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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 명 평 화 를

일 구 는

2014

제44호 농 도 상 생 마 을 공 동 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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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 싣는 순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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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름다운 마을이 들려주는 이야기]

최소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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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나보기]

“삶 자체가 거대한 예술이죠”

마을 그림쟁이들 ‘그리고’ 이야기하다 ┃ 최소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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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고]

아름다운마을 홍천터전 ┃ 황지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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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을학교]

눈빛과 눈빛 모아 한 작품 완성

동지잔치에서 꿈틀대는 힘을 본 마을 이모 이야기 ┃ 원유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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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춘답게]

교사가 만난 제자백가

중국철학사 톺아보기 ┃ 전선기

18

[생태건축]

열정을 조절하는 지혜 ┃ 김두영

20

[밥상머리]

알맹이보다 효능 좋은 껍질이라니! ┃ 조한아

20 [청소년마당]

서로의 변화를 돌아보는 자리 ┃ 김준표

<아름다운마을>은 강원도 홍천 아미산자락 효제곡마을과 서울 북한산자락 인수마을을 오가며 농촌과 도시에서 농도상생마을공 동체를 일구는 사람들의 삶을 증언합니다. 시대 과제와 소통하고 대안을 모색하는 이야기를 [소통과 대안]에 담습니다. 일상과 관 계, 수련을 통해 [함께 산다는 것]의 의미와 이유를 찾아봅니다. 마을밥상 지기들이 밥을 차리는 마음을 [밥상머리]에 모읍니다. 기 독청년아카데미에서 만나는 20·30대 청년대학생들과 [청춘답게] 모험하는 활동을 나눕니다. [청소년마당]과 [마을학교] [아이들세 상]은 홍천과 인수 마을학교 아이들이 살아있는 배움으로 성장해가는 모습을 보여줍니다. 농(農)을 통해 문명과 삶 전체를 다시 살 피고 재구성하는 [農생활]과 건강한 주거문화를 만들어가는 [생태건축] 현장 소식을 전해줍니다. 그리고 [만나보기]에서는 당신과 우 리가 함께 만나고픈 사람을 찾아갑니다.

<아름다운마을> 펴낸 곳 아름다운마을공동체 기자 최소란 김준표 김승권 원유미 디자인 서아름 김준표 문의 02-999-9294 누리편지 maeulin@hanmail.net 누리집 www.maeullo.net 후원 국민은행 487101-01-369173 예금주 생명평화연대(마을신문)


글을 쓴다는 건 내 삶의 고백이자, 외부와의 소통이라고 생각합니다. 삶의 진실을 담되, 나만의 독백이 아니 라 나를 넘어선 바깥세상과 소통 가능한 대화로 언어화하는 것입니다. 때로는 대상과 장에 걸맞은 번역도 필 요합니다. 글의 고갱이인 삶의 진실을 해석하고 점검해주는 공동체도 중요합니다. 공동체를 통해 나에겐 당연 한 것도 당연하지 않게 여기고 객관화할 수 있어야, 개념과 표현들의 창조적 변용이 가능합니다. 그래서 글쓰 기는 수련인가 봅니다. <아름다운 마을>에 실리는 글이 단번에 완성되는 경우는 거의 없습니다. “글에서 어떤 부분을 고치는 게 좋 을지 읽어봐 달라”는 부탁이 “내 삶을 보고 이야기해 달라”는 초대가 되어 함께 언어를 주고받는 과정, 조언 을 받아들여 원래 것을 다듬어가는 수고, 그 자체가 글 쓰는 이들에게 귀한 경험이 되리라 믿습니다. 마을신문 에 글을 쓰시면, 이렇게 글쓰기 수련 개인강습을 받을 수 있답니다. 강사는 마을신문 편집장 뿐 아니라 아름다 운 마을 이웃 누구나지요. 그렇게 다른 생명의 눈빛을 자기 안에 들여 정직하게 삶을 써내려가는 글들의 묶음 으로 마을신문은 올해도 변함없이 기다리는 손길에게 달마다 찾아갈 것입니다. <아름다운 마을> 편집장도 손을 대지 못하는 지면이 있으니, 바로 [그리고]입니다. 그동안 조용히 완성품만 보내오던 마을 그림쟁이들을 [만나보기]에 모셨습니다. 일상을 닦으며 “자연에 깃들어 생명들이 어우러져 살 아가는 삶 자체가 거대한 예술”이라고 했던 고백을 새겨보렵니다. 이번호 [그리고]에 실린 수묵화는 예술의 진수를 보여주는 것 같습니다. 고등대학통합과정 삼일학림이 3월 첫날 드디어 펼쳐집니다. 삼일학림은 교사와 학생, 학부모, 청년과 청소년 이 함께 공부하는 배움의 숲입니다. 농사와 건축, 생활기술, 철학, 신앙, 수신과 양생, 역사 등을 중심으로 공부 합니다. 개교에 앞서 진리를 향한 뜨거운 열기를 교사연수회에서 확인할 수 있었는데, 조선상고사, 중국철학 사, 서양철학사, 정치경제학, 자연과학 연구모둠을 짜서 교사연수회로 모여서 토론하며 이 추운 겨울 움츠리지 않고 알차게 보냈습니다. 살짝 눈치 채셨겠지만, 마을신문 기자들이 늘었습니다. 일본어에 능통한 직장인 김승권 님, 마을 아이들에게 곤충박사로 통하는 원유미 님입니다. 활약을 기대하시고, 격려해주세요. 후원도 늘고 있습니다. 올해 예산을 짜면서 정기후원을 시작하신 공동체나 교회, 가정들이 있습니다. 감사드리며, 더 든든히 물적 토대를 마련하 도록 노력하겠습니다. 마을신문에 실을 사진을 공모합니다. 함께 살아가는 삶 속에서 담고 싶은, 기억하고 싶 은, 나누고 싶은 순간의 사진을 보내주세요. 괜찮은 사진은 매달 다음호 마을신문 [지금 이 순간]에 싣겠습니다. 최소란 <아름다운 마을> 편집장

아름다운마을신문 2014 02 44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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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나보기

’ 이야기하다 고 리 그 ‘ 들 마을 그림쟁이 그림쟁이들 고 있는 마을

<아름다운

채워주 님을 만났다. 리고] 지면을 영 님, 김경희 서 길 , 님 영 황지 예술이란다. 자체가 거대한 는 사 져 러 우 들어보시라. 명들이 어 생한 목소리로 생 를 이들 눈에는 생 기 야 이 발견하는 이들 창조적 감성을

돌아가며 [그 마을> 매 호에

일상에서

그동안 그림으로만 만나온 분들과 이렇게 한 자리에서 이야기 나눌 수 있어서 반갑습니다. 어떻게 [그리고] 지면과 인연을 맺게 되셨는지 소개해주세요.

홍천살 이를 보 여주는 길서영 님의

그림

황지영 저는 아이들에게 미술을 가르칩니다. 어릴 때부 터 어머니가 미술을 하셔서 어린 시절부터 그림에 젖어 살 았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에요. 중간에 회의가 생겨서 미술 과 거리를 둔 적도 있긴 했지만요. 마을신문에서는 글로 전 하는 기사 외에 이미지로 전하는 꼭지를 구상하고 저에게 부탁하셨는데, 부족한 것을 알면서도 함께 만드는 마음으 로 참여하게 됐어요.

길서영 저는 홍천터전 마을학교에서 영어를 가르치고 새로운 삶을 배우고 만들어가고 있습니다. 병풍 같이 마을을 두른 산이 매일 달라지는 모습을 보는 것이 좋습니다. 도끼질을 땀나도록 하고나면 시원하 고 마음이 뚫리는 것 같고 아궁이에서 활활 타오르는 장작불을 보고 있노라면 마음이 고요하고 포근해집 니다. 따로 그림을 보러 다니지 않아도 다양한 빛깔의 아름다움이 펼쳐져 있어 마음이 맑아지고 풍요로 지는 걸 느껴요. 대학생활에서 만난 인생 선배의 제안으로 만화를 꾸준히 그리게 되었어요. 전에는 그림 을 좋아해도 낙서 수준으로만 그렸는데, 그때부터 이야기를 붙여서 그리기 시작했고, 그게 이어져서 마 을신문에도 연재하게 되었어요. 김경희 저는 인수마을에서 두 아이 육아과 살림을 하면서 짬짬이 교육공동체 어린 생명들과 수업으로 만나고 있어요. 어릴 적부터 그림 그리는 것을 좋아하고 또 그림 보는 것도 좋아해서 미술이 천직인가보 다 여기며 자랐어요. 하지만 머리가 크고 미술전공을 하면서는 좋아서 하는 것보다는 인정받으려는 마음 이 커지게 되었어요. 자유롭지 않다보니 벗어나 멀리 떠나고 싶었지요. 그러다 마을에서 살게 되면서 아 주 천천히 생명을 담은 그림들이 그립기 시작했어요. 그러던 중 마을신문의 제안에 지난 호에 부끄럽게 파 한 단 그려봤어요. 4


[그리고] 라는 지면 이름을 정하면서 ‘그림을 그리고’, ‘일상을 그리고’, ‘우리 그리고 세상’ 등을 중의적 표현으로 떠올렸는데, [그리고] 를 어떤 지면으로 채워주시는지요?

