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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희전문학교 동지회 흥업구락부 관계보고 5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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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2) 국사편찬위원회, <국내외 항일운동 문서> 문서철명 : 延禧專門學校 同志會 興業俱樂 部 關係報告, 연희전문학교 동지회 흥업구락부 관계보고, 문서제목 : 要視察人의 言動 에 관한 건, 문서번호 : 京鍾警高秘 제8527호, 발송자 : 京城 鍾路警察署長, 발송일 : 1938년 09월 13일, 수신자 : 京城地方法院 檢事正 등, 수신일 : 1938년 09월 14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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興業俱樂部事件 關係者의 感想에 관한 건53)

그림 269 ▲1 53) 국사편찬위원회, <국내외항일운동문서> 문서철명 : 延禧專門學校 同志會 興業俱樂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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關係報告, 문서제목 : 興業俱樂部事件 關係者의 感想에 관한 건, 문서번호 : 京高特秘 제2206호, 발송자 : 京畿道 警察部長, 발송일 : 1938년 09월 20일, 수신자 : 京城地方法 院 檢事正 등, 수신일 : 1938년 09월 21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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經濟統制에 관한 懇談會開催 狀況報告에관한 件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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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4) 국사편찬위원회, <국내외 항일운동 문서> 문서철명 : 경제정보(경기도, 소화 15년 6월 ∼ 12월), 문서제목 : 經濟統制에 관한 懇談會 開催 狀況 報告에 관한 件, 문서번호 : 京經 第887號, 발송자 : 京畿道 警察部長, 발송일 : 1940년 06월 12일, 수신자 : 警務局 長 등, 수신일 : 1940년 06월 16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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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46.4.15 한국독립운동지혈사55)

김포지역 3.1독립운동에 대해서는 제7장 독립운동일람표 ‘경기도(3월 1일 부터 5월말일까지 상황’ 부분에 도표로 소개되어 있다. 일람표는 시군별 집회횟수, 집회인원, 사망인수, 부상자수, 체포자수, 교회 훼소, 학교훼소, 가옥훼소 등으로 구성되어 있다. 김포지역은 집회횟수 12회, 참가인언수 15,000명, 부상자수 120명, 체포 자수 200명으로 기술되어 있다. 이에 대하니 출처는 기록되어 있지 않다.

55) 박은식.「한국독립운동지혈사」, 서울신문사출판국, 1946.4.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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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도지」 (상권)56), 1955. 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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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6) 경기도지편찬위원회, 「경기도지」상권, 1955.11.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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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도지는 단기 1955년 11월 15일에 발행되었다. 도지는 총 3권으로 김포관련 3.1독립운동에 관련 내용은 <상권> 제8장 항일투쟁과 민족의 궐기, 제1절 기미독 립운동 464쪽에 간략하게 도표로 기술되어 있다. 도표는 3.1독립운동 관련 경기도지역 피해상황이다. 아래의 내용으로 구성되었 다. 시. 군 명, 집회횟수, 회집인원, 사망자, 구속자, 부상자 순으로 구분한 도 표이다. 3월 1일부터 5월말 일까지의 김포군의 만세운동 집회수 12회, 참여인원 15,000 명, 구속 120명, 부상자 200명으로 기록되어 있다. 이에 대한 출처는 박은식의「한국독립운동지혈사」(1955)에 의한 것임을 밝히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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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독립운동사Ⅱ57)

그림 277 ▲1 57) <한국독립운동사Ⅱ> 국사편찬위원회. 1966.12.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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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66-12-22 한국독립운동사Ⅱ58) 「한국독립운동사」 Ⅱ. 국사편찬위원회. 1966.12.22 이 책은 1966년 12월 20일에 발행되었으며 지역별로 3.1만세운동에 대해 기술하 고 있다. 266쪽 김포지역의 운동 일람표를 살펴보면 3월 22일 군하리 지역에서 400명이 시 위에 참여하였으며 주모자로 박용희(경성성서학원 여생도)로 기술하고 있다. 그 러나 경성성서학원 여생도는 이경덕(이살눔)으로 ‘박용희’는 잘못 기술하고 있 다. 같은 날 통진(군하리)에서 400명이 시위에 참여하였으며 일본 헌병 13명이 출동 하였다고 기술하고 있다. 3월 23일 양촌동59)에서 150명 시위참여, 같은 날 양화곶에서 100명, 같은 날 양 곡에서 2,000명이 시위에 참여하고 농민들이 2회에 걸쳐 면사무소와 주재소를 습 격하였으며 이와 관련 일본헌병이 12명이 출동하였고 60명이 체포되었으며 시위 대를 향하여 발포하였다고 기술하고 있다. 3월 24일 읍내에서 130명 시위, 3월 26일 감정리에서 23명 시위를 하였으며 김포 지역에서의 만세시위 횟수는 총 12회 15,000명이 참가하고, 부상자 120명, 200명 이 체포되었다고 기술하고 있다.

