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vol 9 집 밖에 집


지구랑 친구하기 UPCYCLE HAND MADE SHARE

‘지구랑 친구하기’ 는

환경과 건강을 살리는 지속 가능한 생활소품을 만들고 있습니다.

일회용품 사용을 되도록 줄이는 생활실천이 곧 <지구랑 친구하기> 생활소품의 시작입니다. 휴지보다는 손수건을, 종이컵보다는 개인물통을,

비닐팩보다는 재활용천으로 만든 가방사용을 권장하고 있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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덜 벌고 , 더 노는 세상을 꿈꾸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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집: 사람이나 동물이 추위, 더위, 비바람 따위를 막고 그 속에 들어 살기 위하여 지은 건물.

네이버 국어사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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집: 가정을 이루고 생활하는 집안.

네이버 국어사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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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릴 땐 말야, 어른이 되면 다 집이 생기는 줄 알았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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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데 아니더라고. 아니더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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집이 집 같지가 않은 게 생각해보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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네가 없어서 인듯.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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차례

contents 2016년 12월 1일 / 9호

여는글

13p

놀다가 책

집 밖의 집

25p

놀다가 음악

내 인생의 ‘집’들

39p

주제파악 놀다가 아트 놀다가 영화

집을 떠나 비로소 이야기는 시작된다 누군가에게 집이 되어준다는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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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5p 34p 50p


여는글

원래는 주제를 가지고 영화, 음악, 미술, 책에관한 글로 ‘놀다가’ 를 채워왔습니다.

하지만 이번호는 그게 잘 안되더군요. 이번호는 조금 개인적이고 사적인 글이 많습니다. 덕분에, 연말 마무리 하는 것 같은 기분이 들어 좋았습니다.

이 작업을 하면서 늘 생각합니다. 이 글들이 얼마만큼의 의미가 있을까? 그러다가 곧 셈하는 것을 포기합니다.

의미는 어떤 순간이 아니라, 차곡차곡 쌓이는 무의미해 보이는 시간이라고.

정신승리 해보며, 한해 잘 닫으세요.

2016년 11월 30일 놀다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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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놀다가,> 14


주제파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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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쁜 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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멋진 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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꼭 맞는 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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푸근한 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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똑같은 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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빈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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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많은 집

<놀다가,> 22


내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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놀다가 책

집 밖의 집 - feat. 내 집 마련의 꿈

# 친구의 집 내가 집과 관련되어 꿈꾸는 바가 있다면, 사랑하는 나의 친구들이 모두 걸 어서 5분이면 갈 수 있는 작은 동네 안에 함께 모여 살았으면 하는 것이다. 모 두가 느긋한 일들을 하고, 별달리 바쁘지 않은 일상을 지내면서, 굳이 서로가 만날 약속을 잡고 약속 장소를 잡지 않아도 그저 산책에서 돌아오는 길에 문 을 두드리고 들어가 차라도 한잔 마시며 오늘과 어제의 신변잡기를 나눌 수 있는 그런 일상들. 나는 친구의 집에 놀러 가는 것을 좋아한다. 가끔 혼자서 여행을 가곤 하는 데, 여행은 늘 분명한 목적지가 있다. 나를 반겨주는 친구가 사는 곳이다. 딱 히 친구들도 많이 없고, 또 그중에서도 진짜로 집에까지 놀러 갈 수 있을 만 한 친구들은 더더욱 많지 않으니, 나의 여행지는 늘 선택지가 별로 없다. 그 래도 괜찮다. 새로운 경험을 하는 것도 좋지만, 나는 친구를 만나러 여행을 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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난다. 물론 가끔은 새로운 친구가 생기는 것도 좋겠다. 어쩌다 보니 나는 지금 러시아 상트빼쩨르부르크에 반 년 넘게 지내고 있 다. 러시아 공산시대 후기 쯤 지어진 원룸 형태의 아파트에 방을 얻어 살고 있다. 그러니 지금은 여기가 내 집이다. 여기 상트도 제법 집값이 비싼 편이 지만, 작년에 러시아에 닥친 환율 파동에 의해서 상대적으로 수혜를 보게 되 었다. 어쨌든 덕택에, 나는 제법 괜찮은 집에 살 수 있게 되었다. 원룸이라곤 해도, 복도와 부엌이 따로 있고, 아담한 욕실에는 욕조도 마련되어 있다. 처 음에는 친구들이라도 좀 초대해서 같이 식사라도 했으면 싶었는데, 불행히도 위치가 좋지 않아서 친구를 초대할 기회는 많지 않았다. 러시아 사는 김에 러 시아말 한마디 하자면, 여기 러시아에는 ‘저녁에 손님을 집에 초대하는 것’을 의미하는 단어가 있다. ‘베체린카(вечери́нка)’라는 단어인데, 우리말에는 위 에서 설명하는 상황을 가리키는 단어가 없으므로 일대일로 번역이 불가능하 다. 아무튼, 이 단어는 ‘저녁’에 손님들을 ‘집으로’ 초대한다는 명확한 의미가 들어있다. 그리고 꽤 일상적으로 쓰이는 단어다. 그 말은, 저녁에 손님들을 집 으로 초대하는 일이 흔한 일이라는 것이다. 추운 나라에서 집이라는 공간이 주는 의미는 더욱더 각별한 점도 있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어쨌든, 누군가의 집에 들어간다는 것은, 단순히 누군가와 만난다는 것과는 완전히 다른 일이다. 상대방의 지극히 개인적인 공간으로 초대받음으로써, 그 공간에 있는 것 자체만으로도 그를 좀 더 알게 된다는 점과 반대로는 초대 한 사람으로서 자신의 사생활을 내어 보인다는 점이 서로 간의 친밀감을 더 상승시킨다. 게다가 내가 좋아하고, 사랑하는 사람들을 나의 공간으로 초대 하는 것은 한껏 고조되는 일이다. 누군가를 자주 자신의 공간으로 초대하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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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은, 자신의 공간을 또한 각별히 사랑하게 된다. 그런 사람들의 공간은 개 성이 넘치고 아기자기한 자신만의 소품들로 가득하기 마련이다. 자신의 공간 을 제대로 꾸밀 줄 아는 사람은 매력 있다. 그리고 반복해서 누군가를 자신의 집으로 초대하다 보면, 자연스레 더 그런 사람이 되기 마련이기도 하다. 반대 로 그 사람의 집에 자주 방문하다 보면, 타인의 집에서도 익숙함과 안락함의 감정을 느끼기도 한다. 그때에는 그의 공간이 마치 ‘집’처럼 느껴지기도 한다.

