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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 * 8 2013.vol14 대구경북

대학생

문화 잡지

군대 특집이슈

영준이의 편지 p.4 군필자들의 은밀하고 위대한 대담 p.10 리얼 속풀이 프로젝트, 진짜 고무신 p.14

혈액형에 관한 간단한 고찰 '박동선'작가 인터뷰 p.50

Via Trio, 아리랑을 들려주러 유럽에 간다 p.58

3,000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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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녕하세요? 오늘도 한 명을 떠나 보냈습니다. 누가 이렇게 말했었나요. '나이 드는 것은 이별에 익숙해지는 것'이라고요. 확실히 나이가 들어감에 따라, 이별이 찾아오는 주기도 점점 짧아지고, 이별로 오는 충격도 작아지는 것 같습니다. 사람을 만나고 헤어지는 것이 점점 예삿일이 되는 요즘이지만, 그래도 여전히 가슴 아픈 '이별'이 남아 있습니다. 우리에게 아련한 정서를 남기는 그 '군대'가 만드는 이별 말입니다. 엄마도 하고, 동생도 하고, 곰신도 하는 이별이라 해도, 군대가는 당사자 만큼 싱숭생숭한 사람이 또 어디 있겠습니까. 세상을 등지고 그곳(?)으로 가야만 하는 아쉬움을 달래는 것이 힘들겠지만, 보내는 이도 떠나는 이도 모두가 서로를 기억한다는 사실이 위로가 된다면 좋겠네요. 참, 모디도 잠시 여러분과 '이별'을 해야 합니다. 놀라셨죠? 곧 돌아오니 걱정마세요^^. 올해부터는 2월, 8월은 공식적인 모디의 휴간 달로 정했습니다. 한 달 쉬고 9월에 다시 새로운 사람들과 새로운 이야기로 돌아오겠습니다. 그 사이 꾸준히 블로그나 페이스북 통해서 저희 소식 전할테니 지켜봐주세요. 대구, 올해도 많이 덥겠죠. 이 더운 날씨에 열심히 훈련을 받고 있을, 모디 사진사 '영준'이와 군인아저씨 친구들을 생각하며 마음을 달래보죠. 여름도 결국 '한 때'라고요.

모디가 모지? 1 모디는 대학생이 만듭니다

습니다. 그래서 아직도 적자에 허덕이고 있습니다. 하

모디는 대구 경북 지역 대학생들이 기획 취재 편집 배

지만 그럼에도 저희가 잡지를 만들 수 있는 것은 '망하

포 등 모든 작업을 직접 하는 대학생들이 만드는 대학

지 않아서'입니다. 문 닫으려는 순간이 올 때마다 보이

생 잡지입니다.

는 오른손과 보이지 않는 왼손이 저희를 받쳐주었습니 다. 저희가 적자경영임에도 포기하지 않는 이유입니

2 모디는 대구 경북 대학생을 위한 잡지입니다

다. 여러분도 저희를 받쳐주는 손이 되어주세요.

모디는 대구 경북 30만 대학생을 위한 잡지입니다. 전 국을 대상으로 하거나 서울 지역만을 위한 대학생 잡

5 모디는 지역 대학생 네트워크를 꿈 꿉니다

지는 많이 있습니다. 하지만 대구 경북 지역 대학생들

대구 경북 지역에는 30만 명의 대학생들이 살고 있습

의 잡지는 모디 밖에 없습니다.

니다. 하지만 이들을 위한 네트워크는 존재하지 않습 니다. 모디는 이런 지역 대학생들의 네트워크 형성을

3 모디는 지역 문화와 함께합니다

꿈꿉니다. 그 속에서 지역 청년들의 열정과 희망이 싹

모디는 대학생들이 이야기와 함께 지역 문화를 함께

트길 소원합니다. 그렇게 대구 경북이 다시금 활력을

다룹니다. 문화는 사람이 함께하지 않으면 존재할 수

찾을 수 있길 기대합니다.

없습니다. 대학생들과 지역 문화의 만남. 모디가 꿈꾸 는 현재입니다. 4 모디는 적자경영을 계속하고 있습니다 모디는 사양산업이라는 인쇄 잡지 매체를 고집하고 있

대구 경북 대학생 문화 잡지 <모디> www.facebook.com/magazinemodi modi.tistory.com modiedit@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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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성스튜디오

온실 속에서 부드럽게 자란 장미만이 아름다운 것은 아니다. 길 위에 핀 장미도 붉음을 뽐낼 수 있는 것은, 장미를 받쳐주는 녹 슨 철문의 미학이다. 그렇게 장미는 어느 집 담벼락에 펴서, 어떤 이에게는 향기를 어떤 이에게는 인사를 건 내고 있다. 4

글과 사진 승지


내리비치

Issue.

Culture.

영준이의 편지 4

다 된 작품에 추임새 넣기 36 만화, '기생수' 편

군필자들의 은밀하고 위대한 대담 10 이 달의 연극여지도 38 리얼 속풀이 프로젝트, 진짜 고무신 14 이 달의 문화행사 38

Univ.

데쓰노트 40 '당신'이 사라졌으면 좋겠어

대학생을 위한 대학칼럼 18 군가산점, 이제 그만~

온데 만데 오만데 42 달성공원 앞 번개시장

별난대학생 인터뷰 20 감성을 짓다. 건축학도, 심명보

발로 뛰는 나불나불 46 청년이 된 문화공간, 예술마당 솔

동아리 스토리 24 영남대학교, '자유의지'(FREEWILL)

직업탐구 보고서, 잡식생활 50 지역일간지 기자

학과 공감 대담 28

(협조: 매일신문 황희진 기자 님)

신문방송학과

웹툰작가 (협조: 박동선 작가 님)

Sex & Univ 32

아리랑을 들려주러 유럽에 간다 58

욕정 VS 애정 호기심에 나선 대구 기습 61 적나라한 연애상담 34

큰고개역의 큰고개는 정말 '큰'고개인가?

군화들을 위한 연애상담 감성스튜디오 2, 62

발행인 성동현 편집장 김애란 편집 박혜영 이새봄 정현지 박성림 오유진 이은민 석미경 박근아 기사 및 취재 김여름 김지희 김진나 문지현 박해인 송승태 조혜린 조고운 조가인 문제원 사진 이현석 이승지 오영준 이동률 마케팅 김용수 변현정 표제디자인 이선민 필진 김진아 인쇄 아인기획 성진인쇄 모디 2013년 7/8월 제14호(2013.7.1) www.facebook.com/magazinemodi modi.tistory.com 등록번호 대구, 라07695 등록일자 2012. 4. 6 발행처 모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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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ssue

photo essay

출연 영준 사진 형석 편집 애란

♬ ♬

2013년 7월 15일, 모디 사진기자 오영준 군이 입대를 합니다. 지금의 영준이와, '이전'의 영준이었던 선배들,

'미래'에 영준이가 될 동생들에게 이 노래를 띄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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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준이의 진짜 편지

사실 술자리나 친구들끼리 얘기를 나눌 때는 우스갯소리로 “여자도 군대를 가야한다. 남자만 군대에 가는 것은 성차

별이다.” 라는 이야기를 나누곤 했지만, 나는 어릴 때부터 국방의 의무는 남성들만이 이행할 수 있는 하나의 신성한 권리라고 생각했다.

가까운 지인의 말을 그대로 빌리자면, “사내새끼가 꼬X 달고 태어나 내 나라 내 가족 하나 지킬 힘 조차 없다는 게 얼

마나 쪽팔린 일이냐, 우리의 어머니들께서 달아주신 이 꼬X가 부끄럽지 않게 어깨에 힘 빡 주고 갔다오면 되는 거지.” 이 말은 내 입장에서 군대에 관한 생각과 거의 같다. 가장 젊고 힘이 넘치는 시기에 21개월이라는 시간을 썩히는 것이 아니라, 훈련병에 서 병장까지의 시간동안 조직생활과 군대사회의 생리를 경험하고 느끼며, 사회로 나가려는 한 마리 수컷의 조건, 즉 정신력과 체력을 기를 수 있는 곳이 군대라고 나는 생각한다.

거의 대부분의 남자들이 경험하고 오는 곳이고, 많은 형님들이 이미 갔다온 곳에 가는 만큼 새삼 거창하게 생각할 것

은 없을 것 같지만, 대부분의 이들이 경험했다고 해서 결코 하찮은 경험은 아니기에 각오를 다지고 입대할 생각이다. 다만 하고

싶은 말은, 국가의 부름에 응답하여 조국과 가족들, 친구들을 위해 신성한 국방의 의무를 다하는 군인들에게 조롱과 차별의 시

선이 아니라 더 많은 지지와 성원을 보내주십사 하는 것이 나의 바램이다. 끝으로 1950년 8월 포항전투에서 사망하기 직전에

이우근 학도병이 쓴 편지로 다시 한번 비장한 각오를 다지며, 무사히 잘 다녀오겠다. 충!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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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머니.

어머니. 죽음이 무서운 게 아니라, 어머님도 형제들도 못 만나다고 생각하니 무서워집니다.

상추쌈이 먹고 싶습니다. 찬 옹달샘에서

어쩌면 제가 오늘 죽을지도 모르겠습니다. 저 많은 적들이 그냥 물러갈 것 같지가 않으니 말입니다.

하지만 저는 살아가겠습니다. 꼭 살아서 가겠습니다.

♬ ♬

이가 시리도록 차가운 냉수를 한없이 들이키고 싶습니다. 아! 놈들이 다가오고 있습니다. 다시 또 쓰겠습니다.

어머니. 안녕! 안녕! 아, 안녕은 아닙니다. 다시 쓸 테니까요.

2013년 7월 15일 자로 자랑스런 대한민국 군인이 될 오영준 올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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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ssue

군필자들의 은밀하고 위대한 "훈련소에 관한 나의 기억" 육군 저는 논산 훈련소에서 훈련을 받았어요. 훈련소는 거의 비슷할 텐 데, 유격하고 행군이 많이 기억에 남 아요. 다행(?)이었던 건 전 입대했을 때 신종플루가 유행해서 화생방 훈련 을 안 했어요. 하하. 해군 해군은 진해 해군훈련소에서 훈 련을 받아요. 거기서 5주 동안 기초 훈련을 받고 지원한 보직에 따라 4주 동안 후반기 교육을 더 받아요. 가 입 소 기간이 끝나면 훈련소 내 수영장 에서 전투수영과 같은 해양훈련을 받 아요. 육군과 달리 행군은 따로 없어 요. 해병대 해병대는 포항에서 7주 동안 훈련을 받아요. 해병은 특이하게 ‘극 기주’라는 것이 있어요. 그 주에는 잠 을 4시간 정도밖에 못 자요. 밥도 평 소보다 적게 주고 거의 모든 시간을 훈련을 받아요. 6주째가 되면 진해에 천자봉이라고 해병의 상징적인 공간 에도 가요. 공군 저는 진주 공군사령부에서 6주 간 훈련받았어요. 진주공군사령부는 교육사령부, 전투사령부로 나뉘어 있 어요. 공군은 지원해서 들어오기 때 문에 수능, 생활기록부, 대학교 성적 을 보거든요. 그래서 대부분 학벌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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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직, 그 달콤 씁쓸함" 높아요. 시험을 2번 보고 성적순으로 자기가 원하는 곳으로 보직과 부대를 지원할 수 있어요. 시험은 적성검사, 필기시험, 훈련소에서 훈련받은 거 이렇게 3개 봐요. 훈련 마지막 주에 보직이 정해지고 나면 특기학교로 가 고. 거기서는 2주에서 8주 정도 보직 에 대해서 배워요. 의경 논산훈련소에서 4주 동안 훈련 받았어요. 육군이랑 똑같아요. 의경 도 육군이거든요. 다른 건 마지막 5 주차에 충청도 중앙 경찰학교에 가서 1주일 동안 강의 들으면서 필기하고 시험 보는 거. 가면 경찰에 관련한 책 한 권 주거든요. 그거 다 외우면 돼 요.

육군 전 군대 2년 동안 "차"에 대해 서 다 알고 가겠다는 마음으로 운전 병에 지원했어요. 처음에는 대대장 운전병으로 시작했어요. 실무를 익 히고 장군 훈련병으로 또 배치됐는데 장군이 휴대폰을 가져오라고 하는 거 예요. 처음엔 좋았는데 그게 족쇄가 돼서 밤이고 낮이고 없이 부르면 찾 아가는 비서 역할을 했어요. 운전병 은 확실히 다른 보직에 비해 편하긴 해요. 대신 일과 시간이 불규칙해요. 새벽에 자다가도 장군이 부르면 나가 야 하고 자기 시간이 거의 없어요. 해군 처음 배를 탈 때는 갑판병이었 어요. 갑판병은 페인트칠하고 배 외 부를 수리하는 보직이에요. 그건 신 청해서 하는 게 아니라 할 사람 있으 면 하는 거예요. 전문 지식이 필요한 것은 아니고 시키는 것만 하면 돼요. 그 다음에는 진해로 발령이 났어요. 거기서는 체육관 관리병을 했어요. 갑판병에게 비하면 신세계였죠. 하는 일은 주로 청소와 행사지원이에요. 행사는 배에서 단합대회나 체육대회 를 할 때 도와주는 거예요. 일과는 청 소를 하고 주로 텔레비전을 봐요. 해병대 전 그냥 전투보병이었어요. 흔한 보병. 보병은 하루 일과가 딱히 다른 게 없고 훈련밖에 없어요.


Issue

대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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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험이 끝난 어스름한 저녁, 미필자들, 그리고 군인의 세계가 궁금한 여성들을 위해 이미 그 자갈밭을 거쳐 현실로 복귀한 군필자들이 은밀하게 모였다. 이제 그 들의 위대한 대담을 시작한다.

취재 여름 혜은 제원 / 편집 유니스

"군대에서 군기란?" 공군 전 취사병이었어요. 주된 일은 병사들이랑 간부들 밥 해주는 거죠. 6시 30분부터 아침 시작이거든요. 우리 식당은 1,200명이 밥 먹는 곳 이었기 때문에 새벽 3시 30분부터 밥 짓기 시작했죠. 배식하는 사이에 식판 닦고 설거지하고 청소하고... 끝 나면 반은 재료를 받으러 가고 반은 점심 준비를 시작하죠. ‘짬 처리’라고 쓰레기 분리수거도 해요. 짬 수거해 가는 차에 다 싣고 청소하고, 9시에 일과를 마무리하죠. 밥은 안 먹는 날 이 없으니까 항상 바쁘죠. 의경 순찰, 시위, 경비 이렇게 3가지 로 나눌 수 있어요. 닭장 차타고 파출 소에 내려주면 2시간 동안 순찰해요. 저녁 8시부터 10시까지 낮 2시부터 5시 이렇게. 시위 훈련은 ‘짜박이’라 고 부르는데, 일 년에 4번 정도 해요.

육군 ‘~하지 말입니다’는 절대 못썼 어요. 안에서는 특별하게 군기가 심 하지는 않아요. 왜냐면 훈련이 너무 힘들거든요. 훈련장이 대구 반만큼 될 정도로 커요. 대신 모의 전투할 때 아군사살 하면 정말 크게 혼나요. 휴 가 잘릴 만큼. 해군 저희 부대에서 군기 잡는 법은 일병이 잘 못하면 전에 하던 걸 다시 시켰어요. 걸레를 못짜면 죽어라 그 것만 짜게 해요. 원래 일병 되면 안 해도 되는데 다시 이병이 해야 하는 걸 하는 거죠. 해병대 저희는 기수문화가 있어요. 다른 군인은 대대만 달라도 바로 아 저씬데 해병대는 기수제라서 어디에 서 복무했던 기수가 높으면 바로 인 사를 해야 해요. 그렇게 바로 상하관 계가 정해지죠. 군대에서 많이 혼났 던 것은 '압존법'때문이었어요. 더 높 은 선임 앞에서 선임을 말할 때는 높 여서 말하면 안 돼요. 예를 들어 대대 장한테 “소대장'님'의 명령입니다”라 고 하면 안 되는 거죠.

아, 그리고 이병은 일병에게만 말 걸 수 있었어요. 의경 지금은 안 그렇다는데, 저희부 대는 가혹행위가 심한 편이었어요. 자기가 먹은 식기는 자기가 다 닦는 데 시간 내에 못 끝내면 짬장(취사반 중에 대장)에게 맞았어요. 그때 명치 를 맞고 옆에 친구가 쓰러지기도 했 어요. 이런 일은 진짜 말해야겠다 싶 었는데, 군대 안의 가혹행위는 진짜 말하기가 어려워요. 부적응자로 찍힐 수도 있으니까 누구나 적응하려고 하 죠. 사실 민중의 지팡이인 경찰서 내 에서 폭행이 일어난다는데 회의가 들 더라고요.

공군 신병 때는 말을 4개만 할 수 있 어요. 잘 기억은 안 나는데, ‘네 알겠 습니다. 다시 하겠습니다. 잘못했습 니다. 알아보겠습니다.’ 이거였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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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훈련은 삽질이 아니야" 육군 한 달에 각기 다른 두 군대에서 저희 부대가 와서 4박 5일 동안 모 의 전투를 했어요. 저희 부대가 북한 군이 되는 거죠. 육군부대지만, 저희 는 정말 특이한 경우에요. 해군, 공군 빼고는 대부분의 부대가 우리 부대 로 모의 전투를 하러 와거든요. 그 기 간에는 실제 전쟁하고 똑같이 산에서 먹고 자고 훈련하고 해요. 사용하는 총에 레이저가 달려 있어서 총을 쏘 면 공포탄과 함께 레이저가 나가는데 훈련 중에 이 레이저에 맞으면 중상, 경상, 사망, 이렇게 떠요. 수류탄을 던지면 모의탄이라고 소리만 나고 컴 퓨터로 여기 폭탄이 터졌다, 하고 뜨 고요. 저희 부대의 승률은 정말 높았 어요. 제가 있을 때까지 742전 742 승. 해군 배를 타면 소화방수나 이함 훈 련 같은 여러 훈련을 해요. 소화방수 훈련은 배가 파손돼서 물이 샌다고 상황을 설정하고 물을 막는 거고, 이 함 훈련은 배가 손상됐을 때 바다로 뛰어드는 훈련이에요. 훈련은 상반기 하반기 1번씩 해요. 해병대 해병대는 유격전문, IBS(보 트상륙), 그리고 공수부대(비행기에 서 떨어지는 것) 3가지 훈련이 있어 요. 저는 IBS였어요. 이건 배를 타다 가 야간에 걸리지 않게 보트를 타고 육지로 상륙하는 거예요. TTT라고 실 제 전투와 똑같이 하는 훈련도 있어 요. 사단급 연대급 등 여러 가지가 있 으니까 훈련이 끝이 없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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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군 활주로 복구, 기지 방어, 비행 기 이륙 돕기 이런 훈련을 주로 해요. 또, 기지에 화생방 공격을 많이 하니 까 화생방 훈련도 많이 했어요. 저 같 은 경우는 취사병이니까 식당 부서졌 을 때 대비해서 야외에 식당 새로 짓 는 훈련을 했죠. 의경 아까 말했던 ‘짜박이’는 시위 진 압훈련이에요. 방패로 막고 건물 보 호하고, 화염병을 던지면 꽃게처럼 움직이고. 시위대 가두는 훈련, 연행 하는 방법에 대해서 배웠어요.

"너 영창가고 싶냐" 육군 훈련 때 컴퓨터 조끼를 입고하 는데, 그걸 입으면 상황실에 위치와 계급 이름이 떠요. 그런데 신병이 훈 련 도중에 바보같이 컴퓨터 조끼를 입고 탈영을 한 거예요. 그래서 GPS 추적으로 잡히고 영창 갔죠. 영창은 최대 30일이고 그 이상이면 육군교 도소로 가요. 영창은 군 생활은 연기 되는 대신 빨간 줄이 그이지는 않아 요. 운전병은 사고를 내면 영창을 가 요. 해군 대부분은 스마트폰을 쓰다가 영 창을 가요. 그것 말고도 여러 경우가 있는데 어떤 병이 휴가를 나갔는데 군복을 대충 풀어헤쳐서 입고 가다가 어떤 사람이 옷을 똑바로 입으라고 했는데 걔가 ‘아저씨가 뭔데요’ 해서 그 아저씨가 화가 난 거예요. 그런데 알고 보니까 그 아저씨가 해병대 중

사였어요. 그분이 해군 진해기지사령 부에 전화해서 그 병이 복귀 후 영창 을 간 적도 있어요. 해병대 영창이라는 게 인권이란 걸 찾아볼 수가 없어요. 중간에 헌병이 지키고 있고 주위에 감옥이 쭉 있는 데, 여기 있으면 화장실을 가는 것부 터 자거나 옷을 입는 것까지 다 감시 를 당해요. 어떤 병이 영창을 갔다 오 니까 정신을 못 차리더라고요. 공군 군기교육대는 머리 길다고 가거 나 복장 위반 등이 대부분이고 영창 은 탈영이나 관심 사병(고문관)을 괴 롭히다가 걸리면 가요. 의경 우리 중대의 가혹행위가 대구 MBC 뉴스에서 보도되는 바람에 30 명 중 10명이 영창을 갔었어요. 의경 영창은 경찰서 유치장에 들어가요. 그때 거의 중대 폭발 수준이었는데, 중대 해체하는 날 다들 울었죠. 결국, 누구나 모두 다 피해자라는 생각이 들었어요.

"휴가, 그 화려한 이름" 육군 저는 군 생활 중 총 120일을 휴 가 나갔어요. KCTC는 훈련이 힘드니 까 포상휴가가 많아요. 탱크 하나 잡 으면 휴가 4박5일을 받을 수 있어요. 휴가를 모아서 20일씩 나갈 수도 있 었어요. 이제는 휴가를 모아서 나가 는 게 안 된다고 하더라고요.


해군 저는 70일 정도 나왔던 것 같아 요. 길게는 못 나가고 짧게, 자주 나 갔어요. 진해 와서는 한 달에 한 번꼴 로 나갔어요. 해병대 저희는 휴가가 진짜 적었어 요. 반드시 나가는 휴가는 모든 군인 공통인 위로휴가와 1, 2, 3차 정기휴 가가 있어요. 저는 여기에 포상휴가 를 2번 더 받았어요. 그래서 다 합쳐 서 총 50일이 안 돼요. 공군 외박, 연가, 위로 휴가, 포상휴 가가 있었어요. 공군은 6주마다 2박 3일씩 보장받아요. 근데 취사병 같은 경우에는 주말에 못 쉬니까 6주에 4 박 5일을 받았죠. 연가는 정기 휴가 개념인데 일, 이병 때는 10일, 상병 10일, 병장 11일이에요. 그리고 상 점 10점 모을 때마다 1번 나갈 수 있 어요.

요. 그냥 족구, 농구하고... 기억에 남 는 건 상병 밑으로 슈퍼스타k를 해서 1등 하면 병장이 될 기회를 줬어요. 모든 업무에서 열외 되는 거죠. 그리 고 또 포켓몬스터라고(ㅋㅋㅋ) 후임 하나가 포켓몬이 되어서 ‘나와라!’ 하 면 후임이 예쁨 받을 동작을 만들어 서 해요. 또, 그 후임을 데리고 나가 서 다른 소대 포켓몬과 싸우기도 했 죠.

