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age 1

2008년 7월호 제 16권 제7호

ৃͿ֖İধ

‫ڍ‬ν ॠǣʼ‫ر‬ 아프리카 단기 선교 남성들의 모임 귀한 3일간의 시간 - 초등부 수양회 태양 아래에서 즐긴 영적 훈련 - IMPACT 수양회 가난한 영혼을 향한 시들지 않는 열정 - 이다윗 선교사 인터뷰

VA 예배 사역 피크닉 사진: 문승재(VA)


‫‪.%‬ۋ˞‪ ǣ‬ۆ˞‪ ؉‬ٮ‪؉Ӈ‬‬


6월 20일, Black Hill Regional Park


؉

ν

ɳ

ş

Ը

İ

축복을 받고 돌아왔습니다 그날 밤 잠자리에 들기 전에, 치부토의 주민들은 우리에게 활활 타오르는 모닥 불 옆에서 신선한 염소 스튜를 대접했습 니다. 치부토의 주민들은 극한 삶의 조건 속에서도, 주님에 대한 사랑과 기쁨을 여 전히 간직한 채, 그들이 가진 적은 것으 로 최선을 다하여 우리들을 대접하였습 니다. 글 - Mark Kosko

현지 지역 신문(Swazi Observer)이 아프리카 단기선교팀의 활동에 대해 보도했다.

4


최근 아프리카 선교팀이 남아프리카에서의 두 주간의 선교사역을 마치고 돌아왔습니다. 휄로쉽교회의 영어회 중 16명으로 구성된 선교팀은 의료사역, 어린이사역, 복 음사역을 스와질랜드와 모잠비크의 사람들에게 펼쳤습니 다. 김경봉 장로님과 김기호 집사님이 리더가 되어 선교 팀은 지난 세 달간 선교훈련을 받았습니다. 선교팀을 후 원해 주시고, 훈련시켜 주신, 김원기 목사님, 김모세 목사 님, 서에릭 전도사님께 감사를 드리며 또한, 선교사역의 성공을 위해 시간과 돈을 투자하시고, 헌신적으로 도와주 신 다른 많은 분들께 감사드립니다. 하나님을 찬양합니 다! 5월 31일, 선교팀은 아프리카로 떠났습니다. 16시간 의 비행 끝에 우리는 남아프리카의 요하네스버그에 도착 했습니다. 그곳에서 우리는 ACM-Africa Continent Missions (아프리카 대륙 선교단)의 창립자이신 김종양 목사님의 부인, 김상원 사모님을 만났습니다. 두 분은 휄 로쉽교회의 김모세 목사님의 부모님이시고, 우리의 남아 프리카 선교를 인도해주실 선교사님이셨습니다. 요하네스버그에서 우리는 즉시 밴을 타고 4시간을 달 려, 목사님 내외분이 사시는 스와질랜드의 음바바네 (Mbabane)로 갔습니다. 음바바네로 가는 동안 우리는 밴 을 운전해 주시기로 자원해주신 데이비드 목사님을 만날 기회를 가졌습니다. 스와질랜드의 지역교회에서 시무하 시는 데이비드 목사님은 7월에 결혼을 앞두고 있었고, 스 와질랜드의 풍속에 따라 결혼을 하기 위해 17마리의 소 에 해당하는 돈을 지불하는 과정에 있었습니다. 아프리카는 지금 겨울철이라 온도는 상당히 온화한 편으로 선교기간 동안 낮에는 80도 대였으나, 밤에는 40 도 대까지 떨어졌습니다. 겨울철이기 때문에 말라리아에 걸릴 확률도 적었습니다. 음바바네에 도착하여 짐을 풀고, 정리를 하며 하루를 보내고, 이튿날, 선교 사역의 첫 날이 시작되었습니다. 김 종양 목사님의 교회에서 새벽 5시에 기도모임을 가진 뒤,

The African missions team recently returned from their two-week missions to Southern Africa. The sixteen member team of NCFC EC members provided medical, children’s and evangelical ministries to the people of Swaziland and Mozambique. Lead by Elder Neil Kim and Deacon Ki Kim, the team had been training for this mission for the past 3 months. Our thanks to Pastor Jamie, Pastor Moses and Pastor Erik for their support and training, as well as to so many others for their contributions of time, money and commitment towards the success of this missions effortPraise God! We left for Africa on May 31. After a 16-hour plane ride, we arrived in Johannesburg, South Africa where we were met by Mrs. San Won Kim. Mrs. Kim is the wife of Pastor Chong Yang Kim, who is the founder of ACM-Africa Continent Missions. They are also the parents of Pastor Moses at NCFC and were the host missionaries for our trip throughout South Africa. From Johannesburg, we immediately traveled by van 4 hours to Mbabane, Swaziland where Pastor and Mrs. Kim reside. During the van ride to Mbabane we also had a chance to visit with Pastor David, one of the local pastors who was volunteering as a driver. He is engaged to be married in July and following Swazi custom he is in the process of paying the sum equivalent of 17 cows for the right to marry. It is the winter season in Africa now and so the temperatures were fairly mild the entire trip-80’s during the day but dropping down to the 40’s at night. The risk of malaria was also lower because of the winter season. After a day of unpacking and settling in, we started our first day of ministry. After our daily 5am morning prayer at Pastor Kim’s church, we traveled to the rural mountain village of Ngowane (pronounced go-wanee). 5


We were greeted by the local senator and health minister officials. There was a medical clinic already built there, which consisted of a one-story building with a number of small patient rooms However, there is a shortage of available medical personnel in Swaziland generally so consequently, our medical team of Dr. David Rhee, Dr. Richard Li and Julie Yun, RN was literally the first to have utilized that facility providing medical and ophthalmology care for local patients. Many people there cannot afford medical treatment or the expense of traveling great distances to see the nearest doctor. Approximately 275 patients were treated that day. The children’s ministry, lead by Christine Rhee along with John Lee, Sang Kim, Timothy Shin, Johnny Kim, Lisa Keem, Sara Song, Elissa Kim and Erin Kwon attended one fo the local elementary schools where thy spent the afternoon presenting their message of Christ’s salvation through body worship, skits, and crafts. The children at all the locations seemed very excited and eager to participate with the ministry team members in the many activities. One of the local Swazi interpreters assisting us informed us that one of the out-dated myths regarding Asian foreigners was that we ate children. Nonetheless, the local children laughed and danced received special bracelets, balloon animals, face painting and candy-all prepared by the ministry team. Soccer is very popular there and so soccer balls were presented as gifts at each school along with whiffle bats and balls. The evangelism ministry, lead by Deacon Alex Guo along with Mark Kosko also interacted with the local people who were there for medical treatment. We learned that Zionism was the prevailing religion in Swaziland. Zionism is essentially Biblical but it apparently also incorporates other beliefs such as ancestor worship. However, Swaziland is a kingdom and the reigning

고와네(Ngowane)의 시골 산마을로 떠났습니다. 그 지역 의 의원과 보건부 관리들이 우리를 맞아주었습니다. 그 곳에는 다수의 작은 병실을 갖춘 1층짜리 병원진료소가 있었습니다. 그러나 스와질랜드에는 전반적으로 의료진 이 부족하였기에, 우리 의료 사역팀 (Dr. David Rhee, Dr. Richard Li, and Julie Yun, RN)이 그 지역의 환자들에게 의료와 안과 관리를 제공하면서 이 진료소를 처음으로 활 용하게 되었습니다. 그 곳의 많은 사람들은 치료비나, 의 사를 보러가기 위해 먼 거리를 여행하느라 드는 비용을 감당할 수가 없습니다. 그날 약 275명의 사람들이 치료를 받았습니다. 리더인 Christine Rhee, John Lee, Sang Kim Timothy Shin, Johnny Kim Lisa Keem, Sara Song, Elissa Kim, Erin Kwon으로 구성된 어린이 사역팀은 그 지역의 한 초등학교에 가서, 오후 시간동안 바디워십, 촌극, 공예 시간 등을 통해 그리스도의 구원의 소식을 전하였습니다. 가는 곳마다 모든 어린이들은 아주 신나게 팀멤버들과 많 은 활동에 같이 열심히 참여하였습니다. 우리를 도와주시 던 그 지역의 통역가 한 분이 ‘아시아인은 어린이들을 잡 아먹는다’는 오래된 전설이 있다고 알려주셨습니다. 그럼 에도 불구하고, 어린이들은 웃고, 춤을 추며, 얼굴에 그림 을 그리고, 사역팀이 준비한 팔찌, 동물 풍선, 캔디를 받 았습니다. 축구는 그곳에서 가장 인기가 있었기에, 각 학 교에 가벼운 배트, 공과 함께 축구공을 선물로 증정하였 습니다. 리더 Alex Guo 집사님과 저로 구성된 복음 사역팀은 진료를 받으러 온 지역주민들과 교제를 나누었습니다. 우 리는 시오니즘(Zionism)이 스와질랜드에 널리 퍼져있는 종교임을 알게 되었습니다. 시 오니즘은 본질 적으로는 성경 적이지만, 또한 겉보기에는 조 상숭배와 같은 다른 종류의 믿 음이 섞여 있습 니다. 스와질랜 드는 기독교인 인 므스와티 3 세 ( K i n g Mswati III)가 다스리는 왕정 국가입니다. 그 러한 이유로 스 와질랜드의 학 교에서는 기독

6


King Mswati III is a Christian. As such, Christianity is openly taught and acknowledged in the schools and now there is a modern trend away from Zionism towards true Christianity. We spent one day in Ngowane at the medical clinic. After the final patient was treated by the medical ministry it was night fall. We were then invited as dinner guests to the local senator’s home where we were served the local meal of boiled goat and goat intestine and liver stew. We continued our missions the following 3 days in Swaziland. Several team members gave their testimonies at the morning prayer sessions that week and John Lee and Christine Rhee provided music worship. All 16 members also had an opportunity to share their personal testimonies in Swaziland and Mozambique during the various church services and special gatherings. Elder Neil also provided 5 sermons in a span of 3countries and 7 days! The evangelism ministry also provided an opportunity for several members, including Lisa Keem, Sara Song and Mark Kosko, to evangelize door-to-door for the first time in their lives. This was a very anxious and personal experience but thank God for the opportunity for spiritual growth. Our time in Swaziland also included a school assembly for students from Saim High School. It was a public school experience distinct from that of the United States in that Christianity was openly preached. Schools at every stop cancelled their classes in order for students to attend our events. Several Saim students began the assembly with short testimonies of praise and thanksgiving to the Lord. However, public schools in Swaziland and Mozambique also differed from the US in that parents were required to pay a small tuition to attend school. Pasotr Ahnselmo, one of the local pastor’s and principal of a school in Maputo, Mozambique, stated that

교를 공개적으로 받아들이고, 가르치고 있으며, 시오니즘 에서 진실한 기독교로 옮겨가는 새로운 풍조가 생기고 있 습니다. 우리는 고와네(Ngowane)의 진료소에서 이렇게 사역 을 하며 하루를 보냈습니다. 마지막 환자를 치료하고 나 니, 밤이 되었습니다. 그 지역의 의원이 우리를 저녁식사 에 초대해주어서 삶은 염소, 염소 내장, 간으로 만든 스튜 등의 지방음식을 맛보았습니다. 그 뒤 3일간, 우리는 스와질랜드에서 계속 사역을 하 였습니다. Christine Rhee 와 John Lee가 찬양을 인도하 는 새벽 기도시간에 많은 팀 멤버들이 간증을 나누었습니 다. 16명의 모든 멤버들이 스와질랜드와 모잠비크에서 열린 여러 종류의 예배와 모임에서 자신들의 간증을 나누 는 기회를 가졌습니다. 김경봉 장로님은 7일 동안 3개국 에서 5번의 설교를 했습니다. 저를 포함한 Lisa Keem, Sara Song 등 여러 멤버들이 생전 처음으로 가가호호 전 도를 할 기회를 가졌습니다. 혼자서 해야 하는 굉장히 긴 장된 경험이었지만, 영적성장의 기회를 주신 하나님께 감 사드립니다. 스와질랜드의 사역에는 사임 고등학교(Saim High School)의 학생들을 대상으로 집회를 여는 일도 포함되 어 있었습니다. 공립학교에서 기독교를 공개적으로 전한 다는 것이 미국과는 완전히 다른 것이었습니다. 우리가 방문한 모든 학교들이 수업을 취소하고 우리가 여는 집회 에 학생들을 참여하게 했습니다. 여러 명의 사임 고등학 교의 학생들이 주님께 찬양과 감사를 드리는 간단한 간증 으로 집회가 시작되었습니다. 스와질랜드와 모잠비크의 공립학교는 미국의 공립학 교와는 다르게 약간의 학비를 내야합니다. 모잠비크의 마 푸토(Maputo)에 있는 학교의 교장인 안셀모(Ahnselmo) 목사님은 정부지원이 삭감되어, 부모들이 1년에 미국 돈 으로 1달러 정도에 해당하는 학비를 내야 된다고 말했습

7


니다. 모든 부모들이 이 학비를 낼 수 있는 것이 아니기 때문에 아이들이 학교를 다니지 못한다고 합니다. 아프리카에 온지 5일 째 되는 날, 선교팀은 모잠비크 로 갔습니다. 마푸토를 떠나서, 해가 질 무렵에 치부토 (Chibuto)라는 외진 마을에 도착했습니다. 두 대의 밴에 탄 선교팀이 도착하자, 그곳의 주민들이 모국어인 샹간 (Shangana)과 포르투칼어로 노래를 부르며 맞아 주었습 니다. 마을은 굉장히 외딴 곳에 위치해 있었습니다. 방 하 나로 되어있는 교회를 제외하고 다른 건물은 없었습니다. 그곳의 주민들은 전기도 배관 시설도 없는 전통적인 초가 지붕의 오두막에서 살고 있었습니다. 그 지역은 가뭄에 시달리고 있었습니다. 2007년 11월 이후로 비가 내리지 않았다고 했습니다. 그 결과 주민들의 주식량인 옥수수를 얻을 수가 없게 되었습니다. 여자들은 매일 5킬로미터를 걸어가서 물을 길어와야 합니다. 매주 아이들이 굶주림으 로 죽어갑니다. 치부토에는 지난 5년간 외부 방문객이 없었다고 합니 다. 그래서 그 곳의 안토니오(Antonio) 목사님은 우리 선 교팀이 제공하는 어떤 원조에도 위안을 받으며, 고마워했 습니다. 의료 사역팀과 어린이 사역팀은 약 250여명의 주 민에게 사역을 펼쳤고, 우리는 교회를 페인트칠을 했습니 다. 우리가 다음날 아침 새벽 3시 30분까지 일어나서 마 푸토로 출발을 해야했기 때문에, 남아있는 가축이라고는 얼마 되지 않음에도 불구하고, 그날 밤 잠자리에 들기 전 에, 치부토의 주민들은 우리에게 활활 타오르는 모닥불 옆에서 신선한 염소 스튜를 대접했습니다. 치부토의 주민 들은 극한 삶의 조건 속에서도, 주님에 대한 사랑과 기쁨 을 여전히 간직한 채, 그들이 가진 적은 것으로 최선을 다 하여 우리들을 대접하였습니다. 모잠비크의 마푸토에 있는 동안, 마톨라(Matola) 교회 에서 주일예배를 드리고, 의료사역과 어린이 사역을 했습 니다. 안셀모(Ahnselmo) 목사님이 교장으로 있는 초등학 교를 방문했습니다. 기독교가 공개적으로 받아들여지고 있는 이 곳에서 우리는 어린이들의 따뜻하고도 요란한 환 영을 받았습니다. 모잠비크에서 기독교가 항상 받아들여진 것은 아니었 습니다. 군부 공산주의 하에 있었던 1975년에서 1994년 까지 종교 행위에 대한 잔인한 탄압이 있었습니다. 김상 원 사모님께서 1980년대 후반, 처음으로 모잠비크로 선 교사역을 확장했을 때의 기억을 말씀해 주셨습니다. 아주 위험했던 시기였다고 합니다. 김종양 목사님은 자동차 대 신 비행기로 다니셔야 했는데, 경찰이 목사님의 위치를 알기만 하면 분명 체포할 것이었기 때문이었습니다. 사모 님은 목사님이 모잠비크에 가시면, 목사님의 안전을 엄청 나게 걱정하셨다고 합니다. 정부당국에서는 이미 모잠비 크의 목사님들을 체포하였고, 그들을 단순히 사형에 처하 는 대신, 비행기로 목사님들을 야생동물들이 득실거리는

