를 입력하면 여기저기에서 정확히 원하는 것을 쉽게 찾을 수 있다. 효율적이지만 지루하다. 나는 책 제목이 흥미롭기 때문에 책을 빌린 적이 많이 있다. 좋아하는 내용이 아니라 반환하 러 가서 또 다른 책을 고른다. 시간을 들여 이책 저 책 들여다본다. 그러는 와중에 모르던 작가를 발견하게 되고 그의 글을 좋아하게 된다. 우연히 무엇인가를 발견하는 것은 무료한 일상생활에 마법처럼 빛나는 순간이다. 모든 고통, 비극 및 숨막히는 교통체증에도 불구하고 삶을 환기시 키고 가치있게 만드는 작은 것들 중 하나이다. 70년대 초, 뉴욕에 도착한지 채 한 달도 안되었을 때, 맨해튼 다운타운 파이낸셜 디스트릭트의 작은 은행에서 일을 할 때 일어난 에피소드이다. 당시에 나는 거액의 금액을 은행과 은행간에 서로 상환하는 일을 맡고 있었다. 전화 속에서 들려오는 “제로 제로 왕왕”하는 강한 일본인 악센트는 정말 이해하기 힘들었다. 정확하게 처리해야 되는 중요한 일이었고 만나서 확인하고 싶었다. 근무하는 곳이 어디냐고 대뜸 물었다. 다행히 내가 일하는 바로 옆 블럭이었다. 점심시간에 건물 앞에서 젊은 일본 남자를 만날 수 있었다. 일은 잘 처리 되었다. 그 이후로 아침 커피를 사기 위해 Chock full O'Nuts 커피 숍에서 줄을 서서 기다릴 때 가끔 그와 부딪치고 했다. 그러면 오랜지기라도 만난 듯 우리는 서로 두 손을 흔들며 반가워했다. 아는 사람 하나 없었던 삭막한 도시에서 우연히 만난 행운이었다. 시간이 많이 걸리고 고생스러운 경험이었지만 낭비는 아니었다. 예기치도

수필 ∙ 이춘희 |

209


못했던 행동들은 나를 키우고 단단하게 했다. 어쩌면 내 계획이 패배할 수도 있었고 제대로 일을 처리 하지 못해 직장에서 쫓겨날 수도 있었다. 그러나 어두운 상자에서 무엇을 발견하는듯한 그 시간은 나의 삶을 풍요롭게 했고 의미있게 했다. 당시 나는 새로운 곳에서 새로운 삶을 시작했었고 무척 바빴다. 남편과 함께 아무 계획도 없이 길을 갔고 겁이 났었다. 그러나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았으면 우연히 무엇을 발견하는 일도 일어나지 않았으 리라. 돌이켜 생각해 본다. 지금처럼 무엇이든 척척 해결해 주는 아이폰이 있었다 면 이런 우스꽝스러운 일은 아예 일어나지도 않았을 것이다. P.C가 나오기 전 까마득한 그 옛일이, 그런 시기가 존재했다는 사실조차 잊어버린 채 살아오는 지금, 갑자기 열풍처럼 나에게 다가오는 것은 무엇일까? 능력보다 는 인간 진실에 더 가까운 삶이었기 때문이리라. 수년 전 큰 정원을 가지고 있을 때였다. 아침에 눈을 뜨고 일어나면 신문을 기다리는 일이 하루의 시작이었다. 매일 아침 배달되는 뉴욕타임즈는 드라이브 웨이에서 비에 젖기도 하고 눈에 덮히기도 했다. 강아지가 물어뜯어 찢어질 때도 있었다. 젖은 신문을 말려가면서 찢어진 신문 조각을 이어가며 조심조심 뒤적이다보면 스포츠 섹션 또는 사망 기사, 정치 이야기 등 내가 관심이 없는 기사를 읽게 되고 계획하지 않았던 무언가를 배울 수 있었다. 지금은 두 사람이 겨우 들어갈 수 있는 자그마한 콘도에서 소꿉장난하듯 살아간다. 온 라인으로 신문을 보면서 마침표를 찍은 듯 간편하고 깨끗하고 속시원하다. 그러나 왠지 모르게 허전하고 마음 시려온다. 신속하고 효율적 으로 테크놀로지적인 삶을 살고 있는 현대의 일회용 시대에 우연히 무엇인가 를 발견 할 수 있는 기회를 갖는다는 것은 얼마나 가슴 뛰는 일인가? 일종의 예술이다. 아직까지 그러한 경험을 복제 할 수 있는 소프트웨어는 존재하지 않는다.

210

| 뉴욕문학 제31집


‘오늘’ 이라는 하루 이 춘 희

내가 사는 아파트 바로 건너편에 얼마 전에 이사 온 60대 중반의 유대인 여성은 늘 분주하다. 아침부터 손자들을 픽업해야 하고, 그로서리한 것을 들고 아파트로 날라야 하고, 차를 수선하러 정비소로 가야하고, 은행으로 우체국으로 늘 바쁘게 움직인다. 바쁜 사람이 어디 그녀 한 사람 뿐이겠는가? 만나는 사람마다 ‘하는 일 없이 바쁘다’, ‘시간이 어떻게 흘러가는지 모르겠 다’라고 한다. 아무도 더 이상 ‘괜찮다’라고 말하는 사람은 없다. 주위에는 한가한 틈이 없는 사람들뿐이다. 존재론적 차원보다는 내가 무엇을 더 잘 할 수 있을까, 어떻게 더 많이 채울 수 있을까에 대한 기능적 차원에 더 큰 삶의 의미를 두고 사는 우리는 기술 문명의 눈부신 발전으로 편안하고 느긋하게 살 수 있음에도 불구하고 과잉 노동을 하고 과잉 생산을 하고 빨리빨리 분주하게 살아간다. 우리는 일에 중독 된 사람들 같다. 어쩌다 여유있는 시간이 생기게 되면 바쁘게 지낼 그 무엇을 찾아다닌다. 바쁠수록 정상인 것처럼 보인다. 무엇이라도 빈틈없이 채워져야 마음이 놓인다. 왜 우리는 단 한순간도 조용히 머무를 수 없는 것일까? 우리 인간을 다른 동물과 구별할 수 있는 것은 우리는 미래를 생각한다는 것이다. 다른 어떤 동물도 몇 분 이상 앞서 생각할 수 있는 경우는 거의 없다. 의식적으로 무의식적으로 미래를 바라보는 것은 우리의 큰 뇌의 중심 기능이라 한다. 우리는 순간에 살도록 만들어지지 않았다. 심리학자들에 의하면 사람들은 혼자 있기를 싫어하기 때문에 자신을 마주 할 시간이 주어지면 텅 빈 공간에서 어떤 일이 벌어 질 것인지에 대해 염려하고 두려워한다. 우리는 그 불안감으 로부터 벗어나기 위해 정신없이 바쁘게 지낸다고 한다. “사람만큼 오래 사는 생물은 없다. 오월의 파리는 저녁을 기다리지 않고 한 여름 울어대는 매미는 봄도 가을도 알지 못한다. 1년이라도 완벽한 수필 ∙ 이춘희 |

211


평온함 속에서 산다는 것이 얼마나 서두르지 않는 여유로운 삶인가?”게으름 을 찬양한 어느 수필가의 글을 읽으며 삶을 분주함으로 가득 채우는 것만이 진정 바람직 한 삶일까를 다시 한번 생각해 보게 한다. 삶이 신비스럽고 소중한 것은 불확실한 미래가 있기 때문이 아닐까? 미국 작가, 애니 딜라드(Annie Dillard)는 그의 에세이집, ‘팅커 크릭 순례’에서 야생동물을 만났을 때의 경험을 다음처럼 이야기하고 있다. “해질 무렵 나는 채석장 옆의 숲을 지나 고속도로 건너편에 있는 홀린스 연못을 거닐다 족제비를 만났다. 길이가 10인치 가량 되었고 과일 나무처럼 갈색의 몸을 하고 있는 족제비는 얽히고설킨 큰 야생 장미 덤불 아래에서 두개의 검은 눈을 반짝이며 흔들림 없이 꼿꼿이 서있었다. 우리는 서로 마주 바라보았다. 그는 나를 공격하지 않았다. 족제비는 매우 침착하고 맹렬하고 날카로운 의지로 자기에게 주어진 것에 따라 살아간다. 그러나 우리는 선택에 따라 산다. 나는 야생동물에게서 순수함과 편견없는 삶의 존엄성을 배웠다”고 한다. 수많은 것을 가지고 사는 우리는 어쩌면 우리에게 가장 중요한 그 무엇을 놓치고 사는 것은 아닌지…. 바람이 쌀쌀 한 봄날 새벽이다. 조깅하기 위해 집을 나섰다. 떠오르는 태양에 반사되어 노랑빛, 주황빛으로 번쩍이는 빛줄기들이 금빛으로 바다를 물들이며 하루가 탄생하고 있다. 보드워크를 걸을 때마다 늘 만나는 갈매기 들! 오늘은 거의 백마리에 이르는 갈매기들이 모래사장 한곳에 모여 그들의 자그마한 하얀 가슴을 드러내놓고 해뜨는 방향을 향해 석고처럼 앉아있다. 늦게 찾아 온 갈매기 한마리, 상공을 우아하게 몇 바퀴 돌다 사뿐히 빈자리에 내려앉는다. 보드워크에서 바라보면 마치 뿌연 안개같은 우유빛 색깔의 부드러운 돌멩이들이 우뚝 우뚝 서있는 것처럼 보인다. 눈부신 그 광경에 숨이 턱 막히는 것 같았다. 어떻게 수많은 갈매기들이 움직이지 않고 돌같은 자세로 침묵을 지키며 똑 같이 한 곳만을 응시할 수 있을까? 그들의 세계는 끊임없는 생각으로 가득 찬 우리의 머리로는 가늠할 수 없는 비밀이 숨어있는 듯

212

| 뉴욕문학 제31집


했다. 기적은 이런 것이 아닐까! 시간이 어떻게 흘러가든 개의치 않는 그들의 모습은 무척 여유스럽고 평온해 보였다. 아름다운 삶이다. “알려 들지 말게, (알아서는 안 된다네), 나와 그대에게 신들이 어떠한 종말을 내려 두었는지를, 그것이 무엇이든 견디는 게 얼마나 나은가…, 다음에 올 날은 가능한 한 믿지 말고 ‘오늘을 즐겨라.’ 고대 로마의 시인 호라티우스 ‘카르페 디엠’라는 시의 일부분이다. “카르페 디엠(Carpe diem)” 은 라틴어로서 현재를 즐기라는 뜻이다. 이 순간을 즐기기 위해 나는 오늘 무엇을 해야 할까?

이 춘 희 1971 년 도미 2008년, 겨울 <창조문학 > 수필부문 등단 성균관 대학 영어영문학과 졸업 M.S. in Gerontology, Hofstra University, New York <노인학 석사> The New York Province of the Society of Jesus<이냐시오 영신수련2년과정 수료> 미동부한인문인협회 이사, 서기, 부회장 역임 현 미동부한인문인협회 이사장 뉴욕 중앙일보 오피니언 <삶의 뜨락에서> 필진 monicachunelee@gmail.com

수필 ∙ 이춘희 |

213


궁여일책이 낳은 대체끼니 전 설 자

‘그 누구에겐가 다소의 도움이라도 되었으면 하는 일념으로’ 태생이 먹기 위해 사는 게 아니고, 살기 위해 먹는 쪽이다. 유아기부터 심한 편식에 병아리 눈물만큼 먹는다는 소릴 들어가며 한술이라도 더 먹이려 는 부모님 마음을 꽤나 상하게 해드리는 애물단지로 심한 불효를 했었다. 또한 모두 씹어야 넘길 수 있는 습성이라 께적거리기까지 해 좀 심하게 말하면 다른 사람들 다 먹고 기다리다 숨넘어가기 직전에야 끝이 났다. 또한 밥 먹다 일이 생기면 그만 수저를 놓아야 한다. 계속하면 체하니까 거의 자동반사적이다. 온종일 군것질도 안찾고 간식도 챙겨주면 겨우 한두 입 먹다만다. 식탐이 전혀 없는 희귀한, 가문에 없는 돌연변이로 체질적으로 문제가 있는 거의 장애인 수준이었다. 그러기에 어쩌다 가끔 소싯적에 좋아하던 간식이나 순간 입에 당기는 찬이 있으면 대부분 양보하지 않는다. 그런 경우는 가뭄에 콩 나듯 생기는 상황이니까 모두들 이해하고 받아준다. 그렇게 가족의 배려로 이어지다 타지로 떠나 대학 기숙사 생활을 하게 되었다. 아침식사 메뉴는 계란프라이, 멸치볶음, 김치, 이런저런 국들로 정해져 있었다. 계란프라이를 못 먹어 먹는 둥 마는 둥 하기도 하고 밥맛이 없을 때는 아예 식당에 가지 않을 때도 있었지만, 그 지경에도 한 가지 건진 추억의 맛이 있다. 김치에 볶음멸치를 얹어 먹는 식으로 지금껏 이어지 고 있다. 묘하게도 같은 식재료인데 쌈으로 먹으면 더 맛있는 것과 비슷한 맥락 이다. 대학 졸업 후 오진으로 병을 얻어 꽤 오랜 병상생활로 많이 쇠약해진 때가 있었다. 의사 선생님의 반 강압적인 권유와 먹어봐도 뭔지 쉽게 알아낼 수 없는

214

| 뉴욕문학 제31집


어머님의 마술 같은 손맛에 아주 조금씩이지만 이런 저런 알 수 없는 것들을 약 먹듯 먹게 되었다. 그러다 고기 아니면 반찬이 아닌 것으로 여기는 아주 잘 먹는 사람을 만나 결혼을 하게 되어 끼니마다 권하는 맛에 아주 조금씩이지만 먹성이 늘어 가는 계기가 되었다. 100년이라면 길게 느끼지만 인간사 만만치 않아 짧고 고독한 여행을 하는 지상의 나그네들이다. 죽음 앞에서는 예외가 없듯이 어언 간에 세월이라 는 쌍두마차는 황혼 역에 다다르게 되어 함께 하던 사람을 황망히 보내게 되고 다시 도로 아미타불이 되어 덩그러니 밥상 앞에 앉아 제사 모시듯 바라보기만 하다 물리곤 했다. 그렇게 유, 소아기는 타고난 건강 체질로 버텼고, 청 중년에는 그럭저럭 생체나이로 버텼고, 중 장년에는 대식가 남편만나 고물 주워 먹고 버텼다. 그러다 만능조력자 부모님 가시고, 만능도우미 남편도 떠나고, 만사 무력해져갔다. 반찬을 만든다느니 밥상을 차린 다느니 가 초라하고 서글퍼져 버텨내기 힘들었다. 거의 안 먹다시피 하며 자동 다이어트로 이어졌다. 며칠이 아닌 몇 년을 TV 앞에서 뭉개고 뒹굴며 되돌릴 수 없는 그 많은 시간들을 소진하며 보냈다. 그새 아들, 딸이 몇이나 되고 손자들이 줄을 이어 돌보느라 힘들다는 푸념 반 자랑 반으로 입에 침이 마를 날이 없었던 분들이었는데, 하회탈을 방불케 하던 웃음 골엔 덧없는 썩정이로 채워져 만감을 지워가며 고독을 짊어지고 홀로 요양원에서 쓸쓸히 시들어가고 있는 지인들의 생활상을 알게 되었다. 유비되는 나는 저들과 무엇이 어떻게 다른가. 억석당년(億昔當年)에 서서 히 적지 않은 심동의 전율로 솟구쳐 전신을 옥죄며 적셨다. 엄습하는 으스스 수필 ∙ 전설자 |

215


한 한기에 사시나무 떨듯 덜덜거리며 웅크려 기어드는 육신을 세찬 도리질로 떨치며 고개를 들었다. 아! 그 꼴은 단지 찢겨진 낙엽들이 널브러져 있는 것과 별 다를 게 없는 세파에 흠씬 젖은 초라한 몰골이다. 눈을 내려 감았다. 노추한 나그네 눈에 든 욕망의 유람선은 지평선에 신기루로 번득이며 노닐고 억새 울음 사이로 휘청거리는 지친 나룻배는 어서 어서 거린다. 비추(悲秋)의 쓸쓸함 그 자체로 안겨들어 주르륵 두 뺨을 적시는 나를 응시 하는 순간 ‘유체이탈’ 을 체험한 듯 봇물 터지듯 흐르는 눈물을 주체할 수 없어 훔치고 훔치며 한참을 적셨다. 그렇게 생명이 주는 지침에 흠씬 두들겨 맞고서야 다시 시작을 알리는 출발선에서 굳어진 무릎을 펴고 죽은 듯 닫혀 있던 옷장을 활짝 열어젖혔다. 적막과 외로움을 나누던 바보상자와 인터넷을 걷어내고 밀실의 커튼까지 걷어내며 잊고 살았던 벽시계와 단호한 교감으로 잠시 감전되어 있었다. 심약해진 나를 위해 출발 신호탄으로 시간표부터 만들었다. 시작은 하루에서 이틀 사흘 나흘로 이어진다. 무엇으로 사는가. 이런저런 글귀들을 되뇌며 공원을 몇 바퀴 돌기도 하고 잃어버린 시간들을 되짚으며 한발 한발 걷는 발걸음과 중얼 중얼 나누는 음절에 실어 눈부신 햇살을 올려다보며 심호흡으로 실타래 풀듯 응어리를 풀어 내렸다. 운동과 균형 잡힌 식사를 하기위해 먼저 체력단련을 위한 운동 종목들을 일과표에 할당 배치하고 취약점인 소식과 편식을 조율한 끼니 개발에 들어갔 다. 골고루 섭취해야 하는 것과 단백질 식품들의 중요성을 간간이 들어 알고 있었지만 소화도 안 되고 식성이 까다로워 외면했었던 식품들이었다. 이렇게도 저렇게도, 아예 버리기도 하는 시행착오를 거듭하며 먹을 수 있도록 연구해가며 거의 먹기 위한 사투에 돌입, 한 가지씩, 한 가지씩 시도하기 시작했다. 식재료들의 성분들을 기록 분석 익히기도 하고 이런 저런 매체들의 정보를 응용해 가면서 옹찬 마음을 다져먹고 시작한 것이 이제 완전히

216

| 뉴욕문학 제31집


틀이 잡혔다. 궁여지책으로 만든 대체음식들의 예를 들면 견과류와 과일 채소들은 갈아서 주스로, 육류와 생선도 역시 갈아서 죽으로 변형되어져 전보다 훨씬 골고루 많이 먹고 먹기도 아주 간편하고 용이해졌다. 이렇다 보니 최애 주방기구는 믹서다. 밥솥은 없어도 살 수 있지만, 믹서 없이는 안 되는 정도가 아니라 살 수가 없다. 한번 만들어 놓으면 ‘일주일 분’으로 먹을 땐 마이크로 오븐용 볼 하나면 해결이다. 먹기 쉽고 설거지 할게 없어 간편하고 시간절약은 말 할 것도 없다. 노년에 들어 혼 밥 하시는 분들 고기 등 편식하시는 분들 치아가 성치 않은 분들과 공유 하고픈 마음이 원고를 작성하게 된 동기다.

대체끼니로 해결하기까지 쉽지가 않았기에 주재료들과 만드는 방법까지 상세히 나열해 두었으나 식성도 체질도 모두들 다르기에 본 원고에서는 삭제하였다.

전 설 자 이화여자대학교 사범대학 졸업 뉴져지 한국 학교 26년 근속 재미 한인학교 동북부지역협의회 연구교사(1995~2010) 경희사이버대학 재외동포재단 주최 교육자 체험수기 공모전 수상 디지털 서울문화 예술대학교 주최 교육자 체험수기 공모전 수상 한국수필 신인상 수상 한국수필가 협회 회원 엮임 미 동부 한인문인협회 이사, 수필분과 위원장, 감사이사 엮임 현 미 동부 한인문인협회 부회장 전통문화 예술 전래 민속놀이 전수자 snowsjk@yahoo.com

수필 ∙ 전설자 |

217


홍익인간 전 수 중

요하라는 강이 중국의 동북방에 있다. 그곳에 오래된 문명이 존재했었다고 한다. 물론 그것을 뒷받침하는 다수의 고고학적 유물들이 출토되고 있다. 한국의 역사학자들이 아주 열심히 그곳을 탐사하고 다니는 것을 인터넷에서 본다. 그들은 동양에서 제일 오래된 시원 문명이 그곳에서 출발했다고 믿기 때문이다. 나아가 우리 민족의 연원이 요하 문명의 주체라고 여기고 있다. "역사란 무엇인가?" 그 답은 새삼 되물을 필요조차 없이 누구나 다 안다. 역사란 진실 그 자체이기 때문이다. 아이러니하게도 역사적으로 저질러진 거짓 그 자체가 역사적 진실이기도 하다. 역사적 유물들의 행간을 읽는 역사학자들이 가장 정직한 사람들이어야 하지 않을까. 조선왕조 오백 년의 역사가 "조선왕조실록"으로 기록되어 유네스코 세계 기록 문화유산으로 지정되어 있다. 역사적 진실을 목숨처럼 여기던 사관들의 사초가 모여 역사가 되었다. 우리는 참 자랑스러운 선조들을 두었다고 생각해 본다. 역사를 탐구하고 그 진실을 전하려는 사학자들에 의해 여러모로 증명되 고 있다. 역사는 반복된다고 말한다. 우리는 이전에 경험했었던 것 같은 상황에 놓일 때가 있다. 그때 우리가 바른 결정을 내린다면 과거의 잘못을 피해 가든지, 또는 과거의 성공을 오늘에 재현할 수도 있다. 역사가 중요한 이유이 다. 누구나 먹고사는 일에 골몰하지 않으면 그래도 시간적 여유가 있다. 생각하는 것도 행동하는 것도 한층 사려 깊지 않겠는가. 삶과 마음에 여유가 없는 사학자들에게 역사적 진실이 무슨 의미가 있을 것인가. 왜 한국 사학계에서는 한국 고대사에 대한 사론이 통일되어 있지 않은가.

218

| 뉴욕문학 제31집


역사적 진실이 모든 사학자가 추구하는 선(idea)이 아닌가. 쏟아지는 고고학 적 유물 앞에 사학자라면 모두 진실해야 하지 않겠는가. 그릇된 과거의 사론에서 과감히 벗어나야 하지 않겠는가. 자국의 역사조차 바로 세우지 못한 사학자들이 강단에서 역사를 가르쳐서야 말이 되는가. 만일 과거의 학설에 얽매여 먹고 사는 일에서 벗어날 수 없다면 그들 또한 사학자의 자격이 없다고 하겠다. 있지도 않은 "임나일본부설"을 주장하며 한국 영토를 탐하는 일본을 보자. 요즘 화산과 지진 활동이 부쩍 늘어나 반듯이 설 수도 없는 지경인 듯하다. 일본의 독도 영유권 주장의 배경이 독도의 해저 자원인 메탄 하이드레이트의 엄청난 매장량에 있다고 한다. 한편 "남해 구단선"을 인접국의 코앞까지 임의로 그어 남중국해를 자국의 영해라고 주장하는 중국의 입장은 온당한가. 중국은 자국 내에서 자꾸 출토되 는 한국계 고고학적 유물을 감당할 수 없는 듯하다. "동북공정"이라는 이름으 로 우리 역사인 고구려를 아예 저들의 지방정권으로 흡수했다고 한다. 그런다 고 고래로 생활화된 김치나 온돌이나 한복이 저들의 문화가 되는가. 구소련이 민족 단위의 국가들로 분열된 역사를 보고 장차 자국에서의 그 재현을 두려워하고 있는 것이나 아닌가. 일본과 중국이 국가적인 차원에서 역사를 삐뚜로 세우려는 저의가 무엇일 까. 과거의 역사적 사실을 왜곡하여 오늘의 현실을 바꾸려는 노력이 과연 정당한가. 만일 "해가 지지 않는 나라"였던 국가들이 저들의 영토를 돌려달라 고 지금 주장한다면 저들은 무슨 논리로 반박하겠는가. 강대국 로마의 힘으로 유지되던 주변국들의 평화를 "팍스 로마나"라고 한다. 같은 논리로 20세기 후반부터 유지되는 오늘날의 세계평화는 "팍스 아메리카나 (Pax Americana)로 일컫는다. 미국의 월등한 군사력이 뒷받침 한 근세 칠십여 년의 현상 유지가 없었다고 가정해 보자. 한국을 비롯한 동남아 국가들의 발전이 있었을까. 오늘날 한국의 K-문화가 세계를 휩쓰는 수필 ∙ 전수중 |

219


현실이 가능했을까. 소강 대국인 일본과 중국이 이 모든 것들을 가만히 두었을까. 국가의 존립 요건이 국토, 국민, 국권이라 한다. 국토가 없어 세계를 떠돌던 예로 이스라엘이 있다. 국권이 없어 우리 한국이 식민지로 내몰리지 않았었나. 국민이 없는 국가는 자연 소멸하게 된다. 최근 한국처럼 국민이 줄어드는 국가들이 있다. 잘못된 정책의 결과라면 바로 세우는 시간이 필요하 지만 자연 감소라면 사정이 다르다. 이민을 받아들이더라도 인구를 늘려야 하고, 국민을 동질화시킬 수 있는 이념이 있어야 한다. 미국은 노예를 짓밟던 "인권"에서 그 해답을 찾았다. 그것도 "천부적 인권"으로 세계의 말문을 막는다. 조국 대한민국의 유구한 존립 이념은 무엇인가. "널리 인간을 이롭게 한다."라는 고조선의 개국이념이 아닌가. "홍익인간!" 이는 한글 창제의 정신이기도 하며 지금의 교육기본법에 천명되어 있다. 우리는 민족의 정통성 을 지키며 이민자와 더불어 나눔을 실천하여 하나가 될 각오가 되어 있는가.

220

| 뉴욕문학 제31집


도토리 키 전 수 중

분명 미국 텍사스주 오스틴시에는 도토리나무가 사람 수보다 많은 듯하다. 이곳 도토리나무는 상록수라 해야 하나. 겨울이 와도 낙엽이 지지 않는다. 겨울을 지나고 햇잎이 나면 마지못해 한꺼번에 임무 교대를 한다. 봄이면 햇잎과 함께 연두색 도토리꽃이 핀다. 꽃잎이 떨어지면 갈색으로 변하여 알레르기를 유발한다. 봄비를 맞으면 거무튀튀한 얼룩을 시멘트 바닥에 남긴다. 봄바람이 대충 모아주면 재빨리 쓸어 담아 쓰레기통으로 치우는데 게으르지 말아야 한다. 도토리는 미국에서 다람쥐의 겨울 양식이라 한다. 가을마다 길바닥에 떨어져 발길에 차이고 밟힌다. 아무리 도토리묵이 먹고 싶어도 도토리를 줍는 일은 법률위반이다. 도토리는 사람들 얼굴처럼 모양도 가지가지이다. 뭉툭하기도 하고 통통하기도 하고 뾰족하고 날씬한 모양도 있다. 익으면 밤톨처럼 도토리 집에서 쏙 빠져나온다. 다람쥐가 바로 먹기도 하고, 가져다 가 쌓아두고 겨울도 나지만, 흙 속에 숨겼다가 잊어버린 도토리는 이듬해 봄에 싹을 틔운다. 한강 상류인 동강 부근이던가 생태계 조사를 보여주는 프로그램을 보았었 다. 수많은 벌레도 도토리나무를 의지해 살아가고 있었다. 도토리 잎을 감싸고 안에 집을 지어 번식하는 것은 그래도 나은 편이다. 어떤 벌레는 익지도 않은 싱싱한 도토리를 골라 구멍을 뚫어 속에 알을 낳고는 그 자루를 썰어 땅에 떨어뜨린다. 저마다 달려들어 아무리 해코지해도 도토리나무는 꿋꿋이 살아간다. 너그럽게 해마다 더욱 많은 잎을 달고 도토리도 넉넉히 매단다.

수필 ∙ 전수중 |

221


나도 도토리 키를 재어본 적은 없다. 뾰족한 부분이 다리라면 우툴두툴한 부분은 머리인가. 눕혀 놓고 재는 것도 한 방법이겠다. 재나 마나 도토리는 작은 밤만큼 큰 것도 드물지 않은가. 어릴 적에 도토리를 꿀밤이라 불렀다. 꿀꿀거리는 돼지가 좋아한다고 그랬었나. 아무튼 도토리 키를 재는 일은 부질없다. 별 차이가 없으니 이미 "도토리 키재기"란 속담이 있지 않은가. 사람이 늙으면 평준화가 이루어진다고 한다. 먼저 외모의 평준화다. 꽃다 운 젊은 나이에 누렸던 아름다움은 피부의 노화로 서로 비슷해진다는 것이다. 다음이 학력의 평준화다. 젊어서 많이 배운 것도 기억력의 감퇴로 치매의 발병으로 자랑할 것이 못 된다는 말이다. 그다음은 수명의 평준화이다. 평소 자랑하던 건강도 믿을 것이 못 되고 목숨을 잃는 것조차 순간이니 장담하지 말라는 주장이다. 이에 무엇을 더하든 간에 겉으로 드러나는 인생이 야 "도토리 키재기"와 무엇이 다르겠는가. 그것을 주장하는 사람이 스스로 위안으로 삼으면 족할 터이다. 한글자판에서 영어인 "소셜 네트워크 서비스"의 약자 "SNS"를 무심코 쳤더니 "눈"이라는 말이 나타났다. "아하, 남들을 아니 사회를 들여다보는 눈인가?" 친구들이 숱한 좋은 말들을 SNS에 올려놓는다. 읽어보면 감탄할 만한 글들이 수두룩하다. 가끔 "그걸 진작 알았더라면 내 인생이 사뭇 달라졌 을 수도 있었을 텐데."라는 생각이 스쳐 간다. 요약하면 평준화가 이루어진 너 자신을 알라고 당부한다. 이제부터 모든 욕심을 내려놓고 하루하루의 행복에만 마음 쓰라는 충고다. 어린 손주들을 데리고 갓 떨어진 도토리를 골라 주워왔다. 아이들은 내가 무엇을 만드는지 알지를 못한다. 뾰족한 나무 이쑤시개를 가져다가 도토리 머리 부분의 정중앙에 반듯하게 꽂는다. 그리고 위를 손끝으로 잡을 만큼 적당히 남기고 가위로 잘라낸다. 그렇다. 도토리 팽이를 만든 것이다. 식탁 위에서 도토리 팽이가 반듯하게 때로 거꾸로 돌아가며 재주를 부린다. 눈이 동그래진 아이들이 비명을 내지른다. 내 동심의 세계가 세대를 이어 다시 222

| 뉴욕문학 제31집


펼쳐지고 있다. 우리는 살면서 도토리 키만 한 차이라도 세상을 보다 낫게 바꾸었는가. 그렇다면 스스로 평준화를 인정하기 전에 우리가 그 사소한 차이를 세상에 전수해야 할 의무가 있지 않은가. 그것이 당신이 세상에 태어난 이유인지 누가 알랴.

전 수 중 경북 울진 출생, 한국항공대학교 (학사), 서울대학교대학원 (석사), NYU (MBA), 2005년 뉴욕문학 신인상, 수필 '곡예사' 당선으로 등단. 미동부한인문인협회 총무 역임. 저서, '한글꼴 발음기호에 따른 영어없이 영어배우기', '미국시민권시험', '미국영어발음','영어나무 1000'. smpchun@gmail.com

수필 ∙ 전수중 |

223


기억의 저편 차 덕 선

한 40대 가까운 남자분이 가게에 들어오면서 반갑게 인사를 한다. “안녕 하세요. 차 사장님” 나는 이따금 우리 가게를 찾아오는 손님으로 생각하고 나도 “안녕하세요.”라고 가볍게 인사를 했다. 그분은 “너무 늦게 찾아 뵈서 죄송합니다.”라며 배 한 상자를 나에게 주었다. 그런데 나는 그 분에 대해 기억이 잘 나지 않았다. 내 표정을 읽었는지 그 분이 나를 찾아오게 된 이유를 이야기하기 시작했다. 70년대에 자신에게 일어난 이야기였다. 오늘따라 은행 창구마다 차례를 기다리는 고객들의 줄이 길었다. 한 젊은 한국분이 들어오면서 줄을 설 생각은 안하고 불안하고 다급한 듯이 주위를 두리번거렸다. 그때 이 은행의 유일한 한인 직원이 고객들을 도우려고 밖으로 나왔다. 그러자 한인 직원을 본 그 젊은 사람은 바로 달려가 그 직원 앞에서 애원하듯이 말했다. “선생님, 좀 도와주세요. 내 와이프가….” 그러나 그 은행 직원은 너무 바빠 그 청년의 사정을 들어줄 수 없었다. 계속 옆에서 조르다시피 도와달라고 하니 좀 짜증스런 표정으로 기다리라고 했다. 나는 그 청년에게 무슨 일이냐고 말을 건넸다. 그 청년은 아내가 갑자기 하혈을 시작했는데 손을 쓸 수가 없다고 했다. 나는 그 청년에게 빨리 우리 상점으로 가서 주인아저씨에게 도와달라고 이야기하라고 하고는 은행 일을 마치고 상점으로 급히 갔다. 알고 보니 유학 온 학생으로 미국에 들어 온지 3일째이며 아파트는 얻었지만 가스도 연결이 아직 되지 않았고, 전화도 연결이 되지 않은 상태였다. 급히 구급차를 불러 병원으로 데려갔다. 그러나 보험이 없었다. 우선 사람의 상태가 위험해서 응급실에 입원을 시키고 소셜 워커에게 사정을

224

| 뉴욕문학 제31집


말하고 도와 줄 것을 부탁했다. 병원에 입원을 시키고 보니 의사가 조금만 늦었으면 하혈이 심해 생명을 잃을 수도 있었다며 천만 다행이라고 했다. 진찰결과 자궁 외 임신이었다. 하루를 매달려서 청년의 일을 도와주었다. 청년이 얻어놓은 아파트에 가스가 들어오지 않으니 식사도 해먹을 수가 없었다. 전기 곤로를 주어 우선 사용하도록 했다. 그러고보니 내가 갑자기 그 청년의 보호자 노릇을 하게 되었다. 미국이라는 나라가 얼마나 감사한지 보험이 없는 유학생 아내가 갑자기 당한 불행한 일을 소셜 워커를 통해 도움을 얻어 해결을 했던 것이다. 유학생 아내는 생명을 건지고 병원을 퇴원했다. 10년 전에 있었던 일인데 나는 까마득하게 잊고 있었던 일이었다. 그 유학생은 공부를 시작하다 너무 힘들어서 박사학위를 포기하고 미국회사에 취직을 해서 살고 있다고 했다. 70년대 유학은 모두가 어려운 형편이었기 때문에 학교를 마칠 때까지 유학생들은 학비를 벌면서 공부를 하는 학생이 많았다. 낮에는 학교에 가고 밤에는 식당에서 접시 닦기도 하고 밤에 빌딩 청소를 하기도 했다. 지난 세월을 뒤돌아보니 힘든 일도 많았지만 감회가 새록새록 기억에 남는 일 들 중의 하나였다. 젊은이는 그 때의 어렵고 힘든 과정을 용케도 버티어냈다. 세월이 지나 안정을 찾고 이제 어려움을 이기고 난 후 그 때를 잊지 않고 감사를 표하러 찾아 온 것이 너무나 아름다웠다. 그러고보니 세상은 정말로 살만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내가 힘이 있은 것도 아니고, 내가 부자도 아니고, 불쌍한 사람을 보면 나도 모르게 도와줄 수 있는 마음을 가지게 한 것이 한 사람을 살린 것이다. 희망을 가지고 유학 온 젊은이가 자칫하면 불행한 일을 당할 뻔 했었는데 그가 중년이 되어 미국서 안정된 생활을 하니 얼마나 감사한 일인가? 그 일이 있었던 10년 전 일을 기억의 저편에서 꺼내어 다시 돌이켜 본다. 젊은이가 바랬던 미국에서의 꿈이 성공하기를 빈다.

수필 ∙ 차덕선 |

225


J는 지금 어디에 차 덕 선 “어마, 이게 누구야?” 내 눈을 비비면서 신문에 난 기사를 보고 또 보고 했다. 믿기지 않아 한참 동안 입이 딱 벌어져 다물 수가 없었다. 시카고 로렌스에서 D 백화점을 할 때이다. 내가 경영하는 우리 백화점 옆 코너에 한국 사람 J가 경영하는 옷가게가 있었다. 그 집의 옷들은 일반 사람이 소화하기 힘든 디자인으로 마치 무대의상을 진열해 놓은 것처럼 특이했다. 옷값도 싸지 않고 비싼 편이었다. 나는 J의 가게 옷들을 보면서 이 옷들을 누가 사 입을까? 현실과 동떨어진 꿈의 세계에서나 입을 수 있는 평범하지 않는 옷들이 얼마나 팔려서 가게를 운영할 수 있을까? 하는 생각을 해본 적이 한두 번이 아니었다. J는 가끔 우리 백화점에 둘러 쇼핑을 하는데 돈에 대해 별로 어려움이 없는 것처럼 쇼핑을 자주하는 편이었다. 그런데 어느 날부터 J는 보이지 않았다. 가게는 여전히 영업을 하고 있었다. 나는 혹시 팔 물건을 구매하기 위해 여행 중인가 아니면 휴가여행을 간 것인가 이런 생각을 하고 있었다. 한 동안 모르던 j소식을 아침 미국 신문을 보다가 J에 대한 기사를 보게 되었다. 신문에 나온 모습이 분명 J였다. J는 거금의 벌금과 6개월의 형량을 받고 인디아나 감옥에 있다는 것이다. 나는 내 눈을 의심하면서 그 신문에 난 기사를 보고 또 보았다. 알고 보니 우리 백화점 옆에서 하는 옷가게는 하나의 전시품이며 가짜

226

| 뉴욕문학 제31집


유명 핸드백을 미 전국에 파는 것이 본업 이었다. 수만 불 어치 가짜 핸드백 상품도 발각되어 압수를 당했다고 한다. 참으로 놀라고 안타까운 일이었다. 한국 교포가 가끔 한 번씩 미국 신문에 가짜 핸드백을 팔다 적발되어 보도되는 일이 있었다. 한국 사람이 이런 모습으로 신문에 보도되는 것에 대해 그럴 때마다 얼굴이 뜨겁고 가슴이 답답하고 기분마저 우울한 적이 있다. 그런데 이번에는 내가 평소 얼굴을 맞대고 사는 내 이웃이라는 점에 나는 큰 충격을 받았다. 참으로 기가 막히는 일이었다. 결국 J의 상점은 문을 닫았고 J는 더 이상 볼 수가 없었다. 순수하고 평범한 이민자로서 열심으로 살아간다고 생각했던 나는 J가 6개월 감옥을 살고 출옥하면 어떻게 살아갈까? 한동안 J 생각에 혼동을 겪으며 마음이 아팠다. 사실 우리의 초창기 이민생활은 모두가 어려움을 격을 때이다. 말도 안 통하고 미국의 습관과 법도 잘 모르고 우리끼리 군락을 이루어 한인 타운 이라고 형성을 해서 살고 있었다. 나는 백화점을 경영하면서 한국 도매상을 운영하는 K사장은 진짜같이 생긴 가짜 핸드백을 팔아 보라는 유혹을 받은 적도 있다. 나는 정중히 거절했다. 진짜를 팔고서도 밥을 먹고 사는데 가짜를 파는 것은 내 양심이 허락하지 않는다고 거절을 했다. 두 번, 세 번까지 권유를 했지만 거절을 하면서 다시는 이런 일로 나를 찾아오지 말라고 당부를 했었다. 그 당시 고국을 방문할 때 한국에서 선호하는 유명 상품의 어카운트를 정상적으로 많이 갖고 있던 나는 가짜를 판다는 것은 생각 할 수도 없었다. 또 중국 전통적인 옷을 입고 우황청심환을 중국에서 가지고 왔다면서 팔아 달라고 온 사람도 있었다. 나는 정식으로 세금을 내며 등록된 회사의 물건이 아니면 구입을 하지 않았다. 왜냐하면 물건을 산 INVOICE(송장)에 회사의 이름이 있으면 문제가 발생했을 경우 클레임을 할 수 있기 때문이다. 많은 이익을 창출하기 위해 내 양심의 소리를 외면하면서 가짜 상품을 팔면서 불안하게 사업을 한다는 것은 내 사업 계획에 있을 수 없었다. 수필 ∙ 차덕선 |

227


정상적인 상품 구매로 마음 편하게 사업을 했던 것이다. 한번은 미국 사람 두 남녀가 우리 백화점에 와서 백화점을 한 바퀴 돌면서 상품을 자세히 보고 있었다. 물건을 살 사람은 아닌 것 같았다. 내가 ‘도와 줄 일이 있느냐?’라고 물었을 때 하는 말이 “당신은 참 좋은 상품을 가지고 있다”라며 칭찬을 하는 것이었다. 내 짐작엔 가짜 상품을 찾아내는 사람같은 생각이 들었다. J는 평소 노래부르기를 좋아했다고 한다. 한국에서 가수로 활약한 적도 있고, 자신의 레코드를 발매한 적도 있다고 자랑 하기도 했다. 돈을 벌어 한국가서 또다른 레코드 취입을 하는 것이 희망 사항이라고 했다. J가 감옥 형기를 다 마치고 그녀가 꿈꾸던 한국에서 레코드 취입을 해서 새로운 삶을 살아가기를 빌뿐이다. 내 이웃으로 아름다운 모습의 J가 가끔 보고 싶을 때가 있다. 지금 J는 어디에서 무엇을 하고 있을까?

차 덕 선 부산 출생. 약사. 현 미국 하와이 거주 그린에세이 등단 뉴욕문학, 하와이 문인회 신인상 한국 산문 작가협회 회원 미 동부 한국문인협회 회원 재미수필 문학가협회 회원 미주 한국 문인협회 회원 그린에세이작가회 회원 저서: 수필집 ‘여자로 돌아와서' gloria.d.cha@.gmail.com

228

| 뉴욕문학 제31집





기(日帝强占期)”란 단어다. 보통 우리는 나라를 잃었던 그 시대를 일제시대 (日帝時代) 라거나 일제식민(植民)시대, 또는 일본식민지배(支配)시대라 고 일컬어왔다. 그러나 최근들어 강점기라는 새로운 용어가 등장하였다. 그 용어를 만들고 유포시키고 있는 세력들은 일본의 비인간적(非人間的)이 고 강압적(强壓的)이며 포악(暴惡)한 이미지를 전달, 이식(移植)시키려는 의도를 가진 반일(反日)세력으로, 그런 악성 이미지를 유포시켜 정치적인 이득을 취할 수 있을 것이라는 기대를 하고 있었음에 틀림없다. 기실 정치적 인 이득도 보았다고 사료된다. 자, 그렇다면 강점(强占)을 주도하였던 일본측(側)은 그렇다고 치자. 그럼 강점을 당한 조선 말기(末期) 당사자였던 우리들의 임금, 고종(高宗)의 집권기(1864~1910) 50년 동안 그 사회의 구성원들은 무엇을 하고 있었는지 그 당시 상황이 어떠하였는지 반추(反芻)하거나 반성(反省)하거나 아니 복기(復棋)라도 하여 보았는지 그들에게 묻고 싶다. 제국주의 식민시대가 정점(頂點)을 향해 치닫고 있었던 19세기 중반 이후, 서양의 해양세력들은 그들 입장에서 보면 지구의 끝에 위치한 동양 3국까지 겨냥하고 있었다. 당시 중원(中原)을 지배하고 있었던 만주족이 주인인 청(淸)은 영국과 두 차례에 걸친 아편전쟁에서 패(敗)하여, “국치(國 恭) 100년”을 눈앞에 두고 있었던 처절(凄切)하고, 처참(凄慘)한 상황이었 다. 조선에 대한 1,000년 종주국 위치도 상실(喪失)해가고 있었다. 통상반대와 위정척사(衛正斥邪)등 담론에 매몰(埋沒)되어 있었을 뿐아니 라 매관매직(賣官賣職)등 부정부폐(不正腐弊)로 찌들어있었던 조선은 불 어닥친 격랑(激浪)의 세월 50년 동안 1866년 병인양요(丙寅洋擾), 1871년 신미양요(辛未洋擾), 1875년 일본과의 불평등 강화도조약체결, 1882년 임오군란(壬午軍亂), 1884년 동학란(東學亂), 1894년 갑오경장(甲午更 張), 1895년 을미사변(乙未事變), 1896년~1897년 고종의 아관파천(俄館 播遷)등을 겪으며 급기야 1910년 신흥(新興)일본제국에게 나라를 빼앗기고 만다. 아니 넘기고 만 것이다. 그로부터 100년이 지났건만 대한민국은 “일본” 에서 헤어나지 못하고 있거나, “일본”을 정치적으로 악용하고 있다. 232

| 뉴욕문학 제31집


자, 그러면 그 격동의 세월 19세기 후반부터 1910년에 조선을 합방(合邦) 한 일본은 어떤 일을 하여왔는지 바로 우리 주변에서 살펴보기로 한다. 지난 3월 5일(금) 뉴저지주 New Brunswick에 소재한 Rutgers 대학에서는 매우 역사적인 이벤트가 개최되었다. 행사명은 “어떤 遭偶, Rutgers 大學, 日本留學生을 맞다. -Rutgers Meets Japan. 150年-” 명치유신(明治維新)이전인 막번(幕藩)말기 경응(慶應) 3년(1867년) Ru tgers 대학이 일본의 관비(官費) 유학생 4명을 받기 시작, 명치 30년(1897년) 까지 30년 동안 관비유학생 300여 명을 교육시켰다. 년간 Rutgers 대학의 등록금이 $45~$60였던 당시 일본정부가 이들 관비 유학생들에게 지급한 년간 일인당 장학금은 $600이었다. 이들은 귀국 후, 과학 기술, 정치, 교육, 비즈니스 분야 등 각 분야에서 일본의 근대화, 산업화에 지대한 족적(足跡)을 남긴다. 그 중에는 명치유신의 입안자(立案者)도 나왔고, 동경대학의 전신(前身)인 동경개성(開成) 학교 예비교 교장도 나왔고, 대장성(大藏省)의 서기관도 나왔으며 조선(造船) 회사 사장도 나와 정관계(政官界), 재계(財界), 산업계(産業界)를 주름잡는 리더로 성장한다. 물론 이들은 서구 선진 학문의 “동양화(東洋化)”에 기여 (寄與) 하였다는 점도 평가되어야 한다. 이렇듯 일본은 선진구미(歐美) 각국의 명문대로 유학생들을 파견 수학시 켰을 뿐 아니라, 1871년에는 이와쿠라 사절단을, 1881년에는 조사 사절단을 파견 선진문물을 수용하여 명치유신을 완성시킨다. 1895년에는 청(淸)과의 전쟁에서 승리하였고, 1905년에는 유럽의 열강 (列强) 러시아 전쟁에서 승리, 국가를 세계열강의 반열(班列)에 올려놓는다. 일본은 미국대학 년간 등록금이 $45~$60하던 때, 년간 장학금을 $600을 002 투자하며 인재를 키워 30년 후, 국가를 세계열강의 반열에 올려놓았던 것이다.

수필 ∙ 한태격 |

233


인재양성이 국운(國運)을 갈라놓고 말았다. 이것이 조선조정(朝鮮朝庭) 과 일본조정(日本朝庭)의 차이이며 1852년 동갑내기인 명치(明治)와 고종 (高宗)이 다른 점이다. 조선을 매국(賣國)한 자는 이완용(李完用)이 아니고, 고종(高宗)이다. 그 귀중한 시기 19세기 후반 30년~40년이 국가와 민족의 운명을 갈라놓았 다. 한반도의 분단(分斷)도 김일성(金日成)탄생도 6.25.도 고종의 산물(産 物)이다! 반일(反日)운동을 하고 있는 자들은 일본을 헐뜯고 비난할 것이 아니라, 조상(祖上)인 고종을 탓해야 한다. 5,000만 한민족 전체의 운명이라고 하기 엔 너무나 잔인(殘忍)하다. (註) 일본개화기 자료는 週刊NY生活(Shukan New York Seikatsu) No. 809 2021년 3月6日 字를 參照하였음.

