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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 명 평 화 를

일 구 는

2013

제43호

농 도 상 생 마 을 공 동 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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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만 힘든 건 아니겠지요. 그래서 서로 살피며 무리가 되지 않고 한 사람이 계속 힘든 일만 하지 않도 록 합니다. 곡괭이질을 할 때 열 번씩 돌아가며 놀이처럼 일하기도 하고, 삽질하던 사람이 지쳐 보이면 서로 삽을 나누어 들기도 합니다. 그런 마음 씀씀이를 느낄 때가 가장 큰 즐거움입니다.” 추워서 흐르는 콧물 닦으며 종일 바깥에서 몸으로 일하는 생태건축연구소 흙손 풍경입니다. 생태건 축이란 게 정말 많은 노동력을 필요로 하는 일이지만, 계속 혹은 잠깐 와서 일하는 사람 그 누구의 몸도 마음도 지치지 않도록 서로 지켜주고 생기를 불어넣어주는 듯합니다. 힘든 일을 힘들다고만 느끼지 않 을 수 있는 비결이 엿보입니다. 갓 귀촌하여 홍천 마을살이에 적응해가고 있는 한 청년이 보내준 글을 읽으며 슬며시 마음이 푸근해졌습니다. 스스로에게도 홍천마을 사람들에게도 든든한 귀촌이 될 것 같 은 기대가 듭니다. 홍천마을과 연결되어 있는 서울 인수마을 사람들도, 지금 있는 자리에서 부지런히 자기 삶을 가꾸고 있습니다. 임신·출산·육아 과정을 통과하며 가부장성을 극복해가는 남성(소통과 대안), 견고한 직 장 문화의 출구로 ‘고독’을 재발견한 공무원(꿈꾸는 일터), 함께 어우러지는 관계 속에서 비로소 자기 를 찾아가는 ‘씨알’(청춘답게), 마을 아이들과 맘껏 놀면서 새로운 시도를 해보는 공교육 선생님(마을학 교), … 생명이 다른 생명과 만나 어우러지는 아름다움, 경이로움으로, 잠자던 감성을 깨우는 이야기들 로 <아름다운 마을> 43호는 풍성합니다. 매달 마을신문 한 면을 아름다운 그림으로 채워주고 있는 [그리고] 지면에 연재 화가 한 분이 더 늘었 습니다. 이번 호에 실린 파 그림을 시작으로, 우리네 밭과 들과 밥상에서 친근하게 볼 수 있는 푸성귀, 나물, 약초 따위를 생태 세밀화로 만날 수 있을 것입니다. 흑백 종이에 인쇄되는 마을신문에 화려한 색 감을 뽐내지 않고서도 우리 일상을 향한 애정 어린 시선을 생명력 넘치는 예술로 승화시키는 그림이 주 는 울림이 참 크다고 생각합니다.


농촌과 도시에서 함께 쓰는 2014년 절기달력이 나왔습니다. ‘하루를 천년같이’라는 신통방통한 제목 이 달려있지요. 아름다운마을공동체 홍천터전에서 농사짓는 사람들과, 오가며 함께 농생활을 경험한 사람들, 누구보다 몸으로 농생활을 살아내고 있는 학교 학생들의 글과 그림이 모아져서 만들었습니다. 생활공간에 달력을 걸어두고, 어디서든 홍천마을의 한 해 흐름을 함께 할 수 있습니다. 지인에게 선물 하셔도 좋습니다. 해마다 겨울이면 인수마을에서 동지잔치가 열립니다. 아름다운마을초등학교 인수터전 아이들이 한 해 배움을 갈무리하고 마을어린이집, 공동육아 도토리집 아이들도 모두 모여 몸과 마음이 쑥쑥 자라는 모습을 흥겨운 공연에 담아 선사하는 자리입니다. 올해에도 아이들은 들뜬 기대로 12월 20일 한신대 효촌관으로 마을 이모삼촌들을 초대했습니다. 그날 아름다운마을밥상 저녁 차림은 동지팥죽이니, 소 박하고 정겨운 자리에 누구나 함께하실 수 있습니다. 홍천마을에서는 12월 28일 아름다운마을초등학교 홍천터전과 생동중학교 졸업잔치가 열립니다. 요 즘 홍천마을에 가면 학생들이 곳곳에서 스스로 졸업식을 기획하고 준비하는 모습들로 바쁘고 활기가 넘칩니다. 그동안 걸어온 배움을 갈무리하고 다음 걸음을 힘차게 내딛는 자리에 오셔서 학생들의 삶을 축복하고 격려할 수 있습니다. 꽃다발은 서로 주고받지 않고, 그 축하하는 마음을 담아 부모님들과 이 모 삼촌들의 축하공연이 마련되어 있다고 합니다. 졸업을 앞둔 학생들이 그간의 학교생활을 돌아보며 후배들이 이런 걸 꼭 생각하면 좋겠다는 바람을 담아 썼다는 십계명을 읽으며, 자기 마음을 닦는 삶과 배움을 떠올렸습니다. 삶이란 게 닦고 닦고 또 닦 는 것이기에 한해가 저물어가는 요즈음, 지난 나날을 돌아보며 아쉬움만 남지 않을 수 있구나 생각했 습니다. 오늘 내게 주어진 관계와 일상에 감사하며 나를 닦고 올해를 닦고 세상을 닦으며 새해를 맞이 해야겠습니다.

최소란 | 날마다 아이와 새 아침을 맞이할 수 있어서, 아침마다 북한산 인수봉 표정을 바라보며 출근할 수 있어서 감사한 사람입니다.

아름다운마을신문 2013 12 43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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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 싣는 순서 02

[아름다운 마을이 들려주는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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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을학교]

┃ 최소란

낯설면서 신나는 몸놀이 ┃ 서진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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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통과 대안]

18 [空과 共]

빈틈투성이 남성, 감성을 깨우다 ┃ 강재관

지구에 쓰레기 하나 덜 얹을 수 있다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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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최소란

[꿈꾸는 일터]

견고한 문화 앞에서 겉도는 느낌을 넘어

21 [그리고]

┃ 이호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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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춘답게]

22 [함께 산다는 것]

근현대사에서, 내 삶에서 만난 씨알

멋 부리던 된장남, 맛 부리는 된장남 되다

┃ 조한아

┃ 김승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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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태건축]

한 사람만 지치지 않도록 살피는

마음 씀씀이를 느낄 때 ┃ 조원호

파 ┃ 김경희

<아름다운마을>은 강원도 홍천 아미산자락 효제곡마을과 서울 북한산자락 인수마을을 오가며 농촌과 도시에서 농도상생마을공 동체를 일구는 사람들의 삶을 증언합니다. 시대 과제와 소통하고 대안을 모색하는 이야기를 [소통과 대안]에 담습니다. 일상과 관 계, 수련을 통해 [함께 산다는 것]의 의미와 이유를 찾아봅니다. 마을밥상 지기들이 밥을 차리는 마음을 [밥상머리]에 모읍니다. 기 독청년아카데미에서 만나는 20·30대 청년대학생들과 [청춘답게] 모험하는 활동을 나눕니다. [청소년마당]과 [마을학교] [아이들세 상]은 홍천과 인수 마을학교 아이들이 살아있는 배움으로 성장해가는 모습을 보여줍니다. 농(農)을 통해 문명과 삶 전체를 다시 살 피고 재구성하는 [農생활]과 건강한 주거문화를 만들어가는 [생태건축] 현장 소식을 전해줍니다. 그리고 [만나보기]에서는 당신과 우 리가 함께 만나고픈 사람을 찾아갑니다.