해병대 계급이 낮을 때, 과자파티에 참가 못했던 적이 있는데, 과자를 종 류별로 제 걸 챙겨놨더라고요. 그렇 게 사소한 게 정말 감동이었어요. 제 존재감이 느껴지잖아요. 아, 그리고 선임이 되고 나서 후임을 많이 괴롭 혔었는데, 그 후임이 제 생일에 칫솔 하나를 선물로 주더라고요. 해준 것 도 없는데 선물을 주니까 감동이었어

공군 취사병이라 한가한 시간이 없 으니까 부대에서 많이 편의를 봐줬 어요. 원래 낮에는 족구 하면 안 되는 데, 취사병은 일과시간에도 족구하고 그랬죠. 그리고 부대 목욕탕은 예약 하고 사용해야 하는데, 저희는 예약 없이 사용할 수 있었죠.

공군 후임들 생일이면 미역국 끓여줬 어요. 취사병은 생활관에서 자는 애 들이 있고 식당에서 자는 애들이 있 는데, 식당에서는 점호를 안 해서 후 임들 많이 혼낸 날에는 야식 만들어 주기도 했죠.

의경 근무하면서 라면 먹고 여자 번 호 따기. 단체 영화 외출 가거나 목욕 외출 가기도 했어요.

요.

의경 우리는 때리고 그런 게 너무 심 해서 감동이 없어요. 그리고 ············

의경 의경은 두 달에 한 번씩 무조건 휴가를 나갔어요.

"뜨거운 전우애" "군대에선 무얼 하고 노는가"

해군 플스, 노래방 기계, 당구장? 다 른 부대로 비슷한 것 같아요.

육군 보통 다른 군인들의 일과는 5시 에 끝나는데 제 일과는 밤 11시에 끝 났어요. 일과가 늦게 끝나니까 후임 들이 라면도 끓여주고 수고하신다고 쪽지도 주고 했는데 그게 정말 고맙 더라고요. 제 생일에도 다 자는 줄 알 고 밤늦게 방에 들어갔는데 갑자기 침대에서 폭죽 터트리면서 파티를 해 줬어요. 아직도 그 후임들과 연락해 요.

해병대 저흰 저런 게 하나도 없었어

해군 감동? 딱히 없었던 것 같은데.

육군 저희는 레이저 나오는 총이 있 으니까 그 총으로 써든(게임)이랑 똑 같이 서바이벌 게임을 했어요. 이걸 로 피엑스내기도 했죠.

............ 생각보다 활기차고 생각 외로 배꼽 잡았던 이번 대담은 의외로 너무 길 어졌고 결국 그들의 나머지 구구절절 한 이야기는 네버엔딩 스토리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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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ssue 취재 조고운 / 편집 유니스

"리얼 속풀이 프로젝트" 나라를 위해 하루 하루를 살아가는 군화오빠들도 있지만, 이 코너에서는 이런 오빠들의 뒤에서 묵묵히 뒷바라지를 하고 있 는 우리 고무신 언니들의 이야기를 담아봤습니다. 물론 오빠들 만큼 힘들기야 하겠습니까만 언니들도 바깥세상에서 나름대 로의 고충이 있답니다. 지인들의 ‘맞아, 맞아’ 한마디에 힐링이 되는 언니들을 위하여 마련한 속 풀이 프로젝트. 고무신언니들! 언니만 남자친구를 기다리고 있는 게 아니랍니 다. 언니만 힘든 것도 아니에요. 언니만 지쳐서 헤어지는 것도 아닙니다.

여기, 언니 같은 사람이 또 있어요!

군대 보낼 때는 기분이 어떤가요?

............ >>등장인물 곰신1 고무신 3개월 차. 인터뷰가 끝나고 집에 가면서까지 편 지를 보내는 정성을 보여줌. 곰신2 고참 고무신. 1년 6개월 차. 인터뷰 내내 쿨하고 담담한 모습을 보여줌. 곰신3 헤어진 지 반 년 된 고무신 경험자. 현역 고무신들의 발 언에 격한 공감을 함.

남자친구랑 얼마나 만나고 군대 보낸 거예요? 곰신1 저는 2년 정도 만나고 군대 보냈어요. 곰신2 제 남자친구는 백일도 안 돼서 군대 갔어요. 밖에 서 만난 시간보다 기다린 시간이 더 길어요. 근데 이제 4개월 밖에 안 남았으니까 괜찮아요. 곰신3 군대 보낼 때 당시에 한 1년 정도 만났을 때였어 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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곰신1 남자친구가 군대 가기 이틀 전이 저희 커플 2주 년이었거든요. 그래서 당일치기로 서울에 놀러갔다 왔 는데, 서울역에서 울어버렸어요. 그 다음 날 만나서도 또 울고. 그런데 오히려 남자친구가 군대 가는 당일엔 눈물이 안 나더라고요. 담담하고. 마음의 준비를 해서 그런가? 어쨌든 당일엔 괜찮았는데, 그 다음 날부터 이 상하게 또 눈물이 나는 거예요. 그 때는 정말 한동안 운 기억밖에 없어요. 보내고 나서 한 이틀 정도는 밤에 많 이 울었어요. 낮에는 일 하고 바빠서 잘 모르는데 밤에 생각이 나더라고요. 언제 제대하나 생각하다가 배게 다 적시고 그랬어요. 곰신2 저도 보내기 전에 몇 번 울었어요. 남자친구랑 만 나서 잘 놀고 헤어지기 직전에 길거리에서 갑자기 슬퍼 져서 울고 그랬죠. 입소하는 날 주려고 편지를 쓰는데, 엄청 슬픈 노래 틀어놓고 울면서 3시간 동안 편지 썼어 요. 네가 없으면 누가 나한테 이런 걸 해주니...이런 내 용의 감성적인 내용으로. 남자친구 입소하는 날 아침에 편지를 줬었는데, 기차 안에서 첫 장 읽자마자 울었다 고 하더라고요. 애틋했죠. 그 후에는 계속 바쁘게 살려 고 했어요. 남자친구가 없다는 게 계속 생각나는 게 싫 은 거예요. 그래서 보낸 날에 알바 면접을 보고 그 날부 터 알바 했어요. 곰신3 남자친구가 입소하던 날에 폰이 고장 난 상태였 어요. 그래서 노트북으로라도 연락하려고 노트북을 들 고 강의실에 들어가서 제일 뒷자리에 앉았는데, 교수님 이 갑자기 앞자리에 앉으라는 거예요. 결국 연락도 못 하고 강의 내내 교수님 바라보면서 울었던 기억이 있어 요. 교수님께서 당황하셔서 얘 왜 이러냐고 묻고 저는 계속 얼버무리기만 했었어요.


남자친구가 가장 보고싶을 때는 언제인가요? 곰신1 장소불문하고 커플들 보면 항상 보고 싶죠. 제가 카페에서 알바를 하는데, 들어올 때부터 손잡고 들어와 서 커피 마시는 내내 손잡고 있는 커플들이 굉장히 많거 든요. 그런 모습 볼 때마다 외로워요. 곰신2 저는 군대에서 전화가 자주 와서 많이 보고 싶어 하는 편은 아니에요. 그래도 힘들거나 기쁜 일이 생겨서 이런 것들을 말하고 싶을 때는 보고 싶어요. 사실 전화 로만 얘기하기엔 뭔가 부족하잖아요. 얼굴 마주하고 얘 기하고 싶을 때, 남자친구가 보고 싶어요. 곰신3 저는 비오는 날 커플들이 같이 우산 쓰고 걸어갈 때 가장 보고 싶더라고요. 남자친구를 군대에 보내놓고 도 커플들을 볼 때 사실 별 생각이 안 들었는데, 비오는 날 갑자기 너무 보고 싶어졌어요. 그래서 집에 가면서 울기도 했었죠. 간 지 얼마 안 돼서 장마철이 오는 바람 에... (곰신1을 향해) 이번 주부터 장마라는데... 곰신1 ㅠㅠ

남자친구는 휴가를 자주 나오나요? 곰신1 훈련병이었다가 이등병이 된 지 얼마 안 돼서 휴 가는 한 번도 안 나왔어요. ㅠㅠ 곰신2 처음에는 3, 4달에 한 번씩 나오다가 지금은 3달 에 2번 정도 나와요. 곰신3 다들 훈련소 끝나고 백일 지나면 휴가를 한번 나 온다던데. 제 전 남자친구는 사정이 생겨서 신병휴가를 거의 7개월 만에 나왔어요. 제가 8개월 정도 기다리고 헤어졌는데 그 사이에 딱 한번 나온 거죠.

휴가 나오면 제일 하고 싶은 것은? 곰신1 저는 그냥 항상 가던 곳에 가서 평소에 하듯이 똑 같이 데이트하고 싶어요. 이번에 휴가 나오면 첫 휴간데 이게 2박 3일 밖에 안 되거든요. 또 2박 3일 내내 저만 만날 수도 없는 거니까 사실 시간도 얼마 없어요. 특별 한 것보단 소소하게 원래 있었던 때처럼 데이트 한번 하 고 싶어요. 곰신2 저는 남자친구를 기다리면서 하고 싶은 일들이나 보고 싶은 영화를 다 생각해놔요. 매번 전화하면서 ‘어떤 영화가 재밌다더라.’ 이런 얘기도 하죠. 정작 남자친구 는 휴가 나오면 친구들이랑 저랑 다 같이 술 마시고 이 런 걸 좋아해요. 술을 그렇게 마시고 싶어 하더라고요. 또, 저는 곰신1님이 소소한 것을 하고 싶다고 한 것과는 반대로 여행이나 특별한 일을 하고 싶어요. 여행을 간다 면 그 하루는 온전히 서로를 위해 쓰는 거니까, 그게 의 미 있고 좋은 것 같아요. 곰신3 저는 그냥 다 하고 싶었어요. 근데 영화나 연극 보는 건 안 하고 싶었던 게, 뭔가를 보러 가면 그 시간에 는 남자친구 얼굴을 못 보잖아요. 2시간 동안 시간만 버 리는 것 같다고 생각했어요. 그래서 카페를 가거나 집에 바래다주거나 그런 걸 하고 싶었는데...결국 못 했죠.

전화는 자주 오나요? 곰신1 5주 동안 훈련소에 있으면서 딱 한번 전화가 왔 었어요. 원래 수료식 오라고 집으로 해야 하는 전화였는 데, 저한테 한 거죠. 하고 싶은 말은 정말 많았는데 받자 마자 얼떨떨하고 그래서 말도 제대로 못 하고 대성통곡 했어요. 곰신2 제 남자친구는 훈련소에서도 전화가 많이 왔었어 요. 윗사람들한테 잘 보였는지 폰도 많이 빌린 것 같더 라고요. 주말에 자주 전화가 왔는데, 제가 주말 알바여 서 전화도 길게 못 하고 그랬어요.

............ 주변 사람들 반응 중에 상처가 되는 것들이 있다면? 곰신1 ‘군대 금방이다.’, ‘다 헤어지게 되어 있다.’ 이런 말들을 들을 때 진짜 힘들어요. 주변 사람들이 자꾸 헤 어진 얘기를 하니까. 그런데 그게 가까운 사람들도 아니 고 진짜 먼 사람들, 심지어는 인터넷에서 봤던 황당한 얘기들까지 다 가져와서 하니까 짜증나요. 난 그런 얘기 들을 필요도 없고, 듣고 싶지도 않은데. 군대 갔다 온 남 자들이 그런 얘기를 제일 많이 해요. 곰신2 저는 주위에 전역한 오빠들이 좀 많아요. 그 오빠 들은 본인들 일이 아니라고 막 말하죠. 상병 때 쯤 되면, ‘이제 차야할 때가 됐나, 아니면 나가서 차야하나.’ 이런 고민도 한다고 말하고, 차일 준비를 하라는 말도 해요. 처음에는 그런 얘기 듣다가 마음이 상해서 진짜 하지 말 라고 화도 내고 그랬는데, 이제는 그냥 고개 끄덕이면서 대수롭지 않게 대답하고 말아요. 그래도 여전히 마음은 불편하죠. 가끔 남자친구한테 전화해서 내가 왜 이런 말 을 들어야 하냐고 울면서 얘기하면 남자친구가 굉장히 미안해 해요. 그러면 또 저는 괜히 말 꺼냈나 싶어서 또 미안해 하고. 곰신3 저도 고무신일 때는 남들한테 이런 말을 듣는 게 정말 싫었어요. 그런데 제가 헤어지고 나니까 어느 새 저도 주변에 있는 고무신 친구들한테 그런 말들을 하고 있더라고요. (멋쩍은 웃음) 헤어지면 새 삶이 시작되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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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 이럴 때는 솔직히 헤어지고 싶다!

............ 군인인 내 남자친구, 이럴 때 짜증난다! 곰신1 저는 오해했던 적이 있어요. 전화 왔을 때, 목소 리도 너무 딱딱하고 전화도 금방 끊는 거예요. 그래서 마음이 상했었는데, 알고 보니까 훈련소에서 전화할 때 옆에서 시간을 재고 있었다고 말하더라고요. 3분 밖에 통화를 못 하니까 목소리도 딱딱해지고 그랬던 거죠. 곰신2 남자친구가 이등병일 때는 전화 오면 항상 힘들 다는 얘기 밖에 안 했어요. 다 들어주고 위로도 해줄 수 는 있는데, 힘든 얘기를 계속 들으니까 그게 쌓여서 제 가 더 힘들어 지더라고요. 그 때는 좀 짜증났어요. 곰신1 어? 저는 오히려 반대예요. 남자친구가 계속 살 만하다고 말하는데 그게 포장해서 하는 말이라는 게 다 느껴지거든요. 저도 힘든 거 다 알고 있는데 괜히 괜찮 은 척 하지 말고 차라리 사실대로 말해줬으면 할 때가 있어요. 곰신3 저는 군인인 거 생색낼 때 짜증났어요. 전화했을 때 ‘여보세요?’하니까 갑자기 ‘통신번호 몇 번 누구입니 다. 아, 아니...’ 이렇게 얘기하는데 저는 그게 너무 싫었 어요. ‘아니, 군대 간 걸 허세를 부리나?’ 이런 생각이 들 더라고요. 심지어는 옷을 입는 과정을 설명해줘요. 내 피를 입고 뭘 입고 그 위에 야상을 입는데, 그래도 추 워. 이런 식으로요. 그것도 군대용어를 잔뜩 섞어서. 또, ‘그동안 전화 못 해서 미안해. 그동안 무슨 일이 있었냐 면...’ 이런 식으로 얘기하는 것도 싫어요. 제가 그 상황 에 없다고 본인만 아는 것처럼 이야기를 하는데, 나는 이미 수많은 군인들한테 받은 전화로 다 알고 있는 내용 을 본인이 새로 알아놓고 대단한 일인 마냥 얘기하는 거 니까 듣는 입장에서는 짜증나죠. 18

곰신1 저는 입소하고 나서 이틀 후에 순전히 호기심으 로 남자친구 페북에 들어가 봤는데, 거기서 봐서는 안 될 걸 본 거죠. 간추려서 말하자면 대화한 내용 중에 저 한테 얘기를 안 하고 어디 가서 뭘 했다는 그런 내용을 봤어요. 그 내용은 저한테 얘기할 수 없는 종류의 내용 이었고요. 그 땐 정말 보내고 나서 혼자 애틋해하고 있 었는데, 그걸 보는 순간 정이 뚝 떨어지더라고요. 너무 실망을 해서 보고 싶지도 않고 목소리도 듣기 싫고 그냥 밉고 화나서 눈물이 났어요. 3일 정도 정말 많이 힘들었 죠. 처음엔 얘도 힘든데 참아볼까 하다가 결국 편지에 다 써버렸어요. 그러니까 전화 와서 상황을 설명해주던 데, 아직도 좀 찝찝하지만 옆에 없는 애 미워해봤자 좋 을 것도 없고 해서 그냥 넘어갔어요. 지금은 안 그런 척 하고 있지만 계속 생각은 날 것 같아요. 곰신2 그런 적은 한 번도 없어요. 주변 사람들은 저한 테 대단하다고 하는데 사실 남자친구가 대단한 거죠. 전 화 많이 해주고 휴가 나오면 어떻게든 제 스케줄 맞춰서 보려고 하면서 마음 안 변하게 잘 해주니까. 저도 고무 신 생활을 1년 6개월 정도 하면서 이젠 나름의 철학이 생겼어요. 그냥 내가 할 일하면서 휴가 나오면 만나고, 전화 오면 받고 그렇게 생활하는 게 제일 나은 것 같다 는 거요. 그렇다고 기다리던 여자들이 헤어지자고 말하 는 걸 욕할 필요는 없다고 봐요. 군대에 있으면서 차이 는 게 힘든 일인 건 알겠지만 기다리는 사람들은 뭐 힘 이 펄펄 나서 기다리는 건가요? 아니잖아요. 사실 밖에 서 만나도 2년 사귀는 거 힘들어요. 제 생각에 헤어지는 사람들은 군대와는 상관없이 어떻게든 헤어졌을 사람들 인 거예요. 그냥 인연이 아닌 거죠. 곰신3 기다린다고 생각을 하면 너무 힘든 것 같아요. 제 주변에 지인이 한 말인데, 군대 보낼 때 울고불고 난리 친 커플이 더 일찍 헤어진대요. 왜냐면 그 여자는 외로 움을 못 견디고 계속 기다리고 있다는 생각만 하니까 시 간도 더 안 가는 것 같고 그런 거죠. 오히려 안 기다릴 것 처럼 쿨 하게 보낸 커플이 더 오래 간대요.

곰신3님은 정말 헤어지셨는데, 헤어진 이유가 뭔가요? 곰신3 보내고 나서 3개월 동안 정말 많이 힘들었어요. 알바하다가도 울고 그랬으니까. 근데 3개월이 지나는 순간 갑자기 괜찮아지는 거예요. 그러면서 점점 마음이 식은 것 같아요. 원래 전화를 하면 마지막에 사랑한다고 말하고 끊었었는데, 점점 그 말이 안 나오더라고요. 그 래서 남자친구도 제가 식었다는 걸 느꼈던 것 같아요. 작년 10월에 첫 휴가를 나왔는데, 그 때 헤어지자고 했 어요. 너무 갑작스럽게 헤어진 거라서 헤어질 때까지 시 간이 좀 걸렸죠. 정말 헤어진 건 11월이었어요. 근데 그 남자친구는 아직도 헤어졌다는 사실을 받아들이기 힘든 것 같더라고요. 헤어지는 데는 큰 이유가 없는 건데. 그 냥 좋고 싫고의 차이인 건데. 군대에 있는 사람들에게는 시간이 멈춰있기 때문에 밖에 있는 사람들이 자신을 잊 는다는 걸 잘 이해 못 하는 것 같아요. 그래서 제가 마음 이 식은 것도 받아들이기 힘들어하나 봐요.


고무신이 되면 좋은 점은? 곰신1 저는 아직은 좋은 점보다 단점이 더 많이 보여요. 초기여서 그런가. 굳이 하나 꼽자면 남자친구 생각을 안 하려고 바쁘게 더 열심히 산다는 점? 곰신2 저는 애틋해지는 거요. 그리고 아날로그적인 연 애를 하게 되요. 누군가의 전화를 그 시간만 되면 기다 리는 거잖아요. 휴가일을 손꼽아 기다리면서 서로가 서 로를 기다리기도 하고. 밖에 있으면 전화를 걸 때도 폰 에서 찾아서 바로 걸면 되는데, 군대에서는 제 전화번호 를 기억해서 숫자를 하나하나 눌러가며 전화를 걸 거 아 니에요. 또, 카톡이나 문자 대신에 몇 시간씩 편지를 쓰 잖아요. 그 시간만큼은 내가 남자친구를 위해 쓰는 시간 이 되는 거죠. 이런 것들이 다 의미 있어 지는 게 장점이 에요. 곰신3 제 시간이 생기니까 친구들이랑 가까워질 수 있 다는 거요. 제 전 남자친구 같은 경우에는 친구를 만나 러 간다고 하면 별로 안 좋아하는 스타일이었기 때문에 약간 구속받는 느낌이 있었거든요. 그런데 군대에 가고 나니까 비는 시간에 동기들이랑 카페도 가고 그런 건 좋 더라고요.

나, 이런 것까지 해봤다! 곰신1 제 남자친구는 아직 짬(?)이 안 돼서 소포는 못 보내고 편지만 보내 봤어요. 아직 소포는 못 받는대요. 편지는 훈련소에 있을 때 일주일에 네다섯 번 보냈었는 데, 우표 값이 얼마 안 할 것 같지만 쌓이니까 많더라고 요. 규격봉투는 270원이고 컬러봉투는 360원인데 처 음에는 컬러봉투 하다가 이제는 규격봉투로 보내요. 남 들은 폭탄편지(매일 편지를 써서 100통 정도의 편지를 서류봉투에 넣어서 한꺼번에 부치는 것) 이런 것도 해준 다는데 그건 힘들어서 못 하겠어요. 곰신2 저는 발렌타인 데이 때, 수입과자 5, 6만원어치 를 소포로 보내봤어요. 5kg이 넘게 나가는 소포였는데, 배송비만 6500원이었어요. 사실 고무신들 돈 많이 써 요. 곰신3 맞아요. 휴가 나오면 뭐 해줘야 되지, 소포도 보 내야 되지... 곰신2 근데 저는 일, 이병 때는 소포 안 보냈어요. 보내 봤자 선임들한테 다 뺏기니까요. 다른 사람들은 남자친 구 잘 봐달라고 일부러 보내기도 한다는데, 저는 솔직히 잘 모르겠어요. 그 선임들이랑 내가 볼 사이도 아니고, 아무런 연관이 없는 사람들인데 그렇게까지 할 필요가 있나 싶어요. 상병 때쯤 되면 자기 소포는 자리가 알아 서 챙길 수 있으니까 그 때부터 보냈어요. 그리고 휴가 때 찍은 사진이나 제 셀카 인화해서 보내기도 했어요. 가끔 기분 좋을 땐, 사진에 포스트잇으로 하나하나 설명 도 써 붙여줘요. 곰신3 저는 소포는 보내본 적이 없고 편지만 보내봤어 요. 초기에는 하루에 한 통씩 편지를 썼었는데, 나중에 바빠지니까 많이 못 쓰겠더라고요. (웃음)

면회는 가 봤나요? 면회 가면 분위기가 어떤가요? 익명 저는 한번 가봤어요. 강원도여서 왕복 11시간이 걸렸는데, 북부정류장에서 고속버스를 타고 근처에 가 서 마을버스를 타고 또 택시까지 타야했죠. 그렇게 가서 만난 시간은 3, 4시간 정도였어요. 도시락 같은 건 못 싸가고 케이크를 사 가서 거기서 치킨을 시켜먹었어요. 원피스를 입고 갔는데 근무하던 사람들이 다 쳐다보더 라고요. 진짜 귀여웠던 게...제가 남자친구랑 있었는데 갑자기 문이 살짝 열리더라고요. 그리고 머리통 네 개가 일렬로 불쑥 들어오는데, 저를 구경하러 온 거였어요. (웃음) 다른 사람들은 면회 갔다가 집으로 돌아오는 길 에 그렇게 쓸쓸하다던데, 저는 그냥 남자친구를 보고 왔 다는 게 좋았어요. 그렇게 쓸쓸하진 않더라고요.

