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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otary Moment

2014

시작은 있으나 끝은 없다

로타리모먼트는 2016 국제로타리 서울대회 호스트 조직위원회(HOC)에서 만드는 온라인 공식 매거진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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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타리 강령 The Object Of Rotary 로타리의 목적은 봉사의 이상을 모든 가치있는 사업활동의 기초가 되도록 고취하고 육성하며,

Contents 창간특집 | 한국로타리 90년

특히 다음 사항을 힘써 행하는 데 있다 첫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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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 나은 세상을 향하여 나눔과 봉사로 '노블리스 오블리주' 실천

봉사의 기회를 마련하기 위하여 교우의 범위를 넓힌다

테마기획 | 로타리 기본이념 'The Four-Way Test' 둘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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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업과 전문직업의 도덕적 수준을 높이고

'로타리안의 양심이며 시대를 초월한 절대가치'

모든 유익한 직업의 진가를 인식하며 로타리안 각자는 자기 직업을 통하여 사회에 봉사할 수 있도록 직업의 품위를 높인다 셋째

로타리안 스토리 | Four-Way 모범 실천 로타리안 윤성구 로타리코리아 차기 이사장

로타리안 각자의 개인 생활이나 사업 및 사회생활에서 봉사의 이상을 실천한다

넷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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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타리는 내 생의 전환점, Four-Way는 내 삶의 철학"

봉사의 이상으로 결합된 사업인과 전문 직업인들은 세계적 우의를 통하여 국제간의 이해와 친선과 평화를 증진한다

SHOC News | 2016 국제로타리 서울대회 “2016년을 뜨겁게 달굴 로타리안 축제 서울서 열린다”

e-Magazine 로타리 모먼트

네 가지 표준 The Four-Way Test 우리가 생각하고 말하고 행동하는 데 있어서, OF THE THINGS we think, say or do 1. 진실한가? Is it the TRUTH? 2. 모두에게 공평한가? Is it FAIR to all concerned?

감동의 매거진 6만여 한국로타리 회원들과 로타리 기본이념 및 로타리안의 생생한 봉사활동, 감동의 모먼 트를 공유합니다

소통의 매거진 세대와 세대, 남성과 여성, 한국과 전 세계 로타리안이 함께 소통하고 공감할 수 있는 뉴스와

3. 선의와 우정을 더하게 하는가? Will it build GOODWILL and BETTER FRIENDSHIPS? 4. 모두에게 유익한가? Will it be BENEFICIAL to all concerned?

정보를 추구합니다

희망의 매거진 감동과 소통의 다리 역할로 따뜻하 고 아름다운 세상, 희망의 로타리를 만들어 나가고자 합 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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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27~ 4


한국로타리 90년 창간특집

더 나은 세상을 향하여

나눔과 봉사로 노블리스 오블리주

실천 5


국제로타리는 세계에서 가장 오래된 민간 봉사단체로 1905년 2월 23일, 미국 일리노이주 시카고에서 변 호사인 폴 해리스에 의해 만들어졌다. 그 무렵, 황폐해진 미국사회, 특히 시카고의 상황을 심히 염려한 청년 변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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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 폴 해리스가 사업상의 연대를 강화하고 우정을 쌓기 위해서는 남성클럽이 필요하다는 점을 주창하고, 세 사람 의 친구와 상의하여 첫 모임을 가진 것이 오늘날 로타리의 시초가 된 것. 「로타리」 라는 명칭은 회원 각 자의 사무실 에서 번갈아 돌아가며 집회를 가진 것에서 연유되었다 한다. 그 후 로타리는 109년 동안 꾸준히 성장, 발전을 구가하며 오늘날 전 세계 225개국(자치령 포함)에 34개 존, 537 개 지구, 3만4,494개 클럽, 123만명의 회원 규모로 도약했다. 지금까지 지구상에서 폴리오(소아마비) 박멸을 위 해 12억 달러가 넘는 자금을 지원해 왔으며, 기아와 질병, 문맹, 에이즈 퇴치, 분쟁 해결, 장학사업 등 인류 평화와 행복을 위한 다양한 활동을 전개해오고 있다.

한국로타리는 국제로타리가 탄생된 후 22년이 지난 1927년, 일본인 주도로 결성된 「 「경성로타리」」 를 효 시로 삼고 있지만, 본격적인 한국로타리의 역사는 대한민국 정부수립 이후 재발족된 「 「서울클럽」」 에서부터 시작 된다. 건국이후 한국의 재건과 성장에 기여하면서 70년의 역사를 함께 해온 한국로타리는 현재 전국 17개 지구, 1,561개 클럽, 58,000여명(2013년 10월 기준)의 회원이 활동 중이며, 회원 규모로는 「세계 4위」 , 재단 기여도에 서는 미국, 일본 다음인 「세계 3위」 의 로타리 강국으로 부상했다. 고아원 시설과 장애인 시설 지원, 사랑의 집짓기 등 200여 건 이상의 봉사 프로젝트를 전개해 왔고, 로타리의 핵심 이슈인 소아마비 박멸사업과 장학사업, 몽골 어린이 심장병 무료수술, 우간다 우물파주기, 탄자니아 툼비 모자병 원 신축, 네팔 혈액은행 설치 등 지구촌 곳곳을 밝히는 희망의 나눔 봉사활동을 성실히 수행해 왔다.


태동

(정부수립 ~ 1975년)

「서울RC」」 재발족... 일제강점기 「「경성RC」」의 맥을 잇다 우리나라 최초의 로타리 활동은 일제강점기인 1927년 일본인 주도로 결성된 「 「경성로타리」」 (서울클럽 전신)로 거슬 러 올라간다. 그해 11월 10일 국제로타리 승인번호 2703번을 받은 경성RC의 창립멤버는 모두 21명. 당시 한국인은 김성수(동아일보사 사장), 한상용(조선화재보험 사장), 김용주(서울프레스 주필), 백상규(보성전문학교 교수) 회원 등 4명이 전부였다. 이후 1939년 2차 세계대전이 발발하고 미 · 일 전쟁이 시작되면서 일본로타리 48개 클럽, 2,142명이 국제로타리를 전격 탈퇴하게 되고, 경성RC도 1941년 공식적으로 로타리에서 탈퇴하게 된다. 어려운 여건에서도 한국 로타리안들 은 로타리의 정신과 규칙을 준수하기 위해 「 「수요회」 를 결성하여 로타리의 맥을 이어오다 대한민국이 건국되자 1949 년 3월 25일, 25명의 회원이 다시 모여 역사적인 「서울RC」 를 재발족했다.

단일지구의 서막... 첫 독립지구 「「375지구」」 탄생 서울클럽에 이어 1952년 부산RC, 1954년 대구RC, 1955년 한양RC, 1957년 인천 · 남서울 · 전주 · 대전RC 등이 속속 창립됐다. 이때까지 대부분의 클럽 봉사활동은 각 클럽별로 지역사회에서 독자적으로 이뤄졌다. 이후 한국 로타리안들은 클럽 상호간 친선과 유대를 바탕으로 로타리 사업을 더욱 폭넓게 진행할 필요성에 대해 공감 하게 되고, 1958년 남부산RC, 1959년 광주RC가 창립되어 10개 클럽에 이르렀을 때 새로운 지구로서의 출범 준비에 박차를 가하게 된다. 1961년 7월 1일 국제로타리 이사회는 우리나라에 독립된 지구 설립을 결의하고, 10개 클럽으 로 구성된 첫 「 「375지구」」 의 탄생을 선포함으로써 본격적인 단일지구 시대를 열었다. 초대 총재에는 이태환 회원(서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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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C)이 선임됐다. 한국로타리연합회는 1960년부터 현 「 「로타리코리아(Magazine)」」 의 전신인 로타리 소식지 「 「한국로타리월보」」 를 발행 하기 시작했고, 이어 1963년 「 「로타리코리아」」 첫 호가 탄생했다. 이 시기 국제로타리는 「인터랙트클럽」 을 창립(1962년)했으며, 곧이어 한국로타리도 1963년 대구RC의 스폰서로 「 「대구인터랙트클럽」」 을 창립했다.

1961년 7월, 우리나라는 10개클럽으로 구성된 첫 375 독립지구를 선포했다.


한국로타리 90년

창간특집

미래 인재 양성... 「「한국로타리장학문화재단」」 출범 1970년 국제로타리 375지구 10년차 지구대회에서 최정헌 회원(춘천RC)의 제안에 의해 「 「장학재단 설립의 건」」 이 상 정돼, 1973년 기본 재산 1,023만원의 기금으로 「(재)한국로타리장학문화재단」 (초대 이사장 : 박동규)이 설립됐다. 설 립 당시 2개 지구, 회원 2,339명으로 출범한 한국로타리장학문화재단은 지난 40년간 국제로타리에서 최고 수준으로 손꼽힐 정도의 모범적 활동을 전개해오며 명실상부한 최고의 장학재단 반열에 오르게 된다. '대한민국의 발전에 기여할 수 있는 인재를 양성하고 문화사업 조성에 앞장서자'」 는 취지에 따라 지금까지 총 1,178억 원을 출연, 국내외 학생들에게 장학금으로 876억원(수혜자 44,123명)을 지급했다. 손석희 Jtbc 보도부문 사장, 故강 영우 박사(미 백악관 장애인 전 인권차관보), 채서영 서강대 영문학과 교수 등이 로타리 친선사절 장학생 출신이다.

