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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한민항 신용욱의 출생지 사천리 조용호 1. 사천리의 개관 고창군 흥덕면의 16법정리의 하나인 사천리는 흥덕군의 이서면 지역으로 새몰, 시냇골 또는 사천, 사동, 조동이라 하였다. 1914년 3월 1일 부군통합령에 따라 흥덕과 무장군이 고 창군에 통합됨에 따라 죽송리, 덕평리, 외사리, 내사리, 제내리, 용정리와 일서면의 통야리, 영구리, 일부를 병합하여 사천리라해서 고창군 벽사면에 편입되었다. 1935년 3월 1일 고창 군 오산면이 고창과 고수면으로, 석곡면이 아산과 무장면으로, 벽사면이 신림, 부안면으로 면폐합 및 구역변경으로 고창군은 17면에서 현재와 같은 14읍면 체제를 갖추게 되면서 사 천리, 석교리가 흥덕면으로 편입되었다. 사천리의 행정분리는 내사(內沙), 외사(外沙), 수침(水砧)가있으며 자연부락으로는 내사의 사 천, 외사의 오동(烏洞), 수침의 방죽안(堤內), 수침동, 예동(김해김씨, 천안전씨, 진주정씨, 장 흥고씨, 청주한씨 등이 洞), 용정(龍井)이있다. 백두산 장군봉에서 출발한 백두대간은 호남정 맥을 이루고 호남정맥 세재에서 분기한 영산기맥은 고창군의 진산 방장산을 기봉한다.

장산 소갈재에서 분기한 변산지맥에 자리한 사천리는 동쪽으로는 흥덕의 송암리.신림면 법 지리, 서쪽은 갈곡천을 사이에 두고 부안면 상등리, 남쪽은 부안면 운양리, 북쪽은 흥덕의 석교리와 접하여 있다. 사천리는 대한민항의 개척자 국회의원 신용욱의 출생지이다.

2. 마을의 명칭과 유래 1) 내

사(內沙)

흥덕면 소재지에서 남쪽방향 2km거리에 위치한 마을은 남서향을 하고 실개천이 동출 서류 한다.

1407년(태종7년)에 현의 남쪽 목화정(木花亭) 부근에 흥덕향교를 설립하면서 조성된

마을이라 전해온다.

향교는 임진왜란 때 피해를 입어 소실되어 광해 13년(1621년)에 교운

리로 옮겨 다시 건축하였다. 1800년대 초에 가믐이 극심할 때도내사들녘은 가믐의 피해를 입지 않아 흥덕현감이 현지를 방문하여 마을의 이름을 물길이 좋아 사천이라 부르다가 1960년대 행정구역을 조정하면서 내사라하였다. 마을의 변천은 처음에 향교로 부르다, 방죽 안, 사천, 내사로 변경되었다.

마을 표지석

마을 전경


2) 외

사(外沙)

흥덕면 소재지에서 남쪽방향 2km 거리에 위치한 외사마을은 조선조 숙종 33년(1707년) 거 창신씨가 입촌하면서 형성된 마을이다. 마을은 북좌향을 하고 실개천이 동출서류한다. 마을 앞 하천이 모래가 많고 농경지 논도 약간 파면 모래땅으로 지하수가 풍부하여 농업용수로 활용함으로써 한해피해가 없어 모래사(沙)자를 따서 사천이라 하였다. 그 후 1960년대 내사 에서 행정분리되면서 사천 바깥쪽을 이루는 마을이라하여

외사라 하였다. 거창신씨들은 시

골마을이지만 근대화의 여명기인 1930년대에 서양악기인 바이올린과 클라리넷의 음률이 흐 르고 테니스코트와 축구장을 마련하여 전국대회를 유치하여 근대화된 스포츠를 즐겼다. 신 문화를 찾아 일본, 중국, 유럽으로 유학의 길을 떠나 조국의 개화의 선봉에 섰다.

신용욱은

1924년 ·사천에 이웃한 신림면 평월리 공터에 쌍엽 프로펠러 헬리콥터로 곡예비행을 하며 찯륙함으로써 세인을 놀라게 했던 한국 항공산업의 선구자 국회의원 신용욱의 출생지이며 신용남 국회의원을 배출한 마을이다.

