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효심과 애경의 마을, 벽송리 서동진

1.마을의 위치와 유래 법정리인 신림면 벽송리는 행정리인 벽송리와 서월리로 이루어져 있고, 이 중 벽송리의 자연부락은 용교동과 사실터마을이 있다. 서월리의 자연부 락은 평월리, 대포리, 세터, 서당촌이 있다. 본래 흥덕군 일서면의 지역으로 서, 벽송, 오월리, 또는 오동촌이라 하다가

1914년 행정구역 폐합에 따라

산직동, 세월리, 평월리, 서당촌, 덕림촌, 용교동의 각 일부와 이서면의 신 림촌, 마산리의 각 일부 지역을 벽송으로 병합 했다. 이후 고창군 벽사면에 편입되었다가, 1935년 벽사면이 폐면됨에 따라 고창군 신림면에 편입이 되 었다. 1)벽송리 신림면 소재지에서 서쪽으로 약 3㎞ 지점에 1650년경 천안 전씨가 터를 잡아 입촌 하였고, 본래 흥덕군 일서면의 지역으로서, 벽송, 오월리 또는 오 동촌이라 불렸다. 조선조 제21대 영조 때 효자 송와(松窩) 전덕수(全德秀)(전배수-全培秀)의 8대조(代祖))가 마을 뒷산에서 시묘 살이를 할 때 묘 근처의 소나무들이 송 충이가 심하여 죽어가므로 애통하여 울었더니, 까치와 까마귀 떼들이 갑자 기 날아와 벌레들을 잡아먹었다. 서기1764년경 이곳을 지나던 안집(興德縣 倅 安)이 이 내용을 듣고 마을이름을 벽송(碧松)으로 고치게 했다. 주민 은 천안 전씨 · 창녕 조씨 · 여산 송씨 등 여러 성씨들이 살았다. 2)용교동 벽송리의 두 번째 쯤 생긴 마을로, 벽송리에서 동북쪽으로 약 100m 떨어 진 곳에 15호 정도의 작은 마을이 형성되어 있었고, 마을 앞에 수랑 논과 샘물이 솟아 마을과 마을을 건널 때 불편하여 다리를 설치한 것이 유래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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되어 붙여진 이름이다. 이 수랑 논은 끊임없이 샘물이 솟아서 주민들은 이 샘물을 이용했다. 주민은 여산 송씨 · 려양 진씨 · 남원 양씨 · 함평 노씨 · 수원 백씨 · 청 주 한씨 · 기타 여러 성씨들이 살았으나, 이후 천안 전씨도 정착하였다. 이 용교동의 지형은 구룡농주(九龍弄珠) 형국이다. 3)사실터 일명 대강리(대흥리)라고도 한다. 벽송리에서 약 3㎞ 쯤 서쪽으로 두엄바 위 밑과 원 치산 아래 형성된 부락이다. 일제 때 원치산 한천동에 김두연씨 가 임야를 개간하여 과실수를 심고 주거지를 옮긴 것을 시작으로, 8.15해방 후 유석준씨가 두엄바위 아래 장인 되는 신기엽씨가 조성한 감나무 과수원 을 인수하고 거주지를 건축하여 이주 하였다. 이후 일제 말기에는 보천교의 신도들이 10여 호 넘게 살았다. 지금의 사실터는 서해안 고속도로개발과 인구감소가 됐으나, 상행선과 하 행선 휴게소와 농축산업이 번창하고 있다. 4)서월리 벽송리에서 동북쪽 500m 지점에, 서월리는 1077년경 은진 송씨 ·

주 이씨 · 양천 허씨가 터를 잡아서 입촌 하였으며 아산면 운곡 10리 운양 10리 점이 되었다. 그러다가 마을이 커지면서 1900년경 평월리와 서당촌으 로 다시 불리다가 다시 1945년 광복 후에 서당촌과 평월리의 자연부락에서 한 자씩을 따서 서월리로 개칭(改稱) 하였을 뿐 아니라 대포리와 세터도 동 합되었다. 주민은 여산 송씨 · 신평 송씨 · 평산 신씨 · 전주 이씨 · 동복 오씨 · 주 씨 · 한씨 등 여러 성씨들이 살았다. 고적 · 유적은 철원 주씨 주대현의 처 밀양 손씨가 효열을 하여 정려각을 세웠다. 5)서당촌 용교동 동쪽에 있는 마을로서 큰 서당이 있었다. 6)평월리 대포리 북쪽 길가에 있는 마을로서 세터를 지나 지형이 운중반월(雲中半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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月)형국이다. 2.벽송마을의 입향성씨와 유래 천안전씨로서 시조는 섭(聶)이고,

입향조는 운록(雲祿). 생몰 년대는 미상

이다. 입향년대기는 조선중기(서기 1650년경)이고, 입향지는 벽송리다. 입 향유래는 충남 천안시 풍세면 삼태리에서 중해(仲海)가 신림면 유점으로 낙 향하였고, 6세손 운록이 신림면 벽송리에 이거 16세를 세거하고 있다. 입향 세계는 45세 운록(雲祿) 이하 58세 장종손 배수(培秀)이며, 많은 후손들이 산 좋고 물 맑은 고향땅 벽송에서 태어나, 자신과 국가의

발전을 위하여

경향각지에서 노력하고 있다. 1)전씨 본관의 유래 천안전씨의 본관은 시조 전섭(全聶)이 백제건국에 동참하여 백제개국 십 제공신에 녹적되고, 환성군(환성은 천안의 고호임)을 수봉한 것이 천안전씨 의 득관에 유래가 되어 전해오고 있다. 천안전씨의 기원은 백제개국 원년인 단기 2316년(계묘; 서기 기원전 18 년)에 시조 환성군 전섭(全聶)의 창기 한 이후 2000여 년 동안 동족동성동 본으로 대한민국 성씨순위

21위에 해당된다.

3. 벽송마을의 인물과 행적 1) 효자 전덕수(全德秀) ; 1724. 5. 11~1784. 3. 19. 본관은 천안이고 자는 윤옥(潤玉)이며 호는 송와(松窩)다.