# 집이라는 단어 가수 ‘자이언티’의 ‘꺼내먹어요’라는 노래에 이런 구절이 나온다. ‘쉬고 싶 죠 / 시끄럽죠 / 다 성가시죠? / 집에 가고 싶죠? / 집에 있는데도 / 집에 가 고 싶을 거야’ 우리가 종종 “집에 가고 싶다”고 누군가에게 털어놓을 때, 그 말은 사실 장 소적인 의미의 ‘가고 싶다’는 의미로 쓰이지 않는 경우가 많다. ‘집’이라는 단 어 때문에 저 말은 다양한 의미를 그 안에 함축하고 있다. 물론 집은 일차적 으로 어떤 ‘공간’을 의미하지만, 자주 더 모호한 의미로 사용된다. 집은 휴식 이나 피신처이기도 하고, 어리광부릴 수 있는 보호자의 그늘 즉 부모님이 계 신 장소이기도 하며, 사실은 그보다도 더 모호한 어떤 그리움의 대상이기도 하다. 집이라는 단어는 꽤 재밌는 단어다. 먼저, 그것은 단순한 명사임에도 불구 하고 일차적으로 ‘내 집’이나 ‘그의 집’. 즉, 소유의 의미를 포함한다. ‘빌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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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나 ‘건물’이나 ‘아파트’라는 단어와는 달리 ‘집’이라는 단어는 항상 누군가 가 그곳에 살고 있음을 전제한다. 물론 우리말의 ‘집’이란 그 쓰임새에 있어 서 훨씬 영역이 넓지만, ‘집’이라는 단어에 대응되는 외국어휘들을 살펴보면 대체로 나타나는 공통점이 바로 ‘가족’의 의미라고 할 수 있다. 그러니까, 사실 집이라는 것은 ‘가족이 사는 곳’을 의미한다고 볼 수도 있 다. 그러니까 반대로, 가족이 살고 있지 않은 곳을 우리는 ‘집’이라고 생각하 지 않는 경우도 있다. 예컨대 지금의 나처럼, 혼자서 외국에 나와 살고 있는 ‘ 집’에서도 얼마든지 ‘집에 가고 싶다’는 생각을 할 수 있다. 그러니까 우리가 집을 ‘집’이라고 부를 때, 우리는 가장 먼저 ‘가족이 있는 장소’를 떠올린다는 것이다. 예컨대 (나는 좀 싫어하는 단어이지만) ‘집밥’ 같 은 단어를 쓸 때도 그렇다. 많은 사람이 ‘집밥’이라는 단어에서 ‘엄마가 해준 밥’을 먼저 떠올린다. 그것은 집이라는 단어가 가진 속성의 한 단면을 드러내 는 것은 분명하나, 전부는 아니다. 이 한 가지 속성에만 얽매이면, 우리가 언젠가 자신의 둥지를 떠나야 하는 날이 왔을 때 새로운 ‘집’과 또 다른 ‘가족’을 연결해야만 한다. 결혼하여 가정 을 이루고, 돌아갈 나의 공간에 나를 기다리는 가족이 있어야만 그것을 ‘집’ 이라고 부를 수 있는 것이다. 이 협소한 의미로도 집은 기능하지만, 이때 집 이란 어쩌면 그저 ‘가족’의 다른 말일 뿐이다.

# 집 바깥의 집들 ‘집 바깥에 또 다른 집’이라는 문장은 사실 해석에 따라서 제법 다양한 지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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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 다다를 수 있다. 하지만, 나는 오늘 ‘나의’ 집 바깥에는 존재하는 다른 수많 은 ‘그들 소유의’ 집에 관해 이야기를 좀 해볼까 한다. 집 밖의 집들. 셀 수 없 이 많은 집은 또한 누군가의 소유물이자, 그 소유자들의 안식처인 개인적 공 간들이다. 세계는 집으로 가득 차 있다. 이 수많은 집은 나와 타인의 관계처 럼, 늘 이웃하고 있으나 결코 들여다볼 수 없는 미지의 세계다. 우리는 일상처 럼 수많은 집 사이를 누비고, 집 사이를 걷다가, 그 수많고 많은 집 가운데 하 나인 ‘나의 집’으로 돌아온다. 나와 너의 집을 나누는 경계는 비록 눈에 보이 는 것이지만, 때로는 상상보다도 더 희미한 경계들로 이루어져 있다. 때로 5 센티미터도 채 안 되는 얇은 벽을 사이에 두고, 서로가 서로의 존재를 소리로 서 인식하면서도 그러나 완벽하게 서로를 모르는 채로 살아가기도 한다. 때 로는 들리는 것뿐 아니라, 보기도 한다. 어두운 밤이면, 집마다 불을 켜고, 또 다른 불 켜진 창문 너머의 세계를 마주하기도 한다. 이를테면, 아파트의 베란 다에서 층층이 불이 켜진 앞 동의 풍경을 보면, 그야말로 비슷하면서도 다른 수많은 삶이 전시된 것을 보기도 한다. 그럴 때면 칸칸이 나누어진 비슷비슷 해 보이는 공간의 모습이 사실은 바로 지금 내가 서 있는 공간을 그대로 보여 주는 것이라는 사실을 깨달으면서, 스스로가 군중 속의 별것 아닌 존재처럼 느껴지는 기분이 든다. 그것은 아주 이상한 경험이다. 다만, 우리는 친밀한 누군가의 초대로 그들의 공간 안을 탐험할 기회를 얻 기도 한다. 그럴 때, 집 바깥의 집들은 마치 보이고 만질 수도 있는 그들의 내 면인 것 같다. 자본주의적인 효율성에 의해서, 사실 집이라는 공간은 가진 것 없는 이들에게는 그야말로 비슷비슷한 공간이 되고 말았다. 그러나 판으로 찍어낸 설계도면을 바탕으로 짜인 구조들 속에서도 나는 그들의 개성을 볼 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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있다. 우리가 섬세한 눈길로 바라볼 때만 비로소 알 수 있는 독창적이고 개별 적인 그들의 개개인의 성격처럼, 공간 또한 그러하다. 집이라는 공간에 초대 받는다면, 그 안의 사소한 것들을 눈여겨보라. 그것은 마치 그와 깊은 대화를 하고, 그에게서 새로움을 발견하는 것과 같은 소소한 기쁨들을 준다.