마을 표지석

3) 수

마을 전경

침(水砧)

흥덕면소재지에서 남쪽방향 3km 거리에 위치한 수침마을은 조선조 철종때에 광산김씨가 들 어와 살면서 형성된 마을이다. 용샘이 있고 용의 형상을 하고 있는 마을이라하여 용정동이 라 불렀으나 일제강점기인 1910년부터 장마철이 되면 홍수로 하천이 범람하여 마을이 침수 가 잦아 수침동(水沈洞)불렀다. 그 후 인근의 복동(福洞), 수침(水沈), 죽성(竹城 )마을이 수 해를 피하여 위에 있는 용정(龍井)마을로 이주하였다. 이 마을에는 물레방아간이 2개소가 있었는데 풍수적으로 잠길 침(沈)자보다는 다듬이 돌침(砧)자로 바꾸어 쓰게 되었다. 마을의 명칭은 용정동에서 수침동으로 변천하였다.

마을 표지석

마을 전경


3. 자연환경 백두산 장군봉에서 출발한 백두대간은 호남정맥을 이루고 호남정맥 세재에서 분기한 영산 기맥은 고창군의 진산 방장산(△744.1)을 기봉한다.

방장산 소갈재에서 분기한 변산지맥에

자리한 사천리는 동쪽으로는 흥덕면의 송암리.신림면 법지리, 서쪽은 갈곡천을 사이에 두고 부안면 상등리, 남쪽은 부안면 운양리, 북쪽은 흥덕의 석교리와 접하여 있다. 동쪽은 낮은 언덕지형으로 높은 산이 없는 구릉지대이고 서쪽은 갈곡천이 흐르는 평야지대이다. 신림면 에 소재한 게내저수지를 농업용수로 할용하고 있다. 1) 갈곡천(葛谷川) 산림청이 선정한 100대 명산 가운데 하나인 방장산 자락에 위치한 갈촌과 세곡에서 흐르 는 내[川]라서 붙여진 이름이다. 갈곡천은 고창군 신림면 신림리 가평리에서 발원하여 신림 저수지를 지나 부안면과 흥덕면을 경계하며 곰소만으로 유입되는 지방 2급하천으로, 유입면 적은 46.84㎢, 하천의 길이는 15.77㎢로 유역의 형상계수는 0.19이다. 하천의 좌우 안을 따 라 11.2㎢의 농경지가 발달해 있다. 용복천, 덕화천, 세곡천, 자포천, 사실천, 운양천, 오룡 천(부안면 상등리에서 합류하는 지방 2급하천), 장고천이 갈곡천으로 합류한다. 농업용수로 활용하기 위한 시설에는 보 11개소, 낙차공시설 2개소가 있다. 갈곡천에는 235종의 동식물 이 서식하고 있는 것으로 확인되었다. 특히 멸종위기 야생동물 1급인 황새와 매, 그리고 2 급인 검은 목두루미 등 7종이 하구에서 월동하며 말똥구리들의 서식지이기도 하다. 갈곡천 은 아름다운 갈대길을 따라 10리 길을 흘러 동출서류하면서 서해의 곰소만으로 흘러들어 간다.

2) 지 명 사천리의 들, 골, 재, 등을 옛 지명은 경지정리, 야산개발 등으로 지형이 변형되어 옛 모습 은 변화하였으나 전해오는 지명을 소개한다. o 대 봇 들

: 흥덕면 사천리 서쪽 갈곡천을 사이에 둔 농경지

o 법 지 들

: 수침과 신림면 법지리와 연결되는 갈곡천을 사이에 둔 농경지

o 지 앗 골

: 머구나무등 서쪽에 있는 골짜기로 기와를 구웠다 함

o 조사감재 : 사천이 앞 고창방향도로에서 외사천 진입로에 있는 고개 o 까 파 재 : 사천리 외사천 남쪽에 있는 고개 o 토 끼 재 : 사천리의 내사천과 외사천간의 고개· o 각 시 섬 : 시냇골 위에 있는 논을 칭하며 예전에 어느 겨울철에 신혼부부가 이곳 옆에 있던 방죽위를 걸어가다가 얼음이 꺼져서 빠져 죽었다 함 o 서 방 섬

: 각시섬 아래 있는 논

갈곡천 o 도로께잔등 : 내사 어귀에 있는 등성이로 지형이 두루마리처럼 생겼다 하여 부름 o 머구나뭇등 : 내사 서쪽에 있는 등성이로 머구나무가 많았음 o 사 장 등

: 내사 남쪽에 있는 등성이로 전에 정잣거리는 활터가 되고 이곳은 과녁이 되 었다 함

o 애통배미

: 부치댕이 아래쪽 길가에 있는 논으로 넓이가 약 6마지기인데 예전에 남편은 혼자서 이 논배미를 다갈고 부인은 길쌈을 하여 남편옷을 해오기로 내기를


