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37호_함께꾸는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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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격월간 발행) 제137호

2022 5,6월호

대구참여연대는 회원의 회비 및 후원금으로만 운영됩니다. 후원계좌 : 대구은행 036-04-000437-9 (대구참여연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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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한 컷│

초록 메타세콰이어 사이를 걷다 ─ 앞산 고산골

<사진 정용태 참여와소통위원회 위원>


│목차│

04

권두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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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획

08

노동현장은 지금

대구 학교 급식실 노동자 폐암, 잇단 산재 인정 | 정은정

10

Art & Culture

호쿠사이의‘우키요에’ 와 드뷔시의‘목신의 오후에의 전주곡’| 김병호

14

정치비평

한국 보수(保守)는 무엇을 보수(補修)하였는가? | 강우진

16

젠더비평

2022 대선과 지방선거에서의 2030 젠더 격차의 의미 | 차우미

20

의정동향

낙동강 쌀에서 녹조 독성 나왔다는데… 환경청의 이상한 대응 | 백경록

24

칼럼

이상한 지방선거제도 | 김윤상

27

이달의 회원

신동주 회원 인터뷰 | 김선희

30

쉬어가는 이야기

그냥 써본 소설: 두 번째 이야기 | 이귤

33

아! 이 사람

성상희 변호사 | 김선희

37

대구참여연대는 지금 대구참여연대 활동소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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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입활동가 인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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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정보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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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비납부명단

신발끈‘단디’묶읍시더!│정혜숙 ‘지방 없는 지방자치’ 의 우울함│채장수

표지이야기 <자유광주> 도미야마 다에코작, 1980, 리놀륨판(71.5x72cm) 광주시립미술관 소장 일본 효고현 고베시에서 태어난 도미야마 다에코는 1930년대에 아버지를 따라 만주로 이주하여 다롄, 하얼빈에서 소 녀 시절을 보냈다. 이 시기에 일본의 제국주의, 전체주의, 군국주의의 폐해를 몸소 겪고 깨달았으며 1938년 하얼빈여 학교를 졸업하고, 여자미술전문학교(현 여자미술대학)에 진학하였지만 중퇴하였다. 1950년경 탄광 노동자를 그린 작 품을 발표하며 비로소 작품 활동을 시작하였다. 1960년대에 브라질, 칠레, 멕시코, 쿠바, 인도, 서아시아, 중앙아시아 를 취재하며 화가로서 지닌 정체성을 생각하였다. 1980년 5·18 광주 민주화 운동을 목도하고 한 달 동안 작업하여 만든 <쓰러진 사람들을 위한 기도, 1980년 5월 광주> 등 한국의 군사독재를 비판하고 민주화를 지지하는 작품을 연작으로 발표하였다(이로 인해 한국 정부로부터 15 년 동안(1978~1993년) 입국 금지를 당하기도 했다). 그녀는 이후 광주시립미술관에 자신의 작품 77점을 기증하였으 며, 위 작품도 그중 하나이다. 일생을 독재와 맞서 온 그녀는 지난해(2021년) 8월 18일 자택에서 노환으로 별세하였 다. 죽기 전 그녀는“제 인생에서 한국과의 만남은 구원이었다. 한국을 주제로 여러 해 동안 한국과 더불어 살아왔음 을 느낀다.” 라고 소회를 밝혔다.


│권두언│

신발끈‘단디’묶읍시더! 정혜숙 공동대표

안녕하십니까, 회원님들. 선거가 끝난 지도 이제 한 달여가 지났습니다. 주변에서는‘뉴스를 잘 보지 않게 됐다’ 는 사람도 있 고,‘눈감고 귀닫고 지내겠다’ 는 이들도 만났습니다. 저 역시, 그렇게 실망과 분노, 허탈함과 헛헛함 을 표현하시는 분들과 다르지 않은 마음입니다. 그러나 정치가 정치인만의 것이 아니듯, 정치적 결정의 영향과 결과가 우리와 무관할 수 없습니다. 이제 그만 문을 열고 밖으로 나옵시다. 두 눈 부릅뜨고, 꼼꼼히 지켜 보고, 빠짐없이 들읍시다. 사실 참여연대, 나아가 시민운동의 역사에서 힘들지 않았던 시간은 없었습니다. 힘든 탄압의 시간에 도 우리는 민주주의와 시민운동을 위해 쉬지 않고 달려왔으며, 그 운동의 결과 지금의 대구참여연대 가 있습니다. 우리는 그 어떤 권력에 기대지 않고, 오로지 회원들의 회비, 회원들의 힘으로만 여기 이 자리까지 왔습니다. 최근 시민운동을 부정하고 폄훼하려는 시도가 곳곳에서 나타나고 있지만 이보다 더 큰 어 려움도 회원들과 함께 이겨내 온 우리입니다. 신발끈을‘단디’묶읍시더~ 다시 한번 신나게 달려보입시더~ 걱정은 저 멀리 던집시다. 우리는 이미 촛불 광장에서 시민의 힘을, 시민의 승리를 경험했고, 시간이 걸릴 순 있겠지만 분명코 다시 앞으로 나아간다는 것을 알고 있으니까요. 대프리카의 더위도 N맥 축제로 이열치열 해버리는 우리입니다~ 즐겁게, 신나게, 우리 다시 한번 해 보입시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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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획│지방선거 대구참여연대 정책공약

‘지방 없는 지방자치’ 의 우울함 채장수 경북대학교 정치외교학과 교수

1. 지난 6월 1일, 풀뿌리 민주주의의 정착을 통한 지역의 발전을 견인할 대표자를 선출하는 명분을 가지는 제8대 지방선거가 실시되었다. 제20대 대통령선거에 이어 제8대 지방선거에서 국민의힘이 대구지역에서 압 도적으로 우세하리라는 것은 이미 충분하게 예상되었으며, 역시나 다른 이변은 발생하지 않았다. 정확한 수치를 살펴보니, 3월 9일 제20대 대통령선거에서 국민의힘 윤석열 후보자가 대구지역에서 얻은 득표율은 75.14%(전국득표율 48.56%)였다. 이것은 6월 1일 제8대 지방선거에서 홍준표 국민의힘 대구시장 후보자가 획득한 득표율인 78.75%와 크게 다르지 않았다. 다만 다양한 범위에서 다수의 대표자를 동시에 선 출하는 지방선거의 특성상 국민의힘의 압승은 수치적으로는 대통령선거의 결과보다 훨씬 도드라져 보였다. 소위‘보수우파’ 로의 정권교체가 이루어진 후에 치러지는 첫 선거인만큼‘보수의 심장’ 을 자처하는 대구 지역의 유권자들이 정권의 안정을 위하여 표를 몰아주려는 분위기로 인하여, 이번 지방선거의 결과 역시 선거철마다 회자가 되었던‘묻지마 투표’ 의 영향은 보다 강해졌다. 실제로 대구지역에서 국민의힘은 시장 선거는 물론이고 기초자치단체장 선거 8곳 전체와 비례대표를 제외한 광역의회 선거 29곳 전체, 기초의회 선거 총 105곳 중 80곳을 석권했다. 이로써‘촛불’ 의 여진 속에서 실시된 2018년 제7대 지방선거에서 한 차례 균열의 가능성을 보였던 특정 정당의 지배력이 다시 강화되면서, 이를 견제할 유력한 정치세력의 성 장은 재차 유보되었다. 이러한 일방적인 쏠림현상은 심각한 문제이다. 그러나 더 큰 문제는 전국단위의 선거에서, 하물며 지방선 거에서조차‘지방’ 을 발견하기 어려워지는 상황이다. 이것은 정치와 경제, 문화를 아우르는 전반적인 수도 권 집중의 심화 속에서, 자율성을 생명으로 하는‘지방자치의 공백’ 과 이것에 의해 초래되는‘지방자치의 중앙정치로의 복속’ 이 더욱 공고화되고 있음을 의미한다. 돌이켜보면 이번 대통령선거와 이번 지방선거처 럼 지역과 관련된 이슈가 선거의 쟁점이 되지 못한 사례가 있었는지 궁금할 정도이다. 그런 의미에서, 대구 지역이 중앙정치는 물론이고 지방정치에서도 특정 정당의‘심장’노릇을 지속적으로 수행하는 것은 대구의 정치에서 정작 대구가 보이지 않는‘지방 없는 지방자치’ 의 당연한 귀결일 수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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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획│지방선거 대구참여연대 정책공약

2. 사전적인 의미에서 볼 때, 자신이 속한 지역의 이슈를 주민 자신이 자율적으로 결정한다는 민주주의 정치 의 가장 기본적인 요구에 기초하는 지방자치는 지역의 민주화를 통하여 국가 전체의 민주화를 실현하는 기 능을 수행한다. 또한 지방분권을 기초로 국민의 자유와 권리를 보장하고 참여를 실현함으로써, 민주주의의 본질적인 내용을 실현하는 기능을 수행한다. 이를 통하여 지방자치는 민주주의의 학교이자 훈련장의 역할 을 충실하게 수행한다.‘지방자치는 자유의 보장을 위한 장치이고 정치의 훈련장’ 이라는 밀(J. S. Mill)의 주 장은 이러한 지방자치의 가치를 분명하게 표현하고 있다. 미래에 대한 희망으로 넘실대던‘촛불’ 의 시간 속에서, 한때 우리도 지방자치에 대한 진지한 열망을 표출 했다. 권력분점을 둘러싼 다양한 이슈 중에서도 지방자치는 정치권과 시민사회, 학계의 주장이 상호 크게 갈라서지 않는 드문 영역이다. 실제로 2017년 제19대 대통령선거를 앞두고 주요 정당의 후보들은 모두 지 방분권 개헌을 약속했다. 특히 2018년 문재인 대통령은 그해 6월에 진행되는 제7대 지방선거에서 지방분권 을 중심에 둔 개헌을 추진하겠다는 의견을 피력했다. 이것이 점진적으로나마 진행이 되었다면, 이후‘대한 민국은 지방분권 국가’ 임을 헌법 총강에 명시하는 개헌이 진지하게 논의되었을 것이다. 또한 이를 기반으 로 명실상부한 지방분권의 확립을 위한 자치입법권과 자치행정권의 확대가 차차 추진되었을 것이다. 물론 ‘재정 없는 자치는 불가능하다’ 는 원칙에 입각하여, 자치재정권의 강화를 위한 지방세 조례주의의 도입과 같은 조치들도 꾸준하게 시도되었을 것이다. 상대적으로 논란의 여지가 큰 이슈이기는 하겠지만, 국민을 대 표하는 하원과는 달리‘역사적·문화적·지리적 동질성을 공유하는 지역의 주민을 대변하는 상원’ 을 선출 하는‘양원제’ 을 둘러싼 논의도 서서히 진행되었을 것이다. 한편으로는 지역의 유치원과 초중등 교육을 책임지는 교육감 선거에 실질적으로 교사의 출마를 제한(현 직 교사의 정치활동은 금지되어 있으며, 교육감 선거에 출마하려면 선거일 90일 이전까지 교사직을 사임해 야 함)하는 기존 선거법의 문제점에 대한 대안도 광범위하게 주창되었을 것이다. 더욱이 지역을 기반으로 하는 지역정당을 금지하고 있는 현재의 정당법(정당의 성립을 위해서는 당원이 오천 명 이상인 전국조직으 로서, 중앙당은 반드시 서울에 소재해야 함)의 억설에 대한 개정 요구도 끊이지 않았을 것이다. 그러나 지방자치의 공백 속에서 중앙정치로의 복속이 공고화되고 있는 우리의 현재는 지방자치의 이러한 ‘이상향’ 과는 상당한 거리를 두고 있다. 실제로도 후보자의 정책과 인물됨을 중심으로 지방자치의 과거에 대한 반성과 미래에 대한 구상이 압축적으로 논의되어야 할 제8대 지방선거의 공간 어디에서도 지방자치의 발전을 위한 나름의 구상들이 발언되고, 서로 경쟁하는 바람직한 상황은 발생하지 않았다. 다만 지방자치의 공백을 대통령선거에서 반복되었던 진영 사이의 악다구니가 약간의 각색을 거치면서 각자 진영의 환호 속 에서 재생될 뿐이었다. 물론 대구는 특정한 진영의 지역적 거점이 되었고, 그 위상에 부합하는 선거 결과를 산출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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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 지역마다 정도의 차이는 있을지언정, 지방자치의 지체는 대한민국의 보편적인 현상이다. 그러하기에 선거 결과의 쏠림을 나무라면서, 대구지역을 지방자치의 구제불능으로 낙인찍는 것은 오히려 문제의 본질을 회 피하는 결과를 야기한다. 핵심은‘지방 없는 지방자치’ 이며, 대구는 이러한 문제가 특정 정당에 대한 일방 적 지지로 외화되어 나타나는 지역이지, 결코 지방자치의 공백과 중앙정치로의 복속을 주도하는 지역이 아 니기 때문이다. 사실 대구는 그럴 의사도 없거니와 그럴 힘조차 없다. 그럼에도 여전히 대구는 두드러지는 문제지점이다. 일단 대구는 정당의 강령이나 정책에서 지방자치에 대 한 별다른 신념을 찾아보기 어려운, 어떤 경우에는 지방자치의 진전에 걸림돌로 작용하기도 하는 특정 정 당을 일방적으로 지지하고 있다. 그리고 그 정당의 대구시장 후보는“중앙정치에 패하면 하방하는 것” 이라 는 발언을 통하여 지방자치의 핵심인 지역의 자율성에 반하는 행위를 하였음에도 불구하고 지역민의 압도 적인 지지로 당선되었다. 이후에도 그는 대구시정에 관한 구체적인 대안을 마련하고 제시하는 것보다 중앙 정치의 상황에 대한 훈수를 두는 것에 더 관심을 가지는 것 같다. 제7대 지방선거에서 최소한의 거점을 마련하는 것처럼 보였던 민주당을 비롯한‘지역 야당’ 의 몰락도 대 구지역 지방자치의 난제이다. 아무리 대구지역의 정치색이 그러하다고 해도, 중대선거구라는 제도의 혜택을 누리는 기초의회 선거에서조차 민주당 등은 지난 지방선거의 절반에 머무르는 45명의 당선자를 배출했을 뿐이다. 더구나 겨우 명맥을 유지하던 정의당과 같은‘진성’진보정당은 이제 지역의 제도정치 영역에서 사 라지게 되었다. 결국 대구지역은 거대정당을 견제할 최소한의 세력을 마련하는 것에 실패했다. 눈에 보이는 상황이 그러했음에도, 내외적으로 심각한 갈등을 야기했던 민주당 대구시당의 공천을 둘러싼 아리송한 상 황은 이번 선거의‘진기명기’ 로 기억될만하다. 우리의 지방자치는 총체적 난국이며,‘지방 있는 지방자치’ 를 위한 정치권과 유권자의 각성과 노력이 절 실하다는 뻔한 말로 마무리하는 무능력한 필자의 마음은 무겁게 가라앉는다. 다만 다음의 두 가지 바람을 전하고자 한다. 지역공동체의 공적 의사를 지역민이 결정하는 행위가 바로 지역 정치의 의미임에도 불구하 고,‘정치적으로 봉사’ 해야 할 의무를 부여받은 지방의원 스스로가‘자신은 정치인이 아니며 봉사자’ 라고 호소하는 자가당착에서 벗어나기를. 그리고 본질적으로 정치는‘밥그릇 싸움’ 임에도, 지지하는 정당에게 오 히려 쪽박이 깨지는 지역의 순애보가 잦아들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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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동현장은 지금│