「로타랙트」 창립... 1971년 「「부산대학」」에 첫 클럽 결성 1968년부터 국제로타리가 로타랙트를 창설하고 청소년 지도자 양성 프로그램을 국제로타리 공식 프로그램으로 채 택함에 따라 한국로타리도 곧바로 로타랙트 프로그램을 도입했다. 로타랙트는 18세부터 30세까지 남녀 청소년들 로 구성된 봉사단체로 전 세계 154개국에서 7,000여 클럽이 활동하고 있으며, 우리나라는 237개 클럽, 8,000여명 (2006년 6월 기준)의 회원이 전국에서 활동의 폭을 넓혀나가고 있다. 한국 최초의 로타랙트클럽은 1971년 동부산로타리클럽이 창설한 「 「부산대클럽」」 으로, 이후 전국 각 대학을 중심으로 로타랙트클럽 창립 붐이 일었다. 1972년 「 '꿈과 힘과 사랑으로'」 라는 주제 하에 남서울RC가 주관한 「 「375지구 로타랙 트 지구대회」」 에 8개 로타랙트클럽에서 100명이 참가할 정도로 호응이 뜨거웠다.

한국로타리에 1989년부터 최초의 여성클럽이 등장했으며, 초대 임진출 회장은 국회에 진출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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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장 (1976년 ~ 1995년)

장학기금 「 2억원」 조성... 지리산에 「 「로타리 산장」 건립 1978년 장학문화재단은 7,000여 회원들의 정성을 모아 2억원의 장학기금을 조성, 지리산 해발 1400m 고지 에 「 「로타리 산장」」 을 건립했다. 지리산 산장은 지리산 등반 시 조난사고 예방을 위해 부산, 경상남북도, 제주도 지역을 포괄하는 366지구 로타리안의 모금으로 건립 · 추진되었으며, 이후 수많은 등산객에게 안락한 휴식처 를 제공해 왔다. 1970년대 한국로타리의 국제적 위상은 1979년 9월 20일부터 23일까지 서울 세종문화회관에서 개최된 「 「제 3차 아시아 지구대회」 를 통해 두드러진다. 「 '아시아는 희망찬 앞날을 향하여 북치며 전진한다'」 는 주제로 열린 지구대회에서 아시아 로타리 회원들은 1958년 뉴델리지역 지구대회 이후 20여년 만에 처음으로 한 자리에 모 여 교류와 친목의 정을 나누게 된 것이다. 보마 국제로타리 당시 회장은 서울 지구대회 개회연설을 통해 아시아 지역과 특히 한국에서의 로타리 성장에 대해 깊은 격려의 뜻을 표했다.

「로타리회관」 건립... 광화문 시대를 열다 출범 40년을 맞이한 한국로타리는 오랜 숙원사업이던 「 「로타리회관」」 건립을 위해 1982년 10월 총재단 회의에 서 「 「회관건립추진위원회」」 를 구성하고 기금 모금을 본격화하기 시작했다. 전국의 클럽과 회원들의 열띤 참여 에 의해 총 4억3,000여만원이 조성되었고 마침내 1986년 7월 1일, 광화문 세종문화회관 뒤 로얄빌딩 9층에 「한국로타리회관」」 의 둥지를 틀었다. 한국로타리 총재단과 장학문화재단, 로타리코리아 편집위원회, 1989년 서울국제대회준비위원회 등 각 기관이 종로구 당주동 한국로타리회관에 입주해 본격적인 광화문 시대를 열게 되었다.

여성파워... 한국 최초 「「여성클럽」 탄생 1987년 국제로타리 이사회는 미국 전 클럽에 여성회원 가입을 허용한 데 이어, 1989년 규정심의회를 통해 전 세계 여성들에게 로타리를 개방하고 회원가입을 승인함으로써 창립 80년 만에 여성 회원을 참여시키는 역사 적 전환을 이루게 된다. 한국로타리 또한 1989년 9월, 강원도 373지구 내 주문진로타리클럽의 스폰서에 의해 한국 최초의 여성클럽인 「 「海星로타리클럽」」 이 회원 27명(회장 : 이순남)으로 탄생됐다. 그러나 몇 년 후 해체됨 으로써 1개월 늦게 출범한 「서울무궁화클럽」」 이 한국 최초의 여성클럽으로 기록된다. 초대 임진출 회장은 국회 에 진출하기도 했다. 현재 전 세계에서 22만여명의 여성 로타리안들이 활동하고 있으며, 1996년부터 배출된 여성 총재만도 969 명, 한국은 8명의 여성 총재를 배출해 냈다. 2013년 9월 현재 한국로타리 17개 지구에서는 전체 로타리안의 15%인 총 8,898명이 로타리안 활동을 모범적으로 수행해나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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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간특집

한국로타리 90년

1980년대 눈부신 성장... 「 「80차 서울국제대회」 기폭제 한국로타리는 1980년대에 접어들면서 외형적으로 놀랄만한 성장을 구가하게 된다. 특히 1989년 「 「제80차 서울세계 대회」」 를 기점으로 한국로타리 성장세는 급물살을 타게 되는데, 1989~90년도 46개 클럽, 1990~91년도에는 무려 69개의 클럽이 새롭게 탄생되면서 그 무렵 '우리나라 어디인가에는 매주 1개의 클럽이 창립된다'는 경이적인 기록을 남기기도 했다. 1990~91년도 69개 신규 클럽 탄생은 1978~79년도 55개 클럽이 창립된 이래 사상 최고의 기록을 갱신한 수치로써 한국로타리 64년 역사 이래 최고의 신기록이었다. 서울대회는 한국 회원 1만7,095명을 포함하여 86개 국가에서 3만8,878명이 참여한 가운데 성황리에 진행되어 한국 로타리의 위상을 세계에 드높였다. 또 로타리 역사상 처음으로 로타랙트 회원을 위한 로타랙트 회합이 서울 국제대회 식전에 개최되어 이후로 국제대회에서 로타랙트 행사가 식전 행사로 자리를 잡는 계기를 마련하기도 했다.

아시아의 별」 ... 한국 단독 「 「존9」」 로 독립 1995년 중남미 베네수엘라 카라카스 규정심의회는 한국로타리 역사의 큰 획을 긋는 이정표를 세웠다. 회원 수를 기 준으로 로타리 체제를 재편하여 전 세계를 34개의 존으로 나눈 것. 이사 선출의 공정성을 담보하기 위해 입안된 이 안 에 의거하여, 전 세계 120만 회원을 평균 3만5,000명씩 총 34개의 존으로 나누고, 두 개의 존에서 격년으로 2년 임기 의 이사를 1명씩 선임해, 매년 17명의 신임이사를 선출하게 한 것이다. 아시아 존4에 속해 있던 국가들 중 대만은 일 본에, 필리핀은 호주에, 여타국은 스리랑카와 같은 존에 배치됐고, 한국은 12개 지구, 845개 클럽, 36,503명의 회원 보유국으로서 기준 회원 수를 초과해 단독 「 「존9」」 로 독립하게 됐다. 이후로 한국은 4년마다 2년 임기의 이사를 배출 하게 됐다. 정기적으로 이사를 배출하는 나라가 되었다는 점은 국제로타리에서 발언권을 얻어 우리의 입장을 이사회 의 정책수립에 적극 반영할 수 있는 기회를 얻게 된 것으로, 한국로타리 역사상 획기적인 전환기를 맞이했음을 의미한 다. 당시 송인상 국제로타리 이사(1993~1995년도)가 국제로타리 이사회 재정위원회와 집행위원회 위원으로 선임 돼 모범적 활동을 수행했다.

1995년 한국은 12개 지구 845개 클럽, 3만6,000여 회원 보유국으로서 단독 「존9」 로 독립하게 된다.


도약

(1996년 ~ 2006년)

1,000개 클럽 돌파... 전국 대도시마다 로타리 물결 한국로타리 총재단은 회원증강률이 1980년대 평균 2.5% 수준에서 1990년대 들어 다소 소강상태를 보이자 1992 년, 각 지구로부터 회원증강에 대해 관심을 가진 전 총재 1명씩을 추천받아 「 「지구확대회원증강연구위원회」」 를 발족 했다. 위원회는 한국로타리 창립 70주년인 1997년까지 5년 동안 연 7%의 순 회원 증가를 목표로 정하고(제1차 5개 년 계획), 전국 대도시를 중심으로 로타리 바람을 일으켰다. 그 결과 1995~1996년도 3650지구 이동건 총재는 32개 클럽을 조직하여 캘거리 국제대회에서 「 「자랑스러운 세계 최우수 지구표창」」 을 받고, 한국에서는 「총재단 「 지구확대회원증강연구위원회」 에서 30개 이상 클럽을 조직할 때 시 상하는 「 「초아의 봉사상」」 을 수상했다. 매년 세계 1위를 차지하며 회원증강 기록을 갱신해온 한국로타리는 1차 5개년 계획을 마친 1997년 6월, 당초 42,000명 목표보다 1,000명을 초과한 43,000명의 회원증강을 달성함으로써 「 「세계 6위」」 의 로타리 강국으로 화려하 게 비상했다. 한국로타리는 창립 70년 만에 단독 「 「존 9」」 , 「 「16개 지구」」 , 「 「1,000개 클럽」」 규모로 성장하게 됐고, 이 시기에 3640지 구 「 「서울양천로타리클럽」」 이 한국 내 1,000번째 클럽으로 등록됐다.

