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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TT

인권 실태 보고서 2016.11.

미얀마

메이크틸라 학살 그리고 일상화된 억압과 차별 Massacre in Meiktila and Justice Unredressed

메이크틸라 찬예따야 마을의 2016년 9월의 일상 © 아디


감사의 말씀 Acknowledgments

본 보고서는 HTT, The Seagull, 아디의 공동프로젝트 결과물입니다. 메이크틸라의 피해자 인 터뷰를 조직하여 주신 HTT, 그리고 함께 피해자 인터뷰 및 보고서 작성에 큰 도움을 주신 The Seagull에게 감사를 드립니다.

The Seagull의 해리 Harry Myo Lin, 수칫 Suu Chit, 뛰릭 Myo Thiri Kyaw에게 특별한 감사를 드 립니다. HTT의 회장단 및 싼윙쉐인 San Win Shein에게 특별한 감사를 드립니다.

무엇보다 잊고 싶은 아픈 기억을 되살려 눈물로 인터뷰에 응해주신 모든 피해자와 목격자에게 존경과 감사의 말을 전합니다.


목차

Ⅰ 서론

2 1. 배경 2. 목적 3. 방법과 한계

5

Ⅱ 3일간의 광기 살인과 방화 1. 비극의 발단 2. 광기의 확산 3. 광기의 절정

4. 이해할 수 없는 경찰의 대처

Ⅲ 실패한 진실규명과 정의

Ⅳ 국내 난민IDPs의 처지

13

16

1. 난민캠프의 상황 2. 돌아가는 사람들과 남겨진 사람들

Ⅴ 재정착촌 찬예따야

Chan Aye Thar Yar

Ⅵ 일상화된 억압과 차별 Ⅶ 결론

23

Ⅷ 권고사항

24

21

쿼터

19


Ⅰ. 서론

2013년 3월 20일부터 3일간 미얀마 메이크틸라에서 일어났던 불교도에 의한 무슬림 학살 총 43명 사망, 86명 부상, 13,000명의 피난민 발생

1. 배경 쳐 살해하고 시신을 불에 태웠다. 태워지는 이들 중에 는 산 자도 다수 포함되었다. 이와 같은 학살과 방화,

2013년 3월 20일부터 3일간 미얀마 중부의 메이크틸라

폭력을 야기했던 3일간의 광기는 미얀마 정부가 국가

에서는 상상조차 하기 힘든 처참한 학살이 발생했다.

비상사태를 선포한 이후에야 차츰 사그라졌다.

폭도들은 쇠사슬, 칼, 장검, 쇠파이프로 무장하고 수십 명씩 무리를 지어 다니며 “다 죽일 거야. 살려두어서는 안돼.” 라며 선동했고, 사냥하듯이 사람들을 찾아다녔

2013년 3월 29일 미얀마 정부는 이번 사태로 인해 총

다. 소수종교인 무슬림은 불교도 극우주의자 Buddhist-

43명이 사망했고, 86명이 부상당했으며, 15개의 타운

Nationalist 폭도를 피해 도망다녔고, 정글이나 늪지대,

십 Township에서 총 1,355개의 건물과 가옥이 전소되

그 어떤 곳으로든 무작정 피신해야 했다. 무슬림들의 주

거나 파괴되었고 13,000명의 피난민이 발생했다고 발

택, 상점, 모스크는 불태워졌다. 일부 폭도는 긴 장검과

표했다.1 무슬림 공동체가 밝힌 통계와는 다소 차이가

쇠파이프로 수십 명의 학생과 교사를 무자비하게 내리

있으나 이것만으로도 당시의 상황이 얼마나 심각했는 지 알 수 있다.

2


한국에서는 민주사회를 위한 변호사모임의 아시아인권

이와 같은 끔찍한 학살과 인권침해에 대해 미얀마 정부

팀이 2014년 7월 29일 메이크틸라를 최초 방문하였다.5

와 국제사회의 노력은 미진했다. 미얀마 정부는 사태 해

일부 피해자의 증언을 직접 청취했고, 피해자들의 임시

결에 대한 진지한 노력을 기울이지 않았다. 피해자들은

거주하고 있던 국내난민캠프를 외부에서 지켜볼 수 있

학살 당시 경찰이 현장에 있었음에도 폭도들의 공격을

었다. 충격적인 증언과 열악한 난민캠프의 모습을 직접

제지하거나 피해자를 보호하지 않고 방관했다고 증언했

목격하면서 이 사건의 심각성을 인식하게 되었고, 국제

다.2 심지어 간접적으로 지원했다고도 했다. 일부 가해

사회가 피해자의 목소리를 귀기울이고 행동해야 한다는

자에 대한 사법처리 과정에서도 종교에 따른 차별이 있

데 공감했다.

었다고 지적했다.3

시간은 다소 지났으나, 아디 ADI는 2013년 메이크틸라 무엇보다 학살과 인권침해에 대한 전면적인 진상조사가

의 학살 이후 피해자들의 권리를 회복하고 개선하기 위

이뤄지지 못했고, 이에 기반한 책임자의 처벌도 제대로

한 노력을 이어가기 위하여 필요한 조사를 2016년에 수

이뤄지지 않았으며, 피해자 손해배상 등도 전혀 없었다.

행하기로 했다.

유엔과 국제사회 차원에서도 진상조사 노력은 많지 않 았다. 국제인권단체 ‘인권을 위한 의사들’ Physicians for Human Rights 만이 사건 직후 실태보고서를 발간했고,4

일부 보고서에서 메이크틸라의 소요사태로 언급되었을 뿐이다. 일부 언론에 보도되었으나 이내 잊혔다.

2013년 3월21일 불교도에 의한 무슬림 가구 파괴 © HTT

3


2. 목적

3. 방법과 한계

메이크틸라 학살이 발생한 지 3년이 지났다. 현재까지

본 보고서는 문헌조사 및 두 차례의 현장 방문을 통해

도 당시 발생한 학살과 인권침해에 대해 독립적이고 공

작성되었다. 첫 방문조사는 2016년 5월 18일부터 20일

평한 진상조사가 이뤄지지 않았다. 가해자 처벌과 피해

까지 현지의 변호사, 지역단체 대표 및 활동가, 피해주

자 보상 및 재발방지를 위한 조치가 취해졌다는 소식을

민들, 난민캠프 거주민들을 만나 인터뷰했다. 당시 피해

듣지 못했다. 오히려 피해자들은 지속적이고 체계적인

지역 중의 하나인 찬예따야 Cha Aye Thar Yar 쿼터와

차별을 지금껏 견디고 있다고 증언했다.

종합운동장 District Stadium에 설치된 난민캠프 및 야다 나우 사원 Yadana Oo Monastery을 방문하였다.

미얀마 정부는 2013년 5월 말에 ‘불교도와 무슬림 폭력 사태에 대한 조사보고서’를 발표한 바 있다. 정부 보고

두 번째 방문조사는 2016년 9월 24일부터 10월 1일까

서는 2012년 라카인주에서 촉발되고 이후 미얀마 전역

지 현지인권단체인 ‘The Seagull’과 공동으로 진행하였

으로 확대되었던 불교도-무슬림 폭력사태에 대한 조사

다. 조사 대상에는 메이크틸라 학살의 피해자와 그 가

결과를 담고 있다. 그러나 정부보고서가 독립적이고 공

족, 피해자를 지원했던 변호사, 불교승려, 지역주민, 지

평한 조사 결과를 담았는지는 의문이다. 예를 들면, 정

역단체 대표, 목격자들도 다수 포함되었다. 인터뷰는 피

부보고서는 ‘무슬림 소수민족 로힝자 여성의 자녀 수를

해자의 신변 보호를 위해 현지 단체 및 리더들과 사전

2명으로 제한할 것’을 권고했다.6 이는 불교도 극우주

협의를 거쳐 안전한 장소에서 진행하였다. 사전의 면밀

의자 Buddhist-Nationalist와 969운동의 현실 인식 및 주

한 검토를 거쳐 피해자의 집에서 방문조사를 하기도 하

장과 다를 바 없는 태도이며 오히려 소수종교인 무슬림

였다. 인터뷰는 비공개 개별 대면 방식으로 진행되었고,

이 제도적으로 어떠한 처우를 받는지 반증하고 있다.

대상자 1인, 통역 1인, 면담자 1인이 참석하였다.

아디는 정부로부터 제도적으로 배제되고 불교도 극우주

인터뷰로 수집되는 정보의 중립성을 견지하기 위하여

의자 및 969운동세력의 위협과 공포 속에 살아가고 있

되도록 다양한 피해자와 이해관계자로부터 의견을 듣고

는 메이크틸라의 피해자와 이해관계자를 면담하고 사

자 했다. 수집한 정보를 교차 확인하고 진술이 부족하거

건 당시의 상황, 그리고 그 후 지속되어 온 인권침해의

나 명확하지 않은 부분은 기존의 보고서와 신문 및 인터

사실을 기록으로 남기고자 했다. 이를 통해 당시 학살과

넷 기사를 통해 보강하거나, 현지 활동가의 확인을 통해

인권침해에 대한 중립적이고 공평한 조사, 책임자 처벌,

해결하였다. 하지만 상당수 피해자와 주민은 인터뷰를

적절한 보상, 재발 방지 조치 등 미얀마 정부의 책임 있

한 사실로 인해 미얀마 정부와 불교도 극우주의자로부

는 조치를 촉구하고, 국제사회와 더불어 미얀마의 소수

터 피해를 입을까 두려워했다. 이는 본 사건을 정확하게

민족과 소수종교의 인권 존중, 보호, 실현을 위한 노력

묘사하기 위한 세부 정보를 얻는 데 방해요인이 되었다.