알았는데 남편이 논을 다 갈고서 쉴때에 부인이 오므로 이긴줄 알았는데 부 인이 와서 남편이 모자 놓은 자리를 빼 놓았다하여 마침내 남편이 졌으므로 애통했다 함 o 정잣거리 : 내사옆에 있는 길거리로 큰 정자나무가 서 있었음, 전에 때때로 마을사람들 이 모여 건너편 사장들을 과녁으로 삼하 활쏘기를 했다 함 o 부치댕이

: 내사 뒷산 너머에 있는 골짜기로 높이 2m의 돌부처가 있음

4. 사천리의 인문환경 1) 마을의 문화유적 ① 우 물 내사마을은 공동우물 숫샘과 암샘이라 부르는 두곳이 있다. 부안댐을 용수로하는 광역상수 도가 공급되기 이전에는 공동우물은 마을의 생활용수 공급원이었다.

② 유물 산포지 흥덕면 사천리 산 60-1번지 외사마을 서측 해발 35m와 39.7m 를 잇는

구릉에 위치하며

동서로 뻗은 능선의 말단부이다. 구릉의 정상부는 소나무 숲이며 중단부 민묘군이 분포한 다. 하단부는 개간하여 밭으로 이용되고 있다. 구릉은 대체로 원형을 유지하고 있는 편으로 하단부에서 삼족 토기편, 경질타날문토기편, 연질타날문토기편 등의 유물이 수습되었다.

위 치 도

③ 영모제(永慕齊) 영모제는 흥덕면 사천리 앞 오공등에 있으니 좌승지 거창신씨 신이묵(愼以黙)의 숙부인 순 흥안씨와 그의 아들 증호조참판 신재성(愼在成)의 무덤 아래에 융희 2년에 건립한 제각이 다. 규모는 오량 칠간의 기와 건물로 후손들이 휴식하면서 공부방으로 사용하기도 하였다. 1970년경 까지 주련, 편액 등이 걸려 있었다.

④ 괴파정(槐坡亭) 흥덕면 사천리 외사마을 후록에 있었던 괴파정은 監役 거창신씨 신종철(愼宗喆)이 오랫동 안 휴식을 하던 장소로써 고종의 어필이 있고 추모정(追慕亭)과 독락원(獨樂園)이 있으니 其 子

참봉 주성(柱晟)이 아버님을 그리워하며 정자를 짓고 부친의 호를 따서 괴파정이라 하

였다. 여러 고을에 이름이 널리 알려져 전국의 명사들이 이곳에 들러 풍류를 즐기면서 휴식


을 취하던 정자였다. 그 정자는 파괴되었으나 주변에 노거수 수령의 팽나무 5그루와 벚나무 가 역사를 간직하고 있다.

노거수 팽나무 외사마을 뒤편에 주민의 휴식처인 정자가 있었으나 그 흔적을 찾을 수는 없으나 팽나무 노 거수 5그루와 고목이 된 벚나무 1그루만이 그 자리를 지키고 있었다.

성인 두사람이 팔을

벌려야 맞닺는 팽나무의 수령은 200여년을 넘는 것으로 보아 거창신씨가 마을에 입향하 여 거주하면서 팽나무를 심고 정자를 지어 휴식공간으로 활용하였다 전해온다. 우리선조들이 신목으로 여긴 당산나무의 하나로 알려진 팽나무는 우리나라가 원산지인

릅나무과에 속하는 낙엽활엽교목으로 산기슭과 계곡에 자생하고 있다. 남쪽지방의 정자나 무인 동시에 당산나무로 마을어귀나 성황당에서 많이 찾아 볼수 있다. 팽나무는 지방에 따 라 포구나무, 자단수, 청단, 박자수, 목수과자, 달주나무, 편나무, 매타나무로 부르기도한다. 팽나무 어린잎을 따서 깨끗이 씻어 잘 말린 다음 차로 마시면 다이어트에 좋고 당뇨나 혈 압에 좋아 사찰 뿐만 아니라 일반인도 즐겨마신다. 신비롭고 은은한 맛이 담겨있으며 여름 철에 마시는 것이 좋다하며 부처님께 올리는 달고 부드러워 감로차로 부른다.