대구 학교 급식실 노동자 폐암, 잇단 산재 인정 학교비정규직노조,“죽음의 급식실 멈출 적정인력 배치와 안전보건 대책 촉구”

정은정 대구노동세상 대표

6월 21일(화) 대구교육청 앞에서 전국학교비정규직노동조합 대구지부(이하 학비노조 대구지부)가‘대구 학교 급식실 폐암 산재 승인 및 산업안전실태조 사 결과 발표 기자회견’ 을 열고 죽음의 급식실을 멈출 대책을 촉구하였다. 학 교 급식실에서 일하는 A씨가 6월 10일에 폐암 산재 승인을 받은 것은 지난 해 12월 폐암 4기 판정을 받은 급식 노동자에 이어 두 번째 사례다. 이날 기자회견에서는 산재 사건을 담당했던 노무법인 참터 정유진 노무사가 직접 나와 산재 승인 과정과 학교 급식실 작업 환경에 대해 이야기했다. 아래는 정유진 노무사의 발언 전문이다. 제가 담당했던 중·고등학교 조리실에 근무하다 폐암을 얻은 이 노동자는 약 18년간 조리 실무자로 근무하던 중 건강검진 시 폐의 이상소견이 있다는 통보를 받은 후 정밀진단을 거쳐 2020년 1월 9일 수술을 받았고, 요양 중이던 2021년 2월 종격동으로 전이가 되어 방사선치료와 항암치료를 받고 난 현재도 호흡의 어려움과 입마름 등의 증상이 있어 건강에 각별한 주의를 하며 경과 관찰을 하고 있는 분입니다. 이후 올해 2월 16일에 산재 신 청을 하였고 5월 30일 서울남부/질병판정위원회를 거쳐 지난 6월 10일 최종 산재 승인을 받았습니다. 산재 현장 조사를 위해 조리실을 방문했을 때, 저는 대형 조리도구와 큰 솥들에서 발생하는 자욱한 연기와 엄 청난 양의 음식을 보면서“아! 이 사건은 무조건 산재가 되겠구나” 하고 직감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열심히 사진 을 찍고 조심스럽게 현장 구조를 파악하던 중 문득 너무나 바쁘게 움직이는 현장 노동자들의 모습을 보면서“정 말 숨돌릴 틈이 없겠다, 정말 긴장해서 일하지 않으면 사건사고가 늘 발생할 수밖에 없는 구조다” 라는 생각을 했습니다. 현장 노동자들과 면담할 때 근무 중 식사와 휴식이 불가능하며, 본인들의 육체적 정신적 부담 정도를 상(上)으 로 답변한 이유를 이해할 수 있었습니다. 2시간여의 짧은 현장방문이었지만 저 또한 조리실에서 미끄러지지 않 기 위해 긴장할 수밖에 없었고, 분주하게 움직이는 현장 노동자들 서로 간의 동선이 부딪치지 않게 늘 주의를 해야 했기에 현장노동자들이 너무도 안타까웠고 또한 이들의 건강이 걱정되었기에 이분들의 근무환경 개선은 반 드시 필요하다고 느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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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가 담당했던 폐암 사건 노동자의 1인당 담당 식수 인원은 2000~2007년까지는 점심 255명, 저녁 111명 이었고, 2008~2013년까지는 점심 188명, 저녁 212명, 2014년~2018년에는 점심 144명, 저녁 141명으로 18 년 근무 시 모두 끼니당 100명을 훨씬 뛰어넘는 많은 인원의 식사 준비를 하였고, 저녁 근무자의 경우에는 1일 8시간 노동 외에도 1일 2시간30분의 연장근무를 하고 있는 실정이었습니다. 식단을 분석해보니 조리법 중 튀김, 볶음, 구이, 조 림류가 평균적으로 점심의 경우 2회, 저녁의 경우 1.7 회였고, 민원과 위생상의 문제 등으로 자연 환기를 할 수 없었으며, 환기시설은 조리설비에 막혀있거나 구조 적으로 많은 양의 음식을 감당할 수 없게 되어 있는 데다, 일부 설비는 노후화가 심각한 상태로 방치되어 있었습니다. 이런 근무환경에서 일하던 조리 실무자의 폐암 사건을 근로복지공단은 업무상 질병으로 인정하 지 않을 수 없었다고 봅니다. 산재가 인정되었다는 통보를 받고 즉시 재해자와 노 동조합, 그리고 현장 노동자들에게 결과를 알렸습니다. 정말 잘 되었다고 기쁘고 좋은 소식을 전해주어 감사 하다는 얘기를 해 주신 분이 있었는데, 그는‘이로 인 해 우리 현장이 달라지는 사항이 무엇인지?’ 를 저에게 질문했습니다. 저는“재해자에게 병원비와 보상이 지 급되는 것 외에 현장이 당장 달라지는 것은 없다. 이 러한 결과들을 근거로 노동조합과 현장 노동자들이 노 력해서 현장 환경 개선과 산재를 예방하기 위한 시스 템을 구축하고, 근본적으로는 너무나 많은 식수 인원을 담당하고 상황을 개선하기 위한 인력 충원이 되어야 하 는데 이러한 결과들이 하나의 근거가 될 순 있다” 는 답변밖에 할 수 없어 마음이 무척 아팠습니다. 어제도 저는 조리실 근무로 폐암 진단을 받았다는 노동자의 전화 한 통을 받았습니다. 지금도 여러분들의 노동 환경은 본인 또는 동료들의 생명을 위협하고 있습니다. 노동환경이 직업병의 구조적인 문제로 발생하는 산재는 어떠한 우선순위와 경제 논리를 떠나 지금 당장 시급히 개선되어야 한다고 봅니다. 교육청과 노동청이 곧바로 대안을 가지고 응답해야 할 것입니다.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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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RT & CULTURE│

호쿠사이의‘우키요에’ 와 드뷔시의‘목신의 오후에의 전주곡’

김병호 화가 cosmo4189@hanmail.net

제가 처음으로 회화의 세계에 빠져든 것은 중학교 입학 후 미술교과서에 실렸던 고흐와 모네를 비롯한 인상 주의 화가들의 그림을 보면서입니다. 19세기 프랑스 인상주의 그림에 어째서 그토록 빠져든 건지 저로서는 아 직도 알 수 없습니다. 인상주의를 비롯한 19세기 프랑스 미술은 저의 그림 인생에 큰 계기가 되었고 오랜 시간 꿈의 원천이 되었습니다. 프랑스의 인상주의는 이후 세계 미술의 흐름을 주도했으며, 서양미술사의 중심에 서 있게 됩니다. 그런데 그 인상주의 화풍에 큰 영향을 미친 동양의 작품들이 있었다는 사실이 당시 저로서는 매

호쿠사이의 대표작 <가나가와 해변의 높은 파도 아래, 1829 - 18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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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 기묘하게 느껴졌습니다. 그것은 일본의 우키요에라는 목판화였습니다. 200여 년 전 일본의 서민과 여인들 그리고 사회의 풍경을 강렬한 색감으로 표현한 목판화가 있었는데, 이것을‘우키요에(浮世繪)’ 라 합니다. 작품들은 대개‘니시키에(錦繪)’ 라 불리는 다색의 목판화 기법으로 만 든 것들인데, 이 우키요에는 신선한 구성과 모던한 감각으로 인해 모네와 고흐, 르누아르 등 유럽 인상파 대가들에게 큰 영향을 미쳤습니다. 그들이 우키요에에 심취했던 이유는 이전의 유럽에서는 볼 수 없었던 원색적인 구성과 단순한 공간감 그리고 화려한 장식미가 화면에 가득했기 때문이었는데요. 우키요에가 프 랑스에 흘러 들어간 배경 중 하나로 유럽으로 가는 도자기 수출품을 포장한 포장지에서 비롯되었다는 재미 난 이야기도 전해집니다. 고흐나 모네의 그림에도 많은 영향을 준 대표적인 우키요에 작가로 카츠시카 호쿠사이(葛飾北齋)라는 작 가가 있습니다. 이 작가는 작품 이외에 알려진 바가 없어 매우 신비에 싸인 인물로 기록되어 있습니다. 그 의 작품은 엄밀히 인상주의 작풍은 아니지만, 인상주의 작가들이 새로운 화풍을 여는데 하나의 계기가 된 작가입니다. 호쿠사이는 엄청나게 많은 작품을 발표했는데 그 중‘가나가와 앞바다의 파도’ 라는 작품은 일본을 대표 하는 이미지로서 수많은 예술가들에게 영감을 준 바 있습니다. 파도의 순간적인 인상을 포착한 그림은 인 상주의 화가들을 넘어 인상주의 음악가 드뷔시의 작품에 큰 영감을 주었다고 합니다. 그와 함께 프랑스의 시인 스테판 말라르메의‘목신의 오후’ 라는 시를 만나면서 드뷔시의 대작 <목신의 오후에의 전주곡(Pre′ lude ` a l'apre′ s midi d'un faune)> 완성에 직접적인 동기를 만들어 줍니다. 이렇게 저의 예술세계를 인도한 인상주의는 미술뿐만 아니라 음악과 문학 그리고 니진스키 같은 발레의 대가들에게까지 큰 영향을 주게 되었음이 그저 묘하게 느껴집니다. 시와 미술과 음악이 만나는 한 이야기 는 이렇게 시작됩니다. 나른한 여름날 오후 시칠리아 해변 숲속 그늘에서 졸고 있던 목신 판은 아련한 꿈속 같은 상태에서 나뭇가지 사이로 목 욕하는 요정을 발견합니다. 꿈인지 현실인지 잘 구분할 수 없지만, 저편의 가물거리는 자태에 마음이 끌려 샘가에서 보았던 한 쌍의 요정을 떠올리게 됩니다. 목신은 어떤 힘에라도 이끌리듯 달려가 두 요정을 그대로 품에 안고 장미 넝쿨로 뛰어들 어 헝클어진 그녀들의 머리카락에 입을 맞춥니다. 목신은 몽롱한 관능적 희열을 온몸으로 느낍니다. 그러나 환상의 요정은 어디론가 사라지고, 밀려오는 권태를 망연히 바라보던 목신의 에로틱한 몽상은 한낮의 뜨거운 태양을 향해 넋을 잃고 갈증 을 느끼며 모래 위로 쓰러집니다. 그리고 목신은 오후의 고요함과 그윽한 풀냄새 속에서 다시 몽환의 나락 같은 잠에 빠져 버립니다.

