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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본주의는 어떻게 한국 교회를 망치고 있는가? 교묘한 맘몬 숭배에 빠진 교회를 깨우는 우레와 같은 울림! 화제의 신간

이렇게 교회 속 자본주의의 문제를 근본부터 성찰한 책은 없었다! 사랑하는 한국 교회에 애끊는 마음으로 던지는 예언자적 외침! 이 책은 한국 교회를 지극히 사랑하는 목회자로서 맘몬에 찌든 한국 기독교를 치유, 회생시키기 위해 오랫동안 고민, 실천하면서 이룩한 저자의 지적 결실이다. 독자들은 이 책을 통해 복음과 사회과학을 넘나드는 실천적인 기독교 지성을 경험함과 동시에 이 시대 그리스도인이 취해야 할 당위적인 행동 방향도 가늠하게 될 것이다. _이만열(전 국사편찬위원회 위원장)

박득훈

★★★이만열, 한완상, 고세훈, 김근주 추천!

380쪽 |16,000원

Tel. 02-730-8648 http://www.facebook.com/poiema1

“까칠하고 지혜롭고 익살맞고 정직한 꼬마, 그 아이가 바로 나야!”

화제의 신간

‘히브리 문학상’ 수상자가 그린, 우리와 너무나도 닮은 유대인 꼬마 이야기! 책을 통째 외울 만큼 사랑받는 이스라엘 국민동화로 어른들 에겐 유년을, 아이들에겐 자신과 꼭 닮은 친구를 선물한다. 유다 아틀라스 글 | 다니 케르만 그림 | 오주영 옮김 | 15,000원

★★★

이스라엘

교육부추천도서

★★★

이해인,박총 나희덕추천


크리스채너티 투데이 한국판 2014년 6월호 통권 71호

CONTENTS 23 VIEWS

5 하늘바래기

항해능력도 공감능력도 상실한 우리

7 독자 다님길

23 지금 우리는

용서에 대한 복음적 ‘돌직구’ 적용에 공감, ‘톰 라이트’ 찬-반 논쟁보다 더 깊은 성찰이 필요

우리는 왜 이토록 공감능력이 떨어진 것일까

26 불완전한 과거

최선의 교회 음악을 위한 최소의 조건

13 NEWS

28 열린 마당-세 시각

피해야 할 설교 예화는

13 세계 교회는 지금

‘하나님’을 인정하는 중국인들…미 약하지만 창대한 미래 공립학교를 예배 장소로 사용 못하 게 막는 뉴욕시, 실효성은 이슬람 국가 바레인에 교회 세운다.

73 REVIEWS 73 책

16 헤드라인

중국서 가장 빨리 성장하는 유교와 기독교…함께 갈 수 있을까, 낙태 금지 전략을 둘러싼 운동 내부의 이 견, 세월호의 슬픔에 교회도 동참, “베스트셀러 제조” 마크 드리스콜 목사의 고백

풀 수 없는 질문을 지닌 채 ‘떠난다’ 박명철

리더십•커버스토리

50 54

비통한 이들과 함께하며 내는 소음 이웃의 비극을 온몸으로 느끼며

데이비드 스완슨

80 문화 트렌드

감항능력을 갖춘 영혼 선장은 무엇으로 항해하는가

58 우리 시대의 ‘선장’들 60 공감의 기술 10 말 할 수 없는 탄식으로

<다른 불>은사주의 운동의 현실, <신 앙의 눈으로 본 첨단의학과 의료>‘의 사여, 너를 고치라!’, 따옴표_고전 3 선, 공감능력의 회복을 위한 글 읽기

버트 크레이브

격투 스포츠 관람의 윤리 고든 마리노

흐름과 움직임

지용근

설교자를 위한 인문학

묵상

우리의 마음을 살피시는 이처럼 우리도 그렇게

우리는 거리로 나가 … 이 웃을 위해 기도했다. 방아쇠 를 당겼던 사람과 죽은 청 년의 슬픔에 빠진 가족을 위 해서 기도했다. 흉측하고 혼 란스런 그 상황 속으로 내 닫기 위해 애통해 했다. 53쪽

32

데이비드 호우

캐롤린 아렌즈

왜 내게 이런 일이 생각 나눔 악과 부조리, 그에 따르는 말할 수 없는 고통 앞에서 우리는 어떻게 할 것인가

42 형편없는 아빠의 고백

오스 기니스

생각 나눔

온전한 아버지의 소망을 포기할 수 없는 이유

피터 친

갈라진 교회를 보며 슬퍼하라 글로벌 가스펠 프로젝트

66 88 예수와 충돌하다

교회의 하나 됨을 위한 노력은 계속 돼야 한다

사라 힌리키 윌슨

고백

치명적인 실수를 한 다음에야 정신을 차리고 받아들인 복음 케이시 시즈

온라인

창간호부터 모든 기사와 지면 보기 서비스를 이곳에서 CTKorea.net

3


로고스호프 이야기

항구에서 항구로 그리스도의 희망을 나르는 젊은이들의 이야기

『로고스호프 이야기』는 국제 선교단체인 오엠의 선교선 ‘로고스호프’(Logos Hope)에서 일어난 크고 작은 일들을, 이 구조선에 승선해 파도와 물살을 가르고 해양을 누빈 청년 선교사의 삶과 신앙의 고백으로 고스 란히 담고 있다. 로고스호와 둘로스호의 뒤를 잇는 로고스호프는 전 세계 60개국에서 모인 400명의 젊은이와 함께 중 동과 아시아, 아프리카, 유럽의 수많은 항구를 돌아다니면서 그리스도의 복음을 말로 소개하고, 50만 권의 책을 보유한 선상서점을 통해 문서선교의 사역도 감당하고 있다. 이 책은 선교 이론을 다루는 책이 아니라, ‘배’라고 하는 특수한 선교 상황을 통해 젊은 청년들이 체험하고 감동한 이야기들을 진솔하게 기록한 체험

신사랑 외 지음 무선 272쪽 12,000원

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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십자가의 본질과 효력에 대한 치열한 탐색 차재승 지음 무선 472쪽 20,000원

“저자의 신학적 민감성은 지금까지 제안된 십자가에 대한 이해를 비판적으로 보도록 해주며, 그렇다면 무엇이 바른 십자가 이해인지를 질문하게 만든다. 이 책은 신학도와 목회자들에게는 1차 문헌 독해를 통해 신학적 사 고를 훈련하는 데 도움이 될 것이고, 성도들에게는 십자가와 함께 죽고 사는 일상이 얼마나 소중한지를 일깨 울 것이다.” _강영안 | 서강대학교 철학과 교수


June 2014

하늘바래기

항해능력도 공감능력도 상실했습니다

크리스채너티 투데이 한국판

2014년 6월호

리는 “천하보다 귀한 생명”들을 바다에 가두고서는 무능하고 비정하게 시

간만 보낸 천추의 부끄러운 세대입니다.

5월호에 못다 한 이야기를 6월호에 담습니다. 선장, 정말 무거운 직책입니다. 그리 고 무서운 은유입니다. 이번 호 ‘커버스토리’는 그래서 특별히 ‘리더십’ 섹션에 담았습 니다. ‘감항능력’이라는 생소한 전문용어를 그대로 제목에 달았습니다. 짧게 비전문적 으로 풀이하자면 ‘항해할 수 있는 능력’ 쯤 됩니다. 항해에 나서는 배가 반드시 갖추어 발행인 편집인 에디터·기자 디자이너 독자 담당 출력 인쇄

오정현 김은홍 박명철 안혜원 나유진 박지영 김주희 프리테크인 HEP

야 할 요건입니다. 우리는 각자의 영역에서 모두 감항능력을 상실했습니다.

크리스채너티 투데이 한국판 발행 (주)기독교미디어그룹 2014년 6월호 통권 71호 | 2014년 4월 21일 발행 2008년 5월 29일 등록 | 등록번호:서울라11938 137-865 서울시 서초구 효령로68길 98 전화:02-581-3488/3588 팩스:02-586-3617

이름 하여 “사회 지도층”으로 분류되는 정치인들과 지식인들의 무자비한 언어폭력 에 대한 분노가 정치인과 심지어 정치 자체에 대한 환멸마저 불러일으키고 있습니다. 그들의 영혼 없는 궤변이 혹 선량한 이들의 마음을 다치게 만들어 곧 다가올 우리 정 치 공동체의 중요한 선거에서 이탈하게 만들려는 고도의 획책이 아닐까 ‘공상해’ 봅니 다. ‘어차피 그들에게 부화뇌동하여 박수 치고 깨춤 추고 짓까부는 이들도 똑같이 영 혼도 가슴도 없는 이들일 테니 마음에 상처를 입을 일도 없을 것이고, 하여 그들로서 는 밑질 게 없다는 셈을 했던 것은 아닐까?’ (곡해 마시길, 그들의 언변과 행태가 ‘논픽션’이라고 는 믿기 어려울 정도로 순리로는 도저히 납득이 안 되니 ‘공모’론을 빌려 ‘픽션’으로 구성해 본 것이지, 사실 이 그렇다는 것이 절대 아닙니다.) 왜 이토록 우리는 공감능력을 잃어버린 것일까요?

상실의 이야기는 허무합니다. 체념하게 할 수 있습니다. 6월에 예상되는 체념의 방 ■일러두기 •( )는 필자가 단 것이고, [ ]는 CTK 편집자가 덧붙인 것입니다. •필요한 경우에 원어는 ( ) 없이 작은 글씨로 병 기하였습니다. •성경은 특별한 표시가 없으면 한글성경 ‘개역개정 판’을 인용한 것입니다. •기사 끝에 붙인 CT 표기는 Christianity Today International에 저작권이 있음을 나타냅니다.

식, 두 가지가 있습니다. “다 똑같아!” 투표소에 안 가기. “대~한민국!” 월드컵의 광기 속에 묻혀 버리기. 세월호의 이야기는 계속 돼야 합니다. 마음이 부서진 이들, 비통한 이들과 함께 목 놓아 울어야 합니다. 김은홍 편집인

<크리스채너티 투데이 한국판>은 Christianity Today International과 맺은 계약에 의해 한글 번역 기사의 저작권을 보호받으며, 한국판 자체 제작 내용물에 대한 모든 권리는 <크리스채너티 투데이 한국판> 에 있습니다.

CTK 홈페이지(www.ctkorea.net)가 6월 1일부터 새롭게 열립니다. 5월 30일(금) 하루 중에 저희 홈페이지가 잠시 열 리지 않더라도 양해해 주시기 바랍니다. 6월 1일, 새로운 모습으로 여러분께 인사드리겠습니다.

5


영성은 우리의 완성이나 완벽에 관한 것이 아니라 미 완성 상태에서 하나님을 신뢰하는 것이다. 교회에 잘 나가지 않아도, 성경을 제대로 읽지 않아도, 신학 지식 이 없어도, 술 마시고 담배를 피워도, 자제력이 없고 우울한 가운데 있어도 하나님은 당신을 사랑하십니다. 마이클 야코넬리 지음 | 마영례 옮김 | 240쪽 | 10,000원

| 퍼블리셔스 위클리, 송광택, 정모세 추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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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가

서진의

내면여행

에세이

인생은 하나님 안에서 나를 찾아 떠나는 단 한 번의 여행이다! 흔들리고 방황하며 여전히 길 위에 있는 이들을 위한 여행안내서 서진 지음 | 근간예정 T.02-388-7944 E-mail abbabooks@hanmail.net blog.naver.com/abbabooks

책 만드는 협동조합


June 2014

독자 다님길

앱진 구독 안내

1. 앱진 - 애플 가판대에서 CTKorea 검색 후 구입(매월 U.S$2.99) 2. 온라인유료회원 - CTK 웹사이트에서 지 면 보기와 전체 기사 열람(1개월 3,000원, 6개월 18,000원, 1년 36,000원)

[5월호를 읽고 이승용 CTK 독자위원이 커버스토리 ‘용서’에 관한 두 편의 글과 톰 라이트에 관한 이승구 교수의 글 에 대한 긴 소감을 보내 왔다. 간추려 싣고, 전체 글은 온라인에 싣는다.]

“용서에 관한 복음적 ‘돌직구’ 적용에 공감”

기존의 정기구독도 변함없이 신청 가능합니 다. 종이 잡지를 받아보기 원하시는 분들은 정기구독을 이용하시면 됩니다. 정기구독자 는 CTK 웹사이트에서 전체 기사를 열람하실 수 있고, 지면 보기 서비스도 이용하실 수 있 습니다. 이외에 문의 사항이 있으시면 ctk@ ctkorea.net으로 이메일을 보내주세요.

2014년 4월 16일 이후, 저 멀리 떨어져 있는 신학자, 작가의 ‘용서’에 관한 고백과 이야기가 우 리에게 어떤 소용이 있을까? 지금 당장은 성에 차지 않는 듯싶어도, 나는 용서에 관한 그들의 이야기는 우리에게도 중요한 시사점을 던져준다고 생각한다. … 특히 성경이 가르치는 용서는 우리가 피상적으로 이해하는 차원에 머물러서는 안 되며, 언제나 더 포괄적이고 복음적으로 교 정하여 적용해야 한다는 “돌직구” 적용에서 더 그렇다. 피해갈 수 있는 쉬운 길을 선택하지 않 은 저자들의 고통스런 씨름으로 나온 ‘용서’라서 지금 우리에게도 얻는 유익이 컸던 것 같다.

정기구독료

1년 기준 40,000원

* CTK는 CT와 동일하게 1/2월호와 7/8월호를 합본호로 제작하여 1년 총 10권을 발행합니다.

해외 정기구독료(1년 기준)

“차가운 입술의 ‘찬-반’ 논쟁보다 더 깊이 가 닿을 때”

1지역 (일본 / 중국 / 대만 / 홍콩 / 마카오) 책값 40,000원, 우편료 39,000원, 합계 79,000원

4월호에서 약간은 과하게 ‘친 라이트’적인 글이 소개되었기에, 약간은 지나치게 ‘반 라이트’적인 이 번 글이 균형을 잡는 데에 도움이 되었다. 어느 한 편의 글이 아니라 둘 다 읽을 때 더 균형 있고 포괄 적인 이해를 할 수 있을 거라고 본다.… 그러나 우리가 살아가는 이 땅의 문제들을 딛고 서 있기 때문 에 이렇게 묻지 않을 수 없다. 톰 라이트의 구원관이 그렇게 심각하다면, 톰 라이트의 입장에 가까이 서 있는 이들에게서는 선한 열매가 더 나오지 않을 것이 확실한가? 아니면 오히려 톰 라이트를 전면 적으로 부정하고 비판하는 이들에게서 선한 열매를 보지 못할 것이 더 확실한가? 이것은 차가운 입 술의 비판이 아니라 우리 모두가 속해 있는 한국의 교회에게 던지는 자성적 질문이다. 독자위원 이승용

2지역 (동남아시아) 책값 40,000원, 우편료 53,040원, 합계 93,000원

독자선물 6월호를 읽으신 소감이나 의견을 보내 주세요. 채택 되신 분께는 (그리고 지면에 싣지 못한 분 중에서도 선정하여) 신간「아버지의 빈자리」 (IVP 역간)를 선물로 드립니다. 6월 16일까지

페이스북 CTK 독자모임(CTKian) 또는 ctk@ctkorea.net로 보내주세요. 의견? 질문? CTK 편집부는 독자의 목소리에 항상 귀를 기울이겠습니다. 이메일 ctk@ctkorea.net 팩스 02-586-3617

주소 변경, 구독 신청 080-586-7726, ctk@ctkorea.net

3지역 (북미 / 유럽 / 중동 / 대양주 / 서아시아) 책값 40,000원, 우편료 64,440원, 합계 104,000원 4지역 (아프리카 / 중남미 / 서인도제도 / 남태평양) 책값 40,000원, 우편료 87,000원, 합계 127,000원

정기구독신청문의 전화(수신자 부담) : 080-586-7726 이 메 일 : ctk@ctkorea.net •신용카드(인터넷 결제) www.ctkorea.net •온라인 입금 우리은행 : 1005-901-319961 외환은행 : 630-006397-076 국민은행 : 484237-01-006610 농 협 : 044-17-011426 * 예금주 - (주)기독교미디어그룹

•지로 입금 5132054 (주)기독교미디어그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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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ӹܹᮡaӽ⦽ᯕᬤᨱí ᨕਜíᗱԕၡʑෝᬱ⦹ᝅʭ" 전략적으로 알기 쉽게 펼쳐지는 성경적 구제사역을 통해 상처 없이 도움을 주고받는 이웃 사랑을 지금 실천하라

하나님 안에서 누군가를 도우려면, 진심으로 대상에 대한 바른 이해와 도움의 균형, 바른 방법을 가져야 한다. 이 책은 이것을 매우 열정적인 태도로 쉽고 구체적으로 제시한다. 무엇보다 활자나 신학에 갇힌 예수님 이 아닌, 지금 우리 곁에 생생히 살아 계신 예수님을 만나는 큰 유익을 얻게 된다. _ 서정인(한국컴패션 대표)

헬프 스티브 코벳・브라이언 피커트 지음 | 오세원 옮김 | 364면 | 15,000원

ๅᯝๅᯝ⃽ǎᮥኻ۵⣮᫵ಽᬕᔗᯕ᜽᯲ࡽ݅ 성령의 열매를 맺는 삶은 어떠한 상황에서도 주님의 성품을 나타냅니다 나의 재산을 훔쳐 달아난 사람을 ‘사랑’하고, 감옥에 갇혔음에도 ‘기쁨’으 로 여깁니다. 이기적인 ���람과 ‘화평’하고, 내 뜻대로 되는 않는 상황에서 도 ‘인내’합니다. 나를 죽이려는 사람에게 ‘친절’하며, 언제 어디서나 남 을 배려하는 ‘착함’을 보입니다. 모든 것을 잃는 가운데에서도 ‘충성’하 고, 분노가 극에 달할 때에도 ‘온유’하며, 유혹 앞에서도 ‘절제’합니다. 그리고 이 열매는 각각의 것이 아닌 완전한 하나입니다.

일상에서 천국을 맛보는 9가지 열매 남우택(뉴질랜드 한우리교회 담임목사) 지음 | 192면 | 11,000원


최종2 2014.5.216:37PM 페이지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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묵상

이와 같이 성령도 우리의 연약함을 도우시 나니 우리는 마땅히 기도할 바를 알지 못 하나 오직 성령이 말할 수 없는 탄식으로 우리를 위하여 친히 간구하시느니라. 마음 을 살피시는 이가 성령의 생각을 아시나니 이는 성령이 하나님의 뜻대로 성도를 위하 여 간구하심이니라. 로마서 8:26-27

말할수 없는 탄식으로

우리의 마음을 살피시는 이처럼 우리도 그렇게 나의첫에세이는열정 어휘사전 그리고원고분량은무시해도된다는순진한생 각의결과물이었다 돌려받은내에세이에는이런코멘트가달려있었다“캐롤린 몇가지좋은포인트 가있지만 번잡하고장황한문장때문에불행히도논지가분명하지않아요 ” 나는글을무척좋아한다 좋은문장은카오스를코스모스로바꿀수있다 솔로몬은“경우에합당한말”을“아로새긴은쟁반에담긴금사과”에비유했다 잠 설교하시는분이그리스어나히브리어를풀어서설명하면 갑자기내눈앞에 그의미가확펼쳐지면서나는깜짝놀란다 말은교사요 스위스제“맥가이버”칼이 요 화가의팔레트다 안무가만제대로만나면 춤을춘다 하지만이렇게언어를사 랑하면서도 세상에는 말로 담을 수 없는 것들 이 너무나 많다는 울림이 내마음한쪽에서점점커져가고있다“행동이말보다더큰목소리를가지고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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는 식의 격언을 말하려는 게 아니다 물 론그럴경우가많고“긍휼”이라는말을 하려면적어도긍휼을베푸는행동을열 번쯤은 해야 한다는 것도 맞다 하지만 내마음을사로잡는생각은이런행동주 의 강령과는 다른 어떤 것이다 바로 이 것이다‘나는내가말로표현할수있는 것만알려고한것은아닐까 ’ 때로 무언가가 노래 한 소절이 친구 의 터치가 일몰이 그냥 갑자기 느껴지 는하나님의임재가 내게어떤이야기를 “들려주려고”한다 그럴때면나는그것 이무엇이든황급히말로바꾸어놓으려 한다 그렇게 하지 않으면 그것이 진짜 가아닌것같기때문이다 이러한 충동은 나의 경건 생활에서도 그대로드러난다 기도목록이나연구할 성경 구절을 내게 줘봐라 그러면 나는 바로거기에집중한다 그러나내게조용 히 하나님의 임재 안에 앉아 있으라 하 면 나는불안해진다 작가 로날드 롤하이저 는 묵상기도 와 관상기도 를 구분한다 그가 말하 길 묵상기도를 할 때 우리는 움직이고 말을 한다 관상기도를 할 때 우리는 움 직이지 않고 말을 하지 않는다 롤하이저가 말하길 우리가 하나님을 인식하려고 시도할 때 우리는 종종 엄 마물고기한테이렇게질문하는새끼물 고기 같다“물에 대해서 알려면 어디로 가야 해요 ”먼저 엄마 물고기는 바다 밑바닥에 프로젝터를 세워놓고 바다 사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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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onald Rolheise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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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을 보여준다 그런 다음 엄마 물고기 에게설명할수있는본분에관한지식이 는이렇게말할것이다“물이무엇인지 다 그런데 역시 내가 좋아하는 다른 한 알게 됐으니까 이제 물속에 앉아서 그 분은본문이그를깨트리도록할때만자 신의 신앙이 풍성해진다고 말씀하신다 물이네옆을지나가게해보렴 ” 이 차이―물에 관해 생각하는 것과 실 그는더욱직접적인만남을추구하기위 제로 물에 들어가는 것의 차이―에 묵상 하여 렉치오 디비나 성령에 귀를 과 관상 의 차이가 있 기울이기 위하여 말씀 안에 머무는 거룩한 독서 다 를실천한다 인식론 우리가 아는 것을 어떻게 아는지에 나는두가지양식모두매우중요하고 대한 연구 은 종종 명제적 진술로 나타낸 꼭 필요하다고 생각한다 하나님은“오 인식을강조한다 라는것을나는 라 우리가 서로 변론하자”사 고 하시 “안다 ”하지만“대면 인식” 며 우리를 초대하신다 또한 하나님은 도 존재한다 이것은 다른 사람 “너희는 가만히 있어 내가 하나님 됨을 장소 사물과의직접적인마주함을통하 알지어다”시 라고 우리에게 이르신 여 얻게 되는 인식이다 영어 외에 다른 다 가장 초기의 라틴어 번역 성경은 이 여러언어들에는앎의방식들사이의심 구절의‘알지어다’를‘사페레’가아니라 오한차이점을구별한어휘들이있다 보 ‘코그노스케레’―대면지식―로옮겼다 기를들면 사실에입각하여무엇인가를 이제 나는 알 수 있는 모든 것에는 말 안다는 뜻을 나타내는 독일어 동사는 로이름을붙일수있다는생각에사로잡 ‘비센’ 이고 라틴어 동사는‘사페 히지 않고 글을 쓰고 싶다 우리의 하나 레’ 이다 반면 대면 지식은‘켄넨’ 님은육신이되신말씀이시요 요 “말할 수없는탄식으로우리를위하여친히간 독일어 과‘코그노스케레’ 라틴어 로표현한다 첫번째종류의지식 구하시는”성령이시다 롬 하나님에 은 일반적이고 추상적이며 쉽게 말로 관한 우리의 지식과 사상의 바다에서만 표현할 수 있다 두 번째는 개별적이고 헤엄치지말고그분의무한히깊은사랑 구체적이며 종종표현하기가어렵다 우 의대양에서도헤엄을치자 리는 교과서나 교리에서‘비센’을 찾을 수있지만‘켄넨’은 관계와경험에서나 온다 내가 좋아하는 한 목사님이 이번 캐롤린 아렌즈 작가이자 작시자이다. 남편과 두 주일에 설교할 본문의“고비를 넘겨야” 아이와 함께 브리티시 콜롬비아에서 살고 있다. 에 칼럼‘천사와 씨름하기’ 한다고내게말씀하신다 이렇게말씀하 을CT쓰고 있다. 실때 이목사님이추구하는지식은‘비 Carolyn Arends “More Than Words Can Say” 센’곧그가체계적으로정리하여성도들 CT 2014:04 홍경화 옮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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NEWS 세계 교회의 소식과 정보들

세계 교회는 지금

하나님의 악기 네팔의 티베트계 로룽라이족 그리스도인들이 나뭇잎 피리를 불고 있다. 연인 사이에 사랑을 표현하는 전통적인 수단인 나뭇잎 피리 가 이제 하나님을 찬양하는 악기가 되었다. 복음전파의 사명감을 갖고 있는 뮤직 워크숍들도 티베트 전통 음악을 되살리는 일에 나서 고 있다. 하지만 네팔 사람들은 보다 현대적인 수단을 통해서도 복음을 듣고 있다. 지난해 네팔의 국영 라디오가 사상 처음으로 기독 교 프로그램을 송출했다.

M. B. HARRIS / IMB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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NEWS

세계 교회는 지금

하나님[샹띠]을 믿는 것이 도덕적인 사람이 되는 데 반드시 필요한가?

설문조사가 우회적으로 보여준 중국의 희망적 미래 퓨 리서치 센터Pew Research Center가 세계 각국 사람 들에게 ‘도덕적인 사람이 되기 위해서 하나님 을 믿는 것이 반드시 필요한가’라는 질문을 던 졌다. 필요하다고 응답한 사람이 가장 적은 나 라 1위에 중국이 올랐다. 65년 동안 무신론적 공산당이 지배하고 있는 나라이니 그리 놀랄 만 한 사실이 아닌 것처럼 보인다. 그러나 베이징 에 거주하는 퓰리처상 수상자인 저널리스트 이 안 존슨은 해당 질문이 중국어로 하나님을 뜻하 는 ‘샹띠’shangdi/上帝를 사용했다는점에 주목하며 “이 용어는 현대 중국에서 프로테스탄트 기독 교에만 거의 유일하게 적용되는 것”이라고 강 조했다. 이 질문에 ‘예’라고 응답한 중국인 수가 “실제적으로 놀라울 정도로 많았다”는 사실은 최근 그리스도인이 6000만 명에서 1억 명(인구 의 4%에서 7%)으로 추산되는 중국이 조만간 그리 스도인이 가장 많은 국가가 될 것임을 보여주는 지표로 해석될 수 있기 때문이다.

SELECTION OF COUNTRIES FROM PEW’S GLOBAL ATTITUDES SURVEY. “모르겠다”는 제외.

미국

이번 판결에 대해 <뉴욕 타임스>는 “뉴욕시가

1994년 보수적 회중 교회인 ‘브롱스 믿음의

종교단체들을 공립학교에서 반드시 퇴거시켜야

집’The Bronx Household of Faith이 공립학교를 예배장

“뉴욕시는 공립학교 사용 교회 막 을 수 있다” 또 법원 판결

한다는 의미가 아니라 단지 뉴욕시가 공립학교

소로 사용하는 것을 허락하지 않은 뉴욕시를 상

뉴욕시가 공립학교를 예배 장소로 사용하는 종

를 예배장소로 허락하지 않는 것이 합헌이라는

대로 소송을 제기하면서 지금까지 거의 20년 동

교단체들에게 퇴거 행정 명령을 내리자 지난

의미일 뿐”이며 “이번 결정이 미칠 영향은 즉각

안 뉴욕시와 종교단체들은 공립학교를 예배 장

2013년 5월 22일 뉴욕시 위원회는 일요일에 예

적으로 드러나지 않았다”고 덧붙였다. <뉴욕 타

소로 사용하는 문제를 두고 엎치락뒤치락 법정

배 장소를 임대할 수 있는 교회들의 권리를 보호

임스>와 <월 스트리트 저널> 등 미국의 주요 언

공방을 벌여왔다.

해 줄 것을 주 의회에 요청하는 결의안을 통과시

론들은 이번 법원 판결 소식을 전하면서 빌 드

2011년 6월 연방 항소심 재판부는 종교단체

켰다. 그러나 지난 4월 3월 연방항소법원은 또

블라지오 뉴욕 시장은 블룸버거 전 시장과는 달

가 공립학교를 예배 장소로 사용하는 것은 공공

다시 뉴욕시가 교회가 공립학교를 예배 장소로

리 종교단체가 공립학교를 예배 장소로 사용할

서비스의 성격이 없으며 방과 후 성경공부나 기

임대하는 것을 금지하는 것은 합헌이라고 판결

수 있는 권리를 지지한다는 입장을 거듭 밝혔다

도 모임과는 성격이 다르다며 뉴욕시의 손을 들

했다.

고 보도했다.

어줬다. 이 다툼은 연방대법원까지 올라갔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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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HRISTIANITY TODAY

June 2014

PHOTO COURTESY OF CURE INTERNATIONAL


미국인과 성경

유를 허용하기 시작했다. 현재 알바니아에는 160여개의 복음주의 교회가 있다. 현 대통령은 무슬림이다. 바레인

공식 교회 곧 건립 걸프 만의 작은 섬나라 바레인에 공식적으로 교 회가 세워지게 됐다. 하마드 빈 이사 알 칼리 파 바레인 국왕이 교회 부지를 기부했다. 쿠웨 이트와 카타르, 사우디아라비아의 250만 가톨 릭 공동체를 이끌고 있는 카밀리오 발린 주교는 2600석 규모의 성당과 부속 건물을 짓는데 들

“집에 성경책이 있다”

“나는 성경에 관하여 알고 있다”

어갈 3000만 달러를 모금하고 있다. 한편, 무슬

“성경의 첫 다섯 권의 이름을 알고 있다”

림 국민의 국외 이주와 국외 노동자 유입이 급증 하면서 아라비아 반도에서 가톨릭 신자가 갑자

STATE OF THE BIBLE 2014, AMERICAN BIBLE SOCIETY / BARNA GROUP

기 늘어나, 바레인의 기독교 공동묘지도 만원 상 태. 바레인 정부 당국은 묘지 부족 사태를 해결 할 방안을 찾고 있다.

그해 12월 연방대법원이 이 건에 대한 심리를 기

헝가리

각하자 뉴욕시는 2012년 2월 12일까지 공립학

복음주의 교회에 불리한 교회법 폐기

교를 예배 장소로 사용하는 모든 종교단체들에

유럽인권재판소가 헝가리가 2013년 제정한 교

퇴거 명령을 내렸다. 이슬람은 금요일에 예배를

회법을 폐기시켰다. 문제의 헝가리 교회법은 대

기독교 로스쿨 출신 활동 불허

드리기 때문에 일요일에 공립학교를 사용하는

부분의 교회의 등록을 취소하고 등록 취소된 대

캐나다 최초 기독교 로스쿨의 졸업생들을 두 개

곳은 사실상 개신교회밖에 없어 법원과 뉴욕시

부분의 교회들의 재등록을 제한했다. 유럽인권

주가 받아주지 않기로 결정했다. 캐나다의 가장

의 행정 명령으로 가장 큰 피해를 본 쪽은 개신

재판소는 이 같은 획기적인 결정을 내리면서 헝

큰 기독교 대학교인 트리니티 웨스턴 대학교TWU

캐나다

교회들이었다. 이후 교회들을 중심으로 반발이

가리 교회법이 교회의 명성을 손상하고 종교의

는 2016년에 첫 입학생을 받을 예정이다. 이 대

확산되고 대규모 시위까지 벌어졌다. 이런 반대

자유를 침해하는 등 유럽인권보호조약을 위반

학교는 남녀 간 결혼생활을 벗어난 성적인 친밀

움직임에는 뉴욕시의 대표적인 대형교회인 리디

했다는 이유를 제시했다.

성을 금지하는 학생 생활 규칙을 적용하고 있다.

머장로교회와 팀 켈러 목사, 새들백교회와 릭 워 렌 목사도 동참했다.

캐나다의 수도가 소재하고 있는 온타리오 주 변 알바니아

호사협회는 TWU 로스쿨 출신이 이 주에서 활동

복음주의 교회 인정

하는 것을 허용하지 않기로 했다. 노바스코시아

미국/독일

한때 무신론 국가였던 알바니아가 사상 처음으

주도 유사한 결정을 내렸다. 그러나 TWU가 소

월드릴리프, 독일 구호기구와 통합

로 알바니아복음주의연맹을 인정했다. 지난 50

재하고 있는 브리티시콜롬비아 주를 비롯한 다

미국 복음주의협의회NAE의 구호개발기구인 월

년 가까이 2000여개의 교회와 모스크의 문을

른 5개 주와 자치지구 변호사 협회들은 TWU 로

드 릴리프World Relief가 독일에 본부를 두고 있는

닫았던 알바니아는 최근 들어 조금씩 종교의 자

스쿨 졸업생들을 받아들이기로 했다.

유럽 구호기구인 파트너에이드PartnerAid와 통합 절차에 들어갔다. 설립 16년의 파트너에이드는 연간 예산이 300백만 달러 규모이고, 월드 릴리 프는 6000만 달러 규모이다. 파트너에이드는 앞으로도 계속 독립적인 기능을 수행하지만 월 드 릴리프 독일World Relief Germany이라는 명칭을 사용하기로 했다. 월드 릴리프는 주로 지역 교회 들을 통해 활동하며, 파트너에이드는 지역 교회 가 극히 약한 소말리아 같은 고위험 국가에서 활 동한다. 두 기구는 앞으로 활동 전략과 접촉 그

“우리가 이 일을 하는 것은 이것이 예수님이 하고 싶어 하신 일이 아니라 하신 일이기 때 문입니다” 데일 브랜트너 큐어 인터내셔널CURE International 회장. 한 보안 요원이 미국인 3명을 카불에 있는 이 단체의 병원에서 살해한

룹(특히 이민이나 난민)은 공유하지만 재정은 독립

뒤에��� “왜 아프가니스탄에 남아서 계속 사랑과 봉사의 일에

적으로 운영할 계획이다.

전념하고 있는지”를 설명하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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NEWS

헤드라인

신학 l 중국

유교적 기독교

가장 빨리 성장하는 두 세계관이 서로 협력할 수 있을까

대 중국의 철학자 공자의 고향에 수

국 정부도 같은 생

백만 달러가 들어가는 대형 교회가

은 그곳에 들어서는 교회가 기독교를 중국 문

각을 갖고 있다며, “ 때가 무르익었 다”고 글로벌 차이

화에 통합시키기를 바랐다.

나 센터Global China

세워질 예정이었다. 취푸의 향리들

그러나 유학자들은 공자 사당에서 2마일 떨

Center

1900년에 그려진 공자와 예수

디렉터인 라

어진 곳에 136피트 높이의 건물을 세우는 그

이트 도일은 말했

프로젝트를 비난했다. 그들은 그 프로젝트를

다. 일부는 유교가 불교와 도교, 이슬람, 가톨

치는 제단을 아테네에 복음을 전하는 데 사용

외세의 신앙이 중국을 위협하는 구체적인 상

릭, 개신교와 나란히 중국의 공인 종교로 부활

징으로 보았다.

하기를 바란다.

했던 것과 동일한 방식으로 기독교는 유교의 ‘천’天개념에 초점을 맞출 수 있을 것이라고 양 은 말했다. 그는 유교가 중국적인 기독교 신

다. 그러나 기독교와 유교가 중국에서 가장

그러나 대부분의 중국인들은 유교를 단지 “도덕 체계”로 볼 뿐이라고 양은 말했다. 한

빨리 성장하는 신앙 체계인 만큼, 두 진영의

편, 그는 교회들은 유교와 경쟁하거나 유교를

사상가들은 둘의 관계 형성 가능성을 두고 토

대체하려고 노력할 것이 아니라 유교를 활성

신한다. “기독교의 메시지는 문화적 맥락 안에서 해

론을 계속 이어가고 있다. 지난 3월에 차이나소스ChinaSource는 학술지

화시키고 개혁시키려고 노력해야 하며, 유교

석된다. 그리고 중국의 문화는 유럽이나 고대

적 맥락 안에서 복음을 전하기 위해서는 유교

그리스 문화에 기초한 기존의 신학으로부터

에서 이 주제를 심도 있게 다루었다.

와 기독교의 공통점을 강조해야 한다고 주장

기독교적 메시지를 뚜렷하게 구별 짓는 무엇 인가를 제공할 수 있을 것”이라고 양은 말했 다. “유교가 신학적 사고를 위한 문화적 자원

결국 그 교회 프로젝트는 2011년에 중단됐

최근 고든콘웰신학교와 옥스퍼드선교연구

했다.

센터에서 개최된 심포지엄에서는 유학자들

도일에 의하면, 유교와 기독교 사이에 양

과 기독교 학자들이 함께 모여 새로운 대화를 시작했다. 그 결과, 두 진영은 “관계 형성의 온 기”를 경험하고 있다고, 고든콘웰 세계선교센

립가능한 가르침에는 공자의 황금률도 있다. “남이 네게 하기를 원하지 않는 것은 무엇이 라도 그들에게 행하지 말라.” 인과 의, 효, 근면

터 디렉터 겸 로잔운동 동아시아담당 부디렉

도 기독교와 나란히 갈 수 있다고 그는 말했다. 그러나 도일은 “근본적으로 양립할 수 없 는 것들”도 있다고 말했다. 유교는 인간의 본

터인 데이비드 로는 말했다. “최근에야 비로소 중국의 기독교 사상가들 이 더 나은 통합을 위한 신중한 노력을 기울이 고 있다”고 퍼듀대학교 종교와 중국사회 센터 디렉터인 펭강 양은 말했다. 유학자들이 점차 그들의 신념 체계가 중국 의 정체성을 형성해 가기를 원하고 있으며 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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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HRISTIANITY TODA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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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을 위한 기초가 될 날이 곧 올 것이라고 확

으로 활용된다면, 유교는 우리의 기독교적 메 시지 이해를 더욱 살찌울 것이다.” 다수의 중국 그리스도인들은 현재 벌어지 고 있는 이런 논의를 잘 모른다. 그러나 “지 성의 영역에서 벌어지는 논쟁”은 많은 사람

성을 선한 것으로 보며 물질적 세계에 초점을

들에게 영향을 미친다고 로는 말했다. “평균 적인 사람은 ‘나는 유교인인가 그리스도인인

맞춘다. 그리스도인들이 유교의 이 두 가치를 수용하게 되면 “인본주의”에 경도되고 신앙

가’라는 생각을 하지 않을 것이다. 그는 아마 도 ‘나는 둘 다이거나, 아니면 둘을 조금씩 다

보다 도덕을 우위에 두는 위험에 빠질 수 있다

가지고 있다’고 생각할 것이다.”

