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국선언 : 카타스트로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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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은 2014년 6월 28일부터 7월 13일까지 문래동 our Monster 에서 열린 <카타스트로피 : 파국선언>展을 위해 출판되었습니다. 이 책에 수록된 이미지 및 글에 대한 저작권은 각 저작자에게 있으며, 본 발행물의 저작권은 전시의 모든 참여자들에게 있습니다. 무단 전재나 복제, 배포를 금합니다. ⓒ 2014 Catastrophe Exhibition. All Rights Reserved.


<카타스트로피 : 파국선언>



<카타스트로피 : 파국선언>



차례

기획의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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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품소개 & 비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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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인혁

25

김민기

37

졔졔

49

송지은

63

전시현장

77

아티스트 토크

87

디자인

113

< 카타스트로피 : 파국선언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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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획의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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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획의도 최근 있었던 사건을 통해 우리는 일련의 파국적 상황들을 적나라하게 목격하고 있다. 전 국민에게 커다란 트라우마와 뼈아픈 상처만을 남긴 이 사건에 대해 어설프고 성급하게 이야기하고자 하는 것이 아니다. 오히려 사건 자체에 대한 언급은 여기에서 완벽하게 지양한다. 다만 지그문트 바우만이 이미 언급했던 “액체의 시대”를 살아가며, 슬라보예 지젝이 말하는 “임박한 파국” 앞에서, 그야말로 침몰 위기의 상황을 하루하루 위태롭게 견뎌내어야 하는 이 시점에서 어떤 연대적 방법을 통한 위기의식에 대한 언급 필요성을 절감한다. 이에 우리는 공동의 문제에 대해 함께 공유하고 토론하는 형식으로 각자의 발언권을 획득해 나가며 파국 담론을 형성하고, 전시의 형식을 빌린 파국 선언의 현장을 재현하고 싶다. 전시를 준비하는 기간 중 우리는 지방선거라는 또 하나의 변수를 마주하게 될 예정인데, 한치 앞을 알 수 없는 시국 상황에서 예측할 수 없는 변화의 파도를 타며 시스템의 침몰 여부를 세밀히 들여다보게 될 것이다.

전시는 서울시 문래동 our MONSTER에서 6월 28일(토)부터 7월 13일(일)까지 약 2주간 진행되며, 7월 12일 토요일 저녁에는 아티스트 토크가 마련될 예정이다. 참여작가인 송지은, 김민기, 졔졔, 강인혁과 기획자 최정은, 시민비평가 이미경, 디자이너 이상형이 함께 참여하여 ‘파국’의 지형도를 그려보는 시도가 전개된다.

< 카타스트로피 : 파국선언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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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롤로그 2011년 10월 초 어느 날, 나는 뉴욕 월스트리트에 위치한 한 공원 모퉁이에 우두커니 서 있다. 사람들이 공원에 잔뜩 모여 격렬한 토론을 벌이는 중이다. 그들의 모습과 자본주의를 규탄하는 문구가 씌여진 폐지들을 물끄러미 바라보다 시선이 나에게로 움직인다. 손에 들려 있는 스타벅스 1회용 컵과 아침에 편하게 걸치고 나온 후드티 로고에 시선이 잠시 멈춘다. 나도 모르게 화끈거리는 낯빛을 애써 감추며 다시 고개를 들어 조금 먼 곳을 바라보니 공원 뒤로 한창 공사 중인 원 월드 트레이드 센터로 시선이 꽂힌다. 순간 영화의 한 장면처럼 세상이 일시 정지되는 듯한 느낌이다. 복잡미묘한 흥분감이 올라오면서 현기증이 난다. 망치로 머리를 얻어맞은 것 같다. 이 순간으로부터 딱 10년 전, 그 자리에 우뚝 솟아있던 자본주의 상징이었던 세계무역센터는 이슬람 테러 집단에 의해 무너졌고, 건물은 다시 재건되고 있지만 이곳 내부 구성원들로부터 시작된 파장과 균열은 무력 테러 집단도 감히 건드릴 수 없었던 거대한 무언가를 다시금 붕괴시키고 있는 상황으로 함께 대치되면서 파국적 이미지로 오버랩 된다.

그로부터 며칠 뒤 인터넷에서 빨간 티셔츠를 입은 낯익은 남자에 대한 동영상 기사를 보았다. 공원에 가기 얼마 전 보았던 <Examined Life>라는 다큐멘터리에서 주황색 청소부 옷을 입고 나와 쓰레기 더미 앞에서 이야기를 하던 틱장애를 가진 바로 그 남자다. 공원에서 연설을 하고 있고 사람들이 열광하며 복창하고 있다. 슬라보예 지젝. 그는 이곳 월가 점령 시위를 통해 자본주의와 시스템의 문제에 대해 적나라하게 이야기하며, “사람들은 종종 무언가를 갈망하지만 진정으로 원하지는 않는다. 갈망하는 것을 진정으로 추구하길 두려워하지 마라.” 라고 말한다. 구 공산권 출신의 이 철학자에게 세계는 열광했고, 비단 한국도 예외는 아님을 반영하듯 국내 모 대학에서 공개 강연 초청과 책 출판 등이 이어졌다. 그중 한 책의 제목이 그 강연을 기록한 <임박한 파국>이다. 사실 책의 내용도 내용이지만 제목 자체가 많은 질문을 던지게끔 만드는데, 우리는 이미 닥쳐온 파국적 상황 속에서 하루하루 연명하고 있음을 도저히 부정할 수가 없다. 16


그리고 2014년 대한민국.

잔인했던 4월, 그리고 그 잔인함 속에서 몸서리칠 수 밖에 없었던 5월, 그리고 여전히 잔인한 6월이다. 이 잔인할 수밖에 없는 시간들이 그야말로 파국이 임박했으니 정신을 깨우라고 내게 말한다. 그간 개인적으로 느끼는 변화 한 가지가 있다면, 그 어느 때보다 귓가에 울리는 소방 사이렌이나 경고음 소리에 신경이 날카롭게 곤두선다는 점이다. 이것이 비단 나만이 겪는 현상은 아닐 것이며, 단지 물리적인 사운드에 대한 신체적 반응이라고만 생각하지 않는다. 문제와 위기, 그리고 파국에 대한 상상이 점점 더 가능해지면서 막혀있던 회로가 뚫려 겪게 되는 정신적 반응으로 나는 받아들인다. 현실의 안락의자에 비밀스럽게 숨어 앉아 이 순간을 잠시 참고 넘기면 이 또한 지나가리 하며 외면하고 싶던 내게 울리고 있는 경고음. 머릿속에서 이 경고음들이 울릴 때, 상당히 예민해지는 불편함이 있지만 그래도 거기에 반응하는 나의 모습에 오히려 안도를 느낀다. 지젝이 말했던 “멈춰라, 그리고 생각하라” 잠시 멈추어 생각할 수 있는 틈을 발견한다. 그렇게 발견한 틈 속에서 나는 우연찮게 작은 발언권을 하나 얻었다. 과거 내가 보았던 파국의 장면이 단지 거대한 붕괴사건이 아니라 사람들이 모여 행하는 어떤 행위들에서 온 것임을, 그리고 그것이 나에게 주었던 충격을 되새기면서 그 발언권을 몇 사람들과 함께 나누었다. 그렇게 마련된 <카타스트로피 : 파국선언>을 통해 파국에 대한 지형도를 그려보며 또 다른 테제를 탐색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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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카타스트로피 : 파국선언 >

2014. 06. 13. 최정은 (Jong eun Choi)


에필로그 전시 에필로그에 사사로운 고백을 조금 털어놔야겠다. 소위 예술계(?) 라고 부르는 이 분야 어느 후미진 한켠에 서식하는 dweller로서 지내온 지 약 10년이라는 시간이 흘렀고, 왠만해서는 뿌리지 않는 명함에도 ‘큐레이터’라는 직함이 번듯하게 적혀있기는 하다. 물론 조금 더 어릴 적에는 나 역시 이 직함이 그럴 듯 해 보였고, 내 이름을 달고 하는 프로젝트들이 쌓여가는 것이 자랑스럽기도 했다. 그러나 시간이 흐를수록 나를 크게 밖에 드러내고 싶지 않고, 많은 인연을 만드는 데에도 지친 나의 성향이 반영되면서 내 활동 반경은 점점 줄어들어 갔다. 안정된 직장 (여기서 안정된 직장이라 함은 월급날이 밀리지 않는) 에서 꼬박꼬박 나오는 월급, 내 할 일 하기에도 바쁜데 뭘 더 쓸데없이 만들어서 해야 하지? 하는 귀차니즘과 스스로에 대한 비겁한 변명들. 그런 내게 어느 날 우연찮은 자리에서 만난 한 작가가 물었다.

“정은씨는 무슨 일 하세요?” “아 네, 저는 갤러리에서 알바해요.” “좋네요. 알바. 그럼 우리 전시 한번 같이 해봐요.”

어쩌면 그녀가 내 상황을 뻔히 알고 있었는데도, 내가 택한 ‘알바’라는 단어 그 한 마디에 이 일이 이렇게 흘러온 것일까. 지금 생각해보니 나랑 동갑내기였던 그 작가는 어쩌면 나의 심리상태를 처음부터 꿰뚫어보고 있던 것일지도 모르겠다. 그래서 사실 뜨끔했다. 그렇게 어쩌다보니 4명의 작가와 1분의 비평가가 함께 만난 자리에 빼꼼히 참석했고, 아니 대체 나의 뭘 보고 이렇게 적극적인 신뢰를 주는 거지? 이러한 의문들이 뒤섞이면서 조용했던 마음에 파장이 일기 시작했다. 그래 뭔가 한번 해볼까 하는 생각에 내가 계속 생각하고 있던 키워드를 쑥 내밀었다. 당시 세월호 사건이 있은 지 약 한달이 지난 상황에서 나는 과거 내가 보았던 파국의 이미지에 대해 계속 떠올리고 있었고, 뉴스에 나오는 시국선언 기사를 보면서 지금 ‘시국’이 아니라 ‘파국’ 선언을 해야 하는거 아냐 혼자 생각하며, ‘카타스트로피’라는 단어를 되뇌이고 있던 때였다. 18


사실 우리가 정식으로 만나서 기획회의를 한 것도 아니다. 그저 즉흥적으로 페이스북에 <카타스트로피 : 파국선언> 이라는 페이지를 만들어 무작정 작가들을 초대해 버렸다. 지금 생각해보면 얼마나 황당했을까 싶지만, 나는 참여하는 작가들의 기존 작품 성향에 대해서는 완전히 블라인드인 상태에서 새로운 작품과 전시가 어떻게 진행되는지를 한번 보고 싶었다. 그 이유는 전시의 시작 자체가 이미 일반적인 프로세스에서 벗어나 있었고, 기획자의 입장에서는 ‘작가 선택’이라는 한 가지를 포기해야 하는 상황에서 기왕 이렇게 된 거 그걸 교묘히 짜 맞춘 주제가 아니라 내가 가장 관심 있는 주제를 과감히 택해버린 나름의 곤조 부림 이었달까.

그날 밤 전화가 한통 걸려왔다. “이거 뭐야?” 다짜고짜 묻는 이 친구, 나와 가끔 돈 안 되는 프로젝트 작업도 기꺼이 함께 하는 디자이너이다. 대충 뭐 이런거 하려고 생각하고 있어 답했더니 앞뒤 안보고 그냥 “나도 할래!” 라는 말 한마디. 난 그렇게 또 천군만마를 얻은 기분으로 이 전시의 항해를 시작했다. 자의든 타의든 각자 발을 담그게 된 계기는 달라도 결국 자발성 참여로 시작했고, 모두 공평하게 예산을 분배하고 할 일들을 나누었다. 심지어 비평가와 디 자이너까지도. 매주 토요일 마다 만나 작품 진행에 대해서 이야기를 하고 전시의 틀을 잡아 나가면 서 나는 사실 디렉터의 역할은 잠시 내려 두었다. 작품의 방향이나 설치 등에는 전혀 개입하지 않 았고, 그것은 기획자가 아닌 작가 스스로의 몫이라고 생각했다. 나는 그냥 내게 주어진 일들을 하 면 되었다. 자율성을 주는 것인가 혹은 무책임하게 임하는 것인가 라는 질문에서 본다면, 솔직히 어떤 면에서는 무책임하게 보일 수도 있다. 그렇지만 어떤 힘 혹은 외부 요소의 개입을 지양하는 입장에서, 이 ‘자발적 참여’라는 것이 개인의 자율성을 여러 가지로 보장해야함에 어떤 근거는 주 었다고 본다. 전시의 시작부터 끝까지 호흡을 함께 해 주신 이미경 비평가는 이런 우리들 간의 관

그렇게 약 한달 이라는 시간이 흘러 우리는 <카타스트로피 : 파국선언> 이라는 전시를 만들었다. 그리고 약 2주간의 진행 후 아티스트토크를 마지막으로 전시는 종료되었다. 19

< 카타스트로피 : 파국선언 >

계성 혹은 상태가 일종의 무중력의 상태인 것 같았다는 말로 설명해 주었다.


토크의 마무리 때 나는 과거 진행했던 전시까지 괜시리 들먹이며, 전시를 통해 어떤 변화되는 모습을 보았고 이 또한 마찬가지일 것으로 기대한다 라는 피상적인 멘트로 마무리 지었다. 그러나 사실 이 전시의 의미가 어떻게 흘러갈 것인지는 스스로 가늠은 못하겠다. 그냥 또 하나의 전시로 기억될 수도 있고 혹은 이것이 계속 회자(?)될 수도 있을 테고. 사실 아무리 거창하고 날카로운 목적성을 가진 프로젝트 인다 한들 시간이 흐른 후 그것이 기억되는 모습은 점차 희석되어 큰 차별성은 없다는 약간의 회의주의적인 시선 또한 가지고 있기에 지금 우리가 찍은 이 작은 footprint에서 그 여파가 어떻게 남을지는 전혀 확신할 수 없다.

다만 여러 가지 내가 안고 있던 고민들에 대해 다시금 의문을 던지고, 조금 솔직하게 대면해 보게 되는 시간이 되었음은 인정한다. 다시 동굴 속으로 들어갈 것인지, 아니면 조금 더 밖으로 나와 볼 것인지 그 선택의 입장에서 나는 조금 더 나와 기웃기웃 거려보는 쪽으로 마음을 굳혔다. 나뿐만 아니라 이 전시에 참여한 이들 역시 비슷한 고민과 선택의 지점들을 맞이했으리라 본다. 사실 나는 지금 전시 주제인 파국, 카타스트로피에 대한 관점이나 기획의도에서 벗어나 딴 소리를 하고 있다. 아마 이를 기대하는 이들에게 뭐야 이거 라는 의문을 던질 수도 있을 것 같은데, 흠. 파국이라. 파국... 오프닝 때 송지은 작가가 땡볕 옥상에서 열심히 끓였는데 정작 맛보지 못한 MSG 가득한 파국의 이미지가 뇌리에 강하게 남는다. 그렇게 또 잊혀져가는 본질 속에서 쉽게 잊혀져가는 기억 속에서 우리는 또 어떤 이야기들을 나눌 수 있을까.

