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July 22~23, 2012. no.280. sunday.joongang.co.kr

ISSUE

http://sunday.joongang.co.kr

제280호 7월 22일~23일 값 1000원

올림픽은 문화다


CONTENTS editor’s letter

06

THIS WEEK PEOPLE 탄생 80주년 백남준

장화의 위안

ISSUE

08

“비가 많이 오네. 출근할 때 큰 우산 가져가

2012 런던 문화올림픽

REVIEW

요.” 태풍 카눈의 영향으로 새벽부터 폭우

14

가 쏟아진 목요일 오전. 큰애를 학교에 보

연극 ‘더 러버’

내고 아내가 말했습니다. “옷이 많이 젖겠

BOOK

16

는데, 신발은 뭘 신고 가나.”

숨은 책 찾기 <16> 돌베게『왕과 국가의 회화』

주섬주섬 출근길에 나섰습니다. 대체로 장마철 출근길은 우중충합니다. 옷차림도

INTERVIEW

왠지 그렇고, 검정 아니면 감색 우산을 들

18 문화와 함께하는 2012 런던 올림픽

19禁 개그의 지존, 신동엽

COLLECTOR

고 있는 표정들도 그렇습니다. 어, 그런데 이날은 좀 달랐습니다. 비가 제

22

법 내려서일까요, 아니면 시간을 잘 맞춘

김준목씨의 서양 고서

걸까요. 지하철 안이 환했습니다. 형형색

GALLERY

24

색 장화 덕분이었습니다. 빨간 장화, 파란

2012 동강국제사진제

장화, 찢어진 장화는 아니고 체크 무늬 장

PORTR AITS ESSAY

화 등. 마치 비가 많이 오기만을 기다렸다

25

는 듯 사방에 장화 천지였습니다. 최근 몇

‘징하게’ 한국적인 윤문식

년간 유행이라는 장화 열풍의 본색을 비 FOOD

26

로소 본 느낌입니다. 하루 종일 신고 있으

주영욱의 도전! 선데이 쿠킹 <7> 두부 카프레제 샐러드

HOUSE

려면 불편할 것도 같은데, 그건 당사자 얘 기고, 어쨌든 보기에 지루하지 않아 좋았 28

개그맨 신동엽

최명철의 집을 생각하다 <7> 강원 홍천 ‘살둔 제로에너지 하우스’

COLUMN

장화를 신으면 물웅덩이만 골라 다녀야 제맛입니다. 물도 막 튀기고, 깊어 보이는 곳에 가서 서 있기도 하고. 비가 아무리 와

31

도 난 괜찮을 거라는 작은 위안을 장화는

컬처#: 미드나잇 인 파리’를 보고

SOUL-SEARCHING

습니다.

줍니다. 남자들이 군대 가서 군화를 처음

32

신었을 때 마음이 든든해지는 것과 비슷

박정태의 불멸의 문장과 작가 <17> 『백년의 고독』과 마르케스

한 것이겠죠. 점심때가 되자 거짓말처럼 해가 쨍하고 났

CARTOON

33

습니다. 땡볕 무더위에 멋져 보였던 장화가

김재훈의 문화 캐리커처 VS

CONTE

갑자기 덥게 느껴집니다. 사람 마음 참 간 사합니다. 그래도 장화는 오늘의 임무를

34

멋지게 마쳤습니다.

김상득의 인생은 즐거워 김준목 대표의 고서적 컬렉션

강원 홍천 ‘살둔 제로에너지 하우스’

정형모 문화에디터 hyung@joongang.co.kr

S MAGAZINE 표지 런던 내셔널 포트레이트 갤러리에서 열리고 있는 ‘The Queen: Art and Image’ 전에 출품된 ‘엘리자베스 2세’. Queen Elizabeth II by Dorothy Wilding (Hand-coloured by Beatrice Johnson), 1952. © William Hustler and Georgina Hustler/ National Portrait Gallery, London ※7월29일자 중앙SUNDAY 매거진 휴간합니다. 문화에디터 정형모 취재 홍주희 유주현 사진 조용철 최정동 편집 우현아 교열 한규희 디자인 전유진 최귀연 통신원 이지윤(런던) 최선희(파리) 김성희(밀라노) 광고 김진영 구명서 엄태규 마케팅 박유선 이용임 박유림 기사제보 02-751-9000, 080-023-5002 광고문의 02-751-5555 / Fax 02-751-5806

1부 1000원 /월 5000원 정기구독문의고객센터 1588-3600, 080-023-5001

04 SUNDAY MAGAZINE


THIS WEEK PEOPLE

‘무게가 없는 예술’ 일찍이 주목한 비디오 아트 시조 탄생 80주년 맞은 백남준

1984년 1월 1일 아침, 사람들 은 안방에서 신대륙을 발견했 다. 뉴욕~파리~서울 등 8개 세 계 주요 도시를 잇는 인류 최초 의 위성 예술인 백남준의 ‘굿모 닝 미스터 오웰’이 TV로 방영 되던 순간이었다. 그 순간 어떤 신세계, 무궁한 창조력의 세계 가 있다는 것에 대해 눈을 떴다는 사람이 적지 않다. 그게 벌써 28년 전 이야기다. 올해 2012년은 고 백남준에게 각별한 해다. 7월 20일로 그는 탄생 80주년을 맞았다. 또 그가 평 생을 스승으로 여겼던 전위음악가 존 케이지의 탄생 100주년이 되는 해이기도 하다. 백남준은 말 년의 병석에서도 “2012년까지 살아서 꼭 존 케이지의 100주년 기념 퍼포먼스를 하겠다”는 의지 를 밝히곤 했었다. 살아있었다면 그는 또 흥미로운 볼거리를 만들어냈을 것이다. “인류 최초의 화가와 조각가가 누구인지 아무도 알 수 없다. 그러나 비디오 아트의 창조자는 누 구인지 확실하다. 백남준, 그야말로 비디오 아트의 아버지이자 조지 워싱턴이다.” 2006년 그가 작 고했을 때 터져나온 예찬이다. 백남준은 과학-인간-미술을 늘 하나의 세트로 생각했다. 그의 예 술세계는 행위예술, 비디오아트, 사이버네틱스, 레이저 아트로 이어지며 늘 새로운 장을 열어왔다. 그의 자유로운 사유는 당대 서구 지식인들을 넘어섰으며, 천재적인 예측에 도달하곤 했다. ‘바보 상자’라 불리던 TV의 무궁한 가능성을 읽어내고, ‘종이의 죽음’을 예언했다. 1974년에는 이미 지금의 인터넷 같은 ‘전자 초고속도로’의 개념을 구상했다. 그는 자신의 시대 를 넘어서는 21세기형 미디어 아트를 예측하고 있었다. 단군, 칭기즈칸, 마르코 폴로, 알렉산더 대 왕 같은 유목의 제왕들이 동서양을 누볐던 것처럼 디지털 네트워크로 연결된 세상을 동과 서, 과 거와 현대를 자유롭게 넘나들며 사유의 경계를 해체하는 것이 그의 꿈이었다. 그가 말한 “우리 몸은 1㎝도 움직이지 않으면서 우리의 생각을 옮기는 것”은 이제 거의 실행되고 있지 않은가? IT 강국 코리아의 예술가 백남준은 “우리 민족은 오랫동안 유목민이었으며, 유목민은 레오나 르도 다빈치의 그림을 주어도 가지고 다닐 수가 없다. 무게가 없는 예술만이 전승되고 발전할 수 있었다”라고 말한다. 그가 말했던 미래의 무게가 없는 예술들은 젊은 예술가들에 의해 꾸준히 실험되고 있는 중이다. 수없이 인용되고 재해석되면서 20세기 내내 대중의 눈에 띄지 않게 미술계를 지배했던 두 명 의 작가는 바로 뒤샹과 요제프 보이스였다. 새로운 커뮤니케이션 매체가 일반화된 21세기에 가장 많이 인용되고 재해석될 예술가는 당연히 백남준이다. 1950년대의 파격적인 해프닝부터 일관되 게 발전해 온 그의 예술적 사상을 총체적으로 이해하는 것이 관건이다. 구겐하임 미술관 회고전 에서 백남준이 보여주고자 했던 핵심이 한국 전통의 천지인 사상이었다는 것은 중요한 시사점이 될 것이다. 이 천재의 비밀을 풀어내는 것이 우리의 과제다. 글 이진숙 미술평론가, 사진 중앙포토 06 SUNDAY MAGAZINE


ISSUE

08 SUNDAY MAGAZINE


ISSUE

셰익스피어·로열발레단 문화 국가대표단 ‘장외 메달밭’ 달구다 올림픽 D-6, 런던은 지금 축제 모드

올림픽은 단순한 스포츠 행사가 아니다. 메달 경쟁에 쏠리는 전세계의 이목을 국가 브랜드 제고의 발판으로 삼으려는 주최국의 의지가 내밀하게 작동된다. 특히 ‘크리에이티브 브리튼(Creative Britain)’을 외치며 세계 문화계의 트렌드를 이끌어왔다고 자부하는 영국으로서는 절호의 기회가 아닐 수 없다. 대문호 셰익스피어부터 세계적인 명성의 로열발레단과 ‘현대미술계의 악동’ 데이미언 허스트에 이르기까지, 영국은 ‘문화 국가 대표’를 총출동시켰다. 이번 런던 올림픽이 ‘컬쳐 올림피아드’라고 불리는 이유다. 런던ㆍ헤이스팅스(영국) 글 전수진 기자 sujiney@joongang.co.kr, 사진 런던 AP 연합뉴스

SUNDAY MAGAZINE 09


ISSUE 16일 저녁 7시30분 런던 트래펄가 광장. 넬슨 제독 동상 아래 설치된 대형 스크린을 중심으로 런던 시 민들과 여행객들이 삼삼오오 모여들었다. 며칠째 런 던을 괴롭히고 있는 빗줄기는 그칠 기미가 없었지 만 관객들은 개의치 않았다. 대형 스크린엔 곧 영국 이 자랑하는 로열오페라하우스 무대의 검붉은 커튼 이 비쳤다. 이어 로열발레단 무용수들이 신작 ‘변형 (Metamorphosis)’을 유려한 몸매로 선보였다. 16 세기 화가 베첼리오 티치아노의 ‘다이애나와 악티온’ 회화 3점을 모티브 삼아 만든 창작 발레다. 이 작품은 내셔널갤러리와 로열발레단이 런던 올림픽을 기념해 의기투합해 만들었다. 내셔널갤러리에서는 11일부터 티치아노 특별전이 시작돼 9월 23일까지 이어지며 이 작품의 안무 및 연습 영상을 상영하고 의상도 전시한 다. 내셔널갤러리 바로 옆 코번트가든의 로열오페라 하우스에선 이달 20일까지 매일 밤 공연이 열린다. 트래펄가 광장의 스크린 발레 공연 내셔널갤러리 앞에 있는 트래펄가 광장은 표를 구하 지 못한 대중에게 이 작품을 공짜로 선보일 최적의 장 소였다. 갤러리에서 특별전시를 보고 나온 이들은 자 연스레 갤러리 바로 앞 광장으로 자리를 옮겨 공연을 관람했다. 인터미션 때는 안무가와 공연 관계자들이 로열오페라하우스에서 걸어나와 관객들에게 인사 를 건네기도 했다. 공연을 보기 위해 케임브리지에서 기차를 타고 왔 다는 대학생 킴 애슈턴은 “올림픽을 치른다는 게 잘 와닿지 않았는데, 오늘 보니 올림픽이 확실히 좋긴 좋 다”며 “스포츠에 관심 없는 나도 즐길 게 있다는 게 특 별하다. 외국인 방문객들도 이 공연을 볼 테니 자랑스 럽기도 하다”고 말했다. 트래펄가 광장뿐 아니라 런던 시내 전역이 올림픽 축제 모드로 돌입했다. 런던 올림픽의 모토 자체도 스포츠를 넘어선다. 서배스천 코 조직위원장은 일찍 이 런던 올림픽의 세 가지 비전을 ‘문화ㆍ교육ㆍ스포츠’ 로 천명한 바 있다. 런던 올림픽과 함께 영국 전역에서 진행되는 ‘런던 2012 페스티벌’과 ‘문화 올림피아드’ 행사 규모가 상당하다. 지난봄부터 패럴림픽이 막을 내리는 9월 9일까지 영국 전역에서 셰익스피어 연극 축제 음악ㆍ댄스 공연 등이 펼쳐지고 있다. 뉴욕타임스(NYT)는 이 두 행사를 “지금까지 영국 에서 열린 축제 중 가장 규모가 클 것”이라고 보도했 다. 영국예술협의회 모이라 싱클레어 회장은 NYT와 의 인터뷰에서 “런던 올림픽의 주요 구성 요소가 문 화가 되도록 오랜 기간 준비해 왔다”고 강조했다. 로 열 셰익스피어극단의 데버러 쇼 부단장 역시 NYT를 통해 “올림픽은 인간의 신체적정신적 그리고 예술적 면을 즐기기 위한 축제”라며 “이번 문화행사들이 성 공리에 치러진다면 올림픽 자체의 의미도 새로운 생 명을 얻을 것”이라고 자신했다. 10 SUNDAY MAGAZINE