<아름다운마을> 펴낸 곳 아름다운마을공동체 기자 최소란 김준표 김승권 디자인 서아름 문의 02-999-9294 누리편지 maeulin@hanmail.net 누리집 www.maeullo.net 후원 국민은행 487101-01-369173 예금주 생명평화연대(마을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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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통과 대안

남성으로 경험한 임신·출산·육아에 대한 글 을 쓰면서 그동안 살아온 삶을 돌아볼 수 있었습 니다. 대한민국에 태어나 가부장제의 문제에서 자유로운 남성은 아마도 거의 없을 것입니다. 남 성이 임신·출산·육아 과정에서 드러내는 태도 도 마찬가지입니다. 여성의 영역이라고 단정 짓 고 게으르게, 때로는 회피하는 모습으로 살아갑 니다. 육아에 열심히 참여하는 분들이 많아지긴 했지만 아직도 많은 분들이 애는 여자가 키워야 한다, 바깥일이 살림과 육아보다 더 가치 있다는 착각, 아이를 돌보고 싶어도 남성이 태생적으로 어찌할 수 없는 영역이라는 이야기를 합니다. 저 또한 부끄러운 점이 많지만 그동안 배우고 변화된 삶을 나누어 보고자 합니다. 제가 결혼 즈음부터 지금까지 살아온 삶은 함께 사는 것에 대한 배움의 연속이었습니다. 물론 여전히 배 우고 있습니다. 몰라서 배우는 것도 많지만 남성으로서 몸에 배어 있는 잘못된 습관을 고치는 배움이 더 많습니다. 먼저 결혼하여 임신·출산·육아 과정을 거친 선배들과, 비슷하게 가정을 이루어 아이를 낳고 키우는 친구, 그리고 아내와의 소통 속에서 나에게 드러나는 문제를 비로소 직면하고 그것을 극복해가는 것을 배우며 살고 있습니다. 함께 산다는 것은 삶과 삶이 만나는 것이고 그 삶 안에 존재하는 다양한 차이 들이 서로 차별되지 않도록 소통하며 균형을 잡아가는 것인데, 이것은 절로 되는 일은 아닙니다. 본격적으로 제가 긴장하기 시작한 시기는 아내가 첫 아이를 잉태한 때부터입니다. 출산 전까지 어떻게 지내야 한다는 이야기를 수없이 많이 들었음에도 불구하고 당장 내 몸에 변화가 생기는 게 아니기 때문에 아내의 몸과 마음의 변화에 공감을 하는 것에 어려움이 있었습니다. 특별한 상황이 아니면 기본적으로는 아내의 필요에 의해 수동적으로 움직이는 모습이 반복되었고, 긴장을 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그것은 게 으름과 무관심의 문제로 드러나기도 했습니다. 아이를 잉태한 몸에 민감하게 반응하고 공감하는 노력을 더 해야 했고, 그것을 서로 이야기하고 다시 고치려고 노력하면서 조금씩 나아질 수 있었습니다.


아내와 출산 때까지의 과정을 가능한 모두 함께하려고 노력했 습니다. 보건소에 가는 일, 조산원에서 검사를 받고 출산법에 대해 배우는 일 등, 제가 여건이 되는 한 그 과정이 아내의 일인 것처럼 협력자 또는 조력자로 있기보다는 그것이 바로 내 몸과 마음의 일인 것을 의식하며 지내려고 했습니다. 아내가 홀로인 채로 감당하지 않도록 말이지요. 덧붙이자면 임신은 병적인 상태가 아닙니다. 하지만 그 과정 을 겪어보지 못한 한 개인에게 임신은 두렵고 막막한, 그리고 뭔가 의지해야 하는 ‘문제 상황’이 됩니다. 주변에 대부분의 사람들이 병원에서 출산을 했다면 다른 선택의 여지가 없습니 다. 나 역시 병원을 통해 아이를 낳는 것을 스스럼없이 선택합 니다. ‘임산부=환자’의 공식이 완성되는 순간입니다. 임신 확인과 동시에 출산 때까지 수많은 검사와 확인 그리고 수술까지도 염두에 둔, 임신한 여성의 몸과 마음 을 배려하기보다는 알 수 없는 불안을 볼모로 병원은 협박 아닌 협박을 거듭합니다. 기형아 검사를 해야 한다, 양수검사를 해야 한다, 제왕절개를 해야 한다는 둥 말이지요. 아이를 잉태한 몸의 변화에 공감하려는 노력

인간의 몸에는 지난 수백만 년 간 축적된 생명의 지혜가 있습니다. 자연치유능력뿐만 아니라 아이를 낳 고 기를 수 있는 능력이 이미 주어져 있는 것이지요. 임신은 생명이 생명을 잉태한 기쁘고 경이로운 일입 니다. 결코 겁먹을 일이 아닙니다. 그리고 의료는 치료행위로써 우리가 선택할 수 있는 것이지 ‘의무’ 가 아니라는 이야기입니다. 그것이 양의학이 되었건, 한의학이 되었건 말입니다. 문제는 별다른 문제의 식 없이 쉽게 병원을 찾고 한의원을 찾고, 그곳에 의지하는 것에 있습니다. 자기 자신의 생명력을 믿지 않 고 병원이 주는, 의사가 주는 처방과 약에 자기 자신을 가볍고 쉽게 맡기는 것이지요. 저희는 첫째 아이를 조산원에서 낳았습니다. 물론 둘째 아이도 그러했습니다. 초기에 임신 확인만 병원 에서 하고 이후 과정은 필요에 따라 보건소를 이용했습니다. 임신 중기가 넘어가면서는 조산원에서의 기 본적인 진료와 아이의 발달과정을 지켜보고 때에 맞는 보살핌을 할 수 있도록 먹거리와 운동, 생활패턴 등을 조율하며 아내와 함께 아이가 나올 때를 기다렸습니다. 필수적으로 먹는 엽산이나 철분 등 기타 보 충제는 평소 먹는 먹거리로 해결되어 섭취하지 않았지요. 그리고 아이가 나오려는 때에 맞게 의료적인 개입 없이 고요히 방에서 아이를 맞이했습니다. 물론 조산사님이 따뜻하게 그 과정을 이끌어주셨습니다. 첫째 아이가 세상에 나올 때 저의 반응은 ‘신기하다’는 것이었습니다. 사람에게서 사람이 나오는 그 자체가 참으로 신기하고 기뻤습니다. 그리고 진통을 겪고 출산의 기쁨을 누리는 아내를 보며 감사하고 한편으로는 부러운 마음도 들었습니다. 임신과 출산을 온 몸으로 경험한 여성이 자식에 대해 가질 수 있 는 특별한 애정이 느껴졌기 때문입니다. 아빠인 저는 그 마음을 이해하고 알아가기까지 수년의 시간이 걸렸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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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년 뒤 둘째를 맞이할 때에는 첫째도 함께 했습니다. 임신 과정은 큰 아이 때와 다르지 않았습니다. 작 은 방에서 둘째가 태어나는 과정을 첫째와 함께 지켜보았고 첫째는 진통으로 신음하는 엄마를 응원하고 위로했습니다. 조산사님은 첫째에게 출산의 과정과 지금 엄마 몸의 상태를 아주 쉽게 천천히 그리고 친 절히 설명해주셨습니다. 둘째가 태어나는 순간 저는 그만 울컥하고 말았습니다. 왜 울컥했는지 한동안 정리가 안 되었습니다. 예전에는 그저 신기하기만 했던 것이, 그 생명 안에 모든 이의 수고와 사랑이 담 겨 있다는 생각이 들어서 그랬던 것 같습니다. 그간 아이를 키우며 생명에 대한 감수성이 달라졌기 때문 이겠지요. 그저 신기하기만 했던 생명, 이젠 그 안에 담긴 수고와 사랑을 알기에