58)「한국독립운동사」Ⅱ. 국사편찬위원회. 1966.12.22 59) 현 김포시 양촌면을 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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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69-2-10 삼일운동실록60) 「3.1운동실록」 이용락. 금정. 1969.2.10/1994. 이 책은 1969년 이용락편, 삼일동지회에서 발행된 것을 1994년에 이용락 편저, 금정에서 재발행 되었다. 437쪽에 ‘(319)김포군 월곶리 의거’ 제목으로 김포지 역 만세운동에 대해 기술하고 있다. 김포지역의 여러 곳에서 발생한 만세운동 중 유독 월곶면 지역의 것만 소개하고 있다. 제목중 월곶면을 ‘월곶리’로 잘못 표 현하고 있다. 소개 내용 중 특징은 경성 이화학당에 수업하던 이경덕(이살눔) 여학생이 독립선 언서 수십 장을 옷속에 감추고 고향으로 내려와 성태영, 박용희, 조남윤, 윤종 근, 최복석 등에게 전달하였다는 것이 다른 자료에 없는 내용이다. 또한 보통학교 운동장에서 만세를 부르자 학생들이 따라 외쳤으나 일본인 교장이 제지를 하지 못했다는 내용도 소개하고 있다. 일경에게 체포된 군중들은 헌병대에서 일주일 후 태형으로 방면되었고, 만세 주 동자 6명은 구타를 당하였는데 유독 백일환에게는 고문 취조를 하였으며 ‘무기 파손죄’란 명목으로 서대문 감옥에서 미결수로 1년을 옥고 하다가 경성지방법원 에서 4년 언도를 받고 공소한 복심에서 감형되어 2년 언도를 받고 복역 중 장독 으로 병이 나서 보석 치료중 경찰서 지정 의사의 완치증명이 법원에 보고 되어 3 개월 만에 또 다시 입감되었다고 기술하고 있다. 내용 중 백일환의 나이가 82세임을 기술하고 있는 것으로 보아 기술된 내용이 백 일환의 구술에 의해 기록하고 있음을 나타내고 있다.

60)「3.1운동실록」 이용락. 금정. 1969.2.10/199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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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77 김포군지61) 「김포군지」(1)62) 김포군, 1977. 2 이 책은 김포군이 <김포군지 편찬위원회>를 구성 1962년부터 1967년까지 자료모 집과 편집 원고를 완료하여 1977년 발행한 군지이다. 3.1만세운동 내용은 제1편 김포군의 역사, 제2장 역사적 고찰, 제3절 근세사, (1)기미독립운동, ①김포군의 3.1운동에 기록되어 있다. 이 자료는 책에서도 밝히고 있듯이 전문적 지식을 가지고 기록한 것이 아니라 각 면 편집위원들을 임명하여 조사 모집한 내용을 토대로 서적과 투고 자료를 참고 하여 정리 기록한 것이다. 따라서 기록에 체계성이나 전문성의 부재가 있음을 이 책은 밝히고 있다. 만세운동과 관련된 일제시대의 기술은 박일양, 신민철, 최종호, 심두섭이 맡았 다. 이 책은 김포의 3.1독립운동 전개를 기술하는데 있어서 그 비중을 임철모와 임용 우를 중심으로 설명하고 있으며 상당 양의 지면을 할애하고 있는 것이 특징이 다.63) 이 자료에 의하면 (가) 3.1운동 당시 열사명단이 기록되어 있는데(75쪽) 임철모, 정인섭, 임용우, 성태영, 민홍기, 박용의(희), 조남윤, 조남선64), 당인표, 윤영 규, 백일환, 이경덕, 이은선, 심복녀65)(심혁성), 윤해영, 임성춘, 김도연, 박충 서 총 18명이다. 여기에서 김도연66)은 일본 동경에서 2.8독립선언 운동에 참가한 자이고 이은선, 심혁성, 윤해영, 임성춘은 지금은 인천광역시로 편입된 계양면 장기리(황허장터) 61)「김포군지」(1) 김포군, 1977. 2 62) 김포군지편찬위원회,「김포군지」1977.2.28 63) 김포군지의 김포 3.1독립만세운동 내용 중 임용우 부분은 월곶초등학교 윤형순 교장 이 기술한 자료를 조사위원에 1975년에 제출한 것이다. 윤교장이 기술한 임용우에 대 한 내용 전부는 임명덕(임용우 아들)의 필사본을 그대로 옮긴 것이다. <덕적도 3.1독립 만세운동 진리 조사> 19쪽 64) 조남선은 <김포군지>, 1977 자료에만 기록되어 있다. 월곶면 고양리 사람으로 의거망 명 하였으며 4년 후 귀국하여 사망하였다고 기술되어 있다. 65) 심혁성을 잘못 기록하고 있다. 