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츄핀 ChutPyin 마을

"그 뒤로 마을사람들은 돌아오지 않았습니다." 로힝야학살보고서 2 01 8. 1 2 .


아시아인권평화디딤돌 아디 ADI는 아시아의 분쟁피해자와 현장활동가들이 지역공동체의 인권과 평화 문제를 스스로 해결할 수 있도록 지원합니다. 2016년 비영리민간단체로 설립되어 인권실태조사와 유엔진정, 피해생존자 심리상담 및 지원, 분쟁마을 지원사업, 현장활동가 발굴과 성장 프로그램, 아시아 분쟁, 난민 연구조사와 아카이브 사업을 등을 하고 있습니다.

미얀마 군인들에게 아들을 잃은 유니스의 어머니가 아들의 사진을 보며 슬퍼하고 있다. / 2018년 5월 31일 방글라데시 © 조진섭

주소: 서울시 동작구 상도로 15길 143번지, 창건빌딩 410호(우)06937 홈페이지: www.adians.net 문의: 02-568-7723 / asiandignity2016@gmail.com 후원: 신한 100-031-396381 아디

본 프로젝트는 광주인권평화재단, 인권재단 사람, 진실의 힘, 한우추모기금의 지원으로 수행되었습니다.


Ⅰ. 요약

4

Ⅰ. 요약

Ⅰ. 요약

5

에는 자녀는 둘 또는 셋 이상의 자녀를 가질 수 없

돈을 내야했다. 그렇지 않으면 보건소에조차 갈 수

다고 기재돼 있다. 로힝야 커플이 결혼허가증 없

없었다. 보건소에서도 로힝야는 치료비를 선불로

이 결혼한 사실이 적발되면 정부는 벌금을 부과하

지급하지 않으면 치료를 받을 수 없었다.

거나 징역형으로 처벌했다. 아디는 미얀마 정부와 유엔을 비롯한 국제사회의 셋째, 정부는 로힝야들의 종교활동을 전면 금지했

협력을 통해 미얀마 군대와 정부에 의한 츄핀 마을

다. 로힝야들은 모스크에서의 기도와 종교행사도

의 로힝야 민간인 집단학살에 대한 철저하고 공정

자유롭게 열지 못했다. 종교교육도 허용되지 않았

한 진상조사에 나설 것을 권고한다. 나아가 면책

다. 어떠한 종교활동이라도 적발되면 정부는 구타

없는 조사를 통해 군통수권자 및 국가자문관인 아

하거나 벌금을 부과하여 처벌했다.

웅산 수치 그리고 작전에 동원된 33 라이트 보병 사단 및 학살에 조력한 라카인 마을행정관 및 주민

넷째, 국경경찰대는 츄핀마을 로힝야 주민들을 정

들의 책임 소재를 밝히고 학살 책임자들을 처벌할

기적으로 강제노동에 동원했다. 어떠한 댓가도 지

것을 권고한다. 이를 위해 필요에 따라 국제형사재

불하지 않았다. 로힝야 주민이 노동의무에 응하지

판소에 본 사건을 회부하거나 특별재판소를 설치

않을 경우 벌금을 내야 했다.

할 것을 권고한다.

2017년 8월27일, 미얀마 군대 33라이트 보병사단

상생활영역에서 츄핀마을의 로힝야 주민들을 체

과 국경경찰 그리고 동원된 라카인은 츄핀마을을

계적으로 차별하고 이들의 기본적 권리를 박탈했

다섯째, 정부는 로힝야들의 시민권을 박탈했다. 부

아디는 피해자 중심의 원칙을 견지한 피해자 구제

포위한 채로 집집마다 수색하며 로힝야 민간인들

다.

모세대와 그 선조대부터 시민권을 향유하던 후손

수단을 제공할 것을 권고한다. 원상회복의 원칙에

도 시민권이 박탈됐다. 그리고 군은 이들을 사실

따라 손해배상을 지급하고 정신적 고통에 대한 배

을 학살했다. 군인들은 집에 숨어있는 민간인을 근거지 조준 사격하여 살해했다. 잔인한 수색을

첫째, 미얀마 정부는 츄핀마을 로힝야 민간인의 이

상 외국인으로 취급하는 국적확인카드에 등록하

상과 심리지원 등 종합적으로 지원할 것을 촉구한

피해 산과 이웃마을로 피신가던 많은 주민들은 기

동의 자유를 심각하게 제약했다. 정부는 마을행정

기를 종용했다. 여섯째, 정부는 2015년 총선부터

다. 아디는 미얀마 정부가 입법, 행정적 수단을 강

관총의 무차별 난사로 살해됐다. 총에 부상을 입

관과 국경경찰대의 허가없이는 로힝야 민간인이

는 로힝야가 그동안 행사했던 투표권도 발탈했다.

구하여 로힝야에 대한 차별적 제도와 관행을 철폐

은 사람은 칼로 살육을 당했다. 수백명이 체포되

이웃마을과 상위 행정소재지 등에 다니는 것을 불

어 학교에 구금되었다. 50여명은 행방불명되었

법화했다. 로힝야 민간인은 서식4호와 상당한 액

여섯째, 학교는 로힝야 학생을 부당하게 대우하거

다. 자체 조사결과 무고한 츄핀마을 주민 380여명

수의 수수료를 납부해야 했다. 타운십과 시트웨로

나 라카인 학생과 비교할 때 차별했다. 그래서 정

이 살해된 것으로 추정된다. 많은 여성이 자신들

여행할 수 있었다는 증언자는 없었다. 뿐만 아니

규교육에 이탈율이 높았다. 또 로힝야는 직업선택

마지막으로 아디는 미얀마 정부가 로힝야에 대한

의 집과 야외 그리고 학교에서 강간을 당했다. 총

라 정부는 2016년부터 츄핀마을 로힝야 민간인들

에 차별을 받았다. 자격요건을 충족한 지원자가

국적확인카드 프로그램을 중지하고 이들의 시민

상을 입은 생존자들과 강간생존자들은 상상할 수

이 마을 밖을 나가는 것조차 금지했다. 추수를 할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로힝야가 공직에 채용된 사

권 회복을 보장할 것을 권고한다. 아울러 미얀마

없는 정신적 고통을 받고 있다. 증언에 따르면, 당

수도 없었고 시장에 갈수도 없었다.

례는 전무했다. 또 정부는 로힝야의 토지를 수탈

정부와 국제사회는 로힝야 송환논의에서 로힝야

하여 라카인에게 배분함으로써 생존의 근간을 흔

당사자들의 참여를 적극 보장할 것을 권고한다.

시 츄핀마을과 그 인근에 ARSA 또는 유사한 무장 세력의 활동 또는 출현의 정보는 없었다.

둘째, 정부는 로힝야들의 결혼과 자녀계획에도 제

할 것을 권고한다. 이를 위해 혐오발언을 처벌하고

들었다.

한을 두었다. 로힝야들은 수수료를 납부하고 군의 츄핀마을 로힝야 주민들의 삶은 훨씬 이전부터 파

결혼허가증을 받아야 결혼할 수 있었다. 증언에

일곱째, 의료서비스에의 접근성이 취약했다. 치료

괴됐다. 미얀마 정부는 2012년부터 거의 모든 일

따르면 정부는 로힝야에게 발급하는 결혼허가증

를 위해서는 여행허가를 받고 검문소에서 추가로

대시민 교육을 확대해야 한다.


Contents 4

Ⅰ. 요약

8

Ⅱ. 배경

8

Ⅲ. 조사방법 A. 인터뷰 B. 기초조사 C. 한계

10

Ⅳ. 로힝야족에 대한 체계적인 파괴: 2012-2016 A. 교육기회의 박탈 B. 직업선택의 제약 C. 허가제 결혼과 출산 제한 D. 종교의 자유 부인 E. 이동의 자유의 심각한 제한 F. 시민권의 박탈 G. 투표권의 박탈 H. 의료서비스 접근권의 제약 I. 강제노동에의 일상적 노출

14

Ⅴ. 2017 학살 A. 학살전 상황 B. 8월 27일 이전 C. 마을 봉쇄 D. 마을 수색 E. 불법체포 F. 무차별 난사 G. 방화 H. 집단살인 I. 부상 J. 자의적 구금 및 강제실종 K. 강간 L. 기초조사 결과 M. 가해자

28

Ⅵ. 결론과 권고

31

Ⅶ. 부록

37

Ⅷ. 감사의 말


Ⅱ. 배경

8

Ⅲ. 조사방법

9

Ⅱ. 배경 2017년 8월25일, 아라칸로힝야구원군(ARSA)이 경

생존자의 개별 증언을 인용했다.

찰초소 및 군영 30여곳을 습격했다고 알려진 직후 미얀마 군부는 토벌작전을 수행했다.1 그러나 대 테러 작전이라던 미얀마 군부의 대응은 민간인에

아디는 츄핀마을에서 발생한 대량학살의 실제 사

대한 대량학살, 강간, 방화, 재산약탈 등으로 드러

파악하고 증거 수집 및 보존을 위해 방글라데시 난

났고, 80만명의 로힝야 사람들은 안전한 피난처를

민캠프에 거주하는 781명을 대상으로 기초조사를

2

망자 수를 비롯한 학살의 진상을 보다 종합적으로

수행했고, 40명의 생존자들과 심층 인터뷰를 진행

찾기 위해 방글라데시로 피난했다.

했다. 국제인권단체와 언론은 츄핀마을의 학살을 비교 적 잘 기록했다. 월스트리트저널 기사는 츄핀마을

본 보고서는 향후 로힝야 집단학살의 진상규명과

3

생존자들의 인터뷰를 통해 학살에 대해 보도했다. 인권을위한의사들 보고서는 22명의 츄핀 생존자

책임자 처벌, 그리고 피해자 구제를 위한 과도기

들 총상에 대한 법의학적 분석을 통해 츄핀마을에

판에 증거로 제출할 개별 생존피해자 및 목격자들

서 발생한 학살이 미얀마 정부의 광범위하고 체계

의 증언을 녹취와 자술서(affidavit)의 형태로 남기

4

적인 패턴의 공격의 전형임을 밝혔다. 그 외 국 제인권단체는 다수의 보고서에서 츄핀마을 학살

정의(transitional justice)의 실현 단계에서 형사재

고, 관련 증거를 수집, 보존하는 아디의 기록사업 의 결과를 바탕으로 작성됐다.

Ⅲ. 조사방법 A. 인터뷰

치정보를 확인하기 위해 지도를 활용하여 GPS정보

문하고 이 중 뚤라똘리마을, 인딘마을, 츄핀마을,

활용에 대해 구두와 서면으로 동의했다. 아디는 특

도 수집했다. 인터뷰 중 특정사건에 대해 인터뷰 대

쿠탠꽉마을, 돈백마을의 총5개 마을 출신의 난민

이 중 여성 17명, 남성 23이었다. 18세 미만 아동이

히 인터뷰 대상자 40명으로부터 위임장(power of

상자가 보유한 영상 및 사진도 수집했다.

가족만을 대상으로 기초조사를 진행했다.

3명, 20대가 17명, 30대가 6명, 40대 2명, 50대 6명,

attorney)을 받았다. 본 보고서에서는 피해자의 신변보호차원에서 이름

기초조사는 텐트거주 가족대표에게 출신마을과

인터뷰는 크게 세 파트로 이뤄졌다. 조사자는 기초

은 가명으로 처리하고 얼굴의 사진도 흐릿하게 처리

가족, 가족내 피해규모, 사망자 이름 등을 묻고 기

피해 생존자는 10명(25%)이며, 총상을 입은 생존자

정보, 2012~2016년까지의 차별 경험, 그리고 2017

했다. 다만 사망자의 이름은 실명이다.