황지영 [그리고] 그림을 준비하면서 ‘그림 안에 모든 뜻을 직접적으로 전달하려는 욕심은 부리지 말자’ 고 생각했어요. 물론 공동체를 이루어 살며 일상에서 느끼는 벅참이 많아 그것을 다 설명해내고 싶은 마 음도 컸지만, 앞으로 계속 그림으로 만나게 되는 것이라면 나의 이야기로 조금씩만 담자 했지요. 쉽지는 않더라고요. 결과물을 보면 항상 아쉬움과 후회가 남기는 해요. 그 마음을 다음 작업을 위한 동기로 남겨 두곤 합니다. 김경희 [그리고] 는 마을을 흐르는 이야기들의 단면을 이미지로 느껴볼 수 있는 지면이라고 생각해요. 마을신문 속의 글들이 산문이라면 [그리고] 의 그림들은 시와 같다고 할까요. 그동안 실린 그림들이 한번으로 지나가서 아쉬웠어요. 기억에 남는 그림들, 그림으로 못 다한 이야기들, 어떤 상 황과 맥락에서 그리게 되었는지도 궁금합니다.

황지영 먹으로 쓴 글씨였는데요, 그때 저도 작은 텃밭을 신나게 가꾸던 때라 흙 위로 꽃이 피어나오는 모습을 ‘봄’이라는 글자로 그려서 실었어요. 보자마자 “아!” 하시는 분들도 계셨지만 그냥 글자로만 이해하는 분들도 계셔서 직접 설명해드리고 싶기도 했죠. 39호 그림은 홍천에서 집 지을 때 인수마을 사 람들이 함께 돕는 흙미장을 생각하며 다양한 색의 붓터치가 하나의 집을 이루는 모습을 표현하려고 했는 데 흑백으로 인쇄되고 나니 그 의도가 잘 안 나타나 아쉬움이 컸던 작업이 기도 해요. 41호 그림은 홍천에서 커다란 보름달 아래 서 있었던 그 밤이 37호 '봄 잊히질 않아서 오일파스텔로 작업하는 동안 계속 흥얼거렸던 기억이 납니 다. 저에게도 많은 이들에게도 마음을 좋게 해주었던 것 같아요.

41호 '휘영청 밝은 달빛 아래'

39호 '나의 조금과 너의 조금이 만나'


34호 '새날'

길서영 저는 처음 연재했던 그림 ‘이사’와 그 다음 에 실린 ‘날 이끌어주는 너희들’입니다. 바라고 기다 렸던 마을공동체 방 이사와 생활을 담은 그림, 학생들과 의 일상을 표현한 그림 모두 첫 설렘을 담아서인지 기억 에 남아요. 그림을 유심히 본 사람이라면 제가 살고 있는 곳이 달라졌다는 걸 감지했을 거에요. 느낌은 비슷할 수 있는데, 배경이 확 달라졌거든요. 새해 아침에는 인수마 을 뒤에 있는 산에 오르는 그림이었다면, 바로 다음 그림 부터는 홍천에서의 생활이 펼쳐져요. 배치가 달라지니 주목하게 되는 것, 그리고 싶은 것이 달라지게 되었지요. 또 한 가지는 가장 최근에 그렸던 ‘겨울이 오기 전 에’예요. 같이 지내는 학생들에게 가장 인기가 없는 그 림이었는데 서울에서 들려오는 이야기는 달랐던 게 재 밌었습니다. 홍천에서는 익숙하게 볼 수 있는 풍경들이 라 학생들은 싱겁다고 느낀 반면, 서울에서는 잣송이 볼 기회가 없어 잣송이 그림을 보고 신기해했다는 이야기 를 들었어요.

김경희 저도 홍천생활을 귀엽게 전해주는 서영 님의 첫 번째 그림을 설레는 마음으로 보았던 때가 떠오르네요. 작년에 헌책방에서 황대권 씨의 <야생초편지 >를 구해서 읽게 되었어요. 이름만 익숙했던 책이었는데, 공동체에서 살고 있는 저에게 큰 영감을 주었어 요. 아마도 그 책을 예전에 읽었다면 이런 감흥이 있었을까 싶어요. 공동체에서 한두 해 살기 시작하면서 살아있는 것들에 대한 경외감이나 감흥들이 저도 모르게 자라나 있다는 게 새로웠어요. 작가의 감방 속 생명력에 대한 마음들이 마을 속 저의 배움과 맞닿던 책이었어요. 마을신문 연재 제안을 받았을 때 생명력 느껴지는 그림들을 그리고 싶은 마음이 생기기 시작할 때였어 요. 풀이나 꽃, 나무, 동물 등 살아있는 소재들은 많은데 제가 이야기할 거리들을 찾다보니 음식재료들이 눈에 띄게 되었어요. 자신의 터에서 떠나왔지만 가지고 있는 생명력으로 사람의 생명을 이어가게 해주 는, 먹을 수 있는 풀들, 채소들과 저의 이야기를 담고 싶었어요. 이야기를 듣다보니, 일상적 삶의 수고와 다양한 작은 생명들과의 마주함이 있는 그림을 그리시는 것 같습니다. 또한 그 예술이 우리 삶을 더욱 빛나게도 하구요.

황지영 이전에는 ‘예술’이란 것을 너무 특화시켜서 일상과 분리된 어떤 고급문화로 보았다면 공동 체를 일구어 가는 삶을 살면서는 사람과 자연이 조화롭게 창조적으로 살아가는 그 모습 자체가 ‘거대 한 예술’이라는 생각이 들었지요. 그중에 저는 시각미술 영역에서 함께 예술을 만들어가며 살아가는 것 이고 그러면서 내 안에 자리 잡은 작은 감동, 작은 고민들을 소박하게 담아내는 것이 함께하는 삶을 예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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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 승화시키는 것이라 생각합니다. 더 깊게 사람들과 관계하며 일상을 책임있게 살다보면 뜻 있는 그림 도 나오는 것이죠.

길서영 작년 같이 지낸 학생들과 지내면서 다양한 사건과 인상적이었던 모습을 꾸준히 그림으로 담았 는데(그래서 공개할 수 없는 그림도 많이 있답니다) 그림에 담는 시간과 생명에 대한 애정을 더 갖게 된 다는 걸 느꼈어요. 한 가지 성찰하게 된 점은, 칭찬을 많이 받다보면 자기 그림에 대한 일종의 고집 같은 게 생기고 마음이 굳어져서 다른 변화나 수정을 받아들이기 힘들어진다는 사실이에요. 마을 친구들 이야 기를 들으면서 그런 마음상태를 돌아볼 수 있었는데, 공동체로 살아가면 자기 안에 갇히지 않고 다른 이 들의 생각이 덧붙여져서 풍성한 이야기를 그릴 수 있게 해준다는 걸 알게 되었어요. 그림에 무의식적으 로 자기 생각이나 욕망이 더해지기도 하는 걸 성찰하게 되기도 해서 저에게는 그림 그리는 게 놀이이자 수련이에요. 김경희 이전에는 작품은 작가의 기운이 담겨있는 거로 여겼고 저도 스스로를 힘겹게 끌어내 담아보고 싶었어요. 하지만 시간이 지나고 공동체를 알아가면서 우리 주변의 자연, 생명을 담아보는 것이 저를 살 린다는 생각이 들어요. 잘해서 인정받으려는 저의 욕망을 담는 작품이 아니라 생의 기운을 전하는 그림 을 힘겹지 않게 호흡하듯 그릴 수 있는 날이 오리라 믿어요.

43호 '파'

마을신문을 통해 올 한해 어떤 그림들을 보여주실지 기대되고 궁금합니다.