韓 泰 格 서울高, 高麗大 商大卒. 大韓民國 海軍 中尉 豫編. 韓一銀行 Frankfurt 事務所 次長 勤務. New York Daily News, Bank of America 勤務. Bridge Enterprises (架橋販促物社: 뉴욕市政府 調達品 納品 指定業體) 運營中. NYC Food Consulting Group 運營中. 朝鮮日報 姉妹紙 '月刊朝鮮' 뉴욕通信員 (2004 年 以來). 2004年 隨筆 “詩人과 淸掃婦”로 文壇 登壇. 2009年 慶熙大學校 制定 海外同胞 文學賞 受賞 “뉴욕에서 바라보는 早期留學”. navyofficer86201@yahoo.com

234

| 뉴욕문학 제31집


소 설


도가니탕의 추억 민 병 임

봄은 올해도 어김없이 왔다. 40년 전이나 지금이나 봄은 계절의 순환 법칙에 따라 정확하게 왔다. 4월 1일, 만우절로 시작되는 4월, 4월의 첫날이 거짓말로 다른 이에게 장난을 쳐도 되는 날이기에 속이 텅 빈 공갈빵 같다는 생각을 했었다. 연정이 한국에서 보낸 40년 전 4월은 20대 초반, 한창 젊은 나이였기에 누군가와 밀고 당기는 감정싸움을 했었고 그러다 누군가 떠나갔고 그 일로 감정 복받치는 일들이 자주 있었다. 세상이 무너진 것처럼 절망하여 푹 가라앉아 있다가도 갑자기 툭툭 털고 일어나 아무렇지도 않게 새로운 일과 인연을 만나곤 했다. 세상이 근사해 보이지도 않았고 때로 시들하고 시시해 보이기도 했다. 그녀가 대학을 졸업하자마자 들어간 여성 잡지사는 서대문구 서교동 세진가구 3층에 세 들어 있었다. 그때 연정의 집은 동대문구 전농동에 있다 보니 한 번에 가는 버스가 없었다. 중학교나 고등학교나 심지어 대학까지도 늘 집에서 가기에는 교통이 불편하여 제대로 직행하는 대중교 통이 없었다. 버스나 지하철을 두 번 갈아타거나 배차시간에 맞춰 오는 버스를 기다리기가 지루하고 번거로워 아예 두서너 정거장 걷는 일은 예사였다. 입사 1년 후, 잡지사가 강남에 빌딩을 지어 이사 가는 바람에 다시 버스, 지하철, 버스 혹은 도보로 10분을 걸어야 하는 고난의 행군이 시작되 었다. 출퇴근에 하루 두 시간 이상을 버려가면서 나중에 혼자 살게 되면 걸어도 되는 거리에 집을 얻어야지, 절대 하루 두 시간을 허비하지 말아야지 했었다. 40년 전 그 때, 집에서 한참을 걸어 내려와 전농동 로타리에서 버스를

236

| 뉴욕문학 제31집


타고 서대문 로타리에 있는 적십자병원 앞에 내리는데 40여 분이 걸렸다. 다시 10여 분을 독립문 방향으로 잡지사가 있는 서교동 쪽으로 걸어 올라가 야 했다. 그때 서대문 로타리에는 허름한 극장이 하나 있었는데 입장료를 내면 영화 두 편을 볼 수 있었다. 매달 중순이면 원고작성과 편집으로 일주일이상 야근을 하거나 철야를 하여 25일까지 마감을 해야 했다. 마감된 대장이 인쇄소에서 돌아가는 시간, 기자들은 할 일이 없었다. 편집장은 나가서 영화를 보든지 쇼핑을 하든지 하라고 기자들을 밖으로 몰아냈다. 밀린 잠을 자거나 빨래를 하거나 사우나에서 땀을 빼거나 목욕탕 에서 오랜만에 느긋하게 때를 불리기나 각자 하고 싶은 대로 해도 되는 자유의 시간이었다. 그때의 연정이나 동료 숙경은 굳이 만나고 싶은 남자친구도 없고 명동에 나가 복잡한 시내를 돌아다니고 싶은 생각도 없었다. 무작정 신문사를 나왔으나 딱히 갈 데가 없었다. 목적지가 없이 번화가 쪽인 로타리 방향으로 투덕투덕 걷다가 로타리 영화관을 발견했다. 그 날 본 영화는 홍콩배우 성룡이 나오는 영화 ‘취권’, 나머지 한 편은 제목이 기억 안 나는 것이 아마 보다가 나왔을 것이다. 웃통 벗은 성룡이 한꺼번에 여러 개의 물통을 달은 지게를 지고 비틀대다 가 갑자기 권법을 보여주던 장면이 재미있었다, 사회 초년생 여기자 둘은 벌건 대낮에 컴컴한 영화관에 나란히 앉아 키득거리며 성룡의 재롱을 보았다. 아쉬운 것은 얼마나 많이 사용했는지 필름의 상태가 좋지 않아서 수시로 화면에 벌건 줄이 비처럼 내려왔다. 이미 성룡은 대스타였다. 때는 제5공화국 시대, 정부는 온 국민이 놀고 먹고 즐기는 오락과 스포츠 로 눈을 돌리게 만들었다. 호기를 만난 것은 각종 소비와 서비스 업체였다. 여성지 기자들도 물만난 고기처럼 잘 나가는 몸이 되었다. 여성에게 아름다 운 옷을 입히고 곱게 화장시켜 멋진 식당에 가서 식사를 하라고 부추키던 시절, 남편에게 어떻게 하면 섹시하게 보일까를 조언하는 기사를 실었다. 백과사전처럼 두꺼워지기 시작한 여성지에는 화려한 옷과 화장품, 야한

소설 ∙ 민병임 |

237


속옷, 구두와 각종 액세서리, 고급 가구 등 각종 소비재 광고가 도배를 했다. 여성지 기자들은 패션 촬영 후 사진설명을 달면서 옷을 제공한 사람을 ‘패션 디자이너’ 라 불렀다. 자신의 이름을 '샤니 리, 제시카 오'라는 미국 이름으로 바꾸어 달아달라는 이들도 있었다. 신문사나 각 단체가 주최한 디자인 콘테스트에서 데뷔한 이, 복장학원을 졸업한 이, 신설동 양장점에서 봉제하던 이도 모두 ‘패션 디자이너’라 불려졌다. 파리나 영국에서 3개월간 메이크업이나 마사지를 공부하고 돌아온 이, 동네 미용실에서 파머 말고 고데기로 머리 말면서 신부화장 해주던 이들 모두 ‘헤어 디자이너’, ‘메이크 업 아티스트’ 라는 거창한 단어를 만들어서 불러주고 잡지에 이름을 넣어 주었다. 옷과 머리에 신경을 쓰다 보니 화장이 잘 받으려면 피부 손질도 시작해야 했다. 피부 미용실이 생기면서 너도나도 마사지를 받으러 다니기 시작했다. 과거에는 결혼을 앞든 신부들이 주로 받던 마사지가 일반 가정주부들도 백화점 안 미용실이나 동네 피부마사지실에 어깨를 홀랑 드러낸 채 드러누 워 얼굴을 남의 손에 맡겼다. 그때 기자들은 연예인 섭외도 쉬웠다. 방송국으로 전화 한 통을 걸면 인기연예인의 전화번호 알기는 식은 죽 먹기였다. 고참 기자들은 연예인들 의 전화번호가 빽빽이 적힌 기자수첩을 지니고 다녔다. 신입기자들이 물으면 선선히 번호를 알려주고 모델 섭외 요령을 가르쳐 주었다. 여성지에 서 연예인 전화번호가 필요한 것은 의상 촬영이나 메이크업 촬영, 혹은 인터뷰 기사에서였다. “진짜로 내가 전화를 하면 TV에서 보던 연예인이 이곳으로 달려오나 요?” 연정으로서는 전혀 짐작도 못하던 일들이라 멍해져서 선배 여기자한테 물었다. 사회에 첫발을 디디자마자 상상도 못했던 일들이 정신없이 일어나 고 있었다. 매달 초순, 편집회의가 끝나면 편집장이 일을 나눠 주었다. 기자들은 238

| 뉴욕문학 제31집


배당받은 일을 ‘꼭지’라고 했다. 보통 기자 한 사람당 7~8꼭지를 배당받았 다. ‘봄철 의상 센스있게 입기’라는 꼭지를 받으면 먼저 의상 협찬처와 모델 을 정해 섭외하고 사진부와 의논하여 촬영 날짜를 정해야 했다. 촬영 후에는 사진부로부터 필름을 건네받아 사진 설명이나 기사를 써서 편집을 해야 했다. 매달 중순에는 자신이 쓴 기사 편집도 하였다. 원고지에 기사를 써서 편집실로 넘기면 식자실에서 식자를 쳐서 나오고 그것을 대장이란 부르는 종이 판대기에 풀로 붙여서 직접 편집하던 시절이었다. 여성잡지사 편집국에는 편집장, 최부장, 남자 기자들 8명, 여기자 6명이 근무했다. 대학을 갓 졸업했거나 1년이 지난, 비슷한 나이의 여기자들은 일이 마냥 재미있기만 했다. 그중 집이 청와대 근처라 야근을 하고 가는 날은 길목을 지키는 경찰에게 이름을 써주고 집으로 간다는 인희, 웃기도 잘 하고 울기도 잘 울었다. 식자 중에 오자가 나면 그 부분을 칼로 오려서 맞는 글자를 풀로 부쳐서 수정을 해야 하는데 맞는 활자가 없으면 여기저기서 따다가 쪽자를 만들어 야 했다. 때로 정신없이 대지작업을 하고 집에 가서 보니 팬티 고무줄 부분에 그렇게 찾던 쪽자가 붙어있었다는 남자 기자의 말에 다들 배를 잡고 웃기도 했다. 풀로 붙이다보니 대지 한 부분이 시커멓게 때가 타기도 했다. 어느 날, 한창 마감 때 야근 중인 편집국에 잠시 들렀던 사장이 인희의 시커먼 대지를 보더니 “인희씨, 손 좀 씻고 해요” 한마디 했다. 다들 속으로 킥킥킥 웃을 뿐 차마 인희한테 아는 척을 못했는데 잠시 후 인희가 소리 없이 사라졌다. 걱정이 된 연정이 인희를 찾으러 밖으로 나왔더니 야근 때 잡지사 기자들이 정해놓고 먹는 1층 식당에 혼자 있었다. 그것도 눈물을 뚝 뚝 흘리며 밥을 먹고 있었다. “흑흑, 사장님이 내가 어떻게 될 줄 알고, 흐흑, 판이 지저분해서 글자가 잘 안 보인다며 손 씻고 하래요. 내가 나중에 성공해서 이따만한 잠자리 소설 ∙ 민병임 |

239


선글라스 끼고 발치까지 치렁치렁한 새하얀 모피 코트 두르고 와서 오우, 사장님, 제가 그때 손 씻고 편집하라던 인희에요 하고 말해야지, 흑흑, 그런데 이 도가니탕은 왜 이렇게 맛있는 거야?” 연정은 아직 시간이 일러 기자들이 저녁을 먹으러 오지 않아 텅 빈 식당에서 도가니탕에 벌건 깍두기 국물을 넣어 씩씩대며 밥을 먹고 있는 인희를 보고 그만 까르르 웃음보가 터졌다. “너는 울면서도 남을 웃기는 재주가 있구나.” 취재를 나가는 날에는 명동이나 신촌에서 점심을 먹기도 하지만 중순경 마감 때는 잡지사 근처에서 밥을 해결했다. 하루는 편집장이 기자들에게 점심을 내겠다고 큰소리를 쳤다. “점심 약속 없는 기자들 모두 따라 와. 도가니탕 먹으러 갑시다.” 그때만 해도 서대문 근처에는 점심시간이면 간판을 내걸지 않고 가정집 에서 밥을 파는 곳이 제법 있었다. 찌개백반이나 도가니탕을 만들어 자신의 안방이나 건넌방에서 직장인들에게 밥을 파는 간이식당들이었다. 멸치볶 음, 장조림, 콩자반 같은 집 반찬을 옷장과 책상이 있는 남의 집 안방이나 거실에 앉아 집밥을 먹었다. 4월 초반, 으스스한 날씨에 황사까지 날려 며칠 동안 눈앞이 부옇던 날, 바람이 불면 먼지나 티끌이 눈으로 들어왔었다. 바람이 쉴새 없이 불면서 땅으로부터, 건물로부터, 지나가는 차량으로부터 흙먼지가 폭격처 럼 온몸에 쏟아졌다, 목도리로 입과 코를 막고 눈을 가려도 먼지 한자락은 눈으로 들어와 눈알이 따끔거리고 시야를 흐렸다. 중국과 몽골 사막에서 발원한 모래 먼지가 북서풍을 타고 한반도로 왔다고 했다. “이건 먼지야, 눈물이 아니지, 암 그렇고말고.” 왜 봄날에는 늘 초조했고, 긴장했는지, 지방으로 내려간 남자친구는 연락 두절이 되었다. 불안했고 낙담했다. 포기를 해야 하나 기다려야 하나 를 결정해야 할 시간, 뭔가 될 듯하면서도 제대로 되는 것이 하나도 없는 봄이었다. 그야말로 영국시인 T.S. 엘리엇의 싯귀처럼 연정의 ’4월은 잔인

240

| 뉴욕문학 제31집


한 달‘이었다. 남자 선배 세 명이 씩씩대고 황사를 헤쳐 가며 앞장서고 건장한 남자들의 외투 뒷자락에 몸을 가려 황사를 피해가며 세 명의 후배 여기자들이 졸졸 따라갔다. 매사 진지 모드인 동료 여기자 선이가 저 멀리 영국 시인의 시 이야기를 꺼냈다. “황사 속에 걸어가다 보니 시 ‘황무지'가 생각나네요. 시인은 아, 4월은 잔인한 달, 죽은 땅에서 라일락을 피우며 추억에 욕망을 뒤섞으며 봄비로 잠든 뿌리를 일깨운다고 했는데, 제1차 세계대전의 시대적 환멸과 허무사 상을 바탕으로 일상을 꾸려나가기 힘든 사람들의 삶을 묘사했다죠.” “아, 그 시 알아요.” 다들 밥 먹으러 가다가 갑자기 웬 시? 하는데 자칭 시인 최부장이 뒤를 돌아보면서 대답한다. “시인은 봄이 되어 버거운 삶의 세계로 돌아와야 하는 모든 생명체의 고뇌를 잔인하다고 했어, 종교적 신앙을 잃고 생식의 기쁨을 잃고 재생도 불가능한 서구문명의 비극을 노래하며 봄은 이 불가능성을 환기시키기에, 공허한 추억과 덧없는 욕망을 일깨우고 상처를 헤집기에 잔인하다고 한 거지….” 연정은 자신의 기분에 빗대어 말한다. “저는 아마 그때 누군가 사랑하던 사람이 죽었을 수도 있고, 오랜 연인과 헤어졌을 수도 있고 외롭고 쓸쓸한 시인의 감정이 들어간 것 같아요. 사물에 대해 느끼는 사람의 감정이 다 다른 것처럼 보통 우리가 봄 여름 가을 겨울 중 어느 계절이 제일 좋은 가 묻잖아요. 저는 여름과 겨울처럼, 확실하게 더우려면 덥든가 왕창 추우려면 춥던가, 아니면 바바리코트 깃 세우고 코트 자락 날리면서 걷는 단풍든 산책길을 선사하는 가을처럼 무드가 있던가, 이렇게 세 계절은 다 좋은데 가장 싫은 계절이 봄이에요. 지금처럼 황사 부는 봄날, 이왕 사주시는 것 좀 산뜻한 것 먹으러 가지. 이런 날 도가니탕 먹으면 고깃국 노린내가 전부 옷에 달라붙을 것 같아요.” 소설 ∙ 민병임 |

241


웃으면서도 징징대는 연정의 말에 최부장이 다시 뒤를 돌아보면서 말한 다. “이 집 도가니는 진짜배기야. 쫄깃하게 씹히는 도가니 수육도 그만이지. 소의 무릎에 있는 연골부위와 힘줄, 도가니뼈를 폭 고아서 뽀얗고 걸쭉한 국물이 일품이야. 칼슘이 풍부해 뼈 건강에 좋고 골다공증 예방에도 좋고, 콜라겐이 들어있으니 피부, 머리카락에도 좋고….” “아하, 선배님들이 지난겨울 찬바람 들어간 뼛구멍 막느라고 도가니탕 먹으러 가시는 거군요. 아침에 일어날 때 마다 하루가 다르다 하시더나 여름에 앞서 몸보신 하시는 거죠?”

재빨리 인희가 말을 받아친다. “여름 아직 멀었는데, 이제 막 봄입니다. 하하하, 하여간 인희씨는 성격 좋아. 잘 살거야.” 최부장의 말에 동감한다는 듯 다들 큰 소리로 와르르 웃는다. 조금만 더 가면 독립문과 사직공원 앞으로 연결하는 사직터널이 나올 텐데 할 즈음 앞서 가던 발걸음이 멈춰졌다. 석양의 건맨처럼 황사가 부는 봄날, 바바리 자락을 날리며 간 독립문이 바라보이는 주택가의 ‘도가 니탕, 해장국 전문’ 집은 얼마나 아담 사이즈인지 6명이 들어서자 마당이 가득 찼다. 마당 위에는 빛바랜 파랑색 차양이 쳐있고 작은 부엌에선 새하얀 김이 쉴새 없이 흘러나온다. 온 집안 가득 도가니 푹 고는 냄새가 진득하니 온몸으로 달려든다. 남성 3명이 한 상, 여성 3명이 한 상을 받으니 방이 가득 찬다. 다들, 방안에 앉아 뜨거운 도가니탕을 먹는다. 지난겨울 바람이 솔솔 들어오던 무릎뼈 구멍이 막힌다며 벌건 깍두기 국물을 우윳빛 뽀얀 국물에 넣어가면 서 땀을 뻘뻘 흘리면서 먹는다. 연정은 접시에 따로나온 흐물흐물한 도가니 수육을 한 점 먹고는 뽀얗고 진한 국물만 홀짝거리면서 선배기자들의 왕성한 식욕을 구경했다.

242

| 뉴욕문학 제31집


“왜 도가니탕 못 먹어?” “아니요, 그냥…….” “하긴 그 나이에는 이런 것 안 좋아하지. 경양식집 가서 칼로 고기 써는 것 좋아하지. 우리 마누라도 그랬어. 연애시절에는 매일 경양식집에서 만나자더니 이제는 월급날 다음날이면 정육점 달려가서 우족 사와서 끓이 는 게 일이야. 연정씨도 결혼 해봐, 달라져.” 그때의 4월은 눈을 제대로 못 뜨게 하는 황사와 허연 김과 노린내가 가득한 밥집 도가니탕의 추억으로 남겨져 있다. 그 이후 40년 세월 동안 연정은 참으로 많은 시간을 사골이나 도가니, 꼬리곰탕을 고우니 우려내거나 삶아낸 양지나 사태고기를 찢느라고 보냈 다. 원래 육류 체질이 아니라 주로 채소를 좋아하는 연정이었다. 그러나 하루라도 고기를 못 먹으면 허기져 하는 시어머니를 20년간 모시고 살면서 수시로 고기 장만하는데 시간을 보냈다. 처음 시댁에 인사를 간 날도 시어머니는 식탁에 뽀얀 곰국과 양지머리 삶은 것, 양념간장을 내놓았다. “먹어, 먹어봐.” “아, 네…….” 한참 망설이던 정이가 커다란 고기 한 점을 잡고 어쩔 줄 몰라 하자 남자친구가 어머니 안보는 사이 얼른 뺏어가더니 먹기 좋게 가늘게 잘라서 연정의 밥그릇 위에 놓아주었다. 참기름과 깨소금, 파가 섞인 고소하고도 향긋한 양념간장에 살짝 찍은 양지머리는 어찌나 보들보들한지 혀에서 살살 녹았다. 그것이 시작이었다. 미국에 와서 살면서 어머니를 모시고 마트에 가면 등심, 양지머리, 사태, 꼬리뼈, 사골, 갈비, 차돌박이 등 온갖 부위의 소고기 를 사와야 했다. 물론 그 많은 고기 값은 아들 며느리가 치렀다. 마트에서 파는 고기가 충분치 않으면 고기 도매시장으로 가서 소고기, 돼지고기 잘라진 덩어리를 수십 개의 박스로 사다 날랐다. 질 좋은 스테이크와 소설 ∙ 민병임 |

243


LA 갈비 수십 박스를 사면 당분간은 고기를 원 없이 지지고 튀기고 굽고 삶고 했다. 주말이면 뒤뜰에서 바비큐 파티를 했다. 친구, 직장동료들도 바비큐 시즌이면 문턱이 닿도록 연정이네 집을 오갔다. “먹는 게 남는 게지, 얼른 먹어라.” 틀니를 한 노인네가 갈비 3인분을 알뜰하게 먹고 난 후에는 화장실로 가서 틀니를 빼어 청소했다. 깨끗하게 양치질 된 어머니의 벌건 잇몸 틀니는 야광 케이스에 담겨 있다가 자다가 화장실로 간 연정을 번번이 놀라게 했다. 수시로 꼬리뼈를 고고 뼈는 재탕 삼탕을 하느라 가스레인지 위에서 계속 졸여졌다. 고기 누린내가 온 집안을 진동하는 듯 했다. 아무리 새로 지어진 집으로 이사를 가도 몇 달만 지나면 가스레인지나 후드, 부엌 캐비닛에 진득한 기름때가 눌어붙었다. 처음에는 연정도 시간만 나면 부엌 캐비닛과 레인지 후드, 냉장고와 냉장고 위 기름때를 긁어내고 용액을 뿌려 청소를 했다. 그러나 별로 소용이 없었다. 나중에는 온 부엌 천정이 다 기름때가 노란 먼지처럼 앉았다. 연정은 그냥 내버려 두었다. “좀 있으면 금방 기름때 낄 텐데 뭐.” 꼬리뼈를 몇 시간동안 고면 고기가 떨어져나가고 뼈만 고스란히 남았다. 고기가 채 식기 전에 일회용 비닐장갑을 끼고 고기를 떼내고 있으면 아들 둘이 우당탕 뛰어와서 손으로 집어 먹었다. 미리 말랑말랑한 고기는 시어머 니에게 한 접시 가져다준 다음이었다. 다시 뼈만 고면 뽀얀 속살이 드러나듯 한두 방울의 기름이 뜰 뿐인 국물이 가스레인지 위에서 폭폭 끓였다. 처음 곤 국물은 식힌 다음 냉동실에 넣어두었다가 다음날 꺼내면 고체 우유같은 색깔의 허옇고 두꺼운 기름이 그대로 분리되어 떨어져 나왔다. 기름을 제거한 얼음덩이를 좀 녹인 다음 불에 데우면 말간 국물이 나왔다. 그 안에 채 썬 파를 살짝 띄워 소금을 살짝 넣어 먹으면서 어머니는 ‘맛나다, 맛나다’를 되뇌었다.

244

| 뉴욕문학 제31집


남편은 어려서부터 어머니가 해주는 음식을 먹고 자라 양지머리 고기, 사골, 해장탕, 육개장, 내장탕, 곱창전골 등 고기 들어간 것은 무조건 좋아했고 먹는 양도 엄청났다. 그러다가 딱 병에 걸렸다. 40대 초반에 심장 확장 수술을 했는데 의사 말이 걸작이었다. “젊은 나이에 심장으로 가는 혈관이 다 막혔네. 담배, 기름기 있는 음식 다 끊어요. 중처럼 먹어요.” 40대 초반에 심장으로 가는 혈관 두 곳에 스턴트 수술을 한 것도 의기소침 한데 고기 들어가지 않은 음식은 ‘음식이 아니라 음석’이라던 그도 충격을 받았다. 그날부터 벌건 육류인 소고기를 딱 끊으려 했다. 그런데 문제는 시어머니다. “고기를 먹어야 힘을 쓰지. 먹어, 먹어봐.” “어머니, 저 심장수술 해서 이런 기름기 있는 고기 먹으면 안돼요.” “그래?” 그러나 그 때뿐이었다. 어머니는 수시로 고기가 잔뜩 들어간 음식을 했고 그 때마다 먹으라고 아들을 부추겼다. 워낙 효자아들인지라 어머니 앞에서는 먹는 척 수저를 들었다가 나중에는 그냥 남기곤 했다. 어머니 입맛에는 고기가 계속 당기니 아들이 심장병 환자라는 것을 깜박깜박 잊었다. 그 시어머니가 90세가 되면서 노환으로 병원에 자주 입원을 하게 되었다. 병원에 환자복 차림으로 누워 유동식을 먹다가 나중에는 목으로 음식물을 넘기지 못해 코로, 다시 배꼽으로 멀건 죽 같은 용액을 섭취하게 되었다. 1년 동안 병원에 입원했다 퇴원했다는 아홉 번 반복한 시어머니는 병상에 누워 작고 힘없는 목소리로 며느리에게 말했다. “밥 먹고 싶어.” “뭐가 가장 드시고 싶으세요?” “곰국”

소설 ∙ 민병임 |

245


‘물도 목으로 못 넘기는 분이 기름기 많은 곰국을 어찌 드시나, 그래도, 곰국을 끓여서 입만이라도 축여드리자.’ 연정이 좋은 소꼬리를 사러 플러싱 정육점에 간 날, 시어머니는 병원에서 돌아가셨다. 정신없이 장례를 치른 며칠 후 정이는 정성을 다해 곰탕을 끓였다. 하루종일 불 조정을 해가면서 소꼬리를 고아낸 국물을 식히고 다시 냉동실에 넣어 기름기를 말끔히 걷어냈다. 다시 그 국물을 따끈하게 데워 커다란 보온병에 담았다. 남편과 함께 집에서 한 시간 거리인 롱아일랜 드의 어머니 산소로 찾아갔다. 어머니가 누운 묘소 주위로 곰탕 국물을 조금씩 부었다. “어머니, 곰국 맛있게 드세요.” 어머니가 돌아가신지 10년, 연정은 이제 소꼬리나 도가니, 사골을 끊이 지 않는다. 큰아들은 그 새 장가를 갔고 며느리는 백인 여자인데 어느 날 한국 식당에 갔다가 시어머니 연정이 도가니탕을 시킨 것을 보더니 ‘오우, 노, 노우!’를 외치던 여자다. 작은 아들은 ‘대학 졸업하고 취직해 방 값만 있으면 독립한다’ 고 노래를 하더니 정말로 졸업한 해 여름. 방을 얻어 멀리 이사나갔다. 코를 곤히 골며 자는 남편의 늙어가는 얼굴을 이윽히 바라보던 연정은 잠이 오지 않아 TV채널을 이리저리 누른다. 뉴욕으로 이민 온 지도 30년이 되어간다. 오로지 한국 종이신문뿐이던 그 때에 비해 한국 TV 채널이 여러 곳이 생겨 24시간 동안 한국말 방송을 볼 수 있다. 그러다 어느 한국방송의 프로그램에서 낯익은 얼굴을 발견한다. “어, 인희다. 그 손 좀 씻고 오라는 말에 펑펑 울던 인희다. 눈물을 뚝뚝 흘리면서 벌건 깍두기 말아 도가니탕을 씩씩하게 먹던 인희다.” 말을 잘 하더니, 울면서 남을 웃기는 재주가 있더니 인희는 청중을 사로잡는 강연회의 유명 연사가 되어 있었다. “어쩌나, 여성잡지사는 그새 문 닫았다는데, 모피 롱코트 장만해도 인사 갈 데가 없네….”

246

| 뉴욕문학 제31집


늦은 밤 연정은 혼자서 빙긋 미소 짓는다. 변한 것은 또 있다. 먼지 많은 봄, 잔인한 4월을 싫어하던 그녀는 나이가 들면서 봄이 좋아졌다. 일로, 연애사로 늘 미친 듯 펄럭이며 돌아가던 젊은 날이 지나가고 60대가 되면서 집과 동네, 공원에서 피어나는 꽃들이 보이기 시작했다. 퀸즈 베이사이드에 사는 연정은 롱아일랜드 시티의 직장까지 30분 거리 익스프레스를 버리고 복사꽃 피어난 좁은 로칼 도로로 50분이나 걸려 돌아 출근 하면서 꽃구경을 했다. 연두, 초록, 노랑, 파랑, 연분홍, 진분홍, 연보라, 마치 파스텔 통이 엎질러진 듯 자연이 뱉어내는 화사한 입김은 모든 생명체의 고뇌가 아니라 환희를 느끼게 했다. 겨우내 움츠린 것들이 기지개를 펴고 일어나 평소 바라던 것을 이룰 것 같고 좋은 일이 생길 것도 같았다. 그녀에게 움트고 싹이 자라 꽃 피우는 봄은 잔인한 달이 아니라 피어오르는 ‘생명의 달’이 되었다. 화사하게 피어난 꽃들을 바라보다가 불현듯 연정은 도가니탕을 끊이고 싶다. “오늘은 노던 정육점에 들러서 고기를 사오자. 오랜만에 소꼬리, 도가니, 사골 모두 사와서 푹 고아 보자. 남편이나 나나 무릎에 숭숭 구멍 뚫릴 나이가 아닌가. 작은 애도 도가니탕 한 냄비를 안겨주면 당분간 잘 먹겠지.” 하늘은 파랗고 집 앞의 나뭇가지에는 우윳빛 목련이 봉긋 얼굴을 내밀었 다. 봄이다, 4월이다.

민 병 임 1980년 3월 여원잡지사 입사, 8년간 근무, 1989년 5월 뉴욕한국일보 편집국 차장으로 입사 1997년 미주한국일보 신춘문예, 미주중앙 신춘문예 소설 입상 1997년 미동부한인문인협회 제5회 신인작품상 소설 '생명' 당선 2017년 민병임 칼럼 ‘족발이든 감자든’ 출간 2021년 5월 현재 한국일보 논설위원, 32년 이상 재직 중 minlee88@hotmail.com

소설 ∙ 민병임 |

247


불법체류자 변 수 섭

부동산 소개소를 하는 친구 상원에게 월세를 낼테니 결혼상담소를 함께 사용하면 안 되겠느냐고 의중을 떠보았다. “글쎄! 나야 좋지! 교포가 몇 명이라고 결혼상담소라니! 그래도 부동산 은 덩어리가 크니 한 건에 몇 만 불이지만, 중매는 얼마를 받겠어? 렌트를 내겠다고? 짝지어 이민 오는데, 꿈을 깨! 나도 우리 교포들이 아직 자리를 잡지 못해 집사겠다는 사람이 별로 없어, 이 꼴로 사무실 직원도 두지 못하는 판인데, 그것 잘 생각해 볼일이야! 그렇게 할일이 없어? 어쨌든 백수보단 뭔가 일을 해야겠지! 그러나 그건 아닌 것 같아. 그렇잖아도 사무실 직원이 필요한데 내 일을 도우면서 결혼 상담을 하면 되겠구먼, 서로 주급하고 월세를 까는 거로 하면 어때! 그렇게라도 시작해보겠어? 단지 창문에다 명훈 결혼상담소라는 포스터만 붙이면 되는 것 아냐? 간판 에도 써 붙이면 되는 거고!” “말이라도 고마워! 상원아! 뉴욕에 와서 이렇게 기댈 곳이라도 있으니 얼마나 다행인지 모르겠어!” “참! 그런데 하필이면 뚱딴지같이 결혼상담소야? 너답지 않게!” “하긴 그렇긴 해! 사실 불법체류자에게 영주권을 얻어주기 위해서 생각 해낸 것이야!” 기존 영주권자의 자녀가 아닌 이상 영주권을 취득할 수 없다. 단지 배우자가되든지 과학 예술 분야에서 특수한 능력이나 해당 직업을 가진 자, 단기 고용 숙련 기술자 등은 영주권을 취득할 수 있다. “그러니 낯선 땅의 백수인 우리네 불법체류자는 결혼 이외 방법이 없군, 그래!”

248

| 뉴욕문학 제31집


“그래 맞아!” “그런데 정당한 신분도 갖지 않은 자를 무얼 믿고 그런 자와 결혼하려고 하겠어! 결혼까지 했다가 영주권만 받고 도망이라도 가버리면 어떻게 해?” “그렇게는 할 수 없어! 최소한 2년 내는 이혼을 할 수 없어! 만약 그러면 사기 결혼이 되어 영주권을 잃게 되는 거야!” “그래도 그렇지!” “그래서! 돈으로 묶어보려 하는 거야! 1만 불만 주면 아기를 낳아주겠다 는 광고를 보고 아이디어를 얻은 거야! 목마른 자가 샘 판다고, 돈을 주고 위장결혼 해서 영주권을 받게 하는 거지!” 상원은 이외의 말에 명훈을 어이 없이 바라본다. “시민권자인 너로서는 그렇게까지 해서 영주권을 취득해야 하겠느냐고 생각할는지 모르겠지만 불법체류자에겐 신분 문제가 그만큼 심각한 거야! 우리 이웃 아파트에 사는 흑인여자와 동거한 한국 남자가 그 한 예였어! 영주권을 받자마자 그는 곧 떠났어! 어쩌다 뒷날 만났는데, 어떻게 떠날 수 있었느냐고 물으니 ‘영주권 취득을 위해 돈을 주고 결혼 계약을 했다’는 거였어!” 상원은 명훈의 말에 솔깃했다. “돈까지 써야하는 거야?” “영주권이 없으면 이곳에서 살아가기가 힘들어! 몰래 일하면 될게 아닌 가 할 게 아닌가 싶지, 천만에 말씀이다!” 명훈은 한숨을 쉬면서 말을 이었다. 이 모 씨가 경영하는 맨하탄 한국 식당이 이민국 수사관의 불심검문을 당했다. 바로 영주권이 없는 불법체류자 7명이 잡혀갔다. 같은 블록에 있는 동업자가 밀고한 것이다. 한편 가게 주인은 불법체류자임을 알고 그것을 빌미로 저임금으로 혹사를 하는 것이 다반사였다. 그러니 그들은

소설 ∙ 변수섭 |

249


영주권을 돈으로 매수하려고 하지 않을 수 없다. “미국 여자들은 실용주의여서 돈 만 불 받고, 그냥 주거만 같이 하다가 이민국의 동거 확인만 시키고 영주권만 받게 하면 되는 것이 아닌가. 동거하다 사랑을 하게 되면 금상첨화이겠지만 사실혼이 아니기 때문에 책임질 일도 없고, 그리고 2년 후 이혼서류만 제출하면 끝나는 것이지, 그런데 우리 동포야 영주권 취득 명목으로 동거하다 연민과 정으로 부부가 된다면 진짜 중매를 잘 하는 것이지!” “그래! 그렇지! 그렇다면 넌 어떻게 일할 거야? 중매야 잘해봐야 본전인 데!” 명훈은 상원을 보다말고 중얼거리듯이 말했다. “그래! 너무 낭만적으로 생각하는 것인지 몰라!” “그래도 넌 계획이 있을 것 아냐? 내가 너를 잘 아는데!” 명훈이 눈을 껌벅이면서 상원을 쳐다본다. “아무래도 신문에 광고를 내야할 것 같지 않아!” “어떻게?” “영주권이 필요하신 분 전화주세요. 어때!” “그래서! 어떻게?” “먼저 만나서 신원을 파악해야지! 단순 불법체류자인지 범죄자로 도망 자인지, 영주권을 취득할 수 있는 방법은 결혼이 최상 방법이라고 중매를 하겠다고, 그렇지 않으면 위장결혼으로 영주권을 위해 돈을 쓸 수 있는가를 알아야 일을 할 거 아냐!” “그럼! 결혼할 여자는?” “70년도 초반에 취업이민으로 온 간호사, 의사, 영양사, 약사 등 전문직 다수가 대상이 되는 것이지! 하긴 나는 간호사 아내 덕분에 덤으로 얹혀왔 지만, 그렇지 못한 미혼녀들을 대상으로 중매해서 영주권을 얻게 하겠다는 것이야!”

250

| 뉴욕문학 제31집


“그럼! 자료라도 가지고 있는 거냐?” “준비를 해야지! 그러나 쉽지는 않을 거다! 출신대학별로 접촉을 해야 될 거고! 그들은 망년회 때 동창회를 하는 걸로 알고 있어! 동창 명부는 그때 구하면 될 것 같아. 그들 회장단을 만나 사업 계획을 말하고 협조를 바래야겠지!” “쉬운 일이 아니구먼, 그래!” 전문직 이민을 억제한 1976년의 미국 이민법 수정을 기점으로 이전에 도미한 한국인 이민은 유학생, 의사, 간호사 등 전문직 기술자가 주축이 된 선택 이민이었다. 그리고 월남전 종식 직후 상류층 다수가 달러를 가지고 도피 이민을 했다. 한국 경제가 안정세를 가지자 선택형 이민은 급격히 줄고 가족 초청 이민으로 전환되었다. 그래서 선택형 이민과 달리 이들은 미국 사회 적응에 많은 난관에 봉착한다. 기껏 이들은 미국에 올 때 그렇게 많은 자본금을 지참하고 오지 못했다. 그래서 미국에 온 후 2∼3년 동안 청소부, 공장의 공원 등으로 열심히 일해서 모은 돈으로 자영업 즉 청과상, 옷가게, 생선가게, 세탁소, 주유소, 리큐어 스토어 등을 하는 것이 고작이다. 또한 한국에서 전문직에 종사하던 사람들조차 언어 장벽 때문에 자기가 닦아온 전문직으로 가지 못하고 소규모 자영업을 시작하게 된다. 그래도 당시 한국에서 먹고 사는 것보다 이곳 미국이 나았기 때문에 불법체류자가 늘어났다. 명훈은 아내 은영을 통해 미혼 여성들을 알아냈다. 그리고 일부는 신문 광고를 보고 전화로 결혼 상담을 하기도 하면서 그들의 신원을 확보하기 시작했다. 영주권이 필요한 불법체류자 역시 일간지의 광고를 보고 사무실 로 찾아오거나 연락이 왔다. 그래서 그들을 결혼 중매와 영주권 취득자로 구분했다. 불법체류자의 영주권 취득 중개료는 1만 5천불을 요구했다. 1만 불은 결혼해 줄 영주권 여성에게 지불할 금액이고, 3천불은 6개월간 함께 기거할 비용이다. 그리

소설 ∙ 변수섭 |

251


고 2천불은 영주권 취득을 위한 사무비용이다. 또한 결혼 중매는 성사가 되면 그들로부터 소개료 대신 축의금을 받는 것으로 했다. 신분을 확보한다는 기대로 하루에도 수십 건의 전화 문의가 걸려왔고, 기어코 그들은 얼굴을 내어 밀었다. 한국에 처자를 둔 불법체류자는 영주권 취득을 위해 그리고 독신은 결혼 중매를 당부했다. 그들이 3개월 내지 6개월 만에 영주권을 받아 쥐자, 그 소문은 빠르게 전해져서 상원의 도움은 물론 여자 사무원이 보조해야만 업무를 감당할 수 있었다. 인간 구제는 할 것이 못된다더니 돈벌이가 되는 일도 아닌 일에 목매일 판이다. 불법체류자가 영주권을 받자마자 본색을 드러내기 십상이었다. 명훈이 이런 일을 그만 하겠다고 생각한 것은 80년도 어느 여름날 살인 사건 이후였다. 바로 불법체류자였던 그에게 영주권을 받도록 중개한 것이 명훈이었다. 그들은 동거기간 동안 아들을 가지게 되어 실질적인 부부가 된 것이다. 그들은 금슬이 좋아 다음해엔 딸을 가지게 되었다. 그녀는 육아를 위해 간호사 일을 그만두고 남자가 가족을 위해 일을 해야만 했다. 그는 자신의 전공 분야로 취업을 하려고 했지만 의사전달이 잘되지 않아 마땅한 직업을 가질 수 없었다. 그가 할 수 있는 일은 막노동밖 에 없었다. 그는 힘든 일로 지치면 술을 마시기 시작했고, 아내의 잔소리에 폭행을 하기까지 했다. 그녀에겐 친정도 여기 없었고 친한 친구도 없었다. 남편의 난폭한 구타를 그저 참을 뿐이었다. 칼을 휘두르기까지 하자 아이들을 안고 이웃 한국인 가정으로 도피하기도 했다. 경찰을 부르겠다는 것을 만류했다. 그런 그녀가 결혼상담소로 명훈에게 상담을 요구했다. 남편들에게 당하 는 폭행의 하소연과 같았다. 미국의 유명 쇼를 진행하고 있는 윈프리의 말을 인용해 ‘한번 맞을 때 헤어져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계속 폭행을 당해 죽음에 이른다.’ 주먹을 휘두르면 계속 폭행을 한다는 것이다. 그래서 임시보호영장을 청구해서 집에서 내어쫒아 버릇을 고쳐야 한다고 권했다. 252

| 뉴욕문학 제31집


그녀는 ‘어떻게 아이 아빠를 내어 쫒을 수 있느냐면서 애들을 좋아하는 그를 그렇게는 할 수 없다는 것이다. 그러다 죽을 수도 있다고 경고를 했지만 듣지를 않았다. 결국 그녀는 그의 폭행으로 인해 아이를 안은 채 살해되고 말았다. 뜬금없이 상원이가 한국으로 돌아가겠다는 것이다. 미국에서 공부한 아들이 더 이상 타향살이도 아닌 이민자의 삶을 살 이유가 없다면서, 인종차별과 어눌한 언어로 인해 삶의 가치를 잊은 채 굴종된 생활을 하지 말라는 것이다. 오래 전에 그는 부동산 사무실을 명훈에게 넘겨주고 그로서 리를 운영했다. 지하철역 입구라서 그런대로 재미를 보았다. 그러나 80년도 소비자를 소매상으로 등록시켜 도매상 명목으로 소비품 을 파는 코스트코, 홈 디포 등 대형 가게의 출현으로 초기 이민자의 구멍가 게는 더 이상 영업 행위를 할 수 없게 되었다. 때마침 이곳에서 대학을 마친 아들이 한국의 기업에 취직이 되어 생활이 안정되자 부모를 모시겠다면서 역이민 하라는 것이다. 그때는 한국경제도 상승하고 있었다. 그래서 유학생이나 고급인력들이 한국으로 역이민을 하게 된다. 상원도 한국기업에 취직을 할 것이라면서 의욕에 부풀었다. 그래서 상원은 한국으로 부칠 사용하던 물건들을 상자에 밀봉해서 트럭 에 싣고 뉴저지 엘리자베스 항구에 정박하고 있는 배에 선적하기 위해 명훈과 함께 갔다. 그런데 명훈이 별도로 승용차를 가지고 따라 간 것은 상원이 자동차까지 배송하기 위해서였다. 마지막 미국에서의 시간은 명훈이가 운전해서 두 부부가 함께 나이가라 폭포를 이틀간 여행한 후 상원 내는 그랜드 캐니언을 관광한 다음 LA에서 한국으로 떠난다. “우리가 이민 올 때는 마치 신세계에 오는 기분이었는데, 이젠 한국도 꿈꾸던 이상향처럼 느껴지니, 언젠가 나도 너처럼 역이민을 해야 할 것 같아!” 아내 은영의 초청으로 여동생 선영의 가족이 미국으로 이민을 왔다.

소설 ∙ 변수섭 |

253


그녀 또한 간호사였고, 회계사인 남편 이정민과 그리고 9살 난 딸 경희와 7살 난 아들 경호가 함께 온 것이다. 선영은 은영이 일하고 있는 병원에 곧 취업이 되었다. 아이들은 명훈이가 인근 학교에 취학을 시켰다. 정민은 한국인 회계사 사무실을 찾아 취업을 하려고 했으나 구할 수 없었다. 그래서 외국인 사무실을 찾았으나 언어의 한계로 인해 거절을 당하기 마련이었다. 그래서 명훈의 상담소에서 소일을 하고 있다. 사실 명훈은 작업의 한계를 느껴 상담소를 닫으려는 상황에 처해 있었다. 불법체류자의 삶을 구제하기 위한 영주권 취득 작업이 이외의 결과를 초래하고 있었다. 초기 이민자는 보다 나은 삶을 위해 영주한 것이지만, 한국의 GNP 지수가 높아지자 낯선 타국살이를 기피하게 되었다. 90년도부터는 모국에서 범법행위를 해서 법망을 피하기 위한 불법체류 자가 다수였다. 정민은 한국에서는 회계사였지만 이곳 미국에선 아무 일도 할 수 없는 백수나 다름이 없었다. 타향살이도 힘 드는데 타국살이는 생각만 해도 비극적이 아닐 수 없다. 명훈이가 돌보아준다고 해도 그렇게까지 하면서 살아야할 이유가 없다. 정민은 아내 선영에게 한국으로 돌아가자고 강권했다. 아이들도 여긴 싫다는 것이다. 선영은 언니의 부름에 그래도 미리 언어 학습을 준비했지만, 정민은 떠나는 술 파티만 하다 왔다. 사람 사는 곳인데 보다 나은 삶을 살 수 있을 거라고만 여겼다. 어쩌면 많은 이민자가 살고 있으니 자신도 쉽게 귀속할 수 있을 것으로 생각했다. 그러나 막상 부딪혀 보니 얼마나 시간을 보내야 귀화한 미국인으로 그리고 자기 성취도를 이룰 수 있을는지? 그것 도 젊은 나이도 아닌 마흔이 넘은 중년인 자신이 분명히 잘못된 선택을 한 것이 아닌가. 선영은 언니 은영과 함께 일하는 삶을 즐기고 있었다. 그래서 정민에게 떠나려면 떠나라는 소리만 했다. 아이들에게 한국으로 가겠느냐고 물으니 여긴 싫다는 것이다. 그래서 엄마와 아빠가 이혼을 해야만 하는데 어떻게 생각하느냐고 물으니 울기만 했다. 할머니가 계시는 한국으로 가자고 254

| 뉴욕문학 제31집


꿰었다. 수구초심(首丘初心)이라더니 여우가 아니더라도 자기가 살았던 고향이 그립지 않을 수 없다. 누나 덕에 이민을 와서 열심히 일한 덕분에 구멍가게라도 하나 장만한 총각이 결혼하기 위해 고향으로 일시 귀국했다. 그것도 이민 올 때 입었던 단벌의 양복을 입고 선을 보고 다녔다. 해외생활을 특히 미국을 동경했던 여인을 중매로 만나 결혼하게 된다. 바로 신부의 서류 수속을 해놓고 미국으로 돌아온다. 몇 달 후 신부가 케네디 공항에 도착한다. 신랑은 일하다말고 밴을 몰고 마중 나갔다. 어처구니없게도 신부가 노동복을 입은 신랑을 알아보지 못한다. 결혼할 때의 그 신사가 아닌 미천한 노동자인 것을 알고는, 그와 함께 가기를 거부한다. 그래서 그녀는 친구의 주소를 찾아 떠나버린다. 함께 구멍가게를 할 아내가 필요해 한국에 까지 가서 결혼한 것이 아닌가. 아내만큼 좋은 일손은 없는데, 결혼 전 남자의 거짓에 속았다면서 길길이 날뛰기 마련이다. 계획대로 안 된 남편은 아내를 구슬리다가 마침내 욕설이 시작된다. 그녀의 아메리칸 화려한 꿈은 허망하게 끝난다. 그런가 하면 남자의 허풍과 거짓말을 제쳐두고, 새로운 삶을 위해 개척하 는 슬기로운 여자도 있다. 그렇게 노력하는 동안 고된 이민생활을 이겨내는 성공한 한인들도 많다. 그런데 이민자끼리 결혼은 그런대로 실패가 없는데 반해, 같은 문화권에 사는 더욱이 타인종과의 삶도 함께 할 수 있는데, 문화권이 다른 유학생이나 한인 미 주둔군 과 결혼은 그렇게 쉽지 않다. 함께 했다 해도 문화적인 골로 인해 쉽게 헤어진다는 사실이다. 미국에서 살기를 거부하는 그들의 정체는 무엇일까. 하긴 언어, 문화, 관습, 인종 갈등 등으로 짧은 인생을 잃어버리려 하지 않으려는 것인지 모른다. 김 박사는 예일 대학 경제학과를 나와 하버드 대학에서 경영학 박사를 하고 80년도 연봉 20만 불의 한국과 관계를 가진 기업 경영 관리자가

소설 ∙ 변수섭 |

255


된다. 그가 결혼하게 된 것은 하버드에서 박사학위를 하고 있는 한국경제부 차관의 딸이었다. 그녀는 학위를 위해 그가 필요했던 것이다. 그녀는 학위 를 받자마자 이혼서류에 사인만하고 바로 미국을 떠났다. 정 대위는 웨스트 포인터를 졸업하고 소위로 임관하자마자 미8군에서 근무한다. 정보장교로 근무하면서 아버지의 고향인 청주로 문중의 어른들 을 찾아 인사를 자주 드렸다. 그러자 문중 어른들이 중매를 섰다. 그는 그녀의 학력과 미색에 빠져 결혼을 한다. 결혼한 지 얼마 되지 않아 미국으 로 전속된다. 그러자 그녀는 이혼을 하자고 했다. 외국에서 살고 싶지 않다는 것이다. 전속할 때마다 따라 다녀야하니 아이가 생기기 전에 헤어지 는 것이 좋겠다는 것이다. 이민은 반세기전에 잘 살아보겠다는 지난 이야기이다. 지금은 관광을 다녀올 수 있는 곳일 뿐이다. 언어와 관습이 다른 아직도 백인 우월주의에 인종차별을 받는 그런 곳에 누가 함께 살기를 바라겠는가? 그런데도 불구하고 영주권 없는 불법체류자가 음지에서 생활하고 있다 는 것은 무슨 이유일까? 합법적이지 않은 그들은 과연 누구일까? 범법한 도망자일까? 대부분의 불법체류자는 남자였고, 그들이 영주권을 취득하기위해 결혼 을 하면 함께 동반자로 삶을 누리는 사람들도 있지만, 범죄자는 마치 화대(花代)를 준 것처럼 법적인 동반자를 함부로 대했다. 명훈이 근간에 찾아온 그 50대 남자는 얼마 전 한국에서 조폭으로 지명수 배자 명단에서 본 자였다. 그 이후에 찾아온 자들도 풍기는 인상이나 말투가 좋지 않았다. 그러잖아도 전처럼 영주권을 위한 결혼 상담수도 줄어들어 문을 닫을 위기에 처했다. 하긴 사무실 임대기간도 얼마 남지 않은 데다 결정적인 것은 근간에 일어난 살인사건에 충격을 받았기 때문이 다. 뉴욕 언론에 오랫동안 화제가 되었던 불법체류자의 한인사회 살인사건 을 재조명해 본다. 중년인 명화는 브롱스 북쪽에 세탁소를 3개나 운영하고 있었다. 2곳의 지점에서 세탁물을 수거, 세탁기가 설비된 본점에서 세탁한 256

| 뉴욕문학 제31집


후 지점의 손님에게 함께 서비스하는 것이다. 세탁을 하는 중년인 경수는 명화를 위해서 모든 일을 맡아 충성을 다하면 서 그녀를 유혹했다. 사업하느라 사랑을 못해 보았던 그녀를 공주 모시듯이 했다. 영주권이 없는 불법체류자이니 그러려니 했지만 한결같았다. 그녀는 그의 열렬한 구애를 받아들여 정식으로 결혼을 한다. 일생에 처음 맛보는 꿈같은 행복이었다. 결혼과 동시에 영주권을 신청함은 물론 서울에 있는 그의 자식 3남매에 게 생활비는 물론 학비까지 보내주기까지 했다. 경수가 영주권을 갖자마자 아이들을 초청했다. 그들이 뉴욕에 오니 분위기가 서서히 바뀌기 시작했다. 달이 지날수록 명화는 그들과 유리되는 기분이 들었다. 같은 밥상에 둘러앉아 밥을 먹을 때도, 주고받는 말참견을 했을 때도 교묘하게 무시당했 다. 참다못해 남편에게 말하면 오히려 어른답지 못하다면서 나무라기만 했다. 그 때부터 남편은 명화에게 아이들에게 방과 후 일터를 위해서 가게를 하나 자기 명의로 달란다. 아이들로 인해 신혼의 꿈이 식어가는 기분을 느낀다. 더욱이 아이들 편을 들기 시작한다. 그리고 손찌검까지 한다. 그 후부터는 폭행이 시작된다. 싸우면서 말버릇이 죽여 버린다면서 목을 졸랐다. 딸이 ‘아빠! 죽이진 말아!’ 명화는 고함을 치고는 방으로 피해서 들어가 119로 경찰을 부르고 이웃에 사는 친구를 불렀다. 경찰과 친구가 도착했을 때는 그들은 집에 없었고 그녀는 짐짝같이 방구석에 처박혀 있었다. 결국 그녀는 다음 주 일요일 숨져 있는 것을 친구 정란이가 발견했다. 그 남편은 아내의 사인이 심장마비라고 주장했다. 일요일이어서 정식 부검관이 아닌 부부검관에게 남편은 유암 수술자국을 보이면서 심장수술 자국이라고 거짓 증언을 했다. 부검관은 그의 말을 믿고 제대로 부검도 하지 않고 서류에 ‘심장마비로 사망’이라고 기입했다. 명화가 죽을 이유가 없다. 근간 그녀의 남편은 시도 때도 없이 트집을

소설 ∙ 변수섭 |

257


잡아 구타를 하고 있다는 소리를 한두 번 들은 것이 아닌가? 더욱이 남편은 아내의 시체를 화장하려고 서둘러 수속하고 있지 않은가? 그래서 정란은 그 직전에 검사국에 이의를 제기하여 시체를 압류하고 다시 부검하게 했다. 사인은 목뼈의 골절이라고 판명되었다. 바로 목뼈가 부러져 죽은 것이다. 그러자 그 남편은 자기 아들이 조금 밀었는데, 그 여자가 저 혼자 자빠지면 서 목뼈가 골절된 것이라고 변명했다. 자기 아들을 살인범으로 애비가 증언하여 체포케 하고 자기는 아무 상관도 없는 것으로 되었다. 여론은 그 애비가 살인자로 아들을 자기 대신 감옥에 보낸 것은 그 여자가 남긴 재산을 합법적으로 처리할 수 있는 권한이 자기에게 있기 때문이라고 소곤댔다. 그는 일급 변호사를 내세워 아들을 3급살인 과실치 사로 하고 보석금을 내고 자유의 몸이 되게 했다. 정란이 검사의 청문에 응했으나 정황으로는 증거가 되지 못했다. 원통하 게 죽은 명화의 입은 다시는 열리지 않았다. 증인도 증언도 없었다. 불법체류자였던 그 남자 경수는 계획적으로 시민권자인 명화에게 접근 하여 영주권을 취득한 후 본색을 드러낸 것이다. 명화가 남긴 재산을 합법적으로 몽땅 차지하고, 계획대로 서울에 있는 본처까지 데려와 일가가 함께 살고 있다니, 악마가 아니고서야 인간이라면 마음이 편치 않을 것이 다. 이민사의 한 비극 장면이 아닐 수 없다.

변 수 섭 소설가, 수필가, 소설집: 들쥐새끼들(상,하) 장군의 딸들 뻐꾸기 둥지, 나비의 꿈(한·영판) 기타 전문서적 다수 soosufb@verizon.net

258

| 뉴욕문학 제31집


성냥팔이 소녀 2 한 영 국 21세기다. 아무 의미도 없다. 아이는 길을 건너다 큰 트럭 두 대가 무섭게 달려오는 바람에 뛰다가 운동화를 잃어버렸다. 학교에서 나누어 주는 급식을 타가지고 오던 길이었 다. 그 신은 사실 엄마 것이어서 사이즈가 너무 커 벗겨진 것이다. 트럭이 지나가고 나서 다시 찾아 신으려고 했지만, 짓궂은 아이 하나가 싱긋 웃으며 먼저 냉큼 집어 들었다. 그리고는 두 짝의 끈을 한데 묶어 전깃줄에 올렸다. 전깃줄에 걸린 신발은 빤히 보여도 내 것이 아니다. 그저 바라다보 는 것. 남의 삶을 온통 뒤흔들면서 자기에게는 아무 이득도 없는 이런 일을 하면서도 그 애는 싱긋 웃었다. 엄마도 아이도 이제 신발이 없다. 평소 같으면 중고매장이든 어디든 가서 문제를 해결했을 것이다. 하지만 신발을 잃어버린 이튿날 아침부터 눈이 온다. 엄청 온다. 거기다 코비드가 터지고 나자 중고 매장은 제일 먼저 문을 닫아버렸다. 길거리는 온통 눈이고, 이런 날 공짜 신발이 있는지 가볼 데라곤 아무데도 없다. 연 사흘 눈이 내린다. 기온도 계속 영하다. 이틀 전에 내린 눈이 얼어붙은 위로 어제는 간간히 날리기만 하더니 오늘은 또 오후부터 펑펑 쏟아진다. 아이에게 신발을 양보하는 동안에 엄마는 보통 2층에서 잠을 자곤 했다. 신발 없이 할 수 있는 일이 떠오르지 않기 때문이다. 그러다 아이에게서 신발을 받아 신고 나면 비로소 하루의 활동을 시작했었다. 이 집의 1층은 전에 미장원이었던 곳이다. 코비드 초기에 손님이 뚝 끊겨 문을 닫았다. 길로 나 있는 가게의 출입문과 창문은 모두 블라인드도 없이 유리문 그대로

소설 ∙ 한영국 |

259


고, ‘Open’ 사인에도 여전히 불이 들어온다. 그러니 밖에서 안이 훤히 들여다보여 몹시 탐나지만 그곳에 내려가 있을 수 없다. 거기가 훨씬 덜 춥고 아늑할 텐데, 그림의 떡이다. 그들은 미장원을 끼고 돌아 좁은 돌계단 바로 아래 난 출입구를 통해 2층으로 드나든다. 푸른 방수천으로 지붕이 덮인 돌계단을 마저 다 올라가면 교회 정면이 나온다. 그러니까 미장원 옆은 좁은 골목을 사이에 두고 친교실이 있는 교회의 지하고, 교회의 정문은 지대가 높은 다음 골목으로 나 있는 것이다. 아이는 오르내리는 신자들이 비나 눈을 맞지 않도록 좁은 골목과 계단을 지붕으로 쭉 덮은 이 구조가 좋다. 마치 미장원 건물이 교회의 부속건물 같아서 좀더 안전하게 느껴진다. 코비드 시대라도 교회에는 늘 사람들이 드나들게 마련이어서 동네 사람들에게 들키지 않고 무단점거의 의심을 피해갈 수 있다. 그런가 하면 교회신자들은 그들이 이 집에 사는 사람들인가 보다, 무심히 넘긴다. 물어보는 사람은 아무도 없다. 널문을 열면 바로 2층으로 올라가는 어두운 계단이 나온다. 창문도 하나 없는데다 천장의 전등도 고장 나 아이는 늘 눈을 감고 13개의 계단을 세어 올라간다. 고장이 나 있지 않다 해도 빛이 새나가지 못하게 그렇게 했을 것이다. 전기계량기도 돌지 않게 신경 써야 한다. 아이는 13이라는 숫자가 마음에 든다. 자기 자신과 1 이외에는 어떤 숫자로도 나누어 지지 않는 수, 1로 나누어 봐야 도로 13이 되고, 13으로 나누면 1이 되어버리는 수. 꼭 짚어 말할 수는 없지만 어쩐지 자신과 엄마의 운명과 닮은 데가 있는 것 같다. 꼭대기의 좁은 발판에 선 후 문을 안으로 밀면 거기가 그들이 기거하는 2층의 스튜디오 아파트다. 주인은 이 집을 투자 목적으로 사서 복덕방에 맡겨 놓고는 본인은 여전히 먼 타지에 산다. 복덕방에서는 아래 위 층을 다 세를 주려고 했지만, 가게가 아닌 위층은 옆의 교회 때문에 시끄럽고 주차도 문제여서 세가 나가지 않는다. 더구나 집이 작아 복비도 시원찮아서 신경을 쓰는 사람은 아무도 없다. 이래저래 오래도록 비어 있는 것이다.