록하고 캠프에서 발급한 신분증 앞뒤면을 사진을

는 17명(43%)이다. 40명 중 34명(85%)이 츄핀마을

년 사건에 대한 100여개 이상의 질문을 순차적으로

의 남쪽에 위치한 아테난야(At Htet Nan Yar) 마을

질문했다. 인터뷰는 훈련된 조사자의 주도로 로힝

로 피신했으며 5명(13%)이 츄핀마을의 서쪽에 위치

야 언어로 진행됐고, 평균 1시간 30분정도 소요됐다.

한 산으로, 나머지 2명은 츄핀마을의 북쪽으로 피신

강간피해자의 경우 여성 조사자가 인터뷰를 진행했

10명의 조사자가 2018년 3월부터 3개월동안 방글

갔다.

다. 인터뷰는 캠프내 대상자 텐트에서 진행됐다.

라데시 로힝야 난민캠프에 머물고 있는 로힝야 난

아디는 40명을 대상으로 심층인터뷰를 진행했다.

60대 2명이었다. 인터뷰에 응한 40명 중 피해생존 자는 28명, 사건 목격자가 12명이었다. 이 중 강간

찍어 보관했다. 특히 신분증 뒤면에는 미얀마 출

B. 기초조사 민을 대상으로 기초조사를 진행했다. 대상은 캠프

조사자는 아디에 대해 소개하고 인터뷰 목적을 설 명했다. 인터뷰 대상자는 이를 이해하고 그 내용의

모든 인터뷰 내용은 증거로 남기기 위해 대상자의 동의를 얻어 녹취했다. 사건에 대한 보다 정확한 위

1부터 캠프13까지 총 13개 캠프의 588,800명이었 5

다.

조사자들은 13개 캠프내 모든 텐트를 개별방

신마을이 기재되어 있어 인터뷰 대상자의 출신 마 을을 재차 확인할 수 있었다.

C. 한계 본 보고서는 다음과 같은 한계가 있다. 첫째, 인터뷰 는 사건 발생 후 9개월~12개월이 지난 뒤에 진행되


Ⅳ. 로힝야족에 대한 체계적인 파괴: 2012-2016

10

었다. 인터뷰 대상자들은 정도의 차이가 있을 뿐 모

캠프13을 제외한 캠프14, 캠프15, 캠프16 그리고 테

두 트라우마에 시달리거나, 진술에 있어서 기억의 왜

크나프 지역내 난민, 즉 115,800명 이상이 조사대상

곡(recall bias)이 존재할 수 있다.

에서 제외된 한계가 있다.6 뿐만 아니라 조사대상 에 포함되었을 지라도 방문기초조사에서 누락된 뚤

둘째, 인터뷰를 진행한 방글라데시 난민캠프 내 텐트

라똘리 가족이 있을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 예컨

는 비밀(privacy)의 보장이 불가능한 구조였다. 텐

대, 방문 당시 가족원이 텐트에 부재한 경우 재방문

트 밀집도가 높고 방음이 전혀 이뤄지지 않았다. 따

을 통한 조사는 이뤄지지 않았다. 그 인원이 얼마나

라서 강간피해자를 비롯한 인터뷰 대상자는 특정 질

되는지 확인되지 않는다.

문에 대해 심리적 저항감을 느끼고 제대로 답변하지 넷째, 이번 조사들은 생존 피해 가족의 증언에 기초

못한 경우도 배제할 수 없다.

한 집계로서 미얀마 당국의 공식적 입장 및 현장증 셋째, 기초조사는 츄핀 마을 출신의 모든 가족을 포

거수집을 통해 확인하지 못한 한계가 있다.

함하지 못한 한계가 있다. 조사대상이었던 캠프1~

Ⅳ. 로힝야족에 대한 체계적인 파괴: 2012-2016

11

학입학 자격시험(matriculation)에 응시하는 것도 25

이는 결혼허가증에도 언급되어 있다.42

허용되지 않았다.

“두 번째 아내를 들이거나 둘 이상의 아이를

B. 직업선택의 제약

가져서는 안됩니다. 이를 어길 시, 우리는 당신

증언에 따르면 로힝야는 교육수준이 높을지라도 고

에게 조치를 취할 것입니다.”43

용의 기회를 얻지 못했다.26 한 증언자는 공무원직 에 지원했으나 정부관계자가 “여기에 당신을 위한

“우리는 셋 이상의 자녀를 낳지 않겠다는 서약

일은 없습니다.” 라고 거절했다고 증언했다.27

“로

힝야 중에서 정부공직에 있는 자는 하나도 없다.”28 정부는 로힝야 주민들의 생산수단인 토지를 빼앗아 경제적인 어려움이 가중됐다.29

정부는 빼앗은 토

지를 라카인 주민들에게 나눠줬다.30 “2000년에 정부는 미얀마 중부에서 수백가구 의 사람들을 데려다 제 아버지로부터 빼앗은 토

Ⅳ. 로힝야족에 대한 체계적인 파괴: 2012-2016

결혼하지 말 것에 대한 서약서에 서명을 받았다.41

지를 이들에게 배분해 주었습니다. 정부는 가족 당 다섯 카니의 토지를 배당했습니다.”31

서를 제출해야 했습니다.”44 결혼허가증 없이 결혼하거나 둘 또는 셋 이상의 자 녀를 낳을 경우, 정부는 벌금을 부과하거나 해당 주민을 감옥에 보냈다.45 벌금은 해당 주민의 경 제적 부담능력에 따라 200,000~700,000짯 수준 이었다.46

한 증언자는 “바루 미아(45)는 허가없 이 결혼했다는 이유로 120만짯의 벌금을 받았어 요. 카말(40)도 허가없이 결혼했다는 이유로 7개 월간 징역살이를 했어요.”47 라고 증언했다.

마을 행정관은 로힝야 주민이 추가로 낳은 자녀 한 명당 10,000~20,000짯의 벌금을 징수하고 그 자

A. 교육의 기회 박탈 츄핀마을 로힝야 주민들은 정규교육에서 배제됐

카인 학생과 비교할 때 로힝야 학생은 잘 가르치 16

C. 허가제 결혼과 출산 제한

녀에 대해 가족부에 등록했다.48

로힝야는 결혼에 대해 정부의 허가를 받아야 했고

D. 종교의 자유 부인

다. 인터뷰 대상자 40명 중 31명(77.5%)은 정규교

지 않았다.

교사들은 로힝야 학생들에게 수업을

정부는 둘 내지 셋 이상의 자녀를 낳는 것도 허용

육을 전혀 받지 못했다.7 정규교육을 받은 9명 중 5명은 모두 초등교육을 다 마치지 못한 채 그만두

진행하지 않고 방치했다는 증언이 있다.17 학생들 사이의 다툼을 해결하는 과정에서 학교 교사는 로

하지 않았다. 결혼하고자 하는 로힝야는 우선 마

로힝야는 종교의 자유에 심각한 제약을 받았다.

을 행정관에게 25,000~50,000짯을 지불하고 추

2012년 이후로 로힝야의 모스크 사용은 금지되

었고, 인터뷰 대상자 중 최고 학력은 10학년을 마

힝야 학생은 처벌하였지만 라카인 학생은 처벌하

친 한 명 뿐이었다.9

지 않았다.18

천서를 받아야 했다.32 그리고 나사카(Na Sa Ka, 지금의 국경경찰대=Border Guard Police)로부

었다.49 자유로운 기도도 금지되었다. 일상적 인 기도와 주마(금요일 예배)기도 및 설교, 쿠반

야 학생은 교실 바닥에 앉게 했다는 증언도 있다.19 학교는 로힝야 학생들에게 로힝야어로 진행하는

터 결혼허가증(La Tei Guwang)을 받아야 했다.33

(Kurban), 이드(축제, Eid) 기도 등도 허용되지 않

신랑과 신부는 모두 제디핀(Zedi Pyin) 또는 걍타

았다.50 로힝야들은 5명 이상 모이는 것이 금지되

20

수업을 제공하지 않았다.

웅(Kyang Taung)에 있는 나사카 캠프에 출석하

었다.51

비밀스럽게 기도를 하곤 했다.52 이마저 발각되면

고 로힝야 학생들이 이해하지 못했지만 방치했다.21

여 사진을 찍고 결혼허가증을 발급받아야 했다.34 증언에 따르면 허가증은 보유한 재산정도에 따

8

10

츄핀마을에는 초등학교가 두 곳이다. 하나는 라 카인마을에 있는 공립학교로 2012년까지 라카인과 로힝야 학생들이 같이 다니던 학교이다.11

그러나 2012년 이후 로힝야 학생들이 이곳 학교에 갈 수

교사는 라카인 학생은 의자에, 로힝

수업에서 교사는 버마 어를 사용해야 하지만 대부분 라카인어를 사용했

라 50,000~200,000짯을 지불해야 발급 받았는

군인들은 참석자들을 구타했다.53 목톱(Moktob) 또는 마드레사(Madrasah)에서 아이들 교육도 금

기부받은 학습용품을 배분할 때에도 로힝야 학생

데, 상류층은 20만짯 이상,35 중산층은 10만~20만

지되었다.54

들은 충분히 받지 못했다.22

짯,36 서민층은 5만짯37 을 지불했다.38

없게 되자 유엔난민기구가 로힝야 마을에 학교를 12

기부했다.

이곳에서는 로힝야 학생들이 5학년까

지 다닐 수 있었고,13 교사 중에 무슬림도 있었으 14

며,

15

학교에서 로힝야 언어를 사용할 수 있었다.

로힝야 주민들은 1~2명의 망을 세워두고

또 교사와 라카인 학 생들은 로힝야 학생들을 혐오의 의미가 담긴 칼라 23

(Kala)라고 불렀다. 로힝야 학생들은 학교에서 일상적으로 차별받았

라카인 사람들과 경찰들이 여학생들을 괴롭혀서 학교를 다니지 못한 경우도

다. 증언에 따르면 라카인 마을의 공립학교에서 라

보고됐다.

24

증언에 따르면 로힝야 학생들은 대

로힝야들은 모스크와 이슬람학교 건물을 새로 짓 결혼허가증을 발급받는 과정에서 나사카 책임자 39

40

는 로힝야에게 둘 또는 셋 이상의 자녀를 낳 지 말 것과 첫 와이프가 살아있는 한 다른 여성과

거나 보수하는 것도 금지되었다. 55

이드울아자 하(Eid-Ull-Azaha) 기간에도 마을 행정관에게 10,000~50,000짯을 지불해야만 허가를 받아 소


Ⅳ. 로힝야족에 대한 체계적인 파괴: 2012-2016

12

를 도축할 수 있었고 이 때에도 4.259 kg의 고 기를 별도로 상납해야 했다. 56

이를 어길 경우

F. 시민권의 박탈

Ⅳ. 로힝야족에 대한 체계적인 파괴: 2012-2016

또 증언에 따르면, 제다핀에 있는 클리닉은 치료

300,000~400,000짯이 벌금으로 부과 되었다.57 라 마단 기간의 야간에 집에 불을 밝히는 것도 금지되었

미얀마 정부는 로힝야의 시민권을 박탈했다. 조부

비 선납하지 않으면 로힝야 환자의 치료를 거부했

모가 모두 미얀마 시민권자였는데 본인은 시민권

다.82

다.58 확성기를 이용하여 기도시간을 알리는 방송도

을 부여받지 못했다는 증언이 있다.70 로힝야에 게 흰색의 임시카드(Yiayi Caffra)를 발급되었다가

를 지불해야 했다는 증언이 있다.83 라카인 환자 는 500짯을, 로힝야 환자는 3000~9000짯을 지불

다시 회수되었고71 이후 수령확인(receipt) 카드가

해야 했다는 증언이 있다.84

허용되지 않았다.59 2012년 전에는 10,000~20,000 짯의 비용을 국경경찰과 군대에 지불하고 허가를 받 아 기도시간을 알리는 방송을 할 수 있었으나 2012년

발급됐다.