길서영 올 한해 어떤 그림을 그릴지 예상을 해봐도 달라지기 마련이라 확신할 순 없지만, 그동안 해왔던 것처럼 제가 마주하고 있는 일상을 잘 담아내고 싶어요. 한 가지 더하고 싶은 건 밭 생명, 산 짐승들의 소리와 움직임에 더 귀 기울여서 사람들 의 이야기만이 아니라 우리와 함께 살고 있는 다양한 생명체들의 이야기도 담고 싶 은 소망이 있어요. 앞으로 인간 외 타생명들과 적극적으로 관계를 잘 맺어가야겠죠. 김경희 저는 올해가 ‘한 발짝’의 해라고 스스로 이름 붙여봤어요. 마을공동체 에 한 발짝, 그림에 한 발짝, 아이들에게 한 발짝, 자연에 한 발짝… 저를 이룰 수 있 게 하는 것들에 한 발짝 다가서는 해로 세워봤어요. 앞으로 우리가 먹을 수 있는 것 들을 가볍게 그려볼까 해요. 그림과 글을 함께 싣는 방식을 좋아하는데 식재료에 대 한 정보보다는 생명으로 대하는 저의 단상들을 짧게 덧붙여볼까 해요. 너무 잘하려 는 마음을 비우고 설레는 마음으로 다가갈께요. 황지영 올해는 3월부터 홍천터전에서 지내는 큰 변화가 저에게 있습니다. 아주 가슴 떨리는 일인데 제 이야기가 달라지니 그림도 많이 달라지겠지요. 그동안 일을 하느라 집중적으로 그림 그리는 연습을 하지 못해 마을신문에 그릴 때마다 아쉬움 이 많았는데, 앞으로 꾸준히 수련해서 땅을 일구어가는 이야기를 잘 담아낼 수 있도 록 하고 싶어요. 최소란 | 날마다 아이와 새 아침을 맞이할 수 있어서, 아침마다 북한산 인수봉 표정을 바라보며 출근할 수 있어서 감사한 사람입니다. 아름다운마을신문 2014 02 44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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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름다운마을신문 2014 02 44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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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지영

아름다운 마을 홍천터전 30*60cm, 종이에 수묵


함께 산다는 것

내가 더 떨렸던 친구의 결혼식

“얼씨구!” “지화자!” “좋~다” 가까이 살아가고 있는 마을 친구들이 부부의 연을 맺는 날, 축하노 래를 불러주는 하객들 사이에서 절로 추임새가 나온다. 사회자가 혼인잔치 시작을 알린다. 신부신랑보 다 내가 더 떨리는 건 아닐까. 힘찬 꽹과리 소리에 맞춰 풍물패가 한판 흥겹게 놀다가 두 줄로 마주서서 신랑신부가 앞자리로 걸어갈 수 있는 길을 열어준다. 한 몸 되는 아름다운 삶의 한 자락에 첫 발을 내딛 는 순간이다. 제법 쌀쌀해진 어느 날 퇴근길. 주머니 속 손전화가 울린다. 친구에게 연락이 왔고, 안부를 묻고 대화를 시작했다. 그러다 친구가 “우리 날 잡았어” 하고 말한다. 교제하는 짝꿍과 결혼식 날짜를 잡았다는 거다. 친구가 마을공동체에서 만나온 사람이다. 내가 공동체방에서 살기로 했을 때, 곁에서 같이 소통해가며 독립의 첫 발걸음에 도움을 주었고, 몇 달 동안 함께 살았던 사이이다. 내 일처럼 기쁘지 않을 수가 없다. “그래서 말인데….” 괜히 심장박동이 빨라진다. ‘설마…’ 하는 찰나 “결혼예식 기획을 부탁해!”라는 한 문 장이 또렷이 귓가를 울렸다. 며칠 후, 소박하고 형편에 맞게, 인수와 홍천마을을 오가며 배웠던 삶, 다른 생명에 대한 염치를 생각하며 혼인잔치를 준비하고 싶다는 두 사람 의 고백에 또 한 번 마음이 울린다. 이 둘의 마음을 지지하며 잘 준비 하기로 했다. 마을 가까이에 있는 아카데미하우스 세미나실을 빌렸고, 그곳에서 대여해주는 예식물품은 최소화했다. 축하하러 오실 손님들을 대접 하는 식사는 예식장이 아닌 근처 음식점을 예약했 다. 기름지고 쓰레기가 많이 남게 되는 형태의 식사 와 그에 맞지 않는 가격에 대한 문제의식을 가지고, 식장에서 조금 떨어져 있지만 부담 없이 먹을 수 있 는 곳으로 정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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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랑신부 뿐 아니라 그 자리에 함께한 모든 이들이, 내가 누구와 함께 살아가고 있는지, 어떤 삶을 살고 싶은지 서로 돌아보고 격려하는 마을 혼인잔치


나는 하루 2천 명 가량 환자가 진료를 보러오는 큰 병원 행정직으로 일을 하는 12년차 직장인이다. 아 픈 사람들이 참 많다. 환자들을 대하다보면 내가 힘 을 주고 싶어도 업무량으로 인해 지치는 경우가 더 많다. 보험회사 덕분에 병원이 더 바빠지기도 했다. 각종 서류들을 발급해주느라 의사부터 일반직원들 까지 해야 할 일에 대한 목적과 방향을 잃어간다. 살 아가면서 그게 왜 중요한지 납득되지 않으면서 내 결정이 아닌 타인에 의해 따르게 되는 것이 너무 많 다는 생각이 들었다. 어쩌면 ‘왜?’라는 질문조차 하기 어려운 시대를 사는 건 아닐까. 혼인잔치 당일 아침부터 예식 장소에는 많은 사람들로 북적북적했 다. 주차 안내, 식당 안내, 조명, 장식, 들러리, 예식 사회, 길눈이 말 씀, 축하 공연, 사진과 영상 촬영 등 여러 이들이 기꺼이 시간을 내어 곳곳에서 자기 역할로 결혼 선물을 했다. 단상과 하객들이 앉을 의자 배치에 특히 고심했다. 어떻게 하면 홍천터전 아름다운마을초등학 교와 생동중학교 학생 20여 명이 공간적인 제약 없이 풍물놀이로 신 랑신부의 길을 열어줄 수 있을까, 그 자리 모든 사람들이 기쁘게 어우러지는 공간을 만들 수 있을까 말이 다. ‘무지개’가 연상되는 구도로 의자 배치를 바꾸고 앞쪽 무대를 깔끔하고 넓게 만들어 축하 공연이 모든 이들에게 잘 보이도록 하였다. 앞서서 가정공동체를 이루어 살아가는 선배 부부는 “서로의 흠은 덮어주는 것이 아니라 그것이 흠이 라는 이야기를 해주며 상대의 변화에 함께하며 살아가는 것입니다. 두 사람 뿐 아니라 다른 이들 또한 더 욱 풍성하게 하는 삶이 되길 바랍니다”는 애정어린 조언을 해주었고, 마을공동체로 살아가는 삶을 든든 하게 지지해주시는 기독청년아카데미 오세택 원장님도 먼 길 마다않고 오셔서, “상대방의 결점은 나의 존재 이유”라면서 나와 전혀 다른 존재와 더불어 살아가는 의미를 일깨워주시는 주례 말씀을 해주셨다. 두 사람이 연애를 시작할 때 마을 사람들에게 나누었던 고백을 기억하고 연애과정을 곁에서 봐왔던 친구 들은 두 사람을 위해 세상에서 하나밖에 없는 노래를 직접 지어 멋진 공연을 선사했다. 신랑신부 손에 커다란 바구니가 들려진다. “씨앗이 흙을 만나 새싹이 되듯 너와 나는 새 역사를 창조 해가자”이라는 흥겨운 노래가 울려퍼지자, 신랑신부는 바구니를 들고 지인들이 정성껏 써준 덕담 편지 들을 받으며 하객들 사이를 행진한다. 등도 두드려주고 격려와 응원의 눈빛을 아낌없이 보낸다. 우리 시 대 가장 어려운 현실에 처한 청년들과 함께하며 삶으로 보여주고 싶다고 고백하는 신랑신부의 고백이 귓 가에 울린다. 예식을 준비하는 과정에서 당일 결혼식, 뒷마무리까지 어느 곳 하나 마을 사람들의 손길이 닿지 않은 곳이 없다. 인생의 중요한 순간을 마음 모아 함께해주는 이들이 있기에 앞으로 살아갈 삶 또한 힘차게 나아갈 것 같다. 최유리 | 강북구 인수마을에서 일산에 있는 종합병원으로 출퇴근하는 직장인이며, 주말에는 마을 아이들과 만나 하늘땅어린이공동체를 이뤄가는 청춘입니다. 아름다운마을신문 2014 02 44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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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을학교

