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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실탐구단

보고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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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실탐구단은 살아가며 부딪치는 현실에 대한 문제의식을 나누고 탐구하는 글쓰기 소모임입니다.


이번호 구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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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상에서 목격하는 한국문화를 탐구한

신인아의 나의 한국 문화 답사기 - 1

한국을 여행하기로 한 이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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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NS를 통해 구축된 현실을 탐구하려는

호키포키의 “이게 뭐지?”로 가득한 공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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ㄱ부터 ㅎ까지의 총 14명의 인물 중 ㄱ에 대해 탐구한

권민서의 김누구보다빛나는에 대하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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후죠시 문화에 대해 탐구한

박하다의 돌아올 수 없는 강을 건넌 사람들 - 1 휴덕은 있어도 탈덕은 없다


제목:

나의 한국문화 답사기 - 1.

한국을 여행하기로 한 이유

글쓴이: 신인아

어린 시절, “나는 자랑스러운 태극기 앞에 조국과 민족의 무궁한 영광을 위하여 몸과 마음을 바쳐 충성을 다할 것을 굳게 다짐합니다.”라고 거룩하고도 기계적으로 읊어댔었다. 불조심 포스터만큼 자주 반공 포스터를 그렸다. 그러나 가끔 ‘화폐가 없다면 사람들은 더 행복하지 않을까?’라고도 생각했다. 또 서울에 대한 동경이 컸다. (‘한강에서 길을 잘못 들어 밤새 울면서 걷다 보니 63빌딩 앞이었다’는 친구 이야기에 겁을 먹었으면서도 처음 서울 고속버스터미널에 도착해서는 파노라마로 펼쳐지는 거대한 전광판들에 압도당해 길고 긴 감탄사를 내뱉기도 했다.) 그런 내가 서울도 아닌 더 큰 외국으로 가겠냐는 제안을 받았을 때 거절할 리 만무했다.

외국에 나가서는 나의 ‘자랑스러운’ 조국의 뜻밖에

초라한 모습에 몇 번인가 놀랐다. 결정적으로 조국에 대해 다시 생각할 계기를 마련해준 건 대학에서 들었던 수업이었다. 영영사전을 봐도 모르겠고 한영사전을 봐도 모르겠는 단어들과 사투를 하며 공부하다 공산주의와 마르크시즘의 뜻을 알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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되었다. ‘화폐가 없다면 사람들이 더 행복하지 않을까?’ 생각하던 아이가 아무런 의심 없이 공산주의는 나쁘다며 반공 포스터를 그리고 있었다니. 초등학생이 ‘조국과 민족을’ 위해 06

‘몸과 마음을 바쳐 충성을 다할 것’을 다짐하다니. 내 어린 시절의 모순이랄까 무지랄까 순진이랄까, 그런 것에 눈을 뜬 순간이었다.

그 와중에도 ‘Where are you from?’이라는 질문은

(11년간!) 내게 쏟아져 내렸다. 수없이 이 질문에 대답하다 보니 내가 한국 사람이라는 게 지루하게까지 느껴졌다. (‘Korea’라고 대답하면 ‘North? or South?’라는 질문도 어김없이 튀어나왔기에 지겨워서 나중엔 그냥 ‘North Korea’라고 대답하고 상대방이 당황하는 걸 즐기기도 했다. 이어 ‘미국도 가진 핵을 우리가 가지는 것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느냐’고 물어보면 금상첨화.) 한국 문화에 대한 질문들도 나에게 향했다. 나는 나도 싫어하거나 모르는 것도 많았지만, 문화적 차이로 잘 설명해야 할 의무감을 느꼈다. 나는 의심할 여지 없이 한국인이니 내 설명이 어느 정도 정당하다고도 생각했다. 그러나 한국에 가끔 들어와 머물다 보면 뜻밖에 많은 것들이 낯설고 신기했다.

나는 꽤 한국 사람 같다. 그러나 그렇지 않은 부분도

있다. 국적으로 한 사람을 정의 내리는 건 분명한 한계가 있다. 그러나 한국 사회에서 ‘한국 사람 같기도 하고 외국 사람


같기도 한 사람’이 있을 수도 있다는 가능성은 고려되지 않는다. 그래서 정확히 어느 부분이 한국 문화의 영향을 받았고 그렇지 않은지 알 필요를 종종 느낀다. 그러나 한국적이라는 것은, 한국인이라는 정체성은 늘 막연한 이미지로만 내 머릿속에 자리 잡고 있었다. ‘국뽕 완전체’는 그런 막연한 이미지에 어떤 실마리를 던져 주는 듯했다.

‘국뽕’은 국가와 히로뽕의 합성어로 맹목적

애국주의자(국수주의자)들을 조롱하거나 비하하는 말로 디씨인사이드 역사갤러리에서 처음 쓰이기 시작했다. 그러나 다른 인터넷 커뮤니티로 퍼져나가며 애국심 그 자체로 의미가 확장되었다.(예: 캬~ 오늘 국뽕에 취한다.) ‘국뽕 완전체’는 한국을 대표하는 스타들을 조합한 사람 형상이 독도 앞에서 당당하게 ‘김치’를 들고 서 있는 합성짤로 ‘두유노...’라는 짧은 글과 함께 게시되곤 한다. 아! 이 자랑스러운 한국을 당신은 알고 있나요?

그러나 합체한 로봇처럼 한 몸으로 구현된 우리의

자랑스러운 얼굴들에서 자랑스러움은 증폭되기보단 오히려 우리를 조롱한다. 발상이 유치하기 때문이다. 이 유치한 논리 아래 상당한 공을 들여 합성된 이미지는 아무런 해석도 없이 그저 성실히 공을 들였기에 ‘병맛’이 흐른다. 개인의 성공을 국가적 성과로, 그를 또 ‘두유노...’라는 질문으로 확인하고 싶어 하는 우리의 유치하고 병맛인 ‘애국심’의 민낯이 여기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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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욱 재미있는 것은 이 짤이 드러내는 모순이다.

이 짤은 얼핏 굉장히 한국적으로 느껴지지만 정작 한국의 ‘문화’(삶의 방식)를 대변하는 이미지는 (그나마) 김치를 08

제외하면 아무것도 없다. 한국인이라는 자부심과 몰이해, 선진 문화에 대한 열망이 공존하는 모순에 대한 설명이다. 우리가 자랑스러워하는 한국의 이미지에 우리 일상은 없다.

모순. 생각해보면 나에게 낯설게 느껴졌던 한국의

면면들은 내 머릿속에 논리에 맞지 않는 모순이기에 그렇게 느껴졌던 것 같다. 그래서 나는 이 모순에서 나의 여행을 출발하고자 한다. 모순이라고 비판하고 고쳐보겠다는 생각은 없기에 여행이라 부르고자 한다. 일상에서 발견되는 모든 낯선 것들, 이상한 것들, 신기한 것들... 이런 것들을 파다 보면 동시대 한국 문화를 더듬어 보고 이해하기 시작할 수 있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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온라인에서 ‘국뽕 완전체’로 떠돌고 있는 이미지. 출처는 아쉽게도 알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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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이게 뭐지?”로 가득한 공간

전시제목: No Mountain High Enough 장소:

시청각

기간:

2013. 11. 28~2014. 1. 25

기획:

현시원

참여작가: Sasa[44], 남화연, 박길종, 슬기와 민, 옥인콜렉티브, 이영준, 잭슨홍, 서영란

글쓴이: 호키포키

보통 처음 가는 곳을 향할 때면 지도 앱을 이용하곤 한다. 내가 있는 위치가 어디든 목적지만 입력하면, 가장 빠른 길을 알려주어 꽤 유용하다. 지도 앱이 알려주는 길을 대강 눈으로 익히고, 헷갈린다 싶으면 다시 앱을 본다. ‘현 위치’를 누르면, 나의 움직임까지 실시간으로 볼 수 있어 요즘은 여간해서 길을 잃지 않는다.

평소 전시를 보러 가는 갤러리 혹은 미술관은 대부분 익숙한 곳에 있어 지도 앱을 이용할 일이 거의 없다. 근데 ‘시청각’은 생긴 지 얼마 되지 않았고, 갤러리가 운집해있는 인사동이나 사간동에 있는 것도 아니어서 지도 앱을 꺼내야만 했다. 그렇게 앱과 길을 번갈아 보며 시청각으로 향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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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적지에 다다를 무렵, 잠시 당황했다. 골목길이라 말하기엔 뭔가 부족하고 통로라고 하기엔 좀 넉넉한 중간 정도의 길목이 눈앞에 놓였다. 그 어디에도 이정표가 없어 이 12

안으로 들어가는 게 맞나 잠시 주저했다. 앱은 계속 앞길로 재촉했고, 별수 있나. 지도하나 믿고 왔으니, 지도를 믿고 가는 수밖에. 그렇게 몇 발자국. 목적지를 가리키는 동그라미와 나의 위치를 말해주는 동그라미가 겹쳐질 때쯤 시청각이라는 표식이 나타났다.