또 증언에 따르면 2012년부터 클리닉에서 적절한 증언자 전원은 국적확인카드에 등록하지 않았

E. 이동의 자유의 심각한 제한

다.73 이들은 로힝야들은 국적확인카드가 본인들 을 외국인으로 기재하는 그래서 스스로 미얀마 시

정부는 로힝야들의 이동의 자유를 심각하게 제약

민이 아닌 것을 인정하게 하는 프로세스라고 주장

했다. 2016년전에는 이웃마을에 허가를 받아 다 61

닐수 있었으나, 2016년 이후 완전히 금지되었다. 첫째, 이웃마을에 다녀오기 위해서는 여행허가서 (Taw Ken Za 또는 Form No.4)를 받아야 하고,

1,000~2,000짯을 마을 행정관에게 지불해야 했 최대 14일간 여행허가를 받는데 5,000짯을

했다.74 한 증언자는 “우리는 국적확인카드를 가 지고 여행할 수 없었기 때문에 이를 받아들이지 않 았습니다. 국적확인카드에는 이 카드의 소유자는 미얀마 시민이 아니라고 되어있습니다.”라고 증언

지 않았다는 이유로요.”라고 증언했다.76

방글라데시에 갔다고 간주하고 가족에게 100,000

G. 투표권의 박탈

둘째, 디스트릭트(District)를 여행하기 위해 서는 로힝야는 서식 4호(Form No.4)를 작성

군대는 로힝야 주민들을 강제노동에 동원했다. 89 라카인 마을의 집을 짓거나,90 도로 포장 공사,91 국 경경찰대 캠프와 제다핀 캠프 등의 군영내 청소92 등에 동원되었다. 군대는 한주에 2~3회 또는 한달

언이 있다.86

그래서 심각한 질병 환자들은 방글 라데시로 밀입국하여 치료를 받고 돌아오는 사례 이 경우 국경

에서 적발되면 3년형의 징역형을 받아야 했다.88

다.93 1~2개월 동안 동원된 사례도 발견된다.94 노 동에 대한 댓가도 지급된 사례가 없고,95 지정된 날 에 노동력을 제공하지 못할 경우 군인들은 로힝야 주민을 체포해 구타96 하거나 최대 5,000~20,000짯 의 벌금을 부과했다.97 군대는 로힝야 주민들에게 반군 공격에 대비해 야간 경계 근무를 서게 했다.98 때때로 군인들은 한밤중에 경계근무를 서던 로힝야 주민을 구타하기도 했다.99

했다.75 국적확인카드 등록을 거부한 한 증언자는 “군인들이 저를 구타했습니다. 그 카드에 등록하

지불해야 했다.63 허가기간을 초과하여 마을에 돌 아오지 않을 경우, 마을 행정관은 로힝야 당사자가 짯을 벌금으로 부과했다.64

치료를 받았는지에 대한 의문이 존재했다.85 잘못 된 치료와 처방을 받고 로힝야 환자가 죽었다는 증

도 종종 있었다는 증언이 있었다.87

I. 강제노동에의 일상적 노출

에 2~5회 가량 로힝야 주민들을 순서를 정해 동원했

72

이후부터는 원천적으로 금지되었다.60

다.62

치료비는 라카인 환자보다 더 비싼 치료비

13

로힝야에게 2015년 총선부터는 투표권이 부인되었 다.77 그 전까지는 로힝야에게 투표권이 부여되었다.78

해서 마을행정관과 국경경찰서에 제출하고 40,000~50,000 짯을 지급해야 했다.65 그러나 다수의 증언자들은 지난 10년간 디스트릭트로 다

H. 의료서비스 접근권의 제약

시민권 신분증

로힝야들은 보건소로 가는 길에 검문소를 통과하

66

닐 수 없었다.

지 못하거나 보건소에 도착하더라도 치료가 거절 셋째, 타운쉽과 주도인 씨트웨(Sittwe)로의 여행은 로힝야에게 허가되지 않았다. 서식 4호가 발행되 지 않았다.67 이와 같은 절차를 어기고 여행한 사 실이 적발될 때에는 해당 당사자는 구금되고 비용 을 지불해야 했다.68 구금될 때에는 구타 등의 가 69

혹행위가 뒤따랐다.

되는 등의 차별이 있었다.79 증언에 따르면, 2016 년부터는 이웃마을로의 이동이 금지되었기 때문 에 보건소 치료를 받을 수 없었다.80 “우리는 정부가 운영하는 보건소에 갈 수 없었 습니다. 제 며느리 쇼피카가 당뇨병을 앓았습 니다. 그래서 보건소에 가려고 하는데 군대와 국경경찰대가 검문소를 통과시켜 주지 않았습 니다. 그래서 치료를 받지 못하고 집으로 돌아 와야 했습니다.”81

임시 신분증


Ⅴ. 2017 학살

14

Ⅴ. 2017 학살 A. 학살전 상황

을 중간에 자리한 샤이르 모하마드의 딸 라지아의 집에서 소 한마리를 빼앗아 갔다. 8명 중 4명은 돌

2016년 10월 사건 이후, 마을 주민들은 집밖으로 돌아다니는 것조차 허용되지 않았다.100

군대와 국경경찰대는 츄핀의 로힝야 주민들이 시장가는 것도, 논밭에서 경작 또는 추수도, 가축을 돌보는

일도 모두 금지했다.101 마을행정관은 확성기로 1 명을 지명하여 마을의 집집마다 돌아다니며 아무 도 마을밖으로 돌아다니면 안된다고 단속하게 했 고 5명이 한 장소에 함께 모이는 것도 금지했다.102 주민들은 이동한 것이 발각되면 구타당하고 벌금을 내야 했다.103 잡혀서 정신을 잃을 때까지 구타당하 기 일수였다.104 예컨대, 2016년 10월이후 어느 날 마을사람 다섯 명이 산속으로 땔감구하러 다녀왔는 데 라카인 사람들이 이를 목격하고 신고했다.105 마 을 행정관이 소환하여 반군에게 음식 제공하기 위

아가고 나머지 4명은 마을에 남아 있었다. 라지아 는 이웃들이 들을 수 있을 정도로 크게 울며 소리 질렀다.112 일부는 마을주민들이 돈을 모아서 소를 사줄테니 라지아에게 울지 말라고 진정시켰다.113 군인이 마을로 들어오면 마을 남성들은 산으로 피 신하는 것이 일상이었다.114 8월27일 오전에도 마 을의 일부 남성들은 산으로 피신했다가 다시 되돌 아왔다.115

일부는 집 근처의 허름한 집이나 연못

등에 숨어 있으며 상황을 주시하였다.116 마을에 남아 있던 병사들은 총117 또는 긴 칼118 을 들고 도망간 두 남성을 보았냐고 소리지리고 다니 며 마을을 돌아다니다 라카인 마을쪽으로 돌아갔 다.

해 간 것 아니냐 또는 무기를 반입하기 위해 간 것 아닌지 취조하였다.106 그 과정에서 이들은 심각하 게 고문을 당했다.107 피해자 로비스 아하메드, 모 하메드 로픽, 딜 모하메, 그리고 모하메드 이브라힘 등은 각자 200,000짯을 지불하고서야 풀려날 수 있었다.108 어떤 경우에는 300,000~400,000짯 벌 금내고 풀려나기도 했다.109 2016년 사건이후, 국경경찰과 군은 츄핀마을 내 모 든 집주변의 담을 철거했다.110

증언자에 따르면 111

사전발생 10일~2달사이에 병력이 보강되었다.

C. 마을 봉쇄 오후 기도시간 직후, 즉 오후 1시30분~2시경 군 인들은 마을을 포위하고 마을 안으로 진입했다.119 인터뷰 응답자 40명 전원(100%)이 군인들이 마을 을 포위했다고 증언했다. 500여명120 으로 추정되 는 군경은 라카인마을과 인접해 있는 로힝야 마을 북쪽을 먼저 포위하고, 산과 인접해 있는 마을 서 쪽의 도로를 점령했다.121 또 군인들은 마을 동쪽 의 도로와 그 인근의 남쪽 도로 일부까지 에워쌌 다.122

B. 8월27일 오전 8월27일 아침식사를 마친 이후, 군인 6~8명이 라 카인 마을에서 로힝야 마을로 들어왔다. 이윽고 마

남쪽 일부를 제외한 로힝야마을은 완전히

봉쇄됐다.123

Ⅴ. 2017 학살

15


Ⅴ. 2017 학살

16

D. 마을 수색

E. 불법 체포

일부 병력이 마을을 봉쇄하고 있는 가운데 다른 124

군인들은 마을에 진입했다.

집집마다 수색했

다.125 군인들은 미처 도주하지 못하고 집안에 머 물고 있던 로힝야 주민들에게 밖으로 나오지 않으 126

면 불태우겠다고 경고했다.

군인들은 집밖으로 127

나온 주민들을 체포하고 포승줄로 묶었다.

군인들이 수색하고 총을 발포하기 시작했을 때 주 137

민들은 집을 벗어나 도주하기 시작했다.

일부 는 집 근처 허름한 건물에 숨어들거나 연못과 수풀 138

등에 숨었고 군인들의 만행을 목격했다.

집이 불타는 과정에서 발생한 연기 때문에 이들도 발각 139

되지 않았다.

““집에 불을 지를 것이다. 나와라.”라고 군인

“처음에 저는 풀숲에 숨어있었습니다. 군인들

들이 말했습니다. 사람들이 나오자, 군인들은

이 무차별 난사를 시작하자, 저는 연못 속에 들

128

어가 숨었습니다. 연못에 숨어있을 때, 옆에 있

이들을 밧줄로 포박했습니다.”

던 부상당한 많은 마을 사람들이 제 아들이 총

Ⅴ. 2017 학살

17

“내 아들들 중 하나는 연못에 숨었으나 남편은

“저는 기관총을 보았습니다. 그건 제가 숨어

집 안에 머물렀습니다. 군인들이 그를 발견했

있던 남쪽에 배치되어 있었습니다. 그들은 저

기 때문에 그는 도망칠 수 없었습니다. 그들은

를 보지 못 했습니다.”155

그를 포박하고 군캠프로 데려갔습니다. 군인 한 명이 제게 두 아이들을 데리고 자신에게 오

“기관총 한 대가 연못 둑의 북서쪽 부분에 위

라고 명령했습니다. 그가 내 아이들을 데려가

치해있었습니다. 다른 한 대는 마을의 동쪽 중

고 나는 교차로로 끌려갔습니다. 그 곳에 앉아

앙에, 또 다른 한 대는 마을 북쪽의 길 위에 있

있는 동안, 저는 군인들이 총칼로 수많은 사람

었습니다.”156

146

들을 죽이는 것을 보았습니다.”

