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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4260313 사회학과 13 장지훈

사고와 표현


<사고와 표현I> 2014- 1 읽기 자료

[특별기고]

대학교육에서 ‘교양’이란 무엇인가

한국의 4년제 대학에서 ‘교양교육’이란 걸 실시하지 않는 곳은 거의 없을 정도다. 대학 입 학자는 초급 학년 단계에서, 혹은 그 이후에도, 반드시 교양과정이란 걸 거쳐 소정의 교양학 점을 따야 졸업할 수 있게 되어 있다. 여기까지는 누구나 아는 바다. 그런데 대학 운영자, 다 수의 전공 교수들, 사회 일반인들, 그리고 학생들조차 잘 모르거나 거의 모르고 있는 것이 있 다. 교양교육을 실시한다고 야단 떨기는 하는데 정작 그 ‘교양’이란 무엇인가? 대학에서는 무 엇을 가리켜 교양이라 부르는가? 내가 아까운 지면을 바쳐 느닷없이 교양의 문제를 꺼내드는 것은 누군가가 공론의 장에서 반드시 지적해야 할 어떤 ‘위기’ 때문이다. 총장을 비롯한 대학 운영자들, 고위 보직자들, 다수 교수들, 대부분의 신입생들, 그리고 많은 일반인들이 교양이라 는 것을 제대로 이해하고 그 중요성을 인식하지 않는 한 한국에서의 대학교육은 막대한 낭비, 왜곡, 저효율에 계속 시달릴 것이 분명하다. 이것은 위기다. 이런 위기는 사회와 무관한가? 최근 어떤 대학의 교무위원회 자리에서 이렇게 발언한 보직 교수가 있었다고 한다. “요즘 우리 대학 신입생들은 교양과목 듣느라고 공부와 멀어지고 있다. 무슨 조치가 필요하다.” 교 양과목 듣느라 공부와 멀어진다? 다수의 보직 교수들, 특히 전공학과 교수들의 머릿속에 ‘교 양’이란 것이 어떻게 인식되고 이해되는지 단적으로 드러내 보여주는 대목이다. 그들이 아는 교양은 알아도 되고 몰라도 되는 잡동사니 상식 같은 것, 백화점 문화센터 꽃꽂이 강의 같은 것, 금강산도 식후경이랄 때의 그 ‘식후경’ 같은 불요불급의 장식성 액세서리 같은 것, 본격적 인 공부와는 관계없는 어떤 것이다. 놀랍게도, 대학 전공학과 교수들 가운데 줄잡아 80퍼센트 이상은 교양을 그렇게 이해하고 있다. 그리고 그들은 그 틀려먹은 ‘교양관’으로 평생 학생들을 가르치다 퇴임한다. 퇴임 전에라도 자신의 틀린 생각을 바로잡는 교수는, 미안한 얘기지만, 극 소수다. 신문 지면에서 교양론을 편다는 것은 무리한 일이다. 핵심적인 얘기만 추리도록 하자. 핵심 중의 하나는 이제 우리 대학들이, 다수 교수와 학생들이, 교양교육이랄 때의 그 ‘교양’이란 말 에 대한 틀에 박힌 상식과 이해를 완전히(그렇다, 완전히) 벗어던져야 한다는 것이다. 교양은 잡학, 상식, 장식물이 아니고 심지어 박학다식이랄 때의 ‘다식’(多識)도 아니다. 많이 읽고 많 이 아는 사람의 다식을 꼭 흠잡을 일은 아니지만 이것저것 많이 알기만 할 때의 박학다식은 철학자 앨프리드 노스 화이트헤드의 적절한 지적처럼 ‘백해무익’하다. 교양이란 말은 박식, 잡 식, 다식 같은 것을 가리키는 일반적 상식어가 아니다. 무엇보다 그것은 철학 기반을 가진 교 육학적 용어이고 진리 발견과 인식에 관한 방법론이며 인간의 창조적 능력을 상향 조성하고자 할 때의 정신적 훈련과 관계되어 있다. 이럴 때는 사례를 드는 것이 좋다. 하버드대학은 2007년 학부 교육과정을 개편하면서 낸 보고서에서 “하버드 교육의 목적은 ‘리버럴 에듀케이션’을 실시하는 데 있다”고 선언하고 있 다. 그쪽에서 ‘리버럴 에듀케이션’(liberal education)이라 불리는 것이 지금 한국에서 ‘교양교 육’이다. 두 용어의 의미와 역사는 상당히 다르기 때문에 우리가 해방 후 미국 학제를 도입하 면서 그쪽의 리버럴 에듀케이션을 ‘교양교육’이라 번역해서 수입한 것은 매우 불행한 사건에 속한다. 리버럴 에듀케이션이란 상식적 잡식 교육이 아니라 ‘틀에 갇히지 않는 자유로운 탐구 와 교육’이다. 틀에 가두고 갇히는 교육 아닌 틀을 깨고 나가는 교육, 기성의 진리체계, 지식,


진리주장들을 당연한 것으로 받아들이지 않는 비판적 사고력의 함양, 지식의 단순 전수와 답 습보다는 전수를 넘어 새로운 지식을 생산해낼 수 있는 상상력, 호기심, 이해력의 자극과 확 대-몇 마디로 요약하자면 이런 것이 ‘틀을 깨고 나가는’ 교육으로서의 리버럴 에듀케이션, 우 리식 표현으로는 ‘교양교육’이다. 문제는 서구식 교육방법으로서의 리버럴 에듀케이션의 전통 이 거의 없는 한국에서(이것은 중국·일본을 포함한 동아시아 국가들의 공통점이다) 그 전통에 서 나온 교육법을 가져다 정신과 알맹이는 빼고 ‘교양’이라는 모호한 말 속에 담으려고 한 것 이 우리의 교양교육이다. 교양이라는 말 자체는 나쁘달 수 없다. 그러나 우리 사회에서 상식 화된 의미의 교양은 대학 교양교육이랄 때의 ‘교양’을 크게 왜곡하는 요인이 되고 있다. 이건 우리가 교육편제 도입에서 반드시 했어야 할 정리 작업 가운데 무엇을 소홀히 했는가에 대한 자성적 차원의 지적이다. 교양교육이랄 때의 ‘교양’의 의미, 철학, 교육방법을 수십년이 지나 도록 제대로 정립하지 못한 것이다. 또 쉬운 사례를 드는 것이 좋겠다. 앞서 말한 하버드 보고서에는 대학에서의 교양교육(리버 럴 에듀케이션)의 성격과 목표를 간명하게 정리한 이런 대목이 나온다. “교양교육의 목표는 추정된 사실들을 동요시키고, 익숙한 것을 낯설게 만들며 현상들 밑에, 그리고 그 배후에서 일어나는 것들을 폭로하고, 젊은이들의 방향감각을 혼란시켜 그들이 다시 방향을 잡을 수 있 는 길을 발견하도록 도와주는 것이다.” 우리나라 대학 총장들, 보직 교수들, 전공학과 교수들 의 상당수가 지금부터 100번 이상은 읽고 새겨들어야 할 ‘교양교육론’이다. 이 간명한 진술은 이 글의 주제(대학교육에서 ‘교양’이란 무엇인가)에 잘 응답하고 있다. 교양은 단순 지식의 집 적, 잡학과 다식, 박학을 넘어 기성의 진리체계를 동요시키는 힘, 익숙하고 친숙한 것들을 낯 설게 하고 심문하는 능력, 기존의 진리주장 어느 것도 그냥 받아들이지 않는 비판적 사고력, 현상의 배후에 숨은 보이지 않는 것들을 드러내는 힘, 방향감각을 흔들고 혼란시켜 새로운 방 향을 잡아나갈 수 있게 하는 능력, 틀린 것은 바로잡으려는 오류 수정의 정신- 이것이 ‘교양’ 이고 교양교육의 ‘목표’다. 교양은 전공 지식을 절대로 무시하지 않으면서 지식의 틀에 갇히기 를 거부하는 자율적인 정신의 생태체계, 거리낌없이 탐구하는 모험적 호기심에 대한 대긍정의 체제다. 그런데 교양과목 듣느라 학생들이 공부와 멀어진다고? 이렇게 말한 교수는 필시 대학 1학 년 때에도 공부해야 할 전공지식이 있는 법인데 교양수업이 그 전공 공부의 시간을 뺏고 있는 것 아닌가 하는 우려의 목소리를 낸 것이리라. 그러나 교양은 공부와 멀어지게 하는 시선분산 의 놀이가 아니라 공부하는 데 없어서는 안 될 능력을 키우자는 노력이고 생각하는 힘 기르기 다. 그것 없이 대학공부는 되지 않는다. 대학을 나온 다음에도 대학이 길러주려는 그 교양의 힘만큼 요긴하고 중요한 것이 없다. 나는 앞서 하버드 보고서만을 예로 들었는데, 그 보고서 가 교양교육의 목표라고 부른 것은 사실은 하버드 한 곳만의 목표가 아니다. 그것은 오늘날 근대 학문과 근대 교육의 체계를 받아들인 세계 모든 주요 대학들이 이구동성으로 천명하고 있는 교양론이다. 그 교양론은 사실은 근대 과학혁명 이후 과학이 천명한 탐구의 방법론이고 정신이며, 분야가 무엇이냐에 관계없이 사실상 모든 학문 분야(예술까지도 포함해서)들이 공유 하는 방법이다. 그 교양을 통해 과학과 인문학이 만난다. 기존의 진리주장을 심문하는 것은 근대 과학의 등장 훨씬 전에 이미 소크라테스가 확립한 대화적 교육법의 진수다. 최초의 근대 적 과학공동체인 런던왕립학회가 만들어진 것은 350년 전의 일이다. 그 왕립학회의 모토는 그 때나 지금이나 “어느 것도 당연한 것으로 받아들이지 말라”는 것이다. 이 모토는 과학의 것이 자 동시에 인문학의 것이며 교양교육의 것이다.