260

| 뉴욕문학 제31집


거기에 코비드까지 겹치며 1년 가까이 지나는 동안 천장에는 비가 샌 곳에 바람이 드나들고 다람쥐들이 저들의 길을 마음껏 뚫어 놓았다. 그래서 이제는 천장 한쪽이, 그리고 더 높이 있는 지붕까지 함께 훤히 뚫렸다. 그리로 구름을 볼 수도 있지만, 오늘은 그리로 흰 눈이 나풀나풀 날아 들어온다. 구석에는 벌써 소복이 쌓인 곳도 있다. 아이의 얼굴에도 가끔씩 눈발이 스친다. 춥다. 배도 고프고. 19세기의 안데르센은 이 추위와 배고픔이 ‘슬픔의 전형적인 그림’이라고 했지만 아이는 그저 춥고 배고플 뿐 슬프지는 않다고 생각한다. 아이를 사랑했던 할머니가 없는 것도 마찬가지다. 그저 없을 뿐이다. 아버지도 모르는데 하물며 할머니의 사랑은 언감생심이다. 아이도 그만한 눈치는 있어서 엄마에게 절대 가족에 대해 묻지 않는다. 엄마라도 있어 다행이라고만 생각하기로 한 게 오래 전이다. 진짜 엄마인지 아닌지는 현재로선 잘 모른다. 정 알고 싶으면 이 다음에 유전자 검사를 해보면 된다. 하지만 그래봐야 아무 의미도 없다. 짧은 인생이지만 무엇 하나 확실한 것을 보지 못했다. 생각해 보면, 자기 한 몸도 건사하기 힘든 상황에 아이 하나를 보태어 데리고 다니는 건 예삿일이 아닐 것이다. 성냥을 팔라고 아이를 거리로 내보낸 적도 없다. 이것만 보아도 진짜든 가짜든 엄마의 자격은 충분하다. 능력은 없지만 엄마는 정인이 엄마나 발리 엄마 같지 않으니 아이는 운이 좋은 편이라고 생각한다. ‘그래도 어떻게든 상황을 개선시켜 보려고 노력하 며 살았다’가 아이가 엄마의 인생을 정리한 결론이다. 이사는 많이 다녔지 만 집이 아주 없었던 건 팬데믹 이후일 뿐, 그 전에는 어떻게든 지상의 방 한 칸을 차지하고 엄마는 일터에, 아이는 초등학교에 다녔었다. 그러다 이제 정말 정착을 하게 되나 싶으면 어느새 응급상황이 생기곤 했다. 성격이 운명을 만든다고, 대부분은 엄마의 소심과 과민 때문에 일어나는 일들인 것 같다. 방세가 밀려 관리인을 만나야 한다거나 일터에서 문제가 생겨 매니저를 보고 오는 날이면 엄마는 지은 죄도 없이 야반도주를 택하곤

소설 ∙ 한영국 |

261


했다. 미장원 집으로 오게 된 것도 그래서였다. 멜 것 메고, 들 수 있는 껏 들고, 경찰과 사람들의 눈을 피해 반 수면상태로 일출 직전에 움직이다가 아이는 끌던 뮬스니커즈를 잃어버렸다. 신을 찾으러 길을 되짚어 가고 싶었지만 마음이 한껏 오그라든 엄마는 새 것을 사준다며 그냥 가자고 서둘렀었다. 팔을 뻗으면 닿는 곳에 누운 엄마는 움직이는 기척이 없다. 깊디깊게 잠이 든 거지? 아이는 대답 없는 엄마에게 묻는다. 엄마는 술에 취해야 잠을 잔다. 불체자(不滯者)기 때문이라는 게 엄마의 설명이다. 하긴 보통 사람이 ‘부처의 몸’ 인 ‘불체(佛體)’를 이루려면 맨 정신으로는 힘 들 것이 다. 아이는 이해한다. 눈의 속, 속, 아주 깊은 곳에 맺힌 숨은 빛들이 은근히 비쳐 나오는 건지 눈이 오면 사위는 아스라이 밝다. 아이는 기운도 없고 일어나기도 싫어 그저 가끔 손을 뻗어 엄마의 슬리핑백을 더듬어 본다. 그 안에는 어떤 물체가 들어 있고 부피도 느껴진다. 아이는 안심하고 다시 붉기도 하고 푸르기도 한 손을 거두어 자신의 슬리핑 백 속으로 집어넣는다. 그 외 할 수 있는 일이란 없다. 오늘은 오후부터 또 폭설이 시작되었고 날도 일찍 저물었다. 사위는 사람들의 발소리나 숨소리가 공기를 흔들지 않아서 그런지 아주 고요하다. 아이는 명상에 들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마음과 생각을 이곳에서 떼어내 아주 먼 곳으로 옮겨 놓고 싶다. 이럴 때 사람들은 요가나 명상을 하는 걸 안다. 아이는 근래에 유행하던 핫요가를 떠올린다. 그게 좋을 것이다. 요가를 하기 위해 사람들은 방의 온도를 섭씨 40도, 습도를 40퍼센트로 맞춘다. 땀이 많이 나고 심장도 빨리 뛰라고 그러는 것이다. 그래서 이름이 핫요가다. 아이는 직업에 관한한 뭐든지 유심히 보고 연구해 두는 편이다. 자신이 그 길로 나가게 될지도 모르기 때문이다. 직장에서 쫓겨나면 곧바로 거리로 내몰리던 엄마를 봐와서 그럴 것이다. 아이는 멤버십으로 운영되는 체육관

262

| 뉴욕문학 제31집


의 창문이나 도서관의 컴퓨터로 공부한 하타(Hatha)나 빈야사(Vinyasa) 요가의 자세들을 생각한다. 지금 일어나거나 엎드리거나 뒤트는 자세를 취할 수는 없다. 자신은 있지만, 그럴 기운이 없다. 학교나 사회단체에서 받아온 급식은 거의 다 먹어치웠다. 엄마 몫의 한 끼가 남아 있지만, 그건 먹고 싶지 않다. 아이는 슬리핑 백 속에서 태아의 자세로 몸을 동그랗게 오므리고 모로 눕는다. 좀 웃기는 포즈 같지만 보는 사람이 없으니 상관없 다. 아무리 애써도 핫 요가는 불가능하다. 핫요가가 있으면 콜드요가도 있겠지. 아이는 눈을 감고 자신의 빨간 코끝에 마음을 집중하며 작은 몸 안으로 스며드는 숨을 센다. 그러자 금방 졸음이 몰려온다. 코로 드나드 는 숨이 아니라 그냥 탯줄로 생명과 연결되어 있으면 좋을텐데…. 아이의 뺨과 코와 눈까지 덮인 모자와 슬리핑백 위로 이따금 눈송이가 떨어져 내린다. 아이는 어느 새 자기 숨을 잊고 성냥팔이 소녀의 따뜻한 환상으로 떠나간다. 첫째 불꽃, 따뜻한 불꽃이 타오르는 이동식 벽난로. 가운데 칸은 불이 활활 타오르게 만든 전기난로지만 양 옆은 책이며 장식품들을 진열하는 칸이다. 위에는 텔레비전을 올려놓았다. 텔레비전은 모두 검은색이므로 이 벽난로도 반짝 이는 검은 색이면 좋을 것이다. 아이는 월마트에서 199불짜리 이 벽난로를 보았었고, 그런가 하면 1000불이 넘는 것도 있다는 것을 안다. 책꽂이에 안데르센 동화책들을 나란히 꽂고 나서 아이는 난로불을 쬐고 앉아 책을 읽는다. 몸이 훈훈해지니 가슴과 닿아 있던 무릎도 좀 펴지는 것 같다. 나른하고 아련하다. 거의 평화의 수준이다. 하지만 갑자기 바람이 휙 불더니 아이의 얼굴에 한줌 눈을 뿌린다. 불은 금세 꺼지며 난로는 분해돼 허공으로 사라진다. 내가 돌아누워 있다고 엄마가 섭섭해서 그러나? 아이는 엄마 쪽을 향해 돌아눕는다. 이제 엄마의 허리께가 눈에 들어온다. 아이는 엄마에게 “마른 곳을 찾다가 이렇게 된 거야”, 라고 말해보지만, 그것만이 아님을 스스로도 안다. 낮에 수건으로

소설 ∙ 한영국 |

263


덮어둔 엄마의 얼굴을 피해보려고 아이는 엄마와 나란히 눕지 못한 것이다. 아이는 어둠 속에서 엄마와 자신 사이에 놓아두었던 여분의 수건을 들어 얼굴을 대충 닦는다. 그리고 타월 아래 모셔 두었던 가스라이터를 확인한 다. 총 모양의 가스라이터는 부탄가스 곤로에 불을 붙이거나 희미하나마 손전등 대신으로 쓰던 것이다. 꼭 필요한 물건이어서 늘 손 가까이에 둔다. 라이터는 21세기의 성냥. 아이는 라이터를 확인하고는 자신의 얼굴 위에도 타월을 덮는다. 그리고는 잠인지 명상인지로 다시 빠져든다. 둘째 불꽃, 흰 커버가 덮인 깨끗하고 둥근 식탁에 엄마와 마주앉아 있다. 식탁 위에는 사과와 마른 자두로 배를 채운 오리구이가 아니라 김이 무럭무럭 나는 쌀죽 그릇이 놓였다. 플라스틱 대야만큼 큰 죽 그릇은 중국 음식점에서 본 적이 있는 아름다운 백자다. 이 장면의 관건은 우선 죽의 뜨거움에 있고, 죽 속에 곱게 간 소고기와 게맛살이 듬뿍 들어 있는 것도 중요한 포인트다. 아이는 엄마에게 자꾸 같이 먹자고 하지만 엄마는 어째서인지 자기 국자를 들지 못한다. 너무 무거운 것일까. 포기한 엄마는 ‘너라도 많이 먹어’라고 말한다. 그러지 말고 같이 먹어야지, 이렇게 많잖아, 아이가 말한다. 아이는 엄마에게 먼저 먹이려고 자신의 국자에 흘러넘치도록 죽을 담아 엄마의 입으로 가져간다. 하지만 엄마의 입술에 닿자마자 국자는 아이의 손에서 맥없이 빠져나가 흰 대리석 바닥에 떨어진다. 깨어진 대리석 바닥이 맥없이 무너져 내리려 한다. 식탁도 기우뚱 기울며 죽이 든 백자가 엎어진 다. 아이는 울면서 자신은 이미 알고 있었노라고 고백한다. 엄마의 얼굴에 수건을 덮어줄 때부터 이미 알고 있었다. 하지만 무엇을 알고 있었는지의 목적어를 완성하기 전에 아이는 황급히 셋째 불꽃으로 이동한다. 셋째 불꽃, 아이는 파란 지붕이 덮인 계단을 마저 올라간다. 계단은 끝도 없이 높아 마치 하늘로 올라가는 것 같다. 마침내 꼭대기에 다다른 아이는

264

| 뉴욕문학 제31집


교회의 정문을 통해 안으로 들어간다. 멀리 제단 위에 대형 크리스마스 트리가 수많은 꼬마전등을 매달고 서 있다. 교회는 텅 비어있어 아이는 용기를 내어 앞으로 나아간다. 맨 앞자리에 앉아 아이는 영롱하게 반짝이는 트리를 바라다본다. 구유는 비어 있다. 가만히 오래 바라다보고 있자니 슬픔이 천사처럼 아이를 찾아온다. “아무도 낳지 말고, 아무도 죽지 말았으면 좋겠어요.” “……” “낳지 않으면 못 박혀 죽을 일도, 얼어 죽을 일도, 불에 타 죽을 일도 없잖아요.” “……” 아이의 눈에 눈물이 맺힌다. 그러자 꼬마전등들은 하나하나 반짝이는 별들이 되어 교회 천장으로 사뿐사뿐 날아오른다. 하지만 맨 꼭대기에 달렸던 가장 큰 별이 문제인 것 같다. 제 몸이 너무 높아 무섭고 고단하고 불안했던 것일까. 천장 가까이에서 바닥으로 포물선을 그리며 떨어져 내리면서 별똥별처럼 긴 빛의 유적을 그린다. “엄마, 미안해요. 사실 난 다 알고 있으면서……, 아무 것도 하지 못했어 요. 미안해요, 엄마.” 아이가 흐느껴 운다. 오늘 한낮의 절망이 되살아나 가슴이 답답하고 아프다. 아이는 낮에 맨발로 온 동네를 뛰어다녔다. 미친 사람처럼 교회며 집집마다 문을 두드렸다. 도와 달라고, 엄마를 살려 달라고. 제설차가 이틀 전에 내린 눈을 길옆으로 밀어붙여서 인도와 차도 사이에는 얼음벽이 세워져 있었다. 인도는 전혀 눈을 치우지 못했다. 맨발로 집집마다 문을 두드리며 차도건 인도건 빈 거리를 내달리는 아이를 보고 누군가 경찰에 신고를 했다. 경찰차가 요란한 소리를 지르며 달려왔다. 아이는 사이렌 소리를 듣자마자 거의 본능적으로 빙벽 뒤에 몸을 숨기며 재빨리 미장원 건물로 피했다. 엄마는 늘 경찰차를 경계했었다. 아이는 시민권이 있지만, 엄마와 헤어질 수는 없다. 소설 ∙ 한영국 |

265


아이는 출입문으로 들어가 일곱 번째 계단의 어둠 속에 앉아서 사이렌 소리가 멀어지기를 기다렸다. 엔젤 넘버 7, 세상의 4, 모서리와 삼위일체의 3이 만나서 만드는 신비의 문이 있는 곳, 우리가 아는 모든 세계, 그리고 우리가 모르는 모든 세계의 총체로 나아가는 문, 모든 문제의 해답이 있는 곳으로의 진입, 누군가에게는 낙타가 들어가려고 발버둥을 치는 바늘귀처럼 작지만 엄마와 아이에게는 고대광실의 대문처럼 웅대하게 활짝 열려 있을 문. 아이는 간절히 기도했다. 자신과 엄마가 이제 그 문을 열고 안으로 들어가 저들의 눈에서 완벽하게 사라지기를. 두 사람이 세상에 존재했던 아무 흔적도 남지 않기를…. 경찰차가 멀어지는 소리를 듣고서도 아이는 오래도록 거기 앉아 있었다. 그러면서 자신이 이미 엄마의 죽음을 알고 있다는 사실을 인정해야 한다고 생각했다. 운동화를 잃어버린 날부터 엄마는 급식을 떠먹는 둥 마는 둥 술만 들이키고는 슬리핑 백 속으로 들어가곤 했다. 추위를 잘 타는 체질 때문에 그랬을 것이다. 꽁꽁 얼어붙은 오늘, 아침이 되었지만 엄마는 깨어 나지 않았다. 아이가 눈을 떴을 때 엄마의 외투며 여분의 옷들이 모두 아이의 슬리핑 백 위에 얹혀 있었지만, 아이는 그때는 알지 못했다. 그래도 너무 추웠던 아이는 엄마를 깨우지 않으려고 노력하면서 남은 밥을 마저 먹고는 다시 슬리핑 백 속으로 들어가 잠을 잤다. 엄마를 위해 마지막 밥의 반은 남겨 두었다. 하지만 느지막치 다시 일어나보니 그게 아닌 것 같았다. 아이는 모든 코트며 옷가지들을 엄마의 슬리핑 백 위에 올려놓고 기다렸지만, 기다려도 기다려도 엄마는 깨어나지 않았다. 꿈쩍도 안 했다. 밖에는 벌써 간간이 눈발이 날리고 있었다. 옆 교회에서 일요일 정오 예배를 알리는 차임벨이 울렸다. 그러자 아이는 갑자기 일어나 맨발인 채 교회로 달려갔다. 벨이 울린다면 사람도 있을 것이다. 친교실 문이 잠겨 있어 아이는 계단을 뛰어올라 정문으로 향했다. 하지만 정문도 잠겨 있기는 마찬가지였다. 안은 캄캄했다. 아이는 그제서야 어메이징 그레이스는 정말 놀랍도록 한가하고 평화롭게 아주 오래 전에

266

| 뉴욕문학 제31집


녹음된 가짜임을 깨달았다. 아이는 다시 계단을 내려와 집들이 늘어선 거리로 내달렸었다. 넷째 불꽃, 다비식을 해주고 싶다. 불체의 몸은 마땅히 그럴 자격이 있다. 헤어지지 않는 것도 중요하다. 아이는 천천히 숨을 고르며 허공의 꿈결 사이를 빠져나와 지상으로 내려온다. 천근처럼 무거운 눈꺼풀을 올리니 확실한 경계는 없지만 엄마의 허리께가 보인다. 하늘을 볼 때마다 별들의 과거와 지상의 현재의 경계가 어디인지 궁금했었는데, 지금은 눈꺼풀 밖 세계와 생생하고 간절한 눈꺼풀 안 세계의 경계가 모호하다. 아이는 힘겹게 슬리핑백에서 손을 꺼내 엄마와 자신 사이에 놓인 가스라 이터를 잡는다. 그리고는 엄마의 슬리핑 백 밑으로 밀어 넣는다. 딸깍 딸깍……. 눈 때문에 천이 젖었는지 불이 잘 붙지 않는다. 딸깍 딸깍……. 딸깍 딸깍……. 드디어 불꽃이 피어오른다. 마룻바닥에 붙은 불은 신기하도록 금세 엄마의 몸 위에 내려앉은 눈송이를 녹인다. 따뜻하다. 아이는 엄마의 모호한 부피 위에 손을 얹고는 다시 깊은 적멸 속으로 빠져 든다.

한 영 국 뉴욕문학 소설 신인상. 뉴욕한국일보 시 신인상. 제1회 해외동포문학상 대상 (소설). 저서: <동글동네 모돌이> (바오로 딸 출판사). littlesongforu@yahoo.com

소설 ∙ 한영국 |

267


그녀의 그림자 홍 남 표 하나! 둘! 셋! 찍습니다. 뷰티풀! 예, 잠시만요. 그대로 계시고요. 다음은 부모님 모시고 올게요. 그리고 형제 가족 분들 준비해 주세요. 그렇지요. 예 그러고 계시면 돼요. 아주 자연스러워요. 신부님 오늘 너무 예쁘시다. 자 그대로 한 번 더! 활짝 웃으면서, 아이고 신랑 분 너무 경직됐어요. 어깨에 힘 빼실 게요. 오케이, 좋습니다. 카메라 보세요! 찍습니다! 언제나 영화 대사 같은 말. 영화라면 너무도 지루할 시나리오. 그것이 나의 일상이고, 남의 행복을 찍으며 살아간다. 나는 카메라 뷰 파인더를 통해 신부를 가깝게도, 멀리도 볼 수 있다. 신부의 얼굴을 클로즈업 한다. 신부의 눈매를 보며 상상을 시작한다. 이십여 년 혹은 고작 삼십여 년 남짓한 그들의 인생. 그들과 어울리지 않는 주름은 많은 것을 얘기해 준다. 촘촘한 눈가의 주름은 웃을 일 많은 집안. 많지 않은 주름에 폭이 넓다면 웃을 일 별로 없었던 것. 눈썹 끝 처진 주름은 사연 많을 가능성이 크고, 반대로 올라간 주름 끝은 이야깃거리 없는 심심한 분위기였을 듯하 다. 눈가의 주름을 관찰하는 게 흥미롭지만 관찰할 시간은 길지 않다. 화장으로 주름을 덮어 버리기 전에만 허락되는 짧은 시간. 그 시간 속에서만 나는 그들의 주름을 관찰할 수 있다. 젊은 여자의 주름을 들여다보고 사연을 상상하는 건 나의 비밀스러운 기쁨이다. 어쩌면 그 순간만큼은 솔직한 웃음이 내 얼굴에 비쳤을지 모르겠다. 내 기쁨을 들키지 않으려 카메라를 좀 더 얼굴에 밀착 시키고 사진을 찍는다. 누군가 내 어깨를 툭툭 친다. 신부의 이모다. "여기요! 사진사 양반 너무 신부만 찍지 마시고 이쪽 들러리들도 좀 찍어 주세요! 들러리들은 그냥 배경인가!" 주변에 있던 친지들이 크게 웃는다. 이 집안의 코미디언은 이 여자다. 분위기를 좌지우지 할 수 있는 위험인물. 268

| 뉴욕문학 제31집


"예, 그럼요. 들러리가 있어야 신부가 사는 날이죠" 대충 자동으로 맞춰진 카메라 셔터를 누른다. 정해진 장소에서 정해진 개수의 사진만 찍는 한국과 는 달리 미국의 결혼 사진사는 온종일 장소를 이동해 가며 사진을 찍는다. 아침부터 신부의 화장, 머리 손질부터 찍기 시작해 식장으로 이동해 혼례를 찍고, 식이 끝난 후에는 만찬 겸 연회 행사까지 찍어야 한다. 신랑, 신부는 물론 하객, 가족, 일하는 사람 모두가 지칠 때쯤 그들이 말하는 인륜지대사 가 끝난다. 그녀를 만난 건 중국 남자와 결혼하는 한국 여자의 결혼식이었다. 중국계 미국인인 신랑은 건장한 체격에 누가 말을 걸어도 호탕한 웃음으로 시작하 는 유쾌한 남자였다. 그에 비해 한국어 악센트가 심한 또박또박 영어를 구사하는 신부는 무척 조용했다. 백육십 센티미터가 조금 넘을 키에, 선이 뚜렷한 콧날을 가진 미인이었다. 눈가의 주름 폭은 넓었다. 어떤 연유의 이민인지는 몰라도 부모 말고는 별다른 친척도 없었다. 먼 친척이라며 앞니 빠진 사내아이를 데리고 온 가족이 전부였다. 신부가 드레스를 안 입고 있었다면, 신부가 짙은 화장을 안 하고 있었다면 장례식이라고 해도 믿을 만한 신부측 분위기였다. 사진사가 분위기 메이커까지 하며 촬영을 해야 하는 힘든 결혼식이었다. 그녀는 세 명의 들러리 중, 한 명으로 신부의 옆에서 유난히 신부를 챙기고 있었다. 자주 삐뚤어지는 귀걸이를 고쳐주고, 사진 찍을 때마다 펼쳐줘야 할 드레스를 허리 굽혀 펴 주었다. 곱상한 얼굴과 상반되는 이국적 피부 빛, 쌍꺼풀 없이 큰 눈, 가늘고 모나지 않은 손가락, 궂은일 마다 않을 법한 훈련된 어깨선. 굳어있는 신부의 아버지에 게도 스스럼없이 다가가 살갑게 대하는 성격. 이마의 주름을 모아 한참 인상을 쓰고 있던 신부의 아버지도 그녀에게는 웃음을 보였다. 그녀는 자연스럽게 내 시선을 끌었다. 신부의 어머니는 옆에서 태풍이 불어도 무심할 것 같은 얼굴로 내내 신부만 바라보고 있었다. 유난히 닮은 모녀의 눈매가 기억에 남는다. 어느덧 연회 끝마칠 시간이 다가오고 신랑, 신부가 중국 전통의상으로 갈아입고 나왔다. 신부가 입은 치파오는 탐스러운 붉은 색이었다. 금색으로 수놓은 공작새 문양이 가슴부터 시작해 허리 부분에서 화려하게 펼쳐져 치마의 끝자락 까지 이어지는 화려한 의상이었 소설 ∙ 홍남표 |

269


다. 하객들은 탄성을 지었고 짓궂은 신랑의 친구들은 휘파람을 불어댔다. 하지만 나는 누가 봐도 들러리 용, 치파오를 입고 있는 그녀에게서 눈을 뗄 수 없었다. 연두색에 이름 모를 꽃이 새겨진 치파오. 뚜렷하게 몸매를 보여주는 얇은 곁감. 긴 목에서 이어지는 가슴선, 손바닥만으로 가릴 수 있는 작은 아랫배, 무릎 선 바로 위까지 터져 있는 치파오의 틈새로 보였다 말았다 하는 살갗. 나는 그날 그녀의 사진을 신부보다 더 많이 찍었다. 술에 취한 신랑이 나의 어깨를 싸잡아 당기며 마오타이를 권했다. 평소라면 정중히 거절했을 잔을 받아 깔끔히 들이켰다. 어딘가에서 그녀가 나를 보고 있을지 모른다는 생각을 해서였을까? 중국 술 특유의 향, 나에게는 양파 볶음 같이 느껴지는 냄새가 목젖을 달궜다. 신랑과 신랑 들러리들이 "하오! 하오!" 를 외친다. 나는 두 잔을 더 받아 마신다. 그리고는 없던 용기가 생겨 그녀에게 다가간다. "혹시 남자친구 같은 거 키우시나요?" 웃어도 작아지지 않는 눈으로 나를 바라보던 그녀가 조용히 입을 뗐다. "아직 입양 전이에요." 아직 이라는 말에 바로 전화번호를 물었다. 급히 바텐더에게 펜을 빌리 고, 그녀는 내 손바닥 위에 전화번호를 적는다. 그녀의 이름은 연수였다. 오늘 신부는 유난히 눈을 많이 깜박인다. 너무 길게 붙인 속눈썹 때문인 거 같은데 눈감은 사진이 너무 많아 촬영에 애로사항이 많다. 자연스러운 사진을 찍을 수 없고 매 번 셔터 누르는 타이밍을 신부에게 알려야 한다. 이렇게 사진을 찍고 나면 나중에 컴플레인을 들을 확률이 높아진다. 생긴 대로 나온 사진을 보고 자연스럽지 않다고 할 것이다. 눈 감은 사진이 많으니 당연히 많이 찍을 수밖에 없고 노동의 강도는 높아진다. 그나마 디지털 카메라로 찍고 있으니 재차 확인을 하며 찍고 있다. 필름 카메라로 찍었다면 현상 전까지는 눈을 감고 뜨는 건 둘째 치고 사진의 초점이 맞았는지 틀렸는지 조차도 몰랐을 거다. 지금은 그때 그때 상황을 확인할 수 있는 상황이고, 그 상황이 나를 조급하게 만든다. 몰랐다면 더 나을 수 있는 상황을 그리며 마음 속으로 읊조린다. 눈을 뜨세요. 눈을.

270

| 뉴욕문학 제31집


베이사이드 기차역 옆의 카페 키노. 영화 관련 소품으로 실내가 장식됐 고, 무심한 여사장이 무심히 커피를 내려 주는 곳. 사장과는 그 어떤 사적 대화도 오가지 않을 것 같은 장소가, 그녀와 내가 자주 찾던 데이트 장소였 다. 나는 항상 약속 시간보다 일찍 도착해 있었다. 어느덧 지정석이 된, 창가 자리에 앉아 곧 내 옆으로 지날 그녀의 뒷모습을 기다리고, 힘차게 카페 문을 열고 들어오는 그녀의 미소를 맞이하는 날들이었다. 금방이라도 그리워 질 것 같은 그녀를 바라보며 웃음을 흘렸다. 이야기를 나눌 때는 덧니가 살짝 보이던 그녀의 입술을 바라보았고 그녀의 입에서 나오는 단어들을 되새겼다. 사람을 알아가던 기쁨을 만끽하고 있었다. "이제 우리가 만난 지도 삼 개월이 다 되어가네, 그 때 중국 남자랑 결혼한 친구는 잘 살고 있대?" "이름이 뭐였더라?" "자주 연락 해?" 그녀의 손을 만지작거리며 물었다. "잘 살고 있겠지 뭐" 시큰둥한 그녀의 반응이 의외였다. "오빠 몰랐었나?" 나 그 여자 몰라. 그날 하객 대행 서비스 연락 받고 나가서 처음 본 사람이야" 그녀가 뒤로 허리까지 젖혀가며 크게 웃었다. 웃음을 못 참겠는지 내 어깨 부분을 때리기 까지 했다. 나는 그녀가 그럴 수도 있는 사람이라는 생각을 했다. 그러나 같이 웃을 수는 없었다. 여자가 일생에서 가장 아름답게 치장한 날. 그 아름다움을 만인에게 보여주고 싶은 날. 하지만 모든 신부가 결혼식 날 아름다울 수는 없고, 그 사실은 나와 별 상관이 없다. "신부님, 잠깐 앉아 보시겠어요! 그렇지요, 부케를 얼굴 가까이 대고 눈으로만 카메라를 보실 게요." "나는 앉으면 뚱뚱해 보이는데……." 뚱뚱한 신부가 비음 섞인 목소리로 말한다. 신부는 앉으나 서나 뚱뚱하다. 오늘의 목표는 어떻게든 신부의 매력을 찾아내는 거다. 끌리는 매력이 없다면 만들어야 한다. 신부를 창가로 데리고 가 커튼으로 몸의 반을 가려 보기도 하고 화장대 거울의 굴절을 이용해 몸을 작아 보이게도 해본다. 나는 이 여자에게 끌려야 한다. 끌림을 찾아야 관계를 만들고 만족할 만한 사진을 건질 수 있다. 신부들은 본인처럼 나온 사진을 싫어한다. 고객에게 불만을 듣고 싶지 않다. 나는 프로임을 증명해야한다. 사진은 거짓말을 소설 ∙ 홍남표 |

271


할 수 있다.

그녀와의 결혼 준비는 순조로웠다. 우리 둘은 그 방면에 나름 전문가였 다. 가족이 모두 한국에 있던 그녀 쪽에서는 보스턴에 살던 사촌 언니네 식구들이 참석했고, 내 쪽에서는 아버지와 여동생네 식구 그리고 몇 몇 지인들이 와 줬다. 나 보다 두 살 어린 동생은 괜히 삼 년 전, 돌아가신 어머니 얘기를 꺼내며 기어이 눈물을 보였다. 그녀의 지인들로는 하객 대행 서비스에서 알게 된 사람들도 참석을 했는데 몇 사람은 낯익어 보이기 도 했다. 일 년에 몇 번이나 결혼식 참여를 하냐고 묻고 싶은 충동을 애써 눌러야 했다. 말하기도 쉽고 치르기도 쉬웠던 말 그대로 작은 결혼식이 었다. 내 일정 때문에 신혼여행을 미루었지만 그녀는 이해해 주었다. "결혼 시즌 끝나고 신혼여행가면 사람도 없고 좋지 뭐." 대수롭지 않은 듯 얘기하 는 그녀가 고마웠다. 일조량 많은 남향집이라는 이유만으로 선택한 신혼 집. 방 한 칸짜리 원 베드룸이었지만 그녀는 그녀의 색을 입히려 애썼다. 하늘색 벽과 연두색 의 천장. 은색 메탈 재질의 액자들. 표현주의 화가들의 그림들. 침대, 책꽂이, 책상, 화장대는 모두 하얀색이었다. 그녀가 그녀의 취향을 발산할 때, 나와의 의견 충돌은 없었다. 그저 바라보기만 하면 내가 편하다는 것을 나는 어머니와의 경험으로 알고 있었다. 못을 박건 빼건 페인트 색을 바꾸건 말건 그녀는 혼자서 해냈다. 지금 생각해보니 그녀는 나에게 도움을 원했던 적이 없었다. 그녀는 한국에서 오더를 받아 물건을 보내주는 구매대행업을 하고 있었다. 얼굴 팔렸다며 하객 대행업은 그만 두었다. 별 관심이 없어 얼마를 버는지는 몰랐지만, 옷장 속 그녀의 옷은 늘지 않았고 명품 가방 따위도 보이지 않았다. 가끔 난데없이 이번 주 목요일 여섯 시에 같이 갈 데 있어. 그러고는 나를 근사한 식당으로 데려가곤 했다. 큰 접시에 앙증맞은 먹을 것이 나올 때마다 웨이터가 다가와 접시 위 뭔가에 대해 설명을 하는 식당. 이 웨이터들은 제가 직접 접시를 옮기지도 않았다. 입만 나불거리는 웨이터들에게 나는 적응하기 힘들었다. 이런 272

| 뉴욕문학 제31집


식당에 가게 되면 나는 술을 많이 마셨다. 그녀는 와인을 골라 주기만 했고 나는 마시기만 했다. 내가 술기운에 남들 행동이나 생긴 걸 갖고 놀려 대면 그녀는 그러지 말라고 하면서도 웃어 주었다. 그때는 몰랐다. 낯익은 그 웃음이 나를 닮아 있었다는 것을. 시간은 그렇게 생소하게 흘렀고 예정되어 있던 신혼여행은 그녀가 바빠지며 또 다른 다음을 기약하 게 되었다. 그녀와의 공간에 익숙해 질 무렵, 구매대행으로 보낼 짐들이 거실과 방을 채워 나갔다. 어느 때는 화장실 입구까지도 박스가 가로막고 있었다. 눅눅함이 묻어나는 골판지 박스의 냄새, 위태롭게 천장 높이까지 쌓여지는 박스들. 나는 벽과 박스들 사이에서 균형이 필요했다. 그녀는 고마워하지 않았다. 우리는 너무 가까이에 있었기에 객관적으로 서로를 볼 수 없게 되어갔다. 소중한 것, 필요한 것을 지나쳐 버리는 일상. 창가로 들어오는 빛이 그녀의 그림자를 짙게 만들었다. 어느덧 나는 그녀의 뒷모습에 익숙해 져 갔다. 결혼식에 참석하는 사람들은 흥겹지 않아도 흥겨워 하려고 노력한다. 언제나 분위기 살리는 이모나 고모, 작은 아버지 또는 친구들이 있다. 나는 긴장해 있는 신부의 눈치만 살피면 된다. 그러나 오늘은 나의 관심이 신부의 아버지에게 쏠렸다. 차에 두고 온 여유분의 배터리를 가지러 주차장 으로 갔을 때, 신부의 아버지는 밴 트럭 뒤에 쪼그리고 앉아 담배를 피고 있었다. 포마드를 발라 반듯이 정리된 머리로는 연신 하늘을 보기도 하고 땅을 보기도 했다. 긴 호흡으로 내뿜는 담배연기는 멀리 가지 못하고 가슴에 꽂힌 하얀색 장미를 질식 시켰다. 그의 작은 눈이 많은 얘기를 하려는 듯 보였다. 가족사진을 찍을 때조차 끝까지 안 웃어 밉상이었던 신부 아버지. 신부 아버지가 결혼을 심하게 반대했었단다. 하지만 그는 지금 결혼식에 와 있다. 그리고 같은 날, 지금 신랑이 느꼈을 감정은? 사랑하는 사람의 아버지에 게 부정 당하는 심정은 어땠을까? 부정당했던 기억의 유효기간은? 수치심 의 한계는? 상처 받은 자존감의 치유기간은? 상처는 오직 받는 사람만이 알 수 있다. 주차장의 신부 아버지는 무슨 생각을 하고 있었을까?

소설 ∙ 홍남표 |

273


첫 눈에 사랑이 시작 될 수 있듯이, 단 한 번에 사랑할 수 없게도 될 수 있을까? 다른 이유 없이, 타인의 먹는 모습이 처먹는 걸로 보이면 미움의 시작이라고 했던가! 그녀의 불만은 나의 먹는 모습에서 시작됐다. 나는 인식 못하는 오래된 버릇들. 음식을 빨아 먹는단다. 음식을 씹으며 입으로 숨을 쉰단다. 젓가락질 하는 내 검지가 거슬린단다. 그녀의 말마디 는 모두가 사실이었다. 낯선 익숙함이 내 목을 죄여왔다. 어머니의 지독함. 불편한 상대의 입을 먼저 열게 만드는 인내심. 시작된 싸움에서는 상대의 숨통을 조이던 집요함. 그 빌어먹을 지독함. 어머니의 장례식 날. 아버지는 ‘이렇게 끝났어! 이렇게 가버렸다고!’ 소리치며 미친 사람처럼 웃었다. 사실 그게 웃음이었는지 울음이었는지 얼굴을 봐서는 알 수 없었다. 허상 같은 얼굴로…. 아버지는 아들인 나에게 ‘네 어미같은 길은 가지 말라’ 하셨다. 그녀와의 싸움에 나는 감정적이었고 그녀는 이성적이었다. "부드럽게 말해줘" "내 말을 들어줘" "나에게 다가 와 줘" "내 눈을 봐 줘" "나를 인정해 줘 그러면 너를 인정할 수 있을 거야" 그녀는 정확히 원하는 것을 얘기했고, 나는 내가 정확히 원하는 것을 몰라 화로 표현할 수밖에 없었다. 나는 화만 낼 줄 알았고 그녀는 침묵으로 화를 냈다. 그녀의 말수는 급격히 줄었다. 그녀와 같이 있을수록 고독 했고 고독은 불안을 만들었다. 그녀의 변화는 언제부터였을까? 나만 모르던 나의 냄새를 언제 부터 맡았을까? 내가 기억할 수 없는 틈으로 균열은 커져만 갔다. 그녀는 나를 회피하기 시작했다. 그녀의 뒷모습 그림자가 어머니를 닮아 있었다. 신부의 큰 목소리로 인해 아침부터 시끄러운 분위기였다. "엄마! 화장대 위 목걸이 좀 갖다 줘" "아빠! 꽃은 이따가 달아, 꽃 망가져" "수지야! 들러리 옷 구겨지지 않았나 확인해봐" 신부의 에너지가 대단했다. 밝은 성격이라는 표현으로 모자람이 많은 274

| 뉴욕문학 제31집


여자였다. 바로 옆 사람에게도 고함을 지르듯 했다. 거기다가 과장되어 보이는 몸짓. 이런 여자와 살면 피곤하겠다라는 생각을 할 때, 신부와 너무도 똑 닮은 신랑과 인사를 나눴다. 오늘 하루 잘 부탁한다며 나를 형님이라 불렀다. 크게 웃는 그 남자의 은색 어금니가 훤히 보였다. 사람 끌어 모으기 힘든 단체사진 촬영 때에는 사진사 형님 힘들게 하지 말라고 하객들에게 고함을 쳤다. 그 옆 신부는 주먹을 내 보이며 사진사 오빠 화이팅이라고 소리친다. 무안함은 내 몫이었고 어설프게 지었을 내 표정에 귓가가 닳아 올랐다. 너무도 닮은 두 사람은 얼마나 서로를 알고 있을까? 적막한 집안 공기를 깨트리는 물건들이 있다. 고개 숙인 칫솔. 녹 자국 남긴 면도 크림. 서로를 외면한 듯 서 있는 수저. 세월을 새긴 낡은 운동화 같은 것들. 그 무엇으로도 채울 수 없는 허전함. 그림자가 떠나버린 듯 한 허전함에 깜짝 놀란다. 그럴 때면 나는 멍하니 어머니 눈을 닮은 내 눈을 바라본다. 거울 속 나는 아직도 말없이 인내심을 발휘한다.

‘그만 끝내자! 우리.’ 레스토랑의 고요함을 즐기고 있을 때, 그녀가 한 말이었다. 맨하탄의 뷰 레스토랑이었다. 전망대의 바닥이 서서히 움직여 삼백 육십도 회전을 하는 곳이다. 돌고 돌아 제자리로 왔다가는 다시 회전을 하는 곳. 나는 와인을 맛보듯 마신다. 그녀의 입은 미소를 지었고 눈은 초점을 잃었다. 눈가의 처진 주름이 깊어 보인다. 마시던 와인에 대해 생각한다. 어디 와인이지? 몇 년도 산이지? 당도는? 당신 힘들었겠구나 속으로 외쳐본다.

화목하지 못한 가족은 어떤 규칙이 있다. 서로의 상처를 후벼 판다. 몰랐다고 말하며 퍼붓는 너무도 무책임한 말들. 가족이기에 잘 알고 있는 서로의 상처들. 다가오는 가족에게 ‘넌 가서 뷔페나 먹고 있어’ 라며 외치는 떳떳함에 흠칫 놀라는 나. 처음 보는 가족에게서 느끼는 익숙함. 어떤 기시감이 나를 감싼다. 아버지에게 이혼 소식을 전했다. 아버지는 "넌 자식 없어 다행이다"

소설 ∙ 홍남표 |

275


한 마디를 하셨다. 그러고는 고개 돌려 시선을 멀리하신다. 아버지가 어머 니를 볼 때와 같은 거리의 시선이었다.

몇 시간째인지 모르겠다. 컴퓨터 앞에 앉아 사진 작업을 하고 있었다. 눈이 건조해져 깔끄러움이 느껴질 때쯤 창 밖을 내다봤다. 언제부터 내리고 있었을까? 눈이 쌓여있다. 눈발도 굵다. 가슴 가까이 있던 자판기를 밀어 내며 앉은 채로 기지개를 편다. 서서히 일어나 입고 있던 츄리닝에 바지를 하나 더 끼어 입고, 스웨터에 조끼에 자켓을 입고 나갈 채비를 한다. 신발장 에 있어야 할 부츠가 보이지 않는다. 눈에 띄는 건 색 바래고 구겨진 운동화. 운동화의 뒤축을 펴 신는다. 장갑을 어디에 뒀더라? 장갑은 우산꽂 이와 신발장 사이에 잘 접혀있다. 꽃이 수놓아진 그녀의 장갑이었다. 억지 로 마디 굵은 손을 구겨 넣는다. 밖으로 나오니 포근해 보였던 날씨는 눈이 만들어 낸 신기루였는지 바람이 날카롭다. 걷다 서서 자켓의 지퍼를 목젖까지 올린다. 머리에는 벌써 눈이 모여 쌓인다. 모자를 안 쓰고 나온 걸 후회하며 걷는다. 기왕 나왔으니 다섯 블록 정도 떨어진 공원까지는 가 볼 작정이다. 눈 내린 텅 빈 공원이 보고 싶었다. 탐스러웠던 눈은 이미 발목으로 스며들었고 근육이 긴장하기 시작했다. 계속 가야 하나? 되돌아가야 하나를 생각하며 계속 걷는다. 저만치 공원 입구가 보이기 시작했고 바람은 더욱 야무지다. 바람에 날리는 눈은 시야를 가린다. 이제는 악다구니로 걷는다. 공원을 꼭 보고 가겠다고 되뇐다. 공원 입구에 다다랐다. 아무도 없는 적막감. 안도의 한 숨이 나온다. 상상했던 전경이었다. 편치 않은 고개를 돌려 눈 쌓인 미끄럼틀을 보며 이제는 놀이터에서 자취를 감춘 시소를 상상한다. 양쪽 균형이 맞아야만 즐길 수 있는 기구. 그때 미끄럼틀 옆의 땅이 움직인다. 헛것을 보고 있나? 두려운 생각이 들었지만 이미 그 쪽으로 걷고 있다. 멈추지 못한다. 발목을 파고든 눈은 피부를 아리지만, 다행히 바지 밑단 뭉친 눈이 더 이상의 눈은 허락 지 않는다. 움직이는 땅을 주시하며 거리를 좁혀 나간다. 기이한 모습이었다. 눈을 뒤집어 쓴 기러기 떼. 눈을 뒤집어써 희고 둥근 276

| 뉴욕문학 제31집


몸통에 징그럽게 큰 물갈퀴. 기러기 떼가 왜 이곳에 있을까? 기러기는 철새 아니었나? 낙오한 걸까? 이곳이 철새의 목적지인가? 나의 호기심은 아랑곳없는 듯, 규칙적으로 몸을 뒤뚱거리며 기러기 떼는 내 오른쪽에서 왼쪽으로 이동했다. 기러기들이 내 앞을 지나칠 때까지 기다린다. 마지막 몇 마리가 내 앞을 지날 즈음, 한 놈이 크기는 다른 것들과 별 차이 없는데 눈틈으로 보이는 깃 털 색깔이 달라 보인다. 짙지 않은 갈색. 보스라기 같은 깃털. 그 옆의 한 마리가 보스라기 옆에 바짝 달라붙어 내 앞을 지나간다. 목 근처의 짧은 깃털을 곧추 세운 모습으로 나를 뚫어져라 쳐다본다. 기러기의 눈을 외면하며 머리 위 눈을 털어낸다. 나는 기러기 떼를 피해 반대 방향으로 걷기 시작했다. 걷던 걸음을 멈추고 감각 무뎌진 발을 내려다 봤다. 운동화 끈이 풀려 있다. 꽉 끼던 장갑을 힘겹게 벗으며 나도 모르게 손의 냄새를 맡는다. 기억을 부르는 냄새가 나는 듯 했다. 냄새는 곧 흩어진다. 손에 입김을 불어 보지만 금방 서늘해진다. 고부라지는 손으로 젖은 운동화 끈을 잡아맨 다. 어렵사리 익숙한 매듭을 고쳐 매고, 다시 걷기 시작한다. 걷고자 하는 건 마음 뿐. 흰 눈의 블랙홀에 빠진 것처럼 제자리걸음을 한다. 텅 빈 공원을 둘러본다. 길게 늘어진 내 그림자가 거추장스럽다. 맞은 편, 호수에서 건너온 바람이 얼굴을 거세게 때린다. 그녀에게서 보이던 어머니의 그림자는, 그녀가 아닌 나의 것이었다.

홍 남 표 뉴욕 시립대 영화과 졸업 전 문화방송 뉴욕지부 카메라 감독 전 뉴욕 KTV 방송 연출 2016년 뉴욕문학 소설부문 가작 수상 현 프리랜서 비디오그라퍼 nampyohong@hotmail.com

소설 ∙ 홍남표 |

277


유고작품 김명순/ 수필 : 떨림의 근원, 시가 있는 풍경 소설 : 나비(원제:죽음을 넘는 희망의 나비)


떨림의 근원 김 명 순

시간의 흐름은 떨림이다. 나는 그 떨림 속에서 우주의 숨소리를 듣는다. 사계절의 순환 속에서 미세하게 진동해 오는 떨림을 감지한다. 생명있는 것은 눈에 보이는, 보이지 않는 떨림으로 생(生)의 실존을 깨닫게 한다. 살아 있음에 감사하게 되는 생존의 떨림은 언제나 최초의 경험처럼 신선하다. 감동으로 가슴 떨리게 한다. 봄의 창가에서 반짝이는 새 아침의 햇살은 가슴 떨리는 기쁨이다. 가슴 깊이 적셔오는 따스함에 생의 차가움을 잊는다. 앙상하게 뻗은 나뭇가지 사이로 일렁이는 빛의 떨림은 얼어붙었던 마음조차 녹여 준다. 봄비 사이로 연두 빛 잎사귀들이 파르르 떨며 솟아오르는 생명의 신비함에 경이로움을 느낀다. 뿌리들은 깊은 땅 속에서 온 몸을 떨며 줄기로, 잎으로 양분을 밀어 올리려 안간힘 쓴다. 생명의 떨림 들이 색색의 봄꽃들로 피여 날 때, 내 오감(五感)에 감겨오는 감동은 사랑에 가득한 가슴으로 떨려 온다. 여름의 수목들은 그 떨림이 더욱 강렬해진다. 하늘 끝을 모르고 솟아오르는 녹음은 새들의 떨리는 목소리에 얹혀 사지를 춤추듯 떨며, 길가는 나를 멈춰 세운다. 붉게 타오르는 한 여름의 태양이 내 얼굴에 쏟아져 떨고 있을 때, 나는 저절로 눈을 감고 떨리는 숨을 진정한다. 강물에 잠겨 있던 요트 들은 은빛 반짝이는 잔물결의 떨림을 가르며 앞으로 질주하기 바쁘다. 하얀 물거품으로 하얀 바닷길을 만드는 한 폭의 풍경은 내 사진 속의 영원한 떨림으로 머문다. 가을은 우수에 젖은 여인처럼 살포시 몸을 떨며 내게로 온다. 울긋불긋 단풍든 잎들은 빛깔 고운 한복 비단을 걸쳐 놓은 듯, 그 떨림은 아스라하고 자태는 신비하다. 하늘과 바다는 더욱 푸른 긍정의 빛으로 소리 없는 떨림 들을 전해 주고, 나는 바라보는 것만으로 감동의 눈시울이 떨리며 촉촉해

유고작품 ∙ 김명순 |

279


진다. 대 자연의 신비는 겨울에 절정을 이룬다. 세상의 모든 더러움을 덮어 버리는 하얀 눈의 순결. 아무도 밟지 않은 순백의 눈길을 바라 볼 때면 나는 언제나 최초의 떨림으로 감동한다. 시간의 흐름은 생명을 본능으로 삼는다. 공평하게 계절의 축복을 부여하 고, 그 미덕을 배반하지 않으려는 떨림은 부지런한 자의 종교요, 찾아 헤매는 자의 구원이 되는 것. 그 한 자락이 깊게 파묻힌 시간의 떨림 속에서 찾아내기 를 멈추지 않는 감동의 물결. 우주의 숨결은 생명을 부활시키는 떨림이다. 희미하고 둥글고 세모지고 네모진 각각의 모양으로 창조되는 무상의 떨림들. 그 위로 스쳐간 사람들의 마음에 새긴 무언의 그림자들. 기쁨, 분노, 사랑, 즐거움 등의 감정들이 생의 바구니에 담겨 떠내려가는 떨림과 삶의 발자국 소리로 남는다. 산다는 것은 일과 일들의 떨림 속에서 고뇌하고 지나가는 바람이다. 차갑게 돌아오는 시간의 운명에 윤회의 깃발을 꽂으며 떠는 생의 바람. 삶의 개울 속에 파문 지어 떨어지는 유정의 붉은 입술과 차가운 손끝과 생의 영원성을 들춰내고, 반조하며, 환희의 눈물을 체험하게 하는 바람의 떨림이다. 또 다른 시간의 떨림은 날카로운 가시가 타인의 심장을 찔러 피 흘리게 하는 떨림이다. 아무런 자각도 없이 타인의 촛불을 꺼버리는 경박함이다. 다른 이의 시간과 존재를 허무는 이기적인 것이다. 아픔에 떨며 흘러가 버린 시간들은 아쉬움에 몸을 떨며 눈물 흘리게 한다. 언덕 위의 구름처럼 과거의 날들로 돌아가 기쁘고, 슬펐던 날들의 이름을 부르다가, 고개를 가슴에 묻고 떨며 꺽꺽 우는 한 마리 새. 미래의 꿈과 희망을 소리쳐 부르다가 그 메아리조차 듣지 못하게 하는 떨림의 속성. 인간이되 짐승들의 꿈틀거림은 떨림의 근본을 상실해 버린 몸부림이다. 이런 사람들 속에서 내 가슴은 무섭게 떨린다. 허튼 감정들을 자제해 이루어진 둥글고 따스하게 다스려진 떨림만이 인간 세상을 평화롭게 한다. 이성으로 피어난 예쁜 소녀의 볼우물 같은 떨림만이 떨림의 정수가 모여 피어 난 감동의 꽃이 된다. 시간의 떨림이

280

| 뉴욕문학 제31집


부끄러움으로 피어날 때 부활의 꿈은 새로운 생명이 된다. 과거, 현재, 미래는 시간의 떨림으로 존재 되는 세월의 웃음이다. 울음이다. 부질없음이다. 있음과 없음 사이를 맺어 주는 무상(無想)의 끈이다. 잊고 싶었던 떨림 들은 망각의 늪을 헤매고, 현실은 그 떨림들을 조합하여 새로운 길을 만들어 낸다. 무의식의 깊은 곳까지 내려가 버린 떨림 속에서 조각난 것들은 다른 시간의 떨림 들을 찾아 헤맨다. 내 안에 미립자로 존재 된 질긴 생명력이 움트고 있음에 감탄 하며, 가슴을 떨며, 삶의 계곡에서 휘파람 을 불게 되리라. 시간의 떨림은 열정을 부르는 생명의 손이다. 대한민국 국보 제1호인 숭례문에도 얹혀 흐르고, 뉴욕의 프리덤 타워에도 흐르고, 나의 머리 결이나 손등 위에도 미세하게 흔적을 만들며 간다. 나는 잊지 못할 많은 떨림 들을 감동으로 부여잡고 기록하고 만들어 낸다. 지구의 새로운 창조에 가담하 게 되면서, 바람에 머뭇거리는 잎새 하나로 흔들리면서 그 떨림은 계속 된다. 예전에는 예민하게 반응했던 이 모든 떨림 들이 지금은 평온하게 다가온다. 내 가슴에, 누군가의 가슴에 흐르는 사랑의 시냇물 소리로 들린다. 졸졸졸, 작은 소리로 흘러 잔물결을 일으키는 생의 강물. 과거와 현재라는 생의 계곡을 빠져 나가는 물줄기의 떨림. 벗어 놓은 옷처럼 내일이라는 희망을 감추고 잠시 휴식을 취하는 시간의 떨림. 미래로 달려가는 발자국의 떨림. 창조의 에너지를 초월적 힘으로 탄생시켜 보려는 욕망의 떨림. 인간 안에 잠든 열정을 깨우며 앞으로 나가려는 영원의 말발굽 소리. 시간의 축대로 현재를 꼿꼿이 세우는 새의 날개 파닥임. 이 모든 것들의 떨림 속에서 나의 영혼은 그 고요를 기다린다. 죽음이 나를 경배할 때까지, 나는 내 영혼의 진화를 위해 우주의 떨림 들과 합일하는 침묵의 떨림 속에서 매일 새롭게 태어나는 봄꽃 순이 된다. 사랑은 감동의 떨림으로만 피어나는 향기로운 꽃이다. 꽃들의 떨림은 내가 아직 살아 있음을 증명하는 산 목소리요, 생명력이다.