시청각은 오래된 일반 한옥을 개조한 모양새를 하고 있었다. 전시를 보기 위해서는 미닫이문을 열어야 했는데, 전시 공간인지 일반 가정집인지 분간이 되지 않았다. 그만큼 이곳은 전시공간이라고 하기엔 기존에 알던 것과 전혀 달랐고, 가정집이라 하기엔 부족했다. 시청각은 가정집의 모양새를 유지한 채 전시를 위한 최소한의 조건만 손을 본 그런 공간이었다.

공간에 들어서자마자, 합판 위에 지도처럼 보이는 종이가 쌓여있었다. 지도는 ‘나잠수’, ‘송화백’과 함께할 인왕산의 등산로를 보여준다. 여기에 놓인 등산로는 기존에 알던 등산로와는 전혀 다른 모습을 하고 있다. 보통 등산로는 사람들이 등산할 수 있는 비교적 안전하고 빠른 길을 가리킨다. 등산로가 그려진 지도 역시 이 목적에 충실할 수밖에 없다. 그러나 <인왕산에서 만나요>에 놓인 등산로에는 잘못된


도착지 곳곳에 있는 해골과 불을 뿜는 용으로 채워져 있다. 등산로가 기본적으로 알려주는 정상표시도 없다. 그저 재미있는 경험을 공유할 수 있는 익살로 가득하다. 13

이 작품과 짝을 이루듯, 인왕산의 등고선을 가지각색 선으로 보여주는 슬기와 민의 <장식적 정보>는 기존에 알던 등고선의 모습과는 사뭇 달라 “이게 뭐지?”라는 의문이 들게 한다. 장난감처럼 보이기도 하는 이 작품은 인왕산을 말해주는 지표 중 등고선을 ‘장식적’으로 보여준다. 인왕산을 지칭하는 무수한 지표는 실상 인왕산의 존재에 크게 영향을 미치지 않는다. 슬기와 민은 인왕산에 덧붙여진 ‘장식적인’ 지표 중 등고선을 ‘장식적으로’ 보여줌으로써 인왕산의 존재에 대해 한 번 더 생각하게 한다.

이처럼 시청각에는 인왕산을 빗겨가거나 인왕산과 대비되는 작품으로 가득하다. 이 작품들 모두 인왕산을 말하기는 하지만 인왕산을 직접 지칭하는 것은 아니어서 다 보고 나면 “이게 뭐지?”라는 의문이 절로 든다. 따지고 보면 “이게 뭐지?”라는 생각은 시청각에 들어설 때부터 시작되었다. 기존에 알고 있던 전시공간과는 사뭇 다른 모습에 이제껏 자연스럽게 받아들였던 인왕산의 지표들이 어지러이 놓인 것을 보고 “이게 뭐지?”라는 의문이 드는 것은 어쩌면 당연한 일이다.


인왕산은 무수한 지표 이전에 존재한 것이다. 그러나 언제부터인가 이 지표들 없이 존재가 성립할 수 없을 것처럼 대해왔다. 인왕산도 그랬고, 전시공간을 대하는 태도 역시 14

그랬다. 전시공간을 전시공간으로 만들어주는 지표들에 완전히 의지해 왔다. 점차 이러한 지표들이 공식이 되고, 공식에 맞지 않으면 과감히 버렸다. 결국 지표들이 원래의 존재에 제어를 가하는 꼴이 되었다. 시청각은 지금 이런 상황에 의문을 던진다. 시청각이라는 새로운 공간에 인왕산에 관한 전시를 함으로써 이제껏 우리의 생각을 공식화했던 지표들에 의문을 던진다. 이 의문은 전시장 초입에 놓여있는 잭슨홍의 <배>처럼 경로를 이탈해 ‘산으로’ 갈 수도 있다. 그러나 그간 지표들 탓에 시도하지 못한 것들이 너무나도 많다. 할 수 없을 거라 미리 단정 짓고, 지표들의 공식을 이리저리 세우며 그 안에서만 답을 찾으려 했다. 지금 여기 시청각은 지표들 없이 할 수 있는 게 너무나도 많다는 것을 조용히 보여주고 있다.

* 이 글의 제목은 시청각에 전시된 작품 Sasa[44], <A#26-81-v1>, Digital-print, 50 x 70cm, Typography by Karl Nawrot에서 인용했습니다. ** 이 글에 인용된 작품은 박길종, <인왕산에서 만나요>, 합판에 바퀴, 신동혁이 디자인한 종이, 인왕산에서 가져온 돌, 50 x 50 x 36cm(높이는 점점 줄어듬), 2013, 슬기와 민, <장식적 정보>, 펠트, 레이저 커팅, 크기 가변, 2013, 잭슨홍, <배>, 철판 및 각재, 분채도장, 80 x 290 x 103cm, 2013 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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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김누구보다빛나는에 대하여

글쓴이: 권민서

김누구보다빛나는은 오후 4시에 눈을 떴다. 기지개하고 샤워를 한 그는 머리가 마를 동안 트위터와 페이스북에 접속했다. 사람들은 깨어있었지만, 그는 자고 있을 동안 무슨 일이 일어났는지를 체크하고 그와 관련된 기사를 링크하고 자기 나름의 논평을 달고, 사람들의 의견을 구경하러 다녔다. 머리가 다 마르고도 한참을 트위터와 페이스북을 하던 김누구보다빛나는은 집 밖을 나와 저녁 6시에도 브런치를 파는 동네카페에서 늦은 아침겸점심겸저녁을 먹은 뒤 페이스북에 사진을 올리고

“날씨가 너무 좋다. 이런 날씨에 류시화의 시집을 읽으며 카페에 앉아있자니 훌쩍 떠나고 싶어지네 ㅎㅎ”라는 글과 현재 위치 태그를 올리고는 출근길에 나섰다.

그의 출근과 다른 사람들의 퇴근이 맞물려 지하철은 두 발이 닿을 곳이라고는 한 뼘도 남겨놓지 않고 사람들로 꽉꽉 차 있었다. 하지만 그는 기어코 비집고 들어가 지하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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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 위와 노선도 사이의 공간에 손을 집어넣고 머리와 목, 팔과 허리와 골반과 다리 근육 전체의 각도를 각각 다르게 비틀어 버티고 서있어야 했다. 발가락 끝에 힘을 주고 정차하는 역마다 18

사람들에게 탈 자리가 없다는 눈빛과 나는 자리를 내어줄 의지가 전혀 없음의 눈빛을 강하게 쏘기를 몇 차례 그는 역삼역에 내렸다. 집에서는 한 시간 반 정도가 걸렸다.

그는 강남의 초고층 빌딩들 사이를 지나쳐 어느 건물의 지하로 들어갔다. 인수인계를 받고 시제를 맞춰보고 후진 너무도 후진 편의점 유니폼 재킷을 걸쳐입고 그는 일을 시작했다. 일은 매우 한가했다. 야근하는 사람이 아니라면 이 시간에 여기에 내려오는 사람들이 없었기 때문이다. 건물 지하에 있는 그 편의점은 밖에선 보이지 않기 때문에 입주민들만이 찾아왔다. 퇴근 시간 이후엔 너무도 한가하지만, 본사의 정책 때문에 문을 닫을 수도 없었다. 그래도 가끔 야근하는 사람들이 있었고 그 사람들이 내려올 때마다 그는 측은한 마음이 들었다.

그도 그럴 것이 김누구보다빛나는은 자유롭게 사는 것 만큼 인생에서 중요한 것이 없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자유로운 삶을 살고 그 어떤 것에도 구속받지 않고 자신이 하고 싶은 일을 하는 것, 그러한 삶을 살지 못하는 것은 불행한 삶이라고 생각했다. 우리는 모두 특별한 사람이고 무엇이든 마음만 먹으면 할 수 있는데 왜 다들 똑같은 삶을 사는 것일까 하는 생각을 할 때면 비타500과 여명을 사 먹는 저 넥타이 부대들이 너무나도


안타까웠던 것이다. 비록 그는 최저 시급에서 정확히 900원 모자란 편의점 알바를 했지만, 서울 강남 한복판에서 돈에 구애받지 않고 하고 싶은 일을 하면서 자유롭게 사는 자신을 생각하면 너무도 뿌듯했다. 오후 4시에 일어나는 삶을 저 넥타이 부대들이 감히 상상이나 해 볼 수 있겠는가. 그런 생각에 잠길 때면 그는 자신의 선택을 늘 지지해주고 자유롭게 키워주신 부모님께 감사하는 마음이 샘솟았다.