# 내 집 마련의 꿈 불행히도, 온전한 나만의 공간을 가진다는 것이 과욕이라 부를 만한 시대 에 우리는 살고 있다. 이 세계는 마찬가지로, ‘온전한 나 자신’을 가진 채 사 는 것 또한 쉽게 허락하지 않는다. 나의 모든 내면을 지킬 수 없다면, 작은 공 간부터 점거해 나가는 싸움을 시작할 수밖에. 일전에 어떤 책에서, 출장이나 여행을 자주 다니는 사람이 머무는 숙소들에 쉽게 익숙해지는 요령을 써 놓 은 것을 본 기억이 난다. 그는 여행 가방 안에, 어찌 보면 꼭 필요하지 않은 물 건들을 넣고 다닌다고 했다. 예를 들어 자신의 좋아하는 작은 소품과 몇몇 액 자들 말이다. 그리고 호텔에 짐을 풀면, 그 소품과 액자들을 잘 보이는 곳에 진열해 놓는다. 그 소품들과 액자들은, 집에서도 항상 잘 보이는 곳에 놔두는 물건들이다. 그 익숙한 몇몇 소품이 그 공간에 익숙함을 더하는 것이다. 과 연, 그야말로 공간의 ‘정복’이라고 불러도 될 법한 의식이 아닌가. 나는 참으 로 멋진 방법이라고 생각했다. 어쩌면, 내가 ‘집’을 여행용 캐리어 하나에 전 부 담을 수 있다면, 내 집 마련의 방향이 제법 달라질 수도 있지 않을까, 하고. _대충 소설가_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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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ome away from Home : 집을 떠나 비로소 이야기는 시작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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놀다가아트 집을 떠나온 사람들의 이야기를 모으고 있다. 이른바 난민. 스무 살 전후의 새파란 나이에 바다를 건너와, 이주노동자와 난민과 활동가와 ‘불법이주민’ 의 사이를 살아왔고, 체류의 이유를 국제법에서 찾은 사람들. 나도 넓지 않은 영토에서 거주지를 옮겨왔지만, 그럼에도 집을 떠난다는 것은 일탈의 행동 이고, 심지어 약간은 낭만적인 일이다. 그러나 집에서 살아온 만큼 그곳을 떠 나 살아왔다면, 혹은 이미 그 이상이 되었다면. 떠나온 그곳으로 돌아간다 한 들, 오랜 고국은 변화하였고 나 역시 변했다. 게다가 떠나온 이곳은 이미 내 게 집이기도 하다. 쉬이 정리할 수 없다. 그만큼의 시간 만큼 그 이상의 삶이 쌓여왔으므로.

실상 우리는 모두 집을 떠난다. 어디로든 어떤 방식으로든. 그리고 놀랍게도 낯선 곳에서 다시금 집을 만든다. 어디서든 또한 어떤 방식으로든. 집이 될 수 없을 것만 같은 곳에서, 내게 너무나 멀어만 보이던 곳에서. 이 이야기를 모 으는 여행을 시작한 이유는 그렇게 떠나가고 떠나온 사람들의 걸음을 따라가 며 발굴해내기 위해서였다. 축적된 시간만큼 이 자리를 학문적인 언어로 조 명할 이유가 너무나도 분명하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막막했고, 막 막하다 여전히.

난민으로 살아온 시간은 개인의 역사이지만 동시에 고국의 역사이고, 동시 에 이곳 한국의 역사이다. 고향을 떠나 한국 사회에서 난민이 된 이들의 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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야기를 듣고 읽으며, 경계 사이를 오갔던 그리고 경계인으로 한국에서 오랫 동안 살아왔던 이들이 아니었다면 마주할 수 없었던 질문과 도전을 확인한 다. 집을 떠나서야 집에 대해 질문하거나 혹은 노스탤지어를 품을 수 있듯, ‘ 국민’으로 받아들여지지 않았지만 오래 머문 이들의 눈을 통해서 이곳을 재 고할 수 있다.

