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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 고창 오거리당산과 오거리당산제의 유래1) 1) 오거리당산 조선조 후기 정조년간(1790년대)에 전라도 일대에 물난리를 크게 만나 이로 인해 엄청난 질병의 화를 입게 되었는데, 질환에 내몰린 주민들이 피막에서 질펀하게 시달림을 겪었다 가 환역(患疫) 후에 이를 재빨리 수습하라는 어명이 내리자 화주(化主)를 자청한 고을 아전 들이 민심수습을 위해 고을의 허한 수구막(水口幕)을 보완하고자 중거리․중앙․하거리의 저 지대 당산을 거창한 역사의 인공신체로 1803년에 완성해냈다. 이른바 고창읍의 고을 풍수가 행주형국(行舟形局)으로서 파도를 타고 있는 출렁이는 배의 모습이어서 고을의 虛를 메우기 위한 입석신체(立石神体)를 세운 것이다. 이들 새로 세운 3기의 미륵 석주를 동신체로 한 당산은 모두 머리에 원형과 사각으로 된 갓을 쓰고 서 있 다. 동쪽의 상거리와 북쪽의 교촌당산은 지대가 높아 침수지역이 아니지만 중거리․중앙 하 거리는 지대가 낮아 자칫 수침의 우려가 있어 이 세 곳의 당산은 더욱 우뚝하게 정성이 가 중되어야 함으로 크게 공들여 다듬어낸 미륵석주의 신체를 모신 것이다. 고창 오거리당산은 당집이 없고 상거리와 교촌은 자연신체 입석당산으로 세워져 있으며, 중앙과 중거리․하거리 당산은 인공신체로 잘 다듬어진 삿갓 당산으로서 당의 표시로 탑신 형의 화강석 화표가 세워져 있는 것이 특징이며 부부를 중심으로 한 가족을 형상시키는 등 음양에 맞게 배치되어 민속공예로도 매우 가치가 높다. 마을신앙의 표적으로서의 의미도 있거니와 전국에서 유일한 가족 당산 형태로 된 고을의 풍수적인 집단 신앙적 화표로서 더 욱 유명하다. 고창 오거리당산은 고창읍의 동․서․남․북․중앙의 5방(方)에 세워진 미륵 돌기둥으로 된 수호 신적 화표로서, 1969년 12월 6일에 중요민속자료 제14호로 지정되었다.

가. 당산의 특징 ○ 당집이 없고 堂의 표시로 塔身形의 화강석 華表가 세워져 있다. ○ 원래 할아버지 당과 할머니 당이 모두 오거리에 갖추어져 있고 가족으로 아들당산과 며느리 당산이 부수되고 있어 부부를 형성시키는 등 음양에 맞게 배치되어 있어 매우 흥미롭다. ○ 중앙과 남방 그리고 서방에 세워진 할아버지 당은 화강석으로 된 석간(石竿)으로서 원반 또는 사각의 삿갓 모양의 개석(蓋石)이 씌워 있어 속칭 ‘갓당산’ ‘삿갓비석’으로 불리우고 있다. 2) 상거리당산 동부리 숲정이(지금의 천북동)에 할아버지 할머니와 아들의 가족 당산으로서 할아버지 내 외분은 당숲이 우거진 속에 자연입석의 神體와 堂木으로 서 있고 아들 당산은 모양동 큰 길가에 세워져 있으나 당숲은 없어졌다. 堂祭는 정월 초하룻날 밤에 지낸다.

1) 고창군지


3) 하거리당산 서부리 숲정이(지금의 삼흥동)에 할아버지 할머니의 부부당산으로서 할아버지 당산은 645cm의 花崗石竿으로 머리 부분에 4각형 삿갓 모양의 개석(蓋石)이 씌워 있어 속칭 갓 당산 삿갓비석으로 불리우며 ‘鎭西華表嘉慶 8年癸亥 三月日’의 銘文이 음각되어 있으며, 당숲은 없어지고 할머니당산은 나무당산으로 세워 있고 아들당산은 돌비석으로 ‘高敞邑內 水口立碑’라 새겨져 있다. 堂祭는 정월 초하룻날 밤에 지낸다. 4) 교촌당산 본래 향교 입구 근처에 할아버지, 할머니, 아들의 3당산으로서 자연입석의 신체와 당목이 있었는데 할머니 당산은 고등학교 도서관 남쪽 아래에 팽나무 당목으로 서 있었다. 향교 입구의 할아버지 당산을 1990년대 초에 트럭에 받쳐 두 동강이 나서 새로 돌당산을 인공 신체로 다듬어 군수 관사 옆에 새로 세웠다. 당제는 정월 초