고 그는 말했다. 바울이 알 수 없는 신에게 바

Katherine Burgess

캐서린 버제스

PUCK MAGAZINE / LIBRARY OF CONGRESS


정치

낙태 금지에 예외는 있다? 없다?

‘태아고통법’ 얻으려고 예외를 너무 많이 인정한다는 내부 이견 제기

조지아 주의 낙태 반대 단체가 가두 행진을 하고 있다.

난 3년 동안 여러 주들에서 낙태를

조나 주의 태아고통법을 폐기시킨 법원 판결

다. GRTL은 조지아 주 행정부의 어느 누구

제한하는 205건의 법률이 제정됐

에 대한 재심을 하지 않기로 결정했다.

다. 이전 10년 동안 통과된 전체 법

그러나 이 법안의 목록은 계속 늘어나고 있

도 강간이나 근친상간 등의 예외 규정을 지지 하지 않는다고 말한다. 2000년 이후 GRTL이

률 건수보다 더 많은 수치다. 그러나 일부 법

다. 7월 1일에는 미시시피 주가 20주를 넘긴

지지하고 있는 유일한 예외는 산모의 생명을

률들, 특히 태아의 고통에 초점을 맞춘 법안들

태아에 대한 대부분의 낙태를 금지하는 법률

지키기 위한 경우 뿐이다. 강간이나 근친상간

때문에 너무 많은 것을 양보한 것이 아니냐는

을 제정할 예정이다. 5월초에는 또 다른 태아

예외 규정을 만들려는 선출직 후보나 의원은

논란이 일면서 생명존중 단체들 내부에 이견

고통법안이 사우스캐롤라이나 상원에 올라

과 균열이 발생하고 있다. 전국생명권리위원회National Committee가

왔고, 웨스트버지니아 하원은 태아고통법에

이 단체의 반대를 감수해야 한다. GRTL의 진비브 윌슨 공동집행이사는 이

Right to Life

대한 주지사의 거부권을 무효화시키려 하고

단체의 목표는 가능한 한 많은 법률을 제정하

조지아 지부를 제명했다. NRLC

있다. 메리 스프라울딩 밸치 NRLC 입법 담당 디

는 것이 아니라 최선의 법률을 제정하는 것이

렉터는 태아고통법안들은 낙태 논쟁을 인간 화하려는 시도라고 말했다. “태아도 고통을 느낄 수 있다는 거부할 수 없는 증거가 있다”

예외 조항을 둘러싼 논쟁은 최근 몇 년 동안

는 지부인 조지아생명의권리Georgia Right To Life가

고통을 느낄 수 있는 태아 보호

Capable Unborn Child Protection Act에

법Pain-

반대하는 연

방 의원들을 지지하자 이 같은 결정을 내렸다. NRLC는 20주를 넘긴 태아의 낙태를 금지하 는 이 연방 법안을 강력하게 지지하는 있으며, 이 법안은 지난 6월에 연방 하원을 228-196으 로 통과했다. GRTL는 낙태를 예외적으로 허

고 그녀는 말했다. GRTL이 지지한 조지아의 2012년 태아고

라고 말했다. 상당한 주목을 끌었다. 낙태 반대 운동은 지 난 1973년 연방 대법원이 ‘로 대 웨이드’ 판결 때문에 좌절을 겪은 바 있으며, 여전히 그 판

통법은 현재 소송 중이다. 조지아 주는 예외

례가 기준이 되고 있다고 생명을 위한 미국인 연합Americans United for Life의 댄 맥콘치 부회장

없는 낙태 금지법을 제정한 두 주 중 하나이

은 말했다.

용한 강간이나 근친상간, 산모

전략 논쟁은 임기가 짧은

의 건강에 위험한 경우까지도

하원 의원들에게는 시간 낭비

모두 낙태 금지 범위 안에 포함

로 보일 수도 있는 투통거리

하고 있다는 이유로 태아 고통

라고 그는 말했다. 그러나 최

법안을 반대했다. 연방법인 ‘고통을 느낄 수 있 는 태아 보호 법’은 지금까지 여

선의 전술을 찾기 위한 논쟁 은 좋은 결과를 거둘 수 있다. “전략상의 분열은 활력이

러 주에서 통과된 법률들과 유 사하다. 이 법률들 가운데 몇 건 은 사법적 도전을 받고 있다. 연 방 법원들이 조지아와 아이다호

넘치는 운동의 건강한 측면이 다.” 맥콘치의 말이다. “문제

금지법이 소송 당한 주

를 어떻게 풀 것인지 많은 사

법원이 금지법을 폐기시킨 주

주의 태아고통법에 제동을 걸었 고, 지난 1월 연방대법원은 애리

‘태아고통낙태금 지법’이 있는 주

NATIONAL RIGHT TO LIFE COMMITTEE / GUTTMACHER INSTITUTE

PHOTO COURTESY OF JEFF BREEDLOVE / GAPUNDIT.COM

람들이 고민하고 있다는 사실 을 보여주는 것이다.” 루스 문 Ruth Mo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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NEWS 시티’에 올린 것은 “개인적으로 성도들과 커 뮤니케이션”을 하는 방법의 하나라고 CT에 밝혔지만, 교회 대변인은 온라인에 게재된 서신에 담긴 개별 내용들이 “정확한지 아닌 지는 확인할 수 없었다”고 말했다. 대변인은 마스 힐 교회가 공개적으로 서신을 발표했을 교회

베스트셀러 순위 포기하고 인생 재정비 선언하다

것 같지는 않다고 덧붙였다. 이 서신에서 드리스콜 목사는 “화를 내지 않고 방어적이지 않으면서 몇 가지 사실을 해명하기 위해 최선을 다하려 한다”면서 문 제의 도서 마케팅에 대한 자신의 생각이 어 떻게 바뀌었는지 설명했다. “리절트소스 사의 마케팅 전략에 대해 이 야기하자면, 나로서는 내가 쓴 책의 판매를 극대화하는 것이었다. 이를 통해서 나는 보다

화해를 시도하고 있으며 그 과정이 아직도 진

많은 사람들에게 메시지로 다가갈 수 있고 결 국 교회도 성장할 수 있다고 생각했다. 돌이

행 중이라고 밝혔다. “이 기간 동안에 나의 죄를 보거나 경험한

켜보면서 나는 더 이상 이렇게 생각하지 않게

사람들은 상처를 입고 어떤 경우에는 아직 평

되었다. 대신에 나는 오히려 이러한 방식이

화나 해결의 단계에 이르지 못하고 있다는 것

도서 판매 보고 시스템을 왜곡하고 조작하는

을 이해한다. 나도 지난 해 동안 이것에 부담

기왕성했던 청년 선지자의 시절 은 막을 내렸다.” 시애틀 마스

것이라고 생각한다. 내 스스로가 이러한 마케

을 느끼고 사람들로부터 배우고 용서하고 화

팅 전략에 일조했다는 것이 유감이지만, 앞으

해를 하기 위해 개인적으로 만남을 갖기도 했

힐 교회의 마크 드리스콜 목사

로는 더 이상 그런 방식을 사용하지 않을 것

다. 이러한 만남들 대부분이 교회에서 내가

의 고백이다. 이를 위한 첫 단계로 그는 소셜

이다. 내 책의 출판을 담당한 사람에게도 앞 으로 출간할 책에는 “<뉴욕 타임스> 베스트 셀러 1위”라는 문구를 사용하지 말아달라고

보낸 시간 중에 가장 의미 있는 시간이었다.

마크 드리스콜 목사

“혈

미디어 활동을 일체 중단했다. “베스트셀러 작가” 마크 드리스콜 목사가 그의 최근작「결혼은 현실이다」Real Marriage가 부적절한 마케팅에 의해 만들어진 베스트셀 러라는 비판이 제기되자 자신의 교회 앞으로 공개서한을 띄워 심경을 밝혔다. 2011년과 2012년에 마스 힐 교회는 마케팅 회사인 리절트소스에 21만 달러를 지불하고 드리스콜 목사의 저서에 대한 홍보를 요청했

요청했으며, 이미 출간한 내 저서들에서도 이 런 문구를 삭제하는 작업을 진행하고 있다.” 드리스콜 목사는 또한 자신의 공식적인 이 력(미디어에 공개된 이력 포함)도 수정했으며 ‘베 스트셀러 작가’라는 표현도 삭제했다. 수정된 내용은 간단하다. “마크 드리스콜 목사는 약 15권의 책을 저

슬프게도 모든 관계가 회복된 것은 아니지만 난 하나님이 우리를 은혜의 자리에 불러주실 것이라고 믿으며 기도하고 있다.” 드리스콜 목사는 또한 마스 힐 교회가 최근 에 “교회의 운영방식과 조직에 대한 중요한 개선을 했다”고 언급했다. 마스 힐 교회 저스틴 딘 대변인은 <월드> 인터뷰에서 “마스 힐 교회는 드리

World와의

스콜 목사의 책 판매 수익으로 20만 달러 이 상을 받았다”고 밝혔다. CT의 자매지인 <리

다. 2011년 작성된 계약서에 따르면 리절트소

술한 작가이며 미국 CNN 방송과 <워싱턴 포

스는 그의 책을 <뉴욕타임스>가 집계하는 베

스트>에도 기고해 왔으며 <시애틀 타임스>의 칼럼니스트이기도 하다.”

더십 저널>과의 인터뷰에서 드리스콜 목사는

였다. 리절트소스와 마스 힐 교회가 서명한

드리스콜 목사는 또한 목회자로서의 자신

계약서에 근거해 마스 힐 교회는 6000건의 개

지 않았다고 해명했다. “나는 당시 책을 저술하고 강연을 다닐 수

인 주문 명목으로 책을 사들이고 리절트소스

의 새로운 소명에 대해서도 설명하고 있다. “지난 1~2년 사이에 하나님께서는 나의 혈

는 드리스콜 목사의 저서가 배달될 수 있는 주

기왕성한 청년 선지자의 시대가 끝이 나고 남

유자적하거나 아이들 스포츠 팀을 코칭하며

소 리스트를 제공하기도 했다.

을 도와주고 성경을 가르치는 영적인 지도자

지낼 수 있는 기회가 있었다. 그러나 내가 그

로 나의 소명이 대체되었다는 깊은 확신을 주 셨다.”

렇게 하고 싶지 않았던 것은 정말 교회를 사랑

스트를 조작했다는 의혹이 제기되면서 드리

그리고 드리스콜 목사는 이전에 함께 일하

나는 예수님이 교회를 위해 그의 생명을 내어

스콜 목사는 윤리적인 비난에 휩싸였다. 마스 힐 교회는 드리스콜 목사가 서신을 ‘더

던 직원들의 비난이 최근 온라인을 통해 돌고

주셨고 교회를 위해 같은 일을 하는 자들을 높 여주시리라고 믿는다.” 제레미 웨버Jeremy Weber

스트셀러 순위에 올려놓기 위해 총력을 기울

이러한 공격적인 도서 마케팅을 추진하기 위해 교회의 자원을 활용하고 베스트셀러 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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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HRISTIANITY TODAY

June 2014

있다는 사실을 인정하며 그가 많은 사람들과

풀타임으로 책을 집필하기 위해 교회를 떠나

있는 기회도 있었고 풀장 옆에서 한가로이 유

하기 때문이다. 나는 지역 교회의 목회자이다.

MARS HILL CHURCH


세월호 참사

교회, 슬픔에 함께하다 긴급 구호 동참…이단 해악 절감

한국기독교연합봉사단이 팽목항에서 긴급 구호 활동을 하고 있다.

국 교회는 세월호 침몰 소식이 전해

진 직후부터 구호활동에 나섰다.

가장 먼저 한국기독교연합봉사 단(단장 조현삼 목사)이 10명의 긴급구호단을 실

다는 사실은 온 국민들에게 견딜 수 없는 아픔

로 결정했다. 사고 발생 닷새째에 맞은 부활주일에도 세 월호 참사 피해자들을 위한 전국 교회의 기도

을 주었다. 너나 할 것 없이 이들을 위한 일이 무엇인지 고민했고 SNS를 중심으로 ‘노란 리 본 달기 운동’이 시작되었다. ‘노란 리본’의 취

종자 가족이 모여 있는 팽목항으로 보냈다.

는 이어졌다. 연세대학교 노천극장에서 열린 ‘한국교회부활절연합예배’에서는 세월호 참

봉사단은 진도군기독교연합회와 공조해 현

사 피해자들을 위��� 특별 기도 시간을 가졌으

살아 돌아오기를 바라는 마음에서 나뭇가지

장에 있는 실종자 가족들과 구조인력에게 간

며, 호소문을 통해 다시는 이와 같은 일이 재

단한 식사와 따뜻한 음료 등을 제공했다. 구 세군대한본영(교단장 박종덕 사령관)도 팽목항

발되지 않도록 한국 교회가 기도하며 노력하

에 노란 리본을 달았다는 데서 유래했다. 이 러한 뜻에 공감한 이들이 자신의 SNS 프로필

자는 다짐도 이뤄졌다. 이날 예배에서 거둬진

사진을 노란리본으로 장식하며 세월호 실종

에 급식 차량와 빨래 차량을 급파해 식사와

헌금도 세월호 참사 피해자들을 위해 사용하

자들의 생환을 염원했다. 이러한 분위기는 사

편의를 제공하는 한편, 사고대책본부가 마련 해 실종자 가족들을 위로했다. 지구촌나눔운 동(대표 김해성 목사)도 봉사자 15명과 트럭 2대

기로 결정했다. 장로교와 감리교, 성결교 등 교단장들도 ‘세 월호 참사 회복을 위한 한국교회위원회’(위원

회 전체로 확산되었고, 팽목항과 진도, 안산은 물론 전국에 마련된 ‘세월호 희생자 합동분향 소’도 노란 리본으로 장식되었다. 유명인들도

장 김삼환 목사)를 별도로 조직하고 5월 9일 안

공식 석상에 등장할 때는 어김없이 노란 리본

분량의 식료품을 진도로 보내 구호활동에 동

산제일교회에서 연합기도회를 가졌다. 위원

을 착용했고, 세월호 피해자들을 기억하는 자

참했다.

된 진도공설운동장에는 15명의 사관을 파송

지는 제2차 대전 당시 전쟁터에 나간 이들이

회는 앞으로 세월호 참사 피해자와 그 가족들

리에는 항상 노란 리본이 등장했다.

실종자들의 생환을 위한 기도도 이어졌다.

을 돌보는 한편 이번 참사의 철저한 진상규명

진도중앙교회를 비롯한 진도군 일대의 교회

과 대책마련을 정부에 촉구하는 등 대한민국

들과 단원고등학교가 속한 안산시 교회들은

의 회복을 위해 노력하겠다고 밝혔다.

그러던 중 일부 그리스도인들 사이에서 노 란 리본 달기 운동이 ‘무속적’이라며 사용을 금해야 한다는 주장이 나왔다. 이들은 “노란

릴레이 기도를 선포하고 사고가 수습될 때까

나비가 저승으로 가는 영혼을 표현하는 것이 며, 노란 리본이 이를 형상화 한 것”이라고 주

지 매일 특별 기도 시간을 갖고 있다. 한국기

‘노란리본’ 반대 논란에 ‘침묵하라’

독교교회협의회는 예장통합과 감리교 등 소

설교 논란도

속 교단장들과 긴급회의를 열고 특별 기도 주

세월호 참사로 인한 슬픔은 대한민국을 뒤덮

장했다. 출처가 불분명한 이러한 메시지는 SNS를 통해 급속도로 퍼졌고 이 메시지를 접

간을 갖기로 하는 한편, 구호활동에 나서고 있

었다. 특히 수학여행을 떠난 어린 자녀들이

한 일부 교인들은 자신의 SNS에서 노란 리본

는 구세군과 진도군기독교연합회를 지원하기

차가운 바다 속에 잠겨 그 생사조차 알 수 없

을 내리기도 했다. 그러나 대부분의 신학자와

한국기독교연합봉사단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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NEWS

목회자들은 ‘노란 리본 무속설’ 자체가 주술적 이며 믿음이 없는 시각이라고 강하게 비판했 다. 다일공동체 최일도 목사는 “복음적인 내 용과는 너무 거리가 먼 정신병리학적인 종교 적 신념이거나 극우적인 이념에서 나온 아주 저질적이고도 악의가 담긴 분명한 거짓”이라 고 비판했다. 최 목사는 “이러한 소모적인 논 쟁을 벌이기보다 슬픔과 고통 가운데 있는 이 웃과 함께하는 것이 바람직한 그리스도인의 자세”라고 덧붙였다.

세월호 참사에서 드러난 정부와 기업, 언론 그리고 우리사회의 총체 적인 문제들로 국민적인 분노가 표출되고 있는 상황에서 유독 그리 스도인들은 침묵하고 기도해야 한다는 이들의 주장에 대해 동의할 수 없다는 지적이 적지 않다.

색하는 등 강도 높은 수사를 진행하고 있다.

사인 세모해운을 설립, 국내 최대 연안 여객선

유병언 씨는 지난 1960년대 권신찬 씨에 의 해 설립된 ‘기독교복음침례회’(구원파)의 목사

업체로 성장시켰지만 과도한 부채를 감당하 지 못하고 2년 만에 도산하게 된다.

로서 실질적인 교주로 활동했다. 권 씨는 유

최근 검찰 조사로 밝혀진 바에 따르면 유병

한편 일부 목회자들이 설교나 자신의 SNS 를 통해 ‘기독교인들의 침묵’을 요구해 논란

씨의 장인이기도 하다. 이들은 기독교 정통 교리에서 벗어난 교리를 전파함으로써 예장

언 씨와 그 가족들은 경영자문 컨설팅 업체인 ‘아이원홀딩스’라는 회사를 통해 국내 37개

이 되고 있다. 이들 목회자들은 세월호 사태 를 두고 “지금은 침묵하며 기도할 때이지 누

합동과 통합, 고신, 기성 등 한국 교회 공교단

계열사를 거느리고 있었으며, 이 아이원홀딩 스라는 회사의 자산이 5844억 원에 달하는 것

군가를 비난하거나 정부에 책임을 요구하는 것은 부적절하다”고 주장했다. 이러한 주장

으로부터 이단으로 정죄되었다. 그러나 유 씨 는 1980년대 부실 기업이었던 ‘세모’를 인수 해 세를 불리면서 ‘종교인’이 아닌 ‘기업인’으

이 교인들의 반발에 부딪히자 한 목회자는 몇

로 탈바꿈했다.

으로 드러났다. 도산했던 사업가가 불과 17년 만에 화려하게 재기한 것이다. <현대종교> 탁지원 소장은 “만약 검찰이 오

주에 걸친 자신의 설교를 연속해서 들어봐야

건강보조식품과 선박제조, 건설업 등으로

대양 사건과 유병언 씨의 관계를 더욱 철저히

그 뜻을 이해할 수 있다고 해명했지만, 결국 ‘침묵’과 ‘기도’ 외에 다른 방향은 제시하지 않

성공 가도를 달리던 유 씨는 지난 1987년 세 간을 떠들썩하게 했던 ‘오대양 집단 자살 사 건’의 배후로 지목돼 조사를 받게 된다. 당시

조사했더라면 이번 세월호 참사와 같은 비극

았다.

적인 일을 예방할 수도 있지 않았을까 하는 안 타까운 마음이 크다”고 밝혔다.

세월호 참사에서 드러난 정부와 기업, 언론

수백억 원에 달하는 사채를 빌리고 잠적했던

그리고 우리 사회의 총체적인 문제들로 국민

오대양 박순자 대표와 직원 등 32명이 오대양

교회가 풀어야 할 과제

적인 분노가 표출되고 있는 상황에서 유독 그

여전히 진도 앞바다에는 생사를 알 수 없는 실

들의 주장에 대해 동의할 수 없다는 지적이

공장 천장에서 집단 변사체로 발견되는 사건 이 발생했다. 경찰은 “오대양교 박순자 교주 의 지시에 따른 집단 자살”로 결론내리고 사

적지 않다. 한 기독교 칼럼리스트는 언론사 에 기고한 글에서 “하나님이 정말로 침묵하라

건을 종결했다. 하지만 기독교 이단전문가들 은 “오대양교라는 신흥종교는 없으며, 박순자

대로 있다. 국민들은 왜 세월호가 침몰하게

고 말씀하셨다면, 지금 안타까운 참사를 바라

대표는 사채모집책에 불과하고 그 배후에 구 원파와 유병언 씨가 있다”고 주장했다. 그로

침몰 후 단 한 명도 구해내지 못했는지, 정부

보면서 큰 슬픔과 더불어 공분을 느끼는 모든 형제들은 하나님의 뜻을 거역하고 성령의 인

부터 4년 뒤 오대양 사건을 저질렀다는 구원

궁금해 하고 있으며 그 만큼 슬퍼하고 또 분노

도를 무시하는 불순종의 무리들이라는 말인 가?”라고 반문하기도 했다.

파 신도들이 자수를 하면서 수사가 재개되었

하고 있다.

고 오대양의 사채 일부가 유병언 씨가 회장으

그리고 한국 교회는 이단 집단을 그대로 방

사건의 중심, 유병언 그리고 이단 ‘구원파’

로 있던 세모그룹으로 흘러들어간 정황이 포

치해 두었을 때 얼마나 큰 희생을 치러야 하는

세월호가 소속된 청해진해운의 실소유주가

착됐다. 그러나 검찰은 유 씨를 상습사기혐의

지 분명히 깨닫게 되었다. 이러한 과제와 물

전 세모그룹 회장 유병언 씨와 그 가족들이라

로 구속했을 뿐 오대양 사건과의 직접적인 관

는 사실이 검찰 수사를 통해 밝혀졌다. 검찰

계를 밝혀내지는 못했다. 출소 이후 유병언

음들 속에서 세월호 참사는 끝날 수도, 끝낼 수도 없는 비극으로 남게 되었다. 양화수 C채널

은 유 씨와 가족들의 집, 사업체 등을 압수수

씨는 사업을 재개해 1995년 세모그룹의 자회

전 보도부장

리스도인들은 침묵하고 기도해야 한다는 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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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HRISTIANITY TODAY

June 2014

종자들이 남아 있다. 그들을 한번만이라도 다 시 품에 안고 싶어 하는 가족들이 팽목항에 그 되었는지, 해경의 구조는 왜 이리도 더뎠으며 의 재난 대비 시스템은 왜 작동하지 않았는지

Photo BY c채널


교회가 직면한 쟁점들에 대한 다양한 의견과 시각들

지금 우리는

이제 공감의 지대로 한 걸음 들어설 때 왜 나는 공감할 수 없는가?

photo by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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VIEWS

충분히 머물러 있는 것. 아파하는 사람들과 함께 머물러 있는 마음. 연민이나 이해의 대상이 아니라 있는 그대로 ‘존재로 바라보는 것’입 니다. 왜 아파하는가 생각하지 말고, 자신의 경험으로 해법을 설명하 지 말고, 논리적인 판단을 하지 말고, 아픈 감정에 머물러 있는 것이 공감입니다. 생각에 머무는 것이 아니라 ‘감정’에 머무는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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월 8일 어버이날 안산 단원고에 아

향합니다. 계단에 붙어 있는 격려와 지지

치밀어 오르기도 하고, 가끔은 텔레비전 뉴

침 일찍 갔습니다. 하늘은 먹장구

의 문구들. 살아 돌아오기를 바라는 염원들

스를 보며 눈물 흘리기도 했기 때문입니다.

름으로 덮었고, 쌀쌀한 날씨가 얇

이 희망의 끈으로 이어져 아이들이 있는 곳

또한 안타까운 마음에 심장이 아프기도 했

은 검은 양복 안으로 찬바람을 몰고 들어옵

으로 전해지기를 바래봅니다. 교실은 여느

습니다. 나도 어느 정도 아픔에 동참을 하

니다. 텔레비전에서 보이던 그 장소에 내가

교실과 다름없는데, 아이들이 있어야 할 자

고 있는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을 했었습니

서 있었습니다. 영상으로 볼 수 없던 풍경

리에 국화꽃 한 다발이 책상 위에 가지런히

다. 그 순간 할 질문이 떠올랐습니다. ‘나는,

이 눈에 비칩니다. 아이들이 뛰놀던 넓디넓

놓여 있습니다. 가르침으로 가득 차 있어야

지금, 이 상황을 ‘충분히 공감’하고 있는가.’

은 운동장에는 마지막을 떠나보내는 이의

칠판에는 희망의 빛을 한 자락이라도 잡으

성경에는 사마리아인이 강도 만난 자를

차량들이 줄 지어 서 있고, 환한 얼굴로 미

려는 아이들의 소망을 담은 메시지가 써 있

공감한 이야기가 나옵니다. 사마리아인은

소를 머금고 등교하던 길에는 이제 차디찬

습니다. 시끌벅적하게 떠들어야 하는 시간

왜 하필 이곳을 지나가게 돼서 강도를 만났

주검이 되어 돌아온 운구차량들이 올라옵

인데, 적막함이 교실에 가득합니다. “떠들

냐고 따지지 않습니다. 어떻게 이 난관을

니다. 상냥한 얼굴로 아이들을 맞이하던 선

지 말라”고, “공부해야 한다”고 외치던 선

극복해야 하는지 설명하지 않습니다. 누가

생님들과 친구들은 이제 고개를 떨구고 친

생님의 야단치는 소리가 그립습니다. 하얀

이 사람을 도와줘야 하는지 평가하지 않습

구들과 선생님의 영정사진을 맞이합니다.

국화 밭으로 한 걸음 옮기는 것도 미안해서

니다. 사마리아인은 ‘가까이 가서’ 기름과

작년에 이맘때 쯤 카네이션을 달았던 부모

고개를 들지 못했습니다. 그 공간에 들어가

포도주를 그 상처에 ‘붓고 싸매고’ 자기 짐

님들의 옷에는 검은 리본이 달려 있습니다.

니 복받쳐 오르는 감정을 추스르기가 어려

승에 태워 주막으로 ‘데리고 가서’ 돌보아

차디찬 주검이 되어 돌아온 아이들. 여전

웠습니다. 어쩌다가 이런 일이 생겼는가.

줬습니다. 그리고 이튿날에 다시 와서 ‘여

히 앳된 모습으로 해맑게 웃던 얼굴이, 이제

해맑은 아이들이 있어야 하는 자리에 덩그

관비를 지불’하고 더 들면 그 비용도 치루

영정 사진이 되어 내 앞을 지나갑니다. 흐

러니 남은 의자와 책상들만이 쓸쓸하게 교

겠다고 이야기합니다. 그곳에 있던 제사장,

느껴 우는 유가족의 울부짖음이, 살아 있는

실을 지키고 있었습니다. 계단을 내려오면

레위인은 그 자리를 회피했다고 성경에는

자들의 가슴 속에 깊이 감춰두었던 부끄러

서 가슴 한 켠이 먹먹해졌고, 몸이 아프기

기록되어 있습니다. 그들은 공감의 자리에

움을 알아차리게 합니다. 남편을 잃은 아내

시작했습니다. 그리고 내가 지금, 여기에 머

나아가지 못했습니다.

의 통곡. 손자 소녀를 먼저 보내고 힘없이

물러 있는 모습에서 조금이라도 유가족의

공감의 사전적인 의미는 어떤 사람의 주

걸어가시는 할머니의 뒷모습. 나도 모르게

아픔에 공감할 수 있는 감정이 생겼습니다.

장이나 감정, 생각 따위에 동일하게 그렇다

눈물이 흐릅니다. 멈추지 않는 눈물. 미안

저는 신문이나 텔레비전 뉴스를 보면서

고 느껴지는 것입니다. 잘 이해가 되지 않

그분들과 함께 아파했다는 생각을 많이 했

아서 동일하게 그렇다고 느껴진다는 의미

습니다. 페이스북에 올라온 글을 보곤 화가

를 생각해봅니다. 동일하다는 의미는 ‘내가

하고 죄송해서 자꾸만 눈물이 흐릅니다. 함께 갔던 선생님의 인도로 2학년 교실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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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였고, 더 나아가서 연대로 이어졌습니다. 강도 만난 자에게 가까이 가서 치료하고, 데 려가서 몸과 마음을 만져주고, 충분히 회복 할 수 있도록 비용을 지불합니다. 우리의 마음속에는 레위인이나 제사장 같은 모습이 숨어 있을 것입니다. 안타깝게 바라보되, 이 일과 상관이 없는 것처럼 위장 하는 마음이 있을 수 있습니다. 그리고 나 는 적어도 강도는 만나지 않을 거야라는 생 각도 있을 것입니다. 이런 생각이 우리를 공 감 지대로 나아가지 못하게 하는 방해요소 입니다. 내가 치러야 하는 심리적 비용, 신 체적인 비용, 시간비용, 물질적인 비용, 사 그 사람 안에 포함될 때’ 비로소 가능하다

공간에 함께 머물렀다고 해서 공감을 하는

회적 비용을 판단하는 마음이 공감으로 나

는 생각을 합니다. 내가 그 사람 안으로 걸

것은 아닙니다. 생각, 설명, 판단, 평가, 비

아가는 문을 닫은 것은 아닌지 곰곰이 되뇌

어 들어가는 것입니다. 이것은 그 사람 안

난, 비판 등의 단어들이 감정을 지배하고 있

어 봅니다. 이 상황을 살펴보면서 나는 아

에 ‘충분히 머물 때’ 생길 수 있습니���. 충분

었기 때문에 공감하지 못한 것입니다. 그렇

직도 공감할 수 없다고 생각하는 분이 있다

히 머물러 있는 것. 아파하는 사람들과 함

다고 감정의 과잉 상태가 공감을 일으키는

면, 저는 감히 말씀드리고 싶습니다. 이제

께 머물러 있는 마음. 연민이나 이해의 대

것도 아닙니다. 그래서 공감은 연민이나 동

당신은 공감할 수 있는 지대로 한 걸음 들

상이 아니라 있는 그대로 ‘존재로 바라보는

정과는 다른 것입니다. 레위인이나 제사장

어와 있습니다. ‘왜 나는 공감할 수 없는가.’

것’입니다. 왜 아파하는가 생각하지 말고,

은 강도 만나 자를 연민하고 동정했을 것입

이 질문으로부터 공감은 시작됩니다.

자신의 경험으로 해법을 설명하지 말고, 논

니다. 그것은 마치 우리가 텔레비전 뉴스에

리적인 판단을 하지 말고, 아픈 감정에 머

나오는 세월호 참사를 안타까운 이야기로

물러 있는 것이 공감입니다. 생각에 머무는

만 생각하고 연민하고 동정하는 모습과 유

것이 아니라 ‘감정’에 머무는 것입니다.

사한 것입니다. 하지만 사마리아인은 강도

사마리아인과 레위인, 제사장도 강도 만

만난 자와 일면식도 없는 관계를 지니고 있

난 자의 자리에 함께 있었습니다. 물리적인

었지만, 생각에 머무르지 않고 감정에 집중

photo by 연합뉴스

이규철 22년째 고등학교에서 아이들을 가르치고 있으 며 중학교에 다니는 두 딸의 아빠이다. 좋은교사 수업 코칭연구소장이며「수업 딜레마: 나의 수업, 어디서 흔 들리는가」(맘에드림)의 저자이다. CTK 2010년 8월호 에 “나를 선생님으로 빚어낸 아이들”을 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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VIEWS

불완전한 과거

천상의 우렛소리 최선의 교회 음악을 위한 최소의 조건

난 주일, 성 바나바 교회의 새 지

록 돕는 선교사들(침례교 선교사부터 예수회 선교

틴 제국의 유스티니아누스 황제는 3명의 [서

휘자가 음악에 대한 나의 철학을

사까지)에 관해서도 알고 있다.

방 교회] 교황을 임명했다. 그 결과로 동방과

핵심 연주자들에게 나누어 달라

우리 교회가 글로벌 교회의 지체로서 예

서방의 스타일이 섞인 “혼합된 예배”가 나

고 요청했다. 이것은 이 교회에서 거의 27

배하려면, 다른 문화의 음악을 받아들일 수

타났고, 덕분에 우리는 ‘할렐루야’Halleluia(히

년 동안 찬양 팀을 이끌었던 나에게도 성경

있는 작은 방법들부터 찾아내야 한다. 최

브리어)와

적인 예배에서 음악이 해야 하는 역할에 대

근 성 바나바 교회는 티베트어로 편곡한 주

어)―주여,

해서 정돈해 볼 수 있는 좋은 기회였다.

기도문, 코사어 Xhosa-줄루어 Zulu-세소토어

부를 수 있게 되었다.

‘키리에 엘레이송Kyrie Eleison(그리스 자비를 베푸소서―을 예배에서

이어지는 찬송 ‘은코시 시켈렐리

종교개혁도 엄청난 어울림을 가져왔다.

첫째, 치우치지 말 것. 다양한 양식과 원

아프리카’Nkosi Sikelel’ iAfrika[‘주여 아프리카를 축복

엘리자베스 1세는 좋아하지 않았지만, 존

천에서 가장 좋은 것을 골라라. 이것은 교

하소서’라는 뜻이며 남아프리카공화국 등 아프리카 여

칼빈의 제네바 시편찬송은 그녀의 왕국에

회가 교회로 존재하는 기본이다.

러 나라의 국가],

고대 교회 슬라브어Old Church

널리 퍼져나갔고, 성서에 충실한 찬송 작곡

Slavonic[현대 슬라브어의 기원이 되는 고대 슬라브어

의 장을 마련했다. 내가 (특히 다른 주로 이사한

문어] 찬트를 불렀다.

후로) 좋아하는

Sesotho로

교회는 거의 모든 곳에 있다. 선교학자 앤드류 월즈Andrew Walls가 말했듯이, 이는 기

시편찬송의 하나는 아이작

왓츠Isaac Watts의

시편 23편인데, 이렇게 끝

독교가 타종교들보다 훨씬 더 문화적으로

교회는 거의 2000년 동안 여러 문화가

잘 적응하기 때문이다. 밋밋한 빅토리아풍

한데 어우러진 예배를 드렸다. 4세기 스페

난다. “그곳에서 나는 쉼을 얻으리니, / 다

성가를 아프리카와 아시아의 개종자들에게

인 순례자 에게리아Egeria는 예루살렘에서

른 이들은 오고 갈지라도. / 난 이제 이방인

강요하는 선교사들이 있다는 무시무시한

목격한 예배 의식을 상세하게 기록으로 남

도 나그네도 아니리, / 집 안에 있는 아이와

이야기를 물론 나는 알고 있다. 하지만 나

겼다. 그 전례들은 당시 막 등장하기 시작

같이.”

는 새로운 신자들이 그들의 문화적 색깔이

한 교회력의 기초가 되었다. 6세기에 동고

드러나는 고유한 음악으로 예배할 수 있도

트족에게서 이탈리아 반도를 탈환한 비잔

둘째, 공연 유혹을 피할 것. 교회 음악의

목적은 예술적 탁월함이 아니라 사람들이

이 완전한 어울림과 참여, 나는 이러한 예배의 모습을 요한계시록 7 장, 14장, 19장의 “허다한 무리의 음성”에서 본다. 하늘의 예배에는 모든 족속과 방언과 민족의 문화가 함께 어우러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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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배할 수 있도록 하고 또 북돋아 주는 것 이다. 예배에서 음악적 예술성이 하는 역할 은 너무 친숙한 것을 새롭게 하거나 분위기 전환을 강조하거나 사람들을 하나님과 교


데이비드 네프는 <크리스채너티 투데이>의 전 편집인이다.

회 공동체에 참여하도록 돕

기서 음악은 행동을 받쳐주

는 것이어야 한다. 우리의

는 것이어야 한다. 많은 영

창의성과 예술성은 모두 이

가spirituals가 성찬을 받으면

러한 목적을 위한 것이어야

서 따라 부를 수 있도록 다

한다. 이를 위해서는 다음

음 절로 넘어갈 때마다 단어

과 같은 사항들에 유의해야

몇 개 만 바꾼다. 테제 Taizé

한다.

찬트는 반복을 통해 깊이 있

쉬운 멜로디를 사용

는 의미를 전달한다. 단순하

하라. ‘ 어메이징 그레이

면서도 진정성이 있어야 한

스’Amazing Grace가 처음 발표

다. 단순한 노래가 깊은 영

된 것은 1779년이지만, 시카고의 어느 작곡 가가 부르기 쉽게 편곡한 1900년 이후에야 비로소 인기를 얻었다. 멜로디가 중요하다. ●

자신과 주위 사람들의 찬양 소리까지 들

이 싹 가신다. ●

성에서 나온 것이면, 특히 역경 가운데서 만

복잡과 단순 사이에서 균형을 맞추려고

노력하라. 예배는 크게 설교와 성찬식으로

들어진 것이면, 자주 불러라. 깊이가 없고 경건의 허울만 있는 것이면, 피하라. 이 완전한 어울림과 참여, 나는 이러한 예

이루어진다.

을 수 있게 하라. 밴드의 연주나 파이프오

말씀이 차지하는 부분에서는 복잡한 텍

배의 모습을 요한계시록 7장, 14장, 19장의

르간의 소리가 우리의 목소리를 압도해서

스트가 필요하다. 예를 들면, 마르틴 루터

“허다한 무리의 음성”에서 본다. 하늘의 예

는 안 된다. 회중 찬송 중 최고로 꼽히는 곡

가 시편 46편을 대담하게 개작한 ‘내 주는

배에는 모든 족속과 방언과 민족의 문화가

중에 아카펠라가 적지 않은 까닭은, 무반주

강한 성이요’A Mighty Fortress, 바울의 교회론

함께 어우러진다. 모든 이들이 참여하는 이

노래가 주위 사람들의 찬양 소리에 귀를 기

을 기념하는 새뮤얼 스톤Samuel Stone의 찬송

생생한 찬송에 사도 요한도 “많은 물소리와

울일 수 있게 하기 때문이다. 덧붙여, 나쁜

‘교회의 참된 터는’The Church’s One Foundation,

도 같고 큰 우렛소리와도 같다”(계19:6)고 밖

음향효과 때문에 우리의 목소리가 죽어서

키스

도 안 된다. 우리는 모두 타일이 붙은 샤워

Getty와 스튜어트 타운엔드Stuart Townend가 히

실 안에서는 노래 부르고 싶어 한다. 반대

브리서 11장을 작시한 ‘믿음으로’By Faith 같

로, 낮은 천장과 패드를 깐 의자들, 카펫 바

은 찬송들이다.