읽기 과제 기본 질문

2주차 읽기 자료

1. 이 글에서 단어에 주목해보자. 핵심어, 내게 매력적인 단어들은? 잡동사니 상식, 리버럴 에듀케이션, 철학, 고상함

2.이 글에서 내가 주목한 부분, 인상적인 문장들은? 그들에게 지성이란 인간성을 결정하는 기본 요소인데 반해 우리에게는 일종의 ‘특수한 것’, 소수만이 추구할 수 있는 일종의 ‘고상함’이다/우리에게 교양이란 배부른 후에 누리는 사치가 아니라 ‘식사하는 방법을 아는 것처럼’자연스런 삶의 필수 지침목이다.

3. 이 글의 내용 중에서 내가 질문하고 싶은 부분이 있다면? 인간성의 형성이 글을 통하지 않고서는 불가능하다고 했는데 꼭 그런것인가??

4. 이 글을 요약해보자. 현재 한국의 대학교육 안에서의 교양교육은 정확히 무엇인지 알 수 없고 단순히 기본 상식 같은 것을 뜻한다. 그런 차원에서 이 글의 저자는 현재 한국의 교양교육 실태를 미국 하버드 대나 또는 프랑스의 예를 들며 비교했고 리버럴 에듀케이션이 교양교육으로 번역되어 한국에 서 배우는 것을 비판하고 있다.

5. 이 글의 필자(저자)가 강조하는 것은 무엇일까? 현재 한국에서의 교양교육은 단지 기본적인 상식들을 뜻하고 제대로 정의되지 않았다.

6. 이 글의 필자(저자)가 하고자 한 말, 주장 즉 이 글의 주제는 무엇일까? 한국 대학의 교양교육은 잘못되었다.

7. 이 글을 통해 내가 얻은 바가 있다면? 사실 나도 교양교육을 그냥 별 의미 없이 생각하고 있었는데 이 글을 읽고 나니 교양교육이 그렇게 단순한 것이 아니라는 것을 알았다.

8. 이 글을 통해 문제제기 해보자. 교양교육에서의 ‘교양’의 정확한 의미는 무엇인가.

9. 저자의 의도나 글 내용과 상관없더라도 내가 이 글에서 생각해 본 문제가 있다면? 이 글의 저자는 미국이나 프랑스의 사례를 들며 한국의 교양교육을 비교했는데 그렇 다면 우리는 미국이나 프랑스의 교육을 따라가는 방법밖에 없을까??

10. 기타 정리하고 싶은 내용. 정확한 ‘교양’의 의미, ‘교양이 없다’의 교양과 ‘교양교육’에서 말하는 교양 두 단어 의 의미의 차이


<사고와 표현I> 3주차 읽기 자료-1

글 잘 쓰는 과학자가 성공할 확률 높다 - 갈릴레이․다윈․프로이드는 베스트셀러 작가 세계 최고의 공과대학 MIT의 근처 서점에서 수 십 년 동안 가장 많이 팔린 책은 무엇일까. 뜻밖에도 작 문 책이라고 한다. 우수한 공과대학 학생들이 왜 이토록 작문 책을 사보는 것일까. 직접 현장을 찾아가 그 내막을 알아보았다. 매사추세츠공대(MIT) 학생들이 가장 많이 지나다니는 보스턴시의 MIT켄달 지하철역 앞에는 MIT COOP 이란 이름의 커다란 책방이 있다. 오후가 되면 북적대는 학생들로 이 책방은 활기가 돈다. 학생들이 책방을 들락날락 거리는 출입구 옆 쇼윈도에는 잘 팔리는 책 몇권이 늘 전시된다. 여기에 진 열된 손바닥 크기의 작문 책인 “스타일의 요소 (The Elements of Style)”는 수십년 동안 이 책방에서 가장 많이 팔린 책이다. 미국 최고의 이공계 대학에서 작문 책이 가장 잘 팔린다는 것은 처음에는 정말 의외였 다. 이 책은 윌리엄 스트렁크라는 대학 교수가 1919년에 강단에서 작문을 가르치면서 만들었던 강의록을 그 의 제자이자 작가인 E. B. 화이트가 수정해 40년 뒤에 만든 것이다. 글은 간결하고 짧게, 두개의 문장을 절대 붙여서 길게 쓰지 말고, 수동형은 피하고, 불필요한 단어는 무조건 빼라고 이 책은 강조한다. 졸업하려면 2번의 쓰기 관문 통과해야 MIT에서 1년여 동안 연수를 받으면서 필자는 왜 학생들이 그토록 글쓰기에 열심인지 조금씩 그 내막을 알게 됐다. 그리고 우리나라 이공계 출신들이 “글”에 맥을 못추는 것은 관심과 능력이 없어서가 아니라, 제대로 쓰기 교육을 받지 못했기 때문이라는 확신이 생겼다. 이 대학 입학생은 2학년 초까지 쓰기 1단계, 졸업 전에 쓰기 2단계라는 두개의 관문을 넘어야 졸업할 수 있다. 그러려면 쓰기 과목을 수강하거나, 글을 제출해 일정 점수 이상을 받아야 한다. 한해에 쓰기 과목 을 배우는 대학생 숫자가 전체 4천2백명 가운데 9백명. 졸업할 때까지 평균 한 과목 정도는 수강하는 셈 이다. 대학에는 “쓰기 프로그램과”가 있으며, 여기에 소속된 교수와 강사가 29명이나 된다. 교수진은 소설가, 에세이작가, 시인, 번역가, 전기작가, 역사가, 과학자 등 다양하다. 교육 과목은 설명 및 수사학, 창작, 과학 기술 쓰기 등 크게 세 분야로 나뉘어진다. 학생들은 현대공상과학소설, 과학에세이, 과학저널리즘, 사이버 스페이스에서의 커뮤니케이션, 수사학 등 36과목 가운데 자신의 구미에 맞는 것을 고를 수 있다. 대학이 글쓰기를 강조하는 분위기여서 필자도 여기서 글쓰기를 다시 배웠다. 지도를 맡았던 바바라 골


