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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 . 럼 / 사 . 설

2012년 9월 6일 (목)

세 올림픽

이희재 칼럼 개인 올림픽 앞을 못 보는 선수들이 다섯 명씩 편을 이루어 공을 차는 5인제 축구 선수들에게 관중은 국경을 넘어 따뜻한 박수를 보냈다. 포클랜드로도 불리 고 말비나스로도 불리는 아르헨티나 인근의 섬 들을 놓고 전쟁까지 벌인 영국과 아르헨티나의 대결이었지만 관중은 선수들의 국적을 의식하 지 않았다. 관중의 다수는 영국인이었지만 아르 헨티나 관중도 별로 다르지 않아 보였다. 영국이 아니라 아르헨티나에서 시합이 벌어졌다 하더라 도 아르헨티나 관중은 장애인올림픽에서 뛰는 영국 선수에게 아낌없이 박수를 보냈을 것이다. 근대 올림픽을 만든 프랑스의 쿠베르탱 남작 은 인생에서 중요한 것은 승리가 아니라 분투 라면서 올림픽 정신은 “정복이 아니라 잘 싸웠 다”는 데에서 찾아야 한다고 강조했지만, 쿠베 르탱이 애당초 신체 교육에 관심을 가졌던 중요 한 계기의 하나는 1871년 프랑스프로이센 전쟁 에서 프랑스인이 독일인에게 진 이유는 신체가 나약했다고 보아서였다. 쿠베르탱은 영국이 19 세기에 영토 확장을 통해 단숨에 세계의 패권국 으로 올라선 비결도 영국의 럭비학교 같은 명문 사립학교에서 운동을 통해 인내심과 협동심을 가진 엘리트를 키워낸 것이라 믿고 프랑스 교육 당국에 운동의 중요성을 역설했다. 올림픽은 평 화와 공존을 부르짖으면서 출범했지만 올림픽 에 참가한 나라의 국민들은 자국 선수의 승패를 자기 나라가 이기고 진 것으로 받아들이며 울고 웃었다. 금메달 숫자는 국력의 상징이 되었다. 장애인올림픽에서도 메달은 집계되지만 어느 나라가 금메달을 제일 많이 땄는지에 대한 관심 은 정상인올림픽과는 비교가 안 될 정도로 낮 다. 어느 경기장에서든 선수의 국적보다는 선수 가 어떤 장애를 딛고 분투하느냐에 관중의 관

영국생활

심이 쏠린다. 두 팔이 없는 중국의 루동 선수가 허리와 다리만으로 물살을 갈라 금메달을 땄을 때 터져나온 영국 관중의 박수갈채는 정상인올 림픽에서 영국의 사이클 영웅 빅토리아 펜들튼 선수가 딴 금메달에 보낸 박수보다도 크게 들렸 다. 국가보다는 개인이 부각되었다. 승리가 아니 라 분투가 중요하다는 쿠베르탱의 올림픽 정신 은 정상인올림픽이 아니라 장애인올림픽에서 구현되고 있었다.

장애"안" 올림픽 아르헨티나 관중도 중국 관중도 한국 관중도 장애인올림픽에서 자국 선수와 싸우는 타국 선 수의 선전에 영국 관중과 마찬가지로 아낌없는 박수갈채를 보냈을 테지만, 정상인올림픽 못지 않게 장애인올림픽 경기장을 열심히 찾는 영국 관중의 모습은 인상적이었다. 그러나 더욱 인상 적인 것은 정상인과 장애인이 함께 뛰는 종목 이었다. 가령 탠덤이라는 사이클 경기도 그랬다. 영어 tandem에는 2인용자전거라는 뜻과 같 이 움직인다는 뜻이 있다. 탠덤 경기에서는 앞 을 못 보는 장애인 선수가 뒤에서 페달을 밟고 앞을 보는 정상인 선수는 페달도 밟지만 앞에서 핸들로 방향을 잡아나간다. 탠덤 경기는 어떻게 보면 장애인이 정상인에게 기대어 살아야 하는 현실을 보여주는 종목 같아 보이지만, 그렇지가 않다. 탠덤은 올림픽 우승자가 누리는 독립성의 신화를 깨뜨린다. 정상인올림픽의 우승자는 국가와 주변의 도 움을 강조하지만 어쨌든 금메달을 딴 것은 4년 동안 본인이 피나는 노력을 했기 때문이라고 본 인도 생각하고 관중도 그렇게 생각한다. 우승은 뛰어난 개인의 독립적 노력이 낳은 것이라는 교 훈을 관중도 가슴에 새기며 자녀에게 너도 저