그러고 보면, 집을 떠나 이야기는 비로소 시작되었다. 내가 만나고 있는 이주 민들의 이야기가 그러했고 이 이야기를 찾아가기 위해 나 역시 집을 떠나야 했으니, 이로써 또 다른 이야기가 시작된 셈이다. 아직은 영글지 않은 생각들 을, 공부하고 만나고 또 ‘놀다가’ 나눌 기회가 있기를 바란다. _꽤 애호가_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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놀다가음악

내 인생의 ‘집’들

유년 집에 별로 가고 싶지 않다기보다, 놀다 보면 집에 가는 걸 잊곤 했다. 정신없 이 놀다 보면 어느새 어둑어둑해지고 그때야 내가 집으로부터 너무 멀리 떨 어져 있음을 알고 공포를 느끼게 된다. 그때부터는 달려야 한다. 달리면서 이 런저런 그럴싸한 핑곗거리를 만들어 내야 한다. 하지만 늘 제대로 만들어 내지는 못했다. 날 때부터 거짓말에 소질이 없던 나 는 시원찮은 핑계를 대고 혼나야 했다. 가끔 신기한 건 어떤 날은 10분만 늦 어도 혼이 나는데 어떤 날은 한 시간을 훌쩍 넘어 늦어도 혼나지 않는 것이다. 그 일은 아직도 미스터리다.

아무튼, 집에 가는 걸 잊을 정도로 재미있게 놀다가도 나는 어느 순간에는 집 으로 돌아갔다. 집보다 밖에서 친구들과 노는 게 더 재미있는 일이었지만, 집 으로 돌아갔다. 그럴 수밖에 없는 나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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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년2 - J의 집 J의 집에 자주 놀러 가곤 했다. J의 집은 이층집이었다. 넓었고, 생전 처음 보 는 과자들과 장난감이 넘쳐나는 집이었다. 나는 그의 집에서 처음으로 수입 과자를 먹었었다. 그의 집에서 처음으로 도미노라는 장난감을 알게 됐다. 그 의 집에 가면 재미있었다.

그런데 어느 순간부터 그와 놀 수 없게 됐다. 그가 나를 찾아오지 않았고 나 도 그의 집에 찾아갈 수가 없었다. 그의 집은 그 자리 그대로 이고 그도 거기 살았지만, 같이 놀 수는 없었다.

그는 부자였고 나는 가난했다. 그의 부모가 같이 놀지 못하게 했다는 말을 나 중에 아주 어렴풋이 들었다.

사춘기 가끔씩 자주, 하나둘 학교를 안 나왔다. 그리고 그들은 집에도 돌아가지 않 았다. 하루, 이틀 , 좀 길면 1주일, 좀 더 길면 한 달 후에 그들은 다시 학교에 나왔다. 가출은 전염병처럼 퍼졌다.

나는 한 번도 가출해본 적이 없다. 그리고 좀 슬픈 이야기지만, 가출도 어느 정도 형편이 되어야 할 수 있다고 나는 생각한다. 나의 사춘기에 엄마는 이미 오래전 가출 상태였고, 아빠는 일자리가 없었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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며, 할머니가 가정의 가장이었다. 가출하는 친구들이 부럽다기보다, 이해가 안 됐다. 내가 조숙한 때문이기도 하고, 왠지 모를 질투를 느꼈던 것도 같다. 방황을 누리고 싶은 방황하는 마음. 무조건 받아주는 이에게 반항하고 싶었 던 마음. 하지만 그 마음을 풀 곳이 나에겐 없었다.

고등학교때 내 친한 친구가, 그러니까 놀다가 집에 가는 것도 까먹게 하던 그 친구가 가출 했다. 나는 마치 어른이 된 것처럼 그 친구를 찾으러 돌아다녔 다. 그리고 찾았을 때 나는 어른처럼 설교했던 것 같다. 방황하는 친구를 잡 으려고 달래도 보고 주먹다짐을 하기도 했다. 하지만, 그 친구는 돌아오지 않 았다. 얼마후 그 친구는 고등학교를 자퇴했다.

지금에야 성찰하게 됐지만, 도덕적 우월감은 꽤 잔인한 면이 있다. 그때 나 는 묘한 승리감을 맛봤다. 고등학교도 졸업하지 못하면 사람 취급 못 받는다 는 출처 없는 말을 나는 믿었다. 나의 승리. 아주 짧고도 부질없는 승리였다.

몇 년 후 그 친구는 검정고시로 고등학교 졸업 자격을 얻고 대학까지 진학했 다. 나는 재수까지 했어도 대학에 떨어졌으며, 군대에 다녀와서야 야간 대학 으로 진학 할 수 있었다. 대학을 빨리 가는 것이 성공한 인생의 척도는 아니 지만, 삶이 참 짓궃다는 생각은 드는 것이다.

사춘기 시절 나에게 집은 지켜야 하는 어떤 자리였다. 내가 만약 그 자리를 떠 난다면 한순간에 가루로 바스러질 것만 같았다. 때 이른 조숙함에서 오는 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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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감이었는지, 공포였는지, 아님 둘 다였는지 정확하게 나눌 수는 없지만, 나 는 그 자리를 썩 잘 지켜 냈다.

그리고 시간이 지난 지금은 그 자리를 너무 잘 지켰던 것을 가끔 후회한다.

군대 서른 좀 넘게 인생을 살면서 가장 간절히 집에 가고 싶었던 때는 군대에 있을 때였다. 지인과 사랑과 우정, 격려의 말을 뒤로 한 채 훈련소로 가자마자 들 었던 욕이 섞인 호통 소리. 1분 전에는 사랑의 말을 듣고 있었다. 그리고 1분 후 나는 개돼지가 되었다. 그 간극 만큼 집에 가고 싶었다. 너무 집에 가고 싶 어 자살을 시도 하는 사람도 있었다. 나는 아파서라도 집에 가고 싶었다. 피 난처로, 휴식처로 가고 싶었다.

그때 비로소 집에 나에게 얼마나 소중했었는가를 깨닫게 되었다는 하나 마나 한 소리를 하는 게 아니다. 군대 있을 때 군대 밖은 모두 집이었다. 좀 더 익숙 한 집이 있고 좀 덜 익숙한 집이 있을 뿐.