도프타스 교수는 “MIT가 쓰기를 강조하는 이유는 쓰기를 통해 명쾌한 사고 능력이 생기게 되고, 이것이 연구 능력과도 직결되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그녀는 “실제로 MIT에서 글을 잘 썼던 학생들이 졸업한 뒤 에도 성공하는 가능성이 높다는 조사 결과도 있었다”고 덧붙였다. MIT 쓰기 프로그램과 학과장인 제임스 패러디스 교수는 아예 과학과 기술을 일종의 커뮤니케이션으로 보는 인물이다. 그는 쓰기의 중요성을 이렇게 설명했다. “과학기술자에게 쓰기는 지식 형성에 결정적인 영 향을 미치고, 대중은 물론 같은 분야의 전문가들이 정보를 습득하는데 큰 도움을 준다. 또한 요즘 과학기 술 논문은 대부분 공저이기 때문에 글쓰기가 하나의 협동과정이다. 특히 요즘에는 자료들이 e메일을 타고 빠르게 돌아다니기 때문에 글쓰기가 더욱 중요해지고 있다.” 리포트가 성적 평가 50% 차지 MIT에서 가장 인기 있는 교양과목인 스티븐 핑커 교수의 심리학은 쓰기가 학과목에 얼마나 구석구석 침투해 있는지 잘 보여준다. 핑커 교수는 마음을 컴퓨터로 보고 리엔지니어링하는 학자로 유명하다. 심리학 과목의 학점은 10% 출석, 40% 시험, 50% 리포트로 매겨진다. 쓰기가 학점의 절반을 좌우하는 셈이다. 리포트의 주제는 자유롭다. 하지만 리포트를 한번 제출하면 끝나는게 아니라 처음 낸 리포트를 계 속 수정․보완해 3차 리포트까지 제출���야 한다. 일단 6-8장 정도로 리포트를 써내면, 조교들이 문제점과 개선 방향을 지적해 되돌려준다. 그러면 학생 들은 이를 수정해 8-10장으로 다시 내야 한다. 학생들은 수정 경험을 바탕으로 3차 리포트를 12-15장으로 다시 써낸다. 물론 1, 2, 3차 리포트의 점수는 각각 별도로 매겨진다. 리포트가 성적을 좌우하므로 많은 학생들은 조교가 지적한 리포트의 논리적 허점, 표현 미숙 등을 해결 하기 위해 밤새 씨름을 하고, 그래도 부족하면 교내의 쓰기 센터에 가서 개인적인 도움을 받는다. 그냥 써 서 교수의 편지함에 집어넣으면 끝나는 한국의 대학생들은 행복하다고 할까. 하지만 이런 고통 속에서 MIT 학생들은 졸업할 때쯤 되면 유능한 과학자나 엔지니어뿐 아니라 훌륭한 작가로 단련된다. 또한 과학 쓰기 시간에 교수들이 학생에게 내는 숙제 가운데 빼놓을 수 없는 것은 무엇이 어떻게 작동 하는지 설명하는 것이다. 재봉틀이나 펌프가 어떻게 움직이는지, 사과는 왜 떨어지는지, 눈은 본 것을 어 떻게 뇌에게 알려주는지 설명하라는 것이다. 숙제를 하면서 장래의 과학자들은 지금까지 모호하게 알고 있던 작동 메커니즘을 확실히 깨닫게 된다. 또한 이런 숙제를 해본 학생들은 나중에 과학자나 엔지니어가 돼도 과학과 기술을 정부 관계자나 대중에게 훨씬 쉽게 설명한다. 미국의 한 학자가 20개 연구기관에서 일하는 과학자와 엔지니어 2백65명을 대상으로 설문조사를 한 바 에 따르면, “쓰기 능력이 자신의 개인적 경력과 출세에 아주 영향을 많이 주었다”고 동그라미를 친 응답자 가 절반이나 됐다. 특히 매니저는 그렇다고 응답한 비율이 71%에 달한다. “자신의 생각을 명쾌하고 논리 적으로 표현할 수 있는 젊은 엔지니어는 졸업 후 5년 안에 매니저가 될 수 있다.” “형편없는 제안서와 보 고서로는 연구비와 고객을 얻을 수 없다.” “커뮤니케이션의 질은 아이디어의 습득에 매우 강한 영향을 미 친다.” 이들이 설문지에 써놓은 내용이다. 또한 이 과학자와 엔지니어들은 적어도 자신의 시간 중 1/3을 쓰기, 읽기, 편집, 프레젠테이션 준비 등 쓰기와 관련된 일에 소모했다. 승진할수록 비율은 더 늘어나 평연구원은 34%, 중간관리자는 40%, 그리고


매니저는 50%를 쓰면서 보낸다. 베스트셀러 작가 반열에 오르기도 그렇다고 글쓰기가 꼭 출세와 승진을 위한 것만은 아니다. 위대한 과학자들 가운데는 위대한 작가가 많 다. 지난 5백 년 동안 과학혁명을 주도해 왔던 코페르니쿠스, 갈릴레이, 뉴턴, 다윈, 프로이드, 베게너, 슈 뢰딩거, 자크 모노, 제임스 왓슨, 레이첼 카슨 등은 단지 논문뿐 아니라 대중이 읽을 수 있는 훌륭한 책을 쓴 사람들이다. 갈릴레이는 지구중심설과 태양중심설을 믿는 두 학자와 한 명의 지식인 간의 논쟁을 희곡처럼 구성한 “대화록”을 써 단숨에 유명해졌다. 이로 인해 결국 로마 교황청에 끌려가 무기징역을 선고받기도 했다. 다윈이 5년 동안 남미와 갈라파고스를 둘러보고 돌아와서 쓴 “비글호의 항해”는 보고 경험한 것을 너무 도 생생하게 묘사하고 있어 문학사에서도 고전으로 꼽힌다. 진화론을 체계화한 “종의 기원”은 판매가 시작 되자마자 매진된 베스트셀러였다. 감춰져 있던 무의식의 세계를 파헤친 정신과 의사 프로이트는 “꿈의 해석”을 고전으로 남겼다. 양자역학 의 기초를 세운 슈뢰딩거는 말년에 15년 동안 아일랜드에 살면서 물리학, 철학, 과학사를 섭렵해 “생명이 란 무엇인가”를 썼다. 젊어서 이 책을 읽고 감명 받은 DNA 나선구조 발견자 제임스 왓슨은 나선구조를 밝혀내는데 관여한 사람들의 도전과 욕망을 그린 “이중 나선”을 써서 과학자들의 애독서가 되고 있다. 미 국의 해양생물학자인 레이첼 카슨이 쓴 “침묵의 봄”은 환경운동의 기폭제 역할을 했다. 요즘도 선진국에서는 과학자들이 책을 통해 대중의 지적 욕구를 채워주는 지식인 역할을 많이 하고 있 다. 대중 저서로 퓰리처상을 두번 받은 사회생물학자 에드워드 윌슨, “이기적 유전자”를 쓴 리처드 도킨스, “시간의 역사”를 쓴 스티븐 호킹, 가이아 학설을 주창한 제임스 러브록과 린 마굴리스, 마음을 파헤치는 이론 물리학자 로저 펜로즈 등은 전문 작가 뺨치게 글을 써 베스트셀러 작가의 반열에 오른 인물들이다. 우리나라도 작문교육 강화될 전망 우리나라에서도 수시모집에서 과학논술, 언어논술, 논리논술, 수리논술을 도입하는 방안을 검토 중이다. 이렇게 되면 논술이 학생의 당락을 결정적으로 좌우하게 돼, 고등학교 글쓰기 교육이 한층 강화될 것으로 보인다. 하지만 고교생에게만 쓰기 교육을 시킬 것이 아니라, 글쓰기가 미숙한 이공계 대학생들에게도 작 문교육을 철저히 시켜야 한다. “사인, 코사인만 배워서 그런지 문과 출신 친구들이 잘 쓰는 것을 볼 때 한 계를 느낀다”는 말이 나오지 않게 해야 한다. 요즘 글을 잘 쓰는 과학 기술인으로, 김영환 과학기술부 장관과 서울대 생물학과 최재천 교수가 꼽힌다. “방귀에 불이 붙을까요?”란 동시집을 최근 펴낸 김 장관은 민주화 운동을 하다가 옥중에서 시 쓰는 공부를 했다. 한편 최 교수는 고교시절 문예반 학생이었음에도 불구하고, 교수가 된 뒤 다시 글쓰기 과외 지도를 받았다. 하지만 대부분의 이공계 학생들은 한창 문학에 심취할 중․고교 시절에 독서나 작문보다 수학에 매달리고, 대학에서도 쓰기 교육이라고는 거의 받아본 적이 없다. 글은 엉켜진 생각을 질서 있게 정리해주는 묘한 마력을 지니고 있다. 그래서 글쓰기를 “마음의 서치엔 진”이라고도 한다. 과학은 “생각하는 방식”이다. 생각하는 방식을 바꾸지 않고서는 새로운 것을 발견할 수


없다. 하찮은 실험 결과도 자꾸 글로 정리하면서 마음의 서치엔진을 작동시키다 보면 대발견에 이를 수 있 는 것이다. 신동호, ≪과학동아≫, 2002. 2. 읽기 자료- 2