한국어, 「 「공식어」」 채택... 전 세계서 다섯 번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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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7년 7월부터 한국어가 국제로타리 공식어로 채택됐다. 프랑스어, 스페인어, 일본어, 포르투갈어에 이어 다섯 번 째 주요 언어로(Major Languages) 한국어가 추가 결정돼, 영어와 함께 「 「공식어(Official Languages)」」 로 사용되게 된 것이다. 국제로타리 이사회는 한국어의 주요 언어 추가 결정에 대해 “그동안 한국의 회원증강이 눈에 띄게 활발했음을 증명해

1997년 7월부터 한국어가 국제로타리 공식어로 채택됐다.


창간특집

한국로타리 90년

주는 증표이며, 16개 지구, 968개 클럽, 40,521명 규모로써 프랑스(34,065명)와 여타 불어 사용 국가의 로타리안 수 합계 인원 45,000명과 비교할 때 한국이 이를 능가하고 있다는 점을 감안한 결정”이라고 밝혔다. 국제로타리 이사회 결정은 그동안 한국로타리의 꾸준한 활약과 발전을 반영한 것으로 한국로타리 위상을 한 단계 더 끌어올리는 계기가 됐다.

「이념」」 을 뛰어넘다... 「 「북한」」 에도 한국로타리의 손길 이념을 초월하여 분쟁해결과 평화를 추구하는 한국로타리는 「 「북한」」 에도 지원의 손길을 아끼지 않았다. 1997년 북한 평양의과대학에 앰뷸런스와 의약품을 기증하면서 로타리 마크가 공식채널을 통해 북한에 최초로 소개됐다. 1998년 3660지구 홍순박 총재가 「 「북한문제특별위원회」」 와 함께 「 「북한 푸른숲 가꾸기 사업」」 일환으로 묘목 5,000주 보내기 운동을 진행한 데 이어, 한국로타리 총재단은 「 회원 1인 1만원 기부운동」 을 전개해 2003년 북한 용천역 폭발 참사 구 호성금으로 1억4,082만원을 한국적십자사를 통해 지원했다. 1998년에는 3730지구 주관으로 에티오피아 아디스아바바에 「 「자전거공장」」 을 건립하는 사업과 함께 「 「한국로타리 의료센터」」 를 착공했다. 지구별 회원증강 운동도 꾸준히 전개해 2002년에는 3700지구 이재윤 총재가 스페인 바르셀 로나 세계대회에서 「 「회원증강 글로벌 퀘스트 세계 2위 국제로타리 회장 표창」」 을 수상하기도 했다.

국제로타리 100주년 기념.... 「 「몽골 방풍림 사업」」 전개 2005년 한국로타리는 국제로타리 창립 100주년을 기념하여 서울 광화문 도심과 전국에 경축 깃발 1,000개를 내걸 고 1,000여 회원들이 KBS 「 「열린음악회」」 에 참석하여 창립을 경축했다. 김성신 3710지구 총재의 출연금으로 상징탑 을 건립하고 음악회, 걷기대회, 100인 식수사업 등 로타리 100주년 홍보활동을 대대적으로 전개했다. 이 시기 한국로타리는 국제로타리 창립 100주년 기념사업으로 「 「몽골을 푸르게(KMG: Keep Mongolia Green)」」 프 로젝트의 첫 삽을 떴다. 이 프로젝트는 동북아시아 지역의 환경문제인 사막화와 황사 현상에 도전한다는 기치아래 2005년부터 2009년까지 5개년 연속사업으로 윤상구 국제로타리 이사가 공동위원장을 맡아 주도했다. 이후 한국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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타리 정례사업으로 자리 잡아 매년 5월이면, 수많은 로타리안들이 몽골 현지에서 나무심기 프로젝트에 동참하고 있다. 또한 2005년에는 3650지구, 3630지구에서 몽골의 선천성 심장병 어린이 134명을 초청하여 가천의대 길병원에서 무 료 수술을 받도록 주선해주기도 했으며, 이후로도 매년 몽골 심장병 어린이들을 초청하여 수술을 지원해오고 있다.

2005년 국제로타리 100주년 기념사업으로 「몽골을 푸르게」 프로젝트의 첫 삽을 떴다.


미래 (2007년 ~ )

한국로타리는 17개 지구 공동 프로젝트를 통해 지구촌 곳곳을 밝히는 봉사활동을 전개하고 있다.

한국로타리 「 「6만명」」 시대... 전 세계 회원 수 「 「4위」」 2007년 회원 5만명 시대를 열었던 한국로타리는 2년 만에 회원증강 1만명을 돌파하여 6만명 시대를 맞이했 다. 일본의 급격한 회원 감소세에도 불구하고 한국로타리의 성장에 힘입어 북미와 아시아의 회원 점유율 차이 가 31%와 28%로, 그 간격을 바싹 좁히게 된 것이다. 현재 한국로타리에서 회원 3,000명 이상 보유한 대형 지 구는 3660, 3630, 3670, 3720, 3590, 3600, 3610지구 등이다. 특히 100개 클럽, 5,500명 회원을 확보하고 있는 3630지구는 2007년 3월, 17개 지구 가운데 처음으로 「 「회원 5,000명 시대」」 를 열었다. 이어 2008~2009 년도에는 3660지구가 135개 클럽 6,612명으로 세계 1위 지구를 달성했고, 3620지구는 36개 신생클럽을 창 설, 100개 클럽, 4,909명으로 성장해 2009년 버밍업 세계대회에서 한국 출신 이동건 국제로타리 회장으로부 터 「 「회원증강 최우수 지구 표창」」 을 받는 영예를 안았다.

한국 출신 첫 「 「국제로타리 회장」 배출... 이동건 회장 「 「꿈을 현실로」 한국로타리 역사상 80년 만에 2008~2009년도 국제로타리 회장으로 한국 출신 이동건 회장이 선출됐다. 이 동건 회장은 「 「꿈을 현실로(Make Dreams Real)」」 라는 테마와 함께 전 세계 영유아 사망률 감소를 중점사업으 로 내세워 세계 로타리안으로부터 큰 호응을 이끌어 냈다. 이를 위해 한국로타리는 로타리안 1인당 1만원씩 거출한 5억원과 「 「사회복지공동모금회」」 에서 지원한 5억원 을 투입, 탄자니아에 「 「로타리 모자병원」」 을 건립했다. 「 「툼비병원」」 으로 명명된 이 병원은 탄자니아 프와니주 주 민 100만명이 이용하는 유일한 의료시설로써 현지의 영유아 사망률을 낮추는데 큰 기여를 하고 있다. 이동건 회장은 “매일 2만6,000명의 어린이가 페렴, 홍역, 말라리아 질병과 빈곤으로 사망하고 있다”며 가난한 나라의 어린이들이 질병과 빈곤으로부터 벗어나 「 「꿈을 현실로」 」 이룰 수 있도록 임기 내내 로타리안들의 진정 한 동참을 유도하며 성공적으로 회장 직무를 수행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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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로타리 90년

창간특집

로타리재단 기부 「 「3위」」 ... 3년간 1,000만 달러 이상 기부」 국제로타리재단 기부의 시발점은 한국이 1986년 7월부터 1990년 7월까지 4년간 폴리오플러스 기부금으로 200만 달러의 목표를 세운 것에서 비롯됐다. 그 전까지만 하더라도 한국은 내국인 장학 사업에 주력해오고 있던 터라, 상대 적으로 국제성이 다소 떨어진다는 평가를 받아왔으나, 1987년 「 「로타리재단 한국지국」 개설 이후 국제적 재단 부흥 시대를 주도하면서 이 같은 우려를 일소했다. 2011년부터 한국은 3년 연속 1,000만 달러 이상의 기부를 실현해냈고, 지금까지 총 1억4,800만 달러의 기부를 통해 미국, 일본에 이어 「 「로타리재단 기부 3위 국가」」 로 거듭났다.

중단 없는 프로젝트... 17개 지구 클럽 합동 봉사 한국로타리는 17개 지구 공동 프로젝트를 통해 지구촌 곳곳을 밝히는 합동 봉사활동을 다양하게 전개해 오고 있다. 2009~2010년도 아이티에 지진이 발생했을 때 1억원이 넘는 성금을 모금하여 전달했고, 2010~2011년도에는 대한 적십자사에 승합차 15대를 기증했다. 2011~2012년도에는 한국로타리 17개 지구 중 16개 지구 공동사업으로 베트 남 구순구개열 어린이 1,000명의 수술을 지원하기도 했다. 또한 3600지구, 3690지구, 3750지구 등은 인도 HUNSUR 지역의 티베트 난민캠프의 어린이 학교 식수 및 의료시설, 교육기자재 지원사업 등에 공동으로 참여했다. 2012년 3월 티베트 방문기간 중 한국 로타리안들과 접견한 달라이라 마는 “로타리는 정치와 종교, 국적에 관계없이 불우한 어린이들과 위생적인 식수, 학교시설 지원 사업 등에 전 세계적 으로 깊은 관심을 갖고 수많은 국제봉사 사업을 실시하고 있다”고 밝히면서 해발 2,000m 고도의 티베트 캠프에 직접 찾아와 "현지 어린이들을 위해 봉사하고 있는 한국 로타리안들의 봉사활동에 각별한 감사의 마음을 전한다”고 말했다. 17개 지구는 2013~2014년도에도 클럽 합동 봉사 형식으로 「 「네팔 혈액은행」」 설립을 추진하고 있으며 이외에도 클 럽 간 부분적 연대를 통해 우물파주기 사업, 학교 짓기, 집 고쳐주기, 물품 기증 등 중단 없는 봉사 프로젝트를 수행해 나가고 있다.