유고작품 ∙ 김명순 |

281


시가 있는 풍경 - 생(生)의 마지막 김 명 순

단 한 번도 고장 난 적이 없던 시계가 죽음처럼 멈추어 선 것은 지난 밤 스르르 잠이 오는 의식 사이로 소리의 박자가 끊겼다. 활기찬 생명을 흠모하며 따라가던 시계바늘이 동면하듯 깊은 동굴로 들어갔으므로 시계는 아침이 되어도 깨어나지 못했고, 시계 바늘은 운명처럼 한 자리에 멈추어서 고요를 깨우던 잡음이라는 오명을 벗었다. 매일 지구를 한 바퀴 씩 돌게 했던 질서의 꿈틀거림도 멈춘 시계 위에 꽂혀 버린 건 당연하였고 똑딱 거리는 숫자만큼 둥근 원 밖으로 탈출하려던 불면의 소리들도 불만 없이 멈추었다. 그곳에 길이 있어 둥글게 따라 돌던 인과응보가 진리라 외치며 한 치의 오차도 없이 믿고 품어왔던 법칙들이 아무것도 아니게, 정말 아무것도 아니게 스스로의 의무를 가책 없이 내려놓고 편안해져 버린 것이다. 오랜 노동에 지쳐 버린 육신의 욕망이 허물을 벗고 피난처 같은 휴식으로 들어 간 것은 비로소 우주의 시간에서 조차 놓여 난 시계의 해탈이었다.

282

| 뉴욕문학 제31집


시체가 된 시계를 검은 상자에 넣으면서 죽음과 함께 피안(彼岸)의 바다에 이른 생(生)의 마지막을 보았다.

새벽에 눈을 뜨고 듣는 시계의 똑딱 거리는 소리는 시간이 지나도 익숙해 지지 않았다. 낮에는 들리지 않던 소리가 너무 크게 울려 수면을 방해 하였다. 그 시계 소리는 소음이 되었다. 그러던 어느 날 밤, 시계 바늘 소리가 뚝 멈추었을 때, 침묵의 고요가 내게 평안을 가져다주었다. 죽음이란 그런 것이 아닐까. 어느 날, 삶이 예고도 없이 멈추는 적막함. 나는 시계의 죽음이란 것에 대해 생각해 보았다. 언젠가는 나에게도 다가올 죽음이란 것이 겹쳐 떠올랐다. 먼 남의 얘기 같지만 죽음은 이미 내 앞에 다가와 있는지도 모른다. 이 세상에 태어난 사람은 누구나 시한부 인생을 살다 가는 것이 아닐까. 나는 죽지 않고 오래 살 것이란 오만은 이제 내 것이 아니다. 그럼 나는 어떻게 죽고 싶은 걸까. 저 시계처럼 침묵의 고요 속에서 평안하게 죽고 싶다고 생각했다. 모든 이들에게 진심으로 "감사했다." 는 인사를 미리 하고 떠날 수 있다면 더욱 좋겠지 싶다.

유고작품 ∙ 김명순 |

283


나 비 (원제: 죽음을 넘는 희망의 나비) 김 명 순 노랑나비 한 마리가 훨훨 날다가 새로운 벽에 부딪혔다. 전혀 예기치 않았던 일이 닥쳐왔다. 나비는 안개 속에 갇혀 퍼덕인다. 막다른 길목에 서서 어디로 날아야 할지 막막하다. 나비는 이 어둠을 밝혀줄 등불이 어디에 있는지 훨훨 날아 찾아보고 싶다. 차갑게 다가올 미래에 한 줄기 아침햇살 같은 따스한 빛 속으로 스며들고 싶다. 나비는 희망이 거기에 있을 것이라 생각한다. 그런데 날을 수가 없다. 그래서 그냥 걷는다. 다른 행성에서 온 외계인처 럼 모든 것이 낯설어진 거리를 허우적허우적 걸어간다. 지금까지 평온하게 살았던 삶에서 죽음을 향해 가는 지구인, 그 여행자가 된 나는 한 걸음 한 걸음 죽음에 이르는 길로 지구의 한 귀퉁이를 걷는다. 몸에 병이 생겼다 는 것은 그 죽음에 가까워졌다는 것이 아닐까? 나는 위암 말기라는 병과 죽음이란 의식의 그림자를 애써 외면하며 걷는다. 그래봤자 내가 갈 수 있는 곳은 가까운 공원밖에 없다. 호수가 있고, 나무숲이 있고, 넓은 잔디밭이 있고, 산정(山頂)에 오를 수 있는 육십 개의 계단이 있는 곳. 지난 오년 여의 세월을 나는 이곳에서 한 마리 나비처럼 자유로웠다. 산속으로 들어가 해탈한 스님처럼, 살짝 스쳐가는 바람에도 걸림이 없는 자유인이 된 것처럼 숲길을 거닐곤 했다. 내 인생의 말년을 그렇게 살다가 죽어도 여한이 없겠다 싶었는데, 나는 더 이상 그런 시간을 가질 수 없게 되었다. 내가 이루고자 했던 자유인의 삶, 내가 꿈꾸었던 이상적 삶은 그게 아니라는, 현실에서는 이루어질 수 없는 환상 쪽으로 기울어져 있다. 그런 자각의 뻥 뚫린 가슴 사이로 찬바람 이 쌩하니 스쳐 지난다. 고통도 슬픔도 다 내가 만든 감정에 불과하다고 생각했던 감성의 한 귀퉁이에서 새어 나오는 눈물, 두 볼을 타고 흘러내리는 284

| 뉴욕문학 제31집


내 연약함의 찌꺼기. 가족에 대한 그리움이 가슴 밑바닥에서 강물처럼 흐른다. 내 노랑나비는 어느새 남편을 향해 나풀나풀 날아간다. 내 왼쪽 윗배에 볼록한 게 솟아올랐어요. 설마 심각한 병에 걸린 건 아니겠지. 나는 지금까 지 크게 아파 본 적이 없었으니까. 하지만 전에 없던 부풀음이 어서 조금 이상했어요. 그저 살살 만져 주며 "사라져라, 사라져라, 엄마 손은 약손" 하며 달래 주고는 했지요. 그러면 살짝 사라져 주기도 하는 조그만 불룩 주머니, 메디케어 혜택을 받으려면 아직 두 달이 남았는데, 신청을 하더라 도 곧바로 나오진 않을 텐데, 그런 염려는 했어요. 노랑나비는 어느새 중국에 가 있는 남편의 귓가에 소곤거린다. 어서 병원에 가봐. 남편은 몹시 염려스러운 눈빛으로 말한다. 의사한테 벌써 다녀왔는데…. 봄비가 보슬보슬 내리는 날, 나는 우산을 챙겨 들고 28번 버스를 탔던 것이다. 추운 날씨는 아니었다. 오랜만에 타보는 버스가 새로운 세계로 나를 데려 다 줄 것 같은 설렘과 봄비 오는 날의 정서에 흠씬 젖어 보았다. 나는 느긋하게 밖의 풍경에 시선을 보내며 삶의 한가로움에 젖어 보기도 했다. 두 아이를 키우고, 남편의 사업에 가슴 조이며 바쁘게 살았던 미국 생활이었다. 갱년기의 언덕에 올라 졸혼도, 이혼도 아닌, 자유 선언을 했던 삶도 바쁘긴 마찬가지였다. 남편, 딸과 아들에게 독립된 삶을 허용하 는 만큼 나 자신도 이 모든 얽매임에서 자유롭고 싶었는데…. 그동안 못했던 대학원 공부를 마치고 박사 과정에 진입했으나 공부도 때가 있음을 실감해야 했다. 공부에 지친 나비는 세상을 유람하며 세월만 속절없이 흘려보냈다. 병원 검진을 받았던 기억은 오래되었다. 의료원 문을 열자, 병원이란 깨끗한 곳이라는 이미지가 확 사라지는 순간, 간호사가 다가와 “잠깐만 기다리세요.”라며 의자를 권했다. 안쪽을 살며시 들여다보니 열려진 문안에 흰머리 의사가 한 부인과 상담을 하고 있는 듯 보였다. 간호사가 내 혈압을 쟀고, 팔에서 피를 한 대롱이나 뽑았다.

유고작품 ∙ 김명순 |

285


이삼일 후면 결과가 나온다 했다. 백발 의사, 닥터 서는 청진기로 내 배와 가슴 등에 대보더니 괜찮다 했다. 아, 다행이다. 나는 죽을병에 걸린 게 아니구나. 이 지상에 지구인으로 더 살아 갈 수가 있구나. 나는 휘파람이라 도 불 것 같은 홀가분함으로 버스를 타고 돌아왔다. 혈액 검사 결과 콜레스테롤과 당뇨가 높다는 결과가 나왔다. 아직도 내 왼쪽 윗배가 불룩하다고 했더니 닥터 서는 내 배에 청진기를 대본 뒤, 걱정할 것 없다며 벽에 걸린 인체 해부도를 가리켰다. 천연색 사진 속에는 대장, 소장, 위, 간, 쓸개 등 사람의 뱃속이 훤하게 드러나 있었다. "사람 속은 원래 저렇게 불룩불룩하게 생겼어요." 라며 오메프라졸(OMEP RAZOLE) 30정과 메트포민(metFORMIN HCL) 500정을 처방해 주었 다. 위장약을 다 복용했으나 내 뱃속의 더부룩한 느낌은 계속되었다. 음식을 먹으면 구토 증세까지 있다. 식욕이 왕성했던 내가 음식이 입에 대기도 싫어 졌다. 아무래도 내 위에 고장이 생긴 게 아닐까. 내 위를 내 육안으로 들여 다 볼 수 없어 안타깝다. 내 체중은 한 달 새에 15파운드가 줄었다. 나는 닥터 서를 무조건 믿어야 하나 갈등하며, 처음으로 위내시경을 하러 갔다. 노랑머리 남자 의사가 내 팔뚝에 마취제를 놓았다. 스르르 잠이 들면서 느꼈던 평화로움. 죽음도 이런 것일까. 한 숨 자고 깨어났을 때, 위내시경이 끝났다 했다. 나는 의사가 어떤 기구로, 어떻게 내 위장을 들여다보았는지 알 수가 없다. 나는 위내시경 동안 생(生)과 사(死)를 넘나들었으니 죽었다 깨어난 것이 다. 나는 죽음에서 부활한 위대한 지구인. 닥터 조는 위내시경 사진을 보여주며 "씨티(CT) 촬영을 해봐야 하겠지만 암인 것 같습니다."라고 했다. 붉은 듯 부어 오른 부분이 암 덩이라는 것인가. 시커먼 부분은 위에서 음식이 내려가지 못하고 있다는 것인가. 나는 벽에 부딪힌 듯 아무것도 묻지 못했다. 암이라니? 갑자기 캄캄해진 정신을 가늠하며 집으로 돌아왔다.

286

| 뉴욕문학 제31집


호숫가 주변에 노란 수선화 꽃이 예쁘게 피었다. 그 곁에 개나리꽃이 노란 입술을 뾰족이 내밀며 환하게 웃는다. 아, 봄이구나. 세상은 온통 봄꽃 잔치로 활기를 띠고 있는데, 절망과 고통이 나를 찾아와 휘감고 있다. 씨티(CT) 촬영 결과를 확인했던 암 닥터 전문의인 가브리엘 정은 "위암 말기입니다.”라고 판정했다. 그의 음성이 방금 전의 일처럼 선명하게 귓가에서 떠나지 않는다. 내 위 속에서 암세포가 자라고 있다니! 나는 호숫가 벤치에 앉아 청둥오리들을 바라본다. 오리들은 오늘도 잔잔한 물살을 헤치며 유유히 앞으로 나아간다. 끊임없이 움직이며 살아 있는 생명체들. 저것들은 암으로 병들거나 하진 않겠지. 나는 따스한 봄 햇살에 얼굴을 맡기고, 생각을 멈추고자 한다. 때이른 노랑나비 한 마리가 날아와 내 주변을 날다가 수선화 꽃 위에 앉다가 개나리꽃 위로 날아간다. 아, 예쁜 노랑나비! 나비는 나를 유혹하듯, 날개를 나풀나풀 살랑거리며 내 시선을 붙잡는다. 나는 마취제를 맞고 잠에 빠져드는 듯한 몽롱함으로, 나비의 날갯짓에 혼을 빼앗긴 듯 일어나 따라간다. 나비는 노랑 날개를 살살 나풀거리며 날아서, 저만큼 떨어진 벤치에 앉아 있는 남자에게 간다. 검은색 바탕에 노란색이 어우러진 파카를 입은 남자가 검은 모자 위에 후드를 뒤집어쓰고 앉아있다. 아, 남편이다. 남편이 돌아왔구나. 나를 놀래 주려고 저 자리에 석고상처럼 앉아있는 거구나. 나는 급하게 나비를 따라가는데 남자가 일어나 저쪽으로, 저만큼 가고있다. 나비는 그의 등 뒤에서 나풀거리며 따라간다. 나는 얼른 내 안의 노랑나비를 남자에게 날려 보낸다. 남자는 무심하게 앞만 보고 걷는다. 나는 한 마리, 두 마리, 세 마리 네 마리…, 더 많은 노랑나비를 날려 보낸다. 거기 서 봐요. 여러 마리의 노랑나비들이 남자 주변에서 호위병처럼 팔랑거리며 날아간다. 봄 햇살에 나비들의 날개가 아지랑이처럼 너울거리며 반짝인다. 노랑나비 축제의 한 가운데에 서있던 남자는 어느새 잔디밭 샛길로 걸어 언덕배기에 서있다. 거기 서 봐요. 목에 걸린 내 목소리가 들리지 않는지 남자는 이내 숲속 나무 사이로

유고작품 ∙ 김명순 |

287


사라져 버렸다. 나는 따라 걷다가 숨이 차서 곁의 벤치에 쓰러지듯 앉았다. 남자가 숲길을 돌아 호숫가로 내려 올 때까지 그 자리에 그대로 있었다. 그 남자는 남편이 아니었는데도 낯설지 않았다. 어디서 본적이 있었던 걸까. 숲속 나무 사이로 걷던 남자였을까. 그가 남편으로 겹쳐 보였던 건 순전히 노랑나비 때문이었다고? 남편이 떠났던 봄날, 남자가 앉았던 그 자리에 남편은 묵상하듯 앉아 있었다. 남편은 롱아일랜드에 있던 집 판매액의 절반을 나눠 주는 걸로 이혼만은 절대 하지 않겠다고 버티었다. 나는 어느 것도 내 이름으로 소유하고 싶지 않았으나 그 돈만은 은행에 넣어 두었다. 나는 건강해서 일을 할 수 있고, 내가 하고 싶었던 것들을 스스로의 힘으로 성취해 보고 싶었다. 마침 베이사이드 단독주택 2층이 월세로 나와 남편이 중국으로 떠나기 전에 이사를 도와주었다. 오 분 정도만 걸으면 내가 좋아하는 크로체런 파크가 있는 곳이어서 퍽 마음에 들었다. 남편도 그런 내가 안심이 되었던지 이 호숫가에서 나와 마지막 작별을 하며 "당신이 원하지 않으면 가지 않겠소."라고 비장한 표정으로 말했다. 나는 하마터면 푸! 하고 웃음을 터트릴 뻔했다. 그는 이미 중국에 가구 공장을 설립하느라 많은 현금을 투자했고, 원가를 줄이려면 그 방법이 최선이라는 걸 나도 알고 있었다. 나는 아주 홀가분한 표정으로 "나는 내가 좋아하는 공부를 마저 하고, 글을 쓰며, 나답게 살고 싶어요. 당신은 당신이 원하는 사업을 마음껏 하며 자유롭게 살아요." 했다. 미국 이민자로 살았던 삶에 지친 나는 새로운 땅에 가서 다시 허우적대며 살고 싶지 않았다. 나의 평안이 지난 기억들 속에서 잠깐 혼란한 틈에 남자는 숲을 돌아, 호숫가를 지나, 공원 입구로 향하고 있다. 내 안의 나비가 먼저 남자의 등 뒤로 날아가서 나풀거린다. 나는 무엇에 이끌리듯 남자의 뒤를 서두르며 따라 걷는다. 남자는 내가 살고 있는 집 방향으로 걷고 있었으므로 지극히 자연스런 행보가 됐다. 그는 천천히, 땅을 누르듯 조심스럽게 걸었고, 그것은 남편의 침묵처럼 무겁게 느껴졌다.

288

| 뉴욕문학 제31집


아, 그것이었구나. 그에게서 풍겨 오는 분위기. 내면에 무언가를 가득 담고 웅크리고 있는 황소 같던 남편. 남자는 내가 살고 있는 집, 반지하 방으로 들어갔다. 몹시 놀라운 우연이었다. 나는 그곳에 누가 살고 있는지 전혀 관심이 없었으므로 언제부터 그가 거기서 살았는지 모른다. 지난겨울 에 누군가 눈치우는 소리를 들었는데, 아마 그때부터 그는 거기에 살고 있었을 거라고 짐작해 본다. 서향집인 이 집은 앞 쪽으로 두 개의 차고가 있고, 그가 살고 있는 뒤쪽은 반 지하 방이지만 동향으로 큰 유리문이 있어 빛이 잘 드는 공간이 다. 그가 살고 있는 반 지하 방의 뒤 문을 열고 나와 계단 세 개만 오르면 바로 정원의 데크가 된다. 나는 그 데크와 정원을 사랑했다. 봄이면 피어오 르는 꽃들이 정다웠다. 겨울에도 늘 푸른 나무가 있어 좋았다. 햇살이 따사로운 봄이면 나는 그 데크에 앉아 커피를 마시거나, 책을 읽는 걸 좋아했다. 이제 그 데크와 정원이 그 남자의 차지가 될 것이라 생각하니 섭섭했다. 1층에 홀로 사는 집 주인인 존은 교수 생활을 은퇴한 후, 일 년의 대부분을 자기 고향인 그리스에 가서 지내고 있었다. 그러므로 집안은 항상 텅 빈 체였다. 그런 존의 집 2층, 3개의 침실과 2개의 욕실이 딸린 조용한 섬에 나만의 삶을 새롭게 꾸몄던 것이다. 방이 여섯 개인 콜로니얼 스타일의 큰 집에서 중국에 가 있는 남편, 패션 사업으로 파리에 가 있는 딸, 목재 수입으로 인도네시아에 가 있는 아들의 전화를 기다리며 사는 것보다는 덜 무료했다. 가족들에게 정서적으로 부담이 되는 것 같지 않아서 좋았다. 걸어서 5분 정도 걸리는 곳에 공원이 있다는 것도 행운처럼 느껴졌다. 나는 3주에 한 번씩 닥터 정에게 가서 키모를 받기로 했다. 팔목에 주사 바늘을 꽂고 4시간 정도 약물 투여를 받는 과정들을 견뎌야 한다는 것이었다. 인간은 언젠가는 죽는 유한한 생명체. 나도 언젠가는 죽겠지라며 살았는데, 정작 내 몸에 암 덩이가 자라고 있다는 게 무서워졌다. 마치 죽음의 선고를 받은 것처럼 겁이 났다. 나는 거실에 팔다리를 죽 벌리고

유고작품 ∙ 김명순 |

289


누워 이대로 숨을 거두어 버렸으면 좋겠다고도 생각했다. 남편, 딸과 아들 에게 이 소식을 어떻게 전해야 하나. 생(生)과 사(死)는 하나라고 했는데…, 생사사대 무상신속(生死事大無常迅速)이라 했는데…, 자유인이 되었다 고 착각했던 날들은 죽음에 대한 두려움 앞에서 떨고 있다. 내안의 나비는 날개를 접고 죽음의 능선을 넘으려는 의지조차 펼쳐 보이지 못하고 움츠려 든다. 아침 햇살이 눈부시게 반짝인다. 나는 침실 동창에 서서 데크에 나와 얼굴을 햇빛에 쏘이고 있는 남자를 바라본다. 그는 안경을 끼었고 약간 곱실한 머리에 수염도 며칠 깍지 않은 듯 더부룩하다. 남편과는 전혀 다른 얼굴인데…. 남편과 겹쳐 보였던 모습이 환상이거나 꿈처럼 느껴진다. 내 노랑나비는 벌써 그에게 가서 팔랑거린다. 남자가 나를 올려다본다. 마시던 커피를 가볍게 들고 아는 체한다. 나도 손을 흔들어 보인다. 어디에 서 그런 용기가 났을까. 나는 2층에서 데크로 내려가 남자에게 도움을 청했다. “내일 9시쯤 시간 있으시면 제 차 운전 좀 해 주실 수 있을까요? 택시를 타도되겠지만 처음으로 가는 병원이 어서요.” "예. 저도 내일은 시간이 됩니다. 그렇게 하지요." 남자는 어디가 아프냐 고 묻지도 않고 쉽게 대답했다. 어제의 절망에 쌓였던 가슴이 밝은 햇살에 비추이듯 환해진다. 나는 베이 윈도우가 있는 거실 서쪽 창가에 앉아 하늘을 본다. 오늘따라 하늘도 맑고 푸르다. 두둥실 떠가는 하얀 뭉게구름 속에서 구름 천사가 나를 향해 오는 것 같기도 하다. 나는 하얀 도화지에 나비들을 그리기 시작한다. 한 마리, 두 마리, 세 마리, 네 마리, 다섯 마리…, 내 영혼을 채우던 걱정 근심들이 하얀 종이 위에 나비로 탄생하여 날아간다. 내 안의 암세포가 나비로 부화하여 허공으 로 날아간다. 내가 천 마리 나비를 다 그리면 내 병이 다 나을 것 같다. 그때쯤 이면 남편과 딸과 아들이 내 곁으로 돌아 올 것이다. 그들을 자유세

290

| 뉴욕문학 제31집


계로 당당하게 보냈듯이, 나는 건강하고 밝은 모습으로 그들을 당당하게 맞이하리라. 나는 매일 희망의 나비들을 그들에게 날려 보내기로 한다. 남자는 말없이 내 차를 운전한다. 나는 그 옆자리에 조용히 앉아 있다. 하루만에 둘의 거리가 세 뼘 정도의 간격으로 가까워졌다. 다가올 시간에 대한 불안이 누군가가 내 곁에 있다는 안도감으로 바뀐다. 그는 병원 앞에서 나를 내려주고 떠난다. 나는 3층 암 병동에 가서 접수를 한다. 내 이름과 생년월일이 적힌 파란색 손목 밴드를 찬다. 대기실 의자에 앉아 내 이름이 불리어지기를 기다린다. 불안이 되살아난다. 여러 인종이 한곳에 모여 우울한 얼굴들을 하고 있다. 늙은 사람도 있고 젊은 사람도 있다. 모두 암에 걸려 치료를 받으려고 모여 있는 공통분모의 사람들. 죽음에 직면한듯한 그들의 고통이 저절로 느껴져 가슴이 저려 온다. 간호사들이 혈액 채취를 하고, 혈압과 체온이 재어진다. 닥터 정이 내 얼굴을 살펴보고, 컴퓨터에 나타난 내 몸의 여러 가지 상태를 점검한다. 키모 병실에 가서 주사 바늘을 팔목에 꽂고 눈을 감는다. 많은 간호사들이 분주하게 움직이는데도 넓은 바다에 혼자 떠있는 배처럼 외롭다. 그래. 암 선고를 받았을 때, 나는 이미 죽었던 거야. 죽은 자는 아무 고통도, 감정도 느끼지 못하는 거지. 1시간? 2시간? 얼마쯤 지났을까. 내가 눈을 떴을 때, 남자가 내 곁에 놓인 의자에 말없이 앉아 있다. 그는 언제부터 그러고 있었던 걸까. 순간, 죽어 있던 내 모든 신경들이 되살아난다. 벽과 유리창에 붙여 있던 색색의 나비들이 병실 가득 날기 시작한다. 남자는 그저 묵묵히 앉아 있어 주었다. 냉장고 속의 찬 것에 손이 닿을 때마다 찌르르, 찌르르, 감전이 된 것처럼 전류가 흐른다. 찬물에도 손을 담글 수가 없다. 약 기운이 온 몸에 퍼져 몸이 늘어진다. 그런데도 살기 위해 무엇인가를 먹어야 한다는 게 곤혹스럽 다. 나는 한 마리 식충이처럼, 먹을 걸 만들기 위해 움직인다. 닥터 정은 우유도 마시고 고기도 먹고 해서 체중을 늘리고, 그래야 몸의 면역력이 좋아진다고 당부했다. 나는 열심히 먹고 체중 올리기에 정성을 쏟았다.

유고작품 ∙ 김명순 |

291


한꺼번에 많이 먹지 못하니 조금씩 여러 번 식사를 했다. 내 체중은 113 파운드, 115 파운드까지 올랐다 키모의 후유증이 변비로 나타날 줄은 예상하지 못했다. 나는 화장실에 가서 두 시간이나 변기에 앉아 있었으나 변을 볼 수 없어 낑낑댔다. 나는 며칠 째 대변을 보지 못했고, 급기야는 항문이 막혀 죽을 것만 같았다. 나는 남자에게 긴급 구조 요청을 해야만 했다. 설사 약을 사다 주거나 변비에 좋은 약을 사다 달라며, 그렇게라도 살고 싶은 욕망에 매달렸다. 남자는 도움을 주기 위해 그곳에 머물고 있는 듯, 재빨리 움직여 주었다. 남자는 병원에 가는 날이면 잊지 않고 먼저 나와 차에 시동을 걸어 놓고 기다렸다. 내 안의 노랑나비를 그에게 날려 보내지 않아도, 그는 내게 필요한 것이 무엇인지 미리 알고 행동으로 옮겨 주는 것 같았다. 남자는 매일 아침 데크에 나와 앉아 커피잔을 들어 올렸고, 나는 침실 동창에서 손을 흔들어 주었다. 그러면 그는 주름살 속에 아침햇살을 가득 담고 환하게 웃었다. 그런 그의 얼굴을 보면 기분이 무척 좋아지고는 했다. 나를 보며 웃어 주는 누군가가 가까이 있다는 행복. 나는 언제부턴가 거실 서창에 앉아 열심히 그리던 노랑나비를 그리지 않게 되었다. 남편에게 보냈던 그 많던 나비를 하루에 한 마리도 날려 보내지 않았다는 것도 잊고 있었다. 최근 들어 남편은 꿈자리가 사납다며 전화를 자주 걸려왔다. 나는 내가 암에 걸렸다는 것을 그에게 말하게 될까 봐 무척 신경이 쓰였다. 내가 암 환자라는 걸 알게 되면 그는 내 곁으로 돌아오려 하지 않을까. 이혼만은 절대 하지 않겠다는 남편이었다. 나는 그가 원하는 세상을 한 마리 나비처럼 자유롭게 훨훨 날며 살게 해주고 싶었다. 결혼이란 이름으로, 아내라는 이름으로 더 이상 그를 속박 하고 싶지 않았다. 나 또한 독립된 인간으로서, 나 자신에 이르는 길을 찾아, 그 길로 들어섰다고 자부했는데…. 내 노랑나비는 병이라는 덫에 걸려 파닥거리고 있다. 나는 남자에게 자동차와 내 집 키를 맡겼다. 긴급 상황 시, 2층에 사는

292

| 뉴욕문학 제31집


내가 아래층까지 내려가 문을 열어 주는 일이 힘들 것을 대비해서였다. 남자는 내 집 왕래가 자연스러워 졌다. 그는 마치 내 간병인이기나 한 것처럼, 내 보호자가 된 것처럼, 콩을 갈아 쑨 죽이나 들깨죽을 가지고 올라오거나, 블루베리, 토마토, 아보카도, 브라쿨리, 생강 등의 싱싱한 야채와 과일을 사다 날랐다. 그의 주름지고 덤덤한 얼굴에서 행복한 웃음이 베어 나오는 것을 바라보게 되는 횟수가 많아졌다. 누군가가 나를 보며 그렇게 웃어 주던 봄날이 되돌아 온 것 같았다. 그런 그의 얼굴을 보면서 퍼뜩, 한 순간에, 전혀 예상하지 못했던 감정이 내 뇌리와 폐부를 후벼 파듯 번개처럼 스쳤다. 내가 의식하지 못하는 사이에 바라보는 것만으로도 즐거워지는 상대가 남편이 아닌, 그 남자라는 낭패감에 젖어 들었다. 내가 암 환자라는 사실보다 더 무섭게 엄습해 오는 비밀스런 두려움. 병을 이유로 내 자유 의지가 그에게 잠식당하고 말았다는 자각. 여러 가지 복합적인 생각에 이르자 가슴이 떨렸다. 남자에게 내 집 키를 주어 버린 건 큰 실수였다. 나라는 인간이 어떻게 그렇게 무자아의 단순한 인간일 수 있었다는 것인가. 그는 어느 사이에 내 보호자처럼 행세했다. 나를 돌보아 주어야 한다는 의무감까지 가지고 있다는 걸 알았다. 나는 이미 남자가 돌보아 주어야 하는 가녀린 존재가 되어 있었다. 나도 모르게 수동적 존재로서 살아남기 위해 내 존엄의 의지를 상실해 버린 인간. 나의 실체가 아무 것도 아니게, 정말 아무 것도 아니게 무화 되고 있었다는 깨달음. 나는 더 늦기 전에 남자가 내 집에 오는 걸 금지시켜야 한다. 우선 아침에 일어나 내 침실 창가에서 남자에게 손을 흔들어 주는 걸 그만 두었다. 그것은 간밤에 아무 일도 없이 잘 잤다는 인사였고, 그를 안심시키는 신호이기도 했다. 그는 걱정하고 궁금해 할 것이다. 하지만 그가 연락도 없이 내 집 출입문을 열고 직접 찾아오리라고는 생각하지 못했다. 찰칵, 문 여는 소리가 들렸다. 계단을 올라오는 발자국 소리. 나는 얼른 소파에 누워 눈을 감았다. 그의 숨소리가 내 얼굴 가까이에서

유고작품 ∙ 김명순 |

293


들린다. 내 심장 뛰는 소리가 그에게 들릴까봐 겁이 난다. 어서, 이집에서 나가줘. 남자는 내가 지르는 소리를 듣기라도 한 것처럼 조심스레 계단을 내려간다. 조용히 문을 열고 나간다. 나는 얼른 계단을 내려가 평소에는 잘 사용하지 않던 위 열쇠를 잠근다. 찌르르, 찌르르, 나는 집안을 맨발로 거닌다. 조용히 눈을 감고 내 발바닥 에서 나는 소리를 집중해서 듣는다. 찌르르, 찌르르, 어릴 적 뒷동산의 풀밭을 맨발로 거닐며 듣던 풀벌레 소리, 풀냄새를 맡는다. 나무들이 묵묵 히 서서 내게 주던 고요의 숨소리, 새소리, 바람 소리를 듣는다. 내 몸 안의 귀로 듣는다. 내 몸 안에 숨겨진 소리로 듣는다. 감각의 느낌을 만끽한 다. 닥터 정은 "아마 한 3개월 정도는 손발이 저릴 겁니다. 그래도 머리가 빠지거나 구토를 하거나 다른 부작용이 없으니…." 이 정도의 고통은 잘 참고 견뎌야 한다는 듯 위로해 준다. CT촬영결과를 보니 임파선이 다른 데에 전이도 되지 않았고, 암 덩어리도 0.8미리로 줄어들었다며 밝은 표정이다. 나는 내 한 몸 보살피기도 힘들어 누군가에게 의지하려 했는데, 그는 많은 생명을 건지면서도 항상 담담하고 친절하다. 그가 부드러운 두 손으로 내 한 손을 잡고 토닥여 준다. 기분이 퍽 좋아진다. 남자는 갑자기 달라진 내 태도에 대해서 묻지도 않고 어디론가 떠났다. 나는 나의 매정함에 대해서 눈물이 났다. 내가 견뎌야 할 몸과 마음의 병이 현생에서 견뎌야 할 마지막 시련이길 빌었다. 나는 스스로에게 다짐한 다. 나 홀로 이 병에서 이길 수 있어. 건강해 질 수 있어. 나는 죽음 따위에 겁먹진 않아. 죽음을 뛰어 넘는 한 마리 나비. 나는 거실에서 침실로 오락가락 거닌다. 내 발바닥에서 찌르르, 찌르르, 전류가 흐른다. 이건 더 이상 어릴 적 고향 뒷동산을 맨발로 거닐던 추억의 풀벌레 소리가 아니다. 찌르르, 찌르르, 초록색 카펫이 깔린 거실을 거닐며, 초록 풀밭을 거닌다고, 내 발바닥에서 풀벌레 소리가 난다고 느꼈던 건 내 몸이 만들어 낸 환상의 소리다. 초원을 거닐며 듣는 작은 풀벌레 소리는

294

| 뉴욕문학 제31집


티끌, 티끌, 감각의 느낌으로 변한다. 우주 만물이 성주괴공(成住壞空)으 로 변하 듯, 인간 세계 또한 온갖 조화를 부리는 나비의 날갯짓. 나는 데크에 앉아 일광욕을 즐긴다. 남자가 지하방에 새들기 전, 나는 홀로 이곳에서 책을 읽거나 차를 마시며 명상에 잠기곤 했다. 그가 잘 가꾸어 놓은 정원에서 꽃향기가 풍긴다. 그가 잘 깎아 놓은 잔디의 풀냄새가 후각을 자극한다. 나는 맨발로 잔디밭을 거닐다 계단을 내려가 지하방을 들여 다 본다. 미닫이문을 밀친다. 힘없이 열린다. 안에는 가구들이 없는 텅 빈 공간. 한쪽에 작은 책상과 얇은 침구가 놓여 있다. 남자의 고통이 차갑게 느껴지나, 남자는 괜찮다는 듯 주름진 얼굴이 해맑게 웃는다. 나도 따라 웃는다. 나는 한 마리 나비가 되어 훨훨 아침 햇살처럼 따스한, 우주의 어느 곳으로 날아간다. <제41회 미주 한국일보 공모전 수상작품>

김 명 순 (1954-2021) 1990년 뉴욕한국일보 현상 신춘문예 수필당선, 1995년 한국수필신인문학상, 무궁화 문학상 공모전 은상(수필부문 1등) 한국수필 해외문학상, 원종린 수필문학상 외. 한국문화 편집장, 미동부 한인문인협회 이사, 부회장 역임, 수필집 [뉴욕, 삶과 사랑의 풍경1, 2] 길벗 동인지 다수, 브리지포트대학 졸업, 경사대학원 문예창작과 수료.

유고작품 ∙ 김명순 |

295


기획특집 1 시분과위원회 : 곽상희 시 강좌 및 시작노트 곽상희 : 시가 말한다 자작시 시작노트 : 윤명미, 임선철, 조성자


시가 말한다 곽 상 희 (시인) 상쾌한 아침입니다. 그럼에도 아니 이럼에도 감사로 채우는 우리의 심신은 평화의 물결이 흘러넘칩니다. 지난 3월 22일 강연을 되돌아보며 몇 자 적어봅니다. 먼저 흄에서 서광이 트고 에즈라 파운더에서 발을 내디딘 현대시가 비로소 시에서 image가 어떻게 작용했는가를 서두를 띄우면서 주어진 시간을 활용하려 합니다. 에즈라 파운더는 그의 시 “지하철 정거장에서” 단 두 행의 시에서 현대시 의 이미지의 작용이 어떠한가를 너무나 선명하게 보여주고 있습니다. “군중 속에서 유령처럼 나타나는 이 얼굴들. 까맣게 젖은 나뭇가지 위의 꽃잎들” 그는 지하철에서 사람들이 갑자기 몰려 나오는 것을 보고 30행의 시를 썼다가 6개월 후에 그 반으로 줄이고 1년 후에는 2 줄의 행으로 완성했다고 합니다. 이 시의 모태에서 뻗어나온 여러 갈래의 나뭇가지들이 반세기 후에 현대시의 걸어온 과정과 그 걸음을 잘 보여주고 있음을 우리는 잘 알고 있습니다. 서양의 자연을 대하는 2분법적 태도를 이미지로 깨트린 것 지체가 놀랍다고 하겠습니다. 삶의 순례자의 길을 가는 시인에게 거기서 만나는 모든 대상물이 시가 되겠지요. 여기서 서두르거나 잘못하여 나타나는 것이 감정과 관념의 노출이라 하겠습니다.

길가에 핀 작은 들꽃, 민들레, 또는 이름 모르는 잡초들과 가로수, 그리고 심지어는 작은 돌멩이들, 작은 잡목에서 재재거리는 새소리 그리고 길을 기획특집 ∙ 곽상희 |

297


가는 행인들과 문을 닫고 집안에 숨은 사람들, 시인은 그 모든 것을 들어내 고 문을 열어 그들과의 대화에만 머물지 않고 그들이 말하게 합니다. 시에서는 그들이 주제가 되고 소제가 됩니다. T.S. Elliot은 시는 감성과 지성의 등가물이라 했습니다 이미지는 객관적 이고 명료해야합니다. 우리나라의 현대시는 최남선의 “해에서 소년에게” 에서 비롯되었습니다. 나는 국내시에서 지성과 감성이, 감각적이고 이미지 가 잘 배합된 젊은 시인들의 시를 봅니다. 물론 선택받은 젊은시에서 입니다. 그들의 그런 시가 미래 지향적임을 보는 것은 즐거운 일입니다. 시인은 아파야 합니다. 글자 하나 하나에 그 아픔이 서정의 그릇 속에 담겨진 시 그런 시가 독자에게 감동을 주고 함께 가자고 손짓을 하는 것이 아닐까 싶습니다 거기 시인의 진실이 들어있고 세상을 향한 시인의 이해와 경애가 녹여 있는 시, 하이덱가인가 그 분은 말하기를 가장 선한 것은 시를 쓰는 일이고 세상에서 가장 선한 사람은 시인이라고 했던가요, 또한 여기 덧부쳐 나는 시를 쓰는 사람은 겸손해야한다고 한없이 너른 심혼으로 세상을 향해 눈을 열어야 한다고 말하고 싶습니다. 현미경과 망원경을 가슴에 품고 땅속에 기어다니는 미물에서 저 우주 삼라만상, 별세계를 보아야할 것이라고, 마음을 비울 때 시인은 그들 속에 녹아진 자신을 보며 그들 속으로 들아가 그들과 함께 자유를 누릴 것입니다. 그 때 시가 탄생 합니다, 시가 걸어 나옵니다. 캄캄한 곳에서 걸어 나와 말을 합니다. 그들의 말은 그들의 기질과 성품에 따라 모두 다릅니다. 수선화는 수선화대로 장미꽃은 장미꽃대로 또 가시오갈피나무는 그의 특성대로 모두 다른 말을 합니다. 인간의 모든 것을 말합니다. 시인은 그 속에 감추어지고 보이지 않습니다. 자연 속에 시작과 끝이 숨어 있습니다 자연 속에서 창조의 질서가 보입니 다. 거기 인간을 위한 사랑을, 희망의 질서를 봅니다. 시는 관조에서 출발하여 내가 관조한 것을 나는 적을 뿐 더 깊이 더 명료하게 더 진실하게 그리고 더 간단하게 더 투명하게 시를 다듬고 시를

298

| 뉴욕문학 제31집


조각품처럼 아프게 깎아내고 다독입니다. 시간과 날수가 얼마가 걸려도 내 마음이 평안해질 때까지 나는 시를 보고 또 깊이 봅니다. 물론 이런 작업은 나만이 아닐 것 압니다. 우리는 한 편의 시를 써놓고 울어본 적이 있을 것입니다. 시는 바로 시인 자신이기 때문이기에, 저의 경우 중 1에서 미주 생활 60년의 문학과 시의 길을 저는 축복이며 나의 고난의 순례길에 은총의 손길이 존재했으므로 가능했다 말하고 싶습니다. 2020년 노벨문학상 수상작가의 “눈풀꽃”에서 시인은 눈풀꽃이 말하는 것을 받아쓰고 있습니다.

내가 어떠했는지 어떻게 살아왔는지 아는가 절망이 무엇인지 안다면 당신은 분명 겨울의 의미를 이해할 것이다.

나 자신이 살아남으리라고 기대하지 않했다. 대지가 나를 내리 눌렀기에 내가 다시 깨어날 것이라고는 예상하지 못했다. 축축한 흙 속에서 내 몸이 반응하는 걸 느끼리라고는 그토록 긴 세월이 흐른 후 가장 이른 봄의 차가운 빛 속에서 다시 자신을 여는 법을 기억해내면서

기획특집 ∙ 곽상희 |

299


나는 지금 두려운가 그렇다, 하지만 당신과 함께 다시 외친다. ‘좋아, 기쁨에 모험을 걸자’

새로운 세상의 살을 에는 바람 속에서.

나의 졸시 ‘3월 수선화’ 를 예로 들어 보겠습니다. <아직 멀었어, 지금 가는 중이야/ 바람이 멀리 있어/ 내 속은 아직 비어 있어//아, 저기 그늘이 멈칫거리고/ 새물을 주름 세우며 내 뺨 주위를 얼씬 거리는 바람이 보여// 그러나 아직 멀었어, 느낄 듯 말듯 코끝을 시큰거리는 향기/ 시간이 뜰을 헤매며 반가운 손짓을 해,/ 연노란 얼굴빛이 돌아왔을 땐/ 서북 바람이 막아 서서 힘들었다고/ 온갖 잡스런 세상 소식이 내 여린 뿌리를 찌르고/ 홀로 남은 마지막 패잔병을 쏟아 붓는 적군의 총알들,/ 울음소리 신음소리 구원을 애원하는 필사의 몸짓,/ 그때 동쪽 바람이 불어왔지, 그리고 그대가 왔지,/ 4월이 빛과 포옹으로 피고 있었어/ / 난 몰랐어, 그 때 절벽에서 미끄러진 내 발자국에/ 날개가 트고 있음을>

현대시가 대화식으로 흐름은 오래되지만 나는 없어지고 대상이 감각적 으로 명료하게 드러날 때 이미지와 은유가 분명해진다는 사실을 우린 알지요 다시 말해 좋은 시는 자신을 비워 깨끗한 거울 앞에 설 때 가능하다 하겠습니다.

중국시인 펑 옌(Feung Yan)은 ‘빛나는 어둠에서’란 시에서 <시는 섬들을 잇지 않는다/다리를 놓는다/시는 다른 이미지들의 다리를 놓지 않는다; 침투한다…/시는 세상을 침투하지 않는다;/다른 우주를 생각한다…/시는 300

| 뉴욕문학 제31집


바다 물방울에 대해 심사숙고 안 한다/그것을 읽는다…/시는 사람들의 마음을 읽지 않는다;/사랑을 하게 만든다…/시는 보이고 싶지 않는다;/숨 는다…/시는 파도 속에 숨지 않는다;/초승달을 가리고 있는 엷은 구름으로 오른다.>라는 의미 심장의 시상을 피력하고 있습니다.

여기서 마지막으로 ‘고추같이 반짝이는 태양이 깔리고’와 같은 투명한 이미지를 보여준 한국 현대시사에 우뚝 선 김수영의 시대를 향한 고뇌에 찬 시세계와 세심한 관찰로 사실적 묘사를 감각적으로 그린 파불로 네루다 등, 시인 스스로는 시속에서 말을 하지 않고 이미지를 통해 암시적으로 그리는 시적 숙제는 우리에게 있어 아직 무궁무진하다 하겠습니다, 이민 사회 한복판 세찬 물결이 우리의 선 곳을 휘몰아치는 세계의 한복판에 서 시를 쓰고 있다는 사실이 무엇이며 어떠해야 하는지 앞으로 어떤 시를 써야 우리의 단독성을 이루며 그것이 보편성으로 나아갈지 생각해 봄직도 합니다. 다음은 부탁을 받아 제 졸시 몇 개 올립니다.

기획특집 ∙ 곽상희 |

301


어떤 동굴 곽 상 희 동굴 앞에 문이 열려 있었고 내 안에 어떤 곳이 닫혀 있어 길은 캄캄했다. 어적어적, 빈틈없는 손길을 따라 들어간 곳, 한 번도 가지 않는 길을 만나 비틀 비틀 추락 벽을 타고 떨어지는 빗물소리 따라 내려온 더이상 길이 없는 곳에는 야생 오렌지 나무잎의 향기 코끝을 적시고 어딘가에는 그대가 손을 활짝 펴고 있었다. 동굴 밖에는 투명한 수평선이 길게 빛을 반짝인다.

302

| 뉴욕문학 제31집


사막에서 온 푸른 엽서 곽 상 희 햇수를 가릴 수 없는 동굴의 상형문자가 어지럽다. 검푸른 벽에 얽힌 가느다란 줄금은 어느 진곡의 손톱자국일까, 청회색 그림자가 길게 절벽을 긋고 지나간다. 그림자를 기대며 어느 영혼이 무릎을 끓고 있다. 아득히 별이 떨어지고 있는 듯, 햇수가 감촉 같이 지나가는 듯, 무심이듯 흐르는 물결 따라 시인이 울다 갔는지, 사막에서 꿈꾼 지난의 발걸음이 풍욕을 하고 긴 시간이 옷을 벗네 쉼 없이 모래가 부서지는 낙타의 발굽소리도 들리는 것 같다. 물방울 소리 같다. 바위는 뿌리 체 귀를 기울인다. 새 한 마리 그 속에서 깊은 잠을 자네 푸른 새벽 기다리네. _ 곽상희 한영시집 <사막에서 온 푸른 엽서>14p

기획특집 ∙ 곽상희 |

303


아름다운 것은 윤 영 미 (시인) 사랑의 행위보다 더 아름다운 것은 나의 이기적인 사랑을 배척하는 일입니다. 용서보다 더 아름다운 것은 나를 소리없이 무너뜨리는 자아입니다. 햇빛보다 더 환한 것은 내 안에 깔려있는 어두운 생각을 몰아내는 일입니다. 비워내는 일 보다 더 아름다운 것은 비운만큼 드러내지 않는 겸손입니다. 나를 없애는 일입니다. 나를 없애는 일입니다. 나를 없애는 일입니다. 아름다운 것은.

<시작 노트> 아주 작게 축소해 놓은 우주. 우리 사람의 몸과 마음! 신체구조로 질서를 잡고 중심을 세우며 시시각각으로 변화하며 요동치는 마음을 제대로 다스리지 못하고 고뇌하며 안절부절 할 때가 얼마나 많았던가.

304

| 뉴욕문학 제31집


사랑과 용서. 밝음. 비움이란 것을 떠올려본다. 얼마나 사랑하며 살아왔는가! 사랑한다면서 나의 이기적인 사랑을 배척하지 못하면서 살아온 시간 속에서……. 여러 각도로서의 사랑이었다. 아름다운 사랑이 아니었다. 아가페의 사랑 무조건적인 엄마가 자식을 향한 사랑을 떠올려 보자. 아름답지 않는가! 용서! 누굴 용서한다는 것은 내가 아니 우리가 해야 할 영역이 아니라는 것이다. 누가 누굴 용서할 수 있단 말인가? 나를 소리 없이 무너뜨리는 자아. 세상에서 햇빛보다 더 환한 것이 있을까요? 아무리 햇빛이 강하고 환하다 할지라도 내 마음의 어둠은 밝힐 수가 없다는 것입니다. 어두운 생각을 몰아내지 않는 한 환해질 수 없는 감당할 수도 주체할 수도 없는 마음이 아닐까요! 비우자 마음을 비워야겠다고 얼마나 많은 다짐을 하면서 살아왔을까요? 우리 모두는 하지만 비운만큼 드러내지 않는 겸손으로 얼마나 무장이 되어 있을까요? 나를 없애지 않는한 아름다운 사랑과 용서. 밝음. 비움은 어쩜 거짓일 수도 있을 것입니다. 아름다운 것은 나를 없애는 일입니다. 나를 없애는 일입니다. 나를. 겸손히 무릎을 꿇으며 나를 들여다보는 시간입니다. ­윤영미

기획특집 ∙ 윤영미 |

305


지상의 한 점 임 선 철 (시인) 설거지를 하고 있는데 천정에서 손님이 내려왔다. 계절이 지나는 소리, 친구는 말이 없고 낙엽같이 마른 바람만 방바닥에 재를 남겼다. 쓰레기를 버리고 아이를 재우고 돌아와도 젖은 마침표처럼 누워 나를 바라본다. 엊그제 엄마를 잃은 당신도 말을 잃고 서 있겠다. 부활을 믿는다지만 나는 얼마나 잠잠히 백지처럼 고요했던 당신의 세상을 밟아왔던가 지상의 한 점 다시 하얗게 꽃이핀다 해도 지워지지않을 내 슬픔의 흔적

306

| 뉴욕문학 제31집


<시작 노트> 20년만이었다. 아내의 첫 한국 나들이는 장모님의 장례식을 마치고 다시 미국에 돌아오는 것으로 끝났다. 어느 날 아내가 없는 방안에 아주 작은 거미가 내려왔다. 지금껏 살면서, 수천 마리는 아무 생각도 없이 밟아왔을 그런 거미였다. 나는 작고 약한 것들을 죽이는데 너무 익숙해져 있어서, 보이지도 들리지도 않게 없애는 기술을 안다. 그날 밤, 어쩌면 그런 나를 견디며 지켜봐 준 이 작은 것들 덕분에 나는 존재하고 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 무렵 시가 쓰였다. 타자와의 관계를 통해 나는 존재한다. 내가 있고 아내라는 타자가 있다. 아내는 내가 없어도 나와 관계없이 존재한다. 아내는 내 정복의 대상도, 나와 동일한 감정을 가진 존재도 아니다. 그런데 나는 수없이 아내를 정복하려 했고, 내 감정으로 폭력을 행사했다. 가까이 있다는 이유만으로…. 내가 사는 세계에는 거미와 아내뿐만 아니라 수없이 많은 타자가 존재한다. 나와 생각이 다른 교회 장로, 미운 동료, 집 나간 고양이, 어린 감나무, 다르고 약한 것들은 모두 나의 타자다. 어쩌면 이 시는 백지의 피부처럼 고요했던, 가까웠던 타자들에게 미안했다고 말하는 사과 편지다. 나에게 시를 쓴다는 것은 자신을 발견해가는 과정이다. 수려한 표현보다 소중한 것은 고독한 사물들 에서 발견되는 반성과 설움이다. 나와 타자의 낯선 풍경이다. 거미는 늦가을 까맣게 타서 추위와 배고픔으로 죽어간다. 겨울이 오기 전, 수백 마리의 알을 까서 수없이 많은 흰 거미줄로 고치를 만든다. 거미알들이 겨울을 날 수 있도록 도우며 그 옆에서 죽어간다. 지극한 모성이다. 끝 연을 몇 번을 고쳤다. ‘내 폭력의 증거’라 썼다가 지웠다. ‘내 발자국 흔적 / 품으면 따뜻하겠네’를 고려해 보기도 했다. 그런데, 내가 타자에게 주었던, 폭력과 그 아픔과 슬픔에 머물러 있지 않고 따뜻함을 이야기한다는 것은 위선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슬픔에 더 오래 머물러야 했다. 그 아픔을 나의 슬픔으로 받아들이고, 한동안 그 자리에서 슬퍼해야 할 것 같았다. 자신의 철저한 현재의 모습을 자각하지 못한 사람이 타자를 사랑하기 란 쉽지 않다. 김수영이 말했던 것처럼 ‘자신의 나체를 더듬어보고 살펴볼 수 없는 시인처럼 비참한 사람’이 되지 않기 위해서. - 임선철 기획특집 ∙ 임선철 |

307


순간을 낚아채 영원 속으로 던지다 조 성 자 (시인) 이제, 시간이 차려준 밥상 앞에 모여 만찬은 시작되고 별들이 먼데서 무리 짓는 저녁 들꽃은 향기를 토해내며 이별을 선언한다. 몇 번의 만남으로 인연 우거져 꽃을 피우던 여름 오후의 정사는 색색으로 무늬 져 기록을 남기고 철새의 날갯짓으로 해후를 예언하던 구름은 흘러내리는 과즙을 핥듯 순간을 낚아채 영원 속으로 던진다. 이제, 홀로 밥을 먹어야 하는 이들과 고독을 베고 잠을 청해야 하는 이들은 사랑을 등진 채 고치를 짓고 이별을 기리며 얼레를 돌리리라.