글쓰기 교육이 경쟁력 미국 대학 경쟁력의 뿌리도 글쓰기다. 안식년으로 하와이 대학에 온 지 1주일도 안 돼 새삼 깨우치게 된 사실이다. 이러한 생각을 하게 된 계기는 소니아 소토마요르 판사의 강연회였다. 그녀는 오바마 대통령 이 처음 자기 손으로 임명한 대법원 판사다. 중남미계 소수민족 출신으로 뉴욕의 저소득층 지역에서 성장 했다. 성공의 길은 명문 프린스턴 대학에 진학하며 열리기 시작했다. 그녀는 최우수 학생으로 프린스턴대 를 졸업하고, 예일대 로스쿨에 장학금을 받고 진학한다. 그 뒤 2009년 대법원 판사가 되기까지 엘리트 법 조인의 길을 걸어왔다. 그녀의 강연은 C-SPAN 채널을 통해 접할 수 있었다. C-SPAN은 미국 케이블 회사들이 제공하는 공익 채널이다. 의회나 백악관, 국무부 등의 중요행사를 편집 없이 중계한다. 또 공공성이 강한 토론회나 학술 행사, 저자의 강연회 등도 광고 없이 내용 전체를 방송한다. 소토마요르 판사의 강연은 지난달 29일 일요 일에 방송됐다. 그녀가 덴버대학 로스쿨을 방문해 학생들과 질문․응답한 1시간짜리 행사가 그대로 C-SPAN에 방송됐다. 한 학생이 강연 끝 무렵에 미국 대학생들에게 해주고 싶은 얘기를 물었다. 소토마요 르 판사의 답변은 간결했다. 글쓰기 공부에 더 많이 노력하라고 했다. “나는 고등학교 때 학교 토론팀 대 표였습니다. 변호사를 하면서 법정 변론도 잘했습니다. 그러나 정말 중요한 것은 글입니다. 판사의 마지막 판결은 변호사가 써낸 변론문이 결정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소토마요르 판사의 말이다. 그녀는 법정 변론 을 잘해도 최종 변론문이 나쁘면, 결과가 나쁠 수 있다는 설명을 덧붙였다. 프린스턴 대학 시절 경험도 얘 기했다. 1학년을 지내며 다른 학생들보다 글쓰기 능력이 뒤진다는 사실을 느꼈다. 그녀가 스스로 내린 처 방은 기초부터 다시 공부하기였다. 2학년으로 올라가기 전 여름방학을 몽땅 글쓰기 공부에 바쳤다. 철자법 과 문법의 허점을 다진 뒤, 자신감이 커졌다는 게 그녀의 설명이었다. 이곳에서 고등학교에 다니는 둘째아이를 보면서도 미국 학교가 글쓰기를 강조하는 사실을 절감한다. 둘 째아이는 오후 4시쯤에 집에 오면 잠시 숨을 돌리고는 12시 넘어까지 여러 과목 숙제를 해야 한다. 그런 데, 수학, 음악을 뺀 거의 모든 숙제가 글쓰기 과제다. 이번 주 영어 과제는 밀란 쿤데라의 작품에 관한 내 용이었다. ‘참을 수 없는 존재의 가벼움’에 포함된 ‘영원한 회귀’ 개념에 대한 학생의 생각을 정리한 짧은 에세이를 써야 했다. 역사 과목은 미국 독립혁명에서 강조된 ‘공화주의’를 설명하는 한 쪽짜리 글이었다. 심지어 생물 과목도 진화론과 창조론을 대비시켜 토론하는 글쓰기 과제를 부과했다. 각 과목 교사들의 강 의 계획서를 보면, 표절에 대한 경고가 모두 포함돼 있다. 매주 제출된 보고서들은 주말이면 평가 결과를 인터넷으로 통보해준다. 둘째아이는 매일 저녁 글쓰기 스트레스에 시달린다. 이제 개학한 지 3주가 지났으니, 갈 길이 멀다. 그


러나 그 과정을 곁에서 지켜보며 미국 교육이 글쓰기를 얼마나 중요시하는지를 분명히 느낀다. 지난 주말 뉴스 가운데, 미국 교육장관이 미국 수능에 선택형 객관식 문제를 출제하지 않도록 연구시키기 위해 거액 의 예산을 배정했다는 기사가 있었다. 스스로 생각하고 판단하는 능력을 검증하겠다는 취지로 역시 글쓰 기 식 접근이 강화된다는 뜻이다. 이런 상황을 보면, 우리 현실이 걱정스럽다. 우리의 학교 교육은 논술을 빼면 글쓰기 요소를 찾기 어렵다. 논술도 시험용으로 지나치게 정형화돼 있고, 그나마 학교가 아니라 학원 이 주도한다. 우리도 소토마요르 판사 같은 다양한 분야 지도자들이 글쓰기를 강조하는 문화가 자리 잡았 으면 좋겠다. 그래야 교육이 바뀔 수 있다. 이재경, ≪세계일보≫, 2010. 9. 10

읽기 자료 -3

변지의 군이 천 리 길을 걸어서 나를 찾아왔기에 그 뜻을 물어보니 문장 공부를 해 보겠다고 하였다. 마 침 이날 우리 집 아이가 나무를 심기에 나는 그 나무를 가리키면서 다음과 같이 말해 주었다. “사람에게 문장이란 나무에 꽃이 피는 것과 같다. 나무를 심을 때 우선 뿌리에 북을 주고 줄거리를 바로 세워 주어야 한다. 그리하여 진액이 오르고 가지와 잎이 무성해지면 거기에서 꽃이 피는 것이다. 그러므로 나무를 잘 가꾸지도 않고 꽃만 보려고 서둘러서는 안 된다. 나무뿌리를 북돋우듯 자기 마음을 바로 잡고, 줄기를 바로 세우듯 자기 몸을 수양하고, 진약이 통하듯 경전을 깊이 연구하고, 가지와 잎이 무성하듯 학식을 넓히고 기교를 연마하여 마음속에 든든하게 쌓은 다 음에 마음에 품은 것을 표현하면 곧 글이 되는 것이며, 사람들이 보고 훌륭한 문장이라고 말할 것이니, 이 것이 진정한 문장이다. 문장의 길만을 따로 떼어서 성급하게 구할 수는 없을 것이다.” 정약용, 변지의에게 주는 말(爲陽德人邊知意贈言) , 與猶堂全書


읽기 과제 기본 질문

3주차 읽기 자료

1. 이 글에서 단어에 주목해보자. 핵심어, 내게 매력적인 단어들은? 작문, 글, 마음의 서치엔진

2.이 글에서 내가 주목한 부분, 인상적인 문장들은? 글은 엉켜진 생각을 질서있게 정리해주는 묘한 마력을 지니고 있다/사람에게 문장이란 나무 에 꽃이 피는 것과 같다.

3. 이 글의 내용 중에서 내가 질문하고 싶은 부분이 있다면? 글쓰기가 문과를 제외한 다른 분야에서 정확히 어떻게 영향을 미치는가.

4. 이 글을 요약해보자. 요즘 글쓰기로 인한 긍정적인 효과가 점점 밝혀지고 글쓰기는 글과 관련된 분야를 제외하고 도 많이 학습되어지고 있으며 문과가 아닌 이공과에서도 글쓰기의 비중이 높아지고 있다.

5. 이 글의 필자(저자)가 강조하는 것은 무엇일까? 글을 쓰는 것은 문과는 물론 그것을 제외한 어떤 분야에서도 필요해지고 있다. 6. 이 글의 필자(저자)가 하고자 한 말, 주장 즉 이 글의 주제는 무엇일까? 수학이나 과학 분야에서도 글쓰기는 중요하며 글을 쓰는 것이 곧 경쟁력이 될 수 있다.

7. 이 글을 통해 내가 얻은 바가 있다면? 글쓰기란 것은 그것과 관련된 쪽에서 일을 하는 사람들만 열심히 배우면 되는 줄 알았는데 그렇지 않은 사람들도 열심히 배우고 그것이 중요하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8. 이 글을 통해 문제제기 해보자. 글을 쓰게 되면 명확한 사고능력이 생기게 된다고 했는데 그건 어떻게 알 수 있을 까? 9. 저자의 의도나 글 내용과 상관없더라도 내가 이 글에서 생각해 본 문제가 있다면? 글쓰기가 다른 분야에서 필요 이상으로 강조되고 있는 것은 아닌가.