이 이야기는 시인 보들레르의 영향을 받은 상징주의 시인 스테판 말라르메의‘목신의 오후’ 라는 시의 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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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RT & CULTURE│

루벤스 작, <판과 시링크스> 1617-1619

용입니다. 드뷔시는 19세기 후반의 인상주의 화가 마네와 르누아르, 그리고 클로드 모네 같은 화가가 만들어낸 인상주의 화풍과 같은 인상주의 음악을 발전시킨 분입니다. 인상주의 예술운동은 프랑스의 문학과 음악, 연극 등 예술 전반에 걸쳐 막대한 영향을 끼쳤고, 이후 세계의 예술 흐름을 바꾸는 혁명과도 같은 역할을 하였습니 다. 인상주의 미술이 그러하듯 시시각각 변하고 움직이는 인상이 음악의 기본을 이룬다고 생각한 드뷔시는 구 름, 바람, 향기, 물과 같은 움직이는 대상의 인상을 음악에 담으려 했으며, 선율의 움직임보다 음색의 미묘한 변화를 표현하고자 하였습니다. 드뷔시는 <목신의 오후에의 전주곡> 초연 때 곡해설에서“나는 스테판 말라르메의 시를 자유롭게 회화로 표 현했다. 시를 하나의 배경으로 삼아 목신의 갖가지 욕망과 꿈이 오후의 열기 속을 헤매고 있는 공기를 그렸다. 요정은 겁을 먹고 달아나고, 목신은 평범한 자연 속에서 모든 것이 자신의 것이 된다는 꿈에 부푼 채 잠이 든 다.” 라고 말했습니다. <목신의 오후에의 전주곡>은 드뷔시의 세심하고 절묘한 관현악곡으로 목신의 환상 속에서 펼쳐지는 환상적 이고 관능적인 꿈을 회화적인 상상으로 자유롭게 표현하고 있습니다. 플루트로 연주되는 첫 부분은 오보에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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클라리넷이 발전시켜 나가며 가볍게 하프의 여운이 남겨져 여름날 미풍이 나뭇잎을 스치고 지나가는 느낌을 줍니다. 이윽고 다시 플루트와 첼로가 나오면서 호른의 소리에 하프가 화답하며 여러 환상이 교차하고 정열적 인 멜로디가 나옵니다. 목신의 환상은 은밀한 정념으로 물결치고 이윽고 곡은 중간부에 와서 요정의 달콤한 관 능의 기쁨을 연상케 하는 주제가 목관으로 나타납니다. 또다시 플루트의 선율이 계속되며, 이 같은 진행으로 마지막 제1 주제가 현악기에 재현돼 다시 나른한 기분으로 바뀌고, 하프의 하강 음형을 수반한 호른의 화음이 텅 빈 공허함을 절묘하게 표현하면서 서서히 잠에 빠져드는 목신을 표현합니다. 예전, 그림을 그리는 저는 당연히 인상주의(impressionism, 印象主義)가 미술에만 있는 줄 알았습니다. 어릴 적 저의 생각과는 달리 인상주의는 인류 전체에 하나의 큰 울림이 되어 예술의 모든 장르에 혁명처럼 퍼져나 갔고 그것이 하나의 연결고리가 되어 예술 장르의 결합과 해체가 되는 새로운 패러다임을 열게 되었습니다. 바 로 드뷔시의 음악처럼 말이죠. 그 음악이 그림이 되고 이야기가 되어 우리에게 많은 울림을 주는 것이 오늘날 의 예술이 아닐까 합니다. 예술은 이렇듯 오묘하게 서로가 서로를 연결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음악과 시가, 미 술과 역사가 하나로 이어지게 됩니다. 팬데믹이 이어지는 한 여름 불볕더위 아래 사는 우리도 그래서 서로 이 어지고 연결되어 서로 함께하는 삶을 살아야 하겠지요. 그리고 이 한 편의 음악을 통해 좀 더 아름다운 시간을 나누었으면 하는 바람을 가져봅니다. 그것이 우리들의‘함께 꾸는 꿈’ 이 아닐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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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치비평│

한국 보수(保守)는 무엇을 보수(補修)하였는가?

강우진 집행위원장, 경북대 정외과 교수

한국의 보수는 (단독) 정부 수립과 (한국형) 산업화의 정치적 주역이었다. 더구나 1991년 삼당 합당을 통 해서 변형주의적 방식으로 (일부) 민주화 세력과 통합하였고 민주화의 맥을 이었다고 자부했다. 보수의 첫 번째 위기는 세계화와 신한국을 내세웠던 문민정부의 개혁의 종착점이었던 1997년 경제위기였다. 전례 없 는 경제위기는 광복 후 최초의 평화적 정권교체로 이어졌다. 한국형 산업화를 이끌었다는 보수의 자부심은 경제위기의 주역이라는 부끄러움으로 바꿨다. 정치개혁을 내세웠던 승부사 노무현이 정권 재창출에 성공하 였고 보수의 위기가 지속하였다. 진보 정부가 재집권에 성공했지만, 경제위기 과정에서 심화한 경제적 불평등을 대처하는 데 실패했다. 민 생 문제에서 기대에 못 미친 참여 정부에 대해서 민심이 돌아선 틈을 잘 활용한 것이 이명박 후보였다. 많 은 도덕성 논란에도 불구하고‘성공하세요’ 와 747(연평균 7% 성장, 국민소득 4만 달러, 국력 세계 7위)로 대표되는 경제 대통령 공약으로 이명박 후보는 역대 최대표차인 500여만 표로 집권하였다. 하지만 국민의 물질적 욕망을 자극해 집권에 성공한 이명박 정부는 집권 기간 내내 많은 스캔들과 논란으로 점철되었다. 집권당 후보로 선출된 박근혜는 이명박 정부의 실정에도 불구하고 보수 정권 재창출에 성공하였다. 박근혜 는 한국형 경제성장 모델의 기획자이자 집행자로 국민이 평가하는 박정희의 딸로서 박정희 노스탤지어의 후광을 입었다. 박근혜는 정치권 입문 이후 선거의 여왕으로 불리며 자신만의 정치적 자산을 구축했다. 또 한, 2012년 제18대 대선을 앞두고는 보수정당 최초로 복지 이슈를 정강정책에 포함시켰다. 보수 정권 재창출에 성공한 박근혜 정부는 콘크리트 지지율을 유지하면서 압도적인 보수 우위 시대를 여 는 듯 보였다. 하지만 집권 4년 차에 발발한 박근혜·최순실 국정농단 게이트는 부패한 보수 정권의 속살 을 적나라하게 드러냈고 연인원 1,700여만 명의 분노한 국민들이 겨울 광장에서 촛불을 들어 저항했다. 4 분의 3에 가까운 국민들이 부패한 권력자의 탄핵에 동의하였다. 세대와 이념을 초월한 촛불 탄핵 연합이 형성된 것이다. 촛불 항쟁에서 표출된 국민의 분노는 이른바 촛불 정부의 탄생으로 이어졌다. 보수의 부활 을 이끌었던 이명박·박근혜 두 전직 대통령은 국정농단의 주역으로 구속되었다. 산업화를 이끌었으며 민 주화에 기여했다는 보수의 자존심은 부끄러움으로 변모했다. 촛불 정부를 자임했던 문재인 정부가 국민의 기대에 못 미치자 제20대 대선을 앞두고 보수정당은 문재인 정부의 검찰총장으로서 국정농단 수사를 이끌면서 두 전직 대통령을 구속했던 윤석열 후보를 영입했다. 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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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급 대선에서 보수정당은 24만여 표 차로 극적인 승리를 거두어 정권교체에 성공했다. 국정농단으로 정치 적 궤멸의 위기까지 몰렸던 보수가 극적으로 회생한 것이다. 윤석열 정부가 출범한 지 두 달여가 지났다. 윤석열 정부의 출범과 함께 한국의 보수는 결정적인 변곡점 을 맞았다. 국정농단과 탄핵을 거치면서 보수의 재구성에 대한 시대적 요구가 컸다. 한국 보수는 새롭게 태 어났는가? 이 문제를 살펴보기 위해서는 한국 보수를 지탱해온 가치가 무엇이었는가를 살펴보아야 한다. 국가 형성 과정에서 한국의 보수는 자유 민주주의를 핵심 가치로 삼았다. 하지만 한국 보수의 자유 민주주 의는 자유주의 없는 사실상의 반공주의였다. 한국형 산업화를 성공적으로 이끌었던 보수였지만 그에 걸맞 은 정치적 이념을 발전시키지 못했다. 한국의 보수는 가치에 기반을 둔 보수가 아니라 권력에 기반을 둔 권력 보수였다. 한국이 산업화와 민주 화를 넘어서 새로운 시대로 나아가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한국을 이끌어 간다고 자부하는 보수의 이념이 무 엇인지 불분명하다. 윤석열 정부가 제시한 국정 이념의 핵심은 과거지향적인 자유이거나 이미 검증이 끝난 낙수효과에 기반을 둔 시장 만능주의에 머무르고 있다. 역사는 시대에 걸맞은 이념을 발전시키지 못한 권 력 보수의 종착점을 잘 웅변하고 있다. 새로운 복합위기를 맞이하고 있는 윤석열 정부가 맞닥뜨린 중요한 도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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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젠더비평│

2022 대선과 지방선거에서의 2030 젠더 격차의 의미

차우미 젠더와마음성장연구소 대표

초박빙의 승부로 민주당이 패배한 2022대선과 더불어민주당 대구시당의 공천 파행을 비롯해 전국적인 공 천 잡음 속 2022 지방선거 또한 더불어민주당의 대패로 막을 내렸다. 촛불의 염원으로 집권한 민주당이었 지만, 개혁의 실패와 부동산 정책의 실패 등으로 돌아선 민심은 결국 국가 최고 권력과 대부분의 지방 권력 을 국민의힘에 다시 넘겨주었다. 대한민국 현대사에서 민주주의를 향한 수많은 희생과 험난한 여정을 돌이 켜 보면 0.7%의 차이로 민주당 재집권의 기회를 놓쳐버린 현실이 매우 안타깝다. 지난 대선과 지방선거를 돌아보면 소위‘이대남’ 과‘이대녀’ 로 호명되었던 2030 유권자들의 성별 투표 성향 차이가 두드러지는 현상을 주목했다. 20대 남성들을 지칭하는 용어로 통용되는‘이대남’ 은 생물학적 연령인 20대만을 지칭하는 것이 아니라 30대 중반까지 아우르는 청년세대를 뜻하며, 일명 MZ세대로도 불 린다. 1980년부터 1994년생까지인 밀레니얼(M) 세대와 1995년부터 2004년생까지인 Z세대를 합쳐 부르는 용어라고 한다.‘이대남’ 은 젊은 남녀 세대를 아우르는 이들 가운데서 남성만의 부분집합을 일컫는다(한겨 레.2022.1.29.). 이대남도 내외적으로 다양한 차이가 있을 수 있으나 20대 남성들을 중심으로 주목할 만한 현상이 드러나는 것만큼은 분명하다. 이 현상은 2022년 대선에서도 20대 여성을 지칭하는‘이대녀’ 와 뚜렷 한 차이를 드러냈다. 같은 시대와 사회를 살아가는 청년세대가 성별에 따라 어느 세대보다도 큰 간극을 보 이는 것이다. 2021년 1월 25일 중앙일보는 외교안보·경제·사회 영역에 걸쳐 14개 정책 쟁점을 토대로 한국 사회의 연령별·성별 이념을 추출했다. 그 결과 20대 남성이 모든 세대와 성별을 아울러 가장 보수적인 것으로 나 타났다. 박빙의 선거전에서 전체 유권자의 6.7%를 차지하는‘이대남’ 은 지난 대선에서 판세를 좌지우지하 는 캐스팅 보트로서 떠 올랐다. 대선 당시 윤석열 후보는 페이스북을 통해“여성가족부 폐지”일곱 글자만 을 올리는 것으로도 이대남이라 불리는 20대 남성 유권자들의 지지율이 2배 이상 급등하는 놀라운 지지를 받았다. 반면 이대녀로 불리는 20대 여성은 40대 남성, 40대 여성, 50대 남성 다음으로 정책 이념에서 진보적 성 향을 보여 20대의 여성과 남성은 남녀 성별 간의 차이가 가장 크게 벌어진 세대가 되었다. 탈원전, 정부 재 정 운영, 비정규직 해법 등 대부분 영역에서‘이대남’ 은 강한 보수 성향을 보였고, 이대녀와의 간극도 그만 - 16 -


큼 컸다(중앙일보.2022.01.25.). 젠더갈등이라 일컫는 성별 갈등은 2016년 강남역 여성혐오 살해사건을 계기로 본격화 한 것으로 본다. 남성들을 잠재적 가해자로 본다는 소수 청년 남성들의 맞불 시위와 일베 등을 통해 드러난 여성혐오에 맞 선 여성 커뮤니티 메갈리안의 미러링, 2018년부터 이어진 미투운동, 군 가산점 논란과 성별할당제 등에서 청년 남성들은 자신들을 역차별의 피해자로 정체화하기 시작했다. 그리고 이러한 피해자화는 이른바 조국 사태를 거치면서 20대 남성이 불공정과 역차별의 희생 세대로 받아들여지면서 친 여성정책을 펼치는 민주 정부에 대한 강렬한 반감으로 이어졌다. 국민의힘은 2030 남성들을 향해 여가부 폐지를 공약으로 내세우며 전략적으로 이대남의 반여성 정서를 부추기면서 젠더갈등을 심화시켰다. 이는 2022 대선과 지방선거에서 2030 여성과 남성의 투표 성향의 차이로 이어졌다. 지난 3월 9일 대통령 선거가 끝난 후 실시된 방송 3사의 출구조사에서 윤석열 당선인의 20대 남성 예상 득표율은 58.7%, 더불어 민주당의 이재명 후보의 예상 득표율은 36.3%였다. 반면 윤석열 당선인에 대한 20대 여성의 예상 득표율은 33.8%, 이재명 후보에 대한 예상 득표율은 58.2%로 큰 대조를 보였다(YTN. 2022.03.10.). 지방선거가 있었 던 6월 1일 방송 3사(KBS·MBC·SBS) 출구조사에서도 20대 이하 여성 가운데 66.8%는 민주당 후보에, 30.0%는 국민의힘 후보에게 표를 줬다. 반면 20대 이하 남성은 국민의힘에 65.1%, 더불어민주당에 32.9% 를 각각 투표했다(경향신문. 2022.06.01.). 여성가족부가 정부예산에서 차지하는 비중이 0.3% 정도에 불과한데도 안티페미니즘의 정서를 가진 20대 남성들은 국민의힘의 밑도 끝도 없는‘여가부 폐지’공약 하나에도 열광했다. 그 예산의 대부분도 가족, 노 인, 청소년 분야 등에 쓰이는 것이 현실이라는 것은 관심의 대상이 아니었다. 진정 청년들의 문제에 관심을 가지고 제대로 된 정책을 내놓기보다 20대 여성과 남성을 갈라치기 해서 20대 남성의 표를 얻고자 하는 행 태로 인해 군 복무와 취업 문제 등 현실에서 절실한 청년정책은 오히려 실종되고 말았다. 이런 행태는 페미니즘과 여가부에 대한 왜곡된 인식을 고착화하며 동시대를 살아가는 여성 청년과의 갈 등을 심화시키는 결과를 낳았다. 청년 남성들이 가지고 있는 여러 문제점을 사회가 함께 고민하고 그 해결 책을 찾아갈 수 있는 기회를 빼앗아 버렸다는 의미에서 청년 남성들에게도 매우 불행한 일이 아닐 수 없다. 결국 정책을 통한 청년 문제의 해결은 실종되고 선거가 20대 여성과 남성의 대리전이 되어 버린 것이다. 한편 대선 말미에 윤석열 후보는“(한국 사회에)구조적 성차별은 없다” 라는 발언으로 20대 여성들이 이재 명 후보로 대거 결집하게 했다. 이 현상이 함의하는 바는 20대 남성들의 현실 인식과 20대 여성들의 현실 인식의 간극을 보여 주는 것이기도 했다.‘산업화’ 와‘민주화’ 를 겪은 세대와 달리‘생존주의’세대라 할 수 있는 2030세대들은 민주화나 평화통일과 같은 거대 담론보다 자신의 현실적인 생존의 문제에 가장 민감 - 17 -