동지잔치에서 꿈틀대는 힘을 본 마을 이모 이야기

3년쯤 전 마을에 들어와 ‘함께 살기’를 배워가고 있는 유미 입니다. 저는 마을공동육아 도토리집에서 산책 선생님을 하고 있는데, 아이들은 저를 ‘유니이모’라고 부릅니다. 발음이 잘 되지 않는 세 살 아이들이기 때문이지요. 저는 그 이름이 좋습니 다. 마을초등학교에서는 텃밭 선생님을 하고 있기도 합니다. 지 난해 늦가을까지도 아이들과 마을을 누비며 밤, 도토리를 주워 먹고, 주목 열매, 산수유 등을 따 먹으며 산책했습니다. 초등학교 에서는 학교 마당에 있는 작은 밭에서 작물을 키우고, 밭을 터전 삼은 많은 생명체들과 삶 나누는 것을 연습하고 있습니다. 수확 한 무, 배추로 김장을 담으며 마무리했습니다. 동지(12월 21일) 즈음 초대장 하나를 받았습니다. 아름다운마 을초등학교 학생들이 보내준 ‘동지잔치 초대장’입니다. 알록 달록한 종이에 부슬부슬 내리는 비와 파릇파릇 올라오는 새싹 공연장을 꾸며준 아이들의 수묵화

들 그림으로 꾸며져 있었습니다. 작년에는 참석하지 못해서 내 심 아쉬웠는데, 초대장을 받으니 그 마음도 가시는 것 같았습

니다. 학교에서 아이들이 제비주둥이 같은 입으로 “오실 거죠? 오실 거죠? 어디서 하는지 아세요? 아세 요?” 닳도록 물어봅니다. 그래서 “이번에는 꼭 가고 말거다~!” 하고 확답해주었습니다. 그 말을 듣고 서야 아이들이 품에서 떨어집니다. 아이들이 한 해 동안 어떻게 마음을 모았고, 얼마나 튼 실하게 자랐는지 볼 수 있는 ‘동지잔치’는 인수마을 연례행사입니다. 그리고 동지팥죽을 나눠 먹으며 한해 를 마무리합니다. 처음에는 이처럼 차분한 연말연시 풍 경이 낯설었지만, 내년도 생활계획을 세우고 새해맞이 단식을 하는 친구들이 옆에 있다보니 저도 어느새 정 신없는 연말 분위기와 멀어졌고, 아이들이 ‘크리스마 스’ ‘산타’ ‘선물’, 이런 것에 흥분하지 않는 모 습에도 적응되어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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손수 만든 리코더집을 옆에 차고 연주합니다.


동지잔치를 마련한 아름다운마을초등학교 인수터전 학생들은 한 달 전부터 공연을 위한 맹연습을 한다 든지, 비싼 옷을 맞춘다든지, 어른에게 보여주기 위한, 내용을 다른 방식으로 채우려는 노력은 하지 않습 니다. 놀이하듯 공부하는 아이들 일상을 해치지 않으면서, 실제로 아이들이 교과과정 중에 배운 것들과 손수 만든 것들 중에서 골라서 펼쳐냈습니다. 교과과정은 아이들과 선생님, 학부모, 마을 이모삼촌들이 참여하여 함께 만듭니다. 작게는 2박3일 들살 이를 다녀오기도 하고, 각자 가진 작은 재능과 지식, 체험을 수업시간마다 정성스럽게 나누면서 배움의 시간들을 채워갑니다. 교과를 만드는 과정은 어른들에게도 마을 아이들과 만나 서로 큰 변화를 일으키는 소중한 가르침의 기회이므로 공부하는 마음으로 참여합니다. “꼭 가고 말거다”고 확답했기 때문에 당일, 저는 30분 정도 일찍 갔습니다. 욘석들이 어떻게 하는지 궁 금하기도 하고, 그 전날 맞춰본 것을 잘 기억하고 있는지 걱정도 되어서 겸사겸사 그랬습니다. 그곳에는 초등 형님들 뿐 아니라 마을어린이집, 도토리집 동생들도 들뜬 표정으로 연습하고 있습니다. 시끌시끌 의논하고 떠드는 소리가 한창입니다. 제게 초대장을 준 녀석은 제가 온 것을 봤다는 눈도장을 찍습니다. 저도 눈을 찡긋하고 손짓으로 인사했습니다. 마을 인근에 빌린 소박한 행사장 벽에는 형님들의 멋진 붓글씨가 펄럭이고, 서툴지만 힘있게 그린 수묵 화도 걸렸습니다. 간단하고 소박한 무대에서 아이들은 한 무리씩 올라와 예행연습을 했습니다. 마지막 이건만 틀렸던 건 또 틀려줍니다. ‘마을서당’(9세) 형님들이 사물놀이로 잔치를 열었습니다. 장 구 가락만으로 시작해서 점차 꽹과리, 북, 징, 장구 네 악기 소리가 어우러지는 사물놀이를 보여주었습니다. 사물놀이는 쇠로 만든 소 리로 하늘의 소리를 대변하고, 가죽으로 만든 소리로 땅의 소리를 대변한다고 합니다. 아이들 풍물을 듣자니 천기와 하나 되고 싶은 조상의 큰 마음이 느껴지는 것 같습니다. 웅장한 우레도, 보슬보슬 작물에 알맞게 내리는 빗줄기도 풍물 안에서 모두 축복으로 받는 것 같습니다. 아이들의 장단에 절로 몸이 들썩여집니다. ‘우리·아름 서당’(7~8세) 학생들은 ‘말놀이’를 들려주고 ‘ 보리밥장군’이라는 전래동화를 연극으로 만들어 선보였습니다. 운율과 장단을 곁들인 ‘말놀이’는 우리 입말의 아름다움을 경험 할 수 있게 해주었고, 연극은 보리밥 열 그릇을 드시고도 보리자루 한 자루를 들지 못하는 장군 이야기를 통해 전래동화가 가지는 해학 미를 넉살맞게 보여주었습니다. 서로 주인공만 고집하지 않고 연극 에 등장하는 여러 조연들, 가만히 서 있기만 한 소나무 역할까지 하 나라도 빠지면 안 된다며 골고루 역할을 맡아 하나의 작품을 만들어 낸 배경이 더 감동이었습니다. 위) 보리밥 장군님을 연극으로 보여주고 있습니다. 아래) 아름서당 말놀이 공연 모습입니다. 아름다운마을신문 2014 02 44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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친구들과 뛰노는 숲속 놀이터, 신나는 야구놀이, 추운 겨울 눈싸움 내가 좋아하는 것, 인하네 집 산수유, 새콤달콤 딸기, 달달한 주목열매 알록달록 시침핀, 귀여운 바늘꽂이, 크고 하얀 미르, 화려한 호랑나비 귀여운 동생들, 동생들 웃음소리, 친구들과 선생님 고운 노래소리 ‘다운서당’(9세) 학생들은 자신들이 솔직히 좋아하는 것들을 노랫말에 담아 불러주었습니다. “숲속 놀이 터”는 마을학교에서 북한산자락과 접한 지점에 나무들로 둘러싸인 아담한 빈터입니다. 점심시간이면 야 구장도 되었다가, 눈 내리면 그대로 눈썰매장도 되는 신나는 곳입니다. 아이들이 등하교할 때마다 지나 가는 “인하네 집 산수유”는 유난히 붉고 많이 열려, 한 움큼씩 따서 주머니에 넣어 다니기도 하고, 동생들 따주며 생색을 내기도 합니다. 아이들이 한땀 한땀 손바느질한 “바늘꽂이”는 또 어찌나 아끼고 품고 다 녔는지요. 진돗개 “크고 하얀 미르”는 모든 어린이 친구들에게 절대적 사랑을 받고 있는 점잖은 마을 인 사입니다. “귀여운 동생들, 동생들 웃음소리, 친구들과 선생님 고운 노래소리” 부분에서는, 전에 홍천터전 학생들 이 “친구의 땀 냄새가 좋다”고 했던 말이 떠올랐어요. 그때처럼 무엇인가 따뜻한 것이 가슴속에 차오르는 느낌을 받았는데, 말로 설명하긴 어렵네요. 아이들이 좋아하는 것들, 우리도 좋아하는 것들입니다. 좋아 하는 것이 같아서 참 좋습니다. 몸놀이 수업시간에 즐겁게 배운 봉산탈춤도 선보였습니다. 함경도지방에서 주로 추었던, 움직임이 역 동적인 전통탈춤인데요, 손수 색칠한 탈도 쓰고 긴 소매도 달고, 장난꾸러기들이 진지한 품세로 큰 대형 을 이루어 축원도 하고, 덩실덩실 춤을 추니 제법 춤사위가 나옵니다. 잔치는 끝났지만 저녁시간 마을밥상에서 다시 만납니다. ‘동지팥죽’이 기다리고 있으니까요. 죽그릇 마 주 대하고 잔치 이야기가 다시 한 번 펼쳐집니다. 장구 칠 때 어땠는지, 노래는 어땠는지, 틀리지 않고 잘 맞춰서 뿌듯하기도 하고 아쉬운 것도 있고 재잘재잘 여운이 가라앉지 않습니다. 어른들도 아이들 못지않 게 싱글벙글입니다. 마을 이모삼촌들은 동지잔치에 참여한 아이들을 다 알고 있습니다. 얼굴만이 아니라 무엇을 좋아하는지, 품앗이하는 친구가 누구인지, 요즘 무엇을 배우는지 등등 아이들의 작은 일상을 알고 있습니다. 그러다보니 공연할 때 이 아이 저 아이 할 것 없이 다 눈에 들어오고, 리코더 합주 도중 떨려서 자기 독주부분을 까먹은 친구를 배려하고 기다려주는 눈빛, 한 순서가 시작할 때마다 서로를 응원하는 모 습 등 세세한 마음의 자람까지, 그 모든 것이 더 크게 느껴집니다. ���이들도 자기만이 아니라 우리가 어땠 는지를 물어옵니다. 아이의 그 아이 됨 외에 아무 것으로도 평가하지 않는 어른들과 그 안에서 자유롭게 헤엄치는 아이들, 맑고 아름다운 연못을 본 느낌입니다. 마을 아이들은 가정을 넘어 자신을 지켜보는 다양한 관계망 속에서 자라갑니다. 표정이 어두우면 왜 그 런지 물어보고, 그렇게 똑같이 자란 다른 건강한 친구들과 형님, 동생들과 매일 밥상에서 지지고 볶고, 놀 고, 혼나고… 그러면서 성장해갑니다. 우리가 미래의 환경을 바꿀 수 있을지 장담할 수 없지만, 함석헌 선 생님의 말씀처럼 짐승의 이빨 사이에서도 부서지지 않고, 그 뱃속에 들어가도 용해되지 않는 고농축의 생 명의 힘, 그 씨알을 구성할 새로운 장을 만들어줄 수는 있습니다. 저는 그 시작을 마을 동지잔치에서 보 았다고 생각합니다. 원유미 | 몸과 마음과 이웃의 이야기에 귀를 기울이는 마을 주민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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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춘답게