2) 마을의 쉼터 ① 회관(경로당). 모정 내사 마을회관은 2003년 1월 28일 대지 285㎡부지에 조석조 슬라브 91.98㎡를 건축하였 다. 마을회관을 활용한 경로당은 2003년 2월 21일 등록하여 노인회장은 김도중이다. 외사 마을회관은 2004년 5월 27일 대지198㎡ 부지에 벽돌조 콘크리트 66㎡를 건축하였다. 마을 회관을 활용한 경로당은 2004년 10월 2일 등록하여 노인회장은 유상익이다. 수침 마을회관 은 2001년 8월 23일 대지 420㎡부지에 조석조 슬라브 82.2㎡를 건축하였다. 마을회관을 활용한 경로당은 2001년 10월 17일 등록하여 노인회장은 김재규이다. 경로당은 고창군의 보조금과 주민이 협력하여 건립하였으며, 고창군에서 매년 운영비, 난방 비, 간식비 등으로 200여 만원을 지원받고 있다. 마을주민들은 담소를 나누면서 텔레비전을 보거나 윷놀이, 화투놀이를 하면서 휴식을 취하고 점심을 준비하여 공동 취사를 하기도 한 다.

내사회관

외사회관

수침회관

3) 교육시설 흥덕어린이집 사천리 84번지 외사마을 어귀에 위치한 흥덕어리이집은 1996년 8월 29일 사회복지법인 설립허가를 받아 시설을 완공하여 1997년 11월 27일 보육시설 인가를 받아 같은 해 월 6일 개원하여 1998년 2월 28일 유한웅 등 52명이 제1회 입학을 하게 되었다.

12

2002


년 9월 1일 시설장 박덕순으로 변경하여 2004년 교실을 증축하여 7명이 증원된 86명으 로 인가를 받아 영유아 보육시설을 운영함으로써 꿈나무 어린이들을 보살피고 있다.

4) 주민의 삶 미풍양속

내사마을 박장사 이야기

5. 인구 및 성씨 1) 인구의 변천과정


2) 입향성씨 사천리 내사마을은 김해김씨, 천안전씨, 진주정씨, 장흥고씨, 청주한씨, 외사마을은 거창신 씨, 고흥류씨, 수침마을은 광신김씨, 밀양박씨 등이 거주하고 있다. ① 밀양박씨(密陽 朴氏) 사천리에 1706년 입향한 박승서(朴昇瑞 1683-1751)의 밀양박씨 신라의 박혁거세이며 파 조는 심문(審問)이다. 입향유래를 보면 어염자초가 풍요하고 광할한 토지를 보고 사천에 입 향하여 그 후손이 승서 - 동완 - 희칠 - 치안 - 원호 - 연운 - 공림 - 헌주 - 학균이 9 대를 이어 거주하였다. ② 거창신씨(居昌愼氏) 외사마을에 1727년 입향한 신시안(1694-1762)의 시조는 신수(愼修)이며 파조는 참판공을 지낸 신기(愼幾)이다. 입향유래를 보면 그의 숙부 석삼(錫三 )이 흥덕 사천으로 양자를 오게 되자 숙종 33년에 용인으로부터 숙부를 따라 입향하여 그 후손이 25세인 시안 - 이묵 재성 - 민진 - 한봉 - 용성 - 석범이 8세가 거주 하였다. 그의 후손은 독립유공자 신용수, 대한민항의 개척선구자 국회의원 신용남, 국회의원, 천석군 신필제, 전라북도 교육위회 의장 신국중, 제16대 흥덕면장 신용선, 군의원 신세제(신용선의 아들)을 배출하였다. 가. 거창신씨의 종훈 1.우리 거창신씨는 시조 공헌공 신수(愼修)의 한 핏기 한 가문이며 천년 빛나는 역사를 가 진 명문의 집안임을 자랑으로 한다. 1.우리 선조의 빛나는 유덕을 받들어 가문의 전통사상인 충.효를 실천하고 친목단합으로써 가문을 더욱 빛나고 나아가 국가민족의 발전에 이바지한다.

3) 사천리의 인물 ① 신용욱(愼鏞頊)


시 대 출생지 출생일 사망일

: 현대 : : :

전북 고창군 흥덕면 사천리 1901년 10월 15일 1962년 8월 22일

비행사 이며 기업가 이며 정치가인 신용욱(愼鏞頊)은 우리나라 항공업계에 생애를 바쳐 초석을 마련한 개척자로서 일제강점기로부터 해방이 된 후

민간항공사인 대한민국 항공사(KNA)를 세

웠다. 제2대, 제3대 국회의원지낸 인물로 국정 전반에 활발한 의정활도을 전개하였으며 특히 고창군지역 수리안전시설 신림 게내저수지, 성내 중앙저수지를 축조하여 농업소득증대에 기여 하였으며 흥덕초등학교부지를 흥덕중학교부지로하고 초등학교를 이전신축하는데 기여하는 등 남다른 애향심을 발휘한 인물로 추앙받고 있다. 그가 태어난 생가는 사천마을이 새의 형국이라 하여 초가였으나 1960년대 경 유태수가 구입하여 살면서 아들 유상익이 1974년 새마을 사업 을 하면서 세멘기와로 지붕을 개조하여 오늘에 이르고 있다. 2011년 10월 15일 사천마을 어귀 23번 국도변에 『대한민항의 개척자 국회의원 신용욱』기념 비를 사단법인 전북 애향운동본부 고창군 흥덕면지회 주관으로 세웠다.