because of government budget cuts parents were required to pay the equivalent of $1 US per year for school Not all families could afford to pay this sum and so their children did not attend school. By the fifth day in Africa, the missions team traveled to Mozambique. After a day in Maputo, we drove by nightfall to the remote village of Chibuto. The people there greeted us with song sung in their native Shangana and Portuguese as we arrived in our two vans. The village was extremely remote. Other than the one room church there was no other building structure. The people lived in traditional thatched huts with no electricity or plumbing. The region was suffering form drought. They had not had any rain since November of 2007. Consequently, there were no crops to provide the corn maize staple they relied on for food. Women had to walk 5 kilometers a day for water. Apparently children were dying every week from starvation. Chibuto had not had any outside visitors for the last five years and so the local pastor, Pastor Antonio, was relieved and grateful for whatever relief our mission visit could provide. The medical and children’s teams ministered to about 250 and we also painted the church. Although there was little remaining livestock, that night we were provided a meal of fresh goat stew by a roaring campfire before going to sleep as we had to rise by 3:30am the next morning to depart for Maputo. The people of Chibuto still maintained their love and joy for the Lord despite extreme living conditions, offering up their best to us with what little they had. While in Maputo, Mozambique we attended Sunday service at Matola Church and provided medical and children’s ministries. We also visited Pastor Ahnselmo’s elementary school where he is the principal. Christianity is openly accepted and we were very loudly and warmly received by the children. Christian8


ity was not always accepted in Mozambique, however. From 1975 to 1994 it was a military communist state where there was a climate of brutal oppression of religious practice. Mrs. Kim shared her recollection of when they first extended their missionary work into Mozambique in the late 1980’s. It was a very dangerous time. Pastor Kim traveled by plane there instead of car as he would have most certainly been arrested by police authorities if they ever located him. Mrs. Kim worried a great deal for his safety while he was away there. Apparently, government authorities had already arrested Mozambique pastors. Instead of just executing them, the pastor were flown by plane over areas of wilderness occupied by wild predators and thrown off the plane. After the fall of communism in 1994, they continued their mission work with even greater determination. We spent 4 days in Mozambique before returning to Swaziland. While in Swaziland, Pastor Chong Yang Kim also gave us a tour of the land intended for a medical university. Ground-breaking is scheduled later this year with a completion of the first phase in 2010. The university and hospital will be the first in Swaziland and will serve over 25 million people. The 250 acres of land was donated by the Swazi government. The $25 million campus will be built through private and public contributions. We had an opportunity to join hands as a missions team while on the land and pray for this great vision. This project took many years to develop and reflects the tremendous measure and scope of Pastor and Mrs. Kim’s 23 years of missionary work in Africa. Pastor Kim received his calling as a missionary in 1985 while in Germany studying as a science major. With little or no initial support or training their mission’s effort has since planted over 220 churches, established a bible college and several mission centers, raised generations of Swazi and international seminary students in addition to establishing the Christian medical university. We returned after spending two weeks in Africa. For some of us this was our first missions. It was a tremendous and humbling experience to see God’s presence in another part of the world. Elder Neil made a comment in one of his sermons that it may have been our intent to come to Africa to bless others with our ministries. But in reality it was we who were blessed by the warm and loving fellowship we encountered by our fellow African brothers and sisters in Christ.

황무지로 데려가서 그 곳에 던졌다고 합니다. 1994년 공 산주의가 무너진 후, 김 목사님 내외분은 이전보다 더 큰 결단력을 가지고 선교사역을 계속하셨습니다. 우리는 모잠비크에서 나흘간을 보내고, 스와질랜드로 돌아갔습니다. 스와질랜드에 있는 동안 김종양 목사님께 서 의과대학을 지으려고 예정되어 있는 땅을 구경시켜 주 셨습니다. 2010년에 첫 단계의 완공을 목표로 올해 말에 기공식이 예정되어 있습니다. 스와질랜드의 첫 대학병원 이 될 이 병원은 2천 5백만 명이 넘는 사람들을 섬기게 될 것입니다. 스와질랜드 정부에서 250에이커의 땅을 기 부했고, 2천 5백만 달러가 소요될 캠퍼스는 개인과 공공 단체의 기부를 통해 지어질 것입니다. 그 땅에서 우리는 서로 손을 잡고, 이 커다란 비전을 위해 기도했습니다. 이 프로젝트 개발에 여러 해가 걸렸습니다. 이 프로젝 트에서 김 목사님 내외분의 23년간의 아프리카 선교사역 의 엄청난 규모와 범위를 볼 수 있습니다. 김종양 목사님 은 1986년 독일에서 과학을 공부하시다가, 목사의 소명 을 받으셨습니다. 선교지원이나 훈련이 거의 없는 상태에 서 선교를 시작한 김 목사님 내외분은 지금까지 220개가 넘는 교회를 세웠고, 성경대학과 여러 선교센터를 설립하 였고, 기독교 의과대학을 세울 뿐 아니라, 스와질랜드의 세대들과 국제 세미나 학생들을 양육했습니다. 우리는 아프리카에서 두 주간을 보내고 돌아왔습니다. 선교팀의 어떤 멤버들에게는 이번이 첫 번째 선교였습니 다. 지구의 또 다른 쪽에서 임재하시는 하나님을 보는 것 은 대단한 경험이었고, 우리를 겸허하게 하는 경험이었습 니다. 김경봉 장로님은 한 설교에서 이렇게 말씀하셨습니 다. “우리가 아프리카에 온 목적이 처음에는 우리의 사역 으로 다른 사람들을 축복하기 위한 것이었는지 모릅니다. 하지만 실제로, 주님 안에서 만난 아프리카의 형제, 자매 들의 따뜻한 사랑의 교제를 통해 축복을 받은 사람은 우 리였습니다. <번역: 오진이>

9


؉

ν

ɳ

ş

Ը

İ

사랑 여행 글 - Elissa Kim

10


When I heard our team was going to spend two nights in the Mozambican bush, I was not happy. Before going to Africa, I was expecting and actually excited for a quintessentially African experience such as this. But, as the time drew near, I started to dread it. My head filled up with anxiety regarding our sleeping arrangements, hygiene, and safety. I knew my apprehension was not from God so I tried my best to put my negative thoughts aside. I started praying for our time in the bush – for boldness when I would give my testimony, for our team’s health, and for personal issues I had been dealing with. After a five-hour van ride on a bumpy dirt road, we arrived in the remote village of Chibuto as the sun was setting. A perfect candidate for a National Geographic photo shoot, Chibuto is a tiny village, miles away from any sign of modern life. Straw huts, farm animals, and tall grass permeated the landscape. There was no running water, no electricity, only the bare essentials for survival. We were greeted with singing and smiles from perfect strangers. That night I gave my testimony in a cramped, one-room church lit by a single kerosene lamp. I felt God beside me as I shared, not once feeling nervous. The atmosphere and my Godgiven confidence made this a moment I will never forget. Afterward, my team members and I went out and shook hands with the congregation. The dirty and freezing cold hands of the children broke my heart. God told me to stop pitying them, and to simply show them his love. For the rest of our time in Chibuto, our team was treated with such generosity and selflessness. We were told there has been a devastating drought since November which is causing starvation and death. Yet, we were never hungry and always taken care of despite the situation. The people even prepared goat, a meal served exclusively on special occasions, for our last meal together. By the end of our time in the bush, I realized that not one worry had entered my mind. God had taken control and answered every one of my prayers. My most dreaded time in Africa turned out to be my favorite, most blessed portion of the trip.

우리 팀들이 모잠비크의 오지에서 이틀 밤을 보낼 거란 얘길 들었을 때 걱정이 앞섰다. 사실 아프리카에 오기 전에는 이러한 경험에 대한 기대와 설렘이 있었 지만, 시간이 가까이 다가올수록 난 두려워지기 시작 했다. 내 머릿속은 잠자리와 위생, 그리고 안전에 대한 불안감으로 가득차기 시작했다. 이러한 걱정들은 하나 님께서 주신 것이 아닌 것을 알고 부정적인 생각들은 하지 않기로 노력했다. 난 오지에서 보낼 시간을 위해 기도하기 시작했다. 사람들에게 간증할 때에 나에게 담대함을, 우리 멤버들의 건강을 위해, 그리고 내 개인 적인 이슈들을 놓고 말이다. 울퉁불퉁한 흙길을 밴으로 다섯 시간 운전한 후, 우 리가 치부토(Chibuto)라는 벽촌에 도착했을 때에는 해 가 질 무렵이었다. 현대 생활과는 거리가 먼 작은 마을 치부토는 내셔널 지오그 래픽 잡지의 사진에 딱 어울리는 곳이었다. 밀 짚 오두막집, 사육 동물 들 그리고 높이 자란 잡 초들이 펼쳐져 있었다. 수돗물과 전기가 없는 그곳은 생존하기 위해 필요한 가장 기본적인 필수품들만 있을 뿐이었 다. 생판 모르는 사람들 이 노래와 웃음으로 우 리를 반겨주었다. 그날 밤 나는 석유램프 하나 를 켜 놓은 방 한 칸 크 기의 작은 교회를 가득 메운 사람들 앞에서 간 증을 하게 되었다. 그때에 하나님께서 내 옆에 함께 계 심을 느꼈고, 단 한 번도 간증하는 동안 긴장하지 않을 수 있었다. 정말 그곳의 분위기와 하나님께서 주신 담 대함을 느낀 그 순간은 내 평생 잊지 못할 것이다. 간 증이 끝난 후 우리 팀 멤버들과 나는 밖으로 나가서 성 도들과 악수를 했다. 지저분하고 얼음장 같이 차가운 어린 아이들의 손은 내 마음을 아프게 했지만, 하나님 께서는 그들을 향해 불쌍한 생각은 하지 말라고 하시 며, 다만 하나님의 사랑을 보여주라는 말씀을 나에게 들려 주셨다. 치부토에 있는 동안 그들은 정말 놀라운 배려와 헌 신으로 우리를 대해 주었다. 우리는 그곳이 지난 11월 부터 시작된 지독한 가뭄으로 많은 사람들이 굶주리며 죽어가고 있다는 얘기를 듣게 되었다. 하지만 그러한

11


I believe much of the reason why God sent our team to Africa this summer was to meet his beloved children. The people of Swaziland and Mozambique amazed me. Most of the people we encountered had nothing and were chronically and/or terminally ill. As an American suburbanite who has become accustomed to the ungrateful attitude that has saturated my culture, I expected these people to be wallowing in self-pity and despair. I was proven very wrong. Not only did these people not complain, those who knew God praised and prayed the hardest. Their hunger to know God, despite their circumstances, shook me to my core. As a team, seeing the spirit of these people made us stronger and more loving toward one another as well. During my time in Africa, I learned that God is truly a God of wonders. His majesty might be wrapped up in divine mystery, but God is not as complicated as some make him out to be. God is simple. He is everything he promises to be – faithful, loving, and almighty. We all saw God’s character in Africa. He showed us his heart, gave us compassion, and allowed us to enjoy his beautiful creation. We did many things and met many people in Africa, but I think the trip can be summed up in one word: love. We felt God’s love for his people, our love for one another, and the love that we must continue to show the world as Christians.

상황에도 불구하고 그곳에 머무르는 동안 우리는 절대 로 배고프지 않았고 항상 그들의 보살핌을 받았던 것 이다. 마지막 식사를 같이 하는 시간에 그들은 우리를 위해서 특별한 행사에만 먹는다는 염소고기를 대접하 기도 했다. 그곳에서의 시간이 끝나갈 무렵, 난 내가 걱정했던 그 어떤 것도 날 염려 시키지 않았다는 것을 깨닫게 되었다. 하나님께서 모든 것을 지배해 주시고 또한 나의 모든 기도를 하나같이 모두 응답해 주신 것 이다. 아프리카에서 내가 가장 두려워했던 시간이 오 히려 최고의 순간이 되었고, 또한 이번 사역에 있어서 가장 축복된 시간이 되었던 것이다. 하나님께서 우리 팀을 이번 여름에 아프리카로 보 내신 가장 큰 이유는 하나님의 사랑하시는 자녀들을 만나게 하신 것이라고 믿는다. 스와질랜드와 모잠비크 사람들은 날 놀라게 했다. 우리가 만난 대부분의 사람 들은 정말 아무것도 가진 것이 없고, 또 오랜 질병과 불치병을 앓고 있는 사람들이었다. 미국인으로 감사할 줄 모르는 문화에 젖어 도심 근교에서 살아온 나는 아 프리카의 이러한 환경에서 살고 있는 사람들이 자신의 연민과 절망에 빠져 몸부림치며 살 것이라고 생각했었 다. 하지만 나의 이러한 생각들은 잘못된 것이었다. 그 들은 불평하지 않았을 뿐만 아니라, 하나님을 아는 사 람들은 전력을 다해 찬양했고, 기도했다. 자신들의 처 해진 환경에도 불구하고 하나님에 대한 그들의 굶주림 은 나의 속마음을 흔들어 놓았다. 이러한 그들의 정신 을 본 우리 팀들은 더욱 강해졌고, 서로를 향해 더욱 사랑하는 마음을 갖게 되었다. 아프리카에 있는 동안 난 정말 하나님은 경이로우 신 분임을 깨닫게 되었다. 하나님의 위엄은 어떤 성스 러운 신비함에 감싸여 있을지 몰라도, 하나님은 사람 들이 생각하는 것만큼 그렇게 복잡한 분이 아니시다. 하나님은 간단명료하시다. 하나님은 자신이 약속하신 그 자체이시다. 성실하시고, 사랑이시고 전능하시다. 우리 모두 하나님의 성품을 아프리카에서 볼 수 있었 다. 하나님은 우리에게 그분의 마음을 보여주셨고, 자 비하심을 주셨으며 또한 하나님의 아름다운 창조물들 을 즐길 수 있도록 해 주셨다. 우리는 아프리카에서 많 은 일들을 했으며 또한 많은 사람들을 만났다. 하지만 이번 여행을 한 단어로 표현한다면 그것은 ‘사랑’이다. 우리는 하나님의 백성에 대한 하나님의 사랑을 느꼈고, 우리가 가지고 있는 서로에 대한 사랑과 또한 그리스 도인으로서 우리가 세상에 끊임없이 보여주어야 하는 사랑을 깊이 느끼고 돌아왔다. <번역: 양하영>

12


 ߣˣҙՙ֩ .%  글 - 신율미

엄마와 딸의 나들이: 초등부에서는 지 난 5월 17일에 초등부에 딸을 둔 엄마 와 딸이 함께 ' 글렌 에코 파크(Glen Echo Park)'에 가서 피크닉을 즐기고, 평소에 모녀간에 나누지 못했던 많은 이야기들을 나누며 아름답고 유익한 시간을 보냈습니다. (관련사진: 페이 지 16-17) 성경 암송 대회 수상자 성경 암송 대회 : 지난 5월 25일에 제3 회 성경 암송 대회를 가졌습니다. 이 날, 심사위원으로