렇게 노력하라고 당부할지도 모른다. 장애인올 림픽의 우승자도 관중에게 비슷한 가르침을 준 다. 어려운 조건을 딛고도 저렇게 열심히 사는 사람에게서 배워야 한다고 사람들은 보통 생각 한다. 독립성의 신화는 그렇게 만들어지고 퍼져 나간다. 그러나 나만의 힘으로 잘 할 수 있는 일 은 현대 세계에는 거의 없다. 독립적 인간은 현 실에는 존재하지 않는다. 자급농이 소수로 밀려나고 분업이 대세로 자 리잡은 산업 사회에서 사람은 누구나 장애인이 다. 온전히 스스로의 힘만으로 살아나갈 수 있 는 사람은 하나도 없다는 뜻에서 그렇다. 개인 이 아니라 국가도 마찬가지다. 하나부터 열까지 자기 손으로 만들어내야 한다고 믿는 북한처럼 예외적인 나라도 있지만, 거의 모든 나라는 자 기 나라에서 나오는 것만으로는 먹고 살 수 없 는 것이 우리가 사는 지구의 현실이다. 다른 일에 종사하는 사람들이 없이는, 다른 물자를 생산하 는 나라들이 없이는 우리는 모두 온전히 살아가 기가 어렵다는 점에서 우리는 모두 장애인이다. 부자도 빈자도 모두 장애인이다. 물건을 아무 리 잘 만들어내도 사주는 사람이 없으면 회사 는 망한다. 물건을 사려면 돈이 있어야 한다. 물 건을 살 만한 여유를 소비자가 가지려면 그 소비 자가 봉급생활자로서 받는 임금이 너무 박해서 는 안 된다. 소비자에게 기대지 않는 독립적 기 업은 없다. 독불장군은 없다. 남에게 기대지 않 고 혼자 힘만으로 살아갈 수 있는 존재는 개인 의 차원에서도 기업의 차원에서도 국가의 차원 에서도 없다. 이것이 현실이다. 그러나 독립적인 것처럼 보이는 우승자가 열매를 독차지하는 올 림픽은 이런 현실을 가린다. 장애인올림픽에서 뛰는 선수들을 보면서 관중 이 저렇게 몸이 성치 않은 사람들까지도 몸이

성한 사람처럼 대접하려고 노력하는 문명 사회 에 대해 자긍심을 느끼는 것은 당연한 일이지만, 그런 자긍심에 그쳐서는 안 된다. 이 세상에는 혼자 힘만으로 살 수 있는 사람은 하나도 없음 을, 그러므로 자신도 장애인임을 깨달아야 한다. 장애인올림픽이라는 말은 맞기도 하고 틀리기 도 하다. 관중이 몸이 성한 정상인의 여유로운 마음으로 몸이 성치 못한 장애인의 분투를 가상 하게 여기는 데에 그치는 올림픽은 결국 아무도 독립적일 수 없는 현실을 인식하지 못하는 절름 발이 눈을 가진 장애"안" 관중의 올림픽이라는 뜻에서 장애인올림픽이라는 말은 맞다. 그러나 선수만을 장애인으로 지칭하는 것이라면 그 말 은 틀렸다. 관중도 선수도 현실 속에서는 모두 혼자서 살 수 없는 삶의 동반자임을 나타내려면 장애인올림픽은 동반올림픽이나 더불어올림픽 이라고 불러야 한다. 장애인올림픽에 해당하는 영어 paralympic의 para-라는 접두사에도 ‘더 불어’라는 뜻이 있다.

패자의 올림픽 ‘독도는 우리 땅’이라는 글귀가 적힌 종이를 박 종우 선수한테 들이민 한국인 관중의 행동은 백 해무익한 행동이었다. 독도를 놓고 갈등을 빚는 나라를 상대로 운동 시합에서 이겨놓고 그 앞 에서 독도는 우리 땅이라는 종이를 흔드는 것 은 독도가 어디에 붙었는지조차 몰랐던 일본인 의 가슴에도 ‘다케시마는 우리 땅’이라는 반감 을 불러일으켰을 것이다. 쿠베르탱은 싸움으로 날을 지샜던 고대 그리 스인이 올림픽이 열리는 동안은 무기를 내려놓 았던 것처럼 현대인도 운동 시합을 통해 국가간 분쟁을 잠시라도 잊어보자는 뜻에서 근대 올림 ↗ 픽을 되살려냈지만, 그것은 쿠베르탱의 오해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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