마지막으로 남자친구에게 하고 싶은 말! 곰신1 ‘나 이럴 때 솔직히 헤어지고 싶다’ 이 부분 읽어 봤지? 그러니까 나한테 잘해. 곰신2 남자친구가 진짜 부러워요. 저 같은 여자친구 만 나서. (웃음) 나 같은 여자친구 둬서 좋겠다, 너. 그리고 나도 놀 거 다 놀면서 편하게 기다리는 거 아니니까 밖 에서도 힘들다는 거 알아줘. 곰신3 건강하게 전역하기를 바랄게. 사실은 나도 힘드 니까 너만 힘든 거 아니야. 나도 밖에서 충분히 대가를 치르고 있어. 이별이 꼭 차인 사람에게만 힘든 건 아니 라는 걸 알아줬으면 해.

"리얼 속풀이 프로젝트" "리얼 속풀이 프로젝트"

진짜 고무신 고무신 진짜 -끝-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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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학생을 위한 발칙칼럼

이야기. 째 번 덟 여

~ 만 그 제 이 군가산점,

글 무지랭이 편집 은민

1. 고마 해라. 마이 무따 아이가. 또 시작이다. 1999년부터였으니 장장 14년이다. 강산도 변한 다는 세월이 한 번 지나고, 다시 절반이 되도록 ‘군 가산점제도 논란’만큼은 요지부동이다. ‘가산점’이 얼마나 대단하기에 강을 파고 자전거길 만드는데 22조도 아무렇지 않게 척척 쓰는 나라 가 대통령이 바뀌고, 국회가 바뀔 때마다 갑론을박해놓고도 결론 이 나지 않는 걸까? 주장에 따라 조금씩 다르기는 하지만 군 가산점 제도의 내용은 ‘공무원 시험에 가산점을 주자’ 정도를 벗어나지 않는다. 아무리 공무원이 지상 최고의 직업이라도 전체 병역의무 이행자의 공무 원화를 목적으로 하지 않은 다음에야 군 가산점 제도는 병역의무 를 이행한 절대다수에게 무의미한 공염불에 불과하다. 그럼에도 끊임없이 ‘군 가산점 제도’를 도입하자는 주장이 계속 되는 이유는 무엇일까?

군대

꽃놀이패

병역의무

군가산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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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꽃놀이 패', 군 가산점 제도

3. 연봉 500만 원의 군대가 된다면

병역의무를 다한 국민에게 합리적인 보상이 필요하다는 건 이미 충분한 사회적 합의가 만들어져 있다. 1999년 군 가산점 제도를 위헌 결정한 헌재 역시 사회적 약자의 권리를 침해하는 제도의 문제점을 지적했을 뿐 보상의 필요성은 인정하였다. 월급의 현실화, 복지 환경 개선, 제대 후 지원 프로그램, 연금 가 산 등 다양한 해법이 있음에도 문제점이 분명한 ‘군 가산점 제도’ 가 계속 주장되는 것은 우리 정치의 후진성에 그 원인이 있다. 이슈파이팅이 쉽고, 접근 방법이 단순하며, 도입과정에 저항이 적고, 대중의 지지까지 있는 ‘꽃놀이 패’를 하이에나 같은 정치인 들이 놓칠 리가 있겠는가. 제도의 실상이 대상 범위가 지나치게 협소하고, 헌법 정신에도 맞지 않으며, 장애인 등 사회적 약자의 피해가 명백해서 병역의무에 대한 보상으로의 기능하지 못한다 는 점은 그들에게 별로 중요하지 않아 보인다. 일부에서는 군 가산점 제도가 다른 방법들에 비해 비용이 많이 들지 않기 때문에 ‘현실’적으로 병역의무에 대한 보상으로 가장 적합하다는 논리를 편다. 하지만 이런 주장들이야말로 진짜 ‘현 실’을 무시한 주장에 불과하다. 지금 대한민국은 해방 직전 혹은 전쟁 직후의 폐허에 가까웠 던 나라가 아니다. 경제규모 14위(GDP 기준, 2011)에 국방예 산 중 인건비(2012)를 9조 2,677억 원이나 쓰는 군사대국이 다. 하지만 전체병력 중 70%를 차지하는 일반병사의 인건비는 약 5,302억 원으로 5.7%만 차지하는 열악한 상황이다. 이는 1960년 3월을 기준으로 9급 공무원 초임의 1/3 수준이었던 병 장의 월급보다 현격히 낮은 수준이며, 신성한 국방의 의무를 이 유로 이 사회가 얼마나 많은 희생을 강요했는지를 보여준다.

군대와 관련한 많은 문제의 근본 원인은 우리 사회가 무관심을 넘어 병역의무를 너무 하찮게 여기기 때문이다. 싼 맛에 쓰는 부 품처럼 사회 곳곳에서 소중한 청춘의 한 때를 병역의무를 이유로 당연한 듯이 착취하고 낭비한다. 문제 해결은 뜻밖에 간단하다. 병역의무에 합리적이고 정당한 보상을 하면 된다. 소중한 것은 쉽게 낭비되지 않는다. 시작은 연 봉 500만 원부터다. 일반 병사의 연봉이 500만 원이 되면 우선 사회가 군대를 바라 보는 관점이 달라질 것이다. 머릿수로 하는 비효율적인 작업, 상 급 장교의 잔심부름 병사, 국립대 도서관에서 책이나 정리하는 등의 병력자원 낭비 역시 자연스럽게 조정될 것이다. 정훈교육으 로는 불가능했던 병영 문화 개선이 쉽게 될 것이며, 병력 이탈자 나 사고 역시 줄어들 것이다. 특히 군인이 집에서 용돈을 받아 생 활하는 코미디는 당연히 사라질 것이며, 제대 후 병사들의 사회 복귀에도 상당한 도움이 될 것이다. 그리고 경제적 보상과 함께 필요한 것이 명예다. 너희의 희생으로 조국과 내 가족이 지켜진다는 말을 훈련소에서 만 할 것이 아니다. 대강 자른 출력물에 코팅을 두른 전역증으로 무엇이 명예로운 것인지 알 방법은 없다. 훈장이 어렵다면 대통 령이 감사 인사라도 해주자. 대한민국에서 군대를 다녀왔다면 그 만한 인사는 받을 자격이 있다. 잡초 무성한 자전거길보다 병사들에 쓰는 돈이 아까운 나라에 안전한 미래가 존재하기 만무하다. 정말 대한민국의 국민이라면 병역의무자 지원에 대한 실질적인 방안을 요구해야 한다. 한심한 정치인들이 더는 군 가산점제를 ‘꽃놀이 패’로 쓸 수 없을 때, 병 역의무 이행자에 대한 정당한 사회적 보상과 안전한 대한민국의 미래가 보장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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별난 대학��� 인터뷰

감성을 짓다. 건축학도, 심명보 취재 지희 혜은 사진 혜은 편집 새봄

심명보는 진지한 청년이었다. 자신의 삶과 주변의 것들을 결코 쉬이 여기지 않는. 그러면서 꾸밈없이, 그리고 끝없이 자신이 이야기를 만들고 나누고 싶 어하는 감성청년이었다. 간만에 '청년'다운 청년을 만났다.

자기소개 부탁드릴게요. 안녕하세요, 계명대학교 건축디자인학과 08학번 4학년 심명보라고 합니다.

#1 영화는 방황하는 나 자신을 반영한 것 이번에 만드신 독립영화에 대해서 설명해 주실 수 있을까요? 영화 제목은 <Away from home>이에요. 내용은 젊은 사람이 꿈꾸면서 방황하는 걸 담으려고 했어 요. 학교에서 막차를 타고 집으로 가는 길에 차 안 에서 졸게 되는데, 갑자기 낯선 곳에서 깨 방황하게 되죠. 결국 그 건 버스에서의 꿈이었고, 다시 집으 로 돌아가는 이야기에요. <Away from home>이 라는 제목은 말 그대로 집을 떠나온 것을 말하는 거 고요. 왜 영화를 만들었나요? 예전부터 하고 싶은 게 많았어요. 꿈도 많았고, 그 중에 건축디자인도 있어서 건축디자인학과를 들어 왔는데, 막상 들어와서 활동하다보니 고민이 생겼 어요. 때 마침 영화를 찍었던 시점이 3학년이었어 요. 지금 제가 해야 하는 일이 맞는 건지, 건축일은 맞는 건지, 나한테 맞는 다른 일은 없는 건지 한참 생각이 많아질 때였죠. 그래서 여러 가지 시도를 했 어요. 나한테 맞는 걸 찾기 위해. 그동안은 대학교 에서 대학 교수에게 평가를 받고, 집에서 아버지에 게 평가를 받아왔는데, 그런 주위의 평가나 시선으 로 부터 독립을 하고 싶었어요. 아르바이트나 여행, 기자 활동 같은 여러 가지 경험을 통해서 스스로 무 언가를 만들어보려고 했어요. 영화를 만든 것도 그 시도들 중 하나에요.

22 *심명보 감독 영화 <Away from Home> 중에서


처음에 일어나니까 낯선 기찻길 옆이잖아요. 왜 기

원래 독립영화가 아니었군요.

찻길인 건가요?

네. 처음에는 영화가 아닌 에세이와 사진 위주의 포

제가 배낭여행을 많이 했어요. 일본 도쿄, 뉴욕, 홍

토에세이를 만들려고 했어요. 영상은 포토에세이

콩, 싱가포르 등. 그러다보니 여행을 하는 과정이

전의 기획영상으로, 그러니까 그냥 전시용으로 찍

인생과 비슷하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낯선 곳은 어

은 거예요. 그런데 전시를 하기에 돈도 모자랐고 영

쩔 수 없이 여행을 떠나야 하는 장소잖아요. 거기선

상이 독립영화처럼 나왔다는 말이 많아서, 독립영

살 수가 없으니까. 졸업이 그래요. 내가 원해서 하

화로 바꾸어서 결과물을 내놓은 거지요.

는 게 아니라, 나는 공부를 더 하고 싶을 수도 있는 데 아버지와 대학의 압박에 등 떠밀려서 사회로 밀

영화를 찍을 수 있었던 영감은 어디서 나왔나요?

려나가는 거죠. 기찻길은 떠남, 여행을 떠올리게 하

평소에 블로그에 일기나 글을 많이 써요. 그게 2년

잖아요. 기찻길이라는 생경한 장소에서 눈을 뜨는

치가 쌓였어요. 제가 쓴 인생 일기를 가지고 저의

것은 낯선 사회로 어쩔 수 없이 여행을 떠난다는 것

인생프로젝트를 쓰고 싶어서 마음에 드는 6개의

을 암시하는 거예요.

스토리를 골라서 하나의 스토리로 합쳤어요. 그 6 개의 스토리마다 각각 글과 사진이 있어요. 말했지

영화 속 주인공이 떠나는 건 어디로 특정 목적이 있

만 본래는 독립영화를 만드는 게 아니라 그것을 각

는 게 아니라는 거죠?

각 전시 할 예정이었어요. 찍어놓은 사진을 인화하

네. 떠나고 나서도 서울 홍대 한복판에서 어디로 가

고, 타이포그래피와 사진 전시를 통해 에세이를 만

야하나, 뭘 해야 하나 고민하면서 지나가는 사람들

들 의도였었죠. 그리고 영화 제작에 사용했었던 침

사이에서 방황해요. 그러다가 떠날 것을 결정하고

대를 전시장 안에 가져다 놓을 생각이었어요. 근데

공항으로 가요. 그런데 공항 전광판을 보면 항로가

여러 가지 이유로 원래 계획대로 실행하지 못했죠.

많잖아요. 거기서 또 방향을 잡지 못하죠. 주인공은 영화 내내 떠나기는 떠나는데 어딜 가도 목적을 정 하지 못한 채 방황하는 모습을 보여주고 있어요. 인 생에서의 진로도 마찬가지로 기자를 할지 미술을 할지 건축 디자인을 할지 공부를 더 할지 영화를 찍 을 지 등 방향이 여러 가지니까, 결정하지 못하고 고민하는 것을 표현한 거죠. 본인이 단독 주연인데, 촬영과정은 어떻게 진행되 었는지? 어디서 어떻게 찍을지는 사전에 혼자 짰어요. 문제 는 제가 주연이기 때문에 직접 영상을 찍지 못하잖 아요. 그런데 미국에서 패션을 공부하고 있는 친구

#2 이성과 감성의 만남

가 방학마다 한국에 와서 지내는데, 마침 영상을 찍 을 때가 방학이라서 영상을 찍는 것을 부탁했어요.

건축학과 내의 작업도 많을텐데 각종 예술 활동과

영화 제작하는데 200만원이 나왔는데 그 중 120

아르바이트까지 하려면 힘드시지 않나요?

만원이 그 친구 비행기 값이에요. 그래도 그게 원래

힘들긴 한데 걱정할 정도는 아니에요. 다들 건축학

영화 제작할 때 드는 인건비보다 싼 편이에요. 그렇

부가 할 게 많다고 하더라고요. 리서치도 하고, 각

게 충북 제천, 대구, 서울 이렇게 세 지역 에서 촬영

종 공부도 많고. 그런데 저는 그렇게 바쁘지는 않아

을 했어요. 힘들지만 재미는 있었어요. 돈이 좀 아

요. 사실 건축디자인을 그렇게 열심히 하는 건 아니

쉽긴 하죠. 그 돈으로 여행갈 수 있었는데.(웃음)

에요. 학교 내부 활동 보다는 학교 바깥의 활동에 더 집중하는 편이에요.

영화 자체에는 텍스트나 대사, 나레이션이 하나도 없어요. 영상 하나만으로는 단박에 이해하기 힘든

공학계열인 건축학부에 들어와서 예술에는 어떻게

데, 의도한 거예요?

관심을 가진 거예요?

아뇨. 원래 이 영화는 전시에 쓸 영상이었어요. 그

어릴 적부터 여러 분야에 관심이 있었어요. 고등학

래서 구성도 영화와는 다르게 엉성한 부분이 많기

교 때는 순수 미술을 공부했고요. 지금도 미술이 하

때문에 독립영화로 재구성 하면서 나레이션을 넣

고 싶어요. 그래서 여행 갖다 올 때마다 영수증을

었어요. 그런데 마음에 들지 않아서 어쩔 수 없이

모아서 콜라주 작품을 만들기도 했어요. 그리고 원

빼 버린 거예요. 목소리가 찌질하게 느껴져서.(일동

래 건축디자인학과가 미대 소속이었어요. 그런데

결국 처음처럼 나레이션 없는 형식으로 밀고

군대 있는 동안에 건축학부가 새로 생기면서 공대

웃음)

나가게 되었죠.

소속으로 옮겨간 거죠.

23


별난 대학생 인터뷰

건축디자인학과가 원래는 미대였다니 놀랍네요. 건축하면 그냥 공학으로 생각되는데, 건축은 예술 과 공학 중 어느 방향에 가깝다고 생각하나요? 건축가들도 항상 논쟁하는 부분이에요, 건축이 예 술이냐 아니냐 하는 문제. 굳이 가까운 쪽을 따지면 공학에 가깝지만, 저는 공학과 예술이 51대 49의 비율로 섞여있다고 봐요. 그만큼 둘의 비율이 비등 비등하다는 거죠. 그렇지만 저는 그걸 떠나서 건축 이 공학도 예술도 아닌 디자인의 분야라고 생각해 요. 그래서 예술이나 공학보다는 디자인 관점에서 봐야할 것 같아요. 건축과 영화의 공통점이 있나요? 네, 공통적인 부분이 상당히 많은 것 같아요. 자기 가 아는 부분을 총동원해야 하거든요. 건축 디자인 이라는 것이 수학적인 부분도 있지만 미적인 부분, 사람들이 생활할 때 느끼는 감정에 대해서도 알아 야 하거든요. 그런 것을 총체적으로 이해하고 디자 인해야 해요. 제가 영화에 대해서는 많이 모르지만, 영화도 배경이나 음악 같은 부분들을 이해하고 종 합적으로 구상해야 하니까, 비슷하다고 봐요. 영화보는 것에도 관심이 많을 것 같아요. 좋아하는 영화는? 일본 영화를 주로 많이 봐요. 일본 영화들이 여운을 많이 남겨요. ‘아이언 맨’ 같이 타임 킬링 용으로 보 는 헐리우드 영화도 좋지만, 그냥 액션 하다가 마 지막에 멋진 대사 한 마디 날리고 끝나잖아요. 보 고 나서도 생각할 수 있는 것, 남는 게 있는 영화를 좋아해요. <조제와 호랑이와 물고기들>을 찍은 이 누도 잇신 감독의 작품을 좋아하고, 서양 영화는 우디 앨런의 영화를 좋아해요. 위트가 있으면서도 생각해 볼 여지랑 전달하고자 하는 메시지가 담긴 영화잖아요. 그리고 영상이 예쁜 걸 좋아해요. 최 근에 본 예쁜 영화는 라이프 오브 파이에요. 그리 고........독립영화는 안 좋아해요.

본인만의 감성을 이야기해주세요. 진심이 담긴 감성? 블로그에 에세이 같은 걸 많이

어? 독립영화를 만드신 분이?

써서 올리는데, 나중에 보면서 좀 오글거리기도 하

처음부터 독립영화를 만들려고 영상을 찍은 게 아

지만 나름대로 진심을 그대로 담으려고 노력해요.

니니까요. 독립영화 자체를 안 좋아한다기보다 이

그래서 훗날 내 글을 봤을 때 내가 이런 문제를 고

해가 잘 안 되는 걸 별로 좋아하지 않아요. 독립영

민하고 진심을 담아 썼구나 생각할 수 있게끔. 에세

화가 한 번에 이해가 잘 되지는 않잖아요. 그리고

이뿐만 아니라 영화나 콜라주 작업. 기자활동도 마

제가 영화를 만들기 전에 다른 독립영화를 많이 찾

찬가지에요. 누군가가 시키는 대로 작업하는 게 아

아서 봤는데, 독립영화가 크게 재미가 느껴지지는

니라 내가 직접 관심 있는 부분을 찾아서 담고 싶은

않아서요. 감흥이나 느끼는 게 많이 없었어요. 제가

것을 만들어요. 타인이 보았을 때에는 그게 재미없

제 영화를 봐도 이해가 안 되고 재미없는데.(웃음)

을 수도 있지만 제 진심을 담고 최대한 꾸밈없이 담 아내려고 해요. 사람이 꾸미려고 하는 게 보이면 매 력이 없잖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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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 나를 비워가며 나만의 이야기를 만들고 싶다

대학생들에게 하고 싶은 말이 있다면? 우리학교 후배들도 그렇고 대학생들이 많이 안타 까워요. 자기 자신을 버리려고 하지 않아요. 처음 건축디자인학과가 공대로 소속을 옮겼을 때, 교수

앞으로 본인의 삶을 어떻게 건축해 나가고 싶으신지.

님이 예술과 공학이 섞여 융합이 될 거라는 기대를

원래 졸업하기 전에 제 꿈을 확실하게 정하는 게

가지고 들어 가셨대요. 그런데 그게 잘 안 됐어요.

제 꿈이었어요. 그래서 다양한 일들을 많이 해봤

각자가 자기 것에만 고집을 피우니까. 그리고 존경

거든요. 전시회도 다녀보고, 아르바이트, 기자 활

하는 교수님께 하셨던 말이, 고등학교에서 배웠던

동, 영상 제작 등. 그러면서 정해질 거라 생각했는

것들과 기존 가치관들을 대학교에서 다 버리고, 자

데 막상 정해야 할 때가 다가오니 선택이 쉽지 않

신을 비움으로써 새로운 가치를 받아들여야 한다

아요. 지금은 어느 특정한 분야에 가야겠다는 마음

고 하셨어요. 그 말대로 많은 것을 비우고자 노력했

보다는, 일할 수 있는 환경 자체가 저랑 맞는다면

어요. 아버지의 생각과 기존 10대 때 영향을 받았

설령 제가 지금 하는 일과 정반대라고 해도 그 곳

던 것들 다요. 타과 수업을 들어보거나, 다른 친구

에서 일하고 싶어요. 그러면서 또 성장 할 수 있거

의 디자인 방식을 배워서 따라 해보기도 했어요. 존

든요. 나를 버리면서 새로운 경험을 겪는 과정인

경하는 특정 인물을 저에게 대입해서 생각하기도

거죠. 제 라이프스타일과 맞는 곳에 들어가서 성

하고요. 많은 학생들이 자기 자신을 너무 고집하지

장을 하고, 성장을 해서 사회에 배운 것을 환원 할

말고, 버리면서 다양한 분야와 새로운 것들을 융합

수 있는 사람이 되고 싶어요.

할 수 있으면 좋겠어요.

그 업종이 여태껏 자신이 해온 일과 전혀 상관없다 고 해도요? 네. 얼마 전에 JYH회사 소속 업체인 조이앤코에 면 접을 봤어요. 조이앤코는 패션회사에요. 그런데 패 션뿐만 아니라 매거진 제작도 하고 브랜딩이라는 개념에서 다양한 분야로 확장하고 있어요. 사실 제 전공은 패션과는 다른 분야잖아요. 그럼에도 그 회 사에 지원을 한 건, 다양한 경험을 쌓고 성장할 수 있는 그 회사의 특징과 제 라이프스타일이 들어맞 았기 때문이에요. 동시에 사회에 다양한 가치의 기 여를 할 수 있는 회사라고 생각해서 그곳에 지원을 했어요. 다들 자신의 강점을 찾으라고 하는데 역행적이네요. 요즘은 자기 스토리텔링을 강조하잖아요. 그래서 그 방편으로 사람들이 자기 자신을 고집하면서 자 신의 강점을 찾아 어필, 강조하는데 저는 그렇게 생 각하지 않아요. 자기 자신을 버리고 새로운 것을 찾 아 새로운 나를 만들수록 스토리텔링을 위한 자신 의 이야기가 늘어난다고 생각해요. 멘토가 있나요? 이호영 교수님이라고, 원래 저희 과 학장님이셨는 데 3학년 2학기 때 학교를 나가셨어요. 지금은 브 랜드 컨설팅을 하세요. 제가 고민이 있을 때마다 이 분과 상담을 하는데 그 때 마다 가치 중심적으로 조 언을 많이 해주셨어요. 그리고 사회적인 롤 모델은

/ "나를 버리면서 새로운 나를 얻다." 도전을 두려워하지 않 고, 자신의 이야기를 차근 차근 '지어나가는' 그의 모습에서 남들과는 다른 욕심을 엿보였 다. 그의 새로운 인생 건축물은 무엇일지, 기대해 본다.

JYH컴퍼니의 조수영 대표님이에요.