아버지의 상

을 당하고 장지물색을 골몰하던 중 꿈속에 한 노파가 가리키는 곳이 집 뒤 온남-정이다. 이곳은 오좌로 호랑이가 엎드려 있는 형상의 곳에 안장하고 소나무를 심어 3년 시묘 살 이를 하셨다.(전북도지, 향삼강록에 상세하게 기록 됨) 이후 마을 이름을 오월(梧月)리에서 벽송(碧松)으로 고치게 되었으 며 효행비가 마을 입구에 세워져 있다. (9세손-전 배수) 2) 효자 전기원(全基源) ; 1856. 5. 4~1930. 1. 1. 본관은 천안이고 자는 인숙(仁淑)이며 호는 취송(翠松)이다. 부모님 섬김 이 지성이었을 뿐 아니라, 충효의 뜻과 함께 몸을 기르며 형제끼리 우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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돈독하였다. - 전북도지에 상세하게 기록 됨. (현손-전 병오) 3) 효자 전영봉(全泳鳳) ; 1859. 8, 24~1924. 1. 20. 본관은 천안이고 자는 대홍(大洪)이다. 천성이 지성과 효도로 부친병환을 날이면 날마다 하늘에 기도하고 봉양하는 절차에 따라 예를 다 했다.-전북 도지, 흥성지 효행편에 상세하게 기록 됨. (현손-전 종복) 4) 효자 전영좌(全泳佐) ; 1861. 12. 27~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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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관은 천안이고 초휘가 종학(鍾學)이고 자는 선범(善範)이다. 공은 어려 서부터 부모님께 효성이 지극하였다. 집안이 가난했으나 아버지의 병환을 백방으로 알리어 약을 구하여 치료를 하고 하느님께 빌었으나 끝내 회생하 지 못하고 돌아가셨다. 이에 슬픔을 이기지 못하면서도 어머니에게 쏟는 정 성이 지극하였다. 분가한 몸이지만 노모에게 온갖 정성을 쏟아 대소변을 받 아낼 뿐 아니라, 병이 위독해지자 손가락에 단지를 해 피를 드려 연명하게 하고 시묘살이를 하셨다.-흥성지 효자편에 상세하게 기록 됨. (현손-전 제 헌) 5) 효자 전용채(全容彩) ; 1921. 3. 14~1998. 4. 21. 본관은 천안이며, 성품이 본시 효와 애로 부모님을 섬기되 출고반면과 혼 정신성의 예를 빠뜨림이 없었다. 가세 불운하여, 셋째로써 부모를 봉양하였 으나 부모상을 당하고, 3년간 조석으로 성묘의 예를 다 하셨다. 효행비가 마을 입구에 세워져 있다. - 흥성지 효행편. (손-전 기홍) 6) 효열부 탐진안씨(耽津安氏) ; 1853. 8. 11~1914. 5. 22. 천안인 전인호(全仁鎬)의 처로, 시부모를 모시고 시집 온지 10년도 안되 어 남편 상을 당했다. 남편을 따라 죽으려 하였으나, 시어머니 말씀에 어린 새끼를 어찌 양육할까하니. 그 후로 앞 못 보시는 시어머니와 자식들을 지 극으로 키우고 효도하니 참으로 고금에 드문 효부라 감탄하다.- 선국삼강 록, 향삼강록, 흥성지 효부편에 상세하게 기록 됨. (6세손-전 기홍) 7) 열부 여양진씨(驪陽陳氏) ; 1903. 5. 26~ ? 천안인 전영열(全泳烈)의 처로, 청상으로 수절하며 타인과 동기 앞에 슬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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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는 기색을 보이지 않을뿐더러, 오리려 친척들을 위로하니 절개와 정절의 미열은 고금에 드물었다.-흥덕향지 열부편에 상세하게 기록 됨. (손-전 용 택) 8) 효열부 하동정씨(河東鄭氏) ; 1866. 5. 17~1814. 5. 9. 천안인 전영유(全泳維)의 처로, 결혼 한지 얼마 안돼 남편의 병이 깊었으 나 백방으로 약을 구해 간병을 극진하게 하였다. 그러나 온갖 정성으로 기 도하고 뱀탕까지 해 먹여도 효험이 없자 자기 몸의 일부를 약으로 대신하 였다. 이후 미음 죽으로 2년여를 지내다가 돌아가셨다. 소생 없는 청상과부 라 종자(全星植)를 사자로 드리고 시부모 섬김에 아무런 내색을 보이지 않 고 지극정성으로 받들어 모시니 향리에서 효부와 열부라 칭탄하였다.- 흥 성지 효부편에 상세하게 기록 됨. (현손-전 종명) 9) 열부 의령남씨(宜寧南氏) ; 1902. 7. 15~1988. 9. 28. 천안인 전래식(全來植)의 처로, 성혼 후 얼마 안 되어 남편 상을 당하니 나이 젊고 소생이 없었다. 남편 따라 죽기를 결심하고 목도 메고 물에도 빠 졌으나 집안사람들이 구출하여 예를 다하였다. 상장을 치르고 철석의 심장 으로 50여년 후, 상위에 조카(전용술)로 입후하여 가도를 일으켜 세우니, 향천이 있고 사적을 기린 열녀 행적비가 벽송리 뒤에 있다.- 흥덕향지 열 부편. (증손-전 종관) 10) 열부 안동권씨(安東權氏) ; 1930. 3. 22~ ? 천안인 전용판(全容判)의 처로, 6.25동란 때 혈육 한 점 없이 청상으로 수 절하며, 동기 앞에 항상 밝은 모습으로 꿋꿋하게 절개 지킨 삶이었다. 이후 현대인들에게 귀감이 되어 효·열기적비가 마을 입구에 세워져 있다.- 흥덕 향지 열부편에 상세하게 기록 됨. (손-전 지용) 11) 전 종식(全宗植) ; 1893. 9. 7~1950. 8. 16 본관은 천안이고 자는 태화(泰化)이며 호는 담광(澹光)이시다. 성품이 자 상하고 촉명 하여 자녀교육을 위해서 1935년 서기봉(徐基奉)선생을 모시어 공부방을 만들었다. 이후 주위의 권고를 받고, 1939년 서당촌에 해암리 주 태엽(周泰燁)씨와 간이학교를 공동 설립하였다. 그 이후 1945년 신림보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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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교에 이관 후, ‘신림보통학교벽송분교’로 운영하였으나 1950년 6.25사변 으로 인하여 폐교가 됐다. 문중재각 축조과정에서 부지 물색하는데 어려움 을 당하자, 벽송리 산42번지의 임야(16,868㎡)를 종산과 재각건축부지로 쾌척하였다. (현손-전 승민)(1~11./전흥중)

