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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2년 1월 5일•초판 발행 지은이•윤영석 발행・제작•(주)풀피리_경기도

파주시 직지길 234(문발동)

전화 031-949-1186 팩스 031-949-1956 표지디자인•디자인

여백

내지편집•(주)성전기획 ISBN•978-89-964674-4-1

잘못된 책은 바꾸어 드립니다. 서면에 의한 저자권자의 허락없이 복제를 금합니다.


글쓴이의 말 우리들은 모두 소중한 인생의 의미를 갖고 살아간다. 나는 어떤 존재의 의미 를 갖고 살아가는 사람일까? 마음속으로 이런 질문을 하곤 한다. 어릴 적부터 공적인 일들에 관심이 많았다. 초가집 방에 벽지로 발라 놓은 옛날 신문을 보면 서 사회가 돌아가는 것에 대해 조금씩 눈을 떴고 전기불이 들어오지 않아 TV도 없던 시절, 트랜지스터 라디오에서 흘러나오는 각종 시사뉴스를 들으려고 아침 마다 귀를 쫑긋 세우곤 했던 기억이 남아 있다. 새마을운동을 하시던 동네 어르신들의 모습을 보면서는 지역과 나라발전에 보탬이 되는 사람이 되어야지 하는 생각을 하곤 했다. 이런 생각을 어릴 적부터 계속해왔기 때문에 전공도 자연스럽게 국가의 운영을 논하는 정치학을 전공하 게 되고 결국은 행정고시에 합격하여 정부의 운영과 관리에 직접 참여하여 정책 을 만들고 집행하는 국민의 머슴이 되었다. 직업공무원으로서 19년의 세월, 참으로 보람 있는 시간이었다. 많은 국민들 로부터 더 잘하라는 채찍을 수없이 받지만 그래도 최선을 다해 국민의 행복과 나라의 발전에 헌신한다는 그 사명감 하나로 청춘과 열정을 바쳐 온 세월이었 다. 그것은 내가 원했던 존재의미 그 자체였다. 공직생활을 한다는 그 자체가 보 람과 즐거움이었기에 누구한테도 어느 자리에 가고 싶다는 얘기를 한 적이 없었 다. 어떤 자리에 가건 그 분야에서 가장 우선적으로 해결해야 할 중요한 문제들 을 찾아서 모든 열정과 지혜를 동원하여 일을 성사시키곤 했다. 운이 좋게도 공 직동기들에 비해 핵심요직에도 많이 근무했고 승진도 빨랐다. 공직생활은 평생 을 바쳐도 후회하지 않을 나의 존재 그 자체였다.


그런 나에게 변화가 찾아 왔다. 그 계기는 2000년대 중반 이후 중국에 대해 본격적으로 알게 되면서부터였다. 그전까지 우리나라가 규모는 작지만 경제적 으로나 문화적으로나 세계적으로 부강한 나라가 될 것이라고 확신하고 있었다. 2000년대 초반 미국유학 시절까지만 해도 우리나라의 앞날이 매우 밝을 것이라 는 것에 추호의 의심도 하지 않았다. 미국, 유럽, 일본 등에 비해 우리의 산업경 쟁력이나 노동력의 질이 뒤지지 않는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문화적으로도 우 리의 역사와 문화원형질을 잘 살려나가면 이들에 비해 결코 꿀릴 것이 없다고 생각했다. 우리나라의 앞날의 발전에 큰 난관으로 작용할 수 있는 것은 중국이라는 생각 이 들었다. 그래서 중국을 제대로 알아야 겠다는 생각으로 2006년부터 중국어 를 공부하리라 마음먹고 실행에 옮겼다. 중국을 더 깊이 파악할 수 있는 절호의 기회도 찾아왔다. 2007년부터 서울특별시 마케팅담당관을 맡게 된 것이다. 외 국인관광객과 투자유치를 총괄하는 마케팅담당관을 맡아서, 특히 중국지역에 연간 150억 원 이상의 재원을 투입하여 관광객 및 투자유치를 위한 공격적인 마 케팅을 했다. 마케팅을 하기 위해서는 마케팅 대상을 철저하게 분석을 해야 한 다. 그래서 중국의 각지를 돌아다니며 중국 사람들의 생각과 관습, 그리고 전통 문화와 역사를 연구하고 분석했다. 마케팅담당관을 하던 꼬박 3년의 세월동안 중국의 국가기관에 종사하는 정치 인과 공직자들, 관광 및 투자관련 업무에 종사하는 기업인, 시장에서 채소를 팔 고 있는 상인과 음식점 주인에 이르기까지 그들의 사고방식과 문화, 관습을 이 해하려고 많은 노력을 기울였다. 2010년부터 1년간은 중국의 수도 북경에 직접


거주하면서 아시아도시연맹 이사장, 북경대학 방문학자, 중국전매대학의 객좌 교수로서 보다 깊은 연구를 했다. 무엇보다 특히 관심을 갖고 본 것은 중국정부와 기업의 미래를 개척하고 만들 어 가기 위한 노력과 투자에 관한 것이었다. 아무리 나라가 크고 인구가 많더라 도 미래에 대한 투자를 소홀히 한다면 우리의 적수가 될 수 없고 우리는 걱정을 할 필요가 없는 것이다. 그러나 2008년 3월 북경의 첨단과학기술단지인 중관촌을 방문한 후 엄청난 충격을 받지 않을 수 없었다. 한 마디로 큰 일 났다는 생각이 들었다. 미국, 일 본, 한국 등의 첨단기업이 지배하는 세상에서 중국기업들은 산업생산 피라미 드의 하위에 위치하고 있고 앞으로 상당한 기간 동안 그 위치에 머물러 있을 것이라는 당시 생각은 중관촌을 둘러 본 후 산산조각이 나고 말았다. 우리나라 가 살길은 오직 우수한 인적자원을 활용한 첨단기술개발 밖에 없다고 일찍이 생각했기 때문에 2000년대 초반 미국 듀크대학 유학시절에도 첨단과학기술 클러스터에 대한 연구를 해서 석사학위를 받았다. 그런 나의 눈에 북경의 중관 촌은 새로운 세상을 창조하는 첨단기술 개발의 중심지가 되리라는 인상을 주 기에 충분했다. 특히, 중국의 젊은이들 중에서 가장 우수한 두뇌를 자랑하는 북경대, 청화대 등 20여개 대학의 이공계 전공학생들과 구글, IBM, 마이크로소프트 등 중관촌 에 몰려있는 세계적인 첨단기업들이 공동으로 연구개발을 하고 대학생들이 이 러한 첨단기업에서 제대로 살아있는 공부와 연구를 하고 있다는 것은 그야말로


공포에 가까운 것이었다. 우리나라의 서울대학을 비롯한 각종 대학의 이공계 박 사과정은 몇 년째 미달되는 사태가 벌어지고 있다. 이공계 기술을 배워봐야 소 용이 없다는 사회풍조가 반영된 것이다. 미래의 첨단기술 개발에 온 국가적 역 량을 결집하고 있는 중국과 이공계 박사과정에 진학하는 것조차 꺼리고 있는 우 리나라의 현실을 비교해보면 앞으로 10년 후, 20년 후 우리의 미래는 불을 보듯 이 뻔하게 된다. 본문에서 자세하게 설명하고 있지만 첨단기술개발 관련 각종 통계수치에서도 이미 그 차이가 확연하게 드러나고 있다. 국토가 좁고 자원도 없고 인구도 적은 나라가 우리나라다. 그렇지만 부모님들 의 교육열과 국민의 두뇌개발지수 만큼은 전 세계에서 최고인 것이 우리나라다. 이러한 우리나라가 세계 속에 우뚝 서기 위해서 인적자원과 첨단과학 기술개발 이외에 다른 무슨 대안이 있겠는가? 첨단과학기술을 개발하는 훌륭한 인재 한 명이 수만 명을 먹여 살릴 수 있는 것이 지금의 세상이다. 누구나 다 아는 것이 다. 그러나 선택과 집중, 그리고 실천의 문제에서 우리나라가 갈 길은 너무나 멀 다. 특히, 중국과는 산업구조측면이나 무역중심 경제를 지향한다는 측면에서 겹 치는 부분이 매우 많기 때문에 이렇게 나가다가는 우리나라가 중국경제의 영향 권 아래로 급속히 빨려 들어갈 수밖에 없다는 것은 자명한 것으로 보인다. 현재 20% 정도인 중국에 대한 경제의존도가 향후 20년 이내에 50%까지 높아질 것 이라는 것이 경제학자들의 견해이다. 그렇게 된다면 정치, 외교, 경제적 측면에 서 우리나라는 중국의 영향권 아래로 급속히 편입될 것이다. 먹고 살수야 있겠지만 국가적 자존심이나 독립성이 훼손된다면 우리나라의 앞날은 암울할 수밖에 없다. 우리 스스로 우리의 운명을 결정하지 못하고 종속


적인 변수가 되기 때문이다. 이러한 것은 중국에도 결코 도움이 되지 않는다. 국 가 간의 상호견제와 균형 속에서 평화가 온다는 것은 국제정치학의 기본전제이 다. 힘이 한쪽으로 쏠리게 되면 국가 간 균형의 판도가 깨지고 불행한 일이 생기 게 된다는 것은 역사가 증명하고 있다. 내게 생긴 이러한 문제의식은 우리나라가 어떤 국가를 지향해야 하고 내 자신 은 또한 어떤 길로 가야할지에 대해 많은 고민을 하게 만들었다. 앞으로 다가올 어두운 국가적 운명 앞에서 계속 직업공무원으로서 머물 것인가 하는 것이 우선 적인 고민이었다. 그 결론은 나라의 어두운 앞날을 되돌리기에 직업공무원으로 서 할 수 있는 일이 별로 없겠다는 것이었다. 그럼 어떤 길을 갈 것인가? 결국 은 나라가 가야 할 미래의 큰 방향을 정하고 국민을 설득하는 것은 정치이므로 정치인이 되어야겠다는 결론에 도달하게 되었다. 새로운 도전을 앞두고 고뇌와 번민이 없을 수 없다. 차라리 그것이 더 인간적 이다. 지금까지 쌓아 온 공직에서의 노력과 성과를 버리고 가보지 않은 길을 간 다는 것은 큰 모험이다. 그러나 어두운 미래로 다가오는 국가적 현실 앞에서 누 군가는 대비하고 앞장서야 하기 때문에 결단을 내리기로 했다. 직업공무원으로 서도 할 수 있는 일이 있겠지만 좀 더 큰 차원에서 국가운영의 틀을 바로 잡고 올바른 방향으로 나라가 가도록 하는 일은 결국은 정치의 영역이므로 이 길을 택하게 된 것이다. 우리나라는 지금 여야 정당들간의 갈등과 투쟁으로 인해 나라가 큰 어려움을 겪고 있다. 보수와 진보라는 이분법적인 서구적 정치이념에 바탕을 둔 정치권의 진흙탕 싸움으로 인해 국민의 에너지가 미래를 위한 발전적 에너지로 승화하는


것을 막고 있다. 그것은 보수와 진보라는 이념적 원칙을 실현하기 위한 합리적 정치행위라기보다는 자리보전을 위한 선동으로 밖에 보이지 않는 것이 현실이 다. 지금 벌어지고 있는 많은 논쟁들은 조선시대 당쟁이나 사화에서 보는 시시 콜콜한 논쟁들과도 큰 차이가 없는 것들이다. 왕이 승하한 후 왕의 모친, 즉 대 비가 상복을 1년 동안 입는 것이 맞는지 3년 동안 입는 것이 맞는지 하는 문제로 권력자들이 당쟁을 벌여 수백명의 인재들을 죽이는 처절한 내분을 벌이는 사이 에 백성들은 임진왜란과 병자호란 등으로 피눈물을 흘려야 했던 그 시절과 지금 우리의 상황을 비교해도 결코 지나친 것이라 할 수 없을 것이다. 미국, 중국, 일본, 러시아 등 열강의 힘의 균형과 권력의 축이 뒤바뀌는 세계 사적인 전환기의 한 가운데에 있는 것이 바로 우리나라다. 얼마 전 서해바다를 무대로 미국의 항공모함이 중국의 북경, 천진, 상해, 광저우 등 핵심도시들을 겨 냥하고 무력시위를 한 것은 세계사적 권력이동기에 있어서 우리의 영토가 태풍 의 눈과 같은 지정학적 위치에 자리하고 있음을 웅변하는 것이다. 앞서 경제적 측면에서 우리나라의 미래성장 역량이 현저히 힘을 잃어가고 있고 중국의 영향 권 속으로 급속히 빨려 들어가고 있음을 제시했다. 이와 같은 세계사적 상황의 전개 속에서 우리의 정치권은 나라의 앞날과 국민의 안위를 위해 어떤 대안을 제시하고 있는지 절규하는 심정으로 묻고 싶다. 우리는 부의 불균형 문제, 일자리 창출, 복지를 위한 사회적 안전망 확충 등 현실적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최선의 대책을 강구해야 한다. 그러나 이것 만으 로는 부족하다. 국민들은 우리의 앞날에 뭔가 모를 큰 먹구름이 몰려오고 있다 는 것을 알고 있다. 마치 쓰나미가 오기전 생존하기 위해 본능적으로 이동하는 생물들 처럼, 우리 일반 국민들은 외부의 환경변화에 취약하기 때문에 무언가


큰 위기가 오고 있는 것을 직감적으로 알고 있는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정치권 에 무언가 획기적인 해결책을 제시할 것을 강력하게 요구하는 것이다. 그러나 정치권은 말이 없다. 해결책이라고 제시하는 것은 동문서답인 경우가 더 많다. 이제 소모적인 정쟁과 분열의 정치는 종지부를 찍어야 한다. 통합의 정치, 화 합의 정치로 국민적 에너지를 모아 이를 바탕으로 위기를 극복하고 미래의 발전 을 위한 원동력으로 분출시킬 수 있는 진정한 정치가 절실한 시대가 왔다. 이는 우리 양산의 경우에도 동일하게 적용된다. 양산의 획기적 발전과 성장을 위해 시민의 에너지를 한군데로 모을 수 있는 지역 정치권의 통합과 화합이 절대적으 로 필요하다. 지금까지 우리 국민들은 정말 잘 해왔다. 갖은 고생을 하면서 일구어 온 나라 다. 우리나라의 운명이 참 얄궂다. 살만하면 또 허리를 졸라 매야 하는 그런 지 정학적인 숙명을 타고 났기 때문일 것이다. 우리 성인들은 그런대로 잘 살아 왔 다. 그러나 우리의 아이들이, 우리의 후손들이 정말 큰 문제다. 아이들, 후손들 이 기를 펴고 당당하게 살 수 있는 그런 부강한 나라를 만드는 것이 오늘날 우리 모두에게 주어진 가장 중요한 숙제라는 생각이 든다. 우리 국민들은 전 세계에서 인정받는 우수한 국민이다. 타고난 두뇌, 열정, 교 육열 등 어느 것 하나 둘째 가라면 서러운 국민들이다. 이 엄청난 잠재력을 발전 적이고 생산적인 에너지로 분출할 수 있도록 만드는 것이 바로 정치의 역할이 다. 그것만 할 수 있다면 우리나라는 진정으로 전 세계에서 가장 잘사는 나라가 될 수 있다.


양산은 내게 많은 것을 베풀어 주었다. 특히 자연이 준 교훈은 가장 값진 것이 다. 어린 시절, 새벽에 일어나 바지게를 지고 나가서 촉촉하게 이슬이 내린 논두 렁에서 소에게 먹일 풀을 벨 때 느끼던 그 감촉과 풀향기도 좋다. 겨울에 산에 올라가 땔감을 할 때 느끼던 나무들의 거친 느낌도 좋다. 순하디 순한 소를 산에 풀어다 놓고 친구들과 풀밭에서 뒹굴 때 느꼈던 흙내음 풀 냄새도 좋다. 자연은 말 없는 스승이라는데 온 몸으로 자연을 호흡했으니 그 때 이미 최고의 교육을 받은 것이다. 산골 생활이 준 소박함과 겸허함의 미덕도 너무나 값진 것이다. 나는 딸만 둘이 있는 딸기아빠이다. 둘 다 소띠로 열두 살 차이다. 이제 세 살 배기인 작은 아이가 새록새록 잠들어 있는 모습을 보곤 한다. 나라의 앞날, 우리 들의 아이들의 앞날을 생각하노라면 많은 걱정이 된다. 아이들이 겪게 될 미래 를 생각하면 정말 잠이 오지 않는다. 우리 어른들은 아이들과 후손들이 기 펴고 살 수 있는 그런 나라를 만들어 물려주고 조용히 역사의 뒤안길로 사라지면 된 다. 나는 우리가 그런 일을 이루는데 작은 역할을 하는 사람이 되고 싶다. 이 책 은 그에 대한 나의 다짐이며 맹세이다. 2012년 1월 윤 영 석 올림


목차 1부 나의 삶, 나의 길 새 길 앞에 서다 - 다시 고향길 위에 서서 017 그리운 내 고향 양산(梁山) - 사람의 향기가 살아있는 곳 021 동네에 경운기가 들어오다 - 1970년대의 새마을 운동 027 어린시절의 기억들 - 나를 키운 양산의 산과 들 031 고교시절의 좌절과 방황 - 고등학교와 재수생활 036 대학입학과 군 입대 - 군 생활의 보람과 활기 039 행정고시에 합격하다 - 까치의 축하 043 행정인으로 거듭나다 - 세종문화회관 민영화, 인사동 길 조성 047 국민의 소리에 귀 기울이다 - 7000건의 민원 해결 054 더 넓은 세상으로 - 미국 듀크대학으로 유학 057 한국도 세계적인 오케스트라를 갖다 - 서울시립 교향악단 개혁 059 문화는 살아있다 - 한류의 시작 065 1000만 명 외국인 관광객 시대 - 3년 만에 이룬 꿈의 목표 070 양산의 도시 브랜딩 - 흙 이야기 076 중국을 배우고 익히다 - 지피지기 백전불태 082 양산이 살 길 - 첨단기술과 문화관광 산업 088 중국의 심장부로, 미국의 심장부로 - 북경대, 하버드대 유학 091 나라의 미래를 생각하다 - 희망찬 양산, 그리고 대한민국 099


2부 칼럼 양산시민신문 기획연재시리즈 <윤영석의 세계의 도시들> 양산 발전 장기전략, 외국사례도 살펴보자 107 미국 첨단산업의 메카 노스캐롤라이나 RTP - 미국 노스캐롤라이나 111 제조업 중심에서 첨단산업과 문화도시로 변모 - 스페인 빌바오 115 전 세계 공연예술가들의 꿈의 도시 - 영국 에딘버러 120 공장지대의 예술 르네상스 - 프랑스 마르세유 124 대학을 기반으로 첨단기술산업단지로 발전 - 중국 중관촌 128 지구에서 가장 올바르게 사는 도시 - 브라질 꾸리찌바 135 전통공예산업 육성으로 지역경제성장의 기반 구축 - 일본 가나자와 141 디자인으로 세계 최고의 소득을 누리는 도시 - 핀란드 헬싱키 147 신재생에너지 사용으로 친환경적인 삶을 생활화 - 독일 프라이부르크 153 교육은 국가와 지역의 발전을 위한 백년대계 - 미국 보스턴 159 복지는 인간의 삶을 따뜻하게 만드는 원동력 - 스웨덴 스톡홀름 165 잘 살고자 하는 것은 체제를 넘어 선 인간본성 - 중국 화서촌 171

양산인터넷뉴스 윤영석칼럼 <양산의 미래, 한국의 미래> 양산의 발전과정과 현재, 그리고 미래 177 양산의 지역경제 활성화를 위한 전략 181 교육과 문화발전을 통한 선진도시 양산 185 모두가 잘사는 도시 양산을 위한 과제 189 대변화의 소용돌이가 몰아치는 세계정세 192 전환기의 국제관계와 정치외교 전략 197 새로운 세계경제질서와 한국의 대응 204 국민의 이익과 복지를 위한 사회 문화정책의 방향 208


1부 나의 삶, 나의 길 새 길 앞에 서다 그리운 내 고향 양산(梁山) 동네에 경운기가 들어오다 어린시절의 기억들 고교시절의 좌절과 방황 대학입학과 군 입대 행정고시에 합격하다 행정인으로 거듭나다 국민의 소리에 귀 기울이다 더 넓은 세상으로 한국도 세계적인 오케스트라를 갖다 문화는 살아있다 1000만 명 외국인 관광객 시대 양산의 도시 브랜딩 중국을 배우고 익히다 양산이 살 길 중국의 심장부로, 미국의 심장부로 나라의 미래를 생각하다


새 길 앞에 서다 다시 고향길 위에 서서

비행기가 한국의 상공을 벗어나자 우리 나라의 집과 길들이 모형물처 럼 작아지다가 구름에 뿌옇게 가려졌다. 1시간30분 후면 북경 수도공항 에 도착한다는 스튜어디스의 안내 말을 들으면서 눈을 감았다. 공무출장 으로 며칠씩 중국에 머문 적은 있었지만 이번 경우처럼 아시아도시연맹 의 이사장으로서, 또한 북경대학의 방문학자와 중국전매대학의 객좌교 수로서 1년 여 동안 체류하는 경우는 처음이었다. 중국의 실리콘 밸리라고 불리는 중관촌도 깊이 있게 연구해 볼 생각이 라 더욱 긴장되었다. 이곳은 마이크로 소프트, 애플, IBM, 삼성 등의 세 계적인 기업들이 서로 경쟁하며 연구 개발에 몰두하는 곳이다. 매년 1,700여 개의 첨단 기술기업이 생겨나는 곳으로 중국에 뜨거운 피를 공 급해주는 심장부로 직접 들어가는 것이었다. 역사는 돌고 도는 것이라고 한다. 우리의 앞날을 스스로 대비하지 않으면 또 다시 과거의 치욕적인 역사가 되풀이 될 수도 있다. 우리 조상들이 당했던 부끄러운 역사를 후

나의 삶, 나의 길 17


손들이 겪지 않게 하기 위해서는 지금 우리가 준비하지 않으면 안된다고 생각했다.. 감은 눈 뒤로 조금 전 구름에 가려졌던 내 나라의 집과 길들이 더욱 또 렷이 보이기 시작했다. 지난 세월 앞만 보고 달려왔던 길, 좀 더 나은 우 리나라를 만들려고 밤잠을 설치고 끼니도 걸러 가면서 달렸던 그 길들이 하나둘 선명하게 떠올랐다. 이제부터 중국 땅에 도착해서 새로운 길에 도 전을 해야 한다. (안녕하십니까? 처음 뵙겠습니다. 반갑습니다) 3년여 동안 매일 아침 7시부터 한 시간 반씩 열심히 배운 중국어를 마 음속으로 연습을 했다. 모두 이 날을 대비해서 준비한 것이다. 출국을 앞 둔 어느 날 한 지인이 이런 말을 했다. “일본은 어떻게 이겨볼 수 있을 거 같은데 중국은 정말 무섭습니다. 도축해서 갈고리에 걸어놓은 돼지 몸통에 명품이라는 의미로 LV(루이비 통 약자) 도장을 찍어놓고, 산사태가 나서 산 한쪽 귀퉁이가 붕괴되니까 거기에다가 녹색 페인트를 칠하는 사람들은 중국밖에 없을 겁니다.” 그들이 갖는 막연한 공포심을 나는 이해할 수 있었다. 지도에서 보면 거의 손톱크기만한 땅덩어리에, 지하자원도 없는 우리나라가 지난 십여 년 동안 중국보다 좀 더 우월한 입장에서 무역경쟁을 치러왔다. 그러나 엄청난 기세로 성장하여 세계 제패를 눈앞에 두고 있는 중국에 대해 우리 나라 국민뿐만 아니라 전세계의 이목이 쏠리는 것은 당연했다. 그러나 나는 서울의 마케팅담당관으로서 일을 시작한 이래 심혈을 기 울여‘서울의 브랜딩’작업을 성공적으로 이끌었다. 미국의 뉴욕타임즈 는‘2010년에 꼭 가보아야 할 도시’ 로 서울을 전세계에서 3위에 올렸다. 명동을 한국말보다 중국어와 일본어가 더 많이 들리는 거리로 만들었고

18 윤영석의 희망노래


지금 불고 있는 한류바람의 모태역할을 했다. 또한 개혁을 통해‘서울시 립 교향악단’ 을 세계정상급 오케스트라의 위치로 끌어올려놓았다. 아이 비리그 명문인 콜럼비아 대학은 서울시립교향악단 개혁을 세계 교향악단 역사에서 매우 혁신적인 성과로 평가해서 대학강의 교재로 채택하기도 했다. 어떤 책에서 이런 글을 읽은 적이 있다. 헝가리 출신의 유명한 축구 선 수가 유럽 축구 선수권 대회에서 우승한 뒤 기자회견을 가졌다고 한다. 당연히 기자는 우승한 비결이 뭐냐고 묻자 선수는 이렇게 말했다. “나는 많은 시간을 투자하여 공을 찹니다. 공을 차고 있지 않을 때는 축구에 대해 이야기를 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축구에 대한 이야기를 나누 고 있지 않을 때는 축구에 대한 생각을 하고 있습니다.” 뛰어난 축구 선수가 그냥, 저절로 생겨나는 것이 아니라 목숨을 걸고 최선을 다한 사람과 대충 하는 사람은 다르다는 것이다. 나 또한 지난 세월동안 목숨을 걸고 달려온 것은 그 축구선수와 같지만 나 한 사람만의 노력으로 이루어진 것은 아니라는 점에서는 축구선수와 다르다고 할 수 있다. 나는 환경, 즉 시스템을 만들어주었을 뿐, 나머지는 그 환경 속에서 국민들이 신명나게 자신의 재능을 발휘한 것이다. 나는 우리나라의 국민성을 믿고 있다. 자유롭게 재능을 발휘할 수 있는 환경만 만들어주면 성실성과 창의력을 바탕으로 못해내는 것이 없는 민족이 우 리나라 국민들이다. 북경의 중관촌에 1년 동안 체류하면서 중국의 대학생들이 중관촌의 첨 단기술기업들과 연계하여 기술개발에 몰두하고 있는 모습을 보고 큰 충 격을 받았다. 한국을 떠날 때부터 예상은 하고 있었지만 우리가 예상했던 것보다 중국은 훨씬 앞서가고 있었다.

나의 삶, 나의 길 19


미국을 제치고 세계에서 가장 많은 연구개발 인력을 보유한 국가로 부 상했고, 향후 글로벌 혁신의 허브가 될 가능성이 상당히 높아지고 있는 실정이었다. 현재에 안주할 게 아니라 부국강병을 꾀해야할 때라는 걸 뼈 저리게 느끼고 돌아왔다. 이 문제는 내 고향 양산에 대해서도 똑같이 해당된다. 인문계 고등학교 진학을 하고 싶어도 인문계 고등학교가 없어서 어쩔 수 없이 정든 고향을 떠나 부산 이모님 댁으로 가야했던 30년 전의 결심과도 연결되어 있다. 그때에 비하면 양산이 많이 발전했지만 아직 갈 길이 멀고 험하다. 첨단 기술 산업과 문화관광 산업을 키워야하고 제1의 교육도시로 만들어야 한 다. 복지문제와 교통환경 개선 또한 미뤄둘 수 없는 중요한 사안들이다. 지난 시간 무엇을 위해 달려왔던가를 곰곰이 생각해보았다. 돈을 벌기 위해서였을까. 돈을 벌고 싶었다면 기업가가 되었을 것이다. 명예를 위해 서였을까. 명예를 위해서라면 교수가 되었을 것이다. 내가 행정고시를 보 고 국가공무원이 된 것, 그건 미약하지만 내 의지와 힘으로 우리나라와 우리사회를 좋은 방향으로 바꿔보고 싶었기 때문이었다. 부산의 고등학교에 진학하기 위해 양산을 떠나면서 뒤를 돌아보았다. 중3 여름방학이 끝나고 2학기의 중간쯤이었다. 학교 교문과 이어진 흙먼 지 일어나던 좁은 길, 끝없이 이어질 것 같던 그 길 양옆으로는 가을걷이 를 앞둔 알알의 곡식들이 누렇게 익어가고 있었다. 그 이후 나는 늘 도시 의 이방인으로 살아왔지만 단 한 번도 그 길을 잊은 적이 없다. 이제 30 여 년 만에 다시 그 길로 들어서려고 한다. 나는 가슴이 두근거린다.

20 윤영석의 희망노래


그리운 내 고향 양산(梁山) 사람의 향기가 살아있는 곳

내가 태어나기 전부터 고향에는 산, 들, 시냇물, 강이 있었다. 그곳에 는 푸른 하늘이 있었고 나무와 풀과 기름진 대지가 있었다. 고향마을은 하늘을 닮아 순박한 사람들이 땅을 일구며 산과 들을 누비며 살아가고 있 었다. 1965년 음력 10월 7일 나는 당시 경남 양산군 원동면 화제리 996번지 의 초가집에서 태어났다. 한국전쟁이 끝난 지 불과 12년 후라 아직 그곳 에는 보릿고개로 고생하고 있었지만 사람들은 자연 속에서 순박한 마음 을 그대로 유지하면서 살았다. 배는 고프지만 마음만은 부자인 사람들이 었다. 대학생 때 까뮈가 쓴 글을 읽고 무릎을 친 적이 있었다. “나의 어린 시절 위로 내리쬐던 그 아름다운 햇볕 덕분에 나는 원한이 란 감정을 품지 않게 되었다. 나는 빈곤 속에서 살고 있었으나 또한 일종 의 즐거움 속에서 살고 있었던 것이다.”

나의 삶, 나의 길 21


바로 그 어려운 시절이 우리 고향 사람들의 마음이었다. 봄, 여름, 가 을, 겨울 사시사철 쉬지 않고 일을 해도 겨우 배고프지 않을 정도로 살아 가는 사람들에게 가난은 숙명이었기에 원한을 갖지 않던 삶이었다. 그래 서 지금 그때의 삶을 돌아보면 더욱 마음이 아프다. 내가 태어난 1965년, 약 50가구 정도인 우리 동네 화제리 내화부락 서 편마을에서만 12명의 아이가 태어났다. 소위‘베이비 붐’시대였던 것이 다. 그런데 희한하게도 12명중에서 11명이 남자아이였다. 남자 아이들 간 의 치열한(?) 경쟁을 예고한 셈이었다. 우리 집안은 고조부님 대부터 양산에서 삶의 터전을 일구었다. 빈한 한 살림살이에 언제나 가난을 면치 못하다가 할아버지 대부터 조금 먹고살만한 정도가 되셨 초등 6년 가을운동회

단다. 할아버지와 할머

니는 맨 손으로 출발하여 마음을 맞추어 억척스럽게 일을 하셔서 자식들 먹여 살릴 수 있는 논마지기라도 제법 장만을 하셨단다. 상북면 출생의 할머니는 어릴 적에 다리를 다치셔서 평생을 장애인으로 지내셨다. 불편 한 몸을 이끌고 언제나 무언가를 하시고 한 푼이라도 아끼는 삶을 사신 할머니의 고생하신 모습을 생각하노라면 가슴이 찡하다. 그것이 고단했 던 우리 조상들의 삶일 것이다. 이제는 모두 돌아가신 아버지와 어머니 모두 화제리에서 태어나셨다. 어머니가 아버지 보다 두 살이 많으셨다. 아버지가 18살 되던 해에 결혼 식을 올렸으니 지금으로 봐서는 참 일찍이도 결혼을 하셨다. 아버지가 장

22 윤영석의 희망노래


남이다 보니 조부모님 입장에서는 빨리 손주를 볼 욕심이셨을 것이다. 59년생 으로 지금은 고인이 되신 큰 누님, 그리 고 61년생인 둘째 누님을 낳고 아버지 는 군대를 가셨다. 형이 63년생이고 여 동생은 68년생이다. 모두 5남매를 낳고 열심히 살아 오셨다. 아버지와 어머니는 모두 초등학교만 다니셨다. 아버지는 항상 배움에 대해

1980년‘중학교3학년 때 5남매가 함께

한을 가지신 분이었다. 당시 농촌의 상 황이 모두들 제대로 교육을 받는 경우가 드문 시기였지만 아버지는 항상 못 배운 것에 대한 한을 자식들에게 토로하시곤 했다. 그리고 우리들에게 열심히 공부를 하라는 말씀을 하시곤 했다. 약주라도 한잔 하고 오신 날이 면 어김없이 형과 나를 앉혀 놓고 한 시간이고 두 시간이고 바르게 살아야 한다, 남을 속이면 안 된다, 열심히 공부를 해야 한다고 타이르시곤 했다. 어머니께서는 조금이라도 잘하면 항상 잘한다고 칭찬을 해주셨고, 좀 잘못한 일이 있어도“영석아, 괜찮대이.”라고 하시며 절대 기가 죽지 않 도록 하시려고 배려해주셨다. 그런 어머니의 칭찬의 힘이 내가 어떤 고난 에 처해도 용기를 잃지 않고 다시 일어설 수 있도록 하는 성품을 만들어 주셨던 것 같다. 항상 원칙에 충실했던 아버지와 조금이라도 베풀려하고 너그럽고 긍정 적이었던 인생 태도를 가진 어머니의 성격이 내게 전달된 것 같다. 살아 오면서 많은 좌절을 겪게 되는 것이 사람의 인생이다. 그러한 좌절에 부 딪혀 다시 일어서지 못한다면 우리는 고인 물처럼 그 자리에 머물고 말 것이다. 그러한 좌절을 딛고 새롭게 일어설 수 있다면 우리는 새로운 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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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을 펼칠 수 있다. 나도 살아오면서 많은 좌절을 겪었다. 그러나 그때마다 일어설 수 있었 던 것은 희망을 잃지 않았기 때문이다. 희망을 잃지 않는 나의 성품은 어 머니로부터 물려받은 것이다. 아버지께서는 화제에서 계단식 논으로 된 천수답 농사를 짓는 것이 너 무 싫으셨다고 한다. 그래서 내가 다섯 살 되던 해인 1970년 어머니와 자 식들을 이끌고 부산으로 장사를 하러 가셨다. 서면로터리 부근 부전시장 에서 배추나 무와 같은 채소를 파는 조그만 가게를 내셨다. 그 때 우리 가 족이 살았던 곳은 중구 영주동의 한 아파트였다. 양산에 오면 조부모님께 서“우리 영석이 사는 곳 얘기해볼까” 라고 하면 나는“부산시 중구 영주 동 시민아파트 9블럭 다동 지하 3호” 라고 큰 소리로 말했던 기억이 지금 도 난다. 영주동 아파트는 당시에도 서민들이 살던 대표적인 산동네 아파트였는 데 그중에서도 지하층에 살았던 것을 보면 부모님께서 많은 고생을 하셨 겠구나 라는 생각을 하게 된다. 시골에서 농사를 짓던 분이 자식들 키우 려고 부산에 와서 장사를 하는 것이 별로 맞지는 않았던 것 같다. 또 조부 모님께서도 다시 돌아와서 농사를 지어야 한다고 부모님에게 하도 성화 를 부리셔서 결국은 3년 만에 다시 화제리로 들어와야 했다. 3년간이라는 짧은 기간의 경험이었지만 부산에서의 삶은 시골아이에 게 몇 가지 기억을 남겼다. 부전시장 옆에 있는 영화관에서 가족들이 함 께 영화를 본 일이며, 아버지께서 사 주신 냉면을 처음으로 먹었을 때 겨 자를 섞은 육수를 맛있게 먹었던 기억이며, 형과 함께 약장수가 약 파는 곳에 구경을 갔다가 원숭이가 나한테 안겨서 놀랐던 기억, 학교에서는 시 장통에 사는 가난한 시골출신 아이에게 아무도 시선을 주지 않았겠지만 처음으로 치른 받아쓰기 시험에서 만점을 받아서 선생님께서 배지 같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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것을 달아 주셨는데 그것을 1학기 내내 달고 다니며 자랑스러워했던 일 들이 아직도 기억에 생생하다. 초등학교 1학년 2학기에 영문도 모르고 나는 다시 화제리로 돌아 왔 다. 다섯 살 때 부산으로 갔다가 다시 양산으로 돌아와 고향에서의 새로 운 삶이 시작된 셈이다. 화제초등학교로 전학을 온 첫날 형과 함께 전교 학생 조회에서 앞으로 나가서 소개를 받았다. 그리고 새로 배정된 학급에 서 담임선생님께서 부산에서 공부를 잘하는 착실한 아이가 전학을 왔다 고 소개를 한 기억이 난다. 우리 동네는 화제리에서도 맨 안쪽 마을인 내화부락 서편마을이다. 그 야말로 산 아래 산골마을이다. 그곳에서 화제초등학교까지는 신작로를 따 라 30분정도를 걷는 거리였다. 하루에 한두 번 버스가 다니는 신작로를 따 라 친구들, 선후배들과 함께 어깨동무를 하면서 학교를 다니곤 했다. 학교에서는 쉬는 시간만 되면 축구를 했고 수업을 마친 후에도 별일이 없으면 동네별로 축구시합을 벌였다. 우리 동네 동갑친구가 11명이나 있 고 선배 후배들도 숫자가 많은 편이어서 우리 동네 팀이 시합에서 자주 이기는 편이었다. 나는 주로 공격수를 했고 가끔 골키퍼를 맡기도 했다. 아주 잘하는 편은 아니었지만 승부욕이 매우 강했던 것 같다. 요새 와서 친구들이 하는 말을 들어보면 나는 그 당시 우격다짐을 하더라도 시합에 서는 이겨야 직성이 풀리는 그런 아이였다고 한다. 지금도 일을 하다보면 그런 내 성격이 나온다. 일단 목표를 정하면 그 목표를 이룰 수 있도록 치 밀하게 계획을 세우고 차근차근 실천해나간다. 그동안 공직에서 근무하 면서 이뤄낸 성과들이 이런 내 기질과 잘 맞아떨어졌던 것 같다. 학교가 끝나고 집에 오면 부모님의 일을 거들었다. 모내기철이면 어른 들 모심는 논에서 모를 나르고 벼 수확 철이면 볏단을 지게에 짊어지고 타작마당으로 날라야 했다. 가을걷이를 하고 논을 다시 갈아엎어서 보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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씨앗을 뿌린 다음 땅을 고를 때가 가장 재미있다. 논을 갈아서 우툴두툴 해진 땅을 고르게 만들기 위해서는 아버지께서 소를 몰고 소 뒤에 조그만 뗏목 같은 것을 달아서 형과 내가 그 위에 같이 올라타곤 했는데 꼭 자동 차를 탄 기분이 들어서 아주 재미있었던 기억이 난다. 화제리에는 내가 초등학교 4학년 때 전깃불이 들어 왔기 때문에 그 이 전까지는 TV는 물론 없었고 호롱불 기름도 아끼기 위해 밤이면 암흑천 지 그 자체였다. 초가집에 밤이 내리면 호롱불을 켜놓고 할아버지와 함께 새끼줄을 꼬던 기억도 난다. 다리를 꼬고 앉아서 물에 축인 볏집 단을 옆 에 놓고 화롯불 옆에서 새끼를 꼬는 어린 아이의 모습…. 지금 생각하면 참 재미있는 추억이다. 할아버지께서는 인자한 성품이셨고, 택일이나 사주도 곧 잘 보셔서 이 웃 분들이 중요한 일이 있을 때 물으러 오곤 했다. 그러나 옳지 않은 일을 보면 참지 못하는 성품도 있으셨다. 이런 할아버지의 성품을 보여주는 일 화가 있다. 내가 초등학교 3학년 겨울방학 즈음이었는데, 하루는 할아버지께서 동 네 할아버지들이 같이 모여서 노는 곳에서 일찍 들어오시더니 사람들이 모이면 남의 욕을 한다고 하시면서 그곳에 다시는 안가겠다고 화를 내시 며 집으로 들어오시던 기억이 난다. 할아버지와 달리 할머니는 고집이 세고 자존심이 무척 강한 분이었다. 할머니의 부친께서 상북면 석장리(지금의 외석리)에서 농사를 짓고 사셨 는데 어릴 때 할머니의 오빠가 해 오신 나뭇짐이 넘어져서 그만 그 아래 에 깔리는 바람에 다리를 다쳐서 평생을 장애인으로 살게 된 것이다. 그 렇지만 아주 엄격하셔서 우리 형제들은 할머니를 가장 무서워했다. 조그 만 잘못도 용서를 안 하셨고 항상 잔소리를 많이 하셨다. 그러나 품앗이 를 할 때 이웃 분들이 도와주러 오면 음식을 푸짐하게 제공하고 인심이 좋다는 말씀을 많이 들으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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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네에 경운기가 들어오다 1970년대의 새마을 운동