2014. 07. 25. 최정은 (Jong eun Choi) 20


< 카타스트로피 : 파국선언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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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품소개 & 비평



강인혁 Ian & Hyuk


강인혁 Ian & Hyuk e ian8hyuk@gmail.com

w www.ian8hyuk.com

우리는 비겁한 권력과 마주하고 있다. 사실 이 권력은 우리들 위에서 짓누르고 위협하고 책임을 피하고 있어야 할 것이 아니다. 이러한 비겁함 때문에 많은 붕괴를 겪었고 슬픔을 넘어 분노를 느끼고 있다. 하지만 개인 한명만으로는 이 판도를 뒤집어 버릴 수가 없기에 개인 하나하나가 힘을 모아 외쳐야 한다고 생각한다. 그래서 나는 예술가로서 한 인간으로서 말하고 싶었다. 어디론가 행진하는 화난 공룡들, 예쁘게 장식된 위험한 총, 분노에 일그러진 헐크의 얼굴, 이 모두가 마치 우리들을 공산품처럼 취급하고 진열시키려는 그 권력이란 존재에 분노를 던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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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카타스트로피 : 파국선언 >

<분노> 150×50 (cm), 혼합재료 2014

anger 150×50 (cm), mixed media, 20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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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카타스트로피 : 파국선언 >

<나를 쏘지마세요> 110×80×10 (cm), 혼합재료, 2014

Don’ t shoot me 110×80×10 (cm), mixed media, 2014

<행진...> 29×17×30 (cm), 혼합재료 설치, 2014

march on... 29×17×30 (cm), mixed media installation, 20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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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카타스트로피 : 파국선언 >

<핵실험> 90×130 (cm), 혼합재료, 2014

a nuclear test 90×130 (cm), mixed media, 20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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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카타스트로피 : 파국선언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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분노의 오브제의 상품화 <분노>, <나를 쏘지 마세요>, <행진>, <핵실험> 몬스터가면, 장난감 총, 티라노사우루스, 버섯구름 전자는 작가가 파국이라는 전시주제를 떠올리면서 선택한 단어들이다. 후자는 전자의 의미를 작품화하기 위해 선택한 오브제들이다. 작가는 마트에서 발견된 상품을 샀고, 새로운 의미를 더하기 위해 도색하는 과정을 거쳤다. 그 과 정은 영리하게도 도색전문가에게 맡겼다. 매끈하게 도색되어 나온 오브제들은 과연 작가의 의도대 로 전자의 단어가 가진 본질적 의미를 잘 전달할 수 있을까? 아니다. 눈앞에 대면하면 기절할 지도 모르는 몬스터와, 맞으면 죽을지도 모르는 총, 육식공룡에서 잡혀먹 을지 모르는 공포, 일단 터지면 일순간에 세계를 파국적인 상황으로 만드는 무시무시한 핵폭발... 이 모든 의미들은 이미 마트에서 상품화가 되면서 의미는 파괴되고 이를 선택한 작가의 상업적 도 색과정을 통해 한 번 더 상품화와 유사한 과정을 거쳤을 때 작품은 ‘분노의 오브제’ 아닌 전혀 다른 역설적 느낌으로 다가온다. 노란색의 몬스터가면과 노란색의 총과 새까만 공룡의 노란 주둥이들은 뭔가 위험을, 분노를 말하 려고 하지만 역부족이다. 사뭇 귀여운 느낌인데? 공룡 한 마리 사고 싶은데? 하지만 왠지 ‘웃픈’ 느낌이다. 우리들이 미디어를 통해 끊임없이 반복하는 이미지는 힘을 잃어가고 식상하게 됨으로써 이미지가 본래 하고 싶었던 이야기는 온라인상에서 흩어져 버리면서 우리 눈을 잡아끌지 못하는 것처럼 ‘세월호 참사’를 보는 우리들의 분노도 이렇게 이벤트화 되거나 다른 의도 로 도색과정을 거치게 된다면 전혀 다르게 전달될지도 모르겠구나 하는 것이다. 공포와 불안을 대 할 때 우리는 그것을 작게 축소하기도 색깔을 바꾸기도 실제 능력을 무력화시키면서 무시하고 회 피하려는 태도를 취하기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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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가는 파국의 이미지를 보여줄 수 있는 상품을 선택하고 실제 상품화가 되는 과정으로 오브제를 밀어 넣으면서 실제의 의미를 더욱더 제거하는 방식을 통해, 넘쳐나는 자극적인 단어와 이미지로 인해 의미가 확대되기도 상실되기도 하는 ‘세월호 참사’ 이후 파국적인 상황들을 대하는 획일적인 인간군상에 대한 이야기를 보여주는 듯하다. 하지만 작가노트에서 “어디론가 행진하는 화난 공룡들, 이쁘게 장식된 위험한 총, 분노에 일그러진 헐크의 얼굴, 이 모두가 마치 우리들을 공산품처럼 취급하고 진열시키려는 그 권력이란 존재에 분 노를 던지고 있다.”고 했다. 작가가 표현하고 싶은 분노는 어쩌면 작가가 가진 기존의 예술을 대하는 생각과 태도에 대한 고민 을 통해 드러날 수 있지 않을까한다. 완성미가 있고 사고 싶은 충동을 일으키는 작품에 관심이 많 은 작가임을 부정하기보단 이러한 전시기획에서는 좀 더 치열하게 자신에게 물어야 하지 않을까? 어쩌면 쉽게 타협하고 결론짓는 우리의 모습과도 닮아 있고, 분노라는 단어의 빈번한 사용이 가져 오는 거북함이 우리 주변에 넘쳐나고 있기에 ‘분노의 오브제’는 그런 우리들의 ‘웃픈’ 자화상을 떠 올리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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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카타스트로피 : 파국선언 >

이미경 (Mi Kyoung Le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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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민기 Kim min-ki

< 카타스트로피 : 파국선언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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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민기 Kim min-ki e Kim1min1ki1@hanmail.net

w llmin1ki1ll.wix.com/min1ki1

우리는 지금 일련의 상황들 속에 혼란스러워

작은 빗방울이 모여 큰 바다를 이루듯,

하고 있다. 2014년 4월 이후 정신없이

작은 마음들이 모여 새로운 세상을 만들어가는

이어지는 사건들과 한국 정치에 대한 실망

진정한 해피엔딩으로 향하는 초석을 만들고자

그러나 어김없이 치루어진 6.4 지방 선거,

함이다.

또 다가오는 선거들 이러한 혼재된 상황 속에서 우리는 무엇을 할 수 있으며 무엇을 해야 하는가에 대하여 깊이 생각해 보고자 한다. 6.4 지방 선거 후보 중 각 지방의 시장, 도지사, 교육감 후보들의 이미지를 변형하여 그 변형 되어진 얼굴 부위에 소용돌이/블랙홀이 연상되어지도록 다시 리터치를 하였다. 이는 일련의 상황들 속에서 정부에 대한 불신이 자리 잡아 가고 있는 마음,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번 선거를 통하여 후보자 중에 자신의 권리를 행사하여야 하지만 무엇을 믿어야 할 지 모르는 상황과 이를 통해 밀려오는 혼돈을 표현하였고 또한 벽면을 가득 채운 이미지들을 픽셀화 하여 몇몇 이미지의 배경에 내가 느끼는 희망의 색을 채움으로써 PICK이란 단어를 가시화 하였다. 우리가 처한 혼돈 속에서도 최선의 선택을 해야 하며 그것에 끝까지 책임을 느끼고 지켜봐야하는 것 그리고 그런 과정을 통해 희망을 만들어가자는 것을 강조하고자 함이다. 이번 전시를 통해 나는 혼란스러운 상황 속 우리가 알고 있는 진정한 파국, 종말이 아닌 새로운 리턴, 새로운 시작, 바로 우리들이 이런

세상이 비록 처참하고 지금 당장 바뀌지 않을지라도 영원히 바뀌지 않을 것이라 단정 짓지는 말자. 최악을 막기 위한 선택을 하기보다 자신의 소신껏 최선의

상황 속에서 만들어야 할 희망을 이야기하며

선택을 하자.

끝이 아닌 시작, 과거의 현재가 아닌 미래를

나는 가능성이 아닌 희망을 신뢰한다. 2014. 06. 02.

향한 현재를 이야기하고자 한다.

당신이 희망을 포기하지 않는 한 절대 끝이 아니다. 2014. 06. 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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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카타스트로피 : 파국선언 >

<선택> A4 size (133ea), 하이브리드 페이퍼, 2014

pick A4 size (133ea), Hybrid paper, 20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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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신이 희망을 포기하지 않는 한 절대 끝이 아니다> A4 size (4ea-1set), 하이브리드 페이퍼, 2014

If you don’ t give up hope, it would be never done. A4 size (4ea-1set), Hybrid paper, 2014

< 카타스트로피 : 파국선언 >

<?> 83.9 34.5 (cm), 하이브리드 페이퍼, 2014

? 83.9 34.5 (cm), Hybrid paper, 2014

<선택> A4 size (133ea), 하이브리드 페이퍼, 2014

pick A4 size (133ea), Hybrid paper, 20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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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카타스트로피 : 파국선언 >

<당신이 희망을 포기하지 않는 한 절대 끝이 아니다> A1 size (3ea), 하이브리드 페이퍼, 2014

If you don’ t give up hope, it would be never done. A1 size (3ea), Hybrid paper, 20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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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카타스트로피 : 파국선언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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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신이 희망을 포기하지 않는 한 절대 끝이 아니다>의 공허 <선택 PICK>, <당신이 희망을 포기하지 않는 한 절대 끝이 아니다>, <?> 눈이 없는, 얼굴이 지워진 정치인들의 사진은 세월호 참사의 희생자의 영정사진 속 아이들의 얼굴을 연상시킨다. 사진 속 아이들 얼굴은 본다기보다는 덮쳐온다는 것이 맞을 정도로 우리 사회의 아픔이다. 반면 작품 속에서 좋은 세상, 안전한 세상을 만들겠다고 나선 정치인 후보자들은 작가의 터치가 건조하게 느껴질 정도로 떼로 모여 있다. 얼굴이 가려진 개별성이 드러나지 않은 채로 벽에 진열되어 있다. 133개의 얼굴들, 구별이 되지 않는 그저 똑같은, 그 나물에 그 밥인 얼굴들 속에서 ‘PICK’이란 단어가 숨어있다. 작가노트에서 “..무엇을 믿어야 할지 모르는 상황과 이를 통해 밀려오는 혼돈을 표현하였고 또한 벽면을 가득채운 이미지들을 픽셀화하여 몇몇 이미지의 배경에 작가가 느끼는 희망의 색을 채움으로서 PICK이란 단어를 가시화 하였다. 우리가 처한 혼돈 속에서도 최선의 선택을 해야 하며 그것에 끝까지 책임을 느끼고 지켜봐야하는 것..”이라고 언급했듯이 이미지라는 포장지만으로 선택해야하는 유권자의 도박심리와도 같은 불안감에 불편하다. 133명의 정치인 후보자를 대면하면서 느끼는 불편함과 무기력함에 화가 난다. 97년 민주시민으로의 첫 권리를 행사한 이후로 투표권을 포기한 적이 없는 필자로서는 더 이상의 ‘선택의 무의미’로 자꾸 빠지려한다. 하지만 작가는 희망을, 긍정을 이야기한다. <당신이 희망을 포기하지 않는 한 절대 끝이 아니다>라는 텍스트와 이미지의 반복을 통해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PICK’ 해야한다라고 강요한다. 문득 투표날 PICK이라는 글자에 해당하는 ‘자’를 뽑을까? 라는 생각이 스치면서 민주시민으로서는 하면 안 되는 무책임한 방식으로 선거를 하고 싶은 충동을 느낀다. 얼굴을 드러낼 수 없는 구린 구석이 많은 정치인들의 어깨위에 우리의 안전을 쿨 하게 얼른 던져주고 중요한 일상을 살고 싶다. 46


작가는 “카타스트로피 기획 전시를 통하여 혼란스러운 상황 속 우리가 알고 있는 진정한 파국, 종말이 아닌 새로운 리턴, 새로운 시작, 바로 우리들이 이런 상황 속엣 만들어야 할 희망을 이야기 하며 끝이 아닌 시작, 과거의 현재가 아닌 미래를 향한 현재를 이야기하고자 한다..” 진실 없는 사실과 희망을 아무렇지도 않게 말할 수 있는 권리와 능력을 가진 정치인들을 그래도 PICK 해야한다라고 말하는 작가를 마주하면서... 바우만의 “희망, 살아 있는 자의 의무” 아름다운 장밋빛 긍정으로 눈감아버리기엔 희망이란 것이 때론 얼마나 고통스럽고 역겨울 수 있는지 더 이상 권리도 선택권도 아닌 ‘왜’라는 자기 물음과 부정의 과정을 통해 의무로서 찾아내는 것이 될 때 파국의 일상화를 살고 있는 우리의 진정한 생존법이 될 수 있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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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카타스트로피 : 파국선언 >

이미경 (Mi Kyoung Le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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졔졔 Jiye Kim


졔 졔 Jiye Kim e zezekimm@gmail.com

미디어 속에선 수많은 비극들이 빗발치지만 이것이 실제인가 가상인가 나는 혼란스럽다. 얼마 전에 있었던 4월의 참혹사는 SNS를 통해 진실과 처참한 비극이 폭발하듯 드러났다. TV 등의 언론보다는 더욱더 비극을 비극답게 해주었지만 그 비극은 미디어창을 마주할 때만 일어나는듯 하다. 현실에서의 비극은 스마트폰을 들여다보며 비극을 느끼고 있는 내 모습 정도랄까. 고개만 돌리면 끝나는 나와 스마트폰 창과의 비극. 나는 이번 전시 작업을 통해 위험한 상상을 자극하지만 실제론 위험하지는 않을 오브제를 구성한다. 상상의 비극과 간지러운 현실의 간극을 드러내고자 함인데 생활 속 오브제로 드러낼 참이다. 또 위험의 해결 선택권이 담겨있는 오브제를 드러냄으로써 현대인 그리고 개인이 비극을 대하는 형상을 지켜보고, 회피와 책임에 관한 그 아슬한 경계를 이야기해 보고자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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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카타스트로피 : 파국선언 >

