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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 2010년 10월 5일 (화)

칼럼 나의 가치는 내가 결정한다 된다는 건가?’하는 의문이 들었다. 아동이 갖는 비교의 시선은 바로 부모나 주위 사람 들의‘평가하는 눈’ 에 의해 만들어진 것일 터이니, 이제는 어린 아이의 삶에도 평가의 시선이 스미어서 그 자체로 완벽하고 아름 다운 존재로서의 삶의 시기가 줄어드나 싶 어 쓸쓸한 마음이 들었다. 학부에서 심리학 관련과목을 강의하면서 학생들에게서 자주 받는 질문 중의 하나는 자존감에 관한 것이다. 누구나 강한 자존감 채기화(교육대학원) 을 갖기를 바란다. 특히 다른 사람들 앞에 서도‘당당하게’행동하여 남들에게도 자 지난 주말 신문을 뒤적이다 신간소개 코 신이 그렇게 인식되기를 바란다. 그러나 대 너의 한 광고에 눈길이 멎었다. 그 책은 자 부분의 자기소개서에‘당당하게’ 라는 단어 기 얼굴이 밉다고 생각하는 아이에게“네가 가 빠짐없이 들어있는 것을 보면, 어쩌면 어때서? 너는 예쁘고 사랑스러운 아이야” 누구나 속으로는 자신의 불완전함에 움츠 라는 격려뿐만 아니라 사람의 얼굴은 자라 러들고 한없이 떨고 있는 존재인지도 모른 면서 변한다는 위로와 기대를 주는 내용을 다는 생각이 든다. 후들거리는 마음을 애써 담고 있었다. 시중에 흔한 자기계발서의 일 누르고 남들 앞에서 자신을 강하게‘연출’ 종으로 보아 넘길 수도 있는 그 책에 시선이 하려다보니 당연히 힘겹고 자기 자신이 더 오래 머문 것은 그것이 놀랍게도 유아용 그 욱 기준에 못 미치게 여겨지는 것은 아닐 림책이었기 때문이다. 광고 문구를 찬찬히 까? 놀랍게도 많은 학생들이 자존감은 전 읽자니‘그림책을 볼 정도로 어린 아이들의 적으로 외적 조건의 충족에 달려 있다고 본 마음에도 이미 자기 모습을 대조해 볼 비교 다. 즉 그 누가 지위, 재산, 외모, 학력, 직업 의 상이 들어앉아 외모에 대한 평가가 시작 과 같은 외적 조건을 두루 갖추었다면 그 사

람은 당연히 높은 자존감을 가질 것이라고 아 떼어 버리고 싶은 부분, 숨기고 싶은 부 믿는다. 그러나 자존감은 자기가치에 대한 분, 두려운 부분에 손을 내밀고 화해하여 외부의 평가가 아니라 자기 스스로의 평가 그것을 밀어내지 말고 자신의 일부로 받아 이다. 인간의 외적 조건은 자존감에 어느 들여야 한다. 이제껏 어느 누구에게서도 있 정도의 영향을 미칠 수는 있지만 상상만큼 는 그대로의 모습으로 받아들여진 경험이 결정적인 역할을 하지 못한다는 사실은 심 없다면, 이는 더욱 어려운 작업이 될 것이 리학의 여러 연구에서도 이미 입증되었다. 다. 자신의 불완전한 모습, 당당하지 못한 그렇다면 자존감은 어떻게 생겨나는 것일 모습을 받아들여 자기상을 재조정하면 자 까? 어린 아이는 자신을 돌봐주는 중요한 신의 현재 모습을 질타의 눈으로 바라보는 대상의 태도를 통해서 비로소 자기상을 만 것이 아니라 격려할 수 있게 된다. 이런 노 들어 간다고 한다. 대상의 눈에서 읽히는 력과 더불어 다른 한편으로는 주위에 나를 자신의 모습이 바로 자신에 대한 최초의 상 ‘평가의 눈’ 으로만 바라보지 않는 사람들, 을 결정한다는 것이다. 사회화 과정을 통해 이름하여‘따뜻한 준거집단’ 을 만들어야 서 경험하는 중요한 대상들이 이 차가운 하겠다. 인간은 흔들릴 때면 때때로 대상의 ‘평가의 눈’ 을 가지고 나를 바라본다면, 내 눈에서 자신의 모습을 확인하려고 하기 때 모습은 그의 시선을 통과하면서 점수에 따 문이다. 이런 준비 작업이 잘 이루어진다면 라 정해진 스펙트럼의 어느 지점에 자리매 우리는 자신을 비교적 객관적으로 정확하 김 될 것이다. 다행스럽게도 이 위치는 불 게 평가할 수 있는 가운데 튼실한 자존감을 변하는 것이 아니라 성숙과 더불어 수정될 유지해 갈 수 있다. 즉 자신에 대한 객관적 수 있다. 그러나 이를 위해서는 특별한 노 평가와 주관적 평가 사이의 긴장을 견딜 수 력이 필요하다. 우리가 외부의 시선을 고스 있게 된다. 이 긴장관계를 버텨낼 수 있는 란히 내재화하여 자기 자신을 평가하는 잣 힘은 평생 간직해야 하는 것이니 이를 위해 대로 삼는 실수를 반복하지 않기 위해서는 지금부터 투자해볼 가치가 있다. 우선 자기 모습을 세심하게 들여다 볼 필요 가 있다. 자신의 것으로 인정하고 싶지 않

학보평가단

늘어가는 기자들의 문장력. 하지만 데스크는?

