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살아서는 자유롭게 죽어서는 영원히

인정하라 미디어문예창작학과 2013260638 문지영

미디어문예창작학과 2013260638 문지영

교수, 헬스 트레이너, 의사, 환경미화원 등 세상에는 많은 직업이 있다. 사람들은 흔히들 어릴 때부터 자연과 생물에 관한 책을 많이 읽은 나는 초등학생 시절 사육사라는 꿈을 가졌었다. 정말이지 어린아이다운 직관적인 생각이다. 그 이후로 나의 꿈은 참 많이 변했 다. 사육사 이후로 의사, 수의사, 작가, 기자, 건축가등으로 꿈이 변해왔다. 의사는 엄마가 이루고 싶었던 꿈이었다. 그러나 나는 동물에 대한 열정을 포기할 수 없었고 결국 수의사 로 절충안을 냈다. 몇 년이 지나고, 글을 배우고, 그 성과가 나타나 상을 하나 둘 받아올

직업에는 귀천이 없다고 한다. 어떤 직업이든 그 일을 업으로 삼고 살아가는 사람이 있어야 만 세상이 돌아가기 때문이라고 말한다. 맞는 말이다. 의사가 없으면 병든 사람들을 치료할 수 없고 환경미화원이 없으면 길거리가 더러워질 것이다. 그러나 그들은 과연 진심으로 그 말을 받아들이고 있는 것일까. 부모들은 자식들이 좋은 직업을 가지길 바란다. 그렇다면 좋은 직업이란 무엇인가. 여기 에서 착한 척하고 싶은 사람들은 남들에게 도움이 되는 직업이라고 말할 것이다. 그러나 사

때 즈음 엄마가 작가가 되어 보라고 하셨다. 그러다가 중학생 때, 작가는 돈을 벌기가 어

람들은 삼성 등 대기업에서 일하는 회사원이나 의사, 교수 등 돈을 많이 버는 직업을 가지

려우니 기자가 되라고 하셨다. 고1 겨울, 인문학과 자연과학 모두를 아우르는 작가가 되겠

게 된 사람들에게 칭찬과 부러움의 말을 던진다. 완전히 말과 행동이 다르지 않은가. 이제

다는 포부로 모두가 너는 문과체질이라 할 때 이과에 갔다. 고2 봄, 이과 공부를 하다 건

인정할 때가 되었다. 직업에는 귀천이 없다는 말은 오랜 시간에 걸쳐 전해지면서 그 의미가

축가의 꿈을 꾸게 되었다.

와전된 것뿐이다. 처음에 이 말을 한 것은 ‘루터’다. 루터는 직업에는 귀천이 없다고 하

나는 자유로운 삶을 살고 싶다. 어느 한 장소에 얽매여 정해진 시간에 정해진 일만 하

면서 어떤 직업을 가지든 천국에 갈 수 있으며, 자신의 본분에서 부정을 저지르지만 않으면

는 삶은 싫다. 직업선호도 1,2위를 다투는 것이 공무원과 교사라는 사실에 놀랐다. 엄마가

된다고 하였다. 루터가 말한 귀하고 천함은 현대 사회에서의 기준과는 사뭇 다르다. 천국에

공무원이지만 나는 옆에서 움직이는 대로 움직여지는 톱니바퀴로 살고 싶지는 않다. 그래

가는 것이 궁극적인 목적이 아니라 돈을 많이 벌고 유명해지고 권력을 차지하게 되는 것을

서 생각했던 직업이 건축가였다. 물론 건축학과를 나온 사람들 대부분은 전혀 다른 분야

귀하게 여기는 현대 자본주의 사회에서는 직업에 분명히 귀천이 존재한다.

에 종사하거나 건축사무소에서 회사원으로 일한다. 하지만 나는 적당히 경력을 쌓은 뒤에 는 프리랜서로 일하고 싶었다. 그래서 나에게는 작가가 더 잘 어울린다. 작가들은 프리랜 서인 경우가 더 많다. 그래서 속된 말로 벌어먹기는 힘들지 모르지만 나는 돈보다 자유가 소중하다. 그리고 지금 다니고 있는 고려대 미디어문예창작학과의 자유로움이 좋다. 다른 단과대학에 비해 시간표도 자유롭게 짤 수 있고, 과제도 적다. 그리고 소모임이 많아서 다 양한 경험을 할 수 있다. 솔직히 말하면 그냥 자유가 아니라 여행하면서 살고 싶다. 특히 남들이 잘 안가는 나라들이 좋다. 아프리카나 남미 쪽에 가보고 싶다. 이 나라 저 나라 돌 아다니며 몇 주에서 길게는 몇 년씩 살며 세상을 체험하고 싶다.