│젠더비평│

한 세대이기도 하다. 최종숙 한국민주주의연구소 선임연구원이 2020년 3월에 발표한 논문에 따르면 성평등 의식을 추론할 수 있는 여러 지표 문항에서 20대 남성의 성평등 의식이 20대 여성 다음으로 높게 나왔다.‘남성의 육아를 수 용한다.’ ,‘여성 직장 상사 수용’ ,‘여성의 주도’같은 항목에서 30대 여성보다 높은 점수를 기록했다(최종 숙. 2020.). 이는 성 소수자를 제도적으로 인정하거나 권리를 존중해야 한다는 것에 20대 남녀 모두 진보적 이라는 중앙일보 조사 결과와도 맥을 같이하는 부분이다. 30대 여성보다 높은 성평등 의식을 지닌 20대 남 성이 집단적인 여혐의 주체가 된 현실은 매우 아이러니하다. 2021년 <KBS> 의‘세대 인식 집중 조사’ 에서 모든 세대 모든 성별에서 자기가 고소득층이라고 여길수록 이타성도 높게 나타났는데, 20대 남성에서만 정반대의 결과가 나왔다. 스스로 고소득층이라고 생각할수록 ‘기회가 되면 내 것을 나눠 타인을 도울 것이다’ 라는 답변이 낮았다. 이대남의 정체성으로 간주되는 배타성 과 이기주의가 실상은‘20대 상류층’ 의 인식이 반영됐을 가능성을 시사하는 것이다. 하버드를 나와서 경제 적 어려움 없이 현실 정치의 파워엘리트가 된 젊은 남성 이준석은 이대남을 과대 대표하고 있을 혐의가 짙 어 보이는 부분이다(한겨레.2022.01.29.). 이는 이른바 조국 사태에 그토록 성토하던 20대 명문대생들이 정 작 대통령 윤석열 부부의 불공정과 부정의, 법무부 장관 한동훈 자녀의 일탈에 대해서는 침묵하는 현상과 오버랩 되는 것은 필자의 과한 상상일까. ‘생존 세대’ 로서 20대 여성과 20대 남성은 사회적 자원이 많은 소수를 제외하고는 계층상승의 사다리가 제거된 차별적인 사회 속에 살고 있다. 20대 여성의 이익이 20대 남성의 이익과 상충하기보다 동시대를 살 아가는 청년으로서 공유할 이익이 더 많다. 작금의 2030세대는 남성 생계부양자 모델을 이상적 가족으로 생각하지 않는다. 여성이라고 해서 가사노동과 육아, 직장 등 이중삼중의 노동을 당연하게 여기는 세대가 아니다. 함께 사회적 노동에 참여하기 위해 이대남은 얼마든지 내 일처럼 육아에 참여할 의사가 있고, 가사 노동의 분담을 당연하게 생각한다. 여성에게 가해지는 폭력에 동의하지 않는다. 장애인과 성 소수자 등에 대한 사회적 차별에 반대한다. 이런 평등의식을 체화한 세대인 이대남이 여혐과 정치적 보수세력으로 돌아선 것은 젠더갈라치기를 통해 정치적 이득을 보고자 하는 수구 정치세력과 언론의 선동에 의해 자신 계층의 이익을 치열하게 사유할 기 회를 박탈당했기 때문은 아닐까 하는 추측을 해 본다. 프랑스의 식민지였던 알제리의 지식인 프란츠 파농 이 식민지 민중들이 오히려 자국의 민중을 더 핍박하는 현실을 목도하며‘검은 피부, 흰 가면’ 이라는 책을 썼듯이 동시대의 청년으로서 갖는 사회적 좌절감과 무력감을 사회의 구조적 모순에서 찾지 않고 오히려 자 신처럼 취약한 20대 여성들을 혐오하는 정서로 드러내는 것이 아닌가 하는 것이다. 그것은 어쩌면 민주주 의의 성장을 원하지 않는 정치세력의 치밀한 전략의 하나일지도 모른다. 어쩌면 이대남은 자신이 처한 현 - 18 -


실의 구조적 모순을 보지 못하는‘자기 땅에서 유배당한 자들’ 인지도 모른다. 20대 대선과 6.1지방선거를 통해 극명하게 드러난 2030의 성별 격차를 해소하기 위해 우리는 무엇을 할 수 있을까? 페미니즘은 특정성별의 우위를 목표로 하는 것이 아니다. 모든 사회구성원이 인간으로서 존중 받고 자기다운 삶을 이루어 갈 수 있는 사회를 추구하는 것이 모든 페미니즘이 궁극적으로 추구하는 것이 다. 오랜 역사 속에서 형성된 성차별적 문화를 평등한 문화로 바꾸는 것이다. 페미니즘이 2030 청년들의 이 익을 침해하는 것이 아니라는 것을 이해할 필요가 있다. 한국사회도 제도적 영역에서는 서구 못지않은 성평등을 달성했다. 그러나 수천년 지속되어 온 일상속의 성차별은 성평등 관점에서 보아야만 보이는 것이다. 성별갈등을 부추기는 정치행태와 왜곡된 언론이 변화 해야 한다. 인간의 존엄성을 침해하는 모든 차별의 철폐와 상호존중을 위한 교육은 지속되어야 한다. 보다 성숙한 사회를 위해서는 이해관계의 충돌과 갈등을 담아내고 견뎌내는 사회적 역량과 지혜가 필요 하다. 2030의 성별 갈등은 한국 사회가 더 진보한 민주사회로 나아가기 위해 거쳐야 하는 역사적 과정이다. 보다 나은 사회를 위한 진보로 갈등의 과정을 승화하느냐 분열로 퇴보하느냐는 결국 우리 사회구성원들의 책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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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정동향│

낙동강 쌀에서 녹조 독성 나왔다는데… 환경청의 이상한 대응 예산 23억원으로 기초조사 진행 필요… 책임 떠넘기지 말고 먹거리 불안 해소해야

백경록 운영위원, 대구의정참여센터 운영위원장

▲ 낙동강 녹조 물로 농사짓고 있는 낙동강 인근의 한 논. ⓒ 임희자

환경운동연합은 지난 3월 22일 낙동강 하류 노지 쌀에서 녹조 독성인 마이크로시스틴이 검출됐다고 발표했 습니다. 전문 연구팀에 의뢰해 조사한 결과 1㎏당 3.18 ㎍의 마이크로시스틴이 검출됐다는 내용입니다. 성인이 하루에 300g의 쌀을 먹는다고 가정하면 하루에 0.945㎍의 마이크로시스틴을 섭취하게 됩니다. 미국 캘리포니아주 간 병변 독성 기준의 2.48배, 생식 독성 기준의 8.83배를 초과하는 수치고, 프랑스의 생식 독성 기준의 15.9배를 초과하는 규모라고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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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들은 마이크로시스틴이 독성 물질의 대표 격인 청산가리의 100배나 되는 맹독이고, 국제암연구기관(IARC) 에 의하면 발암물질에 해당된다고 경고합니다. 또한 간과 폐, 혈청, 신경, 뇌에 이어 정자와 난자에도 영향을 미칠 정도로 생식 독성을 지닌 아주 위험한 물질이라고 우려합니다. 이런 독성물질이 우리가 일상적으로 먹 는 쌀과 김치에 포함돼 있다는 주장입니다. 식탁에 오르는 식재료에서 위험한 물질이 나왔다는 의혹이 제기되면 우리는 무엇을 해야 할까요? 제일 먼저 연구결과가 신뢰할 만한지 확인해야겠지요. 그럼 신뢰할 만한지 확인해야 하는 사람은 누구일까요? 최소한 저와 여러분은 아닙니다. 우리가‘이 연구결 과는 신뢰해도 된다’ 고 해봤자 믿을 사람은 별로 없습니다. 그래서 우리는 세금을 내고 대답을 내놓을 사람 을 세워 놓았습니다. 바로 정부,‘국가’ 입니다. 그렇다면 수많은 국가기관 중 어디에서 답을 내놓아야 할까요? 여기에 모든 답이 있습니다. 어느 기관이 책 임지고 이 일을 수행해야 하는지 찾아야 합니다. 시민 대부분은 여기에서 막힙니다. 기관이 너무 많은 거죠. 담당자 찾는 게 하늘에서 별을 따는 만큼 어려운 일입니다.

‘쌀’ 이니까‘낙동강’문제 아니다? 낙동강유역환경청이라는 기관이 있습니다. 환경부와그소속기관직제(대통령령 제17698호, 2002.8.8)에 의해 설립됐습니다. 낙동강 수질개선을 위한 다양한 시책을 추진하고, 자연자산과 생태자원 보전 및 국민의 환경 보전의식을 고취하고자 다음의 업무를 임무로 뒀습니다. - 낙동강유역 수질보전대책 수립 및 수질오염총량관리 - 수계관리 재원 확보 및 기금 운용·관리 - 환경기초시설, 상수원보호구역, 정수장 운영 및 평가 - 환경오염물질 배출사업장 감시·단속 및 환경사범 수사 - 수질·토양·지하수 측정망 설치·운영 및 환경오염 채취 시료 분석관리, 환경보전에 관한 교육·홍보 - 야생동·식물 보호 및 생태우수지역의 보전 - 전략환경영향평가, 소규모환경영향평가, 환경영향평가 협의 및 사후관리에 관한 사항 - 지정폐기물 인·허가 및 지도점검 업무 - 녹색기업 지정 및 관리 - 유해화학물질 관리 및 화학사고·테러 대응

시민들의 불안을 잠재우기 위해 가장 먼저 확인하는 기관으로 적당해 보입니다. 예산이 적지도 않습니다. 낙 동강수계관리기금 약 2400억 원이 배정된 기관입니다. 낙동강수계관리기금 예산 중에는 약 23억 원 정도의 - 21 -


│의정동향│

▲ 낙동강유역환경청 ⓒ 백경록

환경기초조사연구비가 있습니다. 낙동강수계 수질개선에 필요한 기초자료를 확보 등에 쓰는 돈인데, 각 지자 체에서 의견을 받아 현안 과제를 연구합니다. 2021년도 연구과제를 보면, ▲낙동강 수계 지류·지천 장기모니터링 및 목표수질 달성도 평가 3억8천만 원 ▲낙동강 수계 지류, 지천 횡구조물과 이에 설치된 어도 및 경제성 평가 2억 원 ▲낙동강 중·하류 지표 지 류 합류부 혼합거동 조사 및 분석 2억2500만 원 등 여러 가지 진행 중입니다. 연구를 시작한 시점 또한 1월부터 7월까지 다양합니다. 즉 중요한 현안이라고 판단하면 상반기에도 연구과제 로 정할 수 있는 것입니다. 필자는 낙동강수계관리위원회 자문위원회에 자문위원으로 참여하고 있습니다. 5월 17일 열린 자문위원회 회 의에서 낙동강유역환경청 측에‘환경운동연합의 발표 내용을 환경기초조사연구비로 조사할 의향이 있는지’ 물었습니다. 이 자리에서 박재현 청장은“국회에서 논의 중” 이라며“관련해서 아직 식품의약품안전처 기준이 없다. 식약 처 농약잔류검사 등 기준이 나와야 한다” 고 답했습니다. 쉽게 설명하면‘쌀이니까 소관은 식약처이며, 검사 기준을 마련해야 한다’ 로 해석됩니다. 문제는 낙동강 녹조 때문에 쌀에서 마이크로시스틴이 검출됐다는 지적인데, 과연 낙동강유역환경청과 관련이 없는 걸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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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민이 불안해하는 문제, 책임 떠넘기지 말고 조사해야 한편, 이날 회의에서 자문위 원장(환경단체 대표)은‘샘플 링에 문제가 있다’ ,‘쌀을 씻 어서 밥을 하는데 그냥 검사 했다’ , ‘간편식 검사다’ 라며 환경운동연합 연구 신뢰성에 의문을 제기하기도 했습니 다. 환경운동연합의 의뢰로 조사 를 주관했던 국립부경대학교 식품과학부 이승준 교수에게 동의하는지 물었습니다.

▲ 3월 22일 환경운동연합 마당에서 열린‘낙동강 쌀, 녹조 독성 마이크로시스틴 검출’관련 기자회견. ⓒ 환경운동연합

이승준 교수는“지역 정미소 또는 마트, 농민이 직접 가져 온 쌀 등 다양하게 검사를 진행했다” 며“마이크로 시스틴은 쌀 안에서 검출되는 것으로 씻는다고 해서 사라지지 않을 뿐만 아니라, 300℃ 이상으로 열을 가하 지 않으면 분해되지 않는다” 고 반박했습니다. 즉 씻는 문제하고는 전혀 관련이 없다는 뜻입니다. 검사방법 또한 논문 등에서 일반적으로 검증된, 미국 환경부도 인정하는 방식이었다고 합니다. 설명을 듣고 나니‘설마 그럴까?’싶었던 환경운동연합의 주장에 나름 신뢰가 있어 보입니다. 낙동강 녹조 오염으로 우리 식탁이 병들고 있는지 점검하고 개선책을 마련해야 한다는 호소로 들립니다. 낙동강수계관리위 자문위원 중 누군가가 말한 것처럼‘돈은 쓴 것 같은데 효과는 보이지 않는 환경기초조사 연구’비용으로 국민이 불안해하는 사실을 조사할 수 없는 것일까요? 예산도 많이 들 것 같지 않은데 말이 죠. 낙동강유역환경청에서 언급한 식약처 농수산물안전정책과의 담당 업무에는‘위험평가를 위한 농산물 잔류실 태조사 및 그 생산에 이용되는 농지·용수·자재의 유해물질 조사·분석’ 도 포함돼 있습니다. 낙동강유역환경청이든, 식약처든, 농림축산식품부든, 낙동강 물로 키운 쌀과 배추 등이 정말 위험에 노출됐는 지 공식적으로 확인해줬으면 합니다. 국민 안전과 직결된 문제이기 때문입니다.