닥이 있는 공간에서는 노래하고 싶은 마음

PHOTO COURTESY OF soweto gospel choir

게티Keith Getty와

크리스틴

게티Kristyn

반면, 성찬 참여는 단순성을 요구한다. 여

에 형용하지 못했던 예배, 바로 이것이 우리 의 목표이다.

David Neff, “The Roar of Worship” CT 2014:5 김혜정 옮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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VIEWS

어떤 설교 예화를 피해야 할까 모든 이야기들이 설교에 도움을 주는 것은 아니다

마거리트 슈스터

기, 그러니까 자기 몸체만한 아기를 안고 다

대답은 보이즈 타운Boys Town[미국의 비영리 어

니던 스코틀랜드의 작은 여자아이 이야기

린이 후원 단체]의 슬로건이 되었다. 역시 약간

를 떠올리고 있었다. 그 여자아이는 누군가

변형이 있기는 했지만, 홀리즈The Hollies[영

힘들지 않으냐고 물었을 때, “전혀 무겁지

국의 록밴드. 1969년 9월 “He Ain’t Heavy, He’s My

않아요. 제 동생이니까요”라고 대답했다.

Brother”라는 노래를 발표해 인기를 끌었다]의 히트

두 번 들어 본 이야기

러해 전에 우리 삼촌은 자기 손 자가 어린아이 몸뚱이만한 크리

이 여자아이 이야기는 내가 이 이야기를

곡 제목이 되기도 했고, 밀러 라이트Miller Lite

스마스 선물을 낑낑대며 옮기고

처음 들었을 즈음에는 다친 동생을 등에 업

맥주 광고의 테마(선행을 베풀면 적절한 보상이

있는 모습을 보다가 이렇게 혼자 중얼거렸

고 도움의 손길을 찾아 흙먼지 날리는 먼

주어진다. 그 보상이란 물론 시원한 맥주!)가

다. “전혀 무겁지 않아요. 내 선물이니까.”

길을 힘겹게 걷고 있던 아프리카 소년의 이

도 했다. 이 이야기는 분명 시대와 장르를

야기로 변형되었다. 그리고 그 여자아이의

뛰어 넘어 심금을 울리는 부분이 있다. 그

물론 그때 삼촌은 130년이나 지난 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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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 H R I S T I A N I T Y T O D AY

June 2014

되기

illustration by JAMES O’BRIEN


렇다면 나는 왜 이런 이야기를 강단에서 하

할 수도 있기 때문에 더욱 위험하다. (성경 말

나는 모호한 이야기를 못하게 막고 싶다.

면 안 된다고 말하는 것일까?

씀의 의미를 이해하는 데 전혀 도움을 주지 않은 이야

구체적인 설명이 부족하면 모호해진다. 이

기들 가운데서 우리가 기억하고 있는 것은 얼마나 되

런 식이다. “돈을 어마어마하게 벌어들인

다. 이미 누구나 이 이야기를 알고 있다. 그

는가?) 게다가

전체적으로 인간에게 초점을

한 남자가 있었습니다. 그는 도움이 필요한

래서 ‘사랑이 짐을 가볍게 해 준다’는 진리

맞추고 있는 이야기는 설교보다는 맥주 광

한 가족을 알게 되어 그들을 도왔습니다.

에 대한 깊은 이해와는 관련 없는 많은 패

고에서 더 효과를 발휘한다. 그런 이야기는

그들을 도움으로써 그는 하나님의 사랑을

러디들이 만들어지고 있다. 나는 학생들에

우리를 하나님께 이끌지도 않을뿐더러 복

보여 주었습니다.”

게 두 번씩이나 들어 본 이야기를 써먹으려

음의 소망을 주지도 않는다.

우리 삼촌의 반응이 첫 단서를 제공해 준

여기에 이야기를 약간 더 지어 보탠다면,

한다면 좋지 않을 거라 경고한다. 오늘날

예화가 모든 것을 다 해주는 것은 아니

듣는 이들에게 훨씬 많은 도움이 될 것이다.

좋은 이야기들이 마치 바이러스처럼 퍼져

다. 좋은 설교는 다양한 방식으로 일상의

“존은 작년에 보너스와 스톡옵션을 합해 총

나가고 있으며 우리 모두 그런 이야기들에

여러 사례들을 연결 지어 이야기할 것이다.

65만 달러를 벌었습니다. 그와 그의 아내

바로바로 접근할 수 있기 때문에, 설교자들

그러나 설교에서 사용하는 소재들은 성경

베티의 연간 생활비는 8만 달러에 불과했기

의 고충은 물론 더 가중되고 있다. 그런 이

말씀의 의미를 깨우쳐 주어야 하며, 모호하

때문에 그는 무척 기분이 좋았습니다. 존은

야기들은 설교자들이 비틀어 각색을 해야

게 만들어서는 안 된다. 그리고 우리가 함

누군가를 도와줄 수 없을까 생각하기 시작

만 효과를 거둘 수 있다.

께해야 할 분은 바로 언제나 하나님이심을

했습니다. 존과 베티는 자비로운 마음으로

분명하게 전달해야 한다.

계획을 세워 남에게 베풂으로써 하나님의

다소 미묘한 어려움이 있지만 누구에게 나 공통된 것이 있는데, 그것은 바로 도덕주 의와 죄의식이다. 그렇다. 사랑은 짐을 가 볍게 해 준다. 하지만 가장 사랑이 넘치는

마거리트 슈스터 풀러신학교 설교학 교수. “원죄라는 풀리지 않은 수수께끼” 필자(CTK 2013:6 ‘글로벌 가스 펠 프로젝트’)

능력 이상으로 몰아 부치기도 한다. 충분한 사랑을 가지고 있으면 안고 있는 문제들이

리차드 알렌 파머

대부분의 이야기

하게 막고 싶다. 내 친구 목사 중 하나는 늘 정치나 시사 이야기만 한다. 조화롭고 균형 잡힌 삶을 보여주려면 문학과 예술, 스포츠, 군대, 연예, 비즈니스 등을 모두 다루어야 한다.

수월해 보일 거라는 투의 설교는 그에게 필 요하지 않다. 예수님은 ‘내 멍에는 쉽고 내 짐은 가볍다’고 말씀하셨지만, 또한 제자들

나는 한 가지 장르에만 국한된 예화도 못 스포츠에 관련된 예화만 든다. 다른 친구는

사람조차 짐의 무게에 눌려 녹초가 될 수도 있다. 말하자면 가족 부양 같은 것이 그를

사랑을 드러냈습니다.”

내가 설교하고 있는 대상의 문화에 적합 떤 설교 예화를 금지해야 할까? 거의 모두! 우리 복음을 선포하

전에 한국에서 설교하고 있을 때였다. 나

교자들은 세심한 균형감각을 갖고, 자만에

하지 않은 예화도 못하게 막고 싶다. 몇 년

는 사람들에게 예화란 ‘설교의

는 우리가 갖고 싶은 집에 살고 꿈꾸던 차

빠지거나 자신에게만 몰입해 있는 사람들

창’이라고들 한다. 예화는 우리가 전하려는

를 몰게 되더라도 예수님과 함께 하지 않는

에게는 적절한 도전을 주고, 힘에 겨워 무너

요점을 밝혀주고 이해를 돕는 역할을 하고,

다면 빈곤한 인생일 뿐이라 말했다. 그런데

져 가는 사람들에게는 위로를 베풀어야 한

겉으로 잘 이해되지 않는 의미가 예화를 통

나중에 나를 초청했던 선교사가 이르기를

다.

해서 분명해진다고들 한다.

내 설교를 듣고 있던 대학생들 대부분이 차

에게 자기 십자가를 지라고 요구하셨다. 설

어떤 예화는 성경의 의미를 밝혀주기보

우리는 “옛날에 한 소년이 살았는데”식의

를 가져본 적이 없다고 했다. 부유한 서구

다는 듣는 이들의 마음을 짓눌러 그늘지게

이야기를 걸러내 줄 여과 장치가 필요하다.

국가들에서는 부담 없이 이해될 수 있는 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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VIEWS

해돈 로빈슨

이야기 자체가 목적인 이야기

갖고 있다는 것을 알기 때문이지 설교 내용 의 요점을 밝히 보여주려는 의도 때문은 아 니다. 주일 예배를 마치고 돌아갈 때, 교인 들은 그 설���에서 좋은 느낌을 갖게 될지

례가 서울에서는 잘 통하지 않았던 것이다. 자연법칙이나 상식에 어긋나는 예화도

교에서 예화는 피와 같다. 예화

모른다. 왜냐하면 자기네 목사가 자유주의

는 평범한 진리를 담고 있지만

적 언론을 좋아하지 않는다는 것을 확인했

설교를 특별하게 만든다.

기 때문이다.

나는 막고 싶다. “육중한 18세기 배가 그 소

예화illustration라는 말은 “어떤 주제에 빛

나는 성경 말씀을 연구할 때, 적어도 두

녀들이 빠져 사라진 바다 위 바로 그 지점

을 던지다”라는 뜻이다. 효과적인 예화는

단계를 거친다. 첫째 ‘이 말씀이 의미하는

에 멈추었다. 그리고 그들은 눈물지으며 다

관객이 무대 위의 배우를 잘 볼 수 있도록

바가 무엇인가’라고 묻는 것이고, 둘째 ‘오

음과 같은 시를 지었다.” 18세기의 배가 바

해 주는 각광footlight과 같다. 그런데 각광을

늘날 우리 삶에 이 말씀을 어떻게 적용할

다 한 가운데에서 어떤 지점을 정확히 찾

관객의 눈에 비추면 그들은 눈이 부셔 무대

수 있을까’라고 묻는 것이다. 첫 번째 단계

아낸다는 것은 비현실적이다. 회중 가운데

위를 제대로 볼 수 없게 된다. 이야기 자체

에서 내가 드는 예화는 주로 지성에 호소하

GPS를 사용하고 있는 사람이라면 그 예화

가 목적인 이야기는 오락거리나 심심풀이

고, 두 번째 단계에서 드는 예화는 전인격

를 터무니없는 소리라고 치부할 것이다. 나

는 될 수 있지만, 설교 시간에 전달하고자

whole person과 관련된다. 당신이 설교자라면,

는 “전설에 따르면” “사람들이 믿어 오기

하는 진리에 빛을 던져주지 못하는 이야기

당신은 앞에서 일곱 번째 줄 끝 좌석에 앉아

를” “거룩한 상상 가운데서 내가 본 이야기

는 “예화”가 아니라 그저 이야기일 뿐이다.

있는 어떤 사람이 지금 이 진리를 필요로 하

는”과 같은 식으로 시작하는 이야기도 조심

그런 이야기는 결국 설교를 방해한다. 사

는 상황에 처해 있다고 생각할 수 있어야 한

한다.

실, 이야기가 더 흥미로울수록 그런 경향이

다. 그 상황을 머릿속에 그려보라. 구체적

증가된다.

으로 그려보라. 그리고 사람들이 농담을 주

나는 성차별적인 예화도 막고 싶다. 나는 설교자들이 이렇게 말하는 것을 들은 적이

다니엘의 용기에 관해 말하는 설교자가

고받을 때처럼, 그렇게 기쁘게 말하라. 또

있다. “자! 여자분들은 쇼핑하는 걸 좋아합

<뉴욕 타임스>에서 일하는 열정적 그리스

는, 사람들이 비극적 사건에 대해 말할 때처

니다. 그렇죠?” 그러고는, 여자들이 소비하

도인 기자를 사례로 들어 말한다고 하자.

럼, 그렇게 진지하게 말하라.

길 좋아한다거나 남편들이 기다리는 동안

그 기자는 자기의 영향력을 이용해서 전통

설교자는 예화를 통해 많은 도움을 얻을

얼마나 많은 시간을 쇼핑에 사용하는지 떠

적 신앙인들이 좋아하는 이야기를 신문에

수 있다. 사람들이 성경을 삶에 적용할 수

들어댄다. 남자들은 쇼핑을 하지 않는가?

싣는다. 그렇게 함으로써 그는 굉장한 곤경

있도록 할 수 있고 추상적인 말씀을 구체적

우리 남자들은 다른 종류의 물건을 쇼핑할

에 처하게 된다. 왜냐하면 그의 동료 대부

으로 보여줄 수 있다. 사람들을 흔들어 그

뿐이다. 남자들도 다들 자기가 좋아하는 물

분은 자유주의적인 엘리트일 것이기 때문

들로 하여금 어려운 진리에 더욱 마음을 열

건을 둘러보며 시간을 보내지 않는가? 나도

이다. 그의 동료들은 그를 조롱하고 더 나

수 있도록 할 수도 있다. 사람들을 웃고 울

남자지만 어떤 설교자가 이렇게 말하면 불

아가 그를 신뢰하지 않을 것이다. 그와 함

릴 수도 있고 성경의 가르침을 이해하고 받

편함을 느낀다. “여자분들, 결혼을 해서 집

께 일하는 많은 사람들은 너무 바빠서 구주

아들일 수 있게 할 수도 있다. 하지만 이야

을 살 수 있게 되면…” 그 설교자는 마치 여

를 찬양하는 그리스도인들을 위해 시간을

기는 그 자체가 목적이 아니다. 이야기는

자들이 남편의 도움 없이는 집도 살 수 없

할애할 겨를이 없다.

전하고자 하는 성경적 진리를 밝혀줄 수 있

이 예화에서 문제는 이야기가 정확하지

는 것처럼 말한다. 이제 설명은 충분히 한 것 같다. 결론은

않다는 것이다. 원래 이야기에는 전혀 없었

이것이다. 설교 시간에 들은 예화들로 인해

던 세부사항들이 꾸며들게 된다. 또 다른

하나님 말씀의 진정한 의미가 왜곡되거나

문제는 비록 그 기자가 용기 있는 사람이라

사람들을 그 의미로부터 멀어지게 해서는

하더라도 그것은 다니엘이 보여줬던 용기

안 될 것이다.

와는 다르다는 것이다.

리차드 알렌 파머 조지아 주 스톤마운튼 크로스로드 장 로교회 담임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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결국, 설교자가 이 예화를 든 이유는 듣는 사람들이 자유주의적 언론에 대한 반감을

을 때만 의미가 있다. 해돈 로빈슨 고든콘웰신학교 설교학 교수

Marguerite Shuster, Richard Allen Farmer, Haddon Robinson, “What sermon illustrations should be banned from pulpits?” CT 2014:6 남승호 옮김


왜 내게 이런 일이 악과 부조리, 그에 따르는 말할 수 없는 고통 앞에서 우리는 어떻게 할 것인가 오스 기니스

럴드 시처는 대학교수이며 그의 가족은 미국의 노스웨스트에 살았다. 여섯 식구가 짐

을 챙겨 할머니와 함께 아이다호의 인디언 보호구역을 향해 출발하던 날은 그야말로 지 극히 평온했다. 시처 가족은 아이들을 가정에서 교육시켰다. 그리고 아메리카 인디언의

문화를 배우는 순서가 되자, 그들은 아이들을 아메리카 인디언 보호구역으로 데려가서 그곳에서 직접 인디언의 주술의식을 보여주기로 결정했다. 제럴드의 어머니까지 여행에 적극적으로 가담하 고 나서자, 가족들은 여느 때보다도 마음이 들떴다. 이들은 생생한 체험학습을 하게 되리라는 기대 감에 부풀었다. 모든 일은 계획대로 잘 진행되었다. 그날 저녁 식사시간에 시처 가족은 인디언 부족의 지도자들 과 더불어 대화를 나눌 기회를 갖게 되었다. 그들은 인디언들의 계획과 그들 사회가 직면한 문제(예 생각 나눔

를 들면, ‘알코올중독’)에 대해 대화를 주고받았다. 저녁식사를 마친 시처 가족은 이윽고

인디언 주술의식을 관람하기 위해 체육관을 향해 걸어갔다. 그리고 그곳에서 인디언 지도자의 곁에 앉아 의식을 감상했다. 인디언 지도자는 인디언 춤과 춤을 출 때 입는 복장에 대해 설명해 주었다. 긴 하루일정을 마친 시처 가족은 이제 미니밴으로 돌아와 집을 향해 출발했다. 하 루 종일 현장학습을 하느라 모두들 피곤했지만 마음만은 참으로 행복했다. 그런데 10분 뒤에 그들의 운명은 영원히 바뀌고 말았다. 술에 취한 운전자가 시속 140킬로미터 의 속도로 중앙선을 넘어 시처 가족의 미니밴을 정면으로 덮쳤기 때문이다. 그 음주운전자의 곁에 는 임신한 아내가 함께 타고 있었다. 제럴드는 고통이 엄습해 오는 것을 느꼈다. 그의 정신은 멍했 고 숨을 제대로 쉴 수조차 없었다. 하지만 그는 간신히 고개를 돌려 나머지 가족들의 상황을 살폈 다. 살아 있는 자녀들의 얼굴에는 공포감이 짙게 감돌았고, 주변은 그야말로 아수라장이었다. 그의 아내와 네 살 된 어린 딸 그리고 그의 어머니가 죽어가고 있었으며, 생존한 나머지 자녀들은 다친 상처와 충격으로 반쯤 넋이 나간 상태였다. 제럴드는 속수무책으로 아내와 딸과 어머니가 눈앞에 서 죽어 가는 모습을 지켜봐야 했다. 그의 가족 삼대가 불과 몇 분 만에 생명을 잃고 만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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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시의 순간이 제럴드 시처의 뇌리에 영원히 각인되었다. 번쩍

더 바빴어도 엄마는 죽지 않았을 거예요”라고 말했다.

이는 불빛, 현장을 에워싼 응급차들, 명령을 내리는 소리, 머리 위를

“만일 그랬더라면”이라는 생각을 하는 이유는 마음을 달래기 위

나는 헬리콥터 소음, 살아남은 자녀들의 울부짖음 등 사고현장은

해서다. 만일 그들이 주술의식을 2분만 더 관람했더라면, 만일 그

공포와 혼란의 도가니 그 자체였다. 하지만 이미 숨이 막힐 듯한 고

들이 자동차 연료를 조금만 더 천천히 주입했더라면, 만일 상대편

뇌가 엄습하면서 이제는 모든 것이 달라지고 말았다는 두려운 생각

운전자가 맥주를 한 잔만 덜 마셨거나 한 잔 더 마시기 위해 술집에

이 그의 마음을 사로잡았다. 그가 알고 있던 예전의 가족은 잊혀진

조금만 더 있었더라면 등, 조금이라도 마음에 위안이 느껴질 때까

이야기가 되고 말았다. 단 1분 만에 세상이 온통 변해버린 것이다.

지 가능한 모든 생각을 떠올려보는 것이 인간의 심리다. 하지만 현

1분은 얼마만한 길이의 시간인가? 1분이란 시간은 고작 햄버거 를 한 입 베어 먹거나 교향곡의 첫 소절을 들을 수 있는 시간, 또는

실로 되돌아와 이미 일어난 사태를 자각하는 즉시 “왜 내가 이런 일 을 당해야 하는가?”라는 본능적인 물음이 되살아난다.

책 한 페이지를 읽을 수 있는 시간이거나 낯선 사람의 첫인상을 잠

민주주의 시대를 살아가는 현대인들은 자유를 매우 소중히 여긴

시 훑어볼 시간에 불과하다. 하지만 그 1분이 한 가족의 삶을 영원

다. 하지만 불행을 당했을 때는 자유에 대한 필요보다 질서에 대한

히 바꾸어 놓았다. 고통과 고난을 당하는 순간은 행복을 느끼는 순

필요가 훨씬 더 근본적인 욕구로 떠오른다. 인간이 무정부 상태에

간보다 훨씬 더 길게 느껴진다.

서 혼란스런 삶을 살기보다 차라리 독재정권을 선택하는 이유가 바 로 여기에 있다. 질서가 없는 삶은 그야말로 감당하기 어렵기에, 인

삶에 대한 신뢰

간은 삶의 안전과 세상의 의미를 느끼게 해줄 질서를 필요로 한다.

시처 가족의 이야기에서처럼 개인의 삶을 산산이 부서뜨리고 극심

우리는 개인이나 사회는 물론, 우주 안에서도 질서를 발견하고 싶

한 고통을 느끼게 하는 불행한 일들은 수없이 일어난다. 인생을 살

어 한다.

다보면 누구라도 그런 순간을 맞을 수 있다. 아무 생각 없이 줄곧

이렇듯, 삶 또는 세상에 대한 신뢰는 일상생활을 영위하는 데 반

행복하게 살아오다가 느닷없이 단 한 순간에 모든 것이 영원히 변

드시 필요하다. 저명한 사회학자 피터 버거는 “한밤중에 어린아이

하고 마는 것이다.

가 울면 엄마는 즉시 ‘아무 일도 없단다. 안심하거라’ 하고 달래준

불행을 당했을 때 가장 먼저 떠오르는 것은 ‘만일 그랬더라면…’

다. 이런 점에서 엄마는 질서와 보호를 가져다주는 여사제와 같다”

이라는 후회다. 불행을 당한 사람들은 끔찍했던 순간을 떠올릴 때

고 말했다. 엄마는 “혼돈을 내어 쫓고 질서 있는 세상을 회복하는

마다 그와 같은 아쉬움과 탄식을 느끼게 된다. 치명적인 사고에서

힘”을 가진다. 왕이나 대통령은 물론이거니와 부모 역시 세상을 건

다행히 목숨을 건진 사람들은 “그런 일이 없었더라면” 또는 “그것

설하고 보호하는 역할을 감당한다. 이와 같은 신뢰는 진리에 근거

이 사실이 아니었다면” 하는 생각에 시달린다. 시처 가족은 사고가

할 수도 있고 환상이나 투사된 염원에 근거할 수도 있다. 그리스도

난 지 3년이 지난 후에도 여전히 그런 가능성을 곱씹곤 했다. 살아

인이든 유대인이든, 이슬람 신자든 불교신자든 또는 무신론자든 누

남은 아들은 “아빠, 내가 인디언 주술의식이 끝난 뒤에 화장실에만

구나 부모가 될 수 있다. 또한 각자 자신의 종교에 따라 신뢰의 의

갔다 왔어도 엄마가 아직 살아 계실 거예요. 그날, 아빠가 조금만

미를 설명해 줄 것이다. 하지만 피터 버거는 종교의 차이와 상관없 이 인간의 경험을 관통하는 메시지는 똑같다고 지적한다. 그에 따 르면, “모든 것이 괜찮다. 모든 것이 질서가 있다”는 말은 “존재를

왜 하필 나인가? 어째서 내게 이런 일이 일어났는가? 때로는 분노에 못 이겨, 때로는 자기연민이나 절망감에 사로잡혀 우리는 이와 같은 질문들을 던지곤 한다. 하지만 이 런 질문에는 악과 고통으로 인해 질서가 깨 진 것에 대한 항변의 의미가 담겨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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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뢰한다”는 의미라고 한다. 하지만 악은 정확히 이러한 질서의식을 무너뜨린다. 삶에 질서 가 있다고 생각하는 순간에 곧 무질서로 변하고 마는 것이다. 불행 이 닥치는 찰나, 견고한 바닥이 갈라져 밑이 보이지 않는 심연이 아 가리를 벌리고 우호적으로 생각했던 삶이 얼굴을 정면으로 가격한 다. 아우슈비츠 생존자 장 아메리는「생각의 한계에서」At the Mind’s Limits를 통해 “경찰에게 구타당한 그 사람이 인간의 존엄성을 상실

했는지는 잘 모르겠다. 하지만 첫 번째 주먹을 얻어맞는 순간, 그는 틀림없이 무엇인가를 잃어버렸다. 그것은 바로 ‘세상에 대한 신뢰’


였다”고 말했다.

람들이 꽃다운 나이에 죽어 가는 일도 허다하다. 하지만 다른 이들

왜 하필 나인가? 어째서 내게 이런 일이 일어났는가? 이런 일을

이 불행을 겪는 모습은 여전히 추상적이다. 그러다가 우리가 직접

당할 만한 일을 내가 했던가? 때로는 분노에 못 이겨, 때로는 자기

불공평한 일을 당하면 그때서야 모든 것이 구체적으로 변한다. 우

연민이나 절망감에 사로잡혀 우리는 이와 같은 질문들을 던지곤 한

리는 스스로의 불행에 매우 민감하기 때문에 다른 사람이 나서서

다. 하지만 이런 질문에는 악과 고통으로 인해 질서가 깨진 것에 대

인생의 불공평함을 굳이 지적해 줄 필요가 없다.

한 항변의 의미가 담겨 있다. 마치 코르크 마개뽑이처럼, “왜 나인 가?”라는 물음은 마음의 저변에 존재하는 삶에 대한 배신감을 밖으 로 끌어낸다.

무질서에 대한 두려움

“왜 나인가?”라는 질문의 저변에는 궁극적인 혼란과 무질서에 대

처음에는 우리 자신이 상황을 올바로 통제하지 못했다는 자책감

한 두려움이 깔려 있다. “아마도 우주는 우리의 고향이 아닐 거야.

이 피어오른다. 현대 사회의 약속 가운데에는 통제와 선택이 포함

우리의 부르짖음에 귀를 막고 우리의 안전을 위협하는 우주는 부당

되어 있다. 탄생과 죽음과 성별은 우리가 통제할 수 없지만, 그 외

해. 삶은 죽음의 룰렛게임인지도 몰라”와 같은 생각들이 우리를 엄

의 것들은 얼마든지 통제가 가능하다. 예를 들면 교육, 직업, 배우

습한다. 제럴드 시처는 가족을 잃은 자동차 사고를 겪고 난 후에 불

자, 친구, 가정, 휴가, 자동차, 취미활동, 은퇴 등이 그러하다. 이런

안과 전율과 같은 용어를 습관적으로 사용했다. 그는 아내와 함께

것들은 우리가 선택하거나 통제할 수 있으며, 최소한 그렇게 할 수

지역신문에 실린 사고소식을 이야기했던 일을 떠올렸다. 그것은

있다고 믿는다.

한 주부가 몰던 자동차가 도로를 벗어나면서 그녀의 여섯 자녀 가

그러나 한 순간 재난과 질병, 죽음이 그런 믿음을 산산이 부서뜨 리면 인생의 대부분이 통제불능으로 변하고 마는 것이다.

“왜 나인가?”라는 질문은 인생의 부조리를 향한 항변이다. 우리

운데 셋이 목숨을 잃고 만 사건이었다. 시처는 아내와의 대화를 회 상하며 “우리는 그러한 맹목적인 비극 앞에서 두려움으로 몸을 떨 었다”고 말했다.

는 스스로가 완전하다고 믿지도 않으며, 또 결함이 없다고 생각하

문제는 무고한 사람이 불행을 당하는 것만이 아니다. “불행은 닥

지도 않는다. 우리는 대개 우리 자신을 잘 알고 있기 때문에 우리의

치는 대로 일어난다”는 것 또한 명백한 현실이다. 사고는 예측할

공로에 따라 우리를 심판해 달라고 요구할 자신이 없다. “왜 나인

수 없다. 희생자들은 사고를 대비할 수 없다. 삶은 어려운 것만이

가?”라는 물음은 우리 자신이 아니라 세상과 삶, 곧 그 둘에 대한 우

아니라 부당하고, 두려울 정도로 부조리하다. 더욱이 불행한 일을

리의 신뢰와 관련되어 있다.

겪은 후에는 더 이상 아무것도 신뢰할 수 없다.

게임을 하며 속임수에 넘어가는 바람에 속이 상한 어린아이에

군인들과 참전용사들은 그와 같은 공포를 잘 알고 있다. 셋이서

서부터 법정 소송을 제기한 분노한 원고나 중요한 명분을 위해 격

똑같은 전투를 치르더라도 한 사람은 죽고, 또 한 사람은 부상을 당

렬히 항의하는 사람에 이르기까지 이들의 주장에는 한결같이 본능

하고, 나머지 한 사람은 무사하다. 레오폴도 갈티에리 장군은 아르

적인 욕구, 곧 정의와 공평함을 요구하는 욕구가 담겨 있다. 정의를

헨티나 군사정권의 지도자로 활동하던 시절에 한 교도소를 방문했

요구하는 대상은 하나님이나 전통 또는 경제적인 이익이나 권리가

다. 그는 그곳에서 여러 달 동안 고문을 당하던 어느 여성 죄수에게

될 수 있다. 하지만 함축된 의도는 언제나 한결같다. 곧, 삶이 공평

“내가 살려주라고 하면 너는 살고, 내가 죽이라면 너는 죽는다. 공

하다면 보상받을 사람이 보상을 받고 벌을 받을 사람이 벌을 받아

교롭게도 너는 나의 딸과 세례명이 같다. 그러니 살려주마”라고 말

야 한다는 것이다. 삶이 터무니없이 불공평할 경우에 우리는 심각

했다.

한 피해를 당했다고 생각한다.

저격수의 공격을 받은 도시의 시민들도 재난의 맹목성을 잘 알

분명히 보상은 있어야 한다. 우리는 완전하지 못하고, 또 복수를

고 있다. 오늘은 총알이 이곳에 날아들고, 내일은 저곳에 날아든다.

목표로 하지도 않는다. 하지만 우리에게는 권리가 있다. 어떤 명분

저격수가 다음번에는 누구를 향해 총알을 발사할지 아무도 알지 못

이나 그 누구의 의지도 우리에게 부당한 삶을 강요할 수 없다. 때로

한다. 하지만 언제라도 누군가는 희생자가 되기 마련이다. 희생자

는 분한 마음에서, 때로는 단순한 넋두리로 “왜 나인가?”라는 물음

가 되는 이유는 그 시간, 그 장소에 있었기 때문이다. 불행을 당하

을 제기하지만, 그 마음에는 우주를 향한 법률적인 항변을 제기하

게 된 데는 그들의 잘못이 전혀 없다. 2001년 9월 11일에 세계무역

고 싶은 심정이 담겨있다. 물론 우리는 무고한 사람들이 고통을 당

센터를 우연히 방문했던 사람들이나, 1945년 8월 6일에 히로시마

하고 사악한 자들이 번영을 누린다는 사실을 잘 알고 있다. 착한 사

에 있던 사람들이나, 나치가 점령한 유럽에서 유대인으로 태어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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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들이나, 1755년에 파리나 마드리드가 아니라 리스본을 방문했

의 참상은 그야말로 끔찍했다. 도무지 감사할 상황이 아니었다. 레

던 사람들도 모두 마찬가지다.

비는 “내가 만일 하나님이었다면 기도하는 쿤에게 침을 뱉어주었

어린아이들은 잘못하다 다치면 종종 사물에 책임을 전가한다.

을 것이다”라고 말했다.

예를 들어, 어린아이들은 “이 놈의 의자 때문이야”라고 말한다. 그

이처럼 불행 앞에서 우리는 “왜 나인가?”와 “왜 나는 아닌가?”라

와는 달리, 성인들은 살면서 겪는 일을 모두 이런 식으로 치부해 버

는 의문을 가질 수밖에 없다. 어떤 사람은 불행을 당하고 어떤 사람

리지 않는다. 하지만 아무리 성숙한 사람이라도 고통을 겪게 되면

은 불행을 모면하는 현실이 마치 우주의 로또복권과 같다는 인상을

그런 사실을 종종 잊어버린다. 불행한 일이 일어나면 우리는 우주

준다. 운이 좋은 승자에게는 한없이 다행스러운 노릇이지만, 질병

가 나에게 그런 불행을 안겨준 이유를 알고 싶어 한다. 자신의 잘못

이나 비극이나 악에 의해 희생된 사람들에게는 터무니없이 부당한

과는 전혀 상관없이 부모를 잘못 만나서, 피부색을 잘못 타고나서,

일이 아닐 수 없다.

또는 불행한 시대에 불행한 나라에 태어나서 고통을 겪는 경우도 무수하다.

무심한 세상

“왜 나인가?”라는 의문은 세상이 나의 불행과는 상관없이 여전히 불행을 모면한 이유

잘 굴러간다는 사실을 깨닫는 순간 더욱더 증폭된다. 그래서는 안

물론, 불행을 모면한 경우에도 “왜 나만 살아남았는가?”라는 고민

될 것 같은 세상은 우리의 불행에 너무나 무심하다. 불행은 마치 계

에 휩싸일 수 있다. 허난성 기근으로 나의 두 형제는 목숨을 잃었는

속해서 고통을 안겨주어 아무 생각도 하지 못하게 만드는 상처와

데 나는 살아남았다. 9.11 테러로 거의 70명이나 되는 동료들이 목

같다. 엄지손가락 하나를 망치로 잘못 내려치거나 발가락 하나를

숨을 잃었는데 내 친구는 유독 혼자만 안전하게 몸을 피할 수 있었

돌부리에 채이면 온 몸으로 통증이 전해지듯이, 우리가 불행을 당

다. 알렉산드르 솔제니친은 수백만 명이 죽어 가는 강제수용소에

하면 온 세상에 관심을 기울여줄 것 같은데 현실을 그렇지 않다. 아

서 살아남았을 뿐 아니라 수술조차 불가능한 암에 걸렸음에도 목

픔이 크면 클수록 세상이 알아주기를 바라는 마음도 더욱 커진다.

숨을 잃지 않았다. 어떤 유대인은 아우슈비츠에 도착한 열차의 오

누구라도 자신이 상처를 입으면 당연히 모든 사람이 관심을 기울여

른편으로 내려 수용소에 들어갔다가 목숨을 건졌고, 어떤 유대인은

주어야 한다는 생각을 갖기 마련이다. 그런 관심을 기울여주지 않

열차의 왼편으로 내려 곧장 가스실에서 목숨을 잃었다.

는 사람은 인간성이 결여된 사람이라는 것이 우리의 생각이다.

아베 모데스테 신부는 르완다 인종학살 이후에 “생존자 모두가 자기가 목숨을 건진 이유를 궁금해한다”고 말하기도 했다.

하지만 대부분의 사람들은 우리의 불행에 아무런 관심이 없다. 그 이유는 그들이 무정하기 때문이 아니라 우리의 사정을 알지 못

정신과의사 로버트 제이 리프턴 역시 히로시마의 생존자들에 관

하거나 우리가 관심을 기대한다고 생각하지 못하기 때문이다. 오

해 이렇게 말했다. “운이 좋았다고 생각하든 나쁘다고 생각하든 또

든은 피터 브뢰겔의 16세기 작품 <이카로스의 추락이 있는 풍경>

는 착해서 살아남았다고 생각하든 그렇지 않든, 생존자들은 자신들

Landscape with the Fall of Icarus을

이 목숨을 건지게 된 이유가 알 수 없는 운명의 손길 때문이라는 생

지었다. 그는 고통에 관한 옛 대가들의 생각이 틀리지 않다고 언급

각을 가지고 있었다.”

하면서 “다른 사람들이 음식을 먹고, 창문을 열고, 아무 생각 없이

감상하고 나서 ‘예술 박물관’이란 시를

다른 사람들이 모두 죽은 상황에서 혼자만 살아남은 것은 이기

길을 걷는 동안에/ 어떻게 불행은 찾아오는지 알고 있었네”라는 시

적이고 수치스런 일일까? 죄책감을 느껴야 할까? 아니면 은혜로 알

구로 인간의 삶에서 고통이 차지하는 위치를 정확히 간파했던 옛

고 감사해야 할까? 내 경우에는 일생동안 감사하는 마음으로 살아

대가들의 안목을 노래했다.

왔다. 처칠도 자신의 운명을 궁금하게 여기면서 “내가 항상 죽음의

이웃집에서는 텔레비전에서 코미디쇼를 시청하면서 한바탕 웃

문턱에서 목숨을 건질 수 있었던 이유는 바로 이런 일을 하라는 뜻

음을 터뜨리는데, 한 가정은 가족의 임종을 지켜보며 눈물짓는다.

이 아니겠는가?”라고 말했다.

한 중년신사가 명예퇴직을 위해 마지막 출근한 사무실에서 짐을 챙

이와는 대조적으로 프리모 레비는「이것이 인간인가?」Survival in Auschwitz에서

기는 동안, 바깥 거리에서는 사람들이 아무 일도 없다는 듯이 느릿

그날에 가스실 처형자 명단에서 제외된 것을 하나님

느릿 걸어 다닌다. 한 사람은 고문을 당해 두들겨 맞아 입에서 핏물

께 큰 소리로 감사하던 한 유대인을 소개했다. 레비는 분노의 어조

을 내뱉는데, 경찰서 바로 옆 건물 카페에서는 두 사람이 와인 잔을

로 “그는 그렇게도 생각이 모자랐는가?”라고 물었다. 아우슈비츠

기울이며 서로의 눈을 다정하게 바라보고 있다. 세상은 아무 일 없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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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사람은 고문을 당해 두들겨 맞아 입에서 핏 물을 내뱉는데, 경찰서 바로 옆 건물 카페에서 는 두 사람이 와인 잔을 기울이며 서로의 눈을 다 정하게 바라보고 있다. 세상은 아무 일 없다는 듯이 잘도 굴러간다.

다는 듯이 잘도 굴러간다. 고통 받는 자의 외침은 한갓 허공을 가르

내 친구가 일전에 그녀에게 사랑을 베푸는 활동을 하면서 가장

는 메아리에 불과하다. 고통도 부족하다는 듯 깊은 외로움이 밀려

슬펐던 경우와 가장 기뻤던 경우를 말해달라고 요청했다. 그녀는

온다.

“가장 슬펐던 경우라구요?”라고 되묻고 나서 잠시 생각하더니, 수

철학자 시몬느 베유는 외로움도 실질적인 고통에 못지않은 고통 을 안겨준다고 말했다. 그녀는 “아무도 고통을 알아주지 않는다.…

단 정부가 후원하는 군인들에 의해 무참하게 유린된 딩카족 마을을 방문했을 때였던 것 같다고 대답했다.