그는 어릴 때부터 오직 본인의 선택으로 자신의 삶을 꾸며왔고 그러한 선택에 만족했으며 때로는 자부심도 느꼈다. 물론 그의 선택에 부모님과 주변 상황이 영향을 주었을 수도 있지만, 자신의 게임 캐릭터도 아닌데 그런 것들과 상관없이 결국 본인의 의지로 해냈다고 생각했다.

김누구보다빛나는의 어머니는 자신의 엄마처럼 살고 싶지 않았다. 그녀는 아버지가 술에취해 밥상을 뒤엎고 몸에 멍이 가시질 않아도 찍소리 한번 내지 못하는 엄마를 증오하며 자랐다. 그렇게 살지 않겠다는 일념으로 그녀는 공부를 열심히 했다. 대학에 들어가서도 그녀는 여성으로서 자신을 규정짓고 싶지 않았다. 그래서 남자들에게는 형이라는 호칭을 쓰면서 ‘동지’로 인식되길 바랐다. 오빠라는 호칭은 오직 자신의 남자친구에게만 쓸 수 있다고 생각했다. 항상 억눌리는 느낌을 받으며 자라왔던 김누구보다빛나는의 어머니는 만약 자신이 결혼하고 아이를 낳는다면 내 아이에게만은 모든 것으로부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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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유로운 삶을 살게 해주겠다고 다짐했다.

김누구보다빛나는의 아버지는 자신의 아빠처럼 살고 20

싶지 않았다. 가부장적이며 무뚝뚝하고 대화라고는 할 수가 없는, 여름휴가 때도 집에서 잠만 자는 자신의 아버지처럼 되고 싶지 않았기에 만약 자신이 나중에 결혼하고 아이가 생긴다면 친구 같은 아빠가 되고 싶고, 될 것이라고 다짐했다.

그래서 김누구보다빛나는이 태어났을 때 그들의 부모는 또 다시 다짐했다.

‘온리원인 아이로 키우고 싶어’

세종대왕이 창제한 한글을 두고 한문으로 짓는 것은 구시대의 유물이라고 생각했다.

‘지금은 21세기야 !’

그래서 그의 이름은 김누구보다빛나는이 되었다. 반짝반짝 작은 별 아름답게 비추네가 아니었다. 반짝반짝 작은별 그 중에서 가장 아름답게 비추네가 되는 아이로 키우고 싶었다.

이들은 획일적인 한국교육과정으로는 21세기를 선도할 인재가 나올 수 없다고 생각했기에 남들과는 다르게


아이를 키우고 싶었다. 어릴 때부터 끊임없이 강조한 것은

“너 스스로 주체적으로”, “너만이 할 수 있는”, “하고 싶은 일을 하는”

사람이 되어야 한다며 다짐처럼 그에게 말해주곤 했다. 그래서 그의 부모는 유치원을 유럽스타일의 자연주의 학교라는 헛간 같은 곳에 보내어 한글도 영어도 아무것도 가르치지 않았다. 그리고 열심히 아동용 책을 읽고 엄선해서 아이에게 읽어주었다. 하지만 그가 정말로 한글과 덧셈을 초등학교에 들어가서도 힘들어하고 뒤처지자 진심을 다해서 실망했다. 아무리 가르쳐주지 않았어도 이렇게 늦게까지 못하는 이유가 뭔지 그들은 이해하기 힘들어했다.

김누구보다빛나는이 중학교에 들어갈 즈음 부모님이 대안학교에 대해서 말을 꺼냈다. 하지만 김누구보다빛나는은 시큰둥했다. 중학교에 같이 진학하는 친구들도 좋고 진학하게 될 학교의 교복이 멋있었고 학교 앞 문방구에서 파는 불량식품들도 좋았기 때문이다. 그의 부모는 그의 결정에 실망하는 눈치였지만 더는 이야기하지 않았다.

하지만 그의 교복을 다려주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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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휴. 이렇게 다 같이 똑같은 옷을 입히고… 너무 획일적이잖아…. 다른 옷을 입을 권리가 있는 거잖니. 이게 얼마나 답답한데….” 22

그가 월요일에 집에 돌아오면

“아직도 월요일에 조회해? 다 같이 일렬로 세우고? 나는 좌향좌 우향우 이 말이 너무 싫더라고 나를 인간으로 보지 않는 것 같았어. 왜 명령을 해?”

수업참관을 와서는

“아휴. 난 닭장인 줄 알았어. 이렇게 많은 아이를 한 곳에 몰아놓고……. 너 괜찮은 거지?”

시험기간에

“난 성적 가지고 자살하는 아이들이 너무 가여워 그 나이에 그런 스트레스로 자살하는 건 안된 일이야, 시험에 너무 스트레스받지 마”라고 했다.

실제로 그의 부모는 그에게 공부에 대한 스트레스를 주지 않으려고 노력했으며 공부학원을 보내지 않았다. 세상엔 많은 직업이 있고 그중에 하나를 찾아 주고 싶다고 했다. 그래서


그는 공부학원에 다니지 않고 어릴 때부터 속셈,웅변,바둑,주산, 미술,토론,뮤직줄넘기,바이올린,플룻,피아노,알토리코더,수영, 태권도,검도,유도,복싱,신문스크랩,인성교육,재즈피아노,판소리, 장구,소고,서예,단소,레고교실,동화구연,스마트사이언스로봇 교실,글짓기학원 만을 다녔을 뿐이다. 하지만 그가 45명 중에 38등의 성적을 가져오자 실망하는 표정을 애써 숨긴 채

“이건 세상의 기준일 뿐이야 너는 너만의 개성이 있고 너만이 할 수 있는 일이 있을 거야, 시험성적은, 물론 아빠는 열 손가락 이상 넘어가는 등수를 한 적은 없어, 그치만 이건 정해진 범위내에 공부를 하게 하는 획일적인 거잖아 그렇지? 중요한 게 아니야” 라고 하곤 했다.

그 무렵 김누구보다빛나는은 첫 몽정을 했다.

2차 성징기가 된 것이다. 친구 같은 아버지가 되는 것이 목표였던 김누구보다빛나는의 아버지는 그에게 첫 몽정축하파티를 열어주었다. 면도하는 법을 알려주며 팬티를 내리고 고추를 보여주면서 보이니? 너도 이렇게 돼. 여기에도 털이 난다고 라며 용기를 북돋아 줬다. 성에 대해 보수적이고 억압적이기 싫었던 그의 아버지는 몽정이 부끄러운 게 아니고 자랑스러운 것이라고 말해주었다. 그리고 김누구보다빛나는이 어떻게 태어날 수 있었는지를 알려주었다. 그리고 그의 팬티를 들어 올리며 이렇게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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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기 니 아이들이 있다고. 너는 이제 아빠가 될 수 있는 몸이야. 이 팬티에 너의 자녀들이 될 수도 있던 애들이 묻어있는 거라고 부끄러운 게 아니야. 넌 지금 생명을 배출한 24

거야. 너는 숭고한 거야. 이게 바로 너의 아이들이야!”

그는 어쩐지 그 뒤부터 몽정을 할 때마다 이런 하찮은 꿈에 생명을 배출하다니 나는 한심하다는 죄책감에 시달려야 했다.

그가 잦은 횟수로 몽정할 때 즈음 그의 책상엔 대안학교와 대안교육에 대한 책들이 꽂혀있었다. 그의 부모는 어릴 때부터 그가 읽을 책들을 읽어보고 골라주었다. 그리고 그의 책상에 빌 게이츠가 대학을 관두고 마이크로소프트를 창업했다는 부분을 형광펜으로 칠하고 별표까지 그려서 붙여주었다.

그렇지만 그의 부모는 언제나 “결정은 네가 하는 거니까 우린 기다리마, 그리고 우린 너의 결정을 존중할 준비가 되어있어!” 라는 말을 했고 그도 차차 왠지 답답한 거 같고 나만이 할 수 있는 일이 있는데 여기선 할 수 없을 것 같았다.