2등: Hyung Seok Chae

한마음 청년들이 수고해주셨습니다. 다음은 성경 암송

3등: Kevin Nam

대회 수상자 명단과 사진입니다. 여름 수양회: 초등부 3-5학년 어린이들과 봉사자 약 60 여명이 6월 13-15일에 걸쳐 2박 3일의 여름 수양회를

1 학년 1등: Rebecca Jang

스카이 크로프트 수양관에서 가졌습니다. 모두들 안전

2등: Eleanor Zang

하고 즐거운 시간을 보내고, 친구들과 더욱 친밀한 교

3등: Yu‐been Hwang

제를 하는 시간과 영적으로 성숙할 시간을 가질 수 있 었던 보람찬 수양회였습니다. (관련기사: 페이지 14-

2학년

15)

1등: Charlie Shin 2등: Julianne Ghiorzi

아빠와 아들의 나들이: 지난 6월 20일에 초등부에 아

3등: Isabel Shin, Daniel Lee

들을 둔 아빠와 아들이 함께 ‘블랙 힐 리저널 파크

3학년 1등: Jiwoo Park

(Black Hill Regional Park)’에 가서 점심 식사를 하고

2등: Sarah Lee

낚시 대회를 하면서, 그 동안 부자간에 나누지 못했던

3등: Grace Kim

여러 가지 이야기를 친밀하게 나누며 유익한 시간을 보냈습니다. (관련사진: 페이지 2-3)

4학년 1등: Anna Lee 2등: Brian Choi, Deborah Hwang

다가오는 행사 :

3등: Gabby Han, Joel Yoo

7월 19일 : 초등학교 졸업생 나들이

5학년

8월 4-8일 : 여름 성경 학교 1등: Jonathan Kim

8월 31일 : 초등부 졸업식 13


ߣ

ˣ

ҙ

ս

‫ت‬

ধ

귀한 3일간의 시간 글 - 차옥순

이 예수님을 영접하겠다고 일어섰던 순수한 순간 은 하나님께서 허락하신 너무나 귀한 시간이었다. 변세라 전도사님의 잘 짜여진 순서대로 아이들은 믿어 지지 않을 만큼 (잘 먹고, 잘 놀고, 찬양하고, 말씀 듣 고, 만들기 등등) 하는 모든 순간순간을 즐겼다. 마지막 날 저녁 기도 시간에는 눈물을 흘리며 기도 하는 어린 아이들의 모습에서 나의 부질없이 걱정했던 마음과 순수하게 하나님을 온전히 의지하지 못했던 마 음이 부끄러웠다. 엄마로서 아이들의 수양회에 처음으 로 참석하며, 예수님을 알고 믿는 순수하고 예쁜 마음 이 변함없이 그 마음들 속에서 계속 성장하여 어렵다 는 사춘기를 지날 때도 믿음으로 승리하고 믿음의 귀 한 일꾼들이 되기를 기도한다.

5학년인 딸아이 덕택에 지난 6월 13일부터 15일까 지 2박 3일간 초등부 수양회에 같이 참석하게 되었다. 떠나면서 많은 아이들을 어떻게 할 것인지, 또 말을 안 들으면 어떻게 하나, 걱정이 되기도 했지만 안전하고 또 은혜로운 어린이 수양회가 되기를 기도하면서 참석 했다. 가장 놀랍고 은혜가 된 것은 얼마 전까지도 유년부 에 있던 아이들 같은데 어느덧 대학생이 되어 이제는 아이들의 교사로, 인도자로 그들의 귀한 3일간의 시간 을 어린이 수양회를 위해 봉사하는 아름다움이었다. 첫날 저녁 김모세 목사님의 말씀 후 6명의 아이들

14


15


‫ع‬

υ

‫ٮ‬

˳

‫ۆ‬

ǣ

˞

‫ۋ‬

의미 있고 귀중한 시간 글 - 박희정 (VA)

딸이니까 정말 많이 알 것이라 생각했는데… 아니 나 름대로 대화도 참 많이 한다고 했는데…. 정작 이런 간 단한 문제에 평소 너무 무심하지 않았나 싶은 맘이 들 어 창피하기도 하고 내가 알고 있었던 것보다 참 많이 커 있음을 다시 한 번 느꼈다. 실은 몇 주 전에 찜질방 을 갔다 와서 느낀, 정말 외적으로 많이 컸다는 생각과 는 다른 내적으로도 참 많이 컸음을 실감한 기회였다. 더욱이 내 자신에게 실망한 점은 오히려 딸아이가 나에 대해 더 잘 아는 것이다. 내가 딸의 답을 더 잘 맞 힐 것이라고 자만한 자존심에 완전히 금이 가는 순간 이었다. 자신 있게 대답한 답에 딸아이가 실망하며 쳐 다보는 그 눈빛을 보며 쥐구멍이라도 들어가고 싶게 만든 시간이었지만, 다시 한 번 내 딸에 대해 좀 더 깊 게 생각하고 무엇을 좋아하며 싫어하는지 알 수 있었 던 정말 소중한 시간이었다. 또한 엄마와 딸이 서로가 서로에게 가장 좋은 점과 싫은 점, 서로에게 바라는 점 등을 같이 얘기하면서 글 로 적어보는 시간을 가졌다. 참 의미 있고 귀중한 시간 이 된 엄마와 딸의 나들이를 통해 평상시에는 잘 할 수 없는 심도 깊은 대화가 나눠졌고 엄마와 딸의 일차적 인 관계를 넘어 서로를 통해 자신을 돌아볼 수 있었던 참 좋은 기회였다. 딸을 보면 그 엄마를 안다고… 내 딸의 모습을 보면서 나 자신을 보고 반성할 것은 반성 하고 배울 점은 배우고…. 딸에 대해서 참 자랑스럽고 뿌듯한 시간이 되었음을 고백한다. 이렇게 건강한 생 각을 가진 딸을 주신 하나님께 감사하며.

정말 오랜만에 큰딸과 단 둘의 나들이다. ‘엄마와 딸의 나들이’…. 별 생각 없이 등록은 했는데…. 뭐 별 거 있을까 하는 의구심과 함께 우리의 나들이는 시작 되었다. 모스(MOE’S)에 가서 일단 허기진 배를 채우고 교 회 밴을 타고 공원으로 이동했다. “엄마는 엄마들끼리, 아이는 아이들끼리… 오늘은 절대 허가 안합니다.” 세 라 전도사님의 어명을 어기지 않으려고 딸아이와 차를 타도 같이, 무엇을 하든지 오늘은 징그럽게 같이 살비 비며 붙어있으리라 맘먹었다. 공원에 도착해서 우리는 미니골프로 우리의 맘과 몸을 풀기 시작했다. 서로가 서로를 바라보며 잘하면 잘한다고 폼도 교정해주며 재미있게 한 게임 치고 우 리의 맘은 열리기 시작했다. 나무 밑 의자에 앉으려는 순간, 비가 온 후라 날씨도 끈적끈적 모기가 들끓어 더 이상 모기 밥이 될 수 없다는 아이들과 엄마들의 항변 에 세라 전도사님은 다시 교회로 돌아가자는 결정을 내렸다. 그렇게 해서 교회로 이동! 드디어 본격적인 엄마와 딸의 시간이 시작되었다. 서로가 서로에 대해 얼마나 잘 아는가 퀴즈로 풀어보 는 시간을 가졌다. 각자 좋아하는 색깔, 친한 친구, 음 식, 가보고 싶은 나라, 싫어하는 것, 좋아하는 과목, 바 꾸고 싶은 것 등등에 대해 적고 엄마는 딸의 답을, 딸 은 엄마의 답을 맞히는 과정에 나는 정말 ‘이리도 딸에 대해 모르고 있었나’ 정말 한심한 생각이 들었다. 내

귀한 시간을 준비해주신 세라 전도사님께 감사하고 함께 참여한 엄마와 딸들에게도 화이팅!

오른쪽 사진 설명: 엄마와 딸의 나들이 (MD) 5월 17일. Glen Echo Park 16


17


‫ۍ‬

ү

가난한 영혼을 향한 시들지 않는 열정 인터뷰, 정리 - 이연일

해 주시며 보내주셨습니다.

이다윗, 안나 선교사님이 C국을 향하여 선교사의 사명을 안고 떠나신지 벌써 13년이 되었다. 그간 두 번 의 안식년을 지내셨고 5월에 중간보고 차 3개월간 방 문 오셨다. 그동안의 일과 일정에 대해 말씀을 들어보 았다.

처음 나가시던 때도 제가 인터뷰를 하였고 그 질문 가운데 하나가 미국을 떠나가시면서 어떤 음식이 가장 생각나실까요? 하고 물었는데 팬케이크라고 말씀하셨 지요. 지금은 반대로 질문합니다. 이곳에 나와 계시면서 C국 음식 무엇이 생각나시나요.

선교사로 파송 받아 나가셨던 때가 언제셨나요.

이다윗: C국에는 맛있는 음식이 많습니다. 그 가운 데 꼽으라면 ‘쓰완양로우’라고 불리는 양고기로 만드 는 샤브샤브라고 하는 것과 ‘진장로스’입니다. 이 음식 은 돼지고기를 짜장소스에 복은 뒤 밀전병 같은 것에 싸서 먹는 음식인데 아주 맛있습니다. 위의 두 가지 말 고도 여러 음식들이 참 맛있는데 말보다 직접 드셔보

이다윗: 1996년 2월 17일입니다. 휄로쉽교회가 1455 Research Blvd.에 있던 일명 창고교회 시절에 P.W.M (Partners for World Mission)소속 선교사로 파송 받고 출국했지요. 휄로쉽교회 1호 선교사로 파송 받아 나갔던 때가 그리 오래되지 않은듯한데 벌써 시 간이 오래 흘렀네요. 정말 많은 분들이 기쁨으로 기도

18


네트워킹으로 문서 선교를 하는 분, 학생 전도를 위주 로 하시는 분, 아내가 화교인이어서 현지인 접촉에 유 리한 분 등 여러분이 함께 합니다. 저는 어느 정도 연 륜이 쌓여 이제는 섬겨야하는 위치에 있기에 여러 면 으로 돕는 사역을 하고 있습니다. 후배 선교사들 가운 데는 재정적인 도움을 필요로 하는 젊은이들도 있어 제가 후원금을 도와줘야하는 부담도 있습니다.

실 기회들이 있으시면 좋겠네요. 선교사로 헌신하기까지의 과정을 얘기해 주세요. 이다윗: 1989년 파라과아로 단기선교를 다녀왔습 니다. 안타까운 영혼을 보며 그들을 위한 삶을 살기로 작정하고 그때부터 6년 동안 선교사의 삶을 준비하였 지요. 1994년 C국에서 사역하시던 이장열 선교사님이 선교보고 차 저희 교회를 방문하셨습니다. 그 분의 말 씀을 들으며 95년에 현지를 방문한 뒤 확신을 갖고 C 국내의 자치구인 내몽고를 향하여 발자국을 내딛었지 요. 몽고와 내몽고는 다릅니다. 몽고는 독립국가이고 내몽고는 C국 영토 내 소수민족이 모여 형성된 몽고족 자치구입니다. 마치 티베트가 C국 내 영토면서 자치구 를 형성하여 사는 것과 마찬가지이지요. 첫 사역지인 그곳에서 여러분들과 동역하면서 재미있게 전도하였 습니다. 지금도 그곳에 1년에 2~3회 정도 방문을 하여 그분들과 교재하고 훈련하며 관계를 지속적으로 유지 하고 있지요. 그 후 C국내의 보안문제로 내몽고에서 나와 지금은 Y20사역에 집중하고 있습니다.

Y20사역이 마무리되면 다음 사역은 무엇인가요. 이다윗: ‘M 프로젝트’ 사역입니다. ‘M 프로젝트’라 이름하여 진행하고 추진하는데 M강 주변에 5개의 나 라가 있는데 태국, 베트남, 라오스, 캄보디아, 미얀마 5 개국입니다. 이 국가들은 같은 사회주의 국가로서 C국 사역자들이 비자 받기가 수월하며 많은 종족들이 같은 언어를 사용하기에 여러모로 도움이 되리라 봅니다. 선교사님께서 중점적으로 하는 사역의 내용을 말씀 해주세요.

Y20사역에 대해 상세히 얘기 좀 해주세요. 이다윗: Y강 유역에 4억 8천만 명의 인구가 살고 있습니다. 그 강가에 사는 대다수의 인구가 주님을 모 르는 채 살아가는 것이 안타까워서 2001년 3가정과 싱글 여자 분이 헌신을 하여 시작한 사역입니다. 2010 년까지 30개의 교회를 개척하는 것이 목표였는데 8년 이 지난 지금 현재 11개의 교회를 개척하였고 2년 이 내에 19개의 교회를 개척하고자 합니다. 이미 진행이 되고 있는 상태이고 여러분이 기도를 지속적으로 해 주시니 나머지 교회를 개척하는 것은 그리 어려운 일 은 아니리라 봅니다. 상당히 규모가 큰 프로젝트를 진행함에 어려운 일은 무엇인가요. 이다윗: 동역자를 구하는 것입니다. 같은 선교단체 인 GP 소속의 선교사님들도, 같은 국가, 같은 지역에 서 선교를 하시는 분들도 모두 뜻이 같은 것은 아닙니 다. 현재 6가정의 외국인 선교사들이 Y20사역에 참여 하고 있으며 인구가 100만~300만 명 미만인 소도시 는 외국인 거주 제한지역이어서 현지인 7가정의 선교 사들이 같은 목적 하에 프로젝트를 진행하고 있습니다. 캠퍼스사역과 제자훈련을 중점적으로 진행하시는 분,

19


원하시는 곳이 있으면 열심히 찾아다 니며 인사드리고 보고합니다. 많은 분들이 반기시며 가진 것을 나누는 기쁨을 체험하면서, 주님이 주시는 위로를 얻고, 힘을 얻고, 사랑받음에 감사드립니다. 지난 번 두 분이 회갑을 맞으셔서 전 교인들이 ‘깜짝 파티’를 했는데 소감 이 어떠셨나요? 이다윗: 감사하고, 놀랐고, 교인들의 사랑과 섬김, 기도함에 너무 좋았습 니다. 외지에 나갔다 들어오면 왠지 쓸쓸하고 허전하고 한데 많은 분들이 반겨주시고 함께 해 주셔서 감사합니 다. 제가 휄로쉽교회의 가족이라는 사실을 재확인하고 만끽한 시간이었습니다. 목사님을 비롯하여 준비한 모 든 분들에게 머리 숙여 인사드립니다. 이안나: 요즘처럼 어려운 경제에 도움을 주시고 기 도와 격려해 주셔서 감사드립니다. 저희를 통하여 복 음이 전파되고 하나님 나라가 확장에 사용됨이 즐겁습 니다. 그저 고맙고 감사하다는 말씀 외에 더 드릴 말씀 이 없습니다.

이안나: 현지 400여개의 가정교회 지도자 자녀들에 게 장학금을 지급하고 있습니다. C국은 중학교까지 의 무교육이고 고등학교는 1년에 약 $400 정도, 대학교 는 경쟁률이 치열하여 입학도 어렵지만 1년에 약 $700 정도의 학비가 들어갑니다. 가능성이 있고 열심 이 있는 학생들에게 특별히 지원하며, 교회 개척을 한 현지인 선교사들에게 1달에 $200, 2년 반 과정의 신학 교 학생들 50명에게 합숙 훈련에 필요한 학교 운영비 와 식비로 1년에 약 $7,000을 지원합니다.