을 다하고자 한다.

무엇보다 메이크틸라에 여전히 존재하는 무슬림에 대한 체계적인 차별과 억압으로 인해 당시 사건을 담당한 경 찰, 검찰, 법원 관계자와는 인터뷰하지 못했다.

4


Ⅱ. 3일간의 광기: 살인과 방화

2013년 3월 20일 금은방으로 몰려든 사람들 © HTT

1. 비극의 발단 2013년 3월 20일 오전 9시경, 불교도 여성 예예나인

그러나 예예나인은 종업원이 금머리핀을 부러진 상태로

Aye Aye Naing과 남편 우킨멍윙 U Khin Maung Win

돌려주었고, 상점 주인인 미얀미얀예이 Mying Myint

은 메이크틸라 시내 시장에 자리잡은 뉴웨이세인 New

Aye가 5만 짜트를 제시하였다고 엇갈린 증언을 하였다.

Weint Sein 귀금속 상점에 방문했다. 이 귀금속 상점

예예나인과 그 남편은 5만 짜트에 팔 수 없으며, 부러

의 주인은 무슬림이었다. 예예나인은 자신의 금머리핀

진 금머리핀의 원상복구를 요구하였다. 상점 주인이 이

gold hairclip을 처분하려 했다. 적어도 10만 짜트 kyats

를 거절하자 대화는 곧 격렬해졌다. 목격자에 따르면,

미얀마 화폐 이상은 받을 수 있을 거라 생각했다. 뉴웨

상점 주인이 예예나인의 빰을 때렸고, 여기에 격분한 그

이세인의 종업원은 금머리핀을 감정했고, 정품이 아니

의 남편은 고함을 지르며 항의하였다. 그러자 3명의 다

다는 감정결과와 감정액이 5만 짜트임을 확인해 주었

른 상점 종업원이 남편을 집단으로 폭행하여 머리에 부

다.7

상을 입혔다.8

5


2. 광기의 확산

이후 예예나인은 상점 밖으로 나와 목격자와 지나가는 사람들에게 도움을 요청하였다. 주변에 사람들이 몰려 들기 시작하였다. 당시 현장주변에 있던 싼윙쉐인 San Win Shein 은 “10시경 경찰이 도착하여 귀금속 상점 주

메이크틸라의 타 쿼터에 비해 모스크와 무슬림이 운

인과 종업원을 체포해서 구금했고, 불교도 부부는 병원

영하는 상점과 거주시설이 많은 띠리밍글라 쿼터 Thri

으로 옮겨진 상태였다”고 증언했다.9 그리고 경찰은 사

mingalar Quarter는 20일 저녁 7시부터 공격 받기 시작

람들을 향해 “모든 것이 해결되었다고 소리를 질렀으

했다.

나, 몰려든 사람들은 해산하지 않았고 사람들은 계속 늘 어났다”고 회고했다.10

싼윙쉐인 San Win Shein은 당시 상황을 다음과 같이 회 상한다.

경찰의 해산 시도가 실패하면서 군중은 계속 불었다. 대

“띠리밍글라의 모스크가 방화되기 시작했어요.

부분 불교도였다. 오후 12시 30분경 군중 내에서 “폭행

근방에 있던 친구가 구타를 당해 병원에 실려갔

에 가담한 무슬림이 체포되지 않고 숨어 있다”는 소리

다는 소식을 들었지요. 저녁 8시경 띠리밍글라 지

가 터져 나오면서 군중은 상점을 공격하기 시작했다. 돌

역 전체가 정전이 되었지요. 집에서 모스크가 타

을 던지고, 무슬림을 경멸하는 욕이 터져 나왔다. 귀금

는 것이 보였어요. 가족들을 인근 다른 지역으로

속 상점 사건은 페이스북을 타고 빠르게 전파되었다. 허

보낼 수밖에 없었지요. 나는 2층에서 숨어서 상황

위사실마저 널리 퍼져나갔다. 당시 사건의 손님은 불교

을 지켜보았는데 다른 쿼터에서도 비명소리가 들

도 부부가 아닌 할머니와 손자였는데, 할머니는 살해당

려왔어요.”16

했고 손자는 병원에 실려갔다는 확인되지 않은 루머가 돌았다.11

현장의 상황이 폭력적으로 변하기 시작하자 당시 현장 에 있던 싼윙쉐인 San Win Shein 은 신변의 위협을 느끼 고 무리에서 빠져 나와 모스크로 향하였다. 그 와중에 지인 한 사람이 피를 흘린 채 경찰에 의해 호송되는 모 습을 목격하였다.12 길가에서 몽둥이를 휘두르는 사람들 © HTT

3월 20일 오후, 모든 것이 돌이킬 수 없는 상황으로 악 화되었다. 오후 5시 30분경, 젊은 무슬림 몇몇이 불교승 려를 살해한 사건이 발생했다.13 당시 사건을 목격한 싼 싼윙 San San Win 에 따르면, 4명의 무슬림 청년이 오토 바이를 타고 지나가는 승려를 공격한 뒤 휘발유를 뿌려 불을 붙였다.14 이 사건은 삽시간에 메이크틸라 곳곳으 로 퍼졌고, 1천 명 이상의 군중들은 무슬림의 주택, 상 점, 모스크를 공격하기 시작하였다.15 인구 40만의 소도 시인 메이크틸라는 점차 광기에 휩싸이게 되었다.

6


너어비 Noor Bi 씨는 폭도들이 자신의 남편과 남동생

행정사무소에 끌려가 잔인하게 살해되고 행정관이 보는

을 살해하는 장면을 목격했다. 폭도들은 남편과 남동생

앞에서 불에 태워졌다.23

이 쓰러질 때까지 구타한 후 몸에 불을 붙여 살해했다.17 이어 폭도들은 너어비 씨를 구타했고 땅에 엎드려 절을

밍글라제온 Mingalar Zeyon 쿼터에 살던 코하르쉼 Ko

하도록 강요했다.18

Har Shim 가명, 코민민라트 Ko Min Min Latt, 누르모하

메드 Nur Mohamed, 우마웅마웅 U Maung Maung 등 은 불교승려 두 명과 폭도들에게 무참히 살해되었다.24

밤 10시경 띠리밍글라 내 파키스탄 모스크가 불에 타서 무너졌다. 밤 11시와 12시에 일대에 거주하는 부유한 무 슬림의 주택 역시 불에 탔다.20 상점이 약탈, 방화되고

찬예따야 쿼터에 거주하는 우민슈에이 U Min Shwe 씨

파괴된 모스크 주변에는 코란이 찢긴 채 나뒹굴었다.21

는 당시의 긴박한 상황을 알아채고 대피하여 겨우 화를 면할 수 있었다.

20일 밤 소방경고음이 울리고 야간 통행금지령이 발동

“3월 21일 오후 수십명의 무장 폭도가 우리 마을

되었다. 외출금지와 무기소지금지를 알리는 차량이 운행

로 들어오는 것을 목격했어요. 당시 모스크 이맘

되었는데 이윽고 이마저 파괴되었다.

Imam은 대항하지 말고 몸을 피하라고 하였지요.

22

급하게 가족을 데리고 근처 늪지대로 피신했어요. 담요 한 장만 가지고. 그 늪지대 곳곳에는 이웃들

광기는 21일 더욱 확산되었다. 띠리밍글라 쿼터에 사는

도 대피해 있었어요. 아무것도 먹지 못한 채 늪지

마예예 Ma Aye Aye 씨의 남편 코마우나잉툰 Ko Maw

대에서 꼼짝도 할 수 없었지요.”25

Naing Htun 씨는 와드 ward; quarter 산하 행정구역

불에 타는 모스크 © HTT

7


그리고 그는 무장한 불교도 폭도들의 무자비한 방화 와 폭력을 목격했다. 2012년 12월 13일 찬예따야마을 위성사진 © Human Rights Watch

“무장한 폭도들은 찬예따야 모스크에 불을 지르고 가 옥에 불을 지르기 시작했어요. 눈에 띄는 무슬림들을 닥치는 대로 공격했어요. 뱀과 전갈, 해충이 눈 앞에 득실댔지만 난 숨소리조차 낼 수 없었어요. 다섯 아이 도 두려워서 벌벌 떨었지요.”26

경찰은 3월 22일 아침이 되어서야 마을에 출동하였고, 마을 사람들은 경찰 차량을 타고 No. 1 경찰서로 피신 할 수 있었다. 3월 22일에도 학살은 계속되었다. 이날 오후, 타야곤 Thayagon 와드에서 피신 나온 마킨킨트웨 Ma Khin Khin Htwe, 가명 씨의 남편, 시아버지, 딸, 아들 등 일가

2013년 3월 26일 찬예따야마을 위성사진 © Human Rights Watch

족 4명이 장검과 파이프로 무장한 다섯의 불교승려와 열 명가량의 폭도들에게 무참히 살해당했다.27 이와 유 사한 사례가 여러 건 발생했다.

휴먼라이츠워치 Human Rights Watch 는 이 사건 전후 의 찬예따야 쿼터와 띠리밍글라 쿼터의 위성사진을 비 교하며 얼마나 많은 가옥과 상점, 모스크가 피해를 입 었는지 공개한 바 있다.28 이에 따르면, 찬예따야 쿼터 의 442개 가옥과 시설이 전소되었거나 심각한 손상을 입었고, 띠리밍글라 쿼터의 345 개 가옥과 상점 등이 전소되었거나 심각한 손상을 입었다.29

8


3. 광기의 절정 : 밍글라제이온 학교

Mingalar Zayone Madrassa

미얀마 정부가 공식발표한 총 사망자 43명 중 36명은

교사들은 학생들로부터 귀중품, 돈, 신분증을 취합했

밍글라제이온 학교에서 살해당하거나 경찰의 경호하에

고, 무슬림을 표시하는 모자와 옷을 다 벗도록 지시했

이동 중 살해되었다. 학생이 32명, 교사가 4명이다. 무

다.

