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an Francisco Journal (샌프란시스코 저널) November, 20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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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는 어릴때부터 한가지에 집중하는 성격이었다. 무언가 한가지에만

숙명여대는 111년 전에 대한제국 황실에서 시작 되었다. 대한제국

집중하고 몰입했다. 시간이 지나도 언제나 선택과 집중을 하며 마음을

황실로 부터 내려온 뿌리가 있는 숙명의 역사가 보다 새롭게 다가왔다.

비우고 감사와 만족한 마음으로 살아가고 있다.

학생일때나 평교사 일때는 간과했던 숙명의 역사나 미래, 그리고 현실을 총장으로서 더 깊이 가슴으로 느낄수 있고 정말 깊은 사명감을

Q. 교수가 된 계기, 주요멘토 나 에피소드.

느낄수 있다는것을 참 기쁘게 생각한다. 창학 이념인 구국애족, 즉 국가와 민족 그리고 인류에 기여하는 여성

A. 어릴때 부터 선생님 되고 싶어했던 것 같다. 저학년 때부터 선생님

지도자 배출이라는 이념을 잘 달성하도록 부단히 노력하고 있다.

놀이도 하고 다른 아이들을 가르쳐주는것을 많이좋아했다. 대학교

총장으로서 어려운점이 있다면, 여러가지 학교 내부의 행정뿐아니라

정경계열에 입학후 보니까 , 상업학교 상업 부기가 인기가 많았었다.

각종 외부와 숙명의 관계에서 발생하는 복잡하게 얽힌 문제들도

그렇지만 강총장은 인사조직 분야에 큰 관심이 있었고 교직을

어떻게 하든지 잘 풀어나가야 한다는 점이라 생각한다. 이념과

이수했다.

비젼도 이끌어나가면서 실제 학생들의 발전을 위해 프로그램을 발전

멘토라고 꼽는다면, 숙대 재학중 교수님중 한분께서 “너무 힘들때

시켜 나가야 하고, 또한 각종 외부와의 소통에서도 지혜로운 판단을

혹은 어떤 의사결정을 할때 지금 눈앞만을 생각하지 말고 공부를

내려야 할 것들이 아주 많다. 그러나 아무리 어려운 문제라 할지라도

마치는 종착역인 시점에서 어떨 것인지를 바라보면서 살아라”라고

숙명인으로 함께 단합해 노력하며 하나씩 풀어나갈수 있고, 오히려

말씀 해주셨던 것이 큰 도움이 되었다.

어려운 일들이 향후 더 좋은 기반을 이루는데 밑거름이 될것으로

성당에 신부님께서 “양심에서 내리는 결정을 내리라”고 하시는 말씀이

믿는다.

깊이 가슴을 울렸었다. 언제나 자신이 떳떳하고 학생들이나 자녀들앞에서나, 혹은 훗날

Q. 인생에 소중한 것.

스스로 돌아봤을 때 떳떳할 만한 의사결정을 하면서 살려고 노력한다. 어머님께서 항상 말씀 하시길 “정애는 참 착하다. 사람은 착해야

A. 유학을 마치고 한국에 돌아와 공부도 계속 해야하고 교수가

한다. 이해득실을 따지기에 앞서 최선을 다하고 착하게 살아야 한다.

되고자 노력하고 또 자녀들을 돌봐야 하는등 각종 고민과 마음에

항상 선한 끝은 있다” 라고 격려 하셨다. 선하게 살면 복을 받는다는

걱정 근심으로 인해 30대 중반에 몸이 급격히 약해지고 아팠었다.

행복하게 살수 있다는 말씀을 자주 하셨고 항상 머리에 남아있는 좋은

그때시부모님께서도 편찮으셨었다. 애기도 어리고 몸도 아프고

말씀이라고 생각한다. 저 스스로는 착하다고 생각하지 않는데, 남편은

강의도 나가야 했기에 당시 시부모님을 잘 못챙겨 드렸었다. 당시

언제나 저보고 주변사람을 잘 챙겨주고 아낀다고 선하다고 말해줘서

어떻게든 건강을 회복하고자 운동을 시작했다. 그때 몸의 건강 상태가

고마운 마음이다.

안좋으면 마음에 평화가 절대 오지 않는다는 것을 깨달았다. 운동을

주변에 좋은 분들을 많이 만났기에 잘 지내고 있는것이 감사해서 저도

열심히 해나가면서 몸의 건강이 크게 회복되어갔고, 또한 신앙을

우리 학생들을 더욱 아끼고 돌보아 주고 싶은 마음이다. 학생들이

가지며 정신적으로도 보다 밝고 강해짐을 느끼게 됬고 몸과 마음의

잘되면 정말 기쁘고 학생들을 보며 항상 새 기운을 얻는다.

평화를 얻을 수 있었다. 프랑스에서 가족과 살고 있었을때, 한 존경하는 미술가선생께서

Q. 총장으로서 어려운 점 과 좋은점

한국에서 살던 것 처럼 자녀에게 몰두하거나 자녀를 부모의 틀안에 가두어서 키우지 말고, 아이들한테 스스로 인생을 살도록, 자신이

A. 총장으로서 좋은 점을 꼽는다면 미국 동문회원들을 만날수 있고,

선택하고 이루어 나갈 수 있도록 키우라고 조언을 종종 해주셨었다.

그들을 만나면 모교를 무척 아끼고 사랑하는 모습을 볼 수 있다는

그 선생의 영향으로 미술 전공으로 유학 온 한국 사람들이 자녀들을

점이 참 좋다고 생각한다. 정말 모교에 대한 사랑이 너무 따뜻하고

키울때 과외를 하나도 안시키고 그냥 자유 방임형으로 자유롭게

감동적이다.

키우는 사람들이 주변에 많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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