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age 57

Blanc commonsense

역사 속 주인공들과 그녀들의 웨딩드레스

Wedding Dresses of Historical Figure 역사 속의 주인공들의 이야기는 흔히 백과사전이나 위인전에 몇 년에 태어나 무슨 무슨 업적을 남기고 몇 년에 생을 마감했다는 정도로, 간단한 기록 으로만 전해진다. 그러나 그들에게도 기쁨과 슬픔, 그리고 아름다움과 감동적인 삶의 이야기가 있다. 특히 여성으로 한 시대를 풍미했던 주인공들에 게 빼놓을 수 없는 것이 사랑과 결혼으로 이어지는‘여인으로의 삶’이다. 세기의 주인공들이었던 그녀들에게 업적만큼이나 중요한‘사건’이었던 결 혼. 때론 화려하게 때론 위엄있게, 결혼식을 돋보이게 했던 세기의 주인공들의 웨딩드레스 통해 웨딩드레스의 역사를 짐작해본다. Editor 최경자

18세기 가문의 지위와 부유함의 상징인 된 웨딩드레스

드레스에 은여우 목도리를 걸치고 나왔는데, 이 모습이 유럽궁정에 화제거

일반적으로 전통적인 웨딩드레스는 어깨에서 발끝까지 내려오는 긴 드레스

리가 되었던 것이다. 또 1533년에는 이탈리아 피렌체의 메디치가의 딸 카테

이며, 시대를 따라 약간씩 바뀌기도 한다. 그리고 신부가 착용하는 장갑은

리나가 프랑스 궁정으로 시집가면서 흰 드레스와 고급 드레스, 굽 높은 구

그리스어로 처녀성을 상징하는데, 그리스 신부들은 결혼 뒤 달콤하고 행복

두와 속옷 등을 프랑스의 궁정에 전파했다.

이처럼 진보적인 사랑을 선택한 빅토리아 여왕은 자신의 결혼식을 위해 특

숱한 시련을 통해 더욱 강해진 20세기 영국 황실은 화려한 웨딩스토리 만큼

별한 웨딩드레스를 준비하게 했다. 무려 2백여 명이나 되는 기능공을 동원

이나 다양하고 특별한 웨딩드레스를 선보이기 시작한다. 20세기 초반에는

하여 8개월 동안의 작업 끝에 로맨틱하고 화려한 느낌의 웨딩드레스를 완성

흰색에서 변주된 크림색이나 은색 및 파스텔조의 색상이 웨딩드레스에 응

시켰다. 하얀 새틴에 무수한 레이스 및 보석 장식을 한 이 드레스는 레이스

용되었다. 이후 유명한 오뜨 꾸뛰르 디자이너들이 출현하면서 웨딩드레스

를 장만하는데 1억원 정도의 비용이 들었다고 한다.

는 더욱 다양하고 기품 있는 스타일로 발전되었다. 예전의 차분하고 여성적

이후 빅토리아 여왕의 웨딩드레스는 결혼식에서 웨딩드레스가 차지하는 비

인 스타일 뿐만 아니라 스커트 길이나 소매모양, 소재 등의 디자인 경향이

중을 높이는데 기여하였고, 유럽 사회에서 웨딩드레스의 전형이 되었다. 또

나라와 디자이너에 따라 특색을 갖춘 다양한 스타일이 공존하고 있다.

한 웨딩드레스와 함께 결혼식의 세부적인 형식과 절차가 존중되었으며, 독

오늘날 대영제국을 이룩한 엘리자베스 2세는 21살의 나이로 먼 친척벌인 그

특한 의미를 부여하기 시작했다. 이를테면 부케와 신발은 신부의 필수품이

리스의 필립 왕자와의 결혼식에서 노만 하트넬(Norman Hartnell)이 디자인

되었는데, 부케의 붉은 장미꽃은 정열적인 사랑을 의미하였고, 20세기 초반

한 드레스를 입었다. 그녀의 결혼식은 웨딩드레스만큼이나 디자이너가 명

에 가장 인기 있었던 오렌지 꽃은 청순한 사랑을 뜻하게 되었다. 그리고 동

성을 갖게 된 계기가 되었다. 그녀의 드레스는 은은한 빛이 감도는 공단으

화 속의 신데렐라 이야기에 자극되어 결혼식 때 신부가 신는 신발은 행운을

로 만들어졌으며, 크리스털과 1만 개의 작은 진주가 수놓아져 영국황실의

상징하게 되었다.

