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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SSUE

뭉크와 입센의 도시

오슬로 예술 기행

June 24~25, 2012. no.276. sunday.joongang.co.kr


CONTENTS THIS WEEKS PEOPLE

editor’s letter

06

베르디 국제 콩쿠르 휩쓴 한국인

ISSUE

꿈같은 소리?

08

뭉크와 입센의 도시 오슬로 예술 기행

큰애는 학원 가고 둘째와 애엄마는 친구 들과 놀러간 지난 일요일. 오랜만에 맞는

ART

느긋함을 뒹굴뒹굴 즐기고 있다가 책을 펼

14

러시아 내셔널 오케스트라 내한공연

BOOK

쳤습니다. 시간 날 때 읽겠다고 챙겨둔 제 러미 리프킨(67)의 『3차 산업혁명』이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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습니다. 침대에 엎드려 있던 저는 어느새

숨은 책 찾기 <10> 바다출판사『바벨의 도서관 작품 해제집』

INTERVIEW

책상 앞에 앉아 있었습니다. 잘 알다시피 그는 미국의 세계적인 미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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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센의 ‘유령’을 위한 뭉크의 콘셉트 아트

재일 한국인 3세 연출가 정의신

학자입니다. 에너지 낭비를 경고한 『엔트 로피 법칙』, 정보화시대의 사회를 내다본

GALLERY

22

『소유의 종말』, 수소연료 시대를 예견한

‘볼펜 화가’ 이일의 개인전

『수소 경제』등을 썼죠. 그런 주장의 ‘실전

FOOD

편’이 이 책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습

24

니다.

주영욱의 도전! 선데이 쿠킹 <5> 브런치

HOUSE

그의 주장을 요약하면 이렇습니다. 석유

26

같은 화석연료의 시대는 끝났다→태양열·

최명철의 집을 생각하다 <5> 맞춤형 소형 주택

풍력·수력·지열 등을 활용해야 한다→모 든 건물이 이 같은 재생에너지를 만들어

COLLECTOR

28

낼 수 있도록 발전소화해야 한다→그렇게

원로 시인 이근배의 벼루

만든 에너지를 수소연료 등의 방법으로 저

COLUMN

31

연극 ‘봄의 노래는 바다에 흐르고’

컬처#: 울랄라세션이 사는 법

장해야 한다→인터넷과 소셜네트워크 같 은 기술을 활용해 저장 에너지를 국제적으

SOUL-SEARCHING

로 사고 팔며 공유할 수 있게 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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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의 주장에서 ‘생존의 문제’라는 절박함

박정태의 고전 속 불멸의 문장과 작가 <15> 『군주론』과 마키아벨리

CARTOON

을 느꼈습니다. 그리고 궁금해졌습니다. 모 든 건물의 발전소화 같은 것이 현실적으로

33

얼마나 가능한 것인지, 문제는 무엇이고 어

김재훈의 문화 캐리커처 VS

떻게 하면 풀 수 있는지 말입니다. CONTE

34

그리고 또 궁금해졌습니다. 꿈같은 소리라

김상득의 인생은 즐거워

고 코웃음치는 대신 작은 실마리에서라도

PHOTO ESSAY

가능성을 찾아내려는 누군가가 우리에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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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연 있는지. 이론을 현실로 바꿀 열정이

이창수의 지리산에 사는 즐거움

필요한 더운 여름날입니다. 일본의 맞춤형 소형 주택

원로 시인 이근배의 벼루

S MAGAZINE 표지 오슬로 국립미술관 뭉크 전시실에 있는 ‘다리 위의 소녀들’, 사진 노르웨이 관광청

문화에디터 정형모 취재 홍주희 유주현 사진 조용철 최정동 편집 우현아 교열 한규희 디자인 전유진 최귀연 통신원 이지윤(런던) 최선희(파리) 김성희(밀라노) 강희경(뉴욕) 박철희(베이징) 광고 김진영 구명서 엄태규 마케팅 박유선 이용임 박유림 기사제보 02-751-9000, 080-023-5002 구독신청 1588-3600, 080-023-5001 광고문의 02-751-5555 / Fax 02-751-5806

04 SUNDAY MAGAZINE

정형모 문화에디터 hyung@joongang.co.kr


THIS WEEK PEOPLE

심사위원장이 기립박수 최연소 우승 김정훈과 유럽파 김주택·윤승환 베르디 성악콩쿠르 석권한 한국인 삼총사

2012년 ‘베르디의 목소리(Voci Verdiane)’는 한국 젊은이들의 독차지였다. 베르디의 고향 부세토(Busseto)에서 17일 막을 내린 ‘베르디 국제성악콩쿠르’에서 한국인 성악가 들이 나란히 1, 2, 3위를 차지했다. 1971년 테너 호세 카레라스가 1위를 수상하는 등 가장 권위 있는 성 악 콩쿠르로 꼽히는 대회다. 특히 올해는 콩쿠르 50주년일 뿐만 아니라 주세페 베르디(1813∼1901) 탄 생 200주년을 앞둔 뜻깊은 해이기도 했다. 테너 김정훈(24·서울대 성악4)씨는 심사위원장을 맡은 바리톤 레오 누치로부터 “어떻게 스물네 살이 이렇게 노래를 부를 수 있느냐”는 극찬을 받으며 1위를 수상했다. 역대 최연소 남성 우승자이며 1963년 이후 최초의 테너 1위 수상자다. 또 바리톤 김주택(26)씨가 2위, 테너 윤승환(34)씨가 3위를 차 지했다. 김주택씨는 선화예고 3학년 때 밀라노로 유학해 밀라노 콘세르바토리오 주세페 베르디의 예 술가곡반을 심사위원 최고 점수로 졸업하고 유럽에서 활동 중이다. 2011년 정명훈이 설립한 문화재단 MOM(미라클 오브 뮤직)에서 남자 성악가로 선발됐다. 윤승환씨 역시 이탈리아 노바라에서 거주하 며 활동하고 있다. “먼저 호명한 2, 3위가 한국인이라 100% 떨어진 줄 알았다”는 김정훈씨는 늦깎이로 성악을 시작했 다. 고등학교 3학년 때에야 진로를 정했고, 중앙대·경희대를 거쳐 서울대에 입학하기까지 대입을 수차 례 치렀다. 돌고 돌아간 길이었지만 2009년 입학 후엔 바로 두각을 나타냈다. 어머니와 이모가 성악을 전공한 가족 분위기, 오랜 성가대 활동 등으로 음악을 가까이 접했던 덕이란다. 올해 3월 중앙음악콩쿠르에서도 남자 성악 1위를 차지했던 그는 “무대에 많이 서는 만큼 실력도 는 다고 생각한다”며 콩쿠르 참가의 의미를 설명했다. 그가 콩쿠르에서 부른 곡은 베르디의 오페라 ‘일 트로바토레’의 ‘저 타는 불꽃을 보라’와 ‘가면무도회’에 나오는 ‘영원히 그대를 잊을지라도’. 특히 예 선에서 부른 ‘저 타는 불꽃을 보라’는 테너 곡 중에도 난이도 높기로 유명한 노래다. “이탈리아어를 못 하는 나이 어린 한국 사람이니까 노래로 충격을 주자”며 선택했다고 한다. 하루 10시간씩 자신의 노래 를 녹음해 들으면서 연습한 끝에 심사위원장의 기립박수를 받았다. 콩쿠르에서는 좀처럼 생기지 않는 일은 그에게 “소름끼칠 만큼 짜릿한” 순간이 됐다. 그가 가장 좋아하는 가수는 파바로티다. “타고난 목소리에 노력으로 테크닉까지 더해 완벽한 목소 리를 만들어 낸 사람이기 때문”이란다. 그는 “어려서 운동을 한 덕인지 악기(몸통)가 크고 튼튼하다는 소리를 듣는다”며 “공부하면서 소리의 퀄리티까지 만들어 파바로티처럼 완벽하게 노래하는 게 꿈”이 라고 말했다. 이들 셋은 19일 오후 9시 바이올린의 도시 크레모나 시청 안뜰에 마련된 무대에 차례로 올랐다. 콩 쿠르 수상자들이 베르디의 아리아를 부르는 페스티벌의 첫 프로그램이었다. 윤승환씨의 첫 곡에 감 명받은 사회자는 “3위가 이 정도인데 1, 2위는 어떨지 궁금하다”며 흥분을 감추지 않았다. 멋진 저음 의 김주택씨에 이어 김정훈씨의 우렁찬 목소리에 관중은 “코레아니 최고다! 굉장하다!”라며 한국의 세 젊은이에게 아낌없는 찬사를 보냈다. 크레모나(이탈리아) 글·사진 김성희 중앙SUNDAY 매거진 유럽 통신원 06 SUNDAY MAGAZINE

크레모나 공연을 마치고 함께 자리한 김정훈·윤승환·김주택씨 (사진 왼쪽부터).


ISSUE

노르웨이 왕궁과 오슬로 전경 @Nancy Bundt / www.visitnorway.com

08 SUNDAY MAGAZINE


ISSUE

뭉크

입센

인간의 삶과 밀착된 예술 도시, 오슬로

뭉크의 절규, 입센의 유령 거장의 발자취를 따라 걷다 지난달 ‘절규’가 미술 경매 사상 최고가(1억1992만 달러·약 1353억 원)에 낙찰되면서 또 한번 화제가 된 근대미술의 거장 에드바르 뭉크 (1863~1944). 그의 고국인 노르웨이 수도 오슬로는 내년 탄생 150주년 을 맞아 대규모 전시를 기획 중이다. ‘절규’의 네가지 회화 버전 중 지난 달 팔린 개인 소장품을 제외한 3점이 이곳 국립미술관과 뭉크미술관에 있다. 또한 이곳은 뭉크와 깊은 인연을 가진 대(大)극작가 헨리크 입센 (1828~1906)의 도시이기도 하다. 그의 아파트를 개조한 박물관, 그가 매일 찾았던 카페, 그의 연극이 개관작이었던 국립극장 등 그의 흔적은 곳곳에 남아 있다. 노벨 평화상의 도시로 흔히 알려진 오슬로는 한 조각 가가 20년의 노동과 영혼을 바쳐 만든 거대한 비겔란 조각공원과 노르 웨이의 동시대 디자인 철학을 보여주는 새 오페라하우스까지, 날카로운 지성과 섬세한 감각의 예술인들이 발자취를 남긴 도시이기도 하다. 그 자취를 따라 걸었다. 오슬로 글·사진 문소영 코리아 중앙데일리 기자 symoon@joongang.co.kr, 사진 노르웨이관광청 SUNDAY MAGAZINE 09


ISSUE 뭉크의 그림 속 오슬로의 중심 번화가 칼 요 한스(Karl Johans) 거리는 좀 섬뜩한 모습 이다. 저녁의 군청색 하늘 아래, 건물 창들에 비치는 창백하고 노르스름한 조명이 거리에 묘한 빛을 드리운다. 그림 정면을 향해 밀려오 는 군중의 얼굴들도 같은 색을 띠며 유령 같 은 광채를 낸다. 둥그렇게 뜬 그들의 눈은 텅 비어 있다. 그림과 다른 분위기, 칼 요한스 거리 실제는 어떨까. 오슬로 중앙역(Oslo S)에서 부터 노르웨이 왕궁(Slottet)을 향해 서쪽으 로 쭉 이어지는 칼 요한스 거리를 걸으며 받 은 인상은 뭉크의 ‘칼 요한스의 저녁’(1892) 과 사뭇 달랐다. 저녁의 조명은 여느 대도시 보다 절제돼 있어 그림에서처럼 환각적이고 불안한 느낌이 아니다. 사람이 밀려다닐 정도 로 많은 것도 아니어서 번화가치고는 조용하 고 한가롭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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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림 속 장소는 그림 오른쪽에 나오는 황갈색의 우아한 노르웨이 의회 건물인 그랜드호텔 (Grand Hotel)과 길 건너 대각선으로 마주하는 곳이다. 고풍스러운 시계탑이 있는 140년 역 사의 그랜드호텔은 매년 노벨 평화상 수상자가 머무르고 수상 축하 연회가 열리는 곳이다. 대 낮의 이 거리는 저녁 때보다 더 붐비지만, 뭉크의 그림 속 대도시 인파의 공허한 분주함을 느 끼기에는 한결 소박하고 평화로운 분위기다. 사람들의 표정도 여유롭다. 뭉크가 표현주의(Expressionism) 미술의 선구자임을 감안하면 이 차이는 이상하지 않 다. ‘칼 요한스의 저녁’이나 ‘절규’ 속 배경은 객관적 풍경이 아니라 그의 감정이 재창조한 것 이다. 그의 막연한 공포와 소외감에 따라 색채는 섬뜩한 빛을 띠고 형태는 뒤틀렸다. 그리고 이것이 뭉크만의 이상심리가 아니라 대다수 현대인의 내면에 잠재하는 심리이기에, 그리고 사회복지와 톨레랑스 정신으로 유명한 노르웨이인조차 예외는 아니기에, 지금 이 그림들이 2

그의 고국과 전 세계에서 사랑받는 것이리라. 입센이 사람 관찰하며 신문 읽던 그랜드 카페 뭉크가 칼 요한스 거리를 거닐며 인간 보편의 불안과 소외감을 더듬던 그때, 세계 문화사에 한 획을 그은 또 한 명의 노르웨이인이 그랜드호텔 1층 그랜드카페에 앉아 사람들을 관찰하 고 있었다. ‘인형의 집’(1879), ‘유령’(1881) 등으로 근대 사실주의 연극을 창시한 입센이다. 그 는 무려 27년간 외국에서 살다가 1891년 고국으로 돌아와 오슬로에 정착한 후, 자신의 아파트 에서 걸어서 10여 분 거리에 있는 그랜드카페를 10년간 거의 매일 찾았다. 장중한 분위기의 목 재로 꾸며진 카페 안에는 지금도 그가 늘 앉던 테이블이 보존돼 있고 그의 모자가 얹혀 있다. “입센은 매일 오전 9시에 서재에서 일을 시작해 11시 반이 되면 무조건 중단하고 그랜드카 페로 향했어요. 거기에서 사람들과 어울리지는 않고, 사람들을 관찰하면서 신문을 읽었죠. 특히 광고를 열심히 읽었답니다! 광고만큼 세상과 대중의 변화를 첨예하게 보여주는 게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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는 생각에서였죠.” 입센박물관(Ibsenmuseet)의 컨설턴트 베르글료트 게이스트의 말이다. 뭉크는 이런 입센의 모습을 그의 생전과 사후에 여러 차례 그렸다. 그중 한 그림을 보면 입 센은 칼 요한스 거리가 내다보이는 카페 창문을 배경으로 담배 연기에 휩싸인 채 신문을 들고 있다. 뭉크는 입센과 인연이 깊었다. 그는 이미 20대부터 입센의 희곡, 특히 ‘유령’을 읽으면서 영감을 받았다. 30대 초반에 가진 개인전에서 혹평을 받는 와중에 입센이 찾아오자 큰 용기 를 얻었다. 나중에 입센이 세상을 떠난 1906년에 뭉크는 독일에서 상연된 ‘유령’의 컨셉아트 를 맡아 여러 장의 그림을 남겼다. 입센은 오후 2시가 되면 어김없이 다시 집으로 향했다. 그의 아파트가 바로 지금의 입센박 물관이다.