12)근촌 백관수(1889~1951) 서당이 두 곳이나 있는 벽송마을에서 공부한 학생 한 분을 소개한다면 근 촌 백관수가 있다. 성내에서 이곳까지 유학을 온 근촌은 독립운동과 언론, 교육, 정치가이인 인물일뿐더러 이 마을의 김해 김씨 규수를 맞아 결혼도 하였다. 근촌은 생각과 행동이 대범할뿐더러, 확실한 국가관으로 보는 사람 에 맞추어 계몽(啓蒙)운동을 게을리 하지 않았다. 근촌은 벽송리에서 공부만한 것이 아니라, 사람들에게 이제는 한문만을 배워서는 외세를 이길 수 없다고 설득하기를 반복하였다. 그리고 여러 날 마을을 떠났다가 다시 돌아와 머리를 깎자.

신학문을 배우자고 마을 사람

들에게 설득하였으나, 정작 따르는 사람이 없자 한탄하며 마을을 떠나갔다. 1948년 5월 10일 제헌국회 선거 때 유세차 마을을 찾아와 하는 말씀이, 이곳은 내 꿈이 잉태한자리요. 내가 글을 읽고 뛰놀던 곳이요.

내처가가

있는 곳입니다. 내가 떠난 후 항상 잊지 못했으나 이제야 찾아오니 죄송하 고 감회가 새롭습니다. 하시면서, 마을 분들의 이름과 대고를 한분 한분 부 르면서 담소를 나누었습니다. 벽송리 사람들은 이런 오지에서 공부한 백관 수선생을 후손들에게 자랑스럽게 이야기 하고 있다. 이런 연유에서 인지는 몰라도 이곳 출신들이 국가공무원이나 일반회사에 근무하는 분들이 많은 편이다.(이용술)

4. 마을의 문화유적과 유물 ☞벽송리의 지석묘【묘】 벽송리의 587-1에 청동기시대 지석묘는 서해안 고속도로 상행선 고인돌 휴게소에서 남쪽으로 약 100m 전방의 논둑에 지 석묘의 크기는441×417×153㎝로서, 평면형태는 방형, 단면은 장방형을 띠 고 있다. 장축은 북동-남서방향이며 5개의 지석이 확인된다. 이미 도굴이 이루어져 하부가 움푹 파헤쳐진 상태이다. 현재 이 주변에서는 몇몇 석재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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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눈에 띄지만 논에 묻혀 있어 정확한 상태는 알 수 없다. ☞밀양손씨 정려각【각】벽송리의42-1에 밀양손씨 정려각은 서당촌마을 진입로 우측에 위치한다. ‘광무8년 6월(1904년)’에 세워진 호조참판 주대현 의 처 밀양 손씨의 정려각으로, 정면 1칸의 팔작지붕을 하고 있으며 4개의 기둥이 지붕을 받치고 있다. 정려각 안에는 밀양 손씨의 효열을 기리는 비 가 세워져 있고, 3개의 정려각 현판이 결려있다. 현재는 담장이 무너지고 외문만 남아 있다. 원광대학교 마한백제연구소, 2000. 『2000 가을착수 경 지정리사업 예정지구 문화유적지표조사보고서』전북대학교 박물관, 1984, 『고창지방문화재지표조사보고서』참조 ☞유물산포지원삼국【유물분포지】벽송리의 1049번지에 원삼국 유물산포지 는 서당촌마을 북쪽 해발 48m의 저평한 구릉지대에 위치하는데, 구릉의 동 쪽과 서쪽은 각각

몽사와 인삼밭, 묘목밭, 대규모의 수박밭 등이 조성되어

있어서 전체적으로 삭평이 심한 상태다. 이곳에서 수습된 유물은 연질 타날 문토기편, 경질타날문토기편 등으로 고른 분포를 보이고 있다. 원광대학교 마한백제연구소, 2000. 『2000 가을착수 경지정리사업 예정 지구 문화유적지표조사보고서』 5.벽송리의 지명과 유래 ☞한세정【우물】드렁잇골의 구렁진 곳에 있는 샘으로 크고 깊은데 물이 대단히 차 여름에는 목욕터로 유명하다. ☞광산김씨 묘소【묘】평월리에서 서쪽으로 200m 지점에, 다른 지역의 광 산김씨 묘소를 최근에 옮겨 조성되었다. ☞당산-보【보】벽송 서쪽에 있는 보다. ☞동을랑-제(서전제)【못】서당촌 앞에 있는 못으로, 임진왜란 때 공사를 맡아하던 이의 이름을 붙여 ‘둥을랑’이라 부른 것으로 추정된다. 서당촌 앞 이 되므로 서전제라고도 한다. ☞둔-터【들】벽송 남쪽에 있는 들로서 임진왜란 때 이곳에 진을 치고 싸 웠다 하고, 큰 장수 골과 작은 장수 골의 논 밑에 있는 약 50마지기의 논 을 말한다. ☞큰 장수 골【들】큰 장수 골에 있는 20여마지의 논을 말한다. 본래 이곳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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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 논들은 약 80마지기였으나 지금의 장수재를 막아 위의 논을 큰장수 골 논, 장수재 밑 40여 마지기의 논을 방죽 밑 논이라고 한다. ☞두룡골 논【들】황새 골과 나들이의 사이에 200마지기의 논으로 드렁이 처럼 길게 뻗은 들을 말한다. ☞당산리들【들】당산나무가 있어서 마을 이름을 당상리라고 하고, 그 앞에 있는 100여마지기의 논들을 말한다. ☞뒷들논【들】서당마을 밭쪽에서 사실터 쪽으로 이어지는 100여마지기의 논을 말한다. ☞드렁잇-골【들】둔터 동쪽에 있는 들로서 지형이 드렁이와 같은 형국이 다. ☞물방앗-뜸[수침]【마을】새터 북쪽에 있는 마을로서 마을 앞 내에 물레 방앗간이 있었다. ☞방죽밑 논【들】동월랑재 밑에 200여마지기의 논을 말한다. ☞벽송리서당【서당】 전종식(全宗植),(1893. 9. 7~1950. 8. 16)은 1937년 에 서기봉(徐基奉)선생을 목포에서 초빙하여 서당을, 1942년에