<이 글은 오마이뉴스에 2022년 6월 14일자로 게재된 기사를 재편집한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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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럼│

교사의 교육감 출마와 지역정당을 허용하라

김윤상 칼럼니스트, 대구참여연대 자문위원

대통령 선거 후 석 달도 되지 않아 제8회 지방선거를 치렀지만, 이번에도‘선거는 민주주의의 꽃’ 이라는 말 을 실감할 수 없었다. 이상한 선거제도 때문이다. 교육감 선거에 교사가 출마할 수 없다 교육감 선거부터 보자. 교육감은 유·초·중등 교육과 교육행정에 경험과 열정이 많은 사람이 맡는 것이 좋다. 그렇다면 후보로서 전·현직 교사가 가장 잘 어울린다. 현행법에서 교육 또는 교육행정 경력이 3년 이상인 사람에게 출마 자격을 주는 것도 그런 취지에서일 것이다. 그러나 현직 교사가 출마하려면 선거일 전 90일까지 교사직을 그만두어야 한다. 그래서 공직선거 출마에 제약이 없는 대학교수 또는 오래전에 교사를 지낸 사람이 출마하는 실정이다. 학생은 16세부터 정당에 가 입할 수 있고, 18세부터 공직선거에 입후보도 할 수 있다. 그런데 이런 학생을 가르치는 교사는 출마가 금 지되어 있고, 심지어 지지하는 정당이나 후보에 정치후원금을 내는 것도 형사처벌 대상이다. 이런 이상한 제도에 대해, 국가인권위원회도 2019년에 공무원·교원이 그 직무와 관련하여 정치적 중립성

▲ 6.1지방선거 대구시교육감 후보자 토론. 엄창옥 후보가 강은희 후보에게 질문하고 있다.(2022.5.23) / TBC 방송 캡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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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KBS 뉴스 <정책 뒷전 '맥 빠진' 교육감 선거…제도 개선 절실>(2022.06.03) 방송 캡처

을 훼손시키지 않는 범위에서 시민으로서의 정치적 기본권을 보장받을 수 있도록 관련 법률을 개정하는 것 이 바람직하다는 의견을 제시하였다. 헌법재판소도 2020년 교원의 정당 외 정치단체의 결성과 가입 제한은 위헌이라고 하였다. 국제노동기구(ILO) 역시 이미 여러 차례 우리 정부에 공무원·교원의 정치기본권 보장 을 권고한 바 있다. 해외사례를 보더라도 프랑스, 독일, 뉴질랜드, 핀란드, 노르웨이, 스웨덴, 오스트리아는 공무원·교원에 대 해 정당 가입은 물론 정치활동의 자유를 폭넓게 인정한다. 미국, 영국, 일본은 특정 정치활동 제한은 있지 만 정당 가입은 허용한다. 정치활동을 강하게 제한하는 일본조차도 형사처벌 방식을 취하고 있지는 않다. (국회입법조사처,‘교원의 정치적 자유 제한과 헌법재판소 결정: 쟁점과 입법과제’ , 2020년 5월) 지방선거인데 지역정당이 없다 또 이상한 점은, 지방선거인데도 지역에 기반을 두고 지역 문제에 공을 들이는 정당 후보가 없다는 사실이 다.‘정당의 설립은 자유’ 라고 천명한 헌법(제8조 제1항)에도 불구하고, 정당법이 지역정당을 금지하고 있 기 때문이다. 정당법에 따르면, 정당은 수도에 소재하는 중앙당이 등록해야 성립하고(제3조, 4조), 5개 이상 의 광역시·도에 시·도당을 가져야 하며(제17조), 각 시·도당은 그 지역에 사는 1천 명 이상의 당원을 가 져야 한다(제18조). 즉, 전국 조직을 가지고 당원이 최소한 5천 명을 넘어야 하며 중앙당은 반드시 서울에 소재해야 한다. 그래서 모든 정당은 사실상‘서울당’ 이 되어있다. 지방 주민이 지역의 절실한 문제를 정치 의제로 표출하려 고 해도‘서울당’ 을 통해야만 한다. 그렇다고 무소속 후보에 기대할 수도 없다. 무소속 후보의 상당수는 ‘서울당’ 에서 공천을 받으려고 했던 인물이고, 당선되면‘서울당’ 으로 복귀하기도 한다. 이렇게 해서 지방 은‘서울당’ 의 선거 식민지가 되었고, 지방선거는 대선·총선의 연장전이 되어버렸다. 그런데도 지역 국회의원은 지역정당 문제에 관심이 없다. 오히려 지방의 정치 지망생들을 거느릴 수 있는 - 25 -


│칼럼│

▲ 6.1지방선거 대구시장 후보자 토론. 민주당 서재헌 후보가 국민의힘 홍준표 후보에게 질문하고 있다.(2022.5.26) / 대구MBC 방송 캡쳐

지금과 같은 제도를 즐기는 것 같기도 하다. 게다가 지역 국회의원 중에는 아예 지역을 떠나 서울에서 사는 사람도 있다.‘지방 소멸’ 이라는 심각한 상황을 타개해야 할 정치 영역이 이처럼 서울중심주의에 사로잡혀 있다. ‘서울당’ 이 지방 선출직을 사실상 임명하는 꼴 이번 선거는 경쟁률이 낮았고 무투표 당선자가 많았으며 투표율도 낮았다. 지방선거 전국 평균 경쟁률은 1.8대 1로 역대 최저이고, 특히 대구시의원 평균 경쟁률은 1.3대 1로 전국 최하위를 기록했다. 무투표 당선 자는 508명으로 정원 대비 12%가 넘고, 2018년 지방선거 때 89명의 5배가 넘는다. 또 투표율도 50.9%로, 1995년 첫 지방선거가 시행된 이후 두 번째로 낮은 수치다. 이런 현상은 양대 정당이 특정 지역을 독식하는 풍토가 더 심해졌음을 의미한다. 유권자가 아니라 지역을 지배하는 거대‘서울당’ 이 지방의 선출직을 임명하는 꼴이다. 정당 득표율만큼 당선자를 내는 연동형 비례 대표제라면 이렇게까지는 안 되었을 텐데, 비례대표는 지방의원 정수의 10%에 불과하다. 제도를 바꾸어야 한다. 지역정당을 허용하라! 연동형 비례대표제를 도입하라! 한마디만 더 하고 싶다. 선출직을 임기 도중에 사퇴하고 다른 자리에 출마하는 경우가 더러 있다. 유권자를 우롱하고 보궐선거 비용을 축내는 이런 사람이 국민대표 자격이 있나? 출마를 금지하거나 최소한 보궐선거 비용이라도 물어내도록 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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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달의 회원│

신동주 회원을 만나다

정리. 대담 김선희 대구참여연대 사무국장

회원님 반갑습니다. 그동안 잘 지내셨나요. 인사와 소개 부탁드립니다. 네, 안녕하세요. 대구참여연대 회원, 회비납부만 하는 회원 신동주라고 합니다. 김천에서 나고 자랐고, 같은 학교 동기와 결혼해서 아들 둘과 평범하게 살고 있습니다. 회비만 내는 회원인데 이렇게 회원인터뷰까지 하게 되어서 조금은 민망합니다. ^^

요즘 근황은 어떠신지요. (웃음) 거의 혼자 있는 시간이 많습니다. 먹고 자고 넷플**도 즐기고. 달서구 상인동에서 오래 살다가 작년 에 봉덕동으로 이사를 왔는데 상인동 있을 때는 생협 조합원으로 이런저런 활동을 하며 나름 바쁘게 지냈 는데, 이사 후에는 생협 활동도 줄고, 이사한 동네에 아는 사람이 없다 보니 다른 활동은 특별히 못하고 있 습니다. 아파트 부녀회라도 가입해야 하나, 싶기도 하고요.

드라마 좋아하신다고 들었습니다. 저도 드라마를 무척 좋아하는데요, 회원님은 요즘 어떤 드라마 보세요? 요즘은 일본 드라마가 주력입니다. 넷플** 좋더라구요.(웃음) 이전에는 중국 드라마도 한참 봤는데 전체적으 로 너무 길어서 힘들었어요. 한국 드라마는 요즘 장안의 화제‘구씨’ 가 나오는‘나의 해방일지’재미있게 봤고, 노희경 작가의‘우리들의 블루스’ 도 감동적으로 관람했습니다.

요즘‘구씨’ 가 대세이긴하죠~ 묘한 매력이 있는 배우더라구요. 드라마도 경기도민으로 사는 소시민들의 일상을 리얼하게 잘 그려냈던 것 같고, 요즘 다들 무언가를‘추앙’ 하고 어딘가에서‘해방’ 되어 보자는 이 야기를 많이 합니다. 회원님은 어떠세요? - 27 -


│이달의 회원│

구씨가 매력있죠.(웃음) 드라마에서 특히 마음에 와닿았던 건 삼남매의 엄마‘곽혜숙’ 의 느닷없는 죽음이었 어요. 자면서 평안하게 죽었는데, 어떤 평론가의 글을 보니, 엄마는 죽음으로서‘살림’ 에서‘해방’ 되었다고 하더라구요. 인상적인 평이었습니다.

참고로 저는‘라포엠’ 이라는 크로스 오버 그룹을 추앙 중입니다.(웃음) 그럼 본격적인 질문으로 들어가서, 회원님과 대구참여연대와 인연은 어떻게 되시나요? 대학교를 졸업하고 막 사회에 나왔을 때 학생운동 하던 선후배들과 자연스럽게 시민운동을 함께 하게 되었 고, 참여광장이라는 곳에서 활동하면서 자연스럽게 참여연대 창립회원이 되었어요. 뭐 창립회원이라고 하면 뭔가 거창하기는 한데 그냥 평범한 회원으로 결합했습니다. 참여연대 초창기 소모임에 미술, 그림 그리는 소모임이 있었어요. 미술을 전공한 경북대 동기 한 명이 주축이 되어 몇몇이 모임을 갖고, 전시도 한 번 한 기억이 있는데 정확하지는 않습니다.(웃음) 사실 적극적 모임을 해보기도 전에 담당 동기가 결혼하면서 와 해된 아픈 기억이 있네요.

아, 참여연대 초기 모임에 미술 모임도 있었군요. 새롭게 알게 된 사실입니다. 그러면 그 이후 다른 회원 모임을 같이 하셨는지, 대구참여연대 활동 중 기억에 남는 것들이 있다면 말씀해주세요. 별도로 회원 모임에 가입해서 활동하지는 않았습니다. 그 무렵에 결혼도 했고... 최근은 아니지만, 회원캠프 나 총회, 후원행사에는 거의 참석한 것 같아요. 김채원 선배가 활동가로 있을 당시, 회원 조직 사업을 하면서‘여성 모임’ 을 하나 만들었는데 그때 둘째 아 이를 안고 다니며 같이 모임에 참여했던 기억이 나네요. 모임 이름이 있었던가? 기억이 정확하지는 않지만, 그 모임에서 생태운동, 친환경 운동도 같이 해보자 하며

하기도 했고, 그런데 또 마음먹은 만큼

안되었어요. 모임을 만든 채원 선배는 사무실의 여러 다른 일로 바쁘기도 했고 모임 회원 중에 주도적으로 모임을 이끌어갈 사람이 없기도 했고, 다들 고만고만하게 어린 아이들을 키우다보니 흐지부지되었죠.

그렇죠, 모임은 또 주도적인 누군가의 역량이 필요한 것 같습니다. 사실 지금 대구참여연대도 회원 활동이 거의 없어 고민이 많습니다. 앞서 소모임 관련해서 말이 난 김에 소모임 활성화를 위한 아이디어도 보태주 세요. 글쎄요, 뭐가 있을까요. 제가 봉덕동에 살고 있으니, 신천 걷기 모임은 어떨까요? 부근에 사시는 회원분들 몇 명이라도 모집해서 희망교-중동교-수성교 까지 왕복 한 5km 정도 거리가 되는 데 밤에 선선할 때 같이 걷고 맥주 한잔 딱 마시고 쿨하게 헤어지는 그런 거? 여력이 되면, 신천 걷기대회도 한번 열어도 좋겠고요. - 28 -


소소하게 모여 걷고 그러다가 참여연대 행사 있으면 같이 참석해보자 의견도 내고, 사무처에서 일부러 모 여라 함께 하자 하는 것도 좋겠지만 이런 소모임에서부터 자발적으로 조금씩 조금씩 올라가다 보면 예전만 큼은 아니어도 회원들 모임이 조금씩 활성화되지 않을까요.