그집앞 한밤중. 나는 정신병자처럼 헤어진 사람의 집으로 찾아갔다. 찾아가서 벨을 누를 생각이다. 벨을 누르고 우리가 왜 헤어지면 안 되는지를 말할 생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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혹은, 내가 너를 사랑한다고 세상에서 나 말고 너를 사랑하는 사람은 없다는 것을 말할 생각이다. 오늘은 꼭 답을 듣고 올 생각이다. 꽤 늦은 밤이었고, 그 사람과 가족이 모두 같이 사는 그 집 앞까지 갔었다.

내가 초인종을 눌렀었는지, 못 눌렀었는지는 기억에 없다. 어는 순간 퍼뜩 정 신이 들어 도망치듯 집으로 돌아왔다. 그리고 명확한 답도 얻었다.

문을 두드려서는 안 되는 집이 세상엔 많았고 그 집이 첫 번째였다. 삶을 살아 갈수록 문을 두드려선 안되는 집이 늘어 갔다. 아니, 문을 두드려도 되는 집 은 내 인생에 굉장히 제한적임을 깨달아 가고 있다. 하지만, 아직도 나는 그 근처를 서성이기도 하고 아니기도 하다.

형 집에 안가요? 스무 살 초반에 모니터를 만드는 공장에서 일했던 적이 있었는데, 야근이 잦 은 회사였다. 그때는 주 5일 근무 정착도 안 되던 때라 토요일도 정오까지가 근무 시간이었다. 하지만 제시간에 끝나는 날은 별로 없었다. 토요일도 평균 3시쯤이 되어야 퇴근 할 수 있었다.

회사의 중간괸리자급 직원들은 모두 나와 비슷한 또래로 형 동생 하며 지냈 다. 그 형들은 모두 집이 지방이라 회사에서 마련해준 오피스텔에서 합숙하 면서 지냈다. 사실 형들은 집이나 회사나 똑같았다. 똑같은 사람과 자고, 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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같은 사람과 일어나, 똑같은 사람과 일하고 퇴근했다. 그리고 똑같은 사람과 저녁을 보내고 잠이 들었다.

토요일 같은 날, 퇴근하겠다고 인사를 하며 안 가시냐고 물으면, 형들은 항상 먼저 가라고만 했다. 가끔은 나에게 좀 더 놀다 가라고 한 적도 있었다. 형들 은 하는 일 없이 회사에 남아 있는 시간이 많았다. 형들에겐 집보다 회사가 더 편해 보였다. 아니, 지금 생각하면 편해 보였다기보다, 퇴근과 출근의 의미가 거의 없었던 것 같다.

꼭 무언가를 해야해서 집에 갑니까? 면접은 뽑는 사람에게만 중요한 것이 아니라, 뽑히는 사람에게도 중요하다. 누군가를 뽑아야 하는 사람에게 첫인상이 중요하듯, 누군가에게 뽑혀야 하 는 사람에게도 회사의 첫인상은 중요하다. 첫인상을 느끼는 일은 매우 예민 하고, 본능적인 일이라고 생각한다. 직관. 논리적으로도 말로도 설명할 수는 없지만, 어떤 느낌.

가까운 과거에 면접을 보러 갔었다. 전화로 면접 날짜를 잡았을 때는 느낌이 괜찮았다. 배려받는 느낌이었고 정중했다. 하지만, 좀 찜찜하긴 했다. 이직을 위한 면접이라 저녁 7시에 면접시간을 잡으면서도 누군가는 나를 위해 야근 을 해야 한다는 사실이 썩 좋지는 않았다. 기대했었다. 7시쯤 도착하면 다른 직원 들은 모두 퇴근하고, 인사담당자만이 나를 기다리고 있는 모습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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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그 기대가 욕심임을 깨달았다. 모두가 퇴근하지 않고 있었다. 아무도 퇴근할 생각이 없어 보였다. 누군가는 업무에 대해 열띠게 이야기하고 있었 다. 사실 그 장면에서 이미 내 마음은 결정이 났다. 나는 야근이 많은 회사는 다니고 싶지 않다고 했다. 나에겐 저녁이 중요하다고 말했다. 그쪽에서 물었 다. 저녁에 무언가를 하냐고.

그 물음은 이상한 거다. 그런데 아무도 이상하다고 생각하지 않는 세상이 이 상하다고 생각한다. 나에게 차를 내오던 직원이 눈에 아른거린다. 면접을 마치니 7시 20분 정도 됐었다. 그 회사의 공식 퇴근 시간은 6시 30분이었다. 그는 언제 집으로 갔 을까?

내가 사는 집 내가 사는 집은 내 집이 아니다. 빌려서 사는 집이다. 내가 지금 살고 있는 집 이 내 집이 아니라는, 그리고 내 주위 내 친구들도 대부분 집을 빌려 살고 있 는 이 당연하고 이상한 이유를 깨닫기까지 좀 긴 시간이 필요했다.

자주 듣는 팟캐스트에서 ‘환경 난민’에 관한 이야기를 들었다. ‘투발루’ (하와이와 오스트레일리아 사이의 중간쯤에 위치한 섬나라.)라는 나 라는 해수면 상승으로 인해 국토가 물에 잠기고 있으며 그로 인한 난민이 이 웃 나라로 이주하고 있다고 했다. 그들에겐 빌려 살 집도 땅도 없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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투발루 사람들에 비하면 나는 빌려 살 집이라도 있어 행복한 것이 아니냐는 생각을 하다가 정신을 차린다. 남의 불행을 통해 나의 행복을 가늠하는 건 얼 마나 비인간적인가?