해암리 주

태엽(周泰燁)씨와 서당촌에 간이학교를 공동설립 하였다. 이후 1947년에 신림보통학교에 이관 ‘신림보통학교벽송분교’로 2~3년간 운영하다가 1950 년 6.25사변으로 폐교됐다. ☞산직-뜸[산직촌]【마을】새-터 옆 산 밑에 있는 마을로서 산지기가 살았 다고 한다. ☞산직-촌【마을】산직 뜸. ☞삼일-치¹【마을】사실-터 아래에 있는 마을이다. ☞삼일-치²【고개】사실-터 마을이다. ☞새-터【마을】평월의 북쪽 길가에 새로 된 마을이다. ☞서울【마을】서당촌과 평월리 사이에 있는 벽송리에 있는 마을이다. ☞수-침【마을】물레방앗 뜸 ☞신-평【들】벽송 서쪽에 새로 된 들이다. ☞신평-굴【골】벽송 북쪽에 있는 골짜기이고 신평 위가 된다. ☞신평굴-잔등【등】신평굴에 있는 작은 산등성이고 높이가 55m 쯤이다. ☞오동-촌【마을】벽송리. ☞오월-리【마을】벽송리. ☞전씨 재각【터】계당령에서 서쪽으로 자라머리나 반달 같은 산등이 있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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데, 좌측으로 한조-등이고 우측으로는 고작-등이다. 동쪽으로 두 산맥이 뻗 는데 한쪽은 고작-등이고, 한쪽은 용교동을 두른 백일홍-등이다. 자라머리 -터에 자리한 전씨 재각은 서쪽으로 들이 있고, 이 들은 남북으로 길게 뻗 어 고창읍과 부안면을 경계하고 있다. 재각에는 천안 전씨 위패가 모셔져 있다. 이 곳의 지명은 승판-곡이었으 나, 1900년경에 승판-등으로 변경되었다. ☞전씨 묘소【묘】벽송마을회관에서 북쪽 100m 지점에 천안전씨 묘소가 있다. ☞전씨 碑【비】벽송마을에서 동쪽 130m 지점에 천안전씨 유래와 효열비· 열녀비가 있다. ☞자라-바위【마을】화등산보 아래쪽에 있는 바위로서 모양이 자라와 흡사 하다. ☞장석지-보【보】벽송리에서 800m 남서쪽으로 장석굴 쪽에 있다. ☞자라-보【보】자라바위 위에 있는 보다. ☞자라-골【골】벽송 동남쪽에 있는 골짜기다. ☞황새골논【들】황새등 밑에 100여마지기의 논을 말한다. ☞화등-산【산】벽송 남쪽에 있는 산으로서 진사 김씨의 묘가 있는데 화등 과 같은 명당이다. ☞화등산-보【보】화등산 아래에 있는 보다. ☞화등-산【산】화동산 위 와 중복 ☞필봉-등【산】승판곡과 벽송동의 사이에 서남간에서 동북간으로 뻗은 산 등으로 마치 붓의 모양과 흡사하여 이름 지어졌다. 전씨 문중의 선산으로 제각이 있고 그 산 끝자락에는 마을회관이 있다. 6.마을의 이야기와 풍속 서기봉선생(무안출신)을 모시고 1935년 여름 어느 날, 마을모정에 길손이 찾아와 좀 쉬어가자고 청했다. 허락하고, 마을 주민들은 길손의 해박한 이야기에 해가 지는 줄을 몰랐다. 이때 전경중씨 조부 전종식 어른이 우리 집에서 유숙하고자 청하고 이야 기를 하다보니, 신학문과 애국정신이 넉넉하여 연유를 묻고,

우리 마을에

서 어린아이들을 공부시켜 줄 것을 청했다. 이에 쾌히 승낙하여 바로 공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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방을 마련하였다. 어린이뿐만 아니라, 생활이 어려운 사람까지 공부를 시키 다보니 인근 사람들까지 몰렸다. 이에 공부방 확충을 위해 뜻을 같이 하는 분들과 상의한 끝에,

서당촌

주태엽씨 소유의 산에 간이학교를 1939년에 세웠다. 교육 내용은 신학문과 민족교육을 목표로 해 오다가 1945년 8월 15일 해방을 맞아 신림초등학교 에 이관됐다. 이에 신림초등학교벽송분교로 운영하다가 1950년 6월 25일 사변으로 폐교되었다. 그 이후 학교건물을 뜯어다가 평월리 물래방앗간을 지었다. 서기봉선생을 두고 벽송리 사람들은 독립운동을 하다가 벽송리까지 온 분이 아닌가 하고 지금도 이야기하고 있다.(이용술) ☞두엄바위(범 바위) 신림면 벽송리와 아산면 운곡리를 경계로, 서산 중심봉우리에 있는 이 큰 암석은 멀리서 보면 달리는 버스 같기도 하고, 가까이서 보면 투구를 쓴 장 군 같기도 하다. 그리고 밤에 보면 호랑이 같기도 하여 범 바위라고 불린 다. 바위엔 솔개와 부엉이를 비롯한 새들의 둥지가 있고. 바위 아랜 살쾡이, 너구리, 호랑이 굴도 있었다. 그래서 마을사람들은 달래, 칡, 산나물을 캐러 갔다가 호랑이가 먹다 남은 고기를 가져다 먹었다고 한다.(전극중) ☞빈대절-터 서산에 자리한 부안면 백운리 쪽의 절터로, 그 모양이 빈대의 모습과 같 다하여 붙여진 이름이라고 하나, 일설(一說)에는 절에 빈대가 서식(棲息)하 고 있어 스님들이 시달림을 받아 붙여진 이름이라고 한다는 구전(口傳)이 있었다. 그곳에는 벽송리를 길지로 여겨 정착한 천안 전씨

