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白 靈 日 誌 백령도에서의 12일간의 기록

노기훈

2013년 5월 20일 백령도 0일차 1


백령일지는 2013년 5월 24일부터 6월 4일까지 백령도에 체 류하면서 겪었던 일을 기록한 여행기이다. 나는 백령도 둘레를 10m 간격으로 촬영한 사진을 하나의 거대한 파노라마로 만들어 한 눈에 보고픈 목적으로, 3박4 일 동안 캠핑을 하며 걸으면서 처음 출발했던 하늬해변으 로 돌아오는 일정을 계획했다. 백령일지는 섬에 입도하여 사전답사를 하고 도보일주를 한 뒤에 섬을 빠져나오는 것으로 구성되어 있다.


2013년 5년 24일 금요일 인천작업실, 맑음

인천작업실. 지금 시간은 오후 10시 45분. 내일은 백령도 가는 날이다. 잠이 오지 않아 영화를 보지만 이마저도 여의 치 않다. 그래서 작업실 앞 슈퍼에서 막걸리를 사다가 먹는 다. 한 병이 쌓이고 쌓여서 4병이 되었다. 때마침 공방 앞을 지나가던 고양이를 꾀어내어 작업실로 데리고 온다. ‘내일’ 이었던 백령도 가는 날이 이제는 12시가 훌쩍 넘어, ‘오늘’ 7시간 뒤에 가게 될 백령도로 바뀌었다. TV를 켠다. 하루 혹은 일주일, 한 달. 길게는 사계절이 한 사이클이 되는 일 년과 같이 주기적인 반복은 인간에게 몸 으로 기억되는 체험을 가져다준다. 금요일만 되면 내가 2 리터짜리 맥주를 들고 TV 앞으로 다가가는 이유도 마찬가 지다. 월화수목금 반복되는 일주일의 고단함을 잊고자 금 요일 밤을 통과해야만 하는 것이다. 만약 토요일에 스케줄 이 있어 금요일 밤이 무의미해지는 순간이오면 그 일주일은 다음 금요일 밤이 오기까지 피로가 누적된다. 금요일 밤을 기다리는 기대는 몇 달 사이에 습관이 되어버려서 금요일 아침부터 맥주와 함께하는 밤을 상상하며 설레고는 한다. 그런데 이번 금요일은 뭔가 기분이 다르다. 백령도로 가는 일정이 이른 아침 시간 약속이라는 부담을 안고 있다고 하 4 2013년 5월 24일 백령도 0일차


지만 그것보다는 ‘백령도’라는 상징적인 지명이 더욱 무겁 게 느껴진다. 또 왜 이름은 백령도인지 령 자가 어쩔 수 없 이 귀신 령으로밖에 생각되지 않는다. 안개 낀 섬을 향해 가 는 배 위에서 앵글은 아래위로 심하게 요동치고 주인공의 씁쓸한 표정은 후에 일어날 사건에 대한 복선으로 암시되 는 그러한 공포 영화의 도입부와 같은 장면이 떠오르며 오 싹해진다. 아마 이런 공포이미지는 백령도 해병대하면 연상 되는, 영화 <해안선>을 본 지 얼마 안된 기억의 잔재 일수 도 있는, 그 이전에 한국 남성으로서 경험했던 군대 트라우 마가 자극되었기 때문일수도 있는 그런 문제라고 생각했다. 2013년 5월 24일의 금요일 밤은 이렇게 백령도 기운이 스 며들어 숨이 트이지 않는다. 기대안하고 보고 있어도 왠지 모르게 금요일 저녁임을 실감케 해주었던 TV 프로그램들 도 백령도의 기운에 기를 못피고 있다. 매주 금요일 밤은 10시에 시작하는 <VJ특공대>를 시작으 로 전국팔도의 맛집 탐험이 끝나면, 대한민국의 모든 아 주머니들을 히스테리 환자처럼 브라운관 앞으로 집합시키 는 <사랑과 전쟁>이 12시 30분쯤에 끝이 나고, 마지막으로 2000년대 당시 HOT나 젝스키스 같은 아이돌 그룹을 내세 운 천편일률적인 공중파 음악 프로그램이 주가 되는 시대 적 분위기 속에서도 굳건히 음악애호가들의 사랑을 받았 던 <이소라의 프로포즈>, <윤도현의 러브레터>에서 바통 을 이어받은 <유희열의 스케치북>이 2시가 다되어 끝이 난 2013년 5월 24일 백령도 0일차 5


다. 보통 거기서 술기운과 잠기운이 동시에 찾아와 자연스 레 눈도 감긴다. 이상하게도 오늘과 같이 잠이 안 오는 날 에는 시뻘겋게 충혈된 눈으로 연이어 방영되는 <걸어서 세 계 속으로>를 눈뜬 봉사처럼 보고 있는 것이 최근 몇 달간 의 패턴이었다. 오늘은 영화를 택했지만 생각만큼 영화에 눈이 가지 않는 다. 작업대에 올려져있는 침낭과 촬영 장비들로 눈이 간 다. 저 많은 물건들을 들고 과연 백령도를 둘러볼 수 있을 지 걱정된다. 수십 번 상상해봤건만 다시 한 번 백령도를 상상해 본다. 뱃길로 224킬로미터, 북한 땅과 불과 10여 킬로미터밖에 떨 어져 있지 않는 섬이다. 심청이가 인당수에 빠졌다가 연꽃 을 타고 연봉바위에 걸렸다는 설화가 내려져 오는 그 위험 천만한 바닷물살이 감도는 곳이다. 백령도라고 검색하여 나온 블로그에서 본 사진이 떠오른 다. 남자 홀로 혈혈단신 백령도를 여행한 블로거는 전쟁에 대한 기억이 없이 망상만이 존재하는 나와 같은 세대이다. 블로거가 2박 3일 동안 여행한 목적이 백령도에서 군복무 를 한 경험을 밑바탕으로 군생활을 추억하는 것에 포커스 를 맞추다 보니, 도보 일주를 목적에 두고 있는 나에게 유 용한 자료들이 많았다. 백령도가 생각보다 엄청나게 큰 섬 이라서 하루 만에 걸을 수가 없었다는 사실도 이 블로그를 통해서 처음 알게 되었다. 6 2013년 5월 24일 백령도 0일차


다른 블로그에서는 도움이 되는 포스팅을 찾지 못했다. 그 만큼 백령도는 ‘힐링을 위해 불쑥 여행을 떠난다는 것’이 대 중의 트렌드로 자리 잡은 지금도 정보가 풍부한 곳이 아니 다. 인천에서 운이 좋아 3번에 한번 꼴로 해무가 없이 맑은 날, 4시간 반을 쉬지 않고 쾌속선으로 달려야만 도착이 가 능한 이동의 문제와 북한과의 정치적 긴장에서 비롯되는 갈 등으로 인한 분쟁의 현장으로서 백령도는, 단순히 관광을 하겠다는 목적에서 찾기에는 분명 매력적인 곳이 아니다. 자의반 타의반으로 백령도에 간다는 말을 처음 듣고는 뭔 가 재미있는 일들이 벌어지리라는 예감이 들었다. 좋은 일 이든 나쁜 일이든 올 한해는 백령도로 기억될 것 같은 그런 느낌말이다. 백령도 둘레를 촬영하고, 일지를 쓰고, 캠핑을 하는 것들이 처음이지만 기대가 된다. 고양이는 어느새 러그 위에 자고 있다. 막걸리 병을 치우 고 침대에 누워야한다. 밤이 깊어 세상이 조용하다. 오랜만 에 밤하늘이 맑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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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3월 5년 25일 토요일 백령도 1일차, 흐림 인천-백령도-사곶해변-중화동포구-중화동교회-콩돌해 안-대피소-숙소

늦게 잔 탓에 알람소리를 듣지 못하고 늦잠을 잤다. 다른 작가들과 8시 10분에 로비에서 만나기로 했는데 8시가 거 의 다 되어서 일어났다. 대충 모자를 눌러쓰고 짐을 챙긴 다. 어디론가 다른 지역으로 멀리 이동하는 날 아침은 차라 리 이동을 포기하고 더 자고 싶다. 그게 우주여행이라도 다 르지 않을 것이다. 택시를 잡아타고 인천 연안여객터미널로 간다. 오랜만에 맛보는 아침 햇살이 어색하다. 독일에서 온 요르그라는 친 구는 얼굴빛이 어둡다. 다른 외국인 작가들과 달리 정치적 문제에 큰 관심을 가지지 않던 요르그지만 오늘 만큼은 뭔 가 보통 때와는 달라 보인다. 한국의 젊은 세대라 일컬어지는 80-90년대 태생은 전쟁의 상흔이 거의 아물러가고 피차를 위한 현상 유지의 방편으 로 이데올로기가 이용되는 휴전기에 태어났다. 전쟁이란 것은 나이든 꼰대들이 과거를 사랑한 나머지 잘 기억나지 않는 사실에 상상을 추가해서 그려나간 공상쯤으로 생각하 는. 그렇게 생각하는 것이 골머리 안 아픈 그런 세대였다. 8 2013년 5월 25일 백령도 1일차


나 역시도 그랬었다. 그래서인지 군대에서 받는 안보교육 이 어린 아이 전쟁놀이처럼 유치하고 심지어는 웃기기까지 했다. 그렇지만 외국 출신 작가들은 남과 북을 자신들의 바 운더리 안에서 큰 정치적 현안으로 삼기를 주저하지 않는 다. 사진을 주 매체로 하는 김아타가 911을 주제로 한 작업 을 내보였을 당시 그들이 했던 말을 떠올려 보면 남북문제 에 참여하기 원하는 서양인들의 태도가 다소 이율배반으로 느껴지기도 한다. “당신이 어떻게 우리의 감정을 이해한다고 작업을 하는지 화가 나네요.” 김아타의 면전에서 격정에 치달은 금발의 중년 여성이 한 말이다. 요르그는 서양인이기는 하지만 독일인이므로 우리의 상황 을 좀 더 이해할 수 있는 여지가 많다고 생각할 수도 있다. 76년생인 요르그가 베를린 장벽이 무너지는 광경을 목격한 것이 13살 되던 1989년이니까 거의 40년이 지나 다시 체험 하게 되는 이념적인 무게감일 것이다. 택시에서 내가 어떤 곳으로 가고 있는지 아느냐고 묻자 요르그는 단순하게도 ‘ISLAND’라고 답했다. 요르그에게는 남한이 어떤 역사성을 가진 나라인가에 관하 여 국가가 나서서 주입하는 전략적인 안보교육이 없었고, 외국인으로서 광복 직후에 벌어진 정치적 상황에 대한 지 정학적인 맥락도 전혀 중요치 않았다. 단지 반쯤 미친 나라 2013년 5월 25일 백령도 1일차 9


가 언제고 핵을 쏠 것이라며 위협하는 위험한 섬에 간다는 그것이 훨씬 중대한 사안이었다. 사실 그렇다. 911이 나에게 준 직접적인 생채기는 없다. 그 렇기 때문에 911만 입에 담아도 민감하게 반응하는 그들이 오히려 더 이해되지 않는다. 내가 이해할 수 있는 여지는 비 슷한 사례를 통해서 비추어볼 때이다. 백령도의 모습은 그 래서 요르그와 나에게 같으면서도 다른 것이다. 원래 계획했던 백령도 탐방 일정은 오늘이 아니었다. 본래 는 이 주 전에 백령도에 도착했어야 했다. 당시 백령도로 가 는 항로에 자욱했던 해무는 배를 육지에 가둬 놓았었다. 터 미널에서 한 시간이 넘게 기다렸지만 출항이 취소되었었다. 이번에는 거친 아침 햇살이 해무를 모두 증발시켜버렸다. 배는 8시 정각에 인천을 출발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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멀미약을 일찌감치 먹어서 쉽게 골아 떨어 질 줄로 알았다. 하지만 예상과는 달리 1시간 동안을 멍하게 눈을 감고 시간 을 보낸 뒤에야 잠이 들었다. 육지에서 자주 이용하게 되는 버스나 기차와는 달리 배는 좌석이 너무도 따닥따닥 붙어 있어서 심지어 불쾌한 느낌까지 줄 정도로 스킨십이 강요 되는 간격이었다. 배 안의 상황이 조용해지려면 좌석을 마 음대로 바꿔 앉는 아주머니들이 일단 심리적 안정을 취해야 했고, 육상경기장인 줄 알고 활개 치는 어린아이들이 부모 의 손아귀에서 자유를 억압받는 과정이 필요했다. 배 안은 흡사 아웃도어 브랜드 패션 박람회장이었다. 토요 일 아침 8시에 출발하는 인천발 백령도행에는 황혼기에 접 어든 꽃다운 중년 무리들로 가득 찼다. 조난 시 인명구조 용으로 고안되었다는 원색 의상은 중년 모델의 선상 위 패 션쇼의 시즌 컨셉이었다. 정오를 향해 내딛는 태양 빛은 화 려한 색감에 반사되어 보는 이의 눈을 찌푸리게 만들었다. 오늘따라 배는 아무런 요동 없이 항해하기 시작했다. 멀미 로부터 해방된 중년들은 동석한 이성에게 철지난 유머를 날 리며 환심을 끌고 있었다. 좌석 맨 뒤편에 마련된 이부자리 에는 남녀가 뒤섞여서 벌써 술판이 벌어졌다. 혹이나 멀미 를 할까 조용히 좌석에서 잠을 청하는 승객이 무안하도록, 그들의 대화는 비역질이라도 일삼는 듯 저속한 음담패설이 주를 이뤘다. 나는 멀미약에 취하기도 했지만 그들의 코에 서 뿜어져 나오는 소주 향내와 마른 오징어 냄새에 정신이 2013년 5월 25일 백령도 1일차 11


혼미해졌다. 눈을 감고 있어도 귀를 때리는 말소리는 어찌 할 수가 없다는 것을 이른 나이에 알았기 때문에 항상 공공 장소에 머무를 때에는 귀마개를 챙겨 다녔지만 오늘은 필 요한 물품 외에는 최소한의 짐을 싼다는 방침에 따라 100그 램도 되지 않는 귀마개마저도 챙기지 않았었다. 배가 작아 서 그러려니 하고 머리를 기댔다. 백령도로 가는 배는 3가지 종류가 있는데 우리가 탄 배는 데모크라시호이다. 한국어로 번역을 하면 민주호 쯤 된다. 다른 배 이름이 하모니플라워와 프린세스이니 죄다 사상이 창대한 영어이다. 선박의 크기는 하모니플라워호가 제일 크고 데모크라시, 프린세스 순이다. 하모니플라워가 출항한지는 2012년 7월 부터이니 그전에는 파고가 4m 이상이 되면 백령도는 고립 됐었다. 이러한 중요성에도 불구하고 최근 하모니플라워호 를 운항하는 해운회사는 북한의 도발위협 이후에 관광객이 감소되어 적자를 면치 못하게 되었다며 운항을 중단하겠다 는 의지를 인천시 측에 전달했다. 저 유명한 심청이의 인당수가 위치한 백령도에 4m이상의 파도와 해무가 잦아든 날이 오히려 더 드물 것이라는 예상 은 섬사람이 아니라도 쉽게 할 수 있다. 실제 통계적으로 일 년에 365일 중 200일 정도가 해가 뜨지 않는 섬인 백령도는 차라리 고립 그 자체가 관광 상품인 곳이다. 백령도 입도 1차 시도에서 실패한 것과 같이. 나오는 것도 12 2013년 5월 25일 백령도 1일차


역시 마음대로 되지 않아 그곳에 고립되지는 않을지 걱정이 되다가 또 기대도 된다. 섬에서 나오지 못해 하루 더 머물게 되는 체념의 기대와, 육지에서의 업무패턴으로 돌아가지 못 하면 도태되고 말리라는 걱정 이렇게 반반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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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시에 출항해서 9시에 잠이 들었다. 12시가 좀 넘어서 백 령도에 도착했다. 약간 습기를 머금은 공기는 다른 섬들에 입도해서 느끼는 첫 인상과 다르지 않다. 배를 주변으로 해 병대의 모습이 쉽게 눈에 뜨는 것이 좀 다르다. 그리고 해 병대 도시라서 군사적 목적이 아닌 입간판들도 빨간색 배 경에 노란 글씨인 점이 특징이다. 작년 여름 10일 동안 체 류한 중국 연태에서 봤던 그 칼라 배치와 유사하다. 그러면 서도 색이란 게 빨간색의 종류도 여러 가지이고 노란색의 종류도 채도나 명도에 따라 느낌이 확연하게 다른 것처럼, 깊이 보고 생각하지 않아도 중국 것과는 좀 다르다는 인상 을 받게 된다. 은폐엄폐가 곧 생명인 카무플라주의 세계 군대에서 빨강 과 노랑이라는 강력한 원색이 동시에 배치되는 까닭이 의 아하다. 적에게 노출되지 않는 것이 목적인데 왜 하필 원색 을 택했는지 모를 일이다. 용기포 선착장을 어슬렁거리고 있으니 잠시 후에 여행사 차량이 도착하고 사람들은 백령도에 온 것을 실감이라도 하 는 듯 재빠르게 올라탄다. 버스 기사는 검게 탄 얼굴과 유 쾌한 서울말을 쓰면서 다소곳한 목소리로 처음 가야할 곳 을 설명해 준다. “사곶해변은 사곶 천연비행장이라고도 불립니다. 전세계 에서 백령도와 나폴리 단 두 곳 밖에 없다는 천연 비행장입 니다. 나폴리가 화산암으로 이루어진 산의 일부라면 사곶 14 2013년 5월 25일 백령도 1일차


은 규조토 해안가에 위치한 바다의 일부라고 보면 됩니다. 625 당시에 미군의 전투기 비행장으로 실제 사용되었다고 하는데요, 폭 200m에 길이 2km에 이르는 광대한 비행장이 바다를 끼고 펼쳐져 있는 셈이죠.” 나폴리라는 말에 영화 <지중해>의 내용이 떠오르면서 천연 비행장이라는 곳이 좀 더 명쾌해졌다. 때마침 썰물이 시작될 때여서 좁게나마 사곶 천연비행장 을 볼 수 있었다. 보기에는 진흙 펄과 같아 보이지만 사람 이 지나가도 발자국이 남기는커녕 대형관광버스가 제 아무 리 내달려 봤자 바닥면에 세밀하게 형성된 규조토 지반은 아무런 미동도 없었다. 과연 군도(軍島)백령도에 어울리는 천연 지형이다. 같이 온 이수영 작가의 퍼포먼스가 사곶해변에서 펼쳐질 동안 멀리서 붉은 색 옷을 입은 무리들이 점점 더 가까워지 고 있다. 그런데 뭔가가 덩실덩실 대고 맥아리가 없어 보인 다. 실제 해병인줄로 알았지만 실상 가까이 다가오자 관광 을 온 해병대 출신 할아버지들이었다. 사진 촬영을 요청하자 무언가 구호를 외치려고 하는데 생 각나지 않는 듯 모두가 머뭇거린다. 해병대 출신이 아닌 것 이 분명했다. 의심해보기로, 백령도에 관광 오는 나이든 사 람들은 대개가 안보관광을 온 극보수주의자일 것이고 때문 에 백령도라는 섬에 걸맞게 언제든 터질 수 있는 전쟁에 대 비하여 해병도 코스프레를 감행한 그런 동심어린 마음일 것 2013년 5월 25일 백령도 1일차 15


이라 추측해본다. 금테로 마감한 라이방 선글라스를 쓰고 늠름하게 걸어 다니는 한 무리의 늙은 늑대 같다. 때마침 뒤편에서 진짜 해병들이 구보를 하는 모습이 보인 다. 소대급으로 보이는데 아직 쌀쌀한 날씨인데도 불구하 고 반팔에 반바지 차림으로 뛰어다닌다. 하긴 나도 군대에 서 3월 혹한의 아침 기온에서 알통구보라며 웃통을 다 까고 뛰지 않았던가. 몇 몇 남성다움을 자랑하던 전우들은 굳이 그럴 필요가 없었음에도 솔선수범하여 웃통을 까 재끼던 기 억이 난다. 그러면 뒤이어서 따라 하기 좋아하는 녀석들은 뒤지지 않으려 난닝구를 벗었었다. 백령도는 위도가 인천보다 상대적으로 높아서 한참 전에 거둬들였던 카디건을 입었지만 그래도 날이 차다. 햇볕이 뜨지 않아 더 춥다. 백령도는 지도상으로 봐도 왜 남한에 귀속되어 있는지 의아할 정도로 지리상으로 북한과 더 가 깝다. 날이 좋은 날은 인당수 넘어 장산곶이 한 눈에 들어 온다고 하니 내가 북한 땅에 있는지 남한 땅에 있는지 모 를 노릇이다. 관광버스는 기사의 경쾌한 액셀러레이터에 따라 사곶해변 을 시원하게 내 달린다. 중간에 급브레이크를 밟아 차 내 에 있는 사람들이 휘청한다. 이렇게 급히 브레이크를 밟아 도 전혀 티가 나지 않는 바닥이라는 것을 한마디 설명도 없 이 몸소 가르치고 있는 것이다. 기사는 일행의 웅성거리는 소리에서 바퀴라는 단어가 쏟아져 나오는 것을 들으며 살 16 2013년 5월 25일 백령도 1일차


며시 미소를 짓는다. 사곶해변을 빠져나와 어딘가로 이동한다. 기사는 지금 가 고 있는 곳은 백령도의 남서쪽 끝에 위치한 중화동이라고 설명해준다. 중화동이라고해서 중화(中化)가 중국과 관련 이 있을까 생각해본다. 백령도가 인천까지보다 중국 산둥반 도까지가 더 가까우니까 그럴 여지는 충분히 있다. 사곶해변에서 아주 작은 언덕 하나를 넘으니 중화동포구가 나온다. 언덕 중턱에 해병대 막사가 보이고 해변가에는 일 정한 간격으로 쏟아 있는 해안초소가 보인다. 백령도에서는 슈퍼마켓 수보다 군대시설이 몇 십 배는 많 다. 군인들이 많다고 해서 군기가 빠져있는 것은 아니다. 해병들의 표정이나 행동거지가 강원도 전방 지역에서 근무 한 내가 느낀 육군에 비하면 거의 전시 수준이다. 해병은 자원입대로 들어오는 열혈청년들의 몫인 만큼 바깥 사회에 서도 나서기 좋아하는 걸로 치자면 둘째가라면 서러운 사 람들이었을 것이다. 그래서일까? 백령도에 있는 군인들은 적진의 깊숙이 들어 와 있다는 걸 실감하는 듯 긴장감이 고조되어 얼어있는 표 정이다. 지나가다 마주치는 표정에서 벌써 살벌한 분위기가 엿보인다. 특히나 요 근래에 외부 환경이 좀 더 긴장된 분위 기로 흘러가기는 했다. 김정은이 삼대 세습을 완료하여 무 언가 보여줄 필요성이 있을 때 때마침 보수 정권이 대선에 서 승리하면서 집권 연장에 안착했다. 연평도 포격이 일어 2013년 5월 25일 백령도 1일차 17


난 지 3년도 채 안지나 언제고 다시 포탄이 날아들지 모른 다고 가정할 수도 있지만, 백령도 역시 연평도 포격이 벌어 지기 8달 전에 천안함 침몰사건이라는 대형 프로젝트를 누 군가가 실행하였던 지역이라 북한으로서도 재차 도발하기 란 쉽지 않을 터이다. 해병 초소를 끼고 사는 사람들. 아니 살 수 밖에 없는 사 람들. 우리에게 최북단 백령도가 섬 특유의 고즈넉함과 풍부한 해산물로 대변되는 지역이 아닌 것처럼, 백령도 사람들도 그들 스스로의 삶이 단지 전쟁이 가르쳐 준 이념의 잔재를 자신도 모르게 환경의 일부로서 체화한, 어찌 보면 삶과 구 별해 낼 수도 없는 일상적인 리듬으로 군이 침투해 있는 삶 을 살고 있는 것이다. 중화동포구에 나와 있는 사람들의 표정에서도 언론이 백 령도라고 하면 어디선가 꺼내왔던 지겨운 상징 ‘전쟁 한 가 운데에 있는 사람들’이라기에는 뭔가 여유롭고 심드렁하다. 아니, 억지로 끼워 맞추려했던 상징에 저항하기를 포기한 나머지 무기력해 보이려는 심산일 수도 있다. 정박해 있는 관광유람선 오른쪽으로 퍼질러 앉아서 그물을 엮고 있는 어부들은 까나리어선 출항준비에 바쁘다. 포구의 머릿골 부근에는 우리와 같은 관광객들이 유람선을 타기위 해 서있다. ‘괴산군 재향군인회’라고 형광색 바탕에 빨간색 으로 등허리에 크게 적혀진 점퍼를 입은 청년들은 어부들에 18 2013년 5월 25일 백령도 1일차


게는 귀찮기만 한 괭이갈매기가 퍽이나 신기한 듯 연신 노 란 주둥아리에다 셔터를 눌러대고 있다. 그러는 와중에 바다 짠 내에 뒤섞인 까나리 액젓 냄새가 지 독하게 스며든다. 까나리 액젓을 제조하는 주 공장이 포구 바로 뒤편에 있다는데 엄청나게 향이 깊어서 섬 전체를 젓 냄새로 뒤덮고 있었다. 날씨가 흐리고 곧 비가 올 것만 같다. 일부러 캠핑을 한다 고 챙겨온 카디건도 걸쳐 보았지만 추위가 가실 줄을 모른 다. 그 정도로 지금 백령도의 날씨는 육지에서 초봄 녘 기 온과 비슷하다. 시간이 조금 지나니 비가 몇 방울씩 떨어진다. 비를 피할 곳을 찾아야 하는데 포구에 그런 곳이 있을 리가 만무하다. 운이 좋게도 먼저 나갔다가 들어오는 유람선이 있어 냉큼 들어간다. 유람선에 차례대로 타고 하나 둘 자리를 잡는데 아까 만났 던 괴산군 재향군인회 청년들도 눈에 보인다. 그들과 함께 50~60대로 추정되는 남녀 무리들이 우스꽝스러운 희극의 소품으로 형광색 등산복을 입고 기세등등하게 걸어들 오는 장관이 연출된다. 손에는 방금 어디서 구한 듯해 보이는 박 스가 있었는데 조심스레 양쪽에서 맞잡으며 들고 오는 것 을 보니 안에는 소주를 비롯한 안주거리가 들어있나 보다. 이곳도 역시 술판이 되었다. 머리고기와 막걸리가 순식간 에 세팅된다. 불과 100석이나 될까한 작은 유람선은 어느 2013년 5월 25일 백령도 1일차 19


새 뽕짝 음악이 울려 퍼지는 읍내 회관이 되었다. 관광객들 을 위해 하루에도 수십 번 씩 같은 설명을 하고 같은 타이 밍에 같은 웃음 코드, 같은 말장난을 기계적으로 해대는 관 광가이드의 지휘에 따라 유람선 안은 웃음보가 터졌다 말 다를 반복했다. 유람선 중간에 마련된 평상에서는 모든 소 리들을 잡아먹어 버리는 중년의 웃음소리가 나 잘났다며 폭 음(暴音)하고 있었다. 오히려 섬을 구경하는 나머지 일행이 놀 줄 모르는 샌님으로 보였다. 배를 타거나 관광버스를 타고 놀러가는 중년들은 여행을 떠난다는 것에 신난 나머지 열정을 주체하지 못하여 일제 히 술을 먹고 이성을 탐하는 것에 모든 초점을 맞춘다. 이 렇게 생각하면서도 바꿔 생각해 보면, 일이다 뭐다해서 스 트레스 받다가 그걸 풀어보려고 하지만 도심의 유흥지나 번 화가는 미리부터가 젊은이들 것이었고(한 때는 자신들도 그 러했지만), 상황이 그래서 떠밀리 듯 관광이라는 방편을 택 하고 맞이한 여행이기에 본래 살고 있는 지역을 벗어나 이 동하는 그 순간마저 놓칠 수 없다는, 끓어오르는 환희에 불 타 용솟음치는 욕정을 주체하지 못하는, 여기 백령도 유람 선에서의 이러한 모습으로 즐겁지만 한편으로 안타까운 처 지가 될 수 밖에는 없었던 것이 아닌가하는 동정도 들었다. 시간이 지나자 유람선의 풍경도 익숙해졌고, 일부는 이것 들에 대한 겸허한 수용을 의미하는 뜻으로 바깥에 나가 파 도가 흩어지는 모습을 바라보았다. 나 역시도 처음과 달리 20 2013년 5월 25일 백령도 1일차


자연스런 풍경에 일부로 그들을 대하게 되었다. 해안가를 따라 두무진까지 왕복하는 유람선의 항로는 남해 지방 섬에서는 볼 수 없는 군사적인 광경이 주 포인트로 펼 쳐진다. 멀리 뒤쪽에서부터 해안가까지 파고 들어온 포문 이 절벽을 따라 바다를 향해 나있고, 또 보기 좋은 기암괴 석이 솟아 있거나 관광지로 이용할 만한 해수욕장이 펼쳐진 곳에는 어김없이 병영초소가 우뚝 서서 감시의 틈을 놓치 지 않고 있다. 해수욕장마저도 일몰 후에는 들어가지 못하 게 되어 있어서, 혹시나 경계지역인줄 잘 모르고 저녁 어스 름에 해안가로 들어섰다가는, 초병이 겨눈 총에 겁에 질려 어설픈 자세로 암구호를 중얼거리게 될지도 모르는 일이다. 유람선 난간에서 서서 눈을 찌푸려가면서까지 초소가 있 음직한 곳을 주시하던 나를 발견한 초병들은, 허리를 숙여 망원경에 눈을 갖다 대어 좀 더 자세히 나를 살핀다. 우리 가 탄 배의 이름과 나의 눈동자가 어디를 향하는지 까지 낱 낱이 본다고 생각하니 뭔가 불공평하다. 초병의 임무는 자 신의 경계지역을 지나가는 모든 것들에 관해서 파악해야 할 의무가 있다. 나 역시 군대에서 매일같이 주둔지 경계근무 를 나가야 했지만 매번 될 대로 되라지 하는 식이었다. 북 한군이 나올 리가 절대로 없다는 걸 안 이상 고참이 되어서 는 잠시 전망 좋은 곳에서 쉬어가는 마음가짐으로 자연을 벗 삼아 신선놀음을 했었다. 2년 동안의 군대생활이 차츰 기억에서 사라지고, 이제는 2013년 5월 25일 백령도 1일차 21


거의 몇 개만 빼고는 기억해 낼수 없게 되었다. 마치 내가 없던 일로 하고 싶어 일부러 그런 것처럼. 멀리 보이는 저 녀석들의 모습을 보고 있지만 해병대라는 치기어린 마음만이 자꾸 어리석게 보인다. 배가 속도를 높이니 물보라가 더 높이 튀어 카메라가 젖 을 정도이다. 사람들은 물보라를 피하기 위해 배안으로 들 어간다. 난간의 폭은 한 사람이 간신히 지나갈 수 있을 정 도로 좁다. 북새통이 된 난간에서 누군가 떨어지는 것은 아 닌지 불안하다. 유람선 변사가 설명해주는 바깥 풍경들에 귀 기울이는 사 람은 없다. 섬의 서쪽 면을 오른쪽에 끼고 끝까지 올라가면 두무진이 나온다. 백령도를 관할하는 옹진군에서 가장 으 뜸으로 내세우는 명승지이다. 멀리서 보이는 두무진 쪽에는 기암괴석이 하늘 높은 줄 모 르고 쏟아 있는데 마치 덩치 보다 큰 갑옷을 걸친 장군들과 같아 보인다. 그래서 백령도 홍보책자에 나온 바로는 ‘장군 들이 모여서 회의를 하는 모습으로 보인다.’라고 해서 머리 두(頭에) 호반 무(武) 나루 진(津)자를 쓴다고 한다. 과연 절경이 크고 어지럽기는 하다. 하지만 제주도가 하루 여행 코스로 개발되어 마음만 먹으면 갔다 올 수 있는 요즘 과 같은 때에 이런 기암괴석이 그렇게 크게 감동적으로 다 가오지는 않는다. 서해의 해금강이라 불린다고 하는데 해 금강을 가보지 않은 나로서는 해금강 마저 묵혀두게 된다. 22 2013년 5월 25일 백령도 1일차


유람선 여행 코스를 개발한 사장은 아무래도 두무진 쪽에 무게 추를 둔 것 같다. 거기서 15분 정도를 가만히 멈춰서 고 나서야 다시 뱃머리를 돌려 중화동포구 쪽으로 항해하 기 시작한다. 처음에 관심을 보였던 사람들도 갔던 길을 다시 돌아올 때 에는 무료한 표정으로 자기자리로 돌아간다. 사람이 한번 갔던 길을 다시 반복하는 것은 어떻게 생각해 봐도 유쾌하지 못하다. 가끔씩 나의 인생을 다시 되돌아가 서 재생버튼을 누를 수 있으면 어쩌나하는 상상을 하는데 그렇게까지 해서 더 나은 삶을 위한 가능성에 희망을 걸기 에는 문제가 따른다. 시지프스가 돌을 끌어올리는 수고 그 이상인 다시 사는 삶이라는 부조리한 순간을 지속해야만 하 는 고역을 치루기 싫을 뿐더러 더 나은 삶을 살아갈 수 있으 리라는 기대도 하지 않는다. 더군다나 한번 경험한 미래를 순전히 모험으로 열어두지 못하는 이중 지출의 역사가 이어 진다. 오래 살고 싶어 하는 사람들에게 다가가서 똑같이 물 어보고 싶다. 누구는 나처럼 이 지겨운 인생 뭐가 더 나아 진다고 과거로 돌아가서 똑같은 짓을 반복하는지 회의적일 테고, 누구는 아주 좋은 기회라며 인생을 상대적으로 더 오 래 더 효율적으로 살 수 있다고 생각할 것이다. 술에 취해 평상에 뻗어 있는 아저씨를 붙잡고 물어보고 싶기도 하다. (사실 더 오래 길게 살고 싶은 마음도 비슷하다.) 중화동포구까지 되돌아오는 기나긴 여정을 마치고 포구에 2013년 5월 25일 백령도 1일차 23


배가 정박하는 기쁨을 맛본다. 유람선 관광을 위해 대기 중 인 관광객들은 우리가 내리기가 무섭게 배에 올라타기 시 작한다. 아마 그들도 똑같이 검은 비닐봉지에 무언가를 가 득 담아 가는 것으로 보아 아까 그 평상에서 술판이 벌어질 것이 분명하다. 같이 한 잔 하고 싶어진다. 하지만 아까 보 다 더 비릿해진 까나리 냄새가 입맛을 싹 달아나게 한다. 고개를 돌려 옆을 보니 조그마한 어선에서 갓 잡아온 까나 리를 다라이에 담고 있다. 옆쪽에서는 뭐냐고 묻기도 하고 어부를 배경으로 셀카를 찍기도 한다. 관광객들은 웃음을 머금으며 그 광경을 신기한 듯 지켜보고 있다. 과한 웃음과 제스처가 이내 불편해 진다. 어부들의 처절한 생존 현장이 관광객들에게는 그저 신기한 모습일 뿐이다. 과거 서양인 들은 신문물인 카메라를 가지고 아프리카나 남미를 돌아다 니며 탐욕스럽게 원주민들의 신체나 골상을 기록하고 유형 별로 분류해 자신들과는 다른 종족들을 체계적으로 관리하 고자 했다. 관광객들이 어부들의 모습을 보며 관심을 보이 는 것에서 나는 비슷한 느낌을 감지할 수 있었고 한편으로 는 나 자신이 상황을 어떤 틀에 박힌 관계로 파악하는 도단 에 빠진 것은 아닐지 의심했다. 사실 인천에 있는 낙후된 지역을 사진 찍으면서 실감하게 된 것 중 하나는 그곳에 살고 있는 사람들은 전통 시장의 보 호나 오래 전부터 이어져 내려오는 전통 시장의 정감 어린 모습을 지키고 보존하는 것에 의미를 두지 않을 뿐더러 재 24 2013년 5월 25일 백령도 1일차


개발을 위해서라면 무엇이든 할 수 있는 결연한 의지가 있 다는 점이었다. 그에 비추어 보건데, 이곳 중화동포구에서도 비슷한 차이 가 생기고 있지는 않을까하는 생각이 든다. 몇 시간의 그물 질 끝에 힘겹게 잡아 올린 까나리를 내리는 저 어부의 마음 속 깊은 곳에도 까나리로 인한 수익 이외에 관광객들이 백 령도로 몰려옴으로 인해서 얻게 될 부수적인 수입을 염두 에 두고 있을지도 모르는 일이었다. 아니 오히려 당장에라도 뱃놈을 때려치우고 관광 상품이나 팔며 비린내 나는 옷을 입지 않아도 될 자신을 상상하고 있 을지도 모른다. 까나리를 내리는 고된 육체노동에 거슬릴 정도로 카메라를 가까이에 대는 관광객이 있었지만, 어부는 불쾌한 표정 하나 없이 담담히 자기 할 일을 마무리 했다. 데모크라시호에서 내린지 고작 2시간 밖에 지나지 않았지 만 우리 일행은 피곤함이 역력했다. 장기간 배를 타고 오느 라 모두들 멀미약을 복용했기 때문이다. 보통 멀미약의 효 력이 4시간 정도라고 설명서에 써져있으면 곱으로 시간이 늘어난다고 보면 된다. 그러니까 8시에 출발하는 배를 탔 던 우리는 적어도 오후 4시 까지는 약에 홀려 있어야 된다 는 뜻이다. 지금 시간이 오후 3시 반이므로 사람들의 지루 한 모습도 어쩌면 백령도에 대한 기대치가 너무 높은 데에 비례한 실망감이기보다는 멀미약으로 인해 과다 분비된 호 르몬이 생체 리듬을 변화시켰기 때문일 가능성이 많다. 유 2013년 5월 25일 백령도 1일차 25


람선에서 중화동교회까지 오 분도 안 되는 거리지만 버스 안에서 자는 사람이 보였다. 우리나라 교회 중 두 번째로 생겼다는 중화동교회에는 사 람보다 곱절은 커 보이는 무궁화가 있었다. 크기가 큰 것도 그렇지만 목피의 단단함의 정도가 수령이 보통이 아닌 듯 했다. 기독교의 역사를 정리해 놓은 교회내부에는 교회 특 유의 나무 썩는 냄새가 났다. 바다가 바라보이는 언덕에 자 리 잡은 교회였기에 더 심했을 것이다. 교회의 역사가 100년이 지났다고 해도 10년 동안이 10번이 되면 100년이 되는 것이 아니겠던가? 백령도까지 선교하러 온 사람들의 이름이 적힌 기념비를 보고 있자니 언더우드 라고 적힌 익숙한 이름이 낯설지가 않다. 힘이 없이 버스에 탄 사람들은 콩돌해안까지 이동하는 20 분도 안 되는 시간동안 멀미약에 놀아나야 했다. 버스 안은 인기척이 없었다. 나 역시도 눈이 감겼다. 잠깐이라도 눈을 붙이고 깨니 몸이 조금은 괜찮아졌다. 버 스가 세워지고 사람들은 기지개를 켜면서 밖으로 나온다. 소리를 막고 있는 작은 언덕에 있는 나무 계단을 모두 올라 가니 새로운 풍경이 눈앞에 펼쳐진다. 눈이 콩돌해안을 인식하기 전 귀는 이미 평범한 파도소리 가 아니라는 것을 알고 있었다. 마침내 계단을 모두 올라가 서 본 풍광은 왜 이곳이 콩돌해안이라 불리는지 알게 된다. 26 2013년 5월 25일 백령도 1일차