이 명단 중 이은선, 심혁성, 임성춘, 윤해영은 당시 부 천군 계양면 황허장터 만세운동 참가자들이다. 66) 양동면 염창리, 현 서울 강서구 염창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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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서 만세운동을 주동한 자이다. 이 다섯 사람을 제외하면 총 13명이다. 판결문에 의해 김포지역(현재 김포지역)에서 만세운동을 주도하거나 참여한 자 중에 이 자료에서 빠진 명단은 다음과 같다. 박승각, 박승만, 김정국, 김정의, 이병린, 윤종근, 윤재영, 윤주섭, 전태순, 김남산, 민창식, 최우석, 최복석, 안 성환, 오인환, 정억만, 정인교 총 17명이다. 이 자료의 특징은 각면 편집위원 조사보고에 의한 기술로 되어 있어 재판판결문 이나 기타 자료에 나타나지 않는 내용들이 많은 점이 있으나 불확실한 사실도 많 다. 임용우의 경우 부천군 덕적도 덕적국민학교(사립) 교장으로 기술하고(75쪽) 있으 나 1993년도에 발행된 김포군지 1698쪽 임용우 기술부분에서는 명덕학교로 기록 되어 있다, 그러나 같은 책 임용우 열사의 소사에는 명덕학교로 바르게 기술하고 있다. 하지만 임용우가 명덕학교를 설립한 것으로 기술(78쪽)하고 있으나 옹진군 청 홈페이지 ‘덕적도의 3.1 독립만세 운동’ 자료에 의하면 명덕사립학교는 1907년 설립되었고, 임용우는 1912년 27세로 명덕사립학교에 교사로 부임해와 8 년간 근무하고 있었음을 밝히고 있다. 다른 자료에 없는 특징은 임용우가 1919년 2월 하순 천도교회의 연락을 받고 상 경하여 3월 1일 독립선언식에 참여하고 동월 3일 김포군 월곶면 군하리 면사무소 에서 만세시위를 주도한 것으로 기록하고 있다는 점이다.(78쪽) 3월 15일 임용우가 덕적면 명덕학교 운동회를 개최하여 독립만세 시위를 전개하 고 3월 16일 일본경찰에게 체포된 것으로 기록하고 있다.(78쪽) 그러나 재판 판 결문에 따르면 3월 29일 김포군 월곶면에서 임용우, 최복석, 윤영규에 의해 만세 시위를 전개하였고 덕적면 명덕학교 운동회가 4월 9일 개최한 것으로 기록하고 있다, 따라서 3월 15일 체포되었는데 3월 29일에 만세시위를 주도할 수는 없는 것이다. 일자가 잘못 기록된 것으로 보인다. 다른 자료에 나타나지 않은 인물이 기술되어 있는데 박용희이다. 판결문에 따르 면 박용희는 3월 22일 월곶면 군하리 만세시위를 주도한 것으로 기술되고 있 다.67) 이 자료에는 박용희가 월곶면 고양리 출신이며 만세운동에 참가한 후 만주로 망

67) 이병린의 판결문과 성태영, 백일환, 이살눔의 판결문에서 박용희는 월곶면 군하리 장 날 만세시위를 주도한 것으로 기록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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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하였으며 해방 후 귀국하여 사망하였다고 기술되고 있으나(75쪽) 박용희 유공 자 공적조사서에 의하면 박용희는 백일환, 성태영, 최우석, 조남윤, 이병린 등과 독립만세를 주도한 후 길림성으로 망명하여 한민회를 결성하여 활동했다.68) 김한식, 김영선과 함께 농장을 경영하여 군자금을 마련하여 제공하였고, 1933년 7월 일인살해 사건으로 소만교 국경으로 도피생활 중 해방되어 고향 월곶면 고양 리로 돌아와 농업에 종사하며 6.25전까지 민족청년단에서 활동하였다.69) 임철모에 대한 설명 중 정인섭, 이효원, 박충서 등과 밀의하여 진행계획을 협의 한 것으로 기술하고 있다.(76쪽) 그러나 판결문에 의하면 오라리장터 만세 시위 는 각각 전개된 것으로 파악되고 있다. 박충서가 이끈 시위대는 오후 2시에 전개되었고, 임철모, 정인섭이 주도한 시위 는 오후 4시경이었다. 어떤 자료나 재판 판결문에서도 만세시위를 함께 모의했다 는 기록이 없는 것으로 보아 같은 날 같은 장소에서 만세시위가 전개된 내용을 이후 기록자가 하나의 계획에 의해 주도된 것으로 파악한 것 같다. 대곶면 출신 만세시위 주도한 사람 가운데 이효원이 기술되고 있지만 내용출처가 불분명하다.(77쪽) 임철모, 정인섭 판결문에서도 나타나지 않고 있어서 모의를 같이하고 참여하였으나 체포되지 않고 이 기록을 조사하는 과정에서 전해들은 것 이 아닌가 한다. 또 77쪽에 임철모가 오라리장에서 만세시위를 주도한 설명에서 3월 23일을 3월 1일로 잘못 기술되고 있다. 박충서 열사의 기록에도 오기가 발견되고 있다. 오라리장을 현 명칭인 김포양곡 시장으로 표현하고 있다.(76쪽, 80쪽) 다른 자료에는 찾아 볼 수 없는 내용이 있는데 박충서 열사가 만세운동을 전개하 기 전 주재소 전화선을 절단하는 책임을 맡아 시도하다가 실패하였다는 내용이 다.(80쪽) 주재소에서 사전에 이러한 상황을 감지하고 본서로 전화연결이 되어 본서경찰이 출동했다는 것이다. 이 내용이 사실이라면 오라리장터 만세운동은 치 밀하게 준비된 거사였음을 증명하는 근거가 된다.

