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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집·新초딩풍속도

놀이, 유전자가 원하는 것

조재경 funmaker@hanmail.net

놀이 풍경 1-한날한시 같은 곳 펑펑 내린 맑은 눈이 공사 중인 산길을 자연스럽게 눈썰매장으로 변신 시켰다. 겨울모듬살이(겨울캠프)에 참가한 아이들이 도로 눈썰매장에서 자 기를 맘껏 드러내고 있다. 흰 눈밭에 드러난 아이들의 몸짓에는 서로 다른 놀이 역사가 고스란히 배어난다. 춥다고 징징거리며 집에 가자고 조르는 당근, 슈퍼맨처럼 배를 깔고 두 손을 앞으로 내밀어 속도감을 즐기는 형준 이, 썰매를 같이 타자고 종종거리며 언니 오빠 들을 조르는 가을이, 혼자서 는 재미없다고 여럿이 기차를 만들어 썰매를 타고 노는 육돌이, 자기 목표 를 정해놓고 조금씩조금씩 자세를 바꾸어가며 썰매 타기를 즐기는 여우, 씽씽 내려가는 속도감이 무서워 작은 썰매장을 스스로 만들어 노는 윤아, 솜털 같은 눈이 마냥 신기한 듯 자기 머리에 자꾸만 뿌려대는 서연이. 같은 시간과 공간에서 서로 다름을 보여주는 모습이 한 폭의 생활화 같다. 이렇 게 다르면서도 하나의 모습을 보여주는 것은 아이들의 표정이 모두 살아

@@@ 고무신학교 대표. 대학에서 민속학을 공부했다. 산골체험, 역사답사, 체험학습 같은 프로그램들을 운영하며 초등학교 방과 후 특기적성 수업에 놀이논술을 접목하고 있다.『고무신학교 놀이 논술』 을 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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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 환하게 웃고 있기 때문이다. 노는 모습은 서로 다르지만, 놀이가 만들어 놓은‘같음’ 의 힘은 모두가 나눌 수 있는 크고 아름다운 에너지 덩어리가 된다.

놀이 풍경 2-놀이 배우는 어린이, 놀이 알려주는 어른 매주 화요일과 목요일 다섯째 시간 마침 종이 울리면 20여 명의 아이들 이 후다닥 6학년 2반 교실로 달려온다. 방과 후 특기적성 수업 놀이논술 시 간이다. 유희왕 카드를 꺼내 친구와 놀고 있는 성재, 교실 바닥에 엉덩이를 깔고 공기놀이에 빠진 현종, 지난 시간 놀았던 딱지를 가지고 와서 열심히 딱지치기를 하고 있는 승환, 선생님에게 달라붙어 가위바위보로 딱밤 때 리기를 하자고 조르는 현서, 조용히 젠가놀이를 하고 있는 현승, 핸드폰으 로 게임 삼매경에 빠진 지현이, 재잘재잘 열심히 수다 떨고 있는 재영, 큰 소리로 말싸움을 하고 있는 선우, 아무것도 하지 않고 책상에 엎어져 시작 시간을 기다리는 동희. 위의 모습은 수업 시작을 기다리는 10분 동안의 풍 경이다. 수업이 시작되고 오늘의 놀이가 발표되면 모두가 얼른 넓은 곳으 로 나가 놀자고 목청을 높인다. 놀기 전에 내 잔소리가 시작된다. 놀이방 법, 놀이도구, 놀이판, 놀이의 속뜻 등을 이야기해준다. 그러나 아이들 마 음은 벌써 놀이판에 가 있다. 결국은 놀면서 알아가자고 아이들에게 항복 1) 한다. 넓은 터로 나온 어린이와‘어른이’ 들은 한 덩어리가 되어 땀을 뻘