15일 트래펄가 광장에서 ‘흔들리는 사다리’ 공연을 하고 있는 익스트림 댄서스 공연단. 런던 AP=연합뉴스 퍼포먼스를 펼치는 익스트림 댄서스 공연단. 런던 AP=연합뉴스

15일 타워브리지에서


ISSUE 알렉산더 매퀸의 의상도 전시 문화 행사 중에서도 올림픽에 테마를 맞춘 전시들은 기본 중 기본이다. 로열오페라하우스는 국제올림픽 위원회(IOC) 본부가 있는 스위스 로잔의 올림픽박물 관과 손잡고 ‘올림픽 특별전’을 개최한다. 역대 올림 픽 메달ㆍ성화 및 관련 유물을 한눈에 볼 수 있다. 런 던 2012 페스티벌의 일환으로 올림픽 개막일(28일) 부터 폐막 하루 전인 8월 12일까지 계속된다. 대영박물관도 질 수 없다. 로비에 들어서자마자 관 람객을 반기는 건 ‘원반 던지는 사람’ 대리석 조각상 이고, 바로 옆 전시실에도 관련 특별전이 열린다. 기원 전 5세기 조각상을 리얼리즘으로 재해석한 중국인 예술가 쑤이젠궈(隋建國)의 작품들이다. 한 층 올라가면 런던이 1908년, 1948년 개최했던 올림픽 관련 유물 및 올해 런던 올림픽 관련 아이템들 이 관객을 모은다. 특히 올해 런던 올림픽의 메달은 제 일 인기 있는 아이템이다. 근처 유치원에서 견학온 케 이틀린 스미스(7)는 유리벽에 코를 박고 뚫어져라 메 달을 바라보다 “나도 하나 따고 말 거예요”라며 의지 를 불태웠다. 자국의 예술감각을 선보이려는 노력도 곳곳에서 읽을 수 있다. 영국 태생으로 세계적으로 인정받는 예 술가 다수에게 올림픽 공식 포스터 제작을 의뢰했다. 런던의 명물 엘리자베스타워(구 빅벤)를 재해석한 세 라 스미스의 포스터 및 올림픽 오륜기 로고를 재구성 한 레이철 화이트리드의 포스터(6080㎝)는 한 장 에 7파운드(약 1만2500원)나 한다. 세계적 생활사박물관인 빅토리아&앨버트 뮤지엄 에서는 ‘영국 디자인 1948~2012: 근대의 혁신’이라 는 제목의 대형 전시(8월 12일까지)가 성황리에 열리 고 있다. 벽지 패턴부터 자동차, 패션, 건축 등 영국이 자랑하는 디자인 상품을 고르고 추렸다. 올림픽 포스터에도 예술가의 손길 15일 아침엔 런던 밀레니엄브리지 등 곳곳에서 뉴욕 스트렙공연단의 아크로바틱 공연이 펼쳐졌다. 빨간 유니폼을 입은 수십 명의 단원이 안전띠에 의지해 밀 레니엄브리지 위를 날아다니며 아찔한 공연을 선사 했다. 런던뿐이 아니다. 영국 남동부 서섹스 지방의 소도시 헤이스팅스 인근 벡스힐엔 새로운 명물이 들 어섰다. 지역 갤러리 위에 플라스틱 버스 오브제가 건 물에 절반만 걸쳐 있는 모양새로 설치된 것. 문화 올 림피아드 일환으로 최근 시작된 전시다. 헤이스 팅스 지역 공무원인 제인 엘리스는 “올림픽 은 런던에서 열리지만 영국 전역에서 문화 행사가 펼쳐진다”며 “당장은 아니더라도 지 금 이렇게 문화마케팅에 투자를 계속해 가면 영국 소도시 벡스힐 갤러리 위에

여행 관련 업계 등 지역경제에 기여하는 바가

빅토리아&앨버트 뮤지엄에서 열리고 있는 ‘영국 디자인전 에 소개된 고

클 것이다. 올림픽 특수를 만드는 건 우리의 몫

내셔널갤러리와 로열발레단의 합작 프로젝트 발레 ‘변형 사진 로열발레단 설치된 버스 오브제. 사진 전수진 기자

알렉산더 매퀸의 이브닝 가운. autumn-winter 2009, Francois Guillot/AFP/Getty Images 축물 30 St Marys Axe Nigel Young (c) Foster & Partners

런던 올림픽 로고 아트 상품.

런던의 명물 건

이고그최고의수단은문화”라고 강조했다. SUNDAY MAGAZINE 11


ISSUE

가 되게 하는 예술이야말로 마술 런던올림픽 기념 테이트 모던서 회고전, 데이미언 허스트

현대 미술계의 악동’ 데이미언 허스트(47)는 세계적 으로 인지도가 가장 높은 영국 작가다. 세계 3대 현대 미술관으로 꼽히는 테이트 모던이 런던 올림픽을 맞 아 그의 회고전(9월 9일까지)을 개최한 것은 어쩌면 당연한 선택인지도 모른다. 템스 강이 내려다보이는 7층 사무실에서 그를 단 독으로 만났다. 짧게 자른 머리가 은색에 가까웠다. 해골 모양 반지를 끼고 반기는 모습에서 악동의 모습 이 느껴졌다. 회고전을 축하하며 소감을 물었다. “나도 이제 늙었다는 생각이 먼저 든다(웃음). 항상 스물다섯처럼 느껴졌는데, 더 이상 학생이 아니다! 하 지만 좋은 일 같다. 그저 인정하고 나아가야 한다. 이 제 보다 젊은 작가들에게 기회를 줄 때가 온 것이 아 닐까? 내가 젊었을 때, 그러니까 1996년 뮤지션인 데 이비드 보위와 이야기를 나누는 모습이 담긴 비디오 를 얼마 전 찾았다. 당시 보위가 내게 ‘테이트에서 전 시하는 것은 어때?’라고 묻자 내가 ‘절대로 안 돼! 테 이트는 죽은 작가들을 위한 곳이라고!’라고 대답하 고 있었다. 그때와 비교하면 많은 변화가 있었다. 그리 고 나는 지금 테이트에서 전시를 하고 있고(웃음).” 20여 년 기상천외한 족적 한눈에 그가 영국 평단의 공식적인 인정을 받은 것은 1995 년 영국 최고 권위의 현대미술 상인 터너 상(Turner Prize)을 수상했을 때였다. 그리고 이번 테이트 모던 회고전으로그는뮤지엄이공식인정하는작가가됐다. 이번 전시는 20여 년간의 대표작을 한자리에 모았 다. 1988년 골드스미스대 미대 학생 시절 기획한 전 시 ‘프리즈’에 선보였던 점 페인팅과 약 상자 작품 등 초기작부터 유리 상자 안에 죽은 소 머리를 놓아두거 나(‘천년’), 방부액 속에 상어를 집어넣거나(‘살아 있 는 자의 마음속에 살아 있는 죽음의 육체적인 불가능 성’), 해골에 8600개의 다이아몬드를 박아 넣는(‘신 의 사랑을 위하여’) 등 그의 기상천외한 족적을 모두 만날 수 있다. 특히 허스트가 주검의 머리 옆에서 활 짝 웃으면서 포즈를 취한 흑백사진 ‘죽은 머리와 함 께 (With Dead Head, 1991년)’는 그의 주된 주제인 ‘삶과 죽음’에 대한 강한 암시를 보여주는 기록이다. 1991년 전시 이래로 그동안 한 번도 전시된 적이 없 었던 ‘사랑의 안과 밖(In and Out of Love)’ 역시 눈 12 SUNDAY MAGAZINE


ISSUE 데이미언 허스트. Photography by Billie Scheepers Lullaby, the Seasons 2002 (detail)(2002), Photographed by Prudence Cuming Associates Sympathy in White Major - Absolution II (Detail)(2006) Photographed by Prudence Cuming Associates What Goes Up Must Come Down 1994, Collection of the artist The Physical Impossibility of Death in the Mind of Someone Living(1991), Photographed by Prudence Cuming Associates For the Love of God (2007) © Damien Hirst. All rights reserved. DACS 2012. Photographed by Prudence Cuming Associates

길을 끌었다. 나비의 삶에 가장 적당한 온도와 습도를 한 공간에서 나비들이 테이블 그릇에 담긴 과일과 설 탕물을 먹고 살아가고 벽에 걸린 캔버스에 알을 낳는 작품이다. 전시장 곳곳에 나비들이 날아다녔고 때로 관람객들의 어깨 위에 내려앉기도 했다. “이번에 설치가 아주 잘됐다. 나비들이 이리저리 날 아다니니까 여섯 살짜리 아들이 매우 좋아했다. 이 전 시를 벌써 두 번이나 보았고 또 보러온다고 했다. 내 생 각에는 요 녀석이 나비들을 더 좋아하는 것 같다.” 전시작 중 개인적으로 가장 좋아하는 작품이 무엇 이냐는 질문에 그는 ‘신의 사랑을 위하여’를 꼽았다 그는 “터바인 홀 같은 엄청나게 넓은 공간에서 이렇 게 작은 작품을 보여줄 수 있다는 사실이 매우 굉장 하게 느껴지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신은 믿지 않지만 마술은 믿는다 그는 지금 자신의 갤러리 오픈 준비에 한창이다. 자신 의 작품뿐 아니라 리처드 프린스, 제프 쿤스, 사라 루 카스, 맷 콜리쇼, 존 커린, 프랜시스 베이컨 등 그동안 컬렉팅한 작품까지 함께 선보일 예정이다. “나는 작가지만 관람객 입장이 돼 다른 작가들의 작 품들을 보면서 감동받는 것도 매우 좋아한다. 제프 쿤 스는 매우 이상한 사람이지만 그는 굉장한 작품들을 창조하기 때문에 그의 작품을 존경해야 한다. 나는 그의 작품을 몇 점 소장하고 있다. 그의 풍선 코끼리 가 내 사무실에 있는데 매일 감탄한다. 이 작품은 내 다이아몬드 해골이 가지고 있는 것과 같은 파워를 지 니고 있고 평생을 함께해도 좋다고 생각한다.” 사후 세계를 믿지 않고, 종교를 등졌으며, 신을 믿 지 않는다는 그는 “마술을 믿는다”고 말했다. “나는 예술이야말로 마술적인 면을 가지고 있다고 생각한 다. 예술은 단순히 한 부분 이상의 것을 의미한다. 하 나의 부분과 또 하나의 부분을 취해 그 두 개보다 더 큰 무언가를 창조해낸다는 것은 경이로운 일이고 이 것이야말로 신적인 행위와 연결된다고 생각한다. 나 는 이 행위를 예술 안에서만 인정한다.” 그는 세상 사람들에게 자신의 예술을 깜짝스럽게 펼쳐보였던 마술사였을까. 그는 죽은 후에도 작품을 통해 계속 삶을 이어나갈 작가가 될 것인가. 런던 글 최선희 중앙SUNDAY 매거진 유럽통신원 , 사진 테이트 모던 SUNDAY MAGAZINE 13


REVIEW & PREVIEW

그렇게라도 버텨야 하는 게 결혼인가요 연극 ‘더 러버’, 8월 13일까지 예술의전당 자유소극장

여기 오래된 한 쌍의 부부가 있다. 권태기에

위한 처절한 몸부림이다. 그런데 돌연 게임 오

깊숙이 접어든 이들은 서로에게 욕망할 것이

버를 선언하는 남편. 아내는 절망한다. 빠져

남지 않았다. 일상은 평온해 보이지만 실체를

들려는 아내와 벗어나려는 남편의 줄다리기

알 수 없는 위기감이 감돈다. 부부는 은밀한

는 부부간의 소통 부재와 권력 불균형이라

일탈을 감행한다. 사랑을 지키기 위해.

는 구조적 모순을 고스란히 드러낸다.

대중연극을 표방하는 ‘연극열전4’의 세

아내는 소통을 위해 애인이 필요하다. 부

번째 작품 ‘더 러버’는 선정적인 포스터와 배

부는 서로 점잖은 옷을 입고 겉도는 대화를

우의 전라 노출로 화제몰이를 하고 있지만, 나누다 밤이 되면 각자 안대를 쓴 채 등을 돌 그 이면을 봐야 하는 연극이다. 부조리극의

리지만, 티타임의 아내는 반짝이 구두에 호

대가인 노벨상 수상작가 해럴드 핀터의 1963

피무늬 원피스로 갈아입고 ‘애인’의 봉고드

년작으로, 부조리한 상황 속에서 인간이 어

럼 리듬에 어깨를 들썩이며 교감한다. 반면

떻게 대처하는가를 보여주는 작가주의가 생

남편이 게임에서 찾는 것은 그저 ‘창녀’다.