백준기(신학과 1∙휴학)

이번 228호는 개강호인 만큼 방학동안 있 었던 교내 행사들과 학교의 변화된 모습들 을 많이 다루었다. 변화된 모습을 다루는 기사들은 비교적 사실여부를 파악하기가 쉬워 기자들에게도 좋은 기사훈련이 되었 으리라 추측해본다. 자유열람실에 대해 다룬 첫 기사에서는 기존 열람실의 공사로 임시열람실이 운영 되었으나 불편함이 많았고, 몇 번이나 장소 가 변경되어 이용이 불편했다, 는 문제제기 로 시작했으나, 이 문제에 대한 원인규명

없이 바로 도서관 개관시간 이야기로 넘어 가버렸다. 기존의 논지에서 다른 논지로 확 장해 나가는 것은 좋은 태도이지만, 여기에 는 기존 논지에 대한 정리가 전제해야한다. 유의해주기 바란다. 이번‘6104호에서는’ 은 단지 목차를 길 게 늘여놓은 듯하다. 그동안 신문에서는 드 러나지 않는 미디어센터의 내부적인 고민 과 감상을 엿볼 수 있어 매우 흥미로운 란이 었기에 아쉬움이 남는다. ‘코스모스졸업’ 을 다룬 기사는 지난 학기 처음 학보평가단이 만들어졌을 때 접했던 당시 기사들 같다. 분량은 너무 길고, 내용 전개는 앞뒤가 맞지 않으며, 기자 본인의 의견을 반영하고 있다. 졸업식 풍경이 기자 에게 준 인상이 그렇게나 강렬했던 걸까? 기자는 졸업식 때 사용된 성경구절의 장,절 까지 읊고 있다. 코스모스졸업에 대한 설명 이 나오는 가 했더니 취업전략을 잘 짜는 것 에 유의하란다. 황당할 따름이다. 반면 바로 다음 지면에 이어진 운동장 사 용과 수강신청 방법의 변경에 대한 기사는 정보전달 면에서는 썩 훌륭하다. 독자가 필 요로 할 만한 정보들만을 간략하게 전하고

있다. 하지만 여전히 기사 말미에 기자 자신 의 의견을 남기고 있다. 그 의견 자체는 체 육대회에 대한 기대를, 수강신청 방법이 더 개선되어지기를 바라는 순수한 의견이기는 하지만, 필요성에 대해서는 의문이 남는다. 최근 배추값 폭등으로 인한 기사가 많이 보 이지만, 그 어떤 기자도 기사 끝에 배추값이 내리기를바란다, 라고쓰지않는다. 앞서 지적한 부분들에 있어 길굿프로젝트 와 역사와 문화콘텐츠 수업을 다룬 5면은 이 번 호에서 그 구성이 가장 좋았다고 하고 싶 다. 앞선 두 개의 기사는 위 수업과 프로젝트 에대한사실위주의설명만을간략히전하고 있고, 그에 대한 감상을 기자가 아닌 본 수업 의 수강생이 직접 전하고 있다. 이들이 구체 적으로 무엇을 하고 있는지 궁금할 정도다. 지면을 통해 전달되는 것 이상을 궁금하게 만드는기사야말로훌륭한기사가아닐까. 그동안 학보평가단에서는 학내의 소소한 궁금증을 풀어주는‘~까?’ 란의 기획의도 를 높이 사왔고 이번 호 역시 그 의도에 부 합했다. 다만 이번 호에서는 속된말로‘복 사하기+붙여넣기’했다, 는 느낌이 든다. 성공회대학의 이야기인 만큼 내부 인사의

목소리를 통해 전해졌다면 더 생동감 있었 을 것이라 생각한다. 참여란은 말 그대로 독자가 직접 참여해 서 만들어가는 란이다. 하지만 그‘참여’ 란 독자가 직접 신문을 통해 다른 독자들과 나 눌 거리를 제공하는 것이어야 한다. 종종 참여란의 기고문 중에는 도저히 학내구성 원 모두가 공감하기 힘들어 보이는 것들이 있다. 이번 참여란의 기고문‘뚜벅이 식당 된장찌개’ 가 단연 그러했다. 필자와 그 지 인들이 아닌 이상 글의 의도는 물론 내용조 차도 이해하기 힘들다. 학보보다는 개인 블 로그에 어울릴 글이다. 날이 갈수록 기사들은 점점 더 기사다워 지고, 칼럼 역시 칼럼다워지고 있다. 하지 만 여전히 그렇지 못한 글들이 눈에 띄는 데, 이는 데스킹 능력 부족을 여실히 보여 주는 부분이다. 데스크가 각 기사들의 완성 도 차이를 보완하거나, 신문에는 맞지 않는 글들을 배제시켜야 한다. 기자들의 필력이 느는 만큼 데스킹 능력도 그를 뒷받침 하고 있는지 의문이다. 기자훈련도 데스크의 역 할인 만큼, 본지의 꾸준한 발전을 위해 데 스킹 능력도 향상되기를 바란다.

성공회대학보 229  
성공회대학보 229  

성공회대학보 229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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