출산은 열 달 임신기간이 끝나는 맺음의 사건이자 앞으로 변화될 삶의 출발신호이기도 합니다. 가정에 아이가 함께 살기 시작하면서 모든 삶이 아기를 중심으로 재편됩니다. 육아에 주체적인 부모로 서가는 것은 고난의 훈련이었습니다. 종이기저귀 대신 천기저귀를 쓰고 아이가 지금 무엇을 원하는지 살피고 아 플 때는 죽염수로 이를 닦이고 겨자찜질과 죽염, 감잎차, 매실효소 등으로 몸을 다스리며 아이가 세상과 자연스럽게 만나갈 수 있도록 도와주었지요. 때에 따라 확인이 필요한 상황에서는 병원에서 진료를 받기 도 했고요. 저는 몸 자체가 누군가를 돌보는 것에 익숙해있지 않았기 때문에 모든 게 서투르고 어려웠습니다. 아이가 엄마와 붙어 지내는 시간 이 많다는 이유로 남성은 수동적인 자세와 태도로 육아에 비주체적 으로 지내게 되기 십상입니다. 그것을 극복하고자 육아에 필요한 여러 가지 소통은 주로 남편인 제가 하도록 역할을 정했습니다. 아 이가 아프거나 다른 사람들과 소통해야 할 때 그 일을 지내오던 맥 락대로 아내에게 넘기지 않도록 한 것이지요. 아이를 키우며 병원과 약에 의지하지 않는 삶에는 대안이 있어야 했습니다. 그리고 그 선택에 걸맞은 책임이 동반되어야 한다는 것 을 절실히 깨달았습니다. 우리 몸의 생명력을 믿으며 그것을 돕는 방식으로 아이들을 키우는 것과 내 아이라는, 가족, 특히 부모 중심 적인 사고에서 벗어나 마을의 이모와 삼촌 모두가 육아의 주체가 되어 부모로부터 강하게 이어받는 기질과 운명의 관성을 아이가 이 어받지 않도록 함께 키우는 일은 매우 중요한 것 이었습니다. 둘째가 태어나면서는 생활 자체가 좀 더 육아 에 치중되었습니다. 아이가 하나 있을 때는 한 ���람이 돌보면 나머지 한 사람이 시간을 쓸 수 있 는 여유가 생겼지만 둘이 되면서는 기본적으로 두 사람 모두 아이를 맡아야 하는 상황이 되었습 니다. 자기 시간을 확보하기가 구조적으로 어렵 아름다운마을신문 2013 12 43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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게 되면서, 아이들을 재우면서 같이 잠들었다가 다음날 아침에 일어나는 날이 많아지면서, 생활은 점점 더 단순해지고 치열해졌습니다. 둘째가 태어날 무렵부터 육아휴직을 했습니다. 반 년 동안 아이들과 아내와 붙어 지냈는데 그 시간이 저 에게 쉽지만은 않았습니다. 24시간 같이 있으면서 벌어지는 다양한 일들은 서로 지치게 하기도 했고 우 리가 함께 사는 이유가 무엇인지를 다시금 생각하는 소중한 계기가 되었습니다. 무엇보다 남성인 제가 지니는 한계를 일상 가운데 치열하게 직면할 수 있었습니다. 치열했던 육아휴직, 부모로 서는 고난의 훈련

아내인 여성의 관점에서 남성은 실수투성이에 깜박 잊어먹기를 밥 먹듯이 하는, 아이의 면면을 잘 보살 피지 못해 늘 아이를 힘들게 할 수 있는 불안한 존재입니다. 아무리 육아를 잘하는 남성이 있다 하더라 도 여성이 볼 땐 빈틈투성이입니다. 남성인 저의 관점에서 여성은 늘 자신의 잘못을 지적하는 존재입니 다. 하지만 남성에게는 여성과는 다른 감수성이 있는 것 같습니다. 임신·출산·육아에 맞는 몸의 변화 를 직접 겪으며 아이를 만나는 맥락 속에 빠질 수 있는 여성에게, 그 이외의 세상과 조화를 이룰 수 있도 록 보완하며 돕는 존재로 있습니다. 서로의 한계를 직면하되 그 다른 차이를 존중하는 보완적인 관계로 살아갑니다. 올해 3월 다시 복직을 하면서 치열했던 육아휴직 6개월의 시간을 돌아보았습니다. 학교로 출근하는 저 는 육아로부터 배려를 받고 있으며, 출근부터 퇴근까지의 시간을 헛되이 보낼 수는 없다는 각오가 생겼습 니다. 아내는 제가 없는 동안 육아의 주체로 아이들을 돌봅니다. 제가 일하는 것은 당연한 것이 아니라 그 런 가정의 수고와 배려가 있기 때문에 가능한 것입니다. 많은 남성들이 직장으로 피신(?)을 합니다. 그리고 분명한 선을 긋지요. ‘바깥일은 힘들다, 당신이 내가 받는 스트레스를 아느냐? 육아와 살림보다 내가 하는 일이 더 힘들고 중요하다’는 선을요. 착각하면 안 되 는 것은 남성도 똑같이 육아의 주체이며 아이를 돌보는 것에 100%의 책임이 있다는 것입니다. 여성과 남 성이 50:50이 아니라 100:100입니다. 마음 한편에는 늘 미안한 마음이 있습니다. 왜냐하면 제가 해야 할 당연한 몫에 대한 수고를 아내가 채 우고 있기 때문입니다. 뿐만 아니라 육아품앗이, 마을어린이집, 마을초등학교, 중학교, 고등대학과정 등 다양한 형태로 육아와 아이들의 교육에 참여하고, 일상 가운데 그 수고를 기꺼이 아끼지 않는 마을의 친 구들에게도 고맙습니다. 임신·출산·육아는 인류가 생겨난 이래로 늘 우리 삶의 근간이 되어왔던 중요한 구성요소입니다. 이 것은 신께서 인간을 축복해주시기 위해 주신 것이지 여성을, 남성을 괴롭게 하려고 주신 것은 아닐 것입 니다. 여성과 남성의 역할을, 주변에서 흔히 이야기하는 대로, 살아온 대로 결정하지 않고, 서로 돕는 관 계를 이루어 그동안 살아온 삶의 관성을 끊고 새로운 삶의 계기로 받아들인다면 그렇게 새로운 존재로 남 성이 살아갈 수 있는 것 같습니다. 강재관 | 인수동마을에서 비혼공동체방에 살다가 지금의 아내와 만나 가정공동체를 꾸리고, 다섯 살, 두 살 된 아이 둘을 키우며 지내고 있는 중학교 체육교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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꿈꾸는 일터

견고한 문화 앞에서 겉도는 느낌을 넘어 나는 공무원이다. 공무원하면 사람들이 어떻게 생각할까 대략 짐작은 가지만 그래도 궁금하기는 하다. 나도 처음부터 공무원은 아니었다. 경쟁사회에서 본능적으로 불안을 느껴서 그랬는지, 그 즈음 뉴스에 오르던 ‘다운쉬프트’라는 단어에 용기를 얻었는지, 아무튼 난 4년간 잘 다니던 두 번째 회사를 그만두었 고 평범한 공무원이 되었다. 내가 일하는 세무서는 국민들이 세금을 잘 낼 수 있도록 서비스를 제공하고 또 세법에 맞게 잘 신고하고 납부하는지 점검하는 곳이다. 내 공식적인 명칭은 국세조사관이지만, 아직 조사는 해보지 못했고 그 비 슷한 일들은 하고 있다. 작년에는 개인사업자들을 담당했고 올해는 법인사업자들을 만나고 있다. 이 일 을 8년째 하고 있으니 어느 정도 경력이 되는 셈이지만, 해마다 담당하는 업무와 세금 종류가 다르다보니 아직 미숙한 부분이 많다. 회사에서는 주로 세금을 체납하고 있는 곳에 연락해서 세금을 내도록 하거나 직접 찾아오는 고객들을 상담하고 돕는 일을 하면서 보낸다. 상담하러 오는 고객들은 가족에게도 숨기는 재산상황을 마치 고해 성사라도 하듯이 우리에게 털어놓는다. 자본주의사회에서 자신의 은밀한 경제적 정보를 복잡한 가정사 와 적당히 버무려서 내어놓는 이유는, 세금을 조금이라도 적게 내기 위해서이다. 업무로 출장도 자주 다 니는데 다양한 현장에서 여러 부류의 사람들을 만나고 그들의 이야기를 직접 들을 수 있는 기회가 많다.