중국철학사 톺아보기(공자와 묵자를 중심으로)

‘子(자)’란 스승에게 존칭으로 붙는 말이다. 수천 년 전 중원의 철학자들이 남긴 삶의 자취와 어록을 따

라가면서 어느덧 시간과 공간과 민족을 뛰어넘어 내 마음의 스승으로 그들이 다가왔다. 제자백가시대 공 자, 묵자를 중심으로 중국철학사를 살펴봤다. 공구, 배움에 뜻을 두고 호학의 삶을 살다

공자는 21세기 대한민국을 살아가는 우리에게까지 너무나 익숙하고 식상하고 어쩌면 버리고 극복하고 싶은 이름이기도 하다. 그가 남긴 가르침이 제국과 국가와 가부장적 질서를 옹호하는 이데올로기로 근세 까지 동아시아를 틀어쥐고 건강한 역사 발전에 제동을 거는 수구의 논리로 작동해왔다는 사실이 그에 대 한 호감을 갖기 어렵게 한다. 그러나 그의 이름과 가르침이 어떻게 악용, 남용되었는가를 차치하고 공자 곧 공구라는 한 인간을 만나 가면서 나는 점점 그 거한의 사내가 좋아졌다. 그는 칠순의 아버지가 세 번째 얻은(정식 아내로 인정되 지는 않은) 어머니에게서 태어났다. 세살 나이에 아버지를 여의었지만, 아버지 장례에 어머니는 참석조 차 할 수 없었고 산소의 소재지조차 몰랐다. 그렇게 큰 공자가 열일곱 살에는 어머니조차 여의었다. 공자 의 인생초반을 접하면서 그도 나나 우리와 다를 바 없는 생의 질곡을 오롯이 다 겪어낸 한 사람이었음을 마음으로 받아들일 수 있었다. 문묘에 높이 배향된 ‘문선왕’ 공자가 아닌 소년 공구로 내게 다가온 것 이다. 그런 그가 말년에 자신의 삶을 반추하면서 ‘열다섯 살에 학문에 뜻을 두었다’고 술회하는 것을 그저 그렇게 넘길 수 없었다. 소년 공구가 세상에 대한 분노와 자기 처지에 대한 한탄에 빠져 있지 않고 학문 에 뜻을 두고 자신의 삶을 일관되게 호학하는 이로써 배우고 가르치며 살아냈다는 것이 놀라웠다. 공구 의 결단은 한때의 서원을 옛 추억 삼아 말하며 그 고백과는 너무나 멀어진 채 살아가는 수많은 기독인들 과는 다르다. 그 결심은 창고지기를 전전하는 비루한 젊은 날에도, 노나라 제후를 보필해 삼환의 토호세 력을 꺾으려다 실패해 실각할 때도, 상가집 개 취급을 받으며 14년간 천하를 주유하면서도, 어느 제후에 게도 쓰임 받지 못하고 늙고 지쳐 고국에 돌아오게 되었을 때도 변함없고 한결같았다. ‘나보다 호학하는 자는 없을 것이다’라고 자평하는 말년의 공구는 공자란 존칭이 허명이 아님을 일관된 삶으로 증명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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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홉살 연하의 제자 자로는 공구와의 첫 만남 시 불손하고 무례하게 대들던 사람이다. 출신지역도 문 화적 혜택을 받기 어려운 지역이었고, 그 자신도 힘깨나 쓰는 것으로 자랑삼는 무뢰한이었다. 공구는 그 런 자로를 제자로 받아들이고 그의 급한 성미를 다독이며 가르쳤다. 자로는 훗날 출사하여 섬기던 주군 이 적에게 잡혀 죽게 되자, 불가항력임을 알면서도 구하러 갔다가 죽임을 당한다. 자로는 칼을 맞아 관이 떨어지자 마지막임을 예감하고 그 자리에 정좌하여 관을 고쳐 쓰며 ‘군자는 죽을지언정 관을 벗지 않는 다’라고 말하고 마지막 칼을 맞았다. 무뢰한을 군자로 도약시킨 이를 어찌 참다운 스승이라 하지 않을 수 있겠는가. 군자의 삼락에 천하에 왕노릇하는 것은 포함되지 않으니, 천하의 영재를 모아 교육하는 것이 군자의 세 번째 즐거움이라고 말년의 맹자는 술회하였다. 배우고 가르치는 기쁨에 더 없는 가치를 둔 공구와 맹가 두 사람이 참 아름답게 보인다. 경천애인의 사람, 묵적

공자와 달리 묵자 곧 묵적은 생소하고, ‘두루 사랑하라’는 ‘겸애’란 말로 기억되고 있었다. 그러 나 묵적은 일하는 노동자요, 실천하는 자로서 말한 대로 살고, 제자들에게 배운 대로 살기를 요구하는, 알 면 알수록 예수를 연상시키는 선생이다. 묵적은 전쟁전문가이지만 침략전쟁을 반대하는 평화주의자였 다. 그 원칙과 가르침을 지키고자 침략 받는 나라에 제자들과 방어무기를 만들어 달려가 돕고, 침략하려 는 나라가 있으면 그야말로 1000km에 달하는 대륙을 종단하여 목숨 걸고 침략계획을 포기하도록 설복시 켰다. 묵적의 실천적 삶의 내력을 접하면서 어느새 중국철학하면 떠오르는 ‘공리공담(空理空談)’이라 는 기존의 인상이 걷혀지게 되었다. 묵적의 제자 고석자는 자신을 등용한 임금에게 묵적에게 배운 대로 반전평화와 겸애에 입각한 정책을 세 번에 걸쳐 간하였으나 받아들여지지 않자, 깨끗이 그 벼슬을 버리고 돌아왔다. 그런 제자를 묵적은 ‘ 녹을 버리고 의를 따르는 사람’이라며 격려하였다. 이것이 순자 곧 순경이 권학편에 ‘청출어람 청어 람’이라 말한 본뜻이 아니겠는가. 스승인 나보다 더 좋은 대학, 더 높은 자리, 더 많은 연봉을 받게 되는 것이 청출어람이 아니라, 가르친 스승보다 더 의롭게, 배운 바에 부끄럽지 않은 삶을 올곧게 살아내는 것 이야말로 진정한 ‘청출어람’이 아니겠는가. 맹자가 말한 대로 부귀에도 현혹되지 않고, 빈천에도 동요되지 않고, 위세나 무력에도 굴복하지 않고 의 의 길을 걸어가는 대장부로 우리가 살아간다면, 오늘 우리를 있게 한 수많은 스승들의 노고에 값하는 아 름다운 삶일 것이다. 함께 일하며 공부하고 실천해간 묵자와 그의 제자들처럼, 평생 배움에 뜻을 두고 호 학의 삶을 산 공자처럼, 아름다운마을교육공동체는 함께 일하여 배움의 학당을 지어 올리고, 더불어 함 께 배움의 도정을 걸어가고 있으니, 공묵 두 선생께서 본다면 과연 그 君子不死之國(군자불사지국)인 동 이의 후손답다며 흐뭇해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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블랙홀이 된 통일제국을 넘어