68) 박용희 유공자 공적조사서. 69) 박용희 유공자 공적조사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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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림 281. 1977년에 발행된 김포군지 P74쪽. 김포군의 3.1운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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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림 282. 1977년에 발행된 김포군지 P75쪽. 김포군의 3.1운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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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림 283. 1977년에 발행된 김포군지 P76쪽. 김포군의 3.1운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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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림 284. 1977년에 발행된 김포군지 P77쪽. 김포군의 3.1운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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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림 285. 1977년에 발행된 김포군지 P78쪽. 김포군의 3.1운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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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림 286. 1977년에 발행된 김포군지 P79쪽. 김포군의 3.1운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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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림 287. 1977년에 발행된 김포군지 P80쪽. 김포군의 3.1운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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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86-독립유공자 공훈록 제2권70) 「독립유공자 공훈록」 제2권 3.1운동편(상)71) 1986.12.25 국가보훈처에서 1984년 생존 애국지사 및 전문사학교수를 중심으로 “독립유공자 공훈록 편찬위원회”를 구성하여 1986년 발행되었다. 이 저작은 독립유공자로 추서 받은 사람이나 항일운동이 인정된 사람들을 중심으 로 백서형식으로 정리한 것이다. 특히 공훈록에 등재되어 있는 사람들은 대부분 독립유공자 심사위원회에서 사실관계에 기초해 엄격한 심사를 통해 추서 받은 자 들을 중심으로 서술되어 있는 것이 특징이다. 