10 SUNDAY MAGAZINE


ISSUE 1 ‘칼 요한스의 저녁’(1892), 에드바르 뭉크 작 2 오슬로 최대 번화가 칼 요한스 거리. 왼쪽은 그랜드카페, 오른쪽은 뭉크의 그림에 나오는 노르웨이 의회 건물

3 칼 요한스 거리에서 가까운 노르웨이 국립미술관. 뭉크 전시실로 유명하다. 4 ‘그랜드카페의 입센’(1908), 에드바르 뭉크 작 5 입센박물관, 헨리크 입센이 말년을 보낸 아파트를 개조했다. 6 입센의 서재. 창가 책상 왼쪽 벽에는 그의 아들의 작은 초상화가, 책상 오른쪽에는 훈장을 건 입센 자신의 초상화가 걸려 있다.

7 창가 책상에서 작품을 쓰고 있는 헨리크 입센

따라서 그랜드호텔에서 입센박물관으로 가는 길은 입센의 귀갓길을 따라가는 것이 된다. 칼 요한스 거리를 따라 계속 왕궁 쪽으로 걸어가면 오른쪽에 오슬로대학이, 왼쪽에 국립극장 (Nationaltheatret)이 마주 보는 곳에 도달한다. 모두 그리스 신전 같은 파사드를 지닌 신고 전주의 양식의 건물들이다. 이 국립극장이 1899년 처음 열었을 때 개막작 3편 중 하나가 입센 의 ‘민중의 적’(1882)이었다. 국립극장을 지나면 곧바로 녹음이 우거진 왕궁의 정원과 정면으로 마주친다. 여기서 왼쪽 으로, 다시 오른쪽으로 방향을 틀어 왕궁 정원의 경계를 따라가면 맞은편에 입센박물관이 나타난다. 박물관은 입센의 자필과 사진, 소지품 등 각종 자료를 소개하는 전시실과 입센 가 족이 10여 년간 살았던 아파트 방들로 구성돼 있다. 아파트의 인테리어는 입센과 부인 수산나가 실제 사용하던 가구들을 모아 살아있을 당시 와 거의 가깝게 복원했다. 입센이 오슬로에 돌아와 이 집을 샀을 때는 이미 성공한 60대 작가 4

였기 때문에 실내는 꽤 넓고 호화로웠다. 특히 붉은 벽의 거실과 푸른 벽의 만찬용 식당이 화 려하다. 하지만 정작 손님을 초대한 만찬이 열린 적은 한 번도 없었다고 게이스트는 말한다. “입센은 나이 들어 은둔자적 삶을 살았어요. 손님은 보통 집의 가장 바깥쪽에 있는 서재에 서 만나고 10∼15분 정도 지나면 내쫓다시피 했죠. 그의 원래 별명은 특유의 헤어스타일과 구 레나룻 때문에 ‘사자’였는데, 여기에다 비밀이 많다고 ‘스핑크스’라 불리기도 했어요. 사람들 은 창문을 통해서라도 이 스타 작가를 보려고 했죠. 그가 서재에서 일하는 모습은 창문으로 쉽게 볼 수 있었고 그도 그건 굳이 피하지 않았기 때문에, ‘창문 너머 서재의 사자’는 관광 명 물이 됐답니다.” 그 서재는 입센 아파트의 하이라이트다. 그가 일했던 창가 책상 왼쪽 벽에는 그가 자랑스럽 게 여긴 외아들 시구르의 초상화가 걸려 있다. 그리고 서재 문가에는 놀랍게도 그의 한평생 라이벌이었던 스웨덴 극작가 아우구스트 스트린드베리의 초상화가 걸려 있다. 더 놀라운 것 은 그 초상화를 입센 자신이 구입했다는 것이다. 입센은 그를 자신의 ‘네메시스’(그리스 신화 에서 오만에 대한 보복을 상징하는 여신)라고 부르며 “네메시스가 지켜보는 가운데 일을 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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필요가 있다”고 했다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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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 SUNDAY MAGAZINE 11


ISSUE 8 에드바르 뭉크의 대표 걸작 ‘절규(비명).’ 네 가지 회화 버전 중 가장 유명한 국립미술관 소장 버전이다. 9 다리 위의 소녀들’(1901), 에드바르 뭉크 작, 밤이라 달이 떠 있지만 하늘이 희뿌옇게 밝다. 여름의 노르웨이 특유의 백야를 배경으로 한 그림이다.

절규의 가장 유명한 버전이 소장된 국립 미술관 이제 뭉크를 찾아갈 차례다. ‘그랜드카페의 입센’을 포함해 뭉크의 그림 1200여 점이 소장 된 뭉크미술관(Munch-museet)은 칼 요한스 거리에서 동쪽으로 꽤 떨어진 곳에 있다. 그 런데 공교롭게도 새 전시 준비로 1주일간 닫혀 있는 상태. 그래서 대신 노르웨이 국립미술관 (Nasjonalgalleriet)의 뭉크 전시실로 향했다. 다시 오슬로 대학과 국립극장이 마주 보는 길 로 들어가 대학을 끼고 왼쪽으로 돌아서 한 블록 걸으면 바로 국립미술관이다. 이곳 뭉크 전시실은 비록 그림 수에선 뭉크미술관을 따르지 못하지만, ‘사춘기’(1894~95), ‘마돈나’(1894∼95), ‘삶의 춤’(1899∼1900) 등 중요한 대표작이 한자리에 모여 있다. 그중 백미 는 물론 1893년 작 ‘절규’다. 지난달 미술 경매 사상 최고가에 팔린 작품을 포함해 네 가지 버 전의 ‘절규’ 중에서 이 국립미술관 소장 작품이 가장 유명하다. 나머지 두 버전은 뭉크미술관 에 있는데 그중 하나는 2004년에 도난당했다가 2006년에 회수되면서 세상을 떠들썩하게 했 었다. 실물로 본 ‘절규’는 뭉크가 1892년 일기에 기록한 대로 “불타는 구름이 피와 칼과 같은 형 태로 짙은 푸른색의 피오르와 도시 위에 걸려 있는” 것을 묘사하고 있다. 무심한 친구들과 달 리 주인공은 “거대한, 무한한 비명이 자연을 꿰뚫는 것을” 홀로 느끼며, 자신의 몸 또한 관통 하는 그 비명을 휘둥그레 뜬 눈과 찢어질 듯 벌린 입으로 토해낸다. 사실 이 그림의 제목으로 8

는 ‘절규’보다 ‘비명’이 더 정확하다.

노르웨이어 원제는 ‘Skrik’. 영어로 ‘Scream’ 혹은 ‘Shriek’로 번역되는데, 아주 날카로운 비명 같은 외침, 우리말 의성어로 치자면 “끼야악” 같은 소리 지름이다. 또 눈에 띄는 것이 ‘병든 아이’(1885∼86) 와 ‘병실에서의 죽음’(1893)이다. 이 그림들 은 뭉크가 누나의 죽음에 대해 지닌 강박적 기억의 산물이다. 뭉크의 어머니와 누나는 모 두 폐결핵으로 각각 그가 다섯 살일 때와 열 네 살일 때 세상을 떠났다. 그리고 아버지 쪽 은 정신적으로 불안정했다. 뭉크는 자신의 가 족을 괴롭힌 육체적·정신적 병력이 자신에게 유전적으로 이어질 것이라는 불안과 공포에 평생 시달렸다. 바로 그 때문에도 뭉크는 입 센의 ‘유령’에 그토록 매혹됐던 것이다. ‘유령’ 의 주요 인물인 오스왈드는 뭉크처럼 화가인 데다 아버지의 방탕으로 인한 성병에 선천적 으로 감염돼 파멸에 이른다. 그 밖에 주목할 만한 그림들로 ‘다리 위의 소녀들’(1901)과 ‘백야’(1901)를 가리키며 국 립미술관의 상급 큐레이터 엘렌 레르베르그 가 말했다. “두 그림 다 배경이 밤인데 하늘이 완전히 어둡지 않고 푸르스름하거나 희뿌옇 죠. 노르웨이 같은 북유럽의 여름에 나타나 는 백야를 그린 것입니다. 19세기 중반부터 화가들이 백야에 관심을 갖기 시작했죠.” 노르웨이 국립미술관의 42개 전시실에는 이 밖에도 중세 성화부터 파블로 피카소 같 은 20세기 화가들의 그림까지 다양한 작품 9 12 SUNDAY MAGAZINE

이 전시돼 있다.


ISSU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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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르웨이 디자인 철학이 숨쉬는 오페라하우스 이제 옛 대가들의 자취를 떠나 노르웨이의 동시대 예술, 2008년 개관한 오페라하우스를 보 러 갈 시간이다. 중앙역 옆 항만에 있는 오슬로 오페라하우스까지는 20분 정도 걸어가도 되 고, 국립극장역에서 중앙역까지 T-bane 지하철이나 트램(시가전차)을 타고 가도 된다. 중앙 역에서 육교를 건너가면 마치 해안에 걸쳐진 거대한 빙하 같은 건축물이 눈에 들어온다. 건축 회사 스뇌헤타가 디자인한 오페라하우스다. 이 오페라하우스는 거대한 유리창 부분 외에는 온통 빙하처럼 하얀 화강암과 대리석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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덮여 있다. 또 지붕이 완만한 사선으로 지상까지 닿는 형태라서 누구든 지붕 위를 걸어서 옥 상까지 올라갈 수 있다. 공연을 보러 오지 않은 사람도 지붕에 올라 바다를 바라보며 산책할 수 있다는 것이 크나큰 매력이다. “여름밤 물 위에 뜬 옥외 무대에 공연이 있는 날이면 이 지붕 이 그대로 관객석이 되죠. 최대 7000명까지 지붕에 올라갈 수 있어요”라는 것이 오페라하우 스 홍보담당인 레네 야콥센의 설명이다. 중앙 로비로 들어서면 가운데 공연장 부분을 감싼 벽이 따뜻한 느낌의 목재로 되어 있어서 외부의 차가운 대리석과 극적인 대조를 이룬다. 특히 1364석 규모의 대극장 안은 이러한 목재 와 오렌지색 좌석으로 이루어져 있어서 대개 진홍색과 금색으로 장려하게 장식된 유럽의 전 통적인 오페라극장 내부와 무척 다르다. 아늑한 느낌을 주고, 소박하면서도 세련된 이 실내는 바로 요즘 한국인들도 열광하는 북유럽 디자인의 한 단면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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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조각가가 20년 뚝심의 결실, 비겔란 조각공원

의 어릴 때부터 노년기까지의 삶과 죽음, 다

마지막으로 노르웨이 예술 기행에서 빼놓을 수 없는 곳은 서쪽에 있는 비겔란 조각공원

른 인간과의 관계, 거기에서 나오는 소통과고

(Vigelandsparken)이다. 조각가 구스타브 비겔란(1869~1943)의 20년 뚝심으로 만들어진

독, 또 희로애락 등에 대해 이야기한다.

10 비겔란 조각공원의 백미인 모놀리스 테라스. 가운데 모놀리스는 17m, 270t에 달하는 화강암 덩어리로 남녀노소의

이 공원은 32만㎡에 달하고 200개가 넘는 청동과 화강암 조각들이 있는데, 모두 비겔란의 작

많은 사람이 이곳에서 산책을 하거나 운

품이다. 중앙역 앞에서 12번 트램을 타고 바로 공원 정문 앞에 있는 Vigelandsparken 정거

동을 한다. 그러면서 문득 조각의 시선과 눈

11 오슬로 오페라하우스.

장에서 내리면 된다.

을 맞추고 때로는 한참 바라본다. 어린아이

해안에 걸쳐진 빙하의

형상이 얽혀 있다.

모습을 하고 있으며,

정문 앞 넓은 잔디밭을 지나면 그림 같은 호수를 가로지르는 다리가 나오고, 난간에 브론즈

들은 자기들 같은 아이들의 조각을 만지면서

의 인간 군상이 자리 잡고 있다. 다리를 지나면 역시 청동 조각으로 둘러싸인 거대한 분수대

웃는다. 인간의 삶과 밀착된 예술, 이것이 비

가 나오고 그것을 지나 계단을 올라가면 이 공원의 백미인 모놀리스가 나온다. 270t에 달하

겔란뿐 아니라 입센과 뭉크부터 오페라하우

는 화강암 덩어리 하나로 만들어진 17m 높이의 모놀리스에는 서로 위로 올라가려는 듯 역동

스의 건축가까지 오슬로의 예술가들이 알려

모놀리스 테라스의

적으로 엉켜 있는 남녀노소가 조각돼 있다. 또한 그를 둘러싼 계단의 화강암 조각들은 인간

주는 예술의 의미다.

인간 군상.

비스듬한 지붕을 걸어 올라가 옥상에서 바다를 바라보며 산책할 수 있다.

12 비겔란 조각공원의

SUNDAY MAGAZINE 13


REVIEW & PREVIEW

뜨거운 백열과 냉혹한 눈보라 동시에 휘몰아치다 미하일 플레트네프 지휘 러시아 내셔널 오케스트라 내한공연 19일 서울 강동아트센터

19일 오후 850석 규모의 강동아트센터 무대

뒤인 2011년, 같은 대회에서 3위에 입상한 조

위에 러시아 내셔널 오케스트라(RNO) 단원

성진과 처음으로 협연하는 작품은 쇼팽의 피

77명이 자리했다. 이어 지휘자 미하일 플레트

아노 협주곡 1번. 2008년 모스크바 청소년 쇼

네프가 등장했다. 피아니스트로 더 유명하던

팽콩쿠르 우승자이며 오는 9월 파리국립고등

시절의 날렵한 모습은 간데없고, 한눈에 배

음악원에 유학해 미셸 베로프에게 배울 예정

가 많이 나온 지휘자의 외양은 그를 기억하

인 예비 프랑스 유학파다운 레퍼토리였다.