“저는 남쪽 마을의 연못 둑에 두 대의 기관총

F. 무차별 난사

이 배치된 것을 목격했습니다. 한 대는 연못의 습니다.”157

북서쪽 부분, 다른 한 대는 북동쪽 부분에 있었

“마을을 포위하고 난 후, 군인들이 우리에게

상을 입었다고 전해주었습니다. 저는 군인들

인터뷰 대상자 40명에 따르면, 군인들은 마을을

집에서 나오라고 소리쳤습니다. 몇 명이 나오

이 제 집에서 제아들에게 밖으로 나오라고 소

벗어나 피신하려던 주민들에게 무차별적으로 발

자 군인들이 이들을 체포하고 집들에 불을 질

리치는 것을 들었습니다. 제 아들이 밖으로 나

포했다. 마을 외곽에 대기하던 군인들은 주로 서

목격자들은 에이케이47(AK-47), 브랜드 소총

렀습니다. 군인들은 사람들에게 총을 겨누기

오자, 군인들이 그를 몽둥이로 때려 죽였습니

쪽 산과 남쪽 이웃마을쪽으로 도주하는 주민들을

(Brand Gun), 론처(Launcher), 기관총 등이 사용

도 했습니다. 많은 남성, 여성, 아이들이 살해 129

다. 저는 다음날 확인 차 집에 들렀을 때, 불에

되었다고 기억한다.158

147

향해 발포했다.

됐습니다.”

발포는 오후2시부터 6시

까지 4시간 가량 지속되었다.159

140

타있는 아들의 시체를 발견했습니다.”

“마을을 포위한 군대가 그 곳에서 도망치려고 군인들의 명령에 불응한 일부 주민들은 들이닥친 군인들에게 끌려나갔다.130 때로는 군인들은 아 무도 나오지 않은 집에 곧바도 무차별 사격을 가 131

했다.

132

종교시설도 예외는 아니었다. 133

은 쳐들어가 부수고

군인들

모스크를 향해 총을 발사했

하는 사람들에게 발포했습니다.”148

G. 방화

“군인들이 불 태울 집들에 접근했습니다. 저

“마을을 둘러싸고 있던 군인들이 그 곳에서 도

군인들은 무차별 난사와 동시에 마을의 거의 모든

와 제 가족들은 집밖으로 나왔습니다. 오후 2

망치려고 뛰어가는 사람들에게 발포하고 있었

집에 불을 질렀다.160

141

일부는 도주 중에 체포되었다.

시 반이었습니다. 저희는 몸을 반쯤 숙인 채로

149

습니다.”

인터뷰 응답자 36명(90%) 가 군인에 의한 방화를 목격했다. 태워진 집은

희는 시소나무 아래에 앉았습니다. 저희는 그

인터뷰 응답자 34명(85%)은 군인들이 기관총을

200~400여채.161 생존자들은 방화가 오후 2시 또 는 2시30분부터 시작되었다고 일관되게 증언했

“군인들이 내 집을 에워싸고 여성들에게 집밖

곳에서 숲 속으로 진입할 수 있을 거라고 생각

발포했다고 증언했다. 증언자들은 마을의 북쪽,

다.162

으로 나오라고 말했습니다. 그들은 “집을 태

했으나 숲 쪽에 많은 군인들이 있다는 것을 알

남쪽, 서쪽 방향의 3~5곳에서 기관총 발포소리를

울 것이다. 집안에 여성이 있다면, 밖으로 나와

게 되었습니다. 2~3분 뒤에 군인들이 저희를

라.”라고 말했습니다. 좀 있다가 그들은 다섯

포위했습니다. 아이들을 포함하여 우리는 100

들었다.150 증언에 따르면 기관총은 남쪽 연못뚝 에 1개 내지 2개가 설치되었고 마을 북서쪽 코너에

붕에 기름을 부어서 방화했다.163 27일 오후부터 불타기 시작한 집들은 다음날까지도 계속해서 태

차례 총격을 가하고 집에 불을 질렀습니다.”135

명이 넘었습니다. 군인들이 무리에서 남성들을

1개, 서쪽도로변과 북동쪽코너에 각각 1개가 설치

다.134

걸어갔습니다. 마을의 북동쪽에 다다르자, 저

142

따로 분리했습니다” “마을에 진입한 군인들이 여성들에게 집 밖으 로 나오라고 소리쳤습니다. 그 소리를 직접 들 었습니다. 저는 당시 우리 집 안에 있었습니다.

143

체포된 주민 중에는 여성과 아동이 많았다. 군인 들은 마을 곳곳에서 체포한 사람들은 마을의 서쪽

군인들은 론처(launcher)를 발포하거나 지

워졌다.164

되었다.151 남쪽 연못 뚝 당시 셀수없는 총탄이 로 힝야 주민들 머리위로 발사되어 이들은 이동할 수

“저는 모스크에서 나와 어느 집 안으로 숨어들

없었고 논바닥에 숨어있거나,152 기어서 이동할 수

습니다. 그 곳에 숨어있다가 들녘으로 도망을

153

었습니다. 그 집은 모스크의 서쪽 방향에 있었 나왔을 때 저는 총알에 맞았습니다.”165

밖에 없었다.

144

그런데 우리 가족들은 집 밖으로 나오지 않았

과 동쪽의 교차로 부근과 논 부근에 모이게 했다.

고, 군인들이 무차별하게 총기를 난사했습니

증언에 따르면, 체포한 주민들을 사미 울라의 집으

“두 대의 기관총이 마을 남쪽의 연못 둑에 배

“군인들은 우리 집 지붕에 기름을 부어 불태웠

로 데려가 대기시킨 후 군인들은 이들을 포승하고

치되어 있었습니다. 다른 한 대는 마을 북쪽

습니다. 저는 그들이 불을 지를 당시 집 안에

136

다. 빗방울이 쏟아지는 것 같았습니다.”

145

라카인마을 위치한 군영(학교부지)에 데려갔다.

154

에, 또 다른 한 대는 동쪽에 있었습니다.”

있었습니다.”166


Ⅴ. 2017 학살

18

“먼저, 그 군인은 제 가게에 들어와 식료품 두

니는 유니스의 장례를 위해 산쪽으로 이동 중에 군

자루를 가져갔습니다. 그 후, 그들은 가게와 우

인들은 시신을 탈취하여 불에 태웠다.174

리 집 앞면에 불을 질렀습니다. 저는 집 후문

유니스의 어머니는 까맣게 탄 시신을 확인했다.175

Ⅴ. 2017 학살

19

다음날

으로 빠져나와 마당에 있는 연못에 바로 엎드 렸습니다. 그 연못에는 저와 남동생이 있었습

군인들은 집집마다 수색하는 과정에서 체포하여

니다. 그 곳에 오후 6시까지 머물렀습니다.”167

구금한 로힝야 민간인을 이유없이 총기로 살해했 다.176

H. 집단 살인

“먼저 우리는 교차로로 끌려갔습니다. 우리 그룹에 라훌 카림과 딜 모하메드가 있었는데,

군인들은 집집마다 수색하는 과정에서 눈에 띠는

군인들이 이들을 쏴죽였습니다. 일부 여성은

로힝야 주민들은 무작위로 발포하였고, 이로 인해

학교로, 일부 여성은 마을의 남쪽으로 끌려갔

많은 주민이 사망했다.168 집안에 숨어있던 사람 들은 밖으로 끌어내 죽이거나 그 자리에서 쏴 죽

습니다.”177

이기도 했다.169

이들은 무장하지 않은 민간인들

“군인 한 명이 제게 두 아이들을 데리고 자신

예컨대, 모하메드 유니스(23)는 친구들 이었다. 과 스낵을 먹고 있는데 갑자기 군인들이 들이닥쳤

에게 오라고 명령했습니다. 그가 제 아이들을

다.171

에 앉아있는 동안, 저는 군인들이 총칼로 수많

170

다른 친구들은 도망쳤지만 본인은 집 닭장

에 숨어 있었다.172 손전등을 켜면서까지 수색을 벌인 군인이 그를 끌고 밖으로 나와 그 자리에서 총을 쏴 죽였다.173 한참 뒤 이웃집 청년들과 어머

데려가고 저는 교차로로 끌려갔습니다. 그 곳 은 사람들을 죽이는 것을 보았습니다.”178 군인들의 수색을 피해 피신가던 많은 민간인들도

유니스 사진 ©조진섭

비오듯 날아든 총알에 맞아 살해됐다.179 많은 민 간인들은 마을을 벗어나 안전한 피신처를 찾아 이 180

동했다.

실제 많은 주민들이 마을 서쪽편의 산 또는 남쪽에 위치한 이웃마을로 이동하고자 했 181

다.

그러기 위해서는 논을 지나야 했고 마을을 포위하고 있던 군인들은 이들을 발견하고 총을 발 포했다.182

같은 경로를 통해 피신했던 생존자들 183

은 수많은 주검을 발견했다고 증언했다.

적으로 서쪽에 배치된 기관총을 난사하여 35 명의 여자, 아이들, 그리고 남자들을 죽였습니 다. 다음 날 저는 보러갔을 때 시신들이 까맣 게 타있는 것을 보았습니다. 이들의 시신은 건 초와 함께 불에 태워져 있었습니다.”185 한 목격자는 마을 서쪽에 위치한 산으로 도주하다 가 살해당한 주민들로 추정되는 22구의 시신을 발 견했다.186

“저녁 6시쯤, 저는 연못가 둑에 이르러 논바닥 에 엎드렸습니다. 그리고 우리는 아테난야 마

“또한 저는 마을 북쪽으로 난 하천의 끝에서

을로 뛰어가기 시작했습니다…저는 그 길에

22구의 시신을 목격했습니다. 시신들은 총에

시체들을 보았습니다. 우리는 군인들에게 들

맞아 죽은 듯 했습니다. 저를 포함한 많은 사람

키지 않도록 땅에 엎드려 기며 아테난야로 피

들이 시신이 건초로 덮여있는 것을 목격했습

184

신했습니다.”

들은 몇 명의 다른 마을 주민들과 함께 서쪽의

그리고 군인들은 시신들을 불태웠다.188 목격자들 은 마을에 진동한 시신을 태운 냄새를 통해 알 수

숲으로 도망가고 있었습니다. 군인들이 이들

있었다.189

“저는 연못 안에 있었습니다. 그러나 제 가족

이 숲으로 도주하는 것을 보자, 그들은 무차별 유니스 어머니 ©조진섭

니다.”187

또 이웃마을은 매우 가까워서 육안으 로 확인이 가능하기도 했고 일부는 다음날 마을에


Ⅴ. 2017 학살

20

Ⅴ. 2017 학살

21

100명 가량을 치료했습니다. 나는 최소 30명

아수 알리의 아들 잘알 아하메드, 압두 라킴

에게서 총탄을 제거했습니다.”197

의 아들 누루, 사미울라의 아들 할라 미아, 피 르 모하메드, 후세인의 아들 딜 모하네드, 누르

“살림 울라의 아들, 나비 후세인 아들 주바이

후세인의 아들 푸티아, 나비 후세인의 아들 압

르, 누르 모하메드의 아들, 이스마일의 부인 자

두 카림, 나지르 아하메드의 아들 모하메드 로

리나 카툰과 두 딸, 자카리아의 아들 유누스,

픽, 하페스 아하네드, 아하메드 후세인의 딸 자

자파르의 아들 살림 울라, 유세프 알리의 아들,

밀라 카툰, 누르 모하메드. 이들이 내가 치료한

누룰 이스람과 그의 부인과 딸, 유누스의 아내,

사람들입니다."198

로힝야 주민 22명이 산으로 피신가다가 붙잡혀 살해된 장소

몰래 돌아가 불에 탄 시신을 확인할 수 있었다.190

I. 부상

“군인들은 시신들을 한 곳으로 끌고 가 건초와

마을 서쪽의 산과 아테난야 마을로 피신한 부상자

휘발유로 태웠습니다. 우리는 그 악취를 참을

는 대부분 총상을 입었다.193

수 없었습니다. 제가 머무르고 있던 집이 언덕

당시 이들을 치료했 던 증언자에 따르면 부상자들은 팔, 가슴, 엉덩이,

진 곳에 있었기 때문에, 우리는 그 광경을 이웃

다리 등에 총상을 입었다.194

191

마을에서도 볼 수 있었습니다.”