아름다운마을신문 2013 12 43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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꿈꾸는 일터

회사에서 나의 관심은 ‘친절’이다. 정말 친절한 일을 하시는 분들에게는 다소 미안하지만 우리도 친절을 중요하게 여기고 친절공무원 상도 준다. 하지만 공무원에게 친절은 괜한 일이나 겉치레가 되기 쉽다. 그 래서 친절은 갑자기 문제가 되어 찾아온다. 그리고는 모든 일의 옳고 그름을 한방에 결정해버리곤 한다. 그동안 진행되던 업무의 전후관계나 규정은 뒤로 밀려나버리고 친절했냐 아니냐만 남는다. 더군다나 세 금을 받으면서 친절하기는 쉽지 않은 일이다. 압류를 해도 친절하게 해야 한다. 말하면서 눈을 보지 않았 다고, 왜 미리 얘기해주지 않았냐고, 세상에 그런 법이 어디 있느냐는 등 하루를 채울 수 있는 불친절거 리는 늘 넘친다. 공무원에게 요구되는 친절, 피하지 않기로 했다

정말 친절하다는 건 무엇일까 생각해보았다. 공무원이 하는 일이 저마다 주어지지만 사실 업무에서 차 이는 별로 없다는 말도 아주 틀린 말은 아니다. 결국 그 사람의 일과 삶에 대한 태도는 친절이라는 대목에 서 드러나는 것 같다. 그래서 나는 친절한 공무원이 되기로 했다. 그런데 막상 잘하려고 하니 얼굴에 미 소만 짓는다고 저절로 되지는 않았다. 찾아오는 분들의 선입견도 많았고 나부터 지치기도 했다. 어떤 분 은 한참동안 성질내고 소리 지르다가 결과적으로 세금이 예상보다 적게 나오니까 고맙다고 꾸벅 인사하 고 가셨다. 또 마음을 가다듬고 성심껏 설명하다보면 고객님은 어느새 모든 걸 다 해결해 달라는 식으로 달라붙고 있었다. 친절은 자세도 겸손해야 하지만 내 일에 대한 자긍심과 그에 걸맞은 지식과 경험이 필요했다. 이제는 고 객의 말은 일단 끝까지 듣고 이야기한 내용은 메모했다가 약속을 지키려고 노력한다. 전화도 내 일이 아 니라고 바로 돌리지 않는다. 그런 일이 없어야 하겠지만 내가 잘못한 것은 깨끗이 인정한다. 대화를 할 때 도 쉽고 공손하게 바꿔야 할 표현들에 신경 쓴다. 친절은 나에게 겉모양이 아닌 총체적인 것을 요구하고 있었고 나는 피하지 않기로 마음먹었다. 우리 회사는 2년마다 근무처를 옮긴다. 아마도 고객들과 불미스러운 일이 생기지 않도록 하기 위해서 라고 짐작은 하고 있다. 인사이동은 직원마다 그 시기가 다르다보니 매년 직원의 절반이 바뀐다. 이렇게 매번 새로운 사무실에서 많은 사람들과 만나고 헤어진다. 좋은 사람과는 금방 헤어지니 아쉽지만 마음 에 맞지 않는 사람은 1~2년만 참으면 된다는 장점도 있다. 한편 매년 인사이동 시절이 되면 저마다 원하 는 곳에서 업무를 하려고 노력(?)하는 모습을 본다. 또 자기와 함께 일하게 될 사람이 과연 어떤 사람인 지 여러 경로를 통해 알아보고 결정한다. 그렇게 떠돌아다니는 평들이 내 귀에도 잠시 들린다. 그럴 때마 다 내가 어떻게 회사생활을 했고 앞으로 해갈지, 또 회사는 어떤 사람을 원하고 있는지 상기하고 확인하 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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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마다 분주히 오가는 사람들 속에서 내가 가지는 주된 감정은 외로움이다. 수많은 사람들이 집단적으 로 만들어내는 문화나 기운이 여전히 낯설고 강력하기 때문이다. 적응하는 데 성격적으로 어려운 점도 있지만 양심상 께름칙한 부분도 있다. 처음에는 ‘사람들이 왜 이러나’ 당황했지만 이제 놀라지는 않는 다. 사람들은 대부분 그런 흐름에 몸을 담그고 호흡하며 살아간다. 그렇게 형성된 기운은 더욱 견고한 힘 과 논리로 재무장하면서 우리 앞에 다시 선다. 나는 ‘고독’한 세리

화이트헤드라는 학자는 <진화하는 종교>라는 책에서 종교란 고독이고, 또 고독에서 시작된다고 말했 다. 화창한 주말 오전에 대학로 한복판에 자리 잡은 강의실에서 그 이야기를 듣는데 갑자기 강의실이 고 독하게 느껴졌다. 그때 고독이라는 단어가 내 앞에 솟아올랐고, 외로움은 고독으로 바뀌기 시작했다. 그 동안 무언가 찜찜하고 겉도는 듯한 느낌으로 지내왔다면 이제는 상황을 보다 긍정적으로 해석하게 되었 다. 이미 말했다시피 나는 세리이다. 내가 보기에 세리는 속물이다. 그런데 예수님이 불렀을 때 곧장 따라나 섰던 세리는 고독한 속물이었다. 고독한 사람이 고독한 사람을 알아본 것이라고 나는 생각한다. 내가 보 기에 그가 고독하지 않았다면 그렇게 따라 나서기 힘들었을 것이다. 나와 직업이 같아서 그런지 나는 그 게 참 와 닿는다. 자기에게 공기와도 같던 문화를 낯설게 보게 되면 그 사람은 고독해진다. 객관적인 관 점이나 용어로 자기를 설명하려고 할 때도 비슷한 일이 일어난다. 내 신앙을 종교라는 단어로 접근하는 것도 그런 경우다. 회사에서 하는 일과 일어나는 상황을 객관화시켜 바라보는 연습을 하게 되었다. 주위와 단절되는 듯한 약간의 충격이 가시고 나니 맑고 분명한 판단이 가능해지는 것 같다. 돈의 흐름을 둘러싸고 일어나는 사 건을 추적하고 이익과 손해를 치열하게 다투는 사람들 사이에서 부대끼다보면 어느새 나도 그들처럼 되 기 쉽다. 다르다는 건 의외로 아주 조그만 것에서 드러난다. 처음에는 나보다 수입이 훨씬 많은 사람들의 절세를 상담하면서 기부금도 전혀 없이 악착같이 아끼려만 드는 그들의 태도가 못내 싫었지만, 이제 마음 을 지키면서 내 일로 성심껏 도울 수 있게 되었다. 연봉이나 세금계산서의 숫자 뒤에 숨은 사람이 아니라 나와 같이 연약하고 외로운 한 사람을 만나려고 애쓴다. 언젠가부터 동료들이 차츰 나에게 질문을 하기 시작한다. 왜 초과근무를 달지 않는지, 왜 부탁을 하거나 받지 않는지, 돈을 많이 벌 수 있는 세무사 준비를 왜 하지 않는지 걱정하며 묻는다. 고맙지만 마음만 받 아둔다. 궁금한 게 많은가보다. 한때는 회사에서 궁금한 사람이 되면 좋겠다 생각한 적도 있었는데 이제 그렇게 되어가는 것 같아 기분이 좋다. 결국 나는 세리이다. 속물이기 때문에 부끄럽지만 요즘은 고독과 함께 걸어가는 법을 배워가고 있다. 이호연 | 아내와 세 아이들과 함께 더 잘 살고 싶은 마음 간절한 마을생활 초보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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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춘답게