10. 기타 정리하고 싶은 내용. 글을 잘 쓰는 방법, 글과 관련되지 않은 사람들의 글쓰기에 대한 사람들의 인식


영어강의와 언어통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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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현산 고려대 명예교수

내 기억이 틀림없다면, 인터넷에서 ‘안습’이라는 말이 유행하기 시작했던 것은 2004년 말이 었다. 나는 그 무렵 어느 과학 갤러리를 드나들면서 내가 모르는 과학지식을 눈동냥하고 있었 다. 한 토론에서 누군가 ‘안구에 습기가’라는 말을 썼다. 토론 상대자의 말이 너무 한심해서 눈물이 난다는 뜻이었던 이 말은 곧 ‘안습’으로 축약되었다. 동남아에 쓰나미가 몰아닥친 것이 그즈음이어서 ‘안구에 쓰나미’라는 말이 생겨났고, 생겨나기가 무섭게 ‘안쓰’로 축약되었다. 이 말의 진화는 두 주일이 채 걸리지 않았지만, 그만큼 그 말들의 생명도 짧았다. ‘안습’도 ‘안쓰’ 도 곧 인터넷에서 사라져 이제는 사어가 되었다. 인터넷에서 유행하는 수많은 신어와 축약어 들의 운명이 이와 다를 수는 없다. 우리 기억의 깊은 자리와 연결되기도 전에 사라진 말들을 어느 날 우리가 다시 만난다 해도 우리의 마음이 흔들릴 일은 물론 없을 것이다. 조지 오웰의 소설 <1984>에 부록으로 딸린 ‘신어의 원리’는 허구의 빅 브러더가 통치하는 저 끔찍한 나라의 언어정책에 관해 말한다. 신어는 그 나라의 공용어이며, 그 창안 목적은 그 체계에 걸맞은 세계관과 사고 습성을 표현하고, 그 국가 이념 이외의 다른 사상을 갖지 못하 도록 하는 데 있다. 이 언어에서는 낱말 하나하나가 단 하나의 뜻만 갖는다. 역사적으로 형성 된 모든 개념이 그것을 표현하던 낱말들과 함께 사라진다. 여러 낱말들이 하나의 낱말��� 축약 되어 본래의 낱말이 지니고 있던 정서적인 힘도 사라진다. 품사의 구별이 없는 이 언어에서는 진정한 의미의 문장이 없고 개념의 나열이 있을 뿐이다. 문장이 없으니 논쟁이 없고, 하나의 문장이 다른 문장으로 연결될 일이 없으니, 한 생각이 다른 생각으로 발전할 일도 없다. 국가 가 제시하는 정통사상이 아닌 다른 생각은 표현될 길이 없을뿐더러 아예 탄생하는 일조차 없 을 것이다. 이렇게 언어가 통제되고 사상이 통제된다. 남의 일 같지 않다. 인터넷에 나타났다 사라지는 수많은 축약어들과 갈수록 단순화하는 문장들을 보면, 저 허구의 빅 브러더가 멀리 있다고만 할 수는 없다. 그런데 요즘 거의 모든 대학들이 앞다투어 실행하고 있는 영어강의에 대해서도 같은 염려를 하게 된다. 나는 우리의 여러 대학에 자신의 학문 분야에서 영어로 강의할 능력을 지닌 교수 들이 모자라지 않으며, 그 장점도 적지 않다고 생각한다. 일정한 교과 내용을 배우면서 영어 도 함께 익히니 도랑 치고 가재 잡기가 따로 없다. 외국어 강의는 교안을 면밀하게 짜야 하니 수업 진행에 차질이 없고, 강의가 옆길로 새나가기 어려우니 아까운 시간이 허비되지 않을 것 이다. 강의가 한국어에서 벗어나니 외국 학생들을 불러오기도 좋을 것이다. 그러나 영어강의 의 이 모든 장점은 그 약점이기도 하다. 어쩔 수 없이 적은 수의 어휘만을 사용하여 교안에 충실하게 진행되는 외국어 강의는 학생들이 책에서 읽을 수 있는 것 이상의 내용을 전하기 어 려울 것이다. 옆길로 새나갈 수 없는 강의는 삶과 공부를 연결해주는 온갖 길들을 차단할 것 이다. 언어의 깊이가 주는 정서를 학문의 습득과 함께 누리지 못하는 탐구는 모든 지식을 도 구화할 것이다. 그리고 무엇보다도, 영어강의가 사상통제를 위해 실행되는 것은 아닐지라도, 사상통제의 필수조건인 언어통제가 그 가운데 저절로 이루어질 것이다. 나는 그것을 염려한 다. 황현산 밤이 선생이다(문학동네, 2013) / 《한겨레신문》 2012. 5.5. 대학 글쓰기의 이해 13쪽에서 부분 발췌됨.


읽기 과제 기본 질문

4주차 읽기 자료

1. 이 글에서 단어에 주목해보자. 핵심어, 내게 매력적인 단어들은? 빅 브라더, 신어, 사어, 사상통제

2.이 글에서 내가 주목한 부분, 인상적인 문장들은? 문장이 없으니 논쟁이 없고, 하나의 문장이 다른 문장으로 연결될 일이 없으니 한 생각이 다른 생각으로 발전할 일도 없다/언어가 통제되고 사상이 통제된다/영어강의의 모든 장점은 그 약점이기도 하다

3. 이 글의 내용 중에서 내가 질문하고 싶은 부분이 있다면? 언어통제가 사상통제와 정확히 어떻게 관련되어있는가?

4. 이 글을 요약해보자. 사라지는 단어들과 금방 새로 생기는 단어들은 점점 단순화되어가면서 허구의 빅 브라더가 통치한 언어정책과 가까워지고 있다. 언어가 통제되니 사상도 통제되고 영어강의처럼 다른 길 로 새어나갈 수 없는 강의는 모든 생각을 도구화한다.

5. 이 글의 필자(저자)가 강조하는 것은 무엇일까? 점점 단순화되고 한 길로만 빠지는 언어의 실태

6. 이 글의 필자(저자)가 하고자 한 말, 주장 즉 이 글의 주제는 무엇일까? 언어가 통제되면 사상도 통제되고 새로운 생각은 멈추게 된다.

7. 이 글을 통해 내가 얻은 바가 있다면? 나도 유행어가 생기면 금방 썼다가 언제 그랬냐는 듯 다시 안 쓰기도 했는데 이런 현상이 언어통제를 불러일으킨다는 것을 알게 되었고 영어강의의 약점 또한 언어통제라는 것에 놀랐 다.

8. 이 글을 통해 문제제기 해보자. 언어가 통제된다고 해서 꼭 생각도 통제되고 단순화 되어갈까?

9. 저자의 의도나 글 내용과 상관없더라도 내가 이 글에서 생각해 본 문제가 있다면? 조지 오웰이 말한 빅 브라더는 어떤 식으로 언어를 통치했을까?

10. 기타 정리하고 싶은 내용. 단순화된 언어의 종류, 언어통제의 정확한 뜻


'나'라는 말 ------------ 심보선 나는 '나'라는 말을 썩 좋아하진 않습니다. 내게 주어진 유일한 판돈인 양 나는 인생에 '나'라는 말을 걸고 숱한 내기를 해왔습니다. 하지만 아주 간혹 나는 '나'라는 말이 좋아지기도 합니다. 어느 날 밤에 침대에 누워 내가 '나'라고 말할 때, 그 말은 지평선처럼 아득하게 더 멀게는 지평선 너머 떠나온 고향처럼 느껴집니다. 나는 '나'라는 말이 공중보다는 밑바닥에 놓여 있을 때가 더 좋습니다. 나는 어제 산책을 나갔다가 흙길 위에 누군가 잔가지로 써 놓은 '나'라는 말을 발견했습니다. 그 누군가는 그 말을 쓸 때 얼마나 고독했을까요? 그 역시 떠나온 고향을 떠올리거나 홀로 나아갈 지평선을 바라보며 땅 위에 '나'라고 썼던 것이겠지요. 나는 문득 그 말을 보호해 주고 싶어서 자갈들을 주워 주위에 빙 둘러 놓았습니다. 물론 하루도 채 안 돼 비가 오거나 바람이 불어서 혹은 어느 무심한 발길에 의해 그 말은 흔적도 없이 사라지겠지요. 나는 '나'라는 말이 양각일 때보다는 음각일 때가 더 좋습니다. 사라질 운명을 감수하고 쓰인 그 말을 나는 내가 낳아 본 적도 없는 아기처럼 아끼게 됩니다. 하지만 내가 '나'라는 말을 가장 숭배할 때는 그 말이 당신의 귀를 통과하여 당신의 온몸을 한 바퀴 돈 후 당신의 입을 통해 '너'라는 말로 내게 되돌려질 때입니다. 나는 압니다. 당신이 없다면, 나는 '나'를 말할 때마다 무(無)로 향하는 컴컴한 돌계단을 한 칸씩 밟아 내려가겠지요. 하지만 오늘 당신은 내게 미소를 지으며 '너는 말이야'로 시작하는 이야기를 들려주었습니다. 그 이야기는 지평선이나 고향과는 아무 상관이 없었지만 나는 압니다. 나는 오늘 밤, 내게 주어진 유일한 선물인 양 '너는 말이야' '너는 말이야'를 수없이 되뇌며 죽음보다도 평화로운 잠 속으로 서서히 빠져들 것입니다.