콩돌해안은 대두만한 돌들이 1km가량 남쪽으로 이어져 있 었다. 파도가 힘을 다하고 콩돌에 부딪히는 순간 들리는 그 소리가 여중생이 까르르 웃는 소리 같다. 일반 파도 소리와 구별되는 콩돌해안의 사운드와 파도 너머의 정치적인 풍경 이 기묘한 조화를 이루면서 보기 힘든 장관을 연출한다. 당 장에 눈앞에 있는 자연을 넘어서 무언가를 상상한다는 것은 인간만 가능한 공감각적인 실현이 아닐까? 백령도의 기온은 서울 보다 10도 정도 낮다. 그래서 서울의 5월 말이라면 초여름 더위가 느껴질 무렵인데도 불구하고 이곳은 서늘하다. 특히 해변가는 더 춥다. 유람선에서 내린 후 하나 둘 씩 벗었던 외투를 다시 껴입는다. 한국의 해안이라 하면 바다 그 자체로 펼쳐지는 자연들의 경이로움 보다는 해변을 둘러싸고 있는 화려한 네온사인이 먼저 떠오른다. 밤이 새는 줄 모르고 술을 마시는 남녀 무 리들과 또 호시탐탐 이성끼리 온 무리들에 킁킁거리는 20 대들, 바다가 바로 보이는 해변을 따라 주황색 비닐 천막으 로 뒤덮인 간이 포장마차들에 설치된 노래방 시스템과 같 은, 소비 사회의 풍경들이 한국을 상징하는 해수욕장 시각 문화로 익숙하다. 콩돌해안도 포장마차가 있기는 있다. 총 4곳이 있다. 포장 마차라고 해봤자 여행용 파라솔 몇 개와 편의점 의자를 앞 에 내세우고 2평도 안 되는 간이 건물을 이어놓은 것이 전 부다. 하지만 그래서 더 운치가 있는 법. 미리 술판을 벌 2013년 5월 25일 백령도 1일차 27


인 건설인부들이 조용히 막걸리를 마시고 있고 옆 가게에 는 애인을 면회 온 젊은 여자와 외박 나온 해병이 무표정한 얼굴로 앉아 있다. 그들이 먹는 것을 보아하니 술안주로는 게와 소라 따위가 아무렇게나 섞인 해물이고, 식사로는 해 물칼국수이다. 공통적으로 놓여 있는 것이 큰 주전자에 담 겨진 동동주였다. 칼국수를 보니 허기가 진다. 벌써부터 우리 일행 중 나이가 있는 사람들은 막걸리를 한 잔씩 하고 있다. 나도 곁에 껴 시원한 동동주를 한 잔 들이키니 이제야 멀미약이 달아나 는 듯하다. 빈속에 먹어서 그런지 금세 술기운이 올라온다. 그대로 파도를 배경으로 플라스틱 의자에 앉아서 해가 지 도록 마시고 싶다. 나뿐만이 아니라 다른 사람들도 제한된 시간 안에 다른 곳으로 이동해야하는 가이드 여행이 싫은가 보다. 오늘 주당들이 제대로 모였으니 밤에는 재미있는 일 이 벌어질 것 같다. 아쉬움을 뒤로하고 다시 버스에 오른다. 기사님은 버스 마이크의 탁한 소리를 마지막으로 오늘 일 정이 끝이 났음을 고한다. 버스는 숙소를 향해 가고 있다. 저녁 식사 후 방 배정을 하고 7시에 다시 모여 백령 면사무 소에 있는 대피소로 이동한다고 한다. 대피소라니 아주 비 밀스러운 기분이 든다. 어릴 적, 친형과 나는 9시가 되면 퇴근하고 들어오는 아 버지를 피해서 작은 ‘본부실’을 만든 적이 있다. 의자를 두 개 놓고 그 사이를 천막처럼 이불을 쌓는 것인데, 그 안에 28 2013년 5월 25일 백령도 1일차


서의 포근함과 비밀스러운 협잡은 개구쟁이 형제들만의 세 상이었다. 어머니께서는 항상 아버지가 오는 시간에 맞춰 서 저녁식사를 준비하셨다. 본부실 안에서 헤드라이트를 켜 고 서로의 몸을 살피다가 밥 냄새가 피어오르면 우리 형제 는 먼저랄 것도 없이 아버지가 오실 시간이 다 되었구나하 며 속삭였었다. ‘본부실’에 있는 이불의 무늬 하나하나에 어 떤 세계가 있다고 생각하고 따뜻한 온기가 가득 찬 나만의 공간이 있다는 소년의 꿈은, 시간이 지나 어른이 되면 깨지 게 되어있는 순리였지만, 지금 이순간도 그때 당시의 기억 은 점점 잊혀져가지만 언제든 꺼내어 간직하고픈 추억이다. 물론 대피소의 냄새는 나의 ‘본부실’과 견주기에는 많이 부 족했다. 섬에 있는 건축물들은 어딜 가나 곰팡이 냄새가 들 끓는다. 환풍기가 돌아가지 않는 암흑 속의 그곳은 우리가 문을 열기까지 한참 동안의 시간을 혼자였으리라 생각된다. 무엇보다 대피소는 필히 지하이므로 그것도 깊숙한 지하여 서 따로 환기구가 있기는 하지만 별 소용이 없다. 하긴 대 피소에 들어올 정도면 전시 수준인데 냄새고 습기고 따질 여유가 없을 것이다. 최근 대피소를 이미지로 접한 경험은 후쿠시마 원전 사태 가 일어난 일본이다. 놀랍도록 침착하게 대응하는 일본 사 람들을 보면서 이상한 기분이 들었던 기억이 있다. 집도 절 도 잃고 찾아온 대피소에서조차 전혀 심리적인 요동 없이 정해진 동작과 규칙을 준수하면서 살아가는 일본인들의 모 2013년 5월 25일 백령도 1일차 29


습에서, 나는 과거 조선인의 미래형으로서, 과거 일왕제국 의 군국주의의 향기로 인식되는 무언가가 머리를 강하게 때 렸음을 고백한다. 이러한 엄청난 상황을 겪으면서도 자신 을 완벽하게 통제 할 수 있는 스스로의 기제가 내제되어 있 다는 사실이 놀라웠다. 한편으로는 무서웠다. 일본이 식민지를 수탈할 당시 그들 의 표정을 선명하게 추측할 수 있었기 때문이다. 천황 숭 배라는 절대적인 가치가 있기에 그들은 국가의 지시를 신 의 의지로 해석했고, 그렇기 때문에 기계와 다름없이 살육 할 수 있었다. 일본의 이런 군국주의 시대의 악령들을 마주하고 있으면 중국의 경우도 떠오르기 마련이다. 중국처럼 국가의 초법 적 공권력에 대한 경각심이 국가의 구석구석에까지 교육되 지 않는 경우에는 개개인이 규율과 규칙이라는 통제로부터 자유롭게-자유롭다고 생각하게 되고 그런 상태가 가져다준 윤리적 아노미 상태는 폭력과 가난일 뿐이다. 물론 어떤 면 에서는 마오쩌둥 시대의 홍위병이 저지른 것과 같은 악행이 일본의 군국주의 보다 악에 관해서는 더 우위에 선 느낌도 있지만 나의 기준은 중국에 있는 전혀 교육받지 못한 지방 사람들도 포함하기 때문에 전체적인 통제가 가능한 일본의 국민성과는 양적으로 다르다. 뭐가 더 좋은 건지 모르겠다. 그대로 두면 스스로 붕괴에 이르는 게 인간 아니던가. 그렇다고 치면 차라리 누군가의 30 2013년 5월 25일 백령도 1일차


손가락질에 의해 좌지우지 되는 쉬운 집단-일본이나 독일 나치 당시가 더 낮다고도 생각이 된다. 억압이 있기에 혁명 이 있고 통제가 있기에 자유가 있는 것인가? 후쿠시마에서 대피소에서 집을 잃은 사람들이 보통 때처 럼 움직일 수 있게 하는 공통의 약속. 자신도 모르게 흡수 해 버린 국가의 힘을 대피소에서 잘도 따르고 있다. 만약 북한이 백령도를 향해서 미사일을 쏘아대면 백령도 주민들 이 대피소로 일사분란하게 모인다는 긍정적인 예측을 미리 깐 상태에서, 이 습기와 좁은 공간은 충분히 감내할 수 있 는 고통일 것이다. 그렇지만 후쿠시마 원전 사태 때에 대피소는 공립기관의 체육관이나 부대시설이었다. 내가 있는 이곳은 휴전 국가 의 최전선에 있는, 언제 어디서 포탄이 날아들지 모르는 긴 박한 상황에 놓인 현지인들이 긴급한 상황에 뛰쳐 들어와 야 하는 실제의 공간이다. 안에는 식당과 간부들이 회의를 할 수 있는 상황실, 조리 대, 위생실 등 위급한 상황에 필수적으로 갖춰져야만 하는 제반시설이 조밀하게 들어차 있다. 혹시나 북한군이 환기 구로 최루탄이라도 밀어 넣는 날에는 여기가 꼼짝 없이 콧 물눈물공장이 될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수중(水中) 에서 벗어날 수 없는 익사 위기의 고통과 밀폐된 공간에서 점점 더 공간이 조여드는 밀실압박은 상상만으로도 고통이 다. 어린 시절 본 영화에서 나오는 이런 장면은 잊기 힘든 2013년 5월 25일 백령도 1일차 31


정신적인 외상으로 남아 대피소와 같은 밀폐된 공간에서 어 김없이 찾아온다. 일행들은 처음에는 대피소가 신기한 듯이 주변을 기웃거 려 보다가 강의를 듣기 위해서 자리에 앉자마자 하루의 피 로가 봉인해제된 3교대 공장노동자처럼 고꾸라졌다. 거의 모든 사람들이 인천발전 연구소 박사님의 강의에 아랑곳하 지 않고 잠이 들었다. 나는 아주 흥미 있는 소재였기 때문 에 좀 더 가까이에 가서 경청하려고 우측에 따로 자리를 마 련하여 제 정신을 쥐어 짜봤지만 허사였다. 이내 잠에 곯아 떨어졌는데 모양마저 좋지 않았다. 타이밍이 잘 맞아서 잠 깐 깨어있는 동안 나를 본 사람들은 헤드뱅잉 하고 있던 나 를 기억해냈다. 백령도가 어떻게 이루어졌으며 볼만한 풍경이 뭐가 있는 지와 같은 내가 사전조사에서 이미 파악했던 내용들이었지 만(오늘 돌아본 곳도 이미 알아본 곳이었지만 내가 미처 조 사했던 곳이라고는 도저히 생각할 수 없었다.) 강의에서 이 미지와 같이 나온 텍스트로는 도저히 감이 오질 않는다. 사 진으로 우주 한가운데의 모습도 볼 수 있는 세상이 되었지 만 경험해 보기 전에는 머릿속에서 정리가 되지 않을뿐더러 앎이 어떻게 진정성을 가진 실재로 인식되는지 회의적이다. 내일 당장 가서 보기 전까지는 아는 척 안하기로 한다. 일 행들이 인천으로 돌아가고 혼자서 백령도를 일주하면서 보 게 될 날들이 기다려지는 것도 이 때문이다. 32 2013년 5월 25일 백령도 1일차


숙소로 돌아오는 길은 400m정도가 되는 짧은 거리였지만 먼저 대피소에서 탈출해 면사무소 앞에서 쭈빗거리는 사람 들은 누구도 선뜻 먼저 숙소로 돌아가려 하지 않았다. 여행 의 첫 날 밤은 모르는 사람과 친해지는 절호의 순간이자 술 을 좋아하는 나 같은 사람들에게 여행의 흥에, 알코올에 취 할 수 있는 아주 낭만적인 순간이기 때문에 먼저 돌아가기 에는 아쉬웠을 따름이다. 나 역시 면사무소 앞에서 기다리 다가 젊은 작가들과 밤 약속을 잡고 숙소로 걸어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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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3년 5월 26일 일요일 백령도 2일차, 비 오고 세찬 바람 숙소-심청각-백령병원-칼국수집-천안함 위령비-연화리 해변-두무진-용기포-숙소

아침부터 부산하다. 사람들은 어제 새벽 늦게 까지 잠이 들 지 않았음에도 아침 7시에서 8시까지만 아침식사를 배급하 는 아주머니의 관할 안에 들어갈 수밖에 없었다. 백령도 상 차림답게 까나리 조림과 간장게장, 반찬보다도 더 먹음직 스러워 보이는 쌀밥이 나왔다. 다소 간이 짜기는 하지만 대 부분 만족하는 분위기다. 입맛이 까다로운 몇 몇은 조미료 가 너무 많이 들어갔다며 투덜댄다. 나 역시 평소 간을 적 게 해서 먹는 축이라 썩 만족스럽지는 않지만 그렇다고 맛 이 없어 먹지 못할 정도는 아니다. 추측컨대 간을 아주 짜 게 하는 전라도 아주머니가 백령도로 시집왔다고 보인다. 밖으로 나와서 다들 인스턴트 커피를 한 잔 씩하며 오늘 일 정에 관해서 얘기한다. 일단은 심청각을 가서 마지막으로 용기포에 가는 일정이라고 한다. 숙소에서 가깝다니까 한결 마음이 놓인다. 단체 관광에서는 각 장소마다 일정이 타이 트하게 짜여 있어서 저마다 관광 스팟을 정복해 나가는 탐 험가가 된다. 느긋하게 오래 머물기 원하는 나에게 좋은 방 식은 아니다. 사진을 전공해서인지 관광지에서 카메라를 들 2013년 5월 26일 백령도 2일차 35


이대는 사람들의 모습을 보면 무섭기까지 하다. 중국을 여행할 당시 단동에 머무를 때이다. 단동시는 압록 강을 사이에 두고 신의주와 마주한 곳이다. 압록강이 황해 로 흡수되는 하구지점이여서 강폭이 20m도 안 되는 곳도 있다. 나는 북한이 바로 보이는 강가의 호텔에 숙소를 잡고 불이 켜지지 않는 신의주의 모습을 감상했었다. 간혹 북한 쪽에서 움직이는 희미한 불빛을 명멸하는 광경을 바라보면 서 짧은 시간동안 북한 인간을 상상하기도 했었다. 다음 날, 낮에 유람선을 타고 북한 마을 근처에까지 가서 본 풍경은 밤에는 상상도 못했던 곳이었다. 놀이공원이었 다. 성했던 적이 없어 보이는 삼류 유원지의 놀이공원처럼 간혹 가다 배치된 사람들만이 회전마차를 탈 수 있는 권한 이 주어진다고 했다. 유람선에서 북한 마을을 향해 거리낌 없이 사진만을 찍어 대는 한국인 관광객들을 사이에서 북한 사람을 향하여 손 을 흔들었다. 아직 청소년도 안되어 보이는 소년은 찡그 린 표정으로 나를 바라봤다. 큰 망원렌즈가 내 얼굴 옆에 서 역시나 그 소년을 찍고 있었다. 빌어먹을 카메라에 관 해서 생각했다. 유람선에서 내려 압록강 철교에서도 북한에 관한 나의 공 상이 카메라로 무너져 내린 적이 또 한번 있었다. 중국의 영토 안에서만 자유롭게 왕래가 가능한 압록강 철교는 북 36 2013년 5월 26일 백령도 2일차


한으로 갈 수 없다는 망향의 상징이자 언젠가 회복되어 철 마를 타고 유럽까지 갈 수 있다는 희망의 상징이기도 했다. 그렇지만 나에게는 접경지대에 몰두한 한국인 관광객들의 카메라 소리가 웅성이던 그런 곳으로 밖에 기억되질 않는 다. 웃통을 벗은 험상궂은 중국불량배가 노려 볼 때만 조용 했던 한국 관광객들은 나에게 사진을 찍어 달라며 당연한 책무라는 식으로 말했다. 결혼식 원판 아르바이트를 하면 수십 명의 사람들을 세 줄로 늘여놓고 사진 찍는 것이 일이 었던 나는 압록강 철교에서 관광객들에게 정렬할 것을 요 구하는 일은 여의도 증권맨들이 사무실 데스크에 앉아 있 는 것과 같았다. 관광객들이 증거로 남기는 사진은 곧 그들이 여행하는 목 적이었다. 어떤 곳에 방점을 표시하는 행위를 현대인들은 사진을 통해서 남기는 것이다. 중국 오래된 역사 유적에 가 보면 나무로 만들어진 곳이면 어디든, 그것이 대들보든 현 판이든 애인의 이름과 자신의 이름을 맹렬히 파놓은 것을 볼 수 있다. 그것보다는 세련된 방식이기는 하지만 사진을 통한 이미지 포획도 여행자의 의지와 합쳐지면 다시 한 번 여행의 목적에 대해서 고민해 볼 수 밖에 없다. 때문에 여 행은 필히 일정과 코스에 얽매이지 않을 자신 있는 자만이 오랫동안 간직할 추억을 남길 수 있다. 다행히도 백령도에서는 어제 최대한 많은 수의 관광지를 2013년 5월 26일 백령도 2일차 37


돌아보고 오늘은 일부러 각자가 조사할 시간을 주기위해서 일정을 느슨하게 짰다고 한다. 작가들에게 현지조사란 학 자들의 연구와는 거리가 멀다. 무언가 알려고 하는 치밀한 조사라기 보다는 그저 시간을 잘 타려는 심호흡을 길게 하 면 뭔가가 조사되는 식이다. 시간이 필요한 이유도 이 때 문이다. 어제는 45인승 관광버스를 타고 이동했었는데 오늘은 거 기에 비해 아담한 20인승 콤비 버스로 바뀌었다. 오히려 잘 된 편이라고 생각한다. 심청각은 심청전에서 모티브를 얻어 지어진 건물이다. 장 산곶이 바라보이는 언덕에 지어진 심청전 기념관이라 보 면 된다. 이상하게도 백령도에서 가장 큰 집성촌인 진촌리 는 백령도에서 북동쪽에, 그러니까 백령도에서 북한을 마 주하는 가장 가까운 곳에 있다. 흔히 한국의 모습을 토끼가 웅크리고 있는 모습에 비유하고는 하는데 토끼의 손이 굽 혀 있는 손가락 끝에 해당하는 곳이 장산곶이고 거기서 손 톱 끝이 떨어져 나온 듯 인당수 건너 바로 앞에 떨어져 있 는 섬이 백령도이다. 예로부터 장산곶과 백령도 사이 물살은 너무도 거세서 나 룻배를 수십 척이나 넘게 삼켰다는 얘기가 전설처럼 내려져 온다. 심청전의 배경이 이곳이 된 것도 그런 이유이다. 워낙 물살이 쌔 인명피해가 많이 생기자 사람들은 민간신앙에 의 지하여 심청이를 바다에 바친 곳이다. 심청전이 한국의 고 38 2013년 5월 26일 백령도 2일차


전소설이라면 심청이를 인당수에 빠뜨리는 악인 역할은 조 선 사람인 것이 더 이치에 맞는 일일 것인데 굳이 중국에까 지 가서 죄 없는 중국 행상을 빌려와 쓴 것을 보면, 그 당시 도 악인과 선인을 나누는 캐릭터 문제가 요즘 할리우드에 서 유색인과 백인을 상하로 놓고 보는 대립구도와 크게 다 르지 않은 것이 흥미롭다. 차를 타고 언덕을 한참 올라가서 심청각에 도착하면 처음 마주 풍경은 심청이가 치마저고리를 한 손으로 움켜잡으며 막 인당수로 뛰어 들어가려는 포즈를 한 청동 동상이다. 우 리가 가기 전에 이미 알록달록 등산복 아주머니들은 동상 을 배경으로 똑같은 포즈를 취하고 서로 사진을 찍어주고 있었다. 한복을 입은 심청이는 수중고혼이 되기 전에도 어 쩜 그리도 착하게나 몇 백 년이나 어린 후손을 상대로 기념 사진 촬영을 하고 있는 것이다. 고개를 옆으로 돌려보면 북한과 가장 가까운 곳답게 k-9 자 주포가 어정쩡하게 설치되어 있다. 심청각 만큼이나 스펙 타클 한 스케일을 자랑하는 k-9 자주포는 국방부가 자랑하 는 최고의 무기이다. 국군방송의 한 프로그램에서는 k-9 자 주포와 k-1전차가 세계에서 5위권 안에 드는 대표적인 국산 무기라고 소개했었다. 기갑부대에서 군생활을 해서 자주포 나 전차라면 수도 없이 봐왔지만 백령도는 언제 어디서 실 제 상황이 발생할 수 있을지 모르기에 아주 잘 갈고 닦아놓 은 듯, 금방이라도 포를 쏠 수 있을 것 같았다. 대충 그려 넣 2013년 5월 26일 백령도 2일차 39


으려면 금방인 국방색 위장무늬도 상시 선명한 새로운 색으 로 칠해 놓아 때깔이 남달랐다. 이렇듯 관광지 바로 옆에 있 는 장사정포는 심청이가 몸을 바쳐가면서까지 제발 좀 잦아 들기만을 바랐던 바다 물살이 무색하게도, 심청이의 사체를 뛰어넘어 순식간에 저곳 북한에 가닿을 수 있다. 심청각은 2층 규모의 기와식 목축 건물로 용도상으로는 전 시장으로 사용된다. 시간이 일러서 아직 출입을 담당하는 매표직원이 안 나왔기에 출입할 수가 없었다. 조금이라도 정보를 얻고자 백령도에 들어오기 전에 배포 된 홍보 자료를 꺼내 들었다. 심청전의 간단한 줄거리와 함 께 심청각 안에는 여태까지 심청전과 관련된 자료가 모두 보관되어 있다고 설명되어 있다. 심청전과 춘향전과 같은 고전소설들은 단순한 스토리임 에도 불구하고 다양하게 연극, 영화, 판소리 등으로 파생 되어 한국인의 정서에 지대한 영향을 끼쳤다. 요즘에도 광 화문 교보문고에 가면 메인 동화 가판대를 독점한 영어동 화에 밀려나기는 했지만 아직도 구석진 곳에 명목을 유지 하고 있기는 하다. 내가 518 여성 희생자와 성형수술을 해 야만 하는 현대 여성의 얼굴에서, 여성이라는 점과 희생이 라는 점에서 기구한 애환을 느끼는 것처럼, 누군가를 위해 몸을 던진 심청이의 한에서도 비슷한 슬픔이 느껴진다. 애 석하게도 이 세 명의 여자들의 모습이 심청이를 필두로 시 간성을 가지면서 나열된 것 같다. 심청이가 광화문 지하에 40 2013년 5월 26일 백령도 2일차


서 홀대 받는 것처럼 미래에 이르면 왜 한국여성들은 성형 수술에 무방비하게 당할 수밖에 없었는가에 관해서 포럼이 열릴지도 모른다. 현대에 와서 다양하게 표현된 심청전을 만날 수 있게 되 었는데, 판소리로는 ‘아마도이자람밴드’라는 비주류 가수가 판소리를 요즘 문화에 맞게 변주하여 대중화에 이바지하고 있어 흥미로웠다. 듣기로는 이자람은 아동 소리꾼으로 만 7 세에 처음으로 공중파에 데뷔했다고 한다. 아버지 역시 유 명한 소리꾼으로 기억하는데 판소리라 그런지 대대손손 이 어져 내려오는 피가 있으려니, 심청전다운 생각을 해본다. “자 이제 버스에 타세요.” 이제 우리의 심청각 관광은 끝이 났다. 여행사 박부장의 지 시에 따라 버스에 오른다. 어제 안내를 맡았던 사장과는 좀 다른 어투로 부장은 우리를 버스 안으로 집어넣는다. 경상도 억양이 강하게 남아있는 박부장은 키가 작지만 다 부진 체격을 가진 중년의 남성이다. 고향이 이곳이 아니라 지만 백령도에 관해 이것저것 설명해주는 것을 보니 여행 가이드로 잔뼈가 굵은 것 같았다. 세련되고 외국어를 잘하는 여행가이드의 전형적인 모습 과 차이가 나지만 부장의 강직한 시골 노총각 같아 보이는 지점에서 갑자기, 아는 형이 대학을 갓 들어가서 친구들과 큰맘 먹고 여행을 갔다던 덕적도 에피소드가 생각이 난다. 2013년 5월 26일 백령도 2일차 41


그 형이 친구들 5명을 이끌고 찾아간 덕적도는 펜션이 단 한 개이고 영업 허가를 받은 식당도 펜션 주인이 펜션 아래 층에서 운영하는 1층 식당이 전부인 그런 섬이라고 했다. 배가 출출했던 형은 슈퍼마켓도 보이질 않아 뭐 먹을 것이 없냐고 주인에게 물어보자 마당에서 뛰어놀던 닭을 가리키 며 잡아주겠다고 했다고 한다. 오랜 시간이 지나고 아저씨 는 솥에서 꺼낸 닭을 먹어 보라고 내놓았는데 그 맛이 너무 나 형편없어서 난감했었다고 했었다. 섬에 도착했을 때 펜 션 주인이 에스코트 하러 타고 온 경운기로 자신의 운명을 예견했었다고 하니 크게 기대도 안했다고 했었다. 그 형은 나와는 다소 취향이 다른 부분이 있어서 낡아 빠진 경운기 를 결코 용납하지 못했을 것이다. 농기구들이 난잡하게 나 부끼고 있는 틈으로 비집고 들어가서 경운기에 올라탔을 때 를 회상하며 당시 상황을 슬픈 어조로 설명했었다. 나는 이 에 응수하여 5살 무렵 가만히 있는 경운기 위에서 놀다가 찢어진 이마를 보여주며 경운기의 해악에 대해서 동조했었 다. 어릴적 나는 경운기 주인이 밭일을 하러 찾아오면 놀던 일을 그만두고 부리나케 달아났더랬다. 백령도 박부장도 여행이 비수기에 들어가면 본업인 토목일 로 되돌아간다고 한다. 섬사람들은 대개가 여행 성수기를 맞으면 관광산업으로 몰려들었다가 날이 추워지는 순간 다 시 본업으로 돌아가 생계를 유지한다. 요즘 같은 경우는 워 낙 남북한 정세가 안 좋아서 이런 관광 수입으로 먹고사는 42 2013년 5월 26일 백령도 2일차


사람들의 수가 많이 줄었다고 한다. 사곶해변과 콩돌해안 사이의 담수호를 조성하여 농업용수 를 확보하고자 회의가 열렸는데 그 당시 나눠진 찬반 여론 은 아직까지 영향이 있다고 한다. 자연을 좀 더 가꿔서 관 광객을 유치하자는 반대파가 있었는가 하면 반대로, 농업 으로 먹고사는 섬의 특성상 담수호는 오히려 늦은 감이 있 다며 이제라도 만들어야 한다는 찬성파로 나뉘었었단다. 그 말을 듣고 보니 제주도 강정마을 일이 생각이 났다. 평 온하던 동네가 해군기지 건설로 인해서 양쪽으로 갈라서 는 모습이 닮아있다. 어제까지만 해도 형님동생 하던 사이 가 이제는 의견이 다른 사람에게는 구멍가게 막걸리 하나 도 내놓지 않는 메마른 곳이 되어버렸다고 들은 적이 있다. 섬이라는 공통점을 제외하고는 섬이 살아가는 양상이 첨 예하게 다른 백령도와 제주도가 재미있다. 백령도도 잘 봐 주자면 제주도에 버금가는 비경으로 관광객들을 유치할 수 있는 천해의 자연환경이지만 그것 못지않게 지정학적인 위 치가 워낙 대단하다 보니까 군사 문제에 부딪쳐서 개발이 안 된 부분이 많다. 모든 것이 국가 안보가 우선시되는 분 단국가인지라 주민들의 의지 이전에 국가 안보의 전초기지 로서, 국가에 의한, 국가를 위한 백령도로 다뤄지고 있다. 매스컴도 백령도를 국가의 시선으로 다루다 보니 육지 사 람으로서는 백령도에 가면 당장이라도 북한군과 맞닥뜨릴 것 같은 염려가 드는 곳이기도 하다. 우리에게는 금강산 관 2013년 5월 26일 백령도 2일차 43


광객 피살이라는 끔찍한 과거가 엄연히 존재하기 때문에 비 록 한국 땅이기는 하지만, 백령도가 그만큼 북녘의 힘이 언 제고 닿을 수 있는 곳이라 생각되는 것이다. 주민들도 역시 확고한 보수층의 지지 세력이라는 점에서 어떻게 보면 스 스로 개발을 억제하고 있는 것 같기도 하다. 잘 먹고 잘 살 고 싶지만 생명이 불안한 백령도 사람들이 선택할 수 있는 여지는 안보에 있는 게 당연하지 않을까? 남쪽의 휴양지 제주도와 북쪽의 전초기지 백령도. 누구는 신혼여행으로 제주도를 찾고, 있지도 않던 길을 개 발하여 힐링하고자 하는 자들의 호주머니를 털기도 하고, 때로는 도시 일에 지친 사람들이 너도나도 몰려가서 자유 의지를 피력하는 그곳 제주도이지만, 백령도는 고작 연예인 현빈이 복무한 해병대가 있다거나 연세 지긋한 할아버지들 이 경상도 사투리로 ‘쥑이네’하면서 안보관광이나 오는 그 곳이 백령도이다. 아무것도 생각안하고 바라보면 다 똑같 이 바다에 둘러싸인 땅덩어리인데 참 알 수가 없다. 뭐 따 지고 보면 섬이 아닌 곳이 어디 있겠냐만. 심청각을 거의 다 내려가면 백령초등학교 학생들이 여름 방학 과제로 했던 ‘효행 일기’가 어느 집 담벼락을 따라 걸 려있다. 5월 가정의 달을 맡아 실시되었다는 백일장에서 수 상한 포스터와 효행 일기가 같이 뒤섞여 있다. 주제어가 ‘심 청전’과 ‘부모님’이었을 것이다. 아니면 지역 문화에 익숙한 학생들이 자연스럽게 효 하면 심청이로 연상 했을지도 모 44 2013년 5월 26일 백령도 2일차


른다. 모든 글들의 끝은 ‘부모님을 생각하며 좀 더 잘해드려 야겠다.’는 마지막으로 귀결된다. 글 솜씨가 초등학생 솜씨 라고는 믿어지지 않을 만큼 빼어나다. 한 여중생은 인천에 나가 있는 어머니를 그리워하며 편지 글을 써놨는데 나도 모르게 감정이입해서 가슴이 아려오기 도 하였다. 할머니를 모시고 부모님과 함께 산다는 그 학생은 건선현 장에서 아버지가 갑자기 쓰러지시고 어머니가 대신해서 돈 을 벌어야 했다고 운을 띄웠다. 그렇게 인천으로 가정부 일 을 하기 위해 떠나야 했던 어머니의 부재로 인하여 집안일 을 할 수 있는 것은 자신뿐이었다고 한다. 학교에서 돌아 온 어느 날, 겹겹이 쌓여있는 빨랫감과 먼지가 새하얗게 묻 어나오는 식탁을 보고는 울음을 찾지 못했다고 했다. 어머 니 생각으로 눈물범벅이 된 얼굴을 매만지면서 다시는 집 을 이런 식으로 나두지 않겠다는 다짐을 했다는데, 편지가 꾸밈없고 솔직하면서 진실 되어보였기 때문에 나 역시도 전에 없던 감정이입이 가능했다. 여중생의 한낱 백일장 글 로 인해서 이렇게 오랫동안 가슴이 먹먹해 질 줄은 꿈에도 생각지 못했다. 진촌리를 가로질러 도착한 곳은 백령병원이다. 차를 병원 초입에 세워 놓고 걸어서 들어간다. 숲속에 위치한 병원은 이런 식으로 삼림과 가까운 산책로를 갖추고 있다. <상실의 시대>에서 나오코를 보러가는 와타나베를 상상한다. 나도 2013년 5월 26일 백령도 2일차 45


모르게 마음이 편안해 진다. 맞은편에서 환자복을 입은 사 람들이 걸어오고 있을 것만 같다. 절기상 초여름이기는 하 지만 워낙 날이 쌀쌀해서 군데군데 초록이 여물지 않은 나 뭇잎도 보인다. 평화롭기만 해 보이는 숲 속 산책로는 이곳 이 백령도라는 것을 모두 잊게 만든다. 병원이 제대로 돌아가고는 있는지, 얼마 전까지도 사용한 흔적이 보이는 수술실을 발견하기 전까지는 폐원한 곳으로 알았다. 폐원은 면했지만 그나마 남아있는 수술실도 도시 에 있는 병원 중에서도 가장 낙후된 지역에 있는 소형 종합 병원 정도의 시설을 갖추고 있었다. 백령도에 있는 유일한 병원이지만 맹장수술도 할 수 없다고 한다. 내년에 규모가 커져서 새롭게 바뀐다고 하지만 여태까지 백령도 주민들은 그 흔한 맹장 수술도 받기 어려울 만큼 낙후된 환경에서 자 라온 것이다. 하물며 조금이라도 급박한 수술 같은 경우에 는 도대체 어떻게 진행이 되었으며 더 궁금한 것은 이런 상 태를 섬 주민들은 어떻게 감내하면서 살수 있었을까하는 점이 의아했다. 수술실 안은 그래서일까 너무도 적막했다. 누군가는 생사를 다투었을 수술실에서 나는 사진을 찍는 다. 생각해보니 여전히 사용되고 있는 수술실에 들어와 주 인이 된 듯 여러 곳을 둘러보는 것이 처음이다. 특별히 촬 영을 위해서 장소를 섭외하지 않는 이상 병원 내부는 엄 격하게 통제되어 있지 않은가? 공포 영화에서 병원은 단 골 촬영지이다. 그래서인지 흉가라고 생각되어 오싹해 지 46 2013년 5월 26일 백령도 2일차


기 시작한다. 사진을 찍는다고 사람들이 빠져나간 줄도 몰랐다. 뒤도 돌 아보지도 않고 정문까지 뛴 다음 바깥에 가까워져서는 모른 척 평상시 발걸음으로 사람들의 곁으로 다가갔다. 날이 여전히 흐리다. 백령도에 빠르게 적응한 사람들은 우 의를 어디선가 사왔다. 언제고 다시 내릴지 모르는 비는 사 람들의 생활방식을 바꿔놓는다. 아직 점심시간까지 는 시 간이 좀 남았기 때문에 일단 각자의 방으로 들어가 12시에 다시 모이는 것으로 하자고 했다. 점심은 백령도에서 가장 유명하다는 칼국수 집을 예약했다고 한다. 시간이 어중간하게 남아서인지 방에 들어가는 사람이 거 의 없다. 사람들은 서서 담배를 피우거나 낯선 사람들과 인 사를 나눈다. 나는 벤치에 앉아 좀처럼 해가 뜰 줄 모르는 하늘을 바라다 봤다. 날이 흐린 독일이나 영국 사람들은 신이 애초부터 철학자 를 배출하게끔, 우울이 온 국민의 정서에 스며들게끔 계획 한 나라라는 생각이 든다. 축구를 좋아하다 보니 스페인에 관한 기사를 자주 접하게 되는데 스페인 선수들이 영국리그 에 적응하지 못하여 실패하는 이유가 날씨 탓이라는 기사를 본적이 있다. 스페인 세비야의 경우 엄청나게 날이 밝고 화 창한 지역이라서 세비야 선수가 영국 맨체스터에 이적하는 순간 신경쇠약에 걸려 축구장에서도 맥을 못 춘다고 했다. 백령도의 날씨도 뭔가 사람을 고독하게 만든다. 스무 살 2013년 5월 26일 백령도 2일차 47


대학 신입생 시절, 여름 방학을 뜻깊게 보내고 싶다는 생 각에 2달 동안 제주도에 있는 초콜릿 박물관에서 아르바이 트를 했었다. 그 당시 숙소에 놔둔 핸드폰이 작동하지 않 아 찾아간 서비스 센터에서 습기에 의한 침수로 인하여 메 인기판을 갈아야 한다는 얘기를 듣고는, 섬이라는 환경에 서 받아들일 수밖에 없는 ‘물과 함께 하는 삶’에 대해서 체 념한 기억이 있다. 백령도 숙소 주인아주머니도 역시 여기 사람들은 곰팡이 같은 것들은 별로 대수롭지 않게 생각한다고 했다. 여름이 고 겨울이고 곰팡이는 삶에 깊숙이 침투되어 있어서 제습 기 같은 전자제품도 소용이 없는 곳이라고 했다. 점점 섬 에 대해서 알면 알수록 생활환경이 달라서 받아들여야 하 는 것들이 많아진다. 우리가 있는 숙소는 진촌리에 위치해 있다. 진촌리는 백령 도의 중심 시가지로 여기서 천안함 위령비 까지 가는 길은 끝에서 끝이다. 섬을 가로 질러 거의 30분을 내달려야만 도 착할 수 있는 거리이다. 중간에 칼국수집에 들리는 것이 그 나마 긴 버스 여정에 위안을 주는 부분이다. 칼국수 집은 가옥이 몇 채 없는 곳에 떡하니 마땅한 간판도 없이 영업하는 곳이었다. 더군다나 우리가 먹을 자리는 아 무렇게나 설치된 천막이라서 더욱 더 칼국수가 궁금해졌다. 갑작스럽게 준비한 듯 아주머니는 칼국수가 다 되기 전에 기다리는 시간이 지겹지 않도록 먼저 만두를 내어놓는다. 48 2013년 5월 26일 백령도 2일차


만두피가 투박하고 큼직한 것이 집에서 빚은 것이 분명하 다. 한 입을 베어 무니 만두피에서 메밀 맛이 난다. 메밀가 루를 반죽해서 만든 피에 안에는 백령도 특산 굴과 다진 김 치를 섞은 만두소가 들어가 있다. 메밀과 김치 그리고 향 긋한 굴 냄새가 섞여서 백령도 특유의 맛이 난다. 생김새만 보고 의아해 했던 사람들이 모두들 만족하며 한 마디씩 품 평을 한다. 도시인에 입맛에 안 맞더라도 본거지를 떠나 온 사람들이 찾는 것은 익숙하고 맛있는 서울의 맛이 아니라 지방의 특색이 깃들어 있는 특산품으로 만든 특색 있는 맛 이다. 백령도 만두에 대해서 대부분 만족한다. 조금 기다리자 칼국수가 나온다. 이번에는 짜지 않도록 해 줬기를 기대하지만 소용이 없다. 염전이 많아서 그런지 칼 국수도 여지없이 짜다. 그렇다고 또 맛이 없는 건 아니다. 바지락이 듬뿍 들어가 있고 이번에도 조막만한 굴이 아낌없 이 들어가 있다. 이것으로 어제의 숙취는 날아간다. 빗방울이 조금씩 굵어진다. 서둘러 버스를 탄다. 이제 우리 가 가야할 곳은 천안함 위령비가 있는 연화리 해변 쪽이다. 천암한 위령비 주변으로 최근에 공원공사가 완공되어 민 간인의 출입이 가능하다고 한다. 낮은 산이어서 모두가 걸 어가기로 합의하고 걸어가기로 한다. 위령비에 거의 다 와 굽어지는 길옆에서 물과 음료수를 깔 아놓고 파는 노점상이 보인다. 그곳에서 얼마 떨어지지 않 은 곳에서 네다섯 살쯤 되어 보이는 아들과 아줌마가 낯선 2013년 5월 26일 백령도 2일차 49