슬림 공동체는 피해자가 36명이 훨씬 넘는 것으로 추산 한다. 이 사건 당시 실종되어 아직까지 돌아오지 않은

밤 9시 30분경, 학교 바로 앞까지 다가온 폭도들의 소

학생과 교사가 있기 때문이다. 확실한 것은 밍글라제이

리가 들렸다. 이들은 학교를 부수면서 안으로 들어왔다.

온 학교는 당시 가장 처참한 학살이 발생한 곳이며, 이

학생들은 울음을 터뜨렸다. 학생들과 교사들은 모두 학

날이 미얀마 역사상 가장 어두웠던 날 가운데 하나라는

교 밖으로 도망쳐 근처 늪지대 정글로 피신했다. 키가

것이다.30

큰 덤불과 풀들, 관목으로 가득 찬 늪지대 정글에는 이 미 밍글라제이온 마을 무슬림들이 피신해 있었다. 사람

메이크틸라 호수 옆 길다란 제방 길 아래쪽 마을인 밍

들은 진흙 속에 몸을 절반 정도 숨기고 풀과 관목 사이

글라제이온 지역에 세워진 이슬람남성기숙학교 An

에 몸을 숨긴 채 밤을 지새웠다. 학교에 난입한 폭도들

Islamic Bording School for Boys in Mingalar Zayyone는

은 학교를 부수고, 주위의 집들을 불태우고, 모스크를

2009년에 문을 열었다. 전체 학생수는 120명이고 성인

공격하며 미친 듯이 무슬림들을 찾아다녔다. 그리고 무

학생도 몇 명 있었지만 대부분 10대 청소년이었다. 10

슬림을 발견한 즉시 장검과 쇠파이프, 오토바이 체인,

여 명의 교사가 영어, 버마어, 수학, 컴퓨터, 과학, 코란

죽창으로 마구 공격하였다. 폭도들은 마을 여기저기를

을 가르쳤다.31

돌아다니며 “어디에 있는 거냐? 칼라스 Kalas, 무슬림 비 하 비속어 용기가 있다면 당장 나와라”라고 외쳐댔다.33

생존 학생들의 증언에 따르면, 늦은 밤에도 무장한 폭도

3월 20일 오후, 메이크틸라 시장 귀금속 상점의 사건 소

들이 승합차와 미니버스로 밍글라제이온으로 계속 들어

식을 접하였지만 교사와 학생들은 평상시와 다를 바 없

왔다. 새벽에 이르기까지 무장폭도들은 학생들과 주민

는 시간을 보냈다. 불교승려의 살해 소식으로 상황이 더

들이 숨어 있는 늪지대 정글을 핸드폰 조명을 비추며 수

욱 나빠지면서 시내 쪽에서 검은 연기가 솟아나는 것이

색했다.

학교에서도 보였고, 이어 무슬림 상점과 모스크가 방화 되고 있다는 소식을 들었다. 상황이 더 악화되자 교사들 은 학생을 그룹으로 나누어 만약의 상황을 대비했다.32

늪지대에 숨어 있던 몇몇 학생과 주민은 다른 무슬림 거 주지로 숨어들어 갔지만 이내 발각되었다. 공포와 두려 움, 그리고 폭력의 광기는 밤새 밍글라제이온 학교와 마

저녁 8시경, 많은 사람들이 학교로 몰려들기 시작했다.

을, 그리고 인근 늪지대 정글을 뒤덮었다. 발각된 학생

학생들과 교사들은 주변으로부터 불교도 폭도가 학교를

들의 울음소리, 살려달라는 절규, 그에 아랑곳하지 않고

공격하러 가고 있으니 대피하라는 전화를 받았다.

긴 칼과 죽창으로 공격하는 무장 폭도, 그리고 찾아낸 주민, 학생, 교사를 한 군데 모아놓고 휘발유를 뿌려 산 밤 9시경, 메이크틸라 공무원이 학교를 방문하여 교사

채로 태우는 모습은 지옥 그 자체였다.34

들에게 “불교도 테러리스트가 곧 도착할 것이다. 우리 가 보호하기 어려울 것 같다. 어서 학교에서 떠나야 한 다”고 전달하였다. 9


늪지대에 피신해 있던 주민, 학생, 교사들 100여 명은

함께 있던 주민들이 부상을 당하자, 대피해 있던 무슬

새벽에 마을의 어느 구역 Compound, 불교사원이나 군영

림들도 돌과 물건들을 던지기 시작하였다. 이미 광기에

내와 비슷한 형태의 공간으로 피신하였다. 아침 6시경 이

사로잡힌 폭도들에게 자비를 기대하는 것은 불가능함을

들이 피신한 곳에 무장 폭도들이 돌과 불 붙인 나무조각

알았고, 죽지 않기 위해 스스로를 방어하려 하였다.35

을 던지기 시작했다.

4. 이해할 수 없는 경찰의 대처

불타버린 무슬림 사원 © HTT

3월 21일 오전 8시와 9시 사이, 메이크틸라 호수 제방

150여 명의 긴 행렬이 구역에서 나와 옥쳔 Oak Kyune

쪽으로 몇 대의 군인트럭이 멈춰 섰고, 검은 제복과 헬

쿼터 쪽으로 들어서자 폭도들이 장검, 장대, 쇠사슬, 도

멧을 착용하고 방패와 소총으로 무장한 미얀마 경찰

끼, 죽창을 휘두르며 행렬을 공격하였다.38 경찰의 보호

15~20명이 나타났다.36 그들은 무슬림들이 피신해 있

를 믿고 밖으로 나온 무슬림들은 혼비백산하였다. 교사

는 구역으로 다가와서 무기를 버리고 모두 밖으로 나

는 피를 흘리며 소리쳤고, 학생들은 곤봉에 맞아 쓰러졌

오라고 명령했다.

다. 폭도들은 도망치는 무슬림을 붙잡아 돼지고기를 입 에 강제로 넣고 불교식 기도를 강요하며 조롱했다. 도망 치는 무슬림을 향해 장검을 마구 휘둘렀고, 부상으로 신

밤새 두려움에 떨고 있던 무슬림들은 무장 폭도들로

음하는 사람들을 한데 모아서 휘발유를 뿌리고 불을 붙

가득 차 있는 밖으로 나가기가 너무나 두려웠지만 경

였다. 대기에 살이 타는 냄새가 진동하였다. 제방길 곳

찰들이 자신들을 보호해줄 거라 믿고 밖으로 나갔다.

곳은 사람들의 피로 물들었다. 경찰의 보호를 믿고 나왔

경찰은 무장 해제된 무슬림들을 흡사 범죄자처럼 머리

던 150여 명의 학생들과 교사, 무슬림들은 수백 명의 무

를 숙이고 두 손을 깍지 끼워 머리 위에 올린 채 두 줄 로 이동시켰다.

장괴한들에게 둘러싸여 학살당했다.39

37

10


하지만 폭도들의 무자비한 공격과 학살이 진행되는 동

그러나 사건의 발단이 된 메이크틸라 귀금속 상점이 군

안 경찰은 별다른 제지를 하지 않았다. 폭도들을 소개하

중들에게 공격을 당할 때도, 띠리밍글라 쿼터에서 무슬

기 위해 몇몇 경찰이 허공에 총을 쏘아댔을 뿐이었다.

림이 산 채로 불에 탔을 때도, 밍글라제이온 쿼터에서

40

무슬림 행렬이 폭도들에게 공격을 받을 때도 경찰은 현 장에 있으면서도 폭도들을 막거나 산개하려는 어떠한

대다수 무장한 경찰들은 학살 현장에서 물러서서 제방

노력도 하지 않았다.42

쪽 트럭이 주차된 곳으로 이동했다. 제방 아래쪽에서는 지옥이 펼쳐졌다. 불에 타서 재가 된 시신들이 여기저기 방치되어 있었다. 수십 명의 경찰이 더 도착한 이후 경

또 사태가 진정국면으로 들어선 후 피해자 가족들의 범

찰들은 제방 언덕 위에 피신한 무슬림들을 모아서 차에

죄신고 및 가해자 처벌 요구에도 경찰은 아무런 조치를

태웠다. 그리고 경찰은 그들을 메이크틸라 No.2경찰서

취하지 않았다.43 그들은 무장 폭도들의 살인과 방화를

로 이송하였다.41

묵인하고 정의 실현을 요구하는 무슬림 피해자 가족들 의 목소리를 외면했다.

2013년 3월 22일, 테인쉐인 Thein Shein 당시 대통령은 결국 국가비상사태를 선포하고, 군대를 메이크틸라 지 역에 파견하였다. 이후 사태는 겉으로는 진정국면에 들 었다.

2013년 3월 21일 불 타버린 무슬림 가옥 © HTT

11


도움의 손길들 메이크틸라 야다나우 사원 Yadana Oo Monastery 근처에 거주하는 킨마초 Khin Mar Cho44 와 모찌딴 Mo Kyi Than45 은 2013년 3월 20일을 정확히 기억하였다.