내가 초등학교 3학년이 되던 해 아버지께서 같은 동네에 사는 이웃과 함께 돈을 모아서 경운기를 한 대 장만하셨다. 우리 동네에서는 처음으로 들어 온 경운기였다. 그전에는 발동기가 있어서 타작을 하거나 논에 물을 댈 때면 그 발동기를 사용하곤 했는데 발동기를 사용하려면 논까지 지게 에 짊어지고 가야하는 불편함이 있어서 좀 더 편하게 농사를 지으시려고 경운기를 장만한 것이다. 그런데 문제는 그 경운기가 논까지 가는 것이 당시로서는 거의 불가능 했다는 점이다. 논까지 접근할 수 있는 길이 없었다. 동네에서 한참 떨어 진 우리 논과 밭에 가기 위해서는 다른 집 논과 밭을 지나고 시냇물을 건 너서 가야했는데 한 사람 정도 지나갈 넓이의 논두렁길 밖에 없었기 때문 이다. 당시는 새마을운동이 태동을 해서 전국적으로 열풍이 불던 시기여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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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버지께서도 경운기가 지나 갈 수 있는 길을 만들고 다리를 만들어야겠 다는 생각을 하셨다. 동네 어르신들과 함께 면사무소를 찾아가고 군청을 찾아가서 길을 만들고 다리를 놓을 예산을 지원해 달라고 요청하고, 또한 길이 지나가는 논밭의 주인들이 길을 만들 수 있는 땅을 조금씩 내놓도록 설득을 하는 일을 하셨다. 아버지께서 새마을 지도자 와 이장도 맡으셔서 동네 어 르신들과 힘을 합해서 경운기 가 지나갈 수 있는 길을 내 고, 시냇가에 다리를 놓고 저 수지를 만드는 모습들을 보면 서 어린 나이의 나였지만 나 자신이 아닌 공동을 위해서

1970년대 화제리 내화마을의 새마을운동

일하는 열정 같은 것을 나도 모르게 배운 것 같다. 나도 크면 어른들처럼 동네와 지역, 그리고 국가발전에 보탬이 되는 사람이 되어야겠다는 생각 을 했던 것 같다. 그 때는 양산밖에 몰랐기 때문에 나중에 크면 군수가 되 고 싶다는 생각을 어렴풋이 했던 것 같다. 전기가 들어오기 전이라 아침 밥을 먹을 때 라디오 크기만 한 배터리를 친친 감은 작은 라디오에서 흘 러나오는 뉴스를 듣곤 했는데 그걸 들으면서 나름대로 세상을 향해 꿈을 키워가게 되었다. 우리 집은 초가로 지어진 위채와 아래채로 구성되어 있었는데 방이 두 칸인 위채에는 조부모님께서 계시고 아래채는 부모님이 사용을 하셨다. 우리 남매들은 아래채에서 부모님과 함께 잠을 잤다. 부모님은 참 금슬이 좋으셨다. 엄한 시어머니 아래서 고생하는 어머니를 위해 아버지께서 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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를 많이 쓰신 것 같다. 때로 새벽에 잠이 깨면 두 분이서 무언가 암호 같 은 말을 주고받으며 속삭이는 말씀이 들리곤 했다. 문장을 거꾸로 하는 것 같기도 하고 단어를 거꾸로 말씀하는 것 같기도 하고 어쨌든 어린 나 로서는 도무지 알 수 없는 두 분만의 언어로 속삭이는 말씀을 듣곤 했다. 나는 모른 척 숨죽이며 두 분만의 밀어를 듣곤 했다. 아마도 자식들이 들 어서는 안 되는 말을 두 분이 만들어서 사용하는 듯 했다. 위채 조부모님 방에서도 가끔씩 잠을 자곤 했다. 위채는 한참 지나버린 신문지를 어디에선가 구해서 벽을 모두 발라 놓았었는데 위채에서 놀 때 면 누워서 벽에 발라놓은 신문을 읽곤 했다. 한참 지난 것이라도 나에게 새로운 지식을 주기에 충분했다. 때로는 고모들이 읽고 놓아 둔 여성잡지 같은 것을 보고 여성잡지에 나오는 기사나 늘씬한 여성모델들의 멋진 모 습을 보고 감탄하곤 했다. 당시 농촌에서는 소가 매우 소중한 존재였다. 소는 논밭을 갈 때 없어 서는 안 되는 큰 역할을 하고 또 땅을 비옥하게 하는 거름을 만들어 주는 역할도 했다. 할아버지께서 젊은 시절 산에서 나무를 해서 소 구루마로 물금과 구포 등에 내다 팔아서 논밭을 조금씩 장만하셔서 그런지 우리 집 에서는 특히 소를 애지중지했다. 형과 나는 마구간의 소똥과 거름을 치우 는 일을 거의 전담을 하다시피 했다. 하루에 한 번씩 소똥을 치우고 소가 누울 수 있는 볏짚을 깔아주고 소죽을 끓여서 소를 먹이는 일은 항상 우 리 형제의 주요한 임무였다. 소는 눈이 참 착하게 생겼다. 형의 눈도 상당히 큰 편이고 아주 순하게 생겼는데 나는 어릴 적부터 형의 눈이 소의 눈과 비슷하다는 생각을 자주 했다. 형은 지금 생각해도 착하기 이를 데 없는 소년이었던 것 같다. 같은 동네에 사는 다리가 불편한 친구의 가방을 초등학교 다니는 동안 거의 매 일 비가 오나 눈이 오나 들어 주었다. 초등학교 시절 나는 학교의 고전읽기반에 들어가서 우리나라의 위인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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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 고전들을 많이 읽고 내 가치관 형성에 도움을 많이 받았다. 그 중에서 도 일본의 침략으로부터 나라를 구한 이순신 장군에 대한 감동은 오래 잊 을 수가 없었는데 초등학교 5학년 때 선생님께서“이순신 장군은 일본의 군량미를 나르는 배를 상대로 싸운 것이기 때문에 대단한 승리를 한 것은 아니다” 라는 취지로 강의를 했을 때 선생님께 따지듯이 반론을 제기한 적이 있다. 나의 민족주의자적인 태도가 더해져서 그런 것이긴 했지만, 선생님의 말씀이라면 꼼짝도 못하던 시절에 나는 당차게 내 소신을 밝힌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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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린시절의 기억들 나를 키운 양산의 산과 들

초등학교 시절 학교생활은 내가 언제나 희망을 잃지 않고 난관을 극복 해 온 튼튼한 기초를 제공해 준 시기였다는 생각이 든다. 1학년 2학기에 전학을 왔을 때 부산에서 전학을 온 아이라고 친구들이 모두들 당연히 내 가 태권도를 해서 싸움을 잘하는 아이라고 생각을 했던 거 같다. 실제는 전혀 아닌데 말이다. 그리고 키도 가장 큰 편이다보니 별다른 텃새를 당 하지 않고 자연스럽게 적응을 하게 되었다. 서편마을에서 같은 해에 태어 났던 11명의 남자친구들의 도움도 알게 모르게 많이 받았다. 공부는 곧 잘 했던 것 같다. 학교를 마치고 집에 돌아오면 소를 돌보고 거름을 치고 모내기나 벼를 수확하는 계절이면 들에서 부모님을 도와야 했고 겨울이면 하루에 두 짐씩 산에서 나무를 하는 가난했던 농촌에서의 삶이었기에 너나 나나 학력에 별 차이가 있을 수 없던 시절이었지만 그래 도 6학년 졸업할 때까지 매년 우등상을 받고, 매 학년 반장을 하고, 6학 년 때는 전교학생회장을 하고, 졸업식 때 최고상인 경남교육감상을 받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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던 기억은 좌절에 굴하지 않고 나는 무언가 할 수 있는 놈이라는 자신감 의 원천을 만들어 준 것 같다. 내가 4학년 때 형은 물금동아중학교에 입학했다. 형은 누나들과 함께 물금에서 자취생활을 하고 있었다. 가끔씩 형과 누나가 보고 싶을 때면 물금으로 버스를 타고 간 기억도 난다. 당시 큰 누나는 중학교를 중퇴하 고 양산의 금성알프스 공장에 다니고 있었다. 중학교 3학년을 다녀야할 나이에 공장을 다니기 시작하다보니 누나는 이 때 배우지 못한 것이 한이 되어 그 뒤에 항상 책을 끼고 살았다. 그러다 내가 군대생활을 하던 시절 에 아들 하나만 남겨놓고 먼저 하늘나라로 갔다. 배우지도 못하고 어려운 상황에서 고인이 된 누나를 생각하면 지금도 눈물이 난다. 초등학교 시절 여름방학이 되면 우리는 거의 매일 소를 몰고 산으로 갔 다. 동네형, 누나, 동생, 친구들이 모두 소를 한 두 마리 씩 몰고 산에 소 풀을 뜯어 먹이러 간다. 소뿔에 줄을 칭칭 감아서 소의 궁둥이를 차면 소 는 산으로 올라가서 풀을 뜯어 먹는다. 송아지가 있는 소는 송아지도 같 이 산으로 올라간다. 소를 산에 올려놓고 우리는 저수지에서 수영을 하고 개울가에서 물고기도 잡아먹고 때로는 나뭇가지를 꺾어 개구리도 잡아서 불에 구워먹곤 했다.

양산시 원동면 화제리의 하늘과 산과 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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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를 먹이러 온 소년들끼리 둘러 앉아 작은 돌들을 모아 살구받기(공기 놀이) 놀이도 하고 무릎박치기 놀이며 씨름이며 시간가는 줄도 모르고 신 나게 논다. 나는 때로는 책을 갖고 가서 읽을 때도 있었다. 시냇가에 나만 이 아는 고인돌같이 생긴 네모난 바위에 앉아서 책을 읽노라면 마음에 그 득한 만족감이 채워지는 느낌을 받곤 했다. 그러다가 해질 무렵이 되면 소를 찾아서 집으로 몰고 온다. 그렇게 산골마을의 하루는 갔다. 겨울방학에는 겨우내 밥을 짓고 난방을 할 나무를 해서 말려놓아야만 되기 때문에 나무하러 산에 가는 게 큰일이었다. 부모님과 같이 갈 때도 자주 있었고 때로는 동네 형, 동생, 친구들과 같이 여러 명이 나무를 하러 갈 때도 있었다. 지게를 짊어지고 낫과 작대기를 들고 산으로 올라가서 잡목이나 소나무 가지 같은 것을 잔뜩 베어서 지게에 차곡차곡 쌓으면 한 짐이 된다. 이렇게 오전에 한 짐을 해다가 집에 가져다 놓고 점심을 먹고 낮잠을 한 숨 잔 다음에 오후에 또 한 짐을 더 하러 산으로 올라갔다 초등학교를 졸업한 후 우리는 모두 물금면에 있는 물금동아중학교에 진 학을 했다. 몇몇 친구들은 5학년이나 6학년 때 부산으로 전학을 간 친구들 도 있었다. 우리 동네에서 물금동아중학교까지는 약 12km 정도의 거리였 는데 통학을 하는 방법은 하루에 세 대정도 다니는 버스를 이용하거나, 걸 어다니거나 자전거를 타거나 하는 것이었다. 나는 주로 자전거를 타고 통 학을 했다. 차비를 아끼려는 목적도 있었지만 나는 자전거를 타는 것이 좋 았다. 자전거 뒤 짐을 싣는 곳에 고무줄로 가방을 동여매고 화제 갈매기 제방 둑을 지나 경부선 철길 아래 낙동강변의 황산잔도(일명 베리끝)로으 로 자전거를 타고 가는 것은 사실 매우 위험한 일이었다. 사람 한명 걸어 갈 정도의 오르막, 내리막 경사길을 자전거를 타고 가다가 넘어지기라도 하면 바로 낙동강으로 빠질 수도 있는 그런 길이었다. 그래도 시원한 강바 람 맞으며 자전거를 타고 다닌 덕에 다리에 힘이 많이 올랐으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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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제에서 물금으로 가는 낙동강변 황산잔도의 모습(양산시민신문 제공)

이렇게 자전거로 통학을 하다가 2학년 때는 1년 정도 물금에 있는 누 나들의 자취방에서 같이 자취를 했다. 당시 물금파출소 앞에 있는 협성철 물점의 아래채 슬레이트집이 자취방이었다. 누나들이 돌아오기 전에 학 교에서 돌아오면 나는 배가 고파서 밥에 양념간장을 섞고 계란을 풀어서 프라이팬에 볶음밥을 만들어 먹곤 했다. 그리곤 주인집에서 버린 신문지 를 주워서 읽어보곤 했다. 초등학교 시절 우리 집의 방 벽에 벽지로 발라 놓았던 오래 된 신문으로 기초를 다졌다면 주인집에서 버린 신문을 통해 서 세상 돌아가는 것에 대해서 조금 더 눈을 뜨게 되었던 것 같다. 중학교라고 해서 생활이 특별히 달라진 것은 없었다. 학교에서는 나름 대로 열심히 공부를 하고, 학교가 끝나서 집에 오면 부모님 농사일 하시 는 것을 도와드렸다. 머리가 조금씩 크면서 주말이나 방학이면 친구들과 어울려 노는 일이 많아졌다. 특히 우리 동네 친구들은 우선 남자친구들의 숫자가 많고 형들로부터 일찍 술과 담배를 배워서 중학교 3학년 무렵부터 지금 생각하면 머리에 피도 안 마른 놈들이 어울려서 어른들 몰래 술을 마셨던 기억이 난다. 여 름이면 동네 가게에서 꽁치통조림과 소주를 사가지고 남자아이들 열댓 명이 같이 산으로 올라가서 찌개를 끓여 놓고 함께 술을 마시면서 녹음기 에서 흘러나오는 디스코 음악에 맞춰 신나게 춤을 추곤 했다. 해서는 안 될 짓을 하는 느낌이라기보다는 그전부터 우리 동네에서는 중학교 3학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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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도가 되면 동네 형들이 으레 그렇게 해왔기 때문에 별다른 죄의식 같은 것을 느끼지는 못했다. 가끔씩은 산이나 후미진 골목길에서 동네 형들로 부터 단체기합을 받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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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교시절의 좌절과 방황 고등학교와 재수생활

이렇게 물금동아중학교를 다니다가 3학년 2학기 9월 무렵에 부산시 동래구에 있는 내성중학교로 전학을 가게 되었다. 물금동아중학교에서 졸업앨범을 만드는 사진을 다 찍고 나서 우리 중학교 동기 중 열댓 명 정 도가 부산으로 전학을 갔다. 주로 동래구 아니면 북구 쪽으로 전학을 갔 는데 전학을 간 이유는 그때만 해도 양산에 인문계 고등학교가 없어서였 다. 참 안타까운 일이 아닐 수 없다. 앞으로 양산을 전국 최고의 교육도시 로 만들어 다시는 이렇게 우리 양산의 학생들이 외지로 빠져나가고 객지 에서 고생을 하는 일은 없어야겠다. 동래구 온천3동에 있었던 막내 이모 댁에서 누나들이 먼저 자리를 잡 고 있었다. 막내이모는 또순이 같이 알뜰살뜰 모아 이층양옥을 소유하고 있어서 비교적 괜찮은 환경에서 학교를 다닐 수 있었지만 시골에서 전학 을 온 나는 적지 않은 충격을 받았다. 초등학교와 중학교를 거치면서 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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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상위권을 놓치지 않았었는데 시골에서 막상 전학을 와보니 대도시의 최상위권 학생들과의 학력수준에 큰 격차가 있다는 것을 실감나게 알게 된 것이다. 머릿속에는 1등을 하고 싶은 생각이 굴뚝같은데 그렇게 하는 것이 어렵겠다는, 장벽 같은 것이 있다는 느낌을 받았다. 특별한 계기나 뭔가 획기적인 전환을 하겠다는 마음의 다짐이 생기지 않은 상태에서 동래구에 있는 동인고등학교로 진학을 하다 보니 상황이 나아질 리 없었다. 부산에 있는 학교를 다니면서 평소에도 부산에 전학을 와있던 양산 친구들과 같이 어울려 놀고 주말이면 화제로 가서 어렸을 적 친구들과 노는 일이 잦아지면서 학업성적은 좀처럼 나아질 기미가 보이 지 않았다. 내 생각 같지 않은 학교생활에 만족할 수도 없었고 게다가 사 춘기까지 겹쳐지면서 심적으로 많이 고생을 했던 것 같다. 당시 동인고등 학교는 방학 때도 학교에 와서 시험을 치곤했는데 친구들과 어울려 노느 라 정신이 없어서 방학 때 시험 치는 날을 잊어버린 적도 있었으니 지금 생각하면 어처구니가 없는 일이었다. 고등학교 생활을 이처럼 별다른 의욕이나 열정이 없이 지내다보니 예 상할 수 있는 대로 결국은 대학진학을 못하게 되었다. 더욱이 아버지가 당신이 그랬던 것처럼 나를 빨리 장가보내려고 하셨던지 실제 출생년도 인 1965년보다 한 해 빠른 1964년생으로 출생신고를 해 놓으셔서 대학 진학을 못하면 입대영장이 바로 나오게 되어 있었다. 나는 대학입학도 못 하고 군대를 가야 하는 상황에 놓이게 되었다. 시골소년이 부산에 전학 와서 만 3년 동안 침체의 시기를 겪은 말로였다. 그래도 재수를 해서 일단 대학을 들어가야겠다는 결론을 내렸다. 이제 방법은 어떤 대학이든 일단 들어가서 입영연기를 해 놓은 다음에 재수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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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는 수밖에 없었다. 그래서 부산 동의공업전문대학 야간에 입학을 하고 다음해 2월까지 입영연기를 해놓고 재수생활을 시작하였다. 주간에는 서면의 대학입시 학원에서 대학입시 공부를 하고 야간에는 동의공전으로 가서 수업을 받는 생활을 시작했다. 그 시절 비틀즈 노래를 듣는 것을 매우 좋아했는데 가끔씩 같이 재수를 하던 고등학교 동기와 함 께 남포동의 무아음악다방에 가서 요구르트를 한 개 시켜놓고 음악을 듣 곤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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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학입학과 군 입대 군 생활의 보람과 활기

이렇게 우여곡절을 겪은 다음 성균관대학교 정치외교학과에 입학을 하 게 되었지만 입학식도 해보지 못하고 1985년 2월 28일 군입대를 해야 했 다. 군입대를 하는 날 나는 초등, 중학 동기들과 밤새 이별주를 마시는 바 람에 더벅머리도 깎지 않고 해운대 53사단 훈련소로 들어갔다. 300여명 의 훈련병 중 더벅머리 그대로 들어 온 훈련병은 나 혼자 뿐이었다. 3일 동안 머리를 깎아 주지 않아서 나는 매일 저녁 점호시간마다 기합을 받아 야 했다. 그리고 그 벌칙으로 남들은 하나만 하는 당번을 두 개를 맡아야 했다. 하나는 남들이 가장 싫어하는 화장실 청소 당번이고 다른 하나는 식당에서 식수를 받아서 훈련병들이 마실 수 있도록 내무반으로 가져오 는 당번이었다. 초봄이 갈수기여서 훈련소에는 물이 풍부하지 않아 수돗 물은 식수용으로만 사용하고 빨래는 일주일에 한번 단체로 개울가에 가 서 해 와야 하는 상황이었다. 다른 것은 괜찮은데 보급 받은 군용양말이 세 켤레 뿐이어서 양말 한 켤레로 이틀, 삼일을 신어야 하다 보니 내무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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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발 냄새로 진동을 하고 무좀에 걸리는 훈련병이 많았다. 또 모두 고된 훈련에 한참 먹어야 할 때 배가 고프다 보니 밤에 몰래 남의 건빵을 훔쳐 먹는 훈련병들도 있었다. 어떤 훈련병은 밤에 바깥에 있는 화장실에 가기 가 싫어서 군용 찬합에 소변을 보고 계단위에서 버리다가 아래에 지나가 던 훈련소 조교의 머리에 뿌려서 훈련병 전체가 기합을 받기도 했다. 6주간의 훈련소 생활을 마치고 우리는 자대배치를 받게 되었다. 훈련 소 퇴소 3일전 공수부대 마크를 단 대위와 상사가 지프차를 타고 훈련소 에 왔다. 이들은 키가 180cm 이상인 훈련병들만 모아놓고 신체검사를 했다. 나도 거기에 해당이 되어서 검사를 받았다. 내 마음속으로 필시 공 수부대에서 차출을 하는가 보다고 생각했다. 훈련소를 마치기 전날 밤 우리 훈련소동기들은 모두 연병장에 모여 서 로 헹가래를 치고 훈련을 마친 기쁨을 나누었다. 6주간 훈련을 받으면서 정이든 우리들은 서로에게 자대에 배치 받아서 열심히 군대생활을 할 것 과 나중에 서로 만나자고 격려와 다짐을 했다. 다음날 우리는 모두 버스를 타고 훈련소를 나왔다. 그리고 기차를 타고 자대로 가기 위해 부산진역, 부전역 등으로 이동을 했다. 나는 부전역으 로 갔다. 그곳에는 미리 연락을 받은 부모님과 누나들이 나와 있었다. 어 머니께서 만들어 오신 음식을 맛있게 먹고 나는 어디로 가는지도 모르고 기차를 타야했다. 그냥 공수부대로 가는가보다고 막연히 생각했다. 그러 다가 동대구역에서 키가 큰 훈련소 동기 2명과 함께 내리라는 지시를 받 았다. 동대구역에 내려서 역사 안의 TMO에서 대기를 하고 있으니 지프 차가 한 대 와서 우리를 태우고 어떤 군부대로 들어갔다. 이곳은 경기도 와 강원도를 제외한 전국을 관장하는 대구의 2군사령부였다. 그리고 우 리는 2군 사령부의 의장대로 배치를 받은 것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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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가 배치를 받은 4월 중순부터 충청도, 전라도 등에서 온 동기들과 함께 우리는 6개월간의 의장병 훈련을 받았다. 의장대 고참들이 조교가 되어 우리 의장병 동기 12명은 매일 연병장을 돌고 구르고 뛰는 훈련을 받았다. 여름에 특히 더운 대구 날씨 때문에 우리가 입은 훈련복은 땀에 절어서 옷이 마르면 소금으로 하얀 색깔이 되곤 했다. 군기는 또 얼마나 센지 매일 밤 선임들은 우리 신병들에게 기합을 주었다. 별이 네 개인 육 군 대장이 군 사령관으로 있는 곳이고 의장대가 모든 사열과 열병행사를 하다 보니 혹시나 실수를 할까봐 군기를 잡는 것이었다. 초창기 6개월간의 의장병 훈련을 마치고 어느 덧 군 장 성들을 위한 사열이나 열병행 사에 투입이 되었고 국군의 날 행사 때는 대구에서 시가 행진을 하거나 3군 합동으로 서울에서 열린 국군의 날 행

2군 사령부 의장대에서 사열하는 모습

사에 참여하기도 했다. 그 후 18개월 정도 지난 후부터 1년간은 2군 사령부 정문과 북문의 위병조장으로 근무를 했다. 정문과 북문에서 위병조장을 하 다 보니 2군 사령부에 근무하는 많은 장교들과 사병들을 알게 되었다. 군대생활은 매우 활기차고 보람 있는 시절이었다. 시골소년이 부산이라 는 대도시에 나와서 겪었던 좌절감 같은 것을 날려 버리고 새로운 힘을 갖 추는 계기로도 작용을 했다. 나는 군대생활을 하는 동안 후배들을 구타하 거나 하는 행동을 일절 하지 않았다. 솔선수범을 한다는 자세로 임했고 위 병조장을 하다 보니 알게 된 장교, 하사관 등을 통해서 의장대내에 필요한 물자나 민원들을 해결해 주는 역할을 했다. 군 생활을 나의 리더십을 시험 해 보고 기르는 기회로 삼아서 다양하게 리더십 실험을 해 본 시기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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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0개월간의 군복무를 마치고 1987년 6월 제대를 했다. 제대를 하고 나 서 양산 집으로 돌아왔다. 대학 복학은 88년 3월로 예정이 되어 있어서 거의 8개월 동안 부모님 농사일도 거들고, 초등, 중학 동기들과 어울려서 놀기도 하고 때로는 책을 읽기도 하고 오랜만에 한가한 시간을 보냈다. 8개월여 충분한 휴식을 취하면서 내 마음속에는 그동안 못했던 그 무 엇인가를 해야겠다는 생각이 차올랐다. 사회에 진출하기 전에 마지막으 로 나에게 부여된 시간은 4년여 밖에 남지 않았다. 한동안 별로 만족스럽 지 못한 학창시절을 보냈는데 이제 진짜 나의 모습을 보여주어야 할 때가 왔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어릴 때부터의 꿈이었던 지역과 국가를 위해 봉 사하는 공직자가 되기 위해 행정고시를 준비해야겠다는 생각을 하게 되 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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행정고시에 합격하다 까치의 축하

성균관대학에 복학을 한 1988년의 대학가는 1987년 거세게 일었던 민 주화 운동의 열기가 아직도 식지 않은 때였다. 당시 직선으로 선출된 노 태우 대통령에 반대하는 학생들의 시위가 학교마다 매일같이 반복되었 다. 최루탄 냄새가 대학가의 골목골목마다 가득했고 우리들은 시위로 인 해 수업을 휴강하거나 심지어는 학교전체가 아예 수업을 하지 않는 날도 있었다. 내가 다닌 정치외교학과는 특히 시위를 심하게 하는 학과였다. 학생 대 부분이 소위‘투사’ 였다. 나도 자주 시위에 참여를 했는데 스크럼을 짜고 교문 밖으로 나가는 시도를 하다가 전경들이 쏘는 최루탄을 뒤집어쓰곤 했다. 시위가 끝나면 학교 앞 골목 막걸리 집에서 막걸리 잔을 나누며 시 국에 대한 토론을 했다. 그러나 나는 주동적인 운동권 학생은 아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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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88년 이후에는 좋든 싫든 이미 국민의 직접선거로 뽑힌 대통령이 취 임을 한 이후이기 때문에 이제는 학생들이 본연의 자세로 돌아가야 한다 는 생각을 갖고 있었다. 더구나 그 당시의 학생운동은 민주화 운동 보다 는 북한의 김일성과 김정일의 주체사상을 옹호하는 주사파 위주의 좌경 학생운동으로 점점 변질이 되어 가고 있었다. 친북좌파적인 학생운동에 더 이상 동참하는 것은 옳지 않다는 생각을 조금씩 갖게 되었다. 나는 이념적인 주장보다는 실제적인 업적과 성과를 통해 국가의 변화 와 발전을 이끌어 내야 한다는 생각을 마음 속 뿌리깊이 갖고 있었다. 행정고시에 합격해서 정부의 문제점을 개선하고 나라를 올바른 방향으 로 바꾸는데 나의 인생을 헌신해야겠다는 생각을 품게 되었다. 시위가 좀 뜸한 시기에는 학교도서관에서 전공과목인 정치학은 물론 경제학, 사회학, 동서양철학, 자연과학 등 폭 넒은 분야의 책들을 붙잡고 살았다. 나는 다양한 분야에 관심이 많은 성품이기 때문에 2학년 때까지 는 내가 보고 싶은 분야의 책들을 마음껏 읽었다. 이미 군대를 다녀와서 미팅이나 이런 것보다는 주로 독서를 하고 학교 수업을 충실하게 듣는 편 이었고 내가 고교시절부터 좋아했던 비틀즈의 노래들을 실컷 들은 시기 이기도 했다. 2학년이 끝나갈 무렵이 되자 졸업 이후의 인생을 설계해야 할 시기가 왔음을 알았다. 나에게 다른 선택이 있을 수 없었다. 2학년 겨울방학부터 행정고시 준비에 착수했다. 양산에 내려가서 부모님을 뵈었을 때도 행정 고시 준비를 한다는 말씀을 드리지 않았다. 1차 시험이라도 합격을 해놓 고 말씀을 드려야겠다고 생각을 했다. 다행히 1989년 겨울에 성균관대 행정고시반 시험에 통과되어 학교에 서 만든 고시반에 들어 갈 수 있게 되었다. 이곳에는 고시준비를 하고 있 는 선배, 동료들이 있었기 때문에 많은 시험정보를 얻을 수 있는 곳이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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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 책상 앞에‘권토중래(捲土重來)’ 라고 붓글씨를 써 붙여 놓고 8개월여 동안 열심히 준비를 해서 대학 3학년이던 1990년 여름에 행정고시 1차 시험에 응시한 결과 합격의 기쁨을 맛보았다. 1차 시험에 합격을 하고 양산에 와서 부모님께 말씀을 드렸고 친구들 과 함께 기쁨을 나누었다. 그러나 1991년에 응시한 2차 시험에서 그만 낙 방을 하고 말았다. 경제학 논술형 문제에서 전혀 들어보지 못한 문제가 나와서 과락을 맞았기 때문이었다. 대학 4학년 졸업반 때 시험에 낙방을 했으니 실망이 매우 컸다. 그러나 나는 그에 굴하지 않고 관악구 신림동 고시촌에 새로운 마음으로 다시 자리를 잡았다. 그곳은 책상 하나 놓고 겨우 나 혼자 누우면 방이 꽉 찰 정도로 좁은 방이었다. 그래도 그곳에서 하루에 잠자고 밥 먹는 시간만 빼고는 책을 잡고 씨름을 했다. 1992년 1차 시험에 무난히 통과를 했다. 두 달 후에 2차 시험이 있었지 만 1차 시험에 주력하느라 2차 시험까지 한꺼번에 합격하기에는 무리가 있었다. 2차 시험을 치르고 나서 그 다음해에 있을 2차 시험 준비에 들어 갔다. 1차 시험에 한번 합격하면 그 다음해 1차 시험을 면제받기 때문에 2차 시험준비에 매진할 수 있었다. 나는 마지막이라는 각오로 1년간 모 든 열정을 쏟아 부었다. 그렇게 해서 1993년 10월 행정고시 2차 시험에 합격할 수 있었다. 합격자 발표를 하던 날 같이 시험에 응시한 대학동기와 손을 잡고 세종 로의 서울신문사 앞에 가서 서울신문이 게시판에 게시되기를 기다리다가 오후 6시에 게시판에 붙은 가판신문의 1면 하단에 나온 행정고시 2차 합 격자 명단에서 내 이름을 확인했다. 만 3년간 뼈를 깎는 노력으로 얻어 낸 합격은 그 무엇과도 비교할 수 없는 큰 기쁨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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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석아 고생 많이 했다.” 전화기 너머로 들리는 어머니의 목 메인 음성에 그만 눈물이 왈칵 쏟아 졌다. 중학교 3학년 때 품을 떠난 자식이 객지생활을 하며 고생 끝에 행 정고시 합격의 영광을 얻었으니 시골에서 농사 지으시는 부모님의 그 기 쁨이 오죽했겠는가. 고등학교 방황하던 시절에도 묵묵히 나를 믿어주시 고 잔소리 한마디 안 하시던 부모님이었다. 계획했던 미래를 향해 한발 내디뎠다는 자긍심 못지않게, 못 배우고 고생만 하면서 평생을 살아온 부 모님의 한을 그 때 조금이라도 풀어드린 것 같아 뿌듯한 마음이 들었다. 3차 면접시험까지 무난히 합격을 하고 부모님께서는 인근의 친지들을 화제리 집으로 초청을 해서 축하잔치를 열어 주셨다. 그 날 우리 집 바로 앞으로 지나가는 두 가닥 전깃줄 아래 위에 까치 수천 마리가 찾아와서 모두 우리 집을 향해 쳐다보는 장관이 연출되어서 잔치에 참석한 모든 분 들이 신기해했던 즐거운 추억도 있다. 아버지께서는“너의 앞날에 좋은 일이 있으라고 천지신명이 서광을 비추는 것이다” 라는 해석을 해주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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행정인으로 거듭나다 세종문화회관 민영화, 인사동 길 조성

1994년 4월 18일부터 1년간 과천정부종합청사에 있는 중앙공무원교육 원에서 수습사무관 교육을 받기 위해 입교했다. 행정고시 250명, 외무고 시 30명, 기술고시 50명 등 총 330명의 동기들과 1년간 같이 교육을 받 았다. 미래에 국가발전을 짊어지고 나가야 할 젊은 인재들에게 투철한 국 가관과 공직관을 심어주는 최고의 교육과정이었다. 이때 같이 교육을 받 은 동기들은 지금은 모두들 정부 주요부처의 국장급 또는 과장급으로 국 가발전을 위한 중요한 역할들을 맡고 있다. 이들과는 지금도 자주 만나서 서로 정보를 교환하고 국가발전을 위한 토론을 하곤 한다. 대한민국 정부 의 동량들이라고 할 수 있겠다. 중앙공무원교육원에서 교육을 받던 시절 결혼을 해야겠다는 생각을 했 다. 1994년 3월 소개를 받은 중앙대에서 수학을 전공한 이연승이라는 아 가씨가 마음에 들었다. 양친이 모두 교육자인 집안의 장녀였다. 부친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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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남 보령출신으로 서울 성일중학교 교장을 거쳐 당시에는 구로고등학교 교장을 하고 계신 분이었다. 모친께서도 충남 천안 출신으로 젊은 시절 교편을 잡았던 분이었다. 양가의 축하 아래 1994년 11월 26일 조촐한 결 혼식을 올렸다. 그 후 1년간의 중 앙공무원교육원 연 수를 마치고 1995 년 4월 과천정부종 합 청사에 있는 고 용노동부 본부에 배 치가 되었다. 국민 의 복지를 위해서는

경기도 과천시 정부종합청사에 있는 중앙공무원교육원

일자리 창출, 근로자보호 및 고용안정이 가장 중요한 과제라고 생각했기 때문에 선택한 부처였다. 고용노동부에서는 근로기준과와 고용보험기획 과에서 모두 2년 8개월간 근무하였다. 당시 근로기준법 개정을 통해 4인 이하 사업체의 근로자들도 근로기준법의 적용을 받도록 했다. 또한 고용 보험제도 시행초기에 근로자들의 고용안정을 위한 획기적인 제도와 프로 그램을 많이 개발하여 고용보험법령을 개정하는 작업을 하면서 행정부와 국회의 관계에 대해서도 많은 경험을 하였다. 당시에 내가 개발했던 실직자 채용장려금, 고령자 채용장려금, 장애인 채용장려금, 직업개발 능력훈련 지원금 등 각종 고용안정시책은 각종 언 론으로부터 큰 관심과 호응을 받았다. 1997년 1월 3일 당시 진념 고용노동부장관(후에 경제부총리)은 직원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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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상으로 한 신년회 연설에 서 근로자 고용안정을 위해 내가 개발한 각종 고용안정 시책들이 매우 훌륭한 정책 개발 사례라고 특별히 칭찬 을 하였다. 이 때 개발한 고 용안정 프로그램은 1997년 경기도 과천시에 있는 정부종합청사

11월 IMF 구제금융 사태 때 우리나라를 방문해서 한국의 사회안전망을 점검하러 왔던 IMF와 IBRD 등의 관계자들로부터도 큰 호평을 받았다. 고용노동부에서 열심히 일을 하다가 좀 더 다양하고 폭넓은 행정경험 을 하는 것이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내 성격상 전문적인 한 분야에 집 중하는 스타일이 아니라 다양한 분야에 관심이 갖는 성격이었기 때문이 다. 그래서 1997년 말부터 나는 서울특별시로 가야겠다는 생각을 했다. 인구 1천만의 국제적인 대도시인 서울특별시의 중견간부로 근무하면 다 양한 분야에서 경험을 할 수 있고 보람 있는 일을 많이 할 수 있겠다는 생 각이 들었기 때문이다. 서울특별시로 옮긴 다음 초창기 몇 개월은 내무국에서 근무를 했다. 그 러다가 1998년 6월 서울특별시장 선거에서 고건 전 국무총리께서 당선 이 되면서 나는 문화국의 문화환경조성팀장으로 이동하게 되었다. 고건 서울시장은 서울을 문화도시로 만들겠다는 목표를 갖고 문화정책에 많은 노력을 기울였는데 나는 그중에서도 매우 중요한 업무였던 문화환경조성 팀장을 맡아 세종문화회관 민영화, 인사동길 및 대학로 문화지구 조성업 무 등을 담당했다. 세종문화회관은 140여명의 공무원과 9개의 예술단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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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 350여명의 예술단원을 거느린 우리나라에서 가장 규모가 큰 문화행 정기관이었다. 당시까지만 해도 세종문화회관은 서울특별시에서 사업소 로 직영을 하고 있었다. 그러다 보니 직원들의 전문성이 떨어지고 공무원 순환근무로 공연예술 업무의 연속성에 문제가 발생한다는 비판이 많았 다. 그래서 공연예술 전문가들이 세종문화회관의 운영을 맡아야 한다는 문화예술계의 요구가 많았다. 나는 세종문화회관을 총괄 지휘하는 문화환경조성팀장으 로서 세종문화회관의 운영을 개선하기 위해서는 세종문화회 관을 운영하는 별도의 재단법 인을 설립하고 공연예술기관을 서울 세종로에 있는 세종문화회관의 모습

잘 운영할 수 있는 전문가들을 전면적으로 새로 채용하여 운영을 맡기는 것이 필요하다고 고건 당시 시 장께 보고하고 승인을 받았다. 이에 따라 140여명의 공무원 조직을 80여 명의 공연예술전문가 조직으로 감축하고 9개의 예술단체를 합리적으로 조정하여 세종문화회관의 운영을 효율적으로 합리화 하는 계획을 추진하 게 되었다. 고건 당시 시장의 지시로 우리나라 문학계의 거목이었던 조병화 시인 을 세종문화회관 운영개선 위원회 위원장으로 초빙하여 세종문화회관 운 영개선 작업을 시작했다. 조병화 시인을 만나러 담당직원과 함께 대학로의 혜화동 로터리에 있 는 그분의 사무실의 문을 열고 들어섰더니 나를 보자마자 하시는 말씀이 “큰 인물이 될 사람이 오셨구만” 이라고 대뜸 말씀을 하시는 것이었다. 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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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부터 6개월여 동안 조병화 시인을 자주 뵈면서 많은 것을 배울 수 있었 다. 내가 미국 유학시절인 2003년에 세상을 떠나셨다.