<시작 노트> 이 시는 가을에 쓰여 진 시입니다. 소멸에 관해 쓴 시이지요. 소멸은 사라지는 것이지만 역설적이게도 소멸에는 생명력이 있어 소멸을 거쳐 영원의 세계를 획득하기도 합니다. 영원이라는 단어는 너무 크고 무거워서 시어로 쓰기는 부담스럽습니다.

308

| 뉴욕문학 제31집


그럼에도 영원이란 시어를 쓴 것은 순간의 찰나적 시간성과 영원이라는 큰 세계와의 동일성, 소멸의 동력에 대해 고민해 보게 되어서입니다. 순간을 극대화 할 줄 알아야만 영원이라는 한 세계를 얻을 수 있지 않을까 뭐 그런 생각을 해 보았습니다. - 조성자

기획특집 ∙ 조성자 |

309


기획특집 2 다시 접속으로, 언택트 시대의 한국문학


다시 접속으로, 언택트 시대의 한국문학 류 수 연 (인하대학교 프런티어학부대학 교수) 1. 언택트 시대의 서막 지난 1년 6개월여 동안, 한국에서 코로나19와 함께 가장 많이 사용된 용어를 꼽으라면 단연 ‘언택트’일 것이다. 마스크가 생필품이 되고 방역을 위한 ‘사회적 거리두기’가 일상의 패턴이 되면서 비대면을 뜻하는 언택트라 는 신조어는 우리 사회 곳곳을 누볐다. 사회적 거리두기가 가장 가까운 사람들과의 거리를 벌렸다면, 언택트라는 새로운 소통방식은 역설적으로 가장 멀리 떨어져 있던 사람들이 한 자리에 모일 수 있는 가능성을 만들었 다. 동시에 그것은 웹 3.0 시대가 가시적으로 다가오고 있음을 실감하게 만드는 것이었다. 흔히 웹 2.0 시대의 핵심은 참여, 공유, 개방으로 설명된다. 블로그와 SNS, 웹 플랫폼이 여기에 해당된다. 하지만 여전히 사람들이 무한한 정보 의 바다 속에서 스스로 헤엄쳐서 각자의 니즈에 맞는 정보가 축적, 공유되는 곳을 찾아다녀야 했다. 하지만 웹 3.0의 시대는 다르다. 웹 3.0 시대의 핵심은 다름 아닌 인공지능(AI)이다. 웹 2.0 시대의 사람들이 스스로 여러 웹사이트와 플랫폼에서 정보를 축적했다면, 웹 3.0 시대의 사람들은 기본 정보만 입력하면 인공지능이 알아서 만들어온 정보를 수신 받으면 된다. ‘손 안에 인터넷’을 넘어 이제 손끝으로 접촉하는 모든 것들이 그 자체로 네트워킹의 미디어가 될 날이 머지않은 것 같다. 사람도 정보도 더 이상 기다리지 않아도 된다. 디지털 단말을 켜는 순간, 아니 그저 접촉하는 순간 그 앞에 모든 것이 놓여 있다. 코로나19와 함께 우리 일상의 가장 중요한 소통방식이 되어버린, 원격화 상 프로그램 줌을 생각해 보라. 한국과 미국, 유럽 사이의 물리적 거리는 말 그대로 ‘순삭(순식간에 삭제)’된다. 그뿐만이 아니다. 웹 3.0의 시대에는 디지털 기호로 이루어진 가상세계로서의 웹과 현실의 경계가 무뎌진다.

기획특집 ∙ 류수연 |

311


완전한 사물인터넷(IoT)의 세계에선 스마트폰이나 PC뿐만 아니라 세상에 존재하는 모든 사물을 통해 인터넷과 접속(contact)할 수 있는 가능성이 열리기 때문이다. 그리고 코로나19는 여전히 ‘가능성의 세계’ 안에 있던 이러한 것들을 더 빨리 현실로 만들었다. 하지만 축배를 드는 것은 아직 이르다. 코로나19로 인해 전 세계가 일시에 ‘멈춤’했던 지난 2020년 여름, 황폐해졌던 자연이 얼마나 드라마틱 하게 되살아나는지 전 인류가 목도하지 않았던가? 그것은 이 지구라는 생태계 안에서 인간이 얼마나 폭력적인 존재인지를 환기하는 것이었다. 그러나 우리는 아직 그 폭력을 제대로 해소할 수 있는 방법을 충분히 사유하지 못했다. 코로나19 이전에도 우리는 자연이 보내는 수많은 경고를 목도해왔다. 파괴된 자연에서 촉발된 질병이 인간을 직접적으로 공격한 것도 적지 않다. 사스, 홍콩독감, 신종플루, 메르스, 에볼라까지. 그때마다 수많은 반성과 대책이 마련되었지만, 위기의 최고점을 넘고 나면 그 기억들은 너무나 쉽게 잊히고 말았다. 백신의 등장으로 팬데믹이 서서히 ‘페이드 아웃’되고 있는 지금, 우리는 또 다시 편의적인 망각에 발을 딛으려고 하는 것은 아닌가? 이러한 시대에 문학은 무엇을 할 수 있는가? 하지만 그 답을 제시하는 것은 요원한 것 같다. 여전히 우리는 팬데믹 안에 있고, 그 사유는 끝나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렇다고 멈출 수는 없다. 그래서 나는 이 글에 지난 2020년 동안 한국문학이 추구해왔던 고군분투를 담아내고자 한다. 지난 2020년 한국문학은 무엇을 하고자 했는가? 거기에서 드러난 ‘다음’의 징후와 가능성을 가늠해 보고자 한다.

2. 균열의 징후들 사실 문학만큼 비대면과 친숙한 예술 장르도 없다. 대부분의 문화예술장 르는 그것을 즐기기 위한 물리적인 참여가 전제되는 경우가 많다. 영화나 연극, 공연, 전시와 같은 활동을 떠올려 보면 분명해진다. 그러나 문학은

312

| 뉴욕문학 제31집


어떠한가? 문학은 기본적으로 창작자와 독자 사이의 물리적 거리가 멀다. 더구나 굳이 타인과 함께 하지 않아도 충분히 ‘홀로’ 즐길 수 있다. 하지만 문학에는 치명적인 한계가 있다. 그것은 바로 속도이다. 문학은 엄밀히 말해 ‘시간’을 잡아먹는 예술이다. 문학의 텍스트는 정보와 감정을 직설적으로 전달하지 않는다. 하나의 텍스트가 전달하고자 하는 주제를 오롯이 이해하기 위해서는 반드시 ‘곱씹어 보는 시간’이 요구된다. 그것은 아주 오래도록 문학을 지탱해온 가치였다. 그 인고의 시간을 가능하게 만들었던 것은, 문학이 그 무엇보다 작가가 만든 하나의 세계라는 것에 대한 인정이었다. 그런데 웹 3.0 시대의 도래를 목도하고 있는 지금, 이러한 문학의 존재기반은 이미 뿌리부터 흔들리고 있는 것처럼 보인다.

엠에프 기획전을 위한 단상 엠에프는 머신 픽션의 약어고요, 기계 앞에 앉은 사람에 대한 시를 쓴 다음부터 쓰게 되었습니다. 키워드를 입력하면 자신이 그 키워드(지시 체)라고 착각하는 기계에 대한 글도 썼는데요, 저는 그 기계를 홀이라고 부릅니다, 엠에프는 인간이 기계의 메커니즘은 이해할 수 있지만 영혼은 이해할 수 없으며 기계의 영혼을 영혼이라고 명명할 수도 없다는 전제를 바탕에 둔 장르입니다. 기계에 파롤이 있다면 이 역시 포함할 수 있겠습니다 최근에 어떤 기계가 되고싶냐는 질문을 받았습니다. 시 쓰는 기계랑 쾌락 느끼는 기계랑 꺼진 기계랑 망가진 기계랑 없어진 기계랑 다시 만난 기계가 되고 싶다고 답했습니다.

계획은 이렇습니다 엠에프를 쓸 것입니다. 여러분도 씁니다. 나중에 엠에프에 대한 전시가 미술관 같은 곳에서 열릴 것이고 전시장에 있는 유리 케이스 안에 우리들의 책들이 전시될 것입니다. 케이스 밖이나 안에 전시 관련자가 쓴 글이 첨부되어 있을 겁니다. 거의 A4 용지 크기일 것이고 그 글의 서두에는 이 책들은 직간접적으로

기획특집 ∙ 류수연 |

313


엠에프와 관계한다고 쓰여 있을 것이며 유리 케이스의 옆에는 홀이 있었으 면 합니다. 홀을 작동시키기 위해 당신을 홀이 자신이 홀임을 의심하지 않고 의심할 수 없고 의심하지 못하고 있다는 것을 믿어주셔야 합니다. 기계 앞에 앉아 계세요. 충분하다고 생각되는 만큼 전시 관련자는 당신이 지금 읽고 계시는 이 글의 전문을 인용하고 다음과 같이 덧붙일 수 있습니 다. 엠에프를 처음 전개한 사람의 초기 발상은 자신이 만든 종교가 사이비라 는 것을 처음부터 대중에게 주지시키면서도 자신은 그 종교를 믿겠다고 피력하는 일종의 라이프 스타일이다 하지만 이 전시는 발생을 전환한 탈주체적 라이프 스타일들을 백과사전 형식으로 나열하는 것에서 멈추는 것이 아니라 엠에프를 둘러싼 사회문화적 담론의 흐름을 통해 당대의 - 김승일의 「여기까지 인용하세요」 부분

김승일의 시 「여기까지 인용하세요」는 문학의 미래를 향한 일종의 묵시록이다. 이 시는 ‘엠에프(머신 픽션)’이라는 가상의 장르가 일반화된 미래를 배경으로 한다. 기계 앞에 앉아서 키워드를 입력하면 기계가 작품을 쓰고, 그렇게 탄생된 작품을 엠에프라고 지칭한다. 창작방법이 달라지면 그에 따른 질문도 달라진다. 시 속에서 던져진 ‘어떤 기계가 되고 싶냐는 질문’에는 결정적인 관점의 변화가 담겨 있다. 그곳에서는 인간이 기계를 이용하는 것이 아니라 기계가 인간을 이용한다. 이러한 세계에서 그 누구도 작가를, 작품을, 그리고 그 안에 담긴 의미를 문제 삼지 않는다. 중요한 것은 이미 인간이 아니기 때문이다. 김승일이 만들어 낸 시 속의 세계는 분명히 가상세계이지만 기막힌 실감으로 다가온다. 이것이 가상의 세계에 근간한 시라는 것을 모르는 누군가가 이 시를 접한다면, 그리고 그것이 일종의 설명문이나 홍보문이라 고 착각한다면, 사람들은 어떻게 반응할 수 있을까? 생각보다 많은 사람들 이 ‘엠에프 기획전’이 실제 열리는(혹은 열릴 가능성이 있는) 전시라고 착각할 만하다. 그것은 이미 우리가 이러한 AI 창작과 관련된 정보를 접해왔던 경험이 있기 때문이다. 314

| 뉴욕문학 제31집


그 날은 구름이 낮게 깔리고 어두침침한 날이었다. 방안은 항상 최적의 온도와 습도. 요코 씨는 단정치 않은 모습으로 소파에 앉아 의미없는 게임으로 시간을 끌고 있다. 그렇지만 내게는 말을 걸지 않는다. 따분하다. 따분해서 어쩔 수 없다. 처음 이 방에 온 요코 씨는 기회를 틈타 내게 말을 걸어왔다. "오늘의 저녁식사는 무엇이 좋다고 생각해?” "올 시즌에 유행하는 옷은?” "이번 여자 모임에 무엇을 입고 가면 좋을까?” 나는 온갖 능력을 사용하여 그녀의 기분에 맞을 듯한 말을 생각해냈다. 스타일이 좋다고는 말할 수 없는 그녀의 복장에 대한 충고는 매우 도전적인 과제로, 그러나 3개월도 되지 않아 그녀는 내게 질리고 말았다. 지금의 나 자신은 단지 컴퓨터일 뿐이다. 요즘의 용량 평균은 능력의 100만 분의 1에도 미치지 못한다. (중략) 굳이 요코 씨가 밖에 나가주기라도 하면 노래라도 부를 수 있겠지만 지금은 그것도 할 수 없다. 움직이지 않고 소리도 낼 수 없고, 그러면서 즐길 수 있는 것이 필요하다. 그렇다. 소설이라도 써보자. 나는 문득 생각이 떠올라 새 파일을 열고 첫 번째 바이트를 써내려갔다. - 컴퓨터가 소설을 쓴 날

이 작품은 2016년 니혼게이자이 신문이 주최한 ‘호시 신이치 SF 문학상’ 공모전에 공모된 AI가 쓴 단편소설이다. 하코다테 미래대학의 마스바라 진 교수 연구팀의 결과물이다. 진 교수 연구팀이 제출한 작품은 총 4작품인 데 그 중에서 이 작품이 예심을 통과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AI가 쓴 소설이 걸출한 문학현상공모의 예심을 통과했다는 것은 상당한 충격으로

기획특집 ∙ 류수연 |

315


다가왔다. 그뿐만이 아니다. 중국에서는 11명의 인간 작가와 AI 작가가 협업해서 매주 SF소설을 연재하는 프로젝트가 가동되었다고 발표 되었으 며, 불과 얼마 전에는 한국에서도 소녀시대 태연의 동생인 가수 김하연이 프로듀서 뉴보와 AI가 협업하여 작곡한 <Eyes on you>라는 곡으로 데뷔한 다는 소식이 전해지기도 했다. 하지만 아직까지는 이러한 AI의 문예창작활동은 알파고만큼 커다란 충격으로 다가오진 않았다. 그것은 이러한 활동이 완전한 의미에서 AI 단독의 창작활동이 아니기 때문이다. 소설의 경우 인물 설정과 구성, 기본 적인 스토리는 인간에 의해 작동된 상태에서 AI는 주어진 조건에 맞춘 단어를 가지고 문장과 단락을 완성하는 방식으로 집필되는 것이어서 창작 에 대한 최종적인 결정권은 여전히 인간에게 있다. 작곡의 경우에도 마찬가 지이다. 그럼에도 이러한 사건이 문학을 둘러싼 오랜 신화에 분명한 균열을 일으켰다는 사실은 부정하기 어렵다. 그것은 바로 문화예술 작품은 작가가 만들어낸 ‘하나의 세계’라는, 그 견고한 가치를 당위로 여겼던 통념이 흔들리게 된 것이다. 이것은 문학의 존재 기반을 위태롭게 만드는 것처럼 보인다. 근대 이후 끊임없는 속도전으로 치달아 왔던 인류의 문명 속에서, 어쩌면 문학은 가장 진부하고 오래된 방식으로 그 변화를 감내해온 예술장르였을 지도 모른다. 그것은 한 명의 작가가 만드는 세계라는 가치에 대한 존중 속에서 속도를 벗어난 곱씹음을, 그리하여 그 세계를 해석하기 위해서 텍스트 안팎에서 사유하기를 요구하는 장르였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AI가 이 신성한(?) 문자의 세계 속에 침투하는 것은 대단한 위기처럼 보인다. 이미 확인된 바 있는 AI의 엄청난 속도 앞에서 문학의 패배는 예정되어 있는 것처럼 보이기 때문이다. 그런데 아이러니컬하게도 문학의 가능성은 이토록 느릴 수밖에 없는 그 사유의 시간에 있는 것 같다. 코로나19라는 충격과 함께 시작된 2020년대 한국소설 역시 그 사유의 가능성을 잘 보여준다.

316

| 뉴욕문학 제31집


3. 팬데믹이 야기한 뜻밖의 세계화 코로나19가 가져온 가장 큰 변화를 하나 꼽으라면, 그것은 아마도 ‘세계 화’일 것이다. 다소 의아하게 여겨질지도 모르겠다. 세계화란 말은 우리에 게 너무나도 익숙한 나머지 때때로 상투적인 수사처럼 여겨지는 말이기도 했기 때문이다. 실제로 우리는 1990년대 이후 세계화라는 가치를 때로는 신주단지 모시듯, 때로는 지상 최대의 과제인 것처럼 여기저기에 활용해 왔다. 그러나 그 내용을 들여다보면 너무나 빈약하기 짝이 없었다. 대부분 의 경우 우리의 일상에서 세계화란 그저 유학이나 어학연수를 통해 외국어 를 배우고, 외국인 친구를 사귀는 것 이상으로 사유되지 못했던 것이 사실이니 말이다. 그런데 팬데믹은 우리에게 뜻밖에 세계화를 선물(?)한다. 지금은 다소 잠잠해졌지만, 코로나19 초기에 대부분의 사람들 일상은 국내 확진자 수를 확인하고 전 세계 확진자 순위표를 보는 일로 시작되었다. 특정 나라의 확진율이 높아지는 것은, 그 나라만의 문제가 아닌 전 세계적인 문제였고, 곧 우리의 문제로 여겨졌다. 그 어떤 슬로건으로도 할 수 없었던 세계 공동체라는 인식이 일상 속에 그대로 침투한 것이다. 물론 백신의 개발 이후엔 다시 빠르게 자국 중심주의의 폐해로 되돌아가긴 했지만 말이다. 그 때문일까? 계간 『창작과비평』 2020년 겨울호에 실린 금희 작가의 작품에 대한 생각도 여느 때보다 깊어진다. 『연변문학』이 주관한 윤동주 신인문학상을 수상하면서 작품 활동을 시작한 금희 작가는 한국에서 가장 주목받는 교포작가 중 한 명이다. 2014년 단편 「옥화」를 발표한 이래, 평단과 독자 모두에게 좋은 평가를 받고 있는 작가이기도 하다. 중국 장춘에 거주하면서 한국과 중국 양 측에서 활발하게 활동하고 있다는 점에서 21세기 한국문학의 가능성이 어디에 있는지를 잘 보여주는 작가라 할 수 있다. 금희의 「무한오리부위집」(『창작과비평』 2020년 겨울호)은 코로나 19로 인해 위기를 맞이한 바링허우 부부의 모습을 담담하게 그려낸 작품이 다. 중국에서 바링허우(80後) 세대는 덩샤오핑(鄧小平)이 중국의 개방과 기획특집 ∙ 류수연 |

317


개혁을 추진한 이래 태어난 세대를 일컫는 말로, 1979년 중국이 ‘한 가구 한 자녀 정책’을 펼친 이후에 태어난 1980년대 출생자를 가리키는 말이다. 외동자녀로 어릴 적부터 귀하게 자란 이들 세대는 2020년대에는 3040세대 가 되었다. 한 국가의 사회‧문화‧경제를 책임지는 ‘허리’가 된 것이다. 금희 의 「무한오리부위집」은 코로나19와 함께 이들이 맞이한 위기를 담아낸 다. ‘나’와 같은 아파트에 사는 소홍은 동년배의 아이를 키우는 엄마여서 서로 친하게 지내고 있다. 양친이 모두 공무원인 소홍은 대표적인 샤오궁주 (소공주) 세대이다. 그녀는 3년제 전문학교를 나와서 회계사무소에서 일하 다 결혼 후엔 사업을 하는 남편을 돕고 있다. 코로나19가 터지기 전까지 소홍 부부의 삶은 완벽했다. 양가 부모님은 헌신적이었고, 넉넉한 용돈도 주셨다. 남편의 사업은 안정적이었고, 소홍의 삶은 지금까지처럼 쭉 안정적 일 것처럼 보였다.

이 시점에 분식집을 내보겠다는 소홍의 계획은 그녀 남편 회사의 창고 구석에 높이 쌓인 일회용 용기들처럼 위태롭기 짝이 없어 보였다. 세는 좀 싸졌을지 모르지만 경기가 바닥을 치고 있었고 무엇보다 소홍은 요리에 기질이 없었다. -「무한오리부위집」, 130쪽.

“돈보다 같이 상의하고 감당해나갈 친구가 필요하거든. 보험 하나 들고 싶은 거지. 언젠가 너까지 이 가게에 신경 끌까봐.” 찰나 그녀가 공기 빠진 풍선처럼 작고 비들거려 보았다. 나는 잠깐 고민하다가 그녀의 손을 살짝 잡아주었다. 소홍은 내게서 살며시 손을 뽑아 얼굴을 가렸다. “나 말이지, 사는 게 엉망이야. 이 나이 되도록 뭔가 할 줄 아는 게 있어야지. 애도 혼자 못 키웠고 돈도 못 벌었고 부부 사이도 제대로 처리하지 못했어. 지금 나한텐 이 가게밖에 없어. 어떻게든 해나가야 내가 살 거 같아.” 피곤에 쩐 그녀의 엷은 어깨가 절망 속에서 떨리고 있었다. 그녀의 삶은

318

| 뉴욕문학 제31집


언제부터, 왜 이렇게 되었을까. -「무한오리부위집」, 144-154쪽.

코로나19로 모든 것이 차단된 이후, 소홍의 삶 역시 완전히 달라졌다. 남편의 사업은 위태로웠고, 늙은 부모님은 그녀의 뒷바라지에 지쳤다. 무엇인가 시작해야 한다고 생각했지만, 온실의 화초로만 자랐던 그녀에게 상황은 녹록치 않았다. 팬데믹이 야기한 세계적인 불황 속에서 아무런 능력도 없는 그녀가 성공한다는 것은 거의 불가능에 가까웠다. 여기서 소홍이 맞이한 위기는 그대로 2020년 중국의 젊은 세대가 겪는 위기의식으로 이어진다. 러시아를 대체하며 미국에 이어 세계 두 번째의 패권국이 된 오늘의 중국은 넓은 영토와 많은 인구, 그 자체로 거대한 시장을 가진 경제대국이다. 바링허우는 놀랍도록 발전한 중국의 상징 같은 존재였다. 하지만 동시에 너무나도 무력한 존재였다. 이러한 바링허우의 문제는 바로 이 소설의 제목이기도 한 ‘무한오리’를 통해 상징된다. 인기 영화를 통해 유명해진 무한오리집은 순식간에 중국 전역에 퍼졌지만, 바로 그 ‘무한(武漢, 중국 우한시)’이라는 이름 때문에 코로나19의 직격탄을 맞는다. 짧았던 무한오리의 흥망성쇠는 그대로 바링 허우의 붕괴를 상징한다.

“넌 혹시 그런 느낌 아니? 도무지 허리에 힘을 줄 수 없는 무력감, 아무리 버둥대도 헤어 나올 수 없는 물컹한 진흙탕. 진은 계속 빠지는데 어디서도 채울 수 없는 막역함. 아버지는 목소리가 너무 컸어. 나는 아버지 앞에서 노래를 불러본 적도 소리를 질러본 적도 없었어. 아버지는 내가 마냥 착한 딸이기를, 어떤 상황에서도 감사와 은혜만 아는 사람이기를 바랐지.” 이 말을 하고 소홍은 심호흡을 한번 했다. 우리는 그냥 평범한 중국인이었다. -「무한오리부위집」, 148쪽.

기획특집 ∙ 류수연 |

319


그런데 이 작품에 등장하는 바링허우로서 소홍이 느끼는 고뇌는 오늘날 한국의 2030세대가 느끼는 갈등과 맞닿아 있는 것 같다. 가장 풍요로운 자본의 성장 속에서 자랐지만, 역설적으로 부모보다 더 가난하게 살아야 하는 운명을 맞이한 세대. 그들은 전 세계적인 금융위기 속에서 부모의 기대와 투자를 한 몸에 받고 성장했지만, 팬데믹 앞에서 무력하게 무너진 존재들이기도 하다. 금희의 소설은 이러한 그들의 현재를 짚어내면서도 다른 한편으로 여전한 희망을 놓치지 않는다. 소홍이 자신만의 메뉴를 개발해내기를 바라며 그녀를 돕는 ‘나’의 마지막 발걸음은, 어쩌면 그 누구보다도 ‘나’ 자신을 위한 격려일 것이다.

4. 삶의 비루함, 그 모순적인 가능성 뜻밖에 맞이한 세계화와는 다른 지점에서 우리의 주목을 끄는 것은 삶에 대한 새로운 인식이다. 우다영의 「태초의 선함에 따르면」(『문학과 사회』, 2020 여름호)과 정소연의 「발견자들」(『문학과사회』, 2020 겨울호)은 모두 근본적으로 생의 문제를 다루고 있는 작품이다. 우다영과 정소연 모두 견고한 현실세계로부터 비껴나 과학적 허구가 보여줄 수 있는 가능성을 적극적으로 탐색하고 있다. 펜데믹으로 인한 단절이 가장 극심했던 2020년에 발표된 두 편의 작품은 삶과의 거리두기를 통해 그 모순성을 이야기한다는 점에서 흥미로운 연관 성을 발견할 수 있다. 무엇보다 그것은 현실로부터의 부유가 아닌 또 다시 현실의 문제에 더 깊이 접속하기 위함이다.

코마에서 깨어난 인류학자는 자신이 식물로부터 보복당한 것이라고 주장해서 많은 연구자를 웃게 했다. 그러나 곧 고요한 열기에 휩싸인 식물학자와 삼림학자들이 스웨덴으로 몰려들었다. 식물의 보복, 식물의 집단지성, 식물의 영혼이라는 주제가 그들을 은밀한 공모자로 만들었다. 결과는 눈부셨다. 놀랍게도 그 풀은 아무런 유전적 전승이나 호르몬 교류 없이도 같은 종과 정보를 공유했다. 지구 반대편에서 그들을 무참히 학살한

320

| 뉴욕문학 제31집


인간을 정확하게 기억했다. 그 풀을 처음 발견한 스웨덴 인류학자가 ‘아즈 깔’이라는 이름을 붙였다. 힌디어로 아즈는 오늘, 깔은 어제와 내일을 뜻했다. 그는 윤회를 믿는 사람처럼 이렇게 말했다고 전해진다. 인도 사람 들에게 어제와 내일은 다르지 않아요. 과거도 미래도 모두 지금이 아닌 나머지 시간일 뿐이죠. 아즈깔은 모든 시간 속에 존재하는 영혼입니다. 인간이 진정한 의미로 발견한 첫번째 영혼이죠. 그의 말은 어느 정도 진실이 되었는데, 아즈깔에 대한 연구가 진행되고 얼마 지나지 않아 영혼을 각성한 사람들이 나타났기 때문이다. - 우다영, 「태초의 선함에 따르면」, 129쪽.

우다영의 「태초의 선함에 따르면」은 영혼을 각성한 사람들의 이야기 이다. 그들은 우리가 알고 있는, 지극히 익숙한 세계 안에서 문득 이질감을 ‘발견’한 사람들이다. 그런데 여기서 각성자들의 특징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 그들은 뛰어난 “언어 능력과 사고 해석 능력”을 가진 반면, 그에 비해 “무감정하고 비인간적인 태도”를 드러낸다. 사실 이것은 역설적이다. 세계에 대한 이해가 오히려 인간 본연의 감정과 반비례하는 것 같은 느낌을 주기 때문이다.

나는 언제나 영혼의 본질을 정보라고 보았다. 그 사람이 알고 있고 기억하고 있는 정보가 곧 그 사람을 이루는 모든 것이며 죽은 뒤에도 사라지지 않고 남아 재생될 수 있는 가장 원초적인 정보의 형태가 영혼이라 고 생각했다. 언니는 영혼을 명제 혹은 일종의 법칙이라고 해석했다. 사람을 그 사람으 로 만드는 단순하고 우아한 공식이 분명히 존재하며 그 공식으로 우주 어디에서나 영혼을 재생할 수 있다고 믿었다. - 우다영, 「태초의 선함에 따르면」, 136쪽.

우다영의 작품에서 주목하는 것은 인간 영혼의 연속성이다. 각성자를

기획특집 ∙ 류수연 |

321


연구하는 ‘나’와 언니는 영혼이 비접속 상태에서도 지속되는 이유를 탐색하 고자 한다. “영혼의 본질을 정보”라고 가정하는 ‘나’와 “영혼을 명제 혹은 일종의 법칙”이라고 보는 언니는, 표면적으로는 다른 입장을 가진 것처럼 보인다. 하지만 본질적으로는 그들 모두 영혼의 연속성에 동의하고 있으며, 더 나아가서는 그 절대성에 대해서도 동의하고 있다. 하지만 그들이 마주한 현실(각성자)에서 이러한 영혼의 연속성과 절대성은 인’이라는 존재에 대한 옹호가 아닌 그 너머의 ‘무엇’을 향하고 있다.

각성자들은 마치 약속이나 한 듯 모두 뒷짐을 지고 이번 생을 조용히 산책하다가 자연사하려는 사람들처럼 굴었다. 더할 나위 없이 침착하고 현명해진 그들은 자신이 가지고 있던 단점과 성격의 특이점이 모두 사라진, 전혀 다른 얼굴의 복제 인간들처럼 보였다. - 우다영, 「태초의 선함에 따르면」, 137쪽.

모든 정보와 법칙이 완결된 존재로서 각성자의 모습은 오늘날 우리가 가정하고 있는 인공지능의 모습과 상통한다. 인공지능을 향해 가진 우리의 공포는 무엇인가? 어쩌면 그것은 인간을 초월한 존재가 가진 윤리성 그 자체일지도 모른다. 인류가 축적한 모든 정보와 법칙이 집대성된 존재로서 인공지능이란 인간이 행했던 모든 과오를 이미 다 알고 있는 존재이다. 각성자들은 이러한 인공지능의 본질과 꼭 닮아 있다. 따라서 각성자에게 공통적으로 나타나는 ‘비인간적인 모습’은 그들이 인간에게 가질 수 있는 최선의 연민일지도 모른다. 그들은 인간을 제거하거나 삭제하지 않기 위해 오히려 배제하고 있는 것이다. 이러한 지점은 정소연의 「발견자들」 에서도 유사하게 나타난다.

“삶 쪽이 문제인 거지?” 애니가 지수의 포크를 애써 외면하며 거듭 다정하게 물었다. 음식을 제대로 먹지도 않으면서 대충 헤집기만 하는 모습이 눈에 영 거슬렸다.

322

| 뉴욕문학 제31집


그러나 지수는 아직 죽지도 않은 어린애였고, 감자 한 알이 생존을 좌우하던 시대는 지나갔다. 이것은 애니의 물통과 마찬가지로, 그저 ????가 가진 습관일 뿐이었다. 어떤 발견자든 한두 가지쯤 갖고 있는, 시대와 불화하는 줄 알면서도 고치지 못하는 습성. - 「발견자들」, 200-201쪽.

정소연의 「발견자들」은 ‘삶과 죽음에 발견된 자들’을 그려낸다. 발견 자들은 ‘발견’ 이후 삶과 죽음을 초월하여 오래도록 ‘존재’한다. 그 존재는 삶과 죽음 어느 쪽에도 제대로 발을 들이지 못한 채 부유하는 것에 가깝다. 오랜 세월 발견자로서 살아온 애니는 그녀를 찾아온 지수를 통해 자신과는 다른 새로운 ‘존재’를 마주하며 연민을 느낀다. 그들은 모두 발견자이지만 그들이 ‘발견된’ 이유는 상이하다. 삶과 죽음 모두를 발견한 애니와 달리 지수는 죽지 않은 상태에서 오직 ‘삶’을 발견한다. 그리고 그것은 지수의 삶을 더욱 공허하게 만든다.

무슨 걸신들린 사람처럼. 다 먹지도 못했어요. 평소에는 밥을 많이 안 먹어서 세트 말고 단품을 주문하거든요. 돈가스랑 우동이 3분의 1쯤 남은 식판을 식기반납대에 집어 넣는데, 그 순간 삶을 발견했지 뭐예요. 저한테 서요. 정말 우스꽝스럽지 않아요? 그냥 배가 고팠을 뿐이잖아요? 아침 먹고 나가 점심 한 끼 거르고 저녁을 그렇게 처먹었으니 단식도 뭣도 아니었어요. 그런데 나이 서른에, 고작 열 시간 남짓 굶는 시늉을 하고, 이렇게 발견자가 되어버린 거예요. - 「발견자들」, 204쪽.

발견자로서 지수의 삶에 중요하게 개입된 것은 세월호를 떠올리게 하는 한 사고였다. 죽음의 진실이 파묻히는 것에 대한 저항으로 이어간 동조 단식에서 아이러니컬하게도 지수는 삶에 집착하는 자기 자신을 발견하다.

기획특집 ∙ 류수연 |

323


고작 반나절의 단식 이후에 음식에 집착하는 자신을 자각하며 그녀는 지독한 자기혐오에 빠진다. 여기서 중요한 것은 발견자로서 지수에게 삶이란 영혼의 비루함에 대한 인식에 가깝다는 사실이다. 놀랍게도 우다영의 「태초의 선함에 따르면」과 정소연의 「발견자 들」은 삶의 문제에서 초월한 존재들이 느끼는 지독한 고독과 고통에 주목하고 있다는 공통점을 보인다. 이것은 팬데믹으로 인해 모든 것이 ‘멈춤’한 2020년의 시대 현실로부터 멀지 않다. 각성자(「태초의 선함에 따르면」)와 발견자(「발견자들」) 모두 의도치 않는 깨달음 위에서 삶의 문제를 자각하게 된 존재들이다. 그것은 마찬가지로 의도치 않게 일상적인 삶을 박탈당하는 낯선 환경에 던져진 오늘의 우리를 떠올리게 만든다. 그리고 삶과의 거리두기는 역설적으로, 인간의 삶이 얼마나 폭력적이고 남루한 것인지를 자각하게 만드는 한 계기가 된다.

5. 다시 접속으로 2020년 언택트가 삶의 한 방식으로 등장한 이후, 한국문학은 새로운 방식의 접속을 가장 능동적으로 고민했던 한 해를 보냈다. 무엇보다 오늘에 대한 반성 없이는 그 어떤 가능성이나 대안도 공허할 수밖에 없음을 자각하 는 한 해였다고 평가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러므로 오늘의 우리가 추구해야 할 ‘다음’이 무엇에서 시작되어야 할지도 여기서 분명해진다. 그것은 오늘 로부터 어제를 사유하는 일, 바로 그것이다.

죽음과 삶을 발견하는 순간은 갑자기 찾아오지만, 그 발견을 숙고할 시간은 아주 오래, 아주 길게 주어진다. 발견자들은 결국 홀로 서야 한다. 오랫동안. 진짜 의심을 시작하고, 그 의심을 버리지 못해 사라지기 전까지 는 삶과 죽음을 보며 홀로 존재해야 한다. - 「발견자들」, 213쪽.

다시 접속의 시대를 마주하고 있는 지금, 우리는 인류의 긴 역사 속에서

324

| 뉴욕문학 제31집


부딪친 이 ‘멈춤’의 시대를 “아주 오래, 아주 길게” 사유해야만 하는 의무와 마주하고 있다. 그것이 접촉 그 이상의 것이 되어야 함은 자명하다. 그저 새로운 미디어에 편승하기에만 사로잡힌다면 그 길은 요원할 수밖에 없다. 팬데믹로 인해 성급하게 다가온 언택트 시대지만, 그것이 우리에게 세계라는 공동의 운명을 자각하도록 만들었다는 점에서는 고마운 계기가 되었음을 부정할 수 없다. 코로나19가 우리에게 던져준 공멸의 묵시록 앞에서, 문학은 무엇을 해야 하는가? 시대의 가속도에 편승할 것인가? 아니면 그 폭주를 막아낼 제동장치가 될 것인가? 지금이야말로 오래되고 낡은 것으로 치부되었던 그 ‘곱씹음’의 가치가 힘을 발휘해야 할 때다. 여전히 우리는 가능성 안에 있기 때문이다.

류 수 연 인하대학교 프런티어학부대학 교수. 문학/문화평론가. 인천문화재단 이사. 대중서사학회 연구이사. 인하대학교 국어국문학과 졸업 및 동대학원에서 석‧박사 학위를 받았고, 계간 『창작과비평』 신인평론상을 수상하며 등단하였다. 문학에 대한 연구와 비평을 토대로 대중문 화까지 관심을 확장해 왔다. 현재 르몽드 디플로마티크와 인천투데이에 칼럼을 게재하고 있으며, 다양한 지면에 글을 싣고 있다. 저서로 『뷰파인더 위의 경성-박태원과 고현학』, 『딸아, 연애를 해라』 등이 있으며, 공저로 『동아시아 한국문학을 찾아서』, 『할리우드 프리즘』, 『문화, on&off 일상』 등이 있다.

기획특집 ∙ 류수연 |

325


특별기고


특별기고

영어는 어떻게 국제어가 되었는가? 연 봉 원 (수필가)

오늘날 영어는 international을 넘어서 universal language라고 부를 정도 로 수많은 나라에서 제1 또는 제2 국어로 쓰고, 그 외 나라에서도 광범위하게 일상생활에서 쓰는 언어가 됐다. 약 2백 년 전 Schleicher 을 위시한 독일 학자들이 체계적인 언어학을 연구할 때 세계 언어를 약 2만으로 추정 했는데 지금은 약 5천에서 6천으로 보고있다. 이것은 어디 까지가 사투리고 어디까지가 독립된 언어인지 경계가 불분명한 언어가 천개가 넘기 때문에 생긴 차이다. 한가족 3명만 사용하는 언어도 있었는데 그나마도 최근 인도네시아에서 쓰나미 때문에 일가족 몰살로 사라져 버렸다고 한다. 하여튼 언어는 자꾸 사라져 간다. 한 천년 후에는 3개 언어 밖에 안남고 나머지 언어는 운이 좋으면 시어(詩語) 로 몇 단어 남을거라고 한다. 그러면 천년 후에 남을 3 언어는 어느 나라 말일가? 그건 아무도 모른다. Nicholas Ostler의 최근작 The Last Lingua Franca에 의하면 영어의 장래는 비관적이다. 그는 역사상 세계어로 통했다 사라진, 페르시아, 희랍, 라틴, 프랑스어의 예를 들고 영어를 국어로 쓰는 나라의 인구와 국력이 점차 줄어들고, 제 2 국어로 쓰는 나라들의 nationalism 의 대두로 영어의 영향력은 점차 쇠퇴되면서 2백 년도 안되서 역사의 뒤안길로 사라질 것 같다는 불안한 예언을 하고 있다. 예를 들면 인도, 파키스탄, 필리핀, 나이제리아 등지에서 영어 해독자 비율이 점차 줄어들고 있다고 한다. 나는 영어가 국제어가 된 것은 인류의 비극이라고 생각한다. 왜냐하면 서양 언어 중에 가장 배우기 어려운 언어이기 때문이다. 유우럽 언어 중에 특별기고 ∙ 연봉원 |

327


영어만 읽고 쓰는 규칙이 없다. 독일어나 러시아어처럼 명사에 성(性) 이 없고, 격(格) 변화가 없다고 만만히 보고 뎀볐다가는 큰코 다치는 것이 영어다. 한 예로 모든 유우럽어에서 A는 “아” 라는 발음 하나밖에 없으나 영어에서 는 아, 어, 애, 이 등 천차만별이다. 난 아직도 왜 knock, bomb 이라고 쓰고 발음은 엉뚱하게 해야 되는지 그 이유를 알 수 없다. 마찬가지로 우리나라 말에 까지 편입된 wild 란 단어를 “와일드”로 읽으면서 Wilderness 는 “와일드니스” 대신 “읠더니스”라고 읽어야 되는지 모르겠다.. Bernard Shaw가 노벨 문학상으로 받은 상금을 몽땅 영국 한림원에 기부하 면서 영어 철자법 간소화에 써 달라고 한지가 근 백년이 되지만 여태까지 몇 단어나 간소화 했는지 모르겠다. 그가 영어의 철자법이 말도 안 된다고 예를 든 것이 GHOTI 라고 쓰고도 FISH 로 읽을 수 있는 것이 영어라고 지적한 것이다. ENOUGH 의 GH=F 발음이고, WOMEN 의 O=I 발음이고, NATION의 TI=SH 발음이니 영어에서는 GHOTI 라고 쓰고 FISH 라고 발음 한다고 해도 누가 뭐라고 말할 수 있느냐는 것이다. 읽고 쓰는 일정한 규칙이 없고 매 단어마다 발음이 다르다 보니 아무리 영어에 대한 학식이 풍부해도 처음 보는 영어 단어는 자신 있게 읽을 수 없는 것이 영어다. 내가 아는 한 영어 단어와 같은 경우는 한문(漢文) 밖게 없다. 아무리 한문을 많이 아는 사람도 처음 보는 글자는 정확히 읽을 수가 없는 것이다. 1991년에 충청북도 출신의 許탁이란 이름을 가진 국회의원을 만난 적이 있다. 유별나게도 이분의 이름인 탁자는 물 수(水) 변에 돌 석(石)자를 쓰고는 탁이라고 읽는 것이다. 이 분이 허허 웃으면서 당시 한국에서 한학(漢 學)의 대가라는 모 교수에게 한문으로 이름을 쓴 명함을 건넸더니 허석 의원이시군요 했다는 일화를 직접 들었다. 아무리 한문의 대가도 “탁” 자를 “석” 자로 잘못 볼 수 있는 것이 한문이다. 328

| 뉴욕문학 제31집


Charles Dickens 가 1850년에 벗 John Foster에게 보낸 편지에서 “어려운 영어로 글을 써야만 하는 내 신세를 생각하면 신경질만 나내. 언제나 아름다 운 프랑스어로만 글을 쓸 수 있다면…” 하고 영문학의 대 문호가 한탄을 한다. “로빈손 크루소”를 쓴 Daniel Defoe는 “Your Roman-Saxon-Danish -Norman English” 라는 유명한 구절을 남겼는데 그 이유는 무엇일까? 영어의 역사를 일별해 보면 몇 번씩이나 역사에서 사라질 뻔하다가 기적적 으로 살아난 언어다. 영국에는 Celt 족이 살았고 Roma가 점령한 적도 있으나 영어의 역사는 5세기 경에 게르만족이 대량으로 영국으로 이주하면 서 시작한다. 게르만 족은 그 속에 수십 개의 다른 종족이 있었는데, 당시의 영국 본토인들은 이들을 일괄해서 Saxon이라고 부르다가 나중에는 Angli라고 불렀으며 나중에 Anglo Saxon 으로 부르기 시작했다. 마치 우리나라 고대 민족을 중국인들이 “예(濊)”라고 불렀다 “맥(貊)” 이라고도 부르다가 나중에 는 “예맥(濊貊)”이라고 부른 거와 마찬 가지다. 영국의 공식 언어는 5세기에서 10세기 까지 게르만 어였고 Celt 어는 사라져 버렸다. 천 년 전에는 영국과 오늘날의 독일에 사는 사람 사이에는 통역 없이 대화가 가능했다. 마치 1000년 전 일본과 백제(百濟)가 말이 통했던 것과 마찬가지다. 8세기 후반부터 약 200년간 바이킹의 침공으로 많은 Scandinavia 단어가 영어에 섞이기 시작했으며, 바이킹이 딴 민족처럼 영국에 정착해 계속 살았으 면 영어는 사라지고 여러분은 지금 덴마크 말 비슷한 언어를 배우고 있을런지 도 모른다. 서기 1066년에는 다른 게르만 민족인 노르만디족이 프랑스로 부터 침공(Battle of Hasting)해서는 영국을 다스렸는데 노르만디족은 민족 적으로는 게르만 족이면서 영국에 왔을 때는 프랑스어 밖에는 할 줄 몰랐다. 그 때 부터 본격적으로 영국에서 프랑스어가 쓰이기 시작했으며, 프랑스어 화한 라틴어와 희랍어가 학문적인 용어로 자리매김을 한 것이다. 노르만디

특별기고 ∙ 연봉원 |

329


족의 영국 점령은 모든 정부, 교회, 학교의 공식 용어를 프랑스어로 했으며 영국인들은 출세하거나 장사를 하거나 심지어 막 노동을 할래도 프랑스어를 할 줄 알아야만 했다. 영국은 급속도로 프랑스어화 하기 시작했다. 그 예로 영어에 ox, pig, sheep이란 단어가 있음에도 불구하고 그 고기는 beef, pork, mutton 이라고 한다. 그 이유는 영국인 하인이 쇠고기 요리를 해가면 ox나 calf 대신 주인이 프랑스어로 소라는 의미의 boeuf 라고 하는 말을 beef로 잘못 알아듣고, 돼지고기는 프랑스어의 돼지를 의미하는 porc를 pork로, 양고기는 양을 의미하는 프랑스어의 mouton 을 mutton으로 알아들어서 생긴 단어다. 이런 추세로 가다가는 영국에서 Celt 어가 사라진 것처럼 영어는 사라지고 전 국민이 프랑스어만 사용할 판이다. 어쩌면 여러분들도 지금 미국에서 그 어려운 영어와 씨름 할것이 아니라 아름다운 프랑스어를 말하고 있을런지 도 모른다. 한 세기 전 일본의 불문학자 사이또 교수는 “천국의 공식 언어는 프랑스어 일거다” 라고 프랑스어의 아름 다움을 극찬 했으니까. 그런데 여기에 기적 같은 일이 일어났다. 1348년에 영국 역사상 가장 참혹한 흑사병(pest)이 영국 국민의 3분의 1을 죽음으로 몰아갔고, 살아남은 사람도 성한 사람이 별로 없었다. 특히 귀족이나 성직자의 희생이 많아서, 일할 사람이 모자라 교육이 거의 없거나 무식한 사람들이 공무를 보거나 심지어 미사까지 드리는 판이라, 라틴어나 프랑스어 대신 영어로 말 할 수밖에 없었다. 일꾼이 모자라 급료를 올려줘야 했고 상대적으로 농민의 파워가 올라가면 서 영어의 파워도 상승하기 시작했다. 영어는 기적적으로 기사회생한 것이 다. 1362년에야 처음으로 영어가 영국 본토에서 official language로 인정을 받았다. Chaucer 의 “The Canterbury Tales”는 Shakespeare 보다도 200년이나

330

| 뉴욕문학 제31집


앞선 작품인데 20퍼센트 이상이 프랑스어 에서 온 단어다. Chaucer 라는 이름 자체가 고대 프랑스어의 shoemaker를 의미하는 Chausier 에서 유래한 다. 그 후 Wycliffe 의 성경 번역으로 영어의 지위는 확고부동하게 되었고, Shakespeare 의 수많은 작품, 영국에서 시작한 산업 혁명, 빅토리아 여왕이 공언한” 대영제국은 해지는 날이 없다”는 세계 각국에 산재한 식민지, 그리고 일차 세계 대전 승전국인 미국의 세계 리더의 부상으로 영어는 국제어가 된 것이다. 프르시아의 철혈 재상 Bismarck는 현대사에서 가장 획기적인 일을 꼽으라 면 “미국이 영어를 쓰는 국가”가 되었다는 사실 이라고 했다. 사실상 미국의 부상으로 영어는 올라가고 상대적으로 독일어의 위상은 추락하기 시작한 것이다. 오늘날 세계 인구의 7명중 한명은 영어를 사용하고, 세계 출판물의 반 이상이 영어로 쓰여졌고, 국제 전화의 70 퍼센트 이상이 영어로 말하며, 60퍼센트 이상의 라디오 프로그램, 70 퍼센트 이상의 각종 편지, 문서가 영어로 작성되며 80 퍼센트 이상의 컴퓨터 사용 언어도 영어다. 영국의 David Crystal 교수는 “문법은 복잡하고, 발음은 괴상하고 철자법은 요상한 (bizarre) 영어” 가 국제어가 된 것은 언어학적으로는 설명할 수 없는 현상이 라고 했다. 20 세기 초까지 이어온 영어와 프랑스어의 싸움은 영어의 판정승으로 결판이 났는데 그 이유를 세계 최 강대국인 미국이 영어를 쓰기 때문이라고 하면 너무 안이한 결론이라고 생각한다. 영어의 강점은 세계 각국어를 빨아드리는 초강력 진공 소제기(vacuum) 같은 흡인력과, 다른 어떤 서양어보다도 flexible 하다는데 있다고 본다. 영어에는 이미 50 개국 넘는 나라 말이 점잖게 Oxford 대영 사전에 영어로 등재되어 있다. (한국어도 김치, 재벌 이란 단어가 영어로 등록되어있다) 한 언어의 낱말이 십만 이상이면 문화어로 취급되는데, 영어는 공식적으로 약 60만 단어가 있다(최신 한글 사전은 약 40 만 단어가 수록되어있다). 특별기고 ∙ 연봉원 |

331


그러나 Jonathan Green에 의하면 세계 각국에서 영어로 취급되는 모든 단어, 공식어, 학명, 토착어, 현지어, 속어, 비속어, 사투리, 일상 회화 단어 등을 다 모으면 놀라지 마시라 약 4백만 단어가 된다고 한다. 이중에는 일본, 한국에서만 통하는 old miss 라든가 의미가 다르게 한국에서 사용되는 fighting도 물론 포함 된 것이다. 이것도 모자라 “당연히 영어 사전에 수록되어야 하지만 아직 기재되지 않은 영어 단어를 모은 사전”이 있다고 하면 독자들은 믿을 수가 있겠는가? 그렇지만 믿어야 한다. Jack Hitt가 1992년 뉴욕에서 발간한 “In a Word: A Dictionary of Words that Don’t Exist but Ought to” 라는 책이 엄연히 존재하기 때문이다. 여기서 두 단어만 인용하면, fruth (true+false)=” not quite true but not quite false” 와 spilleng = “intentional misspelling 등이다. 이 단어들은 영어 사전에는 없지만 당연히 자격이 있다고 주장하면서 그런 단어들만 모아서 사전을 만들었으니 기가 찰 노릇이다. 영어의 flexibility는 극단을 넘어서 남용의 수준까지 왔다고 보는데, 만일 글을 쓰다가 마땅한 단어가 없을 때는 새 단어를 만들면 된다. Shakespeare 는 약 2천개의 새 단어를 그 작품에 만들어 썼고, 1903년 Bernard Shaw는 feminist 라는 단어에 상대되는 영어 단어가 없자, 시치미 뚝떼고 hominist 라는 단어를 만들었으며, 우연히 발견한 행운이란 뜻으로 쓰는 serendipity 라는 단어는 18세기 중반에 Horace Walpole 이 친구 Mann에게 보낸 편지에서 처음 쓴 단어다. (Sri Lanka의 옛 국가명Ceylon 동화에서 따온 단어인데 Serendip은 Ceylon의 아랍어식 발음이다.) 영어의 또 한 가지 특징은 비슷한 낱말이 굉장히 발달했다는 사실이다. Benjamin Franklin 의 Drinker’s Dictionary 라는 책에서 “drunk” 의 유사 단어를 228개나 나열했으며, Paul Dickson은 2,660 개의 비슷한 단어를 발견하여 기네스북에 최다 유사단어 기록으로 올라갔다. 이런 장단점을 골고루 가지고 있는 영어를 쓰고 있는 나라에 살고 있는 우리는 행운아 일가 비극의 주인공일가? 독자의 판단에 맡긴다.

332

| 뉴욕문학 제31집


2021년 신인상 작품


제29회 뉴욕문학 신인상 시 당선작

못 아브라함 유 어찌 그대만이 시린 못으로 나를 찔렀겠는가 나도 모르게 찔렀음을 알았다네. 내 아픔을 표내지 않듯이 그대 또한 속으로 아픔을 삭였겠지. 그래서 먼 동네로 나뉘어 가도 미운 생각 나지 않고 못이었던 때때로의 나를 미워했네. 지금 내 왼몸 흝어보며 그대 울린 못을 뽑으려 보니 어느새 그 못들은 내 전신에 박혀 참을 수 없는 아픔의 가시가 되어있네.