이 저작의 ‘제2편 3.1독립운동 참여자 명단’과 ‘제3편 지역별 3.1독립운동 공 훈록’에 3.1운동관련 김포출신들이 기술되어 있다. 69~316쪽 ‘제2편 3.1독립운동 참여자 명단’에는 성명, 당시연령, 출신지 또는 활동지, 거증문헌, 비고(공훈여부)등으로 구성되어 있다. 여기에 기록된 김포출 신 명단은 다음과 같다. (김도연)72), 김정의, 당인표, 민창식, (박용돈), 박승각, 박승만, (박용의), 박 용희, (박용우), (박철복), 박충서, 백일환, 성태영, 안성환, (오기빈), 오인환, 이병린, (이병철), 이흥돌, 이홍식, 임철모, 임용우, 전대순, (장세구)73), 정억 만, 정인교, 정인섭, 조남윤, 최복석, 최우석 이 중에서 (박용돈), (오기빈)은 판결문에 의하면 3월 22일 월곶면 만세시위 중 박용희가 면사무소로 몰려가 면서기 박용돈, 임원상, 오기빈에게 만세를 부르도 록 한 면사무소 직원이다.74) 따라서 공훈록 기록은 만세운동 참여자로 오해한 것 70) 독립유공자공훈록」 제2권 3.1운동편(상) 국가보훈처 1986 71) 국가보훈처.「독립유공자공훈록」 제2권 3.1운동편(상), 1986.12.25. 72) 명단 중 김도연은 양동면(현 강서구 염창동) 출신으로 보훈처에서는 김포출신으로 분 류하였다. 당시 1919년에는 김포, 통진, 양천의 3개 군을 병합하여 김포군이었다. 구 양 천군은 양동면과 양서면으로 조정되었다. 1963년 1월 1일부로 김포군의 양동면, 양서면 이 서울특별시로 편입되었다. 따라서 보훈처에서는 당시의 행정명칭을 따라 출신을 규 정하였다. 73) 현 서울 강서구 가양동 74) 판결문(성태영, 백일환, 이살눔), 경성지방법원, 1919.7.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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같다. 또 (박용의)75)는 월곶면 3월 22일 만세시위를 주도한 박용희를 오기한 것 이다. (박용우)도 박용희를 (이병철)은 이병린을 잘못 기술한 것이다. (박철복)76)은 대곶면 출신으로 양촌면 오라리장 만세시위를 주도한 임철모를 오 기한 것이다. (장세구)77)는 김포출신으로서 당시 학생으로서 3.1운동에 참여한 자이다. (김도연)은 김포출신78)으로 동경에서 2.8독립선언에 참여한 학생이다. ‘제3편 3.1독립운동 공훈록’(지역별) 에는 공훈대상자들의 개인 활동내역이 기술되어 있다. 이 자료는 3.1 만세운동을 참여하고 주도한 사실과 이로 인해 투 옥당한 내용 등이 담겨있다.79) 여기에 기록된 김포출신 명단은 다음과 같다. (김도연), 박승각, 박승만, 박충서, 성태영, 백일환, 윤종근, (이은선), 정인섭, 임철모, 임용우이다. 여기서 (김도연)은 동경에서 2.8독립선언 참여자이고, (이 은선)은 지금은 인천광역시로 편입된 계양면(당시에는 부천군 계양면) 황허장터 에서 만세운동에 참여하였다가 일제의 칼에 순직한 자이다.80) 그 밖에 공훈록 9권(1991)에는 김정의, 신관수, 이병린, 공훈록 10권(1993)에는 김남산, 윤영규, 윤재영, 윤주섭, 이살눔, 이종근, 전태순, 공훈록 12권(1996)에 는 강상봉, 김경운, 공훈록 13권(1996)에는 심영택, 조근봉, 조남윤, 공훈록 14 권(2000)에는 민창식, 공훈록 15권에는 이홍식, 장세구, 정인교가 기술되어 있 다. 3.1독립운동에 대한 김포군 지역의 기술은 매우 짧게 일자별로 기술되어 있다.81) 그러나 이 책에서도 박충서가 3월 22일82)에 만세시위를 한 것으로 잘못 기술하고 75) 76) 77) 78) 79) 80)

국가보훈처.「독립유공자공훈록」 제2권 3.1운동편(상), 1986. 157쪽. 위의 책, 「독립유공자공훈록」 제2권. 163쪽. 위의 책, 「독립유공자공훈록」 제2권. 260쪽. 현 서울 강서구 염창동 위의 책, 「독립유공자공훈록」 제2권. 319~624쪽. 국가보훈처에서는 이은선을 김포출신으로 표기한다. 이유는 1973년 7월 1일 경기도 부천군 오정면과 계양면이 김포군에 이관되었다. 1989년 12월 31일 계양면이 인천시로 편입되었다. 따라서 이 책을 발간할 당시 1984년에는 계양면이 김포군이었기 때문에 김포출신으로 분류한 것으로 보인다. 81) 위의 책, 「독립유공자공훈록」 제2권. 346~347쪽. 82) 22일이 아니라 3월 23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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있으며 ‘제3편 지역별 3.1독립운동 공훈록’에는 박승각, 박충서, 정인섭, 임철 모 기술에서 오라리장을 현재의 양곡리 장날 혹은 양곡장터로 기술되고 있다. 