25 *심명보 감독 영화 <Away from Home> 중에서


영남대학교 무전여행 동아리

자 유 의 지

동아리 스토리

‘자유의지’(프리윌) 취재와 글: 고운 / 사진: 승지 / 편집: 은민

* 인터뷰 응답자 소개 이지은 (‘자유의지’ 회장, 영남대 생명과학과 12학번) 이성실 (‘자유의지’ 28대 회원, 영남대 경영학부 12학번) 권한별 (‘자유의지’ 28대 회원, 영남대 국제통상학부 12학번) 이재명 (‘자유의지’ 26대 회원, 영남대 첨단기계전공 10학번) 박무상 (‘자유의지’ 26대 회원, 영남대 첨단기계전공 10학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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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동아리 소개 부탁드려요. 무전여행을 하는 동아리예요. 정말 돈은 한 푼도 없이 여행한답 니다. * 동아리 이름이 ‘자유의지’인데, 어떤 의미를 담고 있나요? 누가 강요한 게 아니라 자기가 가고 싶어서 자발적으로 여행을 떠난다는 걸 말하는 거예요. 여행코스부터 저희가 직접 짜거든 요. 개인이 자유의지를 가지고 여행을 떠나는 거죠.


"누가 강요한 게 아니라 자기가 가고 싶어서 자발적으로 여행을 떠난다"

* 그러면 여행을 정기적으로 계속 다니는 건가요? 네. 저희가 커리큘럼 같은 게 있어요. 1년��� 시작하면서 그 커리 큘럼에 맞춰서 여행계획을 일단 쭉 잡죠. 아무래도 여행 동아리 다 보니 엠티도 많이 가고, 신입생들이 들어오면 친해질 기회를 만들기 위해서 가까운 곳으로 일일여행도 다녀와요. ‘프리윌 리 그’라고 저희끼리 해수욕장 가서 체육대회도 하고요. 농활도 가 요. 농활을 가는 이유는 저희가 무전여행으로 여기저기 다니면서 히치하이킹을 하는데, 그렇게 신세를 진 것에 대해 보답하기 위 해서예요. 무전여행은 1년에 한 번 여름방학 때 가요. 이 정도면 정기적으로 계속 다니는 편이죠. * 여행을 가려면 준비도 많이 해야 할 텐데, 보통 어떤 준비를 하 나요? 일단 여행지를 정하기 위해서 회의를 해요. 여행지부터 코스를 짜고 여행기간동안 함께 지낼 조를 짜는 것까지 회의를 통해서 직접 결정하죠. 여행코스를 짤 때는 한 도를 다 돌아보고 오는 식 으로 짜요. 예를 들어, 강원도로 여행을 간다고 하면 출발지인 경 산부터 포항, 영덕, 속초, 화진포, 통일전망대 이런 식으로 코스 를 짜는 거예요. 또, 만약을 대비해서 여행자 보험을 들어놔요. 저희가 무전여행을 가면 보통 9박 10일로 가니까, 10일치 여행 자 보험을 들면 되요. 1인당 3~4000원 정도 해요. 생각보다 싸 죠? 저희는 무전여행이니까 여행자 보험이나 술값 정도만 내면 돈 들 일은 거의 없다고 보면 됩니다.

* 그냥 무전여행이라고만 하니까 구체적으로 어떻게 다니는 건 지 잘 모르겠어요. 어떤 식으로 여행을 다니는지 간단하게 설명 부탁드려요. 다 같이 학교에 모여서 여행을 떠나요. 노천강당 앞에 저희 동 아리가 심어놓은 나무가 있거든요. 여행을 떠나기 직전에 그 나 무 앞에 서서 무사히 여행을 잘 다녀올 수 있게 해달라고 기도해 요. 이동은 아까 말씀드렸듯이 히치하이킹으로 하는데, 차가 잘 안 잡히면 꽤 걷기도 해요. 이동을 하다가 주변에 괜찮은 곳이 있 으면 들렀다 가기도 하죠. 텐트를 가지고 가기 때문에 잠은 캠핑 장이나 해수욕장 같은 데서 자요. 아침이랑 저녁은 가지고 온 식 량으로 밥을 해 먹어요. 라면이나 고추장에 비빈 밥 이런 걸로요. 점심은 히치하이킹 하다보면 사주시는 분들이 가끔 계세요. 9박 10일 동안의 여행기간 중에 6일째는 ‘도보의 날’로 히치하이킹에 응해주신 분들과 여행을 다니며 신세진 많은 분들을 생각하며 감 사의 마음을 담아 걷는 날이에요. 한 30km정도 걸어요. 또, 마지 막 10일 째는 텐트나 캠핑 장비를 여자들이 들어요. 9일 동안 남 자들이 들었으니까 마지막 하루는 여자들이 들면서 힘든 걸 좀 알라는 거죠. (웃음) 이것 외에도 매일 저녁마다 ‘반성의 시간’이 라고 다 모여서 그 날 있었던 일들을 얘기하거나 마니또 게임 같 은 것도 해요. * 점심을 사주시는 분들도 계시다고 하셨잖아요. 그 중에 기억에 남거나 가장 맛있었던 음식은? 횡성 한우, 포항 물회, 막국수, 뷔페 등등 얻어먹은 음식이 참 많 아요. 밤에 캠핑장에 자리를 잡으면 술을 사주시는 분도 계셨어 요. 아, 시골 할아버지, 할머니께서 해주시는 밥이 진짜 맛있어 요! 된장에 고추, 상추만 해서 먹는데도 그게 그렇게 맛있더라고 요. 스님이 차를 태워주셔서 절밥을 얻어먹은 적도 있어요. 절밥 이 뷔페식이어서 신기했어요. 사실 중간에 배고파서 절에 찾아 들어간 적도 있어요. 또, 한 번은 초코파이가 너무 먹고 싶어서 헌혈하러 갔는데, 전날 술을 너무 많이 마시고 잠도 못 자서 결국 헌혈은 못 했죠. 거기 계시던 간호사 분이 족발을 먹고 싶어 하는 저희의 눈빛을 알아채주셔서 헌혈은 안 하고 족발만 얻어먹었답 니다. (웃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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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아리 스토리

L l i W Free "히치하이킹을 하다보면 사회성이 늘어나는거 같아요" * 히치하이킹을 한다고 하셨는데, 히치하이킹을 잘 할 수 있는 노하우가 있나요? 그냥 보통 히치하이킹 하는 것처럼 엄지손가락을 들고 길가에 서 있어요. 저희가 히치하이킹을 할 때는 보통 세 명이 한 조예요. 남자 두 명에 여자 한 명. 남자들만 있으면 잘 안 태워주시더라고 요. 그래서 남자들은 숨어 있다가 여자들이 히치하이킹 성공하 면 나타나서 ‘감사합니다!’하고 타는 거예요. 히치하이킹을 할 때 는 계속 인사를 하면서 운전자 분들이랑 눈을 마주치는 게 중요 해요. 그래야 ‘목적지는 어디냐’ 이런 대화라도 한 번 할 수 있거 든요. 트럭 같은 대형차 히치하이킹에 성공하면 우르르 몰려와서 다 같이 타기도 해요. 트럭 뿐만 아니라 고속버스 히치하이킹도 성공한 적이 있어요. 경찰차도 타 봤고. 아, 비싼 차를 탄 날엔 막 서로 자랑도 하고 그래요. 나름의 프라이드가 있는 거죠. (웃음+ 격한 공감) * 히치하이킹에 응해주시는 운전자 분들은 보통 어떤 사람들인 가요? 일단 여행에 관심 있는 분들이 많으세요. 젊었을 때 무전여행을 해봤던 분들도 계시고. 작년에는 한 분이 여러 번 왔다 갔다 하면 서 저희를 다 태워주시고 수박까지 사 주셨어요. 밤에 같이 노래 틀어놓고 놀다 가셨죠. (웃음) 한 번은 시골에 귀농하신 저희 동 아리 선배님께서 차를 태워주신 적도 있어요. 굉장히 신기하고 반갑더라고요. 다니다보면 학교 선배님들도 많이 만나요. 그렇게 히치하이킹을 하다보면 사회성도 늘고, 어르신들이랑 대화하는 법을 배우게 되는 것 같아요. * 히치하이킹 하면서 생긴 에피소드는? 저희가 트럭을 타고 간 적이 있었는데, 운전자 분께서 담배를 피 시다가 담배꽁초를 창밖으로 던진 거예요. 저희는 트럭 뒤에 타 고 있었는데 그 꽁초가 친구 다리 쪽으로 날아오더라고요. (헉, 다치진 않으셨어요?!) 다행히 옷에 구멍만 뚫리고 다치진 않았 어요. 나중에 들어보니 홧김에 뛰어내릴 뻔했다더라고요. 그리고 차 트렁크에 탄 친구도 있었어요. 그게 큰 트렁크가 아니라 뚜껑 닫는 작은 트렁크였는데, 여자 두 명이서 거기에 들어간 거예요. 안 그래도 여름인데 정말 더워서 죽는 줄 알았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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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여행을 다니면서 뿌듯하거나 기쁠 때는 언제인가요? 밥 얻어먹을 때요. (웃음) 뭔가 멋있는 걸 하고 싶은데 진짜 밥 얻 어먹을 때가 제일 행복해요. 아무래도 계속 다녀야하니까 끼니를 때우는 게 가장 중요한 일이 되는 것 같아요. * 반대로 여행을 다니면서 가장 힘들 때는? 비 올 때, 히치하이킹이 안 될 때, 운전자 분들이랑 할 말 떨어졌 을 때, 한 번에 목적지로 못 가고 여러 번 히치하이킹 해야 할 때. 그 중에서도 씻는 게 제일 불편해요. (격한 공감) 특히 여자들이. 일단은 물을 구할 데도 잘 없어요. 따뜻한 물은 당연히 없고요. 작년에 여행 갔을 땐, 해수욕장도 개장을 안 해서 샤워실 같은 건 못 쓰고 그냥 공중 화장실을 썼었거든요. 호스를 이용해서 다 같 이 씻어요. 씻고 있다가 사람 들어오려고 하면 한 명은 옷 입고 나가서 문 열어주고 나머지는 한 칸 안으로 전부 다 몰려 들어가 는 거예요. 대피하는 것처럼. 판초를 입고 샤워한 적도 있어요. 혹시 보일까 봐 돗자리로 가리고. 남자들은 그냥 다 벗고 밖에서 샤워하기도 해요. 그럼 할머니, 할아버지들께서 구경하시면서 ‘젊은 게 좋다’고 말씀하시죠. (웃음) * 최근에는 어디로 여행을 다녀오셨나요? 그냥 여행은 엠티로 청도에 갔었어요. 무전여행처럼 길게 갔다 온 건 아니지만 저희는 엠티도 히치하이킹 해서 갔다 와요. 무전 여행으로 갔던 건, 작년 여름 강원도요. 내륙 쪽으로 올라가서 해 안을 따라 내려오는 여행코스였어요. * 이번 여름방학에는 어디로 여행갈 계획인가요? 이번 방학 때는 전라도로 가요. 여행코스는 이미 다 짜놨어요. ‘함양 용추계곡 - 남원 교룡산성 - 모항 해수욕장 - 돌머리 해수욕 장 - 송호 해수욕장 - 율포 해수욕장 - 장선 해수욕장 - 구송정 체 육공원 - 유곡연민 체육공원 또는 의령 유곡천’ 이 코스랍니다. 이번 여행도 무사히 잘 다녀왔으면 좋겠어요.

"여행하고 나면 몸이 힘든 건 둘째 치고 마음이 훈훈해져요" * 앞으로 가 보고 싶은 곳이 있다면? 제주도요! 제주도는 일단 관광도시니까 볼 것도 많고, 다 같이 다 니면 재밌을 것 같아서요. 24대 때 제주도를 한 번 갔다 왔다는 데 진짜 부러워요. 배도 타고 신날 것 같아요. 그런데 배는 히치 하이킹하면 큰일 나겠죠? (웃음) * 여행을 다니면서 느낀 점이 있다면? 세상은 아직 살 만하다. 요즘 뉴스를 봐도 흉흉한 소식 밖에 없잖 아요. 다들 세상은 위험하다고만 하는데, 막상 나가보면 그래도 아직까지는 좋은 사람들이 더 많아요. 생각해보면 남을 도와주고 좋은 일을 하는 건 뉴스에 안 나오니까 자꾸 나쁜 소식만 접하게 되는 것 같아요. 저희가 거의 민폐수준으로 도움을 많이 받기도 하는데, 그만큼 또 도와주시는 분들이 많다는 거 아닐까요? 여행 하고 나면 몸이 힘든 건 둘째 치고 마음이 훈훈해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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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과공감대담

취재 제원 편집 새봄

신문 방송 학과 편

참여 신병인/경북대학교 류현일/대구대학교 강성구/계명대학교

취재 제원 편집 새봄

자기소개 부탁드릴게요.

신문방송학과에 입학한 이유가 뭔

각 과의 분위기는 어떻고 중요 행사는 어떤 것들이 있나요?

가요? 병인 안녕하세요. 경북대학교

병인 고등학교 때부터 광고 쪽

병인 대구에 있는 다른 학교 신

성구 저희 학교는 얼마 전에 신

신문방송학과 회장 신병인입니다.

에 관심이 많았어요. 처음 목표

방과에 비해 인원이 훨씬 적으니

문방송학과와 디지털영상학과가

현일 저는 대구대학교 신문방송

는 중앙대 광고홍보학과였는데

까 학생들끼리 서로에게 관심이

합쳐졌어요. 1,2학년들은 그래

학과 회장 류현일입니다.

성적과 집안 사정을 고려해서 경

많아요. 서로서로 잘 안 다는 게

도 단합이 잘 되는 편이지만 전

성구 저는 계명대학교 언론영상

대 신방과로 들어왔어요. 하나의

장점이자 단점이 될 수도 있는데

체적으로는 다른 과에 비해 단합

학과 회장 강성구입니다.

문장, 하나의 광고로 사람의 마

가족 같은 분위기인 만큼 그런

이 조금 덜 되는 분위기인 것 같

음을 좌지우지 할 수 있는 촌철

분위기에 적응하지 못해서 과 생

네요. 과내의 중요 행사는 춘계

살인 광고천재 신병인이 되는 것

활에 융화되지 못하는 사람도 있

학술세미나(봄MT), 추계학술세미

이 제 꿈이에요. 하하.

어요. 중요 행사는 신방인의 밤,

나(부산국제영화제), 미디어영상제

현일 전 어릴 때부터 남들에게

과모꼬지, 학술제가 있어요.

(학술제)가

어떠한 것을 알리는 걸 좋아했어

현일 과분위기는 제가 복학하

요. 제가 아는 정보를 남도 알게

기 전과 후로 나뉘는 것 같아요.

됐을 때 좋아하는 사람들을 보면

하하. 제가 새내기 때에는 선배

저 또한 너무 행복해지더라고요.

와 후배 사이에서 벽이 많았어

그래서 막연히 신문방송학과에

요. 그러니까 위계질서가 확실해

입학하게 됐는데, 지금은 그것을

서 1학년이 궁금한 점이 있을 때

모티브로 해서 광고 만드는 일을

선배한테 질문조차 하기 힘든 분

하고 싶어요.

위기였어요. 그래서 내가 선배가

성구

30

아무것도

되면 이런 분위기를 바꾸고 싶다

모르던 고등학교 시절에 비리를

는 생각을 해왔죠. 복학하고 나

고발하고 시민들에게 정보를 전

서 제가 회장이 된 지금은 선, 후

달하는 기자의 기본 임무가 저에

배사이에 존중은 있되, 서로서로

게 막연히 매력적으로 다가왔어

이야기하면서 소통하는 분위기

요. 그 때 꽂힌 기자의 꿈을 실천

를 만들었어요. 그래서 과의 각

하기 위해 신문방송학과에 입학

종 행사의 참석율도 작년에 비해

하게 되었습니다.

서 높아진 것 같아요.

(신문, 방송에 관해)

있습니다.


학과공감대담

과내의 학회나 소모임은 어떤 것

재밌거나 기억에 남는 수업이 있나

이 있나요?

요?

병인 신문학회, 방송학회, 보도

병인 개인적으로 영상제작론 수

병인 제가 새내기일 때 1학년

병인 가장 큰 것은 신방과라면

사진학회, 광고 연구회 이렇게 4

업이 힘들지만 재미도 있고 배우

과대표를 했어요. 그때 해보니까

영상을 잘 만질 것 같다는 착각

개의 학회가 있어요. 신입생들은

는 것도 많은 것 같아요. 교수님

나 정도면 학생회장을 잘 할 수

이에요, 조모임 할 때 영상은 신

자발적으로 하나의 연구회에 가

도 열정적으로 뭐든 가르쳐 주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그러

방과에 맡기자. 말을 잘 할 테니

입해 일주일에 1회 정도 3학년

시려고 노력하세요. 저는 수업

고 군대를 갔다 오니까 그 말이

발표를 맡으라고 하기도 해요.

이 될 때까지 (3학년

후에도 참가가

을 하면서 다큐멘터리를 찍었는

씨가 돼서 여차저차하다가 회장

그런데 사실 저만 봐도 말을 잘

스터디를 하면서 자신의 관심

데 직접 제작하면서 조원들 간의

선거에 나가게 됐죠. 특별한 이

못해요. 신방과 학생들 보면 대

분야를 발전시켜 나가요. 한 연

호흡과 협동력을 많이 배웠어요.

유가 있었던 것은 아니에요. 자

부분 방송국 아니면 신문사에 취

구회당 인원은 5~10명 정도이

물론 카메라 기술과 기획력, 섭

전에서 온 형과 경선을 붙었는데

직하겠네 라고 하지만 실제로 취

고 각자 신문이나 뮤직비디오,

외력 등은 말할 것도 없죠.

혹시 질까봐 긴장을 많이 했어

업하는 수는 극소수예요. 아 그

광고, 사진전등을 개최하고 만들

현일 제가 가장 재미있게 임했

요. 그래도 79대 41로 압승!ㅋ

리고 예쁜 여자도 많을 것 같다

어요.

던 수업은 영상 스토링 텔링 쓰

ㅋ 해서 회장이 됐죠.

고 하지만 그런 거 없어요...

현일 저희 과는 ‘스토커’, ‘크레

기라는 과목이에요. 각자 조사

현일 제가 회장이 된 이유는 딱

현일 저희 과의 경우에는 거의

센도’, ‘아메바’, ‘씨투데이’ 이렇

를 해서 만들고 싶은 영상을 정

하나예요. 이대로 가다간 제가

80% 정도가 전공을 살려서 취

게 네 개의 랩 실(학회)을 운영하

한 뒤 한 학기 동안 만들어서 기

원하던 과가 될 수 없다고 생각

직을 해요. 그래서 사회과학대학

고 있어요. ‘스토커’는 스토리텔

말고사 때 상영하는 과목이에요.

했어요. 제가 원하는 대구대학교

내에서 상대적으로 과 특성을 살

링, ‘크레센도’는 광고홍보, ‘아메

제가 정말 찍고 싶었던 것을 촬

신문방송학과는 “우물 안 개구리

려서 취직을 잘하는 편입니다.

바’는 영상, ���씨투데이’는 저널 이

영해서 편집을 할 수 있다는 기

가 되지 말자 그리고, 항상 역사

하지만 신방과라고 하면 주위에

렇게 각자 맡은 분야가 달라요.

대감과 설렘, 그리고 촬영을 하

적인 순간을 만들자”입니다. 매

서들 연기나 연극을 할 것 같다

각자 특성에 맞게 체계적으로 운

면서 만난 무수한 사람들 그게

번 똑같은 타임 스케줄과 똑같은

는 얘기를 자주 해요. 그러다보

영하고 있으며 학술제 때는 이

인연이고 경험이라고 생각해요.

행사, 이런 것 보단 매번 다른 행

니 예쁘고 잘생긴 사람들이 입학

네 개의 랩 실의 성과 발표를 해

특별한 에피소드는 촬영을 열심

사와 다른 스케줄로 색다르고 재

한다는 이미지가 있는데 사실 그

요. 또 학술제가 1년의 마무리를

히 다 하고 집에 와서 확인해 보

밌는 경험을 할 수 있는 과를 만

렇진 않거든요.

짓는 행사인 만큼 중간 중간 재

니까 SD카드가 접촉 불량이었던

들고 싶었어요.

성구 저희 학교는 과 이름이 언

미있는 요소 같은 것도 추가시켜

점..?

성구 자랑은 아니지만 단일 후

론영상학과로 바뀌었거든요. 경

서 재미와 의미를 동시에 충족할

성구 비주얼 스토리텔링이라는

보라서 어렵지 않게 회장에 당선

북대나 다른 학교는 신문 방송학

수 있도록 진행 하고 있어요.

수업이 있어요. 수업시간에 직접

됐습니다. 하지만 이렇게 될 수

과인데 언론영상학과라고 하면

성구 신문방송학과와 디지털영

영상을 기획하고 촬영까지 해서

있었던 것은 1학년 때부터 지금

‘전문대 다니냐?’ 라는 소리를 자

상학과가 합쳐져서 총 7개의 학

완성한 뒤 하루 날을 잡고 다른

까지 한 번도 학과에 대한 애정

주 들어요. 아무래도 과 명칭이

회가 있어요. 방송연구회(전반적

사람에게 보여주는 시사회를 개

을 버리지 않았다는 점? 이점이

이미지를 좌우하는 것 같아요.

참 언론(언론, 신문 분야)

최하는 거예요. 역시 이런 수업

아마 제가 과 회장을 할 수 있는

광고연구회 (광고,PT분야) 얼소울

이 가장 기억에 남고 신문방송학

디딤돌이 되지 않았을까 생각해

과다운 수업인 것 같아요.

요. 사실 새내기 시절 학과생활

능)

인 방송분야)

(영상분야)

보도사진연구회(사진, 보

회장이 된 이유가 뭐예요?

하세요?

KPI(영상창업동아리) 언

에 관심 없는 그냥 평범한 학생

론고시반(언론고시 준비) 등이에요.

이었어요. 하지만 군대에서 ‘남

도사진 분야)

신방과의 허 와 실이 뭐라고 생각

는 건 사람 뿐이다‘ 라는 걸 느끼 고 복학 뒤 적극적으로 과 생활에 임했어요. 사람들과 두루두루 친 해지려고 노력했고 그러다보니 과 회장까지 하게 된 것 같아요.

31


학과공감대담

경북대학교 신문방송학과

대구대학교 신문방송학과

계명대학교 신문방송학과

32

학과 공감 대담 #4


학과공감대담

원하는 직업을 위해 준비하고 있는

학교마다의 시설과 장비는 어때

과 회장으로서의 자신의 학교 신

것과 해야 할 것은 무엇이 있나요?

요?

방과의 자랑거리를 말해주세요.

병인 기자나 PD가 되려면 웬만

병인 DSLR 4대, z5(카메라) 5

병인 저희 과는 단결력이 최고

병인 모디 3월호를 보면 제가

한 스펙은 기본으로 갖춰야 해

대 등 카메라가 10대 정도, 편집

에요. 올해 5월에 대구의 다른

한 페이지 정도 인터뷰를 한 것

요. 또 시사 상식을 위해서 신문

컴퓨터 5대와 스튜디오. 신문 편

학교 신방과랑 체육대회를 했는

이 있는데 거기에 간호사라고 실

이나 책도 많이 읽어야 하고요.