너무 좋네요. 곧 있을 회원 모임 설문조사 때 한번 올려보도록 하겠습니다. 그리고 곧 저희 여름 캠프도 있 어요. 코로나 때문에 2년간 못하다가 올해부터 재개하려고 하는데 회원님께 영업 한 번 해봅니다. 이번 캠 프같이 하는 건 어떠세요? 아... 네, 별일 없으니까 같이 가도 될 것 같아요.(웃음) 하계 캠프 하니까 생각나는 게 있는데 6~7년 전 당 시 중학생이던 큰 아이만 캠프에 보낸 적이 있어요. 친구들과 몇 명이 같이 갔었는데 다녀와서 되게 좋았다 고 하더라구요. 이유가 또래 아이들을 한데 모아, 알아서 자유롭게 놀게 했는데 먹을 것도 많이 챙겨주고 어떠한 간섭도 없었다면서 좋아하던 기억이 있네요. 집이나 학교에서 혹은 다른 행사에서는 늘 이걸 하지 마라, 저걸 하라…. 모든 것이 통제였는데 그런 자유는 처음이었다면서요. 참여연대 활동가들은 그저 내버 려두고 알아서 놀아라 했을 수 있겠는데 아이들 입장에서는 그것대로 되게 새로운 경험이었나 봅니다. 이 번 캠프도 회원들이 많이 참석해서 좋은 시간 보냈으면 좋겠습니다.

그럼 마지막으로 대구참여연대에 바라는 점이 있다면요. 참여연대에 제가 바랄 게 무어 있겠어요.(웃음) 참여연대는 음... ‘이런 단체라도 있어서 다행이다’ , 이런 마 음의 위안 같은 곳입니다. 나는 못 하지만, 누군가 나 대신 뭔가 해주고 있다는 그것만으로 늘 감사합니다. 이렇게 좋은 말씀으로 응원해주시니 저희가 더 감사합니다. 그럼 회원캠프 때 뵙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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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쉬어가는 이야기│

그냥 써본 소설: 두 번째 이야기 이귤

(지난 이야기: 경북의 모 중소도시에 근무하는 이규원

민수의 고통이 컸던 것 같아요. 교육청에 먼저 신

선생님의 반은 매일 사고가 끊이지 않는다. 최근 학교폭

고를 하고 학폭위를 개최하는 게 어떨까 싶네요.”

력 사건이 발생하여 가해 학생인 동훈이 녀석을 강제 전 학 보내려 하였으나 피해자인 민수가 우물쭈물하는 바람 에 좌절되고 만다.)

학폭 발생 시 처리 방법을 간단히 설명하면서 교육청 신고와 학폭위 개최를 은근히 유도하였다.

하지만 이번에도 그냥 넘어가면 동훈이를 비롯

“아…. 저희 애가 괴롭힘을 당했다니 화는 나지

한 문제아들의 횡포는 더 이상 걷잡을 수 없이 심

만, 아이들끼리 놀다가 일어난 일인데 처벌까지

각해질 게 뻔하다. 반드시 학폭위를 열어서 이놈

할 필요 있겠어요? 선생님이 알아서 잘 처리해

을 쫓아내겠다는 심정으로 민수 어머니에게 전화

주십시오.”

를 걸었다. 보통 부모들은 처음엔 당황하다가 가해 학생에 “안녕하세요. 어머니 민수 담임입니다. 잘 계시 죠?”

대한 동정심이나 연민의 감정이 일어나면서 선처 를 바라는 경우가 많은데 민수 어머니도 그랬다.

일단은 안부를 묻고 본론으로 들어간다.

“네 어머니. 제가 잘 지도하겠습니다만 혹시라 도 생각이 바뀌신다면 이번 주 중으로 제게 연락

“민수가 최근까지 동훈이라는 학생으로부터 지

부탁드립니다.”

속적으로 폭행과 괴롭힘을 당했다고 친구들이 제 보를 했습니다. 경위서를 받아보니 사실인 것으로 밝혀졌습니다.”

한 번 더 생각해달라며 여지는 남겼지만, 이번 에도 그냥 넘어갈 게 뻔했다.

이 정도까지 얘기하면 보통 부모들은 어느 정도 충격을 받고 어쩔 줄을 몰라 한다.

전화를 끊고 나니 온몸에 힘이 빠지고 가슴이 답답해졌다. 아무리 문제아라도 학교에서 야단 한 번 제대로 칠 수 없는 세상이다 보니 앞으로 동훈

“아, 그런가요. 애가 몸이 약하고 너무 착해서 항상 걱정이었는데 선생님 이럴 땐 어떡하면 좋

이를 비롯한 문제아를 어떻게 지도할지 생각하니 눈앞이 캄캄했다.

죠?” “보통 사안이 대수롭지 않을 땐 학교장 선에서

이렇게 오전을 학부모 상담과 수업으로 다 보내

종결처리할 수 있지만, 이번엔 폭력이 지속적이고

고 나니 어느새 점심시간이 되었다. 입맛이 없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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급식을 몇 숟가락 뜨는 둥 마는 둥 하고 교무실에

싶은 마음이 간절했다.

오니 교감 선생님이 급하게 나를 부른다. “이 선생님 사정은 알지만 이미 결정이 된 거라 “이규원 선생님 잠깐 볼 수 있을까요.”

저도 어쩔 수가 없어요. 심수미 선생님과 상의해서

“네 교감 선생님 무슨 일이시죠.”

몇 반으로 갈지 결정하시죠.”

뭔가 큰일이라도 일어난 것 같은 예감에 심각한

소심한 성격에 대놓고 내색은 하지 않았지만, 사

표정으로 교감 선생님이 무슨 얘기를 할지 기다린

정 뻔히 알면서 전입생을 받겠다는 교감 선생님이

다.

야속하면서 화도 났다. 교감 선생님도 내 표정을 읽 었는지 난처한 표정으로 더 이상 말을 잇지 못하고

“방금 교육청 장학사한테서 연락이 왔는데 우리

있었다. 속상한 마음에 상의해보겠다는 짧은 답변만 남기고 먼저 일어나버렸다. 상황을 보니 전입생을

학교로 전입생이 온다네. 이 선생 학년이에요.” “네, 전입생이 오면 받아야죠. 어디서 온답니까?”

받는 건 어쩔 수 없는데 누가 받을지가 문제다. 1, 2반 모두 23명이어서 1반 담임이면서 학년 부

심각한 일은 아닌 것 같아 다행이다 싶긴 했지만,

장인 내가 받는 게 순리이긴 하지만 학년 초, 반 배

곧바로 학생의 신상에 관해 물었다. 그런데 교감 선

정을 할 때 그래도 부장이라고 내가 사고뭉치 몇

생님이 잠시 뜸을 들이는 것이 영 마뜩잖다.

명을 데려간지라 이번에는 심수미 선생님 반으로 배정했으면 하는 마음이 간절했다.

“인근 학교에서 학폭 피해 학생이 교육환경 변화

교무실에서 걱정스러운 표정으로 앉아 있으니 심

차원에서 전학을 요청했는데 거리가 가까운 우리

수미 선생님이 지난번 동훈이 녀석 이야기를 조심

학교로 배정이 됐어요.”

스레 꺼낸다.

이럴 수가! 안 그래도 민수 하나만 해도 돌보기

“샘 동훈이가 또 사고 쳤다면서요. 그 녀석은 시

벅찬 데, 학폭 피해자가 한 명 더 추가되면 동훈이

도 때도 없이 사고를 쳐서 샘을 힘들게 하네. 이번

나 한수, 영훈이 같은 녀석들이 가만히 놔둘 리가

엔 꼭 학폭위 열어서 강전(강제 전학) 보내버려요.”

없다. 학폭 가해 학생을 받는 것도 쉬운 일은 아니 심수미 선생이 평소와는 다르게 존대를 한다. 전

지만, 특히 피해 학생의 경우 민수와 같이 지극히 소심하거나 대인관계에 어려움이 있는 경우가 많다.

입생 소식을 들은 건지 내 눈치를 보는 것 같다.

교사가 이런 편견을 갖는 것은 옳지 않지만 오랜 “응. 민수 어머님이 학폭 신고는 하지 말고 담임

교직 생활에 자연스레 걱정부터 쌓인다.

이 잘 지도해달라네. 처벌은 어려울 것 같아.” “교감 선생님도 아시다시피 저희 반 애들이 유별 나지 않습니까? 이런 무지막지한 놈들한테 그런 애

“샘 그래도 힘내요. 동훈이도 한 짓이 있으니 앞 으로는 조심하겠지.”

들 던져 놓으면 또다시 사고가 날 게 뻔한데 굳이 위로라고 한마디 던진 것 같은데 전혀 위로가 안

받으셔야겠습니까?”

된다. 이렇게 심 선생과 몇 마디 주고받다 보니 벌 우리 반 분위기 탓을 했지만, 개인적으로 안 받고

써 퇴근 시간이 다 됐다. 기분도 우울하고 해서 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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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쉬어가는 이야기│

찍 퇴근해서 술이나 한잔하자 싶어 교문 밖을 나서

튕겨본다.

는데 심 선생으로부터 카톡 문자가 온다. “샘 반에 사고뭉치들이 많은데 전입생까지 오면 “샘 퇴근했어? 날도 더운데 학교 근처 카페서 시

감당이 안 될 게 뻔한데….”

원한 아이스커피 한 잔 안 할래요? 사거리 뒤 핸섬 에서 봐요”

내 사정을 이해한다는 듯 말을 꺼내긴 하는데 뭔 가 뒷말을 흐리는 것이 개운찮다.

퇴근길에 갑자기 웬 커피? 아까 할 말이 있었는 데 내 기분이 별로여서 말을 못 한 건가?

“근데 우리 반에도 지금 태준이랑, 지성이 같은

사거리 뒤 핸섬 커피숍은 조용한 골목에 있어서 애들 눈치 안 보고 선생님들끼리 커피 마시러 가끔

애들이 있어서 전입생이 오면 잘 적응할 수 있을지 걱정이에요.”

가는 곳이다. 카페 안으로 들어서니 심수미 선생님이 구석에 자리를 잡고 앉아 있었다.

태준이, 지성이도 평범한 놈은 아니지만, 우리 반 에 오면 거의 2진급이다. 내가 받아주기를 간절히

아이스아메리카노를 받고서 투명한 유리 테이블 을 앞에 두고 선생님과 앉았다.

바라는 것 같은데 대놓고 부탁하긴 좀 미안한가 보 다.

좀 전엔 우울해서 신경을 쓰지 못했는데 무릎을 살짝 덮은 선생님의 치마가 5월의 날씨에 딱 어울

“한 학년에 두 반밖에 없는 학교에 어디든 받아야

렸다. 테이블 상판 유리 아래로 보이는 치마 아래로

하는데 어쩌겠어. 샘이 힘들다면 내가 받는 수밖에.

살짝 드러난 다리가 참 예뻐 보였다. 이 상황에서

대신 샘도 수업 시간에 한 번씩 보고 신경 써줘.”

동료 교사 외모에나 신경 쓰다니 나도 참 한심한 놈이다. 혼자 머릿속으로 이런저런 생각을 하고 있 으니 심수미 선생이 먼저 얘기를 꺼낸다.

내가 전입생을 받겠다고 하니 심수미 선생의 표 정이 갑자기 밝아진다.

“샘, 내일 전입생 온다던데 맞아요?”

“아 샘 고마워. 내가 수시로 샘 교실에 들어가서 애들 살펴볼게.”

평소와는 다르게 공손한 모습이다. 톡 쏘는 듯한 말투로 쏘아붙이던 태도가 사실 싫지 않았는데 갑 자기 공손하게 존대를 하니 어색했다.

이렇게 오늘 하루 최대의 고민거리를 뻔한 결과 대로 처리하고 나니 차라리 마음이 한결 가벼워졌 다. 그것보다는 심수미 선생과의 시간이 나에게 위

“응. 근처 학교 학폭 피해자인데 교육환경 변화 차원에서 전출을 요청했다네.”

로가 된 것 같기도 하다. 이런 기분으로 집에 가서 소주 한잔하고 나면 오늘 하루는 그런대로 잘 마무

“그래요. 그럼 몇 반으로 배정되나요.”

리될 것 같다.

“교감 선생님이 샘이랑 상의해서 결정하라는데 어떡할지 모르겠어. 선생님 생각은 어때?” 우리 반에 배정되는 게 뻔했지만, 그냥 한 번쯤 - 32 -

<계속>


│아, 이 사람!│

만나고 싶었습니다

성상희

변호사

2001년 작은 권리찾기운동본부장, 집행위원장 역임.

정리. 대담 김선희 대구참여연대 사무국장

변호사님 오랜만에 참여연대 회원들과 인사 나누는 것 같습니다. 인사와 소개 부탁드립니다. 참여연대 회원님들 반갑습니다. 저는 1998년 4월 대구참여연대 출범할 때 창립회원으로 참가를 해서 지금 까지 쭉 이렇게 단체의 곁에서 같이 있는 사람입니다. 80년대 중반에 사회운동의 격동기에 젊은 시절을 보내고 늦깎이 변호사가 되었는데 변호사로서 첫 출발하 던 때가 98년(36세)이었습니다. 한 10년 만에 대학을 졸업하고 결혼도 하고, 그렇게 하다 보니 사법시험 공 부도 늦게 시작해서 98년에야 개업을 했습니다. 지금은 법무법인 우리하나로 대표변호사로 있고, 생명평화 아시아라는 단체에서 이사로 활동도 하고 있습니다.