피신 중 다리에 총을 맞은 피해자 모습 ©조진섭

대부분은 마을에 진 입한 군인들의 무차별 난사를 피해 도주하던 과정 에서 군인들이 쏜 총알에 맞은 것이다.195

“저는 연못 안에 있었습니다. 그러나 제 가족들

부상자 들은 27일밤 군인들이 라카인마을로 돌아간 뒤 가

은 다른 마을 주민들과 함께 서쪽에 위치한 산

족과 이웃들의 도움을 받아 이웃마을로 피신할 수

으로 도망가고 있었습니다. 이들이 숲으로 도

있었다.196

주하는 것을 보자, 군인들은 무차별적으로 서쪽 에 배치된 기관총을 난사하여 35명의 여자, 아 이들, 그리고 남자들을 죽였습니다. 저는 죽은

“사람들이 총상을 입었습니다. 그들은 팔, 가

이들을 다음 날 보았습니다. 이들의 시신은 건

슴, 엉덩이, 다리 등에 총알을 맞았습니다. 나

초와 함께 불에 태워져있었습니다. 다음 날 제

는 가위로 상부를 치료했습니다. 저는 총상을

가 보러가자, 저는 시신들이 까맣게 타있는 것

입은 두 살짜리 소년을 치료하게 되었습니다.

을 보았습니다. 제 딸들 하리자 베검(25), 소피

그의 이름은 안와 사덱입니다. 그는 내장에 총

아 베검(18), 무스타키마 (7), 그리고 제 손녀 사

상을 입었고, 나는 그를 살려낼 수 없었습니다.

192

베쿤 나헤르…등이 모두 죽었습니다.”

그의 어머니는 소나 비비 (20)입니다. ... 나는

피신 중 다리에 총을 맞은 피해자 모습 ©조진섭


©조진섭

하심 올라(가명)

캠프14(하킴파라) 난민캠프

©조진섭

10대 때 대형 병원에서 요리사 일을 했어요. 그때 무슬림 의사가 언젠가 필요할 때가 있을 거라고 저를 보조로 썼어요.

할리마 아라(가명)

그렇게 어깨너머로 기본적인 처치법을 5년 동안 배웠죠.

할리마 아라(가명)는 군인들이 자신의 눈앞에서 남편을 쏴 죽이는 장면을 목격했다. 자신이 품고 있던 울던 어린 아들을 군인이 낙

2017년 8월 27일 저녁부터 다음날 새벽까지, 츄핀마을에서 총상을 입은 이웃들이 피신해왔어요.

아채 복부에 총을 쐈다. 그 아들을 안고자 팔을 뻗자 군인은 그녀의 손목에 총을 쐈다. 아테난야마을의 로힝야 의사는 그의 아들을

학교에 잡혀있다가 도망친 여성도 있었고, 죽은 척하다가 도망 온 사람들도 있었어요.

살리지 못했다. 마지막 젖을 물리지도 못하고 아들을 보내야 했다.

캠프14(하킴파라) 난민캠프

9살 소년은 왼쪽 팔에 총을 맞아서 왔고, 11살 소년은 뒷다리에 총을 맞아서 왔어요. 좀 더 머물러 있었다면 더 많은 사람들을 치료해서 살릴 수 있었을 텐데 그러지 못한 게 지금 후회스러워요.

©조진섭

©조진섭


Ⅴ. 2017 학살

24

J. 자의적 구금 및 강제실종

습니다. 군인들은 마을 주민들을 살해하느라

군인들은 마을에서 체포한 로힝야 주민들을 학교

녁 7시에 가면을 쓴 라카인 사람들이 이들을

Ⅴ. 2017 학살

25

바빠서 이들은 저녁까지 살아있었습니다. 저

로 끌고 갔다.199

목격자에 따르면 군인들은 대략 200~350명을 체포하여 라카인마을에 위치한 학

살해했습니다. 저는 그 사건의 유일한 생존자

교로 끌고가 구금했다.200

의 구덩이에 묻혔다고 들었습니다. 벽돌 공장

그 중 여성과 아동은

대략 100여명 이상이었다.201 한 목격자는 체포 되어 구금된 여성들은 세 그룹이 있었는데, 학교와 학교인근의 마을 입구, 그리고 마을입구에서 마을 북서쪽편에 각각의 그룹이 있었다고 증언했다.202 한 나이든 목격자는 본인을 포함하여 여성과 아동

로부터 이들이 벽돌 공장에서 살해되어 그 곳 은 사원 동쪽에 위치해 있습니다. 유일한 생존 자는 소나 미아입니다. 걍타웅의 라마웅세인 의 아들인 툰린에 따르면, 소나 미아는 본래 라카인 사람이지만, 회교도 가족에 입양되었다 고 합니다. 라카인들이 아는 사람이었기 때문

도 학교로 체포되어가 구금되었는데 나이가 많아

에, 그들은 소나 미아를 살려주었습니다. 그는

묶이지는 않았지만 남성들과는 분리되어 학교교

현재 라티동에 거주하고 있습니다.”213

203

실에 별도로 구금되었다고 증언했다.

인터뷰에 응한 23명(58%) 증언자들은 아동도 살 해되었다고 증언했다. 학교로 끌려간 아이들은 총 에 맞아 죽거나 칼과 스틱으로 때려서 죽었다.204 “군인들은 논밭에서 아이들을 죽였습니다. 몇 명은 기관총을 쏴 죽였으며, 몇 명은 어머니에서 빼앗아 205

칼로 몸을 베었습니다.”

K. 강간 여성에 대한 강간도 심각했다. 인터뷰에 응한 40 명 중 12명이 강간을 목격했고 40명중 10명이 강 간피해자이다. 강간은 집, 야외, 그리고 학교 등에

라는 증언도 있다.

서 시간과 장소를 불문하고 발생했다. 강간이 집

저를 칼로 찔렀습니다. 저를 강간하기 전 그들

저는 아테난야 마을로 천천히 걸어갔습니다.

한 명 이상의 아동살해를 목격한 증언자는 13명

에서 발생한 경우, 가족이 지켜보는 가운데 또는

은 제 아들을 죽였습니다. 제 아들은 당시 네

나는 그 길에 사망한 여성시체 3구를 목격했

(33%)로 드러났고 이 중 총격 살해 14명(35%), 방

여성 앞에서 가족을 살해한 직후 여성의 눈을 가리

살이었습니다. 저는 의식을 잃었습니다. 저는

습니다. 또다른 시신 3구가 까맣게 탄 상태로

화 4명(10%), 흉기살해 7명(18%) 등으로 나타났다.

고 손발을 묶거나 저항이 심할 경우 다리를 칼로

대략 두 시간 동안 강간을 당한 것 같습니다.

연못가 둑에 있었습니다.”217

찌른 후 강간을 저질렀다.214

일을 끝낸 후, 그들은 저를 그 자리에 남겨뒀습 니다. 저녁에 의식을 찾은 이후, 저는 아테난

야외에서 강간을 당한 사례도 보고됐다.218

“저는 제 아이들을 안고 있었습니다. 그 라카

야 마을로 기어가고 있었습니다. 그때 사람들

들은 강간을 당한 후 살해되기도 했다.219

그러나 체포되어 학교에 구금되었던 대략 53~58명의 남성들은 여전히 그 행

인 남자가 제게서 아이를 빼앗으려고 했지만

이 저를 발견하여 마을에 도착할 수 있게 도와

는 당시 임신중인 여성도 포함됐다.220

저는 저항했습니다. 아이들은 그 때 울고 있었

주었습니다.”216

방이 묘연하다. 군인들은 이들의 두손을 묶고 땅에

습니다. 군인들이 저희 집 앞 망고나무에 저를

206

일부 여성과 아동은 풀려난 것으로 확인되었다. 군인들은 이들에게 남쪽 마을 아테난야로 가라고 207

했다는 증언이 있다.

묶고 제 큰아들을 염소 우리로 내던졌습니다.

“군인들이 마을 사람들에게 총을 쏘고 있을

을 당했습니다. 강간 후 여자 4명이 살해를 당

방글라데시 캠프에서도 찾을 수

그들이 제 손을 묶고 저를 제압한 후 강간했습

때, 저는 도망치려 했으나 군인 두 명이 제 집

했습니다. 그들의 이름은 하라자, 샤히아, 나시

이들이 총살되거나 살해되어 불태워졌

니다. … 저는 수차례 강간당했습니다. 저는 의

에서 저를 붙잡았습니다. 그들은 저를 총으로

마, 누르 바헤르 그리고 루르 카이카입니다. …

폭행하고 내 무릎을 칼로 찔렀습니다. 저는 의

임신한 채로 강간을 당한 여자가 있었습니다.

식을 잃었고, 그들은 제가 생각하기에 아마 한

군인들은 강간당한 후 그녀를 죽였습니다.”221

앉게 한 자세에서 구타했다. 209

오지 않았다. 없었다.

“마을 서쪽으로 끌려간 이들은 공터에서 강간

그 뒤 아무도 돌아

208

210

여성 그중에

211

215

이웃마을 아테난야의 행 다고 소문을 들었거나, 정관으로부터 이들은 츄핀마을 동쪽편 강변에서 살

식을 잃었습니다.”

해되어 벽돌공장 구덩이(brink hole)에 묻혔다고

“군인 열 명이 제 집에 들이닥쳤습니다. 그 중

시간 동안 저를 강간했습니다. 그 이후 그들은

다섯 명이 제 남편과 시아버지를 라카인 마을

저를 그 자리에 두고 떠났습니다. 내가 밤 9

학교로 끌려간 여성들은 학교 교실과 인근의 공터

로 끌고 갔습니다. 나머지 군인들은 제 집에서

시에 의식을 되찾았을 때, 마을에는 군인이 없

에서 강간을 당했다.222

저를 강간했습니다. 제가 저항했을 때 그들이

었습니다. 저는 불에 탄 마을들을 보았습니다.

212

들었다.

이는 다음의 증언으로 확인된다.

“53여명이 체포되어 운동장 바닥에 포박되었

40명중 12명(30%)이 이 를 증언했다. 증언에 따르면 학교에는 50~60명 이


Ⅴ. 2017 학살

26

Ⅴ. 2017 학살

27

와 돈을 빼앗았습니다.”230

이 자발적으로 집계한 358명과 거의 유사하다. 명 단은 부록으로 첨부한다.

여성들은 강간으로 죽기도 했고 강간으로 인해 임 신한 여성도 있었다.231

임신한 여성은 방글라데

시 난민캠프에서 낙태를 하기도 했다.232 “오후 2시쯤, 저는 제 집에서 강간당했습니

증언에 따르면 츄핀마을의 학살을 주도한 군대

다. 저는 5 번 강간 당한 후 의식을 잃었습니

다수의 증언에 따 르면, 33라이트 보병사단은 사건발생 2달전부터

다. 저는 그 때 임신했습니다. 저의 세 딸들도 강간당했습니다. 이 중 하나는 강간 중 목숨을 아테난야마을로 피신 중에 잡혀 강간당한 뒤 살해당한 후스네 아라(22)와 목에 칼을 맞아 생긴 것으로 보이는 커다란 상처가 있고 가슴에 총상을 입은, 사망한 그의 아들 (18개월). 시어머니가 확인함. ©츄핀마을주민(영상제공)

잃었습니다. 군인들이 제 딸들로부터 금장신 구를 빼았았습니다. 강간 후, 그들은 저의 두 233

상의 여성들이 구금되어 있었다.223 군인들은 여 성들의 옷을 벗기거나, 스카프(rumal)를 벗기고 224

“군인들이 우리의 눈과 입, 그리고 손을 천으 로 묶었습니다. 그리고 그들은 우리를 강간하

생존여성들은 군 인들의 감시가 소홀한 틈을 타 탈출에 성공하거나

기 시작했습니다. 5~7명의 군인들이 한 여성

때로는 군인들이 보내주어 이웃마을로 무사히 피

습니다. 제가 제 아들을 때리지 말라고 요구하

눈을 가리고 손발을 묶었다.