“사건 당일 3월 20일 오후 6시경, 시내 쪽에서 연기와 화염이 보였어요. 큰 난리가 났다는 이야기를 사람들 에게 들었어요. 서둘러 집으로 들어왔죠. 그런데 집 근처 사원으로 이웃 무슬림들이 대피했다는 걸 알게 되 었지요. 가만히 있을 수 없어서 사원으로 갔고 내가 할 수 있는 일을 찾아서 했지요. 주로 음식과 물을 나눠 주고, 집에서 옷을 가져와서 대피한 사람들에게 나눠줬어요. 사원에는 거의 70~80명의 무슬림들이 대피 해 있었고, 점점 더 늘어났지요. 그들은 나무 아래 바닥에서 잠을 청했어요. 안타까웠어요.”

1990년부터 메이크틸라에서 미얀마의료협회 Myanmar Medical Association를 결성하여 의료봉사를 해온 의사이자 틸라 쑤카 테메기 Htilar Thukha Thermeggi, HTT 단체의 대표인 킨쏘 Khin Soe 는 다음 과 같이 증언하였다.46

“사건 발생 이전에 불교도와 무슬림은 평화롭게 잘 지냈어요. 제 생각에는 학살과 방화는 외부세력이 조직 적으로 진행한 것이 아닌가 싶어요. 사건 발생 이후 무슬림뿐만 아니라 불교도들도 방화 피해를 입었어요. 사건 직후 지역의 사람들과 HTT를 결성하여 피해자 지원활동을 했어요. 가장 시급한 피난캠프에 긴급 식 량과 물을 지원하고, 임시 병원을 개설하고, 아이들 교육 프로그램도 진행하였어요.”

야다나우 사원의 주지인 우진페인 U Zin Pain 스님은 광기에 휩싸인 폭도들로부터 1,200명의 무슬림 을 보호해 World Harmony Award 및 Lokasara Peace Prize를 수상했다.

“3월 20일, 사원 주변 마을에 거주하는 무슬림 40명 정도가 보호해줄 것을 절박하게 간청했어요. 그들을 사원 내로 들였지요. 주변지역의 무슬림들까 지 보호요청을 해서 다 받아들였어요. 3월 21일 새벽 1시쯤 무장한 폭도들 이 몰려와 사원 내에 있는 무슬림들을 다 내놓으라고 했어요. 내가 죽기 전 에는 안 된다고 단호하게 이야기 하였어요. 사원에는 5명의 승려가 더 있 었는데 이들도 내 옆에 서서 함께 맞섰어요. 다행히 폭도들은 물러났어요. 21일은 하루 종일 사원뿐만 아니라 메이크틸라 전체가 혼돈스러운 상황이 었어요. 나중에 보니 무슬림 800명, 불교도와 기독교인 300명 등 총 1,200 명의 주민들이 사원으로 대피했더군요. 보호를 요청하는 사람은 다 받았어 요. 메이크틸라 여러 단체에서 음식과 물 등은 공급해주었지만 화장실 문 제를 해결할 수 없어 오랫동안 수용하는 것은 불가능했지요. 그래서 3월24 일 정부 관료들과 함께 이들을 임시 난민캠프인 No. 5 고등학교로 이주하 도록 하였어요.”47 우진페인 스님 © 아디

12


Ⅲ. 실패한 진실규명과 정의

Access to Justice

본 사건으로 13,000명의 국내난민이 발생하고, 2,245개의 가옥이 파괴되었으며, 무슬림측 집계 약 100여명이 사 망하고, 86명가량이 부상을 입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피해자와 이해관계자들의 증언에 따르면, 정부는 진상규 명, 책임자 처벌, 손해배상 및 재발방지 조치를 제대로 하지 않았다.

1. 진실규명 피해자 및 이해 관계자들은 정부차원의 독립적이고 공

변호사 우아웅테인 U Aung Thein은 정부의 통계와 달

평한 진상조사가 제대로 이뤄지지 않았다고 증언한다.

리 무슬림공동체가 파악하고 있는 사망자는 89명인데,

미얀마 지역정부는 사망자가 43명에 이른다고 하였다.

이마저도 실종자를 포함하지 않은 것이라고 했다.49

그러나 이는 무슬림 공동체가 파악한 사망자 수와 현저 히 다르다.

한편, 정부관계자와 언론은 이번 사건을 불교도와 무슬 림의 우발적 충돌이 공동체 전체로 확산된 것으로 파악

틸라 쑤카 테메기 Htilar Thukha Thermeggi, HTT 의 싼

하고 있다. 하지만 일부는 이와 같은 공동체 폭력사태

윙쉐인 San Win Shein에 따르면, 실제 사망자 수가 100

를 유발하고 증폭시키는 외부세력이 있다고 주장한다.

여 명이 넘고, 희생자 대부분이 무고한 무슬림 아동과

여기서 외부세력이란 무장한 30~40여 명의 젊은 그룹

노인이다.

을 일컫는다. HTT가 조사한 사망자 명단 © 아디

13


킨쏘 Khin Soe는 이 사태가 귀금속 상점의 다툼으로 시

방문하였지만, 200명의 현지인들이 그의 차량을 가로막

작되었고 승려가 살해된 사건이 결정적이었다고 평가하

고 차량을 가격하는 등 폭력적인 방법을 통해 조사방문

면서도 외부세력에 의한 공격과 방화가 조직적으로 진

을 막은 바 있다.55

행되었음을 주장했다. 이들은 오랫동안 메이크틸라에 거주한 주민들에게도 낯선 얼굴이었는데, 이들이 조직

2. 실패한 정의 실현

적으로 공격했다고 증언했다.51

2013년 사건 이후 현재까지 살인, 방화, 폭행 등으로 기

찬쩌 Chan Kyaw도 2013년 사건이 내부의 불교도에 의

소되어 처벌 받은 사례는 피해의 광범위함에 비해 매우

해 촉발되었다기보다 외부세력이 개입하여 문제가 커졌

제한적이며, 기소 및 재판 그리고 형량에서 불교도 피의

다는 동일한 견해를 밝혔다.52

자와 무슬림 피의자 사이의 차별이 존재한다.

이러한 관점은 2012년 라카인주에서 발생한 불교도-무

우선, 개별 사건에 대한 경찰조사 및 가해자 처벌에 실

슬림 폭력사태 이후 미얀마 전역에서 발생한 유사한 사

패한 사례가 많다. 예를 들어, 3월 21일, 밍글라제온

태에서 공통적으로 나타난 특징을 근거로 하고 있다. 특

Mingalar Zeyon 쿼터의 얀묘아웅 Yan Myo Aung에서 불

히 인권단체 정의기금 Justice Trust은 최근 만달레이에

교승려와 무장폭도에 의해 코하르쉼 Ko Har Shim 가명,

서 있었던 일부 무장그룹의 폭동 시도를 분석하여 이런

민민라트 Min Min Latt, 누르모하마드 Nur Mohamad,

주장에 신빙성을 더하고 있다.53

우마웅마웅 U Maung Maung 등이 살해된 사건을 피해 자 가족이 경찰서에 신고하고 가해자 수사 및 처벌을 요

싼윙쉐인 San Win Shein 씨는 나아가 메이크틸라의 무슬

구했으나 어떠한 조치도 취해지지 않았다.56

림 학살을 포함하여 다른 지역의 폭력을 선동하는 그룹 의 배경에는 정부관료, 정당, 불교조직, 사업가 등이 있

3월 22일, 윈칫우 Win Chit Oo와 아사이지 Ah Shay Gyi

고, 이들이 사전에 각자의 이익에 따라 계획한 것으로

도 불교승려들과 일부 폭도에게 무참히 살해당해 피해

추정하고 있다.54

자 가족들이 경찰에 지속적으로 범죄사실을 알리고 수 사를 촉구하였으나 어떠한 조치도 취해지지 않았다.57

그러나 정부는 이런 주장을 입증할 충분한 증거가 없다 는 입장만 밝혔을 뿐 구체적 조사에 나서지 않았다.

둘째, 제한적으로 이루어진 가해자 처벌에도 허점이 많 았다. 아웅테인 U Aung Thein 변호사에 따르면, 불교도

위와 같이 피해상황에 대해 합리적 이견이 존재하고, 단

30여 명이 피의자로 지목되었는데, 이 중 17명이 2~7

순 폭행사건을 공동체 전체의 무슬림 학살과 방화로 촉

년형의 징역형을 선고 받았다.58 16명에게 적용된 죄명

진시킨 배후세력에 대한 합리적 의혹이 존재함에도 정

은 사체훼손죄에 불과했고, 1명만이 살인죄로 처벌되었

부는 이를 해소하기 위한 독립적이고 공평한 조사에 착

는데 그마저 7년형을 선고받았다.59 미얀마 형법은 살

수하지 않았다.

인죄의 법정최고형을 20년으로 정하고 있으며, 보통 살 인죄는 7년 이상, 강간살인은 10년 이상이 선고된다. 나 머지 13명에는 어떠한 법적 조치도 취해지지 않았다.60

국제사회가 주도하는 공식적 진상조사도 성사되지 못

수사 및 기소조차 없었다.61

했다. 2013년 8월 19일, 전 유엔미얀마 인권특별보고관 토마스 퀀타나는 메이크틸라 지역에 학살조사차 14


2013년도 메이크틸라 학살 후 난민캠프 © UNOCHA

살인죄로 7년형을 선고받은 불교도는 2013년 사건 당

도 14년형을 받았다. 단순비교해도 법적용의 차별이 엿

시, 불교승려 1명과 다른 청년 1명과 함께 아동 3명과

보인다.

