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age 52

Special Column

디자이너로서 산다는 것은……

나의 부모님처럼 살고 싶다 요즘 세상은 왠지 양은냄비 같다. 모든 게 급하고‘빨리빨리’ 에 익숙해 있다. 그래야만 성공하고 그래야만 이름을 얻을 수 있다고 생각하나 보다. 하지만 내 생각은 좀 다르다. 좀 느리더라도 끝까지 가는 게 더 낫다는 생각이다. 어릴적, 우리집 가훈은‘정직’이었다. 공부를 안했을 때 보다 거짓말을 했을 때 더 많 이 혼나고, 절대 해서는 안되는 금기사항이었다. 그런 교육을 받아서일까? 학창시절, 그리고 사회 생활을 하면서 줄곧 나의 신조는 우리집 가훈처럼‘정직’ 이었다. 또한 그 신조를 지키기 위해 노력하며 살았다. 지금껏 디자이너로 살면서 나는 기회를 잡기 위해, 혹은 남보다 돈을 많이 벌기 위해 수를 쓰거나 거 짓말을 하지 않았다. 오랜 지인들은 그런 나의 모습을 조금 답답해하기도 했다. 좀 더 빨리 갈 수 있는 기회를 내 성격 탓에 놓쳤다고 생각했었던 것이다. 그러나 난 놓친 기회에 미련을 두지 않는다. 왜? 다음 기회가 또 올 거라 믿었기 때문이다. 이런 내 믿음은 깨진 적이 없었고, 남보단 느리지만 앞으로 나아갈 수 있었다. 내게 좀 불 리한 상황이라고 해서, 혹은 부족한 것을 메우기 위해 오버하지 않았고, 진실로 최선을 다한 디자이너로서의 20년 세월은‘이명순 웨딩’의 이름에 부끄럽 지 않다. 남들이 말하는 사업적인 성공을 어느 정도 이루었을 즈음, 나는 디자이너의 삶에 진정한 고민을 하기 시작했다. 돈을 많이 벌어 재벌이 되는 것도 아니고, 명예로운 인물이 되는 것도 내가 바라는 것은 아니다. 몇 년 전, 부모님의 산소가 있는 선산에 들른 적이 있다. 그때 어린 시절을 함께 보낸 친척집을 방문하 였는데, 만나는 사람마다 하나같이 나의 손을 잡으며‘네가 누구누구 딸이야’하면서 부모님의 이름을 부르셨다. 부모님들은‘참 좋은 분이었다’며 그리워 하셨다. 난 그 순간‘아! 나도 우리 부모님처럼 살면 되겠구나’는 생각을 하게 됐다. 디자이너로서 좋은 선배로 기억되는 인간적인 삶, 사랑이 있는 디자이 너로 사는 것이 곧 행복한 삶이겠다는 생각. 얼마전 TV에서‘기정 떡’을 만드는 사람의 라이프스토리를 본 적이 있다. 우리가 흔히 술떡이라고 부르는 옛날 떡이다. 그는 이 떡을 만들기 위해 반죽을 할 때, 모양을 만들 때, 그리고 떡을 찌기 위해 증기실에 넣을 때, 모두 떡을 향해‘사랑합니다’고 인사를 한다. 그냥 떡을 만드는 것보다‘사랑합니다’라는 말을 넣어 만드는 떡은, 그 떡을 먹는 사람들에게도 사랑이 전달될 거라 믿기 때문이라고 했다. 나는 그 믿음을 진실이라고 믿는다. 떡보다 아름다운 웨딩드 레스를 만드는 나 역시, 그 드레스를 입은 신부에게 사랑이 가득하길 바라는 마음을 담아 드레스를 만든다. 또한 나와 같이 일하는 디자이너들이 행복해야 그들도 드레스 작업에 사랑을 담을 수 있다는 생각에서, 항상 비전과 편안함을 주려고 노력한다. 그러나 사랑만 있고 실력은 없는 선배와 함께 할 후배는 없 다는 것을 알기에 공부도 게을리 하지 않는다. 부모님 이름 앞에‘좋은’이 따라 붙는 것처럼, 나도 감사할 줄 아는 사람, 나눔을 실천하는 디자이너로 기억 되고 싶다. 그것이 내가 디자이너로 살며 꿈꾸는 삶이다. 글 이명순(이명순 웨딩 대표)

100 _ BLANC

B

blanc_may  

blanc_5월호 pdf화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