집이란 참 기괴하다. 살아가는 데 꼭 필요한 것이지만, 누구나 갖고 있지는 않 으며, 심지어 누군가는 너무 많이 가지고 있다.

이 글을 준비 하면서 집에 대한 노래 들을 찾아 보았다. 대부분의 노래에서 집 은 언제든 돌아가도 되는, 혹은 언젠가는 돌아가야 하는 따뜻한 곳이었다. 혹 은 사랑하는 연인과 함께하는 사는 공간이었다. 집은 따뜻하고, 긍정적이었 고, 무한한 가슴이 있는 공간이었다.

하지만, 적어도 나에게 집은 그렇지만은 않았다. 집은 때론 벗어나고 싶은 공 간이었고, 무서운 곳이기도 했으며, 위태로운 곳이기도 했다. 나의 계급을 결 정한 곳이었고, 갖고 싶어도 가질 수 없는 공간이다. 집은 비싸고, 부정적이 었고, 자비가 없는 공간이었다.

“저 푸른 초원 위에 그림 같은 집을 짓고 사랑하는 우리 님과 한백년 살고 싶 (남진-님과 함께)” 다는 유행가의 가사가 떠올랐다. 환상이 일상이 되고 익숙 해 질수록 비극은 깊고 어두워 지는 것 아닐까를 생각했다. -거의 편집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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Nikki Kahn/The Washington Post via Getty Imag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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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군가에게 집이 되어준다는 것 홍상수(2016), <당신 자신과 당신의 것>

얼마 전 허핑턴포스트지에서 ‘버락·미셸 오바마 부부의 사랑을 담은 순간들 34’ 라는 제목의 기사를 읽었다. 서로 사랑하고 신뢰하는 부부의, 서로에게 중요하고 의미 있는 시간을, 그리고 함께 함으로 더욱 의미 있어진 시간을 고스란히 담은 사진은, 어떤 설명이 없어도 충분히 마음을 울리는 것이었다. (기사 바로가기 https://goo.gl/Ie47f4)

그 뭉클하고 감동적인 순간들은, 그러나 너무도 완벽해서, 같은 세상에 살지 만 여기의 나에게, 또 대부분의 많은 이들에게는 닿을 수 없는, 도달할 수 없 는 어떤 이상 같아서, 괜히 슬퍼졌다. 퇴근하고 학교 가는 길, 택시 뒷좌석에 앉아 기사를 읽는데, 라디오에서는 때 마침 김광석의 ‘기다려줘’가 흘러나왔 다. 언젠가, 내가 정말 좋아했던 사람과 헤어지고서 다시 만날 것을 다짐하게 해줬던 노래다. 가사는 이러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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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난 아직 그대를 이해하지 못하기에, 그대 마음에 이르는 그 길을 찾고 있어. 그대의 슬픈 마음을 환히 비춰줄 수 있는, 변하지 않을 사랑이 되는 길을 찾고 있어. 어디서 찾을 수 있을까, 그대 마음에 다다라는 길. 찾을 수 있을까, 언제나 멀리 있는, 그대. 기다려줘, 기다려줘. 내가 그대를 이해할 수 있을 때까지”

누군가를 이해하지 못함을 절절하게 고백하면서, 그래서 당신을 온전히 이해 할 수 있을 때까지 기다려달라는 더 절절한 부탁. 어쩌면 사랑은 누군가를 끝 내 이해하지 못할 것을 알면서도, 끝까지 그 이해하고 싶은 욕망을 유지하는 것일지도 모르겠다. 당시의 우리는 결국 서로가 더 편해질 길을 택했다. 우리 를 지치게 하는 주변의 모든 것으로부터, 각자의 마음속에 뿌리 깊이 막힌 편 견과 이기심으로부터 해방되기를 바랐다. 아무것도 하지 않으면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으므로, 막연한 더 나은 미래를 꿈꾸며 그렇게 헤어졌다. 그는 막 연한 미래를 현실로 이룬 것 같고, 나는 이제는 이런 기사로 위로받고 또 절 망하며 그저 매일 눈을 뜨면 출근할 뿐이다. 더욱이 요즘 같은 시절은, 일상 의 귀중한 것들이 죄다 사치 같아서, 먹고사는 일이나 시국을 논하는 일이 아 니고는 다 가벼운 입놀림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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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럼에도 우리는 안다. 미셸과 버락 오바마의 사진 속에 담긴 그것을, 우리 모 두가 원한다는걸. 너무나 원하지만 충분히 가질 수 없어서, 아니면 한 번도 가 져본 일이 없어서, 때때로 차라리 비웃고, 별것 아닌 것으로 치부해버리며 소 중한 것이 아닌 체한다. 이 귀한 마음들, 그리고 시간으로 견고해져서 누구도 허물 수 없는 관계는 참으로 사람을 위대하게 만든다는 걸 모르지 않음으로.

사랑 이야기가 아닌 척하며(이를테면 이것은 시간의 이야기다 라던가), 늘 사 랑 이야기만을 하는 감독이 있다. 온갖 찌질한 남자들과 그들로 인해 같이 찌 질해지거나 모욕을 당하는 숱한 여인들이 있는 풍경을 반복하고 반복하는 감 독, 그리고 이제는 현실로 그 찌질함을 드래그한 감독. 그의 이름은 홍상수 다. 최근 개봉한 홍상수 감독의 열여덟 번째 작품인 <당신 자신과 당신의 것 >은 이전 작품과 어딘가 모르게 달라 보인다.

