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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HE UK LIFE

영 . 국 . 뉴 . 스

1062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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英 전사 장병들의 마지막 편지 23만통, 100년만에 빛을 보다 "어머니, 용기를 가지세요. 저는 괜찮아요. 만일 제가 죽더라도 어머니의 사랑만은 잊 지 않을게요." 1차 세계대전이 발발하고 영국이 독일에 선 전포고를 한 1914년 8월. 영국 보병부대의 조 지프 디치번(당시 19세) 이병은 전쟁터로 떠나 기 직전 어머니에게 마지막 편지를 썼다. 그는 "수리를 맡긴 자전거는 팔면 값이 꽤 나갈 테 니, 추가 비용이 들더라도 반드시 찾으세요" 라고 어머니에게 신신당부했다. 자신이 돌아 오지 못할 수도 있다는 걸 예감한 듯했다. 그 는 이 편지를 부치지 않고 군복 주머니에 유 언장처럼 간직했다. 불과 두 달 뒤 프랑스와

벨기에 국경에서 그는 복부에 총상을 입고 병 원에서 사망했다. 디치번 이병처럼 1차 대전에 참전했던 영 국 병사 23만여명이 가족과 친지를 생각하 며 썼던 마지막 편지들이 100년 만에 뒤늦게 공개됐다. 내년 1차 대전 발발 100년을 맞아 영국 왕실 법원은 전사 장병의 편지 23만여 통을 디지털로 정리하는 작업을 마치고 일반 에 공개한 것. 인터넷에 공개된 편지들을 통해 전사한 군 인의 이름과 군번, 편지 내용과 봉투에 남긴 글귀, 사인(死因)까지 확인할 수 있다. 왕실 법 원은 그동안 이 편지들을 1300여개 상자에 나

인도네시아 대법원, 영국인 마약사범 사형판결 확정 인도네시아 대법원이 국제휴양지 발리에서 마약 밀수혐의로 혐의로 체포돼 사형선고를 받은 영국인 사형수의 사형 판결을 확정했다. 인도네시아 언론은 30일 대법원 재판부가 영 국인 사형수 린지 샌디포드(56·여)가 1·2심 사 형판결에 불복해 제기한 상고를 만장일치로 기 각, 사형 판결을 확정했다고 보도했다. 아르티조 알코스타르 대법관은 1심과 2심 재 판부의 법률 검토에 오류가 없다는 결론을 내 렸다며 "단 한 명의 반대 의견 없이 상고 기각 을 결정했다"고 말했다. 샌디포드는 작년 5월 방콕발 발리행 항공편 으로 코카인 3.8㎏(약 250만 달러어치)을 여행 가방에 숨겨 들여오다가 응우라 라이 국제공 항에서 체포돼 재판을 받아왔다. 검찰은 수사에 협조하고 반성하는 점을 들 어 징역 15년을 구형했으나 덴파사르 지방법원 은 지난 1월 밀수한 마약의 양이 많다며 사형

을 선고했고 발리 고등법원은 지난 4월 그의 항소를 기각했다. 샌디포드는 재판에서 마약조 직이 자녀를 해치겠다고 위협해 밀수에 가담 했다면서 선처를 호소했으며 인도네시아와 영 국의 인권단체 등이 그를 지지하는 법정의견 서를 법원에 제출했으나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대법원의 사형 판결 확정으로 샌디포드가 사 형을 면하려면 인도네시아 대통령에게 감형 또 는 사면을 신청해 받아들여져야 한다. 인도네시아에는 현재 110여명의 사형수가 있 고 외국인도 나이지리아인 11명과 중국인 6 명 등 40여명이다. 이들은 대부분 마약사범 으로 알려졌다. 인도네시아는 사형집행 중단 4년 만인 지난 3월 마약밀수 혐의로 9년 전 사형선고를 받은 말라위인 1명을 총살하고 5월에도 살인범 3명 의 사형을 집행, 국제인권단체 등의 비난을 사 고 있다.[연합뉴스]

눠 버밍엄 인근 자료 보존소에 보관했다. 자료 정리에 참여한 역사학자 존 쿡시는 "적군에게 입수되면 부대 위치나 이동 경 로 등이 노출될 우려가 있어 병 사들은 편지를 부치는 대신 간 직하는 편을 택했다. 따라서 이 편지들은 병사들의 유언장이 됐다"고 말했다. 편지에는 아내를 향한 그리움이나 다리를 잃 은 축구 선수 출신 병사의 비통한 심경 등이 그대로 담겨 있었다고 BBC는 전했다. 1914년 해리 루이스 링컨(당시 26세) 이병은 아내에 게 쓴 편지에 "내가 전사하면 추모 메달을 받 게 될 것이오. 이 메달은 우리 아들이 자란 후 목에 걸 수 있도록 소중하게 간직해주오"라 고 썼다. 이듬해 링컨은 벨기에에서 전사했지 만, 그가 어디에 묻혔는지는 확인되지 않았다. 축구 선수 앨버트 버틀러는 영국 프로축구팀 QPR의 프로 선수였지만 1914년 전쟁이 발발

하자 징집됐다. 1916년 참호에서 포격으로 오 른쪽 다리를 잃은 그는 "안됐지만 더 이상 축 구는 할 수 없다"는 편지를 아내 케이트에게 썼다. 그는 며칠 뒤 병원에서 세상을 떠났다. 역사학자 피터 심킨스는 "1차대전 종전 1 년 전인 1917년에는 매일 3개 보병 대대 (1800~2400명)에 해당하는 병사들이 죽거나 다쳤다. 편지는 치열했던 그 시대를 증언하는 소중한 사료(史料)"라고 말했다. 영국 왕실 법 원은 "전몰장병 후손이나 일반인이 6파운드 (1만원)를 내면 편지를 복사할 수 있도록 했 다"고 밝혔다.[조선일보]

1062(05 09 2013)  
1062(05 09 20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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