사랑의 계절

조병화・1988년 작품

해마다 꽃피는 계절이면 산에 들에 하늘에 사랑하고 싶은 마음 사랑하고 싶은 마음은 그 누구와 같이 집을 짓고 싶은 마음 그 누구와 같이 살고 싶은 마음이어라 끝이 보이지 않는 세상 아물아물 헤아릴 수 없는 시간에 매달려 한동안 사랑하고 싶은 마음은, 구름 끝에 그 누구와 같이 둥지를 치고 싶은 마음 그 누구와 같이 둥, 둥, 떠가고 싶은 마음 아, 해마다 꽃돋는 나날이면 내 마음에 돋는 너의 봉오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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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년여의 작업을 거쳐 1999년 7월 1일 세종문화회관은 면모를 새롭게 일신하고 재단법인 세종문화회관으로 새 출발을 하였다. 초대 사장은 이 전에 예술의 전당 사장을 역임했던 이종덕씨가 임명되었다. 또한 운영인 력을 전면적으로 쇄신하여 서울시 공무원 전원을 시 본청으로 복귀시키 고 대신에 민간의 공연예술 전문가들로 신규채용을 하였다. 인력감축을 하던 정부시책에 맞춰 재단법인화 이전 140여명에 이르렀던 운영인력규 모를 80명 이하로 대폭 축소하고 시설 운영업무를 외부 민간회사에 아웃 소싱을 시켰다. 그 결과 많은 예산을 절감할 수 있었고 세종문화회관의 전문적인 운영기초를 다질 수 있었다. 세종문화회관 운영개선을 위한 업무추진과 함께 인사동길과 대학로를 문화의 거리로 새롭게 단장하는 업무도 같이 추진했다. 지금은 민주당 국 회의원을 하고 있는 김진애 건축가에게 인사동길 설계를 의뢰하였고, 대 학로는 김현선 환경디자이너가 설계하였다. 디자인 서울의 시초는 바로 이때부터 시작되었 다 해도 과언이 아니다. 이전까지만 해도 길을 새로 만들 때는 토목기 술자들이나 조경전문가 들이 설계와 시공을 했 는데 인사동길과 대학로

서울시 종로구의 인사동 전통문화의 거리

는 건축가와 디자인 전문가가 설계를 하고 시공을 감독했다. 이런 일을 통해서 도시디자인에 대해 새로운 눈을 뜨게 된 좋은 경험을 했다. 또한 도시가 어떻게 바뀌어 가야하고 실제로 어떠한 과정을 거치면서 바뀌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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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는지에 대한 생생한 경험을 한 것이다 도시는 생물과 같은 것이다. 그냥 가만히 있는 것이 아니다. 시민들의 선호도나 유행에 따라 계속적으로 변화한다. 인사동길을 새롭게 조성하 면서 인사동길 북쪽의 안국동 로터리에 있었던 육교를 모두 철거하고 보 행자들이 쉽게 건너갈 수 있도록 횡단보도를 설치했다. 그렇게 하고 몇 년이 지나니 인사동을 찾던 사람들이 안국동 로터리의 횡단보도를 건너 풍문여고 앞길을 통해서 삼청동으로 올라가는 숫자가 점점 많아졌다. 그 뒤 서울시에서는 풍문여고 앞길도 새롭게 디자인을 해서 시민들이 걷기 좋은 길로 만들었고 지금은 인사동과 삼청동, 가회동까지 전통문화의 거 리로 거듭나고 있다. 세종문화회관 민영화 및 운영개선, 인사동길과 대학 로 문화의 거리 조성 등은 많은 성과를 냈고 좋은 평가를 받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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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민의 소리에 귀 기울이다 7000건의 민원 해결

1998년 7월 서울특별시 문화환경조성팀장을 맡아 1년 8개월여를 치열 하게 보낸 후 2000년 4월 당시 고건 서울특별시장의 민원비서관으로 이 동하게 되었다.‘행정의 달인’ 이라는 별칭과 함께 대통령 권한대행을 지 내셨던 우리나라 현대 행정가중 최고의 반열에 오른 분이었다. 나는 민원 비서관을 맡아 서울특별시의 고질적인 민원을 해결하는 해결사의 역할을 맡았다. 시장실 옆에 별도로 만들어진 민원비서관실에서 비서 두 명과 같 이 근무를 했는데 그 이유는 많은 민원인들이 찾아오다 보니 별도의 방을 설치한 것이었다. 서울특별시장에게 해결을 요구하는 민원들은 대개가 해결이 쉽지 않은 고질적인 집단민원이 많았다. 나는 이곳에서 2년 5개월간 수많은 민원인 들의 얘기를 듣고 그들과 함께 해결책을 고민하는 일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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때로는 서울시 행정 에 불만을 품은 집단민 원인들로부터 멱살을 잡히는 일도 다반사였 다. 심지어는 가스통을 들고 와서 폭파를 해버 리겠다는 과격한 분들 도 있고 민원해결을 해 주지 않으면 창문 아래 로 뛰어내려 버리겠다

고건 전 대통령 권한대행과 함께

고 협박을 하는 분들도 있었다. 이러한 모든 것을 나는 참아내면서 그들 과 진정으로 아픔을 함께 하고자 노력했다. 어떤 아주머니는 거의 일주일에 한 번꼴로 내가 근무하는 사무실에 들 러서 신경질적으로 문제해결을 요구하는 민원을 반복적으로 제기했다. 16년 전에 자기 소유의 땅을 서울시로부터 수용을 당했는데 그 보상가액 이 작아서 서울시를 상대로 민원을 제기하고 소송을 제기했으나 대법원 까지 가서 패소를 하고 그 뒤에도 계속 청와대와 서울시 등을 상대로 끊 임없이 민원을 제기하다가 변호사 비용 등으로 많은 재산을 날리고 신경 쇠약 증세에 시달리는 분이었다. 나는 그 때마다 아주머니에게 따뜻한 차를 건네고 아주머니의 한을 풀 어준다는 심정으로 하소연하는 말씀을 경청했다. 1년여를 계속 찾아오던 아주머니가 어느 날 이제는 자기의 분이 풀렸으니 더 이상 와서 괴롭히지 않겠다는 얘기와 함께 그동안 하소연을 들어줘서 고맙다는 말을 남기고 그 이후에는 다시는 민원을 제기하지 않았다. 그 아주머니 본인도 대법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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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서까지 가서 패소한 문제를 비서관인 내가 풀어줄 수 있는 방법은 없다 는 것을 알고 있었을 것이다. 그럼에도 내가 성의껏 자신의 말을 들어주 고 심정을 헤아려주는 것만으로 그 분은 원한이 풀린 것이다. 모든 일은 성의를 다하면 통하게 되어있다. 국민을 위한 길이라는 게 대단한 곳에 있는 것이 아니다. 성심을 다해서 봉사를 한다고 생각하고 한 발 앞서 궂 은일을 찾아 나서면 진심은 통하게 되어 있는 것이다. 찾아가는 민원제도를 만들어 시행한 것도 그 중 하나의 방법이었다. 영 등포구와 관악구의 쪽방촌에 사시는 무의탁 노인들의 어려움을 해결하기 위해 실태조사를 하고 복지국과 함께 다양한 대책을 수립해서 해결하기 도 하고, 지하철을 이용하는 장애우들의 불편을 해소하기 위해서 도시철 도본부 및 지하철공사와 함께 지하철 전 구간을 돌면서 개선방안을 만들 어 처리하기도 했다. 또한‘시장에게 바란다’ 라는 온라인 민원제도를 운 영하면서 시민들께서 서울특별시장에게 해결을 요구하는 민원이나 제도 및 시설개선 민원도 받아서 처리했다. 2년 5개월간 서울특별시의 민원해결사로서 온라인과 오프라인 등으로 제기된 모두 7천여 건의 민원사항을 해결했다. 복지, 건축, 토목, 도로, 치수, 상하수도 등 수많은 분야에서 접수되는 민원을 처리하고 해결했다. 때로는 돌부처처럼 민원인들의 애로사항을 들어주기도 하고 멱살을 잡히 기도 하고 협박을 당하기도 했다. 이곳에 근무하는 동안 사람이 살아가면 서 집착을 하면 인생이 불행해질 수 있다는 것을 깨달을 수 있었고 다른 사람의 얘기를 잘 듣는 것이 소중하다는 공직자로서의 마음자세를 다시 한 번 다지는 중요한 계기가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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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 넓은 세상으로 미국 듀크대학으로 유학

2002년 7월 새로 서울특별시장에 당선된 이명박 현 대통령께서 서울 시장 취임식을 한 후 나는 좀 더 넓은 세상을 구경하고 공부를 하기 위해 서 서울시의 지원을 받아 미국 유학을 떠났다.‘남부의 하버드’ 라는 별칭 을 갖고 있는 노스캐롤라이나주의 듀크대학교(Duke University)였다. 듀크대학은 미국 대학 중 최고로 아름다운 캠퍼스를 자랑하는 곳으로 당 시 미국 전체 대학순위에서 5위권에 드는 명문 사립대학이었다. 이곳의 행정대학원에서 국제개발정책을 전공해서 석사학위를 받았다 미국에 있는 동안 국제정세와 미국 등 선진국의 정치제도, 정부운영 및 행정절차는 물론 다양한 분야에 대해서 깊이 있게 배울 수 있었다. 또한 듀크대학으로 1년 또는 2년간 연수를 받으러 한국에서 온 학계, 관계, 법 조계, 언론계, 재계, 의료계 등의 다양한 분들과 인적인 교류를 통해 행정 분야 이외에 다양한 분야에 대한 식견을 넓힐 수 있는 기회도 가질 수 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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었다. 아울러 미국의 많은 도시들을 방문해서 도시계획, 교통체계, 복지 체계, 관광산업 등을 직접 견학하기도 했다. 미국은 기회의 땅이자 세계 최고의 부자국가이 다. 그 넓은 전 국토가 공원이라고 해도 무방할 정도로 국토가 잘 꾸며 져 있다. 행정가의 눈으 로 보기에 국토관리에 미국 듀크대학

너무 과다한 비용이 들 지 않겠는가 하는 생각이 들 정도로 잘 관리되고 있었다. 우리나라도 미 국과 같은 최고의 선진국가를 만드는데 기여를 해야겠다는 생각을 수없 이 했던 시기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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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도 세계적인 오케스트라를 갖다 서울시립 교향악단 개혁

2004년 6월 2년간의 미국유학을 마치고 한국으로 돌아왔다. 그리고 이명박 당시 서울시장에 의해 문화정책팀장으로 발탁되었다. 당시 서울 의 문화예술계의 가장 큰 이슈는 우리나라에서 가장 오래된 교향악단인 서울시립교향악단을 세계적인 교향악단으로 만들기 위한 기틀을 놓는 것 이었다. 이명박 당시 시장의 문화예술분야 가장 중요한 공약사항이기도 했다. 우리나라도 세계적인 교향악단을 가져야 국제사회에서 문화국가로서 대접을 받을 수 있고 정명훈 지휘자를 비롯해 우리나라 출신의 수많은 음 악인들이 있어 충분히 세계적인 교향악단을 만들 수 있는 환경은 이미 성 숙되어 있었다. 이 상황에서 서울시립교향악단의 운영시스템을 획기적으 로 개선하고 훌륭한 지휘자와 우수한 예술단원을 영입할 수만 있다면 우 리나라도 세계적인 교향악단을 가질 수 있고 서울이 문화도시로서 한 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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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시립교향악단 연주회

계 도약할 수 있다는 것이었다. 문제는 지난 1945년에 설립되어 60년간 존속되어 온 서울시립교향악 단의 운영상황이 매우 비합리적으로 운영되고 있다는 것이었다. 당시 서 울시립교향악단의 규모는 단원이 112명, 운영직원이 5명이고 연간예산 으로 50억 원 이상이 소요되고 있었다. 이 예술단체는 세종문화회관에 소속되어 있었으며 노사간 단체협약을 통해서 정년을 61세로 규정하고 있어서 음악대학을 졸업하고 단원이 되면 평생을 걱정 없이 단원으로 근 무할 수 있었다. 또한 연주 실력을 평가하는 실기평가제도가 유명무실화 되어 있었기 때문에 아무리 게으른 단원이라도 퇴출시킬 수 있는 방법도 없었다. 뿐만 아니라 단일호봉제 급여체제를 유지하고 있어서 해가 갈수 록 급여는 계속적으로 높아지는 상황이었다. 이런 실정이다 보니 국내외의 유수한 음악대학을 졸업한 음악인 중에 서 단원으로 뽑히는 인원은 1년에 2~3명이 될까 말까한 수준이었다. 한 번 들어오면 61세까지는 평생직장으로 보장이 되어 있었기 때문이다. 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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간 20회 정도의 연주회를 제외하고는 단원들은 개인레슨 등을 통해서 고 액의 개인적 소득을 벌고 있었고 출퇴근마저 거의 관리가 안 될 정도로 운영이 되고 있었다. 그야말로 시민들의 그 많은 혈세가 아무런 효과를 내지 못하고 낭비되고 있는 실정이었다. 서울시립교향악단을 개혁하기 위해서 이명박 당시 서울시장은 정명훈 지휘자를 영입하고 교향악단의 내부 운영시스템을 획기적으로 바꾸어 세 계적인 교향악단으로 만드는 계획을 추진했던 것이다. 당시 추진부서에 서는 2003년부터 정명훈 지휘자를 영입하기 위해서 많은 노력을 기울였 다. 하지만 정명훈 지휘자는 서울시립교향악단의 내부 운영시스템을 먼 저 바꾸지 않고서는 그 어떤 훌륭한 지휘자가 온다고 하더라도 좋은 교향 악단이 될 수 없다는 이유로 서울시향 지휘자가 되는 것을 수락하지 않고 있었다. 문화정책팀장에 부임하자마자 서울시립교향악단을 개혁하는 업무를 총괄하게 되어 그동안의 추진과정을 전체적으로 점검해보았다. 주로 교 향악단의 노조집행부를 상대로 해서 61세 정년제를 계약제로 바꿀 것과 호봉제를 연봉제로 전환할 것을 계속 설득했으나 노조집행부의 반대로 교향악단 개혁작업이 지지부진한 상태였다. 이후 나는 매일 밥을 먹을 때 나 잠을 잘 때나 어떻게 하면 서울시립교향악단을 개혁할 수 있을까만 고 민했다. 세계적으로 음악적 성과를 거두고 있는 우리나라의 유망한 음악 인재들과 훌륭한 지휘자를 영입하고 교향악단의 운영시스템을 국제적인 기준에 맞게 업그레이드 할 수 있다면 우리도 얼마든지 세계적인 교향악 단을 가질 수 있기 때문이다. 사실 우리나라 음악인재들의 활동은 세계적으로 눈이 부실 정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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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최고 권위의 차이코프스키콩쿠르, 쇼팽콩쿠르 등 음악콩쿠르에서 한 국인을 빼고는 더 이상 이야기가 되지 않을 정도로 우리나라 음악인재들 이 활약하고 있다. 2011년의 경우 차이코프스키 콩쿠르에서는 성악부문 남자부, 여자부에서 각각 1위를 거머쥐었고, 그 외에도 피아노부문 2위 와 3위, 바이올린 부문에서 3위를 차지하는 등 다섯 명이 동시에 입상한 것도 좋은 예이다. 세계적으로 뛰어난 우리나라의 젊은 음악인재들이 공정한 경쟁을 통해 서 서울시립교향악단에 입단할 수 있도록 문호만 개방한다면 분명히 세 계적인 오케스트라로 성공할 수 있을 것이라고 확신했다. 이러한 확신을 갖고 나는 기존단원의 61세 정년제 등으로 꼭꼭 닫혀 있는 서울시립교향 악단의 문을 열어젖힐 수 있는 방법이 없을까를 고민하고 또 고민했다. 아무리 머리를 짜내도 기존 교향악단 단원들을 설득해서 선진국의 교 향악단 운영방식을 받아들이도록 하고 또한 신진 음악가들에게 문호를 개방하도록 하는 것은 매우 어렵다는 것을 깨달았다. 이미 2년 6개월 이 상 단원들을 설득해서 서울시립교향악단 개혁을 하려고 했으나 실패로 돌아갔기 때문이다. 이대로 둔다면 연간 50억 원 이상의 예산으로 운영 되는 서울시립교향악단은 시민들의 세금만 낭비하고 성과는 내지 못하는 예술단체로 정체되고 말 것이 분명했다. 나는 고육지책이긴 하지만 미래의 큰일을 위해서 어쩔 수 없는 방법을 택하기로 했다. 기존의 서울시립교향악단을 그대로 두고 새로운 재단법 인을 설립하기로 한 것이다. 새로운 재단법인 서울시립교향악단의 상임 지휘자로는 정명훈씨를 영입하기로 계획을 세웠다. 그리고 새로운 재단 법인 서울시립교향악단의 내부 운영시스템은 전 세계에서 가장 선진적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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운영시스템을 도입하기로 했다. 연주단원도 정명훈 지휘자를 통해 우리 나라에서 활동하고 있는 음악인재들은 물론이고, 뉴욕, 런던, 로마 등에 서 활동하고 있는 음악인재들을 채용하도록 했다. 기존의 서울시립교향 악단에서도 우수한 음악인들은 그대로 새로운 교향악단에서 흡수하도록 했다. 이러한 움직임에 대해 기존의 서울시립교향악단 단원들은 서울광장에 서 시위를 하는 등 반발을 하였다. 그러나 기존 서울시립교향악단의 실상 을 이미 언론을 통해서 알고 있는 시민들은 그들의 시위에 매우 비판적으 로 평가하고 동조를 하지 않았다. 결국은 기존 서울시립교향악단 단원들 도 새로운 재단법인 서울시립교향악단의 출범에 합류함으로써 정명훈호 는 역사적인 새 출발을 할 수 있었다 이 과정에서 기존 서울시립교향악단 단원의 약 60% 정도가 교체되고 전 세계에서 한국의 젊은 음악인재들이 서울시립교향악단에 몰려 들어왔 다. 정명훈 지휘자의 지도 아래 이들의 기량은 하루가 다르게 올라갔다. 개혁에 대해 수많은 찬사가 쏟아졌고 미국의 아이비리그 명문인 콜럼비 아 대학은 서울시립교향악단 개혁을 세계 교향악단 역사에서 매우 혁신 적인 성과로 평가하고 대학강의 교재로 채택하기에 이르렀다. 정부에서 도 서울시립교향악단 개혁사례를 2007년 최고의 행정혁신 브랜드로 선 정하였다. 힘든 개혁이었지만 단 몇 년 사이에 보람 있는 결과물을 우리에게 선물 했다. 2011년 서울시립교향악단은 유럽투어를 통해 교향악의 본 고향인 유럽의 음악팬들로부터 엄청난 환호와 찬사를 받은 것이다. 이것으로 끝 난 게 아니라 세계최고의 음반사인 도이치 그라마폰과 아시아 교향악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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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시립교향악단의 개혁사례를 소개한 콜럼비아대학 교재

사상 최초로 음반발매를 하는 계약을 체결하기에 이르렀다. 2005년 세 계적인 교향악단을 목표로 서울시립교향악단의 혁신을 설계했던 그 때의 꿈이 이루어진 것이다. 개혁은 분명 희생이 따르지만 우리에게 더욱 달고 풍성한 열매를 거둔다는 것을 잊지 않는다면 개혁을 무턱대고 터부시할 수는 없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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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는 살아있다 한류의 시작

새로운 재단법인 서울시립교향악단을 출범시키면서 동시에 나는 당시 이명박 서울시장의 지시로 서울을 문화도시로 탈바꿈시키기 위한“문화 도시 서울 10개년 계획” 의 수립에 착수했다. 서울을 문화도시로 만들고 자 하는 목적은 두 가지였다. 우선 첫째는 서울을 창의성이 넘치는 도시로 만들기 위함이었다. 21세 기는 창의의 시대이다. 현대는 창의성이 국가경쟁력이라고 할 만큼 중요 한 시대이므로 서울시민들과 학생들의 창의성을 높이기 위해서는 문화가 중요하다는 것이다. 서울을 창의문화도시로 만들어 우리나라의 다른 도 시들로 확산을 시키겠다는 복안이었다. 둘째로는 우리나라의 지속적인 경제성장에 따라 국민의 삶의 질을 높 이는 것이 행정의 중요한 목표가 되었다는 점이다. 삶의 질을 높이기 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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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서는 문화가 물처럼 흐르는 도시를 만들어야 하므로 문화적인 가치를 행정의 가장 우선에 두어야 한다는 것이다. 이러한 두 가지 목표를 실현하기 위해서는 서울을 문화도시로 만들어 야 하므로 장기적인 계획을 세워서 추진을 하자는 의도였다. 나는 대한민 국의 내로라하는 석학들과 문화예술인, 그리고 일반시민 등 300여명으 로‘서울문화포럼’ 을 결성하고 서울을 문화도시로 만들기 위한 다양한 아이디어를 발굴해 나가기 시작했다. ‘서울문화포럼’ 과 별도로 정책자문위원회도 별도로 구성하여 서울을 문화도시로 만들기 위한 각종 정책수단들을 구체화하는 작업을 해나갔 다. 이를 통해 문화예술인들의 창작활동을 북돋아주고 학생들의 문화적 창의성을 높일 수 있는 문화예술 프로그램을 적극적으로 개발해 나갔다. 또한 시민들이 문화예술프로그램을 일상생활 속에서 마음껏 즐길 수 있도록 하는‘문화가 물처럼 흐르는 서울 프로젝트’ 도 구상했다. 각종 문 화예술단체들이 시민들에게 찾아가는 문화예술 활동을 하도록 함으로써 시민들이 언제나 문화예술행사를 쉽게 접할 수 있도록 한다는 취지였다. 또한‘책 읽는 도시 서울’ 을 만들기 위해 디지털 기술을 최대한 활용한 서울 대표도서관을 건립하고 이를 중심으로 지역도서관을 연계시키는 정 책도 제시했다. 이 제안은 서울광장에 있는 옛 서울특별시청 본관 건물을 리모델링하여 서울 대표도서관과 공연장 등을 건립하면서 현실화되었다. 서울의 지역경제를 회복하기 위해서는 외국인 관광객을 많이 유치해야 한다는 정책목표도 당시에 제시되었다. 외국인 관광객 1명이 들어오면 110만 원 정도의 수익이 생기고 음식, 숙박, 관광서비스 업종에서의 일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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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 창출효과가 매우 크다는 연구결과가 있다. 뿐만 아니라 우리나라를 찾 아오는 외국인 관광객의 90%가 서울을 방문하는 것을 생각할 때 서울에 많은 관광객을 유치하면 자연히 지방도 혜택을 볼 수 있다. 이와 같이 외국인 관광객을 많이 유치하기 위해서는 서울의 역사자원 과 문화자원을 발굴하여 복원하고 서울의 도시미관과 시민의식을 국제적 인 수준으로 높여야 한다는 정책대안을 제시했다. 이러한 내용을 담은 ‘비전 2015, 문화도시 서울’ 을 2006년 2월 서울 삼청각에서 이명박 당 시 서울시장을 비롯한 시민대표, 학계, 문화예술계 등 각계 인사들이 참 석한 가운데 발표하였다. 서울을 문화도시로 변모시키기 위한 대장정을 선포하는 순간이었다. 2006년 6월에는 전임 이명박 시장에 이어 오세훈 시장이 새로운 서울 시장으로 당선되었다. 2006년 2월 발표된‘비전 2015, 문화도시 서울’ 의 내용은 이미 오세훈 시장의 선거공약으로도 상당 부분 반영되었다. 오 세훈 시장의 주요한 정책방향도 문화와 디자인을 강조하고 이러한 바탕 위에서 서울의 도시브랜드를 높이고 외국인 관광객을 많이 유치하여 지 역경제를 살리자는 것이 요점이었다. 이에 따라 2010년까지 관광객 1,000만명을 유치하겠다는 의욕적인 목표를 제시했다. 관광객 1,000만 명을 유치하겠다는 공약은 오세훈 시장이 제 1순위로 제시한 최고의 시 정목표이기도 했다. 이러한 의욕적인 공약을 바탕으로 서울을 매력적이 고 아름답고 국제적인 도시로 만들겠다는 것이 그의 구상이었다. 나는 문화정책팀장으로서‘비전 2015, 문화도시 서울’계획을 차질 없 이 추진하기 위하여 열정적으로 일을 하고 있었다. 2005년 6월 새로 설 립한 재단법인 서울시립교향악단도 정명훈 상임지휘자의 예술적 도전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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식과 이팔성 대표이사(현 우리금융지주 회장)의 원만한 경영 리더십 하에 순조롭게 운영이 되고 있었다. 이렇게 일을 하고 있는 중에 2007년 7월 오세훈 시장의 제1 시정목표인 관광객 1,000만명을 유치하는 일을 추진 하는 서울특별시 마케팅담당관실의 총괄책임자인 마케팅담당관으로 발 령을 받았다. 2007년 당시 서울을 찾는 외국인 관광객은 연간 550만명 정도였다. 그리고 외국인관광객 증가율은 연평균 3% 정도로써 산술적으로 따지면 1,000만명을 유치하는데 약 15년이 걸리는 엄청난 숫자였다. 우리나라의 관광경쟁력을 평가할 때 외국인 관광객 1,000만명을 유치하는 것은 당시 로서는 불가능에 가까운 목표였다. 추가로 유치하는 450만명의 경제적 부가가치 창출효과는 금액으로 따져서 5조원 이상에 이르는 것이었다. 뿐만 아니라 도시마케팅을 함으로써 거둘 수 있는 서울과 대한민국의 국 가브랜드 가치 상승효과는 우리 국민들의 자부심을 높이고 우리 수출상 품의 가치를 올리는데 큰 역할을 할 수 있는 것이다. 당시 마케팅담당관으로 부임했을 때 마케팅담당관실의 직원은 32명이 고 연간예산은 35억 원 규모로 운영이 되고 있었다. 나는 그러한 예산규 모로는 이러한 엄청난 일을 해내는데 역부족이라고 판단했다. 그래서 오 세훈 당시 서울시장에게 본격적인 서울의 해외마케팅을 전개하기 위해서 는 대폭적인 예산증액과 조직정비가 필요하다고 보고하고 필요예산 확보 를 위해 서울시의회를 설득했다. 약 400억원 규모의 예산안을 제출했을 때 서울시의회에서는 상당한 반발을 해왔다. 약 11배에 이르는 예산을 증 액해 달라고 요청을 했으니 그럴 법도 했다. 그러나 나는 물러서지 않고 대대적인 서울마케팅의 필요성을 설득해 나갔다. 104명에 이르는 서울시 의회 시의원 대부분을 만나서 직접 설명을 하고 협조를 구했다. 또한 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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분이 있는 서울시 관내 국회의원을 만나 지역구 소속 시의원들을 잘 설득 해 줄 것을 요청하는 작업도 병행했다. 당시에 언론에서도 서울시의 해외 마케팅 예산 증액에 대해서 상당한 관심을 갖고 보도했다. 우여곡절 끝에 일부 감액을 거쳐 370억원 규모의 서울시 해외마케팅 예산이 2007년 12 월 시의회를 통과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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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00만 명 외국인 관광객 시대 3년 만에 이룬 꿈의 목표

2008년 회계연도 예산안 확정과 동시에 나와 마케팅담당관실 직원들 은 370억원 규모의 해외마케팅 예산을 가장 효과적으로 사용할 수 있는 방안을 보다 더 구체적으로 수립하기 시작했다. 제일기획, LG애드 등 국 내외의 유명 광고대행사의 관계자들과 함께 효과적인 서울 마케팅 방안 을 논의했다. 아울러 세계적인 마케팅 컨설팅 회사와 함께 구체적인 전략 을 마련해나갔다. 그 결과 주어진 예산 범위 내에서 효과적인 마케팅을 위해서는 아시아, 미주 및 유럽 지역의 13개 국가에 예산을 집중적으로 투입하는 것이 좋겠다는 결론을 내렸다. 특히, 중국시장은 급격히 증대되고 있는 중국인들의 해외 관광 및 투자 를 흡수하기 위해 가장 집중해야 할 대상지역으로 선정되었다. 실제로 중 국인 해외관광객을 잡기 위해 각국은 총력전을 벌이고 있는 것이 현실이 다. 중국 관광연구원의 연구에 의하면 중국에서 도시중산층을 중심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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외국여행 수요가 크게 늘어나 해외여행객이 2010년에 5천만 명을 돌파 했으며 2015년에는 1억 명을 넘어설 것으로 전망하고 있다. 우리나라는 중국의 핵심도시인 북경, 상해, 천진 등과 가장 가까운 거리에 위치한 나 라로 중국인 관광객 유치에 큰 경쟁력을 갖고 있다. 또한 한류드라마 등 으로 인해 중국인들이 한국의 문화, 패션, 공연, 음식에 대한 선호도가 상 당히 높기 때문에 이러한 것을 잘 활용하면 엄청난 관광수입을 올릴 수 있을 것이다. 우리나라와 중국은 지정학적으로 역사적으로 떼려야 뗄 수 없는 숙명 적인 관계에 있는 나라이다. 동반자적인 관계로 중국의 등에 올라타서 우 리나라의 발전을 추구하는 것이 바람직할 것이다. 이를 위해서는 상호간 의 입장과 문화에 대한 양국민의 이해와 인식이 선행되어야 할 것이다. 중국인들에게 우리나라를 정확히 알리고 많은 중국인들이 한국을 방문하 도록 하는 것은 양국민의 친선과 서로에 대한 올바른 인식을 위해 매우 중요한 일이다. 서울시의 중국에 대한 마케팅은 이와 같은 인식을 바탕으 로 시작되고 추진되었다. 중국의 최대 국영방송국인 CCTV를 비롯해서 북경TV, 상해TV, 광주 TV 등 지역 방송과 함께 한국관광 캠페인을 전개하고 각종 신문, 잡지 등을 통해서 우리나라의 역사문화와 다양한 매력, 그리고 아름다운 자연 경관을 소개하고 우리나라에 관광과 투자를 하도록 알리는 작업을 치열 하게 전개했다. 일본 또한 연간 300만명의 관광객이 우리나라를 방문하고 있어 서울 시가 마케팅을 집중적으로 전개한 국가였다. 일본에서는 특히 한류문화 가 확산일로에 있어 서울마케팅의 투자대비 효과가 매우 큰 곳이었다. 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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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인들은 이미 서울, 부산 등 우리나라에 대해서 잘 알고 있는 사람이 많 기 때문에 대형여행사들과 합작을 하여 직접적으로 관광객을 유치하는 방식을 추진했다. 또한 한류스타들의 해외공연에 같이 관광홍보전을 함 으로써 큰돈을 들이지 않고 효과를 거둘 수 있는 방법으로 했다.

서울마케팅의 1등공신인 비, 이병헌, 김연아와 함께

우리나라와 일본은 참 비극적인 역사를 맺고 있는 관계이다. 현재도 일 본의 말도 되지 않는 독도 영유권 주장 등으로 양국민간의 감정이 매우 좋지 않은 상황이다. 지구상에서 지정학적으로나 문화적으로 가장 밀접 한 관계에 있는 두 나라가 공동번영의 길로 가기 위해서는 국가브랜드 마 케팅을 통해서 양 국민의 상호이해를 증진하고 문화교류와 인적교류를 더욱 활성화하는 것이 매우 중요한 일일 것이다. 이렇게 함으로써 다시는 비극적인 역사를 되풀이해서는 안 되겠다. 태국, 말레이시아, 인도네시아와 같은 동남아시아 국가들에서도 한류 문화가 빠른 속도로 퍼지고 있어 효과적인 관광객 유치활동을 할 수 있었 다. 이들 동남아 국가에서 우리나라에 대한 호감도가 가파르게 상승을 하 고 있어서 서울시 마케팅의 효과는 매우 컸다. 미국과 유럽 등에 대해서는 우리나라의 전통문화를 소개하고 반만년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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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구한 역사를 가진 동양의 아름다운 나라이며 동시에 삼성, 현대, 엘지 등 첨단기업을 키워낸 나라임을 알렸다. 유럽의 경우에는 아직도 한국이나 서울에 대한 인지도나 호감도가 낮 은 편이다. 예를 들면 독일의 중학교 교재에는 아직도“한국은 13세의 소 녀가 하루에 15시간씩 창문도 없는 공장에서 중노동을 하는 국가” 라는 내용이 버젓이 실려 있을 정도이다. 이러한 상황에서 우리나라의 첨단문 화와 기술, 그리고 유구한 역사전통을 알림으로써 국가브랜드 이미지를 높이는 일은 매우 시급한 일이었다. 국가브랜드 이미지는 매우 중요한 것이다. 우리나라는 경제의 90%를 무역에 의존하는 전형적인 무역국가이다. 우리나라의 무역상품에 국가브 랜드 이미지가 그대로 반영이 된다. KOTRA(대한무역투자진흥공사)가 각국의 국민들을 대상으로 조사한 결과에 의하면 똑같은 모양과 품질의 제품이라도 한국 제품에 1,000원을 지불할 의사가 있다면, 미국 제품은 1,500원, 독일제품은 1,450원, 일본제품은 1,430원 등 국가브랜드 이미 지에 따라서 지불의향이 달라진다는 것이다. 참 억울한 일이다. 우리의 근로자들이 피 땀 흘려 만든 제품이 우리나라의 낮은 국가브랜드 이미지 때문에 제값을 받지 못하고 있기 때문이다. 서울시의 해외마케팅은 서울을 위한 것이기도 하지만 곧 대한민국을 위한 것이다. 한국의 수도 서울을 알림으로써 국가브랜드를 제고하고 우 리 기업의 해외진출을 도울 수 있으며 무역상품의 가치를 올릴 수 있게 되는 것이다. 또한 한국에 오는 외국인관광객의 90%가 서울을 찾는 상황 에서 우선 서울시가 외국인관광객을 많이 유치하고 다른 지역과 연계한 프로그램을 개발하면 전국적으로 외국인관광객이 늘어날 수밖에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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외국관광객 유치나 투자유치도 매우 부가가치가 크고 국익에 도움이 되 는 것이지만 국가브랜드를 높이는 것은 그 가치를 잴 수 없는 무형의 국 가적 자산인 것이다. 이러한 인식을 갖고 치열하게 서울을 마케팅 한 결과 그 성과는 매우 컸다. 2008년부터 본격적으로 마케팅을 시작한 후 세계 각국에서 서울 에 대한 인지도와 호감도가 빠른 속도로 상승했다. 세계적인 조사기관인 AC닐슨 컴퍼니가 조사한 결과 아시아인들 사이에 서울이 가장 가고 싶 은 도시 1위에 선정되는 쾌거를 이루었다. 2009년과 2010년에도 연속적 으로 서울은 아시아에서 가장 가고 싶은 도시 1위에 선정되었다. 뿐만 아 니라 세계적인 권위지인 미국의 뉴욕타임즈는 2010년 1월‘2010년에 꼭 가보아야 할 도시’ 로 서울을 3위에 올렸다. 서울 마케팅의 성과는 급 속한 외국인 관광객 증가로 이어졌다. 2007년 550만 명에 불과했던 서울을 찾은 외국인 관광객은 2008년 630만 명으로 늘어났고 ‘2010년 전 세계에서 가봐야 할 도시 3위’조선일보 기사

2009년에는 720만 명으로

2010년에는 810만 명으로, 2011년에는 900만 명을 넘어설 것으로 보인 다. 서울을 찾는 외국인 관광객 1,000만명 시대를 눈앞에 둔 것이다. 이는 연평균 10%를 훌쩍 넘는 숫자로서 종전에 연평균 2~3%씩 늘어 나던 것에 비하면 대단한 변화였다. 관광객 증가에 따른 순수한 부가가치 증가액만 해도 약 3조원에 이르는 큰 성과를 거둔 것이다. 마케팅담당관 을 맡았던 만 3년간 투입했던 전체 예산이 1,000억 원이었음을 고려할

74 윤영석의 희망노래


때 실로 큰 효과라 아니할 수 없다 불가능할 것으로 생각되었던 외국인 관광객 1,000만 명 시대는 꿈처럼 우리 앞에 성큼 다가 온 것이다. 이러한 3년 간의 경험과 성과를 바탕으 로 2010년 8월‘도시브랜딩’이라는 책을 엮어냈다. 이 일을 계속해나갈 다음 사람 들과 내 경험을 공유하고 그들이 시행착오 를 줄이도록 하려는 배려였다. 이 책은 우 리나라에서 도시브랜딩에 대한 최초의 전 문서적이다.

2010년 8월 발간한 '도시브랜딩' 표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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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산의 도시 브랜딩 흙 이야기

북경, 하북, 하남, 광동에 이르는 중국의 중심부는 가도 가도 끝이 없는 평지라서 땅 표면의 이동이 굉장히 적다. 경사가 없다보니 비가 와도 땅 의 표면이 씻겨 내려가지 않고 그 위에 자라는 식물 또한 그 자리에 그대 로 썩어서 거름이 된다. 비가 오면 진흙탕이 되고 바람이 불면 많은 먼지 를 날리는 이유이다. 하천의 물도 흙탕물이어서 우리 물처럼 깨끗하지 않 고 좋지 않은 부유물질과 먼지들이 많이 섞일 수밖에 없다. 그러한 물과 공기를 마시고 사는 것이 사람에게 좋을 리 없을 것이다. 유럽이나 미국 도 중국보다는 조금 나을지 모르지만 그다지 큰 차이는 없다. 그에 반해 우리나라 특히 양산은 산과 경사지가 많고 연중 적당한 강수 량으로 먼지나 땅위의 부패물질들이 씻겨서 강으로 바다로 흘러가니 땅 과 공기는 항상 깨끗한 상태로 유지된다. 옛날 농경시대에는 산지가 많고 경사가 많은 우리 땅이 생산력에서 불리했지만 지금 이 시대, 지식산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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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산업의 시대에는 좋은 경쟁력 요소가 될 것이다. 서울의 도시 브랜딩을 우리 양산에 벤치마킹 한다면 양산도 얼마든지 도시 브랜딩의 성공적인 작품을 만들어 낼 수 있다. 양산은 많은 관광자 원을 갖고 있는 도시이다. 불보사찰인 통도사, 영남의 알프스라 불리는 영축산과 천성산, 웅상의 대운산 자연휴양림, 낙동강 임경대 등 전국적으 로 통할 수 있는 명소가 많다. 부산대학 병원이 들어와 의료관광의 전망 도 밝아지고 있으며 기존의 구포역에 추가하여 인근 언양에도 KTX역이 생겨 수도권 등 외부지역으로부터 접근성이 훨씬 좋아졌다. 세상 어디를 다녀보아도 양산만한 곳은 드물었다.‘팔이 안으로 굽어 서’ 가 아니라 정말 그렇다. 깨끗한 산이 병풍으로 둘러쳐있고, 황금들녘 이 아스라히 자리 잡고 있다. 낙동강 칠백리에서 가장 아름답다는 낙동강 임경대구간과 양산천이 땅을 기름지게 만든 전형적인 배산임수의 땅이 다. 아마도 인간의 이상향이라면 바로 이런 곳이 아닐까 생각한다. ‘구슬이 서말이라도 꿰어야 보배’ 라는 말이 있다. 이 속담은 우리 양산

양산의 대표적 명소인‘양산팔경’

나의 삶, 나의 길 77


에도 그대로 적용될 수 있는 것이다. 아무 리 좋은 자원을 많이 가졌더라도 그것을 다듬어 쓸모 있게 만들지 않으면 소용이 없다. 우리 양산이 가진 훌륭한 관광자원 을 잇는 관광코스를 개발하는 등 하드웨어 적인 접근과 함께 역사문화 자원과 자연경 관을 활용한 주제가 있는 축제를 개발하는 소프트웨어적인 접근을 병행해야 한다.