앞으로 하고 싶은 사역이 있으시다면 무엇일까요. 이다윗: Y20 사역을 충실히 감당하여야겠지요. 그 리고 뒤를 이어 사역하는 후배 선교사님들을 그간의 경력을 참고로 기도하며 후원하고 싶습니다. 재정적으

상당히 많은 금액이 필요로 하실 텐데 어떻게 충당 하여 사용하시나요. 이다윗: 1년에 6만에서 7만 달러가 소요되는데 약 1/5을 저를 파송한 모교 회인 휄로쉽교회에서 도와주십니다. 가 장 많은 부분이지요. 수입과 지출에 대한 내용을 담임목사님과 선교센터에 1년에 한번 보고하여 투명성을 유지합니다. 지 면을 빌어 여러분들께 고마움과 감사의 인사를 드립니다. 여러분의 후원과 헌신 이 있기에 저희가 현지에서 사역을 할 수 있는 것이지요. 보냄을 받은 선교사로 주 님 앞에, 목사님들과 여러분 앞에 부끄럼 이 없도록 사역하고자 늘 긴장하고 노력 합니다. 이안나: 이곳을 방문해서도 후원교회 와 후원자들이 계시는 곳, 저희를 만나기

20


로도 많이 필요로 한데 그 후원을 지속 적으로 감당하면 좋겠습니다. 또 1년에 3회 정도 C국 전역을 탐방하며 지도자 훈련을 하고 격려하는데 건강해야겠지 요. 씨 뿌린 열매를 보는 기쁨이 식지 않았으면 합니다. 마지막으로 여러분들에게 구하는 기 도제목을 말씀해 주세요. 이다윗: 제가 C국 내에 1,500명 ~2,000명 되는 선교사들을 위한 C국 선교사대회에 부회장으로 섬기게 되었 습니다. 이 일을 위하여 많은 필요 요소 가 있는데 장소는 한국 포항에 있는 한 동대학이고 본관과 기숙사 시설을 모두 사용하기로 했지요. 시기가 내년 2월 19일부터인데 모이는 분들이 많은 만 큼 대회 경비를 마련하고 그에 대한 준 비를 해야겠지요. 선교사들이 하나가되 어 큰 뜻을 이루는 귀한 대회를 멋지게 치루어야지요. 또 이곳에 있는 아들 에 디와 며느리 캐리 그리고 딸 에스더의 건강과 영적인 충만을 위해 기도해 주 시기 바랍니다. 아무래도 저희가 집을 비우는 시간이 있는 만큼 여러모로 강 건하여 주님의 기쁨이 되는 삶을 살도 록 기도해주세요. 가르치는 사역을 즐 겨하고 잘하는 딸 에스더도 저희들과 함께 거하며 하나님의 뜻 안에서 선교 사역에 동참하기를 바랍니다. 본 교회에서 파송 받으신 강00 선교 사님이 방문하셨을 때 얘기하셨다. 이 선교사님도 그리 넉넉하지 않은 재정에 서 주머니를 털어 손에 꼭 쥐어 주시며 열심히 사역하라고 기도하시던 사랑을 받으며 그 따뜻함에 고마움의 눈물을 흘렸다는 얘기. 회갑의 연세를 맞으신 두 분의 미소가 언제나, 어디서나 머물 기를 기도한다. 주님 안에서 사는 즐거 움과 기쁨을 그대로 보여주는 따스함이 있기에.

21


남성들의 모임 글 - 오장석

지난 6월 7일, 저녁 6시 워십센터에서 휄로쉽교회 남성들이 한자리에 모였다. 20대부터 60대까지 세대 별로 마련된 테이블에 앉아 스테이크로 마련된 저녁을 나누며 이야기를 주고받았다. 평소 지나다니며 얼굴은 알아보겠지만 직접 대화를 나누어본 적이 없었던 관계 로 인사 한 번 제대로 주고받은 적 없었던 사람들이 식 사를 나누며 자연스레 자신의 소개와 더불어 자신의 또래가 누구인지 확인해나갔다. 저녁 식사가 끝나갈 무렵, 채정석 집사의 진행으로 사진에 담긴 옛 모습을 알아맞히는 게임을 했다. 아주 어린 시절의 (즉, 아기 때부터) 사진부터 빛바랜 사진 이지만 젊은 날의 한 포즈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모습 들을 놓고 누구의 과거인지 알아맞히는 시간이었다. 더러는 예전의 모습과 별 다르지 않아 쉬 맞출 수도 있 었지만, 많은 경우 세월의 흐름을 말해주듯 도무지 누 구인지 알 수 없었다. 이어지는 노래의 시간. 쉐마중창단은 예전에 즐거 이 부르던 추억의 노래를 준비해 함께 ‘그 때’의 시간 으로 돌아가 ‘마음은 젊다’는 것을 확인하였다. 세대별 찬양의 시간에는 세대별로 나와 각 세대를 대표하는 찬양을 불렀다. 각 세대의 젊은 시절에 발표되어 즐겨 부르던 찬양을 통해 그 세대가 품고 있던 고민과 몸부 림, 그리고 꿈과 비전들이 무엇인지 느낄 수 있었다. 그리고 따로 마련된 세대별 모임 시간을 통해, 각 세대별로 보다 가깝게 교제를 나눌 수 있는 기회를 가 졌다. 사역의 현장에서 가까운 세대끼리 좋은 협력자 가 될 수 있다는 점에서 특별히 세대별 모임이 지닌 의

22


미가 있다고 하겠다. 김원기 목사는 이 날 권면의 말씀을 통해 ‘선택’의 중 요성을 강조하였다. “우리 인생의 가장 중요한 것은 선 택이다. 왜냐하면 현재는 과거에 내가 내린 선택의 결정 체이다. 그리고 미래 역시 앞으로 내가 내릴 선택의 열 매이기 때문이다. 우리에게 주어진 엄청난 책임이 있다 면 그것은 바로 하나님께서 원하시는 것을 선택해서 다 음 세대에 물려줘야 한다. 비록 내가 어려운 상황 속에 있어도 내가 어떠한 선택을 내리느냐에 따라 다음 세대 가 복을 누릴 수 있다.” 여러 세대가 한 자리에 모였다. 하지만 모든 세대가 물려주는 세대요, 또한 물려받는 세대이기도 하다. 서로 살아온 시대적 배경이 다르고, 문화적 상황이 다르며, 경제적 여건이 달라 서로 다른 세대임에는 틀림이 없다. 하지만 복음 아래에서 서로 다른 세대가 하나의 꿈과 희 망을 향해 함께 힘을 모아 선을 이루어낼 수 있다는 사 실이 성도들이 지닌 특권이자 보람일 것이다. 모임을 마치면서 우리는 세상을 향해 손을 뻗어 열 방이 회개하고 하나님 앞으로 돌아오는 부흥을 우리가 살고 있는 세대에 보기를 기도하였다. 그리고 나와 내가 속해 있는 가정, 사회, 교회를 위해 기도하며 바른 선택 을 내리는 우리가 되기를 다짐하였다.

23


서정길 집사: 이순신 동상

윤세헌 집사: 골퍼

50대 연령별 모임에서 화장지를 사용하여 미이라를 만드는 게임 윤대섭 집사: 바디 빌더

김덕규 장로: 로댕의 생각하는 사람

24 사진 제공: 조성우, 장대창 집사


(위) 40대들

(아래) 30대들

25


*.1"$5ս

‫ت‬

ধ

태양 아래에서 즐긴 영적 훈련

한 길은 우리 자신을 고통 속에 빠진 채로 버려두 어, 진정한 성숙으로 가는 길을 차단하는 길이고, 또 다른 길은 자유와 성장으로 우리를 이끄는 길입 니다. 글 - Stephanie Kim

The last week of May, over forty college students drove down to the Outer Banks in North Carolina for Devotion on the Ocean 2008, Impact’s annual summer retreat. After a long semester away from home, it turned out to be just what I needed to unwind and recharge, and I enjoyed both relaxing on the beach with friends and evaluating my spiritual life with God. Days passed quickly that week, even with our early mornings and late nights and plentiful free time. Each day began with breakfast and quiet time, which were followed by worship and teaching sessions, small group time, meals, games on the beach, and a lot of hanging out until it was time to sleep. Lunch and dinner were cooked by small groups, which offered a great opportunity to work and bond with group mem-

5월 마지막 주, 40명이 넘는 대학생들이 임팩트의 연례 여름 수양회인 ‘Devotion on the Ocean 2008’ 을 위해 노스캐롤라이나의 ‘아우터 뱅크(Outer Banks)’로 운전해 갔습니다. 집에서 멀리 떨어진 학교 에서 긴 학기를 끝낸 후, 저에게 필요한 것은 긴장을 풀고 재충전을 하는 것이었습니다. 해변에서 친구들과 편히 쉬며, 하나님과의 영적인 삶을 평가하는 것은 즐 거웠습니다. 아침 일찍 시작해서 저녁 늦게 끝나는 일정과 많은 자유시간에도, 이 주는 하루하루가 빠르게 지나갔습니 다. 하루 일과는 아침식사와 큐티로 시작되었습니다. 그 뒤로 예배와 강의시간, 작은 그룹 모임, 식사, 해변 에서 하는 게임, 잠자리에 들 때까지 친구들과 어울려 26


bers. Since we filled to overflowing two separate houses, and every open living space seemed crowded and enjoyably chaotic around the clock, any activity designed for small groups proved to be a great chance to get to know some people better. My father was the speaker this year, and while I’m obviously biased, I found his messages to be a great blessing. He stressed the importance of dealing with the inner stumbling blocks that were keeping us from growing in our lives, from things in the past to personal hang-ups. I was at first concerned about his strong tone, worried that it would be off-putting to people who were unaccustomed to him, but I quickly intuited his purpose, which helped me to relax. My father’s genuine love and concern for my friends and peers manifested themselves in his urgent desire to see us move on from the pain in our lives. College-age students are blessed to be at an age of transition, where it is understood that we are neither children nor fully adults. Most of us do not have the responsibilities that we will in a few years, and we have more freedom right now to confront our issues and eradicate them than we ever will. My dad sees this time period as a crucially important but very brief one, and he can

다니는 시간들이 이어졌습니다. 점심과 저녁은 작은 그룹들이 돌아가며 담당했는데, 그룹 멤버들과 결속해 서 일할 수 있는 훌륭한 기회가 되었습니다. 두 채의 집이 학생들로 꽉 차서 넘칠 정도였으므로, 모든 빈 공 간들이 하루 종일 붐볐으나, 기분좋게 혼란스러웠습니 다. 작은 그룹을 위해 준비된 모든 활동들은 다른 사람 들을 더 잘 알기에 좋은 기회였습니다. 올해 수련회의 강사는 저의 아버지인 김원기 목사 님이었습니다. 제가 분명 편견을 가지고 있기는 하나, 아버지의 설교는 커다란 은혜가 되었습니다. 아버지는 우리가 성장하는 삶을 사는데 방해가 되는, 과거의 문 제에서부터 개인의 콤플렉스에 이르는, 우리 내부에 있는 거침돌을 다루는 것이 중요하다고 강조하였습니 다. 처음에는 아버지의 강한 어조가 신경이 쓰이고, 아 버지에게 익숙하지 않은 사람들이 불쾌하게 여길지도 모르겠다고 걱정이 됐지만, 곧 아버지의 의도를 알아 차리고 안심을 할 수 있었습니다. 우리가 갖고 있는 삶 의 고통에서 우리가 벗어나는 것을 보고 싶어하는 아 버지의 절박한 바램에서, 내 친구들과 동료 학생들은 그들을 향한 아버지의 진실한 사랑과 관심을 명백히 보았습니다. 대학생의 나이대는 과도기의 시기로, 어 린아이도 그렇다고 완전한 성인도 아닌 시기라고 여겨 집니다. 우리 대부분은 몇 년 뒤에는 가지게 될 그런 책임을, 지금은 가지고 있지 않습니다. 그리고 우리의 문제점들을 대면하여 뿌리째 뽑을 수 있는 자유를, 미 래의 어느 때 보다 지금 더 많이 가지고 있습니다. 아버지는 이 시기가 결정적으로 중요하며 또한 아 주 짧다고 생각합니다. 그리고 이 시기에우리가 갈 수 있는 두 종류의 삶을 아버지는 그려낼 수 있습니다. 한 길은 우리 자신을 고통 속에 빠진 채로 버려두어, 진정 한 성숙으로 가는 길을 차단하는 길이고, 또 다른 길은 자유와 성장으로 우리를 이끄는 길입니다. 제가 아버 지를 알고 있기 때문에, 이 주제에 대한 아버지의 열정

27


envision all of our lives going two ways—one path would leave us mired in our own pain and closed off to real maturity, and the other would lead to freedom and growth. I knew all of this because I know him, but, hopefully, you didn’t have to know it to be convicted. We had time to discuss things in our small groups, and for me personally, I appreciated the chance to give voice to some small but hidden attitudes in my life that I knew were hurting me. By admitting them and offering them up in prayer, I was able to confront them head on and reorient myself towards a forwardlooking position, one that allowed me to fix my eyes on the one constant in my life—God. Overall, the mixture of fun in the sun and spiritual training made for a great week, and I don’t think I was the only one who thought so. With only two summers left to go, I look forward to attending again!

을 알고 있지만, 다른 사람들이 아버지의 그런 열정을 알 필요는 없을 것입니다. 작은 그룹 모임에서는 여러 주제를 가지고 토론하 는 시간을 가졌고, 개인적으로는 작지만 감추어져 있 었던, 저에게 상처를 주고 있던 제 삶의 태도에 대해서 토로할 수 있는 기회를 가진 것을 감사하게 생각합니 다. 그것들을 인정하고, 기도를 드린 뒤, 저는 정면으 로 저의 문제점을 대면할 수 있었습니다. 그리고 제 인 생에서 언제나 변하지 않는 분, 즉 하나님께 제 눈을 고정하도록 도와주는 진취적인 태도를 가지도록 저를 재조정할 수 있었습니다. 전반적으로 이번 수양회는 태양 아래에서의 즐거움 과 영적 훈련이 어우러진 멋진 한 주간이었습니다. 저 만 그렇게 느꼈다고 생각하지 않습니다. 이제 두 번의 여름이 남았습니다. 다시 이 수양회에 참석하는 것을 기대합니다. <번역: 오진이>

Silent Auction 최종 보고 지난달에 보고한 경매의 추가 결과를 보고합니다. 전체 이익금이 $8,200달러라고 알려드렸는데 그 후 에 몇 가지 새로운 물건이 들어오고 판매되었습니다. 또 물건만 가져가고 대금을 지불하지 않았던 분 들이 지급해주셔서 최종 이익금이 $10,000달러였습니다. 사용 용도는 2008년도 중,고등부 여름 단기 선교 팀 후원으로 $5,000, NCFC 장학금 종자돈으로 $4,500, 그리고 오케스트라 후원으로 $500을 지원 하였습니다. 많은 분들의 관심과 사랑 그리고 실제로 후원해주심에 다시 한 번 감사의 인사를 드립니 다. 그 동안의 수고보다 기대 이상의 결과가 보여짐을 여러분께 보고 드리며 늘 기도와 격려 감사합니 다.