춘추전국시대는 분열과 분단에서 통일로 가는 시기였다. 분단의 시기에 전쟁의 공포와 파탄 난 민생에 서 벗어나고자 하는 민중들의 소망을 결집하여 통일로 가는 길을 열고 닦고자 몸부림친 공자, 묵자, 맹자, 순자, 한비자 다섯 철학자의 삶과 가르침은 똑같은 분단의 시대를 살아가는 나와 우리에게 시사하는 바 가 크다. 한비가 꿈꾼 법가의 정치는 민중을 수탈하고 국권과 법을 우롱하는 토호들을 제압하고, 질서 있고 평화 로운 공의의 나라를 만드는 것이었다. 그의 사상이 통일 진나라를 만들었을 것인데, 통일 이후 한비의 사 상은 애매히 가엾은 민중을 압제하는 전제독재의 논리로 악용되었다. 진을 이어 일어선 한나라는 공자를 높이는 듯하였으나 기실 그의 인애정신의 구현과 계승보다는 제국의 영속에 도움이 될 수구적 가부장적 질서이념으로의 변질에 중점을 둔 것이었다. 항산이 있어야 항심이 있을 수 있다며 민중의 민생을 돌아볼 것을 격정적으로 주장하던 맹자와, 냉철한 이성적 분석으로 인간의 악한 본성을 방치하지 말고 가열차게 교육하여 예가 확립된 질서 있는 세상을 이 루길 원했던 순자는 그저 성선이니 성악이니 하는 고리타분한 공담으로 퇴색되어갔다. 민중과 함께 가진 것을 나누어 살고, 민중의 이익을 대변했던 묵자의 사상은 통일제국이 들어서면서 사마천조차 <사기>에 실을 수 없을 만큼 철저히 망실되어버렸다. 우리는 지금 무엇으로 통일을 이룰 것인가. 또 통일을 이루어 무엇으로 살아가려 하는가. 통일을 미래 가 아닌 현재로 끌어와 현재의 문제를 극복하며 자본에 굴하지 않고 호학하고 겸애하며 항심을 길러내는 삶을 살아내야, 이념의 골을 넘어 생명과 평화, 공의가 흘러넘치는 새로운 톻일 한반도를 만들어낼 수 있 으리라. 중국은 블랙홀이다. 그들은 춘추전국시대 당시에는 오랑캐라고 멸시하던 진나라를 지금은 자랑스런 최 초의 통일제국으로 치켜올린다. 남북조시대의 긴 분열을 종식시키고 황하와 양자강을 잇는 대운하를 건 설해 이후 모든 중원제국으로 하여금 엄청난 국가 경영의 효율성을 누리게 해주고 단명한 수왕조도 기실 중국인 곧 한족과는 무관한 선비족이 세운 왕조이다. 심지어는 몽골의 영웅 징기스 칸을 중화민족의 영 웅으로 다룬 대하사극도 중국 방송국에 의해 만들어졌다. 오랑캐 만주족이 세운 청나라의 강희, 옹정, 건 륭 황제를 소재로 한 책들이 베스트셀러가 되고, 역사극의 단골소재가 되어 중국 안방을 차지하고 있는 것이 지금의 중국이다. 저들이 자랑하는 제자백가의 사상가들도 한족과는 무관한 이들이었을 수도 있다. 묵적 곧 묵가가 동이 족의 고죽국 출신이라는 주장은 그래서 그저 흘려들을 수 없다. 경천애인하는 우리 민족의 심성과 신앙 과 풍속에 너무 친근한 그의 삶과 가르침은 중국이란 블랙홀에 빨려들어간 조선 상고의 흔적을 더듬게 한 다. 공자조차도 가서 살고 싶어하던 동이의 나라, 그 조상들의 삶과 사상을 되살리고 공부하고 싶다는 소 망이 중국철학을 공부하고 나서 더욱 간절해진다. 전선기 | 이 시대 공교육 현장에서 말과 삶이 일치하는 참된 스승이 되고 있는지 끊임없이 성찰하는 고등학교 중국어 교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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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천마을에 와서 처음 참여한 흙부대 서당 앞에서 희노애락을 함께한 형들과

생태건축

먼저 자랑부터 할께요. 제 나이 서른에 키가 컸어요, 2센티 가량. 탈모 증세도 완화되었어요. 다시 머 리카락이 자라고 있어요. 피부가 정말 매끈해졌다는 걸 세수할 때마다 느끼지요. 똥도 잘 나와요. 16년 간 고생했던 변비와 이별을 했지요. 몸도 탄탄해졌어요. 대학원을 휴학하고 진로를 고민하던 중 홍천마을로 갔습니다. 날마다 떠오르는 태양과 함께 일어나 서 활기차게 하루를 시작했습니다. 아름다운마을초등학교 생활관에서 학생들과 함께 지내며 규칙적 인 생활을 꾸준히 할 수 있었지요. 생명밥상에서 서로를 살리는 눈빛, 표정, 대화를 마주하기에 대충대 충 흐느적거리며 살 수는 없었어요. 생태건축연구소 흙손에서 함께하는 노동으로 우리의 미래를 건축 하며 희로애락을 나누었지요. 흙손에서 서너 명 형들과 하루 24시간 중 떨어져 있는 시간이 거의 없을 정도로 붙어 지냈습니다. 아 침밥, 점심밥, 저녁밥, 그리고 참을 나누고, 일과 중에는 더불어 노동하고 잠도 같이 자고 주말의 쉼도 함께 했지요. 이렇게 긴밀하게 생활하며 제가 서른 해 사는 동안 보지 못했던, 볼 수 없었던, 보고 싶지 않았던 저의 모습을 직면하기도 했습니다. 삽질을 팍팍 해댔어요. 저로서는 열심히 한다는 명분이 있었지요. 하지만 동작이 너무 크다보니 정 확도가 떨어져 흙을 이리 흘리고 저리 흘리게 되었지요. 그때마다 제가 그렇다는 것을 옆에서 말해주 는데, 잘 들리지가 않았어요. 아니 듣고 싶지가 않았죠. 방어하며 밀어내는 기운을 품었지요. 함께 이 런저런 이야기를 주고받으며 작업하는 것이 당연한데도 듣지 않으려고 했죠. 일하면서 나를 변화시켜 보겠다고 나선 걸음이었는데 여전히 혼자 하겠다고, 너와 나를 구분 지으며 내 중심적으로 ‘다른 생 각’이 들어오는 것을 거부하고 있었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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건축 일을 하다보면 옮기는 일이 많아요. 흙이 가득 담긴 양동이를 나르기도 하고 3미터가 넘는 목재를 주고받기도 하지요. 이때 조금이라도 덜 힘들겠다고 발을 뺀다든가, 손을 덜 내민다든가, 그런 행동을 하고 있는 저를 발견했지요. 그러면서 ‘나는 배려하고 양보할 줄 아는 멋진 놈이야’라는 생각으로 제 모습을 인정하지 않으려 했지요. 다른 이보다 높아지려는 마음이었죠. 이것을 인정하는 데 오랜 시간이 걸렸어요. 인정하니까 편해졌고 어려웠던 관계를 회복할 수 있었죠. ‘높은 상’, ‘자기만의 기준’으 로 인한 착각 속에 되풀이되는 반복과 실수들을 그만두고 점진적 변화의 걸음이 시작되었고 지금도 그 과정 중에 있습니다. 넓은 강당 옆에 붙어 지은 여덟 개 방 흙미장을 하나하나 마치고 오늘은 드디어 마지막 방 미장을 마쳤습니다. 예전 에는 대충 붙이고 막 끝내버리는 것에 익숙한 저였습니다. 열 가지를 전체적으로 고려하며 해야 하는 섬세한 일도, 저 는 앞에 있는 한 가지만 보고 해버렸죠. 섬세함과는 거리가 먼 투박한 기질이었는데, 섬세한 형들과 함께 하면서 많이 배웠어요. 저는 달리는 성격이었어요. 흔히 열정적이라고 그러죠. 기차가 목적지를 향해 달리는 듯했어요. 그러려면 연료가 필요한데, 저는 연료에 대한 생각이 부족했어요. 너무 초반 에 달리다보면 연료가 소진되어 마지막까지 달릴 힘이 없 는 것을 확인하지요. 흙손에서 일하면서 비로소 힘 조절하 는 요령을 깨달았어요. 오늘 할 수 있는 분량을 파악하고 천 천히 부드럽게 일하는 법을 익혀갔지요. 오늘 무리하면 내 일 노동을 제대로 할 수 없기에 오늘 푹 쉬게 되었지요. 그 러면 다시 힘이 충전되어서 내일 일하기에 무리가 없어요. 함께 일하다보면 의견이 맞지 않을 때도 있는데, 제가 피 곤하고 지치면 더 예민해져서 사소한 일에 말이 엇나가기도 해요. 이런 사태를 방지하기 위해서라도 늘 에너지의 여유분을 보충하고 있어야겠다는 생각을 하게 되 었어요. 열정을 조절할 수 있어야 돼요. 지속가능하려면 힘을 잘 분배하는 것이 필요하죠. 서로를 위해 힘을 아껴둬야 정작 필요할 때 풍성하게 누리며 성숙할 수 있는 것이지요. 삶의 비결을 노동의 시간, 더 불어 사는 시간을 통해 배웠답니다. 홍천마을에서 1년 4개월을 보냈어요. 저는 서른 해 가까이 경상도 그리고 부산 도시에서 살아왔어요. 다시 출발선에 섰습니다. 농촌에서 함께 땀 흘려 일하며 얻은 소중한 경험을 이후 삶의 지혜로 간직하고 살아가렵니다. 함께한 모든 이에게 감사를 전합니다. 김두영 | 1년 4개월 홍천 피정을 마무리하고 강북 인수마을에서 살아가며 학교에 복학하여 청년대학생들을 만날 새로운 출발선 앞에 서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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밥상머리