한국로타리 역사상 80년 만에 2008~2009년도 국제 로타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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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장으로 한국 출신 이동건 회장이 선출됐다.


1989년 서울 올림픽경기장에서 개최된 「 「제80차 서울 세계대회」」 는 전 세계 86개 국가에서 3만8,878명이 참여한 가운데 성황리에 진행되어 한국로타리의 위상을 세계에 드높였다. 로타리 역사상 처음으로 로타랙트 회원을 위한 로타랙트 회합이 서울 국제대회 식전에 개최되어 이후로 국제대회에서 로타랙트 행사가 식전 행사로 자리를 잡는 계기를 마련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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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빈드란 국제로타리 차차기 회장 방한

SEOUL SEOUL SEOUL 2016년을 뜨겁게 달굴 로타리안 축제!

Visit

2016년 5월, 고양 「킨텍스」 에서 열려 한국로타리는 1989년 서울 국제대회에 이어 2016년 서울 국제대회를 유치하는데 성공함으로써 로타 리강국 한국의 위상과 입지를 세계에 다시 한 번 널리 알릴 수 있는 기회를 확보했다. 이로써 한국로타리 는 「 「회원규모 4위」」 , 「 「기부 3위」 국가」 에 이어 반세기 동안 국제대회를 두 차례나 개최하는 또 하나의 「진 기록」 을 남기게 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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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6 서울 국제대회」」 를 주관하게 될 라빈드란(K. R. Ravindran) 국제로타리 차차기 회장은 지난해 12 월 14일부터 나흘간 첫 공식 일정으로 한국을 방문하여 윤상구 국제로타리 이사(2016년 국제로타리 서 울대회 호스트 조직위원회 위원장)와 각 분과위원, 전문위원 등이 동반한 가운데 개최 장소인 고양 킨텍 스를 시찰하고, 제반 준비상황에 대한 프레젠테이션 설명회에도 참석했다.

전 세계 5만명 로타리안 모인다 전 세계 약 5만명(외국인 2만5,000명 이상)의 로타리안 참가를 예상하고 있는 서울 국제대회는 동시통 역, 관광가이드, 대중교통 지도 등 스마트 기기와 앱을 활용하여 IT와 한국의 전통문화가 멋스럽게 융합 된 새로운 장르의 로타리 문화를 선보이게 된다. 세계적 규모로 치러지는 초대형 행사인 만큼 각 기관과 단체의 후원과 참여도 잇따르고 있다. 경기도에 서는 대회 장소인 고양 킨텍스를 무료로 제공해주고, 스마트 · 모바일 기기, 가구 · 집기, 식음료, 유니폼, 기념품 등을 지원키로 했으며, 서울시에서는 대중교통 편의시설을, 한국관광공사에서는 로타리 회원을 대상으로 한 관광 상품 개발과 함께 별도의 후원금 지원을 추진하고 있다. 이 같은 공공분야의 지원과 함 께 각 기업과 단체의 성원과 협조가 이어지고 있어 로타리 사상 최고의 성대한 축제로 기대감을 고조시 키고 있다. 서울 국제대회 로고는 한국의 건축미를 대표하는 「 「근정전」」 을 상징화한 공모전 수상작을 사용하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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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T와 한국 전통문화 융합된 퓨전축제 21세에 로타리에 입문해 지금까지 세계대회만 20회 정도 참가했다는 라빈드란 국제로타리 차차기 회장은 “문화 를 알려면 그 나라 사람을 만나봐야 한다. 한국 사람들이 친절하다는 것은 그동안 로타리 잡지를 통해 많이 접했다. 친절한 국민성과 훌륭한 교통시설, 좋은 호텔, 세계 최고 수준의 IT 등 양질의 자원을 갖춘 한국은 세계대회를 성공 적으로 개최하는데 손색없는 도시”라며 큰 기대감을 내비쳤다. 윤성구 2016년 국제로타리 서울대회 홍보위원장은 “이번 서울대회는 로타리안 만의 축제가 아니라 국내외 봉사단체와 일반 시민들이 함께 어우러져 한국의 IT기술과 고유 문화, 로타리 정신을 깊이 교감하는 감동적인 대회가 될 수 있도록 최선을 다할 것”이라 고 말했다.


테마기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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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1세기에 되돌아보는 로타리 기본이념

THE FOUR WAY TEST 로타리안의 양심이며 시대를 초월한 절대가치


최초의 로타리클럽이 탄생한 이래 어느덧 한 세기를 훌쩍 뛰어넘 은 지금, 과연 우리는 초창기부터 끊임없이 강조해 온 로타리 강령 과 직업선언문, 「네 가지 표준」 에 충실하고 있는가. 자칫 외형의 발전에 치중한 나머지 회원증강과 로타리재단 사업 만 강조하고 「네 가지 표준」 에 입각한 윤리적 실천을 도외시하고 있지는 않은가. 진정한 로타리안이라면 바로 이 순간, 초심으로 돌 아가서 「네 가지 표준」 을 진지하게 짚어봐야 할 것이다.

타리가 나눔과 봉사를 모토로 하는 여타의 사회

(Service Not Self)」를 통해야 한다고 말했다. 이를 약간 수정한 개념인

단체와 다른 점은 회원들의 직업 전문성을 극대

「초아의 봉사」와「가장 훌륭하게 봉사하는 사람이 가장 많이 거둬

화하여 봉사하는 NGO단체라는 것이다.

들인다」는 두 슬로건은 이후로 로타리의 기본 이념으로 확고하게 자

로타리의 봉사활동과 관련된 윤리기준은 1905

리 잡았다.

년 로타리 창립이후 지속적인 관심사가 되어왔으며 로타리는 이에 대 해 초기부터 일관된 원칙을 준수해 왔다. 로타리를 창설한 폴 해리스 는 초창기 회원을 모집할 때 한 직업 분야에서 한 명의 회원만을 두되,

일상과 직장에서의 윤리강령을 제시

다른 회원들이 그의 성실성을 입증할 수 있는 사람들만 받아들이기로

그렇다면 과연 어떻게 하는 것이「초아의 봉사」이며「가장 훌륭하

했다. 처음부터 직업분류의 원칙을 확립한 것이다. 또한 비즈니스 관

게 봉사하는 것」일까? 이에 대한 구체적인 지침을 제시한 것이 바

계에서 서로 도움을 주기 위해 임원인 통계관을 둬, 회원 중 누구든지

로「네 가지 표준」이다.

다른 회원과 거래를 하고자 할 때 그 자세한 내역을 통계관에게 보고

시카고클럽의 허버트 J. 테일러는 1932년 파산 지경의 알루미늄 회

하도록 했다. 몇 년이 지난 후 폴 해리스는 모든 클럽에 통계관을 임원

사 경영을 맡으면서 24개 단어로 된「네 가지 표준(The Four-Way

직에서 삭제하라고 지시하고, 로타리안들의 상호 비즈니스 교환을 중

Test)」이라는 행동 지침을 만들고, 일상적인 의사결정에 적용함으

단하도록 촉구했다. 이로써 로타리는「직업」에 대해「비즈니스 개념

로써 위기에 처한 회사를 회생시켰다. 당시 테일러는 직무상 부딪

을 뛰어넘는 봉사의 기회」로 생각하는 발상의 대전환을 이뤄낸 것이

친 문제로 회사 운영상황을 검토하던 중 과대광고 등 회사 관행에

다.

문제가 있다는 점을 발견했다. 회사를 살리기 위해 정직한 회사로 거듭나는 방안을 고심하던 테일러는 직원들의 개인 생활과 직장 생

「직업」 을 통한 비즈니스를 초월한 봉사

활에서 일관성 있게 준수해야 할 윤리강령을 요약하여 내놓게 되었 고, 이것이「네 가지 표준」의 시초가 된 것이다.

1910년 8월,「시카고 국제대회」에서 시카고 로타리클럽의 아서 쉘

국제로타리 이사회는 사업과 전문적인 직업을 가진 사회지도자로

던은 봉사와 이익의 관계를 명확히 설명하는 명연설을 한다. 그는 연

서 직업윤리 실천에 모범을 보이자는「네 가지 표준」의 가치를 높

설에서 “동료에게 가장 잘 봉사하는 사람이 가장 많은 것을 거둬들인

게 평가하고 1943년 이를 공식 채택했으며, 테일러가 1954년 국제

다”라고 말했다. 또 1911년 미네아폴리스 로타리클럽 회장인 벤 콜

로타리 회장에 선출 된 후「네 가지 표준」에 대한 저작권을 국제로

린즈는 로타리클럽을 조직하는 좋은 방법은「나를 위하지 않는 봉사

타리에 양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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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카고클럽의 허버트 J. 테일러는 1932년 파산 지경의 알루미늄 회사 경영을 맡으면서 24개 단어로 된 20

「네 가지 표준(The Four-Way Test)」 이라는 행동 지침을 만들고, 일상적인 의사결정에 적용함으로써 위기에 처한 회사를 회생시켰는데, 이것이 「네 가지 표준」 의 시초가 됐다.

직업선언문에 구체적인 지침 명시

방법들을 모색해 왔다. 1989년 규정심의회는「네 가지 표준」이「초아의 봉사」라는 박

1987년 국제로타리 이사회는 직업봉사의 범위를 클럽과 각 회원

애주의 정신을 가장 잘 나타내고 있다고 결의하여 로타리의 핵심

간의 공동 책임사항으로까지 확대했다. 이후 로타리클럽들은 여

모토로 제정했고, 로타리 강령에서 요구되는 높은 윤리기준에 대

러 가지 측면에서 다양한 직업을 개발하는 데 초점을 맞추었다.