뻘 흘리며 논다. 때론 어린이끼리 싸우기도 하고 어른과 어린이가 싸우기 도 한다. 놀이판에서 싸움은 규칙을 지키지 않은 것을 누군가 정확히 관찰 하고 따지는 데서 시작하여, 잘잘못을 가린 것을 모두가 받아들일 때 끝이 난다. 그러다 놀이시간이 끝나버리는 경우도 있다. 그러면 모두 아쉬워하 1) 고무신학교에서는 어린이와 동등한 위치의 어른(교사, 학부모)을‘어른이’ 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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며 가방을 들고 할 수 없이 집으로 향한다. 더 놀고 싶지만, 다음 판에는 꼭 이길 수 있을 것 같아서 한 판만 더 하고 싶지만, 학원 시간 때문에, 엄마의 꾸중 때문에 마음을 접는다. 일주일에 두 번 노는 것으로는 성에 차지 않는 다. 그러나 다른 친구들은 이렇게도 놀지 못한다. 축구반 아이들도, 줄넘기 반 아이들도 태권도반 아이들도 신명 나게 노는 놀이논술반 아이들을 부 러워한다.

놀이 풍경 3-틈만 나면 논다 아이들은 늘 움직인다. 움직임은 놀이로 연결된다. 그래서 틈만 있으면 논다. 놀이터에서 교실에서 버스 안에서 그리고 숲이나 강에서 아이들 스 스로 자유로운 상황에 놓이면 그 상황을 즐길 줄 알고 혼자서 또는 여럿이 서 논다. 아파트 단지나 학교의 놀이터는 아이들의 놀이본능을 가장 적극적으로 보여주는 공간이다. 놀이기구 원래의 쓸모는 시시하기 때문에 새로운 놀 이를 만들어서 논다. 앞뒤로 움직이는 그네는 뱅글뱅글 돌아가는 놀이기 구로 만들고, 미끄럼틀에서는 속도를 더 붙이기 위해 눈을 뿌리거나 비닐 을 깔고 내려온다. 시소는 서서 타야 되고 철봉은 거꾸로 매달려 세상을 거 꾸로 보는 놀이 도구로 만든다. 흔들 사다리, 줄 잡고 오르기, 달팽이 미끄 럼틀이 결합된 복합 놀이기구는 아이들이 즐겨 하는 탈출놀이 거리가 된 다. 아이들이 놀이터에 자리를 잡으면 시작 신호와 함께 술래는 눈을 감고 아이들을 잡으러 다닌다. 이때 아이들은 술래를 피해 정해진 공간을 통과 해 땅으로 내려오는 놀이다. 놀이에 참여하지 않은, 혹은 이 놀이를 한 번 도 해보지 않은 사람들은 가슴이 조마조마해지고 안절부절못할 것이다. 혹시나 다치지 않을까 하는 염려 때문이다. 물론 간혹 다치기도 한다. 그 러나 다른 놀이에 비해서 다치는 경우가 훨씬 적다. 축구보다도 다칠 확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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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낮다. 어른들이 일방적으로 만들어놓은 평범한 놀이터가 아이들의 놀 이를 통해서 재미있는 곳으로 바뀌는 것이다. 다음 수업을 준비하는 짧은 쉬는 시간도, 이 놀이 한판 하기에는 충분하다. 실내에서 여럿이 즐기는 놀이로‘마피아’ 라는 놀이가 있다. 전래놀이인 도둑잡기 놀이의 바뀐 모습이다. 여러 명이 둘러앉아 고개를 숙이고 있으 면 사회자가 둘레를 돌아다니며 마피아, 경찰, 시민을 정해 손으로 살짝 쳐 서 그들에게만 알려준다.