지난 10월 박재순 선생님의 ‘한국근현대사와 씨알사상’ 강의를 통해 우리 근현대사를 새로이 정리하게 되었고 ‘씨알사상’에 대해 알게 되었습니다. 고등학교 때 국사와 세계사 같은 과목을 좋아해서 다른 교과 서는 다 버렸어도 국사교과서는 아직도 집 책장에 고이 간직하고 있는데 고등학교 때까지 배웠던 역사와 이번에 알게 된 역사는 사뭇 다른 얼굴을 하고 있습니다. 실학은 단지 서양문물을 통해 실용적인 학문을 발전시킨 거라 배웠는데, 서양문물을 받아들이고 중국 사대의식에서 눈을 뜨면서 우리가 어떤 민족인가에 주목하기 시작한 민족의 첫 ‘자각’ 사건이었다는 것은 저에게 꽤 큰 충격이었습니다. 동학이, 민(民)이 주체가 되어 서구문명의 침입에 대해 주체적, 창조적으 로 응답한 움직임이라는 것도 새로웠습니다. 만민공동회가 본격적인 시민운동의 시작이라 할 수 있는 장 이었다는 것 역시 전에는 알지 못한 것이었습니다. 관(觀)이 다르면 같은 사건도 전혀 달리 해석할 수 있 습니다. 어떤 한 사건이 다른 사건과 만날 때 그 사건은 창조적 의미가 발생하는 것처럼 이번 강의가 저에 게는 한국근현대사를 새로운 관점으로 보고 전과는 다른 의미를 발견하는 계기가 되었습니다. 씨알이라는 말은 유영모 선생님이 처음 썼지만 세상에 알린 것은 함석헌 선생님입니다. 참된 주체가 되 어 전체(공동체)로 살아가는 것, 자기를 깨뜨려 새 생명으로 살아가는 것, 생각하는 씨알로서 살아가는 것, 새 나라를 이루려는 희망과 믿음을 가지고 우뚝 서는 삶이 씨알사상입니다. 나는 죽고 씨알이 싹트게 하여 새 생명으로 사는 것입니다. 씨앗이 싹을 트고 꽃과 열매를 맺는 것은 우주 만물이 서로 사랑하고 섬김으로 되는 것입니다. 하늘의 햇빛과 바람, 땅의 흙과 물이 서로 겸허하게 자신을 내어주고 상대를 받아들여 모시고 받듦으로써 씨앗은 아름답고 존귀한 생명으로 피어나는 것입니다. 겉보기에 작고 초라하지만 아름답고 존귀한 생명을 품고 있는 씨알은 아름답고 풍성한 생명을 꽃 피우기 위해서 아낌없이 깨지고 죽어야 합니다. 씨알 자체가 죽 음으로써 사는 진리를 나타내는 것이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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혼자 잘하는 게 주체적이라 여겼던 제가 나와 다른 사람들과 더불어 살아가는 삶속에서 참된 씨알사상을 깨달아가고 있 습니다. 사진은 공동체방을 이루어 함께 지내는 동생들과.

지난봄, 겨우내 죽은 것 같았던 마른 나뭇가지에 어김없이 찾아오는 봄의 기운으로 새로 싹이 돋고 꽃 과 잎을 틔우며 자라는 나무의 생명력에 새삼스레 감탄한 적이 있습니다. 교육현장에서 드러난 저의 욕 망과 잘못된 본성을 맞닥뜨리게 되면서 괴롭고 힘든 마음에 어찌할 바를 몰랐을 때 나도 나무처럼 살아 야지 하고 생각했습니다. 온전히 죽고 새로운 몸으로 다시 나고 자라고 죽고 또 다시 태어나야지 하며 다 짐을 했습니다. 씨앗이 혼자서 싹을 틔울 수 없고, 나무가 ���자서 꽃을 피울 수 없듯이 공동체가 없이는 나도 다시 살 수 없구나 싶었지요. 공동체가 있어 참 감사했습니다. 저는 지금 몸 된 관계가 있어 감사하 고 행복합니다. 전에는 ‘몸’이 없어서 혼자 살아갔던 것 같습니다. 혼자 고민하고, 혼자 결정하고, 혼자 실행하고, 그러 다 넘어지면 자책하고, 스스로 좌절하고, 스스로 체념하고, 스스로 결론짓고 그렇게 혼자의 힘으로 살았 습니다. 이렇게 하는 것이 주체적인 거라 착각하며 이기적으로 개인적으로 살았지요. 주변에 좋은 사람 들이 있었지만 그들의 이야기가 안 들리기도 했고 듣기 싫어하기도 했습니다. 한 때 주체적인 것이 무엇 인지 헷갈렸는데 공동체에서의 생활과 씨알사상 강의와 근현대사를 사셨던 스승님들의 삶을 통해 어렴 풋이나마 조금 알 것 같습니다. 나만의 방식이 가장 쉽고 간단하고 빠르고 좋은 것이라 생각하던 것을 버리고 조금은 더디더라도 복잡 하더라도 합력하여 선을 이루는 것이 중요하다는 것을 배웠습니다. 내가 익숙했던 세상의 방식, 지식, 상 식들을 뒤집고 새로운 방향과 지혜를 익혀가고 있습니다. 공동체로 살아가는 것은 그 은총의 시작이었습 니다. 함께 사건을 만날 때마다 새로운 해석이 일어납니다. 무척 신기합니다. 갑자기 확 바뀌지는 않았지 만 조금씩 변화해가고 있습니다. 눈에 보이지는 않을지 모르지만 그 변화를 함께 살아가는 이들과의 관 계 속에서 몸으로 느끼고 있습니다. 제가 만난 씨알사상은 쉽고도 명쾌합니다. 철학적 심오함이 있지만 복잡하거나 어렵지 않고, 신앙적 깊 이가 있지만 교리적이지 않습니다. 구체적 삶에 기반을 두고 있기 때문입니다. 인생을 살 때 씨알로서 주 체적이고 전체적으로 살아야겠습니다. 썩어질 것을 향해서가 아니라 영원한 생명을 창조적으로 구하는 삶을 살아가고 싶습니다. 조한아 | 몸과 마음을 낮추고 닦는 시기, 매일 저녁 앞치마를 두르고 마을밥상을 지키며 마을사람들에게 밝은 웃음을 선사하고 다시 살아갈 기운을 얻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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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태건축

“꼬끼오” 동이 텄다고 알려주는 닭 울음소리에 잠을 깹니다. 따끈한 온돌 방바닥에 등허리를 붙이고 있 으면 이불에서 나오기가 싫지만, 간밤에 참았던 소변을 해결하기 위해서라도 이부자리를 정리하고 하얗 게 서리가 내린 길을 따라 밥상으로 향합니다. 오늘 아침에는 학교 선생님들과 학생들이 함께 둘러앉아 따뜻한 콩죽 두 그릇을 말끔히 비웠습니다. 밥상에서는 지난 밤 꿈속에서 겪은 기상천외한 이야기를 나 누기도 하고, 학생들이 직접 기획하고 있는 연말 졸업식이 어떻게 준비되고 있는지 물어보기도 합니다. 올해 10월 말 다니던 직장을 정리하고 홍천마을로 이사 왔습니다. 서울에서 직장생활을 하면서 시간이 허락하는 대로 휴가를 내어서 오곤 했습니다. 그때는 생태건축연구소 흙손이 정확한 치수로 나무를 자르 고 건물을 하나씩 지어가는 것이 신기했습니다. 나도 자연과 호흡하며 삶의 터전에 적합한 아름다운 건 축에 보탬이 되고 싶은 마음이 들기 시작했습니다. 흙손이 집을 지을 때 용접이 필요할 때도 있어서 직장 다니는 틈틈이 용접기술도 배워두었습니다. 지금은 큰 톱날과 날카로운 소리를 가진, 그래서 조심스러운 마음을 가지게 했던 각도톱도 익숙해지고 긴 나무를 밀리미터(mm) 단위로 정확하게 자르는 것도 익혀가고 있습니다. 또 집 지을 때 기초를 어떻게 해야 하는지, 나무로 벽체를 세울 때 어떻게 조립해야 하는지 일하면서 배우니 즐겁습니다. 기초를 놓을 때는 삽질과 곡괭이질 등으로 몸이 조금 피곤했는데, 나무로 하는 일은 보다 재미있기도 하고 육체적으 로 힘이 덜 들기도 합니다. 언젠가 저의 손으로 친구들과 함께 살아갈 집도 짓고 싶다는 마음도 생깁니다. 때론 몸이 버거울 때도 있습니다. 땅을 파거나 무거운 흙을 옮기는 일을 하는 날에는 저녁 여덟 시만 되 면 바로 잠이 들고 싶어집니다. 몸을 움직여 노동하는 것에 익숙하지 않은 탓입니다. 저만 힘든 것은 아니 겠죠. 그래서 흙손 동료들은 서로를 살피며 무리가 되지 않고 한 사람이 계속 힘든 일만 하지 않도록 합니 다. 곡괭이질을 열 번씩 순서대로 돌아가며 놀이처럼 일하기도 하고, 삽질을 하던 사람이 지쳐 보이면 서 로서로 삽을 나누어 들기도 합니다. 그런 마음 씀씀이가 일할 때 느끼는 가장 큰 즐거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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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천마을 친구들과 밭을 개간하고 밀을 심었습니다. 추운 겨울에도 푸른 잎을 내밀어준 잎사귀를 보면 저도 푸르게 살고 싶은 마음이 생깁니다.