몸에도 좋고 향기도 좋은 귤껍질, 버리지 마세요

나는 여름에 열매를 맺는데 겨울에 열매가 익어요. 다 익으면 노랗게 되는데 색이 진해서 주홍빛이 나 요. 먹으면 아주 달고 시고 맛있어요. 나는 누구일까요? 바로바로 귤입니다. 한 겨울 대표적인 과일인 귤 은 남녀노소 누구나 좋아합니다. 어렸을 때 집에 귤을 한 상자 사놓으면 바구니에 한가득 담아서 앉은 자 리에서 20~30개를 먹곤 했습니다. 제가 피부색이 좀 노란 편인데 어릴 때는 귤을 많이 먹어서 그런 줄 알 정도로 많이 먹었습니다. 손이 노랗게 될 때까지 먹었던 경험, 누구나 있을 법한 추억이기도 합니다. 대부분의 과일이 과육보다는 껍질에 영양이 더 많다고 많이 알려져 있는데 그 중에서 귤은 특히 껍질에 영양이 많습니다. <동의보감> 본초에 따르면 귤껍질은 “성질이 따뜻하고 맵고 쓰며 가슴에 기가 뭉친 것 을 치료하고 음식 맛을 나게 하며 소화를 잘 시킨다”고 합니다. 반면 귤의 속살은 “성질이 차고 맛은 달고 시며 소갈증을 멎게 하고 소화를 잘 시키나 많이 먹으면 담이 생기고, 귤껍질은 약으로 쓰지만 속살은 사 람에게 그리 좋지 않다”고 합니다. 귤피는 오래될수록 효능이 좋습니다. 오래된 귤피는 진피라고 부르고 약재로 씁니다. 귤피차는 만들기가 정말 쉽습니다. 무농약 귤을 먹기 전에 물로 씻어서 먹은 뒤 껍질을 채반에 펼쳐놓고 그늘에서 며칠 동안 말립니다. 바싹 마른 뒤 병에 담아놓으면 됩니다. 끓인 물에 우려내서 마시면 향긋한 귤 냄새와 함께 ‘화~’한 맛이 어우러져 참 맛있습니다. 귤껍질을 꿀이나 설탕에 재어놓으면 귤피청이 되는데 귤피청은 따끈하게 차로 마실 수도 있고, 멸치볶 음 같은 요리에 넣어도 맛있고, 머핀 같은 빵을 만들 때 넣어도 좋습니다. 귤껍질은 살균이나 냄새 제거 에도 탁월한 효과가 있어, 김치를 담았던 통이나 냄새가 심하게 밴 병에 귤껍질을 넣고 따뜻한 물을 부어 5~10분 있다가 물을 버리면 통에 있던 냄새가 싹 사라집니다. 정말 신기합니다. 귤은 맛도 좋은데 버릴 것 도 없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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귤에 대해 장황하게 풀어놓게 되었습니다. 귤껍질을 활용하는 방법을 나누다보니 이렇게 되었습니다. 최근에 집안 살림과 마을밥상 살림을 많이 하다보니 뭐든 버리는 것이 아까워서 다시 쓰거나 껍질을 쓸 수 있는 방법을 이리저리 찾고 시도하고 있습니다. 예를 들어, 옥수수수염을 따로 모아 차를 끓여 마시거 나 방광염에 걸린 친구에게 나누기도 하고, 단호박씨를 버리지 않고 모아서 말렸다가 까먹거나 빵과 떡 을 만들 때 넣기도 하고, 양파껍질을 모아서 국물 육수 낼 때 쓰거나 천연염색 염료로 사용하기도 합니 다. 귀찮고 번거롭기도 하지만 조금만 수고하면 더 풍성해지는 것을 보며 전보다 더 열심을 내고 있습니 다. 특히 귤이 냄새 제거에 탁월한 효과가 있다는 것을 찾으면서 세상에 버릴게 하나도 없구나 하는 생각 이 들었습니다. 제가 살아가는 마을공동체에서는 음식물찌꺼기를 ‘음식물쓰레기’라고 부르지 않고 ‘밥상부산물’ 이라고 부릅니다. 땅에서 태어나서 땅으로 다시 돌아가는 순환의 삶을 살게 하는 철학을 생각해볼 때 밥 상부산물은 ‘버리는’ 것이 아니라 ‘비우는’ 것이 맞는 것 같습니다. 매주 집에서 모아진 음식부산물을 가져다가 마을 밥상부산물통에 모으러 가보면, 과일껍질이나 채소껍 질들이 부피가 커서 밥상부산물통이 금세 가득차곤 합니다. 밥상부산물이 땅으로 돌아간다고 하더라고 너무 금세 차버리는 것을 보면 밥상부산물을 홍천마을까지 운반하는 친구들의 수고도 가벼이 여길 수 없 게 됩니다. 도시에서 살면서 도시문명을 거스르며 살려고 고군분투하고 있지만, 땀 흘리며 애써서 밭생 명들을 돌보고 일하는 농부들을 생각하면 가급적 버리지 않고 잘 비우는 것도 중요하겠다는 생각이 듭니 다. 먹고 마시고 소비하는 모든 것을 다시 쓸 수는 없겠지만 적게 소비하고 적게 먹고 적게 버리는 방법 을 찾아 버리지 않고 비우는 삶을 살려 합니다. 비움의 삶을 함께 살아가는 이들이 있어 오늘도 힘을 내 어 살아갑니다. 조한아 | 직장을 그만두고 반년 동안 인수마을에서 잘 쉬고, 이제 마을 친구들의 든든한 응원 속에 새로운 현장에서 활기차게 일할 궁리에 빠져 있습니다. 건강한 먹거리들로 밥상을 차리는 이야기를 마을신문 [밥상머리] 지면에 연재합니다.