양산의 아름다운 모습이 살아있는 양산의 옛지도(중앙부분에 양산읍성이 보임)

관광산업과 축제를 육성하는 정책을 예 산낭비라는 관점에서 볼 일은 아니다. 지

역내의 음식업, 숙박업, 운수업, 서비스업을 살리는 한편, 양산의 브랜드 가치를 높여 양산에서 생산되는 각종 농산물의 판매를 촉진하고, 지역경 제를 활성화한다는 생산적 관점으로 볼 필요가 있다. 특히 경제적 활력을 점점 잃어가고 있는 원도심권을 살리기 위해서는 이러한 문화관광 산업 육성이 가장 효과적인 방법이다. 축제를 통해 양산시민의 힘을 결집하면 지역내 동서간 화합에도 큰 효과가 있을 것이다. 매년 개최하고 있는 삽량문화축전을 우리 양산시민을 대상으로 하는 축제로부터 좀 더 대상을 넓혀 많은 외래 관광객을 유치할 수 있는 축제 로 발전시켜 나갈 필요가 있다. 많은 외래 관광객을 유치하려면 축제의 주제를 명확히 할 필요가 있다. 그래야 다른 지역의 축제들과 차별화하여 축제를 홍보하고 관람객을 끌 수 있다. 축제의 주제는 양산의 역사, 문화, 자연경관 등과의 연관성을 살리면서 창조해서 만들어가는 것이다. 당장에 축제 프로그램으로 채택할 수 있는 반짝이는 아이디어를 생각

78 윤영석의 희망노래


해 보는 것도 필요하지만 보다 근본적인 차원에서 축제의 주제와 프로그 램의 방향성을 놓고 지역 문화예술계와 권위 있는 축제전문가들이 함께 머리를 맞대야 한다. 이 과정에서 삽량문화축전의 미래 방향에 대한 시민 적 공감대도 형성해 가야 한다. 양산의 역사와 문화, 미래가 녹아 있는 멋 진 축제를 만드는 일은 양산의 많은 구슬들을 꿰어 보배로 만들어 가는 일이다. 관광산업은 매우 부가가치가 높은 산업이다. 관광산업은 음식업, 숙박 업, 운수업, 소매업 등에 광범위한 효과를 낳기 때문에 지역 경제 활성화 를 위해 적극적으로 키워야 할 산업이다. 과거 우리 양산의 중심지였던 원도심의 침체가 근래에 많은 우려를 낳 고 있다. 신도시 개발로 중심상권이 신도시로 대거 이동했기 때문에 일어 난 현상이다. 원도심 살리기는 도시전체의 균형발전을 위해서도 꼭 해결 해야 할 매우 중요한 과제이다. 원도심의 공동화를 막기 위해 산업, 교육, 복지시설 등의 확충과 함께 문화예술적인 접근방법도 매우 실질적인 해 결책이 될 수 있다. 원도심에는 양산의 오랜 역사가 녹아 있으며 사람들의 정감이 묻어 있 는 공간이 많다. 문화예술은 이야기가 있고 사람의 체취가 느껴지는 곳에 자연스럽게 스며든다. 원도심의 일정한 구역을 문화예술의 거리로 정하 고 비어 있는 가게나 사무실을 시청에서 임대하거나 매입하여 예술가들 에게 창작 및 전시의 공간으로 제공한다면 국내외의 많은 예술가들이 모 여드는 문화예술의 거리가 될 수 있다. 부산이나 울산 등 주변도시에 예술가들을 위한 창작의 거리가 활성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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되지 않은 상황이기에 우리 양산에서 이를 추진할 경우 동남권의 예술중 심으로서 전국적인 명성을 얻을 수 있을 것이다. 예술가들이 모여 창작과 전시를 하는 공간을 조성하는 방법은 경기도 파주에 있는‘헤이리’ 와 같은 방식과 마르세유의‘프리쉬라벨드메’ 와같 은 방식이 있을 수 있다.‘프리쉬라벨드메’방식은 서울의 문래동에서도 큰 성공을 거두고 있다. 철공소가 밀집한 지역이었던 문래동의 철공소들 이 하나 둘 서울 외곽으로 이주함에 따라 비게 된 공간들을 예술가들이 채워 간 것이다. 현재 문래동 철공소 거리에는 100여개의 공간에서 170 여 예술가들이 창작의 열정을 쏟고 있다. 우리 양산에서도 예술인촌을 만들기 위한 움직임이 있었다. 하북면의 한송예술인촌이 바로 그것이다. 이것은 파주의 헤이리처럼 경치 좋은 공 간에 예술가들을 위한 작업 및 전시공간을 대규모로 건축하는 방식이다. 그러나 이러한 접근방법은 새로운 건축을 위한 많은 예산이 들고 시민들 과 관람객들의 접근이 용이하지 않다는 단점이 있다. ‘프리쉬라벨드메’ 나 문래동 예술인 거리와 같이 기존의 도시공간을 활 용하여 예술가들의 창작을 위한 공간으로 제공한다면 훨씬 더 적은 예산 으로 예술인 거리를 만들 수 있고 또한 주변지역의 상권을 살리고 공동화 된 도시공간에 활력을 불어 넣을 수 있다. 우리 시민들의 삶 속에서 물처 럼 흐르는 문화예술 환경을 만들어 원도심을 예술의 향기가 넘치고 관광 객들의 발길이 모여드는 공간으로 만들어 보자. 무엇이든 명확한 목표의식을 갖고 최선을 다한다면 이루어내지 못할 것이 없다. 큰일을 이루어내기 위해서는 첫째, 확실한 비전(Vision), 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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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표의식이 있어야 한다. 두 번째는 반드시 비전과 목표를 이루어내고야 말겠다는 열정(Passion)과 의지가 필요하다. 세 번째는 비전을 실제로 구현하기 위해서는 현실적으로 유리한 요소들을 극대화하고 불리한 요소 들을 극복하는 지혜(Inteligence)가 필요하다. 비전(Vision), 열정 (Passion), 지혜(Inteligence)야 말로 지도자가 반드시 갖추어야 할 가장 중요한 덕목이다.

나의 삶, 나의 길 81


중국을 배우고 익히다 지피지기 백전불태

이 시기 나는 전 세계를 대상으로 한 해외마케팅을 보다 실효성 있게 하 기 위해 아시아, 미주, 유럽 등 각국의 특성에 대해서도 깊은 연구를 했다. ‘지피지기 백전불태(知彼知己 百戰不殆)’ 라는 옛말이 있듯이 상대를 알아 야 정확한 목표 타깃을 정해서 맞춤형 마케팅을 할 수 있기 때문이다. 특히, 전 세계에서 가장 빠른 속도로 경제성장을 하고 있는 중국을 제 대로 공부하고 연구를 해야겠다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 그래서 2007년 8 월부터 중국인으로부터 매일 아침 7시부터 1시간 30분씩 중국어 공부를 하기 시작했다. 원래 한자공부를 좋아 했던 터라 중국어 공부에 재미가 금방 붙었다. 그 리고 중국에서 오는 손님들을 위한 공식행사 등이 있으면 한국말로 인사 말을 하지 않고 중국어 인사말을 거의 외우다시피해서 하는 등 중국어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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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우 열심히 공부했다. 중국에 공무출장을 갈 때도 만찬자리 등에서는 통 역을 쓰지 않고 초보적인 중국어라도 중국인들과 직접 대화를 함으로써 중국어실력을 기름과 동시에 중국 사람들과 친분을 조금씩 쌓아 나갔다. 중국을 자주 왕래하기 시작하면서 나의 심경에 어떤 변화가 생기기 시 작했다. 마케팅담당관 부임이전까지만 해도 중국에 대해서는 피상적으로 만 알고 있는 정도여서‘중국은 아직까지 개발도상국이고 우리나라를 따 라오려면 한참 멀었을 거다’ 라고 막연하게만 생각하던 수준이었다. 그러나 중국을 자주 왕래하면서 중국에 대한 기존의 내 인식은 상당히 잘못된 것이라는 것을 깨닫게 되었다. 중국에 다니면서 내가 가장 눈여겨 본 것은 중국의 첨단과학기술의 현 수준과 미래를 위해 중국 정부와 기업 들이 얼마나 열정적으로 준비와 투자를 하고 있는가 하는 것이었다. 왜냐 하면 세계에서 가장 무역의존도가 심한 국가인 우리나라와 중국은 지금 까지 그렇게 해 온 것처럼 앞으로도 세계시장을 놓고 치열한 경쟁을 벌일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이러한 경제전쟁에서 살아남기 위해서는 무역상 품의 경쟁력을 중국보다 우위에 유지를 해야 하는데 그 핵심요소가 바로 기술과 인력이기 때문이다. 그런데 인력적인 측면에 있어서는 우리나라의 평균적인 인건비가 이미 중국의 3~4배이고 중국은 실로 무한한 노동력을 갖고 있는 나라이기 때 문에 결국은 기술수준에서 우리나라가 확실한 우위를 가지고 있어야 하 는데 과연 중국과의 기술 경쟁에서 우리나라가 계속적인 우위를 유지할 수 있을 것인가에 대해 큰 관심을 갖고 지켜봤던 것이다. 2008년 3월 나는 북경시의 초청으로 중국에 출장을 가게 되었다. 그전

나의 삶, 나의 길 83


부터 북경에 가면 중국 첨단기술개발의 중심지인 중관촌(中關村)을 꼭 깊 이 있게 살펴보리라 마음을 먹고 있었다. 중관촌 지역은 중국 최고의 명 문대학인 북경대학, 청화대학, 인민대학, 북경이공대학, 북경과기대학 등 20여개 대학이 밀집해 있을 뿐만 아니라 구글, 삼성, IBM, 애플, 소후, 시나닷컴 등 세계적인 첨단기술기업들이 모여 있는 지역을 말한다. 북경 시 직원의 안내에 따라 중관촌과학기술특구 관리국 사무실에서 중관촌과 학기술특구의 현황과 운영방식에 대한 설명을 듣고 대학과 기업이 연계 하여 실제적으로 어떤 성과를 내고 있는지에 대해서도 상세한 설명을 들 었다. 이후 중국 이공계 대학 중 최고라고 할 수 있는 청화대학의 청화과 학기술원으로 이동하여 실제로 대학 내에서 이루어지고 있는 기술연구개 발 활동 및 대학 내 기업의 운영상황에 대해서 들을 수 있었다. 2002년부터 2004년까 지 미국 듀크대학 유학시 절 그곳에 있는 리서치트 라이앵글 파크(RTP)라고 하는 미국 동부 최대의 첨 단과학기술단지의 운영과 정책적 시사점을 주제로 중국 북경대학의 정문

행정대학원 석사학위논문

을 쓴 적이 있었다. 이러한 배경지식을 갖고 중관촌의 여러 가지 운영 실 태를 살펴 본 나는 상당한 충격을 받을 수밖에 없었다. 충격을 받은 이유는 첫째는, 중국은 값싼 노동력을 갖고 세계의 공장으 로서 제조업에 치중한 경제를 운영하는 국가라는 선입관을 갖고 있었는 데 그것이 잘못된 인식이었다는 것이다. 둘째는 중국이라는 나라의 미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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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고 할 수 있는 대학생들이 중관촌 첨단과학기술 개발단지의 첨단기술 기업들과 연계하여 기술개발에 몰두하고 있는 모습을 보고 큰 충격을 받 지 않을 수 없었다. 1980년대 등소평에 의한 대외개방 이후 중국은 외국의 제조업 자본을 적극적으로 받아들이고 이러한 외국기업에 거의 무한대에 가까운 값싼 노동력을 제공하는 전략으로 경제성장을 이루어왔다. 이를 통해 중국은 ‘세계의 공장’ 이라고 하는 별칭을 얻게 되었다. 물론 불평등 심화, 자연 훼손과 환경오염 등 부작용도 많은 것이 사실이다. 그러나 이러한 성장전 략을 통해 중국은 세계시장에서 수출 1위를 차지하고 있는 품목이 1200 개에 이르는데 반해 우리나라가 수출시장에서 1위를 차지하고 있는 품목 은 50개에 불과한 실정으로 격차가 벌어졌다. 더 중요한 것은 지금 현재 의 모습이 아니라 앞으로의 미래에 관한 걱정이 앞선다는 것이다. 실제 중국의 미래경쟁력은 대단히 위협적이다. 그 나라의 미래를 보기 위해서는 대학에서 배출되는 인재경쟁력을 먼저 살펴보아야 한다. 이미 중국은 미국을 제치고 세계에서 가장 많은 연구개발 인력을 보유한 국가 로 부상했고, 향후 글로벌 혁신의 허브가 될 가능성이 상당히 높아지고 있다. 중국이 태양광 산업 세계 1위 등 미래성장 첨단산업에서 세계적 경 쟁력을 갖춘 데는 우수인재의 힘이 크다. 중국의 인재경쟁력은 양적으로 세계 최고 수준이며, 질적으로도 이미 한국을 추월해 세계 수준에 근접해 있는 것으로 평가된다. 이공계 전문인력 배출 및 논문발표 수에서 중국은 압도적 우위를 차지 하고 있다. 지난 10년간 배출된 중국의 이공계 석・박사 인력은 94만 명 으로 한국의 5배이며, 중국의 기술개발(R&D)인력은 200만 명을 상회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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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의 7배 수준이다. 질적 측면에서 보면 공학기술 분야의 세계 100위 권 내 대학이 중국은 9개 인데 비해 한국은 2개에 불과하다. 이러한 격차 는 북경의 중관촌, 서안의 첨단고도기술개발구 등을 중심으로 대학, 연구 소, 첨단기업을 집중적으로 육성한 전략이 성공했기 때문이다. 이러한 상황을 볼 때 과연 우리나라가 10년 후, 20년 후에도 중국과의 경쟁에서 우위를 유지할 수 있을까를 생각할 때 식은땀이 나지 않을 수 없다. 실제적으로 우리나라의 이공계 대학에 재학 중인 대학생들의 현실 을 보면 더 큰 우려가 일어날 수밖에 없다. 의과전문대학원 및 약학전문 대학원 제도 도입이후 이공계에 재학 중인 많은 대학생들이 공학기술을 배우려 하지 않고 의과전문대학원이나 약학전문대학원으로 진학하여 의 사나 약사가 되려고 하는 경우가 단적인 예이다. 그 결과 서울대 공대 등의 박사과정 입학지원생이 매년 미달되고 있는 것은 심각한 현상이다. 지금 이 시대는 스티브잡스와 같은 훌륭한 과학기 술자 한명이 수만 명을 먹여 살릴 수 있는 시대인데 참으로 안타까운 일 이 아닐 수 없다. 나는 북경에 갈 때마다 무엇에 홀린 사람처럼 집중적으로 중관촌 첨단 과학기술 지구와 북경대학, 청화대학 등의 연구개발 현황을 듣고 분석하 는 시간을 가지곤 했다. 대학 내 기업이라고 할 수 있는 북경대학의 북대 방정집단(北大方正集團), 청화대학의 청화동방(淸華東方) 등에서 밤새 연 구활동을 하고 있는 석・박사과정 학생들과 중국의 과학기술자들을 보면 서 우리나라가 이대로 있어서는 중국경제의 강한 영향력 아래 놓일 수밖 에 없겠다는 대단히 절박한 위기의식을 갖게 되었다. 이때부터 나는 중국 에 직접 와서 살면서 중국의 첨단과학기술 개발 현장 등 중국의 실제적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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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가운영 현황을 깊이 있게 살펴봐야겠다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 우리나라에 비해 30배에 이 르는 인구와 광대한 국토 및 자연자원을 갖고 있는 나라가 기술력마저 우리나라의 우위 에 있게 된다면 그 결과는 말 하지 않아도 뻔한 것이다. 지 구상에서 중국과 가장 근접해

북경의 청화대학에 있는 청화과학기술단지

있는 우리나라, 경제구조 측면에서도 제조업 중심국가로서 중국과 상당히 유사한 형태를 띠고 있는 우리나라가 미래에 독자적인 발전을 지속하고 중 국의 영향력으로부터 자유롭게 국가의 미래를 이끌어가기 위해서는 지금 우리가 정신을 차리지 않으면 안 되겠다는 그런 각성을 하게 된 것이다. 그 때부터 기회가 있을 때마다 중국의 각 도시를 방문해서 중국의 미래 경쟁력에 대해서 탐구를 하곤 했다. 아시아의 금융 중심지를 지향하고 있 는 중국경제성장의 상징인 상하이(

), 중국의 정보통신(IT)산업과 디

자인산업 등 첨단산업의 중심지가 되고 있는 광동성( ( 우(

)의 선전

), 세계최고의 소상품 유통시장을 갖고 있는 절강성( ), 중국 서부내륙경제권의 중심인 충칭(

의 청두( 창춘( 의 선양(

)의 이

)과 사천성(

), 자동차 공업의 본산이라고 할 수 있는 길림성( ), 우리나라와 가까운 중국 동북지방의 중심인 요녕성(

) )의 )

) 등 많은 도시들을 돌아보면서 우리나라가 미래를 위해 위

기의식을 갖고 대비를 하지 않으면 안 되겠다는 생각을 다지곤 했다.

나의 삶, 나의 길 87


양산이 살 길 첨단기술과 문화관광 산업

양산은 2006년 이후 심각한 정체현상에 직면해 있다. 중국 등 후발경 제국들의 급성장에 따라 많은 영향을 받고 있다. 양산은 그동안 고무, 플 라스틱, 섬유, 화학, 금속가공, 자동차부품 제조업 등을 통해 지역경제 발 전을 이루어 왔다. 그러나 중국 등과의 경쟁에서 양산의 기존 제조업이 미래에도 경쟁력 우위를 지키면서 양산의 지속적인 성장을 견인할 수 있 을지에 대해서는 조심스러운 전망을 하지 않을 수 없다. 양산의 지역경제에서 50%가 넘는 비중을 차지하는 제조업의 사업체수 및 근로자수 추이를 보면 2005년 2천414개소(4만2천245명), 2006년 2 천591개소(4만2천415명), 2007년 2천639개소(4만1천018명), 2008년 2 천612개소(4만751명) 등으로 사업체수가 정체현상을 보이고 근로자수는 감소하고 있다. 이것은 양산의 성장동력이 고갈되고 있음을 나타내며 새 로운 성장동력 없이는 지역경제가 침체될 것임을 보여준다. 인구도 최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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들어 거의 늘지 않고 있다. 부산, 울산 등 대도시의 틈바구니 속에서 인구 50만의 중추도시로 성 장하기 위해서는 지역 정치권이 함께 힘을 모아 양산발전을 추진하지 않 으면 안 된다. 첨단 고기술을 기반으로 하는 산업으로 가지 않을 수 없다. 다행히 우리 양산은 첨단산업 지역으로 거듭날 수 있는 여러 가지 유리한 환경을 갖추고 있다. 바로 기존의 제조업 기업들이 건재하고 있으며 부산대, 영산대, 양산대 학 등 관내대학의 첨단기술 연구개발능력을 활용할 수 있는 여건이 마련 되어 있다. 특히 부산대 양산캠퍼스의 의학, 치의학, 한의학 등은 고부가가치 첨단 기업들이 생겨날 수 있는 훌륭한 자양분이다. 향후 약학, 공학, 생명공학 대 등도 조속히 유치하여 상승효과를 극대화해야 할 것이다. 기업과 대학 의 연계를 통한 첨단산업화를 위해서는 지역정부의 적극적인 의지와 주 도적인 역할이 매우 중요하다. 아울러 양산캠퍼스 인근의 첨단산학단지와 실버산학단지도 원래 계획 대로 추진될 수 있도록 시와 대학이 함께 힘을 모아야 한다. 최근 첨단산 학단지 예정부지에 골프장을 건설하겠다고 의견을 내놓은 것은 참으로 안타까운 일이 아닐 수 없다. 문전옥답을 놀이터로 만들자는 것에 다름 아니다. 대학을 중심으로 연구소와 벤처기업이 모여 새로운 기술과 상품을 만 들어내는 대덕연구개발특구와 같은 모델을 전국적으로 확산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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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제로 2011년 중 대구・경산과 광주에 연구개발특구가 지정될 계획이 다. 우리 양산도 이와 같은 특구로 지정될 수 있는 기반을 지금부터 만들 어가야 한다. 잘 살 수 있다는 희망을 갖자. 세계최고 부자이며 투자가인 워렌 버핏은 한국인은 지혜와 열정(Brain and Energy)이 있기 때문에 성공할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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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의 심장부로, 미국의 심장부로 북경대, 하버드대 유학

중국의 경제적 성장과 미래를 분석하고 우리나라의 앞날을 대비하는 구상을 하면서 동시에 나는 우리나라가 앞으로 번영하고 발전하기 위해 서는 중국, 일본, 동남아시아 등 각국과의 국제관계를 우호적으로 만들어 가는 것이 필요하다고 생각했다. 나는 한국, 중국, 일본, 태국 등 아시아 각국의 도시들이 서로의 문화를 교류하고 도시정부 운영의 지식과 정보를 교류하는 것이 필요하다고 생 각했다. 이에 따라 평소에 알고 지냈던 중국최고의 언론, 방송, 마케팅 분 야 대학인 중국전매대학(中國傳媒大學)의 정준걸 총장, 문춘영 교수 등과 함께 아시아 도시들 간의 대화와 토론을 위한 기회를 만드는 것이 필요하 겠다는 구상을 상의했다. 이런 생각에 공감한 아시아 각국의 도시들과 중국전매대학, 중국 최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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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전매대학에서 강의를 하는 모습

공영방송인 CCTV 관계자들이 모여 2008년 11월 북경에서 제1회 아시아 도시포럼을 개최하게 되었다. 이곳에서는 서울, 북경, 뉴욕, 싱가포르, 홍콩 등 많은 도시의 관계자들이 참석하여 서로의 문화를 교류하고 도시 마케팅 경험을 공유하였다. 나는 서울시의 대표로 참여하여 2008년부터 본격적으로 시작한 서울 시의 도시마케팅 전략을 발표하고 한국의 문화를 소개했다. 아시아 국가 의 도시로서는 처음으로 시작한 서울시의 도시마케팅 전략에 대해서 각 국에서 온 많은 참가자들은 큰 관심을 가졌다 2009년 8월 제2회 아시아 도시포럼은 길림성의 장춘(長春)에서 개최 하였다. 아시아 각국의 도시정부 관계자들과 많은 전문가들이 참여하여 아시아 도시들 간의 도시 간 협력을 강화하고 문화교류를 활성화하기 위 한 민간차원의 국제협력기구로서 아시아 도시연맹을 창설하기로 결정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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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 또한 내가 아시아 도시연맹을 이끌어가는 제1대 이사장으로 선출되 었으며 아시아 도시연맹 본부는 중국전매대학에 두기로 결정을 하였다. 나는 아시아 도시포럼과 아시아 도시연맹을 기반으로 하여 아시아 각 국의 도시 관계자들은 물론 민간전문가들과 교류하고 협력을 해나갈 수 있는 기반을 갖게 된 것이다. 아시아 도시연맹은 금년 2011년에도 제3회 아시아 도시포럼을 개최하였으며 아시아 도시들 간의 교류협력과 공동발 전과 지속적인 번영을 추구하는 중요한 기구로서 발전하고 있다. 2009년 여름이 되자 그 전부터 계획을 세운대로 중 국으로 가서 좀 더 깊이 있 게 중국을 공부하는 기회를 가져야겠다고 생각했다. 이 미 2009년 초에 북경대학, 청화대학 그리고 중국사회 과학원 등에 서신을 보내서 아시아도시연맹 이사장 취임(2009. 8월)

1년간 중국에서 연구를 할 수 있도록 도와달라는 의사를 타진을 해놓고 있었다. 각 대학별로 나름대로 장단점이 있었다. 북경대학의 경우에는 국제관 계학, 정치학, 행정학, 인문학 등이 발달했고 청화대학은 이공계 계통이 발달한 학교였다. 중국사회과학원의 경우에는 중국식 사회주의의 이념적 근간을 받치고 있는 곳이었다. 내심으로는 중국 최고의 명문대학이라고 할 수 있는 북경대학에 갔으면 하는 생각을 하고 있었다. 그러던 중 2009년 11월에 북경을 방문할 때 북경대학의 부총장과 북경외국어대 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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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을 지냈고 그 당시 중국 교육부차관으로 있던 하오핑(

)과 저녁식

사를 하는 자리가 마련되었다. 지금은 SK그룹 부회장을 맡고 있는 김재열 당시 한국고등교육재단 이 사장과 함께 한 자리였다. 그 자리에는 하오핑 차관과 의형제 관계에 있 는 북경대학의 국제합작부 부장인 이옌송(李岩松)과 국제합작부 부부장 인 옌쥔(嚴君)이 함께 자리를 했다. 그 자리에서 자연스럽게 중국에서의 내 유학계획에 대해서 얘기가 오갔고 중국식으로 그 자리에서 북경대학 의 국제관계학원에서 1년간 전폭적인 지원을 해주기로 결정이 되었다. 2009년 11월부터 3개월여 동안은 2010년의 새로운 해외마케팅 계획 을 짜고 새로운 해외마케팅 광고대행사를 선정하느라 눈코 뜰 새 없이 바 쁜 시간을 보냈다. 그러면서도 짬짬이 중국어 공부를 하고 북경대학에서 연구할 주제에 대하여 광범위한 자료를 조사하고 수집했다. 북경에 가면 우선 중국 사람들에 대한 깊이 있는 이해를 하는 시간을 가져야겠다고 생각했다. 또한 중국 문화와 역사를 공부하고 우리나라와 중국의 국제관계, 나아가서는 남북통일에 있어서 중국의 역할과 함께 중 국의 협조를 끌어낼 수 있는 전략을 연구하겠다고 마음먹었다. 당연히 2008년부터 큰 관심을 갖고 연구해왔던 중관촌을 중심으로 한 중국의 첨단기술 산업의 미래와 우리나라에 미치는 영향, 그리고 우리나라의 대 비책을 연구해야겠다는 계획을 세웠다. 2010년 6월 선거에서 서울시장에 다시 선출된 오세훈 시장의 취임과 함께 나는 마케팅담당관에서 물러나 중국으로의 유학길에 올랐다. 2007 년부터 중국어를 공부하면서 중국의 정치, 행정, 역사, 문화에 관한 책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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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시를 방문한 중국 정부관계자들과 함께

을 읽고 여러 차례 중국을 왕래하면서 이미 중국에 대해서 나름대로 연구 를 한 상태였다. 2009년부터 맡은 아시아도시연맹의 이사장으로서 활동 기반도 갖춘 상태였다. 북경대학을 중심으로 우리나라가 번영의 길로 가 는데 중국을 어떻게 활용하고 국제관계를 어떻게 형성할 것인가를 연구 하는 것이 가장 큰 목적이었다. 또한 아시아도시연맹의 이사장으로서 중 국, 일본, 동남아 등의 유력인사들과 많은 교류를 하고 견문을 넓히고 앞 으로 국가 간의 협력을 위해 도움이 될 수 있는 사람들과 인간관계를 형 성하는 것을 가장 중요한 목표로 삼았다. 드디어 2010년 8월부터 북경대학 국제관계학원의 방문학자(訪問學者) 로서 자리를 잡았다. 북경대학에 오는데 많은 도움을 주었던 이옌송(李岩 松) 전 국제합작부장이 마침 부총장으로 승진을 해서 든든한 배경이 되었 다. 아시아도시연맹 이사장으로 활동하면서 알게 된 우지판(吳志藩) 부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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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 또한 북경대학에서 불편한 사항이 없도록 많은 도움을 주었다. 이 지 면을 통해서 두 사람에게 깊은 감사를 표하고 싶다. 거처는 지난 2008년부터 나의 관심이 되었던 중관촌 첨단과학기술단 지 지역에 있는 아파트를 숙소로 잡았다. 이곳에서 중관촌의 운영실태와 이곳에서 일하는 사람들을 좀 더 실감나게 지켜보고 싶었던 것이다. 북경대학, 청화대학, 인민대학 등 중국 최고 명문대학의 학생 및 교수 들과 교류하는 일도 게을리 하지 않았다. 이들의 생각을 알아야 앞으로 중국과의 관계에서 우리나라가 어떻게 국제관계를 유리하게 끌고 갈 수 있을 것인지 그 방향을 제대로 잡을 수 있기 때문이다. 북경대학에서의 1년간의 계약을 마치고 나는 세계정세를 좀 더 연구해 야겠다는 생각을 갖게 되었다. 2011년 2월 미국 하버드대학의 초청을 받 아 아시아 도시연맹 이사장 자격으로 강의를 한 것이 계기가 되었다. 2002년부터 2004년 사이에 듀크(Duke)대학에서 유학을 해서 미국의 돌아가는 사정은 웬만큼 안다고 생각하고 있었지만 다시 찾은 미국의 분 위기는 7년 전의 미국과는 상당히 달라져 있었다 7년 전만 해도 미국은 세계의 유일한 초강대국으로서의 면모를 갖고 있었지만 그러한 분위기는 많이 달라져 있었다. 2008년 리먼 브러더스 의 파산 등 금융위기를 겪으면서 미국인들의 자신감이 많이 꺾인 결과일 것이다. 힘의 축이 중국, 인도 등 아시아로 점차 이동할 수밖에 없다는 것 을 미국인들도 인정할 수밖에 없는 시대가 온 것이다. 최근의 미국이나 유럽의 경제가 어려운 것은 결국은 중국, 인도 등 아시아경제가 커짐에 따라 돈과 재화의 이동이 가속화되고 있기 때문이라는 것이 통설이다. 그 렇지만 한편으로 미국의 현실적인 힘은 상당한 기간 동안 세계의 중심축 으로 건재할 수밖에 없는 것이 현실이다. 경제적인 측면에서는 중국이 2030년대 초반 미국의 경제규모를 추월할 것이라고 하지만 외교, 군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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적인 측면에서는 미국의 힘이 훨씬 더 오랫동안 지속될 것이기 때문이다. 특히, 우리나라는 앞으로 민족통일을 해야 하는 과제를 안고 있기에 미국 과 중국이라는 세계의 초강대국을 잘 활용해야 하는 숙명을 안고 있다. 이러한 생각을 하면서 나는 북경대학에서 1년 계약을 마치면 하버드대 학으로 와서 미국 최고의 지성들과 교류를 하고 변화하는 세계정세에 대 한 연구를 좀 더 깊이 있게 해야겠다는 생각을 했다. 2011년 2월 하버드 대학 초청강연은 좋은 평가를 받았다. 하버드대학에서 매년 열리는 HPAIR(Harvard Project for Asia and International Relations)라는 정례 컨퍼런스에서 초청을 받아“한국행정의 성공사례” 를 주제로 서울시 와 양산시의 사례를 중심으로 영어로 강연을 했는데 참석한 학생들이나 교수들로부터 큰 호평을 받았다. 이 강연이 계기가 되어 하버드대학에서 의 1년 계약으로 연구 활동을 하게 된 것이다 하버드대학은 미국 대통령 43명중 7명을 배출해 낸 세계최고의 명문대 학이다. 현재의 오바마 대통령 은 물론 루스벨트, 케네디 등 전 미국대통령을 배출했다. 이 학교는 1636년에 설립된 미국 에서 가장 오래 된 대학으로서 세계 최고의 명문대학이라는 자부심으로 가득한 학교이다. 72개나 되는 도서관을 중심으 로 다양한 학문분야에서 명성 과 권위를 자랑하는 하버드대 학은 학교의 재정적립금이 우 2011년 2월 미국 하버드대학의 HPAIR에서 강의모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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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나라 돈으로 50조원에 이를 정도로 대단한 저력을 갖고 있는 대학이다. 이곳에는 전 세계 200여 개국에서 유학을 온 학생들이 함께 어우러져 새로운 세계를 만들어가는 창조의 산실이 되고 있다. 나는 하버드대학의 한국학연구소에 소속되어“한류문화의 세계화를 위한 전략연구” 를 수행 함과 동시에 다양한 학문분야의 석학들과 교류를 하면서 앞으로 우리나 라가 국제사회에서 생존하고 번영하는 길은 무엇인가에 대해 끊임없는 고민과 연구를 계속해 왔다. 특히, 대학 내에서 매일 매일 열리는 세계적인 석학들이 주관하는 각종 강의와 세미나들은 한국에서 온 구도자와 같은 나그네의 지적 호기심을 충족시키기에 충분했다. 그리고 72개의 도서관에 비치된 2천만권이 넘 는 도서와 방대한 자료들은 우리나라의 앞날을 위해 무엇을 해야 할 것인 가를 연구하기에 더없이 좋은 기회를 제공해 주었다. 나는 나에게 찾아 온 이러한 행운들이 모두 내가 국가와 민족을 위해서 뭔가를 해야 한다는 국민의 명령이라고 생각한다. 국가와 국민이 나에게 준 혜택을 어떻게든 지 보답을 해야 할 책무가 나에게 있는 것이다.

미국 보스턴의 하버드대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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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라의 미래를 생각하다 희망찬 양산, 그리고 대한민국

중국과 미국의 변화와 세계정세를 보면서 나의 가치관과 인생관에는 많은 변화가 찾아 왔다. 2002년부터의 미국 듀크대학 유학시절이나, 그 이후에도 서울시청의 간부로서 열심히 일하면서 평생 공직자로서 열심히 일하면 그것이 곧 나 개인을 위해서는 물론이고 국가의 발전에 기여할 수 있고 국민들께도 보답을 할 수 있는 길이라고 생각했다. 그러나 중국이 급속한 변화와 성장을 거듭하고 나아가 미래의 새로운 성장동력 개발에 국력을 결집해 나가는 모습들을 직접 목격하면서 나 자신이 공무원으로 서 과연 국가의 앞날을 위해 무엇을 할 수 있겠는가라는 데 의문을 갖지 않을 수 없었다. 고급공무원으로서, 고시출신으로서, 안정된 직장을 갖고 있고 조금만 노력하면 누구나 부러워할 만한 직위에까지 오를 수 있고 명예가 따라 오 는 것이 개인적으로나 가족이 볼 때는 가장 편하고 순탄하게 인생을 사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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길일 것이다. 그러나 내 개인만 편하다고 나라 걱정을 하지 않는 것은 공 직자로서의 진정한 자세가 아니다. 20년, 30년 후에 나라가 어떻게 될 것인가를 생각해보면 참으로 큰 걱 정이 되지 않을 수 없다. 국가전체적인 운영의 방향이 잘못된다면 공무원 들이 아무리 잘한다고 해도 그것을 바로 잡기는 힘든 일이다. 결국은 국 가의 큰 방향을 결정하는 것은 정치권이고 국민이 편안하게 잘살기 위해 서는 정치가 바로서야 한다는 것을 다시 한 번 뼈저리게 느끼게 되었다. 오늘날과 같이 다양한 사회에서 국민적 통합을 위해서는 정치는 국가 운영에 있어 필요불가결한 것이다. 특히 우리나라와 같이 미국, 중국, 일 본, 러시아 등 세계적인 강대국들의 틈바구니 속에서 국가의 운명을 헤쳐 나가야 하는 나라의 입장에서는 국가의 미래 방향을 잘 설정하는 것이 매 우 중요하므로 우리나라의 경우에 정치는 더욱 더 큰 중요성을 가진다. 정치가 잘못되면 국민의 삶이 피폐해지고 국가의 운명이 바람 앞에 등 불과 같은 존재로 전락할 수 있다. 국민을 걱정 없이 잘 살게 하는 정치, 국가의 미래를 반석위에 올려놓을 수 있는 참된 정치가 지금 이 시점 우 리에게는 너무나 소중한 순간이다. 국민들이 믿고 의지할 수 있는 훌륭한 정치인들이 많이 나와야 하는 이유이다. 앞으로 우리나라는 대단히 어려운 운명을 겪게 될 가능성이 크다. 우리 나라는 경제의 대외 의존도가 세계에서 가장 높다. 전체 국민총생산 (GDP)에서 해외 무역이 차지하는 비중이 90%에 가깝다. 즉, 우리나라 경제는 수출을 많이 해야만 먹고 살 수 있는 구조라는 것이다. 1960년대까지만 해도 외국에 수출해서 돈을 벌어 올 길이 없기 때문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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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릿고개’ 라는 말이 생길 정도로 어려운 생활을 했던 것이다. 이러한 대 외 의존형 경제구조는 우리나라의 인구가 적고 지하자원이 부족하기 때 문에 우리가 잘 살기 위해서는 어쩔 수 없는 것이다. 해외무역시장에서 우리와 치열한 경쟁을 벌이고 있는 중국이나 인도도 마찬가지로 대외 의존형 경제이다. 특히 중국의 경우에는 중국경제에서 해외 무역이 차지하는 비중이 60%가 넘을 정도로 대외 의존형 경제이다. 더구나 우리나라와 중국의 현재의 핵심 산업과 미래의 성장 동력 산업이 겹치는 경우가 많다. 즉, 우리나라나 중국이 모두 자동차, 조선, 기계산업 등 제조업 중심의 경제구조를 갖고 있고 정부차원에서 육성하는 미래산 업도 에너지, 친환경기술, 정보통신산업 등 중복되는 분야가 많다. 이는 현재는 물론이고 앞으로 우리나라와 중국이 국가의 명운을 걸고 세계시 장에서 한판 승부를 벌이게 될 것이라는 것을 예견해 볼 수 있다. 세계시장에서 무역을 하는데 있어서 가장 중요한 것은 상품의 경쟁력 이다. 우리나라가 만든 상품이 중국이나 인도에서 만든 상품에 비해 경쟁 력을 갖고 있다면 물건을 어떻게 팔 것인지 걱정을 할 필요가 없는 것이 다. 그러면 상품의 경쟁력은 어떻게 결정되는가? 결국은 상품의 가격과 품질에서 결정이 난다. 이러한 상품의 가격과 품질을 좌우하는 요소는 인 건비와 기술수준이라고 할 수 있다. 우리나라는 중국이나 인도에 비해서 인건비의 수준이 매우 높은 형편이다. 중국에 비해서는 평균 3~4배, 인 도에 비해서는 5~6배가 높은 실정이다. 결국 우리나라가 무역경쟁에서 중국이나 인도를 제압하기 위해서는 기술수준을 압도적으로 높이는 수밖 에 없다. 앞서 얘기한 바와 같이 중국은 이미 세계 최고의 과학기술 개발(R&D) 국가로 부상하고 있다. 인도의 경우에도 정보통신(IT) 산업 분야의 국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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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쟁력이 매우 높은 수준이다. 이러한 상황에서 우리가 생존하고 번영할 수 있는 길은 원천기술이든 응용기술이든 산업의 기술경쟁력을 올리는 길 밖에는 다른 방도가 없을 것이다. 오늘날 우리가 이 만큼이라도 살 수 있는 것은 60년대, 70년대 우리가 우수한 기술자들을 많이 길러냈기 때 문이다. 그 때만 하더라도 수재들이 공업계 고등학교로 많이 진학했다. 기능올림픽 등에서 우승을 한 분들에게는 국가적으로 명예를 부여했다. 이러한 분위기가 있었기 때문에 우수한 인재들이 기술자가 되었던 것이 다. 그러한 바탕위에서 오늘날의 한국이 가능하게 된 것이다. 오늘날 과학기술을 배우는 공대에 가는 것 자체를 꺼리는‘공대기피’ 현상이 발생하고 공대에 진학한 학생들도 기술을 배우려하지 않고‘의과 전문대학원’ 이나‘약학전문대학원’ 에 진학하여 의사나 약사가 되려고 하 는 것은 나라의 미래를 위해 안타까운 일이 아닐 수 없다. 이렇게 되면 우 리나라의 미래가 어떻게 될 것인지는 뻔하다. 결국은 제조업 분야의 경쟁 력을 상실하여 세계시장에서 중국이나 인도에 밀릴 수밖에 없고 결국은 서비스산업 등으로 국가경제를 이끌어 갈 수 밖에 없는 날이 오고야 말 것이다. 이러한 우려스러운 상황이 초래하지 않도록 하는 것은 결국은 우리나 라가 세계최고의 과학기술 국가가 되어 세계 경제를 움직이는 핵심 원천 기술을 가장 많이 보유한 국가가 되는 것 이외에는 다른 방도가 없을 것 이다. 중국 북경의 중관촌을 비롯한 각 지역의 첨단산업단지들을 보면서 너무나 뼈저리게 느낀 생각들이다. 지금 우리가 일부 정보통신(IT), 조선업 등에서 중국이나 인도를 앞서 고 있다고 자만하고 기분 좋게 생각할 일이 절대 아니다. 모든 것은 순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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간이다. 국가라는 것이 5년, 10년 유지하고 문을 닫을 것이 아니기 때문 에 장기적인 관점에서 위기의식을 갖고 대응을 해나가야만 한다. 우리나 라는 국가의 규모가 작기 때문에 우리가 과학기술 대국이 되기 위해서는 온 국가적인 역량을 한데 모아 나가야만 한다. 국가는 현재의 복지, 육아, 교육문제 등 다양한 문제들도 해결을 해야 하지만 더 중요한 것은 미래에 다가 올 위기에 대응을 해야 한다는 것이다. 미래에 대응을 제대로 하지 못한다면 우리는 생존의 위기를 맞을 수밖에 없다. 이런 현실을 파악하고 국가의 미래를 걱정하고 대비하는 정치인이나 공직자가 과연 몇이나 우리나라에 있는지 의문을 품지 않을 수 없다. 국 가의 백년대계는 안중에도 없고 자신들의 자리보전만을 위해 이전투구를 벌이고 있는 정치권을 보노라면 우리 아이들의 미래가 너무나 암담해서 참으로 피눈물이 나지 않을 수 없다. 이제는 나라의 미래를 위해 국민들 의 뜻과 역량을 결집해 내야 할 시대가 왔다. 미래를 대비할 수 있는 남은 시간이 그렇게 많지 않은 것 같다. 길어야 앞으로 10년 정도. 그 시간 내에 우리가 온 국가적인 역량을 결집하여 세 계적인 핵심원천 기술과 응용기술을 가진 나라로, 그리고 나라의 최고의 인재들이 그러한 분야에서 자신의 인생을 걸고 도전하는 그런 기풍이 있 는 나라로 재탄생하지 못한다면 우리는 다시 한 번 기나긴 좌절과 속박을 시대를 살아가야 할 것이다. 이러한 나라를 만드는데 남은 인생을 모두 바치겠다는 생각을 나는 지금 하고 있다. 국민 모두가 힘을 합해서 세계 최고의 과학기술국가, 경제규모 세계 5 위 이내의 통일한국, 국민 모두의 기본적인 복지수요를 충족할 수 있는 복지국가, 오천년의 민족역사를 되살려 세계적인 문화를 만들어내고 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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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하는 문화국가로서 대한민국을 만들고 가꾸기 위해 어떤 희생을 치루 더라도 나의 모든 것을 바치고자 한다. 또한 사통팔달 교통망이 뚫려있고 아름다운 자연경관과 역사자원을 갖고 있는 우리 양산을 전국 최고의 도 시로 만드는 그것이 바로 나의 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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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부 칼럼 양산시민신문 기획연재시리즈 <윤영석의 세계의 도시들> 양산인터넷뉴스 윤영석칼럼 <양산의 미래, 한국의 미래>