<선택사항> 가변크기, 혼합재료, 2014

The options variable size, mixed media, 20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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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택사항> 가변크기, 혼합재료, 2014

The options variable size, mixed media, 2014

< 카타스트로피 : 파국선언 >

<비극생산기> 가변크기, 혼합재료, 2014 Tragedy machine variable size, mixed media, 2014

<선택사항> 가변크기, 혼합재료, 2014

The options variable size, mixed media, 20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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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택사항> 가변크기, 혼합재료, 2014

The options variable size, mixed media, 20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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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카타스트로피 : 파국선언 >

<선택사항> 가변크기, 혼합재료, 2014

The options variable size, mixed media, 20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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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카타스트로피 : 파국선언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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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극 생산기의 장치성 <비극 생산기> <선택사항> 휴대용가스렌지, 쥐덫, 유리컵, 전등 익숙한 오브제의 전시장 출몰은 빈번해서 전시 도슨트를 해본 필자로서는 놀랄 일은 아니다. 하지만 이런 일상의 오브제는 그저 놓여 있는 것이 아니라 어떤 모종의 기계장치들과 연결되어 있다. 발견된 오브제는 장치의 힘에 의해 위아래로 움직이고 깜박이는 혹은 떨어질까 말까하는 일상의 사소한 간질간질한 불안을 계속 반복하면서 새로운 의미로 전시장에 나타난다.. 익숙한 오브제들과 연결된 장치들에 의해 휴대용가스렌지의 안전핀의 딸각딸각 소리, 쥐덫의 철퍽철퍽 상하왕복운동, 문을 열면 떨어질 듯 말듯 불안한 유리컵은 움찔하게 만들고, 방을 들어서면 깜박깜박 되는 전등의 정신없는 작은 반복들이 어느새 불안을 증폭시킨다. 그러한 반복적 작용을 가능하게 만드는 장치의 드러냄은 우리가 느끼는 불안은 어디로부터 오는가에 대한 엿보기 같다. 미셸 푸코의 ‘장치’라는 개념에서 나타나는 ‘외부에서 존재에게 가해지는 것이자 자연 상태를 인위적으로 가공하고 변형시키는 것’이라는 것에 빗대어 작품의 장치를 바라보게 된다. 작품을 보면서 느끼는 불안을 제거하기 위해 안전핀을 올리고, 쥐덫을 빼고, 유리컵을 내리고, 불을 끄면 되지 않을까 마치 우리에게 선택권이 주어져 있는 것 같다. 하지만 중요한 건 한 번의 작은 행위가 아니라 사물과 장치의 연결지점을 어떻게 끊을 것인가를 인식하는 것이다. 이것은 언론과 미디어, 정치권력이 사회에서 불안을 야기 시키는 장치로 작동할 때 우리는 어떻게 인식하고 반응하는 것에 대한 물음이 될 수도 있다. 작가는 개념이 사물과 제작과정을 통해 사회적 문제와 만났을 때 어떤 힘을 발휘하는지를 개별적 기억과 작가의 몸을 통해 이야기를 시작한다. <비극생산기>의 쥐덫은 작가의 유년시절 외할아버지가 잡은 쥐의 숨을 끊기 위해 세숫대야에 담가 질식시키는 장면과 죽은 쥐를 똥통에 버렸는데 살아있던 쥐가 살기 위해 올라오는 것을 58


할아버지가 긴 장대로 꾹 누르는 유년의 기억에서 찾은 오브제이다. 작가의 개인적 기억에서 찾은 파국의 생산기인 쥐덫은 우리를 가두는 장치로서 상징성과 그것이 물속을 오르락내리락 하는 것을 결정짓는 장치의 절대성은 국가권력이 우리에게 가하는 폭력의 절대성과도 닮아있다. 작품은 파국을 일으키는 원인과 장치들 혹은 안전하고 익숙한 일상의 사물들이 어떠한 힘에 의해서 불안을 야기 시키는지를 봐야 할 때라고 말하고 있는 듯하다. 처음 졔졔 작가의 작품을 만났을 때 자신에게 공포를 느끼게 하는 사물을 향해 혀로 핥으면서 작가로서는 강한 공격을 하는 것이라 이야기 했다. 시각적 강렬함이 없는 작업은 설득력이 없다는 모 비평가의 지적에 작은 목소리로 그래도 ‘저에겐 강한 공격 이었어요’ 라고 했다. 여운이 남는 조용한 ‘고집 부림’이었다. 몸은 각자 고유한 경험과 기억으로 만들어진다. 하지만 제도권 교육과 사회와의 상호작용을 통해 우리는 사회가 요구하는 몸으로 자신의 몸을 맞추고 바꾸어 나가면서 성공적인 사회적 인간이 되어간다고 생각한다. 사회에서 통용되는 유머코드와 정치의식 사회의식을 몸에 익숙하게 해야 유능한 사회인이 되는 것이다. 하지만 작가는 자신의 문고리를 핥는 것을 강한 공격이라 여기면서 교회에 빡빡머리로 예배를 보러간 것은 그리 강한 것이 아니라고 아무렇지 않게 말하면서 약한듯 하지만 굳이 바꿀 생각이 없는 무의지의 의지를 풍기는 듯 했다.

자극시키기도 하는 듯해서 호기심이 생긴다. 하지만 기실 우리는 보편적 사회인으로 살아가기 위해 적당한 가면을 쓰고 점점 그 가면이 피부에 밀착이 될 때 우리가 누구인지에 대한 의문도 제대로 가지지 못한 채로 그저 기분 나쁘고 무기력한 59

< 카타스트로피 : 파국선언 >

그러한 작가의 몸의 예민함은 문득 어린애 같기도 하고 부적절한 어른 같기도 혹은 모성본능을


일상의 반복에 힘들어 한다. 작가와의 순간순간 나오는 대화에서 ‘그런 당신들의 몸을 바라보세요.’ 라고 말하는 듯 했다. 분명 그런 언어나 의도는 가지고 있지 않은데... 사회적 노동 환경에 맞춰진 기계적 몸이 아니라 원시적 개별적 몸으로 일상의 불안과 공포를 느끼는 게 당연하지 않는가라고... 우리를 파국으로 이끄는 불안은 아주 사소한 것으로부터 시작할 지도 모르는 것이라고.. 그런 사소하고도 간질간질한 불안을 대면했을 때 우리는 어떤 선택을 할 것인지? 그런 불안의 일으키는 사회적 장치의 폭력성에 대해 인식이라도 할 수 있을 것인지? 요즘 사람들이 미친 듯이 쌓아가는 스펙처럼 사회에서 요구하는 틀로 자신을 만들기 위해 많은 시간과 노력을 쏟아 붓는 현대사회에 당신의 몸의 약한 부분은 어디인지 아는지 그런 몸이 가지는 두려움을 나타내는데 불안해하지 말라고... 강한 몸이 아니라 위험에 약한 몸이야 말로 우리 사회의 ‘잠수함의 토끼’와 같은 역할을 하는 것은 아닐까. 가장 약한 그 한사람이 보내는 신호를 감지하려면 이처럼 약한 인간의 모습을 인정하고 받아들이는 겸손을 찾아야하지 않을까?

이미경 (Mi Kyoung Lee) 60


< 카타스트로피 : 파국선언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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송지은 Jee Eun Song

< 카타스트로피 : 파국선언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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송지은 Jee Eun Song e sunandsje@gmail.com

w www.jeeeunsong.squarespace.com

주체성을 빼앗는 미디어, 행위의 가담을 요하는 설치 그리고 시각적 감각에만 의존하는 태도의 퍼포먼스는 표피적인 현대의 삶적 여유와 스타일의 [Ctrl+c]가 아닐까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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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카타스트로피 : 파국선언 >

<맥 (mac) 락 (樂)> 4min 5sec, 영상, 2014

Context; Play with Mac 4min 5sec, film, 20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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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카타스트로피 : 파국선언 >

<맥 (mac) 락 (樂)> 4min 5sec, 영상, 2014

Context; Play with Mac 4min 5sec, film, 20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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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카타스트로피 : 파국선언 >

<무제> 7min 10sec, 퍼포먼스 영상, 2014

untitled 7min 10sec, performance film, 20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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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카타스트로피 : 파국선언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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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질을 가리는 풍선껌 <무제> 퍼포먼스 영상. 잡지 속 상품이미지를 찢어서 몸에 붙이는 작가의 행위는 처음엔 인식이 잘 되지 않는다. 뭔가를 찢어서 귀에 붙이고 발에 붙이고 손에 붙이고..어릴 적 여자아이들처럼 잡지 속 이미지를 오려서 진짜 물건인 냥 어른행세를 하는 것 같기도 하다. 차츰 작가의 행위가 익숙해질 무렵 바로 옆에 위치한 또 다른 화면에서는 씹다 만 샛노란, 샛분홍의 풍선껌을 덕지덕지 붙이면서 점점 거울 속 풍경을 가리기 시작한다. 작가의 잡지책에서 찢어 붙이는 행위와 더불어 화장까지 마칠 때 쯤 씹다만 풍선껌은 이미 화면을 완전히 덮어버린다. 10인치 작은 영상은 나란히 붙어서 두 가지 상황을 보여주고 있다. 보통은 다른 내용의 영상을 볼 경우 충돌이 일으킬 것 같지만 컴퓨터의 많은 창을 열어놓고 작업하는 데 익숙한 몸은 이내 적응을 한다. <맥Mac 락樂 > 22인치의 화면과 스펙타클한 음향이 우리를 기다린다. 익숙하고 빠른 전개의 트레일러 속으로 우리는 편하게 빠져든다. ‘욕망의 대안’ ‘막약살포’ ‘전기 절약’의 제목을 단 영상은 마치 영화의 예고편처럼 뭔가 있어 보이는 여운을 남긴다. 영상이 끝난 뒤 우리는 재미와 익숙함에 쉬이 돌아설지 모른다. 하지만 이 영상은 Mac 컴퓨터의 ‘Movie Trailers’라는 프로그램으로 만들어진 영상이다. 어디서 본 듯한 이미지와 포르노 영상들이 만드는 무한반복재생산 가능한 트레일러 시스템에 의해 만들어진 ‘락樂’ 이었다는 것을... 이미지들은 의미도 맥락脈絡도 없는 단지 그럴싸해 보이는 맥Mac 락樂이었던 것이다. 속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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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가는 “주체성을 빼앗는 미디어...시각적 감각에만 의존하는 태도의 퍼포먼스는 현대의 삶 적 여유와 스타일의 Ctrl + c(복사)가 아닐까한다”라고 작가노트에서 언급했다. <무제>와 <맥Mac 락樂 > 이라는 작품을 통해 상품 이미지를 몸에 붙이면 결국 풍선껌에 의해 뒤덮인 풍경처럼 우리가 누구인지, 본질이 무엇인지는 알 수 없게 된다는 것을 두 가지 영상을 나란히 배치하여 보여줌으로서 ‘행위의 결과의 즉각적 시각화’를 통해 지루함을 참지 못하는 초고속 조급성에 길들여진 대중에게 친절하게 보여준다. 작가는 끊임없는 상품소비를 부추기는 미디어와 시스템 안으로 들어오기만 한다면 의미도 맥락脈絡도 필요 없이 그저 즐길 수 있는 장치들이 즐비하기에 더 이상 고민도 하지 말고 시스템의 본질이 무엇인지, 사회 안에서 어떤 장치로서 작동하는지에 관심을 둘 필요도 없이 그저 즐기라고 하는 자본주의의 무방향성과 무가치성의 속성을 우리 사회의 파국적 사건의 원인임을 팝아트의 현대적 해석을 통해 재치 있는 시도를 했다. 1950년대 이후 미국 뉴욕은 TV, 일간지, 광고, 출판사라는 사회적 배경과 함께 앤디워홀이라는 걸출한 풍운아가 나타났다. 앤디워홀은 자본주의적 대량생산시스템과 미디어를 이용해서 작품뿐만 아니라 예술가의 사회적 행위와 태도가 곧 예술이 될 수 있다는 것을 보여주었다. 키스 해링은 앤디워홀이야 말로 진정한 팝아트 작가이며 최초의 진정한 ‘현대 예술가’라 칭하기도 했다. 팝아트가 우리사회의 문화예술 전반에 지대한 영향을 끼치고 있는 것은 아직도 자본주의는 건재하고 초고속 인터넷망을 기반으로 기술발전을 거듭하는 스마트폰과 전후 시대와는 비교도 안 될 정도의 페이스북, 트위트, 인터넷방송, 전자책등 미디어 환경의 유사성에 기인한다.

인간의 욕망과 주체성을 어떻게 그저 화려한 껍데기로 만드는지 보여준다. 마치 앤디워홀이 대량복제와 생산이 가능한 실크스크린 기법으로 작업을 했듯이, 작가는 맥Mac 컴퓨터의 ‘Movie Trailers’라는 장치를 사용하면서 얼마든지 무한생산가능하다고 말한다. 73

< 카타스트로피 : 파국선언 >

작가는 대중들이 쉽게 접할 수 있고 사용하는 미디어를 신나게 가지고 놀면서 그러한 미디어가


또한 영상 속 풍경을 가리는 도구로 샛노랗고 샛분홍의 오로지 시선을 사로잡기 위한, 마치 앤디워홀의 실크스크린의 색감을 연상시키기도 하는 풍선껌을 이용하면서 아무렇지도 않게 덕지덕지 붙이는 과정을 보여준다. 지금 당신의 본질을 가리는 것이 무엇인지? 몇 장의 사진과 포르노 영상들이 만드는 무한반복생산 가능한 트레일러의 세상 속에서 ‘락樂’하면서 살 것인지? 실재의 세상에서 잃어버린 주체성을 찾고 본질을 보면서 ‘락樂’ 할 것인지? 정답은 너무도 뻔 한 것 같지만 선택은 결코 쉽지 않다. 파국을 향해 달리는 기차에서 뛰어내리면 될 것 같은 정답은, 오히려 정답을 알고는 있지만 시스템에 길들여진 사람들과 달리는 기차에 그대로 머물 것을 선택하는 사람들에 의해 외면당할 것 같은 불길한 예감이 든다는 것이다. 주체성의 회복과 본질을 봄으로 인한 시스템의 파괴는 매트릭스의 네오처럼 죽기를 각오 할 만큼 힘들고 피곤하기 때문에 우리는 달리는 파국의 열차를 과연 멈추려고 할 것인지? 의심하지 않을 수 없다.