생하다. ‘불가해’ ‘애매모호’가 그의 키워드 ‘창녀’와의 일탈은 ‘오일이나 부동액을 체크 인 만큼 결코 쉽지 않은 무대다. 그러나 모든

할 때 한잔하는 코코아 같은’ 기능이면 된다.

부부에게 잠재된 심리를 파헤치는 가장 대중

“타락한 생활을 끝내자”는 남편과 “속삭여

적인 무대이기도 하다. 반세기 전의 작품이지

달라”며 매달리는 아내. 둘의 실랑이는 어느

만 지금도 세계 각지에서 공연 중인 문제작으

덧 부부의 대화인지, 애인과의 대화인지 모호

로, 국내에서도 ‘티타임의 정사’라는 제목으

해진다. 역할극을 통해서만 소통해 왔기 때

로 수차례 공연되었지만 여전히 낯선 긴장감

문이다. 한편 역할극 속 파워게임은 현실로

으로 관객을 사로잡고 있다.

이어진다. ‘애인’이 필요한 아내는 ‘창녀’로

“당신 애인, 오늘 오나?” “오후 세 시에 와요.” 충분한 남편과의 권력다툼에서 불리한 입장.

100자평 오세곤(연극평론가) 핀터 작품을 쉽게 풀어낸 공들인 연출. 그러나 부부의 이중

기묘한 일탈로 보이지만 사실 부부는 소심

궁지에 몰린 아내는 ‘매일 다른 애인을 맞는

적 면모가 충격적으로 드러나지 않고 이성적으로 이해해야 하는 수준으로 표현

한 역할놀이 중이다. 오후 세 시, 티타임이 되

다’는 비장의 카드를 꺼내고, 파워게임은 금

됐다. 명작의 진면목을 감성적으로 풀어내지 못한 연기자의 한계다.

★★★

면 남편 리처드는 아내 사라의 애인 ‘맥스’가

세 역전된다. ‘티타임의 애인’으로 돌변한 남

백승무(연극평론가) 오경택 연출은 삶의 가면성과 존재의 위선적 피막에 대한

되고, 아내는 남편의 창녀 ‘돌로레스’가 되어

편은 아내에게 ‘내 귀여운 창녀’의 옷으로 갈

유희를 창의적으로 오독(誤讀)했다. 인간 존재의 불안감이 핵심인 핀터의 고급

끝없는 역할놀이의 릴레이를 펼친다. 엎치락

아입으라고 청한다. 권력이란 도전받을 때 더

연극과 이 무대의 피상적 선정성은 그 간극이 너무 크다.

뒤치락 파워게임은 존재의 권태를 견뎌내기

짜릿한 법이니.

14 SUNDAY MAGAZINE

★★☆


REVIEW & PREVIEW

무대미술가 김정환·장종선·최연호를 기리며 ‘무대 명작, 3인의 무대미술가’전, 7월 12일~12월 15일, 서울 동숭동 예술가의 집, 문의 02-760-4717

장종선 선생이 무대를 만든 1960년대작 ‘안네프랑크의 일기’

“극 문화가 왕성한 시대라도 특히 무대미술에 대해서는 무관심하기 짝이 없으며 존재성 까지도 모르는 분이 허다하다.” 국내 1세대 무대미술가인 고(故) 김정환 선생은 “이 방면에 종사하겠다는 사람이 너무 나 희소한 데 통탄하지 않을 수 없다”며 안타까워했다. 여전히 무대미술은 연출과 연기, 극작에 비해 전문성과 독자성을 발휘하기엔 그 중요성이 덜 알려져 있다. 문학·연극·무 용 분야에서 업적을 남긴 예술인을 기리기 위해 조성된 ‘예술가의 집 명예의 전당’에 서는 한국의 무대미술가 3인을 조명한다. 김정환(1912~73), 장종선(1918~89), 최연호 (1929~96)의 발자취를 사진, 도면, 스케치, 실물자료 등을 통해 살피는 자리다. 전시를 주최하는 문화예술위원회 권영빈 위원장은 “조력자로 여겨졌던 무대미술 분야 선구자 들의 눈을 통해 한국 공연예술사를 이해할 수 있는 계기가 될 것”이라고 말했다.

인물의 성격이나 관계, 배경 등 전후 맥락

글 홍주희 기자 honghong@joongang.co.kr, 사진 한국문화예술위원회

없이 눈앞의 상황만을 제시하며 예측 불가능 한 대사와 애매모호한 전개를 펼치는 ‘핀터 레스크’ 스타일은 그 애매함으로 인해 관객 이 각자 잠재된 심리에 따라 다양한 해석을

슈만부터 셰드린까지  시대 초월한 레퍼토리 피아니스트 손열음의 새 앨범 ‘Piano’, 오뉴월 뮤직

하게 하는 열린 무대다. 그러나 송영창, 이승 비의 애매한 연기는 ‘핀터레스크’가 아니라 그저 에너지 부족으로 보였다. 빈틈투성이 연 기와 모호한 드라마는 꽉 짜인 무대 미학으 로 지탱됐다. 평범한 가정집 세트지만 잦은 암전과 회전무대, 조명의 정교한 사용은 연극 성을 돋보이게 했고 상황과 행동에 적절히 상 징성을 부여했다. 허공에 떠 있다 마지막 순 간 무대를 덮는 철골구조물은 결국 결혼이란 공허하면서도 견고한 덫이라는 모순된 주제 를 감각적으로 은유하는 장치가 됐다. 사랑으로 결혼했지만 결혼으로 사랑이 퇴

지난해 차이콥스키 콩쿠르에서 2위를 차지한 뒤 손열음은 인터뷰에서 “콩쿠르에서도 앙코르를 하게 해줬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했다”고 말했다. “관객이 사인을 받으러 나온

색되고, 그럼에도 ‘결혼한 인간’으로서 도덕

것, 1악장 끝나고 박수 나온 것도 기분이 좋고요. 정말 너무 치고 싶었어요, 앙코르를요.”

성을 요구받는 결혼이라는 제도의 부조리가

피 말리는 경쟁 무대에서도 음악 공부가 재밌다는 걸 느낄 만큼의 경지에 오른 것인데, 이

문득 새삼스러워지는 무대다. 결혼이란 저렇

런 그를 두고 스승인 김대진은 “열음이는 피아니스트를 넘어 아티스트가 됐다”고 했다.

게라도 해서 지켜야 할 신성한 언약인가, 혹

손열음이 새 음반 ‘피아노’를 내놨다. 개성이 뚜렷해 같은 곡도 똑같이 두 번 치는 경우가

은 저렇게까지 해야만 지킬 수 있는 공허한

없다는 그만의 감성과 표현력이 고스란히 담긴 음반이다. 차이콥스키 콩쿠르 참가를 결

제도인가. 영원히 해결되지 않을 모순이다.

심하고 가장 먼저 떠올렸다는 차이콥스키 교향곡 6번 ‘비창’ 중 스케르초(파인버그 편

이 연극이 반세기 동안 전 세계에서 호응받 아 온 이유도 아마 그래서일 거다. 글 유주현 객원기자 yjjoo@joongang.co.kr

곡)와 슈만의 ‘유머레스크’, 리스트의 ‘스페인 광시곡’, 카푸스틴의 ‘변주곡’, 셰드린의 ‘연주회용 연습곡:차이콥스키 연습곡’ 등 시대를 넘나드는 다양한 레퍼토리가 담겼다. 글 홍주희 기자, 사진 악당이반

사진 연극열전 SUNDAY MAGAZINE 15


BOOK

주 화려한 모란이 가득한 열 첩 병풍의 그림 이 펼쳐져 있다. 지면이 허락하지 않아 최대 한 크게 넣었을 터임에도 그림의 진면목을 느 끼기에는 조금 아쉽다. 저자에게 받은 질 좋 은 이미지 파일을 컴퓨터 화면에 펼쳐놓고, 확대를 거듭하며 만난 이 그림은 참으로 아 름다웠다. 훌륭한 그림을 많이 봐오기도 했 지만, 아무런 맥락 없이 그저 그 아름다움에 취한 것은 무척 오랜만의 일이었다.

꽃 중의 꽃 모란이 흐드러진 화폭만 봐도 좋으리

모란은 알려진 대로 원래 꽃 중의 꽃이기 도 해서 부귀영화를 상징한다. 그 때문에 궁 궐은 물론 일반 사가에서도 혼례식 때 모란

숨은 책 찾기 <14> 돌베개의『왕과 국가의 회화』

그림을 많이 그려 사용했다. 그런데 그뿐만이 아니란다. 궁중의 공식적 인 행사에 우리가 흔히 알고 있는 일월오봉병 과 함께 자주 등장했다. 어진을 봉안하는 곳 에도, 왕의 신주를 모신 곳에도 모란병풍을 설치했단다. 그림 하나가 눈에 보이니 그와 관 련한 내용들이 단박에 눈에 들어온다. 다음 그림으로, 다음 그림으로 눈이 가는 대로 따 라가다 보니 그동안 파편적으로 알고 있던 우 리 그림에 대한 이야기들이 한 줄로 꿰이는 기분도 든다. 이 책을 소개하고 싶었던 건 바로 이 때문 이다. 그림 한 장과의 만남으로 내가 경험한 그 즐거움을 독자들과 함께 누리고 싶은 마

16 SUNDAY MAGAZINE

어릴 때부터 그림책 보는 걸 좋아했다. 개미

돌베개에서 나온 책 중에 독자들에게 다

음이 들어서였다. 그 즐거움을 누리는 데 이

들의 행렬처럼 까맣기만 한 문자를 따라가며

시 한번 소개하고 싶은 책이 뭐냐는 물음에

책이라면 아주 좋은 선택이 될 거라는 믿음 이 들어서였다.

읽는 것보다는 그림 속 갈피를 상상하는 게

지난해 나온『왕과 국가의 회화』(박정혜·윤

어린 내겐 더 흥미로운 일이었다. 한글을 깨

진영·황정연·강민기, 2만8000원)가 떠올랐

이 책에는 200여 장의 그림이 실려 있다.

친 뒤에도, 철이 들어서도 그리 달라지지 않

다. 조선시대부터 대한제국기를 지나 일제강

텍스트의 내용도 충실하지만 이렇게 다양한

았다. 어린 시절 보았던 것이 그림 동화책이었

점기까지의 궁중회화를 종합적으로 다루고

그림을 한자리에 맘껏 담아놓은 책도 참 만

다면 나이가 들면서 보기 시작한 것은 화집

있는 책이다. 조선의 궁궐에서는 어떤 그림을

나기 어려울 듯하다. 그림을 따라 책장을 넘

이었다는 차이가 있을 뿐.

주로 그리고 즐겼는지, 권력의 정점에 있던 왕

기고 있노라면 조선의 왕과 왕실이 그림을

그리고 나는 편집자가 됐다. 책을 만들면

은 또한 어떤 그림을 좋아하고, 직접 그린 그

어떻게 즐기고 감상했는지를 제대로 알게 될

서 책 속에 그림을 넣으며 작업하는 걸 역시

림은 뭐가 있는지, 그림은 어떻게 관리되고 보

것이다.

좋아했다. 그림과 텍스트가 공을 주거니 받

관돼 왔는지, 대한제국기와 일제강점기 등을

오랜만에 다시 이 책을 펼쳐놓고 있다. 글

거니 하면서 읽는 이를 어디론가 끌고 가는

거치면서 궁중의 그림은 어떻게 변화돼 왔는

을 쓰는 것도 잠시 잊고 한참을 다시 들여다

듯한 그 재미가 각별했다. 수많은 이미지를

지를 아주 세세하고 꼼꼼하게 살피고 있다.

봤다. 덕분에 약속한 시간을 넘겨 시간은 자

텍스트 사이사이 들어갈 자리를 제대로 찾

조선왕실의 그림에 대해 이만큼 상세하게, 정

정도 넘었지만 역시 그림책을 보는 일은 즐겁

아 넣는 것은 꽤나 고단한 일이지만, 그것들

확하게 다루고 있는 책은 아마 없을 것 같다.

다. 여러분도 이 즐거움을 마 음껏 누려보시길.

이 제자리를 찾아 출력돼 나온 교정지를 보

그런데 이 책을 여기에 소개하는 까닭은

는 건 마치 활짝 핀 꽃을 보는 느낌이다. 그렇

이런 내용이니 읽어보시라고 권하기 위해서

글 이현화 돌베개 문화예술팀장

게 꽃을 피워 세상에 내보낸 책이 꽤 쌓였다.