그는 드디어 대안학교에 가겠다는 말을 했다. 그 말을 했을 때 그의 아버지는 서재에서 노랗게 바랜 종이를 가져왔다. 그것은 서태지가 고등학교를 자퇴하면서 쓴 글을 아버지가


필사한 것이었다. 그의 아버지는 김민기, 양희은, 안치환, 강산에를 좋아했다. 김누구보다빛나는이 놀라며 아버지가 서태지의 팬이었냐고 묻자 그의 아버지는 25

“나? 팬은 아니지. 너도 서태지 알지? 문화대통령, 남들이 아등바등 공부할 때 서태지는 이런 글을 쓰고, 자퇴하고 문화대통령이 됐다고! 이거 한번 읽어보고 네가 자퇴를 하고 대안학교를 가는 다짐 같은 걸 써봐.”

그는 도저히 어떻게 써야 할지 몰랐다. 아주 많은 고민 끝에 그는 글을 써내려갔다.

“나는……오늘……자퇴하고 대안학교에 갈 것이다. 이것은 내가 한 결정이고 그러므로 글을 쓴다. 나는…… 비둘기처럼 살고 싶다. 강물을 거꾸로 올라가는 연어처럼, 모두가 날려고 할 때 고고히 횡단보도를 걸어가는 비둘기들처럼 세상의 관념을 벗어버리고 자신의 의지대로 사람들과 같이 횡단보도를 걷는 그런 비둘기…. 나는 비둘기처럼 자유롭게 날아다니며 자유롭게 걸어 다닐 것이다. 남들이 날개를 펴며 날아가기를 기대할 때 나는 고고히 걸어갈 것이다. 파란 신호건 빨간 신호건……. 그리고 난…난…꿈이 있다 그 꿈을 믿는다…. 나를…지켜봐주세요. 저 뜨겁게 서 있는 운명이란 벽 앞에 당당히 마주칠 수 있게 언젠가 나는 그 벽을 넘고 저 하늘을 높이 날 것이다. 이 무거운 세상…도…나를 묶을 수는 없을 것이다….


그리고 주위를…둘러보면…온통……네모난 것들뿐인데 우린 언제나 듣는다 잘난 세상 어른들이 세상은 둥글게…살아야 한다고 하는 그 말을…지구 본을 보면…우리 사는 지구는 둥근데… 26

부속품들 온통 네모난 것들 뿐이다…그것은…네모의 꿈일 것이다…. 나는 꿈을…꿀 것이다.”

이 글을 전달하자 아버지는 미묘한 표정이 되었지만

“그래도…중학생치고는 이런 글 못 쓸 거야…. 좋아. 나중에 출판할 때 이게 앞부분이면 딱이네” 라는 말을 중얼거리며 소중히 그 종이를 보관했다.

막상 대안학교에 가려고 하자 쉽지가 않았다. 일단 김누구보다빛나는의 자소서와 부모님의 자소서 그리고 그를 잘 아는 사람에게 추천서를 받아야만 했다. 그와 부모님의 자소서는 얼추 작성하고 대학교 입학사정관 심사위원과 대안학교의 학부형들을 찾아가 조언을 얻었다. 하지만 김누구보다빛나는에게 추천서를 써 줄 사람을 찾는 게 쉽지 않았다. 그는 조용히 학교에 다니고 눈에 띄는 행동을 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고민 끝에 뮤직줄넘기 선생님에게 추천서를 받았다.

‘남다른 리듬감으로 줄넘기를 잘했으며 타고난 곡 해석으로 자기만의 뮤직줄넘기를 할 줄 알았으며 타고난 성실함으로 반복된 연습을 통해 완성되는 과정을 잘 버텨준


준비된 인재’라는 추천을 받았다.

서류경쟁률 만으로도 8:1이 넘었다. 27

어려운 서류경쟁률을 통과해서 부모님과 김누구보다빛나는은 각각 또 따로 면접을 봤다. 부모님은 자신들이 어떤 교육 철학을 가졌는지 그 철학을 바탕으로 어떻게 아이를 키워왔는지를 말했고 김누구보다빛나는은 자신이 또래와 다른 점을 열심히 설명했다. 이 모든 게 다 끝나고 그가 최종 합격했을 때 그는 어째서인지 자신이 선택받은 사람 같다는 생각을 했다.

‘해리포터가 이런 기분이었을까?’

김누구보다빛나는은 대안학교에 가서 다양한 교육을 받았다. 우쿨렐레,기타,드럼,영화만들기,글쓰기,미술 등등 그의 학교에서는 학생들이 입시교육에 비판적이며, 환경을 생각하며, 자발적이고, 창의적이고, 스스로 자립할 수 있고, 윤리적인 학생으로 키우고 싶어 했다.

‘스스로 이런 교육을 선택한 너희는 대단해, 지금 학교에 멍하게 앉아 있는 너의 친구들을 생각해봐. 이렇게 자유로운 교육을 받고 자란 너희가 펼칠 미래를 생각하면 나는 벅차올라.’ 같은 말을 들을 때마다 김누구보다빛나는의 자아가


부풀어 올랐다. 어떤 날은 자아가 폭발하다 못해서 터지는 것 같았다. 그가 받는 교육마다 그가 재능이 없다는 사실이 드러났을 뿐이었지만 개의치 않았다. 어딘가엔 내가 할 일이 28

있을 것이고, 나는 모색 중이니까….

그와 같이 학교에 다녔던 여자애들은 다들 자기는 너무 조숙했다고 말했다. 또래들과 그래서 힘들었다고 나는 너무 예민하고 조숙했다고. 그래서 그들은 영화를 만들거나 글을 쓴다고 하는, 하지만 아직 작품은 하나도 없는 30대 남자들과 종종 사귀었다. 김누구보다빛나는에게 한 여자친구는 이렇게 말하곤 했다.

“나는…. 그래…. 항상 힘들었어…. 생각해봐……. 왜냐면 난 또래들에 비해서 너무 성숙하고 예민했거든. 한번 떠올려봐 반에서 전혜린 책 읽는 애들 있었니? 난 못 봤어 나 빼고는…. 봐봐…. 내 애인은 35살이잖아……. 그치만 우린 잘 통하거든. 그게 뭐겠어……. 내가 내 또래 애들을 사귈 수가 없는 이유야….”

그가 다닌 학교의 선생님들은 우리나라가 지나치게 경직된 것이 문제라고 했고 그것이 각종 존칭을 타파해야 하는 이유라고 했다. 미국은 할아버지건 누구건 you인데 우리는 왜 그렇지 못하냐며…. 그래서 우리는 수직이 아닌 수평 한 관계이므로 호칭을 ~님이나 ~씨가 아니라 별명으로 불러야


했다. 선생님들도 별명으로 불렀고 반말을 했지만, 무언의 규칙이 있었다. “세모세모 이거 세모거야?”는 됐지만 “야 이거 너 꺼야?” 는 하면 안 됐다. 이유는 몰랐지만 그랬다. 29

그의 학교에서는 오후에 철학책을 읽고 토론하는 수업을 했다. 가장 많이 올라온 토론 주제는 한국의 입시문화. 비록 그들의 부모는 다들 명문대를 나왔지만 어쨌든

“서울대에 가지 못해도 살수 있고 돈과 성공이 인생에서 중요한 가치가 아닌데, 사람은 하고 싶은 일을 하고 살아야지. 왜 대학에 목숨을 걸까? 대학이 전부는 아니잖아.”가 항상 결론이였다. 하지만 그의 부모는 <대안학교 나와서 서울대 갔어요>라는 책과 대안학교를 나와 명문대를 진학 한 사람들의 인터뷰를 그의 책상에 놓아두었다.

그가 고3의 나이가 됐을 때 부모님이 넌지시 단과 학원을 끊어주며 대학진학을 권유했다.

대학이 주는 또 다른 장점이 있다고 했다. 그는 단과 학원에 다니며 멘붕에 빠졌다. 학원 수업은 하나도 알아들을 수가 없었는데 그 빼고는 다들 그 수업을 알아듣는 듯 했다. ‘우리는 왜 이런 걸 안 가르쳤지?’ 충격을 받은 그는 단과 학원에서 제일 잘하는 아이와 붙어 공부했다. 그 친구는 그가 이런 기본도 모르는 것을 이해하지 못했고 짠하게 생각했다. 친구는 이미


고1 때 선행학습으로 수능을 공부했다고 했다. 질 수 없었던 누구보다빛나는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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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도…. 데리다와 라캉. 마르크스의 자본론. 그리고 서밸턴의 !#$^%$^%^ 다 읽었어. 이건 대학 학부생들도 힘들어하는 책들이거든!”

안경을 낀 그의 친구는 말했다.