<정리: 이연일>

28


5%

하나님께서 나를 위해 예비하시고 준비해 주신 TD 글 - 한윤숙

저는 4년째 휄로쉽교회에 다니고 있습니다. 사람들 사이에 ‘뜨레스 디아스(TD)’에 대한 대화가 오고 갔지 만 저에겐 부담스러웠습니다. 먼저 3박 4일 동안 집을 떠나야 했고, 또 아무도 집안일을 돌볼 수가 없었기 때 문에 많은 사람들의 권유에도 불구하고, “다들 TD 가 서 은혜 받는 것은 아니잖아요, 사람들은 각기 다르기 때문에 모두 다는 아니죠”하며 사양하고, 빈정대며 거 부했습니다. 하지만 저의 속마음은 그렇지가 않았습니 다. 저도 참여하고 싶었고, 또 체험해보고 싶었습니다. 저는 남편하고 오랜 별거중이라 17살 넘은 아들을 혼자 키워야 했고, 또 그 아들은 자폐증(Autism) 병을 앓고 있습니다. 겉으로 보면 덩치 좋고 또 잘 생기고 조용한 아이라 주변사람들은 잘 몰랐습니다. 그러나 날이 가면 갈수록 엄마와 대화가 끊기고, 아무 일도 아 닌 것 같고 버럭 화를 내서, 훈계하며 전쟁을 치루어야 했습니다. 그럴 때마다 저 혼자 감당하기엔 너무 힘들 었고 괴로웠습니다. 또 한편 교회에서나 또 어디를 가 나 혼자 앉아있고, 혼자 다니며 외로워하는 아들의 뒷 모습을 보면 내 마음은 아팠고 안타까웠습니다. 내 마 음은 어느 한 구석 의지할 곳 없고, 걱정, 근심, 염려가 한꺼번에 나를 몰아치며 벼랑 끝까지 몰아세워서, 피 할 곳이 없었습니다. 하지만 하나님은 내 마음을 아셔서, 우리 오이코스 인도자 전용환 집사님을 통해 아무 문제없이 TD로 인 도해 주셨습니다. 아마 하나님은 오래 전부터 나를 위 해 예비하시고, 준비해주셨던 것 같습니다. 우리 교회 에서 일 년에 두 번하는 새벽부흥회 행사를 3박 4일 29

한꺼번에 참여한다는 마음에 정말 좋았습니다. TD 첫 날, 어리둥절했지만 팀 멤버들의 환영 박수 로부터 찬양 인도자, 목사님들 다 좋았습니다. 하루 밤 을 자고, 두 번째 만나는 에덴동산의 나의 친구들, 하 나님을 그리워하고 또 만나보고 싶은 그들의 빛나는 눈동자는 정말 예뻐 보였습니다. 또 서로 의지하고 아 껴주며 인생 끝날 때까지의 인생의 동반자들이라 좋았 습니다. 전날 밤, 위층 침대로 배치되어 잠을 이루지 못해서, 비몽사몽 상태에서 찬양을 하는데 하나님의 음성이 들 려왔습니다. “윤숙아, 무거운 짐 다 내려 놓아라”라고 하셨습니다. 저는 그 순간 그냥 서러워 울었습니다. 차 갑고 얼음장 같은 내 마음을 따뜻한 눈물로 녹여 주셔 서 울었고, 또 울고 나니 내 마음 시원해서 또 그 감동 에 울었습니다. 기도하며 울고, 무거운 짐 대신 울고, 작성 기도제목 대신 울고, 그냥 마냥 울었습니다. 더더 욱 지금도 이해할 수 없고 믿겨지지 않는 것은 방언 은 사를 주신 것입니다. 정말 갖고 싶었던 것 중 한 가지 라서 지금도 믿을 수 없을 정도로 기쁩니다. 저는 3박 4일 동안 울고 웃으며 하늘나라 아닌 하 늘나라를 갔다 왔습니다. 또 오랫동안 기억할 것입니 다. 그래서 전 앞으로도 계속 하나님을 부르며 울 것입 니다. 내 마음과 생각을 초월하시는 하나님. 때에 따라 돕는 은혜, 우리 아들 인성에게도 동일한 은혜 주시고, 예수 그리스도 이름으로 인성이를 묶고 있는 흑암의 약한 영들을 물리치시고, 다만 예수님의 피로 인성의 머리끝부터 발끝까지 부어, 천군천사를 파송하여 지켜 주시고, 아픈 상처 치료해 주시고, 고침 주시리라 믿습 니다. 그러므로 저는 하나님께 매달리며 떼쓰고 울 것 입니다. 왜냐하면 미운 자식 긍휼히 여기실 것 같고, 불쌍하게 보일 것이고, 또 귀찮아서 떡 하나 주실 것 같습니다.


한국 내에 부흥하는 이슬람

‫ܔܛ‬ՙÒ

1988년 한국의 올림픽이 끝났을 때 사우디 아라비아의 한 기자가 귀국해서 쓴 칼럼에 “한국은 차기 이 슬람 국가가 될 것이다. 한국을 이슬람화 하면 동남아와 극동을 이슬람화 하기에 쉬울 것이라고” 했다고 합니다. 이는 즉시 전략적으로 연결되었고 한국을 <동방에서 이슬람의 횃불을 밝히는 한국>으로 칭하며 이슬람 국가로 만들고자 차근차근 전략적으로 준비하고 있었던 것입니다. 글 - 유종우

세계적인 이슬람 전문가 윌리엄 와그너(William Wagner)

독일의 경우에는 2046년이면 이슬람 인구가 50%를 차지할 것으로 전망되고 있고 현재 프랑스 는 전체 인구의 10%인 600만 명이 무슬림으로 카 톨릭에 이어 제2의 종교로 부상하고 있습니다. 1990년대 초 프랑스인의 80%가 자신이 카톨릭 신 자라고 자처했지만, 지금은 51%로 줄어들었습니다. 또 네덜란드, 스위스, 그리스 등은 벌써 6‐7%가 이 슬람 인구입니다. 무슬림들은 전 세계 이슬람화를 위해 영국을 유 럽의 전진기지로, 한국을 아시아의 전진기지로 삼 는다는 구체적인 청사진을 제시했다고 세계적인 이 슬람 전문가 윌리엄 와그너(William Wagner) 박사 가 전했습니다. 특히 이들은 한국을 2020년까지 이 슬람화하겠다는 목표를 세우고 전략적으로 선교활 동을 펼치고 있습니다. 한국에 이슬람이 들어온 것은 1955년입니다. 6.25 동란 때 우리나라를 도우러 왔던 연합군과 합류해 한국 땅에 온 터키 군대에 의해서였습니다. 현재 한국 이슬람 성원의 통계를 보면 2005년 말 현재 국내외 무슬림 15만 명이 활동하고 있다고 하 며 이슬람권에서 공부하고 박사학위를 받아 온 한 국 무슬림 박사들 23명이 활동하고 있다고 합니다. 그들은 서울 한남동에 있는 이슬람 중앙 성원을 비 롯해서 부산, 전주, 인천, 광주, 안양, 파주, 부평, 등지에 대규모 성원을 건축하고 포교활동을 하고 있습니다. 한국에서 파송된 기독교 선교사의 숫자 는 2만 명인데 반해 한국으로 들어온 이슬람교 선 교사는 3만 명입니다. 2005년도에 발간된 한국 이슬람 연맹에서 출판 한 ‘한국이슬람 50년사’에 이들이 발표한 미래의 선교계획에 한국 내 이슬람의 구체적인 선교전략을 내걸었습니다.

무슬림들은 전 세계 이슬 람화를 위해 영국을 유럽 의 전진기지로, 한국을 아시아의 전진기지로 삼 는다는 구체적인 청사진 을 제시했다고 세계적인 이슬람 전문가 윌리엄 와 그너(William Wagner) 박사가 전했습니다. 특히 이들은 한국을 2020년 까지 이슬람화하겠다는 목표를 세우고 전략적으 로 선교활동을 펼치고 있 습니다.

7세기 초 아라비아의 예언자로 불리던 무하마 드로부터 시작하여 완성된 이슬람교는 현재 가장 급속히 성장하는 종교로 대두되고 있습니다. 7세기부터 14세기까지 황금기를 보낸 이슬람은 20세기 초 제2의 전성기를 맞습니다. 1920년대 중 동에서 ‘무슬림 형제단’ 운동이 일어나고 1945년 이후 서구 식민지로부터 해방을 맞이하게 됩니다. 이들은 메카(즉 이슬람 성전)을 새롭게 조직하고 이슬람 세계 연맹과 같은 단체들을 만들었으며 지 금은 “2080년까지 전 세계를 이슬람화하겠다”는 목표를 세워 전략적으로 이를 실행하고 있습니다. 영국은 35년 내 무슬림이 교회 출석수의 2배 될 듯하고, “유럽이 이슬람국가로 되는 날이 멀지 않 았다”는 이야기들이 나오고 있습니다. 현재 5억 명 에 달하는 유럽 인구의 3%인 무슬림이 2025년에 는 10%까지 증가할 전망이라고 한 선교단체가 발 표했습니다. 30


들의 언어교육부터 시작하여 상설 이슬람 교리강좌 등을 통해서 한국 사회에 이슬람을 뿌리내리는데 중 요한 역할을 담당할 목표로 하고 있습니다. 넷째로 꾸란 번역 위원회를 결성!! 지금 한국어로 번역되어 있는 꾸란 들의 번역이 매끄럽지 못하여 이해 가 어렵고 내용상의 오류가 많은 것을 알아 새로운 꾸란을 한글로 번역하기 위해서 매주 토요일에 꾸 란 번역위원들의 정기 모임을 가지 고 있으며 비정기적으로 연구 토론 모임을 가지고 있습니다. 다섯째로 이슬람 대학 건립입니다. 이것은 1970년대 말부터 구체화 되기 시작한 사업입니다. 1977년 에 쿠웨이트 사업가 쉐이크 압둘라 알리 알무타와 가 한국 이슬람 중앙회를 방문하여 제안한 이슬람 대학 설립 계획은 1980년 7월 최규하 대통령이 이 슬람 대학부지 43만 평방미터를 기증함으로 구체 화 되어 지금 추진 중에 있습니다. 이 대학이 건립 되면 완공식에 이슬람국가 원수들 혹은 장관들이 나 왕자들이 참석하여 각종 특혜와 전액 장학금, 진학에 따른 학위 보장 및 취업보장들을 약속할 것 이라고 합니다. 한국 이슬람 대학에서 박사학위를 받은 최고급 무슬림들이 쏟아져 나올 것이며 이들 은 한국의 정치 경제 사회 문화 교육 등 모든 분야 들을 장악하게 될 것을 그들은 예상하고 있습니다.

서울 중앙 성원

한국 내 이슬람 선교전략은 첫째로 모스크 건립 입니다. 현재 한국에 있는 서울 중앙 성원을 비롯해 9개의 이슬람 성원이 있으며 4개의 이슬람 센터와 50여개의 임시 예배소가 있고 국내외 약 15만 명 의 무슬림들이 예배와 종교적 의무를 실천하고 있 다고 합니다. 이들은 이슬람 센터와 예배 처소를 점 차적으로 확대 개편해 매년 늘어나고 있는 무슬림 들을 위한 새로운 성원의 건립을 추진하고 있다고 합니다. 둘째로는 국제 이슬람 학교 설립입니다. 무슬림 자녀들을 양육하기 위한 교육시설이라 는 명목으로 영어로 가르치는 초등학교 유치원 및 어린이집을 만들어 어려서부터 이슬람 교육을 받으 며 자랄 수 있는 환경을 조성하기 위해서 최선을 다 하는 목표로 설립중입니다. 오일 달러를 받아서 최 고의 시설을 갖추고 다른 유치원들의 거의 절반 값 으로 이런 학교들을 운영할 계획이라고 합니다.

여섯째로는 이슬람 관련 서적 출판 위원회를 조 직하려합니다. 지금까지 많은 이슬람 서적들이 나 와 있습니다. 그러나 이들은 이에 만족하지 않고 더 많은 책들과 인쇄물들을 만들어 홍보하고자 합 니다. 이렇게 문서 선교에 힘쓰는 이유는 한국에는 문맹자가 거의 없다는 것이고 이슬람에 대한 자료 들을 읽을 수 있도록 만들어 놓으면 누구든지 읽어 서 스스로 터득한다는 전략입니다.

셋째로 이슬람 문화센터 건립입니다. 한국 이슬람 전래 반세기의 역사를 가지고 있으 면서 일반인들을 대상으로 이슬람 종교 사회 문화 를 알리고 교류할 선교 및 문화 공간을 가지지 못한 것을 안타까워하면서 이슬람 문화센터를 개원할 계 획을 가지고 있습니다. 거기서는 많은 이슬람국가

마지막 일곱째로 한국 여성들과 결혼하여 자녀 를 출산하는 전략입니다. 이슬람권에서 한국에 근 로자로 들어 온 사람들이 많습니다. 이들은 주로 불법 체류자들이 많은데 이들이 합법적인 체류 자

31


전략적으로 준비하고 있었던 것입니다.

격을 획득하기 위해서 취하는 가장 손쉬운 방법이 한국 여성과 결혼하는 방법입니다. 한국 정부는 아 내가 한국인이고 남편이 외국인이면 남편에게 체류 허가를 발급해 주는데, 그동안 불법체류를 한 사람 일지라도 합법 체류자의 자격을 얻게 된다고 합니 다. 무슬림 남편과 결혼한 한국 여성은 자연히 남편 을 따라 무슬림이 되고 출산한 모든 자녀들도 무슬 림이 된다는 전략입니다. 이는 대단히 느린 방법인 것 같지만 이미 유럽은 이 방법이 성공을 거두고 있 다고 합니다.

동방의 예루살렘이라 불렸던 한국 민족!! 마지막 때 다시 오심을 예비할 민족으로 주님은 한국 땅을 준비시키고 계십니다. 세상의 이슬람의 신도들은 그것을 알아 그들의 전략으로 한국을 점 령하려합니다. 하지만 한국 땅은 하나님의 땅임을 선포합니다. 하늘에 있는 자들과 땅에 있는 자들과 땅 아래 있는 자들로 모든 무릎을 꿇게 하실 예수 그리스도 가 한국 민족의 주인임을 선포합니다. 이 민족은 주님의 것입니다. 예수 그리스도만이 이 땅을 다스 려 주시옵소서. 통치하여 주시옵소서.