이미경 (Mi Kyoung Lee) 74


< 카타스트로피 : 파국선언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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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시현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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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카타스트로피 : 파국선언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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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4. 06. 28. <카타스트로피 : 파국선언> opening

< 카타스트로피 : 파국선언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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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타스트로피 : 파국선언> 아티스트 토크 일시 2014년 07월 12일 토요일 장소 문래동 tears of sailors


기획의도 최정은 (기획자)

안녕하세요. 저는 이번에 our MONSTER에서 진행되는 <카타스트로피 : 파국선언> 전시를 기획한 최정은 입니다, 우선 이 자리에 와주셔서 감사드립니다. 전시는 6월 28일에 오픈을 하여 내일까지 관람 가능하고, 오늘 이 공간에서 아티스트토크가 진행됩니다. 토크를 하기 전에 앞서 제가 전시 관련해서 간단하게 소개를 드릴께요. 저는 기획자이고, 이번 전시 아이덴티티 디자인을 맡아준 이상형 디자이너님, 오늘 이번 토크를 진행해주실 이미경 비평가 선생님, 그 옆에 순서대로 졔졔 작가님, 김민기 작가님, 송지은 작가님, 그리고 강인혁 작가님 이렇게 총 4분의 작가 분들과 함께 전시를 진행하게 되었습니다. 이번 전시에 대해서 설명을 드리자면, 저희의 가장 중요한 특징은 자발적

< 카타스트로피 : 파국선언 > 아티스트 토크

참여라고 말씀드리고 싶습니다. 자발적으로 이 자리에 함께 모였고 그 때문에 예산이나 외부적 간섭과 개입, 이런 요소들로부터 상당히 자유로웠다고 생각합니다. 사실은 제가 먼저 기획을 했다기 보다는 송지은 작가님이 공간을 섭외하고 작가님들이랑 이야기를 하다가 기획을 제가 맡게 된, 어떻게 보면 일반적인 전시 기획 프로세스와는 다르게 갔던 부분도 있습니다. 보통 기획자가 전시 주제를 정하고 작가들을 선택하고 진행되는 이런 프로세스에서 벗어나 조금 다른 방법에서 접근을 해 보는 것이 저한테는 의미 있었습니다. 사실 제가 이번 전시를 하기 전에 작가님들의 기존 작업들을 보지 않은 상태에서, 블라인드인 상태에서 그냥 키워드만 드렸습니다. ‘파국’ 이라는 주제로 전시를 하고 싶습니다 라고 했을 때, 작가님들이 각자 진행을 하셨고, 그 상황 속에서 어떤 흐름들로 갈 것인가 관찰하는 것이 저한테는 의미가 있었어요. 그리고 전시에서 진행되는데서 작용되는 어떤 힘들, 저는 기획을 하는 입장에서 나름 균등하게 역할들을 나누고 최대한의 자율권을 보장해드렸다고 생각을 합니다. 또한 전시에 참여하는 작가 분들이 보시면 알겠지만 모두 비슷한 세대입니다. 같은 세대로서 한국의 미술계 안에서 각자 공유하거나 차별되는 습성들, 코드들, 각자의 관점들이 있을 텐데 그런 것들을 어떤 위치에서 바라볼 수 있을 것인가 제 나름대로 생각을 했던 것 같습니다. 이런 것들이 이번 전시를 기획하는데 있어서 제 개인적인 목적 같은 것이었습니다. 4월에 커다란 사건이 한국에서 있었죠. 제가 이 전시를 처음 생각했던 때가 5월이었습니다. 세월호 사건이 있고나서 한달 정도의 시간이 흘렀을 때


파국이라는 것에 대해 생각을 많이 했는데, 사실 그 한달의 기간이 저희한테 가장 힘든 시간이었던 것 같아요. 계속 구조를 하고 있는데 좋은 결과들도 별로 없고, 장례식과 분향소, 노란 리본들로 가득했던 4월과 5월의 시간 속에서. 차라리 직접 종말을 바라본다면 모르겠지만 파국이라는 것을 느끼며, 슬로우 모션으로 하루하루를 살아가는 이런 느낌들이 저만 느꼈던 것은 분명히 아닐 거라고 생각 했기에 그것에 대해 이야기를 시도했습니다. 근데 사실 두려운 것은 그거였어요. 너무 성급하게 세월호 라는 사건이 바로 가시적으로 드러나지 않을까. 그래서 첫 전시 의도에서는 ‘세월호에 대한 직접적인 언급은 지양했으면 좋겠습니다.’ 라고 글을 썼어요. 당연히 작품들을 통해서 그것들이 드러나게 될 것이라는 것은 이미 알고 있었지만 거기에서 조금 선회를 한 거죠. 너무 어설프게 접근하지 말고 차라리 시스템과 파국에 대해서 이야기를 하자 그런 목적으로 이번 전시를 기획하게 되었습니다. 전시를 진행하는 과정에서 보통은 디자이너한테 의뢰를 하죠. 근데 제가 페이스북에 페이지를 만들자마자 한통의 전화가 왔어요. 저도 하고 싶습니다. 그래서 또 하나의 자발적 참여로 이상형 디자이너가 함께 해 주셨고요. 이번 전시의 가장 큰 특성 중의 하나는 비평하시는 선생님께서 처음부터 끝까지 호흡들을 같이 해 주셨다는 겁니다. 첫 미팅부터 각 작가 분들을 모두 개별적으로 만나시고, 또 나름의 거리두기를 하시면서 지금 이 아티스트토크 자리까지 왔습니다. 선생님께서는 시민비평가 라고 하는 본인 나름의 아이덴티티를 가지고 계시는데 그러다보니 조금 다른 관점으로 바라보시는 것 같고, 상당히 솔직한 비평을 만들어주셨던 것 같습니다. 그것이 굉장히 의미가 있습니다. 전시를 기획하는 입장에서 어떤 주례비평이라든지, 이 전시가 좋았다 이런 것보다는 정말 객관적인 관점에서 바라봐주시는 것이 좋았던 것 같아요. 그것을 오늘 우리가 이 자리에서 작가 분들, 그리고 관객 분들과 함께 이야기를 하게 될 예정입니다. 아마 작품들은 모두 보셨겠지만 작가 분들이 순서대로 작품 설명을 하시고 선생님과 함께 자유롭게 토론하는 방법으로 진행을 하도록 하겠습니다.

작품소개 이미경 (비평가)

이 전시가 어떤 틀보다는 자발성으로 모였고, 무슨 작업을 하는지 서로 모르는 상태에서 어떤 것이 나올지 모르는 상황이었기 때문에 전시를 하기 전까지는 긴장을 놓을 수가 없었습니다. 그래서 자발적으로 예산 없이 참여하는 전시, 그런 것들에 대해서도 함께 간단히 이야기를 했으면 좋겠습니다. 강인혁 작가님부터 시작하겠습니다.


강인혁 (작가)

저는 강인혁이고요, 공룡이랑 헐크, 권총, 핵폭발 입간판을 제작했습니다. 작품을 설명하기 전에 저에 대해 먼저 설명을 드릴게요. 저는 굉장히 이중적인 사람입니다. 어떤 것을 이중적이다 라고 이야기를 하냐면, 작업도 그렇고 내 모습도 그렇고 이중적인 모습을 가지면서 작업을 합니다. 이런 저런 모습들을 가지고 양분화해서 작업을 하는 사람입니다. 이번 전시 주제가 파국선언이라는 이야기를 들었을 때 저는 상당히 당황했어요. 제 성향이 파국이나 강한 메시지를 주는 작업을 하는 사람이 아니어서 당황은 했지만, 그래도 재미있게 즐겼던 것 같아요. 일단 전체적인 작품에서 보면 메인 색은 노란색인데, 이는 산업적인 표기에서는 위험, 경고, 그런 것들을 표시 하거든요. 저는 어떤 큰 권력을 가진 것들에게 메시지를 던지고 싶어서 노란색들로 우리가 화나 있다는 것을 이야기를 하고 있습니다. 근데 사실 <분노의 오브제>라고 이야기를 했지만, 사실 모양새를

< 카타스트로피 : 파국선언 > 아티스트 토크

보면 분노가 많이 느껴지는 것은 아니거든요. 잘 짜여진 틀이라든가 예쁘게 조작되어 있는 배열이라든가 그런 것들에 의해서 그런 분노가 어쩌면 억제되어 보일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왜 그렇게 했냐면, 그 권력을 가진 사람들이 어떤 규율 안에서 그래 너네 화났지만 그래도 규칙을 지켜줘야겠어 라고 그 틀을 만들어 주는 것 같아서 제가 그런 외적인 틀을 만들어 넣은 것입니다. 공룡의 경우 입안이 노란색입니다. 우리가 어떤 시위를 하거나 메시지를 던질 때는 말을 해야 하는 것처럼 공룡들이 우리를 대변하는 것처럼, 행진하는 형태로 설치한 것이고요. 헐크 같은 경우에는 영화 대사 중에 ‘나를 화나게 하지 말라’ 하는 것이 있어요. 정말 평범한 사람인데 화가 나게 화면 굉장히 폭력적으로 변하잖아요. 어쩌면 우리를 화나게 해서 우리의 표정이 일그러져 있지 않나 하는 생각에서 그 대상을 사용했고요. 총의 경우에는 ‘Don’t shoot me’ 라고 해서 ‘나를 쏘지 마세요’ 인데 내가 사실은 우리이기도 하고, 그들을 의미하기도 합니다. 총이라는 것이 상당히 아름답지 않은 도구이거든요. 위협하고, 공격하고, 어쩌면 살상을 할 수 있는건데 서로 공격을 하지 않게끔 평화를 만들어 줬으면 하는 의미에서 만들었습니다. 그리고 핵폭발 같은 경우에는 굉장히 단순합니다. 화나면 ‘폭발직전이야 폭발했어’ 라는 의미처럼 저는 제 상태가 폭발한 것 같았어요. 그래서 폭발하는 것을 픽셀화 시켜서 표현하고, ‘부당한 대우를 받은 그는 화가 나 있다’ 라는 것을 넣어 직접적으로 이야기 했습니다. 작품들이 어떻게 보면 멀끔하게 제작되어있는 상태라서 <분노의 오브제> 라는 제목과 안 어울릴 수도 있지만, 그 이면을 뒤집어 보면 우리가 알 수 있는


의미들이 있습니다. 전체적으로 저는 그런 것들을 표현해야 한다고 생각을 했고. 분노라는 것이 부수고 공격하고 그런 것만이 아니잖아요. 그건 그냥 1차원적인 분노잖아요. 사실. 분노라는 것이 속으로 삼켜서 억누르지만 자근자근 메시지를 전달할 수 도 있고, 다른 방법으로 우회적으로 표현할 수도 있는 것이고. 그래서 저는 ‘분노의 오브제’ 라는 단어를 선택을 했고, 그런 감정을 가지고 메시지를 전달하기 위해 노력을 했습니다. 물론 저도 알고 있습니다. 설명을 듣기 전에는 이 것이 무슨 이야기를 하는 건지 이해하기 어렵다는 것을 알고 있습니다. 하지만 제가 감히 이야기하는데, 현대미술이라는 것이 설명이 없으면 알아보기 힘든 부분이 많잖아요. 그런 것을 감안해서 봐주셨으면 했습니다. 감사합니다.

송지은 (작가)

안녕하세요. 저는 송지은이고요, <맥Mac 락樂>이라는 트레일러 작업과 <Untitled> 이라는 퍼포먼스 영상 작업을 진행했고요. 이번 기획 안에서는 저는 이런 저런 설명보다는 제가 임하는 태도에 대해 먼저 이야기를 드릴께요. 기획자 분이 말한 대로 일련의 큰 사건, 세월호, 파국, 카타스트로피, 이런 키워드들 속에서 예술가라는 존재에 대해서 다시 한번 생각을 해봤어요. 어떤 일련의 파국이라는 상황에서 내가 예술가로서 했던 움직임들, 행위들이 과연 사회에 어떤 영향을 끼쳤나. 그런 것들 안에서 사실 나라는 존재는 아무런 영향도 끼치지 못하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을 하게 되었습니다. 저는 공공예술 프로젝트, 커뮤니티 아트, 경기 지역이나 서울, 전국에 걸쳐 이루어지는 공동체 예술 등 잃어버린 주체성을 회복하고 해체된 공동체성을 회복한다는 이런 일련의 프로젝트를 많이 했었어요. 근데 결국에는 그것들이 어떤 시각적인 표피에 지나지 않았나 라는 생각을 많이 했어요. 정말 우리가 삶에 침투해서 예술을 하였든, 혹은 기획자가 하였든, 그런 활동들이 어떤 공동체 회복이나 이런 것에 도움이 되기보다는 그냥 눈요깃거리가 되지 않았나 그런 생각들을 많이 하게 되었어요. 그러면 그 껍데기라는 것이 얼마나 본질을 흐릴 수 있는가. 사실 ‘카타스트로피’ 라고 하는 이 단어는 연극에서 온 어원이고 비극적 상황, 이런 의미들이 있는데. 언어기호를 떠나서 제가 카타스트로피나 파국선언 이라고 하는 것을 딱 봤을 때는, 사실은 제일 간단한 거예요. 본질을 보지 못한다는 거죠. 우리는 허울에 갇혀서, 쏟아지는 시각성에 갇히고 그런 것들 안에서 판단력 자체를 다른 것에 넘겨주는 상황. 그 안에 있는 껍데기들. 그래서 트레일러나 언타이틀의 작업 행위들은 그런 껍데기, 시각적 자극, 그럼에도 동시에 가벼움. 하지만 거기에 빠져들고 거기에서 느끼는 익숙함. 사실 껌을 붙이는 작업에서 보이는 아파트가 몇 동 아파트이며 어떻게 생겼는지를 기억하기 보다는 껌을 기억하는 것처럼 원래 있던 것 자체를 기억하기 보다는 잊게 되는 행위들을


통해 이에 포커스를 많이 맞췄어요. 저는 사실 제 작업이 주체성의 상실이나 기호적인 것을 바라보는데 관심이 많아서 그런지 이번 주제마저도 그런 방향으로 제 시각에서 많이 다가간 것 같아요. 주체적인 고민을 가져가는 것 자체가 가장 중요한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을 많이 했어요. 기획자나 여러 구성원들이 있지만은 예술가로서 자기 고민이라는 것이 가장 중요한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도 하게 되었고. 그 안에서 파국을 바라보는 관점, 사실 파국적 상황 이라는 것이 제가 봤을 때는 또 하나의 희열이 될 수도 있거든요? 망가져야 희망이 생기고, 우리가 어떤 절대성만을 계속 쫓고 있는 상태가 사실 좀 이해가 안갈 때가 많은데, 어떻게 보면 그 안에서 카타르시스를 느낄 수도 있다고 봐요. 망가지는 상황 안에서. 인간이 가진 폭력성, 사회적으로 교육되고 경험하고 사고하는 것에 따라서 강하게 표출 되는 것이 있어서 그런 관점에서 이번 기획 자체를 봤고, 작업 자체는 주체성의 상실 혹은

< 카타스트로피 : 파국선언 > 아티스트 토크

껍데기. 그런 시도 있잖아요. 껍데기는 가라. 이번 전시를 고민하면서 이 문구가 많이 생각났어요. 그래서 사실 예술가 스스로 시각을 잃어버리지 않는 상태가 되어야겠다는 개인적인 고민을 많이 했던 전시가 되었던 것 같습니다.

