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orean Phila Times Vol. 1001 February 22nd 20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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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화도에 딸린 작은 섬인 볼음도의 북쪽 해안가에서 자라는 수령 800년이 넘는 은행나무 노거수. 수많 은 가지를 꽃다발처럼 펼친 채 당당하게 서 있다. 이 나무는 북한의 황해남도 연안군 호남리에서 홍수 로 바다로 떠내려온 것을 볼음도 주민이 건져내 심은 것으로 알려졌다. 북한에 남아있는 은행나무가 암 나무고, 여기 볼음도의 은행나무는 수나무다. 은행나무 부부가 800여 년 전에 남과 북으로 헤어져 자라 고 있는 셈이다.

리 선착장에서 배로 1시간 30분 남짓.

기다. 자그마치 은행나무의 전 생애에

강화도의 부속 섬인 볼음도는 강화도

가까운 ‘800년의 이별’이야기다.

는 물론이고 석모도보다도 작지만, 그

볼음도의 은행나무는 우리의 천연기

래도 여의도 면적의 두 배쯤은 되는 섬

념물로 지정됐고, 북한의 연안군 은행

이다.

나무도 북한의 천연기념물 목록에 올

‘볼음’이란 섬 이름을 연음하면 ‘보름’

라있다. 한국전쟁 전까지만 해도 해마

이 된다. 조선 인조 때 임경업 장군이

다 정월이면 남과 북의 암수 은행나무

사신의 소임을 맡아 명나라로 출국하

앞에서 남과 북의 마을 주민들은 풍어

던 중에 풍랑을 만나 이 섬에서 ‘보름

제를 지내면서 서로 날짜를 맞춰 나무

동안 머물다가 보름달을 보았다’는 데

의 생일을 지내줬다. 그렇게라도 헤어

서 섬 이름이 유래한단다. 보름도는 저

진 은행나무 부부를 위로했던 것이다.

어새가 번식하고 도요새, 노랑지빠귀,

그러다 한국전쟁 이후 남북이 분단되

노랑부리백로 등이 서식한다는 영뜰

면서 생일 행사는 중단됐다. 주민들은

해변의 낙조도 이름났지만, 굳이 외포

볼음도의 수나무가 한때 가지가 말라

리에서 하루 두 번 뜨는 배를 타고 여

붙었던 것도, 연안의 암나무가 합동 풍

기까지 가보길 권하는 건 오로지 볼음

어제 중단 후 시름시름 앓았던 것도 ‘서

도 해안가에서 자라는 한 그루 은행나

로의 안부를 알 수 없었기 때문’이라고

무 때문이다.

생각하고 있다. 볼음도의 수나무는 근

볼음도 북단 끝의 안머리골에 은행나

처에 저수지를 지어 해수유입을 차단

무가 있다. 천연기념물로 지정된 800살

하면서 다행히 생기를 되찾았지만, 연

의 노거수다. 키는 24.5m에 달하고 몸

안의 암나무는 아직도 수세가 약하고

둘레도 9.8m나 되는 거목이다. 나무는

열매도 많이 달리지 않는단다.

당당하다. 나무를 다치게 하거나 부러

문화재청과 한국문화재재단, 강화군,

진 가지를 태우기라도 하면 목신(木神)

섬연구소의 주최로 지난해 칠석날인 8

이 진노해 재앙을 입는다는 전설이 전

월 17일 볼음도에서 은행나무제를 성

해질 만큼 나무에서는 신령한 기운이

대하게 개최했다. 은행나무 부부의 아

느껴진다.

픔을 달래기 위한 제례의 복원행사였

사실 이 정도 수령에 이만한 크기의

다. 문화재청은 북한땅의 은행나무 앞

은행나무가 꼭 볼음도에만 있는 것은

에서도 같은 날 제를 지내서 부부 나

아니다. 더 크고 더 오래된 은행나무도

무의 이산의 아픔을 위로할 수 있기를

전국 곳곳에 있다. 그럼에도 볼음도 은

바라지만, 그게 언제가 될지는 알 수 없

행나무가 각별하게 느껴지는 것은 전

다.

해오는 특별한 이야기 때문이다.

강화도 이곳저곳에 새겨져 있는 건 파

수는 없는 일. 이번에는 강화에서 비교

무인 볼음도 은행나무는 고려 중엽쯤

# 실향의 추억으로 가득하다…교 동도

란만장한 역사다. 마니산에 참성단을

적 가까운 근대의 공간을 찾아가 봤다.

북한 황해남도 연안군 호남리에서 동

두 번째로 얘기할 강화도의 부속 섬

쌓은 단군 시대부터 한강 패권 장악

강화의 방직공장과 강화 평화전망대

갑내기 암나무와 함께 자라고 있었다

은 교동도다. 강화만에 떠 있는 섬 교동

의 교두보가 됐던 삼국시대, 수도를 옮

를 들러서 볼음도와 교동도에도 다녀

고 전해진다. 어느 날 연안평야를 휩쓴

도는 2014년 연륙교인 교동대교 개통

겨와 항몽투쟁을 벌였던 고려, 그리고

왔다. 이번 여행의 주제는 분단과 평화.

홍수에 수나무가 뿌리째 뽑혀 바다로

으로 ‘섬 아닌 섬’이 됐다. 낙가산과 보

정묘호란과 병자호란, 병인양요와 신미

그리고 추억이다.

떠내려갔고, 볼음도의 어부가 이 나무

문사 등의 관광지로 널리 알려진 석모

를 건져다 심은 것이 지금의 볼음도 은

도에 석모대교가 놓인 것이 작년의 일.

행나무란다. 외진 섬 볼음도의 한적한

그러니 교동도는 이웃한 석모도보다 3

금도 북한과 접경을 이룬 군사 요충지

# 볼음도 은행나무 800년 이별의 내력

바닷가에서 자라는 수 은행나무 한 그

년이나 앞서 육지와 다리로 연결된 셈

다. 이러니 강화도에는 역사 유적이 이

강화도 본섬에 앞서 잘 알려지지 않

루가, 직선거리로 8㎞쯤 떨어진 북한

이다. ‘석모도보다 교동도에 먼저 연륙

루 헤아릴 수 없을 정도로 많다. 하지

은 부속 섬 이야기부터 시작하자. 강화

황해도 연안 땅에서 자라는 암 은행나

교가 놓인 게 뜻밖이다’라고 했더니 교

만 늘 오래된 역사 이야기만 따라나설

군에 ‘볼음도’란 섬이 있다. 강화 외포

무와 나란히 자라던 부부 사이라는 얘

동도 주민이 펄쩍 뛴다. 고려와 조선 시

은행나무는 암수가 구분되는데, 수나

양요를 거친 조선에 이르기까지 강화 도는 줄곧 굵직한 사건의 무대였다. 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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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간필라 FEB 22.2019-FEB 28.20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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