그렇게 일하다가 다 같이 쉬고 싶다 싶으면 어느새 참시간이 되어 있습니다. 참은 요일별로 돌아가며 준비하는데, 한숨 돌리면서 필요한 이야기를 나누기도 하며 다시 힘을 모아 일할 수 있게 해줍니다. 그러 다보면 점심식사, 또 저녁식사 시간이 되어 있습니다. 하루 마무리는 뜨거운 물로 샤워를 하며 몸을 녹이 는 시간입니다. 피로와 추위도 모두 하수관으로 흐르는 물과 함께 흘러가는 것 같은 그 순간이 참 행복합 니다. 농촌에서의 일상은 도시의 삶보다는 훨씬 단순합니다. 특별히 다른 것에 시간과 관심을 빼앗길 일이 없 습니다. 도시에서 저는 일터에서 받는 스트레스로 어려움을 느끼며 앞으로의 진로에 대한 고민이 끊이지 않고 이어졌습니다. 광고로 인해 불필요한 물건에 소비욕구를 느끼며 갈등을 하기도 했고, 자극적인 인 터넷 영상에 많은 영향을 받으며 살았던 것 같습니다. 제겐 짐이었던 영향으로부터 해방되어 생명을 생 각하며 몸 써서 일하는 지금이 참 즐겁습니다. 지금까지 익숙한 삶과 편안함에 안주하지 않고, 즐겁게 꿈꾸며 설렘과 기대 속에 새로운 지역으로 이사 해 필요한 모든 것을 만들어가는 홍천마을 친구들의 가벼운 발걸음이 제겐 큰 용기가 되었습니다. 세상 이 만들어내는 불안에 지배당하지 않고 생각하고 공부한 대로 사는 당당함이 저뿐만 아니라 함께 지내는 친구들에게 새로움을 경험하게 하는 힘이 된 것 같습니다. 12월 추위에 땀 흘리기보다는 흐르는 콧물을 장갑의 손등으로 훔치며 일한 지 이제 두 달이 되어갑니다. 아직은 엉뚱한 곳에 못을 박아 없던 일도 크게 만들고 나무를 잘못 잘라 다시 자르기도 하지만, 오순도순 밥상을 마주하고, 별이 쏟아지는 아름다운 밤하늘이 있는 곳에서 잠드는 호화로운 생활을 합니다. “구슬 땀 흘리며 노동하는 삶을 응원한다.” 서울 인수마을에서 함께 살던 친구에게 엽서와 선물을 받았습니다. 고맙고 즐거운 마음이 듦과 동시에, 제게 해준 격려가 허망하지 않게 말 한대로 잘 지내야겠다는 책임으 로 마음 한 곳을 여미게 됩니다. 조원호 | 살아가는 이야기를 직접 노래로 지어서 부르는 것과 자전거 수리하는 것도 좋아하는 청년입니다. 서울에서 NGO에서 일하다가 올해 10월 홍천마을로 이사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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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을학교

“선생님, 이리 와보세요.”, “이것도 보세요.” 학교에 들어서면 아이들은 풀과 열매들을 보여주거나 자신들

이 노는 공간으로 저를 초대합니다. 풀꽃과 흙으로 지은 밥, 뒤뜰에 만든 집…. 아름다운마을초등학교를 둘 러싼 숲 속에는 아이들이 놀던 흔적이 가득하지요. 그냥 두어도 신나게 노는 아이들이지만, 수업을 통해 제 대로 맘껏 뛰놀며 배우는 ‘몸놀이’ 시간이 있습니다. 중학교에서 학생들을 만나는 공교육 교사로 일하다가 지난해 가을 첫 아이를 낳고 육아휴직을 했습니다. 아이를 키우며 감사하고 행복한 나날도 많았지만 가끔씩 육아에 지쳐 힘들 때도 있었습니다. 그런 시기에 마을초등학교 몸놀이 수업 자원교사로 아이들과 만나는 행운을 얻었습니다. 새로운 곳에서 새로운 아이들 과 만나는 설렘도 컸지만 ‘내가 과연 잘할 수 있을까’하는 생각에 두려웠습니다. 평소 몸을 잘 쓰지 않고 잘 놀 줄 모르는 저였기에 주저하는 마음도 생겼고, 수업하는 동안 아이는 어떻게 해야 하나 하는 고민도 있 었지요. 하지만 마을에서 함께 자녀를 키우는 벗들이 있기에 용기를 내어 수업을 맡기로 했습니다. 제가 수업하는 날이 되면 딸 아람이는 또래친구 시원이네 집에서 세 시간을 보내고, 또 다른 날에는 시원이가 저희 집으로 옵니다. 육아품앗이를 처음 시작했는데 이를 통해 아이를 함께 키우는 기쁨을 느낄 수 있어 참 감사했습니 다. 아이에게도 마을 이모를 엄마처럼 여기고 또래 친구와 관계 맺으며 놀 수 있는 시간이 소중한 경험이 되 었으리라 생각합니다. ‘아이들에게는 놀이가 밥이다’라는 말처럼 아이들은 놀이를 통해 자라고 행복해하는 걸 느낍니다. 수업 을 진행하며 저 또한 아이들과 신나게 ‘얼음땡’이나 ‘다방구’를 하면서 그 때마다 동심의 세계로 돌아 간 듯 즐거웠습니다. 그리고 아이들이 직접 만들어낸 놀이에 대한 설명을 듣고서 창의력 넘치는 발상에 감 탄할 때도 있었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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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을학교

가끔씩 놀이 중에 마음이 힘들어 울거나 속상해하는 아이들이 생길 때면 즐거웠던 수업시간이 아슬아슬 위 태로워집니다. 아이들의 놀이 상황을 공정하게 살피려고 노력하지만 때로는 아이들의 눈이 더 정확해 문제 를 제기하는 상황이 벌어지기도 하지요. 서로 이야기를 듣고 마음을 헤아려 화해를 이끌어내기까지 많은 시 간이 걸릴 때도 있습니다. 그럴 때 문제 상황을 해결해가며 선생님과 아이들 모두 마음이 자랄 수 있다는 걸 배웠습니다. 그 시간이 아무리 오래 걸려도, 그런 소통의 과정 자체가 중요한 공부임을 깨닫습니다. 아이들 도 예의 갖추어 의사를 표현하는 방법과 다함께 즐겁게 놀기 위한 마음가짐을 배워갑니다. 일곱 살부터 아홉 살까지 열다섯 명의 아이들을 몸과 마음으로 만나며 저는 많은 것을 배울 수 있었습니다. 정해진 교과지식을 전달하는 수업에 익숙했던 제가 다양한 몸놀이 수업을 구상하며 사고의 유연함을 기를 수 있었고, 함께 수업을 진행하는 선생님 이 계셨던 덕분에 서로의 부족함을 채워가며 더욱 세심하게 아이 들을 살필 수 있어 좋았습니다. 공교육 현장에서는 함께 수업을 한다는 것 자체를 상상하기 쉽지 않은데, 다른 선생님과 서로 의 논하고 조율하며 수업을 만들어가는 과정이 제게는 낯설면서도 흥미로웠습니다. 또한 다양한 연령이 섞여있는 아이들을 함께 만나 수업하는 새로움도 경험할 수 있었습니다. 두꺼비집 짓기, 실뜨기, 비석치기 같은 전래놀이나 이어달리기, 변형발야구 등 놀이마다 재능을 보이는 아이들이 다른 것이 재미 있습니다. 그리고 형님, 동생, 친구들이 어우러져 놀기 때문에 전 략을 세워 서로에게 귀띔해주기도 하고 잘할 수 있도록 격려하고 응원하는 모습을 보며 절로 흐뭇해집니다. 우리 전통 탈춤의 하 나인 ‘봉산탈춤’을 여러 시간에 걸쳐 배우면서 신명나게 춤을 추 기도 했습니다. “덩~딱기 덩~딱 얼쑤” 장단에 맞춰 탈춤을 배울 때 자기 차례가 아닌데도 옆에 나와 같이 따라 추며 연습하며 의 욕을 보이는 아이들도 기특했습니다. 그동안의 만남으로 가까워졌다고, 저에게 자신들의 소소한 일 상을 들려주거나 풀꽃, 열매, 낙엽 등을 선물로 손에 쥐어줄 때마 다 큰 감동을 받습니다. 몸놀이 수업을 하며 저도 몸과 마음을 펼 수 있었고, 생기를 얻을 수 있었습니다. 수업에서 아이들의 소중 한 마음을 받아 안고 집으로 돌아오면 다시 제 아이를 잘 만날 수 있는 새로운 힘을 얻습니다. 육아에만 매몰되어 내 아이만 바라 보지 않고 마을 안에서 더불어 자라는 아이들을 만날 수 있다는 것이 얼마나 다행인지요. 내년에 복직해 학교 현장으로 돌아가 면 이 시간을 통해 배우고 깨달은 것들을 잘 기억하면서 학생들 의 몸과 마음을 살필 수 있는 선생으로 살고 싶습니다. 서진영 | 의정부에 있는 중학교에서 과학을 가르치는 교사로 지내다가 지금은 육아를 하며 함께 살아가는 마을 친구들을 통해 새로운 삶을 경험하고 있습니다. 아름다운마을신문 2013 12 43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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空과 共