김민기 (작가)

예 저는 김민기 작가이고요, 다들 혹시 시방아트를 받아 보셨나요? 여기 보시면 인물들을 겹쳐서 텍스트를 얹힌, <당신이 희망을 포기하지 않는 한 절대 끝이 아니다> 라는 작품과 <?>, <선택 PICK> 이라는 작업을 한 작가입니다. 일단은 기획자가 처음에 파국이라는 키워드를 던졌을 때, 개인적으로 생각을 많이 했어요. 다들 아시겠지만 4월 이후에 벌어진 사건들, 그리고 5월, 6월을 지나오면서 이 파국이란 무엇일까 라는 생각을 많이 했습니다. 근데 다들 머릿속에서 파국 이라는 단어를 생각하실 때는 어떤 생각을 하실지 모르겠지만, 부정적인 생각을 많이 하시더라고요. 저 또한 부정적인 생각을 했었고. 그게 4월 이후의 사건들로 인해 그런 생각들을 한 것 같은데 개인적으로는 조금 다른 시각에서 이야기를 하고 싶었어요. 안 좋은 상황에서 안 좋은 이야기들, 안 좋은 이미지들을 보여주면서 우리가 무엇을 얻고, 무엇을 생각할 수 있을까를 고민하게 되더라고요. 그러면서 다시 리턴해서 자신으로 돌아와서 나 스스로 예술가로 생각을 하고 있지만 어떻게 표현을 해야 하는가 하는 고민에 빠졌었고 한참 생각을 했어요. 파국이라는 텍스트를 여러 가지로 연구하다 보니까 이런 의미가 있더라고요. 어른들이 그런 말씀하잖아요. 밑바닥을 탁 치고 나면 올라갈 일만 남았다. 그런 이야기처럼 파국이라는 단어가 주는 다른 의미는 새로운 시작, 새로운 희망적인 이야기에서 착안해서 작업을 하기 시작했어요.


이번 6월 4일에 있었던 지방 선거에 출마한 이들을 토대로 작업을 했거든요. 133명의 인물들의 얼굴을 뭉개고 그 위에 리터치를 하고 소용돌이 문양을 넣었습니다. 소용돌이 문양을 넣은 이유는 선거하면 우리나라 사람들이 관심이 많다고들 하지만 사실 그렇게 많지 않은 것 같아요. 막상 선거 때가 되면 누구를 찍어야 하고, 출마한 사람들에 대해 자세히 아는 사람들이 많지 않은 것 같더라고요. 언론에서 나오는 잘 알려진 얼굴들 위주로 찍거나 지지하는 정당, 아는 인맥 이런 식으로 찍는데, 솔직히 그런건 아니라고 생각하거든요. 사상, 정치 등을 더 알아야 하는데 사람들은 이 순간을 빨리 모면해야 한다는 식으로 투표를 한다는 인상을 많이 받았어요. 4월 이후로 현 정권에 대해서 논란도 굉장히 많고, 그런 것들이 총체적으로 어우러져서 6·4 지방선거 때 도대체 누구를 찍어야 하나 하는 질문들을 많이 쏟아내더라고요. 저 또한 많은 질문들을 했었고, 내가 이 사람에 대해 얼마나 알고 있으며 어떻게 선택을 해야 할까. 굉장히 중요한 선택인데 나는 누구를 뽑아야 할 것인가. 그때의 혼란스러움을 이런 소용돌이의 형태로 표현을 했습니다. 근데 단순하게 선택으로 끝나는 것이 아니라 우리는 선택을 하고 계속 그것들이 이어지면서 그 선택을 끝까지, 그들이 잘 하는지 지켜봐야 한다는 점까지도 생각을 하고 싶었어요. 그래서 그 133명의 얼굴들을 지켜보면서 그것을 혼돈으로만 끝내는게 목표가 아니라 그 선택이 하나의 긍정적인 시너지를 주어 더 좋은 세상으로 발전하지 않겠느냐 하는 생각에서 제가 원하는 색감을 넣었습니다. 주황색으로 했는데, 그 의미는 해가 지고 해가 뜰 때의 색감을 통해 PICK이라는, 선택이라는 단어를 가시화 하면서 우리가 어떻게 선택을 하느냐에 따라서 세상이 좋게 혹은 나쁘게 변할 수도 있다는 뜻, 우리는 좋은 선택을 해야 한다는 의미를 담아서 PICK을 넣었고요. <?> 이라는 작업은 6·4 지방선거를 보면서 여러 가지 정보들을 알게 되었는데, 너무 재밌더라고요. <?>에 들어가는 인물들의 전과 기록이 굉장히 다양해요. 전과 3개 이상의 인물들을 모아둔 것입니다. 근데 어떻게 보면 국회의원이고, 우리를 대표하는 인물들인데 기초 질서 하나도 못 지키는 사람들이 어떻게 후보로 나올 수 있었을까, 우리는 왜 그걸 허용하고 용납하고


있을까 라는 의문과 이 사람들을 보는 당신들은 과연 알고 있으며 선택을 할 것인가 물음을 담아서 ?을 넣었어요. 저도 그렇고 관심이 없었지만 인물들을 찾고 정보를 알게 되면서 우리가 조금의 관심만 가지면 그걸 알 수 있다는 것도 알게 되면서 그렇다면 우리가 선거를 할 때, 인물의 얼굴을 보고 선택을 하는 것이 아니라 다양한 정보들을 수집하고 선택을 할 수 있다는 것도 알게 되었고요. <당신이 희망을 포기하지 않는 한 절대 끝이 아니다> 라는 작품은 133명 중 도지사 후보, 시장 후보, 교육감 후보 들로만 추렸어요. 다 합하면 6천명이 넘는데, 물론 다 하고 싶은 마음이 있었지만 공간이나 여러 제약들 때문에 그 세 후보들로만 해서 다 겹쳤습니다. 그 겹친 인물은 내가 될 수도 있고, 당신이 될 수도 있고, 누군가도 될 수 있을 뿐더러 우리를 대표하는 사람이 될 수도 있다는 것이죠. 그걸 어떻게 우리가 나서서 하든가, 나선 사람들을 어떻게 선택하느냐에 따라서 좋은 선택이 될 수도 있고 나쁜 선택이 될 수도

< 카타스트로피 : 파국선언 > 아티스트 토크

있지만 우리가 그것을 포기하지 않는 한 끝은 아니다 라는 의미를 넣어서 작품들을 만들었습니다.

졔졔 (작가)

저는 졔졔 라고 하고요, 움직이는 설치 작업을 한 작가입니다. 저는 두 달 정도 준비 기간을 가졌는데, 처음 주제나 전시기획을 들었을 때는 사실 제가 너무 세월호에 대해 몰입을 하고 있던 때였어요. 페이스북을 통해서 몰입하고, 엉엉 울고, 분노하고. 글들을 막 퍼 나르면서 친구도 끊기고 했거든요. 그렇게 오열을 하고, 엄마한테도 TV 정규방송만 보면 바보라고 막 그러면서 분노를 하고 화를 내고 했었는데. 제가 어느 순간... 제가 하루는 석수시장에 가서 고기를 구워먹었어요. 저 말고 누가 버너를 키는데, 불이 안 나오는 거예요. 가스는 켜져 있는데. 저는 그 순간이 더 무서운 거예요. 제가 조절할 수 없고 그냥 지켜보고 있는 그 상황에서 저는 더 큰 공포를 느꼈어요. 그래서 생각했죠, 제가 현실에서 느끼는 파국적인 것. 그리고 제가 실제로 방지하지 못할 정치적인 것과 수백 명이 죽는 아픔이 있다고 할 때, 제가 페이스북이나 미디어에서 접할 때만 잠깐 그럴뿐 실제로는 내 눈 앞에 있는 것들에 대한 불안감이 더 크다고 생각을 했어요. 그래서 아, 내가 생각하는, 내가 닿는 곳에서만 파국을 느끼는구나. 세상의 실질적인 파국과 같이 가는 것은 아니구나. 이런 생각이 들었어요. 그래서 저나 다른 사람들도 어느 정도 그런게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에서 그런 관점에서 작업을 했고, 그래서 나온 오브제들입니다. 버너에 모터를 이용해서 자동으로 키고 켜고 하는 움직이는 장치가 있고요, 내가 컨트롤할 수 없다는 입장을 저는 미디어를 통해서 항상 느끼기 때문에, 또 제가 적극적으로 행동하는 타입도 아니기 때문에 그럴 수도 있겠지만 어쨌든 제가 컨트롤하지


않는 그 상황을 연출해 보고 싶었어요. 작업을 통해서. 가스 버너의 껴고 끄고, 불안과 안정을 동시에 느끼면서 내가 컨트롤 할 수 없는 그 지점을 표현한 작업입니다. 그리고 나머지 작품들도 비슷한데, 동어 반복이 있는 그런 장치들이예요. 비슷한 맥락에서 쥐덫을 이용한 장치물에 대한 이야기를 좀 드리자면, 개인적인 이야기에서 시작되었습니다. 어렸을 때 할아버지 집에 갔는데, 시골이고 쥐가 많아서 쥐덫을 놓아두었는데 쥐가 잡혔어요. 제가 그 광경을 보고 할아버지한테 말씀을 드렸더니 할아버지께서 그 쥐를 처리하기 위해 양동이에 물을 가득 담고 거기에 쥐덫을 넣어두신 거예요. 저는 어린 나이에 동물도 너무 좋아하고, 겁도 많기도 하고, 그 쥐가 숨을 못 쉬고 있는 광경을 보면서 죽을까봐 너무 두려운 거예요. 그래서 그 쥐를 숨을 쉬라고 뺐죠. 근데 제가 그 당시에 사고까지 했는지는 모르겠지만 저는 그때 이 쥐를 놔줄 수 있다 라는 그런 생각까지는 도달하지 못했던 것 같아요. 이건 왠지 내가 관여할 바가 아니고, 할아버지가 하는 거니까 이런 생각까지는 했던 것 같아요. 그 고민 속에서 쥐를 뺐다가 넣다가 반복을 몇 번을 했는지 모르겠어요. 그래서 파국 이야기가 나왔을 때 그 생각이 났었거든요. 아, 파국이 따로 있는 것이 아니라 무언가 내가 움직여서 될 일이 아니다 라는 이 느낌, 이런 감정이 바로 파국의 씨앗이 아닐까. 이런 생각이 들어서 한 거예요. 위험해 보이는, 불안해 보이는 장치들이 있는 문을 두었을 때 과연 사람들이 열었다 닫았다 할까 그런 생각에서 한 것이고요, 조명도 불편하게 만들고 싶었어요. 깜빡깜빡하게 해서 참 간단한 장치인데 사람을 불편하게 하고 눈도 아프고 어지럽게 만들잖아요. 그런 장치들이 어느 장소에 있을 때, 과연 어떤 반응을 보일까. 저는 사실 회피형 인간이거든요. 그냥 비키고 말지 굳이 가서 바로 만들어 두거나 움직임을 하는 타입이 아니어서 거기에 포인트를 두고 싶었어요. 제 작업들은 뭔가 제 안에 있는, 제가 있는 파국의 씨앗들을 발견해서 내 눈 앞에 보이는 오브제들을 이용해서 만든 설치 작업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작품비평 강인혁 / 송지은 이미경 (비평가)

네. 제가 진행을 좀 하겠습니다, 작품 제작과 비평은 조금 다른 지점인 것 같아요. 비평적으로 봤을 때 4명의 작가들이 각자 다르게 파국이 무엇인지 던져준 것들이 있었습니다. 먼저 강인혁 작가에게 묻고 싶은 것은 ‘분노의 오브제’의 상품성 같은 것들 이었어요. ‘분노가 있다’라고 이야기를 하지만 사실 작품에서는 그런 것이 전혀 느껴지지 않아요. 사실 ‘분노’라는, 누구나 아는 단어의 상징성을


그대로 가져 옴으로써 이게 너무나 쉽게 노출된다는 겁니다. 사실 작품 자체 이야기보다는 예술가가 가져야 하는 비판 의식에서 봤을 때, 예술가는 대체 사회를 어떻게 바라보아야 할 것인가. 파국적인 상황이니까 분노를 해야 해, 그래서 분노를 표현하는 것이 과연 예술일까 하는 지점들에 대해서 한번 묻고 싶었어요. 예술가의 비판 의식에 대해서 어떻게 생각을 하고 있는지요.

강인혁 (비평가)

사람들이 비판을 가지기도 하고, 긍정을 가지기도 하잖아요. 근데 저는 앞서 말했던 것처럼 굉장히 이중적인 사람이어서 비판적이라고 생각을 했지만 제가 할 수 있는 것이 별로 없는 거예요.

< 카타스트로피 : 파국선언 > 아티스트 토크

이미경 (비평가)

강인혁 (작가)

사고를 할 수 없다는 것인지, 행위를 할 수 없다는 것인지요?

행위적인 것에서 보면, 제가 들고 일어나 쿠데타라도 할 수도 없고, 큰 소리를 낼 수도 없고. 그래서 저는 이 작업을 할 때 작게나마 소리를 내 보는 것이 중요하다 라고 생각했어요. 작게나마. 물론 ‘분노의 오브제’라는 표현을 썼을 때 분노가 느껴지지 않는다? 라는 이상한 점도 있겠지만 사실 분노라는 것이 엎어버리고 공격적으로 덮쳐야만 표현된다고 생각은 안했어요. 그것을 인지하고 조금이라도 목소리를 내려고 하는 것이 오히려 분노에 가깝다고 생각을 하거든요. 행위적인 것은 1차원적이고 공격적인 상황을 일으킨다고 생각을 했어요. 그리고 그런 말이 있잖아요. 이런 상태를 물신적 분열이라고 이야기 하더라고요. 지젝의 책에서. 내가 문제를 인지하고 있지만 내가 그걸 어떻게 할 수 없어. 어떻게 해야 하지? 환경이 파괴되어 있는데, 더 파괴될텐데, 사실 내가 할 수 있는 것은 극히 드물다. 비슷한 것 같아요. 제 상태와.