는 사람들에게 연민을 자아냈다.

조성진의 타건에서 흘러나오는 음의 알맹

그러나 그르렁대는 현악기와 목관악기들

이는 작고 단단했으며 반짝였다. 섬세한 쇼팽

이 소용돌이치는 도입부에서부터 청중은 자

이었다. 2악장의 감수성 촉촉한 표현에서 20

리에 얼어붙은 듯 눈앞에 펼쳐진 폭풍우 치

대를 앞둔 이 청년이 예전보다 더욱 성장했음

는 바닷가의 회색 풍경을 바라보았다. 모음곡

을 느낄 수 있었다. 관현악법보다는 피아노에

‘중세 시대로부터’ Op.79는 글라주노프가

정통한 쇼팽이었기 때문에 쇼팽 협주곡의 반

1902년 작곡한, 음악으로 그린 4폭의 회화다. 주는 오케스트라 사이의 차이점을 찾아보기 목관악기의 적극적인 활약이 돋보인, 바다의

가 쉽지 않다.

풍랑을 그린 ‘전주곡’에 이어 ‘스케르초’에서

그러나 플레트네프와 RNO의 반주는 개

는 베를리오즈 ‘환상교향곡’ 등 여러 작품에

성이 두드러졌다. 단순히 피아니스트의 연주

서 들을 수 있는 ‘진노의 날’ 주제가 등장했

에 맞춰준다기보다는 독립적인 자신들의 지

다. ‘음유시인의 세레나데’에서는 고즈넉한

분을 확보한 듯 지휘자와 오케스트라는 관현

오보에와 클라리넷이 연속되는 하프 연주와

악의 밀물과 썰물의 수위를 정교하게 제어해

잘 어우러졌고, 장엄한 관현악의 행진이 이어

나갔다. 1악장의 마지막 부분이나 3악장의 끝

지는 ‘피날레’에서는 팀파니의 연타와 금관

부분에서 조성진은 거센 파도 위에 사뿐히

악기의 포효가 청중을 깜짝 놀라게 했다.

올라타는 서퍼의 타이밍을 놓치곤 했다. 조성

30분 넘는 첫 곡이 끝나고 피아노가 무대

진은 리스트 ‘사랑의 꿈’ 3번을 앙코르로 선

중간에 놓였다. 피아니스트 조성진(18)이 플

사했다. 애틋하면서도 낭만적인 루바토는 어

레트네프와 함께 등장했다. 플레트네프는

쩐지 고국의 팬들에게 보내는 작별인사처럼

연주할 때 기본 템포를 변화시키지 않고 한 악구 중 각 음표의 길이를 탄력 있게

1978년 차이콥스키 콩쿠르에서 자신이 직접

다가왔다.

가져가는 방법. 템포의 변화가 주는 긴장감으로 선율에 표정을 부여할 수 있는

피아노 연주용으로 편곡한 차이콥스키 ‘호두

2부의 차이콥스키 ‘백조의 호수’ 모음곡

방법으로 즉흥적인 요소가 강하다.

까기 인형’으로 우승을 거머쥐었다. 그 33년

은 이날 연주회의 백미였다. 차이콥스키의 익

루바토(rubato) 이탈리아어로 ‘숨겨진’이라는 뜻이다. 템포 루바토(tempo rubato)의 준말로,

14 SUNDAY MAGAZINE


REVIEW & PREVIEW

뉴욕 메트 오페라의 감동 고스란히 ‘The Met: Live in HD’ 오페라 ‘파우스트’ 6월 19일~7월 22일, 메가박스 코엑스점·센트럴점·킨텍스점·분당점, 문의 1544-0070

영국 런던 로열오페라하우스(코벤트가든), 이탈리아 밀라노 라 스칼라극장과 함께 세계 3대 오페라 극장으로 꼽히는 뉴욕 링컨센터의 메트로폴리탄 오페라. 클래식 애호가라 면 누구나 꿈꾸는 메트 오페라의 감동을 극장에서 경험할 수 있는 자리가 마련됐다. 메 가박스가 상영하는 ‘더 메트: 라이브 인 HD(The Met: Live in HD)’ 이다. 메트 오페라가 직접 제작한 공연 실황 영상을 통해 가수의 표정과 숨소리, 그리고 땀방울까지 실제 공연 을 보는 듯한 흥분과 박진감을 느낄 수 있다. 메가박스는 올해 메트 오페라 2012시즌 10 개 작품을 선보인다. 다음달 22일까지 상영되는 작품은 ‘파우스트’다. 괴테의 작품을 샤

숙한 관현악을 플레트네프가 직접 편곡한 악

를 구노가 재해석한 오페라는 원작 1부의 내용인 파우스트와 처녀 마르크리트의 사랑을

보를 연주한 이들은 우아함과 격렬함, 뜨거움

주로 다룬다. ‘파우스트’에 이어 헨델의 ‘마법의 섬’, 베르디의 ‘에르나니’, 마스네의 ‘마

과 차가움이라는 대조적인 극한을 보여주며

농’, 베르디의 ‘라 트라비아타’의 상영이 예정돼 있다.

러시아를 대표하는 오케스트라로서의 RNO

글 홍주희 기자 honghong@joongang.co.kr , 사진 뉴욕메트로폴리탄오페라

의 위상을 분명히 했다. 플레트네프는 절제된 동작으로 경제적인 지휘를 했다. 오케스트라 의 평소 축적된 훈련량이 상당해야 가능한 지 휘였다. 플레트네프의 손짓이 간단히 크레셴 도를 요구하면 오케스트라의 총주는 오디오

무용가 국수호·최정임의 솔로 무대 댄스 콘서트- ‘STAR’ 6월 28일 오후 4시·7시30분 서울 청담동 유시어터, 문의 02-3444-0651

의 볼륨을 단숨에 3시 방향으로 올리는 듯 거 침없는 음량을 토해내며 귓전을 때렸다. 강렬하고 선명한 폭풍으로 각인되는 이들 의 연주에는 강동아트센터의 어쿠스틱도 일 조했다. 약간의 건조한 느낌이 없지 않았지만 모든 악기의 결을 단단하게 모아주고, 트라이 앵글 소리 하나도 뚜렷하게 들리는, 애매하지 않은 음향이었다. 거꾸로 앙상블이 매끄럽지 못하면 청중 앞에 아무런 여과 없이 드러날 수 있기에 연주가에겐 공포의 홀이 될 수 있 으리란 생각도 들었다.

한국 근현대예술가기념사업회가 한국의 근현대를 이끈 예술가들의 예술세계를 재조명

플레트네프와 RNO는 앙코르로 차이콥

해 보는 기획 공연을 마련했다. 현대 한국 무용계의 대표적인 예술가로 국립무용단 무용

스키 ‘호두까기 인형’ 중 ‘트레팍’을 선사했

수에서 단장 및 예술감독을 역임한 국수호 디딤무용단 예술감독과 정동극장 최정임 극

다. ‘백조의 호수’가 던져준 강렬함에서 아직

장장의 춤과 삶의 이야기를 통해 동시대 예술가들과의 소통 및 예술세계를 재조명하는

헤어나지 못한 청중에게 도수 낮은 술처럼 다

새로운 스타일이다. 국수호, 최정임 두 무용가의 솔로 작품으로만 공연이 진행된다. 국수

가왔다. 플레트네프와 RNO는 3년 전 내한했

호는 본인의 대표적인 솔로 작품인 입춤, 장한가, 남무 3편의 작품을 새로운 연출을 가미

을 때보다 한결 안정되고 성숙한 모습이었다.

해 선보인다. 최정임은 허난설헌의 삶을 다룬 ‘바람의 달’과 순헌왕후를 소재로 한 작품

RNO는 그동안 개인적인 아픔을 겪은 지휘

‘만월서정(萬月抒情)’을 초연한다. 무용평론가 김경애, 성기숙 교수가 패널로 출연해 근

자와 함께 나이를 먹어가는 오랜 친구 같았다.

현대 한국 무용계를 돌아보는 시간을 갖는다. 유인촌 전·장관이 우정 출연한다.

글 류태형 대원문화재단 전문위원

글 유주현 객원기자 yjjoo@joongang.co.kr, 사진 유시어터

사진 강동아트센터 SUNDAY MAGAZINE 15


BOOK

리즈를 기획하고 완간하기까지도 제법 오랜 시간이 흘렀다. 시리즈 자체를 검토하고, 수 록된 작가와 작품이 국내에서 얼마나 유효 할지 확인했다. 프랑스, 독일, 포르투갈, 스페 인, 일본 등 다른 나라에서는 어떤 꼴로 출판 되었는지를 엿보았다. 각 작품에 꼭 맞는 번 역자들을 물색해야 했고, 전권에 실린 보르 헤스의 해제를 옮길 사람을 찾아야 했다. 그 렇게 5년이 지났고 드디어 ‘바벨의 도서관’을 완간하게 되었다. 애매하기도 했다. 보르헤스야 물론 더 설

작가들의 작가 보르헤스 그곳에 가면 만날 수 있을까

명할 필요가 없는 작가인 것은 분명한데, 대

숨은 책 찾기 <10> 바다출판사의『바벨의 도서관 작품 해제집』

중적 인지도는 그리 높은 편이 아니었다. 더 군다나 선집에 실린 작가들 중 10명은 국내 에 처음 작품이 소개되는 작가들이기도 했다. 덩치로 밀고 가기에 29권은 적었고, 낱권으 로 시장에서 승부하기에는 책이 차지하는 지 점이 작았다. 완간을 했으나 워낙 개성이 강한 시리즈라 대규모 마케팅을 하기는 어려웠다. 궁리 끝 에 시리즈를 알리기 위한 방법으로 각 작품 에 실린 해제만을 모아 책을 한 권 더 꾸렸다. 그것이 이 책『바벨의 도서관 작품 해제집』 이다. 작품 해제를 모은 것이라 하나 실상은 보르헤스가 남긴 ‘작가론’이자 ‘작품론’이다.

“1973년 겨울 어느 날 보르헤스가 도서관장

그가 사랑한 작가 40인의 보석 같은 작품

보르헤스의 정신과 문학세계를 엿보기에 더

으로 일하던 부에노스아이레스 국립도서

164편을 담고 있다. 우리나라 독자에게는 생

없이 훌륭한 텍스트다. 심지어 가격은 2800

관을 찾아갔다. 흰 와이셔츠를 입은 우아한

소하지만, 이 작가들은 이미 문학사에서 크

원이다. 무료 배포가 쉽지 않으니 제작비만

모습으로 그가 도서관의 돔 지붕 아래서 나

나큰 영향력과 독자에 대한 호소력을 지닌

간신히 남기기로 한 것이다.

를 기다렸다. 그는 ‘당신은 공작, 당신은 신사’ 강한 호흡의 작가들이다. SF 소설, 고딕소설,

프랑코 마리아리치가 보르헤스를 만났을

(『신곡』지옥편 2곡 140절)를 읊으며 나를 맞이

환상문학, 추리문학, 괴담문학의 시작이자

때, 그는 이미 삼십 대 초반부터 시작된 실명

했다.”

대표자 격인 작가들을 총망라해 천편일률적

으로 거의 장님과 같은 상태였다. 지팡이와

인 다른 세계문학 전집과 거의 중첩되지 않는

비서의 부축 없이는 걸을 수도 없었다. 밀라

이탈리아의 출판인 프랑코 마리아리치의 기록이다. 1973년 그는 무작정 보르헤스를

개성적인 문제작들을 소개하고 있다. ‘작가

노에서 온 젊은 편집자의 부탁을 듣고 그는

찾아갔고 이듬해 여름 보르헤스와 함께 ‘바

들의 작가’라는 보르헤스의 별명답게, 새로

오로지 기억력에만 의존해 마흔 명의 작가와

벨의 도서관’이라는 이름의 29권짜리 세계

운 장르 실험, 형식과 문체의 새로움을 추구

그들의 작품을 선별했다. 그리고 그 작품들

문학 컬렉션을 출판했다. 그러니 몹시 빨리

한 진정한 문학정신을 갖춘 책들로 엮여 있는

에 대한 해제를 불러주었다.

끝난 일이기도 하고, 몹시 오래 걸린 일이기

것이다.

도 하다. 보르헤스는 마리아리치를 만나고

‘바벨의 도서관’이라는 이름은 그의 걸작

그러니까 이 책은 말년의 보르헤스가 실 명의 어둠 속에서도 마지막까지 잊지 못했던

고작 1년 만에 스물아홉 권짜리 선집을 이룰 『픽션들』에 수록된 단편의 제목이기도 하다. 작품들을 통해 문학의 원형과 본질은 무엇 작품을 선별하고 해제를 제공했다. 그리고 우

작품 속에서 ‘바벨의 도서관’은 보르헤스가

리나라에는 40년 가까이 지난 2012년 4월에 ‘총체적인 한 권의 책’을 죽을 때까지 설레는 출간됐으니 참으로 오래 걸렸다. ‘바벨의 도서관’은 서구 지성계의 거목인 보르헤스가 기획한 세계문학 컬렉션으로, 16 SUNDAY MAGAZINE

이며, 그것이 인간의 삶과 어떻게 닿아 있는 지를 깨닫게 해주는 작품인

마음으로 기다렸던 장소며 그러한 책이 그

것이다.

안 어딘가에 꽂혀 있는 장소이기도 했다.