그밖에도 아랍어 강좌 국제화 시대에 외국어 교 육 붐이 일고 있는 한국의 현상을 잘 이용하여 산유 국들의 장점을 선전하며 아랍어를 가르치고자 하고 있습니다. 많은 사람들이 흥미를 가지는데 아랍어 는 코란의 언어이기 때문에 아랍어를 배우려면 자 연히 이슬람 강의를 들어야 하고 배우는 사람들은 선생과 제자 사이로 선생님이 요구하는 대로 해야 할 의무가 있기 때문에 가장 효과적인 선교전략 중 의 하나로 꼽히고 있습니다. 그래서 2002년부터 중 고등학교에서 아랍어를 제 2 외국어로 선택할 수 있도록 제시하였고 우리나라 그것을 교육법으로 통 과시킨 상태입니다. 특별히 인천신도시를 한국 내 이슬람을 전하는 관문도시로 정하고 새로운 프로젝트를 세웠다고 합 니다. 2014년 아시안게임을 개최하는 인천 신도시 는 국제도시로 동북아에 영향력을 펼치는 도시임을 예견하고 이곳에 이슬람 모스크, 쇼핑센터, 극장 등 의 이름을 이슬람국가의 이름을 따서 만들 것이라 고 밝혔습니다. 또한 이러한 프로젝트를 위해 아랍 이슬람국가와 이슬람 NGO의 자금지원을 받을 것 이라고 합니다. 우선 한국의 정부는 다른 모든 종교보다 이슬람 에 특혜를 주고 지원을 하고 있는데 한국은 석유의 존도가 많은 경제구조로 중동 산유국의 지원과 교 류가 필요한 상황이기에 경제적 이익을 위해 한국 에 이슬람이 들어오는 것에 호의적으로 보고 있습 니다. 1988년 한국의 올림픽이 끝났을 때 사우디 아 라비아의 한 기자가 귀국해서 쓴 칼럼에 “한국은 차기 이슬람 국가가 될 것이다. 한국을 이슬람화 하 면 동남아와 극동을 이슬람화 하기에 쉬울 것이라 고” 했다고 합니다. 이는 즉시 전략적으로 연결되 었고 한국을 <동방에서 이슬람의 횃불을 밝히는 한 국>으로 칭하며 이슬람 국가로 만들고자 차근차근

[기도 제목] 1. 한국 땅을 이슬람의 기지로 만들어 세상을 정복하려는 모든 이슬람의 영이 파하여 지고 모든 계략들이 수포로 돌아가길 기도해주세요! 주님! 한국 땅에 퍼져있는 모든 이슬람의 거짓 의 영을 파하여 주시옵소서. 그들의 모든 전략과 계획이 모두 수포로 돌아가게 하시옵소서. 이 땅에 드리워진 모든 어두움들을 거두어 주시옵소서. 오 직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만이 이 땅에서 높임 받아 주시옵소서. 2. 한국 교회를 위해 함께 기도하길 원합니다. 주님!! 우리가 영적으로 깨어있어 기도하게 하 여 주시옵소서. 혈과 육에 대한 싸움이 아닌 정사 와 권세와 어두움의 세상 주관자들과 하늘에 있는 악의 영들에 대하여 영적전쟁하며 주의 권세를 나 타내는 한국 교회가 되게 하소서. 마지막 때 주의 백성들을 잡으려는 세상 신, 이 슬람의 영을 대적하며 싸워 승리하는 한국 교회 되 게 하소서. 나가 열방의 수많은 이슬람의 국가들을 향해 선포하며 기도하며 담대히 나가는 한국 교회 되게 하소서. 하늘에 있는 자들과 땅에 있는 자들과 땅 아래 에 있는 자들로 모든 무릎을 예수의 이름에 꿇게 하시고 모든 입으로 예수 그리스도를 주라 시인하 여 하나님 아버지께 영광을 돌리게 하셨느니라 (빌 2:10‐11) * 자료 제공: 인터콥 (http://intercp.net)

32


하나님을 경외하는 사람

사도 바울 (12)

바울은 회당에서 누가는 사도행전 하고 있다. 다른 있는 ‘하나님을

“이스라엘 사람들과 및 하나님을 경외하는 사람들아 들으라”고 말을 시작하였다. 여러 곳에서 ‘하나님을 경외하는 사람’ 또는 ‘경건한 사람’이라는 표현을 사용 부분에서는 발견되어지지 않는 누가만의 독특한 표현이다. 여기서 바울이 말하고 경외하는 사람’들은 누구였을까?

글 - 오장석

도 유대인으로 여겨졌다. 누가는 사도행전 여러 곳에서 “하나님을 경외하 는 사람” 또는 “경건한 사람”이라는 표현을 사용하 고 있다. 대표적인 예가 사도행전 10장 2절에 나오 는 ‘고넬리우스’이다. 누가는 고넬리우스 뿐만 아니 라 그의 가솔들 모두 경건하며 하나님을 경외하였 고, 하나님께 항상 기도하였다고 밝히고 있다. 이들 은 베드로를 통해 말씀을 듣고 성령을 받은 첫 (사 도행전에서 처음으로 소개되는) 이방인들이었다. 또 우리에게 잘 알려진 인물로 ‘루디아’가 있다. 사도행전 16장 14-15절에 “두아디라 성의 자주 장사로서 하나님을 공경하는 루디아”라는 여자가 바울의 말을 듣고 그녀와 그녀의 집이 다 세례를 받 았다고 기록되어 있다. 위의 예를 놓고 보면 ‘하나님을 경외하는 사람’ 들은, 비록 유대교에 입교하여 할례를 포함한 모든 율법을 따르지 않았지만, 세상에 참 신은 하나님 한 분만임을 인정하며 하나님에 대해 상당한 관심을 가지고 있었던 사람들로 보인다. 그리고 바울이 회 당에서 ‘하나님을 경외하는 사람’들을 언급했던 것 으로 보아, ‘하나님을 경외하는 사람’들 가운데 상 당수는 회당에 정기적으로 참석하였던 것으로 여겨 진다. 그렇다면 바울이 회당에서 만나는 ‘하나님을 경 외하는 사람’들은, 비록 아직 유대교로 개종하지는 않았지만, 하나님을 유일하신 참 신으로 받아들이 고 그 분만을 섬기려는 마음을 지닌 ‘경건한’ 사람 들뿐이었을까? 1960년 이후 유럽의 여러 지역에서 회당들이 발굴되면서, 이를 기반으로 디아스포라에 살았던 유대인들의 모습을 보다 자세히 살펴볼 수 있게 되 었다. 이들 발굴 중, ‘하나님을 경외하는 사람들’에 대한 기록이 있다.

“율법과 선지자의 글을 읽은 후에 회당장들이 사람을 보내어 물어 가로되 형제들아 만일 백성을 권할 말이 있거든 말하라 하니 바울이 일어나 손짓 하며 말하되 이스라엘 사람들과 및 하나님을 경외 하는 사람들아 들으라” (행 13:15-16) 비시디아 안디옥에 당도한 바울과 바나바는 안 식일에 회당으로 들어갔다. 율법과 선지자의 글을 읽은 후, 회당장들이 백성에게 권할 말이 있으면 말 하라고 하자 바울이 일어나 다음과 같이 말문을 열 었다. “이스라엘 사람들과 및 하나님을 경외하는 사람들아 들으라” 여기서 이스라엘 사람들은 바울 자신과 동일한 유대인을 지칭하는 것이다. 그런데 ‘하나님을 경외하는’ 이방인은 누구일까? 누가는 사도행전에서 바울의 전도여행을 기록 하면서 바울이 대하는 4가지 부류의 사람들에 대해 언급하고 있다. 유대인, 이방인, 유대교로 개종한 사람, 그리고 하나님을 경외하는 사람이다. 그런데 누가는 복음을 들었던 사람들이 누구였는지 분명히 구별하여 정확한 기록을 남기려는 의미에서 유대인, 이방인, 유대교로 입교한 사람, 하나님을 경외하는 사람들을 언급하고 있는 것이 아니다. 누가의 관심 은 이방인을 향한 초대교회의 사명에 초점을 맞추 고, 복음의 전파가 어떻게 시작되었는지 전하고 싶 었던 것이다. 누가는 사도행전 2장 10절에서 “유대인과 유대 교에 들어온 사람들”, 6장 5절에서는 “유대교에 입 교한 안디옥 사람 니골라”, 13장 43절에서는 “유대 인과 유대교에 입교한 경건한 사람들”에 대해 언급 하고 있다. 일반적으로 유대교로 입교한 사람은 모 세오경을 받아들이고, 남자의 경우 할례를 행했고, 모든 율법을 지키며 살아가는 사람들이다. 또한 유 대교로 입교한 사람들이 죽게 되면 그들은 다른 유 대인들과 함께 장사될 수 있었다. 그런 점에서 그들

33


들이 기록되어 있었다. 위 부분의 제목은 남아있지 않았으며, 유대, 야곱, 요셉, 루우벤과 같이 대부분 유대인의 이름들로 모두 55명의 이름이 적혀있다. 반면, 아래 부분에는 총 52명의 그리스, 로마식 이 름들이 적혀있는데, 이들은 ‘하나님을 경외하는 자’ 라는 제목 아래에 기록되어 있다. 따라서 적어도 3세기 초 아프로디시아스에서는 유대인과 비유대인을 구분지었던 것으로 보인다. 이와 같은 사실은 아프로디시아스에서 발견된 극장 에 새겨진 “완전한 히브리인들의 장소 (The place of those who are complete Hebrews)”이라는 글 에서도 엿볼 수 있다. 즉, 당시 아프로디시아스 시 민들 사이에는 종교적인 의미에서 완전한 유대인과 아직 유대교로 입교하지 않았던 (따라서 모든 율법

터키 남서부에 위치하고 있느 ‘아프로디시아스’의 유적

뉴욕 대학의 ‘케난 에림(Kenan T. Erim)’은 현 재 터키의 남서부에 위치하고 있는 ‘아프로디시아 스(Aphrodisias)’에서 1966년부터 발굴을 시작하 여 여러 건축물의 잔재들과 조각들을 발굴하였다. 1976년, 발굴된 표본들을 보관할 박물관을 짓기 위 해 땅을 파던 중 놀랍게도 전혀 기대하지 않았던 중 요한 고고학적 발굴을 하게 되었다. AD 210년경으로 추정되는, 헬라어로 이름이 새 겨진 대리석 돌을 발굴하였는데 이 대리석은 어느 건물의 문설주에 해당하는 것이었다. 아프로디시아 스 주변이 대리석 채석장이었던 관계로 대리석이 나왔다는 것은 놀랄 일이 아니다. 문제는 대리석에 새겨진 이름이다. 먼저 어떤 건물이었을까? 고고학 자들은 이 건물이 회당 옆에 지어진 지역봉사센터 와 같은 것으로 불우한 이웃들에게 수프를 만들어 나누어주던 일종의 부엌 또는 식당과 같은 것으로 추정하고 있다. 따라서 대리석에 새겨진 이름들은 지역봉사센터를 건축하는데 기부금을 냈던 사람들 의 명단이 되는 셈이다. 한 쪽 문설주에는 18명의 이름이 나오는데, 이 들은 성경공부와 기도 모임에 열심으로 참여했던 구성원으로 여겨진다. 그 중 13명은 유대인, 3명은 유대교로 개종한 사람들, 그리고 나머지 2명은 바 로 ‘하나님을 경외하는’ 경건한 사람들이었다. 또 다른 문설주에는 위, 아래 두 부분으로 나뉘어 이름

아프로디시아스에서 발견된 대리석 돌에 새겨진 이름들. 이 대리석 은 회당 옆에 지어진 지역봉사센터의 문설주로 여겨진다. 그리고 대리석에 새겨진 이름들은 건축 기금을 낸 사람들의 명단으로 추정 되고 있다. 34


으로 참석하는 ‘하나님을 경외하는 사람’들을 포함 을 지키지 않는) ‘하나님을 경외하는 사람’들을 구 하고 있을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별할 필요를 느꼈던 것이다. 예루살렘 멸망 후, 포로로 끌려간 유대인들이 또 한 가지 주목할 만한 것은 52명의 이방인 이 여러 세대를 걸쳐 살아가면서 새로운 지역에 정착 름들이 9명의 시의회 의원들 이름들로 시작된다는 했을 뿐만 아니라, 나름대로 사회적인 지위를 보유 점이다. 당시 헬라 도시의 시의회 정기모임은 그 도 한 유대인들도 생겨나게 되었다. 따라서 그들은 지 시에서 섬기는 이방신에게 역 사회와 사역에 영향을 미치는 유대인 커뮤니티 희생제물을 바치면서 시작 를 구성하였고, 더 나아가서 이들이 지니고 있는 유 되었다. ‘아프로디시아스’라 대교 또한 주변 지역 사회 가치에 영향을 주었을 것 는 도시 이름이 헬라 사랑의 이다. 한편, 유대인들이 자신들의 종교를 전하기 위 여신 ‘아프로다이트 해 선교사를 파송했다는 기록이 희박한 점을 감안 (Aphrodites)’에서 나왔다 할 때, 회당은 유대인들에게 있어서 자신들의 종교 는 점을 감안할 때, 아프로 를 지역사회에 소개하는 중요한 연결고리가 되는 디이사스 시의회는 아프로 셈이다. 따라서 회당은 하나님에 대해 관심을 갖는 다이트 여신에게 희생제물 사람들에게 문이 열려 있었고, 유대교 선교에 중심 을 바치면서 시작될 가능성 점인 것이다. 이 크다. 따라서 기록된 9명 바로 그러한 곳에 사도 바울은 복음을 들고 들 의 시의원들은 하나님을 공 어갔다. 당연히 유대인들은 회당 내에서 기독교 복 경하는 이방인이면서 동시 음이 전파되는 것에 상당히 민감하게 반응했을 것 에 이방신에게 희생제물을 이고, 결과적으로 생기는 회당(유대교)와 사도(기 드리는데 자유로웠던 사람 독교)들 사이의 긴장감을 연상할 수 있다. 그런 점 일 수 있다. 아니, 어쩌면 단 에서 복음(기독교)에 대한 적대적인 유대인들의 반 순히 유대교를 지지하며 관 응도 이해되어진다. 누구보다도 바울은 그러한 충 심을 갖는 정도의 사람일 수 돌을 알고 있었다. 하지만 그에게 있어 자신의 동족 도 있다. 인 유대인들에게 참된 복음을 전하고 싶었고, 또한 비록 위에 언급된 자료가 2아름다움과 사랑의 여신 ‘아프로다이트’ 회당에 있는 ‘하나님을 경외하는 이방인’ 역시 바울 3세기 것이기에 사도 바울 에게 있어서는 결코 지나칠 수 없는 사람들이었던 당시 1세기의 상황을 정확히 것이다. 대변해줄 수 없지만, 나름대로 의미가 있다고 본다. 이런 점에서 하나님을 공경하는 사람들 은 단순히 유대교에 흥미와 친근감을 가 지는 사람들로부터 성경공부와 기도 모 임에 정기적으로 참여하는, 그러나 아직 완전히 유대교에 입교하지 않은 사람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층을 포함하고 있다 고 볼 수 있다. 역사학자 ‘살로 바론 (Salo Baron)’에 따르면 1세기 중엽, 전 세계 유대인의 수 는 8백만에 이르렀다고 한다. 그것은 로 마 제국 내에서 10명 중 1명은 유대인이 라는 말이 된다! 비록 그의 주장이 사실 일 수 있지만, 8백만 모두 출생으로 인한 유대인이 아닐 수도 있다. 이들 가운데에 는 상당수는 유대교로 입교한 사람들일 지 모른다. 더 나아가서, 회당에 정기적 역사학자 ‘살로 바론 (Salo Baron)’

35


Ճ

ͻ

֩

나의 선택은 하나님과 동행하는 것 글 - Richard Mun

예수님을 믿기 전 나의 삶과 생활 태도........ 예수님을 믿기 전 나의 삶은 보통 사람들과 별로 다를 것이 없었다. 주중에는 학교를 가고, 동네 친구들과 어울 려 놀고 여러 운동경기 리그에 참여하였다. 일요일에는 다른 주를 돌아다니며 축구경기를 하거나 가족들과 쇼핑 을 하기도 했다. 부모님 모두 일주일에 6일을 일하셨으므 로 같이 시간을 보내기란 여간 어려운 일이 아니었다. 그 래서 일요일은 가족들을 위한 시간으로 특별히 구분해 놓 게 되었다. 특정한 종교적 배경이 없었던 우리 가족이었 지만 강한 자기 자제력과 도덕적인 품행을 중요시 해 왔 었다.

My life and attitude before following Christ… Before following Christ, my life was like anyone else’s. During the weekdays, I went to school, played with friends around the neighborhood, and joined various recreational leagues. Sundays were spent traveling to different states to play soccer or going shopping with my family. My parents worked six days out of the week, so spending time with them was difficult. As a result, each Sunday was dedicated to family activity. I come from a family that, while having no religious background, encouraged good moral behavior in addition to strong self-discipline.

내가 그리스도인이 되기까지........... 중학교 때 데이비드 김이란 친구가 있었다. 우린 매우 가까웠고 매주 금요일 방과 후 난 그 친구 집에 가서 시간 을 보냈다. 나의 기독교 신앙의 시작은 그 친구의 부모님 께서 금요일 예배를 같이 참석해 보자고 제의하고 난 부 터였다. 그 때에 난 당황했었다. 왜냐하면 교회는 일요일 에 가는 것이지 금요일에 가는 것이 아니라고 생각해 왔 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놀랍게도 난 금요일 예배시간이 즐거웠다. 같은 학교 친구들이 마침 그 교회에 다니고 있 었기 때문에 매주 금요일마다 교회에 참석하는 것은 그리 나쁘지 않은 일이라고 생각되었다. 물론 지금은 크리스천 이 되는 것이 단순히 교회를 나가고 스스로 기독교인이라 고 얘기하는 것 이상인 것을 알고 있다. 이러한 사실을 깨 닫게 된 것은 고등학교 11학년 때 처음으로 뉴욕 시내에 단기선교 (Mission Trip)를 다녀오고 나서였다. 단기선교 를 가게된 것 자체는 대단히 중요한 것이 아니었지만, 복 음을 통해 다른 사람을 섬기는 기쁨을 발견할 수 있었던 계기가 된 그 여행은 나의 삶을 바꾸어 놓았다.