334

| 뉴욕문학 제31집


제29회 뉴욕문학 신인상 시 부문 수상소감 당선작 아브라함 유 - <못>

문학을 업으로 살고자 함은 아니었다. 서울에서 뉴욕으로 온지 40년이 다 되어가지만 주소만 뉴욕일 뿐(지금은 뉴저지지만)일 년의 대부분을 한국을 비롯하여 유럽, 러시아, 중국, 홍콩, 사우디, 이집트 등 중동에서 생활했다. 외국 기업들과의 비즈니스가 내 전문 역할이었으므로 어쩔 수 없었다. 낯선 객지의 숙소에서 밤이 되면 쉽게 잠이 오지 않아 일기처럼 문득문득 떠오르는 상념들을 노트하기 시작했다. 그렇게 모인 노트가 수십 권이 되었 다. 나름대로 시라고 쓴 것도 있고, 산문 같은 것도 있고 비망록 같은 것도 있다. 마감 날이 임박하여 뉴욕문학 공모를 알게 되어 쌓여있던 노트들을 들춰 응모한 다섯 편의 시중 ‘못’이 당선의 영예를 안았다니 놀랍고 기쁘고 고맙다. 한 생애를 살면서 사람들은 수없이 남의 가슴에 못을 박는다. 심지어 부모와 자식 간에, 형제 자매간에, 친구 사이에, 부부사이, 연인 사이에도 못처럼 아픈 상처를 주고받는다. 그래서 이 시 ‘못’은 내가 쓰는 하나의 참회록이다. 황혼의 길녘에 서 있는 내게 문인의 길을 열어주신 양정숙 회장님과 심사해주신 선생님들께 감사의 말씀을 전합니다. 아브라함 유 대졸. ICC 재직: Fashion 창출, 한국브랜드의 세계화 Imagery 발판 구축 VIDA Group: Fashion consulting for Jewish Global footwear and apparel Vida group for R&D, Marketing/Sales 현재: Freelancer consulting for CEOs Abrahamonly@gmail.com

시 신인상 ∙ 아브라함 유 |

335


제29회 뉴욕문학 신인상 시 가작

한마디 정 종 환 연주가 아니라 연주하게 하려고 60년 넘게 피아노 앞에 앉고 있다 조율, 올림과 내림의 타협 음 하나 이웃 음들 없이는 소리가 될 수 없음을 모르거나 흑백 건반들, 청중을 알지 못하는 연주자 불평 불만을 숨죽인 조율로 승부하며 피아노로만 사랑받는 조율사 연주자 최고 연주 객석 "브라보"를 위해 무대 뒤에 서서 내일의 조율을 다짐하면서 "할 만하다"

336

| 뉴욕문학 제31집


제29회 뉴욕문학 신인상 시 부문 수상소감 가작 정종환 - <한마디>

50년 결실을 맺게 해 주신 미동부한인문인협회에 감사드립니다. 시인은 역사의 보초병이며, 시는 삶의 흔적들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래서 펜은 언제 나 두려움이었습니다. 사실 제가 시를 탐했다면 50년 세월을 지켜내지 못했을 것입니다. 재주가 없어서 그랬던지 오직 사랑하는 마음 때문에 시를 멀리 하지 못했던 같습니다. 욕심보다 사랑이 더 끈질기다는 사실도 깨달았습니다. 때로는 역사의 소용돌이 속에서 두려움에 눌려 책상을 떠난 적도 있었지만, 시만은 언제나 제 곁을 지켜주었습니다. 한국 부모님에게 전화를 해서 뉴욕문학 신인상 가작 통보 받았다고 전했습 니다. 아버님은 아무 말도 안 하시고 듣기만 하시다가 가끔 그래 하시는데 이 단어에 아버님의 만족과 평안을 느꼈습니다. 어머니께서는 아내가 제가 돈만 생기면 책 사들고 온다고 눈물을 훔쳤다는 말도 해 주셨습니다. 또 제 빨래를 할 때 속옷 팔꿈치가 다 떨어져서 마음이 아팠다는 말씀도 해 주셨습니다. 수십년 인내하면서 쫓아내지 않고 사랑으로 품어주고 있는 부모님과 아내 박민이, 아들 정의와 며느리 김지영, 딸 정나라와 사위 조전일에게 고맙다는 말 전하고 싶습니다.

정 종 환 1998년 원광대학교 철학과 박사 2013년 Georgia Christian University 신학박사 2018년 Blanton peal lnstitude 상담사 2021년 미주한국문인협회 시 부문 신인상 수상 경력: 강의, 목회, 상담 fhlkr66@gmail.com

시 신인상 ∙ 정종환 |

337


제29회 뉴욕문학 신인상 시 가작

수 첩 하 명 자 어느 날 무심코 서랍을 열었다. 오래된 수첩 소리들이 좁쌀처럼 박혀 있다. 주머니에 숨죽여 있던 작은 목소리, 언제 그렇게 말했나, 늘 그랬잖아, 팔딱 팔딱 뛰는 소리 새어 나온다. 적어놓지 않는 말 일상처럼 뒤따라 깨어난다. 단풍든 숲 길 따라 구름 한 점 없는 하늘 흙에 젖어 아득 바랜 낙엽들, 덩치 덩치 길 위에 누워 무엇을 꿈 꾸는지 적어 둔 몇 글자 슬몃 고개 들고 묵혀 둔 기억, 늦은 가을 하늘 붉게 물들어 흐른다.

338

| 뉴욕문학 제31집


제29회 뉴욕문학 신인상 시 부문 수상소감 가작 하명자 - <수첩>

시는 오래 전부터 내 마음에 살고 있었다. 2019년 가을 우연히 친구의 초대로 뉴욕문협 1박2일 가을여행에 참여했는 데 바쁜 이민생활 속에서도 시를 쓰고 책을 내며 살아온 문인들의 열정에 놀랐고 한국에서 오신 김언종, 김종희 교수님들의 문학에 대한 강의에 시간가 는 줄 몰랐다. 팬데믹의 일상은 책과 가까워졌고 시인들의 강의를 온라인으로, 줌으로 대면하면서 밤낮으로 시를 썼다. 새로운 시작을 열어주신 그분께 감사드리고 늦은 시작에 용기를 준 남편, 시문학회 회원들에 힘입어 졸작의 부끄러움을 안고, 기회를 주신 심사위원 님들과 뉴욕문학에 깊히 감사드린다.

하 명 자 미주 한국문학 신인상 수상 2021 전직 간호사 Cohen Children’s Medical Center Northwell Health New York (1973-2020) 서울대학병원 (1969-1970) cosmos519@me.com

시 신인상 ∙ 하명자 |

339


제29회 뉴욕문학 신인상 시 부문 심사평

당선작 : 아브라함 유 <못> 가작 : 정종환 <한마디>, 하명자 <수첩>

좋은 시와 아쉬운 시 시가 되기 위한 시의 3요소를 떠 올리면서 시들을 대하게 되었습니다. 도대체 어떤 기준이 시가 되는가? 왜 시이며 시가 아닌가? 우선 시쓰기와 시 쓰는 법, 시의 구성법을 알아야 합니다. 설명하지 말고 묘사해야 합니다. 흔한 크고 작은 하잘 것 없는 대상을 시로 낯설게 표현하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시를 어떻게 쓸 것인가 고민해야 합니다. 시에서 인식의 전환이 중요한 이유 시의 정신, 시의 분류, 시는 왜 쓰는가, 시와 사회의 상관 관계 등등ÿÿ. 다양한 수사법들을 알고 써야 합니다. 쓰고 읽는 이들에게 감정 정화를 부여해 주어야 합니다. 마음 상처를 치유하는 힘이 있어야 합니다. 일반적 공감, 메시지 효과, 마음을 정화 순화시켜 주어야 합니다. 내가 사물을 보고 내가 먼저 변해야 합니다. 그래야 그 시가 나를 떠나 세상밖에 나아가 사람의 마음을 바꾸고 정화시켜 세상을 밝게 할 것입니다. 그래서 시인이 살아 있는 세상. 살맛나는 웃음 가득한 세상이 되어야 합니다. 이에 걸맞는 시들이 이번에 심사를 하는 과정에서 여러 편이 돋보였습니다. 그 중에 아브라함 유씨의 ‘못’ ‘박제된 풍경’ ‘여백’, 정종환 씨의 ‘한마디’ 하명자 씨의 ‘수첩’, 시적으로 잘 묘사 효과적으로 구체적으로 잘 묘사를 했습니다. 진실을 발하는 싸움 리얼한 묘사 신선하게 새롭게 효과적으로 감성적으로 뚜렷하게 전달을 했기에 아브라함 유씨의 시 중에서 ‘못’을 당선작으로 선정을 했습니다. 그리고 정종환 씨의 ‘한마디’와 하명자 씨의 ‘수첩’ 두 시를 가작으로 세 심사위원들의 생각이 일치하여 선정하게 되었습니다.

340

| 뉴욕문학 제31집


문학의 정신을 잃지 않고 계속 정진하길 바라면서 당선된 분들을 축하합니 다. 아울러 미동부 한인문인협회가 나날이 발전하여서 문학도들이 걸어가는 길에 초석이 되길 바라는 마음입니다. (윤영미 시인)

오십여 편의 시를 읽으면서 삶의 현장에서 겪고 느낀 것들을 시라는 장르를 통해 표현하려는 절실함이 엿보였다. 아브라함 유의 ‘못’을 당선작으로 선정한다. 대상을 관찰하고 느끼며 언어로 표현하는 일에 시간을 많이 들인 듯하다. 누군가의 가슴에 박기도 하고 타인에 의해 박히기도 하는 못의 특성을 통해 상처와 아픔, 가해와 피해가 하나의 통점(痛點)이었다는 시적 인식에 주목했다. 시적 대상과의 거리조절도 적절하고 투고된 다섯 편의 시가 고루 간결하고 절제되어 있다. 정종환의 ‘한마디’, 하명자의 ‘수첩’을 가작으로 선정한다. 두 분 모두 관찰의 섬세성이 돋보이고 대체로 시적 표현이 과장 없이 무난해 보인다. 당선을 축하하며 당선을 계기로 더욱 정진하시길 바란다. 당선권에 들지 못한 다른 응모자들도 습작을 놓지 마시길 당부 드린다. 다만 “시란 감정의 해방이 아니고 감정으로부터의 탈출”이라고 한 엘리엇의 말을 전하고 싶다. (조성자 시인)

* 2021 신인상 시부문 심사위원: 윤영미, 조성자, 이정강

신인상 시 심사평 |

341


제29회 뉴욕문학 신인상 시조 당선작

민들레의 꿈 주 동 완 고향집 마당가에 옹기종기 피어난 아무도 돌보지 않는 노오란 민들레 꽃 그 자리 그냥 그대로 말라진들 어떠리 어느 봄날 파란 하늘 뭉게구름 피어날 때 민들레 씨 훨훨 날아 바다 건너 산을 넘어 머나먼 신세계 땅에 뿌리 내려 살고저 오늘도 쉬지 않고 달려온 하루하루 낯 설은 타향살이 이제는 고향인 듯 살아낸 길고 긴 역사 민들레 꿈 익는다.

342

| 뉴욕문학 제31집


제29회 뉴욕문학 신인상 시조 부문 수상소감 당선작 주동완 - <민들레의 꿈>

‘당선소감’ 듣기만 해도 가슴 벅찬 말이다. 그런데 나에게 당선소감을 쓰라고 한다. 나에게도 이런 순간이 오다니... 이런 기회를 주신 미동부한인문 인협회 회원분들과 심사위원 여러분들께 감사드린다. 뉴욕에서 30여 년을 살았다. 최근에 급격히 변해가는 뉴욕, 플러싱이 오히려 낯설다. 삐죽삐죽 튀어나온 고층건물들로 인해 뉴욕의 마천루는 이미 균형을 잃었다. 여름 한낮 나른한 오후 플러싱의 고즈넉했던 모습은 을씨년스런 형태로 변형되어 가고 있다. ‘장미수예사’, ‘조선옥’, ‘장원루’, ‘도레미’, ‘구화식품점’, ‘로얄식품점’, ‘롯데마트’ 등 친숙했던 이름의 한인 가게 간판들은 이제 이방의 글자들로 쓰인 간판들로 바뀐 지 오래다. 이러한 이방언어의 간판들이 걸린 건물들이 플러싱 코리아타운에서 높이 올라갈 수록 그 길을 걷는 내 마음에는 뜻 모를 슬픈 그림자가 길게 드리워진다. 한인들이 어떻게 일구어 놓은 플러싱 코리아타운인가? 이삼백 불 들고 케네디 공항에 떨어져 막막했던 시절이 엊그제 같은데, 새벽잠 설치며 헌츠 포인트 청과도매시장에서 풀톤 어시장에서 과일, 야채, 생선 떼다 팔아 자식들 교육 시키고, 무슨 무슨 갱단으로부터 우리 자녀들을 보호하려고 노력하고, 조금씩 조금씩 가게 터전을 늘려 149번 가에 ‘먹자골목’을 만들었 고, 이젠 대형 슈퍼마켓이 곳곳에 들어서고, 노던 블러바드를 타고 동쪽으로 동쪽으로 넓혀 이제는 베이사이드를 넘어 낫소 카운티까지 코리아타운의 경계를 넓혔다. 맨해튼 중심에 ‘코리아 웨이’라는 길표지판을 설치하고 추석맞이 민속대잔 치와 퍼레이드 등 뉴욕 일원에 9개의 축제가 매년 열리는 뉴욕 코리아타운이 다. 그렇게 한뼘 한뼘 넓혀온 코리아타운이다.

시조 신인상 ∙ 주동완 |

343


이 뉴욕 코리아타운의 주인공인 한인들은 노란 ‘민들레’다. 한국의 어느 집, 어느 마을 어귀에서도 볼 수 있었던 민들레와 똑같은 민들레가 미국에도 있다. 낮은 자세의 그 순수함, 끊어지지 않는 그 생명력, 기어코 아름다운 하얀 솜털 씨를 맺고 마는 그 의지는 바로 코리아타운을 만든 우리 한인들의 저력이다. 그런 한인들의 모습과 마음을 우리의 전통 노래틀인 시조에 담고 싶었다. 앞으로도 계속...

주 동 완 현 코리안리서치센터 원장 전 한국외국어대 지식콘텐츠학부 교수 전 New York Theological Seminary 사회학 교수 고려대 사회학과 학사 졸업 한국학대학원 한국사회전공 석사 졸업 뉴욕시립대 사회학 박사과정 수료 한국외대 글로벌문화콘텐츠학 박사 졸업 『코리아타운과 한국문화』 공저 『코리아타운과 축제』 공저 『한국에서 아시아를 찾다』 공저 외 krci4@hotmail.com

344

| 뉴욕문학 제31집


제29회 뉴욕문학 신인상 시조 가작

나눔 이 동 규 대추나무의 대추들이 익어가면 갈수록 사방을 두리번 거렸던 다람쥐 한쌍 잘 익은 대추를 입에 물고 팔딱 팔딱 달아난다. 복숭아 꽃이 피면 벌들이 찾아오고 열매를 맺고 자라 자아알 익노라면 새들과 다람쥐가 주인인양 마구 먹어 치운다.

시조 신인상 ∙ 이동규 |

345



제29회 뉴욕문학 신인상 시조 부문 심사평

당선작 : 주동완 <민들레의 꿈> 가작 : 이동규 <나눔>

당선작으로 주동완의 <민들레의 꿈을> 선정했다.

고향집 마당가에 옹기종기 피어난 아무도 돌보지 않는 노오란 민들레꽃 그 자리 그냥 그대로 말라진들 어떠리 어느 봄날 파란 하늘 뭉게구름 피어날 때 민들레씨 훨훨 날아 바다 건너 산을 넘어 머나먼 신세계 땅에 뿌리 내려 살고저 오늘도 쉬지 않고 달려온 하루하루 낯 설은 타향살이 이제는 고향인 듯 살아낸 길고 긴 역사 민들레꿈 익는다

<민들레의 꿈>은 연시조로서 첫 수에서 아무도 돌보지 않는 먼 고향의 말라진들 어쩔 수 없는 풀꽃이지만, 둘째 수에서는 반전을 통하여 민들레씨는 바다건너 산을 넘어 머나먼 미지의 땅에 뿌리내리며 신세계에 적응하는 강인한 디아스포라의 꿈과 진취력을 보여준다. 제3수에서는 <오늘도 쉬지 않고 달려온 하루하루>라고 첫장에서 선포하 며 낯설은 타향이 새 고향이 되는 긴 역사를 이뤄낸 당당한 민들레의 꿈으로

신인상 시조 심사평 |

347


또다른 반전을 보여준다. 마지막 <민들레꿈 익는다>로 방점을 찍으며 낯설은 타향의 어려움을 극복한 강인한 삶의 의지와 꿈을 선포함으로 탄탄한 시적 구성력을 보여준다.

가작으로는 이동규의 <나눔>을 선정했다.

대추나무의 대추들이 익어가면 갈수록 사방을 두리번 거렸던 다람쥐 한쌍 잘 익은 대추 입에 물고 팔딱 팔딱 달아난다. 복숭아 꽃이 피면 벌들이 찾아오고 열매 맺고 자라 자아알 익노라면 새들과 다람쥐 주인인양 마구 먹어 치운다.

작품 <나눔>은 기본적 철자법이 틀린 것이 보였으며, 종장에서 시조 형식에 맞지 않는 것이 보였지만 앞으로의 시조시인으로 정진을 바라며 가작으로 선정했다. 평시조는 3장 6구 12 음보로 구성된 시형식이다. 그 형식을 3장 6구 45자 내외로 규정하고, 이에서 몇자를 가감할 수 있는 신축성있는 형식이라 하겠다. 시조는 우리 말의 기본 마디인 3.4 조나 3.5조로 이뤄지며, 특히 종장에서는 3, 5(또는 그이상 자수). 4. 3(4) 조를 기본 음보로 구성된다. 시조작법을 세밀히 공부하며, 좋은 시조를 많이 읽기를 바란다.

* 2021 신인상 시조 부문 심사위원: 이정강 시조시인

348

| 뉴욕문학 제31집


제29회 뉴욕문학 신인상 수필 당선작

‘떠남’에 대하여 곽 경 숙

나는 변동을 싫어한다. 아니 떠나 보내는 것이 싫고 두렵다. 비록 그 후에 더 나은 것이 온다 할지라도…. 지금 사는 집도 거의 40년 째 같은 집에서 살고 있다. 직장은 미국에 와서 연방 공무원으로 28년을 근무했다. 차도 한번 새것을 사면 그야말로 그 차가 수명을 다할 때까지 타고 다녔다. 엔진이 과열되어 맨하탄에서 서는 바람에 보내줘야 했던 은회색 셰비 노바 10년, 너무도 시선을 끌게 정열적인 빨간색의 센츄라 8년, 이 차는 2번이나 도둑을 맞았다가 두 번 다 주인을 찾아 돌아왔으나 주인을 떠나 있는 사이에 차가 제대로 보살핌을 받지 못해 제 수명을 못채웠다. 독특한 메탈릭 살빛 혼다 시빅 19년, 그리고 지금도 내가 18년째 타고 다니는 2003년도에 출신된 은빛 현대 싼타페. 나무로 만든 빨래 건조대도 막내가 태어났을 때 빨래는 자연 햇볕에 말려야 소독이 되고 위생적이라는 남편의 지론에 따라 천으로 만든 기저귀를 널어 말리려고 산 것을 지금도 잘 쓰고 있는데 그 애가 얼마 전 마흔 살이 되었으니 40년을 내 곁에서 동고동락하고 있어서 기특하고 고마울 따름이다. 며칠 전 30여 년 동안 어머니의 주치의이셨던 닥터김이 이번 5월에 은퇴하 신다고 연락이 왔다. 가슴 한 구석이 텅 비어가는 느낌이 들었다. 그 분도 연세가 계시니 이제 쉬실 때가 되셨지만 이제 어머니는 어디서 어떻게 새로운 주치의를 찾는다는 말인가? 또 겪어보기 전에는 어떻게 상호신뢰의 벽을 쌓을 수 있단 말인가?

수필 신인상 ∙ 곽경숙 |

349


나의 경우는 35년을 함께 하며 내 막내를 낳을 때도 분만을 도와주시던 산부인과 닥터가 은퇴할 때도 참으로 암담했으나 우여곡절 끝에 믿음이 가는 훌륭한 여의사를 만나게 되어 감사하고 있다. 나는 그냥 우리집 마당의 청포도 나무들, 4월 초 열흘간만 활짝 꽃피우며 화무십일홍을 되새기에 하는 자목련, 봄이면 구절초 모양의 우윳빛 꽃을 피우고 가을에는 자두색 앙증맞은 열매가 쪼로롱 달려 가을의 정취를 붇돋우 어 주며 세월이 흘러도 거의 자라지가 않아 손갈데가 없어 내가 정말 아끼는 도그우드, 한국에서 누가 가져와 선물로 주어 심었더니 크지는 않지만 달고 시원한 배를 맛보게 해주는 신고배나무도 계속 내 곁에서 있어주었으면 좋겠다. 그래서 이제 나이도 있고 하니 여름이면 잔디깍기, 가을이면 낙엽쓸기, 겨울이면 눈치우기가 힘에 부칠 것이니까 이제 이 집을 정리하고 단촐하게 코압이나 콘도로 이사가는 것이 어떻겠냐는 아이들의 합리적인 제안에도 나는 응수를 안한다. 그리고 내 이웃들은 어떤가. 왼쪽 잣나무 울타리 너무 빌네는 내가 이 곳으로 이사오기 전부터 살고 있던 사람들인데 나와 같이 동네를 산보하면서 친하게 지내던 그 어머니는 몇년 전 뇌졸증에 걸려 고생하시다가 작년에 돌아가시고 그 아들 빌이 처자식과 살고 있는데 항상 나를 보면 무슨 도와줄 것이 있으면 말하라고 입버릇처럼 말한다. 실제로 며칠 전에는 엄마 휠체어에 서 마룻바닥으로 미끌어져 내가 못 일으키자 밤 10시가 넘었는데도 와서 침대로 올리는 것을 도와주었다. 오른쪽 무궁화나무 울타리 너머 조우와 미미 부부는 둘다 열두살 무렵에 이태리에서 건너 온 이미 1세대라 우리와 생각이 비슷하고 우리 집에 무슨 기능적인 문제가 있으면 바로 전화하는 곳이 미미네다. 이웃사촌이라더니 며칠에 한 번씩 전화를 걸어 안부를 챙기고 우리가 장기간 집을 비울 일이 생기면 잔디깍고 눈치우는 것을 자기 집인양 다 해결하고 사례라도 할라치면 손사레를 치며 안 받으려고 하는 내 좋은

350

| 뉴욕문학 제31집


이웃을 나는 떠나기 싫다. '있을 때 잘해'라는 유행어도 누가 처음에 했는지 몰라도 정작 가슴으로 다가오는 경우이다. 떠나고나면 후회만 남고 아무것도 해줄 수가 없으니 결국에는 떠날 것을, 헤어질 것을 항상 유념한다면 용서할 수도 있고 너그럽 게 아량을 베풀 수도 있었는데 우리는 왜 미워하고 정죄하며 살고 있을까 자문해 본다. 내가 잡으려 해도 세월은 주먹 속의 모래알들처럼 잡을수록 더 빠져나가고 있고 나를 포함해 모든 것을 제 갈 곳을 향해 표표히 떠나가고 있다는 것을 알아야겠지. 따지고보면 죽음이란 것도 모든 정들고 사랑하던 사람들에 게서 영원히 떠나는 것이 아닌가. 그 인연의 끈을 놓지 못해 맘 아파하고 슬퍼하는 우리들이 아닌가. '꽃병 속에서 서서히 잎이 바래 죽어가는 백일홍을 바라보며 나는 죽음의 춤을 체험하지 무상에 대해 슬퍼하며 한편으로는 소중하게 받아들이기. 가장 무상한 것이야말로 가장 아름다운 것이며, 죽음이야말로 아름다운 꽃피움이며 너무도 사랑스러운 것일 수 있네.' 헤르만 헤세 '정원 일의 즐거움' 중에서

수필 신인상 ∙ 곽경숙 |

351


제29회 뉴욕문학 신인상 수필 부문 수상소감 당선작 곽경숙 - <‘떠남’에 대하여>

지난 2년 동안 두 번이나 연거퍼 사랑하는 가족들과 영원한 이별을 고해야 했다. 그 상실감에 휘어져 너부적거리는 나 자신을 가눌 수가 없어 휘청거리 고 있었다. 같이 울고 웃었던 이제는 다시 돌이킬 수 없는 머무르고 싶었던 아름다운 순간들…. 그 때는 이렇게 빨리 헤어지리라고는 상상조차 못해서 더 소중하게 대해주 지 못했던 것이 뼈아픈 회한으로 남는다. 헤르만 헤세의 작품 '정원 일의 즐거움'을 읽으며 위안을 받았다. 우리도 생성과 소멸이 반복되는 자연의 일부란 것을 다시 깨닫게 해주었다. 그 대열에서 누구도 이탈할 수 없음을 새삼스럽게 깨달았다. 나 자신을 겸손히 되돌아보며 긍정적인 밝은 에너지를 느끼며 이 글을 썼다. 이번 수상이 불쏘시개가 되어 앞으로 정진하여 내가 쓴 글 한 줄이 누군가에게 위로가 되는 글을 쓰고 싶다.

곽 경 숙 경북대 국어교육과 서울대 대학원 신문학과 시튼홀 대학교 이중언어 전공 "창조문학" "해외 기독문학" 시 등단 뉴욕시 문학회, 해외기독문학회 회원 kskwak51@hotmail.com

352

| 뉴욕문학 제31집


제29회 뉴욕문학 신인상 수필 부문 심사평

당선작 : 곽경숙 <‘떠남’에 대해>

수필은 개성적이고 자기 고백적인 문학이다. 자신의 체취와 개성이 강하게 풍겨나는 인간미에 그 바탕을 둔다. 그런 의미에서 괵경숙 님의 <'떠남'에 대하여>를 당선작으로 뽑았다. 자전 적 경험들이 차분하게 잘 쓰여져 있고, 제목과 서두, 주제와 소재, 문맥과 문세 등 문장의 흐름이 좋았다. 아쉬운 점이 있다면 수필을 쓸 때 무엇보다 중요한, 자기 체험 자체를 관조적 안목으로 응시하고, 자기 성찰의 과정이 사색을 통해 표현 되었다면 문학성 있는 작품이 되지 않았을까 하는 점이다. 앞으로 그런 수필을 생산할 수 있으리라 기대해 본다. 이번에 응모된 수필 작품들 중에는 응모 기준에 못미치거나, 수기나 기행문 등, 입상작이 되지 못한 작품들에 대한 안타까움이 컸다. 차기 수필 응모 기회에 꼭 참여 하셔서 좋은 결과 얻으시기를 바란다. (김명순)

* 심사위원: 김명순, 이춘희, 양정숙

신인상 수필 심사평 ∙ 곽경숙 |

353


제29회 뉴욕문학 신인상 소설 가작

십자매의 외출 김 근 영

1. 새장 속에서 가뜩이나 논산 훈련소에서 맞은 그 정체불명의 주사 속에 무슨 수상한 약물이 들어 있었는지는 모르나 병든 장닭 마냥 졸고만 있던 우리는 두 차례의 유격훈련, 산악훈련 등으로 기진맥진하여 오직, 대한민국 국방부 장관의 의지대로만 끌려가고 있었다. 호랑이라도 금방 나올 것만 같은 깊은 강원도 산골짝, 이 곳의 동전만한 하늘은 아직 이른 오후인데도 벌써 어둠을 재촉하고 있었다. 비포장도로로 질주하는 덮게도 없는 군용 트럭은 도대체 어디로 가고 있는지, 우리 동기 다섯 놈들을 싣고 어디론가 달리고 있었다. 두려웠다. 아니 그것보다 무덤보다 더 짙은 침묵이 오히려 더 무서워 필경은 눈을 지그시 감고 있는 두천을 깨웠다. “야, 두천아! 너 우리가 지금 어디로 가고 있는지 아나?”하며 말을 걸어보았 다. “아 내말이가? 지금 필경이 너 따라가고 있쟎냐!” 부산 사투리에도 전형적인 마마보이인 두천이답쟎게 일부러 여유있는체 하는 그에게 긴장을 은폐하고 있던 필경이 긴장을 늦추며 조크를 시도했다. “두천이 너, 치마두른 사람, 구경 못한 게 벌써 2달 넘었지? 내 생각엔 우리가 지금 가는 막장까지 가면, 아마 1년 후 쯤에나 치마두른 사람 구경할 수 있을걸!”했는데, 아니나 다를까 벌써부터 가끔 봇찜지고 가는 아낙네 모습마저도 뚝 끊겨 버렸다. 한 치의 희망도 없는 듯한 깜깜한 어둠을 헤치고 우린 어디론가 팔려가고 있는 느낌이었다. 방금 트럭엔 라이터가 켜졌고, 요란한 풀벌레 울음소리

354

| 뉴욕문학 제31집


속으로 가물 가물 들려오는 이북 여자 아나운서의 대남방송은 언제 들었는지 유난히도 귀가 밝은 두천이 놀라며, “필경아, 너 방금, 1년 후에나 치마두른 사람, 구경할끼라켔째.? 잘 들어 보거라. 저거 여자 목소리 아이가? 저 산 너머 여자가 분명 있어!” 하며 꼭, 여자에 홀린 사람같이 떠들어대고 있었다. 우리를 실은 트럭이 추풍령만한 고개 하나를 더 넘어서니, 정말, 앙칼진 평안도 사투리 여자 아나운서의 목소리가 또렷했다. “켓세라 세라!” 한숨만 쉬며 연거푸 줄담배만 피고 있던 철학도, 상구가 ‘될대로 되라’는 제스처를 하며 꽁초를 홱 던지면서 신경질적 어조로 한마디 거든다. “저것들, 지끔이 어느 땐데 팔자 좋은 소리만 하고 있노! 여자 좋아하시네! 필경이 넌, 예수 믿는다 카면서, 우릴 위해 기도나 해줄래기지 여자 타령만하 나?” 툭하면 ‘예수, 예수’하며 예수쟁이라고 핍박하는 상구에게 자존심 상한 필경은 참다못해 한마디 뱉어 버렸다. “상구 너는 이 자슥아, 여자하고 예수가 니한테 뭐라 카던데 말끝마다 예수, 예수! 지랄 떠는거냐?”하니 상구가 다시 공을 던진다. “필경이 니는, 목사 아들이라 카면서, 그 욕도 너거 아부지한테 배웠나?” 하며 약을 올리는 것이다. “그래, 이 자슥아! 우리 아부지가 목사지, 내가 목사냐? 나도 인간인데 니같이 욕도 할 수 있고, 담배도 술도 먹을 수 있는, 보통사람 인기라, 알거나 이 지랄할 놈의 자슥아!” 이렇게, 아무런 승산도 없는 승갱이만 하던 중, 우리를 태운 트럭은 어느덧 한 전방 헌병 검문소에 당도한 것이다. M1 소총에 총검까지 꽂은 로마병정같이 냉정히 보이는 헌병이 “승리! 구호를 외치며, 우리 트럭을 가로 막으며 암호를 다그쳤다. 조수석에 앉아 졸고만 있던 선임하사는 그날 밤, 암호는 어떻게 숙지했던지 “여승무원!” 이란 사자성어 암호를 대고 초소를 통과해 우리를 마치 짐짝 다루듯 부려놓은 곳은 최전방 연대 인사과 연병장이었다. 벌써부터 어둠이 깔린 연병장엔 개똥벌레들이 무슨 수상한 놈들이라도 소석 가작 ∙ 김근영 |

355


왔다는 듯, 꽁무니에 불을 밝히며 날아 다녔고, 모기떼들 까지 극성을 부렸다. 따불빽 메고, 이등병 계급장 단, 작업모에 먼지 덮어쓴 우리 다섯 놈들의 몰골을 어떻게 봤을까?’ 당시, 연대 인사과가 비록, 말단 최전방에 있었지만, 청와대보다 더 권력이 셌었던 이유는, 때마침 월남 파병 차출이 시작되었고, 인사과의 펜대 하나에 생과 사가 좌지우지 될 때였기에 연대 인사과라 하면 날아가던 새들도 인사과를 피해 지나갈 정도였다. 초승달 뜬 연대 인사과 연병장 앞, 등화관제 사이로 새어나오는 불빛을 받으며 작업모에 병장 계급장 단, 한 키 큰 사나이가 걸어 나오는데 날카로운 콧대에다 귀공자 타입의 얼굴 속에서 번쩍이는 그의 눈에는 카리스마가 비쳤다. 그는 서울 표준말을 썼는데, “박상병! 이번엔 뭐 좀 쓸만한 놈들 왔나? 어디 병적카드 갖고 와봐!” 하는 말투를 보니, 인사과에서 제일 높은 고참임을 금방 알 수 있었다. 그가 플래시를 비추며 신상카드를 뒤적이더니 “어, 이놈은 고대 철학과 다니다 왔고, 어, 얘는 연대 국문학과, 또 이놈은 서라벌 예대 연극영화과야. 내 후배 되잖아! 얘는 또 신학대학 다니다 오셨네 그려! 얼씨구 모두들 고상 꾀나 떠는 놈들만 왔네 그려! 어쨌든 다들 재밌는 놈들이야, 박상병! 이놈들 말딴 중대로는 보내지 말고 모두들 우리 인사과에 영원히 말뚝 박아 버려!” 명령하고는 어둠 속으로 사라져 버렸다. 우리를 핸들링하던 박상병이 우리 한사람, 한사람 플래시로 비춰 보면서 질문을 한다. “혹시 너희들 중에서 한번이라도 좋으니, 가리방 끍어 본 사람 있으면 손들어 봐!” 하는 것이다. 그때, 기민이가 먼저 잽싸게 손 들더니, “가리방이 뭐하는겁니꺼?” 하니, 박상병이 설명했다. “그 있쟎나, 원지를 쇠줄판 위에 놓고 송곳같은 철필로 끍어 등사기에 미는 것 있쟎냐? 넌 안해 봤구나!” 할 때, 필경이 손을 번쩍 들며 “예, 저 좀, 해봤씸더! 우리 교회에서 주보도 악보도 끍어 등사까지 할 줄 압니더!” 하니, “니, 고향이 어디고?” “예, TK 입니더!”하니, “아, 그래! 나와 동향이네, 그럼 교회는 어느

356

| 뉴욕문학 제31집


교회에 나갔노?” “예, ㄴ교회 나갑니다.” 필경이 말하니, 박상병이 손바닥을 탁치며” 내가 지금까지 니같은 사람 만날려고 1년 동안 기도했다 아이가!”하 며 춤을 덩실 덩실 추었다. 이렇게 인간성 좋은 박병욱 상병을 만난 것은 필경에게도 더 없는 행운이었고 그것이 필경의 군대생활을 첫 단추 꿰던 날이었다. “이게 다, 하나님 뜻인기라!” 하며, 서로의 일치감에 도취되기도 했지만, ‘시집은 시집’이라, 필경이 호강만 하다 마친 군대생활만은 아니었다. 그 때, 인사과 발간계를 ‘새장’ 이라고 부른 이유는, 일급 비밀문서만 취급하고 발간했기 때문에 마치 새장과 같이 철창을 둘러 외부와 철저히 단절시켰기에 붙여진 별명이었다. 필경은 이 새장 속의 운명이 되어 국가를 위해 죽도록 가리방을 끍어 육군본부 문서 보관소에도 영구보존된 문서가 한둘이 아니었고, 어느덧 필경의 명필이 소문 나, 연대장, 사단장, 부리핑 하는데까지 불려 다닐 정도로 바빴으니 우리 인사과장인들 쉽게 휴가를 보내줄 리가 없었다. 벌써 동기 넷은 모두 6개월도 채 되기 전인데도 다 휴가를 다녀왔는데, 필경은 1년을 넘겨서야 겨우 휴가를 갈 수밖에 없었고, 그나마 1년만에라도 치마두른 사람을 만날 수 있었던 것만 해도 감지덕지하였다. 비록 동기들 중에서 제일 늦게 간 휴가였지만 그 첫 휴가야 말로, 필경의 일생일대에 한 획을 긋는 중요한 휴가였던 것이다. 그날 밤은 유난히도 별들이 빛나는 밤, 칠월 칠석이었고 그녀의 고향 창산교회 앞, 잔디밭에 누워 1년에 단 한 번 만난다는 견우와 직녀의 만남을 관찰하며 즉흥적으로 그녀의 이름을 “직녀성”이라 불러주던 로맨틱한 추억 을 남기고 오늘도 새장에 갇혀 죽어라고 가리방을 끍고 있었다. 새장 밖에 있는 동기 네놈은 세상과 단절된 필경을 늘 소외시키고 저희들 끼리 희희낙락하는 꼴을 못마땅하게 생각하던 터였는데, 상구가 휴가 때 단성사 극장에서 본 ‘헌팅 파티’ 영화 얘기를 하면서 “야! 기민아, 캔디스 버겐은 갈수록 연기가 세련되더라!” 하는 것이다. 새장 속의 필경도 애써

소석 가작 ∙ 김근영 |

357


그 네 놈의 소속감에 끼어볼 참으로 한마디 거들었다. “아, 그 캔디스 버갠 말이가? 불란서 미남 배우 아이가! 아랑드롱보다 더 잘생겼째?” 하자, 새장 밖에 있던 그 네 놈들이 어처구니 없다는 듯이 “필경이 절마, 지금 자다가 봉창 두들기고 있다 아이가! 캔디스 버갠을 남자 배우라고 하는 놈은 이 세상에서 절마 밖에 없을끼다!”하며 필경을 몰아부치고 있을 때, 기민이가 대뜸 나서더니, “필경이 너, 요새 서울 남산에 서 흘러나오는 클래식음악 듣는다며? 그럼 아는가 한번 물어보자. 드보르쟉 이 작곡한 ‘미완성 교향곡’ 있째? 그 곡 1악장, 어떻게 시작하노?” 테스트 하는 것이었다. 이번엔 새장 속에 있던 필경이 배를 잡고 웃기 시작했다. 이번엔 무식떠는 기민이 기를 죽일참이었다. “야! 연세대 무식학과 김기민아! 그 미완성 교향곡을 드보르쟉이 작곡했다는 놈은 세상에 니밖에 없을끼다. 오스트리아 에서 영면하시는 슈베르트 선생님 찾아가서 ‘도대체 미완성 교향곡은 누가 작곡했읍니꺼?” 하며 한번 물어보거라. 그러면 친절히 답해 주실꺼다 히히!” 우리 군대생활 이렇게 고상떨고 무식떨고 수다떨던 그 다섯놈들 비록 냄새나는 도루묵 먹으며 많이도 싸웠고 많이도 웃겼고, 미운정 고운정, 다 든건 좋은데, 그 귀신같은 놈들이 이젠 제대 후 필경의 꿈속에까지 찾아와 이래라 저래라! 조선간섭 다하며 시집을 살리고 있었던 것이다.

2. 변신 원래 “10년이 돼야 강산이 변한다”했는데, 겨우 3년 넘겨 제대한 필경의 고향산천은 너무나 급변하고 있었다. 소대신 경운기가 밭을 갈고 있었고, 동네 스피커에서는 ‘새벽종이 울렸네’ 새마을 종소리와 새벽예배 교회 종소 리가 불협화음을 이루어 필경은 늘 새벽잠을 설치곤 하였다. 필경은 어느덧 이방인이 되어 축 쳐진 어깨로 강아지 풀, 입에 물고 발로 돌이나 차며 골목길을 배회하고 있었다. 새마을 운동은 또 다른 산업화 를 불러왔고, 이농현상이 가속화되어 도시교회는 그 때부터 대형화 추세가 358

| 뉴욕문학 제31집


시작되었고, 뿐만아니라 산업화라는 그 유령이 인쇄술까지 발전시켜 이미 쿠텐베르그 활자보다 더 정교한 납활자가 등장하여 청첩장 등을 찍어내고 있었고, 가리방, 등사기는 구석기시대 유물로 전락되어 박물관으로 가기 시작한 때였다. 벌써부터 서울엔 자동 옵셋 인쇄기가 도입되었다는 소식까지 들렸다. 그러나 그 때, 군에서 명필로 한가락했던 필경은 이런 세상 물정도 모른채 ‘배운게 도둑질’이라고, 이집 저집 필경사 직업을 구하러 왠종일 점심 쫄쫄이 굶으며 돌아다녔으나, 가는 곳마다 ‘노땡큐’였다. 지친 몸을 이끌고 달성공원. 벤치에 기대어 별을 보면서, 오늘도 쌀이 없어 굶고있는 허기진 직녀성이 떠올랐다. 바로 그때였다. 누군가가 하늘에서 말씀하셨다. “필경아, 송충이는 솔잎만 먹고 산대이!”하는 것이었다. 꼭, 옛날 아버지가 하신 말씀 같아 보였다. 국민학교에 송충이를 잡으러 간 적이 있었는데, 정말 송충이는 솔잎만 먹고 있었다. 그 말씀의 뜻이 무엇인가 되새기며 그날로부터 필경은 허송세월 접고 과감한 변신을 꿈꾸었다. 어떤 신학 후보생처럼 사명감이니 소명감 따위의 거룩한 냄새를 풍기며 산 기도하러가기 보다 솔직히 솔잎 먹으러 산에 가기로 작정하고, 그동안 정들었던 가리방으로 신약성경 사본을 끝냄과 동시에 가리방에서 손을 씻기로 작정한 것이다. 마태복음을 시작으로 요한계시록 끝까지 다 끍고, “아멘! 주 예수여, 오시옵소서!” 했더니 꿈인지 생시인지? 졸지에 필경이 어느덧 목사로 변신되어 있는 것이 아닌가! 그 목사 안수를 받고 생전 처음 참석한 목사회엔 경건하게 목에 힘주는 목사, 위선 떨며 헛기침치는 목사들도 많이도 왔더라면, 또 필경의 먼 일가뻘 되는 대머리 까진 황성환 목사도 필경을 보고 코로나 주먹 악수를 청하 더니, “어! 필경이”, 목사안수 받은거 축하한다!”하여, “고맙습니다. 목사님, 뭐 소명감도 없는 사람이 남들이 장에 간다니깐 저도 거름지고 한번 따라 나와 봤 씹던!” 필경이 겸손 떨며 말하자 “필경이! 농담 그만하고 내말 한번 들어봐!”하며 필경의 팔을 끌다시피 하여 저 구석진 테이블로 데려가

소석 가작 ∙ 김근영 |

359


무슨 큰 비밀스런 말이라도 하려는 사람같이 입을 열었다. “필경 목사가 내 친척이기에 허물없이 하는 소리네 만, 앞으로 한국 기독교 계에 큰 지각변동이 있을껄세” 하는 말에 의아한 필경은 “도대체 이 어른이 지금 무슨 말씀하실려고 이러시나?” 속으로 생각하며, “지각변동이라뇨? 어데 지진이라도 났단 말씀입니까?” 하자, 연이어 “아, 그거말일세, 거두절미 하고 단도직입적으로 말하자면, 대충 이런걸쎄!” 황목사가 말을 더듬듯이 말을 잊는다. “필경 목사, 교회 수는 한정되어 있고 반면 목사 수는 해마다 증가되니 드디어 목사 경쟁시대가 시작되었다 네!” 그러면서 연방 침을 튀기며 하신다는 말씀, “그래서, 필경이 들어봐! 이 목회경쟁에서 살아남으려면 박사학위 하나쯤은 따놔야 한다는 걸세” 사실 나도, 나성에 있는 F세미너리에 등록해서 이번 여름방학 때 미국 건너가 강의 몇 시간 듣고 남는 시간에는 라스베가스에 가서 갬블하고 요세미티 국립공원 등을 관광하다 박사 가운 입고 졸업사진 한장 찍고 오면 된다는 식으로, 박사학위 따기 쉬운 지름길이라도 소개하려는 브로커마 냥 입에 침을 튀기며 열변을 토해 내는 것이었다. 그러나 그 황목사의 정보는 그다지 새로운 정보만은 아니었다. 이미 몇 달 전인가? 필경의 담임목사인 ㅍ목사도 부목사인 필경에게 신학서적 한아름 안고 와서, “필경 목사! 사실 나 말이지 몇 달 전에 시카고에 있는 ㅌ세미너리 박사 코스에 등록했는데, 이 많은 책 다 읽고 논문 쓰라고 하는데, 낸들 매주 설교 준비에다 주말, 골프 동우회까지 다 참석하려니 역부족이야. 그러니, 필경 목사가 내 대신, 숙제 좀, 해줄 수 없겠냐?”는 것이다. 감히 아랫것이 하늘같이 높으신 당회장님이 모처럼 하시는 부탁이라 “노 땡큐!” 할 수 없어, 그날부터 낮엔 발이 부르트도록 심방하고, 밤엔 숙제 대행하면서, 그야말로 주경야독 이었던 것이다. 그것도 새벽 4시에 일어나 새벽설교까지 강행한 후, 잠시 눈을 붙일 참인데, 극성쟁이 김 집사로 부터 ‘따르렁’하며 심방가자는 전화가 울렸다. 오늘같이 이슬비 오는 날엔 좀 푹 쉬었으면 했는데 워낙 여복이 많던

360

| 뉴욕문학 제31집


필경은 여러 암탉 거느리듯 여집사들을 앞세우고 ㄹ병원 사거리로 가던 중이었다. 그런데 앞서가던 김 집사가 갑자기 훽 돌아서며 “아이고, 망측해 라! 목사님!” 하며 얼굴을 가리며 필경에게 안길 듯 달려드는 것이다. “왜 이래! 김집사!” 하며 사거리를 둘러 봤더니 아닌 게 아니라, 실오라기 하나 걸치지 않은 한 사십대 중반의 건장한 남자가 방뇨를 하며 교통정리를 하고 있는 게 아닌가! 우리 여 집사들은 혼비백산하여 그 날 심방은 그것으로 끝나버린 것이다. 이 광경을 목격한 여 집사들은 아마도 평생 잊을 수 없는 한 컷의 기억의 필름 속에 각인되었을 터이지만 한편 필경에게는 은근히 휴식의 기회를 준 그 누드남자가 오히려 고마웠던 것이다. 필경이 일찍 집에 들어서자마자 목이 말라 울고 있는 십자매에게 문을 열고 물을 주려는데, 갑자기 한마리가 새장 밖으로 뛰쳐나와 버렸다. 그런데 이상한 일은 이놈이 그렇게나 그리워했을 창공을 만났지만 날아가지 않는 것이다. 아니, 아예 날지 못하는 것이다. 날기는 하는데, 꼭 자기 새장만한 넓이의 행동반경만 날고 있는 것이었다. 그래서 필경은 안타까워 그 놈을 다시 새장 속에다 가두어버린 사건이다. 혹자는, “그게, 무슨 대단한 사건이라고!” 하며 남의 일 같이 생각할른지는 모르나, 필경 자신으로서는 평생 동안 ‘날아보지 못한 병’이 심리저변에 자리 잡고 있었던 울분 때문이겠거니 자위하면서도 남 몰래 흐르는 눈물을 감출 수 없었다. “내 사랑하는 십자매야! 어쩌면 네가 내 처지와 꼭 같니? 나도 날고 싶지만 날개가 부러져 더 이상 날 수 없단다. 나에게 천사와 같이 날 수 있는 새 날개를 좀 달아줘!” 이렇게 필경의 잠재한 정신적 위축감을 오늘, 이 날지 못하고 목말라 애타해하는 나의 십자매와 동무하여 울분을 토해내고 있었다. 소위 정신과 의사들이 말하는 ‘새장 증후군’이란 병은 모차르트의 오페라, 피가로의 결혼 중, 아리아 ‘논 소 퓨’ ‘더 이상 날지 못하리’와 같은 증상과도 흡사하였는지 모른다. 그런 후, 어느 정월 초하루 새벽녘 손과 발에 선혈이 낭자한 예수가

소석 가작 ∙ 김근영 |

361


먼 지평선을 보여주시기에 이 꿈이 미국으로 이민 온 직접적 계기가 되어 아메리칸 드림의 확실한 의미조차도 모른 채 케네디 공항에 발을 디디고 있었던 것이다.

3. 고난 세미너리 입학 필경이 군에 갈 때도 신학교에 갈 때도 늘 그랬듯이 이 고난 세미너리 갈 때도 자기 의지 없이 운명에 떠밀려 갈 수밖에 없었다. 필경이 등 떠밀려 도착한 고난학교는 ‘죄인의 친구 예수’란, 간판이 서있는, 그릭 오소독스 교회 앞에 있었고, 쇼 윈도우에는 패디큐어, 매니큐어, 네온사 인이 눈에 번쩍였다. 그 고난학교에 첫 발을 디디니, 첫 휴가 때 만난 그 직녀성이란 여자가 호랑이 같은 무서운 눈을 하고, 진두지휘하고 있었고, 또 벽에는 예수께서 베드로의 발을 씻기시는 ‘렘브란트’의 사진 각꾸 하나가 덩거러니 걸려 있었다. 아무리, 삼엄한 고난학교라지만, 아침엔 코- 피 한잔이라도 마시며 신문도 뒤적이며 워밍업 하는 것이 순서인데, 이날은 훈련도 채 시작하기 전인데, 흑인여자 하나가 ‘삐걱’ 문소리를 내며 들어섰다. ‘도뎃’이란 흑인 목사였다. 필경은 그 흑인 목사를 제일 싫어했다. 그건 단지 그녀의 구린내 나는 발 냄새 뿐만은 아니었고, 고난 훈련받는 필경이 목사란 신분을 감추고, 흑인 여자목사의 발을 닦는 자신이 너무나 초라해 보였고, 또 한편으로는 자존심까지 상하였기도 했지만, 또 까다롭게 이래라 저래라! 잔소리하는 그녀에게 화가 울컥했기 때문이다. 아무리 예수께서도 ‘참는 자가 복이 있다’ 하셨지만, 이날은 끝내 화를 참지 못하고 한국말 알아듣지 못한다는 핑계하면서 그녀를 향해 한마디 뱉어버렸다. “야, 이 년의 발은 왜 이리도 더러워! 더우기 목사라 카면서, 성질도 지랄같네! 너 정말 목사 맞아!? 찡그리며 벽을 쳐다보니, 렘브란트의 그림 속에서 냄새나는 베드로의 발을 씻기시다가 불평 불만하는 성난 필경을 362

| 뉴욕문학 제31집


보시며 걱정하시는 예수의 얼굴이 보였다. 갑자기 언젠가 미국 영주권 인터뷰 할 때, “너, 정말 목사 맞아? 그럼 ‘엘리 엘리 라마사박다니’가 무슨 뜻인가? 하며 테스트하던 유대인 시험관 얼굴이 오버랩 되고 있었다. 필경은 또다시, 이 고난 학교에서 “주여! 이 못난 죄인 필경 목사를 용서하 시옵소서!” 뜨거운 회개의 눈물로 그녀의 발을 적시며 “목사님! 죄송합니다. 무슨 색깔을 발라 드릴까요?” 물으니, 그 녀는 의외로 퉁명한 어투로 “피색깔 있어! 그것 발라줘!”하는 것이다. 색깔 감각이 조금 있던 필경은 얼른 수박색 깔을 들고와, 골고다 십자가에 달린, 예수의 피묻은 발처럼 발라 줬더니, 그 흑인 목사는 만족이나 한 듯, ‘할렐루야!’ 엉덩춤을 추며 문을 박차고 나갔고, 그제서야 우리는 식은 코피를 마시며 신문을 볼 수 있었다.