고통은 희생자의 인격을 빼앗아 그를 사물로 만들어 버린다. 고통

딩카족 마을에는 죽음의 악취가 진동했다. 백여 구가 넘는 시체

은 무관심하다. 금속처럼 차가운 무관심이 영혼 깊숙한 곳까지 꽁

가 잔인하게 살육된 채 곳곳에 널려져 있었다. 남자와 여자는 물론

꽁 얼어붙게 만든다. 희생자의 영혼은 결코 다시 따뜻해지지 않는

심지어 어린아이와 가축까지 토막이 나거나 노예로 사로잡혀 북쪽

다. 그는 자신이 인간이라고는 더 이상 생각하지 않는다”고 말했다.

으로 운반되었다. 짚으로 만든 오두막집은 화염에 휩싸였고, 난도

“왜 나인가?”라는 생각에는 이와 같은 의미가 담겨 있다. 누구도

질당한 시체들이 여기저기 뒹굴었다. 황폐함과 죽음이 온 마을을

불행으로부터 자유롭지 않다. 인생이나 세상은 안전하지 않다. 세

뒤덮은 상태였다. 더욱 끔찍했던 것은 피에 굶주린 잔인한 민병대

상이나 사람들로부터 어떤 고통을 당하게 될지 아무도 모른다. 누

(북부에서 온 무슬림 근본주의자들)가 칼라슈니코프 기관총과 무장 헬리

구라도 고통을 당할 수 있다. 모두가 죽는다. 하지만 “왜 나인가?”

콥터를 이끌고 돌아와 인근지역 마을을 다시 한 번 무참하게 살육

라는 부르짖음은 계속될 것이다.

했던 일이었다. 콕스 남작은 “‘인종학살’은 너무 자주 사용되는 용 어입니다. 하지만 내게 그 말은 언제나 현실 그 자체였습니다”라

한 가지 희망

고 대답했다.

캐롤라인 콕스 남작은 “전쟁난민을 위한 마더 테레사”로 불린다.

그러면 가장 기뻤던 경우는 언제였을까? 그녀는 가장 슬펐던 일

간호사이자 과학자인 그녀는 영국 하원의 부대변인으로 활동하면

을 겪은 직후에 가장 기뻤던 일이 있었다고 대답했다. 침략자들이

서 절망에 빠진 수많은 세계인들에게 “행동하는 사랑”을 보여주며

잔혹한 흔적을 남기고 떠난 뒤에 살아남은 여자들 몇 명이 있었다.

잊혀진 자들의 목소리를 대변하고 있다. 그녀는 전쟁의 희생자(팔다

그들의 남편들은 살해되었고, 자녀들은 노예로 잡혀갔고, 집은 폐

리가 잘렸거나 강간을 당한 자들, 또는 가족이 강도를 당했거나 살해되었거나 노예

허로 변했고, 그들 자신도 잔혹하게 강간당했다. 하지만 그들은 함

로 잡혀간 사람들)라면 인종, 종교, 피부색에 아랑곳하지 않고 양식과

께 모여서 막대기를 이용해 땅바닥에 여러 개의 십자가를 만든 다

의복과 의약품을 공급한다. 그녀가 현장에 도착하면 사람들은 “당

음, 그것들을 땅속에 박아 넣었다.

신이 와주셔서 하나님께 감사합니다. 우리는 세상이 우리를 잊었 다고 생각했습니다”라는 말로 그녀를 맞이하곤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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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들은 무엇을 하고 있었던 것일까? 그것은 죽은 자들의 넋을 기 리기 위한 행동이었을까? 아니다. 콕스 남작의 설명에 따르면, 그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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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만든 십자가는 무덤의 표식이 아니라 상징이었다. 여인들이 비 틀거리는 몸으로 가슴에 피눈물을 흘리면서 땅속에 십자가를 박아 넣은 것은 신앙의 행위였다. 아프리카 북동부 지역의 기독교 신자

다지게 되었노라”고 말했다. 하지만 정작 그래야 할 때가 다가오자 이 모든 문장들은 그저 공 허한 메아리에 그치고 말았다.

들은 자신들이 고통을 알듯이 하나님도 고통을 아신다고 믿는다.

윌리엄 제퍼슨 클린턴은 부시 대통령의 보스니아 정책을 비난하

여인들은 주체할 수 없는 고통을 느끼면서 세상은 자신들의 고통을

면서 “우리가 홀로코스트를 통해 배운 교훈이 있다면, 인종학살 앞

알지 못하고 또 아무런 관심을 기울이지 않지만, 자신들의 고통을

에서 침묵만을 지킨 채 속수무책으로 일관하는 태도인 것 같다”고

알고 염려하시는 하나님이 계신다는 ���신을 잃지 않았다. 그들은

말했다.

혼자가 아니었다.

하지만 그 자신도 르완다 학살사건이 일어나는 동안 아무런 대 책도 마련하지 못한 채 침묵으로 일관했다. 나만은 악을 저지르지 말자

“결코 다시는…결코 다시는…결코 다시는…결코 다시는.” 짙은 안개에 배가 난파되지 않도록 도와주는 등대의 사이렌처 럼, 20세기의 온갖 잔혹한 사건들을 거치는 동안 인류가 난파를 모 면할 수 있도록 “결코 다시는”이라는 단조로운 소리가 이따금 울려 퍼졌다. 이 말보다 더 엄숙한 기도나 더 긴박한 경고는 없었다. 하 지만 이 말보다 더 자주, 더 쉽게 일상적으로 깨어진 엄숙한 염원도 없었다.

빌 클린턴 대통령은 1993년에 미국 홀로코스트 기념 박물관 완 공 기념식상에서 “범죄에 대한 우리의 단편적인 의식이 점차 확고 한 사실로 굳어지면서 그 동안의 대응책이 너무 미흡했음이 드러났 다. 우리는 그런 일이 다시 일어나게 해서는 안 된다”고 말했다. 하지만 바로 그 이듬해 그의 대응책 역시 미흡하기는 마찬가지 였다. 엘리 위젤은「오늘의 유대인」에서 “또 다른 홀로코스트가 가능 할까? 나는 학생들에게 종종 그런 질문을 던지곤 했다. 그러면 학생

헨리 모건도는 1918년에 아르메니아 인종학살에 관한 책을 내면

들은 대부분 ‘그럴 수 있다’고 대답했다. 하지만 나는 ‘그럴 수 없다’

서 “계몽된 미국인들의 보편적인 견해, 곧 약소국의 권리가 존중되

고 대답했다. 홀로코스트는 규모로나 차원으로나 독특한 사건이었

어야 하고, 이 책에 언급된 범죄행위와 같은 일들이 다시는 인류의

다. 때문에 홀로코스트는 앞으로 영원히 그 사건으로 남게 될 것이

역사를 어둡게 만들도록 방치하지 않겠다고 다짐하는 미국인들의

다. 나는 학생들에게 세계는 교훈을 깨달았다고 설명했다.…하지

대변자 우드로 윌슨에게 이 책을 바친다”라고 말했다.

만 나의 판단은 잘못되었다. 한번 일어났던 일은 언제라도 다시 일 어날 수 있었다”고 말했다.

하지만 그런 일이 또 일어났다. 1979년, 지미 카터 대통령은 대통령 직속 홀로코스트 진상조사

1958년, 프리모 레비는「이것이 인간인가?」에서 “이 세상에 한

위원회로부터 최종보고를 받고 난 뒤에 나치의 유대인 학살을 떠올

가지 확실한 것이 있다면, 우리에게 두 번 다시 그런 일이 일어나지

리며 “결코 다시는 세계가 침묵하지 않을 것이며, 그런 끔찍한 인종

않을 것이라는 사실이다”라고 말했다.

학살 사건이 재발되지 않도록 제때에 신속한 조처를 취하겠다는 사

하지만 그는 그로부터 28년 후에 저술한「익사자와 생존자」 에서

실을 온 문명 세계의 시민들과 더불어 굳게 맹세해야 한다”고 천명

“그런 사건은 과거에 일어났기 때문에 다시 일어날 수 있다. 이것

했다.

이 우리가 말하고자 하는 핵심이다. 그런 사건은 언제 어디서든 다 시 일어날 수 있다”고 말했다.

하지만 그런 일은 또 일어났다. 로널드 레이건 대통령은 1984년에 개최된 브나이 브리스B'nai

인간의 악한 성향에 맞서 싸우는 것이 오늘날보다 더 긴급하게

Brith[ 유대인 문화교육 촉진협회] 회의에서 한 연설에서 “나도 여러분들과

느껴지는 때는 일찍이 없었다. 우리 앞에는 부끄러운 과거의 기록

같이 똑바른 목소리로 ‘결코 다시는’이라고 말하고 싶습니다”라고

이 남아 있다. 우리는 더 이상 모른다고 발뺌할 수 없다. 우리는 더

말했다.

이상 무지를 내세우며 무책임한 태도를 취할 수 없다. 그동안 무고

하지만 여전히 그런 일이 재발되었다.

한 자들의 호소는 철저히 외면당했다. 제2차 세계대전 이후 매번

조지 부시 대통령은 1991년 로스앤젤레스에서 개최된 시몬 비

악이 모습을 드러낼 때마다 세상 사람들은 어떤 사건이 일어나고

젠탈 만찬회장에 참석한 사람들에게 “제2차 세계대전 참전용사이

있는지를 뻔히 알면서도 고개를 돌려 외면했다. 상상할 수도 없고,

자 미국인이요, 현재는 미국 대통령의 신분으로” 말한다면서 아우

믿을 수도 없는 일이 쉽게 믿을 수 있는 일상이 되고 말았다. 몇몇

슈비츠를 방문하고 나서 “단지 기억에 그치지 않고 행동의 결의를

예외적인 소수를 제외하고는 모두가 방관자의 입장을 취해 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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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수주의자든 자유주의자든, 수동적인 동료 시민들이든 능동적인 정부든, 악의 현실을 외면하기는 마찬가지였다. 지금까지 1억 명 이상의 인명이 무참히 살해되었다. 그런데도 우리는 늘 강 건너 불 구경하는 듯한 태도를 취해왔다. 25년 동안 소련의 교도소에 수감되어 있다가 풀려난 한 에스토 니아 반체제 인사는 유일한 생존자인 자신의 누이 집에 몸을 의탁 할 수밖에 없는 처지였다. 그녀는 석방된 그를 자동차에 태우고 집 으로 가는 도중에 가족들에게 그가 경험했던 일을 일체 알리지 말 고, 또 정치적인 문제를 가족들의 삶에 끌어들이지 말라고 당부했 다. 누이의 말에 깜짝 놀란 그는 당장 차를 세우라고 말한 뒤에 밖 으로 내리면서 “누이도 나를 모르고 나도 누이를 모르는 사이로 지 내는 것이 좋겠어. 잘 가”라고 말했다. 소설가 밀란 쿤데라는 “권력에 대한 인간의 저항은 망각에 맞선 기억의 투쟁이다”라고 썼다. 하지만 우리의 문제는 단지 정신적인 기억의 차원이 아닌 도덕적인 차원에 속한다. 지난 세기를 지나는

른 것은 동물의 세계가 아닌, 바로 인간들의 특징이다.

동안 유감스럽게도 세상 사람들은 악의 현실에 대해 매우 무관심하

과연 무엇이 문제의 본질일까? 무지인가, 그릇된 성장과정인가,

고 냉담했다. 한 저술가는 “‘결코 다시는’이라는 말을 ‘독일인들이

부적절한 교육인가, 아니면 불완전한 정치제도인가? 포스트모던

1940년대에 유럽에서 유대인들을 결코 다시 살해하지 않을 것이

철학자 리처드 로티의 충고대로, “정신을 차리고 다시 한 번 시도해

다’라는 의미로 정의하는 것이 마땅한 듯하다”는 풍자로 그런 세상

보는 것”으로 충분할까? 아니면, 문제가 더 악화될까? 또는, 철학자

사람들의 태도를 비꼬았다.

이사야 벌린이 인간성의 “왜곡된 성질”이라고 일컬은 것에 대한 종 교적인 답변을 다시 한 번 면밀히 훑어봐야 할까? 이성과 신앙

존 메이너드 케인스는「두 가지 회고록」Two Memoirs에서 “인간의

이런 비통한 이야기를 통해 우리는 무슨 교훈을 배울 수 있을까? 악

본성에 대한 건전한 분석”에 근거하지 않았다는 이유로 버틀란트

의 거대한 현실에 비추어 볼 때 “교훈”이라는 진지한 용어를 사용

러셀의 인생관을 “취약하다”고 비판했다. 다시 말해, 러셀은 계몽

하는 것이 적합할 듯 싶다. 물론, 인간의 대답은 항상 악의 현실에

주의의 근거 없는 낙관주의가 빚어낸 희생자였다.

비해 너무나 초라하기만 하다. 하지만 적절한 용어 사용은 말로 표 현하기 어려운 주제를 인식하기 위한 첫 단계다.

얄팍한 도회적인 견해 또한 격렬한 정치적 이데올로기 못지않게 유토피아적인 특성을 띨 수 있다. 1959년에「안네 프랭크의 일기」

개인적으로 적용할 수 있는 세 가지 교훈을 제시하면 다음과 같다.

가 영화로 제작되었을 때, 안네가 집단수용소의 죄수복을 입고 안

첫째, 우리는 인간성의 본질을 옳게 파악하고, 우리의 마음과 세

개 속을 헤매는 모습을 찍은 마지막 장면이 “관객이 소화하기에 너

상에 악이 존재한다는 사실을 분명히 의식해야 한다. 아우슈비츠

무 힘든 인상을 준다”는 이유로 삭제되었다. 실제 당사자인 안네는

에서부터 아부그라이브 교도소에 이르기까지 악을 저지른 사람들

“혼란, 불행, 죽음으로 구성된 토대 위에 나의 희망을 건설할 수는

은 바로 우리와 똑같은 인간이다. 지난 세기가 우리에게 가르치는

없다”고 말했다. 그러나 영화는 “모든 것에도 불구하고 나는 여전

교훈은 인간의 악한 성향을 무시한 채 인간의 본성을 무조건 낙관

히 사람들의 마음에 선이 존재한다고 믿는다”는 말로 결론을 맺었

적으로만 바라봐서는 안 된다는 것이다.

다(물론, 안네가 그런 말을 한 것은 사실이지만, 그것은 시련의 초창기에 했던 말이

인간에게는 위대한 측면이 많지만, 결코 완전무결하지는 않다.

었다).

인간은 항상 동료 인간의 선을 구하지 않는다. 오히려, 다른 사람들

인간의 마음에 선이 존재할까? 그렇다고 과감하게 주장할 수 있

을 해하려고 의도할 때가 많다. 때로 우리는 억제할 수 없는 증오를

을까? 아니면, 인간의 마음은 얼룩말처럼 흑과 백으로 구성되어 있

느끼기도 하고, 타인을 지배하며 잔인한 행위를 저지르고 싶은 부

을까? 그렇다면, 흑색의 본질은 무엇이며, 또 그것의 기원은 어디에

끄러운 충동에 사로잡히기도 한다. 니체가 “잔인함의 축제”라고 부

있을까? 우리 마음에 존재하는 악은 무지의 산물일까, 아니면 마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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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우리의 삶을 관리하는 청지기다. 우리 모두는 재능과 은사를 최대한 발휘하고, 각자 의 일터에서 최선을 다하며, 우리의 영향력 이 미치는 범위 내에서 변화의 주역이 되어 야 할 책임이 있다. 우리는 고난 받는 이웃을 돕기 위해 최선을 다해야 하고, 그들의 고통을 달래주고 그들을 압제하는 악에 맞서 싸워 야 한다.

이며, 또한 방관자이다. 인간은 그런 세 종류의 면모를 동시에 드러 낸다”고 말했다. 우리의 이웃

둘째, 우리는 우리 시대의 악에 대해 각자 어떻게 대응해야 할지를 생각해야 한다. 혹독한 시련을 겪고 있는 미얀마나 수단처럼 세계 도처에 악의 폭풍우가 몰아치고 있는데, 선진국에 살고 있는 우리 가 온갖 특권과 편안함을 만끽하는 것이 과연 옳은 일일까? 말로만 연민의 정을 표할 뿐, 힘이 미치지 않는다는 이유를 내세워 꽁무니 를 빼는 것이 과연 정당할까? 또는, 허구적인 종말론 시나리오에나 관심을 기울이며, 세계 종말에 대한 사변을 늘어놓으며, 그저 두렵 다는 생각을 가지고 사는 것으로 족할까? 아무리 이상주의를 부르 짖고 선행을 실천해도 소용이 없다는 이유로 우리의 나태한 삶을 정당화해야 할까? 에마뉘엘 레비나스는 지난 20세기를 돌아보며 우리 모두에게 다 음과 같은 질문을 제기했다. “약한 자와 정복된 자들에게는 고통만 을 안겨주고 오로지 정복자들만을 보호하는 맹목적인 세력을 정치 적인 불운이나 우연의 탓으로 돌린 채 언제까지 무관심한 태도로 세상을 무의미한 고난에 귀속시킬 생각인가? 이제는 약한 자들도 마땅히 정복자의 반열에 합류해야 한다.” 나는 그리스도를 믿는 신자로서 우리 각자가 세상에서 하나님 의 소명을 이루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우리는 우리의 삶을 관리하 는 청지기다. 우리 모두는 재능과 은사를 최대한 발휘하고, 각자의 일터에서 최선을 다하며, 우리의 영향력이 미치는 범위 내에서 변 화의 주역이 되어야 할 책임이 있다. 우리는 고난 받는 이웃을 돕기 위해 최선을 다해야 하고, 그들의 고통을 달래주고 그들을 압제하 는 악에 맞서 싸워야 한다. 우리는 주어진 역량 안에서 책임을 다해야 한다. 누구도 혼자서

은 중립상태인데 잘못된 선택에 의해 나타나는 결과일까? 또는, 죄

세계를 구원할 수는 없다. 그렇게 하려고 시도하는 순간, 절망에 부

와 같은 것이 실제로 존재하기 때문에 문제가 더 심각해지는 것은

딪칠 뿐이다. 우리의 영향력에는 뚜렷한 한계가 존재한다. 또한, 사

아닐까? 인간의 악을 심각하게 고려하지 않았다면, 어떻게 인간의

람마다 제각기 능력이 다르다. 하지만 능력이 많든 적든, 각자 주어

본성을 진지하게 이해하려고 노력했다고 주장할 수 있겠는가?

진 위치에서 최선을 다해야 한다. 각자가 책임 있는 삶을 살며 또

나치 집단수용소 생존자들은 한결같이 악의 보편성을 의식했다 고 주장했다. 이들 생존자는 가해자와 피해자를 똑같은 도덕적인

서로 영향을 주고받을 때, 우리가 만들어내는 파장이 더 넓게 멀리 까지 퍼져나갈 수 있다.

선상에 올려놓고 평가하려는 시도에 대해 크게 분노하며 반발할 것

단지 일 대 일로 도움을 베푸는 것보다 서로 힘을 합치면 더 많은

이 틀림없다. 하지만 인간의 본성 자체를 놓고 생각하면 문제는 달

사람을 도울 수 있다. 굳이 고통의 현장을 찾아가지 않아도 얼마든

라진다. 솔제니친은 “선과 악을 구분하는 선이 모든 인간의 마음을

지 도움을 베풀 수 있는 길이 존재한다. 물질로 도움을 베풀기 어려

관통한다”고 말했다. 또한 엘리 위젤은 아우슈비츠 이후에 깊은 성

우면 편지를 쓸 수도 있고, 투표를 통해 올바른 정책을 지지할 수도

찰을 통해, “깊이 들여다보면…인간은 가해자일 뿐 아니라 피해자

있다. 영향력을 행사할 수 있는 방법은 다양하다. 직접적인 만남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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통해 시간과 물질을 제공하기 어려운 상황에서도 우리는 기도를 통 해 얼마든지 도움을 베풀 수 있다.

을 포기한 사람들의 숫자를 상회한다”고 말했다. 약한 불꽃이 작은 미풍에 쉽게 꺼져 버리듯이, 약한 신앙은 악과

내가 알기로는 이와 같은 삶의 태도만이 “항상 기꺼이 도움을 베

고통의 현실에 부딪치는 순간 곧 생명력을 잃고 만다. 하지만 참 신

풀 준비가 되어 있었다”는 르 샹봉 사람들과 “하지만 나를 통해서

앙은 강한 불꽃과도 같아서 폭풍우가 몰아닥치면 더욱더 거센 불길

는 그런 일이 없도록 하자”는 솔제니친의 말과 “우리 모두가 모두

이 되어 치솟아 오른다.

에게 책임을 지고 모두 앞에서 모든 사람을 위해 살도록 하자”는 도

소크라테스는 “검증되지 않은 삶은 살 가치가 없다”고 말했다.

스토예프스키의 말에 부응할 수 있다. 다른 사람들이 어떻게 하든

에피쿠로스는 좀더 강한 어조로 “시련을 겪어보지 않은 삶은 살 가

지, 또 어떤 반대에 부딪치든지, 어떤 희생이 따르든지 개의치 말고

치가 없다”고 말했다. 악과 고통의 현실을 경험하는 것이 우리의

“나를 통해서는 그런 일이 없도록 하자”라는 생각을 가지고 각자

운명이라면, 악이든 고통이든 “무신론의 바위덩이”가 되도록 방치

주어진 위치에서 최선을 다해야 한다.

할 필요는 없다. 오히려 우리는 악과 고통을 검증된 삶을 위한 도전 으로 받아들이고, 시련을 통해 단련된 믿음의 능력으로 좀더 가치

바람과 불

있는 삶을 이끌어 나가야 한다.

셋째, 각자 악과 고통의 현실을 이해하고 그에 대응할 수 있는 신앙,

검증되지 않은 삶은 참으로 살 가치가 없을까? 소크라테스의 주

곧 삶의 원리로 삼을 수 있는 신앙을 선택해야 한다(이는 세 가지 교훈 가

장은 많은 사람의 양심에 가책을 불러일으킬 것이 틀림없다. 사실,

운데 가장 중요하다). 현대 사회만큼 악이 강력하고 노골적이고 파괴적

그의 말을 지키는 사람보다 입으로만 논하는 이들이 훨씬 많다. 하

인 힘을 발휘했던 시대는 일찍이 없었다. 또한 악을 묘사하고 그것

지만 조금이라도 깊이 생각하고 세상의 고통에 관심을 기울인다면

에 저항할 수 있는 도덕적인 의지를 설명하는 논리가 오늘날처럼 불

얼마든지 검증된 삶을 살아갈 수 있다. 생각하고 반성하는 사람은

확실하고 혼란스러웠던 적도 없었다. 뿐만 아니라 “검증된 삶”의 가

검증된 삶을 필요로 한다. 악의 현실은 다른 여러 가지 신비 가운데

능성에 대한 공개적인 논의를 가로막는 지성적인 편견이 오늘날처

하나이거나, 또는 다른 여러 가지 시련 가운데 하나가 아니다. 악은

럼 강했던 적도 일찍이 없었다. 이런 상황에서 “악의 승리를 보장하

다른 모든 시련과 신비를 판단할 수 있는 궁극적인 시련이자 가장

는 유일한 조건은 양식 있는 사람들이 아무런 행동도 취하지 않는

심원한 신비다.

것이다”라는 에드먼드 버크의 말은 참으로 적절하지 않을 수 없다.

이성이 무너졌기 때문에 마치 목발에 의지하듯이 신앙에나 의존

이제는 악을 바라보는 현대적인 관점이 우리를 어디로 이끌어왔

하자는 뜻에서 이런 말을 하는 것은 아니다. 이성은 오랫동안 힘든

는지를 진지하게 반성해야 할 때가 되었다. 인간의 악한 성향이 변

탐구를 계속해 왔지만 결국 그 한계를 드러내고 말았다. 우리는 이

하지 않은 상태에서 기술문명의 발전이 계속된다면 위험한 결과가

성이 멈춘 그곳에서부터 오직 믿음만이 제공할 수 있는 대답을 찾

초래될 것은 불을 보듯 뻔하다. 세속주의자들은 자신들의 사상으

아 나가야 한다. 오직 그런 신앙만이 신비스런 악의 공포 앞에서 그

로 다른 신앙이나 신념을 대체했다. 하지만 그들의 신념은 과거의

정체를 이해할 수 있는 참된 진리와 그것에 맞서 싸울 수 있는 용기

신념이나 전통에 비해 훨씬 더 무기력하다는 것이 드러났다. 이제

와 고통을 겪는 사람들을 향한 진실한 사랑과 악과 증오와 압제와

는 지난날의 실패를 거울삼아 오랫동안 외면해 온 과거의 신념들을

눈물을 초월한 세상에 대한 희망을 가져다 줄 수 있다.

다시 생각해 볼 때가 된 듯하다. 그렇다면 악은 신앙을 깨부수는 “무신론의 바위덩이”이며, “아

항상 그러하듯이, 선택은 우리의 몫이다. 그리고 선택에 따라 결 과도 달라진다.

우슈비츠 이후, 하나님은 존재할 수 없다”는 말은 과연 타당할까? 아니, 결코 그렇지 않다. 그런 식의 주장을 펴는 사람들은 오히려 아우슈비츠를 경험하지 못한 사람들이다. 아우슈비츠를 경험한 빅 토르 프랭클은「삶의 궁극적인 의미를 찾아서」Man’s Search for Ultimate Meaning에서

자신의 경험에 근거해 악의 현실이 오히려 강한 신앙

을 갖게 한다고 주장했다. 그는 “아우슈비츠를 경험한 사람들 가운 데는 종교적인 믿음이 더욱 깊어진 이들이 많다. 물론 꼭 그런 경험 때문이라고 말할 수는 없겠지만, 믿음을 가진 자들의 숫자가 믿음

오스 기니스Os Guinness 세계적인 기독교 변증가이자 사회비평가다. 허드슨 테일러의 동역자로 영국에 남아 중국내지선교회를 후원한 헨리 기니스의 증손자로, 제2차 세계 대전 중에 중국에서 태어나 어린시절을 보내다가 1951년 중국 공산당에 의해 추방되 었다. 고든 맥도날드와 함께 트리니티 포럼을 설립했으며,「소명」 「도전받는 현대 기 독교」 「회의하는 용기」 등 다수의 저서가 있다. 이 글은「오스 기니스, 고통 앞에 서 다」Unspeakable : Facing Up to the Challenge of Evil의 일부를 역간 출판사인 생명의말 씀사의 허락을 얻어 간추려 엮은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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형편없는 아빠의 고백 온전한 아버지의 소망을 포기할 수 없는 이유

피터 친

은 아빠가 되는 것쯤이야 문제없다고 자신했던 시절이 있었다. 그러던 내

가 어쩌면 형편없는 아빠가 될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하게 된 날이 지금도 생생히 떠오른다. 그날 나는 두 살배기 첫아이의 손톱을 깎다가 그만 손톱

아래 살점까지 함께 잘라 버리고 말았다. 아이의 손가락 끝에서 붉은 피가 흘렀다. 어찌해야 할 줄 모르던 나는 소리를 지르며 아이를 와락 들쳐 안고 욕실로 달려가 아 이의 손가락에 반창고를 감고 또 감으면서 미안하다는 말을 하염없이 되풀이했다(영 유아기 아이들의 손톱 깎는 일보다 어려운 일이 있다면 아이들 손가락에 맞는 반창고를 생각 나눔

찾아 붙여 주는 일이리라. 아이를 키워 본 부모라면 누구나 선뜻 동의할 것이다).

그런데 정작 아이는 왜 내가 미안하다고 하는지 이해하지 못하는 눈치였다. 솔직 히 말해, 아이는 무슨 사고가 있었는지조차 모르는 듯했다. 젊은 시절에 나는 완벽한 아빠가 되기에 충분한 자질이 내 안에 있다고 생각했다. 교회에서 귀여운 아기들을 보면 다가가 기쁘게 보듬어 주었고 중고등부 교역자로 삼 년간을 섬긴 터였다. 나는 준비된 아빠였던 셈이다. 그러다가 첫 아이가 태어났다. 내가 좋은 아빠가 아닐 수 있다는 사실이 분명해지기 시작한 건 그때부터였다.

DOUG FLEENE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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손톱 깎기 사고 이후로도 나의 육아 기 술을 의심해야 하는 일들이 적지 않았다. 네 명의 아이들에게 주의를 기울이기보다

고는 생각하지 않는다. 그렇게밖에 할 수 없다고 생각했다. 하지 만 그것은 오산이었다.

에 대해 이러한 사고방식을 적용한다고 해 도 이상할 것이 조금도 없다. 놀이터와 학교 복도에서 활약하는 아버 지들을 관찰하면서 나의 이러한 믿음은 견

는 훨씬 중요하고 심오한 일, 이를테면 하루 에 열 번씩 페이스북 상태를 확인하는 일에

좋은 아빠는 태어나는 것인가?

고해졌다. 이들 훌륭한 아버지들은 자녀들

정신이 팔리곤 했다. 그 결과는 ‘쿵, 쿵, 쿵,

최고의 아버지들은 원래 그렇게 태어나는

과 소통할 줄 알 뿐만 아니라 자신의 감정

쾅!’ 그리고 이어지는 울음소리. 모든 형편

거라는 생각을 나는 전부터 가지고 있었다.

을 조절할 줄도 알며 스마트폰은 항상 주머

없는 부모가 아는 바, 아이가 계단에서 뒹

유전적 요인이든, 양육 과정의 요인이든, 또

니에 넣어 두었으며, 영유아기 아이들 양육

굴다가 마침내 바닥에 머리를 찧는 소리다.

는 그 둘이 합쳐진 결과 때문이든 훌륭한

과정에서 겪게 마련인 위기 상황에 처해서

나는 아이들이 칭얼댄다고, 말을 안 듣는다

아버지의 품성은 애초부터 타고 나든지 말

도 당황하는 법이 없었다. 초짜 아빠는 거

고, 그것도 아니면 못마땅하게 군다는 이유

든지 하는 것이라고 보았다. 만일 좋은 아

인과도 같은 훌륭한 아빠들을 보고 이런 결

로 성을 냈다. 아이의 체온이 39도까지 치

버지의 특성을 타고 나지 못했다면, 약간

론을 내렸다. 이런 아버지들이야말로 애초

솟은 줄도 모른 채 자세가 흐트러졌다고 아

의 개선 정도는 가능하겠으나 아버지 역할

부터 내게 없던 무언가를 갖고 태어난 사내

이들 타박만 하기도 했다.

에서 괄목할 만한 성장을 기대할 수는 없는

들인 게 분명하다. 그렇지 않고서야 그들과

것이다.

나 사이에 자리한 이 거대한 심연을 달리

육아 기술도 부족했지만 그 과정에서 드 러난 좀 더 중요한 문제는 나의 태도였다.

이런 생각을 갖게 된 데는 몇 가지 이유

너그럽게 말해 “조급함”이라고 할 수 있겠

가 있었다. 우선, 우리 인생에서 유전에 의

으나 많은 경우 “속좁음”이라 하는 편이 좀

해 확정되는 면이 크다는 갈수록 분명해지

더 정확할 나의 태도. 나는 아이들에게 바

는 사실이 있다. 신체적 특징, 특정한 병에

른 태도를 깨우쳐 주기보다는 잘못을 들춰

취약한 유전적 소인, 심지어는 성격의 요소

내기 바빴다. 좋은 습관을 익히게 하기보다

까지 유전적 요인의 지배를 받는다. 육아

는 벌을 주는 편이었다. 아직 배우는 과정

기술도 이와 비슷한 방식으로 유전된다

중에 있는 어린아이가 아닌 작은 어른인 양

고 보아도 이상할 게 없다. 둘째, 흔히 남

아이들을 대했던 것이다. 그런 식으로 행동

성 정체성의 핵심으로 제시되는 직업에

할 때마다 나는 내가 정말 형편없는 아빠임

대해 얘기할 때 가장 중요한 요소로 간

을 더욱 확신하게 되었다. 지금도 스스로에

주되는 것은 소질이다. 우리는 타고난 적

대한 그러한 평가가 전적으로 잘못되었다

성에 맞는 직업을 찾아야 한다. 부모 역할

한 손에는 맥주병, 다른 한 손에는 티브이 리모컨을 들고 하 루 종일 소파에 기대 앉아 있는 아버지에게 도대체 무엇을 더 기대할 수 있단 말인가. 훌륭한 아버지로 성장할 수도 있었던 나의 소양들은 이런 생각들로 인해 힘을 잃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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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명할 방법이 없었다.


무엇보다도 좋은 아버지가 되려면 자기

서 목격한 정형화된 아버지상이다. 나는 드

터 그리핀 같은 아버지들을 보면서 자랐다.

자신을 바꿔 나가야 한다는 생각을 하지 못

라마 ‘못 말리는 번디 가족’의 앨 번디, ‘심슨

이들 아버지들은 하나같이 어설프고 행동

하게 만든 장본인들이 있는데, 내가 자라면

네 가족들’의 호머 심슨, ‘패밀리 가이’의 피

하기를 죽기보다 싫어할 뿐 아니라 항상 어 딘가에 정신을 빼놓고 다니며 가족사에는 일절 관심이 없다. 형편없는 아버지상이 정 상적인 것인 양 내 속에 각인되었고, 애초 에 아버지 역할에 무능하게 태어났다면 어 떻게 해볼 도리가 없다는 인상이 심어졌다. 그들은 더 나은 아버지가 될 가능성이 털 끝만큼도 보이지 않았을 뿐 아니라 굳이 더 나은 아버지가 되어야 할 필요도 없는 이들 이었다. 한 손에는 맥주병, 다른 한 손에는 티브이 리모컨을 들고 하루 종일 소파에 기 대 앉아 있는 아버지에게 도대체 무엇을 더 기대할 수 있단 말인가. 훌륭한 아버지로 성장할 수도 있었던 나 의 소양들은 이런 생각들로 인해 힘을 잃었 다. 아버지 역할에 실패할 때마다 그것은 좋은 아버지가 될 소질이 나에게 없음을 확 증해 주는 반박할 수 없는 증거처럼 보였 다. 만화에서 섭취한 정형화된 아버지상은 좋은 아버지가 되고자 하는 마음의 싹을 잘 라 버릴 뿐이었다. 결국 나는 체념하고 나 의 숙명을 받아들이기로 했다. 기껏해야 좋 지도 나쁘지도 않은 평범한 아빠가 되기로 한 것이다. 완벽한 아빠가 될 운명이 아니 라면 애써 봤자 무슨 소용이 있겠는가? 하지만 이 지점에서 우리는 스스로를 향 해 이런 질문을 던져 볼 수 있다. “예수께서 는 완벽한 구주로 태어나셨는가?” 히브리 서 2:10은 구원의 창시자이신 예수께서 고 난을 통하여 온전하게 되셨다고 증언한다. 이런 서술은 예수께서 어떤 면에서 불완전 하다거나 죄가 있으시다는 암시를 줌으로 써 신학적으로 긴장을 유발할 수 있다. 하 지만 이 구절이 의미하는 바는 그런 게 아 니다. 여기에 사용된 “온전함”이라는 단어 는 도덕적 완벽함을 뜻하지 않는다. 히브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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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 4장에서 저자는 예수께서 모든 면에서

의 참상을 보여주는 궁극적 상징과도 같은

시험을 받으시되 영원히 죄는 없으시다고

죽음을 대면하셨다.

말함으로써 이 점을 분명히 한다. 그렇다면

그분이 겪으신 이 모든 일이 보여주는 것

도덕적 의미가 아니라면 예수께서 온전하

은 단지 십자가에서 이루신 놀라운 사역, 곧

게 되셨다는 말은 무슨 의미인가?

예수께서 우리와 하늘 아버지 사이의 관계

그리고 이 말씀은 우리 불완전한 부모들

를 회복하신 영적인 구주가 되신다는 사실 만은 아니다. 그와 함께 그분은 우리를 이

에게 어떤 의미를 갖는가? 부모 역할 계발하기

‘온전하다’는 단어를 들을 때 우리는 흔 히 형용사 형태를 떠올린다. “흠 없는” 다 이아몬드나 완벽한 공연처럼 말이다. 그러 나 히브리서의 이 단락에서 “온전하다” 라는 말은 ‘텔레이오오’teleioo라는 그리스어 단어로서, 완벽해질 때까지 계속해서 완성해 간다 는 의미를 담고 있다. 이 단어 를 이렇게 이해할 때 이 구절은 예 수께 도덕적으로 불완전한 면이 있었다 는 뜻이 아니라 우리를 위한 그 분의 사역이 시간의 흐름과 그분의 행함을 통해 점 점 더 완성되고 온전해졌다는

그분의 경험과 고통을 통

뜻이 된다.

해 더욱더 깊어지고 풍성 해졌다. 그리하여 결국에는

예수의 사역

우리로 하여금 그분을 구주뿐

이 더 온전해졌다

아니라 친구로도 부를 수 있게 하

는 게 어떻게 가능한 가? 예수의 삶에 있었던

신 것이다.

사건들을 잠시 떠올려 보자.

이러한 사실은 우리를 위한 그리스

그분은 요셉과 마리아의 가

도의 사역을 좀더 분명하고 깊게 이해

정에서 아이로 여러 해를

하도록 해준다. 그러나 그와 함께

사셨다. 그 후에 광야로

이 사실이 우리에게 일깨워 주는 것

가서 원수와 대면하셨고, 영광과 재산, 편안

해하시는 친구이며 우리의 마음을 아시는

이 있는데 바로 우리 자신의 성화와 성장의

함의 시험을 받으셨으나 싸워 이기셨다. 또

격려자이며 우리의 편에 서시는 변호자도

필요성이다. 우리를 위한 그리스도의 사역

한 사랑하는 이들이 겪는 고통과 거절과 배

되신다. 예수께서는 인간으로 살아가면서

이 시간의 흐름과 경험을 통해 온전하게 되

반으로 인해 슬퍼하셨다. 그리고 마지막으

이 모든 역할을 감당하셨던 것이다. 우리

었다면, 마찬가지로 모든 사람에게도 성장

로 그분은 하늘 아버지로부터 단절된 인간

를 위한 예수의 사역은 시간의 흐름 속에서

하고 성숙해질 여지를 남겨 두어야 할 것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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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 우리의 자녀들에게 아버지가 되어야 하

아이들을 집으로 데려왔고, 밤마다 잠자리

좋지도 나쁘지도 않은 평범한 아버지상, 심

는 우리의 사��� 또한 예외가 아니다. 내가

를 봐주었다. 집안일을 익혔고 조금씩 유능

지어는 그도 아닌 엉망진창 아버지상을 받

맨 처음 깨달은 진리가 바로 이것이었다.