글 정일웅 바다출판사 편집장

바다출판사가 ‘바벨의 도서관’이라는 시

사진 바다출판사


GUIDE

금주의 문화행사 영화

전시

행사

클래식

어메이징 스파이더맨

Mapping the Realities

강연 ‘영화로 만나는 미술’

크누아 심포니 오케스트라 정기 연주회

감독: 마크 웹

기간: 6월 19일~8월 19일

일시: 6월 28일 오후 4~6시

일시: 6월 25일 오후 8시

배우: 앤드루 가필드, 엠마 스톤, 리스 이판

장소: 서울시립미술관

장소: 국립중앙도서관 디지털도서관

장소: 예술의전당 콘서트홀

등급: 12세 관람가

문의: 02-2124-8800

문의: 02-3483-8846

문의: 02-746-9270

어릴 때 사라진 부모 대신 삼촌 내외와 살

1970∼80년대 한국미술의 역사성과 예

국립중앙도서관이 ‘영화로 만나는 미술’

한국예술종합학교(이하 한예종)의 크누

고 있는 고등학생 피터 파커(앤드루 가필

술성을 조망하는 서울시립미술관 소장

을 주제로 문화프로그램 전문가 초청 강

아 심포니 오케스트라가 제54회 정기연

드)는 어느 날 아버지의 가방을 발견하고

품 기획전. 1부 ‘1970년대 모더니즘미술’

연을 연다. 미술을 주요 모티브로 한 영화

주회를 개교 20주년 기념 연주회로 꾸민

과거의 비밀을 추적한다. 우연한 사고로

과 2부 ‘1980년대 민중미술’로 구성하여

를 통해 예술가들의 삶과 작품세계를 조

다. 한국예술종합학교 지휘과 정치용 교

초능력을 갖게 된 파커는 아버지의 옛 동

모더니즘의 실험적인 아방가르드 정신과

명해 본다. 강연은 미술비평가 정준모씨

수(사진)가 지휘하는 이번 공연에서는 우

료 코너스 박사(리스 이판)의 또 다른 모

민중미술의 참여 미학을 되돌아보고 한

가 진행한다. 자세한 내용은 국립중앙도

리나라 음악계의 미래 주역들을 만날 수

습인 악당 리자드맨과 대결한다.

국 현대미술사의 지도를 그려본다.

서관 홈페이지에서 확인할 수 있다.

있다.

설마 그럴 리가 없어

아웃 오브 프레임

프랑수아 트뤼포 전작 회고전

감독: 조성규

기간: 6월 29일~7월 19일

기간: 6월 21일~7월 22일

부천필하모닉 오케스트라 어린이를 위한 음악놀이터 Ⅱ

배우: 최윤소, 이능룡

장소: 서울 삼성동 인터알리아 아트스페이스

장소: 서울아트시네마

일시: 6월 28일 오전 11시

등급: 12세 관람가

문의: 02-3479-0114

문의: 02-741-9782

장소: 부천시민회관 대공연장

개그맨에게 차인 여배우 윤소는 소속사로

문화예술 장르 중에서 유독 대중과의 교

누벨바그의 거장, 프랑수아 트뤼포 감독

문의: 032-625-8330

부터 연애금지령을 당한다. 소심한 35세

감을 핵심으로 삼는 영화와 미술, 두 장르

의 전작을 만날 수 있다. 기념비적인 장편

그림자극과 클래식을 동시에 감상할 수

뮤지션 능룡은 누나의 등쌀에 결혼정보

의 공통점과 차이점을 추적해 보는 전시.

데뷔작 ‘400번의 구타’부터 잔 모로 주연

있는 어린이 맞춤용 연주회. 이번 음악놀

업체를 찾지만 가입 불가라는 굴욕을 당

인용된 세 편의 영화에 맞춰서 4명의 작

의 연애이야기 ‘줄 앤 짐’, 카트린 드뇌브

이터에선 그림자극과 함께 프로코피예프

한다. 어느 날 영화음악 의뢰를 받은 그는

가들이 함께 공간을 연출한다. 같은 주제

주연의 ‘마지막 지하철’ 등 그의 영화 23

의 명작 ‘피터와 늑대’를 감상한다. 문학

화면 속 윤소에게 묘한 감정을 느끼고, 윤

를 다른 표현으로 접근했을 때 각각 어떻

편을 상영한다. 상영작과 일정은 홈페이

적 상상력과 음악적 감수성을 동시에 길

소 역시 그의 기타 연주에 빠져드는데….

게 결과물이 정리되는지를 살펴본다.

지(www.cinematheque.seoul.kr) 참조.

러줄 수 있는 작품이다.

THIS WEEK CHART 베스트셀러 순위 책명

자료=교보문고

영화 예매

01 멈추면 비로소 보이는 것들 혜민스님·쌤앤파커스 01 미쓰GO 02 스님의 주례사

자료=맥스무비

작가·출판사 순위 영화명 법륜·휴 02 후궁: 제왕의 첩

03 돈으로 살 수 없는 것들 마이클 샌델·와이즈베리 03 내 아내의 모든 것

공연 예매

자료=인터파크

주연 순위 공연명 고현정·유해진·성동일 01 뮤지컬 위키드 오리지널 내한공연 조여정·김동욱·김민준 02 뮤지컬 시카고 임수정·이선균·류승룡 03 뮤지컬 맨오브라만차

04 꿈이 그대를 춤추게 하라 고도원·해냄출판사 04 마다가스카3:이번엔 서커스다!

-

04 연극 옥탑방 고양이

07 정의란 무엇인가 08 빅 픽쳐 09 무지개 곶의 찻집 10 무지개원리

법륜·휴 06 아부의 왕 마이클 샌델·김영사 07 프로메테우스

성동일·송새벽·고창석 06 뮤지컬 모차르트! 누미 라파스·마이클 패스밴더 07 뮤지컬 잭더리퍼

더글러스 케네디·밝은세상 08 맨인블랙3

윌 스미스·토미 리 존스 08 연극 라이어1탄

모리사와 아키오·샘터 09 차형사

강지환·성유리·이수혁 09 뮤지컬 풍월주

차동엽·국일미디어 10 사다코3D:죽음의 동영상

이시하라 사토미 10 뮤지컬 라카지

자료=풍월당

-

음반사

01 테오도라키스

C&L Music

인순이·최정원·윤공주 02 브루흐: 첼로와 오케스트라를 위한 작품집 ARS 황정민·서범석·홍광호 03 메디테이션

MIRARE

박성훈·장지우·윤정빈 04 쇼팽: 녹턴: 이반 모라베츠

05 내가 알고 있는 걸 당신도 알게 된다면 칼 팔레머·토네이도 05 락아웃:익스트림미션 가이 피어스·매기 그레이스 05 뮤지컬 EBS 모여라 딩동댕 <번개맨의 비밀> 06 엄마 수업

클래식 음반

출연 순위 음반명

05 비발디 : 라 체트라

박은태·임태경 06 라티노: 밀로쉬

Supraphon Channel Clas

Universal Music Korea

안재욱·엄기준·성민 07 바이스: 아르스 멜랑콜리에

Glossa

김원식·공명·김연철 08 나의 사랑 나의 탱고: 바렌보임 Warner Korea 성두섭·김재범·구원영 09 슈베르트 : 아르페지오네 소나타

Decca

정성화·김다현·남경주 10 어린아이들의 낮잠

Telrac

SUNDAY MAGAZINE 17


INTERVIEW

내겐 Who Are You 정말 슬픈 일이 한 다리 건너면 우습게 보이지 인생은 그런 것 : 재일 한국인 3세 연출가 정의신

18 SUNDAY MAGAZINE


INTERVIEW

1 1 봄의 노래는 바다에 흐르고 2 야끼니꾸 드래곤

그의 이야기는 아프기도 하고 우습기도 하다. 비극적인 장면에 요절복통이 따른다. 그래서 웃고 있어도 눈 물이 난다. ‘재일 한국인 3세’ 연출가 정의신(55). 한국에도, 일본에도 속하지 못한 경계인의 삶을 헤쳐왔 기 때문일까. 희극과 비극의 경계를 오가는 그의 무대는 관객의 가슴을 뜨겁게 달군다. 정의신은 일본에서 연극, 영화, 방송을 넘나들며 가장 활발하게 활동하는 작가 겸 연출가다. 1970년 오 사카 만국박람회를 배경으로 일본의 고도성장기에 소외된 재일 한국인 가족의 애환을 그린 한·일 합작 연극 ‘야끼니꾸 드래곤’(2008)으로 양국 무대에서 전석 매진을 기록했고, 양국의 주요 연극상을 휩쓸며 한국에도 널리 이름을 알렸다. 지난 12일 남산예술센터에서 막을 올린 최신작 ‘봄의 노래는 바다에 흐르고’(7월 1일까지)는 처음으로 한국을 무대로 한국인의 삶을 그린 작품이다. 일본군 헌병이었던 아버지의 기억을 모티브로 삼아 1944 년 남도의 외딴 섬, 종전 직전 혼돈의 상황에서 군인과 민간인이 뒤섞여 그저 함께 생활하던 한 가족의 ‘일상’을 그렸다. 국가는 전쟁 중일지라도 사람들에겐 그저 삶이 계속될 뿐이라는, 삶 속에서는 일본인도 한국인도, 군인도 민간인도 그저 이웃일 뿐이라는 국가의 관계를 넘어선 개인의 소통을 노래한다. 국가 주의적 관점에서 벗어나 역사를 다시 바라보자는 메시지는 민감한 소재일 수 있지만, ‘어제가 어떠했든 오늘은 좋은 하루’라는 정의신표 대주제 속에 잘 포장됐다. 인간을 웃기고 울리는 삶과 죽음의 순간들에 서 인생의 희망을 발견하는 훈훈한 이야기는 오늘도 객석의 기립박수를 이끌고 있다. 글 유주현 객원기자 yjjoo@joongang.co.kr, 사진 최정동 기자, 남산예술센터 , 극단 미추

-이번 작품은 전작 ‘야끼니꾸 드래곤’과 닮은 듯 다르다. 굳이 비슷한 설정으로 간 이유는.

“장녀의 다리가 불편하고 자매 간 삼각관계 등 가족의 관계성 면에서 비슷한 부 분이 있다. 기본적으로 가족 이야기라 비슷해 보일지 모르지만 ‘야끼니꾸 드래곤’ 은 일본 관서지방의 이야기고 이쪽은 한국의 작은 가상 섬이 무대니 전혀 다르다 고 봐주면 좋겠다.” -한국을 배경으로 한국인의 이야기를 한 것은 처음인데, 어려움은 없었나.

“대본은 관서지방 사투리로 써서 역시 바다 근처 지방인 남도 사투리로 번역했 다. 전라도 사투리가 재미있기도 하고. 삽입곡의 경우 전라도 노래 후보가 여럿 있 었지만 아리랑은 좀 어두웠고 그래서 ‘까투리 사냥’을 택했다. ‘담배가게 아가씨’ 는 1987년 경 크게 히트한 노래를 찾다가 밝고 재미있고 부르기 쉬운 곡이었기 때 문에 그걸로 갔다. 한국 풍속을 잘 모르니 조연출과 함께 만들어갔다. 무엇보다 일 본 군인과 한국 여성의 사랑 이야기가 어떻게 받아들여질지가 걱정이었다. 용서받 지 못할 사랑이라기보다 자연스러운 감정의 끌림을 얘기하려는 건데 오해받지 않 을까 걱정했다. 막상 뚜껑을 열고 보니 반응이 괜찮다.”

2 SUNDAY MAGAZINE 19


INTERVIEW

3 3, 4 봄의 노래는 바다에 흐르고 5 야끼니꾸 드래곤

-아버지가 헌병이었다는 데서 시작된 이야기인데, 헌병 이야기가 전면에 드러나지는 않는다.

“헌병 이야기보다 작은 섬에 사는 한 가족에게 닥친 전쟁에 대해 그리고 싶었다. 헌병을 포함해 전쟁에 처한 사람들 모두 역사의 흐름 안에서 어쩔 수 없이 말려들었을 뿐이라는 얘기를 하고 싶었다. 헌병도 중 요한 모티브지만 전쟁에 휩쓸린 사람들 이야기가 이번 작품의 테마다.” -한·일 화해의 연극으로 보이기도 하는데.

“화해를 테마로 하고 있지는 않다. 마지막까지 어머니 영순은 일본군을 용서하지 못한다. 일본인과 결 혼하는 사람도 있고, 한국인과 결혼하는 사람도 있고, 전쟁에 대한 다양한 어프로치가 있지만 다들 오늘 도 무사히 하루를 보냈다는 사실이 중요하다. 한·일 화해 같은 그런 과장된 이야기를 하려 한 게 아니다.” -한류 덕인지 요즘 한·일 관계는 우호적이지만 역사를 소재로 한·일 간의 우정을 이야기하면 역사왜곡이라 비난받곤 한다.

“이 작품을 씀으로써 친일파 소리를 들을 거라는 생각은 많이 했지만 나에게는 별로 관계 없는 이야기 다. 나는 재일 한국인이라 그런 말을 들어도 ‘아, 그런가요?’라고 대답할 수밖에 없다. 이런 나 자신도 역사 가 낳은 존재다. 나는 한국인이지만 아버지가 역사의 흐름 속에 고향으로 돌아갈 수 없게 된 처지라 일본 에서 나고 자랄 수밖에 없었다. 나는 일본 만세도 한국 만세도 아니다. 이쪽만 옳고 이쪽은 나쁘다는 이분 법적인 사고가 아니라 인간의 다양한 모습을 그리고자 하는 것을 관객이 알아줄 거다.” -‘야끼니꾸 드래곤’은 일본에서 차별받은 재일 한국인 이야기임에도 일본에서 좋은 평가를 받았다. 이유가 뭘까.

“첫째는 연극적으로 자립한 재미있는 작품이기 때문이고, 둘째는 가족 이야기라서 그런 것 같다. 뿔뿔 이 흩어지는 가족의 이야기가 일본인에게는 고도성장기 가족이 붕괴되어 가던 시절에 대한 노스탤지어 를 불러일으켰다. 재일 한국인들의 이야기를 자신들의 추억으로 받아들인 거다. 한편 한국에서는 현재 가족관계가 붕괴되고 있고, 이지메 문제를 포함해 매우 동시대적인 이야기로 받아들여졌다. 그 부분이 일본과 매우 달랐다. 내 연극의 특징은 다양한 노래와 리액션, 배우들의 육체 표현들이 융합해 만들어내 는 높은 연극성에 있다. 정치적인 면에서 평가받은 것이 아니라 역시 생생한 사람들의 모습에서 뜨거운 것을 느꼈다고 생각한다.” -최근작 ‘파마야스미레’에서도 재일 한국인을 소재로 했는데, 이제 사라져가는 역사를 끊임없이 재생산하는 이유는.