후손인 운자 록

자로부터 그 후손 창자 향렬까지 10여 내외분의 묘소가 모셔져 있었으나, 서기1900년 경(年頃) 지금(只今)의 학조동(鶴鳥洞)(한조등(鷴鳥嶝-황새골)) 과 승판등(承判嶝)으로 모두 이장(移葬)이 되었다.『향토소고』전경중 ☞백일홍-등(嶝) 용교동의 뒷산을 말한다. 옛날 그 곳에는 백일홍 나무들이 군락을 이루어 서 붙여진 이름이라고 하고,

작은 마을도 있었다고 하나 근거는 없다. 이

근처에 방죽이 있었는데, 샘물로 이용되었을 가능성이 크다. 이 또한 근거 는 없으나 다만, 동으로 뻗은 산등성에는 큰 고분이 여러 기가 있었음을 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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때 호족들이나 부호가 살았을 것으로 추정된다. 백일홍-등 서쪽 용교동 뒷 산에는 천안 전씨 소문중의 산소가 있다.『향토소고』전경중 ☞서산 호남산맥의 방장산이 서쪽 관은정을 지나 원치산과 사실터를 지나는 2㎞ 의 산맥이다. 그리고 서산 아래로 서해안 고속도로가 지나고 있다. 서산에 는 6.25전까지만 해도 새 절이 있었으며 이 절은 빈대절 이었다고 한다. 그 러나 지금은 터만 남았다. 그 밖에 두엄바위, 큰골, 작은골, 대우게, 넉덜, 배운재(백운재), 화실봉(동학란의 전적지)이 있다. 당산리에서 서산 넉덜로 좌우경계를 따라 신림면 벽송리와 부안면 운양리 로 나눤다. 그리고 서산의 정상을 경계로 아산면과 경계를 이룬다. ☞온남-정 벽송 뒤 서쪽 산 밑에 있는 샘으로, 조선조 영조 때 효자 전덕수가 아버 지의 상을 당하여 묘자리를 찾고 있던 중 노인의 현몽에 따라 이 샘을 발 견하고 샘 위쪽에 묘를 썼다. 그리고

바위틈에서 물이 새어 나왔다.

이 온남정은 옻나무가 자생하고 촌락이 생기면서 칠목정이라 불리던 것이 전씨들의 묘역으로 단장되어 있다. 서산에서 온남정을 보면 호롱불처럼 보 여 화등-산이라고도 부른다. ☞양조장-터 평월리경노당에서 남쪽으로 70m 지점에 이기춘씨가 1970년대에 운영하 던 양조장이 있었으나 지금은 터만 남았다.

이 양조장은 2000년경에 임리

로 이사를 하였으나 지금은 그 마저도 중단된 상태다. 이기춘씨는 양조장으 로 번 돈을 마을과 신림중학교에 장학금과 땅을 기증했다. 그래서 평월리와 신림중학교에 이기춘의 공적비가 있다.(송기홍) ☞칠성바위 승판등에서 벽송리로 내려오는 산등성이에 큰 바위가 있다. 풍수지리에 의하면, 이 마을의 천륭(天隆)에 있는 큰 바위가 바로 칠성바위라고 한다. 마을사람들은 이를 영험하게 믿고, 그 곳에 가서 기도를 올리거나 제(祭)를 지내며 소원을 빌었다. 그리하여 득남을 하면 그 이름을 쇠바위 또는 바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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석(石)자를 넣어 이름을 지었다고 한다. 7. 마을 현황과 생활상 1) 백송리의 인구와 마을조직 (1)백송리 인구현황(2013. 5) 마을명 벽송 서월

세대 49 62

총인구 87 121

남 46 57

여 41 64

(2)벽송리 마을조직(2013. 5) 마을별 벽송 서월

이장 진백규 송한섭

지도자 김락봉 김신철

마을 조직체 부녀회장 안효남 김삼순

개발위원장 이용술 송기홍

(3)백송리 역대이장 현황(2013. 5) 마을별 벽송마을 역대이장 벽송리 2000~2001 2002~2003 2004~2005 2006~2007 2008~2009 2010~2011 2012~현재 조희문 조희문 조희문 진백규 전일중 진백규 진백규 송한섭 서월리 송한섭 김석순 김석순 송한섭 송한섭 송한섭

2)마을 환경과 성씨별 거주 현황 (1) 마을 환경 벽송리의 크기는 총면적 389.7㏊이며,

그 가운데 답 97㏊, 전 53.4㏊,

임야 162.8㏊, 대지 8.2㏊, 기타가 68.3㏊이다. 벽송리는 서산 사실터에서 동쪽으로 평월리까지 약 5㎞안에 마을을 형 성하고 있다. 산맥은 곧 일어나 방장산과 서산으로 이어져 있고, 그 산봉우 리 위로 하늘이 지붕을 이루고 있다. 마을의 길마다 굽이굽이 들고 나 옛길 을 유지 하고 있으나, 서해안고속도로와 23번국도 옆으로 상가들이 계속 늘고 있다. (2)성씨별 거주현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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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벽송리의 성씨별 분포도는 강씨2, 고씨1, 김씨5, 노씨1, 남씨1, 박씨2, 서씨1, 손씨2, 송씨2, 유씨3, 이씨3, 안씨1, 임씨1, 전씨18, 조씨3, 진씨2, 허씨1 등 49세대다. -서월리의 성씨별 분포도는 강씨1, 공씨1, 기씨1, 김씨12, 나씨1,