한 사람이 되어 갔다.

아들인다. 하지만 진실은 이렇다. 좋은 아

아이들을 대하는 태도 또한 개선되었다.

버지는 태어나는 것이 아니라 힘겨운 일들

더 나은 아빠 되기

함께 많은 시간을 지내면서 아이들의 성격

을 겪으면서 정련과 단련의 과정을 통해 만

결혼하고 7년째 되는 해, 아내 캐롤이 삼중

과 특성을 알게 되었다. 큰아이는 동생을

들어지는 것이다. 최고의 아버지는 가족들

음성유방암 진단을 받았다. 현대 의술로 대

즐겁게 해주기를 좋아하고 작은아이는 언

이 원하는 아버지, 하나님이 부르시는 아버

응하기 까다로운 특별한 형태의 악성 종양

니 흉내 내기를 좋아한다. 나는 새로 얻은

지가 되는 법을 배운 아버지다. 그리고 이

이었다. 유방 절제술에 이어서 물리 치료와

아이들인 양 두 딸을 소중히 여겼다. 아이

로 인해, 설령 우리가 훌륭한 아버지의 자질

화학 치료, 방사선 치료를 수개월에 걸쳐 받

들은 예쁘고 소중했으며 그들의 아름다움

을 갖지 못한 채 태어났다 하더라도 시간이

아야 했다. 치료 일정을 알고 나는 여러 면

과 가치를 알고 나니 아내가 암 진단을 받

흐르면서 더 나은 아버지가 될 소망이 아직

에서 절망했다. 특히 아이들 문제가 걱정되

기 전에 보였던 조급증과 짜증 대신 존중심

남아 있는 것이다.

었다. 집에서 아이들을 돌보는 일은 대부분

과 예의를 갖춰 아이들을 대하게 되었다.

내 말을 오해하지 말기 바란다. 지금도

아내가 도맡아 해온 일이었다. 이제 아내는

아내가 치료를 받는 아홉 달 동안 나는 형

나는 부모들이 흔히 범하는 수많은 실수를

치료만으로도 벅찰 것이기에 그 모든 일이

편없는 아빠에서 좋은 아빠로 바뀌었다. 아

저지르고 있다. 그리고 여전히 어느 누구보 다 자주 페이스북을 열어 보곤 한다. 지난 달 우리 집 넷째 아이는 층계에서 굴러 떨

우리를 위한 그리스도의 사역이 시간의 흐름과 경험을 통해 온전하게 되었다면, 마찬가지로 모든 사람에게도 성장하 고 성숙해질 여지를 남겨 두어야 할 것이다

어졌다. 완전한 아빠가 아니어도 괜찮다. 흠 없으 신 분은 하나님 한분뿐이시니 말이다. 아버 지 됨의 목적은 다시는 실수를 범하지 않는 데 있지 않다. 그보다는 우리의 성숙과 성 장에 있다. 자녀를 양육하는 부모 된 우리

내게 떨어질 터였다. 앞으로 일 년이 어떠

니, 좋은 아빠까지는 못되더라도 적어도 이

의 사역은 시간이 흐르고 경험이 쌓일수록

할지 생각하자 몸서리가 쳐졌다. 아내 때문

전보다는 나은 아빠가 되었다. 그리고 그런

점점 더 온전해질 것이다. 그리고 우리에게

만이 아니라 두 딸 때문이었다.

일이 일어나는 데 많은 것이 필요하지는 않

맡겨진 역할이 아무리 도달하기 어려워 보

놀랍게도, 그리고 그동안의 오랜 생각과

았다. 아내가 큰 병에 걸린 사건이 있었을

일지라도 하나님께서 부르셔서 맡기신 일

는 정반대로 나는 차츰차츰 아버지로 성장

뿐이다. 솔직히 말해, 그 일이 아니었다면

이라면 충분히 감당할 수 있고 성장할 수

하고 성숙해 가기 시작했다. 예를 들어, 나

내게 이런 변화가 가능했다고 자신 있게 말

있음을, 우리의 자녀들 또한 우리를 보면서

는 세탁기와 건조기의 수많은 눈금과 단

할 수는 없다.

깨닫고 용기를 얻게 될 것이다.

추, 설정 앞에서 항상 젬병이었다. ‘부드러 운 세탁 요함이라니, 뭘 어쩌란 말이지?’ 하

정련과 단련의 과정을 거치다

지만 아내가 암과 사투를 벌이는 동안 나는

이 시기에 내가 내려놓은 게 있다. 우리 남

세탁기 다루는 법을 익혔고 두 딸의 양말을

자들은 자신이 좋은 아버지가 아니라는 생

구분하는 경지에까지 이르렀다(결코 쉬운 일

각에 지나치게 사로잡혀 있는데, 잘못된 생

이 아니다). 날마다 설거지를 하고 집안을 청

각이지만 때론 정확한 사실이기도 하다. 우

소했다. 아침이면 두 딸아이의 밥상을 차리

리는 아버지다운 성품과 양육 기술을 타고

고 도시락을 싸 주었고, 오후에는 하교하는

나지 못했다는 이유로 절망하고 체념하여

피터 친 아내와 네 명의 자녀와 함께 워싱턴에 살고 있 다. 첫 책「하나님의 기습」이 2015년 출간될 예정이다. 홈페이지(peterwchin.com)와 트위터(@peterwchin)에서 그의 소식을 들을 수 있다. Peter Chin, “Confessions Of a Bad Dad” CT 2014:6 박명 준 옮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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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EAD DERS SH I P 커버스토리

리더십

50 비통한이들과함께하며내는소음 커버스토리

54 감항능력을갖춘영혼 흐름과 움직임

58 우리가따를리더 어디서찾을것인가 ,

설교자를 위한 인문학

60 공감의기술

“하나님은 나에게 경고하시고 명령하셨다. 일주일에 하루, 너는 쉬어야 한다. 영적 무게 중심을 유지하라. 수면 아래에 밸러스트를 두어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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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통한함께하며 이들과

이웃의 비극을 온몸으로 느끼며

내는 소음

데이비드 스완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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커버스토리

고백과뉘우침은 우리의개인적이고사사로운 일들을위해서만챙겨놓았을 뿐이다 우리는애통함을 피해다녔다 아마도애통함이 우리를압도하여마비시킬 것을두려워했기 때문일것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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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제일의살인도시” 작년 미국연방수사국 이 살인사건 수에서 시카고가 뉴욕을 능가했다고 발표하면서 내가 살고 있는 도시가 얻게 된 불명예스런 별칭이다 이렇게 끔찍한 꼬리표가 붙은 도시에서 살아간다는 건 이상한 느낌이다 거의 매 . 일 우리는 직장에 학교에 그리고 교회에 간다 또 다른 청년의 불필요한 죽음을 불러올지 모를 위협은 일상의 기쁨과 분주함에 묻혀 잊어버린다 그러나 이내 전화나 문자 대중매체를통해또다른죽음의소식이전해진다 갑자기 그 또 다른 살인사건에 얽힌 길고도 슬픈 이야기 들이알려지고 이전에발생했던다른사건의사연들과유사하거나색다른세부이 야기들과함께우리도시도알려진다 최근어느토요일 월례기도회를시작하면서교회근처이웃들을방문하고있을 때 한교인이길옆에마련된임시추도소를가리켰다 촛불들이주초에한청년이 총을 맞고 쓰러진 장소를 표시하고 있었다 나는 그 임시 추도소에서 우리가 매주 모여예배를드리는공원구역체육관까지이어진거리를주일인다음날아침에모 여들교인들을상상하며내려다보았다 매주일요일우리는눈에잘띄지는않지만 잊을수없는이장소를지나쳐간다 나무들 놀이터들 교차로들이우리로하여금 죽음을떠올리게한다 교인들중어느누구나고통과상실의순간에직면한다 암선고 지역에서가장 컸던기업의폐업 또다른토네이도의출현 음주운전자의만취운전… 모든교인 들과목사는성경에기초한생각과성령이부어주신용기를갖고이러한순간에대 응해야만 한다 그러나 이렇게 간헐적으로 발생하는 순간들에 직면하는 것과 일상 적으로눈에보이는잔혹성의한가운데살아가는것사이에는명백한차이가있다 비극적현실이우리의살갗을뚫고들어올때우리는어떻게해야할까 FBI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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애통함의 순간들 이스라엘백성도이와유사한질문을던졌다“우리가이방땅에서어찌여호와의노 래를 부를까 ”시 이것은 절망과 절박함이 자아낸 질문이었다 이것은 유배지 에서 눈물로 쏟아낸 질문이었다 시편의 기자들과 선지자들은 이런 질문들을 자주 던졌고가장좋지않은상황속에서우리가신실함을잃지않도록비전을제시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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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이웃에대한사랑과돌봄을실천 하면서 우리 교인들이나 다른 사람들이 겪은 오랜 불평등과 상실을 듣게 되었을 때 나는이스라엘백성이바벨론유배지 에서 있었던 이야기들과 이 노래를 펼쳐 읽었다 여기서나는엄청난상실을겪었 지만 그 엄청난 상실이 자기들의 이야기 의끝이아님을배웠던민족의말과행동 에공감하게되었다 성경은 비극적 순간이 쌓여들기 시작 할때우리로하여금신실함을잃지않도 록 해 주는 말씀을 들려준다 이스라엘 백성들이유배지에서하나님의함께하심 에 의혹이 들었을 때 했던 일은 바로 애 통함이다 잊었던 하나님의 율법을 에스 라가읽었을때그들이했던일이애통함 이다 예루살렘이당한치욕을듣고느헤 미야가 흘렸던 눈물과 금식이 애통함이 다 하만의학살계획을듣자굵은베옷을 입고재를뒤집어쓴채소리높여울부짖 었던모르드개의통곡이애통함이다 슬픔이나 뉘우침과 비슷하지만 애통 함에는‘동질감’이라는중요한요소가더 해진다 모세와 예레미야의 사례들을 들 어 구약학자 존 골딘게이 는 이렇게쓰고있다“당사자의번민 낙심 반대 항의는 중보자의 것이 된다 우리 는그들의입장에서기도한다 마치우리 가 그들이 된 것처럼 ”곧 우리는 고통 받고있는사람들편에서애통해야한다 역사 문화 종교를 공유한 사람들에 게 인격적 동질감이란 자연스러운 것이 었다 그러나 독립성과 자주성을 바라 는우리에게는그와같은동질감은이상 한 것이며 심지어 이해할 수 없는 것이 다 우리 지역사회의 아프리카계 미국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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John Goldinga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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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들 이겪었던지속적인인 종차별에관해듣고나서이렇게말했던 백인 청년이 떠오른다“정말 안됐군요 하지만 당신과 어떻게 그 아픔을 나눌 수 있을지 잘 모르겠네요 ”그의 동정어 린답변은고마웠지만그에게는그의형 제자매들의고통속으로깊게들어갈만 한신학적상상력이부족했던것은명확 했다 그는 애통해 하는 방법을 알지 못 했다 이 진지한 청년은 그 슬픔이 아직 자 신의 것이 아니었기에 어떻게 애통해야 할지 고민했다 우리 자신의 것이 아닌 고통의자리에우리가설수있도록우리 를 가르치는 것 바로 그것이 애통함이 다 예루살렘 성벽이 무너졌다는 소식과 유배지에서 돌아온 사람들이 겪었던 치 욕을들었을때 느헤미야는우리귀에는 이상하게만들리는기도를올렸다“이스 라엘 자손의 주 앞에 범죄함을 자복하오 니…나와 내 아버지의 집이 범죄하여 주 를향하여크게악을행하여주께서주의 종 모세에게 명령하신 계명과 율례와 규 례를지키지아니하였나이다 ”느 느헤미야는 왜 자복하는 것일까 그 리고그는어떻게이전세대의죄를자신 의 죄로 동일시하고 있을까 우리 중 대 부분은 결코 생각지도 못할 기도가 애통 함의 언어에 능숙한 자의 입에서는 자연 스럽게 흘러나온다 느헤미야는 방벽도 없는 도시의 주민들과 공감을 이룰 뿐만 African-America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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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니라 아주 오래 전 유배지로 내몰렸던 자기민족의죄곧배교행위를자신의죄 로동일시할수있었다 따라서하나님의 구원을 소망하는 그의 탄원은 용서와 구 원을 요청하는 기도이기도 했다 이것이 애통함이 나를 위해 하는 일이다 나의 은밀하고 오래된 죄악들이 서서히 드러 나는동안나는다른이들의고통속으로 이끌려들어간다 애통함은오래전나누 어진 사람들을 이어주는 다리의 시작이 다 나와 이웃 나와 하나님 사이의 거리 는짧아진다 비극적 상황에 대한 느헤미야의 대응 은 문화적 거리감이 다소 있을지라도 우 리귀에익숙한무언가가있다 그리스도 안에서 하나님은 당신이 겪으신 것과 크 게다르지않은경험과고통을가진사람 들과 친밀한 동질감을 느끼신다 암탉이 새끼를 날개 아래 모음같이 배교한 예루 살렘을 자신에게 모으려 한 예수님의 실 현되지 않은 소망에서 우리는 거리감을 느낄수없다 우리의 믿음은 우리의 육체와 죄 우 리의 경험과 죽음을 떠안으신 하나님께 초점이 맞추어져 있다 애통함이 요청되 었을 때 이스라엘은 공유하는 역사적 기 억과 민족적 정서에 부분적으로 의존할 수있었다 우리는우리를당신과동일시 하시는 하나님의 구원을 함께 공유한다 는사실에의존한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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슬픔이나뉘우침과비슷하지만, 애통함에는‘동질감’이라는 중요한요소가더해진다. 모세와예레미야의사례들을 들어구약학자존골딘게이는이렇게쓰고있다. “당사자의번민, 낙심, 반대, 항의는중보자의것이된다. 우리는그들의입장에서기도한다. 마치우리가그들이된 것처럼.”곧, 우리는고통받고있는사람들편에서 애통해야한다. 애통함으로 얻게 된 것 이렇게 뒷받침된 복음에도 불구하고 수 없이 행해지는 우리의 예배 속에서 엄청 난 비극과 전투가 우리의 울타리 너머에 서벌어지고있다는사실을우리는잘깨 닫지 못할 때가 많다 우리의 기도와 설 교는 이미 익숙해져 버린 광범위한 우상 숭배와불평등보다는개인적인일들이나 고충을 더 많이 언급하고 있는 것 같다 에스라의 지도 아래 있었던 이스라엘 민 족처럼 우리는 세상의 고통과 투쟁에 우 리 스스로 공모하고 있다는 사실을 고민 해보지도않고 하나님의능력과거저주 심을 떠올린다 고백과 뉘우침은 우리의 개인적이고 사사로운 일들을 위해서만 챙겨놓았을뿐이다 우리는애통함을피 해다녔다 아마도애통함이우리를압도 하여 마비시킬 것을 두려워했기 때문일 것이다 마틴루서킹 목사는「버 밍햄감옥에서의편지」Letter from a Birming ham Jail에서 백인 동료 목사들에게 이렇 게말했다“어딘가에서발생한불의는세 상모든곳의정의를위협합니다 ”버밍햄 의 아프리카계 미국인 공동체가 겪고 있 는 어려움을 자신의 고통으로 여김으로 써 킹 목사는“자기가 사는 도시 너머까 지 자유의 복음이 전파되도록”스스로를 얽어매었다 킹목사와달리백인성직자 들과 교회들이 기독교 신앙에 요구되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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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artin Luther Kin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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함의 언어는 새로울지 모르지만 우리의 믿음의 선조들은 우리가 본받을 수 있도 록좋은모범을마련해놓았다 그 청년의 죽음을 알고 난 다음 주일 에 우리는 성찬식을 거행했다 성찬기도 를마치고빵과포도주를받기전에우리 는 거리로 나가 줄을 지어 그 살인이 일 어났던 현장으로 걸어갔다 조그맣게 둘 러서서우리는이웃을위해기도했다 방 아쇠를 당겼던 사람과 죽은 청년의 슬��� 에빠진가족을위해서기도했다 흉측하 고혼란스런그상황속으로내딛기위해 애통해했다 우리는 신앙인으로서 어떻게 해야 할 지 고민하면서 체육관으로 돌아와 친숙 한 말씀들을 들으며 성찬식을 마저 거행 했다 “너희를 위해 부서진 그리스도의 몸 너희를위해흘린그리스도의피 ”그 리고 우리는 찬미와 구원의 노래를 부르 고각자조금씩준비해온음식으로애찬 의 시간을 가졌다 그날 아침 예배와 의 식과 성찬의 과정 내내 애통함이 스며있 었다 애통함이 우리를 예배에 집중하게 했다 애통함은 우리에게 고통으로 울부 짖으며 기다리고 있는 세상 속으로 들어 가라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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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들을 말하고 실천하지 못하도록 만든 것은 바로 아프리카계 미국인들의 어려 움에 대한 애통함의 부족이었다 그들은 아프리카계 미국인들의 아픔과 극심한 차별을 유발했던 편견과 특권의 죄악들 속에스스로를투영하지않았다 느헤미야이야기로다시돌아가보자 애통함에 더하여 그의 기도는 또한 예배 와 탄원으로 가득 차 있다 그는 자신 앞 에놓인고통과죄악을분별할수있었기 에 이내 하나님을 찬양하고 더 나아가 용기와구원을요청하고있다 그는애통 함에 머물러 아무 일도 할 수 없었던 것 이 아니었다 느헤미야는 애통함을 통해 그 이야기의 주인공이 되었고 믿음으로 응답할수밖에없었다 애통함이라는 말과 개념은 많은 신앙 인들에게 낯설게 느껴질 수도 있겠지만 생각보다 쉽게 배울 수 있는 언어이다 목회자들은공동체에서벌어진사건들에 관해 이야기하여 애통함을 요청할 수 있 다 이 고대 언어는 시편의 시들로 공동 데이비드 스완슨 시카고 남단에 위치한 다문화 브론즈빌 뉴 커뮤니티 커버넌트 교회의 기도와교독을하면서도익힐수있다 교회인 목사. 교인들은 서로 이야기를 하면서 자신 David Swanson “Make a Mournful Noise” 들의 경험과 생각을 나눌 수 있다 애통 Leadership Journal 2014 :봄 남승호 옮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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능력 을 감항 갖춘영혼

선장은 무엇으로 항해하는가

버트 크레이브

감항성 또는 감항능력 堪航性 : 선박이 해상에서 위험에 직면했을 때 안전하게 항해를 할 수 있는 상태; 선체에 결함이 없어야 하며, 운항 능력이 있어야 하면, 화물을 적절하게 실어야 한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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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seaworthines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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커버스토리

년 월 북대서양에서 어선들이 침몰 하는 심각한 사고가 이어졌다 일 사이 에 베스 디 밥 케이프 피어 아드리아틱 호가 뉴저지 해안 인근 해상에서 잇달아 가라앉았다 이 사 고로 모두 명이 사망했고 명이 영구 실종됐다 어업이 극히 위험한 일이라는 사실은 익히알려져있는사실이다 그러나그위 험성을 누구보다도 잘 알고 있는 전문가 들조차도 척의 배가 단기간에 연속 침몰 한 사고에 대해서는 극히 이례적이라는 반응을 보였다 더구나 공교롭게도 세 척 은모두같은항구에서출항했다 이세건의개별침몰사고를조사한결 과 다음과같은사실이드러났다 사고는선체손상과는무관함 세척모두 년이상의경력을가진 베테랑선장들이있었음 세척모두항해를거의마쳐갈무렵 에사고를당했음 항구까지 마일을채남겨놓 199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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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eth Dee Bob,

Fear,

Cape

Adriatic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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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다면무슨일이있었던것일까 세척중두척은지나치게많은화물을 싣고있었고 한척은화물을제위치에적 재하지않았다 월 초에 그 해상에 있던 선박들은 대 부분조개잡이통발어선이었고 그세척 도마찬가지였다 조개잡이통발은 파 운드짜리 상자 모양이고 조개를 가득 담 은통발의무게는개당 톤이나나간 다 케이프피어호와아드리아틱호는각 각 개씩의 통발을 더 싣고 있었다 톤을과적한것이다 사고후에이곳에서일을한다른선장 들에게 다음과 같은 질문을 한 인터뷰 기 사들이있었다 베테랑 선장들이 자신들이 키를 잡고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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있는 배의 감항증서를 완전히 무시하고 톤이나 과적한 까닭은 무엇인가 대답 대신 매번 돌아온 것은 미심쩍어 하 는 시선과 어깨를 으쓱하는 것뿐이었다 간단히말해서 늘그래왔는데뭘새삼스 럽게질문하느냐는것이었다 그 선장들은 자신들이 위험에 빠지리 라고는 전혀 생각하지 않았다 그들은 그 냥늘하던대로그렇게했던것이다 애석하게도 어업에 종사하는 사람들 만 지나치게 많이 실으려고 하는 것이 아 니다 본 적 있는가 목회자들과 교회 직 분자들도똑같은행동을한다 우리의‘산 업’에서 일중독은 일상다반사다 목회자 는 전화기를 절대 내려놓으려 하지 않는 다 늘통화중이다 결코안식일을갖지않 는다 그리고 우리는 우리 자신에게 위험 이 일어날 것이라고는 전혀 생각하지 않 는다 그렇지만 일상이든 아니든 이런 행동 은 위험하다 우리는 우리의 영혼에 관한 서류를 무시한다 그냥 슬쩍 넘어가 버리 기일쑤다 결국 우리의문화에서바쁜것 은미덕이다 한 동안 못 봤던 사람을 마주쳤다 그 사람이 당신에게 그간 어떻게 지냈냐고 묻는다 그러면 당신은 어떻게 대답하는 가 필시이렇게말할것이다“바빠요 정 말 무지무지 바쁘네요 정말 요즘 너무너 무끔찍해요 ” 그러면당신에게질문했던그사람은이 런식으로맞장구를친다“그러시네요 저 도그래요 저도요즘눈코뜰새없어요 ” 바쁜 스케일로 치면 어느 누구도 당신 보다한수앞서려고한다 다들왜그러는 것일까 바쁜일은곧중요한일이라고생 각하기 때문이다 아무도 이렇게는 말하 지 않을 것이다“어떻게 지냈냐구요 아 10~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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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것도 안 했어요 그냥 쉬엄쉬엄 지냈어 요 당신은요 ”이런식의답변을우리사 회는 받아들이지 못할 것이다 만약 이렇 게 대답하는 목회자가 있다면 그는 게으 른사람취급을받을것이고 게으름은곧 창피한일이고용납될수없는것이다 그 래서우리는늘바쁘다 그리고우리는하 나님이우리에게주신정기적으로쉬라는 명령 안식일을지키라 을옆으로제쳐둔다 목회자도 성경의 계명들을 지켜야 한 다는점에서는다른그리스도인과조금도 다르지않다 만약다른것이있다면 우리 목회자들은 더욱더 책임감 있게 그 계명 들을지켜야한다는것일게다 어느누구 도 목회자라는 직분을 하나님의 계명을 위반하는핑계로삼을수없다 이렇게 말하는 목회자를 상상할 수 있 는가 “여러분 아시죠 나는 목사입니다 그래서 나는 거짓말을 해도 괜찮습니다 ” 또는 “나는 이웃의 아내를 탐해요 그렇 지만괜찮아요 나는목사니까요 ” 우리는결코이렇게할수없다 이렇게 하고서도 무사하길 바랄 목회자는 없을 것이다 그런데 버젓이 이렇게 말하는 목 회자가너무나흔하다“나는목사니까안 식일을지키지않아 ” 적어도나는그랬고 더이상그러지말 아야한다는것을나는깨닫게됐다 우리 목회자들에게는일주일에하루는꼭쉬어 야하는성경적의무가있다 이것은선택 사항이 아니다 이것은 명령이다 위반하 면비참한결과가따르는명령이다 원칙은다음과같다 우리는엿새동안 일하고 그러면하나님께서 일동안채워 주실 것이라고 믿는다 이 패턴은 우리에 게는 하나님이 필요하다는 사실과 우리 스스로는 이렇게 할 수 없다는 사실을 상 기시켜준다 우리가이명령을어긴다면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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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하나님께 이렇게 말하는 것이 된 다 “하나님의 도움은 필요하지 않아요 ” “우리 스스로 충분히 할 수 있어요 ”그리 고 우리 자신에게는 이렇게 말한다 “우 리는 너무나 중요해서 일주일에 하루라도 일을 하지 않고 쉴 여유가 없다 ”뉴저지 연안에서 비극을 당한 그 어선들처럼 우 리는과적을하고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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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사도 퇴근 가능? 물론 목회자가쉰다는것은쉬운일이아 니다 말하자면 그냥 어선에 오르지 않으 면 되는 것처럼 그렇게 간단한 일이 아니 다 우리의“일”은소명이다 역할이다 이 것은부모역할과같은것이다 엄마나아 빠이기를 그만 두고 잠시 안식일을 가질 수있는가 우리는 퇴근 도장을 찍지 않는다 사무 시간이아니더라도우리의역할은한순간 도 멈추지 않는다 소명에 중단이란 없다 우리를필요로하는일을그만두고퇴근할 수 없다 항상 우리는 누군가에게 관심을 기울여야 한다 항상 돌봐야 할 누군가가 있고 기도해야 할 일이 있고 읽어야 할 책이있다 유일한 대안은 우리 사무실에‘출입금 지’라고써붙이는것인데 이것은거의불 가능한일이다 지금이글을쓰고있는이순간에도내 게여러통의이메일이와있을것이다 사 람들은내답신을기다린다 그리고장담컨 대“목사님 당신도마찬가지일것입니다 ” 스마트폰이나 태블릿의 보급이 우리에 게도움을주는것이라곤전혀없다 나는 늘이두가지를다사용한다 그리고좋아 한다 그리고내가항상다른사람들과연 결되어 있도록 해 주는 이것들을 나는 매 우좋아한다 그리고내가항상다른사람 들과 연결되어 있도록 해 주는 이것들이 나는너무싫다 쉴시간인데 확인하고싶 다는 강렬한 유혹이 몰려온다 그래서 확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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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한다 그리고쉬지못한다 우리의 일은 대체로“생각하는 일”이 다 그러니어떻게생각을멈출수있겠는 가 설교 준비를 또는 교회 안의 분란을 생각하지않으려고노력해보자 하나라도 그렇게할수있는가 그렇지만 우리에게는 우리가 쉴 시 간의 안식이 필요하다 그리고 이것은 교 회에 관해서 생각하지 않는 것을 의미한 다 전혀 말도안돼 그건상상도할수없어 지 금 이 글을 읽는 목사님들 중에는 분명히 이렇게 생각하는 사람이 있을 것이다 하 지만“목사님 목사님의감항증명서를한 번체크해보세요 ”그서류에는일주일에 하루 당신은일을하지말고쉬라는명령 이적혀있다 이명령은전화도이메일도 하지 말라는 것을 의미한다 예수님이 말 당신의 소가 구 씀하신 것처럼 마 덩이에 빠지지 않았다면 말이다 그런데 목회자의눈에는누군가의소가매일구덩 이에빠진것처럼보인다 장담한다 그래서우리는안식일을가지려고하는 노력을 포기하려는 것일까 아니다 예수 님이 우리에게 하시고자 한 말씀은 그게 아니라고나는생각한다 우리목회자들은 안식일 명령을 실제로 어떻게 준수할 수 있을까 정기적으로 예수님은 기도하기 위해 무리로부터 벗어나셨다 내가 안식하려면 나의“무리”곧 교회에 관하여 생각하게 하는이메일이나전화통화등일체의접촉 으로부터 분명하게 단절하는 것이 필요하 다고 나는 확신한다 이렇게 해야 우리는 엿새내리리더십의무게를짊어지더라도 일곱째날에는교회를하나님의손에온전 히맡길수있게된다 이렇게 하지 못하면 당신의 배가 난파 될위험은더욱커질것이다 안식을 어기자마자 당신이 난파당하게 될 것이라는 말이 아니다 이런 뜻이라면 아마도 물속으로 가라앉아버린 목회자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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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 넘쳐날 것이다 그것이 아니라 우리가 안식일을 갖지 못하면 우리의 영적 무게 중심이 바뀌어 우리가 폭풍을 헤쳐 나갈 수있는능력을갖기가훨씬어렵게될것 이라는뜻이다 케이프 피어 아드리아틱 베스 디 밥 모두 악천후 속에서 가라앉았다 그러나 그악천후는그지역에있던배란배는모 두 난파시킨 그런 종류의 날씨가 아니었 다“완벽한폭풍우” 시나리오가 아니었다 그리고 아마도 세 명의 선장들 이각자이전에도겪어본적있던 그런날 씨였을 것이다 그러나“통상적인”규모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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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erfect stor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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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폭풍우속에서조차도 지나치게무거운 화물을 싣는다면 당신은 재난을 당할 가 능성을훨씬더높게만들게된다 년 월호〈시트레이드 리뷰〉 에는이런기사가실렸다“단하 나의 압도적인 폭풍우 원인 때문에 일 또는 최악의 폭풍우완벽한개별적으로 크게 위험하지 않지만 동시에 어나는 사고는 는발생하면 결과를 가져오 거의없다 보통 는 사건이나최악의 요인들의 조합 여러 요인들이 존재하며 개별적으로는 그렇게 중요하지 않은것들이합쳐져서치명적인결과를야 기한다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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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4

12

Se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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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rade Review

perfect storm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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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적절한 적재 그세척가운데두척이너무무거운짐을 실었다는 것을 앞에서 확인했다 그런데 세 번째 배는 기술적으로는 화물 무게를 초과하지 않았지만 이 배는 화물을 부적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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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한 곳에 싣고 있었다 베스 디 밥 호의 선원들은통발들을모두높은곳에쌓아두 었다 이런적재는그선박의구조상금지 된것이었고 그래서그배의무게중심이 깨지고말았다 통발을 잘못 적재했기 때문에 나중에 파도가뱃머리를때리며넘어들어오자그 배의 안정성이 위태로워진 것이다 이런 불리한 조건 때문에 베테랑 선장과 선원 들조차도그들앞에몰아치는폭풍우를헤 쳐나올수없었다 그 배는 감항능력을 갖춘 선박이 준수 해야 할 핵심 원칙들 가운데 하나를 위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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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두에 정박해 있을 때는 굉장해 보이는 많은목회자들이바람이거칠게불기시작 하면어려움에빠지고만다 쉬라는하나님의명령을어기는목회자 는잘못된곳에무게중심을두고있다 이 것은 당신이 좋은 말을 하지 않는다는 의 미도아니고재난이임박했다는의미도아 니다 날씨와 기압과 피로가 합쳐져서 당 신을바닥으로몰아가기훨씬쉽다는의미 이다 결혼생활에서의 약간의 동요 건강 문제 또는가벼운우울증 이런사소해보 이는 것들이 한데 모여서 결국 당신은 진 짜문제에빠지게될수도있다는것이다

면 모든 것이 질서정연해 보일 것이고 만 사가좋아보일것이다 정말좋은생각아 닌가 괜찮아보인다 안전하다 그런데한가지문제가있다 조만간당 신의소명이당신을깊은데로끌로갈것 이라는사실이다 누구도이를피할수없 다 나로 하여금 안식을 취하도록 하는 것 이라고할수있 은건강한두려움 다 훌륭한선장이바다에대해서늘주의 하는자세를갖는것역시이건강한두려 움이다 위기에빠진가족이심방을해달 라거나 죽어가는 아이를 위해서 또는 끔 찍한 교통사고 현장으로 와 달라는 요청 을언제라도받을수있다는사실을나는 알고있다 바로 그때 내가 지나치게 많은 것을 갖고 있거나 아니면 바로 그때 나의 영 적 무게 중심이 위태로운 상태에 있다면 나의말은공허하게들릴것이며 나는이 리저리 비틀거리며 나 자신은 물론이고 나에게 길을 알려달라며 바라보고 있는 사람들모두를더욱더심각한위험으로몰 아갈것이다 이래서는안된다 케이프피어 아드리 아틱 베스 디 밥 호의 운명을 피할 수 있 는유일한길은하나님께서작성하신우리 의영적감항증서에주의를기울이는것이 다 하나님은나에게경고하시고명령하셨 다 일주일에 하루 너는 쉬어야 한다 영 적무게중심을유지하라 수면아래에밸 러스트를두어라 그렇게 할 때 나의 소명이 나를 깊은 물로 이끌 때 비로소 내 영혼은 감항능력 을갖추게될것이다

깊은 물로 갈 준비를 하라 그렇다면이렇게되지않으려면어떻게해 야 할까 한 가지 방법은 얕은 곳에 머물 러 있고 절대 항구를 벗어나지 않는 것이 다 부두에 배를 단단히 묶어두어라 그러

버트 크레이브 뉴욕 롱아일랜드 트루 노스 커뮤니 티 교회True North Community Church 목사 Bert Crabbe “A Seaworthy Soul”Leadership Journal 2014 : 겨울 홍경화 옮김

게를 두지 않기 때문에 사람들의 삶에 다 가가지 못한다 수면 위 치아는 미백을 하고 옷은 맵시 있고 헤어스타일도 최고 다 우리의구두와안경태도번쩍번쩍빛 을발한다 우리는적당한소셜미디어영 향력과 괜찮은 평판도 갖고 있으며 매사 가발전하고있으며잘되어가고있는것 처럼보인다 다른말로 수면위로보이는배는정말 굉장해보인다 돛도 갑판도 반들반들윤 이나는철제난간도정말멋있어보인다 불행하게도 배를 항해 가능하게 하는 것은 수면 아래 보이지 않는 곳에 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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했다 그것은 바로 선박은 수면 위쪽보다 아래쪽이무거워야한다는원칙이다 수면 아래쪽중량물을가리키는선박용어는밸 러스트 이다 갑판 아래에 있는 중량 물은 바람과 파도가 옆에서 배를 때린 다 음에다시배가제자리로바로설수있게 한다 밸러스트 원칙 역시 목회자들이 쉽게 무시하는 것 가운데 하나이다 목회자인 우리가 밸러스트를 얻는 곳은 비밀스럽고 조용한 장소이다 우리에게 영적 무게 중 심을 잡아 주는 것은 하나님과 단 둘이서 만있을때이다 바른 말은 다 들어있는데 제대로 전달 되지않는설교메시지가많다 왜그럴까 좋은메시지는양으로계산이되지않기때 문이다 그래프로보여줄수있는것이아니 기때문이다 영적인권위가없기때문이다 너무나 많은 목회자들이 시선을 수면 위의것들에집중하고수면아래쪽에는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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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urrents[흐름과 움직임]

우리시대‘선장들’의 리더십

우리가따를 리더, 어디서찾을것인가 세월호 참사가 일어난 지 한 달이 흘렀는데 아직도 상당수의 실종자들이 차가운 물속에 갇혀 있는 상황에 있다. 민관군이 힘을 합쳐 노력하고 있지만 여의치가 않은 모양이다. 언론에서는 대한민국호가 침몰하고 있고 사 회의 총체적인 문제점이 한꺼번에 터진 사고 로 연일 보도하고 있다. 모든 것이 합력하여 선을 이루는 게 아니라 어쩌면 그렇게 악을 이룰 수 있는지 기가 막힐 노릇이다. 여러 문제점들이 있겠지만, 우리는 이 참 사 앞에서 리더십이 얼마나 중요한 것인지 뼈저리게 절감한다.

선장의 리더십

무엇보다도 우리는 지금 선장의 리더십에 분 노하고 있다. 배를 끝까지 책임지고 승객의 안전을 최우선으로 해야 할 선장이 승객을 버리고 가장 먼저 탈출했다. 리더가 팔로워 들을 죽음의 사지로 몰아넣고 자신만 살아나 려고 발버둥 친 것이다. 선장과 선박직들이 왜 자신들만 빠져나오고 영문도 모르는 어린 학생들을 포함한 승객들을 그대로 내버려두 었는지는 실로 미스터리라 하지 않을 수 없 다. 여기서 나라가 국난을 겪을 때 드러났던 리더십을 돌아보자. 이순신 장군처럼‘생즉사 사즉생’生則死 死則生의 각오로 국가를 지킨 리 더십도 있지만, 많은 리더들은 그렇지 못했 다. 임진왜란 때 왜군이 한양을 향해 공격해 오자 선조는 백성들 몰래 자신만 도성을 빠 져 도망을 갔다. 그를 뒤따라 수많은 군대 장 수와 관료들도 도망가기만 급급했다. 6·25 전쟁 당시 대통령은 이번 세월호 선장과 똑 같이 행태를 보였다. 거짓 방송으로 시민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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을 서울에 남게 한 뒤 자기만 수도를 빠져 도 망갔다. 이런 비열한 일이 있을 때마다 힘없 는 백성은 고통과 죽음을 당해야 했다. 공교 롭게도, 천안함에서도 장교 7명 전원은 생존 했다. 사망한 46명은 모두 사병과 부사관들 이었다. 이게 대한민국의 리더십 현실이다. ‘내가 힘이 없어 아이를 죽였다’는 어느 부모 의 절규는 한국 사회의 본질을 찌른것이다. 두 번째는 선박 소유주의 원칙을 지키지 않은 리더십 문제이다. 합동수사본부가 밝히 바에 따르면, 배 회사는 규정보다 훨씬 더 많 은 화물을 실었고 화물고정을 규정대로 하지 않고 대충 묶었다. 이게 결정적인 사고의 원 인으로 지목되고 있다. 비용을 아끼려고, 그 리고 번거롭고 귀찮다는 이유로 규정을 지키 지 않는 현상은 대한민국의 산업, 정치, 공공 분야, 그리고 일반 국민생활의 밑바닥까지 고치기 어려운 습관으로 자리 잡고 있다. 선 원들을 제대로 훈련시키지 않았고 위기 대처 방법에 대해 승객들에게도 충분히 고지하지 않았다. 이것은 선장의 문제라기보다 배 주 인의 문제이다. 안전 문제조차도 비용으로 인식하고, 철저하게 이익 중심으로 운영했을 것이다. 또한 이번 사고를 통해 낙하산 인사 와 전관예우가 사회 전 영역에 광범위하게 퍼져 있어 합법적 규제라는 원칙을 지킬 수 없는 나라가 대한민국이라는 현실도 여실히 드러났다. 박근혜 대통령이 그토록 주창했던 원칙과 신뢰 역시 하루아침에 무너져 버린 셈이 됐다. 세 번째는 책임과 통합의 리더십 문제이 다. 미국에서 2009년 알카에다의 성탄절 여 객기 테러 미수 사건이 터지자 오바마 대통 령은 이렇게 말했다.“남을 탓할 생각은 없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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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 남 탓을 할 수 없는 이유는 내가 최종 책 임자이기 때문이다.”박근혜 대통령은 문제 원인을 과거 정부의“적폐”로 돌리고 책임자 “엄벌”만을 강조해 국정 최고 책임자로서 반 성이 없다는 여론의 지적을 받았다. 최고 지 도자 중 누구 하나 책임을 지는 사람이 보이 지 않는다. 또한 사고 대처와 수습 과정에서 언론에 그대로 드러났듯이 통합의 리더십이 보이질 않았다. 참으로 우왕좌왕하는 모습만 보였다. 탑승자 수가 몇 번씩 바뀌고 사고신 고 접수 후 보여준 해경의 안이한 대처, 수상 구조 실패, 수중 구조도 이틀이자 지나고서 야 실시하는 등, 통합의 리더십은 어디에서 도 찾아볼 수 없었다.