“‘파마야스미레’는 재일 한국인 3부작의 마지막 작품이다. 가을에는 1920년대 남사당 이야기를 쓸 거 다. 교과서에 나오지 않는, 역사의 물결에 도리 없이 휩쓸려가는 사람들의 모습에 흥미를 느낀다. 아무것 도 없는 노동자들, 재일 한국인이건 누구건 그런 서민들이 역사를 만들어 간다는 거다. 교과서에 나오지 않는 역사를 연극인으로서 기록해 가는 작업에 관심이 있고, 좀 더 그 테마를 밀어붙여 가려고 한다.” -일본 연극계에서 재일 한국인 연극인이 갖는 위상은 특수한 것인가, 아니면 그들 중 하나일 뿐인가. 4 20 SUNDAY MAGAZINE

“일본 극작가 중에 재일 한국인을 테마로 쓰는 작가가 없기 때문에 나 자신은 특수하다고 볼 수 있다.


INTERVIEW 정의신(鄭義信) 1957년 일본 효고현 출생. 도시샤대학 문학부를 중퇴하고 요코하마 방송영화전문학원 미술과 졸업. 쇼치쿠 영화사에서 미술담당으로 일하 다87년 재일 한국인들이 주축이 된 극단 신주쿠료잔파쿠 창립멤버로 참가. ‘천년의 고독’(1990)으로 테아토르상, ‘더 데라야마’(1993)로 기시다 구니오 희곡상을 수상하며 현대 일본 연극계에서 부각되기 시작했다. 이후 연극, 영화를 오가며 재일 한국인뿐 아니라 장애인, 빈곤층 등 경계인의 삶을 다룬 수많은 화제작을 생산했다.

5

최양일 감독의 ‘달은 어느 쪽에서 뜨는가’ ‘피와 뼈’에서 시나리오를 담당해 기네마 준보 각본상, 일본아카데미 우수상을

일본 연극인들은 비교적 부유한 환경에서 자랐거나 부모가 연극계의 유명인사인 경우가 많은데 나는 부 자도 아니고 조선인 부락 출신이니 다른 연극인들과 환경 자체가 다르다.” -아내에게 계속 얻어맞는 무기력한 아버지 캐릭터가 인상적이다. 한국의 전형적인 가부장적 존재인 아버지와는 동떨어진 캐릭터인데.

“우리 아버지가 그런 타입이었다. 우유부단하지만 열심히 가족을 지키려는 착한 아버지인데, 한국에

수상하기도 했다. 2008년 한·일 합작연극 ‘야끼니꾸 드래곤’으로 일본의 양대 연극상인 아사히무대예술상과 요미우리연극상을 수상하고, 한국에서도 ‘올해의 연극 베스트3’에 선정되는 등 한·일 연극계에서 가장 주목받는 작가로

는 잘 없는 타입이었겠지만 그런 아버지를 그려보면 재밌겠다 생각했다. 맞는 장면은 좀 줄일까 했지만 일

떠올랐다. 올해 초 일본에서 ‘파마야스미레’를

단 재미있으니 밀고 가기로 했다. 아버지역 정태화 선생에게는 미안하게 생각한다. 선물이라도 드려야겠

초연해 각종 연극상의 강력한 후보로 거론되고 있다.

다.(웃음)” -독립운동에 가담하면서도 헌병을 사랑하는 정희 캐릭터는 매우 상징적으로 보인다.

“전쟁에 대한 다양한 접근 방법의 하나다. 장녀는 일본 군인과 사랑을 하고, 차녀는 군대의 클럽에서 돈 을 벌고, 삼녀는 일본에 비판적이긴 하나 학교 선생이라는 입장이 있다. 막내는 항일운동을 하다 전쟁의 비극에 휩쓸리게 된다. 그저 전쟁에 대한 네 자매의 각각의 다른 부분을 그리고 싶었다.” -장녀가 일본 군인의 발을 씻겨주는 장면이 나오는데, 발을 씻겨주는 의미가 민감할 수 있다.

“살짝 에로티시즘을 노린 것뿐이다. 예전에 서울의 이발소에 갔을 때 실제로 발을 씻겨줘 깜짝 놀랐던 일이 있다. 여성이 발을 씻겨준다는 것은 매우 에로틱한 행위라고 생각해 연극적으로 두근거리게 하는 설 정이 될까 싶어 넣어본 건데, 실패한 것 같아 유감스럽다(웃음). ” -가장 비극적인 장면에서 웃기는 것이 정의신 연극의 특징이다. 웃음과 눈물을 뒤섞는 이유는.

“인생이란 비극과 희극이 등을 맞대고 동시 진행되는 것이라 생각한다. 당사자가 매우 비극이라 생각 하는 순간도 조금 벗어나 바라보면 굉장히 바보스럽고 우스운 경우가 있다. 할머니가 돌아가셨을 때, 어 머니를 비롯한 네 딸들이 흰 저고리에 지팡이를 짚고 영구차 뒤에서 ‘아이고~’ 하며 울면서 따라갔다. 나 는 택시를 타고 뒤따라갔는데 택시운전사가 얼마나 대단한 사람이 죽었느냐고 묻길래 우리 할머니라니 까 어이없어 하더라. 그렇게 본인들은 정말 슬프지만 한 발짝 떨어져 보면 우습게 보이는 그런 순간에 아, 인생이란 이런 거구나 느끼곤 한다.” -무거운 주제를 재미있게 표현하는 비결이 있나.

“그저 재미있는 것을 좋아한다. 어릴 때부터 ‘까불이’라는 소리를 많이 들었다. 관서지방 출신이라 요 시모토희극(※오사카를 근거지로 한 일본의 대표적인 희극극단)의 영향은 엄청 받았다. 같은 개그를 세 차례 되풀이하지 않으면 성에 안찬다. 배우들에게도 세 번 반복해 달라고 하니 처음엔 이해를 못했지만 점점 적응해서 이제 알아서들 한다.” - ‘야끼니꾸 드래곤’에 이어 어머니 역 고수희의 연기가 인상적이었다. 그녀가 아니었다면 완성도가 달랐을 것 같다. “파워 있고 진정성도 있는 연기자다. 가만 놔둬도 점점 잘나갈 거라 생각한다. 요즘 영화, 방송으로 바 쁜 것 같아서 안 나와도 된다고 했는데 굳이 나오겠다고 하더라. 오히려 박수영, 염혜란 등의 배우가 나오 는 것을 전제로 쓴 극이다. 고수희에게는 야끼니꾸 때와 똑같이 엄마 역밖에 없다고 굳이 권하지 않았는 데, 전혀 성격이 다른 엄마니까 괜찮다고 하더라.” -연극을 만드는 데 있어 가장 중요하게 생각하는 것은.

“관계성이다. 배우 간, 연출가와 배우 간, 연출가와 스태프 간 각각의 관계성을 가장 중요하게 생각한다. 모두가 가족처럼 함께 하나의 작품을 만들어 내는 것이라 생각하기 때문이다. 결과물로서는 관객이 즐거 워할 수 있는 연극을 만들고 싶다. 관객이 배우와 함께 이야기를 공유하며 함께 웃고 울고, 마지막에는 많 은 것을 생각하며 집에 돌아가서 맥주 한잔 맛있게 마실 수 있는 작품을 만든다면 행복한 거라 생각한다.” SUNDAY MAGAZINE 21


GALLERY

1

볼펜으로 그린 나만의 우주 “동판화에서 쓰는 송곳을 사용해 만들어내는 선들의 이미지에서 작가의 손맛이 싱싱하게 살아나는 것 같았습니다. 이 손맛을 회 화에 한번 접목해 보면 어떨까 생각하다가 늘 일정한 선을 뽑아 내는 볼펜에 주목하게 됐습니다. 볼펜을 종이나 캔버스에 휘갈기다 보면 손놀림 하나하나의 흔적 이 가는 선들이 되어 바람결에 흔들리듯 경쾌한 맛을 전해줍니다. 다른 한편으로 무수히 반복된 선들의 집결체인 어두운 화면들은 2 1 BL-095(2008), 캔버스에 볼펜, 221.0x365.8㎝ 2 BL-119(2009), 캔버스에 볼펜, 190.5x297.2㎝

깊은 침묵의 덩어리로 다가오기도 합니다. 평론가들로부터 ‘이것이 드로잉인가 페인팅인가’라는 식으로 장 르적 구분에서 헷갈린다는 소리를 듣곤 했는데, 저는 ‘페인팅 같 은 드로잉, 드로잉 같은 페인팅’이라고 얘기하곤 했습니다. 작가 로서 비평가를 헷갈리게 한다는 것은 그리 나쁘지 않은 일이라 고 생각합니다.” ‘볼펜 화가’로 불리는 재미 한인작가 이일(60)씨가 고국에서 16년 만에 개인전을 한다. 81년 브루클린 미술관 전시에서 처음 볼펜 드로잉을 선보인 이래 30여 년간 색색의 볼펜으로 빈 캔버스를 채우고 때로 빈 볼펜으로 가득 찬 캔버스를 긁어내며 자신만의 우주를 표현해 온 그다. 그의 작품은 2010년 뉴욕 메트로폴리탄 미술관 한국관에 전시됐으며, 올 3월에는 뉴욕 메트로폴리탄 미

‘이일과 선의 영속성’전 6월 19일~7월 15일 서울 종로구 사간동 갤러리현대 신관, 문의 02-2287-3500

22 SUNDAY MAGAZINE

술관에 4점이 소장됐다. 글 정형모 기자 hyung@joongang.co.kr, 사진 갤러리현대


PORTRAIT ESSAY

권혁재 기자의 不-완벽 초상화

‘정릉 똘마니’ 서용선의 초상 “공부는 뒷전이었고 시계 뺏고 노름하는 친구들과 어울려 다녔다. 한마디로 정릉 ‘똘마니’였다. 고교 졸업 때 성적이 400명 중 300등 정도였으니 대학은 재수·삼수해도 떨어졌다. 사수 대신 군대에 갔다. 제대 후에야 겨우 서울대 미대에 들어갔다. 이후 서울대 교수도 하고, 2009년엔 국립현대미술관의 ‘올해의 작가’에 선정되기도 했다. 내 그림은 유년시절의 윤리적·도덕적인 방황에 대한 후회를 채우기 위한 방편이기도 하다.”

SUNDAY MAGAZINE 23


FOOD

스패니시 오믈렛 블루베리 스무디 호텔밥 부럽잖은! 주영욱의 도전! 선데이 쿠킹 <5> 브런치

브런치(Brunch). 아침식사(Breakfast)와

로 된 오믈렛을 만들어 보고 싶어서 인터넷

은 세대들에게는 식생활 문화의 하나로 자리

을 뒤져봤다. 오믈렛의 세계가 생각보다 넓고

잡아 가고 있다.

도 깊었다. 재료에 따라 여러 가지 다양한 오

휴일에 늦잠자기 좋아하는 우리 가족들을

믈렛이 있었다. 놀랍게도 세계에서 가장 비

위해 멋진 브런치를 한번 만들어 주기로 했다. 싼 오믈렛이 무려 115만원짜리(1000달러)라 오랜 습관 때문에 나는 휴일에도 일찍 일어나

는 신문기사도 있었다. 미국 뉴욕의 한 고급

는데, ‘우렁각시’처럼 뚝딱 준비해서 늦게 일

호텔에서 파는 오믈렛이란다. 금가루를 발랐

어나는 가족들을 놀라게 해주면 재미있을 것

나 했더니 캐비아가 듬뿍 들어갔다고 한다.

같았다. 가족휴가 때 갔던 호텔의 멋진 아침

여러 오믈 렛 중 스 패니시 오믈 렛

식사를 입버릇처럼 그리워하는 아이들 취향

(Spanish Omelet)이라는 것을 만들어 보

에도 딱 맞다.

기로 했다. 베이컨과 여러 야채를 섞어 내용

브런치 아이템 선정에 들어갔다. 내가 쉽

물을 만들고 계란 스크램블을 해서 둥글게

점심(Lunch)을 결합한 단어로 오전 느지막

게 만들 수 있는 것, 그리고 호텔풍의 우아

말아내는 오믈렛이다. 호텔에서 아침식사를

이 먹는 서양식 ‘아점’이다. 외국 영화와 드라

한 이미지가 있는 것을 찾아보았다. 오믈렛

할 때 흔히 볼 수 있는 바로 그것이다. 양식 조

마, 그리고 유학생들의 영향으로 2000년대

(Omelet)이 딱 좋을 것 같았다. 계란에 이런

리 기능사 자격증 시험에도 나오는 오믈렛이

중반부터 서울에서도 슬슬 유행하기 시작했

저런 야채와 햄이 함께 들어가니 영양 균형

어서 인터넷 사이트, 블로그 상에 요리법들 이 아주 자세하고 친절하게 잘 나와 있었다.

다. 청담동이나 가로수길, 삼청동, 이태원같

면에서도 좋다. 거기에 블루베리 스무디를 만

이 유행의 첨단을 달리는 곳에서는 이미 브런

들어서 곁들이기로 했다. 블루베리는 2002

일요일 아침, 일찌감치 일어나 재료 준비를

치 카페들로 북적댄다.

년 뉴욕타임스가 건강에 좋은 10가지 수퍼

시작했다. 사실 재료를 준비하는 것이 시간도

푸드 중 하나로 선정한 건강식품이다. 맛도

많이 걸리고 번거로운 과정이다. 초보 요리

휴일 날, 달콤한 늦잠에서 깨어나 우아한 카페에 앉아 느긋하게 세련된 식사를 즐기는 것, 사실 멋지긴 하다. ‘뉴요커’나 ‘파리지앵’

24 SUNDAY MAGAZINE

선도하는 사람)들은 물론이고 대도시의 젊

좋고 몸에 좋은 성분들이 듬뿍 들어 있다.

사에게는 더욱 그렇다. 우선 오믈렛 안에 들

그동안 출장을 다니면서 호텔에서 곁눈질

어갈 재료, 즉 양파·버섯·피망·토마토·베이컨

의 자유롭고 세련된 이미지도 있다. 이 때문

한 내공으로 오믈렛은 대충 만들 수 있을 것

을 일정 크기로 작게 잘라 놓아야 한다. 조리

에 소위 트렌드 세터(Trend-setter: 유행을

같기는 했다. 하지만 그래도 기왕이면 제대

기능사 준비 사이트에서는 0.5㎝ 크기로 일


FOOD

재료

·스패니시 오믈렛 계란(1인분에 3개), 토마토, 베 이컨, 양파, 피망, 양송이 버섯,

1

토마토 케첩, 버터, 소금, 후추, 식용유

정하게 잘라야 한다고 되어 있었다. 세상에! 하긴 보기 좋은 떡이 먹기 좋은 법이니 땀을 뻘뻘 흘리며 열심히 모양 있게 잘랐다.