현소영 (our MONSTER 디렉터)

관객의 입장에서 바라보는 작가의 작품 자체는 사실 일반적인 사람들이 가지고 있는 생각이거든요. 느껴지지 않는 분노가 제목에서 ‘분노의 오브제’라는 단어가 붙여지면서 과연 우리가 느끼는 분노가 진짜 분노이냐에 대한 의문은 되었다고 저는 생각을 합니다. 예를 들어, 세월호 참사가 있어요. 지금 우리가 세월호 참사에 대해 별로 이야기하지 않죠. 그 당시에는 굉장한 분노와 굉장한 무언가가 있었고, 6·4 지방 선거 이후에 모두가 엄청난 이야기들을 쏟아냈지만, 또 그것이 지나고 나서 우리가 실제로 느끼는 분노와 절망이 과연 무엇이냐에 대한 나름의 질문이 된다고 전 생각했습니다. 오브제 자체가 절망을 보여주는 작품은 아닌데, 그 태도를 갖고 있는 것이 일반적인 사람들이 던질 수 있는


물음이 될 수 있는 것 같아요. 그래서 제목과 오브제 자체를 두고 어떤 연결 고리가 있느냐는 아니었던 것 같아요.

이미경 (비평가)

아, 그런 지점은 아니었고요. 다만 작품에 있어 저의 비평 포인트는 바로 그겁니다. 작품 제작 과정에서 상품처럼 도색 과정도 맡겨버리고, 아이디어도 그렇고 그 과정들이 제게는 굉장히 흥미로웠던 부분이었어요. 우리가 작품을 제작할 때 손으로 만들고 하면서 드러나는 그 느낌과 아예 누군가에게 맡겨 상품화되는 과정, 그래서 분노조차도 상품화가 되어버리는 거죠. 이벤트화 되는거고. 제가 비평에서 그런 지점들을 이야기했었는데, 사실 계속 물음표가 쳐지는 지점은 작가 노트를 봤을 때 어떤 분노에 대한 당위성이나 정당성에 대해 주장하는 것들이 계속 들어 맞지 않는 느낌들이 있었어요. 작품 자체는 굉장히 역설적인 느낌으로 와서 오히려 재밌었는데, 그 부분에 대해서 계속 이야기를 하니까 살짝 이건 뭘까, 작가가 어떤 의도인걸까 다시 한번 확인하고 싶던 지점이 있었습니다. 그 다음 송지은 작가의 경우에는 작품을 보면서 팝아트적인 느낌들을 굉장히 많이 받았어요. ‘팝아트적이다’ 라고 비평에서 표현을 했었는데, 앞으로 껌 작업을 보면 저는 송지은 작가의 작업이 많이 생각날 것 같아요. 그만큼 껌이 주는 시각적인 이미지가 강했는데, 이를 선택하게 된 의미들이 있는지요.

송지은 (작가)

사실 무엇보다도 껌이 가진 일회성. 껌은 씹고 버리잖아요. 그리고 그 기능 자체가 재빨리 쓸모없음으로 변해버리고. 저는 그것이 현대사회와 굉장히 닮아있다는 생각이 들어요. 무언가 감추기 위해 스티커를 쓸 수도 있었는데 왜 껌이라는 것을 썼냐라고 물었을 때, 사실 그걸 분석하고 싶은 생각은 없어요. 왜냐하면 작업이라는건 바라보는 관객과 내가 경험하는 사회에서 가져오는 바가 다른 의미로 가져갈 수 있다고 생각을 하거든요. 굳이 제가 껌을 쓴 이유를 대자면, 그 일회성과 껌이라는 사물이 가진 기능. 껌은 씹고 나면 버리잖아요. 저는 그게 현대와 닮은 모습 같아요. 붙이는 행위 자체가 군더더기가 붙는 것. 껍데기. 무언가 붙여서 가려지는 본질적인 것에 대해 고민을 많이 하다 보니까 그것을 가리는 소재에 관심이 많아지게 되더라고요. 그래서 껌이 제일 잘 맞지 않나 라는 생각을 했습니다.

이미경 (비평가)

저는 껌 색깔이 앤디 워홀의 마를린 먼로 실크 스크린 색깔 같은 느낌이 와서 그래서 그 자본주의 주체성의 상실의 지점을 보여주는 팝아트적인 느낌과


비슷한 것 같아요. 쉽게 쉽게 생산해 낼 수 있는. 맥(MAC) 프로그램 가지고 작업을 한 것도 그런 지점에서 볼 수 있는 것 같아요.

송지은 (작가)

제가 사실 팝아트를 염두에 두고 작업을 한 건 아니고요. 인간이 내가 사는 시대 안에서 내가 경험한 것들, 내가 교육된 것들, 이런 것들이 작업 자체에 들어가게 되잖아요. 어떻게 보면 작업 자체가 제가 있는 현대 사회 안에서의 모습들이 많이 보여질 것이라는 생각이 들거든요. MAC이란 것은 사실 애플, 우리 아이폰도 많이 사용하잖아요. 이제는 사람들이 애플도 예술로 생각을 해요. 그러면서 결국에는 하나의 표식이 되고. 하지만 기호적인 것에 빠져서 결국 본질을 못 보게 되는 것들에 대해 고민하다 보니... 제가 사는 사회 자체가 그런 것 같다고 생각해요.

< 카타스트로피 : 파국선언 > 아티스트 토크

작품비평 김민기 / 졔졔 이미경 (비평가)

김민기 작가의 경우에는 희망의 절대성이나 긍정성에 대해 계속 이야기를 해요. 사실 이 부분은 강인혁 작가와 김민기 작가의 비평과 작품 의도에 대해서도 굉장히 부딪히는 지점인 것 같아요. 근데 이것을 해석의 차이로 읽을 수 있을까, 제 개인적으로 예술에 대해서 고민을 굉장히 많이 했어요. 과연 예술이 뭘까에 대해서. 이런 해석을 던져 주기 때문에 내가 이것을 예술로 받아들여야 할까. 아니면 희망에 대해서 긍정적으로 이야기하기 때문에 이것을 좋은 예술로 받아들여야 할까. 제 개인적으로는 그런 질문들을 가장 많이 던져준 것 같아요. 비평을 하는 입장에서 저는 사실 초등학교 4학년 윤리 선생님 이야기를 듣는 느낌을 많이 받았어요. 그래서 이렇게 상식의 지점을 이야기 하면서 계속 강요하는 것을 예술적인 지점으로 보고 제가 과연 비평을 해야 하는가 하는 의문까지 가더라고요. 사실 제가 생각하는 예술은 어쨌든 사회에 대해서 조금 삐뚤게 보든, 상식을 벗어났든, 아니면 낯설게 보든, 그런 것을 통해서 이게 뭘까 의문이 들면서 낯설어 지거나, 감동을 받거나, 그것을 자기 삶으로 스스로 가져가는 그런 것들이었는데. 너무나 당연한 이야기를 계속 작품을 통해서 이야기하니까 느껴지는 당혹스러움이 있었던 것 같아요. 김민기 작가는 어떻게 생각하시나요?

김민기 (비평가)

저도 맨 처음 그 질문을 받았을 때 내가 정말 무엇을 표현하고 싶었던가에 대해서 스스로 자문을 하고, 생각을 했어요. 근데 너무 당연한 것을 우리는 당연시 안하고 있다는 생각을 해보셨으면 좋겠어요. 예를 들어 예전에는 선생님


그림자도 밟지 않는다는 그런 시대가 있었죠. 근데 지금은 많이 달라졌거든요. 그런 것만 봐도 우리가 정말 당연하게 생각해 온 것을 지금의 아이들과 지금의 사람들은 당연하다고 생각을 할까 그런 의문이 들어요. 지금 오히려 당연치 않은 것들, 사람들에게 불쾌감을 줄 수도 있는 안 좋은 행위들을 더 자주 접하게 되거든요. 버스만 타도 요즘 학생들의 용어들을 들어보셨을 거예요. 저희도 경험 했었고. 그게 점점 심해지지 덜해지지는 않아요. 오히려 옛날에는 TV에서 아이를 하나만 낳고 잘 살자 그런 캠페인이 있었는데 요즘은 아이들에게 욕하지 말자 라는 캠페인이 생겨요. 그렇게 당연치 않은 것들이 당연시 되고 있거든요. 송지은 (비평가)

제가 질문 하나 할게요. 저는 사실 우리 삶 안에서의 정직성과 예술 안에서의 정직성은 다르다고 생각을 하거든요. 근데 김민기 작가님이 하시는 말씀을 들으면, 다 옳아요. 우리가 교육받은, 옳다의 기준이 맞거든요. 근데 생각 해보면, 예전에 그림자 밟지 말랬지만 지금은 밟을 수 있죠. 왜? 지금은 그때가 아니니깐. 그때였으면 하지 말라는 것이 있지만 지금 말하는 윤리의식이나 비판의식이 계속 변한단 말예요? 시간이 흐르면서 그 역사 안에서 같이 흘러가고 변해 가는데. 그 절대적 가치라고 했던 것을 지금에 와서 이건 잘못 되었어 라고 말하는 것이... 맞나요?

김민기 (비평가)

그것의 맞고 틀리고를 떠나서 제가 말하는 것은 그림자로만 통용되는 것 이 아니에요. 사람들을 대할 때 내 행동들, 서로간의 이야기를 할 때 쓰는 단어들, 그런 것들이 우리한테 미치는 영향이라는 것을 이야기 하는 거죠. 그냥 반발할 것 인가. 흘러가는 대로 언젠가는 좋아지겠지. 하지만 저는 그것을 지금 이야기를 하 고 싶은 거예요. 그것에 대해서 한번 더 이야기를 해줘서 이게 어떻게 파급이 되 는지, 저는 그것들을 더 긍정적으로 바라보고 싶은 거죠.

현소영 (our MONSTER 디렉터)

김민기 작가님이 하신 이야기 자체가 저희가 전혀 알아듣지 못하는 건 아니거든요. 제가 생각했을 때 예술가로서 예술의 기법적인 부분, 사람들이 작품을 대했을 때 틀이 어느 정도 갖춰져 있느냐 갖춰져 있지 않느냐, 레이어가 얼마나 쌓여서 그걸 보여주느냐 안보여주냐 그 차이인 것 같아요. 작가님 말씀하시는 바가 여기 관객들이 전혀 모르는 바를 이야기하는 것은 아니거든요. 그 이야기를 다 아는데. 예를 들어 김민기 작가님이나 강인혁 작가님의 작품들은 우리가 봤을 때, 조금 더 쉽게 이해가 되는 것이고. 제가 봤을 때는 그 질문이 더 중요한 것 같아요. 작가로서의 태도가 꼭 현대 미술적인 기법을 써야 하는냐? 저는 무조건 그래야한다 라고 생각 안하는 사람이거든요. 그거에 대한 대답을 하시면 되는 것 같아요. 그 질문이 핵심인 것 같아요. 생각을 하느냐 안하느냐의


그 문제가 아니라 다들 하는 생각과 시발점은 조금씩 다르지만 작가 작품이 밖으로 표출되었을 때, 갤러리 공간 안으로 들어왔을 때, 그 방식을 선택하는 것에 대한 작가의 태도인거죠.

이미경 (비평가)

작가의 태도도 있고, 거기서 감상자의 태도도 나오는 것 같아요. 사실은 예술이라는 글자를 보면 거기에는 ‘기예’가 있어요. 잘 만들고, 예쁘게 만드는 것이 예술이라는 의미가 단어에 들어있고, 또 한편 ‘궁극’이라는 것이 있어요. 본질. 본질을 꾀하는 것도 예술이 될 수 있는거죠. 사실 거기에서 지금 헷갈리는 지점이 있거든요. 나는 기예를 꾀하는 사람으로서 예술을 한다 또는 나는 궁극을 꾀하는 수단으로서 예술을 한다 거기에서 우리가 과연 선악을 기준으로 예술을 그어야 하는건지. 그 부분에서 굉장히 미묘한 것 같지만 헷갈리는 지점들이라 긍정을 이야기하는 예술은 틀린 것 같다 라는 이야기들로 혼재되어지는 것 같아요.

< 카타스트로피 : 파국선언 > 아티스트 토크

이 부분들에 대해 본인들이 작가로서, 예술가로서 어떤 고민을 통해서 직접 선택을 해야 하는 것 같아요. 사실 그냥 기예로서, 기법적으로 하는 것은 제게 예술은 아니에요. 저는 예술 행위로서의 그것은 인정할 수 있지만 비평가의 입장에서는 별로 비평할 것이 없어요. 그냥 보여주는 대로 느껴버리면 되는 거니까. 그런 지점에서 제가 보는 관점이 있다는 것이죠. 제가 생각하는 예술은 궁극을 꾀하든, 본질을 꾀하든 그게 어떤 감상자에게 갔을 때 어떤 변화를 꾀할 수 있는 것이 있을 때 제가 생각하는 예술의 기준들이 있는 것이죠.

현소영

강인혁 작가님의 고개 끄덕임은 긍정의 표현인가요?

(our MONSTER 디렉터)

강인혁 (작가)

어떤 의미의 긍정이냐면, 제가 작업을 했을 때 모두를 만족시킬 수 없다 것에 대한 긍정이거든요. 어떤 사람은 제 작품을 봤을 때 흥미롭게 볼 수도 있고, 어떤 사람은 이건 뭐야 그럴 수도 있는 것이고. 그것을 막 부정할 필요는 없다고 생각해요. 제 작품에 대해서 비판을 하거나 혼낼 필요는 없잖아요. 제 생각을 표현하려고 만든 것이고, 제 의견을 조금이라도 보여주기 위해 만든 것이고. 제 작품을 소수라도 좋아하면 그걸로 저는 만족하는 스타일이거든요. 그리고 사실 제가 지향하는 부분이 이미경 선생님께서 말씀하셨던 일종의 장인정신이 빠진 작품일 수도 있어요. 저는 작업을 할 때 손재주라든가 기술적인 테크닉을 요하는 것 보다 프로세스적인 것을 더 중요시해요. 그렇기 때문에 작업을 보고 좋아해주는 사람이 있으면 물론 좋고, 비판하는 사람이 있어도 저는 괜찮아요.


이미경 (비평가)

그 지점에서 아쉬운 점은, 이번 기획 자체가 조금 더 사회적인 주제를 가지고 들어왔기 때문에 그래요. 강인혁 작가가 그런 작업을 하고 활동을 한다고 했을 때, 그냥 친분을 가지고 갤러리에 전시를 보러 갔다면 저는 그냥 수용했을 것 같아요. 근데 우리가 이렇게 ‘카타스트로피’ 라고 하는 주제로 만났고, 조금 더 사회적인 문제로 만났을 때, 특히 본인의 자발성까지 드러내면서 참여를 했을 때는 보다 진지한 모습을 보였으면 했던 거죠.

관람객 A

비평가 선생님께서 너무 자기 생각을 가지고 작품을 보셨던 것이 아닐까요. 예술에 대한 굉장히 뚜렷한 생각이 있으신 것 같은데, 작가들이 꼭 그럴 필요는 없잖아요.