[윤영석의 세계의 도시들①] 2010년 09월 14일

양산 발전 장기전략, 외국사례도 살펴보자

도시는 사람들의 아름다운 인생을 담는 귀중한 그릇이며 삶의 질을 결 정짓는 중요한 기반이다. 현대는 국가간 경계가 매우 약화되는 시대로서 도시의 경쟁력이 국가의 경쟁력을 좌우하는 시대라고 한다. 경제, 교육, 문화, 환경적으로 매력적인 도시가 우수한 인재와 투자를 끌어와서 발전 하게 되면 이것이 곧 국가의 경쟁력으로 직결되는 것이다. 그래서 도시경 영을 잘하는 것은 그 도시에 사는 시민들을 행복하게 만드는 것일 뿐만 아니라 그 국가의 발전을 이룩하는 결정적 견인차가 되는 것이다. 세계 제1위 투자은행인 골드만삭스는 2050년 우리나라가 1인당 GDP 에서 미국에 이어 세계 제2위 국가가 된다고 한다. 우리가 인정하든 인정 하지 아니하든 세계는 우리를 주목하고 있다. 우리나라의 도시들 간에도 본격적인 경쟁이 펼쳐지고 있다. 이러한 경쟁에서 앞서서 경쟁우위를 확 보하는 것은 도시의 미래를 결정하는 중요한 전환점이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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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행히 우리 양산은 동아시아의 주요 3국가인 한국-중국-일본을 연결하 는 결절점이라 할 수 있는 한반도 동남권에 위치해서 입지조건이 좋고 자연 환경과 산업 경제적 여건이 국내 다른 도시들에 비해 유리하다. 양산이 발 전할 수 있는 장기적인 전략을 수립해서 시민, 시정부, 기업, 교육, 문화계 등이 함께 힘을 합한다면 세계를 깜짝 놀라게 하고 대한민국의 발전을 앞당 길 수 있는 핵심도시로서 성장할 수 있는 충분한 역량을 가진 도시이다. 장기적 전략을 수립하는데 다른 도시들의 발전경험과 과정을 분석해 보는 것은 좋은 방법이다. 다양한 사례를 분석하고 우리의 상황에 맞게 재창조해서 적용하는 것은 시행착오를 줄일 수 있고 현실에 맞게 착근시 킬 수 있는 효과적인 방법이다. 세계에는 수많은 도시들이 있다. 정보통신산업의 황무지였던 인도를 세계적 IT 국가로 이끈 방갈로르(Bangalore), 보잘것없는 탄광도시에서 유럽의 문화상징으로 발돋움한 스페인의 빌바오(Bilbao), 작은 아이디어 하나로 세계도시들의 모범사례가 된 브라질의 친환경도시 꾸리찌바 (Curitiba), 전세계 공연 재주꾼들에게는 꿈의 도시가 된 영국의 에딘버 러(Edinburgh), 농촌마을에서 거대국가 중국의 미래가 된 북경의 중관 촌(中關村), 전통공예품 개발로 유네스코 창의도시에 선정된 일본의 가나 자와(金澤) 등은 그 나라의 발전을 선도적으로 이끌어가는 도시들이다. 우리 양산도 이들 도시들처럼 되지 말라는 법이 어디 있는가? 문제는 미 래의 발전을 위한 목표와 방향을 얼마나 적절하고 현명하게 선택하느냐 하는 것과 이러한 것을 달성하기 위해서 우리가 얼마나 끈끈하게 합심해 서 노력하느냐에 달려있다. 양산은 25만명의 인구와 지역내 총생산량(GRDP)이 6조원이 넘고 시 정부의 연간 예산이 6천억원에 이르는 도시이다. 국제적인 기준에서 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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면 상당히 규모가 있는 도시에 속한다. 세계적으로 도시경쟁력이 높은 유 명도시들, 예를 들면 미국의 채플힐, 스페인 빌바오, 스웨덴 말뫼, 영국 에딘버러 등은 모두 인구 20~50만명 규모의 도시이다. 이제 우리나라도 지방자치가 제법 정착되는 단계에 들어섰다. 더 이상 중앙정부의 규제가 많다거나 지원예산이 적어서 도시발전이 어렵다는 것은 크게 보면 맞는 말이 아닌 것 같다. 그런 외부 환경적 제약은 우리나라의 모든 도시에 해 당되는 사항이므로 한국의 전체적인 정치제도 발전을 통해 해결해야 하 는 문제이다. 따라서 그러한 것은 일단 논외로 하고 우선은 양산의 자생적인 발전을 통해 외부의 기업과 자본, 교육 및 문화자원을 양산으로 유입시킴으로써 양산의 독자적인 발전을 적극적으로 추진해야 한다. 이것이 우리 양산인 들이 행복하게 잘 살 수 있는 방법이고 우리나라 발전에 기여할 수 있는 방법이다. 양산 주위를 둘러보면 만만한 구석은 없다. 우리나라 제2의 도 시 부산, 세계적 조선 및 자동차 산업도시 울산은 물론이고 김해와 밀양 도 각기 그 지역의 경제, 산업, 역사, 문화적 측면에서 나름대로의 위상을 갖고 있다. 이대로 적당히 살아갈 것인가? 아니면 우리 양산을 훌륭한 도시로 만 들어 우리 자신과 후손들이 대대로 잘사는 도시로 만들어 갈 것인가를 결 정하는 것은 바로 우리다. 양산이 지금보다 더 잘살고 밝은 미래가 있는 도시로 발돋움 할 수 있는 길을 찾아보자. 길을 찾는 가장 기본적인 출발 점은 선택과 집중이다. 각 분야별로 우리 실정에 맞는 발전방향을 선택해 서 우리가 가진 모든 힘을 투입해야 한다. 그냥 이것도 해야 하고 저것도 해야 한다는 문어발식으로는 성공하기 어렵다. 올바른 발전방향을 설정 하기 위해 세상의 많은 도시들의 모범사례를 탐구하고 분석해보는 것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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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우 의미 있는 일이다. 이러한 인식에서‘세계의 도시들’ 연재를 시작한다. 경제, 산업, 문화, 환경 등 각 분야별로 앞서가는 도시들의 사례와 이를 우리 양산에 어떻게 적용해 나갈 것인가를 고향의 독자님들과 함께 고민해 보는 기회가 될 수 있기를 진심으로 기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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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영석의 세계의 도시들②] 2010년 10월 12일

미국 첨단산업의 메카 노스캐롤라이나 RTP 미국 노스캐롤라이나

모든 것에는 흐름이 있다. 지역의 발전도 흐름에 좌우되는 경향이 크다. 서울~부산의 경부축이 발달한 것은 한국~일본 간 흐름의 축이 경부축이 기 때문일 것이다. 중국의 부상에 따라 서해안이 주목받는 것도 하나의 흐 름이다. 미국도 마찬가지였다. 19세기 유럽의 자본이 들어오면서 유럽에 가까운 뉴욕, 보스턴, 필라델피아 등 동부지역 도시가 발달했고 서부개척 시대가 열리면서 동부와 서부를 잇는 중부지역의 시카고가 발달했다. 미국의 남부에 위치한 노스캐롤라이나 주는 이런 흐름에서 소외된 지 역이었다. 이곳은 1950년대만 해도 경제력에서 50개주 중 49위에 불과 했다. 이런 흐름을 역전시킨 것이 바로 RTP라는 산업단지의 탄생이다. RTP는 리서치 트라이앵글 파크(Research Triangle Park)를 줄인 말로 서 노스캐롤라이나 주의 더램, 랄리, 채플힐 3개 도시의 가운데에 있는 첨단산업단지이다. 이들 3개 도시의 전체인구는 약 80만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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첨단산업 유치 성공으로 급성장 필자가 더램의 듀크 (DUKE)대학에서 유학하 던 2002년 이곳은 미국의 경제전문지 포브스에 의 해 미국에서 경제활동하 기 좋은 곳 3위에 꼽힐 정 도로 역동적인 도시로 변 리서치 트라이앵글 파크(Research Triangle Park)의 모습

모해 있었다. 최하위 권이 었던 곳이 미국 최고의 경제활동 지역으로 탈바꿈한 비결은 무엇일까? 1950년대까지 이곳은 담배와 목화재배를 하던 전형적인 농촌이었고 경제발전에 대한 희망이 없는 곳이었다. 이러한 정체상태가 깨진 것은 지 역사회의 고민으로부터 시작되었다. 1952년 노스캐롤라이나대학의 하워 드 오덤 교수는 첨단산업단지 설립에 관한 아이디어를 내놓는다. 이곳의 듀크대, 노스캐롤라이나대, 노스캐롤라이나주립대 등이 보유한 인력과 연구자원을 활용하여 첨단기업을 유치하자는 것이었다. 주정부는 이를 받아들여 430만평의 황무지를 매입하고 첨단산업단지를 조성할 수 있는 기반을 만들었다. RTP단지 설립 초기에는 가능성 없는 일을 벌인다고 주변 도시들로부 터 비웃음을 샀다. 실제로 60년대 초반까지 별 성과가 없었다. 그러나 지 역정부는 파격적으로 기업에 공간을 제공하고 연구개발비 지원, 세제감 면 혜택 등을 의욕적으로 추진했다. 그 결과 1965년 세계적 정보통신 기업인 IBM과 미국 국립환경보건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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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소를 입주시키는데 성공했다. 이들의 입주는 연쇄효과를 일으키며 시 스코, 모토롤라, 글락소스미스클라인 등 세계적 기업들이 잇따라 RTP단 지에 입주했다. 지금 RTP단지에는 180여개 기업이 입주해 있다. 이 기 업들이 투입하는 연간 연구비는 약 3조5천억 원이며, 총 5만5천명에게 연간 약 3조8천억 원이 지급되고 있다. RTP단지를 기반으로 노스캐롤라 이나주 경제력은 최하위권인 49위에서 10위권으로 성장했다. 지정학적 위치나 경제의 흐름으로 보면 이 지역은 발전이 어려운 지역 이었다. 그러나 지역사회가 함께 지혜를 짜내고 도전한 결과 큰 성공을 거두었다. 중요한 것은 지역민과 지역정부가 발전을 위한 공감대를 만들 었다는 것과 대학을 매개체로 첨단기업을 유치하고자 했던 전략이 주효 했다는 것이다.

질적 성장 전기 필요한 양산 RTP지역의 성공은 우리 양산에도 많은 시사점을 준다. 양산은 경부 축의 발전과 부산 등 주변지역 인구와 기업의 이전에 따라 성장해 온 측 면이 크다. 그러나 이러한 성장추세에 적신호가 켜지고 있다는 의견이 많다. 지금 우리 양산은 양적 성장으로부터 질적 성장으로 차원을 높이기 위 해 새로운 성장동력을 찾아야 한다. 고부가가치의 첨단산업을 육성하여 정체상태를 극복해 나갈 필요가 있다. 이렇게 해야 기존의 산업도 다시 상승흐름을 타고 함께 성장할 수 있는 것이다. 이러한 측면에서 볼 때 의학, 치의학, 한의학 등 대학단지와 대학병원 이 입주한 부산대 양산캠퍼스는 양산발전에 희망의 흐름을 만들 수 있는 호재이다. RTP지역의 성공사례에서 보듯이 대학의 인력과 지적자산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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활용하여 양산의 새로운 성장동력이 될 수 있는 고부가가치 첨단산업을 육성하는 방안을 깊이 검토할 필요가 있다. 특히 양산캠퍼스와 연계된 첨단산학단지와 실버산학단지가 기존의 계 획대로 차질 없이 추진될 수 있도록 힘을 모아야 하며 이곳에 의약산업, 생명과학, 정보통신 등 고부가가치 기업을 유치하기 위한 체계적인 방안 을 시급히 마련해야 한다. 이는 대학이 혼자 할 수 있는 일이 아니며 지역 사회가 함께 머리를 맞대고 고민해야 할 일이다. 이 단지가 성공하면 양 산지역 전체적으로 고부가가치의 첨단산업이 연쇄적으로 확대될 것이며, 양산에 소재한 기존의 기업과 대학들도 함께 상승효과를 내면서 발전할 수 있다. 지역을 발전시키는 것이 쉬운 일은 아니다. 그러나 어려운 여건을 극복 하고 성공한 사례는 많다. 양산은 고부가가치의 성장도시로 나아가느냐 부산의 위성도시로 남느냐 전환점에 서있다. 기회를 잘 살리면 성장과 희 망의 날개를 달 수 있다. 양산이 새로운 성장동력을 장착하여 양산~부산 ~울산 삼산의 선도도시로 우뚝 서는 그 날을 그려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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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영석의 세계의 도시들③] 2010년 11월 02일

제조업 중심에서 첨단산업과 문화도시로 변모 탄광도시에서 첨단문화도시로 도약한 스페인 빌바오

도시는 지속적으로 변화한다. 우리 양산의 역사를 보아도 통일신라시 대에는 지금의 경상남북도에 걸치는 지역을 관할하던 삽량주의 주치(州 治, 지금의 도청소재지와 유사)로서 높은 위상을 가졌으나 고려시대와 조 선시대를 거치면서 그 위상이 낮아졌다. 80년대 이후 우리 양산은 동남 권의 주요한 산업도시로서 지속적인 성장과 도약을 꿈꾸고 있다. 세상의 많은 도시들이 긴 역사를 거치며 번영하기도 하고 쇠락하기도 한다. 변화의 과정에서 대응을 잘한 도시는 계속적인 번영을 누리지만 그 렇지 못한 도시는 쇠퇴할 수밖에 없다. 인간의 모든 역사는 영국의 저명 한 역사학자 토인비가 말했던 바 그대로 외부의 도전에 대한 응전의 과정 인 것이다. 유럽대륙의 남부에 위치한 스페인의 빌바오(Bilbao)는 외생적인 도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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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 대하여 적절한 응전을 함으로써 지속적으로 번영을 누리고 있는 도시 이다. 빌바오는 2003년 유럽의 문화수도로 선정된 도시이며, 전 세계의 문화예술 애호가들과 관광객들이 가고 싶어 하는 도시이다. 지중해 이베 리아 반도의 북부에 위치한 빌바오는 인구 35만명 규모의 도시이다. 빌바 오의 역사는 서기 1300년까지 거슬러 올라간다. 17~18세기 산업혁명기 에는 철강 및 제철, 조선산업을 기반으로 성장하였으며 20세기 초에는 스 페인에서 가장 부유한 도시중의 하나가 되었다. 그러나 철강 자원의 고갈 로 광산들이 폐쇄되고 70년대의 오일쇼크를 거치면서 산업기반이 무너지 기 시작했다. 80년대 이후에는 한국의 조선산업이 급격히 성장함에 따라 빌바오의 주력산업인 조선업이 무너지면서 실업률이 30%에 이를 정도로 극심한 침체기를 맞게 되었다. 번영을 누려왔던 빌바오의 역사에 거대한 도전의 물결이 덮친 것이다. 이러한 도전에 빌바오는 어떻게 대응했을까?

민관협력으로 새 발전전략 수립 빌바오는 1991년 빌 바오가 처한 위기를 극 복하기 위해‘빌바오 메트로폴리

30’

(Bilbao Metropoli30)이라는 민관협력체 를 만들었다. 지방정 스페인의 문화도시인 빌바오 시내의 모습

부, 시민대표, 민간기 업, 학계 등이 함께 참여하는 빌바오 메트로폴리는 빌바오의 번영을 다시 재현하기 위해 빌바오의 새로운 성장동력을 개발하고 연구하는 기구로 지금도 운영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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빌바오 메트로폴리를 중심으로 마련된 새로운 도시발전전략은 기존의 철강, 조선업 등에서 벗어나 정보통신, 금융, 서비스, 소프트웨어 산업 등 첨단산업 위주로 산업구조를 재편한다는 것과, 세계적으로 경쟁력 있는 문화도시로 부상하기 위해 획기적인 문화전시공간 건립, 문화산업 육성, 문화축제 유치 등을 한다는데 중점을 두었다. 빌바오의 도시재생 전략은 다양한 분야를 통해서 구현되었다. 그 중에서도 세계적으로 가장 주목을 받는 것은 구겐하임 빌바오 미술관(Guggenheim Bilbao Museum)이 다. 이 미술관은 빌바오의 버려진 항만시설을 복합 문화예술 지구로 재생 시킨 것이다. 당시 약 1천200억원의 예산으로 건립된 이 미술관은 건축 가 프랭크 게리(Frank O. Gehry)의 설계로 건축되었으며 현대 건축의 대표작으로 손꼽히며 유럽의 문화상징이 되고 있다. 1997년 개관 첫해 136만명을 비롯해 3년 동안 350만명의 관람객이 전 세계에서 몰리면서 초기투자액의 7배가 넘는 수익과 4천명에 달하는 일 자리 창출효과를 낳으면서 지역경제의 성장과 고용에 큰 효과를 낳았다. 제조업 중심도시를 첨단기술산업과 문화중심도시로 탈바꿈시킨 빌바오

빌바오 구겐하임 미술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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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 성공사례는 우리 양산에 많은 시사점을 준다. 양산은 70년대 이후 제조업을 중심으로 빠른 지역경제 성장을 일구어 왔다. 그러나 양산의 미래가 낙관적이지만은 않다. 근래에 양산 경제에서 50% 이상을 차지하는 제조업의 성장이 정체상태를 보이고 있고, 앞으로 중국 등 브릭스(BRICs)국가의 추격에도 양산의 제조업이 굳건한 경쟁력 을 유지할 수 있겠는가에 대해서는 논란이 있는 것이 사실이다.

양산 관광산업 여건 밝다 이러한 상황을 감안할 때 빌바오의 사례에서 본 바와 같이 우리 양산의 산업을 중국 등 브릭스 국가와의 경쟁에서도 끄떡없이 고부가가치를 낳 을 수 있는 첨단기술산업 위주로 고도화해야 하며, 특히 문화산업과 관광 산업을 적극적으로 육성해야 한다. 그래야 우리 양산이 지속적으로 도시 경쟁력을 유지하면서 번영할 수 있다. 문화관광산업의 성장은 양산지역 경제에서 3분의 1을 차지하는 음 식・숙박업, 소매업, 운수업, 서비스업 등의 동반성장을 가져오기 때문에 지역경제 활성화에 큰 역할을 할 수 있다. 통도사, 내원사, 천성산 등 양 산이 갖고 있는 역사자원 및 훌륭한 자원경관을 최대한 활용하고 부산대 학병원의 의료관광 프로그램을 다양하게 개발하며, 새로 개통된 KTX 노 선을 중심으로 경주~양산~부산을 연계하는 관광상품 개발을 적극적으 로 추진한다면 양산의 관광산업 성장에 획기적인 전기가 만들어질 것이 라 생각한다. 지금 우리 양산은 미래에도 지속적으로 성장하고 번영할 수 있는 새로 운 성장동력을 개척해야 한다. 첨단기술산업 육성을 통한 산업구조 고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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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와 문화관광산업 활성화를 통해 우리 양산이 자손대대로 잘사는 도시 가 될 수 있도록 양산의 모든 구성원들이 머리를 맞대고 힘을 모아야 할 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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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영석의 세계의 도시들④] 2010년 11월 23일

전 세계 공연예술가들의 꿈의 도시 해리포터의 고향 영국의 에딘버러

세계적으로 4억부 이상이 팔려‘성경’다음의 베스트셀러로 꼽히는 ‘해리포터’ 가 태어난 곳은 어디일까? 바로 영국 스코틀랜드의 에딘버러(Edinburgh)다. 작가 조앤 K. 롤링 이 가난했던 시절 어린 딸을 달래면서 몇 년 동안 매일같이 에딘버러의 한 카페에 앉아서 해리포터를 썼다고 한다. 이 에딘버러는 런던에서 북쪽 으로 630킬로미터 떨어진 곳에 위치하고 있으며 인구 46만명 규모의 도 시이다. 그런데 해리포터 보다 에딘버러를 더 유명하게 만드는 것이 있다. 그것 은 매년 8월초부터 3주일 동안 열리는 에딘버러 국제 페스티벌(EIF)이 다. 에딘버러 국제 페스티벌은 프린지 페스티벌, 북 페스티벌, 영화 페스 티벌, 재즈&블루스 페스티벌, 밀리터리 타투 페스티벌 등 다양한 행사로 구성되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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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중 코미디, 연극, 뮤지컬, 댄스, 전시회 등 다양한 예술을 망라하는 에딘버러 프린지 페스티벌은 공연을 하고 싶은 사람은 누구나 참여할 수 있는 개방성을 띤 프로그램으로서 1천개가 넘는 프로그램이 펼쳐지는 행 사다. 이 행사는 젊은 예술가들이 모여 창조성과 생동감을 마음껏 발산하 는 무대로서 전 세계 전위예술의 시험무대가 되고 있다.

축제는 관광객 유치 위한 효과적 수단 매년 열리는 이 축제에는 전 세계에서 100만명 이상의 관람객이 방문 해서 이 기간 동안의 관광수익으로만 1조원 이상을 거두어 이 지역 경제 에 막대한 기여를 하고 있다. 우리나라에서도 점프, 난타, 사춤 등 각종 공연들이 참여하여 큰 호응을 받은 바 있다. 이 축제는 처음에는 작은 동네 행사로 시작되었다. 1947년 제2차 세계대 전의 상처가 채 아물지 않았을 때 에딘버러 지역의 한 연극단에서 지역민 들을 위로하기 위한 행사로서 개최되었다. 그 뒤에 해를 거듭하면서 유럽 각국의 도시들이 같이 참여하게 되었고 지금은 전 세계 예술가들이 참여하 여 새로운 작품을 발표하고 서로 경쟁하는 최고의 축제로 발전하였다. 사 실 에딘버러는 공업도시로서는 변변한 산업을 가지지 못한 도시이다. 에딘 버러 페스티벌이 없었다면 이 지역은 경제적으로 상당히 궁핍한 지역이 되 었을 것이다. 그러나 세계적인 축제를 육성하여 도시의 브랜드 가치를 올 리고 수많은 관광객을 유치함으로써 지역경제를 살리고 있는 것이다. 관광산업은 매우 부가가치가 높은 산업이다. 한 연구에 의하면 외국인 관광객 1인당 지역경제에 100만원 이상의 수익을 가져다준다고 한다. 또 한 관광산업은 음식업, 숙박업, 운수업, 소매업 등에 광범위한 효과를 낳 기 때문에 지역 경제 활성화를 위해 적극적으로 키워야 할 산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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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산의 관광자원을 활용한 축제 육성 필요 우리 양산은 많은 관광자원을 갖고 있는 도시이다. 불보사찰인 통도사, 영남의 알프스라 불리는 영축산과 천성산, 대운산 자연휴양림, 낙동강 임 경대 등 전국적으로 통할 수 있는 명소가 많다. 부산대학 병원이 들어와 의료관광의 전망도 밝아지고 있으며 기존의 구포역에 추가하여 인근 언 양에도 KTX역이 생겨 수도권 등 외부지역으로부터 접근성이 훨씬 좋아 졌다. ‘구슬이 서말이라도 꿰어야 보배’ 라는 말이 있다. 이 속담은 우리 양산 에도 그대로 적용될 수 있는 것이다. 아무리 좋은 자원을 많이 가졌더라 도 그것을 다듬어 쓸모 있게 만들지 않으면 소용이 없다. 우리 양산이 가 진 훌륭한 관광자원을 잇는 관광코스를 개발하는 등 하드웨어적인 접근 과 함께 역사문화 자원과 자연경관을 활용한 주제가 있는 축제를 개발하 는 소프트웨어적인 접근을 병행해야 한다. 관광산업과 축제를 육성하는 정책을 예산낭비라는 관점에서 볼 일은 아 니다. 지역내의 음식업, 숙박업, 운수업, 서비스업을 살리는 한편, 양산의 브랜드 가치를 높여 양산에서 생산되는 각종 농산물의 판매를 촉진하고, 지역경제를 활성화한다는 생산적 관점으로 볼 필요가 있다. 특히 경제적 활력을 점점 잃어가고 있는 구도심권을 살리기 위해서는 이러한 문화관광 산업 육성이 가장 효과적인 방법이다. 뿐만 아니라 축제를 통해 양산시민 의 힘을 결집하면 지역내 동서간 화합에도 큰 효과가 있을 것이다. 현재 매년 개최하고 있는 삽량문화축전을 우리 양산시민을 대상으로 하는 축제로부터 좀 더 대상을 넓혀 많은 외래 관광객을 유치할 수 있는 축제로 발전시켜 나갈 필요가 있다. 많은 외래 관광객을 유치하려면 축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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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 주제를 명확히 할 필요가 있다. 그래야 다른 지역의 축제들과 차별화 하여 축제를 홍보하고 관람객을 끌 수 있다. 축제의 주제는 양산의 역사, 문화, 자연경관 등과의 연관성을 살리면서 창조해서 만들어가는 것이다. 당장에 축제 프로그램으로 채택할 수 있는 반짝이는 아이디어를 생각 해 보는 것도 필요하지만 보다 근본적인 차원에서 축제의 주제와 프로그 램의 방향성을 놓고 지역 문화예술계와 권위 있는 축제전문가들이 함께 머리를 맞대야 한다. 이 과정에서 삽량문화축전의 미래 방향에 대한 시민 적 공감대도 형성해 가야 한다. 양산의 역사와 문화, 미래가 녹아 있는 멋 진 축제를 만드는 일은 양산의 많은 구슬들을 꿰어 보배로 만들어 가는 일이다. 우리 양산도 에딘버러 페스티벌과 같은 세계적인 축제를 만들어 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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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영석의 세계의 도시들⑤] 2010년 12월 14일

공장지대의 예술 르네상스 ‘프리쉬라벨드메’ 를 만든 프랑스의 마르세유

지중해의 쪽빛 바다가 빛나는 마르세유(Marseille)는 프랑스 남부의 항구도시이다. 이곳의 역사는 그리스의 식민지였던 2천600년 전으로 거 슬러 올라간다. 이 도시가 유명하게 된 것은 세계 최초의 영화인‘시오타 역으로 들어오는 기차’ 를 비롯한 수많은 영화들의 무대가 된 곳이기 때 문이다. 마르세유에는 인구 80만명이 거주하고 있으며 이태리인, 알제리 인 등 다양한 인종이 섞여 있어 가장 프랑스답지 않은 도시라는 별칭을 갖고 있다. 이 지역은 전통적으로 조선, 기계, 화학 등 제조업이 발달하였다. 그러 나 1980년대 이후 유럽의 제조업이 전반적으로 침체하면서 마르세유도 높은 실업률과 범죄 등 각종 도시문제로 몸살을 앓게 되었다. 특히, 생 샤 를 기차역 인근의‘벨드메(la Belle de Mai)’지역은 1886년에 세워진 전 체 면적 3만7천평 규모의 국영 담배공장이 1988년 문을 닫으면서 도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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속의 폐허로 변해 버렸다.

폐허가 된 공장지대를 재탄생시킨 예술의 힘 이 폐허를 희망으로 만든 생명의 빛은 예술가들의 창작에 대한 열정에서 비롯되었다. 1991년 지역의 연극단인‘프리쉬 테아르트’ 를 필두로 각종 예 술단체들이 빈 공장에 들어가 작업을 시작했고, 1992년 마르세유 시정부 는 이 공장을 매입하여 예술가들에게 작업공간으로 저렴하게 임대했다. 이후 점점 더 많은 예술가들이 자리를 잡으면서 문화예술 중심지로 탈 바꿈했고 이름도‘프리쉬라벨드메’ 로 바뀌었다. 필자가 방문한 2009년 봄의‘프리쉬라벨드메’ 는 세 개의 공간으로 나 뉜 대규모 복합문화공간으로 변모해 있었다. 1구역에는 도시유적 전시시 설이, 2구역에는 멀티미디어 콘텐츠 제작시설이 있으며, 3구역에는 전 세계에서 모여든 작가 1천여명의 작업 및 전시공간이 있었다. 이곳에는 연간 130만명의 관람객이 방문하고 있으며 이곳을 운영하는 직원만 400 명이 넘는 거대한 문화예술 클러스터가 된 것이다. ‘프리쉬라벨드메’ 는 프랑스 인기 텔레비전 드라마의 무대가 되어 최근 에 더 큰 유명세를 타고 있다. 이 지역이 예술의 명소가 됨으로써 마르세 유는 항구도시의 브랜드로부터 문화예술의 중심도시라는 창의적인 이미 지를 갖게 되었으며 관광객이 크게 늘어나고 전 세계 예술가들로부터 주 목 받는 도시가 되었다. 도시는 유기체와 같은 것이다. 도시 내부적으로 공간과 기능의 재배치 가 영속적으로 일어난다. 번성하던 곳이 뒷골목처럼 전락하기도 하고, 변 두리였던 곳이 중심지로 부상하기도 한다. 지역정부는 공간과 기능의 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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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치에 따라 시민들이 겪는 고충을 완화하고 피해를 최소화하는 역할을 해야 한다.

양산 원도심 부활을 위한 문화적 접근 필요 과거 우리 양산의 중심지였던 원도심의 침체가 근래에 많은 우려를 낳 고 있다. 신도시 개발로 중심상권이 신도시로 대거 이동했기 때문에 일어 난 현상이다. 원도심 살리기는 도시전체의 균형발전을 위해서도 꼭 해결 해야 할 매우 중요한 과제이다. 원도심의 공동화를 막기 위해 산업, 교육, 복지시설 등의 확충과 함께 문화예술적인 접근방법도 매우 실질적인 해 결책이 될 수 있다. 원도심에는 양산의 오랜 역사가 녹아 있으며 사람들의 정감이 묻어 있 는 공간이 많다. 문화예술은 이야기가 있고 사람의 체취가 느껴지는 곳에 자연스럽게 스며든다. 원도심의 일정한 구역을 문화예술의 거리로 정하 고 비어 있는 가게나 사무실을 지역정부가 임대하거나 매입하여 예술가 들에게 창작 및 전시의 공간으로 제공한다면‘프리쉬라벨드메’ 처럼 국내 외의 많은 예술가들이 모여드는 문화예술의 거리가 될 수 있다. 부산이나 울산 등 주변도시에 예술가들을 위한 창작의 거리가 활성화 되지 않은 상황이기에 우리 양산에서 이를 추진할 경우 동남권의 예술중 심으로서 전국적인 명성을 얻을 수 있을 것이다. 예술가들이 모여 창작과 전시를 하는 공간을 조성하는 방법은 경기도 파주에 있는‘헤이리’ 와 같은 방식과 마르세유의‘프리쉬라벨드메’ 와같 은 방식이 있을 수 있다.‘프리쉬라벨드메’방식은 서울의 문래동에서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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큰 성공을 거두고 있다. 철공소가 밀집한 지역이었던 문래동의 철공소들 이 하나 둘 서울 외곽으로 이주함에 따라 비게 된 공간들을 예술가들이 채워 간 것이다. 현재 문래동 철공소 거리에는 100여개의 공간에서 170 여 예술가들이 창작의 열정을 쏟고 있다. 우리 양산에서도 예술인촌을 만들기 위한 움직임이 있었다. 하북면의 한송예술인촌이 바로 그것이다. 이것은 파주의 헤이리처럼 경치 좋은 공 간에 예술가들을 위한 작업 및 전시공간을 대규모로 건축하는 방식이다. 그러나 이러한 접근방법은 새로운 건축을 위한 많은 예산이 들고 시민 들과 관람객들의 접근이 용이하지 않다는 단점이 있다. ‘프리쉬라벨드메’ 나 문래동 예술인 거리와 같이 기존의 도시공간을 활 용하여 예술가들의 창작을 위한 공간으로 제공한다면 훨씬 더 적은 예산 으로 예술인 거리를 만들 수 있고 또한 주변지역의 상권을 살리고 공동화 된 도시공간에 활력을 불어 넣을 수 있다. 우리 시민들의 삶 속에서 물처 럼 흐르는 문화예술 환경을 만들어 원도심을 예술의 향기가 넘치고 관광 객들의 발길이 모여드는 공간으로 만들어 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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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영석의 세계의 도시들⑥] 2011년 01월 04일

대학을 기반으로 첨단기술산업단지로 발전 중국의 미래희망이 된 중관촌(中關村)

중국이 빠른 속도로 세계무대에 부상하고 있다. 70년대 이후 지금까지 견지했던‘인내하며 실력을 기르자’ 는 도광양회(韜光養晦)의 국가전략을 ‘세계의 대국으로 우뚝 서자’ 는 대국굴기(大國堀起)로 전환하고 본격적 으로 자신의 목소리를 내고 있다. 우리나라와 중국은 역사적으로 숙명적인 관계를 이어왔다. 특히 경제 적인 측면에서 중국은 향후 5년 내에 미국, 일본, 유럽을 모두 합친 것보 다 큰 규모로 우리나라의 무역상대국이 될 전망이다. 중국은 우리나라에 기회이기도 하지만 큰 위협이기도 하다. 우리나라 가 중국과의 경쟁에서 우위를 확보할 수 있는 전략을 수립하여 전 국가적 으로 총력을 기울여 나가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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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1년은 중국의 질적변화 원년 1978년 등소평의 개혁 개방 이후 중국은 양적 성장을 추구해 왔다. 그 러나 2011년 시작되는 제12차 경제개발 5개년계획은 질적 성장으로의 변화를 선언했다. 이에 따라 국가적으로 친환경에너지, 첨단장비, 환경보 호, 정보통신 등 7대 전략산업을 선정하여 집중적인 지원을 할 계획이다. 이제부터는 고도의 기술력으로 무장한 첨단산업으로 고부가가치 상품을 만들어 경제선진화를 이루겠다는 것이다. 이와 같은 중국의 국가전략 변화에 따라 주목받는 곳이 있다. 바로 중 국 첨단기술산업의 중심이라 할 수 있는 북경의 중관촌(中關村)이다. 중 국의 수도인 북경의 서북부 해정구(海淀區)에 있는 중관촌의 면적은 355 평방킬로미터로 양산시보다 조금 작다. 주변에는 북경대, 청화대, 인민 대, 북경이공대 등 대학들이 있다. 중국 최고의 두뇌들이 모인 지역인 것 이다.

중국경제 첨단화를 선도하는 중관촌 중관촌의 특징은 대학, 연구소, 벤처기업이 중심이 되는 연구개발 주도 형 첨단산업단지이다. 여기에 이곳에서 대기업으로 성장한 1세대 벤처기

중국 북경시 중관촌 첨단과학기술단지 전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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업과 세계적인 기업이 함께 협력 체제를 형성하고 있다. 또한 중관촌을 중심으로 북경시내에 여덟 곳의 첨단산업단지를 만들어 함께 연구 개발 을 진행하고 있다. 이곳에서 창업하여 성공한 사례는 수없이 많다. 그 중 중국 1위의 컴퓨 터 제조기업인 렌샹은 4만5천명의 직원을 고용한 대기업으로 성장했다. 지금 중관촌에는 중국 토종업체 뿐만 아니라 구글, 마이크로소프트, 삼 성, 인텔 등 세계 유수의 기업들이 세계시장에 적용하기 위한 기술을 개 발하고 있다. 중관촌에서는 대학의 역할이 매우 중요하다. 북경대, 청화대 등은 주식 시장에 상장할 정도로 큰 규모의 학교기업을 설립하여 각각 1만명이 넘 게 고용하고 있다. 대학에서 연구 개발되는 각종 기술을 상품화하는 기업 으로서 이들 대학의 학생들도 학교기업에서 인턴으로 일하면서 연구개발 과 학업을 병행하고 있다. 이곳에서 대학의 기능은 지식전달 중심에서 ‘교육과 연구 및 첨단기술 개발 중심’ 으로 이동했다. 20년 전까지 만하더라도 이곳은 서울의 용산전자상가처럼 전자제품을 판매하는 전자상가 단지에 불과했다. 그러던 곳이 오늘날 전 세계가 주목 하는 첨단산업단지로 주목받게 된 것은 이곳에 모여 있는 대학의 연구개 발 역량을 중국의 산업고도화에 활용하기 위해 중국 중앙정부와 북경시 가 함께 노력해 온 결과이다. 현재 중관촌에는 1만6천개의 중소기업 및 대기업이 있으며 매년 천개 이상의 새로운 기업들이 생겨나고 있다. 1978년 설립된 우리나라의 대 표적 연구개발특구인 대전 대덕연구단지의 전체 기업수가 1천여개라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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것을 감안할 때 중관촌 첨단산업단지의 규모와 확장 속도를 짐작할 수 있다. 중관촌으로 상징되는 중국 경제구조의 변화에 대해 가장 경계심을 갖 고 대비해야 할 나라는 바로 대한민국이다. 우리나라가 처한 경쟁환경의 차원이 바뀌고 있음을 인식해야 한다. 그동안 우리나라는 상대적으로 인 건비가 높은 미국, 일본, 유럽과의 경쟁에서 저임의 노동력을 바탕으로 기술 및 품질향상을 통한 가격경쟁력 우위를 활용해서 수출확대와 경제 성장을 이루어왔다.

중국경제 첨단화 대비한 미래전략 필요 그러나 중국이 본격적인 첨단산업화를 실현하면 우리 중소제조업은 물 론 전자, 자동차, 조선 등 기술력이 우위에 있는 분야도 중국 기업들에 시 장을 뺏길 수 있다. 즉 우리보다 인건비가 저렴한 중국이 우리의 주력산 업인 전자, 자동차, 조선 등에서 우리의 기술력을 추월하는 상황이 도래 하고 있는 것이다. 이에 따라 중국이 질이 좋은 제품을 낮은 가격으로 내 놓아 우리나라의 수출상품 경쟁력이 큰 타격을 받게 될 수 있다. 실제로 과거 10여 년간 세계 1위의 위상을 자랑했던 조선업이 2009년 중국에 1위 자리를 내주었고 자동차생산량은 이미 중국에 추월당한 지 오래이다. 전자, 정보통신산업 분야에서도 기술격차가 빠른 속도로 줄어 들고 있다. 이에 대한 대책은 우리나라가 경쟁력 있는 산업분야의 기술력과 연구 개발 능력을 획기적으로 제고하여 중국과의 격차를 벌리는 수밖에 다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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방법이 없다. 그렇지 않으면 우리 경제의 85%를 점유하는 해외무역에서 큰 어려움을 겪게 될 것이다. 첨단산업화 및 고부가가치화를 위한 국가적 대책을 시급히 세워야 하며 특히 젊은이들의 창의적 아이디어와 신지식 을 최대한 활용할 수 있도록 지혜를 모아야 한다. 산업의 기술고도화를 위해서는 중관촌의 사례처럼 대학의 연구개발 역 량을 적극 활용해야 한다. 이를 위해 대학을 중심으로 연구소와 벤처기업 이 모여 새로운 기술과 상품을 만들어내는 대덕연구개발특구와 같은 모 델을 전국적으로 확산해야 한다. 실제로 2011년 중 대구・경산과 광주에 연구개발특구가 지정될 계획이다. 우리 양산도 이와 같은 특구로 지정될 수 있는 기반을 지금부터 만들어가야 한다. 2020년까지 향후 10년이 매우 중요하며 중국이 엄청난 자본력과 인적 자원을 바탕으로 우리를 추월하게 되면 이를 회복하는 것은 매우 어려운 일이 될 것이다. 따라서 시급히 국가적 대책을 마련해야 하며 지역정부들 도 중앙정부의 조치만 기다릴 것이 아니라 할 수 있는 분야에서 최선의 노력을 경주해야 한다.

양산의 성장동력 고갈 현상 심각 양산도 중국 등 후발경제국들의 급성장에 따라 많은 영향을 받고 있다. 양산은 그동안 고무, 플라스틱, 섬유, 화학, 금속가공, 자동차부품 제조 업 등을 통해 지역경제 발전을 이루어 왔다. 그러나 중국 등과의 경쟁에 서 양산의 기존 제조업이 미래에도 경쟁력 우위를 지키면서 양산의 지속 적인 성장을 견인할 수 있을지에 대해서는 조심스러운 전망을 하지 않을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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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산의 지역경제에서 50%가 넘는 비중을 차지하는 제조업의 사업체수 및 근로자수 추이를 보면 2005년 2천414개소(4만2천245명), 2006년 2 천591개소(4만2천415명), 2007년 2천639개소(4만1천018명), 2008년 2 천612개소(4만751명) 등으로 사업체수가 정체현상을 보이고 근로자수는 감소하고 있다. 이것은 양산의 성장동력이 고갈되고 있음을 나타내며 새 로운 성장동력 없이는 지역경제가 침체될 것임을 보여준다.