“아침이 되었습니다”하는 사회자의 신호에 맞 춰 고개를 들면 아이들은 누가 마피아인지 밝혀낸다. 이 과정에서 시민이 죽기도 하고 경찰이 죽기도 하고 마피아를 찾아내기도 한다. 마피아를 찾 으면 새로운 판으로 놀이가 진행된다. 이 놀이는 말로 한다. 마피아는 자 기가 마피아가 아닌 것처럼 위장해서 시민이나 경찰을 죽인다. 말을 조리 있게 하는 아이가 이 놀이를 잘한다. 아이들은 TV 오락 프로그램에 소개된 놀이를 금방 따라 한다. 알고 있어 도 보통 때 잘 하지 않던 놀이도 방송에 소개되면 그 다음날 바로 하면서 논다. 실내 숨바꼭질은 전래놀이 까막잡기와 비슷한 놀이다. 술래가 눈을 가리고 다른 사람을 찾으면 된다. 놀이 방법이 아주 간단하기 때문에 어디 서든 할 수 있지만 아이들이 즐겨 하는 것은 아니었다. 그러나 방송에서 소 개되고 난 뒤 세 명 이상만 모이면 하는 놀이가 되었다. 작은 방법의 차이 가 놀이를 더 재미있게 만들었다. 바뀐 규칙은, 술래 외에는 누구도 움직일 수 없다는 것이다. 자기 자리에서 앉거나 누울 수 있을 뿐이다. 이 놀이에 는 술래를 피해 몸을 이리저리 움직이는 다른 사람의 모습을 보는 재미와 술래가 자기에게 올까 봐 가슴 졸이는 재미가 있다. 이 놀이를 짧은 시간에 모두가 즐기게 된 것은 누구나 놀이 방법을 알고 있기 때문이다. 놀이를 설 명할 필요 없이 모두가 바로 놀이판에 참여할 수 있다. 예전에는 친구나 형 또는 어른에게 배워서 놀았다면 이제는 방송을 통해서 모두 같이 배우는 것이다. 방송이라는, 놀이 전파의 새로운 통로가 생겨난 것이다. 사실 어린이들이 생활공간에서 놀이를 즐기는 것보다 더 흥미를 갖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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것은 놀이공원에 가는 것이다. 학교 소풍 때도 가고 공부방 나들이 때도 간 다. 고정된 거대한 놀이기구에 몸을 맡겨 놀이기구가 주는 일방적 재미에 빠진다. 놀이동산에서 즐기는 놀이의 재미는 어지러움의 재미2)이다. 극도 의 공포, 가슴 졸임, 숨 막힘 등을 경험하게 되는 놀이는 신체의 내이기관 을 어지럽게 해서 평형감각을 잃게 한다. 이 순간 몽롱한 상태를 체험하면 서 느끼는 재미가 어지러움의 재미다. 놀이공원 시설들은 극도의 어지러 움을 느끼게 하는 시설로 되어 있다. 지금 아이들은 돈을 주고 어지러움의 재미를 찾는다. 놀이공원에서는 스스로 주인공이 되어서 놀이를 즐긴다기 보다는 놀이기구에 놀아난다는 느낌이 더 강하다. 높은 곳에서 뛰어내리 기, 팽이치기, 그네뛰기, 널뛰기 등도 어지러움의 재미를 느낄 수 있는 놀 이다. 아이들은 이런 놀이를 통해 몸과 마음이 튼튼해진다. 아이들은 시간과 환경에 따라 필요한 놀이를 하고 있다. 그러나 어떤 놀 이의 건강성에 대해서는 고개를 갸웃거리게 된다. 죽고, 죽이고, 큰 소리로 상대방을 공격하고, 다른 사람의 불행이 자기의 기쁨인 양 깔깔 웃고 떠들 어댄다. 놀이를 통해 건강한 자기를 키우기 위해서는 여러 종류의 다양한 놀이가 필요한데 한두 가지 놀이에 갇혀 그것이 놀이의 전부인 줄 알고 그 것만 하고 논다.