흗날 밤에 지낸다. 5) 중앙당산 중리 당숲거리(지금의 매일시장)에 할아버지, 할머니의 부부

산으로서 할아버지 당산은 375cm의 원반형 삿갓 모양의 개

이 씌워 있어 갓 당산으로 불리우는 미륵형 석각으로 조성되

으며 할머니 당산은 당숲거리 동쪽 고창교 오른쪽 앞에 서

다. 당제는 정월 초사흗날 밤에 지낸다. 할아버지 당의 石竿刻文에 ‘施主 : 金陽鳳․李明得․ 車道旭․申光得, 化主:金聖澤․車道平․魯貴連韋段慶哲, 嘉慶八年

亥閏 二月初十日’로 표기되어 있다. 6) 중거리당산 안거리 입구(지금의 중앙동)에 할아버지, 골목 안에 할머니의

부당산과 골목길 더 깊숙이 아들, 며느리 당목이 있었으나 새

을사업으로 없어지고 말았다. 할아버지당은 화강석간으로 삿갓

양의 개석이 씌워있어 갓당산으로도 불리우며 ‘千年頑骨 屹然

南’ ‘嘉慶八年 癸亥 三 月 日’의 銘文이 음각되어 있으며 위의 네거리 당제를 마친 이후 중거리당산제는 정월 보름날 밤에 오 방에 사는 모든 읍민들이 나와서 지냈다. 7) 오거리당산제 고창 오거리당산 건립(1803년) 이듬해부터 당산이 세워진 마을 별로 제례를 주관하고 동민이 참여하여 정월 초하루와 정월 초 삼일에 거리당산제(네거리 : 상거리, 하거리, 교촌, 중리)를 지 냈고, 중거리당산제는 지역의 민․관이 주관하고 지역민 전체가 참여하여 정월 보름날 자정 에 지냈다. 가) 오거리당산제 음력 정월이 되면 상거리당산, 하거리당산, 교촌당산, 중리당산의 네거리 당산이 있는 마을


사람들은 정성을 다해 당산제 지낼 준비를 갖추기 위해 우선 당산에 부정한 사람의 근접을 막는 의도로 당산 주위에 황토를 뿌리고 금줄을 친다. 마을사람들은 당산제를 지내기 위해 한 달 전에 협의하여 당산제 제주를 선출하고 선출된 제주는 정결한 몸가짐을 위해 한 달 동안 부정한 곳(초상이나 출산집)의 출입을 금해야 하며 매일 목욕재계로 정갈한 제관의 품위를 지켜내야 한다. 거리당산제 경비는 마을 사람들이 협력하여 모금한다. 거리당산제는 마을의 연운(年運)과 식재(息災)와 풍년을 기원하는 이른바 초인적인 영험한 힘을 자기의 생활과 생산적 의미에 유리하게 작용하도록 유도하기 위한 제의(祭儀)인 것이 다. 제일 : 상거리․하거리 - 정월초하루 자정 교촌리․중거리 - 정월초삼일 자정 제주 : 상거리․하거리․중리․교촌의 당산거리(마을)마다 생기복덕이 맞는 사람을 한 달 전에 회합을 통해 미리 선출하여 심신을 정결하게 갖추어 제사에 임하게 한다. 제사 : 각 거리 당산 제사 때에는 제주가 거리제 형식처럼 단 배로 제사를 지내고 여기에 참석자는 남자에 한한다. 제구 : 걸림을 통해 시장에서 구입하고 제사를 지내고 나면 제주가 모두 가져간다. 제물 : 걸림을 통해 시장에서 구입해 장만하고 제사를 지내고 나면 제주는 음복하고 제물을 나누어 먹는다. 제사음식 은 집으로 가져가지 않는다. 계율 : ○ 마을의 년운이 좋고 재해나 고난을 멀리하기를 바라면 서 거행한다. ○ 부정한 사람은 당산제에 엄히 금한다. ○ 초상이나 산고 등 부정한 일이 생기면 당산제를 2월 초하루로 연기하고 그 집에서 일 체의 제사 비용을 부담하게 하였다. 나) 중거리당산제 위의 네거리 거리당제를 마을별로 지낸 이후, 중거리당산제는 정월 보름날 밤에 오방에 사 는 모든 읍민들이 참여하여 함께 지냈다. 중거리당산제는 고을의 남․녀 모든 사람이 참석 하여 지역의 연운(年運)과 식재(息災)와 풍년을 기원하고 가정의 재앙을 물리치고 다복함을 기원함은 물론, 지역인의 화합과 협동과 단결을 위해 제례 후 지역민들은 동부와 서부로 나누어 민속놀이를 하였다. 모든 읍민이 참여하는 지역의 축제였다. 중거리당산제는 고을 당산제로서 지역의 민․관 단체가 참여하여 3헌관(초헌, 아헌, 종헌)을 비롯하여 축관, 홀기, 집례 2인을 선임하여 심신을 정결하게 갖추어 제례를 지낸다. 제일 : 정월대보름 자정 제사 : 삼헌관의 제례를 갖추어 술잔을 세 번 올리고 여기에 참석자는 남녀의 구별이 없 다.