·블루베리 스무디

고 그냥 초승달로 만족하기로 했다.

블루베리, 우유, 드링킹 요구르

이제는 블루베리 스무디를 만들 차례다.

트, 꿀, 얼음

이름은 뭔가 그럴듯하지만 만드는 방법은 아

토마토는 껍질을 벗겨야 한다고 요리법에

주 간단했다. 블루베리와 우유, 마시는 요구

서는 얘기하고 있었는데, 막상 껍질을 벗기려

르트, 꿀 조금, 그리고 얼음 몇 조각을 함께 믹

해보니 초보 요리사가 감당할 수준이 아니었

서에 넣고 갈면 끝이다. 그러는 사이에 잠이

다. ‘양식 조리 기능사 선생님’들 몫으로 놓아

깬 집사람이 핫케이크를 뚝딱 만들어 협찬

두기로 하고 나는 과감히 포기했다. 그냥 껍

해 줬다(참 쉽게도 만든다).

준비

1 오믈렛 내용물 준비-베이컨, 토마토, 양송이 버섯, 피망, 양 파 등을 작은 주사위 크기(0.5㎝ 2

정도)로 잘라서 준비한다. 토마 토와 피망은 씨 부분을 제외하

질째 쓰기로 했다. 계란은 1인분에 3개씩의

오믈렛과 블루베리 스무디, 그리고 핫케

분량을 휴대용 믹서(Hand Blender)로 잘

이크를 모양나게 차려놓고 아이들을 깨웠다.

물에 살짝 데쳐서 껍질을 벗겨

풀어서 소금과 후추로 간을 하고 나니 재료

아이들의 첫 번째 반응은 와!였다. 꼭 호텔에

야 한다고 하는데 초보 요리사

준비가 모두 끝났다.

온 것같이 너무 예쁘게 잘 차려놓았단다. 자

로서는 조금 무리인 것 같아서

고 준비한다. 토마토는 뜨거운

포기했다. 그래도 맛은 별 문제

프라이팬을 약간 달군 후 식용유를 넣고

다가 깨서 뭔가 기분 좋은 선물을 받은 얼굴

내용물 재료들을 볶기 시작했다. 베이컨, 양

로 식탁에 앉아 아빠표 브런치를 먹기 시작

파, 버섯, 피망, 토마토의 순서대로 넣으면서

했다. 그 와중에도 까다로운 막내는 오믈렛

약한 불에 볶았다. 오래 익혀야 하는 순서대

의 모양이 좀 안 난다고 지적했다가 누나의

간, 얼음 3~4개를 믹서에 넣고

로 먼저 넣어야 하기 때문에 이 순서를 지키

핀잔을 들었다.

갈면 쉽게 완성

는 것이 중요하단다. 그러고 나서 케첩을 조 금 뿌려서 마무리로 볶아줬다.

3

없었다. 2 블루베리 스무디: 블루베리, 우유, 드링킹 요구르트, 꿀 약

맛은 아이들 모두에게 아주 좋다는 평가

3 스패니시 오믈렛에 들어갈

를 받았다. 호텔에서 먹었던 맛하고 똑같단

내용물을 토마토 케첩을 넣고

4

이제 오믈렛을 만들 차례다. 오믈렛용 팬

다. 다음 번에도 또 해달라고 한다. 이 맛에 요

약한 불에 볶아놓은 것. 볶는

(지름이 18~22㎝ 정도가 적당)에 버터를 넣

리를 하는구나 싶었다. 휴일 아침 깜짝 선물

순서는 베이컨-양파-버섯-피

고 버터가 녹을 때쯤 계란 풀어놓은 것을 부

로 준비한 아빠의 브런치 이벤트는 기

었다. 약한 불에 젓가락으로 빠르게 저으면

분 좋은 성공이었다. 아이들도

서 스크램블을 만들었다. 어느 정도 계란이

기분 좋고 나도 기분 좋고,

익은 다음에 볶아놓은 야채 내용물을 가운

약간의 수고로 휴일 하루

망-토마토의 순서대로 볶아야 한다. 토마토 케첩은 마지막 마 무리로 집어넣는다. 4 블루베리. 마트에 가면 냉동 된 블루베리를 판다. 냉동실에

데에 적당히 넣고 동그랗게 말기 시작했다. 가 우리 가족 모두에게

넣어놓고 필요할 때 사용

호텔에서 요리사들이 하는 것을 보면 프라

멋지게 시작되었다.

5 오믈렛을 위한 계란 준비. 1인

이팬을 기울여가며 손목을 다른 손으로 톡

하늘이 더 맑았고 햇

분에 계란 세 개가 적당하다. 손

톡 쳐가면서 오믈렛을 동그랗게 잘 말던데 그

살은 눈부셨다.

으로 저어서 풀게 되면 제대로 잘 고르게 풀어지기가 쉽지 않

것이 참 쉽지가 않았다. 양쪽 끝이 뾰족한 럭

다. 핸드 믹서를 사용하는 것이

비공 모양이 되어야 한다는데 아무리 열심히

주영욱씨는 다방면에 관

해봐도 초승달이나 반달 모양에서 진도가 더

심이 많다. 그중 사진, 여행,

가장 좋다. 손으로 저어서 하는

음식을 진지하게 좋아한다.

경우에는 마무리로 체에 거르

마케팅리서치 회사 마크로

면 더 고운 입자가 된다.

안 나간다. 몇 차례 실패 끝에 ‘사람을 불러 야 하는’ 경지에 틀림이 없다는 것을 확인하

밀코리아 대표이사.

5

SUNDAY MAGAZINE 25


HOUSE

좁은 골목 안 바이커 집 기찻길 옆 뮤지션 집 최명철의 집을 생각하다 <5> 맞춤형 소형 주택

도쿄 스기나미구의 한 주택가 좁은 골목에

가 됐다. 우선 값비싼 동네에서 비교적 저렴한

들어서면 골목 끝에 하얀 건물이 보인다. 그

오토바이 매니어들은 일반적인 주택단지

임대주택이 생겨났다. 둘째, 차 대신 오토바이

골목을 따라 10여m 들어서면 곡선이 도드

에서는 많은 불편을 겪는다. 오토바이 둘 곳

로 사는 이들에게 좁은 골목길은 그들만의

라진 작은 마당이 나온다. 이 작은 마당을 면

도 마땅치 않고 소음도 곤란하다. 주변의 눈

전용공간이 됐다. 셋째, 중앙 마당의 곡면 공

해 8개의 현관문이 마치 둥지 속 새들처럼 조

총이나 불평을 견뎌야 하고 장난이나 도난의

간이 훌륭한 오토바이 전시장이 되면서 매니

밀하게 벽을 이루고 있다. 가운데 서서 하늘

대상이 되기도 한다. NE아파트는 이런 문제

어들끼리의 커뮤니티 공간으로도 활용됐다.

를 해결해주는 특화상품이다.

넷째는 그들만의 건물들로 둘러싸여 소음에

을 올려다본다. 둥근 우물 형상의 하늘. 빨 려들어간 듯 들어선 곡선 마당에

시작은 부지였다. 좁은 골목을 지나야 다

대한 신경을 안 써도 된다는 것이다. 다섯째로

서 둥근 하늘을 쳐다

다를 수 있는 대지. 일본에서는 이런 땅을 흔

는 마당에 면한 각 1층 공간이 각자의 애차(?)

보는 순간 태아의 원

히 깃대부지(旗竿敷地)라 부른다. 깃대에 해

전용공간이 된다는 것이다. 보관 및 수리가

초적 느낌

당하는 골목길과 깃발 형상의 네모난 땅의

가능하고 더구나 같이 거주할 수 있는 주륜장

같은 것이

조합을 일컫는다.

은 바이커들에게는 최고의 해결책이다.

전해지는

스기나미구는 조용한 주택가이지만 시부

다음 단계의 해결은 디자인에 있었다. 건

듯하다. 스

야·신주쿠 등 번화가와 가깝기 때문에 인기

물의 볼륨을 덜어내 마당을 만들면서 오토

기나미구 니

가 있는 동네다. 하지만 이런 깃대부지는 주

바이의 방향 전환을 쉽게 하는 타원형 공간

시 에이후쿠

변 건물들에 의해 막혀 있기 때문에 활용도

을 만들었고 다시 이 공간을 군더더기 없는

(Nishi Eifuku)

가 낮아 땅값이 싸다. 좁은 골목길로는 차량

미니멀한 벽체로 마무리해 공사비를 절감했

지역에 있어 NE 아 파트로 불리는 이곳은 오토바이 매니어들을 위한 8세대 소형 집합주택, 이름하 26 SUNDAY MAGAZINE

여 바이커스 맨션(biker’s mansion)이다.

이용도 불가능하다. 조망도 채광도 열악하다. 다. 깔끔한 디자인으로 젊은 매니어들 취향 따라서 중앙에 마당을 두고 건물을 둘러싸 는 방법만이 유일한 해결책이 된다. 어쩔 수 없는 땅의 한계가 누군가에겐 기회

까지 부합한 셈이다. 마당을 향한 7개의 방사형 철근 콘크리트 구조 벽체는 세대별 프라이버시뿐만 아니라


HOUSE

가 차지하는 비중이 70%에 이른다. 따라서

지진에도 강한 구조다. 전용면적 28㎡에서

바 맞춤형 소형 주택을 말한다. 수요자의 눈

50㎡까지 각기 다른 평면 구성은 개성 강한

높이에 맞게 패션이나 음악처럼 다양한 스

1~2인 가구용 임대주택 사업은 중요한 수익

매니어들에게 새로운 만족감을 주기도 한다.

타일의 주거 형태가 요구된다.

형 부동산 상품이다.

2층형 3세대와 3층형 A, B 두 타입 5세대로 구

도쿄 세타가야구에 있는 MM아파트

우리나라의 인구 구조나 사회 여건 변화는

성됐기 때문에 1~2인 가구의 선택 폭을 넓혀

도 이와 유사한 경우다. 이른바 뮤지션 맨션

급속히 일본을 따라가고 있다. 최근 발표한

주고 있다. 특히 좁은 공간을 디테일이 강한

(musician mansion)이다. 이 동네에는 30

통계청 자료에는 올해부터 1~2인 가구 수가

일본식 마무리로 해결해 가장 인기 좋은 임대

초당 1대 간격으로 전철이 통과한다. 이른바

50%를 넘어섰고, 특히 1인 가구 비율(25.3%)

주택으로 변신, 부동산 가치 또한 높이고 있다.

기찻길 옆 오막살이 형국이다. 근처에는 메

은 30%대인 노르웨이·일본·영국이나 미국

이 집으로 2009년 도쿄 건축상 최우수

이지 대학이 있고 가까운 거리에 시부야·신

(26.7%)의 수준까지 육박하고 있다.

상을 수상한 나카에 유지(中永勇司·http://

주쿠 등 번화가도 있어 접근성에서 젊은 수

국가별 통계보다 더 중요한 것은 대도시권

nakae-a.jp)는 이렇게 말했다. “특화된 디

요층이 많다. 전환 포인트는 전철의 소음을

의 통계수치일 것이다. 도쿄의 경우 1인 가구

자인으로 차별성을 추구하면 수요자가 충

역으로 이용해 뮤지션들이 맘 편하게 연주

비율이 42.5%라니, 이를 쫓아가는 서울의

분히 있다고 생각했다. 혼자 사는 사람들

할 수 있도록 집 안에 스튜디오를 구성한 것.

미래는 과연 어떻게 될까. 부동산 침체 속에

은 취미생활을 즐기며 사는 경우가 많기 때

소음에 소음으로 맞불을 놓은 셈이다.

서 주거용 오피스텔이나 도시형 생활주택 정

문에 이를 활용하면 수요도 꾸준하고 사회

결국 건축가는 어떤 사람인가. 일차적으로

도만이 팔리고 있는 요즈음, 컨셉트 맨션 즉

문제로 대두되는 커뮤니티 부재 현상도 해

수요자의 눈높이에서 설계하고, 건축주의 욕

맞춤형 주택은 우리에게 많은 생각거리를 던

결할 수 있을 것이다.” 이른바 컨셉트 맨션

구도 만족시켜야 하며, 궁극적으로는 도시를

져준다.

(concept mansion)의 기치를 내건 이유다.

더불어 사는 공간으로 창조해 내야 한다.

사진 Hiroyasu Sakaguchi

컨셉트 맨션이란 주택 수요자의 모든 조

일본에는 전용 50㎡ 미만의 소형 주택이

건, 즉 경제적 여건이나 라이프스타일 또는

약 1000만 가구로 전체 가구 수의 20%가량

직업이나 취미까지를 고려해 설계하는 이른

된다. 도쿄는 전체 570만 가구 중 1~2인 가구

최명철씨는 집과 도시를 연구하는 ‘단우 어반랩(Urban Lab)’을 운영 중이며,‘주거환경특론’을 가르치고 있다. 발산지구 MP, 은평 뉴타운 등 도시설계 작업을 했다.