화가인 영수는 민정과 연인 사이다. 친구 중행은 영수를 찾아와 민정이 요전 날 어느 남자와 술을 마시다 크게 싸움을 했고 동네 사람들이 이걸 다 봤으며 그 사실을 너만 모른다고 말한다. 하지만 자신이 직접 보지는 않았단다. 그 날 밤, 영수는 여자친구 민정과 그 일로 말다툼을 한다. 민정은 영수와 그 친 구들이 진절머리 난다. 당분간 서로 보지 말 것을 선언하며 영수의 집을 나온 다. 다음 날부터 영수는 민정을 찾아다니지만 민정을 만날 수가 없다. 그 사 이 민정은 민정을 알아보는 재영과 상원을 각각 만난다. 민정은 자신이 민정 이 아니라고 말하며 그들과 마치 처음 만난 것처럼, 아니면 정말 처음이기 때 문에 설레는 마음으로 몇 차례의 만남을 가진다. 그러다 술집에서 시비가 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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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상수(2016), 당신자신과 당신의 것, (이미지 출처: Daum 영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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는다. 이 싸움은 영수와의 싸움의 발단이 된 그 싸움인지, 아니면 정말 그 사 이에 일어난 싸움인지 알 수 없다. 민정이 아니면서 민정과 꼭 닮은 이 여인 은, 정말 좋은 남자를 한 번도 만나보지 못했다고 넋두리한다. 민정은 싸움 과 곤란한 상황을 피해 들어간 한 골목에서 혼자 흐느껴 운다. 민정을 찾아 헤매던 영수는 그 골목에서 드디어 민정을, 아니면 민정을 닮은 이 여인을 만 난다. 민정이거나 민정을 닮은 여인이거나, 아무튼 이 여인은 영수와 첫인사 를 나누고 그의 집에 함께 머문다. 그들은 그 순간이 너무나 좋고 만족스러워 서 아무것도 필요하지 않다. 그리고 어떠한 사실도 중요하지 않다. 극 중 영 수의 고백처럼.

“당신이 너무 좋아서 당신을 믿을 겁니다.”

사실은 오직 당신이 너무 좋다는 것. 당신이 당신이라서. 당신이 지금 내 눈앞 에, 내 곁에 있어서 그것으로 충분하다고 고백한다. 시간이 지나고 잠에서 깬 영수는 침대에 앉아있다. 그의 눈은 그 너무도 좋았던 모든 것이 꿈인지 생시 인지 모르겠다 말한다. 홍상수의 다른 영화들처럼 이것이 꿈일지도 모른다는 추측으로 관객들이 몰두할 때 즈음, 민정을 닮은 여인이 등장한다. 냉장고에 서 아주아주 차가워진 수박을 들고, 그에게 한 조각, 자신의 입에 한 조각씩 을 넣으며 연신 시원하다고 말한다.

영수의 방은 좁고 답답하다. 어디 시원하게 빛이 들어오는 창이 하나 없다. 아니면 아주 작은 창이 어딘가에 있다. 마치 전혀 다른 곳, 이 세상의 곳이 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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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상수(2016), 당신자신과 당신의 것, (이미지 출처: Daum 영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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닌 것 같은 그의 방에는 침대와 시간의 흐름을 알려주는 굵은 양초가 있다. 그 이상한 공간에 덩그러니 놓여있던, 눈에 초점마저 잃고 어디 먼 곳을 보는 것 같던 영수에게 전해진 그 차가운 수박은, 이 모호하고 확실하지 않아 어딘 지 불안한 이 공간에 몹시도 명확하고 분명한 감각을 선사한다. 아주아주 차 갑고 시원한 이 수박이 주는 감각은, 이것이 꿈인지 생시인지 모르겠는 영수 자신과 민정을 닮은 여인과 관객에게, 이것이 꿈이 아니라고 볼을 꼬집어 주 는 장치 같다. 수박의 시원한 맛의 감각은 이것이 현실의 것임을 말해준다.

민정이 거짓말을 했다고 가정해보자. 민정이 아니라고 우기는 여인은 사실 민 정이고, 다만 민정이기를 원하지 않아서 아닌 체 한 거라고 말이다. 민정은 왜 거짓말을 한 것일까. 민정의 거짓말은 너무도 거짓말 같아서 차라리 믿게 된 다. 설마 그 정도의 거짓을 말하랴 싶어지는 것이다. 대개의 거짓말의 기능은 숨기고 싶은 것이 있거나, 도망하고 싶거나, 결국에는 부정하고 싶은, 그것이 자기 자신이든, 주변의 조건과 환경이든, 부정하고 싶은 욕구의 발현이다. 민 정은 연남동의 인간들이 지겨운 것 같다. 그래서 오히려 연남동에서 오며가 며 사람들을 방아 찧는 인간들 보란 듯이 웃고 떠드는지 모르겠다. 멋대로들 생각하라고, 그 생각이 나 자신이 될 수는 없다고 스스로 선언하면서. 모든 지 겨운 관계들로부터 도망하고 싶은 민정은 말을 걸어오는 남자들이 이야기하 는 나 자신이라는 것 자체가 무엇인지 시험해보고 싶었을지도 모른다. 마음 속에 있을 법한 통쾌한 상상이 눈앞에 실현된다.

우리는 무엇으로 인해 사랑받나. 상대에게 고임 받을 만한 외모를 지녀서, 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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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한 스펙이 있어서, 고분고분하게 말을 잘 들어서 일까. 당신이 아는 나는 내 가 꾸며낸 나인지, 당신에게 맞춰진 나인지, 그냥 나인지 알 수 있는가, 당신 은 어떤 나를 사랑할 것인가. 민정은 어쩌면 망가져버렸다고 믿고 있는 현실 로부터, 다시 태어나고 싶은 욕망에 사로잡힌다. 그리고 그 욕망을 품고 있는 나 자신 그대로 인정받고 싶다. 하지만 그런 나 자신을 제대로 보아주고 이해 해줄 사람이 있을 리 만무하므로, 그녀는 계속 넋두리를 해댄다. 한 번도 최 고의 사람을 만나본 적이 없다고 말이다.