집을 위한 신문편집실, 라디오

데 1등을 했어요. 하하. 저희 과

렸더라고요... 저는 간호사가 아

당연히 한국어 실력도 기본이니

녹음실 등 웬만한 것은 다 갖춰

는 공부도 잘하고 운동도 잘해

닙니다. 저는 일반 대학생입니

까 그와 관련된 자격증을 준비하

져 있어요. 다른 과에 비해 지원

요! 하지만 솔직히 예쁜 여자는

다. 농담이고요. 사실 학생회장

는 것도 좋아요.

과 시설이 많은 편인데 사용 도

계대가 더 많은 것 같아서 슬퍼

이지만 학과생활을 즐길 줄만 알

현일 공모전 수상내역이나 자격

는 조금 부족한 것 같아요.

요.

았지 진지하게 생각해본 적이 없

증, 인턴 경험을 비롯한 내가 가

현일 장비는 저희 학교 정도면

현일 저희 과의 자랑거리는 정

었어요. 우리 과가 다른 학교에

고 싶은 기업과 부서의 특징 공

충분하다고 생각해요. 많은 사람

말 개개인의 성격이 밝고 그만큼

비해 뭐가 뛰어난지 뭐가 부족한

부 정도는 기본적으로 준비해야

들은 좋은 장비를 써야한다고 말

분위기가 좋다는 것입니다. 뿐만

지 구체적으로 생각해보지 못했

한다고 생각해요. 사실 기자가

하지만 그런 장비는 과에 한 대

아니라 열정 또한 대단해요. 그

던 것 같아요. 이번 인터뷰를 계

되기 위해서는 기사를 많이 써봐

씩만 있어도 충분해요. 지금 있

래서 무슨 행사를 하던 참석률이

기로 과와 학생들에게 더 관심을

야 하고 PD가 되고 싶으면 기획

는 장비를 어떤 기획을 통해서

높아요. 이런 걸 볼 때마다 정말

많이 가져야겠어요.

과 영상 편집을 능수능란하게 해

잘 활용 할 수 있는지를 연구하

행복하고 뿌듯합니다.

현일 다시 한 번 뒤를 돌아보게

야 하는 것은 모든 대학생들이

고 공부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생

성구 신방과하면 일반적으로 사

되는 계기가 된 것 같아요. 우리

알고 있잖아요. 하지만 이 분야

각해요. 진정한 신방인에게 최고

람들이 똑똑한 사람들만 간다고

과의 장점과 단점을 깊게 생각해

에서 정해진 답은 없는 만큼 남

의 장비는 창의력 아닐까요?

생각하잖아요. 물론 실제로도 그

보고 정리해 볼 수 있었던 정말

과 차별화 될 수 있는 어떤 것을

성구 계명대 언론영상학과의 시

렇고요. 하하. 하지만 저희 과는

뜻 깊은 인터뷰였어요. 학회장으

하나씩 준비하는 것이 좋아요.

설과 장비는 대구 경북지역의 최

똑똑한 만큼 놀 땐 잘 놀고 공부

로서 정말 많은 것은 느낀 것 같

색다른 경험과 능력은 더 나은

고라고 할 수 있습니다. 학교의

할 때 공부할 줄 아는 최고의 과

습니다.

아이디어를 만들어 낼 수 있잖아

많은 투자와 노력으로 최고의 시

입니다.

요.

설과 장비를 갖출 수 있었어요.

송학과) 라는

성구 어릴 적부터 기자를 꿈꿔

학생들에게는 최고의 조건이라

다니면서 다른 과와 비교했을 때

오고 있기 때문에 다른 자격증이

고 할 수 있는 것 같네요. 촬영을

어느 것 하나 뒤처지지 않다고

나 공모전 준비 보다는 여러 매

통해 바로 방송을 할 수 있을 정

생각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몇

체의 기사를 많이 읽고 접하는

도의 스튜디오 시설과 카메라 장

년 전 신문방송학과와 디지털영

것을 주로 하고 있어요. 또 학업

비를 갖추고 있습니다.

상학과의 통합으로 지금은 약간

학과대담을 마치며

성구 평소 언론영상학과(신문방 자부심으로 학교를

에 충실하면서 다양한 사람들을

의 과도기를 거치고 있어요. 이

많이 만나고 있습니다.

번 인터뷰를 통해서 과에 대해 개인적인 생각을 정리해서 더 나 은 과가 될 수 있도록 노력해야 할 것 같다고 느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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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ex and Univ.

물꼬의 성(性)스러 운 궁금증

욕정 VS 애정 글 물꼬 편집 현지

프롤로그 솔로 물꼬는 어느 날 갑자기, 전의 어느 때와 마찬가지로 외롭습니다. 그런데 이 외로움은 마음 뿐 만이 아 닙니다. 본능을 가진 인간이라면 때로는 몸도 역시 외로워집니다. 모든 혈기왕성한 대학생들이 커플도 아니 고, 저와 같은 솔로들은 어떻게 이 욕정을 풀어야 하는 걸까요? 이때, 흔한 패션 잡지나 소설책에서 보았던 “원나잇스탠드”라던가, “섹스파트너”라는 단어가 생각납니다. 어디까지나 경험담은 들어보지 못하고 간접 매체로만 접했던 개념이죠. 하기야 로맨스나 순수한 애정 따위 역시 책에서만 보았던 것 아닌가(...). 둘 다 직접 경험하진 못했어도 이건 압니다. “아”와 “어”가 다르고 “끌림”과 “꼴림”이 달랐듯이 “욕정”과 “애정”도 다르다는 것 말이죠. 그런데 이 둘은 틀림이 아니고 다름임에도 흔한 어린 대학생들의 공식 대화나 교과서에는 애정이 항상 맞습 니다. 아니, 애정의 틀 밖에 있는 욕정은 매도되어버립니다. 마치 욕정이 애정의 부분집합인 것처럼 말입니 다. 그러나 한편으로 여타 익명의 인터넷 게시판을 보면 여러 가지 욕정의 대화들이 난무하고 있습니다. 앞 서 언급했던 간접매체들도 그렇고 대면 바깥의 세계에선 욕정이 애정 위에 군림하고 있는 모습을 볼 수 있습 니다. 온오프라인의 우위다툼이 이렇다보니 혼란스러운 저는 여러분들에게 직접 솔직한 답을 물어보고 싶습 니다. 정말로 “일반적인” 건 어떤 것 인가요? 욕정이 먼저인가요, 애정이 먼저인가요?

“현대 소설이나 잡지는 현실의 생활을 반영한 거잖아. 그만큼 욕정을 앞세우는 것도 이미 보편적으로 인정된 행위란 거 아냐?”(24세, 여) “사람도 동물이다. 몸만 외로운 건 당연하고, 당연한 욕구를 알아서 푸는 것도 당연한 거다.”(27세, 남) “욕정을 골라 채운다는 게 처음이 어려워서 그렇지 한번 들어서면 그 후론 아무런 거리낌도 없어지는 게 사실이거든. 몸이 외로운 것 자체는 부정할 수 없어. 남한테 잘못 걸리지만 않으면 크게 별 일 없다는 거 지. 암묵적으로 용납하는 경우까지 있고.”(26세, 여)

인터넷 게시판에서 책까지, 대학생들이 자주 접하는 익명 혹은 가상의 인물들의 활약 덕분(?)에 여러분들의 의식에 이 욕정파트너의 개념은 어느 정도 자리 잡고 있을 겁니다. 글자에 녹아 자연스럽게 대두 에 오르는 원나잇이나 애인이 있는 상태에서의 욕정을 위한 외도. 욕정의 우위는 특정 상 대에게 들키지만 않으면 전혀 문제될게 없다는 투로 나오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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있습니다. 이들은 사랑에 냉 소적이며 애정을 사람의 일시 적인 감정으로, 욕정보다 아 래의 문제로 보고 있습니다. 여기서 의문이 듭니다. 그럼 흔한 인터넷 사이트에 원나잇 이나 섹스파트너에 대한 글에 비추가 하늘을 찌르고, 이에 대한 이야기를 꺼내는 사람들 에게 “걸레”라는 욕을 하는 건 무슨 심리일까요? 몸을 자유

롭게 굴리는 것을 옹호하면서 정작 자신과 관계하는 사람은 깨끗해야 한다는 건가요? 그 건 본인 욕구 하나만 정당화 하는 이기적인 짓에 불과한 거 아닐까요? 아니 그런 심리 는 본인도 욕정을 부정적으로 본다는 거잖아요?


Sex and Univ.

(Desire, Lust)

물꼬의 성(性)스러 운 궁금증

(Love, Affection)

욕정 VS 애정 사전적 의미

사전적 의미

1) 한순간의 충동으로 일어나는 욕심. 2) 이성에 대한 육체적 욕망.

1) 사랑하는 마음. 2) 애인을 간절히 그리워하는 마음.

“야, 사랑하지 않고 몸을 섞는 건 그냥 간통이지. 원나잇이니 그런 말은 그냥 번드르르하게 지 문란을 변명하는 거 밖에 되지 않아. 걔넨 전부 사람들이 자기네 같은 줄 알아.”(25세, 남) “사랑하는 사람이 있으면서 성행위를 하는 건 불법이고 사랑하는 사람에 대한 배신이야. 지금 당장 애인이 없다 해도 그건 자기 몸과 미래 에 생길 사랑에 피해를 주는 거라고 생각해. 바람피우는 거에 대한 법적 제재가 괜히 있겠어? 옳지 않으니까 있는 거 아냐?”(22세, 여)

이들 외에도 흔한 로맨틱 드라마, 흔한 사회의 공식적인 시선들이 말 합니다. 애정은 욕정을 앞선다고요 (애정이 인생 전체보다도 앞에 있을 때도 있습니다). 이들은 욕정이 애 정에 종속될 때만 옳은 것으로 인정 하며, 애정 없는 욕정에는 윤리라는 딴죽을 겁니다. 애정에 대한 정의는

부연 설명이 필요 없겠죠. 애정은 많은 사람들이 성장 중인 꿈나무들 에게 욕정보다 먼저 가르치는 관계 이자, 현재 사회가 욕정보다 보편적 이라고 믿고 있는 관계지요. 허나 이 역시 의구심이 듭니다. 소 설이나 만화나 인터넷 사이트 등, 개나 소나 욕정에 대한 썰을 풀어대 는데 그것들은 모두 비정상일까요?

이들 말대로 애정이 더 일반적이라 면 수많은 사람들이 욕정을 더 앞세 워 욕구를 푸는 사례들은 어떻게 설 명할 건가요? 그들이 말하는 법적 제재란 것도 결국 욕정을 지나치게 앞세우는 일이 워낙 허다하고 피해 보는 사람들이 너무 많으니까 생긴, 역으로 욕정의 일반화를 보여주는 모습이 아닐까요?

에필로그 의문만 늘어가고, 결론은 나오지 않네요. 양쪽 다 맞는 것 같으면서도 자꾸만 의문이 생기거든 요. 그러나 일단 확실하게 알 수 있는 것은 욕정은 애정의 부분집합이 아닙니다. 욕정은 애정에 뒤따라오는 것이 아니고, 선택에 따라서 앞세울 수 있는 애정과 대등한 감정이자 행동입니다. 다만 욕정과 애정의 문제는 욕정과 애정을 한 세트로 묶어 해결하느냐 따로따로 해결 하느냐의 여부이며, 그건 본인이 생각하고 선택해야 할 몫인 것 같군요. 그리고 어차피 답도 없는 거, 어느 게 앞서니 계속 따지는 것도 끝이 없겠네요. 사람은 욕정을 풀길 원합니다. 그리고 애정을 받기를 원합니다. 욕정과 애정 둘 다 사람의 본능이니까요. 본능 에 우위가 어디 있겠어요? 성적인 문제가 있는 사람도, 애정결핍인 사람도 우리는 둘 다 정상적 인 사람이라고 보진 않잖아요? 욕정의 충족과 애정의 충족 둘 다 우리한테 무조건 필요한 거니 까요. 잠을 먼저 자느냐 밥을 먼저 먹느냐가 중요한가요? 둘 다 일단 했느냐가 중요한 거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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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 된 작품에 추임새 넣기

寄生獸

글 포니 편집 미경 평화로운 어느 날, 미지의 생명체가 인간 세계에 침투한다. 그 생 명체는 인간의 뇌를 뚫고 들어가 장악한다. 인간의 몸에 기생하며 동시에 인간의 몸으로 일종의 ‘보호색’을 확보하는 것이다.

그들을 기생수라 부른다. 기생수들은 인간을 잡아먹음으로 생존하고 동시에 인간 종의 개 체수를 줄이는 것을 목표로 한다. 주인공 신이치의 몸에 침투한 기 생생물은 뇌까지 점령하지 못하고 오른팔만 장악하기에 이른다. 그리하여 인간적으로 사망한 것과 다름없는 다른 기생생물과는 달 리, 신이치의 몸에는 사이좋게 한 몸에 두 생명이 공존하게 된다. 기생수들은 가정에서 학교로, 사회로 활동반경을 넓혀간다. 신이 치의 엄마가 죽고 신이치를 짝사랑했던 친구가 죽는다. 그것을 계 기로 강해진 신이치는, 자신의 가족과 친구들을 위해 기생생물과 싸울 것을 다짐한다. 가장 압도적인 힘을 지닌, ‘끝판 왕’의 죽음을 지켜보면서 신이치 는 생각한다. 자신에게 정의란 인류구원도, 여러 생물들과의 공존 도 아닌 주변 사람들을 지키는 일이란 것과 그리고, 지구의 생명으 로 ‘함께’ 산다는 것은 무엇일까 하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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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기생수> 편

허락한 적도 없는데 멋대로 지 구의 주인이 되어버린 인간들. 인간이라는 종의 수를 줄이려는 기생수를 인간들은 ‘적’, ‘살인 귀’, ‘침략자’라고 부른다. 인간 의 수를 줄여 독과 오염과 파괴 를 막는 것. 그리하여 인간 중심 의 지구가, 모든 생물 중심의 지 구가 되었으면 하는 게 기생수 의 바람 vs 인간의 존엄성을 훼 손하고 무차별적인 살육을 저지 르는 괴생명체들을 제거하고 평 화를 되찾는 것. 그리하여 원래 의 리듬을 유지하며 지구의 주 인으로써 권력과 일상성을 유지 하는 것이 인간의 바람. 아무튼 입장 차이 때문에 밥그릇 싸움 하는 건 여느 생물이나 다를 바 가 없다.

기생수 VS 인간

사실 우리 모두는 기생수가 아닐까.

사실 우리 모두는 기생수가 아 닐까. 결코 홀로 살아갈 수 없는. 사랑하는 사람이 있어야 하고, 함께 살 부비고 이야기 나눌 공 간이 필요한. 그 공간을 포근히 만들어 줄 또 다른 생물과. 우리 가 포근하게 만들어줘야 할 또 다른 생명들. 더불어 사는 것. < 함께>라는 것은 나를 둘러싼 ‘사 람들’이 아닌 ‘모든 것들’, 그것들 과 함께 숨 쉬고 낡아지는 것. 37


적나라한 연애상담

적나라한 연애상담 글 불곰 편집 미경

Prologue 이건 레알이다. 내가 작대기 하나(이등병)일 때, 갑판하사1가 말했다.

“편지 받으니까 좋제. 근데 이 배에서 상병까지 연애하는 놈을 못 봤다. 상병까지 연애하면 내가 이 배에서 내린다.” 하지만 갑판하사는 배에서 내리지 않았다.

“좋겠네. 그것도 조만간이야. 네가 병장되잖아. 그럼 끝나는 거지. 아님 내가 성을 갈고.” 역시 성을 바꾸지도 않았다. 그렇다. 나는 그렇게 여자 친구와 같이 제대했다. 그리고 이건 나 와 함께 군 생활을 했던 60여명의 병사들 중 유일한 일이었다. 나 는 그런 군화였다. 이건 레알이다.

1  ‘갑판’은 해군 병과 중 하나로 ‘갑판하사’배의 갑판을 담당하는 부사관 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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적나라한 연애상담

Chapter 2 상황별 코치 첫번째, 흔들리는 그녀를 보며~ 나도 미치겠는데. 그녀는 계속 힘들다고만 한다. 그럼 보통 처음 엔 혼자서 얼마나 힘들까 외로울까 위로하다가도 군대에 온 건 난 데 싶은 생각에 울컥 할 때가 있다. 힘들어져보면 안다고, 대책 없 이 흔들리는 그녀를 보며 뭘 어떻게 하려고 애쓰지 마라. 그건 네 몫이 아니다. 그녀가 극복해야 할 일. 연애, 혼자 하는 거 아니다. 네게 필요한건 포용력과 진정성이지 스펀지가 아니다.

Chapter 1

두번째, 이별, 그 후. 헤어졌다. 가슴이 미어진다. 이런 날이 올 줄 알았다. 시간이 지나 면 괜찮아 질 줄 알았는데. 가슴 한 켠 먹먹함은 쉽사리 사라지지 않는다. 휴가가 다가올수록 고민은 깊어진다. 한 번만 만나고 싶 다. 연락을 할까. 만나 줄까. 괜찮을까...

군화에게 보내는 편지

괜찮지 않다. 딱 거기까지.

일단 축하한다. 곰신이 있다는 자체로 넌 축복받은 군화다. 훈병은 패쓰~. 이걸 읽지 못할 테니. 혹시 예비 훈련병이면 괜히 곰신들에게 스트레스 주지 말고 그냥 쿨하게 군대 가라. 밖에서 눈 물로 한 약속 그런 건 그냥 가슴 속에 묻길 바란다. 진인사대천명 이다.

생각만 해라. 네가 어떤 연애를 했던, 그녀가 네게 어떤 존재였 던 그건 별로 중요하지 않다. 넌 헤어졌고, 여전히 군인이다. 그리 고.... 찌질하다....해 보인다. 그나마 좋은 남자로 남아라. 지금을 위해서도 다음을 위해서도 이별에 미련을 보이는 건 최악이다.

이병은 징징대지 마라. 너의 군 생활이 힘든 만큼 곰신들도 힘들 다. 네가 적응해야하는 만큼 곰신도 적응을 해야 한다. 넌 군 생활 을 선택할 수 없지만 곰신은 너와의 관계를 선택할 수 있다는 것 정도 가슴에 품고.

세번째, 새로운 만남 군인이라서 새로운 만남에 머뭇거린다? 어리석은 짓이다. 인연은 마트에서 살 수 있는 것이 아니다. 하지만 새로운 만남에 ‘하면 된 다.’는 군인 정신은 버려라. 민폐다. 그리고 착각이었다 싶으면 민 간인일 때 보다 빠르게 포기해라. 배려다.

일병아... 헤어졌으면... 그만 읽어도 괜찮아... 조금만 버텨... 다 잘 될 거야. 상병은 슬슬 익숙해지는 군생활 만큼 일상에서 곰신을 잊어가겠 지. 그런데 말이야. 너의 곰신은 여전히 문득 밀려오는 고독함이 있단다. 편지 좀 써라.

마지막으로 너는 네 군복이 멋있어 보일지 몰라도 여자 사람에게 군복이 멋있는 건 현빈 정도가 걸쳤을 때의 이야기에 불과하다. 최 대한 민간인 흉내는 내라. 예의다.

P.S 모태솔로 군화에게

작대기 네 개를 쌓으니 어때? 좋아? 군대가 체질 같아? 아직 곰신 이 기다리니? 대망의 말년. 사실 말야. 난 네게 해주고 싶은 이야기가 제일 많아. 힘들지 않니. 기다려 준 곰신이 정말 고마운데 새삼 느끼게 되는 네 인생의 무게와 그녀와 벌어진 삶의 궤적. 쉽지 않을 거야. 우린 특별하다는 속삭임도 희미해져갈 때 이것만은 기억하길 바래. 그 녀를 초라하게 만들지는 마.

미안하다. 여기 너를 위한 자리는 없다. 얼마나 힘든지 안다. 헤어 지는 녀석들이 부러울 때도 있겠지. 힘내라. 너의 미래에 멋진 애 인이 있다는 걸 나는 믿어 의심치 않는다. 그런데 말이다, 제대하면 말이다. 지금까지 못한 연애가 갑자기 잘 될 일은 없단다. 그러니 발정난 뭐마냥 너무 집적대진 말고, 멋 진 예비역이 되렴. 고생해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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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성로 주변

이 달의 연극여지도

송죽씨어터

로멘틱코메디 작업의 정석

낭만적이면서도 카리스마 있 게! 자체발광 마성의 작업남 서민준과 수줍은 듯, 도도하 게! 섹시하면서도 청순한 작 업녀 한지원 ! 작업에 있어서 자신만만한 선수 두 사람이 만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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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월5일(수) ~ 7월14일(일) 평일 오후8시 토 오후4시,7시 일 오후3시,6시 (매주 월요일 쉼) 단, 6월6일 오후3시, 6시공연 있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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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달의 문화 행사

정리 민지 편집 애란

제9회 대구 호러 공연 예술제

대구 국제 바디페인팅 페스티벌

언제? 8. 3(금)~ 5(일) 어디서? 국채 보상운동 기념 공원

언제? 8.31(토)~ 9.1(일) 어디서? 두류공원 코오롱 야 외음악당

올해로 9회를 맞는 ‘대구 호러공

바디 페인팅/ 네일 아트/ 헤나 체

연 예술제’. 메인 무대에서는 각

험, 무대 공연, 불꽃 놀이를 감상

종 공연들을 실시하고, 무대 아

하실 수 있다. 무료 입장 가능하

래쪽의 각 부스 별로 부대 행사

다고 하니 관심있는 언니, 오빠

들을 마련하므로, 유령의 집, 귀

들은 기억해 두었다가 참석하면

신분장, 귀신을 이겨라 등의 체험,

즐거운 추억을 만들 수 있을 것

참여의 기회들을 맛볼 수 있다.

같다.

2013 대구 치맥페스티벌

옥상달빛 2집발매기념 전국클럽투어

언제? 7.18(목)~ 21(일) 어디서? 두류공원 코오롱 야 외음악당

언제? 7. 5. (금) 20:00 어디서? 클럽 락왕

치맥 페스티벌이라니... 이건 정

‘인디= 클럽에서만 활동하는 애

말 치맥을 즐기는 한국인들의 정

들? 마이너?’ 라는 편견은 이제

서를 십분 반영한 독특하고 특색

구시대적 발상!!

있는 축제가 아닐 수 없다. 하지

빈지노, 제이레빗 등...이제는 온

만, 이 축제가 단순히 모여서 단

라인에서 뿐만 아니라 케이블 방

체로 치맥을 즐기는 게 전부겠

송에서도 버젓이 이런 ‘핫’한 인

지,라는 생각은 금물! 밴드 공연,

디들의 공연을 어렵지 않게 볼

취중진담의 시간, 치킨 할인 행

수 있다. 모 예능 프로의 엔딩곡

오늘날 현대미술계에 큰 영향력을 미치고 있을 뿐만 아니라, 대중의

사, 무료 시음/시식회... 뿐만 아

으로도 쓰이며 힐링 음악으로 유

사랑을 받고 있는 대표적인 작가 쿠사마 야요이(1929~)의 전시를

니라 ‘BMW 미니쿠페’를 경품으

명해진 ‘수고했어, 오늘도’라는

개최된다.