양산, 동남권 첨단기술 핵심도시 지향해야 그러면 양산의 새로운 성장동력 산업은 무엇이 되어야 하는가? 결국은 앞서 언급한 바와 같이 첨단 고기술을 기반으로 하는 산업으로 가지 않을 수 없다. 다행히 우리 양산은 첨단산업 지역으로 거듭날 수 있는 여러 가 지 유리한 환경을 갖추고 있다. 바로 기존의 제조업 기업들이 건재하고 있으며 부산대, 영산대, 양산대 학 등 관내대학의 첨단기술 연구개발능력을 활용할 수 있는 여건이 마련 되어 있다. 특히 부산대 양산캠퍼스의 의학, 치의학, 한의학 등은 고부가가치 첨단 기업들이 생겨날 수 있는 훌륭한 자양분이다. 향후 약학, 공학, 생명공학 대 등도 조속히 유치하여 상승효과를 극대화해야 할 것이다. 기업과 대학 의 연계를 통한 첨단산업화를 위해서는 지역정부의 적극적인 의지와 주 도적인 역할이 매우 중요하다. 아울러 양산캠퍼스 인근의 첨단산학단지와 실버산학단지도 원래 계획 대로 추진될 수 있도록 시와 대학이 함께 힘을 모아야 한다. 최근 첨단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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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단지 예정부지에 골프장을 건설하겠다고 의견을 내놓은 것은 참으로 안타까운 일이 아닐 수 없다. 문전옥답을 놀이터로 만들자는 것에 다름 아니다. 첨단산학단지가 계획대로 추진될 수 있도록 대학과 협력하여 관련시설 을 조성하고 첨단기업 입주를 활성화하기 위해 금융지원을 하기 위한 기 금조성도 시 차원에서 추진할 필요가 있다. 또한 창업지원을 통해 성장한 기업이 양산에서 고용을 창출할 수 있도록 양산 관내의 산업단지에 입주 를 유도할 수 있는 정책을 개발해야 할 것이다. 부산대, 영산대, 양산대학을 중심으로 의약, 바이오, 정보통신, 첨단기 계 산업 등의 연구개발 능력을 확충하고 첨단기업 유치를 통해 새로운 성 장동력을 만드는 것은 양산은 물론 관내 대학도 성장 발전할 수 있는 좋 은 기회이다. 관련 주체들이 함께 협력하여 우리 양산에 희망의 미래를 만들어 낼 수 있기를 기대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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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영석의 세계의 도시들⑦] 2011년 01월 25일

지구에서 가장 올바르게 사는 도시 브라질의 친환경도시 꾸리찌바

기후변화와 환경오염 문제가 전 세계적인 이슈가 되고 있다. 지구온난 화 방지를 위해 온실가스의 인위적 방출을 규제하는 교토의정서가 2005 년부터 발효되었고 우리나라도 2013년부터 온실가스 의무감축대상국이 될 가능성이 크다. 우리나라에도 친환경도시화를 위한 정책개발과 추진 이 발등의 불로 떨어진 것이다. 우리나라의 지구 반대편에 있는 브라질의 꾸리찌바(Curitiba)는 세계 최고의 친환경도시로 불리는 곳이다. 꾸리찌 바는 브라질 남동부 파라나주의 주도로서 해발고도 900미터의 고원에 위치하고 있다. 1654년 금광 채굴지로 건설된 뒤 이태리, 독일, 폴란드인 이 대규모로 이주해 와서 근대적인 도시로 발전하였다.

공해에 찌들었던 곳이 친환경 모범도시로 이 도시는 1960년대만 해도 빈곤과 공해에 찌든 전형적인 제3세계 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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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였다. 그러나 1970년대 초반 이후‘친환경 도시의 모델’ 로 전세계의 주목을 받고 있다. 환경분야 노벨상이라 불리는 유엔환경계획(UNEF)의 ‘우수환경상’ 을 수상했고‘지구에서 가장 올바르게 사는 도시’ (시사주간 지‘타임’ ),‘가장 혁신적인 도시’ (LA타임즈)‘세계에서 가장 현명한 도 시’ (유에스 뉴스 앤 월드 리포트)라는 찬사를 받고 있다. 꾸리찌바가 친환경 꿈의 도시로 탈바꿈한 비결은 무엇일까? 그것은 일 상생활 속에서 발견되는 작은 아이디어를 적용하고 실천하는 시민들의 자발성과 이 도시를 친환경적으로 변화시키고자 하는 시장의 강력한 의 지가 상승작용을 일으키며 만들어낸 성과이다. 꾸리찌바의 도약은 1971년 자이메 레르네르가 시장에 취 임하면서 시작되었다. 그는 다 양하고 창조적인 실험을 통해 도시를 변모시켰다. 버스중심 의 저렴하고 편리한 교통체계, 꾸리찌바시 전경

보행자천국인‘꽃의 거리’ ,자

전거 이용활성화, 빈 공간만 있으면 나무를 심는‘숲의 도시’정책, 효과 적인 쓰레기 처리와 재활용 등 다른 도시들이 지혜의 보물창고로 활용할 만한 여러 모범적 정책을 현실에 적용하고 있다.

버스중심의 도로체계로 대중교통 활성화 꾸리찌바가 친환경도시로 세계적인 유명세를 타게 된 것은 역설적이게 도 시정부의 예산이 매우 열악했던 것에서 비롯되었다. 약점을 강점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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승화시킨 것이다. 꾸리찌바는 1960년대 이후 급격한 인구증가로 심각한 교통난을 겪게 되었다. 이 에 대해 많은 사람들이 도심지하 철 건설을 제안하였다. 그러나 레 르네르 시장은 시정부의 재정상황 으로는 지하철을 건설하는 것이 무리라고 판단하고 대안을 연구했 다. 연구결과 지하철 건설보다는 지 상 대중교통을 효율적으로 운영하 는 것이 훨씬 좋은 방안이라는 것

꾸리찌바시의 대중버스 환승 터미널

을 깨달았다. 이에 따라 도입된 것이 버스중심의 교통체계이다. 꾸리찌바 시정부는 우선 도시계획연구소(IPPUC)의 토지이용계획을 기초로 주요 간선도로 축을 따라 새로운 도로체계를 수립하였다. 이 새로운 도로체계는 주요간선도로의 중앙을 버스전용차선으로 사용 하고 버스전용차로의 양옆에는 일반 자동차 차선으로 분리한 것이 특징 이다. 또 버스전용차선이 설치된 주요간선도로로부터 한 구역 떨어진 도 로는 일방통행로로 설정하여 하나는 도심으로 들어오는 일방통행로로 다 른 하나는 교외로 나가는 일방통행로로 활용하고 있다. 소위‘3중 구조 도로체계’ 로 도로의 효율성을 극대화하고 대중교통 이 용을 활성화하는 정책을 채택한 것이다. 현재 서울시를 비롯한 세계의 많 은 도시들이 꾸리찌바의 버스전용차로 체계를 도입하고 있으며 많은 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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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의 관계자들이 꾸리찌바를 방문해 벤치마킹하고 있다.

보행자와 자전거 이용자를 위한 녹색교통정책 꾸리찌바의 또 다른 친환경정책은 보행자와 자전거 이용자를 위한 녹 색교통 정책이다. 브라질 최초로‘꽃의 거리’ 라 불리는 보행자 전용거리 를 조성하여 도시의 명소로 만들었다. 이와 더불어 170킬로미터가 넘는 자전거 도로망을 구축하여 통근은 물론 레저를 위해서 모든 공원과 완벽 하게 연결하고 있다. 또한 도로변에 6미터의 건축후퇴선을 두게 하고 건폐율을 50퍼센트 이하로 제한하고 있으며 빈 공간에 나무를 심어 도시전역에 녹색띠를 조 성하고 있다. 꾸리찌바시 전체 도로망의 절반인 1천 킬로미터의 도로에 20만그루의 나무를 심었고 모든 나무는 시에 등록되어 있으며 사유지라 하더라도 허가 없이 나무를 벨 수 없도록 하고 있다. 나무관리를 잘하는 가정이나 건물주에게는 세금까지 감면해 준다. 그 결과 지난 30년간 인구가 3배 정도 증가했음에도 시민 1인당 녹지 면적이 0.5㎡에서 55㎡로 증가하는 성과를 거두었다. 이는 WHO가 권고 하는 기준치 12㎡의 약 4.6배에 달하는 것으로 선진국에서도 드문 수준

꾸리찌바시의 하천을 활용한 유수지와 폐광산을 활용해서 지은 오페라하우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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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다. 시내에는 27개의 대형공원, 5백여개의 광장 등 총 650만평의 광활 한 면적이 공원으로 탈바꿈했으며 도시 전체의 18%가 나무와 숲으로 뒤 덮이게 되었다.

유휴공간을 활용해 공원과 문화시설 조성 꾸리찌바의 생태도시를 향한 열정은 끝이 없다. 꾸리찌바는 하천과 그 주변의 인접지역에 공원을 개발하고 유수지 역할을 하는 호수를 조성했 다. 이런 방식을 통해 브라질의 도시 중 가장 규모가 큰 이과수 공원, 바 리귀 공원, 사웅 로렌소 공원 등 많은 공원과 식물원, 자연림, 조깅코스 등을 만들었다. 또한 채석장과 폐광 등 유휴공간을 최대한 활용하여 문화시설을 조성 하고 있다는 것도 꾸리찌바가 현명한 도시라고 불리는 이유이다. 채석장 을 활용하여 꾸아르 공원이라 부르는 1만 평방미터의 자연적인 원형극장 을 세워 공연장소로 활용하고 있다. 꾸리찌바의 대표적 랜드마크의 하나 인 아라메 오페라 극장도 폐광지역을 저가로 매입하여 문화시설로 건설 했다. 재활용품과 식품을 교환해 주는 등 쓰레기 처리에 있어 인센티브를 제 공함으로써 쓰레기 재활용률도 세계 1위를 자랑하고 있다. 또한 에어 시 스템과 중수도 시스템을 도입하여 세차나 정원용수, 수세식 화장실 용수 등으로 이용하고 빗물을 용이하게 집수하고 저장할 수 있는 시설을 마련 하여 활용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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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산 원도심 활성화 방안에도 모범사례 꾸리찌바의 친환경 도시정책은 우리 양산에도 많은 시사점을 준다. 양 산은 자연경관이 아름다운 도시로 정평이 나있다. 최근 수도권, 경남지역 및 양산시민을 대상으로 한 여론조사에서도 61 퍼센트가 양산은 훌륭한 자연경관을 가진 도시라고 응답했다. 그러나 한 편으로 양산은 제조업 중심의 공업도시라는 이미지도 상당히 높은 편이 다. 공업도시는 오염물질과 공해 등 환경적으로 많은 문제를 야기한다. 따라서 친환경도시로 거듭나고자 하는 노력을 끊임없이 경주해야 생태 도시, 친환경도시로서 쾌적한 삶을 누릴 수 있는 도시라는 브랜드를 가질 수 있다. 꾸리찌바가 성공적으로 구현해 온 버스중심의 대중교통체계, 공 원조성, 보행자와 자전거 중심의 도로운영, 쓰레기 재활용률 제고, 유휴 공간을 활용한 문화공간 창출 등은 우리 양산의 브랜드를 한 단계 높일 수 있는 좋은 모범사례다. 원도심 지역의 활력을 되살리기 위해 꾸리찌바의‘꽃의 거리’ 와 같은 보행자 전용거리를 조성하는 방안도 고려해 볼 만한 정책이다. 원도심의 일정구간을 보행자 전용거리로 지정하여 녹지축을 만들고 문화공간, 쇼 핑시설, 거리카페 등을 조성한다면 지역의 명물로서 원도심 활성화에 기 여하게 될 것이다. 열악한 재정여건 속에서도 시민, 지역정부, 그리고 관련 전문가가 함께 협력하여 전세계에서 가장 친환경적인 도시라는 명성을 얻은 꾸리찌바의 모범사례와 친환경도시를 향한 열정을 우리 양산에도 이식하여 양산이 친환경 생태도시의 대표적 주자로 자리매김하기를 기대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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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영석의 세계의 도시들⑧] 2011년 03월 01일

전통공예산업 육성으로 지역경제성장의 기반 구축 일본 최초의 문화예술 창의도시 가나자와

축소지향적 문화라는 특징으로 인해 일본에는 공예품이 발달한 지역이 많다. 그 중에서도 일본 혼슈(本州)의 중앙부에 위치한 이시카와현(石川 縣)의 현청 소재지인 가나자와시(金澤市)는 금박, 비단염색, 도자기, 칠 기, 자수 등 공예품 분야에서 일본내 최고의 명성을 지닌 인구 46만명의 도시이다.

전통 공예문화의 현대적 계승을 위해 역량 결집 가나자와는 정책적으로 공예산업을 육성하기 위해 많은 정책적 배려를 하고 있다. 특히 전통공예 지식과 기술을 습득하는 훈련생들에게 3년간 매월 100만원 정도를 지급하는‘예술 및 공예인재 육성기금’ 을 운영하고 있다. 또한 새로운 상품의 개발을 촉진하고 시장 판로를 확대하기 위해 ‘가나자와 브랜드 공예품’ 을 개발하는 기업들에게 보조금을 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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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통 공예산업에서 기술발전과 후진양성에 기여한 기업 및 장인들에게 는 상금과 함께 상을 주고 있다. 또한 생산된 공예상품의 판로를 열어주 기 위해 각종 전시회를 지원하고 있고, 도쿄 등 대도시에 가나자와 공예 품 전문상품점을 자치단체 차원에서 개설하여 운영하고 있다. 뿐만 아니 라 가나자와 시내의 빈 집과 빈 상점 등을 장인들을 위한 작업장 및 전시 장 등으로 만들어 운영하고 있다. 그 결과 이곳에는 전통공예와 관련하여 약 900개의 제조회사가 있고 약 3천명의 근로자가 이들 기업에 종사하고 있을 정도로 공예산업이 이 지역 산업의 핵심을 차지하고 있다. 가나자와에는 현재 일본의 인간문화 재 등 유명 공예작가 139명이 활동하고 있고 75개의 각종 공예품점이 시 내 곳곳에 산재에 있다. 주말이면 주변지역은 물론 도쿄나 교토 등지에서 많은 관광객들이 공 예품을 구입하기 위해 가나자와를 찾는 등 연간 총 700만명 이상의 외부 관광객들이 가나자와를 방문하고 있다. 전통공예품 산업은 가나자와를 대표하는 산업일 뿐만 아니라 이 도시를 문화예술 중심도시로서 이미지 를 제고하는데 결정적인 역할을 하고 있는 것이다. 가나자와시는 지역내에서 시민들도 공예기술을 익힐 수 있도록 하기 위해 1989년‘우타쓰마야 공예학교’ 를 세워 도자기, 칠기, 염색, 금속공 예, 유리공예 분야에서 일반인들도 3년간 훈련을 받을 수 있도록 하고 있 다. 1996년에는 가나자와 장인(匠人)대학교를 설립하여 매년 많은 공예 예술인들을 배출하고 있다. 이와 같이 도시 전체적으로 공예산업을 지속 적으로 육성하기 위한 기반을 다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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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예술 전반을 육성하기 위한 노력도 적극 추진 이와 같은 공예산업 이외에도 가나자와는 문화예술 전반을 육성하기 위한 정책도 적극적으로 펴고 있다. 1996년에는 옛 방직공장 터를 시에 서 매입하여‘가나자와 시민예술촌’ 을 설립하였다. 이곳에서는 전문적인 공연단체는 물론이고 음악, 연극, 뮤지컬 등 분야의 일반시민들의 동호인 단체들도 활발한 공연활동을 펼치고 있다. 2004년에는 전 세계의 예술작품들을 수집하고 전시하기 위해 도시 중 심에‘21세기 미술관’ 을 개관하여 현대미술과 전통미술의 융합을 위해 노력하고 있다. 이 미술관은 종래의 미술관의 이미지와는 다른 새로운 형 태의 미술관으로 일본 내에서도 각광을 받고 있으며 개관 이래 입장객수 가 800만명을 돌파할 정도로 인기가 높다. 이 미술관은 UFO가 내려앉 은 것 같은 원형의 공간으로서 벽면은 모두 유리창으로 되어 있고 출입구 가 4군데로 되어 있어 도심의 공원 안에 있는 것 같은 분위기를 느낄 수 있다. 가나자와시는 공예도시, 문화예술 도시로 서 발전하기 위해 시민, 지역정부, 기업, 시민 단체 등이 함께 머리를 맞대고 많은 노력을 기울이고 있다. 2001년부터‘가나자와 창의 도시 회의’ 라는 것을 조직하여 도시의 모든 주체가 참여하는 회의를 2년마다 한 번씩 열 고 있다. 이 회의는 지구적 관점에서 가나자 와시의 이상적인 발전을 추구하는 토론의 장 이 되고 있다.

가나자와 전통 비단염색의 채색작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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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러한 노력의 결과 가나자와시 는 2008년 3월 일본 문화청으로부 터 제1호 문화예술 창의도시로 선 정되었으며, 2009년 6월에는 유네 스코(UNESCO)에 의해 공예분야 의‘유네스코 창의도시’ 로 선정되 어 공예도시, 문화예술 도시로서 가나자와의 대표적 공예작품인 금박공예 작품

세계적인 명성을 얻게 되었다.

양산의 공예산업 새로운 성장산업화 육성 필요 전통문화를 현대적으로 계승하여 도시경쟁력을 키워 가고 있는 가나자 와시의 노력은 우리 양산도 본받을 만한 사례이다. 우리 양산에서도 도자 기, 천연염색, 박공예, 금속공예, 목공예 등의 공예산업이 상당한 수준으 로 발전하고 있다. 역사적으로도 우리 양산에는 고려시대부터 화제리, 법 기리 등에 도요지가 있어 도자공예가 발달한 지역임을 알 수 있다. 특히 일본에서 국보로 지정될 정도로 일본인들이 열광적으로 좋아하는 ‘조선사발’ 을 최초로 재현해 낸 위대한 도예가 고 신정희 선생의 예술혼 이 서려 있는‘신정희요’ 가 하북면 지산리에 있는 것을 비롯해 매곡요, 불곡요와 도자기 관련 체험프로그램을 함께 운영하는 도자기공원 등 부 산, 경남 지역에서 양산의 도자기 예술 분야의 위상이 매우 높다. 또한 통도사 서운암은 성파스님이 재현해 낸 우리나라 전통의 쪽염색 과 옻칠염색 등 천연염색으로 전국적인 명성을 얻고 있다. 서운암은 전통 된장 및 간장제조와 함께 매년 4월이면 들꽃축제도 열고 있어 우리나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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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통문화 및 공예예술의 성지가 될 수 있는 가능성이 있다. 웅상의 박공예도 육성할만한 가치가 있는 공예분야이다. 특히 박공예 는 일본사람들이 좋아하는 박식품과 함께 상승효과를 내면서 발전시킬 수 있는 것으로 일본 관광객을 유치하는데도 한 몫을 할 수 있을 것이다. 양산시내 곳곳에 산재해 있는 금속공예와 목공예 등의 분야도 의지를 갖 고 육성한다면 발전할 수 있는 가능성이 충분하다. 양산은 부산, 울산 등 대도시와 인접해 있어 공예예술품에 대한 시장수 요가 크고 한류 붐을 타고 일본사람들의 한국 예술품에 대한 선호도가 높 아지고 있어 지리적 이점이 매우 크다. 지역정부 차원에서 의지를 갖고 정책적 지원을 해나간다면 머지않아 가시적인 성과를 낼 수 있을 것이다. 양산의 기존의 공예산업을 적극적으로 육성함은 물론 전국적으로 명성 을 얻고 있는 공예예술가들이 양산에서 작품활동을 하도록 유도하는 정 책도 필요하다. 이를 위해 원도심지역의 일정부분을 공예산업 육성을 위 한 거점지역화하여 작업, 전시 및 판매공간 제공 등 파격적인 혜택을 부 여할 필요도 있다.

아시아디자인허브 시정방향과 상승효과 가능 최근 국비지원을 받아 아시아디자인연구소 설립 등‘아시아디자인허 브’ 를 지향하고 있는 시정방향과 공예산업 육성정책은 상승효과를 낼 수 있다는 점에서도 아주 매력적이다. 아시아디자인연구소의 기능을 공예디 자인 분야에 특히 중점을 둔다면 공예산업 성장을 통한 지역경제 발전에 큰 성과를 낼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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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1세기는 문화의 시대라고 한다. 문화와 산업의 융합을 통한 경제발전 이 매우 중요해 지는 시대인 것이다. 멀리 고려시대부터 이어지고 있는 우리 양산의 공예산업의 맥을 현대적으로 계승하고 발전시켜 나간다면 양산을 살찌우는 새로운 성장동력 산업으로서 성장할 수 있고 양산을 문 화산업의 중심도시로서 도시브랜드를 구축해 나갈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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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영석의 세계의 도시들⑨] 2011년 03월 15일

디자인으로 세계 최고의 소득을 누리는 도시 유럽 디자인의 중심 핀란드 헬싱키

21세기는 문화의 세기라고 한다. 문화와 산업이 결합된 문화산업이 경 제의 중심이 되는 시대이다. 사람들의 교육수준과 소득수준이 올라가면 서 문화적 창조성과 세련미가 있는 상품을 구매하고 소비한다. 이러한 문 화의 시대에 가장 주목을 받는 것이 바로 디자인산업이다. 현대 산업경제에서 가장 중요한 핵심요소는‘기술’ 과‘디자인’ 이라고 한다. 그런데 기술개발에는 많은 돈과 시간이 필요하므로 빠른 시간에 상 품의 경쟁력을 올리기 위해 디자인을 강화하는 것이 중요하다. 통계에 의 하면 기술개발에 비해 10분의 1의 돈과 3분의 1의 시간이면 훌륭한 디자 인을 개발할 수 있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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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적 부국 북유럽의 디자인 중심 헬싱키 북유럽의 핀란드, 스웨덴, 노르웨이 등 스칸디나비아반도에 위치한 국 가들은 세계에서 가장 소득이 높은 국가들이다.‘스칸디나비아 디자인’ 이라고 불리는 이들 나라의 실용적이고 창의적인 디자인을 바탕으로 세 계최대의 휴대전화 기업인 노키아, 유명한 자동차 기업인 볼보 등을 만들 어 냈다. 이중에서도 핀란드의 수도인 헬싱키는 스칸디나비아 디자인의 중심이 다. 헬싱키는 발틱해에 둘러싸인 인구 52만명의 도시다. 사실 핀란드는 유럽에 위치해 있지만 우리 민족과 유사한 점이 많다. 언어도 유럽인종과 는 전혀 달리 한국어와 같은 우랄-알타이어 계통에 속한다. 핀란드에서 디자인은 국가을 상징하는 정체성의 일부라고 할 수 있다. 국가정책에 있어서도 가장 우선순위가 디자인이다. 일반적으로 각국이 정치지도자를 지폐의 인물로 하는 것과 달리 핀란드는 핀란드가 낳은 세 계적인 디자이너인 알바 알토를 지폐의 인물로 사용하고 있다.

헬싱키의 도시운영 자체가 디자인 핀란드 디자인의 중심인 헬싱키는 도시 전체를 디자인 개념을 바탕으 로 운영하고 있다. 헬싱키에서는 경제, 문화, 교육, 교통, 환경 등 모든 면에서 창의적 디자인을 적용하고 있다. 이처럼 디자인이 시민들과 학생 들의 일상생활 속에 완전히 녹아 있는 것이다. 헬싱키의 중심부는 아예‘헬싱키 디자인구역’ 으로 지정하여 일 년 내 내 다양한 디자인 이벤트와 문화행사를 개최하며 디자인상품점, 패션의

148 윤영석의 희망노래


류점, 실내장식품점, 골동품점, 미술관이 밀집하여 거대한 관광벨트를 형 성하고 있다. 이곳은 전 세계에서 매년 300만명 이상의 외국인 관광객이 방문하는 도시경제의 핵심으로 자리 잡고 있다. 헬싱키 디자인구역에는 헬싱키의 랜 드마크인 스톡만백화점이 있고 백화점 을 통과하여 몇 분만 걸으면‘핀란드 디 자인 포럼’건물이 있다. 이 건물에서는 핀란드 디자인의 100년사를 한 눈에 볼 수 있을 뿐만 아니라 핀란드를 대표하

헬싱키 디자인 구역에 전시된 디자인 상품들

는 세계적인 디자이너와 신인 디자이너들의 제품들도 판매하고 있다.

학생과 시민을 위한 디자인 교육 중시 헬싱키에서는 학생들을 대상으로 한 실용적인 디자인 교육이 매우 중 요한 부분이다. 학교 교과목에 디자인 과목을 포함하여 어릴 때부터 디자 인을 실제로 배울 수 있는 기회를 부여하는 것이다. 학생들은 수업시간에 디자인과목을 배우며 다양한 디자인 학습활동을 통해 창의성을 함양하고 있다. 이러한 것이 바로 핀란드를 국가경쟁력 세계 1위, 교육경쟁력 세계 1위로 만드는 원천인 것이다. 작년에는 헬싱키 최고의 명문대학인 헬싱키 공과대학, 헬싱키 미술디 자인대학, 헬싱키 경제대학 등 3개대학을 통합하여 융합디자인대학인 알 토(Aalto)대학을 설립했다. 이를 통해 디자인, 공학기술, 경제학 등을 통 합적으로 사고할 수 있는 최고의 디자인 인재를 육성하여 세계 최고의 국 가경쟁력을 지속해 나가겠다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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헬싱키에서는 도시의 디 자인산업을 활성화하기 위 해 민간기업들의 참여도 유도하고 있다. 학생들이 나 시민들에게 기업의 디 자인 연구 및 개발에 참여 할 수 있는 기회를 상시적 융합디자인대학인 알토(Aalto)대학에서 디자인 수업을 받고 있는 학생들의 모습

으로 부여하며 기업, 대학,

연구소가 유기적으로 연계하여 디자인 연구와 개발을 하도록 시정부에서 적극적인 역할을 하고 있다. 이와 같은 노력과 미래의 가능성을 인정받아 세계 46개 도시가 경합한 끝에 헬싱키가 세계산업디자인협회가 선정하는 2012년 세계디자인수도 로 선정되었다. 흔히 한국의 경제상황을‘샌드위치 경제’ 라는 말로 표현한다. 미국, 일 본과 같은 기술선진국과 중국, 인도 등 무한한 노동력을 가진 국가의 중 간에 끼어서 어려움을 겪고 있는 것을 비유한 용어일 것이다. 세계경제의 가장 핵심적인 기술 874개 중 한국이 보유한 1위 기술은 9개에 그쳐 미 국 488개, 일본 281개에 비해 매우 저조하다고 한다. 이러한 상황에서 중국, 인도 등의 추격을 따돌리고 미국, 일본 기업을 앞서기 위해서는 지속적인 기술 개발과 함께 디자인산업을 적극 육성하 는 것이 매우 중요하다. 특히 아시아가 세계최대의 시장으로 떠오르고 있 어 아시아의 정체성과 특수성을 가진 아시아 디자인을 적극 개발하고 육 성해야 한다.

150 윤영석의 희망노래


‘아시아 디자인 중심도시 양산’추진 마침 우리 양산을 아시아 디자인의 중심도시로 육성하려는 계획이 추 진되고 있다. 지식경제부의 지원 하에 양산에 아시아 디자인 연구소를 설 립하여 아시아인들이 선호하는 디자인을 개발하고 양산과 동남권 등 기 업의 상품 경쟁력을 높이기 위한 디자인 개발, 교육 및 컨설팅을 지원하 겠다는 계획이다. 양산의 인구가 최근 들어 정체하고 있고 지역경제에서 50% 이상을 차 지하는 제조업 기업숫자와 근로자 숫자도 제자리에 머물고 있는 상황에 서 아시아 디자인 중심도시로 육성하겠다는 것은 단비와 같은 소식이다. 이와 같은 신 성장 동력산업이 양산에 많이 생겨나야 재래시장, 음식점, 술집, 옷가게 등 시민경제가 살아날 수 있다.

양산원도심‘디자인산업 특별구’지정도 가능 양산 경제가 성장하기 위해서는 양산에 소재한 기업들이 아시아인들이 선호하는 경쟁력 있는 상품을 개발할 수 있도록 아시아 디자인 연구소가 적극적인 연구 개발 지원을 해야 한다. 또한 아시아 디자인 연구소를 중 심으로 많은 디자인 관련 기업들이 몰려들어 새로운 일자리를 창출하도 록 해야 한다. 이와 함께 헬싱키 디자인 구역과 같은‘디자인산업 특별구역’ 을 만들 어 그곳에 아시아 디자인 연구소가 들어서도록 하고 아울러 산업디자인, 도자기 등 공예디자인, 시각디자인 등 다양한 디자인 업체들이 모여들도 록 유도해야 한다. 이러한‘디자인산업 특별구역’조성의 대상지역으로 양산구도심, 즉 원도심이 훌륭한 후보지가 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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또한 양산이 아시아 디자인 중심도시가 되기 위해서는 지역의 대학에 서 지속적으로 우수한 디자인 인재가 배출되어야 한다. 이를 위해 기존의 지역 대학 내에 공학, 경영학, 디자인 분야 등을 통합하여 융합디자인 학 부를 설립하는 방안을 추진할 필요가 있다. 정부에서는 현재 융합디자인 대학을 선정하여 5년간 10억원의 육성자금을 지원하는 정책을 시행하고 있음을 참고할 만하다. 양산은 기존의 제조업을 중심으로 디자인 산업, 의료 및 생명공학 산업 과 같은 첨단산업을 육성해야 새로운 일자리가 창출되고 획기적인 성장 을 위한 발판을 만들 수 있다. 아시아 디자인 연구소 유치를 계기로 우리 양산이 신 성장 동력산업의 중심도시로 도약할 수 있도록 양산시민과 지 역정부가 함께 뜻을 모아 힘찬 노력을 전개해 나가야 할 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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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영석의 세계의 도시들⑩] 2011년 04월 19일

신재생에너지 사용으로 친환경적인 삶을 생활화 태양의 도시 독일 프라이부르크

양산은 발전 잠재력이 대단히 큰 도시이다. 금수강산(錦繡江山)의 축소 판이라고 할 만한 아름다운 산과 강이 있고 사통팔달로 교통망이 연결되 고 있다. 도시와 농촌이 조화된 인간적인 거주환경은 지속적인 발전가능 성을 크게 높여준다. 도시 발전에 대한 긍정적 희망으로 양산의 미래를 만들어가야 한다. 우리 양산이 부산, 울산, 김해 등 주변도시와 차별성을 가진 명품도시 가 되기 위해서는 강점을 잘 살려야 한다. 우수한 자연환경을 도시발전의 기반으로 삼아서 자연과 함께 호흡하는 친환경 도시를 만들어가야 한다. 사람이 살기에 쾌적하면서도 미래첨단산업이 시민경제를 살찌우는 도시 가 되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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친환경도시의 대명사 프라이부르크 이러한 양산의 미래상에 하나의 모델이 될 수 있는 도시가 독일의 생태 도시 프라이부르크(Freiburg)이다. 프라이부르크는 라인 강이 흐르고 산 과 숲에 둘러싸인 도시라는 점에서 우리 양산과 자연환경이 비슷한 도시 이다. 인구 22만명의 프라이부르크는 독일의 환경수도로 지정되었고 태 양의 도시라고도 불리는 도시이다. <사진> 산과 숲에 둘러싸인 프라이브르크의 아름다운 풍광 프라이부르크가 친환경 도시를 지향하게 된 것은 1970년대부터이다. 일본대지진으로 최근 전 세계적인 경각심을 불러일으키고 있는 원자력발 전소를 이 지역에 건설하려던 독일중앙정부의 계획에 대해 시민들이 반 대운동을 전개하면서 친환경 생태도시를 만들기 위한 움직임이 본격화하 기 시작했다. 프라이부르크의 친환경정책은 크게 두 가지로 나눌 수 있다. 바로 에너 지정책과 교통정책이다. 먼저 에너지정책은 프라이부르크를 전 세계적으 로 유명하게 만든 핵심정책이다. 시정부와 시민의 합심아래 도시 전체 사 용에너지의 약 20%를 태양에너지와 바이오가스, 수력, 풍력, 지열 등 다 양한 재생에너지원으로 충당하고 있다. 태양에너지는 프라이부르크가 가장 중점을 두고 있는 재생에너지 자원 이다. 태양의 도시라는 별칭에 걸맞게 높이 60m의 중앙역 솔라타워가 있고 회전형 태양광주택인 헬리오트롭과 보봉(Vauban)지구의 태양광 발 전시스템은 국내 언론에도 여러 차례 소개된 바 있다. 이곳에서는 주택은 에너지를 소비하는 곳이 아니라 생산하는 곳이라는

154 윤영석의 희망노래


개념이 지배하고 있다. 그래서 수많은 개인주택들도 시정부의 지원을 받 아 태양광 발전장치를 부착하여 자체적으로 에너지를 생산하고 있다. 에너지저소비형 건물을 짓기 위한 노력도 매우 중시된다. 1992년 프라 이부르크 시의회는 공공청사는 물론 시정부가 임대하거나 매각하는 토지 에 짓는 모든 건축물에 대해 단열재를 확충하고 태양광을 활용하는 에너 지 저소비형 설계를 의무화했다. 이렇게 하면 초기 건축비용은 증가하지만 궁극적으로는 에너지 저소비 를 통해 프라이부르크의 자연환경을 보호하고 비용을 절감할 수 있다는 것이다. 이와 같은 친환경 에너지 정책으로 인해 프라이부르크에는 관련 국제기구 와 연구소 및 기업들이 몰려오고 있다. 100여개국 5천여 회원을 거느린 국제태 양에너지협회가 1995년 미국의 피닉스 에서 이곳으로 이전하였으며 유럽 재생

태양광 진열판을 설치한 주택단지

에너지 관련 대표기구인‘유로솔라’ 와 세계최고의 신재생 에너지 연구기 관인‘프라우엔 호퍼’ 도 이곳에 자리를 잡았다. 또한 태양에너지 산업관련 벤처사업가, 건축가, 공무원, 전문가가 참여 하는 유럽 최대의 박람회가 매년 개최되고 있어‘태양관광’ 이라는 신조어 를 만들어 내고 있다. 이처럼 태양에너지와 관련한 연구기관, 국제기구, 기업은 물론이고 친환경 도시 정책을 배우기 위한 관광객들이 몰려오면 서 일자리를 창출하고 도시의 국제적 위상을 높이는 효과를 만들고 있다.

칼럼-윤영석의 세계의 도시들 155


대중교통과 자전거 이용증진 정책 추진 프라이부르크를 대표적인 친환경 생태도시로 만드는 또 하나의 중심축 은 대중교통과 자전거 이용을 활성화하는 교통정책이다. 이 도시의 교통정책의 목표는 대중교통, 자전거, 개인차량이 각각 3분 의 1을 차지하도록 하는 것이다. 이에 따라 1980년 시내교통량 중 22% 와 18%를 차지하던 대중교통과 자전거의 수송분담율이 2008년에는 32%와 27%로 높아지고, 60%에 이르던 개인차량 비중은 41%로 대폭 줄 어들었다. 대중교통 이용을 활성화하기 위한 대표적인 정책은 지역승차권 (Regiokarte)제도이다. 우리 돈으로 약 4만원인 이 승차권을 구입하면 한 달 동안 3개의 인근 도시에 걸쳐 총 연장 3,000km 구간의 버스와 트 램(LRT)을 무제한으로 이용할 수 있다. 도심부의 구시가지 상업지역에는 아예 일반차량의 통행을 제한하고 공 해가 적은 전차만 다닐 수 있도록 하고 있다. 이러한 차량통행 제한에 대 해 시행초기에는 상인들이 반발했지만 보행자도로에 사람들이 많이 몰리 면서 지금은 오히려 통행제한구역 확대를 요구하고 있다. 자전거이용을 증대하기 위한 노력도 상당히 오랜 기간 동안 지속적으 로 추진해 왔다. 1970년대 이후 지금까지 450km의 자전거도로가 건설 되었다. 시내 어느 곳에서나 사람들이 자전거를 이용해서 쇼핑을 하고 아 이들을 등교시키는 모습을 흔히 볼 수 있다.

156 윤영석의 희망노래


신재생에너지 이용 활성화는 시대적 과제 향후 50년 내에 석유, 석탄 등 화석연료가 고갈될 것으로 예측되고 있 어 대체에너지 개발과 사용 확대는 인류의 생존을 위한 절체절명의 과제 가 되었다. 최근 우리나라에서도 신재생 에너지원 개발과 관련한 기술 및 산업이 신성장동력으로 각광을 받고 있다. 이러한 때 우리 양산을 친환경 생태도시, 신재생 에너지 산업중심 도시 로 만들기 위한 전략을 연구해 보는 것은 상당히 의미가 있는 일이 될 것 이다. 앞으로 시간이 흐를수록 친환경 산업에 대한 정부지원과 재정투자 가 증가하고 관련 산업이 빠르게 성장할 것이므로 이러한 분야를 선점하 는 것은 양산의 미래를 위해 매우 필요한 일이다. 시민들의 일상생활 속에서 태양광 등 재생에너지 사용비중을 높일 수 있는 방안을 강구하고 쓰레기 발생량을 줄이며 대중교통과 자전거 이용 활성화를 통해 양산의 친환경도시로서 브랜드를 구축해 가야 할 것이다. 이렇게 하면 시민의 자부심을 높이고 타 지역주민의 전입과 재생에너지 산업 관련 기업의 입주를 촉진할 수 있다. 부산지하철 2호선 개통에 이어 부산지하철 1호선의 양산구간 연장방 안이 추진되고 있고, 부산, 양산, 울산을 잇는 광역경전철 건설이 가시화 되고 있다. 이러한 것은 우리 양산이 대중교통 중심 도시로 변화할 수 있 는 중요한 전환점이 될 것이다. 자전거 이용활성화 측면에서도 양산신도시는 지형이 평평하여 여건이 좋다. 양산신도시 내부에서는 어떤 곳이든지 자전거로 이동할 수 있도록 자전거도로를 확충하고 조만간 완공될 4대강 사업의 물금지구 및 원동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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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를 같이 연계하면 시민들의 레저와 건강증진을 위해서도 더없이 좋은 시설이 될 것이다. 시민들의 일상생활에서 환경을 보호하는 습관을 생활화하고 태양열, 풍력, 지열 등 친환경에너지 사용을 활성화하기 위한 지역정부 차원의 제 도적 장치를 강화하며 대중교통과 자전거 이용을 활성화하는 도시기반시 설 구축을 위해 지속적인 노력을 해나간다면 우리 양산이 친환경 생태도 시로서 주변도시들과 차별화된 위상을 만들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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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영석의 세계의 도시들⑪] 2011년 05월 31일

교육은 국가와 지역의 발전을 위한 백년대계 미국의 미래를 주도하는 교육도시 보스턴

교육은 백년대계(百年大計)라고 한다. 백년 앞을 내다보고 해야 할 일 이라는 뜻일 것이다. 자라나는 세대를 잘 교육하는 것은 국가나 지역의 미래를 결정짓는다고 할 만큼 매우 중요한 일이다. 현대는 새로운 지식과 정보가 홍수를 이루는 시대로서 자라나는 세대를 위한 교육뿐만 아니라 기성세대를 위한 평생교육도 매우 중요한 부분을 차지한다. 미국의 보스턴(Boston)은 세계적으로 유서 깊은 교육의 도시이다. 보 스턴의 교육도시로서 위상은 미국의 역사에서 뚜렷하게 나타난다. 미국 최초의 교육은 대부분 보스턴에서 시작되었다고 해도 틀린 말이 아니다. 1630년 미국에서 가장 오래된 공립학교인 보스턴 라틴학교가 설립된 것을 시작으로 1636년에는 미국 최초의 대학인 하버드대학이 설립되었 다. 이어서 1821년에는 미국 최초의 공립 고등학교인 보스턴 잉글리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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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등학교도 이곳에 설립되었다. 미국 역사상 최초로 설립된 이들 학교 외에도 보스턴에는 수많은 학교 들이 생겨나서 현재 총 35개의 대학이 보스턴에 있다. 뉴욕에 사는 사람 들을 뉴요커(New Yorker)라고 하듯이 보스턴 사람들을 일컬어 보스토니 언(Bostonian)이라고 한다. 이 말은 미국인들 사이에서 매우 지성적인 사람이라는 뜻으로 통용되어 보스턴 시민의 큰 자부심이 되고 있다.