How I became a Christian… In middle school, I had a friend named David Kim. We were well-acquainted at the time, and I went to his house every Friday after school to hang out. My Christian faith started when his parents suggested that I attend Friday night services with them. At the time, I was confused because I thought people only attended church on Sundays, and not Friday. To my surprise, I found myself having a good time at the Friday service. I enjoyed it for all the wrong reasons because a couple of my middle school friends went to the same church so I thought to myself that this church business was not all that bad. Today, I know there is much more to being Christian than saying that you are one and that you attended church. I learned that important lesson during my first mission trip to New York City when I was a junior in high school. The trip itself was not incredibly significant, but the discovery of the joy derived to serve others through the gospel changed my life.

하나님께서 나에게 말씀하시는 것을 깨닫게 되면서............. 36


How I realized God was speaking to me…

솔직히 말해서, 하나님께서 정말로 나에게 말씀하신다 는 명백한 증거는 없었다. 하지만 지금까지의 경험을 통 해 난 하나님께서 내 삶에 함께 계시는 느낌이 어떤 것인 지 깨닫게 되었다. 가끔은 내 삶이 불안정할 때도 있지만

To be honest, there has not been any clear indication of God literally speaking to me, but, through past experiences, I know what it feels like to have God in my life. I know this because I feel a sense of stability and guidance, though there still can be times where life feels a bit rocky. I know that I am in good hands, and that God has a plan for me. I am a firm believer when it comes to the saying that, “God never gives you more than you can handle,” because he challenges us with things in our lives that he know we cannot handle by ourselves. Paul said, “For when I am weak, I am strong”(2 Corinthians 12:10). He is interested in our spiritual growth, and he will challenge us beyond our own abilities to bring us closer to Him and allow Him into our lives. I turned my back on God two years ago because I was naïve and angry with Him about how my life was falling apart and nothing was going my way. This summer, I decided to go on a retreat called, “Devotion on the Ocean” with my uncle’s church. During that week, I realized all these people loved God so much despite their own struggles. I became aware of how far that I personally have drifted away from Him. It took me two years to realize that it did not matter what I wanted in my life or how I wanted to live it. When I accepted Jesus Christ as my Lord and Savior, I made a lifetime commitment to surrendering my life and everything within it to Him.

하나님이 함께 계심을 아는 것은 내가 삶속에서 안정됨을 느끼고, 그분의 인도하심을 느끼기 때문이다. 내가 하나 님의 보호하심과 그분의 계획 속에 있음을 알고 있다. “하나님은 우리가 감당할 수 있는 만큼만 주신다”는 말을 굳게 믿는 사람이다. 왜냐하면 하나님은 우리 스스로는 감당할 수 없는 것들로 우리 삶속에서 시련을 주시기 때 문이다. 사도바울은 말하기를 “내가 약할 그 때에 강함이 니라 (고후 12:10하)”고 했다. 하나님은 우리의 영적 성 장에 관심이 있으시다. 하나님을 우리의 삶 속에 받아들 이고 또 우리가 하나님께 가까이 나아갈 수 있도록 우리 가 감당할 수 있는 능력 밖의 시험을 주신다. 2년 전 뜻대 로 되는 것 없이 실패적이라고 생각했던 내 삶에 대해 하 나님께 화가 났었던 나는 미련하게도 하나님으로 부터 등 을 돌린 적이 있었다. 요번 여름 삼촌 교회에서 주최하는 ‘바닷가에서의 헌 신: Devotion on the Ocean’이란 제목의 수양회에 참석 하기로 했었다. 난 그 기간 동안, 참석한 모든 사람들이 자신들이 처한 힘든 문제에도 불구하고 하나님을 너무나 많이 사랑하고 있다는 것을 깨닫게 되었다. 그리고 내가 얼마나 하나님으로부터 멀리 떠나 있었는지도 인식하게 되었다. 나의 삶 속에 내가 원하는 것들 그리고 어떤 식으 로 내 인생을 살고 싶은지는 중요하지 않다는 것을 깨닫 기 까지 2년이란 시간이 걸렸다. 내가 예수님을 나의 구 세주로 영접하면서 내 평생 하나님께 지킬 약속을 서원했 다. 나의 삶과 그 안에 있는 모든 것 까지도 주님께 드릴 것을 말이다.

What being a Christian means to me… Being a Christian means more than going to church every Sunday. It is a lifestyle that I intend to embrace with open arms. When you truly accept Christ as you Lord and Savior, I believe that your life is instantly changed forever. I can testify to this because, the moment I truly accepted and welcomed God into my life, I knew I was different from someone who was not saved. Someone who is not saved does not have the choice of turning away from their sinful nature. I have that choice, and I choose to walk with God.

그리스도인이 된다는 것이 나에게 주는 의미........... 그리스도인이 된다는 것은 단지 일요일마다 교회에 참석한다는 것 이상이다. 그것은 내가 두 팔을 벌려 환영 하기로 작심한 하나의 생활방식이다. 우리가 예수님을 우 리의 구세주로 영접하는 순간 우리의 삶은 그 즉시로 영 원히 변하게 되는 것을 믿는다. 내 자신이 이것을 증명해 줄 수 있다. 왜냐하면 내가 하나님을 받아들이고 내 삶 속 에 그 분을 환영했던 그 순간부터 내 자신은 구원 받지 못 한 세상 사람들과 다르다는 것을 깨달았기 때문이다. 구 원받지 못한 사람들은 그들의 죄 많은 본성에서 돌아설 수 있는 선택의 여지가 없기 때문이다. 나는 그 선택권이 있고, 난 하나님과 함께 동행할 것을 선택한다. <번역: 양하영>

37


Ճ

ͻ

֩

희망의 장소에서 글 - Ginger Li

Even though I accepted Christ into my life when I was about 13 years old, it was not until I was about 19 that I truly understood what it meant to live a life devoted to God. Throughout high school, I spent my years making decisions based on my own desires and emotions. I was never one to seek God for answers to my problems or to ask Him to free me from the burdens that I carried. As I struggled to fight the pressure I faced from my friends and the environment I put myself in, I began to slowly slip away from God more and more. When I entered my freshman year of college, I felt as though I was so far away from God than I could no longer find my way back to Him. There were nights that I would find myself falling asleep with a heavy heart full of regret. As I lived a life disobedient to God, I eventually threw away all self control in which I had to face the consequences of my actions. I was soon suspended for a year after my first year of college because of my poor grades. I had no choice but to attend a community college for the following year. I began to realize that this was the time to refocus my life in a different direction. This was the perfect opportunity for my spiritual renewal and to allow God to heal my broken heart. Soon enough, God began to work in miraculous ways. During this time, I came across my favorite bible verse, in which means more to me than words could express. My old friend had randomly subscribed me to Joel Osteen’s daily e-mails and through these simple e-mails, it sparked my interest more and more for the world of God. One of the emails specifically addressed the topic of God’s plan for our future, which happened to be the biggest issue that I was battling with. “For I know the plans I have for you,” declares the Lord, “plans to prosper you and not to harm you, plans to give you hope and a future. Then you will call upon me and come and pray to me, and I will listen to you. You will seek me and find me when you seek me with

13살 때쯤, 예수님을 구주로 영접하기는 했지만, 하나 님께 헌신된 삶을 산다는 것이 무슨 뜻인지 제대로 이해 한 것은 19살이 되어서였다. 고교시절, 나는 내 욕망과 감 정에 따라 모든 결정을 내리며 살았다. 내 문제에 대한 답 을 구하려 하나님을 찾은 적도 없었으며, 하나님께 내가 지고 있는 짐에서 해방시켜 달라고 구한 적도 없었다. 친 구들과의 관계에서 그리고 내가 만들어 낸 환경에서 오는 어려움들과 싸우느라 애쓰는 동안, 나는 서서히 하나님으 로부터 점점 멀어져갔다. 대학교 신입생이 되던 해, 하나 님으로부터 너무 멀리 떨어져 있어서, 하나님께로 돌아갈 길을 더 이상 찾을 수 없을 것처럼 느꼈었다. 많은 밤, 후 회로 가득한 무거운 마음으로 잠자리에 드는 나를 발견했 다. 하나님께 불순종하는 삶을 살면서, 나는 마침내 모든 자제심을 내던졌고, 결국 그에 따른 결과에 직면해야 했 다. 나쁜 성적 때문에 1학년이 끝난 후, 1년간의 정학처분 을 받았고, 그 해에 나는 커뮤니티 칼리지를 다니는 것 외 에는 다른 선택의 여지가 주어지지 않았다. 나는 이제 내 삶을 다른 방향으로 재집중해야 할 때라 고 느끼기 시작했다. 지금이야말로 영적인 회복을 이루고, 하나님께서 내 부서진 마음을 치료하시도록 할 수 있는 완벽한 기회였다. 얼마있지 않아, 하나님께서는 기적적인 방법들로 일하기 시작하셨다. 이 시기에 나는 내가 제일 좋아하는 성경구절을 만났다. 이 성경구절은 말로는 표현 할 수 없을 만큼 나에게 많은 의미가 있다. 나의 오랜 친 구가 조엘 오스틴(Joel Osteen)이 매일 보내는 이메일을 내가 받을 수 있도록 임의로 신청을 했다. 이 간단한 이메 일이 하나님의 말씀에 대한 나의 흥미를 더욱 더 자극했 다. 한 이메일에는 우리의 미래를 향한 하나님의 계획에 대한 주제가 특별히 언급되어 있었는데, 그 주제는 내가 싸우고 있던 가장 큰 문제 거리였었다.

38


all your heart.” – Jeremiah 29:11-13(NIV) I felt as though God was telling me that I could finally let go of everything and lift up all of my burdens to Him. I became aware that God was there through all of the suffering that I went through even though I felt as if I was alone. God began to answer many of my prayers and questions that I had, and I was finally beginning to find my place with Him. During the year that I attended community college, I knew God wanted me to spend a lot of time getting to know Him all over again. This was the year I was able to face all of my problems that consumed my life. As God reassured my path in becoming a special educator, He opened up new doors to help guide my walk with Him. My brother told me about the special needs ministry at church, OASIS, and suggested that I should volunteer and work closely with this ministry. Although I was hesitant at first, as time progressed, I grew to love the children I worked with and found my self in love with this ministry. Also, through this ministry, I made a close friend who asked me to do a private one-on-one discipleship class with her. I believe that God brought her into my life so that I could learn more about Him and to strengthen my faith in Him. As I look back, it makes me realize how faithful God is because He brought me back to a place of hope. As I attended community college, I was able to isolate myself from the negative influences that I was previously surrounded by. Even though I had only planned on attending community college for a semester in hopes to transfer to College Park, I realized that God was telling me that I was not yet ready. Instead, I stayed at community college for a year, and was happily surprised by my acceptance into College Park in the fall of 2007. I am now currently attending the university with great assurance that I am finally on the right path. After these past couple of years of finding my way back to God, I finally feel confident and ready to proclaim that Jesus is my Lord and Savior. I wanted to get baptized when I felt like I was in the right place and right mind set with God, and as of now, I feel like this is the next step I must take in order to continue to draw closer to Him.

“나 여호와가 말하노라 너희를 향한 나의 생각은 내가 아나니 재앙이 아니라 곧 평안이요 너희 장래에 소망을 주려 하는 생각이라 너희는 내게 부르짖으며 와서 내게 기도하면 내가 너희를 들을 것이요 너희가 전심으로 나를 찾고 찾으면 나를 만나리라” (예레미야 99:11-13) 하나님께서 드디어 내가 모든 것을 내려놓고, 그 분께 나의 모든 짐을 올려드릴 수 있다고 말씀하시는 것 같았 다. 내가 혼자라고 느꼈을 때에도, 하나님께서는 내가 겪 고 있는 모든 고통 가운데 계셨다는 것을 깨닫게 되었다. 하나님께서는 나의 많은 기도제목과 질문에 대답해 주시 기 시작하셨고, 마침내 나는 하나님과 함께 하는 자리를 찾기 시작했다. 커뮤니티 칼리지를 다니는 동안 하나님께 서는 내가 많은 시간을 오로지 하나님을 전부 다시 알기 위해 사용하기를 바라신다는 것을 알았다. 이때 나는 내 삶을 소모시켰던 모든 문제들을 직면할 수 있었다. 하나님께서는 나의 길이 특수교육자가 되는 것임을 확인시켜 주시면서, 하나님과 함께 걸어갈 수 있도록 도 와주시는 새로운 문들을 열어주셨다. 오빠가 교회의 오아 시스(OASIS)라는 특수사역부에 대해 말해주면서, 이 사 역부에서 적극적으로 자원봉사를 하도록 권유했다. 처음 에는 망설였지만, 시간이 지날수록 특수아동들에 대한 사 랑은 커져갔고, 이 사역을 사랑하게 된 나 자신을 발견하 게 되었다. 또한 이 사역을 통해 함께 개인적으로 일대일 제자훈련을 하자는 친구를 만나게 되었다. 내가 하나님에 대해서 더 배우고, 하나님에 대한 믿음을 강하게 해 주시 기 위해, 하나님께서 그 친구를 나에게 보내주셨음을 믿 는다. 뒤돌아보면, 하나님께서 얼마나 신실하셨는지 깨닫 게 된다. 왜냐하면 하나님께서 나를 희망이 있는 장소로 다시 보내셨기 때문이다. 커뮤니티 칼리지를 다니면서, 나는 과거에 나를 둘러 싸고 있었던 악영향으로부터 떨어져있을 수 있었다. 메릴 랜드 주립대학에 편입할 희망을 가지고 한 학기만 커뮤니 티 칼리지에 다니기로 계획하고 있었지만, 하나님께서 내 가 아직 준비되지 않았다고 말씀하시는 것을 깨달았다. 대신 나는 커뮤니티 칼리지에서 1년을 보냈고, 2007년 가을학기에 메릴랜드 주립학교에 합격하는 놀랍고도 행 복한 소식을 접했다. 나는 이제 마침내 내가 올바른 길을 걷고 있음을 크게 확신하며, 학교를 다니고 있다. 하나님께로 되돌아가기 위한 길을 찾느라 2년간의 세 월을 보낸 지금, 나는 마침내 예수님을 내 구주요 구원자 라고 자신있게 선언할 준비가 되어있다. 나는 내가 올바 른 장소에 있고, 하나님에 대해 올바른 마음가짐을 가지 고 있을 때 세례를 받고 싶다고 생각했었다. 그리고 지금 나는 이 세례가 하나님께 더 가까이 가지 위해서 반드시 거쳐야 하는 단계라고 생각하고 있다. <번역:오진이>

39


7"İ ধ

ʂ

ߔ

ՙ

즐겁게 재미나게 청소하는 시간 글 - 최소현 (VA)