해 보다 구체적인 지침을 제공하기 위해「사업과 전문 직업을 갖

각종 직업연수 기회를 제공하고, 직업학교를 지원해 왔으며 청소

고 있는 로타리안 회원에 관한 직업선언문」을 채택했다.

년들이 취업기회에 대한 정보를 입수할 수 있도록 돕는 일에 몰두 해 왔다. 뿐만 아니라 지역사회 내에서 한 분야에 오래 종사하여

절대적 윤리기준, 타협은 있을 수 없다

업적을 남긴 사람들을 발굴, 표창도 하고 정년 퇴직자들이 오랜 기간 직장생활을 하면서 얻은 전문기술과 지식을 활용할 수 있는

1932년 허버트 J. 테일러에 의해 창안되어 지금까지 로타리 직업봉


테마기획

21세기에 되돌아보는 로타리 기본이념

네 가지 표준 The Four-Way Test

1

진실한가? Is it the TRUTH?

선의와 우정을

3

더하게 하는가? Will it build GOODWILL and BETTER FRIENDSHIPS?

2

모두에게

공평한가? Is it FAIR to all concerned?

4

모두에게

유익한가? Will it be BENEFICIAL to all concerned?

사의 키워드로 대두되어온「네 가지 표준」. 1950년대 이후 로타리 안들은 직업봉사를 개개인의 중요한 책임사항으로 여겨 왔으며 그

고용과 피고용을 뛰어넘는 로타리안의 윤리적 잣대가 되어야 함을

실천 과정에서「네 가지 표준」을 절대적 기준으로 활용해 왔다.

강조하고, 윤리적 기준에는 타협이 있을 수 없음을 분명히 했다.

「네 가지 표준」을 각종 액자와 광고판에 인쇄해 교육자, 법률가 및

그로부터 한 세기를 뛰어 넘은 지금 우리는 과연 초창기처럼 이 윤

여러 전문분야 지도자들에게 배포했다. 예를 들면 미국 캘리포니아

리기준을 원칙적으로 준수하고 있는지 되돌아 볼 필요가 있다. 로타

주에 있는 폴브룩 로타리클럽은 이 지역 행정집행관위원회 위원들

리안이라면 가정과 직장, 그리고 지역사회에서 어떤 결정을 하고 행

에게「네 가지 표준」을 인쇄한 액자를 선물할 정도였다.

동하는데 있어서 진실, 공평, (모두에게) 유익, 선의와 우정을 가장

아울러「네 가지 표준」은 국경과 세대, 남성과 여성, 정치적 이념,

먼저 고려해야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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테마기획

사업과 전문직업을 갖고 있는

로타리안의 직업선언문

핵심은 「진정성」 과 「공공의 이익」 최근 나눔과 봉사에 대한 사회적 관심이 높아지면서

1. 나의 직업을 하나의 봉사 기회로 생각한다. 2. 나의 직업윤리 정신에 충실하고 내 나라의 법률과 지역사회의 도덕규범에 충실하도록 한다. 3. 나의 직업을 존중하고 내가 선택한 직업에서 최고의 윤리기준을 앙양시키기 위해 최선을 다한다.

정 부분을 사회공헌과 봉사 프로젝트에 할애하는 비중 이 늘어나고 있다. 로타리 또한 바로 이러한 목적을 가 지고 한 세기 전에 탄생한 순수 봉사단체라는 점에 이견 을 두는 로타리안은 많지 않을 것이다. 기실, 중요한 것은 행동의 주체들이「어느 정도 진정성을

4. 나의 고용주, 피고용인, 협회, 경쟁자, 고객, 일반 대중,

가지고 나눔과 봉사를 실천하고 있는가」,「프로젝트를 통

나아가 사업 또는 전문직업상의 모든 관계자들에게

해 만들어진 콘텐츠를 이 사회에 공평하고 유익하게 제공하

공평을 기한다.

는가」이다.

5. 사회의 유익한 모든 직업에 대해 명예와 존경심을 갖는다. 6. 나의 직업상의 재능을 발휘함으로써 청소년들에게 기회를 제공하고 타인의 부족함을 메꿔주고자 노력하고 나아가 지역사회에서 생활의 질을 개선하도록 한다. 7. 나의 사업과 전문 직업에 관해 일반 대중에게 광고 또는 홍보를 할 때에는 정직을 잊지 않도록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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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업이나 학교, 공공기관, 전문가집단들이 이익의 일

8. 사업과 전문 직업에 관련하여 통상적으로 주어지지 않는 어떤 특권이나 이익을 동료 로 타리안에게 요청하거나 또는 공여하지 않는다.

- 1989년 「규정심의회」 에서 채택

몇 년간 주요 방송과 일간지가 기업에 관해 다룬 톱뉴스들을 보자. 기업들이 1면 기사로 나올 때면 으레 탈세, 내부자 거래, 부정 회계 등 기업윤리를 저버린 사례들이 주류를 이루고 있 다. 제품의 원재료나 원산지를 속여 팔고 허위 · 과장광고로 소


21세기에 되돌아보는 로타리 기본이념

비자를 기만하면서 앞에서는「고객은 왕」이라고 소비자의 귀에 대

던 과거와는 달리 분야별 전문채널로 세분화되었고 지역방송과 인

고 끊임없이 속삭이는가 하면, 직원들에게 부당한 처우와 고용불안

터넷 매체, 모바일에 이르기까지 훨씬 광대해졌다. 진실하지 않은

을 야기하면서 외부적으로는 기업의 사회공헌 이미지를 끊임없이

봉사, 공평하지 못한 나눔은 언제, 어디서든지 예기치 않게 노출될

홍보하고 있다. 이것은 이윤의 극대화를 속성으로 하는 자본주의 발

수 있는 환경에 이르게 된 것이다.

전 과정에서 불가피하게 양산되는 동전의 앞뒷면과도 같다. 끊임없

그럼에도 불구하고 직업윤리가 추구하는 궁극적인 선의 지점은 변

이 발생하는 노사분규, 사회단체나 소비자의 감시활동은 이에 대한

하지 않았다.「네 가지 표준」은 직업봉사를 실천하는 로타리안의

강력한 저항이다. 빠른 성장보다는 조금 늦더라도 다 같이 잘 사는

삶이「절대선(善)」으로 갈 수 있도록 시대를 초월한 위력을 가진

세상, 정직한 기업문화를 만들어 가자고 기업사회에 끊임없이 각성

다.

을 촉구하는 것이다.

모든 로타리안은 오늘날 사회 각 분야의 대표자이며 리더들이다. 기 업이나 전문가집단, 지역 사회에서 정직과 공평, 사회공헌(유익), 선

「네 가지 표준」 은 「워터게이트」 도 막았을 것

의와 우정을 더하는 바람직한 환경을 창출해내는 촉매제 역할을 맡 을 수 있는 적임자들로서「네 가지 표준」을 실천하고 확산시켜야

모든 것이 단순하고 흑백논리로 설명될 수 있었던 20세기 초반, 로

하는 시대적 소명의식을 느껴야 한다.

타리 초창기 때와는 달리 21세기의 상황은 훨씬 복잡하고 다양화된

닉슨 대통령 시절 백악관 자문관을 지낸 존 W. 딘 3세가 5670지구

게 사실이다. 지금은 세대, 계층, 남녀 등에 따라 사회적 가치관이 다

(미국 캔자스) 지구대회에서 수 년 전에 연설을 한 적이 있다. 그 주

양해졌다. 미디어의 범주 또한 지상파 방송과 주요 일간지가 전부였

제는「워터케이트, 전쟁, 그리고 네 가지 표준」이었다. 그는 “만약 닉슨 행정부 내에서 워터게이트에 연루된 사람들이 도중에 가끔씩 이라도「네 가지 표준」을 생각해보았더라면 워터게이트라는 사건 은 단연코 일어나지 않았을 것이다.「네 가지 표준」은 그 만큼 위력 이 있다. 우리가 실천에 적용해보려는 의지만 있다면 어떠한 상황에 서든지 그 효과를 발휘한다”라고 확신에 찬 연설을 했다.

실천의 기준은 「그것이 옳은가」 리차드 에반스 전 국제로타리 회장은 이것을 더 압축하여 “그것이 옳은가?”로 표현했다. “만약 옳다는 답이 나온다면 그때부터 우리는 이것이 편리한가? 이득이 남는가? 우리가 하고자하는 일인가? 등의 질문을 합리적으로 던져볼 수 있다. 하지만 옳다는 대답이 나오지 않으면 더 이상 다른 질문을 던지는 것은 시간낭비일 뿐이다. 왜냐 하면 그것이 옳지 않다면 다른 어떤 이유가 있더라도 실행할 가치가 없기 때문이다”라고 했다. 로타리안으로서 우리 모두가 이 충고를 가슴에 새기고, 옳은 일만을 위하여 앞장 서 나갈 때 우리가 추구하는 더 나은 세상, 밝고 따뜻하 며 행복한 세상은 한층 앞당겨질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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테마기획

Review

「네 가지 표준」」 의 신화

짐 앨더슨

「다윗과 골리앗의 싸움」 에서 승리하다 미국 역사상 최대 규모에 속하는 한 기업의 부정사건에서 내부 제보자였던 로타리안 짐 앨더슨은 “상실감, 사회적인 소 외감에 자신감마저 잃어 거의 전신이 마비된듯한 느낌이 10년 내내 나를 짓누르고 있었다”고 회고했다. 회계사인 앤더슨은 의료계의 거물급인 코럼 보건그룹과 미 병원사(HCA)를 재정적 부정행위로 고소하고 하루에도 몇 번 씩 “내가 왜 이러고 있지?”라는 질문을 수없이 던졌다.