학교의 인적자원이 지역경제 성장 원동력 보스턴의 학교들은 그 명성과 함께 실제적으로 보스턴 지역의 경제와 문화 발전에 있어 큰 역할을 하고 있다. 보스턴 지역의 가장 중요한 산업 인 생명공학, 정보통신, 금융, 출판인쇄, 문화관광 산업은 모두 이들 학교 들을 근간으로 형성된 것이다. 즉 세계적인 대학을 비롯한 학교들이 보스 턴 경제의 촉매역할을 하고 있는 것이다. 특히 생명공학 분야에서 보스턴의 대학들이 이 지역 경제에 기여하는 바는 지대하다. 보스턴이 소재한 매사추세츠 주는 미국 생명공학 산업의 중심이 되고 있는 곳으로 주정부는 매년 1조7천억원에 달하는 자금을 생 명공학에 투입하고 있다.

하버드대학 비즈니스스쿨 전경

160 윤영석의 희망노래

공중에서 바라본 MIT대학의 전경


뿐만 아니라 1조3천억원의 자금이 하버드, MIT를 비롯한 대학연구소 의 생명공학 연구비로 쓰이고 있다. 이로 인해 전 세계 생명공학 산업의 절반 이상을 차지하는 미국에서 생명공학 관련 기술특허의 절반가량이 이 지역 대학들로부터 나오고 있다. 보스턴 시청의 자료에 의하면 보스턴의 각급 학교에 유학을 하고 있는 외국인 및 미국 타 지역의 학생 약 11만명이 매년 직접적으로 지출하는 비용과 그 경제적인 파급효과만도 연간 7조원 이상으로 막대한 경제적 가치를 창출하는 것으로 나타나고 있다.

시민의 일상생활 속 교육환경 조성 이러한 교육도시의 위상을 지속하기 위해 보스턴 시정부도 많은 노력 을 기울이고 있다. 초・중등 학생들의 학력향상을 위해 적극적인 지원책 을 제공하여 미국 전역에서 가장 우수한 공립교육체계를 운영하는 지역 중의 하나로 평가받고 있다. 또한 시민들이 대학시설, 도서관, 문화센터를 활용하여 평생교육을 받 을 수 있도록 하고, 소지역단위 시민센터 등을 중심으로 독서토론회, 인 문학강좌 등을 일상적으로 열어 교육적인 도시환경을 조성하고 있다. 우리나라에서도 많은 도시들이 교육도시를 추구하고 있다. 그 이유는 교육을 강화하면 지역 학생들의 외부유출을 막고 타 지역 인구의 유입을 촉진할 수 있다는 것이다. 또한 교육환경이 우수하면 집값 등 부동산가치 를 올리는 작용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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각급 지방자치단체 차원에서 벌이고 있는 교육진흥 정책은 치열하다 못해 자못 비장하기까지 하다. 주로 지역 내에 우수 고등학교를 육성하고 지역학생들이 타 지역으로 유출되지 않도록 다양한 인센티브를 제공하는 정책을 전개하고 있다.

우리나라의 도시들도 교육발전에 총력 인구 7만명의 거창군은 교육도시로서 전국적인 명성을 얻고 있다. 특 히, 2005년 시작된 거창군장학회 기금모금 운동은 4년 만에 100억원 모 금이라는 결실을 거두었다. 이를 바탕으로 600여명에게 장학금을 지급 하여 지역학생의 외부유출을 막고 있다. 또한 외국어 교육특구로 지정받 아 영어교육을 강화하고 교육경비 보조율을 지방세의 15%까지 높인 바 있다. 구미시는 장학기금 300억원을 조성하여 지역학생을 위한 장학금을 지 급하고 서울에 구미학생들을 위한 기숙사를 운영하는 사업을 추진하고 있다. 또한 구미시 전체 고등학생의 15%인 600명에게 서울 유명학원 강 사의 인터넷강의를 들을 수 있도록 지원 하고 있다. 제주도는 서귀포시 일대 115만평 부지에 영어전용학교 12개교와 기숙 사, 영어교육센터 등이 들어서는 영어교육도시를 2015년까지 완공하기 로 하고 현재 한창 사업을 추진하고 있다. 이곳에는 미국, 영국의 국제학 교를 유치할 계획이며 수도권 등 타 지역학생들의 외국유학 수요를 흡수 함으로써 제주의 지역경제를 활성화하고자 하는 사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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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으뜸 교육도시’양산을 위한 획기적 정책 시급 우리 양산도 교육정책이 매우 큰 비중을 차지한다. 양산을 교육도시로 만들기 위해 지금도 많은 노력을 기울이고 있지만 교육경쟁력 강화를 위 한 획기적인 대책을 마련하여 부산, 울산, 김해 등을 능가하는‘으뜸 교 육도시’ 를 만들어야 한다. 이는 양산시민의 자부심과 청소년들의 애향 심을 높여 양산의 장기적 발전을 위해 매우 긍정적인 기여를 하게 될 것 이다. 지금까지의 역사를 볼 때 우리 양산의 경우 교육에 있어서 구심력보다 는 원심력이 많이 작용해 왔다. 즉 지역인재가 외부로 유출되는 힘이 크 다는 것이다. 실제로 통계를 보아도 매우 심각한 상태임을 알 수 있다. 최근 중학교 3학년 학생들의 타 지역 유출 현황을 보면 2010년의 경우 총 3천520명 중 487명(13.8%), 2009년 총 3천482명 중 510명(14.6%), 2008년 총 3천347명 중 385명(11.5%)으로 해마다 10명 중 1명 이상이 타 지역으로 전출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초등학교 고학년부터 시작되는 외부유출을 감안하면 사정은 더 심각하 다. 이러한 현상을 막기 위한 특단의 대책이 요구되는 것이다. 이를 위해 양산관내 고등학교의 상위권 대학 진학률을 높일 수 있는 방안을 강구하 고 학생들이 관내 고등학교로 진학하도록 실질적인 유인책을 개발하여 시행해야 한다. 양산시 인재육성 장학기금 200억원을 조속히 모금하여 관내 고등학교 진학을 유도하는 상당한 수준의 장학금을 지원하고 효과적인 대학입시 지원 프로그램을 도입하여 시행해야 한다. 또한 교육경비 보조율을 점차

칼럼-윤영석의 세계의 도시들 163


적으로 높여 초・중등학교 전인교육은 물론, 외국어 및 논술교육을 강화 하고 우수교원 확보와 학교 교육여건 개선사업도 확대할 필요가 있다. 아울러 저소득층 학생들에게 온라인 학습공간을 지원하고, 균등한 교 육기회를 위한 장학금 지급과 교재비 지원을 통해 교육격차 해소와 다양 한 학습기회 제공을 위해 노력해야 한다. 최근 양산고가 자율형 공립고로 지정되고 효암고가 기숙형 고교로 선 정되었으며, 지역 고교의 전반적인 대학 진학률이 높아지는 등 양산교육 이 새로운 도약기를 맞고 있다. 또한 양산초등학교의 개교 100주년은 양 산의 현대교육 100주년을 의미하는 큰 전환점이다. 새로운 100년을 준비하는 심정으로 우리 지역의 인재를 기르고 다른 지역의 학생들까지 양산으로 유인할 수 있는 효과적인 대책을 마련해야 한다. 이와 함께 시민들의 평생교육을 위한 여건도 조성하여 우리 양산을 명실 공히‘으뜸 교육도시’ 로 만들어 나가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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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영석의 세계의 도시들⑫] 2011년 06월 28일

복지는 인간의 삶을 따뜻하게 만드는 원동력 복지도시의 이상향 스웨덴 스톡홀름

요즘 세계적으로 경제가 상당히 어렵다. 유럽의 금융위기가 미국을 비 롯한 여러 국가들로 옮겨붙어 전 세계적으로 저성장이 장기화되는 양상 이다. 이러한 상황이다 보니 실업과 빈곤층이 증가하고 복지에 대한 관심 이 높다. 우리나라에서도 최근 보편적 복지와 선택적 복지 등 복지정책에 대한 논쟁이 뜨겁다. 세계에서 가장 훌륭한 복지시스템을 갖춘 국가로 인정받는 나라는 북 유럽의 스웨덴이다. 스웨덴은 1인당 국민소득 4만8천875달러, 국가경쟁 력 2위, 국민행복지수 세계 3위 등 세계적인 선진국이다. 이 스웨덴의 수 도가 바로 스톡홀름(Stockholm)이다. 스톡홀름은 발트해 연안에 위치해 있고 많은 섬들을 끼고 있어 북유럽의 베네치아라고 불리며 인구 150만 여명인 스칸디나비아 반도 최대의 도시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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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톡홀름은 많은 복지프로그램들이 실제적으로 시행되고 있는 현장이 며 새로운 복지정책 아이디어들이 끊임없이 개발되고 적용되는 도시이 다. 스톡홀름 시의 연간 재정의 3분의 2가 복지를 위해 쓰이고 있으며 2 만5천명의 직원이 복지에 관한 업무를 맡고 있다. 그야말로 복지도시의 이상향이라고 할 만하다.

일을 하지 않으면 복지제도가 무너진다 스톡홀름 시정부는 특히 복지와 고용을 적극적으로 연계하여 실업을 최소화하는데 정책의 초점을 두고 있다. 완전고용과 평등을 목표로 하는 스톡홀름 시정부의 복지정책 철학을 기반으로 직업훈련, 일자리 알선, 직 업정보제공 등을 위주로 하는 일자리센터(Jobbtorg)가 스톡홀름 시내에 30여개가 운영되고 있다. 이를 통해 일할 의사와 능력이 있는 시민에게 일자리를 제공하고 있다. 이와 같이 스톡홀름 시정부가 고 용과 복지의 연계를 중시하는 이유 는 모든 복지프로그램을 위한 재원 은 일을 함으로써 창출되는 것이며 일을 하지 않으면 복지재정의 파탄 으로 결국에는 복지제도가 무너진다 는 인식에서 비롯되었다. 발트해 연안에 위치한 스톡홀름시 전경

구직기간 동안의 생계걱정은 크지

않다. 일자리센터(Jobbtorg)에 구직자 등록을 하면 자신이 속한 직종별 노동조합의 실업기금에서 실업수당이 지급된다. 이러한 실업수당을 통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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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 시민이 빈곤층으로 전락하는 위험을 방지하는 것이다. 실업수당은 실직 전 1년 6개월간 고용상태를 유지한 실직자를 대상으 로 지급하는데 실직 전 급여의 70~80% 수준으로 지급한다. 실업수당을 받을 수 있는 자격이 없는 시민의 경우에는 하루 최저 5만원 정도의 기본 수당을 지급한다.

시민의 건강을 위한 보편적 의료서비스 구축 의료복지도 스톡홀름 시정부가 가장 중점을 두고 있는 분야이다. 아픈 사람이라면 누구나 의료혜택을 받을 수 있게 해야 한다는 인본주의 철학 을 바탕으로 획기적인 의료서비스를 마련하고 있다. 이에 따라 시민 1인 이 부담하는 의료비는 진료비와 약값을 합해 연간 최대 50만원을 넘지 않도록 책정하고 그 이상 소요되는 비용은 국가와 지방정부가 부담하도 록 하고 있다. 이는 사실상 무상의료에 가깝다. 이 경우 시민들이 가벼운 질병에 대해 서도 과도한 진료를 받게 되어 의료재정이 파탄나지 않을까 걱정이 되는 점도 없지 않다. 그러나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통계를 보면 2008년 기준 스웨덴의 국민의료비 비중은 국내총생산의 9% 정도로 큰 변화 없 이 유지되고 있다. 오히려 의료비 본인부담률이 높은 미국의 경우 1980년대 8% 수준이던 국민의료비 비중이 2008년엔 16%까지 증가했다. 우리나라의 경우는 2008년 기준으로 국민의료비 비중이 6.5%로 OECD 평균보다 낮은 편이 지만 증가율이 매우 높아 의료재정을 압박하고 있는 형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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질병으로 일을 할 수 없을 때에는 소득의 80%를 지급하는 질병수당을 지급하고 있는 점도 눈에 띄는 부분이다. 이 질병수당은 사회보험청에서 지급하는데 재원은 고용주(소득의 6.71%)와 자영업자(소득의 6.93%)가 내는 의료보험으로 충당한다. 장기병가에 대해서는 적극적인 재활프로그 램이 적용된다. 이러한 재활프로그램을 통해 일할 능력이 생기면 일자리 에 다시 복귀한다.

노인, 장애인, 아동 등 사회적 약자를 위한 복지서비스 스웨덴은 일본과 함께 세계적인 장수국가에 속한다. 전체인구 중 25% 가량이 65세 이상의 노인인구다. 이 나라에서 노인복지는 그들이 지금까 지 살아왔던 환경에서 자활할 수 있도록 도와주는 것이다. 이에 따라 스 톡홀름 시정부에서는 노인을 위한 병원, 여가 및 운동시설 등을 지역밀착 형으로 생활공간에 촘촘하게 설치하고 있다. 장애인을 위한 복지서비스도 매우 체계적으로 운영되고 있다. 장애인 복지정책의 목표는 장애인들이 일반인들과 똑같이 사회적 활동에 참여할 수 있도록 돕는다는 것이다. 특히 장애인들의 권리를 보호하기 위해 장애 인 옴부즈만 제도를 시행하여 장애인들의 불편사항을 듣고 적극적으로 개선하고 있다. 스톡홀름 시정부는 아동을 위한 복지정책도 적극적으로 시행하고 있 다. 여섯 살 미만 아동의 80%가 유아원에 다니고 있으며, 여섯 살이 되면 초등학교 진학을 위한 예비학교에 입학하게 된다. 이들을 위한 모든 교육 비는 무료이다.

168 윤영석의 희망노래


스톡홀름 시정부에서는 스웨덴 중앙정부의 복지제도와 프로그램을 기 본으로 시정부 차원에서 시민들의 수요에 맞는 복지프로그램을 개발하여 운영하고 있으며 소외받는 이들이 없도록 복지사각지대를 면밀히 살피고 시민들의 복지수요를 완벽하게 충족시키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

인간적이고 따뜻한 복지도시 양산을 위한 과제 우리나라의 도시들도 자신들의 실정에 맞는 복지프로그램을 개발하기 위해 많은 노력을 기울이고 있다. 서울특별시의 경우‘서울형 복지’ ,‘여 성이 행복한 서울’등 복지정책을 적극적으로 추진하고 있다. 양산시에 도 최근 여성친화도시 조례 제정, 한국 양성평등교육진흥원 남부센터 개 원, 여성특별설계구역 조성 등을 역점시책으로 추진하여 여성가족부에서 선정하는‘여성친화도시’ 로 지정된 바 있다. 나아가 양산시 지역 내의 복지사각지대를 없애기 위해 아동을 동반한 노숙자, 거주 불명 또는 말소자, 공용화장실과 놀이터 등을 전전하는 빈 곤계층에 대한 실태조사를 벌이는 등 적극적인 사회복지 정책을 추진하 고 있다. 또한 최근에 웅상종합사회복지관을 건립하는 등 복지시설 확충 에도 주력하고 있다. 우리 양산시의 경우에는 도시의 성장과 발전을 위해서 기존의 제조업 육성 및 창업을 통한 일자리 창출과 함께 부산, 울산 등 주변 대도시로부 터의 인구유입을 지속적으로 추진해야 한다. 이를 달성하기 위해서는 양 산이 매우 인간적이고 따뜻한 복지도시라는 이미지를 구축해야 하며 다 양한 복지프로그램이 그 근간이 되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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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를 위해서는 장애인 복지기금 및 여성발전기금의 적절한 활용을 통 해 사회적 약자 계층에 대한 편의시설 확충 등 복지서비스를 강화하고 노 인, 장애인, 여성들의 사회참여와 소득창출을 위한 일자리 사업도 적극 추진하여야 한다. 아울러 저소득주민의 생활안정과 자립능력 향상을 위 해 공공일자리를 개발하고 사회적 기업 설립을 활성화하여 모든 시민이 더불어 살아가는 복지 양산을 만들어 나가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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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영석의 세계의 도시들⑬] 2011년 07월 19일

잘 살고자 하는 것은 체제를 넘어 선 인간본성 중국에서 가장 잘 사는 마을 화서촌

중국은 우리나라에 양날의 칼과 같은 존재이다. 중국의 발전과 성장은 중국인들의 소비시장을 확대시킴으로서 우리나라의 수출시장을 더욱 크 게 확대한다는 점에서 경제적으로 장점이 있다. 한편으로 중국의 발전과 성장은 중국에 대한 우리나라의 외교적, 경제적 의존도를 더욱 키운다는 면에서 위험한 측면도 있다. 현재도 우리나라의 대 중국 무역의존도는 23%에 이르러 대 미국 무역 의존도 12%의 두 배에 가까운 실정이다. 이러한 추세는 더욱 가속화될 것으로 보인다. 이와 같은 상황에서 중국을 정확히 알고 대비하는 것은 중요한 의미를 갖는 것이다. 잘 살고자 하는 것은 인간의 기본적인 욕망 이며 이것은 자본주의와 사회주의의 체제를 넘어서는 것이기 때문이다. 중국의 발전과 경제성장을 대표하는 곳이 있다. 중국에서 가장 부유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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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역으로 꼽히는 강소성(江蘇省)의 화서촌(華西村)이라는 곳이다. 이곳은 1960년대부터 40년간 지도자를 맡은 우런바오(吳仁寶)에 의해 작은 시 골마을이 중국에서 가장 잘사는 곳으로 변모한 곳이다. <사진> 중국에서 가장 첫째가는 부자마을인 강소성 화서촌의 전경

1인당 GDP 4만5천불의 중국 최고 부촌 화서촌의 발전상은 입이 딱 벌어질 정도이다. 우선 중국의 1인당 GDP 가 2010년 현재 4천불인데 반해 화서촌의 경우 10배가 넘는 4만5천불에 이른다. 화서촌 사람들은 기본적으로 150평이 넘는 집에서 거주하며 가 구당 평균 약 7억원의 자산을 보유하고 있다. 인구 3만명이 사는 화서촌의 발전상을 보기 위해 연간 200만명의 국 내외 관광객이 찾아오고 있고 이들 관광객을 위한 지상 328미터의 74층 짜리 호텔이 금년 10월 완공될 예정이다. 이 호텔은 다섯 개의 다목적 회 의장 시설을 갖춘 5성급 호텔로 지어지며 공사비 5천500억원도 모두 주 민들의 공동출자로 만들어졌다. 화서촌의 주민들에 대한 소득분배정책은 사회주의 국가라고 믿어지지 않을 정도로 성과에 따라 차등을 두고 분배한다. 우선 화서촌 주민 모두 에게는 월급 이외에 매월 30만원 정도의 기초생활비가 지급된다. 그리고 1년간 일한 실적을 엄격하게 평가하여 연간 최저 8백만원에서 수억원에 이르는 성과급을 지급한다. 또한 주민을 위한 복지제도도 선진국 수준으로 완비되어 있다. 노인에게 는 경로보조금이 지급되고 유아원에서 대학교까지 학비보조금이 지원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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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 1인당 매년 쌀 100㎏, 현미 50㎏가 지급되며 공장건설로 농지를 수용 당한 주민들에게 매년 1인당 30만원의 위로금도 지급한다. 사실상 교육, 의료, 노후보장까지 모든 것을 화서촌 정부에서 책임져 주고 있는 것이다.

농촌마을이 중국에서 가장 잘사는 마을로 변모 화서촌은 원래 중국 장강(長江) 하류에 위치한 전형적인 시골마을이었 다. 조상 대대로 농사를 지어온 이곳은 1970년대 등소평이 주창한 개혁 과 개방의 물결을 타고 부자마을로 거듭날 수 있는 계기를 만들었다. 당시 화서촌의 공산당 당서기였던 우런바오는 개혁 개방과정에서 중국 중앙정부가 농촌의 마을기업을 지원하는 정책에 주목하고 화서촌의 주민 들로부터 일정한 금액을 갹출하여 공장을 만들자는 제안을 했다. 이렇게 설립한 화서촌의 초기 공동공장에서 생산한 나사못은 중국의 공업화 바 람을 타고 날개 돋친 듯 팔려나갔다. 나사 못 공장의 성공에서 힘을 얻은 화서촌은 철강, 섬유 공장을 잇달아 건설했고 모두 큰 성공을 거두게 되었다. 1999년에는 마을의 사업체들을 모두 모아 증시에까지 상장을 하기에 이르렀다. 중국 증시에 상장된 최초 의 자치단체 기업인‘화서집단(華西集團)’ 이라는 기업그룹이 그것이다. 이 그룹은 농업, 강철, 직물, 관광, 금융 등 60여개의 자회사를 거느리 고 있고 2010년에만 모두 7조원의 매출액을 올렸다.‘화서집단’ 은 모두 화서촌의 주민들이 공동으로 출자하여 만들어진 기업그룹이기 때문에 그 수익금은 당연히 주민들에게 배분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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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역브랜드화를 통한 고부가 산업화 성공 화서촌의 성공요인은 크게 두 가지로 나눌 수 있다. 첫째는 화서촌을 부자마을로 만들겠다는 우런바오 당서기의 미래를 보는 안목과 주민들의 일치된 단결력이다. 두 번째로는 지역의 산업을 개별적으로 분산하여 운 영하지 않고 하나의 지역기업 아래 공동의 브랜드로 통합하여 발전시키 려는 노력을 했다는 점이다. 지역산업의 공동브랜드화를 위한 우런바오 당서기와 지역민들의 노력 은 초기부터 매우 체계적으로 전개되었다. 사천성 지역의 유명한 술인 우 량예(五粮液) 공장과 합작해‘화서촌주(酒)’ 를 만들고 독자 브랜드의 포 도주도 만들었다. 또‘화서촌’브랜드와 우런바오 당서기의 이름을 딴 ‘화서런바오’ 라는 브랜드의 옷도 만들어 시장에 내놓았다. 철강, 섬유 등 공업뿐만 아니라 지역에서 생산되는 각종 농산물이나 축 산물 등에도 화서촌의 공동브랜드를 만들어 판로를 개척하고 광고와 마 케팅을 하고 있다. 이러한 전략을 통해서 화서촌에서 생산한 상품에 대한 소비자의 신뢰를 만들고 매출액을 극대화하는 것이다. 이러한 화서촌의 성공은 우리 양산에도 많은 시사점을 준다. 우리가 더 욱 발전하고 성장하기 위해서는 자본주의나 사회주의와 같은 정치체제를 넘어서서 배울 점은 배우고 받아들여 접목시켜야 할 부분은 받아들여야 하기 때문이다. 화서촌의 성장과정에서 가장 눈여겨 볼 대목은 지도자의 미래를 내다 보는 긴 안목과 이러한 것을 뒷받침하는 주민들의 단결력이다. 좀 더 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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체적으로 보면 화서촌이라고 하는 지역의 정체성을 중심으로 60여개의 기업을 공동으로 육성 발전시킨 브랜드화 정책에도 중요한 성공의 원인 이 있다고 할 수 있다.

지역경제 발전을 위한 지역브랜드 활성화 우리 양산도 이러한 화서촌의 성공사례를 접목할 수 있는 분야가 많이 있다. 우리 양산은 지역경제에서 50% 이상을 차지하는 제조업을 육성하 는 정책과 함께 지역주민의 소득증대를 위해서는 농업, 축산업, 공예업 등도 특화시켜 발전시켜 나가야 한다. 특히 농업, 축산업, 공예업 등은 대부분 영세한 규모로 운영되어 상품 개발 및 기획, 품질관리, 판매 및 유통망 확보, 상품광고 및 공동마케팅 등에 있어서 매우 취약한 실정이다. 이러한 부분에서 지역정부가 지원을 한다면 주민의 소득증대를 위해 큰 기여를 할 수 있다. 우리나라의 많은 지역에서도 지역농산물 등의 브랜드화를 통한 매출액 확대를 위해 많은 노력을 하고 있다. 안동의 약용작물 공동브랜드인‘청 안초’ , 부여의 농산물 브랜드인‘굿뜨래’안성의‘안성맛춤’ , 담양의 죽 공예품 공동브랜드‘대숲소리’등이 대표적인 것들이다. 양산시의 경우 이러한 지역브랜드에 대한 인식이 아직은 낮은 것으로 나타나는 것은 아쉬운 점이다. 경상남도의 지역브랜드 정책의 지표라고 할 수 있는 상표 및 업무표장 출원현황을 보면 양산시가 가장 낮은 수준 에 머물고 있다. 앞으로 이러한 부분을 적극적으로 보완 발전시켜 농업, 축산업, 공예업 등 분야의 지역브랜드화를 통해 지역경제를 활성화시키 기 위한 정책도 적극적으로 전개할 필요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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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산인터넷 뉴스

[윤영석칼럼] 양산의 미래, 한국의 미래 양산인터넷뉴스는 급변하고 있는 한반도 주변의 국제적 여건과 남북관계 속에서 대한민국이 헤쳐 나가야 할 향후 과제들과 이를 통한 발전 방향들을 전망하면서 양산시의 미래와 나아가야 할 방향을 접목시켜 보고자 한다. 이를 위해 현재 미국 하버드대학 객원연구원과 중국 전매대학교 객좌교수로 재직 중인 윤영석 교수의 생각들을 8회에 걸쳐 지면에 올린다.

① 양산의 발전과정과 현재, 그리고 미래 ② 양산의 지역경제 활성화를 위한 전략 ③ 교육과 문화발전을 통한 선진도시 양산 ④ 모두가 잘사는 도시 양산을 위한 과제 ⑤ 대변화의 소용돌이가 몰아치는 세계정세 ⑥ 전환기의 국제관계와 정치외교 전략 ⑦ 새로운 세계경제질서와 한국의 대응 ⑧ 국민의 이익과 복지를 위한 사회 문화정책의 방향

176 윤영석의 희망노래


[윤영석칼럼] 양산의 미래, 한국의 미래①

양산의 발전과정과 현재, 그리고 미래

양산은 서울보다 더 오래된 도시이다. 서울이 1394년에 조선왕조의 수 도로서 만들어진 도시인 반면 양산은 서기 665년 신라시대 문무왕 5년에 삽량주(

)의 가장 중심도시인 주치(州治, 오늘날의 도청소재지)로

서 만들어진 도시이다. 당시 삽량주는 부산, 울산, 창원은 물론 경주의 일 부까지 관할하던 신라의 수도권이라고 할 수 있는 상당히 큰 지역이었다. 도시는 그 도시를 둘러싼 주변 환경의 변화에 많은 영향을 받는다. 주 변환경의 변화과정과 앞으로의 추이를 살펴봄으로써 그 도시가 어떻게 변화하고 발전해 갈 것인지 예측할 수 있고 대비책을 세울 수 있다. 근래 에 양산의 발전과정은 1960년대 이후 우리나라의 급속한 산업화 과정에 서 제2의 도시인 부산의 성장과 발전에 큰 영향을 받았다. 부산은 1965년 우리나라가 일본과 국교를 재개한 한-일수교 이후 본

칼럼-양산의 미래. 한국의 미래 177


격적인 성장의 길을 걸어 왔다. 그 이후 세계 2위의 경제규모를 자랑했던 일본과 한반도의 수도권을 잇는 교통의 요충지로서 부산의 인구와 경제 규모는 급속히 팽창해왔다. 이 과정에서 부산에 인접한 우리 양산도 그 영향을 받아 도시가 성장하는 과정을 겪었다. 특히 1980년대 이후 부산 에 있던 많은 공장들이 양산으로 이주하고 2000년대부터 양산에 신도시 가 조성되고 본격적으로 인구가 유입되면서 지금 우리는 양산의 역사에 서 또 한 번의 전성기를 맞고 있다. 즉, 우리 양산은 한국 제2의 도시인 부산의 성장과 발전에 많은 영향을 받아 왔고, 앞으로도 부산의 발전과정과 연계되어 많은 영향을 받을 것이 라 볼 수 있다. 그래서 양산의 향후 발전전망을 부산과 연계시켜서 살펴 볼 수가 있다. 부산의 향후 성장전망은 경제적인 면에서나 인구적인 면에 서 그리 밝지 않다. 부산과 인천의 인구추이를 살펴보면 이러한 경향이 분명하게 드러난다. 1970년대 부산은 인천보다 경제규모와 인구면에서 세배나 큰 도시였 다. 1970년 부산의 인구는 180만명이고 인천은 64만 명이었다. 2010년 의 경우에는 부산이 355만명이고 인천은 280만명이다. 그러나 2030년 에는 부산은 290만명이고 인천은 300만명으로 인천이 제2의 도시가 될 것으로 추산된다. 이러한 현상은 일본의 쇠퇴, 중국의 부상과 관련이 있다. 우리 양산을 둘러싼 큰 축이 변화하고 있는 것이다. 일본의 쇠퇴에 따라 한국의 중심 부인 서울・수도권과 일본을 잇는 한반도 동남권의 상대적 규모가 작아 지는 것이다. 반면에 중국의 부상에 따라 한반도의 서해안권의 인구 및 지역경제 규모는 점점 커지고 있는 것이다.

178 윤영석의 희망노래


이와 같은 상황에서 그동안 부산의 성장과 변화에 많은 영향을 받아 온 우리 양산은 어떻게 될 것인지 위기감을 갖지 않을 수 없다. 즉, 부산의 성장에 따라 동반성장해 온 양산의 발전과정을 볼 때 부산의 인구, 경제 적 측면에서의 규모축소는 양산의 성장에 좋지 않은 영향을 줄 수 있다는 것이다. 양산을 둘러 싼 주변환경이 양산의 발전과 성장을 저해하는 요인으로 작용을 하고 있지만 우리 양산이 자체적인 성장과 발전의 동력을 찾아내 고 미래에 대비를 한다면 지속적인 성장을 할 수 있다. 성장을 지속할 수 있는 잠재력을 많이 갖고 있는 곳이 바로 우리 양산이다. 양산은 우선 사통팔달의 교통망을 구축하고 있다. 경부고속도로, 경부 선 및 경부고속철도 등 한반도의 대동맥이 모두 양산을 지나고 있고, 부 산지하철 노선도 양산까지 연장해서 운영되고 있다. 또한 아름다운 자연 환경을 갖고 있는 도시이다. 영남의 알프스라 불리는 영축산, 가지산, 천 성산 등이 양산을 둘러싸고 있고 낙동강이 양산의 비옥한 대지를 적시고 있다. 나아가 신라시대 이래 오랜 세월 역사의 도시로서 우리 민족의 역 사적 스토리를 간직한 도시이기도 하다. 의학, 치의학, 한의학 등 대학단지와 대학병원이 입주한 부산대 양산캠 퍼스는 양산발전에 희망의 흐름을 만들어 낼 수 있는 매우 중요한 부분이 다. 특히 양산캠퍼스와 연계된 첨단산학단지와 실버산학단지가 기존의 계획대로 차질 없이 추진될 수 있도록 힘을 모아야 하며 이곳에 의약산 업, 생명과학, 정보통신 등 고부가가치 기업을 유치하기 위한 체계적인 방안을 마련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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향후 인구 50만의 자족도시로서 자체적인 성장동력을 갖고 한반도의 의학, 생명공학 및 첨단기술 분야를 주도하는 도시로서 성장해 나가는 것 이 양산이 지향해야 할 도시발전의 바람직한 방향이라고 전망할 수 있다. 나아가 양산의 자연환경과 역사자원을 바탕으로 문화관광 산업을 발전시 켜 지역의 서비스업, 음식업, 숙박업, 교통운수업에 종사하는 분들이 혜 택을 받을 수 있도록 해나가야 한다. 교육환경도 지속적으로 개선하여 지역의 우수고교를 집중적으로 육성 하고 타 지역으로 지역의 인재가 유출되지 않도록 효과적인 교육정책도 마련해서 시행해야 한다. 뿐만 아니라 육아 및 보육정책, 노인, 여성 및 장애인 등을 배려하는 복지정책도 효과적으로 실시하여 더불어 잘 사는 양산을 만들어 나가는 것이 한반도 동남권의 명품도시로서 양산이 나아 가야 할 방향이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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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영석칼럼] 양산의 미래, 한국의 미래②

일자리 창출과 양산의 지역경제 활성화를 위한 전략

양산은 전통적으로 농업 지역이었다. 낙동강과 양산천이 만들어 낸 비 옥한 충적토양인 양산평야(물금평야라고도 한다)는 양산의 농업역사를 만들어 온 근간이었다. 그러나 1980년 이후 양산 지역경제의 중심축이 바뀌었다. 우리나라의 산업화 과정에서 부산에 있던 많은 제조업체들이 양산으로 이전하면서 부터이다. 2011년 현재 양산의 제조업이 지역경제에서 차지하는 비중은 50% 이 상을 차지할 정도로 매우 높은 형편이다. 그러나 이러한 제조업의 성장이 근래에 들어와 정체되고 있는 것은 양산의 지역경제 성장에 적신호를 주 는 것이다. 실제로 2003년 이후 양산시의 제조업체 숫자는 2003년 2,361개소, 2004년 2,444개소, 2005년 2,591개소, 2006년 2,621개소, 2007년 2,639개소, 2008년 2,612개소 등으로 정체현상을 보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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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용상으로도 2008년도 10인 이상 제조업체 729개소의 현황을 보면 첨단기술 및 의약산업 등 고부가가치 산업보다는 고무플라스틱 제조업 95개소(13%), 화학제품제조업 46개소(6%), 섬유제품 51개소(7%), 금속 제조및가공제조업 173개소(24%), 기계및장비제조 90개소(12%), 자동차 부품(10%) 등 노동집약적 제조업 비중이 80% 이상을 차지하고 있는 실 정이다. 반면 전자컴퓨터 제조업 14개소, 의료정밀기기 제조업 14개소 등 기술집약적 업종은 10% 미만에 불과하다. 이러한 양산의 지역경제의 현실은 중국, 인도, 러시아 등 BRICs 국가 들의 제조업 기업들이 급속하게 성장하고 있다는 것을 감안할 때 장래에 우리 양산의 기업들이 상당히 불리한 환경에 노출될 수 있고 기업이 도산 하거나 실업이 증가할 수 있는 가능성을 내포하고 있다. 따라서 양산의 지역산업을 그동안의 양적 성장전략으로부터 질적 성장 전략으로 전환해 야 할 단계에 있는 것이다. 기존의 제조업을 적극적으로 육성하고 지원하는 것은 물론이고 나아가 서 새로운 첨단기술 업종의 기업들이 양산에서 창업을 하고 다른 지역으 로부터 유입될 수 있도록 다각적인 대책을 마련하여 시행하여야 한다. 특 히 양산은 부산대학 의과대학, 대학병원, 한방병원 인프라를 갖추고 있어 의학, 생명공학, 약학 분야의 연구소 및 기술기업들이 성장할 수 있는 여 건을 갖추고 있다. 창원 및 울산의 기계산업, 자동차산업, 조선산업 등과 연계하여 첨단 메카트로닉스 산업을 중점적으로 육성하는 것도 장기적으로 양산의 산업 경쟁력을 다양화하고 성장동력을 확충하는 길이 될 것이다. 최근 한국생 산기술연구원 분원을 양산에 유치하는 방안이 현실화 되고 있는 것은 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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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트로닉스 산업 활성화를 위해 매우 바람직한 일이다. 나아가 부산대학 공대가 양산으로 이전하게 된다면 양산은 첨단 메카트로닉스 산업의 중 심이 될 수 있는 잠재력을 갖추게 될 것이다. 양산에 유치를 추진하고 있는‘아시아디자인 센터’ 도 양산의 새로운 성장동력이 될 수 있다. 아시아적 가치가 세계적으로 주목을 받고 있는 상황에서 아시아 디자인을 주도하는‘아시아디자인 센터’ 가 양산에 설치 된다면 아시아 디자인 연구 및 개발을 통해 양산지역의 제조업 등 기존 산업의 성장에 긍정적인 역할을 할 뿐만 아니라 새로운 디자인 기업들이 양산으로 이전해 옴으로써 양산의 전반적인 지역경제 활성화에 도움을 주게 될 것이다. 또한 문화관광산업 또한 매우 유망한 산업이라고 할 수 있다. 양산은 영축산, 천성산, 낙동강 등 아름다운 자연경관을 갖고 있고 편리한 교통 망을 구축하고 있을 뿐만 아니라 역사의 도시로서 박제상 등 역사적 스토 리를 갖고 있어 이러한 요소들을 잘 활용한다면 문화관광의 중심도시로 서 성장할 수 있다. 부산대학의 의료관광 인프라도 양산의 문화관광산업 발전을 위해 매우 큰 도움이 될 수 있는 요소라고 할 수 있다. 문화관광 산업은 고용유발효과가 매우 높은 산업으로서 그 자체로 많은 일자리를 창출할 수 있고 재래시장, 음식업, 숙박업, 운수업, 서비스업, 유통업 등 지역의 자영업에 큰 보탬이 될 수 있을 것이다. 향후 우리나라는 무한한 노동력과 자연자원을 보유한 중국, 인도 등 BRICs 국가들과 세계시장을 놓고 치열한 생존경쟁을 벌여야 한다. 이러 한 경쟁에서 우리나라가 우위를 점하기 위해서는 첨단기술력을 바탕으로 한 고부가가치 산업을 육성할 수밖에 없고 정부의 재원을 이러한 분야에

칼럼-양산의 미래. 한국의 미래 183


집중적으로 투입하게 될 것이다. 이러한 측면에서 볼 때 우리 양산도 첨 단기술업종을 지속적으로 유치하고 육성하는 것이 국익에도 도움이 되고 양산의 지역경제 성장을 위해서도 바람직한 일일 것이다. 지역내 일자리 창출과 경제 활성화를 위해서는 지역상권 보호를 위한 시책도 강화해야 한다. 기업형 수퍼(SSM)에 대응한 재래시장과 동네 수퍼 살리기를 위한 법률적, 제도적 개선과 함께 지역정부 차원의 대책을 마련 하여야 한다. 우리나라와 같이 자영업의 비율이 매우 높은 국가에서 대기 업에 의한 기업형 수퍼(SSM)가 마음대로 활개를 치게 해서는 안 된다. 한 지역의 성장과 발전을 위한 올바른 방향을 잡고 앞으로 나아가기 위 해서는 지역정부와 정치권의 역할이 매우 중요하다. 함께 힘을 모아 양산 의 나아갈 방향을 정확하게 설정하고 시민들의 여론을 모아서 발전의 에 너지로 만들어야 하며 중앙정부와 중앙 정치권에 영향력을 행사하여 국 가의 지원을 많이 받을 수 있도록 하는 것이 바로 이들의 역할이다. 자리 보전이나 권력장악을 위해 정쟁을 일삼는 중앙정치권의 구태가 지역정치 에 그대로 재현되는 현상이 생기면 우리 지역의 발전을 위한 에너지가 고 갈되고 지역은 퇴보의 길로 갈 수 밖에 없게 될 것이다. 양산시민, 지역정 부 및 정치권이 함께 힘을 모아 양산발전의 기틀을 놓고 부산, 양산, 울산 등 삼산도시의 중심축이 되는 그날을 기대해 본다.