“그럼 대학 가서 읽음 되잖아! 아~ 너도 선행 학습했구나?”

모의고사 성적표를 본 아버지는 진심으로 분노했다.

“너……. 이건 말이 되는 점수니? 남들과 다르게 억지로 하는 것도 아니고 너 스스로 주체적으로 공부하는데도…. 나는 문제가 틀리면 잠이 오지 않았는데. 넌 나의 그런 점은 닮지 않았구나! 너는…. 나는 수능에서 수학 14번 문제를 틀렸는데 그거는 왜 틀렸느냐면 삼각함수의 이차변환에서 내가……#$#$%^^&”

그의 아버지는 아직까지도 수능에서 자신이 몇 번을 틀렸고 왜 틀렸지를 기억하는 사람이였다. 아마도 아버지는 임종의 순간에서도 수능점수를 곱씹어 볼 사람이었다.


도저히 공부로는 승부가 없을 것 같아서 그는 다른 전공을 정해야 했다. 실용음악과를 가기에는 손의 피부가 연약해서 손에 굳은살이 박히기 않아 악기를 칠 때마다 너무 아팠다. 보컬로 가기에는 1옥타브 이상 올라가지 않았고, 건축을 하기에는 수학을 못 했다. 글을 쓰기에는 안구건조증이 심해서 모니터를 오래 바라보기 힘들었다. 그렇다고 미술을 하기에는 다한증이라 그림을 그릴 때 마다 종이가 젖고 물감과 연필이 번져 종이가 우그러지고 그림이 엉망이 됐다.

고민하던 차에 그는 홍상수 영화를 보게 됐다. 화려한 컴퓨터 그래픽이 있는 것도 아니고 이야기가 거대한 것도 아니고 아니 그냥 녹화버튼 누르고 찍기만 한 건데 세계영화제에서 상을 받다니. 이건 할 만하다고 생각했다. 책이랑 영화를 그가 얼마나 봤던가….

그는 영화과에 진학하기로 했다. 마침 대안학교 나온 애들만이 이 시대의 새로운 영화를 만들 수 있다고 떠벌리고 다니는 교수가 있는 학교에 내신과 면접으로만 이루어진 대안학교 수시모집전형이 있었다. 그는 면접을 봤다. 면접장에 들어서자마자 그는 다 이해는 못 했지만 어쨌든 교수들도 갸우뚱거리는 철학자들과 그들의 철학책을 이야기했다. 또래와 다른 삶을 선택한 그가 남들처럼 청소년 추천 라벨이 붙어있는 책을 말할 수는 없지 않은가? 그리고 남들이 안 보는 영화들을 주루륵 읊어댔고 교수는 입이 찢어 듯 좋아했다. 자신이 얼마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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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체적으로 살아왔는지 그래서 평범한 아이들에 비해서 자신이 무에서 유를 창조하는 예술을, 얼마나 새로운 영화를 만들어 낼 수 있는지를 떠들었다. 32

당연히 합격.

그런 그가 대학에 가서 그런 고난을 겪을 줄 누구도 예상하지 못했다. 그의 지식은 너무 빈약했고 작업이 너무 평범했다. 그리고 어딜 가든 대안학교 졸업생으로 소개가 되었다. “교수들이 네가 그 대안학교 졸업생이니?”하고 쳐다볼 때마다 아이들의 시선이 느껴졌다.

자신의 과제를 발표할 때마다 모두 기대하는 눈빛으로 쳐다봤고 조별과제를 할 때마다 ‘너는 우리랑은 다르겠다. 너의 아이디어는 뭐야?’하는 질문을 끊임없이 받아야 했다. 하지만 그는 너무 평범했다. 자신의 작업이 평범할수록 그는 다른 것에 집중했다. 일주일에 한 번씩 광장시장이나 동묘시장에 가서 남들이 도저히 입을 수 없는 빈티지(라 쓰고 쓰레기라 읽는)옷을 사러 다녔고 아이튠스 라디오에 들어가 일렉트로닉 탭을 눌러서 방송을 듣고 처음 들어보는 노래를 발견하고 적어놓았다가 네이버에 검색해 아무도 포스팅을 하지 않는 음악만 골라서 다운받았다. 그의 아이폰에는 그런 노래만 6기가에 달했다. 과제를 제출할 때에도 공포영화라면 검은 용지에 빨간색 글씨로 프린트해가는 등 차별화를 두었다.


하지만 교수들은 “그냥 흰 종이에 검은 글씨, 10포인트로 뽑아오세요.”라고 말했다.

그는 일 년에 영화 415편을 봤다. 단 CGV에 걸리는 영화들은 보지 않았다. 학교에 강의하는 교수들도 그만큼 영화를 보지 못했고 그는 그것을 한심하게 생각했다. 영화는 협동작업이라지만 그는 감독이 될 자신이 왜 이런 마이크 봉을 들고 있어야 하고 고생을 해야 하는지 이해하기 힘들었고 후진 애들의 작업을 도와주는 게 싫었다.

‘이렇게 평범하게 자라온 애들과 나는 다르다고 나만이 할 수 있는 영화가 있다고…….’

하지만 그가 그렇게 할수록 작업의 빈약함만이 들통이 났다. 아이들의 관심은 사그라졌고, 그가 발표하려 할 때마다 딴짓하는 아이들이 늘어났다.

그의 인생에 이런 굴욕은 처음이었다. 너무 굴욕적이었고, 화가 났고, 분했다. 이 굴욕감과 분노를 위로받아야 했다. 그는 서울아트시네마와 상암동의 영상자료원과 각종 독립영화 상영관의 GV를 보러 다녔다. 상영 후 질문시간에 그는 항상 손을 들고

“안녕하세요. 저는 영화학도입니다. 질문 드릴 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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있습니다. 영화 너무 잘 봤고요, 영화를 보면서 1910년대의 정치적 상황들을 그린 영화들이 생각이 나더라고요. 참고로 저는 영화를 작년에 400편 넘게 봤습니다. 아핏차퐁 위라세타쿤이 34

칸 황금종려상을 타기 전부터 주목하고 있었고 대체로 제가 눈여겨보는 감독들이 몇 년 뒤에 황금종려상이나 아카데미 외국어 영화상들을 타더라고요.”식의 질문이 아닌 자신의 영화적 지식과 감상을 떠들고 오곤 했다.

자신의 질문이 꽤 인상적이었던 것 같았다.

몇 개월이 지난 뒤 다른 GV를 보러 가자 감독이 “아. 그분이시군요. 얘기 많이 들었어요…. 드디어 뵙네요.”라고 했다. 동기가 “야 게시판에서 글을 봤는데 이거 너야?”라고 하며 보여준 영화 관련 사이트에서 ‘제목: GV마다 나타나신다는 그분 드디어 봤습니다. 내용: 드디어 뵙네요. ㅋㅋ 소문대로 인상적이더군요. 그 옷은 대체 어디서 사시는지 궁금하네요. 역시나 자신이 본 영화 얘기하시더라구요. 도대체 어디서 그런 영화들만 골라 보는지. 마음만은 벌써 3대 영화제 감독상 석권한 사람 같네요 하하 당분간 GV안가려구요’ 하는 글이었다.

자신의 영화적 지식과 자신의 가능성을 알아주는 사람이 있다니 그는 감개무량했다. 그리고 결심했다. 이제 나도 열심히 시나리오를 써야 한다. 참고를 위해 그는 열심히 구글링으로 희귀영화 토렌트를 찾아 나섰다. 아무도 보지 못했을


영화들, 다운받는데 일주일 넘게 걸릴 정도의 희귀한 영화들.

그는 시나리오를 본격적으로 쓰기 시작했고 무언가 어디서 본 장면 같기는 하지만 본 영화들이 너무 많았기에 정확히 무슨 영화인지 기억이 잘 안 났다. 그래도 전체를 참고하는 것도 아닌데 이 정도면 괜찮은 거 아닌가? 그 뒤부터 시선이 달라졌다. “아 너는 역시 틀리네! 그동안은 학교에 적응하느라 그런거구나?”하는 말을 듣게 되었다. 그는 더더욱 의기양양해서 열심히 토렌트를 찾았다.

그렇게 1학년을 보내고 2학년이 되던 해에 새로운 강사가 학교에 왔다. 유럽의 무슨 영화학교에서 동양인 최초로 졸업을 한 사람이라고 했다. 그의 수업을 열심히 듣고 개인면담을 했을 때 교수가 묘한 웃음을 띠며 말했다.

“그냥 이제 멈추는 게 낫지 않을까?”