백일환, 성태영에 대한 기술에서도 이병린을 이병철로 기록이 잘못되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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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림 288. 「독립유공자 공훈록」 제2권 3.1운동편(상)1) 1986.12.25. 346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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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림 289. 「독립유공자 공훈록」 제2권 3.1운동편(상)1) 1986.12.25. 347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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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김포출신 독립운동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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金 炳 欽

▲ 경문(徽文)고보교 5(五)학년생, 당 22(二二)세 본적 경기도 김포군 하성면 양택리 출신 주거 京城府 樓下洞 五五〇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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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항일만세시위 및 배일전단 배포사건 심문조서 공판조서83)

의 견 서 본적 全南木浦”陽洞一二五번지 주거 京城”昭格洞五九번지 원 徽文고등보통학교 五학년생 張 洪 琰 당 二 세 본적 咸南咸興郡下朝陽面鳳鳴里五 七 주거 京城”堅志洞四四번지 원 徽文고보교 五학년생 韓 典 勳 당 二 세 본적 慶北善山郡龜尾面元坪里四八번지 주거 京城”體”洞一 六번지 徽文고보교 五학년생 鄭 黃 鶴 당 二三세 본적 全北長水郡長水面長水里六二一 주거 京城”鍾路三丁目一四九번지 徽文고보교 五학년생 柳 文 熙 당 二一세 본적 咸南“寧郡西上面西峴里二 번지 주거 京城”勸農洞一八五번지의 一호 徽文고보교 五학년생 崔 瑛 煥 83) 국사편찬위원회, <한민족독립운동사자료집53> (抗日萬歲示威 및 排日傳單 配布事件 訊問調書‧公判調書), 서울 學生 萬歲運動, 문서제목 : 의견서, 1930.2.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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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 二一세 본적 咸南定平郡春柳面宣德里 주거 京城”苑洞八七번지의 一호 원 徽文고보교 四학년생 李 興 永 당 二一세 본적 咸南洪原郡甫靑面新坪里五번지 주거 京城”勸農洞二九번지 徽文고보교 五학년생 李 廷 禹 당 一九세 본적 忠北沃川郡靑山面白雲里三 一 주거 京城”孝子洞六번지 徽文고보교 五학년생 李 軒 榮 당 二一세 본적 全北扶安郡乾先面茁浦里五六 주거 京城”體”洞一 六번지 培材고보교 五학년생 嚴 奎 永 당 二一세 본적 咸南咸興郡川原面新慶里 주거 京城”鍾路三丁目一四九번지 徽文고보교 五학년생 金 炳 欽 당 二二세 본적 京畿道 金浦郡 0城面 陽澤里 주거 京城” 樓下洞 五五

번지