신용욱 생가 초가집을 1974년 세멘기와로 지붕개량

기 념

o 출생과 생애 신용욱은 1901년 10월 15일 고창군 흥덕면 사천리 21번지 내사마을에서 조선조 광해군때 좌 의정을 지낸 신수근을 중시조로 하는 거창(居昌) 신씨 집안에서 태어났다. 그의 집안은 그가 보 통학교를 졸업할 무렵, 우리나라 최초의 독일 유학생인 신용식을 비롯 일본 중국 등지에 이미 6명의 유학생을 보낼 정도로 교육에 노력한 집안이다. 흥덕보통학교를 졸업하고 서울에서 휘문고보를 졸업했다. 서울로 학교를 보내고 비행사가 되려


는 꿈을 갖게 된 것도 개화된 집안의 영향을 받았다 볼 수 있다. 더욱이 신용욱은 어려서부터 개성이 강하고 남에게 지기 싫어하여 한 번 마음먹은 일은 꼭 해내고야 말았다. 그러한 성격은 그가 딸하나 없는 외아들인데도 가정을 떠나서 대담하게도 위험천만한 개척기의 항공분야에 뛰 어들게 하였다. 1922년 스물 두 살의 청년 신용욱은 일본 오꾸리(小栗) 비행학교를 우리나라 최초의 비행사인 안창남(安昌男·900~1930) 보다 1년 늦게 마치고 1등 조종사 면허를 얻었다. 이때 부터 그의 명성은 널리 알려지기 시작했다. 이어 그는 도오아(東亞)항공전문학교를 졸업했다. 하지만 신용욱은 이에 만족하지 않고 일본보다 훨씬 앞서 있는 서구의 항공기술을 익히기 위해 미국으로 건너 갔다. 그리고 1933년 미국에서도 권위를 자랑하는 「실라」헬리콥터학교 조종 과를 졸업, 동양인으로서는 유일하게 국제조종사가 되었다. 조선비행학교 교장을 역임하고 항공사를 설립하여 사장이 되었다. 해방되던 1945년에는 대한 민국항공사(KNA)를 세웠으며 정계에도 투신, 2대와 3대 민의원을 지냈다. 그러나 KNA의 납북 과 4·19, 5·16등 정치적 변혁이 휘몰아치면서 4대 민의원 낙선등 정신적 경제적 어려움까지 겹쳤다. 1962년 여의도 공항을 눈앞에 둔 한강하류에서 60세의 나이에 생을 마감하였다. o 민간항공 개척 1925년 고창군 신림면 평월리 공터주변에는 정읍과 고창 부안등 인근에서 새벽밥을 먹고 나온 구경꾼들로 인산인해를 이루었다. 난생 처음 비행기를 가까이에서 보기 위해서 였다. 한낮쯤 쌍날개에 프로펠러가 달린 경비행기가 일대를 몇바퀴 돌면서 빈터에 사뿐히 내려 앉았 다. 비행기에는 흥덕출신 신용욱이 타고 있었다. 구경꾼들은 흥분했고 흥분은 곧 만세소리로 바 뀌어「떴다 보아라 신용남!」의 함성이 이어졌다. 비행장도 아닌 공터에서의 무사착륙은 신용욱의 담력과 투지를 보여주었다. 뿐만 아니라 일제 감정기 때 기에 눌려있던 민족의 자긍심이 살아있음을 보여준 쾌거였다. 미국에서 선진 항공기술을 익힌 신용욱은 사재를 털어 서울 여의도에 우리나라 최초의 비행학 교를 설립하였다. 1936년의 조선항공사업주식회사, 1942년의 조선항공업주식회사 설립 등은 모두 항공분야에 대한 그의 탁월한 안목과 비전을 담고 있다. 그가 세운 이들 회사는 전쟁준비 에 광분하던 일제의 군수공장으로 변하고 말았다. 신용욱은 8·15 해방과 더불어 평생의 과업인 KNA를 창립, 비로소 자신의 뜻을 펼치게 된다. 이러한 민간항공의 개척은 우리나라 항공사에 최초의 민간항공 개발이라는 커다란 족적으로 평 가되고 있다. 그 자신도 온갖 심혈을 기울여 이 사업을 키워 나감으로써 일등비행사로 부터 탁월한 항공사업 인으로 전환의 계기를 맞은 것이다. 1953년에는 비행시간 3천 시간을 돌파해 미국 민간항공연맹으로 부터 무사고 비행기록 표창을 받은 최초의 동양인이 되었다. 1956년에는 처음으로 한미(韓美)항공협정 체결을 성공시켜 미국 보잉사로 부터 1백만 달러의 차관을 얻어 내는등 정력적인 활동을 펼쳤다. 그러나 KNA는 보람과 함께 그에게 많은 출혈과 희생을 요구했다. 1958년2월16일 돌이킬수 없는 비운이 닥치고 말았다. KNA소속 여객기 창랑호가 북한간첩들에 의해 공중 납치되어 버린 것이다. 이와 함께 속초에서 여객기가 불시착 하는등 잇달은 사고와 노선 결항이 잦아 KNA는 여객을 외국항공에 빼앗기는등 중대한 타격을 받고 마침내 파산 직전에 몰리고 만다.