을 강간했습니다. 그들은 제 아들이 울자 때렸

M. 가해자

딸들을 풀어주었습니다.

는 33라이트 보병사단이다.235

라카인마을에 주둔하고 있었다.236

증언에 따르 면 27일 학살에 가담한 병력은 500여명 정도였 다.237

일부는 녹색군복을 입고 빨간 스카프를 했 는데 군복에 달과 별이 그려진 심볼이 붙여져 있

“저는 강간으로 임신했습니다. 나는 난민촌에

었다.238 일부는 위장군복을 입었다.239 군병력은 G-3, 카빈, 브랜드총(brand gun), 소총, 스크랭스

서 약들을 복용한 뒤 5달 후 유산했습니다.”234

건(strength gun), 모터밴드(motor band) 등으로 무장했다.240

L. 기초조사 결과

당일 학살에는 라카인 민간인들도 가담했다. 목격

시 쯤에 일어났습니다. 그 곳에는28 명의 여자

본 기초조사는 츄핀마을 출신으로서 캠프내 하나

이웃마을인 챤요와(Chan Yowa)의 주민 50여명

이 중에서 대략 20명이 학교로 끌려갔습니다.

들이 있었습니다. 군영에는 3~400명의 군인

의 텐트에서 함께 살고 있는 구성원을 한 가족으로

이 동원되었다.241 이들은 긴칼, 창, 몽둥이 등으로

마을행정관, 경찰관 쪼쪼와 다른 군인들, 그리

들이 있었던 것 같습니다. … 강간을 끝낸 후,

정의했다. 츄핀마을의 경우 전체 781명을 대상으

무장했다.242 일부는 AK-47을 소지하고 있었다.243

고 라카인 사람들이 그 자리에 있었습니다. 그

그들은 우리의 눈가리개를 풀고 도망갈 수 있

로 맵핑조사를 진행했다. 781명 중 남성은 464명,

들은 우리에게 스카프를 풀도록 강요하고 우

게 해주었습니다. 우리는 벌거벗은 상태였습

여성은 317명이었고, 연령대별로 10대 101명, 20대

한 증언자는 행방불명된 50여명의 남성들에 대

287명, 30대 132명, 40대 88명, 50대 102명, 60대

한 집단살해에 츄핀마을 행정관 아웅사미야(Aung

그들은 우리를 학교로 데려간 후, 우리에게 눈

55명, 70대 11명, 80대 1명, 90대 1명의 분포를 보

Sa Mya)의 아들인 저윈(Zaw Win, 25), 주치(Zu

가리개를 씌우고 팔다리를 스카프로 묶었습니

“군인들은 학교에서 우리를 강간했습니다. 그

였다.

Chi), 그리고 마웅체사인(Maung Che Sain, son

다. 그들이 문을 닫았습니다. 군인들과 라카

들은 저를 바닥으로 밀치고 강간했습니다. 그

인 사람들은 우리가 앉아있던 교실로 들어왔

들은 바닥에 눕지 않는 여성들을 총으로 구타

본 기초조사 결과를 종합하면, 츄핀마을에서 2017

습니다. 저는 눈이 가려져있었기 때문에 그들

했습니다. 그들은 모든 여성들을 벌거벗게 했

년 8월27일 살해당한 사람은 361명으로 집계되었

강간피해자는 마을 행정관 아웅사미야, 경찰

을 보지 못했습니다. 그들이 저를 수차례 강간

습니다. 우리는 대략 50명이었습니다. 나는 한

다. 781명 전원이 방화와 재산약탈의 피해자인 동

관 쪼쪼(Kyaw Kyaw), 경찰관 마웅마웅(Maung

한 후 난 의식을 잃었습니다. 그들은 저항하려

번 강간당했습니다. 그들이 우리를 떠나자,

시에 목격자임이 확인됐다. 10세미만 84명, 10~19

Maung), 경찰관 마칭(Maching), 아웅사미야의 아

고 하는 여성들을 폭행하고 그 중 몇 명을 죽

우리는 학교 옆에 정글로 겨우 도망쳤습니다.

세 57명, 20~29세 56명, 30~39세 39명, 40~49세

들 죠죠왕(Zaw Zaw Wang), 마을 행정관 마웅마

였습니다. 몇몇은 이 강간 이후 임신했습니다.

그 때는 대략 밤 8시였습니다.”228

25명, 50~59세 30명, 60~69세 43명, 70~79세 18

웅쇼(Maung Maung Shaw)의 사위, 마을 행정관

명, 80~89세 4명, 90세 이상 2명, 나이 누락 3명으

아웅주아잉(Aung Zuaing)의 아들 등을 강간범죄

로 집계됐다. 18세 이하의 아동은 137명이다.

의 가해자로 지목했다.245

225

자 그들은 저도 때렸습니다. ... 저는 한 시간 동

신할 수 있었다.

안 다섯 차례 강간당했습니다. 그 일은 오후 4 “우리 무리에는 60명이 넘는 여성들이 있었고

리 중에서 저를 포함해 20명을 선발했습니다.

227

니다.”

자정쯤 되었을 때, 군인들은 우리가 모두 죽었 다고 생각했나 봅니다. 그들은 우리를 풀숲과

증언에 따르면 군인들은 여성들을 강간하고 금장

가시나무 속으로 던졌습니다. 20명 중 5명이

신구와 돈을 빼앗았다.229

살아남을 수 있었습니다. … 우리는 벌거벗고 226

있었습니다. 옷이 없었습니다.”

“군인들은 여자들의 몸을 수색하며 금장신구

자들에 따르면, 츄핀의 라카인마을 주민 10여명과

of Khan Sa Kyaw, 40)을 지목했다.244

특히 살해당한 주민으로 집계된 361명은 당시 츄

“오후 2시쯤, 저는 제 집에서 강간당했습니

핀마을의 로힝야 행정관이었던 모하메드 후세인

다. 저는 5 번 강간 당한 후 의식을 잃었습니


Ⅵ. 결론과 권고

28

다. 저는 그 때 임신했습니다. 저의 세 딸들

에서 남자들을 분리하여 마을 북쪽의 연못 근

도 강간당했습니다. 이 중 하나는 강간 중 목

처에 있는 논바닥에 꿇리고, 이들을 총개머리

숨을 잃었습니다. 군인들이 제 딸들로부터 금

판으로 구타했습니다. 이들 남자 30명 중 무

장신구를 빼았았습니다. 강간 후, 그들은 저의

빈울라, 알리 마하메드, 모굴 하시, 잘일, 모하

두 딸들을 풀어주었습니다. 당시 저는 마을 행

메드 하손, 사에드 알람, 하미드 호세인이 포함

정관 아웅사미아, 경찰관 쬬쪼, 경찰관 마웅마

되어 있었습니다. 그리고 군인들은 한 남성을

웅, 경찰관 마칭, 마을 행정관의 사위 마웅마웅

죽였습니다. 모든 사람을 학교로 데려가기 전,

쇼, 마을 행정관의 아들 아웅주아잉을 보았습

저를 포함한 20명의 여성은 무리에서 분리되

니다.”246

었습니다. 경찰관 쪼쪼, 마을 행정관 아웅 사미 아, 그의 아들 죠죠왕과 다른 군인들이 우리를

“군인들이 저와 제 가족을 사미 울라의 집에

강간했습니다. 쪼쪼, 아웅사미아 그리고 다른

데려가 거기 앉아있게 했습니다. 그 곳에 아마

세명의 군인들이 저를 오후 3시부터 한 시간

250명 정도가 있었던 듯 합니다. 그들은 무리

동안 강간했습니다.”247

Ⅵ. 결론과 권고

Ⅵ. 결론과 권고

29

부는 로힝야의 결혼과 자녀계획도 통제했다. 결

인터뷰에 응한 생존자들의 요구는 한결같이 ‘정

혼은 정부에 수수료를 지급하고 결혼허가증과 납

의’의 실현이다. 이제 우리가 답할 차례다. 생존

부해야 가능했다. 결혼허가증 없이 결혼한 로힝

피해자의 목소리를 대변하여 아디는 다음과 같이

야는 체포되어 징역형의 처벌을 받거나 엄청난 벌

권고한다.

금을 내야 했다. 정부는 로힝야에게 발급하는 결 혼허가증에는 둘 또는 셋 이상을 자녀를 낳아서는

첫째, 미얀마 정부와 군부는 로힝야 집단학살에

안된다는 안내(지시)와 함께 서약을 받았다. 만약

대해 효과적이고 철저한, 그리고 공정한 조사를

둘을 초과해서 더 낳을 경우 마을 행정관은 벌금

벌여야 한다. 이를 위해 국제사회는 정치적, 재정

을 부과하고 가족부에 등록해 주었다. 다섯째, 정

적, 기술적으로 지원해야 한다. 다만 미얀마 정부

부는 로힝야의 시민권을 박탈했다. 군은 이들을

와 군부는 로힝야의 존재를 불인정하고 집단학살

사실상 외국인으로 취급하는 국적확인카드로의

의혹에 대해 단호하게 부인하고 진실규명을 위한

등록을 강요했다. 여섯째, 정부는 그동안 로힝야

노력을 전혀 기울이지 않고 이를 위한 국제사회의

에게 부여했던 투표권을 2015년 총선부터는 박탈

규명노력에도 협력하지 않은 점을 고려할 때 유엔

했다. 일곱째, 학교는 로힝야 학생을 부당하게 대

을 포함한 국제사회는 본 사안에 대해 국제형사

우하거나 라카인 학생과 비교할 때 차별했다. 그

재판소로 회부하거나 특별재판소를 설치하여 진

래서 정규교육에 이탈율이 높았다. 또 로힝야는

상을 조사하여야 한다. 진상조사는 뚤라똘리 마

직업선택에 차별을 받았다. 자격요건을 충족한

을에서 발생한 집단학살 뿐만 아니라 미얀마 라카

지원자가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로힝야가 공직에

인 마을단위에서 발생한 모든 유사한 사건을 포함

채용된 사례는 전무했다. 또 정부는 로힝야의 토

해야 하며, 로힝야에 대한 파괴가 사회제도적으로

지를 수탈하여 라카인에게 배분함으로써 생존의

추진된 2012년 이후의 사건에 대해서도 조사대상

근간을 흔들었다. 여덟째, 의료서비스에의 접근

에 포함되어야 한다.