제구 : 걸림을 통해 시장에서 구입하고 제사를 지내고 나면 당산제 보존회가 보관한다. 제물 : 걸림을 통해 풍족한 음식과 술을 장만하고 제사를 지내고 나면 제주는 음복하고 제 물을 나누어 먹는다. 제사음식은 집으로 가져가지 않는다.


【제물차림표】 돼지 머리

메 시저

국수

갱 (메탕)

술잔 육적 전

(소고기 )

육탕 포

어적

소적 (채소)

(명태, 조기)

어탕

소탕

(명태, 오징어)

콩나물

녹두 나물

무우 나물

도라지 나물

고사리 나물

식혜

대추

곶감

사과

산자

약과

8) 민속놀이 가) 당산굿(풍물패 놀이·당산제 건립) 동․서부의 풍물패들은 정월 초하룻날부터 보름날까지 고창읍의 거리와 주민의 집을 순회하 며 집안의 잡귀를 몰아내고 굿거리와 가신(家神)을 위로하는 안택굿을 쳐주고 당산제를 대 비하는 전곡을 조달한다. 풍물패의 굿놀이가

작되면 지역민들은 흥겨움 속에 당산제 대보

민속놀이를 하기 위해 볏짚을 모아 협동하여

을 꼬고 대나무를 베어 연등과 마을의 위상

과시할 깃발을 만들며 동․서부별로 놀이의 전

을 세운다. 새해를 맞이하여 고을 전체가 풍

패의 가락으로 흥겨움이 넘치는 축제분위기

고조된다. 풍물패들은 당산제를 대비하는 전

의 조달이 마무리되면 중거리당산 마당에 모

안택굿을 쳐서 당산신을 모셔 오는 굿놀이를 한다. 나) 중거리당산제 중거리당산 앞에 제상이 차려지면 진행의 홀기(笏記)에 따라 좌우에 집사(執事)를 세우고 정중 히 삼헌제례(三獻祭禮)를 올리고 축관이 축문을 사르는 것으로 당산제를 마감한다. ※ 제관들의 음복에 이어 제사 음식을 나누어 먹는다. ※ 당산제를 마치고 나면 풍물패의 끝풀이가 이어지고 진행에 의해 대보름 놀이가 시작된 다. 다) 연등(燃燈)놀이


당해의 풍년을 기원하는 놀이로 중거리당산을 남북 으로 기점(起点)하여 동부(東部)와 서부(西部)의 두 패로 갈라서서 연등놀이가 펼쳐진다. 이때 동부는 남자로 패를 짜고 서 부는 여자로 패를 짜서 양쪽에 각기 진을 치고 있는 연등 간대에 매어 달린 연등의 초롱불을 향해 달려 가서 상대방의 연등 을 많이 끄는 편이 이기게 된다. 이때 여자편이 이기면 풍년이 든다는 속설이 있다. 연등놀이는 우리의 전통적인 민속으로 섣달 그믐날 집마 다