사람을 경계하는 눈빛으로 앉아 있다. 우리를 노려보는 것 이 호의적인 눈빛은 아니다. 이제는 섬사람들의 저돌적인 눈빛이 익숙하다. 처음에 그 눈빛을 마주하고는 나에 대해 서 심한 반감을 가지고 있는 것은 아닌가 생각했지만 이제 는 그것이 억측임을 안다. 강한 눈빛은 감정의 표시라기보 다 자연스러운 제스처에 가깝다. 단 한번이라도 영화 이끼 를 생각하며 몸을 사리려 했었던 내가 한심스럽기도 하다. 정상에 다 오르기도 전에 높게 쏟은 위령비가 어렴풋이 보 인다. 거대한 형체가 탑에 더 가깝다. 상부만 보이던 것이 정상에 다다르자 위령비의 하단부가 보인다. 46명의 장병 들의 안면 부각과 관등성명이 새겨져있다. 위령비 너머 바라다 보이는 바다는 잠잠하기만 하다. 박부 장은 웬일로 차에 있지 않고 같이 올라왔다. 사람들은 조심 스럽게 천안함이 암초에 좌초됐다고 하는 설이 있다고 하자 박부장은 정색을 하면서 그럴 리가 절대 없다고 반색한다. 여기는 일반 배도 다 피해 다닐 줄 아는 쉬운 곳인데 어떻게 해군에서 운용하는 큰 배가 그럴 수가 있냐며 역성을 낸다. 해안가 절벽 쪽으로 출입금지 밧줄이 걸려있다. 호기심이 가득 찬 사람들은 줄을 넘어서 있는 절벽 위 공간으로 넘어 간다. 그러자 멀리서 불호령이 떨어진다. “어서 들어오세요!” 아까 좌판을 깔고 영업하던 아주머니가 올라와 성화를 낸 다. 우리 일행은 겉으로는 웃고 있지만 다들 어처구니가 없 50 2013년 5월 26일 백령도 2일차


었다. 아주머니는 잡상인을 빙자하여 천안함 위령비를 지키는 파 수꾼이었다. 길을 막고선 좌판이 성의 없어 보이는 것이나 우리를 괜히 어린아이 다루듯 나무라는 오지랖이 넓은 태 도에서 뭔가 못내 못마땅하다. 그런데 뭔가 천안함 사건과 사연이 많아서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조금은 측은해 지기 도 한다. 갓 30대를 넘은 시골 아낙이 50대가 다 되어 가는 중년으로 보여서 더 그럴지도 모른다. 걸어서 내려오는 길에 다들 칼국수로 속이 짠지 음료수를 구입한다. 아주머니는 의례적인 판매자가 구매자에게 보이 는 호의도 없다. 뭔가 단단히 화가 난 듯하다. 뭔가 천암한 과 관련이 있을 거라는 의심이 확신으로 바뀐다. 입구에 세워놓았던 버스에 올라가려고 하니 문이 닫혀있 다. 알고 보니 버스 바로 옆에 사람 하나만 간신히 통과할 수 있을 것 같은 터널이 있었다. 사람들은 터널의 소시점 이 끝나는 곳에 보이는 바닷가에 모여 있었다. 연화리 해 변이었다. 연화리 해변도 다른 해수욕장과 마찬가지로 해변으로 들어 가는 통로가 단 하나이다. 1km가 넘는 해변에 단 하나의 출 구만 있다. 해수욕장 양 쪽 끝을 해병대 초소가 지키고 있 다. 백령도 해변에서 일광욕을 즐기는 비키니 걸들이 있다 면 군인들은 근무태만으로 모두 잡혀갈 것이다. 다행히 그 럴 가능성은 제로다. 2013년 5월 26일 백령도 2일차 51


해수욕장에 오면 물수제비 놀이가 전염병처럼 번진다. 넓 고 판판한 조약돌을 손에 쥐고 잠수함 투수처럼 밀려오는 파도를 향해 던진다. 잘 던지는 사람은 4번 못 던지는 사람 은 2번을 튕기기도 힘들다. 천암함은 이런 작은 소음도 소 나로 감지했을 것이다. 하지만 이제는 천암함이 없다. 어디 선가 있을 제 2의 천암함은 우리의 물수제비 소리에 크게 놀랄지도 모른다. 하루가 지나니 이제 슬슬 사진을 찍는 것도 힘들어진다. 여행지에 대해 가지는 기대는 여행지에서의 하루가 지나면 볼품없는 현실로 채색된다. 언제 어디서건 하루의 패턴은 해가 뜨고 한 낮이 밝아오고 저녁이 지나 밤이 되는 일정한 패턴이다. 오늘도 내일도 이 지루한 패턴은 변하지 않는다. 어느 여행지이건 하루는 또 하루를 낳아 감정이 시들해져 가는 과정으로 나가기에 시간이 지날수록 진부해 지는 것 이다. 그래서 여행을 가는 사람들은 계획을 짜고 목적지를 명확하게 두나보다. 나의 여행법이라고 하면 특별히 생각하는 것이 이렇게 작 위적인 것과는 거리를 두려고 노력한다는 것이다. 나는 최 소한의 물품을 가지고 가서 웬만한 물품은 현지에서 조달 한다. 옷 같은 것은 짧은 것 하나 긴 것 하나가 전부이다. 뭘 하러가는 목적 있는 여행은 피차가 일이 될 뿐이다. 뭔 가를 해야 된다는 강박감은 이미 여행을 가기 전 일상에서 치를 떨게 만든다. 52 2013년 5월 26일 백령도 2일차


이번 백령도 여행만은 캠핑을 목적으로 하다 보니 짐이 어 마어마했다. 백패킹을 하는 사람들을 조롱 섞인 시선으로 바라봤던 나지만 실제로 백패킹을 해보니 최소한의 물품만 챙겨도 20kg은 족히 넘었다. 맥주와 삼겹살을 간식으로 챙 기는 그들이 위대해 보이기도 했다. 며칠 뒤면 공식적인 일정을 끝내고 백패킹 여행족이 되 어 섬 둘레를 걸어야 한다. 여행이기도 하고 정보 채집이 기도 하고 작업이도 한 이 노동이 끝나면 전에 없던 허무 함이 밀려올 것이다. 강력한 노동이 뒤따른 뒤에 몸이 피 곤하고 시간이 현재형으로 맞춰지면 그것만큼 허무한 것이 없는 법이다. 우르르 연화리 해변을 빠져나오는 동안 멀리 초소에서 해 병이 우리를 바라보고 있다는 느낌이 든다. 군인에게 임무 는 명령이고 국가의 힘이다. 사진기를 그들 쪽으로 들이대 는 것조차 무섭다. 논과 밭이 끝없이 이어진다. 평소 다니던 도로 보다는 좁 은 길로 다닌다. 어제부터 어딘가로 쉼 없이 찾아가고 내리 고 타고 하지만 아직도 백령도 안에서 내가 어디쯤에 있는 지 감이 서질 않는다. 길눈이 좋다는 칭찬을 듣고 사는 나였 지만 난생 처음 방문한 섬 안에서 일방적으로 이끌려 돌아 다니다 보니 달팽이관이 아무런 기능도 하고 있지 못하다. 북쪽으로 간다는 느낌이 살짝 들었는데 아니나 다를까 두 무진이다. 두무진은 백령도의 북서쪽에 있는, 섬 내에서는 2013년 5월 26일 백령도 2일차 53


교통망이 원활하지 않아 다른 곳과 고립된 지역이다. 그렇 지만 두무진은 백령도에서 단 한 가지만 보라면 두무진만 가라고 할 정도로 절경이 멋 뜨러지게 펼쳐진 곳이다. 게다 가 백령도에서 유일하게 회를 파는 곳이어서 그런지 관광 객들이 내심 가장 기대하는 곳이기도 하다. 두무진은 장군 들이 회의를 하는 모습과 닮았다고 해서 붙여진 명칭이다. 오랫동안 파도에 의해 이루어진 병풍같이 깎아지른 듯 보 이는 해안 절벽과 가지각색의 기암괴석이 솟아 있어 서해 의 해금강이라 불렀다던 주석을 어제에 이어 또 꺼내서 읽 어본다. 두무진은 산 속 요새와 같이 산을 하나 넘어야 들 어갈 수 있는데 백령도의 관광객들이 모두 이곳에 있는 것 처럼 사람들로 북적댄다. 해안가에서 남들이 안가는 곳으로 가보니 긴 동굴이 나있 다. 높이 3m 폭 5m 정도로 깊이는 20m 정도로 파져있는 동 굴에 들어가 보면 왜 이곳에 해적들이 자주 출몰했는지 말 해주고 있다. 물이 약간씩 차오르는 것이 밀물이 되면 잠길 것이 살짝 두려워져서 재빨리 빠져 나온다. 구역도 크고 볼거리도 많아서 두무진 만큼은 지루하지가 않다. 유람선에서 두무진을 폄하하면서 했던 독백이 무안 하다. 동굴을 나와서 오른쪽 절벽 앞 눈에 잘 띄는 곳에 귀 순자를 안내하는 군사표지판이 있어서 다시 한 번 이곳이 서해 최북단 백령도라는 점을 상기한다. 오른쪽으로 가서 벨을 누르면 안내해 준다고 되어 있는데 어딜 봐도 귀순자 54 2013년 5월 26일 백령도 2일차


를 위한 벨은 보이질 않는다. 벨을 찾는 시간은 짧은 해프 닝으로 끝이 난다. 산책로를 빠져나와 차를 대기 시켜놓은 곳까지 가는 길에 횟집들이 해안가 쪽으로 쭉 늘어서 있다. 싱싱한 성게가 있 다 길래 맛보러 들어간다. 성게를 파먹는 요령을 터득하고 숟가락으로 파먹고 있는데 시뻘건 피 같은 것이 쏟아진다. 폴 메카트니는 <도살장 벽이 유리라면 당신은 채식주의자 가 될 것입니다.>라는 BBC방송 프로그램에서 육류 소비자 를 살인자라고 규정했었다. 소나 돼지를 잡는 장면을 직접 본다면 채식주의자가 될 것이란 그의 주장이 강렬한 이미지 로 나오니 나름 설득력을 가지기는 했었다. 그 프로그램을 본 이후로 육식을 최소화 하겠다는 다짐을 했었다. 오늘 먹는 성게도 성게가 피를 흘리듯 체액을 쏟아내는 것 을 보니 마음이 좋지 않다. 그래도 먹음직스럽게 성한 성게 살을 보자 입맛이 돈다. ‘Stop Eating Meat’이라며 폴이 보여 준 동물을 잔인하게 죽이는 영상의 정반대 지점인 ‘식욕’에 서 더 이상 먹을까 말까하는 윤리적인 고민은 문제가 되지 않는다. 생각하는 것을 어떻게 실행에 옮길까 하는 문제이 고 수많은 욕망으로부터 어느 선까지 윤리적이 될 것인가 하는 문제이다. 이 과정에서 최종적인 승자는 대개는 욕망 이 되고는 한다. 실천이 이성을 따르더라도 결국 피폐해지 는 것은 욕망을 거스른 나다. 성게를 파먹고 소주를 한 잔 하니 욕망이 흐트러지기 시작한다. 이어서 나온 홍어무침 2013년 5월 26일 백령도 2일차 55


도 맛을 보고, 나중에 꼭 다시 오리라는 다짐을 하고 버스 로 향한다. 버스로 오는 동안 성게의 시신이 생각나면서 뭔 가가 제대로 된 생각을 하고 있지 않고 변명만 늘어놓고 있 다는 생각이 들었다. 버스는 미리 도착해 있는 사람으로 붐빈다. 마지막 한 사 람까지 오자마자 또 한참을 달려 용기포에 도착한다. 여기 가 우리가 처음 배를 타고 도착한 곳이라는데 불과 하루 전 기억도 잘 나지 않는다. 이곳에도 천안함 위령탑이라는 돌 탑이 쏟아 있다. 이제야 연화리 해변에서는 용기포의 천안함 위령‘탑’과 차별화된 이름을 사용하기 위해 천안함 위령‘비’ 라고 명명한 것을 깨닫는다. 용기포의 천안함 위령탑 뒤로는 46개국의 국기가 계양되 어 있다. 순간 좀 의심이 든다. 천안함이 백령도에 살고 있 는 주민들에게는 어떤 의미일까 하는 의심 말이다. 천안함 위령탑은 주민들이 46명의 장병들을 애도하는 뜻에서 쌓은 소원돌탑이다. 누가 시키지도 않았는데 건물 2층 높이의 돌 탑을 쌓았다니 대단하다. 바람이 강한 백령도에서도 무너 지지 않는걸 보면 더 놀랍다. 일일이 돌을 이겨지고 하나하 나 쌓았을 백령도 주민의 보훈의식과, 어느 상점에 가도 반 갑게 맞아주는 이가 없는 인색한 주민의 상반된 이미지가 중첩되어 헛바퀴 돈다. 버스에서 내려 용기포를 둘러보니 여기는 그래도 백령도 에서는 도심지역 축에 들어갈 수 있을 정도의 촌락규모이 56 2013년 5월 26일 백령도 2일차


다. 항구라 그런지 여기도 바다향이 가득하다. 버스에서 내 려 산길을 좀 가니 기암괴석이 모양 좋게 나 있는 해변이다. 몇 군데 돌아다니다 보니 파도에 휩쓸려서 온 물건들이 무 리를 지어서 쌓여있다. 정기적으로 치워주지 않으면 해안 가 전체를 잠식할 기세다. 바다나 강가에 떠다니는 물건들 은 언젠가 뭍으로 쓸려오기 마련인데 그것을 치우고 다시 정리하는 일로 인해 누군가는 먹고 산다. 물건은 아마도 국 적이 다른 어떤 사람들의 손이 닿았을 것이다. 멀리 중국에 서 만들어진 물건들은 황해를 이동수단 삼아 낯선 어딘가 로 가기위해 부유한다. 바닷가에 표류된 물건에 관한 유명한 실화가 있다. 1999 년 중국에서 제작된 목욕용 장난감 고무오리는 미국으로 운 송 과정 중 태평양 한가운데에서 폭풍을 만나서 유실되었 다. 2만 7천여 개에 달하는 오리는 바다를 떠다니다가 15 년이 지나서야 처음으로 발견되었다. 발견된 지역이 워낙 다양해서 해류의 움직임을 연구하는 데에 많은 도움이 되 었다고 한다. 15년 동안이나 바다를 떠돌아다닌 오리를 상상하자니 우스 꽝스럽다. 목욕용이 아니라 태평양 한가운데를 유유히 표류 했다니 그야말로 다큐멘터리에서 블록버스터다. 사람이 표류해 온 기록으로는 벨테브레가 한반도에서는 처 음이다. 네덜란드 상인으로 한국에 귀화한 최초의 서양인 박연(벨테브레)은 조선 인조 때 표류해 왔는데 정확한 시기 2013년 5월 26일 백령도 2일차 57


나 사망은 알지 못하는 베일에 쌓인 인물이다. 박연은 무기 를 제조하는 훈련도감에 배속되어 죽을 때까지 한국에 있 었다고 한다고 전해온다. 교과서를 통해 익히 알려진 하멜이야기와 달리 박연은 미 스테리한 부분이 많아서 정보가 그리 많이 전해오고 있지는 않다. 다만 네덜란드에서 출발하여 몇 달에 거쳐 나가사키 에 다 달았을 때 갑자기 닥쳐온 폭풍우를 본 벨테브레의 눈 동자, 그리고 표류하다가 도착한 미지의 지역 한국의 어딘 가에서 힘이 풀린 다리, 여기까지가 표류한 고무오리와 같 은 처지였을 것이고 나머지는 내가 벨테브레의 상황에 들 어가 비슷한 상황에 처함으로써 벨테브레와 같은 당혹감을 느끼는 것이 벨테브레를 이해하는 최선의 방법일 것이다. 용기포에 익사한 시체처럼 늘어져 있는 물건들을 보면서 참으로 많은 생각도 했다. 어제 술을 많이 먹어서인가 다시 돌아오는 산길을 오르면 서 숨이 가빠졌다. 내려오는 길도 편치 않았으나 올라가는 길은 더 곤혹이다. 버스에 다 와서 해병대 병사가 화장실로 들어가는 모습을 보았다. 걷는 폼이 병장쯤 되어 보인다. 이런 평화로운 해변에서 근무만을 임무로 하고 군 생활을 마무리 한다. 어느 군대이건, 어느 지역이고 어떤 시설에서 군생활을 하느냐 보다 어떤 환경과 어떤 사람들이 어떤 상 식을 가지고 군생활을 하는 곳에서 생활하는지가 제일 중 요하다. 화장실로 들어가는 해병을 보면서 다시 군대로 돌 58 2013년 5월 26일 백령도 2일차


아가고픈 마음까지 생겼다. 남자들이 ‘망고땡’이라고 일컫 는 것이 바로 저 해병과 같은 군생활이다. 너무도 긴 시간을 돌아다니느라 정신이 없었는데 이제야 답사가 끝났다. 쉴 새 없이 돌아다녀 모두들 허기가 졌다. 숙소로 이동하는 버스 안은 대화가 없이 누군가가 튼 옛 가 요만 흘러나오고 있다. 구식 휴대폰이 가창력 좋은 가수의 고음을 처리하지 못하고 파열음을 내는 것이 신경에 거슬 린다. 노래 선곡도 마음에 안 드는데 한계치를 벗어난 잡음 을 듣자니 심히 신경 쓰인다. 잠이 들새도 없이 숙소에 도 착했다. 식당에는 어제 먹은 간장게장과 함께 다 같이 먹 을 수 있도록 두부전골이 차려졌다. 같이 앉은 외국인 친 구에게는 숟가락으로 퍼먹는 전골은 힘들겠다고 지레 짐작 했는데 의외로 숟가락을 쪽쪽 빨아가면서 잘 먹었다. 그것 도 자신이 먼저 숟가락을 푹푹 담가 가면서 한국사람 보다 더 맛있게 해치운다. 무리해서 밥을 두 그릇이나 먹었더니 속이 더부룩하다. 밥 을 먹고 나가는 사람들이 어제보다 생기가 없어 보인다. 아 침부터 내달렸더니 모두들 숙소에 들어가서 쉬고 싶은 가 보다. 나도 숙소에 들어가서 샤워를 했다. 그리고는 잠시 컴퓨터를 만지작거리다가 인터넷이 잡히지를 앉아 일기를 썼다. 창밖 너머에서 사람들의 목소리가 나지막이 들려온 다. 잠이 오지 않는다고 생각했는데 나도 모르게 잠이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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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0 2013년 5월 26일 백령도 2일차


2013년 5월 27일 월요일 백령도 3일차, 폭풍 숙소-백령초등학교-사곶냉면-숙소-샤넬다방-당구장숙소

빗소리가 크게 들리는 아침이다. 10시간이 넘도록 여행지 에서 잠을 자보는 것이 처음이다. 오전 7시인데 날이 거무 스름하다. 아침 식사를 하고 있는 사람들의 표정에서 오늘 출항하지 못할 것이란 것을 짐작할 수 있었다. 비가 더 세차게 몰아친다. 안개를 동반한 바람도 사납다. 섬의 기상상태는 하루가 다르게 변한다는데 오늘이 꼭 그 꼴이다. 오늘은 무얼 해야 하는지 고민을 해 보는데 시간을 허비하지 않도록 꼭 할일을 찾아야 한다는 것이 우습기도 하다. 그래서 그냥 누워서 TV나 보기로 한다. 11시쯤 되어서 백령초등학교에 가자는 연락이 온다. 학교 는 진촌리가 내려다보이는 곳에 위치해 있었다. 비가 워낙 많이 와서 바지춤이 젖어들었다. 신발은 다행히 아웃도어 등산용으로 새로 구입한 것을 신고 왔는데 고어텍스라 그 런지 물이 하나도 들어오지 않는다. 같이 간 사람들은 신발 을 잘못신고 왔다며 투덜댄다. 초등학교에 들어가서 교무처장님과 인사를 하고 지나가던 초등학생들에게도 인사를 하니 반갑게 맞아준다. 심청각을 2013년 5월 27일 백령도 3일차 61


내려오다가 읽은 효행 백일장이 생각나서 꼬마들이 더 귀여 워 보인다. 고개를 돌려 뒤에서 시끄럽게 떠들어 대는 초등 학생들을 본다. 복도를 따라 끝까지 이어져있는 목재신발장 만으로도 나의 초등학교 시절 그러니까 국민학교라고 마지 막으로 불리던 그 시절 아름다운 기억이 떠오른다. 새 학기가 되면 어머니는 새로운 실내화를 한 켤레 씩 사 주고는 했다. 매끈한 흰 천 재질에 고무로 발을 다잡아 주 는 실내화였다. 새 실내화를 비닐에서 꺼내면 고무냄새가 진동했지만 지금도 그때의 고무냄새가 기억 한편에 남아있 어 새로 산 신발에서 비슷한 냄새라도 나면 추억 속으로 빠 져들고는 한다. 일 년이 지날수록 내 발의 사이즈는 시간이 다르게 커갔다. 어른들이 신는 신발의 최소 사이즈까지 도달해 가는 과정이 그렇게 즐거울 수 없었다. 키도 발이 커가는 만큼이나 비례 해서 커갔다. 옷도 역시 어른들이 입는 90사이즈까지 도달 하기만을 손꼽아 기다렸었다. 어른이 되는 것이 과거를 점 점 축적해 가면서 기억해야 할 것들을 자기도 모르는 사이 에 엄청나게 잃어간다는 것도 모른 채 그렇게 몸이 커져갔 다. 그 때를 기억하기 위해서 이렇게 신발장을 보면서 희미 한 기억을 더듬어야 한다는 것을 몰랐다. 잊혀져간다는 것 이 얼마나 서글픈 일인지 알았더라면 일기든 캠코더든 뭐든 동원해서 그 당시를 기록하려 했을 것이다. 62 2013년 5월 27일 백령도 3일차


지금 내가 사진을 하는 이유도 과거를 기억해 낼 수 있는 여지를 마련하기 위해서이다. 어떻게 해야 가장 현실적으 로 과거를 기억해 낼 수 있을까하는 간단한 물음에 대한 답 이 나로서는 사진이었다. 나는 구미 고향집에 가면 무슨 일 이 있어도 앨범을 들춰본다. 많아야 두 달에 한번 가지만 두 달 사이에도 사진을 바라보는 나의 태도가 변하고 있음 을 느낀다. 어떤 것이 과연 과거를 추억하는 가장 온전한 방 법인지 고민해 본다. 분명한 것은 지금의 나도 변하고 있다 는 것이며 최대한 오랫동안 보존되도록 방부제를 쳐야 한 다는 것이다. 내 얼굴에 대한 보존이 아니라 나의 기억에 대한 방부제 말이다. 사진과 가까워진 현대인에게는 사진 이 읽혀지는 방식이 중요한 게 아니다. 사진이 찍히는 최초 의 동기는 시대가 지나도 기억 그 자체일 것이다. 사진은 질이 아니라 양이다. 휴대폰으로 사진을 찍고 간직하는 일 이 나중에 크나큰 기억보물상자가 된다는 점을 어린이들에 게 알리고 싶다. 디지털이냐 필름이냐가 중요한 것이 아니 다. 원래는 없었던 프로젝트가 떠오른다. 가족사진을 찍어 주기로 마음먹는다. ‘방과 후 선생님’이 있는 방으로 들어가니 인스턴트 커피를 내놓는다. 백령도에 들어와서 인스턴트 커피는 빠지지 않 고 하루에 석 잔 이상을 먹는 거 같다. 달고 끈적한 그 맛은 군대에서 입맛에 익힌 이후로 빠져나갈 줄을 모른다. 훈련 2013년 5월 27일 백령도 3일차 63


이나 일과가 끝난 후 군디스 한 개피를 입에 물고 필터에 침 을 지긋이 스며들도록 묻힌 다음 인스턴트 커피와 같이 한 모금 음미하면 그렇게 좋을 수가 없었다. 격리된 공간에서 느낄 수 있는 고독한 쾌락이었다. 인스턴트 커피를 마시니 그 때의 기억이 떠오른다. 아까 신발장을 보면서 어릴 적을 회상한 것과 같이 인스턴트 커 피도 비교적 가까운 과거이기는 하지만 담배를 시작하고부 터 끊을 때까지의 시간을 추억하게 만든다. 딴 생각을 한다 는 오해를 많이 받는 것도 시도 때도 상관없이 찾아오는 향 수병 때문이다. 나이가 들수록 새로운 것에 대한 기대보다는 이미 경험해 온 많은 사실들을 발굴해가는 것에 더 많은 시간을 할애한 다. 생각은 경험을 기초로 할 수밖에 없기에 그렇게도 과거 를 집착하나 보다. 사소한 사물의 배치나 특정한 향기와 같 은 것이 어떤 사람에게는 다시 갈 수 없을 것만 같던 추억으 로 안내하는 매개물이 되어 실로 엄청난 파장을 일으킨다. 딴 생각을 하는 것이 맞다. 집중력이 없는 것도 맞다. ‘방과 후 선생님’이 무슨 말을 하는지 알아듣지도 못하고 고개만 시종일관 끄덕끄덕하면서 교실 밖으로 나왔다. 나가는 문을 열고 우의를 입는 동안에도 뭔가 애틋한 감정 을 숨길 수가 없다. 마음이 착잡하고 아쉽다. 비를 맞으며 운동장을 거의 다 지나왔을 때 고개를 돌려 학교를 바라봤 64 2013년 5월 27일 백령도 3일차


다. 유년기를 함께 했던 공간을 응시하는 지금의 나의 모습 이 결함에 가득 찬 기계덩어리 같이 느껴진다. 왜 이렇게 몸 집이 커져야 했을까하는 환멸이 찾아든다. 당최가 여기에 서 있을 이유를 찾지 못할 거 같다. 학교는 의무교육을 받고 자란 어른에게 특별한 추억이 깃 든 성지이다. 누구도 피해 갈 수가 없다. 비오는 백령도에 서 코를 깊이 들이쉬면, 두꺼비 집의 새집을 그렇게도 탐하 던 소년 시절의 흙냄새가 맡아진다. 초등학교를 방문하고 내려오니 딱 점심시간이다. 박부장 은 오전에 이르기를 점심 메뉴를 냉면으로 하자고 했었다. 미리 냉면집 주인과 담합이라도 한 듯이 버스를 몰고 ‘사곶 냉면’으로 지체 없이 달려갔다. ‘사곶냉면’은 인터넷에서도 맛집으로 소개될 만큼 백령도 에서 내놓으라 하는 유명한 곳이다. 박부장은 자신만만하 게 ‘사곶냉면’을 향해 운전하면서 아무래도 자리가 없을 것 같다고 몇 번이나 중얼거렸다. 자리가 있을 경우 시운을 잘 헤아린 자신의 공을 치사하기 위한 노림수이기도 했고, 자 신을 잘 만난 우리가 엄청나게 운이 좋은 것처럼 초석을 다 진 것이기도 했다. 박부장의 말과는 달리 ‘사곶냉면’은 텅텅 비어 있었다. 가 게의 구석에 진지복구 작업을 마친 해병대 몇몇 마저도 없 었으면 박부장이 먼저 무안해서 자리를 떴을지도 모른다. 해병들의 모습은 온통 비에 젖어 있어서 보기만 해도 판쵸 2013년 5월 27일 백령도 3일차 65


우의와 살이 엉겨 붙어 질척거리는 소리가 들렸다. 통풍도 안 되는 군복 바지를 입으면 다리의 맨살과 달라붙어서 짓 이겨지는 그 느낌이 아직도 생생히 기억난다. 군대에서 처음으로 판쵸우의를 입게 된 것은 논산 훈련소 에서였다. 3월 초라 봄비가 내렸었다. 아직 3월이라 봄이라 고는 하지만 겨울의 힘에 눌린 그런 시기였다. 그날따라 봄 비가 아니라 장마철 폭풍우라도 되는 듯이 비가 쏟아 부었 다. 소대장은 창고에 보관되었던 판쵸우의를 급하게 꺼내 왔는데, 작년 여름 이후 쓴 적이 없는지 묵힌 곰팡이 냄새 가 진동했다. 코를 막고 판쵸우의를 펼치면 먼지처럼 보이 는 곰팡이가 진눈깨비처럼 날렸다. 하나씩 가져가라고 조 교가 판표우의 뭉치를 내무실 바닥에 던져 놓으면, 머리를 박박 깎은 훈련병들은 한참을 굶은 들개들이 먹잇감을 향 해 달려드는 것처럼 서로 좋은 판쵸우의를 가져보겠다고 있 는 힘을 다해 달려들었다. 그것도 이해가 되는 것이, 조금 이라도 늦어서 폐급에 가까운 판쵸우의를 가지게 되면 차 라리 우의를 입는 것보다 비를 홀딱 맞는 편이 여러모로 편 했기 때문이다. 냉면을 미친 듯이 먹고 있는 해병들이 입고 있는 우의는 내 가 복무하던 시절에 입던 것보다는 뭔가 기능적으로 진일 보한 것처럼 보인다. 위아래가 분별되어 있는 것은 장교들 이나 입는 것이었는데 일반 병사가 입고 있다니 격세지감 이다. 그러나 주변을 살피자 이등병인 해병은 여전히 내가 66 2013년 5월 27일 백령도 3일차


입었던 보자기형 판쵸우의를 입고 있다. 짬밥에 따라 다르 다지만 민간인이 보기에는 둘 다 불편해 보이기는 마찬가지 이다. 식당 안은 해병들이 입고 온 우의에 뭍은 흙들이 바닥 에 여기저기 떨어져 난잡해 졌다. 군인들이 밖에서 민간 식당을 찾는 게 흔한 일은 아닌데 여 기서는 심심치 않게 볼 수 있다. 백령도 해병대는 대민 봉 사를 영내 근무만큼이나 중요하게 생각하는 것 같다. 추측 해 보건데 해병들은 밖에서 외식을 할 수 있어서 비가 무진 장 내리는 날을 오히려 더 좋아할 것이다. 병사들을 위해 사리를 더 주문하는 해병 간부는 흐뭇한 듯 이 병사들을 바라본다. 백령도 출신이 아닐 가능성이 많은 해병들은 당연하다는 식으로 까나리 액젓을 육수에 뿌리더 니 추가로 시킨 사리도 순식간에 해치운다. 비빔찌꺼기만 남아있는 그릇에 뜨거운 물을 붓고는 남아있는 계란 노른 자를 풀어서 차 마시듯 마신다. 백령도 사람들은 물냉면과 비빔냉면을 반반 섞은 반냉면 을 먹는다. 서울에서 물냉면과 비빔냉면을 둘 다 먹고 싶어 지면 물냉면을 시킨 다음 반쯤 먹고 나서 비빔냉면 양념을 섞어서 먹고는 했는데 백령도식은 애초부터 섞어서 나온다 는 점이 특이하다. 그것 말고 다른 점은 순수 메밀로만 반죽한 면이라는 점이 다. 메밀이나 보리와 거리가 먼 세대라 메밀향을 단번에 알 아맞히지는 못했지만 쉽게 갈라지는 면이 함흥냉면과는 다 2013년 5월 27일 백령도 3일차 67


르다는 점을 알 수 있었다. 밀가루로 만든 국수식감에 메밀향이 들어있다고 생각하면 된다. 맛은 없지도 않고 그렇다고 특별할 것도 없다. 까나 리 특산 고장이어서 액젓을 섞어먹는다는 점이 특색이이라 면 특색이다. 원체 냉면을 좋아하지도 않는 성격이라 다들 맛있다고 하 는데 크게 흥미도 없이 드는 듯 마는 듯 흘겨먹고 나서 밖을 보니 빗방울이 더 세졌다. 바람도 돌풍으로 바뀌었다. 내일 배가 나가지 못한다는 것에 모두들 동의한 분위기다. 냉면 을 다 먹고 일어난 사람들은 가게 입구에서 버스가 있는 곳 까지 10m 남짓한 거리를 가는 데에 귀찮은 나머지 우의도 입지 않아 온 몸을 빗물에 바쳐 희생해야 했다. 흠뻑 젖은 옷으로 보아하건대 우리는 오늘 오후를 숙소에서 알차게 보 낼 계획을 짜야만 했다. 숙소로 오는 버스의 창문을 비가 세차게 내리 꽂았다. 빗 소리에 자신의 목소리가 묻힐까봐인지 모두들 아무 말이 없었다. 숙소에 도착해서 잠을 좀 자야겠다고 마음먹었지만 잠도 오질 않고 모두들 오후가 되니 2평 골방에서 딱히 할 것 이 없어 보인다. 작업은 안하기로 진작부터 마음에 먹었으 니 남는 건 잠밖에 없다. 계속해서 노력을 하고 결국에 잠 이 든다. 일어나니 4시다. 바깥 세계가 참으로 볼만하다. 68 2013년 5월 27일 백령도 3일차


사진에 한창 미쳐있을 18살 고등학교 2학년 나는, 구미에 유례없는 돌풍을 동반한 비가 쏟아지는 그때에, 5초에 한 번씩 천둥번개가 작렬하는 들판으로 카메라를 들고 나갔었 다. 몸이 다 젖고는 왜 여기서 더 젖을 수는 없을까 분하기 까지 했었다. 그 당시의 기억을 떠올리면서, 이곳 백령도에서 최대한 편 안한 옷으로 갈아입고 거리로 나왔다. 달라진 점은 우의를 하나 걸쳤다는 점이다. 우의가 없이 돌아다니기에는 너무도 격식이 없어 보여서 어쩔 수 없었다. 하지만 이내 바람이 세 게 부니 우의가 별 소용없어진다. 백령성당까지 걸어가 보 려고 했는데 도저히 이 비바람을 뚫고는 불가능하다. 비가 내리니 시골거리에 있는 다방들이 더욱 더 안락해 보인다. 다방은 스타벅스가 한국에 들어와서 다양한 문화적인 양태 를 양산하기 전 여가생활의 척후에서 활약한 사랑방이다. 나는 기질 상 스타벅스나 카페베네로 대변되는 프렌차이즈 커피샵의 가격과 시스템에 별 흥미를 가질수 없었고, 무엇 보다 다방을 방문하면 반갑게 맞아주는 마담들의 미소가 무 척이나 마음에 들었던 사람이다. 그런 가운데 우연히 지인 의 소개로 몇 년 전부터 해오던 곤지암 리조트 아르바이트 는 다방에 대한 새로운 경험을 안겨주었다. 곤지암 리조트에 촬영 아르바이트를 가려면 강남역에서 버 스를 타고 1시간 반 동안을 이동해서 광주 곤지암터미널로 2013년 5월 27일 백령도 3일차 69


가야된다. 서울과 가까운 거리지만 곤지암은 주변에 공장 단지라도 있는지 외국인 노동자들이 곤지암터미널 근처를 오고가는 사람의 대부분이었다. 그 날도 비가 이렇게 내리는 날이었다. 시간을 잘못 계산 해서 3시간이나 일찍 도착했던 나는 터미널 근처에 있는 롯 데리아에 들어가서 간단하게 끼니를 때우고 책이나 좀 보다 가 리조트로 갈 생각이었다. 하지만 언제부턴가 중고등학생 들의 아지트로 변해버린 롯데리아는 맨 정신인 사람은 다른 일을 하기가 불가능한 곳이 되어있었다. 나는 무언가 해야만 하는 일을 단념하고 창밖에 풍경을 살 펴보던 중 ‘장미다방’이라는 야릇한 이름의 다방을 발견하 고는 짐을 들고 망설임 없이 그곳으로 향했다. 습기를 머금은 오래된 가구 냄새가 친근하게 맞아주던 그 곳은, 퇴역한 군인처럼 앉아 있는 마담 두 명이 수분 가득 한 허공을 향하여 일정한 패턴을 그리며 담배 연기를 뿜고 있었다. 손으로 아무렇게나 쓴 메뉴판을 보고는 커피를 주 문하고 “설탕은 넣지 마세요.”라고 간단한 주문을 했다. 대 하사극을 물끄러미 바라보는 마담의 얼굴을 바라보면서 그 렇게 커피를 한 잔 비웠었다. 오늘도 ‘장미다방’만큼이나 살며시 외설적인 이름을 내세 운 다방이 눈에 띄었다. ‘샤넬다방’. ‘샤넬’의 보편성은 한국 어디든 침투해 있다. 나의 일행과 커피, 유자차, 아이스티 를 시키고 1시간 동안 읍내를 묘사하는 다양한 주제를 삼아 70 2013년 5월 27일 백령도 3일차


웃음과 해학으로 시간을 때웠다. 갑작스럽게도 우리는 이 분위기에 취해 ‘읍내 라이프’를 오늘의 키워드로 하고 다음 목적지를 당구장으로 하자는 계획을 세웠다. 당구장까지 가는 비바람과의 싸움이 당구장에 무사히 도착 한 우리의 승리로 끝이 났다. 다시 각자가 큐대를 잡고 상대 를 이길 때까지 경기는 계속된다. 당구장에 우리를 제외한 모든 팀들은 군인들이다. 당구장 에도 서열이 있어서 제일 좋은 자리는 높은 계급인 장교들 이 점유하고 있었다. 하급 군인들은 당구장을 들어오면서 눈치를 살피고 고참이 있으면 바로 거수경례한다. 섬에 있 는 군인들에겐 사실상 영내 영외 구분이 있지 않고 섬이 모 두 영내인 것이다. 어딘지 뭔가 촌스럽고 부족해 보이는 사람들로 오해받아 도 이상하지 않을 정도로, 백령도로 발령받은 군인들은 섬 생활에 적응하면서 얼굴도 검어지고 외모에도 점점 신경을 쓰지 않게 되어 겉모습이 백령도 원주민과 비슷해졌다. 인 천에도 ‘월미도 디스코 팡팡’이라는 유명한 놀이기구를 타 러 온 사람을 보면 하나같이 어딘가 부자연스러운 모습인 데, 이상하게도 당구장에서 만나는 다른 사람들도 그러한 모습이다. ‘월미도 다스코 팡팡’을 자유자재로 돌리는 디제이의 말장 난은 위험수위를 유머와 조롱의 경계에서 조절하면서 기구 를 탄 사람을 들었다 놨다하는데, 그걸 타자고 또는 보자고 2013년 5월 27일 백령도 3일차 71


서울에서 멀게는 경기도 남부에서도 찾아온다. 일부러 치마 를 입고 타는 여성들은 관객들의 이목이 자신들에게 쏠린다 는 점을 알고 치마 속을 보여줄 듯 말듯 몸을 비비꼬고, 디 제이는 또 죽이 맞게 팡팡을 요리조리도 능수능란하게 조 작해서 휴대폰을 들고 유투브에 올릴 영상을 녹화하고 있는 누군가가 여성들의 팬티 색을 가까스로 구별할 수 있을 정 도로만 호의를 베푼다. 한 무리가 그런 여성들이라면 나머 지는 치마 입은 애인을 막아주려는 남자, 그리고 남자들끼 리 타서 안간힘을 쓰며 팔뚝에 힘을 잔뜩 주고 버티는 무리 다. 해병대원들이 날이 좋아 육지로 휴가가 허락되는 날이 면 월미도 디스코 팡팡을 즐겨보기를 강력 추천한다. 디스 코 팡팡에서 버티는 그들의 힘은 누구보다도 강할 것이 분 명하다. 그리고 왠지 모르게 잘 어울린다. 당구의 결과는 나의 참패로 끝이 났다. 막바지에 이르러 한 큐로 사활이 왔다 갔다 하는 그 순간에 하필 또 매력적으로 보이는 남자 한명이 당구장으로 들어섰다. 그는 특정한 일 을 하지 않고 일용직으로 근근이 생활을 유지하는 사람으 로 보였다. 그런 느낌을 주는 사람들은 정말 정신적으로 모 자라서 그렇게 사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본인의 의지에 의 해서 그렇게 사는 사람이 있다. 상대적으로 머리가 좋다 나쁘다로 나누자면 후자가 좋은 축이다. 하지만 도덕적으로 불감증에 빠져 있는 경우가 많 다. 행색이 추레하기는 두 쪽 다 마찬가지이지만 후자는 뭔 72 2013년 5월 27일 백령도 3일차