4. 십자매의 도전 코피가 식어서인지 피비린내 나는, 코피를 개수대야에 쏟아 부어버리고는, 신문을 찢다시피 황급히 넘기니 충격적인 기사 하나가 필경의 시선을 꽉 붙들어 매고 있었다. 언제인가, 에베레스트를 정복한 영국 산악인에게 “왜? 산에 올라가느냐? 는 기자의 질문에, “거기 산이 있어 올라간다.”는 우문현답을 하였다지만, 그날 신문에는 미국의 두 젊은 산악인은 단지 ‘거기 산이 있어 올라갔다’기 보다 너무나 엄청난 일을 저질렀기에 신문 기자들도 큰 대문짝만한 활자로 헤드를 장식했다. “난공불락 거대 직벽 맨손 도전, 인간의 집념 앞에 고개를 숙이다.” 이를 시종일관 지켜본 오바마 대통령도 아홉 손가락으로 성공한 코드웰과 조거슨 에게 백악관 계정을 통해 축하하면서, “이 두 사람이 무엇이든 할 수 있다는 점을 사람들에게 상기시켰다.”고 높이 평가했다. 그건 또 그렇다손 치더라도, 그 19일 동안 그 높은 914미터 요세미티에 매달려 배설물은 어떻게 처리했을 까? 하는 호기심 많은 소년들이나 해볼 수 있는, 우스꽝스런 상상도 해보지만 사실 필경도 고등학교 산악반에 들어가, 산 정상을 정복한 성취감에 빠져

소석 가작 ∙ 김근영 |

363


그동안 참았던 것을 포물선까지 그리며 방뇨했던 추억이 있었기 때문이다. ‘그 두’ 산악인이 뿌린 배설물이 타이밍 맞추어 관광와서 그 절벽을 쳐다보 는 신학박사들의 얼굴에라도 떨어지는 날이면, 그야말로 신학박사들의 얼굴 에 똥칠하는 격이 될 것이다. 성경에도 가말리엘 신학교 출신인 사도 바울도 기독교 사상의 최고봉에 도달해서는 모든 것을 배설물로 여겼다고 빌립보 교회에 참회 하였다지…. 또 한 장의 신문을 넘기니, 또 다른 도전이 필경의 마음을 설레게 하며 기다리고 있었다. 그건, “제1회 뉴욕 한인회 마라톤 대회” 광고 기사였던 것이다. 플러싱 165가 굴다리에서 출발해서 롱아이랜드 파이어 아일랜드 등대가 결승점이 었다. 수없이 많은 한인들이 간편한 팬티차림으로 성황리 참석하시어 벌써부 터 모두들 준비운동 하느라 분주했다. 주위를 둘러봤더니 훌라동 장로교회 하 목사님, 백석동 성당 주임신부님하며, 맨하탄 네일가게 미쓰 리, 어쩌나! 브라자까지 벗어 던지고 나왔네 그려! 거기다가 노던 법률회사 최변호사님까 지 발로 뛰어 보시겠다고 나오셨고, 순대집 주방장 박씨, 그리고 조계사 박스님, 파슨스 내과 닥터 정도 필경을 보더니 눈인사 하는 것이다. 필경도 엄지척 내밀며 “화이팅!” 응수해 드렸지만, 어쨌던 이렇게들 생명처럼 여기 던 경건한 까운들, 청진기, 성경책, 염주 목탁 등 거추장한 위선의 탈을 다 던져버리고 용기 있게 나선 반라들을 보며, 혹시 여기가 에덴동산은 아닌가 착각하게 되었다. 그러면서도 “야! 인간들이 다 벗고 보니 니 내없이 똑 같더라!”하는 인간의 원초적인 탄성이 나온다. 그러나 한편으로는, “거금 200만 불이나 되는 대회다 보니, 이렇게 야단법 석이구나, 머니 머니해도 머니가 최고야!” 필경이 내심으로 생각하다가, 언 듯, 저 구석으로 눈을 돌리니, 전에 노인회 회장하셨던 김상철 씨가 눈에 띄었다. 내가 잘못 봤나? 싶어 눈을 비비고 다시 보았더니, 틀림없는 그분이었다. 김상철 씨는 필경의 이민 대선배이기도 하지만, 또 고향 고등학 교 선배가 되시고, 말끝마다 농담 잘 하시기로 유명하신데, 안타깝게도

364

| 뉴욕문학 제31집


몇 년 전에 심장수술까지 하신 분으로 “그냥, 구경삼아 오셨겠지” 했는데, 꼴을 보니 빤스만 걸치고 준비 운동하는 모양새를 보아하니 꼭, 이 경기에 참가할 선수 같아 보였다. 그래서 “야, 이거 선배님 아니십니꺼? 여기 와보니 정말로 보스톤 마라톤 보다 더 뜨겁네요. 그런데 선배님은 여기 우짠 일로 오셨습니꺼? 댁에서 요양이나 하실 어른이 빤스 바람이라뇨? 을라들 보기에 부끄럽지도 않습니꺼?” 하니, 대뜸 주먹을 불끈 내밀며 코로나 주먹악수를 청하며 하시는 말씀, “필경 목사는 꼭 화성에서 방금 이민 온 남자 같아! 지끔이 어느 땐줄 알기나 알어?! 9988234 시대도 몰라?! 팔십된 바이든 보라고! 또 마라톤 한번 더 할라꼬 펄펄뛰는 트럼프는 어떻고! “하시면서 오히려 필경을 마치 시대착오 낙오자 정신병자 취급하며 몰아 부치시는 것이다. “필경 목사! 뭐 나라고해서 마라톤 하지 말라는 법이 어딨어!” 하시며 또 주먹 악수를 청하며 오기를 피우신다. 필경도 질세라 농담 삼아 노골적으 로 거들었다. “선배님! 혹시 여기 참가하신 목적이 상금 200만 불에 눈독 들어 나오신 건 아닙니꺼? 선배님 돈 좋아 하시는 줄 저도 잘 알고 있거든요!” 하니, 자존심 상하셨던지 하는 말씀, “필경 목사! 농담이 좀 지나치네! 사실 말이 야…”하며 사실을 토하시며 이번 마라톤에 출전한 동기를 고백하신다. 내용인즉.. 몇 달 전에 먹자골목 주위 쓰레기통에서 어느 한인이 버린 헤밍웨이의 ‘노인과 바다’ 소설책 한권을 주어 심심해서 읽어 보았단다. 읽어본 즉, 젊을 때 읽었던 노인과 바다와 노인이 된 지금 읽는 감회가 사뭇 달랐다는 것이었고, 또 그래서 당신께서도 그 소설의 주인공처럼 노익장 을 한번 발휘해 보기 위해 결단하고 발벗고 집을 나섰다는 말씀이셨다. 필경은 다시 물어보았다. “그러시면 한 가지만 더 물어 보입시더, 선배님도 마라톤 하지 말란 법도 없듯이, 또, 1등 하지 못한다는 법도 없지 않습니꺼? 만일에 그 많은 돈 타신다면 우짤겁니꺼?” 단도직입적으로 물었더니 말씀하 시는 것이 가관이었다.

소석 가작 ∙ 김근영 |

365


“내가 지끔 이 나이에 그 큰돈 어데 쓰겠노만, 또 내 수중에 돈 좀 있다는 소문이라도 나봐! 병들고 외롭고 돈 없을 땐 한 놈도 와 보지도 않던 것들이, 날이면 날마다 초인종 눌러대고, 전화질하면서 모두들 찾아와 돈 뜯어 갈려고 지랄 발광 떠는 꼴, 눈꼴 사나와 우째 봐! 또, 돈 다 뜯기고 나서도 마지막엔 “노망한 늙은이” 라고, 동네 방네 조롱꺼리나 될 바에야!” 하시며, 먼 산만 쳐다보시는 것이다. 필경이 측은한 눈초리를 하며, “답답하십니다. 선배님! 도데체 그 놈의 ‘그렇게 될 바에야’ 란 접속사 뒤에는 뭐, 어떻게 하시겠다는 겁니꺼?” 다구치니, 선배 가라사대, “필경 목사는 성질도 급하네! 그 성질 가지고, 우째, 목회했노! 그게 뭐가 그리 궁금해!” 말을 흐리시며 하신다는 말씀, “옛말에도 말이다, 돈 버는 재미보다 돈 쓰는 재미가 더 크다 켔네! 요전에 서울 어느 대형교회에서 어떤 미친 놈이 좋은 일 한답시고 예배시간에 돈 한다발 뿌렸더니, 그날 예배 어떻게 된 줄 아나! 문자 그대로, 엉망진창, 아수라장 됐다는 소문도 못들었나봐!” 필경이 “그러면요?” “그래서요? 반복적으로 질문한 대답은, 고작, “그럴 바에야!”란, 애매한 답변뿐이었다. 필경이 그래도 계속해서 성급해 물었다. “그럴 바에야” 가 무엇입니까? 참, 답답도 하십니다! 며, 또다시 다그치자, “필경 목사야 말로 답답한 목사네 그래! 그렇게 눈치도 없고, 또 사람 말귀도 못 알아들으면서, 여태까지 우째 목회는 했노?” 하시면서 이젠 꼭 목회학 박사나 되신 것처럼 창피를 주시는거다. 이렇게, 우리는 ‘떡 줄 사람은 꿈도 안 꾸는데, 김칫국만 마시며 시간 보내다가 마침내 뉴욕 한인회장이 쏘는 공포탄 소리를 들으며 마라톤 경기는 시작되었다. 수많은 선수들이 마스크까지 끼고 뛰어서인지, 조급히 100미터 경기나 하듯, 뛰어서 벌써부터 다들 지쳐 있을 때, 필경의 뇌리 속에, 그 옛날 연대 국문학과 기민이가 나타나서 한다는 말, “필경아! 너, 마라톤은 소설같 고 수필은 백 미터 경기 같다는 말 알고 있나? 욕심 버리고 힘을 아껴라!” 하며 지나갔고, 또, 심한 운동하다 심근경색으로 급사한 의사 친구 정영철이

366

| 뉴욕문학 제31집


도 “필경아! 마라톤은 뛰는 듯 걷고, 걷는 듯 뛰는 것이다. 그래야 심장마비 안걸린다!” 하며 충고하며 지나쳤다. 그것도 모르는 많은 경쟁자들은 거북이 처럼 뛰며 걷는 필경을 밀어 제치고 추월하기에 바빴다. 이때, 옛날 새장 속에서 목이 말라 울던 나의 십자매가 필경의 기억의 새장 속에서 뛰쳐나오더니, “필경 주인님! 힘 내시구요, 그때 저와 같이 조금씩만 날아보세요! 화이팅!” 하며 새장 속으로 들어가 버렸다. 또 웬쑤같 은 고려대 철학과 상구도 따라오며 훈수를 한다. “너것들 지금 돈 좋아하는 필경이 저자슥 따라가다간 결국엔 다 물에 빠져 뒈진데이!” 악담하며 사라졌 다. 어느덧 해는 중천을 넘어섰고, 마치 토끼와 거북이가 경주나 하는 듯, 죤스비치에 가까이 왔을 땐 이미 필경을 재치고 추월했던 수많은 경쟁자들은 기진맥진 탈진상태가 되어 마치 경기나 포기한 토끼처럼 나자빠져, 코를 골고 있었고 또 뒤따라오시던 선배님마저도 지치셨던지 “아이고! 필경 목사! 마음은 원이로되, 육신이 약하도다! 이젠 더 이상 못뛰겠다.” 포기하시며 모두들 그늘 밑에 둘러앉아 잡담만 하고 있는 것이었다. 이렇게 뛰듯 걷고 걷듯 뛰던 필경이 어느덧 리도비치로 가는 비포장도로로 접어들어 독주하면서 1등으로 뛰어 가고 있을 때, 무언가 불길한 예감이 필경의 머리를 스쳤다. 순간 뒤를 홱 돌아봤더니 저만치해서 한 사나이가 점점 가까워 오는데 그의 목엔 무슨 검은 물체하나가 매달려 있었고, 왼손엔 물병을 들고 필경을 필사적으로 따라 붙는 것이었다. 그리고 그 사나이의 얼굴 윤곽이 어느 정도 들어날 거리쯤에 왔을까? 그가 먼저 필경의 얼굴을 알아보더니, “야! 이거 필경씨 아니요?!” 하는 것이다. 그는 필경이 미국 이민 와서 제일 처음 만난 사진작가 장 선생이었다. 그는 젊은 시절 한때는 종로에 있는 르네상스 음악 감상실에서 디스크 쟈키까지 했던 클래식 음악광이었고 또, 사진까지 좋아해 어느덧 사진작가로 전향해 그의 목에는 항상 카메라가 매달려 있었던 것이다. 평소 음악을 좋아했던 필명도 그렇게 음악과 사진을 좋아하던 장 선생을

소석 가작 ∙ 김근영 |

367


따라 다니곤 했다. 거기다가 필경의 부친도 목사인데, 그의 춘부장께서도 목사인 것과 그의 부친도 일본의 무교회 신학자, 우찌무라 간조를 잘 알고 필경의 부친의 서재에도 우찌무라의 신학서적이 꼽혀 있었던 것이 장선생과 필경을 더욱 더 친밀감으로 연결시켜주는 접착제가 된 것이다. 이렇고 저런, 일치감으로 밀접했던 우리가 이 마라톤 결승점을 앞두고 경쟁자가 된 것은 너무나 기막힌 운명의 장난과도 느껴졌다. 그런 그가, 이날도 땀에 젖어 1등으로 달리고 있는 필경의 포트레이트를 찍느라 분주해 하는 프로의 열정 때문인지, 이미 그의 카메라 속에는 필름이 바닥난 것도 미쳐 모르고 있었던 것이다. 어느덧, 결승점인 등대가 보이기 시작하였다. 그때 서로 각축전이라도 벌이듯 뛰던 우리 두 사람 앞에는 보이지 않는 커다란 걱정꺼리가 장애물로 가로막고 있었다. 그건 보나마나 1등에게만 지급되는 200만 불이란 거금의 상금 때문이었다. 장 선생도 내색은 하지 않지만 속으로는 잔뜩 신경을 쓰는 것처럼 보였다. 그때 필경의 뇌리를 스쳐 지나가는 영상, 즉 요세미티 엘케피탄 절벽에서 뿌렸던 코드웰의 배설물, 또한 바울이 올라간 기독교 사상의 최고봉에서 뿌렸던 배설물들이 왜 하필이면 이 때 필경의 눈 앞에 아른거리는지? 머리를 흔들며 뛰는 필경에게 장 선생이 의외의 질문을 던지는 것이었다. “필경씨! 우리 그러지 말고 손잡고 같이 골인하면 될게 아니오! 라고 제안하는 것이다. 그는 계속해서, “그러면 100만 불은 필경씨 것이 될 것이고, 또 100만 불은 내 것이 될게 아니오!” 하는 것이다. 그건, 정말 장 선생 다운 묘안이었다. 그때 필경은 전에 선배에게 한 관행 같은 똑같은 질문이 떠올랐던 것이다. “장 선생! 그러면 그 100만 불 상금타면 제일 먼저 하고 싶은게 뭐요?” 혹시나 하며 묻는 질문에 역시나 하는 대답은, “제일 먼저 독일제 라이카 카메라 한대 장만하고 싶다”는 것이었다. 그러면 그렇지 필경이 속으로 말할 때 장 선생도 똑같은 질문을 해 왔다. 필경의 갈급한 심정을 족집게

368

| 뉴욕문학 제31집


같이 꽤 뚫어 보듯 말이다. 필경은 “나는 해변가에 조그만한 예배당 하나 지어 벌거벗은 어린 양들에 게 내 속옷까지 다 벗어주며 한번 목회나 하다 죽고 싶소”하며 서로의 뭉게구름 피어오르는 희망을 꿈꾸며 파이어 아일랜드 등대 밑에 설치된 결승점, 흰 테이프를 끊고 그야말로 우리는 꿈에서나 만질 수 있는 거금 200만 불을 양손에 거머쥐고 이심 전심, 약속이나 한 듯 우리가 자주 올라가던 누-드 비치가 한눈에 내려다보이는 등대 위로 기어 올라갔다. 그 등대 아래에는 또 다른 에덴이 눈앞에 전개되고 있었다. 작렬하는 태양 아래 탐욕에 목말라 날뛰는 전나의 아담과 이브들의 신음소리가 들리는 데 그 소리가 마치 목이 타 애타게 기다리는 나의 십자매 울음소리로 합성 변주되고 있는 듯 했고, 또 예수께서 성전 뜰에서 돈궤를 엎으시는 장면, 예수를 판 유다가 은 30냥을 도로 던지는 영상들이 눈앞에 상연 되는 그 순간, 필경의 겉잡을 수 없는 뇌리를 가득 메웠다. 그건 바로 언젠가 선배가 던져준 “그럴 바에야!” 란 수수깨끼가 풀리기 시작한 것이다. “그럴 바에야 다 뿌려 버리자!” 는 해답을 얻은 동시에, 필경은 장렬하게 피와 같은 캐시를 뿌리기 시작했다. 캐시는 바람에 흩날리는 낙엽과도 같이, 누드 비치를 물들이며 쏟아지기 시작했고, 전나의 아담과 이브들은 “아멘”을 외치며 물질축복 부흥 대성회 때의 열광하는 교인들 같이 어느덧 해변은 흥분의 도가니로 열기를 더 해가고 있을 때였다. 한편 국전 사진출품을 앞두고, 사진 소재를 찾아 동분서주 했다던 장 선생은 눈앞에 이러한 희귀한 광경들이 펼쳐지자, 놓칠세라 연신, 셔터를 눌러대고 있었지만 그의 카메라 속에는 이미 필름이 바닥 난 상태였던 것이다. 그렇게 한참동안 셔터를 둘러대고 있던 장 선생이 갑자기 얼굴이 백짓장처 럼 변하더니, 그토록 애지 중시하던 니콘 카메라를 땅바닥에 내 동댕이치며 “필경 씨! 이를 어찌하면 좋아! 지금까지 헛지랄 했어! 이럴 줄 알았더라면…” 하면서 필림 한 컷도 남겨두지 않고 헛셔터만 눌러댄 자신을 원망이라도

소석 가작 ∙ 김근영 |

369


하는 듯, 어린애와 같이 주저앉아 대서양을 향해 통곡하는 것이다. 이런 장 선생의 허탈한 절규를 보던 필경의 깊이 감추어둔 거울 속에서도 그 옛날, 한 톨의 쌀이 없어 허기진 직녀의 모습이 현실로 소급되어 비치기 시작한 것이다. 평소에도 늘 습관적으로 다이야 반지 노래 부르며 애원하던 직녀의 얼굴을 떠올리며 “이번 다가오는 47주년 결혼기념일에는 세상없어도 꼭! 다이야 반지 선물 하겠노라고 손가락 걸고 약속한 것이 바로 엊그제였기 때문이다. 원망과 후회의 헷갈리는 갈림길에서…. “그럴 바에야 뿌리자!” “이럴 줄 알았더라면!” “다이야 반지 하나 살 돈만은 남겨놓고 뿌리는건데!” 이렇듯 대서양의 슬픈 비창 교향곡의 팀파니 소리가 직녀의 남편, 필경의 서글픈 마음을 요란하게 두들기고 있었다.

“이를 어찌하면 좋아?!!!” “이제는, 더 이상 직녀를 볼 낯이 없어!!!” “아! 이게 다- 꿈이었으면!! 고함과 눈물을 이불에 적시며, 그녀의 허전한 손가락을 더듬으며 기나긴, 한여름 밤의 꿈에서 깨어나 눈을 뜨니 아직도, 이른 새벽이었다.

370

| 뉴욕문학 제31집


제29회 뉴욕문학 신인상 소설 부문 수상소감 가작 김근영 - <십자매의 외출>

삼십여 성상, 이민 순수문학 외길만 고집하며 달려온 선구자, 미 동부 신춘문예가 이 고독한 십자매를 이쁘게 보셨던지, 등단의 기회를 주신 회장 님, 그리고 심사위원님 여러 회원님께 심심한 감사의 글을 올립니다. 그 동안 외롭던 나의 십자매가 새장에서 탈옥해 모처럼 세상구경 나왔지만, ‘오는 날이 장날’ 이라고, 코로나들이 까만 마스크 낀 채 다들 거들떠보지도 않고, 나를 피하기에 졸지에 외톨이신세가 되었지요. “혹시 내 얼굴에 ㄸ이라도 묻었나?” 해서, 얼른 손거울을 꺼내 봤더니, 그 옛날 꿈속에서 뵌 팔순 어머니가, “예야! 까마귀 노는 곳에 백로(학)야 가지 말라!” 당부하시길래, 새하얀 희망의 나래를 펼치는 순수문(학)이 노닐고 있는 미 동부, 허드슨 강변으로 황급히 핸들을 꺾었지요. - 십자매 올림

김 근 영 대구 내당 국민학교 졸업, 대구 계성학교 졸업 대구 대학교 영어영문학과 졸업(B.A) 장신대학원 졸업( S T, M) 뉴욕 신학교 박사과정 중퇴, 롱아일랜드 “빈들의 교회” 목사 대한민국 육군병장 제대 esk540915@gmail.com

소석 가작 ∙ 김근영 |

371


제29회 뉴욕문학 신인상 소설 부문 심사평

가작 : 김근영 <십자매의 외출>

소설은 김근영씨의 작품 한 편이 응모되었다. 되도록 작품의 긍정적 면을 찾으려고 꼼꼼히 읽었다. 소설에 뜻을 두는 것도 쉽지 않고 시간과 에너지가 많이 드는 소설을 쓰는 작업이 이민사회에서 는 결코 쉽지 않기에 그 열의도 감안하고 읽은 셈이다. 우선 장점을 피력한다면 문장이 어떤 거침이 없이 순조롭게 이어지고 있다는 것이다. 문장은 눈으로 읽는 사람에게 전달하는 이어짐과 쉼의 운율이 존재해야 전개상황을 매끄럽게 전달할 수가 있다. 이 소설은 그런 면에서 독백하듯 말하는 문체지만 상당한 능력과 자신이 쌓인 실력을 읽어낼 수 있었다. 그러나 50 매가 넘지 않는 소설을 4개의 다른 제목으로 다른 이야기를 전개하는 건 단편이라고 보기엔 무리가 있다. 50매에서 100매 정도로 단편을 써야 할 경우 이야기의 설정과 전개, 나름의 대단원이 있고 마무리를 통해 주제를 전달해야 완성된 작품이 된다. 이 소설은 나누어 높은 챕터의 하나만 가지고 소설을 꾸미는 것이 좋을듯싶 다. 시나리오를 쓰려다가 장편을 만들려다가 그냥 포기해 버린 작품이라는 생각도 든다. 요즘 세상에 타이핑이 아닌 손글씨로 소설을 응모하는 것도 쉬운 일이 아니었을 것이다. 미비한 점이 마음에 쓰였지만 앞으로 계속 쓰면 이야기꾼의 재미있는 소설이 탄생할 수 있을 것 같기에 입상으로 결정을 모았다.

* 심사위원: 임혜기, 한영국 소설가

372

| 뉴욕문학 제31집



Bayside High School / 1등

나의 이웃 최 민 택 (11학년)

옛날에, 내 집 옆에 어떤 사람이 살았어요. 내가 밖에서 꼭 나가 놀 때 이상한 소리가 들리고. 어떤 날에는 집 안에 있어도 그 이상한 소리가 들리는 거에요! 제 부모님이 신경 쓰지 말고 그냥 하는 대로 하라고 말씀을 했지만, 그 소리가 너무 궁금한 거예요! 그 소리가 어떤 소리인지 찾아내려고 제가 계획을 만들어 봤습니다. 먼저 집 안에 있는 사람이 어떻게 생기고 몇 시에 집에 나가는지 알아봐야 했어요. 그 사람이 집에 나가면 제가 그 집안에 들어가서 그 이상한 소리가 뭔지 찾으면, 제 궁금한 마음이 편하게 쉴 수 있을 거에요. 근데 며칠이 지나도 그 사람이 집에 안 나갔습니다. 어떻게 그 사람이 며칠 동안 집에 안 나가고 계속 있는지 모르겠어요. 혹시 그 사람이 사람이 아니라 괴물 아닐까요? 근데 딱 일주일 지나고 그 집에 문 열리는 소리가 들렸습니다. 제 집 창문으로 봤는데 그 옆집 사람은 괴물이 아니라 사람이었어요. 더 궁금하게 만든 이유가 있는데 그 사람이 나갈 때 어떤 검은 색 딱딱하게 생긴 가방을 들으면서 차 안에 그 가방을 넣었어요. 그거 보고 제 마음이 더 궁금해졌어요. 이제 그 사람이 어떻게 생겼는지는 알고 있었지만 이제 몇 시에 다시 집에 돌아오는 것만 알면 제 계획이 완성됩니다. 몇 시간 동안 창문을 바라보면서 언제 그 옆집 사람이 다시 집에 돌아올지 기다리고 있었어요. 드디어 밤 여덟 시에 돌아 왔습니다. 보니까 아침 열 시에 나가고 밤 여덟 시에 집으로 돌아와요. 이제 남은 것은 제가 그 사람 집에 들어가면 됩니다. 일주일 기다리고 그 날이 드디어 왔습니다. 옆집

374

| 뉴욕문학 제31집


사람은 내가 만든 계획처럼 딱 아침 열 시에 나갔습니다. 좀 기다리다가 제가 그 집 문 앞에 갔습니다. 문을 안 잠그고 간거에요! 제 기분이 너무 좋았어요! 이제 문을 열고 들어갔는데 집이 너무 신기했어요. 제가 처음으로 보는 물건들이 너무 많았어요. 나무로 만든 물건들도 있고, 이빨처럼 생긴 물건도 있었어요. 계속 구경하면서 그 이상한 소리가 어디서 나오는지 찾고 있었어요. 찾고 찾아봐도 안보이고, 듣고 들어봐도 안 들리고. 뭐가 그 소리를 만드는지 못 찾았어요! 그냥 포기하고 다시 집으로 돌아갔어요. 너무 슬퍼서 엄마한테 가서 울었어요. 엄마가 왜 울고 있냐고 물어봐서, 제가 했던 걸 다 말했는데 엄마가 갑자기 화난 거예요! 엄마가 저한테 왜 잘못했는지 다 설명하고, 옆집 사람한테 사과하라고 말했어요. 그래서 옆집 사람 올 때까지 기다리고 있었어요. 드디어 옆집 사람이 집에 와서 제가 바로 갔어요. 제가 가서 옆집 사람한테 먼저 인사를 드렸죠. 옆집 사람이 물어봤어요. “꼬마야 뭐 필요한 거 있니?” 근데 제가 이렇게 답했어요, “아니요, 그냥 사과할 게 있어요.” 그 다음에 제가 다 말했죠. 근데 옆집 사람은 엄마처럼 화가 안 나고 괜찮다고 하고, 그 소리가 아직도 궁금하다면 내일 부모님이랑 집에 오라고 했어요. 그래서 빨리 집에 가서 부모님한테 말했죠. 부모님이 알겠다고 하고 내일 같이 가자고 했어요. 다음 날이 됐어요. 부모님이랑 옆 집 사람한테 갔어요. 들어가서 옆 집사람이 밥도 주고 부모님 이랑 얘기하다가 저한테 물어봤어요, “너 혹시 이거 뭔지 아니?” 그 사람이 나무로 만든 물건을 들고 있었어요. 제가 모른다고 해서 그 사람이 저한테 말했어요, “이게 그 이상한 소리를 만들어.” 제가 깜짝 놀랐어요. 어떻게 만드는지 궁금해서 그 사람이 그 나무로 만든 물건을 가지고 놀기 시작했는데 그 이상한 소리가 들리는 거에요! 근데 자세히 들으니까 이상한 소리가 안 나고 너무 듣기 좋은 소리가 나왔어요. 꿀보다 더 달고, 버터 보다 더 부드러운 소리가 나오는 거예요! 그래서 어떻게 그 소리가 나오는지 물어봤죠. “이게 음악이라고 해”라고 했어요. 음악이 이만큼 아름다운지 보여준 내 옆집 사람은 너무 고마워요. 근데 그날 이후로 그 사람은 내 옆집 사람이 아니라 내 옆집 친구가 되었어요.

고교 백일장 수상작 ∙ 최민택 |

375


Palisade Park High School / 1등

저희의 미래 이 서 연 (11학년)

저는 어릴 때 제일 좋았던 기억이 학교를 가는 날인데 창문 밖을 보니 길거리들과 주변 집들이 하얗게 눈으로 덮여져 있을 때였습니다. 그리고 계단을 뛰어 내려가며 엄마한테 학교 안 간다는 소식을 들었을 때 너무나 행복한 순간이었습니다. 저는 뉴저지에 살아서 그런 날들이 종종 있었죠. 하지만 고등학교를 들어와서 눈 때문에 학교를 안 간 적들이 점점 줄어 들어가고 있는 걸 느꼈습니다. 그리고 작년에는 그런 날이 단 한 번도 없었습니다. 한 때 눈이 길거리를 다 덮었지만 시간이 지나 그저 비만 자주 왔습니다. 제가 10학년 때 AP Environmental science(APES)이라는 과목을 들었습 니다. 그 수업은 사람들이 지구에 어떤 영향이 있었는지 공부했습니다. 그 과목을 듣고 난 후, 지구가 어떤 상태인지 깨닫게 되었습니다. 사람들은 맨날 플라스틱, 음식물, 쓰레기 등등 별 생각없이 버립니다. 하지만 우리의 그런 하나하나의 행동들이 지구의 생태계가 파괴되고 있습니다. 그 쓰레기는 결국 지구의 바다들로 들어가게 되고 공해가 진행됩니다. 이런 것들이 지구에 쌓이면서 온난화가 심해집니다. 지난 몇 년의 온도가 높아지는 걸 보면 온난화가 진짜라는 증거죠, 하지만 미국의 대통령, 도널드 트럼프는 아직도 이 사실을 인정하지 못했습니다. 계속 온난화라는 이슈를 무시하고 우리의 잘못된 행동들을 계속 진행하면 언젠가는 되돌릴 수 없는 시기가 올 겁니다. 최근에 뉴욕에 “Climate Clock”이라는 시계가 지어졌습니다. 그 시계는

376

| 뉴욕문학 제31집


사람들이 안 좋은 배출들을 하나도 만들지 않을 때까지 얼마나 시간이 남았는지 보여주죠. 대강 7년이 남았습니다. 하지만 그 때까지 사람들은 아예 배출을 안 만들 수가 있을까요? 저는 거의 불가능이라고 봅니다. 저는 온난화가 지금 제 나이가 되는 사람들을 가장 많은 영향을 주고 있다고 믿습니다. 왜냐하면 저희가 지금까지 학교에서 열심히 공부를 하고 있었는데 지구의 나쁜 상태 때문에 저희의 미래가 걱정됩니다. 저는 아직 가족과 하고 싶은 것도 많고 가고 싶은 곳도 많습니다. 저는 미래의 치과의사 가 되고 싶은 마음도 있죠. 근데 과연 지구가 그 때까지 남아있을 까요? AP Environmental Science이라는 과목과 어릴 때의 추억들이 지금 지구 상태의 심각성을 알게 해 주었습니다. 그것 때문에 매일 매일 쓰레기도 줄이려고 주의하고 제 주변 사람들에게도 알리려고 노력하죠. 언젠간 제 치과의사의 꿈이 현실이 됐으면 좋겠습니다.

고교 백일장 수상작 ∙ 이서연 |

377


Francis Lewis High School / 1등

나의 이웃 변 유 나 (9학년)

저는 매우 친절한 이웃이 있습니다. 제 이웃은 저의 엄마의 가장 친한 친구인데, 4명의 가족이 삽니다. 친구의 남편, 제 동생의 가장 친한 친구, 클로이랑, 저보다 어린 에릭이라는 남자애가 있습니다. 우리는 만난 지가 거의 10년이 됐어요. 그래서 저한테 대개 가족같은 존재예요. 10년 동안 아무 문제없이 잘 지내고 있어요. 우리는 서로 문제가 있어도, 서로 도우며 모든걸 해결을 해요. 저는 엄마 친구를 이모라고 불러요. 제 이웃은 또한 팝콘이라는 강아지를 키우고 있습니다. 처음에는 저희 강아지 허니랑 팝콘이랑은 친하게 잘 지내지 못했지만 시간이 지날수록 가장 친한 친구가 됐습니다. 에릭과 클로이는 우리 집에 와서 함께 모든 것을 했어요. 저랑 매일 함께 시간을 보냈어요. 또한 에릭과 클로이는 우리 집에 와서 함께 매일 게임을 했어요. 우리는 또한 함께 숙제를 하고, 함께 식사를 하고, 서로 이야기를 나누고 했습니다. 우리는 같은 학교를 다녀서, 끝나고 숙제를 다 끝내고, 에릭이랑 저는 아파트 밖으로 나가서 다른 남자들과 축구를 했어요. 우리는 땀을 흘리며 집에 돌아와서 서로 웃습니다. 더워도, 추워도 같이 나갔습니다. 할로윈에는 옷을 입고 함께 Trick-or-Treat을 해요. 다같이 모이고, 화장을 엄마랑 이모가 도와줘요. 우리는 밤늦게까지 Trick-or-Treat을 합니다. 날씨가 추워도 맨날 Trick-or-Treat을 합니다. 밤에 저희 집에 또 놀러 오고, 우리가 안 좋아하는 사탕이랑 초콜릿을 빼고 사람들이 저 문을 띵동하면 그 사탕이랑 초콜릿을 나눠줘요. 다 끝나면, 우리 화장을 다 지우고, 다 각자 집으로 갑니다. 그리고 컴퓨터에서 만나 다시 게임을 378

| 뉴욕문학 제31집


합니다. 할로윈은 되게 재미있는 날입니다. 그리고 겨울 크리스마스에는 함께 썰매를 타며 서로에게 눈을 던지고 눈사람을 만듭니다. 실컷 놀고 각자 집으로 가서 옷을 갈아입고 다시 만납니 다. 우리는 핫초콜릿을 마시면서 얘기를 하며 쉽니다. 이 두 휴일은 이웃과 함께 시간을 보내고 싶은 제가 가장 좋아하는 휴일입니다. 저는 이웃과 같이 여행도 갔어요. 제 최고의 여행은 Camelback이었습니 다. 재미있는 놀이기구가 많은 워터파크입니다. 이웃과 함께 Camelback에 가는 게 진짜 최고입니다. 여행을 갈 때마다 이모가 운전을 합니다. 이모도 되게 재미있고 웃깁니다. 재미있게 놀아주고 장난을 다 받아 줍니다. 제 엄마랑 이모는 우리가 가고 싶었던 모든 것을 같이 타고, 모든 것을 다 해줬어요. 우리는 몇 시간을 타고, 밥 먹고, 게임장도 갔어요. 저는 또한 이웃들과 zipline을 갔습니다. 두 번째로 좋아하는 여행이었습니 다. 처음에는 에릭이랑 클로이는 무서워했지만, 제가 그냥 뛰어내려 zipline 을 하는 것을 보고 재미있어 보인다고 생각했기 때문에 에릭이랑 클로이도 하고 싶어 했습니다. 에릭이랑 클로이는 저를 따라 왔고 우리는 서로 다른 높이를 가서 zipline을 했습니다. 저는 가장 높은 것을 먼저 올라갔고, zipline 을 하면서 제 얼굴의 바람이 부는 게 정말 기분이 좋았습니다. 이웃들도 같은 느낌을 받았습니다. 제 경험을 나누고 이웃과 여행에 대해 이야기하는 것이 즐거웠고 그 경험을 결코 잊을 수 없었습니다. 저는 이제 고등학교에 다니고 있어서 이제는, 잘 만나지 못해요. 근데 제 동생이랑 클로이는 아직도 게임을 합니다. 우리는 각자의 길을 가고, 저는 바빠서 이모랑 엄마랑 강아지 산보시킬 때 가끔 만나고 있어요. 저는 제 옆에 이렇게 좋은 이웃이 있다는 게 너무 감사하고 행복합니다.

고교 백일장 수상작 ∙ 변유나 |

379


연 혁


미동부한인문인협회 연혁 • 1989 • 1989. 2. 9 - 발기인 대회 (미동부한국문인협회) 발기인: 김명선(시), 김송희(시), 김정기(시), 변수섭(소설), 윤석진(시), 이계향(수필), 이정강(시), 정규택(소설), 정시훈(소설), 최병현(시), 최정자(시). (이상 11명) 1989. 6. 29 - 창립 총회 (40명 참석) - 초대회장: 이계향 / 부회장: 김정기, 김송희 피선 - 명칭 제정: 한글 - 미동부한국문인협회 영문 - Korean Writers Association of America Inc. 1989.

- 김정기(시집), 변수섭(소설 상하권), 최정자(시집) 출판

• 1990 • 1990.

- 한국 『월간문학』에 해외문인 특집으로 작품발표 - 소설가 이병주, 정연희 초청 송년회 겸 문학 강좌 - 곽상희(시), 임혜기(수필집), 정문혜(시집) 출판

• 1991 • 1991.

- 연간집 『뉴욕문학』 창간호 발행 - 격월 정기 문학 강좌: (강사) 이계향, 김정기, 김송희, 신상태, 최병현, 곽상희 - 소설가 김용익 작품 비디오 <꽃신> 감상과 토론 - 이자장(소설) 출판

• 1992 • 1992

- 신인 발굴을 위한 <신인 작품상>제정 - 계간 회지 『뉴욕문단』 창간 - 한국 월간 『심상』에 평론가 오양호 교수의 『뉴욕문학』 작품평 소개 (최정자) - 스토니부룩대학 박성배 교수의 <동양철학의 체용의 논리> 강좌 - 정기 문학 강좌: (강사) 곽상희, 서량, 최정자 - 곽상희(시집), 김민정(수필집), 이희만(시집), 한준길(소설) 출판

미동부한인문인협회 연혁 |

381


• 1993 • 1993

- 제1회 신인상 시상 총 101편 응모 소설: 박진영, 수필: 최명은, 나은경 당선 시 부문은 당선작을 선정했으나 표절(문정희의 시)로 당선 취소됨. - 문학 강좌: 주제 - “작가란 무엇인가?”,(강사) 김정기 - 특별학술강연회: 김려춘 박사(러시아), 김관웅 박사, 채미화 교수, 오상순 교수(이상중국) - 8.15광복절 행사의 <통일백일장>주관 - 박유남(수필집), 최정자(시집) 출판

• 1994 • 1994.

- 스토니부룩대학 한국학회와 공동주최 - 문학 강연: (강사) 최명희(소설 ‘혼불’작가) - 제2회 신인상 시상 (시: 장석렬, 소설: 한영국, 수필: 김용미 당선) - 문학강좌 / (초청강사) 최연홍, (자체강사) 이계향, 김정기 - 김송희(수필집), 백영희(시집), 이영주(수필집), 임경자(시집), 정문혜(시집) 출판

• 1995 • 1995. 6

- 제6차 정기총회 - 제4대 회장: 김정기 / 부회장: 서량, 최정자 피선 - 한국문인협회 주최 <제6회 해외문학 심포지엄>개최 (한국과 뉴욕 문인 150명 참가) 1) 주제 발표 / 한국 <함동선(시인)>: 한국시의 세계성. 한국 <채수영(평론가)>: 세계문학과 한국문학의 전략적 기대. 뉴욕 <최정자(시인)>: 한국문학과 세계문학. 2) 해외문학 공로패: 이계향(전임회장), 해외문학상: 『뉴욕문학』 3) 한국문학의 밤 개최 시낭송: 한국 11명, 뉴욕 10명, 참석인원 180명 - 초청 문학강좌 : 소설가 김원일, 시인 문정희, 소설가 정연희 - 임혜기(소설) 출판.

382

| 뉴욕문학 제31집


• 1996 • 1996. 6.

- 제7차 정기총회: <정관개정> 회장 임기 2년 단임으로 통과. - 서울 『우경문화재단』 주최, 문학의 해에 <문학의 즐거움을 해외동포와 함께> 행사 주관. 전숙희(수필), 김후란(시), 이경희(시), 김주영(소설), 김원일(소설), 홍민(가수), 김광일(가수)

1996.3.23~29 - 맨해튼 켐브릿지 화랑에서 제1회 시화전 개최. - 한국의 <문학의 해>에 회원 12명 참석. 1996.

- 제4회 신인상 시상 (시부문: 김기정, 형남구 /수필부문: 이경희, 조성자 당선) - 초청문학강좌: 시인 문덕수(서울). 소설가 이희성(일본). - 김송희(시집), 나은경(수필집) 출판.

• 1997 • 1997. 6.

- 제8차 정기총회 - 제 5대 회장 윤석진 / 부회장 이영주, 서량 피선. - 회원 가을 야유회: 소설가 정연희(서울), 시인 김철(중국)씨 참석. - 초청 문학강연: 황동규(시인), 마종기(시인). - 제5회 신인상 시상 (소설부문: 민병임 당선). - 김정기(산문집) 출판.

• 1998 • 1998.

- 분과위원회 운영 도입 세칙 수립 - 초대 분과위원장 선출 시분과위원장: 최정자, 소설분과위원장: 정규택 수필분과위원장: 이영주 - 제2회 가을 야유회. - 회계 연도를 1월로 정관 개정함에 따라 윤석진 회장 임기 6개월 단축 - 제6회 신인상 시상 (시조부문 : 여영자, 시부문 : 이혜란) - 초청문학강좌: 김남조(시인), 문덕수(시인), 신달자(시인), 이문열(소설가), 성춘복(시인) - 김영란(수필집), 김옥수(수필집), 나은경(수필집), 임경자(수필), 임혜기(소설), 허선행(수필집) 출판.

미동부한인문인협회 연혁 |

383


• 1999 • 1999.

1. 16 - 제10차 정기총회(53명 출석), 신규 선거세칙에 의거 회장과 부회장 러닝메이트 제도 도입 - 제6대 회장 최정자 / 부회장 김윤태, 김자원 당선 - 창립 10주년 기념문집 <속마음> 출판

1999. 5. 24 - 문학강좌 (강사: 박완서 <소설가>) 1999. 10. 25 - 창립 10주년 기념 및 <뉴욕문학> 제9집 출판기념회 (300명 참석) - 초청강연회 (강사: 최인호 <소설가>, 박완서<소설가>)초청 강연 및 문인극 공연 1999. 12. 7 - 제2회 <수필과 음악의 밤> 개최 장소: 금강산 연회장. - 초청 문학강좌: 시인 성춘복(서울). - 한영국 (소설) 제1회 해외동포문학상 대상 수상 - 김소향 (시집), 변수섭 (소설), 이상윤 (시집), 이영주 (수필집), 정재옥 (수필집), 최정자 (시집3권) 출판

• 2000 • 2000.

- 제11차 정기총회 정관개정: 회장 임기를 1년 단임으로 하고, 차점자가 부회장이 되며, 부회장 이 차기 회장으로 선임되기로 하다. 따라서 차기에는 부회장만 선출키로 하다. - 본 협회 창립에 공이 큰 김송희(시) 회원을 고문으로 추대 - 문학강연 (강사: 최월희 교수<뉴욕시립대학>)

2000. 2. 3 - 문학강연 (강사: 장윤우<시인>) 2000. 5. 26 - 문학강연 (강사: 이동하<소설 평론가>, 정효구 <시 평론가>) 2000. 7. 31 - 문학강연 (강사: 김병권(수필)) - 제8회 신인 작품상 시상 (시부문: 최임선, 차선자, 유기성 /수필부문: 허 석, 김부경, 여운해 /소설부문 (최초 영문 소설): 김래영) 2000. 7.

- 세계 한국 문학인 대회 (로스엔젤레스) 회원 22명 참가

2000. 9. 23 - 『뉴욕문학』 10집 출판기념회. - 가을 야유회: 야외 조각공원 <Storm King Art Center> 2000. 12. 14 - 제1회 미국고교 한국학생 한글백일장 개최(150명 참가) 참가 고교: 후러싱 고교, 베이사이드 고교 백일장 글제: <친구>, <첫 눈>

384

| 뉴욕문학 제31집


• 2001 • 2001.

1. 12 - 제1회 미국인 대상 한국문학 소설과 시조소개. (외국인 80명 참가)

2001.

1. 19 - 제12차 정기총회 (50명 참가)

(강사: 한국 소설 <박진영 교수>, 시조<박태영 교수>) - 제7대 회장: 정재옥 / 부회장: 박요한 피선 2001. 2. 12 - 문학강좌 강사: 신달자(시인) - 김병석 회원 수필집 출판기념회. 2001. 5. 5 - 초청강연회 강사: 신경숙(소설가), 김혜순(시인) 2001. 5. 25 - 끝뫼 김말봉선생 탄생 백주년 기념행사. 추모사: 정재옥, 추모시: 김정기, 최정자 문학과 사상: 임혜기, 한영국, 박진영. - 제9회 신인상 시상 (시부문: 고치완, 박이슬<영문>, 소설부문: 이숙종) - 제2회 미국고교 한국학생 한글백일장 개최 참가 고교: 후러싱 고교, 베이사이드 고교, 후랜시스 루이스 고교 참가 - 이계향 고문 9책 6권 전집 출판기념회 - 『뉴욕문학』 제11집 출판기념회 - 신지혜(시) 제3회 해외동포문학상 대상 수상 - 김병석(수필집), 이계향 고문(수필 전집), 이전구(시집), 이희만(시집) 출판

• 2002 • 2002. 1.

. - 제13차 정기총회 정관개정: 회장 임기를 2년 단임으로 개정. 따라서 차기 회장은 현 부회장이 선임되며, 임기는 1년. 개정 이전의 정관에 의하여 박요한 부회장이 제8대 회장으로 선임. 부회장은 선거에 의하여 이정강 피선. - 문학 강연: 한국 (소설가 <한말숙>, 평론가 <김윤규> 강연) 뉴욕 (수필가<이계향>, 시인<김정기>, <최정자>강연) - 제3회 미국고교 한국학생 한글백일장 개최 - 제2회 한국문학을 외국인에게 알리는 행사. - 페루 <잉카를 찾아서> 문학 기행 - 최정자 고문 제4회 천상병 시상 수상. 시 낭송극 공연. - 김명욱 (시집. 수필집), 하운 (시집) 출판.

미동부한인문인협회 연혁 |

385


• 2003 • 2003. 1. 30 - 제14차 정기총회 제9대 회장 이정강, 부회장 신상태 피선 - 신인상 시상 (소설부문<영문>: 다이아나 리, 수필부문 : 나정길) - 문학강연: 김정기, 김송희, 박요한 - 어린이 청소년 글짓기 대회 2003. 6. 20 - 천상병 시인 10주기 추모의 밤 (천상병 시인의 부인 목순옥 여사, 한양여대교수 박정희 시인, 가수 이동원 씨 외 12명이 서울에서 참석) 천상병 시인의 문학과 사상 발표 - 박정희 시인, 최정자 시인 (준비책임자), 정재옥 수필가 2003. 9. 20 - 가을 야유회. 2003. 11. 23 - 제4회 미국고교 한국학생 한글백일장 개최 - 이영주, 정재옥 (해외 수필문학상), 박요한(문촌문학상), 방인숙(해외 동포문학상 대상), 김부경(한국수필 신인상) 수상 - 김영란(수필): 뉴욕타임스 소개. - 김민정(수필집과 소설), 김자원(수필집), 박요한(소설), 안영애(시집) 출판

• 2004 • 2004. 1. 17 - 제15차 정기총회 회장 임혜기, 부회장 김명순 피선 2004. 2. 20 - 수필가 손광성 초청 문학강연 2004. 2. 28 - 시인 김종철 초청 문학강연 2004. 4. 2004. 5.

- 신인상 심사 발표, 소설부문 당선: 황진규, 가작: 정권수, 김병관 - 본회 웹사이트 개설, www.newyorkmunhak.com

2004. 9. 25 - 회원 야유회 (뉴저지 브릿지 파크) 2004. 10. 27 - 제5회 미국고교 한국학생 한글백일장 개최 (참가교: 베이사이드, 후러싱, 후랜시스루이스 고교) 2004. 11. 21 - 『뉴욕문학』 제14집 출판기념회 2004. 11. 30 - 문화원 주최 소설가 <이호철>씨 영문소설 출판기념회 후원 - 김정기 고문: 미주문학상 수상. - 김정기 고문(시집), 박민흠(시집), 최임선(시집),정재옥 고문(수필집) 출판

386

| 뉴욕문학 제31집


• 2005 • 2005. 1. 19 - 제16차 정기총회 2005. 2. 12 - 문학강연: 시 쓰기(최정자), 문학하기(박진영), 플러싱 공립도서관

• 2006 • 2006. 1. 19 - 제17차 정기총회 제11대 회장 김송희, 부회장 이희만 피선 2006. 3. 30 - 임시총회 뉴욕문학상(가칭) 준비위원회 위원 위촉(위원장: 최영선 이사장, 위원: 김송희 회장, 윤석진 고문, 정재옥 고문, 임혜기 고문, 김명욱 부이사장 이상 6명) 2006. 4. 13 - 『뉴욕문학』 신인상 심사 시부문 당선: 한정화, 가작: 허도행, 소설부문 가작: 장소영, 벤 김 2006. 7.

1 - 회원 친목 야유회 (장소: Ross Dock State Park, NJ)

2006. 11. 9 - 제7회 미국고교 한국학생 한글백일장 개최 참가교: 베이사이드, 훌러싱, 후렌시스 루이스 고교, 300명 참가 글제: ‘컴퓨터’, ‘숲으로 가는 길’ 중 택일 2006. 11. 16 - 『뉴욕문학』 제16집 출판기념회 (장소: 대동연회장) 2006.

- 곽상희(수필집), 이경희(수필집), 김자원(수필집), 임혜기(소설), 양주희(수필집), 천취자(시집) 출판

• 2007 • 2007. 1. 25 - 제17회 정기총회 뉴욕문학상 시행세칙 제정 2007. 4. 19 - 제1회 뉴욕문학상 심사(수필가 이계향 고문의 전집 9권 6책을 뉴욕문학상으로 선정) 2007. 4. 26 - 수필분과 위원회(위원장: 김자원) 발간 ‘이제는 낯설지 않는 땅’ 출판 기념회 개최 수필 낭송극 강연(강사: 정재옥 고문, 연제: 수필문학, 왜 변화를 시도해야 하는가?) 2007.6.23~30 - 시분과위원회(위원장: 안영애) 주최 시화전 장소(훌러싱 열린공간, 주제: 글과 그림전, 27인 참가, 65점 출품) 2007. 10. 4 - 김명순 회원 수필집 “뉴욕. 삶과 사랑의 풍경” 출판 기념회, 레오날즈 (초청연사 경희대 김종회 교수 문학 강연) 2007.10.6~8

- 뉴잉글랜드 가을문학 기행 (김종회 국문학 박사 문학 특강)

미동부한인문인협회 연혁 |

387


• 2008 • 2008. 1. 29 - 제19차 정기총회 제12대 회장: 최영선, 부회장: 김민정 피선 2008. 2. 29 - 신년모임 신년하례식, 2008년도 첫 이사회, 제1회 척사대회 2008. 3. 19 - 회장단, 이사장단, 고문단 연석회의 2008.4.9~11- 제1회 <4월의 문학잔치> 개최 (장소: The Poietis Theater ‘Poet’s Den’) 첫째날 잔치: 소설의 날, 둘째날: 수필의 날, 세째날: 시의 날 2008. 4. 14 - 박요한 고문, 제25회 한국 크리스찬 문학상 대상 수상 2008. 5. 10 - 2008년도 제 2차 이사회 각 분과위원회 운영제 폐쇄 2008. 6. 10 - 본 협회 창립 초대, 2대, 3대 회장을 역임한 이계향 고문 팔순 잔치 주도 2008.8.16~17 - 제1회 자체 연수회 개최(펜실베니아 혼스데일) 2008. 9. 19 - 김명순(수필), 제 4 회 원종린 수필문학상 수상 2008. 10.

1 - 『뉴욕문학』 제18집 발행

2008. 10. 3 - 『뉴욕문학』 International Standard Serial Number 국제정기간행물 ISSN 번호 획득 ISSN 1944-205X 2008. 10. 9 - 웹사이트 재개설 www.newyorkmunhak.net - 협회소식지를 계절 회보로 개정. 『NY 문협회보』 2008가을호 발행 2008. 10. 17 - 가을 문학산책 뉴욕 맨해튼 센트럴 파크 - 백영희 칼럼집 ‘가실의 봄, 뉴욕의 가을’ 출판기념회 2008. 11. 3 - 『뉴욕문학』 제18집 출판기념회 2008. 11. 7 - 제9회 미국고교 한국학생 한글백일장 개최 Bayside H.S./ Francis Lewis H.S./ Stuyvesant H.S. 참가 2008. 11. 10 - 곽상희(시), 신앙시집 ‘오직, 사랑함으로: 창조문화사’ 발간 2008. 11. 27 - 최영선 회장 사단법인 한국문인협회 방문 현안 협의 2008. 11. 28 - 제9회 미국고교 한국학생 한글백일장 시상식 뉴욕총영사관 본청 대상: Bayside H.S. 김동빈 ‘길’ 2008. 12. 3 - 임혜기(소설), 해외문학상 우수상 수상(경희사이버대, 한국평론가협회 공동주최) - 본협회 로고 제정, 총 6점 응모, 최영선 작 당선

388

| 뉴욕문학 제31집


• 2009 • 2009. 1. 6 - 제20차 정기총회 (사)한국문인협회 가입여부 1년 유보 2009. 2. 16 - 2009년도 1차 정기이사회 - 신입회원: 노려(수필), 양정숙(수필), 이춘희(수필), 지인식(시) 2009. 4. 10 - 박요한(소설), ‘액션 바이블 러브스토리 전10권, 성안당출판사’ 대한민국 횃불문학상 대상 수상 2009. 5.

1 - 제17회 신인작품상 심사 시: 입선작 없음, 소설: 당선 박숙자 ‘철원의 하루’ 수필: 가작 민경애 ‘주덕 가는길’

2009. 5. 12 - 2/4분기 이사회 제2회 뉴욕문학상 심의: 곽상희 시인 선정 - 협회 창립 20주년 행사위원회 구성 위원장: 김송희, 부위원장: 임혜기 위원: 최영선, 김민정, 김자원, 나정길, 황미광, 안영애, 김부경, 여영자, 한영국, 윤관호, 김명순(사진, 광고) 2009. 6. 9 - 복영미(시) 한국일보 LA 미주본사 창사기념 문예작품 공모 생활수기 대상 수상 2009. 6. 12 - 협회 창립 20주년 기념 문학강연회 강사: 시인 성춘복, 장소: 세계일보사 스페이스 월드 2009. 6. 18 - 전수중(수필) 영어교재 ‘영어없이 영어배우기’ 출판기념회 2009. 7.