정치활동과 삶 신용욱은 이승만 대통령의 양아들이라고 소문이 날만큼 신임이 두터웠다. 이러한 총애를 바탕으로 1950년5월, 2대 민의원 선거에서 자유당의 공천을 받아 한민당 제헌 의원 백관수(白寬洙)를 물리치고 고창 을(乙)지구에서 당선되었다. 이어 3대에도 당선되어 고창 지역에 도로개설과 저수지 축조등 많은 지역사업을 벌였다. 하지만 4대 때(1958년)는 민주당 공천을 받아 출마한 홍순희씨에게, 5대 때(1960년)는 무소속 김상흠씨에게 잇달아 패한데다 KNA의 도산으로 결국 파국을 맞고 만다. 자료 : 전북일보 『20C 전북50인』

(신용욱의

일생)

o 1901년 고창군 흥덕면 사천리 외사마을에서 출생 o 고창군 흥덕면 소재 흥덕보통학교졸업 휘문고보 졸업 o 1922년 일본 오꾸리(小栗)비행학교 졸업 o 일본 도오아(東亞)항공전문학교 졸업 o 1933년 미국 실라헬리콥터학교 조종과 졸업 o 1936년 조선항공사업주식회사 설립 o 1942년 조선항공업주식회사 설립 o 1945년 대한민국항공사(KNA) 창립 o 1950년 제2대 민의원 당선 o 1953년 동양인 최초로 3천시간 무사고 비행기록 o 1954년 제3대 민의원 당선 o 1958년 KNA 여객기 납북 o 1962년 사망

② 국회의원 신용남 신용남은 1917년 2월 8일 고창군 흥덕면 사천리 28번지 외사마을에서

의 3남 3녀중 다

섯째로 태어났다. 그가 태어난 집은 마을회관 주변에 위치하며 마을 이장 신현중씨가 거주 하고 있다. 일본 동경중앙대학교를 졸업하고 군정청 사법부 형법과장과 법무부 용도과장을 역임하였으 며 대한국민항공사 취체역사장을 거쳐 제7대 국회의원 후보로 출마 고창 가선거구에서 당 선되었으나 선거무효로 재선거를 실시했다. 그러나 재선거에서도 김상흠후보를 누르고 당선 됐다. 서울에서 호텔을 경영하던 신용욱은 당시 골프왕으로 정평이 나있으며 박정희대통령 의 골프선생이라는 말도 회자되었다. 1963년 12월 17일 개원이 되면서부터 선거법 개정론이 이슈되어 1966년 12월 14일 정당 법과개정법률안이 공고되고 1967년 6월 8일 총선거가 실시되었다. 민주당 신용남후보는 제 5-6대국회의원이었던 김상흠 후보를 12,151표 차로 승리하였다. 그러나 신민당 김상흠후보 와 사회당손명섭후보는 민주공화당의 정규윤을 걸어 당선 및 선거무효소송을 제기 법원이