로 받아갈 기회도 있다는 사실!

곡을 부른 옥상달빛. 그들이 대

전쟁, 엄격한 어머니의 학대, 아버지의 방탕, 가정의 파탄 등을 겪으

청춘이라는 이름의 전철을 타고

구를 첫 공연으로 해서 전국 투

며 암울했던 어린 시절 환청과 정신분열 증상 속에 나타난 환영을 스

있는 그대여, 이번 여름, 치맥 페

어를 시작한다.

케치북에 옮기기 시작했다. 스스로 무의식적인 예술치료를 통해 마

스티벌에서 그 젊음을 한껏 불살

이 밖에도 ‘없는게 메리트’, ‘괜찮

음의 안식을 얻은 그는 자신의 작품 세계를 예술가의 경지로까지 끌

라보지 않겠는가.

습니다’, ‘하드코어 인생아’등의

어올렸다.

곡으로 우리 청춘들에게 힐링 음

이번 전시는 83세의 고령에도 불구하고 지금 이순간 강박증을 예술

악을 선사 해 주시는 착한 언니

로 풀어내고 있는 작가의 30여점의 신작 회화를 포함하여 100여점

들. 이 언니들 공연, 당장 예매하

의 설치, 조각, 회화 등을 선보이는 대규모 전시로 기획되었다.2013

러 가자.

년 7월 대구미술관에서의 전시를 시작으로 2014년까지 서울, 대만,

예매는 현매보다 5000원 더 착

상하이 등 아시아 주요 도시의 순회전이 열릴 예정이다.

금세기 최고 예술가 <쿠사마 야요이 특별전> A Dream I Dreamed 언제? 7. 16(화) ~ 11. 3(일) ※ 매주 월요일 휴관 어디서? 대구미술관 1, 2층 관람료? 5,000원(성인기준)

한 가격이라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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데쓰노트 '당신'이 사라져 버렸으면 좋겠어 글 포니 편집 현지

너의 몸 어딘가를 더듬는 것1)으로 아침을 시작해. 콧잔등 위로 명랑하게 떠다니는 노랫소리2)에 잠이 깨면 짜증날 때도 가끔 있지만. 지난 밤은 어땠는지, 괜찮았는지 네 온몸을 샅샅이 확인하고서야3) 샤워를 해. 머리를 말리고 로션을 바르는 동안, 너는 옆에서 쉼 없이 재잘대며 내 친구들이 흥미롭게 들을만한 이야기4)들을 늘어놔. 그 얘기를 주워섬기고 읊어댈 녀석들을 생각하니 왠지 한 쪽 입꼬리가 올라가는 걸.

가방을 챙겨 밖으로 나서는, 그 짧은 순간에도 나는 너를 주시해.5) 내 옆에 잘 있는지, 손은 놓지 않고 있는지, 그리고 여전히…예쁜지.

나는 너에게 성실했어. 우리는 함께 지하철을 타.7)

나의 집요함을 즐기듯 야살스런 눈웃음을 짓는 너. 맥이 빠진 나는 고개를 젓고 말아. 아파트 복도를 벗어나자 공기의 온도가 달라져. 팔뚝을 휘감는 축축한 열기 덩어리. 덥다, 그치? 미간을 좁히면서도 나는 여전히 너에게서 눈을 떼지 못해.6) 생각해보면 여름이나 겨울이나 나는 늘 네게 사로잡혀 있었지. 맹세해. 널 처음 만났던 날부터 이 순간까지

예전에 TV에서 본 적이 있어. 어떤 개그맨이 침통해 하면서 말했잖아. ‘지하철 안에서 책을 읽는 승객이 아무도 없네요, 정말 걱정 되네요’ 하고. 그 때 나는 조금 비웃었어. 실은 그 개그맨이 더 걱정됐거든. 사람들은 책에 모든 해답이 다 있는 것처럼 말하는데 답이 적힌 책 그런 건 어디에도 없어. 책이란 건, 내가 내린 결론을 비웃으며 잘난 척하는 종이 나부랭이일 뿐이라고. 꿍하게 입술을 내민 내 귓가에, 네 무심한 콧노래가 들려와.8) 하아 그래. 내가 무슨 생각을 하건 너는 상관없다 이거지? 늘 이런 식이야. 내가 화를 내도, 웃어도, 미친놈처럼 발악을 하며 네게 소리를 질러도 너는 평정해. 아무리 애를 써도 내가 느끼는 것들을

네게 이해시킬 수 없더라. 넌 기껏해야 앵무새처럼 내 말을 따라 하기만 할 뿐이지.9) 내 뜨거운 마음이 결코 너의 테두리 안으로 들어서질 못해. 그 비참함을, 너는 절대 알 수 없을 거야. 저 교수님의 강의는 유난히 길게 느껴져. 에어컨도 신통치가 않아 등이 축축하네. 지루했는지 뾰로통해진 네 비위를 맞추기 위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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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책상 밑으로 몰래 몰래 너를 만져. 기다렸다는 듯 생긋 웃는 너. 그거 알아? 빛의 각도에 따라 네 눈동자의 색깔이 바뀐다는 거. 어떨 땐 호박색, 어떨 땐 사파이어 블루, 어떨 땐 하 늘색, 어떨 땐 풀잎색.10) 그 다채로움을 목격하고 있노라면, 어느 새 시간이 나를 훌쩍 뛰어 넘지. 이렇게 아름다운 너를 행여 다른 놈들이 훔쳐보진 않을까 나는 전전긍긍해. 한두 번 이랬던 거 아니니까, 한숨 그만 쉬어.

익숙해질 때도 됐잖아. 친구들과의 술자리에서도, 나는 틈만 나면 너를 쳐다보고 너랑 대화해. 녀석들은 어딘가 부러운 눈치야. 욕심도 많지. 지들도 다 옆에 끼고 있으면서 무얼.11) 밤이 깊어지고 얼큰하게 취한 나는 그만 너를 버려 두고 나와 버렸어. 제기랄. 너는 내가 없으면 아무 것도 못하는데.12) 비틀거리며 너를 찾기 위해 달려가는 그 동안 어떤 생각이 내 머리를 스쳤어. 사실 그건 나라고. 네가 없이 아무 것도 못하는 건 나라고 말야. 그렇게 되찾은 너는, 아무렇지 않은 표정으로 나를 올려다 볼 뿐이야. 기다림으로 인한 권태도, 불안도 없는 평온한 얼굴에 나는 조금 무너졌어. 이 지독한 사랑을 이젠 끝내야 하지 않을까. 나는 이를 악물어. 눈을 뜨는 순간부터 잠이 들 때까지, 너를 벗어날 수 없어서 괴로워. 나를 이렇게 만들어 놓고 너는 태연하다는 게

죽을 만큼 화가 나. 언제 어디에서건 너를 놓은 적이 없는 나잖아. 너도 그랬잖아. 나 사랑했잖아. 내가 담배를 피울 때도, 그 연기를 다 맡으며 옆에 있어줬잖아. 그랬던 여자는, 네가 유일했다는 거 알잖아.

… 이젠 그만 두자. 잃어버린 나를 찾아야겠어. 너 없이도 건재하다는 걸 보여줄게. 너도 느껴 봐. 내 손길이 사라진 후의 허전함을, 그 서늘함을, 견딜 수 없는 시간의 여백을. 그래. 우리 더 이상 섞이지 말자. 할 수 있는 만큼 멀어지자. 가주라. 제발 그렇게, 네가 사라져 버렸으면 좋겠어. 내 손 안의 작은 세상스마트 폰, 네가.

01)

알람을 끄는 행위

02)

06)

알람이 되겠지

길을 걸으면서도 핸드폰에서

03)

밤에 온 카톡은 없는지, ‘new’가 뜬 건 없는지

07)

핸드폰 갖고 놀다가

04)

팟캐스트

05)

집을 나설 때 핸드폰을 챙겼나 안 챙겼나

08)

확인하는 행위

09)

눈을 못 떼네 쯧쯧 10)

색깔 순서대로

이어폰 꽂고 핸드폰으로 노래 듣는 중

11)

핸드폰을 수시로 들여다보는 친구놈들

메모장에 내 감정을 기록하는 행위임

12)

당연하지 기곈데

핸드폰 들고 지하철 탐ㅇㅇ

: 카카오톡, 페이스북, 트위터, 네이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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온데 만데 오만데

5천 원만 들고 달성공원 앞

번개시장’

으로 오세요!

글·사진 여름 / 편집 성림 / 취재일 6월 9일 새벽

달성공원 번개시장 대구에는 2개의 번개시장이 있다. 하나는 대구 4대 시장 중 하나인 대구역 옆 번개시 장, 또 하나는 이른 새벽 달성공원 앞길에 서 번개처럼 나타났다 사라진다고 해 이름 붙은 번개시장. 이번 오만데는 후자의 번개 시장을 다녀왔다! 필자는 새벽 5시가 조금 넘은 시각 번개 시장에 도착했다. 6시가 되자 달성공원 앞 차도는 이미 차도가 아니라 인도였고 시장 이었다. 운동하던 사람, 장 보러 온 사람, 술 마시러 온 사람 등 수많은 사람이 모여 이른 새벽인데도 대낮인 듯한 착각이 들었 다. 달성공원 앞 번개시장은 2000년쯤부터 노점이 하나둘 들어서면서 생겨났다. 그 러다 5년 전부터는 그 규모가 커져 현재는 100개가 훨씬 넘는 노점들이 있다. 노점상 대부분은 서문시장과 같은 큰 시장을 가기 전에 장사를 하는 사람들이다. 그들은 새벽 3시부터 도로의 양 끝에서 장사를 시작해 아침 9시가 되면 파장한다. 번개시장은 만 원짜리 지폐를 꺼낼 일이 거의 없을 정도로 어떤 곳보다도 싼 가격을 자랑한다. 8시쯤부터 떨이가 시작되면 그 가격은 더욱더 내려간다. 싼 가격이라고 품 질을 무시하면 안 된다. 여러 번 시식해본 결과, 꿀 수박이면 진짜 꿀 수박이었고 꿀 참외면 진짜 꿀 참외였다. 또한, 번개시장 물건의 다양성은 없는 게 없는 수준이 아니 라 이런 것도 파나 싶을 정도의 수준이었 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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번개시장의 물건들 채소/과일/바다동물 /그 외 먹거리와 잡다한 것들

많은 종류의 바다동물이 나와 있었지만, 이 날 번개시장의 핫플레이스는 바로 이곳! 우 럭과 전복을 파는 곳이었다. 금방 잡혀 온 듯 우럭과 전복이 펄떡거리며 숨 쉬고 있었다. 전복은 10마리에 만 원. 1시간 뒤에 다시 오 니 거의 다 팔리고 없을 정도였다.

라디오, CD 플레이어, 톱날, 렌즈, 모종, 선글라스, 연장 도구, 옷, 모자... 없는 게 뭐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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온데 만데 오만데

달성공원 번개시장을 맛보고 즐겼다면 바로 코앞에 있는 달성공원으로 향해보자. 달성공원 하 면 빼놓을 수 없는 것이 동물원. 요즘 이 동 물원이 뜨거운 감자다. 오래된 시설로 동물 원을 이전해야 하는데, 수성구로 갈 것이냐 달성군으로 갈 것이냐 하는 문제로 뜨거운 공방전을 벌이고 있기 때문. 올 9월, 대구 경북연구원에서 동물원 이전에 적합한 위 치가 결정되면 2016년까지 완공될 예정이 라고 한다. 어쨌든 포유류 24종, 조류 60 종 등 총 700여 마리가 아직 이곳에 살고 있다. 하지만 환경이 열악해 동물들의 생활 이 어려워 보였다. 10시쯤은 되어야 동물원의 메인인 사자와 호 랑이, 코끼리, 곰들이 밖으로 나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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먹거리를 찾아! 적두병 달 성공원 앞 삼거리에서 직진하여 조금만 걸으면 ‘적두병’이라는 조그만 빵(?) 가게가 보인다. 가게 이름과 같은 적두병은 4개에 2,000원. 황남빵과 비슷하지만, 팥이 좀 더 많고 겉은 바삭하며 깨는 고소하다. 그 자리 에서 바로바로 적두병을 구워내기 때문에 더욱 맛있다. 사장님은 ‘여존남비’하시기로 유명하셨는데, 필자는 여자로 태어난 복으 로 과테말라 더치커피를 공짜로 마실 수 있 었다. 적두병도 적두병이지만 커피 맛도 정 말 일품!

서문시장 달성공원 입구에서 오른쪽으로 쭉 걸어 내려 가면 바로 서문시장이다. 서문시장에 대해서 는 지난 모디 1월호에서 다룬 적이 있다. 아 빠방구빵, 납작 만두와 유부 전골, 씨앗 호 떡, 잎새 만두 등이 소개되었는데, 여기에 잔 치 국시까지 추가한다! 한 그릇에 2,500원 으로 배부르게 먹을 수 있다. 번개시장, 달성공원 구경하고 서문시장에서 잔치국시 한 그릇 하실래예?

번개 시장 가는 길. 달성공원 가는 길로 가면 된다. 300, 414, 414-1, 427, 808, 836, 939, 동구2, 북구2, 북구3 47


발로 뛰는 나불나불

‘어느덧 청년이 되어 버린 문화 공간’

예술 마당 솔 글 승태 / 사진 영준 / 편집 성림

역에서 활동하는 예술가들과 함께하기 위해 만들어진 대안문화공간이 하나 있습니다. 공연에 대한 규제가 심했던 시절에 자유롭 게 공연을 할 수 있는 공간이었던 '예술마당 솔' 그곳이 어느덧 개관 스무해를 넘겼습니다. 우리와 같은 시간을 공유하며 살아온 그 곳으로 한번 떠나 보실까요?

/운영 시간/ 오전 10시 ~ 오후 7시 (토, 일 휴무) /대관/ 자유롭게 오시면 됩니다. 시간만 맞는다면 운영 시간 외에도 대관이 가능합니다. /주소/ 대구 중구 서문로 2가 44-1 서성빌딩 4층 <예술마당 솔> /버스/ 섬유회관 앞, 섬유 회관 건너 425, 623, 724, 309, 508, 156, 400-1, 420, 939, 427, 521, 653, 급행1번, 급행 3번 /지하철/ 중앙로역에서 만경관 방향으로 약 800M /다음 카페/ cafe.daum.net/madangsol/ /TEL/

053.423.4244

/e-mail/ sonby37@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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ㅣ예술 마당 솔의 시작!

ㅣ유홍준 교수님 강의 모습

ㅣ그 당시 했던 강좌들

since 1990, 새로운 공간을 상상하다 ☆

1990년, 지금은 상상이 힘들겠지만 검열이 존재해서 예술가들이 하고 싶은 대로 공연을 할 수 없던 시절이 있었습니다. 문화예술을 정말 좋아하지 않는 이상, 어떤 공연은 보러 가는 것이 굉장히 힘든 그런 시기였죠. 이런 시대적 상황 속에서 <예술마당 솔>은 시작되었습니다. 손병열 대표님을 비롯한 몇 분이 공연에 대한 규제 없이 ‘마음대로 놀 수 있는 자유로운 공간’ 만들자 모였고, 이에 동의한 문화계에 있는 많은 사람의 성금으로 남구 대명동에 조그만 공간에 개관할 수 있 게 되었습니다. 이것이 <예술마당 솔>이라는 문화단체의 시작이자 대안문화공간<예술마당 솔>의 시작이었습니다. 그 당시에는 이런 문화공간이 거의 없었기에 기획하는 공연이 문화적인 이슈가 되어 많은 관심을 받았습니다. 그리고 대구 문화판에 있는 사람이라면 모를 사람이 없을 정도로, 대구문화의 한 '부분'을 대표하는 곳으로 서서히 자리 잡았습니다. 한때는 유홍준 교수님이 여기서 강연을 했는데, 너무 많은 사람이 와서 발 디딜 틈이 없었다고 하네요.(위에 사진 참고) 그만큼 지역에서 보기 어려웠던, 오직 <예술마당 솔>에서만 볼 수 있는 그런 공연이나 강좌로 잘 나가던 <예술마당 솔>은 1995년에는 봉산문화거리 에 100평 규모의 공간으로 확장하기에 이릅니다.

<예술마당 솔>을 23년째 지키고 계신 손병열 사무국장님. 외모에서 부터 예술인의 포스가 느껴진다.

4층이고 들어오는 입구도 좁은데 키보드가 아닌 피아노가 떡 하니 있다. 대체 어떻게 여기로 옮겨 온거지? 의문이 든다. 이 피아노에는 여떤 사연이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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발로 뛰는 나불나불

ㅣ <예술마당 솔>이 대구문화의 중요한 곳으로 자리매김하던 봉산동 시절. 이 당시에 문화 답사 형식의 프로그램을 운영했다.

since 2005, <예 <예술마당 솔> 사라질 뻔하다. since 2005, 술마당 <예술마당 솔>은 문화단체로서 대안문화공간<예술마당 솔>에서 진행할 행사나 공연을 기획할 뿐만 아니라 그 밖의 영역에서도 기 획활동을 하고 답사형식의 프로그램을 하는 등 왕성한 활동을 했습니다. 그러던 영원할 것 같았던 <예술마당 솔>은 2005년에 돌연 ‘<예술마당 솔>해체 선언’을 하게 됩니다. 어쩌면 해체선언은 이미 예정된 수순일지도 몰랐습니다. 이제 <예술마당 솔>이 더 이상 희소성이 없는 공간이 되었기 때문이죠. 지 방자치제도가 시행되면서 지역 단위로 많은 문화예술기관이 들어서고, 예전에 얼마 없던 문화통로가 넓어지는 등 세상은 변화하고 있는데, <예술마당 솔>은 과거의 했던 것을 반복하고 있다 보니 활동이 점점 위축되다가 결국에는 운영이 어려워 졌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예술마당의 ‘해체 선언' 사태까지 일어난 것이죠. 그러나 이 선언에 반발하여 <예술마당 솔>의 초기 멤버를 중심으로 뭉쳐서 <예술마당 솔>을 복원하기 시작했습니다. 민예총 사무 실에 더부살이 하며 변변한 사무실도 없이 그저 명맥만 유지하던 상황에서, 꿋꿋이 버티고 애쓴 결과 <예술마당 솔>이 아직도 우리 곁에 존재할 수 있었습니다. 한때 4000부나 찍었던 <예술마당 솔>의 소식지는 예술마당의 활동이 약해짐에 따라 함께하는 회원들과 후원해주는 사람들이 사라 져, 지금은 약 700부 정도만 찍고 있다고 합니다.

● 이번 해 <예술마당 솔>에서 했

# 1 소식지를 아시나요?

던 행사들. 유쾌한 갤러리 (좌) / 우포의 사계 - 봄(우) <아트 쉐어, 유쾌한 갤러리>는

<예술마당 솔>의 ‘소식지’는 처음

참여 작가들이 그린 작품의 경매와

에 행사와 공연 일정을 알리고, 회

작가와 직접 이야기 하는 시간을

원을 모집하는 매신저로서의 역할

가지는 프로그램이다.

만 하다, 나중에 문화잡지적인 성

(7월에 준비 중)

격이 조금 가미된 형식으로 발전되

<우포의 사계>는 매 계절 마다 변

었습니다.

하는 우포늪의 모습을 만끽하는 테

지금은 인터넷을 통해 내가 원하

마 여행 프로그램이다.

는 곳에서 하는 행사를 실시간으로

현재 여름 편을 준비 중이다.

알 수 있지만 90년대만 해도 아직 인터넷으로 정보를 얻는 것이 대중 화되지 않았을 때라 이렇게 소식지 를 보고 공연을 찾는 사람들이 많 았다 하네요. 하지만 1990년 10월 창립 이후 부터 2000년대 초반까지 발행되던 소식지는 ‘해체 선언’ 때문에 중단 되었습니다. 그러다 얼마 전 2012 년 8월부터 다시 발행을 하고 있다 네요.

● 5월 16일에 진행 되었던 ‘배영옥 시인과 함께하는 쿠바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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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02년 소식지(좌) 와 최근에 복간한 소식지(우) 의 모습


ㅣ 최근 재래시장에 미술을 접목 시킨 행사를 기획하고 1년간의 총결산을 가지는 전시를 열었다. (경대 대강당 지하전시실)

Since2013, 이젠 다시 젊어져야 할 때……

대구에서 <예술마당 솔>은 1990년대만 해도 동시대의 청년들과 같이 호흡하던 공간이었습니다. 그러나 이제 시간이 지나 강산이 2번 변하고, 어느덧 그 당시 청년들은 모두 우리의 아버지뻘이 되었습니다. 현재 서문로 2가에 자리를 잡은 대안문화공간으로서 <예술마당 솔>에는 30여명 정도가 수용 가능한데 사무국(053) 423-4244)에 미 리 신청만 하면 무료로 공간을 사용할 수 있습니다. 피아노, 빔프로젝터, 약간의 음향 시설들이 설비되어 있고 현재 <모디>에 연재를 하는 비아 트리오도 이 곳을 연습실로 사용 중이죠. 문화단체로서 <예술마당 솔>은 법인을 사단법인으로 바꾸고, 경북지회를 만들어서 활동하는 등 이전의 ‘해체선언’ 같은 일을 겪지 않기 위해서 다양한 길을 모색하고 변화를 시도하고 있습니다. ‘앞으로 <예술마당 솔>이 계속 유지되기 위해선 우리가 뜻이 있는 젊은 사람들이 일할 수 있도록 지원해주고, 그 사람이 기획한 콘텐 츠를 통해 이 공간에 젊은 친구들이 많이 와서 그 세대에 문화에 맞는 새로운 소통 방식으로 소통하는 공간으로 세대 전이가 되어야 한다.’라고 말한 손병열 대표님의 말처럼 하루빨리 1990년대에 보여주었던 젊은 공간으로서 <예술마당 솔>의 모습을 볼 수 있으면 좋겠습니다.

#2 <예술마당 솔>은 회원제로 운영이 되고 있습니다. <예술마당 솔>은 일종의 협동조합처럼 운영이 되는데요. 후 원해주는 사람들의 성금과 대구시에서 하는 지원사업을 통해 나오는 돈으로 공연과 프로그램을 만들어서 진행한답니다. 가 끔씩 정기총회를 열어 이 후의 사업계획이나 예산의결을 하고 요. 아! 그렇다고 '회원'이여야만 이 공간을 쓸 수 있는 것은 아니 고, 그냥 자유롭게 써도 상관은 없습니다. 단지 회원이 되면 < 예술마당 솔>에서 하는 행사에 혜택이 있는 정도!?입니다.

<예술마당 솔>의 많은 부분을 함께 했던 소식지. 세월의 흔적이 물씬~! <예술마당 솔> 이 때 까지 걸어왔던 일기와 다름 없는..