읽기 과제 기본 질문

5주차 읽기 자료 (나라는 말)

1. 이 글에서 단어에 주목해보자. 핵심어, 내게 매력적인 단어들은? 나, 너, 고향, 선물, 지평선, 돌계단, 무(無)

2.이 글에서 내가 주목한 부분, 인상적인 문장들은? 나는 내 인생에 ‘나’라는 말을 걸고 숱한 내기를 해왔습니다. / 그 말이 당신의 귀를 통과 하여 당신의 온몸을 한 바퀴 돈 후 ‘너’라는 말로 내게 되돌려질 때입니다.

3. 이 글의 내용 중에서 내가 질문하고 싶은 부분이 있다면? 왜 땅 위에 ‘나’라고 써진 것을 보호하고 싶었을까?

4. 이 글을 요약해보자. 이 시의 저자는 ‘나’라는 말이 ‘너’로 되돌려질 때에 황홀함을 느끼며 처음의 ‘나’라는 말은 ‘너’라는 말로 바뀌고 있다.

5. 이 글의 필자(저자)가 강조하는 것은 무엇일까? ‘나’라는 말은 어찌 보면 아무 의미 없지만 그것이 ‘너’로 돌아올 수 있다.

6. 이 글의 필자(저자)가 하고자 한 말, 주장 즉 이 글의 주제는 무엇일까? ‘나’를 말할 때마다 그 의미를 느껴라.

7. 이 글을 통해 내가 얻은 바가 있다면? ‘나’라는 말을 걸고 수많은 내기를 했다는 것이 내 경우와 비슷해서 인상 깊었다. 이젠 조금 더 ‘나’라는 말에 대해 진지하게 생각해봐야겠다.

8. 이 글을 통해 문제제기 해보자. 글쓴이는 왜 ‘나’라는 말에 그런 느낌을 받을까?

9. 저자의 의도나 글 내용과 상관없더라도 내가 이 글에서 생각해 본 문제가 있다면? ‘나’라는 말에 너무 많은 의미를 두고 있는 것이 아닌가.

10. 기타 정리하고 싶은 내용. 이 시는 ‘나’에 대해서 조금 더 심오하고 심층적으로 생각하게 만들어 주는 것 같다. 읽으면 서 ‘나’가 ‘너’가 되는 부분을 보며 김춘수의 ‘꽃’이라는 시가 생각났다.


논문표절과 이 비천한 삶 가장 덜 비천할 것 같은 대학 논문을 표절하여 학위를 얻고 그 학위를 취소 못한다면… 1991년 소비에트 연방이 해체되고 동구권의 여러 나라가 그 지배에서 풀려나고 있을 때, 프랑스의 가톨릭 교단이 운영하는 어느 우파 잡지에 가톨릭 신부이기도 한 어느 우파 논객이 이와 관련된 글을 발표했다. 헝가리·폴란드 등지로 여행했던 추억을 이야기하며, 공산독재체제 가 무너지는 것은 환영해야 할 일이나, 경건하고 건강한 삶의 마지막 모델이 사라지는 것은 안타까운 일이라고 썼다. 동구 노동자의 집에서 쉽게 볼 수 있는, 발자크와 도스토옙스키와 체호프의 소설, 보들레르와 투르게네프와 마야콥스키의 시집을 포함한 백 권 남짓한 책이 잘 정리되어 꽂혀 있는 그 서가들을 다시는 만날 수 없을 것이라고 썼다. 달력이나 잡지에서 오 린 성인들의 초상화, 또는 쿠르베나 르누아르의 그림을 집주인이 손수 만든 액자에 끼워 걸어 놓은 식탁 옆의 아름다운 벽을 다시는 볼 수 없을 것이라고 썼다. 일상의 대화에서 누가 무슨 말을 하건 정신을 집중하여 듣는 사람들이 이제는 영영 사라질 것이라고 썼다. 그들의 자리를 차지하게 될 것은 진실이야 어찌 되었건 그때그때 상황에 따라 연극하는 사람들일 것이라고 썼다. 옛날의 동구건 지금의 동구건 나는 동구에 가본 적이 없기에 그 신부 논객의 진술이 어느 정도 사실인지, 그의 예언이 어느 정도 맞아떨어졌는지 확인할 길이 없다. 그러나 나는 오히 려 지금 내 나라 사람들이 살고 있는 삶, 바로 내 삶을 바라보며, 그가 말했던 바의 진의를 어느 정도 짐작한다. 어떤 원칙도 없이 허욕과 허영에 기대어 아슬아슬한 연극을 하며 사는 것이 우리의 삶이기 때문이며, 신부 논객이 지난 시절 동구의 삶과 대비하려는 것이 바로 우 리의 이 비천한 삶이기 때문이다. 가장 덜 비천할 것 같은 대학에 관해 이야기하자. 요즘 대학의 거의 모든 총장들이 시이오 (CEO) 총장이라는 것은 누구나 알고 있다. 교육도 학문도 경제적 뒷받침이 있어야 가능한 일 이니 학교 경영을 잘한다는 것은 좋은 일이다. 그러나 경영이 교육과 학문을 원활하게 하기 위해서가 아니라, 거꾸로 교육과 학문이 학교 경영을 위한 수단이 될 때부터 문제가 시작된 다. 학교 경영에 도움이 되지 않는다고 생각되는 기초학문 분야의 학과들을 폐지하고 있는 대 학이 벌써 여럿이며, 시간과 품이 많이 드는 저술활동은 그만두고 학교 평가에서 많은 점수를 얻을 수 있는 논문을 양산하라고 교수들을 다그치는 대학도 벌써 여럿이다. 어느 대학은 경영 전문가를 불러 도서관의 경영평가를 하였더니, 열람실의 일부를 카페로 바꾸라는 진단이 나왔 다는 소문도 있다. 그것이 우리의 삶이다. 실정이 이러하니 한 정당의 국회의원 후보로 공천된 사람이 남의 논문을 표절하여 학위를 얻었다는 혐의에 명쾌한 대답을 못하는 것도, 전문가들의 판단과 학계 안팎의 질타에도 아랑 곳없이 그 후보가 여론조사에서 선두를 달리는 것도 크게 개탄할 일이 아닐 것 같다. 그러나 사실을 말한다면, 표절이 명백하다는 전문가들의 의견에도 불구하고 학위를 준 대학이 학위를 취소하지 않는다면 그것은 대학이 아닐 것이며, 그 사람이 계속 교수로 남아 있는 대학도 대 학이라고 말하기 어려울 것이다. 그 사람이 국회의원이 되는 나라를 상상하는 일은 더욱 고통 스럽다. 우리의 삶이 아무리 비천해도 그 고통까지 마비시키지는 못한다. 황현산 고려대 명예교수

2012.04.07 한겨레


읽기 과제 기본 질문

6주차 읽기 자료(논문표절과 이 비천한 삶)

1. 이 글에서 단어에 주목해보자. 핵심어, 내게 매력적인 단어들은? 표절, 대학, 논문, 학위, 총장, 학교

2.이 글에서 내가 주목한 부분, 인상적인 문장들은? 가장 덜 비천할 것 같은 대학. / 어떤 원칙도 없이 허욕과 허영에 기대어 아슬아슬한 연극 을 하며 사는 것이 우리의 삶이기 때문이며, 신부 논객이 지난 시절 동구의 삶과 대비하려는 것이 바로 우리의 이 비천한 삶이기 때문이다.

3. 이 글의 내용 중에서 내가 질문하고 싶은 부분이 있다면? 우리나라에서 논문을 표절해 학위를 딴 사람들이 얼마나 있을까?

4. 이 글을 요약해보자. 우리나라에는 논문을 표절해 학위를 따고 또 그 사람에게 배우는 비천한 삶들이 많다.

5. 이 글의 필자(저자)가 강조하는 것은 무엇일까? 명백한 표절에도 불구하고 학위를 준 대학은 대학이 아니다.

6. 이 글의 필자(저자)가 하고자 한 말, 주장 즉 이 글의 주제는 무엇일까? 논문 표절에 학위를 준 대학들은 모두 학위를 취소해야 한다.