2017년 8월27일, 미얀마 군대 33라이트 보병사단

부터 체계적으로 파괴해 왔다. 츄핀마을의 로힝

성이 취약했다. 치료를 위해서는 여행허가를 받

그리고 동원된 라카인 주민들은 츄핀마을을 포위

야 주민들은 2012년부터 거의 모든 일상생활영역

고 검문소에서 추가로 돈을 내야했다. 그렇지 않

둘째, 진상조사는 책임자에 대한 조사를 면책없이

한 채로 집집마다 수색하며 로힝야 민간인들을 학

에서 체계적으로 차별받고 기본적 권리를 박탈당

으면 보건소에조차 갈 수 없었다. 보건소에서도

담보해야 한다. 책임자 조사 대상은 미얀마 군총

살했다. 군인들은 집에 숨어있는 민간인을 근거지

했다. 첫째, 로힝야는 이동하기 위해서는 마을—디

로힝야는 치료비를 선불로 지급하지 않으면 치료

사령관를 비롯한 고위급 군지휘관과 마을단위에

조준 사격하여 살해했다. 잔인한 수색을 피해 산

스트릭트—타운십—주도(시트웨) 등 행정단위별로

를 받을 수 없었다

서 작전을 수행했던 33 라이트 보병사단, 국경경

과 이웃마을로 피신가던 많은 주민들은 기관총의

사실상 정부의 허가를 받아야 했다. 서식4호를

무차별 난사로 살해됐다. 총에 부상을 입은 사람

제출하고 상당한 액수의 수수료를 납부해야 했다.

집단학살죄는 국민적, 민족적, 인종적 또는 종교적

두 포함하여야 한다. 또 미얀마 정부의 아웅산 수

은 칼로 살육을 당했다. 수백명이 체포되어 학교

타운십과 시트웨로 여행할 수 있었다는 증언자는

집단의 전부 또는 일부를 그 자체로서 파괴할 의도

치 국가자문관과 주요 각료에 대한 책임도 함께

에 구금되었다. 50여명은 행방불명되었다. 자체조

없었다. 뿐만 아니라 2016년부터 츄핀마을 밖을

로, (1)집단구성원의 살해, (2)중대한 신체적 또는

조사를 진행하여야 한다. 어느 누구도 면책특권

사에 따르면 무고한 츄핀마을 주민 380여명이 살

나가는 것조차 금지되었다. 추수를 할수도 없었고

정신적 위해, (3)전부 또는 부분의 육체적 파괴를

이 부여 되어서는 안된다.

해됐다. 많은 여성이 자신들의 집과 들녁 그리고

시장에 갈수도 없었다. 둘째, 군은 츄핀마을 주민

초래할 목적으로 계산된 생활조건을 집단에게 고

학교에서 강간을 당했다. 총상을 입은 생존자들과

들을 정기적으로 강제노동에 동원했다. 어떠한 댓

의적으로 부과, (4)집단 내 출생을 방지하기 위하

강간생존자들은 상상할 수 없는 정신적 고통을 받

가도 지불하지 않았다. 로힝야 주민이 노동의무에

고 있다. 증언에 따르면 당시 츄핀마을과 그 인근 에 ARSA 또는 유사한 무장세력의 활동 또는 출현 의 정보는 없었다. 미얀마 정부는 로힝야 주민들의 삶을 훨씬 이전

찰대, 학살에 가담한 소수민족 민간인들까지도 모

248

셋째, 진상조사를 바탕으로 미얀마 정부는 피해자 에게 권리구제 수단을 제공해야 한다. 권리구제는

응하지 않을 경우 벌금을 내야 했다. 셋째, 정부

아디는 여 의도된 조치 등의 행위로 정의된다. 본 보고서에서 다룬 2012-2016년의 로힝야 파괴

는 로힝야의 종교활동을 전면 금지했다. 로힝야

와 2017년 8월 27일 츄핀마을 주민들에 대한 학살

보상을 제공하여야 한다. 이에는 피해자의 정신

는 모스크에서의 기도와 종교행사도 자유롭게 하

사건이 전형적인 집단학살죄에 해당하고, 문제대

적 고통에 대한 부분도 포함시켜야 한다. 다만 피

지 못했다. 주민들 몇몇이 모여 기도하는 것도 적

응을 위한 국제사회의 보다 적극적인 개입이 필요

해자 구제 조치의 구체적 내용은 피해자 및 로힝야

발되면 구타당하거나 벌금을 내야했다. 넷째, 정

한 시점이다고 평가한다.

커뮤니티의 의사를 존중하여 결정하여야 한다.

원상회복의 원칙에 따르고 불가피한 경우 금전적


Ⅵ. 결론과 권고

30

Ⅶ. 부록

31

Ⅶ. 부록 넷째, 미얀마 정부는 입법, 행정적 조치를 도입하 여 로힝야에 대한 차별적 제도 및 관행을 철폐해 야 한다. 왜곡된 정보와 혐오를 유발하는 사회지 도자와 시민들의 표현을 처벌하여야 한다. 일반 시민을 대상으로 한 뿌리깊은 혐오와 차별의 인식 을 개선하기 위한 교육을 실시하여야 한다. 다섯째, 미얀마 정부는 로힝야를 외국인으로 등록 하는 국적확인카드 제도를 중단하고 로힝야의 시 민권 회복을 보장하여야 한다. 여섯째, 미얀마 정부와 국제사회는 로힝야의 송환 논의에서 로힝야 당사자들의 참여를 적극 보장하 여야 한다.

Name Abul Hoyr Md Rohim Md Zomil Mobin Tosmin 2 Norislam AanaUllah Abdu Haken Abdu mojib Abdu Salam Abdu Salam Abdu Sokor Abdu Subownar Abdul Amin Abdul Bohur Abdul Habis Abdul Hane Abdul Houqe Abdul llah Abdul llah Abdul Salam Abdul Salam Abdul Salam Abdul Sukkur Abdullah Abdur Haman Abdur Rahaman Abdur Rahanar Abdur Sukor Abdusalam Abter Hossain Abul Boshar Abutalik Akof Ali Ala Ahamed Ali Ahammed Ali Ahammed Ali ahmed Aman Ullah Amaram Amin Ullah Amina Aminakhatu Aminr Hossain Amuwar Begum

Age 70 18 3 65 7 60 28 30 10 60 50 60 1 20 21 2 6 45 7 40 60 65 70 70 6 60 14 1 35 55 15 32 60 18 60 60 60 50 40 14 50 65 4 30 30

Name anatula Anatullah Anuwar Begum Asakhatu Asanullah Asanullah Aseya Begum Asiya Begum Asmottola Ayashq Khadun Ayeha Khatun Ayeturahaman Azar Mia Azis Lak Aziz Ullah Azizulata Azo Rahman Badu Mia Basho Rip Bosir Ahamed Dil da Begum Dil Mohamed Dil Mohamed Dil Mohammed Dil Mohammed Dolabanu Dolu Hossain Doluhoson Ebirahim Eliyas Eman Shorit Emaram Fani Faruk Hossain Fatama Fatama Khatun Fatamakhatu Fateme Khatun Fir Mohammed Forija khatu Forkiramed Forzotam Ahammed Fozal Ahammed Funa Furut Ahammed

Age 25 2 25 15 7 4 1 2 50 60 5 90 17 70 20 2 75 1 30 30 17 60 50 48 50 70 61 16 5 60 8 80 60 1 2 5 2 45 35 60 50 53 75 35

Name Gol Bahar Gul Bahar Habi Hossain Habi Hossain Habi Ullah Habiram Habiram Habis Ahamed Habiza Khatun Hadayed Ullah Hala Banu Hala Mia Hala Mia Hala San Halima Halime Hamid Hamid Hossain Hamida Harera Begum Hashim Hashim Hashim Ullah Hashimullah Hasima Begum Hasina Hasina Hasina Haydayet Ullah Hazira Khatun Horul Amin Hosana Begum Hosoma Begum Hosona Hossain Hossan Ahmed Hossiain Ahammad Hubiname Jamnu Juhara Kala Kifat Ullah Kolimullah Kolimullah Korimullah

Age 30 40 28 22 50 45 45 3 13 3 60 55 50 60 80 140 8 32 3 20 60 40 12 35 27 17 5 19 3 30 15 20 20 20 43 55 18 1 20 7 60 1 23 19 50


Ⅶ. 부록

32

Name Laila Begum Lido Mia Lol Mutip Ludo Mia Lukor Korim Lukur Korim Mabi Khatun Magol Asin Mastokima Md Alam Md Ameus Md Amos Md Amous Md Amouss Md Anos Md Eliyes Md Hashin Md Hason Md Hossain Md Hossain Md Hossiain Md Iliyes Md Islam Md Islam Md Islam Md Janll Md Nobi Md Nobi Md Nobi Md Noman Md Noor Md Osman Md Rofik Md Rofique md rofique Md Roshid Md Shonid Md Shopik Md Sires Md Solim Md Soyed Md Soyed Md Tahar Md Takar Md Yaunos Md Yayes

Age 3 17 60 75 20 25 35 35 1 17 5 4 2 2 1 4 40 9 16 60 50 15 55 3 65 18 7 2 22 4 30 30 30 30 20 12 18 12 30 30 30 30 27 25 2

Name Md Yeahia Md Younous Md Younus Md Younus Md Younus Md Younus Md Zanight Md Zohur Md Zolai md zubair Minema Mobln Ullah Mohidin Mojel Mullah Monira Ahammed Monira Ahmed Moriam Moriam Khatun Morium Khatun Moriyan Khatun Mosana Mostafa Khatun Mostamed Mozeda Begum Mozumullah Mv Tahar Myannar Male Nobada Nobi Hossain Nobi Hossain Nobi Hossain Nobi Hossain Nobi Hossain Noor Bahar Noor Mohamed Noor Mohammed Nor Ahamed Nor Mohammed Nor Mohemed Norislam Norislam Norul Islam Nur Ankis Nur Baher Nur Begum Nur Haba

Age 30 24 35 9 4 3 12 1 50 25 7 65 7 25 18 18 45 60 50 50 2 50 40 22 13 50 65 40 60 50 60 60 60 40 27 23 90 25 60 40 70 3 6 50 20 30

Name Nur Hakim Nur Islam Nur Islam Nur Islam Nur Kayes Nur Kolima Nur Mohamed Nur Mohamed Nur Mohammed Nur Multaba Nur Nohamed Nur Safa Nurran kis Nurul Hala Nurul Lok Osman Osman Osman Osman Ozollah Rahamod Ullah Rahima Ralu Rashika Begum Razu Razu Razuma Khatun Razume Rizo Wan Rofik Rofik Dim Rofika Begum Rohema Khatun Rohim Ullah Rohim Ullah Rohima Khatun Rohima Khatun Rohima Khatun Rohima Khatun Rohimullah Rohin Ullah Rokim Ullah Rorhid Ullah Roshet Amed Roshid Ahammed Roshid Ahammed

Age 17 10 65 50 1 12 45 35 27 13 27 2 1 28 75 3 30 3 25 15 12 40 25 13 18 3 16 7 18 25 30 18 40 11 25 35 8 6 70 33 6 4 55 6 21 30

Ⅶ. 부록

Name Roshida Khatun Roshidullah Rujina Ruma Ali Salam Salam Salam Khatun Salam Ullah Salamed Ullah Sanuwara Sara Khatun Senuwara serokamal Setara Begum Shabat Ali Shabikonahar Shafiya Begum Shaola Shifiyed Ullah Shobi Kuatullah Shobikunahar Shobikunahar Shobitulah Shobitulah ShobiUllah Shobiullah Shobiullah Shofat Ullah Shohida Begum Shohor Shokamed Shoko tullah Sholtlai Shomin Shomsu Shor Ali Shori Hossain Sidik Ahamed Sidika Ahmed Simuwara Begum Sobikuna had Sobiram Sokima Solim Ullah Solima Khatu Solimullah

33

Age 18 55 20 60 45 12 60 60 25 18 60 3 19 25 16 3 20 30 2 25 3 16 25 25 45 25 50 6 1 75 40 18 70 28 60 75 70 60 70 14 19 45 4 30 1 25

Name Solimullah Somina Begum Sotamin Soyed Ahamed Soyed Ahmed Soyed Alam Soyed Alam Soyed Alan Soyed Amin Soyed Hassian Soyed Hossain Soyedu Alam Soyedul Alam Soyedul Islam Soyeul Alam Suna Mia Tosina Begum Toyoba Usena Yasin Yesmin Youmous Younous Yousuf Yousuf Yousuf zamir husain Zehedullah Zobullah ZoforAlam Zoliyu Zomi Hossain Zomi Hossain Zomila Khatu Zorina Zosi Zubaira Zubir Zubir Zubu que Zuhara Begum Zuhura Begum

Age 3 6 35 85 15 70 50 70 28 65 20 22 20 40 15 80 4 35 20 20 6 3 25 30 50 50 18 3 25 18 65 17 12 60 40 2 20 35 30 16 8 3


미주

34

미주 1.