선거 전부를 무효화하는 판결을 내림으로써 보궐선거를 하게되었다. 정규 선거에 출마했던 자유당 정세환, 통일사회당 손명섭후보는 재출마를 포기 하였으나 정의당의 임균석후보, 자 민당의 손일권후보, 대통후보에 낙선한 오재영후보가 출사표를 던졌다. 선거결과 대중당으 로 재출마한 신용남 후보가 32,563표를 얻어 신민당의 김상흠후보를 3,519표차로 누르고 재당선되었다. (신용남의 일생) o 1917년 2월 8일 고창군 흥덕면 사천리 출생 o 1943년 일본 동경 중앙대학교 법학부 졸업 o 1945년 군정청 사법부 형법과장 o 1948년 법무부 용도과장 o 1960년 대한국민항공사 취체역 사장 o 1967년 제7대 국회의원 o 1985년 대한게이트볼 연합회장 o 1988년 대한교육보험(주)고문 o 2004년 골프교우 50년-한국골프요람기의 서울 CC발간 - 1954년 골프입문 - 1957년 필리핀 출전 - 1957년 홍콩출전 6위 - 1960년 아마추어 챔피언 - 1966년 한양CC챔피언 - 1976년 대한골프이사, 핸디캪위원장 - 1980년 서울 CC이사, 그린위원장 - 1992년 대한골프 고문

신용남생가 (이장 신현중 거주)

③ 독립유공자 신용수(愼鏞秀) 독립운동가 신용수는 흥덕면(벽사면) 사천리 60번지에서 거창신씨인 신희범의 오남 삼녀중 4남으로 1988년 10월 28일 출생하여 1951년 6월 29일 생을 마감하였다.

그는 을사보호

조약이 일제에 의해 강제로 체결되는 국가적 비운을 맞게 되자 1906년 최익현이 정읍군 태 인면 무성서원(武城 書院)내려와 나라를 위하여 함께 할 뜻있는 동지들을 모으자 신용수는 어린나이에 아버지를 따라 합류하였다.

1908년 2월 박도경의병장이 남포에서 군사를 일으

켜 왜군과 싸워 많은 전과를 거두었다. 1919년 3월 1일 고창에서 독립만세 시위를 벌이다 가 일본 경찰에 체포되어 30일간 옥고를 치루게 되었다 한다. 1919년 중국 상해의 대한민 국임시정부에서 국내의 독립운동에 대한 감독과 군자금 모집을 위하여 전주지방에 전북독립 운동감독부를 설치하고 감독 노진룡, 부감독 오의균 등을 임명할 때 고문으로 추대되었다. 정부에서는 고인의 공훈을 기리어 1990년 건국훈장 애족장(보훈번호 19-002021)을 추서 하였다. 1997년 10월 선영인 사천리 란작골에 국가보훈처의 지원을 받아 선생의 부부묘에


추모비를 세웠다.

④ 이산가족 신용대 고창군 흥덕면 사천리 출신의 신용대는 32세 때인 동족상잔의 비극이 일어난 1950년 의 용군으로 입대하면서 북한에서 살게 됐다. 제2차 남북 이산가족 방문단 교환의 일원으로 200년11월 30일부터 12월 2일까지 서울을 방문한 북측 방문단 중 최고령자인 신용대(82) 씨가 1일 평양방송에 등장하여 서울 방문 소감을 소개했다. 신씨는 2차 북측 이산가족 방문단으로 서울을 방문하여 미국 캘리포니아주에 사는 아들 문 제(51), 여동생 인숙 등과 상봉했다. 평양방송에 따르면 평양시 보통강구역에 있는 그의 집 을 찾은 중앙방송위원회 기자와 인터뷰에서 "80이 넘게 살도록 소원은 50년전에 헤어진 귀 여운 아들과 누이동생, 조카들을 만나보는 것"이었다며 "2차 우리(북)측 가족이 친척방문단 의 한 성원이 되어 혈육들과 만나게 됐다"고 말했다. 신씨는 서울에서 가족들과 만나 "사람이란 마무리를 잘 해야한다. 그래야 자식들에게 우리 아버지는 조국을 위해 일하다가 돌아가셨다고 자랑스럽게 이야기 하게된다고 말해주었다"면 서 조국통일의 그날이 오면 가족음악회를 열고 싶다는 의사를 밝혔다. 그는 북한에서 대학을 졸업하고 평양음악무용대학 교수, 학부장, 성악고문을 역임했으며 공 훈예술가 칭호도 받았다고 밝혔다. 출처 : 서울연합뉴스 한동철기자 hdc@yonhapnews.net

5. 산

1) 농

사천리의

면적은 2,318,301㎡로

전 332,027㎡, 답 1,025,588㎡, 목장용지 8,217㎡, 임야

441,148㎡, 대 93,833㎡ 기타 417,488㎡이다. 1980년대부터 주곡인 보리와 쌀 재배에서 벗어나 밭에는 수박, 무, 고추, 복분자, 묘목 등 점진적으로 소득작목으로 변화하여 왔다. 논 농사는 대봇들과 법지들을 중심으로로 한 갈곡천 광역친환경농업단지 조성사업이 100억원 을 투자하여 흥덕농협과 연계하여 2009년부터 2001년까지 추진하고 있다. 수침마을의 공 동육묘장을 비롯하여 흥덕 제하리에 농산물집하장, 웰컴센터 등이 추진하여 친환경농업발전 의 한 획을 긋는 기틀을 마련하였다. 그동안 식량자급을 위하여 다수확영농에서 벗어나 친 환경적으로 쌀을 생산하기 위한 쌀겨 우렁이 농법 스테비아를 접목하여 기능성농산물 생산 을 선도하고 있다.