다윗의 리더십

다윗은 15세 때 처음 기름 부음을 받았지만 끊임없는 사울의 살해 위협으로부터 피해 광 야로 도망가 살았다. 심지어는 적지인 블레 셋 땅에 숨어 들어가 사는 고통의 시절을 겪 었다. 30세 때 유다 왕으로 기름 부음을 다 시 받고 그 후 7년 6개월이 지나서야 통일 이스라엘의 왕이 된다. 어린 나이였지만 블 레셋의 골리앗 앞에서 누구도 나서지 못하는 상황이었는데 담대함으로 나아가 하나님의 이름으로 골리앗을 단번에 고꾸라뜨렸다. 그 는 맨 앞에 서서 싸운 리더였다. 이스라엘의 전쟁사를 보면 왕은 최전선에서 군을 지휘하 는 리더로서의 역할을 수행한다. 사울조차도 그렇게 싸우다 적에게 쫓기고 부상당해 결국 전쟁터에서 자살로 인생을 마감했다. 리더는 모름지기 전열의 맨 앞에 서야 한 다. 특히 절체절명의 위기의 순간에는 죽음 을 각오하고 팔로워들을 지키고 그들을 위해 서 헌신해야 한다. 다윗은 순간순간 하나님 께 자신의 행동 여부를 여쭙고 그 답을 들은 다음에는 그대로 백성들 앞에서 행동했다. 성경을 읽으면서 이 시대와 다윗의 리더 십을 비교하면서 눈에 띄는 말씀이 하나 있 었다. 사무엘하 8:15이다.“다윗이 온 이스라 엘을 다스려 모든 백성에게 정의와 공의를 행할 쌔….”성경에서 이야기하는 공의는 다 른 말로 공평이다. 얼마 전 우리나라 국민들 을 대상으로 조사하여 시대 가치를 추출하는 프로젝트를 진행한 일이 있는데, 첫 번째 시

한 개신교 인물도, 우리의 목소리와 행동을 모아낼 우리 내부의 리더도 없기 때문에, 언 론의 눈에 우리는‘존재하지 않는 존재’에 지 나지 않기 때문이다. 더구나 현재 한국 교회 의 대국민 신뢰도는 채 20%가 안 된다. 이런 신뢰도로는 사회 통합은 고사하고 최소한의 “선한 영향력”을 행사하는 것조차 불가능해 보인다. 더군다나 우리는 지금 수적 감소와 안티기독교 세력의 공격, 교회의 사회적 역기 능, 비복음적인 세속화와 힘겨운 싸움을 하 고 있는 중이다. 한 생명에 다가가서 그 영혼을 위로하고 진심으로 함께 아파하고 함께 슬퍼하는 이는 정치인이 아니다. 우리 그리스도인이 해야 할 일이다. 우리 교회에, 그리고 나라와 겨레에 다윗과 같은 리더를 하나님께서 보내 주시길 간절한 마음으로 기도한다.

대가치로‘기회균등’이란 단어가 추출됐다. 예컨대 교육과 관련해서, 과거에는‘개천에 서 용난다’라는 말처럼 가난한 가정에서 훌 륭한 인재가 나오기도 했지만 지금은 상류층 과 하류층 사이의 교육비 지출액이 엄청나게 큰 격차를 보이는 상황에서 그런 사례가 나 오기가 어려운 시대가 됐다. 따라서 일반 서 민들은 기회가 균등하게 제공되는 한국 사회 를 진정으로 원하고 있다. 다윗은 정치 행정의 핵심이념을 정의와 공평으로 두고 이스라엘을 다스렸다. 이런 다윗의 리더십을 우리 사회와 교회는 새롭게 조명해 볼 필요가 있다. 정치, 문화, 행정, 종 교, 기업, 예술, 언론, 가정 등 사회 전 영역 에 하나님의 공평과 정의가 실현되는 우리 사회를 꿈꿔본다. 바라기는 우리 교회가 그 역할을 감당하 기 원한다. 그러나 현실은 쉽지가 않다. 이번 세월호 사고 때 천주교와 불교는 희생자와 유족들을 위해 나름 그들의 위로와 희망의 목소리를 언론에 내보냈다. 그러나 개신교는 이른바‘개교회주의’라는 스스로의 틀 속에 갇혀 그 목소리도, 그 활동도 제대로 들려주 고 보여주지 못했다. 범국가적으로 존경할만

지용근 글로벌리서치 대표이사로 한국인의 종교 생활과 의식조사, 한국 교회 신뢰도 조사 등, 한 국 교회의 척박한 사회조사 영역을 개척하고 있 다. 한국기독실업인회CBMC 중앙회 운영이사 및 전략기획위원이며 기독경영연구원 이사이다. 매 일 아침 SNS로 그리스도인 리더의‘큐티 나눔’ 을 전하고 있다.

“우리는 리더십이 부족하다” ■ 신학적 깊이 ■ 사회에 영향을 끼치는 리더십 ■ 교회 전반을 운영하는 목회 경영 ■ 대중문화 등과 같은 현실 이해 ■ 전문적인 지식 ■ 기타 38.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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합계: (N=500) 100.0 질문:“한국 교회 목회자들에게 가장 부족한 점은 무엇이라고 생각하십니까?” 조사 대상: 전국 개신교 목회자 500명 조사 기관: 한국기독교목회자협의회·글로벌리서치 출처: 한국기독교 분석리포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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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감의기술

더불어 사는 사람을 사람 되게 하는 능력 데이비드 호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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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자를 위한 인문학

“정말죽고싶어요 ” “혹시자살을생각하는건가요 ” “네 사랑하는 사람들이 모두 내 곁을 떠나 버린 것같아요 작년말에어머님이돌아가신후로더욱 더그런생각이들어요 ” “그렇군요 그럼어떤방법으로자살할지에대해 서도생각해본적이있나요 ” “음…아직은 아니에요 하지만 정말 더 이상 버 티기 힘들어요 모든 것이 암담해요 난 정말 혼자 인것같아요 ” “너무 극단적이네요 모든 걸 끝낸다는 게 어디 쉬운일인가요 ” “난 그렇게 생각하지 않아요 이렇게 사는 것이 무슨의미가있는지잘모르겠어요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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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는친구사이에오간대화일수도있고 여행지 에서 우연히 만난 낯선 여행객 사이에 오간 대화일 수도있다 어쩌면심리상담사와환자사이의대화 일수도있다 이경우라면상담사는오랜연륜이나 성공적인 경력의 소유자는 아닐 것이다 비슷한 상 황의또다른대화를살펴보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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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머니가작년에세상을떠났어요 어머니가너 무보고싶어요 ” “저런 상심이 컸겠군요 그 일이 당신에게 얼마 나큰영향을끼쳤을지염려가되네요 ” “네 아직도 가슴이 먹먹해요 가슴속이 텅 비어 버린것만같아요 이런기분이시도때도없이밀려 들곤해요 ” “많이슬퍼보이는군요 ” “가슴이너무아파서미쳐버릴것만같아요 ” “당신어머님에대해이야기좀해주세요 ” “아주 좋은 분이셨어요 어머니와 전 사이가 굉 장히 좋았어요 어릴 적에 아버지가 돌아가신 후로 어머니는 항상 제 곁을 지켜 주셨어요 그것만으로 도정말큰힘이됐는데… 어머니가제곁에없다는 사실이좀처럼받아들여지지않아요 ” “정말힘들겠군요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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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예시모두극심한우울과절망에빠져있는사 람과의 대화이지만 상대방의 반응과 태도에 큰 차 이가있다 첫번째대화상대는절망과실의에빠져 있는 상대방의 감정에 제대로 공감하지 못하고 자 신의 관심사에만 맞추어 대화를 이끌어 나가고 있 다 이런 사람을 보고 우리는 흔히“공감이 부족하 다”라고말한다 그결과 두사람사이의관계나대 화는 접점이나 흡인력을 상실한 채 지지부진하게 흐를뿐이다 반대로두번째대화상대는상대방의고통에집 중하고 있다 자신이 상처받고 절망에 빠진 사람의 입장이라면어떨지상상하고이해해보려노력하며 상대방의 감정을 헤아린다 이러��� 노력은 상대방 이자신의감정상태에편안히머물수있도록도와 주고 아울러 서로를 배려하는 안정된 관계 속에서 자신의감정을차분히돌아볼수있게만들어준다 이러한 경우에는“대화 상대가 공감을 보여주었다” 라고말할수있다 공감은 인간과 인간 사이의 관계를 더욱 인간답 게만들어주는기술중의하나이다 만약공감이없 다면 이 세상은 삭막하고 냉정해지는 것은 물론 무 자비하게느껴질수도있다 인간이가진모든특징 이 그러하듯 공감하는 능력 또한 개인마다 다르다 심지어 한 인물이라 해도 어떤 경우에는 공감을 잘 하지만 어떤 경우에는 공감 능력을 전혀 발휘하지 못하기도 한다 공감의 수위도 그때그때의 상황이 나분위기 상대방에따라달라지기도한다 우리는 공감이 일어나는 순간을 인식할 수 있기 는하지만 이를지속적으로인식하지는못한다 어 떻게 보면‘공감’은 관계 향상에 필요한 하나의 덕 목같기도하지만 종종정확하게설명되지않는능 력이기도하다 대략지난한세기에걸쳐공감에대한관심이꾸 준히증대되어왔다 그리고이에대한연구가폭발 적으로급증하기시작한 세기에들어서는급기야 공감 능력에 대한 정식 학위까지 생겨났다 당연한 일이겠지만 공감에 대해 관심을 갖는 사람들 중에 서도 가장 열성적으로 깊이 파고드는 사람은 타인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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을 돕는 직업 사회복지나 사회사업 관련 에 종사하는 사람들일 것 “그사람을믿지마세요 당신앞에서는온갖착한척을다 이다 하지만알고보면그사람머릿속에는야심이가득해요 뒤에 서당신욕을하고다닐지도몰라요 ” “김 과장님 오늘 왜 저렇게 기분이 좋은 줄 알아 일간지 공모전에서당선됐거든 대단하지 ” 공감은 어떤 능력을 가지고 있을까 무언가를이해하고자하는사람들의욕구에는숭고함이깃들 사회생활에서의 성공은 타인의 행동과 생각을 누가 더 잘 어있다 우리의세계가어떻게작동되는지알고싶어하는욕 파악하고이해하는지 나아가누가더정확하게예측하는지에 구는인간이지닌깊은본성중하나이다 미국의심리학자브 달려있다고볼수있다 타인의행동에어떤의미가담겨있는 지 읽어 내려고 하거나 겉으로 드러난 경험을 내적인 요소를 루너는이렇게말했다 “신생아조차도‘지식’이아닌‘의미’를탐색할태세를갖춘 통해이해하고자하는인간의욕구는지극히보편적인것이다 상태로태어난다 ” 따라서이와관련하여놀랄만큼다양한인간탐구의영역 우리의삶을특별히흥미롭게만드는것은대상에대한명 이생겨났다 우선철학자들은우리가어떻게다른사람의마 확한정의보다그너머의의미를추구하는데있다 물론명확 음을읽는지그리고다른사람의마음을읽어내는것이과연 한인과관계에기초하여사고하는것은매우중요하고바람직 우리를도덕적으로만들어주는지에대해탐구한다 예술가들 하다 하지만 우리가 어떤 의미를 추구하는 인간관계에 있어 은사물의형식과본질 감각의세계를탐구하기위해그대상 서만큼은 명분을 찾으려고 하고 의도나 목적에 연연해한다 의내부로파고들어가고자한다 그리고내적경험을언어나 사실어떤상황을있는그대로받아들이는사람은거의없다 음악 혹은 회화나 조작 등의 작품을 매개로 하여 소통하고자 대부분상황을예의주시하고난후에그의미를해석한다 우 한다 사회과학자들과심리학자들은인간이어떻게사회적삶 이라고부르는‘행위’를 해나가는지에호기심을가진다 리인간은마음을읽는종족인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다른 사람이 무엇을 생각하고 우리가누군가와관계를맺고 협력하고 창조하는가는모 무엇을느끼는지에대해인식하고사고하는능력을당연하게 두타인의마음에주의를기울이고 해석하고 이해하는능력 여긴나머지종종그것이얼마나특별한기술인지잊어버리곤 에달린것처럼보인다 우리는크게상심하거나머릿속이복 한다 하지만다른사람들은어떨까하는이강렬한호기심이 잡할때누군가로부터이해를받고싶어한다 누군가의애정 야말로인간을규명하는아주중요한특성중하나라고할수 과위로를필요로하고 그것을통해위안을얻고싶어한다 그 있다 이러한일은우리가이야기를하고계획을짜고사색에 래서어떠한문제가발생하면가까운친구나 가족 선생님 혹 잠기는등의일상속에서항상일어나고있다 타인에대한호 은전문상담사를찾아가는것이다 기심은 왜 드라마에 열광하는지 왜 유명 인사들의 사생 이처럼 우리가 마음이나 도덕 애정과 관계 배려와 관심 활과 관련된 기사에 그토록 관심을 갖는지 그리고 문학 장르 등에 대해 이야기할 때 어김없이 등장하는 단어가 바로‘공 중에서도왜연애소설이나범죄스릴러물이베스트셀러가되 감’이다 공감이란타인의마음과그의내적인경험세계를읽 는경우가많은지를잘설명해준다 우리인간은타인들의행 고 나아가그것을공유할수있는능력을말한다 동에지대한관심을갖는다 많은 사람들의 일상적인 대화는 대부분 누가 누군가와 무 엇을 했는지 왜 그런 일을 했는지 그래서 결과는 어떻게 되 공감이란 무엇인가 었는지에 대한 것이다 우리는 단순히 행동을 지켜보는 것만 공감이라는단어는 세기말독일철학자들이처음사용하던 으로는 만족하지 못한다 상대방의 머릿속에 어떤 생각이 떠 ‘아인퓌룽’ 감정이입 에서 유래했다 이 말은 훗날 미학 다니고 있는지 알고 싶어 한다 그것이야말로 그들의 행동을 을논할때‘엠파시’ 공감 로번역되어사용되었다 철학 설명해준다고믿기때문이다 자 로베르트 피셔 는‘아인퓌룽’을 우리 이런말을들어본적이있을것이다 가 예술작품을 감상할 때 경험하게 되는 쾌락을 지칭하는 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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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군가와 감정을 공유한다는 맥락에서 보면 공감에도 적극적인 노력과 의식적인 도전이 필요하다. 우리의 공감 능력은 정서적 공감과 인지적 공감이 모두 작용하는 순간에 최대로 증폭된다.

이해하고효과적으로관계를맺으려면그와관련된기술이필 요하다고 지적한다 해당 개념의 사전적 정의와 어원에 주의 를기울이는일은우리의이해를공고히하는데도움을줄것 이다 감정에 해당하는 그리스어‘파토스’ 는‘냉담한 무심 한’ ‘동정’ ‘반감 혐오’ 와같이감정과관련 된어휘들의접미사역할을한다 공감 또한이와유사 하게 탄생한 어휘로‘감정이입’을 뜻한다 감정에의‘이입’이 란개념은매우중요하다 특히타인의관점에서세계를보고 느끼고 이해하려고 할 때 무엇보다도 주변 사람들과의 관계 에서그렇게이해한바를토대로소통하고자할때더욱그러 하다 누군가와감정을공유한다는맥락에서보면공감에도적극 적인 노력과 의식적인 도전이 필요하다 우리의 공감 능력은 정서적 공감과 인지적 공감이 모두 작용하는 순간에 최대로 증폭된다 나는상대의상태와감정을느낄수있는동시에나 자신의 정신적 경험과 상대의 정신적 경험에 대해 분명한 분 별력을 유지할 수 있다 즉 우리가 명심해야 할 것은 공감에 있어서 다른 사람의 심리적 세계에 대한 상상은 가능하지만 나와타자사이를엄격하게구분할수있어야한다는것이다 공감은 타인이 무엇을 느끼는지 알고 그것을 느끼는 것에 그치는 것이 아니라 타인의 심리적 경험에 대한 나의 연민과 수긍 이해를 상대에게 전달하고 소통하는 것까지 포함한다 따라서 우리는 공감을 정의하는 데 있어서 타인의 감정에 대 한정서적반응이자타인의관점을수용하는인지적행위 타 인에 대한 인지에 기초한 이해인 동시에 그러한 이해를 주고 받는소통까지포함시켜받아들여야한다 공감을잘하는사람은너무많이말하지도 너무적게말하 지도 않는다 그들이 하는 말이나 대화 하나하나에는 타인의 감정과 지각 태도에 대한 자각이 들어 있다 그들은 다른 사 람이 무엇을 생각하고 느끼는지에 대해 쉼 없이 주의를 기울 이고다른사람들이자신의견해를밝힐수있도록이끈다 그 리하여 대화는 균형을 잃지 않고 상호 간에 원활하게 전개된 다 그들은 순간순간 대화의 흐름이 바뀐다 하더라도 흐름을 놓치지 않고 모든 사람이 대화에 참여하여 자신의 목소리를 낼수있도록조절한다 이러한 공감의 기술은 마음과 행위 신념과 행동 감정과 반응 사이의 관련성에 대한 예리한 인식 속에서만 가능하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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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누군가의 말과 행동 이면에 숨은 심리를 알아내고자 할 때를 제외하고는 다른 누군가를 주의 깊게 관찰하지 않는 다 다른사람들의행동중에는때때로그러한행동을유발시 킨어떤사고나감정 욕망 신념 희망에대해알지못하면이 해할수없는것들이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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계를 맺을 수 있다 그는“나는 당신과의 관계를 통해서 내가 된다 내가나자신이되었기에당신이라부른다”라고말했다 나와 너의 관계에서는 나와 타인이 서로의 필요와 목적을 가진동등한존재로서만난다 타인은내목적을위한수단이 아니다 우리는 이러한 철학 속에서만이 타인을 진정하게 만 날 수 있다 그리고 이러한 만남 속에서 두 탐색자가 서로의 ‘주관적 진실’을 함께 나눌 수 있다 우리는 이러한‘상호적’ 만남을가질때 즉‘나 너’의 관계일때성장하게된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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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간은‘나-너’의 관계일 때 성장한다 현대의 삶은 개인 간의 상호 연관성이나 의존성 대신 개인의 독립과고립을강요한다 자아는주체로서경험되지만타자는 객체로서 바라본다 타인을 객체로서 바라본다는 것 상업적 으로소모되거나성적으로착취받는대상 과학적관찰의대 상 임상적진단의대상 법적인재단의대상 은타인을주체 로서이해하는것을불가능하게만든다 이때타인을나자신 의 목적을 이루는 데 방해가 되거나 혹은 이용되는 대상으로 서도구적으로상대하거나취급되는일이너무나빈번하게일 어난다 이런의미에서우리는‘나 그것’관념에기초한‘주 객 대 상 ’개념으로만타인과관계를맺는다 이처럼타인을대상으 로간주하는것은공감의부족을드러내는것이다 그렇게되 면타인의경험에대해서는유념하지않고 타인은그저목표 를위한수단으로간주하게된다 간단히말해서성을제공하 거나노동력을공급하거나이익을내고조직이목적을달성하 는데일조하는도구가되는것이다 이러한 관계는 타인을 비인간화시킨다 인간은 타인에 대한 배려없이 오로지자신의목적과이익을쫓게되면서급격하게 공감 없이 타인을 도구적으로 대하게 되었는지 모른다 하지 만 자기 이익을 중시하는 이기주의가 우리의 생활 태도이자 방편이 될 때 즉 우리가 살아가고 일하는 방식이 될 때 우리 는공감의결핍현상을겪게될것이다 이처럼일방적이고자 기중심적인태도는당연하게도타인의마음상태를고려하지 않는다 사람을 대상화하고 공감에 인색하다는 것은 우리가 타인의감정에무관심하다는것을의미하고 이러한무관심은 냉혹함으로발전하기쉽다 반대로 나와 너 인격 대 인격 의 관계는 주체로서의 인간과 인간 즉의미있는경험의두중심사이에서성립될수있다 부버에따르면나는타인과관련을맺을때만이비로소나자 신이되고내가나자신을발견할때만이타인과온전하게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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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감은 공동체를 더욱 정교하게 만들어준다 우리의 공감 감수성을 계발하고 향상시키는 데 늦은 때란 없 다 다만 많은 공감 지지자가 공감이 인생 노년 시절에 맺는 인간관계를통해쉽고자연스럽게얻어진다고지적하고있다 따라서 부모가 아이들을 감정적으로 복잡하면서 심리적으로 흥미롭고사회성이급격히발달해가는존재로인식하고이해 하며 기쁜마음으로돌본다면아이들은더욱안정감있고더 욱공감적으로자랄가능성이높다 학창시절을지나성인이된후에도공감향상은더건강하 고더행복한삶 좀더안전하고좀더창의적인사회를추구 하는방식으로서그중요성에대한인식이높아지고있다 프 란���스 드발은「공감의 시대 보다 친화적인 사회를 위한 자 연의 가르침」에서 공감은 사회적 책임감이라는 관념을 만들 어낸다고하였다 그것이바로공동체의결속을돕는‘사회적 접착력’이라고 할 수 있다 리프킨에게 있어서 공감은 윤리와 민주주의의중심부에자리하고있다 우리가 공감의 다양한 측면에 대해 인식하고 이해할수록 보육은 더 양질화하고 우리의 소통은 밀도가 더 높아지며 우 리의 우정은 더 깊어지고 우리의 행동은 더욱 바람직한 방향 으로나아갈것이다 또한우리의교육현장은더욱활기를띠 고우리의치료는더욱성공적이며우리가하는일은더욱큰 성과로이어질것이다 그리하여더높은문명사회로나아가게 될것임을확신한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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데이비드 호우 이스트앵글리아 대학의 명예 교수로서 아동학대와 방치, 입 양 이론 및 사회복지 등에 대한 연구 활동과 함께 저술 활동을 펼쳐 왔다. 「감성지능형 사회복지사들」「일생을 따라다니는 애착 관계」등의 저자이 다. 이 글은 그의「공감의 힘」Empathy의 일부를 역간 출판사 넥서스(지식 의숲)의 허락을 얻어 간추려 엮은 것이다.

L


구독문의 세상 속의 그리스도인을 위한 IVP 월간묵상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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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도와 말씀이 조화된 말씀묵상 성경통독을 즐겁게 만들어주는 문맥에 따른 통독가이드 말씀의 실제적인 적용을 돕는 영성훈련 소그룹 성경공부를 더욱 풍성하게 하는 GBS 삶에 여백을 주는 다양한

읽을거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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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로벌 가스펠 프로젝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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큐메니즘ecumenism이란 세계 교회의 일

치를 위한 역사적 운동을 가리키는 말 이다. 그런데 나는 이것을 서로의 교리

를 절충하기 위한 재미없는 학술 실험이나, 아니 면 승자독식의 경쟁을 벌여 유일의 거대교회를 만들려는 것으로 생각했다. 하지만 지난 5년 동안 루터교회의 에큐메니칼 조직에서 일하면서, 나는 더 이상 에큐메니즘을 멸시의 시각으로 바라보지 않게 되었다. 교회 일 치의 추구는 요한복음 17장 및 니케아 신경에 나

교회의 일치를 위한 노력은 계속돼야 한다

타나는 ‘하나’라는 작은 단어를 그리스도인들이

사라 힌리키 윌슨

뜻에서 시작된 거세고, 놀랍고, 낯선 활동이라 할

자주 냉담하게 무시해 왔기에, 그것을 참회하는 수 있다. 우리는 성령께서 교회가 하나 되기를 요 청하신다고 고백하지만, 현실의 거의 모든 정황 들은 정반대의 모습을 보여주고 있다. 이런 현실 이 의미하는 것은 무엇일까? 그리고 우리는 이런 현실 앞에서 어떻게 응답해야 할까? 교회분열을 다루는 두 가지 방식

역사를 되돌아 볼 때, 그리스도인들은 하나의 교 회가 왜 많은 분파로 갈라지게 되었는지 설명하 기 위해 여러 가지 기발한 방법들을 제시해 왔다. 물론 가장 간단한 방법은 특정한 테두리 밖에 있는 사람들은 사실상 교회의 일부가 아니라고 말하는 것이다. 교부 키프리아누스가 이런 방식 을 채택했다. 정의 상, 교회는 하나이며 불가시적 이다. 따라서 “분파들”이 있는 것처럼 보인다면, 참된 교회와 사악한 거짓 교회의 대결이 있을 뿐 이다. 그리고 교회 밖에는 구원이 없다. 하지만 이 접근 방식은 완벽한 고립이 유지될 때만 유효하다. 한 “교회”에 속한 그리스도인들이

getty imag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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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른 “교회”에 속한 그리스도인들과 맞닥

회 분열의 문제를 대수롭지 않은 문제로 축

성공 모델은 아직 없다

뜨리고, 그들에게서 참다운 신앙, 경건, 그

소하여, 서로 형제자매라고 불러야만 하는

1910년에 저 유명한 에든버러 선교대회가

리고 선행을 발견하고 충격을 받게 되면 어

사람들 사이에 실제로 적개심을 키우게 된

개최되었고, 그 결과로 “에큐메니칼 운동

찌 되겠는가?

다. 16세기 및 17세기 유럽에서 있었던 오

이 탄생하게 되었다. 당시 주요 의제는 불

바로 이 지점에서 “불가시적 교회” invisible

랜 종교 전쟁들은 “불가시적 교회” 개념이

완전한 교리를 충실하게 하거나 그리스도

개념이 도입되는데, 이것은 조금 더

그리스도인들 사이에 서로 살육하는 일을

인들 사이의 증오심을 줄이는 것이 아니었

멈추게 할 수 없다는 충분한 증거가 된다.

다. 그것은 아직 그리스도를 받아들이지 않

church

관대하지만 대체로 문제가 많은 개념이다. 이것은 보통 예수님의 알곡과 가라지 비유

그리스도교 세계 밖으로 나가고 나서야

은 사람들이 신뢰할만한 증언을 어떻게 할

에 근거하는데, 그 기본적 사고는 신앙심은

그리스도인들은 비로소 자기들끼리의 내

수 있을까 하는 것이었다. “너희가 서로 사

개인에게만 적용되지 단체에게는 적용되지

부 폭력을 신학적으로 직시하게 되었다. 바

랑하면 이로써 모든 사람이 너희가 내 제자

않는다는 것이다. “우리” 교회에도 진실하

로 선교 현장에서 여러 분파들이 자기들만

인 줄 알리라”(요13:35)라고 예수께서 말씀하

지 못한 그리스도인들이 가득하다는 것을

이 예수의 진리와 사랑의 최고 담지자라 주

셨다. 하지만 제자들이 서로 사랑하지도 않

우리 모두 알고 있다. “그들의” 교회에도 사

장하면서 서로의 위선을 폭로하는 경쟁을

고, 오히려 그런 상태 속에 계속 있으려고

실 진실한 신앙인들이 있다는 것을 우리는

경험하고 나서였다. 잠재적 개종자들인 현

서로 간에 벽을 쌓아 올린다면 어떻게 될

안다. 따라서 참된 교회는 사람의 눈으로

지인들은 그로 인해 좋은 인상을 받지 못했

까? 분열은 복음의 수치스런 추문이고 신앙

판단할 수 없고 오로지 하나님만이 알 수

고, 선교사 자신들도 그것을 알았다.

을 방해하는 걸림돌이다.

있다. 가시적이고 역사 속에 존재하는 교회

예수님은 잡히시던 밤 제자들을 위해 아

공동체들은 진정한 교회를 이루는 일에 부

버지께 세 번 기도를 드렸다. “우리와 같이

속될 뿐이다.

저희도 하나가 되게 하옵소서.”(요17:11, 21-

이 두 가지 접근 방식은 교회의 일치 문

22) 이 기도를 따르고자 하는 간절함이 에큐

제에 대해 정반대의 해법처럼 보일 수도 있

메니칼 운동의 동력이 되었다. 하지만 전망

다. 앞의 방식은 교회의 중요성을 최대화시

은 그리 밝지 않았다. 다른 유명한 신앙의

키지만 뒤의 방식은 그것을 최소화시킨다. 그러나 두 방식 모두 교회의 역사를 진지하

“우리가 아직 죄인 되었을 때

역설들―그리스도의 인성과 신성, 구원의

‘이미’와 ‘아직’, 신자의 죄인 됨과 성도 됨―

게 고려하지 않는다는 공통점이 바닥에 깔

에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위하

처럼, 교회의 하나 됨 역시 또 하나의 역설

려 있다. 이것이 문제이다.

여 죽으셨다.” (롬5:8) 하나님

임이 확인되었다. 교회는 나뉘어져 있으나

만약 실재했던 그리고 살아 있던 역사를

여전히 하나이다.

의미 있게 고려해야 할 것이 있다면, 그것은

은 창조주와 아무 상관없이

교회론 곧 교회에 관한 교리이다. 하지만

살아가려는 죄인들을 쫓아가

직 존재하지 않는다. 여기에는 한 가지 어

두 접근 방식은 모두 역사적 사실들을 불편

시어, 적들을 공동체로 모으

려움이 있는데, 그것은 각 그리스도교 공

하게 여겨 무시해 버린다. 특정 교회만을

“교회”로서 규정한다는 것은 인간이 만들

시고 그들을 가족으로, 친구

어 낸 경계와 구조를 넘나드는 성령의 능력

로, 교회로 만드셨다. 교회란

을 무시하는 것이다. 반면에 진실한 신앙을 지닌 개인들만(그들이 어떤 교회를 다니든 상관없

세상 모든 적들의 ‘화합의 진

이) “교회”라고 규정하는 것은 구조적인 교

원지’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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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회의 일치를 위한 유력한 단일 안은 아

동체들이 교회에 대한 자기들의 기존 개념 을 반영한 모델을 만들려는 경향이 있기 때 문이다. 그런 기존 개념들은 각자의 역사적 특성에 근거하고 있기 마련이다. 다 아는 얘기지만, 가톨릭은 로마 제국의 모델을 흡 수했고, 정교회는 그 발생 지역에서 강력한


국가-교회 연맹체state-church alliances를 형성

도하게 되리라는 것을 발견했다. 궁

의 이 말에 쓰인 헬라어 ‘시스마

했다. 그리고 종교개혁 시기에 개신교회는

극적으로 에큐메니칼 운동은 교리

타’schismata에서 ‘분열’schism이라는

종교 권력과 세속 권력 사이에 분리가 확대

문제, 교회 행정 및 선교 활동을 함

말이 나왔다. 그리고 바울이 이

되는 것을 수용했다.

께 해결하려 노력하고 있다.

렇게 말한 것은 “우리가 유대인

오늘날에도 동일한 경향이 지속되고 있 다. 복음주의 교회와 오순절교회의 분화

이나 헬라 인이나 종이나 자유 자나 다 한 성령으로 세례를 받

처음으로 돌아가자

경향은 모든 소비자들의 취향에 맞춰 제품

교회 분열을 조장

을 공급하는 자본주의 시장을 닮았다. 프랜

한 특정한 사람이

차이즈 모델을 따르고 있는 주류 개신교회

나 무리, 곧 거짓

에서, 그 지역 교회들은 교단 총회의 지사

교훈과 악행으로

교회를 교회로 존

역할을 하도록 기대되고 있다. 지역 교회들

교회의 화합을 방해

재하게 만든 복음에

과 초교파 사역단체들parachurch ministries의

하고 분열을 조장한

서 멀어졌을 때 교

네트워크를 통해 확보된 일치는 인터넷 상

어떤 사람들을 비

회는 분열하고 이념

에서의 관계를 재생산한다. 하나의 그리스

난하고 싶은 마음

화된다. 그 복음은 이것이

도인 공동체에서 다른 공동체로의 자유로

이 생길 것이다. 그런

운 이동은 개인의 선호와 기회에 기반을 둔

데 이러한 분열은 성경 속

오늘날의 경제와 사회를 반영한다.

에서 이미 시작되었다.

아 한 몸이 되었고 또 다 한 성령 을 마시게 하셨기”(고전 12:13) 때문이다.

다. “ 우리가 아직 죄 인 되었을 때에 그리스도께

이러한 교회 모델들이 반드시 잘못되었

교회 내부의 알력은 일찍부터 시작

서 우리를 위

다고 말하는 것은 아니다. 그러나 이러한

되었다. 바울과 바나바 사이의 불화, 베

하여 죽으셨

현상은 오늘날 교회들이 자기들 주변에서

드로와 바울의 갈등, 고린도 교회에서

다.”(롬5:8) 하나

보게 되는 일치의 양태들을 흉내 내고 있다

의 잘못된 성찬 관행, 그리고 미혹된 신앙

님은 창조주와 아

는 것을 보여준다. 종파적이고 세속적인 것

으로 이끈 거짓 선생들을 생각해 보라. 바

무 상관없이 살아가

들에 반대하면서 교회의 일치를 지향하는

울은, 요한이 했던 바와 같이, 끊임없이 동

려는 죄인들을 쫓아가

에큐메니칼 운동의 진정한 모델이 존재하

료 사도들에게 서로 사랑하도록 권면했다.

시어, 서로에게 원수된

는지 묻는 것은 가치 있는 질문이다.

당연히 그리고 자동적으로 화합이 이루어

그들을 하나로 모아 가족으로, 친구로, 교회

졌다고 한다면, 바울이나 요한이 그토록 반

로 만드셨다. 교회란 세상 모든 적들의 ‘화

복해서 서로 권면할 필요가 있었을까?

합의 진원지’이다. 하나님과 사람들 사이의

에큐메니칼 운동은 비록 분열의 문제를 해결하지 못했지만, 그런 노력은 변화를 가 져왔다. 그리스도인들의 초교파적 연대는

내부 갈등의 이유는 수없이 많다. 어떤

가장 극심한 관계의 소원함으로부터 시작

동유럽의 공산주의와 남아프리카의 인종차

것은 사악하고 또 어떤 것은 정당하다(비록

하여 모든 형태의 인간관계의 소원함을 치

별 정책을 종식시킬 때 빼놓을 수 없는 역

대부분의 사람들은 자기들의 이유는 정당할 뿐 사악

유한다.

할을 했다. 과거에는 서로 신뢰하지 못했던

한 동기는 아주 미미하다고 생각하지만). 그러나 바

이와 같은 복음은 사회적으로 놀라운 결

그리스도인들끼리 함께 재정을 분담하여

울은 중요한 차이점을 말하고 있다. 곧, 편

과를 가져온다. 신약성경에서는 유대인과

연합 봉사 프로젝트를 만들고 있다. 그리고

당faction은 있을 수 있지만(고전11:19 “너희 중에

이방인이 화합하는 모습이 나타난다. 유대

세심한 대화를 통해서 분열의 이유들보다

편당이 있어야 너희 중에 옳다 인정함을 받은 자들이

인에게만 복음을 전파하던 베드로는 사도

그리스도인들 사이에서 발견되는 놀라운

나타나게 되리라”),

행전 10장에서 갑자기 처음으로 환상을 보

공통점들이 누군가를 훨씬 더 믿음으로 인

된다(고전1:10 “너희 가운데 분쟁이 없이”).

photo by iStock

분쟁division은 있어서는 안 바울

고 경건한 이방인 고넬료를 만났고, 베드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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많은 사람들이 그리스도인들 의 일치의 중요성에 의문을 갖고 있다. 때로 그것은 일치 가 채 설교를 마치기도 전에 그는 예수를

가 실제로 수반할지도 모를

서하는 것이다. 그것은 요컨대 그리스도께

믿게 되었다. 베드로가 예루살렘으로 돌아

어떤 것에 대한 잘못된 인식

서 나에게 하셨던 대로 다른 이들에게 행하

가니 “부정한” 자들이 세례를 받았다 함을 듣고 그곳의 형제들은 아무도 기뻐하지 않 았다. 그러나 베드로가 그에 맞서 말하길,

“그런즉 하나님이 우리가 주 예수 그리스도 를 믿을 때에 주신 것과 같은 선물을 저희 에게도 주셨으니 내가 누구관대 하나님을

때문이다. 그리고 기독교 세

는 것이다.

계에서 자신이 차지하고 있는

왜 노력해야 하는가

작은 영역을 보호하려는 사악

많은 사람들이 그리스도인들의 일치의 중

함 때문이다.