현소영 (our MONSTER 디렉터)

작가들이 꼭 그럴 필요는 없다기보다는, 내가 생각하는 예술이 아닌 것 같은데 하면서 예술의 정의에 대해서 물으셨잖아요. 작가는 100% 예술이 무엇인지에 대답하기 굉장히 어려울 겁니다. 그것은 앞으로도 작가 생활하면서 평생 가져가야 하는 질문인 것 같아요. 확신이 있는 작가가 없을 수 밖에 없어요. 그것에 대해서 고민하면 고민할수록 예술이라는 것이 과연 무엇이냐 하는 질문에는 답이 업죠. 그래서 작가 입장에서 대답하기 쉽지 않아요. 이미경 선생님이 말씀하신 예술도 있지만, 제가 본 예술의 사전적 정의는. 음. 저는 예술의 사전적 정의가 바뀌어야 한다고 생각해요. 현대에 서의 예술의 정의는 그 사전적 정의만으로는 충분하지가 않아요. 근데 누구도 쉽게 이야기할 수 없어요. 이야기는 계속 오고가고 있지만 대답하기 어려운 것이거든요.

관람객 A

제가 생각했던 것을 말씀드리면, 모든 사람이 느끼는 바람이 어디서 불어 오는지를 보여주는 것도 예술이거든요. 그러니까 이미경 선생님이 말씀하시는 예술의 정의는 제가 느끼기에 어떤 새로운 비평적인 시각이나 관점 이런 것들에 무게를 많이 두시는 것 같아요. 김민기 작가님 작품의 경우 누구나 다 느끼고 있어도 ‘여기야 여기’ 라고 보여주는 것이 얼마나 또 필요한 것인지는 우리가 다 공감을 하잖아요. 그것도 예술의 굉장히 큰 부분인데, 그것을 외면한다는 느낌이 좀 강한 것 같아요.

이미경 (비평가)

비평은 그런 것 같아요. 감상을 할 때는 이래도 흥, 저래도 흥이 되었던 것 같아요. 그래 이것도 예술이고, 저것도 예술이지. 그런데 비평가의 입장으로 들어가면 그렇게 하면 사실 주례 비평밖에 안 나와요. 왜냐면 김민기 작가가 하는


것도, 그래 예술이야 얼마나 힘들겠어 그러니까 한다고 그렇게 해버리면 예술이예요. 하지만 비평가로서 이 파국이라는 주제를 가지고 작품에 대해 비평을 할 때는 제 기준을 다시 세워야 하는 것이죠. 김민기 작가의 작품을 볼 때, 제가 과연 이것을 예술로서 이야기를 해야 하는 것인지. 이런 사회적인 지점에서 자꾸 긍정적인, 희망적인 이야기를 하는 것이 저는 듣기가 불편해요. 과연 희망이 없어서 우리 사회가 이렇게 되었을까. 그런 지점에서 계속 비평적으로 바라보고 있는 거예요. 아마 저는 작가하고 만날 때마다 그 고민을 계속할 것 같아요. 이게 예술일까.

김민기 (작가)

저도 일단은 제 작품에 대해서 한 말씀을 드리자면, 저는 비평가에게 보이려고 작품을 만든 것이 아니고 저는 관객이랑 소통을 하고 싶고 어떻게 하면 소통을 할 수 있을까를 더 고민하고 있는 편이예요. 비평가의 이야기를 듣는 것은

< 카타스트로피 : 파국선언 > 아티스트 토크

너무 좋아요. 어떤 이야기를 해 주던 그건 비평가의 소임이니까. 제가 선택할 것은 그 비평을 듣고 그 다음 작업에 있어서 더 좋은 작업, 더 좋은 소통의 방법이 무엇일지를 고민할 뿐이거든요. 한마디로 비평가께서 어떤 말씀을 하시던 간에 제가 포커스를 맞추고 있는 것은 비평가 혹은 컬렉터가 아닌, 나를 좋아해주는, 나와 소통이 더 가능한 관객이지 어떤 누군가에게 특정하게 보여주려는 것은 아니라는 것이죠.

이미경 (비평가)

그런 지점이기 때문에 기다 아니다 제가 이야기를 하는 것에 비평가의 책임이 있는 것 같아요. 이걸 단순히 이렇게 해도 난 관객과 소통하겠다 하면 그럼 제가 어떻게 해요? 제 입장에서 이 전시에 비평가로서 결합을 하면서 어떤 식으로 비판 의식을 가지고 이야기를 하지 않아버리면 우리가 왜 이렇게 시간 들여가면서 자발적으로 만났으며 그냥 어디 가서나 할 수 있는 작업들을 왜 하고 있는 거죠? 그 사실에 대해서 저 스스로 묻는 거예요. 자발적으로 만났기 때문에. 바로 그 부분들에 대해서 이야기를 하는 겁니다. 이제 졔졔 작가로 넘어 가겠습니다.

졔졔 (작가)

저는 학교를 졸업하고 작가를 해야겠다는 생각에 작업실을 처음 얻었어요. 근데 너무 막연했었어요. 주변에 사람들을 보면서 저는 1년 동안 거의 멘붕 이었어요. 저는 사실 디테일은 좀 떨어지는 사람이지만, 뒤로 보는 능력은 좀 있다고 생각하는 편이거든요. 그래서 제가 봤을 때 그때 길이 다 보였어요. 어떤 분들은 사회 운동에 힘을 실어야 한다고 예술을 하는 분들도 있었고, 어떤 분들은 정말 자기 치유를 위해서 그리고 남들이 그걸 인정해 줬을 때 또


예술로 발전을 하는 그런 경우도 있었고. 어떤 분들은 그야말로 논리적인, 언어적인 것을 토대로 하시는 분들도 있었고 혹은 전통적인 것이 절대적인 것이야 하시는 분들도 있었고. 그런 것들이 제게는 다 보였어요. 저 같은 경우에는 잘 휘둘리기도 하고 고집도 세기도 하지만 그것이 같이 움직이는 사람 중 하나거든요. 그래서 늘 정신없고 현실적인 것에서의 감은 좀 떨어지는 사람인데. 당시 저는 제가 하고 있는 것들에 집중을 못했고. 아 내가 잘못하다가는 정말 원하지 않는 쪽으로 흘러 가겠구나 주변의 영향을 받는 것들을 많이 느꼈거든요. 저는 여기에서 강인혁 작가님, 송지은 작가님, 김민기 작가님, 저도 그렇고 우리가 큰 틀이 다른건 아닌데 뭔가 미묘하게 다른 방향으로 예술을 하고 있다는 것을 확실히 느꼈어요. 저랑 김민기 작가님도 엄청 싸워요. 생각하는 길이 다르기 때문에 계속 싸우지만. 저도 이분 사실 되게 불편하거든요. 근데 그건 내가 이야기하고 싶은 것에 대해서 다른 이야기를 하고 있기 때문에 자꾸 충돌이 되고 하니까 그게 듣기가 싫은 거예요. 그래도 자기가 하고자 하는 것에 굉장히 충실하게 다가가고 있다고 생각은 해요. 제가 봤을 때, 비평이라는 지점도 작가랑 비슷하다고 생각하고요. 우리가 절대적으로 예술은 이거다 라고 이야기할 수 있는 지점이 없는 것처럼, 작가적인 성향처럼 비평의 색도 어느 정도 기준이 있어야 윤리를 따지고, 현대미술에서 그런 것들을 따지고 가는 것이죠. 그렇기기 때문에 비평을 하는데 왜 어떤 기준을 가지고 이야기 하느냐 하는 것은 조금... 어려운 이야기가 아닐까 합니다.

현소영 (our MONSTER 디렉터)

그건 이 전시가 가진 특별함에 있어요. 처음부터 전시가 기획될 때, 기획자와 작가와 비평가 분들이 다 같이 모여서 전시를 진행한 것이고. 어느 아티스트 토크를 가도 비평가가 하는 이야기에 토를 달고 질문을 하는 사람들이 없어요. 솔직히. 근데 비평가 선생님이 작가들의 태도에 대해서 강하게 물어보실 수 있는 건 이 전시는 묘하게 세 부분이 어떻게 보면 평등하게 같이 가고 있는데, 작가들이 전면에 내세워지는 부분이 다른 전시에 비해서 더 많아서 인 것 같아요. 제가 생각했을 때 작가들이 할 수 있는 영역이 굉장히 큰 것 같아요. 다른 전시의 경우 작가들이 전면에 내세워 지고 다른 사람들은 숨어져 있는 것 같지만 사실은 작가가 할 수 있는 영역이 지금 전시보다는 적다고


생각해요. 그래서 이미경 선생님한테 이런 질문이 오고갈 수 있는 것도 이 자리의 특수성 때문이라고 생각을 해요. 사실은 이 전시가 파국선언이라는 것으로 시작이 되었잖아요. 시국선언이 있었던 이후에 생긴 건데. 저는 기획자 분에게도 질문을 하고 싶어요. 카타스트로피, 파국선언이라는 전시명이 더 이상 뭐가 없는 것 같은 느낌이 있었거든요. 전시를 보면서 더 느껴졌던 것은 전시 안에 있는 절망이. 사실 김민기 작가님은 작품에서 희망을 이야기 하고자 했지만 저희들은 절망을 그대로 보고, 내가 알고 있는 절망에 대해서 회귀, 다시 생각해 보는 상황이 되었고, 벗어날 수 없는 그 묘한 지점들을 많이 느꼈어요. 우리가 지금 이 시국에 전시공간에 여러 아티스트들이 모여 정치적인 이야기를 할 수 있는 것이 많아져 반가움과 동시에 드는 질문은 과연 우리가 무엇을 할 수 있는가.

< 카타스트로피 : 파국선언 > 아티스트 토크

이 시점에서 저는 두 가지로 질문을 하고 싶어요. 작가 분들은 이 전시를 참여하면서 사실 사회적인 발언을 한 것이거든요. 어떤 태도이든지 상관없이 발언을 한 건데, 예술이 사회에 할 수 있는 것이 무엇인가가 궁금하고, 기획자 분에게는 기획의도, 파국선언 이라고 하는 단어를 선택하면서 이 전시를 끌고 왔을 때 과연 이 전시가 사람들에게 어떤 물음을 던졌으면 좋겠다고 생각한지 그것이 궁금합니다.

이미경 (비평가)

우선 졔졔 작가의 작품에 대해서 이야기를 하고 넘어갈께요. 제 비평에서도 언급했지만 몸이라는 것이 제게 영감을 많이 줬어요. 예술가의 몸이라는 것은 어떻게 보면 일반인들과 다르게 볼 수 있는 그런 몸인 것 같아요. 자신이 휩쓸릴 것 같아서 보호하려고 하는 그것들을 보면서 저는 굉장히 좋았거든요. 보통은 시류에 편승하려고 하는 강한 의지들이 있는데 그런 부분에서의 간질간질함. 그리고 저는 ‘장치’라는 것이 제게 굉장히 강하게 왔어요. 작품이 단순하고 일상적인 오브제인데, 그 오브제가 불안의 요소, 그것이 미디어 처럼 계속 보여지는 장치거든요. 페이스북이든 언론 매체이든 보여주고 싶은 것을 계속 보내는 거죠. 그런 부분들에서 봤을 때, 장치를 보게 한다거나 그 장치를 우리가 어떻게 해야 하는지 던져주는 그 부분이 제게 비평의 포커스를 맞추게 하고 개념적이고 철학적인 영감을 주는 것 같다는 이야기를 하고 싶었어요.


강인혁 (작가)

저는 여담인데 졔졔 작가님 작품 때문에 정신병 걸릴 것 같았어요. (청중 웃음)

졔졔 (작가)

저도 여담인데 제가 전시 지킴이를 할 때는 제 작품의 장치를 꺼놨었어요. 누가 온다하면 달려가서 켜 놓고 했었습니다. (청중 웃음)

자육토론 및 질의응답 송지은 (작가)

제가 일단 이 전시를 하자고 작가 분들과 기획자, 비평가 분께 제안을 한 것은 전시라는 것을 할 때, 사실 작가만 있는 것은 아니거든요. 거기에는 코디네이터도, 큐레이터도, 비평가도 있을 수도, 또한 관객도 있어야 하거든요. 각 역할들이 있는데 사실 그런 것들이 굉장히 많이 배제되고, 작가주의적 태도 때문에 뭉개지는 경우도 많이 봤어요. 저도 작가지만은. 전시를 하나의 커뮤니티로 보거든요. 수술을 할 때도 의사 혼자 안 하잖아요. 간호사도 있어야 하고, 마취팀도 있어야 하고. 다양한 사람들이 만나 각자의 역할을 하면서 긴 호흡을 가지고 진행되는 일들인데 전시도 마찬가지로 그런 시스템이 아닌가 라는 생각을 했어요. 거기에서 새로운 가능성이라는 것을 한번 보고 싶었던 이유가 커요.

이미경 (비평가)

저도 처음부터 결합을 하면서 보니 작가가 전면에 드러나는 것이 맞는 것 같아요.

현소영 (our MONSTER 디렉터)

사실은 제가 그룹전을 하면서 이렇게 작가 분들이 전시 준비를 하면서 많이 만나는 경우를 거의 본 적이 없거든요. 굉장히 성실하게 고민하고 작업하는 과정들이 있었고,

이미경 (비평가)

저는 비평가로서 라기 보다는 예술을 좋아하고, 감상하고, 나름의 관계를 인생 안에서 만든 것들이 나름 있는데, 왜 비평을 하고 싶은가 물었을 때 아까 그 지점과 대립되는 것 같아요. 모든 것들을 수용해버리는 그런 상황들 있잖아요.


거기에서 오는 불편함이 있었어요. 그래서 사실 비평가로서 이걸 계속 깨는 거죠. ‘카타스트로피’라고 하는 주제 안에서의 예술은 이거였는데, 물론 다른 전시의 비평을 할 때는 어떤 예술을 깰지 모르겠어요. 요즘 비평이 이것도 저것도 다 예술이다 라고 하는 지점에서 제가 독불장군처럼 보일 수도 있고, 다른 것은 무시하는 처사이다 라고 할 수도 있지만 제 스스로가 생각하는 예술을 이야기하고 싶은, 이미경이라는 사람은 예술을 이렇게 생각해 혹은 그것을 표현을 했을 때 좋다 라고 말할 수 있어야 하지 않을까. 안 그러면 작가들도 같이 뭉개질 수 있거든요.

송지은 (작가)

어떻게 보면 예술가가 그게 굉장히 강한 것 같아요.