만은 아니다. 이 책 140~141쪽 하단에는 아

사진 돌베개


GUIDE

금주의 문화행사 책

영화

전시

클래식

할아버지가 꼭 보여주고 싶은 서양명화 101 저자: 김필규 출판사: 마로니에 북스 가격: 2만원

무서운 이야기

천국의 섬, 증도- 김혜경 사진전

잘츠부르크 페스티벌 생중계

평생 사업가로 살다 은퇴 후 명지대 박사

감독: 정범식, 임대웅, 홍지영, 김곡·김선

기간: 7월 24일~8월 5일

일시: 7월 29일~8월 7일

과정에서 미술사학을 공부하고 있는 저

등급: 청소년관람불가

장소: 서울 통의동 사진위주 류가헌

장소:메가박스코엑스,센트럴,목동,해운대점

옴니버스 공포영화. 늦은 밤 엄마의 귀가

문의:

문의: 1544-0070

자가 다빈치부터 장 미셸 바스키아까지 서양 미술사에 길이 남을 거장들의 명화

를 기다리는 남매에게 벌어지는 기괴한

빛과 소금의 천국 증도는 국내 최초로 슬

유럽 최고의 여름음악축제 잘츠부르크

를 손주에게 옛날이야기 들려주듯 쉬운

사건을 그린 ‘해와 달’, 연쇄 살인마와 한

로시티로 지정된 아름다운 섬이다. 문준

페스티벌을 극장에서 생중계로 즐긴다.

이야기체로 재미있게 풀었다. 르네상스시

비행기에 탑승한 승무원의 이야기를 그

경이라는 작은 여인의 희생적 삶으로 인

메가박스는 7월 20일부터 9월 2일까지

대부터 인상주의를 거쳐 팝아트에 이르

린 ‘공포 비행기’, 익숙한 소재에 상상력

구의 90%가 복음화된 기적의 섬이기도

현지에서 열리는 232개 공연 중 가장 인

는 대표 작가들을 연대순으로 알기 쉽게

을 가미한 ‘콩쥐, 팥쥐’, 한국형 좀비 영화

하다. 2007년 출간된『천국의 섬, 증도』

기 있는 프로그램 6개를 선별해 라이브로

정리했다. 청소년들에게 문화예술에 대

의 가능성을 보여준 ‘앰뷸런스’ 등의 순

의 개정판을 위해 문준경 전도사의 영성

상영한다. 푸치니의 ‘라보엠’, 모차르트

한 기본 교양을 갖추게 하는 책이다.

서로 전개된다.

의 길을 따라 걸은 5년의 기록을 모았다.

의 ‘마술피리’ 등 6개 작품이다.

파닥파닥

NOIR-알렉산더 칼더 조각전

서울시향의 마스터피스 2012시리즈

‘주방을 과학 실험실처럼’ 생각한다는

감독: 이대희

기간: 7월 12일~8월 17일

일시: 7월 26일 오후 8시

‘한국의 마사 스튜어트’ 이효재. 살림의

등급: 12세 관람가

장소: 서울 소격동 국제갤러리

장소: 예술의전당 콘서트홀

여왕답게 그녀의 주방에는 신기한 아이

바닷속에서 자유롭게 살던 고등어 ‘파닥

문의: 02-735-8449

문의: 1588-1210

디어로 빛나는 첨단 도구들이 즐비하다.

파닥’이 어느 날 어선의 그물에 잡혀 바닷

이 시대 가장 영향력 있는 조각가 알렉산

잘츠부르크 모차르테움을 오랫동안 맡았

머슴처럼 일 잘하는 대바구니, 부엌칼 종

가 횟집 수족관에 들어간다. 죽음만이 기

더 칼더의 두 번째 개인전. 칼더의 가장 유

던 휴스턴 심포니의 음악감독인 한스 그라

결자 남원 무쇠칼, 이란제 석류칼, 한복 짓

다리고 있는 그곳에는 자신만의 생존 비

명한 작품들로 손꼽히는 1930년대 후반

프(사진) 지휘로 스트라빈스키의 ‘나이팅

고 남는 자투리천으로 만든 조각보, 안주

법으로 가장 오래 살아남은 ‘올드 넙치’

부터 1960년대까지 만들어진 일련의 검

게일의 노래’, 라벨의 피아노 협주곡, 생상

인에게 최고의 파티웨어 앞치마까지 지루

가 양어장 출신 물고기들을 지배한다. 파

은 조각들을 집중적으로 보여준다. 검은

스의 교향곡 3번 ‘오르간’ 등을 무대에 올

한 집안일을 낭만적으로 변화시킬 효재

닥파닥은 바다로 돌아갈 꿈을 버리지 않

색의 작품만을 전시함으로써 작가에게

린다. 터키에서 국가 예술인 칭호를 얻은

의 살림 노하우가 한가득이다.

고 계속 탈출을 시도한다.

있어 색채가 얼마나 중요했는지 역설한다.

휘세인 세르메트가 피아노를 연주한다.

효재의 살림연장 저자: 이효재 출판사: 중앙m&b 가격: 1만3800원

THIS WEEK CHART 베스트셀러

자료=교보문고

순위 책명

영화 예매

자료=맥스무비

작가·출판사 순위 영화명

공연 예매

자료=인터파크

주연 순위 공연명

클래식 음반

자료=풍월당

출연 순위 음반명

음반사

멈추면 비로소 보이는 것들 혜민스님·쌤앤파커스

다크 나이트 라이즈

크리스천 베일

EBS 모여라딩동댕 번개맨의 비밀

-

브루흐: 첼로와 오케스트라를 위한 작품집 ARS

내가 알고 있는 걸 당신도 알게 된다면 칼 팔레머·토네이도

연가시

김명민·문정희·김동완

뮤지컬 위키드 오리지널 내한공연

-

나의 사랑 나의 탱고

5백만불의 사나이

박진영·조성하·민효린

뮤지컬 모차르트!

바람이 분다 당신이 좋다

이병률·달

달팽이가 느려도 늦지 않다

정목 스님·공감

어메이징 스파이더맨

앤드루 가필드

바이스 : 아르스 멜랑콜리에

Glossa

뮤지컬 시카고

인순이·최정원·윤공주

헨델:건반모음곡 - 코롤리오프

Profil

뮤지컬 잭더리퍼

안재욱·엄기준·이성민

스페인과 이탈리아 음악 - 코간

Melodiya

나의 상처는 돌 너의 상처는 꽃 류시화·문학의숲

명탐정 코난:11번째 스트라이커

아프니까 청춘이다

미드나잇 인 파리 오웬 윌슨·마리옹 코티아르

뮤지컬 라카지

정성화·남경주·김다현

바흐: 모테트 BWV 159, 225-230

나는 공무원이다

연극 옥탑방 고양이

박성훈·장지우·윤정빈

하이든: 교향곡 93, 94번 외

무지개 곶의 찻집 스님의 주례사

김난도·쌤앤파커스 모리사와 아키오·샘터 법륜·휴

모모와 다락방의 수상한 요괴들

-

박은태·임태경

Warner Korea

윤제문·송하윤 -

뮤지컬 광화문연가(부산) 윤도현·송창의·조성모

분덜리히: 가곡집 슈베르트: 교향곡 5번&서곡 모음

DHM

낭만의 파리: 제레미 로레르

Naive

어디선가 나를 찾는 전화벨이 울리고 신경숙·문학동네

베스트 엑조틱 메리골드 호텔

주디 덴치

초특급 애니 뮤지컬 로보카 폴리

해커스 토익 보카

스트리트 댄스2:라틴 배틀

폴크 헨쉘

뮤지컬 맨오브라만차 황정민·서범석·홍광호

David Cho·해커스어학연구소

SDG

Berlin Classics

-

DG

SUNDAY MAGAZINE 17


INTERVIEW

힘 빼고 즐겁게 넘을 듯 말 듯, 보일락 말락 어떻게 하냐건  생각나는 대로 19禁 개그의 지존, 신동엽

지금 예능의 대세는 단연 신동엽(41)이다. 5개 프로그램(SBS ‘동물농장’ ‘강심장’, KBS ‘불후의 명곡’ ‘안녕하세요’, QTV ‘7번가의 기적’)에서 고 정 MC를 맡고 있는 그의 존재감이 다시금 부각된 이유는 지난달 방송된 ‘SNL(Saturday Night Live) 코리아’ 때문이다. ‘변태 연기’ ‘섹드립(섹스+ 애드리브·야한 농담)’이라고 부르는 그만의 장기가 빵 터지면서 그가 ‘19금 개그의 1인자’였음을 상기시켰다. 유재석·강호동이란 양대 산맥 사이에서 주춤했던 만큼 오랜만에 찾아온 상승세가 반갑기도 할 텐데, 그는 시종일관 덤덤하고 차분했다. “이래서 좋 고, 저래서 좋고” “이럴 수도 있고, 저럴 수도 있는 거예요” 같은 말을 여러 번 반복했다. “맛볼 것 다 맛보고, 다 누려봤기 때문”이라는 그의 말처럼 유재 석·강호동이 예능계를 양분하기 전 일찍이 최고의 자리에 올랐고, “한물갔 다”는 소리도 들을 만큼 침체도 겪었기 때문에 할 수 있는 말일 것이다. 1991 년 데뷔해 20년을 넘긴 신동엽에게 지난 시간은 ‘힘 넣는 데 10년, 힘 빼는 데 10년’의 시간이었다. 글 홍주희 기자 honghong@joongang.co.kr, 사진 최정동 기자

18 SUNDAY MAGAZINE


INTERVIEW

SUNDAY MAGAZINE 19


INTERVIEW

상처받는 이 없기, 우리끼리만 재미있기 없기 -신동엽의 ‘19금 개그’가 여전히 화제다.

“아주 옛날부터 성적(性的) 코드를 자연스럽게 접목시켜야 한다고 생각했 다. 성인들이 만나면 자연스럽게 꺼내는 게 바로 이 얘기 아닌가. ‘남자 셋 여 자 셋’이 끝난 후에도 일일 시트콤 말고 일주일에 한 번씩 심야에 성인 시트 콤을 해보자고 했다. 그게 벌써 15년도 더 된 얘기다. 이제 사람들이 관심을 갖는 건 우리 사회가 점점 다양한 것들을 받아들이기 시작했기 때문인 것 같다.” -그동안 꾸준히 해와서 그런지 독보적이라는 느낌이다.

“자연스럽게 생각이 나서 하는 건데…. 나만 입 밖으로 꺼내는 걸까. 접근 방식이나 관점이 좀 다를 수도 있을 것 같은데…. 어쨌든 재미있지 않나.” 인터넷엔 ‘신동엽 섹드립 플레이어’라는 동영상이 있다. 그의 ‘19금 개

-찰랑찰랑 잘 조절하는 것 같다.

그’를 팬들이 모아놓은 영상이다. 10여 년 전 방송까지 담긴 이 동영상엔 그

“생각나는 대로 한다. 어떻게 하느냐고 물으면, 사실은 나도 잘 모르겠다.

의 드립이 깨알처럼 담겨 있다. 이를테면 이런 것들이다. 사자성어 ‘칠전팔

다만 어느 선을 넘으면 안 되고, 그럼에도 그 선까지 최대한 가까이 가야 한

기’를 ‘칠전발기’라고 발음한 출연자 때문에 방청객과 MC들의 웃음이 터

다는 생각은 한다. 선을 넘을 바엔 안 하는 게 낫고, 너무 안전하게 갈 바에도

진 가운데 신동엽이 혼자 중얼거리는 모습이 카메라에 잡혔다. “그렇죠….

안 하는 게 낫다. 그 선에는 나만의 기준을 적용하는데 신기하게도 많은 사

어쨌든 일어서야 하는 거니까.” 남자친구를 사귀는 딸이 걱정돼 엄격한 통

람이 나와 비슷한 기준을 갖고 있는 것 같다. 코미디뿐 아니라 삶 자체가 그

금시간을 정한 엄마에겐 이렇게 말한다. “어머님이 걱정하시는 그런 행동은

선에 도달하기 위해 애를 써야 하는 거 아닐까.”

낮에도 할 수 있고요.”

-나만의 기준이란 게 뭔가.

민망할까봐 웬만하면 꺼내지 않고, 자칫 논란이 될 수도 있는 내용들이다.

“웃음이란 게 어떤 사람의 말과 행동을 흉내 내거나 상대를 놀리고 당황스

그런데도 그가 하면 웃어넘길 수 있는 건 그의 캐릭터 덕이기도 하다. 능청스

럽게 할 때 생기는 경우가 많다. 나 자신을 비하할 때도 있고. 이렇게 누군가

럽고 깐죽대는 평소 캐릭터가 ‘19금’조차 개구쟁이의 짓궂은 농담으로 받

웃음의 대상이 될 때 중요한 건 그 사람이 기분 나빠하면 안 된다는 점이다.

아들이게 한다는 것이다.

선을 넘는 순간 인격적으로 모욕당한 느낌을 줄 수 있다. 웃음에 상처받는

또 한 가지는 넘을 듯 말 듯 절묘한 그의 수위 조절이다. 20 SUNDAY MAGAZINE

사람이 있으면 안 된다.”


INTERVIEW

-지금 하는 방송은 후임으로 투입됐거나(‘강심장’), 집단MC가 끌고 가는(‘안녕하세 요’) 것들이다.