진실과 정직은 반드시 승리할 것! “왜 인지는 모르겠지만 내 아이들을 보면 직장과 재산, 내가 지금까지 쌓아온 모든 것을 잃는다 해도 아이들의 존경까지 잃어서는 안 된다는 것을 깨달았지요. 왜냐하면 그것은 다시 회복할 수 없는 것이니까요. 나는 모든 것이 끝났을 때 결말 이 어떻게 되든지 간에 아이들의 눈을 들여다보면서 진실과 정직이 정말 중요한 것이라는 것을 말하고 싶었습니다”라며 「「네 가지 표준」」 에 대한 확고한 신념이 자신을 지탱해 준 힘의 원천이었다고 설명한다. 앨더슨의 「 「다윗과 골리앗의 싸움」」 은 1990년 HCA의 한 부서였던 코럼사가 몬테나주 화이트피시라는 작은 산골마을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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있는 노스밸리 병원을 인수하면서부터 비롯됐다. 1980년대에서 1990년대에는 미국의 보건의료업계들이 연방정부의 의료보험제도를 이용한 보험료 청구를 통해 엄청난 수익을 올리기 위해 큰 업체가 작은 업체를 무서운 속도로 인수 합병 했던 시기였다. 노스밸리 병원에서 17년 동안 전문 병원행정가로 일하고 있던 그는 코럼사가 병원 인수 후 이중장부 회계를 지시하자 이를 거부했다. 앨더슨은 바로 해고되었고, 이 과정에서 참기 힘든 모욕을 당한 그는 1993년 초 부당해고로 인해 발생한 손실 임금과 손해배상을 청구하게 된다. 그러나 자신의 해고사유를 규명하기 위해 더 깊이 조사하자, 부정 대상 병원이 노스밸리 하나가 아니라 수백 개의 병 · 의원들이 연루되어 있음을 알게 되었다.

외로운 싸움, 로타리가 안식처였다 그것은 미 연방 정부가 연간 수백만 달러를 부당한 초과 청구로 낭비하고 있다는 얘기였다. 이러한 병 · 의원들의 관리회 사 주가는 하루가 다르게 치솟았다. 앨더슨은 미 법무부만 개입시킬 수 있으면 승소할 수 있다는 확신이 섰다. 앨더슨이 청구한 밀고자 고소 건에서는 미 법무부의 개입이 결정적인 승소요인이 됐다. 밀고자에 대한 고소는 미국 남북전쟁 당시 링컨 대통령이 군납업자들의 부정 청구사례를 막고자 밀고자에게 사건 입증 시 회수금의 15~30%를 보상금으로 지급 하도록 한 법률에서 유래한 것이다. 앨더슨은 처음에는 혼자였다. 법무부에서 열리는 회의에 가면 보건회사를 대표하는 변호인단이 3개의 법률회사로 구성


21세기에 되돌아보는 로타리 기본이념

되어 앨더슨과 맞섰다. 법무부에서는 사기 규모가 크다는 것을 앨 더슨이 입증할 수 있으면 개입을 고려해보겠노라고 했다. 그는 5년 동안 사재를 털어 개인 변호사를 선임하는 등 총력을 기 울였다. 그후 「 「60분」」 이란 텔레비전 유명 시사프로그램에서 그의 이야기가 보도된 후 비로소 법무부가 개입하기 시작했다. 그러나 텔레비전에 얼굴을 비친 것이 꼭 좋은 것만은 아니었다. 이를 계기 로 보건의료업계에서 그를 기피인물로 낙인을 찍어버린 것이다. 아들과 딸이 대학을 들어갈 나이가 된 앨더슨은 「 「일」」 이 필요했다. 가정살림도 꾸려나가야 했다. 그의 아내 코니는 저축이 줄어들어 이사를 열한 번씩이나 다녀야 했다. 병원, 병원행정가협회 등 모든 곳에서 그를 거부했고, 그와 그의 가족은 미등록 전화번호를 이용 하는 등 신변의 위협까지도 감수해야 했다. 이런 생활 중에 유일한 안식처요, 피난처는 로타리 주회였노라고 뒷날 앨더슨은 털어놓았 다.

美보건업계 부정 관행에 쐐기 1997년에 다른 보건재무 담당 내부자의 밀고에 의해 FBI가 HCA 와 콜럼비아 보건회사를 불시에 방문하여 14,000개 박스에 달하 는 부정 회계 증거물을 압수함으로써 앨더슨 고소 건에 돌파구가 열리게 됐다. 결국 HCA는 3억7,600만 달러로 정부와 합의했는 데 법무부에서는 그 중 1억 달러를 앨더슨과 다른 밀고자에게 보상해줬다. 보상금의 상당 부분은 법 률비용으로 들어갔지만 밀고자가 얼마를 받았는가 보다 더 중요한 것은 그 이후의 변화였다. 이들로 인해 부정행위를 저지른 기업이 유사한 고소 건 에 대해 17억 달러를, 형사처벌에 대한 벌금으로 9,500만 달러를 물어 대가를 치르게 되었다는 점 과 미 보건성에서 집계한 보건 사기사건 규모가 크게 감소하는 등 그 파장 효과가 엄청나게 컸다 는 것이다. 그 뒤로 전국을 돌면서 강연을 했던 앨더슨은 “10년이라는 혹독한 세월을 잠 못 이루면서 보 냈던 고통이 있었지만 결국 「 「네 가지 표준」」 을 통과시켰다는 점에 말할 수 없는 보람과 성취 감을 느꼈다”는 소감을 피력했다.

나는 모든 것이 끝났을 때 결말이 어떻게 되든지 간에 아이들의 눈을 들여다보면서

진실과 정직이 정말 중요한 것이라는 것을 말하고 싶었습니다.


「네 가지 표준」 의 모범실천 로타리안 로타리안 스토리

“로타리는 내 생의 전환점 Four-Way는 내 삶의 철학” 30대 젊은 사업가 시절 성남모란RC에 입회하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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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타리와 함께 멋지게 중년을 통과한 윤성구 이사장. 30여년에 가까운 세월 동안 로타리는 그와 함께 호흡하는 공간이었으며,

윤 성 벽 구

그의 삶을 따뜻하고, 역동적으로 엮어준 삶의 동반자였다. 앞으로도 로타리와 아름다운 동행을 이어갈 윤성구 이사장.

「네 가지 표준」 을 모범적으로 실천하는 멘토 로타리안 윤성구 이사장이 전하는 진솔한 그의 삶과 로타리 이야기를 들어보았다.

이나 둑의 벽돌 틈을 뚫고 자라는 풀과 꽃, 넝쿨을 발견하면 경외심을 품고 한참을 바라보게 된다. 요란한 아름다움은 아니더라도 어디에든 뿌리를 내리고 어떻게든 줄기를 뻗는다. 윤 성구 이사장의 스토리는 마치 담쟁이 넝쿨을 떠올리게 한다. 인생의 길동무 같은 로타리안 들을 만나 어깨동무하듯이, 서두르지 않고 자연스럽게 그의 삶은 로타리에 뿌리내렸다. 천

천히, 차곡차곡 조심스레 쌓아올린 그의 로타리안 역사는 대석(大石)이라는 아호(雅號)가 말해주듯, 디지털

이사장

하고 스펙터클한 이 시대의 흔들림이 없는 견고함으로 옥석의 빛을 발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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젊음과 도전 지금으로부터 27년 전인 1987년. 열정적이고 도전적인 38세의 젊은 사업가가 있었다. 대학 졸업 후 엘리베 이터와 관련된 8,000여 가지의 아이템 생산기술을 보유한 회사의 외주 담당 부서에 근무하면서 다양한 비 즈니스 만남을 경험했던 청년은 영업적 스킬과 노하우를 스펀지처럼 빠르게 흡수했다. 급기야 5년 만에 직 장생활의 종지부를 찍고 특수제품을 생산하는「성도금속」이라는 회사를 설립한 젊은 사업가. 그가 바로 현재 한국로타리를 이끌어가는 거목 중의 한사람, 윤성구 이사장이다. 성실함과 무서울 정도의 집중력, 승 부욕까지, 타고난 사업가적 기질을 바탕으로 이후로도 사무용 가구를 생산하는 인테리어 사업과 배송사업 을 겸한 (주)퍼센스를 운영하는 등 그의 사업은 순탄궤도를 이어갔다. 물론 사업을 하는 동안 고비가 전혀 없었던 것은 아니지만 그때마다 적절하게 사업 규모를 조절하거나 부 가가치 높은 아이템으로 시선을 돌려 위기를 잘 극복해 나갔다. 언제나 다가올 변화에 대비하여 준비하는


로타리안 스토리

윤성구 로타리코리아 차기 이사장

28 자세로 긴장의 끈을 늦추지 않았으므로 IMF라는 메가톤급 태풍이 닥쳤을 때도 별다른 흔들림이 없었다. ‘궁하면 변하라. 변하면 통하고 통하면 오래 간다’ <주역 계사전>의 ‘窮則變 變則通 通則久’를 사업에 훌륭하게 적용했던 그 무렵을 윤 이사장은 인생의 황금기로 회고한다. 젊었고 자유 로웠으며 야망으로 가득찼던 시절이다. 30대에 이미 지역에서는 꽤나 소문난 사업체의 대표였던 윤 이사장은 중견 기업의 총수가 되겠다는 꿈을 가지고 시간을 쪼개가며 열심히 일했 다. 오로지 일밖에 몰랐던 어느 날, 고향 선배이면서 지역의 사업가였던 선배가 그에게 로타리 가입을 권유한다.