이 영화는 어딘가 모르게 홍상수 감독의 전작과는 다르다. 마치 이 영화를 통 해 현재 자신의 스캔들을 해명하는 것 같다. 다들 말들뿐이지 사랑을 모른다 고 따지는 듯도 하고, 지금 이 순간 만이 진짜인 어떤 사랑을 이야기하고 싶은 듯도 하다. 당신 자신과 당신의 것이라는 제목은 마치 영문을 지은 후에 따온 제목 같다. 존재냐, 소유냐라는 고전적인 질문 앞에 홍상수는 존재와 소유를 아우르는 당신과 나를 이야기하고 싶었다는 답변을 어느 인터뷰에서 밝혔다 한다. 존재와 소유를 아우르는 나 자신을, 적어도 한 사람에게, 이해하고 싶고 알고 싶은 내 앞의 누군가에게, 나 역시 이해받고 싶다는 욕망이 실현될 때, 우리는 위로받는다. 이 영화를 통해, 홍상수 감독에게 위로를 받는다는 것이 뭔가 도덕적이지 못한 것 같아 기분이 묘했지만, 그 수박의 감각마냥 내게도 그 위로는 제법 선명하게 다가와서 거부할 수 없었다.

자기 자신으로서 이해받고 싶은 욕망이 실현된 곳, 그곳이 어디든 그곳이 자 신의 쉴 곳(집)이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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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론 처음 누군가를 알게 될 때의 그 알고자 하는 욕망은 꽤나 영원할 것만 같지만 결국 운이 좋은 몇몇 만이 시간을 양분 삼아 자신들의 집을 유지한다 는 걸 안다. 미셸에게 오바마가, 오바마에게 미셸이 집이 되어주는 것 같은 일은 거의 동화에 가깝다. 하지만 현실에 존재하므로 우리는 희망을 버려서 는 안된다.(고 다짐해본다 ㅠ) 삐져나온 뱃살로, 엉클어진 머리로, 가끔 실수 로 내뱉는 모진 말로, 어떤 실패와 가난도, 그 사람의 속 깊은 곳까지, 그 영 혼까지 매도하지 않을 거라는 믿음이, 그 믿음에 거한다는 신뢰가 동화를 현 실로 끌어낸다.

좀 생뚱 맞은데, <레 미제라블> OST 중 “Bring Him Home”을 이야기하며 글을 맺고 싶다. 이 노래는 장발장이 딸의 사랑하는 이를 살려달라며 신께 부 르는 노래인데, 그중 처음 가사가 이렇다.

God on high Hear my prayer In my need You have always been there He is young He’s afraid Let him rest Heaven blessed. Bring him hom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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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ring him home Bring him home.

기도 없이, 신의 긍휼 없이 앞으로 나아가는 게 힘겨워서, 저절로 노래가 입 술을 타고 흐른다. 이 사랑 없는 세상에, 노동과 허무만이 있는 이 땅의 우리 를 긍휼히 여겨주셔서, 다만 발을 닫고 살, 버텨낼 희망을, 그런 집을 우리에 게 허락해달라고 기도한다.

홍상수 영화를 보고 이렇게 기도로 끝을 맺는 것은 아무래도 어색하지만, 어쨌든,

God on high, Let us live! _다르덴 자매님_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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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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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집에 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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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TAFF * 거의 편집장 ‘글 쓰고 그림 그리는 것’ 으로는 먹고살기가 불가능 하다는 것을 깨달아, 다른 노동으로 돈을 벌면서 ‘글 쓰고 그림 그리는 것’ 을 심각한 취미 로 여기고 살아가는, 대한민국 남자 사람 노동자. * 꽤 애호가 무심하게 마침표 찍기 보다는 쉼표와 함께 생각하고 싶으며, 간단히 재단하기 보다는 시 간이 걸려도 상세히 이야기하고 싶다. 구불구불한 골목 어귀를 걸으며 긴 대화 나누는 것 을 좋아한다. 삶의 태도로써의 예술을 지향하고, 그것이 결국은 삶을 예술로 만듦을 믿는 다. 길을 잃었을 때라야 비로소 도시의 진짜 얼굴을 볼 수 있듯이, 예상치 못하였던 시간 을 통해 즐거운 사람들을 만난다. 놀다가, 걷다가, 이야기하다가, 웃다가 하는 이 공간이 즐겁다. * 다르덴 자매 다들 행복하기만 한 거 같아서 불편했다. 그럴 리가 만무한 거 같아 영화를 보기 시작했 다. 영화를 보면서 삶이, 행복이 무언지 조금씩 생각을 고쳐먹었다. 얇고 짧은 생이라 이 렇게 몇 자라도 쓰다보면 통찰이 돋아나는 날이 오겠지 싶어 <놀다가,>에 투신(?) 해 보 기로 했다. * 대충 소설가 적당주의자: 한탕주의적이고 무사 안일한 현실주의적 비관론자. 즉, 어차피 세상 사는 거 한번이고, 결국 로또는 누구한테든 터질 것이지만, 어쨌든 나는 안될 것이고, 그렇지만 뭐, 모두들 어떻게든 살지 않겠어? 라며 하루하루 실실 쪼개며 사는 사람들을 일컫는다. 그 게 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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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의 문화잡지 월간 <놀다가,>는 덜 벌고 더 노는 세상을 꿈꿉니다. 혼자 놀기보다 같이 노는 세상을 꿈꿉니다. 완벽한 전문가 보다는 투박한 아마추어를 사랑합니다. 다양한 사람들의 느낌, 생각, 이야기를 최대한 많은 사람들과 나누고 싶습니다. 같이 놀까요?

거의 문화잡지 월간 <놀다가,> 2016년 12월 1일 9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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