SUNDAY MAGAZINE 27


COLLECTOR

멋스러움에 반해 100만원 빌려 덜컥 집 한 채가 보통 230만원 할 때였죠 나의 애장품 <4> 원로시인 이근배의 벼루

1 28 SUNDAY MAGAZINE


COLLECTO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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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벽묵치(硯癖墨痴). 벼루와 먹 수집에 미친 선비를 뜻한다. 요즘말로 ‘벼루바보’쯤 될까. 한국시조시인협회장(1994)과 한국시인협회장(2002)을 역임하고 현재 대한민국 예술원 회원인 이근배 (72) 시인은 자신을 ‘연벽묵치’라고 소개하는 데 스스럼이 없다. 그가 40년 가까이 수집한 벼루는 1000점이 넘는다. 그럼에도 좋은 벼루가 나왔다는 소리가 들리면 지금도 국내건 중국이건 무조건 가서 봐야 직성이 풀 린다. 다행인지 불행인지 최근엔 맘에 드는 벼루를 만나지 못했다고 말한다. ‘맘에 들 벼루는 더 이상 없을 것’ 이라는 소리로도 들렸다. 그럴 정도로 그의 벼루 컬렉션은 질과 양 모두 최고라는 소리를 듣는다. “옛 선비들은 벼루를 연전(硯田)이라 했습니다. 농군에게 문전옥답이 필요한 것처럼 글농사를 짓는 선비에

8

1 조선 위원화초연 2 조선 남포연 3 조선 위원화초연 4 조선 남포연 5 조선 위원화초연 6 중국 단계연인 해천욱일연 (앞뒷면)

7 중국 단계연인 정조대왕사은연 (앞뒷면)

8 중국 흡주연

겐 좋은 벼루가 수양과 일상의 기본이었죠. 게다가 소모품인 종이나 붓, 먹과 달리 벼루는 반영구적이고 또 각 양각색이어서 항상 가까이 하고 싶었습니다.” 대 유학자인 할아버지와 면암 최익현의 수제자였던 외할아버지의 영향으로 어릴 적부터 붓글씨를 익힌 이 시인은 1973년 창덕궁에서 열린 벼루전시회를 다녀와서 ‘나도 저런 벼루를 갖고 싶다’는 열망에 달뜨기 시작 했다고 털어놓았다. SUNDAY MAGAZINE29


COLLECTO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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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맘에 쏙 드는 벼루가 나왔는데 당시 100만 원을 달라고 하더라고요. 집 한 채에 230만원 하던 시절이었어요. 돈이 없으니 어떡합니까.

새겨진 벼루(뒷면)

친구한테 빌려달라고 했죠. 이유를 묻길래 벼

12 중국의 벼루 명인

루를 사려 한다고 했더니 ‘네가 배포가 좀 있 구나’ 하더라고요.” 그 벼루가 ‘구욕용봉연(鸜鵒龍鳳硯)’이다. 중국 최고의 벼루로 꼽히는 단계연(端溪硯) 에 구욕새의 눈이라는 귀한 돌눈이 박히고 용과 봉황이 조각된, 한눈에 보기에도 격이 있는 벼루. 홍종인, 김동리, 최순우, 유주현, 천 경자, 배길기, 이가원, 송영방 등 쟁쟁한 인사들이 소장품을 내놓은 1976년 11월 미도파 화랑에서 열린 ‘고명연전(古名 硯展)’에서도 그의 ‘구욕용봉연’은 단연 화제였다. “지금은 제 손을 떠났지만 언젠가 다시 돌아올 것”이라는 이 시인 은 갑자기 한지를 펼치더니 “조선시대에도 좋은 벼루가 많이 나왔다”고 설명을 시작했다. 보통 산지 이름을 따서 벼루 종류를 구분하는데 조선시대에는 충남 보령의 남포, 평안북도 위원, 황해도 해주, 함경 북도 종성 등이 유명하다. 그가 특히 내세우고 싶은 것은 압록강변인 위원에서 나온 위원화초연(渭原花草硯)이다. “이 돌은 녹두색과 팥색이 시루떡처럼 층을 이루고 붙어 있는데 그것이 마치 화초 같다고 해서 화초연이라 부릅니 다. 이 차이를 이용해 조각을 하면 겉은 녹두색, 바탕은 팥색(혹은 그 반대)의 절묘한 분위기가 만들어집니다. 이 잎사 귀를 한번 보세요. 끝이 말려 있는 것까지 다 표현하지 않았습니까. 불로초 먹는 사슴이나 바둑 두는 신선 조각도 그렇 고, 이 정도면 세계 최고 수준이라고 봅니다.” ‘정조대왕사은연(正祖大王謝恩硯)’도 가장 아끼는 벼루 중 하나다. 청나라 건륭제의 열한 번째 아들이자 명필이었 던 성친왕의 이름이 새겨진 중국 단계연이다. 이 벼루에는 성친왕과 동갑이었던 정조대왕이 자신의 스승이자 아버지 사도세자의 스승이기도 했던 대제학 남유용에게 하사했다는 글이 새겨져 있다. “앞으로 우리 벼루에 대해 제대로 된 책을 내고 싶습니다. 그 다음엔 전시도 하고요. 잃어버린 우리의 선비정신을 그 책과 전시를 통해 다시 살려냈으면 하는 바람입니다.” 30 SUNDAY MAGAZINE

9 중국 송화강녹석연(앞뒷면) 10 중국 옥연 11 안중근 의사의 글씨가

글 정형모 기자 hyung@joongang.co.kr, 사진 조용철 기자

장정제가 만든 벼루(앞뒷면)


COLUMN

임윤택과 4인의 네버엔딩 희망 스토리 컬처 # :‘울랄라 세션’이 사는 법

데뷔와 더불어 마지막 무대를 떠올리게 만든 사람들, 언젠가 올지도 모를 그 마지막이 마 음에 걸려 볼 때마다 왠지 초조해지게 만드 는 사람들, 그러나 그 마지막이 올 것이라는 사실을 절대 믿고 싶지 않게 만드는 사람들, 그리고 스스로도 믿지 않는 듯한 사람들. 그 들의 착각이 맞기를 간절히 원하게 만드는 사 람들. 믿어지지 않는 영화 같은 일이 연예계 의 현실 속에 펼쳐지고 있다. 드라마의 주인 공은 울랄라 세션, 그리고 그들의 리더 임윤 택(32)이다. 믿어지지 않았다. 그들의 첫 무대부터. 노 래 실력, 화음 안무, 패션 감각과 무대 연출까

은 “말없이 행동으로 보여주는” 리더에게 한

기 힘든 중한 병에 걸렸다는 사실이다. 모두

지 월등한 이런 아마추어들이 10년 넘게 TV

번도 반항하지 않았으며, 임윤택은 “멤버들

들 슈퍼스타K 무대가 더해질수록 야위어가

바깥의 무대를 떠돌아야 했다는 걸. 그 뛰어

의 성격 하나하나에 맞춰” 그들을 리드해 왔

는 그를 아프게 바라볼 수밖에 없었다. 그러

난 실력은 기획사에서 갈고닦인 아이돌의 빈

다고 한다. 이들이 밝히는 앞날의 목표는 대

나 우승의 순간에도 눈물 한 방울 흘리지 않

틈없는 세련됨과는 무언가 달랐다. 손발이

단한 음악이나 성취가 아니다. “우리는 무얼

는 이 냉정한 인간은 대중이 손쉽게 그를 가

척척 맞고 날렵한 안무를 척척 해내면서도 어

하기 위해 모인 적이 없다. 함께 있다 보니 춤

두려고 했던 신파의 덫을 훌쩍 뛰어넘었다.

딘지 모르게 야생성과 자유로움이 번뜩이는

을 추고 노래를 하게 됐다. 목표 역시 언제나

그는 웃으며 순간의 기쁨만을 즐겼다. 그리고

모습. 그들 역시 음반을 내고 프로로 데뷔한

함께 있는 것이다.” 데뷔 전 멤버 개개인에게

계속해서 그들만의 회사를 만들고, 여전히

적도 있었다지만 대부분의 경력은 행사 무대

기획사의 제안이 와도 거절하며 이들이 지금

웃는 얼굴로 노래하고 춤을 추며 연인과 사

나 가요 학원이었다고 한다. 말하자면 그들은

까지 함께 있을 수 있던 이유다.

랑을 하며 믿기 어려운 현실들을 여전히 만 들어 내고 있다.

온실이 아니라 들판에서, 자신들을 환영하지

단단하게 뭉쳐진 이들을 이끄는 리더 임윤

않는 관객들을 상대로 생존전략을 터득해

택은 ‘일진’ 고등학생 시절과 불량기가 가득

“얼마나 사느냐보다 어떻게 사느냐가 더 중

온 가수들이었다. 그래서 그들은 전문적으로

한 얼굴을 한 춤꾼 시절 과거 사진이 믿어지

요하다”는 긍정의 말은 그가 죽음의 공포를

조련된 가수들과는 다른 매력적인 야생의 기

지 않을 정도로 입만 열면 성공학 개론에 실

몸으로 받아내며 뱉는 말이기에 한 치의 허

운을 가지고 있었던 것이다.

을 법한 어록을 쏟아낸다. “팀이라는 것은 무

세도 없이 가슴에 와서 꽂힌다. 이제는 일상

그들의 모습을 거듭 볼수록 또 믿어지지

언가 잘하는 사람들이 모이는 게 아니라 자

화된 암의 공포와 더불어 살아가야 하는 오

않는 것은 네 사람 간의 끈끈한 연대였다. 짧

기가 가진 소중한 걸 포기할 수 있는 사람들

늘날의 현실에, 그는 가장 모범적인 삶의 에

게는 7년, 길게는 15년을 만난 네 남자. 하지

이 모이는 겁니다.” “아무것도 바라지 않고, 피소드를 만들어 가며 희망의 드라마를 계

만 단지 오랜 기간의 만남 때문만이라고는 하

어떤 일을 15년 동안 해보세요. 성공하지 않

기 힘든 그 유난한 신뢰의 눈빛과 단단한 팀

을 수가 있을까요.” 철없는 시절 폭력의 에너

그러니 바라는 것은 임윤택과 그들이 써내

워크의 근원이 궁금했다. 한 인터뷰에서 그

지를 멋진 창작의 에너지로 전환시킨 그의 열

려 가고 있는 이 드라마가 ‘엔딩’ 없이 언제까

속 쓸 것 같다.

들은 더운 여름날 좁은 아파트 방에 모여 가

정과 진심은 늘 초조하게 무언가를 이루기만

지나 계속되는 것이다. 영원히 믿을 수 없는

족과 이웃들의 눈치와 원망을 받아가며 땀을

을 바라며 살아온 사람들을 부끄럽게 만든다.

기적의 드라마의 주인공이 되기를, 그것만은

뻘뻘 흘리면서 녹음을 했던 추억을 이야기했

아마도 가장 믿기 힘들고 믿기 싫은 것은

다. 그렇게 젊은 날을 음악과 춤에 바친 이들

그 멋쟁이 리더십의 주인공 임윤택이 회복하

믿고 싶다. 글 이윤정 대중문화평론가, 사진 CJ E&M SUNDAY MAGAZINE 31


SOULSEARCHING

동시에 둘 다 얻을 수 없다면 사랑보다는 두려움의 대상이 되는 게 훨씬 더 안전하다.

It is far better to be feared than loved if you cannot be both. 안아주거나 혹은 짓밟아버리거나 박정태의 고전 속 불멸의 문장과 작가 <15>『군주론』과 니콜로 마키아벨리

실직한 마흔네 살의 전직 관료, 시골집에 은둔

다. 이런 식이다. “인간들이란 다정하게 안아

한 지 8개월째, 딸린 식구는 아내와 어린아이

주거나 아니면 아주 짓밟아 뭉개버려야 한다. 수 없으며 지켜서도 안 된다.”

가 더 이상 존재하지 않을 때는 약속을 지킬

넷, 모아둔 돈도 없이 나무 벌채로 근근이 먹

인간이란 사소한 피해에 대해서는 보복하려

고산다. 저녁 무렵이면 선술집에 들러 자신을

들지만 엄청난 피해에 대해서는 감히 복수할 人)들을 모방하라는 대목을 보자. 마치 동양

향한 운명의 장난에 분노를 터뜨리지만, 밤이

엄두도 못 내기 때문이다.”

되면 관복으로 갈아입고 서재에 들어간다.

너무 삭막한가. 그렇다면 위대한 선인(先

니콜로 마키아벨리 (Niccol Machiavelli, 1469~1527)

고전의 한 구절을 읽는 느낌이다. “노련한 궁

『군주론』이전까지 정치는 감미로운 이상

사가 목표물이 아주 멀리 떨어져 있을 때 활

“예절을 갖춘 복장으로 몸을 정제한 다음, 이었다. 마땅히 이러이러해야 한다는 도덕론

을 쏘는 방법과 마찬가지로 행동해야 한다. 그

옛사람들이 있는 옛 궁정에 입궐하지. 그곳에

이 지배한 세계였다. 그런데 마키아벨리는 “실

는 자기 활의 힘을 잘 알고 있기 때문에 좀 더

29세에 피렌체 공화국

서 나는 그들의 친절한 영접을 받고 나만을

제로 일어난 사건들을 고려할 때” 혹은 “경험

높은 곳을 겨냥하게 되는데, 이는 그 높은 지

제2서기국 서기관에 선

위한 음식을 먹는다네. 나는 부끄럼 없이 그

에 비춰보면”이라는 전제 아래 현실론을 들이

점을 맞히기 위한 것이 아니라 목표물을 맞히

출돼 외교무대에서 활약

기 위해 일부러 그곳을 겨냥하는 것이다.”

했으나, 메디치가의 복

들과 이야기를 나누고, 그들의 행위에 대한

민다. 갑자기 정치가 냉혹한 현실이 된 것이다.

이유를 물어보곤 하지. 그렇게 보내는 네 시

“‘인간이 어떻게 사는가’는 ‘인간이 어떻게

그러나 마키아벨리의 간절한 바람에도 불

간 동안 나는 전혀 지루함을 느끼지 않아. 모

살아야 하는가’와는 다르다. 따라서 일반적

구하고 로렌초 데 메디치는『군주론』을 아

든 고뇌를 잊고, 가난도 두렵지 않고, 죽음에

으로 행해지는 바를 행하지 않고 마땅히 해

예 읽어보지도 않는다. 다시 한번 운명의 여

대한 공포도 느끼지 않는다네.”

야 하는 바를 고집하는 군주는 권력을 잃기

신에게 버림받은 그는 끝내 관직에 복귀하지

1513년 12월 10일 니콜로 마키아벨리는 십상이다. 어떤 상황에서든 선하게 행동하려

못한다.『군주론』은 그의 사후 5년 만에 출

친구에게 보낸 편지에서 처음으로『군주론

는 사람이 무자비한 이들에게 둘러싸여 있

간되지만, 1559년 교황청은 선량한 그리스도

(The Prince)』을 쓰고 있다고 소개한다. “나

다면 그의 몰락은 불가피하다. 권력을 유지하

교도에게 적당치 않다며 마키아벨리의 모든

는 그들과의 대화를 소논문으로 정리해 보기

고자 하는 군주는 필요하다면 부도덕하게 행

저작을 금서로 지정한다.

로 했네. 군주국이란 무엇인가? 어떤 종류가

동할 수 있어야 한다.”