184 윤영석의 희망노래


[윤영석칼럼] 양산의 미래, 한국의 미래③

교육과 문화발전을 통한 선진도시 양산

양산은 최고의 교육도시가 되어야 한다. 또한 그렇게 될 수 있는 충분 한 잠재력을 갖고 있는 도시이다. 교육은 미래의 인재를 길러내는 것으로 서 양산이 지속적으로 성장하고 발전하기 위해서는 지역의 학교에서 우 수한 인재들이 많이 배출되어야 한다. 그래야 지역민들이 자부심을 가질 수 있고 지역민 스스로의 힘으로 지역을 발전시키고 이끌어 갈 수 있는 역량을 만들어 낼 수 있다. 양산을 교육도시로 만들기 위해 지금도 많은 노력을 기울이고 있지만 교육경쟁력 강화를 위한 획기적인 대책을 마련하여 부산, 울산, 김해 등 을 능가하는‘으뜸 교육도시’ 를 만들어야 한다. 이를 위해서는 가장 우선 적인 과제는 지역에 명문 고등학교를 육성하는 일일 것이다. 대학입시를 중심으로 교육시스템이 구축되고 있는 우리나라의 현실을 감안할 때 양 산에 다수의 명문 고등학교가 탄생한다면 양산의 교육은 비약적인 발전

칼럼-양산의 미래. 한국의 미래 185


을 하게 될 것이다. 명문 고등학교 육성은 양산지역 학생의 타 지역 유출을 방지할 수 있는 가장 효과적인 대책이다. 최근 중학교 3학년 학생들의 타 지역 유출 현황 을 보면 2010년의 경우 총 3천520명 중 487명(13.8%), 2009년 총 3천 482명 중 510명(14.6%), 2008년 총 3천347명 중 385명(11.5%)으로 해 마다 10명 중 1명 이상이 타 지역으로 전출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초등학교 고학년부터 시작되는 외부유출을 감안하면 사정은 더 심각하 다. 이러한 현상을 막기 위한 특단의 대책이 요구되는 것이다. 이를 위해 양산관내 고등학교의 상위권 대학 진학률을 높일 수 있는 방안을 강구하 고 학생들이 관내 고등학교로 진학하도록 실질적인 유인책을 개발하여 시행해야 한다. 그러기 위해서는 교육경비 보조율을 점차적으로 높여 초・중등학교 전인교육은 물론, 외국어 및 논술교육을 강화하고 우수교 원 확보와 학교 교육여건 개선사업도 확대할 필요가 있다. 또한 양산시 인재육성 장학기금 200억원을 조속히 모금하여 관내 고등학교 진학을 유도하는 상당한 수준의 장학금을 지원하고 효과적인 대학입시 지원 프 로그램을 도입하여 시행해야 한다. 아울러 저소득층 학생들에게 온라인 학습공간을 지원하고, 균등한 교육기회를 위한 장학금 지급과 교재비 지 원을 통해 교육격차 해소와 다양한 학습기회 제공을 위해 노력해야 한다. 최근 양산고가 자율형 공립고로 지정되고 효암고가 기숙형 고교로 선 정되었으며, 지역 고교의 전반적인 대학 진학률이 높아지는 등 양산교육 이 새로운 도약기를 맞고 있다. 양산교육의 백년대계를 위한 초석을 놓는 다는 차원에서 우리 지역의 인재를 기르고 다른 지역의 학생들까지 양산 으로 유인할 수 있는 효과적인 대책을 마련해야 한다.

186 윤영석의 희망노래


양산은 또한 문화도시를 지향해야 한다. 시민의 교육수준과 삶의 질이 점차적으로 높아지면서 시민의 문화향유에 한 욕구도 지속적으로 높아지 고 있다. 문화예술은 시민의식 함양을 위한 기초자산이기도 하고 창의력 을 진작하는 바탕이기도 하다. 따라서 다양한 문화예술 프로그램을 어린 학생 시절부터 체험할 수 있도록 여건을 만들고 시민들도 일상생활 속에 서 문화예술을 즐기고 배울 수 있는 여건을 조성해야 한다. 21세기는 문화의 세기라고 한다. 문화를 통해서 도시의 경쟁력을 제고 하고 다른 도시와 차별화하여야 한다. 이를 위해서는 양산의 문화적, 역 사적 스토리를 발굴하고 창조하여 양산을 문화적으로 풍성한 고장으로 만들어야 한다. 양산은 신라시대 박제상의 역사적 이야기가 있고, 대표적 동요인‘고향의 봄’ 의 탄생지이기도 하다. 웅상의 농청장원놀이(農廳壯 元)는 농경민족인 우리 민족의 문화적 특성을 그대로 담고 있다. 원동면 용당리의 가야진사에서 매년 지내는 용신제(龍神祭)는 낙동강과 황룡의 설화를 바탕으로 매우 독특한 제례의식을 올리고 있고, 화제리는 민족문 학 작가인 요산 김정한의‘수라도(修羅道)’ 라는 소설이 태어난 배경장소 이다. 이러한 문화적 요소들을 잘 가꾸고 지속적으로 스토리를 더해 나간다 면 시민들이 문화적이고 역사적인 도시에서 살아간다는 자부심을 느낄 수 있고, 또한 매우 훌륭한 관광 상품으로도 활용할 수 있다. 특히 관광산 업은 문화적인 요소를 결부시키지 않으면 경쟁력을 갖추기가 힘든 분야 이다. 따라서 양산의 문화관광 분야의 경쟁력을 높이기 위해서는 문화적, 역사적 요소들을 발굴하고 활성화 시키는 것이 매우 중요하다. 문화관광산업은 지역경제에 큰 보탬이 될 수 있는 산업이다. 한 연구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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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하면 외국인 관광객 1인당 지역경제에 100만 원 이상의 수익을 가져다 준다고 한다. 또한 관광산업은 음식업, 숙박업, 운수업, 소매업 등에 광범 위한 효과를 낳기 때문에 지역 경제 활성화를 위해 적극적으로 키워야 할 산업이다. 양산의 많은 관광자원과 부산대학 병원이 갖고 있는 의료 인프 라를 잘 조합한 의료관광의 전망도 밝아지고 있다. 일자리를 창출하고 지역경제를 활성화하며 시민들의 삶의 질을 향상시 키기 위해서는 문화산업과 관광산업을 적극적으로 발전시켜야 하며, 삽 량문화축전도 지역경제를 살리고 시민들의 문화향유기회 확대라는 측면 에서 지속적으로 개선해나가야 할 것이다. 교육과 문화적인 경쟁력 강화 는 양산이 선진문화도시로 도약하는 디딤돌이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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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영석칼럼] 양산의 미래, 한국의 미래④

모두가 잘사는 도시 양산을 위한 과제

지금 우리사회는 사회적 불평등이 날로 심화되고 있다. 신자유주의의 그늘 속에서 부익부빈익빈 현상이 과도하게 진행되고 있는 것이다. 이러 한 상황이 지속되면 공동체 의식을 해치고 갈등과 분열이 가속되어 국민 적 통합을 매우 어렵게 한다. 이러한 사회적 불평등은 국가차원에서 뿐만 아니라 지역정부 차원에서도 불평등을 해소하기 위한 노력을 전개해 나 가야 한다. 우리 양산은 특히 급속한 도시화와 신도시 조성으로 인해 유입된 인구 가 많아 시민통합을 위한 노력이 매우 중요하며 지역에서는 이러한 부분 에 각별한 정책적 배려가 필요하다. 이와 같은 시민통합과 함께 저소득 층, 노인, 장애인 등 사회복지 차원의 배려가 절실한 분들에 대한 복지프 로그램을 촘촘하게 만들어서 사각지대가 없도록 세심하게 배려하여야 한 다. 복지는 지역정부가 시혜를 베푸는 것이 아니라 시민의 기본적 권리에

칼럼-양산의 미래. 한국의 미래 189


해당하는 것이다. 우리 양산시에서도 지역 내의 복지사각지대를 없애기 위해 아동을 동 반한 노숙자, 거주 불명 또는 말소자, 공용화장실과 놀이터 등을 전전하 는 빈곤계층에 대한 실태조사를 벌이는 등 적극적인 사회복지 정책을 추 진하고 있다. 또한 최근에 웅상 종합사회복지관을 건립하는 등 복지시설 확충에도 주력하고 있다. 나아가 여성친화도시 조례 제정 및 여성친화도시 선포, 한국 양성평등 교육진흥원 남부센터 개원, 여성특별설계구역 조성 등을 역점시책으로 추진하여 여성가족부에서 선정하는‘여성친화도시’ 로 지정된 바 있다. 이러한 시책을 통해서 여성들이 대접받는 도시환경을 조성하고 여성들의 사회진출을 활성화하는 효과를 거두고 있다. 우리 양산은 도시의 지속적인 성장과 발전을 위해서 기존의 제조업 육 성 및 창업을 통한 일자리 창출과 함께 부산, 울산 등 주변 대도시로부터 의 인구유입을 지속적으로 추진해야 한다. 이를 달성하기 위해서는 양산 이 매우 인간적이고 따뜻한 복지도시라는 이미지를 구축해야 하며 다양 한 복지프로그램이 그 근간이 되어야 한다. 노인장기요양보험의 안정적 정착을 통해 노인과 부양가족의 부담을 완 화하고 노인치매 예방 및 의치보철대상자 확대 등 노인을 위한 의료서비 스를 강화하여야 한다. 또한 장애인 복지기금 및 여성발전기금의 적절한 활용을 통해 사회적 약자 계층에 대한 편의시설 확충 등 복지서비스를 강 화하고 노인, 장애인, 여성들의 사회참여와 소득창출을 위한 일자리 사업 도 적극 추진하여야 한다. 저소득층 주민들을 위해서도 생활안정과 자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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능력 향상을 위해 공공일자리를 개발하고 사회적 기업 설립을 활성화하 여야 한다. 육아 및 보육정책도 매우 중요한 부분이다. 양산은 젊은 부부들이 많이 살고 있어서 이분들에게 도움을 주고 아이들의 성장 발달을 도와줄 수 있 는 실질적인 보육프로그램을 개발하고 시행하여야 한다. 유치원 및 어린 이집의 무상급식을 확대하고 육아 및 보육비 지원을 위한 예산을 확대 편 성하여야 한다. 우리나라의 미래 성장 동력에 가장 위협적인 요소는 바로 저출산의 문제이다. 세계적으로도 심각한 우리나라의 저출산 문제를 극 복하기 위해서는 육아 및 보육정책이 매우 중요하다. 우리 사회에서 소외 를 받고 있거나 시장경제체제의 경쟁 속에서 어려움을 겪는 계층에 대한 따뜻한 배려는 우리 사회를 지속가능하게 하고 국민통합을 통해 더 큰 발 전의 에너지를 모아 낼 수 있는 기폭제가 될 것이다.

칼럼-양산의 미래. 한국의 미래 191


[윤영석칼럼] 양산의 미래, 한국의 미래⑤

대변화의 소용돌이가 몰아치는 세계정세

세계의 정치, 경제, 안보 지형도가 출렁거리고 있다. 1990년대초 구소 련의 붕괴로 냉전시대가 막을 내린 이후 미국주도의 자본주의 체제가 오 랫동안 지속하리라던 그 믿음도 점점 약화되고 있다. 이는 초강대국 미국 에 도전장을 내민 새로운 강국 중국의 부상과 결부되어 있다. 소위 G2라 불리우는 두 강대국이 미래세계의 주도권을 놓고 본격적인 경쟁을 시작한 것으로 보인다. 이들 미국과 중국이 겨루는 싸움의 한가운 데에 우리나라가 있다. 지구의 지진대는 일본 등 환태평양을 따라가지만 미국-중국간의 지정학적인 지진대는 한반도를 가로질러 형성되고 있다.

미국-중국의 주도권 경쟁 격화 최근 천안함 폭침사건과 북한의 연평도 포격 사태 이후 한국과 북한간

192 윤영석의 희망노래


에 형성되고 있는 긴장, 그리고 미국과 중국간의 관계악화는 한반도를 둘 러 싼 미래의 정세가 결코 간단치 않을 것임을 말해주고 있다. 이것은 시 작에 불과할지도 모른다. 본격적인 경쟁관계에 접어들기 시작한 미국과 중국이 상호간의 직접적인 갈등보다는 한국과 북한을 통해 상대방을 탐 색하고 자극해보려는 의도도 엿보이고 있다. 한반도를 둘러싼 강대국들의 충돌은 역사적으로 반복되어 왔다. 대표 적 사례로 조선중기에 명나라와 청나라의 패권충돌이 있었고 조선말기에 는 청나라와 일본, 일본과 러시아가 한반도를 놓고 전쟁을 벌였다. 그 때 마다 가장 큰 피해를 본 것은 우리나라였다. 21세기초부터 시작된 미국과 중국의 초강대국을 향한 경쟁의 결말은 어떻게 될 것인가? 우리나라의 미래도 그에 큰 영향을 받을 것임은 의심 의 여지가 없다. 변화하는 국제정세의 소용돌이를 극복하고 부강한 대한 민국을 만들 수 있는 전략적 리더쉽이 그 어느 때보다 크게 요구되는 것 이 바로 지금이다.

세계경제의 중심축 변화 가속화 정치 외교 안보적인 측면뿐만 아니라 경제적인 측면에서도 세계경제의 중심축이 변화하고 있다. 미국, 유럽, 일본 중심의 경제체제에서 중국, 인 도, 러시아, 브라질 등 브릭스(BRICs)가 주요국가로 부상하고 있는 것이 현실이다. 이들 국가는 광대한 국토, 자연자원, 무한한 노동력 등을 바탕 으로 세계경제의 중심권으로 급속히 진입하고 있다. 중국은 2010년 일본 을 제치고 경제규모에서 세계2위로 올라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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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적 투자은행이자 경제예측기관인 미국의 골드만삭스(Goldman Sachs)는 30년 후인 2040년에 세계 1위의 경제대국은 중국이 될 것이라 고 예측하고 있으며, 2위 미국, 3위 인도, 4위 브라질. 5위 러시아 등으 로 재편될 것이라고 예측하고 있다. 2007년 리만브라더스 경제위기 이 후 많은 경제학자들은 중국이 세계1위의 경제대국이 되는 시기가 2030 년으로 앞당겨질 것으로 예상하고 있다. 중국의 부상은 우리나라에 기회이기도 하지만 큰 위협이기도 하다. 기 회인 측면은 세계에서 가장 큰 시장인 중국을 대상으로 우리 상품을 많이 팔 수 있다는 것이다. 실제로 금년도 한-중간의 무역액은 2,000억 달러 에 이른다. 이는 우리나라의 대 미국, 대 유럽연합 무역액을 합친 것보다 큰 규모이다. 2015년에는 3,000억 달러에 이르러 미국, 일본, 유럽연합 을 합친 것보다 많아질 것으로 예측된다. 우리나라 경제의 대외무역 의존도가 85%에 이르는 점을 감안할 때 앞 으로‘차이나 변수’ 는 우리 경제에 엄청난 영향을 미치게 될 것으로 예상 된다. 더구나 중국이 추구하는 대외 경제전략은 상당부분 우리나라와 겹 치기 때문에 우리나라가 더 분발하지 않으면 급속히 빠른 속도로 해외에 서 우리 시장이 잠식당할 수 있다.

중국의 부상에 대비한 국가전략 필요 2011년 금년부터 시작되는 중국의 제12차 5개년계획은 그동안의 양적 성장으로부터 질적 성장으로의 전환을 천명하고 있다. 이에 따라 국가적 으로 친환경에너지, 첨단장비, 환경보호, 정보통신 등 7대 전략산업을 선 정하여 집중적인 지원을 할 계획이다. 이제부터는 고도의 기술력으로 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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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한 첨단산업으로 고부가가치 상품을 만들어 경제선진화를 이루겠다는 것이다. 중국 경제구조의 변화에 대해 가장 경계심을 갖고 대비해야 할 나라는 바로 우리나라다. 우리나라가 처한 경쟁환경의 차원이 바뀌고 있음을 인 식해야 한다. 그동안 우리나라는 상대적으로 인건비가 높은 미국, 일본, 유럽과의 경쟁에서 저임의 노동력을 바탕으로 기술 및 품질향상을 통한 가격경쟁력 우위를 활용해서 수출확대와 경제성장을 이루어왔다. 그러나 중국이 본격적인 첨단산업화를 실현하면 우리 중소제조업은 물 론 전자, 자동차, 조선 등 기술력이 우위에 있는 분야도 중국 기업들에 시 장을 뺏길 수 있다. 즉 우리보다 인건비가 저렴한 중국이 우리의 주력산 업인 전자, 자동차, 조선 등에서 우리의 기술력을 추월하는 상황이 도래 하고 있는 것이다. 이에 따라 중국이 질이 좋은 제품을 낮은 가격으로 내 놓아 우리나라의 수출상품 경쟁력이 큰 타격을 받게 될 수 있다. 실제로 지난 10여 년간 세계1위의 위상을 자랑했던 조선업이 2009년 중국에 1위 자리를 내주었고 자동차생산량은 이미 중국에 추월당한지 오 래이다. 전자, 정보통신산업 분야에서도 기술격차가 빠른 속도로 줄어들 고 있다. 이에 대한 대책은 우리나라가 경쟁력 있는 산업분야의 기술력과 연구개발 능력을 획기적으로 제고하여 중국과의 격차를 벌리는 수밖에 다른 방법이 없다. 특히 젊은이들의 창의적 아이디어와 신지식을 최대한 활용할 수 있도록 지혜를 모아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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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치 경제적 정세변화를 극복하는 전략적 리더쉽 긴요 미국 중심의 세계 정치 경제체제의 붕괴, 그리고 북한의 급변사태와 같 은 한반도 내부적인 변수 등 앞으로 우리나라가 극복해야 할 과제는 첩첩 산중이다. 이러한 중대과제들을 뚫고 국가를 반석위에 올려 놓는 제1차 적인 역할은 정부와 국회 등 범정치권이 맡을 수밖에 없다. 그런데 정치 권이 국가의 미래에 대한 장기적인 전략보다는 눈앞의 정략적 이해관계 에 사로잡혀 날을 새우며 갈등하고 있는 모습을 보는 마음은 답답하기만 하다. 소용돌이 치듯 변화하고 있는 국제정세를 정확히 분석하고 예측하여 우리나라가 나아가야 할 방향을 명확히 해야 하며 대내외적인 변수들에 대응할 수 있는 세부전략들을 치밀하게 수립해서 대응을 해야 한다. 이 렇게 해야 한반도를 가로질러 형성되고 있는 지정학적인 대지진을 슬기 롭게 극복할 수 있다. 오천년을 이어 온 유구한 역사를 더욱 빛나게 만들 어 세계속의 강국으로 거듭나는 대한민국의 역사를 우리 세대가 만들어 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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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영석칼럼] 양산의 미래, 한국의 미래⑥

전환기의 국제관계와 외교 안보전략

동아시아는 강대국들의 힘이 밀집된 지역이다. 한반도를 중심으로 중 국, 러시아, 일본, 그리고 미국 등 세계 4대강국이 치열한 각축전을 벌이 고 있다. 우리는 냉전으로 분단의 아픔을 겪었고 북한과 대치로 매년 30 조원을 국방비로 지출하고 있으며 60만의 젊은이들이 군복무에 청춘을 바치고 있다. 우리 민족은 국제적인 역학관계에 많은 영향을 받아왔다. 조선시대 임 진왜란, 조선말기의 청・일전쟁, 러・일전쟁으로 전쟁터가 되었고 이후 일본의 식민지라는 치욕을 겪었다. 자본주의와 공산주의의 대결이 6. 25 전쟁으로 이어져 남・북한 합쳐 150만명의 사망자와 360만명의 부상자 가 생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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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족융성 위해 국제적 역학관계 적극 활용 우리나라는 국제관계를 잘 활용한 때는 융성했고 잘 활용하지 못한 때 는 수난을 겪어 왔다. 고려시대 서희는 거란의 침략에 맞서 국제관계를 이용하여 침략을 물리치고 강동6주를 회복했다. 반면 조선시대 인조는 국제관계를 잘못 읽어 병자호란과 정묘호란이라는 큰 국난을 당했다. 지금 한반도를 둘러싼 국제정세는 격동적인 상황을 연출하고 있다. 미 국과 중국은 세계 최강대국이 되려는 힘겨루기를 하고 있다. 북한은 3대 세습, 빈곤, 국제제재로 인해 머지않은 미래에 급변사태가 예고되고 있 다. 이러한 국제정세 속에서 민족융성을 위한 현명한 대응전략을 만들어 내야 한다.

지속적 경제번영과 민족의 평화통일 이뤄내야 국가전략에 있어 중요한 것은 장기적 국가목표이다. 우리는 세계가 '한 강의 기적 ‘이라고 말하는 번영을 지속하여 세계에서 가장 잘사는 나라를 만들어야 한다. 또한 국민의 안전과 평화를 보장하기 위해 평화통일을 이 뤄내는 것도 매우 중요한 목표이다. 지금 세계는 미국과 중국이 경쟁을 본격화하고 있다. 국력은 경제력, 군사력, 외교력에 좌우된다. 중국은 경제력에서 미국을 급속히 따라 잡고 있다. 세계적 예측기관들은 2030년대는 중국이 경제규모에서 1위가 될 것이라 보고 있다. 그러나 미국과 대등한 군사, 외교력은 2050년에나 가 능할 것으로 보고 있다. 모두 알고 있는 바와 같이 통일은 결코 쉬운 일이 아닐 것이다. 미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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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 일본, 러시아 등 강대국들이 깊이 연관되어 있다. 그렇지만 우리는 이뤄 내야 한다. 분단으로 인한 전쟁가능성, 막대한 국방비 지출을 막기 위함은 물론이고 세계적인 강국으로 발돋움하기 위해서도 통일을 포기해 서는 안 된다. 통일에 대해서 여러 분석이 있지만 긍정적 전망이 많다. 세계 1위 투자 은행인 미국 골드만삭스는 2050년 통일한국은 세계7위의 경제규모와 세 계2위의 국민소득을 가진 경제대국이 될 것이라고 예측했다. 현대그룹 산하 현대경제연구원은 통일비용은 1,730조원이지만 이익은 2,417조원 이 될 것이라 추산했다.

대한민국 주도로 실현하는 평화통일 통일은 대한민국이 주도해서 이루어야 한다. 이를 위해서는 국제 역학 관계를 잘 활용해야 한다. 현재 미국과 중국의 경쟁구도에서 한반도는 매 우 중요하다. 이를 잘 활용하면 우리는 민족번영을 이루어 낼 수 있지만 대응을 잘못하면 큰 시련을 겪을 수도 있다. 우리는 국제적 권력이동의 과정에 대한민국의 미래의 이익이 무엇인 지, 국가적 목표는 무엇이어야 하는지 국제 역학관계를 어떻게 활용해야 하는지 예측 가능한 상황변수를 토대로 치밀한 국가전략을 만들어내야 한다. 향후 북한의 미래에 대한 예상은 크게 세 가지로 볼 수 있다. 그것은 북 한체제가 경제난 등으로 붕괴하거나 외부세력에 의해 강제로 제거되거나 아니면 3대 세습에 성공하여 항구적으로 존속하는 경우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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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러한 세 가지 경우의 수는 상황에 따라 가변적이다. 세 가지 중 북한 체제의 항구적인 존속은 막대한 분단비용을 초래하고 민족의 미래를 어 둡게 만드는 것이다. 외부세력에 의한 강제제거 또한 전면전으로 비화할 수 있는 위험성이 있다. 따라서 북한체제의 자체붕괴가 가장 바람직하다 고 할 수 있을 것이다.

북한의 급변사태에 대응방안 개발 정부에서는 북한체제의 붕괴가 멀지 않았다고 보고 있는 것 같다. 그 근거는 약 10년간 70억달러에 달하는 금액을 지원했던 한국의 대 북한 지원이 중단되어 북한의 경제난이 매우 심각한 수준이고 김정일의 수명 이 다했으며 3대 세습에 대한 북한주민들의 민심이반이 심각한 수준이라 는 것이다. 그러나 북한정권의 붕괴는 중국과 밀접하게 연계되어 있다. 중국은 북 한을 중국의 안전을 위한 완충지대로 보고 있다. 중국은 1949년 6. 25전 쟁에 개입하여 20만명이 생명을 바쳤고 모택동의 아들인 모안영도 이 전 쟁에서 목숨을 잃었다. 그만큼 북한은 중국에 있어 중요한 존재이다. 더구나 중국은 향후 상당한 기간 동안은 사회주의적 자본주의 국가체 제를 그대로 유지할 전망이다. 이에 따라 사회주의 동맹국인 북한의 붕괴 는 국내외적으로 중국공산당의 입지를 극도로 축소시킬 수밖에 없으므로 중국은 북한의 붕괴를 그냥 보고 있지는 않을 것이다. 당분간 중국은 북한의 존속을 위한 지원을 계속 해 나갈 것이다. 국제 사회의 비난을 피해서 지원할 수 있는 방법은 얼마든지 있다. 중국의 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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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지도자인 시진핑은 6. 25전쟁에 대한 중국의 참전을‘위대한 항미원조 전쟁’ 이라고 규정하고 계속적으로 북한의 새 체제와 우호 협력할 것임을 천명하고 있다.

중국의 대 북한 지원을 중단시킬 수 있는 지혜 북한의 미래가 중국에 상당부분 달려 있는 것이다. 북한을 두둔하는 중 국이 밉지만 이것이 바로 현실이며 중국이 우리의 이익과 같은 방향을 취 하도록 만드는 것이 필요하다. 국가이익에 따라 어제의 적이 오늘의 친구 가 된다. 중국이 대한민국을 지지하는 것이 유리하다고 생각할 때는 그 입장이 바뀔 것이다. 어떻게 이러한 판을 만들어낼 것인가 하는 것이 바로 우리가 당면한 과 제이다. 동아시아에서 중국 일방의 독주는 중국을 위해서도 동아시아 전 체를 위해서도 결코 바람직하지 않다. 따라서 우리는 동아시아의 세력균 형을 위해 미국과의 군사적, 외교적 동맹을 지속적으로 중시해야 한다. 그러나 중국과도 경제, 문화협력 관계도 더욱 발전시켜나가야 한다. 이 미 중국이 우리경제에 차지하는 비중이 20% 이상으로 미국을 압도하는 상황에서 중국과 관계가 약화되면 우리의 발전을 위해 바람직하지 않다. 또한 중국이 우리와 긴밀한 이해관계를 갖고 있어야 중국을 우리 편으로 끌어들일 수 있다. 중국이 세계의 대국으로 부상하기 위해서는 막강한 군사력과 외교력을 가진 미국을 극복해야 한다. 이것은 결코 쉬운 일이 아니다. 미국은 앞으 로 중국에 대한 견제를 강화할 것이다. 경제적으로 기축통화인 달러를 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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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금융공격 뿐만 아니라 군사적 충돌까지 불사할 것이다.

세계 초강대국을 향한 미-중간 경쟁구도 활용 우리는 미국과 중국의 대결국면에서 우리나라의 국익에 도움이 되도록 상황을 만들어야 한다. 특히 중국으로 하여금 대한민국이 매우 중요한 국 가임을 깨닫게 해야 한다. 실제로 향후 미국의 중국에 대한 군사적 견제 에 있어 가장 중요한 공간은 서해바다가 될 확률이 크다. 또한 미국의 달 러 기축통화 체제에 맞서 중국의 위안화를 세계의 기축통화로 만들기 위 해 한국경제가 매우 소중한 존재가 될 것이다. 더구나 중국이 세계의 대국으로 올라서기 위해서는 인권, 자유, 민주주 의 등 인류의 보편적 가치에 부응하지 않을 수 없는데 세계최악의 독재국 가인 북한을 엄청난 비용을 들여가며 두둔하는 것이 더 이상 어려운 시기 가 분명히 올 것이다. 북한은 세습체제하에서는 독자적 생존이 어렵다. 생존을 위해서는 개 방을 해야 하는데 개방은 세습체제에 극약과 같은 것이기 때문이다. 결국 은 중국의 지원을 받아 연명을 해나가야 하는데 북한에 대한 중국의 지원 을 중단하도록 상황을 만들어 낸다면 북한의 자연붕괴를 통한 평화적 통 일을 실현할 수 있다.

평화통일을 통한 민족 번영의 길 만들어야 지금 북한은 3대 세습이라는 중대한 국면에 처해 있다. 이를 위해 천안 함 폭침, 연평도 포격 등 대내외 긴장을 조성하고 중국과 러시아를 자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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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으로 끌어들이기 위한 전술을 구사하고 있는 것이다. 이러한 때에 전쟁 을 피하고 북한에 대한 중국의 지원을 중단하도록 만드는 지혜로운 대응 이 매우 중요하다. 미국 등 기존의 동맹들과 우호관계를 계속 유지하는 한편, 중국이 미국 의 견제를 극복하고 세계적 대국으로 가고자 하는 중요한 길목을 우리나 라가 지키고 있음으로써 중국이 대한민국의 미래와 이익에 동조하지 않 을 수 없는 구도를 만들어내는 것이 필요하다. 북한의 자체붕괴를 만들어 내고 민족지상의 과제인 평화통일을 실현하는 치밀한 전략을 만들어 일 관성 있게 추진해 나가야 한다. 앞으로 30년 이내에 8천만 이상의 인구를 가진 통일 한국, 세계적 경 제기관인 골드만삭스의 예측과 같이 경제규모에서 세계 7위 이상, 1인당 국민소득에서 세계최고인 우리나라, 그리고 중국이라는 초강대국과 국경 을 맞대고 있으면서도 민족국가로서의 자부심과 문화적 자주성을 발휘하 고 첨예한 국제관계의 조정자로서 역할을 하는 대한민국을 만들기 위해 우리 모두의 힘과 지혜를 모아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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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영석칼럼] 양산의 미래, 한국의 미래⑦

새로운 세계경제질서와 한국의 대응

서민의 삶을 보듬어 주는 경제정책 실천해야 과도한 물가와 개인부채 등으로 서민경제는 어렵기만 하다. 우리나라 전체의 경제규모는 계속 커지고 있다는데 서민의 삶은 왜 이리도 점점 팍 팍해지는 것인가? 행복한 삶은 언제나 가능하련가? 그래도 다시 삶의 희 망을 갖자. 전 세계적으로도 경제가 매우 어렵다. 유럽 금융위기에 이어 미국도 경 제 주도국의 지위를 잃어 가고 있다. 미국은 부족한 재정을 메우기 위해 2009년부터 매년 1조 달러의 화폐를 찍어내고 있다. 이는 세계 13위인 우리나라의 연간 국민총생산액과 맞먹는 규모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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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 및 유럽의 퇴조와 브릭스 국가의 도약 이러한 가운데 중국, 인도, 브라질, 러시아 등 소위 브릭스(BRICs) 국 가의 경제는 그야말로 일취월장하고 있다. 전통적인 부자나라인 미국, 유 럽의 약세와 대비하여 브릭스 국가들이 도약하고 있는 것이다. 바야흐로 세계경제의 지각변동이 전개되고 있다고 할만하다. 이러한 세계경제의 변동기를 잘 타고 넘어 지속적인 경제성장을 달성 하여 부강한 국가를 만들고 국민의 삶의 질을 높이는 것이 바로 우리 정 부가 해결해야 할 최우선적인 과제이다.

산업의 수출경쟁력 제고와 신성장동력 개발 우리나라는 세계에서 가장 전형적인 무역경제이다. 우리 경제의 85% 가 수출과 수입 등 무역에 의존하고 있다. 이런 현실에서 우리 상품의 수 출경쟁력을 높여 수출을 확대하고 국가경제의 전반적인 규모를 키우는 것이 중요하다. 이를 위해서는 우리나라 제조업의 기술 및 디자인 경쟁력을 높여서 중 국, 인도 등의 수출제품보다 더 높은 고부가가치 상품을 만들어야 한다. 또한 떠오르는 경제대국인 중국, 인도 등과 경쟁하여 세계시장에서 우리 나라의 경쟁우위를 만들어 낼 수 있는 신성장동력산업을 국가적인 차원 에서 지속적으로 발굴해야 한다.

서민의 삶을 보듬어 주는 균형 있는 경제정책 한편 새로운 일자리를 창출하기 위해서는 제조업 중심의 산업구조로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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터 벗어나 금융, 유통, 통신, 의료, 관광 등 국민의 60%가 종사하고 있는 내수산업을 육성하고 발전시켜야 한다. 이렇게 해야 대기업들이 수출을 해서 벌어들인 돈이 서민들의 수입으로 귀착될 수 있고 국민의 소비심리 를 진작하여 국내경기를 촉진 할 수 있는 것이다. 또한 날로 심화되고 있는 빈부격차 문제를 해소하기 위해서는 수도권 과 지방, 그리고 도시와 농촌간의 균형발전을 추구해야 한다. 이렇게 해 야 전 국민적인 통합이 가능하고 이를 토대로 지속적이고 건전한 국가발 전을 기약할 수 있는 것이다.

저출산 고령화시대에 맞는 정책 수립 필요 앞으로 우리나라의 지속적인 성장에 큰 걸림돌이 될 수 있는 것이 바로 심각한 저출산과 급속한 고령화 현상이다. 통계에 의하면 2010년 우리나 라의 출산율은 1.21명으로 세계평균 2.52명의 절반에도 못 미치는 세계 최저 수준으로 나타났다. 또한 현재 11% 수준인 65세 이상 노령인구 비 중이 2050년에는 40%로 증가할 것이라고 한다. 이러한 현상은 생산가능 인구를 감소시키고 노인의 의료비용 등 복지 재정 수요를 증가시킴으로서 국가의 성장잠재력을 급속하게 잠식하게 되 는 결과를 초래한다. 이를 타개하기 위해서는 출산율 제고를 위한 적극적 인 정책과 함께 노령자 일자리 창출, 기업의 정년연장 등 정책적이고 제 도적인 노력을 기울여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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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두가 잘사는 대한민국 건설을 위한 과제 자원도 부족하고 인구도 적은 우리나라의 경제가 지속적으로 성장하는 길은 세계시장을 개척하는 길 밖에는 없을 것이다. 이를 위해서는 산업의 수출경쟁력 향상을 위해 국가적으로 총력을 기울여야 하며 끊임없이 신 성장동력을 개발하여 육성해야 한다. 이러한 경제성장을 바탕으로 기업이 외국에서 벌어들인 돈이 국민의 실질적인 소득으로 돌아갈 수 있도록 서비스산업 등 내수산업을 진흥함 으로써 일자리를 창출해야 한다. 또한 사회안전망의 미비로 빈곤의 악순 환에 노출된 저소득층과 노령층의 고용과 복지를 안정화할 수 있는 제도 적 장치를 강구해야 한다. 잘 살수 있다는 희망을 갖자. 세계최고 부자이며 투자가인 워렌 버핏은 한국인은 지혜와 열정(Brain and Energy)이 있기 때문에 성공할 수밖 에 없다고 말했다. 변화하는 세계경제의 흐름을 타고 위기를 극복할 수 있는 지혜와 잘 사는 대한민국을 만들어 후손들에게 물려주겠다는 열정 을 갖고 우리 모두 다시 한 번 힘을 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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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영석칼럼] 양산의 미래, 한국의 미래⑧

국민의 이익과 복지를 위한 사회 문화정책의 방향

대한민국은 후손 대대로 영속할 수 있는 굳건한 정치, 경제, 사회체제 를 갖추고 있는가? 1950년대 이후 세계적인 냉전 속에서 우리나라는 북 한 공산주의 체제와 첨예한 체제경쟁을 해왔다. 그 과정에서 우리는 국력 의 근본인 경제규모를 키우는데 모든 자원을 총력적으로 투입하였고 그 결과 오늘날 세계 13위의 경제대국을 만들어 내었다. 우리나라의 경제성장을 위해 정부는 대기업 위주의 수출드라이브 정책 을 지향했다. 이러한 경제정책은 국가경제의 총량적 규모 확대에는 크게 기여했으나 빈부격차를 초래하였고 서민과 근로자층의 일정한 희생을 초 래할 수밖에 없었다. 우리나라는 불과 50년 전만해도 농업, 어업 등 1차 산업이 중심이 되는 사회였다. 이 시기에는 사람들 간에 부의 불평등이 크지 않았다. 모두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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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만고만한 삶을 이어가며 살았다. 따라서 누가 조금이라도 잘살게 되면 주위의 시샘을 받게 된다.“사촌이 논을 사면 배 아프다” 는 속담은 이와 같은 상황에서 생겨났다.

국민통합과 지속성장 위한 빈부격차 해소 이러한 속담은 비단 50년 전 과거의 이야기가 아니다. 지금도 우리들 내면의식 속에 깊숙이 자리 잡고 있고 심화되는 빈부격차 속에서 상대적 박탈감을 점점 크게 하는 요소로 작용한다. 오늘날 빈부격차는 브레이크 없는 자동차처럼 점점 가속도를 내고 있다. 수백 년의 자본주의 역사를 가진 미국, 유럽 등 서구사회에 비해 우리 나라 국민들은 빈부격차에 대해 매우 민감하게 반응하는 경향이 있다. 더 구나 대기업들을 창업한 1세대들과는 달리 2~3세대의 경우 특단의 능력 이나 노력 없이 막대한 자산을 물려받은데 대해서 우리나라 국민들이 느 끼는 상대적 박탈감은 매우 크다. 빈부격차는 국민들 간에 위화감을 조성하고 통합을 저해하며 사회체제 의 불안을 야기한다. 과도한 빈부격차를 그대로 두고 국민통합과 지속적 인 성장을 기대하는 것은 어렵다. 따라서 서민들의 아픔을 어루만지고 빈 부격차를 해소할 수 있는 사회복지 정책이 절실히 필요하다. 빈부격차를 해소한다고 현금 나눠주기식 복지정책에만 치중한다면 국 가의 성장동력은 금방 바닥을 드러내게 될 것이다. 저소득층에 대한 실질 적인 복지지원 확대와 함께 중소기업과 서비스산업 등을 육성하여 일자 리를 늘이는 것이 매우 중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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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육기회 균등으로 가난의 대물림 방지 이와 함께 가난을 대물림하지 않도록 교육기회를 균등하게 보장하는 것이 필요하다. 지금 우리 국민은 지나치게 높은 사교육비와 대학등록금 으로 인해 정말로 허리가 휠 지경이다. 이 문제를 그대로 두고서는 가난 이 대물림 되는 것을 막을 수가 없다. 과다한 사교육비를 줄이기 위해서는 공교육을 정상화하고 교사의 전문 성과 질적 수준을 높이기 위한 과감한 투자를 병행해야 한다. 또한 점수 위주의 경쟁모델에서 학교과정의 충실한 이행 및 학생의 잠재능력을 평 가하여 선발하는 방향으로 대학 입시제도를 변화시켜야 한다. 또한 교육방송의 강좌를 다양화하고 인터넷 무료강의의 질적 수준을 높이는 것이 필요하다. 나아가 저소득층, 농어촌 학생, 장애인 등에 대한 대학입학 우대 및 장학금 혜택을 확대하여 불리한 환경으로 제대로 교육 을 받지 못한 것을 사회적 차원에서 보완할 필요가 있다.

창조적 문화진흥으로 문화의 시대 선도 국민적 통합과 우리나라의 지속적 발전을 위해서는 창조적인 문화진흥 을 위해서도 많은 노력을 기울여 나가야 한다. 21세기는 문화적 창조성 이 경제의 기초가 되는 문화의 시대이다. 급속한 현대화, 서구화의 물결 속에서 전통문화는 빠르게 사라져가고 서양문화는 급속히 유입되면서 한 국문화의 전통성과 정체성을 잃어가고 있는 것이 현실이다. 전통문화를 현대적으로 잘 살려내고 이것을 창조적으로 계승해 나가는 것은 우리의 정체성을 살리고 국가브랜드와 국민적 자존심을 높이는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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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다. 한국적인 예술, 예의범절, 생활의식, 여가, 음식문화 등을 잘 살려 내고 현실에 맞게 발전시켜 나가는 지혜가 필요하다. 우리의 문화적 역량은 전 세계적으로 이름나 있다. 한류드라마, 한류음 악(K-POP)과 같은 한류문화가 아시아는 물론 유럽과 남미에까지 바람 을 불러일으키고 있다. 문화적 브랜드는 수출상품의 부가가치를 높이는 효과를 창출한다. 이것이 바로 문화의 힘인 것이다. 이러한 의미에서 한국고유의 정신적 가치와 전통문화를 보존하고 한국 적인 문화를 창달해 내기 위한 문화정책은 매우 중요하다. 창조적 문화진 흥은 통일시대를 대비하여 우리민족의 정체성을 살리고 민족적 통합을 이루어 낼 수 있는 중요한 기반이 될 것이다. 국민적 통합과 국가의 지속적 성장과 발전을 위해 빈부격차를 획기적 으로 해소해야 하며 잘사는 사람과 못사는 사람 간에 기회의 불균등이 발 생하지 않도록 교육정책을 수립하여야 한다. 또한 국민들이 문화를 향유 하는 기회를 마음껏 누리도록 하여 세계적인 문화국가로 문화의 시대를 선도해 나가야 한다. 이를 통해 국민들이 서로 화합하고 미래의 국가발전을 위해 함께 힘을 모아 세계 최고의 선진국을 만들어가야 한다. 또한 남북통일을 이루어 아 시아와 세계의 평화를 주도해 나가는 국가를 만들어야 하는 것이 오늘을 사는 우리가 짊어지고 있는 시대적 과제이다.

칼럼-양산의 미래. 한국의 미래 2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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