그 교수가 나는 다 알고 있어 하는 눈빛으로 그를 보며 말했다. 꼬리가 길면 밟힌다고 했던가 그러나 김누구보다빛나는의 꼬리는 그마저도 길지 않았다는 점이 비극이었다. 그 교수의 수업시간에 김누구보다빛나는이 그동안 봐왔던 영화들을 토막토막 보여줬고 동기들이 웅성거렸다. 그가 베꼈다는 것조차 모를 정도로 많은 영화을 봤다는 것뿐인데 너무 억울했다. 누구라도 자기처럼 많은 영화를 본다면 헷갈릴 것이다. 그러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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베낀 것이 아니라 헷갈린 것이고 그만큼 참조할 레퍼런스가 많다는 것 아닌가? 하지만 비난의 목소리는 사그라질 줄 몰랐다. 그저 영화를 많이 본 죄밖에 없는데 아직도 좋아하는 감독을 36

물으면 박찬욱, 봉준호, 김지운, 이와이 슌지만 말하는 주제에 자신을 비난하는 동기들을 이해할 수 없었다. 너무 억울했고 화가 났다. 영화를 찾아보려는 의욕도 사라지고 한글2002를 켜면 한 글자도 쓸 수가 없었다. 그는 결국 휴학을 선택했다.

자아에 크게 상처를 입은 김누구보다빛나는은 그 자아를 회복해야 했다. 그렇다면 선택은 하나 뿐이었다.

인도! 인도로 가야 한다!

갠지스 강에서 몸을 씻고, 오른손으로 카레를 입에 집어넣으며 잃어버린 자아를 찾아야 했다. 이미 인도에서 입을 옷들은 다 구해놨다. 레게머리도 했다. 이제 그는 두려울 것이 없다.

조금만, 조금만 더 모으면 내 자아를 찾을 수 있다. 그는 오늘도 포스기에 삼각김밥을 찍고, 시재를 하고, 물건을 채워넣으면서 다짐한다.

인도! 인도로 가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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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돌아올 수 없는 강을 건넌 사람들 - 1.

휴덕은 있어도 탈덕은 없다

글쓴이: 박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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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철이 들고 나서부터 쭉 오타쿠와 후죠시로 살았다. 하지만 직업을 갖기 시작하면서부터 ‘취미’의 영역인 오타쿠 활동에 들일 수 있는 시간이 점점 줄어들었다. 그러다 보니 자연스럽게 탈덕(시쳇말로 오타쿠 활동을 그만둔다는 의미)을 하게 되었다. 집단 내부에 있을 때는 그저 이 문화 자체가 즐거워서 어쩔 줄 몰랐는데, 외부로 나온 뒤 거리감을 두고 이 집단을 바라보니 새롭게 보이는 점들이 있었다. 국가나 세대에 따라 오타쿠와 후죠시 집단은 성격도 다르고 내부 문화에도 차이가 큰데, 그럼에도 불구하고 ‘본능’처럼 그들이 동일하게 지닌 욕구가 있는 것처럼 보이는 건 왜일까? 얼마간 외부자 노릇을 하면서 발견한 것은 ‘이미지를 가지고 놀아보려는’욕구, 그리고 ‘사회적으로 터부시 되는 금기(동성애 및 성적 소재)를 굳이 다루고자 하는 집착’이었다.

현대는 이미지가 힘을 잃은 시대이다.

누구나 손쉽게 이미지를 생산할 수 있고 현실의 스펙터클이 CG로 구현 가능해지면서 이미지는 현실의 힘도 약화하고


있다. 이는 필연적으로 이미지를 보는 사람들에게 무감각함을 불러일으켰다. 그러나 ‘후죠시’는 아직도 이미지에 천착하고 끊임없이 이미지를 재생산한다. 그들은 무엇보다도 ‘유희적 40

욕구’를 잃지 않은 것처럼 보인다. 그들은 소비와 생산을 넘나들며 이미지를 가지고 놀며 즐거워한다. 그래서 나는 ‘왜 이렇게 즐거운지’에 대한 이유를 들여다보기 위해 결코 주류가 될 수 없는 서브컬쳐, 그 변두리 중에서도 변두리인 후죠시의 이야기를 하고자 한다.

후죠시의 어원과 역사

서두에서부터 ‘후죠시’를 언급했지만 오타쿠가 아니라면 후죠시라는 단어 자체를 처음 보는 이들도 있을 것이다. 후죠시의 한문 표기는 부녀자(腐女子)로, 이 한자를 일본식으로 음독한 발음이 후죠시다. 이 단어는 ‘좋아하는 남성 캐릭터나 인물을 골라 동성애 관계로 설정한 뒤 그 커플을 소재로 다양한 창작물을 만드는 사람들’을 지칭한다. 발음은 결혼한 여자를 지칭하는 ‘부녀자’와 같지만 한자를 그대로 직역하면 ‘썩은 여자’라는 뜻이 된다. 뜻풀이에서도 알 수 있듯이 스스로를 비하하는 자조적인 어감이 강하다.

이 단어는 2000년대 한국의 디씨인사이드와 비슷한 성격을 지닌 인터넷 커뮤니티 2ch(니챤넬, 이하 니챤)에서 처음


등장했다. 이전까지는 동성애를 소재로 한 작품이 ‘야오이’라는 이름으로 불렸고 이런 문화를 즐기는 여성들을 자연스럽게 ‘야오녀(아마추어 작품 활동을 한다는 뜻으로 동인녀라고 부르기도 했다)’라고 지칭하곤 했다. 그런데 이런 여성들을 경멸하는 한 남성이 ‘썩은 여자(후죠시)’라는 표현을 사용하며 모욕적인 글을 게시하자 야오녀들이 도리어 ‘그래 맞아, 난 썩었어!’라며 적극적으로 이 단어를 사용하기 시작했다.

니챤의 야오녀들이 잘 받아넘겼다고는 하지만 일본에서 후죠시는 우리나라의 ‘병신’과 비슷한 강한 어감을 갖고 있다. 그래서 후죠시를 후죠시라고 부르면 큰일이 날 수 있다. 국내에서도 스스로 ‘난 병신이야’라고 말하는 건 웃고 넘어갈 수 있지만 다른 사람이 ‘넌 병신이야’라고 하면 분위기가 이상해지는 것과 비슷한 느낌이라고 볼 수 있다. 이러한 자학과 자조의 기조는 이 연재의 후반부에 설명할 후죠시 집단의 폐쇄성과 이어져 있다. 후죠시 활동을 취미의 영역일 뿐이라고만 볼 없는 이유이기도 하다.

후죠시는 이제 십 년 남짓 사용된 신생 단어이나 후죠시 이전의 야오이1 시대를 되짚어 보면 이 집단은 일본 서브컬쳐의 흐름에 따라 근 40년에 이르는 역사를 가진 오래된 집단이다. 그런데 이 후죠시스러운 동향은 더 오래전부터 있었던 모양이다. <신곡>의 단테와 성 베르길리우스의 관계에 대해 수녀를 포함한 여성들이 편지를 주고받던 중 편지가 유출되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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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해성사했다는 일화가 있는가 하면, <셜록 홈스>의 작가 코난 도일은 시리즈 연재 중, 존 왓슨을 여성과 결혼시키는 에피소드를 썼을 때 셜록 홈스와 존 왓슨이 커플이라고 믿어왔던 여성들에게 42

수많은 항의 편지를 받았다고도 한다. 중국에서는 <삼국지>의 유비와 관우의 도색화가 발견되기도 했다. 나폴레옹을 소재로 한 동인 소설도 나돌았던 적이 있다고 하며 동성애를 소재로 한 조선 시대 육담집도 발견할 수 있다. 남성 둘을 연인관계라고 망상하는 후죠시의 특성이 지역과 시대에 관계없이 출현했었다는 점은 매우 흥미롭지만, 이런 야사로 후죠시의 역사를 정리하기에는 다소 무리가 있다.

현재 우리가 알고 있는 후죠시의 모습이 뚜렷해진 것은 일본의 서브컬쳐가 부흥하면서부터이다. 1980년 초입, 일본의 애니메이션과 만화 산업이 크게 성장하면서 후죠시들의 주 패러디 대상이 SF영화나 소설, 록 뮤지션 등에서 애니메이션과 만화로 확장되었다. 또한, 동성애 소재의 만화나 소설(이하 BL)만 싣는 전문 잡지가 생기기도 하고 서점에는 시장이 커지자 자연스럽게 이들이 생산한 작품을 판매하거나 구매할 수 있는 마켓과 상점도 세를 늘리기 시작했다.