어른 2명을 살해한 바 있다.62 이 가운데 청년은 근래에 재판을 받아 2016년 9월 현재 4개월째 복역중이고 불교

한편, 피의자 조사와 재판과정에서 고문 자행 및 적법

승려는 여전히 도주 중이다.63

절차 위반의 주장이 제기되었다. 무슬림 묘아웅 Myo Aung, 가명은 살인 형법 302조, 명예훼손 형법 295조 혐의

또 티리밍글라 쿼터에서 거주하던 텟나잉 Thet Naing과

로 2013년 3월 체포되어 자백을 강요받았으나 결백을

쩌난윈 Zaw Nan Win은 3월 20일 불교승려와 20여 명

주장했고, 결국 살인과 명예훼손죄는 무죄 판결받고, 비

의 폭도에게 살해된 사건에서 세 명만이 가해자로 기소

상사태명령 제144조 위반으로 2년형 선고받고 복역하

되어 재판을 받았고, 그 중 한 사람만 5년형을 받고 다

였다고 밝혔다.67 무엇보다 그는 수형기간에 고문과 비

른 두 사람은 무죄로 석방되었으며, 그 외 나머지 가해

인도적 대우를 받았고 변호인의 조력을 받지 못하는 등

자들은 조사조차 받지 않았다.

적법절차가 보장되지 않았다고 증언했다.68

64

무슬림의 경우, 우아웅테인 U Aung Thein 변호사와 싼

한편, 진실규명이 제대로 이뤄지지 않은 상황에서 피해

윙쉐인 San Win Shein에 따르면, 불교승려 살해죄로 4명

자에 대한 전면적인 보상을 기대하는 것은 사실상 불가

의 청년이 재판을 받았다. 또 귀금속 상점 주인을 포함

능하다. 일반적으로 피해자, 가해자, 피해규모가 확정된

한 그 가족 3명은 14년형을 선고받고 복역 중이다.

후에는 보상의 정도를 결정할 수 있다. 메이크틸라의 경

65

울러, 난민캠프에 머물고 있던 18세 미만의 두 아동이

우 진실규명의 부재와 더불어 피해자에 대한 원상회복

학생을 살해한 혐의로 20년형을 선고받았으며, 다른 3

또는 금전적 배상은 이뤄지지 않았다. 심지어 사망자에

명이 명예훼손과 방화로 처벌받았다.

대한 종교적 장례식도 제대로 이뤄지지 못했다.69

66

무고한 무슬림 다섯 명을 죽인 불교도는 살인죄로 7년

또 정부는 2013년과 유사한 폭력이 재발하지 않도록 적

형을 선고받은 반면 불교도 한 명을 죽인 무슬림은 살인

극적 조치를 취하는 데 실패했다.

죄로 20년형, 귀금속 상점 주인 가족은 살인죄가 아님에 15


IV. 국내난민의 처지

1. 난민캠프의 상황 메이크틸라 학살로 발생한 13,000명의 국내난민 중

도 다르지 않은 열악한 상황이었다.77 네 식구가 1개의

9,600명은 학교와 종합경기장 등 임시구역 5곳에 나뉘

텐트에서 살았는데, 카펫이나 커튼으로 각자의 공간을

어 수용되었고, 3,300명은 지역 사원에 수용되었다.70

나눈 상황에서 당연히 사생활은 보장되지 않았다.

국내난민들은 경찰서 곳곳에 임시로 수용되었다가 임시 로 마련된 난민캠프에 머물게 되었다. 짧게는 2개월에

우기에는 텐트 안이 침수되어 생활하기 어려운 수준이

서 길게는 3년이 지난 지금까지 캠프에서 힘든 생활을

었다. 대나무로 만든 임시텐트의 경우에는 방수천을 지

했거나 일부는 지금도 이어가고 있다.

급받지 못해 비가 텐트 안으로 스며들었다.78 또 식수와 생활용수는 늘 부족했다. 지역 행정 공무원에게 지원과

지난 3년간 수도국 Water Supply Ministry에서 관리하

개선을 요청하였으나, 재원의 부족을 이유로 제대로 된

는 한 캠프에서 머물렀던 쉐리프 Sheriff는 학살을 피해

조치가 취해지지 않았다.80

No. 1 경찰서로 피신하였고, 임시텐트에서 가족과 함께 1개월을 보낸 후 수도국 임시캠프에 머물게 되었다.71

취학아동들은 학교에 다니지 못했다. 혹시 있을지 모를

가로 세로 약 2미터 정도의 좁은 공간에서 쉐리프 부부

공격을 염려하여 부모가 학교에 보내지 않은 경우도 있

와 5명의 자녀가 지내야 했다.72

었다.81

정부로부터 5일에 한 번씩 쌀, 콩, 오일을 받았고, 종교

학살과 방화가 종료된 후에도 메이크틸라 지역 내의 긴

구호기구 및 단체로부터 고기나 참치, 그리고 옷과 이

장감은 여전히 높았다. 모든 난민캠프는 지역경찰에 의

불을 지원받았다.73 특히 수천 명의 피난민들이 겨우

해 통제가 되었다.82 캠프거주자의 경우 일과시간에는

15~20개의 화장실을 사용해야 했다.74 심각하게 부족

캠프 출입이 자유롭게 허용되었으나 야간 출입은 통제

한 수준이었고 그마저도 화장실 구덩이가 깊이 설치되

되었다.83 난민캠프 거주자의 친인척 방문도 자유롭지

지 않아 화장실이 매번 넘쳤다.75

못했다.84 난민캠프 거주자를 만나거나 내부로 출입하 려면 경찰의 사전 허가를 받아야 했다.85

뿐만 아니라, 900명이 머문 종합경기장에 설치된 난민 캠프의 임시텐트는 사생활이 보호될 수 없는 구조였다.

특히 외부인권단체나 구호단체도 난민캠프로 접근하

가족구성원들 간에 경계가 없어 가방이나 옷으로 서로

는 게 쉽게 허용되지 않았다.86 인도적 지원활동을 하

의 경계를 나눴다. 내부공간은 두 사람이 동시에 지나갈

면서도 지역 내 불교도의 적대적 시선과 위협을 감수해

수 없을 정도로 좁았다.76 탄탄우 Than Than Oo의 경우 16


야 했다.

그리고 2014년 10월에 이르러서야 임시캠프에 거주하 는 국내난민은 약 3,300명으로 줄어들었다.89 사건 발 생 1년 후, 메이크틸라 지역관청은 국내난민이 이전 거

요약하자면, 임시난민캠프에 거주했던 국내난민은 식

주지에 대해 소유증서나 소유권 증빙 서류로 증명하는

량•식수•생활용수의 부족, 열악한 거주공간과 텐트,

경우에 찬예따야 쿼터에 건설 중인 재정착촌에 우선 분

화장실 및 생활폐수 처리시설의 부족으로 인해 생존권

양한다는 방침을 세웠고,90 띠리밍글라 쿼터의 경우 증

이 위협받았고, 이동의 자유가 제한되었다. 아동들의 학

명한 피난민만 본인의 이전 집터로 돌아가서 재건축을

교 정규 교육이나 의료서비스를 받는 것조차 제대로 보 장되지 못하는 상황이었다.

할 수 있도록 허락하였다.91

87

2015년 4월 미얀마 정부 발표에 따르면, 메이크틸라의

2. 돌아가는 사람들과 남겨진 사람들

모든 난민캠프는 공식적으로 문을 닫았다.92 그러나 종 합경기장 내 임시캠프에 170여 세대가 머물고 있었다.

국내난민 중에는 주택이 파괴되거나 전소되지 않아 거

정부는 그중 100여 세대는 이주의 경제력을 갖추었거

주가 가능함에도 무장 폭도들의 살인과 폭력 때문에 경

나, 학살과 방화의 피해를 받지 않은 그룹이기에 재정착

찰서와 임시캠프로 피신한 사례가 적지 않았다. 이런 난

사업의 대상이 아니라고 밝힌 바 있다.94

민의 경우, 상황 종료 이후 약 한 달이 지난 2013년 4월 부터 자신의 집으로 돌아갔다.

이전 거주지의 소유증서가 이번 사건으로 인한 방화 등 으로 소멸되거나 소유권이 없던 국내난민들은 소유관계 를 증명할 수 없기 때문에 ‘피해를 받은 그룹’으로 인정

유엔 인도주의업무조정국 UN Office for the Coordina-

받지 못했고 캠프에서 계속 남아 있을 수밖에 없었다.

tion of Humanitarian Affairs에 따르면 2013년 3월 27일

13,000명에 달하던 국내난민 중 5월 9일까지 약 2,900 명이 자신의 본래 거주지로 돌아가고 7,600명의 국내난 민이 임시캠프에 남아 있었다.88

2016년 메이크틸라 IDPs 캠프내 임시텐트 © 아디

17


예를 들면, 난민캠프에 여전히 체류 중인 킨싼미얀이

사건이 발생한 지 3년 반이 지난 2016년 9월에도 종합

Khin San Myint Yi 는 20년 전 지역정부의 교육청이 그

경기장 내 난민캠프에는 14세대의 국내난민이 여전히

녀가 당시 거주하던 집을 학교부지로 편입시키면서 띠

지내고 있었다. 지역정부는 이들을 쫓아내기 위해 강제

리밍글라 쿼터로 이주했고 2013년 사건이 발생하기 전

퇴거명령도 내린 상태였다.

까지 거주했다.

95

한편, 원거주지의 복귀에 필요한 모든 서류를 구비했음 이때 관계당국이 공문서에 이를 반영하지 않았고 그녀

에도 불구하고 관계당국 또는 경찰이 복귀를 거부하는

는 이전의 주택에 부과되는 세금을 꼬박꼬박 내고 있었

경우도 발생했다. 원거주지로 복귀하면 이웃주민, 불

다.