“옛날 같았으면 ‘내가 원 오브 뎀(one of them)으로?’ ‘누가 하던 프로그 램을?’ 이러면서 싫어했을 거다. 지금은 내가 꼭 스포트라이트를 받아야 한 다고 생각 안 한다. 예전엔 그런 게 심했다. 박수 칠 때 떠나야 한다는 강박도 그는 이런 것들이 “어렸을 때부터 몸에 배어 있었다”고 말했다. “내가 착

있었다. 뭘 하다가 딱 잘될 때 그만두고 6개월씩 쉬었다. ‘해피투게더 쟁반노

한 사람도 아닌데 그 자리에서 소외받는 사람을 자꾸 쳐다보고 신경 쓰게

래방’ 할 때도 (그냥 관두면) 욕먹을 것 같아서 김제동·유재석씨에게 사정

된다”고 했다. 먼저 말을 꺼내지 않는 그에게 물었다.

을 했다. 근데 그 친구들이라고 하고 싶었겠나. 그래도 지금 ‘해피투게더’는

-혹시 형의 영향이 있을까.

유재석이 열심히 한 프로그램이라고 생각한다. 내가 ‘강심장’을 하니까 강호

“그럴 수도 있다. 말 못하는 우리 큰형 때문에 가족끼리 모였을 때도 혹시

동 프로그램을 물려받았다고들 하는데, 그런 건 중요한 게 아니다. 내 스타

나 우리끼리만 오래 대화한 게 아닌가 신경을 썼다. 그런 것들이 영향을 미

일이 있다. 잘될 수도 있고 안 되면 그만둘 수도 있다. 이래서 좋고 저래서 좋

친 것 같다.”

다. 내 의지대로 돌아가야 한다고는 생각하지 않는다.”

방송에서 그가 몇 차례 얘기했던 큰형은 청각장애가 있다. “가족 모두 음

-그럼 뭐가 중요한가.

악 프로그램은 형이 못 들어서 안 보고, 개그 프로그램은 우리끼리 웃게 되

“나만이 할 수 있는 역할로 유치하지 않으면서 재미있게 하는 것. 예전엔

기 때문에 안 봤다”는 것과 마찬가지로 그는 자연스럽게 ‘우리끼리’ 재미있

회의해서 가대본 나올 때까지 소파에서 자면서 고치고 또 고치고 확인하고

는 개그는 하지 않게 된 것이다.

그렇게 전쟁처럼 살았다. 장단점이 있겠지만 그렇게까지 하는 게 썩 좋지는 않은 것 같다. 결과물에 대해 조바심 내기보단 힘 빼고 즐겁게 일하는 게 중

‘원 오브 뎀’도 OK  스포트라이트 강박증 버렸다 -최근까지 예능의 대세는 리얼 버라이어티였다. 그 기간이 신동엽에게는 슬럼프였고.

요하더라. 지금은 그런 강박에선 벗어났다.” -‘제 2 전성기’라는데 제의가 많지 않나.

“야생에서 소리 지르고 게임하는 건 잘 못한다. 목도 금방 쉬고 체력이 뒷

“제의는 많이 온다. 그런데 프로그램은 제작진의 몫이다. 좋은 PD와 작가

받침이 안 된다. 재능이 없는 거지. 그래서 잘하는 사람들 보면서 대단하다,

가 제의를 해줬을 때 내 느낌을 곁들여서 만드는 거다. 제 2의 전성기라고 하

대단하다 감탄한다.”

는데, 거기엔 공감하지 않는다. 대중이 좋아해주면 좋고, 아니면 또 자극받

-방송가에선 지붕 덮인 곳에서 방송하면 실속파라고 하던데. 누군가 농담이라면서 신 동엽은 게을러서 야외 방송 안 한다더라.

“아냐 아냐, 그건 농담이다(그가 처음 웃었다). 각자 가진 재능이 있는데 공

아서 하면 될 뿐이다. 대중이 ‘19금 개그’에 주목하는 것도 나쁘지 않다. 내 가 해온 것들이니까. 내가 그것만 하는 사람은 아니지만 요즘 들어 재미있어 하니까 나쁘지 않다.”

교롭게도 성대가 약하고 체력이 저질이다. 대신 내가 잘하는 부분이 있고 나

-완벽한 ‘19금쇼’란 어떤 것일까.

만의 색깔이 있는데, 공교롭게도 그게 다 실내였다(웃음).”

“음, 이런 거 아닐까. 보일락 말락.” SUNDAY MAGAZINE 21


COLLECTO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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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LLECTOR

1573년판 성경 비뇰라 건축집 내겐 책이 아닌 ‘영혼’ 나의 애장품 <6> 기업인 김준목씨의 서양 고서

운명적인 만남이 있다. 삶의 방향을 완전히 바꾸는. 김준목(50) 메타디움 에스앤티 대표의 경우가 그랬 다. 중견기업 해외무역팀장으로 출장이 잦던 1990년 대 초반 어느 날. 벼룩시장을 찾아다니던 것을 좋아하 던 그는 로마의 테르미니 역 앞 고서적 거리에서 그림 을 그리고 있던 한 서적상이 눈에 들어왔다. “역 건물과 광장을 오가는 사람들을 계속 크로키하 고 있더라고요. 같은 장면을 그리는 이유를 물었더니 ‘나는 시간을 그리는 화가’라고 하더라고요. 의미도 있고 재미도 있어서 그림을 두 장 샀더니 자기 집으 로 초대하더라고요. 알고 보니 로마 문화계의 거물이 었어요.” 1700년대에 출간된 백과사전. 12권 중 제1권 내지.

작은 성 같은 그의 집 거대한 창고에는 수십만 권

1800년대에 나온 소설 ‘로마의 신비’의 내지 그림.

의 옛날 책들로 가득했다. 그는 로마시대 인물인 키케

1573년에 출간된 성경책. 오스트리아 앨버투스 황제에게 바쳐진 책이다.

로의 글이 들어 있는 고서를 선물로 주며 이렇게 말

1800년대에 독일에서 나온 그리스 신화집의 삽화. 1800년대에 프랑스에서 출간된 라퐁텐 우화집.

6 1700년대에 이탈리아에서 나온 비뇰라 건축집. 1800년대에 독일에서 나온 그리스 신화집 표지. 1800년대에 스페인에서 나온 세르반테스 자서전. 1800년대에 프랑스에서 출간된 라퐁텐 우화집 표지.

했다. “이것은 그냥 책 한 권을 주는 게 아니라 이 속에 든 한 영혼을 선물하는 것이야.” 그때부터 유럽에 갈 때마다 그를 만났고, 틈날 때마 다 고서 수집 현장도 따라다니며 안목을 높였다. 마 침 회사를 그만두고 시작한 스티커 사진방 사업이 승 승장구하면서 비교적 여유롭게 책을 모을 수 있었다. 그렇게 20여 년간 모은 유럽 고서들이 3000여 권에 이른다. 오스트리아 앨버투스 황제가 등극할 때 바쳐 진 1573년판 성경책은 당시 2000만원에 구입했는데 지금은 경매에서 1억2000만원을 호가한다고. 그는 왜 서양의 옛날 책에 꽂혔을까. “디지털 시대에 웬 고서냐고 하시는 분들이 계세요. 그런데 저는 서양 문화의 소스를 갖고 싶었어요. 생각 의 뿌리를 알고 그 소스를 섞으면 새로운 창조물이 나 오거든요. 특히 건축이나 미술·음악 등 그림이 있는 예술 분야 책을 주로 수집합니다. 예를 들어 고대 그 리스 건축 양식을 집대성한 비뇰라의 건축집은 건축 학도라면 반드시 봐야 하는 것이죠. 이런 정보를 학생, 전문가들과 공유하기 위해 지금 쓸 만한 책들을 CD 로 만들고 있어요.” 지난해 5월 5일에는 파주 헤이리에 ‘네버랜드 어린 이 책박물관’을 열었다. 책을 통해 꿈을 찾아내고 책 과 더불어 인생을 살아가도록 훈련시켜 주는 공간이 다. 앞으로 고서 박물관도 만들 생각이다. 책 속에 길 이 있기에. 글 정형모 기자 hyung@joongang.co.kr, 사진 최정동 기자 SUNDAY MAGAZINE23


GALLERY

한 폭 그림 같은 사진들 보러 영월에 가볼까

천혜의 자연을 배경으로 펼쳐지는 동강국제사진제가 올해로 11회를 맞는다. 아시아를 넘어 세계적인 사진제로 거듭나기 위한 여덟 가지 테마의 수준 높은 전시들이 두 달 반 동안 이어진다. ‘동경도 사진미술관 소장전’과 ‘여자-멈추지 않는 여성들 1945~2010’전은 아라키 노부요시, 모리야마 다이도 등 세계 사진사에 큰 몫을 하고 있는 일본 사진가들의 작품을 만나볼 수 있는 기회다. 제11회 동 강사진상 수상자 노순택전에서는 ‘분단의 현재성’이라는 화두로 진행해 온 그의 투철한 역사의식이 돋보이는 작품들을 만날 수 있다. 최재영·조용철 등 국내 보도사진가들이 자연을 소재로 발표한 보도사진가전 ‘자연을 그리다’에는 자 연을 담담하게, 때로는 강렬하게 회화적으로 표현한 아름다운 작품들이 한 폭의 그림처럼 펼쳐진다. 그 밖에 신진 사진가들의 실험정신으로 영월을 재조명하는 거리설치전 ‘여섯 번째 전시-영월의 재발 견’ 등 다채로운 전시들이 준비됐다. 글 유주현 객원기자 yjjoo@joongang.co.kr, 사진 동강국제사진제 조직위원회

2012 동강국제사진제 7월 20일~10월 1일 강원도 영월군 동강사진박물관 등, 문의 02-2237-4160

24 SUNDAY MAGAZINE

조용철 기자의 ‘길 위에서 만난 가창오리’(2012), 130x80cm

아라키 노무요시 ‘센티멘탈한 여행’

노순택의 ‘비상국가’


PORTRAIT ESSAY

권혁재 기자의 不-완벽 초상화

‘징하게’ 자연친화, 윤문식 “내 얼굴, 참 겸손하게 생겼지, 자연친화적이지 않아? 그래도 나는 눈썹, 눈, 코, 입으로 내려갈수록 잘 생겼다고 봐. 누구는 하회탈 닮았다고, 또 누구는 서산 마애불 닮았다고도 해. 이 한국적인 얼굴 덕에 마당놀이만 삽십 년 했어. 잘 놀았지.”

SUNDAY MAGAZINE 25


FOOD

노릇노릇 두부에 매실된장 드레싱 와인과 환상 궁합 주영욱의 도전 선데이 쿠킹 <7> 두부 카프레제 샐러드

중하게 생각하고 언행을 가볍게 하지 않아

요즘 들어서는 어느새 습관이 되어서 내

야 한다는 가르침을 몸소 실천하시는 가운데, 가 말이 없다는 것을 의식하지 못하고 있다 자고로 남자란 말을 많이 하는 법이 아니라

가 문득 집사람이 한마디씩 불평하는 것을

는 생각을 강하게 갖고 계셨다. 말씀을 많이

들을 때면 내가 문제가 있구나 하는 생각이

하시는 대신에 주로 ‘이심전심(以心傳心)’이

들 때가 자주 있었다. 어쨌건 부부간에는 대

라는 고난도의 의사소통 기법을 많이 사용

화가 가장 중요하다. 대화를 하면 서로 소통

하셨는데, 때로는 전심(傳心)이 제대로 되지

이 되고 소통이 되면 부부간에 있던 문제도

않아 가족과 소통불능의 사태가 벌어지기도

없어지는데 아무래도 내가 아버지의 이심전

했었다. 어렸을 때는 아버지의 이런 무뚝뚝한

심 기법의 효과를 너무 믿었던 것 같기도 하

면이 너무 무심하다고 생각할 때가 있었다. 다. 곰국 몇 달치와 함께 혼자 남겨지는 비극 의 주인공이 되지 않으려면 지금이라도 뭔가

가 아버지의 모습을 닮아가고 있었던 것이다.

노력을 해야 할 것 같다.

결혼 초기에는 그래도 아내와 꽤 대화를

오랜만에 마음먹고 간단한 안주를 만들어

남자들은 집에서 말이 없다. 아마 대부분 그

많이 했었다. 한참 뜨거웠던 시절이기도 하

서 집사람과 와인을 한잔하는 자리를 만들어

럴 것이다. 나도 마찬가지다. 단어의 숫자만

지만 막상 결혼하고 보니 남자와 여자는 너

보기로 했다. 최근에 이런저런 일로 서로 부딪

조금 더 많고 말하는 형식만 좀 다를 뿐이지

무도 달라서 서로 맞춰가기 위해서는 대화를

쳐서 좀 서먹하기도 했던 참이다. 어떤 안주를

그저 자기가 필요한 말만 몇 마디 하고 그치

많이 할 수밖에 없었다. 『화성에서 온 남자, 멋지게 만들어 볼까 하고 고민하다가 지인의

는 때가 많다는 점에서 보면 같은 부류로 분

금성에서 온 여자』라는 책 제목처럼 남자와

소개로 교토푸(Kyotofu)라는 레스토랑에서

류되어도 할 말이 없는 수준이다.