아름다운마을신문 2014 02 44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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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소년마당

홍천 생동중학교 ·아름다운마을초등학교 졸업식

내가 겪은 졸업식은 그랬다. 주인공과 배경이 갈리고, 누군가는 소외되고 누군가는 인정을 받는, 학교 에서 배워온 바와 세상이 보여주는 질서가 다르다는 것을 확인하는 자리였다. 졸업식다운 졸업식은 어떤 모습일까. 학교에서 가르치는 가르침과 졸업생이 고백하는 가치가 일치하는 졸업식이어야 하지 않을까. 자신이 배우고 익힌 지식을 긍정하고, 그에 맞게 살아가겠다는 결단과 그 가치를 함께 살아가는 사람들이 있어야 배움이 끊어지지 않고 기만적 지식이 되지 않을 수 있지 않을까. 올 3월 고등대학 통합과정 삼일학림 개교를 앞둔 홍천마을에서는 꿈꾸는 삶과 긴밀하게 연결된 배움의 열기가 한껏 전해온다. 그에 앞서 12월 18일 아름다운마을공동체 홍천터전에서 열린 마을초등학교와 생 동중학교 졸업식도 함께하는 배움의 의미를 확인하는 자리였다. 학생들이 고백하는 학교생활은 어떤 것 일까, 어떤 점에서 자신이 변했다고 느낄까 궁금했다. 두 시간 남짓 버스는 달려 홍천에 도착했다. 어른 스무 명이 어깨를 나란히 하고 함께 달려도 넉넉할 만 큼 넓은 강당 마루가 사람들로 가득 찼다. 졸업생들의 가족과 친지들, 마을 이모삼촌, 선생님, 그리고 형 님들의 졸업식을 지켜보는 어린 동생들까지 모두들 기대에 찬 얼굴들이다. 졸업식이 열리기 한 달여 전 부터 학생들은 영상, 노래, 쿠키, 졸업장, 졸업앨범 모둠으로 나뉘어 졸업식을 준비해왔다고 한다. 학생 한 명과 선생님 한 명이 호흡을 맞춰 졸업식 사회를 맡았다. 이번 연도에는 초등학교에서 다섯, 중학교에 서 여덟 명의 학생이 졸업을 한다. 졸업식의 문을 연 것은 학생들이 손수 제작한 학교생활 영상이었다. ‘ 우리가 걸어온 길’이라는 제목으로 학교의 봄, 여름, 가을, 겨울 정경이 이어지고 ‘학교 가는 길’이라는 제목으로는 함께 공부하고 생활하는 일상이 영상에 담겼다. 장작을 패고 잔가지를 주워와 불을 때고, 수업이 끝나면 구멍가게에 달려가고 오징어놀이를 하고, 자그마한 일에도 까르 르 웃는 모습. 지치지 않는 활기와 재치에, 보는 이들의 입에서도 웃음이 떠나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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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름다운마을초등학교 인수터전 동생들도 축하 영 상을 만들어 보여줬다. 정성껏 쓴 편지에 묻어나는 동 생들의 솔직한 감정에 빙그레 미소가 떠오른다. 마을 이모삼촌들도 “더불어 함께 이 길을 가네”란 노래 를 개사해 직접 만든 한 편의 음악영상을 통해 축하 의 마음을 전달했다. 학생들 졸업을 축하하는 마음이, 한 길을 걸어가는 서로에 대한 든든한 마음으로 전해 진다. 졸업생들이 각각 준비해온 소감문을 사람들 앞에서

생동중학교 졸업생들의 공연. "내 친구를 소개합니다."

읽는다. 긴장이 역력하지만 차분차분히 자신의 변화와 감사, 다 짐의 말들을 읽어 내려간다. 어떤 변화가 있었을까? 골고루 못 먹던 음식을 홍천에 와서 먹게 되었다는 섭 생의 변화부터, 한해 동안 개인농사를 지으며 든 생각과 함께 나누어 먹을 때의 기쁨이 학생들의 솔직한 언어로 표현된다. 도로에서 치어 죽는 동물, 공장식으로 사육당하고 잡아먹히는 동물들을 보면서 고기 를 먹지 않는다는 고백도 있었다. 소감문 하나하나마다 아이들의 기질과 특이성, 깨달음이 새겨져 있다. 주어진 상황에 불평했던 모습을 돌아보며, 중학교에서는 주어진 상황에서 마음을 잘 다스리며 살아가 겠다는 다짐도 이어진다. 학교 생활관에서 지내며, 부모님 생각이 많이 났지만 친구들, 선생님들과 지내 면서 차츰 익숙해졌다는 학생도 있고, 어떤 학생은 홍천에 처음 온 4학년 때는 자주 집으로 전화를 걸고 울기도 하다가 5학년 때는 일주일에 한 번씩만 전화를 하더니 6학년이 되자 집에 가기 싫어졌다는 이야기 로 학생들이 공감하는 웃음을 불러일으켰다. 한 사람씩 나와서 소감문 발표가 끝나면 교장선생님이 한명 한명에 대한 애정어린 격려말씀을 전하고 졸업장과 앨범을 전달한다. 다양 한 재능이 형성되고 생명력이 커가는 시기에 내리는 평가는 긍정적 이든 부정적이든 자칫 그 평가에 아이를 고착화시킬 수 있으니 지켜 보며 격려해달라는 당부와 아울러 학생마다 가지고 있는 잠재성과 노력할 부분 등을 함께 이해하는 시간이었다. 그 이야기를 듣는 학 생 자신뿐 아니라 그 자리에 있는 모든 이들이 책임 있게 서로의 성 숙을 돕는 관계로 든든히 연결된 느낌을 받지 않았을까. “싫어하던 수학과 정이 들고, 다른 사람의 기운을 살필 줄 알게 되 었다. 운동에 관심이 없었는데 축구에 흥미를 갖게 되고, 몸 상태를 다스릴 줄 알게 되었다.” “친구들과 문제가 생긴 적이 있었는데 남을 배려하지 않은 경향이 있어서였다. 그럴수록 나는 생각이 많이 바뀌어갔다. 그래서 지금의 내가 있다. 고맙게 생각하는 친구들이 많다.”

아름다운마을신문 2014 02 44호

준비해 온 소감문을 차근차근 읽어나갔다. 한 명 한 명마다 내용은 달라도 고백하는 바는 서로 통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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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친구들의 성숙을 지켜보며 나의 성숙도 돌아보고 함께 성숙하고 꿈을 키워가는 우리 삶을 당당하게 여기게 되었다. 3년 동안 좋아하는 축구를 하며 성격이 한결 여유 있어지고 부드러워졌다. 마음을 잘 나 누고 관계가 깊어지는 사람이 되겠다.” “공부뿐 아니라 어떻게 살아가야 할지 배웠다. 당연하게 여기며 쓰던 것 의문을 가지고, 친구 관계를 어떻게 맺어가면 좋을지, 풀꽃 이름을 알고, 작물을 어떻게 기르는지 배웠다. 성격이 가장 크게 변화했고, 초등학교 때보다 부드러워졌다. 친구들과의 관계를 고민했기 때문이다.” “마음에 맞는 친구와 사귐을 갖고, 맞지 않으면 깊이 만나지 않았기에 힘들었다. 선생님, 부모님의 평 가를 듣지 않고 나를 냉정하게 평가하지 않았다면 부정적 생각만 하고 있었을 것이다. 친구들을 잘못 판 단하고 있었다. 좀 더 잘 알고 만나면서 깊이 사귈 수 있었다.” “항상 들뜬 분위기로 말실수하는 경우가 많았다. 한 친구에게 고 민을 털어놓고 내가 긴장 풀릴 때 도와 달라고 했다. 나는 그 말을 책임 있게 지키기 위해 긴장하며 지냈다. 그 친구도 긴장이 풀리면 내가 도와주기도 했다. 따끔한 말이 성숙하게 해주었다.” “불평과 짜증을 많이 냈는데. 대화하며 마음을 이해해가고 잘못 을 사과하고 관계를 풀어갔다. 그 과정에서 서로 이해하고 깊은 관 계가 될 수 있었다. 동생들을 가르쳐야 한다고 생각했는데 함께 가 르치고 배우는 곳이었다. 동생들과도 친구처럼 지낼 수 있구나 알 았다.” “함께 졸업하는 우리 여덟 명은 친구이자 선생님이다. 처음에는 각자 잘 모르고 마음에 안 맞는 일이 한둘이 아니었다. 지금도 마음 안 맞는 일이 많다. 그럼에도 선생님으로 생각하는 것은 남을 이해 하는 법, 내 마음을 잘 전하는 법을 배웠기 때문이다. 진심으로 충

졸업식을 마치고 서로 모여 사진을 찍었다. 아름다운마을초등학교(위), 생동중학교(아래) 졸업생들.

고하고 새겨듣게 되었다. 함께 있었기에 가능했다.” 생동중학교 졸업생들이 나눈 고백의 일부다. 학생들이 어떻게 중학교 3년을 보냈는지 확인되는 순간이 었다. 학생들이 공통적으로 고백하는 바는 함께 살아가는 법을 배웠다는 것이다. 나와 다른 생명, 이질적 인 존재와 어떻게 함께 살아갈 것인가? 내 안을 살펴보면 찾아보기 힘든 역량과 생명력이 아이들에게 깃 들어 있었다. 함께 축하하고 지금까지의 배움을 함께 나누었는데 내 마음이 정화되는 느낌이다. 서로의 생명이 어우러져 아이들은 새로운 존재가 되어가고 있다. 함께 살아가는 삼촌으로, 나도 생명의 약동을 느끼며 살아가야겠다. 김준표 | 출판사에서 책에 대한 애정과 이 시대 출판문화에 대한 고민 속에 편집 일을 하면서, 마을신문 기자로 즐겁게 활동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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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reumdaun Maeul 4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