문씨

1, 박씨2, 백씨1, 송씨4, 신씨5, 안씨1, 양씨1, 오씨3, 유씨6, 안씨1, 이씨4. 장씨1, 전씨2, 정씨2, 조씨7, 주씨2, 한씨2, 허씨1, 홍씨1, 황씨1 등 62세 대다. (3)벽송리 거주자 전종수(농업,49세) 손관문(농업,41세) 박금순(가사,78세) 전효진(학생,18세) 전혜정(학생,16세) 전재영(학생,12세) 박계순(가사,73세) 진년수(농업,86세) 전극중(교감,59세) 전지용(학생,19세) 전용일(농업,84세) 조연임(가사,80세) 전석중(농업,73세) 김남임(가사,76세) 고임순(가사,78세) 서금성(농업,49세) 박문숙(농업,46세) 서성원(유치원,3세) 조인녀(가사,78세) 전치중(농업,46세) (

) 전현호(유치원,3세) 전용학(농업,78세) 이영숙(가사,68세) 이정

순(가사,70세) 김옥순(가사,78세) 전용백(가사,92세) 이경숙(가사,80세) 강 덕순(가사,80세) 유재열(농업,74세) 박영희(가사,70세) 이용술(농업,74세) 전선례(농업,72세) 전용윤(농업,73세) 김순자(가사,69세) 전중선(농업,42세) 전종열(농업,72세) 박순복(농업,62세) 전용규(농업,85세) 김금순(가사,80세) 전용훈(농업,78세) 유순례(가사,75세) 노순녀(가사,85세) 전용필(농업,80세) 이종이(가사,77세) 송금순(가사,78세) 김하연(농업,84세) 김귀남(가사,78세) 김락봉(49세,농업) 윤혜정(41세) 김은섭(유치원,7세) 임종연(농업,70세) 송 기수(농업,76세) 양양례(농업,65세) 김송자(농업,70세) 유우순(가사,76세) 진백규(농업,64세) 변봉순(농업,60세) 조희문(농업,73세) 주정님(농업,67세) 전상용(농업,54세)

안효남(농업,48세)

전아람(회사원,25세)

전다영(회사

원,23세) 전은주(대학생,21살) 전다은(고등학생,19살) 김홍술(농업,64세) 지 영애(농업,60세) 강영대(농업,60세) 김영애(농업,57세) 조기동(농업,86세) 심일순(가사,76세) 조상호(고등학생,19살) 조형호(고등학생,17세) (4)대포리 거주자 정운수(농업,78세) 백행기(농업,72세) 나정순(농업,67세) 조맹년(가사,91세) 김신례(가사,85세) 조선순(농업,77세) 송기홍(농업,68세) 김삼순(농업,64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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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창용(농업,72세) 순분례(농업,67세) 조한근(농업,80세) 문막내(농업,74세) 김석순(농업,70세) 신영자(농업,64세) 조덕행(가사,59세) 조권행(가사,52세) (5)서당촌 거주자 송한섭(농업,70세) 유용숙(농업,67세) 강춘례(가사,81세) 봉순임(농업,93세) 유삼순(노업,79세) 신동하(농업,73세) 윤옥자(농업,73세) 이후옥(가사,78세) 유채순(가사,91세) 정난순(가사,77세) 김동균(건설업, 59세) 공정학(건설 업,48세) 김재봉(농업,80세) 김송월(농업,65세) 나복례(가사,81세) 이재호 (가사,79세) 한범석(농업,65세) 김공순(농업,62세) 김문식(농업,53세) 전순 례(농업,50세) 김옥순(가사,85세) 오향택(농업,72세) 김순복(농업,73세) 신 동곤(음악,45세) 김용옥(농업,79세) 전점례(농업,76세) 황정순(농업,80세) 장재엽(농업,81세) 안옥주(귀농,55세) 김경애(귀농,51세) (6)세터 거주자 박태순(농업,75세) 김옥순(농업,68세) 송재운(농업,81세) 김금자(농업,75세) 송진열(농업,65세) 신경순(농업,64세) 유재길(농업,57세) 강해경(농업,55세) 양성만(농업,74세)

최순자(농업,70세)

조영환(건설업,73세)

조희만(건설

업,50살) 변미자(세무서,45세) 허명석(가사,80세) (7)평월리 거주자 김성환(농업,76세) 박순자(농업,73세) 이길순(농업,75살) 김수용(농업,65세) 김순애(농업,44세) 김기수(농업,72세) 강상례(농업,44세)정정수(농업,77세) 김복덕(농업,80세) 한문현(농업,86세) 공정님(농업,78세) 오문상(도자기,58 살) 이영숙(도자기,53세) 기도금(농업,75세) 김신철(농업,44세) 신영복(농 업,86세) 문순례(농업,80세) 유이순(농업,76세) 김순덕(농업,84세) 유금순 (농업,76세) 주보영(농업,53세) 조해군(임업,72세) 조순앵(임업,72세) 조상 자(농업,70세) 김영준(농업,50세) 유병록(농업,38세) 정신애(농업,32세) (8)출향인사 송만용(회계사,39세,대포리) 김용운(면장,58세,평월) 주수환(교장,55세,평월 리) 조준범(농협중앙회차장,50세,대포리) 송창수(경사,41세,서당촌) 장준영 (삼성화재기획실장,57세,서당촌) 오승진(원자력발전소과장,39세,대포리) 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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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운(은행원,40세,평월) 김주수(국민은행본부장,55세,서당촌) 이은주(음악교 사,41세,서당촌) 김형관(회사원,29세,서당촌) 김연상(건설업,58세,서당촌) 신 동훈(중령,70세,서당촌) 김구태(소령,51세) 전용국(대령,79세,벽송) 전종석 (대령·교수,58세,벽송) 전용기(중령,69세,벽송) 전용조(중령,65세,벽송) 전관 중(해병원사,59세,벽송) 전재현(변호사,51세,벽송) 전윤중(중령, 50세,벽송) 전선일(행정학박사,58세,벽송) 전종봉(교수,58세,벽송) 전재완(공학박사,48, 벽송) 전용익(총등교장,85세,벽송) 전경중(중등교장,81세,벽송) 전일행(행정 사무관,75세,벽송) 전현식(행정사무관,58세,벽송) 전용빈(법원사무관,55세,벽 송) 전극중(중등교감,59세,벽송) 전흥중(면장,68세,벽송) 전권중(전매서장,80 세,벽송) 전안중(은행지점장,54세,벽송) 전성중(은행지점장,50세,벽송리) 진 년수(의무대위·예비군중대장,86살,벽송) 이용술(초등교감,77세,벽송) 양윤선 (국무총리실근무,57세,벽송) 유홍종(대령,76세,벽송) 전대중(농협지부장,58 세,벽송) 전금중(한전지점장,55세,벽송) 전풍중(초등교감,59세,벽송) 전민식 (경위,59세,벽송) 전성룡(중등교장,59세,벽송) 전용배(근로복지공단,58세,벽 송) 전선식(관세청과장,58세,벽송) 3)벽송마을의 기관과 시설 *벽송마을회관 벽송리회관은 공사비 삼천이백만원과 부지기증으로 2001년 4월19일 기 공식을 갖고, 동년 7월17일 준공식을 가졌다. 회관관리자는 진백규리장님이 다. *백송리회관 건립 기념비 방장산(方丈山)너머 옛 된 해넘이 복가(福家)란 손님햇살에 모셔다 앉힌 터 육당령(陸堂嶺)용트림이 치닫다 머무는 끝자락 포유형(苞乳形)터는 지세 (地勢)가 겹겹이 껴안아 수려(秀麗)하고 주변일터는 옥터(沃攄)로 인심마저 좋은 벽송마을이 자리하니 천추만대(千秋萬代)의 삶의 터라 예로부터 충효 (忠孝)와 석학(碩學)의 인걸이 많이 배출하는 이 터에 효심(孝心)과