徽文고보교 五학년생 鄭 點 紅 당 一九세 본적 京畿道m仁郡二東面時美里三七三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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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거 京城”峴底洞四六번지의 三四호 徽文고보교 五학년생 沈 洪 根 당 二二세 본적 京畿道楊平郡雪岳面墨安里 주거 京城”孝子洞六번지 徽文고보교 五학년생 趙 秉 浩 당 二四세 본적 全南0岩郡新北面芽山里 주거 京畿道高陽郡崇仁面城北洞一六 번지 徽文고보교 五학년생 柳 寅 坤 당 二二세 본적 慶南金海郡酒村面仙池里四一六 주거 京城”觀農洞一二七번지 徽文고보교 四학년생 金 洪 信 당 二二세 본적 全南羅州郡公山面新谷里 주거 京城”鳳翼洞九九번지 원 徽文고보교 四학년생 金 鳩 洙 당 二二세 본적 平北定州郡郭山面鹽湖洞 주거 京城”崇二洞二 三번지 원 徽文고보교 四학년생 沈 永 鐵 당 二一세 본적 咸南北靑郡新昌港 주거 京城”西大門형무소 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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京城여자상업학교 생도 宋 桂 月 당 一九세 본적 咸南洪原郡鶴原面豊里 주거 부정 사립 儆新학교 생도 姜 穆 求 연령 미상 본적 全北南原郡金池面昌山里二六번지 주거 京城”西大門형무소 내 사립 中東학교 생도 黃 義 太 당 二四세 본적 全南光州郡光州面楊村里一八 주거 京城”安國洞二번지 사립 中東학교 생도 車 文 徹 당 二一세 본적 慶北尙州郡功城面玉山洞 주거 京城”內資洞七二번지 사립 培材고보교 五학년생 鄭 址 學 연령 미상 본적 全南珍島郡義新面草四里 주거 京城”平洞九二번지 사립 培材고보교 五학년생 許 昶 연령 미상 본적 慶南密陽郡密陽面賀谷里 주거 京城”安國洞一三 번지 사립 培材고보교 五학년생 具 守 萬 연령 미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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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적 慶北英陽郡英陽面西部洞二 주거 京城”淸進洞二九四번지 사립 培材고보교 五학년생 南 七 鉉 연령 미상 본적 미상 주거 부정 사립 普成고보교 생도 金 某 연령 미상 一, 형사처분, 기소유예 또는 훈계방면을 받은 일의 유무 (1) 피의자 韓典勳, 동 鄭黃鶴, 동 車文徹, 동 柳文熙, 동 崔瑛煥, 동 黃義太, 동 宋桂月, 동 李興永, 동 李廷禹, 동 李軒榮, 동 嚴奎永은 각각 해당 사항 없다고 자술하다. (2) 피의자 張洪琰, 동 南七鉉, 동 具守萬, 동 許昶, 동 金炳欽, 동 鄭址學, 동 金某, 동 姜穆求, 동 鄭點紅, 동 沈洪根, 동 趙秉浩, 동 柳寅坤, 동 金洪 信, 金鳩洙, 동 沈永鐵은 각각 소재 불명으로 해당 사실의 유무가 불명임. 一, 범죄사실 (1) 피의자 張洪琰은 光州학생사건이 발발한 기회로 소화 四년 一二월 五일 이래 전선적으로 학생의 시위운동이 일어났지만, 그 운동 목적의 달성에 불 만족일 뿐 아니라 제一차 운동 때는 京城에 있는 학교는 실행하지 않았음을 유감으로 생각하고, 徽文고보교를 선동하여 다른 학교에 솔선하여 제二차 시위운동을 일으켜 일본정치에 반대하는 불온한 기세를 고양하고 세상을 소 란하게 하여 치안을 방해할 목적으로 소화 五년 一월 一二일 오후 七시에 京城”勸農洞一二七번지 피의자 金洪信의 집에서 동교생인 피의자 韓典勳, 동 金炳欽, 동 李興永, 동 柳文熙, 동 崔瑛煥, 동 金洪信, 동 李廷禹와 회합 하여 선동하고 그 자기에서 먼저 시위운동의 전제로서, 또 학생의 기분을 선동하도록 시험 시행에 즈음하여 백지 답안을 일제히 제출하도록 계획 협 의한 뒤, 소화 五년 一월 一三일에 예정 계획대로 三학년, 四학년, 五학년의 시험시간에 다른 학생을 선동하여 일제히 백지답안을 제출하게 하고 학교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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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 피의자 韓典勳, 동 張洪琰이 만나서 계속해서 다른 학생을 선동하여 시 위운동을 실행하도록 결의하고, 그 날 오후 一시경에 京城”勸農洞二九번지 피의자 李廷禹의 집에서 피의자 동교생 韓典勳, 동 崔瑛煥, 동 李軒榮, 동 李廷禹, 동 鄭點紅, 동 金炳欽, 동 沈洪根, 동 趙秉浩, 동 柳文熙와 함께 회 합하여 계속 시위운동을 실행하도록 선동하고 협의하였다. 다시 그 날 오후 七시에 京城”體”洞一 六번지 피의자 鄭黃鶴의 집에서 피의자 張洪琰, 동 韓典勳, 동 李廷禹, 동 崔瑛煥, 동 李軒榮, 동 鄭點紅, 동 金炳欽, 동 沈洪根, 동 趙秉浩, 동 柳文熙, 동 柳寅坤, 동 鄭黃鶴은 회합하여, 시위운동은 각 학 교를 선동 연락하여 일제히 실행하도록 구체적으로 협의 결정하였다. 