영화 『굿’바이』의 주인공 다이고는 늘 그렇듯 납관을 하러 갔다. 그 상가(喪家)에서 열 심히 납관을 하고 있던 다이고는 고인의 친지에게 손가락질 당한다. 그들은 고인을 죽게 만 든 남학생에게 그 죄를 어떻게 갚을 것이냐며 평생 다이고가 하는 일을 해서 죗값을 치를 것이냐고 말한다. 나름대로 자신의 직업에 보람과 의의를 찾아가던 다이고에게 이 사건은 충격과 상처로 다가온다. 그러나 다이고의 직업인 납관은 직업의 귀천으로 따져보았을 때 천하다고 할 수 있다. 남들이 꺼려하는 일을 하기에 그렇다. 납관을 하는 사람이 한명도 없 다면 분명히 곤란할 것이다. 그렇지만 누구도 자신이 그 일을 하겠다고 나서지 않는다. 실 제로 영화에서도 다이고가 첫 공채 직원이었다고 나온다. 심지어는 다이고의 부인조차도 시 체를 만지는 다이고의 손길을 혐오했다. 서울의 광장시장에는 수를 잘 놓는 장인들이 참 많

그러나 또 그렇게 여행만 하다 존재감 없이 죽고 싶진 않다. 위에서 건축가를 택한 이

다. 그러나 그 분들에게는 요즘 고민이 하나 있다. 벌써 나이가 들어 눈이 침침해진 그 분

유가 자유로움 때문이라 말하면서 정해진 일만 하기는 싫다고도 말했다. 나는 창조적인

들을 이어 다음 세대에 수를 놓을 후계자들이 없다는 것이다. 아무도 수를 놓을 생각을 하

일을 하고 싶다. 그것은 만들어내는 보람 때문이기도 하겠지만 내가 살았다는 흔적이 남

지 않는 것이다. 시장 한 귀퉁이에서 눈이 시리고 허리가 뻐근한 돈도 되지 않는 수놓는 일

아서기도하다. 세계의 존속을 위해 한낱 일개미처럼 존재하다 스러지기는 싫다. 외할아버

을 업으로 삼고자 하는 사람은 없기 때문이다.

지가 돌아가시고 몇 달이 지난 후 학교에서 웃고 있는 나를 보며 문득 든 생각이다. 셰익

사람들은 울면 호랑이가 잡아간다고 말하듯이 어린 아이들에게 협박용으로 “너 그렇게

스피어처럼, 아리스토텔레스처럼, 공자, 맹자처럼 영원히 사람들의 기억 속에 존재하고 싶

놀면 쓰레기나 치워야해!”라든지, “그러다가 너 공장에서 일한다”하는 말을 사용한다. 협

다. 내가 살았던 목적과 성과를 내 자식들과 후대의 인류들이 알 수 있었으면 좋겠다. 그

박, 용으로 말이다. 그리고 그런 말을 들은 어린 아이들은 움찔한다. 그 아이들이 커서 어른

리고 지금 나는 자유와 존재감을 누리게 해줄 최고의 직업을 찾았다. ‘작가’. 건축물은

이 된다. 그리고 마찬가지로 자신의 자식들에게 협박을 할 것이다. 자연스레 직업의 귀천이

언젠가는 무너지지만 내가 남긴 글은 이렇게 컴퓨터 데이터 속에서라도 영원히 남아있을 수 있다. 나는 남은 인생을 내 글이 남아있는 공간이 나의 외장하드가 아닌 수많은 사람 들의 가슴 속이 될 수 있게 열심히 글을 쓰며 살아갈 것이다.

세습되는 것이다. 직업에 귀천이 있는 것은 어떻게 보면 당연하다. 아무도 하고 싶어 하지 않는 일은 천해질 수밖에 없다. 그러나 사람들은 직업에 귀천이 없다고 말한다. 직업에 귀 천이 있다는 것을 인정해야한다. 인정하고, 천한 일을 하는 사람을 무시하지 않는 사회를 만들어나가야 할 것이다.