컴퓨터게임 때문에 노는 아이들 현대사회에서는 무엇을 하든 시간을 다툰다. 아이들도 다르지 않다. 학 원 가야 하는 시간, 공부해야 하는 시간, 밥 먹어야 하는 시간, 잠자는 시간 에 노는 것은 감히 상상할 수도 없다. 하루 또는 일주일에 몇 시간씩 노는

2) 로제 카이와는『놀이와 인간』(이상률 옮김, 문예출판사 1994)에서 놀이의 재미를 경쟁, 우연, 흉 내, 어지러움, 이렇게 네 가지 범주로 구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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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간을 정해서 어른과 약속을 하고 노는 경우가 많다. 그러나 이때의 놀이 시간은 대부분 컴퓨터게임을 위한 시간이다. 혹은 용돈을 털어 피씨방으 로 직행하는 것이 보통이다. 게임 시간을 확보하기 위해서 아이들은 어른 과 협상을 하기도 하고, 그것을 위해서 다른 과제를 스스로 정하고 해결하 기도 한다. 시험 점수도 심부름도 착한 일도 책 읽기도, 게임 시간 확보를 위해서 해내야 하는 과제다. 심지어는 방학 때 캠프도 게임 시간 확보를 위 해서 간다. 모듬살이 다녀오면 하루 게임 시간 30분 추가를 부모님한테 약 속을 받고 참가했다는 아이들도 종종 있다. 부모들 마음을 이해한다. 놀아 야 먹고사는 직업을 가진 아버지를 둔 내 아이들 역시 컴퓨터게임으로부 터 자유롭지 못하다. 그래서 정한 나름의 규칙은 밖에 나가서 논 시간만큼 게임을 하는 것이다. 그러나 이 규칙을 지키기도 그리 쉽지 않다.

아이들 몸속의 놀이 유전자를 살아나게 하자 ‘처음’ 이라는 단어는 재미있게도 하고 움츠리게도 하고 겁을 먹게도 한 다. 모두가 처음인 상황을 어떤 이는 즐거움으로, 어떤 이는 두렵지만 하고 싶은 것으로, 어떤 이는 무조건 피하고 싶은 것으로 받아들인다.‘ 놀이 풍 경 1’ 에서 만난 도로 눈썰매장은 모든 아이에게 처음이었다. 그 처음이 저 마다 다르게 다가왔을 터이다. 그 처음을 맞이하는 마음먹음이 몸을 움츠 리게도 하고 기지개를 펴게도 하고 피하게도 하였다. 그러나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아 몸이 기억하고 있는 놀이 유전자는 곧 아이들 모두를 환히 웃 게 했다. 아이들은 충분히 놀 준비가 되어 있고 몸도 마음도 조금만 움직여 주면 금방 건강한 놀이세계로 자신을 풍덩 던져 넣는다. 며칠 전 아이들 여 남은 명이 모여서 함께 공부하다가 쉬는 시간에‘우리집에왜왔니’ 를한적 이 있다. 규칙을 익히는 데 시간이 필요했고 몸에 익을 때까지 몇 번의 연 습이 필요했다. 그러다가 곧 쉬는 시간이 끝나 다시 공부를 해야 했다. 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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음 날 다시 모인 아이들은 하나같이 또 그 놀이를 하자는 것이었다. 이제 이길 준비가 되었다고. 아이들은 새로운 것에 관심을 가지고 자기 것으로 만들어내는 힘이 세 다. 특히 놀면서 그 많은 것들을 모두 자기 속에 채워 넣는다. 아이들은 놀 면서 제 안에 숨어 있는 힘과 마음을 다 쏟아내며, 또한 그런 자신을 즐긴 다. 이렇게 놀고 나면 아이들은 제 몸의 감각에 귀 기울이고 감각의 소리를 편하게 이야기로 풀어낸다. 그것은 그 아이만의 이야기가 되고 세계가 된 다. 이렇게 놀이는 아이들에게 할 이야기를 만들어준다. 어른이 할 일은 아이들에게 다른 어떤 것도 아닌‘시간’ 을 주는 것이다. 새로운 세계를 만날 시간, 다양한 것을 경험할 시간, 친구와 맘껏 몸으로 이야기를 나눌 시간이 아이들에게는 필요하다. 사실 시간은 어른에게 더 필요할지도 모른다. 어른은 누구나 어린이 시절을 지나왔다. 어쩌면 어른 에게 필요한 것은 어린이였을 때를 돌아보는 시간일지 모른다. 어린이의 놀이문화는 어느 순간 어른들이 만들어버렸다. 시간을 정해두 었고 공간을 제한했으며 글과 말로 규칙을 정해놓았다. 그러고 나서“아이 들이 잘 논다, 잘 놀지 못한다”하며 구시렁거린다. 그래도 어린이들은 논 다. 자기 몸속에 있는 놀이 유전자를 살리고 채우며 또 다음 대로 연결한 다. 건강한 놀이 유전자가 이어질 수 있도록 어린이와 어른 모두 시간을 가 지고 즐겁게 놀아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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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들이 놀면 살아 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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