여자는 서로 다른 행성에서 온 것처럼 다르

도움을 받기로 했다. 일본 교토의 두부 요리

다는 얘기가 공감이 가던 시절이었다. 그러다

에서 영감을 받은 미국인들이 만들어서 뉴욕

사실 마음은 안 그런데 왜 이렇게 내가 집

26 SUNDAY MAGAZINE

그런데 어느덧 내가 나이가 들고 보니 어느샌

에서 말이 없는지 곰곰이 한번 생각해 봤다. 가 서로가 익숙해지고 아이들도 생겨서 집안

맨해튼에서 유명해진 세련된 브런치, 디저트

돌아가신 아버지께는 죄송하지만 아무래도

식구가 많아지고 하면서 점점 대화가 줄어들

전문 식당이다. 한국 본점의 주방책임자인 박

아버지의 영향이 컸던 것 같다. 유교적인 사

었다. 아니, 사실은 내가 말이 줄어들었다. 옛

광희 셰프는 매실 된장소스를 곁들인 두부 카

고방식이 엄격하셨던 아버지께서는 항상 진

날의 아버지 모습으로.

프레제(Caprese) 샐러드를 추천해 주셨다.


FOOD 재료 두부(부침용으로 단단한 것), 토마토, 새싹 채소 (어린잎 채소), 간장, 올리브유, 매실주스(혹은 매 실농축액), 미소된장, 올리고당, 양파(다진 것)

준비 두부를 적당한 사이즈(4×3㎝ 정도)로 썰어 소 금과 후추로 간 을 해놓은 다음 10분 정도 재어 놓는다. 소금을 뿌려서 재어 놓 으면 수분이 빠 져서 더 단단해 지고 요리를 했 을 때 식감이 더 좋아진다. 프라이팬에 올리브유를 두르고 두부를 약간 노릇노릇하게 부친다. 토마토를 반달 모양으로 잘라서 준비한다. 매실 된장소스를 만든다. 2인용 분량: 매실주 스(혹은 매실농축액에 물을 탄 것) 반 컵, 올리브 유 한 스푼(밥숟가락), 미소된장 한 스푼(찻숟가 락), 올리고당 두 스푼(밥숟가락), 양파 다진 것 4분의 1개를 섞어서 만든다. 소스로 사용할 것이 므로 맛을 보면서 좀 진하게 맛을 조정한다. 새싹 채소를 깨끗이 씻어 물기를 뺀 다음 간장

카프레제 샐러드는 원래 모차렐라 치즈

두부를 차례대로 보기 좋게 쌓아서 늘어놓

와 토마토로 만드는 이탈리아 남부 카프리

고 매실 된장소스를 위에 뿌린다. 간이 된 새

(Capri)섬 스타일의 샐러드다. 이것을 치즈

싹 채소를 곁에 올려 내면 음식은 모두 완성

대신 두부를 이용해 만드는 것이다. 소스도

이다. 재료가 준비돼 있으면 한 시간 정도면

원래는 발사믹 소스를 사용하는데 독특하게

끝낼 수 있다.

과 올리브유를 조금 넣고 간을 한다. 토마토와 두부를 차례대로 보기 좋게 쌓아서 늘어놓고 매실 된장소스를 위에 뿌린다. 간이 된 새싹 채소를 곁에 함께 올려 내면 완성이다.

교토푸(Kyotofu)

매실 된장소스를 사용하는 것으로 변형됐다.

휴일 오후, 주방에서 혼자 뚝딱거려서 두

일본 교토의 두부 요리에서 영감을 받은 미국인

두부와 토마토, 매실과 된장의 결합이라니

부 카프레제 샐러드를 만들어서 와인과 함

들이 2006년 뉴욕 맨해튼에서 시작해 성공을 거

왠지 건강에 좋을 것 같은 생각이 물씬 든다.

께 차려놓고 아내를 불렀다. “이게 웬일이에

둔 두부 관련 요리, 디저트 전문점이다. 우리나

굳이 표현하면 이탈리아 음식 스타일에 일본

요?” 하고 낯설어 하면서도 싫지 않은 눈치다.

식 감성과 뉴욕의 세련미가 결합된 퓨전 건강

이런저런 얘기가 자연스럽게 오고 간다. 부부

샐러드라고나 할까.

사이란 가깝게 지내려면 한없이 가깝고 멀게

라에는 2010년에 들어왔다. 미국 본점에서 도입 한 두부 요리와 한국에서 새롭게 개발한 요리 등 을 통해 세련된 스타일의 브런치와 디저트를 제 공한다. 교토푸라는 이름은 교토(Kyoto)와 두부

만드는 방법은 참 간단했다. 두부를 적당

지내려면 아주 멀다는 것이 실감이 난다. 이

(Tofu)의 합성어다. 서울시 용산구 한남동 682-1,

한 사이즈(4×3㎝ 정도)로 썰어서 소금과 후

렇게 함께 앉아 좋은 분위기에서 얘기를 하

02-749-1488

추로 간을 해놓은 다음에 10분 정도 재어 놓

고 있으니 최근 좀 서먹서먹했던 느낌이 어디

는다. 소금을 뿌려서 재어 놓으면 수분이 빠

갔나 싶게 싹 없어진다.

져서 더 단단해지고 요리를 했을 때 식감이

이 글을 읽고 속이 뜨끔한 가장이라면 일

더 좋아진단다. 프라이팬에 올리브유를 두르

단 이 방법을 써보실 것을 권해 드린다. 시작

고 두부를 노릇노릇하게 부친다. 토마토를 반

이 반이다. 지금이라도 개과천선을 하

달 모양으로 모양 있게 썰어서 준비한다. 매

면 우리는 구제받을 가능성이 있

실 된장소스는 매실주스(혹은 매실 농축액), 다고 아직 나는 믿는다. 올리브유, 미소된장, 올리고당, 다진 양파를 섞어서 만든다. 새싹 채소를 준비해 간장과 올리브유를 섞어 살짝 간을 해준다. 이렇게 하면 일단 준비가 끝난다. 토마토와

주영욱씨는 다방면에 관심이 많다. 그 중 사진, 여행, 음식을 진지하게 좋아한 다. 마케팅리서치 회사 마크로밀코리아 대표이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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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OUSE

보일러 안 때고도 한겨울 실내 20도 산골짜기 작은 집 최명철의 집을 생각하다 <7> 강원 홍천 ‘살둔 제로에너지 하우스’

지난 6월 20일부터 3일간 브라질 리우데자

분석해 본 결과 투자적 측면에서의 피크 오일

네이루에서는 리우+20 제3차 유엔 지속가능

은 2012년이라고 단정했다. 피크 오일의 문제

발전회의가 열렸는데, 글로벌 경제위기와 미

는 높아지는 원유가와 공급량 감축 등으로

국·중국을 비롯한 강대국들의 권력 교체기

우리나라처럼 수입에만 의존하는 에너지 소

와 맞물려 성과 없는 회의가 됐다. 20년 전인

비 국가에는 치명적이다.

1992년 1차 회의에서는 기후변화협약을 체 결하는 등 지구환경에 대한 구체적인 리우 이대철 선생 10여 년 연구의 결실 선언이 있었고, 이에 따른 97년 교토의정서

피크 오일에 관한 국가적 차원의 걱정에 대비

에 의해 선진 38개국은 1990년을 기점으로

하고자 지어진 집이 있다. 강원도 홍천 산골

2008~2012년까지 평균 5.2%의 온실가스를

에 있는 ‘살둔 제로에너지 하우스’다. ‘살둔’이

감축하기로 했다.

란 지명은 생둔(生屯)이라고도 하며 ‘살 만한

리우 선언과 교토의정서에 의한 기후변화

언덕’이고 ‘여기에 머물면 산다’라는 뜻이다.

협약이 무기력하게 된 지금, 하나뿐인 지구가

워낙 오지여서 임진왜란이나 한국전쟁 때에

위험하다. 급증한 기후 관련 재해·재난 속에

도 안전했고, 세조에 반대해 단종 복위를 꾀

서 세계적인 리더십에 기대를 걸었던 많은 이

했던 사람들이 숨어 살았다는 이야기도 전해

의 걱정도 늘고 있다. 게다가 2012년은 석유 오는 곳이다. 정감록에는 ‘삼둔사가리’라 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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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점(peak oil)의 해이기도 하다. 투자전문가

여 방태산 주변 일곱 곳을 일러 피난처로 기록

제프시겔은 최근『재생 가능한 에너지에 투

했다. 삼둔은 홍천군 내면 지역 방태산 남쪽

자하라』는 책에서 기존 연구의 모든 자료를

내린천변에 있는 살둔·월둔·달둔이고 사가리


HOUSE

강원 홍천 ‘살둔 제로에너지 하우스’

는 방태산 북쪽 인제군 기린면 지역에 있는 적

으로 한겨울에 20~22도를 유지한다는 이 집

OSB(Oriented Strand Board)를 붙인 구

가리·아침가리·연가리·명지가리를 말한다.

의 비결은 다음과 같다.

조용 외벽재다.

이런 세상 끝 같은 곳에서 ‘21세기 노아의

첫째는 절약이다. “1㎾h를 아끼는 것은

셋째는 창호의 문제다. 창호 자재의 선택이

방주’를 만들겠다는 이가 있다. 30여 년 전 일

1㎾h를 만드는 것보다 훨씬 가치 있다”는 철

나 시공상 주의하는 것 이상으로 위치와 크

찍이 전원주택을 지어 자연친화형 삶을 살았

학이다. 패시브 하우스라고도 불리는 절약형

기 문제가 중요하다. 유리창은 집 디자인에서

고, 이를 통해 97년 『애들아, 우리 시골 가서

주택의 출발은 적정한 면적과 단순한 형태에

결정적 요소다. 집에서 보는 전망이나 보이는

살자』라는 책으로 일반인에게도 알려진 이

있다. 선생이 경험한 바에 따르면 “건축가가

외관보다 겨울철 햇빛에 의한 열 에너지원과

대철 선생이다. 에너지 수요를 줄이는 주택

설계한 집은 복잡하다. 따라서 건축비도 비

자연환기의 기능적 조건이 중요하다. 따라서

개발을 위한 십여 년간의 연구와 돈키호테

싸고 열 손실이 많아진다. 복잡한 형태는 유

지역의 위도와 최저 기온, 창의 방향과 창호

같은 의지가 결실을 본 이 살둔 집은 지식과

지관리도 어렵다.” 결론적으로 동서로 긴 남

의 종류, 실내 열저장체와의 관계까지 분석

지혜로 가득하다. 외부 에너지, 특히 화석에

향집에 30평 규모(7×14m) 이하를 권장한다.

대상이 된다. 비싸지 않은 시스템 창호, 햇빛

너지를 전혀 사용하지 않는 온전한 제로 에

둘째는 가장 중요한 단열이다. 불리한 외

이 중요한 남쪽은 로이코팅 된 2중창과 나머

너지하우스는 국가나 기업도 성취하지 못한

부 환경을 최대한 차단하고 집안의 온·습

지는 3중창, 바닥면적 대비 남향창의 면적은

큰 사건이다.

도 조건을 균질하게 유지하는 고유의 셸

최대 15% 이내, 단열 덧문은 관리가 가능한

터(shelter) 기능을 말한다. 선생의 결론

내부에, 창틀은 PVC, 모기망은 롤업 제품으 로 하는 등 각종 경험이 함축돼 있다.

너무 넓지 않게, 단순하게 지어라

은 미국의 자재 전시회에서 발견했다는

일단 이 집엔 난방용 보일러가 없다. 혹독한

SIPs(Structural Insulated Panels)이

넷째는 실내 축열 기능이다. 밀도가 높은

추위로 유명한 강원도 산골 집에 난방 보일

다. 불에 안 타고 안전한 두께 200㎜ 스

물체는 온도 변화가 느리다는 특성을 활용

러 없이 살 수 있을까? 보조 열원인 벽난로만

티로폼 양면에 합판 대용의 친환경 소재

한다. 특히 겨울철 실내 깊숙이 들어오는 햇 SUNDAY MAGAZINE 29


HOUSE

볕을 축열시키는 것이 핵심이다. 실내에 효

로 하는 전기를 공급할 수 있는 태양광 발전

율적인 열저장체(thermal mass)를 되도록

도 필수다.

많이 갖는 것이 중요하다. 타일로 마감한 바

이 집은 이런 모든 지적 연구의 성과물이

닥, 내화벽돌로 된 벽난로, 점토벽돌로 된 내

다. 뒤편에 있는 목공장에서는 선생의 땀과

벽 등이 사용된다.

열정을 한눈에 볼 수 있다. 망치박물관을 차

다섯째는 숨 쉬는 집이다. 단열이 잘된 패

릴 정도의 장비에 대한 집념도 기인 수준이

시브 하우스는 겨울철 환기가 문제다. 따

다. 현대판 ‘합리적 기인’인 이대철 선생만이

라서 실내온도를 유지하면서 환기를 적절

이룰 수 있는 길인 것 같다.