농신(農神)맞이

를 하는 연등행사와 도 깊은 관계가 있 다고 하는데 이 연등회는 고려시대에는 초기부터 온 나라가 집집마다 등을 달아 부처를 공양하고 나라의 태평을 빌었다. 초기에는 음력 정월 대보름에 있었 는데 후에 음력 2월 보름으로 바뀌었고 나중에는 4 월 초파일로 바뀌어 지금에 이르고 있다. 또한 민속 중에 2월 초하룻날을 영등날이라 하여 이날 영등할 머니가 내려와서 집집마다 돌아보며 농가의 실정을 살펴보고 하늘로 올라간다 하는데 이날 비가 오면 풍년이 들고 바람이 불면 흉년이 든다고 하는 토속신앙의식과도 상관관계가 깊 은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 연등제작 - 동부와 서부 양 진영에 각기 긴 간대를 세우고 맨 위에서부터 등을 달 수 있는 적당한 간격으로 횡목을 대어 내려오면서 연등을 다는데 맨 위에 하나, 그 다음 줄에 3개, 그 다음 줄은 5개, 그 다음은 7개, 그 다음은 9개를 매달고, 그 다음은 11개를 매달 아 36개의 휘황한 동편의 청색연등과 서편의 흰색연등간대가 진을 치고 각기 연등간대에 는 4개의 젖줄을 매고 간대잡이와 4명의 젖줄잡이가 든든하게 지키고 서면 된다. ※ 연등싸움 - 자기 진영의 연등지킴이는 튼실한 간대잡이와 젖줄잡이 네 명이 수비를 맡 고 나머지 인원은 양손에 오자미를 들고 상대편의 연등간대에 달려가 연등불을 꺼야 한다. 많이 끄는 편이 이긴다. 라) 줄 예맞이 연등놀이가 끝나면 줄다리기에 앞서 만들어진 암줄과 수줄(각 50m씩)이 처음으로 만나 짧 은 생애지만 사람과 비유하여 암․수의 합방을 시도하는 줄 예맞이를 올려준다. 동부 샌님 줄의 고리를 서부 마님줄의 큰 고리 속에 넣고 샌님줄의 고리와 마님줄의 큰고리가 엉켜 겹치도록 튼튼한 원목 비녀장을 질러 남녀 교합의 의미를 살려 예맞이를 치룬다. 이때 예맞 이 차례는 재래의 전통혼례의 홀기에 준한다. ※ 소반상에 합환주 거리와 삼실과가 차려 나온다.


※ 집례(執禮)자에 의해 혼례가 진행된다. 마) 줄다리기 줄다리기 놀이의 준비는 정초부터 동부와 서부에서 공동으로 짚의 소요량을 분담하 여 암줄과 수줄의 길이는 50m, 직경은 20cm 가량의 굵은 줄을 드려서 암수 줄의 머리 부분에 큰 고리를 지어 각 고리와 줄 이 이어지는 부문에 각기 줄패장이 올라설 수 있도록 발판을 만들어 준다. 그리고 각기 고 리의 맨 앞 가운데 부분에 줄패장이 잡고 설 수 있는 튼튼한 젖줄을 달아 맨다. 이렇게 만들어진 암․수줄의 양 고리를 중거리당산 앞에 동서로 맞대어 놓았다가 줄 예 맞 이가 이루어지고 나면 동부와 서부 두 패로 갈라선 남자 샌님패(동부)와 서부 마님패로 나 뉘어져 힘껏 당기는 줄다리기를 통해 서로의 힘의 승부를 겨룬다. 전통적으로 삼세판의 승 부를 겨룬 후에 승자를 판가름하는데 이때 서부 마님패가 이겨야 풍년이 든다고해서 동부 샌님패들이 짐짓 져 주는 아량을 보여주곤 하는 상례를 낳고 있다. 바) 줄시위굿 풍물패를 앞세우고 서부 마님패(이긴 패)들 은 줄을 메고 동부 샌님패는 뒤따르며 온 고을을 한 바퀴 시위하면서 풍물패의 장단 에 맞 춰 춤 을 추며 흥겹게 중거리 당산 앞에 당도한다. 사) 당산 옷입히기 줄시위굿을 마치고 돌아온 이긴 패의 줄을 중거리 당산에 감아 올려 당산에 옷을 입히는 줄행을 대행한다.(시계반대방향으로 감음) 당산에 옷 입히기는 도창의 앞소리에 주민 모두 뒷소리를 하며 흥겹게 진행한다. 아) 대보름 소망놀이 당산 옷입히기가 마감되면 죽포터지는 소리는 귀신을 쫓는다 하여 중거리당산 앞에 쌓아놓 은 대나무 단에 불을 지른다. 주민들은 모닥불에 소원지를 사르며 지역과 가족의 액운을 쫓고 길운을 빌었다. 모닥불의 큰 불꽃이 일궈지고 죽포 터지는 소리가 요란해지면 풍물패 의 빠른 장단에 주민들은 춤을 추며 흥취 있는 마당놀이로 마감된다.


고창 오거리당산과 오거리당산제의 유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