변호사님 계시는 우정법원빌딩에서 최근 화재가 있었습니다. 사무실은 괜찮은지요. 네, 화재 이후에 병원에서 치료를 받기는 했지만, 우리 사무실에는 큰 피해는 없었습니다. 화재는 2층에서 발생해서 그 위쪽 사람들은 비상탈출구를 통해 대피했고, 화재가 진압된 후에야 계단으로 내려왔습니다. 다 행히 인명피해는 없었지만, 사무소는 임시사무실로 옮겨 일하고 있습니다. 엄청난 일이었죠. 사실은 이 일을 보면서 여러 가지를 많이 느꼈습니다. 바로 전날 미국에서 총기 난사 사 건이 있어서 사람이 여러 명 죽었고, 한 달 전에도 총기 난사 사건으로 스무 명이나 죽었습니다. 유럽에도 가끔 이런 일들이 있는데 전반적으로 유럽의 테러들은 특정 정치적 목적을 달성하기 위해 폭력적인 행동 을 하는 사람들이 주를 이루고,‘묻지마’ 식의 특정한 목표물이 없이 증오심에 근거해 그냥 폭발적으로 사 람을 살해하는 일은 유럽에서는 흔한 일은 아닌 것 같습니다. 거기에 비해 미국에서는 총기 살인이 일상화 되어 있고, 이게 총기규제라는 제도의 문제도 있겠지만 삶의 근본 가치와 방식(American Life-style)의 문 제인 것으로 보입니다. 내가 경쟁에서 밀리고 패배하면 나와 내 가족이 굶어 죽을 수 있다는 두려움이 늘 - 33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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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 깔려 있고, 경쟁에서 지는 것을 참지 못하는 경향이 있습니다. 나에게 패배를 안긴 사람들에 미움을 갖 고 살인까지 하게 되는 것이고, 한국에서도 이런 경향이 점차 늘어나고 있습니다. 경쟁대열에서 밀리면 안 된다는 생각이 내가 당한 피해에 대하여 아주 극단적인 폭력으로 표출되는 잠재 적 위험이 깔려 있는 것입니다. 2003년 대구 지하철 참사의 경우도 그렇지만 그냥 사회에 대한 불만이 아 무런 죄 없는 일반 시민을 살해하게 되죠. 그런 한국 사회를 좀 심각하게 되돌아봐야 하는 계기라는 생각 이 듭니다.

피해가 없어 다행입니다만, 정말 큰 사회적 문제로도 볼 수 있는 사건이었습니다. 20주년 자료를 찾아보 니, 말씀 주신대로 변호사로 막 시작하던 시기에 참여연대 활동도 같이 시작하였다는 글을 보았습니다. 대구참여연대와 같이 활동을 하게 된 계기가 있는지 궁금합니다. 변호사 개업 이후 당시 대구참여연대 준비모임에서 활동하던 활동가들과 연결되어 인연을 맺게 되었습니 다. 준비모임에도 몇 번 참석하고, 대동은행에서 진행된 창립총회에도 참가하고, 그 후로 작은권리찾기운동 본부라던가 집행위원장으로 쭉 이어져 온 것 같습니다.

활동초기 작은권리찾기운동본부장, 2003년부터 집행위원장으로 활동하셨습니다. 당시 기억에 남는 활동이 있었다면 어떤 것들이 있을까요. 다양한 일들이 있었던 걸로 기억하는데요, 일단, 대동은행이 금융위기로 영업정지가 되고 파산하면서 소액 주주들이 경영부실의 책임이 있는 임원들을 상대로 손해배상 청구를 하는 소액주주 대표소송을 작은권리찾 기 운동본부가 매개가 되어 시작했죠. 한 200명 가까운 인원이 참가했던 소송인데 본안 소송으로 승패를 가리지 못하고, 쉽게 말하자면 문 안에 들어가 보지도 못하고 추방된 소각하 판결을 받고 끝났습니다. 하지 만 의미 있던 소송이었지요. 그리고, 당시가 이동통신 흐름 초기여서 이동통신 요금이 높아 요금 인하 운동 을 했던 기억도 있습니다. 교육 영역에서는 반야월에 있는 숙천초등학교 폐쇄 과정에서 폐쇄에 항의하고 반대하는 부모님들과 함께 연대했고, 그 힘으로 당시 숙천초등학교 폐교는 철회가 되었습니다. 현재는 어떻 게 되고 있는지 모르겠네요. 2002년에는 아마 총선이 있어서 총선 관련 감시활동과 부적격자 낙천 낙선운동도 진행했습니다. 그리고, 2003년에는 대구 지하철 참사가 그해 2월에 있었습니다. 대구 지하철 참사에 대응하는 일이 굉장히 큰일 이었죠. 작은권리찾기운동본부는 처음에는 경북대 김성돈 법학과 교수님이 본부장님이셨고, 이명균 회계사 와 제가 실행위원으로 있다가 본부장을 번갈아 했습니다.

네, 134호 회지에서 이명균 회계사님을 뵈었어요. 회계사님도 학교 다닐 때 전공 공부를 제대로 못 하다가 졸업 후에 회계사 공부를 했다고 하시더라구요. 두 본부장님께서 비슷한 경로를 걸어오신 것 같습니다.(웃 음) 요즘 본업 외에 생명평화아시아 단체를 통해 평화운동가로 활동 중이시고, 또 녹색당 활동도 활발히 하 시고 계십니다. 평화운동에 관심을 가지게 된 계기나 원동력이 있다면요, 그리고 평화운동가는 어떤 활동 을 하는가요. - 34 -


제가 제일 주력하는 일이 평화운동이 아니라 생업이니 평화운동가라는 이름은 어울리지 않고요. 제가 2005 년에 독일로 유학을 갔다가 2007년에 귀국했는데요, 귀국 후에는 참여연대에서 따로 직함을 맡지는 않았습 니다. 어떤 계기가 있어서 유학행을 결정했다기보다 바쁘게 돌아가는 일상의 삶과 활동에서 조금 물러나서 나를 돌아보고 좀 성찰을 하는 시간을 가져야겠다는 생각과 가족들과 함께 보내는 시간이 필요하다고 판단 했어요. 2년 정도 계획하고 가서 꼬박 채우고 왔어요. 이라크 파병 이후 가진 평화에 대한 관심이 독일 체 류 시기에 본격적으로 평화 공부를 하게 되는 밑거름이 되었고, 보쿰대학에서 관련 연구소에 몸담으면서 책도 보고 분쟁현장에도 가보고 했죠. 보쿰이라는 곳에서 전쟁과 평화에 관한 법을 중심으로 다루는 연구 소가 있어요. 객원연구원 신분으로 가볍게 공부를 했습니다. 귀국 후에는 대구시민센터 설립 당시 모임에 참여하여 역할을 좀 하다가 2012년에 녹색당이 창당되면서 당 원 활동을 시작했습니다. 녹색당이 저에게는 첫 정당 경험이지요.‘생명평화아시아’ 라는 단체는 2016년 무 렵에 시작되었어요. 생명평화라는 말은 녹색이라는 말과 같죠. 녹색운동의 사상과 이론과 정책을 탐구하고 개발하는 역할로서 생명평화 아시아라는 하나의 조직을 함께 만들어 나갔고 이제 나의 삶의 일부분이 되고 있죠. 평화운동연구자라는 이름을 쓸 만한 정도의 깊이 있는 연구를 한 것은 아닙니다.(웃음) 다만 평화운동 에 관심을 가지고 작은 글들을 쓰고 연대를 하고 있다 할 수 있죠.

대구참여연대와 생명평화아시아 외 몇 개 단체에서 우크라이나 사태 이후 기획 관련 강연이 세 차례 있었 습니다. 거기서 변호사님께서 특별히 국제법상 문제나 해결점에 대해 강의 해 주셨고 또한 이전의 다른 기 획 강연을 통해서는 미얀마 쿠데타 사태에 대해서도 심도 있게 강의하셨습니다. 국제사회에서 평화운동도 국내 못지않게 적극적으로 연대하시는 것으로 알고 있는데요, 강연을 들어본 저로서는 방대하고 깊은 통찰 력에 놀랐습니다. 늘 관련 공부를 하시는지 궁금합니다. 독일유학하면서 읽었던 책들과 방문했던 분쟁 현장 속에서 나름대로 형성된 가치와 내용들이 토대가 되었 다고 볼 수 있고, 미얀마나 우크라이나 전쟁 같은 것은 당면 사태가 벌어지면 거기에 별도로 언론자료를 찾 아가면서 정리하는 과정에서 자료를 만들고 있습니다. 이론적인 깊이가 있는 것은 아닙니다. 미얀마는 특별히 인연이 있었어요. 귀국 후 참여연대(서울) 평화군축센터에서 실행위원으로 잠시 활동을 하 였고, 2011년 경에 민주사회를위한변호사모임에서 국제연대위원회 산하 아시아인권팀을 만들었어요. 과거 이라크전쟁 현장에도 가고 아이티 지진 등 재난현장에서도 활약한 경험을 가지고 있던 민변 젊은 회원들 이 미얀마 방문을 하면서 아시아인권팀의 골격이 만들어졌습니다. 이때 미얀마 민주주의와 인권에 관한 기획을 많이 했어요. 단체로 미얀마를 방문하기도 하고, 미얀마 변호사들을 초청하여 한국에서 토론회도 진행하였습니다. 로힝야 난민 문제는 아시아인권팀 해소와 비슷한 시기에 창립한 사단법인 아디(ADI Aisian Dignity Initiative, 아시안인권평화디딤돌)가 로힝야 난민 등 미얀마의 인권 침해 문제에 깊이 있게 대응하고 있습니다. 이런 평화 강좌를 대구참여연대와 함께 한다는 것이 굉장히 뜻깊다고 생각합니다. 참여민주주의라고 하는 보편적인 시민참여의 진보적 가치를 추구하는 것이 참여연대라면, 이렇게 평화운동이나 생태운동, 탈핵운동 같은 분화된 영역에서 공부하고 행동하는 것이 참여연대 회원들에게도 도움이 될 것이고, 각 부문 운동에 - 35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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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 든든한 힘이 만들어지는 것 같습니다.

네, 보편적 시민참여의 시민운동과 분화된 다른 진보적 가치에 대한 공부들을 앞으로 생명평화아시아나 다 른 시민단체들과 같이 공유해나갔으면 좋겠습니다. 마지막으로 앞서 이야기 나누었듯이 변호사님께서 활동 한 시기가 당시 작은권리찾기 운동이 활성화되었던 시기였습니다. 강연이나 법률교실 활동을 하셨던 모습 을 소식지나 사진을 통해 뵈었는데요, 대구참여연대가 요즘 회원활동이 줄어들다 보니 예전 전성기 때 변 호사님의 열정과 애정이 부럽기도 합니다. 혹시 대구참여연대의 회원 활동에 조언이나 바라는 점이 있다면 요. 방향이나 조언을 하는 것은 쉽지 않을 것 같고요. 그 시절 과거를 추억해 보면 창립 후에 회원행사를 하면, 구별로 사전 모임도 하고 직접 음식도 준비하면서 굉장히 활발하게 진행되었던 것은 사실입니다. 그 이전 의 재야운동이나 학생운동의 흐름과는 조금 결이 다른 참여연대라는 이름으로 새로운 시민사회 운동이 만 들어지고 거기에 대해 시민들이 흥미를 느꼈던 것으로 보입니다. 그 힘이 결집되어 살아 움직이는 새로운 조직의 모습을 봤고 그 새로움에서 살아있음을 느꼈을 테죠. 하지만 벌써 그게 20년 세월이 흘렀습니다. 예 전보다 응집력이 약해졌겠죠. 참여연대 뿐만 아니라 대부분의 시민사회단체가 겪는 일인 것 같아요. 회원 행사에 100여명이 넘게 모여 뭔가를 하는 그런 큰 행사는 이제 생각하기 쉽지 않습니다. 각 세대들이 가지고 있는 욕구나 요구들이 무엇이 있는지 잘 살피고, 참여연대가 가고자 하는 가치 그 시절 이나 지금이나 크게 달라지지 않았으니, 그 가치에 초점을 맞추어 잠재적인 욕구들을 끌어올려 참여연대가 나아갈 방향과 접목시키면 좋지 않을까 합니다. 회원들이 대구참여연대에 대한 애정을 가지고 다시 뛰어들 기를 기대해봅니다.

신입 회원 5월 김주현, 이주영, 김보성, 양진오 6월 이장환, 박찬문(재가입), 신창섭 신입회원님들 고맙습니다. 대구를 바꾸는 한 걸음에 함께 해요~

여러분 모두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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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구참여연대는 지금│

대구참여연대 활동소식

(5~6월 활동소식)

6.28. [기자회견] 진주의료원 폐원했던 홍준표, 제2대구의료원마저 뒤엎으려는가? 대구 시민의 생명과 건강, 공공의료 파괴자로 끝까지 남고 싶지 않으면 제2대구의료원 설립 약속하라. 6.27. [논평]

공공병원의 필요, 코로나19 이전과 이후는 다르다. 홍준표 시정의 중심에‘민’ 이 자리 잡아야 한다.

6.24. [성명]

홍 당선자와 인수위, 시민들에게 좋은 정책까지 버려서는 안 된다.

6.23. [공동성명] 자치경찰시대 역행하는 행안부의 경찰 통제 중단하라. 6.22. [성명]

대구 서구의회와 중구의회는 세금낭비 관광성 의원연수 당장 취소하라.

6.21. [보도자료] 홍준표 대구시장 인수위에 제2 대구의료원 설립 촉구 의견서 제출 6.17. [성명]

대구시설공단의 주민참여예산 부당개입, 감사결과에 대한 입장

6.16. [성명]

대구시의회 31년 만에‘의장 선거’ …방식 진일보했으나 문제점 여전

6.13. [기획강연] <2022 평화인권 기획강연> 3강. 우크라이나 전쟁과 인권 그리고 국제법 6.13. [공동성명] 윤석열 대통령과 정부는 반도체 인재양성을 빌미로 수도권 대학 첨단학과 정원을 늘리는 수도권 규제완화 추진을 즉각 중단하고 비수도권 지방대학에서 반도체 인재양성을 할 수 있도록 기회를 주어 전폭적으로 지원하라! 6.13. [성명]

국민의 힘, 대구 중남구 임병헌 의원의 복당 의결을 철회하라

6. 8. [기자회견] 우리 모두의 임금, 올리자 최저임금! 줄이자 사회불평등! 6. 2. [논평]

국민의힘 압승, 지역정치 독점 심화, 변화 지체와 견제 실종 우려

5.30. [보도자료] 참여자치연대, <2022 지방선거 주요 정당 자치분권 정책 공약 평가> 발표 5.27. [논평]

공공의료에 대한 홍준표 후보의 인식, 대구 시민의 건강권이 매우 염려된다

5.26. [기자회견] 대구 북구청의 가장 시급한 과제는 이슬람 사원의 평화적 해결입니다! 5.26. [논평]

대구 시장·교육감 유력후보들의 차별금지에 대한 태도, 문제있다.