생협 잡지에 재활용에 관한 원고 한 꼭지를 청탁받고, ‘재활용’이 자기만족을 위한 상징행위로 다루 어지지 않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더 이상 지구가 감당할 수 없을 정도로 버려지고 있는 쓰레기에 대 한 성찰이 없으면, 끊임없이 소비를 부추기는 도시문명에서 세련되게 포장된 또 하나의 상품에 그칠 위험이 있기 때문이다. 재활용은 사람과 사람, 자연과 사람이 더불어 살아가는 삶을 기반으로 실천할 때 비로소 그 진가가 있지 않을까 생각해본다. 우리 사회에서 엄청난 자본이 몰리는 유아복·완구시장을 보면 마치 ‘소비가 최선의 육아’가 된 것 같다. 그렇지만 마을공동체에서 자라는 아이들을 보면서, 유해한 화학물질 투성인 새 제품보다, 언니 오빠 흔적이 배인 옷이 아이들에게 더 값진 선물이라는 것을 절감한다. 마을에서 축하할 일이 있을 때 선물은 꼭 새것이어야 한다는 관념도 바뀐다. 자기가 갖고 있던 물건 중 좋은 걸 골라서 “이 선물로 말 하자면…” 늘어놓는 생색으로 축하자리는 한층 정겨워진다. 마을에서 물건이 서로 통용되고 계속 순 환되는 일상이 있기에, 내가 소유한 건, 잠시 나를 거쳐 가는 것, 내가 소중히 관리하는 것이라는 마음 도 깃든다. 임신을 하고서 꿈 때문에 밤잠을 설치는 날이 많아졌을 때 나는 어떻게 편히 잠을 청할까 궁리하다가 귀여운 아기 양말과 꼬까신을 자는 방 벽에 걸어놓았다. 이웃들에 잉태 소식을 알리자 아기 키우는 가 정들에서 조용히 건네준, 출산육아물품 보따리 속에 들어있던 것이다. 누군가 손바느질로 만들어서 썼던 속싸개며, 젖 얼룩이 물든 수유복, 수십 번은 더 삶았을 천기저귀, 여러 아기들 입을 거쳐 온 딸 랑이 등이 가득 담긴 고마운 보따리를 풀어보며 임신기간을 쇼핑으로 허비하지 않고 차분히 배 속 생 명과 교감하며 지낼 수 있었다. 육아에 도움이 되는 책과 정보도 물려받았는데, 그보다 앞선 부모들의 삶의 자세를 더 깊이 새길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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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을에서 비슷한 시기에 임신·출산·육 아 과정을 통과하고 있는 여성들과 모여앉 아 아기옷을 나누는 것도 즐거웠다. 지금도 종종 마을밥상에서 볼 수 있��� 풍경이다. 물 려받은 옷들을 모아놓고 누군 파스텔톤이 어울린다, 누군 빨간 옷이 잘 맞는다, 누군 배가 볼록하니까 허리춤이 넉넉해야 한다, 좀 더 자라면 이런 게 요긴할 것이라며 서로 필요한 옷을 골라주기도 하고, 이미 갖고 있 는 옷이 많다고 좀 덜 가져가기도 하고, ‘우

마을에서 물려받은 출산육아용품을 나누면서 이야기꽃을 피운다.

리의 아이들’에게 적절한 옷이 골고루 돌아 가도록 이야기꽃이 활짝 핀다. 굳이 말하자 면 아직 어린아이보다 엄마의 선택이지만, 그것도 나쁘지 않다. 맘에 드는 옷을 가져야 묵히지 않고 실컷 입힐 수 있으니까. 더불어 사는 마을을 전제로 한 자원 순환

마을 아이들은 철이 바뀔 때마다 옷을 물 려 입는 옷 잔치를 한다. 위의, 그 위의, 더 위의 형님들 옷부터 줄줄이 내려온다. 마을

얼마 전 마을에서 열린 중고장터 풍경.

어린이집과 마을초등학교에서 옷 잔치하는 날에 맞춰 집집마다 장롱에서 작아진 옷들 을 정리하여 새로운 임자를 찾아 보낸다. 아이들 자라는 속도가 워낙 빠르니 몇 번 입지 않은 옷들도 있 고, 10년 가까이 내려오는 옷들도 있다. 형님들만큼 자라는 게 뿌듯한지 아이들도 자기 옷이 어떤 언니 나 오빠가 입었던 옷인가 확인하곤 한다. 마을어린이집에 다니고 있는 네 살배기 딸아이는 얼마 전 옷 잔치에서 받아온 치마를 벗을 줄 모르고 몇 바퀴를 돈다. 옷을 스스로 고르고 싶어지기 시작한 나이, 그동안 입어보지 않던 모양새를 손수 골라 온 게 그리도 맘에 드나보다. 머리보다 두 팔을 먼저 넣어서 입을 수도 있다며 자신있게 보여준다. 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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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가 신던 신발도 작아진 참이었는데, 평소 애들 차림을 잘 아는 선생님들이 마침맞게 챙겨주셨다. 든든 한 마음이 깃든다. 아이에게 어떤 비싼 걸 사줘도 아깝지 않을 부모 마음을 자극하면서 육아용품 시장은 무섭게 빠른 속도 로 소위 ‘신상’을 내놓는다. 다른 누군가 새걸 갖고 있으면 금세 그게 부러워지고 시기하는 마음이 작동하 기도 한다. 아무 것도 아닌 물건 하나로 관계에 틈을 낼 수 있을 만큼 소비문명의 위력은 큰 것이다. 재활 용보다 더 중요한 것은 함께 살아가는 서로에 대한 예의와 염치이다. 마음을 투명하게 나누면서 제 삶을 초라하게 만들지 않도록 돌아보게 된다. 버려지는 것도 다시 살리는 농생활