요성에 의문을 갖고 있다. 때로 그것은 일 치가 실제로 수반할지도 모를 어떤 것에 대

능히 막겠느냐?”(행11:17)라고 하였다. 이 말

한 잘못된 인식 때문이다. 그리고 기독교

은 반대하는 형제들을 잠잠하게 했고, 그들

세계에서 자신이 차지하고 있는 작은 영역

의 불신이 더 크고 더 담대한 신앙 앞에서

을 보호하려는 사악함 때문이다. 일치를 위

비켜서게 하였다. 결국 그들은 “그러면 하

들을 어떻게 보느냐의 문제로 귀결된다. 이

해 노력하기를 거부하는 것은 마치 이렇게

나님께서 이방인에게도 생명 얻는 회개를

단에 빠진 자들은 사탄과 같은 그리스도

말하는 것과 같다. “하나님께서 이미 우리

주셨도다”(행11:18)라고 말하였다. 사도 바울

의 적이니 불구덩이에 던져 영원히 고통 받

를 의롭다고 선언하셨는데 왜 거룩해지려

이 세운 공동체들은 나중에 복음과 교회 사

게 해야 하는가? 아니면, 그리스도께서 멀

고 애쓰면서 스스로를 괴롭히는가?” 하나

이에 내재하는 연결고리를 이해하게 되었

리까지 찾아 나선 잃어버린 양들 가운데 하

님은 우리에게 구원의 선물을 주셨다. 우리

다. 그리스도는 “우리의 화평이신지라 둘로

나요, 죽음으로 구원하려 하신 죄 많은 인

는 그 선물에 반대되는 삶을 살 수도 있고,

하나를 만드사 중간에 막힌 담을 허시고 원

간 중 하나일까? 진실은 정통 교회가 이단

그로 인해 거룩한 백성으로 변화될 수도 있

수 된 것 곧 의문에 속한 계명의 율법을 자

에 빠진 이들을 기피하거나 거절하는 한 그

다. 마찬가지로, 하나님은 하나의 교회를

기 육체로 폐하셨으니.”(엡2:14-15) 단순히 불

들을 이단으로부터 구제할 방법이 없다는

부르시어 그리스도의 한 몸이 되라 하셨다.

가시적 일치 자체만으로는 십자가의 가치

것이다. 그리고 이단이라는 낙인과 함께 진

우리는 그 하나의 교회에 반대되는 삶을 살

를 제대로 드러내지 못했을 것이다. 그 일

리의 작은 조각들이 묻혀버릴 가능성도 존

수도 있고, 아니면 서로 화합하여 그리스도

치의 결과로 과거에 적이었던 사람들 사이

재한다. 루터교 신학자 아더 칼 핍콘Arthur

안에서 우리의 일치를 가시적으로 만들 수

에 실재적이고 가시적이고 살아있는 친교

Carl Piepkorn은

도 있다.

가 이루어져야만 했다.

Bußpredigten이라고 말하는 걸 좋아했는데, 이

결국, 이것은 이 세계를 위한 또는 기독

말은 “참회의 설교”를 의미한다. 이단은 그

교의 발전을 위한 최선의 문제가 아니다.

이단자를 사랑하고, 이단을 미워하라

리스도의 진리와 사랑에 대한 어떤 관점을

이것은 우리를 위한 그리스도의 기도대로

이단에 빠진 사람들과 이단은 물론이고, 에

간과하는 주류 교회에 대한 질책이라는 뜻

살아가는 문제이다. “저희도 하나가 되게

큐메니칼 운동에도 심각하게 반대하는 목

이다.

하옵소서.”

이단을 가리켜 부스프레딕텐

소리가 있다. 그리스도의 적들이 집안으로

적이나 이단자들을 가까이 하는 것은 성

숨어들면 어떻게 해야 할까? 사도들은 거짓

령께서 떠나가게 하기 위한 것이 아니다.

선생들을 꾸짖고 쫓아내 버렸다. 우리도 똑

그것은 ‘일곱 번 씩 일흔 번이라도’ 용서하

같이 해야만 하지 않을까? 분열이 더 바람

는 것이다. 그것은 겸손한 자세로 나 자신

직한 경우는 없을까?

보다 다른 사람들을 더 소중히 여기는 것이

문제는 결국 우리가 거짓 선생이 된 “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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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 나를 박해하는 자들을 저주하기보다 용

사라 힌리키 윌슨 프랑스 스트라스부르 에큐메니컬 연구원The Institute for Ecumenical Research 연구 교수이 자 <루터란 포럼>Lutheran Forum 편집인 Sarah Hinlicky Wilson, “Lament For Divided Church” CT 2014:3 남승호 옮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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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VIEWS 책, 영화, 여러 예술 작품들

풀 수 없는 질문을 지닌 채 ‘떠난다’ 문명을 제자리로 돌리려는, 느림의 방식

「걷기, 두 발로 사유하는 철학」 프레데리크 그로 지음 책세상 펴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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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VIEWS “걷는다는 것은 곧 전환이며 부름이다. 끝

름다운 청년 선재와 만나면서 자신이 걸어온

내기 위해서, 그리고 빠져나오기 위해서 걷기 도 한다. 세상의 떠들썩함과 점점 늘어만 가

삶이 얼마나 위선적이고 가벼우며 절망으로 치닫는 것인지 깨달아가는 또 하나의 ‘순례’를

는 일, 마멸에서 벗어나기 위해 걷는다. 잊기

다루었다. 혜은은 결국 모든 것을 내려놓은

위해서, 더 이상 이곳에 있지 않기 위해서는

채 스스로 선택한 용서의 길, 곧 자폭하듯 감

지루한 도로를, 한없이 단조로운 숲길을 걷는

옥으로 향하면서 법정 최후변론에 자신의 고

고보 사도가 순교한 길 ‘카미노’는

것보다 더 좋은 게 없다. 걷는다는 것은 곧 마

스페인의 푸엔테를 출발하여 산티

백을 담아냈다. “제 인생의 명장면이죠. 난생 처음 누군가

아고에 이르는 길이다. 해마다 10만

음을 멀리한다는 것, 떠난다는 것, 다시 출발 한다는 것이다.”(163쪽)

명의 순례자들이 이곳으로 모인다. 그들은 왜

여행하는 이들에게 가장 먼저 오는 깨달음

위해 목숨을 내놓은 것도 아니고 절절한 고백

산티아고로 향하여 걸을까? 그 대답을 아우르

이란 짐이 가벼워야 한다는 진리이다. 그들은

의 말을 해준 것도 아니었어요. 그 친구는 그

는 한 문장은 이것이다. 길에서 묻고자 떠난

비로소 인생의 여정에서 너무나 많은 짐을 지

저 정신없이 걸레질을 했을 뿐입니다. 저라는

다. 하여 순례는 곧 길에서 던지는 질문이다.

고 온 사실을 깨닫는다. 순례길에서는 무엇

여자한테 깨끗하게 앉을 자리를 만들어주려

질문을 가진 사람은 걷는다.

보다 그 짐을 내려놓아야 한다. 내려놓음이

고 애썼던 것뿐이었는데…. 전 그때 알았습니

산티아고 순례길을 배경으로 한 로드무비 <더 웨이>The Way는 명문 대학에서 공부하던

란 곧 무엇을 입을까, 무엇을 먹을까에 대한

다. 제가 누구한테서도 그런 정성을 받아보지

염려로부터 자유로움을 의미한다. 더욱 신비

못했다는 걸…, 심지어 나란 인간은 나 자신까

아들이 어느 날 학업을 포기하고 순례자가 되

한 것은 그렇게 내려놓음으로써 우리는 비로

지도 성공의 도구로만 여겼다는 걸…, 저를 학

어 떠난 뒤 폭풍을 만나 순례 도중 사망했다는

소 하나님 나라의 일에 주목하게 된다는 사실

소식을 들으면서 시작된다. 아버지는 아들의

이다. 내려놓음이 주는 자유로움은 순례자가

대하고 불쌍하게 만든 건 바로 저 자신이었습 니다.”

시신을 화장한 뒤 아들의 유골을 담은 함을 들

누려야 할 처음의 마음가짐이고 특권이다. 새

그러고 보면 혜은이란 여자는 자신이 진 무

고, 아들이 남긴 순례길 배낭을 메고, 아들이

가 창공을 날고 들의 꽃이 아름다운 옷을 입은

거운 짐을 내려놓기 위하여 사랑하고, 그 사랑

걸은 산티아고 길로 떠난다. 아버지의 질문은

까닭을 발견하는 일이다. 꽃처럼 짧은 잠깐의

의 힘에 의지하여 비로소 자신의 자리에 돌아

이것이다. 왜 떠났을까? 아들은 왜 이 길로 떠

시간을 살아가며 우리는 얼마나 많은 짐을 지

온 셈이다. 사랑이란 본시 상대를 본래의 자

나야 했을까? 그리고 아버지는 산티아고로 가

고 살아가는지 모른다. 순례의 길에서 우리는

리로 돌아오게 하는 따뜻한 손길인지 모른다.

는 순례를 통해 비로소 그 대답에 이른다.

꽃보다 아름답고 새보다 귀하다고 하신 주님

그리고 스스로 순례의 길을 떠나도록 등 두드

로 모여든다. 질문이란 그곳으로 오기까지 그

의 마음에 다가설 수 있다. 「느긋하게 걸어라」(복있는사람들 역간)의 저

려주는 행위인지 모른다. 프레데리크 그로는 나아가 “걷다 보면 어떤

들에게 일어난 수많은 일들의 결과이다. 그들

자 조이스 럽 수녀는 산티아고 순례길에서 7

사람이 되어 하나의 이름과 하나의 역사를 가

이 태어나 겪었을 파란만장한 일들, 그렇게 살

주 만에 집으로 돌아와 처음으로 만난 고민이

아온 그들의 시간, 그것이 곧 순례길을 찾아온

옷장의 문을 열고 오늘 입을 옷을 결정하는 일

지고 싶다는 유혹을, 하나의 정체성을 가져야 한다는 생각을 떨쳐버리게 된다”(17쪽)고 말한

이들의 질문이다. 그러고 보면 나에게도, 우

이었다고 했다. 순례의 여정에서 그녀는 갈아

리에게도 지금이란 시간은 질문하고 있다. 그

입을 옷이 한 벌이었고, 그러므로 전날 입은

다. 어이없게도 우리는 이처럼 하나의 정체성 을 가진 ‘어떤 사람이 되어야 한다’는 압박감

질문을 가진 이들에게 세상의 모든 산티아고,

옷을 더 입을지 배낭에 개어 둔 옷으로 갈아

에 짓눌려 나를 엉뚱하게 속박하고 살아간다.

순례를 위한 길이 부른다.

입을지, 그것만 결정하면 되었다. 그러나 복

거대하고 강한 율법이다. 우리 어깨를 짓누르 는 어리석은 거짓에서 나와 “아무도 아닌 사

사람들은 수많은 질문을 가진 채 산티아고

온전히 저한테 헌신하는 순간이었어요. 저를

존재인지 모른다. 성경은 그 바탕에서 우리에

잡한 소비만능주의에 물든 세상으로 복귀하 자마자 그녀는 “특정한 방식으로 살고 멋있어 보여야 사회적으로 용인될 수 있다는 압박감”

게 떠나라, 명령하는 책이다.「걷기, 두 발로

에 맞닥뜨린 셈이었다. 그녀는 또 같은 책에

사유하는 철학」의 저자 프레데리크 그로도 ‘영원한 이방인’이라 불리는 그리스도인들은 예수로부터 “네가 가진 걸 모두 팔아 가난한

서 우리를 얽어매는 내면의 짐이 삶에서 정말 고했다. 그러니까 평판, 지위, 멋진 외모, 충분

짐 내려놓고 떠나는 사람 ‘순례자’

사람들에게 나누어주고 나를 따르라”는 순례

한 지식, 사회적 지위 따위다. 이것에 지나치

산티아고 순례길의 전도자이기도 한 파울로

의 부름을 받은 사람들이라고 말한다.

게 신경을 쓰느라 우리는 명징한 사고와 해방

코엘료가 TV 다큐멘터리 프로그램에서 이런

된 마음으로 인생길을 걷지 못한다.

말을 했다. “산티아고로 가는 길에서 제일 처음 배운

질문을 가졌으므로 떠나야 한다. 모든 인생 은 질문을 품었으므로 떠나야 할 운명을 가진

질문을 가진 자는 떠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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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다. 걸어가는 몸은 역사를 가진 것이 아니 라 그냥 태곳적에 시작된 생명의 흐름일 뿐이 기 때문이다.”(17쪽)

중요한 것에 집중하지 못하게 할 수 있음을 경

얼마 전 끝난 드라마 <밀회>는 마흔 살의 ‘성공한 우먼파워’ 혜은이 스무 살 연하의 아

그래서이다.

람이 되는 것, 그것이 바로 걸을 때 누리는 자

건 죽음을 대하는 태도였어요. 죽음을 적이


아닌 친구로 대하는 법을 배웠지요. 나의 죽 음도 바로 옆에 있었는데 금발의 아름다운 여 성 같았어요. 그녀는 항상 나에게 키스하겠다 고 하죠. 그러면 나는 오늘은 됐으니 기다리 라 합니다. 하지만 나는 항상 죽음을 의식하 고 살죠.” 죽음을 친구로 벗하여 사는 이들에게 인생 이란 참 짧은 여정이다. 짧은 인생에 대한 깨 달음은 늘 인생을 매듭짓는 일이 주는 두려움 을 느끼게 만든다. 하여 오늘의 삶에 집중할

질문을 가졌으므로 떠나야 한다. 모든 인생은 질문을 품 었으므로 떠나야 할 운명을 가진 존재인지 모른다. 성경 은 그 바탕에서 우리에게 떠나라, 명령하는 책이다.「걷 기, 두 발로 사유하는 철학」의 저자 프레데리크 그로도 ‘영 원한 이방인’이라 불리는 그리스도인들은 예수로부터 “네 가 가진 걸 모두 팔아 가난한 사람들에게 나누어주고 나를 따르라”는 순례의 부름을 받은 사람들이라고 말한다.

수 있는 힘을 가져다준다. 죽음을 생각할수록 더 간절해지는 것은 삶에 대한 간절함이기 때 향하는 ‘노란 화살표’는 어디 있을까?

문이다. 삶에 대한 간절함이 우리에게 다시

느림이란 곧, 초秒들이 줄지어 나타나 마치

질문한다. 질문이란 결론을 얻기 위한 과정이

바위 위에 내리는 보슬비처럼 한 방울씩 똑

세월호가 침몰하고 어린이날과 어버이날,

아니라 살아있다는 증거이기 때문에, 더 치열

똑 떨어질 때까지 시간과 완벽하게 일체를

스승의 날을 슬프게 보낸 뒤 목사님은 베드로

한 삶의 자리로 우리를 이끌어간다. 더 사랑

이루는 것이다. 이 같은 시간의 늘어남은

하고 더 뜨겁게 열정을 쏟아낸다. 순례의 길

공간을 깊이 파고든다. 이것이 바로 걷기의

후서의 교훈으로 주일 예배 설교를 하셨다. “그러므로 모든 악독과 모든 기만과 외식과

에서 우리가 끊임없이 질문하는 까닭은 그래

비밀들 가운데 하나다. … 걷는다는 것은

시기와 모든 비방하는 말을 버리고 갓난아기

서이다.

무엇인가에 다가가는 것이라기보다는 거

들 같이 순전하고 신령한 젖을 사모하라 이는

기 있는 것들이 우리 몸속에서 더 오랫동안 지속되는 것이다.”(58~60쪽)

그로 말미암아 너희로 구원에 이르도록 자라

순례는 그런 의미에서 길의 끝이 아니라 길 의 시작이라고 한다. 산티아고를 걸은 사람은 한다고 하지 않던가. 순례길을 가는 방식이 달리기가 아니라 걷 기인 까닭은 이 때문이다. 질문하고 생각하고 발견하고자 더 치밀하게 누리고자 걷는 것이

게 하려 함이라 너희가 주의 인자하심을 맛보 았으면 그리하라 사람에게는 버린 바가 되었

인생의 산티아고에서 다시 순례의 삶을 시작 원더풀! 느림이란 보슬비처럼 시간과 완벽

으나 하나님께는 택하심을 입은 보배로운 산

하게 일체를 이루는 것이란다. 그 보슬비가 바위가 아닌 피부에 떨어진다면 ���림이란 “인 간 운명의 잎맥이 그려지는 것을 보”(39쪽)는

돌이신 예수께 나아가 너희도 산 돌 같이 신 령한 집으로 세워지고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 암아 하나님이 기쁘게 받으실 신령한 제사를 드릴 거룩한 제사장이 될지니라.”(베드로후서

자 한다면 이제 프레드리크 그로가 집중하는

일이기도 하다. 이것은「세상의 모든 기도」 (함께읽는책 역간)에서 “지혜를 얻기 위해 당신

걷기 본래의 철학에 귀 기울이게 된다.

은 뇌뿐만 아니라 배고픔, 고통, 쾌락을 느끼

내게 다가온 베드로 사도의 당부는 ‘진심’을

다. 걷기라는 방식으로 순례의 길에 들어서고

2:1-5)

는 육신을 필요로 한다. 지혜는 선조들이 쌓

가진 산 돌이 되라는 것이었다. 누군가는 자

“우리는 여기서, 길을 걸을 때 자신감을 보

아 놓은 통찰력을 향한 육신의 여정이고 따라

기 자신조차 성공의 도구로 내몰고, 또 누군가

여주는 진짜 징후는 바로 느림이라는 교훈

는 다른 마음으로 사랑을 말하며, 또 누군가는

을 얻을 수 있다. 그렇지만 내가 여기서 말

서 지혜를 얻기 위해서는 육신의 살과 피가 필 요하다”고 말한 바바라 브라운 테일러의 목소

하려고 하는 걷는 사람의 느림이란 빠름과

리와도 궤를 함께한다고 말하면 억지일까?

신령한 예수의 집은 진심을 품은 산 돌로써 지

공동체를 위하여 생명을 지우고 있다. 그러나

정확히 반대인 느림이 아니다. 그것은 우선

느림은 보다 완성된 삶의 방식이다. 느림의

어야 함을 거듭 당부하였다. 늦은 봄을 지나

발걸음이 보여주는 극도의 규칙성이자 일

가치를 훼손하는 어떤 문명도 알고 보면 야만

률성이다. … 느림은 무엇보다도 조급함의

적이다. 순례란 그러므로 걷기를 통해 느림의

생명의 여름으로 향하는 길로 나아가라, 떠밀 고 있었다. “걷기는 … 겸허함 속에서 이루어

반대다. … 속도가 시간을 벌게 한다고 믿

맛을 누리는 일이며, 문명의 방향을 제자리에

진다. 즉, 우리가 얼마나 약한 존재인가를 상

는 것, 그것이 바로 속도가 만들어낸 환상이

가져다 두는 일이다.

기하는 것이다. 걷는다는 것, 그것은 곧 가난 한 자의 상황이다.”(282쪽)

다. 언뜻 보면 간단한 계산처럼 보인다. 세 시간은 족히 해야 할 일을 두 시간에 끝냈

완성된 삶의 방식 ‘느림’

으니 한 시간을 벌었다는 식이다. 그러지만

많이 헝클어지고 뒤죽박죽 엉망이라고 판단

그것은 추상적인 계산이다. 매시간을 단 1

할 때 나는 질문한다. 나는 누구일까? 나는 나

초의 차이도 없이 똑같은 시계의 시간으로

의 언어를 쓰며, 나의 숨으로 호흡하며, 내 목

계산하면 … 사람들은 산더미처럼 많은 것

소리로 노래하는가? 나는 지금 어디에 서 있

을 한 시간 속에 꾸역꾸역 밀어 넣는다. …

는가? 길에서 벗어난 건 아닐까? 산티아고로

박명철 <기독신문>과 <기독교사상>에서 기자로, <아름 다운 동행>에 편집장으로 오랫동안 일하면서 신앙을 삶 으로 살아내는 이들의 이야기를 찾아 알렸다. 지은 책 으로「사람의 향기, 신앙의 향기」(홍성사),「교회학교 부흥을 꿈꾸는 그대에게」(브니엘)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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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VIEWS 「다른 불」

Strange fire 존 맥아더 조계광 옮김 생명의말씀사 펴냄

아프리카에는 은사주의만 있다? 30% 정도에 불과… ‘건전한 신학’에 대한 갈망도 크다

아프리카 교회를 보면 어딘지 익숙한 데가 있다. 그들의 영성과 서방 교회의 그것을 양 쪽에 두고 그 사이에 우리의 영성을 둔다면, 우리는 어느 쪽에 더 가까울까? 복음을 받아들인 초기부터 개혁주의 신앙이 주류를 형성했다고는 하지만, 한 세기를 넘기는 사이에 우리의 복음은 만신창이가 되었다. 번영 신앙에 오염되었고 영적 분별력은 극심하게 쇠약해졌다. 더 늦기 전에 근원부터 다시 생각해 봐야 할 때다. 은사주 의 운동에 대한 존 맥아더의 날선 비판은 또한 우리를 겨눈 것이기도 하다. 그러나 비판을 위한 비판은 또 다른 오류와 실수를 범할 수 있는 법. 바리새파적 과잉 신학주의로 형제를 매도해서도 안 될 것이다. 맥아더의 이 책이 나와 다른 신학을 가진 형제를 비난하는 도구가 아니라 나의 신앙과 신학을 성찰하고 자책하는 채찍이 되기를 바란다. 아래의 케빈 엠머트Kevin P. Emmert의 CT 기사는「다른 불」이 미국서 출간되었 을 때 나온 것이다. 이 책의 논지는 두 말 할 것도 없이 분명하고 선명하다. 혹 선명한 주장과 논설에 현실과 실체가 가려질 위험이 크기에, 아프리카 기독교의 현실과 ‘팩트’에 충실하고자 한 이 기사는 지금도 그리고 우리에게도 여전히 유효하다.

맥아더는 은사주의 운동을 좋아하

지 않는다. 이 운동을 싫어하는 그 의 마음에는 변함이 없다.

우려”가 더욱 깊어졌다고 말했다. 맥아더는「다른 불」의 출간에 맞춰 사흘

음베웨의 지적처럼, 사실 아프리카 대륙에 서 오순절과 은사주의 그리스도인은 통계적

간 콘퍼런스를 열었다. 이 콘퍼런스에는 조니 아렉손 타다Joni Eareckson Tada와 스프라울R. C. Sproul이 강연자로 등단해 “성령의 진정하고,

으로 소수이다.

성경적인 사역”을 강조하고 맥아더가 “성령 을 욕되게 하는 행위”라고 비판하는 은사주의

은사주의 교회가 아프리카에서 급성장한 것

운동의 행태들을 공박했다. 현재 미국 개혁주 의 진영에서 주목 받고 있는 짐바브웨 출신의 콘래드 음베웨Conrad Mbewe 목사도 강연을 했

한 것은 아니다. 그 예로 나이지리아 최대의 개신교단인 ‘모든 이들을 얻는 복음주의 교 회’Evangelical Church Winning All를 들 수 있다. 이

다. 음베웨 목사는 아프리카에서 급성장하고

교단에는 6000여개의 지역 교회와 250만 명

영향력 있는 작가이자 목사이며 신학

있는 오순절 및 은사주의 교회를 비판하는 주

의 성인 교인이 있는데, 전혀 은사주의적이지

교 총장인 존 맥아더는 은사주의 운동은 잘

않다.

못된 것이라는 자신의 주장을 조금도 굽히

도적 인사로 떠오르고 있는 인물이다. 그는 맥아더의 블로그에 올린 글에서 “우리는 이것

지 않고 있다. 그의 비판은「은자주의자들」 혼돈」

은 기독교가 아니라는 경고의 소리를 내야 한 다”고 말했다.

고 있으며 앞으로도 이런 교회들이 아프리카

지난 10~20년 사이에 미국에서는 카리스 마적 은사―방언, 예언, 이적 같은―를 강조하 는 그리스도인들과 그런 은사는 초대 교회에 서 끝났다고 믿는 그리스도인들 사이에 일종 의 화해 움직임이 있다. 특히 개혁주의 및 칼 빈주의 세계 안에 있는 가스펄 코얼리션Gospel Coalition

같은 그룹들은 두 진영 사이에 가교를

놓으려는 노력을 공개적으로 펼쳤다.

The Charismatics(1978)과「은사주의적

1/3 수준 은 사실이다. 하지만 이 교회만 그렇게 성장

그밖에 다른 비은사주의 교회들도 성장하 에서는 다수를 점할 것으로 예상된다고 전문 가들은 말한다.「세계 기독교 아틀라스」Atlas

Charismatic Chaos(1993)에서 이미 정점을 찍었다.

아프리카 출신으로는 극히 드물게 오순절

그가 새로운 책「다른 불」을 내면서 은사주

주의에 대한 탁월한 비판가이기는 하지만, 음

of Global Christianity에서

의 운동에 대한 포문을 다시 열었다.

베웨는 아프리카 교회를 오순절과 은사주의

맥아더는 주류 복음주의자들이 은사주의에 휩쓸리는 것을 보면서 “은사주의 운동에 대한

교회로 획일적으로 규정하는 서방 교회의 가

스는 아프리카 그리스도인의 33%만 “갱신주 의자들”renewalist(그들은 이 용어에 은사주의, 오순

정에 대해서도 비판적이다.

절, 또는 기타 “성령 충만” 교회들을 포함시킨다)이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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토드 존슨과 케네스 로


고 추산한다. 존슨과 로스는 갱신주의자들을 세 그룹으로 분류한다. 전체 아프리카 갱신주 의자들의 19%를 차지하는 교단 오순절주의 자(하나님의 성회 포함), 27%의 주류 교단 은사

은 은사주의자들이 “아프리카 전통 종교와 기 독교적 삶을 혼합하고 있다”고 말했다. “너무 많이 섞여서 어떤 것이 아프리카 전통 종교도

영 복음과 동일하게 취급하면 오류를 범할 수 있다고 지적한다. “은사주의 운동 안에 도사리고 있는 악에

어떤 것이 기독교적 삶인지를 분간할 수 없을 정도다.”

맞서 싸우고 있는 음베웨 목사 같은 사람들은

고 54%를 점하는 독립 은사주의자들이 그들

그러나 가나의 트리니티신학교에서 현대

이다. 시카고 ECWA 교회의 이삭 라우다르지 목

아프리카 기독교와 오순절/은사주의 신학을

면서 아이까지 같이 버리지 않도록 주의해야 한다.” 카메룬침례신학교 윌프레트 폰 총장

주의자들(가톨릭, 성공회, 루터교, 침례교 등), 그리

사는 아프리카의 은사주의자들의 수를 파악 한다는 것은 어려운 일이라고 말한다. 하지만 그는 그들이 광범위한 영향력을 행사한다는 것에는 동의한다. 그는 아프리카의 은사주의 교회들의 사역 방식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고 말한다. “그들은 아프리카 대륙 밖에 있는 교

잘 하고 있다. 하지만 그들은 목욕물을 버리

가르치는 크와베나 아사모아 가두 교수는 문 제가 부풀려졌다고 말한다. “‘나는 기독교 신 앙을 가진 아프리카인이 되기를 원한다’고 말

의 말이다. “은사주의 운동의 많은 이적들이 속임수일 수 있다. 그러나 진짜 이적도 있다.”

할 아프리카 기독교 지도자는 거의 없다. 그 들은 보통 ‘나는 성경적인 그리스도인이 되기 를 원한다’고 말한다. 아프리카에서 오순절

리카의 은사주의 운동에서 발견되는 극단적

교회가 잘 되는 것은 그들이 성령, 성령의 자

은사주의자들과 비은사주의자들 모두 아프 인 행태와 오류들을 바로잡으려고 노력하고 있다. “아프리카 교회는 신학적으로 건전하고 깊

회들과 제휴를 하여 자신들을 아프리카의 비

발성, 그리고 성령의 표현적 본성을 강조하기

은사주의 교회들보다 우위에 있다는 인상을 심어주는 전략을 구사하고 있다.” 그는 또 은

때문이다. 이런 것들이 아프리카의 종교성과 조화를 이룬다.” 그는 또한 아프리카의 영성

이가 있어야 할 것이다. 그러나 하룻밤에 그 런 변화가 가능한 것은 아니다.” 폰의 말이다. “아프리카 교회를 돕기 위해 그런 일을 할 학

사주의 교회들은 비은사주의 교회들보다 TV

과 오순절주의는 악마와 관련하여 서로 비슷

자와 신학자들이 우리에게는 필요하다. 불행

나 라디오 같은 미디어를 이용하여 자신들의

한 언어를 사용하고 있기 때문에 많은 아프리

하게도, 도움의 손길을 내밀 수 있는 많은 아

인지도를 끌어올리는 데 훨씬 능하다고 그는

카 사람들이 오순절교회에 친밀감을 느끼는

프리카인들이 해외에 디아스포라로 흩어져

지적했다.

것이라고 설명한다.

혼합주의

번영 복음의 덫

살고 있다. 그래서 아프리카 교회에는 제대로 훈련 받은 리더십이 계속 부족한 형편이다.” 고든대학의 다르코 같은 몇몇 “디이스포

라우다르지 목사와, 고든콘웰대학의 가나 출

비은사주의자들이 자주 제기하는 또 하나의

라” 아프리카인들은 교회 지도자들을 훈련하

신 다니엘 다르코 교수 같은 아프리카 출신들 은 맥아더 목사가 ‘다른 불’ 콘퍼런스에 아프

비판은 은사주의 운동이 번영 복음을 맹목적

기 위해 정기적으로 고향 아프리카를 방문한 다. 다르코 교수는 목회자들을 훈련시키는 일

는다. 다만 라우라르지 목사는 맥아더 목사

으로 수용하고 있다는 것이다. “복음이 왜곡되고 있다. ‘그리스도의 부활 과 그리스도의 고난의 능력이 무시되고 있다”

가 단 한 사람의 아프리카인만 세운 것에는 놀

고 라우다르지 목사는 말했다. 그는 은사주의

랐다고 말한다. 은사주의 운동에 대한 우려의

자들이 고난의 신학을 옆으로 치워버렸다고

바로잡기 위해서도 노력하고 있다. 아프리카의 은사주의적 “불”을 끄기보다

목소리를 낼 아프리카 목사들은 매우 많다는

우려한다.

는, 그 불이 얼마나 하나님의 불인지를 분별해

것이다. 한 가지 반복적으로 제기되는 우려는 은사

누누도 이 점에 동의한다. 많은 아프리카 사람들은 “하나님이 자신들의 말을 들어줄 것

야 할 필요가 있다고 아사모아 가두 교수는 말 한다. “온갖 질병에 시달리며 사는 사람들을

주의 운동은 아프리카 토속 영성의 재발명이

이라고 기대하고, 자신들이 원하는 것을 줄 것

라는 것이다. 음베웨 목사는 맥아더의 블로그 에서 이렇게 말했다. “아프리카 은사주의의 ‘하나님의 사람’이 주술치료사witchdoctor를 대

이라고 기대하기 때문에, 문제를 해결하기 위 해서” 교회에 간다고 그는 말한다. 그는 또 아 프리카에는 돈을 벌려고 “하나님을 이용”하

많이 알고 있다. 그들은 기도를 받고 있고 또 치유를 받는다. 나는 모든 ‘이적 사역’을 다 받

체했다. 그는 신통력을 넘쳐흐르게 하는 사람

고 “당신이 이런 저런 일을 하면 하나님이 당 신을 고쳐주실 것”이라고 가르치는 목사들이

리카인 강사를 세운 것에 대해서는 놀라지 않

이다. 우리의 기도에도 불구하고 축복이 넘쳐

에 일차적으로 집중하고 있지만, 가나의 다른 기독교 지도자들과 함께 극단적인 행태들을

아들이지는 않는다. 그러나 그런 이적 사역들 을 둘러싼 부정적인 이야기들 속에는 일부 진 짜도 있다.” 아프리카는 많은 문제점을 안고 있다고 그

나지 않으면, 우리는 그의 교회나 집으로 곧장 달려간다. 그들은 ‘하나님의 사람’이 그들을

많다고 말한다. 은사주의와 오순절 교회 지도자들 중에서

나님께 의탁하는 사람들이 없다면 아프리카

위해 기도해 주기만을 바란다.”

도 번영 복음이 갱신주의 교회 안으로 스며들

는 더욱더 나빠질 것이다. 아사모아 가두 교 수의 마지막 말이다. “삶이 변화된 사람들을 대라면 댈 수 있다.”

자신은 은사주의자도 아니고 은사중단주

어왔다고 걱정하는 이들이 있다. 그러나 다르

의자도 아니라고 말하는 가나 출신 코피 누

코, 아사모아 가두, 그리고 클리블랜드 오순절

누 목사도 혼합주의가 가장 큰 걱정거리라고

신학교에서 신약을 가르치는 아요데지 아데

말한다. 미국에서 목회를 하고 있는 그는 많

우야 교수 같은 학자들은 은사주의 운동을 번

는 말한다. 그러나 교회가 없다면 그리고 하

Kevin P. Emmert, “Surprise: The African Church Is Not Very Charismatic” CT(web) 2013:10 홍경화 옮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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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VIEWS 성경의 눈으로 본 첨단 의학과 의료

밑줄 긋기

김민철 이레서원

“따옴표”_고전 3선 고전이 ‘고물’이 아닌 것은 여전히 생명력이 있기 때문이다. 시간 의 한계를 초월하여 검증된 고전의 지혜를 우리에게 전수하는 새 로 펴낸 고전 3권을 소개한다.

“의사여, 너를 고치라!”

영혼이 병든 시대에 던지는 그리스도인 의사의 양심

순교자 열전

존 폭스 l 홍병룡 옮김 l 포이에마 l 383쪽

존 폭스는 종교개혁이 일어나던 해(1517)에 영국 서 태어났다. ‘피의 메리’ 여왕의 박해를 피해 독 일에서 오래 살았다. ‘박해’의 역사에 대한 그의 기록은 그래서 ‘객관적’이지 못할 수도 있다. 그 가 추구한 것은 영원의 ‘진리’였다. 위클리프가 무덤에 안치된 지 41년 만에 그 의 대적들은 시신을 무덤에서 파내어 재로 만들

월호에 갇힌 생명들이 우리의 마음을 짓누르고 있을 때 김민 철 박사를 만났다. 그는 ‘다시 쓴 서문’에서 프랜시스 쉐프를 인용해 “어떤 시대에 대한 평가는 궁극적으로 그 시대가 생명

을 어떻게 취급했는가에 의해 판단되어야 한다”고, “이 일과 관련해 우 리 의료인들이 감당할 몫이 큰 시대에 우리는 살고 있다”고 했다. 그 몫 이 비단 의료인에게만 돌아갈까? 우리 시대는 지금 생명을 어떻게 취급하고 있는가? 생명을 위한 최소 한의 구조장비도 비용으로 계산하고, 찾아내어 건져 올린 시신마저도 수익으로 셈하고, 비탄에 잠긴 희생자 가족들에게는 국민의 혈세를 한 푼도 지원해서는 안 된다며 세금 타령 하는, 의료를 이른바 “민영화”하 여 실상은 ‘대자본화’하겠다는, 생명에 관한 한 참으로 미개한 수준을 우리는 드러내고 있다. 그날 김 박사는 SNS에 올린 자신의 글 하나를 안타까운 심정으로 보 여주었다. ‘노란 리본’에 대한 때 아닌 무속 시비를 무분별하게 퍼 나르 고 있는 가까이에 있는 교우들에게 ‘아니오’라 말하는 글이었다. 만에 하나 그것이 무속에 기원하고 있다 하더라도, 그 알량한 교리가 생명에 대한 안타까움에 앞설 수는 없지 않은가. 그의 표현으로 하자면, 이 또 한 “바빌론에 포로가 된 그리스도인의 생명윤리”의 실상이 아닐까. 10년 전에 이 책이 처음 나왔을 때 제목이 ‘의료, 세계관이 결정한다’ 였다. 개정판에서도 그의 생각에는 변함이 없다. “그렇다. 결국 이제껏 도 그랬지만 앞으로도 세계관이 문제이다. 중립은 없다.” 그래서 그는 생명을 ‘공학’과 ‘자본’의 논리로 다루는 이 시대의 “첨단” 의료 기술(이 또한 ‘세계관’이다)에 정면으로 맞서며, 사마리아인의 비유를 들어 ‘성경 적 의료를 위한 세계관’을 이야기하고, 자신을 포함한 그리스도인 의료 인들을 향해 “의사여, 너를 고쳐라!”(눅4:23) 역설한다. 이 책의 끝맺음은 다시 물음이다. “예수께서 인용하셨던 ‘의사여, 너 를 고쳐라’는 속담은 오늘날의 첨단 의술에 어떤 메시지로 다가올 수

어버렸다. 그러고는 그 재를 강물에 뿌렸다. 이렇 게 해서…그들은 위클리프의 이름과 교리를 영원히 없애버린 것으로 생각했다. 그러나 주님을 대적할 만한 모사가 없으니, 진리를 계속 억 누르는 일도 있을 수 없고, 진리는 흙과 재로부터 다시 일어나리라! 194쪽

성경을 즐거워하라

드와이트 L. 무디 l 생명의말씀사 l 190쪽

19세기 후반을 살며 복음을 전하며 그 어느 성 경학자보다도(그는 초등교육도 제대로 받지 못했 다) 더

깊이 말씀을 사모하고 또 실천했던 무디

(1837-1899)의 말이 21세기를 살고 있는 우리를

직접 향하고 있다. 하나님 나라를 확장하는 데 전혀 일을 하지 않는 몇 천 명의 교인들이 있다는 것이 참으로 한탄스럽다. 그들은 바자회나 자선 봉사를 위해 서는 열심을 낸다. 그러나 그들 앞에 누군가를 데리고 와서 하나님 나 라의 복음을 전해 달라고 하면 거절해 버린다. “나는 그런 일은 못합 니다. 장로나 다른 사람에게 부탁해 보세요.” 이것은 옳지 않다. 스스 로 그 일을 할 수 있도록 교육을 받아야 한다. 177-178쪽

영적 침체

마틴 로이드 존스 l 정상윤 옮김 l 복있는사람 l 426쪽

무디가 생을 마감한 해(1899)에 영국서 태어난 마 틴 로이드 존스(1899-1981)는 30년을 런던의 웨스 트민스터 채플에서 말씀을 강론했다. 무디처럼, 그도 오로지 말씀만이 우리가 영적 침체에서 벗 어나는, 그리하여 교회가 참으로 부흥의 길임을 역설했다. 그리스도인이 침체의 상태에 계속 머물러 있 는 것은 매우 안타까운 일…입니다. 그리고 그보 다 훨씬 더 심각하고 중요한 [것은], 침체한 그리스도인은 기독 신앙을

있을까? 남의 병을 고친다는 의료인들이 스스로는 걸린 줄도 모르고 앓

제대로 대변할 수 없다는 것입니다. 현대 세계의 온갖 문제와 혼란과

고 있는 영원히 죽음에 이르는 병, 세속적 인본주의에 근거한 의술지상

어려움과 슬픔을 생각할 때, 그리스도인을 자처하며 그리스도의 이름

주의를 고치기 위해 패러다임 전환을 요구하는 경고로서 오늘날의 의 료 사회에서도 그 의미를 찾을 수 있지 않겠는가?” 김은홍

을 내세우는 우리가 신앙을 제대로 대변함으로써 바로 이곳에 해결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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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HRISTIANITY TODAY

June 2014

이 있고 대답이 있음을 보여주는 것보다 중요한 일은 없습니다. 36쪽


공감능력의 회복을 위한 글읽기 | 김은홍

담대한 희망 The Audacity of Hope 버럭 오바마 | 홍수원 옮김 | 랜덤하우스코리아

2008년 미국 대통령 선거 민주당 후보 경선 을 앞두고 민주당은 ‘대통령 후보에게 가장 중요한 자질은 무엇이라고 생각하는가’라는

비통한 자들을 위한 정치학 Healing the Heart of Democracy 파커 J. 파머 | 김찬호 옮김 | 글항아리

질문을 민주당 지지자들에게 던졌다. 가장 많은 사람들이 ‘공감’이라고 응답했다. 버락 오바마는 이 책에서 공감이 “나의 도 덕법의 핵심에 자리 잡고 있다”며 어머니에

공감의 힘 Power of the Empathy 데이비드 호우 | 이진경 옮김 | 지식의숲

게서 인간으로서 갖추어야할 성품으로서의 마음이 부서진 사람들the brokenhearted에게 우

공감을 배우고 익혔다고 말한다. 그리고 그

공감은 사람과 사람 사이의 관계를 더욱 사

리는 어떻게 다가가야 할까? 이 비통한 이들

는 이것을 정치인으로서 갖추어야 할 자질로 삼았다. “내가 이해하는 이 황금률은 단순히

람답게 만들어 주는 기술이다. 사람다운 사

연민이나 자비를 베풀라는 것이 아니라 더

동체는 이루어진다. 그래서 공감능력이 부

욱 많은 것을 하라고 명령하는 어떤 것, 다른

재한 사람들이 장악한 사회는 삭막하고 비정

사람들의 입장에 서서 그들의 눈으로 보라는

할 수밖에 없다. 공감이라는 개념이 탄생하

것이다.…지금도 나는 어머니가 강조한 간단 한 원칙, 즉 “네게 그렇게 하면 느낌이 어떨 것 같으냐?”를 정치활동의 길잡이 중 하나로

는 과정에서부터 이것이 오늘날 인간 활동의

앞에서도 정치인들은 표를 속셈하고 있을지 도 모른다. 파커 J. 파머가 이야기하는 ‘정치’ 는 그런 정치가 아니다. 그가 이야기하는 ‘비 통한 자들을 위한 정치’가 필요한 까닭이 바 로 “무심한 상대주의, 정신을 좀먹는 냉소주 의, 인간 존엄성에 대한 경멸, 고통과 죽음에 대한 무관심”을 조장하는 비열하고 천박한 정치를 몰아내기 위함이다. 세월호의 비극을 두고서도 “색깔”을 거론

람들이 모여서 결국 사람답게 살 수 있는 공

모든 분야에서 주목받고 응용되는 현상에 주

삼고 있다.” 그리고 미국 국민은 그를 대통령

목하면서 저자 데이비드 호우는 공감능력의 중요성을 역설한다. “공감이란 타인의 마음

을 뽑았다.