자연의 품에서 감사하라

소고기와 쌀밥은 같다 2013260638 문지영

미디어문예창작학과 2013260638 문지영 “당신 참 잔인하네요.” 세상의 수많은 채식주의자들이 육식을 즐기는 사람들에게 던지는 말이다. 채식주의자들은 육식을 하는 사람들에게 동물들도 하나의 생명이며 그들에게도 생을 살아갈 자유가 있다고 말한다. 그렇다면 그들이 하는 말에는 생명을 소중히 하는 사람의 배려만 담겨있는 것일까. 초등학교에 다니고 있는 남자아이들이 즐겨하는 장난 중 하나는 잠자리를 잡아 머리를 손 가락으로 톡 튕겨내는 것이다. 혹은 문방구에서 뽑기로 햄스터를 구해와 주물럭주물럭 데리 고 논다. 그러면 햄스터는 곧 죽는다. 그렇게 죽은 잠자리와 햄스터를 주먹에 쥐고 와서 여 자애들 손에 쥐어주거나 치마폭에 던져 넣는다. 여자아이들은 기겁한다. 여기까지는 그럴 수 있다. 초등학생들은 생명의 소중함을 잘 모를 수 있기 때문이다. 내가 지적하고자 하는 바는 여자아이들이다. 여자아이들은 머리 없는 잠자리 사체에 기겁을 하고 운동장 반대편 화단으로 도망간다. 그리고 그곳에서 제비꽃을 발견한다. “와, 예쁘다!”라며 제비꽃을 꺾는 다. 나는 늘 이 상황이 역겨웠다. 잠자리와 햄스터를 죽인 남자아이들의 행동에 혀를 차면 서 아무렇지 않게 제비꽃과 벚꽃을 꺾어 향기를 맡는 여자아이들이 이해가 되지 않았다.

우리는 물을 마시고 숨을 쉬며 흙에서 자란 농·식물을 먹습니다. 물도 공기도 흙도 모 두 자연의 일부입니다. 이렇듯 자연은 늘 우리에게 베풉니다. 그러나 우리는 과연 그 너그 러운 베품에 얼마나 보답을 하고 있을까요. 은혜를 원수로 갚고 있는 것은 아닐까요. 메리는 본디 심술궂고 이기적인 꼬마였습니다. 그녀는 우연한 계기로 사람들에게 알려지 지 않고 거의 죽어가는 정원 하나를 발견하게 됩니다. 메리는 그 정원을 정성껏 가꿉니다. 그런 과정에서 메리는 심성이 고와지고 정신적인 상처를 치유 받습니다. 이것은 소설 속의 일만이 아닙니다. 한 교도소에서 수감자들에게 화원을 가꾸게 한 예가 있습니다. 화원을 가 꾸기 시작한 지 반 년이 지난 뒤 그 교도소에서 화원 가꾸기 시간에 자유 시간을 가진 수 감자들과 함께 심리검사를 실시했습니다. 그 결과 화원을 가꾼 그룹의 수감자들의 심리상 태가 그렇지 못한 그룹의 심리상태에 비해 약 3배 안정적인 것으로 나타났습니다. 수감자 들뿐만이 아닙니다. 일반인들도 삼림욕 등을 즐기며 자연 속에서 피로해진 심신을 치유합 니다. 자연과 함께하는 시간은 인간에게 이렇듯 안정을 가져다줍니다.

얼마 전 온갖 미디어에서 한창 떠들었던 주제가 있다. 식용으로 기르는 동물들이 학대를

인간은 언제 어디에서나 자연의 도움을 받습니다. 인간에게는 절대적으로 산소가 필요합

받고 있다는 사실이다. 뒤로 도는 것은 물론 앞뒤로 움직이지도 못할 정도로 작은 우리 안

니다. 어떤 인간들은 인공적으로 산소를 만들 수도 있으니 자연에 의존하는 것이 아니라고

에서 살만 찌우며 커가는 소와 A4용지정도 크기의 철창 안에서 평생 알을 낳다 죽는 닭 등

말합니다. 그러나 인공적으로 산소를 만들기 위한 그 재료는 어디에서 옵니까. 그 무엇이든

이 조명을 받았다. 이런 사실에 대해 한탄하는 방송이 끝난 뒤 가을을 맞아 추수 체험을 하

시작은 자연이었습니다. 제가 지금 쓰고 있는 이 노트북도, 휴대폰도, 지갑도 모두 말입니

는 방송이 나왔다. 낫질도 하고 트랙터로 추수를 하기도 했다. 리포터는 추수가 다 끝난 논

다. 지금 보이는 모습으로는 자연이라고 말하기에 어폐가 있지만 분명 이 모든 것들은 돌

을 보며 뿌듯해했다. 모순덩어리다. 어째서 동물들이 갇혀있는 것에는 슬퍼하면서 논에서

에서, 동물에서, 석유에서 나온 것들입니다. 또한 인간은 먹어야 삽니다. 누구나 먹습니다.