화려함을 그대로 표현하고 있다. 엘리자베스 여왕의 화려한 결혼식은 이후 그의 아들 찰스 황태자와 다이애

오뜨 꾸뛰르 디자이너의 출현으로 더욱 화려해진 웨딩드레스

나 스펜서의 결혼식으로 이어진다. 1981년 세기의 결혼식으로 불리우며 성

빅토리아 여왕 이후 유럽은 화려한 드레스에 흠뻑 취한다. 값비싼 공단은

대히 치뤄진 결혼식에서 다이애나 스펜서는 로맨틱 웨딩드레스의 완성을

물론 화려한 보석으로 치장한 드레스가 신분을 과시하는 상징물이 되었다.

보여준다. 예식이 거행된 지 5시간 만에 그것과 똑 같은 스타일의 드레스가

영국 군주인 조지 5세의 왕비이자 인도의 황후인 테크의 메리(Mary of

런던 의상실에 등장할 만큼 그 반향은 대단했다. 다이애나비가 입은 드레스

Teck)는 지적이고 강인한 성격과는 달리 열광적인 보석 골동품 수집가로 알

는 데이비드 &엘리자베스 엠마뉴엘이 디자인한 것으로 아이보리색 실크 타

려져 있다. 그녀의 웨딩드레스는 그녀의 성격에 맞게 지나치게 화려하지는

페타전을 사용한 몸에 꼭 맞는 보디스 스타일이다. 소매 밑 부분을 실크 주

않지만 고급스러운 자가트 공단에 가슴과 스커트 중앙으로 우아한 레이스

름장식과 특별히 염색한 레이스가 층을 이루도록 했고, 스커트는 트래인을

를 덧대어 특별함을 표현하고, 꽃장식을 넣어 로맨틱한 웨딩드레스를 완성

형성하기 위해 등 뒤에서 더욱 풍성해졌다. 분리시킬 수 있는 코트형 트레

했다. 결혼 이후 조지 5세는 왕비를 너무 사랑하였고, 그 때문에 바람을 비

인은 무려 7.6M의 길이로 세인트 폴 성당 예식에 참석할 때 착용되었다. 그

우거나 첩을 두지 않았다고 한다.

녀가 썼던 손으로 만든 아이보리색 레이스 베일에는 원형의 진주가 달려 있

한 삶을 살기를 바라는 뜻으로 장갑 속에 설탕 덩어리를 넣어 식을 올렸다 고 한다. 하얀 베일 역시 웨딩드레스에 꼭 필요한 필수 아이템이라 할 수 있

순결의 상징인 전통 웨딩드레스의 시초 빅토리아 여왕

는데, 이는 신부를 탐내는 남자들의 탐욕스런 시선에서 신부를 보호하고자

19세기에 흰색의 웨딩드레스는 신부의 순결함과 가문의 부유함을 상징하는

해서 베일을 만들었다는 것이다.

색상으로 정착되고, 웨딩드레스의 절대적인 색상으로 자리 잡았다. 결혼식

그렇지만 우리가 쉽게 순결한 로맨스의 상징으로 여기는 웨딩드레스가 그

에서 흰 예복을 입지 않은 신부는 처녀가 아니다라는 고정관념도 이 무렵부

모습을 갖추게 된 것은 그리 오래된 일이 아니다. 오늘날 흔히 우리가 보는

터 생긴 것이며, 흰 웨딩드레스가 상징하는 순수한 사랑의 느낌은 오늘날에

흰 드레스는 역사가 1백년 남짓하다. 즉 19세기 초반 영국의 빅토리아 여왕

까지 이어지고 있다.