교도 극우주의자 및 969운동세력의 공격 대상이 되거

96

나 이들과 싸움이 발생하여 신변의 안전을 보장할 수 없

지역정부는 2013년 사건이 발생할 당시 거주하던 주거

다는 것이 이유였다. 이는 종종 국내난민의 재산권 침

지에 대한 기록이 공식문서에 없다는 이유로 그녀에게

해로 이어졌다.

새로운 거주지의 주택을 제공하지 않았다.97

메이크틸라 IDPs 캠프내 임시텐트 내부 © 아디

18


V. 재정착촌: 챤예따야

Chan Aye Thar Yar

메이크틸라 찬예따야 마을의 2016년 9월 © 아디

쿼터

사건 이후 2년이 흐른 2015년 4월, 구호단체, 무슬림단 체, 개인후원자 등이 재정지원하고 메이크틸라 지방정 부 재정착위원회에서 건설을 주도한 찬예따야 쿼터에 국내난민들이 재정착하였다. 새로 건설된 380개의 독 립주택에 300여 세대 가구가 입주를 했다.103 이어서 지방정부는 임시캠프에 수용되었던 일부 국내난민을 재 정착시켰다. 2016년 10월, 시멘트 또는 합판으로 지어 진 730여 개의 주택에 약 4천 명이 거주하고 있다. 2013년 3월 이전에 30×50 ㎡ 크기 이상의 토지권리를 소유하고 이를 증명한 주민에게는 우선적으로 1 주택을 분양하고, 그 미만 크기의 토지권리를 소유한 주민은 다 른 가족과 집을 공유해야 했다.104 우띤꼬 U Tin Ko 씨 가족은 무슬림으로 본인을 포함하 여 아내와 아들(1)과 딸(3), 총 6명이다. 문제는 이들이 이전 거주주택의 소유권을 증명할 수 없어 1주택을 배 정받지 못하고 다른 가족들과 함께 집을 공유하게 되었 다는것이다.105 그러나 장소가 지나치게 협소하여 생활 할 수가 없어서 지금은 찬예따야 쿼터의 모스크에서 지 내고 있다.106 그에 따르면, 지역정부가 메이크틸라 내 다른 국내난민을 찬예따야 쿼터에 함께 재정착시키면서 주택이 부족하여 상당수가 다른 가족과 1주택을 공유할 수 밖에 없었다.107 무슬림은 재정착촌 주택배정에도 차별을 받았다. 불교 도들은 집을 배당할 때 제비뽑기를 하지 않아도 됐지만 무슬림은 제비뽑기를 해야 했다.108 시멘트로 지어진 주택은 대부분 불교도에게 배정되고, 합판으로 지어진 주택은 대부분 무슬림에게 배정되었 다.109 19


상대적으로 높은 지대에 건설된 주택은 상당수 불교도

우민슈에이 U Min Shwe 씨는 재정착촌 다른 가정의 가

에게 배정되었고, 메이크틸라 호수 인근의 낮은 지대

장과 마찬가지로 일용직 노동자이다.116 일거리가 없는

에는 대부분 무슬림들이 배정되었다.110 실질적으로 불

날도 있다. 2남 3녀를 자녀로 두었는데 큰아들은 돈벌

교도-무슬림 거주구역은 구분되어 있다.111 우기에 비가

이를 하러 타지로 이주했고, 6살 아들만 초등학교에 다

내리면 재정착촌의 낮은 지대는 주택뿐만 아니라 통행

니고 나머지 자녀는 모두 집에 방치되어 있다.117

도로도 무릎 정도의 물에 잠겨 왕래가 불가능하다.112 더욱 심각한 것은 온갖 쓰레기와 오폐수로 인하여 악취

요약하면 2013년 3월 무슬림 학살과 방화가 종료된 이

가 심각하고 거주민의 위생건강에 부정적 영향을 끼치

후 종교간 화해의 상징적 의미를 새기기 위한 목적으로

고 있다는 점이다.113 마을 우물은 식수로 부적합하여

계획된 찬예따야 쿼터의 재정착촌은 면밀하지 못한 정

대부분의 거주민은 식수를 사 먹는 상황이었다.114

착촌 건설 계획과 부족한 자원 그리고 종교간 차별의

화장실 구덩이를 깊게 설치하지 않아 인분이 넘치기 일

관행으로 인해 거주민들은 주거권과 식수 보건 위생 등

쑤이고, 배수시설이 완비되지 않아 생활폐수가 집 안으

생존권에 위협적인 상황에 노출되어 있다.

로 역류하는 경우가 비일비재하다.

115

쓰레기로 뒤덮인 메이크틸라 찬예따야 마을 ©아디

20


VI. 일상화된 억압과 차별

2013년 사건 이후 메이크틸라의 무슬림들은 불교도 극

이들은 상점 앞에 969운동을 상징하는 깃발을 달게 하

우주의자와 969운동세력이 체계적으로 주도하는 혐오

고 있는데, 이는 마치 무슬림 출입금지를 표시하는 것

발언의 피해자가 되었고, 경제적, 사회적 영역 전반에서

처럼 사람들에게 인식되고 있다.

차별을 받고 있다. 불교도는 무슬림에게 건물임대를 거부하고 있다.125 2013년 사건 이전에 발생한 무슬림-불교도 간 채권채

메이크틸라 공동체에서는 혐오발언이 이동확성기를 통

무를 2013년 이후에 채무자인 불교도가 부인하는 경우

해 일상적으로 방송되고 있다. 혐오발언을 담은 DVD

도 발생했고, 무슬림 소유의 건물이 2013년 사건 이후

가 일반인에게 대량 배포되고 있다. 찬쬬 Chan Kyaw 는

로 불교도가 약취하여 소유하게 된 사례도 있었다.126

현재 시내에서 오토바이를 타고 다니며 불교를 옹호하 는 자극적 음악을 방송하거나 무슬림들에게 혐오발언

찬쬬 Chan Kyaw는 학교에서 반무슬림 정서가 재생산

을 하는 사람들의 모습을 목격했다고 증언했다.118 자신

되고 있다고 증언했다.127 그에 따르면, 중고등학교에서

을 향한 혐오의 표현들을 일상적으로 듣는 탓에 무슬림

는 무슬림을 ‘Kalas’라고 비하하며 확인되지 않은 소문

개개인은 2013년의 폭력이 언제든 다시 발생할 수 있다

과 정보를 주입하고 있다.128

는 공포심을 갖고 심리적 상처 또한 깊어지고 있다. 무슬림에 대한 차별은 이미 일상화되었다. 불교도와 무

더욱 심각한 것은 무슬림 거주지역에서 불교승려가 주

슬림은 더 이상 이웃으로 자유롭게 왕래하며 살기 힘들

도하는 개종행사를 개최하면서 참석자와 인근주민에게

어졌다. 무슬림과 불교도는 더 이상 결혼을 할 수 없게

무슬림에게 허용되지 않는 돼지고기를 대접하는 일도

되었다.

있다는 점이다.129 또 2016년 9월에는 메이크틸라 내

119

무슬림은 불교도가 운영하는 사업장에 더 이

상 취업할 수 없게 되었으며, 해고를 당하는 일이 빈번

불교승려가 유력사업가의 지원 속에 혐오발언을 주내

히 발생했다.

용으로 하는 야단법석을 3시간가량 지속했다.130

120

불교도 극우주의자와 969운동은 종교간 화해와 평화

예를 들어, 테찌 Htay Kyi에 따르면, 969세력은 일반 불

그리고 인권 활동까지 방해하고있다.

교도들에게 무슬림과 교류하지 말라고 경고하면서, 교 류할 경우 폭행하겠다는 위협도 서슴치 않았고 무슬림

2013년 이후 메이크틸라 내 일부 불교도 지도자와 무슬

과 교류하지 않겠다는 서약을 받았다.121

림 및 기타 소수종교 지도자들은 HTT라는 조직을 결 성하고 종교 간 대화와 이해를 통해 이웃종교 주민들이

불교도는 무슬림 상점에서 물건을 사지 않거나 사지 못

화해하고 지속가능한 평화적 관계를 재구축하는 데 기

하도록 위협받는다.122 반대로 불교도 상점은 무슬림에

여하고자 하였다. 이웃종교 청년들을 워크숍에 초대하

게 물건을 판매하지 않는다.123 불교도가 무슬림 상점의

여 프로그램을 진행하는데 지역경찰과 군대, 그리고 불

물건을 사게 될 경우 불교도 극우주의자와 969운동세

교도 극우주의자 및 969운동 세력이 행사 장소에 몰려

력의 폭력과 위협에 시달려야 한다.124

와 행사진행을 방해하거나 참가자에게 개인 정보를 21


969운동 및 불교도 극우주의 969운동(지도자 위라두 Wirathu)은 종교를 증진하고 보호하기 위해 결성된 평화 적인 풀뿌리운동이라고 자칭한다. 969는 석가의 미덕 Virtues, 불교도 수행 Practices, 그리고 불교도 공동체 Community를 의미한다. 그러나 무슬림에 대한 차별

과 폭력 그리고 살인을 선동한다. 969운동은 무슬림이 미얀마를 전복하려 한다고 믿고 무슬림의 비즈니스에 보이 콧하는 캠페인을 벌이고 있다. 무슬림에 대한 혐오발언을 전파하고, 상점 앞에 969운동 로고나 깃발을 전시한다. 이들은 군부정권의 지원 속에 성장했다고 알

969 스티커 © 969movement.org

려져 있으나 정작 군부정권은 이 의혹을 부인하였다.