가 피해를 줄 법한 음산한 기운을 담고 있다. 당구장에 들 어온 30대 중반으로 보이는 남자는 벙거지를 눌러쓰고 웃는 모습이 이상하게도 불안하고 음산해 보인다. 나의 마지막 순서를 기다리는 동안 그 남자만 계속 주시 했다. 전화 통화를 들으니 “안전에 걸리면 업체가 철수해 야 된다.”고 하며 누군가에게 “왜 여태까지 몰랐냐.”는 식 으로 나무란다. 4년 전에 나는 천안에 있는 삼성 반도체 공장에 설비 용역 으로 아르바이트를 한 적이 있다. 방학동안 등록금을 마련 해야만 다음 학기에 등록을 할 수 있었기 때문에 방학이 다 가오면 기말고사를 공부하는 일이 주가 되는 것이 아니라 방학 아르바이트를 구하는 일로 골머리를 썩혔다. 공장일 이라면 군을 전역하고 열 달 동안 누구보다도 잘해온 나였 기 때문에 그 많은 일들 중에서도 제일 만만하고 일이 손쉽 게 눈에 보이는 것이 공장일이었다. 그래서 그해 하계방학 도 천안의 공장에서 보내기로 했었다. 천안까지 가서 숙식을 여관에서 같이하는 ‘컨베이어 벨트 설치 프로젝트 팀’에 지원했다. 공고 출신인 고향 친구들보 다 이쪽 짬밥이 한참이나 뒤졌기에 나는 ‘안전’이라고 불리 는 비교적 쉬운 직책을 맡았었다. 대기업은, 그것도 삼성은 안전관리에서 허술한 점이 노출 되는 하청 업체라면 당장에라도 잘라버린다. 안전사고는 곧 언론보도이고 이것은 자칫 회사 이미지에 심각한 타격을 줄 2013년 5월 27일 백령도 3일차 73


수 있기 때문에 그 비싼 인건비를 지급하고라도 ‘안전’이라 는 책무를 수행할 누군가를 고용한다. 다른 사람들이 설비 공사를 하는 구역을 라바콘으로 보호해주고 안전사고가 생 기지 않도록 일일체크리스트를 점검하는 것이 안전의 임무, 곧 나의 일이었다. 당구장에 이 사람은 내가 했던 공장에서의 ‘안전’을 이야기 한 것이다. 이제 어느 정도 파악이 되었다. 내가 겪었던 공 장 노동자의 이미지 틀에 그 사람을 집어넣었다. 이런 공장 노동자에게서 보이는 동질감도 있고 또 내가 그 사람을 눈여겨보게 된 점은, 대개 당구장에 들어오는 사람 들은 주변을 살피며 바로 당구다이를 찾는 것이 순서인데 이상하게도 이 사람은 눈치를 살피더니 화장실로 잽싸게 들 어가는 이상한 모습 때문이었다. 방금 누군가를 해한 살인 마처럼 시선은 몹시도 불안했다. 우리의 다이는 화장실에서 숙성된 오줌의 지린내가 진동 하는 소변이 바로 보이는 자리였기 때문에 화장실에서 그 가 얘기하는 내용도 잘 들렸던 것이다. 살며시 웃으면서 나 오는 그의 이빨 사이로 낀 거무스름한 치석들, 어딘지 모르 게 기름얼룩이 스며든 청바지, 대기가 혼탁한 공장에서 오 래 일한 자의 피부에서 보이는 검은 반점들. 너무도 많이 보 아온 그런 얼굴이었다. 나는 그런 사람들을 볼 때마다 눈길이 자꾸 간다. 아주 세 74 2013년 5월 27일 백령도 3일차


련되게 차려있고 좋은 외제차를 몰고 다니는 부유층의 모 습에서는 별다른 흥미를 느낄 수가 없다. 하지만 지나가는 개 마냥 삶에 다친 사람들과 대면하고 있으면 두렵고 무섭 기도 하면서 나 자신이 한없이 작아 보인다. 그들이 안내해주는 삶의 단면은 불안한 모습을 보여 주면 서도 무언가 강하게 사람을 끌어당긴다. 다음 날 중요한 스 케줄이 있어도 당장 오늘은 술을 진탕 마시고 세상모르게 잠이 들 수 있는 방탕함이 그들에게는 있다. 노가다에 이 미 몸을 담근 그들에게는 삶의 안전장치라는 것이 사실상 없다. 서울역 노숙자와 지금 자신들의 모습이 한끗 차이라 는, 언제고 노숙자가 될 가능성을 안고 살아가야 한다는 사 실을 잘 알고 있다. 요즘 매스컴에서 사회적 문제로 부각시키는 ‘사이코패스’ 나 ‘지하철 행패남’에 의한 사건들은 잃을 것 없는 그들을 만든 사회를 향해 내리꽂는 마지막 몸부림이다. 젊은 시절 이 가고 고단한 삶의 모든 것을 재정적인 독립에 맡겨야만 하는 보통의 우리와도 단절된, 애초부터 그런 염두는 없었 던 그들은 나이가 들어 초라한 자신을 마주하게 되는 열등 감으로 부터 자신을 지켜야한다. 그것을 유리처럼 위험하 게 유지해 주는 것이 바로 자존심이다. 문제가 발생하는 지점은 피해의식이 내재된 그들의 영역 을 고의건 타의건 침범했을 때 당하게 되는 신체의 훼손이 다. 그들의 증오는 다른 사람이 안전하다고 생각하는 도덕 2013년 5월 27일 백령도 3일차 75


적·법적인 보호막을 물리적인 타격으로 응징하는, 쉽지만 우리가 쉽게 잊고 있었던 몸의 연약함을 까발린다. 당구장 에서 누군가가 자신의 영역을 침범하여 마음에 안 드는 일 이 생기면 당장에라도 큐대를 꺾어서 목덜미를 후벼 팔 모 든 조건들이 그들에게는 갖춰져 있다. 다만 누군가의 트리 거가 필요한 것이다. 당구비를 지불하고 밖으로 나오니 비가 좀 잦아 들어있다. 섬의 밤은 육지보다 무겁다. 스산한 기운이 감돌아 밤이 늦 기 전에 숙소로 들어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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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3년 5월 28일 화요일 백령도 4일차, 안개비 숙소-레지던시

아침에 눈이 잘 떠지지 않는다. 오늘은 무얼 하면서 시간 을 보내야 할지 고민이다. 날은 어제와 다르지 않다. 먹구 름이 하늘에 떠있고 바람은 매섭다. 그런데 느낌이 조금 다르다. 숙소 앞에서 웅성거리는 말소 리 안에 오늘은 인천으로 갈 수 있다는 희망이 서려있다. 백 령도에서는 첫 배인 데모크라시호가 1시에 출항인데 11시 가 쯤 되면 출항여부가 결정된다. 아침밥을 먹으러 나간다. 사람들의 표정에서 화색이 도는 것이 나간다는 확신이 든다. 우리가 타고 온 데모크라시호는 조금이라도 해상 상태가 좋지 않으면 배가 뜨지 않는다. 이를 대비해서 최후의 수 단으로 선택한 하모니플라워호는 우리 모두를 실망시키지 않았다. 거대한 선체가 보여주는 위용에서 느낄 수 있듯이 비와 바람을 헤치고 어디든지 나갈 수 있는 하모니플라워 호는 우리를 안전하게 인천으로 데려다 줄 것이라는 희소 식을 전해줬다. 나를 제외한 모든 사람들은 하모니플라워호를 타기위해 1 시에 떠났다. 처음으로 홀로된 백령도는 더욱 어두워졌다. 78 2013년 5월 28일 백령도 4일차


유치원을 찾아온 어머니들이 하나 둘씩 친구들을 데리고 가 고 마지막 남은 미아처럼 홀로 백령도에 남았다. 며칠을 백령도에서 생활했지만 혼자서는 밥도 먹은 적이 없다. 정해진 일정에 따라 움직이다가 식당인줄도 모르고 들어가서 밥을 먹는 것이 끼니를 해결하는 방법이었다. 이 제는 스스로 해결해야 하는 상황이 되었다. 혼자서 점심이라도 먹을까 들린 식당에서 퇴짜를 맞았다. 아직 손님을 맞을 준비가 안되어 있다고는 했지만 식당 아 주머니의 배타적인 태도로 보아 단순히 귀찮아서가 분명하 다. 백령도가 그런지 원래 섬이란 것이 이따위인지 모르겠 다. 나는 섬사람들의 분위기가 마음에 들지 않아서 편의점 을 이용하기로 했다. 삼각김밥과 ONE PLUS ONE으로 파는 음료수는 대학 시절 부터 단골 끼니였다. 수업에 쫓겨서 그랬어야 하기도 하고 식비가 제일 아깝다는 생각을 삶의 지침으로 삼았기 때문 이기도 했다. 계산대 앞에 서려면 내부적으로 여러 가지 단 계를 거쳐야 하는 울렁증을 느끼기도 했다. 덕분에 학교를 졸업하고 학자금 대출도 다 갚을 수 있었지만 그 동안의 행 보는 정말로 궁색했었다. 하지만 이러 했던 상황이 언제였냐는 듯 서른을 목전에 두 고는 수중에 돈이 생기기 시작하니 씀씀이가 나도 모르게 커졌다. 집에서 라면을 먹으면 먹었지 4000원이라는 거금 을 주고 어떻게 밥을 사먹을 수가 있을까 하는 주의였지만, 2013년 5월 28일 백령도 4일차 79


어느새 직접 해먹지 않고 주변에 보이는 음식점에서 끼니를 해결하려했다. 6000원이라는 돈은 라면 6개라든가 혹은 삼 각김밥과 더해서 싸게 주는 편의점 특가 상품으로 하면 얼 마나 더 기회비용이 드는가하는 식으로 가격 대비 성능비 를 따졌던 내가 변한 것이다. 물가는 10년 동안 거의 50%정도가 올랐다. 4000원 하던 밥값은 10년 만에 6000원이 표준 한 끼 식사가 되었다. 그 렇다고 해서 혼자서 밥을 해먹는 수고와 식자재 값을 생각 하면 돈이 아깝다는 생각은 들지 않는다. 오히려 7000원으 로 수지를 맞추는 식당 주인이 대단하다고 느낀다. 요즘에 는 제대로 된 정식을 먹으려면 7000원 이상의 재료비로 입 맛을 맞추어야 하는 것이다. 백령도에 들어오는 모든 물품들은 육지에서 배를 통해 들 어오는 수고를 거친다. 해상운송을 한 단계 더 거치니 자연 스레 더 비싸 질 수 밖에 없다. 육지에서는 24시 편의점 보 다 일반 가게들이 조금이라도 싼 것이 일반적이지만 백령 도에서는 처지가 반대로 바뀌었다. 여기 동네슈퍼들은 판매물품 껍데기에 적힌 정가를 액면 그대로 책정하거나 아니면 엿장수 마음대로 더 높은 가격 을 요구한다. 주변에 여러 동네슈퍼를 두고도 왜 편의점에 사람들이 더 많은지 이해가 갔다. 지역 주민들은 백령도 사 람이라는 책임 아닌 책임으로 인해 이웃이 운영하는 가까운 슈퍼를 갈 수밖에 없는 것 같다. 하지만 타지 출신이 대부분 80 2013년 5월 28일 백령도 4일차


인 군인들은 편의점을 더 자주 이용했다. 군인들의 마음을 십분 이해하면서, 나도 편의점에서 물건을 골라 며칠 동안 베이스캠프가 될 레지던시 건물로 올라갔다. 어렴풋이 버스를 타고 지나가면서 눈으로 익혀 놓았던 곳 이기는 했지만, 쉽게 찾아 갈 수 있을까 겁이 났다. 다행히 면사무소에서 얻어 온 백령도 전도를 해독하고는 요령 좋 게 단박에 찾아왔다. 레지던시 안은 오랫동안 밀폐되어 있어 곰팡이 냄새와 습 한 기운이 가득 차 있었다. 가방을 내려놓기도 전에 창문이 란 창문은 다 열어 재꼈다. 화장실 구석에도 이미 곰팡이 들이 왕성하게 활동하고 있어서 레지던시를 정비하는 것이 급선무였다. 두 개의 방 중 넓은 곳에 짐을 풀어 놓고 화장 실이며 거실이며 청결하지 못한 곳을 깨끗이 청소했다. 다 행히 대형 청소기와 청소 솔이 있어서 1시간도 안되어서 이 곳은 정확히 나의 영역으로 탈바꿈했다. 집밖에 안개가 잔 뜩 끼어 있어서 환기는 신통치가 않았다. 그 대신 방향제 를 집안 곳곳에 뿌려서 급한 데로 상쾌한 상태로 만들었다. 비가 조금씩 내리더니 한 쪽 벽면을 통째로 창문으로 쓰 고 있는 거실에서 비가 흘러 들어왔다. 바람이 부는 쪽으로 나있는 창문을 모조리 닫았다. 보나마나 이런 날씨에 촬영 을 나가다가는 카메라가 망가지거나 내가 내 풀에 지치거 나 둘 중에 하나였다. 나는 과감하게도 촬영을 포기하고 여 행자의 여유를 즐기기로 마음먹었다. 백령도에서 처음으로 2013년 5월 28일 백령도 4일차 81


있는 날도 아닌데 혼자 있어서 그런지 먼 이국에서 갓 도착 한 여행자가 된 것처럼 모든 것이 생소해 보이기 시작했다. 무엇보다 조용한 주변 환경이 적응이 되질 않았다. 심적 으로도 환경적으로도 정말 하얀 귀신이 있어서 사람을 지 긋이 누르고 있는 느낌이 들었다. 귀신의 무게가 백령도의 기압을 떨어뜨리는 듯했다. 비슷하게는 쓰나미가 몰아치기 전 고요한 일본을 상상하며 그려보았던 장면을 다시 생각 해내었다. 거짓말 같이 안개를 타고 북한군이 나타나 방충 망이 없는 내 방으로 들어와 칼을 들이미는 상상을 수도 없 이 할 수 밖에 없었다. 나는 상상에 몰입한 나머지 칼을 낚 아채는 시늉을 했다. “나는 예술가이므로 당신들의 체제에 대해 온건한 생각도 하고 있습니다. 아니 온건을 넘어서 사실은 당신들의 체제 를 찬양하고 귀순하라면 할 의사도 있습니다.” 북한군에게 이런 말을 할 자신도 있었다. 반대로 쉽게 적을 해할 수 있도록 침대 맡에 뽑아놓은 맥 가이버 칼로 적을 제압하는 상상도 해보았다. 상상력이 너무도 과해져서 안정을 찾을 수가 없었다. 아직 밤이 되지도 않았는데 고작 안개나 비바람 소리를 듣고 이 렇게 호들갑을 떨다니, 육지에서 그렇게도 남자다운 척을 하면서 겁 대가리를 상실한 캐릭터를 구축했던 나의 과거 를 그리며 자아비판에 나섰다. 그러다가 결국에는 ‘내가 단 지 산기슭 산장에 혼자 있어도 이런 느낌을 가지는 것은 당 82 2013년 5월 28일 백령도 4일차


연하다.’며 ‘이것이 백령도이기 때문은 아니다.’라고 아Q의 자기승리법을 실천했다. 정신을 안정시키기 위해서, 아니 놓기 위해서 마땅한 쾌락 을 찾아 액션영화를 보고 쓸데없이 전화통화도 길게 해보 고 거실에 보이지 않는 선을 긋고는 조용히 걷기도 했다. 시간은 가고 날이 점점 더 어두워지자 저녁에 하는 야구나 볼 수밖에 없었다. 야구도 눈에 들어오지 않아 2회가 지나 편의점으로 급히 달려가서는 다음날 숙취가 최고라는 백령 도 막걸리를 사서 야구가 끝날 때까지 먹었다. 막걸리가 감 흥이 없어져 뭘 해볼까 의기양양하게 부엌 의자에서 창문 너머의 암흑을 바라보며 고민하던 끝에 오랜만에 목욕이나 해보자며 욕조에 뜨거운 물을 받았다. 물이 차오르는 동안 의 지루함이 견딜 수가 없어 욕실에다 의자를 가져다 놓고 오래전에 불법다운로드로 받아 놓았던 <비념>이라는 영화 를 세팅했다. 영화를 선택하면서 잠시 동안 영화가 너무 무 섭지는 않을까 고민을 했다. 제주도 43이나 광주 518은 너 무도 잔혹한 이미지로 각인되어 있었기에 지금 이 상황에 서는 아주 부적절하다고 느껴졌었다. 정치적인 사건에서 희생된 인간의 모습은 9시 뉴스에 보 도되는 치정 살인 사건과는 비교도 안될 정도로 인간을 한 없이 나약한 존재로 비춰지게끔 만든다. 내무실에 비치된 총자루를 세는 것처럼, 100명 중 1인과 같이 숫자로 치환 하는 것은 정말이지 인간을 가벼운 도구로 만들어 버린다. 2013년 5월 28일 백령도 4일차 83


욕조의 수증기가 천장을 향해 결정을 맺는 그 순간에도 창 문 바깥의 어두운 곳에서 튀어나올지 모르는 북한군의 실 체가 궁금하기도 두렵기도 한 이유가 바로 내가 있는 이 현 장이 ‘정치적’인 곳이라는 점에서 기인한다. 대면하면 한 순 간의 망설임도 없이 용서도 없이 맞서 싸워야만 하는 상황 인 것이다. 화장실에 있는 창문은 바깥에서도 쉽게 넘어올 수 있을 정 도로 턱이 낮았고 유난히도 컴컴했다. 창문에서 머리를 산 발한 귀신이 스르륵 갑자기 나타나는 장면은 나의 호러 판 타지이다. 여름이면 방영되는 납량특집 프로그램을 빠지지 않고 챙겨봐서 그럴 것이다. 공포 영화를 보는 쾌감은 음 란물을 볼 때의 죄책감과는 또 다른 충동을 끌어 오르게 한 다. 막상 영상을 보면 후에 심리적인 타격이 너무도 심하지 만 계속 찾게 된다. 긴 인생에서 일정한 기간을 공포 영화 를 본 후의 긴장감으로 할애하는 것도 다이나믹한 일이 아 닐까하는 생각이 든다. 잠시 그런 생각을 하다가 목욕물이 욕조에 서서히 차오르는 모습을 보자 좀 전에 먹었던 막걸 리의 술기운이 식도를 따라 머리위에 까지 올라왔다. 간첩 이고 폭탄이고 나를 포섭했던 감정선의 상태가 취기에 자 리를 내주고 말았다. 욕조에 물이 몸이 감당할 수 없을 정도로 뜨겁게 받아져서 제대로 지지겠다고 마음먹고 들어 간지 얼마 되지 않아 잠 이 들어버렸다. 욕조에서 눈을 뜨니 영화는 엔딩 크레딧도 84 2013년 5월 28일 백령도 4일차


다 올라간 상태라 화장실 창밖의 어둠을 보는 듯 검은 화면 이 떠있었다. 목욕물도 미지근해져서 온 몸에 한기가 돌았 다. 그제서야 여기가 어디인지 놀란 나머지 정신이 번쩍 들 어 물을 박차고 나오는 바람에 노트북이 타일 위로 곤두박 질 쳤다. 어렴풋이 문 사이로 보이는 거실에서 누군가 나의 동태를 지켜보고 있다는 느낌이 들었다. 아니야 이건 그냥 착각이라며 안정시키며 평상심을 찾은 걸음걸이로 욕실 문 을 열었다. 역시나 거실은 야구를 보면서 먹었던 막걸리 몇 병과 편의점 음식들만이 나뒹굴고 있었다. 물기를 닦고 나오니 곰팡이 냄새가 진하게 풍겨왔다. 남 은 막걸리를 한 모금하고 내일을 위해서 평소보다 일찍 자 기로 마음먹었다. 닭이 울 때까지 어디선가 들리는 총소리 에 잠을 못 이루다가 잠시 눈을 감았다고 생각했는데 눈을 뜨니 아침 9시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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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3년 5월 29일 수요일 백령도 5일차, 맑음 레지던시-하늬해변-용기포-사곶해변-콩돌해안-장촌 포구

백령도의 중심 진촌리의 중심인 삼거리 버스 정류장에서 심청각까지는 걸어서 1km가 못 걸린다. 그렇지만 촬영을 심청각에서 시작하기에는 막다른 길에 위치해 있어서 내 루트로 적당하지 못했다. 그래서 북한에서 가장 가까운 하 늬해변을 출발점으로 해서 며칠밤낮이 걸릴지는 모르지만 잠은 캠핑을 하면서 해결하기로 하고 드디어 일주를 시작 했다. 꼭 필요한 물건만 챙긴다고 쑤셔 박기는 했지만 가방에 짐 이 가득 들어차니 혼자서 들 수 없을 정도로 무거웠다. 백 팩커들에게 삼겹살에 맥주는 텐트와 침낭만큼이나 중요한 필수품인데, 삼겹살은커녕 전투식량 같은 것도 넣지 않은 내 가방이 이렇게 비좁은 것을 보면 그들이 가져가지 않는 무언가를 더 넣었거나 아니면 다른 용품들이 밀도가 높은 것이었다. 가방이 가진 무게는 섬을 완전히 돌아 다시 이곳 에 설 때까지 짊어져야 할 거북이 등껍질과 같은 숙명적인 무게가 될 것이다. 인생에서 겪은 신체적 고난의 정도 중 최악이라고 하면 군 대에서의 유격훈련이다. 자세히 말하자면 유격훈련이 아니 2013년 5월 29일 백령도 5일차 87


라 유격훈련장에까지 가는 혹서기 행군이었다. 경량화와는 거리가 먼 군장은 혼자서는 들지도 못할 정도 로 무거워서 누군가가 거들어 줘야만 간신히 등에 얹듯 멜 수 있다. 30도를 훌쩍 넘는 여름날에 30km가 넘는 길을 걸 어가야만 한다는 것은 신체의 한계가 어디까지인지 알게 해 준다. 거기에 비하면 백령도에서의 캠핑배낭은 어깨 끈 안 에 메모리폼 재질의 보충제가 빵빵하게 부풀어 있고 군화 대신에는 아웃도어용 고어텍스 신발로 무장되어 있기에 비 교가 안 된다. 유격 행군을 앞두고 고참들은 군화 대신에 지급되는 프로스펙스 활동화를 신고 싶어서 이상한 질병을 만들어 내곤 했다. 지금 나는 가볍고 튼튼한 고어텍스 등산 화를 신고 있지만 신체가 당하는 고통은 어떤 시기를 기준 으로 해서 상대적으로 인식되지 않는다. 더군다나 과거와 는 영영 비교할 수 없다. 아픈 것은 지금 아픈 것이지 덜 아 프다고 해서 아프지 않은 것은 아니다. 육체적인 고통은 항 상 현재진행형이다. 그래도 인간의 정신력이 대단한 것은 바로 옆에서 군화를 질질 끌며 지나가는 이등병을 보고는 발걸음이 가벼워 졌었다는 점이다. 지나가는 이등병은 나 를 부러운 듯이 쳐다본다. 하늬해변에 다다르니 군대와 좀 더 가까워진 느낌이다. 이제부터 백령도 일주의 시작이다. 말이 해안가를 돌면서 사진을 찍는 것이지 실제로 가능할지는 장담 못한다. 프로 88 2013년 5월 29일 백령도 5일차


젝트의 수행 가능성에 대해서 염려했던 것은 아니다. 미리 공문까지 보내고 협조하겠다는 응답도 받았었다. 이 모든 확신이 섬에 발을 딛는 순간 걱정으로 바뀌어버렸다. 60년 을 머금은 섬의 기운이 나도 모르게 영향을 미쳤을 것이다. 그리고 지금 하늬해변이 보이는 논길에서 바다를 바라보 며 서있다. 섬의 둘레를 다 둘러보면 어느 정도 백령도가 윤곽에 잡힐 것 같다. 우리들이 섬을 어떻게 만들어 놓았 으며 섬은 어떤 형태로 변했는지 한 장의 사진으로 잡을 수 있을 것 같다. 해안가는 철책으로 삥 둘러져 있다. 열 발자국 걷고 한 장, 다시 열 발자국이 더 가서 한 장 찍는 이런 식으로, 처음으 로 찍은 사진과 가까워지는, 혹은 멀어지는 여정이다. 사진 을 쭉 이었을 때의 모습이 떠오른다. 행위는 간헐적이지만 한 땀 한 땀 개척해 나가는 재봉틀과 같이 섬 둘레를 사진 으로 잇는 작업이 된다. 하늬해변을 시작으로 철책이 끝나는 지점에 해안 초소가 나온다. 이방인을 주시하는 초소병들의 날카로운 눈을 피 해 관광객인 척 촬영한다. 나와 비슷한 분위기를 풍기는 사 진 애호가들이 자주 찾는 곳이어서 초소병들이 익숙하겠거 니 하지만 나도 모르게 어떠한 죄책감이 들어서 괜스레 사 진기를 감춘다. 군대를 갔다 오기 전인 푸릇한 대학 신입생 시절에 본 영화 2013년 5월 29일 백령도 5일차 89


<해안선>의 김상병(장동건)이 떠오른다. 해변에서 정사를 즐기던 남자가 오르가즘에 이르러 환희를 맛볼 때, 김상병 이 던진 수류탄과 총알로 벌집이 되는 장면을 되새겨 본다. 하늬해변을 낀 철책이 길게 이어진다. 새로 깐 지 얼마 되 지 않은 아스팔트 도로를 따라 언덕으로 올라가면 왼쪽으 로 내리막길이 나온다. 이어서 진흙탕과 자갈밭이 나오다 가 점차 해변으로 이어지고 어김없이 또 철책이 등장한다. 철책들은 어디 하나 부실한 곳 없이 튼튼하게 매듭지어 있 다. 지도에서 보이지 않는 산길이 이어진다. 초입에 빨갛게 칠해져 있는 군사 작전 지역이라는 표지판 때문에 낮인데 도 불구하고 으슥한 기운이 돋는다. 비가 온 지 얼마 안 되었기 때문일까 아니면 바닷가의 싸 늘한 수분을 항상 머금고 있기 때문일까, 햇볕이 들어올 틈 이 없이 자란 나무들 사이로 난 숲길은 질퍽하다 못해 늪처 럼 발바닥을 집어삼킨다. 나무들이 살아 움직이는 영화의 한 장면처럼, 끝도 없이 이어진 산길을 걸어 나가다가 갑 작스레 풀들이 듬성듬성 자라나 있는 젖은 광장을 만난다. 광장에는 양 갈래로 나뉜 길이 있다. 잠시 동안 고민을 한 다. 왼쪽으로 가면 지도상에도 나와 있지 않은 불확실한 길 이고 오른쪽은 다시 농민들의 모내기 소리가 들리는 농지가 나온다. 나는 스스럼없이 왼쪽으로 길을 택한다. 길이라는 단어가 나에게 함의해 온 점은 선택의 다름 아님이고 의미 로서는 정해진 길은 선택한다는 것 보다는 아닌 쪽을 모험 90 2013년 5월 29일 백령도 5일차


해 나가는 쪽이었다. 안전한 기분과는 다르게 뭔가 나를 무 책임하게 내 팽겨 친다는 해방감을 주는 그런 선택 말이다. 선택은 참담한 결과를 가져왔다. 제대로 된 길조차 없는 길을 힘들게 올라 봤지만 막다른 해변 초소만이 나를 맞아 주고 있었다. 다시 또 힘들게 광장으로 내려와서 선택 받지 못했던 오른쪽 길로 간다. 농민들의 모습과 봄 햇살이 넓은 농토를 비추고 있다. 하늬해변에서 용기포까지 오는 동안 난데없는 자신감이 든 다. 운해인지 안개인지 혹은 논에서 피어나는 물안개인지 아스라이 피어나는 정체모를 하얀 덩어리에 몸이 빠져들어 길을 찾지 못하다가, 가만히 서서 숨을 고르자 살결에 스치 는 안개의 차가운 감촉이, 어디론가 아이를 급히 데려가고 파 감싸는 어머니의 손길같이 나를 편안하게 다른 곳으로 안내해 준다. 반대로, 감정의 기복이 있으면 희멀건 안개덩 어리들이 아주 현실적인 장애물이 되어서 초소병의 착각해 서 쏜 K2 탄환으로 눈 한쪽이 날아가는 상상을 하며 긴박해 지기도 한다. 상황에 따라서 뿌연 연기는 어머니의 손길이 되었다가 연막탄이 되었다가 한다. 용기포에서 사곶으로 가려면 육지 쪽으로 좀 더 들어가야 한다. 언덕에 있는 장갑차는 놀이공원에 그려질 법한 우스 꽝스러운 눈과 입을 가진 군사캐릭터로 변신해 있다. 친군 대적인 이미지를 얻고자 백령도를 오고가는 사람들이 한명 도 빠짐없이 지나가야만 하는 이곳에 저런 폐물을 재가공해 2013년 5월 29일 백령도 5일차 91


서 가져다 놓았다. 뭔가 굉장히 쎈 예술이라는 느낌이 든다. 장갑차 언덕을 넘자마자 자극적인 냄새가 온 살갗의 공 기구멍 안으로 들어온다. 육지에서는 맡아봄직 없는 냄새 다. 주변을 살펴보니 제방 옆 소나무가 우거진 곳에서 까 나리 액젓을 담구는 다라이가 군락을 이루고 있다. 도로바 닥에 흘러내린 물길들을 가까이 다가가서 보니 누렇고 불 순한 게 까나리 액젓이다. 도로를 좀 더 걸어 나가니 하나 처럼 보였던 물길이 점점 넓게 퍼져 나가서 도로 전역을 점 유하고 있다. 비닐하우스 쪽에서 개가 짖는 소리가 들려 황급히 뒤를 돌 아봤다. 개와 고양이 하면 갓 국민학교에 들어갔을 적에 개 에 한 번 고양이에 한 번 번갈아서 물렸던 기억이 있어 성 인이 되어서도 그 놈들은 나의 힘으로 도저히 제압할 수 없 는 대상처럼 생각된다. 말 잘 듣는 고양이를 만나고는 달라 졌지만, 갑자기 짖어대는 소리에 소스라쳐 놀라고는 한다. 제방을 쌓아놓은 곳에서 눈을 떼지 않고 몇 십 미터를 계 속 사진 찍어 나간다. 개가 다가오는 것을 모른 척하고 시 선을 멀리피해 허공을 바라보는 것이 최선의 방책이다. 나 는 너 따위가 나를 보고 짖어대는 것을 신경 안 쓰는 사람이 라는 인상을 줘야한다. 경계를 설정한 자들은 개와 같이 사 납고 흉포하다. 울타리 근처만 가도 저렇게 용을 쓰고 달려 든다. 자신이 정해놓은 영역에서 무섭게 소리치던 개가 멀 어진다. 한 숨 놓았다. 92 2013년 5월 29일 백령도 5일차


걸어서 도착한 사곶은 평범한 시골 마을이다. 백령도에 도 착하던 날, 버스로 사곶해변에 곧장 도착해서 바라본 그 해 변에 뒤편으로 마을이 형성되어 있다. 도시인들이 손을 뻗 은 지 얼마 안된 시골처럼 서울 외곽의 통기타 라이브 하우 스를 흉내 내어 꾸민 식당들이 보인다. 이 먼 길을 걸어오 는 동안 차를 만난 기억은 없다. 버스를 한 대 본 것이 전 부이다. 마을 속으로 좀 더 깊이 들어가니 아주 오래된 교회가 보인 다. 겉면이 매끄럽게 다듬어진 석회암 덩어리처럼 하얗다. 당장에 산토리니에 갖다 놓아도 손색이 없어 보인다. 운영 을 하는지 안하는지는 알 수가 없다. 교회를 구경하고 있는데 어디선가 목이 다 쉬어가는 고양 이 울음소리가 들린다. 소리를 따라서 가보니 분명히 개가 있어야 할 곳에 고양이가 있다. 줄을 목에다 어찌나 세게 걸어놨던지 고양이의 얼굴이 심하게 팽창되어서 얼굴만 놓 고 보면 저것이 고양이인지 아니면 곰 형상인지 헷갈릴 정 도다. 고양이는 몸이 유연해서 개만큼 어지간하게 쪼여놨다 가는 빠져나갈 수 있으니 피가 안 통할 정도로 꽉 묶어 놓으 리라는 주인의 단호한 말투가 서려있다. 때문에 목에 조여 진 줄은 고양이 안면에 변형을 일으켰다. 볼 살이 인위적으 로 삐져나온 모습이 기괴하다. 그래서 울음소리가 더 처절 하게 들렸나보다. 개가 집 앞에 묶여서 심드렁하게 낮잠이 나 자고 있는 건 슬프지 않다. 하지만 누가 봐도 길고양이 2013년 5월 29일 백령도 5일차 93


가 운 나쁘게 잡혀서 개 인 마냥 대문 앞에 묶여져 있는 모 습은 그렇게 슬플 광경일수 없다. 고양이의 울음소리를 상황에 맞게 사용할 수 있는 어플이 있어서 사용해 본다. 고양이가 뛰어 오를 때 소리 내는 낭 창한 울음소리도 사용해 보고, 우아하게 걸을 때 나는 야시 시한 소리까지 다양하게 사용해 보지만 도대체가 응답이 없 다. 자기 앞에 놓인 군용식판만 무료하게 바라보고 있다. 식 판에 담긴 음식마저도 군대에서 짬타이거가 식당 뒤를 어슬 렁거리던 그 목적과 같이 볼품없는 짬밥 덩어리들이다. 고 양이 중 가장 고급이라는 150만 원짜리 뱅갈고양이와 즐기 던 모습이 오버랩 되면서 가슴이 먹먹해진다. 큰 맘 먹고 가방을 뒤져보지만 목줄을 끊을 용도로 사용 할 가위 같은 것을 찾을 수 없다. 고양이는 느린 속도로 고 개를 돌려 나와 눈이 마주친다. 몇 초의 정적이 지나고 불 쾌한 기분이 감돈다. 나 역시도 별반 다를 바가 없는 가해 자라는 눈빛이다. 양심적인 척 아파하지만 어떻게든 실행 하지 않는 나는 암묵적인 동조자가 된 것이라 말하는 것 같 다. 그러기 전에 주인으로 부터 이 줄을 끊어 놓는 것에 대 한 합당한 의사 타진이 필요하다. 동물보호운동가의 입장은 아니지만 이런 나의 모습과 현 재 상황에서 고양이에게 해줄 수 있는 게 없다는 쪽으로 나 름대로의 내부 검열을 끝내고 합의에 이르렀을 때, 뒤에서 등이 굽어진 아저씨가 지나가며 “거 남의 집 고양이를 와 94 2013년 5월 29일 백령도 5일차


그렇게 보소.”라고 하며 할 일 없이 동네를 기웃거리는 청 년을 나무라는 투로 말했다. 나의 방황은 거기서 일단락되 었고 가던 쪽으로 계속 걸어갔다. 사거리가 나오자 버스정 류장이 보였다. 버스정류장이 있는 것으로 보아 동네 주민들의 화합의 장 소인 듯하다. 걸음걸이가 느려 나보다 뒤쳐졌던 꼽추 아저 씨가 지나가면서 어디서 왔냐고 물어본다. 눈빛이 흐린 것 이 정상인은 아니다. 대충 아무렇게나 대답하려고 버스를 기다린다고 했다. 그러자 버스는 이제 오지 않는다면서 버 스 시간도 모르고 이렇게 무작정 기다리냐며 꾸짖는다. 이 토록 남의 일을 자식 일이라도 되는 듯 지적해 주는 모습 이 처음에는 고맙기도 했지만 이게 도를 지나쳐서 계속 뭐 라고 하니까 무례하고 덜 떨어진 장애인으로밖에 생각되지 않았다. 한 가지 사건에 집착해서 했던 말만 되풀이하는 특 정 부류의 사람들이 하는 말에 희생되고 싶지 않다. 재빨리 가방을 추스르고 사곶해변으로 걸어들어 간다. 사곶해변의 끝은 인간의 시야가 닿는 가장 멀리까지 이어 져있다. 평평한 규조토 백사장에 있는 쓰레기들이 너무도 튀는 모습으로 버려져 있다. 주민으로 보이는 몇 몇의 사 람들은 미역을 회수하고 있다. 해안가 옆의 초소를 앞에 두 고는 해병대원들이 구보를 뛰고 있다. 미역을 걷어 들이는 할아버지는 나를 유심히 보더니 미역을 한 번 먹어보라면 서 권한다. 먹을 것을 권하면 대부분 흔쾌히 받아들이지만 2013년 5월 29일 백령도 5일차 95


갓 걷어 들인 미역에서 풍기는 냄새가 역해서 정중하게 거 절한다. 만면에 웃음 끼가 있는 채로 하는 거절은 권하는 사람도 기 분 나쁘지 않게 만든다. 때로는 웃음기가 도는 얼굴이 가식 처럼 보일 때도 있지만 한국인의 습성 상 웃음은 태도라기 보다 외양이기 때문에 어느 순간 나도 익숙해져 버렸다. 웃 는 얼굴은 어딜 가든 다른 사람과 잘 어울릴 수 있다고 미 소를 잃지 말라고 배웠다. 백령도 여행에서 이 점이 훌륭하 게 써먹혀서 사진을 촬영하든지 위험 지역을 지나가든지 해 도 유용하게 써먹힌다. 초소에서 나를 발견한 군인들이 무 표정한 얼굴로 검문하는 것에 반해서 나는 그래도 눈웃음 을 치며 받아들인다. 사회생활을 시작하면서 발견하게 되는 인간 군상 중에는 매너와 친절의 경계에서 갈 곳을 잃은 이들을 발견 할 수 있 다. 이득이 되는 사람들을 향한 무한 애정과 매너로 치장한 이들의 대외친분 사수능력은 조금 떨어져서 보면 간신배들 의 코웃음 소리와 비슷한 모양새로 비춰진다. 실력이 동반 되지 않은 매너는 아첨일 뿐이다. 그런 사람들의 곁에 있으 면 자존심이나 자신의 성격마저도 저 웃음기 안에 각색되 어 질수 있다는 비인간성의 전형을 맛보게 된다. 그럴 때면 하염없이 분노가 쏟아 오른다. 정정당당하지 못한 승부로 승리를 쟁취하는 그들이 최종적으로 승자가 될 것임을 알 기에 더욱 더 분노가 치밀어 오른다. 갑자기 웃음을 머금고 96 2013년 5월 29일 백령도 5일차