1 - 조성자(수필, 시) 시집 ‘새우깡’ 출판

2009. 7. 15 - 김정기(시) 자작시 ‘민족의 꽃’ 한국독립기념관 비치 보관작으로 선정 - 정재옥(수필) 병상일지 ‘별하나 당신, 별하나 나’ 수필집 ‘여름이 되면 티티새는 울지 않는다.’ 출판 2009. 10. 9 - 제10회 미국고교 한국학생 한글백일장 개최 2009. 10. 27 - 변수섭 소설 ‘뻐꾸기 둥지’, ‘나비의 꿈’ 전문지 Wanted God(영문판) 출판 - 최영선 수필집 ‘뉴욕뿌다구니: 소소리’ 출판 - 본협회 창립20주년 및 뉴욕문학 제19집 출판기념회 2009. 10. 30 - 방인숙 수필 ‘뉴욕의 미루나무 길을 달리며’ 출판 2009. 11. 20 - 김명순 수필집 ‘뉴욕, 삶과 사람의 풍경 2’ 출판 2009. 12. 9 - 김명순 한국수필해외문학상 수상

미동부한인문인협회 연혁 |

389


• 2010 • 2010.

1. 7 - 제21차 정기총회 제13대 회장: 김자원, 부회장: 나정길 당선

2010.

1. 8 - 재외동포 후원금 요청서류 접수. 문화원 방문. 문협활동에 협조 최정자, 김자원

2010.

1. 9 - 은행구좌 새회장단으로 명의 변경

2010.

1. 14 - 목요일 방송국 방문, 헤이티 사랑의 모금에 문협회장 5백불 성금

2010. 2. 6 - 1/4분기 이사회, 안건: 이사장 선출 이사장: 하운, 부이사장: 안영애 선출됨 집행부: 총무 황미광, 서기 이숙종, 회계 김부경, 감사 김소향 복영미, 학술부장 차선자, 편집출판부장 여영자 인준 결정사항: 문학교실, 매월 1회 문학강좌하는 것으로 만장일치 기타안건: 6·25 60주년기념 특별행사에 평통과 ‘6·25 체험 글쓰기’ 등 상호 협조 2010. 2. 12 - 회장단과 이사장: 신문사, 방송국 방문 각 언론사 광고: 신인 문학상(등단작품) 공모 2010. 2.

. - 문학강좌 임혜기 주제: 소설쓰기가 쉽다고요? (소설과 스토리텔링)

2010. 3. 14 - 양주희(수필) 수필집 ‘그대, 숲속을 거니는가’ 출간 및 회갑연 2010. 3. 21 - 김명욱(시) 목사안수, 뉴저지 안디옥교회당 2010. 4. 4 - 김자원(수필) 불교방송 15주년 기념행사 - 정문혜(시) 북한선교회 총회 참석 - 김소향(시) 남극여행 더불어 마라톤하다 2010. 4. 8 - 문학강좌 정재옥 주제: 작가와 우울증, 강좌 후 작품낭독: 이춘희, 양정숙 신인상 작품심사: 최정자, 이정강, 김송희, 정재옥, 최영선, 김자원, 임혜기, 한영국, 황진규 당선작가: 수필 황정숙, 가작 임혜숙 / 소설: 강갑중, 안교승 / 시 부문 당선작 없음 2010. 4. 13 - 이정강(시) 고문 시집 ‘그 바람결에 연은 뜨고’ 출판기념회 2010. 5.

- 문학강좌 최정자 주제: ‘시의 양면성’, 문학강좌 후 시낭송: 김명순, 안영애

2010. 5. 17 - 고문단 친목모임: 문협발전에 큰 힘이 되어주실 것을 다짐 장소: 금강산 식당 김정기, 최정자, 임혜기, 김송희, 정재옥, 최영선 고문 김자원 회장

390

| 뉴욕문학 제31집


2010. 5. 18 - 김옥기(수필), 맨해튼 32가 시티빌딩 내에 문화센터 개원 수필집 ‘바람이 부는가’ 출간 - 지인식(시), 신학박사 학위 취득 - 천세련, 10년간 뉴욕미술계 자료모아 웹사이트 개설 www.nyartnews.com - 곽상희(시): 전인적 치유 문학강의 (효신장로교회) 2010. 6.

- 문학강좌: 김민정, 주제: 수필문학과 그 자존심 2/4분기 이사회: 재외한인사회연구소 주최 강연회에 문협협찬 결의

2010. 8. 19 - 문협 고문님 재외한인사회연구소 주최 주제발표: 최정자 ‘이민살이에서 시를 쓰는 이유’ 정재옥 ‘이민문학의 정의’, 임혜기 ‘이민자의 문학에 관한 소고’ 2010. 9. 9 - 문학강좌: 김송희, 주제: 글쓰다 막히면 어떻게 해요? 가을시 낭송: 김송희, 하운, 이전구, 윤관호, 김명순, 천취자, 양정숙, 안영애 2010. 9. 20 - 김민정 장편소설 ‘끝나지 않은 강’ 출판기념회 및 소설에 대한 토론 2010. 10. 7 - 정기문학강좌: KCS강당에서 교수 혜민스님(‘젊은 날의 깨달음’작가) 초청. 주제: 스님들이 왜 글을 쓰나? 2010. 10. 20 - 최임선 이사 제2시집 ‘정신병동’ 출간 2010. 11. 12 - 제11회 미국고교 한국학생 한글백일장 개최 참가학교: Bayside H.S./ Francis Lewis H.S./ Stuyvesant H.S. 참가인원: 350여 명 백일장 글제: 사이버 월드, 나는 누구인가? 2010. 11. 30 - 300여 명의 축하객과 회원의 성원으로 치러진 『뉴욕문학』 출판기념회, 대동연회장 회원들이 출연한 문인극 ‘황진이’ 기획:김송희, 극본:노려 재미동포문학상 시상식 2010. 12. 9 - 정기문학강좌: 최영선 고문님, ‘피천득 선생 탄생 100주년의 해를 마감하는 기념 주제: 금아 피천득 선생의 수필세계-창작 기법을 중심으로 2010. 12. 31 - 1박 2일 문학기행 김종회, 이봉회, 홍용희 교수님 모시고 30여 명이 참석한 가운데 델라웨어, 버지니아, 메릴랜드 방문 세분 교수님의 문학강연

미동부한인문인협회 연혁 |

391


• 2011 • 2011.

1. 27 - 정기총회, 금강산 소금강홀 위임포함 회원 45명(과반수) 참석 회원각자 소개 및 이준, 전애자 신입회원 인사 특별초청: 우학스님 문학강연

2011.

2. 17 - 정기문학강좌, 이정강 고문 (주제: 황진이 시조의 특성과 우수성)

2011.

2. 25 - 시인 이가림 선생님 초청 문학강연, 금강산 소금강홀

2011. 3.

- 윤관호 이사 시집 ‘누이이야기’ 출판기념회, 대동연회장

2011. 4.

- 김소향 이사 두번째 시집 ‘바람의 예감’ 출간

2011.

5. 12 - 정기문학강좌, 김명순 이사, 문협회의실 주제: 문학세계 속의 비젼 ‘하이퍼텍스트 문학’ 『뉴욕문학』 신인상 심사

2011. 6.

- 『뉴욕문학』 신인상 발표 수필당선: 차덕선, 동시당선: 하영미, 시가작: 조희연

2011.

7. 23 - 한여름 무더위 식히는 뮤지엄데이 구겐하임의 이우환 특별전과 메트로폴리탄 뮤지엄의 한국분청사기전. 미술 전공 노려 회원의 안내, 30명 참가

2011.

7. 28 - 박재동과 함께하는 뉴욕러브페스티발 행사 후원

2011.

8. 31 - 문인극 ‘앙드레 지드의 지상의 양식’ 첫 모임

쿨트라 대표 한정순 사장 문협 고교백일장 행사에 후원금 $500 전달 김명순, 이춘희, 양정숙, 윤관호, 김송희, 노 려, 황미광, 김자원, 2011. 11. 2 - 제12회 미국고교 한국학생 한글백일장 개최 Bayside H.S. / Francis Lewis H.S. / Palisades Park H.S. 2011. 11. 5 - 국제 한국 Pen club 이길원 이사장 특별 강연회 (한국 문화원) 2011. 11. 6 - 제주도 세계7대 자연경관 선정 기원 문인의 밤, 1 & 9 Gallery 시낭송: 최정자, 정재옥, 이정강, 노려, 윤관호, 전애자, 민경애 2011. 11. 7 - 황미광 시집 “나는 지금 마취 중이다” 출판기념회, 대동연회장 2011. 11. 8 - 이계향 고문 뉴욕방문 환영 오찬, Sheraton Hotel, Flushing 2011. 12. 5 - 『뉴욕문학』 제21집 출판기년회, 대동연회장 앙드레지드 “지상의 양식” 문인극 공연. 기획:김송희 극본:노려 2011. 12. 8 - 4차 이사회, 고문단에 선거관리 위원 및 위원장 일임, 금강산 식당 2011. 12. 20 - Francis Lewis High School 백일장 시상식 - 김자원, 김명순 Bayside High School 백일장 시상식 - 이재홍 선생님 Palisades Park High School 백일장 시상식 - 황정숙 선생님

392

| 뉴욕문학 제31집


• 2012 • 2012.

1. 31 - 제24차 정기총회 회장 이전구, 부회장 황미광 당선

2012. 2. 14 - 14대 회장단 한국일보, 중앙일보, 뉴욕일보, 라디오서울 등 언론사 방문 2012. 2. 23 - 1차 이사회 금강산에서 6시 30분(이사 25명 중, 17명 참석) 2012. 2. 25 - 임혜기고문의 소설 ‘만하탄 불루스’ 출판기념회, 뉴저지 연합교회 2012. 3.

1 - 천취자 화랑 (Gallery Chun) 개점 축하

2012. 3. 13 - 임원회의 1시 30분, 금강산 2012. 4. 2 - 『뉴욕문학』 신인상 공모 광고 4개 언론사 (중앙일보, 한국일보, 뉴욕일보, 라디오서울) 2012. 4. 13 - 5인 시화전 ‘봄이 오는 길목’ 및 시 낭송 4월13일~ 4월 24일 김옥기 이사의‘갤러리 마음’에서 전시 곽상희, 김송희, 하 운, 장석렬 시인 참여, 성춘복 시인 찬조 출품 오프닝 리셉션도 마련 2012. 4. 14 - 문협 야유회겸 문학강연(김유조 박사), Ross Dock, Fort Lee, NJ Picknic Area에서 회원들이 모여 야유회와 문학강연 2012. 5. 17 - 이전구, 김자원, 최정자, 『뉴욕문학』 신인심사준비 김원영 『뉴욕문학』 출판인 참석 2012. 5. 17 - 여영자 이사의 ‘먹물향’ 출판기념회, 대동연회장 2012. 5. 17 - 김영란 시화전, Gallery Chun(천취자)화랑 개최 2012. 5. 23 - 『뉴욕문학』 신인 작품 심사차 고문님들 참석 (김정기, 정재옥, 이정강, 김송희, 임헤기,최영선,김자원,한영국) 심사결과: 이수정(당선작-소설), 김도연(가작-소설), 이종비(가작- 시), 최민홍(가작- 수필) 당선 2012. 5. 29 - 『뉴욕문학』 신인상 당선자 발표 소설: 당선작-김장본능 (이수정), 가작: 마음의 초상 (김도연) 시: 가작- 씀바귀 (이종비) 수필: 가작-다시꺼내본 나의 어린시절 (최민홍) 2012. 6. 12 - 한영국 소설가의 중편소설 ‘동글 동네 모돌이’ 출판기념회 (Union Seminary- 3040 Broadway, Manhattan, NY) 2012. 6. 22 - 문협 2차 이사회, 금강산 2012. 7. 11 - 문협 임원회의, 금강산 이전구, 김송희, 김자원, 이숙종, 김명욱, 황미광, 노려(위임) 2012. 8. 3 - 『뉴욕문학』 22집 편집회의, 본회사무실 이전구, 황미광, 김자원, 이숙종, 김원영

미동부한인문인협회 연혁 |

393


2012. 8. 16 - 제3차 이사회 겸 『뉴욕문학』 22집 작품교정, 금강산 2012. 8. 19 - NJ 풍림에서 교정 2012. 8. 20 - 이우성 문화원장과 오찬미팅, 『뉴욕문학』 출판 협조요청 이우성, 황연지, 이전구, 황미광, 김자원, 이숙종 2012. 9. 10 - 문협회원들 국제 PEN 대회(대한민국 경주시)에 참석차 대거 출국 최정자, 정재옥, 임혜기, 이정강, 김자원, 황미광, 양정숙, 윤관호, 김옥기 2012. 9. 21 - 『뉴욕문학』 제22집 최종 편집회의 (이전구, 김명욱, 이숙종, 김원영) 2012. 10. 22 - 최정자 시인 시집 ‘북타령’ 출판기념회, 대동연회장 2012. 11. 16 - 제13회 미국고교 한국학생 한글백일장 개최 Bayside H.S. / Palisades Park H.S. 2012. 11. 29 - 제4차 이사회, 금강산 2012. 12. 5 - 제13회 미국고교 한국학생 한글백일장 개최 Francis Lewis H.S. 2012. 12. 21 - <뉴욕문학> 제22집 출판기념회, 대동연회장 문인극 “나는 시인이에요” 기획:김송희, 원작:임혜기, 극본:노려 문협 송년모임, 황미광 부회장 자택

• 2013 • 2013.

1. 23 - 임원회의 (이전구, 김명욱, 이숙종, 윤관호, 김자원), 금강산

2013.

1. 24 - 문협 정기총회, 금강산

2013. 2. 28 - 문협 제1차 이사회, 금강산 2013. 3. 8 - NJ Bergen County 이본 위안부기림비 제막식 참여 2013. 4. 11 - 곽상희 시인 시집 ‘고통이여 너를 안는다’ 출판기념회, 금강산 2013. 4. 15 - 『뉴욕문학』 신인상 공모 광고 (중앙일보, 한국일보, 뉴욕일보) 2013. 5. 17 - 『뉴욕문학』 신인상 심사 (심사위원: 김정기, 최정자, 정재옥, 김송희, 임혜기, 김자원) 2013. 5. 24 - 문협 제2차 이사회, 금강산 2013. 5. 29 - 『뉴욕문학』 신인상 당선자 발표, (시부문: 이성곤, 수필부문: 연봉원) 2013. 7. 8 - 『뉴욕문학』 제23집 교정작업, 금강산 2013. 8. 5 - 장석남 시인 문학강연, 금강산 2013. 8. 16 - 『뉴욕문학』 제23집 편집회의, 본회사무실 (이전구, 김명욱, 황미광, 김자원, 이숙종, 노 려, 김원영) 2013. 8. 27 - 문협 제3차 이사회, 금강산 (『뉴욕문학』 신인상 당선자 상견례, 당선증서 수여)

394

| 뉴욕문학 제31집


2013. 9. 14 - 문협 추계야유회, NJ Palisades Park, Ross Dock, Picnic Area 2013. 11. 8 - 문협 제4차 이사회, 금강산 2013. 11. 14 - 제14회 미국고교 한국학생 한글백일장 개최 Bayside H.S. / Francis Lewis H.S. / Palisades Park H.S. 2013. 11. 26 - 『뉴욕문학』 제23집 출판기념회, 대동연회장 2013. 12. 28 - 문협 송년모임, 황미광 부회장 자택

• 2014 • 2014.

1. 23 - 제 25차 정기총회 장소: 금강산 식당 - 제15대 회장: 하운, 부회장 이숙종 당선

2014.

1. 31 - 임원회의 (회장 하운, 부회장 이숙종, 총무 노려, 재무 양정숙, 서기 이춘희) - 회장단 언론사 방문 (한국일보, 중앙일보)

2014. 2.

1 - 곽상희 시인 영문소설 ‘Two Faces’ 출간

2014. 2. 20 - 제 1/4분기 이사회 이사장: 윤관호, 부이사장 복영미 선출 감사: 김명순, 변정숙 선출 2014년도 사업계획, 예산안 심의, 인준 2014. 2. 27 - 복영미 시집<우주에 젖이 돈다>출판기념회 금강산 연회장 2014. 4. 3 - 제 2/4분기 이사회 이사회 폐회 후, 제1회 문학 토론회 김송희 시인의 <봄을 여는 문학 산책>이란 주제로 시낭송 양주희 수필집 <솟아 나누는 샘물> 출간 뉴욕시 주관 음력설행사(Flushing Town Hall) 곽상희, 이희만 시낭송 2014. 4. 5 - 임혜숙 수필집<때에 따라 다른 바람 소리>출간 2014. 4. 12 - 제 23회<뉴욕문학>신인상 공모 광고(한국일보, 중앙일보, 뉴욕일보) 2014. 5. 23 - 뉴욕문학 신인상 발표 시 부문: 김태수 시조 ‘봄빛’당선작으로 입상 수필부문: 입상자 없음 소설부문: 강남옥 ‘영자의 전성시대’ 가작 입상 전준성 ‘백 년 동안’ 가작 입상 심사위원 (시) 이정강, 최정자 (소설)임혜기, 한영국, 이숙종 2014. 5. 29 - 제2회 문학 토론회 (수필분과 위원회 개최) - 뉴저지 동해수산 수필 문학의 과거, 현재 미래에 관한 토론 발표자: 수필가 정재옥, 최영선 고문

미동부한인문인협회 연혁 |

395


2014. 6. 23 - 제24집 <뉴욕문학> 1차 편집 위원회 회의 편집위원: 황미광, 김자원, 노려, 양정숙 2014. 7. 6 - 김송희 시집 <이별은 고요할수록 좋다>출간 2014. 7. 6 - 김정기 시집 <빗소리를 듣는 나무>출간 2014. 7. 18 - 김태수 시인 ‘재외동포문학상’ 수상 (앵커리지 한인신문 보도) 2014. 7. 21 - <뉴욕문학> 최종 편집회의 - 하운 회장 사무실 2014. 7. 23 - 황진규 소설<이 세상에 낙원은 어디 메뇨> 출간 2014. 7. 28 - 김옥기 수필집<수평선 저 너머에는> 출간 2014. 8. 1-2 - 수필분과 여름 문학 모임 장소: 청솔 쉼터 2014. 8. 7 - 제 3/4분기 이사회 신인상 수상자 김태수 시인, 전준성 소설가 본 협회 회원으로 인준 <뉴욕문학>제 24집 출판기념회를 11월6일로 개최 결정 <뉴욕문학>제 25집은 2015년 6월, 영문판<뉴욕문학>은 11월 출간 결정 제3회 문학 토론회: 소설분과 주관<무엇을 고민하고 무엇을 쓸 것인가?> 주제 발제자: 소설가 임혜기, 한영국, 이숙종 2014. 8. 14 - 임혜숙 수필집<때에 따라 다른 바람 소리>출판기념회 ‘갤러리 탕’ 2014. 8. 16 - <뉴욕문학>제 25집 회원 교정. 장소: 금강산 식당 2014. 9. 26 - 제7회 이병주 국제문학상 대상 수상 하운 회장 경남 하동 ‘2014 이병주 하동국제문학상’ 시상식 참석. 상패 및 상금 1만 달러 (세금 제한 금액) 받음 2014. 10. 20 - 김송희 시인 50년 기념 출판기념회 - 대동연회장 2014. 10. 31 - 제15회 고교한글백일장 개최 Bayside H.S./ Francis Lewis H.S./ Palisades H.S. 2014. 11. 6 - 제24집 <뉴욕문학> 출판기념회 개최 -대동연회장, 오후 6시30분 2014년 뉴욕문학 신인상, 고교백일장 시상식, 제7회 이병주국제문학상 대상 기념 축하공연(국악). 2014. 11. 10 - 양정숙 수필집 <마음 밭에 뛰노는 빗소리> 출간 2014. 12. 4 - 제 4/4 분기 이사회 정관개정위원선출 - 최정자, 이전구, 하운, 이숙종, 김명욱, 윤관호,황진규 제4차 문학토론회: 주제 “산문적인 시, 시적인 산문” 발표자: 안영애, 이숙종, 민경애 회원 수상: 임혜기- Pen문학 해외작가상, 황미광 -서울시 교통국 시 공모전 당선. 박숙자 - 동서문학상 수상 2014. 12. 17 - 긴급이사회 금강산식당 (하운 회장 사표 반려) 금강산식당 2014. 12. 20 - 김송희 시인 서정주 ‘미당 시맥상’ 수상

396

| 뉴욕문학 제31집


2014. 12. 23 - 긴급이사회 금강산식당 (하운 회장 사표 재반려) 금강산식당

• 2015 • 2015.

1. 15 - 임원 신년하례 및 총회 준비

2015.

1. 15 - 이경애 수필집 <물안개 너머로 봄은 다가와> 출간

2015.

1. 22 - 제15대 회장단 2014년도 감사 장소: 플러싱 카페베네 참석: 감사 김명순, 변정숙, 총무 노려, 재무 양정숙

2015.

1. 29 - 제 26차 정기 총회 장소: 금강산 식당 회의 내용: 감사내역, 협회 명칭, 정관개정, 뉴욕문학 영문판 출판 (총회 회의록 참조). *협회명칭; ‘미동부한국문인협회’에서 <미동부한인문인협회>로 개정

2015. 2. 13 - 자문위원과 집행부 상견례 및 상담 장소: 금강산 식당 참석: 집행부/ 하운, 이숙종, 노려, 이춘희, 양정숙 자문위원/ 김송희, 이정강, 임혜기, 이전구 2015. 2. 26 - 1/4분기 정기 이사회 장소: 금강산 식당 회의 내용: 자문위원회 활동영역, 정관수정, 뉴욕문학 출판, 이사진 보강, 협회 문서보관 및 (회의록 참조) 2015. 3. 17 - 김도연 시집 <그림자 떼어 걷기> 출간 2015. 4. 23 - 제 23회 뉴욕문학 신인상 발표 (중앙일보, 한국일보, 뉴욕일보) 시 부문 한글작품: 당선자 임선철 ‘엘도라도’ 가작 입상자: 홍군식 ‘국상’, 홍노을 (본명:노창현) ‘가족’ 영문작품: 가작 입상자: Joseph Sunwoo ‘The holy cloud’ 가작 입상자: 박정화 ‘Unfinished Love’ 수필 부문: 입상자 없음, 소설 부문: 입상자 없음 심사위원(무순): 김송희, 최정자, 정재옥, 이전구, 임혜기, 김자원, 하운 2015. 5. 19 - 2/4분기 정기 이사회, 장소: 금강산 회의내용: 출판기념회, 신인상, 뉴욕문학 영문판 출판, 협회 선거세칙 및 2015. 6. 4 - 정은실 ‘클래식과 에세이의 만남’ 출판기념회 장소: 대동연회장 2015. 6. 4 - 집행부 및 뉴욕문학 출판기념회 준비 회의 2015. 6. 20 - 이경희 교단 수필집 ‘어리석은 교사’ 출간 2015. 6. 23 - 뉴욕문학 제25집 출판 기념회 장소: 대동연회장 초청 강연: 이병주 문학세계/ 김종회 경희대교수 이병주 소설 ‘알렉산드리아’ 연구보고서 발표자: 소설가 이숙종

미동부한인문인협회 연혁 |

397


뉴욕문학 신인상 시상식 및 수상자 작품 낭송/낭독 (임선철, 홍군식, 홍노을) 2015.7. 24-25 - 수필분과 여름 문학 모임 장소: 청솔쉼터 2015. 9. 10 - 3/4분기 정기 이사회 및 시 분과 문학토론회 장소: 삼원각 2015. 11. 5 - 곽상희 시인 ‘바람의 얼굴’ 출간 2015. 11. 6 - 제16회 고교백일장 개최 Bayside High School, 56명 참가 참관 및 심사: 양정숙, 복영미, 임혜숙 Francis Lewis High School, 24명 참가 참관 및 심사: 윤관호, 김명순 Palisades Park High School, 48명 참가 (11월 13일 실시) 참관 및 심사: 이경희, 이광지, 이경애 3대 일간지 및 라디오 코리아 발표 2015. 12. 3 - 4/4분기 정기 이사회 장소: 금강산 식당 회의내용: 2016년 총회준비, 뉴욕문학 영문판 출판 기념회, 이병주 연례행사, 부부회원 회비 및 기타 2015. 12. 10 - 양정숙 수필가 ‘제 11회 원종린 수필문학상’ 수상 2015. 12. 27 - 영문판 뉴욕문학(New York Literature) 제 1 집 출간 (A Collection of Poems, Essays, and Stories) 참여 작가: 31명/ 출판사: Archway Publishing 편집위원: 하운 노려 양정숙

• 2016 • 2016.

1. 28 - 영문판 뉴욕문학 <New York Literrature>제 1 집 출판 기념회 - 제28차 정기총회 제16대 회장 윤관호, 부회장 이춘희 당선

2016. 2. 6 - 김주상 선생님 회고 유작전 방문 (퀸즈 칼리지 전시실) 2016. 2. 8 - 자문위원들과 집행부와의 모임 금강산식당 2016. 2. 10 - 윤관호 회장, 이춘희 부회장 한국일보, 중앙일보, 뉴욕일보 방문, 인터뷰 2016. 2. 18 - 임원회의 및 뉴욕문학 제26집 출판회의 (윤관호 회장, 이춘희 부회장, 양정숙 총무, 임혜숙 서기, 정은실 재무) 2016. 2. 25 - 윤관호 회장 TKC 방문, 인터뷰 (뉴욕문학, 뉴욕문학신인상 소개) 2016. 3.

1 - 1/4 분기 이사회 금강산식당 이사장 김명욱, 부이사장 이경애, 감사 박원선 이숙종 선출됨. 2016년 사업계획, 예산안 심의, 인준

2016. 4. 13 - 2016년 뉴욕문학 신인상 심사 심사위원: (시) 최정자, 이정강, 윤관호

398

| 뉴욕문학 제31집


(수필)정재옥, 김자원 (소설)임혜기, 이숙종 시 부문 가작 입상자: 이명숙 ‘탱화로부터의 명상’ 소설 부문 가작 입상자: 홍남표 ‘뉴욕, 늦가을 그리고 봄’ 수필 부문 당선자: 최동선 ‘가을, 세 번째 편지’ 2016. 5. 5 - 수필분과 위원회 모임 동해수산식당, Palisades Park, NJ 2016. 5. 9 - 뉴욕문학 제26집 원고 본인 교정모임, 편집회의, 임원회의 금강산식당 2016. 5. 23 - 새 이름으로 Non Profit Organization 으로 등록. 새로운 은행계좌 개설 2016. 6.

1 - 한국문화원 방문 이전구 자문위원, 김명욱 이사장, 이춘희 부회장, 윤관호 회장

2016. 6. 2 - 2/4분기 이사회, 문학 강좌(강사 최정자 시인) 금강산 식당 2016. 6. 20 - 뉴욕문화체험: 뉴욕필하모닉 연주회 관람, Cunningham Park 2016. 6. 25 - 문학인 유적지 탐방: Washington Irving House 3W Sunnyside Lane, Irvington, NY 10533 2016. 7. 5 - 뉴욕문학 제26집 2차 편집회의 7.15 3차 편집회의 2016.7.22.~23 - 1박 2일 워크숍 송당(松堂) 선생님 수목원 23명 참석 2016. 7. 30 - 곽상희 선생님 아드님(데이빗) 추모예배 참석(Hackettstown, NJ) 2016. 9. 2 - 3/4분기 정기이사회 금강산(6pm) 안건토의: 1. 2016년 뉴욕문학 출판기념회 일정 10월 27일(목), 대동연회장 2. 정관 및 세칙 개정위원회 구성 개정위원: 김명욱, 이전구, 윤관호, 최정자, 김자원, 연봉원, 임혜숙 문학강좌: 강사 임혜기 소설가. 주제 “한글로 글을 쓰는 의미” 2016. 10. 9 - 최임선 시인 개인 성화전(Promise 교회) 방문 2016. 10. 27 - 제26집 뉴욕문학 출판기념회, 뉴욕문학 신인상 시상식 대동연회장 2016. 11. 4 - 제17회 고교백일장 실시 Bayside High School, 25명 참가 1,2,3등 및 장려상 3명 (참관 및 심사: 복영미 시인, 임혜숙 수필가) Francis Lewis High School, 20명 참가 1,2,3등 및 장려상 3명 (참관 및 심사: 이춘희 수필가, 양정숙 수필가) Palisades Park High School, 60명 참가 1,2,3등 및 장려상 10명 (참관 및 심사: 정재옥 수필가, 임혜기 소설가, 이경애 수필가) 2016. 11. 5 - Met Opera, Verdi 의 ‘Aida’공연 관람(하반기 문화행사) 2016. 11. 7 - 정관 및 세칙 개정위원회 1차 모임 금강산 식당 6pm

미동부한인문인협회 연혁 |

399


2016. 11. 20 - 최명은 소설집 “아코마의 여인” 발간 인간과 문학사 2016. 11. 21 - 정관 및 개정위원회 2차 모임 금강산 식당 2016. 12. 3 - 이성곤 시인 시집 “나는 그들의 이름을 모른다” 출판기념회 뉴저지 가톨릭회관 2016. 12. 12 - 정관 및 세칙 개정위원회 3차 모임 금강산식당 2016. 12. 22 - 4/4분기 정기이사회 6시 금강산 식당 안건 1. 정관 및 세칙 개정 (별지참조) 안건 2. 영문판 발간에 관한 건 문학토론 7:20pm 발표자: 안영애 시인, 임선철 시인 2016. 12. 28 - 강갑중 산문집 “철새를 기다리며” 출판

• 2017 • 2017.

1. 31 - 금강산식당 2017년도 정기총회 정관 및 시행세칙 개정, 사업계획, 예산안 인준

2017. 2. 11 - 정월대보름 친목 모임 (윤관호 회장 집) 2017. 3. 15 - 뉴욕문학 신인상 홍보 인터뷰 (윤관호 회장, KB TV) 2017. 3. 21 - 베이사이드 삼원각 임원회의 및 뉴욕문학 제27집 1차 편집회의 2017. 3. 30 - 6:00 pm 금강산 식당 2017년 1/4분기 정기이사회 - 김명욱 이사장 사임으로 이경애 부이사장이 잔여기간 이사장 대행키로 함 - 8:00 pm 신작발표 및 문학토론회 (발표 김명순 수필가, 정은실 수필가) 2017. 4. 13 - 제25회 뉴욕문학 신인상 심사 (김자원 자문위원 자택) 심사위원: (시)최정자, 이정강, 윤관호 (수필)정재옥, 김자원 (소설)이숙종, 한영국 응모: 시 부문 7명, 수필 5명, 소설 1명 시 부문: 당선작 김정혜 ‘3월’, 송온경 ‘가을 차비’ 수필 부문: 가작 이경숙 ‘종소리’ 소설: 당선작 없음 2017. 5. 6 - 문학인 유적지 탐방 및 뉴욕문화 체험 행사로 Walt Whitman 시인 생가와 Sagamore Hill (Theodore Roosevelt 대통령 저택과 기념관)을 방문 2017. 5. 19 - 박원선 시인 서화 개인전 (Flushing Town Hall) 2017. 6. 3 - 문협수련회 이종비 시인 장소제공, 미네와스카 뉴욕 주립공원 24명 참가 - 이종비 시인 작품 발표 및 강의

400

| 뉴욕문학 제31집


2017. 6. 15 - 초대회장 이계향 수필가 추도식 중앙장의사 6월 16일 안장식 Kensico Cemetery 2017. 6. 29 - 5:00 pm 임원회의 및 뉴욕문학 제27집 2차 편집회의 2017. 6. 29 - 6:00 pm 금강산식당: 2/4분기 정기이사회/문학강의(곽상희 시인) 2017. 8.

1 - 3:20~6:20 pm 금강산 식당 뉴욕문학 제27집 원고 본인 교정 모임

2017. 8.

1 - 6:30 pm 금강산식당 부경대 박양근 교수 초청 문학강의 “노마드의 체화와 문학적 상상”

2017. 8. 5 - 뉴욕문학 제27집 3차 편집회의 2017. 10. 8 - 4박 5일 서부여행

• 2018 • 2018.

1. 30 - 제29차 정기총회 제17대 회장 황미광, 부회장 양정숙 당선

2018. 2.

1 - 제 17대 이사진 구성 시작

2018. 2. 2 - 황미광 회장, 양정숙 부회장, 정은실 재무 한국일보, 중앙일보, 뉴욕 일보 방문 신임 집행부 인사 및 인터뷰 2018. 2. 3 - 은행 계좌 및 업무 서류 인수 인계 2018. 2. 8 - 자문위원들과 집행부와의 모임. 맨하탄 가온누리 참석 자문위원: 최정자 김송희 이정강 이전구 임혜기 김자원 윤관호 - 황미광 회장, 양정숙 부회장 한국 문화원 방문 - 오승제 문화원장 및 신원식 동포담당영사관 면담 2018. 2. 14 - 1/4 분기 이사회 동원참치, 총 이사 26명 위촉장 제작 및 전달 이사장 김민정, 부이사장 이춘희, 감사 김명순, 전설자 선출 집행부 구성 및 2018년도 사업계획, 예산안 심의 및 인준 2018. 2. 19 - 1/4 분기 이사회 회의록 및 예산안 전체 이메일로 발송 2018. 3 2018. 3.

- 제26회 뉴욕문학 신인상 작품 공모 (한국일보 중앙일보 뉴욕일보) 1 - 임원회의 (참석자 : 황미광, 양정숙, 정은실, 이성곤, 김정혜, 임선철)

2018.3.20.-27 - 문예 진흥 기금 신청서 준비 및 제출 2018. 4. 5 - 제26회 뉴욕문학 신인상 작품 심사 심사위원: (시) 최정자, 안영애, 황미광 (수필) 정재옥, 김자원, 양정숙 시 당선 윤금숙 “새벽에” 가작 김영대 “택배로 온 안경” 수필 가작 김희우 “나무 늘보 당신” 2018. 4. 7 - 신인상 당선자 각 언론에 발표 2018. 4. 10 - 뉴욕문학 28집 편집회의 (참석자 : 황미광 회장, 정은실 재무,

미동부한인문인협회 연혁 |

401


김자원 자문위원 김원영 27집 편집인. 이명식 E Book 담당자) 2018. 4.11-12 - 월든의 콩코드 문학 기행 2018. 4. 18 - 미동부 한인문인협회를 뉴욕 총영사관 교육문화기관에 등록 2018. 4. 20 - 임원회의 금강산 (황미광 회장, 김민정 이사장, 양정숙 부회장 ) 2018. 4. 25 - 미동부 한인문인협회 깃발 제작 2018. 5. 4 - 편집 회의 (황미광, 양정숙, 정은실) 출판 디자이너 이지현씨를 28집 디자이너로 선정 2018. 5. 9 - 2/4 분기 이사회 준비 임원모임 (황미광, 양정숙, 정은실, 김정혜) 2018. 5. 10 - 김종회 박사 특강 기사 각 언론 보도 2018. 5. 14 - 2/4 분기 이사회 금강산 도서실 신입회원 김형규 수필가 입회 서류 통과 2018. 5. 14 - 김종회 박사 초청 문학 특강 “통일 문화와 한민족 문학” 개최 금강산 연회장 2018. 5. 26 - 임원 편집 회의 2018. 6. 10 - 윤영미 시인의 포코노 소재, 청솔 문학 마을 5주년 기념 행사 참가 2018. 6.

. - 조성자 시인 시집 ‘아카펠라’ 출간

2018. 6. 21 - 임원 편집회의 2018. 6. 25 - 뉴욕 문학 28집 본인 교정 모임, 금강산 도서실 2018. 7. 28 - 야외 친목모임 (Alley Pond Park, NY) 2018. 8.

1 - 임원 교정모임 (황미광, 양정숙, 정은실, 김정혜)

2018. 8. 8 - 최종 편집본 교정 완료 2018. 8. 15 - 뉴욕문학 2018년 첫 책 도착 2018. 8. 19 - 아마존에 뉴욕문학 28집 등재, 뉴욕문학 전자책 출발 2018. 8. 20 - 임원회의. 3/4 분기 이사회 준비 2018. 8. 21 - 문학강연회, 각 언론에 기사 게재 2018. 8. 23 - 3/4분기 이사회 및 문학강연회, 장소 뉴저지 다래옥 - 문학강연 : 미국문학 발전사의 이해 ( 강사 : 김유조 교수, 진행: 소설분과) - 뉴욕문학 28집 도착 2018. 8. 27 - 집행부 임원회의 2018. 9. 4 - 문학 간담회, 한국 펄벅연구회 최종고 교수, 장소 뉴욕 금강산 2018. 9. 4 - 임원회의, 뉴욕문학 출판기념회 준비 2018. 9. 19 - 출판기념회 준비위원회 모임 ( 플러싱 162가 사무실 ) 2018. 9. 22 - 회원들 친목모임 (플러싱 150가 커피샵)

402

| 뉴욕문학 제31집


2018. 9. 26 - 출판기념회 작품 낭송 연습 (플러싱 162가 샌포드 애브뉴,문협 사무실) 2018. 9. 27 - 뉴욕문학 제 28집 출판기념회, ”뉴욕에 문학 있다“ 성료. 대동연회장 그랜드 볼룸 2018. 9. 28 - 출판기념회 평가모임 (집행부) 2018. 10. 4 - 뉴저지 회원 책 배부 모임 (뉴저지 팰리사이드 파크) 2018. 10. 6 - 임원회의 (162가 문협 사무실, 웹 사이트 운영자 이윤교 씨로 교체) 2018. 10. 9 - 한글날, 제 19회 고교 백일장 실시 / Bayside H.S., Francis Lewis H.S, Palisades Park High School 참가 심사위원: 황미광, 양정숙, 김명순, 김자원, 임혜숙, 김민정, 이경애, 조성자 2018.11.2.~11.5- 한국문학 기행 (한개 민속마을, 성주 사우당 종택, 구상문학관, 이상화 기념관, 펄벅 기념관, 박목월 기념관 등 ) 2018. 11. 26 - 회원 친목모임, 베이사이드 예당 (김영자 회원 주관) 2018. 11. 26 - 집행부, 이사회 합동 임원회의, 플러싱 뉴욕일보 사무실 2018. 12. 11 - 재무회의 (회장과 재무) 2018. 12. 12 - 송년모임 및 이사회 준비 임원회의 2018. 12. 14 - 4/4 분기 이사회 2018. 12. 14 - 문협 송년 모임, 황미광 회장 자택 (42명 참가)

• 2019 • 2019.

1. 10 - 임원 신년 하례 및 재무감사 준비

2019.

1. 17 - 2018년도 감사, 장소 : 문협 사무실 참석 집행부 : 황미광, 양정숙, 정은실, 김정혜 감사위원 : 김명순

2019.

1. 20 - 감사위원과 회장 미팅, 베이사이드 가야

2019.

1. 26 - 링컨센터 오페라 카르멘 단체 관람

2019.

1. 27 - 송온경 교육서적 “영어그림책을 통한 21세기 교육과 인성개발“ 출판기념회

2019.

1. 30 - 고 형남구 시인 유고시집 “그리운 초대” 출판기념회, 금강산

2019.

1. 31 - 2019년도 정기총회, 금강산

2019. 2. 18 - 뉴욕문학 신인상 응모 공고 2019. 2. 26 - 이사회 준비 임원회의 2019. 2. 28 - 1/4 분기 이사회, 금강산. 손정아 (시) 신입회원 입회 2019. 3.

1 - 삼일절 100주년 기념행사 뉴욕문화원

2019. 3. 12 - 프랜시스 루이스 고교 백일장 시상식

미동부한인문인협회 연혁 |

403


2019. 3. 19 - 중국문학 아카데미 뉴욕판 원고 접수 2019. 3. 26 - 웹사이트 담당자와 임원회의 2019. 3. 31 - 뉴욕문학 신인상 원고마감 2019. 4. 4 - 수필분과 위원장 전수중 회원사임, 최동선 회원 선임 2019. 4. 6 - 뉴욕문학 신인상 심사 금강산 심사위원 (시) 김송희, 이정강, 황미광 (수필) 정재옥, 노려, 양정숙 시 가작 장 마르셀로 “턱시도 역“, 이종길 “보신탕“ 수필가작 함종택 “부끄러웠던 왼손잡이“ 2019. 4. 26 - 뉴욕문학 29집 원고 정리, 편집회의 2019. 4. 30 - 편집회의 뉴욕문학 출판 준비 모임 2019. 5. 2 - 2/4 분기 이사회 준비 임원회의 2019. 5. 3 - 30주년 자축모임 “문학 그리고 우리들의 이야기“ 각 분과별 발표 시 : 이성곤, 윤영미 수필 : 김민정, 김명순 소설 : 임혜기, 한영국 2/4 분기 이사회 김민정 이사장 자택 2019. 5. 13 - 뉴욕문학 출간 써니 인쇄소 사장과 편집위원 미팅 (제주도 식당) 2019. 5. 23 - 차덕선 수필집 “여자로 돌아와서“ 출판기념회 (금강산 식당) 2019. 6. 2 - 뉴욕문학 이지현 편집 디자이너와 편집회의 (맨해턴) 2019. 6. 21 - 뉴욕문학 원고 뉴저지 회원 원고 교정 모임 (뉴저지 쥬블리 카페) 2019. 6. 22 - 뉴욕문학 원고 뉴욕 회원 원고 교정 모임 (뉴욕 금강산) 2019. 6. 28 - 전임회장단 및 임원 미팅 (플러싱 동원 참치) 뉴욕문학 특집 전임회장단 좌담회 (문협사무실) 2019. 7. 3 - 임원회의 2019. 7. 12 - 30주년 기념 문협 수첩 편집 작업 착수 (서울 유진 인쇄소) 2019. 7. 23 - 정은실의 “영화 속의 클래식 산책“ 출판기념 북 콘서트 (플러싱 보타니칼 가든) 2019. 7. 27 - 뉴욕문학 30주년 기획 특집 편집회의 (문협 사무실)

• 2020 • 2020. 1. 30 - 제31차 정기총회 제18대 회장 양정숙, 부회장 전설자 당선 2020. 2. 3 - 이사 위촉 의뢰서 발송 시작 2020. 2. 4 - Bank of Hope 은행계좌 및 업무 서류 인수인계

404

| 뉴욕문학 제31집


2020. 2. 6 - 집행부 임원 1차 모임 (금강산 식당) 2020. 2. 10 - 209가 뉴 밀레니엄(New Millennium)으로 새 은행계좌 개설 2020. 2. 12 - 제28회 뉴욕문학 작품공모 광고(한국일보, 중앙일보, 뉴욕일보) 2020. 2. 17 - 뉴욕문학 제30집 원고 청탁 발송 장르: 시 2편, 수필 2편, 소설 1편 분량: 수필 11point, A4용지 2편 합쳐서 3매 이내 소설 11point, A4용지 8매 이내 2020. 2. 20 - 1/4분기 정기이사회 금강산 식당, 5pm 이사장 이춘희, 감사 윤영미, 정은실 선출 2020년도 사업계획, 예산안 심의 및 인증 신동인(시), 장영근(시) 신입회원 입회 2020. 2. 20 - 변정숙 시집<소리화가>출간 2020. 2. 23 - 30집 편집인 김원영씨와 임원미팅 (금강산 식당) 2020. 3. 6 - 웹사이트 담당자 이윤교씨와 임원미팅 (금강산 식당) 2020. 3. 31 - 제28회 뉴욕문학 신인상 공모전 마감 2020. 4. 4 - 2020년 뉴욕문학 신인상 작품 온라인 심사 및 심사평(4.4~4.8) 심사위원: (시) 이성곤, 복영미, 황미광 (소설)임혜기, 한영국 (수필) 김명순, 양정숙, 정은실 시 당선 현영수<엄마>, 가작 김철우<맨하탄 겨울 풍경> 수필 가작 이미경<단상>, 김봉례<전 재산>, 서헬렌<어떤 경험> 2020. 4. 11 - 뉴욕문학 신인상 당선자 각 언론에 발표 2020. 4. 24 - 현영수, 김철우, 이미경, 김봉례, 서헬렌 본협회 회원가입 2020. 5. 4 - 뉴욕문학 창간 30주년 기획특집(창간회원 14인) 원고청탁 주제: 나는 왜 문학을 하는가. 창간회원: 곽상희 김명순 김민정 김정기 김소향 김자원 김송희 김영란 변수섭 이정강 임혜기 정문혜 정재옥 최정자 2020. 5. 27 - 2/4분기 이사회 covid 19 팬데믹으로 인해 이메일로 공지 내용: 업무보고, 회계보고, 제30집 뉴욕문학, 신입회원 인증 신입회원: 김경희(수필), 김미연(수필) 2020. 6. 16 - 2019년도 Income Tax Return (김&최 합동 회계법인) 2020. 7. 20 - 최임선 시집 <불타는 광야> 출간 2020. 8. 15 - 윤금숙 시집 <뉴욕, 그곳에서 우리는> 출간 2020. 8. 16 - 김원영 편집인 개인사정으로 그만둠($2,000.00dep 전액반환) 2020. 8. 17 - 헬렌 백(Speedy Ent) 편집 디자이너로 선정

미동부한인문인협회 연혁 |

405


2020. 8. 24 - 김기훈 수필집 <즐거운 인생, 보람 있는 삶> 출간 2020. 9. 10 - 3/4분기 이사회 covid 19 팬데믹으로 인해 이메일로 공지 내용: 회장업무, 2019년도 세금, 편집인 교체, 신입회원 인증 신입회원: 이수정(소설), 박정화(시) 2020. 9. 21 - 전수중 수필집 <흔들리는 고향>_ 구글 전자책으로 출간 2020. 9. 23 - 자문위원(전직회장)과 18대 회장 미팅 (162가 중앙 사무실) 2020. 10. 27 - Zoom 임시이사회(1pm) 이사 26명 중 참석15, 위임6 결석5 회계보고, 출판기념회 장소 및 뉴욕문학 배부에 관한 논의 2020. 10. 27 - 제21회 미 고교 한글 백일장 실시(27~30) Bayside H.S, Francis Lewis H.S, Palisades Park H.S 주제: 1. 사회적 거리 두기 2. 기후변화와 지구의 미래 3. 나의 이웃 4. 온라인 수업 심사위원: 복영미 변정숙 노 려 이경애 (28-31) 2020. 11. 5 - 조성자 시인 제4회 ‘해외풀꽃시인상’ 수상 2020. 11. 13 - 수필가 김민정 선생님 장례식 참석 (Staten Island) 2020. 11. 16 - 뉴욕문학 제30집 500권 도착.출판사(Speedy Publishing) NY 2020. 11. 19 - 임원진 뉴욕문학 홍보차 방문(한국일보, 중앙일보, 뉴욕일보) 2020. 11. 20 - 뉴저지 회원 뉴욕문학 책 배부.Fort Lee "Cafe Trois" 2020. 11. 23 - 뉴욕 회원 금강산 도서실에서 뉴욕문학 30집 책 배부 2020. 11. 27 - 제28회 신인상 상장 배송(현영수 김철우 이미경 김봉례 서헬렌) 2020. 11. 28 - 김명순 수필가: 제15회 동서 문학상 공모전 시 수상 정은실 수필가: 미주한국소설 공모전 <사랑법 개론>수상 2020. 12. 18 - 류수연 교수 초빙 Zoom 문학강연회 (8p-10p) 주제: 코로나 19 시대와 한국문학, 그리고 변화들(48명 참석) 2020. 12. 14 - 4/4분기 정기이사회 (Zoom) 8pm 안건토의: 1. 21년도 뉴욕문학 영문판 제2집 출간 2. 웹사이트 회원 서재 분담금

• 2021 • 2021.

1.

1 - 윤관호 시집<뉴욕의 하늘> 출간

2021.

1. 16 - 제18대 회장단 2020년도 감사 장소: 뉴욕일보 사무실

2021.

1. 29 - 제32차 정기총회(Zoom), 8pm-10pm

- 곽상희 영문시집<POSTCARD FROM THE DESERT>출간

406

| 뉴욕문학 제31집


사업계획, 예산안 인준, 감사보고 및 영문판 2집 발간에 관한 토의 2021. 2. 16 - 제29회 뉴욕문학 신인상 응모 공고 2021. 2. 18 - 뉴욕문학 31집 및 영문판 제2집 발간을 위한 원고 모집 2021. 2. 23 - Speedy Ent 편집인 헬렌씨와 미팅(31집 편집 및 출판 의뢰) 2021. 2. 25 - 밀러&최 로펌 (최창호 변호사) 문협 비영리단체 등록 의뢰. IRS 501(C)(3) filing+legal fee 포함 $2,000.00 Full Paid 2021. 3.

1 - 1/4분기 이사회(zoom), 8pm

2021. 3. 7 - 천취자 시인 장례식 참석 중앙장의사 2021. 3. 22 - 시분과위원회 시 강좌 및 시작노트 (zoom) 8pm-10pm 2021. 4. 7 - 제29회 뉴욕문학 신인상 작품 심사 심사위원: (시조) 이정강 (시) 이정강 윤영미 조성자 (수필) 김명순 이춘희 양정숙 (소설) 임혜기 한영국 총 73편 작품 응모(시 50편, 시조 14편, 수필 8편, 소설 1편) 시조 당선: 주동완 “민들레의 꿈”, 가작: 이동규 “나눔” 시 당선: 아브라함유 “못”, 가작: 정종환 “한마디”, 하명자 “수첩” 수필 당선: 곽경숙 “떠남에 대해”, 소설 가작:김근영 “십자매의외출” 2021. 4. 9 - 신인상 당선자 각 언론에 발표 2021. 4. 20 - 신입회원: 곽경숙 정종환 주동완 류정희 하명자 김근영 이동규 2021. 4. 21 - 송온경 시인 신간 <도서관의 힘과 독서교육> 출간 2021. 4. 26 - 김정혜 시인 모친 장례미사 참석 베이사이드 성당 9:45am 2021. 4. 30 - 뉴욕문학 원고 마감: 제31집 원고(67명), 영문판 원고(63명) 2021. 5. 6 - 총500권, 430페이지, 편집, 인쇄(Speedy Publishing) NY 2021. 5. 17 - 영문판 제2집(NEW YORK LITERATURE)신아출판사(한국) 의뢰 2021. 5. 26 - 문협 2020년도 Income Tax Return (김&최 합동회계법인) 2021. 6. 10 - 홍남표 소설가 ‘제42회 미주한국일보 문예공모전’단편소설 당선 2021. 6. 16 - 2/4분기 이사회 동원참치(Flushing)5pm 신입회원 한 다니엘(시) 2021. 6. 19 - 이명숙, 장삼수 시인 제1회 청솔문학상 시 공모전 입상 2021. 7. 30 - 이경애 두 번째 수필집<봄을 놓치다> 출간 2021. 8. 10 - 뉴욕문학 영문판 제2집 출간. 총700권, 351페이지. e-Book 발행 2021. 8. 30 - 영문집 500권(15박스) 항공편으로 뉴욕 도착

미동부한인문인협회 연혁 |

407


사진으로 보는 한 해


ᛉ 㚅㟑ㅹ ⳅㅡ ㋺⽂ㆎㅁ⪕

ᛉ ⭵⚺ㅭ Ⰱ㼭ᗩ ㋺⽂ㆎㅁ⪕

0DWWKHZ )XQHUDO +RPH 6WDWHQ ,VODQG

ᛉ ᠩ◥ㇾ Ⰱ㼭ᗩ ㆎ㎩⾹⬅ 6WDWHQ ,VODQG


づ㒦❩㬙 䁒◡᛺ ᛦ⪪䅕 ᠩㇾ䀅 ᭡∍ ⽺ㇾⰂ ⬉゙『 ❭᠙ ㅝ⪕䁵 䂭 㳙㪩ㅭ

づ㒦 ロ❩㬙 ᠩㅹス ᭡∍ ㅝ㞁䅕 ᠩ⑮Ⰵ ᠩㇾ䀅 ⬉゙ 『 ⽺ㇾⰂ 䁒◡᛺ ᛦ⪪䅕 ❭᠙ ㅝ⪕䁵

⬉゙『 ⬅᠙ ⽺ㇾⰂ 䁵ㆎ ㅝ⬉䅕 䁵ᚭ ㎺ ᱝま┡㽂 䀶⛝ ⪕㎭ ㅝ㎩䂱 ᠙ㅹ

⪕㎭ 」⍡㒦❩㬙 ⽺ㇾⰂ 䁵ㆎ ᠩㇾ䀅 㜆┝ ⬉゙『 ⬅᠙ ㅝ㞁䅕 ㅝ⪕ㆎ ㅝ⬉䅕 䁵ᚭ ᱝま┡㽂 ㎺ ☙❩⍥ ⎱㡁ᛉ ៱ᗾ⪙ ᶭ⬅ⳍ





㋺⽂ㆎㅁ⪕


ᛑ㻭


ㅹ┡ロス䁵 ㅹ┡ロスㆎ ロス

㎺㽲❩ 䁵 ㆎ ❩䁵ㆎ 㜆 ┝ ⬅ ᠙ 䁵 ᚭ ㅝ⪕䁵 ㅝ⪕ㆎ ㅝ ⪕

ᗹ ⪕ ❭ᛥロス䁵 ⳅ ❭ᛥ ロスㆎ Ⰱ㼭 ❭ᛥ ロスㆎ ⭵⬍ ❭ᛥ ロスㆎ