그리고 피의자 張洪琰, 동 韓典勳은 곧 여학교와 연락을 취하려고 피의자 李廷禹의 안내를 받아 京城”嘉會洞四八번지 京城여자상업학교 생도 宋桂月 을 만나서 그 사정을 밝히고 각 학교와 함께 시위운동을 일제히 실행하도록 협의하고, 피의자 宋桂月에게서 각 여학교는 一월 一五일에 일제히 실행할 것을 이미 계획 결정했다는 것을 들은 뒤에 一월 一四일 피의자 宋桂月의 집에서 각 여학교 대표자 모임에 참석하여 같은 일시에 실행할 것을 협의하 고, 피의자 李廷禹로 하여금 一월 一四일 밤에 京城”體”洞一 六번지 피의자 鄭黃鶴의 집에 동 柳文熙, 동 金炳欽, 동 鄭點紅, 동 崔瑛煥, 동 鄭黃鶴이 회 합한 자리에서 실행일시 및 각 여학교와의 연락 상황을 보고하게 하고, 그 자리에서 각 남자중등학교와 연락을 급히 실행하도록 협의하였다. 피의자 鄭黃鶴은 培材고보교, 동 崔瑛煥은 中央고보교, 동 李興永은 中東학교, 儆新 학교, 普成고보교를 각각 담당하여 연락 선동하기로 협의 결정하였다. (2) 피의자 鄭黃鶴은 분담 임무를 수행하려고 培材고보생 피의자 南七鉉의 집에서 培材고보교생 피의자 南七鉉, 동 嚴奎永, 동 鄭址學, 동 具壽萬, 동 許昶과 회합하고 시위운동을 실행하도록 선동 교사했다. (3) 피의자 崔瑛煥은 같은 임무를 수행하려고 一월 一四일 밤에 中央고보교 생 朴熙徹과 만나서 사정을 밝히고 협의했으나, 朴熙徹로부터 중앙고보교는 시험 시기이기 때문에 할 수 없다고 거절당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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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 피의자 李興永은 피의자 張洪琰과 같은 목적으로 시위운동을 일으키려 고 소화 五년 一월 一一일경에 京城”安國洞二번지 車文徹의 집에서 피의자 中東학교생 黃義太와 만나서 시위운동을 일으키도록 협의한 뒤 一월 一二일 京城”勸農洞一二七번지에 피의자 張洪琰 등의 운동 계획의 회합에 참석하 고, 또 다른 학교와 연락을 취하여 선동을 교사하여 목적을 달성하려고 一 월 一二일에 다시 京城”嘉會洞(번지 미상)에서 피의자 儆新학교생 姜穆求, 동 中東학교생 黃義太와 만나서 각 학교와의 연락 상황 및 각자 학교에서의 선동 계획 상황을 보고 협의하고 다시 一월 一三일 京城”苑洞(번지 미상) 에서 피의자 儆新학교생 姜穆求, 동 中東학교생 黃義太, 동 善成보교생 金모와 만나서 전회와 같이 협의하고 一월 一四일에 등교 도중에 동교생 피의자 柳文熙에게서 一월 一五일 각 여 학교화 일제히 실행한다는 말을 듣고 그 날 京城”勸農洞一二七번지 피의자 동교생 金鳩洙, 동 沈永鐵, 동 金洪信과 만나서 운동을 실행하도록 교사하고 그리고 피의자 中東학교생 黃義太, 동 儆新학교생 姜穆求, 동 善成고보교생 金모에게 一월 一五일에 실행한다고 통지하여 시위운동을 실행하도록 했다. (5) 피의자 張洪琰, 동 鄭黃鶴, 동 李興永은 예정된 계획대로 一월 一五일 등교하여 수업 개시의 종이 울리자 선두에서 각 학년의 학생을 선동하여 대 오를 짜고 교내에서 가두로 진출하려고 했으나 경찰관의 저지와 경계가 엄 중했기 때문에 진행하지 못했다. (6) 피의자 李廷禹, 동 柳文熙, 동 金炳欽, 동 鄭點紅, 동 金鳩洙, 동 沈永鐵, 동 金洪信, 동 柳寅坤, 동 趙秉浩, 동 李軒榮은 모두 피의자 張洪琰, 동 韓典 勳의 선동 교사를 받아 운동 실행 계획에 참가하고 예정대로 一월 一五일에 등교하여 피의자 張洪琰, 동 韓典勳, 동 鄭黃鶴, 동 李興永 등의 선동에 부 화뇌동하여 교문에서 가두로 진출하려 하였으나, 경찰관의 저지와 경계가 엄중했기 때문에 실행하지 못하였다. 위 사건을 생각해 보면 피의자 柳文熙, 동 崔瑛煥, 동 李廷禹, 동 李軒榮, 동 嚴奎永, 동 金炳欽, 동 鄭點紅, 동 沈洪根, 동 趙秉浩, 동 柳寅坤, 동 金洪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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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1조사자료집(297-340쪽)  

4-1조사자료집(297-340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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