5.16. [보도자료] 대구참여연대, 6.1 지방선거 정책공약 발표 5. 9. [기자회견] 우리 아이들 급식 안전을 내평개친 강은희 대구교육감을 규탄한다! 우리 아이들 급식에 녹조 독이 든 낙동강 농산물은 절대 안된다! 5. 5. [캠페인]

제2 대구의료원 설립촉구 대시민 서명운동 (동구 어린이날 큰잔치 행사장)

5. 4. [기자회견] 제2 의료원 설립! 대구의료원 강화! 공공보건의료특별회계 설치 대구시장 후보들은 시민의 건강과 안전을 약속하라! 5. 4. [캠페인]

대구공공의료 확충.강화 촉구 기자회견 및 거리행진

5. 1- 5.30. [캠페인] 제2대구의료원 설립촉구 대시민 서명운동 (매주 토요일 동성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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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구참여연대는 지금│

5. 4. [캠페인] 대구공공의료 확충.강화 촉구 기자회견 및 거리행진

5. 5. [캠페인] 제2 대구의료원 설립촉구 대시민 서명운동 (동구 어린이날 큰잔치 행사장)

5. 9. [기자회견] 우리 아이들 급식 안전을 내평개친 강은희 대구교육 감을 규탄한다!

5.26. [기자회견] 대구 북구청의 가장 시급한 과제는 이슬람 사원 의 평화적 해결입니다!

6.8. [기자회견] 우리 모두의 임금, 올리자 최저임금! 줄이자 사회 불평등

6.22. [성명] 대구 서구의회와 중구의회는 세금낭비 관광성 의원연 수 당장 취소하라.

6.24. [성명] 홍 당선자와 인수위, 시민들에게 좋은 정책까지 버려서 는 안 된다.

6.28. [기자회견]홍준표당선인‘제2대구의료원’ 건립무산시도 규탄 기자회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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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년 인턴활동가 인사말

“작지만 큰 시민의 힘을 생생히 경험하고 싶어요.” 한현희 대구참여연대 청년인턴활동가

안녕하세요, 이번 7월부터 대구참여연대에서 새롭게 청년인턴 활동가로서 업무를 시작하게 된 한현희라고 합니다! 단체의 소식지에 제 글이 실리는 경우는 처음이라 많이 긴장되네요. 대학교 졸업을 앞둔 사회 초년생으로서 처음으로 사무업무를 배워보는데 아무래도 아직 많이 부족하고 어색한 거 같다 는 생각이 들어요. 실수는 하지 않을까, 지각은 하지 않을까, 매일 긴장하고 배워야 할 게 많은 새싹 인턴입니다 :) 저는 고등학생 시절부터 사회문제에 관심이 많았어요. 늦은 저녁 아버지 옆에 꼭 붙어 앉아 뉴스를 보며 이런저런 얘기 를 나누곤 했는데, 그때부터 사회는 왜 이렇게 시끄러울까, 사람들은 왜 이렇게 화가 난 걸까, 무엇이 문제일까…. 라는 생 각을 종종 했던 거 같아요. 그러면서 점차 사회문제의 근본적인 원인을 알고 싶었어요. 그래서 대학교도 관련 분야로 입 학해 4년간 혼자 열심히 공부하고, 기사 읽고, 교수님 말씀 듣고, 토론하고…. 그렇게 꽉 찬 학기를 보냈습니다. 물론 그동 안 문제의 본질을 완전히 파악하진 못했지만요. 하하~ 이번에 대구참여연대의 청년 활동가로 신청하게 된 이유는 시민단체의 감정과 열정을 느끼고 싶어서예요. 시민단체는 특정 정당에, 기업에, 정치인에게 기대지 않고 오롯이 시민 편에서 처지를 대변하고 권리를 주장하잖아요. 어떤 이익이나 이해관계도 따지지 않은 채 시민이 또는 약자, 소수자가 말하는 목소리에 귀 기울이고, 그들의 문제를 공론화하고, 기자회 견을 열고, 규탄시위를 벌이고, 서명운동을 하는 모습은 정말 강한 신념과 소신이 없으면 불가능한 일인 거 같아요. 약자 의 고통을 모르는 체하지 않고 그들을 위해 열정적으로 행위를 하는 봉사와 희생정신. 그런 마음가짐과 자세를 대구참여 연대에서 배우고 싶어요. 그리고 시민들의 정치 참여를 촉구하고 그들의 문제의식을 실현하게 할 수 있도록 소통 창구의 구실을 하는 것은 현대 민주주의에서 시민 중심의 정치를 위해 꼭 필요한 과정이라 생각합니다. 그 과정을 직접 눈으로 보며 작지만 큰 시민의 힘을 생생히 경험하고 싶어요. 우리가 모두 국민이고 시민인 상황에서 서로 한 발짝 물러서서 배려하며 함께 더불어 살아가는 사회를 만들었으면 좋 겠어요. 사실 권력기관은 여러 이해관계를 따질 수밖에 없겠지요. 나라의 경제를 생각해야 하고, 실제 법안을 제정하고, 여러 이해관계자들의 입장을 조정하다 보니 국민과 기업, 특정 단체 등 모두가 만족해하는 합의안을 내놓는 건 사실상 불 가능하겠죠. 그래도 결국 그들도 한 명의 국민이고 시민입니다. 어떤 법안이든 정책이든 약속이든 사람이 중심에 있어야 해요. 정치는 시민의 것이고 일상에 닿아야 하고 국민의 마음을 움직여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여전히 뉴스를 보면 사회에 는 자신의 이익만을 고집하는 사람들 때문에 여러 갈등 상황이 펼쳐지는 거 같아요. 서로의 처지를 이해하려는 노력을 조 금이나마 한다면 그런 소모적인 논쟁들이 줄어들 것이란 기대를 조심스레 해봅니다! 아무쪼록 대구참여연대에서 일하며 많은 것들을 배울 수 있으면 좋겠어요. 지역사회에서 일어나는 여러 문제, 현안, 목 소리들…. 항상 귀 기울여 일하며 지역사회 발전에 보탬이 되도록 노력하겠습니다! 그리고 여기에서 배운 것들 마음에 잘 새기도록 하겠습니다. 감사합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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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정보고│

※ 회원·시민 여러분의 회비와 후원금에 깊이 감사드립니다. - 40 -


│회비납부명단│

납부하신 회비는 세상을 바꾸는 주춧돌이 될 것입니다. 소중하게 사용하겠습니다.

강경달 강금수 강동철/신동주 강선구 강수영 강우진 강재기 강준구 강진효 강현구 경라윤 고춘자 고한용 공정옥 곽연하 곽이화 곽현수 구수용 구인호 권구형 권기동 권대용 권덕기 권미숙/박재범 권상구 권석우 권수용 권영래 권영태 권옥자 권재욱 권추경 권택흥 권혁장 /추정화 권현준 금송민 김 배 김갑진 김건예 김건우 김건훈/김향미 김경근 김경원 김경환 김광석/이혜영 김규엽 김규종 김기용 김나영 김남수 김대균 김동명 김동식/박원영 김동창 김동현 김명환 김무락 김미경 김미수 김미정 김미정 김미지 김민재 김병옥 김병하 김병호 김보성 김보영 김보임 김봉심 김 삼/한효정 김상호 김석수 김선우 김선희 김선희 김성구 김성수 김성택 김소언 김수동 김수옥 김수정 김순규 김순옥 김승주 김신애 김신일 김애화 김억남 김억남 김언호 김연희 김영도 김영록 김영문 김영숙 김영일 김영진 김영철 김영화 김용원 김유진 김윤상 김윤정/김수일 김은경 김인하 김일수 김재권 김재승 김재훈 김정미 김정민 김정화 김정희 김종록 김종봉 김주영 김주욱 김주태 김주현 김준호 김지연 김지일/박선영 김진숙 김진환 김채원 김철원 김태균 김태석 김태영 김태완 김태일 김태환 김해원 김해환/곽이화 김현희 김형섭 김형진 김혜정 김효정 김효주 김희섭 김희윤 김희진/변정호 나순단 남성욱 남영주 남채현 남호진 노경미 노연수 노태맹 노형석 도근환 도영주 도윤백 류덕제 류보경 류영준 류영철 류은경 류지호 류태하 문영곤 문용우 문종상 문혜선 민정식 박갑상 박건상 박건욱 박경로 박경순 박경순 박경욱 박경찬 박근식/강문희 박금동 박노진 박대희 박덕환 박명리 박명호 박병철 박상화 박성미 박성민 박성찬 박세정 박수열 박순일/이미숙 박시재 박신호 박여경 박옥순 박완슬 박은경(한국애드) 박은정 박인규 박인철 박재락 박재범/권미숙 박재일 박정권 박정민 박정호 박종률 박지윤 박찬문 박찬영 박창호 박청진 박현탁 박호석 박희동 배갑기 배금정 배대환 배은경 배준석 백경록 백권기 백미숙 백승대 백진욱/이선희 백차흠 서덕교 서보경 서보성 서상득 서상민 서상철 서인찬 서정욱 서준하 서준호 서창환 석민철 석성진 설동진 성상희 성언제 소영진 소유철 손광락 손광락 손대락 손상호 손성봉 손창희 손태운 손형민 송명수 송미진 송상욱 송윤식 송해익 신기복 신기완 신도환 신동민 신동민 신동완/정희선 신동주 신동화 신득렬 신미숙 신미정 신성욱 신수정 신숙경 신영숙 신유지 신윤정 신정석 신중석 신창섭 신효철 심윤철 안경완 안경욱/박지선 안병학 안상진 안승택 안정임 안헌수 양 희 양선진/임호성 양승문 양영일 양진오 엄창옥 오말임 오문섭 오병현 오신택 오용태 오의식 오철희 오현주 우성문 우웅택 우장한 원준호 유용준 윤 영 윤명화 윤문주 윤병철 윤보욱 윤상호 윤성아 윤용희 윤재석 윤정호 윤종화 윤태웅 윤태자 이가은 이경미 이경상 이경호 이광모 이규호 이근덕 이기락 이기수 이남수 이동숙 이동인 이동진 이동훈 이두옥 이만호 이명균 이명원 이미지 이범정 이병동 이상구 이상돈 이상목 이상수 이상술 이상식 이상원 이상원 이상화 이상훈 이석목 이선영 이성해 이성희 이소영 이순재 이승도 이승수 이승연 이승익 이승후 이연주 이영윤 이영희 이원준 이윤희 이은아 이은영 이은정 이의호 이장환 이재남 이재문 이재성 이재욱 이재일 이재호 이재희 이점미 이정동 이정만 이정수 이정연 이정화 이종길 이종우 이종춘 이종필 이주영 이주형 이준우 이준홍 이진희 이창수 이창순 이창화 이창환 이천희 이철환 이춘곤 이태영 이태우 이풍락 이현숙 이현옥 이형규 이형석 이홍기 이화선/정호태 임 향 임성무 임순광 임은희 임현수 임현태 장밝은 장성수 장영훈 장우영 장은우 장준현 장현주 장화환 전승훈 전영주 전창훈 전홍철 정갑환 정강미 정강미 정경열 정규진 정길운 정대화 정상기 정수현 정수홍 정승필 정용태 정용훈 정우근 정우달 정은정 정이성 정일선 정재봉 정재영 정재형 정재훈 정지욱 정창수 정혜숙 정호원 조광진 조덕호 조민경 조병집 조영철 조영태 조용식 조재민 조현주 조희래 조희재 진금염 진성섭 진수미 진용인 차우미 차인섭 채장수 채장식 채형복 채휘균 천덕우 천용길 최개천 최기현 최나래 최문석 최병덕 최병우 최병학 최병해 최상주 최선애 최신일 최연석 최용환 최유리 최윤호 최은경 최정민 최종태 최철영 최현겸 최현진 최혜진 추정화 추호식 태찬인 하만호 하성협 하영선 하유신 한경국 한대환 한부득 한상훈 한승균 한승훈 한은영 허노목 허은경 허 종 현명호 현호성 홍상익 홍순표 홍영표 홍원대 황선명 황성주 황순오 황양운 황정화 평생회원 권홍락 김 미 김성희 김은주 김응곤 김영화 성상희 신숙경 이경옥 이종만 진미화 윤지현 이찬진

※위 명단은 2022년 5월부터 2022년 6월까지 회비가 인출된 명단입니다. 이름 누락 등 기타 오류 발생 시, 사무실로 연락 바랍니다. ☎ 053) 427-9780 담당 : 김선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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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격월간 발행) 통권 137호

2022 5, 6월호

등록번호 대구라01132 등록일 2000년 8월 4일 제호 함께꾸는꿈 간별 격월간 디자인 참디자인 발행일 2022년 6월 28일, 통권 137호

발행처 ‖ 대구시 중구 서성로 14길 59, 2층

■ 풀뿌리주민자치

전화 : 053) 427-9780~1 상담 : 053) 427-9788 팩스 : 053) 427-9723

- 동구주민회

홈페이지 : http://www.civilpower.org

대표 : 박호석

전자우편 : dgpeople@gmail.com

운영위원장 :

후원계좌 : 대구은행 036-04-000437-9 (대구참여연대)

Add. 대구시 동구 입석로 96, 연우빌딩 2층 Cafe : http://cafe.daum.net/dongjumin

■ 참여와소통위원회 위원장 : 김형진 위원 : 강금수 조영태 정은정 김선희 장은우 편집담당 : 김형진

공 동 대 표 ‖ 정혜숙 박경로 운 영 위 원 장 ‖ 류영준 사 무 처 장 ‖ 강금수 상 근 활 동 가 ‖ 조영태 김선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