서점에는 BL 전문 코너가 들어섰고, 어떤 작품을 패러디한 BL 동인 시장2 역시 버블의 호황을 업고 고속으로 팽창했는데 당시 유명한 작가집단이었던 ‘클램프’가 동인지 행사에서 벌어들인 현금이 너무 많아 쓰레기봉투에 담아 갈


정도였다거나, 행사에 꾸준히 참가하던 오오테(동인 시장에서 인기 있는 서클이나 작가를 뜻하는 일본어) 하나가 시부야에 빌딩을 사기도 했다는 일화가 있을 정도다. 일본의 서브컬쳐 행사인 코미케(코믹마켓)의 입장객도 이 당시에 7,000명을 돌파했던 것으로 알려졌으며, 만화나 영화 캐릭터로 분장하는 코스프레 도 이 시기에 시작되었다. 애니메이션과 만화를 위시한 서브컬쳐 시장이 커지면 커질수록 오타쿠와 후죠시 집단의 부피도 자연스럽게 팽창했고 현재 코미케의 입장객 수는 양일 합계 4-50만 명에 육박한다.

1990년대에 인터넷이 발달하면서 후죠시의 활동 반경은 홈페이지와 블로그로 확장되었고, 창작 활동도 기세를 더해갔다. 후죠시들의 활동 방식은 늘 조금씩 변화하지만 그들이 기본적으로 가진 ‘후죠시적인 시선’은 변하지 않는다.

후죠시는 오타쿠일까

아즈마 히로키의 ‘동물화하는 포스트모던’은 오타쿠 계에 큰 반향을 일으켰던 저작이다. 그가 말했던 오타쿠론으로 현재의 오타쿠 문화를 설명하기에는 다소 무리가 있지만 오타쿠와 후죠시의 차이를 설명하기 위해 인용하고자 한다. 아즈마 히로키는 오타쿠를 일컬어 ‘데이터베이스적 동물’이라고 기술하며 오타쿠 집단의 소비형태에 대해 아래와 같이 적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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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여기에서 오늘날의 소비사회가 맞이하고 있는 새로운 국면을 확인할 수 있다. 소비되고 있는 것은 하나하나의 ‘드라마’나 ‘물건’이 아니라 그 44

배후에 감추어져 있을 시스템 그 자체이다. 그러나 시스템(커다란 이야기) 자체를 팔 수는 없으므로 그 한 단면인 한 회분의 드라마나 한 단편으로서의 ‘물건’을 겉보기로 소비하게 한다.3

이러한 소비형태는 <기동전사 건담>, 또는 <FSS(파이브스타스토리)>등의 작품에서 볼 수 있었다. 이 두 작품은 작중 배경이 되는 시대가 연표로 정리되어 있을 만큼 설정이 치밀하게 짜여 있다. <기동전사 건담>은 이 설정을 토대로 계속해서 시리즈가 제작된다. 시리즈마다 등장하는 캐릭터나 스토리는 다르지만, 배경은 기본적으로 ‘건담의 설정’에 따르고 있다. 건담 오타쿠들은 새롭게 나온 시리즈의 배경이 연표의 어느 시대에 해당하는지, 또 다른 시리즈와 접점이 있는지, 작중에 나온 기체가 현재까지 나온 건담과 어떤 유사성이 있고 어떻게 개조되었는지 등등 설정(데이터베이스)에 기반을 두어 작품을 즐기는 모습을 종종 볼 수 있다.

데이터베이스 소비의 다른 예는 특정 속성을 지닌 캐릭터에 대한 애정이다. 예를 들어 ‘네코미미(고양이귀)’라는 속성을 좋아하는 오타쿠라면 어떤 캐릭터든 고양이 귀만 달았다는 이유만으로 좋아할 가능성이 크다. 고양이 귀나


안경 등 외모에 대한 속성이 있는가 하면, 캐릭터의 성격도 카테고리화 되어 있고, 더 나아가 스토리의 성격도 분류가 잘 되어 있다. 일본에서는 분기별로 신작 애니메이션과 게임이 쏟아져 나오지만, 거칠게 말하자면 이 작품들은 파편적인 기호와 클리셰의 조합에 지나지 않는 것이다. 보통은 소비층이 좋아할 만한 요소만 모아두었다고 해서 작품이 팔릴 거라고는 생각하기 힘들다. 아무리 잘생긴 배우가 출연하더라도 영화가 재미없다면 흥행에 실패하는 것처럼 말이다. 하지만 오타쿠 세계에서는 마음에 드는 기호가 포함되어 있으면, 작품이 재미있지 않아도 충분히 두터운 소비층이 형성된다. 그러나 아이러니하게도 이 ‘데이터베이스 소비’에서 후죠시가 오타쿠라고 단언하기 힘든 지점이 생긴다. 후죠시와 오타쿠가 작품을 소비하는 방식은 일견 비슷해 보이지만, 작품을 소비하는 내적 알고리즘과 재생산의 방식을 보면 전혀 다른 방식으로 작품을 보고 있음을 알 수 있다.

소비하는 대상이 어떤 기준에 따라 분류되어 있고, 그렇게 제작된 데이터베이스 중 한 섹터를 골라 소비할 수 있다는 점은 공통점이다. 그러나 오타쿠의 기호가 ‘한 대상’에 한정된 것이라면 후죠시의 기호는 ‘관계’에 집중되어 있다. 또한, 후죠시의 기호는 필연적으로 재생산과 연관된다. 오타쿠의 소비가 ‘좋아하는 기호에 관련된 물품’을 수집하는 것에서 멈춘다면, 후죠시의 소비는 수집과 망상 다음의 재생산에 이르러서야 일단락을 맺는다. 후죠시는 관계에 집중하므로, 그들의 먹잇감은 서브컬쳐계 작품에 한정되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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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러티브가 있는 한 관계는 사라지지 않기 때문이다. 또한, 후죠시의 재생산성은 원본데이터베이스에 연속하고자 하는 욕망과는 다소 거리가 있다. 46

후죠시는 데이터베이스의 ‘빈틈’을 찾고 있다. 데이터베이스에서 설명되지 않는 부분(일명 설정구멍)을 찾아 자신이 찾아낸 관계(동성애 관계일 확률이 높고 대부분 연인 관계)의 새로운 이야기의 바탕으로 삼는 것이 가장 흔히 보이는 후죠시의 데이터베이스 활용법이다. 아즈마 히로키에 따르면 원본 데이터베이스를 해치지 않는 선에서 원본의 규칙을 따라 패러디가 진행되어야겠지만, 후죠시들은 그 작품 내에서 마땅한 빈틈을 찾지 못했을 경우 아예 다른 작품을 차용하거나 새로운 배경을 창조해버리기도 한다. 후죠시들에게 중요한 것은 관계이며, 그 관계를 자신의 취향대로 이루어 낼 배경은 굳이 원본 설정이 아니라도 상관없는 것이다.

후죠시와 차원

후죠시 문화는 서브컬쳐에 기반을 두고 자라났기 때문에 사용하는 단어도 국가, 또는 세대에 따라 다르며 같은 후죠시 집단만이 이해할 수 있는 은어의 형태를 띤다. 수명 또한 짧아서 아무리 널리 사용되는 단어라고 하더라도 3~5년이면 다른 은어로 대체되곤 한다. 후죠시들끼리 단어의 정확한 의미를 두고


싸우는 것도 종종 볼 수 있는 광경이다. 그러나 이런 불안정함 속에서도 변형 없이 자리 잡은 체계가 있다. 그것은 후죠시들이 작품을 나누는 기준이다. 47

이 기준은 기호나 속성에 따른 분류가 아니라

순수하게 작품이 위치한 맥락에 따른 구분으로, 첫째로는 ‘작품의 순도’에 따라, 둘째로는 ‘작품이 위치하는 차원’에 따른 구별법이다. 먼저 작품의 순도는 작품에 변형이 몇 차례나 가해졌는지 또는 차용의 횟수로 알 수 있다. 변형이 없는 원본으로서의 작품, 즉 영화, 애니메이션, 소설, 만화 등을 ‘1차’라고 부른다. 의미만 보면 현존하는 모든 창작품 및 생산물이 1차에 해당하지만 굳이 어떤 작품을 두고 1차라는 명칭을 사용할 때는 ‘아마추어가 제작했다’는 의미가 붙기도 한다. 어떤 작품이 ‘원본’의 조건을 갖추었다고 집단 내의 인정을 받았거나, 본인이 제작한 창작물이라면 ‘1차’ 작품이 된다.