메이크틸라 시내 969 스티커를 붙인 2016년 9월 가게의 모습 © 아디

캐물어 두려움을 주어서 관련행사에 참여하지 못하게 방해했다.131 또 불교도청년네트워크가 주관하는 인권워크숍에 지역 경찰과 군대, 그리고 불교도 극우주의자 및 969운동이 행사장소에 찾아와 행사진행을 방해하고, 참가자들의 가정을 방문하여 참가자의 부모에게 인권워크숍과 같은 행사는 자녀를 무슬림으로 개종하기 위한 행사라고 왜 곡하여 겁박하였다.132 따라서 2016년 10월 현재 위와 같은 풀뿌리 단체 주도의 유사한 행사는 공개적으로 진 행되기 어려운 상황이다.133 우진페인 U Zin Pain 스님에 따르면, 위와 같은 일상화 된 억압과 차별로 인해 무슬림과 상당수 불교도 주민들 은 두려움 속에 살고 있다.134 마치 화난 군중에 돌을 던 지기 바로 직전의 상황처럼 메이크틸라 주민들은 언제 든 폭발할 수 있는 긴장감 속에 살고 있다.135

22


VII. 결론

2013년 3월 광기의 3일로 인해 직간접 피해자들은 엄청

난민은 생존의 위협 속에서 몸부림을 쳐야 했다. 또 난

난 희생을 치러야 했다. 무장한 폭도들은 무고한 무슬림

민캠프를 출입하는 자유가 제약되었으며, 무슬림 아동

아동과 노인을 살해하고 살아 있는 상태로 불에 태웠다.

들은 신변의 위협을 이유로 학교 교육을 포기한 경우가

수천의 주택을 방화하고 십여 개가 넘는 모스크를 파괴

많았으나 정부는 적극적 조치를 취하지 못했다.

했다. 그 결과 메이크틸라 인구 40만명 중 13,000명이 국내난민이 되었다.

사태가 진전됨에 따라 상당수 국내난민은 자신의 원거 주지로 복귀했다. 이 과정에서 주거지에 대한 소유권 등

더욱 심각한 문제는 사후처리였다. 정부는 계엄령을 선

권리를 증명해야 했다. 반대로 이를 증명할 서류와 증서

포하여 사태를 진정시키긴 하였으나, 3일간의 무슬림

가 이번 사건 중에 소멸되거나 담당 관청의 실수로 서류

학살의 배후, 가담자, 정확한 피해자 및 피해 정도 등에

상 오류가 있는 경우, 정부는 복귀를 허용하지 않았다.

대한 독립적이고 공평한 진상조사를 이행하지 못했다.

따라서 이들은 여전히 난민캠프에 남겨져 있다.

메이크틸라 내 지식인과 종교 지도자, 그 밖의 전문가들 이 이번 사태의 핵심주범으로 외부의 무장세력을 지목

원 거주지로의 복귀에 필요한 서류가 완비된 경우에도

하고 있음에도 이들에 대해서는 조사조차 진행되지 않

신변의 위협 등을 이유로 복귀를 허용하지 않은 사례가

았다.

있다. 관계당국은 해당 공동체 내에 반무슬림 정서가 심

제대로 진행된 진상조사가 없었기에 제대로 된 정의실

각하고 앞으로 폭력사태가 발생할 것을 우려하며 다른

현이 불가능했다. 극히 일부의 가해자만이 확정되었다.

곳으로 이주할 것을 종용하기도 했다.

그리고 처벌과정에서 무슬림 가해자와 불교도 가해자 사이에 차별이 존재했다.

찬예따야 쿼터 재정착촌은 무슬림과 불교도가 공존하 무장 폭도를 이끌었던 불교승려는 단 한 사람도 조사되

는 형식이지만 실질적으로 구분되어 있다. 새로 건축된

거나 지목된 적도 없다. 나아가, 사태 확산을 막지 못한

주택을 배정할 때 무슬림과 불교도 사이에 차별이 있었

채 방관으로 일관했던 정부와 경찰 책임자에 대한 처벌

다. 불교도는 주로 시멘트로 지어진 집을 배당받고, 대

또는 징계 등의 조치도 내려진 바 없다. 결국 피해자 보

부분의 무슬림은 합판으로 지어진 집을 배당받았다. 무

상과 재발방지를 위한 적극적 조치가 취해지지 못한 채

슬림은 대부분 낮은 지대에 위치한 집이어서 우기때면

사태는 봉합되었다.

물이 범람하여 생활뿐만 아니라 보건위생에 취약한 상 황이다.

13,000명의 국내난민은 2개월~3년간 난민캠프에 머물

광기의 3일 후 무슬림에 대한 억압과 차별은 일상화되

수밖에 없었다. 지나치게 비좁은 임시캠프에서 사생활

고 체계화되고 있다. 메이크틸라 주민은 누구나 일상적

보장을 기대하는 것은 사치였다. 정부와 지원단체에게

으로 무슬림에 대한 혐오발언에 노출되어 있으나

받은 식량과 생활용품은 항상 부족했다. 우기에는 비와 생활폐수가 텐트 내에 들이쳐 불편함뿐만 아니라 보건 위생에도 악영향을 끼쳤다.

23


VIII. 권고사항

제재조치는 취해지지 않고 있다. 불교도는 무슬림 상점

아디는 2013년 학살 피해자의 존엄성 회복을 위하여 미

에서 물건을 구매하지 않도록 강요당하고 있다. 무슬림

얀마 정부와 국제사회에 아래와 같은 세부사항을 권고

은 불교도 사업장에 취업이 불가능해졌고 다니던 사람

한다.

들도 해고되었다. 불교도는 무슬림에게 건물 임대도 하 지 않고 있다. 또 종교 간 화해와 평화, 그리고 인권에

미얀마 정부

관한 풀뿌리 차원의 노력도 제재의 대상이 되고 있다. 이러한 억압과 차별 관행의 뒤에는 불교도 극우주의자

• 2013년 메이크틸라 학살 사건에 대해 독립적이고

및 969운동 세력의 체계적인 활동이 자리잡고 있다. 이 는 군부와 경찰의 암묵적 지지와 의도적 무관심 속에 더

공평한 진상조사를 수행해야 한다. 독립적이고 공

욱 공고해지고 있다.

평한 진상조사를 보장하기 위하여 진상조사위원회 를 설치하고 이에 무슬림공동체와 시민사회의 참여 를 보장하여야 하며, 필요에 따라 유엔 또는 INGO 소속 전문가의 참여를 보장하여야 한다. 진상조사 위원회는 메이크틸라 학살 사건에 가담한 불교승려 및 폭도와 가해자 전원을 조사하여야 하며, 당시 지 역경찰과 군대의 역할과 책임에 대하여도 조사하여 야 한다. • 진상조사위원회의 조사결과에 따라 사건 당시 가해 자와 책임자를 공정하고 신속한 재판을 통해 법적으 로 처벌해야 한다. 이와 관련하여 어떠한 형태의 면 책이 부여되어서는 안 된다.

• 2013년 메이크틸라 학살과 방화 등의 피해자 또는 피해자 가족 내지 법적상속인 등에게 전적인 배상 full reparations을 제공하여야 한다. 미얀마 중앙정

부 및 지방정부는 피해자의 의사에 따라 금전적 배 상이 부적합하다고 여겨질 경우 용인가능한 형태의 피해회복적 정의를 개인 또는 공동체적 차원에서 구현할 수 있도록 노력해야 한다.

24


국제사회 • 메이크틸라의 2013년 무슬림 학살에 관한 독립적이

• 아직까지도 장례를 치르지 못한 피해자 유족 또는 법적상속인에게는 그들이 선택하는 방식의 장례식

고 공평한 진상조사를 지원하기 위하여 진상조사위

을 치르도록 지원해야 한다. 피해자를 기리고 학살

원회 구성 및 운영에 실무적 및 재정적 지원을 해야

을 기억하기 위하여 기념비를 세우고, 학교 및 사회

한다.

교육을 통해 진실을 교육하여야 한다. • 종교 간 화해와 평화를 위한 풀뿌리 주도의 프로세스 를 재정적 및 실무적으로 지원해야 한다.

• 2013년 무슬림에게 발생한 형태와 유사한 학살과 폭력이 재발하지 않도록 필요한 모든 입법적, 행정 적, 사법적 그리고 기타 조치를 취해야 한다.

• 미얀마 전역에 확산된 로힝야와 무슬림에 대한 혐오 와 공격에 미얀마 정부가 전면적인 반대와 처벌 등

• 미얀마 전역에 확산되어 있는 무슬림 혐오와 차별,

적극적인 조치를 취하도록 외교적 노력을 다해야 한

공격을 종식시키기 위하여 미얀마 종교지도자, 정치

다.

지도자, 군대 및 정부 내 고위관료는 공동으로, 종교

• 미얀마 전역에 확산된 로힝야와 무슬림에 대한 혐

간 폭력 또는 소수종교 및 소수민족에 대한 폭력은

오와 공격에 관하여 연구조사를 수행하고, 집단학살

용인될 수 없다는 것을 공개적으로 밝혀야 한다.

Genocide을 포함하여 국제형사법과 국제인권법적

• 무슬림에 대한 혐오발언을 확산시키고 폭력적이고

위반 여부를 판단하여 미얀마 정부 및 국제사회에

차별적인 처우를 조장하는 불교도 극우주의자 및

적절한 개입과 조치를 촉구해야 한다.

969운동에 대한 제재조치가 강구되어야 한다.

• 재정착촌 내 피해자들의 주거환경 개선 및 경제적 독립을 위한 생계지원 프로젝트를 국제개발협력 프

• 난민캠프에 여전히 체류 중인 국내난민들에게 적절

로그램의 일환으로 우선적으로 지원해야 한다.