문화예술 작은 도서관을 꿈꾸는 <예술마당 솔>의 모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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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역직업탐구보고서 잡식생활

잡식 [job食] 생활 취재*혜린,가인 편집*혜영

신문 기자

지역 살리기는 기본. 통찰력이 메인, 경험이 서브하는 기사

기자라 함은 비록 뽀대나긴 하나 취재에 바쁘고 기사쓰기에 한 번 더 바쁜 직업을 뜻하는 말. 은연 중 기자를 이런 식으로 정의하곤 했다. 우리가 모르는 곳에서 은밀히 일하고 너무 바빠서 숨 돌릴 틈도 없을 것 같아 미처 물어보지 못해 막연한 추측만 난무했던 ‘기자’라는 직업의 진짜면모를 매일신문의 황희진 기자를 통해 알아보았다.

프롤로그 언론‘고시’라 할 정도로 기자가 되는 것은 좁은 문이다. 하지만 기자를 꿈꾸고 있는 많은 이들이 있다. 현직기자와의 인터뷰를 통해 ‘기자라는 직업에만 포커스를 맞추지 말고 관련된 여러 일들을 해보자. 언론시험은 꾸준히 공부하는 게 답이다. 글쓰기는 주제는 명확하되 간결하고 짧게 쓰는 게 답이다’ 등 등의 알찬정보와 함께 ‘지역을 잘 살리는 기자가 되어야 신문과 지역이 서로 윈윈하게 된다. 더 나아가 ’사회를 위한 기사를 써야한다‘와 같은 기자로서의 마인드를 배울 수 있었다. 또한 매일신문의 지역신 문으로서의 입지와 인재상 까지 알 수가 있었다. 기자에 대한 이모저모한 이야기 덕분에 밥을 안 먹어 도 배부른 기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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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간단한 자기소개 부탁드립니다 매일신문 사회2부에서 2년 6개월차 기자 활동을 하고 있는 황희진입니다.

2 기자가 되기까지.. Q. 처음부터 목표가 기자였나요? 기자를 꿈꾸게 된 특별한 계기가 있으세요? 처음부터 기자를 목표로 하고 신문방송학과에 간 건 아니예요. 학교에 다니면 서 광고학회에서도 있었고 PD에 관심이 있어서 영상도 배워봤었고 글쓰는 데 도 흥미가 있어서 기자도 생각해보는 중에 이렇게 기자라는 직업을 선택하게 되었어요. 시험을 칠 때 방송국에도 시험을 쳐보고 신문사도 시험을 쳐보고 하던 중 이렇게 기자가 되었어요. Q. 신문기자가 되려면 어떤 과정을 거쳐야 하나요? 언론시험을 쳐야 해요. 모든 언론사에서 시험 유형은 비슷해요. 논술과 작문 으로 이뤄진 글쓰기가 있구요. 부수적으로 상식을 공부해야 하구요. 영어능력 도 갖춰야 해요. 영어능력은 토익점수가 지표가 되구요. 그래도 가장 중요한 건 논술이예요. 합격선에서는 언론사마다 기준이 다양해서 일일이 정확히 알 순 없지만 시험에 합격하는 사람들을 보면 여러 번에 걸친 시험으로 노하우를 얻어서 1,2년에서 3,4년 꾸준히 공부해야 시험에 합격하곤 하더라구요. 어느 정도 이상 열심��� 하는 게 중요하다고 생각해요. 그리고 운도 따라줘야 하는 것 같아요. Q. 기자가 되려면 논술 시험을 쳐야 하잖아요. 그리고 꼭 시험이 아니더라도 글쓰기를 잘할 수 있는 비법을 알려주신다면 어떤 게 있을까요? 글을 쓸 때 주제가 명확해야 해요. 그래서 짧고 간결하게 쓰는 것이 필요한데 요. 그런 종류의 글을 읽다보면 익숙해지는 것 같아요. 신문에 보면 칼럼들이 있는데요, 재밌는 칼럼을 읽거나 베껴 쓰기를 하다보면 체득화 되서 실력이 느는 것 같아요. 또한 경험도 중요해요. 다양한 경험을 해봐야 다른 사람들과 다른 글로 나오는 것 같아요. Q. 필수 관문이 또 하나 있죠. 한국어 능력 시험!! 공부 비법이 있으신가요? 한국어 능력시험이 필요한 곳도 있지만 대부분은 필요로 하지 않는 것 같아 요. 매일신문은 필요하지 않았구요. 이렇게 회사마다 다르니까 어느 것을 공 부할 지 선택하고 집중해서 준비하는 것이 중요한 것 같아요. Q. 기자가 되기 위한 필수 조건을 꼽자면 ‘이것 ’이다! 기자라고 해서 글만 쓰면 되는 것은 아니더라구요. 아무래도 사람을 만나니까 친화력이 중요한 것 같아요. 그러면서 서로 정보도 공유할 수 있구요. 그리고 현장에서의 눈치와 감이 필요한 것 같아요. 또한 다른 사람들이 보지 못하는 것들을 볼 줄 아는 눈이 필요해요. 그래야 다른 경쟁 기자들과 다른 기사를 쓸 수 있거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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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 기자와 "매일 신문" Q. 취재부터 출판까지, 신문이 나오기까지의 과정을 알고 싶 어요.

Q. 요즘 우리 지역에서 ‘뜨거운 감자’는 무엇인가요? 아무래도 신공항 아닐까요?^^

매일신문은 석간이예요. 아침 7시 전후로 그 전날 취재했던 기사를 가지고 부장에서 편집국장까지 나와서 회의를 해요. 그러곤 8시에 기자들이 출근을 해요. 그걸로 10시까지 리라 이트를 해요. 그러고 나서 2~3시간 동안 편집을 해요. 그러고 나면 11시 반쯤이 되는데요, 그러곤 신문 찍어내는 공장에 넘 겨요. 공장이 성서에 있는데 그곳에서 이제 대구전체로 배포 를 해요. 그러고 나면 기자들은 오후에 취재를 해요. 보통 이 렇게 반복되는데요. 일주일 단위나 한 달 단위나 연단위로 기 획기사를 회의하기도 해요. 늦으면 7시나 8시쯤 퇴근을 해요. (Modi 매일신문이 일간지이다 보니 하루 일과가 굉장히 빡빡 한 것 같아요) Q. 취재 기자와 편집 기자는 하는 일이 어떻게 다른가요? 취재 기자는 관공서, 기업, 문화관련 등등 출입처에 담당을 맡 아서 취재를 맡고, 또는 보도자료를 받기도 해요. 편집 기자들 은 출근을 해서 회사에서 편집을 하세요. Q. 현재 사회부에서 일을 하시고 계시잖아요. 어떤 일을 담당 하고 계신가요? 사회1부는 대구를 담당하고 사회2부는 경북을 담당하고 있 어요. 저는 처음에 입사하고 나서 사회1부에서 있었고 지금은 사회2부인데 주로 경북도청에 가서 취재를 하고 있어요.

Q. 승진해서 직위가 올라가도 기사를 작성하나요? 직위가 기자 위에 차장 있고 부장 부국장 편집국장. 이렇게 올 라가요. 차장 까지는 취재를 하고 부장부터는 기사를 보고 배 열하고 붙이는 작업을 해요. Q. 방송 기자들은 앵커, 출판 업계 쪽으로 이직하는 분들이 있 던데, 신문 기자들은 어떤가요? 알게 모르게 정제계로 가시는 분들도 있고 계속 기자생활 하 시는 분들도 있어요. 참, 소설가도 있으세요. Q. 기자가 되고 보니 이런 점이 좋더라, 싫더라 하는 건요? 별로인건 일간지라 기사도 자주 바뀌어야 하구요. 일이 많고 사건이 언제 터질지 몰라서 생활이 불규칙하게 되기도 하구 요. 좋은 점은 남들 보다 미리 앞서서 사건을 알 수 있다는 게 장점이예요. 특히 기사쓰는 게 취재 전에 미리 ‘이럴 거야’라며 추측과 예측을 하고 사람들을 만나보고 사건을 알아채는 건데 요. 이렇게 취재 전에 예측했던 게 막상 취재에서 논리적으로 맞아 떨어질 때 쾌감을 느껴요. Q. 기자만의 직업병이 있다면요?

Q. 지역지로서의 매일신문의 입지에서 중앙 뉴스를 다루는 비 중은 어느 정도인가요? 국가적인 일이면 지역지나 중앙지 상관없이 크게 실리구요. 따로 중앙 뉴스의 내용이 실리는 건, 예를 들어 ‘국회에서 지방 분권 정책이 나왔다’라고 하면 국회의 일이지만 지방과 관련 된 일이니까 실리는 거예요. Q. 기자는 사건이 발생하면 기사거리를 배당받나요, 아니면 선점을 위해 무조건 뛰어야 하나요? 그리고 사진은 직접 찍으 시는 거예요? 반반이예요. 배당 받을 때도 있고 제가 찾아서 하는 경우도 있 구요. 사진은 저희가 따로 사진부가 있어서 신청을 하면 같이 취재를 나가요. Q.내가 취재해본(만나본 사람들) 사건 중에 가장 황당했다/심 각했다/끔찍했다 하는 것이 있다면요? 최근에 일어난 사건인 경북대 여대생 살인 사건을 맡았던 중 부경찰서에 출입하는 기자는 그런 경험을 했을 거예요. 하지 만 저는 그동안 딱히 그런 경험은 없었다고 생각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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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는 좀 덜한 편인데요. 제 동기는 선배들이나 다른 사람과 이 야기 할 때 취조 수준으로 대화를 한다고 해요. 본인은 모르는 데 주위사람들이 그렇다고 이야기들 한다더라구요;;^^ Q. 매일신문이 원하는 기자는 어떤 기자인가요? 아무래도 지방이 소외되는 데 그것을 잡아내서 풀어낼 수 있 는 마인드가 필요한 거 같아요. 지역이 잘되어야 서로 윈윈하 기도 하구요. Q. 월급은 어느 정도인가요? 먹고 살만한 정도예요^^ 대구물가에서 아직은 만족해요^^ Q. 특종 기사를 잡았을 때 혜택이 있나요? 예를 들면 보너스? ㅋㅋ그런 건 없어요. 오히려 특종이나 속보를 하면 자기만 피 곤해 질 수도 있어요ㅋㅋ 하지만 ‘격려’를 해주겠죠!^^


4 좀 더 개인적인 질문들 Q. 본인이 생각하는 올바른 기자상이 있다면요? 일단 기본으로 기사를 쓰는데 있어서 폐를 끼치지 않는 기자 가 되어야겠구요. 개인적으로 올바르다는 게 사회를 위한다는 개념인 것 같아요. 그래서 사회를 위하는 마인드가 필요한 것 같아요. 또한 기자 개인의 만족도에서 충족이 되면 사람이 여 유가 있어지고 쫒기지 않게 되니까 그 이후에는 자연스레 사 람들이 원하는 올바름이 충족되는 것 같아요. Q. 박대기 기자와 같은 스타기자가 되어보고 싶으신 적은 없 으신가요?

Q.인터넷과 스마트폰의 발달로 갈수록 종이 신문의 비중이 줄 어드는데 이에 대한 생각은 어떠신가요? 앞으로 종이 신문이 가야 할 방향은요? 종이신문을 하면서 인터넷도 강화를 하고 있어요. 다행인 건 종이 신문을 고수하시는 어르신들이 있어요. 그래서 저희는 기사를 쓸 때 이분들을 위해서 영어를 한글로 최대한 풀어 쓰 고 있어요. 어르신 독자가 많은 대구라는 지역 특수성을 감안 해서 향후 몇 년은 이렇게 이루어지겠고요. 하지만 그 이후로 는 아직 알 수가 없는 일이예요. 장기적으로 봤을 땐 어려울 거란 예측까지만 하고 있어요.

스타기자가 되면 좋겠지만, 지금은 사람들이 제 기사를 보고 ‘재밌네’ 하는 기자가 되고 싶어요.

Q.매일 신문 독자들에게 한 말씀 부탁드려요.

Q. 기자로서 가장 보람을 느낄 때는 언제인가요? 반대로 회의 감이 들 때는요?

구독해주셔서 감사드리구요. 끊지 마시고 계속 구독 하셔서 매일신문과 함께 지역의 정책과 경제 등등을 접하고 일상생활 에서의 이익과 편리함을 누리셨으면 좋겠어요. 그리고 사회의 변화를 같이 지켜봤으면 좋겠어요.

잘못된 정책에 대한 기사를 썻는데 그 기사를 통해 다음날 정 책이 고쳐져서 ‘정책이 고쳐졌습니다’라는 기사를 쓸 때 보람 을 느꼈어요. 이런류의 기사를 두고 연속적으로 이어지는 기 사라 해서 속보라고 하거든요. 이렇듯 속보를 쓸 때 보람을 느 껴요. ‘기자는 속보를 써야지’라는 관념이 신문사 안에 있기도 해요. 반면에 회의감이 들 때는 아무래도 몸이 아프거나 힘들 때예요. 그거 외엔 없어요^^ Q.기자라면 외부의 압박과 내 생각 간의 괴리가 있다더라구 요. 실제로 그런 경우엔 어떻게 대처하시나요? 시민단체에서 항의 전화가 올 때가 있어요. 그럴 때 의견을 주 시는 경우엔 기사에 그걸 반영하기도 해요. Q.요즘 청년들은 자기 목소리를 내는 것을 두려워하는 경향이 있잖아요. 그에 대해 조언을 해주신다면요?

Q.기자를 꿈꾸는 청년들에게 한 말씀 부탁드려요. 기자라는 직업만 생각을 안했으면 좋겠어요. 기자가 기자라는 명칭보다는 정보 제공자, 정보 생산자, 정보 서비스 등의 여러 역할을 하는데요. 따라서 영상이나 SNS와 같은 부수적인 다 른 것도 알면 더 좋을 것 같아요. 그래서 PD, 신문, 광고 등 여 러 가지 방향으로 공부하면 좋을 것 같아요. 저희 신문사에서 글쓰는 기자들 중에서 채널A와 업무협력을 맺어서 방송마이 크를 잡으시는 분도 계시거든요. 다른 언론사도 그렇고 이렇 게 멀티적인 역할을 부여하는 것 같아요. 여러 가지 생각을 염 두에 두시고 많은 경험을 하시구요. 취직할 땐 입사시험에 전 력을 쏟아서 이후 합격을 하신 다음에 자신이 하고 싶은 분야 를 개척해나간다면 더 즐거운 인생이 되지 않을까 해요.

나름대로의 논리를 갖추고 타당성 있게 매끄럽게 쓰면 남들이 뭐라한다 하더라도 당당할 수 있는 것 같아요. 또한 객관적으 로 생각을 하고 주장을 펼친다면 외부에서 들려오는 다른 이 야기는 크게 신경 쓰지 않게 되는 것 같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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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역직업탐구보고서 잡식생활

잡식 [job食] 생활 취재*가인,민지 편집*혜영

웹툰 작가

[혈액형에 관한 간단한 고찰] 박동선작가 "여러분, 잉여력을 발휘하세요"

프롤로그 책방에서 만화책 빌려보던 시대는 지나고, 이제는 지하철에서, 버스에서 웹툰 삼매경인 사람들 참 많 습니다. 잘 나가는 웹툰은 책으로도 나오고 상품화도 되어서 웹툰 작가도 무시 못 할 하나의 직업으로 자리 잡았습니다. 하지만 우리가 흔히 생각하는 만화가의 모습은 지저분한 방에서 매일 츄리닝 차림 에 컵라면만 먹으면서 머리는 떡져있고. 저게 일하는 건지 시간 낭비인지, 보면 한숨부터 나오죠. 그런데 이런 잉여 생활(?) 덕에 대박 웹툰을 만들어낸 작가가 있습니다. 총 1년 반 동안의 잉여 생활 이 자랑스럽다는 네이버 웹툰 「혈.관.고」의 작가 박동선 씨를 만나, 웹툰 작가의 세계에 대해 얘기를 들어봤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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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잉여'가 어떻게 웹툰작가가 되었나?

Q. 안녕하세요. 자기소개 부탁드립니다. 안녕하세요. 네이버 만화 「혈액형에 관한 간단한 고찰」의 작가 박동선이고, 경북대학교 97학번 시각디자인과를 졸업했어요. 참고로 O형이고요. Q. 웹툰 작가가 된 특별한 계기가 있으세요? 저는 학교를 오래 다녔어요. 26살에 학교를 졸업하고 집에서 나와 잉여생활 을 시작했어요. 하루종일 미드, 애니메이션, 야동이나 보면서 시간을 보냈어 요. 그걸 1년 간 했죠. 그러다 교육대학원에 들어갔었어요. 대학원 졸업 후에 는 영화 홈페이지 홍보 일, 광고 회사에서 근무했고, 나중에는 미술교사 일까 지 했었죠. 그걸 보고 사람들이 ‘잘됐다’고 하지만, 저는 그게 하고 싶은 일이 아니었으니까 못 견디겠더고요. 지금보다 돈은 덜 벌더라도 스트레스를 덜 받 고 싶어서 관뒀죠. 처음에 제가 원한 건 그림으로 먹고사는 거였으니까요. 또 다시 잉여생활을 하다가 그 후 네이버에 만화를 연재하기로 했는데, 처음부터 쉽지는 않았어요. 소재 때문에 논란의 여지가 있다고 거절도 당했지만 이미 책이 2권 출판되었었고, 판매량도 괜찮았어요. 그래서 네이버 ‘도전 만화’부터 차근차근 시작했죠. Q. 어떻게 혈액형이라는 소재를 생각하셨나요? 교직을 관두고 어느 날엔가, 술자리에서 후배로부터 혈액형에 대한 이야기를 듣게 되었어요. 유행은 한참 지난 뒤였지만 이게 들어보니까 재미있더라고요. 그래서 나름대로 객관적인 자료 조사를 해서, 기존에 웹에 종종 올리던 그림 일기의 부록으로 혈액형 이야기를 올리기 시작했는데 그게 반응이 더 좋은거 에요. 그래서 그림일기는 접고 본격적으로 「혈.관.고」연재를 시작하게 된 거 죠. 제목은 TV 개그 프로그램에서 가져왔고요. Q. 「혈.관.고」의 캐릭터는 어떻게 만들어지게 된 건가요? 일단 전체적인 모양은 사람의 형상을 딴 거고, 눈, 코, 피부, 머리 색깔 같은 다른 특징을 드러내지 않고 혈액형만을 캐릭터에 표시해서, 독자들이 선입견 을 갖지 않길 바라는 마음에 단순하게만 그렸죠. 혈액형만 빼면 다 똑같은 사 람이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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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웹툰 작가의 세계는 어때요? Q. 작업은 전부 컴퓨터로 진행하세요? 네. 아예 스케치부터 PC로 해요. Q. 매주 토요일에 연재하시는데, 연재를 위해 어떤 노력을 기울이세요? 소재를 찾는 게 제일 중요해요. 그래서 책을 찾거나, 메일로 사연을 받기도 하고, 사람들하고 어울리면서 소재를 찾으려고 노력하고 있죠. Q. 마감이 매주 반복되는데, 일과가 어떻게 되세요? 저는 월화수는 여유롭고, 목요일부터 슬슬 시작해요. 어떨 때 는 사연이 없어서 금요일 밤까지 잠도 못자는 경우도 있고요. 저는 하루, 이틀 바짝 작업해서 올려요. 다른 작가분들은 바쁘 던데...저는 많이 여유롭죠. Q. 메일로 받은 사연 중에 제일 기억에 남는 사연이 있나요? ‘A형 가족인데 한번 싸우면 3개월 정도 서로 얘기를 안 해요.’ 라는 게 있었는데, 그건 제가 아니라 상담이 필요한 사연이었 죠. 그리고 ‘A형 남자가 B형 여자에게 고백하고 싶은데 어떡 하죠?’라는 사연도 있었고요. 공감이 되었던 커플 사연들이 기 억에 많이 남아요. Q. 사연을 채택하는 기준이 있으세요? 이야기가 될 만한 것을 뽑아야죠. 그리고 기존 캐릭터들의 성 격과 맥락이 닿아야하고, 한 에피소드에 대해서 4가지 혈액형 의 특성이 모두 드러나야 소재가 될 수 있어요. 제가 상상하는 성격과 맞아 떨어져야 하고요. Q.생각하시는 예상 독자층은요? 딱히 그런 것은 없지만 이왕이면 여대생들이 많이 봐줬으면 좋겠어요 하하. 하지만 실제로 제 웹툰의 주 독자층은 어린편 이에요. 저는 그냥 모든 독자 분들이 제 작품을 보면서 즐거울 수 있었으면 좋겠어요. Q. 요즘 인기 웹툰이 많은데, 그 안에서 돋보이는 「혈.관.고」의 인기 비결이 뭘까요? 공감이 되니까? 사람들이 혈액형에 대해 관심을 갖는 이유가 인간관계를 맺어가면서 생기는 각종 문제에 대한 이유를 좀 더 쉽고 편하고, 단순하게 찾고 싶어 해서가 아닐까요? 예를 들면, ‘제 여자 친구는 A형인데 이러이러해요. 왜 이러는 거 죠? A형 여자는 원래 이런가요?’와 같은 질문에 대해 답을 찾 으려고 혈액형으로 접근한다는 거죠. 그럴듯하게, 손해 안 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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면서, 안전하게 답을 찾기 위한. Q. 「혈.관.고」가 인기를 끌면서 상품화, 애니메이션화도 되었 던데요. 지금까지 나온 건 인형, 공책, 다이어리, 티셔츠 등으로 많아 요. 다만 제 바람은 다른 캐릭터도 다 할 수 있는 상품이 아니 라, 이 캐릭터밖에 할 수 없는 상품이 개발되었으면 좋겠어요. 기존에 상품화 되어 나온 제품 중에서는 개인적으로 휴대폰 고리가 제일 맘에 들어요. 가격도 3,000원 밖에 안 하고. 애니 메이션은 일본에서 제작됐어요. 처음엔 걱정이 많았는데 결과 물은 나쁘지 않더라고요. Q. 돈 많이 버셨겠네요. 하하, 저보다는 회사겠죠. 원고료랑 다르게 상품 판매로 얻는 소득은 회사가 8, 제가 2를 가져오니까요. 아직은 그림 그려 서 버는 돈이 더 많아요. . Q. 그럼 원고료는 얼마나 받으세요? 네이버에서 원고료를 주는 기준이 12개 정도 있어요. 정확치 는 않지만, 마감을 얼마나 잘 지키느냐, 댓글 개수, 별점, 조회 수, 내용, 길이 등의 기준이 있어요. 지금 30대 후반인데, 또래 에 비해서는 많이 버는 것 같아요. 교사 때 수입의 3배 정도? 항상 일정하지는 않아서 월 소득 차이가 10배까지 나기도 하 지만 저는 만족해요. Q. 억대 연봉의 웹툰 작가도 있다고 하던데요? 그런 작가가 있긴 있죠. 하지만 모든 작가들이 그렇다고 하면 과장이죠. 그런데 저는 어떤 분야에서든지, 그 분야의 1등은 부와 명예를 가지는 게 당연하다고 생각해요. 그게 그 사람의 경쟁력, 능력이니까요. 하지만 아마 대부분의 웹툰 작가 분들 은 힘들거에요. 그리고 능력에 비해 대우를 못 받으시는 분들 도 있고요. Q. 웹툰 작가만의 직업병이 있다면요? 아무래도 컴퓨터 앞에 오래 앉아있기 때문에 고3과 같은 신체 변화를 체험 할 수 있어요. 허리가 아프다는 작가도 있고, 팔 이나 손목이 아프다는 작가도 있더라고요. Q. 본받고 싶은 작가가 있다면요? 조석 작가님은, 성실함이나 재능 면에서 정말 대단하신 분이 신 것 같아요. 그 분의 ‘마음의 소리’야 이미 너무 유명한 웹툰 이고, 얼마 전 시작한 ‘조의 영역’도 정말 좋더라구요. 게다가 그 분은 700회를 넘어가면서도 한 번도 마감을 넘긴 적이 없 다는 얘기를 들었어요. 마감을 지키는 게 어려운 저의 경우에 는 너무 대단해 보이는 분이시죠. 또 강풀 작가님은 그림으로 글을 쓰는 소설가 같고요, 윤태호 작가님의 작품을 보면 아주 정적인 느낌이지만 스릴러 같은 느낌이랄까? 이 분들 덕분에 만화의 격이 한 단계 더 높아진 것 같아요.