있는가? 어떻게 하면 획득할 수 있는가? 어떻 게 하면 보전할 수 있는가? 왜 상실하는가?”

귀로 관직에서 물러난 뒤 저술에 몰두했다.

그의 이름을 딴 마키아벨리즘은 한동안

마키아벨리는 그래서 군주는 사랑을 받는

사악한 권모술수의 대명사처럼 여겨지기도

것보다는 두려움의 대상이 되는 게 훨씬 더

했지만, 지금 마키아벨리는 근대 정치사상을

그가『군주론』을 쓴 목적은 단 하나, 복직

안전하다고 말한다. 인간은 두려움을 불러일

처음으로 주창한 인물로 화려하게 복권됐다.

을 위해서였다.『군주론』은 그래서 당시 피

으키는 자보다 사랑을 받는 자에게 해를 끼

요즘 들어서는 기업인들 사이에 인기가 높은

렌체 공화국의 실권자였던 로렌초 데 메디치

치는 것을 덜 주저하기 때문이다. 그리고『군

데, “결과만 좋으면 수단은 언제나 정당화된

에게 바치는 헌정사로 시작된다. 군주의 환심

주론』에서 가장 많이 인용되는, 사자의 무력

다”는 문장에서 읽을 수 있듯 무엇보다 효율

을 사고자 하는 자들은 자신의 소유물 중 가

과 여우의 지혜를 제시한다.

을 우선하는 그의 철학 때문일 것이다.

장 소중한 것을 바치는데, 그는 “꾸준한 독서

“사자는 함정에 빠지기 쉽고 여우는 늑대

그러나 절대로 오해해서는 안 된다. 마키아

를 통해 습득한 위대한 인간들의 행적에 관

를 물리칠 수 없다. 함정을 알아채기 위해서

벨리는 개인이나 기업의 사익을 위해 책을 쓴

한 지식만큼 귀중하고 가치 있는 것은 없다

는 여우가 되어야 하고 늑대를 혼내주려면 사

게 아니다. 그가 “필요할 경우 주저 없이 악을

는 점을 깨달았다”고 적는다.

자가 되어야 한다. 단순히 사자의 힘에만 의

택하라”고 말할 때 그 전제는 어디까지나 조

박정태씨는 고려대 경제

마키아벨리가 정리한 내용은 모두 26장, 지하는 자는 사태를 제대로 이해하지 못한다. 국의 이익이었다.『군주론』의 마지막 장은

학과를 나와 서울경제신

구구절절 명쾌하면서도 냉정하기 이를 데 없

현명한 군주는 신의를 지키는 것이 그에게 불 “야만족의 지배로부터 이탈리아의 해방을 위

고, 인간 본성에 대한 예리한 통찰이 깔려 있

리하게 작용할 때, 그리고 약속을 맺은 이유

32 SUNDAY MAGAZINE

한 권고”다.

문, 한국일보 기자를 지냈 다. 굿모닝북스 대표이며 북 칼럼니스트로 활동 중.


CARTOON

김재훈의 문화 캐리커처

포스터의 아버지

쥘 셰레 내가 비록 고흐나 피카소 같은 위대한 화가는 아니지만 그래픽 디자인과 포스터의 역사에서는 맨 앞에 내 이름이 등장하지. 새로운 근대 문명의 상징으로 에펠탑이 세워지고, 도시인들이 화려한 밤 문화를 향유하던 18세기 말엽 프랑스에는 발달된 석판화 인쇄술과 그 기술을 홍보용 그림에 가장 잘 활용한 화가가 한 명 있었다.

시대를 기록한 화가

툴루즈 로트렉 나는 셰레의 화풍과 석판화 기법에 영향을 받긴 했지만 그와는 다른 소재와 방법으로 인간들의 개성을 표현했어.

지체 높은 귀족 가문의 아들로 태어났지만 어려서부터 신체적 장애를 가졌던 툴루즈 로트렉은 타인들이 살아가는 모습을 끝없이 관찰하면서 자신이 경험하고 느낀 바를 애정과 냉소를 담아 그림으로 표현했다.

쥘 셰레는 포스터의 역할이 일단 사람들의 시선을 확 끌어야 한다는 사실을 누구보다 잘 알았던 화가였지.

우리가 이렇게 추하다면 추한 꼴로 노니는 광경을 다리 짧은 로트렉이 확실하게 포착해 후대에 남겨줄 거예요.

그는 화려하고 역동적인 광경을

인물의 특징을 보여주기 위해

단순한 드로잉으로 표현하고 거기에

외모 뿐 아니라 그 사람의 모든

다색 석판화 기법으로 색을 입혀

동작과 내면까지 파고들었던

수많은 포스터를 제작했다.

로트렉은 카바레와 극장, 매음굴 등

그리고 광고의 선구자답게

다양한 처지의 사람들이 모여드는

매력적인 몸짓의 여성 모델을

모든 장소를 전전하면서

화면의 주인공으로 등장시키는

동시대의 향락적인 문화를

것 또한 빼놓지 않았다.

회화와 포스터로 기록했다.

97세까지 살면서 천 점이 넘는 포스터를 제작했대.

역동적인 구도와 선명한 배색으로 셰레가 제작한 포스터들은 분명히 당시의 도시를 장식한 거리의 예술이었을 거예요.

물랭루즈의 불타는 밤에는 무희들의 춤과 노래, 그리고 언제나 로트렉이 있었어.

로트렉이 포스터에서 보여준 대담한 실루엣과 배색은 이후 여러 화가의 표현과 그래픽 디자인에 큰 영향을 끼쳤어요.

김재훈씨는 홍익대에서 디자인을, 연세대 커뮤니케이션대학원에서 영상디자인과 문화사회학을 공부했다. 인문과 문화를 대중에게 소개하는 정보 만화가의 길을 걷고 있다.

SUNDAY MAGAZINE 33


CONTE

나도 주사파 김상득의 인생은 즐거워

자신감 있고 유쾌하고 박력 넘치는 사람으로

또 언젠가 함께 술을 마시던 사람 중 누군

변한다는 것이다. 전혀 논리가 없는 사람이

가 술 취한 내가 떠드는 이야기가 하도 재미

문득 하는 말마다 첫째, 둘째, 셋째 하면서 조

없어 그만 일어서 가려고 하니까 그 사람 팔

목조목 논리가 정연해진다고 한다. 그런 말을

을 잡았다고 한다. 그래도 가려고 하자 팔을

들을 때면 술에 취해 있는 게 차라리 낫지 않

뒤로 꺾어서 비틀었다고 한다. 아프다고 해

을까 하는 유혹에 빠진다.

도 나는 잡은 팔을 계속 풀지 않은 채 논리 정

만취한 내가 어떤 사람인지 나는 기억하지

연하게 했던 이야기를 하고 또 했다는 것이다.

못한다. 내 기억의 필름은 알코올에 민감해

나중에는 달아나려는 사람에게 헤드록까지

혀끝에만 닿아도 툭 하고 끊어지기 때문이다. 걸었다고 하니 아무래도 나는 ‘사이코패스’ 술 마신 다음날 사람들이 내게 말해주는 나 술을 좋아하는 사람은 주량도 두주불사다. 의 언행은 도무지 내가 한 것 같지 않다. 그것 술에 약하다면 그다지 술을 좋아하지 않는다. 들이 사실인지 어떤지도 모르겠고, 또 어느

이제 그런 버릇은 없어졌다. 옛날의 술버

대개는 그렇다. 드물지만 그렇지 않은 사람도

쪽이 진짜 나인지도 알 수 없다. 사람들은 술

릇이 그나마 화려하고 박력 넘치는 것이었다

취한 내 언행이 재미있었다고 말하지만 만일

면 요즘의 것은 소박하고 조신한 편이다. 만

실 정도로 마시고도 만취한다. 내가 그렇다. 내가 그들 입장이었다면 나는 분명히 혀를

일 ‘소주량 애주가 만취 클럽’ 모임에서 입술

차고 눈살을 찌푸렸을 것이다.

을 적실 정도의 술에 취한 내가 정신을 놓고

그중에서도 나는 주사파다. 평소에는 조용하

언젠가 입사한 지 얼마 되지 않은 직원이

꿈꾸듯 앉아 있다고 하자. 문 닫을 시간이 되

고 부끄러움이 많은 사람이지만 술을 마시면

있는 회식자리였는데, 술에 취한 내가 유쾌

어 주인이 “손님, 이제 마칠 시간입니다”라며

반드시 취하고 취하면 반드시 시끄러워진다. 하게 그 신입 직원의 이마에 박치기를 했다

나를 깨운다. 나는 정말 잠이라도 자다 깬 사

고 한다. 물론 악의 없이 장난 삼아 살짝 한 것

람처럼 정신이 돌아와서는 함께 왔던 일행의

부끄러운 줄도 모르고 말이다. 사람들은 말한다. 술보다는 술자리를 좋

이겠지만 그것은 어디까지나 취한 사람의 감

이름을 한 사람씩 부르며 그 사람들을 찾는

아하고 술 마시는 분위기를 좋아한다고. 술

각일 뿐 다른 자리의 손님들도 놀라서 돌아

다. 그럴 때 주인은 슬픈 눈으로 나를 보면서

맛은 사람 맛이라고. 나는 그렇지 않다. 나는

볼 정도로 쿵 소리가 나고 불꽃이 튀는 사태

이렇게 말한다.

술을 좋아한다. 술 맛은 술 맛이다. 어떤 자리

였던 것이다. 다행히 신입 직원이 어릴 때부터

에서 누구와 마시든 술은 맛있다. 술에 안 취

일이 뜻대로 되지 않으면 벽에 이마를 찧는

한 나는 우유부단하고 재미없는 사람이다. 버릇이 있는 사람이라 박치기 후에 쓰러진 그런데 술에 취하면 딴사람이 된다고 한다. 사람은 나였다고 한다.

34 SUNDAY MAGAZINE

는 감수성이 없으니 말이다.

있다. 가령 어떤 사람은 애주가지만 입술 적 나는 ‘소주량 애주가 만취 클럽’의 회원이다.

들숨날숨

인 것 같다. 타인의 슬픔이나 고통을 공감하

“손님, 올 때 혼자 오셨는데요.” 결혼정보회사 듀오의 기획부장이다. 눈물과 웃음이 꼬물 꼬물 묻어나는 글을 쓰고 싶어한다.『아내를 탐하다』 『슈 슈』를 썼다.

“존재지향적 삶은 여백의 시간을 즐기는 일” ▶“‘존재지향적 삶’은 ‘쓰고 버리는 소비’ 행

▶“행운이란 것은 영원하지 않습니다. 어떤 일

▶“2009년 어머니가 돌아가시고 염습하던

위와 대척점에 있다. 존재지향적 삶은 ‘시장

이 잘된다고 해서 너무 집착하는 것은 위험합

순간이었어요. 수의로 갈아입히는데 그때 아

경제 의존도를 줄이고 여백의 시간을 즐기는

니다. 현재에 지나치게 몰두하면 미래가 중요

주 잠깐 어머니의 가슴을 봤죠. 그런데 어머

일’이다. 이러면 돈을 못 번다. 그래서 사람들

하지 않게 되어 다른 이들이 장차 깨달음을

니의 가슴이 겨우 흔적만 남아 있고, 쪼그라

은 소유지향적이 아닌 존재지향적 삶을 염원

얻을 수 있도록 연민에 찬 행동을 하고자 하

들어 있는 거예요. 내가 저 가슴에 얼굴을 파

하지만 가난은 두렵다. 돈이 없으면 아무것도

는 마음이 약해집니다. 반면에 모든 것이 무

묻고 잠들었었는데, 저 가슴을 빨아가며 배

할 수 없는 사회에서 돈은 ‘달콤한 드라큘라’

상하다는 관점을 가지면 연민에 찬 행동을 하

를 채웠는데…. 눈물이 납디다. 저 모습이 내

다. 돈은 편리한 기술과 화려한 상품을 제공

게 됩니다. 우리는 언젠가 죽어야만 하며, 그

어머니의 본체구나, 그런 걸 깨달았죠. 어머

해 주지만 돈을 벌기 위해 우리는 노동을 판

순간이 언제가 될지도 모릅니다. 죽음이 임박

니가 죽고 나서야 발견하게 된 어머니의 참모

다. 더 많이 일을 하고 계속 돈을 벌면 더 많이

했음을 이해하면 시간을 지혜롭게 활용하는

습이죠. 참 어리석은 자식이죠.”

행복할까.”

것이 얼마나 중요한지 잘 알게 될 겁니다.”

-소설『잘가요, 엄마』의 김주영 작가, 독자와의 대

-윤미화의 책『독과 도』중에서

-달라이 라마의 책『마음 길들이기』중에서

화 중에서


PHOTO ESSAY

이창수의 지리산에 사는 즐거움

매실의 계절 요즘 우리 동네는 매실 따기에 정신없습니다. 제가 보기에 매화나무만큼 실한 나무는 없습니다. 일단 춥고 삭막한 겨울에 매화꽃이 피면 온 천지에 그 향기가 퍼져 봄을 기다렸던 마음을 따뜻하게 합니다. 매화꽃만 봐도 무한히 행복한데 그 꽃이 지고 나면 사람 몸에 좋다는 매실까지 달고 있으니 이보다 더 좋을 수 없습니다. 매화꽃이 봄을 열었듯 매실은 여름을 엽니다. 매실은 망종 이후에 따야 한다는 말이 있듯이 6월 중순 이후가 가장 좋을 때입니다. 부지런히 매실을 따 여기저기로 택배 보내고 미처 다 팔지 못한 것은 매실 효소나 매실주를 담급니다. 사람들은 매실 하면 ‘청매실’이라고 푸르뎅뎅한 매실을 좋은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그러나 원산지에서 도시 소비자까지 가는 ‘유통기간’ 때문에 나무에서 충분히 익은 것을 따서 보낼 수 없습니다. 익은 매실은 금방 물러져서 유통시키기가 어렵기 때문입니다. 매실 효소나 술은 익은 매실로 담가야 맛과 향이 좋습니다. 매실은 노르족족하게 익은 지금이 바로 제철입니다.

이창수씨는 16년간 ‘샘이 깊은 물’ ‘월간중앙’ 등에서 사진기자로 일했다. 2000년부터 경남 하동군 악양골에서 ‘중정다원’을 운영하며 녹차와 매실과 감 농사를 짓고 있다.

SUNDAY MAGAZINE 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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