히 하는 방법으로 전열교환기(HRV·Heat

2011년 대한민국 녹색기후상 대상 등 국

Recoverable Ventilation)를 사용한다. 친

내에서 상도 여럿 받았지만 국가나 기업에

환경 자재를 사용해 유해가스 발생을 최소

손 내밀지 않고 꾸준히 제로에너지 하우스

화하는 것은 필수다.

의 보급을 위해 지금도 실천 가능한 사업만

마지막으로 보조 열원이다. 잘 구성된 패

하나씩 쌓아가는 선생의 업적을 보면서 건축

시브 하우스는 일반 주택에서 사용되는 에

가로서 부끄럽다. 그래서 이 글은 집에 대한

너지의 10%미만으로 난방이 가능하다. 하지

이야기라기보다는 한 사람에 대한 이야기일

만 겨울철에는 맑은 날이 50% 정도이기 때

수밖에 없다.

문에 보조 난방이 필요하다. 까다롭긴 하나 잘 선택한 벽난로는 축열 기능과 더불어 중 요한 보조 난방 수단이다. 또 주택에서 필요 30 SUNDAY MAGAZINE

최명철씨는 집과 도시를 연구하는 ‘단우 어반랩(Urban Lab)’을 운영 중이며,‘주거환경특론’을 가르치고 있다. 발산지구 MP, 은평 뉴타운 등 도시설계 작업을 했다.


COLUMN

애들은 모를걸요 인생 좀 살아본 어른들만 느낄 수 있는 즐거움 컬처 #: ‘미드나잇 인 파리’를 보고

40대 후반의 김 여사님은 이른바 ‘19금 개

어야 했던 시간들을 어린애들은 모를 것이다.

브뉴엘에게 “이런 영화 아이디어 어때” 하며

그’를 내세운 토요일 밤 tvN ‘SNL코리아’를

그렇게 ‘아는 사람들만 아는 어른들의 이

건네는 내용의 의미라든지, 박물관 갤러리에

보면서 그다지 큰 기대를 하지 않았다. 어린

야기’의 느낌은 SBS ‘고쇼’에 출연한 윤여정

등장하는 가이드가 프랑스 사르코지 대통령

애들이 ‘야동’ 보는 일을 무슨 사춘기 신고

을 보며 더 절실하게 느껴졌다. “내가 평창동

의 부인 카를라 브루니임을 한눈에 알아본

식 정도로 우습게 아는 이 포르노 만연의 시

비구니” “우리 엄마 89세, 나 64세 우리 집은

다면 뭘 좀 아는 사람의 ‘발견하는 재미’가

대, ‘어른들만 보는 코미디’가 가능할까 싶었

귀곡산장”…. 쉴 새 없이 ‘빵빵 터뜨려 준’ 그

한층 커질 영화다.

다. 그런데 신동엽의 ‘변태 연기’는 역시 발군

의 유쾌한 농담에 시원하게 웃고 나서 혹시

그러나 꼭 뭘 알 필요도 없다. 사는 맛을 아

이었다. 승려로 분장한 그가 ‘짝’ 패러디에서

어린애들이 ‘예능 늦둥이’ 어쩌고 하는 경박

는 보통의 중년이라면 충분하다. 혹시 한 번

예쁜 여자 재소자를 본 뒤 자신의 아랫도리

한 표현으로 이 배우의 웃음을 진짜 우습게

이라도 거쳐봤거나 꿈꿨을 비 오는 밤 파리

를 지긋이 바라보고 음흉한 미소를 짓는 모

만들어 버리지 않을까 걱정했다. 스스로를

의 아름다움과, 작가들의 이름이라도 주워섬

습에서는 확실히 연령대를 높인 개그의 쾌감

그렇게 웃긴 말로 표현하기까지 그가 지나왔

길 수 있는 상식과, ‘우리는 과거의 어느 순간

이 물씬 느껴졌다.

던 힘든 시기를 잘 알고 있기 때문이다. 유명

을 황금시대라 꿈꾸지만 결국 그건 황금시대

하지만 그건 안 쓰던 표현을 쓴 도발성 때

한 이혼과 생활고, 짐작이 가능한 외로움, 오

가 지나가버린 시간이기 때문’이라는 노감독

문이지 꼭 그 내용이 ‘어른들만 알 수 있는 무

랜 경력상의 공백 등을 뚫고 그는 자신의 직

의 메시지에 끄덕거릴 연륜만 있다면 충분히

엇’이라고 하기엔 좀 부족했다. 그런데 박진영· 업에서 우뚝 서고, 아들 훌륭하게 키워내고

즐길 수 있다. 그건 진짜 애들은 잘 모르는 거

무엇보다 인생에 대해 불평하지 않고 깔끔하

다. 김 여사는 친구에게 전화를 할 예정이다.

서는 ‘이거 진짜’라는 생각에 데굴데굴 굴렀

게 살아왔다. 그런 시간을 견뎌낸 뒤에야 저

애들이랑 배트맨이라도 같이 봐야 극장 구경

다. 실제 이혼 경력이 있는 두 사람이 벌이는

렇게 유머의 대상으로 자기를 내려놓을 수 있

한번 할 수 있나 했다가 친구들이랑 같이 가

가상 재혼극. 겉으로는 살살 웃으며 “가수 중

는 거다. 그 의미를 애들은 모른다.

는 자녀에게 서운타 하지 말고 ‘뭘 좀 아는 어

신은경이 나온 ‘우리 재혼했어요’ 편을 보면

에 ‘갔다 온’ 사람이 많지 않아 조영남씨 나

며칠 전 찾았던 우디 앨런의 ‘미드나잇 인

오면 어떡하나 했다” “예전 집 생각하면 못살

파리’ 상영관에서는 진짜 ‘바로 여기다’ 싶

죠” 하는 속물근성 가득한 신은경의 독백은

은 생각이 들었다. 극장 안에는 김 여사 또래

확실히 그만큼 살아보지 않은 ‘애’들은 이해

의 우아한 중년여성들이 단체 관람을 온 듯

하기 힘든 아줌마의 공감이 담겨 있었다. ‘고

한 분위기였다. 참 보기 힘든 풍경이다. 영화

릴라’라는 별명의 박진영이 바나나를 먹으며

역시 ‘뭘 좀 아는 어른들’에게 더할나위없이

“공기 반, 음식 반” 하며 자신을 희화화할 때 역

흐뭇함을 안겨주었다. 그림엽서처럼 아름다

시 이런저런 노력과 좌절과 성공을 겪은 사

운 파리의 밤 풍경, 모네와 고흐의 그림이 배

람이기에 스스로를 패러디할 여유를 가질 수

경화면이 되는 영화 화면, 피카소와 달리와

있구나 싶었다.

른’들만 즐길 수 있는 이 영화를 보라고. 글 이윤정 대중문화평론가, 사진 더블앤조이픽처스

모딜리아니의 그림과 인생 이야기, 헤밍웨이·

이혼한 것이 흠이 되지 않는 세상이라도 행

스콧 피츠제럴드·콜 포터·만 레이·장 콕토·루

복한 기억이라고는 할 수 없을 터, 그런 아픔

이스 브뉴엘 등과 대면하는 듯한 즐거움까지.

이 있는 자신을 웃음의 소재로 던지기까지 겪

시간여행을 하게 된 남자 주인공이 루이스 SUNDAY MAGAZINE 31


SOULSEARCHING

노년을 좋게 보내는 비결은 고독과 명예로운 조약을 맺는 것이다.

The secret of a good old age is simply an honorable pact with solitude. 권력은 고독하고 행복은 소박하더라 박정태의 고전 속 불멸의 문장과 작가 <17>『백 년의 고독』과 가브리엘 가르시아 마르케스

가브리엘 가르시아 마르케스가 파리 공항에

고, 마을 사람들은 전쟁에 휩쓸리고, 파업 사

게 산다는 것이 얼마나 중요한가를 깨달았는

서 우연히 만난 그녀는 “내 평생 본 여자 중에

태로 학살을 당한다. 4년간의 폭우와 10년의

데, 그러기 위해 서른두 차례의 전쟁을 벌여

가장 멋진 여인”이었다. 그런데 이 여인이 비

가뭄이 이어진 뒤 마콘도는 다시 폐허가 되

야 했고, 모든 협정을 죽음을 걸고 위반해야

행기의 자기 옆자리에 앉는다. 그는 숨도 제

고 부엔디아 가문은 가뭇없이 사라진다.

했으며, 승리의 영광이라는 수렁에 빠져 돼지

대로 쉬지 못하는데, 그녀는 은은한 향기를

이 작품에는 수많은 상징과 은유, 환상과

처럼 허우적거려야 했다.”

신비가 숨어 있지만 그런 것을 생각하지 않고

그는 사업이 아니라 일 자체에 빠져들었다.

그는 스무 살 정도로 보이는 그녀를 자세히

읽어도 아주 재미있고 감동적이다. 그래서 마

비늘을 이어 맞추고, 아가미에 광택을 내고,

풍기며 곧바로 잠든다.

가브리엘 가르시아 마르케스 (Gabriel Garc a rquez, 1927~)

뜯어보며, 가와바타 야스나리(川瑞康成)의

술적 리얼리즘의 극치라고 하는데, 호세 아르

지느러미를 붙이는 수작업은 엄청난 주의력

『잠자는 미녀의 집』을 떠올린다. 남성을 잃은

카디오의 죽음을 묘사한 장면을 보자. “한 줄

을 요구했다. 구부린 자세 때문에 척추가 굽

노인들이 마지막 사랑을 즐기는 곳, 그 집에

기 피가 문 밑으로 새어나와, 거실을 가로질

었으며, 세밀한 작업 때문에 시력은 감퇴됐지

는 처녀가 알몸으로 누워 있지만 깨울 수는

러 거리로 나가, 울퉁불퉁한 보도를 통해 똑

만, 완전한 정신집중으로 영혼의 평화를 얻

활동하다 정부의 부패와

없다. 노인들은 대신 오랜 기억 속에서 가장

바로 가서, 계단을 내려가고 난간으로 올라가, 을 수 있었다. 그에게 노년을 좋게 보내는 비

혼란상을 비판한 칼럼 때

순수한 형태로 사랑을 만끽한다.

터키인들의 거리를 통해 뻗어나가다 (…) 우

결은 고독과 명예로운 조약을 맺는 것이었다.

문에 해외를 떠돌며 작품

르술라가 빵을 만들려고 달걀 서른여섯 개를

그는 문 앞에 앉아 거리를 바라보곤 했는데,

깨뜨릴 준비를 하고 있던 부엌에 나타났다.”

뭐 하느냐는 물음에 이렇게 답했다. “여기서

가르시아 마르케스는 자신의 자서전『이 야기하기 위해 살다』의 헌사에 이렇게 썼다.

『백년의 고독』이 가진 또 하나의 매력은 이

내 장례 행렬이 지나가는 걸 기다리고 있소.”

처럼 숨 넘어갈 듯 이어지는 만연체 문장인

소설의 결말은 묵시록을 연상케 한다. 오래

그의 대표작『백년의 고독(One Hund- 데, 오랜 장마로 식량이 떨어지자 페르난다가

전에 죽은 집시 멜키아데스가 양피지에 적어

red Years of Solitude)』도 기억으로 시작

남편에게 잔소리하는 장면은 한 문장이 무려

놓았던 일들이 부엔디아 가문에게 그대로 일

된다. “총살대 앞에 선 아우렐리아노 부엔디

4쪽이 넘는다(민음사판 제2권 175~179쪽).

어났던 것이다. “정해진 것은 일어날 것이다.”

“삶은 한 사람이 살았던 것 그 자체가 아니라 현재 그 사람이 기억하고 있는 것이다.”

아 대령은 아버지에게 이끌려 얼음 구경을 갔 던 먼 옛날 오후를 떠올려야 했다.” 오래전 추억만이 아니라 일상의 자잘한 기

소설 속에서 가장 고독한 인물은 아우렐리

시간은 직선으로 흘러가지 않는다. 세월이란

아노 부엔디아 대령이다. 그는 전장에서 친구

원을 그리며 되풀이되는 것이다. 다만 이 지

콜롬비아 작가로 1982년 노벨문학상 수상. 기자로

활동을 했다.

에게 묻는다. “자넨 왜 전쟁을 하고 있는가?” 상에서 두 번째 기회는 가질 수 없���.

억도 소중하다. 우르술라는 나이 백 살이 넘

친구가 “위대한 자유당을 위해서”라고 답하

얼마 전 가르시아 마르케스가 노인성 치

어 아무것도 볼 수 없게 되자 기억을 이용해

자, 그는 말한다. “그걸 알다니 행복한 사람이

매로 인해 기억을 잃어가고 있다는 외신을 접

남들보다 훨씬 잘 보고, 심지어 다른 사람이

군. 난 말이야, 자존심 때문에 싸우고 있다는

했다. 세상에 이런 이야기꾼이 기억을 잃는다

잃어버린 물건까지 찾아준다.