있는 나 자신이 서글퍼지기 시작한다. 한참을 걸어 도착한 사곶해변의 마지막에도 역시나 초소 가 있다. 백령도의 모든 해안가는 해병대가 주관한다. 초소 앞에 떨어져 있는 플라스틱 물병에는 한국어가 아닌 한문 이 적혀있다. 일 년 전 중국에서 달콤한 맛으로 물 대신 찾 고는 했던 그 녹차다. 중국인은 한 여름에도 음료수를 차게 해서 먹지 않는다. 미 지근한 물을 달게 해서 마시는 것이 그들의 기호이다. 수박 이나 토마토를 시키면 주인공들보다 더 크게 쌓인 설탕산 을 볼 수 있다. 아침에 먹는 호떡에도 역시나 설탕이 잔뜩 들어가 있다. 맥주를 차지 않게 마시는 것은 이해가 간다. 중국통인 지인은 중국 사람이 맥주를 차게 먹지 않는 것은 겨울에 자라는 보리가 이미 냉기를 머금고 있기 때문에 맥 주를 차게 해서 먹으면 음양의 이치에 어긋나기 때문이라 고 했다. 도수가 한국 것보다 2도 정도는 낮은 중국 맥주는 약간 한국이 먹기에는 약간 단맛이 느껴지기도 한다. 한국 이 청량감을 위주로 맥주를 개발한다면 중국은 가볍게 마 실 수 있는 반주를 생산하는 것이 그들의 제조방식이다. 그 래서 맥주도 달아 진다. 설탕의 유해함을 알게 되면서 한국의 어머니들은 유기농 은 기본으로 조리 시에도 조미료를 넣지 않는 것을 원칙으 로 하게 되었다. 건강하게 오래 사는 것이 사회적 화두가 되 면서 TV는 생로병사를 키워드로 하는 프로그램으로 범람했 2013년 5월 29일 백령도 5일차 97


다. 전 세계의 장수촌을 찾아 그들의 음식과 생활 패턴을 분 석해 보는 프로그램이 방영되고부터 저염식, 저칼로리, 소 식, 규칙적인 운동, 적당한 음주가 장수에 필수적인 요건이 라는 점은 어느 정도 건강에 관심이 있는 사람이면 알아야 할 상식이 되었다. 예로부터 중국과는 입맛을 달리 하기는 했지만, 나의 개인적으로 중국에 체류 시에 전이된 단 맛의 세계도 한국에서는 이런 생명외경사상의 분위기로 인해 종 말을 고했고, 흰 설탕은 주방에서 추방당했다. 달달한 녹차 음료를 손에 쥐고 사곶해변에 끝에서 서 있으 니 단맛이 혀끝을 타고 감도는 듯하다. 빛바랜 비닐 껍데기 로 쌓여진 음료수 통을 손에 들고 사진을 한 장 찍는다. 공 장에서 갓 만들어져서 나온 껍데기가 남한의 가장 북단으 로 와서 내 손에 들려지기까지는 희미한 비닐 껍데기의 추 레함만큼이나 오래된 시간을 바닷물에 절어 이곳에 당도했 을 것이다. 내려쬐는 태양빛에 파도가 물든 황해의 탁한 바 닷길 한 가운데에서 생존한 로빈슨 크루소처럼, 페트병은 혼란스러운 백령도의 모래사장까지 휩쓸려와 쓰러져있다. 송구를 하는 포즈를 취하고 페트병을 다시 바다를 향해 멀 리 내던졌다. 페트병은 몸을 몇 바퀴나 구른 뒤에 다시 파 도 위로 떨어졌다. 페트병이 다시 몸을 뉘이고 어디론가 흘 러가는 모습이 아련하게만 보인다. 아쉬운 듯 다시 앞으로, 마음을 추스른 듯 다시 뒤로. 결국에는 점점 멀어져 간다. 멍하니 한참을 바라보다가 사곶해변의 끝에서 다시 갈 길 98 2013년 5월 29일 백령도 5일차


을 재촉한다. 사곶해변이 끝나는 쪽에는 아직도 과거의 흔적을 가지고 있는 물길이 보인다. 이제는 담수호를 만들고자 막아놓은 제방에 의해 거의 대부분 물길이 사라졌지만, 사곶해변과 구별되는 큼지막한 돌덩이들은 한 때 바닷물이 거칠게 드 나들던 곳임을 떠올리게 한다. 제방과 수문으로 이곳을 막기 전에는 육지 안쪽으로 풍선 모양처럼 파고 들어가 있는 바닷물 때문에 농업용수 확보가 어려웠다고 한다. 불과 10m도 안 되는 이곳을 막기만 하면 어린 애들 땅따먹기 이기듯 단숨에 백령도의 토지가 넓어지 고 비옥한 농지를 가꾸어 낼 수 있었던 것이다. 애초에 찬반이 첨예하게 맞섰다고 한다. 백령도를 대표하 는 콩돌해안과 사곶해변을 관광지로 유지하려면 자연을 보 호하여 민물과 바닷물을 본래의 것으로 지켜야한다는 한 쪽 과, 담수호를 구축하는 것만이 농업이 주업으로 하는 백령 도를 더욱 발전시킨다는 입장이 맞섰다. 결국 개발론자들이 승리하여 담수호를 만들어서 용수를 확보한 대신에 사곶해 변과 콩돌해안으로 굵은 모래알들이 떠밀려오는 사태를 빚 어냈다. 주민들에게 사곶해변은 땅바닥이 콘크리트 마냥 딱 딱해야만 마땅한 놀이터였지만, 현재에는 조금씩 잠식해가 는 굵은 모래알만이 정착지를 잘못 택한 황해도 주민의 한 을 갈망하는 것이다. 담수호에 있던 굵은 모래들이 사곶해 변을 조금씩 잠식하고 있다고 한다. 2013년 5월 29일 백령도 5일차 99


사곶을 시찰했으니 산 귀퉁이를 넘어 나란히 대칭적으로 펼쳐져있는 콩돌해안으로 가야한다. 칼국수가 있는 그곳 에서 허기진 배를 채우고 피부병에 좋다는 콩돌을 밟을 것 이다. 해무가 심하게 들이닥치는 날이면 여단 사령부가 있는 백 령도의 심장 북포리까지 맹위를 떨치기 때문에 바로 눈앞 에서 달려오는 자동차의 헤드라이트도 분별이 되지 않는 곳 이 백령도이다. 오늘 같은 날은 다행히도 해안가 쪽만 옅게 펼쳐져 있어서, 절벽을 뒤로한 육지 쪽은 땡볕이 내려쬔다. 막노동꾼이나 등산에 취미가 든 중년이 즐겨 찾는 쿨토시 도 착용하고 자외선이 아무리 강한 화창한 날에도 생살을 내주던 내가 시간을 내어 직접 마트에서 선크림을 구매하 면서 헛웃음을 치기도 했는데, 벌써부터 살결이 뻘겋게 타 올라서 어찌할 줄을 모르겠다고 생각이 드니 각고의 노력을 했음에도 불구하고 ‘치료보다는 예방’이라는 통속적인 어구 가 절실하게 다가온다. 걷기는 계속 걸어야 되고 솔로 캠핑 장비를 짊어진 어깻죽 지는 탈골이나 된 듯이 꾹꾹 쑤신다. 25만 원짜리 블랙야크 신발은 아직 질이 들지 않아서 발뒤꿈치 쪽이 쓸린다. 걸을 때마다 조금씩 점점 더 파고 들어간다. 진물이 양말을 적시 어 조금 쉬었다가 가려고 주변을 살펴보지만 이마저도 태양 빛에서 자유로운 곳을 찾을 수 없다. 딱 보니 해무에 쌓인 산 정상을 넘어 다시 콩돌해안 쪽으로 내려와서 파라솔이 100 2013년 5월 29일 백령도 5일차


깔린 칼국수집 앞에 앉는 것만이 지금 생각나는 최선이다. 끝이 나지 않을 것만 같은 차마고도를 꾸준하게 오르는 노 새의 처지를 생각하면서, 구도의 길을 걷는 히말라야 수도 승의 오체투지에 사진을 찍는 나의 모습을 투영하는 로맨 틱한 상상에 빠졌다. 육체의 한계에서 심장이 터져버릴 것 같이 숨이 찰 때 마라토너는 러너스하이에 빠진다. 나는 이 미지로 러너스하이를 경험한다. 과히 수도승에 나를 비견 하는 무례를 범하지만, 그런 고독하고 처절한 고투에 내가 나름의 위안으로 자가당착에 빠지는 것을 선택했다. 사진 찍는 것은 고통스럽지만 이제 오체투지와 같은 선에 놓이 게 되었다. 비탈길을 오르는 마음이 새로워졌다. 힘이 들지 않으면 멋이 없다. 콘크리트가 깔린 산 정상은 경치를 바라보기 좋도록 하기 위하여 녹음이 푸른 나무숲을 갈라 전망대 비슷한 인공 구 조물을 세워놓았다. 멀리서 보면 가마가 벗겨진 노신사 같 을 것이다. 버려진 차는 아닌 것이 구형 프라이드가 세워져있는데 방 금 전까지도 누군가가 차에 있은 듯 희미한 체온이 차 에서 느껴진다. 방치된 차가 멀리 바다를 바라보지는 않을 터, 괜 히 사진 찍는 척하면서 안을 바라보니 중사 뱃지가 선명하 게 반짝이는 군모가 보조석 위에 놓여있다. 나는 주변을 둘 러본 후 멀리 바다를 바라보며 대양을 향해 노상방뇨를 했 지만 그리 멀리 못 가 바로 앞 낭떠러지를 향해 떨어졌다. 2013년 5월 29일 백령도 5일차 101


내려오는 길은 언제나 쉽다. 넘어지지만 않을 정도로 발목 에 힘을 빼고 아스팔트를 쓸어내리듯이 미끄러진다. 카메 라를 쥔 손은 반복적인 행동을 통해 공장에서 일했던 기억 을 떠올리게 한다. 사람이 한 가지 동작을 지겹도록 오래 계속하면 머리와 육 체는 따로 놀면서도 한 치의 실수 없이 독립된 과업을 해낸 다. 리모컨을 손으로 꽉 쥐어 조립하는 과정이나, 스크루를 모니터에 박아 넣는 일, 테이프로 IC칩을 붙이는 일이 익숙 해지는 시간이 지나고 나서 머릿속으로는 다른 생각이 가 능했던, 그렇게 산업화된 손이었다. 구미에 태어난 사람들이 자연스럽게 사회에 발을 내딛으면 서 처음으로 임금을 버는 일자리는 공장에서의 일용직 아 르바이트이다. 나는 다른 구미사람들 보다 비교적 늦은 나 이에 공장 아르바이트를 전전하며 유흥비나 학비를 벌었었 다. 공장 노동의 묘미는 공장에 있는 젊은 아가씨들을 흘겨 보면서 돈을 벌 수 있는, 운이 좋게는 애인까지 만드는 연 애 전선의 현장으로 이용할 수 있었다는 것이고 게다가 학 생들이 하는 다른 일들에 비해서 고수익을 올릴 수 있었다 는 점이다. 공장이라는 거대한 구조물 안에서 개미같이 일하는 노동 자들이지만 나는 단지 노동자를 바라보는 사회의 거시적인 입장이 아니라 직접 생산에 참여해 본 노동자로서, 그들의 머릿속에 그려질 또 다른 말풍선이 상상이 간다. 일은 하고 102 2013년 5월 29일 백령도 5일차


있지만 분명히 딴 생각을 하고 있을 것이 뻔하다. 공장 일 에 통달한 꾼들은 작업이 주어짐과 동시에 정신은 딴 나라 로 가버린다. 지금 여기서의 카메라 삼배일보가 효용성이 있을지는 두고 봐야 알 수가 있다. 다행히도 매번 바뀌는 풍 경들과 철책들로 인해서 잠시라도 긴장을 늦출 수가 없다. 내리막길의 마지막에 공사를 하러온 일군의 무리가 보인 다. 전기공사를 하러 도착한 한전 노동자들은 본인들의 근 무태만을 나의 카메라가 포착하려하기라도 한다는 염려스 러운 눈빛으로 주시한다. 눈을 마주치지 말고 여행자의 눈 매를 유지하는 것은 무분별한 사진 촬영에 대한 사진적 자 기 보호이다. ‘재미로 찍는 거에요.’라거나 ‘사진학과 다니 는 학생인데 과제에요.’라고 하는 것이 적대감을 불식시키 는, 다수의 현장 경험에 기초한 방편이었다. 내가 대형카메 라라는, 필시 남에 눈에 띌 수밖에 없는 큰 물건을 가지고 다니면서도 어느 정도 편하게 촬영할 수 있었던 이유는 저 렇게 선택된 문장들과 ‘중앙대학교 사진학과’를 크게 인쇄 한 스티커를 장비에 붙였기 때문이다. 친한 친구들은 학교 장비가 아니냐며 누구를 도둑놈 보는 듯이 하지만 실은 내 가 오랜 현장 경험 끝에 당도한 편리임을 알리가 없다. 백 령도에 촬영을 오기 전에도 스티커 작업은 거스르지 않았 다. 나를 마지막까지 지켜줄 호위 병사를 뽑고 훈련시키는 것처럼, 튼튼한 스티커를 고른 뒤에 섬에 가져갈 모든 장 비에 붙였다. 2013년 5월 29일 백령도 5일차 103


왼쪽으로 한전 노동자를 지나치자마자 오른쪽에는 5층짜 리 내무반이 마련되어 있는 제법 큰 부대가 보인다. 정문을 지키는 해병과 눈이 마주친 느낌을 받았다. 신경 쓰느니 차 라리 하던 일을 계속한다. 긴장감이 감도는 콩돌해안을 향 한 마지막 코스에서 그렇게 살아 돌아온다. 나의 유토피아, 식량의 보고, 황해의 오아시스 콩돌해안은 긴장의 틈을 비 집고 들어와서 영양과 안녕을 선사해 준다. 바다를 바라보고 콩돌이 마주치는 소리를 듣고 있으니 자 꾸만 차디찬 동동주 한 모금이 생각난다. 동동주를 향한 끊 임없는 짝사랑을 참고 참고자 페이스북을 켠다. 칼국수 먹 는 사진을 바다를 배경으로 찍고 적당한 문장도 생각해내 어 올린다. 곧바로 화답이 온다. 그렇기는 하지만 텁텁한 혀 끝을 얼음이 동동 떠있는 동동주로 해감 하고픈 욕망을 주 체할 수가 없다. 하지만 동동주 한 주전자의 양이 내가 버 텨낼 수 있을 정도가 아니다. 한밤중이라면 주전자 한 동 이 쯤은 넉넉하게 채울 수 있지만 지금은 대낮이고 아직 할 일도 많이 남았다. 막걸리를 먹는 낮술의 매스꺼움은 대학 생 시절에 나간 농활에서 정확하게 맞닥뜨린 기억이 있다. 2003년은 노무현 정권이 본격적으로 활동을 시작한 시기였 다. 쇠약한 ‘국민의 정부’의 후임으로 오게 될 대통령을 뽑 는 2002년의 대선은 모두의 예상과 달리 노무현의 승리로 일단락되었다. 그 웃음마저 소탈한 노무현의 참여정부가 들 104 2013년 5월 29일 백령도 5일차


어선 대학가의 분위기는 무엇이든 희망찬 미래를 향해 불가 능한 것이 없어 보였다. 그런 분위기에 힘입어 대학에도 운 동권들이 양지에서 만개했다. 동아리들과 학생회 간부들의 아지트가 있는 하얀색 건물은 정확한 용도를 알 수 없었지 만 밤만 되면 몇몇 무리지어 들어가는 선배들과 그들의 손 에 들려진 검정색 비닐봉지를 안쪽으로 슬며시 보이는 막 걸리의 옅은 초록, 창문 안으로 들썩 거리는 신입생들의 율 동과 멀리서도 들리는 노동가요, 그것은 하나의 시대적 풍 광이었으며 한편으로는 불과 얼마 지나지 않아 소멸해 버 릴 자신들의 운명을 애처롭게 애무하는 청춘의 수음이었다. 술집에서고 광장에서고 선배들은 화려한 언변으로 신입생 들을 어디론가 끌고 갔다. 끌려들어가 나온 친구들은 다시 또 다른 친구들을 끌고 들어가는 순환이 계속 되었다. 그런 신비한 끌림이 나에게는 여름 농활이라는 형태였다. 나에 게는 밀짚모자를 쓰고 바짓가랑이를 걷고 유충이 가득한 논 밭을 딛고 서있는 농부의 모습이 농활에 대해 떠올릴 수 있 는 전부였다. 농민과 함께하는 진정한 민중예술을 실천하기 위해 농부의 추레함은 크게 문제되지 않았다. 않다고 들었 다. 노래와 안무를 외우고 농촌에 도착해서는 하지 말아야 할 행동도 교육받았다. 이것이 일대 과업이라도 되는 듯이 선배들은 그렇게 치밀하고 조직적으로 농활을 계획했었다. 농활 첫 날 아침, 이런 계획은 막걸리 앞에서 무참히 무너 졌다. 전날 계획보다 일찍 도착한 우리들이 찾을 수밖에 없 2013년 5월 29일 백령도 5일차 105


었던 막걸리는 나의 뇌를 좀먹었다. 태양 볕에 증발된 알코 올이 그대로 전두엽을 파고들어 뇌수막염이 되었다. 쉴 겨 를도 없이 헛구역질을 몇 번이고 해가며 조금 괜찮아진다 싶었을 때, 모내기를 마치고 돌아온 선배들은 밥이라며 막 걸리를 찾아 들었다. 안마시면 안 되는 그 시대의 낭만은 농 활은 막걸리라는 등식만을 남겨둔 채 아무런 기억이 없이 단지 ‘뇌가 녹아내리는 한여름의 지끈거림’이라는 신체적· 정신적 상흔만을 남겼다. 이쯤해서 낮술은 그 중에서도 막걸리는 입에도 대기 싫어 질 듯했지만, 조미료 범벅이 된 칼국수는 무엇이든 음료를 들이킬 수밖에 없게 만들었다. 아주머니는 친절하게도 칼 국수를 다 먹고 바다를 바라보는 나를 향해 인스턴트커피 를 권했다. 하지만 갈증은 더 해졌고 반도 마시지 못하고 좌판위에 놔뒀다. 대신에 시원한 물을 달라고 해서 연거푸 석 잔을 들이켰다. 가격이 정해져 있지 않은 읍내 문화의 습성 상 ‘이러다가 만 원쯤 하는 조미료 칼국수를 먹은 거겠군.’하고 단념하면 서 가격을 물어봤다. 예상과는 달리 디저트와 물 두 동이를 먹은 풀코스 해물 칼국수 코스는 단지 5000원이었다. 마지 막 서비스로 “안녕하세요.”라는 인사에 “안녕히 가세요.” 라고 받아치는 도회지 풍속이 더해졌다. 백령도 상점에서 받은 최초의 인사가 아닐까하는 생각이 들었다. 106 2013년 5월 29일 백령도 5일차


푹푹 빠지는 콩돌의 틈을 비집고 들어가는 발은 다시 수고 스럽게 꺼내야만 하는 버거운 일련의 동작을 만들어냈다. 더불어 다리를 옥죄는 근육은 수축과 팽창을 반복하면서 몸 의 피로감을 전신으로 전이시켰다. 사곶해변을 걸을 때와는 정반대의 현상이었다. 백령도는 여기서 그치지 않고 콩돌해 안의 끝에서 높다란 산길을 선사했다. 산길과 바다를 번갈아 걸어 나가는 지루한 반복, 고통인지 아닌지 모를 걷기를 실행해나가는 한 걸음 한 걸음, 그 무 거운 발걸음이 더욱 느려졌다. 그런데도 이런 고통스러움이 어느 순간 희열로 대신하는 순간이 있다. 군대에서 전투축 구를 하다가 무릎이 깨져서 인대와 핏줄이 뒤엉켜 몸을 가 눌 수 없었던 상태에서도, 고통의 끝을 지나면 몸이 정신을 이기는 상태를 경험할 수 있었다. 나는 백령도 지도를 꺼내 고 아직까지 반에 반도 걷지 못했음을 실감해 본다. 그러면 서 지금 이순간도 조금만 더 몸을 짜낸다면, 희열이 나를 맞 아줄 거라는 새디스트와 같은 상상을 해본다. 같은 길을 두 번 걸어갔다고 착각이 든 그 때, 희열은 찾아 온다. 해안절벽에는 간조를 맞아 떠오른 바위 덩어리들이 징검다리가 되어있어서, 육지로 둘러 가면 한참이나 걸어 가야할 장촌포구를 대신해 지름길이 되어 해안가 어귀에서 굴을 캐고 있는 할머니에게로 연결시켜 준다. 허리가 꼬부 라진 할머니는 거적때기와 같은 옷을 걸치고 제철이 지난 굴을 캐고 있다. 멀리 보이는 그 모습이 너무도 안쓰러워서 2013년 5월 29일 백령도 5일차 107


가까이 가기가 싫어진다. 할머니의 허리가 어느 정도의 세 월을 먹어 들어갔으며 왜 그렇게 허리가 숙여졌는지 짐작 이 간다. 가서 허리를 어루만져 주고 곧이 펴주고 싶다. 언 젠가는 한 남자의 순애보였고 누군가의 피앙세였을 할머니 의 그 때가 눈에 아른거렸다. 내가 아는 사람이 몇 명이나 있을까 말을 걸어 본 이는 몇 명이나 될까 나의 이름을 불러줄 이 몇이나 될까

몇 십년 전 태어나 말을 걸었다면 거지 몰골 무릎 꿇은 노파도 내 손 잡고 동산에 올라 붉은 노을 빠알간 장미 손아귀에 움켜잡고 나의 꿈은 너의 꿈은 어떻노라 속삭이는 고운 손 누구의 손녀딸이었겠지

하늘은 안다 세상이 잠든 밤에는 하늘은 안다

여자의 늙음은 이 세상 어느 것 보다도 슬프다. 할머니는 바위틈에서 서성거리다가 발을 헛딛기도 하면서 묵묵히 굴 을 캐고 있다. 족히 100번은 넘게 빨래통에서 뒹굴렀을 수 108 2013년 5월 29일 백령도 5일차


건을 머리에 짜매고, 눈가의 주름위로 흘러내려온 백모를 신경 쓰지도 않고 굴만 캐고 있다. 할머니는 지나가던 나를 보며 바구니에 담긴 굴을 집어 “잡 솨봐.”라고 희미하게 사라져가는 말투로 말한다. 해산물을 즐기는 기호 중 굴을 가장 으뜸으로 치는 나에게 있어서 방 금 딴 굴을 마다할리는 없지만, 공장에서 가공되어서 청결 하게 진공 포장에 담겨 식탁에 오르는 신선한 굴만 사먹다 가 갑자기 미역이 나뒹구는 바위틈 사이에서 직접 조새로 캔, 현지 그대로의 굴을 보고 있자니 도시인인 나에게는 비 위생적인 음식이 이룩해 놓은 인명 살상의 역사가 아른거 렸다. 혹시나 이것을 먹고 속이 상해서 내일의 일을 하지 못하지는 않을까, 철이 지난 해산물을 먹다가 폐디스토마 에 걸리지는 않을까 하는 샌님과 같은 걱정이 닥쳐왔기 때 문에 할머니의 호의를 미소 띈 거절로 받아들일 수밖에 없 었다. 그네들이 평생을 걸쳐 따먹는 해산물을 거절할 수밖 에 없는 나의 건강한 의식과 결백은 어디서 나오는 것일까? 한번 생각이 이러하게 흘러가니 목구멍으로 넘어갈 생각을 하지 못하겠더라. 갈매기는 할머니를 주위로 큰 원을 그리며 빙빙 돌고 있다. 굴을 먹지 않는 갈매기가 할머니 주위를 도는 것을 보니 히 치콕의 <새>가 떠오르지 않을 수 없었다. 새의 날개 짓은 인간에게 심오한 공포를 안겨준다. <새>가 바로 그런 버드 포비아를 전 세계인들에게 각인시킨 영화였다. 갈매기 떼 2013년 5월 29일 백령도 5일차 109


의 포효는 시간이 지나도 사그라지지가 않고, 오히려 비행 의 폭을 좁히면서 우리를 포위해 왔다. 할머니는 아랑곳 하 지 않고 굴을 까고 나는 무언가 메스꺼움이 몰려와 앞에 보 이는 포구 쪽으로 넘어갔다. 장촌포구는 백령도의 다른 해안가에서 나는 모든 까나리 젓의 냄새를 합친 것 보다 더 심한 젓 냄새가 진동하는 곳이 었다. 그물을 꿰매는 어부들은 출항을 앞두고 저녁 술 약속 을 잡으며 만선이 어려울지라도 서로 위안 받을 구석을 마 련해 놓았고, 액젓을 끓이는 어머니들은 바닥에 늘어놓은 까나리를 가리키며 다라이에 넣을 때를 가늠했다. 시골에 가면 지역 원주민들의 어감과 말투가 귀에 속속들 이 들어온다. 말은 지역을 이해하는 데 있어서 가장 쉽고 보 편적인 척도이다. 욕을 잘 섞어 쓰는 지방에 사는 사람들은 어쩐지 욕을 잘 할 것 같은 모양으로 외양이 일그러졌고, 말 이 간드러지듯 애교 섞인 콧소리가 추임새가 되는 그런 지 역에 가면 모든 여자들이 요염해 보인다. 백령도는, 장촌포구는 백령도에서 남동쪽에 위치한 비교적 남한과 가까운 지역이지만 말투는 백령도의 그것을 판에 박 은 듯이 황해도 말씨를 구사하는 이들만 있었다. 30년 가까 이를 살아오면서 교육받은 북한 말투의 근원은 그리 호의 적인 어투가 아니었기 때문에 황해도 말에서 뭔지 모를 경 각심이 생긴다. 110 2013년 5월 29일 백령도 5일차


“여어”하는 소리가 들리고 모터가 돌아간다. 선장은 예열 을 마치고 나서 하나 있는 선원의 얼굴을 확인하고는 배를 황해의 그물 쪽으로 몰아간다. 선장에게는 평소의 하루와 다름없는 일상이 카메라를 든 나의 눈에는 이색적인 그림으 로 다가온다. 눈을 부비고 카메라를 들이댄다. 몸의 배터리가 방전됐다. 카메라를 들 힘이 떨어져서 손이 미묘하게 떨린다. 몸이 완전히 거덜이 나면 정신력으로 이 끌어나게는 데에도 한계가 있다. 장촌에서 몸이 바닥을 치 는 건 어쩌면 이곳에 자고 가라는 계시일 수도 있다. 더 이 상 망설일 여지도 없이 마지막 있는 힘을 다해서 캠핑사이 트를 마련한다. 까나리 말리는 냄새가 진동하는 이곳에서 하룻밤을 자는 것이 못내 걱정스럽지만 반대로 이성을 유혹하는 페로몬처 럼 지독한 악취는 생각에 따라 향기가 될 수도 있다. 자기 최면을 건다. 익숙해지면 별 다를 것도 없다. 밀대를 제대 로 빨지 않은 주번이 교실 마룻바닥을 스치고 지나간 뒤에 나는 악취도 밀대를 쥔 사람에게는 익숙한 무색무취의 공 기일 뿐이다. 처음으로 실제로 쳐 보는 텐트는 연습만큼 쉽지가 않다. 텐 트 제조사에서 배포한, 유투브에서 봤던 설치장면을 천천 히 기억해 내면서, 폴 대를 잇고 팩을 박는 손쉬운 동작을 따라서 그대로 실행해 보지만 생각처럼 쉬운 일이 아니다. 팩을 박자고 땅을 보니 미국 집 앞마당에 깔려져 있는 잔디 2013년 5월 29일 백령도 5일차 111


가 아니라 굵디굵은 자갈이 있어 망치로 때리자마자 튕겨 져 나오기 일쑤고, 시범 동영상에서 우락부락한 미국인 조 교가 우람한 팔뚝으로 간단히 폴을 구부려버리는 장면과 전 혀 겹쳐지지 않는 현장에서의 폴 대는, 키 작고 힘없는 나의 육체를 탓하게 만든다. 집중을 하면 시간이 빨리 가는 법이다. 혼자서 낑낑대는 동안 1시간이 지났다. 어쨌건 자세히 보면 허술하지만 나름 대로 하룻밤 묵어가기에는 손색없는 사이트가 마련되었다. 요즘 사회적 광풍을 불러일으키는 한국식 캠핑족이 내세우 는 고급스러운 사이트는 아니지만 나의 목적은 정말로 하루 를 묵은 곳을 마련하는 전투형 캠핑에 목적이 있기 때문에 럭셔리해 보이지 않는 것은 전혀 문제가 되지 않는다. 이곳 에서 좋은 장비를 가지고 스테이크를 구워 먹는다고 한들 누구하나 알아주는 이가 있을 리 없다. 그것보다는 혹시나 북한군이 해안가에 상륙한다면 하는 가정을 염두에 두면서, 나의 텐트의 목적은 은폐엄폐에 맞춰야 한다는 점을 다시 한 번 상기한다. 형광색 침낭과 이너 매트가 눈에 띄지 않 도록 잠시 소변을 보러 나간다 할지라도 텐트 지퍼를 채우 는 것을 잊지 않는다. 저녁은 간단히 라면을 끓여먹는다. 몸을 씻는 것은 라면을 먹기 전부터 포기했지만 라면을 먹었기 때문에 양치질은 실 시하는 것으로 결정한다. 바닷물을 입에 넣어 본적이 오래 라 짠 맛을 이길 수 있으리라 생각했나보다. 바닷물을 검지 112 2013년 5월 29일 백령도 5일차


로 살짝 찍어 혀끝에 대니 간을 잘못한 김치찌개를 먹는 급 의 단순한 수준이 아니다. 가방에서 물을 꺼내 두 모금만으 로 바닷물을 떨쳐 내는 것과 이 사이에 남아있는 라면 찌꺼 기를 헹궈내는 일을 동시에 해낸다. 고된 하루가 밀려오는 파도 속에서 급작스럽게 피로를 가 져온다. 일일이 기억해 내지는 않고 싶다. 백령일지를 꺼내 어 간단히 루트와 중요한 감상만 적어놓는다. 나중에 다시 꺼내어 정리할 때 이것을 다시 기억해 낼 수 있을까 하는 의 심이 든다. 이 어둠과, 무서움과 조용한 괴석 덩어리들. 바 다에 빠져 죽은 원령들이 뿜어내는 안개를 뒤엎은 해안가 에 홀로 마련된 잠자리에서 어떻게 이런 거대한 역사와 함 께할 수 있을까? 몸은 이것을 이기기 위해 잠을 몰아친다. 잠이 오지만 잠이 오질 않는다. 랜턴을 끄고 다리를 몇 번 주무른 뒤에 잠이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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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3년 5월 30일 목요일 백령도 6일차, 맑음 장촌포구-장촌마을-중화동 포구-북포리-레지던시

백령도는 남한에서 가장 서쪽에 있는 섬이다. 이 말인 즉 슨, 남한에서 동이 가장 늦게 트는 곳이 백령도라는 뜻이다. 일기예보에서 백령도는 이어도나 독도와 함께 특수한 관할 로 인정된다. 일간신문 생활면에서 보기는 쉽지 않지만 정 치면에서는 이들이 주인공이다. 백령도 하면 북한이 따라 오고 독도하면 일본이 따라오는 식이다. 뉴스에는 다뤄지지 않지만 백령도를 넘어 떠오르는 해는 매일 마다 경이로운 광경을 선사한다. 해가 수평선을 넘어 오기 전 여명이 밝아오는 낌새는 내가 살아온 30년 동안 쉬 이 없이 매번 계속되는 하루의 반복이었다. 나는 그 반복을 미약하게 느낄 뿐이지만 한 번도 감을 놓친 적이 없었다. 아 침과 밤은 한 번도 어긴 적 없이 부지런하게 찾아왔다. 인 간의 몸도 자연의 리듬에 맞춰져 자연의 변화가 몸의 변화 를 이끈다. 변화는 인간을 움직이게 하는 삶의 원동력이 되 고 서기 2013년 5월 30일 오전 5시 쯤 어딘가에서 나는 고 개를 들어 밝아진 텐트 내부를 의식하게 되고, 지퍼를 풀어 헤치고 신발도 신지 않고 밖으로 나가서 쌀쌀한 기운을 느 끼며 심호흡한다. 대지가 나의 숨을 따라 안으로 들어왔다 2013년 5월 30일 백령도 6일차 115


체온을 품고 다시 쏟아진다. 나의 캠핑 경량화 주의는 그 흔한 담요 하나 마련하지 못해서 감상에 젖을 새도 없이 다 시 텐트에 들어와 침낭을 덮게 만든다. 기온이 떨어지니 나 가기가 싫어졌다. 침낭 안에 무릎을 꿇고 앉아 있으니 캥거 루 주머니 안에 있는 것 같다. 이내 체온으로 인해서 침낭 은 따뜻해진다. 잠을 자면 오늘 하루의 시작이 적어도 2시 간 정도 늦어질 것이고 2시간이 버려지는 것은 현대인에게 사망선고와도 같다. 그래서 내부적인 타협을 시도해서 가까 스로 30분 정도만 더 자기로 합의를 보다. 아침잠 건은 내부 적인 타협이 항상 잘 이루어진다. 잠이 든다. 1시간 뒤에 잠이 깬다. 더 자도 됐지만 잠을 더 잤을 때의 후회할 내가 그려진다. 시간을 확인한다. 7시 정도가 되었 다. 자취 생활을 오래하면서 다행히 아침밥을 거슬러도 하 루 일과에 아무런 지장이 없다. 건강상의 문제도 아직 발 견되지 않았다. 아침을 거슬러서 발견되는 직접적인 문제 는 없다. 심지어는 요산이 안 쌓여 당뇨병 환자에게는 더 좋다고 했다. 사이트를 정리하니 20분 정도가 더 소요된다. 분해는 조립 의 역순이라는 진리를 다시 한 번 깨닫는다. 기계에 일자무 식이었던 나를 자동차 정비까지 가능하게 만든 2년의 시간, 군대에서의 고된 시간 동안 ‘닦고, 조이고, 기름치자!’라는 구호를 매일 아침 외쳤던 것이 아주 쓸모없던 것은 아니었 다. 1시간 동안 이까짓 간단한 구조인 텐트도 설치 못해서 116 2013년 5월 30일 백령도 6일차


낑낑대고 있었던 불과 12시간 전의 내 모습이 떠오른다. 오 늘 저녁에는 순식간에 설치하리라 확신한다. 침낭을 메고 장비를 챙기고 잠깐 바다를 보는데 뭔가 우스 운 기분이 든다. 이까짓 점유가 뭐라고, 텐트 펼치고 침낭 을 펼치는 것 따위가 개인이 할 수 있는 지리적인 점유이고, 내가 서 있는 이곳은 백령도라는 군사적·지리적 요충지로 관념적인 대상이 되어 서로가 적이 어디 있는지도 모른 채 다투고 있다. 수평선 너머를 바라봐도 적을 찾을 수 없다. 짙은 해무와 보일 듯 말듯 까나리 어선만이 눈에 띈다. 바 닷물은 그대로 평평한데 배들은 물을 도로 삼아 밀고 땅기 기를 반복한다. 태양을 따라 올라왔다 내려갔다 하고 싶다. 아니 지구가 도는 것인가? 달이 뜨는 것인가 가라앉는 것인 가? 세상의 문제들은 생각하면 할수록 답이 나오질 않는다. 가방에서 지도를 꺼내서 오늘 움직여야할 경로를 점검해 본다. 마을을 통과해야만 해서 완만한 거리를 힘을 안들이 고 갈 수 있겠다고 생각이 들다가도, 오히려 그렇기 때문에 마을을 스캔하듯 찍어나가는 젊은이를 가만히 두고 못 보 실 어르신들의 관심이 두렵기도 하다. 장촌포구는 어제와 같이 인중에다가 썩은 까나리 한 마리 를 테이프로 붙이고 돌아다니는 느낌이 든다. 포구에서 멀 어져 마을을 가로지르는 시골길을 천천히 걸어가며 사진을 찍는다. 습기가 가득한 마을에서 빨래를 어떻게 말릴 수 있 을까 싶은데, 이곳 사람들은 그래도 마당에 빨래를 열어놓 2013년 5월 30일 백령도 6일차 117


는다. 까나리 냄새와 습기가 마를 날이 없는 곳에서 빨래를 말린다는 것이 이해가 가지 않으면서도 이곳 사람들이 거 주하는 영역에 갖춰진 역사이자 전통을 내 마음대로의 잣대 로 파악하는 것이 얼마나 폭력적인지 생각하니 겸허해진다. 빨랫감을 보면 그 가정의 식구들이 어떤 일을 하는지, 구성 원은 어떤지 예상된다. 장촌마을의 마당은 뱃사람들이 작업 복으로 입는 방수바지가 가죽을 벗긴 가물치 가죽처럼 도처 에 널려있다. 엉덩이에 쫙 달라붙는 야시시한 여자 팬티는 찾을 수 없다. 몇 번이나 기워서 신은 양말이나 늘어진 셔 츠 따위가 장촌에서 볼 수 있는 빨래다. 마을은 한 낮이라 그런지 인적이 드물다. 길 막바지에 이르 러 뒤에서 따라오던 트럭이 내 옆에서 멈춘다. “어이 젊은이, 어찌 마을을 샅샅이 찍고 다니는가?” 모자에 ‘장촌마을 운영위원회’라고 자수 박힌 하얀색 모자 를 쓴 할아버지는 포터의 창문을 반 쯤 내리면서, 금테 라 이방 선글라스 속에 감추어진 눈동자의 표적을 나에게 고 정한 채 물었다. 나는 ‘샅샅이’이라는 단어의 무게를 잘 알고 있었다. ‘샅샅 이’는 으레 ‘뒤지다.’는 말이 따라오고 ‘샅샅이 뒤지다.’는 권 위적인 무언가가 일방적으로 약자를 검열할 때 쓰는 그 ‘샅 샅이’와 동일한 심급에서 이루어지는 무게감이었다. 금테 라이방 위에 걸쳐진 모자에 알지 못할 단체가 자수 박힌 모자를 쓴 사람의 상징은 서울에서는 대한민국 어버 118 2013년 5월 30일 백령도 6일차


이연합이나 상이군경회로 대표되는 보수단체이다. 2년 전, 새누리당으로 개명하기 전 한나라당일 당시 대한민국 어버 이연합은 여의도 당사 앞에서 “한나라당의 노선은 너무도 온건하여 빨갱이들과 다를 바가 없다.”라며, 당 이름을 붙 인 상여를 들며 통곡하던 그들의 모습이 아직도 생생히 기 억난다. 백령도와 너무도 잘 어울리는 할아버지의 첫인상 에서 그 할아버지들의 냄새가 진하게 풍겨왔음은 두말할 나위가 없다. “네, 저는 인천문화재단에 속한 사진작가인데요, 백령도에 관한 전시가 있어서 사진 찍고 있어요.” 나는 미소를 잊지 않으며 경상도 억양이 섞인 말투로 말했다. “아, 저기 저기도 그 젊은 사람 중에 인천문화재단이라고 저… 있는 사람있는데 고긴가봐?” 의문사였지만 답을 바라지 않는 중얼거림으로 마무리되 는 말로 보아 그다지 적의가 있지는 않아 보였다. 안도의 한 숨을 내쉬며 나는 기분을 맞춰줄 적당한 말을 골라내어 잘 포장했다. 할아버지는 수고하라는 말을 하고는 RPM을 높여 싸구려 경유가 골라낸 검정 매연을 뿜으며 사라졌다. 경상도 말투는 서울에 있는 대학교로 와서 겪게 되는 치욕 스러운 나의 개인적인 역사이자 습관이었다. 드라마에서나 나오는 말투가 일상적인 대화가 되는 곳으로 찾아온 이방 인으로서 나는, 내가 말을 꺼내면 나의 출신이 드러나고 그 것이 그들이 나를 멀리해야만 하는 필시 타당한 이유가 되 2013년 5월 30일 백령도 6일차 119


지는 않을까 노심초사했었다. 지금 생각해 보면 대개 말이 없는 신입생들은 출신 지역이 지방에 속해 있었던 것 같다. 그러다가 사회의 지도층이라는 사람들과 학교의 교수들과 잘 나가는 선배들을 보면서 대다수가 경상도 억양이 남아있 다거나 숨기려 하지 않는 다는 것을 알았고, 대통령을 필두 로 정치엘리트층의 어투에서도 경상도는 ‘성공한 사람들이 쓰는 현대 강남 말씨’라는 등식이 성립되었다. 우리나라를 움직이는 국가 기관의 사람들이 방송에서 나 와서 하는 말을 듣고 있으면, 고향 아버지의 정제된 말투와 크게 다르지 않았다. ‘사람들이 가장 신뢰하는 말투가 서울 말씨 섞인 경상도 말이래요.’, ‘전라도 사람은 뒤통수 때리 는 일이 많아서 사기꾼과 같이도 사투리를 기가 막히게 잘 고친다.’와 같은 문장들에 노출되는 시간이 많아질수록 나 의 말수는 늘어갔고, 이내 대놓고 경상도 사투리를 마초 남 성의 전유물이라도 되는 듯이 자랑스럽게 쓰기 시작했다. 본격적으로 사회생활을 시작하면서 사투리와 서울말 경계 에 있는 말투로 전향을 해서 지금까지 이르렀는데, 백령도 와 같은 전초지역에서 강렬한 마크가 인상적인 모자를 쓴 할아버지에게 경상도 말투로 응답하는 것은 여러 가지로 호 의적인 반응을 이끌어내는 역할을 한다는 사실을 익히 경험 으로 알고 있었다. 다시 작은 다리를 기점으로 서쪽으로 난 넓은 도로를 따라 사진을 찍어 내려가기 시작했다. 농사를 짓는 곳으로 진입 120 2013년 5월 30일 백령도 6일차


하자 여기는 육지에 있는 농활의 장소, 그 익숙한 농지와 다 를 바가 없었다. 다만 괭이갈매기 떼의 군무가 비닐하우스 위로 아슬아슬하게 펼쳐지는 광경만이 농지와 대립각을 세 우며, 바다와 육지가 서로 척후병을 적진에 심어 놓고 영역 다툼을 벌이고 있는 전쟁의 장소, 공존과 상생의 영역으로 착각을 불러 일으켰다. 갈매기는 날고 사람은 농사를 짓는다. 전쟁도 아니고 서로 친밀한 관계를 맺고 있는 것도 아니다. 갈매기는 오래 전부 터 그곳을 날았다. 갈매기는 자신의 희멀건 똥이 크레아틴 이라는 성분이 많아서 산도가 높다는 사실을 알지 못하고 그저 늘 싸던 곳에 쌀 뿐이다. 때마침 나타난 사진작가는 연 신 카메라를 들이대고 있지만 갈매기는 나에게 눈길한번 주 지 않고 하던 일을 계속한다. 반대로 농사를 짓는 사람들은 카메라질이 너무도 기분이 나쁜지 일을 멈추고 커다란 망원 렌즈를 노려본다. 농민들의 찡그림은 어떤 면에서는 태양에 그을린 농민들의 얼굴과 쌍이 잘 맞아서, 개척하는 삶을 계 몽 운동하는 공익 광고에 어울릴 법도 하나 그것은 단지 이 미지에서 이미지가 보는 환영이다. 왜냐면, 파인더로 보이 는 확대된 얼굴의 굴곡은 당장이라도 카메라로 달려와 언성 을 높일 것 같은 공포감만이 존재할 뿐, 인자한 시골 사람의 정감 있는 인상과는 괴리가 심하기 때문이다. 힘든 나의 일 상으로 잠시 들어와 동의를 구하지 않고 사진을 찍히는 찰 나의 시간동안만이 사진가가 강요하는 감정적인 공유의 상 2013년 5월 30일 백령도 6일차 121


태, 사진가가 찍는 사진 이미지와 동일한 선상에서 놓이는 나의 모습과 비참한 삶의 현실, 이것이 다큐멘터리 사진이 표방하는 프롤레타리아를 위한 사모곡이다. 그들을 이해하 기 위한 방법으로 내가 택한 것은 그들을 대상화하지 않으 며, 깊이 생각하지 않는 것이다. 셔터가 움직이는 아주 짧 은 시간동안이지만 나는 그렇게 찍혀진 대상을, 그것도 인 간이라면 무언가 타인의 삶을 관조할 수밖에 없는, 때문에 고통 받기도 하는 윤리적 책무를 감당하기 힘들기도 하다. 서울역 노숙자들 지하철 거렁뱅이들 잇몸이 주저앉은 할머니 리어커에 잔뜩 실은 박스뭉치

나는 걸으면서 몽상한다. 저것들은 빅브라더가 심은 전시효과 슬퍼하지 않겠다.

