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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4 부동산

2011년 9월 14일 수요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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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서령의 이야기가 있는 집 - 안동 ‘탁청정’ 500년 세월 품은 고택, 문고리 하나도 예사롭지 않더라 안동댐은 어떤 사람들에겐 일종의 트라우마다. 1971년 시작된 거대한 물막이 공사는 낙동강 상류에 자리 잡 았던 ‘하회마을’ 십여 개를 수장해 버렸다. 문화재로 지정된 건물 일부는 옮겨졌지만 그렇지 못한 집들은 ‘ 수몰’됐다. 물에 묻힌 집들은 그냥 홑집들이 아니었다. 조선 중기부터 적어도 500년은 내려온 찬란한 명가들 이었다. 요즘 같으면 어림없을 소리지만 당시는 문화 적·역사적 가치보다 경제 가치가 우선시되던 개발연 대였고 안동의 명문가들은 그 흔한 데모 한 번 없이 국가정책을 받아들였다. “나라를 건설하는 일은 대의 (大義)고 문중을 지키는 일은 소리(小利)이니 승복하 자”라고 공론이 모아졌더라 한다. 외내(오천)의 광산 김씨도 그런 명문가 중의 하나였다. “마을 전체에 군 자 아닌 사람이 없다” 하여 ‘군자리’로도 불렸다는 외 내의 고래등 같은 기와집들은 새로운 장소로 집단이주 됐다. 그래서 울며 겨자 먹기로 만들어진 마을이 지금 의 군자리다. 새 군자리에도 이젠 제법 역사가 생겼다. 마을입구 느티나무들도 우람해졌고 입구 기둥에 써둔 ‘적선여경(積善餘慶·선을 쌓는 집안에 경사가 있다)’ 글자들에도 고졸함이 감돌아 상처를 씻는 것은 역시 세월의 힘이구나 싶다.

김서령 칼럼니스트

고, 이 집에 들어와 살면서 날마다 보물찾기하는 기분 이었어요. 이렇게 구석구석 수납공간을 만들어둔 것은 방 안을 텅 비우기 위한 거지요.” 그런데 이미령 여사는 광산김씨가 아닌 진성이씨다. 원래 집은 여기서 몇 ㎞ 떨어진 도산면 퇴계의 송재종 택(송재는 퇴계의 삼촌이다)이고 이곳 탁청정은 그의 외가다. “이 방이 우리 아버지와 어머니가 처음 신방 을 차렸던 곳이래요. 처음 만날 때 아버지는 탁청정에 앉아 있고 어머니가 처네를 쓰고 정자 앞에 있는 연못 을 한 바퀴 돌아서 아버지께 선을 보였다지요. 아버지는 당시 신문기자였는데 처녀가 매우 미인이었음에도 그다 지 마음에 들지는 않았던 모양이에요. 그래도 독립운동 의 거물인 김남수의 질녀라는 점에 끌렸다나 봐요.” 나는 여러 번 탁청정에서 묵었다. 기와 위에 자라는 바위솔을 올려다보며 풋잠이 들기도 했고 아침햇살이 추녀의 그림자를 시시각각 창호지 문 위에 그려놓는 것도 구경했다. 그러나 가장 인상적인 풍경은 젊은 아 버지가 두 돌을 막 넘긴 아기 이미령을 안고 조금 허 탈한 눈빛으로 이쪽을 바라보는 낡은 사진이었다. 이 미령이 41년생이니 사진 속 남자에게는 식민지 지식인 의 우울이 깔려있을 수밖에 없겠다고 나는 짐작했고 흥미로운 것은 그 얼굴이 영화감독 이창동과 꼭 닮았 다는 점이었다. 그럴 수밖에 없는 것이 이창동은 그의 남동생이다. 낡은 바라지문 뒤에 숨은 현대식 부엌에서 이미령 여사가 차려내는 밥상 또한 여느 집과는 썩 다르다. 하긴 탁청정은 16세기에 이미 『수운잡방』이란 특별 한 요리책을 남겼던 인물이니 탁청정에서 받는 밥상이 특별할 수밖에! “탁청정 부엌에는 늘 진미가 가득하고 독에는 항상 술이 가득하다”고 쓴 퇴계의 글도 있다.