애경

(愛敬) 그리고 두레의 마음이 어우러질 회관(會館)이 준공(竣工)되었도다. 온갖 어려움 이겨내고 숙원(宿願)을 이룩한 이 의지는 승화(昇華)된 화심으 로 영원하기를 기원하며 유관인사(有關人士)들의 업적을 선양후세(宣揚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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世)에 귀감(龜鑑)이 되도록 이 글을 남긴다. 2001. 7. 글. 우재 전경중 공사개요 1.공사명 : 벽송리회관건축 2.시공자:전풍야 3.공사비:삼천이백만원 4.기공일:2001. 4. 19 5.준공일:2001. 7. 17 벽송리회관 건립추진위원회 리장:조희문 위원장:전용옥 총무(개발위원장):전일중 부지기증자:전길중73㎡ 전원식(효식)136㎡ 마을회(윤병일):2.445㎡ 2001. 7. 17 *벽송모정과 당산나무 벽송모정은 벽송마을회관에서 서쪽으로 100m 지점에 있다. 아마 연대기 는 1900년 쯤 지어진 현존하는 모정이다. 기둥과 서까래가 구부진채로 세 워지고 올려졌을 뿐 아니라 세월의 흔적이 어우러져 있다. 벽송모정 남쪽에 당산나무가 있다. 옛날의 당산나무는 세월의 흔적만 남 았고, 지금의 당산나무는 1985년에 전용술씨와 서현옥씨가 식수하여 마을 주민들에게 휴식공간을 제공하고 있다. *용교모정 용교마을 뒷 잔등에 있다. 용교모정에서 보면 서해안 고속도로와 북쪽의 변산반도, 줄포만, 갈곡천, 사실천이 보인다. 가깝게는 법지리와 벽송마을이 한 눈에 들어온다. *서월마을회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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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월마을회관은 1982년 5월 8일에 군비 2,000만원과 주민 모금 2,000만 원으로 준공하였다. 마을회관 안 팍은 마을지도자들의 경노사상의 모습이 또렷하다. 회관관리자는 송한섭리장님이다. 응급상황이 발생할 경우 & 일곱 가지 수칙 ① 외출할 때는 내복, 목도리, 모자, 장갑 등의 방한용품을 꼭 착용하고, 옷 을 여러 겹 껴입어 갑작스런 온도차에 대비하세요. * 혈압이 높거나 심장이 약한 사람은 특히 여러 부분의 보온에

신경 쓰세

요. ② 손가락, 발가락, 귓바퀴, 코끝 등 신체 말단부위의 감각이 없거나 창백해 지는 경우에는 동상을 조심하세요. * 동상에 걸렸을 때는 꼭 쬐는 신발이나 옷을 벗고 따뜻한 물로 세척 후 따뜻하게 보온을 유지한 상태로 즉시 병원으로 가십시오. ③ 이른 아침 야외 운동을 피하시고, 한낮에 준비운동을 충분히 한 후 하는 것이 좋습니다. ④ 난방기구나 전열기를 사용하실 경우 일정한 시간마다 환기를 시켜주시 고 외출 시에는 꼭 꺼주세요. ⑤ 장시간 집을 비우게 될 경우에는 수도꼭지를 조금 열어 물이 흐르도록 하여 동파를 예방하세요. ⑥ 보일러 배관 등이 얼었을 경우 따뜻한 물이나 헤어드라이어 등 온열기 를 이용하여 서서히 녹이세요. ⑦ 폭설 · 한파시 고립이 예상되는 어르신이 주변에 인복지과 또는 독거노인종합지원

있는 경우, 시군구 노

센터(1661-2129)로 연락주세요.「회

관 안 거실 벽면」 *평월마을경노당 1978년도에 평월마을회관으로 건축되었으나, 지금은 경노당으로 사용하 고 있다. 경노당 입구에는 그 당시에 세운 ‘평월마을헌장비’가 있다. *평월마을헌장비 우리들은 정성과 노력을 다하여 살기 좋은 평월리의 복지 농촌을 건설 하고자 합니다. 이는 오늘을 사는 우리자신들의 행복의 터전을 개척할 뿐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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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니라 천만대 후손들이 한결같이

