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흥덕의 마한 신소도국설 고창북부 흥덕에는 신소도국설이 있다. 신소도국설은 천관우선생의 마한제국의 위치시론에 언급하였다. 마한의 주민생활은 자연환경, 특히 농경문화와 관련이 깊은 하계망에 크게 의존하였다. 그리고 마한제국의 위치를 단지 소리의 유사 성으로 비정하는 것은 무리가 있다고 전제하고, 삼국지에 열거되어 있는 제국 의 위치는 일종의 법칙성에 따라 일정한 순서로 나열되었을 것이라는 가설로 출발하였다. 마한을 정복한 백제가 흥덕에 현치소를 두었던 것도 이미 흥덕지 방에 있었던 마한의 강역을 중심으로 행정구역을 설치하였을 것으로 판단된다. 그렇다면 신소도국의 강역은 지금의 흥덕과 신림을 중심으로 한 갈곡천의 하 계망 지역으로 추정된다.

흥덕 교운리에 마한의 주거지 수십기와 오태리토성이 존재 흥덕면 교운리에서는 청동기시대의 주거지 2기와 마한시대의 주거지 44기가 발견되었다. 이는 흥덕의 신소도국설의 타당성을 입증할 수 있다고 생각한다. 『문헌비고(文獻備考)』에는 ‘오태리고성재서3리(吳泰里 古城 在西三里)’라 하여 흥덕읍성 바로 서쪽 지역에 토성이 있다고 하였다. 석교리에서는 마한시대의 주거지를 비롯하여 주구묘(周溝라고 하는 도랑을 둘렀다고 해서 붙여진 이름), 널무덤(土壙墓) 등도 발견되어 삼한시대 이래로 오태리고성은 삼국시대까지 고 창북부를 경영하였을 가능성이 있다. 또한 신소도국의 강역으로 추정되는 갈곡 천의 상류인 신림면 송룡리에는 삼한시대의 대형옹관묘가 나타났다. 즉 송룡리 주변의 갈곡천에 면해 있는 법지리나 자포리 일대는 농경의 중심지일 가능성 이 있고, 무림리에도 일찍부터 인간이 거주하였다. 이는 무림리 곳곳에 삼한시 대의 생활도기들이 곳곳에서 출토되고 있기 때문이다. 한편 고인돌도 주로 방 장산계 아래의 하천상류에 주로 나타나고 있다. 신림면 무림이 신소도국의 국 읍이 있었을 가능성에 낮다고 판단된다. 그 이유는 마한의 제국들은 최소한 토 성이나 산성 같은 방어유적지가 있어야 하나 신림면 일대에는 발견되는 않고 있다는 점이다.


흥덕의 신덕리·신송리·사포리·후포리는 삼한인의 주거지 현재 고창 북부의 중심지인 흥덕의 갈곡천 주변은 일제강점기까지도 바닷물이 들어와 농경지 개간은 근래에 이루어 진 곳이다. 그러나 갈곡천변은 줄포만의 넓은 갯벌과 풍부한 수산물, 그리고 내륙의 곡식이 있어 일찍이 고도의 해양문 화가 발달하였을 것으로 추정할 수 있다. 흥덕의 삼한시대 유적지 현황은 구릉 성 산지와 하천의 충적지가 발달하여 농사짓기가 편리한 신덕리와 신송리에 발굴되고 있고, 이 지역과 가까운 사포와 후포 같이 해안이 가까워 수산물이 풍부한 지역 등에 고루분포하고 있는 특징이 있다. 영산강유역이나 칠암리전방 후원분을 보더라도 삼한시대는 농경문화와 해양문화가 고도로 발달된 계급사 회였다. 그렇기 때문에 삼한의 대부분의 제국들의 국읍에는 방어를 위한 토성 과 목책이 설치되어 있었다. 따라서 마한의 국읍이 되려면 토성이나 산성은 필 수적이고, 더불어 신앙유적지가 있었을 것으로 추정할 수 있다. 이러한 측면에 서 흥덕의 신소도국설은 근거가 있는 타당한 논거라 생각한다. 신소도국의 국 읍으로 추정되는 흥덕 오태리에는 토성의 흔적이 남아 있고, 배풍산에는 백제 시대 산성이자 조선시대의 읍성인 배풍산성이 있다. 따라서 신소도국의 중심은 지금의 흥덕면 석교와 교운 일대로 추정된다. 이웃인 성내면은 신소도국의 강 역으로 추정할 수 있겠다. 흥덕의 마한 신소도국은 근초고왕이 남방을 공격하 자 일찍이 항복하여 백제를 지지하여 옛 마한시대의 지위를 인정받아 백제시 대에도 지속적으로 중심지로 남은 것은 아니었을까 추정해본다.

흥덕의 마한 신소도국설  

2012-2018『한국의 유산』발굴·조사사업!! [제공] 한국지식재산관리심사위원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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