였었는데, 웬걸... 우리의 손길을 기다리고 있는 곳이 군데군데 많았다. 주방을 치우시는 집사님들은 시종일관 재미있게 이 야기를 나누시며 큰 냉장고 안을 정리하시고 주방을 반짝반짝 광을 내시느라 바쁘셨다. 또 교회 바깥쪽에 서는 철제 기둥 하나에 한 사람씩 책임지고 붙어서 군 데군데 벗겨져 얼룩덜룩했던 페인트를 긁어서 벗겨내 는 작업이 한창이었다. 남자 분들이 대부분이셨는데, 유일하게 홍일점, 미영 집사님이 있었다. 어찌나 열심 히 박박 긁으시던지, 남자 분들에 비해 절대 부족함이 없었다. 그 이후로 미영 집사님을 미영 ‘형제’라 부르

5월 10일로 예정되었던 교회 대청소가 많은 비가 내려서 연기되었고 (취소되지 않을까라는 내심 기대도 했었지만), 5월 24일에 드디어 짱짱한 날씨 속에서 대 청소를 하게 되었다. 새벽 예배 후에 뜨끈한 국밥으로 우선 몸을 따뜻하게 데운 후에 시작된 청소 - 주방, 건 물 밖 철제 기둥 페인트 긁어내고 다시 칠하기, 유리창 닦기, 형광등 갈기, 화단 정리 등등 - 누가 먼저랄 것 도 없이 우리 교회를 깨끗하게 하는 일에 돌입! 최근 교회 내부 페인트칠을 통해 너무 산뜻하고 깨 끗해졌고 로비도 필요 없는 공간을 정리하고 바닥을 새 카펫으로 교체한 이후라 청소할 게 없을 것처럼 보

40


지만, 그릴 위에서 지글지글 구워지고 있는 햄버거와 핫도그가 풍기는 냄새는 몇 시간 전에 국밥으로 든든 히 채웠던 우리들의 배를 다시 꼬르륵하게 만들기에 충분했다. 솔솔 풍기는 냄새에 이끌려 하나 둘씩 사람 들이 모이기 시작했다. 모두들 즐겁게 이야기하며 음 식을 나누며-화기애애한 좋은 풍경이었다. 김원기 목사님께서 ‘교회 대청소하고 해서 너무 거 창하게 생각하지 말고, 편하게 와서 교제하며 즐거운 시간을 가져라’라고 하신 말씀을 다들 너무나 잘 지키 는 것 같았다. 맛있는 점심을 위해 그릴의 열기를 온 몸으로 느끼 며 햄버거와 핫도그를 구워주신 이정식 전도사님과 희 정 집사님, 또 무더웠던 날씨와 송글송글 맺힌 땀을 시 원하게 한방에 날려 준 은경 집사님과 미연 집사님 표 ‘yummy 팥빙수’ 덕분에 유쾌한 식사 시간이었다. 대청소 후에도 교회 곳곳에 우리의 손길이 필요한 곳이 많겠지만, 메모리얼 데이(Memorial Day) 연휴였 음에도 불구하고 많은 분들이 함께 교회를 깨끗하게 하는데 기쁨으로 참여해 주셔서 참 감사한 하루였다.

자는 말도 있었다. 유리창을 닦는 연령층은 3살 여원이부터 김레지나 권사님까지 폭넓은 연령이 다 참여를 했다. 아이들은 조그만 손에 종이를 쥐고 자기들의 키가 닿는 곳까지 열심히 닦았고(물론 어른들이 다시 닦아야 했지만, 기 쁜 마음으로 교회를 깨끗하게 하는 일에 함께 하는 마 음들이 예뻤다), 어른들은 못 다한 이야기(수다)의 꽃 을 피우며 유리창을 열심히 닦았다. 깨끗해지는 유리 창을 보면서 우리들의 마음도 덩달아 깨끗해지는 것 같았다. 한편, 교회 안에서는 변 집사님과 최 집사님 두 분 이 한 조가 되어 이방 저방 다니시며 형광등을 갈았다. 형광등을 갈아 끼우고 나니 교회 구석구석이 밝아졌다. 또 화단이라고 하기에는 잡초가 거의 허리 높이까지 자라서 숲처럼 보였던 곳이 종기 형제님의 정성어린 손길로 깨끗해졌다. 교인들이 한마음으로 교회 곳곳을 청소하고 보수하 는 동안 한쪽에서는 맛있는 냄새가 나기 시작했다. 그 것은 바로 맛있는 점심!! ‘11시’, 좀 이른 시간이긴 했

41


 

‫ق‬Ճ‫ۋ‬ 

나를 도우신 그 분 나는 깨닫기 시작했다. 단 6개월이었지만, 내가 그 개인병원에서 포도당주사를 많이 놓았고 혈관을 많이 찔렀기에 은연중에 기술이 익혀졌고, 또한 하 나님은 나를 그리 훈련하시면 낮아지기를 바라셨 던 것 같다. 그 시간이 없었다면, 그만한 기술도 없 었다면 말도 어눌하고 잘 알아듣지도 못하는 외국 인을 어떻게 그저 고용할 수 있었겠는가?

그 곳에서 일하게 되었다. 그때는 스칸디나비아 의료 진들이 많이 있어서 영어를 할 줄 알아야 도움이 되었 다. 나의 목적은 현장에서 산 영어를 배워 나의 아픈 삶에서 벗어나고 싶었다. 나는 계획을 세워 미국행을 꿈꾸고 있었다. 그만큼 나의 삶은 절박 그 자체였다. 그때 미국 발음으로 영어를 가르치는 강습소를 찾았다. 직장이 끝나면 영어를 배우러 다니면서 미국행을 착착 진행하고 있었다. 드디어 나는 텍사스의 휴스턴에 있는 감리교 병원 에 교환 간호사로 1968년에 도착했다. 영어를 배우고 왔다고는 하지만 두어 달 배운 영어 회화는 미국 땅에 들어오고 보니 장난이 아니었다. 귀머거리에, 벙어리 에 누가 죽인다고 해도 알아들을 수가 없었다. 나는 환 자에게 무엇을 원하는지 써 달라고 했고, 환자는 열심 히 적어주고, 이렇게 글로 대화를 했다. 거의 같은 시 기에 병원에서 일한 지 두어 달 만에 쫓겨난, 부산에서 온 한국 간호사가 있었으니, 그녀 역시 영어회화를 못 하긴 마찬가지였다. 그래도 교환 간호사라 대우를 해 주는 것인지, 아니면 스칸디나비아 감독이 추천을 잘 해줘서인지 나를 쫓아내진 않았다. 나는 지금도 감리 교라면 그 병원을 떠올리며 감사함을 금치 못한다. 나는 이비인후과에서 일했기에 이비인후과에서 자 연히 일하게 되었는데 이곳은 경험이 없는 안과까지 겹쳐 있었다. 어느 날 안약 투여에 실수를 했는지, 나 는 심장수술 후 특별치료를 하는 병동으로 옮겨져 일 대일로 환자를 간호하게 되었다. 한국에서는 외래에서 만 일하던 나는 병실 간호라곤 깡그리 잊어버렸는데, 이곳에서 병상 간호를 새로 공부하게 되었고 많은 것 을 배웠다. 어느 날 환자의 손이 퉁퉁 부어 피검사를 해야 하는데 모두 실패를 하고선 나를 데리러 왔다. 퉁

글 - 현임

며칠에 한 번은 진정제를 먹어야 편두통을 예방할 수 있는 나는 아침에 진정제 대신 타이레놀을 먹으면 서 일석이조로 오른쪽 근육통도 낫기를 바랐다. 그런 데 갑자기 떠오르는 것은 하나님이 어떻게 나를 훈련 시키셨나 하는 거였다. 그 당시는 모르고 지냈던 사실 들이 다 하나님의 섭리로 느껴지면서 그림을 보듯이 생생하게 떠올랐다. 나는 대구에 있는 K 간호학교를 졸업하자마자, 운 도 좋게 다른 몇몇과 함께 모교에서 일을 하게 되어 다 른 친구들처럼 구직활동을 하지 않아도 되었다. 지금 은 큰 개인병원들이 많고 간호사들도 많고 대우도 좋 지만, 내가 졸업할 때만 해도 개인병원에서 일한다는 것은 자존심이 구겨지는 일이었다. 주제넘게 자존심만 강한 나는 개인병원으로 가는 급우들이 보기가 민망스 러웠다. 하지만 그런 자존심 강한 나를 하나님은 지켜보고 계셨다. 나의 인생길에 겨울이 왔고 얼어 죽을 직전에 지푸라기를 잡게 하셨다. 자존심은 어디로 갔는지? 이 제야 똑똑해지는 것인지? 나를 단련시키시는 하나님은 서울에 있는 어느 개인병원으로 나를 내모셨다. 그 곳 에서 밥을 먹고 자고 일한 6개월, 걸핏하면 포도당 주 사, 하루에도 몇 번씩 혈관을 찌르다 보니 혈관주사나 피를 뽑는 것은 누워서 떡먹기였다. 그러나 그걸 평생 쓰게 하시려 훈련시키는 줄은 몰랐다. 하지만 이대로 주저앉을 수는 없었다. 다시 일어나 야 했다. 어느 날 을지로에 있는 메디컬 센터를 찾았고,

42


주시고 계셨다. 죽을 고비에서 건져준 몇 환자는 나를 의사라 불렀다. 어느 날 환자의 혈압이 바닥에 떨어지 고 실신했는데 피검사를 해야 이유를 알 수 있었다. 그 리고 이 급한 상황에서 빨리 혈관을 찾아 피검사를 해 야 하는데 모두 실패였다. 의사도 기권하는 그 시각에 실보다 더 가는 핏줄에서 피를 빼고 환자는 그 결과로 치료를 받아 살아났다. 그 후로 이 환자는 나를 의사라 부르며 자기 생명을 구해준 은인이라고 고마워했다. 나는 깨닫기 시작했다. 단 6개월이었지만, 내가 그 개인병원에서 포도당주사를 많이 놓았고 혈관을 많이 찔렀기에 은연중에 기술이 익혀졌고, 또한 하나님은 나를 그리 훈련하시면 낮아지기를 바라셨던 것 같다. 그 시간이 없었다면, 그만한 기술도 없었다면 말도 어 눌하고 잘 알아듣지도 못하는 외국인을 어떻게 그저 고용할 수 있었겠는가? 한국 간호사들이 얼마나 영리 하고 일을 잘하고 기술이 좋은지, 더구나 요즈음 젊은 이들은 영어도 잘하니 많은 한국 간호사들이 이 넓은 땅에 와서 활개를 펴고 살았으면 하는 바람이 크지만 역시 절대자이신 하나님의 뜻은 우리가 알 수 없다. 내가 미국연방보건원에서 일할 때는 1980년과 1984년에 ‘우수 간호 업적상(High Quality of Nursing Performance)’도 받았으니 이게 다 하나님께서 도우시고 지켜주시지 않았다면 과연 있을 수 있었을 까? 눈에 보이시지 않아도, 소리가 없으셔도 나는 그 분을 보고 그 분의 세미한 말씀도 듣고 있으니 얼마나 행복한가? 은퇴한 지 5년, 오늘도 나는 나의 사랑하는 환자 에 블린에게 회답을 쓴다.

퉁 부은 손에서 실 같은 혈관을 찾아 피를 빼주니 감독 과 다른 간호사들이 놀라서 그야말로 혀를 내둘렀다. 나는 일을 잘하는 사람은 아니다. 지혜를 주시는 그 분 이 항상 지켜주시고 있음이다. 시골의 조그만 병원에서 일을 할 때였다. 영어는 잘 못하지만, 다른 방면에선 지지 않는 나를 감독은 항상 용기를 주고 격려를 해 주었다. 이 병원은 규모가 작은 만치 모든 기술을 요하는 곳이었다. 응급사태에 의사 가 병원까지 오려면 십여 분이 걸리기에 이 병원에선 심장마비 팀을 만들어, 5명의 간호사가 한 팀이 되어 심장마비 응급시를 대비하고 있었다. 나는 그 팀에서 항상 리더로 일했다. 이미 의사의 처방을 받아놓은 약 물치료가 반응을 보이지 않으면 전기로 심장을 자극하 는 일은 리더인 내가 했다. 심장질환으로 자주 들락거 리던 사람이 두 번이나 심장마비가 왔었고 두 번 다 전 기 자극으로 살아났다. 한 분은 전기 자극으로 살려서 심장 중환자실로 보냈는데 며칠 후 그 곳에서 돌아가 셨다. 이 모든 것은 지켜주시고 능력을 주신 하나님이 아니시었더라면 나는 이 낯선 땅에 설 자리가 어디 있 었겠는가? 워싱턴 디시에 있는 육군병원에서 있었던 일이다. 전문을 투석으로 바꾸고 나니, 새로 배워야 하는 용어 며, 기계며 무척 힘이 들었다. 왜냐하면 한국에 있을 때 투석 이야기는 들어보지도 못했고, 그에 관한 용어 라든지 기계 또한 본 적도 없었으니 말이다. 일하는 시 간이 좋아서 전문을 바꾸고 보니 후회막심이었지만 이 미 돌이킬 수 없었다. 배우는데 시간이 남보다 몇 배는 더 걸렸으리라. 그러나 여기서도 하나님은 나를 지켜

Parent Seminars

Spiritual Development of Children

For Parents of Children Under 13 years of age

-Understanding parents’ and children’s personality types -Learning different parenting methods for you and your child -One Saturday session on July 26, 2008 From 9:00 am-12:15 pm -NCFC MD Campus Fellowship Hall -Fee $35 ($50 per couple) includes teaching materials

As a licensed teacher and certified leadership coach, Mr. Herninko had enjoyed working with children and adults in public, private, and faith based organizations for more than 15 years. He is a committed husband and father who has spoken in the past at McLean Bible Church, among other venues. Visit www.wayneherninko.com for more information.

*** Free babysitting will be provided by leaders of EC for Both sessions***

Raising Great Kids -Principles on Basic Parenting -How to use proper boundaries -5 sessions (July 10 through August 7, 2008) -Thursday nights 7 pm-8:15 pm -NCFC MD Campus Fellowship Hall -Fee $50 per person ($75 per couple) For 5 weeks includes a book

Dr. Hei-Jung Kim (301-444-3100, ext. 311) hkimncfc@gmail.com 18901 Waring Station Rd. Germantown, MD 20874

43


İধॱԐ

7월 6일(일) - 23일(수) 중고등부 단기선교 (MD/VA) YWAM Phase SST I—Tyler, Mexico

◆ ◆

7월 10일(목) - 8월 7일(목) 학부모 세미나 (VA) 7월 11일(목) - 13일(일) 제 8회 바이블 아카데미

휄로쉽의

‘남성들의 모임’의 저녁으로 스테이크가 준비되 었다. 스테이크가 맛있었는데 그 비결을 알아보 니 바로 ‘손맛’이었다. 역시 음식의 맛은 ‘손맛’ 이 최고임을 다시 한 번 확인하였다. 그것도 ‘전 원철 집사’의 손맛!!

*발행인: 김원기

*편집위원: 오장석, 이연일, 오진이, 지용한, 이창환, 안선희, 양하영

*인쇄: KOREA Monitor

MD Campus: 18901 Waring Station Rd., Germantown, MD. 20874 Tel (301) 444-3100 Fax (301) 444-3115 VA Campus: 1439 Shepard Dr. Sterling, VA. 20164 Tel (703) 444.5634 Fax (703) 444.0567 http://www.fellowshipusa.com (제출하신 글이 편집 방향에 따라 수정되거나 게재되지 못할 수도 있음을 양지 바랍니다.)

NCFC-2008-July  

남성들의 모임 귀한 3일간의 시간 - 초등부 수양회 태양 아래에서 즐긴 영적 훈련 - IMPACT 수양회 가난한 영혼을 향한 시들지 않는 열정 - 이다윗 선교사 인터뷰 아프리카 단기 선교 VA 예배 사역 피크닉 사진: 문승재(VA) 2008년 7월호...

Read more
Read more
Similar to
Popular now
Just for you