< 카타스트로피 : 파국선언 > 아티스트 토크

이건 예술이 아니야 하는 시각이. 작가 스스로의 시각이 더 강한 것이 있다고 봐요. 현소영 (our MONSTER 디렉터)

예술이냐 취향이냐 일까요. 저는 강인혁 작가님과 김민기 작가님의 작품을 이해하고, 왜 그렇게 하셨는지는 알겠지만, 솔직히 제 취향은 아니거든요. 취향이 아니라고 해서 그게 예술이냐 아니냐로 가고 있는데, 제 개인적인 취향이라고 해서 그것이 더 예술이다 라고 또한 이야기 할 수는 없는 것 같아요.

이미경 (비평가)

저는 그렇게 말하고 싶었던 것 같아요. 너무 눈치를 보는 것 같다 라는 생각을 하면서, 취향으로 빠져버리지 않고 논거를 찾기 위해서 계속 작품하고 기 싸움을 하는 거예요.

관람객 A

질의를 하러 나오신 거잖아요. 사실 저는 저희가 생각하는 공통적인 부분들을 말씀하실 것이라는 막연한 기대를 갖고 있었는데, 어디까지가 예술이냐 이런 질문을 하셔가지고 깜짝 놀랐어요. 근데 제가 느끼기에 만약 그렇게 생각을 하셨으면 자신이 생각하는 예술에 대해 설명이 있었다면 좋았을 텐데. 처음에는 좀 당황했어요. 파국선언이라는 주제로 보다가 예술이 아니다 라고 말씀을 하시니...

김민기 (작가)

저는 개인적으로 갑작스럽게 모인 이 그룹이 한달 정도의 시간동안 기획자가 주제를 생각해서 던졌고, 작가들은 그 기간 내 무언가를 보여줘야 했던


상황에서 이정도 뽑아냈고 이야기를 끌고 올 수 있었던 것에 대해서는 굉장히 자부심이 크다 라고 생각을 해요. 다른 어느 누구도 물론 재밌게 전시를 할 수 있었겠지만 저는 지금 상황에서 최고의 작업들을 뽑아 내신게 아닐까 생각합니다.

관람객 A

언어가 정치색이 있으시네요.

송지은 (작가)

저는 사실 이 전시가 부끄럽다고 이야기를 해요. 어떻게 보면 진짜 부끄러운 거예요.

김민기 (작가)

왜요?

현소영

사실 전시를 하고 나면 항상 이 태도가 맞는 것 같아요. 부끄러운 거죠.

(our MONSTER 디렉터)

송지은 (작가)

작품이라는 것은 작가의 행위를 통해서 나오는 건데, 그게 나오면 제가 발가벗는 느낌하고 똑같거든요. 그래서 사실 전시를 하기 전에 고민할 때는 괜찮아요. 그냥 거기에 미쳐버리면 되니까. 근데 까놓고 나면 더 미치겠는 거예요. 작가가 안고 가야하는 거예요. 그거에 대해서. 만족스럽거나 이런 걸 느낄 수가 없는데, 만족스럽다고 하셔서 굉장히 놀랍고 당황스럽네요.

김민기 (작가)

아, 저는 그런 취지에서의 만족스러움이 아니라 이 기간 안에 다들 열정적으로 했었고, 그거에 대해서 만족을 했다는 것이죠.


이미경 (비평가)

뾰족함의 차이인 것 같아요. 조금 더 뾰족하게 이야기를 할 수도 있고, 아니면 취지나 진행 자체에 대해 그냥 퉁 쳐버릴 수 있는. 그냥 그렇게 갈 것인지 아닌지 그 차이가 있었던 것 같아요.

송지은 (작가)

온도 차이가 있는 거죠.

이미경 (비평가)

그래서 오히려 처음을 고민하게 되는 것이죠. 무엇이 예술이고 무엇이 비평이고 무엇이 사회적인 문제를 바라보는 시선일까를 저는 이번 전시 자체를 통해서 계속 고민하게 되는 거예요. 처음을. 예술이다 어쨌다를 떠나서. 그런 것을 건드려주는 계기점이 된 것 같아요. 그럼 관람객 분들에게 질의응답을

< 카타스트로피 : 파국선언 > 아티스트 토크

받겠습니다.

관람객 B

일단 저는 개인적으로 비평가 선생님이 굉장히 마음에 듭니다. 왜 마음에 드냐면, 사실 자기 안에 있는 것을 솔직하게 이야기 한다는 것에 대해서요. 특히나 어느 사회적인 위치에 있는 분들 같은 경우에 그냥 다 좋아요 이런 식으로 말씀하시는데, 제가 사실 제일 싫어하는 것이 양비론 이거든요. 물론 세상에 틀린 건 없고 다른 것만 있을 뿐인데 하면서 그런 식으로 모든 것을 퉁 치면 사실 정확한 가치 판단을 할 수 없다는 것이죠. 아까 그 말씀을 하시는 것을 보고 저도 살짝 놀라긴 했었지만 설명을 들어보니 오히려 저는 더 좋았던 것 같아요. 그리고 그런 말씀을 하시는 분들이 있어야 한다고 생각을 해요. 그래야 저희가 알 수가 있거든요.

이미경 (비평가)

사실 이건 모두 부딪히는 과정인데, 우리가 부딪히고 깨지는 것을 너무 두려워하고 있지는 않은가. 내가 굳이 왜 총대를 매야하는가 하는 질문이 들죠.

강인혁 (작가)

저는 이미경 선생님 글을 받았을 때 굉장히 통쾌함을 느꼈어요. 저 솔직히 말하면 까였거든요. 근데 왜 그랬냐면... 저 조차도 그래요. 어느 전시를 갔을 때 제 취향이 아니면 그 앞에서는 아 전시 잘 봤습니다 하지만 내 취향 아니야 뒤돌아 서 버리거든요. 근데 그렇게 이야기 할 수 있다는 것이 굉장히 통쾌했어요. 좋은 말만 듣는다고 성장하는 것은 아니잖아요. 쓴 소리도 들어야 성장할 수 있고.


이미경 (비평가)

전 아쉬웠던 점은 그 통쾌했던 것 이상의 고민들을 가지고 제게 왔다면, 제가 당황하지 않았을 거예요. 근데 굉장히 당황했어요. 그래서 사실 그 부분에 대해서는 서로의 유동적인 관계라고 봐요. 너는 너, 나는 나 하면 경직이 되어서 만나버릴 수 없는 공간이 생겨버리는 것 같아요. 조금 아쉬웠던 것은 그 부분에 대해서 어떻게 생각을 하고, 저도 다시 바라보고, 그 과정 자체가 자발적인 참여를 통한 것이라고 봤기 때문에 강인혁 작가가 그냥 재밌다 하고 퉁 쳐버릴 때 느껴지는 그 당황함 이라고 할까요.

현소영 (our MONSTER 디렉터)

작품이 작가 손을 떠나면 그때부터는 작가 것이 아니거든요. 내 것이 아닌 순간에 내 것이었던 것에 대한 이야기를 듣는다고 해서 뭐 그런 것은 아니거든요.

이미경 (비평가)

처음부터 만났기 때문에 그런 것 같아요. 그 안에서 전시가 가지는 제 스스 로의 비평가로서의 책임감 이런 것들이 있었던 것 같아요. 또 질문 있으신가요?

관람객 C

김민기 작가님 작품에 대해서 질문을 드리고 싶어요. 개인적으로 다른 작가님들은 주제의식이 확고하게 다가왔다고 생각을 해요. 특히 송지은 작가님이 그런 이야기를 하셨죠. 파국으로 치닫았을 때 오히려 느끼게 되는 카타르시스. 세월호라는 사건이 있었을 때 모두 다 구조되었으면 하는 생각이 물론 있지만 한편으로는 사람들이 내심 기대를 가져요. 오히려 안 좋아졌을 때 일어나는 사건들이 더 궁금해지는 거죠. 저도 그 부분에 많은 공감을 하고 있는데. 김민기 작가님은 제가 하나 물음표를 가졌던 것은, PICK 이라는 작품 자체가 주제와는 좀 떨어지는 느낌을 받았어요. 한마디로 주제가 양분화 되는 느낌이라고 할까요. 희망이라는 단어를 끌어내려고 했으면 거기에 포커스를 맞췄으면 더 좋았을 텐데 이도 저도 아닌. 다른 분들은 되게 불안한, 뭔가 기분 나쁜, 이런 것들이 잘 드러나서 굉장히 재밌게 봤는데. 김민기 작가님의 작품은 굉장히 잘 만드셨는데 갑자기 ‘?’라는 것이 제게는 참 쌩뚱 맞게 다가온 느낌이었어요. 나타내려고 했던 모든 주제가 갑자기 물음표 하나로 날라가 버리는 듯한 기분이 들었거든요. 그 부분에 대해서 어떻게 생각하시나요?

김민기 (작가)

그 부분에 대해 재밌게 받아들이고 있어요. 작가인 저 조차도 그 작품을 낼까 말까를 고민을 엄청 많이 했었거든요. 넣는 것이 맞는 걸까. 여러 가지 상황에서 제가 원하는 디스플레이를 하지는 못했지만 그거에 대한 물음들은 필요하다고 생각을 했던 것 같아요. 그 작품은 전과가 3가지 이상인 후보들을


모았는데, 그게 이슈가 되기도 했지만 모르는 사람들도 굉장히 많아요. 거기에 대해서 알려주자 하는 생각이 컸던 것 같아요. 이거에 대해 생각을 해보게 하자 라는 의도였는데 지금 말씀하시는 것을 들어보니 제가 조금 더 보완하거나 고민을 해 볼 부분이 아닐까 라는 생각이 들어요. 그러나 그거에 대해서 후회는 없어요. 후회는 없고 오히려 생각을 해보게끔 해주셔서 기분이 좋네요. 지금은.

현소영 (our MONSTER 디렉터)

어려운 형태를 취한 것이거든요. 사실. 절망 속에서 희망을 이야기 하는 것 만큼 어려운 것이 없어요. 절망을 절망스럽게 만드는 것만큼 쉬운건 없거든요. 사람들이 점점 더 큰 절망에 익숙해져 가고 있어요. 왠만한 절망을 절망처럼 느껴지지도 않아요. 솔직히. 내 주변에서 일어나는 일이 아닌 이상. 근데 주제에 대해서 처음 들었을 때, 너무 어려운 거 잡은 것 같은데 라는 생각이 들었어요. 또한 제가 약간의 물음표가 있었던 것은 단순하게 색깔이 주는 느낌이 희망으로

< 카타스트로피 : 파국선언 > 아티스트 토크

다가오지는 않거든요. 개인적으로. 하지만 작가가 의도하는 바와 달리 작품과 저의 관계에서 보면 벽면에 쫙 걸려있었던 사람들의 얼굴에서 보여지는 느낌은 다른 의미로서 좋았던 점이 있었어요. PICK이라는 단어도 사람마다 어떻게 생각 하느냐에 따라서 희망적인 액션의 형태로 생각 안할 수도 있거든요. 저는 사실 그렇게 생각 안하거든요. 그래서 어려운 주제를 건드렸다는 생각을 했어요. 김민기 (작가)

개인적으로도 생각을 많이 했었어요. 다른 작가들과 이야기를 하 면서 저 또한 고민을 많이 했는데, 아까 송지은 작가님이 이야기했듯이 그거에 대한 부끄러움도 당연히 있고, 아쉬움도 많지만 그 순간에 제가 표현 했던 것들에 대해 후회는 없어요. 앞으로 보완해야 할 점들을 찾았다 하는 쾌감? 이런 것들이 더 강한 것 같아요. 더 어려운 것들을 하다보면 더 좋은 작품이 나올 것이라는 생각이 들고요, 제 작업에 대해서 생각을 많이 하신 것 같아서 기분이 좋네요.

관람객 A

정치인 같이 말씀을 하시네요.


최정은 (기획자)

시간이 이제 한 시간 반 정도가 지났네요. 처음에 제가 전시 의도나 파국에 대해서 말씀을 잠깐 드렸었는데, 현소영 디렉터님께서 안 계셔서 못 들으신 것 같아요. 저는 사실 깜짝 놀랐어요. 기획자에게 질문하고 싶다고 하셨는데 이미 꿰뚫어 보고 계시더라고요. 저희가 대화를 해 본 기억이 별로 없었었는데. 어쨌든 나름 이 전시가 균등한 자율권을 가지고 진행이 되었던 것과 사실 시국선언 이후에 파국선언을 들고 나온 것이 맞거든요. 그런 부분들을 다 보고 있었다는 것에 상당히 놀랬어요. 저는 이 전시가 사람들에게 어떤 큰 파장을 일으켜야 해 이런 입장은 사실 아닙니다. 근데 한번 비슷한 경험이 있어요. 2010년 인사미술공간에서 <디자인 올림픽에는 금메달이 없다>라는 전시를 했었는데, 당시 오세훈 시장 때 만나는 디자이너들마다 너무 괴로워하는 거예요. 이거 디자인 서울 왜 이러냐 이러면서. 그때도 공교롭게도 2010년 6월 11일 지방 선거일에 전시 개막을 했어요. 근데 사람들이 찾아 와서 너무 즐거워하더라고요. 각자의 발언권만 가지고 있다가 그 장소에 와서 전시를 보고 같이 개표 방송도 보고 하면서 이야기도 나누고. 그 전시만 봤을 때는 그냥 그건 작은 해프닝이었어요. 근데 그 후에 사람들 각자의 움직임들이 일어나고 있는 것들을 저는 봤어요. 이번 전시도 문래동이라고 하는 곳에서 전시를 하고 이런 이야기들을 함께 나누고 했는데, 또 각자 생각하시는 부분들이 각자 있으신 것 같고 오늘 질의응답해주시는 해주시는 이 상황을 보니 저는 다들 너무나 예리하게 이 전시를 잘 봐주신 것 같다는 생각을 합니다. 오늘 아티스트토크는 이렇게 마무리를 하도록 하고, 전시 관련 자료는 디자이너가 후 도록 작업을 해서 온라인에서 다운 받거나 웹상에서 보실 수 있도록 준비를 할 예정입니다. 감사합니다.

< 카타스트로피 : 파국선언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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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카타스트로피 : 파국선언 > 아티스트 토크


디자인

< 카타스트로피 : 파국선언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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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카타스트로피 : 파국선언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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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카타스트로피 : 파국선언 >

Designed by 이상형 www.flucbluc.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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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카타스트로피 : 파국선언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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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타스트로피 : 파국선언>

<CATASTROPHE>

2014. 06. 28. - 07. 13. our MONSTER

2014. 06. 28. - 07. 13. our MONSTER

참여작가 강인혁 김민기 송지은 졔졔

Artist Ian & Hyuk Kim min-ki Jee Eun Song Jiye Kim

기 획 최정은 비 평 이미경 디자인 이상형

Director Joung Eun Choi Critic Mi Kyoung Lee Designer Sang Hyung Lee

www.facebook.com/catastrophekore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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