여태까지 걷던 길과 달리 일직선으로 뻗은 길은 무료하기 만 해서 이렇게 잡생각이 많아졌다. 생각이 많되 손은 셔터 와 하나가 되었기 때문에 촬영에는 문제가 없다. 길의 끝에 다오니 오른쪽으로 백령도 전체의 전력을 책임 지는 발전소가 거대한 성과 같이 세워져있다. 아주 큰 전 122 2013년 5월 30일 백령도 6일차


봇대가 있어서 그늘이 큼지막하니 쉬기가 적당하다. 아무 데나 퍼질러 앉고 선크림을 고쳐 바른다. 빠르게 지나가는 포터 뒤 짐칸에 몸을 실은 일용직 인부들이 나를 바라보면 서 점점 멀어져간다. 차를 타고 싶다. 휴식을 조금 취한 후 이정표가 여럿 있는 삼거리에 섰다. 왼쪽으로는 중화동 포 구, 오른쪽으로는 연화리라고 쓰여 있다. 백령도 둘레에 가 까운 지역은 중화동 포구다. 망설임 없이 중화동 포구 쪽으 로 발길을 튼다. 중화동 포구 입구에는 수협에서 공식적으로 운영하는 까 나리 액젓 공장이 있다. 이전에 본 까나리 공장이 가내 수 공업처럼 소규모로 이루어졌던데 반해 이곳은 보통 양옥집 옥상에 있는 물탱크 크기와 비슷한 액젓통이 수십 개씩 무 리지어 있다. 관리가 잘 되어서 장촌포구처럼 냄새가 지독 하지는 않다. 길이 나 있는 쪽으로 걸어갈수록 갈매기가 더 많아지고 있다. 바다의 짠 내가 진해진다. 해무가 이끄는 쪽 에서 파도가 요동치는 소리가 들린다. 포구를 거의 다 왔을 때 오른쪽에 보이는 논 중간에는 방 하나만한 컨테이너 건물이 있다. 여행사 간판을 달고는 있 지만 영업을 하고 있지는 않는 것 같다. ‘유람선 전문’이란 광고판을 컨테이너에 설치하며 품었을 주인의 꿈이 아련하 게 비친다. 주인의 꿈도 컨테이너가 녹슬어 가는 시간에 따 라 사라져 갔을 것이다. 녹슨 몸을 이끌고 지금은 무슨 일 을 하고 있을까 궁금해진다. 2013년 5월 30일 백령도 6일차 123


컨테이너에 정신을 빼앗겨 정신을 차려보니 해무에 완전 히 포위되어 있었다. 눈을 감아 느끼니 이곳은 완전한 포구 다. 거짓말같이 포구의 모습이 가시권에 들어온다. 중화동 포구는 까나리 잡이가 생업이면서도 관리를 잘하고 있는지 액젓 냄새가 나지 않는다. 중학교 때 가장 친한 친구는 내가 냄새에 너무도 민감하 다며 다른 친구들이 보는 앞에서 놀리고는 했다. 사람을 볼 때도 눈으로 보이는 외양보다 스쳐지나가면서 잔향을 남기 는 그윽한 매력에 더 끌리고는 했다. 바다에 대해서도 10대 소녀와 같은 정도의 환상을 품고 있으면서도 막상 해안가 에 가면 미역이 썩은 냄새나 어물들의 냄새에 헛구역질을 하고는 했다. 작업에 빠져있을 때는 바다냄새가 시체 썩는 냄새라는 상 상을 했고 그 때마다 광주에서 한동안 진동했다던 그 냄새 도 비슷했으리라며 심호흡을 해보기도 했다. 제 아무리 바 다가 환상 속에서 물속이 훤히 보이는 낭만의 공간일지라도 고개를 조금 돌려서 주변을 응시하고 있으면 무엇보다도 코 를 후리는 비린내가 더 자극적이었다. 나이가 들어서도 후각에 민감하기는 변한 것이 없다. 다른 건 몰라도 30년 동안 냄새나는 사람과는 쉽사리 친해지지 않았다. 몸에 냄새를 머금고 있다는 것은 자기관리를 못한 다는 증거로 여겼었다. 군대를 다녀오고 완화되기는 했지만 남달리 예민한 후각은 전혀 퇴행하지 않았다. 124 2013년 5월 30일 백령도 6일차


내무반 생활 당시 최고참의 바로 밑에서 일종의 행동대장 같은 역할을 맡는 것이 ‘상말’이라고 불리는 상병 말호봉들 인데, 나의 내무실 상말의 겨드랑이 사이에서 뿜어져 나오 는 암내는 고참들도 두 손 두발 다 놓을 정도로 중대 내 명 물이었다. 그렇게 ‘식초’라고 불리던 상말은 이상하게도 매 일 저녁을 샤워장에 빠짐없이 드나들었다. 이등병이었던 나 는 필시 샤워장에서 제대로 된 샤워를 하지 않기 때문이라 고 확신했었다. 한 번은 어찌 ‘식초’가 되는 지경까지 이르렀을까하고 궁 금해서 큰 맘 먹고 샤워장에 따라 간 적이 있다. 내 생각과 는 달리 남들보다 오랜 시간을 공들여서 씻는 모습은 연민 을 자아냈다. 그 날 점호 시간에 ‘식초’가 후임들을 나무라 며 언성을 높이는 모습을 봤지만 전혀 겁이 나지는 않고 측 은한 마음이 들어 뭔가 서글퍼졌었다. 아무리 해도 안되면 얼마나 슬플까하는 생각은 취침 점호 후에 침상에 누워서 도 했더랬다. 어느 늦은 밤 샤워장에서, 그 녀석이 내무실 분위기를 좌지우지하던 병장의 똥구멍을 정성스럽게 닦아 주는 모습을 보고는 그 연민마저 쓰레기통에 처박아 버렸 지만, 그래도 사람이 해도 안 되는 불가항력이란 말이 어떤 용례인지 곱씹게 해준 선임이었음이 틀림없다. 얘기가 나온 김에 한 마디 더 하자면 두 가지의 일화랄까, 아니 육군 제3기갑 여단 공병중대의 불문율이 된 추억이 있 는데, 그중 하나가 ‘식초가 빨래를 하고 널어놓은 건조대 주 2013년 5월 30일 백령도 6일차 125


변에는 빨래를 걸지 않는다.’였다. 130명이나 되는 중대 병사들 중 20명만 내의를 널어놓아도 가득 차는 좁은 건조대가 있었던 중대 뒷마당은 지하철 빈 자리 보듯 어렵사리 건조대의 빈 공간을 찾을 수 있던 그런 곳이었다. 게다가 우리는 노가다라고 타 중대에서 놀림 받 는 공병중대였다. 그렇게 쉴 새 없이 차고 빠지고를 반복하 던 건조대도 유일하게 ‘식초’가 빨래를 한 날이면 어느 누구 도 근처에 빨래를 걸지 않았다. 금방 빨래한 내의가 얼마나 냄새나랴만, 그래도 온 몸이 더러워진 창녀 몸 대하듯 그렇 게 ‘식초’의 빨래는 멸시 당했고, 건조대는 오랜만에 여유 로운 휴식을 취했다. 또 한 가지는 ‘식초’의 애인에 대한 존경 내지는 애석함이 었다. ‘식초’의 애인 사랑은 중대 안에서도 유명했다. 일주 일에도 두 세통이 넘는 편지를 써 냈으며, 훈련기간에도 예 외가 없었다. 남들은 외출을 나가면 같이 내무반끼리 어울려 PC방에 갔 다가 최신 랭킹 상위권인 비디오를 빌려 여관에서 보고, 저 녁 때 쯤에 다시 나와서 반주 삼아 소주를 마시고, 그리고 는 호프집 같은 데에서 소주를 들이켜 취기가 오르면 근처 나이트를 가거나 홍등가를 찾는 것이 보통 군인들의 외출 문화였지만, ‘식초’는 A장을 곱게 차려입은 후에 위병소까 지 찾아온 애인과 홀연히 사라지는 것이 관례였다. 외출 날 이 겹쳐서 우연히 얼핏 보게 된 ‘식초’의 애인은 단풍잎이 126 2013년 5월 30일 백령도 6일차


아직 다 치워지지도 않은 홍천 시내의 번화가에 때 이른 어 그부츠를 신어 모두를 자지러지게 했었다. 색깔마저 중국산 임을 증명하는 선명한 보라색이어서 한동안 누구할 것 없이 ‘식초’ 애인의 어그부츠를 개그 소재로 삼아 웅성거렸었다. 사실 애인에 대한 우스꽝스러운 풍문을 진실로 입증해주 고, 또 이슈로 생산해낸 것은 다름 아닌 ‘식초’ 자신이었다. 취침시간인 10시가 지나도 잠이 오지 않았던 ‘식초’는 총애 하는 후임을 자신의 침대로 불러내어 재미있는 얘기를 해달 라는 횟수가 많아지더니, 재미가 없는 후임이 오면 참다못 해 자신의 얘기를 해주는데, 얘기의 반 이상을 어그부츠 애 인과의 섹스담을 디테일하게 묘사하는 것으로 할애했었다. 이번 휴가에서는 어떠어떠한 체위를 했는데 애인이 힘들어 했다거나 새로 나온 콘돔의 강도와 탄력을 애인의 반응에 따라 평가하는 둥, 본인의 얘기라고는 믿겨지지 않을 정도 로 적나라하고 솔직한 얘기를 아무렇지 않은 듯 들려줬었 다. 목소리도 줄일 의지가 전혀 없었기 때문에 모든 분대원 들은 눈을 감은 대신 박쥐의 청각으로 아랫도리를 주섬주섬 거렸다. ‘식초’는 자신의 경험을 얘기 하다가 절정의 순간에 다다르면 무아지경에 빠진 듯이 그 상황을 그려내는데 언변 이 부족해서 크게 와 닿지는 않았지만 ‘식초’의 활동복 사타 구니 쪽이 부풀어 오른 것으로 흥분의 정도를 쉽사리 목격 할 수 있었다. 팽창과 수축을 반복하는 경우가 있어서, 자 신도 무안해질 때면 모포를 슬며시 가져와서 덮고는 했다. 2013년 5월 30일 백령도 6일차 127


‘식초’는 애인과의 농밀한 섹스담이 수치라는 것도 모르는 순박한 농촌 총각의 이미지로 남아있고 싶어서였는지 모르 겠지만, 나의 내무실 추억의 한 축을 담당하고 있는 것은 분 명하다. 누가 뭐래도 ‘식초’는 암내와 섹스에서 나에게 연민 그 자체였다. 9시 뉴스에서 농민들에게 불리한 정책이 기삿 거리로 나왔을 때에는 감정이 격하게 되어 자신의 부모님의 처지를 대변하던 그런 순수한 농촌청년이었다. 까나리 액젓통을 보니 냄새가 났고, 냄새에서 ‘식초’를 불 러내었다. 꿈에서도 가끔씩 ‘식초’는 나타나서 언성을 높인 다. 인생을 좀 살다보니 가지고 있는 추억거리도 늘어난다. 이것을 붙잡아 놓고 최대한 몰입해서 과거를 추억해 낼 수 있는 방법은 사진과 글, 이미지와 텍스트를 소중히 정리해 놓는 것 밖에는 방도가 없다. 일전에 답사에서 유람선을 탔던 곳이 보인다. 유람선은 관 광객을 싣고 두무진에 갔는지 보이지 않는다. 바다 너머로 보이는 수평선을 사진에 담는다. 사진을 쭉 찍어가고 있을 때 “어이 아저씨”하는 우렁찬 목소리가 들린다. 거의 고함 을 치는 수준으로, 말 속에 살기가 넘친다. 고개를 돌려보 니 한 무리의 뱃사람들이 방수복을 입고 소주를 먹고 있다. “이리와 봐요.” 오라고해서 가기는 가는데 무언가 꾸지람을 듣지는 않을 지 걱정된다. 소리 친 아저씨는 연화리 이장으로 30대 후반 128 2013년 5월 30일 백령도 6일차


의 까나리 배 선장이었다. 나를 부른 이유는 갑오징어가 잡 혀서 같이 소주 한잔 하자는 선의였지만, 나중에 말하기를 카메라를 들고 다니는 젊은 사람을 보니 자신의 옛 시절이 생각나서라고 했다. 갑오징어와 소주는 그렇게 시작되었다. 소주를 진탕 먹고 사진을 찍지 못한 그런 날이 되었다. 아 저씨의 부름은 뭔가 묘한 마력이 있어서, 비닐이 아무렇게 나 쳐진 야외 공간으로 이끌었다. 금방 바다에서 꺼내어 물 이 떨어지는 어획 도구들이 아무렇게나 걸려있는 그런 천막 이었다. 나의 왼쪽으로는 중화리 이장님이 있었고 맞은편에 는 나를 부른 까나리 어선 선장님, 그리고 오른쪽으로 까나 리 어선의 유일한 선원인 김씨가 앉아 있었다. 살짝 움직이는 갑오징어는 소주와 너무도 잘 어울렸다. 절 단된 자신의 몸을 요동치고 있는 갑오징어의 모습을 보면 서, 갑오징어의 죽음은 어떤 형태로 마감되어야만 덜 추해 질 수 있는지 고민했다. 조금이라도 살아있는 동안, 살아있 음이 움직임을 유지하는 것이라면, 요동치는 갑오징어는 고 통의 몸부림일 것이다. 흐느적거리는 사지에서 흘러나온 끈 적한 체액이 바닥에 떨어지지 않도록 젓가락으로 잘 들어서 초장과 버무리면, 갑오징어 속에서 터져 나온 선혈을 하나 도 빠뜨림 없이 먹고자 하는 야만스러운 짓 같이 보이기도 했다. 초장을 바닥에 안 흘리도록 젓가락 아래를 받치는 나 의 왼손바닥, 그리고 젓가락에 실려 오는 갑오징어를 맞이 2013년 5월 30일 백령도 6일차 129


하고 있는 나의 입과 길게 내민 혀는 이 천막을 한 번에 드 러내는 장면이 되었다. 그렇게 피를 흘리는 갑오징어가 입 으로 들어가면서 소주를 부르고 또 불렀다. 백령도의 음주문화는 술잔을 하나로 여럿이서 돌리는 특 이한 주도가 있다. 단 하나의 잔만을 사용해 시계 방향으로 돌리는데, 술잔이 비면 왼쪽편의 사람에게 건네는 식이다. 술자리에 참석한 사람의 한정을 두지 않는다면 만약 동네 에 잔치가 벌어지면 어떻게 될지 궁금해지기도 했다. 이런 방식이 꽤나 비위생적인 면이 많아서 처음에는 좀 거부감 이 들었지만 술이 너끈하게 올라오니 술잔을 이리저리 돌 리며 남의 입이 닿지 않은 곳을 찾는 일도 익숙해지게 되 었다. 그렇다고 치더라도 술이 아무리 취했어도 여러 사람 의 입에 드나든 술잔을 아무렇지 않게 빨지는 못하겠더라. 이 정도 됐으면 술자리에 정식 인원으로 인정받아 모두들 마음을 연 것이다. 나도 자리를 고치고 양반다리를 했다. 지갑에서 명함을 꺼내 건넸다. 명함을 유심히 보더니 나를 사진기자라고 결론 내렸는지 홍보용 사진을 찍어달라고 했 다. 내가 하는 일과 과정을 깊게 설명을 하자니 모두의 술 자리 분위기를 너무 무겁게 이끌어 갈 것 같아 그냥 고개 를 끄덕이고 광고사진가가 되었다. 유명한 광고 사진가라 는 자기 최면에 빠지고 유명 배우의 프로필을 찍어본 셀러 브리티 사진가처럼 이리저리 포즈를 요구하면서 여러 장을 찍어 나가니, 평생 몇 번이나 찍혀봤을까 이내 좀 부끄러 130 2013년 5월 30일 백령도 6일차


운지 그만 찍고 술이나 먹자고 했다. 내가 육체적으로 힘든 자세까지 취하며 땀을 뻘뻘 흘리자, 백령도의 발전을 위해 서는 나와 같은 기자들의 헌신이 필요하다며 까나리가 대 외적으로 홍보되기를 바란다는 말을 하면서 흐뭇한 미소로 나를 바라보았다. 얼굴이 검게 그을리고 몸이 건장한 선장은 겉으로 보기에 는 40대 후반처럼 보였지만 실제 나이는 73년생 소띠였다. 선장은 “노기자가 시간 괜찮으면 내일 아침에 까나리 잡는 거 따라와서 찍으쇼.”라며 “아무나 보여주는 게 아냐”라고 호의를 베푸는 듯 말했다. 나는 흔쾌히 그러겠다고 대답했 다. 이렇게 갑자기 들어온 좋은 기회를 차버릴 리가 없었다. 선장은 연신 갑오징어가 귀하다며 빨리 먹으라는 얘기를 했고 다음에 백령도에 들어올 계획이 있다면 좋은 화장품 가게에서 기초화장품이나 사달라며 겸연쩍은 듯 자신만만 하게 요구했다. 황해도가 고향이라는 김씨 아저씨는 별다른 직업 없이 그 때 그 때 몸을 쓰는 일이면 하는 그런 사람이었다. 11월까 지 까나리를 잡을 예정이라는 김씨 아저씨의 장기계획은 봄이 한창이던 때 선장의 갑작스런 요청으로 세워졌다. 인 천에서 건설현장을 전전하던 김씨에게 선장은 11월까지 까 나리를 잡자며 연락을 했고 김씨는 단번에 승낙했다. 그것 이 4월이었다. 막일을 하는 사람들이 그러한 것처럼 김씨의 팔목은 나의 2013년 5월 30일 백령도 6일차 131


두 배는 됨직해 보였다. 팔목을 유심히 살피는 나를 봤는지 술상을 잠시 정리하더니 팔씨름을 하자며 싸움을 걸었지만 나는 도저히 이길 자신이 없다며 마다했다. 손아귀의 힘이 라도 재어볼까 해서 손금을 따라 시꺼먼 땟국이 흘러내리는 뱃사람의 손바닥을 조심스럽게 쥐어도 봤지만, 역시나 꺼 칠한 피부에 걸맞은 강한 힘은 도저히 팔씨름에 응할 수 없 게 만들었다. 김씨는 자신의 옷을 가리키며 시장에서 아무 렇게나 집은 싸구려 시장표라며 만약에 선물이 가능하다면 자신에게는 브랜드 옷을 사다달라며 부탁했다. 김씨는 소주잔이 5바퀴 돌고나서 가져다 놓은 소주가 떨 어지면 허드렛일을 해야 할 사람이 본인이란 것을 잘 알고 있었다. 나이가 제일 많기는 하지만 선장에게는 일개 직원 이고, 손님인 나보다는 일시적으로 급이 낮았다. 만약 김씨 가 환갑을 넘긴 나이라는 사실을 미리 알았더라면 내가 먼 저 소주나 담배고 찾는 시늉이라도 해서 발품을 팔았을 것 이다. 막일로 먹고사는 사람들은 태양과 싸운 고난의 흔적 으로 인해 본래 나이보다 겉늙어 보인다. 그래서 김씨도 실 제 나이는 40대 중반 정도이지만, 태양이 남긴 깊은 세월의 골 때문에 늙어 보였다. 이왕 처음부터 그렇게 기자 노릇을 하는 손님이 된 이상 다 시 무를 수도 없어서 묵묵히 술상을 봐주는 김씨를 도와 줄 수도 없는 노릇이었다. 그러는 동안 흥이 오른 선장은 같이 밥을 먹으러 가자고 청했다. 132 2013년 5월 30일 백령도 6일차


“점심 먹으러 국밥집 가려는데 같이 가.” 점심이라는 말에 놀란 표정을 보이자 “뱃사람들은 지금이 점심이야. 새벽에 5시에 나가서 뱃일하고 하면은 밥 먹을 시간이 없어. 이런 때는 더하고. 그게 뱃사람이지. 뱃사람 은 다 그래.” 옆에서 가만히 듣고 있던 김씨는 술이 취했는 지 혀가 꼬여 제대로 알아들을 수 없는 말로 중얼거렸다. “그르치그르치. 뱃 사람이 밥 먹을 시간이 어디써. 그러면 모해. 모해. 그런거 따지며는 돈 못 버러. 노기자는 한 300 벌지? 응? 400버나? 아이 아이라. 아이고 나는 술 마이 취 했다. 그만 먹어야지.” 황해도 말은 맨 정신에 듣고 있어도 알아듣기 힘들었는데 제대로 된 발음을 하기가 불가능한 상태인 사람이 내뱉는 황해도 말은 외국어를 듣는 것과 같았다. 하지만 그 맥락만 은 분명하게 들려서 의미는 확실히 이해가 갔다. 술자리를 주도하는 이는 단연 선장이었다. 선장은 오랜만 에 얘기가 통하는 젊은 사람을 만나 즐거운 듯 했다. 젊었 을 때 마누라를 만난 이야기를 오랜 시간 동안 기억을 들춰 가며 얘기해줬다. 조기축구회에서 활동한다며 아직도 건강 한 자신의 몸을 자랑하면서 카카오톡에 사진이 있으니 보 라고 재촉했다. 그렇게 젊고 활력 넘치는 자신이었기 때문 에 인천에서 사는 젊고 예뻤던 지금의 마누라를 데려올 수 있었다고 했다. 딸내미들은 이제 갓 초등학생인데 교육문 제로 마누라와 다툼이 부쩍 많아져서 고민이라는 것까지 2013년 5월 30일 백령도 6일차 133


털어놓았다. 1시간이 좀 넘는 시간동안 술을 거나하게 마셨다. 소주병 을 세어보지는 않았지만 5~6병은 순식간에 비운 것 같다. 1980년대 백령도의 청소년들은 대부분 술 담배를 했다고 하 는데 술을 제대로 못하는 놈도 술잔 하나로 돌려 먹으니 안 먹고는 버틸 수가 없는 그런 음주문화라 누구하나 빠져나 갈 수가 없었다고 했다. 백령도의 술 문화는 자연스레 백령 도를 술이 센 사람들이 사는 지역으로 만든 것이다. 다행히 술 하면 누구한테도 지지 않는 내구성을 가진 나이기에 그 들과 맞서도 처절하게 실려 나가지는 않았다. 술에 취해서 포구를 바라보니 너무나 시골스러웠던 어촌이 나폴리의 여유로운 항만으로 변했다. 아니 오히려 산토리 니에 가까웠다. 낮부터 술자리를 튼 우리의 모습을 지나가 던 귀신이 잠시 들춰보는 듯, 적당한 데시벨로 포말을 날리 며 으스러지는 파도소리가 가까워졌다가 멀어졌다가를 반 복했고, 해무도 우리의 술자리를 위해 잠시 자리를 비켜나 바다의 파랑이 더욱 짙어보였다. 나는 마저 중화동 포구를 모두 찍겠다고 하고 나갔다. 그 러나 이내 도저히 몸을 가눌 수가 없어서 다시 돌아왔다. 나는 자리를 정리하고 국밥집으로 이동하려는 선장 일행 에 합류했다. 나는 내심 음주운전이 걱정스러웠다. 선장은 뭐 그런 대수 롭지도 않은걸 걱정하냐며 백령도는 음주단속이 없다고 1 134 2013년 5월 30일 백령도 6일차


년에 한 번 있는 단속이 오늘이라고 해도 사이렌이 울린 후 음주단속 예방 방송이 미리 나오기 때문에 안심하라고 했 다. 사실 선장의 관심은 음주운전이 아니라 손님을 모시고 갈 차에 대한 불만이었다. “좋은 차는 마누라가 가져갔네. 좋은 차는 알아가지고. 아 좋은 차를 아네.” 김씨는 옆에서 맞장구쳤다. “흐흐 아네. 좋은 차를 알어.” 우리가 타고 갈 무쏘 보다 얼마나 좋은 차였을지는 궁금했 지만 특별히 묻고 싶은 마음이 들지 않아서 듣고만 있었 다. 좋은 차를 보여주지 못해서 자신의 재력이 실상과 다 르게 보일지도 모른다는 염려가 선장을 자신 없게 만들었 다. 선장의 운전대가 흔들리는 모습에서 불안한 모습이 역 력히 묻어 나왔다. 백령도의 고속도로라는 곳을 달리면서 산길을 혼자 걸어 가는 백인을 발견한 선장은 차를 잠시 세우더니. 나에게 백 인에게 동석할 것을 요구하면 어떻겠냐는 제안을 내어놓았 다. 나는 백인에게 기억도 잘 나지 않는 영어로 말했고 백 인은 웃어 보이며 “아엠 오케이”라며 거절했다. 선장은 나 를 보며 역시 배운 사람은 다르다며 만족하면서 액셀을 더 욱 세게 밝았다. 북포리 여단 앞은 제법 훌륭한 가게들이 있었다. 군인들 이 여가시간을 보내는 곳이라 음식점들이 다른 곳에 비해 2013년 5월 30일 백령도 6일차 135


서 다양하고 세련됐었다. 선장은 차를 길도 없는 곳으로 집 어넣더니 정육식당을 가리키며, 생긴 건 저렇지만 맛은 좋 다고 일러주었다. 돼지국밥은 선장의 말이 허언이 아니었음을 증명했다. 소 주와 함께 먹는 국밥은 일품이었다. 돼지를 직접 잡는 정육 점에서 만든 돼지국밥이라 냉동된 돼지고기를 쓴 곳과는 확 연히 달랐다. 얼굴이 빨개진 남자 셋이서 낮술을 먹고 있는 이상한 모습이 되었다. 소주를 몇 병 먹었을까 김씨는 갑자기 울음을 터뜨렸다. 갑 자기 어머니가 생각이 난다고 했다. 눈물콧물을 짜내는 울 음에서 어떤 서러움이 몰려왔다. 선장은 또 그런다며 김씨 를 나무랐다. 말을 제대로 못 잇는 김씨의 말들을 분간해 내 지는 못하더라도 그 감정만큼은 고스란히 전달되었다. 술을 취하면 으레 감정이 격해지고 없던 생각도 나기 마련이다. 나 역시 술이 취해 있었기 때문에 김씨의 태도가 술주정으 로 생각되지 않았다. 뭔지는 모르지만 술자리에 있던 사람 들이 공유할 수 있는 어떤 상태가 서로를 말이 없게 만들었 다. 김씨는 세수를 하고 오겠다며 나가서는 들어오지 않았 다. 선장과 나는 저녁이 되도록 시간 가는 줄 모르고 돼지 국밥이 다 식어가도록 소주를 마셨다. 선장은 진촌리까지 태워다 주지 못해서 미안하다고 했다. 떠나가는 무쏘를 보면서 내일 까나리 어선은 안 탈 것이라 고 다짐했다. 136 2013년 5월 30일 백령도 6일차


아직도 어스름이 남아있는 백령도의 이른 밤이지만, 이곳 의 모든 사물들은 어둠이 얕게 휘감는 이 무렵이 되면 아무 도 움직이지 않는 적막한 섬이 된다. 어둠이 소리 없는 사이 렌을 울리는 이 시간은 하루도 빠짐없이 찾아온다. 백령도에 며칠 있다 보니 백령도 사람들처럼 해가 떨어지 는 순간을 보며 하루의 때를 아는 것이 자연스럽다. 이곳 사람들은 태양으로 하루를 마감해야할 시기를 짐작한다. 술도 거나하게 취했고 세상이 조용해지니, 나의 술기운이 세상을 향해 검정 먹을 뿌린 듯이 느껴지기도 한다. 검정이 퍼져나가서 완전한 암흑이 오고 그래서 아무도 못 알아보는 그 때가 오면 내가 쓰러져도 보지 못하는 그런 어둠이 왔으 면 좋겠다고 생각이 들었다. 도로를 건너는 데에도 주변을 살펴볼 필요가 없다. 간혹 가 다가 지나가는 차도 군용 트럭이다. 여단 앞을 지키는 보초 병이 나를 유심히 관찰한다. 나는 눈에 초점을 잘 맞추지도 못하고 혼자서만 술이 취하지 않았다고 생각하는 만취자처 럼 보초병에게 다가가 말을 걸었다. “여기 버스 시간이 모두 끝났나요?” 이해는 가지만 문법에는 전혀 맞지 않는 그 말을 하고 나 서 나는 스스로가 하염없이 초라해 보였다. “모릅니다.” 보초병은 거수자를 어떻게 대해야 하는지 교육을 받았음 직한 말투로 말했다. 2013년 5월 30일 백령도 6일차 137


몇 년 전인가 어느 부대의 보초병이 취객 2명에게 총과 총 알을 빼앗긴 사건이 있었다. 마침 기삿거리가 없던 기자들 은 승냥이처럼 몰려들어 군을 집중포격하기 시작했다. 그 때의 트라우마는 군을 더욱더 폐쇄적인 집단으로 만들었 고, 그로 인해 나는 ‘모릅니다.’라는 한기어린 말을 들을 수 밖에 없었다. 헤드라이트가 뒤통수를 때렸다. 승용차의 문이 열리고 얼 굴이 새까매서 얼굴을 잘 알아볼 수 없는 사람이 중사 모자 를 고쳐 만지며 내렸다. “중사님” 분명히 들었지만 그는 나의 간절한 물음에 대답하지 않았 다. 다시 큰 소리로 물었다. “중사님, 저기 버스 안 오나요?” 중사는 한마디 말도 없었다. 나를 흘겨 쳐다보더니 고개를 다시 돌려 병사 쪽으로 다가갔다. 심한 모멸감은 술에 녹아 용해되었다. 아무런 느낌도 들지 않았다. 그저 친절하게 무언가 지침을 줬다면 오히려 더 시 비를 걸고 싶었을 것이다. 나도 더 이상 아무런 감정을 느 끼지 않기로 하고 버스 정류장으로 걸어갔다. 한참을 버스 정류장에 앉아있었다. 술을 먹어서 나의 감각 은 모공 하나하나가 활짝 열려있었다. 머릿속은 활기가 넘 쳤다. 기압이 낮아진 밤의 공기는 내 피부 외곽의 촉수를 건 들며 머리칼을 휘감았고, 어색하게 빛을 발하는 CU편의점 138 2013년 5월 30일 백령도 6일차


간판은 싸구려 카바레의 댄스플로어를 비추는 싸이키 조명 같았다. 편의점에 놓인 캔커피는 보온박스 안에 들어가 한 기 어린 나의 몸을 살피고 있었다. 홀로 찾은 사막에서 여우는 아무 말이 없다. 갑작스러운 변화를 느끼고 그것에 몸을 부딪치는 것이 할 일이다. 미 래를 걱정하지 않고 현재를 느끼는 것이 사막에 남은 여우 가 해야 할 일이다. 달은 그 외로운 여우를 비추고 있다. 백 령도와 술이 뒤범벅 된 밤은 사람을 갈 길 잃은 여우로 만 들었다. 멀리서 들려오는 텍트 오토바이 소리는 수령이 오래된 나 무 연료를 때는 기관차가 뿜어내는 소리만큼이나 굉음을 내 면서도, 사람이 고작 뛰어가는 정도의 속도만을 내며 내 앞 을 지나갔다. 뜨거운 마후라는 어딘가 기울어지고 움푹 들 어가 있었다. 스로틀이 당겨질 때마다 떨림을 멈추지 못하 는 마후라는 언제고 곧 떨어져 나갈 것만 같았다. 강하게 반짝이는 금장신구를 걸친 텍트 아가씨는 내 시야 가 닿는 곳에서 친구를 태웠고 다시 나를 향해서 다가왔다. 미리부터 나를 째려보며 다가오던 아가씨들은 눈을 꼿꼿이 세워 나를 주시한 채로 다시 멀어져 갔다. 텍트가 시야에서 사라지고 서서히 소리가 들리지 않을 때까지 나는 눈을 감 고 아무런 생각도 하지 않았다. 눈을 감으니 인간이 만들어 낸 소리도 바람 소리나 구름이 움직이는 소리 안에 뭉쳐졌 다. 소리가 끝이 나고 공허만이 남았다. 버스가 오지 않는 2013년 5월 30일 백령도 6일차 139


다는 것을 알면서도 버스 정류장에 앉아 있었던 나에 선택 에 대해 한 치의 후회도 없었다. 또 다른 곳에서 다른 오토바이 소리가 들려왔다. 이번에는 얌전한 고양이가 오토바이에 걸쳐 앉아 울부짖는 소리처럼 들렸다. 점점 가까워지는 오토바이는 아예 시동을 껐는지 모래를 밟는 소리 이외에는 어떠한 소음도 없이 다가왔다. 교복을 입은 뚱뚱한 고등학생은 버스 정류장 옆에 오토바이 를 세웠다. 학생은 어떤 행동도 하지 않았다. 정류장에 기대 휴대폰만을 매만질 뿐이었다. “여기 버스가 안와요?” 용기 내어 말을 걸어보았다. 물론 속마음에는 한가해 보이는 고등학생에게 버스 시간을 물어 자연스럽게 숙소까지 태워다 줄 호의를 얻는다는 고도 의 노림수가 있었다. “지금 여동생 데리러 왔는데요, 데려다 주고 진촌리까지 태워다 드릴게요.” 사막의 구름을 뚫고 직선으로 비추는 한 줄기 달빛은 나에게 CBR을 탄 소년을 선사해 줬다. 6년 전에 술을 먹고 텍트를 타다 가로등을 쳐다 박고 얼굴 을 갈았을 때, 나는 다시는 오토바이를 타지 않겠다고 다짐 했었다. 당시에는 나는 주유소 아르바이트를 하고 있었다. 구미에서도 제법 시골이라 버스는 잘 오지 않았고 그렇다 고 걸어가자면 적잖이 피곤한 그런 거리에 있는 주유소였 다. 친구가 타지 않던 빨간색 텍트를 얻어서 딴에는 예쁘게 140 2013년 5월 30일 백령도 6일차