7. 이 글을 통해 내가 얻은 바가 있다면? 표절에 대해 부정적으로 생각하고 있긴 했지만 우리나라의 정도가 이렇게 심한지는 몰랐다. 게다가 표절 뿐만 아니라 학교 경영에 도움이 되지 않는다는 이유로 학과를 폐지하는 대학에 대해서도 안타까움을 느꼈다.

8. 이 글을 통해 문제제기 해보자. 논문을 많이 양산하면 그 대학은 정말 좋은 대학이 될 수 있는 걸까?

9. 저자의 의도나 글 내용과 상관없더라도 내가 이 글에서 생각해 본 문제가 있다면? 학교는 왜 이렇게 논문에 목을 매고 표절한 논문까지 인정해주는 걸까?

10. 기타 정리하고 싶은 내용. 이 글을 읽고 가장 먼저 든 생각은 혹여나 내가 논문을 쓸 일이 있으면 절대 표절은 하면 안 되겠다는 생각이었다. 또한 표절을 인정하고 학교 평가에만 목 매는 학교들이 많은 게 안 타깝다.


읽기 과제 기본 질문

7주차 읽기 자료

1. 이 글에서 단어에 주목해보자. 핵심어, 내게 매력적인 단어들은? 불, 방화범, 순진, 동심, 탄원

2.이 글에서 내가 주목한 부분, 인상적인 문장들은? 중학교 교사가 된 뒤부터 늘 느꼈지만, 나는 아이들의 그런 미성숙이, 순진이, 동심이 무서 웠다. / 그간 중학교 선생질을 하면서 무수히 겪었던 아이들의 미성숙과 순진과 동심의 파도 가 마침내 거대한 쓰나미처럼 나를 휩쓸고 지나가는 듯한 느낌이었다.

3. 이 글의 내용 중에서 내가 질문하고 싶은 부분이 있다면? 동욱이가 불을 지른 정확한 이유

4. 이 글을 요약해보자. 이 글의 주인공인 선생은 동욱이 감옥에 간 것에 대해 죄책감을 느끼지만 잘 드러나지 않고 현실적인 모습으로 드러난다.

5. 이 글의 필자(저자)가 강조하는 것은 무엇일까? 어른들의 현실적인 생각들

6. 이 글의 필자(저자)가 하고자 한 말, 주장 즉 이 글의 주제는 무엇일까? 미성숙과 성숙에서의 차이

7. 이 글을 통해 내가 얻은 바가 있다면? 솔직히 이 글을 몇 번이나 읽었는데 잘 이해를 못하겠다. 하지만 동욱이라는 미성년이 저지 른 범죄에 대해 현실적으로 대처하는 사람���의 모습을 보면서 조금의 아쉬움이 들었다.

8. 이 글을 통해 문제제기 해보자. 왜 이렇게 어두운 분위기를 자아냈는가.

9. 저자의 의도나 글 내용과 상관없더라도 내가 이 글에서 생각해 본 문제가 있다면? 아무리 성숙하다고 해도 소설에서처럼 현실적이지 않은, 헌신적인 사람들도 있지 않을까.

10. 기타 정리하고 싶은 내용.


영화 굿‘바이 감상문

진정한 애도란 무엇인가 주제: 아무 이유 없는 무조건 적인 애도는 필요하지 않다. 사회학과

13 장지훈

이 영화를 보고 죽음에 대해서 다시 생각해 보게 되었다. 나는 희한하게 어렸을 때부터 누 군가가 죽었다는 뉴스나 신문기사를 봐도 아무런 느낌도 들지 않았다. 물론 다른 사람들도 전 혀 모르는 사람이 죽는다고 해서 밥도 못 먹을 정도로 슬퍼하는 건 아니겠지만 내 경우는 정 말 말 그대로 아무 느낌이 들지 않는 것이다. 죽은 사람에 대해 예의를 차려야 한다는 건 알 고 있지만 어차피 모르는 사람이라는 생각이 계속해서 들었다. 그래서인지 항상 생각해 온 것 이 있다. 정말 다른 사람들은 진심으로 타인의 죽음을 애도하고 슬퍼하며 기리는지, 아니면 그렇게 함으로써 무언가의 품위를 얻는 것인지 말이다. 가령 세월호 참사 때에도 그랬다. 그 소식을 들은 뒤 당연히 안타깝고 불쌍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하지만 그 뒤에는 그냥 그랬구나 라는 정도로 그치고 전 국민이 우울증에 걸렸다지만 난 전혀 공감 할 수 없는 똑같은 생활을 했다. 하지만 이 영화에서 주인공이 죽은 사람을 대하는 엄숙한 태도를 보고 이미 알고 있었지만 내가 너무 죽음에 대해 가볍게 생각하고 있다는 생각이 또 한 번 들었다. 죽음에 대한 내 태 도는 주인공의 아버지가 돌아가신 뒤, 잠깐 나온 장의사 쪽 사람처럼 대충 대충이었던 것이 다. 이러한 내 태도는 분명히 나중에 큰 문제를 불러 올 것이라고 생각한다. 그렇다고 내가 가벼운 마음으로 애도하는 척을 한다면 이는 위에서 말한 품위를 얻기 위한 행동밖에 되지 않 고 내 양심이 허락하지 않을 것 같다. 그렇기 때문에 진심으로 타인의 죽음을 애도하는 마음 이 생기는 게 가장 좋은 방법이겠지만 이미 이런 논리적인 생각으로 인해 진심을 갈구하는 것 자체가 틀렸다고 생각한다. 결국 나는 죽음에 대해서 별 감정이 없다는 건 알고 있지만 억지 로 진실된 감정이 생기게 할 수는 없는 것이다. 솔직히 말해 내 주변의 누군가가 갑자기 죽었을  때, 일상생활도 못할 만큼 정말 진심으로 슬퍼할 수 있는 대상은 내 가족밖에 없는 것 같다. 할머니가 돌아가신 건 중학교 시절이었다. 나는 그 때 슬프기도 했지만 놀랍다는 느낌이 더 크게 들었다. 나는 태어났을 때부터 친가와 외가 쪽 할아버지가 돌아가신 상태였고 아주 어렸을 때 외가 쪽 할머니가 돌아가셨다. 그래서 죽음이라는 게 무엇인지 아는 상태에서 내가 아는 사람이 죽은 기억은 중학교 시절이 처음이 다. 그 때 나는 울었다. 그런데 울어야만 해서 운 것 같다. 분명히 할머니를 생각하면서 눈물 을 흘리긴 했는데 자꾸 그런 생각이 든다. 죽음에 대한 가장 최근의 기억은 고등학교 때 친구 가 죽었다는 소식을 들은 것이다. 그 친구는 초등학교 때부터 알고 지내고 중학교 때는 조금 친했지만 고등학교로 가면서 연락을 잘 안하게 된 친구인데 오토바이를 타다가 사고사를 당했 다. 그 소식을 들은 뒤, 역시 너무 놀라서 하루는 그냥 멍한 상태로 있었지만 다음 날 부터는 바로 조금씩 평소 모습으로 돌아왔다. 아마 고등학생 때 연락을 안 해서 그런 것이라고 생각 하지만 어쩌면 나는 가족만큼 가까운 사이가 아닌 이상 누군가가 죽어도 별 느낌이 안 드는 사람일지도 모른다.


그렇다고 해서 나에게 무슨 문제가 있다고는 생각하지 않는다. 또한 나와 같은 사람들은 알 고보면 많이 있다고도 생각한다. 물론 사람의 죽음에 대해 아무 감정도 없다는 것은 문장으로 써놓고 보면 아주 심각한 문제이다. 하지만 누군가의 죽음에 대해 자신의 거짓된 애도를 보여 주며 영혼이 없는 진실된 태도를 보이는 것 또한 역설적이며 문제가 된다고 생각한다. 사실 어떤 쪽이든 간에 개인이며 내가 뭐라 할 자격은 없지만 그저 우리나라의 사회가 애도를 너무 강조하는 분위기가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든다. 그런 사회 역시 나쁘다고는 말할 수는 없지만 확실한 것은 무조건적인 애도보다는 진정으로 위로하고 슬퍼하는 마음을 가진 애도가 훨씬 가 치 있다는 것이다.