의 결혼 예복이 그 시작이라 할 수 있다.

흰 드레스와 베일, 그리고 부케가 신부 예복의 세트로 굳어진 데는 영국의

고대부터 결혼 예복은 평상복과 다른 특별한 지위를 지니고 있다. 고대 이

빅토리아 여왕의 공헌이 컸다. 빅토리아 여왕은 당시 보수적인 영국 상류층

집트에서는 기원전 4천년 경 귀족들이 목욕하고 화장하며 치장한 흔적이 발

문화에 정면으로 대치하며 1840년 사촌동생인 알버트와 연애 결혼을 했다.

견되었다. 당시 신부들은 하얀 린넨 천으로 몸을 치장하고서 금으로 만든

그녀의 로맨스는 이후 유럽 사회의 결혼관에 큰 영향을 미쳤으며, 순수하고

액세서리나 보석을 착용했던 것으로 추정된다. 고대 로마시대에는 노란색

이상적인 로맨스의 전형으로 여겨지게 되었다.

을 가장 길한 색상으로 믿었고, 그래서 결혼 예복도 온통 노란색 일색이었 다. 결혼식의 신부는 신발도 노란색이었고 누베라(nubere)라 불리운 노란색

3

4

6

베일을 얼굴에 드리워, 결혼의 신으로 숭배하던 히멘(Hymen)에게 예의를 표했다고 한다. 예복은 헤라클레스식 매듭으로 묶여 있었는데, 신랑만이 그 매듭을 풀수 있었다. 머리에 두른 베일은 이후 자취를 감추었다가 18세기

5

후반에 다시 나타나게 된다. 18세기 후반에 들어서면서 흰 드레스는 가문의 부유함을 나타내는 새로운 지표가 되었다. 아주 부유한 집안에서는 한 번 입고 마는 웨딩드레스에 엄

1

청난 정성을 쏟았다. 반면, 조금 덜 부유한 집안에서는 예복의 상의와 하의 를 분리되도록 만들어 결혼식 이후에도 스커트를 입을 수 있도록 하였다.

1 영국의 빅토리아 여왕이 1840년 알버트공과 결혼 했을 때 입었던 웨딩드레스. 당시 애국심을 부추기기 위해 대

간혹 어떤 지방에서는 축제 시즌에 입는 무도회복을 웨딩드레스처럼 입기

신들은 여왕의 드레스를 1백프로 국산품으로 제작할 것

도 했다.

을 건의했고, 빅토리아 여왕은 그들의 뜻을 받아들여 디

흰색 예복이 공식적으로 출현한 것은 1406년 영국의 헨리4세의 딸 필리파 공주가 덴마크 왕국의 에릭 왕자와 결혼할 때였다. 필리파 공주는 흰 새틴

110 _ BLANC

2

자이너도, 소재도 모두 영국산으로 주문했다.

3 4 5 영국 국왕 조지 5세의 왕비 테크의 메리가 1893년 결혼식에서 입었던 웨딩드레스. 자가드 실크 원단에 화려한 레이스를 덧대고, 로맨틱한 드레스 연출을 위해 금빛 꽃장식을 둘렀다. 뒤 트레인이 지금 보아도 어 색하지 않다.

2 빅토리아 여왕은 당시 상류사회에서 금기시 했던 연애결혼을 했다. 여왕의 남편이 된 알버트공은 그녀

6 21세의 나이에 그리스의 필립 왕자와 결혼식을 올린 엘리자베스 2세 여왕. 디자이너의 웨딩드레스를 입고 결혼식을 올린 최초의 여왕이다. 그녀의 웨딩드레스는 당대 유명한 노만 하트넬이라는 디자이너가 디자인

의 사촌동생으로, 그들의 사랑이야기는 이후에 유명한 로맨틱 러브스토리로 전해지고 있다.

했다.

MAY | JUNE

111

blanc_may  
blanc_may  

blanc_5월호 pdf화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