꾸민다고 하얀색 락카로 칠했었다. 전역하고 하는 일 없이 빈둥대던 나는 어머니에게서 사람을 한없이 바닥에 떨어뜨 리는 눈빛을 받으면서까지 그렇게 힘들게 완성했던 하얀색 텍트였다. 허나 바로 그날 밤에 장교로 입대했던 친구의 첫 휴가를 맞이하기 위해 새로운 오토바이를 호기로 몰고 간 끔찍한 과오로 인해, 아니 오토바이를 타게 만든 술기운에 의해, 시속 20km도 안 되는 속력으로 여름밤 구석진 골목길 을 열심히 밝히고 있던 가로등을 쳐 박은 것이다. 다음 날 어머니는 계모임에 갔다가 평소 입에도 대지 않던 술을 드시고 오셨다. 피칠갑이 되어 있던 막내아들의 베갯 잇을 보고는 술을 안 먹지 않을 수가 없었던 것이다. 오늘도 역시 술과 오토바이가 있지만 듬직한 대리운전 기 사가 있다는 점은 달랐다. 살집이 제법 있는 학생의 몸은 요철을 넘을 때마다 타이어가 도로 바닥에 그대로 닿는 느 낌이 들었다. 손을 어찌할 줄 몰라서 녀석의 허리춤을 휘어 잡았다. 뭔가가 어색하다는 것을 깨닫고는 손을 뒤로해 안 장에 얹었다. 제법 노는 고등학생과 같은 모습이 되었다. 바람을 가르고 달리는 CBR은 CBR만이 가진 그 느낌을 그 대로 전해 주었다. 고등학생들이 만만하게 타는 CBR은 오 토바이 계의 베스트셀러다. 양아치 선배에게 물려받고 다시 물 려주고 하면서 CBR은 학생저항의 상징이 된 물건이다. <상 남2인조>라는 만화가 유행할 당시에는 어딜 가나 오토바이 2013년 5월 30일 백령도 6일차 141


를 탄 고등학생들이었다. 유순했던 학창시절에 못 다한 낭만 을 이제야 누리면서, 그렇게 20분 정도를 달린 오토바이는 마침내 진촌에 당도했다. 진촌에 도착하니 여단 앞과는 다르게 유흥문화가 발달한 어촌마을로 보일 법한 음란한 네온사인들이 보였다. 생선 비린내가 몸에 밴 사람들을 단골로 하는 인자한 마담들이 꽈리를 틀고 앉아 있는 단란주점들에서 풍기는 술 냄새는 술이 기분 좋게 들어간 나를 유혹했다. 오토바이에 내려서 학생에게 명함을 주고 오천 원을 꺼내 어 주자 녀석은 쿨하게 괜찮다며 쓴 웃음을 지어 보인다. 다 시 권해볼까 하다가 녀석의 쓴웃음에서 새어나온 균열의 조 짐, 상처받은 자존심의 증기가 나의 지갑을 다시 닫혀 지게 했다. “잘 가요.”하고 정중히 인사하고 너를 영원히 기억하 겠노라고 마음속으로 중얼거렸다. 어제 계획했던 오늘과는 판이하게 달랐지만 이런 우연의 가능성을 염두에 두지 않은 것은 아니다. 아니 오히려 이런 돌발적인 상황들을 더 기대했고 인간미가 넘치는 가능성이 실현되기만을 고대해왔다. 나는 어떤 일이듯 능동적으로 맞서기로 했다. 나의 계획을 망가뜨리고 속을 헤집어 놓을 상황의 침투, 선두조가 오고 후발조가 전장을 헤집어 놓듯 나의 기억은 다양한 변주로 인해서 오랫동안 못 잊을 하루를 만들어간다. 내일은 무슨 일이 생길까 궁금해진다. 142 2013년 5월 30일 백령도 6일차


숙소로 돌아오니 오늘 하루가 다른 날보다 길게 느껴진다. 샤워를 하고 집을 한 번 둘러본 후에 침대에 누웠다. 스탠 드를 켜고 백령일지를 기록하고 잠이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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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3년 5월 31일 금요일 백령도 7일차, 맑음 레지던시-중화동 포구-천안함 위령비-연화리해변-두무진

술판이 짧고 굵게 끝나서인가 아침에도 일찍 눈이 떠졌다. 원칙대로 어제 촬영이 끝난 중화동 포구로 가서 다시 촬영 을 이어나가기로 한다. 한 시간에 한 대 꼴로 있는 백령도 버스를 타면 중화동 포구에 갈 수 있다. 백령도 버스는 섬 전체를 한 바퀴 도는 노선만이 유일하 다. 시간을 맞춰 타기만 하면 어떤 때이건 가고 싶은 곳으 로 간다. 진촌리 정류장에서 버스를 탄다. 같이 타는 백령도 주민에 게는 돈을 받지 않는다. 나만 돈을 내는 게 못내 섭섭하기 도 하다. 백령도 주민이라지만 나만큼 백령도 길을 걸어본 이도 드물 것이다. 적어도 20년은 족히 넘어 보이는 버스는 아직도 멀쩡히 굴러가는 것이 오히려 신기할 정도다. 어제 폭주족 학생이 데려다 주었던 그 길로 다시 돌아가면 지름 길이지만, 버스는 정해진 노선대로 진촌에서 어릿골 해안 으로, 그리고 다시 에둘러서 백령중고등학교를 거친다. 동 승객이라고 해봤자 할머니 세 명과 어수룩해 보이는 시골 청년이 다다. 청년의 에나멜 숄더백에 적힌 ‘IKAZAWA’라 는 글자가 햇빛에 반사되어 굴곡을 그린다. 짧지만 맹렬하 2013년 5월 31일 백령도 7일차 145


게 비추고 지나간 잔상이 눈에 아른거리고, 아무 이유 없 이 바깥을 보며 웃어 보일 때 두드러지는 앞니가 또 한 번 각인된다. 여단 앞을 스쳐서 구불구불한 시골길을 가다가 유턴을 하는 가 싶더니 ‘백령도의 고속도로’라며 중화리 선장님께서 자 랑했던 산 중턱 길을 넘어 중화동 포구에 도착했다. 진촌에 서 승용차로 온다면 15분에 충분할 거리이다. 버스에 내려 가방을 고쳐 메고 카메라를 꺼낸다. 길어질 여 정을 지도 위에서 대략적으로 추측해 본다. 산을 한 개 넘 고 천안함 위령비가 있는 연화리 해안을 곁으로 해서 다시 산을 넘어 두무진에 도착해야 한다. 산을 넘는다는 것이 오 히려 유익하게 느껴진다. 산은 바다 보다 심오한, 나에게는 자연에 대한 도전이 곧 산이었다. 지리산. 지리산은 산을 직접 맞닥뜨린 최초의 경험이다. 22살, 가정형편이 허락하는 마지막 차 학기까지 대학교를 마치고 귀향한 나는 겨울방학을 맞아 지난 서울생활을 정 리하면서 사색할 구실이 필요했다. 집에서 바라는 것에 따 라 일자리를 찾아보려했지만 마땅한 아르바이트 자리를 찾 지 못하고 있었다. 아니 애초부터 입대를 준비하고 있었기 에, 입대 전 몇 달간은 2년 동안 군대에서 족뺑이 칠 고역 에 대한 사전 보상으로 간주해, 집에서 무전취식하는 잉여 가 된다는 것에 자기 나름에 합리화를 완료한 상태였다. 때 146 2013년 5월 31일 백령도 7일차


문에 돈을 버는 일을 해야 한다는 책무는 일단 ‘힐링’을 하 고 나서 하기로 했다. 지금 와서 쓰다 보니 ‘힐링’이라는 단 어를 사용했는데, 나의 과거를 점유했던 일시적인 기간이 단순히 ‘힐링’이라는 고루하고도 비천한 용어로 치환된다는 것이 못내 불만족스럽기도 하다. 여하튼 20대 초반 입대 전 그 시기는 누구에게나 고단한 법이었다. 구미의 친구들은 고등학교 때 ‘마구간 밴드’를 결성하여 아 주 주체적으로 활동하던 자유로운 학생들이었다. 친구들은 역시나 등산도 좋아했기에 나의 의지에 따라 모두들 지리 산행에 흔쾌히 동의해 주었다. 우리는 제대로 된 등산복이나 장비 하나 없이 1월 설산의 모습을 장엄하게 뽐내고 있던 지리산을 올랐다. 어린 치기 가 아니면 감히 생각할 수 없었을 계획에는 시너를 집어넣 은 소나타2를 몰고 가는 것도 있었다. 지리산 굽이를 미끄 러지며 처박고 중간에 휴게소에서는 시동이 꺼지기도 하면 서 결국에 화엄산 코스의 시발점에 도착했었다. 화엄사 주차장에 차를 세우고 지리산 일주로가 시작되는 산등성이에까지 거의 수직으로 솟은 등산로를 올라가는 동 안 모두들 아무 말이 없었다. 말은 안했지만 누구나 오지 말 았어야 했다는 후회를 했다. 집에서 극진한 대접을 받던 재 혁이는 거의 탈진 상태에 이르렀었다. 후회가 계속되면 단념하게 된다. 그리고 단념의 끝에서 기 어오르는 어떤 의지 그것이 탐험가가 믿는 그것이다. 우리 2013년 5월 31일 백령도 7일차 147


는 고어텍스 등산화 대신 낡아 빠진 컨버스가 오히려 자랑 스러웠고 고급 장비를 착용한 등산가들이 우리의 모습을 대 견하게 봐주기를 바랬는지도 모른다. 지리산 정상에서 다시 신처럼 받들던 커트 코베인을 떠올리는 일은 컨버스 하나 로도 가능했다. ‘마구간 밴드’가 지리산 원정을 성공적으로 치루는 현장이었다. 구미에서 전라도로 빙판길을 내달려서 지리산까지 우리를 데려다 준 소나타의 고난과 같이 우리 의 산행도 그런 식으로 끝이 났다. 정상을 다 와서는 눈보 라가 심하게 몰아쳐 서로의 모습을 보며 반지의 제왕에서 나오는 인물들과 닮았다고 웃어대고, 산을 거의 다 내려왔 을 때 나는 내리막길에서 얼음을 잘못 밟아서 거의 20미터 정도를 나의 의지와 상관없이 미끄러져 내려가게 되었는데 그 와중에서도 카메라만은 살리겠다고 손을 쳐들은 에피소 드가 생기기도 했다. 산장에서 몇 박을 하여 완주한 지리산의 우여곡절은 지금 도 산하면 회상하는 추억이 되었다. 그래서 백령도에서 2개 의 산을 넘어야만 하는 오늘의 일정이 그다지 싫지만은 않 은 것이다. 다만 체력의 한계 온 시점에서 나 자신이 지리 산 시절과는 다르게 나이가 들었다는 상황을 받아들여야만 하는 순간이 오기 전까지는 말이다. 어제 중화리 포구 끝 쯤에서 촬영을 끝냈으니 바로 산길 로 들어서는 길이 이어진다. 큰 저수지를 통과하고 벌 떼 148 2013년 5월 31일 백령도 7일차


가 몰아닥치는 동백나무를 헤치고 나와 천안함 사건이 터 진 가장 가까운 해안가에 섰다. 다리 위에서 현장을 한참 동안 바라보며 페이스북에 감성어린 글귀도 적어본다. 마 침 멀리서 빨간색이 꿈틀하는 모양을 보니, 해병대다. 이제 는 멀리서 보이는 붉은 덩어리만 봐도 즉각적으로 해병대 임을 알아차린다. 빠른 구보로 달려온 해병대원들은 선두 에 선 부사관의 지시에 따라 속도를 조절해가며 달린다. 부 사관은 카메라를 유심히 바라보더니 어서 빨리 뛰라며 대 원들을 재촉한다. 혼자 걷는 산길은 스님들이 면벽하는 목적과 정확히 일치 한다. 이번처럼 등산로가 개척되지 않은 지역, 군사보호지 역이라고 빨간 간판이 입구부터 세워져 있는 지역은 나무 숲 너머에 무엇이 있는지 조차 보이지 않을 정도로 산림이 울창하다. 마치 나무숲이 나를 먹어 삼키듯 끝이 보이지 않 는 산길은 끝없는 고독을 가져다준다. 고독이 오기 전 찾아오는 공포를 이겨내는 데에는 백령도 라는 인식을 떨쳐버리는 것이 중요했다. 산 속에 숨어있는 무장공비가 언제든 나를 해할지 모른다는 실제의 공포를 이기고 나면 무료한 산길에서 찾아오는 고독한 시간은 시 간의 길이를 헤아릴 수 없다. 길다와 짧다의 개념과 동떨 어진 곳에서 부유하고 있는 고독과 대면하고 있으면 산길 에 있는 모든 자연물이 숨 쉬는 소리를 들을 수 있다. 간혹 가다 ‘찰칵’하는 셔터 소리는 간헐적으로 상상을 깨트려 주 2013년 5월 31일 백령도 7일차 149


는 매개가 된다. 초입에 있는 출입금지 표지판에서 그렇게도 들어오지 말 라고 일러두었기 때문에 조금만 더 깊숙하게 들어 가보고 나와야 되겠다고 마음먹은 것이, 망상에 취하니까 나도 모 르게 계속 걷고 있다. 해안가로 나있는 작은 길들의 입구에 는 군사작전지역임으로 출입을 엄격히 금한다는 표지판이 설치되어 있다. 1시간을 걸으니 산 정상을 찍고 다시 내리 막길이 이어진다. 고작 산 하나지만 내려오는 길에서부터 벌써 고단함이 다 리를 쑤신다. 양 갈래 길이 나와서 어디로 가야할지 갈피를 잡지 못해 지도를 펼쳐보고 있던 나는 멀리서 누군가가 나 를 지켜보고 있음이 느껴졌다. 사람이 다니지 못하는 산비 탈을 무심히 봤을 때 다리가 후들거리고 눈동자는 움직임 을 멈췄으며, 혀는 입안에서 얼어붙었다. 산 속에 앉아 있는, 몇 안 되는 생필품이나 가재도구로 보 이는 것들을 주변에 흩뜨려 놓고 있는 거지같은 사람들이 보였다. 한 명이 아니라 3~4m 간격으로 떨어져서 가만히 앉아 있는 그들의 모습은 이성적으로 판단할 겨를도 없이 ‘간 첩’이라는 적색경보를 울렸다. 여러 가지 단어들이 머릿속에서 깜빡거렸다. ‘꽃제비’, ‘귀순’, ‘간첩’, ‘무장공비’, ‘김신조’, ‘도끼’와 같은 나의 좁은 북한 관 련 지식에서 나올 수 있는 모든 단어들이, 누군가가 그랬듯 현 상학적 목소리로 공명하지 않고 단지 0.00000000001초의 시 150 2013년 5월 31일 백령도 7일차


간동안 무질서하게 머릿속을 헤집고 들어왔다. 몸은 그렇 기 때문에 움직이지 않았다. 가까스로 찾은 단어는 탁월한 선택이었다. “어디로 가면 길이 나와요?” 나는 아무런 공격의사가 없고 당신들의 존재도 아무렇지 않게 생각하는 백치라는 말투로 물었다. 말없이 손가락을 쳐들어 가리켰고 나는 전설에 고향에 보았던 그대로, ‘내 다 리 내놔’에서 뒤 돌아 보지마라고 교훈을 줬던 그대로 천천 히, 그러나 약해보이지 않게 앞만 보며 빠른 걸음으로 걸 어 나갔다. 심장이 원상태를 찾았다고 생각되어, 멀찌감치 있을 그들을 상상해 보는 합법적인 권역에서 벗어나 고개 를 돌려 직접 뒤돌아보는 위법을 저질렀다. 아직도 나를 지 켜보고 있는 그들의 눈을 피해 다시 앞으로 볼 수밖에 없 었다. 간첩이라고 단정지어버린 그들에게 노출된 나 혼자 만의 긴급 상황은 혼자서 밭을 매고 있는 할머니가 보였을 때 종료되었다. 할머니가 밭을 매는 쪽으로 평탄한 길이 펼쳐졌다. 조금을 더 걸어서 아직 마르지 않은 빗물이 고여 있는 흙탕길로 들 어선 뒤 멀리 있는 연화리 해변을 바라봤다. 길고 긴 산길 이 끝났다고 안도의 한 숨을 쉬었다. 왼쪽으로 천안함 위령비를 두고 오른쪽으로 돌아서면 연화 리 해변을 왼편으로 두고 두무진 쪽으로 갈 수 있다. 여느 다른 초소 보다 높게 솟은 연화리 초소는 천안함 당시의 긴 2013년 5월 31일 백령도 7일차 151


장감이 어떠했을지 예상된다. <라이언 일병 구하기>에서나 보던 해변가 절벽에 숨겨진 1차 방어선이 보이고 자주포도 그 안에 거대한 주둥아리를 숨기고 있다. 당장에라도 포가 발사되고 자동화기 소리로 하늘이 뒤덮일 듯하다. 멀리서 주섬주섬 움직이는 것을 보고는 군인들이 훈련이라 도 하고 있나하고 생각했다. 가까이 가서 보니 연화리 해변 의 바닷바람을 머금고 자란 나물들을 캐고 있는 아줌마 무 리가 삼삼오오 모여 있다. 아주머니들에게 넌지시 인사를 하니 “이리 와서 지과 먹어요.”라고 권한다. 뭔지도 모르고 뭐든 먹으라는 소리에 흔쾌히 응답한다. 아주머니들은 보온병에서 물을 따르고 비닐 봉투에서 고구 마를 꺼내 손에 쥐여 준다. 백령도는 고구마가 특산품이라 며 직접 까서 준다. 과연 맛은 일품이었다. 크기는 작달막 하지만 바닷바람을 맞아 그런지 맛이 야무졌다. 산을 넘는 동안 최고조로 이른 갈증은 고구마로 인해 더 최악이 되었 지만 뜨거운 물로 목을 축이니 바로 해소되었다. 염치없게 도 물을 한 잔 더 달라고 해서 연거푸 마셨다. 아주머니들은 내가 하는 일을 듣고 나서 멀리에 한창 공사 중인 현장을 가리키며 공군부대를 짓고 있다면서 말끝을 흐 렸다. 박근혜 정부가 들어서고 나서 백령도를 전초기지로 삼겠다는 군사정책이 시행되고 있다고 했다. 주민들에게는 익숙한 공사 현장들이 어떠한 과정과 합의로 이루어지는지 나는 알리가 없었다. ‘지과’를 나눠먹으라며 낯선 청년에게 152 2013년 5월 31일 백령도 7일차


말을 건네는 사람들이 총을 손에 쥐고 적을 향해 겨누는 모 습을 상상하기란 엄청난 고통을 가져다주는 일인 것은 분 명했다. 어머니와 꼭 닮은 한 분은 물을 한 잔 더 마시고 가 라며 얼마 안남은 물을 건넸지만 차마 마실 수 없어 고맙다 는 말만 하고는 길을 나섰다. 다르지만 같은 듯, 높이가 완만하고 산새가 흡사한 새로 운 산길을 들어서니 아까의 간첩무리들이 생각이 난다. 전 장에 나서는 군인의 마음으로 한발 한발 내딛는다. 간첩을 잡으면 1억 원의 포상과 함께 전역이 주어진다던, 게다가 헬기를 타고 집에 간다던 선임의 말을 듣고 초소에 나가기 전 나름의 작전계획을 짰던 그 때를 회상해 보면서 초병근 무를 나가듯 결연한 의지로 산길을 지속해서 걸어 나갔다. 창대했던 포부와 다르게 시시하게 마무리된 두 번째 산길 은 중화동 포구에서 연화리 해변까지 넘었던 처음의 산길과 큰 차이가 없었다. 지루했던 산길이 끝나고 저 유명한 두무 진으로 가는 길이 나왔다. 두무진이라는 이정표가 박혀있기는 하지만 우리가 아는 두무진의 위용이 드러나려면 걸어서 2km정도를 해안가 쪽 으로 더 들어가야 한다. 일전에 방문했을 때에 오랜 시간 을 머물렀던 두무진을 굳이 복습할 필요가 없었다. 두무진 으로 들어가지 않고 오른쪽으로 뻗은 넓은 주도로를 따라 방향을 틀었다. 왼편으로 아주머니들이 머리에 수건을 둘러싸고 밭일을 하 2013년 5월 31일 백령도 7일차 153


고 있다. 사진을 찍어 대는 나를 보며 신기한 듯 시선을 두 다가 이내 다시 밭일로 돌아간다. 파노라마 사진을 찍는 일에서 가장 괴로운 순간은 코너를 마주할 때이다. 후반작업에서 어떻게 이어 붙일지 막막하 다. 갑작스레 피로가 몰려온다. 날도 어두컴컴하니 곧 비라 도 쏟아질 것 같다. 두무진이 백령도에서 가진 위상을 생각 해 볼 때 이곳에서 하룻밤 묵어가도 괜찮다고 생각된다. 그 리고 무엇보다 산을 두 개 넘어온 육체의 피로가 더 이상은 걸어갈 수 없게 만든다. 처음 생각과 다르게 두무진 안쪽으 로 들어가서 하룻밤 묵어가기로 한다. 제법 마을이 크다. 다른 백령도 마을과 다른 점은 횟집 간 판을 내건 집들이 많고 관광객들이 여럿 보인다는 점이다. 백령도에서 유일하게 회를 취급하는 마을답게 수려한 풍광 과 함께 섬지역의 정취를 제대로 느끼려면 회 한 사라를 해 야만 하는 곳이다. 사이트를 마련하고자 주변을 둘러보다가 때마침 공사를 중 단한 건물 옆에 있는 빈 터가 있어 그곳에다가 텐트를 치 기로 결정한다. 바다와도 가깝고 경치도 나쁘지 않다. 장 촌 보다는 수월하게 사이트를 마련한다. 텐트를 꺼내자 설 치 순서가 전혀 생각나지 않는 먹먹한 순간이 다가온다. 허 나 손에 폴 대를 잡자마자 몸이 체득한 설치감각으로 마지 막 후드를 여는 것까지 자연스럽게 움직여진다. 역시 몸은 머리 보다 앞선다. 154 2013년 5월 31일 백령도 7일차


사이트를 마무리 하고 라면을 만지고 있는데 신세가 좀 초 라해지기 시작한다. 4시간이나 걸려 도착한 백령도에서 그 것도 두무진에 잠자리를 마련한 캠핑족이 회를 먹지 않는 다는 게 말이 되냐는 식의 자기합리화를 시작한다. 배낭에 서 지갑을 꺼내 나의 텐트를 확인할 수 있는 근처 횟집으 로 들어간다. 당연히 횟값이 쌀 것이라 생각해서 밖에서 가격도 확인하 지 않고 들어갔다. 낭패였다. 관광객만을 상대하다 보니 광 어 소자가 4만원이나 했다. 여행인데 하는 쪽과 그래도 너 무 과소비라는 쪽이 힘 겨누기를 했지만 이미 되돌릴 수 없 는 것, 광어 소자를 시키고 4000원 짜리 소주도 한 병 주 문했다. “섬 치고는 회가 그렇게 싼 게 아니네요?”라고 불만 섞인 어조로 말했다. “백령도는 회가 없어요, 다 저기 대청도에서 들어오는 기 라요.” 백령도는 어업이 반금지 상태라고 했다. NLL을 주변으로 중국 어선이 들어와서 치어들을 다 잡아가고 그 남은 성어 마저도 군사당국의 허락 없이는 조업이 불가능하기 때문에 서쪽이나 동쪽으로 잡으러 나가야 되는데 차라리 그렇게까 지 해서 물고기를 잡느니 농사를 짓고 말지라는 게 백령도 주민들의 일반론이랬다. 나는 백령도의 비옥한 농토에서 나 오는 쌀이 얼마나 맛있는지 알고 있어서 그런지 그런 변명 2013년 5월 31일 백령도 7일차 155


아닌 변명이 별로 신통하게 생각되지는 않았다. 쌀이 물고 기 보다 앞서는 건 당연한 이치 아닌가? 1년 농사로 4년을 먹고 사는 혜택 받은 땅에서 사는 사람들에게는 오늘처럼 관광 온 여행객의 성급한 사치로 인한 소주타령이 아닌 이 상 굳이 물고기를 잡으러 다닐 일이 없는 것이다. 역시 머리는 몸에 뒤진다. 바다를 보면서 회와 소주를 들 이키는 초저녁의 식사는 잘 차려진 스끼다시와 꿈틀거리는 성게 앞에서 백령도고 뭐고 모든 것이 유연해 보이기 시작 했다. 일몰과 잘 어울려져서 구축된 나의 잠자리를 바라보 는 것만으로도 만족스러운 기분이 들었다. 경치가 아름다워 소주 2병째가 막 다 비워질 순간이었다. 젊은 남자가 혼자서 조용히 술을 먹고 있는 것이 가여워 보 였는지 주인아주머니는 먹을 성 싶은 스끼다시가 떨어지면 바로 새로운 것을 가져다주고는 했다. 성게가 다 떨어지면 이어져서 나오는 소라에 한 잔, 낚시해서 잡아 온 농어라며 한 잔, 간재미는 먹어나 봤냐며 한 잔. 술이 얼큰하게 오른 나에게 ‘신의 마지막 작품’이라는 두무진은 눈에 들어오지 도 않는 사치였다. 날이 완전히 저물었다. 카드로 계산하기 미안해서 현금을 줬다. 어차피 카드 계산이 안 된다고 할 것이 뻔했다. 어두워진 방파제는 적막함만이 가득했다. 간혹 가다가 고 양이처럼 야옹거리는 괭이갈매기만이 어둠을 뚫고 자신의 존재를 알렸다. 방파제 바닥은 괭이갈매기 똥으로 가득했 156 2013년 5월 31일 백령도 7일차


다. 산성기가 많다는 갈매기의 똥은 이상하게도 엄청나게 하얗다. 빈 횟집 앞을 서성거리는 고양이들은 술 취한 남자 에게 눈길 한 번 주지 않았다. 방파제의 끝 쪽은 그 길이를 알 수 없을 정도로 바다의 가 운데를 향해 뻗어 있었다. 나는 술기운에 의해 저 끝으로 가 면 누구도 나를 알아볼 수 없을 거라는 생각이 들었다. 두무 진의 마을 집들과 적대적으로 보이는 나의 텐트가 처량하게 생각되었다. 역사를 간직한 집들과 하루살이 건강한 도시인 의 텐트가 경합하는 대척점에서 당연히 텐트는 본래 캠핑장 에서의 위용을 잃어버리고 있었다. 횟집에 들어가기 전 누 군가가 텐트에 해코지라도 하면 어쩌나하고 염려했던 마음 이 사라지고, 마을이 어둠을 맞이한 현 시점에서는 텐트의 구실이 북한군이 침투한다면 하룻밤 묵어가는 용도로 밖에 쓰이지 못할 것 같았다. 방파제가 눈에 안 보일 정도로 바다의 중심까지 이어져 있 어서 걸어가 보았다. 방파제 끝에 도착해서 나는 이상하리 만큼 극적인 쾌락을 느꼈다. 아무도 나를 보지 못한다는 것 과 방파제의 끝에서 잠복해 있던 북한군에게 끌려가 납치 될 수도 있다는 두려움이 기묘한 조화를 이루면서 점멸하 는 빨간색 신호등처럼 심장이 뛰기 시작했다. 파도소리는 더욱 고조되어 귓속으로 파고들었다. 바다의 짠 내는 이곳 이 바다의 한가운데임을 가르쳐주고 있었다. 멀리보이는 가로등에서 미묘하게 보이는 그림자, 큰 나방 2013년 5월 31일 백령도 7일차 157


이 가로등 불빛을 쫓는 작은 역사만이 마을을 무대로 그림 자 연극을 보여주고 있었다. 고통스럽지만 끊임없이 뜨거 움을 쫓는 불나방에 따라서 마을은 어두워졌다 밝아졌다를 반복했다. 두무진에 거대하게 솟아있는 바윗덩어리들도 달 빛에 반사되어 장군형상으로 보였다가 구름이 달을 가리 면 실루엣만 남은 거인이 되었다가를 반복했다. 두무진이 라는 연극 무대를 배경으로 자연은 각본을 착실하게 연출 해 나갔다. 모기가 없다는 점이 다행스러울 정도로 오랜 시간을 방파 제 끝에 앉아 있었다. 시간이 지나니 자연에 경도되었던 감 정도 어느 정도 제 주파수를 찾게 되었다. 휴대폰을 꺼내 만지작거렸다. 페이스북을 열고 다른 사람 들이 올린 글들을 살펴보았다. 잠을 자야한다는 생각이 들 었다. 글을 써야한다면 원래는 펜과 수첩을 꺼내야 했다. 주머니에는 없었다. 고개를 돌려 불 꺼진 마을의 구석에서 홀로 랜턴 빛을 발하고 있는 나의 텐트를 보았다. 나는 어 두워서 보이지 않는 방파제의 끝에서 혼자만의 낭만에 빠 졌다가 다시 텐트로 돌아와 빛 속에서, 그렇게 오늘의 일들 을 백령일지에 쓰고 잠이 들었다. 잠자는 동안 아무런 일도 일어나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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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3년 6월 1일 토요일 백령도 8일차, 맑음 두무진-사항포구-어릿골해안-고봉포구-하늬해변

갈매기가 귀 옆에서 울어대는 공포로 눈이 떠졌고 텐트의 위로 뱅뱅 돌고 있는 갈매기 무리의 시위를 보고 텐트 문을 열었다. 새벽녘의 두무진은 아름다웠지만 머리는 어제의 숙 취로 인해서 어지러웠다. 최대한 빨리 움직이고 싶었다. 지 금 다시 잠이 들어버리면 오후가 다 되어서 일어날 것이 뻔 했다. 아침을 먹고자 아침식사를 하는 가게를 찾아봤지만 아직 영업을 하는 곳이 없었다. 시골답지 않게 새벽에 깨어 있는 사람도 몇 안 되어 보였다. 라면이라도 끓여 먹어볼까 했지만 귀찮은 생각이 들어서 포기했다. 짐을 싸고 다시 어 제의 갈림길 쪽으로 갔다. 오르막길이 길게 뻗은 산길이자 백령도의 주도로인 기상 관측소 방향 국도는 백령도를 사면으로 나눴을 때 북쪽을 향해 있는 길로, 백령기상대와 어릿골 해안을 지나 심청각 이 있는 진촌까지 닿는 마지막 일주 코스이다. 오르막길 중간 인적이 없는 곳에 주차되어 있는 그랜저 승 용차가 의심쩍어 보인다. 차안에 사람이 없는 것으로 보아 긴 도로를 따라 산책을 하고 있나보다. 예상대로 멀리서 시 골사람처럼 보이지는 않는 젊은 부부가 손을 잡고 걸어오 160 2013년 6월 1일 백령도 8일차


고 있다. 산책을 하고 돌아오고 있는 것 같다. 남자의 머리 는 짧고 단정하게 정리되어 있고 얼굴이 검게 그을리지 않 은 것으로 보아 촉망받는 젊은 장교로 보인다. 그 옆의 여 자는 아직까지 희미한 웃음기를 머금고 있는 것이 도회지의 콧대 높은 여성의 도도함이 남아있다, 섬에 들어 온지 얼마 되지 않아 아직까지 섬의 고립감이 엄습하지 않은 것 같다. 젊은 부부를 향한 성급한 심증은 빠른 걸음걸이로 나와 교 차되는 순간, 섬사람들의 눈길이 카메라를 향했던 것과 다 르게 나를 향해 눈길 한 번 주지 않는 것으로 확증이 된다. 타인에게 관심을 주지 않는 서울에 사는 교양 있는 사람들 의 보편적인 모습과 겹쳐진다. 지루한 오르막길이 끝나고 백령기상대으로 가는 가파른 길 이 나온다. 기상대는 포기로 한다. 경사도 경사지만 막다 른 길이 나와서 제자리로 돌아올 것이 뻔하다. 그곳으로부 터 올라온 만큼의 긴 내리막이 펼쳐질 것이다. 내려오는 길 마다 구부러진 길이 있고 어김없이 로드킬에 희생된 갈매 기들이 전장에 쓰러진 병사처럼 썩어가고 있다. 차와 부딪 힌 지 얼마 지나지 않은 갈매기들은 아직도 눈을 크게 뜨고 허공을 바라보고 있다. 당시에 상황을 저 눈 안에 간직한 듯, 으스러진 날개와 바깥으로 흘러나온 내장 기관을 바라 본 듯, 눈은 놀라움으로 가득 차 있다. 옛날 어느 사진가는 그런 로드킬 당한 동물의 사지를 가져다가 장을 치러줬다. 안성에서도 한참을 들어간 시골에서 농사를 짓는다는 그 사 2013년 6월 1일 백령도 8일차 161


진가가 생각이 난다. 경사가 급한 내리막을 지나고 완만하게 뻗은 길이 나온다. 바다가 보이지는 않지만 철책이 이어져있는 것으로 보아 바 다가 멀리 떨어지지 않았다. 두무진으로 가는 이 길은 차가 얼마 다니지 않는데 지나가더라도 택시이다. 백령도의 택시 는 미터기를 달지 않은 SUV차량이다. 하루 동안 백령도를 일주하는 데에 8만 원 정도를 요구한다고 한다. 섬 특유의 택시 문화는 관광객에 의해서 형성되었다. 백령 도 사람들은 택시를 탈 일이 없다고 보면 된다. 백령도만의 조세 혜택은 자동차를 굴리는 비용도 감해준다. 한 가구에 차가 여러 대가 있지만 어찌 보면 트럭은 회사원들이 컴퓨 터를 마주 놓고 생사의 기로에서 씨름하는 것과 같이 이곳 의 트럭 역시 다목적용 자가용이 아니라 노동의 필수품이 라는 점에서 컴퓨터에 진배가 없다. 두무진에 사는 사람들이 주로 하는 일은 횟집에서 관광객 을 상대하는 일이어서 이 시간에 생필품을 찾아 여단 쪽으 로 나갈 일이 없다. 그래서 이 길고 제법 넓은 도로가 자 동차 하나 다니지 않아 오로지 나의 촬영장으로 쓰이고 있 는 것이다. 철조망은 안과 밖이냐에 따라서 경계가 나누어지는, 누군 가에게는 깨부수어야 할 적의 1차 저지선이고 누군가에게 는 적으로부터 영토를 지키는 방어막이 된다. 철책을 가만 히 들여다보고 있으면 숲을 헤치고 철조망 사이로 얼굴을 162 2013년 6월 1일 백령도 8일차


내밀 간첩이 연상된다. 구식 AK소총을 들이대며 “이리 오 라우” 할 북한군의 이미지가 떠오른다. 80년대에 태어나 90년대에 안보교육으로 형성된 나의 대 적관은 북한군의 이미지를 희극적으로 바꾸어 놓았다. 남 과 북이 서로의 체제를 보위하기 위해서 으르렁 거리는 시 늉을 할 동안 몇 번의 침투가 있었고 격전이 벌어졌다. 북 한은 핵으로 이 희극의 긴장감을 최고조로 이르게 했지만 결코 발사되지 않는 미사일은 막장 드라마가 연장에 이은 연장 방송을 하는 격으로, 더 이상 시청자의 기대를 충족시 키지 못하는 따분한 극 전개로 본래 의도만큼 효과를 못 보 고 있는 시점이다. 1998년 이후 조금씩 실체가 벗겨지던 북 한의 체제는 나와 같은 세대들에게 <공동경비구역 JSA>가 1000만 관객이라는 성공을 이루어냄과 동시에 북한군 이미 지는 곧 송강호라는 우스꽝스러운 등식이 성립되었는데 물 론 <넘버3>에서 깡을 외치던 송강호의 이미지가 투영되었 음은 두말할 필요도 없다. 이후에 군대에서 2년 동안 배운 주적관도 서울역에 도착하 여 전역 모자를 뽐내던 그 순간 이후로 증발해 버렸다. 내 가 전역을 하고 당면한 과제는 저 많은 사람들의 틈에서 좀 더 멋진 옷을 입고 맛있는 음식을 우겨넣는 일이었다. 전역 하고 6년이나 지나 국토 최북단 백령도 북쪽 해안가를 보호 하는 철조망을 따라 걷는 여정은 이토록 처절한 대한민국 남성의 과거를 가지고 있는 것이다. 2013년 6월 1일 백령도 8일차 163


오른쪽으로 가면 북포리, 왼쪽으로 가면 사항포구라는 표 지판이 보인다. 갈림길에서 잠시 섰다. 갈림길에서는 생각 을 하게 된다. 이쪽으로 갈 것이냐, 저쪽으로 갈 것이냐. 선 택이 주어지면 어느 한 방향으로 내달려야 하는 것이 인간 이다. 진입하고자 하는 욕구, 경험해 보고자 하는 욕구, 그 것으로 역사가 이루어져 왔다. 가만히 정체하여 머무는 것 은 도태를 뜻하는 것일까? 저 옆에 철책을 넘어 펼쳐진 해 변가를 바라보면서 멀리 보이지 않는 북한녘을 마음속에 그려보는 것은 단지 시간낭비일까? 고향땅과 가족들을 상 실한 사람들의 회한의 감정을 어떻게 이해할 수 있을까? 얼마 전에 꾸었던 꿈에서 죽음을 앞두고 다시는 못 볼 가족 들의 얼굴과 나의 삶을 구성했던 일시적인 풍경들이 신기루 처럼 지나가면서, 그러한 감정의 골이 인간의 마음을 할퀴 고 지나가는 상실의 느낌이 얼마나 무한한 무게를 가질 수 가 있는지 체험했었다. 사람 하나가 간신히 누울 수 있는 나 룻배를 타고 장산곶 너머 가족을 찾아 다녔다는 백령도 주 민의 이야기도 꾸며냈다고 생각되지 않는다. 초소가 보이는 사항포구 방면으로 발길을 튼다. 다시 울창 한 숲길이 나와서 지긋지긋한 나무들 사이로 지나가야한다 고 낙담했다. 그러나 언덕을 넘자마자 해병대의 훈련기지가 나오며 사항포구로 가는 비포장도로가 나온다. 사항 포구는 이전에 어느 곳에서도 느끼지 못한 한적함이 밀려온다. 전성기를 지난 운동선수가 먹고 살 구실을 찾아 164 2013년 6월 1일 백령도 8일차


고향집으로 돌아가는 것처럼, 힘없는 포구의 정취는 때마 침 떨어지는 일몰과 맞물려서 빈 항구의 배를 더욱 애처롭 게 만든다. 빈손으로 터벅터벅 걸어 다니는 어부가 먹이를 찾아 헤매는 버려진 개 같다. 초소에서 무료하게 어디론가 전화통화를 하고 있는 보초병은 여기가 북한과 가장 가까 운 접경 지역임을 잊게 만든다. 시끄러운 것은 나에게 맞지 않는다. 나는 항상 밝고 긍정 적인 것으로부터 나를 지키려고 노력해왔다. 사항 포구의 이런 모습은 나와 풍경이 서로 끌어당기는 이상적인 장소 이다. 강남대로에서 느낄 수 없는 감정이 생긴다. 그렇다 고 해서 한적한 숲속 산사에 있는 그런 청정함을 입는 기분 도 아니다. 사항 포구와 같은 곳은 아무런 생각이 나지 않 는 곳이다. 꾸미지 않고 세상과 같이 호흡하는 그런 공간이 다. 특별하지 않아서 사람을 묻히게 하는, 귀신이 사는 공 간이다. 해무가 몰아닥치기 전에 다시 가던 길을 가기 위해 포구에서 일어났다. 포구의 뒤편으로 산비탈길이 나있다. 지도를 펼쳐서 길이 이어져 있다는 것을 확인하고 과감하게 그곳으로 올랐다. 내심 길에서 풍기는 정취가 군인들만 사용하는 작전로라는 느낌이 들었다. “○ ○님 누가 올라가고 있습니다.”라는 무전기 소리가 어렴 풋이 들려왔다. 잠시 후 초소 문을 박차고 나온 해병은 나 의 어깨를 두드리며 “올라가시면 안 됩니다”하고 단호한 어 2013년 6월 1일 백령도 8일차 165