과 그의 내적인 경험 세계를 읽고, 나아가 그

하는 무심하고 무정한 이들에게 파머는 말한 다. “정치에 관한 우리의 모든 이야기가 분파

것을 공유할 수 있는 능력을 말한다.…분야

적이고 양극적일 뿐만 아니라 기술적이거나

다움을 정의해 주는 것은 물론 그것을 더욱

전략적인 상황에서 우리는 공감, 책무, 그리

풍성하게 고양시켜 준다는 데 의견을 모으고

고 민주주의 그 자체의 기반이 되는 인간적 연결을 느슨하게 만들거나 잘라낸다.”

있다. 이러한 견해는 공감능력이 부족할 때

와 상관없이 많은 전문가가 공감능력이 인간

어김없이 우리의 인간다움도 약화되는 현상 을 통해 반증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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츠 포 스 격투

노가 리 마 고든

교수인 학 철 다. 이자 하 때 치 고 할 코 숙 관람 복싱 성을 를 덕 기 도 투 격 필요한 리노 고든 마


파퀴아오는 4월 12일 라스베이거스에서 열린 WBO 세계 웰터급 챔피언 타이틀 매치 에서 팀 브래들리와 일전을 벌여 결국 타이틀을 되찾았다. 파퀴아오는 복싱을 소명이라 말한다. 릭 워렌 목사는 이 세계적 프로 복서를 “성서 인용 광”이라 불렀다. 또한 파퀴아 오는 자신의 기록(56승 5패)을 ‘하나님의 섭리’라 했다. 파퀴아오가 하나님을 운동 경기에 끌어들인 최초의 프로 선수는 아니지만, 일대일로 맞붙어 폭력으로 상대를 제압해야 하는 권투나 이종격투기MMA 같은 “격투 스포츠”가 그리스도인 선수 와 관중 모두에게 낯선 윤리적 질문을 던지고 있다. 한편에서는 “계집애”처럼 되어가는 문화를 비판하는 사역자들이 젊은 남자들의 이목을 끌기 위 해 이종격투기를 활용하고 있다. 남자다운 그리스도인을 주창하는 마크 드리스콜 목사 같은 이 들은 “예수님은 톡톡 치지 않으셨다”Jesus Didn’t Tap는 말을 즐겨 하는데, 이 말은 또한 이종격투기 의류와 용품을 만들어 파는 기독교 기업 이름이기도 하다. “인간 닭싸움”이 폭력을 위한 폭력에 대한 우려의 목소리와 동시에 엄청난 돈과 수많은 관중을 끌어 모으고 있는 이때 CT가 “복싱하는 철학자” 고든 마리노를 ‘토론의 링’ 안으로 초청했다.

은 마음의 창이라는 격언이 있다. 눈은 모든

우리가 예의주시할 것은 에로틱한 영상

것을 말한다. 어떤 사람의 눈을 들여다보면

에 노출된 눈만이 아니다. 우리는 아이들이 폭력적인

그 사람의 마음속을 엿볼 수 있다. 또한 우

영화나 비디오 게임 앞에서 넋을 잃은 채 몇 시간을 보 내기를 원치 않는다. 섬뜩한 장면을 탐닉하면

리의 마음은 그 창을 통해 받아들인 어떤 것 에 영향을 받는다. 예수께서도 같은 말씀을

문화 트렌드

하셨다. “눈은 몸의 등불이니 그러므로 네 눈이 성하면 온 몸이 밝을 것이요 눈이 나쁘면 온 몸이 어두울 것이 니….”(마6:22-23) 우리 그리스도인들이 포르노에 눈살을 찌푸리는 이 유는 포르노 이미지가 타인을 물건처럼 다루고 경험하

마음이 어두워지고 잔혹한 것들에 대한 감각

이 무뎌질 것이라 생각하기 때문이다. 요컨대, 폭력적이고 섬뜩한 것들에는 구역질이 나면 서도 사람을 끌어들이는 마력이 있다. 플라톤 시대에 도 그런 사례가 있었다. 플라톤이 <국가론> 제4권에서 한 말이다.

라고 충동질하기 때문이다. 예수께서는 이렇게 경고하 셨다. “또 간음하지 말라 하였다는 것을 너희가 들었으

아글라이온의 아들 레온티우스가 피레우스에서 (북

나 나는 너희에게 이르노니 음욕을 품고 여자를 보는

쪽 성벽을 따라) 들어오다가 사형집행관 옆에 누워 있

자마다 마음에 이미 간음하였느니라.”(마5:27-28) 보는

는 시체들을 보았다네. 그는 속으로 갈등했네. 시체

것과 행동하는 것은 매우 밀접한 관련이 있다.

들을 보고 싶다는 마음과 그것을 보아서는 안 된다는

PHOTO BY 연합뉴스 / iSTOCK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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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음이 싸우고 있었던 거지. 그런데 보고 싶다는 욕구가 너무 커 시체들 쪽으로 다가가 이렇게 중 얼거렸다네. “똑똑히 보아라, 이 고약한 마음아! 어서 저 좋은 구경거리를 실컷 보란 말이야!” [이환 편역, 돋을새김]

오래 전부터 우리는 눈을 통해 받아들인 것은 결국 우리 존재에 영향을 미친다는 사 실을 알고 있었지만, 요즘 우리는 이를 잊은 채 너무나 쉽게 무감각의 왕국으로 채널을 돌려버리고 있다. 오늘날 가장 빠르게 성장하는 관중 스포 츠는 “극한의 격투”라고도 불리는 이종 격투기이다. 좋든 싫든 이것은 결국 싸 움이다. ‘바른 생활 사나이’처럼 비췰지 모르겠지만, 나는 이런 질문을 해 본 다. “스트레스를 풀 요량으로 술을 마시면 서 성인 남자들이 서로의 머리통에 주먹을 날리려고 애쓰는 걸 구경하는 것이 도덕적 으로 옳은 일일까?”

부터 실토해야겠다. 나는 수십 년 동안 폭

려 버리는 나 자신을 발견하기도 한다.

력을 쓰는 운동 경기에 깊숙이 관여하고 있

2013년, 폭력 조달업계는 우리의 갈증을

겸허함

다. 여전히 나는 격투 스포츠를 좋아하고

풀어주기 위한 새로운 묘책을 찾아냈다. 바

이 글을 시작하는 공이 울렸으니 먼저 내가

심지어 예찬하기도 한다. 그렇지만 링 안에

로 글러브를 끼지 않는 맨손 복싱BKB이다.

복싱 트레이너이자 복싱 기고가라는 사실

서 두들겨 패는 모습에 움찔하고 머리를 돌

일반 링보다 훨씬 작은, 농구 코트 한가운 데 있는 서클만한 데서 치열하게 싸우는 이 경기는 평범한 격투 경기로는 충분히 “실감 나는” 싸움을 느끼지 못해 짜증내는 관중을 겨냥한 것이다. 다음에는 또 뭐가 나올지

“스트레스를 풀 요량으로 술을 마시면서 성인 남자들이 서로의 머리통에 주먹을 날리려고 애쓰는 걸 구경하는 것이 도덕적으로 옳은 일일까?”

누가 알겠는가? 하여튼 뭐가 나오든 그것에 대해 착각하면 안 된다. 그것은 로마제국의 콜로세움에서 펼쳐졌던 유혈 낭자한 구경 거리를 현대인의 취향에 맞게 개조한 것에 지나지 않는다. 몇 해 전에 나는 텔레비전으로 중계되는

82

C H R I S T I A N I T Y T O D AY

April

2014

JOSH HEDGES / ZUFFA LLC / GETTY IMAGES


대한민국 그리스도인이자 이종격투기 팬들에게 ‘피’와 ‘약물’이 만드는 무대라면, 스포츠의 품격과 자격을 상실한 것이다

던 금기를 넘어선 대목이라 하겠다.

기라는 종목이 본격적으로 등장한

게다가, 2003년경 불거진 일본의 대표

의 한 섹션을 차지하고 있다는 것은 10년

것은 10년 남짓 밖에 되지 않았다. 복싱,

적인 이종격투기 단체 프라이드FC와 야

이상 지속된 대한민국의 이종격투기 열

프로레슬링, 유도 등 격투기로 분류할 수

쿠자의 연계설, 승부조작설 등은 이종격

풍을 상징한다고 하겠다. 대한민국은 여

있는 다양한 종목이 있었지만, 이종격투

투기의 탐욕스러운 속성을 상징적으로

전히 이종격투기의 잔혹함을 벗어나지

기만큼 강렬한 인상을 남기며 대중적 관

보여주는 사건이라

하겠다. (이 스캔들 이후

못하고 있다. 게다가 대한민국 이종격투

심을 끈 종목은 없었던 것 같다.

텔레비전 방송의 외면을 받은 프라이드FC는 몰락하게

기 마니아의 상당수가 청소년이라는 현

이 사건 이후 일본의 격투기 산업이

실에 대해 독자 여러분은 어떻게 생각하

한민국 스포츠 뉴스에서 이종격투

일본에서 건너온 이종격투기는 모든 싸

된다.)

여전히 대표적인 포털사이트 스포츠 면

움의 ‘기술’을 허용한 실전 싸움에 가장

몰락하며, 미국의 UFC가 바통을 이어 받

가까운 스포츠를 표방한다. 물론 무에

아 인기 TV 리얼리티 프로그램 TUF를 앞

‘강함’을 추구한다는 명분하에, 잔혹함

타이나 킥복싱처럼 손과 발을 동시에

세워 세계적인 격투기 스포츠 비즈니스

으로 얼룩지고, 생명에 대한 최소한의 존

사용하며 상대를 타격하는 종목이 있었

를 주도하고 있다. 그러나 그들 역시 일

중조차 사라져 버린 이종격투기의 현실

지만, 손과 발뿐 아니라 레슬링, 유도, 심

본식 이종격투기의 잔혹함을 그대로 표

을 이 땅의 그리스도인들은 어떻게 받아

지어 주짓수 같은 무술들이 혼재되어 상

방하며 오히려 유료 케이블 TV를 통해 세

들여야 하는가? ‘피’와 ‘약물’로 만들어진

대방을 공격하는 현대 스포츠는 이종격

계적으로 새로운 마니아층을 만들며 비

무대라면 이미 스포츠의 품격과 자격을

투기가 최초라 해도 과언이 아니다. 그러

즈니스를 확대하고 있다. 문제의 핵심은

상실한 것이다. 이종격투기 선수들의 눈

나 이종격투기에는 몇 가지 분명한 문제

금기를 넘어선 지나친 잔혹성으로, 타락

에 비친 공포와 고통을 지켜보면서 그들

가 있다.

한 인간의 본성을 자극하고 이를 기반으

을 조롱하고 열광하는 대중의 눈빛에 동

로 돈벌이에 나선 주최 측의 탐욕이다.

의할 수 없다고 한다면, 이종격투기 팬들

먼저, 일본식 이종격투기가 지향하는

는가?

대중을 자극하는 방식이다. 현대의 모

마지막으로 생각해야 할 것은 약물 문

에게는 너무 지나친 간섭일까? 많은 질문

든 격투 스포츠가 선수들의 출혈을 화면

제이다. 수많은 이종격투기 선수들이 한

이 머릿속을 맴돈다. 그러나 그 어떤 스

에 담는 것을 금기로 해 왔음에도 불구하

번의 승리를 위해 약물을 사용한다는 것

포츠도 피와 탐욕, 약물로 얼룩지기 시작

고, 일본의 이종격투기는 선수들의 다양

은 더 이상 재론할 필요조차 없는 현실이

한다면, 하나님의 레드카드를 각오해야

한 출혈의 흔적을 그 상징으로 제시한다.

다. 약물로 근육을 키우고 지구력을 끌어

하지 않을까?

이종격투기 중계방송을 보라. 피로 얼룩

올리지 않으면 이종격투기 무대에서 버틸

진 하얀 경기장을 보여주며 인간의 잔혹

수 없는 것이 현실이다. 화려한 무대에서

한 본성을 핵심 코드로 제시한다. 실신,

내려 온 뒤 이종격투기 선수들 개개인이

출혈, 탈골, 골절 같은 잔혹한 장면을 여

짊어져야 하는 고통스런 삶은, 과거 사자

과 없이 화면에 담아 청소년부터 성인에

밥이 되고 콜로세움 뒤편에 묻혀 간 검투

이르기까지 모든 시청자에게 제공한다는

사들과 무엇이 다를까?

것은 어떤 현대 스포츠도 보여주지 않았

이러한 이종격투기가 대한민국 땅에서

조기현 격투스포츠를 좋아하며 동네 체육관에서 사 회체육인으로 복싱을 연마하는 목회자. 총신대학교 와 신학대학원에서 교목으로 섬겼고 대방교회 교육 목사이다.「신약 개관」(프리셉트)의 저자이며「리더 가 저지르기 쉬운 10가지 실수」(프리셉트 역간) 등 을 번역했다.

83


경기에서 코너[선수에게 간단한 치료를 해 주고 다

는 그를 “지난 10년 동안 가장 뛰어난 파이

에게 찬사를 보내고 있다 하더라도, 우리에

음 라운드 전략을 알려 주는 역할]를

맡았다. 3라

터”로 선정했다. 어느 시합을 앞두고 나는

게는 명심해야 할 것이 있다. 우리 주 예수

운드 째였다. 우리 선수는 여기 저기 펀치

파퀴아오에게 상대 선수에게 뇌진탕을 일

께서 경기장 맨 앞줄에 앉아 강렬한 조명등

를 날리고 있었지만 유망주인 상대 선수에

으킬 수도 있는 그의 복싱 기술과, 제자들에

아래 벌어지고 있는 자발적 인간처벌을 구

게 엄청나게 얻어맞고 있었다. 나는 허리케

게 오른뺨을 맞으면 왼뺨마저 내주라 가르

경하고 계시리라 상상하려면, 우리는 자기

인 블로우hurricane blows가 얼마나 위험한지

치신 예수님에 대한 그의 헌신 사이에는 뚜

기만의 대가가 되어야만 할 것이다.

알고 있었지만, 우리 선수가 두들겨 맞는 것

렷한 충돌이 있다고 압박했다. 잠시 침묵이

아마도 격투 경기장에서 살아가는 우리

을 어찌할 수가 없었다. 3라운드가 끝나갈

흘렀다. 나는 너무 불편한 질문을 했나 싶

같은 사람들은 필히 그래야만 할 것이다. 파

무렵, 큰 펀치 한 방이 우리 선수의 글러브

어 이렇게 말했다. “내 질문이 기분 나빴다

퀴아오처럼, 겸허한 마음을 갖고서 말이다.

사이를 뚫고 들어갔다. 그는 휘청거렸지만 다운되지는 않았다. 나는 깊게 한숨을 내쉬 면서 수건을 던졌다. 복싱 경기에서 선수가 매우 심각한 상태에 있지 않는 한, 코너에 서 백기를 드는 것은 거의 금기사항처럼 되

격투기는 우리의 성격을 결정하는 감정을 조절하는 작업장이다. 우리가 어떤 사람이 되느냐는 두려움과 분노 같은 기본적인 감정을 어떻게 다스리느냐에 상당히 좌우된다.

어 있다. 관중은 미쳐서 난리를 쳐댔다. 내 가 마치 그들이 곧 보게 될 케이오 장면을 빼앗고 그들이 열심히 번 돈을 속여 갈취한 것 같았다. 어떤 것을 이해하는 가장 좋은 방법은 때 로 그것이 어떤 느낌을 주는지 알아보는 것 이다. 사람들에 대해서건 사건들에 대해서 건 마찬가지다. 우리 선수를 의사에게 데려 가고 퉁퉁 부어오른 눈에 얼음찜질을 해 주 면서 나는 역겨움을 참을 수 없었다. 사람

면 미안하게 됐습니다.”

두려움과 분노 다스리기

들이 무술이나 격투 경기에 요구되는 용기

파퀴아오는 대답했다. “아뇨, 좋은 질문

나는 사랑이 넘치는 가정에서 자랐다. 하지

를 만끽하는 것이 아니라 누군가 얼마 안

입니다. 제 생각에 우리가 다른 사람을 해

만 월요일, 수요일, 금요일 밤이면 우리 집

되는 돈을 벌려고 기를 쓰다가 의식을 잃고

치려 한다는 것은 오해입니다. 그러나 나는

에는 복싱도 있었다. 어릴 적에 복싱은 침

쓰러지는 것을 즐기는 구경거리에 내가 가

또한 하나님께서 우리(그와 상대 선수)를 용서

대에서 나를 전율케 만들었다. 성인이 되었

담하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해 주실 거라 생각합니다. 왜냐하면 복싱이

을 때는 그것 때문에 잠을 이루지 못했다.

물론 미식축구나 아이스하키 같은 스포

우리의 소명이니까요.”

그러다 보니, 내게 복싱과 누가 누구에게

츠에도 폭력적인 모습이 있다. 그렇지만,

‘하지만 하나님께서 왜 당신에게 그런 나

무엇을 해도 되는지 질문하는 것, 둘 다 거

미식축구 경기장에 온 팬들은 응급실로 실

쁜 소명을 주셨을까요?’ 나는 이렇게 다시

부할 수 없는 어떤 것이 된 것 같다. 윤리적

려 간 선수가 없다고 불평하고 난동부리지

한 번 밀어붙일 수도 있었지만, 그냥 얼버무

질문보다는 복싱이 더 중요했지만 말이다.

않는다. 미식축구의 목표는 골라인이지 상

리고 말았다.

대 선수의 턱이 아니다.

격투기는 우리의 성격을 결정하는 감정

파퀴아오의 침묵과 대답은 많은 이야기

을 조절하는 작업장이다. 우리가 어떤 사

복싱 선수 매니 파퀴아오는 독실한 그리

를 한다. 현대판 검투사들 중에는 열정적

람이 되느냐는 두려움과 분노 같은 기본적

스도인이다. 그는 복싱 역사상 여덟 체급을

인 신앙을 가진 이들이 있고, 마크 드리스콜

인 감정을 어떻게 다스리느냐에 상당히 좌

석권한 유일한 선수로, 미국복싱작가협회

이나 라이언 돕슨 같은 유명 목사들이 그들

우된다. 오늘날 두려움이나 분노 같은 감정

84

C H R I S T I A N I T Y T O D AY

April

2014

PhoTO BY 연합뉴스


을 품고 링에 들어갈 사람은 거의 없다. 오

러나 그 치고받는 경기를 지켜보는 것만으

믹은 권투의 도덕성에 관한 글에서 이렇게

히려 복싱이나 이종격투기를 하면서 이런

로도 고양되기도 한다. 1975년 세기의 대결,

말했다.

감정을 조절하고 통제하는 법을 배울 수 있

“스릴라 인 마닐라”에서 조 프레이저와 무

다. 이런 이유 때문에, 헌신적인 그리스도

함마드 알리가 링 안에서 혼신을 다해 싸우

우리가 제시하는 윤리적 답이 무엇이든,

인이요 목사인 전 헤비급 챔피언 조지 포먼

는 모습을 지켜보면서, 심지어 그 둘이 그로

어떤 문제를 그 도덕적 뿌리에서부터 직

은 언젠가 내게 “복싱은 젊은 친구들의 폭

기 상태에 빠진 애처로운 순간에도, 내 얼굴

시한다는 것은 그 자체로 영적으로 건강

력성을 완화시킨다”고 자신 있게 말했다.

은 눈물로 뜨거웠다. 그 사각의 링 안에는

한 삶을 살아가는 신호이자 보증이다. 우

나는 최근 세계적으로 유명한 복싱 트레

우리가 아이들에게 항상 가르치려 애쓰는

리 자신이 갖고 있는 즐거움과 오락의 도

이너(마이크 타이슨을 트레이닝하기도 했다)이자

교훈, 맡은 일에 최선을 다하려는 자세가 있

덕적 성격을 질문하기란 것은 결코 쉬운

해설자인 테디 아틀라스와 얘기를 나눴다.

었다.

일이 아니다.

그는 복싱을 잘 배우기만 하면 자신과 상대

그러나 대부분의 사람들은 선수들이 분

선수에 대한 존중심을 배울 수 있다고 말

출하는 파괴적 해방감을 탐닉한다. 타이슨

그리스도인들이 던져야 하는 결정적인

했다. “역설로 들리겠지만, 선수들은 정말

이 그에게 승리를 거둔 선수들보다 훨씬 큰

질문은 이것이다. 무엇이 빛을 가져오고 우

로 상대 선수와 함께 내면세계로 여행을 떠

명성을 누린 것에도 이런 심리가 작용했다.

리를 더 사랑 넘치고 친절한 인간으로 만들

나게 됩니다. 그렇기 때문에 경기가 끝나

만화영화의 슈퍼히어로처럼 아이언 마이크

어 줄까?

고 나면 선수들은 서로 부둥켜안을 만큼 친

[타이슨의 별명]는 분노의 화신으로 행동했고,

이 질문 앞에서 나는 고백하지 않을 수

밀해지는 거죠. 다른 스포츠에서는 보기 드

그래서 영화 <사무 공간>Office Space[일과 직장

없다. 경기장을 빠져 나오면서 나는 그 밤

문 장면입니다. 승자든 패자든 두 선수 모

에 신물이 난 직장인들이 등장하는 미국의 코미디 영

에 있었던 격투 시합이 이웃을 사랑할 우리

두 성공적으로 끝마친 싸움의 고통과 두려

화] 같은 세계에 살고 있는 많은 사람들이 그

의 능력을 한 방에 날려 버렸다고는 생각하

움을 매우 잘 알기 때문입니다.” 사각 링에

런 모습에 쉽게 빠져들었던 것이다.

지 않았다고. 사람들에게는 저마다의 치료

오르거나 케이지[철망을 둘러친 팔각형 격투기 시

솔직하게 얘기해 보자. ‘사망의 음침한

약이 따로 있는 법이다.

골짜기’에서 살아가는 인생에는 분노와 좌

그 저녁의 격투기 관람이 아니었다면 나

절을 유발하는 이유들이 넘쳐난다. 그렇

쁜 감정들 때문에 마음이 딱딱하게 굳어 버

지만 자연적이고 원초적인 이런 감정

렸을 사람들 중에는 킥과 주먹에 전율하면

런 성취감이 성장

들을 분출할 수 있는 사회적으로 용

서 그런 감정들을 물리쳐 버린 이들도 있을

의 기초가 되기

인된 수단은 별로 없는 것이 현실이

것이다. 그러나 검투사들의 격투 쇼가 필요

도 한다.

다. 니체가 기독교를 혐오한 이유의

한 우리 같은 사람들은, 우리의 즐거움이나

물론, 텔레비

하나는 그리스도인들이 자신의 눈썹

분노관리 치료를 위해 자신들의 건강을 위

전 화면 앞에 앉아

아래에서 끓어오르는 분노조차도 제대

험에 내맡기는 사람들도 인간임을, 복싱의

서는 똑같은 경험을

로 모른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니체

경우라면 그 선수들도 상처받을 수 있음을

합장] 안으로 들어가기만 해도

굉장한 성공을 경험할 수 있다. 그리고 그

할 수 없을 것이다. 그

는 남을 판단하는 것을 불

결코 잊어서는 안 될 것이다.

가사이 할 정도로 좋 아하는 우리 그리스 도인들의 이면에서 분노를 보았던 것 이다. 반세기 전, 가톨릭 신학자 리처드 맥코

고든 마리노 세인트 올라프 대학St. Olaf College의 철 학 교수이며 홍 키르케고르 도서관장Hong Kierkegaard Library이다. 프로 복싱 트레이너이며 <월 스트리트 저 널〉<뉴욕 타임스> 등에 복싱 관련 글을 기고하고 있다.

Gordon Marino, “The Hurting Game” CT 2014:4 남승 호 옮김

85


뒤 88쪽에서 시작

그리고 도움을 청하기 위해 달려갔다.

시간을 보냈다. 나는 성경에 대한 많은 질문을

탁했다. 주님과 나 사이에 정적이 흘렀다. 하

낯선 적막이 흐르는 가운데 소동이 일었다.

해결하려고 애썼고 설교를 들으면서 내가 저

지만 그날 주님은 내 눈을 뜨게 하고, 내 귀를

풀밭에 누운 채로 의식을 잃지 않으려고 애쓰

지른 일에도 불구하고 주님이 나를 받아 줄 것

열고, 내 마음을 잠잠하게 하셨다. 주님은 나

고 있을 때, 나는 비명소리와 울음소리를 들었

인지 궁금했다. 주님의 사랑은 생각도 못할 일

를 받아 주셨다.

다. 누군가 소리쳤다. “숨을 쉬지 않아요!”

이었다. 내 주변엔 걱정을 의논할 만한 또래가

오래된 죄는 쉽게 사라지지 않는다. 처음부

없었다. 그래서 어머니가 주신 성경책의 신약

터 많은 훈련이 없이 신자로서 처음 몇 해는

을 모두 읽기로 결심했다. 나는 매일 밤 예수

좀 불안정했다. 하나님은 우리를 정의롭게 하

님에 대해 읽기 시작했다.

시며 또한 영화롭게 하신다. 그리고 때가되면

곧 소방차와 구급차, 경찰차가 환하게 불을 밝혔다. 그들은 나를 구급차에 실었다. 구급차 의 문이 닫히자 여동생의 끔찍하고 오싹한 비

책을 읽으면서 자책과 헛된 희망이 끊임없

삶에 현명하고 신앙이 깊은 사람들을 보내어

명소리가 들렸다. 동생은 현장에 도착해서 내

이 교차했다. 너무 지쳐 ���무 말도 할 수 없었

우리를 고치시고 훈련하신다. 그 이후 몇 년이

차를 보았고 내가 죽었다고 생각했던 것이다.

다. 신앙이 무엇인지 알려고 할수록 더 혼란

지나 나는 용서 받았음을 깨닫기 시작했다. 그

스러웠다. 그만둬야겠다는 생각도 여러 번 들

용서는 나의 행동으로 인한 것이 아니라 예수

었다. 하지만 무언가 불편한 마음이 나를 성

님이 십자가에 달리셨기 때문이다. 나는 주일

마침내 누군가가 나의 질문에 답을 해주었

경 속에서 만났던 예수님께로 이끌었다. 내

에만 주님을 섬기는 것이 아니라 항상 주님을

다. 내가 집 근처에서 완만한 커브 길을 주행

마음에서 주님에 대한 생각을 완전히 제거할

위해 살도록 부름을 받았다는 것을 깨달았다.

할 때 내 친구 존이 거기에 있었다. 그는 손을

수도 없었다.

주님께서 나의 일부만이 아니라 나의 전부를

나는 병원으로 실려 갔다. 병원에 누워 몇 시간을 보냈다.

들어 통제 불능인 내 차 카마로를 저지하려고

이듬해 봄, 슈가랜드 제일연합 감리교회에

했다. 그러다가 그는 내 차 앞 유리에 부딪혔

서 부흥회 주간 강사로 테네시 주의 감리교회

고 그 충격으로 사망했다.

목사님을 초청했다. 목사님은 성경에 나와 있

예수님 때문에, 나는 친구를 사망에 이르

사고 전에 나는 내 삶이 구재불능이라고 생

는 한 남자의 이야기를 해 주셨다. 오랫동안

게 한 것에 대한 대가를 용기를 갖고 받아드릴

각했다. 사고가 난 후에는 죽고 싶었다. 하지

마비된 채로 예루살렘의 베데스다라는 연못

수 있게 되었다. 그 대가는 5년간의 보호관찰

만 나의 절망의 가장 깊고 추하고 어두운 곳에

가에 누워있던 남자였다. 동네 사람들은 주님

과 지역봉사였다. 나는 다른 10대 아이들 앞에

서 주님이 내게 역사하셨다.

의 천사가 내려와 그 못의 물을 움직인 후 누

서서 이야기 했다. 올바른 선택을 한다는 것

취하셨다. 내 삶은 더 이상 나의 것이 아니었 다. 나는 주님의 사람이었다.

구라도 처음으로 그 물속에 들어가는 사람은

이 무엇인지, 음주 운전이 얼마나 어리석은 짓

마비

치유된다고 믿었다. 하지만 38년 동안 병으로

인지를 이야기 했다. 주님으로 인해 나를 중

나는 기독교 가정에서 자랐다. 우리 가족은 간

누워만 있던 남자에게 물속으로 들어가는 일

히 여기던 마음이 주님을 섬기는 마음으로 바

간히 교회에 나갔다. 나는 기도하고, 찬양을

뀌었다. 주님은 나의 과거와 경험을 다른 사람

드렸고, 내가 천국에 갈 수 있을 거라고 믿었

은 어려웠다. 예수님은 물었다. “낫기를 원하느냐?” 이

다. 하지만 사고가 있기 전 몇 년 동안, 특히 우

질문이 나는 이상하게 느껴졌다. 성경속의 남

격려하는 데 사용할 수 있도록 하셨다. 주님은

울증과 불안에 시달릴 당시에 나는 내 신앙이

자는 그렇다고 대답했다. 그리고 그가 물에 들

나를 바꾸어 놓았다. 공허함과 상실, 외로움

진실한 것인지 의문을 가졌다. 내가 알던 사람

어 갈 수 없었던 이유를 설명하기 시작했다.

으로 가득 찼던 나는 주님의 자녀가 되어 용서

들은 교회에 나갔지만 나처럼 마약이나 술에

예수님은 그 자리에서 그를 치유했다.

받고 희망과 목적을 갖게 되었다. 분명히 이것

찌들어 있었다. 그렇지 않은 교인들은 나 같은 사람하고는 말도 섞지 않았다. 어떤 쪽이든, 그들의 신앙이 내게 관심을 불러일으키기엔 너무 미약했다.

목사님은 회중의 우리를 바라보며 같은 질 문을 했다. “낫고자 하십니까?”

들이 죄를 짓지 않고 그분께 나아갈 수 있도록

은 오래 걸리고 어려운 길이었지만 하나님은 나를 바꾸셨고 여전히 변화는 진행 중이다. 여전히 응답을 받는 경우는 많지 않지만, 나

지금까지의 내 삶은 두려움, 우울증, 자만으

는 예수님이 하나님의 아들이시며 죄를 용서

그럼에도 불구하고 사고 후에 나는 나가야

로 마비되어 있었다. 나는 항상 내 잘못에 대

할 수 있는 능력이 있으시며 상처 받은 사람들

할 방향을 갈구했고 그래서 교회를 나가 보았

해 변명해 왔다. 그 모든 것이 분명해진 건 예

을 새롭게 하신다고 확신한다.

다. 어른들은 내가 한 일을 알고도 놀라울 정

수님이 병자에게 했던 질문을 목사님이 되풀

도로 나에게 친절하게 대해 주었다. 그들의 친

이할 때였다. 나는 당시에 했던 생각을 지금도

절에 용기를 얻은 나는 청년부에 나가기로 결

생생하게 기억한다. 예수님이 나를 치유해주

심했다. 하지만 멍청한 게임도 하기 싫었고,

신다면 나는 낫고자 했다.

내 또래 아이들은 그들의 부모와는 달리 나에 게 호의적이지 않았다. 이 시점에서 나는 몇 달 동안 극도로 좌절의

그날 밤 나는 특별한 기도를 하거나 방언을 하거나 카드를 쓰거나 심지어 울지도 않았다. 하지만 나는 예수님께 나를 낫게 해달라고 부

케이시 시즈 텍사스 매그놀리아시의 매그놀리아 그리 스도의 공동체 교회 목사이며,「비극에서 진리로: 신앙 과 변화의 이야기」Tragedy to Truth: A Story of Faith and Transformation의 저자이다. 그에 대한 더 많은 정보는 CaseyCease.com에서. Casey Cease, “My Crash Course on Jesus” CT 2013:7/8 정태선 옮김

87


고백

예수와 충돌하다 치명적인 실수를 한 다음에야 나는 정신을 차리고 복음을 받아들였다 케이시 시즈

17

살이 되던 해 나는 인생의 전환점을 가져온 자동차 사고

물고 싶었다. 내가 살던 지역 밖으로 이어지는 도로가 나오자 나는 더 이

를 당했다. 사고로 나는 모든 것을 잃었고 하나님은 나를

상 운전하는 것은 멍청한 일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친구들을 걱정시키

새롭게 하셨다.

고 싶지 않았고 부모님께도 혼나고 싶지 않았다. 집으로 방향을 돌렸다.

1995년 7월 5일 나는 집에서 파티를 열었다. 불안과 우울증으로 몇

해를 보내고 난 뒤였다. 여자 친구와 헤어지고 내 삶에 불만을 키워가고

깨어남

있던 나는 늘 해 오던 방식으로 문제를 해결했다. 술에 의지하는 것이었

깨어나 보니 온통 유리 파편투성이었다. 내 무릎에는 푹 꺼진 에어백이

다. 친구와 가족, 나 자신 모두를 견딜 수가 없었다. 그날 밤이 깊어 가면

있었다. 안개가 걷히면서 나는 내차 앞 유리판에 커다란 구멍을 낼 수

서 더욱 화가 치밀어 올랐다.

있었다. 자동차 윤활유 냄새에 금속성의 자극적인 냄새가 섞이기 시작

새벽 1시쯤 나는 파티에서 떠나고 싶은 충동에 휩싸였다. 내가 몇 시 간 전부터 술을 마시고 있다는 것을 알고 있었기 때문에 친구들은 나를 말렸다. 나는 열쇠를 집어 들고 당시에 내가 운전하던 차인 1995년형 카마로 Z28에 올라탔다. 그러자 친구들이 다른 차로 나를 막아섰다. 나 내가 살던 동네인 휴스턴의 교외 지역에서 속도를 내어 달리는 동안 내 마음은 공허함과 절망감으로 가득했다. 정상적으로 생각하기 어려 운 상태였다. 나는 집에서 멀리 떨어져 있고 싶으면서도 동시에 집에 머

CHRISTIANITY TODAY

지 기억할 수 있었다. “내가 누굴 친 거야?”

“아무도 안 다쳤어. 나무를 박았을 뿐이야.” 누군가 나를 안심시켰다. 그러고는 자동차에서 나를 끌어내서 풀밭

는 친구들을 피해서 도로로 나갔다.

88

했다. 갑자기 한 친구가 뒷문을 열었다. 나는 그때 무슨 일이 일어났는

June 2014

쪽으로 데리고 갔다. 나는 계속 겁이 났다. “아냐, 내가 사람을 쳤어! 누구지?” 블레이크는 내차 앞으로 가서 아래를 살폈다.

앞 87쪽으로 이어짐

ZACH MCNAIR


www.kosin.ac.kr

Passion for the Great

Christian University  총장

전 광 식 박사

한국의 대표 기독교 대학, 세계의 명품 기독교 대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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གྷ೑࿝਒ཟຼღ, ሖັ࿝೿࿠info@compassion.or.kr www.compassion.or.kr


크리스채너티 투데이 한국판 2014년 06월호