걸 이제야 겨우 깨달았네.”

니! 참, 그때 비행기에서 만났던 여인은 어떻

『백 년의 고독』은 부엔디아 가문의 7대에

그는 반군 총사령관이 된 날 밤, 겁에 질린

걸친 흥망성쇠가 줄거리다. 사촌지간인 호세

채 잠에서 깨어나 춥다고 모포를 찾는다. 권

그녀는 비행기가 뉴욕에 착륙하자 스스로

아르카디오 부엔디아와 우르술라 부부는 근

력에 대한 도취감은 사라지고 불안감이 찾아

잠에서 깨어 내렸고, 그는 그녀가 꿈을 꾸던

친상간으로 인해 돼지꼬리가 달린 자식을 낳

든 것이다. 그는 무한한 권력의 고독 속에서

좌석 옆에서 맨 처음 느꼈던 그녀의 아름다

을 것이라는 예언 때문에 고향을 떠나 마콘

길을 잃고 헤매다 집으로 돌아온다. 그리고

움을 회상하며 여행을 계속했다. 그리고 한

박정태씨는 고려대 경제

도 마을을 세운다. 너무 평화로워 공동묘지

은세공 작업실에서 작은 황금 물고기를 만들

달 뒤 노벨문학상을 받았다. 이제 그 여인은

학과를 나와 서울경제신

조차 없던 마을에 정부 관리가 등장하고, 바

면서 비로소 행복을 느낀다.

쉰이 다 됐겠지만 그에게는 여전히 ‘잠자는

나나 생산업체가 들어오고, 철도가 부설되 32 SUNDAY MAGAZINE

“40년 세월을 보내고 난 다음에야 소박하

게 됐을까.

미녀’일 것이다.

문, 한국일보 기자를 지냈 다. 굿모닝북스 대표이며 북 칼럼니스트로 활동 중.


CARTOON

김재훈의 문화 캐리커처

포스터 전성기의

이탈리아의 풍미

에클레르

티라미수

디저트는 마냥 달기만 해서도 안 되고 필요 이상으로 맛이 복잡해서도 곤란해. 나처럼 단순하면서도 제대로 감미로워야지.

한 조각의 케이크로 풍부한 맛과 다양한 질감의 만족을 얻고 싶다면 내가 제격이지. 그래서 사람들이 나를 좋아하는 거 아니겠어?

이탈리아어 ‘tirare, mi , su’의 합성어인 티라미수를 번역하면

에클레르는 특별히 화려한 외모를 갖고 있진 않다.

‘나를 끌어올리는’이라는 뜻으로 먹으면 기분이 좋아진다는

하지만 슈 페이스트리 위의 광택으로

의미로 의역할 수도 있다. 그만큼 사람들의 입맛을 충족시킬

사람들의 시선을 끌어 입안 가득히 침이 고이게 만들고

광택으로

자신이 있다는 뜻일까? 이탈리아인의 자존심을 닮은 듯한

소박하지만 뚜렷한 맛으로

시선과 입맛을 끄는 당의,

이 케이크의 역사는 1980년대부터일 정도로 짧지만

먹는 이들의 기대를 저버리지 않는

프랑스 말로 글라사주.

그 맛을 즐기는 사람들의 숫자는 결코 적지 않다.

매력적인 디저트다.

융단 같은 질감으로 유혹하는 코코아 파우더.

초콜릿이나 커피 맛을 가미하기도 하는 커스터드 크림.

기분 좋게 바삭바삭한

이탈리아 대표 크림치즈인 마스카르포네를

슈 페이스트리.

주재료로 만들어 부드러운 층.

이 케이크가 에클레르라는 명칭과 기본 조리법을 갖추게 된 것은 19세기 후반이었는데 프랑스의 가장 유명한 셰프였던 앙토냉 카렘의 공이 크다.

에스프레소에 충분히 적신 사보이아르디(savoiardi)로 채운 층은 티라미수의 주된 맛을 내는 핵심.

나는 프랑스 요리계의 위대한 스승. 특별한 요리와 과자의 역사에는 내 이름이 꽤 자주 등장해. 에클레르( clair)는 번개를 뜻하는 프랑스어인데, 먹기 시작하면 눈 깜짝할 사이에 사라져 버린다고 해서 그런 이름이 붙었다는 설도 있어요. 맛을 보면 그럴 법하다는 생각이 들죠.

사보이아르디는 이렇게 생긴 과자인데 ‘레이디핑거’라고도 해. 생긴 모양 보면 감이 오지?

티라미수는 포크보다 숟가락으로 퍼먹어야 제맛이죠. 그래야 함께 먹는 사람보다 좀 더 많이 먹을 수도 있겠죠?

김재훈씨는 홍익대에서 디자인을, 연세대 커뮤니케이션대학원에서 영상디자인과 문화사회학을 공부했다. 인문과 문화를 대중에게 소개하는 정보 만화가의 길을 걷고 있다.

SUNDAY MAGAZINE 33


CONTE

회의에 빠진 회의 김상득의 인생은 즐거워

도무지 의심할 수 없는 것으로 철학의 제일명

하는 것일까? 회사는 회의를 좋아하는 사람

제를 삼자. 아무리 회의하고 또 회의해도 지

들의 모임이기 때문이다. 그들은 회의를 통해

금 이 순간 회의하고 있는 내 자신을 부정할

무엇보다 심리적 안정을 얻는다. 이 사안은

수는 없다. 그러므로 이처럼 회의하는 자, 나

회의를 통해, ‘집단지성’을 통해 결정된 사안

는 존재한다. 중세는 개인이 존재하기 위해

이다. 그렇기 때문에 최선이다. 적어도 차선이

신을 필요로 했다. 그러나 신 없이, 오직 회의

다. 그런 착각을 선사한다. 회의는 ‘고독한 결

로부터, 회의하는 자신으로부터 자신의 존재

단’이 짊어져야 할 책임을 회의에 참석한 사

를 증명하는 근대적 자아가 출현한 것이다. 람들에게 고루 나눠준다. 아니, 책임을 나누 기억은 희미하지만 철학개론 시간에 들었던

는 과정을 통해 책임 소재 자체가 사라진다.

데카르트의 제일명제의 요체는 이러했다.

그런 것이 아니라면 왜 회사에서 그토록 많

회사에서 하는 회의 역시 회의에서 비롯 회사는 회의를 좋아하는 사람들의 모임이다. 된다. 지금 하는 방식이 최선인가? 적어도 차

것일까?

어떤 날은 하루에도 몇 개의 회의를 하고, 심

선인가? 효율적인가? 장기든 단기든 이익이

회의에 참석할 때마다 회사원 김 대리는

지어 하루 종일 회의만 하다가 보내는 날도

되는 일인가? 적어도 두 사람 이상이 모여서

회의에 빠진다. 데카르트적 인간이 된다. 근

있으니까. 회사원이 회사에서 하는 가장 중요

함께 의심해 보는 일이다. 회의란.

대적 인간이 된다. 그렇다고 김 대리가 생각

한 일이 회의인지도 모르니까.

들숨날숨

은 회의가, 그토록 자주, 그토록 길게 열리는

이렇게 말하면 회의에 대해 너무 긍정적으

만 하는 사람은 아니다. 그는 생각을 행동으

회의 시간에 김 대리는 생각한다. 대개 서

로 말하는 것 같다. 아니다. 회의 역시 회의의

로 옮길 줄 아는 사람이다. 길고 긴 회의가 끝

양철학사에서는 근대적인 인간의 출현을 데

대상이다. 정말 회의란 필요한 것일까? 회의

날 때쯤 김 대리는 자신의 회의를 발언한다.

카르트의 제일명제에서 찾는다. 그것은 회의

에 너무 많은 시간과 노력을 낭비하는 것은 “이렇게 회의만 하면 일은 언제 하죠?”

에 관한 것이다. “나는 생각한다. 그러므로 나

아닐까? 회의란 결국 어떤 일을 할 것인지, 말

회의에 참석한 사람들은 일제히 놀란다.

는 존재한다.” 이때 ‘생각’이 곧 회의다. 회의

것인지, 한다면 누가, 어떻게 할 것인지 논의

다들 잠시 회의에 잠긴다. 마침내 회의를 주

란 곧 의심하는 것이다. 모든 전제에 대해 의

하는 자리일 텐데 회의만 하다 정작 일은 못

재했던 사람이 잠긴 회의를 연다. “좋은 문제

심해 보는 것이다. 보이지 않는 신은 정말 존

하는 것은 아닐까? 대개의 회의는 회의라는

제기입니다. 그 문제에 대해 그럼 회의를 시

재하는가? 내가 보는 것들은 정말 존재하는

형식만 빌렸을 뿐 사실은 이미 결정한 사안

작할까요?”

가? 내 앞에 있는 사물, 사건, 세계는 정말 존

에 대한 설득인 경우가 많다. 어떤 때는 설득

재하는가? 존재란 무엇인가? 나는 존재하는

이 아니라 그저 결정에 대한 길고 긴 부연설

가? 모든 것들을 의심하고 또 의심해 보아도

명에 불과한 경우 역시 적지 않다. 왜 회의를

결혼정보회사 듀오의 기획부장이다. 눈물과 웃음이 꼬물 꼬물 묻어나는 글을 쓰고 싶어한다.『아내를 탐하다』 『슈 슈』를 썼다.

“암을 받아들이지 않는다고 달라질 건 없었다”

34 SUNDAY MAGAZINE

▶“삶의 대부분은 밋밋하고 지겨운 일상이

▶“어쨌든 암 선고를 받은 이상 나는 그때부

▶“현대인은 자신들이 지닌 엄청난 과학기술

다. 우리를 온통 적시는 소나기는 평생에 몇

터 나의 과거를 정리하고 미래를 다시 생각

적 행위 능력에 맞는 적절한 문화적 가치 이

번 내리지 않을지도 모른다. 잠시 반짝이고

할 수밖에 없었다. 어릴 때부터 모든 일을 긍

념을 구비하지 못했으며, 이로 인해 현대인은

사라지는 것을 좇아 일생을 사는 일은 그리

정적으로 받아들이는 나의 성격이 이럴 때는

자신들의 절멸을 포함한 무서운 가능성들을

하여 삶의 대부분을 배반하는 위험한 짓은

무척이나 다행이란 생각이 들었다. 어차피 암

안고 살아가게 되었다. 그렇기에 우리에게 당

아닐는지. 기나긴 기다림의 순간에는 의심스

은 나를 찾아왔고, 이를 받아들이지 않는다

면한 가장 긴박한 문제는 적절한 가치 이념

러운 의지만으로 견디고 그리워하며 외로웠

고 해서 달라질 것은 없었다. 이제는 이 무서

을 어떻게 마련할 것인가이나, 현대인들은 이

지만 그보다 늘 맘이 아린 건, 내 삶의 허방한

운 병과 어떻게 싸워야 하는지를 계획하는

미 스스로 적절한 가치 이념을 가지고 있다

터전을 깨우치는 충일의 순간이다.”

것만이 내가 할 수 있는 일이었다.”

고 생각하는 것이 장애가 된다.”

-유성용의 책『여행 생활자』중에서

-임윤택의 책『안 된다고 하지 말고 』중에서

-장회익의 책『과학과 메타과학』중에서


PHOTO ESSAY

이창수의 지리산에 사는 즐거움

늑대와 오리 가족 늑대가 까치발로 선 채 감나무에 온몸을 딱 붙이고 있습니다. 대가리만 살짝 돌려 음흉함이 가득한 눈초리로 오리 일가족의 움직임을 관찰합니다. 늑대는 대단히 풍족한 땟거리를 만났습니다. 오리 가족을 살펴보면, 아빠 오리가 맨 앞에서 뒤돌아보며 ‘어딜 가든 항상 조심’을 외치고, 엄마 오리는 알았다고 날갯짓을 합니다. 졸졸 쫓아가는 새끼 오리는 세상 험한 줄 모르고 마냥 즐겁습니다. 남의 집 담장 앞에 쭈그리고 앉아 여러 가지 ‘망상’을 했습니다. 적어도 이 순간의 늑대는 앞날을 내다보고 그 어렵다는 까치발과 숨을 참는 고통을 이겨내며 어떤 순간을 쟁취할 준비를 완벽하게 하고 있습니다. 조만간 벌어질 일을 생각하면 오리 가족의 나들이는 참담함 그 자체입니다. 젊은 친구들이 그려놓은 벽화 앞에서 잡념이 깊어져 꽤나 앉아 있었습니다. 뒤에 들은 바로는 늑대와 오리 가족은 아직도 그러고 있답니다.

이창수씨는 16년간 ‘샘이 깊은 물’ ‘월간중앙’ 등에서 사진기자로 일했다. 2000년부터 경남 하동군 악양골에서 ‘중정다원’을 운영하며 녹차와 매실과 감 농사를 짓고 있다.

SUNDAY MAGAZINE 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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