사흘간의 고민, 변화 “개인적인 친분도 친분이지만 사업적으로도 큰 힘이 되어준 분의 제의여서 고민스러웠습니다. 하지만 그때 제 머릿속은 온통 사업이 전부였을 때였지요. 봉사라는 게 나와는 아무런 상관없는 단어로 들렸고 거기까지 시간을 할애할 만큼 마음의 여유가 없어서 정중하게 거절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선배의 집요한 설득은 이어졌고 사흘 밤낮을 고민하다가 ‘한쪽 발만 들여놓자’라는 생각으로 성남모란RC의 창립총회에 참 여한 것이 로타리와의 첫 인연이었다. 1987년 9월의 일이다. “성격이 그다지 활발한 편이 아니어서 낯선 사람들과의 만남이 어색하기만 했어요. 사업체 운영으로 몹시 바쁜 와중에도 일주일에 한 번씩 꼭 주 회에 참석해야 한다는 게 상당한 부담이었습니다. 마음속으로 몇 번이나 그만 나올까 생각했지만 선배의 눈총이 따가워서 차마 그러지도 못하고


1993년「성남모란RC」의 회장을 맡으면서 모든 것이 달라졌다. 스스로 나서서 직책을 맡는 성격은 아니지만 책임을 맡은 일에 대해서는 물불 안 가리고 올인하는 윤 이사장의 스타일이 임기동안 두각을 드러내기 시작한 것. 재단 기부는 물론이고 회원증강 등 어정쩡하게 2년을 보냈지요.” 1993년 성남모란RC의 회장을 맡으면서 모든 것이 달라졌다. 스스로 나서서 직책을 맡 는 성격은 아니지만 책임을 맡은 일에 대해서는 물불 안 가리고 올인하는 윤 이사장의 스타일이 임기동안 두각을 드러내기 시작한 것. 재단 기부는 물론이고 회원증강 등 지 구가 시상하는 모든 분야에서 1위를 독차지하며 그가 이끌던 「성남모란RC」는 주목을 받기 시작했다. 자신도 의식하지 못하는 사이 로타리는 의무나 강요가 아닌, 한 사업가 의 인생 그 중심에 성큼 들어와 있었다.

배려와 봉사의 삶 그 이전까지만 해도「봉사」라는 단어는 그와 상관없는 남의 이야기였다. 오로지 나의 행복, 나의 발전이 전부였고 사업 확장에서 최고의 성취감을 맛보았던 그에게 다른 사람 의 삶이 눈에 들어오기 시작했고, 배려와 봉사를 통해 새로운 기쁨을 알게 되었다. 생활 과 사업체에서「Four-Way」와「로타리안 직업선언문」은 온전한 지침이 되었다. 이윤

지구가 시상하는 모든 분야에서 1위를 독차지하며 그가 이끌던 「성남모란RC」는 주목을 받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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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로지 나의 행복, 나의 발전이 전부였고 사업 확장에서 최고의 성취감을 맛보았던 그에게 다른 사람의 삶이 눈에 들어오기 시작했고, 배려와 봉사를 통해 새로운 기쁨을 알게 되었다. 생활과 사업체에서 「Four-Way」와 「로타리안 직업선언문」은

30 온전한 지침이 되었다.


로타리안 스토리

윤성구 로타리코리아 차기 이사장

을 따지던 기존의 사업가적 관점은 고객과 거래처를 최고의 가치로 삼는 것으로 바뀌었다. 납기와 품질력, 단가를 클라이언트의 요구에 맞추기 위해 성심성의껏 최선을 다했고 거래 과정에서 진심을 담은 브리핑을 함으로써 상대 방의 이해를 구했다. 사업체의 근로자에게도 공평한 나눔을 위한 여러 가지 배려를 아끼지 않게 되었다. 직원이 30 여명 정도였던 중소업체를 운영하고 있었는데 직원들에게 질 좋은 먹거리를 제공하기 위해 자체 식당을 마련했다. 당시만 해도 비슷한 규모의 업계에서는 획기적인 일이었다. 대표인 그 자신도 날마다 직원들과 구내식당에서 점심 을 함께 하며 격의없이 소통하는 시간을 가졌다. 식당의 메뉴는 직원들의 요구사항을 최대한 반영했고 점심시간에 직원들로부터 나온 이야기를 회사 운영에 반영하려고 노력했다. 현실적으로 반영이 곤란한 요구들은 진심을 담은 대화로써 직원들의 이해를 구했다. 많은 부분에서 그의 삶은 변화했다.

비움과 채움 30대가 온전히 사업을 위해 존재했다면 40대는 로타리에 열정을 바친 시간이었다. 사업체는 가족에게 위임하고 좋아하던 골프와 등산은 언감생심 꿈도 못 꾸는 바쁜 나날이 이어졌다. 10여 년간 로타리에 헌신하는 것을 지켜 본 회원들은 그의 거듭되는 고사에도 불구하고 몇 차례나 총재직을 권했다. 결국은 떠밀리다시피 2003~2004년도 「3600지구」의 총재를 역임했다. 지구 총재 시절 그는 지구 내 모든 클럽에 직장 주회를 강조하고 회원들의 사업체를 빠지지 않고 방문하도록 독려 했다. 방문하는 사업체에는「Four-Way」와「로타리안 직업선언문」을 담은 액자를 걸어 로타리 정신을 상기시켰 으며 모범 사원을 표창하여 회사 분위기를 고무시켰다. 로타리의 기본과 원칙에 가장 충실한 회합을 몸소 실천한 것이다. 2005년부터 2014년 6월까지 국제로타리 회원 증강 및 지역 재단 코디네이터를 역임하면서 윤 이사장의 로타리 활 동은 절정을 이룬다. 1년에 최소 60~80 차례 지구 순회강연을 했다. 8년간 누적한 지구 방문 횟수는 무려 600회가 넘는다. 개인을 버리고 욕심도 비워냈다. 모든 일정을 지구 행사 일정에 맞췄으며 방문하는 지구 회원들에게 불필요한 부 담을 주지 않으려고 아무리 먼 지역이라도 당일 방문 원칙을 철저히 고수했다. 가령 남부지방에서 오전 9시 30분에 예정된 행사의 개회식에 참석하려면 새벽 4시쯤 집을 나서서 밤늦게 도착하는 강행군이 계속되었다. 자가용보다 는 열차나 고속버스를 이용하면서 이동하는 시간동안 준비사항을 철저히 체크했다.

열정과 보람 한 번은 지구 행사에서 강연을 마친 후 한 클럽 회장으로부터 간곡한 요청이 들어왔다. 회원 수가 계속 감소 추세여 서 심각한 슬럼프에 빠져있던 클럽이었다. “제가 방문한 이후 20명으로 줄어 있던 회원 수가 단기간에 무려 1.5배나 증강되어 50명으로 늘어났습니다. 또 한 여성클럽을 방문하여 재단 기부 필요성에 대한 열띤 강연을 하였는데 그로 인해 전 회원이「1인 1기부」동참을 실 현하게 되었지요. 오래도록 기억에 남는 진한 감동의 모먼트였습니다.” 8년간 같은 지구를 몇 번씩 방문했지만 단 한 번도 똑같은 내용으로 강의 시간을 때운 적이 없다. 기왕이면 즐겁고 신나는 강연을 만들고 싶어서 신문, 잡지, 인터넷, 유투브를 검색하여 재미있고 생생한 소재를 찾아내는 노력을 게 을리 하지 않았다. 전 세계적으로 싸이(PSY)의「강남스타일」열풍이 불었을 땐 동영상을 보고 익힌 강남스타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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춤을 강연 중에 재현함으로써 회원들로부터 폭발적인 호응을 끌어냈다. 열정을 다하는 윤 이사장의 또 다른 일화 한 토막. 초창기에는 강연 준비로 기껏해야 동영상을 스크린에 띄우는 정 도였는데 어느 순간부터 파워포인트의 필요성을 절감하게 되어 아들에게 파워포인트 제작을 부탁했다. 생각이 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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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로 전달이 안 되는 건지 원하는 대로 그림이 잘 안 나왔다. 답답함을 참다못해 직접 파워포인트를 독학하기로 결 심했다. “몇날 며칠을 붙잡고 연습을 했어요. 심지어는 한 페이지를 만들면서 밤을 꼴딱 지새운 적도 있었으니까요. 아내에 게 잔소리 꽤나 들으면서 쌓은 파워포인트 실력이 지금은 거의 프로의 경지에 이르렀습니다.”