투로 말했다. 나는 어리벙벙한 표정을 지어보이며 또 다시 멍청한 사람인척 수그러들었다. “여기로 가면 길이 나오나요?” “길이 없습니다.” “그럼 어디로 가야 길이 나오나요?” 해병은 진지한 표정으로 길을 자세히 가르쳐줬다. 나는 혹 시라도 카메라의 사진들을 보자고 하면 어쩌나하는 염려가 있었기 때문에 최대한 경청해서 내용을 숙지하는 척 했다. 물론 온화한 표정을 지으면서. 다시 들어선 길은 내 예상이 맞다면 길고 긴 산속 포장도 로가 분명했다. 지도에 확인한 바로도 역시 예상과 어긋나 지 않았다. 지금부터 족히 4시간은 걸어야 산길을 빠져나 와 어릿골 해안을 볼 수 있을 것이다. 숨을 길게 쉬고 길 에 오른다. 계속되는 산길이다. 도로가 깔려있다는 것은 큰 위안이 된 다. 중화동에서 두무진까지 넘었던 두 개의 산은 도로가 나 있지 않아서 산신령의 영역을 침입한 것처럼 불온한 느낌 과 신비한 정적이 감돌던 곳이었다. 잘 정비된 도로는 지나 가는 차에게 조금이라도 신경을 쏟을 수 있어서 비포장 산 길보다 인간미가 있다. 쉬지 않고 걸으니 날이 더워진다. 내가 더워서 날이 더운 건지 날이 더워서 내가 더운 건지 모르겠다. 햇볕이 그대로 낙하해서 밀짚모자에 닿는다. 얼굴에 바른 선크림이 이마 166 2013년 6월 1일 백령도 8일차


를 타고 내린 땀에 묻혀서 한 방울의 뽀얀 육즙이 된다. 눈 을 비비면 선크림 때문에 눈이 따가워서 다시 눈을 비비게 되고 그래서 눈물의 악순환이 계속된다. 잠시 자리에 앉아 고개를 쳐들고 눈에 물을 부어 본다. 얼 굴을 타고 내린 물이 티셔츠를 다 적셨다. 셔츠가 물에 젖 으니 잠시나마 몸이 시원해진다. 잠시 동안의 휴식은 끓어 오른 몸을 식히지만 장시간의 휴식은 사람을 더 지치게 만 든다. 더위란 놈은 약간의 더위에서 더 강하다. 몸이 완전히 나른해져서 탈진하기 전에 다시 걷기로 한다. 4시간 동안 손가락으로 셀 수 있을 정도로 몇 안 되는 차만 지나갔지만 그래도 그런 차가 있어 외롭지 않았다. 긴 숲길 여정의 끝도 ‘연꽃마을’이라는 정체를 알 수 없는 가게가 나 오고 끝이 났다. 으레 이런 뜬금없이 얼토당토 않은 곳에 있 는 가게들은 산장과 비슷한 형세를 하고 있다. 편안해 보이 는 차림의 주인장이 소일거리를 찾아 하루 종일을 발품 파 는 그런 곳이기 마련이다. 뭔가 자연과 닿으려고 시도하지 만 계속해서 불협화음을 내는 현대판 신선놀음. 산을 후벼 파서 나무를 자른 건축물을 올리고 술과 낭만을 파는 그러 한 곳. 입간판에는 현빈이 해병대 훈련병 시절에 왔다갔다 는 증거사진이 크게 세워져 있다. 연꽃막걸리를 판다는 광 고 문구를 보고 혹해서 들어갈 뻔 했다. 다음을 기약하면서 축배는 나중에 들기로 한다. 연꽃마을에서 조금만 더 걸어가면 어릿골 해안이 나온다. 2013년 6월 1일 백령도 8일차 167


국토의 최남단이 이어도라면 국토의 최북단은 어릿골 해안 이다. 어릿골 해안은 만의 형태를 취한 해수욕장으로 물의 수심이 다른 곳보다 낮다. 내가 하나밖에 없는 입구를 열고 들어갔을 때에는 무수히 많은 갈매기 떼들이 나를 피해 달 아나고 있었으며, 썰물 때를 맞이한 해안가는 촘촘하게 설 치되어 있는 용치들로 북한군이 정박할만한 한 치의 공간 도 허락지 않고 있었다. 해변의 정취도 다른 곳 보다는 활 달해서 굴이나 미역을 따러온 사람도 보이고 자식들을 데 리고 해안가로 놀러온 가족도 있었고, 낚싯대를 들고 이리 저리 휘두르고 있는 사람들도 보였다. 사람이 들어갈 수 있 는 해안가가 어릿골 해안이 마지막이니 비로소 백령도에서 해안가다운 해안가를 마지막이자 처음으로 만난 것이다. 똥을 휘갈기고 있는 갈매기 떼와 먹을 것을 주우러 온 사 람들, 썰물이 되면 점차 위용을 드러내는 용치들, 멀리 보 이는 초소병의 눈짓, 사진기를 들고 기웃거리는 나. 이 모 든 것이 삐걱거리지만 뭔가 의미심장한 단막극의 주연들과 도 같다. 영원히 나타나지 않을 절대악을 기다리는 착한 사 람들. 언젠가 결말을 보게 될 날을 꿈꿔 본다. 어릿골 해안을 나와서 진촌리 쪽으로 가는 길에는 두 개의 거점이 있다. 하나가 해병대 안보수련원이 있는 관창동이 고 다른 하나가 백령도 최북단에 있는 포구인 고봉포구이 다. 오늘 안에 사흘 전 약속했던 그 땅에 발 디딜 수 있다니 가슴이 벅차다. 다시 하늬해변에서 들고 찍었던 그 돌을 손 168 2013년 6월 1일 백령도 8일차


안에 들고 찍으리라 기대해 본다. 관창동까지 가는 짧은 길 옆으로는 섬이라고는 생각되지 않을 정도로 넓은 토지의 논자리가 펼쳐져 있다. 마을에 입 구에 들어서서 나를 맞이하는 것도 역시 복날에 위태로워 보이는 누렁이 한 쌍이었다. 전형적인 농촌 마을로 보이는 관창동은 사람들이 논에 나가 비어버린 농촌마을 그 모습 그대로, 주인이 없는 빈집을 지키고 있는 건 집마다 하나 씩 있는 똥개들이었다. 줄을 묶어 놓을 필요성을 느끼지 못 했는지 누구 집 할 것 없이 개를 방목하고 있었다. 고양이 에게 물린 경험이 또 공포를 낳았다. 다행히도 시골 개답게 선량한 이의 친절한 마음을 파악했는지 큰 저항 없이 마을 을 통과 할 수 있었다. 관창동은 같은 백령도 안에서도 생업을 어떤 환경에 의존 하느냐에 따라 농촌마을과 어촌마을의 생김새가 달라질 수 있는지 알게 해주었다. 관창동에 있는 트랙터나 이앙기 같 은 것에서 추론해본다면 벼로 목숨을 부지하는 농촌 마을이 란 것을 쉽게 추측할 수 있다. 장촌마을 온 집에 걸려있던 빨래 더미로 어촌마을의 향기를 진하게 느낀 것과는 대조 적이라고 할 수 있다. 선험적 지식을 또 하나 얻은 셈이다. 마을을 거의 빠져나왔는데 순하게 생긴 백구가 뒤를 따라 와서 한 번 쓰다듬어 준다. 동물도 나의 몸에서 백령도의 냄 새를 느꼈는지 꼬리를 흔들며 다가온다. 바람도 햇볕의 장 단에 맞춰 내 몸을 휘감겨 지나갔다 가고, 피로가 몰려오면 2013년 6월 1일 백령도 8일차 169


파도 소리가 귀에 맴돌아서 알람인 냥 깨워준다. 백구가 먼 저 다가오다니 기분이 새로워진다. 사람이 걷는다는 것, 걸으며 생각한다는 것은 실로 잔잔한 소요를 가져온다. 그런 것들이 몰아오는 날이면 감정이 주 체할 수 없을 정도로 흔들린다. 삶의 의미에 대해 묻고 되 지도 않는 질문을 하는 하루가 되고 잠이 들기 전까지 긴장 아닌 긴장상태가 지속된다. 오늘이 그 날인지 걸음이 마무 리 되는 시점에서 비록 한낮이지만 시공이 뒤틀리고 있다. 백령도를 한꺼번에 볼 수 있도록 촬영하여 지리적인 영역 이 무엇이며 군사적인 용도로 쓰이고 있는 둘레의 모습이 얼마나 잔인하고 허망한지에 대해서 보여주고자 했던 당초 의 의도가 사진을 무리하게 찍어나가는 육체적인 고통을 수 반한 고행으로 비추어지고, 또 그것을 실제 체험하고 있는, 자연의 한가운데에서 자연에 너무도 많은 시간 노출되어 내 적인 담화를 가능케 하는 절대적인 힘에 무력해지는 나 자 신을 보면서, 예상치 못한 극적인 영역에 들어선 나를 발견 한다. 육체적인 고통과 결합된 자연의 힘은 인간을 어떤 신 비한 경지에 이르게 한다. 인적이 없는 해병대 안보수련원을 지나 고봉포구로 가는 길에서, 다리는 절고 있으며 손에는 낫과 함께 거의 다 헐 어 있는 빈 포대자루를 쥔 나이든 할아버지가 걸어가고 있 었다. 그의 발걸음은 걷는다는 표현보다는 끈다는 표현이 맞을 정도로 느렸다. 내가 속력을 늦추기는 했지만 이내 따 170 2013년 6월 1일 백령도 8일차


라잡을 수밖에 없었다. 나는 용기를 내어 평소의 발걸음으 로 스피드를 올렸고 그의 손에 들려진 낫을 애써 외면했다. 때문에 어색하게도 “안녕하세요”하며 큰소리도 인사했다. 그는 째려보는 대신 “네에”하는 경쾌한 말투로 나의 불안 함을 쫓아 내었다. “뭐 캐시나 봐요?” “네에” 낫의 사정권에서 멀어져서 나도 더 이상 자세히 물어보지 않았다. 등을 돌리고 발걸음을 좀 더 빠르게 했다. 고개를 돌려 뒤를 보니 잇몸이 으스러져 할아버지처럼 보이는 그 의 인상이 실제로는 50대 중반 정도밖에 안된 것 같았다. 나는 시골 사람 중에서도 유달리 더러운 인상착의가 신경 쓰였다. 그런 사람들을 보는 무서움 혹은 그 반대편에 있 는 가난한 자로서의 동정심, 어떤 것에 편의를 두어야 할 지는 모르겠지만 상황에 따라서 그 사람을 멸시하든가 아 니면 시대가 낳은 희생양으로 봐야하는가 하는 혼란스러 울 때가 있다. 대체로는 가난한 자들을 볼 때의 안타까움이 부자에 대 한 분노로 대체된다. 만약이라는 가정에서 단지 돈이 많다 는 이유로 그들을 살인자로 규정하고 사회악으로 간주했을 때 나의 분노가 향하는 지점에서 보건데, 그 무엇보다 더 한 악은 다른 어떤 곳도 아닌 나 자신으로부터 발현되고 있 음을 느낀다. 2013년 6월 1일 백령도 8일차 171


백령도가 아니더라도 빈민층이 사는 지역에서 버스를 타면 옷도 제대로 못 입고 다니는 사람들이 보이고는 하는데 가 슴이 쓰려 눈뜨고 볼 수가 없다. 굴을 따던 할머니의 모습 을 생각하면 소주를 먹다가도 서글퍼진다. 나에게 가난한 자들의 상징은 대부분 나이 든 할머니이다. 박스를 줍는다거나 마늘을 판다거나 하는 할머니들은 여자 이기 때문에 더 슬프다. 그런 할머니들을 생각하다가 아무 렇게나 눈물을 쏟을 수 없어서 생각해낸 방법은 그들을 빅 브라더가 보낸 전시효과로 치부하는 것이다. ‘일을 하라 그 러면 저들처럼 안 될 것이다.’라는 효과를 위해 보낸 전시효 과인 부랑자들, 박스 줍는 할머니, 몸을 못 가누는 장애인 들은 본인들의 역할에 따른 야외전시가 끝나면 편안한 집에 가서 화장을 지우고 여느 중산층과 다름없이 침대에 눕는 것이다. ‘오늘도 보람찬 하루였어.’하고 말이다. 이렇게 생각하는 편을 강요해 보지만 마음이 편하지 않았 다. 끝에는 좋은 차를 타고 다니는 사람들에 대한 분노로 바뀌는데 이것을 최대한 자제하고 다시 바라보려고 노력을 해야만 한다. 절대적인 충성도 위험하지만 무분별한 저항 도 위험하다. 할아버지를 뒤로하고 이런 생각을 계속하며 번민을 계속했 지만 발걸음이 빨라지는 것은 어쩔 수가 없었다. 언덕을 넘 어 고봉포구를 지키고 있는 초소가 보이자 그곳을 향해 내 달리고 싶기도 하였지만, 여기서 낫에 목을 베이는 것도 운 172 2013년 6월 1일 백령도 8일차


명이니 하면서 다시 천천히 걸어 나갔다. 상상력이 깊은 것 이 어느 때는 참 불필요하다. 내가 아는 사람이 몇 명이나 있을까 말을 걸어 본 이는 몇 명이나 될까 나의 이름을 불러줄 이 몇이나 될까

몇 십년 전 태어나 말을 걸었다면 거지 몰골 무릎 꿇은 노파도 내 손 잡고 동산에 올라 붉은 노을 빠알간 장미 손아귀에 움켜잡고 나의 꿈은 너의 꿈은 어떻노라 속삭이는 고운 손 누구의 손녀 딸이었겠지

하늘은 안다 세상이 잠든 밤에는 하늘은 안다

못된 상상의 마지막도 뒤를 돌아본 순간에 사라졌다. 나의 걱정은 저만치 멀리서 먹을 만한 잡초가 없을까하며 두리 번거리는 낫을 든 작달만한 중년 남자의 모습을 보면서 나 를 향한 지탄으로 바뀌어졌다. 이미 나의 상상만으로는 목 을 내리친 낫이 정맥혈을 건드려 피를 뿜고 있는 상태로 아 스팔트 위에 녹아들었어야 했다. 하지 말아야할 생각을 안 2013년 6월 1일 백령도 8일차 173


할 수 없는 생각의 의지들은 무한히 확장되어 악이 된다. 악을 하지 말아야 되는 생각을 할 수밖에 없는 악한 생각 들. 생각하지 않기로 하는 방법이 무엇인지에 관해서 고민 해 본다. 걷고 걷는 것이, 몸을 혹사시키는 것이 해답일 수 도 있다고 생각한다. 고봉포구의 초소병은 사항포구에서 전화기를 놓지 않던 해 병과 다르게 나름 국토방위의 목적을 띄고 카메라를 든 거 수자를 유심히 지켜보고 있다. 사진기를 든 사람은 항상 잠 재적인 범죄자처럼 보여서 나 역시도 괜히 카메라를 대놓 고 찍기가 망설여진다. 시선을 거두면서 카메라를 무신경하 게 가슴 쪽으로 내리고 파인더를 쳐다보지도 않은 채로 셔 터를 누른다. 이럴 때 나를 주시하던 사람은 대개 내가 고 개를 돌린 쪽으로 시선을 둔다. 그렇기 때문에 카메라가 자 신을 찍었는지 알아채지 못한다. 이번에도 성공인 것 같다. 고봉포구를 왔다는 것은 진촌리를 목전에 두고 있다는 뜻 이다. 지도상에도 고봉포구는 달리기가 빠른 초등학생이 쉬 지 않고 15분만 달려도 진촌 면사무소에 있는 9호 대피소 에 닿을 수 있는 짧은 거리이다. 고봉포구에서 진촌리로 가 는 길에 또 다시 아까 ‘연꽃마을’과 같은 목조 건물이 여러 채 보인다. 다른 점은 이번 건물들은 모두가 펜션으로 사용 되고 있다는 점이다. 군인 가족들이 테라스에서 나를 지켜보고 있다. 두무진에 서부터 구형 엑센트를 몰고 지나가기에 눈여겨보았었던 그 174 2013년 6월 1일 백령도 8일차


가족들이다. 내가 이곳까지 걸어오면서 몇 번을 마주쳤으 니 백령도에서 드라이브란 지나왔던 길을 끊임없이 왕래 하는 단조로운 것인가 보다. 무심한 눈길로 나를 보던 젊 은 엄마는 백일이 좀 지나 보이는 아이를 안고 펜션 안으 로 들어간다. 펜션을 지나 좁은 임도가 나온다. 들쑥인지 뭔지 모를 분 홍색 꽃이 피어있다. 무료한 길이 계속된다. 그렇게 산길을 오래 걸어 빠져 나오니 진촌리의 끝자락이 다. 차와 사람들의 왕래가 많아진 것이 도심이라는 것을 알 수 있다. 백령초등학교의 부속건물이 보이는 곳에서 샛길로 빠져나가 차가 간신히 빠져나갈 수 있는 비포장도로를 따라 계속해서 걸었다. 막다른 길처럼 보이는 숲에서 오른쪽으 로, 이제는 익숙한 시뻘건 간판이 세워져있었다. ‘이곳은 지뢰 매설지역이므로 민간인의 출입을 금합니다.’ 라고 적혀져 있고 그 아래에는 무단침입해서 발생한 사고 의 경위와 피해사진이 배치되어 있었다. 끔찍한 광경을 보 고나서 사건의 현장으로 가야한다는 것이 망설여졌다. 앞으 로 걸어야할 비포장 산길이 마치 비밀의 화원이라도 들어가 는 것처럼 생각되었다. 제자리걸음을 하며 망설인 끝에 걸어 가보자라고 결정이 났다. 지도를 몇 번씩 펼쳐봤지만 여기를 통과해야만 백령 도 둘레를 돌았다고 말할 수 있었다. 산삼을 캐러 가다가 왼쪽 다리를 잃었다는 상사의 비극을 완전히 떨치지 못하 2013년 6월 1일 백령도 8일차 175


고 철조망이 쳐져있는 산길을 따라 오르기로 결심했다. 혹 시나 지뢰가 빗물에 휩쓸려 철조망 안쪽까지 쓸려왔으면 어 쩌나하는 불안감 몰려왔다. 길은 끝을 알 수 없을 정도로 굽이쳤고 경사도 급했다. 실 로 당장이라도 북한군이 나올 것 같은 이상한 기운이 엄습 했다. 영화의 마지막에 가장 맹렬하게 부딪히는 전쟁극의 하이라이트처럼 심청각을 오르는 그 산길은 긴장감으로만 따지자면 이 일주의 하이라이트였다. 철책과 나뭇잎밖에 보 이지 않는 산길을 오르면서 지뢰와 같이 위험한 물건을 상 상하는 것은 몸에 있는 땀을 모두 쏟아내기에 충분했다. 산 등성이에 올라서 간이진지에 다가가 북녘바다를 보고서야 확 트인 광장에 선 듯 조금은 안심이 되었다. 민간인들은 누 구도 닿지 못했을 곳에 서서 북한이 바라다 보이는 가장 가 까운 바다에 와있다는 것이 뿌듯하기도 했다. 쉬지 않아도 됐지만 일부러 시간을 내어서 조금 쉬고 나서 다시 어느 정도 길을 걸어 내려가니, 내가 이 일주를 시작 했던 지점이 멀찍이 눈에 들어왔다. 나의 가슴은 가빠지고 어딘지 모를 보람으로 감정이 격해졌다. 계속된 내리막길 을 내려가는 것이 기분이 좋았다. 마지막으로 왼편에 있는 저 초소병의 눈만 벗어나 사진을 찍는다면 사흘 동안의 일주가 끝이 나는 것이다. 북녘에 가 장 가까이에 있는 초소병이어서 그런지 그들은 나를 처음부 터 끝까지 주시하는 철두철미함을 보였다. 여기까지 온 거 176 2013년 6월 1일 백령도 8일차


그냥 자신 있게 찍자는 마음으로 논길에 들어섰고 다시 해 안가로 다가가 처음에 시작했던 하늬해변에 섰다. 나는 조금이라도 이 기분을 만끽하기 위해 이 자리에 섰지 만 별다른 감회가 들지 않았다. 다만 피곤하고 빨리 숙소에 가서 밀린 빨래를 하고 집으로 돌아가고 싶었다. 일주를 시 작하기 위해 찍은 그 돌인지는 확신할 수 없지만 그렇게 생 긴 조막만한 돌을 들고 사진을 찍었다. 백령도를 한 바퀴 돈 다는 순환들에서 계절을 한 바퀴 돈다는 순환으로, 다시 한 달을 일주일을 그렇게 내가 있는 이 시간의 소중함이 소중 하게 생각되었다. 나는 애써 그렇게 생각하고 있었는지는 모르지만 돌을 바라보면서 공상 아닌 공상을 오래도록 했 었다. 별로 특이하지도 않은 사물이 내가 의미를 부여함으 로 인해서 아주 소중한 무엇이 되는 것이 참 신기하기도 하 고 미안하기도 하면서, 한참을 앉아서 아무 생각도 없이 철 책 너머를 바라보고 있었다. 진촌리와 가까운 이곳이 이렇 게 조용하다는 것이 믿기지가 않았다. 다행히 나는 일주를 정리할 기회를 맞은 것이다. 철책을 옆으로 태양에 그슬리 지 않도록 쿨토시를 하고 얼굴을 천으로 뒤덮은 주민들이 조깅을 하고 있었다. 눈조차 선글라스로 가려서 어떤 표정 을 하고 있는지 알아 볼 수가 없었다. 하늬해변의 철책에는 어김없이 ‘이 곳은 지뢰 매설 지역이 므로 출입을 엄격히 금한다.’라는 문구가 적혀있었다. 나는 그곳에 놓인 조약돌을 집어보고 아스팔트와 철책을 한 번 2013년 6월 1일 백령도 8일차 177


바라보았다. 지뢰가 매설된 지역에서 울창하게 숲을 이룬 해변가 나무들도 보았다. 그리고 철책으로 다가가 숲 사이 로 보일지도 모를 바다표범을 찾아 봤지만 해무에서 오랜 만에 벗어난 빈 바위덩어리만이 보였다. 표범을 대신해 그 자리에서 빈 조개껍데기를 줍고 숙소로 돌아왔다. 돌아오 는 길에 있는 부대에서는 활동복을 입고 장비 곁을 기웃거 리는 해병들의 모습이 보였다. 나는 일부러 카메라를 그들 에게 갖다 대었다. 누구도 나를 제지하지 않았다. 그날 밤 나는 백령도에 관한 시를 하나 짓고 페이스북에 올 렸다. 그리고 몇 분이 지나지 않아 잠이 들었다.

나는 이 시간에 눕지만 바깥에 한창인 축제를 막을 수가 없다. 너는 따따다닥 너는 더 좋다고 쿵쿵쑹쑹 축제를 최고조에 이르게 하는 폭죽소리는 365일 계속 된다. 나만 홀로 섬에서 잠을 자지 못한다.

백령도 주민들은 60년 째 계속되는 축제가 더 이상 즐겁지 않다. 그렇다고 슬프지도 않다. 그들의 몸에 이미 축제는 들어와 있어서 심장은 매일같이 오버 페이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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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기 사람들은 폭탄이 저거슥 날라와도 몰라요, 진짜 터지봐야 알아요. 맨날 저러는데 뭘 할아버지는 대수롭지 않다는 듯 말했다. 반 쯤 부셔진 빈집에서 놀고 있던 아이는 폭탄을 맞아서 부셔졌 다고 굳게 믿고 있었다.

콰과광! 천둥소리가 나더니 낙뢰소리가 난다. 폭죽이 집 안으로 파고든다. 때마침 비행기 소리가 날아든다.

백령도, 북한말을 하는 사람들이 사는

이곳은 축제의 도시

2013년 6월 1일 백령도 8일차 17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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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3년 6월 2일 일요일 백령도 9일차, 흐림

사진을 정리해 보니 총 컷 수는 7860장이다. 이것을 다시 정리할 생각을 하니 까마득하다. 다시 붙이는 시간은 사진 을 찍는 과정만큼이나 오랜 시간이 걸릴 것이다. 오체투지 를 하듯이 사진을 찍어나갔고, 카메라의 무게 때문에 왼쪽 팔목이 부어올라 염증이 생겼다. 사진을 처음 배울 고등학 생 당시에 스승은 잘못된 자세라고 여러 가지 제스춰를 선 보였었다. 이번에는 그런 잘못된 방법을 통해서나마 팔목 이 휴식을 취할 수 있어서 그렇게 계속 찍었던 것이 화근이 었다. 팔목이 퉁퉁 부어올랐지만 그렇게라도 촬영을 마무 리했던 나 자신이 대견해지기까지 한다. 지나간 과거를 다시 복습하는 상상은 언제나 진저리치게 만든다. 현재의 나를 부정할 수가 없다. 나의 인생도 지금 이 어떠한들 10년 전으로 되돌아가야만 한다면 끔찍할 뿐 이다. 결과야 어찌되었던 현재에 만족하자는 게 항상 옳다 고 생각한다. 사진을 찍어오는 과정에 의미를 둘 뿐 만약 찍어온 8000장의 사진이 날아가 버려도 나의 소관이 아니 다. 후회만 하면 된다. 백령도의 버스는 한 시간 반 정도에 한 대씩 있다. 진촌리 에서 시작해서 진촌리로 돌아오는데 한 시간 반 정도 걸린 2013년 6월 2일 백령도 9일차 181


다. 코스는 거의 변화가 없는데 1시 타임과 5시 타임만 두 무진까지 가는 긴 코스이다. 두무진까지 가는 이 두 번의 코 스만이 버스를 타고 백령도를 다 둘러봤다고 할 수 있다. 나 흘 간 도보로만 지나온 길을 버스를 타고 둘러보기로 한다. 샤워를 하고 남아있는 빵을 우유에 적셔서 먹는다. 사람 을 탄 레지던시는 살아있는 공간으로 탈바꿈했다. 사소한 것 하나하나가 나의 것 같고 새롭다. 언제쯤 이런 기분을 맛 볼 수 있을까. 왠지 다시는 못 올 것 같은 곳을 온 것 같 은 기분이 든다. 레지던시 문을 열고 나와 백령성당 앞에 세워져 있는 성 안 토니오상을 바라본다. 안토니오상 뒤로는 장산곶이 바라다 보인다. 날이 흐리지만 또렷이 보이는 무엇이 마음을 설레 게 만든다. 멀리서 수녀님들의 말소리가 들린다. 학생들을 집으로 데려다 주고 온 신부님이 버스에서 내린다. 시골 성 당의 분위기가 아주 평화스럽다. 진촌리의 중앙으로 가면 버스정류장이 있다. 버스가 오기 까지 십분 정도가 남았으니 충분하다. 천천히 걸어서, 그렇 게도 많이 걸었지만 또 걸을 수 있는 다리에 감사하면서 오 래간만에 촬영에서 벗어난 여행자로서의 여유를 만끽한다. 허리가 구부러진 할머니들의 손 높이에 맞추어진 동전통 에 버스비를 내고 바깥의 경치가 가장 잘 바라다 보이는 자 리에 앉았다. 이제는 별로 특별할 것도 없는 이미지들이 펼 쳐진다. 섬이라는 특수한 공간에 들어온 지 불과 일주일도 182 2013년 6월 2일 백령도 9일차


안 지났지만 섬을 낱낱이 경험해 봤다는 인식은 모든 것을 무료하게하기에 충분하다. 여행을 떠나 목적지에 도착하여 여정을 푸는 첫날의 감회는 더 이상 봐야할 곳을 찾지 못할 때에 모두 사그라져 버린다. 진촌에서 출발한 버스가 북포리 여단본부 앞에 섰을 때 머 리를 까까머리로 깎은 건장한 청소년이 탄다. 머리에 젤을 떡칠하고 시골에서 한 때 유행하였던 아디다스 삼선 츄리 닝을 아래위로 맞춰 입은 모양이 한창 외모에 관심이 많을 나이다. 학생은 버스 안에 후로랄 향을 퍼뜨린다. 시내 양 품점에 디스플레이된 옷에서 날 법한 향기로 숙성된 아디다 스 츄리닝은 일본 만화처럼 가닥가닥 분리되어 있는 머리카 락에서 나는 것이 분명했다. 학생의 귀에 얹힌 하얗고 큼지막한 이어폰에서 울려 퍼지 는 시끄러운 락 음악은 시종일관 리듬감 없는 비트만을 들 려주었다. 비트는 바깥에 펼쳐진 시골 풍경과 절묘하게 대 치되며 긴장감을 유발했다. 서울이었다면 공공장소에서 큰 소리로 음악을 듣는 청소년을 나무랐을지도 모른다. 하지 만 여기서는 오히려 그러한 불협화음이 풍경의 일부로 썩 잘 어울린다. 버스는 쉬지 않고 달린다. 다음 정류장까지의 거리가 무척 이나 길다. 걸어서 다닌 여정을 되짚어 본다. 버스라는 거 대한 기계 덩어리를 타고 유유히 경치를 즐긴다는 문명의 이기를 맛본다. 2013년 6월 2일 백령도 9일차 183


정확히 한 시간 뒤에 진촌리에 도착했다. 밥이라도 먹을까 식당에 들어가 보지만 모두가 퇴짜다. 아주 유명한 고급 음 식점처럼 정해진 시간에 들어가지 않으면 먹을 수가 없다. 식당 주인들의 표정들이 마음에 들지 않는다. ‘외부인 출임 금지’를 정중하게 문 앞에 걸어 놓는 것이 더 인륜적이다. 사람을 위 아래로 훑어보는 것은 원치 않는 심사와 같아서 막다른 질문에 봉착하면 심한 모멸감을 느끼게 한다. 여기 는 선택권도 질문도 없다. 공사장 인부들에게 달 밥을 끊어 가며 대량식사를 만들어내는 아주머니들에게는 혼자인 나 를 위해 소량을 판매할 의사가 없다. 기분이 울적해져서 저녁 때까지 방안에만 있었다. 쌀밥이 그리워도 식당 아주머니에게 반항하는 의미로 일부러 편의 점에 가서 쿠키와 우유 따위를 구매한다. 막걸리를 다섯 병 을 마신다. 프로야구를 보며 거실에 앉아서 안타 소리에 자 리에 일어나고 홈런에 손을 불끈 쥐기도 하는 여느 회사원 의 저녁 시간과 같은 때를 보낸다. 여기가 백령도라는 사 실을 잊었다. 잠이 잠깐 들었는지 아니면 실제로 그런지, 포격소리가 들 려온다. 따발총 소리도 들린다. 날이 밝도록 쉬 없이 전쟁 음향이 끊이지 않는다. 주민들은 어떻게 이런 상황을 담담 하게 받아들이는지 궁금하다. 얼굴만 여럿 있는 강시가 머 리 위에서 빙글빙글 떠 있는 꿈을 꾼다.

184 2013년 6월 2일 백령도 9일차


2013년 6월 3일 월요일 백령도 10일차, 흐리고 비

비가 오고 해무가 집 마당까지 삼켰다.

2013년 6월 3일 백령도 10일차 185


2013년 6월 4일 화요일 백령도 11일차, 맑음

부서진 건물에서 5~6세 정도 되어 보이는 사내 아이 둘 이서 잔해를 만지작거리며 놀고 있다. 부서진 건물은 살림 살이를 그대로 두고 어디론가 사라진 사람들에 의해 버려 졌다. 시골집에서 사람만 손가락으로 집어 다른 곳으로 옮 겨버리고 굴삭기로 천장만 무너뜨린 그런 형상이다. 똘망 똘망해 보이는 아이가 뚱뚱한 다른 아이를 괴롭히고 있다. 고인 물을 물총에 넣은 녀석은 친구를 향해 발사한다. 당 하는 녀석도 시큰둥하게 조용한 소리로 하지마라고만 연발 하고 있다. 나는 가까이 다가가 이 집이 왜 이렇게 되었는 지 물었다. “폭탄 맞았어요. 뉴스 못 봤어요?” 백령도식 황해도 말투를 쓰는 녀석을 보니 귀엽기도 하고 무섭기도 하다. “그래? 거긴 연평도 아냐? 백령도는 맞은 적 없잖아.” “아니에요, 여기도 맞았어요.” 지나가던 할아버지에게 다가가 사실을 확인하자 면사무소 에서 주차장으로 쓴다고 철거중이라고 한다. 내친 김에 어 제 들었던 포격 소리까지 묻는다. “어젯밤에는 포격소리가 엄청나게 크던데 잠은 잘 주무셨 186 2013년 6월 4일 백령도 11일차


어요?” “뭐 우리한테는 아무것도 아닌데 뭐. 만날 그래. 우리는 전 쟁나도 몰라. 허허허” 아저씨는 헛웃음을 지으며 가던 길을 가셨다. 내일 떠나는 배편을 알아보고자 웅진 모텔에 가던 중에 본 부서진 건물이 족히 열 곳은 넘어 보인다. 시골이 원래 그런 것인지 백령도가 어떤 이유로 그렇게 된 것인지 잘 모르겠 다. 내가 알기로 백령도는 포격을 맞은 적이 없기에 북한에 의해서 그렇게 되지는 않았다고 결론을 내린다. 쓰러지고, 나중에는 사라질 운명이 안타까워서 다시 숙소에서 DSLR 을 들고 나와 집들을 찍기 시작한다. 웅진 모텔에 가니 표는 걱정하지 마라며 뭘 대수롭지도 않 은 걸 물어보냐는 식으로 혀를 찬다. 도시사람이 지하철이 못 탈 가능성을 염두에 두지 않는 것과 같다. 숙소로 돌아와 편의점에서 사온 인스턴트커피와 빵을 억 지로 씹어 먹는다. 내일이면 먹게 될 쌀밥을 생각하면서 햇 반을 데우지도 않고 가져와 야참으로 먹는다. 레지던시에 서의 첫 날과 같이 욕조에 물을 데운다. 목욕을 하면서 여태까지의 백령도를 떠올려본다. 머리를 욕조물에 담그고 몸을 자유롭게 내버려둔다. 나는 백령도에 부유하고 있지는 않았을까 시적인 생각을 해본다. 식당 주 인의 얼굴과 중화리 이장의 얼굴, 쓰러져 가는 집에서 놀던 2013년 6월 4일 백령도 11일차 187


아이들의 모습이 떠오른다. 나는 그들 위에 둥둥 떠 있다. 목욕이 개운하지 못하다. 때도 안 나온다. 밖으로 나와 창 밖을 보는데 어둠속에서도 아무런 느낌이 안 든다. 내일이 면 이 섬을 빠져나가 새로운 환경에 적응해야 한다. 몸을 바 쳐 어느 특정한 공간을 흡수한다는 것은 나도 알지 못할 깊 은 정을 남긴다. 심지어는 군대에서도 떠나가는 순간 그곳 에 향기를 기억하고 했었다. 짐을 다시 싸니 이제야 집으로 돌아가는 것 같다. 펼쳐놓았 던 그 많은 짐들이 65리터 등산 가방 하나에 들어가는 것이 대단하다. 영화를 봐야지만 잠이 올 거 같아서 한밤중에 인 적이 없는 시골길을 헤치고 나가 맥주를 사온다. 슈퍼스타 장동건과 김기덕이 호흡을 맞춘 영화 <해안선>을 다시 보면 서 맥주를 세 캔 정도 마시고 이상한 기분으로 잠이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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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3년 6월 5일 수요일 백령도 12일차, 흐림 레지던시-용기포 선착장

다행히 배가 뜬다고 한다. 12시 14분 진촌리 출발 버스는 백령도를 한 바퀴 돌고 용기포 신항으로 가는 코스로, 2시 출항에 마치 맞게 도착할 수 있다. 떠나는 이의 감상으로 백 령도를 마지막으로 한 번 더 살펴본다. 기분이 또 어제와 다 르고 일주할 때와도 다르다. 사곶냉면을 지나서 중화리 해 변에서 까나리 어선을 뒤로하고 유턴한 버스는 숙소로 복귀 하는 군인들을 가을리에 남겨두고 두무진에 방점을 찍은 후 에 다시 진촌리로 돌아간다. 크고도 작은 섬이다. 항구는 하모니플라워호를 타려고 기다리는 사람들로 붐빈 다. 여객터미널에서 선착장으로 가는 도로 위에는 굴이나 까나리액젓, 다시마 같은 특산품들을 팔러 나온 소상인들 이 점거했다. 소상인이라고 해봤자 해산물을 파는 것을 소 일거리 삼는 할머니들이다. 할머니들은 관광객들이 배를 타러 나갈 때에 가녀린 목 소리로 “굴 있어요.”라고 외친다. 떨리는 목소리는 집중하 지 않으면 바람 소리에 묻혀서 잘 들을 수가 없다. 할머니 는 머리를 아무렇게나 싼 수건이 땅바닥에 떨어지자 허리 를 숙여 천천히 주워서 다시 머리 위에 쓰고 곱게 매듭짓 2013년 6월 5일 백령도 12일차 189


는다. 500ml 페트병에 넣은 작달만한 굴들이 먹음직스러워 보이지는 않는다. 1시 30분이 되고 배를 둘러싼 정물들이 움직임을 가지기 시작한다. 어김없이 해병들을 남겨두고 떠나가는 가족들과 애인, 버스 값도 안 되는 배 삯을 내고 인천으로 마실 나가 는 백령도 주민들, 배를 움직이는 선원들, 심드렁한 기관 사들, 그리고 나와 같은 잠깐 들어왔다가 빠져버리는 여행 자들을 싣고 하모니플라워호는 거친 풍랑을 뚫고 헤쳐 나 갈 것이다. 다행히 자리는 넉넉히 비어 있다. 나는 조금 더 백령도를 기억에 남겨두고자 오른쪽 창문가 쪽으로 앉는다. 30대가 갓 넘어 보이는 젊은 부부가 여행에 지친 듯 아무 말 없이 의자에 기대어 있다. 앞쪽으로 일렬로 앉은 해병대원들은 단체 휴가라도 나가는지 던킨 도너츠를 게걸스럽게 먹으며 시끄럽게 떠들고 있다. 손에 들려진 커피가 필요 이상으로 무거워 보인다. 배가 출발하고 멀미를 할까봐 눈을 감고 시 트를 젖힌다. 잠이 잘 오질 않는다. 백령도에서의 일들을 곱씹어 본다. 걷는 고통을 이기고 이 자리에 누웠다. 팔목도 제법 잘 돌아간다. 내 몸은 이제 백 령도를 떠나려 하고 있다. 내가 모르는 어떤 선, 항로를 따 라 별일이 없는 이상 6시가 되면 인천에 도착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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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기훈 (1985) nohgihun@gmail.com www.no-ki.com



白 靈 日 誌

특별히 감사하는 분 장촌포구 굴 캐던 할머니, 까나리 선장 연화리 이장님, 굴삭기 기사 중화리 이장님, 선원 김씨 아저씨, 북포리에서 오토바이를 타고 진촌 리까지 데려다 준 고등학생, 한국장벽;1차 저지선을 도와주신 백령 성당 유치원 기사님, 연화리 해변에서 지과와 물을 주신 아주머니들

ISBN 978-89-969208-1-6 ⓒ

2013 Noh Gihu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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White. Ghost. Day. Not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