제 고장을 기리면서 살아갈 수 있는 낙

원의 바탕을 만들어 주기위한 것으로 이에 긍지를 가지고 여기 헌장을 제 정합니다. ① 온 리민이 한 가족처럼 온 마을이 한집안처럼 서로 도와 즐겁게 살 아갑시다. ② 노인들을 지성스리 받들고 청소년들을 슬기롭게 길러서 밝은 앞날을 창조합시다. ③ 부지런히 일하고 꾸준히 노력하여 너나없이 알차게 살아갑시다. ④ 맑은 마음으로 깨끗한 거리 튼튼한 몸으로 착실한 활동 오붓하게 행 복을 가꾸어 갑시다. ⑤ 아름다운 우리 마을 산천을 더욱 더 곱게 푸르고 기름지게 가꾸어서 복된 고향을 만들어 갑시다. 평월마을 일동. 1978년 8월 *평월정 평월마을경노당에서 남쪽으로 100m 지점에 ‘평월정’이 있다. 2002년 10월 19일에 군비 1,000만원과 주민의 성금으로 지어졌다. *세곡사기관 흥덕에서 고창으로 가는 우측 국도 23번 80m 지점에 있는 세곡 사기관 은

오문상씨가

각종

도자기와

사기그릇을

취급하고

있다.

010-4180-6623 *삼성자원 신림면 벽송리 산 10번지에 있다. 고철, 비철 매입. 철거 등 각종 중고자 재를 이건정씨가 취급하고 있다. ☏ 010-3116-4630 *핸드 메이지 미용실 삼정자원에서 23번국도 70m쯤 지점에 있다. 미용실을 홍성술씨와 변순애 씨가 운영하고 있다. ☏ 564-6407 *대동카 공업사 핸드 메이지 미용실에서 고창 쪽으로 70m쯤에 있다. 조희철씨가 각종 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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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계와

차량을

수리하고

있으며,

겨레공인중개사도

겸하고

있다.

011-495-2083 *평월리 참정미소 유택진씨 부자가 정미소를 운영하고 있다. ☏010-7177-4692 *김낙봉 김낙봉과 윤혜경은 부모님을 모시고 1남을 둔 복합영농인이다. 80,000 여 평의 논밭에 벼 · 포도 · 배 · 복분자 · 감나무 · 나무 · 고추 등을 부 부가 경작하고 있을 뿐 아니라 마을의 소농가와 노인 농가를 챙기고 있다. ☏010-9446-5711 *전종주 전종주와 손관문은 어머니를 모시고 1남 2녀를 둔 복합영농인이다. 40,000여 평의 논밭에 벼 · 포도 · 배 · 복분자 · 감나무 등을 부부가 경 작하고 있을 뿐 아니라 마을의 대소사를 챙기고 있다.☏010-2526-4282 *벽송양돈장 김홍술씨가 벽송회관에서 남동쪽으로 900m 지점에 4,000여마리의 돼지 를 사육하고 있다. ☏011-654-4725 *성일농장 호암마을에서 부안면쪽으로 100m 지점에 있다. 조영권씨가 개를 키우고 있다. ☏ 010-5239-3829 *대림환경 성일농장에서 부안면쪽으로 200m 지점에 있다. 대림산업은 폐기물을 취 급하고 있다. ☏561-5771~2 *고인돌수목원 대림환경에서 길 건너 쪽에 있다. 소나무 등 다양한 나무들을 취급하고 있다. ☏ 011-652-216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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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강산 복분자영농조합 수강산 복분자영농조합은

고인돌수목원 길 건너에 있다. 복분자와 오디

를 발효시켜 식품을 만들고 있다. ☏ 010-4343-8908 *고창서해안복분자주 고인돌 휴게소에서 북쪽으로 50m 지점에 있다. 영농조합법인으로서, 송지 희씨가 대표로 있다. 고창 복분자&블루베리와인 선운은 원적외선이 방출되 는 ‘황토와 천연옥으로 만든 토굴속’에서 전통옹기항아리로 발효와 숙성을 시킨 최고급 와인이다. ☏ (063)564-7300. (02)558-4088. *고인돌 휴게소 서산자락에 자리 잡은 고인돌 휴게소는 상행선과 하행선 있다. 상행선과 하행선의 땅 면적은 벽송리의 땅 78%이다. 그러나 상행선은 고창읍 신월리 이고, 하행선은 벽송리로 되어 있다. 미래장소의 길. 시/이가림 넓고 따스한 맨가슴의 남녘 땅 여기 잠시 머물다 가는 그대여 푸르른 벌판에서 풍겨오는 흙내음과 눈부시게 쏟아지는 햇살 한 아름 그대 품안에 넉넉히 담아 가시라 어찌 동트는 새벽만 찬란하다 하랴 타는 서해의 황금노을 또한 줄기찬 미래 창조의 내일을 약속하는 찬연함으로 빛나지 않은가 새 천년 역사의 길이 뚫려 우리 겨레 다시금 대약진의 발걸음이 시작 되었나니 남북 끊어진 모든 길들 한

핏줄로 이은

더불어 노래하는 평화세상 열리리라 바야호로 황해를 넘어 세계로 울려 퍼지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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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1세기 첨병의 나팔소리 또 하나의 힘찬 국토의 대동맥 뛰는 소리 우리 모두의 가슴마다에 파도쳐 출렁이네 2001년 12월 21일 ▣ 자료조사에 도움주신 분 도와 주신분 진백규(벽송리리장) 송한섭(서월리리장) 이용술(벽송리개발위원장) 김락봉(벽송리지도자) 김선철(평월리지도자) 안효남(벽송리부녀회장) 김삼순(평월리부녀회장) 송기홍(평월리개발위원장) 전극중(중등교감) 전흥중(부면장) ▣ 참고문헌 『고창군지』고창군지편찬위원회, 고창군, 2009, 『고창군 마을유래』고창문화원, 도서출판 청동 2003, 『고창의 마을1·2·3·4』고창문화연구회 『고창성씨유래』고창문화원 『전북도지』향상강록 『한국지명총람』전북편(상) 『문화유적분피지도』고창군 『향토소고』전경중 『흥덕향지』열부편 『흥성지』효자편/효부편 http://blog.daum.net/differ8899/82899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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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을유래[1]  

2012-2018『한국의 유산』발굴·조사사업!! [제공] 한국지식재산관리심사위원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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