2.

3.

4.

5.

6.

7.

8. 9. 10. 11. 12. 13. 14. 15. 16. 17. 18. 19. 20.

Reuters, At least 32 killed in Myanmar as Rohingya insurgents stage major attack, CNBC, 25 August 2017, https://www.cnbc. com/2017/08/25/at-least-32-killed-inmyanmar-as-rohingya-insurgents-stage-majorattack.html. ISCG, Situation Report Rohingya Refugee Crisis, 27 September 2018, https://reliefweb. int/sites/reliefweb.int/files/resources/iscg_ situation_report_27_sept_2018.pdf. The Wall Street Journal, We’ll Turn Your Village Into Soil: Survivors Recount One of Myanmar’s Biggest Massacres, 11 May 2018, https://www. wsj.com/articles/burn-the-houses-rohingyasurvivors-recount-the-day-soldiers-killedhundreds-1526048545?mod=e2fb. Physicians for Human Rights, Please Tell the World What They Have Done to Us, 19 July 2018, https://rohingya.phr.org/resources/ chutpyin/?ms=homepagebanner. ISCG, map ID_0216, 26 February 2018, https:// www.humanitarianresponse.info/sites/www. humanitarianresponse.info/files/documents/ files/20180226_cox_bazar_reference_map_with_ pop_ukhia_id00216_0.pdf. ISCG, map ID_0216, 26 February 2018, https:// www.humanitarianresponse.info/sites/www. humanitarianresponse.info/files/documents/ files/20180226_cox_bazar_reference_map_with_ pop_ukhia_id00216_0.pdf. Affidavit - Chut Pyin - Case Number CP11. Hereinafter, CP01. The same rule applies in numbering all subsequent cases. CP02, CP03, CP04, CP05, CP06, CP07, CP12, CP13, CP15, CP16, CP17, CP19, CP20, CP21, CP22, CP23, CP24, CP25, CP26, CP28, CP30, CP32, CP33, CP34, CP35, CP36, CP38, CP39, CP40, CP41. CP14, CP18, CP27, CP29, CP37. CP11. CP01. CP02. CP03, CP13. CP01. CP17. CP13. CP06, CP12, CP20, CP27, CP35. CP06. CP01, CP03, CP34. CP10. CP11.

21. 22. 23. 24. 25. 26. 27. 28. 29. 30. 31. 32. 33. 34. 35. 36. 37. 38. 39. 40. 41. 42. 43. 44. 45. 46. 47. 48. 49. 50. 51. 52. 53. 54. 55. 56. 57. 58. 59. 60. 61. 62. 63. 64. 65. 66. 67. 68. 69. 70.

CP11. CP02. CP03. CP41. CP01. CP01, CP02, CP03, CP04, CP05, CP06, CP08, CP09, CP17, CP25, CP34, CP36. CP29. CP11. CP11, CP32, CP39. CP11, CP32, CP39. CP11. CP03, CP04, CP13, CP15, CP17, CP20, CP29, CP33, CP34, CP41. CP03, CP04, CP13, CP15, CP17, CP20, CP29, CP33, CP34, CP41. CP03, CP04, CP13, CP15, CP17, CP20, CP29, CP33, CP34, CP41. CP17, CP39, CP40. CP13, CP25, CP29, CP32, CP34. CP15, CP41. CP03, CP15. CP13, CP17, CP20, CP29, CP34. CP15, CP32, CP38, CP39, CP40, CP41. CP01, CP02, CP09, CP29. CP25. CP02. CP37. CP13, CP17, CP20, CP25, CP29, CP32, CP39, CP41. CP13, CP17, CP20, CP25, CP29, CP32, CP39, CP41. CP09. CP01, CP02, CP03. CP01, CP02, CP03, CP09, CP25. CP01, CP02, CP03, CP09, CP25. CP01, CP02, CP03, CP09, CP25. CP01, CP02, CP03, CP09, CP25. CP01, CP02, CP03, CP09, CP25. CP02. CP02, CP04. CP02, CP04. CP02. CP09. CP03. CP09. CP09. CP01, CP02, CP03, CP04. CP01, CP02, CP03, CP04. CP02. CP01. CP01, CP02, CP03. CP01, CP03, CP04, CP09. CP03, CP09. CP01. CP09.

CP07,

CP25, CP25, CP25,

CP38, CP38,

미주

71. CP01, CP02, CP03, CP04, CP05, CP06, CP07, CP08, CP13, CP14, CP23, CP24, CP27, P29, CP32, CP36, CP37, CP39, CP40. 72. CP05. 73. CP01—CP42. 74. CP03, CP04, CP09. 75. CP02. 76. CP39. 77. CP01, CP02, CP03, CP04, CP09. 78. CP01, CP02, CP03, CP04, CP09. 79. CP08, CP19, CP25, CP36, CP39. 80. CP41. 81. CP39. 82. CP01, CP03, CP13, CP15, CP17, CP21, CP25, CP29, CP31, CP33. 83. CP15, CP41. 84. CP03. 85. CP11, CP33, CP40, CP41. 86. CP01. 87. CP02. 88. CP02. 89. CP08, CP10, CP13, CP14, CP17, CP23, CP32, CP33, CP34, CP40, CP41. 90. CP01. 91. CP27, CP34. 92. CP27, CP38, CP40. 93. CP08, CP12, CP14, CP16, CP27, CP33, CP40. 94. CP20. 95. CP12, CP20. 96. CP10, CP14, CP38. 97. CP09, CP10, CP14, CP38. 98. CP01. 99. CP01. 100. CP01—CP42. 101. CP01—CP42. 102. CP01, CP04. 103. CP01, CP05, CP09. 104. CP11. 105. CP01. 106. CP01. 107. CP01. 108. CP01. 109. CP03. 110. CP11. 111. CP03. 112. CP04, CP09. 113. CP06, CP24. 114. CP11. 115. CP11. 116. CP03. 117. CP02. 118. CP04. 119. CP02, CP03, CP07. 120. CP02, CP04, CP05, CP06, CP07, CP09, CP11, CP14. 121. CP10, CP14. 122. CP11, CP17, CP23, CP25.

35

123. CP11, CP17, CP23, CP25. 124. CP25. 125. CP29, CP35. 126. CP15. 127. CP15, CP20, CP35. 128. CP15. 129. CP20. 130. CP20. 131. CP11. 132. CP23. 133. CP14. 134. CP23. 135. CP29. 136. CP11. 137. CP33. 138. CP11, CP12. 139. CP12. 140. CP15. 141. CP16. 142. CP16. 143. CP07. 144. CP11. 145. CP28. 146. CP11. 147. CP05, CP10, CP11, CP15. 148. CP15. 149. CP05, CP10, CP11. 150. CP01, CP07, CP09. 151. CP15. 152. CP03. 153. CP02. 154. CP20. 155. CP24. 156. CP26. 157. CP30. 158. CP01, CP09. 159. 증언자는 숨어있던 당시 전화기를 소지하고 있어 서 시간확인이 가능했다. CP07. 160. CP01—CP42. 161. CP04, CP07, CP08, CP14, CP15, CP17. 162. CP07, CP08, CP09, CP15. 163. CP01—CP42. 164. CP15, CP17. 165. CP20. 166. CP11. 167. CP11. 168. CP09. 169. CP35. 170. CP35. 171. CP01. 172. CP01. 173. CP01. 174. CP01. 175. CP01, CP02, CP03, CP05. 176. CP11, CP12. 177. CP12. 178. CP11.


36

179. CP01, CP03, CP05, CP09. 180. CP01, CP03, CP05, CP09. 181. CP01, CP03, CP05, CP09. 182. CP01, CP03, CP05, CP09. 183. CP01, CP03, CP05, CP09. 184. CP11. 185. CP05. 186. CP15. 187. CP15. 188. CP05, CP06, CP12. 189. CP06, CP12. 190. CP01, CP06, CP09, CP12. 191. CP06, CP12. 192. CP05. 193. CP27. 194. CP27. 195. CP27. 196. CP14, CP16, CP22, CP24, CP34, CP35. 197. CP27. 198. CP27. 199. CP05, CP10. 200. CP05, CP10. 201. CP07. 202. CP11. 203. CP01. 204. CP09. 205. CP16. 206. CP05. 207. CP05. 208. CP05, CP07. 209. CP05, CP07. 210. CP05, CP07. 211. CP07. 212. CP01. 213. CP15. 214. CP14, CP22, CP26. 215. CP22. 216. CP26. 217. CP14. 218. CP12. 219. CP12. 220. CP12. 221. CP12. 222. CP12, CP16, CP24. 223. CP12, CP16, CP24. 224. CP12, CP16, CP24. 225. CP12, CP16, CP24. 226. CP16. 227. CP24. 228. CP12. 229. CP08. 230. CP16. 231. CP14. 232. CP14. 233. CP30. 234. CP14. 235. Simon Lewis, Zeba Siddiqui, Clare Baldwin

미주

and Andrew R.C. Marshall, Tip of the Spear, Reuters Investigates, https://www.reuters.com/ investigates/special-report/myanmar-rohingyabattalions/ 236. CP01, CP03, CP09, CP16. 237. CP01, CP03, CP05, CP09, CP16, CP17. 238. CP16. 239. CP09. 240. CP05. 241. CP01, CP02, CP04, CP05, CP07, CP09. 242. CP05. 243. CP07. 244. CP15. 245. CP30. 246. CP30. 247. CP28. 248. Convention on the Prevention and Punishment of the Crime of Genocide, article 2; Rome Statute, article 6.

Ⅷ. 감사의 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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Ⅷ. 감사의 말

본 보고서는 많은 단체의 지원과 개인들의 노고로

로힝야 난민캠프에서 2018년 열약한 여건속에서도

제작되었습니다.

피해자들을 만나 인터뷰하고 증거수집해 오신 여섯 분의 기록활동가들에게 진심으로 감사드립니다.

우선 아디의 로힝야 인권기록 사업을 지원하는 광주 인권평화재단, 인권재단 사람, 진실의 힘, 한우추모

다시 떠올리기조차 두려울 8월30일의 기억을 나누

기금에게 존경을 담아 감사드립니다.

어 주신 방글라데시 난민캠프에 계신 뚤라똘리 마을 로힝야 주민들에게 위로와 특별한 감사를 전합니다.

본 보고서의 발간에 실무 지원을 아까지 않으신 김 솔아님, 정지원님, 강희원님에게 정말 감사드립니다. 사진찍는 조진섭님은 로힝야 캠프에 아디와 동거동 락하며 인권기록을 해왔고 본 보고서에 사진과 편집 으로 큰 도움을 주셨습니다. 특별한 감사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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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얀마 로힝야 학살보고서 츄핀마을  

미얀마 로힝야 학살보고서 츄핀마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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