사고와 표현 칼럼 2014260 사회학과 장지훈

내 가장 친한 친구, 스마트폰 요즘 대부분의 사람들은 봐도봐도 질리지 않고 항상 재미있는 그런 친구를 한 명씩은 가지 고 있다. 이렇게 문장으로 써놓고 보면 정말 좋은 현상인 것 같지만 그 친구에 대해서 다시 한 번 생각해 볼 필요가 있다. 바로 스마트폰이다. 물론 스마트폰이 우리에게 즐거움을 주고 심심함을 달래주는 건 사실이지만 그와 동시에 마약과 같은 중독성을 안겨주는 것 또한 사실 이다. 요즘 아이들은 축구나 농구 같은 공놀이의 점수를 통한 경쟁보다는 카카오톡 게임의 점 수를 통한 경쟁을 하고 서로의 얼굴이나 근황은 페이스북을 통해 알게 된다. 이렇게 되기까지 불과 10년 정도밖에 걸리지 않았다. 왜 이런 일이 생기게 된 걸까. 10년 전만 해도 우리가 살고 있는 사회에서 ‘스마트폰 중독’ 이라는 말은 없었다. 어린 시절, 핸드폰이란 것은 부모님이 한가하실 때, 가끔씩 가지고 놀 수 있는 것이었고 흑백색의 아주 간단한 게임 하나에도 재미를 느꼈다. 중학생이 되면서부터 대 부분의 아이들이 핸드폰을 가지고 있었고 여러 신기한 기능들이 나왔지만 그때까지만 해도 별 문제는 발생하지 않았다. 문제는 스마트폰이었고 그 문제를 심화시킨 것은 와이파이였다. 고 등학생이 되면서부터 책상 밑을 보면서 웃는 친구들과 수업은 출석하고 있지만 정서적으로는 결석하고 있는 친구들이 많아졌다. 이 때부터 ‘스마트폰 중독’이라는 말이 서서히 들리기 시작 하면서 심각한 현상으로 받아들여졌다. 스마트폰은 자연스럽게 우리들 안으로 들어왔고 아무 도 모르게 우리를 중독시켰다. 정신을 차린 뒤에는 모두 스마트폰을 들여다 보고 있었다. 한 기사1)에 따르면 스마트폰 내의 다른 어플보다 페이스북과 카카오톡을 이용하는 빈도가 높으면 스마트폰 중독일 가능성이 크다는 결과가 나왔다. 물론 스마트폰의 페이스북이나 카카 오톡은 사람들과의 관계를 더욱 돈독하게 만들어 주는 긍정적인 기능도 가지고 있다. 하지만 별 이유 없이 계속 스마트폰을 들여다보게 되는 부정적인 기능도 함께 가지고 있는 것이다. 사람들은 혹시 카카오톡에 연락이 오지 않았는지, 페이스북에 새로운 사진이 게시된 건 아닌 지 확인하면서 시도 때도 없이 스마트폰을 들여다본다. 그렇다고 카카오톡과 페이스북을 없애 자는 것은 아니다. 카카오톡의 메신저 기능과 페이스북의 편리한 기능들은 충분히 매력적이 다. 다만, 우리가 옆에 있는 사람을 두고도 그 매력에 빠져 있을 때가 문제라는 것이다. 이런 ‘스마트폰 중독’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는 이전처럼 모두의 핸드폰을 2G로 바꾸는 게 가장 좋겠지만 그 누구도 퇴보를 바라진 않을 것이다. 일단은 스마트폰 중독이 왜 안 좋은 건 지, 스마트폰에 중독된 나에게 어떤 변화가 생기는지를 아는 것이 제일 처음이라고 생각한다. 의외로 스마트폰 중독을 방지하거나 벗어나게 해주는 방법들, 또 자신이 스마트폰 중독인지 아닌지 확인하는 방법들은 많이 알려져 있다. 심지어 우리가 자주 보는 페이스북에도 스마트 폰 중독과 관련된 사진들이 많이 게시된다. 그런 것을 보면서 ‘혹시 나는 아닐까?’ 라는 생각 만 가져봐도 충분히 스마트폰 중독 문제를 해결 할 수 있다고 생각한다. 이제 고개를 들어서 손으로 하는 카카오토크가 아닌 입으로 하는 진짜 토크를, 페이스북이 아닌 주위에 있는 친구 들의 페이스를 봐야 할 때이다. 1) 류쥰영 기자, 머니투데이 뉴스, 「스마트폰 중독자 어떤 앱 주로 쓰나 보니...」, 2014.06.01. http://www.mt.co.kr/view/mtview.php?type=1&no=2014053017042698307&outlink=1 2014.06.01.


사고와 표현 읽기 과제 보고서

2014260313 사회학과 13 장지훈

읽은 책: 오만과 편견, 제인 오스틴, 민음사 2003.09.20. 주제:

윗사람들의 사랑 ‘오만과 편견’은 어린 시절부터, 우리 집 책상 수납공간에 꽂혀 있던 수많은 고전 문학 중 하나였다. 어렸을 때는 판타지나 추리 소설 같은 흥미로운 책만 읽었지 고전 문학에는 전혀 관심이 없었다. 게다가 오만과 편견이라는 제목만 봤을 때, 무언가 철학적이고 심오한 내용을 이야기하는 어려운 책일 거라는 느낌이 들었다. 하지만 점점 나이를 먹고 더 이상 현실감이 없는 책에 흥미를 느끼지 못하게 되었고 결국 오만과 편견을 집어 들었다. 아무 생각도 없이 읽다가 이 책이 다루는 내용에 대해 놀라움을 금치 못하였다. 이 책은 영국 귀족들의 사랑을 다룬 책이었다. 이 책이 다루는 내용을 안 뒤에 조금의 실망이 들었다. 사랑 이야기는 좋은데 왜 하필 귀족 들의 사랑을 다루는 것일까. 평민이나 가난한 사람들의 사랑, 아니면 신분이 다른 사람들끼리 의 사랑이 더 스릴 있고 재미있을 텐데 라는 생각이 계속해서 들었다. 게다가 여태까지 보았 던 책들에서 대부분 높은 사람들은 악역으로 나왔고 그들이 사랑을 한다 해도 점잖고 따분해 보였다. 품위를 지키며 배우자에게 예를 다하는 고지식한 사랑을 상상하며 별 생각 없이 책장 을 넘겼다. 그런데 사실 기대했던 것 이상으로, 또 아무 기대도 하지 않고 때문에 이 책이 더욱 재미있 었던 것 같다. 여주인공 엘리자베스는 전혀 예상외의 캐릭터였고 책의 내용을 정말 재미있게 이끌어갔다. 그래서인지, 그저 처음엔 내용에만 충실해 읽다 보니 이 책의 제목과 내용이 무 슨 상관일까라는 생각을 할 겨를이 없었다. 책을 다 읽은 뒤, 이 책에 대해서 더 알아보고 싶 었다. 알고 보니 영화와 드라마로도 나와 있어서 지체하지 않고 보았다. 영화는 책의 내용과 조금 다른 느낌이 들었지만 드라마는 책의 내용과 거의 일치했다. 드라마까지 보고 나니 왜 이 책의 제목이 오만과 편견인지 알게 되었다. 남자 주인공 다아시의 오만이, 또 여자 주인공 엘리자베스의 편견이 둘 사이의 사랑을 갈라 놓았기 때문이다. 책을 다시 한 번 읽어보니 분명 그런 장면이 나왔는데 내용에만 너무 집중 하느라 전혀 생각을 못한 것이다. 생각해보면 높은 지위에 있는 사람들은 오만해지기 쉽고 편 견을 가지기 쉬울 것 같다. 여기서는 영국인들의 이야기가 나오고 있지만 과거의 우리 나라도 분명 신분이 있었고 높은 사람과 그렇지 않은 사람들로 나누어진 사회가 존재했었다. 그리고 대부분의 사람들에게 조선시대 때의 높으신 양반 사람들을 상상해 보라고 하면 언제나 뒷짐을 지고 거들먹거리는 모습이 떠오를 것이다. 그게 드라마나 책에서 본 모습일지는 몰라도 그들 대부분은 자신이 부리는 하인처럼 자신보다 낮은 사람들에게는 오만하며 여자들은 정치에 관 심을 가져서는 안 된다는 등의 편견을 가지고 있는 것처럼 나온다. 그리고 내 생각에는 충분 히 그럴 만 하다. 분명 윗사람의 눈에는 아랫사람들이 무얼 하든 하찮아 보이고 자신들과는 관계가 없는 것처럼 보일 것이다. 심지어 신분의 높낮이가 없는 지금에도 재력이나 재능이 있 는 사람들은 그렇지 않은 사람들에 대해서 그리 긍정적으로 생각할 것 같지도 않다. 사람은 누구나 위의 자리에 서면 그렇게 될지도 모른다. 하지만 그렇기에 더욱 이 책의 주인공들처럼 오만해지지 말고 편견을 버려야 한다고 생각한다.


2014260313 사회학과 13 장지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