시작과 끝, 동행 중년이후에 들어서면 누구나 한번쯤 과거를 돌아보며 가지 않은 길에 대한 미련, 좋은 기회를 놓친 어리석음에 대 해 후회와 아쉬움으로 탄식한다. 하지만 스스로를 철저한 노력형이라고 평하는 윤 이사장은 “인생의 고비마다 열 과 성을 다해 노력해왔으므로 지나온 시간에 대해 특별히 후회나 아쉬움은 없다”고 말한다. 그에게는 다만 지금 이 순간, 현재가 중요할 뿐이다. ‘할 일이 생각나거든 지금 하십시오. 내일은 구름이 보일지도 모릅니다’로 시작하여 ‘불러야 할 노래가 있다면 지금 부르십시오, 내일은 노래 부르기엔 이미 늦을 수도 있습니다’로 끝나는 찰스 스펄전(Charles Spurgeon)의 말은 그가 강연 중에도 자주 인용하는 문구이다. “30대에는 20대의 빛나는 청춘이 그립고 40대에는 30대의 젊음이 그리울 수 있으며 50대에는 40대가 찬란했다고 여길 수 있겠지요. 먼 훗날이 되면 지금 이 순간 또한 그리울 것이고요. 그때 뒤돌아보았을 때도 후회되지 않는 삶


33 윤성구 이사장 (주)성도금속 대표이사(前) (주)퍼센스 대표이사(前) 성남모란 RC 회장(1993~1994) 을 살고 싶습니다.” 세상의 모든 것들, 풀 한 포기마저 소중하게 느껴지는 그런 날이 그에게도 올 것 이다. 그 순간 로타리와 함께 지나온 모먼트가 행복하게 기억될 수만 있다면 그 것으로 충분하지 않겠는가. 윤 이사장은 마지막으로 많은 후배 로타리안들에게 당부의 한 마디도 잊지 않았다. “로타리에 입문한 이상 시작은 있으나 끝은 없습니다. 기왕에 선택한 봉사의 길 이라면 즐겁고 신나는 마음으로 참여하십시오. 긍정의 힘이야말로 로타리와의 기난 긴 동행을 에너지 넘치고 풍성하게 만들어 줄 것입니다.”

3600지구 총재(2003~2004) 국제로타리 RC (2011~2012) 국제로타리 서울대회 호스트 조직위원회(HOC) 홍보위원장 (2014~2016) 로타리코리아 차기 이사장 (2014~2016)


로타리안 스토리

Focus

「2016 서울대회」 , 「로타리코리아」

획기적인 변신 ‘기대해도 좋다’ 2014~2016년도에 윤 이사장은 두 개의 중책을 맡았다. 「2016년 국제로타리 서울대회 호스트 조직위원회(HOC)」 의 홍보위원장과 월간 「로타리코리아」 의 차기 발행인 겸 이사장직을 겸임하 게 된 것. “모든 행사가 그렇듯이 서울대회의 성공여부도 참여 회원 수가 최대 관건입니다. 1차적으로 한국 회원의 50%인 3만명 참여를 목표로 세웠습니다. 다음으로는 한국과 인접한 아시아 국가 회원들 의 보다 많은 참여를 유도하기 위해 집중적인 홍보를 할 계획입니다.” 성공적인 서울대회 준비를 위해 윤 이사장을 비롯한 HOC 관계자들은 6월초에 개최된 2014년 시드니 국제대회에 참석하여 전반적인 행사 내용을 모니터링했다. 이어서 “2015년 1월 샌디에 이고에서 열리는 530여개 지구 총재 연수회와 3월 서울에서 개최될 예정인 로타리 편집장회의, 6월 브라질 상파울로 국제대회에 참가하여 서울국제대회를 널리 알릴 것”이라며 “서울대회는 지 금까지 시도되지 않았던 모바일과 IT기기를 최대로 활용한 획기적인 콘셉트의 행사가 될 것”이라 고 귀띔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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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성구 로타리코리아 차기 이사장

윤 이사장은 또 “2016년 서울대회를 앞두고 「로타리코리아」 가 국내 6 만여 회원들을 결집시키고 대외적으로 한국로타리의 위상을 널리 홍보 할 수 있는 효과적인 채널로서 200%의 역할을 할 수 있도록 다각적인

서울대회의 성공여부는 참여 회원 수가 최대 관건입니다.

변화를 시도할 것”이라고 밝혔다. 그동안은 국제로타리와 지구에서 제공되는 정보에 의존하는 수동적인 소식지에 머물렀다면 앞으로는 회원들 속으로 직접 파고 들어가 생생 한 소식과 정보를 담아내는 적극적인 소식지로 변신을 꾀하게 될 것이 라는 설명이다. 윤 이사장은 「로타리코리아」 의 혁신적 편집방향을 「지

1차적으로 한국 회원의 50%인 3만명 참여를 목표로 세웠습니다.

식 · 정보 · 소통 · 변화」 라는 4대 키워드로 요약했다. 「로타리코리아」 는 무엇보다도 회원들이 로타리의 기본강령과 직업봉 사자로서의 올바른 가치관을 정립할 있도록 「지식」 을 전파하는 본연 의 기능에 충실할 것이며, 클럽과 지구에서 이루어지는 양질의 봉사 「정보」 를 회원들에게 제공함으로써 클럽과 클럽, 지구와 지구가 「소통」 을 통한 연대로 보다 확장된 봉사활동을 전개할 수 있도록 가이드를 제 시하는 매체로 거듭날 것이다. 윤 이사장은 이를 위해 “조직 정비, 지면 구성, 온라인 강화 등 필요한 모든 「변화」 를 적극적으로 펼쳐나가겠다”

한국과 인접한 아시아 국가 회원들의 보다 많은 참여를 유도하기 위해 집중적인 홍보를 할 계획입니다.”

고 새로운 각오를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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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nvention

2016 국제로타리 서울대회

한국과 120만 로타리안을 잇는 어울림 대향연

국로타리 6만 회원들의 염원인 「국제로 타리 대회」」 가 드디어 오는 2016년, 대 한민국 서울에서 개최됩니다. 1989년

에 이어 반세기 만에 두 번째로 한국에서 열리는 「 「2016 국제로타리 서울대회」」 는 한국로타리의 높 아진 위상을 전 세계에 알릴 최적의 기회이자, 한 국로타리 역사에 길이 새겨질 중요한 변곡점이 될 것입니다. ‘Connect with SMART KOREA’를 주제로 한 이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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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회는 세계인이 감동하는 한국의 전통문화와 IT 강국으로서의 면모를 보여줄 첨단 스마트 기술을 융합하여 전에 없던 새로운 장르의 로타리 문화를 선보일 전망입니다. 또한 지구상 마지막 분단국가 에서 울려 퍼질 「 「평화의 메시지」」 라는 점에서 대회 개최를 2년 여 앞둔 지금부터 세계적으로 뜨거운 관심의 대상이 되고 있으며, 이를 반영하듯 참석인 원도 역대 국제대회 중 최대 규모인 5만명에 달할 것으로 예상돼 명실상부한 최고의 로타리 축제로 준비되고 있습니다. 전국 17개 지구 로타리안의 특별성금(매년 1만 원)으로 준비되고 있는 「2016 국제로타리 서울 대회」 . 6만 로타리안의 저력을 보여줄 또 하나의 기적에 여러분의 뜨거운 성원을 고대합니다. •지구별 분담금 입금계좌 :

농협(301-0134-1100-81) / 국민(293801-01-195814)


2016 국제로타리 서울대회

전야제 및 식전행사

2016년 5월 27일(金) ∼ 28일(土) 본 행사

2016년 5월 29일(日) ∼ 6월 1일(水) 장소

고양시 KINTEX(한국국제전시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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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예금주 : 2016 국제로타리 서울대회 호스트 조직위원회 (분담금을 계좌로 송금하실 때에는 사무국으로 연락주시기 바랍니다. 클럽명으로 개별 송금 시에는 지구와 클럽명, 해당 회기년도를 알려 주셔야 분담금 납부가 정확히 확인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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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6 국제로타리 서울대회

각 지구별 분담금 납부현황 2011~2012년도

분담금 완납지구 (2014. 5. 23 현재)

2011~2012년도 3620지구 (김영철 총재) 3650지구 (문덕환 총재) 3670지구 (전대영 총재) 3690지구 (안희진 총재) 3700지구 (박명수 총재)

38 2012~2013년도 3650지구 (고성대 총재) 3670지구 (김동길 총재) 3690지구 (신정기 총재) 3700지구 (여성원 총재)

2013~2014년도 3620지구 (정선용 총재) 3670지구 (육화영 총재) 3690지구 (이경하 총재) 3700지구 (이화영 총재)


2016 국제로타리 서울대회

2013~2014년도

2012~2013년도 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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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ctivity

5. 20

호스트 조직위

한국로타리 총재단 정기 총회 「 2016 서울대회」 분담금을 100% 납부한 지구 총재 13명에게 감사패를 수여하고, 그동안의 노고를 격려했다.

한국로타리 총재단 정기 총회

HOC 전체 회의

상임위원회 회의

40홍보위원회 회의

5. 13 제5차 상임위원회 회의

호스트행사위원회 회의

「 각 분과위원회별로 주요 현안을 발표하고, 향후 진행방향에 대한 구체적 의견이 개진됐다.

4. 16 제4차 호스트행사위원회 회의 「 공연 예산, 무료 공연시 부스 활용 방안, 한국의 품격 제고 방안 등이 집중 논의됐다.


2016 국제로타리 서울대회

5. 20 제38차 HOC 전체 회의 「 2014 시드니대회에 대한 중점 모니터링 사항을 점검하고, 세부 참여 일정을 확정했다.

3. 31 제4차 홍보위원회 회의 「 자문위원으로 한국에델만 장성빈 사장을 위촉하고, 응용CI를 적용한 기념품, 명함, 헤드레터지 등을 확정했다.

5. 07 제5차 호스트행사위원회 회의 「 호스트행사위원회 1차 활용 예산안을 확정하고, 기 확정 공연외 다양한 행사 아이디어에 대한 폭넓은 의견수렴이 이뤄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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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타리모먼트  

[로타리모먼트]는 [2016 국제로타리 서울대회 호스트 조직위원회]에서 만드는 온라인 공식 매거진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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