한 주거공간을 즉각 제공하여야 하고, 자신들의 원 거주공간으로 복귀하는 것을 허용해야 한다.

• 피해자들의 정신적 고통을 경감하기 위한 심리지원 프로그램을 지원 또는 진행하여야 한다.

25


미주 Endnotes 1. UNOCHA, Humanitarian Bulletin Myanmar, March 2013, available at http://reliefweb.int/sites/reliefweb.int/files/ resources/Ref_Doc_UNOCHA_Myanmar_Humanitarian_Bulletin_March_2013.pdf 2. Reuters, Special Report: Buddhist monks incite Muslim Killing in Myanmar, Mon. Apr. 8, 2013 | 7:07am EDT, available at http://www.reuters.com/article/us-myanmar-violence-specialreport-idUSBRE9370AP20130408 3. 연합뉴스, 미얀마, 종교 유혈분쟁 처벌에 ‘형평성 논란, 2013 년 7월 12일, available at http://www.yonhapnews.co.kr/international/2013/07/12/0604000000AKR20130712150700009.HTML 4. Physicians for Human Rights, Massacre in Central Burma, May 2013, available at http://physiciansforhumanrights.org/ library/reports/meiktila-report-may-2013.html 5. 민변 아시아인권팀의 미얀마 방문은 2008 미얀마 헌법과 미 얀마 전반적인 인권상황을 연구, 조사하기 위해 진행된 활동으로 2014년 7월 25일부터 8월 1일까지 미얀마 양곤, 만달레이 메이크틸 라, 샨주 따웅지 지역을 방문하여 현지의 전문가 단체, 청년활동가 조 직, 국회의원, 우윈틴 재단 사람들과 워크숍 및 간담회를 진행하였 다. 자세한 내용은 아시아인권팀, 미얀마 민주화, 인권운동 상황보고, 2014년 9월, 참조 6. 불교포커스, 우려되는 미얀마의 무슬림 탄압, 2013. 5. 29. available at http://www.bulgyofocus.net/news/articleView.html?idxno=67663 7. Myanmar Times, Meiktila erupts, Monday, 25 March 2013, available at http://www.mmtimes.com/index.php/national-news/5710-meiktila-erupts.html 8. Reuters, supra note 2

struction in Meiktila], April 1, 2013 5:01 pm, available at https:// www.hrw.org/news/2013/04/01/burma-satellite-images-detail-destruction-meiktila 29. Id. 30. Todd, Pitman, Associated Press, AP Impact: Massacre of Muslim in Myanmar ignored, July 6, 2013, 6:00 am., available at http://www.sandiegouniontribune.com/sdut-ap-impact-massacre-of-muslims-in-myanmar-ignored-2013jul06-story.html 31. Physicians for Human Rights, supra note 4, p.8 32. Id. p.9 33. Id. p.10 34. Id. p.11 35. Id. p.13 36. Id. 37. Todd, Pitman, Associated Press, supra note 27 38. 한겨레 21, 승려는 칼춤 추고, 공권력은 방관했다, 제 981호, 2013년 10월 11일, available at http://h21.hani.co.kr/arti/world/ world_general/35512.html 39. Id. 40. Todd, Pitman, Associated Press, supra note 27 41. Physicians for Human Rights, supra note 4.

9. 아디 인터뷰 번호 20160925-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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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 아디 인터뷰 번호 20160925-01 11. Myanmar Times, supra note 7 12. 아디 인터뷰 번호 20160925-01 13. BBC News, six Muslims charged over monk’s death in Burma’s Meiktila, 7 May 2013, available at http://www.bbc.com/ news/world-asia-22433871 14. 아디 인터뷰번호 20160926-04 15. International Crisis Group, The Dark Side of Transition: Violence Against Muslims in Myanmar, Asia Report No251, 1 October 2013, p.12 16. 아디 인터뷰번호 20160926-04 17. Huffingtonpost, Eye Witness Accounts of Meiktila Massacre: Beaten, Burnt and Stabbed, 9 April 2013, available at http://www.huffingtonpost.co.uk/assed-baig/meiktila-massacre-eye-witness-accounts_b_3008012.html 18. Id. 19. 아디 인터뷰번호 20160926-04 20. 아디 인터뷰번호 20160926-04 21. 아디 인터뷰번호 20160926-04 22. 아디 인터뷰번호 20160926-04 23. 메이크틸라 무슬림 그룹, The Violence, Turmoils and Terrors in Meiktilar Myanmar (Burma), 19 August 201324. Id. 25. 아디 인터뷰번호 20161001-01

58. 아디 인터뷰 번호 20160924-01

26. 아디 인터뷰번호 20161001-01

59. 아디 인터뷰 번호 20160924-01

27. 메이크틸라 무슬림 그룹, The Violence, Turmoils and Terrors in Meiktilar Myanmar (Burma), 19 August 2013

60. 아디 인터뷰 번호 20160924-01

28. Human Rights Watch, Burma: Satellite Images Detail De-

26


61. 아디 인터뷰 번호 20160924-01

Apr2015.pdf

62. 아디 인터뷰 번호 20160926-05

93. Id.

63. 아디 인터뷰 번호 20160926-05

94. Id.

64. See supra note 56

95. 아디 1차 사전조사보고서 참조

65. 아디 인터뷰 번호 20160925-01

96. Id.

66. 아디 인터뷰 번호 20160925-01

97. Id.

67. 아디 인터뷰 번호 20160929-01

98. 아디 2차 현장방문조사 결과

68. 아디 인터뷰 번호 20160929-01

99. 아디 인터뷰 번호 20160927-03

69. 아디 인터뷰 번호 20160925-01

100. 아디 1차 사전조사보고서 참조

70. 아디 인터뷰 번호 20160925-01

101. Id.

71. 아디 인터뷰 번호 20161001-01

102. Id.

72. 아디 인터뷰 번호 20161001-01

103. UNOCHA, supra note 92

73. 아디 인터뷰 번호 20161001-01

104. 아디 1차 사전조사보고서 참조

74. 아디 인터뷰 번호 20161001-01

105. 아디 인터뷰 번호 20160927-04

75. 아디 인터뷰 번호 20161001-01

106. 아디 인터뷰 번호 20160927-04

76. Vice Media by Danny Gold, The Burmese Muslims Who Are Refugees in Their Own Country, September 13, 2013, available at http://www.vice.com/read/spending-time-with-thedisplaced-muslims-of-myanmar

107. 아디 인터뷰 번호 20160927-04 108. 아디 1차 사전조사보고서 참조 109. Id.

77. 아디 인터뷰 번호 20160927-03

110. 아디 2차 현장방문조사 결과

78. Myanmar Times, Meiktila IDPs brace for rainy season, 6 May 2014, available at http://www.mmtimes.com/index.php/national-news/10266-meiktila-idps-brace-for-rainy-season.html

111. Id. 112. Id.

79. Id.

113. Id.

80. Id.

114. Id.

81. Id.

115. 아디 인터뷰 번호 20160927-04

82. 민변 아시아팀 방문결과보고서; 아디 1차 사전조사보고서

116. 아디 인터뷰 번호 20161001-01

참조

117. 아디 인터뷰 번호 20161001-01 83. 아디 난민캠프 2차 방문 인터뷰 내용

118. 아디 supra note 45

84. 아디 난민캠프 2차 방문 인터뷰 내용

119. 아디 인터뷰 번호 20160926-01

85. 아디 난민캠프 2차 방문 인터뷰 내용

120. 121. 122. 123. 124. 125. 126. 127. 128. 129. 130. 131. 132. 133. 134. 135.

86. 아디 1차 사전조사보고서 참조 87. 아디 인터뷰 번호 20160927-03 88. UNOCHA, Humanitarian Bulletin Myanmar Issue 18 April to 31 May 2013, 3 Jun.2013, available at http://reliefweb. int/sites/reliefweb.int/files/resources/Myanmar_Humanitarian_Bulletin_April_and_May_2013_FINAL.pdf

89. UNOCHA, Humanitarian Bulletin Myanmar Issue 1-31 October 2014, 27 November 2014, available at http://reliefweb. int/sites/reliefweb.int/files/resources/Bulletin_Humanitarian_ OCHA_Oct2014.pdf 90. IRIN, Muslims rebuild homes as communal tensions ease in central Myanmar town, 20 March 2014, available at http:// www.irinnews.org/news/2014/03/20/muslims-rebuild-homescommunal-tensions-ease-central-myanmar-town 91. Myanmar Times, Meiktila IDPs get green light to rebuild homes, 16 May 2014, available at http://www.mmtimes.com/ index.php/national-news/10371-meiktila-idps-get-green-lightto-rebuild-homes.html 92. UNOCHA, Humanitarian Bulletin Myanmar Issue 4/130 April 2015, 30 April 2015, available at http://reliefweb.int/ sites/reliefweb.int/files/resources/Bulletin_Humanitarian_OCHA_

27

아디 1차 사전조사보고서 참조 아디 인터뷰 번호 20160926-03 아디 1차 사전조사보고서 참조 Id. Id. Id. Id. 아디 인터뷰 번호 20160930-01 아디 인터뷰 번호 20160930-01 아디 1차 사전조사보고서 참조 아디 인터뷰 번호 20160924-02 아디 1차 사전조사보고서 참조 Id. Id. 아디 인터뷰 번호 20160926-01 아디 인터뷰 번호 20160926-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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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이크틸라 인권실태 보고서 (2016)  

메이크틸라 인권실태 보고서 (20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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