벼들이 다닥다닥 붙어 뿌리가 서로 얽히고 햇빛도 제대로 못 받으며 사는 것에는 그 어떠한

채식주의자도 갓난아기도 식물인간도 어떤 형태로든 자연의 일부를 섭취합니다. 식물만 먹

의아함도 품지 않는 것인가.

든 동물만 먹든 말입니다. 인간은 자연 없이는 존재할 수 없습니다. 인간 자체도 자연의 일

채식주의자들은 말한다. 자신의 목숨을 부지하기 위해 수많은 생명을 희생할 수는 없다 고, 그러나 이 얼마나 모순적인가. 그들은 이름 그대로 식물을 먹는다. 식물은, 생명이 아닌

부이거니와 위에서도 언급했듯이 인간은 끊임없이 자연을 소모하며 살아가야 하기 때문입 니다.

것인가? 그들은 변명한다. ‘식물은 고통을 느끼지 않으니까 괜찮아요.’고통을 느끼지 못한

동남아시아, 아메리카(브라질), 러시아(타이가) 등지에서는 목재 펄프의 생산을 위해 무분

다면 죽어도 괜찮은 것이다. 그렇다면 인신매매단이 사람을 납치해 마취한 뒤 신장, 각막,

별한 벌목을 아직도 이어오고 있습니다. 이런 무리한 벌목으로 인해 지구상의 많은 부분의

간, 심장을 모두 적출해 내도 그 사람은 고통을 느끼지 못했으니 괜찮은 것이다. 오히려 그

삼림이 사라지고 있습니다. 또한 4대강 사업과 수많은 공장의 오폐수 유출 등으로 강과 바

사람의 신체 기관들로 다른 사람이 건강을 회복할 수 있으니 잘 죽은 것이다. 이렇게 되어

다, 넓게 봐서는 전 지구상의 물이 또 그 물을 필요로 하는 동식물들이 악영향을 받고 있

버린다. 사람들은 너무나 편파적이다. 개를 먹는 것은 잔인한 것이라 말하는 것과 같은 이

습니다. 현대에 들어서는 많은 사람들이 환경오염, 자연 파괴의 심각성에 눈을 뜨고 그 피

치다. 소와 돼지, 닭은 와구와구 먹어재끼면서 ‘개는 우리의 친구야 먹으면 안돼.’라고 말

해를 최소화시키고자 노력하고 있지만 아직은 많은 사람들이 입으로만 자연 보호를 외치며

하는 꼴이다.

안일한 생활을 영위하고 있습니다.

본디 인간은 잡식성이다. 자연의 흐름 측면에서 보면 채식주의자들은 정상이 아닌 것이

자연은 우리의 정신과 육체 그 모든 것에 긍정적인 영향을 주고 있습니다. 심지어 우리

다. 채식인 소에게 다른 소의 내장을 먹이는 일에 비인간적이라고 비난을 퍼부으면서 정작

는 필수불가결한 것이 아닌 물건들, 음식들도 생산해 내고 있습니다. 그러나 자연은 우리에

본인들도 자연스럽지 못한 일들을 벌이고 있는 것이다. 몸에 좋다고 생각해서 채식을 하는

게 불만을 표하지 않습니다. 인간들은 지진, 해일, 화산폭발 등의 자연재해가 자연이 우리

것을 나쁘게 생각하지 않는다. 그러나 동물의 생명이 소중하다며 식물을 더 많이 먹어치우

에게 화풀이 하는 것이라고 말하지만 그것들은 인간이 존재하기 전부터 자연의 일부로서

는 것은 용납할 수 없다. 모든 생명은 동등하게 소중하다. 동물도 식물도 하다못해 세균 하

존재해 오던 것들입니다. 그런고로 우리는 아낌없이 주는 자연에게 감사한 마음을 가지고

나까지도 생명을 가지고 있다면 모두 존중받아야 하는 것이다.

자연 속에서 자연의 일부로서 배려심을 가지고 살아가야 할 것입니다.

문창문지영 e-book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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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지영이 사표 기말과제로 제출하기 위해 만든 e-book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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