공동체 나눔터는 마을에 있는 물건이 필요한 이에게 갈 수 있도록 해주는 공간이다. 마을사람들은 필요 한 물건이 있으면 바로 인터넷쇼핑몰을 클릭하지 않고 우선 공동체 온라인카페 게시판에 글을 올린다. 이런 것도 있을까 싶지만 수소문해보면 마을 어딘가에서 꼭 나온다. 집 한 켠에서 잠자던 물건이 유용하 게 사용된다니 기꺼이 나누겠다는 댓글이 달린다. 빌린 것이지만 충분히 쓸 수 있고, 받은 것이어도 언제 든 내가 안 쓰게 되면 또 다른 이에게 돌아갈 수도 있다. 공동체 나눔터가 있기에 이사를 하거나 집을 정 리할 때마다 자신이 과하게 사유화하고 집착하는 건 뭔지, 손쉽게 버리기 전에 다시 쓸 수 없을까 살펴보 게 된다. 길거리에 멀쩡한 가구들이 버려지고 또 수거되기까지 비에 젖고 방치되는 모습을 종종 본다. 가구도 유 행을 타서 예전에 신혼집 필수품이던 텔레비전 장식장이 이제 벽걸이텔레비전 때문인지 줄줄이 길거리 에 나앉는다. 그걸 다시 쓰려면 수리, 유통을 거쳐 또 많은 비용이 발생할 것이다. 재활용산업으로 인해 쓰레기가 줄어들 것이라고 생각하면 오산이다. 재활용산업으로 인해 오히려 쓰레기와 소비에 대해 무감 각해지는 것 같다. 지구에 쓰레기 하나 덜어내는 마음으로 살아가는 것, 그게 ‘재활용’이 시작된 유래가 아니었을까? 흙과 돌, 나무로 집을 짓고 있는 생태건축연구소 흙손 구자욱 님도, ‘지구에 해가 덜 되는 공법과 재료’를 기준 으로 삼는다고 말한다. 홍천마을에서는 쓰레기마저 일상적으로 재활용했던 옛 사람들의 지혜를 우리 몸 에 맞게 복원하려고 애쓴다. 생태뒷간에서는 똥오줌을 모으고, 밥상부산물을 모아서 밭거름으로 쓴다. 인수동에서도 마을밥상과 집집마다 밥상부산물을 한 데 모아서 매주 홍천마을로 보낸다. 농도상생마을 은 도시에서의 자원 순환을 넘어 밥이 똥이 되고 똥이 흙으로 돌아가 다시 밥상에 오르는 생명 순환의 가 치를 몸으로 배우게 해준다. 최소란 | 날마다 아이와 새 아침을 맞이할 수 있어서, 아침마다 북한산 인수봉 표정을 바라보며 출근할 수 있어서 감사한 사람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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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 그림 김경희 | 육아와 살림 현장에서 농(農)과 식(食)에 대한 관심을 싹틔우며 재미나게 살고 있어요.

아름다운마을신문 2013 12 43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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함께 산다는 것

무엇보다 간편해서 좋았다. 전자레인지에 한 오분 돌려 전기밥솥에서 뜬 밥에 얹어주기만 하면 한 끼 준비 끝. 먹고 설거지까지 30분이면 뚝딱 해치울 수 있으니. 30분가량은 아껴 ‘자기계발’을 위해 사용할 수 있었다. 일분일초가 아까운 도시 자취생이었던 나에게 끼니는 때워야 하는 것일 뿐, 밥상 을, 몸을 생각할 겨를이 없었다. 몸에 좋다는 된장은 또 그렇게 싫어했다. 그 식감이, 맛이. 먹고나 면 콤콤한 냄새가 배는 된장, 맘에 드는 구석이 없었다. 요리는 고사하고 된장으로 소문난 식당에서 도 김치찌개를 시키곤 했던 나. 몸에 좋다고들 하지만 된장은 내 입엔, 내 장엔 안 받는 음식이라고 생각던 나. 인스턴트식품을 즐기고 된장은 냄새조차 싫어하던 내가 어쩌다 된장요리 즐기는 ‘된장 남’이 되었을까? 밥상보다 ‘끼니’였던 도시자취생에서

삶에서감사가넘치던형들넷과‘아궁이’라고이름지은공동체방에서생활하며자연스레‘밥상’을 새롭게 만나게 된 것 같다. 내가 형제방으로 이사해서 들어갔을 땐, 각자 퇴근시간이 달라서 저녁에 다같이 얼굴 보기가 어려운 구조적 한계를 극복하고자 매일 아침식사를 함께하는 것을 중요한 일과 로 설정한 시기였다. 돌아가면서 아침식사를 준비했는데, 한 형이 된장국을 끓이는 걸 즐기셨다. 그 리고, 맛있었다. 신기하게 먹을 만했다. 감자 넣고 끓인 된장, 해물된장, 야채가 듬뿍 들어간 된장 등 종류도 다양했다. ‘어라, 된장이 이렇게 깔끔한 맛이었나?’ ‘텁텁한 게 아니라 구수한 것이었군!’ 자주 맛있게 먹으며 된장에 대한 잘못된 관념을 바꿔갔다. 된장과 극적 화해를 넘어 로맨스로 이끈 건 요리였다. 된장과 새롭게 만나던 그날이 생생하다. 육수를 우린 물이 적당히 끓어 감자, 시금치, 파 송송 썰어넣고 된 장을 넣었다. 뚜껑을 덮고 한소끔 끓인 뒤 맛을 보려고 한 숟갈 떠서 혀에 적셨다. ‘어, 이 맛이 아닌 데?’ 당황하여 소금, 국간장 등 맛을 낼 수 있는 것은 다 넣었다. 하지만 역시 아니었다. ‘왜 녀석이 맛 을 못 낼까?’ 국냄비를 찬찬히 들여다보았다. 아니, 된장 한 덩이가 시금치 밑에 다소곳이 숨어 있는 것이 아닌가? 어찌나 반갑던지! 된장을 잘 풀어준 뒤 푹 끓이니 구수한 된장 맛이 났다. 나도 이런 맛 을 낼 수 있구나 싶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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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로를 위해 맛깔나게 밥상을 차려주는 형들 덕분에 무뎌졌던 미각을 깨우고 함께 사는 맛을 알아간다.

함께 사는 맛을 발견하다

괜찮은 장만 있으면 실패확률이 적은 음식이기에 된장과의 만남은 자연스레 잦아졌다. 시간이 좀 걸 리는 것이 흠이긴 하지만, 그 깊은 맛을 단번에 구현해주다니, 구원투수와 같은 중요한 녀석이었다. 보기도 먹기도 싫어 안 넣었으면 했던 멸치와 다시마가 육수계의 특급 투톱이었다니. 다 차려진 밥상 을 아무 생각 없이 받기만 할 땐 몰랐던 것들이다. 과정을 몸으로 이해하며 음식이 혀에 닿을 때의 미 각도 더 섬세해졌다. 이건 후추를 좀 쳤군, 진간장인가, 황태를 넣었나, 바지락 맛인데, 복잡하게 통합 된 맛 속에서 세밀한 각자의 맛들을 선별해낼 수 있게 되었다. 다채롭게 펼쳐진 맛들과 하나씩 인사하 며 음미하는 느낌이었다. 독특하던 각자의 맛이 엉키고 혼합되어 새로운 맛을 창조하는 게 새삼 놀랍 게 다가오기도 했다. 미각과 더불어 ‘함께 사는 맛’도 새롭게 깨달아간다. 아침 일찍부터 공동체방 식구들을 생각하며 정 성껏 된장 풀던 형들의 구수한 뒷모습. 그 뒷모습을 통해 된장에 대한 애정과 살림에 대한 호기심이 생 겼으리라. 혼자 살았다면, 삼분요리를 끼고 살았다면, 버튼 하나로 지폐 한 장으로 차린 밥상만 받아먹 으며 지냈다면 느끼지 못했을 ‘맛’이다. 이제 자신 있는 요리가 뭐냐 라는 질문에 ‘된장국’이라고 대답 하게 된다. 된장 한 덩이 냉장고에 있으면 든든하다. 된장에 대한 놀라운 인식의 변화다. 이런 변화를 체험하며 개인의 인식의 오류는, 함께 할 때 더 충일하게 극복됨을 느끼게 된다. 된장 한 스푼 정성 없 이 풍덩 넣는 것이 아니라 밥상 함께 나눌 형들 생각하며 한콩한콩 정성껏 푸는 뒷모습, 이제 제가 보 여드릴께요. 김승권 | 사회에 대한 여러 질문과 새로운 꿈을 품고 사는 직장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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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름다운마을> 43호 (<The Areumdaun Maeul> 43th issu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