이 1차 작품을 누군가가 패러디하여 무언가를

제작했다면 그 패러디의 산출물은 ‘2차’가 된다. 2차 창작물은 1차 창작물(원본)이 존재함으로써 성립되는 복제본이며, 따라서 2차 창작의 대상이었던 1차 창작물에 대한 정보를 갖고 있어야 이해할 수 있다는 점이 특징이다.

마지막으로 ‘3차’는 1차 작품을 패러디하여 제작된

2차를 다시 패러디한 창작물을 이른다. 이런 식으로 뻗어 나가다


보면 10차, 100차까지도 뻗어 나갈 수 있을 것이다. 후죠시들은 대개 1, 2차 창작에 머무르고, 3차 창작은 다른 후죠시의 2차 창작물이 원본에 버금갈 정도로 훌륭하게 만들어졌을 때 칭송과 48

응원의 의미로 제작되는 경우가 많다. 덧붙이자면 이러한 ‘~차’ 구분은 변형이 반드시 가해진다는 전제를 둔 개념이다. 인터넷이 발달하면서 후죠시가 접할 수 있는 정보는 더욱 늘어났고, 패러디의 대상이 되는 ‘1차 창작물’의 범주도 역사서나 일반 물건, 또는 기업의 캐릭터 등 일상에서 접할 수 있는 모든 것으로 확대된 상태이다.

다음으로는 ‘작품이 있는 차원’에 따른 구별법이다. ‘1D’, ‘2D’, ‘2.5D’, ‘3D’로 나누어지며 숫자 뒤에 붙는 D 는 Dimension(차원)의 약자이다. 1D란 글로 된 작품, 주로 소설을 지칭한다. 2D는 그림으로 이루어진 작품을 말한다. 애니메이션, 만화책 등이 이에 속한다. 2D는 원래 평면이라는 뜻인데, 일본에서 가장 번성했던 서브컬쳐 분야가 애니메이션과 만화였기 때문에 그러한 서브컬쳐계를 뭉뚱그려 지칭할 때 사용하기도 한다. 3D는 입체라는 뜻 그대로 실존인물을 가리킨다. 2.5D는 실존 인물(배우)이 픽션(영화, 뮤지컬 등) 에서 어떤 배역을 맡았을 경우 그배역과 해당 작품의 세계관을 지칭하는 용어이다. 3D에서 이어지는 단어로는 RPS(Real Person Slash)가 있다. 실존 인물로 동성애 관계를 망상하고 관련


창작물을 만드는 것을 말하는데 2000년대 초입에는 많이 볼 수 있었으나 대상이 되는 인물의 명예 훼손이나 초상권침해 등의 문제가 일어나 현재는 물밑에서만 이루어지고 있다. 이 글에서는 1차보다는 2차에서 활동하는 후죠시에 대해 주로 다루고자 한다. (이게 더 재미있으니까.)

후죠시는 무엇을 하는가

다시 아즈마 히로키에 따르면, 동물은 주어진 환경을 바꾸려고 하지 않는다. 그들은 환경에 순응하며, 그들의 행동은 외부 자극에 대한 반응으로밖에 나타나지 않는다. 아즈마 히로키는 오타쿠의 소비문화를 이처럼 주어진 데이터베이스만을 쫓는 수동적인 형태라고 해석했으며, 오타쿠 또는 후죠시가 생산하는 패러디 작품들도 그 일환이라고 이야기한다.

원본의 소스(원작의 세계관이나 캐릭터 설정이 포함된 데이터)를 활용하여 원본의 복제품(패러디 작품), 즉 시뮬라크르를 생산하고자 하는 욕망은 후죠시를 포함한 오타쿠의 본능이라고 할 수 있을 정도로 이 집단에서는 보편적인 욕망이다. 그러나 후죠시가 패러디 작품을 생산하고자 하는 이유는 원본 데이터베이스의 파생으로 존재하고자 하는 것이 아니라 ‘새로운 이야기’를 창조하고자 하는 것에 가깝다. 후죠시가 이럴 수밖에 없는 이유는 ‘필터링’을 뇌에 장착하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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있기 때문인데, 마치 3D 입체안경을 쓰고 영화를 보는 것처럼 후죠시는 ‘전지적 3인칭 망상 메커니즘’을 통해 세상을 바라본다. 이 메커니즘은 ‘거름망’과 ‘색안경’의 기능을 수행한다. 50

‘거름망’이 하는 일은 원본에서 마음에 드는 소스 및 캐릭터 등을 추출해 내는 것이다.

이 거름망의 형태는 후죠시마다 조금씩 다를 수 있고, 서로의 거름망을 통해 추출한 산출물들을 용납하지 못하는 일이 일어나기도 한다. ‘색안경’의 역할은 특정 레이어만을 골라서 볼 수 있게 해주고, 내러티브나 설정상의 빈틈을 찾아내 준다. 원본에 존재하는 다양한 레이어 중 자신이 보고 싶은 레이어만을 보는 것이다. 대개는 동성애로 엮을만한 레이어를 보곤 하지만 이 색안경의 색상도 후죠시마다 조금씩 다르다. 또한 ‘빈틈’이란 위에서도 잠깐 언급했듯이 원본에서 망상을 펼쳐나갈 만한 구멍을 찾아내는 것이다. 다음 편에서는 후죠시 집단에서 사용하는 단어들을 통해 이 독특한 시각과정이 어떻게 작동하는지, 작동한 결과가 어떻게 나타나는지에 대해 소개하겠다.

1. 야오이: 동성애 소재 및 그러한 소재가 주류인 창작물을 말하는 단어이다. 이 단어의 공식적인 첫 등장은 동인지 <랏보리(らっぽり)>의 1979년 12월 20일 호 지면에 실렸던 어느 좌담회의 녹취록(きゃみさんレポート: 知らなかった方がよかった 「 やおい」の歴史에서 발췌)이었다. 당시 좌담회에 참가했던 하츠 아키코(波津彬子,


만화가)는 ‘야오이’에 대해 다음과 같이 설명한다.

우선, 단어(야오이)가 처음 나온 곳은 약 15년 전 <러브리>라는 만화연구회로서, 자신의 작품과 타인의 작품을 평가할 때 ‘갈등도 없고(야마나시 山なし)’, ‘결말도 없고(오치나시 落ちなし)’, ‘주제도 없다(이미나시 意味なし)’는 말이 유행했습니다. 이 삼박자를 갖춘 만화는 그다지 칭찬할만한 구석이 없다는 자조적인 의미를 포함해 ‘야오이’라고 불렀고 그것이 시작이었습니다.

하지만 무언가가 있었다. 이 남성들 사이에서 흐르는 분위기는 뭐지? 라는 감동이 저에게는 있었던 것입니다. 거기에서 저와 마부루 씨는 ‘갈등도 결말도 주제가 없어도, 색기는 있다.’라는 컨셉으로 책을 만들었습니다. 이것이 <랏뽀리, 야오이 특집호>입니다.

이 시기는 동인계의 창작자들에게 ‘이제는 창작물의 수준과 관계없이 좋아하는 기호 하나를 집어넣는 것만으로도 괜찮다는(심지어는 그 ‘기호’가 남성 동성애여도 좋다는) 공식적인 승인’이 암묵적으로 이루어진 때이다.

2. 패러디 작품을 그리는 후죠시 집단을 포함해 ‘재생산’을 활발히 하는 오타쿠 및 그 집단을 묶어 ‘동인계’라고 부른다. 또한, 프로가 아닌 아마추어의 제작물을 뜻하기도 한다. 후죠시는 동인계에 속해 있기 때문에 후죠시 대신 ‘동인녀’라는 명칭을 사용하기도 하며, 후죠시들이 발간하는 책을 ‘동인지’라고 부르기도 한다. 서브컬쳐계에서 사용되는 단어들은 의미가 혼선된 경우가 많고, 후죠시와 오타쿠가 모두 사용하는 단어도 있지만, 이 글에서 등장하는 ‘동인’, ‘마켓’ 등은 후죠시에만 국한하여 사용하고자 한다.

3. 아즈마 히로키, 동물화하는 포스트모던, 문학동네, 20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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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실탐구단 보고서 01

글 신인아 hello.inah@gmail.com 호키포키 hereistoday@gmail.com 권민서 antiquuus@gmail.com 박하다 pinen@naver.com

디자인 신인아

제작 현실탐구단 2014. 06. 06

의견, 궁금하신 점이 있으신 분, 또는 함께 글쓰기를 하실 분들은 inquiries.into.reality@gmail.com 로 메일 보내주세요. facebook.com/hstgd hstgd.tumbl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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