수침마을 배풍농장에서는 고객을 위하여 믿고 먹을 수 있도록 농업진흥

청, 농업기술센터에서 교육을 받아 우렁이와 스테비아 자연농법을 시행하여 친환경적으로 쌀, 보리, 유색미, 복분자를 재배하고 있다. 스테비아 농업의 특징은 토양에 박테리아를 증 식 시켜 토야으,l 니코틴, 염소 등을 분해하며 연작피해를 방지하고 미네날 성분과 향산화 작용으로 농산물이 싱싱하고 장기간 보존이 가능하다. 농장의 영농일지를 보면 5월 2일에서 10일사이 열침종 싹띄우기를 시작으로 5월 11일부터 30일에는 종자치기, 못짜리 스테비아


어성초 목초액을 두세번 살포하고 6월 1일부터 20일에는 모내기, 우렁이 넣기, 쌀겨뿌리기, 보리베기, 녹뚝풀베기하고 6월 21일부터 7월 10일에는 본답 물데기를 하고 7월 11일부터 8월 15일에는 본답물대 기 기피제 살포, 이삭거름, 목포액스테비아 살포를 하고 8월 16일 부터 9월 30일 까지 논뚝 풀제거, 병 해충방제, 각종 미생물 살포를 하고 10월 5일부터 30 일까지 벼를 수확하고 벼짚 논에 고루펴기, 수확한 벼는 건조한 다음 저온저장고에 보관하 여 필요시 가공한다. 11월에는 보리를 파종한다.

과수는 복숭아 재배 2농가 축산농가는 한

우를 사육하고 있다.

법지들

대봇들

2) 제조업

6. 마을의 조직 고창군 리의 하부조직운영에 관한 조례에 의거 분리에 이장과 반장을 두고 일선행정에 주 민의 의사를 반영하고 주민을 참여시켜 향토발전을 촉진하기 위하여 분리에 새마을개발위원 회를 두도록 규정하고 있다. 또한 새마을 지도자, 부녀회장, 노인회장원이 마을의 기반조직 으로 활동하고 있다. 이장은 리를 대표하며 지역주민의 의견을 수렴 행정기관에 반영, 마을 발전을 위한 자주적이고 자율적업무를 처리, 지역주민 간 화합단결과 이해 조정에 관한 사 항, 지역주민의 편익증진과 봉사를 임무로 하고 있다. 내사마을 이장은 정성열(1982.1.1-1982.12.31), 허형술(1983.1.1-1984.12.31), 윤홍섭 (1985.1.1-1987.12.31), 정성열(1988.1.1-1999.12.31), 허형술(2000.1.1-2001.12.31)이 역임하였으며, 현재는 2002년 1월 1일부터 전영호이장이다. 새마을 지도자는 개발위원장은 , 노인회장 김도중이다.


외사마을은 이장은 유상익(1982.1.1-1995.12.31), 김종환(1996.1.1-1999.12.31), 김종철 (2000.1.1-2007.12.31),이 역임하였으며, 현재는 2008년 1월 1일부터 신현중이장이다. 새마을 조직은 새마을 남자지도자 유상율, 유상익, 강종수(현재), 부녀회장은 한상월. 황금 순, 윤효심, 이정자(현재)이다. 개발위원장은 노인회장은 유상익이다. 수침마을은

이장

오순필(19821.1-1982.12.31),

서동환(1984.1.1-1984.12.31),

오순필

(1985.1.1-1992.12.31), 서동환(1995.1.1-1995.12.31), 오순필(1996.1.1-1999.12.31), 박 용규(2000.1.1-2001.12.31), 현재는 2002년 1월 1일부터 오순필이장이다. 새마을 지도자는

개발위원장, 노인회장은 김재규이다.

도움을 주신분 참고문헌 고창군지 흥성지 우리나라 나무이야기 박영하의 이바락 고창충의사

고창향토문화연구소

2001

신씨와 사천 ���창신씨 영윤공파종회 2002 고창충의사 고창향토문화연구소 hdc@yonhapnews.net

2001


사천리마을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