3 여러분, 잉여력을 발휘하세요. Q. 웹툰 작가들끼리 종종 모임을 갖기도 하나요? 네이버 작가들만 가입할 수 있는 카페가 있어요. 그걸 통해서 수도권에서 활동하시는 분들끼리는 친목을 도모할 기회가 많 은 것 같더라고요. 하지만 저는 경산에 살다보니까 자주 참여 할 수가 없죠. 오히려 그런 자리가 불편하더라고요. 가까운 주 변 사람들과 모이는 것만으로도 충분하다고 생각해요. 그래도 몇몇 작가들끼리 모여서 아이디어 회의를 하곤 한다던데, 그 런 건 좀 부러워요. 가끔 외로운 것도 사실이죠. Q. 그럼 서울에서 활동하실 생각은요? 제가 아는 모든 분들은 다 서울에 계시거나, 아니면 나중에라 도 올라가더라고요. 하지만 저는 별로 그러고 싶지 않아요. 거 기선 다들 왠지 모르게 바쁘게 살더라구요. 너무 쉴새없이 생 활해야 하니까 삶의 질이 떨어질 것 같아요. 그래서 저는 지금 처럼. 이렇게 대구에서 활동하고 사는 게 좋아요. Q. 매주 마감의 압박을 느끼실텐데 휴재하고 싶다거나, 회의 감이 들 때가 있나요? 있어요. 금요일 오후 3시가 마감인데, 그때까지 소재가 없을 때면 마음이 갑갑해져요. 별점에도 민감해서 소수점 단위로 숫자가 떨어져도 뜨끔하고요. 아무래도 인터넷 상에서 연재되 니까 ‘좌빨이네’, ‘쓰레기 작가’ 같은 악플을 받은 적도 있고요. Q.「혈.관.고」는 언제까지 연재하실 거에요? 저만의 문제가 아니어서 회사도 생각해야 하니까요. 당분간은 「혈.관.고」를 계속 잡고 있어야 할 것 같아요. 하지만 다음에는 조금 더 스토리가 있는 작품을 시도해 보고 싶어요.

Q. 개인적인 목표가 있다면요? 삶의 목표라면, 저는 이런 말을 하곤 해요. ‘세상 사람들을 돈 많이 버는 사람들 순으로 세운다면 나는 뒤쪽에 있겠지만, 행 복한 순서대로 세운다면 분명히 나는 앞쪽에 있을 거야.’라고 요. 지금처럼 꿈을 이루고 살면서 어느 정도의 수익을 낼 수 있는 일을 할 수 있다는 게 정말 행운인 것 같아요. 소박하지 만 즐거운 삶이랄까? Q. 그럼 웹툰 작가로서의 미래는요? 작품에 대한 목표는 사회적으로 타락한 사람들, 예를 들어 종 교인이나 정치인들의 양면성을 드러내고 싶어요. 그러니까 무 거운 내용을 만화만이 가질 수 있는 특유의 장점을 십분 활용 해서, 독자들에게 어둡지 않게, 친근하게 접근시키고 싶네요. 「혈.관.고」랑은 다르게 스토리가 있는 만화를 그리고 싶죠. Q. 웹툰작가 지망생들에게 조언을 해주신다면? 저는 ‘덕분에 재밌게 봤다.’하는 말에 매번 힘을 내고, 아직도 그림 그리는 게 좋거든요. 저는 애초에 이 일에 대해 직업적으로 접근하진 않았는데, 요즘 젊은 분들은 저랑 접근방식이 조금 다른 것 같아요. 그래서 연봉도 궁금한 거겠죠? 저는 그냥 재미로 그림을 그리다 보니 좋아졌고, 어찌하다 보니 ‘평생해 도 되겠다’는 생각이 들어서 전업으로 삼게 된 거에요. 그러니 까, 이건 정말 하고 싶은 일이라는 확신이 든다면 해보라고 말 하고 싶어요. 그리고 그 확신을 갖기 위해선 그 전에 정말 잉 여같은 시기를 보내면서 자신을 들여다보는 시간이 필요하다 고 생각해요. 지금 생각해보면 맘껏 TV 보고, 만화책 보고, 미 드 보고... 정말 하고 싶은 대로 하면서 살았던 덕분에 어느 순 간 가장 근본적인 질문으로 돌아가면서 깨달음을 얻은 것 같거든 요. ‘아...이렇게 놀아보니 결국은 다 질리는데... 내가 몇 년을 하더라도 질리지 않을 만한 그런 일은 뭘까?’ 이게 변화의 첫 걸음인거죠. 한마디로, 부모님이랑 떨어져서 혼자 살아봐 라! 잉여가 돼 봐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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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고 * 연재

아리랑을 들려주러 유럽에 간다. 이번이 세번째다.

지 방 음 대 졸 업 생 들 의

계 란 으 로

바 위

깨 는

번 째

유 럽

도 전 기 .

두 번 째 이 야 기 + 우 여 곡 절 끝 에 런 던 으 로

#0. 세 번의 준비, 조금은 노련해진 우리들

유럽투어 이틀 전, 드디어 4집 음반을 대구에서 택 배로 받았다. 이전엔 항상 유럽으로 떠나기 전날 음 반을 받았는데 이번엔 이틀 전에 받았으니 소중한 하 루를 번 셈이다. 이렇게 번 하루를 이용해 음반을 선 (先)주문 한 분들에게 사인과 메시지를 적어 함께 발 송했다. 분주하지만 이전보단 확실히 노련해진 솜씨로 짐을 쌌다. 우리가 노련해졌다는 것은 짐 양이 확연히 줄 어들었다는 것을 통해 알 수 있었다. 처음 유럽 갈 준 비를 할 땐 필요한 물품들을 인터넷 쇼핑으로 하도 많이 사서 택배가 매일 사무실에 왔었다. 하지만 그 렇게 준비해간 것들 중 투어 내내 한번을 사용 하지 않은 것도 많았다. 이젠 세 번째 아닌가. 잘 안 산다. 빌리거나 없이 지낸다. 2013년 6월 21일, 이렇게 아 리랑 공연을 위한 우리의 세 번째 유럽투어의 날이 다가왔다. 12시 30분에 출발하는 비행기지만 3시간 일찍 공 항에 도착했다. 차질 없이 출국준비를 하기 위해서 였다. 우리는 먼저, 들고 온 짐들을 화물칸에 실기 위 해 사람들 뒤로 줄을 섰다. 다행이 두 번째 유럽 투어 때, 키보드를 영국에 두고 와서 짐의 무게 제한을 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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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할 위험을 줄였다. 그래도 40일간의 연주여행인 만큼 개인 악기와, 판매할 음반, 각종 짐들을 다하면 수하물 무게 제한을 넘길 수도 있을 것 같아 조금은 걱정했다. 저번 여행 땐 짐이 너무 많아서 결국 집으 로 보냈다가 다시 비싼 돈을 들여 다른 비행기(항공 우편)를 통해 받은 적이 있었다. 가야금 때문에 조금 의 문제는 있었지만 돌려보내는 물건 없이 모든 물건 을 비행기에 실을 수 있었다. 무사히 짐을 싣고 파리 드골 공항으로 출발했다. 12시간 후. 파리 시간으로 오후 6시, 우리는 파리에 도착했다. 제일 먼저 입국심사를 받았다. 입국심사는 해외여행을 해봤다면 한번쯤 거쳤을 꽤나 까다롭고 귀찮은 일이다. 괜한 영어 울렁증이 다시 도지기 시 작했다. 그런데 파리 드골 공항의 입국심사는 지금껏 어떤 나라의 공항과 비교해도 간단했다. 여권 사진과 얼굴을 한 번 씩 번갈아 본 뒤 여권에 도장을 찍어주 고는 그냥 통과였다. 그 흔한 “왜 왔냐?”라는 질문조 차 없었다.


하지만 고난은 그때부터 시작됐다. 총 5명의 멤버 중 3명은 아시아나, 2명은 대한항공 비행기에 몸을 실었다. 아시아나 비행기가 먼저 도착했기 때문에 먼저 온 세 명이 한국에서 미리 예약해 놓은 차를 찾아오기로 했다. 그 세 명 중에서도 한 명은 짐을 지켜야 했기 때문에 나를 포함한 두 명이 차를 찾으 러 갔다. 우리가 있던 곳은 터미널 1이었는데 차는 터미널 3으로 가야 찾을 수 있었다. 드골공항이 크 다는 것은 알고 있었지만(드골공항은 파리 대표 국 제공항으로 비행기 횟수기준 유럽에서 제일 바쁜 공항이다) 터미널 3으로 가는 길은 생각보다 너무 멀었다. 안내데스크에 물어보니, 공항전철을 타고 어느 정도 나간 뒤 2km 정도를 더 걸어가야만 터 미널3이 나온 다는 것이다! 나는 당황했다. 혼자 짐을 지키고 있는 멤버가 걱 정되기도 했지만 예상 했던 시간과 차이가 생겼기 때문이다. 대한항공을 타고 늦게 출발한 2명의 멤 버가 도착하기 전에 차를 찾을 수 있을지도 걱정이 었다. 어쨌든 지금은 한 시라도 빨리 차를 찾는 것 이 중요했기 때문에 무작정 터미널 3으로 출발했 다. 터미널 3에만 도착하면 쉽게 찾을 수 있을 거라 고 생각했던 차 대리점이 보이질 않았다. 어쩔 수없

이 안내데스크에 가서 물었다. 직원은 프랑스식 영 어로 열심히 가르쳐 줬다. 하지만 우리가 분명히 들 은 단어-문장이 아닌 단어는-사실 몇 단어 되지 않 았다. 다 알아듣진 못했지만 우린 다 알아 들은 척 “메르씨(merci)”와 “땡큐”를 번갈아 외치며 다시 주차장으로 나올 수밖에 없었다. 이제는 알아들은 몇 개의 단어를 조합해 차를 찾든 대리점 찾든 결판을 지어야 했다. 그러나 넓디 넓은 주차장에서 공항 직원에게 얻은 알아듣지도 못한 힌트로는 도저히 찾을 수 없었다. 어쩔 수 없이 우 린 다시 안내 데스크에 가서 묻기로 했다. 직원에 게 뭐라 말을 해야 하나 생각하며 무거운 발걸음 을 돌리는데 웬 잘생긴 프랑스 청년이 나를 빤히 지켜보는 게 느껴졌다. 차를 빌린 대리점에서 나 온 직원이었다. 프랑스인이 이렇게 반갑기는 그때 가 처음이었다. 과정은 힘들었지만 그래도 ‘럭키’. 하지만 끝이 아니다. 차를 찾았으니 멤버들을 찾으 러 가야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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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난 리스 (lease;장기대여)한 차는 어디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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차를 찾고 얼마 되지 않아, 늦게 출발한 2명의 멤버 가 터미널 3으로 도착했다는 연락을 받았다. 마침 터 미널 3에 있던 우리는 추위에 떨며 기다리고 있는(한 국은 무더운 여름이었지만 프랑스는 쌀쌀한 날씨였 다.) 멤버들을 태우고 터미널 1에 남아 짐을 지키는 마지막 멤버를 찾으러 갔다. 문제는 주차장을 벗어나기도 전에 다시 생겼다. 공 항 안쪽에 있는 무인 기계에서 주차비용을 다 지불하 고 난 뒤 출구에 있는 기계에 넣었는데 자꾸 토해내 는 것이었다. 계산을 잘못했나 싶어 다시 공항으로 돌아가 주차권을 넣었는데 정산기계마저도 티켓을 토해냈다. 스피커폰에 대고 상황을 설명했지만 스피 커 속 직원의 말은 자막 없는 프랑스 영화처럼 전혀 이해가 되지 않았다. 정말 최악의 상황이었다.

어떻게 해볼 도리가 없이 주차장에 갇힌 지 2시간이 넘었다. 주차장에 있던 차들은 어느새 대부분 나가 버리고 주차장은 썰렁해지기 시작했다. 자포자기 심 정으로 정산기계에 주차권을 다시 한 번 넣었더니 “3 유로를 더 넣으시오”라는 말이 흘러나왔다. 아무 반 응이 없다가 반응이 생기니 돈을 더 내라는 말임에 도 반가웠다. 급히 정산을 끝내고 다시 차로 돌아가 얼른 차단바 기계에 주차권을 넣었다. 하지만 역시 나 다시 토해냈다. 이젠 화도 나지 않았다. 그렇게 모 든 멤버가 절망에 빠져있을 때 출구 쪽으로 향하는 차가 눈에 띄었다. 그리곤 본능적으로 외쳤다. “Help Me!” 우리의 다급한 외침에 차에서 내린 프랑스 운 전자는 우리 쪽으로 와서 몇 가지를 물으며 주차권을 이리저리 살폈다. 그러더니 곧 주머니에서 열쇠를 꺼 내 차단바를 수동으로 열어줬다. 우리는 모두 안도했 고 환호했다.

#3 고난

하지만 환호도 잠시 불행의 여신(?)이 우리를 쉽게 놔줄리 없었다. 빌린 차량엔 기름이 없던 것이다. 런 던을 가기 위해 깔레항으로 향하던 우리는 주유소를 찾아 무작정 도시를 헤멜 수는 없었다. 그저 우리가 가는 곳에 주유소가 나오기만을 바랄 수밖에.

차가 언제 멈출지 몰라..

최대한 액셀을 밟지 않고 연비를 높이며 갔다. 드디 어 마지막 고비가 왔다. 오르막길이었는데 어쩔 수 없이 엑셀을 밟았다. 차가 떨리기 시작했다. 속도가 급격히 느려지며 힘겹게 오르막을 올랐다. 하지만 결 국엔 내리막을 만났고 엑셀 없이 주유소로 들어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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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고난 2시간 동안 주차장에 갇히다

그렇게 깔레항에 도착, 페리호를 타고 영국 런던에 있는 도버항에 도착했다. 그리고 미리 예약해 둔 한 인분이 운영하시는 민박에 숙소를 잡았다. 드디어 휴식이다. 마침내 3일 후면 글래스톤베리 페스티벌에 들어간 다. 두 번째 에피소드는 처절했지만 세 번째 에피소 드는 한국의 아리랑을 알리는 멋진 비아트리오의 이 야기를 들려 드리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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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기심에 나선 대구 기습 : 나.대.기.

두 번째 나댐_1호선 큰고개역

큰고개역의 큰고개는 정말 ‘큰’ 고개인가? 정말 ‘큰’ 고개인가? 글 혜은 편집 현지

* 참고 김기현 「대구 동구의 오래된 이야기」

앞서 대공원을 다녀온 후, 아직 의구심 이 사그라지지 않은 역들이 몇몇 있었기 에 이번 나댐에서도 그 중 하나를 이야기 하려고 합니다. 그것은 큰고개역. 한자어 로 된 다른 역들과 달리 너무도 순진스러 운 한글 이름의 이 역은 읽는 그대로 해석 됩니다. 큰, 고개. 큰고개는 큰고개 오거리와 파티마병원 사이에 있었던 큰 재로, 걸어서 겨우 넘어 갈 정도여서 옛 부터 큰고개로 불렸다고 합니다.

밋한 대구도로 중에서, 버스를 타고 갈 때 그나마 내리막의 속도감이 느껴지던 죽전 네거리 구 병원 방면 도로의 약 2배 정도 였다고 할까요. ‘큰고개 목욕탕’, ‘큰고개 식당’, ‘큰고개 성 당’등 ‘큰고개’라는 호를 달고 있는 상점도 제법 눈에 띄었습니다. 지역명 때문에 으 레 지어진 게 아닌 실제로 ‘큰고개’위에 자 리 잡은 ‘큰고개 목욕탕’은 마치 성산 일출 봉에 있는 일출봉식당같은 당당함마저 느 낄 수 있었습니다. 저는 자전거를 끌고 지 나가는 인상 좋은 아저씨 한 분에게 큰고 개라는 이름의 연유에 대해 여쭤보았습니다.

얼마나 컸기에 역 이름으로까지 지정되었으며, 그 고개가 과연 지금도 남아있을까요? 지난번과 마찬가지로 일단 큰고개역으로 향했습니다. 큰고개 오거리의 중심을 마 주할 수 있는 3번 출구로 나온 저는 오거 리의 활기찬 교통상황을 느끼며 발걸음을 옮겼습니다. 표지판은 각각 ‘파티마 병원’, ‘복현 오거리’, ‘동구청’ ‘만촌 네거리’ ‘동대 구역’ 을 큼지막한 화살표로 가리켰습니 다. 파티마 병원 방면의 ‘큰 고개’는 다행 히 완전히 평평하게 깎이지는 않아서 ‘큰 경사의 도로’가 되어있었습니다. 저는 동 북로를 따라 큰 고개를 넘기 시작했습니 다. 사실 그렇게 높은 오르막은 아니었지만 다른 도로들보다는 차이가 있었습니다. 평지도시라는 이름에 걸맞게 대부분 밋

“여(여기)가 옛날에 큰 재였거든. 나무 해 가(해서) 지고 다닐 때 고개가 높아서, 그 래가 큰 고개라 한 거야. 동화사, 파계사 가는 길목 말고는 대구 시내에서는 여(여 기)가 제일 높아.” 큰고개역은 현재 오거리명칭(큰고개오거 리)을 따라 제정하였다고 합니다. 현 아양 초교 앞에는 작은 고개가 있었고, 500m 쯤 오면 조금 높은 길이 있었는데 (현 신 암전화국 동편) 이 길을 ‘큰고개’라 불렀 으며, 아저씨가 말씀하신 대로 공산면 일 대의 주민들이 땔감을 팔러 다니던 고갯 길이었다고 합니다. 옛날에는 이 큰 고개 가 꽤나 높고 꼬불꼬불 했던 길로서 지겟 군은 몇번을 쉬어 넘었고, 소달구지도 뒤

에서 밀고 밀어 겨우 넘었으며 일제 중기 에 나온 목탄차도 헐떡이며 넘다가 엔진 이 꺼지면 다시 시동을 걸어 넘을 정도였 다고 합니다. 이 고갯길은 일제시에 대구하양-영천을 잇는 국도가 개설되면서 차 차 길이 넓어지기 시작하여 1950년에서 1977년 사이에 세 차례에 걸친 국도 확 장 공사로 높았던 고갯길이 계속 낮아져 지금은 35m의 넓고 완만한 고개로 변하 여 옛날 큰 고개의 모습을 찾아보기 힘들 게 되었다고 합니다. 아저씨의 자전거와 함께 고개를 오르 다보니 어느 새 큰 고개 위에 우뚝 선 파 티마 병원이 보이고, 그제야 평평한 도로 가 펼쳐졌습니다. 말로만 듣던 큰고개를 두발로 차근차근 밟아보고 나니 마치 올 레길을 완주한 것 같은 개운함이 밀려왔 습니다. + 반고개 이야기

반고개는 그리 높지 않은 고개라 하여 '반고 개'라 불렀는데 이것이 구전되어 오면서 '밤 고개'로 변형, 명명 되었다는 설이 있으나 이곳 주민들은 이 고개 부근에는 오래 전부 터 밤나무 들이 무성하게 우거져 있어서 밤 고개라 불렀다고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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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성스튜디오

아기는 나무에 연이 걸려 발을 동동 굴렀다. 아빠가 목마를 태워줘도 손이 닿지 않자 엉엉 울기도 했다. 아빠는 아기를 달래며 바람에 흔들리는 나무를 바라봤다. 나뭇잎 끝에 걸린 연이 하늘거리고 있었다. 결국 둘은 끊어진 실타래만 들고 돌아갔다. 나무에 아빠와 아 기의 추억을 걸어 놓고 돌아갔다. 글과 사진 승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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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디가 책을 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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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텝 코멘트 솔지 여름호 기대하겠슴둥! 전 우

현석 또다른 썸머가 왔네요.

은민 6월에 들어와서 첫 모디!!

째 받아보죠 흙흙 저의 모디 활동 1

어텀을 기다리며.. 건강하시길.

기대되면서도 걱정되는 마음!! 즐

년은 채우고 싶었는데 아숩긴하다

유진 6월에 만난 모-디. 유니스의

겁습니다 :) 화이팅!!

만! 장거리로 응원하고 있겠슴다~

활약을 기대하시라 두둥. 오래오래

여름 모디와 함께 한 지 일주년..!

가인 3월에 시작해서 벌써 7월호

만나자 모디야!

찬준님이 한 말이 생각난다...

가 나오다니..!! 하반기모디도 달

고운 이번 여름방학에는 제발 뭐라

내가 모디에 준 것보다 모디가 나

려요♡ 부릉부릉

도 이룰 수 있기를...ㅋㅋㅋ 모두들 방

에게 준 것이 더더더더더더 많구나.

승지 애착이 생겨서 너무 아쉬운

학 알차게 보내고 9월호로 만나요♥

지희 떠나는 사람도 많고 들어오

모디ㅠㅜ 이제는 구독자로 모디를

혜영 으쌰으쌰 새로운 사람들과

는 사람도 많네요 하반기 모디는

응원할께요! 약 1년 동안 많은 사람

새로운 시작!

어떤 모습으로 만들어지려나?

들 만나고 해보고 싶었던 일 하게 해

승태 누군가는 떠나다는 것, 또 새

영준 너의 젊음을 군대에 걸어라.

줘서 고맙습니다 모디 화이팅^@^

로운 사람을 만난다는 것, 이제 이

군대는 너에게 조국을 걸겠다.

지현 작년 6월에 첫인사를 했었는

별과 새로운 사람을 만나는 것에

혜은 오늘 알바하다 깜짝 마주친

데 올해 6월에 마지막인사를 하네

익숙해질 때도 되었건만, 그 모든

영준아, 너의 젊음을 걸고 무사히

요. 그동안 많은 경험을 할 수 있게

사람에게 아직 못해준 게 많다는

다녀오렴. 필!승! (근데 같이 온 여

길을 열어주셔서 감사합니다^^

생각에 만감이 교차한다는 것, 난

자애는 누구니?)

앞으로 독자로서 만나게 될

어른이 되긴 글렀다 보다. 그래도

"모디" 늘 응원하겠습니다!

<모디>는 항상 그 자리에 있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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