세월의 더께 벗겨내니 집 전체가 보물

이미령 여사가 탁청정종택 옛 부엌에서 나오고 있다. 아기자기한 안마당의 풍경에서 집을 아끼는 이 여사의 정성이 보인다.

탁청정 종택. 오른쪽 옆에 보이는 정자가 탁청정이다.

오늘 우리가 찾을 탁청정도 그렇게 옮겨진 집이다. 16 세기 처음 군자리에 자리 잡았던 입향조 김효로의 작 은아들 ‘탁청정’ 김유(金<7DCC>)의 집으로 1544년 지 어졌다. 군자리엔 후조당·설월당·양정당 같은 종가와 산남정·읍청정·침락정·개암정 같은 정자들이 즐비하 지만 정작 후손들이 들어와 사는 집은 거의 없다. 조 상이 물려준 집을 지키고 앉아있는 일이 항산(恒産)을 만들어내지 못하기 때문이고 그래서 종손들은 다들 도 시로 떠났다. 안동의 숱한 한옥들은 주인이 살지 않아 대들보만 덩실한 채 속절없이 허물어지고 있다. 이곳 탁청정은 이름대로 정자지만 종택인 살림집이 바로 곁에 붙어있고 지금 후손이 살고 있어 윤이 자르 르 흐른다. 그래서 500년의 어스름한 시간들이 현재의 명백한 시간들에 이어져 살아 숨쉬는 가치를 만들어낸 다. 탁청정 종택엔 예전 중종·인조·명종·선조 시절의 어른들은 짐작도 못할 문명의 이기들이 집 안에 속속 들어와 있다. 수백 년 묵은 문짝과 마룻장에 살짝 숨 겨진 가전제품들은 새롭게 맞닥뜨리는 조화이고 균형 이다. 현재 이 집에 살고 있는 이미령(70) 여사는 한 옥을 ‘반짝반짝 윤 내는 분야’에서 거의 달인의 경지에 올랐다. 오랫동안 방치되어 있던 집은 그의 손이 닿자 환골탈태했다. 낡은 반닫이도 놋그릇도 문짝도 의걸이 도 심지어 헌 바가지와 채반도 그의 손이 닿으면 아연 ‘럭셔리’하고 ‘엘레강스’하게 변신한다. 요컨대 그는 오 래된 물건들이 품고 있는 이야기를 끄집어낼 줄 아는 사람이다. 낯선 호칭 ‘여사’가 ‘여자선비’의 줄임말이라 면 이미령 여사만큼 이 호칭에 잘 어울리는 사람을 만 나기란 쉽지 않을 듯하다. “벽지를 뜯으면 숨어 있던 벽장이 드러나고 벽장 위에 숨어 있던 다락이 발견되

아들 부부 합방 위해 터준 사랑방 쪽문 “사랑방 뒷벽에 난 작은 문 봤어요? 거기로 나와 돌아 가면 안방 뒷문과 연결돼요. 어른들이 합방할 날을 정 해 줘야 만날 수 있던 젊은 부부를 위해서 그렇게 숨 통을 틔워주는 집 구조가 재미있잖아요?” 그는 회갑 이 되어 외가로 들어왔다. 두 아들에게 제 살림을 내 준 후 피로한 서울생활을 청산하고 추억이 깃든 옛집 으로 낙향한 것이다. “뜰에 앉아 있으면 나비와 잠자 리가 손등에 내려와 앉아요. 외사촌들이 아직은 내려 와 살 형편이 못 돼 탁청정 종가가 우선 내 차지가 됐 지요.” 탁청정은 사방으로 문을 들어올릴 수 있어 잠 깐만에 방이 누가 되는 구조다. 3명이 앉아도 30명이 앉아도 좋을 탄력을 가졌다. 문 안에 다시 작은 문이 들어 있는 디자인은 기능과 미와 독창성을 고루 갖췄 다. 문고리 또한 그냥 지나칠 수 없다. 이렇게 빼어난 조상들의 감각과 안목이라니! 다른 말은 부질없다. 기 회 있으면 안동 군자리로 탁청정을 구경가라고 권할 수밖에! 종택은 개인공간이지만 한석봉 글씨를 현판으 로 달고 있는 정자는 누구에게나 열려 있다. B5면으로 이어집니다.

The Korea Dail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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