Good Vietnam 2019 Vol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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Good Essay

형이 쓰던 방에 들어서다 낯이 익은 이와

노트의 겉장에 <難作人間識字人2)>라는 붉

인간에게, 다시 말해 나 자신에게 절

마주쳤다. 베레모를 쓰고 시가를 문 <체

은 글씨가 또렷했다. 시간의 손이 닿지 않

망하지 않기 위해

게바라>였다. 고모는 상자에서 형의 유품

은 듯 글자들이 고스란히 제빛을 지닌 채

들을 하나씩 꺼내시며 말씀하셨다.

선명했다. 숨을 죽이고 겉장을 넘겼다. 한

ㅡ니 형을 너무 오래 가슴에 묻었어야. 이

줄의 글이 날이 선 칼처럼 놓여있었다.

제 이 무덤을 읎애야 때가 온 것 같응게 니가 알아서 하그라. 작은 성모상, 묵주, 액자 사진들, 탁상시 계, 잉크가 묻은 펜대, 두툼한 스프링 노 트 등을 손으로 어루만지며 마치 유언인 양 말씀하셨다.

- 프란츠 파농

2) 매천 황현 선생이 목숨을 끊으며 쓴 <절명시> 중에서: 秋燈掩卷懷千古(추등엄권회천고) 가을 등불 아래 책 덮고 지난 날 생각하니 難作人間識字人(난작인간식자인) 인간 세상에 글 아는 사람 노릇하기 어렵구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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